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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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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법등사 설오 큰스님 속가 할머니의 극락왕생 사례

(글쓴이 김병훈님)

이번 추석명절 전에 평소 가족과 함께 제가 다니는 아담한 도량인 안성 법등사에 인사차 갔습니다. 법등사 주지스님이신 설오큰스님께 인사드리고 여느때 처럼 차공양 하면서 스님이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우선 설오스님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드리자면 출가하시어 대만유학 7~8년 하시고 이후 티벳에서 9년 정도 수행하시고 귀국하셔서 비구니 승가대학인 봉령사에서 학인스님을 가르치시는 교수스님으로써 5개국어에 능통하시고 동시에 법등사 주지를 맡고 계십니다.

제가 법등사와 인연이 남다르고 호흡오음염불을 한 계기로 법등사와 인연이 되었지만 우선은 차담속에 말씀하신 스님의 속가 할머니의 극락왕생 사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빠트리는 부분도 있지만 기억나는데로 말씀드릴게요..ㅎ

스님은 불교집안의 장녀로 태어나셔서 어려서부터 속가 할머니와 같이 생활하실때 할머니는 시집오셔서 부터 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입에 달고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 할머니의 오라버니께서 마이산 돌탑을 쌓으신 도인이셨는데

스님 할머니께 너는 다른거 하지말고 평생 염불만 해라" 하셔서 오라버니 말씀만 따라 염불만 평생 하셨다고 합니다. 어떨때는 스님은 너무하시니 듣기 싫을때 도 있을정도로 늘 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임종하실때 고요히 잠들듯이 편안히 가시면서 방안에서 좋은 향기(전단향)가 가득 풍기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종 후에는 꿈을 생생하게 꾸셨는데 꿈속에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 애야 가볼때가 있다" 하시며 극락세계를 데리고 가셨는데 경전에 나와 있듯이 황금빛에 보살님들과 거룩하신 아미타부처님께서 계셨는데

할머님이 부처님께 가셔서 뭔가 말씀하시면서 스님을 보고 계시고 있는데... 그때 꿈에서 깨셨다고 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부처님 만나뵙고 인사도 못드린게 좀 아쉽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서방극락세계가 실재로 있다라는걸 그때 체험했다고 하셨습니다.

출가하셔서 한때 염불은 노인들만 하는 하근기만 하는걸로 착각하고 있었다고 하시면서...한때 무량수경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한 귀절에서 갑자기 뒷통수를 꽝하고 맞는거 같은 느낌과 함께 불이 번쩍하더니 염불법이 모든 근기의 매우 수승한 법이라는걸 느끼셨다고 하시면서 염불의 수승한 점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염불도 하시면서 한국과 티벳불교와의 가교 역할도 하고 계시며 얼마전 봉령사에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모시고 계시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9과를 모셔와 불탑을 세운인연도 설오스님께서 큰 역할을 하신걸로 알고 있으며 또한 법등사 미타정진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나름 생각을 더듬어 간략히 적었는데 제 기억력과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훌륭한 극락왕생 사례라 판단되어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추가로 작년에 제 장인 임종시에서 법등사 스님 모시고 같이 조념 염불해서 극락왕생 하셨는데 그 부분도 큰 인연인거 같습니다. ㅎ

염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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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daum.net/amtb/ZEF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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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글을 시작하며

(혜산스님 글)

 

나무아미타불_()_

오늘이 벌써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3일 전인 2019년 328일 목요일, 저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법련사에서 속가 모친(곽순영/천수화 불자)49재 막재를 마치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약 한 달 전에 이 카페 (나무아미타불 http://cafe.daum.net/amtb)에 첫 글을 올렸을 때 막재를 마친 후 제가 어떻게 모친의 임종을 지켰으며, 기도를 했는지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방대한 양이기에... 부득이 시간 순서대로 나누어 핵심만을 간략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1. 임종 전(前)

 

 

1. 모친께서는 서울대병원에서 약 1년간 백혈병 투병을 하셨습니다. 저는 2017년 가을 티베트 사자의 서를 그림으로 그려서 쉽게 풀이한 죽음에 부치는 편지를 엮어서 책으로 내면서 죽음에 임박하여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등의 그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2. 작년 가을 의료진으로부터 치료가 힘들다는 진단이 나오자 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고 극락왕생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고 모친과 속가 부친 및 형을 설득하여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고 임종이 다가올 때 중환자로 옮기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기로 의료진에게 서약을 했습니다.

 

3. 그리고 그때 저는 모친께 극락왕생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쉽게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학원(동국대 불교미술) 수업과 간병을 제외한(부친과 형, 그리고 제가 교대로 간병을 하였습니다) 모든 시간을 그림 작업에 몰두하여 10점의 그림을 완성하였습니다.

 

4. 그리고 10개의 그림들이 완성 되는대로 하나하나 간략한 설명(정토로 가는 열걸음)과 함께, 왕생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모친께서는 금생의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발원문을 따라하고 염불하는 등, 저와 함께 극락왕생의 정업(淨業)을 쌓았습니다.

 

5. 이와 더불어 모친께서 믿음과 발원을 일으키는 데 큰 힘이 된 것을 대표적으로 꼽자면 가장 먼저 인광스님의 가르침인 임종삼대요의 가르침, 그리고 이 카페의 여러 자료들(왕생담, 영상, 음악 등)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6. 특히 광흠스님께서 연꽃을 나투신 서상과, 201751일 중국 항저우 미타촌에서 서서 왕생하신 노보살님의 이적. 그리고 유소청 보살님의 임종 시 왕생을 증명하신 영상(특히 마지막에 손으로 연꽃을 만드시는 모습과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이 어머니께 큰 환희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들(극락세계는 나의 집, 아미타부처님 접인하시니, 아미타부처님께 올리는 참회가 등)은 모친께서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2. 임종 시(時)

 

 

앞서 <1. 임종 전()>에 이어 이번에는 시간 순으로 <2. 임종 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작년 가을 이후와 연말을 힘겹게 넘기시고 올해 초 이제는 정말로 임종을 준비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 병원 내 호스피스 상담실을 가서 물어보니 일반 병실(모친께서는 1년 내내 6인실에서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에서는 사망 선고 후 1시간 이내에 영안실로 보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2. 사망 선고 후 최소한 8~12시간 정도 망자를 움직이지 않고 조념염불 등 임종자를 극락왕생으로 인도하는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인광스님의 임종삼대요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3. 이에 저는 1월 말부터 모친께 조금이라도 상태가 안 좋아지면 1인실이나 특실로 이동해서 그 곳에서 임종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야지만 사망 선고 후 영안실로 바로 보내지는 것을 막고 최대한 조념염불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리고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한 2/8 금요일. 저는 밤새 간병하신 아버지와 교대하기 위하여 오전에 병실에 도착하였고, 의식이 분명한 모친과 점심 무렵에 단 둘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하였습니다. 모친께서는 이미 사바세계에 대한 미련을 놓으시고 마음의 준비를 하신 상태였습니다.

 

5. 이때 특히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꼭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호스피스 상담사로부터 조언을 받은 것인데, 투병 끝에 임종하는 환자들은 대개 자신도 모르게 무력해지고 지쳐가게 됩니다. 이때 가족들로부터 어머니(혹은 아버지, , 누나 등)의 삶은 너무도 훌륭했고 가치 있었으며, 우리 가족 모두 당신으로 인해 행복했습니다.”와 같은 말을 통해 임종자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 역시 이러한 말을 모친께 들려드렸을 때 모친께서 행복해하신 얼굴과 제게 하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6. 모친께서는 저와 마지막으로 대화(사실상 이 대화가 유언이었습니다.)를 나누시고 제게 병실을 옮겨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오늘을 넘기지 못하실 것을 예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달라고 하시더니 그 중에서 영정사진으로 이 사진을 하라며 직접 골라주셨습니다. 1인실이 만실이어서 특실 가운데 가장 싼 병실로 오후 3시경 모친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7. 특실로 옮긴 후 모친은 사자의 서에서 설한 임종중음의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친은 처음에 덮여 있던 이불을 걷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돌연 춥다고 이불을 덮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불을 덮고 걷고를 반복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사대(지수화풍)가 소멸될 때의 증상이었습니다.

 

8. , 지대가 소멸될 때에 몸이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불을 걷으라는 것이었고 다음 단계에서 수대가 분해될 때에는 몸이 추워지기 때문에 이불을 덮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조념염불 때 제가 만든 책(죽음에 부치는 편지)을 모친의 귀에 대고 읽어드릴 때 해당 페이지(정확히 47페이지)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9. 그 순간에 부친과 의료진은 계속해서 산소 수치를 높이고 이불을 덮거나 걷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저는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하였습니다. 급히 근무 중인 형에게 무조건 오라고 연락을 하였고, 30~40분 후 형도 병실로 도착을 하였습니다. 모친은 도착한 형의 얼굴도 알아보시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10. 이처럼 모친은 추위와 압박을 느끼시고는 곧 호흡이 약해지고 이내 더욱 깊은 임종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친의 생전 마지막 육성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꼬마아이가 산수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선생님을 빤히 보면서 이 문제 어떻게 풀어요?” 라고 묻듯이 저를 보면서 딱 네 마디를 하셨습니다. “... 어떡해..?!”

 

11.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제게 도움을 청하는 그 음성을 듣는 순간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이 모친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슬픔이나 당황 등의 감정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제가 그린 그림 중에서 모친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그림(연화생)을 모친께 보여드리며 오직 정토왕생만을 기억하라고 강조하였고, 모친은 그 그림을 응시한 채 눈을 스르륵 감으셨습니다. 이후 눈의 초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을 확인하고 저는 그림을 모친의 배개 맡(정수리)으로 옮기고 모친의 귀에 대고 오직 나무아미타불만을 염불하였습니다.

 

12. 임종의 순간 부친께서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신 상태였기에 체념한 듯이 멍한 상태로 멀찍이 서 계셨고, 형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특실 안의 화장실로 몸을 피한 상태였습니다. 주치의는 간단한 확인 후 사망 선고(1804)를 하고는 병실을 나갔습니다. 부친과 형도 장례식장 준비 등의 일을 진행하기 위해 병실을 나갔고, 이제 병실에는 오직 저와 모친의 시신만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3. 조념(助念) 염불

 

 

앞서 <1. 임종 전()><2. 임종 시()>에 이어 시간 순으로 <3. 조념(助念) 염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지금 생각해봐도 그 날 오후에 6인실에서 특실로 옮긴 것은 가장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주치의에게 사정을 말하고 18시부터 다음날(2/9 토요일) 06시까지 12시간 동안 아무도 병실에 들어오지 않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습니다. 그렇게 제가 12시간 동안 모친의 시신을 눈앞에 두고 행하였던 일들을 말씀드립니다.

 

2. 우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발원문을 읽었습니다. 이 발원문은 모친께서 투병 중에 제가 직접 간략하게 만들어서 함께 낭송했던 발원문입니다.

 

3.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계속해서 귀에 들려드렸습니다. 염불의 운곡 역시 투병 중에 가장 좋아하신 운곡을 중심으로 염송하였으며, 부득이 화장실을 가거나 할 때에는 핸드폰 유투브 속에 염불을 틀어서 한 순간도 귓가에서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장시간 한 후에는 모친께서 생전에 좋아하신 광명진언을 중간 중간 하기도 하였습니다.

 

4. ‘티베트 사자의 서의 가르침 가운데 임종중음의 내용과 망자를 위한 기도문 등을 읽어드렸습니다.(이 부분을 읽으면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머니께서 보이셨던 증상 이불을 덮고 걷었던- 이 임종에 들어온 순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와 더불어 아미타경을 독송해 드렸습니다.

 

5. , 정리하자면 우선 A. 극락왕생 발원문 후에 B. 염불 및 광명진언 / C. 사자의 서 및 아미타경 독송입니다. 12시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BC를 반복해서 할만큼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12시간 동안 모친의 몸에서 제가 직접 체험한 서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6. 우선 모친께서는 (대게 그러하듯이) 임종의 순간 숨을 입으로 얕게 쉬셨기에 사망 선고의 순간 입을 살짝 벌린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입을 닫게 해드리기 위해 턱에 살짝 힘을 주었는데 움직이지 않기에 이내 포기하고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귀에 대고 위에서 말씀드린 기도만을 오직 일념으로 행하였는데, 3~4시간 정도가 지나 무심결에 입을 보니 미소 지은 모습으로 스스로 다물고 계셨습니다.

 

7. 다음으로 체온의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종자를 사망 선고 후 즉시 움직이지 않고 최소한 8~12시간 정도를 두고 염불만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그 시간 동안 임종자 몸 안의 숨이 서서히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흔들거나 이동하거나 하는 등의 방해를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빠져나갈 때 중요한 것이 바로 나가는 장소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사자의 서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8. 이처럼 망자의 근본적인 아주 미세한 숨’, 이것을 흔히 마음, 영혼, 또는 불성이라고 해도 됩니다. 지금 여기서 그러한 것을 상세히 따지지는 않겠습니다. 이처럼 그 이 나갈 때 최상의 출구가 바로 정수리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는 발바닥과 항문, 소변 구멍 등입니다. 대체적으로 나가는 방향이 아래에서 위(정수리)로 나갈수록 좋다고 하고, 위에서 아래로 나갈수록 좋지 않다고 합니다.

 

9. 모친의 시신에 손을 대고 아주 조심히 체온을 느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식은 곳이 발바닥과 무릎, 손바닥 등이었습니다. 이윽고 배, 심장, 이마 등이 식었고, 가장 최후까지 정수리에 열기가 머무름을 확인하였습니다.

