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공덕과 영험록 모음
사경천도는 말뜻 그대로 경전을 한자 한자 정성껏 써내려가면서 영가를 깨우치고 좋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축원을 해주는 천도법이다. 이러한 사경천도의 영험담은 수없이 많지만, 여기에서는 사경 중에 특이한 일이 있었던 통도사 정진(正眞)스님의 예를 들고자 한다.
조선시대 말 통도사 백련암에서 승려생활을 했던 정진스님은 울산에 살았던 아버지 송유양이 돌아가셨을 대 49제를 지내주었으므로 마땅히 천도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다. 포졸옷을 입은 7~8명의 장정이 달려들어 바닷가로 끌고 가더니, 강제로 배에 태워 무인도에다 내려놓은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스님’하고 불렀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시며 법명은 어떻게 됩니까?”
“통도사 백련암에 있는 정진입니다.”
“고향은 어디입니까?”
“울산이오.”
“아이구 내 아들아!”
그때서야 상대를 자세히 살펴보니, 고초에 시달려 핼쑥해진 모습은 예와 같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아버지 송유양이었다.
“아버지, 이것이 어찌된 노릇입니까?”
“아들아. 세상에 살 때 재산이 있는 양반이라 하여 사람들을 괄시하고 짓밟은 과보로, 지금 나는 뱀들이 우글거리는 요사지옥(繞蛇地獄)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단다. 제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합니까?”
“내가 이 지옥에 들어온 후로 여기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난 이가 꼭 한 사람 있다. 그는 주욱 소주 땅에서 관리 노릇을 했던 정익수라는 사람인데, 그의 아들 태을이 법화경을 천 번 읽으며 천도해 준 공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느니라. 너도 나를 위해 법화경 한 질을 베껴 쓰고 독송하여,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그리고는 무엇에 의해 끌려가는지 몸을 벌벌 떨며 말하였다.
“또 지긋지긋한 고문의 시간이 되었구나. 부탁이다. 제발 내 말을 잊어버리지 말아라.”
“아버지, 아버지!”
정진스님은 소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스님은 울산의 어머니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하고, 전국을 다니며 탁발하였다. 왜냐하면 경을 쓰는데 필요한 종이와 금가루 뿐만이 아니라, 경전을 쓰는 이에 대한 양식과 의복과 사례금, 기도하는 동안 법당스님과 고양주와 머슴들에게 쓸 비용까지 모두 마련해야 했지 때문이다.
이렇게 경비가 마련되자 순천 선암사의 대강백이요 명필로 이름난 김경운(金警雲) 스님을 모셔와 검은 색 한지에 금으로 법화경을 써줄 것을 청하였다.
금가루로 글씨를 쓰면 붓이 금방 마모되어 버린다. 경운스님이 법화경 8권 중 4권을 쓰고 나자 처음 마련했던 붓들이 모두 마모되어 버렸다. 때마침 눈이 많이 와서 붓을 사러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청소를 하기 위해 방문을 열자, 족제비 한 마리가 뛰어들어와 아랫목에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나가거라, 추워서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여기는 네가 들어올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족제비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손으로 밀어내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경운스님은 느낀 바가 있어 족제비에게 말하였다.
“효자 정진스님의 아버지를 위한 거룩한 불사에 네 몸의 털을 보태겠다는 것이나? 네 뜻이 그렇다면 받아들이마.”
경운스님이 살아있는 족제비의 꼬리털을 모두 뽑는 동안 족제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맙구나. 이것으로 붓을 만들면 이 경전을 다 쓰고도 남겠구나.”
그때서야 족제비는 방에서 나갔고, 경운스님이 법화경 사경을 끝내자, 정진스님은 통도사 적멸보궁에 금글씨로 쓴 법화경을 올리고 축원하였다.
“아버지를 위해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밤 정진스님의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말하였다.
“고맙다. 네 덕분에 요사지옥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오르게 되었구나. 스님 노릇 잘하기 바란다.”
또, 아내의 꿈에도 나타나 당부하였다.
“여보,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은 남 앞에서 잘난 척하거나 잘 입고 잘 먹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자꾸 베풀어주고 공덕을 쌓으며 사는 것이라오. 당신 농 속의 옷만 하여도 평생 입고도 남으니 더 이상의 옷을 가지려 하지 마시오. 소작하는 사람들이 가을에 양식을 가지고 오면 적다고 책하지 말고 ‘고맙다’고 하면서 주는 대로 받으시오. 어떻게 하든 복을 닦으시고. 나는 당신과 스님 아들이 있어 이렇게 제도를 받았지만, 당신 뒤에는 그렇게 해 줄 사람이 없으니 당신 복은 당신이 닦아야 할 것이오.”
그때가 1901년이었고, 현재 이 금자법화경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정진스님은 지옥에 빠진 아버지를 천도하면서 실지로는 법화경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
다만 사경 전이나 사경 중에 정성을 다하였을 분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요사지옥을 벗어나 천상으로 인도되었다. 이처럼 사경의 공덕이란 크고도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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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사경의 공덕
종이를 살 때에 벌써 천당에 태어나다.
중국 낙양사람 하현령은 당나라 고종 용삭 2년에 경성에서 죽었는데,
명부에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그 재조(才操)를 아깝게 여겨 주부(主簿) 벼슬을 시켰다.
그 다음 해 인덕 연중에 하씨의 고향 사람이 죽어 명부에 들어가서 하씨를 만났는데,
하씨가 그에게 묻기를,
"그대가 어찌하여 이곳에 왔소?"하니, 대답하기를
"귀졸(鬼卒)에게 잡히어 왔습니다.",하므로
내가 문서를 검렬하여 본 결과 그대는 남의 비명(非名)으로 잘못 온 것을 발견하였소.
그대를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려보내 줄 것이니 환생하는 즉시
책을 베껴 쓰는 인연을 맺도록 더욱 힘쓰시오." 하였다.
고향 사람이 하씨에게 하직하고 떠나려 할 때에 문득 같은 마을에
살던 노파 한 사람을 만났다. 그를 보고 하는 말이,
"그대가 여기에 와 가지고, 어찌 나의 고통 받는 곳을 보지 않겠소" 하므로,
그가 승낙하고 지옥을 둘러보는데, 커다란 가마에서 물이 펄펄 끓으며 죄인을 삶고 있었다.
노파가 다시 부탁하기를,
"그대는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다 하니, 우리 영감을 찾아보고 나의 부탁이라 전하고,
나를 위하여 "법화경" 한 부를 쓰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면 내가 이 무서운 죄보를 벗고 좋은 곳에 태어날 것입니다.
만일 승락을 하신다면 앞으로 약 열흘쯤 지나서
그대는 내가 살던 동리 앞 강가로 찾아 와서 전해 주시오." 하였다.
그 사람이 승낙하고 그 길로 깨어나서 즉시 그 노파의 영감을 찾아가
지옥에 갔던 이야기를 설명하고 급히 "법화경"을 쓰라고 하였다.
그 영감이 즉시 종이를 사서 필경사로 하여금 "법화경"을 쓰게 하였다.
그 사람이 그 후 열흘의 기한이 되어 강가로 찾아갔는데,
지옥에서 만나보던 노파는 아니 오고 다른 늙은이가 나타나서
그를 보고 하는 말이,
"그대가 전일 지옥에서 법화경을 써 달라고 부탁을 받은 사람인가" 그가 대답 하기를,
"과연 그러한 언약이 있었소."
