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


<일타 큰스님의 글>

나의 가족은 친가와 외가를 모두 합하여 모두 41명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 41명의 출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일족의 출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41명의 출가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인가?
아닙니다. 나의 외증조할머니인 이평등월(李平等月)
보살의 기도와 입적(入寂), 그리고 방광의 이적(異蹟)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안성이씨(安城李氏) 평등월 보살은 일찍이 우리 나라
제일의 양반으로 치던 광산 김씨(光山金氏)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녀는 남편 김영인(金永仁)의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삼형제를 낳아 기르며, 학식있는 양반집 안방마님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60이 조금 지났을 때 갑자기 불행
닥쳐왔습니다. 남편이 남의 빚보증을 섰다가 대부분의
재산을 날려 버렸고, 연이어 시름시름 앓던 남편은
끝내 저 세상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등월 보살이 실의(失意)에 잠겨 해어나지 못하고
있자. 이미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던 만수(萬洙)
* 완수(完洙) * 은수(恩洙) 세 아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습니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우리가 양반이라고 마냥
이렇게 살 것이 아니다. 노력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
이렇게 결의한 세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염려 마십시오. 이제부터
저희들이 집안을 꾸려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목화를 솜으로
만드는 솜틀기계 한 대를 일본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기계를 발로 밟으면서 목화를 집어 넣으면 껍질은
껍질대로, 씨는 씨대로 나오고 솜은 잘 타져서 이불짝
처럼 빠져 나오는 당시로서는 최신식 기계였습니다.

이렇게 공주 시내 한복판의 시장에다 솜틀공장을 차린
삼형제는 작업복을 입고 하루 여덟시간씩 3교대로 직접
솜틀기계를 돌렸습니다.
기계는 24시간 멈출 때가 없었습니다.

공주 사람들은 그 솜틀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공주도 이제 개명을 하는구나." 하면서
'공주개명(公州開明)! 공주개명!'을 외쳤습니다.
마침내 공주 주변에서 생산되는 목화는 모두 이
공장으로 들어왔고, 산더미같이 쌓인 목화가 솜이 되어
나오는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집안에는 돈이
쌓여 갔습니다.

월말이 되면 삼형제는 한 달 번 돈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세 몫이 아니라 네 몫으로 나누었습니다.
남는 한 몫은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바로 어머니 평등월 보살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머니께 직접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달 동안 '삼형제 중 누구 집에 며칠을
계셨느냐'에 따라 그 집에 직접 분배를 하는것입니다.
막내아들 집에 열흘을 계셨으면 3분의 1을 막내아들
집에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며느리들은 서로
시어머니를 잘 모시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 우렸습니다.

집집마다 어머니 방을 따로 마련하여 항상 깨끗하게
꾸며 놓았고,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으로 최고의
호강을 시켜드렸습니다. 때때로 절에 가신다고 하면
서로 시주할 돈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집안은 공주 제일의 효자 집안으로 소문이
났고, 벌어 들인 돈으 로는 논 백 마지기를 다시
사들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평등월 보살은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을 평안함과 기쁨속에서 지내던 할머니가
막내아들 집에 가 있던 어느 날, 한 비구니스님이
탁발을 하러 왔습니다.

그 스님을 보자 할머니는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도 잘생겼을까? 마치 관세음보살님
같구나." 크게 반한 할머니는 집안에서 가장 큰
바구니에다 쌀을 가득 퍼서 스님의 걸망에 부어
드렸습니다. 그때까지 비구니 스님은 할머니를 조용히
보고만 있다가 불쑥 말을 했었습니다.

"할머니! 요즘 세상사는 재미가 아주 좋은 신가 보지요?"
"아, 좋다마다요. 우리 아들 삼형제가 모두 효자라서
얼마나 잘해 주는지....... 스님. 제 말 좀 들어 보실래요?"
할머니는 신이 나서 아들 자랑을 시작했고, 며느리
자랑, 손자 자랑까지 일사천리로 늘어놓았습니다.

마침내 할머니의 자랑은 끝내 이르렀고, 장시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스님은 힘주어 말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세상일에 애착을 많이 가지면
죽어서 업(業)이 됩니다."
"업?"
충청도 사람들은 '죽어서 업이 된다'고 하면 구렁이가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어서 큰 구렁이가 되어 고방(庫房) 안의 쌀독을 칭칭
감고 있는 업! 할머니는 그 '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았 습니다.

"아이구 스님! 어떻게 하면 업이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업이 다 되어 가는데 뭐.......... 지금 와서
나에게 물은들 뭐하겠소?"
스님은 벼랑을 짊어지고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업만은 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5리, 10리 길을
쫓아가면서 스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스님, 제발 하룻밤만 저희 집에 머무르시면서 업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간청에 못이겨 다시 집으로 온
스님은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윗목에서 벽을 향해 앉아 말 한마디 없이
밤을 새웠고, 할머니 역시 스님의 등뒤에 앉아 속으로만
기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발 업이 되지 않는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제발....."

마침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스님은 할머니 쪽으로
돌아앉았습니다.
"정말 업이 되기 싫소?"
"아이구. 제가 업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스님. 절대로 안됩니다. 인도환생(人道還生)하든지
극락세계에 가도록 해주십시오."

"정말 업이 되기 싫고 극락에 가기를 원하면 오늘부터
행실을 바꾸어야 하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부터 발은 절대로 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친견하여 극락에 가기만을 기원하시오."

스님의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씀은 몸단속을
하라는 것이고, 나무아 미타불을 불러라'는 것은 입을
단속. '일심으로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하라'는 것은
생각 단속입니다.

곧 몸[身]과 입[口]과 생각[意]의 삼업(三業)이 하나가
되게 염불할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님. 다시 한번 자세히 일러주십시오."

"보살님 나이가 70이 다 되었는데,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소? 돌아가실 날까지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면 업 같은 것은 십만 팔천 리 밖으로 도망가
버리고, 극락세계에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첫째나 둘째 아들집에도 가지 말고,
이웃집에도 놀러가지 마십시오. 찾아오는 사람에게
집안 자랑하지도 말고. 오직 이 집에서 이 방을
차지하고앉아 죽을 주면 죽을 먹고 밥을 주면 밥을
먹으면서 '나무아미타불'만 외우십시오. 그리고
생각으로는 극락 가기를 발원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까?"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다짐을 하면서 큰절을 올렸고, 스님은 옆에
놓아두었던 삿갓을 들고 일어서서 벽에다 건 다음
슬며시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걸망도 그대로 둔 채.....
'변소에 가시나 보다.'
그러나 한번 나간 스님은 영영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풀어 온 동네를 찾아보게 하였으나 '보았다'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아! 그분은 문수보살님이 틀림없다. 문수보살님께서
나를 발심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욱 발심(發心)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방의 가장 좋은 위치에 스님의 삿갓과 걸망을
걸어 놓고, 아침에 눈만 뜨면 몇 차례 절을 올린 다음
'나무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어느덧 할머니는 앞일을 내다보는 신통력(神通力)이
생겼습니다. "어멈아! 오늘 손님이 다섯 온다. 밥 다섯
그릇 더 준비해라." 과연 끼니때가 되자 손님 다섯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루는 막내아들을 불러 각별히 당부하였습니다.
"얘야. 너희들 공장에 화기(火氣)가 미치고 있다.
오늘은 기계를 돌리지 말고 물을 많이 준비해 놓아라.
위험하다." 그 말씀대로 세 아들은 아침부터 솜틀기계를
멈추고 물통준비와 인화물질 제거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바로 옆집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옆집 불을 껐습니다.
만약 목화 솜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솜틀공장은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하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예언으로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웃 집의 피해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도 외증조할머니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손녀인 어머니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외증조할머니는 큰아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리 가량 가면 구름내[雲川]라는
마을이 있다.

김창석 씨네 둘째 아들과 네 딸 상남(上男)이와는
인연이 있으니, 찾아가서 혼사(婚事)를 이야기해
보아라." 이렇게 외증조할머니는 가 보지도 않고
신통력으로 나의 부모님을 결혼시켰습니다.

마침내 주위에서는 외증조할머니를 일컬어 '생불(生佛)
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외증조할머니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고 '문수보살'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변화를 걱정한 아들 삼형제는 인근 마곡사의
태허(太虛: 鏡虛대선사의 사형) 스님을 찾아가
상의했습니다. "문수보살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10년 동안이나 아미타불을 불렀으면 끝까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일을 자꾸 예언하다 보면 자칫 마섭(魔攝)이
될 수도 있다.내가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는
글을 써 줄 테니 벽에 붙여 놓고 '나무아미타불'을
항상 부르도록 말씀드려라."

常放大光明! 언제나 대광명을 뿜어낸다는 이 글을
보면서 할머니는 다시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불렀습니다.그리고 앞일에 대한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염불기도를 하다가 할머니는 88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야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7일장(七日葬)을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햇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밤만 되면
그 빛을 본 사람들이 '불이 났다'며 물통을 들고
달려오기를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상객으로 붐비는 집안 역시 불을 켜지 않아도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그야말로 외증조할머니는 염불기도를 통하여
상방대광명을 이루었고,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가족들은 그 뒤
차례로 출가하여, 우리 집안 친가*외가 41인
모두는 승려가 되었습니다.

몸과 말과 뜻을 하나로 모아 염불하고 기도하는 공덕.
그 공덕을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의 불가사의가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기도는 우리 집안을 불심(佛心)으로
가득 채웠고,

41명 모두를 '중노릇 충실히 하는 승려'로 바꾸어 놓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


- 신문기사 내용 -

일타스님,염불 영험담수록 「기도」펴내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日陀스님이 자신과 주위
사람 및 옛 선사(禪師 )들의 기도 성취 영험담을 모은 책
「기도(祈禱)」를 펴냈다.

전계대화상은 조계종 소속으로 출가하는 모든 승려에게
계(戒)를 주는 원로스님으로 청정계율을 지킨 승려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영예로운 직책이다.

1929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13세때 출가,
일평생 참선정진과 중생교화에만 몰두한 수행승으로
유명하다.

친가와 외가를 합쳐 모두 41명이 출가한 얘기며 20 대에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매일 3천배씩 7일동안 기도를
드린뒤 오른 손 네손가락 열두마디를 모두 불태워 버린
일화는 지금도 불가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일타스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외증조할머니인
李平等月 보살이 10년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기도를 한 끝에 「생불(生佛)」로
불리다가 세상을 뜨자 7일간 불을 밝히지 않아도

집안을 대낮같이 밝히는 방광(放光)
현상이 나타났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를 직접 체험한
가족들이 차례로 출가, 결국 석가모니 이후 한 집에서
가장 많은 출가자를 내게됐다』고 말했다.

손가락 연비(燃臂)에 대해서도 스님은 『손가락이
없으면 세속적인 모든 생각이 저절로 뚝 끊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세 명예 행복등 세속적 미련을
손가락과 함께 태워버렸다』면서

『연비후 홀로 태백산 도솔 암으로 들어가 6년동안
조그마한 갈등도 없이 참선 정진했던 시절은
일평생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옛 선사들의 기도에 얽힌 얘기와 1백만배(拜)로
원력(願力)을 이룬 제자 慧印스님, 7일간 3천배로
운동권 아들의 마음을 돌려 법조인으로 만든 보살등
평범 한 이들의 기도 성취담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도서출판 효림 간행.〈吳明哲〉

[동아일보] 1995-11-12 (문화) 뉴스 15면


------------------------

 

나무아미타불과 극락, 염불에 관한 자세한 가르침 바로가기 http://cafe.daum.net/amtb/8L2t/515

 

Posted by 慧蓮(혜련)
|

왕생집 (주굉 연지대사)


往生集(왕생집)

   

왕생집서(往生集序)

●세존(世尊)께서 처음으로 정각(正覺)을 성취(成就)하시고

모든 유정(有情)을 위하여 널리 불승(佛乘)을 연설(演說)하심이라

이미 그리하여 근기(根機)가 극진(極盡)하게 투합(投合)하기가 어렵게되자

이를 말미함아 이에저 일승(一乘)가운데 삼승(三乘)의 법(法)을 보임이라

그리하여 다시 이에저 삼승(三乘)가운데 정토일문(淨土一門)을 나타내심이라

이제는 부처님께서 떠나신지도 세월(歲月)이 오래되었고

유정(有情)의 진구(塵垢)<번뇌(煩惱)>도 날로 무성(茂盛)하여짐이라

---오늘날은 부처님이 가신지도 오래되었고

중생(衆生)의 번뇌(煩惱)도 날로 더하고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저것<삼승(三乘)>에 의지(依支)해서는 신묘(神妙)한 견해(見解)를 개발(開發)하여

성인(聖人)의 지위(地位)를 초월(超越)하기가 어렵고 이것<정토법문(淨土法門)>을 버리고는

허둥지둥 타락(墮落)할 위험(危險)이있다 그러니 이 정토법문(淨土法門)을 의지(依支)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재빨리 생사(生死)를 벗어날수있겠는가

위대(偉大)하다 참으로 말세(末世)의 가라앉는 숙병(宿病)을 고칠수있는

신효(神效)한 영약(靈藥)이라 할수있을것이다 그러나 옛날에 는 효험(效驗)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 영험(靈驗)이 드문것은 이에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입으로 정토(淨土)를 부르면서도 마음은 사바세계(裟婆世界)를떠나지못하고

굳게 깨달음을 구(求)하는 선배(先輩)를의 열정(熱情)에 미치지 못할 따름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왕생(往生)했다고 전(傳)해오는 자(者)가 있었다고 하나

세월(歲月)이 오래되어 이제는 없어져 다시는 볼수가없고 간간(間間)이

내외(內外)백가(百家)의 문장(文章)의 일부분(一部分)에서나 찾아 볼수 있을 정도(程度)라

내가 본것중에서 그 인과(因果)가 분명(分明)한것만을 골라서 채집(採集)하니

어느듯11년 동안에 천(千)여가지 이야기를 모우게 되었다

---나의 소견(小見)을 따라 문득 필답(筆剳)을 부기(附記)하여

이에그 인과(因果)가 소작(昭灼)한<환하게밝은>것 발췌(拔萃)하니

날마 다 축적(蓄積)되어 편(偏)을 이루게되었다

거의 십일(十一)년에 있어 이에저 천백(千百)여 가지라 그리하여 그침이라-----

이제 갑신(甲申)년에 몰래 중봉 (中峰)의 전거(廛居)를 본받아

산자락에 한칸의 초옥(草屋)을 얽어 문(門)을 닫아걸고 왕래(往來)를 끊었다

그리하여이것들을가지고 같은 분류(分類)되로 앞뒤를 나누고 또한 모든 성인(聖人)들이

한곳으로 돌아갔음을 증명(證明)하였고 살아서 감응(感應)을 얻은 사실(事實)에도

부족(不足)함이 없게 하였다 이리하여 모두 166가지의 사실(事實)을 정리(整理)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간간(間間)이 숨은뜻을 천명(闡明)하고자하여

찬탄(讚嘆)하는 말을 붙이고는 제목(題目)을 왕생집(往生集)이라하였다

그리고서 스님들과 단월(檀越)님<신도(信徒)님>들에게 이 책(冊)왕생집(往生集)을

보이면서 아무개는 이렇게 해탈(解脫)하여 왕생(往生)하였고

아무개는 이렇게 순일(純一)함으로해서 왕생(往生)하였고

아무개는 이렇게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왕생(往生)하였고

아무개는 이러한 대자대비(大慈大悲)로 왕생(往生)했고 아무개는

이렇게 잘못을 뉘우치고는 지옥(地獄)<니리(泥犁)>에 떨어질수밖에 없는 업(業)을 바꾸어

왕생(往生)하였다

그리고 아무개는 이렇게 상생(上生)하였고 아무개는 중생(中生) 혹(或)은 하생(下生)하였다

이렇게 옛적의 일을 고증(考證)하여 오늘에 증거(證據)해보면 정업(淨業)을 닦는 자(者)를위한

확실(確實)한 증명(證明)이 되지않겠는가하고 일일이 지적(指摘)해가면서 일러주었다

어떤 내곁을지나가던 객(客)이 몇가지의 이야기를 읽어보지도않고

발끈 화를 내면서 정토(淨土)는 마음일뿐 마음밖에는따로 국토(國土)가 없음이라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한다는말은 우언(寓言)일따름이요

그대는 진정(眞情)으로 왕생(往生)한다는 사실(事實)을 의심(疑心)치 않는것이요

어찌 태어남이 없다는 무생(無生)의 뜻에 어긋나는말이아니겠소하였다

나는그의 얼굴빛이 안정(安靜)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이 이렇게말하였다

어찌 그렇게 쉽게 단정(斷定)할수있겠습니까 만약(萬若) 태어남이 없는것이라고 못박는다면

모든 것이 단멸(斷滅)이어서 오히려 마음뿐이라는말이 성립(成立)되지못합니다

과연(果然) 태어남이없는 이치(理致)를 깨달았다면 태어난들 무슨 상관(相關)이있겠습니까

태어남이 이미 본래(本來)없는것이므로 항상(恒常)늘 태어나되 태어난적이 없는것입니다

또한 그대는 번뇌(煩惱)를 이미 다했읍니까<다없앴습니까>

그러지는못했소”

아! 번뇌(煩惱)를 아직다 앲애지못했다면 다시태어나는 인연(因緣)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몸을 의탁(依託)해야할곳이 반듯이있어서

삼계(三界)의넓은 고해(苦海)속에서 방황(彷徨)할수밖에없습니다

그러할진데 정토(淨土)에 태어나지 아니하고 어느 국토(國土)에 태어나겠습니까

육도(六道)에서 헤메이는것과 구품연대(九品蓮臺)에서 노니는것을 비교(比較)해보십시오

이로움과 해로움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현격(懸隔)함이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지못했습니까 부질없는 이론(理論)으로 자신(自身)을 과시(誇示)하려는 행위(行爲)는

나도하려고 한다면 할수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않는까닭은 함부로 진리(眞理)를

천착(舛錯)하는 우(愚)를 범(犯)할까 두렵워하기 때문입니다 가십시오 그대가 진정(眞情)으로

나의말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않는다면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여 불승(佛乘)에오를것입니다

털끝만큼의 의심(疑心)도 갖지 않았다면은 그렇게 되지못할 이치(理致)는 없는것입니다

객(客)이 공손(恭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精神)을 잃은듯 어리둥절하다가

자기(自己)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슬피울었다

그러다가 다시 옷깃을가다듬고 남은 부분(部分)을 마저다 읽고는 절을 하면서

이것을 책(冊)으로 출판(出版)해줄것을 간절(懇切)히 청(請)하였다

이제 출판(出版)에 즈음하여 이와같이 시말(始末)의 경위(經緯)를 기록(記錄)해두는바이라

만력(萬曆)십이(十二)년(年)<1584>여름 항주 사문(沙門) 주굉(袾宏)이 이글을 써다



-----------------------------------------------------------------------------------------------------------------------------------------------------------------------------------------------------------------------------------------------------------------------

왕생집목록(往生集目錄)



제일권(第一卷)

  사문왕생류(沙門往生類)

--------------------------------------------------------------------------------------------------------------------------------------------------------------------------------------------------------------

제이권(第二卷)

  왕신왕생류 (王臣往生類)

  처사왕생류 (處士往生類)

  니승왕생류 (尼僧往生類)

  부녀왕생류 (婦女往生類)

  악인왕생류 (惡人往生類)

  축생왕생류 (畜生往生類)

------------------------------------------------------------------------------------------------------------------------------------------------------------------------------------------------------------------------------------------------------------------

제삼권(第三卷)

  제성동귀류(諸聖同歸類)

  생존감응류(生存感應類)

---------------------------------------------------------------------------------------------------------------------------------------------------------------------------------------------------------------



왕생집(往生集)권지일(卷之一)

------------------------------------------------------------------------------------------------------------------------------------------------------------------------------------------------------------



고항(古杭)운서사(雲棲寺)

사문(沙門)주굉(袾宏)집(輯)

----------------------------------------------------------------------------------------------------------------------------------------------------------------------------------------------------------------------------------------------------------------------------------------------------

사문(沙門)왕생(往生)류(類)

-----------------------------------------------------------------------------------------------------------------------------------------------------------------------------------------------------------------------------------------------------------------------------------------  

●혜원조사(慧遠祖師)

진(晉)나라 혜원(慧遠)은 안문(雁門)누번(樓煩)사람이라 널리 육경(六經)에 해박(該博)함이나

더욱 장노(莊老)<장자(莊者)노자(老子)>에 밝았다

도안법사(道安法師)에게서 반야경(般若經) 강의(講義)를 듣고

활연(豁然)이 대오(大悟)함이라

이를 인(因)하여 머리를 체발(剃髮)하고 염의(染衣)를 입고 스님이 되어 그를섬겼다

태원(太元) 육년(六年)<ad 381년>심양(潯陽)을 지나다가

여산(廬山)이 한광(閒曠)하여 가(可)이 마음이 깃들어 휴식(休息)할 만한곳임을 알게되었다

--여산(廬山)이 유적(幽寂)하여 마음을 깃들여 살만한 곳임을 보게되었다-----

마침내 드디어 산신(山神)이 현몽(現夢)함을 감응(感應)하고

어느날 하루저녁에 뇌우(雷雨)<번개와비바람>가 휘몰아치더니

임목(林木)이<목재(木材)> 스스로 이르러옴에 힘들이지않고 구(求)할수 있었다

자사(刺史) 환이(桓伊)가 이에 사찰을 건립(建立)하여 만들고 신운(神運)이라고불렀다

혜영(慧永)이 먼저 서림(西林)에 머물러 주지(住持) 하였음으로하여

혜원(慧遠)이 사는곳은 동림(東林)이라하였다

혜원조사(慧遠祖師)가 동림(東林)에 거주(居住)하여 머문지 사십년(四十年)동안 자취(自趣)를

속세(俗世)에 들여 놓은적이없이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만 뜻을두어

고승(高僧)과 거유(鉅儒) 일백사십(一百四十)사람과 함께 청정(淸淨)한 연사(蓮社)을만들었다

연루(蓮漏) 6시간(時間)동안 선송(禪誦)을 그치지 않았고

마음과 생각을 정토(淨土)에 쏟아부어

세번이나 성상(聖相)을 보았으나 침묵(沈黙)하고 남에게 누설(漏泄)하지 않음이라

훗날 19년(394)7월 저녁 반야대(般若臺)에서 정(定)에서

막일어 나려고 하다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몸이 허공(虛空)에 가득한데

원광(圓光)속에서 화신(化身)부처님이 몸을 나투시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두명의 보살(菩薩)이 좌우(左右)에서 모시고 서있는 모습(模襲)을 보았다

또한 물이 흐르는듯 광명(光明)이 열네줄기로 분산(分散)하면서

아래위를 선회(旋回)하는 속에서 미묘(微妙)한 법(法)을 연설(演說)하시고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내가 나의 본원력(本願力)을 지키기 위하여와서 너를 안위(安慰)하노라

너는 칠일(七日)후(後)에 반드시 나의 국토(國土)에 태어나리라-----

또보니 불타야사(佛陀耶舍) 혜지(慧持) 혜영(慧永) 유유민(劉遺民)등(等)이

부처님의곁에서 읍(揖)하며 스님께서는 저희들보다 뜻을 세운지가 오래였습니다

어찌하여 오시는것이 이다지 늦습니까하는것이었다

이미 때가 이르러온것을 알고는 문인(門人)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처음 이곳에 머물는때에 세 번 성상(聖相)을 보았고 오늘다시

두 번이나 친견(親見)하였다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할것을 의심(疑心)할수없는일이다

하고는 때가 이르자 단정(端正)히 앉아 입적(入寂)하였다

때는 의희(義熙)12년(年)(416)8월(月)6일(日)이었다

찬(讚)하여말한다 진(晉)나라 이전(以前)에도 비록 정토(淨土)의 법(法)이

비록 중국(中國)에 전(傳)해지긴했으나

널리 전(傳)하고 힘써 행(行)하여 거리나 집집마다

정토(淨土)의 법(法)을 깨우치게된것은 혜원법사(慧遠法師)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만대(萬代)이후(以後)에 정업(淨業)을 수행(修行)하는

제자(弟子)들이 스님의 거룩한 뜻을 추존(推尊)하여 시조(始祖)로 삼게된것이다

참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께서 다시 서방정토(西方淨土)을 연설(演說)한것이며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동토(東土)에 현신(現身)한것이라 할만하였다

그 공(功)이 위대(偉大)하지않는가

내가 예전(預前)에 여산(廬山)을 여행(旅行)하다가 호계(虎谿)의 샘을마셔보고

삼소(三笑)의 집을 바라보면서 18현인(賢人)의 유적(遺蹟)을 배회(徘徊)한적이있었다

그 규모(規模)가 홍원(弘遠)한것을보니

족(足)히 만(萬)명의 스님들이 살만한곳 이었음을 알수있었다

그러니 전각(殿閣)은 먼지가 쌓였고 종(鐘)과 북은 적막(寂寞)에 뭍혔으며

문(門)은 뒤틀리고 부엌에는 냉기(冷氣)가 감돌았다

철인(哲人)이 가시자 아름다운 자취(自趣)도 끊어지고만것이다 애달픈일이었다

------------------------------------------------------------------------------------------------------------------------------------------------------------------------------------------------------------------------------------------------------------------------------------------  

●혜영(慧永)스님

진(晉)나라 혜영(慧永)은 하내(河內)사람이라 십이(十二)세에 출가(出家)하여

이미 그리하여 혜원공(慧遠公)<혜원조사(慧遠祖師)>과

더불어 함게 도안법사(道安法師)에 의지(依支)함이라

태원(太元) 초(初)에 여산(廬山)에 주석(駐錫)함이라

자사(刺史) 도범(陶範)이 자신(自身)의 집을 희사(喜捨)하여

서림(西林)이라 하고 그를 살게하니 이곳에서 철저(徹底)하게 세속(世俗)의 반연(攀緣)을 끊고

안양(安養)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을 간구(懇求)하였다

그 후(後) 의희(義熙)십년(十年)<414>에 병(病)든 모습(模襲)을 보이더니

문득 갑자기 옷<의복>을 걷고 신발을 찾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대중(大衆)이 놀라서 물으니 부처님께서 오시여 나를 맞이하신다라고

대답(對答)하고는 말을 마치자 죽었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칠일(七日)만에야 사라졌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시호(諡號)를 추서(追書)하여 각적대사(覺寂大師)라하였다

찬탄(讚歎)함이라

혜영(慧永)이 처음으로 입도(入道)하여 혜원법사(慧遠法師)와함께

어깨를 나란히하여 정사(淨社)를 세워서 만세(萬世)의 법(法)을 세웠다

이러한 까닭으로 혜원(慧遠)이 조사(祖師)라고한다면

혜영(慧永)은 종사(宗師)라고할것이다

이에 저 수명(壽命)을 마치는 사이에 이르러<도달(到達)하여> 부처님께서

오시여 영접(迎接)함을 뵈옴이라 선후(先後)에 한번 문득 출(出)하여 왕생(往生)의

상서(祥瑞)로움 을 증명(證明)함과 같음이라

응당(應當)히 두명의 스승으로 이에 준칙(準則)<법(法)의잣대>을 삼음이라

여산(廬山)의18 대현(大賢) 과 132 위(位)의 모든 왕생(往生)을 성취(成就)했던

이들을 여기는다 기록(記錄)하지못한다 우선 아래와 같이 한두분을 소개한다

-------------------------------------------------------------------------------------------------------------------------------------------------------------------------------------------------------------------------------------------  

●담순(曇順)스님

<여산(廬山)의 십팔현인(十八賢人)>

진(晉)나라 담순(曇順)은 황룡(黃龍)사람이라 어려서는 나집법사(羅什法師)를 추종(追從)하여

여러가지 경전(經典)을 강석(講釋)하였다 나집법사(羅什法師)가 이사람은 기특(奇特)한

재목(材木)<그릇>이다하고 찬탄(讚歎)하곤하였다

그 후(後)에 여산(廬山)에 들어가서 정업(淨業)을 수행(修行)하여 닦았다

그때에 영만교위(寧蠻校尉) 류준효(劉遵孝)가 강능(江陵)에 사찰(寺刹)을 만들어서

담순(曇順)스님을 맞이한 이후(以後)로 염불삼매(念佛三昧)가 성행(盛行)하게 되었다

송(宋)나라 원가(元嘉)이년(二年)<425>대중(大衆)에게 고별(告別)하고 앉아서 시적(示寂)하였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안에 가득 하였다

--------------------------------------------------------------------------------------------------------------------------------------------------------------------------------------------------------------------------------------------------------------------------------------  

●승예(僧叡)스님

진(晉)나라 승예(僧叡)스님은 기주(冀州)사람이라

제방(諸方)에 유학(遊學)하여 멀리 천축(天竺)<인도(印度)>에 까지다녀왔다

(關中)에서 돌아와서는 나집법사(羅什法師)<구마라집>을 좇아 경의(經義)를 품수(稟受)함이라

<경전(經典)을배웠으나>

후(後)에<나중에는> 여산(廬山)의 연사(蓮社)에 참예(參預)하였다

송(宋)나라 원가(元嘉) 십육년(十六年)<436>

홀연(忽然)히 대중(大衆)에게 말하되 나는 장차(將次) 가야겠다 하고 고별(告別)하고는

얼굴을 서향(西向)하여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관염(觀念)하고 합장(合掌)하여

그리고는 천화(遷化)함이라

대중(大衆)들이보니 승예(僧叡)스님의 책상(冊床)앞에

한송이 금연화(金蓮花)가 갑자기 시들었고

오색향연(五色香煙)이 그의 방에서 흘러 나오고있었다



-----------------------------------------------------------------------------------------------------------------------------------------------------------------------------------------------------------------------------------------------------------------------------------------  

●담항(曇恒)스님

진(晉)나라 담항(曇恒)스님은 하동(河東)사람이다

어려서 혜원조사(慧遠祖師)를 의지(依支)해 출가(出家)하여

내외(內外)의 전적(典籍)에 관통(貫通)하지못한것이 없었으나

여산(廬山)에 들어간 후(後)에는 염불(念佛)수행(修行)에만 전념(專念)하였다

의희(義熙)십사년(十四年)<418>단정(端正)히 앉아 합장(合掌)한채

큰소리로 염불(念佛)하며 죽었다

-----------------------------------------------------------------------------------------------------------------------------------------------------------------------------------------------------------------------------------------------------------------------------------------

●도병(道昞)스님

진(晉)나라 도병(道昞)스님은 영천(穎川)사람이라

어려서부터 혜원조사(慧遠祖師)를 스승으로 하여

경율(經律)에 통달(通達)했으며

말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하게 염불삼매(念佛三昧)를 극진(極盡)히 궁구(窮究)하였다

의희(義熙)십사년(十四年)<418> 예장태수(豫章太守) 왕건(王虔)이

산(山)에 들어와서 알현(謁見)하고

혜원(慧遠)공(公)의 법석(法席)을 계승(繼承)해줄것을 간청(懇請)하니

대중(大衆)들이 모두 숭앙(崇仰)하게되었다

원가(元嘉)십이(十二)년(年) 대중(大衆)을 모아놓고 염불(念佛)한 후(後)자리에 앉아서 죽었다

찬탄(讚歎)함이라

말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했다는것은 이른바 마음과 입 두가지로

동시(同時)에 염불(念佛)하는것을 말한다

흔히 그의말을 들어보면 그럴듯하지만 행동거지(行動擧止)를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境遇)가 허다(許多)하다

그러나 왕생(往生)을 바라면서 누구를 기만(欺瞞)할수 있겠는가



-----------------------------------------------------------------------------------------------------------------------------------------------------------------------------------------------------------------------------------------------------------------------------------------  

●담선(曇詵)

진(晉)나라 담선(曇詵)은 광릉(廣陵)사람이라

어려서부터 혜원조사(慧遠祖師)를 스승으로 하여 부지런히 정업(淨業)을 닦았고

겸(兼)하여 강설(講說)에 능(能)하여 유마경(維摩經)을 주석(註釋)하여 세상(世上)에 남겼다

원가(元嘉) 십칠년(十七年)에 가부좌(跏趺坐)한채 염불(念佛)하면서 시적(示寂)하였다

----------------------------------------------------------------------------------------------------------------------------------------------------------------------------------------------------------------------------------------------------------------------------------------  

●도경(道敬)

진(晉)나라 도경(道敬)은낭야(瑯琊)사람이다

할아버지 웅지(凝之)가 강주자사(江州刺史)가 되었으므로

그러한 인연(因緣)으로 혜원조사(慧遠祖師)를 따라 출가(出家)하였다

나이 열일곱살에 경론(輕論)에 박통(博通)하여 하루에 만언(萬言)을 기억(記憶)하였으며

독실(篤實)히 염불(念佛)에 뜻을 두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송(宋)나라 영초(永初) 원년(元年)대중(大衆)에게 말하기를

선사(禪師)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후(後)에 나는 그대로 실행(實行)하였다 하고 단정히앉자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면서 죽었다 대중(大衆)들이보니 광명(光明)이

가득하더니 잠시(暫時)후(後)에 사라졌다

찬탄(讚歎)함이라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주를 갖춘이로서 스스로 뽐내지않는 자(者)가 드물다

그러면서 독실(篤實)히 염불(念佛)에 뜻을 두었으니

숙세(宿世)에 정인(淨因)을 심은 자(者)가 아니겠느가

요즘 사미(沙彌)로서 약간(若干)의 경론(經論)이라도 읶힌자면

아만(我慢)과 게으름으로 머리가 희도록 돌아갈줄을 모른다

그러다 부득(不得)히 서방(西方)을 말하고 있으나 그때는 이미 늦다

-----------------------------------------------------------------------------------------------------------------------------------------------------------------------------------------------------------------------------------------------------------------------------------------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진(晉)나라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는 우리말로 각현(覺賢)이라는뜻이다

가유위국(迦維衛國)사람으로 감로반왕(甘露飯王)의 후예(後裔)였다

나이 열여섯에 모든 경전(經典)에 박학(博學)했으며 깊이 선율(禪律)에도 능통(能通)하였다

요진사문(姚秦沙門)지엄(智嚴)이서역(西域)으로 간적이있었는데

그때에 스님을 모셔 장안(長安)으로 왔다 동궁(東宮)에서

법(法)을 연설(演說)할적에 나집법사(羅什法師)와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논의(論議)하기도 하였다

후(後)에 관중(關中)의 승려(僧侶)인 도항(道恒)등에게 빈척(擯斥)을사 이로 인(因)하여

여산(廬山)에 들어가서 원공(遠公)의 연사(蓮社)에 참예(參預)하여

관불삼매(觀佛三昧)등(等) 경(經)을 변역(變譯)하였다

송(宋) 원가(元嘉)육년(六年)염불(念佛)하면서 죽었다



-------------------------------------------------------------------------------------------------------------------------------------------

●승제(僧濟)스님

진(晉)나라 승제(僧濟)가 여산(廬山)에들어가 혜원조사(慧遠祖師)공(公)에게서

배울적에 원공(遠公)이큰 법(法)을 계승(繼承)할 자(者)는 바로너다 하고 찬탄(讚歎)하였다

나중에 혹독(酷毒)한 병(病)이 들어 정성(精誠)을 다해 정토(淨土)를 바라게 되었는데

원공(遠公)이 촛불하나를 주면서 너에게 마음을 정토(淨土)에 두게 할것이다 하였다

승제(僧濟)는 촛불을 잡고 탁자(卓子)에 기대어 생각을 집중(集中)하여

흩으지지 않게하는 한편 대중(大衆)을 모아 정토경(淨土經)을 읽게하였다

오경(五更)에 승제(僧濟)가 제자(弟子)원필(元弼)에게 촛불을 주면서

대중(大衆)을 따라 행도(行道)하게 하였다

잠시(暫時)후(後)에 자신(自身)이 촛불을 잡고 허공(虛空)에 올라 어딘가로 가는데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손바닥에 받아 들고 곧 두루 시방(十方)에

이르는것을 보고 문득 깨어났다 슬프기도하고

한편 기쁘기도 하면서 사대(四大)는 본래(本來)전혀 병고(病苦)가 없는것을 알게되었다

다음날 저녁 문득 일어나 허공(虛空)을 살펴보니 언젠가 본적이 있는것 같았다

잠시(暫時)후(後)에 도로 자리에 누우며 유쾌(愉快)한 얼굴로 곁의

사람에게 나는 가네 하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죽었다

그때에 폭염(暴炎)이 내려쬐는 한더위였으나 삼일(三日)

동안 몸이 변(變)하지 않았고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자욱하였다

찬탄(讚歎)한다

승제(僧濟)는 성사(聖師)의 지시(指示)로

정토(淨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태어났다

그렇다면 임종(臨終)의 조념(助念)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斷言)할수가있겠는가 폭서(暴暑)에 시신(屍身)을 관(棺)에 담아두었으나

몸에서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뿜어 나왔다고 하니 청정(淸淨)한 범행(梵行)의

결과(結果)로 얻어진 영험(靈驗)이었다

----------------------------------------------------------------------------------------------------------------------------------------------------------------------------------------------------------------------------------------------------------------------------------------  

●혜공(慧恭)

진(晉)나라 혜공(慧恭)은 예장풍성(豫章酆城)사람이다

혜란(慧蘭)승광(僧光)등(等)과 함께 동학(同學)으로서

혜란(慧蘭)과 승광(僧光)도 정토(淨土)를 간구(懇求)하여

임종(臨終)에 모두 기이(奇異)한 영험(靈驗)이 있었다

오년후(五年後)에 혜공(慧恭)공(公)이 혹독(酷毒) 한 병(病)이 들었는데

비오듯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부딪치면서

마음에 안양(安養)을 서원(誓願)하면서 염불(念佛)을 잠시(暫時)도 쉬지않았았다

그러던중에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금대(金臺)앞으로 맞이해가는데

공(公)이 그위로 오르는것을 보았으며 또 보니 혜란(慧蘭)과 승광(僧光)등(等)이

금대(金臺)위의 광명(光明)속에서 장로(長老)께서 이미 상품(上品)에 태어 나셨으니

저희들의 기쁨은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오탁(五濁)에 머물러

서로 만남이 더딘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는것이었다 공(公)은 기꺼이 몸을 버리고갔다

----------------------------------------------------------------------------------------------------------------------------------------------------------------------------------------------------------------------------------------------------------------------------------------  

●혜건(慧虔)

진(晉)나라 혜건(慧虔)은 어려서 출가(出家)하여 계행(戒行)이 엄정(嚴正)하였다

의희(義熙)중에 산음(山陰)의가상사(嘉祥寺)로 가서 갖은 고행(苦行)을 무릅쓰면서

대중(大衆)을 이끌었다 나중에 병(病)이 들어 안양(安養)에

태어나기를 간구(懇求)하며 기도(祈禱)하였다

북사(北寺)에정엄(淨嚴)이라는 비구니(比丘尼)가 있었는데

도덕(道德)과 행실(行實)이 장(莊)한 이였다

꿈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서곽문(西郭門)으로 들어오는데 아름다운 자태(姿態)는

일월(日月)이 비치듯하며 깃발<당번(幢番)>과 양산<화개(華蓋)>은 칠보(七寶)로 장엄(莊嚴)하였다

정엄(淨嚴)이놀라서 예(禮)하며 대사(大士)<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께서는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물으니 가상사(嘉祥寺)에가서

혜건(慧虔)공(公)을 맞이하여 영접(迎接)하려하네 하였다

혜건慧虔은 병(病)은 비록 완쾌(完快)하지않았으나 안색(顔色)은 평소(平素)와 다름이없었다

시자(侍者)들이 모두 기이(奇異)한 향기(香氣)를 맞는 가운데 조용히 죽었다

찬탄(讚歎)함이라

임종(臨終)에 부처님을 친견(親見)한 사실(事實)을 어떤이는 순전(純全)히

자신(自身)의 관념(觀念)에서 일어난 일것이라고 의심(疑心)한다

그러나 지금 다른 사람들도 역시(亦是)보았다면 어찌 하려 하는가

감응(感應)의 교류(交流)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것임을 알아야한다

함부로 단정(斷定)해서는안된다

-----------------------------------------------------------------------------------------------------------------------------------------------------------------------------------

●승현(僧顯)

진(晉)나라 승현(僧顯)은 천축(天竺)사람이다 남(南)으로 강좌(江左)를

여행(旅行)하다가 병(病)이들어 서방(西方)을 간구(懇求)하게 되었다

병고(病苦)속에서 잠시(暫時)도 쉬지 않더니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광명(光明)이 자신(自身)을 비추는것을 보고는 아픈곳이 모두 나았다

그리고는 일어나 목욕(沐浴)하고 곁의 사람들에게 자신(自身)이본것을

이야기하면서 아울러 인과(因果)를 경계(警戒)할것을

말하는뜻이 매우 간절(懇切)하였다 다음날 단정(端正)히 앉아서죽었다

찬(贊)함이라

게으른 비구(比丘)는 어쩌다가 병(病)이 들면 내몸이 피곤(疲困)하다

회복(回復)한 이후(以後)에나 염불(念佛)하리라 하고 말한다

그러나 염불(念佛)은늙고 병(病)든 이를 제도(濟度)하기위한 법문(法門)으로

이때야 말로 더욱 염불(念佛)할때임을 알지 못하였다

그로나 승현(僧顯)은 염불(念佛)의 힘으로 이미 병(病)이 나았고

또한 정토(淨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까지 할수있었다 훌륭한일이다

---------------------------------------------------------------------------------------------------------------------------------------------------------------------------------------------------------------------------------------------------------------------------------------  

●혜통(慧通)

진(晉)나라 혜통(慧通)은 양주(涼州)의 혜소선사(慧紹禪師)로부터 선법(禪法)을

전(傳)해 받았으면서도 마음으로 안양(安養)을 기원(冀願)하였다

병(病)이들자 선정(禪定)중에서도 형색(形色)이매우 단엄(端嚴)한 어떤사람이

혜통(慧通)에게 좋은때가 이르렀도다하고 말하는것을 보았는데

얼마후에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광명(光明)이 찬연(燦然)한것을 보았다

정(定)에서 일어나 동학(同學)에게 고별(告別)하고는 편안(便安)이 죽었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삼일(三日)만에야 흩어졌다

----------------------------------------------------------------------------------------------------------------------------------------------------------------------------------------------------------------

●법림(法琳)

진(晉) 법림(法琳)은 임공(臨邛)사람이다 계행(戒行)이 청정(淸淨)하였고

성도(成都)영건사(靈建寺)에 머물면서

정업(淨業)을 닦았다늘 아미타경(阿彌陀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두가지 경(經)을 수지(受持)하고 있은는데 독송(讀誦)할때는

어떤 건장(健壯)한 사문(沙門)이 우뚝 앞에 서있는것을 보았다

건무이년(建武二年)병(病)들어 누웠으나 일심(一心)으로 서방(西方)을 생각하면서

예참(禮懺)을 쉬지않더니 모든 현성(賢聖)이 모두 공중(空中)에

모이는것을 보고 합장(合掌)한채로 죽었다

찬탄(讚歎)함이라

법림(法琳)은 경(經)을 외울적에 사문(沙門)이 앞에 나타나곤하였다한다 대개(大蓋)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감득(感得)한 것으로 괴이쩍게 여길만한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서방(西方)<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한것이 이것과 관계(關係)가 있는것은 아니다

정업(淨業)을 닦는 자(者)는 모양(模樣)을 취(取)하여 바라지 말라

-----------------------------------------------------------------------------------------------------------------------------------------------------------------------------------------------------------------------------

●담감(曇鑒)

송(宋)나라 담감(曇鑒)은 평소(平素)에 조그만한 선행(善行)이라도

짓게 되면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회향(回向)하면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뵈옵기를 서원(誓願)하였다

하루는 정(定)가운데에서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그의 얼굴에 물을 뿌리면서

너의때를 씻어주노라 너의몸과

입을씻어 모두를 깨끗이 해주노라 하시고 병(甁)속에서

연꽃<연화(蓮華)> 한가지를 꺼내주는것을보았다 정(定)에서 일어나자스님들과

고별(告別)하고 밤이 깊어서 혼자 낭하(廊下)를 거닐면서 염불(念佛)하더니

오고(五鼓)에 이르러서는 이에 그소리가 더욱 우렁찼다

다음날 날이밝자 제자(弟子)가 관례(慣例)대로 문안(問安)을 여쭈었더니

가부좌(跏趺坐)하고 움직이지않았다 가서보니 이미죽어있었다

------------------------------------------------------------------------------------------------------------------------------------------------------------------------------------------------------------------------------------------------------

●승유(僧柔)

제(齊)나라의 승유(僧柔)는 방등(方等)의 여러 가지 경전(經典)을 공부했으나

오직 정업(淨業)만을 가까이 하였다

죽는날 천(千)여명의 화불(化佛)을 보았고 방안의 안팎에서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풍겨오는 가운데 서(西)쪽<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으로

향(向)하여 경례(敬禮)하고 죽었다

--------------------------------------------------------------------------------------------------------------------------------------------------------------------------------------------------------------------

●혜광(慧光)

제(齊)나라의 혜광(慧光)은 낙양(洛陽)에살았다

화엄(華嚴)열반(涅槃)십지(十地)등(等)의소(疏)를 저술(著述)하여 깊이

권교(權敎)와 실교(實敎)의 뜻을 밝혔다

하루는 병(病)이 들었는데 하늘 대중(大衆)들이 와서맞이하는것을 보고는 내가 원(願)하는것은

안양국(安養國)<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으로 돌아가는것이다라고하였다

얼마후 정토(淨土)의 화불(化佛)이 허공(虛空)에 가득하자 원(願)하옵나니

우리 부처님께서 저를 섭수(攝受)하사 저의 본원(本願)을 이루게하소서하고

잠시(暫時)기침을 하더니 말과 기운(氣運)이 모두 쇠진(衰盡)하였다

찬탄(讚歎)함이라 천상(天上)에는 욕락(欲樂)도 많고 여인(女人)도 있으므로

해탈(解脫)할수있는곳이 아니다

예전에는 설사(設使)수행(修行)하여 비비상천(非非想天)에 이를지라도

서방(西方)으로 돌아가는것만 못하다하기도하였다

이러한까닭으로 정토(淨土)를 찬탄(讚歎)하는 자(者)는 상품(上品)은 열반(涅槃)의

언덕에오른것이요 하생(下生)이라도 천궁(天宮)보다는낫다하고말하기도하였다

지금 혜광(慧光)이 목숨이 다할즈음에 살핌이 정확(正確)하고

소원(所願)이 분명(分明)했으니 명쾌(明快)하고도 용기(勇氣)있는 자(者)라할것이다

-------------------------------------------------------------------------------------------------------------------------------------------------------------------------------------------------------------------------------------

●혜진(慧進)

제(齊)나라 혜진(慧進)은 고좌사(高座寺)에살았다

법화경(法華經)을 읽고 백부(百部)의 경전(經典)을 조성(造成)하더니 이러한 선업(善業)을

회향(回向)하여 안양국(安養國)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기를 서원(誓願)하였다

후(後)에 공중(空中)에서 너의 소원(所願)이 이미 이루어졌다

반듯이 왕생(往生)할것이다하는말을 듣고는 병(病)없이 죽었다

------------------------------------------------------------------------------------------------------------------------------------------------------------------------------------------------------------------------------------

●도진(道珍)

량(梁)나라 도진(道珍)은 여산(廬山)에 머물면서 정업(淨業)을닦았다

꿈에 어떤 사람이 바다 가운데로 배를 타고가는것을 보고 물으니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계시는 안양국(安養國)으로 간다는것이다

도진(道珍)이 함께타고 가고자하니 배에 타고 있던 자(者)가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욕실(浴室)을 짓지않았고 아미타경(阿彌陀經)도 외우지 않았소 같이갈수없소하였다

꿍을깨고 나서는 스님들을 목욕(沐浴)시키고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외우는일을

매년(每年)거르지 않았더니 홀연(忽然)히 욕탕(浴湯)의 표면(表面)으로 백은대(白銀臺)가 내려왔다

그래서 그 사실(事實)을 가만히 기록(記錄)하여 경함(經函)에넣어두었다

목숨이 다하는날 저녁 온 산(山)의 중간(中間)이상(以上)은 불이난듯 광명(光明)이

찬연(燦然)하였다 읍인(邑人)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제왕(帝王)의 예근(禮覲)일것이라고 여겼으나 날이 새자 도진(道珍)이 죽었다는

소문(所聞)을 들엇다 나중에 경함(經函)을 열고 도진(道珍)이 상서(祥瑞)로운

감응(感應)으로 의당(宜當)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태어났으리라는것을

의심(疑心)치 않게되었다

찬탄(讚歎)함이라

혜원(慧遠)공(公)은 세 번이나 성상(聖像)을 보았으나 남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공(珍公)은 은대(銀臺)가 내려왔으나 그냥 기록(記錄)만해둘뿐이었다

고덕(高德)의 신중(愼重)함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저못난 장부(丈夫)는

조그만한 기이(奇異)한일이라도 있으면 까불까불 입을 참지못한다

작게는 그일을 잃어버리게되고 크게는

마군(魔軍)의덫에 걸리게된다 신중(愼重)히 하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

●신란(神鸞)

후위(後魏)의 담란(曇鸞)은 젊어서 오대산(五臺山)을 여행(旅行)하다가

영이(靈異)한일을 경험(經驗)하고는 출가(出家)하였다

그러나 성품(性品)이 장생(長生)을 좋아하여 도은군(陶隱君)에게서

선경(仙經)십권(十卷)을 전(傳)해받았다

나중에 보리유지(菩提流支)삼장(三藏)을 만나 불교(佛敎)에도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술(術)이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보리유지(菩提流支)는 웃으며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것이 바로 우리 불도(佛道)입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주면서 이것을 배우면 삼계(三界)에는 다시는

태어나지않고 육도(六道)에는 다시 는가지않게 됨니다 그 수명(壽命)은

항하사(恒河沙)겁(劫)의 바위라도 이와 비교(比較)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우리부처님의 장생(長生)입니다 담란(曇鸞)은 기뻐하며

마침네 선경(仙經)을 불태우고 정업(淨業)을 닦아 수행(修行)하였다

추위와 더위 질병(疾病)이나 고통(苦痛)속에서도 조금도 게으르거나 나태(懶怠)하지 않았으므로

위(魏)나라 왕(王)이 신란(神鸞)이라 호(號)하였다 어느날 저녁에 방안에서 범승(梵僧)이

나는 용수(龍樹)다 오랫동안 정토(淨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살고있으나 너와는 동지(同志)이므로

일부로 와서 만나게된것이다 하는것을 보았다

담란(曇鸞)은 때가 이른것을 알고는 대중(大衆)을 모우고 괴로운 인생(人生)은

끝날 날이없다 지옥(地獄)의 고통(苦痛)은 두려워 하지않을수가 없고

구품(九品)의 정업(淨業)은 닦지 않아서는 안된다하고 가르치고는

제자(弟子)들에게 큰소리로 염불(念佛)하게 하여 서(西)쪽을 향(向)하여 예(禮)하고 죽었다

대중(大衆)들이 들으니 하늘 음악(音樂)이

서(西)쪽으로부터와서 들려 오더니 얼마 후(後)에 사라졌다

찬탄(讚歎)함이라 신선(神仙)의 도(道)를 닦은 자(者)들은 부처는 죽음이 있지만

신선(神仙)은 장생(長生)한다하고말한다 지금 보리유지(菩提流支) 공(公)은

부처님은 장생(長生)이 있으나 신선은 장생(長生)이 없다하였다

이말씀은 통쾌(痛快)하고 솔직(率直)하기가 천고(千古)에 빼어났다

담란(曇鸞)법사(法師)는 그른것을 버리고 올바른곳으로 돌아가기를 마치 헌신을 버리듯

하였으니 어찌 숙세(宿世)에 정인(正因)을 심은 자(者)가 아니겠는가

-------------------------------------------------------------------------------------------------------------------------------------------------------------------------------

●지자대사(智者大師)

수(隋)나라의 지의(智顗)는 호(號)가 지자대사(智者大師)라고하고 영천(穎川)사람이라

어려서부터 성상(聖像)을 보면 예(禮)하고 스님을 만나면 반듯이 절을 하더니

십팔세(十八歲)에 과원사(果願寺)에 출가(出家)하고 나중에는 남악사대선사(南嶽思大禪師)를섬겼다

홍법(弘法)의 인연(因緣)이 다할 즈음에는 섬동석성사(剡東石城寺)에 머물고있었는데

입멸(入滅)할 무렵에 제자(弟子)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나의목숨이

여기에있고 다시는 더나아가지 못하리라는것을 잘안다

오늘 도끼질은 그치고 거문고 줄은 끊어졌다하더니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의 제목(題目)을 읽고나서 다시 사십팔원(四十八願)으로

장엄(莊嚴)한 정토(淨土)는 연화(蓮華)가 피어있는 연지(蓮池)와 보배나무가 있는곳으로

누구나 쉽게가지 못할이가 없어서 지옥(地獄)중생(衆生)도 잠깐 회개(悔改)하는 자(者)는

오히려 왕생(往生)할수 있거든 하물며 계정혜(戒定慧)을 수행(修行)하여 닦은자 이겠는가

성도(聖道)의 수행(修行)의 힘은 그 공(功)이 헛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지랑(智朗)이 대사(大師)께서 어떤 지위(地位)에 증입(證入)했으며 여기서 죽어서는

어느곳으로 가시렵니까 궁금합니다하고 물었다 내가 대중(大衆)을 거느리지

아니했던들 반듯이 육근(六根)을 청정(淸淨)히 할수있었을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自身)에게는 손해(損害)가 되어가면서 남을 이롭게 했으므로

단지(但只)오품(五品)밖에 오르지못했다 네가 또 어디로 갈것인가하고 물었느냐 나의벗들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시고 모두와서 나를맞이한다하고는 말을 마치자 삼보(三寶)의

이름을 부르고 마치 삼매(三昧)에 들듯 열반(涅槃)시적(示寂)하였다

우르러 찬탄(讚歎)함이라 대사(大師)의 도덕(道德)은 훌륭했고 일가(一家)의 교관(敎觀)은

만대(萬代)에 숭앙(崇仰)할만하였다 그러나 목숨을버릴때

오직 서방정토(西方淨土)에만 돌아가려했고

내지(乃至)관경(觀經)에 소(疏)를 내고 십의론(十疑論)을 저술(著述)하여 늘여기에

만 정성(精誠)을 쏟은것을 보면 그의 뜻을 알수있을것이다 어떤이는

그의 소(疏)에 마음을 관(觀)하느것으로 근본(根本)을 삼아야한다는것을보면

정토(淨土)는 사실(事實)이 아닐것이다 말한다

아! 대사(大師)께서 말씀하시를 마음으로 부처를 관(觀)하면 부처가 없다고 말하지못한다

만약 부처가 없다면 마음을 관(觀)해 무엇을 하겠는가

정보(正報)가 기왕 그렇다면 의보(依報)도 마찬가지다하였다

천태교(天台敎)를 배우는 자(者)는 이점을 깊이 살펴서 성찰(省察)해보라

--------------------------------------------------------------------------------------------------------------------------------------------------------------------------------------------------------------

●법희(法喜)

수(脩)나라 법희(法喜)는 항상(恒常) 방등참법(方等懺法)을 행(行)하던 이였다

하루는 꿩한마리가 목숨을 변상(辨償)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어떤 신인(神人)이 꾸짖으며 법사(法師)는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실분이다

어떻게 너의 목숨을 보상(報償)할 수가 있단말인가 하였다

나중에 병(病)중에서 일생(一生)의 행업(行業)을 모두 서방(西方)에 회향(回向)할것을

발원(發願)하고 지심(至心)으로 염불(念佛)하더니

불보살(佛菩薩)이 와서 맞이해 가는것을 보고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찬탄(讚歎)함이라

경(經)에 가령(假令)백천겁(百千劫)동안이라도 지은 업(業)은 없어지지않는다

인연(因緣)이 만나는날 과보(果報)를 도로 자신(自身)이 받아야 한다하였으니

법희(法喜)인들 어찌 정토(淨土)에 태어났다고하여 꿩의 목숨을 보상(報償)하지

않을수가 있으랴만은 다만 한번 정토(淨土)에 태어나면 영원(永遠)히

생사(生死)에윤회(輪回)가 끊어질것이니

인연(因緣)을 어떻게 만날수가 있겠는가

만약 무생(無生)을 깨닫는다면 중생계(衆生界)에 들어가 중생(衆生)을 이롭게 할것이니

그때 비록 보상(報償)이 있다하더라도 이른바 머리가 하얀칼날위에 닿더라도 마치 봄바람을

치는것과<베는것과> 같으리한 경우(境遇)가 될것이다

어찌 범부(凡夫)의 육도(六度)와 같을수 있겠는가



---------------------------------------------------------------------------------------------------------------------------------------

●관정(灌頂)

수(隋)나라 관정(灌頂)은 장안(章安)사람으로

지자대사(智者大師)의 제자(弟子)라

날마다 염불(念佛)로써 일을 삼더니 임종(臨終)에

방안에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감돌더니

제자(弟子)에게 유계(遺誡)를 마치고는 홀연(忽然)히 일어나 합장(合掌)한채로

아미타(阿彌陀)부처님과 두 보살(菩薩)<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명호(名號)를 부르며 엄연(奄然)히 숨을 거두었다

-------------------------------------------------------------------------------------------------------------------------------------------------------------------------

●혜성(慧成)

수(脩)나라 혜성(慧成)은 지강(枝江)에 살았다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독송(讀誦)하고

서방(西方)관(觀)을 수행(修行)하면서 삼십년(三十年)동안을 자리에 눕지않았다

정(定)에 들때마다 정토(淨土)의 연화(蓮華)로된 좌대(座臺)와 보배로 된 나무를 보곤하였다

임종(臨終)하는날 저녁 사람들이 혜성(慧成)이 연화(蓮華)에 앉아서

가물가물 서(西)쪽<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으로 향(向)하여 가는꿈을 꾸었다

-----------------------------------------------------------------------------------------------------------------------------------------------------------------------------------------------------------

●도유(道喩)

수(脩)나라 도유(道喩)는 개각사(開覺寺)에살았다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염(念)하되 밤낮을 가리지않았다

성상(聖像)을 겨우 세치 정도(程度)의 크기로 만들었는데 후(後)에 정(定)중에서 부처님이

네가 어찌하여 나의 형상(形像)을 작게 만들었느냐하고 물으시자 마음이크면

크고 마음이 작으면 작습니다하고 대답(對答)하였다

말을 마치자 성상(聖像)의 몸이 허공(虛空)에 가득하더니

너는 목욕(沐浴)하고 몸을 깨끗이하라 내일 별이 뜰때에

내가 와서 너를 맞이하리라 하시였다

그때가 되자 과연(果然)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오시고

광명(光明)이 방에 가득한 가운데 마침네 앉아서 죽었다

찬탄(讚歎)함이라

마음이크면 크고 작으면 작다하였다 그렇다면 마음이 더러우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하면 깨끗할것은 자명(自明)한 사실(事實)이다

그런데 도유(道喩)는 한부처님이 허공(虛空)에 가득한것을보았고

앞의 승유(僧柔)나 혜광(慧光)은 많은 부처님이 허공(虛空)에 가득한것을 보았다

이것은 하나가 바로많은것이요 많은것이 바로하나인

이치(理致)로서 우열(優劣)이있는것은아니다

-----------------------------------------------------------------------------------------------------------------------------------------------------------------------------------------------------------------------------

●지순(智舜)

수(隋)나라 지순(智舜)은 여산(廬山)에 들어가서 혜원조사(慧遠祖師)의 정업(淨業)을 본받았다

대업(大業)초(初)에 십육관경(十六觀經)을 강의(講義)하고는 병(病)이 들었다

그런데 앵무(鸚鵡)와 공작(孔雀)이 불법승(佛法僧)을 염(念)하여 미묘(微妙)한소리를

내는것을 보고는 제자(弟子)들에게 내가오늘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한다하고 편안(便安)히 시적(示寂)하였다

------------------------------------------------------------------------------------------------------------------------------------------------------------------------------------------------------------------------------------●수(隋)나라 혜해(慧海)

수(階)나라 혜해(慧海)는 강도(江都)의 안락사(安樂寺)에 살았다

경론(經論)에 밝고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였다

어느날 도전(道餘)이라는 스님이 제주(齊州)에서 오면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상(像)을 가지고 왔다

미묘(微妙)하고 아름다워 세상(世上)에서는 볼수 없는것이었다

물으니 이것은 천축(天竺) 계두마사(籍頭摩사)의 오통보살(五通菩薩)

이 허공(虛空)에 올라가 저 안락세계(安樂世界)에서 직접(直接) 그려가지고 온 것입니다 하였다

해(海)는 기쁘고 감격(感激)하여 정성(精誠)을 다해 예경(禮敬)하노라니

신묘(神妙)한 광명(光明)이 찬연(燦然)히 빛나는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정성(精誠)을 다해 모사(模寫)하고 저 국토(國土)에 왕생(往生)하기를 기원(冀願)하였다