 

10. 이때 또한 신기한 것은 정수리의 열기가 자칫 식어가는 것이 느껴질 때, 모친의 귀에 대고 몸 안의 모든 의식과 숨을 정수리로 보내세요. 정수리에 어머니께서 좋아한 그림이 있어요. 정수리로 나가셔서 제가 그린 그림 그대로 정토에 연꽃 속에서 왕생하세요.” 라고 간절히 속삭이면, 실제로 정수리에 다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 모친은 아침 6시까지도 오직 정수리에만 열기가 살짝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12시간이 마치 찰나와 같이 지나가고 아침 6시가 되자 문이 열리고 영안실 직원이 이제는 영안실로 옮기셔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는 충분히 잘 인도했다고 확신하였기에 알았다고 동의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식 침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2. 바로 그때, 제가 12시간 동안 귀에 대고 기도할 때 지금까지 멀쩡하던 귀와 코에서 노란 액체(황수)가 흘러내렸습니다. 정말 기도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내리는 황수를 보고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왜냐면,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임종중음에 해당하는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13. “당신(임종자)의 몸에서 누런 액체가 흘러나올 때까지, 첫 번째 청정한 빛을 일깨워주는 이경전의 가르침을 반복해서 정성껏 독송해 드리겠습니다.”(제 책의 38페이지 번역문) 그 경전의 가르침 그대로 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부처님의 가피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14. 이렇게 12시간의 조념염불을 마치고 제가 직접 직원과 함께 모친의 시신을 이동식 침대에 옮긴 후 영안실로 이동해서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11번 영안실에 모셔드리고 확인 서명까지를 마쳤습니다. 그 시간이 정확히 2/9일 토요일 0630분입니다.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4. 49일 극락왕생 기도


 

앞서 <1. 임종 전()><2. 임종 시()>, 그리고 <3. 조념(助念) 염불>에 이어 마지막으로 <4. 49일 극락왕생 기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2/9일 토요일 9시 경 빈소가 마련되고 저는 꼬박 밤을 샌 상태로 조문객들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모친의 인연들 및 부친과 형의 문상객이었기에 저는 저와 인연 있는 스님들과 신도분들이 오실 때를 제외하고는 빈소 구석에서 기도를 하거나, 기도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빈소 한 켠에 노트북을 놓고 항상 염불 등을 틀어서 월요일 아침까지 한 순간도 빈소에 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였습니다.(이는 12시간의 조념염불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2. 특히 문상객들이 오지 않는 23시 이후부터 아침 6시까지 마치 하루 전 모친의 주검을 앞에 놓고 조념염불을 하였던 것처럼 홀로 (부친과 형은 뒷방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빈소에서 간절한 기도를 행하였고, 2/10일 일요일 아침 6시 경 1시간 남짓 너무도 피곤하여 의도치 않게 살짝 잠이 들었는데, 모친께서 투병하실 때의 삭발을 하시고 아픈 모습이 아닌 예전의 건강하신 모습 그대로 하얀 옷을 입으신 채 공중에 살짝 뜬 상태로 벽 혹은 나무 같은 것에 기대신 채 누워 있는 저를 지긋이 바라보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3. 꿈에서 깨어난 순간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혼자서 텅 빈 빈소에서 한참을 흘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임종의 순간부터 12시간의 조념염불까지 단 한 방울의 눈물이나 슬픔 등의 감정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집중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사망 후 8~12시간 이내)에 간절히 극락왕생을 발원하면 다른 생각과 감정 등은 사라지는 것이 분명합니다.

 

4. 정신을 차린 후 모친께서 차디찬 영안실의 그 몸뚱이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를 벗어버리시고 극락으로 가시기 전에 빈소에서 저를 보고 또 제가 하는 모든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에 월요일 아침에 고향의 납골당으로 가기 전까지(발인) 또 다시 밤새 기도를 하였습니다.

 

5. 그리고 월요일 새벽 5시 경 발인 전에 짐을 싸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밤을 샌 상태이고 쪽잠을 자고 나오신 부친과 형님도 짐을 싸기 시작하였습니다. 빈소의 영정 위에 평소 제가 그린 그림 가운데 모친을 떠올리며 그린 '연화생'을 포함하여 모친께서 좋아하셨던 3점의 그림을 놓았습니다. 다른 짐들보다도 가장 먼저 그림을 정성스레 포장지로 싸는데 제 왼쪽 어깨 뒤에서 앞쪽으로 서늘한 기운이 몸을 통과하여 지나가는 것이 느껴지면서 왼쪽 귀에 약간의 사투리가 섞인 모친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그 다섯 마디. “잤나.. 안 잤나...?”

 

6. 제가 또 다시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자 염려가 섞인, 그러나 아주 평온하고 낮은 음성으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딱 1시간 눈붙이고 기도한 것을 내내 지켜보시고 빈소에서 짐을 싸는 그 순간에 바로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7. 49재를 모시기로 한 서울 종로에 있는 법련사의 스님들이 오셔서 월요일 아침 발인제를 마치고 모친의 관을 운구차에 싣고 모친의 고향인 대구의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대구까지 3~4시간 동안 잠깐 눈을 붙일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8. 이번에는 오른쪽 귀 속에서 계속 염불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입 밖으로 염불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저절로 귀 속에서 염불소리가 정말 이어폰을 끼고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계속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염불소리도 아니고 투병 중에 저와 함께 염불했던 가장 좋아했던 그 염불소리가 말입니다. 저와 함께 화장터로 가고 계시다는 생각이 나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어서 버스에서 이동하는 내내 귀 속에서 들리는 염불을 마음의 귀로 들으며 염불을 하였습니다. 이런 경험은 지금껏 10년 넘게 나름 정토행자라고 염불을 해왔지만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9. 그렇게 화장을 마치고 저는 3/28일 막재까지 매일 법련사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는 조념염불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A. 극락왕생 발원문 이후에 B. 염불 및 광명진언 / C. 사자의 서 및 아미타경 독송. 이것을 시간과 체력이 버티는 한 영정사진 앞에서 쉼 없이 하였습니다.

 

10. 제가 딱 하루 빠진 날은 2/22일 금요일 제 본사인 송광사 방장 보성 큰스님의 다비식에 운구를 하기 위해 참여한 날이었습니다. 제가 2002년 송광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늘 뵈었던 가장 큰 어른스님이셨으며, 방장스님께서 평소 율원에 매우 애정이 많으셨기에 유언으로 율원스님들한테 운구를 부탁하셔서 송광사 율원 졸업생인 저는 운구를 하기 위해 가야만 했습니다.(나중에는 선방스님 10분과 율원 졸업생 10분 총 20명의 스님들로 운구조가 구성되었습니다.)

 

11. 운구조는 키 순서로 정해져서 공교롭게도 저는 앞에서 두 번째의 안쪽에 서게 되었는데, 어깨로는 끈을 짊어진 채 한 손으로는 관을 덮는 방장스님의 가사가 날아가지 않도록 잡고 가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이렇게 영결식을 마치고 다비장으로 가는 약 30분 동안 운구를 하며 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방장스님.. 부디 10일 전에 먼저 운명하신 저의 모친이 혹시라도 중음계에서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계시거든.. 큰스님 법력으로 함께 손 잡고 극락으로 같이 모셔가 주세요...”

 

12. 제가 고개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로 30cm 이내에 방장스님의 오른쪽 귀가 있기에 저는 분명히 듣고 계시다고 믿고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운구를 마치고 저녁 늦게 서울로 올라와 잠에 들었는데, 그 날 꿈에 방장스님께서 꿈에 나오셔서 그 특유의 사투리 섞인 음성으로 껄껄 웃으시고는 환한 미소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 모친 49재 잘 하그래이~!”

 

13. 꿈 속에서 방장스님까지 친견한 후 저는 더욱 발심하여 계속해서 기도를 하였고, 특히 잠들기 전 제 이부자리 서쪽 벽에 걸어 놓은 아미타불 앞에 매일 무릎을 꿇고 발원하였습니다. “부디 49재 막재를 마치기 전에 꿈속에서라도 모친을 만나 잘 계시냐고 한 번만, 부디 한 번만 대화하게 해주십시오...”

 

14. 아미타불께서 감사히도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어 저는 49재 동안 모친을 총 7번 동안 꿈 속에서 만나는 희유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2002년에 출가하였으니 올해로 출가한지 17년 정도가 되었는데, 지난 2018년까지 약 16년 동안을 통틀어도 모친의 꿈을 꾼 것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49일 동안에 앞서 말씀드린 빈소에서 꾸었던 꿈 속에서 뵌 것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초재(2/14.) 이후 막재 당일(3/28.)까지 7번이나 보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미타불의 가피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15. 하지만 저의 기도와 수행력이 부족한 탓으로 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고픈 말은 전혀 하지 못한 채 깨고 나서야 후회하고 또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3/27 수요일 저녁, 즉 막재 전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저녁까지 기도를 마친 후, 문득 종로(안국역)에 위치한 법련사에서 멀지 않은 혜화역에 있는 서울대병원을 가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친께서 1955~2019년까지 약64년을 사시면서 마지막 1년을 보낸 곳이 바로 서울대병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6. 암병동 10층에 도착해서 백혈병 환자의 병실은 보호자 외에 면회금지 구역임을 익히 알고 있기에 저는 모친과의 마지막 추억이 깃든 병원 10층 복도를 하염없이 걸으며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광명진언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발원하였습니다. “어머니... 이 곳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아닙니다. 내일이 막재인데 혹여라도 마지막 숨을 거두신 이 병원 그 어디에라도 애착이 있거나 나아가 이 사바세계에 미련이 있다면 부디 다 놓아버리시고 반드시 극락왕생하십시오.”

 

17. 그렇게 병원에서 49재의 마지막 기도를 회향한 후 수요일 밤, 아미타불께 발원을 올린 후에 잠이 들었고 그 날 꿈 속에서 7번째 마지막 꿈을 꾸게 됩니다. 꿈 속에서 모친은 신기하게도 제가 기도한 서울대 병원의 그 병실 침대에 편안히 앉아 계시었고, 병실에는 오직 모친과 저, 그리고 의사 이렇게 세 사람만 있었습니다. 장소만 병실 침대일 뿐 침대 주위에선 밝은 빛이 나고 있었으며, 모친께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새하얀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18. 지금도 눈에 보이듯이, 귀에 들리듯이 생생히 기억합니다. 의사가 모친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더 치료하고 싶으신지요..?” 이에 제가 모친께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의견을 여쭈니 모친은 천천히 손사래를 치면서 저는 더 이상 치료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시고 환히 웃으시며 손으로 인사를 하시고 기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갈 때가 되었네요.”

 

속가 모친을 극락정토로 보내드리며 – 글을 마치며

 

막재 날 아침에 깨어나 꿈 속에서 모친께서 전해주신 마지막 말을 한참을 다시 떠올리며, 기쁜 마음으로 막재에 임하였습니다. 멀리 불일암에서 제 은사스님께서도 참석을 하시고 또한 49일 동안 세심히 살펴주신 법련사 주지이신 진경스님의 정성스러운 집전 속에서 여러 신도분들의 기도와 함께 막재를 여법하게 모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미타부처님께 매일 밤 잠들기 전 간절히 기도를 올려서 그 기도에 감응해 주시어 7번이나 기회를 주시고 마침내 정확히 49재 당일 모친을 현몽하여 꿈에서 대화를 나누고 정토에서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작별의 인사를 한 것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전생의 인연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마친 해에 일찍 출가(2002)를 하였고, 출가 후에도 비교적 일찍(2007) 정토불교에 귀의하였고, 이후 줄곧 나무아미타불을 놓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고, 한 손은 정토를 그리고, 다른 한 손은 정토 책을 만드는 것이 제 수행의 전부이고 이 밖의 다른 수행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원력을 가지고 2017년 가을에 죽음에 부치는 편지 그림으로 엮은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 이 책에 담긴 가르침을 임종의 순간부터 49일 동안 간절히 독송해준 첫 망자가 바로 모친이라는 사실이 제게는 참으로... 뜻깊게 다가옵니다.

 

또한 예전부터 정토 그림 전시회를 계획하면서 모친의 막재 전후(3/20~4/2)로 영정을 모신 법련사 내의 불일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막재를 마치고 이렇게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아미타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글을 올리는 것이 당연히 누구도 알 수 없는 저 혼자만의 체험이기에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좋은 자료들을 정성스레 올려주신 이 카페의 여러 정토행자 분들께 받은 은혜를 저 역시 나누기 위해서 지금껏 말씀드린 일들을 알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을 하였고, 아미타부처님과 이제 극락에 계시는 모친께서도 이해하시리라 믿기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진실로 이 모든 것을 제가 직접 겪고서 쓴 것이며, 혹여라도 본의 아니게 제가 지은 허물이 있다면 참회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혜산스님 프로필 http://cafe.daum.net/amtb/5dr6/2461?svc=cafeapi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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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월 ...

새들이 노래하고 토끼가 딩구는 이곳에(정토마을http://www.jungtoh.org/) 지족행 보살님이 오셨다.

위암 말기

복수가 차서 걸을 수 가 없었다.

풍경이 처마끝에서 땡그렁 ~~땡그렁

시님 참 좋소 ~ 우메 내가 무슨 복일까여?

참말로 좋군마~~ 내는 마 부처님 도량에서 죽는게 팽생 소원이여지라.

칠십노구에 깊은 병이 든 보살님

스님들의 간호를 받고 무지무지 해복해 하신다.

오메 네가 안아퍼면 우리시님들 옷하나씩 만들어 드릴터인디~~우짠디야

말씀이 많으시다.

막내아들과 딸 손잡고 오신 당신을 기억 합니다.

송광사에서 구산스님께 지족행이란 불명을 받고 30년을 꼬박 절집에서
삼보를 받들고 살아오셨다고 말씀 하셨다.

뼈만 남은 사지에 불러온 복수가 고통스러워보여 복수뽑고 미음을 드리고 목욕시키고 기도해드리고...

시님 나 여거서 죽어도 되지라 ~ 그럼요

아들들이 못가게 하는 대두 네가 와버러지라 스님이 계신다고 했어

여기온께 서너달 더 살고픈디...
어쩐디야 진짝에 서둘러 와야 하는 건디...

휠채어타시고 법당에 갔어 맨바닥에 절을 하신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저는 요 극락으로 갈텐께 부처님 그리 알아쁘리소

날 꼭 데리고 가야허요 부처님 !나무아미타불

아이구 못일어나신네 간호사들 난리났다.

시님 나 울매나 살거소
나부처님 한께로 갈텐께 아무걱정없어라~~~

매느리들 한께 쪼개 미안허요 팽생 절에다닌다므 우째 이런 몹쓸병이 들어을까?하고 부처님 영험이 떨어질까 말이여

다 내 업인디 ~ 그러지라 시님?