늙은이 말하기를,
"그를 부탁하던 부인은 그 영감이 경을 쓰기 위하여 종이를 사던 날에 벌써
천상락을 받아 태어났으므로 오늘날 그대와 만나 보지 못하게 되어서 하는 수 없이
나에게 부탁하여, 그대를 만나보고 법화경의 힘을 입어 벌써 이고득락(離苦得樂)한
사연을 전해 주라고 하여 대신 왔소."
하고는 인홀불견(因忽不見)이 되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법화경의 공덕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되어 그 귀부터는 자신도 법화경을 읽고 베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홍찬전 제10권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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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업을 녹인 기도 (일타스님 글)
경상북도 울진에는 불영사(佛影寺)라는 절이 있읍니다. 절 앞에 있는 연못에 앞산 바윗돌위에 서 계신 부처님의 모습이 비친다 하여 그림자 "영"자를 쓰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신령스럼 영험이 잇었다고 하여 영(靈) 자를 써서 불영사(佛靈寺)라고도 합니다. 그 신령스런 영험담은 다음과 같읍니다.
조선 중기, 서울 남산골에 백극재 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백극재는 오로지 책만 읽을뿐, 생업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집안이 가난하기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지경 이었읍니다.
하는 수 없이 그의 아내 강씨 부인은 친정을 드나들며 구걸을 하다시피 하여 겨우 생계를 이어갔읍니다. 그러나 강씨 부인은 이와같은 가난 속에서도 남편에 대한 불만을 갖지 않았읍니다. 또한 결혼 전에는 친정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으나, 출가 후 집이 가난하여 절에 다니기가 어려워지자 혼자 기도하고 염불하였읍니다. 그녀는 기도를 할 때마다 절에 가지 못하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면서 부처님께 서원했읍니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만 벼슬하게되면 잊지않고 공양도 올리고, 공부하는 스님들 시봉도 들고, 불사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성심껏 보시하겠읍니다."
이러한 강씨의 정성이 헛되지 않아 이듬 해 남편 백극재는 장원급제하여 경상도 울진 현감으로 부임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호사다마 라고나 할까, 그렇게 건강하던 남편이 부사로 부임한 지 3일만에 이렇다 할 병도 없이 그대로 죽고 말았읍니다.
비통함을 이기지 못한 강씨 부인은 몸이 채 식지도 않은 남편의 시신을 불영사 법당 앞으로 옮겨 식음을 전폐한 채 7일 낮밤으로 기도를 하였읍니다.
"부처님! 저의 남편을 다시 살려 주십시요. 부처님의 영험으로 가난을 벗고 현감이 되어 부처님의 은혜를 갑고자 하였는데, 이렇게 죽는다면 너무 억울하옵니다.
부처님! 일월의 광명이 사사로움 없이 널리 비추는 듯 하지만, 높은 산을 먼저 비추고 맑은 물에 먼저 나타납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은 인연없는 중생까지도 마치 홀어머니가 외아들 생각하듯 하시겠지만 신심있는 자에게 먼저 이를 것이요, 인연 있는 중생에게 먼저 미치지 않겠읍니까? 부디 저의 남편을 살려주옵소서."
강씨 부인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으로 낮밤을 잊고 7일동안 기도를 올렸읍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깜박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붉은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남편의 몸에서 툭 나오더니 불쾌한 얼굴로 소리쳤읍니다.
"에잇, 지독하다, 지독해! 나와 저이는 구생(九生)에 원한을 맺은 원수 인고로 어느때 어느 곳에서도 세상의 낙(樂)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었는데, 부인의 간절한 기도에 부처님이 감응 하셨으니 나는 이제 구생의 원한을 풀고 가노라."
이렇게 말을 마친 원귀(怨鬼)는 하늘로 둥둥 떠서 연기처럼 사라졌읍니다.
깜짝 놀라서 깨어보니 죽었던 남편이 부시시 눈을 뜨는 것이었읍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그들 부부는 다시 살아난 그 자리에 환생전(還生殿)을 짓고, <법화경> 7권을 금자(金字)로 사경(寫經)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였읍니다.
이 이야기는 이문명(李文命)이 쓴 불영사의 환생전기(還生殿記)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 누구든지 마땅이 녹여 없애야 할 업이 잇다면 오로지 지극 정성으로 참회하십시요. 죄를 멸하여 복이 이르면 신령스러움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마치 파도가 없어지면 물이 고요해지고, 고요한 물에는 하늘의 달이 그대로 비치는 것과 같으며, 먼지가 가득한 거울에는 사물이 제대로 비치지 않지만, 먼지만 닦아내면 밝은 형상이 그대로 나타내는 것과 같읍니다.
우리 모두 올바른 참회를 이루어, 업의 결박을 벗어난 대자재(大自在)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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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화(久法華)의 왕생 이야기
송(宋) 가구(可久)는 명주(明州)에 살았다 법화경(法華經)
을 읽으면서 정토(淨土)에 태어나기를 발원(發願)했으므로
당시(當時)에 흔히 구법화(久法華)라고 불렀다.
원우(元祐) 8년(年)[1093] 나이 81세(歲)에 앉아서 죽었다.
3일후(日後)에 다시 깨어나 사람들에게 내가 정토(淨土)의
경계(境界)를 보니 경(經)에서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
지 않았다.
연화대(蓮華臺) 위에마다 태어날 자(者)의 이름을 표기(標
記)해 두었는데 한 금대(金臺)에는 성도부(成都府) 광교원
(廣敎院) 훈(勳)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한 곳에는 명주
(明州) 손십이랑(孫十二郞)이 적혀 있었으며 한곳에는 가구
(可久)의 이름도 있었다.
또한 한 은대(銀臺)에는 명주(明州) 서도고(徐道姑)의 이름
이 적혀 있었다하고는 다시 죽었다.
5년후(年後)에 서도고(徐道姑)가 죽었는데 기이(奇異)한 향
기(香氣)가 방에 가득했으며 12년후에 손십이랑(孫十二郞)
이 죽을 때는 하늘 음악(音樂)이 허공(虛空)에서 쟁쟁(錚錚)
하여 모두 가구(可久)가 말한 것과 일치(一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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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에서 사리가 나오다 |
지엄(智凞) 스님은 동주(同州) 사람이다. 나이 열세살 때 범승(梵憎)을 만나서 출가하여 계업사(戒業寺)에서 법화경·유마경·반야경 등을 배워서 그 깊은 뜻을 구명하여 마침내 통달하고, 말과 행동이 다 뛰어난 고결한 법사가 되었다. 현경(顯慶) 3년에 태주(泰州) 선장현(仙掌辯)의 여러 도속들이 지엄스님을 영선사(靈仙寺)로 청하여 법화경을 강설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이 절의 환향(還香)스님의 방에 거처하게 되어 첫날밤에 법화경을 책상 위에 펴 놓고 한 대문을 찾아서 독송하려고 하였다. 환향스님과 시자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는데, 지엄스님이 향을 피우자마자, 홀연 법화경의 부처불(佛)자에서 세 개의 사리가 나왔다. 오색 광명이 경위에 찬란히 퍼지고, 사리는 이리저리 흘러 다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였다. 환향스님이 곧 절의 다른 여러 스님들에게 알려 모두 와서 예배하고 함께 사리를 거두어 모시려고 하니까, 사리는 도로 부처불자로 흘러 들어갔다. 스님들이 슬피 울며 예배한 다음, 향을 피우고 다시 진용(眞容) 뵙기를 발원하니, 사리가 다시 부처불자 가운데서 나와 흘러 다니다가 잠시 후에 다른 부처불자로 들어가 차례로 없어졌다. 지엄스님은 법화경을 수십 번을 강설하여, 영험을 느끼고 상서로움을 얻은 일이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부터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스님과 아는 사람들은 한사람 한 사람 찾아보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홀연 어느 날 아침에 정원을 깨끗이 소제한 다음, 단정히 앉아 선정(禪定)에 들어가서 그대로 입적하였다. 기이한 향기와 기운이 온 집에 가득 차서 이레가 지나도록 남아 있었고, 그 혀는 입적하고서도 몇 해후까지 썩지 않고, 머리털이 2치나 자랐으며, 얼굴빛이 생전과 같아, 식견 있는 사람들은 다 그는 득도(得道)했다고 하였다. <삼국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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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영험
수나라 문제(文帝)때의 일이다.
