극락왕생 사례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

慧蓮(혜련) 2017. 11. 20. 17:19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


<일타 큰스님의 글>

나의 가족은 친가와 외가를 모두 합하여 모두 41명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 41명의 출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일족의 출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41명의 출가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인가?
아닙니다. 나의 외증조할머니인 이평등월(李平等月)
보살의 기도와 입적(入寂), 그리고 방광의 이적(異蹟)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안성이씨(安城李氏) 평등월 보살은 일찍이 우리 나라
제일의 양반으로 치던 광산 김씨(光山金氏)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녀는 남편 김영인(金永仁)의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삼형제를 낳아 기르며, 학식있는 양반집 안방마님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60이 조금 지났을 때 갑자기 불행
닥쳐왔습니다. 남편이 남의 빚보증을 섰다가 대부분의
재산을 날려 버렸고, 연이어 시름시름 앓던 남편은
끝내 저 세상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등월 보살이 실의(失意)에 잠겨 해어나지 못하고
있자. 이미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던 만수(萬洙)
* 완수(完洙) * 은수(恩洙) 세 아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습니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우리가 양반이라고 마냥
이렇게 살 것이 아니다. 노력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
이렇게 결의한 세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염려 마십시오. 이제부터
저희들이 집안을 꾸려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목화를 솜으로
만드는 솜틀기계 한 대를 일본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기계를 발로 밟으면서 목화를 집어 넣으면 껍질은
껍질대로, 씨는 씨대로 나오고 솜은 잘 타져서 이불짝
처럼 빠져 나오는 당시로서는 최신식 기계였습니다.

이렇게 공주 시내 한복판의 시장에다 솜틀공장을 차린
삼형제는 작업복을 입고 하루 여덟시간씩 3교대로 직접
솜틀기계를 돌렸습니다.
기계는 24시간 멈출 때가 없었습니다.

공주 사람들은 그 솜틀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공주도 이제 개명을 하는구나." 하면서
'공주개명(公州開明)! 공주개명!'을 외쳤습니다.
마침내 공주 주변에서 생산되는 목화는 모두 이
공장으로 들어왔고, 산더미같이 쌓인 목화가 솜이 되어
나오는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집안에는 돈이
쌓여 갔습니다.

월말이 되면 삼형제는 한 달 번 돈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세 몫이 아니라 네 몫으로 나누었습니다.
남는 한 몫은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바로 어머니 평등월 보살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머니께 직접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달 동안 '삼형제 중 누구 집에 며칠을
계셨느냐'에 따라 그 집에 직접 분배를 하는것입니다.
막내아들 집에 열흘을 계셨으면 3분의 1을 막내아들
집에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며느리들은 서로
시어머니를 잘 모시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 우렸습니다.

집집마다 어머니 방을 따로 마련하여 항상 깨끗하게
꾸며 놓았고,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으로 최고의
호강을 시켜드렸습니다. 때때로 절에 가신다고 하면
서로 시주할 돈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집안은 공주 제일의 효자 집안으로 소문이
났고, 벌어 들인 돈으 로는 논 백 마지기를 다시
사들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평등월 보살은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을 평안함과 기쁨속에서 지내던 할머니가
막내아들 집에 가 있던 어느 날, 한 비구니스님이
탁발을 하러 왔습니다.

그 스님을 보자 할머니는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도 잘생겼을까? 마치 관세음보살님
같구나." 크게 반한 할머니는 집안에서 가장 큰
바구니에다 쌀을 가득 퍼서 스님의 걸망에 부어
드렸습니다. 그때까지 비구니 스님은 할머니를 조용히
보고만 있다가 불쑥 말을 했었습니다.

"할머니! 요즘 세상사는 재미가 아주 좋은 신가 보지요?"
"아, 좋다마다요. 우리 아들 삼형제가 모두 효자라서
얼마나 잘해 주는지....... 스님. 제 말 좀 들어 보실래요?"
할머니는 신이 나서 아들 자랑을 시작했고, 며느리
자랑, 손자 자랑까지 일사천리로 늘어놓았습니다.