오신지 한달 ...

가족들이 수시로 오고 전화도받고 ....

점점 육신이 무너저 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중환자 실로 옮겨 모셨다.

내가 드려주는 아미타 노래에 푹 잠기시는 지족행 보살님...

오는 지~ 가는 지~ 있는 지~ 흔적없이, 소리 없이, 허드래 일 다하시며 염불수행하신 지족행보살님...

나는 사십구제 필요없어라~ 바로 갈텐께
그리허두 자식들이 흔다믄 혀야제

몇칠 못가실것 같아 딸에게 부탁드려렸다

가실려고할때 갈라입힐 고운 바자마 한벌 사오라고...

사오셨다 멋진것으로

시님 나 갈려고 할때 이옷 입소 ~예~
병원복 입고 가믄 쓰것소 고운것 입어야제

맞소~맞어 성품 좋으신 보살님!
함께 조금더 살고싶은데 떠나려고 준비를 하시는 것 같다.

임종이 닥아오면 지 수 화 풍 이 차례대로 무너진다.

임종의 예후를 보이기 시작하신다.

임종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 지어온 업력에 따라서 그리고 마지막 종착역에서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다가서는가에 따라서 죽음의 질이
천차 만가지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어떤삶이 잘 사는 삶 일까?)

유월 바람이 풍경을 스치며 지나가던 날 새벽..

사력을 다해 염불을 하신다 임종이 닥아오는 것같다.

자식들에게 연락을 했다

몇시간후에 임종하실것 같다고.

3남 1녀를 두셨는 데 큰아들 내외만 늦었고 다른자식들은 3시간 이내 도착 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아미타 삼존불 모시고 향피우고 향 물로 몸 닦고 이제 떠날 준비가 다되었다.

혈압 맥박 신체적인 증상 모두 임종의 임박함을 말해주었다.

혀가 말려 들어가고 동공이 풀렸다

작은아들이 어머니!!! 형 저그오고있는 디 조금만 기다렸다가 보고가소

녜! 보고가세요 불효자식 만들지말구요

보살님 ! 지족행 보살님 ! 부처님 어디에 계세요 ?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여 저~기 구름타고...

아미타부처님이세요 ?

관세음 보살님이세요?

아미타불 ....

혼자오셨어요?

고개를 좌 후로 흔들어주신다.

팔을 벌려 갑짝이 무엇을 잡으려 하다가 푹 팔을 떨어떨인다.

모두 깜짝 놀랬다.

그러더니 풀린 동공이 다시모이고 혈압 맥박 다시정상 으로 돌아오고

눈을 뜨신다.

아이 ~이놈아 !

부처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니가 너그 형보고 가라고 하니

부처님이 구름위에서서 잠시있다가 오겠다고 하시고 갔어뿌렸다.

우리는 잠시후라는 말씀듣고 임종을 기다렸다.

큰아들 며느리가 도착했다.

부처님이 니 만나고 오라고 했다께.

아들얼굴도 만져보시고 며느리 손도 잡아주시고...

한시간이 넘게 흘러갔다 .그런데 보살님은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깨어나셨다.

한참후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크게 한바탕 웃었다.

오늘은 우리어머니 예비소집일이였다.작은아들 유머

둘째가 남고 모두돌아갔다.

보살님 웃으시면서 거실에 나와 나 옷 벗을래

우리는 또 웃었다

이옷 벗겨주고 병원복입혀줘 이거 나중에 입고 가야제

우리는 많은이야기를 들었다 .

구름을 타고 오신 부처님이 당신손을 잡으려 하다가 아들의 애원을 들어시고 잠시 시간을 허락 하셨단다.

그리고 48시간이 지난 다음 다음 새벽날 이였다.

갑짝이 맥박이 떨어지고 혈압도 뚝~뚝떨어진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는 실제 사항이라고...

막내가 먼저 도착했다 .어머니 !

나 부러지말거래

예~알겠습니다. 잘들 살거래

혀가 말려 들어가고 숨을 몰아쉰다 .

그러더니 지금 달려오고있는 큰아들을 찾는 다

지금 오고있어요

나~~빠쁜게 (손을 귀에다 덴다) 전화~~~ 내가 알아들었다.

큰아들께 전화 통화를 하고싶어하셨다.
핸드폰을 귀에다 데 주었다.

야야 너는 성질이 급한께 천천히 오거레 그리고 형제지간에 우애있게살고 ...애미는 ? 애미야 고맙다 ! 맏이로 고생많았다. 잘 살아라
내가 니 사랑하는 거 알제 니만 믿고 간데 부처님 공부 잘허구) 나는 민망스러워다 다른 자식은 와 있어도 찾지도 안고 큰아들 며느리만 찾으니...

천천히 오거레 ~~천천히~~~

전화를 놓으신다 아들이 수화기를 통해 어머니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불러다 보살님 ! 부처님은...?
고개를 끄떡이신다.

그리고 웃으신다 .
그러더니

눈~딱 감으시고 입속으로 염불히시더니 힘없는 손을 모아 합장하고

부처님 우리나라 잘되게 해주고 우리자식들 부처님 공부 잘 하게 해주시고 우리 시님 병원 빨리 지을수 있게 도와 주시오
나무아]미타불

좋고 좋군아 ~ 좋고 좋군아~
나무아미타부~~불울 들어간 숨이 나오지 않았다 .
동공이 풀렀다. 아침 8시 경

아무도 울수없는 기쁨이 충망한 열반이여!

합장 한 체 로 당신께옵서는 무량수 부처님 품으로 돌아 갔습니다.

아! 아! 거룩한 보살이여!

아~~아~~거룩한 열반이여!

니르바나에 들었다. 합장한체....

복수도 다빠지고 메마른 얼굴레 홍조가 띈다.

어디에선가 향기가 진동을 했다 .

나무이미타불

필시 정토의 향기여라.

우리는 수시로 들어가 그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8시간정도...

너무나 아름다운 고인의 모습이 거룩하여 얼굴을 덮을 수 가 없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이시여 고이안고 가시옵소서

당신께옵서 이곳에 오신줄 압니다 .

거룩하신부처님 ! 이몸을 던저 찬탄 예경 올리옵니다.

오거룩한 님이시여!

나무아미타불

지족행이여 ! 연꽃으로 다시 이땅에 피어나소서!

(능행스님 글)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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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륜각 보살의 염불과 왕생

 

보국사 태원큰스님 구술

 

 

이 법륜각 보살은 서울 정릉 보국사 신도이다. 1923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면서 정릉의 보국사에 다녔다. 법륜각 보살은 처음에는 참선에 관심을 가지고 참선수행을 하였는데, 인천 용화사의 송담큰스님을 친견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간화선을 수행하였다 한다.

 

그렇게 참선에 몰두하였으나 간화선이 최상승인지라 자신의 근기에 맞지 않다고 여기고 있던 차, 1960년경 보국사에서 대동염불회를 조직하여 정토염불법을 크게 펼치신 자운(慈雲, 1911~1992)큰스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정토염불을 알게 되었다.

자운노스님께서는 3.1운동 독립선언에 참여한 33인이었던 용성(龍城)큰스님의 전법제자로, 1981년부터 전계대화상을 역임하셨으며, 해인사에 계실 때 수산(秀山)스님과 함께 만일염불회를 결사하시어 정토왕생업을 닦으셨고 또 보국사에 오셔서는 대동염불회를 조직하시어 정토염불을 널리 펼치신 분이시다.

1992년 스님께서 해인사에서 열반하실 때에는 “서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단정히 앉아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명하면서 조용히 입적하시니 향기가 진동하고 묘음이 청아하였으며 염불소리와 함께 입으로부터 오색광명이 서쪽하늘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법륜각 보살은 보국사에서 이러한 자운스님으로부터 정토법문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동안 수행하던 참선을 내려놓고 서방정토에 귀의하여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하였다. 이로부터 30여 년간을 한결같이 하루에 10만독 씩 염불하셨다고 한다. 10만독이라면 하루종일 염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하루는 보국사 주지이신 태원스님께서 법륜각보살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법륜각 보살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주를 돌리고 있었다. 스님께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불하면 염불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물었다.

법륜각 보살은 웃으면서 “그래도 염불이 됩니다.”고 대답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의아스러웠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불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륜각 보살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걸림없이 염불이 돌아가는 경지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보국사의 대동염불회는 만일염불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대단한 신심과 원력으로 염불결사를 한 모임으로, 대표는 회서 홍인표거사가 맡고 있었다. 홍인표거사는 임종 후 사리가 나올 정도로 철저히 수행하셨다 한다. 그리고 그가 지은 <연종집요>는 한국근현대불교사에서 정토에 대해 가장 최초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서술을 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법륜각 보살은 바로 이러한 대동염불회의 수행분위기 속에서 염불수행에 매진하였던 것이다. 재가자들이 모여 이렇게 염불수행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물론 자운노스님의 원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운스님께 비구계를 받으시고 스님과 함께 해인사에서 염불만일회를 결사한 수산스님께서도 대구에서 염불선원을 세우시어 수많은 재가 염불행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수산스님께 염불법을 배우신 법장(法藏)스님께서도 경주 미타사에서 1985년 염불만일연회를 결사하시어 20년 넘게 염불수행과 포교를 해 오시는데, 여기에는 자운스님의 크신 원력이 밑받침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법륜각 보살은 평소 심장이 안 좋았는데, 왕생 수개월 전에는 병환이 심해져 몇 차례 병원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길게는 열흘, 짧게는 일주일 정도 입원하였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즈음에 법륜각 보살과 아시는 분이 보살님을 도와드리며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법륜각 보살이 병원에 입원할 때도 늘 함께 따라가서 간병해 주곤 하였다.

법륜각 보살은 간병도우미인 그분에게 불교를 가르쳐주어 불법에 귀의하게 하고 보국사에도 함께 가곤 하였다. 1998년 어느 날, 법륜각 보살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였다. 이때도 간병인이 함께 가서 간병을 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병환과 노환이 심해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임종할 때가 다 된 것이었다.

법륜각 보살은 침대에 누워서 임종에 임박한 상황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부처님이 오신다!”, “부처님이 오신다!”하고 두 번이나 외치고는 몸소 침대에서 내려와 서쪽을 향하여 세 번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돌아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것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간병인이 분명히 목격한 사실이다.

간병인은 나중에 태원스님께 이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태원스님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예전에 법륜각 보살이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염불이 된다는 말을 비로소 의심없이 믿었을 뿐 아니라 평소에 지극한 정성으로 염불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웬만한 수행력을 지닌 고승이라 해도 임종에 이르러서는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상황이기에 앉아있기도 불가능한 처지인데, 법륜각 보살은 임종을 바로 앞둔 상황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와 삼배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에 지극정성으로 염불한 공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러한 염불공덕으로 임종 직전에 아미타부처님의 내영(來迎)을 받고 가피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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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행스님 글)

 

 

구녀산 가득히 산벚이 만개햐하여

고운 님가시는길 맞중하네

고운님 가시는길 창꽃이 붉게 울어주니

덜 서러울래라

새들이 속삭이는 잔디밭 가운대로

그대 시신 한겨울 다 보내시고

떠나가시네.

봄꽃 한아름 안고 가시는 님이시여 ~!

안영히 잘 가시옵소서.

*********************

늦은 가을

마삭그리는 마른잎같은 육체를 들고

정토에 오신 님

한세월 사신게 --48년이라

남편의 사랑 지극하여 --그림자 처럼 머무시다가

남편의 사랑 영혼의 양식 삼아 사시더니

이제 인연의 끈 놓고 가시네

보살님 ~!

뼈와 가죽만 남은 몸땡이

숨이 긇어 지니 더욱 곱고 아름아웁소

어이그리 아름다운지요

살려 야 하는 무서운 집념

살겠다는 질기고 질긴 집착

그것으로 한겨울 버티다가

정토에 봄꽃이 피기시작 할때즘부터

보살님은 --집착의 끈을 놓기 시작하시었다

위암말기

암덩어리가 위에 가득히 차서 음식을 넘길수가 없어도

남편이 손수 긇여 주는 찹살죽을

삼키고 또 토하고 또 삼키고 ...

안묵으면 죽는다 언넝 묵어라 엉 언넝 묵어 ~!

남편의 간이 다 탄다 --

그두분은 별명이 비둘기 부부다

비둘기

세상에 어찌 그런남편이 있을?까

참 헌신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다

오늘 새벽5시에 임종하셨고

이제 10시 30분 이제 영혼이 육신을 다 떠나기에

앰브란스로 --창원 으로 갈려고 한다


육신이 사늘히 식어다

온전히 영혼이 육신을 바져 나온게다

새벽부터 시작한 임종 의식은

9시경에 끝났다

보살님은 임종 전 4흘째 부터 나에게 말씀하셨다

스님 ~!

이제 나 가야 해요

내 어제 저녁에 ---관세음보살님 손잡고

너무나 좋은 세상에 다녀 와습니다

어여븐 사람들이 당신을 보필하며

스님한분께서 당신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시드라고

여기가 극락세계 하품하생 이라하오 -하셨단다

그래서 보살님게서 스님 ~!

하품하생이 이렇게 좋은곳이랍니까 ?

녜 ~~그러니 두려워 하지마소 -하셨답니다

무슨소리가 들리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께 무슨 소리냐고 여쭈어더니

부처님게서 법문을 설하시는 소리인데

육신의 옷을 벗어버리믄 다 들을수가 있다고 하더랍니다



며칠내로 이곳으로 올테니 --미리미리 정리 잘하라하시며

웃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은 누구시냐고-물어 보니

그대가 늘 찾고 부르던 스님이지 하더랍니다

공기는 향기롭고 걸어다니는 길은 다리도 아아프고

물맛이 어찌나 --좋은지 한바가지 꿀꺽 마셔고나니

토하지도 않고

갈증이 다 사라졌다며

보살님 꿈에서 깨고났어 무척이나 행복해 하셨다

스님께서는 보살님께 당부 하셨답니다

돌아올때는 잊지 말고 부처님 명호 잘 챙겨 오시라고

나에게 물었다

무슨염불을 챙기믄 좋겠냐고 하길래

평소에 했던 나무아미타불을 지니라고 했다

그리고 임종시에는 시님이 하는대로 따라서 하믄된다고

그렇게 하기로 서로 약속했다

다음날 또 꿈을 꾸었답니다

어제 그 스님께서 --준비 다 했느냐며

정토마을 당신 병실 창문곁에 서서 묻더랍니다

그래서

하고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답니다

무섭게 집착하고 가날픈 생명의 끈 잡고 뭄부림치는 남편을

설득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나 가야 한다고 ..........