후(後)에 대수롭지 않은 병(病)이 들더니 밤에 문득 일어나 늘 항상(恒常) 그러하듯

이 서(西)쪽을 향(向)하여 예(禮)하고는 가부좌(跏趺坐)하여 새벽에 이르러서 죽었다

단엄(端嚴)한 것이 마치 생시(生時)와 같았다

찬(贊)

극락세계(極樂世界)는 여기에서 10만억(萬億) 불토(佛土)를 지나가야 한다고 하니

역시 허공(虛空)에 올라가서 이를수있는곳이 아닐것이요

혜해(慧海)의 정성(精誠)이 부처님을 감동(感動)시킨것이리라

저 도전(道餘)이라는 분도 어쩌면

정토(淨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의 현성(賢聖)일지 모른다

-------------------------------------------------------------------------------------------------------------------------------------------------------------------------------------------------------------------------------------------------------------------------------------------------------------

●법지(法智)

수(隋)나라 법지(法智)는 어려서 출가(出家)하였다늙어서 빠르고

곧은 길은 염불(念佛)만한것이 없다는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내가 들으니 경(經)에 하나의 길라(吉羅)를 범(犯)하더라도 일중겁(一中劫)을 지나도록

지옥(地獄)에 떨어진다 하니 그 말씀은 믿을수 있다

그러나 열번만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면 80억겁(億劫)의

생사중죄(生死重罪)를 면(免)할 수 있다

하신 말씀은 도저히 믿을수없다"하였다

그 자리에 어떤 자(者)가 스님은 큰 사견(部見)입니다

모두 부처님의 말씀인데 어찌하여 믿을수 없다는것입니까 하고 반박하였다

그리하여 국청사(國淸寺)의 도솔대(兜率臺)에서 밤낮으로 염불(念佛)을 정근(精勤)하더니

하루는 문득 스님과 신도(信徒)들에게 내가 서방(西方) 에 왕생(往生)해 간다하고는

밤중에 병(病)없이 죽었다

그 때 금색(金色) 광명(光明)이 수백리(數百里)나 뻗쳤으므로 강(江)가의

어부(魚夫)들은 누구나 새벽이 온줄로 여겼다 그러다 한참 만에야

다시 밝아졌으므로 법지(法智)가 왕생(往生)한 줄을 알게되었다

찬(贊)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은 꿀과 같아서 중간(中間)이나

가장자리가 모두달다 모두 반드시 믿어 가지라 하였다

그러므로 악인(惡人)이 지옥(地獄)에 떨어진다는 말은 믿으면서

한 생각에 서방(西方)에 태어난다는 말은 믿지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사견(邪見)이다

근래(近來) 주문(呪文)을 지니는 자(者)가 다라니(陀羅尼)에서 말한 공덕(功德)이

능(能)히 산(山)과 바다를 바꾸고 귀신(鬼神)을 부릴수 있으며

갖가지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할수있다는 말을듣고는

뛸듯이 기뻐하여 믿으면서 정토(淨土)에서 말하는 공덕(功德)은

바로 성인(聖人)의 지위(地位)에 오를수 있고

삼계(三界)를 초월(超越)할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못마땅해 하며 믿으려 하지않는다

이도 사견(邪見)이기는 마찬가지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길라(吉羅) : 돌길라(突吉羅)의 줄인말 악작(惡作) 악설(惡說)이라고 번역(翻譯)한다

비구(比丘) 250계(戒) 중 109 가지가 여기에 포함(包含)된다

------------------------------------------------------------------------------------------------------------------------------------------------------------------------------------------------------------------------------------------------------------------



●선도화상(善導和尙)



당(唐)나라 선도(善導)는 정관(貞觀) 중에 서하(西河) 도작선사(道綽禪師)의

구품도량(九品道場)을 보고 기뻐하며

이것은 참으로 부처의 경계(境界)에 들어갈수 있는 나루터다

다른 행업(行業)을 닦는것은 굽고 치우친 길이어서 성취(成就)하기 어렵다

오직 이 정토법문(淨土法門)만이 재빨리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할수있는 방법(方法)이다하고는

밤낮·없이 예송(禮誦)정진(精進)하고 사중(四衆)을 격발(激發)하였다

방(房)에 들어와서는 호궤합장(胡跪合掌)한채 염불(念佛)하며 힘이 다하지 않으면

쉬지 않았으며 밖에 나가서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정토(淨土)를

연설(演說)하여 30여년(餘年)동안 잠을 제대로 잔적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飮食)은 부엌으로 돌려보냈고 거친 음식(飮食)은 자신(自身)이 먹었다

시주(施主)가 있으면 <미타경(彌陀經)>10만(萬) 권(卷)을 유포(流布)하는데 사용(使用)했으며

정토변상(淨土變相) 삼백벽(三百壁)을 그렸고 떨어지고 파손(破損)된것은

그때마다 보수(補修)하였다

끊이지않고 등불을 밝혔으며 삼의(三依)와 물병과 발우(鉢盂)를 소지(所持)하지 못하게 했고

길을 갈때는 여러사람과 함께하지 못하게 했다

부질없이 세상(世上)의 일을 담론(談論)할까 걱정하신것이다

그의 교화(敎化)를 따르는 자(者)가 매우 많았다

아미타경(阿彌陀經)을 10만(萬)에서 50만(萬) 번까지 독송(讀誦)한 자(者)도 있었고

염불(念佛)을 하루에 만(萬)번에서 10만(萬) 번까지 하는 자(者)도 있었다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들어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한 자(者)는

이루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程度)였다

어떤 이가 염불(念佛)한다고 하여

정토(淨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태어날수 있겠습니까 ?하고물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답(對答)하였다

네가 생각한 만큼 너의 소원(所願)이 이루어진다 한번 생각하면

한 광명(光明)이 입에서 나오고 열 번이나 혹(或)은 백(百)번이면 광명(光明)도 마찬가지다

그가 세상(世上) 사람들에게 정토(淨土)를 권(勸)한 게(偈)에 이런것이 있다



----점점(漸漸) 닭 같은 피부(皮膚)

학(鶴)같은 머리칼 갈수록 걸음걸이는 뒤뚱뒤뚱

비록 금옥(金玉)이 방(房)에 가득한들

어찌 늙고 병(病)드는것을 면(免)하랴

그대 갖가지 쾌락(快樂)을 마음대로 누리게만

무상(無常)은 끝내 찾아오고 말리

여기 손쉬운 수행법(修行法)이 있네

단지(但只) 나무(南無)아미타불(阿彌陀佛)------


어느날 문득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몸이 싫구나

나는 서방(西方) 으로 돌아가야겠어 ! 하고는 버드나무에 올라가

서(西)쪽을 향(向)하여 축원(祝願)하기를 부처님께서 저를 받아주시고 보살(菩薩)님께서

저를 도와 주시사 저로 정념(正念)을 잃지않고 정토(淨土)에 왕생(往生)케 하소서 하고는

말을 마치자 몸을 던져 죽었다 고종(高宗)황제(皇帝)가 그 사실(事實)을 알고는

절에 광명(光明)이라는 편액(楄額)을내렸다

찬(贊)

선도화상(善導和尙)을 세상(世上)에서는 흔히 아미타(阿彌陀)의 화신(化身)이라고 하였다

그의 정엄(淨嚴)한 수행(修行)이나 널리 중생(衆生)을 이익(利益)케 한것을 보거나

만대(萬代) 이후(以後)에까지 사람들의 신심(信心)을 불러일으킨것을보면

미타(彌陀)가 아니면 필시(必是) 관음(觀音)이나 보현(普賢)의 무리일것이다

아! 거룩하구나

------------------------------------------------------------------------------------------------------------------------------------------------------------------------------------------------------------------------------------------------------------------

●지흠(智款)

당(唐) 지흠은 선업(輝業)을 익혔던 분이기도 하지만

만오천(萬五千)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백번이나 예념(禮念)했던 분이기도 하다

나중에 유주(柳州) 아육왕탑 앞에서 팔 하나를 태우면서

정토(淨土)에 태어나기를 발원(發願)하였다

제자(弟子) 승호(僧護)가 한밤중에 뜰 앞에 기이(奇異)한 광명(光明)이 비치는 것을 보고

누가 햇불을 들고 있는가 ?하고 세번이나 물으니 공중(空中)에서

지흠(智款) 선사(禪師)를 맞이해 가는 길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護)가 급(急)히 창문(窓門)을 열어보니 부처님 몸의 광명(光明)과 꽃으로

장식(裝飾)한 깃발과 보배의 일산(日傘)이 허공(虛空)에 가득한 가운데

지흠(智款) 이 부처님을 따라 천천히 가고 있었다

찬(贊)

몸을 태우거나 팔을 태우는 일은 대승경전(大乘經典) 가운데에도

종종(種種) 소개되어 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욕보살(忍辱菩薩)의 일이지

초심자(初心者)의 경계(境界)는아니다

서방(西方)<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을

찾는 자(者)는 반드시 지흠(智款) 공(公)의 선(禪)을 익히고

부처님께 예(禮)한 일을 배울 일이지 굳이 그의 팔을 태운일을 본받을것은 아니다

만약 팔을 태우는 정성(精誠)이나 용기로 다생(多生)의 악습(惡習)을다스린다면

태워야 할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옛말에 유하혜(柳下惠)나 잘 배워라 ! 한말이 그럴듯하지 않은가

------------------------------------------------------------------------------------------------------------------------------------------------------------------------------------------------------------------------------------------------------------------

●오회법사(五會法師)

당(唐) 법조(法照)는 대력(大歷) 2년[767J부터 형주(衛州) 운봉사(運峰寺)에 살았다

그 때 숭상(崇尙)했던 일은 자비(慈悲)와 인욕(忍辱)과 계행(戒行)과 선정(禪定)이었다

일찍이 발우(鉢盂) 속에서 오색(五色) 구름이 서려있는 곳에

대성(大聖)죽림사(竹林寺)라는 편액(楄額)이 걸린 범찰(梵刹)이 있는것을

본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오대산(五臺山)에 가서 기이(奇異)한 광명(光明)이

서려있는 것을 보았고 과연 죽림사(竹林寺)도 그곳에 있었다

강당(講堂)에 들어가니 많은 대중(大衆)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문수보살(文殊菩薩)는 서편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오른쪽에서 법(法)을 설(說)하고 있었다

조(照)는 예(禮)하고 말세(末世)의 범부(凡夫)가 어떤 법(法)을 닦아야 하리까 ?하고 물었다

문수(文殊)가 말씀하기를

모든 수행문(修行門) 가운데 염불(念佛)만한것이 없다 나도 염불(念佛)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었다 하였다

또물었다

어떻게 염(念) 하리까

이 세계(世界)의 서(西)쪽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시는데 저 부처님의 원력(願力)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너는 생각[念]을 영속(永續)하여 끊이지 않게하라

반드시 왕생(往生)할 것이다?

나중 섣달 초하루에 화엄원(華嚴院)의 정업도량(淨業道場)에서

두 보살(菩薩)의 왕생(往生)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기억(記憶)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을 하고 있노라니

홀연(忽然)히 범승(梵僧)인 불타파리(佛陀波利)가 나타나서

너의 화대(花臺)가 이미 마련되었다 3년(年) 후(後)에 꽃이 필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때가 되자 대중(大衆)에게 나는 간다"하고 고별(告別)하고 단정(端正)히 앉아갔다

스님은 일찍이 호동사(湖東寺)에서 다섯 차례(次例)의 염불법회(念佛法會)를

연적 이 있었는데 그 때 상서(祥瑞)로운 구름과 보배로 꾸며진

누각(樓閣)을 감응(感應)했으며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두 보살(菩薩)의

몸이 허공(虛空)에 가득한것을 보기도하였다

또한 병주(幷州)에서 다섯 次例의 念佛法會를 열었는데

대종 황제(代宗皇帝)의 궁중(宮中)에 염불(念佛) 소리가 들려오는것을 감응(感應)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신하(臣下)를 보내 찾아보고 스님의 교화(敎化)가 성대(盛大)한것을알게 되었다

마침내 조칙(詔勅)으로 서울에 들어가 궁인(宮人)들에게 염불(念佛)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역시(亦是) 다섯 차례(次例)였다

그래서 오회법사(五會法師)라고 부르게 된것이다.

찬(贊)

감응(感應)을 먼저 꿈꾸고 경계(境界)를 나중에 보았으니

참으로 분명(分明)히 믿을수 있겠다 그렇다면 모든 수행문(修行門) 가운데

염불(念佛)만한것이 없다고 한 문수보살(文殊菩薩)의 가르침을 믿을만하지 않겠는자

3년 전(前)에 화대(花臺)가 미리 마련되었다는것은

소위(所謂) 신심(信心)을 일으키자 말자 연꽃의 꽃술에 이름이 새겨지고

그 부지런하고 게으른 정도(程度)에 따라 활짝 피기도하고 시들기도 하는것이니

역시(亦是) 믿을 만하지 않은가

아 ! 그윽히 신령(神靈)한 자취를 나타냈고 미리 성인(聖人)의 수기(授記)를 받았으며

다섯 차례(次例)의 교화(敎化)를 행(行)하여 그 음성(音聲)이 궁중(宮中)에까지 사무쳤으니

어찌 자비(慈悲)의 원력(願力)을 타고 태어난분이 아니겠는가

------------------------------------------------------------------------------------------------------------------------------------------------------------------------------------------------------------------------------------------------------------------



●대암(臺岩)소강법사(少康法師)

당(庸) 소강(少康)은 진운(縉雲) 선도(仙都) 사람으로

나이 열다섯에 법화경(法華經)와 릉엄경(楞嚴經)에 통달(通達)하였다

정원(貞元) 때 닥양(洛陽) 백마사(白馬寺)에 간적이 있었는데

전각(殿閣) 속의 글자가 방광(放光)하는 것을 보고찾아보니

선도화상(善導和尙)의 서방화도문(西方化導文) 이었다

스님이 만약 정토(淨土)와 인연(因緣)이 있으면 다시 방광(放光)하소서.’하고 축원(祝願)했더니

말을 마치자 광명(光明)이 다시 찬연(燦然)하였다

스님은 겁석(劫石)은 갈아 없앨수 있을망정 나의 원력(願力)은 바꾸지 못한다 하고는

마침내 장안(長安) 광명사(光明寺)로 가서 선도화상(善導和尙)의 영당(影堂)에

예배(禮拜)하노라니 홀연(忽然)히 영상(影像)이 공중(空中)으로 솟아오르면서

너는 나의 가르침을 의지(依支)하여 널리 중생(衆生)들을 교화(敎化)하라

후일(後日) 일을 마친 후(後)에는 반드시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할 것이다 하는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신정(新定)으로 가서 돈을 구걸(求乞)하여

어린애들을 달래어 염불(念佛)하게 하였다 염불(念佛) 한번 부르는데

일문(一文)씩의 돈을 나눠주었다

1년(年) 남짓되자 어린이 어른 귀(貴)한이

빈천(貧賤)한 자(者)를 막론(莫論)하고 스님을 만나는 자(者)는

누구나 아미타불(阿彌陀佛)을불렀다 염불(念佛)하는 소리가 거리마다 울려퍼졌다

또한 오룡산(鳥龍山)에 정토(淨土)도량(道場)을

세우고 자리에 올라 큰소리로 부처님을 부르니

한번 부르면 한 부처님이 입에서 나왔고 열번 부르면 열부처님이 나왔다

대중(大衆)들이 모두 목격(目擊)한 사실(事實)이었다

그리고는 너희들 중에 부처님을 본 자(者)는 반드시

왕생(往生)할수 있을것이다 하였다그 때 대중(大衆)이

수천(數千)명이었으나 보지 못한 자(者)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自身)을 책망(責望)하고 마음 아파하며 더욱 정진(精進)에 힘썼다

나중 21년(年) 10월(月) 3일(日) 스님들과 신도(信徒)들에게 부촉(咐囑)하기를

반드시 정토(淨土)에는 기쁜 마음을 일으키고 염부제(閻浮提)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라 너희들이 나의 광명(光明)을 본다면

진정(眞正)한 나의 제자(弟子)다 하고는 몇줄기의 기이(奇異)한 광명(光明)을 내고는 죽었다

대자암(臺子岩)에 탑(塔)을 세웠으므로 대암법사(臺岩法師)라고 불렀다

찬(贊)

어떤 이는 부처님이 입에서 나왔다는 말을들으면

요괴(妖怪)에 빠진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疑心)할것이다

아 ! 세존(世尊)께서는 술 취한 코끼리를 만났을때

다섯손가락 끝에서 금빛 찬란(燦爛)한 사자(獅子)가 나온적이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내가 어찌 코끼리를 막을생각을 내었겠느냐

나의 한(限)없는 기간(期間)동안 자비(慈悲)와 인욕(忍辱)을 수행(修行)한 힘으로

자연(自然) 히 사자(獅子)가 나타난 것이다 나도 또한 예상(豫想)하지 못했던일이다 하였다

지금 강(康)공의 부처님이 출현(出現)하신 것도 역시(亦是) 한(限)없는 기간(期間)동안

부처님께 귀경(歸敬)한 소치(所致)일 뿐이다 어찌 괴이(怪異)쩍게 생각할일이랴

세상(世上)에는 요술장이들이 캄캄한 밤에 가만히 앉아 향연기(香煙氣)

위로 부처님이 나타나는 것을 관(觀)하면 감응(感應)이 있을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과 삿되고 올바른 것을 비교(比較)해 보라

실(實)로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差異)일것이다

정업(淨業)을 닦는 자(者)를 위하여 불가불(不可不) 밝혀 두는바이다

------------------------------------------------------------------------------------------------------------------------------------------------------------------------------------------------------------------------------------------------------------------

●자각(自覺)

당(唐)나라 자각(自覺)은 진주(眞州)에 살았다 항상(恒常) 발원(發願)하기를

원(願)하옵 건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인(因)해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친견(親見)케 하소서 하였다

그리고는 관음상(觀音像)을 주성(鑄成)하였는데 높이가 49자 였다

완성(完成)되는 날 축원(祝願)을 하고 있노라니 삼경(三更)에 홀연(忽然)히

금색(金色) 광명(光明) 두 줄기가 뻗치더니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광명(光明)속에서

내려오시고 두 보살(菩薩)이 좌우(左右)에서 따르고 있었다

부처님이 손을 드리워 각(覺)의 머리를 어루만지시며

나의 발원(發願)을 지켜 결코 어기지 않노니 우선 중생(衆生)을 이익(利益)케 하노라.

태어날 보배의 못은 어떤 것도 발원(發願)만한것이 없나니라.하였다

나중 11년 7월 보름 저녁에 차림새가 천주(天主)와 같은

어떤 사람이 구름 사이에서 몸을 나타내어 자각(自覺)에게 말하기를

안양(安養)의 시기(時期)가 이르렀다 하자 즉시(卽時) 관음상(觀音像) 앞에서

가부좌(跏趺坐)하고 앉아 죽었다

------------------------------------------------------------------------------------------------------------------------------------------------------------------------------------------------------------------------------------------------------------------

●선주(善冑)

당(庸) 선주(善冑)는 영주(瀛州)사람이다

무덕(武德) 3년[621J에 병(病)이 위독(危篤)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자 문인(門人)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일생(一生) 올바른 믿음을 가졌으므로 정토(淨土)에 태어나지 못할까

걱정하지는 않는다 하고는 방(房)을 치우고 향(香)을 피우게 하였다

그러다 병(病)이 깊어 다시 쓰러졌다가 갑자기 일어나 앉아 합장(合掌)한채

시자(侍者)에게 세존(世尊)을 맞이해 자리에 앉게 해드려라 하고는

스스로 잘못을 말씀드리더니 얼마 후(後) 세존(世尊)께서 가셨다 하며

몸을 굽혀 전송(傳送)하듯하는 몸짓을 하였다

그리고는 자리에 누워 조금 전(前)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오셨다

너희들도 보았느냐? 오래지 않아 나도갈것이다 하더니 잠시(暫時) 후(後)에 죽었다

------------------------------------------------------------------------------------------------------------------------------------------------------------------------------------------------------------------------------------------------------------------



●신소(神素)

당(홈) 신소(神素)는 안읍(安邑)명조(嗚條) 사람이다

처음에는 강연(講演)으로 업(業)을 삼았으나 도걸(道傑)제명(齊名)과

함께 일생(一生)서방(西方)을 생각하는것으로 행업(行業)을 삼게되었다

정관(貞觀) 2년[628J에 대중(大衆)이 누암(樓岩)을 주관해 줄것을 간청(懇請)하여 그곳에 살았다

17년 2월 23일에 대중(大衆)을 불러 고별(告別)하고

얼굴빛을 엄정(嚴正)히 하고 가부좌(跏趺坐)하고 앉아 관음보문품(觀音普門品)을

두번 외게한 연후(然後)에

자신(自身) 이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고 대중(大衆)이 따라하게 하더니

한밤중이 되어서 단정(端正)히 앉아 편안(便安)히 갔다

살갖은 비록 변(變)하였으나 앉아있는 모습(模襲)은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않았다

------------------------------------------------------------------------------------------------------------------------------------------------------------------------------------------------------------------------------------------------------------------

●혜선(慧璿)

당(唐) 혜선은 양천(襄川)에서 출가(出家)하고 일찍이

삼론(三論)과 대경(大經 : 화엄경(華嚴經))을 널리 공부한 적도있었다

정관(貞觀) 23년(年)[649J 4월(月) 8일(日) 밤에 산신(山神)이

법사(法師)께서는 오래지 않아 서방(西方)에 왕생(往生)하실것입니다.’

하더니7월(月) 14일(日) 우란분경(盂蘭盆經)을 강설(講說)하여 끝마치고는

손을 털면서 살아서는 시주(施主)의 은혜(恩惠)를 입었으나 오늘은 모두 보시(布施)해야겠다

조그마한 물건(物件) 하나라도 쓸만한 것은 모두 시방(十方)의 가난한

걸인(乞人)이나 수도자(修道者)들에게 주어라 하고는 말을 마치자 법좌(法座)에서 죽었다

찬(贊)

옛날 생(生)공(公)이 숨을 거두려할 때 대중(大衆)들이 보니

불자(拂子)가 땅에 떨어지면서 탁자(卓子)에 기댄채

마치 선정(禪定)에 든듯 죽었다 하더니 혜선(慧璿))의 일도 역시(亦是) 이와 유사(類似)하다

아 ! 평생(平生)의 도력(道力)이 아니었다면 임종(臨終)에 이렇게 할수있었을까

------------------------------------------------------------------------------------------------------------------------------------------------------------------------------------------------------------------------------------------------------------------

●회옥(懷玉)

당(홈) 회옥은 태주(台州) 사람이다

남루(襤褸)한 옷과 한끼의 밥으로 항상(恒常) 앉아 있기만하고 눕지 않은채

아미타경(阿彌陀經) 30만(萬) 번을 독송(讀誦)했고 하루에

부처님 명호(名號) 5만(萬) 번을 불렀다

천보(天寶) 원년(元年)<742> 불(佛)보살(菩薩)이 허공(虛空)에 가득한데

한 사람 이 은대(銀臺)를 가지고와서 맞이하는것을 보고

옥(玉)이 내가 일생(一生) 염불(念佛)했던것은 금대(金臺)를 얻기위해서입니다

어찌하여 그렇지 않습니까?"하니 성중(聖覆)이 마침내 사라졌다

옥(玉)은 더욱 정진(精進)을 배가(倍加)하였다

21일(日) 후(後)에 전(前)에 대좌(臺座)를 가져왔던 자(者)가

다시와서 스님 께서는 정진(精進)의 힘으로 상품(上品)에 오를수있게 되었습니다

가부좌(跏趺坐)하여 앉아 기다리십시오"하였다

3일(日) 후(後)에 기이(奇異)한 광명(光明)이 방에 가득하더니 제자(弟子)들에게

나는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한다"하고는 미소(微笑)를 머금고 죽었다

군(那)의 태수(太守) 단(段) 공이 이렇게 게(偏)를 지어 찬탄(讚嘆)한것이 있다

----우리스님 한생각에 초지(初地)에 오르사

불국(佛國)음악(音樂)두번이나 들려왔네

오직 문(門)앞의 늙은 홰나무

가지를 늘어뜨려 금대(金臺)를 막네-----

찬(贊)

어떤 이가 은대(銀臺)가 왔다가 사라지고 금대(金臺)를 원(願)하자 다시 왔다하니

어찌 과보(果報)가 일정(一定)함이 없이 사람이 선택(選擇)하는 대로 될수 있는가?하였다

이것이 바로 만법(萬法)은 마음을 따라 감응(感應)한다 는 이치(理致)이다

화거(火車)가 이미 나타났더라도 열번의 염불(念佛)로

왕생(往生)한 일도 있고 천상(天上)의 대중(大衆)들이 와서 맞이했으나

마음을 맹서(盟誓)하고 정토(淨土)로 돌아간적도 있었다

이렇게 선(善) 악(惡)과 범(凡) 성(聖)은 서로 막혀 있는것이지만

잠깐동안 에 업(業)을 바꿀 수 있었다 더욱이 금(金)과 은(銀)같은 미세(微細)한 차이랴

----------------------------------------------------------------------------------------------------------------------------------------------------------------------------------------------------------------

------------------------------------------

●도앙(道昂)

당(唐)나라 도앙(道昂)은 위군(魏郡)사람이라 령유법사(靈裕法師)를 스승으로삼아서

항상(恒常)이에저 한능산사(寒陵山寺)에서 화엄지론(華嚴地論)을 강의(講義)함이라

고찰(考察)함이 윤택(潤澤)하고 해박(該博)함에 도달(到達)함이라

마음으로 서방정국(西方淨國)에 왕생(往生)하기를 결심(決心)하고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안양국(安養國)에 태어나기를 발원(發願)하더니

나중에 스스로 목숨이 다한것을 미리 인식(認識)하고

미리 팔월(八月)로 기한(期限)을 잡았으나 다른사람은 아무도 예측(豫測)하지못하였다

8월 초하룻날이 되었으나 근심하는 기색(氣色)은 없었다

재(齋) 때가 되었는가를 묻고는 법상(法床)에 올라가 앉았다

몸에서는 위엄(威嚴)이 감돌고 향로(香爐)에서는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솟았다

사중대중(四衆大衆)을 이끌어 보살계(菩薩戒)를 설(說)하니

말씀이 간절(懇切)하여 듣는 자(者)들은 마음이 섬뜩한 지경(地境)이었다

도앙(道昂)이 눈을들어 바라보니 천상(天上)의 대중(大衆)이

어지럽고 음악(音樂)이 요란(搖亂)한것을 보고 대중(大衆)에게

도솔천(兜率天)이 나를 맞이한다그러나

천도(天道)는 생사(生死)의 근본(根本)일뿐 본래(本來) 내가 원(願)하는 바가 아니다

늘 마음에 정토(淨土)를 기원(祈願)하였으나

어찌하여 나의 정성(精誠)이 이루어지지 않는것인가?

하니 말을 마치자 하늘의 음악(音樂)이 사라지고

서방(西方)의 향기(香氣)로운 꽃과 음악(音樂)이 구름처럼 울려퍼지더니

날아 내려와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것은 온 대중(大衆)이 모두 목격(目擊)한 사실(事實)이었다

그러자 앙(昆)이 지금 서방(西方)의 영상(靈相)이 와서 나를 맞이한다

원(願)하는 바는 왕생(往生)일 뿐이다하더니 향로(香爐)를 잡은 손이 미끄러지면서

법상(法床)에 앉은 채죽었다 온 천하(天下)가 경탄(驚歎)해 마지 않았다

찬(贊)

천궁(天宮)을 물리치고 정토(淨土)를 찾은 이는 앞에는

광(光)공이 있고 뒤에는 홍(洪)공과 앙(昆)세 사람이 있다

그러나 때가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능(能)히 사중(四衆)을

계율(戒律)로 인도(引導)하다 법상(法床)에 기댄 채 죽을 수있었고

영상(靈相)이 찬란(燦爛)하여 사람의 눈을 놀라게 했던일은 아 ! 기이(奇異)한 일이다

------------------------------------------------------------------------------------------------------------------------------------------------------------------------------------------------------------------------------------------------------------------

●도작(道綽)

당(唐)나라 도작(道綽)스님은 병주(幷州)의 문수(汶水)사람이라

열네살에 출가(出家)하여 경론(經論)을 익히다 만년(晩年)에는

찬(瓚) 선사(禪師)를 섬기며 선(禪)을 배우기도했고

또한 신란(神鸞)의 정토(淨土)업(業)을 독실(篤實)히 닦기도하였다

어떤 스님이 정(定) 중에서 작(掉)의 염주(念珠)가

칠보대산(七寶大山) 만한것을 본적이 있었는데

평소에 대중(大衆)을 위해<무량수관경(無量數觀經)>을

이백여번 설(說)했으므로 사람들이 제각기 염주(念珠)를 돌리며

입으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게 되었다

어떤 때 법석(法席)을 흩으면 임곡(林谷)에 애원(哀願)하는 소리가

가득했고 육시예경(六時禮敬)을 처음부터 거른적이 없었으며

염불(念佛)은 하루에 7만(萬) 번으로 한정(限定)을 정(定)하였다

정관(貞觀) 2년<628>14월(月) 8일(日)에 죽었다

부음(訃音)을 듣고 달려온 자(者)들이 산사(山寺)를 가득 메웠는데

화불(化佛)이 공중(空中)에 머물러 었고 하늘꽃이 내려와 흩어지는것을 보았다

------------------------------------------------------------------------------------------------------------------------------------------------------------------------------------------------------------------------------------------------------------------

●설상(實相)

당(唐) 실상은 옹주(雍州) 장안(長安) 사람이다

19세(歲)에 출가(出家)하여 두타(頭陀)행각(行脚)과 육시(六時)예참(禮懺)을

40년(年)이 가깝도록 행(行)하였다

밤에는 아미타경(阿彌陀經) 일곱 번을 독송(讀誦)하고 6만(萬) 번의 염불(念佛)을 하였다

병(病)이 깊어 일어날수 없게된 지경이 되었으나

독송(讀誦)과 염불(念佛)을 버리지 않더니 스님들과 신도(信徒)들에게 부촉(付囑)하기를

제일(第一) 먼저 해야할일은 염불(念佛)이다 헛되이 세상(世上)을 보내지말라

서방(西方)에서 만날수 있을 것이다하고

또 나의 시신(屍身)은 불태워 흩어버리고

탑(塔)을 세우거나 비석(碑石)을 새기려 애쓰지 말라 하고는 죽었다

찬(贊)

옥(玉)은 하루 5만(萬) 번의 염불(念佛)을 도작(道綽)은 7만(萬) 상(相)은

지금 6만(萬) 번의 염불(念佛)을 하였다

세 늙은이가 모두 고승(高僧)이었으나 날마다

일정(一定)한 수(數)의 염불(念佛)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사람들은 이것은 어리석은 아낙네들이나 할짓이다하고

비웃는다 어떻게생각하는가 ?

------------------------------------------------------------------------------------------------------------------------------------------------------------------------------------------------------------------------------------------------------------------

●유안(推岸)

당(唐) 유안(推岸)은 병주(幷州)사람이었다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를 참으로 돌아가야 할곳으로 여기고

방등(方等)참(懺)을 행하며 고행(苦行) 정진(精進)하여 쉬지 않았다

약간의 병(病)이 들자 관음(觀音) 세지(世智) 두 보살(菩薩)이 공중(空中)에 나타난 것을

보고 유안(推岸)은 화공(畵工)을 불렀으나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자(者)가 없었다

그런데 홀연(忽然)히 두 사람이 나타나 스스로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말하고

다 그리고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유안(推岸)이 제자(弟子)들에게 고별(告別)하기를 나는 지금 왕생(往生)하려고 한다

누가 같이 갈 자(者)가 없느냐?"하자 어떤 동자(童子)가 같이 가기를 원(願)하였다

유안(推岸)이 부모(父母)에게 고별(告別)하게 하니 부모(父母)는

장난인줄로 여기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잠시(暫時) 후(後)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 입고서는

도량(道場)에 들어가 염불(念佛)하고 죽었다

유안(推岸)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얘야 어찌하여

나보다 먼저 간단말이냐? 하였다

그리고서 붓을 들어 이렇게 두 보살(菩薩)을 찬탄(讚嘆)하고는 영원(永遠)히 갔다

원(願)하옵노니 자비(慈悲)의 손으로 이끌어 서행(西行)을 함께 하소서

찬(贊)

유안(推岸)의 일은 의심(疑心)할 여지(餘地)가 없겠거니와

저 동자(童子)는 오랫동안 정업(淨業)을 닦은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신이(神異)하게 갈수 있을까?

아 ! 그는 열번의 염불(念佛)로도 왕생(往生)할수 있다는것을 보이려 한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숙세(宿世)에 깊은 선근(善根)을 쌓은 자(者)이리라

정업(淨業)을 닦는 자(者)가 혹시(或是) 금생(今生)의 몸으로는 왕생(往生)하지 못하더라도

이 일을 보면 스스로 위안(慰安)이 되지않겠는가

------------------------------------------------------------------------------------------------------------------------------------------------------------------------------------------------------------------------------------------------------------------

●승연(僧衍)

당(唐) 승연은 병주(幷州)사람이다

처음에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염(念)하면서 도솔천(兜率天)내원(內院)에 상생(上生)

할것을 발원(發願)했으나 나이 90세(歲)에 가서야 도작선사(道綽禪師)를

만나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듣고 비로소 염불(念佛)로 마음을 돌렸다

그리하여 날마다 천배(千拜)의 절을 하며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였다

나중에 병(病)이 들어 제자(弟子)들에게 고별(告別)하기를아미타불(阿彌陀佛)이

나에게 향기(香氣)로운 옷을 주시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께서 나에게

보배의 손을 보여 주셨다 나는 이제 간다하고는 죽었다

그 때 계방(啓芳)과 원과(圓果) 두명의 법사(法師)가 이 사실(事實)을 목격(目擊)하고

오진사(悟眞寺)에서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손에 들고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으며 만약 정토(淨土)와 인연(因緣)이 있으면 7 일(日) 동안

시들지 마소서"하고 발원(發願)했더니 그 때가 지나도록 더욱 무성(茂盛)하였다

방(芳)과 과(果)는 뛸듯이 기뻐하며 밤낮으로 관념(觀念)을쉬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忽然)히 칠보(七寶)로 된 못에 이르러 대보(大寶)의 장막(帳幕) 속으로 들어갔더니

부처님과 두 보살(菩薩)이 보화(寶華)의 자리에 앉아 계시는데 광명(光明)이 휘황(輝煌)하였다

방(芳)과 과(果)가 예배(禮拜)했더니 부처님이 나의 이름을 생각하는 자(者)는 누구나

나의 국토(國土)에 왕생(往生)하리라 하시는것을 보았고 또한 석가세존(釋迦世尊)과

문수보살(文殊菩薩)이 하늘 음성(音聲)으로 정토(淨土)를 찬탄(讚嘆)하시는 말씀도 들었다

또 보니 세길의 보배로 된 계단(階段)이 있는데 하나는 세속(世俗)인(人)이 있었고

두번째는 스님과 세속(世俗)인(人)이 반반(半半)씩 섞여 있었으며

세번째 것에는 스님들만 있었다 부처님이 이들은

모두 지극(至極)한 마음으로 염불(念佛)했던 이들로서 이 국토(國土)에 왕생(往生)하였다하였다

5일(日) 후(後)에 홀연(忽然)히 종(鐘)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는

종(鍾)소리는 우리들을 위해서다하고 함께 죽었다

찬(贊)

나이 90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업(淨業)을 닦아서도

오히려 왕생(往生)할수 있었다 젊은이는 어떨지 알수 있지 않겠는가

저 방(芳)과 과(果)도 소문(所聞)만 듣고 마음을 내어 마침내 신비(神秘) 한 감응(感應)을얻었다

어진이를 보고 같이될것을 생각하는것이 바로

이를두고 하는말이 아니겠는가

------------------------------------------------------------------------------------------------------------------------------------------------------------------------------------------------------------------------------------------------------------------

●회감(懷感)

당(唐)회감(懷感)은 장안(長安) 천복사(天福寺)에 살았다

염불도량(念佛道場)에 들어갔으나 37 일(日) 동안 상서(祥瑞)를 보지 못하자

스스로 업장(業障)이 두터운 것을 한탄(恨歎)하며 음식(飮食)을 끊고 목숨을 끊으려하였다

이 때 선도대사(善導大師)가 허락(許諾)하지 않고 3 년(年) 동안 더욱

정성(精誠) 을 다해 염불(念佛)하게 하여 가르친 대로하여 감응(感應)을 얻었다

나중에 부처님의 금색(金色)옥호(玉毫)를 보고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어

<결의론(決疑論)>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7권(卷)을 지었다

임종(臨終)에 합장(合掌)한 채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나를 맞이하신다하고는 죽었다

찬(贊)

속담(俗談)에 정성(精誠)을 기울이면 절구공으로도 바늘을 만들수 있다.

하더니 그말을 믿을수 있겠다

한계(限界)를 느끼고 자신(自身)을 원망(怨望)하는 자는 생각해 볼 일이다

------------------------------------------------------------------------------------------------------------------------------------------------------------------------------------------------------------------------------------------------------------------

●덕미(德美)

당(唐) 덕미(德美) 법사(法師)는 회창사(會昌寺)의 서원(西院)에

참회(懺悔)하는 집을 짓고 반주삼매(般舟三昧)를 행(行)하여 여름내 앉거나 눕지 않았다

어떤 때는 업(業)의 허물을 막기 위해 삼년(三年) 동안 말을 하지 않은적도 있었고

어떤 때는 불경(불경(不輕)남을 업신여기지 않음)을 행(行)하여 아무에게나 절하고 예(禮)하였다

남루(襤褸)한 옷과 거친 음식(飮食)을 먹으면서 세속(世俗)의 생각을 끊었으며

서방(西方)을 전념(專念)하여 입으로 미타(彌陀)를 부르며 죽을때까지 쉬지않았다

나중에 잠깐 방에 들어가 부처님 명호(名號)를 부르면서 편안(便安)히 죽었다

찬(贊)

세속(世俗)의 생각을 끊으면 더러운 인연(因緣)이 다할것이요

서방(西方)을 전념(專念)하면 깨끗한 인연(因緣)이 이루어질것이다

옛 성인(聖人)의 말씀에 애욕(愛欲)이 깊지 않으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지 않을것이요

생각이 전일(專一)하지 않으면 정토(淨土)에 태어나지 못한다하였다

진실(眞實)하다 이 말씀이여 !

------------------------------------------------------------------------------------------------------------------------------------------------------------------------------------------------------------------------------------------------------------------

●변재(辯才)

당(唐)나라 변재(辯才)는 양양(襄陽)사람이었다 남몰래 정토(淨土)를 닦으면

서도 20년(年) 동안 그런 사실(事實)을 말한 적이 없었다

다만 호융(護戎)인 임(任) 공이 이 일을 알고는 재(才)는

반드시 10년(年) 후(後)에 정토(淨土)에 태어날 것이다하였다

하루는 제자(弟子)를 임(任) 공에게 보내어 전(前)에 정한 기한(期限)이 이미되었습니다.하였더니

임(任) 공(公)이 오자 나는 갑니다 하고는 가부좌(跏趺坐)한 채죽었다

선악(仙樂)이 서(西)쪽에서 들려오고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흩어지는것을

대중(大衆)이 모두들을수 있었다

------------------------------------------------------------------------------------------------------------------------------------------------------------------------------------------------------------------------------------------------------------------

●수홍(壽洪)



당(唐) 수홍(壽洪)은 분양(汾陽)사람이다

항상(恒常) 염불(念佛)하며 정토(淨土)를 간구(懇求)하더니 죽을 때에 이르러 도솔천(兜率天)의

동자(童子)가 와서 맞이하는것을 보고 나는 서방(西方)에 왕생(往生)하려 한다.

천상(天上)에 태어나지는 않을것이다 하고는 대중(大衆)에게 염불(念佛)하게 하더니

문득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서(西)쪽<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서

오신다 하고는 말을 마치자 죽었다.

------------------------------------------------------------------------------------------------------------------------------------------------------------------------------------------------------------------------------------------------------------------

●법상(法祥)

당(唐)법상(法祥)은 양도(楊都) 대흥국사(大興國寺)에 살면서

삼십(三十)년(年) 동안 안양(安養)의 업(業)을 닦으며 모든

선행(善行)은 반드시 서방(西方)에 회향(回向)하였다

병(病)이 들었을 때 제자(弟子)들이 법상(法祥)의 염불(念佛) 소리가 더욱 우렁찬것을들었고

또 한방의 서(西)쪽벽에 거울을 매단듯한 광명(光明)이 비치면서

정토(淨土)의 광경(光景)이 나타났으며

가릉빈가(迦陵頻伽)(극락조(極樂鳥))가 나래짓을 하는것을보았다

그리고는 편안(便安)히 죽었다

찬(贊)

법상(法祥)은 빈가(頻伽)를 보았고 앞의 지순(智舜)은 앵무(鸚鵡)와 공작(孔雀)을 보았다

부처님을 친견(親見)하지 않고 새들을 본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經)에 이 모든 새들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변화(變化)하여 만든것이다.하였다

그러므로 정보(正報)와 의보(依報)가

모두 정토(淨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의 모양(模樣)인것이다

조금도 의심(疑心)하지 말라

------------------------------------------------------------------------------------------------------------------------------------------------------------------------------------------------------------------------------------------------------------------



●대행(大行)

당(唐) 대행(大行)은 태산(泰山)에 살면서

삼년(三年) 동안 보현참법(普賢懺法)을 닦아 보현보살(普賢菩薩)이

현신(現身)하는 것을 감응(感應)하였다

늙어서 대장각(大藏閣)에 들어가 발원(發願)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冊)을 골라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얻어 밤낮으로 독송(讀誦)하였다

삼칠일(三七日)이 되는날 유리(琉璃)의 땅위에

부처님과 두 보살(菩薩)이 현신(現身)하는것을보았다

희종황제(俙宗皇帝)가 그 사실(事實)을 듣고 궐내(闕內)에 불러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년(年)후(後) 유리(琉璃)의 땅이 다시 나타나더니 그날 죽었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보름 동안 흩어지지 않았고 육신(肉身)도 썩지않았다

찬(贊)

유리(琉璃)의 땅은 위와 아래가 내비치는 곳으로

청정(淸淨)한 덕(德)으로 감응(感應)하는것이다

그리고 혜영(慧永)과 승연(僧衍)은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칠일(七日)동안 흩어지지 않았고 혜통(慧通)은 3일(日)

행(行)은 지금 보름동안 감돌았다고하였다

범행(梵行)이 더욱 청정(淸淨)했던 소치(召致)가 아니겠는가

------------------------------------------------------------------------------------------------------------------------------------------------------------------------------------------------------------------------------------------------------------------



●명첨(明瞻)

당(唐) 명첨(明瞻)은 늙어서야 안양(安養)에 뜻을 둔 이다

어떤 이가 이미 늦었다고 놀리자 열번의 염불(念佛)만으로도

공(功)을 이루어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친견(親見)한 일도 었다

내가 무엇을 염려(念慮)하랴 하고 대꾸하였다

나중에 병(病)이 들자 흥교사(興敎寺)에서 재(齋)를 베풀어

스님과 신도(信徒)들과 고별(告別)하게 되었는데

그 때 복사(僕射)인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해(杜如海)도 그 자리에 있었다

오후(午後)가 되자 위의(威儀)를 단정(端正)히 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다 문득 부처님이 오셨다

두 보살(菩薩)님도 함께 오셨다하고는 몸을 발돋음하여 합장(合掌)한채 죽었다

------------------------------------------------------------------------------------------------------------------------------------------------------------------------------------------------------------------------------------------------------------------

●영명수선사(永明壽禪師)

전씨오월(錢氏吳越 : 북송(北宋)을 말함)의 연수(延壽)는 항주 여항(餘抗)사람이다

사명취암(四明翠岩) 선사(禪師)에게 출가(出家)하였고

천태소(天台韶) 국사(國師)에게 참예(參詣)하여 심요(心要)를 발명(發明)하였다

일찍이 볍화참(法華懺)을 행(行)하다가 밤중에 보현(普賢)의

연꽃이 홀연(忽然)히 손에 있는것을 보고

숙세(宿世)의 원력(願力)이 아직 해결(解決)되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지자암(智者岩)에 올라가 두개의 제비를 만들어

하루는 일심(一心)으로 선정(禪定)을 익히고

하루는 만행(萬行)으로 정토(淨土)를 닦으면서

지심(至心)으로 기도(祈禱)하여 일곱 번을 뽑아 모두 정토(淨土)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정토(淨土)를 닦게된것이다

나중에 영명(永明)에 살면서 하루에

108가지의 일을 정(定)해 놓고 실행(實行)했으며 밤에는

별봉(別峰)에 올라가 길을 걸으면서 염불(念佛)하니

곁에 사람들이 때때로 하늘 음악(音樂)을 듣곤 하였다

충의왕(忠懿王)이 찬탄(讚嘆)하기를 자고로 서방(西方)을 구(求)하던 자(者)들

가운데에 이와같이 간절(懇切)한 자(者)는 아직 없었다.하고

서방향엄전(西方香嚴殿)을 세워 그의 뜻을 이루어 주었다

영명(永明)에 있은지 15년(年)동안 제자(弟子) 천칠백(千七百)명이

항상(恒常) 대중(大衆)과 함께 보살계(菩薩戒)를 받았고 귀신(鬼神)에게

시식(施食)을 베풀었으며 모든 생명(生命)을 방생(放生)하면서 이런 일들을

모두 정토(淨土)를 장엄(莊嚴)하는데 회향(廻向)하였다

그 때 모두 미륵(彌勒)의 하생(下生)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개보(開寶) 8년(年)<975> 2월(月) 26일(日) 새벽에 일어나

향(香)을 피워 대중(大衆) 에게 고별(告別)하고 가부좌(跏趺坐)하고 죽었다

후(後)에 어떤 스님이 임천(臨川)에서 와서 몇 해가 되도록

그의 탑(塔)을 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내가 병(病)이 들어 명부(冥府)에 들어갔습니다. 전각(殿閣)왼편에

어떤 스님의 상(像)을 모셔놓고

왕(王)이 공손(恭遜)히 예경(禮敬)하고 공양(供養)하는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가만히 물어보니

이 분은 항주의 영명(永明)연수선사(延壽禪師)입니다 대체로 죽은 자(者)는

모두 명부(冥府)를 거치게 마련입니다만

이 스님은 이미 바로 서방(西方)의 상상품(上上品)에 태어났으므로

왕(王)이 그의 덕(德)을 사모(思慕)하여 예경(禮敬)하게 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對答)하였다

찬(贊)

영명(永明)은 선법(禪法)을 얻었으면서 마음에 정토(淨土)를 새겨 두었으니

자신(自身)을 위하고 남을 위하는 넓고 큰 행원(行願)은 그 광명(光明)이

만세(萬世)에 까지 비칠것이다

그 분은 하생(下生)한 미륵(彌勒)이실까? 다시 태어난 선도(善導)이실까

------------------------------------------------------------------------------------------------------------------------------------------------------------------------------------------------------------------------------------------------------------------

●지통(志通)

석진(石晋)<후진(後晋)을 말함>의 지통(志通)은 봉상(鳳翔)사람이다

지자대사(智者大師)의 〈정토의식(淨土儀式)>을 보고 뛸듯이

기뻐하며 이로부터 서(西)쪽을 향(向)하여서는 침도 뱉지않고

서(西)쪽을 등지고 앉지도 않으면서 전심(專心)으로 염불(念佛)하였다

나중에 백학(白鶴)과 공작(孔雀)이 무리를 지어 서(西)쪽에서 날아오고 또한

연꽃이 눈앞에서 피었다 지는것을 보고는

백학(白鶴)과 공작(孔雀)은 정토(淨土)의 경계(境界)요

연꽃의 빛나는 모양(模樣)은 태어날 곳이다

정토(淨土)가 나타났다 하고는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禮拜)하고 죽었다

다비를 할적에 오색(五色)의 상서(祥瑞)로운 구름이 불더미

위에 감돌았고 사리(舍利)가 온 몸에 비늘처럼 얽혀있었다

찬(贊)

반드시 서(西)쪽을 피(避)하여 침을 뱉았고 앉아있을 때는

반드시 서(西)쪽을 향(向)하였다 하니 정성(精誠)이 이와같다면 무슨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요즘은 경솔(輕率)하고 천박(淺薄)한 마음으로 왕생(往生)을 바라고 있으나 어려운일이다

어떤 이는 너무 집착(執着)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

아 ! 낙일(落日)을 관(觀)하게 하신 분명(分明)한 경문(經文)도 있고 지자대사(智者大師)는

나면서부터 서(西)쪽을 향(向)하여 가부좌(跏趺坐)하고 앉았으며

내지 정업(淨業)을 닦았던 제현(諸賢)들도 서(西)쪽을 향(向)하여 앉아서 죽었다

집착(執着)하지 않고 그럴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탐착(貪着)해 경계(境界)를 혼탁(混濁)하게 하면서 일생(一生)을

그렁저렁 보내거나 겨우 정토(淨土)를 생각하기 시작(始作)하면서

집착(執着)할까를 걱정하고 있으니 슬프고 애석(哀惜)한 일이다

------------------------------------------------------------------------------------------------------------------------------------------------------------------------------------------------------------------------------------------------------------------

● 오은(唔恩)

송(宋)나라 오은(唔恩)은 고소(姑蘇) 상숙(常熟)사람이다

나이 열셋에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외우는 소리를 듣고는 마침내

부모(父母)님에게 출가(出家)할것을 간청(懇請)하였다

종일(終日) 한 끼의 음식(飮食)만을 먹고 항상(恒常) 의발(衣鉢)을 몸에 지녔으며

재물(財物)을 모우지 않았고 누울 적에는 반드시 우협(右脅)으로 하고

앉을 적에는 반드시 가부좌(跏趺坐)를 하였다

포살(布薩)할적마다 슬피 울기를 마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널리 서방(西方)의 정업(淨業)과 일승(一乘)의 원지(圓旨)를 가르쳤다

누가 심기(心機)가 투합(投合)하지 않는데 대해 의심(疑心)하는 자(者)가 있으면

함께 독고(毒鼓)의 인연(因緣)을 지을뿐이라고 대답(對答)하였다

옹희(雍熙)2년(年)<985> 8월(月) 초하루 밤에 백광(白光)이

우물 속에서 비치는것을 보고 문인(門人)에게 나는 가야겠다 하고는

음식(飮食)을 끊고 말을 금(禁)하며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였다

꿈에 한 사문(沙門)이 금(金)화로(火爐)에 향(香)을 사루어 들고는

그의 방(房)을 세번 돌면서 스스로 관정(灌頂)이 여기와서 맞이한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 문인(門人)을 불러 가보니 그 때까지 기이(奇異)한 향기(香氣)를 맡을수있었다.

25일(日) 지관지귀<止觀指歸>와〈관심의(觀心義>를

설(說)해 마치고는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사람들이 하늘 음악(音樂)이 공중(空中)에서 쟁쟁하게 울리면서

점점(漸漸) 서(西)쪽 을 향(向)하여 사라지는것을 들었다

찬(讚)

재물(財物)과 음식(飮食)을 탐(貪)하지 않은것은 청렴(淸廉)하고 결백(潔白)한 마음이요

앉고 붑는것을 구차하게 하지 않은것은

신중(愼重)한 마음이며 의발(衣鉢)을 항상(恒常) 몸에지닌 것은

지중(至重)한 마음이며 포살(布薩)할적마다 눈물을 흘린것은 성실(誠實)한 마음이다

이 네가지의 마음은 모두 정토(淨土)의 인(因)으로서

그가 왕생(往生)한 것은 너무나 당연(當然)한 일이다

더욱이 사람들을 가르칠 적마다 서방(西方)의 정업(淨業)과 일승(一乘)의 원교(圓敎)를

동시(同時)에 베푼것은 깊이 염불문(念佛門)에 들어가는 은혜(恩惠)를 베푼것이다



포살(布薩): 장정(長淨)혹은 설계(說戒)라고 번역(翻譯)한다

동일(同一)지역(地域) 내의 비구(比丘)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지나 간 반달간의

행위(行爲)를 반성(反省)하고 죄(罪)가 있으면 고백(告白) 참회(懺悔)하는 의식(儀式)

독고(毒鼓) : 독(毒)을 바른 북이라는 뜻 이북소리는

사람을 죽일수 있으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한 불성(佛性)이나

상주(常住)의 소리는 중생(衆生)의 오역(五逆)이나 십악(十惡)을 죽여

불법(佛法)에 들어갈수있게 한다는것을 비유(比喩)함

------------------------------------------------------------------------------------------------------------------------------------------------------------------------------------------------------------------------------------------------------------------

●원정상(圓淨常)법사(法師)

송(宋) 원정상(圓淨常)은 전당(錢塘)사람으로 일곱살에 출가(出家)하였다

순화(순化) 중에 남소경(南昭慶)에 살적에 여산(廬山)의 가풍(家風)을 사모(思慕)하여

피를 내어 화엄경정행품(華嚴經淨行品) 을 쓰고 연사(蓮社)라는 이름을 바꾸어

정행(淨行)이라 하고 사대부(士大夫)로서 그 회(會)에 참예(參詣)한 자(者)를

정행제자(淨行弟子)라고 불렀다

그중 왕문정공(王文正公) 단(旦)이 수석(首席)으로 한때는

공경(公卿) 과 백목(伯牧)이 120 명 비구(比丘)가 천(千)여 명이나 될때도 있었다

한림학사(翰林學士)인 소역간(蘇易簡)이 정행품(淨行品) 서(序)를 지어

나도 마땅히 머리카락을 펴서 그의 발을 받들고 살을베어

그의 법(法)을 간청(懇請)해도 오히려 부족(不足)할 것인데

하물며 변변찮은 문장(文章)과 천박(淺薄)한 학문(學文)으로 이를 아까워 하랴 하기도 하였다

천희(天禧) 4년(年)[1020] 정월(正月) 12일(日) 단정(端正)히 앉아 염불(念佛)하더니

큰 소리로 부처님이 오셨다 하고는 조용히 죽었다

찬(贊)

원공을 위시(爲始)하여 선도(善導) 남악(南嶽) 오회법조(五會法照)

영명(永明) 대암(臺岩)과 끝에 가서 법사(法師)를 연사(運社)의

칠조(七祖)라 부르며 교화(敎化)의 흥성(興盛)함은 옛이나 지금까지도 빛나고 있다

그런데 그들 자신(自身)의 수행(修行)을 살펴보면애쓰고

노력(努力)하기를 다른사람을 가르치는것과 같이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권(勸)할줄만 알았지 자신(自身)이 실행(實行)할 줄은 모른다

선배(先輩)들에게 부합(附合)하기에 아득히 먼일이 아니겠는가

------------------------------------------------------------------------------------------------------------------------------------------------------------------------------------------------------------------------------------------------------------------

●정관(淨觀)

송(宋) 정관(淨觀)은 가화(嘉禾) 적광암(寂光庵)에 살면서 정토참법(淨土懺法)

을 10여년(餘年)이나 닦았다

어느날 제자(弟子)에게 나는 27일후(日後)에 갈것이다"하더니 그 때가 되자

2일전(日前)에 붉은 연꽃을 보았고 다음날 또 노란 연화(蓮華)가 방에 가득한데

꽃마다 화생(化生)의 어린애가 꽃잎속에 앉아있는데 선대(仙帶)를 매고있는것을 보았다

3일째 되는날 감실(龕室)에 들어가 단정(端正)히 앉아 대중(大衆)에게 염불(念佛)하라

하고 잠시(暫時) 후(後)에 죽었다

찬(贊)

염불(念佛)하는 사람은 미리 때가 된것을안다 이것은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인연(因緣)은

다하고 정토(淨土)의 인연(因緣)이 성숙(成熟)되어 자연(自然)히 성경(聖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원공은 7일 전에 지금 관(觀)은 27일전(日前)과 같은 따위다

세상(世上) 사람들은 살아서는 실덕(實德)이 없었으면서 죽을 때에

다달 아이를 흉내내어 갖은 수단으로 꾸며 식자(識者)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심지어 산채 불에 뛰어들어 세상(世上)을 놀라게 하면서

귀신(鬼神)이나 사마(邪魔)에 붙거나 악도(惡道)에 떨어질 줄을알지 못한다

참으로 연민(憐憫)스런 일이다

만약 아무 안목(眼目)도 없는 무리들에게 이를 부러워하여 본받게 한다면

그 피해(被害)는 더욱 막대(莫大)하다 내가 왕생(往生)한 사례(事例)들을 모아보니

한 사람도 산채 그 몸을 불태운 자(者)는 없었다 지혜(智慧)로운 자(者)는

이것을 보고 널리 세상(世上)에 고(告)하여 모든 어리석은 자(者)를 구(求)해주기 바란다.