마침내 할머니의 자랑은 끝내 이르렀고, 장시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스님은 힘주어 말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세상일에 애착을 많이 가지면
죽어서 업(業)이 됩니다."
"업?"
충청도 사람들은 '죽어서 업이 된다'고 하면 구렁이가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어서 큰 구렁이가 되어 고방(庫房) 안의 쌀독을 칭칭
감고 있는 업! 할머니는 그 '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았 습니다.

"아이구 스님! 어떻게 하면 업이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업이 다 되어 가는데 뭐.......... 지금 와서
나에게 물은들 뭐하겠소?"
스님은 벼랑을 짊어지고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업만은 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5리, 10리 길을
쫓아가면서 스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스님, 제발 하룻밤만 저희 집에 머무르시면서 업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간청에 못이겨 다시 집으로 온
스님은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윗목에서 벽을 향해 앉아 말 한마디 없이
밤을 새웠고, 할머니 역시 스님의 등뒤에 앉아 속으로만
기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발 업이 되지 않는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제발....."

마침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스님은 할머니 쪽으로
돌아앉았습니다.
"정말 업이 되기 싫소?"
"아이구. 제가 업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스님. 절대로 안됩니다. 인도환생(人道還生)하든지
극락세계에 가도록 해주십시오."

"정말 업이 되기 싫고 극락에 가기를 원하면 오늘부터
행실을 바꾸어야 하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부터 발은 절대로 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친견하여 극락에 가기만을 기원하시오."

스님의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씀은 몸단속을
하라는 것이고, 나무아 미타불을 불러라'는 것은 입을
단속. '일심으로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하라'는 것은
생각 단속입니다.

곧 몸[身]과 입[口]과 생각[意]의 삼업(三業)이 하나가
되게 염불할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님. 다시 한번 자세히 일러주십시오."

"보살님 나이가 70이 다 되었는데,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소? 돌아가실 날까지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면 업 같은 것은 십만 팔천 리 밖으로 도망가
버리고, 극락세계에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첫째나 둘째 아들집에도 가지 말고,
이웃집에도 놀러가지 마십시오. 찾아오는 사람에게
집안 자랑하지도 말고. 오직 이 집에서 이 방을
차지하고앉아 죽을 주면 죽을 먹고 밥을 주면 밥을
먹으면서 '나무아미타불'만 외우십시오. 그리고
생각으로는 극락 가기를 발원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까?"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다짐을 하면서 큰절을 올렸고, 스님은 옆에
놓아두었던 삿갓을 들고 일어서서 벽에다 건 다음
슬며시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걸망도 그대로 둔 채.....
'변소에 가시나 보다.'
그러나 한번 나간 스님은 영영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풀어 온 동네를 찾아보게 하였으나 '보았다'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아! 그분은 문수보살님이 틀림없다. 문수보살님께서
나를 발심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욱 발심(發心)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방의 가장 좋은 위치에 스님의 삿갓과 걸망을
걸어 놓고, 아침에 눈만 뜨면 몇 차례 절을 올린 다음
'나무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어느덧 할머니는 앞일을 내다보는 신통력(神通力)이
생겼습니다. "어멈아! 오늘 손님이 다섯 온다. 밥 다섯
그릇 더 준비해라." 과연 끼니때가 되자 손님 다섯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루는 막내아들을 불러 각별히 당부하였습니다.
"얘야. 너희들 공장에 화기(火氣)가 미치고 있다.
오늘은 기계를 돌리지 말고 물을 많이 준비해 놓아라.
위험하다." 그 말씀대로 세 아들은 아침부터 솜틀기계를
멈추고 물통준비와 인화물질 제거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바로 옆집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옆집 불을 껐습니다.
만약 목화 솜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솜틀공장은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하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예언으로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웃 집의 피해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도 외증조할머니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손녀인 어머니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외증조할머니는 큰아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리 가량 가면 구름내[雲川]라는
마을이 있다.