하나밖에 없는 이제 갓 스물 넘은 딸과 남편

세식구가 병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이틀동안 합디다

어제 들어가니 조용히 누어 염불하고 있었습니다

보살님 이제 다 정리 했나요

녜 --스님 --곱게 합장하신다

고맙습니다 --이고통중에 스님이 제곁에 계셔서 ...

너무나 행복합니다

녜 --이제 다 정리 했습니다

그럼 관세음 보살님께서 오늘밤 보살님 모시러 오시겠다 -그쟈

녜 --웃었다 --빙그래

녜 오늘밤 오실꺼에요

정리 다 했으니 말입니다

정신이 너무나 맑다 초롱히 ....

우리 이밤이 그럼 이승에서 마지막 밤인가 ?

녜 ----------웃어 주신다

현이랑 지아빠 꼭 부탁합니다

녜 --내 살아생전 챙겨보면서 살으리다

녜 ~~스님 너무나 고맙습니다

저는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한 곳으로 갑답니다

그곳에는 스님들도 많이 게시고 어린아이도 많았고

풍경소리도 들려 와습니다

스님이 손잡고 파아란 강을 날아서 건너 가기도 했습니다

너무행복하고 좋아습니다

보살님 ~!

그래도

아무리 좋고 행복해도
말간 정신으로
나무아미타불 여섯자를 놓치면 안되오

녜-------------합장한다

보름달이 구녀산이 휘영청 밝았다

우리는 창밖으로 둥근달을 함께 보았다

이승의 마지막 달을 ...

별도 많았다

아이와 남편이 살포시 잠든 모습 모시며 웃어 주시었다

그래 그래 --오늘밤 편히 쉬시오

스님두요 -()

얼굴을 만지며

병실을 나와다 --내 뒷등에다가

스님 ~! 하고 부른다

와 -`!

나 살짝히 가드라도 섭섭히 생각마시소 -하고 웃는다

그냥 웃었다 나는

가래하나 끓지않고

복수하나 없이

너무나 깨긋한 몸으로 조용히 계셨다

입만 작게 움직일뿐 ...

그리고 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다

새벽 5시 정토에 도량석소리가 들리기 시작할무렵

남편과 딸아이 하나 딸랑 두고 조용히

스님 ~!

이 두마디가

이승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떠나시었다

임종 5시 3분



투병할때 힘겨워 하시던 모습은 간곳없고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세상에서 둘도 없는

미소 ^^*

미소를 선물로 주고 가시었다

미소 ^^

나는 죽음의 강건너는 그대에게

마지막선물 받았네.---고마우이 보살님 ~!

아무도 울수가 없다

너무고와서



은은히 피어나는 미묘한 향기여 ~!

임종기도가 시작 될무렵

메마른 육체에서 ----

향기가 났다

깡마른 뼈와 가죽 에서 피어나는 천상의 바람

시신이 굳지를 않았다 --5시간이 지나도록

얼굴에 온기가 ---10시경에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30키로도 나가지 않는 몸에서

따습은 기온과 -----향기로운 냄음

임종기도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아습니다

임종기도 끝나고 딸아이가 뜰에나가서

한아름 꽃을 걲어다가

어미가슴에 얻었다

울지마라

울지마라 ~!

아무도 울지마라

이렇게 좋으날

봄날 태양은 --땅을 적시고

새들은 사랑을 노래하며

꽃들은 천지를 밝히고

뜰에 돌줍는 아이는 --즐겁기만한데 ..

** 천지가 무너져도

소리 없네.

***온~들
***간~들
****세상사 무심하기 작이없네.


너무아름다워 얼굴을 덮지 못하게 했다

앰브란스기사에게

그의 육체는 이제 고속도로를 달려 --가고있다

그의 영혼은 벌써 정토에 왕생 했으리라.

나무아미타불

능행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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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왕생불국기

정종법사 편찬

 

머리말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든 생명에게는 전부 불성이 있어서 좋은 강연好强緣을 만나면 모두 성불할 수 있다. 이른바 ‘좋은 강연’이란, 아미타불의 구제를 말하는 것인데, 저 부처님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발원하셨다.

 

날아다니거나 기어 다니는 곤충 부류까지 나의 이름을 듣고 자비심을 내어 환희용약하는 이가 있다면 모두 나의 나라에 왕생하게 되리라.

삼악도 중의 지옥·아귀·축생들이 모두 나의 나라에 태어나 나의 교화를 받고 머지않아 전부 부처가 되리라.

 

만약 삼악도의 중생을 말한다면, 지옥과 아귀도는 항상 유명계에 있어서 인간세상과의 교섭이 드물지만, 축생만은 인간들과 뒤섞여 살면서 인간들에 대한 공헌이 가장 크면서도 사람으로부터 받은 박해는 가장 심하다.

전 세계 인류는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함부로 축생들을 죽이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만억에 달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하였고, 전염병이 창궐하며, 세상이 편안할 날이 드물고 사람들에게 불길한 재난들이 많이 생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는 모두 인과를 믿지 않고 염불을 믿지 않은 소치이다. 만약 저들이 비록 축생이지만 불성은 나와 평등하고, 무량한 윤회 가운데 혹 나의 부모였을 수도 있고 염불법을 만난다면 역시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진실로 믿는다면 어떻게 감히 살생할 수 있겠는가!

이에 축생들이 불국토에 왕생한 사례 스무네 가지와 사람이 죽어서 축생으로 환생한 사례 몇 가지를 모아서 기록하오니, 독자 분들께서 모두 바른 믿음을 내시기 바란다.

첫째, 인과가 헛되지 않음을 믿고서 악업을 삼가고 두려워해야 한다.

둘째, 부처님의 원력이 허망하지 않음을 믿고서 환희용약하며 염불해야 한다. 어리석은 축생들조차 왕생할 수 있는데, 영지靈知의 마음을 갖고 있는 인류라면 더더욱 의심할 필요가 없다.

셋째, 불성이 평등함을 믿고서 널리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아껴서 감히 살해할 마음을 내지 않으며, 만약 살생하는 인연을 만났을 땐 방편으로 구호해주고 아울러 염불을 해주면서 그들을 구제하여 불국토에 왕생하도록 부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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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처형의 딸, 다시 말해 저희 작은 조카딸은 어릴 적부터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제 아들이 막 출생할 무렵, 겨우 한 살 남짓밖에 안 되던 조카가 장모님과 함께 저희 집에서 한 달 정도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조카가 혼자서 뛰어노는 것을 보고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동생하고 놀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집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기에 다시 “동생이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더니, “둘째 고모의 뱃속에 있자나요.”라고 답했답니다. 조카딸의 집 근처에 있는 임산부들은 뱃속에 들어있는 애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조카가 말만하면 정확히 맞췄답니다.

여러 번 말했지만 매번 맞았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자주 조카딸한테 물었다고 합니다. 저희 애도 조금은 볼 수 있었습니다. 불경에 설하시길, 어린이들의 마음은 단순하고 질박하며 오염이 적어서 흔히 이러한 능력들이 있으나, 성장하여 지식이 열리게 되면 어릴 때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능력들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2004년 정월 초삼일 날, 저희 가족은 외갓집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장인장모님께서 닭을 잡고 있었는데, 그 당시 이미 불자였던 저는 황급히 마음속으로 닭을 위해 아미타불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간을 염불하고 나서 다시 방에 들어가 닭을 위해 잠깐 동안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그 일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낮에 제가 옆집에 저희 애를 찾으러 갔었는데, 옆집에도 이미 닭을 두 마리 잡아놓은 상태었습니다. 저희 애도 그 곳에 있었고요. 제가 평소에 항상 아들에게 모든 동물들에 대해 자비심이 있어야 하고, 만약에 그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광경을 목격한다면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주라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아들에게 닭을 죽이는 것을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봤다면서 누나(저희 조카딸)와 함께 닭을 위해 염불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아미타불께서 연꽃을 가지고 닭을 데리러 오셨는데, 닭이 연꽃위에 오르자마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올라가서 부처님을 따라 갔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 저는 혼자 조카에게 달려가서 물어보니 두 애의 말이 똑같았습니다.

 

저녁식사를 할 때, 저는 갑자기 아침에 장인장모님께서 죽였던 그 닭이 생각나서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물었지요. “너희 집의 닭은 어떻게 된 거니?” 조카는 생각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아미타불이 데려갔어요.”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닭을 잡을 때는 아직 이른 새벽이어서 조카딸이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닭을 위해 염불한 것을 조카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물었지요. “네가 어떻게 안 거니?” “오늘 아침에 꿈속에서 봤어요. 꿈속에서 아미타불이 분홍색 연꽃을 가지고 우리 집 닭을 데리고 갔어요.” 조카의 대답이었습니다.

 

경전에서 설하길, 아미타불께서 사십팔대원을 세우셨는데, 오로지 죽은 영가들을 서방으로 영접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닭도 중생이므로 누군가 염불해준 인연으로 서방에 왕생한 것은 이상할 것도 없겠지요. 제 생각에는 만약에 시장을 가는 사람마다 염불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부처님을 따라서 서방에 왕생하겠습니까! 닭이 스스로 공부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도와서 염불했음에도 역시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의 지능은 더욱 수승하므로, 먼저 불경을 읽어서 이치를 깨닫고 나서 열심히 수행을 한다면 극락왕생이 더더욱 쉽지 않겠습니까?

 

(이강李剛 2006년 5월 20일 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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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위해 염불하자 부처님께서 닭을 내영하다’에 대한 법문

 

일반적으로 정토왕생을 하려면 설사 성인이 아니다하더라도 지혜가 뛰어나고 용맹정진하는 대수행자이어야 하고, 설사 대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선근이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전에서 설하기를 일생 동안 악업만 짓고 선이 없는 사람이 다음 생에 반드시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하지만, 그 사람이 임종할 때에 떨어질락 말락 하기 전에 한번만 염불해도 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러나 이 왕생사례는 더욱 기이하고 또 기이하다:

 

첫째, 왕생자는 닭이지 사람이 아니다.

 

둘째, 닭자신이 염불한 게 아니라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닭을 위해 염불해 주었다.

 

셋째, 닭에게 염불해준 사람은 고승대덕이 아니고, 또 오래 수행하여 공부가 깊은 사람도 아니며, 단지 초심자, 심지어 불법을 모르는 어린이였다.

 

넷째, 염불자가 단지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면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하였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을 뿐이니, 정신을 집중시키고 청정한 마음으로 관상 등을 한 게 아니다.

 

다섯째, 염불하는 사람의 수가 한·두 사람밖에 되지 않았기에 많은 대중이 아니었다.

 

여섯째, 염불하는 시간이 짧아서 몇 번·수십 번, 몇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곱째, 염불을 할 때가 마침 닭이 막 도살을 당하여 몹시 두렵고 고통스러워 할 때여서 전혀 평소의 여유롭고 편안함이 없었다.

 

여덟째, 하루사이에 발생한 두 건의 닭을 잡은 사건에서 똑같이 염불을 만나 똑같이 부처님의 영접을 받았고 효과도 완전히 똑같았다. 따라서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필연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이한 왕생사례는 기록자 개인이 당일 날 직접 들은 것이고, 게다가 어린이들이 단순하고 질박하여 거짓말로 속일 이유가 없으므로 당연히 믿을 만하다. 현재의 사례로써 옛날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옛날의 기록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옛날의 사례로써 현재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현재 사건이 그릇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고금의 시간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다고 하나 아미타불의 구제에는 영원히 변함이 없고 불법의 진리는 시공을 초월한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줄 뿐만 아니라 경문과 조석祖釋에 유력한 사실적 증거가 된다.

 

첫째, 아미타불의 구제의 수승함과 용이함·불가사의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어리석고 둔한 축생들이 불법에 대해 아무런 견문과 수행 없이 겨우 임종 시 도살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아미타불의 접인을 받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으니, 누구라도 염불만 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둘째, 축생류의 중생들은 본래 업장이 두터워서 해탈하기 어렵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축생들이 도살을 당하는 가운데 오직 이 한두 마리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과거 생에 선근이 있어서 오늘의 인연이 성숙함이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왕생론』에서 “부처님의 본원력을 만나면 헛되이 지나치는 자가 없다.”고 설하신 바와 같다. 또한 축생류의 중생들은 사람들처럼 강한 분별심이 없기 때문에 도살을 당할 때 누군가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줌으로 인해 아미타불께서 바로 몸을 나투실 때에,

도리어 쉽게 저 부처님 명호의 원력과 광명의 섭취에 수순하여 곧바로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할 수 있다. 마치 경에서 “도의 자연스러움”이라 설하시고, 또 “자연히 이끌린다.”고 설한 바와 같다. 또 설하시길, “반드시 윤회를 고리를 끊고 안양국에 왕생하여 단숨에 오악취를 끊게 되리니, 악도는 저절로 폐쇄된다.”고 하셨다. 이는 당연히 축생들에게 어떤 수행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의 도에 수순하여 저절로 이끌린 결과이다.

 

『무량수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량수불의 위신력과 광명은 가장 높고 뛰어나서 모든 부처님의 광명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 만약 삼악도의 괴로움에서 이 광명을 보게 된다면 모두 휴식을 얻으며, 다시는 괴로움을 겪지 않고 목숨이 다한 뒤에 모두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장엄경』 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삼악도 가운데 지옥·아귀·축생들이 모두 나의 나라에 태어나 나의 법화法化를 받고 머지않아 모두 성불하게 된다.”