보통(寶通)이란 스님이있었는데 법화경 다라니품을 읽어 매양 신령스러운 이적을 보였다.
그 소문이 널리퍼져 귀신 들린 사람들이 자주 스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어느날은 양교촌(楊橋村)에 사는 조씨(趙氏)가 찾아와 아내에게 귀신이 든것 같다며 도움을 청했다.
스님은 조씨집을 찾아가 귀신에게 타일렀다.
"너는 이마을에 사는 귀신이니 이 마을 사람들에게 복을 주어야 할텐데 왜 도리어 사람을 괴롭히는가?"
그러자 한귀신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것은 내가한짓이 아니라 졸개 귀신들이 한짓입니다. 졸개들을 꾸짖어 못하게 하겠습니다."라고했다.
그 귀신이 졸개 귀신을 꾸짖자 조씨의 아내는 곧 병에 차도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않아 이번에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
조씨아내가 온종일 노래를 부르며 무어라고 중얼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님이 다시 찾아가보니 앞서 꾸중을 들었던 졸개귀신이 부인옆에 있었다.
스님은 귀신에게 호통을 쳤다.
"저번에 타일렀는데 왜 아직도 가지않고 있느냐? 지금 당장 떠나지않으면 내가 다라니품을 읽어 네머리를 일곱조각 으로 쪼개어 놓을 것이다." 귀신은 스님이 다라니품을 읽겠다고하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하며 도망을 갔다.
그 뒤부터 조씨의 아내는 귀신에 시달리는 일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여서집 ,현응록 ,홍찬전" 등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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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을 읽고 인도 환생한 꿩
동진(東晋) 때 법지(法志)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여항산(餘航山)에 암자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법화경을 외워 잠시도 게으름이 없었다.
이 때 암자 옆에 보금자리를 치고 있는 꿩 한 마리가 스님의 경 읽는 소리가 들리면 곧 날아와서 스님의 옆에 앉아, 마치 모시고 서서 경을 듣는 것 같았다. 이러기를 7년, 하루는 꿩이 매우 초췌한 모습으로 스님에게 왔다. 스님이,
「너는 비록 날짐승이지마는, 능히 경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짐승의 몸을 벗고 나면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
하고 위로해 주었는데, 이튿날 새벽에 꿩이 죽어 스님이 묻어 주었다.
그날 밤에 스님이 잠이 들려 하는데, 꿈에 한 어린이가 나타나서 두 번 절하고,
「저는 전에 스님 곁에 있던 꿩입니다 스님의 경 외우시는 것을 들은 인연으로 지금산 남쪽 왕씨(王氏)네 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른쪽 겨드랑 아래의 솜털이 있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
하였다.
이튿날 아침 법지스님이 그 집을 찾아가 물어보았더니, 과연 왕씨 집에서 아들을 낳아 재를 올리고 있었다. 스님이 막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이 대뜸,
「우리 스님 오신다.」
하여 모두들 기이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법지스님께 보였다. 스님은 아기의 옷을 벗겨 두루 살펴보니 과연 겨드랑 밑에 꿩의 솜털이 세 줄로 나 있었다. 아이는 일곱 살 때 출가하겠다고 해서 부모가 허락하여 산으로 들어가 열다섯 살에 머리를 깎았다. 겨드랑 밑에 꿩 털이 있으므로 이름을 담익(曇翼)이라 하였는데, 법화경을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외웠다. 스님이 되자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도를 물어 종승(宗乖)을 확고하게 깨닫고 큰 변재 (辯才)를 얻었다.
동으로 회계(會稽)지방을 유력 (淺歷)하여 진망산(秦望山)에 이르렀다. 그는 돌을 깨고 띠를 떠서 이 산에 오래 머물러 있기로 하고 오로지 법화경만을 열 두 해나 계속해서 외웠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땅거미가 질 무렵에 몸에 화려한 옷을 입고 손에 흰 돼지 한 마리와 마늘 두 통이 들어 있는 대바구니를 든 한 여인이 나타나 스님의 앞으로 와서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저는 산 아래 아무개 딸인데 산에 들어와 고사리를 뜯다가 호랑이를 만나 쫓겨 왔어요 날이 이미 저물어가고 나무가 우거져서 이리와 승냥이가 마구 날뛰니 돌아가다가는 목숨이 온전할 수 없겠지요. 어떻게 하룻밤 묵어 갈 수 없을까요?」
스님은 쓸데없는 혐의를 받을 것이라고 굳이 거절하고 들어주지 않았으나, 여인이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애절하게 흐느껴 울므로, 스님은 하는 수 없이 풀을 깐 자리를 여인에게 내어주고는 곧 돌아앉아서 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삼경쯤 되어 여인이 배가 아프다고 신음하면서 스님을 쳐다보았다. 스님은 약을 주었다.
그러나 여인은 그래도 아프다고 더욱 울부짖으며,
「스님께서 제 배를 좀 문질러 주시면 아픈 것이 나을 것 같아요. 만약 문질러 주지 않으시면 저는 죽어요. 불법은 자비와 방편으로 근본을 삼는다는데, 스님은 저를 구원해 주시지 않고 제가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계시겠어요?」
하고 애걸했다. 스님은,
「나는 대승계(大乘戒)를 받은 중인데 어떻게 여인의 몸을 만진단 말이오.」
하고 여전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여인의 애절하고 간곡한 청을 끝내 물리칠 수가 없어서 석장(錫杖)의 머리를 수건으로 싸가지고 멀찌감치 앉아서 여인의 배를 문질러 주니, 잠시 후에 여인이,
「이 젠 괜찮아요. 」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에 여인이 암자에서 뜰로 나오자 채색 옷은 상서로운 구름으로 변하고, 돼지는 흰 코끼리로 변하고, 마늘은 두 송이 연꽃으로 변했다. 여인은 연꽃을 손에 들고 코끼리에 올라앉아 구름을 타고 허공으로 올라가,
「나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다. 네가 오래지 않아 내게로 돌아올 것이므로 특별히 와서 너를 시험해 본 것이다. 네 마음이 물속의 달과 같아서 더럽힐 수가 없구나.」
하고는 홀연히 멀어져 갔다. 이 때 하늘에서 하늘 꽃이 비 오듯 내리고, 땅이 크게 진동했다.
이 날 태수(太守) 맹공(孟公)이 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왔더니, 홀연히 남쪽에 상서로운 구름이 엉겨 있고 빛이 마당을 환히 비추는데, 구름 아래에서는 음악 소리가 은은히 들려 왔다. 하도 기이하여 음악이 들려오는 곳을 찾아가 스님을 만나, 보현보살이 스님을 시험해 보고 가는 것 일을 알았다.
그래서 태수는 곧 이 사실과 스님의 도행을 나라에 보고하였다.
조정에서는 칙명으로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법화사(法華寺)라 하였다.