------------------------------------------------------------------------------------------------------------------------------------------------------------------------------------------------------------------------------------------------------------------

●자운참주(慈雲懺主)

송(宋) 준식(遺式)은 태주(台州) 임해현(臨海縣) 사람이다

학행(學行)이 고상(高尙)하여 이름이 양절(兩浙)에 자자하였다

안양(安養)에만 뜻을 두어 일찍이 반주삼매(般舟三昧)를 행(行)하여 90 일(日)

동안 피를 쏟도록 애썼으며 도량(道場)에 들어가서는

두발의 살갖이 터졌으나 죽음으로 스스로 맹서(盟誓)했다

꿈에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손가락을 그의 입속에 넣어

몇 마리의 벌레를 끄집어 냈으며 또한 손가락 끝에서 감로(甘露)를

꺼내 그의 입에 부어넣었다

꿈을 깨자 몸과 마음이 가뿐한 가운데 병(病)이 다나아있었다

정토결의행원이문(淨土決疑行願二門)과

정토참법(淨土懺法)<왕생정토참원의(往生淨土懺願儀)>을 지어 세상(世上)에 남겼다

천성(天聖)때 죽는 날 향(香)을 사루어 부처님께 예(禮)하고

제불(諸佛)께서 증명(證明)하사 안양(安養)에 왕생(往生)케 하소서 하고

발원(發願)하고 밤이 되어 앉아서 죽었다

사람들이 큰 별이 영축봉(靈竺峰)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당시(當時)에 자운(참주慈雲懺主)라고 불렀다

찬(贊)

극진(極盡)히 참법(懺法)을 애쓰고 자신(自身)이 행(行)하면서 만세(萬世)에까지

법(法)을 남긴 이는 고금(古今)에 한사람일 따름이다

심지어 보배의 손으로 벌레를 끄집어 내고 감로(甘露)를 입에 부어넣은 일은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이 아니었다면 누가 능(能)히 그런 감응(感應)을 얻을수 있겠는가

------------------------------------------------------------------------------------------------------------------------------------------------------------------------------------------------------------------------------------------------------------------

● 종탄소주(宗坦疏主)

송(宋) 종탄(宗坦)은 노주(路州) 여성(黎城)사람이다

50년(年) 동안 명성(名聲)이 강림(講林)에 자자하더니

늙어서 당주(唐州)의 청대진(靑臺鎭)에서 정토(淨土)만을 구(求)하여

삼업(三業)과 사의(四儀)에 잠시(暫時)도 잃어 버리지 않았다

정화(政和) 4년(年)[1114] 4월(月) 27일(日) 꿈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너의 설법(說法) 도 이젠 6일(日)밖에 남지 않았다

그 후(後)에는 정토(淨土)에 태어날 것이다 하니

꿈을 깨어서 그 사실(事實)을 대중(大衆)에게 알렸다

5월(月) 4일(日) 대중(大衆)을 모우고는 인연(因緣)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당연(當然)히 때가 있게 마련이다 정토(淨土)의

수승(殊勝)한 인연(因緣)은 반드시 때를 의지(依支)해야만 한다

대중(大衆)들은 염불(念佛)하여 나의 왕생(往生)을 도와다오 하고는 앉아서 죽었다

그 때 온 하늘에 뇌성(雷聲)이 치고 흰 구름이 땅을 덮더니3일(日) 만에야 그쳤다

소지(所持)하고 있던 마노(瑪瑙) 염주(念珠)가 그 때까지 손에서 구르고 있어서

대중(大衆)이 가지려 했으나 끝내 그러지 못했다

감응(感應)한 사실(事實)은 여기서 자세(仔細)히 적지 못한다 따로 적으려 한다

------------------------------------------------------------------------------------------------------------------------------------------------------------------------------------------------------------------------------------------------------------------

●자조종주(慧照宗主)

송(宋) 자원(子元)은 호가 만사휴(萬事休)로서 평강(平江) 곤산(昆山)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지관(止觀)을 익히다 정(定) 중에서 까마귀 소리를

듣고 도(道)를 깨닫고는

이십(二十)여년(餘年) 동안 종이 속에서 찾았으나 찾고 찾아도 더욱 막막할 뿐이었네

홀연(忽然)히 까마귀 울음을 듣고

비로소 이제까지 그릇 용심(用心)한 줄 알았네 하고 송(頌)하였다

그리하여 남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懇切)하여 널리

염불(念佛)을 권장(勸獎)하고 법계(法界) 중생(衆生)을 대신(代身)하여

예불(禮佛) 참회(懺悔)하며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하기 를 기도(祈禱)하였다

백련(白蓮)참당(懺堂)을 짓고

사토삼관선불도<四土三觀選佛圖>를 저술(著述)하여

염불(念佛)종(宗)의 안목(眼目)을 열어보였다

역순(逆順)의 경계(境界) 속에서도 마음을 움직인 적이 없었으므로

고종황제(高宗皇帝)가 불러 보시고 자조(慧照)라는 호(號)를 내렸다

3월(月)23일(日)탁성(鐸城)에서 대중(大衆)에게 나는 교화(敎化)할 인연(因緣)이 이미 다하였다

이젠 가야겠다 하고는 합장(合掌)한채 죽었다

다비에 붙이니 무수(無數)한 사리(舍利)가 나와

나라에서 최승지탑(最勝之塔)이라는 탑호(塔號)를 내렸다

------------------------------------------------------------------------------------------------------------------------------------------------------------------------------------------------------------------------------------------------------------------

●법지(法持)

송(宋) 법지(法持)는 화도사(化度寺)에 살았다 미타참(彌陀懺)을 닦으면서

염부제(閻浮提)를 하루 빨리 벗어나 안양(安養)에 태어나기를 발원(發願)하였다

나중에 병(病)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며 접인(接引)해

주시기를 기원(祈願)하며 큰 소리로 끊임없이 염불(念佛)하더니

홀연(忽然)히 장육(長六)의 부처님 몸이 못 위에

서 있는것을 보고 내가 이젠 중품(中品)에

태어날수 있게 되었다 하고는 서(西)쪽을 향(向)하여 죽었다

찬(贊)

인간(人間)의 정리(情理)란 오래 살고자 하지 않는이가 없다

그런데 죽음을 재촉하면서 안양(安養)을 간구(懇求)했으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지극(至極)한 경우(境遇)라 할것이다

그러나 발원(發願)은 그럴수 있다 하겠으나

바다에 뛰어들거나 절벽 위에서 몸을던지며

나무더미를 쌓아놓고 스스로 불길속에 뛰어드는것은 마군(魔群)의 짓이다

------------------------------------------------------------------------------------------------------------------------------------------------------------------------------------------------------------------------------------------------------------------

●본여(本如)

송(宋) 본여(本如)는 호(號)를 신조(神照)라고 하였다

동산(東山) 승천사(承天寺)에 살면서 군수(郡守)인

장순(張郇)과 결사(結社)를 맺었다

하루는 자리에 올라 설법(說法)하여 대중(大衆)과

결별(訣別)하고 물러나와 앉아서 죽었다

그 때 강(江)가의 어부(魚夫)가 구름 속에 어떤 스님이

서(西)쪽을 향(向)해 가고 있는 것을 보았고 다음해 탑(塔)을 열어보니

안색(顔色)이 생전(生前)과 같고 탑(塔)앞에 연꽃이 피어있었다

------------------------------------------------------------------------------------------------------------------------------------------------------------------------------------------------------------------------------------------------------------------

●기법사(基法師)

송(宋) 기(基) 법사(法師)는 보운(寶雲)에게서 배웠다

태평홍국사(太平興國寺)에 살면서 일념(一念)으로 염불(念佛)하였다

하루는 병색(病色)을 보이면서도 제자(弟子)들을 위해 널리 현지(玄旨)를

설(說)하고 있노라니 대중(大衆)들이 보니 서방(西方)에서 광명(光明)이 비치면서

공중(空中)에서 음악(音樂)을 연주(演奏)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스님이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관음(觀音)세지(世智)

두 보살(菩薩)이 오셨다하고는 오른쪽 으로

누워 서(西)쪽을 향(向)해 죽었다

문인(門人)이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스님에게 초세여래(超世如來)라

고 수기(授記)하는 꿈을꾸었고 어떤 이는

스님이 청련화(淸蓮華)대(臺) 앉아있는 꿈을 꾸기도하였다

볍지(法智) 선사(禪師)가 이렇게 찬탄(讚嘆)한 적이 있었다

병(病)들어 누웠으면서 현지(玄旨)를 설(說)했고 임종(臨終)에 부처님을 친견(親見)했으니

참으로 공경(恭敬)할 만한 어른이시다

찬(贊)

어떤 이는 기(基)가 어떻게 수기(授記)를 받을수 있을까 하고 의심(疑心) 할지모른다

아 ! 여래(如來) 무량광(無量光)을 친견(親見)하옵고 현전(現前)에서

제가 보리(菩提)기(記)를 받고저 하는 말을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

●약우(若愚)

송(宋) 약우는 운천(雲川) 선담(仙潭)에 살면서

무량수(無量壽)각(閣)을 지어 스님들과 세속(世俗)인(人)들에게 염불(念佛)하기를

권(勸)하며 30 년(年) 동안 정근(精勤)하였다

도잠(道潛)과 칙장(則章) 두 스님과 벗을 맺었는데

잠(潛)은 시(詩)에 능(能)하여 명예(名譽)를 가까이 하였으나 우(愚)와 장(章)은

오직 실행(實行)에만 힘썼다

죽을 무렵에 이르러 꿈에 신인(神人)이 너의 동학(同學)인

칙장(則章)은 보현행원(普賢行願) 삼매(三昧)를 얻어 이미 정토(淨土)에

태어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우(愚)는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대중(大衆)에게

〈관경(觀經)>을 읽게하고 단정(端正)히 앉아 묵묵(黙黙)히 있더니 갑자기

정토(淨土)가 앞에 나타났다 나는 가야겠다 하고는

다음과 같이 게(偈)를 쓰고는죽었다

----본래(本來) 집이 없으니 돌아갈곳 있으랴만

구름 속에 길이있는 줄 누가 알랴

계광(溪光)에 서산(西山)달이 지니

바로 선담(仙潭)에서 꿈을 깰 때네

허공(虛空)속에 천화(千花)의 그물

꿈속엔 칠보(七寶)의 연못

서방(西方)의 길을 밟고 나서는

다시는 한 점(點)의 의심(疑心)도 없네-----

찬(贊)

우(愚)와 잠(潛)과 장(章)은 벗이었으나 잠(潛)은 시(詩)에 탐닉(耽溺)해 명예(名譽)를

가까이 하여 정토(淨土)의 이익(利益)을 잃어버렸다

세상(世上)의 지혜(智慧)를 멀리하고 세상(世上)과의 인연(因緣)을 소원(疎遠)히 하라

서방(西方)을 찾는 자(者)는 이를 반드시 명심(銘心)하라

------------------------------------------------------------------------------------------------------------------------------------------------------------------------------------------------------------------------------------------------------------------



● 수진(守眞)

송(宋) 수진(守眞)은 영흥(永興)사람이었다

기신론(起信論)과 볍계관(法界觀)을 강의(講義)하면서 늘

한밤중에는 무량수불왕생비밀인(無量壽佛往生秘密印)을

맺고서 서방(西方)에 뜻을 두었다

어느날 새벽 몸이 정토(淨土)에 오르는 것을 느끼고서 눈을 들어

부처님을 보고 상(像) 앞에 엎드려 48원(願)으로

능(能)히 나를 제도(濟度)하실 분 !하고는 향(香)과 꽃을 가지고 법당(法堂)에 들어가

공양(供養)하고 자리에 돌아와 죽었다

------------------------------------------------------------------------------------------------------------------------------------------------------------------------------------------------------------------------------------------------------------------



●지례(知禮)

송(宋) 지례(知禮)는 호(號)를 법지(法智)라고 하였다

남호(南湖)에 살적에 묘종초(妙宗鈔)를 지어

관심(觀心)과 관불(觀佛)의 뜻을 널리 밝혔다

해마다 2월(月) 보름에는 염불시계회(念佛施戒會)를 열어

만인(萬人)들을 깨우쳤고 융심해(融心解)를 찬술(撰述)하여 일심삼관(-心三觀)과

사정토(四淨土)의 뜻을 밝혔다

후일(後日) 정월(正月) 초하루에 광명참(光明懺)을 주관하더니

닷세째 되는 날 대중(大衆)을 불러 설법(說法)하고 수백번의 부처님

명호(名號)를 부르고서 조용히 앉아죽었다

찬(贊)

예(禮)는 묘종초(妙宗鈔)을 짓고 정관(淨觀)을 설(說)하여 널리 천태(天台)의

교의(敎義)를 밝혔으나 임종(臨終)에 염불(念佛)하며 앉아서 죽었으니

어찌 부질없이 입을 놀리는 자(者)와 같은 수준(水準)에서 논의(論議)할수 있으랴.

------------------------------------------------------------------------------------------------------------------------------------------------------------------------------------------------------------------------------------------------------------------

●유엄(有嚴)

송(宋) 유엄(有嚴)은 태주(台州) 적성(赤城) 숭선사(崇善寺)에 살면

서 신조(神照)를 의지(依支)하여 천태교(天台敎)를 배웠다

만년(晩年)에 명자나무 아래에 띠집을 짓고 살았으므로 사암(樝庵)이라고 호(號)하였다

평생(平生) 독실(篤實)히 정업(淨業)을 닦아 안양(安養) 고향을 생각함[懷安養故椰]’

이라는 시(詩)가 당시(當時)에 전(傳)하였다

건중정국(建中靖國) 원년(元年)[1101] 4월(月) 죽음에 임박(臨迫)하여

보배 연못에 큰 연꽃이 피어있고 하늘 음악(音樂)이 서방(西方)에서

들려오는것을 보고는 정토(淨土)로 돌아 감 전귀정토(餞歸淨土)이라는

시(詩)를 지어 대중(大衆)에게 보이고 7일(日) 후(後)에 가부좌(跏趺坐)하고 죽었다

탑(塔) 위에 달과 같은 광명(光明)이 서려있더니 3일(日) 후(後)에야 사라졌다

찬(贊)

앞의 법상(法詳)은 거울을 비치듯한 광명(光明)이 벽(壁) 위에 나타났고

지금 엄(嚴) 공(公)은 달과 같은 광명(光明)이 탑(塔) 위에 나타났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형철(瑩澈)했던 영험(靈驗)이었다

그리고 광명(光明)이 방에 가득했던 경우나 금색(金色) 광명(光明)이

강(江)변 수백리(數百里)에까지 뻗쳤던 경우(境遇)를

아 ! 이것들을 거짓이라 하겠는가

------------------------------------------------------------------------------------------------------------------------------------------------------------------------------------------------------------------------------------------------------------------



●혜명(慧明)

송(宋) 혜명(慧明)은 호(號)를 회암(晦庵)이라 하고

혜광(慧光)에게서 배웠다

만년(晩年)에 청산(菁山) 상조사(常照寺)에 있으면서 정업(淨業)을 닦아

하루에 반드시 법화경(法華經) 릉엄경(楞嚴經) 원각경(圓覺經)을

독송(讀誦)하고 미타(彌陀)의 명호(名號)를 만(萬)번 불렀다

경원(慶元) 기미(己未)(l199) 봄에 병색(病色)을 보이더니 제자(弟子)에게

나는 대승(大乘)을 배워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려 하였다

지금 그 뜻을 이루었다 하고는

발을 포개고 앉아 죽었다

대중(大衆)이 하늘 음악(音樂)이 서(西)쪽에서 흘러와 머리 위에서 맴도는것을 들었다

다비하니 오색(五色)의 사리(舍利)가 무수(無數)하였다

------------------------------------------------------------------------------------------------------------------------------------------------------------------------------------------------------------------------------------------------------------------

●사찬(師贊)

송(宋) 사찬(師贊)은 옹주(雍州) 사람으로 승동(僧童)이 되어

열네 살적부터 염불(念佛)을 끊이지않고 불렀다

문득 병(病)이 들어 갑자기 죽더니 잠시(暫時) 후(後)에 다시 깨어나

스승과 부모(父母)에게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이곳에 오셨으니

저도 따라가려 합니다 하였다

이웃사람들이 보니 공중(空中)에 보대(寶臺)와 오색(五色)의

기이(奇異)한 광명(光明) 이 서(西)쪽을 향(向)하여 사라졌다

------------------------------------------------------------------------------------------------------------------------------------------------------------------------------------------------------------------------------------------------------------------

●두 사미(沙彌)

수(隋) 문주(汶州)에 두 사미(沙彌)가 있었는데

뜻을 함께하여 염불(念佛) 하더니 큰 사미(沙彌)가 갑자기 죽었다

정토(淨土)에 이르러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친견(親見)하고

아우인 사미(沙彌)와 함께 정업(淨業) 을 닦았습니다 왕생(往生)할수 있사오리까? 하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저가 너를 권(勸)하였기에 너도 발심(發心)하게 되었다

너는 지금 돌아가서 더욱 정업(淨業)에 힘써라. 3년후(後)에는 함께

이곳으로 올수있을것이다 하였다

그 때가 되어 두 사람이 대지(大地)가 진동(振動)하고

하늘 꽃이 휘날리는 가운데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오시는것을 보고함께 죽었다

------------------------------------------------------------------------------------------------------------------------------------------------------------------------------------------------------------------------------------------------------------------

●요연(了然)

송(宋) 요연(了然) 법사(法師)는 호(號)를 지용(智涌)이라 하고24 년(年)

동안 백련사(百蓮寺)에 살았다

꿈에 용(龍) 두 마리가 공중(空中)에서 유희(遊戱)하더니 한 마리가

신인(神人)으로 변(變)하여 소매 속에서 편지(便紙)를 꺼내 보고

스님께서 칠일(七日) 후(後)에는 가실것입니다.하였다

잠에서 깨어 대중(大衆)을 모아 설법(說法)하고 염불(念佛)의 힘으로

극락국(極樂國)에 왕생(往生)한다 너희들도 힘쓰지 않으랴 하고 크게 쓰고는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대중(大衆)에게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독송(讀誦)하게 하여

서방세계(西方世界)라고 한 대목에 이르러 홀연(忽然)히 죽었다

능인사(能仁寺)의 스님들이 누구나 하늘 음악(音樂)과 상서(祥瑞)로운 광명(光明)이

하늘가 에서 비치고 있는것을 보았다

------------------------------------------------------------------------------------------------------------------------------------------------------------------------------------------------------------------------------------------------------------------

●사조(思照)

송(宋) 석사조(釋思照)는 연종(蓮宗)을 연구(硏究)하고 정업(淨業)에 전심(專心)

하여 사경(四更)만 되면 일어나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니

게으른 비구(比丘)는 편안(便安)히 잠을 잘수 없었다

법장(法藏)의 48원(願)을 본받아 승속(僧俗)을 모아 염정회(念淨會)를

만들어 30 년(年) 동안 주관하였다

어느날 병(病)이 들어 누워었다 꿈에 장육(丈六)의 금빛나는

몸을 보고 대중(大衆)을 모아 염불(念佛)하다 홀연(忽然)히 큰 소리로 대중(大衆)과

함께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고 손가락을 구부려 인(印)을 맺고는 앉아 죽었다

다비하니 치아(齒牙)와 염주(念珠)는 불타지 않았다

------------------------------------------------------------------------------------------------------------------------------------------------------------------------------------------------------------------------------------------------------------------

●지렴(智廉)

송(宋) 지렴(智廉)은 상우(上虞) 화도사(化度寺)에 살았다

처음에는 선문(禪門)에 두루 참예(參詣)하였으나

늙어서는 한결같이 서방(西方)에 뜻을 두었다

경원(慶元) 개원(改元)<1195> 8월(月)에 대중(大衆)에게 고별(告別)하고

나는 꿈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대중(大衆)에게 둘러싸여 설법(說法)하시는것을 보았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선인(善人)들은 정업(淨業)에 전심(專心)하여

나의 국토(國土)에 와서 왕생(往生)하라하셨다

나는 이렇게 승상(勝相)을 보았다 나는 반드시 왕생(往生)할 것이다하고

다음과 같이 게(偈)를 쓰고 몸을 돌려 서방(西方)을 향(向)한채 결인(結印)하고 갔다

기러기가 장공(長空)을 지나감이여

그림자가 한수(寒水)에 잠기도다

죽음도 태어남도 없음이여

연화국(蓮華國)이로다

------------------------------------------------------------------------------------------------------------------------------------------------------------------------------------------------------------------------------------------------------------------



●지섬(智深)

송(宋) 지심(智深)은 호를 자천(慈川)이라 하고 해월(海月)에게서 사사(師事)하였다

<스승으로 삼아배웠다>

고향(故鄕)인 가화(嘉禾)로 돌아가 광명참회(光明懺悔)를

개최(開催)하여 20년(年)을 하루같이 시행(施行)하다 늙어서는 염불(念佛)에만 뜻을 두어 항상(恒常)

정업(淨業)으로 사람들을 교화(敎化)하여 무수(無數)한 자(者)를 왕생(往生)케 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병색(病色)을 보이었으나 객(客)이 와서 문안(問安)을 여쭐때도

평시(平時)와 같이 담론(談論)을 나누더니

객(客)이 문(門) 밖을 나가자 마자 금방 천화(遷化)하였다

사람들이 보니 붉은 구름이 서(西)쪽올 향(向)하여 사라졌다

------------------------------------------------------------------------------------------------------------------------------------------------------------------------------------------------------------------------------------------------------------------

●법인(法印)

송(宋) 법인(法印)은 사명 (四明) 광수사(廣壽寺)에서 30 년(年)

동안 살면서 일심(一心)으로 정토(淨土)를 찾았다

나중에 병(病) 이 들어 대중(大衆)을 모아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觀經)>을 읽게하고

사흘 동안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더니 문인(門人)에게 나는가야겠다하고 말하였다

어떤 이가 게(偈)를 남겨 줄것을 간청(懇請)했더니

나와 미타(彌陀)본래(本來)둘아니나 둘이니 둘 아니니 하는것 모두 버렸네

나 이제 이렇게 미타(彌陀)를 친견(親見)하니 감응(感應)과 사귐 부사의(不思議)하네

하고 쓰고는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찬(贊)

나의 마음으로 저 부처를 생각하면 중생(衆生)과 부처가 완연(宛然)하지 만

범부(凡夫)의 마음으로 부처의 마음을 보면 중생(衆生)과 부처가 어찌 다르랴

다르지 않으므로 두가지를 여의었고 완연(宛然)하므로

두가지가 아닌것까지 여의었으며 두가지를

여의었으므로 다른곳을 따라 찾지않고

두 가지가 아닌 것까지 여의었으므로 정토(淨土)를 찾는것도 상관(相關)없다

또한 두가지를 여의었으므로 범정(凡情)이 다하였고

두가지가 아닌것까지 여의었으므로 성해(聖解)마저 다없어졌다

이렇게 부처를 보는 자(者)는 늘 사바세계(娑婆世界)요 늘 정토(淨土)며

생각마다 석가(釋迦)가 출세(出世)하고 언제나 미륵(彌勒)이 하생(下生)할 것이니

진정(眞正)으로 미타(彌陀)를 친견(親見)한 자(者)라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얼굴을 마주보고 만나더라도 만리(萬里)의 흰구름일 뿐이다

------------------------------------------------------------------------------------------------------------------------------------------------------------------------------------------------------------------------------------------------------------------

●지선(智仙)

송(宋) 지선(智仙)은 호(號)를 진교(眞敎)라고 하였다 백련사(百蓮寺)에

살면서 13 년(年) 동안 도(道)를 강의(講義)하며

서방(西方)을 향(向)한 예념(禮念) 을 잠시(暫時)도 버린적이 없었다

어느날 저녁 약간(若干)의 병색(病色)을 보이고는 관당(觀堂)의 대중(大衆)을

청(請)하여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읽게 하다가 송경(誦經)이 끝나지도 않아서 앉아 죽었다

이웃 능인사(能仁寺)에 사는 스님들이

모두 그윽한 하늘 음악(音樂)을 듣고서 여명(黎明)이 되어 스님이 돌아간것을 알았다



------------------------------------------------------------------------------------------------------------------------------------------------------------------------------------------------------------------------------------------------------------------

●종리(宗利)

송(宋)종리(宗利)는 신성(新城)벽소(碧沼)에

살면서 10년(年)동안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수행(修行)하여닦았다

나중에 도미산(道味山)에 들어가 암자(庵子)를 짓고 일상(一相)이라고 칭(稱)하여 불렀다

15년(年)이 지난어느날 제자(弟子)에게 내가 벽연화(碧蓮華)가

허공(虛空)속에 가득한것을 보았다 하더니 삼일후(三日後)에

다시 부처님이 오셨다 하고는 이렇게 게송(偈頌)를 쓰고 조용히 죽었다

----내 나이 구십세(九十歲) 머리는 백설(白雪)의 눈이 내린듯 세상(世上)에는

으례히 백년객(百年客)없네 일상도인(一相道人)이 돌아감이여

연화금대(蓮華金臺)에 앉으니 건곤(乾坤)이 비좁네------

------------------------------------------------------------------------------------------------------------------------------------------------------------------------------------------------------------------------------------------------------------------

●제옥(齊玉)

송(宋)나라 제옥(齊玉)은 호(號)를 혜각(慧覺)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잡천 보장사(寶藏寺)에서 정토회(淨土會)를 열어 주관하다

나중에는 상축(上竺)에 살면서 한밤중에는

아미타(阿彌陀)부처님 형상(形像)을 머리에 모시고 행도(行道)하면서 염불(念佛)하였다

하루는 수좌(首座)에게 책상(冊床)앞에 다보탑(多寶塔)이 나타났으나

내가 원(願)하는 바는 아니다 내가 바라는것은 서방정토(西方淨土)일 뿐이다

대중(大衆)을 모우고 나를 위해 염불(念佛)하라 하였다

수좌(首座)가 종(鍾)을 쳐서 스님들이 백여명(百餘名)이 모이니

내가 이미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친견(親見)하였다 하고는 눈을감고

단정(端正)히 앉아 시적(示寂)하였다

찬(贊)

다보탑(多寶塔)도 역시(亦是) 불국토(佛國土)인데

재옥(齊玉)은 어찌하여 원(願)치 않은것일까?

옛날 위제희(章提希)가 두루 정토(淨土)를 살펴보고는

유독(唯獨) 안양(安養)만을 요구(要求)했던것은

대개(大蓋) 전심(專心)으로 공덕(功德)을 닦지

않고서는 갈수 없는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줄을 안다면 서방(西方)만을 말할수 밖에 없지않겠는가

------------------------------------------------------------------------------------------------------------------------------------------------------------------------------------------------------------------------------------------------------------------

●원조본(圓照本)선사

송(宋)나라 종본(宗本)은 상주(常州) 무석(無錫) 사람이다

처음에는 천의회(天衣懷) 선사(禪師)를 참예(參詣)하여 염불(念佛)로 깨달음이 있었다

나중에 정자(淨慈)로 옮겼다가 조칙(詔勅)을 받들어

동경(東京) 혜림사(慧林寺)에 들어가 연화전(延和殿)에서

임금을 對하여 밀지(密智)를 說하였다

평소에 몰래 정업(淨業)을 닦아 뇌봉재(雷筆才) 법사(法師)가 신통(神通)으로

정토(淨土)를 여행(旅行)하다 연화(蓮華) 한송이가 매우 수려(秀麗)한것을 보고물으니

정자사(淨慈寺)의 본(本)선사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또한 자복희(慧福曦) 공(公)이 혜림사에 와서 그의 발에 예(禮)하고

돈을 시주(施主)하고 갔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정중(定中)에서 금연화(金蓮華)를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본(本)공을 기다린다고하였다

또한 무수(無數)한 연꽃이 있었는데 이는 왕생(往生)하여 태어날 자(者)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또한 시든것도 있었는데 이는 퇴타(頹惰)한 사람의 것이라고 하였다하고 말하였다

어떤이가 스님께서는 직지(直指)의 선법(禪法)를 전수(傳授)해 받으셨으면

서 어찌하여 연경(蓮境)을 사모(思慕)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비록 종문(宗門)에 있으나 정토(淨土)도 겸수(秉修)할 뿐이다하고 대답(對答)하였다

나중에 임종(臨終)에 편안(便安)히 앉아 갔다 시호(諡號)는 원조선사(圓照禪師)다

찬(贊)

옛날 중봉(中峰)과 천여(天如)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선(禪)과 정토(淨土)가 이치(理致)는 하나이나 공(功)은 같을수 없다

그런데 지금 겸수(兼修)한다고 말한것은 무슨뜻인가? 대개 겸(兼)한다 고

한 뜻이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두 배에 발을 걸친다는 의미(意味)의

겸(兼)한다는 뜻은 참으로 옳지 않다. 그러나 원통(圓通)에 방해(妨害) 되지않는다는

의미(意味)의 겸(兼)한다는 뜻은 어찌 옳지 않을리가 있겠는가

더욱이 선(禪) 밖에 정토(淨土)가 없고 보면 국토(國土)가 바로 마음이어서

원래(元來) 두가지 물건(物件)이 아니다 어찌 다시 겸(兼)한다고 말할것이 있겠는가?

------------------------------------------------------------------------------------------------------------------------------------------------------------------------------------------------------------------------------------------------------------------

●대통본(大通本)선사

송(宋) 선본(善本)은 화엄(華嚴)을 시험(試驗)받고 득도(得道)하였다

조칙(詔勅)을 받들어 법운(法雲)에 살면서 대통(大通)이라는 호(號)를 받았다

나중에 항주 상오사(象塢寺)로 돌아가 정업(淨業)을 닦다가 선정(禪定)가운데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금색(金色)의 몸을 보이신것을 보고 어느날 아침 문인(門人)에게

단지(但只) 삼일(三日)동안만 머물것이다 하더니 그때가 되어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앉아

염불(念佛)하며 서(西)쪽을 향(向)하여 죽었다

------------------------------------------------------------------------------------------------------------------------------------------------------------------------------------------------------------------------------------------------------------------

●영지조(靈芝照)선사

송(宋) 원조(圓照)는 영지사(靈芝寺)에 살았다

계율(戒律)을 숭상(崇尙) 하고 독실(篤實)히 정업(淨業)에

전념(專念)하여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제자(弟子)들에게 십육관경(十六觀經)과 보현행원(普賢行願)품(品)을

읽게하고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죽었다

서호(西湖)의 어부(魚夫)들이 모두 공중(空中)에서 음악(音樂)소리를 들었다

------------------------------------------------------------------------------------------------------------------------------------------------------------------------------------------------------------------------------------------------------------------

●청조율사(淸照律師)

송(宋)나라 혜형(慧亨)은 무림(武林) 연수사(延壽좋)에 살았다

처음에는 영지(靈쫓)를 의지하여 계율을 익혔으나60 년 동안

정업(淨業)만을 전수(專修)하여 사람을 대(對)할때마다 반드시 염불(念佛)을 권장(勸獎)하였 다

보각(寶開)을 짓고 세분의 성인(聖人)의 상(像)을 모셨는데 거룩하기 비교(比較)할데 없었다

강자임(江自任)이라는 자(者)가 어느날 꿈에 보좌(寶座)가 허공(虛空)에서

내려와 혜형(慧亨)율사가 이 자리에 앉을 것이다하고 말하는 꿈을꾸었다

그때 마침 사우(社友)인 손거사(孫居士)가 미리 혜형(慧亨)에게 고별(告別) 하고

집에서 결인(結印)을 맺고 죽었는데 스님이 가서 향(香)을 사루고 돌아와

제자(弟子)들에게 말하기를 손(孫)거사(居士)도 갔으니 나도 가야겠다하고는

대중(大衆)을 모아 염불(念佛)하고 이렇게 게송(偈頌)을 설(說)하고 갔다



----입으로는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부르고

생각으로는 미간(眉間)백호(白毫)를 생각하라 이렇게 하여 퇴타(頹惰)하지 않으면

반드시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하리-----



호(號)를 청조율사(淸照律師) 라고 하였다

찬(贊) /////////////////////////////////////

60년(年)동안 정업(淨業)을 닦았으니 임종(臨終)에 상서(祥瑞)로운

감응(感應)을 어찌 의심(疑心)하랴

세상(世上)에는 잠깐의 공력(功力)으로 정토(淨土)가 영험(靈驗)이 없다고

탓하는 자(者)도있다 잘못된 노릇이다

------------------------------------------------------------------------------------------------------------------------------------------------------------------------------------------------------------------------------------------------------------------

●사민(思敏)

송(宋) 사민(思敏)은 영지율사(靈芝律師)를 의지(依支)하여 수계(受戒)하는

법(法)을 보충(補充)하였고

20년(年)동안 전심(專心)으로 염불(念佛)하던 이다

나중에 병(病)이 들어 대중(大衆)에게 반달동안 십육관경(十六觀經)을 읽게하더니

3일(日)이 지나서 화불(化佛)이 허공(虛空)에 가득한것을 보았다

임종(臨終)에 큰 소리로 염불(念佛)하는 소리가 뇌성(雷聲)이 치듯하였다

혹서(酷暑)에 시체(屍體)를 감실(龕室)에 두었으나 7일(日) 동안 변(變)하지 않고

향기(香氣)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

●희담(晞湛)

송(宋) 희담(晞湛)은 산음(山陰)사람이다 젊어서는 유생(儒生)이었으나

홀연(忽然)히 세간(世間)을 싫어하여 출가(出家)하였다

형(瑩)스님과 완두(玩杜)에 무량수불전(無量壽佛嚴)을세우고

정업(淨業)을 전수(專修)하여 앉아있을 적에도 서방(西方)을 등지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하여 항상(恒常) 아미타(阿彌陀)부처님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두 보살(菩薩)의 모습(模襲)을 친견(親見)하더니

어느날 저녁 서(西)쪽을 향(向)하여 염불(念佛)하고 똑바로 앉아 결인(結印)을 맺고죽었다

------------------------------------------------------------------------------------------------------------------------------------------------------------------------------------------------------------------------------------------------------------------

●등법사(登法師)

수(階) 등법사(登法師)는 병주(井州) 흥국사(興國寺)에서 열반경(涅槃經)을 강의(講義)할때 와서

설법(說法)을 듣는 자(者)에게 널리 염불(念佛) 왕생(往生)을 권장(勸獎)하였다

개황(開皇) 12년(年)<592> 죽을 때는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허공(虛空)에 가득 하였고

장사(葬事)지낼 때까지 광명(光明)과 향기(香氣)로운 구름이 온 마을에 서리고 있었다

------------------------------------------------------------------------------------------------------------------------------------------------------------------------------------------------------------------------------------------------------------------

●승애

석승애(釋僧崖)는 익주 다보사(多寶寺)에 살았다 간절(懇切)히 정업(淨業)에 전심(專心)하여

다섯 손가락을 태워 서방(西方)의 삼성(三聖)에게 공양(供養)하였다

누가 고통(苦痛)스럽지 않았는가하고 물으니 마음이

이미 고통(苦痛)스럽지 않았거든 손가락이 어찌 고통(苦痛)스러우랴하고 대답(對答)하였다

임종(臨終)에 하늘꽃이 비내리듯하였고 사람들이 보니 승애(僧崖)의

납의(衲衣)와 석장(錫杖)이 오육백(五六百)의 스님들과 함께 허공(虛空)속으로 사라졌다

------------------------------------------------------------------------------------------------------------------------------------------------------------------------------------------------------------------------------------------------------------------

●장법사(藏法師)

송(宋)나라 승장(僧藏)은 분주(汾州)사람이다 일생(一生)동안 스님들이나

세속인(世俗人)의 예배(禮拜)를 받은적이 없이 정토(淨土)에만 전수(專修)하였다

죽을때 하늘 음악(音樂)이 차례(次例)로 와서 맞이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더니

서방(西方)의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오시자 대중(大衆)과 고별(告別)하고 죽었다

------------------------------------------------------------------------------------------------------------------------------------------------------------------------------------------------------------------------------------------------------------------

●고산원(孤山圓)법사

송(宋)나라 지원(智圓)은 서호(西湖)고산에 살면서 수(數)많은 경전(經典)들을

주석(註釋)하였고 정토(淨土)에 전심(專心)하여 미타소(彌陀疏)와 서자초(西資鈔)를

찬술(撰述)하여 왕생(往生)을 권장(勸獎)하였다

죽어 도기(陶器)에 묻었는데 15년후(後)에 장마로 산(山)이 무너져 도기(陶器)를

열어보니 몸이 엄연(儼然)한채 손톱과 머리카락이 그대로 자라고 있었다

찬(贊)

죽은 후(後)에도 전(前)과 다름 없었다는 말만 하고 임종(臨終)에 왕생(往生)했다는

말을하지 않은것은 무엇때문인가? 죽은 후(後)의 현상(現狀)을 자세(仔細)히 살펴 보건대

그 영험(靈驗)은 닦은대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바로 이에그 청정(淸淨)한

업(業)이 견고(堅固)함으로 해서 감응(感應)한 것이다

반드시 왕생(往生)했으리라는 것은 의심(疑心)할 여지(餘地)가 없다

------------------------------------------------------------------------------------------------------------------------------------------------------------------------------------------------------------------------------------------------------------------

●원정(元淨)

송(宋)나라 원정(元淨)은 항주 사람이다 열두 살에 출가(出家)하였고 나중에는

용정사(龍井寺)에 살았는데 당시(當時)의 지식인(知識人)이었던 조청헌(趙淸歡)공(公)과

소문충(蘇文忠)공(公)과 같은 무리들이 모두 그를 존경(尊敬)하였다

죽을때 방원암(方圓庵)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내가 7일 동안만 아무

장애(障碍)가 없다면 원(願)하는 바를 이룰수 있을것이다하고 말하더니

7일 후(後)에 게송(偈頌)을 써서 대중(大衆)에게 보이고는 편안(便安)히 앉아죽었다



------------------------------------------------------------------------------------------------------------------------------------------------------------------------------------------------------------------------------------------------------------------

●유미타(喩彌陀)

송(宋) 사정(思淨)은 성(姓)이 유(喩)씨로서 전당(錢塘)사람이다

자호(字號)를 정토자(淨土子)라고 하였다

젊어서는 영법사(瑛法師)를 보시고 법화경(法華經)을 강의(講義)하였으나

나중에는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고 여가(餘暇)가 있으면 불화(佛畵)를 그렸다

그림을 그릴때는 고요한 방에서 조용히 생각하여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광명(光明)을 보고서야 붓을 놓았다

소홍(紹興) 정사(丁巳)<1137>에 7일 동안 단정(端正)히 앉아 일심(一心)

으로 염불(念佛)하다 편안(便安)히 갔다

찬(贊)

부처를 그리고 부처를 관(觀)하는것이 잘하기만 하면 자못 같을수도있다

대개 그림은 능(能)히 사람을 말의 배속에 들수도 있거든 어찌

사람을 불국(佛國)에 두지 못하랴 그렇다면 화공(畵工)이 부처님을 그려

어찌 왕생(往生)하지 못하랴만

아! 그들에게 물어보라 방은 반드시 고요하고 생각은 반드시 조용한가하고

더욱이 화공(畵工)은 온갖 형상(形像)을 마음대로 그리지 않는가 그러나

유(喩)노인은 오직 한 부처님에만 전념(專念)하였다

전념(專念)하면 관(觀)하는 것이지 그리는것이 아니다 단청(丹靑)하는 자(者)들은

이것을 핑계하지 말라



------------------------------------------------------------------------------------------------------------------------------------------------------------------------------------------------------------------------------------------------------------------

●몽윤(夢潤)

석몽윤(釋夢潤)은 자(字)가 옥강(玉岡)으로 고원선사(古源禪師)에게서 법(法)을받았다

늙어서는 풍황령(風篁嶺)의 백련암(白蓮庵)에 살면서 문(門)을 닫아걸고 염불(念佛)하였다

임종(臨終)에 화불(化佛)이 와서 맞이하고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하였다

------------------------------------------------------------------------------------------------------------------------------------------------------------------------------------------------------------------------------------------------------------------

●운옥(雲屋)

원(元)나라 선주(善住)는 자(字)가 운옥(雲屋)으로 소주 사람이다

문(門)을 닫아 걸고 종일(終日) 염불(念佛)하여 병(病)이 들어도 변(變)함 없었다 죽을때에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하였다

저서(著書)로 안양전(安養傳)과 곡향집(谷響集)이 있다

------------------------------------------------------------------------------------------------------------------------------------------------------------------------------------------------------------------------------------------------------------------

●지관주(旨觀主)

원(元)나라 지관주(旨觀主)는 자(字)가 별종(別宗)으로 항주 사람이다

계덕(戒德)이 매우 엄정(嚴正)했고 용산(龍山)의 서(西)쪽 산록(山麓)에 관실(觀室)을 짓고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수행(修行)하여 비록 병난(兵亂)을 피(避)해 도망(逃亡)하면

서도 잠시(暫時)도 버리지 않았다

임종(臨終)에 병(病) 없이 목욕(沐浴)하고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지운인법사(芝雲仁法師)의 행업집(行業集)에 자세(仔細)한 행적(行蹟)을 기록(記錄)하였다

------------------------------------------------------------------------------------------------------------------------------------------------------------------------------------------------------------------------------------------------------------------

●담의(曇懿)

송(宋)나라 담의(曇懿)는 전당(錢塘)에서 의업(홈業)에 종사(從事)했던 이다

만년(晩年)에 염불삼매(念佛三昧)를 닦으며 평소에 모아놓았던 재산(財産)을 내어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供養)하고 불상(佛像)을 조성(造成)하고 목욕소(沐浴所)를 시설(施設)하 였다

이렇게 20년동안 한후 나중에 병(病)이 들었으나 일체(一切) 약(藥)을 멀리하고

일곱분의 스님들을 모셔 염불(念佛)을 간청(懇請)하였다

다음날 크기가 집채만한 연화(蓮華)를 보았고 또 하루는 범승(梵僧)이 침대(寢臺)곁에

다가와 안부(安否)하는것을 보기도 하였다

밤중에 대중(大衆)들이 염불(念佛)소리가 차츰 낮아지는것을 듣고 가보니

편안(便安)히 죽어가고 있었다

------------------------------------------------------------------------------------------------------------------------------------------------------------------------------------------------------------------------------------------------------------------

●태미(太微)

송(宋) 태미(太微)는 어린아이적에 전당(錢塘)의 법안법사(法安法師)에게 출가(出家)하였다

처음에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주니 끝까지 외워버리는 것이었다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나서는 문(門)에 빗장을 지르고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였다

이와같이 정진(精進)하여 늘 뒷산을 거닐다 홀연(忽然)히 젓대소리를 듣고 활연(豁然)히

깨달았다 이로부터 젓대 하나를들고 스스로 즐겼다

능감부(凌監簿)라는 이가 있었는데 함께 정업(淨業)을 닦던 자(者)였다

그는 태미(太微)를 정토향(淨土鄕)의 형님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문(門)을 두드리며 정토향(淨土鄕)의 아우가 뵐까합니다하였다

그러자 미(微)가 내일 정토(淨土)에서 만나세 오늘은 염불(念佛)하느라 한참 바쁘네하였다

다음날 아침 아침 공양(供養)에 참석(參席)치 않는것을 이상(異常)히 여겨 가보니 젓대와

발우(鉢盂)와 선상(禪床)을 이미 불태워버리고 땅위에 가부좌(跏趺坐)한채 죽어있었다

찬(贊)

젓대를 가지고 스스로 즐겼다 하니 고인(古人)은 나륨대로 젓대에 깨달음의 노래를

실어 불사(佛事)를 지었던 것이다

구지화상(俱胝和尙)은 천룡화상(天龍和尙)에게서 써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어 종신(終身)토록 손가락을 세워 보였으며 정단(淨端) 공(公)은

사자놀이를 보고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하고는 늘 오색(五色)이 찬란(燦爛)한

비단(緋緞)옷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릉엄경(楞嚴經)을 잘못 읽고서는 이후(以後)로 구두점(句讀點)을 고치지 않았던

경우(境遇)도 있다

이런것들이 모두 이와 유사(類似)한 일이다 함부로 미쳐 날뛰면서 방자(放恣)를

떠는 자(者)들은 이런 일을 핑계대지 말라

------------------------------------------------------------------------------------------------------------------------------------------------------------------------------------------------------------------------------------------------------------------

●용흠(用欽)

송(宋) 용홈(用欽)은 전당(錢塘) 칠보원(七寶院)에 살면서 대지법사(大智法師)를

의지(依支)하여 계율(戒律)을 배웠다

대지법사(大智法師)가 대중(大衆)에게 살아서 계행(戒行)을

청정(淸淨)히 지키면 죽어서 안양(安養)에 돌아간다

출가(出家)하여 도(道)를 배우는일을 이것으로 다 마칠수있다.하고

말하는것을 듣고 마음에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결심(決心)하여 한결같이 물러가지 않으며

하루에 염불(念佛) 3만(萬)번을 불렀다

하루는 정(定)중에서 정토(淨土)를 여행(旅行)하다 아미타(阿彌陀)부처님과 보살(菩薩)과 갖가지

기이(奇異)한 모양(模樣)들을 보고 시자(侍者)에게 나는 내일 서방(西方)으로 간다하고는

대중(大衆)을 모아 염불(念佛)하고

여명(黎明)에 합장(合掌)한채 서(西)쪽을 바라보면서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죽었다

------------------------------------------------------------------------------------------------------------------------------------------------------------------------------------------------------------------------------------------------------------------

●구법화(久法華)

송(宋) 가구(可久)는 명주(明州)에 살았다 법화경(法華經)을 읽으면서

정토(淨土)에 태어나기를 발원(發願)했으므로 당시(當時)에 흔히 구법화(久法華)라고 불렀다

원우(元祐) 8년(年)[1093] 나이 81세(歲)에 앉아서 죽었다

3일후(日後)에 다시 깨어나 사람들에게 내가 정토(淨土)의 경계(境界)를 보니

경(經)에서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연화대(蓮華臺) 위에마다 태어날 자(者)의 이름을 표기(標記)해 두었는데 한

금대(金臺)에는 성도부(成都府) 광교원(廣敎院) 훈(勳)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한 곳에는 명주(明州) 손십이랑(孫十二郞)이 적혀 있었으며

한곳에는 가구(可久)의 이름도 있었다

또한 한 은대(銀臺)에는 명주(明州) 서도고(徐道姑)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하고는 다시 죽었다

5년후(年後)에 서도고(徐道姑)가 죽었는데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했으며

12년후에 손십이랑(孫十二郞)이 죽을 때는 하늘 음악(音樂)이 허공(虛空)에서 쟁쟁(錚錚)하여

모두 가구(可久)가 말한 것과 일치(一致)하였다

찬(贊)

연화에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는 말을 여기서 누차 보게된다환상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환(幻)과 같은 마음으로 환과 같은 부처를 생각하고

환과 같은 꽃에 환과 같은 이름을 표기하 였으며 내지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 것이 어떤 것인들 환이 아니랴만 나는 우선

환생(幻生)이라는 생각을 접어두노니 어찌 굳이 그 사실 여부를 논하랴

------------------------------------------------------------------------------------------------------------------------------------------------------------------------------------------------------------------------------------------------------------------

●조휘(祖輝)

원(元) 조휘(祖輝)는 사명군(四明郡)의 성불각(成佛開)에 살면서 사람을 만나면

다만 아미타불(阿彌陀佛)! 말할래야 말할수 없어! 할뿐이었으므로 사람들이

설부득(說不得 말할수없다) 화상(和尙)이라고 불렀다

운현위(鄆縣劇)인 왕용향(王用享) 부부(夫婦)가 그를 공경(恭敬)하여 섬겼는데

하루는 그의 집에가서 내가 내일은 가야겠어하고 고별(告別)하였다

다음날 대중(大衆)을 모우고 감실(龕室)에 들어가 단정(端正)히 앉아 참외를 달라하여

하나를 맛있게 다먹고는 염불(念佛)하며 죽었다

------------------------------------------------------------------------------------------------------------------------------------------------------------------------------------------------------------------------------------------------------------------

●초기(楚琦)

대명(大明) 초기(楚琦)는 촉군(蜀郡)사람으로 독실(篤實)히 서방(西方)을 믿었다

연경(燕京)에 들어가 북소리를 듣고는 크게 깨달았다

홍무(洪武)초(初)에 경도(京都)에 가서 세번이나 임금<왕(王)>에게 법(法)을

설(說)하여 엄금을 매우기쁘게 하였다

나중에 서재(西齊)라는 집을 짓고 한결같이 정업(淨業)을 닦다 큰 연꽃이

온 세계(世界)에 가득한데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그가운데 계시고

많은 보살(菩薩)들이 에워싸고 있는것을 보았다

죽는날 게송(偈頌)을 써서 대중(大衆)에게 보이고는 나는 가야겠다고하였다

누가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서방(西方)하였다

또 서방(西方)에만 부처가 있고 동방(東方)에는 부처가 없습니까?하고 물으니

큰 소리로 한번 할(喝)하고 편안(便安)히 갔다

------------------------------------------------------------------------------------------------------------------------------------------------------------------------------------------------------------------------------------------------------------------

●보주(寶珠)

대명(大明) 보주(寶珠)는 일찍이 항군(抗郡) 가화(嘉禾) 부근에서 지낸적이

있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한벌 누더기 뿐이었고 자는 곳도 일정(一定)한

거처(居處)가 없이 걸식(乞食)하며 살았다

평소 염불(念佛)<아미타불(阿彌陀佛)>이 입에서 끊이지않아 누가 부르면 겨우 대답(對答)만 하고는

염불(念佛)을 연(連)이으면서 다시 쓸데없는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해문사(海門寺)에서 갑자기 반달여(餘)나 미친병(病)에 걸린듯하며 지냈다

어떤 스님이 스님의 평소 실행(實行)대로라면

당연(當然)히 세인(世人)들의 안목(眼目)이 되었어야

할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럴수 있습니까?하고 나무라자 그렇다면 나는 가야지

하고는 목욕(沐浴)을 하고는 편안(便安)히 죽었다

------------------------------------------------------------------------------------------------------------------------------------------------------------------------------------------------------------------------------------------------------------------

총론(總論)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세 가지 부류(部類)의 왕생(往生)을 논(論)하였다

그 첫째는 집을 버리고 세속(世俗)을떠나 사문(沙門)이 되어

한결같이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전념(專念) 하는 자(者)라 하였다

집을 버리고 세속(世俗)을 떠났다는것은 몸이 출가(出家)하였다는 의미(意味)요 한결같이

전념(專念)한다는 것은 마음이 출가(出家)하였다는 뜻으로서 몸과 마음이

모두 청정(淸淨)하다면 어찌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지 못하겠는가

세상(世上)에 어떤 미친 중은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한다는 것은

재가(在家)의 이중(二衆)을 접인(接引)하기 위해서다 나는 사문(沙門)이다

내가 어찌 이런짓을 달갑게 여기랴한다

또 어떤 중은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한다는 것은 스님 중에서 우둔(愚鈍)한 근기(根機)를

접인(接引)하기 위해서다 나는 교리(敎理)에 밝고 나는 종문{宗門)에 밝다

내가 어찌 이런것을 달갑게 여기랴한다

아! 이들이 어찌 원조(遠祖)혜원법사(慧遠法師) 이하(以下)의 모든 대화상(大和尙)들을

알리가 있겠는가 어떤 이는 경법(經法)에 능통(能通)하여 명성(名聲)이 천하(天下)에 떨쳤고

어떤 분은 조사(祖師)의 법인(法印)을 잡고 도(道)가 고금(古今)에 충만(充滿)하였다

저들이 교리(敎理)나 종문(宗門)에 어두웠던 자(者)였던가? 사문(沙門)이 아니었던가?

또한 정토(淨土) 밖에 따로 종문(宗門)이나 교리(敎理)도 없고 사문(沙門)도 없음을

어찌알리가 있겠는가 나는 이 자리를 빌려 감(敢)히 미친 자(者)들에게 말하노라

--------------------------------------------------------------------------------------------------------------------------------------------------------------------------------------------------------------------------------------------------------------------------------------------------------------------------------------------------------------------------------------------------------------------------------------------------------------------------------------------------------------------------------------------------------------------------------------------------

임금과 신하(臣下)의

왕생(往生)

-------------------------------------------------------------------------------------------------------------------------------------------------------------------------------------------------------------------------------------------------------------------------------------------------------------------------------------------------------------------------------------------------------------------------------------------

●오장국왕(鳥萇國王)

오장국왕(鳥萇國王)은 백성(百姓)을 다스리는 여가(餘暇)에는

평소 불법(佛法)을 숭봉(崇奉)하여

일찍이 시신(侍臣)에게 짐은 국왕(國王)이 되어 비록 복락(福樂)은 누리고 있으나

무상(無常)함은 면(免)할 길이없다

듣건대 서방정토(西方淨土)는 마음을 깃들일 만한 곳이라 하니 짐은 마땅히

발원(發願)하여 저 국토(國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고자 한다하고는 종일(終日) 행도염불(行道念佛)하였으며

부처님이나 스님들께 공양(供養)할때마다 왕(王)과 부인(婦人)이 몸소 음식(飮食)을 드려

이렇게 30년 동안을 거르지 않았다

붕어(崩御)할 때 얼굴에 웃음 빛을 띠고 화불(化佛)이 와서 맞이하는 등(等)

상서(祥瑞)가 한둘이 아니었다

찬(贊)

말세(末世)에 법(法)을 듣고 믿어 지니는 자(者)들 중에는

지위(地位)가 없는 자(者)는 많고

지위(地位)가 있는 자(者)는 적으며 지위(地位)가 있으면서

그 지위(地位)가 지극(至極)히 존귀(尊貴)한 자(者)는 더욱 적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

지위(地位)가 높을수록 욕심(慾心)도 더욱 많고 욕심(慾心) 이 많을수록

번뇌(煩惱)도 더욱 깊기 때문으로 이치(理致)가

그럴진대 이를 면(免)할수 있는 자(者)는 드물다

지금 임금의 복락(福樂)을 누라면서도

서방정토(西方淨土)에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숙세(宿世)에 수승(殊勝)한 인연(因緣)을 심지 않았다면 어찌 그럴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까지 제왕(帝王)으로서 마음을 불법(佛法)에 둔 자(者)를 어찌하여 기록(記錄)하지

않았는가 하면 이 정토(淨土)전(傳)을 기록(記錄)하는 것만해도 그 의도(意圖)가

마음을 외곬로 전념(專念)하는 자(者)에게만 었으므로

단순(單純)한 신앙(信仰)을 가진 자(者)는 함부로 기록(記錄)할수 없었던것이다

------------------------------------------------------------------------------------------------------------------------------------------------------------------------------------------------------------------------------------------------------------------

●위세자(魏世子)

송(宋)나라 위세자(魏世子)는 부자(父子) 세사람이 모두 서방(西方)을 닦았으나

처(妻)만은 닦지 않았다

딸이 열네살에 죽었는데 7일(日) 만에 다시 소생(蘇生)하여 그의 어머니에게

소녀가 보니 서방(西方)의 칠보(七寶)로 된 연못 속에 아버지와 오빠등 세분은

이미 가서 태어날 연화(蓮華)가 있었으니 돌아가시면

반드시 그곳 연화(蓮華)에 왕생(往生)하실 것입니다만

유독(唯獨) 어머니만이 태어날 연화(蓮華)가 없었으므로

잠시(暫時) 돌아와서 알려드리는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뜻을 일으키소서하고 아뢰었다

어머니도 딸의 말에 감동(感動)하여 즉시(卽時) 신심(信心)을 일으켜

염불(念佛)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중에 죽어 역시(亦是)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하였다



찬(贊)

처음에는 정토(淨土)와의 인연(因緣)이 소원(疏遠)했으나

마침내 서방정토극락국(西方淨土極樂國)에

왕생(往生)하게 된것은 믿고 믿지 않는 차이(差異)였다

경(經)에 말씀하시를 다만 믿지 않는 자(者)는

제외(除外)한다하였다 깊이 생각해 보기바란다

------------------------------------------------------------------------------------------------------------------------------------------------------------------------------------------------------------------------------------------------------------------

●류유민 참군(劉遺民參軍)

진(晋)나라의 류유민(劉遺民)은 팽성(彭城)사람으로 한나라 초원왕(楚元王)의

후예(後裔)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효성(孝誠)으로 소문이 났다

자신(自身)의 재주를 자부(自負)하여 세속(世俗)의 무리들과 휩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처음에 부(府)의 참군(參軍)이 되었으나 숨어버렸고*1

사안(謝安)이 유유(劉裕)와 사귈것을 권(勸)했으나 듣지않고

스스로 호(號)하기를 유민(遺民)이라고 하였다

여산(廬山)에 들어가 원(遠)공<혜원법사(慧遠法師)>의 연사(蓮社)에 참예(參詣)하였고

염불삼매(念佛三昧)라는 시(詩)를 지어 자신(自身)의 전념(專念)을 표현(表現)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정중(定中)에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광명(光明)이 땅을 비치니

모두 금색(金色)으로 변(變)하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연사(蓮社)에 산지 15년째 되는해에는 또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옥호(玉毫)광(光)을 비치시며 팔을 드리워 이마를 어루만지시자

류유민(劉遺民)이 어찌하여 여래(如來)께서는 저의 이마만을 마지십니까? 옷으로

저를 덮어 주소서하고 간청(懇請)하니 잠시(暫時) 후에 부처님이 이마를 만지시며

가사(袈裟)를 끌어 그를 덮어주시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는 또 칠보(七寶)의 연못에 들어가니 푸르고 흰 연꽃이 만발(滿發) 한데

그 물이 한없이 밝았다 이마에는 원광(圓光)이 빛나고 가슴에는 만자(卍字)가

드러나 있는 어떤사람이 못의 물을 가리키며 팔공덕수(八功德水)다

너는 이 물을 마셔라 하고 말하였다

류유민(劉遺民)이 물을 마시니 더없이 달고 향기(香氣)로웠던 일을 보기도 하였다

깨어나 보니 그때까지 아직도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몸에서 풍기고 있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중(大衆)에게 나는 정토(淨土)의 인연(因緣)이 이르렀다하고는

성상(聖像)을

대(對)하여 향(香)을 피우고 두번 절하고는

저는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의 유교(遺敎)로 인하여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시는 줄을 알았습니다

이 향(香)을 석가여래(釋迦如來)에게 공양(供養)하고

다음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게 공양(供養)합니다

원(願)하옵건대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모두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여 지이다 하고 축원(祝願)하고는

서(西)쪽을 향(向)하여 합장(合掌)하고 갔다

그 때는 의희(義熙) 6년<410>이었다

☚ 찬(贊)

십육관경(十六觀經)에서

정업(淨業)의 정인(正因)을 밝히면서 부모(父母)에게

효양(孝養)하는 것이 제일(第一)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불효(不孝)한 자(者)는 종일(終日)

염불(念佛)하더라도 부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것임을 알수 있겠다

지금 류유민(劉遺民)은 어려서는 효양(孝養)을 다바쳤고 다시 깊이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들어

여러가지 상서(祥瑞)로운 징조(徵兆)를 감응(感應)했으니

그의 왕생(往生)의 품위(品位)가

높을 것임은 의심(疑心)할 여지(餘地)가 없겠다

재가(在家)에서 정업(淨業)을 닦는 자(者)는

이것으로 만대(萬代)의 사법(嗣法)을 삼으라

------------------------------------------------------------------------------------------------------------------------------------------------------------------------------------------------------------------------------------------------------------------

●장야무재(張野茂才)

진(晋) 장야(長野)는 심양(潯陽)에 살았다

중국어(中國語)와 인도(印度)어(語)에 다 능통(能通)했으나

더욱 글을 잘 지어 무재(茂才)로 천거(薦擧)되기도 하였다

누차 산기상시(散騎常侍)로 부름을 받았으나 그 때마다 나아가지 않고

여산(廬山)의 연사(蓮社)에 들어가 정업(淨業)을 닦았다

의희(義熙)14년<418>가족(家族)에게

고별(告別)하고 방(房)에 들어가 단정(端正)히 앉아죽었다

------------------------------------------------------------------------------------------------------------------------------------------------------------------------------------------------------------------------------------------------------------------



●장항학사(張抗學士)

송(宋)나라 장항(張抗)은 부처님께 선행(善行)을 쌓고 대비다라니(大悲陀羅尼)를

10만(萬)번 외우면서 서방정토(西方淨土)에 태어나기를 발원(發願)하였다

나이 60여세(餘歲)가 되어 앓아 누웠으면서도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더니

가족(家族)에게 말하기를 서방정토(西方淨土)는 다만 눈앞에 있을뿐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연꽃속에 계시고 옹아(翁兒)는 금지(金地)에서 부처님께 예배(禮拜)를 드린다

하고는 염불(念佛)하고 갔다 옹아(翁兒)란 항(抗)의 손자(孫子)로서 세살때 죽었다

찬(贊)

마음이 청정(淸淨)하면 서방(西方)도 눈길이 닿는곳에 있고

마음이 더러우면 지옥(地獄)도 몸을 따라 온다

항(抗)의 청정(淸淨)한 마음을 성취(成就)함이여! 눈앞에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친견(親見)했다는 말을 어찌 의심(疑心)하랴

------------------------------------------------------------------------------------------------------------------------------------------------------------------------------------------------------------------------------------------------------------------

●왕중회사사(王仲回司士)

송(宋) 王仲回는 官職이 광주(光州)의 사사참군(司士參軍)을지냈다

무위자(無爲子)양공(楊公)에게 경(經)에서는 사람들에게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게 하였으나 조사(祖師)는 마음이 바로 정토(淨土)다

굳이 따로 찾을 필요(必要)가 없다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양공(楊公)은 이렇게 대답(對答)하였다

스스로 생각해 보시오 만약 부처님의 경계(境界)에 있다면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을것이니 무엇하러 왕생(往生)을 찾겠소

만약 중생(衆生)의 경계(境界)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찌 지심(至心)으로 염불(念佛)하여

더러운 국토(國土)를<사바예토(裟婆穢土)> 버리고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려 하지 않겠소

사사(司士)는 깊이 깨닫고 뛸듯이 환희(歡喜)하고 기뻐하며 물러갔다

2년후(年後) 양공(楊公)이 단양(丹陽)의 태수(太守)가 되었을 때 홀연(忽然)히 꿈에

사사(司士)가 나타나 전(前)에 가르침을 받고 지금 이미 서방(西方)에 왕생(往生)할수 있었습니다

특별(特別)히 와서 감사(感謝)드리는 바입니다 하였다

며칠 후(後)에 부음(訃音)이 도착(到着)했는데 사사(司士)는 7일전(日前)에 미리 때가 이른것을

알고 가족(家族)들에게 고별(告別)하고는 죽었다는것이다 바로 꿈을 꾼때였다

------------------------------------------------------------------------------------------------------------------------------------------------------------------------------------------------------------------------------------------------------------------

●마자운현위 (馬子雲縣尉)

당(唐)나라 마자운(馬子雲)은 효렴(孝廉)에 천거(薦擧)되어 경읍(涇邑)의 현위(縣尉)가 되었다

조세선(租稅船)을 호송(護送)하여 서울로 가다 풍랑(風浪)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말았다

이러한 죄(罪)로 체포(逮捕)되었으나 전심(專心)으로 염불(念佛)하여 5년(年) 만에

사면(赦免)을 받고 남능(南陵)의 어느 절에 숨어 살았다

하루는 사람들에게 내가 일생(一生) 염불(念佛)을 정근(精勤)하여 지금은 서방(西方)의 업(業)이

이루어졌다 이젠 가서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해야 겠다 하더니 다음날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단정(端正)히 앉아 합장(合掌)하고 있으니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하였다

자운(子雲)은 기뻐하며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 말하고는갔다

찬(贊)

몸은 체포(逮捕)를 당했으나 마음은 염불(念佛)하여 마침내 사면(赦免)을

받을수 있었으니 이는 곧 칼이나 쇠사슬을 쓰고 옥(獄)에 갇혔더라도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생각하고 해탈(解脫)을 얻은 자(者)의 경우(境遇)일 것이다

지금 오욕(五欲)에 얽혀있는것이 어찌 체포(逮捕)를 당한것이 아닐것이며

염불(念佛) 한마디로 80억겁(億劫)의 생사(生死)중죄(重罪)를

면(免)할 수 있는것은 어찌 사면장(赦免狀)이 아니랴

-----그러나 오욕(五欲)에 손발이 묶여있으면서도

염불(念佛)할줄 모르고 영겁(永劫)토록

죄(罪)를 끌어안고 있으니 끝내 사면(赦免)을 받을때가없다 슬프다!-----

----------------------------------------------------------------------------------------------------------------------------------------------------------------------------------------------

●가순인 군쉬(賈純仁郡晬)

송(宋) 가순인(賈純仁)은 잡천 사람으로 벼슬은 영주(郢州)군수(郡守)를 지냈고

정업(淨業)에 전심(專心)하여 오랫동안 염불(念佛)로 재계(齋戒)하였다

조그만 병(病)이 들더니 서(西)쪽을 향(向)하여 조용히 앉아 갔다

머리 위에는 원상(圓相)의 흰 광명(光明)이 서렸고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하였다

------------------------------------------------------------------------------------------------------------------------------------------------------------------------------------------------------------------------------------------------------------------

●장적조교(張迪助敎)

송(宋) 장적(張迪)은 전당(錢塘)사람으로 벼슬은 조교(助敎)를 지냈다

원정율사(圓淨律師)로부터 보살계(菩薩戒)를 받고

정업법문(淨業法門)을 물어 독실(篤實)하게

수지(修持)하여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할것을 서원(誓願)하였다

염불(念佛)할때마다 큰소리로 용맹(勇猛)을 다하여 목소리가 쉰 경우에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원정(圓淨)에게 정중(定中)에서 흰색의 빈가조(頻伽鳥)<迦陵頻伽>가 앞에서 춤을

추는것을 보았습니다하더니

3년후(年後)에 서(西)쪽을 향(向)하여 단정(端正)히 앉아 염불(念佛)하며 죽었다

찬(贊)

가릉빈가(迦陵頻伽)만을보고 부처님은 보지 못한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개 처음에는 이런 것들을 잠깐보았다가 나중에는 의례(依例)히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뵈옵기 마련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표현(表現)이 어떨까

------------------------------------------------------------------------------------------------------------------------------------------------------------------------------------------------------------------------------------------------------------------



●왕용서국학(王龍舒國學)

송(宋)나라 국학(國學) 왕일휴(王日休)는 용서(龍舒) 사람이다

성품(性品)이 단정(端正)하고 간결(簡潔)하여

경사(經史)에 박식(博識)하였으나 하루 아침에 그것들을 내버리고는

이것들은 모두 업습(業習)일 뿐 구경(究竟)의 법(法)은 아니다나는

이제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로 돌아가려 한다 하였다

이로부터 염불(念佛)로써 정진(精進)하여 나이 60세(歲)에 베옷을 입고 거친음식(飮食)을

먹었으며 하루에 천배(千拜)의 절을 하고 밤이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을 지어 세상(世上)에 권(勸)하기도 하였다

죽기 3일전(日前)에 두루 친척(親戚)이나 아는 이들에게 고별(告別)하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때가 되어 독서(讀書)를 마치고 평소(平素)와 다름없이 예념(禮念)하더니

문득 큰소리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면서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하고는

나무처럼 반듯이 서서 죽었다

이웃사람의 꿈에 푸른 옷을 입은 두사람이 용서(龍舒) 왕일휴(王日休)공(公)을 이끌고

서(西)쪽 을 향(向)하여 가는 꿈을 꾸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그를 숭앙(崇仰)하게 되었다



찬(贊)

용서(龍舒)는 서방(西方)을 권발(勸發)하기에 가장 간절(懇切)하였던 사람이라고

표현(表現)하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심지어 임종시(臨終時)에

수승(殊勝)하고 기이(奇異)한 상서(祥瑞)는 천고(千古)에 빛나는것이었다

아 ! 어찌 정토(淨土)의 성현(聖賢)이 세간(世間)에 내려와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했던 분이아니겠는가

----------------------------------------------------------------------------------------------------------------------------------------------------------------------------------------------

●강공망 사간(江公望 司諫)

송(宋) 강공망(江公望)은 조대(釣臺)사람이다

관직(官職)이 간의(諫議)에 이르렀으나 거친 음식(飮食)을 먹으며 청정(淸淨)히 수행(修行)하였다

보리문(菩提門)과 염불방편문<念佛方便文>을 지어 세상(世上)을 깨우쳤다

어려서 죽은 아들이 있었는데 꿈에 나타나 아버지께서는

도(道)를 닦아 이미 공업(功業)이 성취(成就)되었습니다 명부(冥府)에

금자(金字)의 편액(楄額)이 걸려있는데 엄주부(嚴州府) 강공방(江公望)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였다

간관(諫官)의 책임(責任)을 맡은 지위(地位)에 있었으나 마음은 불도(佛道)를 사모(思慕)하여

몸소 수행(修行)하여 마음에 애욕(愛慾)을 없이하였다

동정(動靜)에 불법(佛法)을 어기지 않았고 어묵(語黙)에 종풍(宗風)과 계합(契合)하여

명리(名利)는 이미 염부(閻浮)를 벗어났고 몸과 마음은 정토(淨土)로 돌아갔다

선화(宣和) 말에는 광덕군(廣德軍)이 되었다가 어느날 병(病)

없이 서(西)쪽을 향(向)하여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찬(贊)

어떤 이는 편액(楄額)에 이름이 적혀있었다는 사실(事實)을 믿으려 하지않는다

아 ! 영명(永明)은 명부(冥府)에 상(像)을 그려 놓았던 일이 있었고 탑(塔)을 돌던 스님이

이것을 확인(確認)하였다 어찌 유독(唯獨) 강공망(江公望)에 대해서만 의심(疑心)하랴

------------------------------------------------------------------------------------------------------------------------------------------------------------------------------------------------------------------------------------------------------------------

●갈번대부(葛繁大夫)

송(宋) 갈번(葛繁)은 징강(澄江) 사람이다 젊어서 급제(及第)하여 벼슬이 조산(朝散)에 이르렀다

공서(公暑)나사가(私家)에 반드시 정실(淨室)을 짓고 불상(佛像)을 모셨다

일찍이 방에 들어가 예송(禮誦)하고 있노라니 사리(舍利)가 허공(虛空)에서 떨어 진적도 있었고

평소 정업(淨業)을 널리 세상(世上) 사람들에게 권(勸)하여 많은 감화(感化)를 받기도하였다

어떤 스님이 정중(定中)에서 정토(淨土)를 여행(旅行)하다 갈번(葛緊)이 그곳에 있는것을보았다.