 

셋째,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사유력과 조작력으로 인해 만약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간다면 쉽게 승천할 수 있고, 만약 삿된 사유로 나아가 온갖 악업을 짓는다면 곧바로 타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는 자는 적고 삿된 생각으로 악업을 짓는 자는 많기 때문에 경전에서 사람 몸을 받은 이는 손톱에 낀 먼지의 수와 같고 사람 몸을 잃은 이는 대지의 흙의 수와 같다고 설하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불법을 닦더라도 만약 자신의 분별심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하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가장 수승한 법문에 도리어 장애가 될 것이다. 지금 현재도 어떤 사람은 수많은 경론들을 읽었지만 아미타불의 구제법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임종할 때 엉망진창으로 도리어 저 축생류의 중생들이 장엄하게 왕생하는 것만 못하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경에서 설하시길, “교만하고 악하고 게으른 사람은 이 법문 만나도 믿기 어렵다.”고 하였고, 또 “가기 쉬운 극락에 가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셨으니, 바로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얻기 힘든 사람 몸을 얻었으면 마땅히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야 하고 특히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넷째, 삼악도의 중생들이 평소에 아무런 수행 없이 극락왕생을 한 경우가 있고,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부지런히 온갖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부처님의 원력에 수순하고 수순하지 않고 에 달려 있다. 따라서 비록 왕생을 원하나 저 부처님의 서원을 믿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강한 분별심이야말로 왕생을 장애하는 원흉이다. 만약 이러한 생각만 없다면 모든 사람이 염불할 수 있고 염불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다섯째, 아미타불의 명호와 아미타불의 본신이 일체인 까닭에 담란대사께서 ‘명호가 곧 법이다名卽法’고 설하고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다名體不二’고 설하신 것이며, 칭명을 할 때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소리에 응하여 바로 오셔서 몸을 나투신다.’고 설한 것이다. 또한 명호와 광명이 일체인 까닭에 칭명하는 사람은 필히 부처님 광명의 섭취를 받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아미타불』과 『관경』에 의거하여 해석하시길,

 

“저 부처님의 광명이 무량하여 시방국토를 비추는데 장애가 없어서 오직 염불하는 중생을 살피시어 섭취하여 버리지 않기 때문에 아미타라 부르는 것이다.”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도 칭명염불만 하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으로 바로 섭취하신다. 예컨대 이 사례에서 닭이 비록 염불할 줄 모르지만 누군가 염불을 해준 덕택에 아미타불께서 즉각 몸을 나투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몸이 나툰 이상,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어 업장을 소멸시키고 안락함을 주게 되니, 비록 삼악도의 중생일지라도 이 광명을 보면 모든 고통이 전부 쉬게 되고 한 생각만 되돌리면 바로 안락국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미타불의 명호 속에 본래 갖춰진 자연스런 기능이다.

 

여섯째, 따라서 사람들을 위해 조념을 해주거나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천도를 해주고자 한다면 모든 불사佛事 가운에 염불만한 게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경전과 진언을 외우거나 관상을 하려면, 만약 수행을 오래하여 심력이 집중되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자가 아니면 그 효과는 크게 뒤떨어질 것이며 심지어 부작용도 생길 수 있지만 염불은 단지 입만 열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 사례에서 닭을 위해 염불한 사람은 단지 불교를 갓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고, 또 불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어린애가 단지 입에서 나오는 데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한 것에 불과하며, 게다가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께서 똑같이 영접하러 오신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큰 스님이거나 아니면 수행을 오래하여 공부가 아주 깊은 사람을 요구하지 않음이니, 아미타불의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고’·‘광명과 명호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 이로써 왜 위험하고 위급한 곳·어둡고 두려운 곳에 있을 때 염불만 하면 바로 재난을 소멸하고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염불하면 바로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보호해주시고, 부처님께서 바로 광명을 놓아 섭취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여덟째, 무릇 도살장·병원·화장터·묘지·사고다발지역 등의 음침하고 청정치 못한 장소에는 흔히 업장과 나쁜 기운들이 많아 사람들로 하여금 불길한 예감이 들고 두려운 느낌이 생기게 한다. 이때에 만약 염불할 수 있다면 비단 자신이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부처님의 광명으로 머리를 감싸주시는 보호를 받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연 있는 중생들을 이익케 하여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제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장소에 있는 중생들은 왕왕 몹시 원망하고 몹시 괴로워하기 때문에,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런 환경 속에 들어가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한 사람이 아무런 방호조치 없이 총탄이 빗발치는 거리를 걷다가 쉽게 총알에 맞게 되는 것처럼 나쁜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이 염불해야만 큰 재난을 피할 수 있고 큰 복을 쌓을 수 있으며 큰 공덕과 큰 이익이 생기게 된다.

 

아홉째, 식탁위에 육류가 올라온 경우를 만났을 때 혹 입으로 칭념을 하거나 아니면 마음속으로 묵묵히 아미타불을 불러서 그 공덕을 도살당하여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에게 준다면, 그들의 고통과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줄일 수 있고, 나아가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천도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채식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나 어떤 상황에서 완전한 채식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 참회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도살당한 중생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줘야 한다.

만약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한편으로 진탕 먹고 마시면서 한편으로 맛이 좋니 안 좋니 하며 평점을 매긴다면, 그렇다면 도살되어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이 틀림없이 몹시 고통스럽고 또 그들의 분노와 원망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므로 육식을 한 모든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깊고 무거운 업보를 받아야 할 것이다.

 

열째, 아무튼 어떠한 경우라도 모두 염불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염불을 꺼리는 장소가 바로 죄업을 짓고 불길하고 부정한 장소이며, 또한 부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장 염불이 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때에 도리어 염불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염불은 평소부터 그 습관을 길어야 한다.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조건과 한계를 정하여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 말고, 마땅히 아무런 조건 없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정종淨宗 2008년 8월에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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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께서 나를 데리러 오셨다

대경(大慶) 불해(佛海)

 

 

2014년 12월 27일, 나와 연우님들은 요청을 받고 용남의 미창병원(龍南微創醫院)에 가서 중병환자인 장아청(張亞清)노인을 위해 임종법문을 해드렸다. 올해 여든한 살이신 장아청노인은 여러 해 동안 요독증을 앓고 있어서 줄곧 투석치료를 하다 보니 병으로 인한 갖은 고통을 다 받았다.

 

자녀들은 노인의 면역력을 키운다면서 여러 해 동안 계속해서 비둘기와 누에의 번데기를 죽여서 보신하도록 하였으니 끝없는 살생업을 지은 것이었다. 현재 병원에서 임종을 앞두고 이따금 혼미했다가 이따금 깨어나기도 하였다. 장아청본인은 비록 부처님을 모시고 평소에 『능엄주』·『지경경』을 독송하고 가끔씩 염불도 하였지만 염불왕생의 도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와 연우님들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 문을 열자마자 바로 환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서 보니 장아청노인은 몸이 몹시 수척하였고 두 눈에 정기가 없었으며 한창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두 손은 허공을 향해 마구 버둥대면서 입으로 계속해서 “아이고, 엄마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임종 시의 업장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아미타불의 안배로 인해 임종이 가까운 장아청이 아미타불의 부름을 듣고서 생사로부터 벗어나 왕생성불을 할 수 있는 수승한 인연을 만나도록 해주신 게 아니겠는가!

 

노인의 무기력함과 고통은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떨리게 하였다. 나는 불상을 잘 안치해놓고 간단한 법문을 해줌과 동시에 노인을 대신하여 노인의 숙세 원친채주들을 위해 참회를 하면서 윤회의 고통과 염불하면 반드시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아서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동행한 연우님들은 함께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주었다. 이 과정에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소리와 노인의 신음소리가 교차하였는데,

 

오직 경쇠를 치면서 ‘장아청’ 이름을 부를 때만 노인에게 잠깐의 안정이 있다가 다시 “아이고, 엄마야!”라고 계속 외치면서 두 손은 허공을 향해 마구 잡으려고 버둥거리는데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급히 목숨을 살릴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으려는 것 같았다. 법문과 염불을 한 시간 정도 해준 뒤에 우리는 그분의 가족들과 교류를 하면서 아침에 만두 하나를 먹었다는 것을 듣고는 단시일 내에 노인이 왕생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불상을 노인이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곳에다 걸어놓고 염불기 한 대를 주면서 가족들에게 노인에게 염불을 많이 하도록 인도해주라고 일러주고는 나와 연우님들은 병원을 떠났다.

 

때마침 스님께서 막 보내주신 웨이신(중국판 카카오톡)에 왕생사례――‘아이고, 아미타불!’ 한편을 보고 우리도 노인에게 아플 때마다 “아이고, 불(佛)아!”라고 부르라고 일러주었는데 노인의 정신이 줄곧 혼미하여 입으로 여전히 ‘아이고, 엄마야’라며 계속 외치는 것이었다. 우리는 노인이 법문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 노인에게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아미타불께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2014년 12월 29일 8시 7분에 나는 장아청노인이 왕생하였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인근에 사는 연우님들께 통지하여 속히 병원으로 가서 조념하도록 하였다. 길이 멀고 눈길이 미끄러운 까닭에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먼저 도착한 연우님들은 이미 병실에서 한 시간 가량 조념을 해준 후였다.

 

장아청노인의 딸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노인은 연우님들이 염불왕생에 대해 법문해주신 당일 밤에 이미 정신을 차리고 침대 위에서 합장하며 예불하고 염불할 수 있었으며, 딸에게 “아미타불께서 나를 데리러 오셨으니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다. 나를 대신하여 조념하고 법문해주신 연우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조념을 해주신 모든 연우들을 위해 흰 수건 한 장씩 준비하여 사의를 표하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나는 노인에게 홍원사의 육자명호 왕생이불을 덮어드리고 불상을 잘 안치해놓고는 법문과 조념을 진행하면서 윤회의 고통과 아미타불의 구제본원에 대해 설명해드리고 나서 연우님들과 함께 소리 내어 염불을 해드렸는데 온 병실이 장엄하고 엄숙하였으며 사른 향은 계속 상운결祥雲結을 맺고 있었다. 병원 측에서 여러 차례 우리의 염불이 다른 환자들의 휴식에 지장을 줄 거라고 주의를 줬기 때문에 우리는 한 시간만 조념해드리고 병원을 떠나기 전에 장아청의 자녀들에게 여덟 시간 내에 시신에 손대지 말고 염불기를 계속 틀어드리라고 일러주고는 나와 열 몇 분의 연우님들은 병원을 떠났다.

 

병원을 떠난 지 5분이 지난 뒤에 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장아청의 자녀들이 노인의 곁에서 염불을 해드릴 때 노인의 몸에 덮여있던 왕생이불에서 방광을 하는데 3·4분 정도 지속하여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가족들은 핸드폰으로 진귀한 사진을 찍어두었다고 하였다.

 

8시간 후에 왕생이불을 젖혀보니 노인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고 사지는 솜처럼 부드러웠다. 그 후에 장례식장의 냉동실에서 하룻밤을 냉동시켰지만 염을 할 때 노인의 얼굴색이 볼그스름하고 손가락은 솜처럼 유연하였으며 화장을 할 때 분홍색 사리화가 있었다.

 

노인이 왕생한 일에 대해 자녀들과 친한 친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서 잇달아 불교를 믿고 염불하겠다고 표명하였다!

 

2015. 2. 10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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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불, 아타불

 

 

 

(능행스님 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좋은 일도 못하고 죄만 짓고 살았는데...... 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죽음 앞에서 불안해하는 환자에게 나는 아미타불을 부르게 한다.

아미타불은 영원한 생명의 빛을 의미한다.

임종시 아미타불은 우리의 영혼을 맞이하려 오신다

 

이러한 믿음은 내가 죽어가는 환자들 곁에서 염불하면서,

임종한 환자들은 통해 실제로 경험한 사실

이다. [극락왕생 사례 게시판의 능행스님 글(닉네임: 정토마을)을

고하세요 http://cafe339.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ZEF ]

 

 

 

마지막 한 호흡까지도 염불을 하셨던 육십칠 세 할머니. 환자가 임종한

병실에선 미묘한 향기가 진동하였고. 부처님께서 자신을 데리러 왔으니

극락으로 먼저 간다고. 스님도 나중에 그곳으로 오시라고,

그곳에서 다시 만난자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는 웃으면서 가셨다

 

 

예순네 살의 위암 환자는 종교가 없는 분이셨다.

차분하고 강직해 보이시던 환자는 늘 "나는 나를 믿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2남 3녀의 아버지였다

무엇을 믿는냐고 물어보면 "착하게 살아왔으니 착한 곳으로 가겠지유"

하시면서 웃곤 하셨다

 

 

다가가서 "착한 곳을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했더니 그러라고 승낙하셨다

 

"자~ 이렇게 하면 저절로 길이 생기게 될 거예요"

 

"어떻게유......?"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고 주문을 계속 외우면 착한 곳으로 가게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좋아라 하셨다. 그 후로 환자는 아미타불의 '미'자는 꼭 빼먹고

'아타불, 아타불' 하시며 염불 하셨다

 

 

내가 "아미타불인데......" 그러면

"기운이 없어서......" 하시며 또 "아타불......" 그렇게 두어 달 하시고 떠나기 나흘 전,

손을 흔들며 나더러 들어와 당신 곁에 앉기를 권하셨다.

 

 

"저기, 그게 꿈은 아닌 것 같은디...... 스님 주문 때문에유. 길이 다 만들어졌시유.

그래서 지가 저승에 갔다 온 것 같은데유"

 

"어떻게요?"

 

"'아타불' 하면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아 저 마당에 여러가지 꽃으로

만들어진 엄청 좋은 마차가 서 있고, 어린아이가 날더러 타라고 해서 탔더니

꽃마차가 연꽃이 무지하게 많이 핀 들판을 지나서 엄청 긴 다리를 건너 꽃과

무들이 끝없이 늘어선 길을 한참 달려가더만유. 그러다 내리라 해서 내렸더니

이제 이곳에서 살게 될 거라더만유".

 

 

목이 말라서 개울에 흐르는 맑은 물을 먹어도 되겠냐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그러라고 해서 마셨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한 게 그리 상쾌하고 좋더란다

 

"그동안 물먹기도 힘들었는디...... 창자가 다 시원하데......"

 

빛이 하늘에서 아지랑이처럼 당신 몸에 설설 내리는데 몸이 새털처럼 가볍고

좋아서 병이 다 나은 줄 알았다고 하신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오셨어요?"