때는 진(晋)나라 안제(安帝)의 의희(義熙) 13년(서기 417)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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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께서 아시고 계시겠지만
지금은 법화경 문수원을 녹취하고 있지만,
모든 법을 전해주고 마지막 맏아들에게 전해 주었던 큰스님께서도 비유하셨 듯
석양의 아름다운 빛 - 법화경속에서
저는 다시 부처님의 간절한 가르치심 한 말씀에 그만 ‘그 사람’을 만나게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만은 아니었고,
생물만이 아니었던 ‘그 사람’.
일불승 (一佛乘),
우리는 쉽게 그 말을 들어왔고, 쉽게 접해왔으나
누구에게나 그것은 단 하나의 거대한 화두요, 헤매던 나그네의 종착역임에 분명합니다. 아버지를 잊었던,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가난한 아들의 성(城)입니다.
저는 법화경을 녹취하기 전에 여러 번 관세음보살님의 현몽하심을 보았습니다.
눈부신 그 자태로 제게 주신 메시지는 “법화경 녹취를 하라!”였습니다.
거듭 거듭 매일 밤 오셔서
저의 마음을 송두리째 비춰주신 간절하신 그 메시지.
그러나 저는 사회에 떳떳이 나설 수 없는 이혼녀였기에 1년을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합당한 법화경 녹취자가 계시기를 기원하면서.
또 다시 계속적인 관세음보살님의 현몽이 1주일이 넘은 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 저것 재고 있는‘이 사람’이 ‘그 사람’은 아니었던 것을.
준비기도를 하고 큰스님께 법화경 녹취에 대해 여쭈어 법화경 녹취를 시작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큰스님 법문속에 내 모두를 몰입하고 집중하여, 온 몸과 마음으로 .
저의 경우에는 법화경 녹취나 기타 불사를 할 때
항상 깨끗이 씻고, 양치도 자주 하고, 또 녹취 도중에 무심코 피부 및 다른 부위를 긁는다든지 간지러워 손을 대는 즉시 일어나 손을 씻었습니다.
하룻밤에 수 십번 욕실을 들락거리며 씻었으나, 단 한번도 어긴 적은 없습니다.
특별히 제가 신심이 돈독해서가 아니라,
제가 부처님과 큰스님께 드릴 것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 고백은 제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법화의 세상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외에도 물론 부끄럽고, 부족함 투성이지만 모든 육근(六根)과 행(行)
을 스스로 경계해 가며 그렇게 지내왔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일자 일배(一字一拜) 선사의 그 정성, 금니, 은니 불경을 몸소 쓰신 선사들의 정성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정성이라고 까지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모든 불자님들도 그러하시 듯,
어떠한 일도 어떠한 사물도 내게는 불사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생명이니까요. ‘그 사람’의 생명이자, 수 많은 사람, 또 우주의 생명이니까요.
제게는 아무리해도 잘 낫지 않는 두 가지 병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때문에 허리가 몹시 아팠고 어릴 때 부터 다리가 아파
관절염 증세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오는 날, 새벽에 밤에 허리가 아파야 되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왜 허리가 안 아플까?
순간적으로 저는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현재 법화경을 녹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 네가 법화경을 공부하고 있잖아!’
갑자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극히 온화하고 너무나 편안한 무엇이랄까,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저의 몸과 마음을 포옥 싸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안심'의 가피를 입었다고 표현함이 마땅한 줄 느낍니다.
아
그때 그 희열과 그 기쁨과 감사란!
저는 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그 이후로 저의 허리는 한번도 아픈 적이 없습니다.
물론 다리도 아픈 적이 없습니다.
감기는 한번도 걸린 적이 없고, 모든 병과 근심이 없어졌습니다.
능엄경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의 화두를 계속 들고 있으며 동시에 법화경 녹취를 진행하던 중, 만물의 소리에서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1주일 후, 한번은 귀에서 물이 조금 나는 것 같더니
세상의 만물의 소리가 빛의 소리와 같이 명쾌히 들려와 현재까지
그런 가피속에 살고 있습니다.
코가 맡는 냄새도, 입의 냄새도 마찬 가지입니다.
제 주변의 혈육이나 가까운 지인의 모든 일들이 쉽게 풀려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많이 망설이다가 깨달음의 언급은 삼가고, 다만 현상의 일들만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위의 일 외에도 많지만 이 사실들은 법화경에서 이미 예시한 부처님 말씀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님 말씀이 조금도 허망하거나,
거짓됨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 정말 부끄럽지만
법화경의 영험에 대해 밝히기로 한 것입니다.
2008년 1월 13일 일요일
明星華 합장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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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시조 천태지자 대사
석지자는 성이 진씨이며 영천 사람이다. 십팔 세 때 상주 과원사에서 출가하고 이십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면 율장에 정통하고 선정을 닦았다. 남악의 혜사대사를 앙모하여 찾아가 도를 물으니, 혜사가 말하기를 "옛날 영산회상에서 함께 법화경을 들었는데 숙세인연으로 다시 만났구나." 하고서 곧 보현행법을 보이고 넷 안락행을 설하였다.
이에 주야로 각고정진하여 교리를 밝히고 관행을 닦았는데 하루는 법화경을 독송하다가 홀연 선정에 들어 총지가 발현되니, 법화경 깨치기를 태양광명이 만상을 밝게비치는 것같이 하고 제법 실상을 통달하되, 청풍이 태허공에서 걸림없이 노는 것과 같이 하였다. 깨달음을 스승께 사뢰니, 혜사가 찬탄하여 말하기를 "네가 아니면 증득하기 어렵고 내가 아니면 알기 어렵도다. 들어간 것은 법화삼매의 전방편이요, 발현된 총지는 선다라니이니라. 가령 문자법사가 천만 명이 있을지라도 너의 변재를 대적치 못하리니, 법설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제일 되리라."하였다.
그 후 사부대중의 간청에 의하여 와관사에서 팔 년 동안 법화경을 강설하니, 양나라 진나라 대덕들이 운집 청법하고 왕후 장상들이 모여들었으나, 처음 사십 명이 수행함에 이십 명이 도를 증하고, 다시 백 명이 수행함에 이십 명이 도를 증득하였으며, 또 다시 이백 명이 수행함에 십여명 도를 증하여 대중이 많이 모일수록 도를 증하는 자는 줄어들어 자행을 방해할 뿐이었다. 이에 진나라 대건 칠 년 삼십팔세 때 선제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고 천태산에 들어가 초암을 맺고 십 년 동안 원융삼관을 정밀히 닦았다.
때에 천마가 십 년 동안을 갖가지로 괴롭혔으나 터럭만큼도 동요됨이 없이 말하기를 "너의 재주는 다할 때가 있으려니와 나의 부동은 무궁하니라" 하니, 천마가 새벽에 호승으로 현형하여 참회하고 맹세하기를 "이제부터는 스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옹호하고 교화를 돕겠나이다"하였다.
지자대사는 수나라 개황 십칠 년 육십 세 때 십일월 이십사일 입멸시까지 진나라 문제 선제와 수나라 양제의 삼제에게 계를 주었고,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의 삼대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저서를 남기셨으며, 삽십오 사찰을 창건하고, 십오 회 대장경을 서사하였으며, 금불상 십만 구를 조성하시고, 사천 명의 승을 득도시켰으며, 삼십 명의 종사에게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하셨고, 닦고 배우는 이가 사찰에 가득찼으며, 선도는 진 수 두 나라 오십여 주에 뻗쳐 그 수를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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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광은 신라인이다. 연광은 명문 대가에 태어나 여려서 승이 되었는데 견식과 도량이 남보다 뛰어났으나 외진 나라에 태어나 자랐으므로 정교에 통하지 못했다. 수나라 인수 연간에 수나라에 가 오희에 이르렀는데 마침 지자대사를 만났다. 대사가 연광에게 묘법을 잘 해설해주어 그는 명심하고 아침 저녁으로 배워서 몇 해 안되어 홀연히 크게 깨치니, 대사가 연광더러 묘법연화경을 강설하라 하였다.