나중에 병(病)없이 서(西)쪽을 향(向)해 단정(端正)히 앉아죽었다

찬(贊)

사대부(士大夫)로서 부처님을 믿었던 자(者)는 그런 사람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世上)의 조롱(嘲弄)을 피(避)해 밖으로는 형색(形色)을 갖춰가면서 공서(公署)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갈번(葛繁) 군(君)은

그 독실(篤實)한 신앙(信仰)을 회피(回避)하지 않은분이다

앉아서 숨을 거두고 왕생(往生)했던 사실(事實)은 참으로 우연(偶然)한 일이 아니다

------------------------------------------------------------------------------------------------------------------------------------------------------------------------------------------------------------------------------------------------------------------



●이병중관(李秉中官)

송(宋) 이병(李秉)은 소홍(紹興)의 중관(中官)으로 약원(藥院)을 관리(官吏)하였다

처음에는 정자사(淨慈寺)의 휘(輝)공(公)으로부터 선(禪)을 배워 깨달음이 있었으나

만년(晩年)에는 용서(龍舒)의 정토문(淨土文)을 읽고 매일 염불(念佛)

하는 것으로 일과(日課)를 삼았으며 각장(閣張)인 원미(元美) 전장(殿長)인

임사문(林師文)등(等) 수십인 (數十人)과 전법사(傳法寺)에서 염불(念佛)회(會)를 결성(結成)하였다

하루는 병(病)이 들었는데 꿈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금색(金色) 원광(圓光)을

그의 머리에 씌워주는것을 꿈꾸었으며 7일후(日後)에는

금색(金色) 꽃이 방에 가득한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친척(親戚)에게 고별(告別)하고 단정(端正)히 앉아 결인(結印)을 맺고 죽었다

------------------------------------------------------------------------------------------------------------------------------------------------------------------------------------------------------------------------------------------------------------------

●호인 선의(胡闉宣義)

송(宋) 호인(胡闉)은 관직(官職)이 선의(宣義) 였다 평소에도 불법(佛法)을 믿었으나

정토(淨土)를 알지 못하다 나이 84세(歲)가 되어 병(病)이 들어 일어나지 못할 지경(地境)이 되자

그의 아들이 청조율사(淸照律師)를 맞이하여 가르침을 간청(懇請)하였다

조(照)가 호인(胡闉)에 게 물었다

공(公)은 안신입명(安身立命)할 곳을 아십니까?마음이 깨끗하면 불토(佛土)도 깨끗할 것입니다

공(公)은 스스로 평생(平生)을 돌아보십시오 잡념(雜念)에 물든적은 없습니까?

이왕 세간(世間)에서 사는 몸이 어찌 잡념(雜念)이 없을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이 청정(淸淨)하고 국토(國土)가 청정(淸淨)할수 있겠습니까?

한번 부처님 명호(名號)를 부름으로 해서 어떻게

능(能)히 80억겁(億劫)의 생사(生死)중죄(重罪)를 면(免)할수 있습니까?

아미타불(阿彌陀佛)은 큰 서원(誓願)과 오랜 수행(修行)으로 위덕(威德)이 광대(廣大)하신 분으로

광명(光明)의 위신력(威神力)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합니다 그래서 한번 그의 명호(名號)를

부름으로 해서 한량(限量)없는 죄(罪)를 소멸(消滅)할수 있습니다

마치 밝은 햇살 아래 서리가 녹는것과 같다 할것입니다

무엇을 다시 의심(疑心)하겠습니까?

호인(胡闉)은 마침내 깨닫고 그날로 스님을 불러 염불(念佛)하게 하였다

다음날 조(照)가 다시왔다 호인(胡闉)이 스님께서는 어찌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두 보살(菩薩)이 강림(降臨)하신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하니 조(照)가 대중(大衆)과

함께 큰 소리로 염불(念佛)하자 호인(胡闉)이 합장(合掌)하고 갔다

찬(贊)

호인(胡闉)이 왕생(往生)한 것은 청조율사(淸照律師)를 만났기 때문이요

청조율사(淸照律師)를 맞이해온 사람은 그의 아들이었다

그를 진정(眞正) 대효(大孝)라고 하기에 손색(遜色)이 없겠다

세상(世上) 에는 조그마한 애정(愛情)에 집착(執著)하여 부모(父母)의

재계(齋戒)를 망치는 자(者)가 있다

매우 잘못된 노릇이다

----------------------------------------------------------------------------------------------------------------------------------------------------------------------------------------------

●양무위제형(楊無爲提刑)

송(宋)나라 양걸(楊傑)은 무위주(無爲州)사람으로 호(號)는 무위자(無爲子)다

소년(少年)에 급제(及第)하여 관직(官職)이 상서주객량(尙書主客郞)이 되어 양절

(兩斯)의 형옥(刑獄)을 다스렸다

불법(佛法)을 존숭(尊崇)하고 선종(禪宗)에도 깨달음이 있었다 일찍이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중생(衆生)의 근기(根機)는 날카롭고 둔(鈍)한 차이(差異)가 있으나

누구나 알수 있고 누구나 행(行)할수 있는 법문(法門)은

오직 서방정토(西方淨土)일뿐이다 일심(一心) 으로 관념(觀念)하여

어지러운 마음을 거두기만 하면

부처님의 원력(願力)에 의지(依支)하여 반드시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할수 있다

천태십의론(天台十疑論)과 미타보각기(彌陀寶閣記)

안양삼십찬(安養三十贊) (정토결의집서 (淨土決疑集序)등을

지어 널리 서방(西方)의 교관(敎觀)을 천양(闡揚)하고 미래(未來) 중생(衆生)을 깨우쳤다

만년(晩年)에는 미타장육존상(彌陀丈六尊像)을 그려놓고 늘 그를 대(對)해

관념(觀念)하더니 이에 목숨이 다하는날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와서

맞이하여 영접(迎接)하는 것을 감응(感應)하고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그의 사세(辭世)송(頌)에 이런것이 있다

삶도 연연(戀戀)할것 없고 죽음도 버릴것 없네

허공(虛空)속의 한점 구름인듯 기왕 착오(錯誤)한일 서방극락(西方極樂)에 나아가네

生亦無可戀 死亦無可捨 太虛空中之乎者也 將錯就錯 西方趣樂

찬(贊)

무위자(無爲子)의 송(頌)을 읽어보니 이른바 선(禪)을 참구(參究)하여 성품(性品)을 보았으면서

다시 정토(淨土)로 돌아갔음을 알수 있겠다

이왕 착오(錯誤)한일 운운(云云)한 것은 곱씹을 맛이 적지않다

아! 인간(人間)의 재사(才士)로서 어찌 누구나 이 한번의 착오(錯誤)함을

고쳐 나아갈수 있으랴

------------------------------------------------------------------------------------------------------------------------------------------------------------------------------------------------------------------------------------------------------------------

●위문진관찰(韋文晋觀察)

송(宋) 위문진(韋文晋)은 행동거지(行動擧止)가

고결(高潔)하고 정업(淨業)도량(道場)을 세워 널리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였다

유월 모일(某日) 홀연(忽然)히 서(西)쪽을 향(向)하여 가부좌(跏趺坐)하고

합장(合掌)한채 염불(念佛)하며죽었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를 원근(遠近)에서 다맡을수 있었다

------------------------------------------------------------------------------------------------------------------------------------------------------------------------------------------------------------------------------------------------------------------

●문언박 로공(文彦博潞公)

송(宋)나라 문언박(文彦博)은 경도(京都)에서 정엄법사(淨嚴法師)와 함께 10만인(萬人)을 모아

정토(淨土)회(會)를 만들었다 임종(臨終)에 편안(便安)히 염불(念佛)하며 죽었다

------------------------------------------------------------------------------------------------------------------------------------------------------------------------------------------------------------------------------------------------------------------

●마우시랑(馬圩侍郞)

송(宋) 마우(馬玗)는 그의 할아버지인 충숙공(忠肅公)이 항주의 군수(郡守)일 때부터

자운참주(慈雲懺主)에게서 염불(念佛)을 배워 온 가족(家族)이 숭봉(崇奉)하게 되었고

마우(馬玗)도 25년(年)동안 염불(念佛)하였다

숭녕(崇寧)때 조그만 병(病)이 들더니 옷을 갈아입고 앉아서 갔다

덮개가 푸른 마차(馬車)가 문(門)을 나서듯한 어떤 기운(氣運)이 하늘로 올라갔 다

가족(家族)들이 마우(馬玗)가 상품(上品)에 왕생(往生)하는것을 모두 꿈꾸었다

------------------------------------------------------------------------------------------------------------------------------------------------------------------------------------------------------------------------------------------------------------------

●종리소사(鍾離少師)

송(宋) 종리근(鍾離瑾)은 절서(浙西)의 제형(提刑)으로 있을때

자운참주(慈雲懺主)를 만나 정토(淨土)를 독신(篤信)하게 되었다

나중에 개봉(開封)의 군수(郡守)가 되어 나갔을때는 국사(國事)에 전념(專念)하고

들어와서는 잠을 잊고 염불(念佛)하더니

갑자기 밤중에 가족(家族)을 깨워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앉아서 갔다

온집안 식구가 모두 종리근(鍾離瑾)이 푸른 연꽃을 타고 선악(仙樂) 에

인도(引導)되어 서(西)쪽을 향(向)해 가는것을 보았다

------------------------------------------------------------------------------------------------------------------------------------------------------------------------------------------------------------------------------------------------------------------

●염방영 승무(閻邦榮 承務)

송(宋)나라 염방영(閻邦榮)은 지주(池州)사람이다

24년(年) 동안 왕생주(往生呪)를 외며 염불(念佛)하더니 죽을때 가족(家族)들의 꿈에

부처님이 광명(光明)을 놓으며 염방영(閻邦榮)을 맞이 하는것을 보았는데

새벽에 염방영(閻邦榮)이 서(西)쪽을 향(向)해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앉았더니

갑자기 일어나 몇발자국을 걷고는 우뚝히 선채로 죽었다

------------------------------------------------------------------------------------------------------------------------------------------------------------------------------------------------------------------------------------------------------------------

●왕충조산(王衷朝散)

송(宋)나라 왕충(王衷)은 가화(嘉禾)사람이다

서호(西湖)에서 염불회(念佛會)를 조직(組織)하여 현우(賢愚) 귀천(貴賤)

승속(僧俗)을 막론(莫論)하고

왕생(往生)하기를 원(願)하는 자(者)는 누구나 염불회(念佛會)에 들게 하였다

정토권수문(淨土勸修文)이 현재(現在) 세상(世上)에 남아있다

나중에 병(病) 없이 서(西)쪽을 향(向)하여 앉아죽었다

------------------------------------------------------------------------------------------------------------------------------------------------------------------------------------------------------------------------------------------------------------------

●종리경융대부(鍾離景融大夫)

송(宋) 종리경융(鍾離景融)은 조청대부(朝請大夫)의 벼슬을 지냈다

일찍이 십육관경(十六觀經)을 읽다 염불(念佛)에 몰두(沒頭)하게 되었다

사직(辭職)한 후(後)에는 동원(東園)곁에 띠집을 짓고 살면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미타(彌陀)를 모르면 미타(彌陀)가 서방(西方)밖에 있으나

미타(彌陀)를 알면 미타(彌陀)는 다만 자기(自己)의 집에 있을뿐이다

어느날 저녁 묘응(妙應)스님에게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읽게하고는

향(香)을 피우고 공경(恭敬)히 듣더니 두손으로 인(印)을 짓고 죽었다

------------------------------------------------------------------------------------------------------------------------------------------------------------------------------------------------------------------------------------------------------------------

●전상조 군수(餞象祖 都守)

송(宋) 전상조(餞象祖)는 호(號)를 지암(止菴)이라고 하였다

금능(金陸)을 다스릴때는 날마다 정토(淨土)를

더 충실(充實)히 수행(修行)치 못하는 것을 한탄(恨歎) 하였다

향주(鄕州)에 접대십처(接待十處)를 만들어 모두 서방정토극락(西方淨土極樂)등의

이름을 붙혔고 지암고승료(止菴高僧寮)를 지어 스님들을 맞이하여

도(道)를 담론(談論)하는 장소(場所)를 만들었다

좌상(左相)을 사직(辭職)하고 돌아와서는 더욱 정업(淨業)에 힘썼다

가정(嘉定) 4년<1211> 2월에 조그만 병(病)이 들더니

-----연꽃 향기(香氣)는 불국(佛國)에서 풍겨오고 유리(琉璃)의 땅에는 티끌도 묻지 않았네

나의 마음은 저보다 깨끗하여 오늘에야 비로소 한송이 꽃이 핀걸 알겠네-----

하고 게(傷)를 썼다

3일후(日後) 어떤 스님 이 병(病) 문안(問安)을 하였는데 공(公)이 나는

삶도 탐(貪)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태어나지도 않고

인간(人間)이 되지도 않고 오직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고자 할뿐입니다"하더니

말을 마치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갔다

후(後)에 어떤 사람의 꿈에 공중(空中)에서 전상조(餞象祖) 승상(丞相)은

이미 서방(西方)의 연궁(蓮宮) 에

태어나 자제보살(慈濟菩薩)이 되었다 하는 꿈을 꾸었다

------------------------------------------------------------------------------------------------------------------------------------------------------------------------------------------------------------------------------------------------------------------

●매여능현령(梅汝能 縣令)

송(宋) 매여능(梅汝能)은 상숙(常熟) 사람으로 벼슬은 현령(縣令)을 지냈다

평소부터 정업(淨業)에 뜻을 두었더니 어느날 꿈에 어떤 스님이 종이

백(百) 폭을 주는데 찢어보니 16 자(字)의 글자가 되었다

이 사실을 동령조(東靈照)스님에게 물어보니 열여섯 자(字)란

어찌 십육관경(十六觀經)을 두고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그때 마침 어떤스님이 경전<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주고는 홀연(忽然)히 보이지 않았다

이로부터 경(經)을 읽고 염불(念佛)하며 스스로 왕생(往生)하기 위하여

마음을 보인다하고 이름하였다

그때 읍(邑)의 생(生)공이라는 분이 장육(文六)의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상(像)을

조성(造成)하였는데

재산(財産) 백만(百萬)을 보시(布施)하여 장식(粧飾)하였다

그랬더니 법당(法堂)앞의 못에 한쌍의 백련(白蓮)이 피었는데 꽃잎이 백잎이나 되었다

그해 겨울에 병(病)없이 죽었다

-------------------------------------------------------------------------------------------------------------------------------------------------------------------------------------------------------------------------------------------------------------------------------------------------------------------------------------------------------------------------------------------  

--------

●잠정국(昝定國)학유(學諭)

송(宋)나라 잠정국(昝定國)은 호(號)가 생재(省齋)라

주학유(州學諭)를 지냄이라 항상(恒常) 염불(念佛)하면서

정토(淨土)의 모든 경전(經典)을 독송(讀誦)함이라

매월(每月) 24일(日)마다 승속(僧俗)을 모아서 경(經)을외우고 염불(念佛)하였다

가정(嘉定)사년(四年)꿈에 청의동자(靑衣童子) 고(告)하여말하되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하여금 그대를 부르심이라

삼일(三日)후(後)에 응당(應當)히

저나라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할수있음이라

날이 이르자 목욕(沐浴)하고 다시 깨끗한 의복(衣服)으로 갈아입고

염불(念佛)하면서 가부좌(跏趺坐)하여 화거(化去)함이라

-------------------------------------------------------------------------------------------------------------------------------------------------------------------------------------------------------------------------------------------------------------------------------------------------------------------------------------------------------------------------------------------------------------------------------------------------------------------------------------------------------------  

●풍제천(馮濟川) 간의(諫議)

송(宋)나라 풍즙(馮楫)은 호(號)가 제천(濟川)이라 수녕(遂寧)사람이라

태학(太學)을 말미함아 등제(登第)함이라 <과거(科擧)에오름이라>

처음에는 구도(求道)함에 선림(禪林)을 찾자 구(求)함이나

만년(晩年)에는 전일(專一)하게 정업(淨業)을 숭상(崇尙)하였다

서방문(西方文)과 미타참의(彌陀懺儀)를 찬술(撰述)함이라

후(後)에 급사(給事)가운데 장수(將帥)로써 로남(瀘南)에 출정(出征)했다가

도속(道俗)을 인솔(引率)하여 계념회(繫念會)<염불회>를 만들어

미치여 공주(邛州)를 다스림에 이에저 후청(後廳)<뒷마루>에 고좌(高座)를 시설(施設)하고

대궐(大闕)을 향(向)하여 엄숙(嚴肅)히 절하고 승의(僧衣)<스님의옷>을입고

자리에올라 관리(官吏)를 사례(謝禮)하여 사퇴(辭退)하고

주장자(拄杖子)를 무릎위에 비껴 얹고는 그리하여 화거(化去)함이라

찬(贊)

전등록(傳燈錄)에 공(公)에 대한 기록(記錄)이 실려있는데 처음에는

용문원(龍門遠)을 참예(參詣)하였고 다음에는 묘희(妙喜)를 참예(參詣)하여

각각(各各) 깨달음이 있었다 임종(臨終)에 미리 기한(期限)을 정(定)하고 자리에 올라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무릎위에 얹고는 죽었다

그 자재(自在)하고 분명(分明)한 모습(模襲)은 완연(宛然)히 선문(禪門)의

여러 종사(宗師)들의 풍격(風格)그것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그의 염불왕생(念佛往生)에 대해서는 언급(言及)하지 않은것은

무엇 때문인가? 저술(著述)하는 자(者)의 뜻을 세우는 입장(立場)이 같지 않고

각각(各各) 소중(所重)히 여기는 바를 따랐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저<전등록(傳燈錄)>은 직지인심(直指人心)만을 소중(所重)히 여겼으므로

으례 심지(心地)를 밝힌 부분(部分)만을 취(取)하고 정토(淨土)는

생략(省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컨대 회옥(懷玉)은 금대(金臺)가 두번이나 이르렀고 원조(圓照)

는 연꽃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사실(事實)을 아무것도 기록(記錄)하지 않았으나

여기[왕생(往生)집(集)]서는 이 점(點)을 상세(詳細)히 기록(記錄)한것은

정토(淨土)로 돌아가는 것을 소중(所重)히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평소에 염불(念佛)하여 왕생(往生)에 대(對)해 대답(對答)한것을 살펴 보면

심성(心性)을 밝히는 것이 그 가운데 있는것임을 알수 있다

예를 들면 만약 덕(德)을 소중(所重)히 여긴다면 안자(顧子)를 덕행(德行)의

조목(條目)에 나열(羅列)하고 정사(政事)에 대한 부분(部分)에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요

재주를 소중(所重)히 여긴다면 안자(顔子)는 임금을 보필(輔弼)할만한 그릇을갖추 었다 하고

덕행(德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것이다

역시(亦是) 각기(各其) 이에그입장(立場)이 같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정업(淨業)을 닦는 자(者)는 돈독(敦篤)히 믿고 의심(疑心)치 말기 바란다

------------------------------------------------------------------------------------------------------------------------------------------------------------------------------------------------------------------------------------------------------------------

●왕민중 시랑(王敏仲侍郞)

송(宋)나라 왕고(王古)는 자(者)가 민중(敏仲)으로 동도(東都)사람이다

벼슬은 예부시랑(禮部侍郞)에 이르렀으면서 자비(慈悲)한 마음으로

백성(百姓)을 사랑하고 깊이 선종(禪宗)에 계합(契合)하였다

또한 정토법문(淨土法門)의 우수(優秀)함을 깨달아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

3권(卷)을 지어 평생(平生)을 염불(念佛)을 정근(精勤)했으며

염주(念珠)를 손에서 놓은적이 없었고

일상생활(日常生活)에서 늘 항상(恒常) 서방정관(西方淨觀))으로 불사(佛事)를 삼았다

어떤 스님이 정(定)에서 정토(淨土)를 여행(旅行)한 적이 있었는데 고(古)와

갈번(葛緊)이 함께 있는것을 보았다 한다 왕생(往生)한것은 분명(分明)한 사실(事實)이었다

------------------------------------------------------------------------------------------------------------------------------------------------------------------------------------------------------------------------------------------------------------------

●오신수진사(吳信叟進士)

송(宋) 오자재(吳子才)는 호(號)가 신수(信叟)다

벼슬을 사직(辭職)한 후 미리 관(棺) 하나를 만들어 놓고 밤에는

그 속에 누워 동자(童子)에게 관(棺)을 두드리게 하고

-----오신수(吳信叟)여 돌아가자

삼계(三界)는 편(便)치 않아 머물만한 곳 아니다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연태(蓮台)가 있으니 돌아가자

하고 노래하며 스스로 한줄씩 화답(和答)하였다

나중에 병(病)없이 죽었다---------

------------------------------------------------------------------------------------------------------------------------------------------------------------------------------------------------------------------------------------------------------------------

●백거이 소부(白居易 小傅)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는 관직(官職)이 중대부태자소부(中大夫太子小傅)를지냈다

집을 버려 향산사(香山寺)를 만들고는 스스로 향산거사(香山居士)라 호(號)하였다

만년(晩年)에 풍질(風疾)을 앓게되자 봉전(棒錢)3만(萬)을 내어 서방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를

한 부(部) 그리고(무량수경(無量壽經)을 의지(依支)해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莊嚴)을 매우 자세(仔細)히 하였다

그리고는 정례(頂禮)발원(發願)하여 다음과 같은 게(偈)를 써서 서방(西方)을 찬탄(讚嘆)하였다

극락세계(極樂世界) 청정(淸淨)한 국토(國土)여 모든 악도(惡道)나 고통(苦痛)이 없네

원(願)하옵노니 저같이 늙고 병(病)든 자(者)함께 무량수불(無量壽佛)의 처소(處所)에 태어나과저

찬(贊)

전(傳)하는 이야기로는 봉래(蓬萊)에 낙천(樂天)이라는 신선(神仙)이 있었는데

낙천(樂天)이 이곳을 떠나면서 해산(海山)은 내가 돌아갈곳 아니요

돌아간다면 반드시 도솔천(兜率天)이어야 하리 지금 다시

도솔천(兜率天)마저 버리고 정토(淨土)를 찾노니

소위(所謂) 모래를 헤쳐 진금(眞金)을 찾듯 더욱 빛나고 더욱 아름다우리 하고 노래했다 한다

------------------------------------------------------------------------------------------------------------------------------------------------------------------------------------------------------------------------------------------------------------------

●장윤도총(張掄都總)

송(宋)나라 장윤(張掄)은 양절도총관(兩浙都總管)의 벼슬을 지냈던이다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기를 기약(期約)하며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니

온 집안이 그를 따르지 않는 자(者)가 없었다

못을파서 연꽃을 심고 처자(妻子)와 함께 하루에 염불(念佛) 만(萬)번을불렀 다

효종황제(孝宗皇帝)가 연사(蓮社)라는 친서(親書)를 내렸다

------------------------------------------------------------------------------------------------------------------------------------------------------------------------------------------------------------------------------------------------------------------

●소식학사(蘇軾學士)소동파(蘇東坡)

송(宋) 소식(蘇軾)은 호를 동파(東坡)라 하고 관직(官職)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남(南)으로 귀양가는 날 아미타(阿彌陀)상(像) 한축(軸)을 그려 행낭(行囊)에 넣어가지고 갔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이것은 소식(蘇軾)이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往生)하는 징표(徵標)다 하였다

어머니 정(程)씨가 돌아가시자 남겨 두신 비녀와 귀걸이를 팔아

호석(胡錫)이라는 공인(工人)에게 부탁(付託)하여 미타(彌陀)상(像)을

그려 왕생(往生)을 천도(遷度)하였다

찬(贊)

노천(老泉)소식(蘇軾)의 아버지은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遷度)하기 위하여

일찍이 극락원(極樂院)에 여섯분의 보살상(菩薩像)을 조성(造成)한적이 있었고

자곡(子曲) 소식(蘇軾)의 동생도 역시(亦是) 매우 가까이 법문(法門)에 왕래(往來)하였다

이렇듯 소(蘇)씨가 삼보(三寶)에 귀의(歸依)한 것은 대(代)를 이은것이었다

세상(世上)에는 서방(西方)징표(徵標)라는 것을 새기는 자(者)가 있는데 이것은

동파(東坡)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터무니 없는 말을 덧붙혀 선전(宣傳)한 다

안목(眼目)을갖춘 자(者)는 거짓을 인(因)하여 진실(眞實)까지 버리는일이 없도록하기 바란다

------------------------------------------------------------------------------------------------------------------------------------------------------------------------------------------------------------------------------------------------------------------

●장무진승상(張無盡丞相)

송(宋)나라 장상영(張商英)은 처음에 부인(婦人) 향(向)씨로부터 발심(發心)하여

불법(佛法)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호(號)를 무진(無盡)거사(居士)라고 하였다

그의 발원문(發願文)에 이런 것이 있다

이 세계(世界)와 오탁(五濁)의 어지러운 마음을 생각해 보면 정관(正觀)하는 힘도없고

요인(了因)의 힘도 없어서 자성유심(自性唯心)을 능(能)히 깨닫지 못하나이다

삼가 석가세존(釋迦世尊)의 금구(金口)의 가르침을 따라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전념(專念)하려 하옵노니저 세존(世尊)의 원력(願力)으로 섭수(攝受)하사 과보(果報)가

다하는날 극락(極樂)에 왕생(往生)케 하소서

흘러가는 물에 배를타듯 자력(自力)을 들이지않고 바로 이르게 하소서

찬(贊)

무진거사(無盡居士)는 도솔열(兜率悅)공(公)에게서 선종(禪宗)을 깨달았으면서

정성(精誠)을 다해 안양(安養)에 전념(專念)하였으니 그의 책략(策略)은 치밀(緻密)한것이었다

향산(香山)으로부터 이 네분의 공(公)에 이르기까지 비록 서방(西方)을 감응(感應)한

사실(事實)은 자세(仔細)히 기록(記錄)되어 있지 않지만 그 원인(原因)을

근거(根據)로 하여 결과(結果)를 살펴보건대

서방(西方)에 왕생(往生)하지 않았으면 어느곳에 태어났으랴

------------------------------------------------------------------------------------------------------------------------------------------------------------------------------------------------------------------------------------------------------------------

총론(總論)

--------------------------------------------------------------------------------------------------------------------------------------------------------------------------------------------------------------------내가 듣기에 고덕(高德)이 말하기를 사대부(士大夫)로서

총명(聰明)이 출중(出衆)한 자(者)는

모두 전생(前生)에 중노릇하던 자(者)였다.하였다

그런데 의심(疑心)스러운 점은 끝내 미혹(迷惑)하여 돌이키지 못하는 자(者)는

열에 아홉이라면 숙세(宿世)의 인연(因緣)을 등지지 않는자(者)는

겨우 열에 하나일 뿐이니 이에그 까닭은 무엇일까?

오탁악세(五濁惡世)에는 퇴보(退步)할 수밖에 없는 많은 인연(因緣)들이 잠재(潛在)하고 있어서

비록 어진자(者)라 할지라도 이를 면피(免避)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械)선사의 후신(後身)은 소동파(蘇東坡)요 청선사(淸禪師)의

후신(後身)은 증노공(曾路公)이며 철선사(喆禪師)의 후신(後身)은 부귀(富貴)에 빠져

근심과 괴로움이 많았던 어떤 자(者)라 하였다

소동파(蘇東坡)는 법문(法門)에 가장 가까이 했던 분이니 증(曾)공이 이왕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 철선사(喆禪師)의 후신(後身)은 그 미혹(迷惑)함이 너무 심(甚)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고금(古今)의 선지식(善知識)들이 사람들에게 오탁(五濁)은 버리고

정토(淨土)를 찾게 했던것이니

그렇다면 류유민(劉遺民)이하의 여러 군자(君子)들은

그 소득(所得)이 적지 않았을것은 너무나 당연(當然)한일이 아니겠는가

------------------------------------------------------------------------------------------------------------------------------------------------------------------------------------------------------------------------------------------------------------------



처사(處士)의 왕생(往生)

------------------------------------------------------------------------------------------------------------------------------------------------------------------------------------------------------------------------------------------------------------------

●주속지(周續之)

송(宋)나라 주속지(周續之)는 안문(雁門)사람이다

열두살에 오경(五經)과오위(五韓)에 통달(通達)했으므로 십경동자(十經童子)라고 불렀다

한가(閑暇)한 곳을 좋아하여

공경(公卿)과의 교류(交流)를 피(避)하고 언제나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여산혜원법사(廬山慧遠法師)를 섬겨 연사(蓮社)에 참예(參詣)하였다

문제(文帝)가 즉위(卽位)하자 그를 불러 함께 담론(談論)한 후(後)매우 기뻐하였다

누가 처사(處士)의 신분(身分)으로 임금의 뜰을 밟으니 어떠했습니까?

하고묻자 마음이 조정(朝廷)에 치달리는 자(者)는 세속(世俗)을 질독과 같이 여기겠지만

마음이 이 두가지에서 떠난자(者)는

시정(市井)이나 조정(朝廷)이 바위돌속일 뿐이다 하고 대답(對答)하였다

그래서 당시(當時)에 그를 통은선생(通隱先生)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종산(鍾山)에 살면서 전심(專心)으로 염불(念佛)하여

나이가 들수록 더욱 돈독(敦篤)하였다

하루는 공중(空中)을 향(向)해 부처님이 오시어 나를맞이한다하고는 합장(合掌)한채 갔다

찬(讚)

주속지(周續之)는 시중이나 조정(朝廷)이 바위굴속과 다름이 없다 하였다

그렇다면 서방(西方)이나 동토(東土)가 다를바 없다하는 뜻일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염불(念佛)하며 왕생(往生)할길을 찾았으니

그는 진정(眞正) 이롭고 해로움을<이해(利害)>알았던것이다

고인(故人)의 이런 게송(偈頌)이 있다

높은 산(山)이나 평지(平地)가 모두 서방(西方)이나

집에 이르지 못한자(者)는 희론(戱論)하지 말라

--------------------------------------------------------------------------------------------------------------------------------------------------------------------------------------------.

●정목경(鄭牧卿)

당(唐)정목경(鄭牧卿)은 형양(榮陽)사람이다 가족(家族)과 함께 염불(念佛)하다

개원(開元) 중에 심(甚)한 병(病)이 들었다

누가 어육(魚肉)을 먹어볼것을 권(勸)하자 단호(斷乎)히 거절(拒絶)하며 손에

향로(香爐)를 들고 서방(西方)왕생(往生)을 발원(發願)하였다

그러자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가득히 서리더니 별안간에 갔다

장인(丈人)인 상서(尙書) 소정(蘇頲))의 꿈에 보배의못에 연꽃이

만발(滿發)한데 정목경(鄭牧卿)이 그속에 앉아 있었다

--------------------------------------------------------------------------------------------------------------------------------------------------------------------------------------------

●장원상(張元詳)

당(庸) 장원상(張元詳)은 평소부터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가족(家族)을 재촉하여 서방(西方)의 성인(聖人)이

나를 기다리시며 재계(齋戒)를

마치고 함께 가자고 하신다 하더니

재계(齋戒)를 마치고는 향(香)을 피우고 가부좌(跏趺坐)하여 서(西)쪽을 향(向)해 죽었다

--------------------------------------------------------------------------------------------------------------------------------------------------------------------------------------------

●손량(孫良)

송(宋)나라 손량(孫良)은 전당(錢塘) 사람이다 은거(隱居)하여 숨어살며

널리 대장경(大藏經)을 열람(閱覽) 하였으나

그중 더욱 화엄경(華嚴經)에서 지취(旨趣)를 얻었다

대지율사(大智律師)로부터 보살계(菩薩戒)를 받고 하루에 만(萬) 번의

염불(念佛)을 하여 이렇게 20년(年) 동안 쉬지않았다

하루는 가족(家族)들에게 스님을 청(請)해 염불(念佛)하여 왕생(往生)을

도와달라고 부탁(付託)하게 하였다

스님들이 모여 얼마동안 염불(念佛)하고 있노라니 공중(空中)을 향(向)해 합장(合掌)하며

부처님과 보살(菩薩)이 이미 왕림(枉臨)하셨다 하고는자리로 돌아가 죽었다

찬(讚)

화엄합론(華嚴合論)에는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려 하는 보살(菩薩)은

일승대도(一乘大道)를 깨닫지 못한다하였으나

이 노인(老人)은 화엄(華嚴)의 지취(旨趣)를 얻었으면서

어찌하여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기를 바랬을까 ?

대개 화엄합론(華嚴合論)은 우선 일부(一部) 모양(模樣)에 집착(執著)한 범부(凡夫)를 위하여

그 집착(執著) 하는 견해(見解)를 파(破)했던 것으로

이는 사정토(事淨土)를 얻었고 이정토(理淨土)는 얻지 못했다

그런데 이 노인(老人)은 사(事)와 이(理)에 원통(圓通)하여 화장(華藏)과

연지(蓮池)가 하나이지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가 왕생(往生)을 구(求)했던 것은 의심(疑心)할 만한일이 아닌것이다

정토(淨土)를 닦는 자(者)는

화엄(華嚴)의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의지(依支)하고 합론(合論)은

참고(參考)로 하는것이 좋을듯하다

--------------------------------------------------------------------------------------------------------------------------------------------------------------------------------------------

●원자평(元子平)

당(唐) 원자평은 경구(京口) 관음사(觀音寺)에 우거(寓居)하며 염불(念佛)하였다

어느날 홀연(忽然)히 공중(空中)에서 음악(音樂) 소리를 듣고 서(西)쪽을 향(向)하여 앉아

죽었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며칠동안 끊이지 않았다

--------------------------------------------------------------------------------------------------------------------------------------------------------------------------------------------

●유선(庾銑)

양(梁)나라 유선(庾銑)은 신야(新野)사람이다

무제(武帝)가 불러 황문시랑(黃門待郞)을 삼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염불(念佛)에만 전념(專念)하였다

어느날 저녁 자칭(自稱) 원공(遠公)이라는 도인(道人)이 나타나 선(離)을

상행선생(上行先生)이라 부르고는 향(香)을 주고 가면서

4년후(年後)에 다시 오겠다고하였다

죽는날 공중(空中)에서 상행선생(上行先生)은

이미 안양(安養)에 태어났다하는 말이 들려왔다

--------------------------------------------------------------------------------------------------------------------------------------------------------------------------------------------

●송만(宋滿)

수(隋)나라 송만(宋滿)은 상주(常州)사람이다

콩을 헤아리면서 염불(念佛)하여 30석의 콩을 쌓았다

개황(開皇)8년<588> 9월 이것들을 스님들께 공양(供養)하고는 앉아서 갔다

사람들이 보니 하늘꽃과 기이(奇異)한 향기(香氣) 속에서

송만(宋滿)이 공중(空中)에 올라 서(西)쪽으로 가고 있었다

---------------------------------------------------------------------------------------------------------------------------------------------------------------------------------------------------------------------------------------------------------------------------------------------------------------------------------------------------------------------------------------

●분양노인(汾陽老人)

당(唐)나라 분양노인(汾陽老人)은 법인사(法忍寺)에서

빈방하나를 빌려 기숙(寄宿)하면서 주야(晝夜)로 염불(念佛)하였다

정관(貞觀) 5년<631> 목숨이 다하는 날

큰 광명(光明)이 두루 비치 는 가운데 서(西)쪽을 향(向)해 죽었다

사람들이 보니 연대(蓮臺)를 타고 있었다

---------------------------------------------------------------------------------------------------------------------------------------------------------------------------------------------------------------------------------------------------------------------------------------------------------------------------------------------------------------------------------------

●원자재(元子才)

당(唐)나라 원자재(元子才)는 윤주(潤州) 관음사(觀音寺)에 살면서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읽으며 염불(念佛)하였다

어느날 조그만 병(病)이 들었는데 공중(空中)에서 향기(香氣)와 음악(音樂) 소리가

들려오며 누가 거친 음악(音樂)이 사라지고 세밀(細密)한 음악(音樂)이 이어서 들려올때

군(君)은 반드시 가라.하는 소리를 듣고 염불(念佛)하며 죽었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며칠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거친 음악(音樂)과 세밀(細密)한 음악(音樂) ; 거친 음악이란 정과 북 따위의

타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음악세밀한 음악은 관현 악기로

내는 경쾌하고 말은 소리의 음악을 말한다▌



---------------------------------------------------------------------------------------------------------------------------------------------------------------------------------------------------------------------------------------------------------------------------------------------------------------------------------------------------------------------------------------

●오자장(吳子章)

원(元)나라 오자장(吳子章)은 소주(蘇州) 사람으로 대대(代代)로 의업(醫業)에 종사하였다

형인 자재(子才)와 함께 운옥화상(雲屋和尙)을 참예(參詣)하고 염불(念佛)을

정근(精勤)하여 온 집안이 불법(佛法)을 숭봉(崇奉)하였다

지정년간(至正年間)에 병(病) 없이 합장(合掌)하고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며 죽었다

---------------------------------------------------------------------------------------------------------------------------------------------------------------------------------------------------------------------------------------------------------------------------------------------------------------------------------------------------------------------------------------

●하담적(何曇迹)

원(元) 하담적(何曇迹) 은 나이 18세(歲)에 보살계(菩薩戒)를 수지(受持)하며 염불(念佛)하던 이다

어느날 사고(四鼓) 오전 두시경에 일어나 염불(念佛)을 하고 있노라니

어떤사람이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의

금상(金相)과 깃발과 꽃이 와서 맞이합니다하고 대답(對答)하고는 죽었다

---------------------------------------------------------------------------------------------------------------------------------------------------------------------------------------------------------------------------------------------------------------------------------------------------------------------------------------------------------------------------------------

●왕전(王闐)

송(宋) 왕전(王闐)은 사명(四明)사람으로 號를 무공수(無功叟)라고하였다

모든 선림(禪林)의 종지(宗旨)와 천태(天台)의 교의(敎義)에 통달(通達)하지 않은 것이 없었

고 정토자신록(淨土自信錄)을 저술(著述)하였다

만년(晩年)에는 염불(念佛)에 전심(專心)하며 앉아서 죽었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자욱

하였다 다비에 붙혀 콩만한 사리(舍利) 108낱을 얻었다

---------------------------------------------------------------------------------------------------------------------------------------------------------------------------------------------------------------------------------------------------------------------------------------------------------------------------------------------------------------------------------------

●범엄(范儼)

송(宋) 범엄(范儼)은 인화(仁和)사람이다

세상(世上)의 일에 무심(無心)하여 그의 아들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나

범엄(范儼)은 못본체하며 나는 잠시(暫時) 머물다가는 나그네 일뿐이다"하며 날마다

법화경(法華經)을 읽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念)하기에 마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날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육아(六牙)의 흰코끼리를 타고 금색(金色) 광명(光明)을

놓으며 범엄(范儼)에게 말하기를 내일 묘시(卯時)에 반드시 가라? 하시는것을

보고 다음날 저녁 불보살(佛菩薩)이 와서 맞이하자 자리에 앉아 합장(合掌)하고 갔다

---------------------------------------------------------------------------------------------------------------------------------------------------------------------------------------------------------------------------------------------------------------------------------------------------------------------------------------------------------------------------------------

●육원(陸沅)

송(宋) 육원(陸沅)은 도호(道號)를 성암거사(省菴居士)라 하고 명(明)의 개울가에 살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향(香)을 피우고 가부좌(跏趺坐)하고 앉아 눈으로 다른것을 보지 않고

먼저 게송(偈頌)을 옮기를 새벽에 일어나 손을 씻고 패엽(貝葉)을 펼치니

복(福)을 구(求)하지도 않고 재앙(災殃)도 바라지 않네

세상(世上) 인연(因緣) 끊어진곳 그것을 따라 끊어지나니

겁화(劫火)의 광명(光明) 속에서 한바탕 춤추네

하고는 그런 다음에 염불(念佛)을 하고 경(經)을 읽되 더디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아 마치 구슬을 꿰듯하였다

이렇게 매일(每日)법화경(法華經) 한번을 읽고 미타(彌陀) 만(萬)번을 부르면서

한결같이 서방(西方)을 염원(念願)하였다

나이 85세(歲) 나던 해 4월(月) 6일(日)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갔다

염습할 때 어디서 풍겨오는지 연꽃 향기(香氣)가 진동(振動)하였으나 가까이 가서 보니

입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손충(孫忠)

송(宋) 손충(孫忠)은 사명(四明)사람으로 젊어서부터

서방(西方)을 사모(思慕)하여

마을의 동(東)쪽에 암자(庵子)를 짓고 염불(念佛)하였다

나중에 병(病)이 들어 스님 백(百)명을 청(請)해 염불(念佛)하게 하더니

갑자기 허공(虛空)을

향(向)해 합장(合掌)하고 손으로 쌍인(印)을 짓고 미소(微笑)하며 죽었다

온 마을이 하늘 음악(音樂)과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점점(漸漸) 서(西)쪽을 향(向)하여 사라지는것을보았다

두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염불(念佛)하여 또한 앉아서 죽었다

---------------------------------------------------------------------------------------------------------------------------------------------------------------------------------------------------------------------------------------------------------------------------------------------------------------------------------------------------------------------------------------

●심전(沈銓)

송(宋)나라 심전(沈銓)은 전당(錢塘)사람이다

처(妻)<아내> 시(施)씨와 함께 정토(淨土)를 전심(專心)하여

평소의 모든 선행(善行)을 모두 서방(西方)에 회향(廻向)하였다

나중에 처(妻)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목숨을 마쳤는데 모두 화불(化佛)이

석장(錫杖)을 잡고 접인(接引)해 가는것을 감응(感應)하였다

---------------------------------------------------------------------------------------------------------------------------------------------------------------------------------------------------------------------------------------------------------------------------------------------------------------------------------------------------------------------------------------

●당세량(唐世良)

송(宋) 당세량(唐世良)은 회계(會稽)사람이다

계행(戒行)을 청정(淸淨)히 지키며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여 늙고 병(病)이 들었으면

서도 자리에 눕지 않고 아미타경(阿彌陀經)10만(萬)번을 읽었다

어느날 식구에게 부처님이 와서 나를 맞이 하신다 하고는 예배(禮拜)하고앉아서 죽었다

이(利) 스님이 그 때 도미산(道味山)에 머물고 있었는데 간밤 꿈에

서방(西方)의 기이(奇異)한 향기(香氣)와 깃발과 꽃과 하늘 음악(音樂)이 들려오는 가운데

공중(空中)에서 당세량(唐世良)은 이미 정토(淨土)에 태어났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계공(計公)

송(宋) 계공(計公)은 사명(四明) 도원(挑源)의 대장장이였다

나이 70세에 두눈을 실명(失明)했는데 그때 그 마을에 잠학유(昝學喩)가

벽과도(擘窠圖)를 인쇄(印刷)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염불(念佛)하기를 권장(勸獎)하였다

계공(計公)이 처음에 그림 한장을 받아 36만(萬)번의 염불(念佛)은 채웠고

염불(念佛)이 넉장의 그림에 이르러서는 두눈이 밝아졌다 이렇게

3년(年)동안 열일곱장의 염불(念佛)을 채웠다

어느날 숨이 끊어졌다가 반나절만에 다시 소생(甦生)하여 부처님 이

그림 여섯장을 나누어 잠학유(昝學喩) 에게 주게 하였다

그는 당초(當初)에 나를 인도(引導)해 준분이다

또한 그림 한장을 나누어 이이(李二)공에게 주게 하였다

그는 그림을 나누어 준분이다

그러니 그의 아들에게 가서 감사(感謝)의 인사(人事)를 드리게 하셨다 하고는

목욕(沐浴)하고 서(西)쪽을 향(向)해 영원(永遠)히 갔다

-------------------------------------------------------------------------------------------------------------------------------------------------------------------------------------------------------------------------------------------------------------------------------------------------------

●진 군장(陳君璋)

원(元)나라 진 군장(陳君璋) 은 황암(黃岩) 사람이다

성품(性品)이 신중(愼重)하고 과묵(寡黙)했으며 나이 40에 부인(婦人) 섭(葉)씨와 함께

법화경(法華經)을 읽으며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였다

60세(歲)에 큰 병(病)이 들더니 하루저녁에는

아들 경성(景星)에게 부축(副軸)하게 하여

앉고서는 내가 이젠 돌아가야겠다 하였다 아들이 어디로 가시렵니까?하고

물으니 숨을곳으로 간다하였다

그리고는 또 내가 죽으면 반드시 사문(沙門)의 다비법(茶毘法)을 따라야 한다하고는

합장(合掌)한채 나무(南無)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면서 갔다

-------------------------------------------------------------------------------------------------------------------------------------------------------------------------------------------------------------------------------------------------------------------------------------------------------

●장전(張詮)

진(晋)나라 장전(張詮)은 농부(農夫)였다 성품(性品)이 고상(高尙)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농사(農事)짓는 틈틈이 경(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벼슬을 주며 누차(屢次)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가난(家難)을 즐거워 했으며

심양(潯陽)의 태수(太守)로 천거(薦擧)했으나 웃으며 고인(古人)은 무릎을

펼만한 곳으로도 만족(滿足)하게 여겼다 어찌 뜻을 굽혀 가면서 녹(祿)을 구(求)해

영화(榮華)를 누리는 일이 있었겠는가 할뿐이었다

그리하여 여산(廬山)에 들어가 원공(遠公)의 연사(蓮社)에 의지(依支)하여

내전(內典)을 연구(硏究)하여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송(宋)나라 경평(景平) 원년(元年)<423> 병(病) 없이 서(西)쪽을 향(向)해 염불(念佛)하고

편안(便安)히 누워 죽었다

-------------------------------------------------------------------------------------------------------------------------------------------------------------------------------------------------------------------------------------------------------------------------------------------------------

●궐공칙(闕公則)

진(晋)나라 궐공칙(闕公則)은 여산(廬山)의 연사(蓮社)로 들어갔다

그가 죽은 후(後) 그의 도반(道伴)이 낙양(洛陽) 백마사(白馬寺)에서 그를 위해 밤중에

기제(忌祭)를 지내고 있노라니 갑자기 숲과 전각(殿閣)들이 금색(金色)으로

변(變)하면서 공중(空中)에서 나는 궐공칙(闕公則)이다 극락(極樂)에 태어나기를 바랬더니

지금 이미 왕생(往生)하였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찬(贊) 임종(臨終)에 상서(祥瑞)로운 일을 감응(感應)하는 경우(境遇)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죽은후(後)에 다른곳에서 금색(金色)을 나투며 왕생(往生)을 알려 온

사실(事實)은 매우 드문일이다

--------------------------------------------------------------------------------------------------------------------------------------------------------------------------------------------------------------------------------------------------------------------------------------------

●이지요(李知遙)

당(唐)나라 이지요(李知遙)는 정토(淨土)의 가르침을 숭봉(崇奉)하여 대중(大衆)을

이끌어 다섯차례의 염불회(念佛會)를 가졌다

후(後)에 병(病)이 들더니 갑자기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하고는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향로(香爐)를 들고 방을 나가 정례(頂禮)하였다

그리고서 공중(空中)에서 그대를 인도(引導)하여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케 하노니

그대는 이제 금교(金橋)에 오르라 하는 게(陽)를 듣고는 자리에 올라앉아죽었다

대중(大衆)이 모두 기이(奇異)한 향기(香氣)를 맡았다

-------------------------------------------------------------------------------------------------------------------------------------------------------------------------------------------------------------------------------------------------------------------------------------------------------

●고호상(高浩象)

양(梁) 고호상(高浩象)은 동평(東平)사람으로 문(門)을 닫아 걸고 정좌(正坐)하여 《

무량수경(無量壽經)만을 읽었다

일찍이 정중(定中)에서 자신(自身)이 못위에서 홍련화(紅蓮華)을 타고 있는데 처음에는

부처님을 보지 못했으나 연꽃 속에서 마음을 기울여 부처님께

예배(禮拜)하며 부처님의 얼굴을 생각했더니 광명(光明)이 먼곳에서 비춰오는것을 보았다

어느날 저녁 많은 보살(菩薩)이 와서 맞이하는것을 보고는 즉시(卽時)죽었다

찬(贊) 옛날 두스님이 연꽃이 피고 지는것을 생각하고는 나중에

동시(同時)에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한일이 있었다

상(象)의 몸이 홍련(紅蓮)을 탓다는것도

역시(亦是) 관상(觀想)이 정성(精誠)스러웠던 소치(召致)이리라

-------------------------------------------------------------------------------------------------------------------------------------------------------------------------------------------------------------------------------------------------------------------------------------------------------

●서육공(徐六公)

송(宋) 서육공(徐六公)이란 분은 가흥(嘉興)사람으로 농부(農夫)였다 부부(夫婦)가

나물만 먹으면서 40년 동안 염불(念佛)을 정근(精勤)하였다

미리 감실(龕室) 하나를 만들어 두었다가 임종(臨終)에 베옷과 짚신을 갈아 신고

감실(龕室)에 들어가 단정(端正)히 앉아 있더니 잠시(暫時) 후(後)에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아한다하고는 곧 죽었다

-------------------------------------------------------------------------------------------------------------------------------------------------------------------------------------------------------------------------------------------------------------------------------------------------------

●육준(陸俊)

송(宋) 육준(陸俊)은 전당(錢塘)사람이다

젊어서는 공문(公門)에 종사(從事)했으나 나이 들어서 이를 버리고

오로지 정토(淨土)만으로 업(業)을 삼았다

부처님을 대(對)하여 참회(懺悔)할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조아렸고

도우(道友)와 만나 정토(淨土)의 인연(因緣)을 말할 때는

겨우 열마디만 하면 슬피울며 감탄(感歎)하였다

임종에 원정율사(圓淨律師)에게 서방(西方)을 간청(懇請)하더니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십육관경(十六觀經)>을 읽다 상품(上品)에

이르러 원정율사(圓淨律師)가 이젠 가시오하니

성인(聖人)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잠깐만 기다리겠습니다. 하더니 잠시(暫時) 후(後)에 갑자기 일어나

죽상(竹床)으로 가서 서(西)쪽을 향(向)해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찬(讚)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말씀하시기를 아미타불(阿彌陀佛)에 대해 말하는것을 듣고

금방 눈물을 흘리는 자(者)는 모두 숙세(宿世)에 선근(善根)의 소치(召致)다 하였다

준(俊)이 슬피운것은 마음속에서 감동(感動)하여 얼굴에 나타난 것이니

그의 왕생(往生)은 너무나 당연(當然)한것이었다

요즘 희롱(戱弄)삼아 정토(淨土)를 말하는 자(者)는 어찌 옳을리가 있겠는가

-------------------------------------------------------------------------------------------------------------------------------------------------------------------------------------------------------------------------------------------------------------------------------------------------------

●황타철(黃打鐵)

송(宋) 황타철(黃打鐵)공(公)은 담주(澤州) 사람이다본시 군오(軍伍)를 지냈으나

쇠를 다루는 일로 생계(生計)를 삼았다

망치를 칠때마다 입에서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더니 하루는 병(病)없이

이웃 사람에게 이렇게 게송(偈頌)을 말하고는 갔다

딱딱!풍콩!

오랫동안 단련(鍛鍊)하여 무쇠가 되네 태평(太平)이 가까워 오니

나는 이제 서방(西方)으로 가네.

그 게송(偈頌)이 호남(湖南)지방(地方)에 널리퍼져 염불(念佛)하는 사람이 많게 되었다

찬(贊) 황타철(黃打鐵) 공은 그다지 남다른 재능(才能)도 없이

그저 입에서 염불을 끊이지 않았을뿐이었다

세상(世上)사람들은 그를 본받아 실행(實行)하려고는 않고 기이(奇異)하고

교묘(巧妙)한 것만을 찾으며

마침내 세월(歲月)을 허송(虛送)하고 만다

아 ! 이른바 쉽고<용이(容易)> 간단(簡單)한 길을 버리고

도리어 어려운길을 찾으려 하는짓이 아니겠는가

-------------------------------------------------------------------------------------------------------------------------------------------------------------------------------------------------------------------------------------------------------------------------------------------------------

●연화태공(運花太公)

대명(大明)의 연화태공(運花太公)이란 분은 월(越)나라사람이었다

성품(性品)이 순박(醇朴)하여 오직 밤낮으로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을뿐이었다

죽은 후 관(棺) 위에 홀연(忽然)히 연꽃 한송이가 피어났으므로

이웃 사람들이 경탄(驚歎)하여 연화태공(運花太公)이라 불렀다

-------------------------------------------------------------------------------------------------------------------------------------------------------------------------------------------------------------------------------------------------------------------------------------------------------

●화거사(華居士)

대명(大明)의 화거사(華居士)는 강천(江千) 사람이다

성품(性品)이 순박(醇朴)하여 사람들에게 아첨(阿諂)하는 법(法)이 없었다

중년(中年)에 가업(家業)을 자식들에게 전(傳)하고는 혼자 방한켠에 살면서

세상(世上)일에 관계(關係)하지 않고 오직 밤낮으로 염불(念佛)에만 전념(專念)할뿐이었다

나중에 목숨이 다하는 날 때가 이른것을 스스로 알고 옷을

갈아입고 이부자리를 정리(整理)하고 손수 의관(衣冠)을 단정(端正)히 하고는

단정(端正)히 앉아 식구들에게 고별(告別)하고 갔다

그의 아들이 미리 관(棺)을 만들어 두었다가 감실(龕室)로 바꾸게

되었는 데 이는 사문(沙門)의 법(法)을 따른 것이었다

감실(龕室)을 들어 옮기는날 구경꾼이 담을치듯 모여들어

원근(遠近)이 추모(追慕)해 마지 않았다

-------------------------------------------------------------------------------------------------------------------------------------------------------------------------------------------------------------------------------------------------------------------------------------------------------

총론(總論)

------------------------------------------------------------------------------------------------------------------------------------------------------------------------------------------------------------------------------------------------------------------------------------------------------

어떤 이가 정명(淨名)<유마거사(惟摩居士)>과 방(龐)거사는 어찌하여 왕생(往生)을

구(求)했다는 말을 들을 수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대가 스스로를 평가(評價)해 보라 만약 두사람 공(公)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왕생(往生)을 구(求)해야 하는 것은 굳이 논(論)할 필요(必要)가 없겠거니와

설사(設使) 다시 오신 금속여래(金粟如來 ; 정명(淨名)의 전신(前身)이라 한다)라 하더라도

다시 미타(彌陀)를 친견(親見)한다 하여 무슨 해로울것이 있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명(淨名)은 석가(釋迦)를 가까이 하지않았을것이

요 방(龐) 거사도 마조(馬祖)를 참예(參詣)하지 않았을것이다

또한 마음이 청정(淸淨)하면 국토(國土)도 청정(淸淨)하다 한것은

정명(淨名)<유마거사(惟摩居士)>의 말이 아닌가?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다 한것은 방(龐)거사의 말이 아닌가?