김창석 씨네 둘째 아들과 네 딸 상남(上男)이와는
인연이 있으니, 찾아가서 혼사(婚事)를 이야기해
보아라." 이렇게 외증조할머니는 가 보지도 않고
신통력으로 나의 부모님을 결혼시켰습니다.

마침내 주위에서는 외증조할머니를 일컬어 '생불(生佛)
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외증조할머니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고 '문수보살'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변화를 걱정한 아들 삼형제는 인근 마곡사의
태허(太虛: 鏡虛대선사의 사형) 스님을 찾아가
상의했습니다. "문수보살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10년 동안이나 아미타불을 불렀으면 끝까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일을 자꾸 예언하다 보면 자칫 마섭(魔攝)이
될 수도 있다.내가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는
글을 써 줄 테니 벽에 붙여 놓고 '나무아미타불'을
항상 부르도록 말씀드려라."

常放大光明! 언제나 대광명을 뿜어낸다는 이 글을
보면서 할머니는 다시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불렀습니다.그리고 앞일에 대한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염불기도를 하다가 할머니는 88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야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7일장(七日葬)을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햇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밤만 되면
그 빛을 본 사람들이 '불이 났다'며 물통을 들고
달려오기를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상객으로 붐비는 집안 역시 불을 켜지 않아도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그야말로 외증조할머니는 염불기도를 통하여
상방대광명을 이루었고,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가족들은 그 뒤
차례로 출가하여, 우리 집안 친가*외가 41인
모두는 승려가 되었습니다.

몸과 말과 뜻을 하나로 모아 염불하고 기도하는 공덕.
그 공덕을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의 불가사의가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기도는 우리 집안을 불심(佛心)으로
가득 채웠고,

41명 모두를 '중노릇 충실히 하는 승려'로 바꾸어 놓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


- 신문기사 내용 -

일타스님,염불 영험담수록 「기도」펴내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日陀스님이 자신과 주위
사람 및 옛 선사(禪師 )들의 기도 성취 영험담을 모은 책
「기도(祈禱)」를 펴냈다.

전계대화상은 조계종 소속으로 출가하는 모든 승려에게
계(戒)를 주는 원로스님으로 청정계율을 지킨 승려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영예로운 직책이다.

1929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13세때 출가,
일평생 참선정진과 중생교화에만 몰두한 수행승으로
유명하다.

친가와 외가를 합쳐 모두 41명이 출가한 얘기며 20 대에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매일 3천배씩 7일동안 기도를
드린뒤 오른 손 네손가락 열두마디를 모두 불태워 버린
일화는 지금도 불가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일타스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외증조할머니인
李平等月 보살이 10년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기도를 한 끝에 「생불(生佛)」로
불리다가 세상을 뜨자 7일간 불을 밝히지 않아도

집안을 대낮같이 밝히는 방광(放光)
현상이 나타났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를 직접 체험한
가족들이 차례로 출가, 결국 석가모니 이후 한 집에서
가장 많은 출가자를 내게됐다』고 말했다.

손가락 연비(燃臂)에 대해서도 스님은 『손가락이
없으면 세속적인 모든 생각이 저절로 뚝 끊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세 명예 행복등 세속적 미련을
손가락과 함께 태워버렸다』면서

『연비후 홀로 태백산 도솔 암으로 들어가 6년동안
조그마한 갈등도 없이 참선 정진했던 시절은
일평생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옛 선사들의 기도에 얽힌 얘기와 1백만배(拜)로
원력(願力)을 이룬 제자 慧印스님, 7일간 3천배로
운동권 아들의 마음을 돌려 법조인으로 만든 보살등
평범 한 이들의 기도 성취담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도서출판 효림 간행.〈吳明哲〉

[동아일보] 1995-11-12 (문화) 뉴스 15면


------------------------

 

나무아미타불과 극락, 염불에 관한 자세한 가르침 바로가기 http://cafe.daum.net/amtb/8L2t/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