연광이 경을 강설하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모두 탄복하였다. 뒤에 연광은 천태 별원에서 묘관을 닦고 있었는데 홀연 많은 사람이 나타나서 "천제께서 법사님의 강설을 청하십니다" 하였다. 연광이 묵연히 허락하자, 문득 기절하였는데 열흘이 지나도 안색이 평상시와 같다가 도로 깨어났다. 법기가 되는 업을 성취한 연광은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수십 명과 함께 큰 배를 타고 떠났다.
바다 가운데 이르렀을 때, 배가 갑자기 꼼짝 않더니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물결을 헤치며 뱃머리로 다가와서 "바다신께서 법사님을 청하십니다. 잠시 수궁에 가셔서 경을 강설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다. 연광이 말하기를 "빈도의 이 몸은 중생들을 이익케 하고자 맹서했으나, 이 배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사람들은 같이 가고 배는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라고하여 모두 배에서 내려 한참을 가노라니, 큰 거리가 똑바르게 나고 길가에는 향기 그윽한 꽃이 만발하였다.
바다신이 십만 시종을 거느리고 나와서 연광을 맞아 대궐안으로 들어가니, 구슬 벽이 휘황찬란하여 정신이 황홀했다. 연광이 자리에 올라 법화경을 강설하여 마치자 바다신은 진귀한 보배를 수 없이 보시하고 도로 배까지 전송하여 주어 배에 올랐다. 본국으로 돌아온 연광은 날마다 법화경을 독송하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쉬는 일이 없었다.
팔십 세에 입적하여 화장하였는데 두골과 혀만은 타지 않아 온 나라 사람들이 와서 보고 모두 드물게 있는 일이라 감탄하였다. 연광법사에게는 누이 동생 둘이 있어 일찍부터 불교를 돈독히 믿었다. 연광법사의 두골과 혀를 가져다 모셔 놓고 공양드리는데 자주 두골과 혀에서 법화경외우는 소리가 들리고 누이 동생이 모르는 글자가 있어 물으면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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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용삭(신라 문무왕1~3, 661~663)연간 수도 장안에 사는 고문은 항상 "법화경"을 읽고 있었다.
라고 하였는데, 잠시 후에 또 정신을 잃고 무엇을 삼킨 듯이 목구멍이 막히고 온몸에 붉은 물집이 생기면서 몹시 괴로워 하였다. 그렇게 하루를 지낸후에 정신이 들었다. 그가 다시 살아나 말하기를 '내가 어떤 지옥에서 나흘동안 철환을 삼키고 있었는데, 그 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혀를 뽑으려고 했으나, 뽑히지를 않았다.
그래서 문서를 다시 조사해 보고서는 '이사람은 항상 "법화경"을 읽었으므로 혀가 뽑혀지지 않는다'하며 하여 석방해 주어 다시 살아났다. 후에 고문은 화도사의 원만에게 법을 듣고 참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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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344~413?또는350~409?)은 구자국(龜玆國:서역에 있던 나라. 지금 중국 산강성 부근)사람이다. 7세에 출가하여 매일 천개의 게송을 외었다. 그의 어머니가 월지국에 가서 아라한 한분 에게 구마라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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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권은 무겁고 죄의 문서는 가벼워
유씨는 옹주 만년현 평강방 사람으로 당나라 고종 2 년에 이틀 동안 앓고 죽었는데,
죽은 지 육일이 지나도록 그의 가슴이 따뜻하였다.
그래서 가족들은 장례 치를 준비를 마치고 날짜까지 받아 놓았으나 감히 염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칠일째 되던 날 새벽에 그가 갑자기 다시 살아나서 말하기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큰 성으로 들어가니 궁전과 누각이 웅장하고 주변
자연환경이 아름다웠다.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가니 바로 이때 염라대왕이
큰 목소리로 네가 세상에서 지은 공덕을 말하라 하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법화경 두 권을 읽었을 뿐이고 그 밖에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대답했더니,
염라대왕이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조목조목 기록해 놓은 문서를 찾아내서 법화경
두권과 달아보고 법화경 두 권이 죄를 기록해 놓은 문서보다 무겁다 하며 죄의
문서를 버리고, 이 사람은 구십살까지 살아야 한다 하고 죄의 문서를 맡아보는
이에게 나를 석방하여 세상으로 돌려 보내라고 명령하여 이제 내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 하였다.
유씨는 마침내 수계를 받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순금으로 법화경을
정성드려 한자 한자 옮겨써서 오래오래 공양하였다.<弘贊傳第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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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연꽃에 의탁
옥엄은 낭야 임기 사람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대궐 안에서 문서를 맡아보는
사람이었고, 옥엄의 벼슬은 황문랑에 이르러 신안태수가 되었는데 항상 정성이
지극하여 불교 수행을 열심히 하였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고
법화경을 여러 해 계속 독송했다.
그의 동생인 옥고도 역시 채식을 하며 법화경을 매일 독송했다. 그러다가 옥엄이
죽었는데 동생인 옥고의 꿈에 형이 나타나서, 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 무량수불의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철엽 연꽃안에 태생하여 오백년 뒤에나 태에서 나와
부처님을 뵙게 될 것이다.
애써 법화경을 외웠기 때문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었지마는 어리석고 의혹이 많았기 때문에 태속에 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네게
알려주는 것이니 너는 부지런히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옮겨써라 하고 작별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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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더 주고 어깨에 기록
법랑스님은 중국 황하강의 북쪽 산동성에 있는 무성 사람으로 강소성에 있는
팽성 정도사에 가서 사미스님이 되어 있을 때부터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쓰기
시작하여 늙도록 멈추지 않았다.
개황 13년에 쉰세 살의 나이로 죽었는데 칠일만에 염라대왕을 만났다.
대왕 앞에 여섯 도인이 있있는데 왕이 첫 번째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덕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예, 유마거사가 세존의
제자들과 대승불교에 관해 문답한 경인 유마경을 독송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왕은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하고, 다시 둘째번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행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다.
「저는 세존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가섭. 고귀덕왕. 사자후. 교진여 네 보살의
물음에 대해 일승불성의 미묘한 뜻을 설하신 경인 열반경 열 권을 독송했습니다.」
라고 하니, 왕이 역시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 하고, 세 번째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덕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다. 세 번째 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는 참회멸죄,
왕법론 및 제천옹호의 사상을 설하신 금광명경을 독송했습니다.」라고 하니
왕은 역시 남쪽에 가 서 있으라 했다.
왕이 다시 넷째번 스님에게 물으니 그 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는 열반경을
강설했습니다.」하니 왕은 「서쪽으로 가 서 있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 스님에게 물으니 스님은 「저는 인도의 천진보살이
화엄경의 십지품을 해석한 십지론을 강설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왕은 눈살을 찡그리고 「북쪽에 가 서 있으라」하고 여섯째번 스님에게도
물어보고 남쪽에 가 서 있으라 하였다.
왕이 이번에는 법랑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행업이 있는고?」
「법화경을 독송했습니다.」하고 스님이 대답하니 왕이 「동쪽에 가 서
있으라.」하였다.