그대가 하루 아침에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밟는다면 반드시

어찌 자기(自己)의 마음이 본래 청정(淸淨)하기를 바라겠으며

어찌 자기(自己)의 생각이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기를 바라겠으며

어찌 두명의 공(公)이 일찍이 정토(淨土)에 있은적이 있기를

바라겠는가?하고 말할것이다 다시 무엇을 의심(疑心)하겠는가

-------------------------------------------------------------------------------------------------------------------------------------------------------------------------------------------------------------------------------------------------------------------------------------------------------

비구니(比丘尼)의

왕생(往生)

-------------------------------------------------------------------------------------------------------------------------------------------------------------------------------------------------------------------------------------------------------------------------------------------------------

●대명비구니(大明比丘尼)

수(隋)나라 대명비구니(大明比丘尼)는 방에 들어가 예념(禮念)할때마다

먼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입에 침향(沈香)을 머금었다

문제(文帝)의 왕후(王后)가 매우 가까이 하였다

죽는날 침향이 방에 가득하더니 잠시(暫時) 후(後)에 광명(光明)이 구름과 같이일며

은은히 서(西)쪽을 향(向)해 사라지는것을 온 대중(大衆)이 보았다

찬(贊)

어떤 비구(比丘)는 법화경(法華經)을 독송(讀誦)하여 후(後)에 영이(靈異)한 과보(果報)를

감응(感應)했고 또 어떤 두스님은 지장경(地藏經)을 독송(讀誦)하여 수특(殊特)한

예우(禮遇)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도 괴이(怪異)쩍게 여기지않는다

그러나 요즘 염불(念佛)하는 자(者)로서 과연(果然) 몇사람이나

대명(大明)비구니과 같이 하는 자(者)가있는가?

누구라도 이렇게만 염불(念佛)한다면 천(千)이면 천(千)사람 만(萬)이면

만(萬)사람 누구라도 왕생(往生)하지 못할자(者)가 없다

-------------------------------------------------------------------------------------------------------------------------------------------------------------------------------------------------------------------------------------------------------------------------------------------------------

●정진비구니(淨眞比丘尼)

당(唐)나라 정진비구니(淨眞比丘尼)는 장안(長安) 적선사(積善寺)에 살면서 누더기

를 걸치고 걸식(乞食)하며 금강경(金剛經) 10만(萬) 번을 독송(讀誦)하며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 하였다

어느날 제자(弟子)에게 다섯달 동안에 열번이나 부처님을 보았고

두번 보련화(寶蓮華) 속에서 동자(童子)가 뛰노는것을 보았다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하고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죽었다

상서(祥瑞)로운 광명(光明)이 암자(庵子)에 가득하였다

-------------------------------------------------------------------------------------------------------------------------------------------------------------------------------------------------------------------------------------------------------------------------------------------------------

●오성비구니(悟性比丘尼)

------------------------------------------------------------------------------------------------------------------------------------------------------------------------------------------------------------------------------------------------------------------------------------------------------

당(唐)나라 오성 비구니(悟性比丘尼)는 여산(廬山)에서 염불(念佛)하며

지극(至極)히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기를 발원(發願)하였다

어느날 홀연(忽然)히 공중(空中)에서 들려오는 음악(音樂) 소리를 듣고 곁에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중품(中品)에 왕생(往生)하게 되었다 함께 염불(念佛)정진(精進)하던

이들이 모두 연꽃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것을 보았다

너희들도 스스로 노력(勞力)하라하고는 갔다

찬(贊)

상품(上品)과 중품(中品)의 지위(地位)를 두 비구니(比丘尼)가 능(能)히 스스로

결정(決定)할수 있었던것은 무엇때문인가?

첫째는 안으로 스스로 실행(實行)했던 얕고 깊은 정도(程度)를 살펴보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밖으로 감응(感應)의 수승(殊勝)하고 열등(劣等)함을

살펴보았기 때문으로 괜한 말이 아니다

-------------------------------------------------------------------------------------------------------------------------------------------------------------------------------------------------------------------------------------------------------------------------------------------------------

●능봉비구니(能奉比丘尼)

송(宋)나라 능봉비구니(能奉比丘尼)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정업(淨業)만을 전수(專修)하였다

어느날 부처님의 광명(光明)이 몸에 비치고 공중(空中)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慰勞)하는 소리를 꿈꾸고 제자(弟子)들에게 나의 왕생(往生)할 때가 이르렀다

하더니 잠시(暫時) 후 능봉(能奉)이 큰 소리로 염불(念佛)하는 소리를 듣고 급(急)히

달려가보니 합장(合掌)하고 서(西)쪽을 향(向)하여 앉아서 갔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온방에 가득하고

음악(音樂)소리가 서(西)쪽으로 사라지고있었다

-------------------------------------------------------------------------------------------------------------------------------------------------------------------------------------------------------------------------------------------------------------------------------------------------------

●법장비구니(法藏比丘尼)

송(宋) 법장(法藏) 비구니(比丘尼)는 금능(金陸) 사람으로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에 뜻을 두었던 이다

밤에 불보살(佛菩薩)이 찾아오시고 광명(光明)이 절을 비치는것을 보고는 갑자기 죽었다

-----------------------------------------------------------------------------------------------------------------------------------------------------------------------------------------------------------------------------------------------------------------------------------------------

총론(總論)

------------------------------------------------------------------------------------------------------------------------------------------------------------------------------------------------------------------------------------------------------------------------------------------------------

부처님께서는 이모(姨母)가 출가(出家)하려 하시자 정법(正法)이

이로 말미암아 감손(減損)하게 될 것이라고 한탄(恨歎)하셨다

그러나 만약 여인(女人)으로서 출가(出家)한 자(者)가

모두 위의 다섯 비구니(比丘尼)만큼만 한다면

정법(正法)이 더욱 창성(昌盛)할 것이다

그러나 세태(世態)란 어쩔 수없는 것이어서 부처님의 예언(預言)이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아 ! 진정(眞正)으로 출가(出家)한 남자(男子)도 요 근래(近來)에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거든 하물며 여인(女人)이겠는가

나는 유감(遺憾)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

●수(隋)나라 황후(皇后)

수문제(隋文帝)의 황후(皇后)는 성(姓)은 독고(獨孤)씨로서

비록 왕궁(王宮)에살았으나 여자(女子)의 형질(形質)을 매우 싫어함이라

항상(恒常)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생각함이라

팔월(八月)갑자(甲子)에 수명(壽命)을 마침이라

때에 영안궁(永安宮) 북(北)쪽에서

가지가지 음악(音樂)이 자연(自然)진동(震動)하고 기이(奇異)향기(香氣)가 공중(空中)을

쫓아 도래(到來)하여 집안에 가득함이라

수문제(隋文帝)가 도제사나(闍提斯那)스님에게 질문(質問)하여

이것은 무슨 상서(祥瑞)로움인가

도제사나(闍提斯那)스님이 대답(對答)하여말하되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부처님께서 상주(常住)하시는데

호(號)를 아미타(阿彌陀)라하십니다

황후(皇后)는 지은 업(業)이 고결(高潔)하여

저나라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였읍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서(祥瑞)로움이 나타났을 뿐임니다

찬탄(讚嘆)하여말한다 궁중(宮中)의 귀총(貴寵)을 버리고

정토(淨土)를 뜻하여 왕생(往生)한이로서는

예전(預前)에는 위제희부인(韋提希婦人)이 있었고 지금은 이분을 보겠다

 위제희부인(韋提希婦人) 승묘신(勝妙身)이라 번역(翻譯)한다 마갈타국의

빈비사라(頻婆娑羅)왕(王)의 왕후(王后)이며 아사세왕(阿闍世王)의 어머니

--------------------------------------------------------------------------------------------------------------------------------------------------------------------------

●요파(姚婆)

당(唐)나라 요파(姚婆)는 범행파(范行婆)란 자(者)가

염불(念佛)을 권(勸)함을 인(因)하여 하여금 염불(念佛)을 하게되었다

후(後) 임종(臨終)에 부처님과 보살(菩薩)이 오시여 영접(迎接)함을 뵈옴이라

부처님에게 고(告)하여 말하되 아직 범행파(范行婆)와 더불어 고별(告別)하지못했습니다

청(請)하건데 부처님께서는 잠시(暫時)허공(虛空)가운데 머물러 주소서

범행파(范行婆)가 오자 고별(告別)하고 요파(姚婆)가 기립(起立)하여 화거(化去)함이라

-----찬탄(讚嘆)하여 말함이라 임종(臨終)에 다달아 범행파(范行婆)에게

고별(告別)한것은 근본(根本)을 등지지않은것이요

부처님께서 공중(空中)에 머물러 기다린것은 항상(恒常) 중생(衆生)의뜻을 따르신것이라

우뚝서서 서거(逝去)함도 기이(奇異)한일이라--------



--------------------------------------------------------------------------------------------------------------------------------------------------------------------------------------------------------

●온정문(溫靜文)의 처(妻)

당(唐) 온정문(溫靜文)의 처(妻)는 병주(幷州) 사람이다 오랫동안 병석(病席)에

서 누워지내자 온정문(溫靜文)이 권하여 염불(念佛)하게 하였다

1년만에 홀연(忽然)히 정토(淨土)를 보고 그의 남편(男便)에게 저는

이미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친견(親見)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가게 될 것입니다하고 부모(父母)님 에게는 지금 부처님을 따라

왕생(往生)하나이다 부디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 하여 후일(後日) 서방(西方)에서

만나 뵙게 되기를 바라나이다하고는 갔다

-------------------------------------------------------------------------------------------------------------------------------------------------------------------------------------------------------------------------------------------------------------------------------------------------------

●호장노파(胡長老婆)

송(宋)나라의 이(李)씨 호장노파(胡長老婆)는 상우(上虞)사람이다

남편(男便)이 죽은 후 밤낮으로 큰소리로 염불(念佛)하고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독송(讀誦) 한지 무려 10여년(餘年)이나 되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비단(緋緞) 보자기로 덮어주면서 할머니는

15일(日) 자시(子時)에 왕생(往生)할 것입니다하였다

----스님께서는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할머니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對答)하였다

노파(老婆)는 모든 친지(親知)들과 고별(告別)하고 때가 되자 기이(奇異)한

광명(光明) 속에 단정(端正)히 앉아서 갔다

7일(日)만에 화장(火葬)하니 치아(齒牙)는 백옥(白玉)과 같고 혀는 홍련(紅蓮)과 같고

눈동자는 포도(葡萄)와 같으면서 모두 정밀(精密)하고 단단하여

깨뜨릴수 없었다 사리(舍利)는 헬수없을 정도(程度)였다

다음날 화장(火葬)한 곳에 꽃한송이가 피었는데 마치 흰 양귀비와 같았다

찬(贊)

몸의 여러 기관(器官)은 부서지지 않았고 사리(舍利)는 셀수없을 정도(程度)였다

하니 세상(世上)에서 흔히 여자(女子)는 불결(不潔)한 몸을 지녔다는 말이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하지 않은가

-------------------------------------------------------------------------------------------------------------------------------------------------------------------------------------------------------------------------------------------------------------------------------------------------------

●정씨(鄭氏)

송(宋)의 정씨(鄭氏)는 전당(錢塘)사람이다 날마다 관음경(觀音經)을 독송(讀誦)하고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병(病)중에서 목욕(沐浴)을 하고는 서(西)쪽을 향(向)해 앉아 가족들에게

경쇠 소리가 들리느냐? 정토(淨土)의 여러 성인(聖人)들이 우선 오셨다 하더니

얼마 후에 합장(合掌)하고 매우 기뻐하며 불보살(佛菩薩)님이 오셨다 관음보살(觀音菩薩)은

손에 금대(金臺)를 들고 계시고 아미타(阿彌陀)부처님여래(如來)는

나를 이끌어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 하고는 즉시(卽時) 죽었다

-------------------------------------------------------------------------------------------------------------------------------------------------------------------------------------------------------------------------------------------------------------------------------------------------------



●진씨노파(陳氏老婆)

송(宋) 진씨노파(陳氏老婆)는 전당(錢塘) 사람이다

영지율사(靈芝律師)에게서 보살계(菩薩戒)를 받고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면서

하루에 천배(千拜)의 절을 하였다

어떤 때는 경상(經床) 위에 사리(舍利)가 흩어진 적도 있었다

임종(臨終)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곁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채 반 시각(時刻)도 안되어서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

●황씨(黃氏)

송(宋) 황씨(黃氏)는 사명(四明) 사람이다

일찍 남편(男便)을 잃고 친정(親庭)에 돌아와 정업(淨業)을 정수(正修)하였다

임종(臨終)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인(印)을 맺고는

천천히 걷다 기립(起立)하여 우뚝서서 죽었다

가족들이 땅에 재를 뿌리고 왕생(往生)한 곳을 시험(試驗)했더니

연화(蓮華) 한송이가 재속에서 피어났다

찬(贊) 재를 뿌렸다는 이야기는 알수 없는일이지만

그가 부처님이 오셔서 맞이하는것을 보았고

결인(結印)을 맺고 서서 갔다는 사실(事實)로써 연품(蓮品)에 올랐다는것은

의심(疑心)할 여지(餘地)가 없다

-------------------------------------------------------------------------------------------------------------------------------------------------------------------------------------------------------------------------------------------------------------------------------------------------------

●왕씨부인(王氏婦人)

송(宋)나라 형왕(荊王)의 부인(婦人) 왕씨(王氏)는 정업(淨業)을 전수(專修)하여

밤낮을 잊을 지경(地境)이었다

곁에서 모시는 자(者)들이 그를 본받지 않는이가 없었으나 오직 한명의첩(妾)만이

게을러 부인(婦人)이 나무라자 마침내 크게 깨닫고

정진(精進)하더니 갑자기 병(病) 없이 죽었다

다른 첩(妾)의 꿈에 나타나 부인(婦人)의 가르침을 입어

이미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하였소"하고 말했으나 형왕부인(荊王婦人)은 믿지 않았다

얼마후 부인(婦人)의 꿈에 그 첩(妾)과 함께 보배의 연못을 여행(旅行)하게 되었다

어떤 꽃을 보니 하늘옷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양걸(楊傑)이라고 적혀있었다

어떤 꽃에는 조복(朝服)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마우(馬玗) 라고적혀있었다

다시 금연화대(金蓮華臺)를 바라보니 광명(光明)이 휘황(輝煌)하였다

첩(妾)이 이곳을 가리키며 부인(婦人)께서 왕생(往生)하여태어날 곳입니다하였다

꿈에서 깨어나서는 더욱 정진(精進)에 힘썼다

81세(歲)나던 생일(生日)날 새벽에 촛불을 들고 향(香)을 피운 채

관음각 (觀音閣)을 바라보며 서있더니

친지(親知)들이 막차림새를 갖춰 헌수(獻壽)하려 하자 이미 기립(起立)하여 서서 죽었다

찬(贊)

여기까지 여인(女人)으로 서서 죽은 자(者)가 세 사람이나 있었다

금대(金臺)가 휘황(輝煌)했다는 것은 상품(上品)임을 알수 있다

누가 규각(閨閣)에는 그러한사람이 없다 하던가 !

-------------------------------------------------------------------------------------------------------------------------------------------------------------------------------------------------------------------------------------------------------------------------------------------------------

●풍씨부인(馮氏婦人)

송(宋)나라 광평군(廣平那)의 부인(婦人) 풍씨(馮氏)는 어려서부터 병(病)치레가 잦았다

자수심선사(慈受深禪師)로부터 재계(齋戒)하여염불(念佛)하라는 가르침을 받고는

깊이 믿고 힘써 행(行)하여 10년(年) 동안을 게을리 하지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世上)을 싫어하여 사람들이 괴이쩍게 여기니

---청정(淸淨)한 세계(世界)에서 잘못되어 이곳에 왔다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인연(因緣)이 다하면

서방정토(西方淨土)로 돌아갈것이다 무엇이 괴이(怪異)할게 있겠는가"하였다

임종(臨終)에 기절(氣絶)했다가 다시 소생(蘇生)하여 가족(家族)들에게

나는 이미 정토(淨土)로 돌아갔다.

부처님의 세계(世界)를보니 화엄(華嚴)이나 십육관경(十六觀經)에서 말씀하신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하고는 영원(永遠)히 갔다 3일(日)후(後)에 시체(屍體)를 들어옮기니

생시(生時)와 같았고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진동(振動)하였다

-------------------------------------------------------------------------------------------------------------------------------------------------------------------------------------------------------------------------------------------------------------------------------------------------------

●왕씨(王氏)의 딸

송(宋)나라 길안(吉安)의 왕씨(王氏) 딸은 미타(彌陀)금강(金剛)관음(觀音) 등

여러가지 경전(經典)을 독송(讀誦)하면서 염불(念佛)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찾았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이미 염습을 했는데도 더러운 피가 흘러나왔다

딸이 만약 제가 효성(孝誠)스러웠다면 더러운 냄새가 나지 마소서"하고

발원(發願)하니 이내 피가 멎었다

아버지가 후실(後室)을 들이자 함께 정업(淨業)을 닦았다

나중에 병(病)이 들어 스님에게 정토관법(淨土觀法)을 설(說)해 줄것을

간청(懇請)하고는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편안(便安)히 누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손에 들고있던

깃발을 잡고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땅에 재를 뿌리고 태어난 곳을 시험(試驗)했더니

재속에서 연꽃 몇송이가 피어났다

-------------------------------------------------------------------------------------------------------------------------------------------------------------------------------------------------------------------------------------------------------------------------------------------------------

●주씨(周氏)

송(宋)나라 주씨(周氏) 묘총(妙聰)은 주원경(周元聊)의 딸이다

그의 어머니가 연화대(蓮華臺)에 왕생(往生)한 상서(祥瑞)를 감응(感應)하고부터

독실(篤實)히 염불(念佛)에 뜻을 두며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하기를 바랬다

병(病)중에 스님을 청(請)하여 예참(禮懺)을 행(行)하고는 자신(自身)이 새옷을 갈아 입고

부처님의 누각(樓閣) 위에서 예(禮)를 드리고 염불(念佛)하는것을 보고는 식구들에게

부지런히 정업(淨業)을 닦으셔요 서방(西方)에서 기다리겠습니다하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서(西)쪽을 향(向)해 죽었다

-------------------------------------------------------------------------------------------------------------------------------------------------------------------------------------------------------------------------------------------------------------------------------------------------------

●주행노파(周行老婆)

송(宋)나라 주행노파(周行老婆)는 태평주(太平州)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염불(念佛)하여 전일(專一)한 마음을 조금도 바꾼적이 없었다

어느날 저녁 호궤합장(胡跪合掌)하고 염불(念佛)하며 평안(平安)히 갔다

이웃 사람들이 보니 수십명의 스님들이 주행노파(周行老婆)를 인도하여

허공(虛空)에 올라 서(西)쪽을 향(向)해 가고 있었다

-------------------------------------------------------------------------------------------------------------------------------------------------------------------------------------------------------------------------------------------------------------------------------------------------------

●육씨(陸씨)의인(宜人)

송(宋)나라 의인(宜人) 육씨(陸氏)는 전당(錢塘)사람으로 조청(朝請)왕여(王璵)의 처(妻)다

법화경(法華經)을 독송(讀誦)하며 서방정토(西方淨土)에 독실(篤實)히 뜻을 두어

무릇 30년(年)동안

하루에 예참(禮懺) 한번에 염불(念佛) 만(萬)번을 불렀다

어느날 경미(輕微)한 병(病)을 앓다 갑자기 천둥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놀라는 속에 서(西)쪽을 향해 단정(端正)히 앉아 두손을 결인(結印)하고 갔다

찬(贊)

결인(結印)하고간 경우(境遇)는 비단 스님들에게 이러한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인(女人)에게서도 누차(屢次)볼수 있었다

모두 마음이 산란(散亂)하지 않고 몸이게으르지 않았던 상서(祥瑞)로운 영험(靈驗)이었다

아! 이렇게 매일(每日)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예참(禮懺)한번에

염불(念佛) 만(萬)번을 30년(年)동안 계속(繼續)할수있는 정성(精誠)을

본받는 여인(女人)이 있다면

나는 그가 결정(決定)코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往生)하리라는 보장을 할수있다

-------------------------------------------------------------------------------------------------------------------------------------------------------------------------------------------------------------------------------------------------------------------------------------------------------

●공씨(龔氏)

송(宋)나라 전당(錢塘)의 공씨(龔氏)는 밤낮으로 염불(念佛)하며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독송(讀誦)하였다

나중에 병(病)이들어 형(亨) 율사(律師)를 청(請)하여 가르침을 받다

미처 법문(法門)이 채끝나기도 전에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노첩(老妾)인 우(于)씨도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했는데 꿈에

공씨(龔氏)가 나는 이미 정토(淨土)에 태어났네자네는 7일후(日後)에

왕생(往生)할것이네하였다

그때가 되어갔다

-------------------------------------------------------------------------------------------------------------------------------------------------------------------------------------------------------------------------------------------------------------------------------------------------------

●주씨(朱氏)

송(宋)나라 잡천의 주씨(朱氏)는 30년(年)동안 염불(念佛)했던 이다

갑자기 40일(日) 동안 음식(飮食)을 끊고 오직 물만 마시며 염불(念佛)하더니

꿈에 스님 세분이 각각 연화(蓮華)를 들고 우리가 먼저 너를 위해

이 연꽃을 심었다 이제는 왕생(往生)하여라하였다

꿈을깨어 스님을 청(請)해 조념(助念)하게 하고는 단정(端正)히 앉아 갔다

-------------------------------------------------------------------------------------------------------------------------------------------------------------------------------------------------------------------------------------------------------------------------------------------------------

●항씨(項氏)

송(宋)나라 항씨(項氏)는 이름이 묘지(妙智)로서 운현(鄖縣)사람이다

남편(男便)을 잃고 홀로살다 두딸을 다 비구니(比丘尼)가 되게 하고 자신(自身)은

염불(念佛)로 날을보냈다

하루는 갑자기 나는 앉아서 죽고자 하는데

관(棺)을 만드는 것은 잘못일까?하고 말했다

딸이 부처님도 금관(金棺)을 사용(使用)하셨습니다

상관(相關)없을것입니다하니 매우 기뻐하였다

잠시(暫時) 후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한 가운데

서(西)쪽을 향(向)해 결인(結印)하고 미소(微笑)하며 갔다

-------------------------------------------------------------------------------------------------------------------------------------------------------------------------------------------------------------------------------------------------------------------------------------------------------

●배씨(裵氏)의 딸

송(宋)나라 분양(汾陽)의 배씨(裵氏) 딸은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던 이다

죽는날 불을 찾아 향(香)을 피우고는 부처님이 연화대(蓮華臺)를 가지고

나를 맞이하신다 나는 반드시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往生)할 것이다하더니

잠시후(暫時後) 하늘꽃이 날아 떨어지는 가운데 편안(便安)히 앉아 죽었다

-------------------------------------------------------------------------------------------------------------------------------------------------------------------------------------------------------------------------------------------------------------------------------------------------------

●심씨(沈氏)

송(宋)나라 심씨(沈氏)는 자계(慈溪)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채식(菜食)만 하며 염불(念佛)하더니 장(章)씨에게 결혼(結婚)한

후(後)에도 변(變)치 않고 쌀과 돈을 보시(布施)하여 많은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구제(救濟)하였다

나중에 조그만 병(病)을 앓았으나 염불(念佛)에 더욱 전념(專念)하더니

홀연(忽然)히 불보살(佛菩薩)과 모든 하늘성인(聖人)들이 널리 눈앞에 나타나고

등불 천개(千個)가 겹겹한것이 마치 무지개다리와

같은 형상(形狀)을 한것을 보고 그날 편안(便安)히 갔다

-------------------------------------------------------------------------------------------------------------------------------------------------------------------------------------------------------------------------------------------------------------------------------------------------------

●손씨(孫氏)

송(宋)나라 사명(四明)의 손씨(孫氏)는30年동안 혼자몸으로살면서

염불(念佛)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루는 경미(輕微)한 병(病)을 앓았는데 꿈에 스님 여덟분이

행참궁(行懺宮)을 둘러싸고 있는데 자신(自身)은 비단(緋緞)옷을 입고 스님을 따라 가고있었다

꿈에서 깨어나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스님을 청(請)해

예참(禮懺)을 행(行)하고서 대중(大衆) 앞에 단정(端正)히 앉아 경(經)을 읽다 마음이

지극(至極)히 청정(淸淨) 한 지경(地境)에 와서 왼손을 결인(結印)하고 갔다

원근(遠近)에서 모두 공중(空中)에서 음악(音樂) 소리가 들려오는것을 들었다

------------------------------------------------------------------------------------------------------------------------------------------------------------------------------------------------------------------------------------------------------------------------------------------------

●누씨(樓氏)

송(宋) 누씨(樓氏) 혜정(慧靜)은 사부(寺簿)인 주원경(周元聊)에게 출가(出家)하였다

일찍이 전등록(傳燈錄)을 읽다 깨달은곳이 있었으나

더욱 정업(淨業)을 진정(眞正)한 수행(修行)으로

여기고 염불(念佛)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만년(晩年)에 병(病)을 앓다 홀연(忽然)히 붉은 연화대(蓮華臺)에

화불(化佛)이 무수(無數)하고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한것을 보고 식구들에게

빨리 염불(念佛)하게 하고는 잠시후(暫時後)에 갔다

------------------------------------------------------------------------------------------------------------------------------------------------------------------------------------------------------------------------------------------------------------------------------------------------

●진씨(秦氏)

송(宋)나라 진씨(秦氏) 정견(淨堅)은 송강(松江)에 살았다

여자(女子)가 된것을 싫어하여 남편(男便)과 따로 살면서 청정(淸淨)히 재계(齋戒)하였다

화엄(華嚴)법화(法華)광명(光明)반야(般若)등(等)의 경전(經典)을 읽으며 시간(時間)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었으며 아침저녁으로 미타참(彌陀懺)을 닦고 부처님께 천배(千拜)의 절을 하였다

나중에 광명(光明)이 방을 비추는 가운데 서(西)쪽을 향(向)하여 편안(便安)히 앉아 죽었다

------------------------------------------------------------------------------------------------------------------------------------------------------------------------------------------------------------------------------------------------------------------------------------------------

●종노파(鍾老婆)

송(宋)나라 가화(嘉未)의 종노파(鍾老婆)는 20년(年)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독송(讀誦)하며 염불(念佛)하였다

하루는 자식에게 큰 백련화(白蓮華)가 무수(無數)하고 많은 성인(聖人)들이

이곳에 계시는것을 보았다"하고는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

●손씨(孫氏)

송(宋) 전당(錢塘)의 손씨(孫氏)는 젊어서부터 염불(念佛)하며 주문(呪文)을 지녔던분이다

병(病)이 들자 청조율사(淸照律師)를 청(請)하였다 손씨(孫氏)가 오래 병(病)에 시달리다 보니

이 세상(世上)이 싫습니다 원(願)하노니 서방(西方)에 왕생(往生)하게 하소서하니 스님이

그를 위해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인연(因緣)을 말하자 매우 기뻐 하였다

밤이되어 꿈에 어떤스님이 약(藥)한잔을 가져와 먹게하니

땀이 비오듯 하고서는 몸과 마음이 개운하였다

3일후(日後)에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가섭존자(迦葉尊者)가 이곳에 오셨다

멋진 금연화좌(金蓮華座)로구나 !하고는 눈을 감고 결인(結印)하고는 죽었다

------------------------------------------------------------------------------------------------------------------------------------------------------------------------------------------------------------------------------------------------------------------------------------------------

●양씨(梁氏)

송(宋)나라 양씨(梁氏)는 분양(汾陽)에 살았다

두눈이 모두 멀었는데 어떤 스님이 염불(念佛)할 것을

권(勸)한 이후(以後)로 3년(年)만에 멀었던 두눈을 떳다

나중에 불보살(佛菩薩)이 깃발과 일산(日傘)을 가지고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는 그날 목숨이 다하였다

------------------------------------------------------------------------------------------------------------------------------------------------------------------------------------------------------------------------------------------------------------------------------------------------

●황노파(黃老婆)

송(宋)나라 조산(湖山)의 황노파(黃老婆)는 금강경(金剛經)과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며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였다

갑자기 이질을 앓게되어 물만 마시고 일체음식(一切飮食)을 끊었다

이웃 암자(庵子)의 선수(善修)스님이라는 분의 꿈에 노파(老婆)가 와서

이젠 서방(西方)으로 가야 겠어요하더니

이틀후(後)에 서(西)쪽을 향(向)해 염불(念佛)하며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붉은노을이 노파(老婆)의 집을 덮고 있는것을 원근(遠近)에서 모두 보았다

------------------------------------------------------------------------------------------------------------------------------------------------------------------------------------------------------------------------------------------------------------------------------------------------

●진씨(陳氏)

송(宋)나라 광평(廣平)의 진씨(陳氏)는머리를깎고 출가(出家)한 스님의 차림새를 하고서

아침저녁으로 염불(念佛)했으므로 사람들이 도자(道者)라고불렀다

나중에 병(病)이 들어 스님과 신도(信徒)들이 모여 이틀동안 염불(念佛)하는 가운데

홀연(忽然)히 합장(合掌)하고 편안(便安)히 죽었다

------------------------------------------------------------------------------------------------------------------------------------------------------------------------------------------------------------------------------------------------------------------------------------------------

●최노파(崔老婆)

송(宋) 동평(東平) 양(梁)씨의 유모(乳母)였던 최노파(崔老婆)는 치주(緇州)사람이다

평생(平生) 채식(菜食)만 하였고 매우 순박(醇朴)하여 남과 시비(是非)를 다툴줄 몰랐다

주모(主母)인 조(晁)씨는 선학(禪學)에 마음을 쏟고 있었으나

최노파(崔老婆)는 조석(朝夕)으로 곁에서

그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만을 일심(一心)으로 부를뿐이었다

염주(念珠)를 갖지 않았으므로 몇천만(千萬)번이나 불렀는지도 알수 없었다

나이 72세(歲)에 병(病)이 들어 소화(消化)를 시키지 못하고 설사만하는

상태(狀態)에 서도 지념(持念)은 더욱 돈독(敦篤)하였다

잠시(暫時) 병(病)이 멈추자 이렇게 노래를 지어 끊임없이 불렀다

-------서방(西方)의 한길 수행(修行)하기 수월하여

위에는 고개도 없고 아래는 구덩이도 없네

갈때는 신이나 버선도 필요(必要)없어

걷기만 하면 연꽃이 걸음마다 피네------

누가 누구의 노래인가 하고 물으니 내가 지었어 !하였다 할머니는 언제 가시려오?하니

신시(申時)에 갈거야하였다 과연(果然)그 시각(時刻)에 갔다

스님의 법(法)을 따라 화장(火葬)했더니

혀만은 타지않고 연화(蓮華)와 같은 형상(形狀)을 하고있었다

------------------------------------------------------------------------------------------------------------------------------------------------------------------------------------------------------------------------------------------------------------------------------------------------

●오씨(吳氏)의 시비(侍婢)

송(宋)나라 현군(縣郡)인 오씨(吳氏)는 재계(齋戒)를 청정(淸淨)히 하던 이였다

시비(侍婢)가 있었는데 역시(亦是) 염불(念佛)을 정진(精進)하였다

어느날 문득 발밑에서 금연화(金蓮華) 세송이를 발견(發見)하였다

며칠 후(後)에는 무릎에서 보았고 또 며칠 후(後)에는 몸에서 보았으며

또 며칠 후(後)에는 얼굴에서 보았다

가운데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시고 좌우(左右)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계셨다

또한 서방극락(西方極樂)의 당전(堂殿)이나 국토(國土)를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환하게 보았다

이렇게 3년(年)동안 늘 분명(分明)히 눈앞에 있었다

나중에 갑자기 병(病)이 들더니 스스로 이젠 가야겠어 !하고는 죽었다

찬(贊)

오씨(吳氏)의 시비(侍婢)가 과연(果然) 이렇게 때때로 부처님을 친견(親見)할수 있었을까?

관력(觀力)과 정진(精進)이라면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마(魔)와 부처를 엄격(嚴格)히 구별(區別)할수 있어야 한다

사(邪)와 정(正)은 확실(確實)히 다른것이다

여인(女人)이 이러한 경우(境遇)를 보면 반드시 눈밝은 자(者)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

●정씨(鄭氏)

원(元) 정씨(鄭氏) 정안(淨安)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염불(念佛)하는

날을 헛되이 보낸적이 없었다

병(病)을 앓다가 공중(空中)에서 네가 갈날은 정(定)해져 있다 태만(怠慢)하지 말라하는

소리를 들었고 또한 아미타(阿彌陀)부처님 몸의 금색(金色)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즉시(卽時)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서(西)쪽을 향(向)하여 단정(端正)히 앉아

그의 출가(出家)한 아들인 의수(義修)스님을 불러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읽게하고는 문득 죽었다

그의 딸의 꿈에 어머니가 나는 이미 서방정토(西方淨土)에 태어났다

수(修)스님에게도 알려라하였다

------------------------------------------------------------------------------------------------------------------------------------------------------------------------------------------------------------------------------------------------------------------------------------------------

●주노파(周老婆)

원(元)나라 운현(鄖縣) 보당(寶幢) 시장터의 주노파(周老婆)는 서방(西方)정토(淨土)를 정수(正修)

하여 새해가 되면 일체(一切)말을 하지 않고 밤낮으로 앉아 있기만 하다가

그달이 넘어가서야 그만 두었다

여름에는 차(茶)를 보시(布施)하며 이런일을 오랫동안 거르지 않았다

어느날 저녁 큰 연(蓮)꽃 잎이 온 시장(市場)을 덮었는데 자신(自身)이 염주(念珠)를

들고 그 잎위를 행도(行道)하는 꿈을 꾸었다

얼마후에 경미(輕微)한 병(病)을 앓았는데 이웃사람이 밤에보니 깃발

과 보배로 된 일산(日傘)이 그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명(黎明)에 노파(老婆)는 이미 합장(合掌)하고 염불(念佛)하며 갔다

------------------------------------------------------------------------------------------------------------------------------------------------------------------------------------------------------------------------------------------------------------------------------------------------

●설씨(薛氏)

대명(大明)의 설씨(薛氏)는 무당(武塘) 세족(世族)의 딸이었다

태어날때 어머니가 장경성(長康星)<금성(金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꾸었다

나중에 주(周)씨에게 출가(出家)하여 아들 다섯을두고 과부가 되었다

수절(守節)할것을 스스로 서원(誓願)하고 관음보살(觀音菩薩)에게 공양(供養)하니

향(香) 연기(煙氣)가 연꽃과 같이 얽혔다

정업(淨業)에 전심(專心)하고 보시(布施)하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했으며

15년(年)동안을 하루 같이 염불(念佛)하였다

만력(萬歷) 정해(丁亥) <1587> 5월(月)에 병(病)이 들어 의사(醫師)가

우유죽(牛乳粥) 을 바쳤으나 한사코 거절(拒絶)하며 결국 밥알마저 끊고 약(藥)도 물리쳤다

9월(月) 6일(日)에 스님을 모셔다 예참(禮懺)하게 하니 나흘이면 족(足)하다

나의 일은 끝났다하고는 서(西)쪽으로 아미타상(阿彌陀像)을 향(向)하여 밤낮으로 염불(念佛)하였다

그리고는 아들 익찬(翊贊)에게 부녀자(婦女子)들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부탁(付託)하였다

9월(月) 9일(日) 깨끗한 옷을골라 깨끗한가를 확인(確認)하고 향수(香水)를 선상(禪床)에뿌렸다

다음날 아침 물을 떠서 손을 씻고 감로진언(甘露眞言)을 외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지공(誌公)모자를 썼다

그리고서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아 찬불게(讚佛偈)를 염(念)하고 삼귀의(三歸依)

를 부르고 염주(念珠)를 돌리며 염불(念佛) 108번을 하였다

정오(正午)가 되어 가부좌(跏趺坐)하고 앉아 결인(結印)하고 갔다

표정(表情)이 평화(平和)스러워 생존시(生存時)에 비교(比較)해 더욱 밝아보였다

연꽃 향기(香氣)가 온방에 가득한것을 곁에 있던 자(者)들이 모두 맡을수 있었다

아들들이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감실(龕室)에 모실때 구경하던

수천(數千) 명의 사람들이 환희정례(歡喜頂禮)하였다

그 밖에 자세(仔細)한것은 본전(本傳)에 적혀있다

찬(讚)

어머니가 유명(遺命)으로 감실(龕室)을 마련하게 하니 관곽(棺槨)을 치웠고

귀신(鬼神)을 맞이하지 않았고 지전(紙錢)을 사르지 않았고

짐승을 죽여 제사(祭祀)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아들들은 모든것을 어머니의 뜻에 따르고 위반(違反)하지 않았다

내가 들으니 옛날 임종(臨終)에 앉아서 죽은 자(者)가 있었다 한다

자식 이 전통적(傳統的)인 도의(道義)에 어긋날까 두려워하여 아비의 발을

잡아당겨 펴려하였다 그랬더니 갑자기 아비가 팔을 뻗어 자식을

때렸다 자식은 두려워 아버지를 도와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했다고한다

지금 설씨(薛氏)의 아들을 보면 어떠한가?

전(前)에 어머니가 남은 생(生)을 위해 내가와서 계(戒)를 설(說)해 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그때 마침 늦어질일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때가 되었다

기다릴수없다하고는 눈을 감으니 사람들이 무척 안타깝게 여겼던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배에서 내리기 전에 갈마(羯磨)를 이미 마친줄을 어찌 알았으랴

아 ! 모든 상선인(上善人)은 의례(依例)히 한곳에 모이게 마련이다

설씨(薛氏) 모자(母子)인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 갈마(羯磨) ; 소작(所作) 변사작법(辯事作法)이라 번역(翻譯)한다

수계(受戒) 참회(懺悔)할 때의 일종의 의식(儀式)상 의 작법(作法)을 말함



------------------------------------------------------------------------------------------------------------------------------------------------------------------------------------------------------------------------------------------------------------------------------------------------

●허써(許氏)며느리

대명(大明)의 허씨(許氏) 며느리는 항군(抗郡)사람이다

평소 공손(恭遜)하고 진실(眞實)하여 오직 염불(念佛)하는 것으로

일과(日課)를 삼았다 묵을 때 식구들을 불러 고별(告別)하고는 깨끗한 옷을 입고

단정(端正)히 앉아 손수 천목백화(天木百花) 비녀를 찌고는 편안(便安)히 갔다

------------------------------------------------------------------------------------------------------------------------------------------------------------------------------------------------------------------------------------------------------------------------------------------------

총론(總論)

------------------------------------------------------------------------------------------------------------------------------------------------------------------------------------------------------------------------------------------------------------------------------------------------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는 실제(實際)로는 여인(女人)이 없다

여자(女子)가 이미 이곳에 왕생(往生)

하게 되면 모두 대장부(大丈夫)의 모습(模襲)을 갖추게 된다

요즘 구품도(九品圖)를 그리면서 여자(女子)의 모습(模襲)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우선 그 본인(本因)을 그대로 두어 누구라도 왕생(往生)할수 있음을

표현(表現)하려 했던것 일것이다

청정(淸淨)한 세계(世界)에는 남자(男子)의 모습(模襲)도 찾을수 없거든

하물며 여자(女子)의 모습(模襲)이랴

그런데 여자(女子)에게는 다시 세 가지의 문제점(問題點)이 있다❶ 그의 부모(父母)

와 같이 시아버지나 시어머니에게 효순(孝順)하지 못하는것

❷그의 자손(子孫)과 같이 비복(婢僕)을 부리지 못하는 것

➌보시(布施)할 줄은 알면서 탐심(貪心)은 쉴줄 모르거나 남자(男子)의 몸은 부러워하면서

여자(女子)의습기를 고치려 들지 않거나 절에는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스님들은

공경(恭敬)할줄 알면서 자기(自己) 가족(家族)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것 이것이 세가지다

이 세가지에 분명(分明)하면 비록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더라도 그대로 비구(比丘)다

어찌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지 못할까를 걱정하랴

------------------------------------------------------------------------------------------------------------------------------------------------------------------------------------------------------------------------------------------------------------------------------------------------

악인(惡人)의 왕생(往生)

------------------------------------------------------------------------------------------------------------------------------------------------------------------------------------------------------------------------------------------------------------------------------------------------

●장선화(張善和)

당(唐)나라 장선화는 소잡는 직업(職業)을 가졌던 자(者)다

임종(臨終)에 소떼들이 사람 말을 하며 목숨을 보상하라고

아우성 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 처(妻)를 불러 속(速)히 스님을 불러

나를 위해 참회(懺悔)하게 하라하였다

스님이 와서 관경(觀經)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임종(臨終)에 악상(惡相)이 나타나는 자(者)라도 지극(至極)한 마음으로 염불(念佛)하면

왕생(往生)할수있다라고요 하고 깨우쳐 주었다

그러자 장선화(張善和)가 지옥(地獄)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향로(香爐)를

잡을 틈도 없습니다하고는

왼손에는 불을들고 오른손에는 향(香)을 잡고는 서방(西方)을 향(向)하여 지극(地極)하게

염불(念佛)하더니 미처 열번도 채 채우기 전(前)에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맞이한다하고는 죽었다

찬(讚)

지옥(地獄)이 눈앞에 닥친것을 알고는 손으로 향로(香爐)를 받들었다는 것은

사정(事情)이 급박(急迫)하고 마음이 조급(躁急)하여 간절(懇切)하고 정성(精誠)스러웠을뿐

그밖에 다른 생각을 할틈이 없었을것이니 비록 열번을채 채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가(閑暇)롭게 백천만(百千萬)억념(念)을 하는 자(者)를

훨씬 뛰어넘었을것이 아닌가

그가 왕생(往生)했다는 사실(事實)은 결코 의심(疑心)할 여지(餘地)가 없다 하겠다

혹시(或是)

보살(菩薩)의 시현(示現)이 아닐까 하고 의심(疑心)할지 모르나

그럴수도 있겠으나 다그러한것은 아니다

------------------------------------------------------------------------------------------------------------------------------------------------------------------------------------------------------------------------------------------------------------------------------------------------

●장종규(張鍾馗)

당(唐)나라 장종규(張鍾馗)는 닭 잡는 백정(白丁)이었다

병(病)이 극심(極甚)하여 중태(重態)에 빠져 누워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닭떼를 몰아 그를 쪼아대니 피가 흘러

온 얼굴을 덮는것을 보았다 고통(苦痛)을 참을수가 없었다

어떤 스님이 그를 위해 불상(佛像)을 모셔주고 염불(念佛)하도록 가르쳤다

얼마후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한 가운데 편안(便安)히 갔다

------------------------------------------------------------------------------------------------------------------------------------------------------------------------------------------------------------------------------------------------------------------------------------------------

●웅준(雄俊)

당(唐)나라 웅준(雄俊)은 성도(成都)에 살았다 기백(氣魄)과 용기(勇氣)가

지나쳐 계율(戒律)따위는 아예 무시(無視)했다 일찍이 중노릇을

그만두고 군인(軍人)이 된적도 있었으나 다시 중이 되었다

그리하여 경(經)에 한번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면

80억겁(億劫)의 생사(生死)중죄(重罪)를 면(免)할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며 마침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였다

이로부터는 비록 악(惡)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염불(念佛)은 게을리하지않았다

정미(丁未) 2월(月)에 갑자기 죽었다가 하룻밤을 지나 다시 소생(蘇生)

하여 명부(冥府)에가니 주인(主人)되는 자(者)가 너를 잘못 데려왔다

너는 본시 염불(念佛)에 큰믿음이 있었던 자(者)가 아니니 지금

인간세상(人間世上)으로 다시 돌아가 더욱 염불(念佛)에 힘써라 하지 않겠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者)들은 모두 지옥(地獄)에서도

도망(逃亡)할 틈이 있는것이구나하고생각하였다

그런 후(後)에 산(山)에 들어가 재계(齋戒)하며 염불(念佛)하였다

4년(年)이 지난 신해(辛亥) 3월(月)에 스님들을 모우고는

이젠 내가 갈때가 되었다 너희들은 성(城)으로 돌아가

나를 아는 자(者)들을 만나거든 나를 대신(代身)해 말하라 준(俊)은

염불(念佛)하여 왕생(往生)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지옥(地獄)은 사람을 도망(逃亡)하게

하는 법(法)이 없다고 이렇게 웃으며 말하다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찬(讚)

향기(香氣)와 비린내는 한그릇에 담지 못한다 악(惡)한짓을 하다 염불(念佛)을

하다 하면서 어찌 왕생(往生)할수 있겠는가

아 ! 마침 이런일이 있었구나 !하고 말한것이나 부처님을 부르면

죄(罪)를 멸(滅)할수 있다 한것을 보면 그의 믿음은 골수(骨髓)에 새겨진 것이었다

곧 이 한생각의 힘은 만균(萬鈞)보다 무겁다 임종(臨終)에 업(業)을

바꾸어 왕생(往生)했다는 사실(事實)을 어찌 의심(疑心)하랴

------------------------------------------------------------------------------------------------------------------------------------------------------------------------------------------------------------------------------------------------------------------------------------------------

●유공(惟恭)

당(庸)나라 유공(惟恭)은 법성사(法性寺)에 살았다 선량(善良)한 자(者)를 우습게 여기고

나쁜놈들만을 가까이하니 술주정뱅이 노름꾼 따위가 언제나 그의 주위(周圍)에 모여 들었다

그러다 잠시(暫時) 틈이 나면 염불(念佛)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절에 영규(靈巋)라는 자(者)도 한패거리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말했다

---영규(靈巋)는 악(惡)을 짓고 유공(惟恭)도 뒤지라면 서러워

할 지경이다 지옥(地獄)은 천겹이라 둘이 다들어가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공(惟恭)이 그 말을 듣고는 내가 비록 악업(惡業)을 짓긴 했지만

지은 죄(罪)는 피(避)할 수 없다 그러나 마침 정토교주(淨土敎主)께서

나의 허물을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도탄(塗炭)에서 구제(救濟)하여 건저주실것이다

어찌 다시 악도(惡道)에 떨어지랴하였다

건녕(乾寧) 2년(年)<895> 병(病)이 위독(危篤)하게 되었다 그 때 영규(靈巋)가 밖에서

돌아오다 어린애들처럼 때때옷을 차려입은 령인(伶人)몇명을 만났다

어디서 오는 자(者)들인가를 물으니 서(西)쪽에서 왔소 유공상인(惟恭上人)을

맞이하려하오 하더니 한사람이 품속에서 금병(金甁)을 꺼냈다

병(甁) 속에는 연꽃이 있었는데 마치 주먹을 쥔것처럼 오무라져 있었다

잠시후(暫時後)에 차츰 꽃잎이 벌어져 사발만해지니 그 광채(光彩)가 눈이 부셨다

이들은 절을 향(向)해 내달음질 치더니 금새 보이지 않았다

영규(靈巋)가 절에 도착하니 종(鍾)소리가 울려왔다 유공(惟恭)이 이미 죽은것이었다

 령인(伶人) : 음악(音樂)을 맡은 벼슬아치 손님의 비위(脾胃)를 맞추며 주흥(酒興)을 돕는 사랍

------------------------------------------------------------------------------------------------------------------------------------------------------------------------------------------------------------------------------------------------------------------------------------------------



●형가(瑩珂)

송(宋)나라 형가(瑩珂)는 잡천<霅川>의 요산(瑤山)에서

배웠던 자(者)였으나 술과 고기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忽然)히 파계(破戒)로 인(因)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질것을 두려워하여

함께 사는 자(者)에게 부탁(付託)하여 계주선사(戒珠禪師)가 펴낸

왕생전(往生傳)을 구(求)해 읽었다

한 분의 전기(傳記)를 읽을때마다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런 후(後)에 방안에 서(西)쪽을 향(向)해 선상(禪床)을 놓고 음식(飮食)을 끊어가면서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였다

3일째 되는날 꿈에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너는 10년(年)을 더살수 있다

우선 더욱 정업(淨業)에 힘써야 한다하였다

그러자 형가(瑩珂)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에게 설사(設使) 백년(百年)을 산다해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탁악(濁惡)하여 정명(正命)을 잃기 쉽습니다

원(願)하는 바는 하루빨리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하여 여러 성인(聖人)들을

모시고싶습니다하고 아뢰었다

너의 뜻이 그렇다면 3일후(日後)에 반드시 너를 맞이하리라

그날이 되어 대중(大衆)에게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독송(讀誦)하게 하고는

부처님과 대중(大衆)들이 모두 여기에 오셨다하고 고요히 갔다

------------------------------------------------------------------------------------------------------------------------------------------------------------------------------------------------------------------------------------------------------------------------------------------------

●중명(仲明)

송(宋)나라 중명(仲明)은 산음(山陰)의 보은사(報恩寺)에 살면서

평소 계행(戒行)을 지키는 법(法)이 없었다

나중에 병(病)이 들어 동학(同學)인 도영(道寧)에게 나는

지금 마음이 매우 어지럽소 무슨 약(藥)으로 치료(治療)하면 좋겠소?하고 물었다

영(寧)은 호흡을 따라 염불(念佛)하게 하였다 중명(仲明)은 가르친대로

시행(施行)하였으나 7일째 되는 날에는 힘이 이미 탈진(脫塵)하였다

도영(道寧)이 이번엔 눈앞의 불상(佛像)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렇게 오래하여 홀연(忽然)히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두보살(菩薩)을 보았고

다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보고는 눈을 감고갔다

------------------------------------------------------------------------------------------------------------------------------------------------------------------------------------------------------------------------------------------------------------------------------------------------

●오경(吳瓊)

송(宋) 오경(吳瓊)은 임안(臨安)사람이다

본시(本是) 스님이었으나 도(道)를 버리고 세속(世俗)으로 돌아가

전후(前後)에 두번 장가들어 아들 둘을 얻었다

짐승을 잡고 술을 파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것이 없었고

푸줏간에서 닭이나 오리 따위를 죽여 이것을 치켜들고는

아미타불(阿彌陀佛)님 ! 이몸 어서 데려가오하며 연신 부처님 명호(名號)를

부르면서 칼질을 하여 고기를 썰때마다 염불(念佛)을 그치지 않았다

나중에 눈위에 계란(鷄卵)같이 생긴 혹이 생기자 몹시 두렵고 걱정이

되어 초암(草庵)을짓고 처자(妻子)를 흩어버리고서는 염불(念佛)과

예참(禮懺)으로 밤낮을 잊을 지경(地境)이었다

소홍(紹興) 23년(年) <1153> 사람들에게 오경(吳瓊)이 이젠

내일 술시(成時)에 떠나오하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다음날 저녁 베옷으로 술을 바꾸어 마시고는 이렇게 노래 한수를지었다

----술과 같이 다 공(空)한것 무슨 선종(禪宗)따위 물으랴

오늘은 부디 안녕(安寧)히

명월청풍(明月淸風)과 같이-----

그리고는 단정(端正)히 앉아 합장(合掌) 염불(念佛)하다

부처님이 오셨다하고 부르짖고는죽었다

------------------------------------------------------------------------------------------------------------------------------------------------------------------------------------------------------------------------------------------------------------------------------------------------

●김석(金奭)

송(宋) 김석(金奭)은 회계(會稽) 사람으로 어부(漁夫)였다

어느날 갑자기 크게 반성(反省)하고 계행(戒行)을 지키며 정진(精進)하여

하루 만(萬) 번의 염불(念佛)을 오래토록 지속(持續)하였다

나중에 병(病) 없이 가족(家族)에게 말하기를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두 보살(菩薩)이

모두 오셔서 나를 맞이한다 나는 이제 서방정토(西方淨土)로 돌아가련다"하고 는

향(香)을 피우고 단정(端正)히 앉아 죽었다

찬(贊)

김석(金奭)의 일은 선화(善和)나 종규(鐘馗)와는 다르다 저들은

평소에는 악업(惡業)을 짓다 임종(臨終)에 이르러 정성(精誠)을 다했거니와

이 이는 미리 전(前)의 잘못을 뉘우치고 오랫동안 선업(善業)을 닦았다 왕생(往生)의

품위(品位)도 필시(必是) 저 두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다

------------------------------------------------------------------------------------------------------------------------------------------------------------------------------------------------------------------------------------------------------------------------------------------------

총론(總論)

-----------------------------------------------------------------------------------------------------------------------------------------------------------------------------------------------------------------------------------------------------------------------------------------------

끝없이 넓은 고해(苦海)는 그 언덕이 머리를 돌이키는데 있고

한(限)없는 시간(時間)에 싸인 어둠은 이에그 밝음이 햇불 하나에 있다

정토(淨土)가 악인(惡人)을 버리지 않는 것은 의심(疑心)할수 없는 사실(事實)이다

그러나 허물<잘못>을 고치는 곳에 다시 살아날 문(門)이 있음을 깨닫고

통열히 자신(自身)의 허물을 뉘우친다면 옳거니와 업(業)을 가지고도

살아 날수 있음을 믿고 마음대로 악행(惡行)을 저지르면서 만(萬)에

하나 요행(僥倖) 을 바란다면 어림없는 노릇이다

예전의 악인(惡人)들은 이것으로 약(藥)을 삼았으나 요즘의 악인(惡人)들은

이것에 집착(執著)하여 병(病)이 되었다.그러므로 예전의 악인(惡人)은 악인(惡人)이면서

선인(善人)이었으나 요즘의 악인(惡人)은 악인(惡人)중에 악인(惡人)이다 슬프다

------------------------------------------------------------------------------------------------------------------------------------------------------------------------------------------------------------------------------------------------------------------------------------------------

축생(畜生)의 왕생(往生)

------------------------------------------------------------------------------------------------------------------------------------------------------------------------------------------------------------------------------------------------------------------------------------------------

●용(龍)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용(龍) 한마리가 있었는데

금시조(金시鳥)에게 말하기를 나는 용(龍)의 몸을 받았으나

이제까지 살생(殺生)한적이 없이 물결속을 희롱(戱弄)하고 다녔다

그러므로 목숨이 다한 후(後)에는 반드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국토(國土)에 태어날 것이다하였다

찬(讚)

자비(慈悲)한 마음으로 살생(殺生)하지 않는것이 정업(淨業)의 정인(正因)이 다.