 

"그 애에게 부탁했지. 내가 살던 데 잠시 갔다 와야 할 일이 있다고......"

 

소도 새끼 낳을 때가 되었는데 어떻게 하라고 일러 주어야 하고.

작은애(작은 아들은 객지에서 번 돈을 모아 아버지께 소를 사 드렸고,

아버지는 소를 키워 새끼를 낳으면 팔아서 통장에 작은 아들 몫으로

저축을 하셨다)결혼식 때 집이라도 한 칸 사주려고 모아둔 돈도 집식구에게

맡겨야 하고...... 정리할 게 있다고 잠시만 같이 가자고 했단다

 

"좋았시유...... 암만, 그만하면 최고지."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내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나도 없는디, 그기가 그리 좋시유"

 

하시자,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며 웃으시더니

 

"당신도 애들하고 잘 살다가 그기로 와"

 

"저 양반 참말로 죽을란갑네. 그기가 어딘 줄 알고 찾아가유."

 

"저기 시님께 물어보면 되야."

 

흘 동안 평안히 더 계시면서 아들딸 다 만나보고, 새끼 밴 소도 부탁하시고,

베개 안에 넣어둔 통장도 위임하시고, 가무잡잡하고 마른 얼굴에 환한 미소를

아내와 나에게 선물로 주시고 '아타불, 아타불'을 부르면서 가셨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불교 호스피스(http://www.jungtoh.org/)에 원력 크신

능행스님의 저서 ('이 순간' 2010년 4월 발행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BOK00010165941IN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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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스님의 차방에 도착하여 차를 한잔씩 주시며,
나무아미타불이 적혀있는 금색으로 된 목걸이와 아미타부처님의 접인상이 그려져 있는 카드(?)를 나눠주셨습니다.

서현스님께서 이 목걸이를 보시하게 된 사연이 있다면서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들이 걸리는 병에는 사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 있고, 업장병과 원한병이 있습니다.
사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생기는 병은 대부분 약으로 치료가 되지만, 업장병과 원한병은 약으로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불치병이나 태어날때부터 갖고 있는 병은 대부분이 업장병과 원한병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불치병이나 암에 걸려도 나으신 분이 계시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또한 잘라내도 다시 재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그 부위를 잘라냈다고 하더라도 원한은 남아서 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재발하는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한 보살님이 시집간 그 집에 고모가 한 분 계시는데, 키도 크고 덩치고 좋으신데 돼지를 잡는 일을 하셨습니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돼지 한마리의 뒷 다리를 잡으면 그냥 번쩍 들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자임에도 힘이 그렇게 좋았다고 합니다.
남자들도 꼼짝 못할 정도로 기가 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염불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꾸 비웃고 다녔습니다. 채식을 하면 장사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무슨 미신을 믿냐고, 이 맛있는 고기를 두고 채식을 하냐고 화를 내었습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몇년 후엔 그 보살이 병에 걸렸습니다.

 

복수가 차는데 일주일마다 한번씩 뽑아줘야만 원상복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주하다보니 기력이 쇠해서 힘이 하나도 없고 배만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삶을 뒤 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죽였는데 이러다가 지옥가게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너희 오빠가 스님이니 스님께 나를 데려가달라. 부처님께 귀의하겠다.' 하여 스님에게 갔습니다.
스님은 목걸이를 하나주고 108염주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집에 가서 염불이라도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살아온 지를 알고 있으니 지금 이 병은 업장병이니 염불을 열심히 하라.' 라고 보살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보살은 도벽도 가지고 있어서 집에 온 후에도 훔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도벽의 습때문에 자신의 집에 호박이 있음에도 호박을 보면 몸이 불편함에도 갖고와야 직성이 풀리고..욕도 잘 하였습니다.

어느날 보살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피를 토했습니다.
그런데 대낮에 문 앞에 3명의 저승사자가 보였습니다.

 

한명은 나이가 좀 든 저승사자, 두명은 젊은 귀신이었습니다.
한 귀신은 쇠사슬을, 한 귀신은 탕약을 들고 있었습니다.


늙은 귀신이 빨리 가서 저 사람에게 약을 먹이고 그 후 쇠사슬로 묶어서 끌고 가자고 지시를 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보니 세명의 귀신이 앞에 와 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평소에 염불에도 신심도 없고 해서 처음에 많이 아플 때에만 좀 하였습니다.

 

염불을 좀 했더니 호전이 되어서 게을러져서 안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날도 염불은 생각도 안났다고 합니다.


젊은 귀신이 보살님을 향해 쇠사슬을 던졌더니 목에 빛이 번쩍 나더니 튕겨져 나갔습니다.
목에 나무아미타불 목걸이를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몇번을 시도하다가 안되니 다리라도 묶어보라고 하여 다리에 던지니

 

갖고 있는게 염주뿐이여서 그걸로 막았더니 염주에도 광명이 번쩍 났습니다.
그동안 염주로 나무아미타불 하며 염불을 했더니 염주에도 부처님의 에너지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몇번은 다리에 맞았는데, 추후에 그 사실을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들이 집에 와서 다리를 보니 멍든 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그 보살이 보살의 남편에게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면 저승사자가 와서 잡아간다.

그래도 아직도 욕을 하느냐'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 영가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염불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임종시가 되니 스님께 조념염불을 해달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스님들 20명이 차를 대절해서 갔습니다.
오전에 도착해서 염불을 해주는데 점심때가 되어서 동생집에 가서 공양을 하고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보살이 누워서 염불하면서 그러지 말고 여기서 공양하라고 했지만

 

스님들이 괜찮다고 동생집에 가서 공양하고 오겠다고 하며 나갔습니다.


공양 후 와서 보니 집안 염불소리가 아주 이상하게 들렸다고 합니다.
칭명염불. '나무. 아미. 타불. 나무. 아미. 타불.' 하고 끊어서 천천히 합니다.
그런데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하고 엄청 빠르게 염불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봤더니 그 보살이 머리를 막 흔들며 빠르게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경쇠를 뺏어서 빨리하다가 천천히 원래 속도로 돌아가서 보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랬냐고'

그 보살이 말하길,
동생집에 공양하러 간다고 갔으니 그래도 자신의 집에 왔으니까 배웅을 해주겠다고 나갔는데 보살이 나간 게 아니고
식이 빠져나간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따라 나간다고 나간거였겠죠.
문 밖에 보니 큰 마당 앞에 귀신들이 새카많게 있었습니다.


키 큰 몇몇 귀신들이 갈고리 같은 창을 갖고 있고, 문짝만 한 큰 칼을 갖고 있고..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그 보살을 향해 달려드니
그 보살은 급해서 빨리 집안에 들어가서 염불을 빠르게 했었던 것입니다.

 

머리를 잡고 염불을 하다보니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후의 이야기가 더 있지만 결국에는 이 분은 극락왕생하였습니다. 그리고 몇일 후에 몸을 나투어 보여주었습니다.
이 목걸이에도(나무아미타불 글귀) 그런 귀신들이 범접을 하지 못하는 힘이 있습니다.^^

 

 

정전스님(淨傳스님)의 순수정토 카페안내:순정시대 (純淨時代) http://cafe.daum.net/sunsujeong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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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스님 글)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조념을 해준다지만 그 사람은 이미 혼수상태에 빠졌잖아요! 제가 그에게 법문을 해준들 그가 들을 수 있을까요? 그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에게 염불을 해주면 효과가 있을까요?”

 

반드시 효과가 있습니다! 반드시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그가 아주 분명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은 절대로 그에게 미안한 얘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개야, 내가 죽었는데도 여전히 나에 대한 험담을 하다니! 당신은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은가!” 그땐 좋은 말로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어야 하는데, 그럼 그는 아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상인(혜정법사)의 사촌매형은 한평생을 오로지 교사생활만 하시던 분이셨는데, 종교신앙이라곤 전혀 없었을 뿐더러 종교를 연구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는 63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30여년의 교사생활을 하셨지요. 이 30년 동안에 그는 교육계에서 40여 차례 표창을 받았고

25차례 공을 세웠으며, 또한 대만의 최고지도자의 접견도 받았으니, 교육방면의 그의 성과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에 대해 굉장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셨으며 거기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었지요.

 

그가 63세가 되던 해에 그의 학교에서 100주년 개교기념일 행사를 하게 되었는데, 개교기념일 행사에 관한 업무들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얼굴이 시퍼렇고 검게 변하여 급히 병원으로 보내어 구급치료를 하였지요.

그의 딸이 와서 보고는 깜짝 놀라 “아버지!”하고 부르는 소리에 기적이 나타나 심장의 박동은 회복되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를 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때 그의 부인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아! 나에겐 아직 스님생활을 하고 있는 사촌동생 한명이 있잖아. 아마 스님에게는 방법이 있을 거야’

래서 스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녀는 스님에게 무슨 신통력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고명한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스님께선 병원으로 오신 뒤에 그 상황을 보시고는 바로 그에게 염불을 해주셨지요. 그의 병이 매우 위중하여 중환자실에 계셨기에 매번 30분씩 매일 세 번을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이 30분 중 15분가량의 시간을 가족들로 하여금 그에게 말을 걸도록 하였지요. “아버님! 우리는 당신을 매우 사랑합니다. 꼭 살아나셔야 합니다!” 그의 부인도 그의 머리를 빗겨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머리를 빗는 것을 많이 좋아하셨는데, 제가 머리를 빗겨드릴게요, 아주 멋져요!”(그는 한평생 부처님을 믿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은 15분 동안은 스님께서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아주 정성스럽게 염불을 하셨지요.

 

환자는 줄곧 깨어나질 못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43일이 지났습니다.

 

43일 째 되던 날 그의 셋째 딸(평소에도 불교를 믿지 않았습니다)은 어떻게든 자신의 아버지를 살리려고(그들은 매우 효순하였습니다) 하는데, 마침 어느 도량에서 불공드릴 준비를 하면서 “아무개님, 여기로 오셔서 불공을 한번 드려보세요, 아마도 당신의 아버님께 도움이 되실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바로 거기로 가서 염불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염불을 하다가 점심 11시가 되었을 때 하나의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아주 큰 연꽃위에 장엄하게 앉아서 허공중으로부터 표연하게 내려오셨는데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출가한 스님들처럼 빡빡 깍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게다가 입고 있던 옷도 스님들이 입는 가사, 비스듬히 걸친 가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딸은 종교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기에 이런 현상을 보고도 이것이 서상이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질 않았습니다.

 

이때 그녀가 전화 한통을 받았지요. “아버님이 곧 임종할 것 같아, 빨리 돌아와”(같은 시간에 그녀의 아버지는 심장박동을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매우 슬퍼하며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그녀는 매우 슬펐습니다.

 

그 당시, 이 도량에 티벳 라마 한분이 계셨는데 점심공양을 할 때 그녀가 급히 떠나려는 것을 보시고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남아서 공양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녀를 대신해서 대답을 하였지요. “그녀의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급히 서둘러 가셔야 합니다”

라마께서 그녀를 위로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당신의 아버님은 현재 부처님과 함께 계셔요. 오늘 우리가 여기서 드린 불공 중에 가장 성공적인 불공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공을 드릴 때 라마께서는 진언을 외우고 계셨지만 그녀는 진언을 외울 줄 몰랐습니다. 불자가 아니었기에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남들이 진언을 외울 때 그녀는 혼자서 아미타불만 불렀던 것입니다. 대략 11시 정도에 이런 광경을 본 것이었지요.

 

이 광경은 충분히 그녀의 아버지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셨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한평생 불교를 믿지 않으셨는데다가 빛이 나도록 머리를 빗고, 매끈하고 줄이 선 양복까지 입고 계셨는데, 어떻게 딸이 본 아버지의 모습처럼 뜻밖에도 그런 출가자의 모습이겠습니까? 게다가 어떻게 가사를 입고 연꽃에 앉아서 방광을 하며 오셨겠습니까?

 

이에 대해 혜정법사님께서는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사실 요 43일 동안 그가 계시던 병원의 중환자실은 폐관수행을 하는 관방關房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혜정법사님께서 그에게 법문하시기를,

 

“아무개님, 당신은 현재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이 바로 사망하기 전 단계라는 겁니다. 만약에 살아날 수 있다면 당연히 아주 좋겠지만, 살아날 수 없다면 곧 죽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평소 종교신앙이 있든 없든 잠시 차치하고, 만약에 사후세계가 없다면 그럼 그만이겠지만,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육도윤회를 해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므로 마땅히 염불하여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절대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 당신을 싫어하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 그에게 염불을 매번 15분씩 세 번, 총45분을 해주셨으며, 평소에도 염불기 한 대를 머리맡에 틀어놓고 하루 24시간을 부처님명호를 들려주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처럼 장엄하게 왕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에 그가 법문을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아, 이건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라고 느끼고서 염불을 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땐 ‘그 사람은 완전히 죽은 사람이잖아요, 저기에 누워서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불러도 듣지를 못하고 말을 걸어도 대답을 못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상황입니다.

우리 염불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평소에 염불을 하였기 때문에 그와 같은 그런 상황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많이 좋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때가 되면 아미타불께서 틀림없이 오셔서 우리를 영접해주시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마음속으로 편안하고 즐겁고 가뿐하게 아미타불을 따라서 극락세계로 갈 것입니다.

 

【염불을 한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죽을 때 상황】

 

다들 죽을 때의 상황을 알고 싶으세요? 염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온 하늘과 땅이 컴컴하고 염라대왕과 큰 귀신 작은 귀신들이 작살과 칼과 쇠사슬……등등을 들고서 칼 빛과 검 그림자가 온 하늘을 가리며 몰려와서 그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그럼 염불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이때는 온통 상서롭고 온화한 기운들로 가득하지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땐 우리가 크게 숨을 쉬고 작게 숨을 쉬고, 눈을 크게 떴다 작게 떴다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심식은 이미 아미타불께서 영접하러 오신 것을 봤습니다.