그리고 왕은 사람을 시켜 북쪽에 있는 사람은 지옥도로 데려가게 하고
서쪽에 있는 사람은 축생도로 데려가게 하고 남쪽에 있는 네스님은 인간세상으로
데려가게 한 다음, 법랑스님은 천상세계로 데려가서 그 태어날 곳을 보게 하고
나이를 여든다섯살로 늘려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스님은 천궁에서 돌아와 홀연 깨어났는데 어깨위에 여든다섯 살이라는 붉은
글자가 은은히 나타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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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가 연꽃으로 변해
혜초스님은 단양 건원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법화경
독송을 업처럼 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라에서 영을 내려 승려 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하고 단속했다.
이에 스님은 기와굴 속에 숨어서 여러 해를 지내게 되었는데, 뒤에 금령이
없어져 자유롭게 되자 숨어 지내던 기와굴의 주인을 찾아가서, 빈도(貧道)가
이 안에서 법화경을 천여 번이나 독송했으니 깨끗이 소제하여 공양하시고 다시
기와 굽는데 쓰지 마십시오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스님의 말을 믿지 아니하고
수리하여 전처럼 기와를 구웠는데 꺼내보니 모두 연꽃모양으로 변하여 사방의
벽에 덮여 있었다.
이에 먼데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와 보고 모두 감탄하기를 마지 않았다.
또 혜초스님이 일찍이 절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을 때 사나운 짐승이 와서
들었는데 스님이 수계를 시키니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온순했으며 스님이,
신도는 이제 돌아가오 하니 맹수는 순순히 가버렸다.
이렇듯 스님이 하신 일들은 이승과 저승을 다 수없이 감동시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뒤에 병이 들어서 위독해지자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니
혜초스님은, 오래 산다고 기뻐할 것도 없고, 일찍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하고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서 조용히 숨을 거두시니 나이 일흔일곱 무덕 5년
(서기 622) 12월 6일이었다.
문인 중에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어 역시 법화경을 일만여 번이나
독송했는데, 임종하는 날 번개와 하늘꽃이 하늘에서 분분히 떨어지고 하늘의
음악이 요란히 들려와 절에 있던 스님들이 모두 보고 들었다. 또 스님은
연화대가 맞으러 오는 것을 보고 단정히 서서 합장하고 입적하였으니
사방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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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자를 쓸 적에 이미 인간에 환생하다
수나라 개황 연중에 혜초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언제나
착실히 수행을 하셨다.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한번은 데리고 있던 제자 한 명이 나이 이십이 되어
병들어 죽기에 이를 무척 애석하게 여기셨다.
그러던 어느날 혜초스님이 비몽사몽 간에 태산부군묘에
이르게 되어 태산부군에게 여쭈되, 일전에 제자 한 명이
일찍 죽었사온데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하니, 태산부군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사람은 죄와 복이 모두 없는 까닭에
아직 미결로 이곳에 있노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혜초 스님이 만나 보기를 청하니 곧 응락하여
사자 한 명을 안내로 동쪽으로 수십보를 걸어가다가 이윽고
그 제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혜초스님이 반가워 하며 고와 낙이
어떠하냐 묻기에 제자가 대답하되, 다만 얽매어 있어 자유로운
행동을 못할뿐이고 고와 낙이라는 것은 아무 감상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 태어나고자 하나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으니 스님께서
제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스승이 어떤 공덕을 지어야 하겠는가 하니 제자가,
법화경 한 벌을 조성하시고 회향재로 일백명 스님들께
만발 공양 시켜 주소서 하고 간곡히 청하니, 혜초가 승낙하였는데
문득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에 혜초스님은 꿈에서 약속한 대로 법화경 한 벌을 쓰고
수행하는 스님 일백 명에게 공양하여 마치기를 다한 후
다시 꿈을 얻어 태산부군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경을 쓰고 재를 올린 사연을 말씀드리니 태산부군이 하는
말씀이,
「잘 하였소. 그대의 제자는 스님이 경을 쓸 적에
묘법연화경의 묘자를 막 쓰고 나자마자 좋은 곳에 태어났습니다.
제군이라는 땅에 사는 왕무라는 사람의 집에 남자로 태어났으니
세 살 먹거든 한번 찾아 보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얻은 후 삼년이 지난 뒤에 혜초 스님은 왕씨 집을
찾아가 지난 사연을 설명하고 어린 것을 보여 달라 한즉
그 부모 이상히 생각하여 어린 것을 안고 나와 보이는데,
갑자기 어린 것이 혜초대사의 품으로 달려들며 슬피 울거늘
모두가 기이하다 여겼다. 혜초가 그 부모에게 잘 양육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돌아왔는데 그 아이 장성하여서는 스스로
출가하기를 원하여 다시 혜초대사를 섬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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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경을 외우니 후대하고 보내주다
감문교위 이산룡은 무덕연중에 모진 병으로 죽었으나 이상하게도
가슴이 따뜻하여 가족들이 차마 염습을 못하고 있었는데 칠일 만에
깨어나 다음과 같이 명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죽어 명부에 들어가 어느 관청에 이르렀는데 그 집 정원은
굉장히 넓고 죄수 수천명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칼도 차고 고랑도
채워진채 모두 복면을 하고 서 있었는데, 뜰의 대청 위에는 염라대왕이
높은 걸상에 앉고 좌우로는 많은 관원이 시위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염라대왕이 묻기를, 너는 평생에 무슨 복업을 닦았는가 하기에,
나는 우리 고을 사람들이 부처님께 재를 올릴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시주에 동참하여 왔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염라대왕이 다시 묻기를, 너 혼자 선업을 닦은 일은 없는가 하기에,
법화경 두 권을 늘 지송하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왕이 놀라며 나를
뜰로 오르라 하여 올라서니, 그곳에 동북간으로 높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왕은 그곳에서 내가 경을 외워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나는 좌에 올라 실상 묘법연화경 서품제일이라 경을 외우니 왕이
일어서 공손히 합장 예배하며 말하길, 법사께서는 그만 그치소서 라고
하기에 내가 좌에서 내려 다시 뜰 아래를 돌아보니 아까 가득 차 있던
죄인들이 한 명도 없는지라. 놀라 서 있는데 왕이 가로되, 그대의 경을
지송하는 복이 단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 뜰 아래 있던
여러 죄수들까지도 모두 경의 제목 외움만을 듣고도 모두 그 죄를 면하게
된 것이니 어찌 그대를 착하다 하지 않으리오. 이제 그대를 풀어주어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오리라 하여 그곳에서 수십보쯤 걸어 나오는데 왕이
다시 부르며 시위 관리들을 보고 하는 말이, 이 사람을 데리고 가 지옥을
보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관리들이 왕의 명을 받들어 나를 데리고 동쪽으로 백여보를 걸으니
문득 높다란 성벽이 보이는데,무쇠로 쌓여 있는 그 성벽 가장자리로
많은 구멍이 뚫려 있어 모든 남녀가 땅에서부터 그 구멍으로 날려 들며
다시는 나오지 못하거늘 관리가 설명하되 이는 무간 지옥입니다. 각각
사람마다 지은 업에 따라 옥에 들어가 죄를 받는 모양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한편 슬프고 한편 겁이 나 나무불 삼자로 염불하고 또 한 곳에
이르니 커다란 가마가 있어 불이 활활 타며 물이 펄펄 끓는데 그곳의 모든
사람이 앉아서 졸고 있기에 그대들은 웬 사람인가 하고 물은즉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들은 죄가 많아서 이 끓는 가마속으로 들어갈 터인제 그대가 나무불
삼자를 지송하여 주신 공덕으로 옥중 죄인과 같이 하루 쉬라는 명을 얻어 듣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와 같이 앉아 졸고 있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에 더 구경할 마음이 없어 걸음을 급히 하여 인간으로 나왔는데 문득
세 사람이 앞을 가로막고 나서며 나에게 하는 말이, 대왕께서 그대를 풀어주나
우리들의 수고는 잊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 미처 내가 뭐라 하기 전에 관리가
설명하는 말이, 저 사람들은 일전에 그대을 명부로 잡아온 자들입니다.