용(龍)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으니 왕생(往生)은 진정(眞正) 의심(疑心)할수없는 일이다

------------------------------------------------------------------------------------------------------------------------------------------------------------------------------------------------------------------------------------------------------------------------------------------------

●앵무(鸚鵡)새

당(唐)나라 정원(貞元)중에 하동에 배씨(裵氏) 성(姓)을 가진 자(者)가

앵무(鸚鵡)새 한 마리를 길렀는데 늘 염불(念佛)하면서 오후(午後)에는 먹이도 먹지 않았다

임종(臨終)에 열번 염불(念佛)하고 숨이 넘어갔는데 불에 태워 사리(舍利)

10여(餘) 낱을 얻었다 눈이 부실 정도(程度)로 투명(透明)하고 맑았다

혜관(慧觀)스님이란분이 벽돌을 구워 탑(塔)을세우고 이 신비(神秘)한 일을 널리 알렸다

성도(成都)의 윤위고(尹韋杲)가 이 사실(事實)을 기록(記錄)하였다

----공상(空相)을 무념(無念)에서 깨달아 진골(眞骨)을 죽음에서 남겼네----

하는 귀절이 있다

------------------------------------------------------------------------------------------------------------------------------------------------------------------------------------------------------------------------------------------------------------------------------------------------

●구욕새

송(宋)나라 황암(黃岩) 정등사(正等寺)의 관(觀)공이 구욕새를 길렀는데

말을 할줄 알아 늘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서서 죽길래 흙을 파고 묻었더니 그 자리에서

붉은 연꽃 한 송이가 피었다 기이(奇異)하게 여겨서 파보니 혀끝에서 돋아 난것이었다

영지율사(靈芝律師)가 이 사실(事實)을 찬탄(讚嘆)한 적이있다 새장에 갇혀 서서

죽은것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죽은 후(後) 붉은 연꽃도

너무나 신기(神奇) 하다 하는 귀절이 있다

구욕새 : 흔히 팔가새라 한다사람의 말을 할줄 안다

------------------------------------------------------------------------------------------------------------------------------------------------------------------------------------------------------------------------------------------------------------------------------------------------

●구욕새

담주(潭州)에 어떤 자(者)가 구욕새를 길렀는데 이 새가 염불(念佛)할 줄을알았다

죽은 후(後)에 관(棺)에 넣어 장사(葬事)지냈는데

홀연(忽然)히 연화(蓮華) 한 송이가 그 입에서 나와피었다

어떤 이가 이렇게 노래한 것이 있다

신비한 새한 마리 있었네 이름은 팔가(八哥)였네 스님의 입을

따라 미타(彌陀)를 염(念)할 줄 알아

죽은 후(後) 평지(平地)에 묻으니 연화(蓮華)가 피었네

사람으로 그럴줄 모르면 아 ! 어찌해

찬(讚)

앵무(鸚鵡)나 구욕한테 사람이 염불(念佛)을 가르치는 경우(境遇)는 흔히 있었

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왕생(往生)하는 경우는 보지 못하는가

아 ! 세상(世上) 사람들의 경우만 해도 누구나 염불(念佛)의 가르침을 듣긴 하지만

어떤 이는 신심(信心)으로 염(念)하는 자(者)도 있고 어떤 자(者)는

가벼운 마음으로 염(念)하는 자(者)도 었다

그러므로 염불(念佛)하는 사람은 많으나 왕생(往生)하는 자(者)는 드문 것이다

저 앵무(鸚鵡)나 구욕만이 어찌 유독(唯獨) 그렇지 않겠는가

-----------------------------------------------------------------------------------------------------------------------------------------------------------------------------------------------------------------------------------------------------------------------------------------

총론(總論)

어떤 이는 사람은 신령(神靈)하고 축생(畜生)은 어리석다 어떻게 축생(畜生)이

왕생(往生)할 수 있겠는가하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성정(性情)이 있는것은 모두 부처의 영각(靈覺)이 있다는

사실(事實)을 모르고 한 말이다

미혹(迷惑)함이 두텁고 엷은것이 있음으로해서 사람과 축생(畜生)으로

나뉘어지지만 신령(神靈)하고 어리석음이 균등(均等)하지 않은것은 아니

다·꿩이 법화경(法華經)을 듣고 다음 생(生)에는 스님이 된적도 있었고

소가부처님의 얼굴을 보고는 죽어 천상(天上)에 태어난 사실(事實)은 분명(分明)히

여러 전기에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지옥(地獄)중생(重生)이나 귀신(鬼神)이나 축생(畜生)도 모두 나의 국토(國土)에 태어

나과저 했던 것이 법장비구(法藏比丘)의 본원(本願)이었음에랴

안타까운 점은 사람으로서 축생(畜生)의 왕생(往生)을 보고도 무덤덤히

깨달을 줄 모르고 오탁(五潤)을 감수하거나 꼼짝할수 없이

윤회에 빠져 숨한번 쉬지 못하면 형체(形體)가 비늘이나 깃털로 바뀌어도

스스로 그런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 !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

속록(續錄)

------------------------------------------------------------------------------------------------------------------------------------------------------------------------------------------------------------------------------------------------------------------------------------------------

요즘 왕생(往生)한 분으로서 내가 직접(直接) 보고 들은것을 이어서 기록(記錄)한다

그래서 2권(卷)의 끝에 붙히고

부류(部類)나 앞 뒤를 나누지 않는다

-----------------------------------------------------------------------------------------------------------------------------------------------------------------------------------------------------------------------------------------------------------------------------------------

●본명(本明)스님

대명(大明)의 본명(本明)은 통주(通州) 정가사(靜嘉寺)의 스님이 다

평소 고상(高尙)한뜻이 있고 범행(梵行)이 청정(淸淨)했으며

강학(講學)에 전념(專念)했던 분이다

나중에는 강학(講學)을 버리고 정토(淨土)에 전심(專心)하여

매일 예념(禮念)하는 일을 오래토록 거른적이 없었다

갑자기 경미(輕微)한 병(病)이 들자 스스로 때가 이른것을 알고는

대중(大衆) 에게 고별(告別)하고 편안(便安)히 갔다

기이한 향기(香氣)가 7일(日)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

●주강소부(朱綱少府)

대명(大明)의 주강(朱綱)은 경도(京都)사람이다

유업(儒業)을 익혀 향거(鄕擧)에 뽑혔고 세번이나 춘관(春官)에 올랐으나

뽑히지 못했다그리하여 이부(二府 ; 중서성추밀원<中書省 樞密院>)의 벼슬을 지냈다

관직(官職)에서 물러나와서는 정토(淨土)를 전수(專修)하여 하루에

염불(念佛) 3만(萬)번을 15년(年)동안 조금도 게으름없이 실행(實行)하였다

임종(臨終)에는 걸상에 앉아 두손에 염주(念珠)를 들고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더니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방에 가득하자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오셨다하고는 연신 염불(念佛)하며 갔다

-----------------------------------------------------------------------------------------------------------------------------------------------------------------------------------------------------------------------------------------------------------------------------------------

●우(于)의 어머니

대명(大明)의 우(于) 할머니는 북경(北京) 평창부(平昌府) 소촌

(邵村)의 우귀(于貴)의 어머니로서 오랫동안 염불(念佛)로 공을 쌓았다

하루는 옷을 깨끗히 빨아 입고는 아들에게 내가 이젠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해야 겠다하였으나 아들은 믿지 않았다

때가 되자 책상(冊床)을 들어내 마당 가운데 놓고는 책상(冊床) 위에 앉아서 갔다

기이(奇異)한 향기(香氣)와 하늘 음악(音樂)을 온마을사람들이 다들었다

-----------------------------------------------------------------------------------------------------------------------------------------------------------------------------------------------------------------------------------------------------------------------------------------

●고(顧)거사

대명(大明)의 고원(顧源)은 금능(金陸)사람으로 자호(自

號)는 보당 거사(寶幢居士)다

어려서부터 시(詩)를 지을 줄 알았고 초서(草書)를 잘썼다 중년(中年)에는

한결같이 정업(淨業)에 뜻을 두었다

나중에 경미(輕微)한 병(病)이 들어 승속의 도우(道友)를 모우고 열번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念)하고는사람들에게 나는 반드시 왕생(往生)할 것이다하였다

누가 무엇 때문입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몸이

허공(虛空)에 가득하고 세계(世界)는 금색(金色)인데 부처님이 가사(袈裟)로 나를덮어주시니

나의 몸이 이미 연화(蓮華)속에 앉아 있는것을 보았다하였다

그 때 온 대중(大衆)이 연꽃의 향기(香氣)를 맡을수 있었다

아들들이 슬피 울기를 마지 않으니 거사가 너희들은

내가 어느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어느곳이나 곧

이곳이다 이곳에 만약 분명(分明)하면 어느곳인들 확실(確實)하지 않겠느냐하고

말했다

그리고서 사람들을 물리치며 여러 말을 하지 말아라 내 마음이 어지럽다

공중(空中)에서 부처님이 나를 맞이 하신다 삼고(三鼓)에는 가련다하였다

그 시각(時刻)이 되자 편안(便安)히 웃음을 머금고 갔다

소종백(少宗伯) 예부시랑(禮部侍郞)인 은추명(股秋溟)선생이 이러한 사실(事實)을들려주었다

찬(讚)

폼이 이미 연꽃 속에 있었다 하니 왕생(往生) 하기는 반드시 왕생(往生)했을 것이요

어느곳이나 곧 이곳이라 하니 가는것이 실제(實際)로는 가는것이 아니리랴

거사(居士)의 왕생(往生)은 당연(當然)히 중하품(中下品)에 머물지는 않았을것이다

-----------------------------------------------------------------------------------------------------------------------------------------------------------------------------------------------------------------------------------------------------------------------------------------

●방(方)씨

대명(大明)의 방(方)씨는 생원(生員) 오웅도(吳應道)의 부인(婦人)이었다

30세(歲)에 홀로되어 절개를 지키며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정토(淨土)를 전수(專修) 하였다

한 노파(老婆)가 있었는데 이이도 재계(齊械)하며 20년동안 그를 따랐다

만력(萬歷) 을유(乙酉)<1585>에

그때 나이가 50세(歲)이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병(病)이 들었다

노파(老婆)를 불러 서로 마주보고 한마디 말이나

그 외(外) 잡무(雜務)도 일체(一切) 멀리하고 염불(念佛)에만 전념(專念)하였다

죽기 하루 전(前)에 목욕(沐浴)하고 옷을 갈아 입고는 다음날 새벽에

향(香)을 피워 예불(禮佛)하고 자리에 앉아서 갔다

아들 용선(用先)은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한 이로 결코 거짓말할 자(者)가 아니다

나에게 시말(始末)을 이렇게 말해 주었다

-----------------------------------------------------------------------------------------------------------------------------------------------------------------------------------------------------------------------------------------------------------------------------------------

●장(張)군의 어머니

대명(大明) 장(張)군의 어머니인

도(陶)씨는 장수(長水) 수약거사(守約居士)의 후처(後妻)였다

거사(居士)가 불법(佛法)을 신봉(信奉)했으므로

장(張)군의 어머니도 거사(居士)에게 감화(感化) 되어 하루에

예송(禮誦)을 정해놓고 어김없이 실행(實行)하였다

거사(居士)가 보타산(普陀山)으로 기도(祈禱)차 떠난 사이에 어머니가

두아들에게 나는 평생(平生) 이마음이 부처가 되니

이마음이 바로 부처다 하는 두마디 말을 참구(參究)하여

오늘 비로소 깨달았다 초(初) 4일(日)날 나는 간다하였다

그날이 되어 단정(端正)히 앉아 갔다

다음날 거사(居士)가 돌아와 시신(屍身)을 염습을 하였는데

잠시(暫時) 후(後)에 관(棺) 위에 청연화(靑蓮華)다섯송이가 피었다

거사(居士)가 매우 놀라며 늘 같이 지내면서도 그의 도행(道行)이

이런 줄알지 못했다하며 부끄러워 하였다

원근(遠近)에서 이 사실(事實)을 보고 들은 자(者)들이

찬탄(讚嘆)하고 경모(敬慕)하지 않는이가없었다

-----------------------------------------------------------------------------------------------------------------------------------------------------------------------------------------------------------------------------------------------------------------------------------------

●조향(祖香)

대명(大明)의 조향(祖香)은 강서(江西) 신유(新喩) 사람으로

산동(山東) 용담사(龍潭寺)에서 정업(淨業)을 정수(精修)하였다

왕걸(王傑)어라는 거사(居士)가 암자(庵子)를 짓고 그를 맞이해 갔으므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얼마후 왕걸(王傑)에게 말하기를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겠소하였다

대중(大衆)이 더 머물러 주기를 간청(懇請)했더니

안양(安養)의 집으로 돌아가는것이오하였다

그날이 되어 자리를 펴고 서(西)쪽을 향(向)해 앉아 갔다

감실(龕室)을 들고 산(山)으로 들어갔더니 불이 일어나 저절로 다비가 되었다

-----------------------------------------------------------------------------------------------------------------------------------------------------------------------------------------------------------------------------------------------------------------------------------------

●곽대림(郭大林)

대명(大明)의 곽대림(郭大林)은 탕음(場陰)사람이다 평소 성품(性品)이 단정(端正)하고

소박(素朴)하여 늘 세상(世上)을 떠날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마침 어떤 스님에게서 염불(念佛)의 가르침을 받고 일심(一心)으로 정토(淨土)를 생각하였다

나이 76세(歲)에 하루는 자식(子息)에게 내일 정오(正午)에 가련다하고

고별(告別)하고는 그 시각(時刻)에 앉아서 갔다

-----------------------------------------------------------------------------------------------------------------------------------------------------------------------------------------------------------------------------------------------------------------------------------------

●유통지(劉通志)

대명(大明)의 유통지(劉通志)는 경도(京都)사람으로 염불(念佛)에

온 정성(精誠)을 기울였던 분이다

나이 52세(歲)에 병(病)을 얻었으나 염불(念佛)을 더욱 간절(懇切)히 하였다

그 때 이웃 사람인 이백재(李白齎)라는 자(者)가 먼저 죽었는데

(劉通志)가 아침에 숨이 넘어갔다가 정오(正午)가되어

다시 소생(蘇生)하여 가족(家族)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마침 배 한척을 발견(發見)하였는데 정토(淨土)로 간다 하더군 배에는

서른 여섯사람이 타고 있었어 이백재(李白齎)도 있었고 나도 그중 한사람 이고

그런데 의복(衣服)이 깨끗치 못하고 염주(念珠)를 가져 오는것을 잊어버렸어

그래 내가 그랬지 옷을 갈아입고 염주(念珠)를 가져 올테니 잠시(暫時) 배를 기달려 달라고

가족(家族)들이 황급(遑急)히 옷을 갈아 입히고 목에 염주(念珠)를 걸어 주었더니

잠시(暫時)후에 갔다

-----------------------------------------------------------------------------------------------------------------------------------------------------------------------------------------------------------------------------------------------------------------------------------------

●손(孫)씨의 어머니

대명(大明)의 중관(中官)인 손명(孫名)의 어머니는

일생(一生) 재계(齋戒) 하며 염불(念佛)하던 분이다

나이가 연로(年老)하여 경미(輕微)한 병(病)을 앓았는데 스스로 때가 이른것을 알고는

그의 아들에게 앉아서죽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슬피 울며 만류(挽留)하자

부득이(不得已) 감실(龕室)을 준비(準備)하게 하였다

때가 되어 감실(龕室)에 들어가 편안(便安)히 앉아서 죽었다

-----------------------------------------------------------------------------------------------------------------------------------------------------------------------------------------------------------------------------------------------------------------------------------------

●당체여문학(康體如文學)

대명(大明)의 당정임(唐廷任)은 절(浙)의 난계(蘭溪) 사람으로 호(號)는 체여 거사(居士)다

부모(父母) 에게 효양(孝養)하고 형제(兄弟)간에 우애(友愛)가 있었으며

천성(天性)이 출중(出衆)하여

소시에 학교(學校)에서 배울 적에는 명성(名聲)이 높았다

얼마후 세상(世上)이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불법(佛法)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어 운서(雲棲)에

참예(參詣)하여 염불삼매(念佛三昧)를 배웠다

그리하여 힘써 행(行)하여 무릇 13 년(年) 동안을 하루같이

오직 서방(西方)으로 돌아갈 것에만 뜻을 쏟았다

만력(萬歷) 계묘(癸卯) <1603> 나이 예순살 나던 해 11월(月)

초하룻날 문득 자식(子息)들에게 신춘(新春)11일(日)날 나는 간다하였다

며칠 전(前)까지 예송(禮誦)을 평시(平時)와 같이 하고 그날이 되자 세수(洗手)하고

양치질하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端正)히 앉아 손으로 결인(結印)을 하고서

부처님 명호(名號)를 부르고는 웃음을 머금고 갔다 마치 선정(禪定)에 든듯하였다

찬(讚)

거사(居士)가 입멸(入滅)하려 하자 자식(子息)들이 아버님께서 임종(臨終)하시는

여러 가지 정황(情況)을 운서사(雲棲寺)에 알려

왕생전(往生傳)에 올리오리까하고 여쭈었다

거사(居士)는 이렇게 대답(對答)했다

반드시 우리스님<주굉 연지대사(蓮池大師)>에게 말씀드려야 한다

그러나 사실(事實)을 꾸미려 하지 말고 사실(事實)대로 말씀드려야 한다

왕생전(往生傳)에 오르고 오르지 않고는 스님께서 스스로 견해(見解)가 계실 것이니

절대(絶對) 왕생전(往生傳)에 오르지 않았다 하여 언잖은

표정(表情)을 짓거나 언잖은 마음을 먹지 말아라

아 ! 이것으로 평소 자식(子息)을 어떻게 가르쳐 왔는가

하는것을 엿볼수 있을것이요

평생 정토(淨土)를 깊이 신앙(信仰)하였고

웃음을 머금고 갔으니 왕생(往生)을 어찌 의심(疑心)하랴

-----------------------------------------------------------------------------------------------------------------------------------------------------------------------------------------------------------------------------------------------------------------------------------------

●양가의문학(楊嘉禕文學)

대명(大明) 양가의(楊嘉禕)의 자는 방화(邦華)니

태화(泰和)사람으로 세족의 자손(子孫)이었다

13세(歲)에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켜 벼룩이나 이도 죽이는 법(法)이 없었고

23세(歲)에 남옹(南雍)에서 공부하다 얼마 후 병(病)이 나서 만력(萬層) 을사(乙巳)

< I605> 11월(月) 19일(日)에 죽었다

죽기 전에 꿈에 지옥(地獄)을 여행(旅行)하다 명양전(冥陽願)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친견(親見)하고 꿈에서 깨어나서는 모든 생명(生命)을 방생(放生)하고

스님을 맞이하여 경(經)을 읽고 염불(念佛)하였다

어느날 사람들에 게 나는 가야겠다 푸른 연(蓮)꽃이 내 앞에 나타 났으니

어찌 정토(淨土)의 경계(境界)가 아니겠는가"하고는 밤낮으로 염불(念佛)을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촛불을 끄게하고는 너희들은 촛불을 의지(依支)해야만 밝게 생활(生活)할수 있지만

나는 촛불이 필요(必要)없다 늘 광명(光明)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였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고 물으니 네가지 색깔의 연(蓮)꽃이 피어있었다 하였다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친견(親見)했습니까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천장(千丈)의 몸을 나타내신것을 보았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몸이 아미타(阿彌陀)부처님과 같았다"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은 뵙지 못했다"

이렇게 대화(對話)를 나누고는 갑자기 일어나 향(香)을들고 연거푸 소리하기를



-----아미타경(阿彌陀經)의 공덕(功德)은 이루 말할수 없다 !

이루말할 수 없다 !

이루말할 수 없다 !

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하고는 고요히 갔다----



찬(讚)

방화(邦華)는 성품(性品)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여러 전적(典籍)을 원지 않은것이 없었으며

이미 내전(內典)에 골몰(汨沒)한 이후(以後)에는

유독(唯獨) 내전(內典)의 정토법문(淨土法門)에만 전념(專念)하였다

그가 임종(臨終)에 아미타경(阿彌陀經)의 공덕(功德)은 이루말할 수없다 !하고

세번 부르짖은것은 직접(直接) 본것이 사실(事實)이었기 때문에 말도 절실(切實)했던 것이다

그의 중형(中兄)인 가조(嘉祚)가 이러한 사실(事實)을 전(傳)하면서

제가 거짓말을 했다면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질 것입니다"하고

맹서(盟誓)한것은 그도 역시(亦是) 직접(直接) 본것이 사실(事實)이었기 때문에

말도 절실(切實)했던 것이다

정토(淨土)를 믿지 않는 자(者)는 생각해 보라

-----------------------------------------------------------------------------------------------------------------------------------------------------------------------------------------------------------------------------------------------------------------------------------------



●학희재문학(郝熙載文學)

대명(大明)의 학희재(郝熙載)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법명(法名)은 광정(廣定)이다

평생(平生) 충직(忠直)하고 진실(眞實)하여 학교(學校)에서 덕행(德行)으로 이름이 났다

만년(晩年)에 불교(佛敎)에 귀의(歸依)하여 좌선(坐禪)과 예송(禮誦)으로 밤낮을 잊었다

만력(萬歷) 신해(辛亥)<1611> 봄 2월(月)에 병(病)이 들었는데 매일(每日) 잠에서

깨어나서는 내가 꿈에서 부처님을 친견(親見)코자 했으나 부처님은 뵈옵지

못하고 숲속에 모여있는 새 떼들만 보았다 하였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27일(日) 정오(正午)에 갑자기 머리를 들어 창(窓)밖을 바라보고는

그의 아들 세한(世翰)에게 오늘 헤어지면 이젠 그만이다하고는

가인(家人)을 돌아보며 은전(銀錢)을 준비(準備)하게하였다

얼마 후(後) 내가 조금 전(前)에는 혹시(或是) 관리(官吏)를만날까하여

미리 준비(準備) 했던것인데 지금은 필요(必要)없게 되었다하였다

삼고(三鼓)가 되자 두명의 동자(童子)가 와서 나를 맞이한다 부처님의

연화대(蓮華臺)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간다하고는 편안(便安)히 갔다

-----------------------------------------------------------------------------------------------------------------------------------------------------------------------------------------------------------------------------------------------------------------------------------------

●주(朱)씨

대명(大明) 진(陳)군의 어머니인 주(朱)씨는 오군(吳郡) 가정(嘉定)

사람으로 준천(濬川) 거사(居士)의 부인(婦人)이다

천성(天性)이 효자(孝慈)하여 본디부터 삼보(三寶)에 귀의(歸依)하였으나 나이 81세(歲)에

그의 아들이 운서(雲樓)로 찾아와 염불왕생(念佛往生)을 지도(指導) 받게 한 이후(以後)로

정업(淨業)에 독실(篤實)히 뜻을 두게 되었다

2년(年)이 지나 병색(病色)을 보이더니 죽기 3일전(日前)에 집 앞에서 누가 큰

소리로 주씨(朱氏)의 이름을 세번 불렀다 그러자 주씨(朱氏)가 두 푸른옷을

입은 자(者)가 여기 있다하였다

그 때는 이미 병세(病勢)가 차츰 쇠잔(衰殘)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허리를

곧게 세우고 단정(端正)히 앉았다

아들들이 자리에 눕도록 권(勸)해드렸으나 곧 그대로 편안(便安)히 갔다

시체(屍體)를 중당(中堂)으로 모셔 위를 향(向)하여 눕혔더니

시체(屍體)가 스스로 서(西)쪽을 향(向)하여 돌아 누웠다

온 식구가 깜짝놀라며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감응(感應)한것이라고생각 하였다

찬(讚)

학군의 아버지와 진군의 어머니는 모두 청의(靑衣)동자(童子)의 상서(祥瑞)가 있었으니

당연(當然)히 인천(人天)에 태어날것이었다

그러나 잠시(暫時)후(後) 한분은 부처님의 연대(蓮臺)가 나타나셨고 한분은

서(西)쪽을 향(向)하는것을 잊지 않았으니

또한 당연(當然)히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실것이었다

이렇게 두가지 모양(模樣)이 동시(同時)에 나타났으니

왕생(往生)하리라는 것을 확정(確定)할수는없다

설사 왕생(往生)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왕생(往生)은 그다지 멀지 않을것이다

-----------------------------------------------------------------------------------------------------------------------------------------------------------------------------------------------------------------------------------------------------------------------------------------

●서(徐)씨

대명(大明) 육(陸)군의 어머니인 서(徐)씨는 가정(嘉定) 사람으로 흘어미가

된후로 정업(淨業)에 마음을 쏟게 되었다

남편(男便)이전에 천금(千金)을 빌려준적이 있었는데 문서(文書)를 불태우고는

돌려받지 않았으며 패물(佩物)을 꺼내 남에게 보시(布施)하고는

늘 부처님 곁에서 예송(禮誦)하는 일로 날을 보냈다

이렇게 한지 10년(年) 만에 하루 저녁에는 심부름하는 사람을 부르더니

동방(東方)에 광명(光明)이 비치는것이 보이느냐? 내가 이젠 왕생(往生)할 때가

다가왔다 너희들도 나를 도와다오하고는 큰소리로 염불(念佛)하고는 합장(合掌)하고 갔다

-----------------------------------------------------------------------------------------------------------------------------------------------------------------------------------------------------------------------------------------------------------------------------------------

●과광태(戈廣泰)거사

대명(大明) 과이안(戈以安)의 법명(法名)은 광태로 전당(錢塘)사람이다

성품(性品)이 매우 효순(孝順)하고 평소 널리 선행(善行)을 쌓았으나

이를 감추고 남이 알아주는것을 원(願)치 않았다

만년(晩年)에는 부처님을 섬기는 일에 정성(精誠)을 다바쳐

영지사(靈芝寺)의 현소(玄素)스님과 함께 봄가을 두때로

염불회(念佛會)를 열었고 화엄경(華嚴經) 등 다섯가지의 경전(經典)을 독송(讀誦)하였다

어느날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갈때가 다가오고 있는것이다

나는 이제 서방(西方)으로 돌아갈 자량(資糧)을 마련해야 겠다"하고는

문(門)을 닫아 걸고 조석(朝夕)으로 예송(禮誦)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미리 돌아갈 날짜를 그음달 21일(日)로 정(定)해 두었다

이틀 전(前) 저녁에 모자(母子)가 둘러앉아 바라보며 눈물을 짓고 있으니

거사(居士)가 웃으며 태어난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무얼 슬퍼하느냐 나는

정토(淨土)에 마음을 기울여 미타(彌陀)를 친견(親見)하였다 너희들은 정애(情愛)에 걸려

나의 정념(定念)을어지럽히지 말라"하고는 현소(玄素)스님에게 다정(多情)히 조념(助念)을

부탁(付託)하며 여러가지 대화(對話)를 나누고는 때가되자 고요히 갔다

찬(讚)

어떤 스님이 명부(冥府)에 들어가서 보니 거사(居士)가 고요한 방에 편안(便安)히

앉아 있는데 책상(冊床) 위에는 온갖 경전(經典)들이 쌓여있었고 뜰에는

붉은대와 바위산이 어우러져 수려(秀麗)하기가 마치 동천(洞天)과 같았다고한다

그렇다면 거사(居士)는 마땅히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했었어야 할것인데 어찌 하여

아직도 명부(冥府)에 머물고 있는것일까?

아마 평소에 송경(誦經)에 뜻이 간절(懇切)하여 경전(經典)에 대한 소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으로 나중에는 왕생(往生)하리라고 여겨진다

-----------------------------------------------------------------------------------------------------------------------------------------------------------------------------------------------------------------------------------------------------------------------------------------

●두(杜)거사(居士)

대명(大明)의 두거사(杜居士)는 순천부(順天府) 완평현(宛平縣)사람으로

서산(西山 )서광사(瑞光寺) 곁에 있는 낡은 사당(祠堂)에 숨어

집안일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30년(年) 동안 염불(念佛)에만 전념(專念)하였다

내가 고향(故鄕)사람인 동광책(童廣策)에게 그를 찾아보게 한적이

있었는데 거사(居士)가 어디서 왔는가고 묻기에 항주라고 대답(對答)했더니

그대가 항주 사람이라고 하니 운서굉(雲樓宏) 공(公)을 아시오? 하였다한다

저의 스님이십니다 하고 대답(對答)했더니 거사(居士)는 합장(合掌)하고 염불(念佛)

하며 다시 다른말이 없었다 한다

죽을때가 되어 9 일(日) 동안 예참(禮懺)하여 예참문(禮懺文)이 간절(懇切)한 곳에

이르자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음식(飮食)을 끊고 몇모금의 물만을 마실뿐이었다

그렇게 예참(禮懺)을 마치고서는 앉아서 갔다

보름동안 안색(顔色)이 생시(生時)와 같았고 오색(五色)구름이 지붕위에

서리고 있는것을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모두 보았다

-----------------------------------------------------------------------------------------------------------------------------------------------------------------------------------------------------------------------------------------------------------------------------------------

●손대우(孫大玗) 거사

대명(大明)의 손숙자(孫叔子)는 법명(法名)이 대우(大玗)다

12살 때부터 아버지인 경오(鏡吾) 거사를 따라 사십팔원(四十八願)

아미타상(阿彌陀像)을 모시고 운서(雲樓)에 와서 오계(五戒)를 받았다

그리고서 집에 돌아가서는 오신채(五辛菜)와 육식(肉食)을 끊고 교류(交流)를 자제

했으며 학문(學文)을 그만두고 염불(念佛)에만 전념(專念)하여 금대(金臺)에 오르기만을

발원(發願)하며 몸과 마음을 돌아보지 않았다

얼마 후에 두 비구(比丘)가 연화(蓮華)를 들고 일심(一心)으로 정토(淨土)를 발원(發願)한다 고

인가(印可)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화인(化人)이 금강경(金剛經)을

밤낮으로 읽는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벌떡 일어나 앉아 미타(彌陀)와 관음(觀音)이 모두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

하고는 금강권인(金剛拳印)을 맺고 큰 소리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고는

고요히 갔다그 때는 만력(萬歷) 신해(辛亥) [1611] 11월(月) 11일(日)이었다.

정토십이시가(淨土十二時歌)가 세상(世上)에 전(傳)한다 상세(詳細)한 것은

오태사(吳太史)의 서생전(西生傳)}에 기록(紀錄)되어 있다

찬(贊)

오태사는 우리 거사(居士)를 보고 우(玗)의 집에는 해마다 상서(祥瑞)로운

풀이 돋았고 죽은해에는 크기가 말[斗]만한 금(金)과 같고

옥(玉)과 같고 해와 달과 같은 광명(光明)이 비쳤다 이로 미루어

그의 왕생(往生)의 상서(祥瑞)를 징험(徵驗)할수 있다하고

이에 손숙자서생전(孫叔子西生傳)을 썼다

태사(太史)는 허황한 말을 하지 않는 자(者)다 덧붙여 이런 사실(事實)을 적어 둔다

화인(化人) ; 불보살(佛菩薩)이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기 위해 근기(根機)에 맞추어

일부러 모양(模樣)을 변해서 사람의 몸을 나타내는 것

-----------------------------------------------------------------------------------------------------------------------------------------------------------------------------------------------------------------------------------------------------------------------------------------

●오거사(吳居士)

대명(大明)의 오거사(吳居士)는 인화(仁和)사람으로 이름은

대은(大恩) 별호(別號)는 앙죽(仰竹) 이다

평소에 부모(父母)에게 효성(孝誠)스럽고 형제(兄弟)간에 우애(友愛)가 있었으며

음덕(陰德) 베풀기를

좋아하여 죽어가는 생명(生命)을 방생(放生)하고 고난(苦難)을 겪는 자를 구원(救援)했으며

이웃을 돕고 미납(未納)한 세금을 대신(代身)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이 흐리고 흙비가 내리던중에 광명(光明)을 만나기도 했고

배가 뒤집힐 지경(地境)에서 반풍(반風)을 만나기도 하는 등(等) 갖가지

상서(祥瑞)로운 과보(果報)를 감응(感應)하였다

그리고 불법(佛法)에 마음을 기울여 조석(朝夕)으로 경(經)을 읽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면서 정진(精進)에 게으름이 없었다

만력(萬曆) 40년(年)<1612> 5월(月) 3일(日) 대중(大衆)에게 고별(告別)하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단정(端正)히 앉아갔다

방안에 향기(香氣)가 감돌고 기색(氣色)이 생시(生時)와 같았다 자세(仔細)한 것은

인지엄(印持嚴)이 지은 전(傳)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

●오(吳)거사

대명(大明)의 오(吳)거사는 신안(新安)의 세족(勢族)으로서 이름은

계훈(繼勛) 字는 용경(用聊) 別號는 십여거사(十如居士)다

성품(性品)이 신중(愼重)하고 강직(剛直)하여 질박(質朴)하기는 나무덩굴과 같고 곧기

는 활줄과같았다

갖가지 선행(善行)을 베풀기를 감로(甘露)를 대(對)하듯 좋아하였다

만년(晩年)에 내전(內典)에 마음을 기울여 왕생(往生)주(呪)를 외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명호(名號)를 부르면서 하루에 일정(一定)한 일과(日課)를 정(定)해놓고

추위나 더위 속에서도 전혀 어김이 없었다

일찍이 강(江)물에 빠진적이 있었는데 발밑을 어떤 물건(物件)이 떠받치 듯하며

10여리(餘里)를 표류(漂流)하다 번쩍 배에 올라탄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의 가피(加被)라고 생각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등창을 앓아 위태롭기 그지 없었다사람들은

걱정해 마지 않았으나 거사는 태연(泰然)히 담소(談笑)하며 아무 병고(病苦)도 앓지

않는 양하다 얼마후(後)에 편안(便安)히 갔다

그의 아들인 신장(信章)은 맹자(孟子)가 말한 착하고 신의(信義)있는 사람으로

결코 허탄(虛誕)한 말을 할자(者)가 아니다 그가 말한 행장(行狀)대로 이렇게 적는다

--------------------------------------------------------------------------------------------------------------------------------------------------------------------------------------------------------------------------------------------------------------------------------------------------------------------------------------------------------------------------------------------------------------------------------------------------------------------------------------------------------------------------------------------------------------------------------

모든 성인(聖人)이 한곳으로 돌아감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할것을 선택(選擇)하다

-----------------------------------------------------------------------------------------------------------------------------------------------------------------------------------------------------------------------------------------------------------------------------------------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위제희부인(韋提希婦人)이 흐느껴 울며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世尊)<부처님>이시여 원(願)하옵건데 저를위하여

근심과 슬픔이 없는곳을 널리 말씀해주소셔

저는 반드시 그곳으로 가고자 하옵고 염부제(閻浮提)의

악(惡)한 세상(世上)은 원(願)하지않나이다

그러자 세존(世尊)이 눈썹사이에서 광명(光明)을 놓으사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제불(諸佛)국토(國土)를 두루비춰 그가운데 광명(光明)이 나타나게 하였다

그때에 위제희(韋提希)가 그것들을 모두 본후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모든 불국토(佛國土)가 비록 청정(淸淨)하여 모두 광명(光明)이있긴하지만

저는 지금 오직 극락세계(極樂世界)의 아미타불(阿彌陀佛)처소(處所)만을 원(願)하옵니다

-----------------------------------------------------------------------------------------------------------------------------------------------------------------------------------------------------------------------------------------------------------------------------------------

●무수(無數)한자가 왕생(往生)한다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부처님께 이세계(世界)에 얼마만한 보살(菩薩)들이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하나이까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이 미륵보살(彌勒菩薩)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계(世界)에 62억(億)의 불퇴전(不退轉)보살(菩薩)이

이 나라<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며

소행보살(小行菩薩)은 이루 그 수(數)를 헤아릴수 없다

이 국토(國土)<사바세계(娑婆世界)>뿐만 아니다.

다른 불토(佛土)에도 멀리 불찰(佛刹)을 비치듯

180억(億) 보살(菩薩)이 모두 반드시 왕생(往生)할것이며 내지(乃至) 시방불찰(十方佛刹)에서

왕생(往生)하는 자(者)는 매우많아서 그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내가 만약 자세(仔細)히 말하려

한다면 1겁(劫)동안 설(說)하더라도 미처 말하지 못한다

찬(贊)

이 세계(世界)와 다른 국토(國土)에서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는 자(者)가

한량(限量)없다 하니 정토(淨土)가 그들을 어떻게 모두 수용(收用)하는 것일까?

아! 바다는 온갖 냇물을 다 받아들이고 허공(虛空)은 만상(萬象)을 모두 머금는다

더욱이 무변찰해(無邊刹海)도 보현(普賢)의 한털구멍 속을 벗어나지 못함이랴

그렇다면 정토(淨土)의 바늘끝만한 땅에서라도 한(限)없는 왕생(往生)자(者)를 수용(收容)할수있다

또한 한(限)없이 넓고 크다고 말할수 있지 않겠는가!

------------------------------------------------------------------------------------------------------------------------------------------------------------------------------------------------------------------------------------------------------------------------------------------------

●직접(直接) 미타(彌陀)를만나다

관불삼매경 (觀佛三味經)에 이렇게 말씀하였다

부처님이 문수(文殊)에게 반드시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주시자

문수가 이렇게 발원게(發願偈)를 노래했다

원(願)하옵건대 제가 목숨 다하는 날 모든 장애(障礙) 없어지고

직접(直接) 미타불(彌陀佛)을만나 안락찰(安樂刹)에 왕생(往生)하과저

저 불국(佛國)에 왕생(往生)한후에는

나의 대원(大願)이 만족(滿足)하여 아미타불(阿彌陀佛)여래(如來)께서

현전(現前)에서 제게 수기(授記)하시과저

------------------------------------------------------------------------------------------------------------------------------------------------------------------------------------------------------------------------------------------------------------------------------------------------

●십원(十願)으로 왕생(往生)을 구(求)하다

화엄경(華嚴經)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열가지의 큰 서원(誓願)을 나열(羅列)하며

널리 중생(衆生)이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는 길을 찾게하기 위하여 이렇게 게(偏)를노래했다

원(願)하옵건대 제가 목숨이 다하려할 때 모든 장애(障礙)다 없어져

저 부처님 아미타(阿彌陀)를 직접 만나뵙옵고

안락찰(安樂刹)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할수있과저

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회상(會上) 모두 청정(淸淨)하니

제가 그때 아름다운 연(蓮)꽃 속에 태어나 직접(直接) 여래(如來) 무량광(無量光)부처님을 뵈오면

현전(現前)에서 제게 보살기(菩薩記)를 주시과저

찬(贊)

문수보살(文殊菩薩)는 칠불(七佛)의 조사(祖師)였으며 보현보살(普賢菩薩)은

만행(萬行)의 종조(宗祖)였으나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할것을 마치 한입에서 나오듯 간곡(懇曲)히 타이르셨다

진정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유능(有能)한 보좌관(輔佐官)이며

안양(安養)의 어진 신하(臣下)인것이 분명(分明)하다

정토(淨土)를 허물하며 왕생(往生)을 원(願)치 않는것은 잘못이다

------------------------------------------------------------------------------------------------------------------------------------------------------------------------------------------------------------------------------------------------------------------------------------------------

●정토(淨土)를 노래하고 논술(論述)하다

천친보살(天親菩薩)<세친보살(世親菩薩)>은 천축(天竺) 사람으로

여러가지 논(論)을 지을 적에

도솔천(兜率天) 내원(內院)에 올라가 미륵보살(彌勒菩薩)을 뵈온 적이 있었으며

또한 무량수경논(無量壽經論)과 정토게오문수법(淨土偈五門修法)을

저술(著述)하여 널리 왕생(往生)을 권장(勸獎)하기도 하였다

------------------------------------------------------------------------------------------------------------------------------------------------------------------------------------------------------------------------------------------------------------------------------------------------

모든 성인(聖人)이 한곳으로 돌아가심

------------------------------------------------------------------------------------------------------------------------------------------------------------------------------------------------------------------------------------------------------------------------------------------------

●부처님의 모습(模襲)을 간청(懇請)하다

천축(天竺) 계두마사(難頭摩사)의 오통보살(五通菩薩)이 신력(神力)으로

안락국(安樂國)에 가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뵈옵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중생(衆生)이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고자 하나

부처님의 모습(模襲)을 알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모습(模襲)을 드러내 주소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먼저 돌아가라 곧 바로 그곳에 나타나리라

오통보살(五通菩薩)이 돌아오자 부처님의 모습(模襲)도 곧바로 이르렀다

한부처님과 5천(千)의 보살(菩薩)이 각각 연화(蓮華)에 자리하여

나무잎 위에 계신 모습(模襲)이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이러한 모습(模襲)을 그려 유포(流布)할 수 있게 되었

다 감통전(感通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찬(贊)

사람들은 안락국(安樂國)은 신력(神力)이 아니면 갈수 있을까 하고 의심(疑心)한다

아 ! 한생각만으로도 왕생(往生)하여 조그마한 힘도 필요(必要)치 않데야 어찌하랴

------------------------------------------------------------------------------------------------------------------------------------------------------------------------------------------------------------------------------------------------------------------------------------------------

●기신론(起信論)을짓다

마명(馬嗚) 보살은 인도(印度)의 제12조(祖)로서 일찍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저술(著述)

한적이 있었다

나중에는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는 길을 밝히는데 가장 친절(親切)하였다

------------------------------------------------------------------------------------------------------------------------------------------------------------------------------------------------------------------------------------------------------------------------------------------------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왕생(往生)을 수기(授記)하다

능가경(楞伽經)에 말씀하였다

대혜(大慧)야 너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후

미래세(未來世)에 반드시 나의 법(法)을 부지(扶持)할 만한 큰명덕(明德)

비구(比丘)가있을것이다

그의 이름은 용수(龍樹)로서 능(能)히 유무(有無)의 종취를 파(破)하고

세간(世間)에 나의 무상대승법(無上大乘法)을 발현(發現)하여

환희지(歡喜地)를 얻고 안락국(安樂國)에 왕생(往生)할 것이다

------------------------------------------------------------------------------------------------------------------------------------------------------------------------------------------------------------------------------------------------------------------------------------------------

●선행(善行)을닦아

서방정토(西方淨土)에왕생(往生)하다

대비경(大悲經)}에 이런 말씀이 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滅度)한 후(後) 북천축국(北天竺國)에

한 비구(比丘)가 있을 것이니 이름은 기파가(祈婆伽)다 헬수없는

갖가지 훌륭한 보리(菩提)의 선근(善根)을 닦아 죽은 후(後)에는 서(西)쪽으로

백천억세계(百千億世界)를 지나

무량수(無量壽)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국토(國土)에 태어날것이며

저 부처님의 처소(處所)에서도 갖가지 선근(善根)을 심어 나중에는 반드시

부처가 되어 이름을 무구광(無垢光)이라 할것이다

------------------------------------------------------------------------------------------------------------------------------------------------------------------------------------------------------------------------------------------------------------------------------------------------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서방정토(西方淨土)에왕생(往生)하다

보살생지경(菩薩生地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때 마차갈(摩差竭)은

불기법인 (不起法忍)을 얻었고 오백명의 청신사(淸信士)와 25명의

청신녀(淸信女)는 모두 불퇴전지(不退轉地)를 얻어 목숨이 다한 후(後)에는

모두 무량수불(無量壽佛)의 청정(淸淨)국(國)에 태어났다

찬(讚)

서방(西方)에 왕생(往生)할 길을 찾는것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아

불퇴지(不退地)<아비발치(阿鞞跋致)정정취(正定聚)>에 오르고자 하기 위해서다

------------------------------------------------------------------------------------------------------------------------------------------------------------------------------------------------------------------------------------------------------------------------------------------------

 불기법인(不起法忍) ; 무생법인(無生法忍)과 같은 말

불퇴전지(不退轉地) ; 惡道나 이승지(二乘地)에 떨어지지 않는 지위(地位)

보살(菩薩)의 지위(地位)나 법(法)을 잃지 않는 지위(地位)

------------------------------------------------------------------------------------------------------------------------------------------------------------------------------------------------------------------------------------------------------------------------------------------------

●모든 성인(聖人)이 서방(西方)의

한곳으로 돌아가심

그런데 이미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불퇴(不退)를 얻었으면서 다시 정토(淨土)에

왕생(往生)코자했으니 보살(菩薩)이 여래(如來)를 가까이 하고자하는 마음이어야만

이와 같을수 있는것이다

요즘은 구박범부(具縛凡夫)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의 힘도 충분(充分)치 못하고 퇴보(退步)하는

인연(因緣)도 무한(無限)하면서 정토(淨土)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說明)하면 좋을 것인가!

참으로 불쌍한 자(者)라고 부르지 않을수 없다

------------------------------------------------------------------------------------------------------------------------------------------------------------------------------------------------------------------------------------------------------------------------------------------------

●두번째의 대원(大願)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에 말씀하였다

보살(菩薩)은 세가지의 발원(發願)이 있다 그 두번째 발원(發願)은 내가 목숨이 다하면

아미타불(阿彌陀佛)앞에 왕생(往生)하는 것이다

------------------------------------------------------------------------------------------------------------------------------------------------------------------------------------------------------------------------------------------------------------------------------------------------

●염불(念佛)로 죄(罪)를 소멸(消滅)하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보살(菩薩)이 대반야(大般若)를 비방(誹謗)하는 자(者)가 있으면

이 이는 악도(惡道)에 떨어져 무량겁(無量劫)을 지내게 될것이요 설사(設使)

다른 수행(修行)을 닦더라도 죄(罪)를 멸(滅)하지 못한다

나중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생각하게 되어야만 죄(罪)를

멸(滅)하고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할수있게 된다하였다

찬(讚) 지극(至極)한 마음으로 염불(念佛) 한 마디만하면 80억겁(億劫)의

생사(生死)중죄(重罪)를 멸(滅)할수있다는 좋은 증거(證據)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극(至極)한 마음으로써 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극(至極)한 마음이 아니면 죄(罪)도 멸(滅)하지 못한다

성인(聖人)의 말씀이 터무니없다고 말하지 말라

------------------------------------------------------------------------------------------------------------------------------------------------------------------------------------------------------------------------------------------------------------------------------------------------

●휼륭한 모임에 서명(書名)하다

장노책선사(長蘆頙禪師)는 혜원법사(慧遠法師)의 가르침을 따라 훌륭한

염불회(念佛會)를 만들어 널리 염불(念佛)을 권(勸)했던 분이다

어느날 밤 꿈에 검은갓에 흰옷을 차려입은 풍모(風貌)가 수려(秀麗)한

어떤이가 읍(揚)하며 공(公)의 연화회(蓮華會)에 들고자 합니다 서명(書名)을 하고픈데요하였다

장노책선사(長蘆頙禪師)가 이름을 물으니 보혜(普慧)라고 하였다

서명(書名)을 마친 후(後) 또 저의 가형(家兄)인 보현(普賢)도 역시(亦是)

함께 서명(書名) 했으면 합니다하였다

장노책선사(長蘆頙禪師)가 이에 꿈을 깨어 화엄경(華嚴經)의 이세간품(離世間品)에

두 보살(菩薩)의 이름이 있음을 확인(確認)하고 마침내 그 분들로 회주(會主)를 삼았다

찬(讚)

범승(梵僧)의 모임에 고성(古聖)께서 서명(書名)을 하시다니 훌륭하다

정토(淨土)의 작은 인연(因緣)이 아님이여 !

참으로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출발(出發)한 일이었으므로

성인(聖人)의 감응(感應)이 통(通)한것이다

조그마한 허위(虛僞)라도 있었다면 인간 세상(世上)의 자중(自重)한 자도 하찮게

여길 것이어든 하물며 고성(古聖)이겠는가

근래(近來)의 소위 염불회(念佛會)라는 것을

장노책선사(長蘆頙禪師)가 본다면 반드시 큰한숨을 쉬어 마지 않을것이다

------------------------------------------------------------------------------------------------------------------------------------------------------------------------------------------------------------------------------------------------------------------------------------------------

대략 존숙(尊宿)들을 들어보다

백장해(百丈海) 선사(禪師)는마조(馬祖)에게서 도(道)를 전(傳)해 받은

적자(嫡子)로서 만세(萬世) 총림(叢林)의 대종장(大宗匠)이다

그의 입법(立法)을 보면 병(病)든 스님을 위해 기도(祈禱)하거나

죽은스님을 떠나 보낼 때는 언제나 정토(淨土)로 돌아가게 하였다

------------------------------------------------------------------------------------------------------------------------------------------------------------------------------------------------------------------------------------------------------------------------------------------------

황용신선사(黃龍新禪師)는 각노인(覺老人)을

참예(參詣)하여 선지(禪旨)를 얻고는 황용(黃龍)의 자리를 계승(繼承)하여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던분이다

한편 정업(淨業)에도 뜻이 간절(懇切)하여 염불(念佛)을 권(勸)하는 글이

현재(現在)에도 남아있어

이글을 읽는 자(者)로 간절(懇切)한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진흘요선사(眞歇了禪師)는 단하순(丹霞淳) 공의 법(法)을

이은 분으로 조동종(曹洞宗)계의 문하(門下)가 이 스님에와서 크게 발현(發現)하였다

나중에는 보타(補陀)에 庵子를지어 고절(孤絶)이라 이름하고는 서방(西方)에 전념(專念)하였다

정토(淨土)설(說)을 지어 널리 대중(大衆)에게 권장(勸獎)하기도 하였다

●자수심선사(慧受深禪師)는 장노신(長蘆信) 공(公)에게서 법(法)을 얻었던이다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여 수행(修行)의 첩경(捷徑)은 정토(淨土)만한것이 없다하고

서방도량(西方道場)을 세워 입이 쓰도록 대중(大衆)에게 권고(勸告)하니

그를 따르는 자(者)가 헤아릴수 없을 정도(程度)였다

●석지효법사(石芝曉法師)는 월당순(月堂詢) 공(公)의 법(法)을 계승(繼承)한분으로

교부(敎部)에 통철(洞徹)했으면서도 정업(淨業)으로 사람들을 교화(敎化) 하였다

정토(淨土)에 관계(關係)한 여러 대장경(大藏經)을 모은

낙방문류(樂邦文類)가 세상(世上)에 전(傳)하고 있다

●적당원선사(寂堂元禪師)는 밀암걸(密庵傑) 공(公)에게서 선(禪)을 배웠던

이로 염불삼매(念佛三昧)를 독실(篤實)히 행(行)하여 금갑(金甲)의 신장(神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감응(感應)을 얻기도 했고 붉은 연(蓮)꽃이 땅에서 솟아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로 말미암아 온 나라에 연종(蓮宗)이 크게 유행(流行)하게 되었다

------------------------------------------------------------------------------------------------------------------------------------------------------------------------------------------------------------------------------------------------------------------------------------------------

●중봉본선사(中峰本禪師)는 고봉묘(高峰妙) 공(公)에게서 법(法)을 얻은분으로

사람들이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처럼 우러러 보았다

정토(淨土)를 생각하는 내용(內容)의 시(詩) 백편이 세상(世上)에 널리 전(傳)하고 있다

●왕이영(王以寧) 대채(待制)는 스스로 미타(彌陀)의 제자(弟子)라고 일컬었다

●조열지(晁悅之) 한림학사(翰林學士)가 조자앙(趙子昻)에게 답(答)한

편지(便紙)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는 진실(眞實)하고 사실(事實)인 말씀입니다하였다

●진 관(陳瓘) 대제(待制)는 연경사(延慶寺)의

정토원기 (淨土院記)를 지어 염불(念佛)을 극찬(極讚)하였다

●우담종주(優曇宗主)는 여산동림(盧山東林)의 선법당(善法堂)에 있으면서

연종보감(蓮宗寶鑑)을 지었다

그후 임금의 뜻으로 판에 새겨 세상(世上)에 전(傳)했다 정토(淨土)의

중흥주(中興主)라고할만하였다

찬(讚)

백장(百丈)으로부터 우담(優曇)에 이르기까지 역대(歷代)의 존숙(尊宿)들이

정토(淨土)를 받들어 행(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아 성대(盛大)함이여 !

------------------------------------------------------------------------------------------------------------------------------------------------------------------------------------------------------------------------------------------------------------------------------------------------

● 총론(總論)

천여선사(天如禪師)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요즘사람들은 정토(淨土)를 닦는자를 무시(無視)하여 어리석은 아낙네들 이라고

업신 여긴다 이것은 문수보살(文殊菩薩)나 보현보살(普賢菩薩) 마명보살(馬鳴菩薩)

용수보살(龍樹菩薩)를 무시(無視)하는것이다.

그래서 내가 많은 경전(經典)들을 모아 그의 설(說)을 입증(立證)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보살도(菩薩道)만으로도 충분(充分)한데 굳이 왕생(往生)을 찾을

필요(必要)가 있을까하고 오히려 의심(疑心)한다

아 ! 자신(自身)의 지위(地位)가 아직 묘각(妙覺)에 오르지 못했고

비록 등지(等地)의 대성인(大聖人)일지라도 하루도 부처님을 떠나지 못한다

하물며 그 아래 사람들이랴

작위(爵位)가 높을수록 임금을 뵈올수 있는 기회(期會)도 더욱 많은 법(法)이 다

저 짐이나 나르고 호미나 쥔 무리들이 어부(漁夫)나 나무꾼이나 벗하는 것으로

만족(滿足)하고 임금을 뵈올 희망(希望)을 버리면서

임금은 가까이 뵈올수 있는분이 아니라고 투들거린다면 우습지 않은가

------------------------------------------------------------------------------------------------------------------------------------------------------------------------------------------------------------------------------------------------------------------------------------------------

살아서 감응(感應)을 얻음

------------------------------------------------------------------------------------------------------------------------------------------------------------------------------------------------------------------------------------------------------------------------------------------------

●귀신(鬼神)이 감(敢)히 해치지 못하다

부처님 당시(當時)의 일이다 한 나라가 있었는데

나찰의 무리들이 사는 곳과 이웃하고 있었다

나찰이 함부로 사람들을 잡아 먹었으므로 임금은 집집마다

차례(次例)로 하루 씩 사람을 그들에게 바칠것을 약속(約束)하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말게 하였다

외아들만을 둔 어느 부처님을 신봉(信奉)하는집이 있었다 이번에는

이 집의 차례(次例)였다 부모(父母)는 슬피 울며 지극(至極)한 마음으로 염불(念佛)할 것을

자식에게 당부(當付)하였다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귀신(鬼神)은 접근(接近)할수가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가서 보니 자식(子息)은 아무 탈이 없었다 기뻐 어쩔줄 모르며 함께 돌아왔다

이로부터 나찰의 재난(災難)이 마침내 끊어져 온 백성(百姓)들이 부처님을 경모(敬慕)하게 되었다

------------------------------------------------------------------------------------------------------------------------------------------------------------------------------------------------------------------------------------------------------------------------------------------------

●꿈을 꾸고 총명(聰明)과 변재(辯才)를 얻다

수(階)의 남악혜사(南岳慧思) 선사(禪師)는 지심(至心)으로 부처님을섬기더니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그에게 설법(說法)해 주시는 꿈을 꾸고는 이로부터

총명(聰明)이 다른 사람을 능가(凌加)하고 변재(辯才)도 막힘이 없었다

------------------------------------------------------------------------------------------------------------------------------------------------------------------------------------------------------------------------------------------------------------------------------------------------

●원결(寃結)이 풀리다

당(唐)의 소표(邵彪)는 진강(鎭江) 사람이다

사인(士人)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꿈에 어떤 공부(公府)에 가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 곳을 안무사사(安無使司)라고 불렀다

잠시(暫時) 후 어떤 관인(官人)이 너는 너가 급제(及第)하지 못하는

까닭을 알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소표(邵彪)가 모른다고 대답(對答)하자 소표(邵彪)를 이끌고 어딘가로 갔다

잠시(暫時) 후 한곳에 당도(當到)하여 쳐다보니 큰 가마솥 안에서 삶기고 있는

무수(無數)한 조개들이 사람의 말로 소표(邵彪)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소표(邵彪)가 두려워 어쩔줄 모르다 마침내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렀더니

비로소 입이 다물어지면서 조개들이 꾀꼬리로 변(變)하여 날아갔다

소표(邵彪)는 후에 급제(及第)하여 벼슬이 안무사(按撫使)에 이르렀다

찬(讚)

살생(殺生)으로 그의 벼슬이 늦어졌고 염불(念佛)로 그의 원결이 풀렸다 요즘

사인(士人)들이 짐승을 죽여 귀신(鬼神)에게 바치며 도와 줄

것을 빌면서 만덕(萬德)을 갖추신 위대(偉大)한 이름은 부를줄 모른다 그들

의 계책(計策)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

큰 관직(官職)을 바라는 자(者)는 이 이야기를 깊이 명심(銘心)해 두라

--------------------------------------------------------------------------------------------------------------------------------------------------

●부부(夫婦)가 함께 부처님을 뵈옵다

송(宋) 갈 제지(葛濟之)는 구용(句容) 사람이다 치천(雉川) 의

후예(後裔)로 대대(代代)로 선학(仙學)을 섬겼으나 처 기(紀)씨만은 유독(唯獨)

염불(念佛)에 정성(精誠)을 쏟았다

원가(元嘉) 13년(年)<436> 베틀 위에서 베를 짜고 있노라니 갑자기

하늘이 청명(淸明)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북을 던지고 하늘을 바라보니

서(西)쪽 방향(方向)에서 어떤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셨는데 보배의 수레와 깃발이

구름이 덮이듯한 것을 보았다

기(紀)씨는 기뻐하며 경(經)에서 말한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바로 이분이시구나 !하며

부처님을 향(向)해 무수(無數)히 예(禮)를 올렸다

갈 제지(葛濟之)가 놀라 급히 그에게 와보니 기(紀)씨가 부처님이 계신곳을

가리켰다 갈 제지(葛濟之)도 반신(半身)은 볼수 있었다

잠시(暫時) 후 모습(模襲)은 사라지시고 오색(五色) 찬란(燦爛)한 상서(祥瑞)로운 구름만이

인근(隣近)에서 모두 볼 수 있었다

이로부터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자(者)가 무수(無數)하였다

--------------------------------------------------------------------------------------------------------------------------------------------------------------------------------------------------------------------------

●귀신(鬼神)을

물리쳐나타나지 않게하다

송(宋)나라 진기(陳企)는 용서(龍舒)사람이다 일찍이 사람을 죽인적이

있었는데 후(後)에 귀신(鬼神)이 나타나는것을 보게 되었다

진기(陳企)는 두려워 급히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렀더니

귀신(鬼神)이 접근(接近)하지 못했다

이후(以後)로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게 되었고 귀신(鬼神)도 마침내 나타나지

않았다

찬(讚)

목숨을 빼앗긴 귀신(鬼神)을 어떻게 염불(念佛)로 물리칠수 있을까?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공덕(功德)의 위신력(威神力)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여

한번만 그의 이름을 불러도

귀신(鬼神)이 제갈길을 얻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것이다 어찌

심상한 주문(呪文)으로 쫓아내는 것에 비교(比較)할 수 있겠는가



--------------------------------------------------------------------------------------------------------------------------------------------------------------------------------------

●망령(亡靈)을 천도(遷度)하다

송(宋)의 장계조(張繼祖)는 진강(鎭江) 사랍으로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깊이 믿었다

유모(乳母)가 죽자 그를위해 정성(精誠)껏 염불(念佛)로 천도(遷度)했더니

꿈에 유모(乳母)가 와서

감사(感謝)해 하며 자네의 염불(念佛) 공덕(功德)으로 이미 좋은곳에 태어났네하였다

--------------------------------------------------------------------------------------------------------------------------------------------------

●잠자리가 편안(便安)해 지다

송(宋)나라 유중혜(劉仲慧)는 호주(湖州) 장흥(長興)사람이다

악몽(惡夢)에 시달리는 병(病)을 앓고 있었는데 누가 염불(念佛)을 해볼것을

권(勸)하여 마침내 정성(精誠)을 다해 큰소리로 염불(念佛)

108번을 부르게 되었다

그러한 후(後)로는 잠자리에 들더라도 정신(精神)이 평안(平安)하여 이로부터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게 되었다

찬(讚)

고인(古人)이 잠을 작은 죽음이라고 말한적이 있었다 이 표현(表現)이

가장 적절(適切)하다

꿈속에서의 혼매(昏昧)를 죽음의 혼미(昏迷)에 비교(比較)할수야있을까만

잠자리에서 마음이 평안(平安)하면 목숨이 다할때도 거의 어느 정도(程度)

자유(自由)스러울수있는것이다

선도대사(善導大師)가 사람들에게 잠자리에 들기 직전(直前)에

정관(正觀)을 하게 한것은 진실(眞實)로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였다

-------------------------------------------------------------------------------------------------------------------------------------------------------------------------------------------------------------------------

●눈이 다시 밝아지다

송(宋) 완념(阮念)의 셋째 형수(兄嫂)는 평범(平凡)한 농부(農夫)였다

두눈이 어두워져 늘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고서 마침내 눈이 환하게 도로 밝아졌다

---------------------------------------------------------------------------------------------------------------------------------------------------

●눈이 다시 밝아지다

자(紫)씨의 딸은 두눈이 다 멀었다

3년(年) 동안 염불(念佛)을 정근(精勤)하고서

두눈이 전(前)과 같이 다시 밝아졌다

찬(讚)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광명(光明)은 무량(無量)하여

시방(十方)의 국토(國土)를 비춘다 만약 지극(至極)한

마음으로 염불(念佛)하기만 하면 설사(設使) 육신(肉身)의 눈은 밝아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마음의 눈은 환히 열릴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눈먼 맹인(盲人)들은 가끔 무당(巫堂)이 되어 살생(殺生)하는

업(業)을 짓는것을 보게된다 이는 어두운데서 다시 어두운곳으로

들어가는 격이라고 말할수 있으리니 끝내 밝은 하늘을 볼수 없다

슬프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를

온 천하(天下)의 눈먼 맹인(盲人)들에게 들려줄수 있을까!

---------------------------------------------------------------------------------------------------------------------------------------------------

●학질(瘧疾)이 낫다

송(宋) 이자청(李子淸)은 오랫동안 학질(瘧疾)을 앓았다 용서거사(龍舒居士) 가

발작(發作)하기 시작(始作)하면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고

그런 후(後)에 약(藥)을 먹도록 가르쳤다

이자청(李子淸)이 이 말을 믿고 그대로 실행(實行)했더니 당일(當日) 반쯤 나았고 다음날

마침내 완쾌(完快)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독실(篤實)히 염불(念佛)을 믿게 되었다

------------------------------------------------------------------------------------------------------------------------------------------------------------------------------------------------------------------------------------------------------------------------------------------------

●사리(舍利)가 출현(出現)하다

송(宋)나라 공주(贛州) 염중대부(廉中大夫)의 공인(恭人)은

장육(丈六)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수(繡)놓다 반쯤 완성(完成)된 상태(狀態)에서

채색(彩色)의 실오리 사이에서 사리(舍利)가 출현(出現)하여

온 집안이 경탄(敬歎)해 마지 않았다

공인(恭人) : 중산대부(中散大夫) 이상(以上)의 관리(官吏)에 봉(封)해진

어머니 나 처(妻)를 일컫는 말

---------------------------------------------------------------------------------------------------------------------------------------------------

●사리(舍利)가 출현(出現)하다

진주(眞州) 종리소사(鍾離少師)의 부인(婦人)인 임(任)씨는 높이

4치 8푼의 아미타불(阿彌陀佛)상(像)을 조각(彫刻)하고 감실(龕室)도 매우 아름답게

장엄(莊嚴) 하여 늘 머리에 이고 행도(行道)하였다

어느날 불상(佛像)의 미간(眉間)에서 크기가 보리 쌀만한 사리(舍利)가 출현(出現)하여

광채(光彩)가 사람을 비췄다

--------------------------------------------------------------------------------------------------------------------------------------------------------------------------------------------------------------------------

●병(病)이 다낫다

송(宋)나라 수주(秀州)의 어느 스님은 늘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念)하면서 사람의

병(病)을 치료(治療)하였다 그런데 병자(病者)가 치료(治療)해 줄것을 간청(懇請)하기만 하면

금방 병(病)이 나았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부처님과 같이 존경(尊敬)하고 따랐다

---------------------------------------------------------------------------------------------------------------------------------------------------

●포로(捕虜)에서 풀려나다

원(元)나라 지정(至正) 15년(年)<1355> 겨울 장사성(張士誠)이

호주(湖州)를 공격(攻擊)하여 강절(江浙) 승상과 싸워 40인(人)을 붙잡아

감옥(監獄)에 수감(收監)하고 관리(官吏)로 호송(護送)케 하였다

밤이 되어 서호(西湖)의 조과사(鳥窠寺)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대유모선사(大猷謨禪師)가 천천히 낭하(廊下)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포로(捕虜)들은 스님이 점잖고 품위(品位)있는 자태(姿態)로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는 모습(模襲)을 보고는 장노여 저회들을 구(求)해주소서"하고 애원(哀願)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나는 그대들을 구(求)해줄수가 없소다만

지성(至性)으 로 나무(南無) 구고구난(救苦救難) 아미타불(阿彌陀佛)하고 염불(念佛)하시오

그러면 그대들을

구(求)해 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對答)하였다

그 가운데 세사람이 그의 말을 믿고 입에서 염불(念佛)을 끊이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 포로(捕虜)들을 출발(出發)시키기 전에 칼과 족쇄(足鎖)로 바꿔 채우게 되었는데

우연(偶然)히 이 세사람에게 와서 형구(뻐具)가 부족(不足)하여

그대로 포승(捕繩)으로 묶어 두는수 밖에 없었다

이유고 심문(審問)하여 이들이 양민(良民)으로서 포로(捕虜)로 잡혀온 것이

판명(判明)되어 마침내 풀려났다

찬(贊)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에

----혹은 칼이나 족쇄(足鎖)에 같히고 손과발이 수갑(手匣)에

채이더라도 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생각하는 힘으로 석연(釋然)히 풀려날수 있을

것이며----

한것은 누구나 믿고 있으나 염불(念佛)로 풀려난다는

사실(事實)은 그다지 믿으려하지 않는것 같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은 보살(菩薩)에 비교(比較)하여 얼마나 월등(越等)하신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손발이 잘렸으나 석가여래(釋迦如來)부처님을 생각하고서 사지(四肢)가

다시 자라난 사실(事實)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수족(手足)을 잘렸어도

오히려 다시 자라날수 있거든 어찌 족쇄(足鎖)나 수갑(手匣) 따위에

이를 믿으려 하는자(者)가 없는것인가?