 

아! 온통 부처님의 광명으로 가득한 가운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그리고 수많은 불보살님들이 호호탕탕하게 무량무변하게 계시고, 공중에서 미묘한 하늘음악을 연주하고, 하늘에서 갖가지 미묘한 연꽃들이 흩날려 떨어지며, 갖가지 미묘한 향기들이 허공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보살 성중들은 손에 보배 연꽃을 들고 우리 앞에 다가 오시고, 우리가 밤낮으로 그리던 아미타불께서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시어 대광명을 놓아 우리를 가지加持해 주십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그대가 한결같이 염불한 까닭에 내가 그대를 영접하러 왔노라!”고 하시면서, 보배 손으로 한번 손짓하면 우리는 순식간에 연화보대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그 때에 우리는 대단히 기뻐하지요! 직접 부처님의 존안을 친견하고서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우리는 절을 합니다. 선도대사님께 두 구절 말씀이 있는데, 우리들의 왕생의 쉬움과 수승함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머리 숙여 예불할 땐 이 세상이었는데,

머리 들어보니 이미 아미타불의 나라에 이르렀다네.

低頭禮佛在此界, 擧頭已到彌陀國。

 

우리가 머리를 숙여 예불을 할 때에는 아직 사바세계였으나, 머리를 들어 보니 이미 극락세계에 이르렀다는 말이지요. 바로 이렇게 빠르고 이렇게 쉽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에 일향전념만 한다면 임종할 때 정념이 없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주 분명하고 아주 뚜렷하게 자신이 성중들을 따라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점은 모두 난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복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많은 선근’――염불이 바로 많은 선근입니다.다들 할 수 있겠지요?

(대중)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선근이 없을까봐 걱정하실 건가요?

(대중) 아닙니다!

 

만약에 걱정이 된다면 그래도 염불을 해야 합니다. 염불만 하면 바로 많은 선근이니까요.

 

두 번째, ‘일심불란’――전專이 바로 일심불란입니다. 전심專心이 바로 일심이고 전념專念이 바로 불란입니다.다들 할 수 있겠습니까?

(대중)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심불란’은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가 전수염불하고 일심불란하게 염불만 한다면 임종할 때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실까요, 오시지 않을까요?

(대중) 오십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는데, 그럼 우리는 전도될까요, 전도되지 않을까요?

(대중) 전도되지 않습니다!

 

전도되지 않아요! 반드시 왕생합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점은 모두 난관이 되질 않습니다. 만약에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미타불을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 기뻐하게 될 겁니다. 좋아요! 염불이 바로 많은 선근이니, 나는 현재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전일함이 바로 일심불란이므로 나는 전일하고 또 전일할 것입니다. 이렇게 임종할 때가 되면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영접하러 오시므로, 목숨을 마칠 때에 나의 마음은 뒤바뀌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스런 겁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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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돼지를 위해 염불하자 돼지가 왕생하다

 

저는 중국 호북성 잠강시 어양진 쾌령촌(湖北省潛江市漁洋鎭快嶺村)에서 살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서 이발소를 열고 있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 도살장이 하나 있는데, 제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염불할 때면, 저 돼지들이 도살당하면서 지르는 비참한 비명소리에 마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제해주고 싶어서 매일 제가 염불할 때 한 생각을 내어 저 돼지들이 구제되기를 바랐습니다.

 

대략 한 주 정도 지나서 저의 제자 이홍송李洪松(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인데, 몇 년간 농아학교를 다녔었고 음계陰界의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서 이발기술을 배우고는 혼자서 이발소를 차렸다.)이 싱글벙글 웃으며 저희 집에 와서 저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두 손을 귀에다 대고 돼지흉내를 내더니, 또 두 손을 위로 바르게 펴고는 연꽃의 형상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키면서 돼지가 서방으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감동도 되고 놀랍기도 해서 정확히 알고자 그와 함께 손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제자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제가 염불하여 돼지들을 천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에게 돼지들이 어떻게 갔냐고 물었더니 돼지의 모습을 흉내 내고는 다시 합장하는 모습을 하고, 또 연꽃이 돼지들을 서방으로 데려갔다는 손짓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집에서 염불을 했는데 돼지들이 어떻게 들을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를 가리키면서 손짓으로 내가 염불할 때 아주 강한 금색광명이 마치 용의 형상처럼 나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가 알아듣지 못할까봐 종이에다 ‘광光’자와 ‘용龍’자를 써 주고는 손짓으로 제가 이 명호를 부를 때에 용과 같은 빛줄기가 끊임없이 도살장을 향해 발사되었다는 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 제가 마음속으로 염불하는 것을 지켜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시방을 생각하면서 염불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지켜보던 그는 여덟 방향으로 나오는 광명이 마치 여덟 마리 금색용의 형상과 같았다고 손짓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의 성호聖號가 여덟방향으로 끊임없이 퍼져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도대체 방향이 몇 개나 되냐고 거듭 물었더니 그는 틀림없이 여덟 개 방향이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저 돼지들을 위해 염불할 뿐만 아니라 허공법계에 가득한 인연 있는 중생들을 위해 염불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진서법陳緖法 기록 2004년 6월)

 

 


 

2. 오리를 위해 염불하자 연꽃에 올라 왕생하다

 

나무아미타불! 저는 불교를 믿은 지 오래되지 않았고, 정식으로 불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일 년 남짓 밖에 안 됐습니다. 매일 아침 시장에 장을 보러 갈 때 저는 항상 ‘나무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육자홍명의 공덕이 불가사의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고득락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인연이 되어 채식을 하고 있지만 저희 가족들은 불교를 믿지도 불법을 배우지도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육식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수순하기 위해 저는 자주 생선과 육류(삼정육)를 사다가 먹여야만 했습니다.

 

2009년 7월 6일 아침에 저는 또 시장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이번에 오리머리와 오리날개·오리발 몇 개를 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줄곧 그들에게 육자명호를 불러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 대략 9시쯤 되어서 오리들에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리)보살님, 저를 따라 함께 한 번에서 열 번 정도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시고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아서 극락왕생하세요. 더 이상 이 육신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마십시오. 서방극락세계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집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열 번 염불을 하고 난 후, 이어서 ‘서방접인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면서 아미타불께서 그들을 서방극락세계로 영접해 가시길 기도했습니다.

 

환희심을 내어 염불을 하고 있던 저는 어느새 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세 번째 ‘서방접인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을 때, 갑자기 제 눈앞에 분홍색의 연꽃이 나타나더니 하얀 오리 한 마리가 연꽃위에 아주 편안하게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정말로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오리가 연꽃위에 앉아서 왕생한 것입니다! 저의 염불소리는 점점 더 커졌으며 점점 더 기뻤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 오리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이었지만 지금은 ‘나무아미타불’의 공덕으로 왕생성불 하러 가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번에 오리가 왕생한 사건은 저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직접 아미타불의 원력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중생들이 나의 명호를 부르되 적게는 열 번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저 부처님은 지금 현재 극락세계에서 부처가 되셨으니, 마땅히 본래 맹세하신 크신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들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함을 알라!

 

감은感恩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호남 연우: 성사聖思 구술, 불후佛煦 정리, 2009년 9월 8일)

 

 


 

3. 닭을 위해 염불하자 부처님께서 닭을 내영하다

 

저희 처형의 딸, 다시 말해 저희 작은 조카딸은 어릴 적부터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제 아들이 막 출생할 무렵, 겨우 한 살 남짓밖에 안 되던 조카가 장모님과 함께 저희 집에서 한 달 정도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조카가 혼자서 뛰어노는 것을 보고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동생하고 놀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집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기에 다시 “동생이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더니, “둘째 고모의 뱃속에 있자나요.”라고 답했답니다. 조카딸의 집 근처에 있는 임산부들은 뱃속에 들어있는 애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조카가 말만하면 정확히 맞췄답니다. 여러 번 말했지만 매번 맞았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자주 조카딸한테 물었다고 합니다. 저희 애도 조금은 볼 수 있었습니다. 불경에 설하시길, 어린이들의 마음은 단순하고 질박하며 오염이 적어서 흔히 이러한 능력들이 있으나, 성장하여 지식이 열리게 되면 어릴 때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능력들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2004년 정월 초삼일 날, 저희 가족은 외갓집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장인장모님께서 닭을 잡고 있었는데, 그 당시 이미 불자였던 저는 황급히 마음속으로 닭을 위해 아미타불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간을 염불하고 나서 다시 방에 들어가 닭을 위해 잠깐 동안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그 일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낮에 제가 옆집에 저희 애를 찾으러 갔었는데, 옆집에도 이미 닭을 두 마리 잡아놓은 상태었습니다. 저희 애도 그 곳에 있었고요. 제가 평소에 항상 아들에게 모든 동물들에 대해 자비심이 있어야 하고, 만약에 그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광경을 목격한다면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주라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아들에게 닭을 죽이는 것을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봤다면서 누나(저희 조카딸)와 함께 닭을 위해 염불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아미타불께서 연꽃을 가지고 닭을 데리러 오셨는데, 닭이 연꽃위에 오르자마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올라가서 부처님을 따라 갔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 저는 혼자 조카에게 달려가서 물어보니 두 애의 말이 똑같았습니다.

 

저녁식사를 할 때, 저는 갑자기 아침에 장인장모님께서 죽였던 그 닭이 생각나서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물었지요. “너희 집의 닭은 어떻게 된 거니?” 조카는 생각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아미타불이 데려갔어요.”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닭을 잡을 때는 아직 이른 새벽이어서 조카딸이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닭을 위해 염불한 것을 조카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물었지요. “네가 어떻게 안 거니?” “오늘 아침에 꿈속에서 봤어요. 꿈속에서 아미타불이 분홍색 연꽃을 가지고 우리 집 닭을 데리고 갔어요.” 조카의 대답이었습니다.

 

경전에서 설하길, 아미타불께서 사십팔대원을 세우셨는데, 오로지 죽은 영가들을 서방으로 영접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닭도 중생이므로 누군가 염불해준 인연으로 서방에 왕생한 것은 이상할 것도 없겠지요. 제 생각에는 만약에 시장을 가는 사람마다 염불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부처님을 따라서 서방에 왕생하겠습니까! 닭이 스스로 공부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도와서 염불했음에도 역시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의 지능은 더욱 수승하므로, 먼저 불경을 읽어서 이치를 깨닫고 나서 열심히 수행을 한다면 극락왕생이 더더욱 쉽지 않겠습니까?

 

(이강李剛 2006년 5월 20일 광주에서)

 

 

‘닭을 위해 염불하자 부처님께서 닭을 내영하다’에 대한 법문

 

일반적으로 정토왕생을 하려면 설사 성인이 아니다하더라도 지혜가 뛰어나고 용맹정진하는 대수행자이어야 하고, 설사 대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선근이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전에서 설하기를 일생 동안 악업만 짓고 선이 없는 사람이 다음 생에 반드시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하지만, 그 사람이 임종할 때에 떨어질락 말락 하기 전에 한번만 염불해도 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러나 이 왕생사례는 더욱 기이하고 또 기이하다:

 

첫째, 왕생자는 닭이지 사람이 아니다.

 

둘째, 닭자신이 염불한 게 아니라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닭을 위해 염불해 주었다.

 

셋째, 닭에게 염불해준 사람은 고승대덕이 아니고, 또 오래 수행하여 공부가 깊은 사람도 아니며, 단지 초심자, 심지어 불법을 모르는 어린이였다.

 

넷째, 염불자가 단지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면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하였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을 뿐이니, 정신을 집중시키고 청정한 마음으로 관상 등을 한 게 아니다.

 

다섯째, 염불하는 사람의 수가 한·두 사람밖에 되지 않았기에 많은 대중이 아니었다.

 

여섯째, 염불하는 시간이 짧아서 몇 번·수십 번, 몇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곱째, 염불을 할 때가 마침 닭이 막 도살을 당하여 몹시 두렵고 고통스러워 할 때여서 전혀 평소의 여유롭고 편안함이 없었다.

 

여덟째, 하루사이에 발생한 두 건의 닭을 잡은 사건에서 똑같이 염불을 만나 똑같이 부처님의 영접을 받았고 효과도 완전히 똑같았다. 따라서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필연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이한 왕생사례는 기록자 개인이 당일 날 직접 들은 것이고, 게다가 어린이들이 단순하고 질박하여 거짓말로 속일 이유가 없으므로 당연히 믿을 만하다. 현재의 사례로써 옛날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옛날의 기록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옛날의 사례로써 현재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현재 사건이 그릇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고금의 시간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다고 하나 아미타불의 구제에는 영원히 변함이 없고 불법의 진리는 시공을 초월한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줄 뿐만 아니라 경문과 조석祖釋에 유력한 사실적 증거가 된다.

 

첫째, 아미타불의 구제의 수승함과 용이함·불가사의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어리석고 둔한 축생들이 불법에 대해 아무런 견문과 수행 없이 겨우 임종 시 도살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아미타불의 접인을 받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으니, 누구라도 염불만 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둘째, 축생류의 중생들은 본래 업장이 두터워서 해탈하기 어렵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축생들이 도살을 당하는 가운데 오직 이 한두 마리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과거 생에 선근이 있어서 오늘의 인연이 성숙함이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왕생론』에서 “부처님의 본원력을 만나면 헛되이 지나치는 자가 없다.”고 설하신 바와 같다. 또한 축생류의 중생들은 사람들처럼 강한 분별심이 없기 때문에 도살을 당할 때 누군가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줌으로 인해 아미타불께서 바로 몸을 나투실 때에, 도리어 쉽게 저 부처님 명호의 원력과 광명의 섭취에 수순하여 곧바로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할 수 있다. 마치 경에서 “도의 자연스러움”이라 설하시고, 또 “자연히 이끌린다.”고 설한 바와 같다. 또 설하시길, “반드시 윤회를 고리를 끊고 안양국에 왕생하여 단숨에 오악취를 끊게 되리니, 악도는 저절로 폐쇄된다.”고 하셨다. 이는 당연히 축생들에게 어떤 수행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의 도에 수순하여 저절로 이끌린 결과이다.

 

『무량수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량수불의 위신력과 광명은 가장 높고 뛰어나서 모든 부처님의 광명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 만약 삼악도의 괴로움에서 이 광명을 보게 된다면 모두 휴식을 얻으며, 다시는 괴로움을 겪지 않고 목숨이 다한 뒤에 모두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장엄경』 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삼악도 가운데 지옥·아귀·축생들이 모두 나의 나라에 태어나 나의 법화法化를 받고 머지않아 모두 성불하게 된다.”