한 사람은 포승를 맡은 자니 붉은 줄로 그대를 묶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방망이를 맡은 자니 방망이로 그대를 때린 사람이며, 마지막 한 사람은
자루임자로 자루를 가지고 그대의 혼을 잡아 넣은 사람입니다.
오늘 그대가 인간으로 환생함을 보고 무슨 보수를 청하는 모양입니다
라고 하니, 내가 겁이 덜컥나서, 미처 누군지 알아 보지 못하였습니다.
청컨데 집으로 돌아가서 물품을 준비 하겠으니 어는 곳에서 보내 드리리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길 물가나 마무 밑 모두 좋습니다 하기에
허락하고 하직하여 들아오니 집안은 곡성이 낭자하고 장례 준비로 정신이
없던 터였습니다 라고 말을 마쳤다.
이산룡이 이같은 경로로 환생한 며칠 후에 종이로 돈을 만들고 비단과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물가에 나가서 위채를 불사르는데, 갑자기
세사람이 나타나 하는 말이 그대가 실신을 하지 않고 이제 좋은 물품을
가져다 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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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높이 하여 경을 독송함에 수호 병정이 뜰에 가득하다
승영이라는 스님은 젊어서 출가하여 강양 영제사에 머물러 있었는데 나이가
늙도록 법화경을 독송하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웃 방에 다른 법사 한 분이 있어 항상 승영이 소리 높여 법화경을
읽는 것이 자기 간경에 방해가 된다 하여 승건이라는 스님에게 승영의
고성독경을 못하도록 부탁하였다.
승건이 허락하고 그날부터 권고하기로 하였는데, 마침 승영이 달이 창에
밝음을 이용하여 언제나처럼 경을 외우거늘 승건이 막 승영에게로 가려고
할 때 멀리 바라보니, 승영의 방앞에 수천의 사람이 있어 몸에 의갑주를
굳게 하고 창과 활을 지니고 합장하고 끓어 앉아 정성스럽게 그 송경소리를
듣거늘 승건이 크게 놀라 가만히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이웃방의 법사를 찾아가 어젯밤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승영에게
그들의 허물을 크게 참회하였다.
승영이 혹 출입을 하면 팔부신장의 호위하는 형적이 항상 나타났는데
개황연중에 영제사에서 열반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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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등으로 스물여섯 번 쳐서 전생 원수를 풀다
청나라 사람 정백인은 오래도록 양주 땅에 살면서 법화경을 지송하고
또한 관세음보살을 정성껏 섬겼다.
그런데 을유년 여름 나라에 난리가 나서 적국 군사가 양주 땅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정씨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며 피난할 방책을 구하였더니
어느 날 밤 꿈에 보살이 일러 가로되 너의 가족 십칠 명중에 십육명은환난을
면할 수 있지만 오직 너 하나만은 어려움을 면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씨가 꿈에서 깨어 지극정성으로 관세음보살님께 다시 기도하니 그날밤 꿈에
보살이 또 일러 가로되 너는 전생에 왕마자라는 사람을 칼로 스물여섯번이나
쳐서 죽였으니 지금 그 목숨을 갚게 되는지라. 가족 십육 명을 다른 곳에 안전히
옮긴 후에 네가 혼자 기다리다 당할지언정 가족에게는 누를 끼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정씨가 마음깊이 참회하고 시키는 대로 행하였더니 닷새 후 적군이 집안으로
달려들거늘 정씨 나서며 그중 자신을 죽이려 칼을 빼고 달려든 적군에게 물어
가로되 그대의 성명이 왕마자인가, 내가 그대에게 스물여섯 번의 칼로 빚진 것이
있으니 나를 속히 죽일지어다. 그것 말고 나와 그대가 다른 원수진 일은
없도다 라고 하였다. 이에 적병이 놀라 묻기를 네가 어찌 나의 성명을
알았느냐 하기에 정씨는 관세음보살이 꿈 속에서 이르신 말씀을 전하였다.
정씨의 이야기를 듣고 난 적병이 탄식하며 하는 말이 네가 전생에
나를 죽인 까닭에 그런 것인지 지금 너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나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게 되면 오는 세상에 다시
네가 나에게 보갚음을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보살이 현몽까지 하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게 되면 이는
성현을 저버림이라.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하고 즉시 칼등으로 정씨를
스물여섯 번 치는 시늉을 하고 원한을 풀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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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성호를 생각함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다
나는 유제규 평화교당에 다니면서 불전에 예경하고 법사스님의 설교를
듣는 한 신자입니다. 인연이 닿아 정지월이라 하는 젊은 법사 스님에게서
관음보살 보문품이라는 법문을 들은 후로는 그 불경을 따로
지송하기로 하고 우리 내자와 더불어 보문품독송 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관음보살에 대한 신앙을 날로 더하고 달로 깊어가게
하였는데 그러던 중 얻은 신앙담을 이제 하고자 합니다.
바로 지난 십이월 십팔일 밤의 일입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매우
나빠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홉 시나 되어서 각각 취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밤마다 보문품 한 번 독송과 관음보살 삼천념을 하는 성벽이 있는지라.
그날도 열두 시까지 일과를 마치고 잠이 들어 약 삼십 분 가량이나 되었을까
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어떤 백의 노부인이 와서 잡아 일으키며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려고 했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전혀 기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 부인은 이상하게도 선명히 눈앞에 보이며 일이 급하니
어서 일어나라 하며 몸을 잡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정신을 처려보니 그 백의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서 누워자는
내자가 손발을 달싹이지도 못하고 눈을 흡뜨고 말 한 마디 내지르지
못하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나는 황겹공포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 왔다갔다
하며 집안 사람들을 일으키는 한편 내자의 신체를 주무르며 코밑을
부벼주고 인공호흡을 시킨 후 정신을 차리라고 목이 터지도록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숨소리가 점점 사라지며 죽음길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불쌍하다며 울음소리를 내고 의사도 와서 보고
단념하라고 선언할 뿐입니다. 나도 울음을 그칠 수 없음에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었으나 문득 한 생각에 관음보살을 생각하고 일심염불공과
능명제유고라는 법구를 떠올리게 되었고 일심으로 오직 관음보살을
부르면서 내자의 기사회생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자가 이와 같은
급병이 난 것은 식물의 중독이라 생각하여 의사에게 주사 넣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의사는 심장마비라 하며 돌아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모든 걸 단념하고 오직 관음보살만을 염송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내자가 호흡을 시작하며 정신이 도는 듯 살며시 눈을
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 되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집안 사람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고 나 또한 하도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라 관음성력에 감격할 뿐이었습니다.
내자가 그렀듯 회생한 것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백의부인의
현몽은 나뿐만 아니었습니다. 내자도 그 부인을 보았다 하며 그 부인에게서
무슨 약수를 얻어 마시고 겨우 숨을 트게 되었다 합니다. 중생이 피곤액하여
무량고핍신이라도 관음묘지력으로 능구세간고라는 법구를 보문품의
법문으로만 믿다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관음묘지력을 실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원문은 소화 사년 이월 불교지에 기재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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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닥친 술냄새에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명나라 부경 형부가에 있는 축봉사는 에전에 전단불상에 공양을 올리던 절이었다.