그래서 내가 짐짓 이런 사실(事實)을 들추어 밝히게 된것이다-

--------------------------------------------------------------------------------------------------------------------------------------------------------------------------------------------------

●총론(總論)

염불(念佛)은 죽은후(後)에 돌아갈 곳을 위한 법문(法門)인줄만 알았지

살아서의 이익(利益)에 대(對)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문(呪文)을 외워 영통(靈通)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금방 염불(念佛)을 버리고 주문(呪文)을 외고 강연(講演)으로 총명(聰明)과

변재(辯才)를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염불(念佛)을 버리고 강연(講演)을 배우려 하며

절을 짓거나 다리를 놓아 줌으로 해서 복보(福報)를 얻었다는

말을 듣거나 내지 양생(養生)으로 장수(長壽)를 누리게 되었다는 따위의 말을 들으면

금방 갖가지로 마음이 변(變)하여 아무도 염불(念佛)을 집지(執持)하려는 자(者)가 없으니

어느 누가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정업(淨業)을 성취(成就) 하는 자(者)가있겠는가

그러므로<이러한까닭으로> 내가 짐짓 이런 사례(事例)들을 모아서 우선

요즘 사람들의 밖으로만 치구(馳驅)하여 달리는 마음을 단절(斷絶)하기 위하여

사실(事實)에 근거(根據)하여 이렇게 논(論)한 것이다

그러나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고자 하는것은 본래(本來) 부처가 되어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한것이요

기왕 죽은 다음의 안락(安樂)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다시 어찌 생전(生前)의 이(利)롭고 해(害)로움을 따지겠는가

---------------------------------------------------------------------------------------------------------------------------------------------------------------------------------------------------------------------------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반드시 정토(淨土)를

닦을것을 널리 권(勸)하다

-----------------------------------------------------------------------------------------------------------------------------------------------------

●천여(天如}의 정토혹문(淨土或問)에 요즘 선자(禪者)들

이 정토(淨土)를 닦는이를 보면 어리석은 아낙네들이라고 비웃는다

이렇게 어리석은 아낙네들이라고 비웃는것은바로

문수보살(文殊菩薩)나 보현보살(普賢菩薩) 마명보살(馬鳴菩薩)

용수보살(龍樹菩薩)를 비웃는것이다하였다

그 말씀이 이렇게 통렬(痛烈)하고 간절(懇切)하건만 여전(如前)히 믿으려 하지 않는 자(者)들이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상고(詳考)하여 거짓이 아님을 증명(証明)하려 한다

●관불삼매경(觀佛三味經)의 문수보살(文殊菩薩) 게송(偈頌)에 이렇게 발원(發願)했다

원(願)하옵건대 제가 목숨 다하는 날 아무런 장애(障礙) 없이

직접(直接)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만나뵙옵고 안락찰(安樂刹)에 왕생(往生)하과저

------------------------------------------------------------------------------------------------------------------------------------------------------------------------------------------------------------------------

●화엄경(華嚴經) 보현보살(普賢菩薩)행원품(行願品)의 보현보살(普賢菩薩) 게송(偈頌)에는

이렇게 발원(發願)했다

원(願)하옵건대 제가 이목숨 다하려 할때 모든 장애(障礙)가 다없어져

저 부처님 아미타(阿彌陀)를 뵈옵고 안락찰(安樂刹)에 왕생(往生)할수있과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마명보살(馬鳴菩薩)은 다음과 같이 가장

훌륭한 방편(方便)을 제시(提示)하였다

염불(念佛)에 전념(專念)하면 곧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할수 있어서 마침내 아무런 퇴보(退步)가 없을것이다.

●능가경(楞伽經)에서 부처님이 대혜보살(大慧菩薩)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 명덕비구(明德比丘)가 있을것이니 그의 이름은 용수(龍樹)로서

초환희지(超歡喜地)를 얻어 안락국(安樂國)에 왕생(往生)할것이다.

이상(以上)으로 대략(大略) 네분의 보살(菩薩)을 열거(列擧)하였다

그 밖에 정토(淨土)를 닦은 보살(菩薩)은 이루 이에그수(數)를 다 헤아릴수 없다

●여산(廬山) 혜원법사(慧遠法師)는 마하 반야(般若)의 깊은뜻을 깨달아 동방(東方)의

호법보살(護法菩薩)이라고 불렀다 종일(終日)토록 염불(念佛)하여

세번 성상(聖像)을 친견(親見)하고 극락(極樂)에 왕생(往生)하였다

●천태(天台)지자대사(智者大師)는 법화경(法華經)을 깊이 깨달아 일가(一家)의

교관(敎觀)일 뿐더러 만대(萬代)의 종조(宗祖)이기도 하였다

태어날때부터 서방(西方)을 향(向)하였고 변십종의(辯十種疑)

소십육관(疏十六觀)등의 저술(著述)을 남겨 정토(淨土)를 발명(發明)하였다

●백장대사(百丈大師) 는 마조(馬祖)에게서 도(道)를 전(傳)해 받은

적자(嫡子)로서 천하(天下)총림(叢林)의 공종(共宗)이었다

병(病)든 스님을 위해 기도(祈禱)하거나 혹(或)은 죽은 스님을

천도(遷度)할 때는 언제나 정토(淨土)로 돌아가게 하였다

●청량국사(淸凉國師)는 화엄조사(華嚴祖師)의 자리를 이었던 분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의 후신(後身)이라고도 불린다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바로 노사나(盧舍那)부처님 이라고 지적(指摘)했으며

또한 관경(觀經)<십육관경(十六觀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해석(解釋)하여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널리 선양(宣揚)하였다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先師)는 막힘이 없는 변재(辯才)를 얻어

종문(宗門)의 초석(礎石)이기도 한 분이다

사료간(四料簡)을 지어 유독(唯獨)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예찬(禮讚)하였고 상상품(上上品)에 왕생(往生)하여 명부(冥府)에까지

공경(恭敬)의 대상(對象)이 되기도했다

●사심신선사(死心新禪師)는 황용선사(黃龍禪師)의 법석(法席)을 이어받아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 정업(淨業)에 뜻이 간절(懇切)하여 권염불문(勸念佛文)을 저술(著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과 믿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진헐료선사(眞歇了禪師)는 단하순공(丹震淳公)의 법(法)을 이어

조동종(曹洞宗)의 문하(門下)가 스님에 이르러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보타산(普陀山)에 암자(庵子)를 짓고 서방(西方)에 전념(專念)하였다

정토집(淨土集) 이 현재(現在) 세상(世上)에 전(傳)한다

●자수심선사(慈受深禪師)는 천녀(天女)의 인연(因緣)을 크게 깨달아

일게(一偈)로 오교(五敎)를 융통(融通)했던 분이다 수행(修行)의 첩경(捷徑)은

정토(淨土)만한것이 없다하고

서방(西方)도량(道場)을 세워 입이 쓰도록 대중(大衆)에게 권(勸)하였다

---------------------------------------------------------------------------------------------------------------------------------------------------

사료간(四料簡) :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先師)가 수행인(修行人)을

위하여 보인 요도(要道)

(1)선(禪)이 있고 정토(淨土)가 있으면 <유선유정토▌有禪有淨土>

마치 범이 뿔을 단것처럼 현세(現世)에 인간(人間)의 스승이 되고

내생(來生)에는 불조(佛祖) 가된다

(2) 선(禪)은 없고 정토(淨土)만 있는 경우는 <무선유정토▌無禪有淨土>

누구라도 닦으면 누구라도 갈수 있다 만약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친견(親見)하면 어찌 깨닫지 못할것을 걱정하랴

(3)선(禪)만 있고 정토(淨土)가 없는 경우(境遇)는 <유선무정토▌有禪無淨土>

열에 아홉은 길을 잘못들어서 마경(魔境)이 앞에 나타나

자신(自身)도 모르게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

(4) 선(禪)도 없고 정토(淨土)도 없는 경우는<무선무정토▌無禪無淨土>

지옥(地獄)에서 만겁(萬劫)토록 벗어날길이 없다

---------------------------------------------------------------------------------------------------------------------------------------------------

천녀(倩女)의 인연(因緣) ; 천녀이혼(倩女離魂)의 공안(公案)을 말한다

무문관(無門關) 제35칙(則)에 오조(五祖)가 중에게 물었다 천녀(倩女)가

혼(魂)이 떠났으니 어떤것이 진짜인가 ?한 공안(公案)이 있다

천녀이혼(倩女離魂)의 고사는 당(唐) 진현우(陳玄祐)의

이혼기<離塊記>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다

장천녀(張倩女)와 왕문거(王文擧)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다만

어머니가 이들의 사이를 가로막아 왕문거(王文擧)는 쫓기 듯 서울에 가서

과거(科擧)에 응시(應試)하게 되고 천녀(倩女)는 사모(思慕)하는 마음이 간절(懇切)하여

혼백(魂魄)이 몸을 떠나 결국(結局) 왕문거(王文擧)와 혼인(婚姻)하게 되었다는줄거리

---------------------------------------------------------------------------------------------------------------------------------------------------

●원조본선사(圓照本禪師)는 도(道)는 천의(天衣)를 이었고

종(宗)은 설두(雪竇)를 본받아 법(法)의 우뢰가 천지(天地)를 진동(振動)했고

양조<兩朝> 송(宋)나라 신종(神宗)과 철종(哲宗)의 사표(師表)가 되기도 했던분이다

선(禪)과 정업(淨業)을 겸수(兼修)하여 이름이 상품(上品)에 표시(表示)되었다

●중봉본선사(中峰本禪師)는 고봉(高峰) 노인(老人)에게서 법(法)을 받아 배우는 자(者)

들이 마치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처럼 우러러 보았다

정토(淨土)를 사모(思慕)하는 시(詩) 백수(百數)를 남겨 사람들에게 염불(念佛)을 권장(勸獎)하였다

----------------------------------------------------------------------------------------------------------------------------------------------------

이상(以上)으로 대략(大略) 10인(人)의 대존숙(大尊宿)들을 열거(列擧)하였다

그 외(外)의 존숙(尊宿)이나 법사(法師)율사(律師)로서 정토(淨土)를 닦은이는

이에그 수(數)를 이루다헬수없다

아미타경(阿彌陀經)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

십육관경(十六觀經)

고음왕경(鼓音王經)

천친(天親)의 왕생론(往生論)

이상(以上)은 정토(淨土)만을 설(說)한 경(經)이나 논(論)을 대략(大略) 열거(列擧)한 것이다

그 밖에 가끔씩 정토(淨土)를 설(說)한 경(經)이나 논(論)은 이루다 기록(記錄)할 수 없다

도안(道安)의 왕생론(往生論)

회감(懷感)의 군의론(群疑論)

자은(慈恩)의 통찬(通贊)

해동미타소(海東彌陀疏)

사명(四明)의 묘종초(妙宗鈔)

자은(慈恩)의 참원의(懺願儀)

초당(草堂)의 보왕론(寶王論)

고산(孤山) 의 간정기(刊定記) 서자초(西資鈔)

대지(大智)의 관경소(觀經疏)

우담(優曇)의 연종보감(蓮宗寶鑑)

석지(石芝)의 닥방문류(樂方文類)

천여(天如)의 정토혹문(淨土或問)

대우(大佑)의 정토지귀(淨土指歸)

경도(鏡道)의 이사염불경(二師念佛鏡)

도연(道術)의 선인영(善人咏)

서재(西齋)의 정토시(淨土詩)

이상(以上)은 가장 잘 알려진 몇분을 대략(大略) 열거(列擧)한 것이다

그 외(外)에 정토(淨土)를 찬양(讚揚)한 분은 일일(一一)이 그 수(數)를 다 셀수 없다

바라건대 낱낱이 그분들을 살펴보고 그분들의 말씀을

읽어보고 그 분들의 뜻을 생각해 보고서 모든 의심(疑心)을 끊고 뜻을

결정(決定)하기 바란다

---------------------------------------------------------------------------------------------------------------------------------------------------

●정토수행(淨土修行)을 권(勸)한 여러가지 전적(典籍)

주굉(袾宏)은 보잘것 없는 범부(凡夫)로서 겨우 분수(分數)나 알고 살아갈뿐이요

평생(平生)에 애쓰고 노력(努力)한것은

오직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섯자일 따름이었다

이젠 늙었다 만약 누가 물어오는 자(者)가 있으면 반드시 이렇게

대답(對答)할뿐이다

그러나 혹시(或是) 물어 볼곳이 없어 억견(臆見)에 사로잡힐까 두렵고

더욱이 나는 이제 쇠약(衰弱)하고 병(病)이들어 대답(對答)하기에도 곤란(困難)하다

그래서 삼가 불보살(佛菩薩)이 설(說)한 경론(經論)과 고금(古今)의 대선지식(大善知識) 이나

대거사(大居士)등의 갖가지 저술(著述)들올 그 제목(題目)과 이름을 아래에 소개(紹介)한다

보이는대로 자세(仔細)히 독람(讀覽)하고 깊이 사량(思量)하여 생각해주기 바란다

믿고 믿지않고는 고명(高明)한 이들만이 판단(判斷)할것이다

------------------------------------------------------------------------------------------------------------------------------------------------------------------------------------------------------------------------



●불보살(佛菩薩)이 설(說)한 경(經)과 론(論)

불설(佛說)아미타경(阿彌陀經)1권(卷)

불설(佛說)무량수경(無量壽經) 1권(卷)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卷)

불설고음왕경(佛說鼓音王經) 1권(卷)

천친보살(天親菩薩의 왕생론往生論) 1권(卷)

마명보살(馬鳴菩薩)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권(卷)

대선지식(大善知識)과 대거사(大居士)의 저술(著述)

지자대사(智者大師)의 관경소(觀經疏) 1권(卷)

사명(四明)의 묘종초(妙宗鈔)3권(卷)

지자대사(智者大師)의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1권(卷)

원효법사(元曉法師)의 미타경소(彌陀經疏) 1권(卷)

대우법사(大佑法師)의 미타약해(彌陀略解) 1권(卷)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3권(卷)

자운참주(慧雲懺主)의 정토왕생참원의(淨土往生懺願儀) 1권(卷)

정토왕생결의행원문(淨土往生決疑行願文)1권(卷)

천여칙선사(天如則禪師)의 정토혹문(淨土或問) 10권(卷)

대우(大佑)의 정토지귀(淨土指歸)

지철(智徹)의 정토현문거요(淨土玄門據要) 1권(卷)

우담법사(優曇法師)의 연종보감(蓮宗寶鑑) 1권(卷)

경도이사(鏡道二師)의 염불경(念佛鏡) 1권(卷)

도연(道衍)의 정토선인영(淨土善人咏)의 1권(卷)

사명석지사문(四明石芝沙門) 종효(宗曉) 낙방문류(樂方文類) 6권(卷)

왕일휴(王日休)거사(居士)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 1권(卷)

이상(以上)의 경론(經論)과 저술(著述)은 현재(現在) 유통(流通)하고 있음

------------------------------------------------------------------------------------------------------------------------------------------------------------------------------------------------------------------------------------------------------------------------------------------------

●이름은 있으나 책(冊)은 남아있지 않은 것

도안법사(道安法師)의 왕생론(往生論) 6권(卷)

회감법사(懷感法師)의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 7권(卷)

도작선사(道綽禪師)의 안락집(安樂集) 3권(卷)

자민삼장(慈愍三藏)의 자비집(慈悲集) 3권(卷)

자은법사(藏恩法師)의 미타경통찬(彌陀經通贊) 1권(卷)

청량국사(淸凉國師)의 관경소(觀經統) 1권(卷)

초당비석법사(草堂飛錫法師)의 염불삼매보왕론(念佛三昧寶王論) 1권(卷)

미타경소(彌陀經疏) 1권(卷)

고산(孤山)의 관경소간정기(觀經疏刊定記) 4권(卷)

영지율사(靈芝律師)의 경소(經統)

종탄법사(宗坦法師)의 관경감로소(觀經甘露疏) 4권

무공거사(無功居士)의 정토자신록(淨土自信錄)

왕시랑(王侍郞)의 정토결의집(淨土決疑集) 3권(卷)

이상(以上)은 비록 남아있지는 않으나 우연(偶然)히

발견(發見)할수도 있을 것이므로 이에 소개(紹介)한다

--------------------------------------------------------------------------------------------------------------------------------------------------

●삼가 나의 비견(鄙見)4종(種)을 덧붙힌다

미타경소초(彌陀經疏鈔) 4권(卷)

정토의변(淨土疑辯) 1편(編)

정토발원문(淨土發願文)

왕생집(往生集) 1권(卷)

-------------------------------------------------------------------------------------------------------------------------------------------------------------------------------------------------------------------------

부처님이 보이신 염불(念佛)의 열 가지 공덕(功德)

만약 어떤이가 한번이라도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면

누구라도 현세(現世)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열가지 공덕(功德)이익(利益)을 얻을것이다

❶모든 하늘의 대력신장(大力神將)과 그의 권속(眷屬)들이 밤낮으로 몸을 숨기고 수호(守護)한다

❷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등(等) 스물다섯분의 대보살(大菩薩)과

그 외(外) 모든 보살(菩薩)들이 항상(恒常) 따라다니며 수호(守護)한다

➌늘 항상(恒常) 모든 부처님이 밤낮으로 호념(護念)하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이 항상(恒常) 광명(光明)을 놓아 이사람을 섭수(攝受)한다

➍야차(野次)나 악귀(惡鬼) 등 일체(一切)악귀(惡鬼)가 침해(侵害)하지 못하고

독사(毒蛇)나 독용(毒龍) 독약(毒藥)등의 해(害)를 입지않는다

❺모든 화난(火難)이나 수난(水難) 도적(盜賊)질 창칼 화살

감옥(監獄)에 갇히는 등(等)의 엉뚱한 죽음과 재난(災難)을 당(當)하지 않는다

❻예전(預前)에 지은 죄악(罪惡)이 모두 소멸(消滅)하고

내가 죽인 원혼(冤魂)이 해탈(解脫)하여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❼평안(平安)한 잠자리를 이룰수 있고 혹(或)은 꿈에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거룩한 모습(模襲)을 뵙옵기도한다

❽마음이 늘 항상(恒常) 즐겁고 안색(顔色)이 빛나며

기력(氣力)이 충만(充滿)하여 행(行)하는 일마다 모두길상(吉詳)하다

❾항상(恒常) 모든사람들이 마치 부처님처럼 공경(恭敬)하고

공양(供養)하고 예배(禮拜)한다

❿목숨이 다할때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올바른 생각이 충만(充滿)하며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모든 보살(菩薩) 성중(聖聚)<상선인(上善人)>이

손에 금연화대(金蓮華臺)를 들고와

서방정토(西方淨土)로 인도(引導)하여 왕생(往生)케 하며

영원(永遠)토록 승묘(勝妙)한 즐거움을 누린다

--------------------------------------------------------------------------------------------------종결(終結)---------------------

발일체업장근본득생정토신주

拔一切業障根本得生淨土神咒

--------------------------------------------------------------------------------------------------------------------------------------------------------------------------------------------

나무 아미타바야 다타가다야 다지야타 아미리

도바비 아미리다 싣담바비 아미리다 비가란제

아미리다 비가란제 가미니 가가나 기다가례 사바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당신님 자비(慈悲)한 서원(誓願)으로

저를 삼계(三界)의 괴로움에서 구제(救濟)하소서-------

----------------------------------------------------------------------------------------------------------------------------------------

발원문(發願文)

나무(南無) 만(卍) 아미타불(阿彌陀佛)

사바세계(裟婆世界)는 혼돈(混沌)되고 미혹(迷惑)함에

아득하고 아득하여 어두운 무명(無明)의 그 자체(自體)라 무엇을 의지(依支)하여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괴로움에서 해탈(解脫)을 기약(期約)하랴

오! 헤아릴수없는 무한(無限)한 자비(慈悲)의 부처님

아미타(阿彌陀)부처님 여래(如來) 박가범(薄伽梵)님이시여

당신의 홍서(弘誓)의 본원력(本願力)에 신명(身命)을 받쳐 귀의(歸依)함니다

어리석고 몽매(蒙昧)한 저희중생을 구원(救援)하소서

발원(發願)하고 바라옴은<희구(希求)함은> 당신이 계시는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태어나서 당신 자비(慈悲)로운 진리(眞理)의 아버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제자(弟子)가 되기를 발원(發願)함니다

팔공덕수(八功德水)의 만개(滿開)한 연꽃속에 태어나서 당신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무상(無上)하고 무비(無比)한<더 이상(以上) 뛰어난것이 없고 비교(比較)할수 없는>

제일(第一)의 법문(法門)을 듣고

활연(豁然)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證得)하고 마정수기(摩頂受記)를 받고자 발원(發願)함니다

이 원(願)이 성취(成就)되오면 누겁(累劫)으로 오면서 인연(因緣)맺은 다생(多生)의

부모형제(父母兄弟) 모든 군생(群生)을 불타는 화택(火宅)에서

구제(救濟)하고자 맹서(盟誓)함이니 대승(大乘)의 어진마음 어기지 않고

조재(朝裁) 영겁(永劫)이 다하도록

불법(佛法)의 동량(棟梁)이 되고 다리가 되어 정토법문(淨土法門)의 사신(使臣)이 됨이라

아미타(阿彌陀)부처님 당신을 무한(無限)한 존경(尊敬)과 경의(敬意)받쳐 앙모(仰慕)하여

사모(思慕)함니다

불쌍하고 가여운 저의 중생(衆生)들을 어여삐 여기시고 거두어 모두 당신의 나라로 안치(安置)하소서

오!모시고 따르고 싶은 억만대(億萬代)의 사표(辭表) 영원(永遠)한 귀의처(歸依處)

당신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절대(絶對)한 진리(眞理)의 어버이

아미타(阿彌陀)부처님 여래(如來)박가범(薄伽梵)께

극진(極盡)한 최대(最大)의 존경(尊敬)과 영광(榮光)을 받침니다

--------------------------------------------------------------------------------------------------------------------------------------------------------------------------------------------------------------------------------------------------------------------------------------------------------------------------------------------------------------

옮긴이

경북(慶北) 경산시(慶山市) 자인면 계남2리 571의2 번지(番地)

대한불교(大韓佛敎) 조계종(曹溪宗) 동화사(桐華寺) 말사(末寺) 쌍용사(雙龍寺)

주지(住持) 정업행자(淨業行者)별호(別號) 수마제(須摩提) 아운파(阿雲坡) 분향(焚香)합장(合掌)





Posted by 慧蓮(혜련)
|

현대불교신문 염불각자열전 21 _ 자운 율사


 

가장 큰 불사는 염불로 정토에 왕생해 성불하는 것

 


서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단정히 앉아 아미타불 명호를 칭명하면서 조용히 입적하시니, 향기가 진동하고 묘한 소리가 청아하였으며, 염불소리와 함께 입으로부터 오색 광명이 서쪽 하늘을 가득 메웠다.”

-자운율사 탑비중에서

 

#10만 명에게 수계한 조계종 계단의 확립자

한국 근현대불교사에서 가장 많은 스님과 불자들에게 계첩을 수여한 스님은 단연, 자운(慈雲, 1911-1992) 율사일 것이다. 조계종의 전계대화상으로서 40여 년간 10여만 명에 달하는 수계제자를 배출한 분이다. 동시에 그는 28세에 용성(龍城) 선사께 인가를 받고, 1947년에는 도반이었던 성철(性徹), 향곡(香谷), 청담(淸潭) 스님과 함께 봉암사결사를 주도한 선() 수행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율사이자 선사인 자운 스님이 40세 이후로는 염불수행에 매진해 일생 동안 수많은 염불행자들을 지도한 정토의 선지식임을 아는 불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임종시에 아미타불의 접인을 받고 희유한 서상(瑞祥)을 나타내며 윤회를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인 정토에 왕생한 자운 스님은, 조계종의 계단(戒壇)을 확립하고, 정토수행의 완성을 보여준 우리 시대의 사표(師表)가 아닐 수 없다.

 

#율사이자 선사로 왕생한 정토의 조사

열반하시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미타불염불 10만 번, <아미타경> 48편 독송, 아미타불 예경 1080배 등을 행한 원력보살! 자운 스님은 아미타불과 극락세계에 대한 믿음(), 육도윤회를 벗어난 정토에 화생하겠다는 발원(), 염불행()이란 성불의 3가지 양식(資糧)을 갖춘 정토수행이 가장 큰 불사라며 <정토삼부경>(법정스님 역)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아미타) 부처님을 뵙고 서방의 정토에 왕생하여 성불하는 것, 이 이외에 더 크고 긴요한 불사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같이 여기 옮겨 싣는 정토삼부경의 가르침과 그 인연공덕으로 이고득락(離苦得樂)하고 왕생정토(往生淨土)하여 이윽고는 대각을 성취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16세에 순치황제 출가시 듣고 발심

자운당(慈雲堂) 성우(盛祐) 스님은 1911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에서 태어났으며, 7세부터 진부면 서당에서 <동몽선습>, 사서 삼경 등 유서를 공부하였다. 1926, 16세에 정초기도를 위해 절에 가는 어머니를 따라 오대산 상원사에 가서 혜운경윤 스님으로부터 세속의 10036천일보다, 출가의 반나절이 더 낫다는 순치황제 출가시를 듣고 발심하여 1927, 17세의 나이로 출가를 결심했다. 그는 곧바로 해인사로 달려가 팔만대장경 판전에서 1만 배를 올리고 혜운 스님을 은사로, 남천한규 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서원게를 읊었으며, 같은 해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보살계를 받았다. 1929년 해인사 강원에서 사교과를, 1932년 범어사 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1934년 범어사에서 경념 율사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한 스님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율장 연구를 시작하여 5부 대율을 날마다 서사(書寫)하고 지송하였다.




#3년 장좌불와하고 용성 선사 인가 받아

1935년 범어사 선원에서 하안거를 마치고, 3년 동안 울진 불영사에서 눕지 않고 꼿꼿이 앉은 채(長坐不臥)로 결사(結社)하였으며, 1937년 문경 김룡사와 양산 통도사 선원에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1938년 울산 학성선원에서 하안거를 지내며 선리(禪理)를 깊이 참구하여, 드디어 용성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기에 이른다.

자운 스님은 같은 해,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 선사로부터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깊은 뜻(西來密旨)’에 대해 선문답을 한 다음, “청산은 항상 걷는데 백운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네, 사람이 물속을 걸어가는데 물이 옷에 붙지 않도다(靑山常運步 白雲永不動 人踏水底過 水不着衣裳)”라는 오도송을 지어 올렸다. 용성 스님은 이를 인가하고 입실건당토록 하고 전법게와 함께 의발을 전해주었다.

 

오대산 백일기도로 문수보살 계시 받아

1939년에는 일제의 식민수탈로부터 조국을 해방하고 불교를 중흥시키려는 대원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에서 날마다 20시간씩 백일 용맹정근으로 문수기도를 봉행하였다. 그러던 중, 99일째 되는 날 황홀한 가운데 푸른 빛의 사자를 타고 나타난 문수보살로부터 너는 불교의 중흥을 위해 계율정신을 진작하라는 계시를 받고 심지계법문(心地戒法門)을 통달하여, 계율로 무너진 수행가풍을 진작하는 힘을 갖추게 되었다.

스님은 1940년 이후 10여 년간 제방선원에서 정진한 후, 본격적으로 율장 연구에도 심혈을 쏟았다. 당시 서울 대각사에 주석하면서 희귀한 율장을 구할 수 없어 2년여에 걸쳐 삼복 염천에도 두터운 장삼을 입고 날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일본의 만속장경(卍續藏經)에 실려있는 오부 율장(五部律藏)과 그 주소(註疏)를 모두 필사하여 연구할 정도였다.

194837세 때, 처음으로 문경 봉암사에서 결사하면서 보살계 수계법회를 봉행했으며, 1951년에는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재난에 처한 재가불자의 수행과 교화를 위해 부산 감로사를 창건했다. 1955년 교단정화이후 초대 해인사 주지에 추대되어, 이듬해 해인사 금강계단 전계화상에 추대된 이후 1981년 종단 단일계단이 형성될 때까지 30여년 동안 수계증을 받은 수계제자가 무려 십만여 명에 달했다.

 

#매일 10만 번 아미타불고성염불

1956년 재단법인 해인학원 이사장, 1958년 조계종 감찰원장, 1967년 범어사 주지를 지내고, 1957년 이후로는 계율과 정토수행을 하나로 보는 계정일치(戒淨一致) 수행을 제창하고 경전과 율전의 한글 번역에 매진하였다. <무량수경> <자비도량참법> 21종에 이르는 한글본을 출간 유포했으며, <미타예찬> <정토의범(淨土儀範)> 등 중요 정토서적 9만여 부를 거의 자비로 간행, 유포했다.

자운 스님은 감로사에 주석하면서 주야로 여섯 차례에 걸쳐 예불과 염불을 봉행하였다.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아미타불고성염불을 십만 번씩 하면서 미타예경 1080배로 참회(禮懺)와 절을 겸하였다. 특이한 것은 스님의 염불수행은 염불진언을 함께 닦았다는 점이다. , 하루 30만 독씩 아미타불 종자(種子)진언’(흘리紇哩)을 염하였고, ‘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다냐타 옴 아리다라 사바하)무량수여래 근본다라니등을 하루에 108번씩 외우면서 정진하였다. 또한 오후 4시 아귀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헌식 외에는 하루 한 끼니만의 일중식(日中食)을 공양하면서도 삼천배의 정진을 늦추지 않았다.

 


조계종 총무원장역경원장으로 헌신

자운 스님은 철저한 지계행과 정토수행 가운데서도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 사심 없이 종무행정에 헌신하기도 했다. 스님은 1976년 조계종 원로에 추대된 데 이어 총무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77년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이듬해 조계종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였다. 1981년 종단 단일계단 전계화상에 추대된 스님은 1987년 동국역경원장에 이어 재단법인 동국역경사업진흥회 이사장에 취임, 역경불사의 반석을 다지기도 했다.

세수 81세가 되던 19911030, 자운 스님은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종단단일계단 제12회 수계법회를 마친 후 계단에 앉아 나는 금년말이나 내년초에 금생의 보년(報年)이 끝날 것이므로 종단 단일계단의 단주(壇主)를 고별한다며 입적을 예고하였다.

 

#기이한 향광명의 서상 보이며 왕생

과연 이듬해 초인 199227(음력 14), 스님은 해인사 홍제암에서 참다운 성품은 둥글고 밝으며 본래 공하여 광명이 시방을 극히 청정하게 비추나니(眞性圓明本自空 光照十方極淸淨), 올 때는 청풍이 소요하듯 오고, 갈 때는 밝은 달을 따라 자재하게 가네(來與淸風逍遙來 去隨明月自在去).”라는 임종게를 쓴 다음 서쪽을 향해 합장하고 단정히 앉아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명하면서 조용히 입적했다. 이때 향기가 진동하고 묘한 음악이 청아하게 들려왔으며 염불소리와 함께 입으로부터 오색 광명이 서쪽 하늘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세수 82, 법랍 66년이었다. 스님의 장례는 7일째인 213일 해인사 연화대에서 조계종 원로장으로 거행되었는데, 다비 후 은행 크기의 사리 19과와 녹두 크기의 사리 5천여 수가 출현하였으나, 생전에 사리를 찾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큰 것만 수습하여 이를 해인사, 감로사, 경국사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정토 선양한 한국의 상참괴승(常慙愧僧)’

스님은 평소 계율을 근간으로 한 염불수행과 참회를 겸수한 예참의 염불, 정토진언행을 함께 닦으며 스스로는 상참괴승(常慙愧僧; 항상 참회하는 부끄러운 중)’이라 하심하며 산 참다운 선지식이었다. 근대 중국 정토종의 제13대 조사인 인광(印光, 1861-1940) 대사 역시 법호를 상참괴승이라 하여 염불을 크게 선양하였는데, 자운 스님은 한국에서 대사와 같은 정토 선지식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미타불 법문 듣고 무생법인 증득한 뒤에 극락세계 안 떠나고 사바에 와서 방편을 잘 알아 중생 건지고 걸림 없는 지혜로 불사 지으리. 부처님 저의 마음 아시오리니 오는 세상 이 소원 이루어지이다.”

직접 편찬하신 <정토예경(淨土禮敬)> 회향게의 내용 그대로 자운 스님은 해인사에서 염불만일회를 결사하여 관음전에서 정토왕생업을 닦았고, <정토심요> <연종보감> 등 많은 저서를 내어 정토법문을 널리 선양했으며, 서울 보국사와 대동염불회, 부산 감로사, 해인사 홍제암, 대구 만선염불원 등에서 염불결사를 조직해 정토수행을 널리 보급하였다.

자운 스님의 계율사상을 충실히 계승한 상좌인 지관 스님(1932-2012, 총무원장 역임)에 이어 손상좌들인 감로사 주지 혜총스님, 원로회의 부의장 세민 스님, 홍제암 암주 종성 스님, 보국사 주지 태원 스님 등이 활발히 지계를 바탕으로 한 염불수행을 홍포하고 있다. 조만간 전국 총림에 염불원이 개설된다면, 자운 스님이 발원한 불교중흥의 서광이 다시금 찬란히 비칠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김성우(도서출판 비움과소통 대표) 작가 buddhapia5@daum.net

Posted by 慧蓮(혜련)
|


핸드폰 컴퓨터 MP3로 듣기

 http://www.kumsunsa.com/supervisor/UploadFiles/board/ds0050/wsslnh.mp3

 

 

핸드폰 혹은 컴퓨터로 듣기

 https://t1.daumcdn.net/cfile/blog/2107163456A74B093A

 

출처/불교 호스피스 능행스님의 지금, 이순간 (bbs 불교tv)

 

 

 

 

 

 

 

 

 

 

 

[파일:1]

 

 

 

 

Posted by 慧蓮(혜련)
|

성월스님의 극락왕생과 안양암 신도들의 극락왕생 사례 


성월스님 존영

서울 창신동의 안양암을 세운 분은 성월대사이신데 출가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염불해야 극락간다라는 말을 듣고는 유명한 스님을 찾아가서 생사를 벗어날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니같은 놈이 무슨 공부냐며 몇번이나 쫓아냈는데도 오고 해서 그러면 나무아미타불을 하라 하였습니다.그래서 출가한 뒤 안양암을 창건하고 염불만일회를 결성하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염불하셨습니다.

 

말년에 성월스님이 7일전부터 극락왕생한다고 예언을 했는데 몸이 미진해서 이씨 안양행 보살이라는 분이 시봉을 하였습니다.그런데 보살님이 낮에 깜빡 졸았는데 갓을 쓴 노인 한 분과 동자한 분이 스님 방으로 들어갔는 것을 보고는 깨어나서 스님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가사장삼을 수하시고는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보살님이 "스님 왜 그러십니까?"하고 물의 지금 지장보살님과 문수동자님이 오셔서 예를 올리는 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앉아서 염불하시고 극락왕생하셨습니다.다비를 하니 사리가 나왔고 49재 때 때때로 방광을 하였다 합니다.

성월스님의 신도 가운데에서도 염불수행하며 극락정토한 사례가 많습니다.

 

한 처사는 극락왕생 발원하고 염불하면서 지장경을 독송하였는데 돌아가실 때 앉아서 자손들에게 저기 연꽃이 왔다.내가 어찌 걸아서 가겠는냐.나는 저 연꽃을 타고 극락왕생한다. 내 죽거든 염불하거나 재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또 한 처사는 나무아미타불염불을 한 분인데 돌아가실 적에 자손들을 모아놓고 지금 관세음보살님이 너의 엄마(일찍 돌아가신 모양입니다.)로 변해서 오시는구나.내가 관세음보살님을 따라 극락왕생한다하고는 염불하며 임종했습니다.

 

또 한 처사 왕생할 적에 자손들을 모아놓고 문수동자보살께서 오시는구나.나는 저 보살님을 따라서 오대산 문수보살 계신 곳에 참배하고 극락세계 간다하고는 염불하고 돌아가셨다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성월스님과 안양암  (출처/안양암)

 

안양암<安養庵>의 창건주<創建主>는 어떤 분인가?

 

 

어느 곳이든지 옛날에 왕도가 배출되는 곳은 그 도시를 중심으로 하고 그 주위 산천에

사찰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라의 도읍터였던 경주 근방에 빙 돌아가며 사찰이 많이 서 있고

고려의 도읍터가 되었던 송도장안 개성도 그 근방에 사찰이 많이 서 있읍니다.

한양 경성에도 삼각산과 관악산을 위주하여 사찰이 많이 있었읍니다

 

옛날부터 이르기를 삼각산을 중심으로 양주땅에 마흔 여덟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알려왔읍니다. 하여간 경성을 중심으로 하여 양주와 고양땅에 많이 분포된 절이 백여개는 족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경성동 대문밖에 창신동이라는 곳의 막다른 곳을 가면 안양암<安養庵>이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절처럼 신도가 많고 불공이 잘 들고 하는 곳은 드믑니다.

어느때 가보더라도 신도분들이 북적되던 곳이였읍니다

 

그러면 이 절은 언제부터 창건된 절이며 이 절을 창건하신분이 어떤 스님이신지

안양암의 역사를 소개드리고..이처럼 경성서 포교 장소로 할 만큼 발달된

그 내면<內面>의 역사를 본다면 그 만큼 불교<佛敎>에 입도<入道>하여 신앙<信仰>에 열연하시든  고.성월대사< 故.性月大師>의 눈물겨운옛날 이야기의 실화<實話>를 말씀 드리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안양암은 지금으로부터 마흔일곱해전에

성월대사께서 처사로 계실때에 지어 놓으신 칠성각<七星閣>의 후신인바

산간의 불교가 서울장안으로 들어오게 하든 선발대<先撥隊>였고 도화선<道火線>

이였읍니다.

 

삿갓을 쓴 승려나 굴삿갓을 쓴 승려가 동대문턱에서 얼씬거리기만 하여도

이눔.승려가 어디를 들어오려고 넘실대는냐>고 호령을 하엿고 비구니 스님이

구경삼아서 동대문을 드러다 보기만 하여도

<저 여승을 들어서 동여매라>고 소리를 치든 그 시절이였으니

 

그러기에 남도<南道>사찰의 승려나 북도<北道>사찰의 승려로서 서울 장안을

구경왔던 승려들은 모두 동대문턱이나 남대문턱만 드려다보고서 칠성각에 가서

신세를 지고 돌아가게 된이가 많았읍니다.

 

더군다나 동대문 밖에 원흥사를 지어 가지고 조선불교의 민중화<民衆化>인

도회 발전을 도모 할려는때에는 더욱이 시골서 명망있으신 스님들께서

이 칠성각에 오셔서 묵으시면서 기도 불공도 들여주시면서 법문 설법도 하시고

보금 자리를 하셨으니 당시에 유명한 대강사와 대법사와 대선사는 모두 이 칠성각을 드나들지 아니 했던 이가 없다하여도 과언이 아니였다 합니다.

 

리히광. 리희명. 나청호 .강대련. 전관혀. 백룡성. 송만공. 방한암.박만하 환웅대사.등

이러하신 스님들 어느분이든 이 사찰인 칠성각에 다 한번씩 들려 가시게 되었읍니다.

 

이 칠성각은 한참동안 조선불교 도회 진출의 참모 본부가 되는 감이 있었읍니다

이 암자가 이만큼 오십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내려 왔으니 어찌 오늘날에 있으서

이 만큼 흥왕하지 않겠읍니까?

아마 서울 장안의 신도는 거진 다 이절의 신도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큼

많은 신도를이 있었읍니다.

 

이 절의 신도 명부에 오른 이만 하여도 만명 이상 넘어선지가 벌써 옛날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안양암의 전신<前身>인 칠성각을 지은 고 성월대사는 어떤 분이셨나면

지금부터 이 스님께서 불교에 입문<入聞>하시기까지 눈물겨운 이야기를 적어 드리겠읍니다.

 

누구든지 이 글을 보시는 분은 감격한 생각이 날것이라 여겨집니다..마는

참으로 피와 얼이 엉킨 정성과 신앙을 있는데로 다 받치시였읍니다

불교를 믿어시는 분이 계시거든이 신앙실화<信仰實話>의 주인공이신 고.성월대사를 본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성월대사님. 2

 

 

단지위 친출천대효<斷指薦出天大孝>의 이진사<李進士>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여든여섯해 전의 옛날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철종대왕<哲宗大王>의 시절 평화스러운 한양성의 한 모퉁이.지금의 원남동<院南洞>에는

불교 독신자인 이재청<李在淸>이라는 선생께서 역시 불교를 좋아하는 김씨 부인과 함께

그리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이선생은 어느날에 그 부인에게 말하되 "우리 부부가 불교를 좋아하는 것 만큼

우리가 죽은 뒤에도 불교의 일을 위하여 분발하고 나서서 부처님의 일을 충실하게

잘할 자식 하나를 낳으면 얼마나 좋겠소?"

 

이렇게 말을 하고 이선생은 삼각산의 가까운 사찰로 나가서 공부하고 기도를 드릴때 마다

아들 낳기를 생각하고 은근히 부처님께 축원하기를 마지 않았읍니다.

 

그리 하였더니 어느날에는 김씨부인이 꿈을 꾸었는데 연세드신 노<老>스님 한분께서

장삼을 걸치고 와서 절을 하시드니 "소승은 삼각산에 있는 중이온데 모처럼 산을 내려 왔다가

날이 저물어서 갈곳이 없사오니 댁의 사랑에서 하룻밤을 재워 주심은 어떠하시겠읍니까?"

하십니다.

그래서 부인도 老스님의 사정을 딱히게 생각하며 "그렇더래도 내마음대로 할수가 없읍니다 .남편과 의논을 하겠읍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고 사랑을 나오는척 하다가 깨보고보니

너무도 생생한 꿈이라. 남편되는 이선생께 이러한 꿈 애기를 하였더니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읍니다.

 

이러한 꿈 애기가 있은지 열달뒤에 이선생 부부는 옥동같은 귀한 남자아이를 낳았으니

 곧 이름을 창진<昌鎭>이라고 지었읍니다.

 

창진은 곧 세상에 있어서  안으로는 가정을 창성케하여 진압하고 세상밖에서는 부처님의 일을 창성케하고 진압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 선생은 어린 창진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면서 오륙세부터 글을 가르키기 시작하여

이십여세까지 한문 공부를 시켰읍니다.

 

그리하여 이십 삼사 세때에 과거에 응하여 소과에 급제 하였으므로 소년 진사들과

한참 동안 재주를 드날렸읍니다

그래서 어느골이든지 골을 나아가게될 기회가 많았으나 그 아버님이 모두 사양케 하고

고도학에 힘을 쓰도록 권하였읍니다.

 

그래서 이진사로만 행세케 되었는데 자기가 생각해 보아도 나라의 정치가 부패하여

매관매직을 일삼고 소위 관리라는 사람이 백성의 고혈만 빨아먹는 것을 보고는 분개하여

환로에 출가하기를 단념 하였읍니다.

 

그러나 이진사는 태평건곤에 성주명군<聖主明君>을 만나서 상하일치 군신유의 한때에

천하를 위하여 정치적 경륜 포부를 실현해 보지 못함이 항상 마음속에 얼키고

소한<所恨>이 되어서 세상에 대한 울분한 생각과 불편한 심기를 거둘날이 없었읍니다.

 

조금 길고 둥그스럼한 얼굴에 삼각주를 드나들며 육척장신의 거구를 가지고 한눈을

찡긋하게 뜨고 세상을 노려보는 기개있는 선비 였으니 난세를 당한 그마음이

편안할 날이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그는 부모님께 지극하게 효성을 다하는 동시에 세상에 대해서는

한이 많았으므로 술로써 세상만사를 잊으려고 애를 썼읍니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그의 입술에는 술이 떠날때가 없었고 따라서 양광에 소정을 하며

가는곳 마다 떠들석하게 요란케 하는 일이 많았읍니다.

 

그러나 효심이 지극한 그인지라 온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했을때도 그 부친만 뵈면

정신을 차려서 조금도 술취한 표가 없었고 또는 아무리 술에 빠져도

부모님께는 혼미한 상태에 빠져본때가 없었읍니다.

그리하므로 남들은 그를 "대음" 이라고들 하나 그 엄친께서는 도무지 곧이

듣지 않하셨다 합니다.

 

그러나 대음은 대음이였읍니다.

그가 대음이였던 것은 몇가지 우스운 일화<逸話>에서 볼수가 있읍니다.

 

남의 술이든지 나의 술이든지 밤낮으로 술에만 빠지고 가사를 힘쓰지 못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던 관계로 생계가 차츰차츰 곤란하게 되었음으로 누가 문기수로 차명만하고 앉아서 월급이나 받으면서 

술값이나 보태라고 하며 문기수로 추천을 받은 일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이진사는 말하기를 "옛끼 미친 사람 같으니라고 아무리 양반이 망하여 가는 세상이로소니

내가 문기수를 한단 말인가?" 하고 거절 했읍니다

그래도 친구가 자꾸 권하는 바람에 "흥" 하고 대답만 하고 용차를 얻였읍니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고 녹만 먹는고로 문기수를 보는 자들은 행세를 하고

공손하지를 안했읍니다

 

이들을 본 이진사는 어느대에 술이 잔뜩 취해가지고 돌아와서 주정을 한바탕 하고

< 이 눔들아 내가 삼순구식을 할지언정 문기수를 할 사람인냐?아무리 양반이 궁해서 차명을 해 주었기로니....에~잇 고약한 놈들 같으니라고 그런 버릇장 머리가 어딧냔 말이다>

이와 같이 호통을 쳤읍니다.

그리고 술이며 안주를 돈이 있는데로 사다가 문기수들을 먹이고 그 후부터는 차명까지도

거절한 일이 있었읍니다

 

또 어느때에는 그가 술이 취해가지고 궐내에 들어가서 유아지 방에서 상궁들에게

욕설을 하고 야단을 부린지라 대궐에 있는 내관들이 잡아 끌어내리면서 참하든지

귀양을 보내야 되겠다고 서둘렀읍니다.

그래서 그 부친의 형수님께서 유아지에게  잘 말하고 유아지가 상감마마에게 잘

전달하여 전교를 불러내서 무사하게 나온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 몇가지를 보더래도 이진사가 얼마나 술이 대음이였으며 또한 난세의 불우객으로써

한을 품고 술로써 되는데로 살아가려 하는지 역역하게 생각 해볼수가 있읍니다.

 

그런데 이진사는 술은 마시여도 참 의협한 남자 였읍니다.

자기가 어려우니 만큼 남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누구든지 곤란한 경우에 빠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기만 하면 몸을 돌아보지 않고 가사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구제해 주는

성품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어떤 집이라든지 가난한 사람이 있어서 해산을 하게 되었는데 먹을게 없어서

산모가 곤경에 빠져 있다고 하면 남의 집에 가서 돈을 꾸고 쌀을 얻어서라도 그를 구제

하여주고 또 마찬가지로 누가 상사를 당하고는 돈이 없어서 고인를 내어가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덯게든 일을 주선해서 일이 잘 마무리 되도록 해주기가 일수였읍니다.

 

어느때에는 술이 얼큰하게 취해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보니까 차가운 겨울밤에

거지 아이 하나가 얇은 옷하나만 입고 어느 담모퉁이에서 벌벌 떨고 앉아 있는것을 발견 했읍니다.

 

" 애야 어떤 목로주점 같은 부엌이라도 가서 밤을 지내야지 않겠는냐>

여기서 어쩌자고 떨고만 있는냐?"

<나릿님 살려주십시요 추워서 못살겠읍니다>

"그러기에 어디 불기운 있는 곳으로 가서 자란 말이다"

<가면 뭘합니까 막대기로 후려치고 발길로 차서 내쫒아 버리고 마는 걸요

지금도 너무 춥기에 저 목로주점 문칸에서 자다가 얻어 맞고 왔읍니다>

 

거지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읍니다

그래서 이진사는 그 모습을 보고 가여워서 눈물을 흘리며 우셨읍니다

" 저 아이도 부모들이 나을적에 귀한 남자라고 좋아하고 길렀을터인데 세상이

고르지 못한 지라.......

애야 일어나서 집으로 가자" 하고는 옷모양세 하며 흉칙한 모양의 거지 아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와서 저녁밥을 먹이고 사랑방에서 재웠읍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이튼날 그아이는 새벽에 달아나면서 요강이며 잿털이며 타기둥의 유기와 문방구등의 값나갈 만한 기구를 전부 싸가지고 내빼고 말았읍니다

 

이진사는 이것을 보고 허허 웃고 "인종도 씨가 따로 있는 모양이군"하며 다시 말이 없었읍니다.

이진사는 이와 같이 의협하고 호탕하게 영웅의 기상으로 지내는 동안에

스물 일곱이라는 나이가 되었읍니다.

 

바로 고종태왕<高宗太旺>때 병자년<丙子年> 가을 이였읍니다

이때에 그의 부친 재청선생<在淸先生>은 우연히 병에 이르니 백약이 무효입니다

이진사는 그때부터 주기<술>를 끓어 버리고 부친의 병간호에 여념이 없이 지내고 있든바인데

어느날 그 부친께서 운명을 제촉하셨읍니다.

 

" 아버지 아버지 정신을 좀 차리십시요 소자 청진이 입니다 네 아버지?

이진사는 이렇게 소리를 치며 부친을 불러 보았으나 아무런 말씀 없이 가시였읍니다.

 

이때에 효심이 지극한 이진사는 왼손의 무명지 손가락을 으쩍하고 깨물어 끊어서

피를 철철 흘리며 그 부친의 입에 더운 선지피를 흘러 넣었읍니다

그리한즉 숨이 끓어지셨든 그 아버지는 숨을 휴~~하고 내쉬며 회생<回生>하셨읍니다

 

" 아버지 아버지 소자를 보십시요 아버지께서 이렇게 가시면 어찌 합니까?

불초한 소자를 용서하시여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가시더래도 무슨 말씀이나 하시고

가셔야 하지 않겠읍니까? 유언의 말씀이라도 주십시요"

 

"" 염불.염불.염불을 해야 하느니라 지성으로 염불해야 극락를 간다""

 

돌아가시는 부친은 이말씀만 남기시고 아무말씀도 없으시고 다시 숨이 긇어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이진사는 단지를 하여 피를 흘려서 돌아가신 부친을 잠시라도 회생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진사의 출천대효<出天大孝>는 전하는 이가  세상에 널리 전파하게 되었읍니다.

 

 

 

성월대사.3

 

법문<法門> 듣고  거사 발심 칠성각 건설<處土發心七星閣 建設>

 

 

이진사는 병자년에 부친을 잃고 효심으로서 복을 마친뒤에 돌아가신 부친의 유언에 의하여 염불<念佛>

공부를 시작하고 시골.서울 할것 없이 산중에 있는 사찰을 많이 다녔읍니다.

 

그러나 염불은 시작하였어도 그렇게 염불정진이 잘 되지를 않했읍니다.

 

그래서 항상 부처님을 신앙하는 마음만 잊지않고 십여년을 지나다가 어느때에

욕 잘하기로 유명한 성능절에 계시는 환옹<幻翁>큰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읍니다.

 

"스님 ~!어떻게 하여야 불법을 잘 닦아서 생사대해의 큰 바다를 벗어 나겠읍니까?

 

이진사는 이와 같이 환웅 스님께 여쭸읍니다.

 

<에이 실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이 사람아! 가서 낮잠이나 주무시게. 불법을 아무나 닦는줄 아는가? 그래도 절집으로

돌아다니면서 귀동냥은 한모양일세 그려... 불법을 얻고자 하는것을 보니...>

 

환웅 노사는 이와 같이 우선 호통 부터 치시고 상대도 하지 않으셨읍니다.

 

" 스님~!그렇게 농담 하시지 마시고 참으로 진실로 법을 구히려 왔사오니

법문을 일러 주십시요 저는 참으로 불법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져 하오며 배우고져

묻사오니 바른길로 인도 하여 주십시요"

 

<흥. 그래도 숙세의 선근종자는 심었는 모양일세 그려

그러나 불법이라는 것은 참으로 대장부라야 할것이요 또 신심이 지극한 대장부라야

성취 하는것이니까 자네 같은 소장부는 할바가 되지 못하느니라>

 

"그야 공부를 해보고 결과를 보시고서 대장부인지 소장부인지를 알지 불법을 닦기도

전에야 어찌 알수가 있겠읍니가?

그러하오니 공부의 길만을 가르켜 주시옵소서"

 

<어 ! 그것 참.........법그릇인걸 그만하면 불법에 수행할 자격이 있겠는걸.

 

 불법의 공부를 하려거든 염불을 하게.

 

우리는 어찌하든지 극락을 가야되지 이세상에 있어서는 세상없이

견성성불을 하였다 하더라도 퇴타 할때가 있느니 그런즉 자네는 육자염불을

주야독송 하고 생각하여 극락길을 찾으소>

 

이진사는 이때에 이 말씀을 듣자말자 마음이 열려지면서 아버지께서

 

<염불 염불을 해야 극락간다>하고 유언하시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며

정토왕생을 뼈속 깊이 사무치게 발원하고 환웅스님께 출가하기를 원하였읍니다.

 

그리 말씀 드리니.

<처자가 있는 사람이 스님이 되면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은것이니 아예 스님 될 생각을

버리고 참회나 하고 우바새의 오계를 받드소>

 

환웅 스님은 이와같이 이진사에게 출가위승을 거절하고 처사가 되기를 권했읍니다.

 

그래서 이진사는 환웅스님께 거사오계를 받고 성월이라는 이름을 받아

성월<性月>처사라고 하게 되었읍니다.

 

환웅스님이 이진사에게 성월이라고 지어준것은 이진사의 성품이 달과 같이 맑다는

의미 엿읍니다.그리고 또는 염불을 할지라도 자성<自性>의 달을 차지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때가 기축년<己丑年>인 즉.이진사가 39세가 되는 해입니다.

 

성월처사는 이 뒤부터 왕생정토에 대한 경전을 많이 보고 또 연종보감<蓮宗寶鑑>이니

정토요집 이니 하는 극락정토에 대한 문집을 많이 보다가 <支那>당나라때

여산의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사십팔인을 모아서 백년결사<白蓮結社>를 하고

염불을 하다가 왕생극락한 고적<古跡>을 보고 깊이 감동한바가 있어서

자기도 도반을

모와 가지고 정가는 곳에 절을 지어놓고 염불이나 하다가 여생을 마치려는 생각이 불같이 일으났읍니다

 

그래서 그해 9월달에 사방으로 터를 구하려 다니다가 동대문밖 창신동에

뒤에는 병풍같이 생긴 바위를 걸머지고 앞에는 평원광야<平原廣野>로 벌려진 동천<洞天>을 발견하였읍니다.

 

동네 이름까지도 창신<昌信>이라고 한것이 마음에 들어서 이정식<李 貞植>이라는 사람에게

열 한칸의 초옥을 사고 박영균<朴永均>이라는 사람에게 여섯칸의 초옥을 사서 수리하고

다시 칠성각<七星閣> 세칸을 세우고 무량회<無量會>을 건설하여 염불 도량을 열었읍니다.

 

그리해서 ....동지신사<同志信士> 김정인<金正因>.한 여여<韓如如>.정성파<全性坡>등의

여러분과 같이 정토발원을 하고 염불회를 열어서 지성으로 염불을 계속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 뒤부터는 너도 나도 염뷸 왕생을 목적으로 하고 모인처사가 30여명에

달하였으므로 칠성각은 처사사찰이라는 이름이 장안에 화제가 되었읍니다.

 

그때에 만일사찰을 완벽하게 짓고 이름을 지었다면 무량암이라든지 안양암으로써 바로 이름 하였을텐데 칠성각부터 먼저 세운 까닭으로 세상에는 칠성각이라는 이름만으로 소문이 나서

그 뒤에 까지도 칠성각으로 이름 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성월처사는 후세를 내다보고 그 뒤에 형편이 되는대로 부지를 사서 부치고

사서 부치고 하여서 지금 일천삼백여평에 가까운 지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재와 같은 대가남<大伽藍>을 건설하게 되었읍니다.

 

그리해서 지금으로부터 서른 일곱해전 기해년<己亥年>에 절 이름을 고쳐서 안양암<安養庵>

이라고 액호<額號>를 바꾸고 그 뒤부터 지금까지 안양암이라 불려지게 되었읍니다.

 

 

 성월대사.4

 

연비연지와 중생제도 발원

 

 

성월처사는 이와같이 발심하고 절을 지어서 도반들과 같이 염불을 하게 된 후부터는 그야말로

주야불철 일심정진으로 공부하였읍니다.

 

그래서 기축년으로부터 임진년 까지는 염불정진에 삼매가 되어  밥을 대하여도 밥인줄 알지 못하고

밤이 와도 잠을 잘줄도 알지 못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으로 염불에 착미하면서

달마다 세번씩 회<會>를 열었으니.

 

보름날은 미타 현행회<彌陀 現行會>라 하여 아미타불의 성호<聖號>를 부르고 염불 하였으며

18일날은 지장회 라 하여 법계고혼을 천도 하기 위하여 염불하는 회<會>를 열었으며

24일은 관음회라 하여 생자수복과 발심입도<發心入道>을 위해서 정진하고 염불을 하였읍니다.

 

그런데 성월대사는 그동안 염불하며 연비를 하면서 팔을 뜨기를 무수히 하여 오더니

경인년 삼월 스무나흘날 관세음보살 재일 관음 회일<會日> 날에는 여러 신도들과 같이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정진하다가 부처님 전<前>에 나아가서

광도중생<廣度衆生> 하기를 축원 올리고 황초로써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에 씌우고

손가락의 한마디를 태웠읍니다.

 

이 모습을 본 여러 도반들과 신도들은  "아~저런  아~저런 " 소리를 치며

더욱이 감동이 되어서 염불정진을 지극히 하였읍니다.

 

그런데 처사님은 그 이듬해 신묘년<辛卯年> 오월 보름날 미타현행회 날에

또 다시 법계중생<法界衆生>을 위하여 지난번 태웠던 가운데 손가락의 두마디를

마저 태웠읍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임진년<壬辰年> 칠월 열 여드래날 지장회 날에는

염불과 정진을 하다가 다시 법계의 중생을 제도하기로써 서원을 세우고 오른손의

무명지 손가락을 또 태웠읍니다.

 

이 모습을 본 신도들은 멍하니 그저 입만 벌리고 쳐다보면서

감격만 하였읍니다

 

연속  삼년을  곁에서 처사님이 이와 같이 보통사람이 할 수없는 일을 한것을 보면

성월처사님의 신앙과 서원이 얼마나 지중하신것을 알 수가 있읍니다.

 

세상사 사람들은 손톱밑에 가시만 들어도 죽는다고 악을 쓰는데 손가락을

한 마디씩 무심하게 불에 태웠으니 이것이 "금강불괴신<金剛不壞信>의  소발<所發>이

아니겠읍니까.

성월처사가 이와같이 수행 하신것은 오직 신앙심에서 우러 나온 것입니다.

 

부처님의 경전에 보면 옛날의 구도자<求道者>들이 법<法>을 구하기 위해서

 몸을 굶주린 호랑이에게 던져준 이도 있고 혹은 온 육신을 나찰귀신<那刹鬼神>에게

바친 사람도 있고 혹은 온 몸을 햇불 삼아서 부처님 전<前>에 불을 켜서 바친 사람도 있었읍니다

 

그리고 또 헤가대사 와 같은분은 눈 가운데 <雪 中>서서 팔을 베어서

달마<達磨>스님께 받친 일도 있고 신라 때에 이차돈 같은 분은 불법을 펴기 위하여 목을 끈기고

흰젖<피>을 흘린 분도 있었읍니다.

 

성월대사는 이와같은 고적과 부처님의 과거 인행사<因行事>에 의하여 이러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삼년동안이나 칠성각을 다니며

이분.성월처사의 연비와연지 한것을 본 도반들과 신도들은 모두 몸을 으스러 뜨리며

혀를 내두르고 작심하고 깊이 감동을 받지 않은 이가 없었고 불법을 믿는 이가

너무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읍니다.

 

 

성월대사 .5

 

출가득도<出家得度>와 권왕문발표<勸往文發表>

 

 

성월대사는 이와같이 공부를 하며 안양암에 모든건물 <建物>과 법당<法堂>을 지으면서

불사<佛事>을 위하여 애를 써오다가  신축년<辛丑年> 사월달에

다시 환옹<幻翁>스님을 찾아뵈옵고 대사가 스님이 되기를 청하였읍니다.

 

그리한즉 욕 잘하시는 노장님은 "아~그러하게 이 세상에 절밥 먹는 사람 많지 만은

자네 신심 따라갈 스님이 있단 말인가?자네는 처사지만 모범 처사이니 승이 되더라도

모범 승이 될것일세 자네 같은 사람이 극락을 가지 못하면 부처님의 말씀이

모두 거짓말이 되고 말걸세 아무쪼록 염불을 많이 하여 극락을 가시게"

이렇게 말씀 하시였다.

 

스님께서 이처럼 허락을 하여 주시니 고맙기 한량이 없사옵니다"

하고

다시 노장스님께 사미십계를 받고 이름을 고치니 선주<善住>라고 부르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해 오월달에 도봉산 망월사<道峰山望月寺>에 가서 회광<悔光>스님께 비구계<比丘戒>

와 보살대계<普薩大戒>를 받고 다시 유월달에 만하<萬下>스님에게 건당식<建幢式>을 하니

호를 평등당<平等堂>이라고 시행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서 성월당으로 입에 익어 왔기 때문에

그 후에도 성월대사로 칭명하게 되었읍니다.

 

성월대사는 이후부터 사문비구의 몸으로 더욱히 염불수행에 힘쓰며 널리 염불수행을

권하였읍니다.

성월대사님께서 권하셨던 법문중.

 

십지보살은 신통변화가 부처님으로 더불어 다르지 아니 하오며

공덕이 이처럼 무궁하옵거든 어찌 천상천하에 제일 되옵는 법을 내놓고 무슨 공부를 할것인가? 나무아미타불.

애지중지 사랑스런 재물들 어느곳에 쓸 것인가?나무아미타불.

봄에 씨를 심어 가을에 거두는것과 같거늘 어찌 심지 않을 것인가?나무아미타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때에 제도하여 보오리까?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서 이르사대

"망상을 내지말라 하셨으니 공부<염불수행>밖에 내는 마음은 모두 망상이니 짐짓

그 마음을 내지도 말며 또 탐심을 내지마오 탐심은 악업<惡業>을 성취하오.

또 진심을 내지마오 진심을 참지 못하면 지혜마음이 상하오

 

밖의 마음 망상이 나거든 칼로 반드시 날려버리오.

