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염불인가?

사바중생들에게 아미타불을 추천하는 세 가지 이유

慧蓮(혜련) 2018. 2. 4. 19:41

시방세계 부처님은 본래 다 가까이 할 수 있거늘 어찌하여 유독 아미타불만 추천하는가?

그 속에는 세 가지 연고(緣故)가 있다.

 

첫째는 서원이 깊고 무거우며(誓願深重),

둘째는 사바세계와 인연이 있으며(娑婆有緣),

셋째는 중생교화와 연관이 있다.(化道相關)

 

서원이 깊고 무거운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미타 부처님은 옛날 아직 부처가 되기 전에 48가지 큰 원을 세우셨는데, 그 중 세 가지 원은 오로지 염불중생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발하셨다.


그 대의(大義)는,

“내가 부처가 된 후 만약에 중생들이 보리심을 내어 온갖 공덕을 쌓고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여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혹 나의 이름을 듣고 온갖 착한 일을 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생각한다면 비록 하루 밤낮일지라도,

혹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열 번만 나의 이름을 불러도,

이러한 모든 중생들이 만약 나의 나라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부처님의 원력이 얼마나 크신지 알 수 있다.

 

사바세계와 인연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무량수경에서 “내가 이 경을 설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무량수불과 아울러 그 국토를 보게 하였고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을 수 있으니 내가 멸도(滅度)를 한 후에 다시 의심을 내어서는 안되느니라. 앞으로 올 세상에서 경도(經道)가 다 멸(滅)하더라도 내가 자비로서 중생들을 가엾이 생각하여 특별히 이 경(經)을 백년동안 더 머물게 하리니 그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만나거든 소원에 따라 모두 생사고해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경전에 “이 무량수경이 멸하고 나서 불법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다만 아미타불 사자명호(四字名號)만 남아 중생을 구제 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사바세계와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말법시대의 중생이지만 승(僧), 속(俗), 남(男), 녀(女)와 빈(貧), 부(富), 귀(貴), 천(賤)을 불문하고 불교를 조금 아는 자들도 많이 신향(信向)을 한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미타불을 부를 줄 알며 어리석고 포악하며 믿음이 없는 무리들도 혹 큰 어려움이나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혹 찬탄하거나, 원망하며 한탄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미타불을 부른다.

이런 일들은 전부 권장하지 않아도 자발적이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하는 것이니 어찌 인연이 있다 하지 않겠는가.

 

중생교화와 상관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두 나라의 성인께서는 각각 정토(淨土)와 예토(穢土)에 계시면서 절(折), 섭(攝) 두 문으로 중생들을 조복시켜 사바에서는 고통과 촉박, 마장과 번뇌(魔惱)로 꺽어서 사바세계의 혼탁한 경계를 싫어하게 하고 정토에서는 청정과 즐거움, 연장(延)과 불퇴전으로 거두어 극락세계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중생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


석가세존이 삼승(三乘: 성문, 연각, 보살)의 교화 외에 못 다 건진 중생들은 곧 아미타불이 건질 대상이므로 대승의 여러 경전에서 반복하여 신신부탁 하고 왕생을 권장하며 칭찬한 것이 곧 중생교화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 가지 연고가 있으므로 유독 아미타불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은 태어나는 괴로움(生苦)이 있지만,

저곳에는 연화 화생(蓮花化生)이므로 어찌 태어날 고통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사계절이 순서대로 바뀌고 노쇠(老衰)가 서로 침범해 오지만,

저곳에는 춥고 더운 변화가 없는데 어찌 늙는 괴로움(老苦)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사대(四大)가 조화롭지 못해 질병이 많지만,

저곳에는 화(化)하여서 얻은 몸이 향기롭고 깨끗하니 어찌 병고(病苦)가 있겠는가!


이곳에는 옛부터 70이 드물고 무상(無常)이 신속하지만,

저곳에는 수명이 무량하니 어찌 죽는 고통(死苦)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친한 감정과 애착이 있지만,

저곳에는 부모와 처자식조차 없는데 어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愛別離苦)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원망하고 미워하고 원수와 만나게 되는 괴로움이 있지만,

저곳에는 최상의 착한 사람들과 모이므로 어찌 원수와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혹 온갖 어려움과 춥고 배고픔이 있고 아무리 욕심 부려도 늘 부족하지만,

저곳에는 옷과 음식, 진귀한 보물이 다 갖추어져 있어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는 혹 몸뚱이가 못생기고 더러우며 더러 육근이 부족하고 추하지만,

저곳에는 외모가 단정하고 몸에는 광명이 있다.


이곳에는 생사가 윤전(輪轉)하지만,

저곳에는 영원히 무생(無生)을 증득한다.

이곳에는 사취(四趣: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괴로움이 있지만,

저곳에는 삼악도란 이름조차 없다.


이곳에는 구릉과 구덩이, 가시나무가 숲을 이루고, 흙과 돌로 된 산에는 온갖 보기 흉한 더러움으로 가득 찼지만,

저곳에는 땅이 황금으로 되어 있고 보배나무가 하늘을 치솟으며 누각은 일곱 가지 진귀한 보배로 높이 세워지고 연꽃은 네 가지 색깔로 핀다.


이곳에는 석가불이 이미 열반 하셨고 미륵불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저 곳에는 무량수불이 현재 법을 설하고 계신다.

이곳에는 단지 관음, 세지의 거룩한 이름을 우러러 볼 뿐이지만,

저곳에는 두 보살과 친한 친구가 된다.


이곳에는 온갖 마구니와 외도들이 바른 수행을 어지럽게 괴롭히지만,

저곳에는 부처님의 교화로 통일되어 마구니와 외도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곳에는 악마와 요괴들이 사악한 소리로 서로 번뇌를 부추키지만,

저곳에는 물과 새, 나무(水鳥樹林)들이 전부 미묘한 법을 널리 펴고 있다.

 

두 국토를 서로 비교해 보면 환경과 조건이 크게 다르니 어찌 한 번에 다 들 수 있겠는가.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환경이 빼어난 점은 중생들이 청정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조건이 빼어난 부분으로는 왕생한 자들의 수행력을 도와줄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현들이 두루 극락을 가리키고 있다.

 

정토왕생은 본디 곧장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부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물러남도 없으며 수명이 한량없어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수명이 짧고 병치레가 많은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거니와 혼침(昏沈)하여 잠을 자는 시간만 하더라도 인생의 반은 차지한다.

게다가 보살은 아직 격음(隔陰: 전생을 기억 못함)의 어두움이 있고 성문은 출태(出胎)의 번민이 있다.

척벽촌음(尺璧: 직경이 한척인 보옥.寸陰: 매우 짧은 시간: 시간이 소중하면서 짧음.)을 이미 열에 아홉은 잃어 버렸으니 스스로 물어(自問) 아직 불퇴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고 한 점의 확신마저 서지 않았으니 어찌 마음이 섬뜩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꼭 서방정토로 왕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확실한 생애(生涯)를 위함이다.

 

이원정 거사  <불법도론> 중에서 - 건봉사 서현스님 번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