신종제 말년 제주라는 스님이 주지로 있었는데 성품이 진실하고 부처님을
엄숙하게 받들기는 하나 다만 술 한 가지를 끊지 못하는게 큰 흠이었다.
어느 날 꿈에 험상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지옥의 사자입니다. 생전에 아무개 노파가 착한 일을 한 가지도 한 일이 없었기에
지금 지옥에 갇혀 있어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월 삭망 때마다
이 절에 와서 예배하고 과일을 가져다 스님께 공양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스님은 그러한 인연을 생각해서 그 노인을 위해 법화경 한 부질을
읽어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인홀불견 되는지라 스님이 꿈에서 깨어나 그 노파의 생전일을 생각하니 지옥 사자의 말이 틀림이 없었다.
이에 칠월 보름날 백종재를 기다려 그 노파의 위패를 접어놓고 부처님
앞에 끓어앉아 법화경을 읽어 나갈 때 다섯권째에 이르러 읽기는 뜨겁고
목은 몹시 말랐다. 그만 일어나서 차를 찾아 보았으나 얻지 못하여 부엌
탁자 위의 술병 하나를 발견하고 흔들어 보니 아직 남은 것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병을 기울여 찬 술 한 모금을 그대로 마시고 다시 불전에 끓어앉아
일곱권 법화경을 다 읽어 마쳤다.
그 이튿날 밤 꿈 전에 왔던 지옥 사자가 다시 와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
법화경 네 권까지 읽었을 때 마침내 지옥 일대는 금색 광명이 내려 쪼여서
그 노파가 막 지옥을 여의고 곧 선처에 수생하려 할 찰나인데 별안간
한 무더기 술 냄새가 들이침에 광명은 어느 결에 없어지고 법화경
다섯권째에서 일곱권째까지 읽는 동안 술냄새는 마찬가지이므로 그 노파는
힘을 얻지 못하여서 그대로 갇혀 있습니다" 하였다.
주지스님은 그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하여져서 그 즉시로 일어나
다시 목욕하고 정의정복을 갈아입고는 불전에 나아가 지성참회한 후
법화경 다섯권째에서 일곱권째까지 정성을 다하여 읽어 마쳐주고
그후로부터 한 평생을 마치도록 술을 엄금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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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 귀신과 산의 호랑이가 도덕을 흠앙하다
홍명이라는 스님은 회계산음 땅 사람이라, 일찍이 출가하여 산음
운문사에 있으면서 항상 법화경을 외우며 정근하고 예참하기를 가히
주야불철이더니 아침마다 일어나 앞으로 나가보면 비어 있던 물병에
깨끗한 물이 가득차 있곤 했으니 이것은 천동천녀가 비밀히 내려와
시봉을 하여준 것이다.
또 어느날은 홍명이 경을 읽고 있는데 커다란 범이 들어와 법상
아래 엎드려 경을 잠심하여 듣다가 물러나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어떤 날은 조그마한 아이가 와서 홍명법사의 송경함을 듣는지라,
홍명이 묻되 "너는 어떤 아이냐" 하니 그 아이 대답하되 "저는 옛적 이 절에
어린 중으로 있으면서 대중의 공양할 밥을 먼저 훔쳐 먹은죄로
뒷간 지키는 귀신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도력이 높음을 알게 되어
가끔 와서 경을 듣게 됩니다.
원컨대 법사의 높고 높은 송경공덕으로 이 죄업을 면케 하여 주옵소서"
하는지라. 홍명법사가 듣고 측은히 생각해서 재를 베풀어 천도식을
행하며 법화경 산림을 하여 주었더니 칙귀가 그 공덕으로 선도에
태어남을 현몽하였다.
홍명법사는 제나라 영명 사년에 백림사라는 절에서 열반하니
춘추가 여든넷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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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속에 불형을 나타내니 문종이 화상을 모시게 하다
당나라 태화 연중 문종제가 조개 먹는 것을 좋아하여 해변 관리들은 조개
진상하기에 골몰함으로써 민간에 끼치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
하루는 어찬 가운데 커다란 조개 하나가 있어 다깨어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종이 이것을 기이하다 생각하고 즉시 향을 사르며 기도를 드리니 그곳에서
별안간 관음형상이 솟아 오름에 상호가 구족하였다.
곧 금함에다 모시고 흥선사라는 절에 사승하여 여러 스님들로 하여금 예배
공양케 하고난 후 여러 신하들에게 물으시되,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 하였다.
이에 어느 대신이 여쭈기를 대일산에 유정선사가 불법이 깊어 모르는 것이
없다 합니다 하였다. 문종께서 즉시 선사를 불러 그일을 물으니, 선사 대답하기를
신이 듣사오니 어떤 물건이라도 헛되이 응하는 법이 없는지라. 이는 폐하의
신심을 열어줌이외다. 그런 고로 법화경에 말씀하기를 제왕신으로 제도할 자에
응해서는 곧 제왕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법을 설한다 하셨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가로되 보살의 몸은 벌써 내가 보았으나 아직 법문을 듣지 못하였노라 하였다.
선사가 다시 여쭈어 가로되 폐하께서는 그 일을 예사롭다 느끼십니까 아니면
이상하다 느끼십니까. 또 그일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되
희귀한 일이라 내가 깊이 신앙하노라 하였다. 선사가 가로되 그러시다면
폐하께서는 벌써 법문을 들어 마쳤습니다 하였다.
이때 임금이 깨닫고 크게 즐거워하며 다시는 조개를 먹지 않겠다 맹세하고
천하 사찰에 조서하여 모두 관음상을 모시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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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독송으로 어머니가 천상에 나다 |
당나라(唐) 소장백 최의기(崔義起)의 장인 소문종(簫文鍾)은 평소에 늘 법화경을 독송하여 수천 번에 이르러 죽었고, 그의 아내도 용삭(龍朔) 3년(서기 663) 5월에 죽었는데, 삼칠일이 되는 날 재를 올렸더니, 딸 소옥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 「내가 살아서 삼보를 믿지 않아서 이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법화경을 독송하고 재를 올려 나를 좀 구해다오.」 하였다. 그러나 나이 어린 딸이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대로 있는데, 20일 만에 다시 어머니가 나타나, 「네가 내 고통받는 것을 직접 보아야 하겠구나.」 하고 소옥을 데리고 대성궁부(大城宮府) 화탕지옥(火湯地獄)으로 들어갔다. 지옥의 참혹한 상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홀연 그녀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너의 어머니가 생전에 화를 잘 내고 시기심이 많았으므로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나는 지금 너의 어머니를 구할 힘이 없으니, 네가 법화경을 읽어 천도해 주어라.」 하고 한 스님이 법화경 한 권을 주고 사라졌다. 소옥이 잠에서 깨어나니, 사흘 동안을 죽었다가 깨어났다고 집안사람들이 크게 기뻐했다. 소옥이 일심으로 법화경을 읽고 또 읽었다. 그랬더니 꿈에 어머니가 다시 나타나서, 「네가 법화경을 읽어 주어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계로 가게 되었다.」 고 하였다. 그 후 인덕(麟德) 원년(서기 664)에 설장군(薛將軍) 집에서 재를 올릴 때에도 범승(梵僧)을 청하여 그 법화경을 읽어 많은 영험이 있어, 모든 사람이 찬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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