다만 화두를 생각하되 회광반조 하와 염불이 즉 화두이니

갓난 아기가 젓생각을 하듯 배고픈 사람이 밥 생각을 하듯 하루종일을

밥을먹을때  가고오고 일을할때 도량쓸고 손님 영접할때에도 조금도 쉬지말고

부지런히 염불하면 자연히 천묘성 <天妙聖>에 계합<契合>이 되려니

속히 될 마음도 내지말고 나태심도 내지말고 주.야 쉼없이만 염불을 하오

생사대해 건너가는 길 염불수행 밖에 없읍니다.

 

 

 

성월대사.6

 

열반예고<涅槃豫告>와 사후방광<死後放光>

 

 

성월대사는 이와 같이 권왕문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권고하며 불법의 신심을

일으키게 하더니 지금으로부터 십년전 병인년 팔월초 이튼날에 몸이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식욕을 전폐하고 몸이 편하지 않으시니 문도<門徒>를 모와 놓으시고 미리 말씀 하시되

< 내가 지금으로부터 칠일을 지난뒤에는 왕생극락을 할터이니 너희들은 그리 알아라> 하시고

미리 열반 할것을 예고<豫告>하셨읍니다.

 

그러나 문도들은 들은둥 만둥 하였더니 과연 칠일을 지나서 열반에 들고야 말았읍니다.

 

그런데 바로 대사가 열반하든 날 팔월초팔일  오후 일곱시에

대사를 시봉하며 탕약을 준비하고 있던 신녀이씨 안양행<信女李氏 安養行>이라는

부인 신도가 대사를 간호하는 중인데 이씨가 비몽사몽간에 앉아서 졸고 있으니

노갓을 쓴 노인 한분이 동자를 데리고 대사가 있는 마루위로 올라 오는것을 보았읍니다.

 

그래서 이씨는 정말 누가 왔는가?하고 병실로 들어가니까 대사는 원기를 내어 앉아서

말씀 하시되 <"지금 지장보살이 문수동자와 같이 오셨구려.그래서 내가 인사를 드리기 위해

일으났소이다..그리하니 나에게 장삼과 가사를 입혀주시오">합니다.

 

그래서 이씨로 부터 이렇게 전하는 말을 듣고 문도들은 대사의 거동이 하도 이상하여

함께 모여서 보니 대사는 서쪽을 향하여 세번을 예배하더니 고성으로 소리를 높여서

"나무아미타불"의 육자염불을 열번이나 부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읍니다.

 

그리고 문도들께 말씀하시길."내가 지금 극락으로 가는 길이니 너희들은 울지 말고  염불조념을 하여 나의 앞길을 도우라" 하시더니 오후 여덟시에 앉아서 자는듯이 입적<入寂>하시었읍니다.

 

그런데 대사가 돌아가신 뒤에는 여러번의 방광현서<放光現瑞>가 있었으니 돌아가신 뒤의 나흘되든 팔월 열하루날 오후 여덟시에는 안양암에서 방광현서를 하고 그 이틀날 발인<發靷>하여

서대문밖<西大門外> 봉원사 화장장으로 영구를 모시고 가서 화장을 하여 모셨는데

이날에는 화장장에서 두번째 방광을 하되 하오 네시로 부터 다섯시까지

서기방광<瑞氣放光>이 꺼지지를 안하였읍니다.

 

그리고 칠칠일<七七日>동안에는 기도 날을 정하고 기도승으로 하여 지장보살의 정진을 하되

매일 만번 정근을 하였는데 제육칠일<第六七日>되는 날에는 세번째 전광<電光>이쏘는듯한

방광현서가 있었읍니다.

 이것을 본 대사의 천자되는 아드님인 양학당태준<養鶴堂泰俊>대사는 더욱히 감동된바가 많아서 사십구일 입재날에 첫째는 선친을 위하고 다음에는 법계의 중생제도를

서원하고 부처님 전에서 오른손의 무명지 손가락을 한마디씩 태웠읍니다.

 

그래서 이 날에 천여명이나 재를 보려왔는 승려와 신도들은 모두 감격해 하며

< 그의 부자는 부처님을 위하여 난 분이라>고 말들을 하고 또는

 어찌하면 부자가 그렇게도 한 뜻인가?하며

찬탄을 하며 놀래는 사람들이 많았읍니다.

 

이상으로써 성월대사가 불교에 입도하여 철두철미하게 사십년 동안을 신앙생활을 쌓아온

실화<實話>를 소개하거니와 대사는 그동안 지어놓은 사업도 컸읍니다.

 

대사는 칠성각 세간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다시 이것을 허물어 버리고 큰 가남을 건설하였으니

안양암 도량내에 북쪽으로는 수년간의 대웅전<大雄殿>을 건축하고

서쪽으로는 관음전<觀音殿>을 건축하고

동쪽으로는 명부전을 건축하고 다시 금륜전<金輪殿>과 독성각<獨聖閣>을 건축하고

또 앞에는 큰 방효사체 염불당<念佛堂>을 수년간을 건축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천삼백평이나 되는 지면에 아주 크게 건축을 하였읍니다.

 

그리고 연중행사와 월중행사로 시행<施行>하여 온 사업은 해마다 원만계단<圓滿戒壇>이라는

계단을 모아서 보살계를 설하게 하고 달마다 미타현행회와 지장회와 관음회와 칠성회를

열어서 신도들을 지도하고 신도가운데 사망<死亡>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불보살의 번개<幡盖>=가리고 덮을것.>를 가지고 가서 지성으로 염불하여 조위<吊慰>=위로

 하였읍니다.

 

이것은 대사께서 이 절안의 사람들과 다 한가지로 거행하는 행사였지만은 대사의 자신으로서 특별한 행사였으니 매년마다 방생회<放生會>을 열고 살생을 계훈 하였으며 또 글씨 쓴 종이를 공경하고 아끼는

성격이 있어서 오고가는 도로 가운데 글씨쓴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주어다가 정하게 태워버리고

불교에 입도한지 사십년 동안을 일관하여 지장정근과 미타경염송<彌陀經念誦>과

육자염불로써 공부를 삼았으며 만일회<萬日會> 염불당<念佛堂>화주<化主>가 되어서

염불 사업을 계속 하였읍니다.

 

그리고 또 항상 시식단을 모아놓고 삼계만령무주고혼<三界萬靈無主呱魂>들에게

시식<施食>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노상<路上>에서 빈병걸인<貧炳乞人>을 보면 꼭 음식을 사주거나

돈을 주거나 의복을 주어서 도와주었읍니다.

 

문기수를 혼내주고 야료를 부리는 대주객으로서 또는 호탕하고 방황한 거벽으로 거침없이

지내온 불우객의 이진사가 불교에 입문하여 대가남<大加藍>을 건축하고 염불로써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다가 조사열반<祖師涅槃>을 한 대사의 일생을 돌아보면 감개가 무량합니다.

 

대사의 모든 생활은 옛날의 혜원대사와 영명연수<永明延壽>대사의 감화를 받은 자취가 많읍니다.

감화의 힘이란 이렇게 큰것임을 새롭게 느끼겠읍니다.

 

 

성월대사.7

 

 동업처사<同業處士>의 왕생기적

 

 

성월대사는 삼십칠개년 근 사십년 동안을 안양암에서 계시면서

하루같이 염불을 하며 하루같이 법회를 열며 하루같이 등상불사며

탱화불사를 하여 많은 사람을 발심케 하고 따라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염불정진을 잘시켜서 그들이 임명종시에 기적을 보이게 한 일이 많읍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이 공부에 뜻을 두어서 최후를 잘 마치게 한것은 오직 성월대사가

훌륭한 강사법사<講師法師>와 선사도사<禪師道師>를 청하여 법문을 설하게 해서

대사도 무량한 법리<法利>와 요익을 얻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도

심안<心眼>즉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 까닭입니다.

 

안양암은 조선에 훌륭한 스님네가 다 한번씩 법문을 설하시고 가셨으니 강사와 법사 스님으로서는

 

석주대사<石柱大師> 환웅대사<幻翁大師> 사바하스님 보운대사<寶雲大師> 운파대사<雲破大師>

만하대사<萬下大師>관허대사<寬虛大師>회명대사<晦明大師>진하강백<震河講伯>용성강백<鎔城講伯>

 

경운강백.월하강백<月河講伯>청호강백<晴湖講伯>회광강백<晦光講伯>  등의 교종<敎宗>의 거장들이 다 한두달이나 혹은 며칠씩이라도 설법을 하시고 지나가셨고

 

선종<禪宗>으로는 선지식으로 유명하시든 수월<水月>대사.용성<龍城>선사.만공<萬空>선사 한암<漢岩>선사 이러한 선지식<善知識> 스님들께서

한두번씩 이 안양암을 들려가시며 금강불괴의 불법종자<佛法種子>를 트터리고 가셨다.

 

그래서 칠성각 시대에 삼십여명이나 모여서 공부하는 처사님들은 이러한 선지식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며 삼십여년간 만일회 염불을 마치고 왕생극락을 한 기적을 두고 가신 이가 많았읍니다.

 

지금으로부터 육칠년전에 돌아가신 김정인<,金正因>선생은 본암창건주 성월대사와 같이

동공발심<同共發心>한 분으로서 본암의 만일회 염불당에서 이십년간을 입승<立繩>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여러사람에게 염불공부를 지도하고 공부 시키든 분이였읍니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실때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되

"내가 지금 극락으로 가는 길이니 어찌 걸어서 가겠는냐....  극락세계에서 연<輦=손수레 련>을 타고

오라고 연을 보냈으니 어서 연을 놓아다오 저어기 연<輦>이 보이지 않는냐 어서 이리 가깝게 갖다 놓아라......하시면서 아주 즐거우시고 편안한 모습으로 노랫가락 같이 고성염불을 하였읍니다.그리고

 

"내가 간뒤에  너희들은 절대로 울지 말고 염불을 하라 그리고 절에 가서 스님을 부르지 말아라

 

스님도 염불수행하고 공부가 있는 법대사 같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공연히 법문의 뜻도 모르고

응얼거리기만 하니까 나의 엉혼이라도 듣기 싫은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하고 다비작법시다림<茶毘作法시屍多林>이라는 책을 내어 놓더니

목소리를 길게 빼서 종초지말을 당신이 다 읽고 그대로 앉아서 돌아가셨읍니다.

 

또 종로 오정목에 살든 이광명처사<李光明處士> 역시 칠성각때에 성월대사와 같이 동공발심하여

염불에 힘쓰고 항상 지장경을 독송하였던 분인데 지금으로 부터 삼십년전에 돌아가실때

돌아가시기 사흘전에 집안 사람들을 모와 놓고

 

"나는 사흘이 지난 뒤에는 극락에 가게될터이니 너희는 아무쪼록 집안살림에만 파묻혀서

죄업만 짓지 말고 염불을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갈때 울지말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많이 하여 내가 갈때 듣게 해다오" 하시고 예언에로 정확히 삼일 후에 가셨읍니다.

 

또 시내 충신동<忠信洞>에 있는 황도운 선생 역시  칠성각 시절때 동공발심하여 처사로서

염불수행을 많이 하신 분인데 지금으로부터 삼십년전에 돌아가실때 어느날 목욕재게하시고

장삼과 가사를 입은뒤에 서쪽을 향해서 절을 하고 미타경<彌陀經>을 외우고 고성대독으로

십념염불<十念念佛>을 하드니 앉아서 자는듯이 돌아가셨읍니다.

 

또 재작년 삼년전에 시내 누상동<市內 樓上洞>에 사는 김원성<金圓惺> 처사는 돌아가실때

이분도 역시 칠성각 시대때 동공발심하여 돌아가실때까지 지극정성으로 염불하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 이른도 돌아가실때에 가는날을 아시고 목욕재게 하고 장삼과 가사를 입고

 

서쪽을 향해 예배하고 목탁을 치면서 육자염불<나무아미타불>을 하시더니 자손들께 말씀하시길

"지금 관음보살님이 너희 어머니로 변신하시여 오대산<五臺山>을 가시더니 문수동자<文殊童子>

를 데리고 오시는구나 나는 이 동자를 앞세우고 오대산을 거쳐 극락세계로 갈것이다"

라고  말을 마치고 목탁을 든채로 서서 돌아가셨읍니다.

 

그런데 이 김처사는 진실로 정성이 지극하신분입니다.

말년에는 집에 있으면서도 한달에 한번씩 꼭 자기가 부처님께 올릴 공양미<供養米>을 등에

걸머지고 안양암을 찾아오는 분이였읍니다.

 

아무튼  안양암에 다니면서 염불하던 분들은 돌아가실때 기적을 나투고 가신 분들이 정말 많읍니다.

 

조씨 사리심<趙氏 舍利心>같은 이는  십년전에 돌아가신 분인데 돌아가실적에 염불하고

"나는 부처님의 나라로 간다"고 유언을 하더니 돌아간뒤에 화장을 하고 모시니 사리<舍利>가

세개가 나왔읍니다.

그래서 지금 그 사리는 안양암 뒷산 바위속에 깊이 모셨읍니다.

 

그리고 또 이선행<李善行>이라고 하는 분도 안양암에 다니다가 십년전에 합천 해인사에 가서

돌아가셨는데 그 분도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한 공덕으로 화장후 정골사리 한개가 나왔읍니다.

그래서 그 사리를 지금 동서문박 삼선평 바위속에 모셨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이상스러운 기적을 나투고 돌아가신 처사님과 부인네가 정말 많읍니다.

 

나투시고 간 사례가 너무나 많읍니다만 이만큼만 소개 하기로 합니다

 

지금 이 사례는 하나도 거짓이 없는 진실이며 사실입니다.

 

지금 현재에도 그 집안 사람으로서 그러한 기적을 보고 발심하여 본암에 다니며

염불수행하는 사람이 많이 있읍니다.

 

부처님의 법이란 의심없이 믿고 공부만 잘하면 별별 불가사의한 일들이 다 있읍니다.

그런즉 현대라고 불교를 의심하고 믿지않고 비방하는 이는 죄로 갈것입니다.

 

 

성월대사.8

 

석불조성과 죄복응보

 

 

안양암에는 지금 현재에 대웅전 법당옆에 크고 높은 석벽에 관세음보살의 상호를 새겨 모시고

그 위에 전각을 지여서 세워 놓은 것이 있읍니다

 

이 석불 관세음보살은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기유년<己酉年> 유월달에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석수 김명환<石手 金明煥>이라는 사람이 조각을 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이사람은 석수의 기술은 있으나 마음이 그다지 단정하지 못할뿐더러 의지가

그렇게 굳지 못하고 참을성이 적었읍니다.

 

온 대중이 모두 기도정진을 하고 석불조성의 불사를 시작하기에 석수에게도

몸조심을 잘 하라고 몆번이나 부탁을 하고 날마다 목욕재게를 하며 조각을 하라고

일렀읍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들을때만 네 네 할뿐이고 들은둥 만둥 귓전으로 넘기고

몸을 함부로  가지며 지키지를 않았읍니다.

 

어느날의 일입니다

 

김석수는 다른날과 같이 망치를 들고 투덜투덜 하면서 돌조각을 쪼와 내드니 별안간에

망치를 집어 던지고 쓰러지면서 아이고야 나 죽네 하면서 입을 떡 벌리고 죽는다고 날뜁니다

 

그래서 여러 조역하는 사람과 대중스님들은 그 사람을 부축을 해서 평편한 마당에

옮겨놓고 그의 상처를 찾아보았읍니다

그러나 이렇다할 상처나 다친곳은 한군데도  없었읍니다.

 

한곳도 상처가 없는데도 이 사람은 죽는다고 고함을 지르고 입을 벌리고 "그기야 그기"하고

소리만 치니 과연 부사의한 일이였읍니다.

 

그런데 석수는 손으로 신을 가르키며 곧 숨이 넘어갈려고 했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그사람의 바지를 벗기고 본즉 돌께는 정의머리가

떨어져서 콩알만한 쇠조각이 바로 신끝에 박혀있었읍니다.

 

입은 바지에는 구멍하나 난데 없었는데 쇠조각이 들어가  하고 많은 곳을 다 두고

바로 신끝에 박혔으니 이것이 어찌 신기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그래서 그사람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 쇠쪼각을 뽑아내니까 시뻘건 선지피가

대줄기 같이 내뿜어져서 같이 일하는 여러 사람의 옷을 버리게 했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미친사람 모양으로 눈에 무슨 허께비가 보이듯이

 

"내가 죽을때가 되어서 이런 죄를 지었으니 그저 죽여주십시요 그저 날마다 몽조를 뵈어서

깨우쳐 주셨건만 미련한 인간이여서 정신을 못차리고 이와 같이 큰죄를 지였읍니다

 

아이구 아이구 신장님 좀 살려주십시요 천벌이 너무나 크구나..아이고" 하며

부르짓고 마누라를 원망하며 사지를 버둥거리면서 곧 죽을려고 했읍니다.

그래서 병원을 데리고 갔지만은 별 도리가 없어서 자기집으로 데리고 갔더니

그길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읍니다.

 

아무리 말세가 되어서 불벌<佛罰 >이 없으며 신벌<神罰>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일이 자주 자주 있으니

미련한 인간으로서 때때로 정침하지 않으면 안될것입니다.

 

그런데 김석수가 죽은 뒤에 염을 하려고 보니 몸이 숯덩이 같이 까맣게 타고

엉덩이는 곤장 맞은 사람처럼 매맞은 자리가 불그락 푸르락 하게 자국이 역력히 배겨있더랍니다

 

이런 소문이 한입 건너고 두 입 건너서 장안에 있는 석공소<石工所>마다 다 알게 되니까

장안의 석공들은 이제부터 돌부처의 석수일은 함부러 할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짐했읍니다

 

그러나 안양암의 당사자는 그렇다고 불사를 하다가 중지할 수도 없고 해서 사방으로

석수를 청하려 다녔으나 석수들은 한결같이 말하길 "우리는 싫소.또 그사람처럼 저승길을

갈려고?....돈도 좋지만 목숨도 돌아봐야 하지 않겠소?>하며 모두 거절을 하고

한 사람도 일을 할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읍니다

 

그래서 몆달동안 일을 중단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이때에 윤동근<尹東根>이라는 사람이 있었읍니다

이 사람은 기술이 죽은 석수 김명환이 보다는 더 나은 석수였는데 어찌나 가난한지

생계가 곤란하여 이곳 저곳의 석공장을 찾아다니면서 품팔이를 하든 사람이였읍니다.

 

그런데 마침 이 사람이 이런 소문을 듣고 생각을 하되

"그 같이 영험있게 죄를 주고 벌을 주는 부처님 같으면 정성 다해 잘만하는 자에겐 복도

주실테니 이참에 내가 한번 해보리라"하며 석수 하기를 자청하였읍니다.

 

그리고 돈도 싫고 금.은도 싫으니 밥이나 먹고 옷이나 달라고 말을 하고

술도 끓고 담배도 끓고 고기도 안먹고 날마다 목욕재게하고 망치질 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를 해가면서 성심성의로 돌일을 하였읍니다

 

그래서 이 사람으로 하여 일곱달 만에 3월27을 마감으로 지금의 훌륭한 돌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을 조각하여 모시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이듬해 정월 초순에 이상하게도 수천의 헌금을 가진

강씨부인<姜氏夫人>을 만나서 지금의 숭인동에서 아들까지 낳고

떵떵 거리며 部하게 살았읍니다.

 

그래서 그 윤씨부부는  부처님께 공양 올릴 떡이며 과일을 초하루 보름으로 하여

정성껏 이 돌부처님께 기도 하려 다니고 있읍니다.

이 얼마나 상.벌이 분명한 일입니까?

 

요즘 서구 문물을 먹은 사람들께 이런 말을 하면 콧방귀를 뀌며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이 분명 합니다.

 

또 관세음보살님 조각할 당시에 이러한 일이 또 있읍니다.

 

날마다 저녁때에는 정을 베어서 담아 놓았다가 그 이튼날에 이것을 꺼내서 쓰며

돌일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어느날 돌일을 하려고 망태에 담은 정을 갔다놓고 돌을 쪼개고 있는데

열개고 스무개고 돌을 집어다 쓰면 첫망치에 부러지고 부러지고 해서 일을 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리고 그 망치에서 지린내가 코를 찌르며 냄새가 풍겨서 견딜수가 없었읍니다.

 

"누가 이 망치에다가 오줌을 누었단 말인가? 웬 지린내가 이렇게도 많이 날까?

이 어찌 된 일인가?..정말 알 수 없는 일이였읍니다.

 

이런일로 이야기 하고 있을때쯤 막걸리 모주꾼으로 유명한 서천준<徐千俊>이라는

사람이 털털 거리고 오더니 "그거 내가 어제밤에 술김에 눈 오줌이로군"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나무랐읍니다

"이런 망할녀석 같으니라고 아무리 술을 먹었기로서니 부처님 새기는 정망태기에다가

오줌을 내지르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면 왜?너들은 소중한 부처님을 발로 밟고서 일을 하노?이눔들 부처는 퍽도 위한다?

 

<이 녀석아 우리는 부처님을 새겨 모시니 그렇지 ..이 정을 봐라 하나도 쓸 수가 없게 되었잖아>

 

"어디?정을 못쓰게 되었어?그게 정말이냐?...하고 정을 들어다 보려는 순간에

누가 건드린 사람도 없는데 공중자비로 나가 떨어지면서 하이고 가슴이야 하며

부르짓더니 그길로 병이 들어서 몆달을 고생하였읍니다.

 

이 사람도 곧 죽을 것인데 그의 어머님과 아내가 부처님께 와서 지심참회하고

주야로 기도를 들이고 정성을 드린 덕으로 살아 나게 되었읍니다.

 

또 안양암에 신도로 항상 다니든 강재희<姜在喜> 강처사라고 하는 선생이

있었는데 이분은 어느날 급하게 절 안으로 뛰어 오더니

 

"지금 기도 불공 드렸지요 공양 좀 하게  밥을 주시오" 하길레 태준화상이 대답하되

<기도는 무슨 기도며 불공은 무슨 불공입니까? 그런것도 다 때가 있는것인데

벌써 다 마치고 절안 대중들이 다 드셨읍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거짓말 말어요 지금 내가 문밖에서 목탁소리를 듣고 왔는데 그러는가?지금 저 독성각에서

방금 목탁치고 요령흔들고 불공 드리지 않았나요?

 

<그런 말씀 마십시요 저희가 거짓말 할리가 있겠읍니까?

오늘은 더구나 독성각은 한번도 가 본일이 없읍니다>

 

이런 금방 듣고 왔는데 원 그럴수가 있나?

 

강처사는 이와 같이 말을하며 또 다시 귀를 기울이니

"들어보게 또 들리잖아요"하니 태준화상도 가만 들어보니 소리가 나는듯 하여

<그러면 누가 올라가서 장난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강처사와 같이

독성각에 올라가서 본즉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읍니다.

 

그래서 강처사는 발심하여 말하되"아~다른게 아니라 독성나한님의 신동일세 그려"

하고 이후부터 자원화주<化主>가 되어 안양암의 모든 불사가 있을때 마다

크게 활동하였읍니다.

 

또 어느때에는 태준화상이 이상한 꿈을 꾸고 대웅전 뒤에 샘물을 팟더니

지금도 그 물이 흘러서 약수로 유명한데 이 물을 마시고 병을 고친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또 어느때에 대웅전 법당에서 삼불개금<三佛改金>불사를 하는데

백남국<白南國>이라는 분이 항상 술을 마시고 조심이 없으니 불사회향때에

떡을 치고서 불사의 음식을 만졌는데 무슨 벌이 내렸는지 자고난 후 가슴속이 썩는 병이 들어서 병원에 가서 수술까지 하였읍니다.

 

또 어느때에는 팔상탱화의 불사를 하던 어느날 삼만<三萬>이라는 아이의 모친되는 부인이

몸을 정갈히 하지 못하였든지 상배를 보더니 별안간에 귀거리가 나며 눈이 부어서 빠지려고 하며

만신창이 나서 병원에 갔으나 아무 소용없이 죽고 말았읍니다.

 

안양암은 비록 도시 가운데 있으나 엄하기가 산중에 있는 절보다 더 엄하고

기강이 무섭읍니다

 

어느 사찰인들 사찰안에서 고기를 다루는 일이 있겠읍니까만은 안양암에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절대로 고기를 다루지 못합니다

 

어떤 신도가 병이나서 기도하려 와 있다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고기를 다루다가 한사람은

칼에 손바닥을 베이고 한사람은 머리에 혹같은 부스럼이 별안간 나서

큰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읍니다.

 

또 이인상이라는 사람은 절에서 남모르게 양집을 내먹고 죽을뻔한 일도 있었읍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벌을 주시며 상을 주실리가 있겠읍니까만은

도량을 정결케하고 항상 기도정진을 하게되면 도량신장이 옹호 하는고로 이와 같은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신통한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유업<遺業>게소 와 태준대사 <泰俊大師>의 원력<願力>

 

 

성월대사는 출가 득도하여 비구승<比丘僧>의 몸이 되기전에 그마음 그대로 받아서

후세에까지 유업을 지켜갈 아들을 두었으니 양학당 태준대사<養鶴堂 泰俊大師>가 그입니다.

 

태준대사는 성년되면서부터 그 부친되는 성월스님의 불사일을 도와서 적은 일이나 큰일이거나

옆에서 도와드렸읍니다.

 

그런 가운데 태준대사는 생각하되 그의 아버지 유업을 계속  잘 유지하고 확장하자면

출가 위승<出家爲僧>하여 스님이 되는길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금강산 표훈사<金剛山 表訓寺>에

계신 전관허<全寬墟>스님이라고 법사로 유명하신 스님께 득도사<得度師>를 정하고

사미 오계를 받고 그뒤에 건당<建幢>까지 하여 당호<當號>를 양학당<養鶴當>이라고

시행하게 되었읍니다.

 

태준대사는 그부친이 조부에게 효성을 다하듯이 그모습을 본받아 그의 부친<성월대사께>

지극히 효성을 다 하였읍니다.

 

그래서 어느때든지 그 부친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일이 없었고 그 부친이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입안에 혀같이 효도를 다 해왔읍니다.

 

그리고 그 부친을 본받아서 부처님의 일이라면 불구덩이라도 사양치 않고 들어갈 만큼

신심과 열정을 가진분입니다.

 

양학당 대사가 그 부친에게 효행을 충실하게 한것은 그 부친께서 돌아가신 뒤에

사십구제를 지낼적에 돌아가신 부친을 사모하고 부처님전에서 오른손 무명지 손가락

한 마듸를 태운것만 봐도 그의 효심이 어떠하였으며 또 불심이 대단하신것을 알수가 있었읍니다

 

태준대사는 부친께서 돌아가신 뒤에 모든 불사의 유업을 물러받아 더욱이 발전시키며

더욱 확장 하였으며 삼화불교부인회관<三和佛敎婦人會館>을 양관으로 지어서 수백명의

신도가 한자리에 앉아서 설법을 듣게 하였고 또 그 뒤에 여러가지 불사를 한없이

많이 하였읍니다.

 

그런데 지금도 대사의 마음가운데 계획한 것을 보면 현재의 일천오백존불 조성의 불사를

하는바  곧 일천오백존불을 모실 천오백전의 법당을 지을 계획이며 또 큰방 채가 좁고 퇴색하였다고

해서 다시 계축과 증축을 목적을 하고 당국에 기부허가원을 계송하여 허가를 받아놓고

 낮이나 밤이나 쉴새없이  활동 하였읍니다.

 

이 모든것을 보면 대사의 원력이 얼마나 중한가를 알 수가 있읍니다

대사는 오직 마음 가는곳이 불사 하는데에 있고 생각하는것이 모두 중생제도에 있읍니다.

 

세상 사람의 모든일을 보면 남의 자손으로 그 부모님의 뜻을 고스란히 받아가지고 이어 가는

사람이 적읍니다

 

그럼으로 혈통<血統>과 법통<法統>을 따른다는 것이니 과거의 성인들의 유적을 보와도

그의 제자들로서 그 도학을 전해오는 이는 잇어도 그의 자손으로서 그의 이상<理想>과

도학<道學>과 사업<事業>을 이어오는 이는 없읍니다.

 

그런데 이 부자<父子> 두분은 한마음과 한 뜻으로 효심도 같고 불심도 같고 사업도 같고

모든것이 같으니 마치 한사람이 행하는 것과 같으니 과연 희유한 일이라 하겠으며

동서고금에 드문 일이라 하겠읍니다.

 

신비<神秘>스럽게 말할것 같으면 이 두 父子는 과거 무량한 부처님의 처소에 동공발심하고 세세생생에

불사를 지으려고 서원을 세우고 만난 부자지간 이라고 하겠읍니다.

 

 

 

종결편.

불교 입도자<佛敎 入道者>의 게.보권발심<普勸發心>

 

 

 

 불교입도의 신앙실화<信仰實話>로써 우리 불교계의 모범이 되신 故성월대사<性月大師>와

양학당 태준대사에 대하여 소개를 하였읍니다...마는

 

불교를 안믿었으면 모르나 믿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본받아야 할것입니다.

 

이 두 분은 당신들 몸소 대가남의 창건주로 또 게소자로 이렇게 훌륭하시니

과연 모범이시라 할만 하지 않읍니까?

 

누구든지 불교 믿을때에 불교신앙에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고 성월대사의 권왕문의 말씀과 같이 우리 인생은 초로와 같이 허망하고 일장춘몽과 같으니

우리는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우비질고 <憂悲疾苦>가 콱찬 더러운 세상을 떠나서

이 모든 고통이 없는 극락세계를 가기위하여 참으로 발심하여서 염불하고 정진해야 할것입니다.

 

그리하여 성월대사의 열성과 신심을 같이 해서 죽음을 잘 마치고 칠성각 시대의 도반들 처럼

환희로웁게 세상을 마쳐야 할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사람의 몸 만나기가 눈먼 거북이 칠년만에 나무 토막 만나타고서 바다를 구경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였읍니다.

 

이러하니 우리가 이 귀중한 인생의 몸을 가지고 있을때 탐욕심도 버리고 집착심에 붙들려서

근심과 걱정속에서 죄업만 짓지 말고  머리에 불붙는것을 구하듯이 염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극락을 가려해도 염불이 제일이요 .부처님과 부모님께 효심을 다 해야 할것입니다.

 

성월대사의 父子는  불심과 효심이 그만큼 지극하고도 극진하였읍니다

 

"나는 여러분의 불심과 도심을 도와드리기 위하여 이 신앙실화를 써서 참고로 바치거니와

누구든지 이 글을 보고 감동하는이가 있다면 퍽 다행이라 생각하고 여러분의 권발하기를

원하는 바입니다.

불자님들이시여~!!살어도 불교<염불>로 살고 죽어도 불교<염불>로 죽읍시다.

그래서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보리심을 발하여 정진하여 나아가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도심 속 사찰박물관, 안양암 (전화 02~766~6000, 02~744~6923)




 

창신동 주민들이 걸어 놓은 ‘안양암 문화재지정 반대’ 현수막은 문화재 보존의 위태로운 현주소를 말해준다. 안양암은 과거 아파트 부지로 건설회사에 넘어가고 유물들이 팔려지기도 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 얼마 전 한국불교미술박물관 권대성 관장의 소유가 되면서 힘겹게 사찰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불교문화의 보물창고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도보로 10분. 아파트촌을 지나 허름한 주택가 사이에 안양암은 자리하고 있다. 도심 속, 그것도 주택가 사이에 터를 잡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중심가에 위치하니 서울 시민들에게는 주말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1889년 성월대사가 창건한 안양암은 조선시대 전각, 불화, 불상, 공예품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사찰이다. 일주문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아담하지만 그 가치만은 어떤 사찰에도 뒤지지 않는다. 안양암 대문에는 두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대문 위에 ‘安養庵’이란 현판이, 우측에 ‘한국불교미술박물관 별관’이란 현판이 그것이다. 현판에서 알 수 있듯이 사찰 전체가 박물관이자 불교문화의 보고인 셈이다. 현재 대웅전, 관음전, 명부전, 금륜전, 영각, 천오백불전, 염불당의 7개 전각에는 석감마애관음보살상 등 서울시 유형문화재와 서울시 문화재자료가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 뿐만 아니라 안양암은 한쪽 몸을 커다란 암벽에 기대고 있는 모습으로도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관음전은 암벽을 등지고 지어져 특이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암벽 아래에는 사리비, 공덕비, 사적비 등이 있다.


최고의 볼거리,
석감마애관음보살상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불교문화의 보물창고인 안양암은 문화재를 보고 음미하는 재미가 가득하다.

사찰을 찾은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안양암의 대문이다. 대문에는 두 명의 동자가 사찰에 출입하는 신도들을 향해 합장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녹색 바탕에 두 동자승이 백색코끼리와 해태상을 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대문을 지나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자리한 전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안양암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전각이다. 내부에는 높이 60cm의 목조상인 아미타불좌상이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좌상 뒤에는 화승 경성에 의해 1889년 제작된 아미타후불도가 보인다. 비단에 채색을 한 것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85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외벽에도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가 있다. 수행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심우도다. 수행자를 동자에, 인간의 본성을 소에 비유하여 그린 것이 흥미롭다. 그림 아래에는 ‘常樂我淨 天雨四花’란 글씨가 쓰여져 있다.


 

대웅전 좌측, 커다란 암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듯한 전각이 있으니 바로 관음전이다. 정면 한 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관음전은 색깔과 장식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정면의 양 기둥 상단과 정면 창가 윗부분에 당초무늬가 있어 화려함을 더한다. 내부에는 안양암 최고의 볼거리인 석감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화강암을 쪼아 만든 마애불로 초생달형의 눈썹과 뭉툭한 코, 늘어진 귀 등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이마에는 백호가 있다. 1909년 조성된 것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종무소와 금륜전, 영각, 천오백불전이 나온다. 각 전각에는 다양한 유물들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관람하는 것이 좋다. 특이한 것은 금륜전에서 좌측 계단을 따라 오르면 작은 언덕이 나온다는 것. 이곳에서 전체적인 사찰의 모습과 사찰 너머 아파트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계단 끝 벽면에 새겨진 석감마애아미타여래불상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골 여염집 같은 염불당

안양암 대문 옆에 있는 정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은 염불당이다. 사찰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마치 시골집에나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낡고 허름한 건물이다. 겨울에는 법당 대용으로 활용되었던 이곳은 작고 낡은 부엌, 누렇게 바랜 창호지, 모서리가 닳은 마루 등이 70년대 여염집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루에 앉으면 정면의 대웅전을 비롯해 관음전과 명부전이 바라다 보인다. 사찰 관람을 마무리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관람 TIP. 사찰인 관계로 각종 의식 및 법회 시 관람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문의사항이 있거나 도록을 구입하고 싶다면 종무소에 문의한다.

안양암을 한국불교미술박물관으로 오인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이곳은 별관이며 박물관 본관은 창덕궁 인근에 위치한다. 현재 박물관 본관에서는 ‘안양암에 담긴 중생의 염원과 꿈’이란 주제로 안양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경내에는 주차를 할 수 없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More Information

관람시간 : 10:00~16:00

휴관일 : 없음


교통 :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소요. 또는 지하철 6호선 동묘역 2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8분.


 

Posted by 慧蓮(혜련)
|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


<일타 큰스님의 글>

나의 가족은 친가와 외가를 모두 합하여 모두 41명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 41명의 출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일족의 출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41명의 출가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인가?
아닙니다. 나의 외증조할머니인 이평등월(李平等月)
보살의 기도와 입적(入寂), 그리고 방광의 이적(異蹟)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안성이씨(安城李氏) 평등월 보살은 일찍이 우리 나라
제일의 양반으로 치던 광산 김씨(光山金氏)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녀는 남편 김영인(金永仁)의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삼형제를 낳아 기르며, 학식있는 양반집 안방마님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60이 조금 지났을 때 갑자기 불행
닥쳐왔습니다. 남편이 남의 빚보증을 섰다가 대부분의
재산을 날려 버렸고, 연이어 시름시름 앓던 남편은
끝내 저 세상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등월 보살이 실의(失意)에 잠겨 해어나지 못하고
있자. 이미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던 만수(萬洙)
* 완수(完洙) * 은수(恩洙) 세 아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습니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우리가 양반이라고 마냥
이렇게 살 것이 아니다. 노력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
이렇게 결의한 세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염려 마십시오. 이제부터
저희들이 집안을 꾸려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목화를 솜으로
만드는 솜틀기계 한 대를 일본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기계를 발로 밟으면서 목화를 집어 넣으면 껍질은
껍질대로, 씨는 씨대로 나오고 솜은 잘 타져서 이불짝
처럼 빠져 나오는 당시로서는 최신식 기계였습니다.

이렇게 공주 시내 한복판의 시장에다 솜틀공장을 차린
삼형제는 작업복을 입고 하루 여덟시간씩 3교대로 직접
솜틀기계를 돌렸습니다.
기계는 24시간 멈출 때가 없었습니다.

공주 사람들은 그 솜틀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공주도 이제 개명을 하는구나." 하면서
'공주개명(公州開明)! 공주개명!'을 외쳤습니다.
마침내 공주 주변에서 생산되는 목화는 모두 이
공장으로 들어왔고, 산더미같이 쌓인 목화가 솜이 되어
나오는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집안에는 돈이
쌓여 갔습니다.

월말이 되면 삼형제는 한 달 번 돈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세 몫이 아니라 네 몫으로 나누었습니다.
남는 한 몫은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바로 어머니 평등월 보살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머니께 직접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달 동안 '삼형제 중 누구 집에 며칠을
계셨느냐'에 따라 그 집에 직접 분배를 하는것입니다.
막내아들 집에 열흘을 계셨으면 3분의 1을 막내아들
집에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며느리들은 서로
시어머니를 잘 모시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 우렸습니다.

집집마다 어머니 방을 따로 마련하여 항상 깨끗하게
꾸며 놓았고,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으로 최고의
호강을 시켜드렸습니다. 때때로 절에 가신다고 하면
서로 시주할 돈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집안은 공주 제일의 효자 집안으로 소문이
났고, 벌어 들인 돈으 로는 논 백 마지기를 다시
사들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평등월 보살은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을 평안함과 기쁨속에서 지내던 할머니가
막내아들 집에 가 있던 어느 날, 한 비구니스님이
탁발을 하러 왔습니다.

그 스님을 보자 할머니는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도 잘생겼을까? 마치 관세음보살님
같구나." 크게 반한 할머니는 집안에서 가장 큰
바구니에다 쌀을 가득 퍼서 스님의 걸망에 부어
드렸습니다. 그때까지 비구니 스님은 할머니를 조용히
보고만 있다가 불쑥 말을 했었습니다.

"할머니! 요즘 세상사는 재미가 아주 좋은 신가 보지요?"
"아, 좋다마다요. 우리 아들 삼형제가 모두 효자라서
얼마나 잘해 주는지....... 스님. 제 말 좀 들어 보실래요?"
할머니는 신이 나서 아들 자랑을 시작했고, 며느리
자랑, 손자 자랑까지 일사천리로 늘어놓았습니다.

마침내 할머니의 자랑은 끝내 이르렀고, 장시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스님은 힘주어 말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세상일에 애착을 많이 가지면
죽어서 업(業)이 됩니다."
"업?"
충청도 사람들은 '죽어서 업이 된다'고 하면 구렁이가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어서 큰 구렁이가 되어 고방(庫房) 안의 쌀독을 칭칭
감고 있는 업! 할머니는 그 '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았 습니다.

"아이구 스님! 어떻게 하면 업이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업이 다 되어 가는데 뭐.......... 지금 와서
나에게 물은들 뭐하겠소?"
스님은 벼랑을 짊어지고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업만은 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5리, 10리 길을
쫓아가면서 스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스님, 제발 하룻밤만 저희 집에 머무르시면서 업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간청에 못이겨 다시 집으로 온
스님은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윗목에서 벽을 향해 앉아 말 한마디 없이
밤을 새웠고, 할머니 역시 스님의 등뒤에 앉아 속으로만
기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발 업이 되지 않는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제발....."

마침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스님은 할머니 쪽으로
돌아앉았습니다.
"정말 업이 되기 싫소?"
"아이구. 제가 업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스님. 절대로 안됩니다. 인도환생(人道還生)하든지
극락세계에 가도록 해주십시오."

"정말 업이 되기 싫고 극락에 가기를 원하면 오늘부터
행실을 바꾸어야 하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부터 발은 절대로 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친견하여 극락에 가기만을 기원하시오."

스님의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씀은 몸단속을
하라는 것이고, 나무아 미타불을 불러라'는 것은 입을
단속. '일심으로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하라'는 것은
생각 단속입니다.

곧 몸[身]과 입[口]과 생각[意]의 삼업(三業)이 하나가
되게 염불할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님. 다시 한번 자세히 일러주십시오."

"보살님 나이가 70이 다 되었는데,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소? 돌아가실 날까지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면 업 같은 것은 십만 팔천 리 밖으로 도망가
버리고, 극락세계에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첫째나 둘째 아들집에도 가지 말고,
이웃집에도 놀러가지 마십시오. 찾아오는 사람에게
집안 자랑하지도 말고. 오직 이 집에서 이 방을
차지하고앉아 죽을 주면 죽을 먹고 밥을 주면 밥을
먹으면서 '나무아미타불'만 외우십시오. 그리고
생각으로는 극락 가기를 발원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까?"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다짐을 하면서 큰절을 올렸고, 스님은 옆에
놓아두었던 삿갓을 들고 일어서서 벽에다 건 다음
슬며시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걸망도 그대로 둔 채.....
'변소에 가시나 보다.'
그러나 한번 나간 스님은 영영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풀어 온 동네를 찾아보게 하였으나 '보았다'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아! 그분은 문수보살님이 틀림없다. 문수보살님께서
나를 발심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욱 발심(發心)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방의 가장 좋은 위치에 스님의 삿갓과 걸망을
걸어 놓고, 아침에 눈만 뜨면 몇 차례 절을 올린 다음
'나무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어느덧 할머니는 앞일을 내다보는 신통력(神通力)이
생겼습니다. "어멈아! 오늘 손님이 다섯 온다. 밥 다섯
그릇 더 준비해라." 과연 끼니때가 되자 손님 다섯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루는 막내아들을 불러 각별히 당부하였습니다.
"얘야. 너희들 공장에 화기(火氣)가 미치고 있다.
오늘은 기계를 돌리지 말고 물을 많이 준비해 놓아라.
위험하다." 그 말씀대로 세 아들은 아침부터 솜틀기계를
멈추고 물통준비와 인화물질 제거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바로 옆집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옆집 불을 껐습니다.
만약 목화 솜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솜틀공장은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하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예언으로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웃 집의 피해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도 외증조할머니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손녀인 어머니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외증조할머니는 큰아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리 가량 가면 구름내[雲川]라는
마을이 있다.

김창석 씨네 둘째 아들과 네 딸 상남(上男)이와는
인연이 있으니, 찾아가서 혼사(婚事)를 이야기해
보아라." 이렇게 외증조할머니는 가 보지도 않고
신통력으로 나의 부모님을 결혼시켰습니다.

마침내 주위에서는 외증조할머니를 일컬어 '생불(生佛)
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외증조할머니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고 '문수보살'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변화를 걱정한 아들 삼형제는 인근 마곡사의
태허(太虛: 鏡虛대선사의 사형) 스님을 찾아가
상의했습니다. "문수보살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10년 동안이나 아미타불을 불렀으면 끝까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일을 자꾸 예언하다 보면 자칫 마섭(魔攝)이
될 수도 있다.내가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는
글을 써 줄 테니 벽에 붙여 놓고 '나무아미타불'을
항상 부르도록 말씀드려라."

常放大光明! 언제나 대광명을 뿜어낸다는 이 글을
보면서 할머니는 다시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불렀습니다.그리고 앞일에 대한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염불기도를 하다가 할머니는 88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야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7일장(七日葬)을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햇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밤만 되면
그 빛을 본 사람들이 '불이 났다'며 물통을 들고
달려오기를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상객으로 붐비는 집안 역시 불을 켜지 않아도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그야말로 외증조할머니는 염불기도를 통하여
상방대광명을 이루었고,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가족들은 그 뒤
차례로 출가하여, 우리 집안 친가*외가 41인
모두는 승려가 되었습니다.

몸과 말과 뜻을 하나로 모아 염불하고 기도하는 공덕.
그 공덕을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의 불가사의가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기도는 우리 집안을 불심(佛心)으로
가득 채웠고,

41명 모두를 '중노릇 충실히 하는 승려'로 바꾸어 놓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


- 신문기사 내용 -

일타스님,염불 영험담수록 「기도」펴내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日陀스님이 자신과 주위
사람 및 옛 선사(禪師 )들의 기도 성취 영험담을 모은 책
「기도(祈禱)」를 펴냈다.

전계대화상은 조계종 소속으로 출가하는 모든 승려에게
계(戒)를 주는 원로스님으로 청정계율을 지킨 승려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영예로운 직책이다.

1929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13세때 출가,
일평생 참선정진과 중생교화에만 몰두한 수행승으로
유명하다.

친가와 외가를 합쳐 모두 41명이 출가한 얘기며 20 대에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매일 3천배씩 7일동안 기도를
드린뒤 오른 손 네손가락 열두마디를 모두 불태워 버린
일화는 지금도 불가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일타스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외증조할머니인
李平等月 보살이 10년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기도를 한 끝에 「생불(生佛)」로
불리다가 세상을 뜨자 7일간 불을 밝히지 않아도

집안을 대낮같이 밝히는 방광(放光)
현상이 나타났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를 직접 체험한
가족들이 차례로 출가, 결국 석가모니 이후 한 집에서
가장 많은 출가자를 내게됐다』고 말했다.

손가락 연비(燃臂)에 대해서도 스님은 『손가락이
없으면 세속적인 모든 생각이 저절로 뚝 끊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세 명예 행복등 세속적 미련을
손가락과 함께 태워버렸다』면서

『연비후 홀로 태백산 도솔 암으로 들어가 6년동안
조그마한 갈등도 없이 참선 정진했던 시절은
일평생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옛 선사들의 기도에 얽힌 얘기와 1백만배(拜)로
원력(願力)을 이룬 제자 慧印스님, 7일간 3천배로
운동권 아들의 마음을 돌려 법조인으로 만든 보살등
평범 한 이들의 기도 성취담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도서출판 효림 간행.〈吳明哲〉

[동아일보] 1995-11-12 (문화) 뉴스 15면


------------------------

 

나무아미타불과 극락, 염불에 관한 자세한 가르침 바로가기 http://cafe.daum.net/amtb/8L2t/515

 

Posted by 慧蓮(혜련)
|

 

현재 중국에서 정토의 대가  명인이신 류소운 여거사의 언니 류소청 보살님의 임종장면

임종직전에,  몇 일전 약속에 따라 자기에게  부처님께서 오시고  자기가  연화대에 오르는 등을 동생과

약속에 따라 수신호를 보내는 장면입니다  힌옷 입은  사람이 법사 류소운 여거사입니다

그의 언니 류소청 보살께서  임종직전에 동생과의 약속에 따라  연화대에 올라타서 음을 수신호를 보내고 있읍니다   이 영상은 임종직전에 촬영했습니다

--------------------------

나무아미타불!

지난 4월 27~28일간 봉녕사에서 염불템플스테이를 봉행하였는데, 그때 중국의 유소청 보살님이란 분이 왕생하시는 실제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을 함께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왕생 사례를 보고는 많은 분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유소청 보살님은 평소 염불하시는 중에 아미타부처님의 가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아미타불과 극락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며 염불하면 극락왕생한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한 사명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생하시기 네 달 전에 왕생할 시간을 미리 예견하시고,


어떻게 왕생할 것이며, 임종에 직면하여 아미타불을 친견할 때 어떤 손 모양을 지을 것인지도 여동생인 유소운 보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유소청 보살님은 미리 예견한 모든 것을 임종에 직면하여 그대로 증명하시고는 정확한 시간에 왕생하셨습니다.


위 동영상은 유소청 보살님의 여동생인 유소운 보살님이 왕생하시기 며칠 전부터 언니의 임종과정을 동영상에 담은 것 중 하나입니다. 모두 12편의 동영상이 있는데, 이 동영상은 유소청 보살님이 왕생하시는 당일 찍은 동영상이며, 보살님이 왕생하시는 모습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1시간 30분이나 되는 동영상인데, 왕생하시기 직전의 모습은 1시간 6분부터 보시면 됩니다.

 

아래의 글은 여동생 유소운 보살이 정공법사님에게 언니의 왕생 사실을 편지로 적은 것입니다.

(중국어 실력이 천박하여 잘못 번역한 곳도 많을 것입니다. 대강의 정황만 파악한다고 생각하시고

널리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유소운 보살이 언니(유소청 보살)의 상품상생을 스승에게 편지로 알리다.

 

존경하올 큰스님께


 아미타불!

 


제자는 사부님께 희소식을 하나 전하고자 합니다. 저의 언니인 유소청 보살이 (2012년) 11월 21일(음력 시월 초아흐레) 낮 12시에 서방극락세계로 성불하고자 왕생하였습니다. 언니는 일분일초도 어긋남 없이 왕생할 때를 미리 알았으며,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여유롭고 소탈하고 자재하게 왕생하셨으니 세상 사람들 중에 이와 같이 왕생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녀가 저의 언니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대단한 감동이며, 아울러 매우 수승하다고 형용할 수밖에 없으니, 이러한 표현이 조금도 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진정한 감동이며 진정한 수승함입니다.


 언니는 상품상생 하셨으며, 법호는 무상각입니다.

 


저는 11월 8일 그날, 언니가 왕생하는 시간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언니는 무슨 시간인지 알았으나 저는 몰랐습니다. (그 당시까지) 우리 둘은 대화가 별로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녀가 왕생하던 그날 비로소 제가 알게 되었는데, 언니와 제가 알고 있던 왕생의 시기가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그 시간은 11월 21일 낮 12시였습니다.

 


 아래에서는 사부님께 저의 언니가 왕생을 증명하는 연기를 한 인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7월 초에 저는 홍콩으로부터 하얼빈으로 돌아와 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니에게 당장 급하게 증명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무엇을 증명하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왕생하는 방법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만약 아미타불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여러 사람들에게 어떻게 왕생할 수 있는지 직접 연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언니는 제 말을 듣고는 바로 말했습니다. “안 된다. 너는 연기할 수 없다. 오히려 너에게는 (다른) 사명이 있다.” 이어서 언니가 말했습니다. “소운아, 조급해하지 마라. 내가 연기할 것이다.”



 언니는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언니는 정말로 연기(실연)를 했으며, 또한 그 연기는 진짜와 같았으며 생생하고도 남김없이 다 연기하였습니다. 언니의 연기가 이 정도일 줄은 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12시가 다 되어가기 몇 분 전, 언니는 두 손을 합장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몇 분 정도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배웅하기 위해 와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정토법문은 수승합니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연화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아미타부처님 곁에 서 있으며, 서방극락세계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연이어 몇 가지 손 모양을 지었는데, 먼저 두 엄지손가락을 일으켜 세웠습니다(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함). 이것은 저와 언니가 사전에 미리 약속한 암호였습니다. 이후에 다시 완벽하게 연꽃이 피어 부처님을 뵙는 손 모양을 지었습니다(두 손으로 둥글게 연꽃 모양을 표시함). 이윽고 시계가 12시가 되었음을 알리자 정확하게 왕생하였습니다.

 


존경하올 큰스님, 언니가 왕생하게 된 일을 제자는 먼저 이 편지로 큰스님께 보고 드리고, 나중에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을) 시디로 만들겠습니다. 추가로 제가 쓴 <언니를 보내드리는 글> 한 부가 있는데, 언니를 보낸 그날 쓴 것입니다. 만약 온당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청컨대 사부님께서 지적해주시고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미타불



매사에 늘 평안하십시오.

제자 유소운은 정례합니다.

 


2012년 11월 27일

 

 

刘素云居士致师父上人函(报告姐姐往生上品上生)

尊敬的师父上人:

阿弥陀佛!

弟子有一喜讯向您老人家报告,我的姐姐刘素菁十一月二十一日(农历十月初九)中午十二点往生西方极乐世界作佛去了。姐姐是预知时至(分秒不差)活著往生的,那个从容,那个潇洒,那个自在,用语言是无法形容的,可能在十万人里头也很难找到一个这样往生的,(不是因为她是我的姐姐我才这样说),用非常震撼和非常殊胜这样的词来形容,一点都不过分。而且这是真正的震撼,真正的殊胜。

姐姐是上品上生,法号无上觉。

我是十一月八日那天知道姐姐往生时间的,姐姐是什麼时候知道的我不知道,我们俩没有沟通,是在她往生的头一天,我才知道,姐姐和我知道的往生日期完全一致,都是十一月二十一日中午十二点。

下面向师父报告一下我姐姐往生表法的因缘。七月初我从香港回到哈尔滨,和姐姐通电话时,我说姐呀,现在当务之急需要一个表法的人,姐姐问我表什麼法? 我说表活著往生的法,如果阿弥陀佛批准,我真想给大家表演怎麼样活著往生。姐姐听了以后立刻说:不行,你不能表,你还有使命呢! 接著姐姐说:小云,别著急,我来演。

姐姐是个守信用的人,她真的演了,而且演得那麼逼真,那麼淋漓尽致,她演到这种程度,是我没有想到的,还剩几分钟就十二点了,姐姐双手合十对大家说:还有几分钟时间了,感谢大家来为我送行,净土法门殊胜……,稍微停顿一下,又说:我已经站在莲台上了,紧接著说:我已经站在阿弥陀佛身边了,西方极乐世界见。接著作了几个手势,先是竖起两个大拇指,这是我和姐姐事先约好的暗号,告诉我她已经上莲花座,之后又作了圆满和花开见佛等几个手势,时钟打响十二点,准时往生了。

尊敬的师父上人,姐姐往生的事情,弟子就先向老人家报告到这里,以后会有光碟的。

附后是一份我写的《送姐文》,是送姐姐那天用的,如有不当之处,恳请师父批评指正。

阿弥陀佛

六时吉祥

弟子 刘素云 顶礼

2012.11.27

 

아래의 글은 정공법사님이 편지를 받은 그날 유소청 보살님의 왕생에 대해《무량수경》법문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유소운 거사의 언니(유소청 보살님)께서 미리 갈 시간을 아시고 상품상생으로 왕생하다-


정공법사님 11월 28일 법문



2012년11월28일 《2012정토대경해과주净土大经解科注》제38집에서 발췌.



 우리들은 오늘 아침에 유소운 거사(보살)가 나에게 짧은 편지를 전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언니가 왕생을 했는데, 일 분 일 초도 어긋나지 않게 왕생할 시간을 미리 알고는 그렇게도 자재하고 그렇게 소탈하게 왕생하시기 몇 분전 까지도 여전히 웃으면서 얘기도 하고는, 간다고 말하고 곧바로 (극락으로) 갔으니, 상품상생입니다!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극락세계의 보살님께서 오셔서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어 우리들을 위해 연기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녀(유소청 보살님)는 일생 가운데 진절머리가 나도록 고통과 핍박을 심하게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핍박받음은 모두 가짜이고 진실(진짜)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보여주려고 연기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살님으로부터 모든 것은 진짜가 아니며 오직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만이 진짜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보살님처럼 그렇게 소탈한 모습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능히 그렇게 할 수가 있으며 결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이 방법만이 진실이며 다른 것들은 모조리 가짜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들은 불보살님의 자비하심이 최고조에 달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무슨 시대입니까? 무슨 세상입니까? 오탁악세입니다. 오탁악세는 무엇으로부터 왔습니까? 견혹見惑에서 온 것이 견탁見濁입니다. 그대는 이 세계를 잘못 보고 있고 잘못 생각하고 있어 사실 그대로의 참모습(事实真相)과 완전히 위배되니 이것이 견탁입니다. 견탁으로 인해 번뇌가 생기면 번뇌탁煩惱濁이 일어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은 시대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데, 오탁 속의 시대가 바로 겁탁劫濁입니다. 겁은 시대를 말하는데, 무엇 때문에 좋지 않습니까? 중생의 견해가 잘못되어 있고 생각과 사고가 잘못되어 있어 이런 좋지 않은 것들을 만듭니다. 불보살님께서 출현하시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모든 중생을 구제하시기 위해 무슨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가르치고 배움(敎學)을 사용하십니다.

지금 이 세상은 진실한 법이 약하고 마구니가 강하며, 좋은 사람은 적고 나쁜 사람은 많으며, 착한 사람은 적고 악한 사람은 많아서 악의 힘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유소운의 언니는 한평생 억울함을 당하고 치욕을 참았으며 좋은 날이라고는 없었으나, 임종 때의 서상으로 우리들에게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선한 과보가 있으니, 손해를 보고 속임을 당하고 진저리나게 핍박을 당해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극락세계에 왕생하시어 상상품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으심으로써 우리들을 매우 크게 격려하시고 고무시키셨으니,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선지식이십니다.

 


 净空法师11月28日开示:刘素云居士的姐姐预知时至往生,上品上生!



“我们今天早晨看到刘素云传给我的一封短信,她姐姐往生了,预知时至,时间一分一秒都不差,走的那么自在、那么潇洒,往生前几分钟还说说笑笑,说走就走,上品上生啊!”不是凡人!极乐世界菩萨到这来给我们表演的、给我们示现的。她一生当中受尽了折磨、受尽了苦难,菩萨为我们表演的,这些折磨、苦难全是假的,不是真的,做给我们看的。我们要学她,都不是真的,念佛往生极乐世界是真的;她那样的潇洒,我们每个人都能做到,并不稀奇,这一著是真的,其他全是假的。从这个地方我们就能体会到佛菩萨慈悲到极处,此时此处,这是什么时候?什么处所?五浊恶世,浊恶从那里来的呢?从见惑来的,见浊。你把这个世界看错了、想错了,与事实真相完相违背,这是见浊,因见生烦恼,引起烦恼浊。所以我们讲时代不好,五浊里面的时代就是劫浊,劫是讲时代,为什么不好?众生见解错误、思想错误,这样造成的。佛菩萨出现在这个世间,救度一切众生用什么方法?用教学。现前真的法弱魔强,好人少坏人多、善人少恶人多,恶的力量强大,所以善人受人欺负。刘素云的姐姐一辈子委曲、忍辱,受了多少苦难,没过过好日子,临终这一著,表演给我们看。做善人还是有善报,吃亏上当、受尽折磨都不在乎,往生极乐世界,上上品报生,给我们很大的鼓励,这是真善知识。



(本篇摘录自:2012年11月28日《2012净土大经解科注》第38集)

 


정공법사님 2012년 11월 28일 법문 동영상



2012년11월28일 《2012정토대경해과주净土大经解科注》제38집

 

유소청보살님(우)과 여동생 유소운보살님(좌)


-글/원왕생님-




--------- 유투브---------


 날짜: 2014425일 금요일, 143834+0900
제목: 유소청 보살 왕생기록물 유트뷰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lhlNeUIUpf8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 姐姐西归去妹妹送姐行 (刘素云居士主讲 

http://www.youtube.com/watch?v=wnJh3M0ozys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刘素云居士主讲)

위의 1집이 두개인데, 유소운선생님 말씀의 기록물인데

첫 번째 것은 앞단락에 유소청보살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요점을 단락으로 모아서 보여주고,

두 번째 것은 유소운선생이 말씀하시는 부분이 바로 나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zfMAEfPWAKA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 (17/11/2012 往生前第五天)

http://www.youtube.com/watch?v=NOtwRZkSpbQ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18/11/2012 往生前第四天

http://www.youtube.com/watch?v=h_nDbumEsaw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④ (19/11/2012 往生前第三天)

5집 단독으로 있는 것은 안보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i7QwrWa-N5w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⑥ (20/11/2012 往生前第一天)

http://www.youtube.com/watch?v=Q18aggba_Io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  (21/11/2012 往生当天)

http://www.youtube.com/watch?v=dotJTtbCaMw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

http://www.youtube.com/watch?v=CM8RxnCYz6w    有字幕HD刘素青老菩萨往生纪实

 

http://www.youtube.com/watch?v=LreJgE7cg_A   刘素青老菩萨往生记实-10-大愿菩萨遍洒法语甘露 20121121 대원보살께서 감로법어를 뿌리다

   

http://www.youtube.com/watch?v=72Id81_REBs     刘素青老菩萨往生记实-11-解读照片中的寓意 20121121 사진에 담긴 의미를 풀어보다

(사진을 보면서 유소청보살님께 설명을 듣고 감동하여 절을 올림-내용이 짧음 3페이지)

 

http://www.youtube.com/watch?v=8B40MfLTzAE   刘素青老菩萨往生记实-12-欣慰的回忆 20121121 위로가 되는 기억

(유소청보살 따님의 회고와 정공스님의 유보살님에 대한 말씀 등)

  

 

아래의 것은 1집에서 4집까지를 한 번에 모아놓은 것과 5집부터 9집까지 같이 모아놓은 것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BtYp3GCeEw8   字幕版喜送姐姐回家系列片

http://www.youtube.com/watch?v=_GbNyj9UnqY    字幕版喜送姐姐回家系列片

 

Posted by 慧蓮(혜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