 

셋째,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사유력과 조작력으로 인해 만약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간다면 쉽게 승천할 수 있고, 만약 삿된 사유로 나아가 온갖 악업을 짓는다면 곧바로 타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는 자는 적고 삿된 생각으로 악업을 짓는 자는 많기 때문에 경전에서 사람 몸을 받은 이는 손톱에 낀 먼지의 수와 같고 사람 몸을 잃은 이는 대지의 흙의 수와 같다고 설하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불법을 닦더라도 만약 자신의 분별심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하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가장 수승한 법문에 도리어 장애가 될 것이다. 지금 현재도 어떤 사람은 수많은 경론들을 읽었지만 아미타불의 구제법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임종할 때 엉망진창으로 도리어 저 축생류의 중생들이 장엄하게 왕생하는 것만 못하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경에서 설하시길, “교만하고 악하고 게으른 사람은 이 법문 만나도 믿기 어렵다.”고 하였고, 또 “가기 쉬운 극락에 가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셨으니, 바로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얻기 힘든 사람 몸을 얻었으면 마땅히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야 하고 특히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넷째, 삼악도의 중생들이 평소에 아무런 수행 없이 극락왕생을 한 경우가 있고,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부지런히 온갖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부처님의 원력에 수순하고 수순하지 않고 에 달려 있다. 따라서 비록 왕생을 원하나 저 부처님의 서원을 믿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강한 분별심이야말로 왕생을 장애하는 원흉이다. 만약 이러한 생각만 없다면 모든 사람이 염불할 수 있고 염불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다섯째, 아미타불의 명호와 아미타불의 본신이 일체인 까닭에 담란대사께서 ‘명호가 곧 법이다名卽法’고 설하고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다名體不二’고 설하신 것이며, 칭명을 할 때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소리에 응하여 바로 오셔서 몸을 나투신다.’고 설한 것이다. 또한 명호와 광명이 일체인 까닭에 칭명하는 사람은 필히 부처님 광명의 섭취를 받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아미타불』과 『관경』에 의거하여 해석하시길, “저 부처님의 광명이 무량하여 시방국토를 비추는데 장애가 없어서 오직 염불하는 중생을 살피시어 섭취하여 버리지 않기 때문에 아미타라 부르는 것이다.”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도 칭명염불만 하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으로 바로 섭취하신다. 예컨대 이 사례에서 닭이 비록 염불할 줄 모르지만 누군가 염불을 해준 덕택에 아미타불께서 즉각 몸을 나투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몸이 나툰 이상,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어 업장을 소멸시키고 안락함을 주게 되니, 비록 삼악도의 중생일지라도 이 광명을 보면 모든 고통이 전부 쉬게 되고 한 생각만 되돌리면 바로 안락국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미타불의 명호 속에 본래 갖춰진 자연스런 기능이다.

 

여섯째, 따라서 사람들을 위해 조념을 해주거나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천도를 해주고자 한다면 모든 불사佛事 가운에 염불만한 게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경전과 진언을 외우거나 관상을 하려면, 만약 수행을 오래하여 심력이 집중되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자가 아니면 그 효과는 크게 뒤떨어질 것이며 심지어 부작용도 생길 수 있지만 염불은 단지 입만 열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 사례에서 닭을 위해 염불한 사람은 단지 불교를 갓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고, 또 불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어린애가 단지 입에서 나오는 데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한 것에 불과하며, 게다가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께서 똑같이 영접하러 오신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큰 스님이거나 아니면 수행을 오래하여 공부가 아주 깊은 사람을 요구하지 않음이니, 아미타불의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고’·‘광명과 명호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 이로써 왜 위험하고 위급한 곳·어둡고 두려운 곳에 있을 때 염불만 하면 바로 재난을 소멸하고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염불하면 바로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보호해주시고, 부처님께서 바로 광명을 놓아 섭취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여덟째, 무릇 도살장·병원·화장터·묘지·사고다발지역 등의 음침하고 청정치 못한 장소에는 흔히 업장과 나쁜 기운들이 많아 사람들로 하여금 불길한 예감이 들고 두려운 느낌이 생기게 한다. 이때에 만약 염불할 수 있다면 비단 자신이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부처님의 광명으로 머리를 감싸주시는 보호를 받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연 있는 중생들을 이익케 하여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제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장소에 있는 중생들은 왕왕 몹시 원망하고 몹시 괴로워하기 때문에,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런 환경 속에 들어가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한 사람이 아무런 방호조치 없이 총탄이 빗발치는 거리를 걷다가 쉽게 총알에 맞게 되는 것처럼 나쁜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이 염불해야만 큰 재난을 피할 수 있고 큰 복을 쌓을 수 있으며 큰 공덕과 큰 이익이 생기게 된다.

 

아홉째, 식탁위에 육류가 올라온 경우를 만났을 때 혹 입으로 칭념을 하거나 아니면 마음속으로 묵묵히 아미타불을 불러서 그 공덕을 도살당하여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에게 준다면, 그들의 고통과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줄일 수 있고, 나아가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천도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채식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나 어떤 상황에서 완전한 채식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 참회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도살당한 중생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줘야 한다. 만약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한편으로 진탕 먹고 마시면서 한편으로 맛이 좋니 안 좋니 하며 평점을 매긴다면, 그렇다면 도살되어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이 틀림없이 몹시 고통스럽고 또 그들의 분노와 원망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므로 육식을 한 모든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깊고 무거운 업보를 받아야 할 것이다.

 

열째, 아무튼 어떠한 경우라도 모두 염불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염불을 꺼리는 장소가 바로 죄업을 짓고 불길하고 부정한 장소이며, 또한 부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장 염불이 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때에 도리어 염불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염불은 평소부터 그 습관을 길어야 한다.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조건과 한계를 정하여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 말고, 마땅히 아무런 조건 없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정종淨宗 2008년 8월에 적음

 

 


 

4. 왕생한 닭이 꿈속에서 소식을 전하다

 

제 이름은 이후곤李厚坤이며, 호북성 잠강시 어양진 교두촌湖北省潛江市漁洋鎭橋頭村 사람입니다.

2004년 2월의 어느 날 오전, 저희 집에서 키우던 닭 한마리가 불행하게도 오토바이에 치여 죽었습니다. 저는 집사람이 보게 되면 삶아 먹을까봐 두려워서 서둘러 닭을 숨기고는 닭에게 염불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오후와 저녁 시간에 저는 줄곧 몰래몰래 닭을 데리고 염불하였으며, 닭에게 극락세계의 장엄하고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반드시 아미타불께서 우리들을 위해 건립한 극락세계로 가야 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이렇게 쭉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닭을 가져다 묻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매장을 할 때 갑자기 닭의 머리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쥐가 뜯어먹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내심 더욱 가엾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닭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닭아 닭아! 네가 얼마나 불쌍한지 아니? 네가 닭의 몸을 받은 것 자체가 본래 사람들의 먹거리인데, 내가 어렵사리 너를 숨겨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화를 피할 수가 없으니, 이 육도윤회가 얼마나 괴로운거니! 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을 절대 잊지 말고, 만약에 진짜로 내 말을 들어서 염불왕생하게 된다면 나한데 꼭 알려다오!”

 

바로 그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잘생긴 젊은 청년 한분이 침대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조금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이 누구신데 이렇게 잘 생겼을까? 나는 당신을 몰라요.”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 청년이 갑자기 몸을 한 번 흔들었더니 등 뒤에 있는 닭털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금세 깨달았습니다. “아! 닭이었구나! 닭이 진짜로 왕생했구나!” 감동한 나머지 저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르면서 깨어날 때까지 끊임없이 염불했습니다.

 

(이후곤李厚坤 기록 2005년 7월 13일)

 

 


 

5. 자비심으로 염불하자 소가 극락왕생하다

 

제 이름은 시금련施金蓮이고, 호남성 잠강시 노신진 변하칠조湖北省潛江市老新鎭邊河七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올해 마흔살이고요. 2000년에 다행이도 불법을 만났습니다. 농촌에서 자라다 보니 집이 낡아서 불단을 모실 수는 없었지만 염불만큼은 이제까지 중단한 적이 없었습니다.

 

2006년 정월에 저희 집의 소가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는데,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며칠 안 되어 송아지는 죽고 말았습니다. 제 남편 번우성樊友成은 이를 발견하고 나서 매우 슬퍼하며, 송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왜 죽었어!”

 

그리고는 송아지를 위해 계속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송아지를 위해 귀의를 하고 법문하고 염불을 해주면서 나무아미타불께서 송아지를 구제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대략 30분 뒤에 저는 송아지에게 말했습니다. “송아지야! 내가 신통력이 없고 천안도 열리지 않아서 네가 이익을 얻었는지 모르겠어. 만약에 이익을 얻었다면 내가 걱정하지 않게 소식을 전해줘!”

 

뜻밖에도 바로 그날 밤에 제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예쁜 옷을 입은 사람이 저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송아지입니다. 당신들께 특별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아미타불께서 저를 서방극락세계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하신 말씀을 전부 방榜에다 새겨놨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는 깜짝 놀라서 깨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나무아미타불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시금련施金蓮 강술 이요향李耀香 집필 2006년 3월)

 

 


 

6. 고양이를 위해 염불하자 혼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다

 

제가 중학교 3학년을 다니던 해에 저희 집에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 들어왔는데, 너무나 귀엽고 애교도 많아서 우리 가족은 이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중3을 졸업하기 전, 이 고양이는 임신을 해서 새끼고양이 세 마리를 낳았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새끼고양이 세 마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활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셋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했는데, 무슨 영문인지 계속 잠만 자는 것이었습니다. 먹이를 먹일 때도 첫째와 둘째는 서로 먼저 먹으려고 난리인데 셋째는 천천히 몇 입만 먹고는 더 이상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어머니는 셋째를 데리고 수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열이 난지 최소한 열흘은 넘었네요. 현재로서는 주사밖에 놔줄 수 없으니, 호전될 수 있는지 일단 지켜봅시다.” 의사의 말을 들은 저는 매우 괴로웠으나 그래도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셋째는 다시 활기차게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튿날도 역시 정상으로 보였지만 삼일 째 되던 날, 셋째가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자세가 예전에 병원을 가기 전과 똑같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데 저는 서둘러 어머니와 오빠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겁이 나서 감히 함께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가망이 없다고 말했을 때 감당할 용기가 없었으니까요. 그 후에 저는 혼자 집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신나게 뛰어노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더욱 자책하였습니다. 왜 조금 더 일찍 열이 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울면 울수록 더욱 괴로워서 저도 모르게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양이 좀 구해주세요! 가엾게 여기시고 제발 도와주세요!”

 

그날 밤, 우느라고 너무 지친 저는 아주 빨리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상하 이층으로 되어있는 침대가운데 위층에서 자고 있었고, 아래층에는 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마치 누군가 침대에 있는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뜨고서 머리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셋째 새끼고양이가 제가 누워있는 침대위로 기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의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째의 신장은 겨우 손바닥만 했고 침대의 사다리 사이 거리는 고양이 신장의 두 배였습니다. 게다가 지금 중병 중에 있는 고양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위로 올라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각을 하는 동시에 고양이는 여전히 한 발짝 한 발짝씩 위로 기어올랐습니다…….

 

겁이 나기 시작한 저는 반쯤 누워있던 침대에서 저절로 뒤로 물러났습니다. 마침내 기어올라 온 셋째는 제 발 옆에 앉았습니다. 너무나 놀란 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면서 무서워서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고양이는 아주 편안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고양이와 서로 마주보고 있을 때, 저는 고양이의 몸 뒤의 그림자가 특별히 크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고양이가 앉아있는 자세의 형상과 일치하지 않고 중년남자의 검은 그림자였습니다. 제가 그 검은 그림자를 발견함과 동시에 그 그림자는 뜻밖에 저를 향해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해요!” 저는 너무 놀라서 벌벌 떨었습니다.

 

셋째가 그렇게 작은데 어떻게 그림자는 저렇게 클수가 있지? 제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고 있을 때, 마침 옆방 거실(셋째를 키우던 곳)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고양이를 가져가서 묻어버려요,……이따가 딸이 일어나서 보면 또 울겠어요……”

“알았어! 내가 시장근처에 있는 빈터에다 묻을 게……”

 

이 일이 발생했을 때, 저는 아직 중학생이었고, 이 기이한 사건은 이미 1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 선합니다. 나중에 커서 안 것이지만; 왜 그 중년남자의 검은 그림자가 저에게 고맙다고 했냐하면, 제가 그때 마음속으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양이 좀 구해주세요!”라고 불렀었는데, 불보살님들께서 그 소리를 듣고 오셔서 그를 천도해주셨기 때문에 고양이가 사람의 모습으로 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쓰면서 저는 중생의 구원의 소리를 듣고 괴로움에서 건져주시고, 저를 도와 제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며, 게다가 저로 하여금 불법의 광대무변함을 직접 증명하게 해주신 관세음보살님께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밖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저로 하여금 인간과 축생 사이의 인과윤회를 깨닫게 도와준 새끼고양이의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투고한 이유는, 단지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과 축생의 평등한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기를 바라고,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이 늘 염불을 하여 부처님 광명의 비춤을 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바로 이른바 ‘일념이 상응하면 일념이 부처요, 염념이 상응하면 염념이 부처로다.’이니, 절대 이 한 구절 명호의 공덕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특히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만났을 때 한 구절 명호는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비심을 내게 하여 부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대만 소기小旗 기록 2003년 2월)

 

 


 

7. 대중을 따라 염불하던 수탉이 서서 죽다

 

제한諦閑노법사님(1858~1932)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노법사님께서 두타사에서 방장소임을 보고 계실 적에 상주常住의 일과에 대한 규칙은 벌써 세워진 상태였답니다. 매일 아침 공양과 저녁공양을 마친 뒤, 대중들은 다 같이 염불하면서 세 번 요불繞佛을 하고 나서 각자 요사채로 돌아가서 휴식을 했었답니다.

 

그때만 해도 절에 시계가 없었기에 수탉이 새벽을 알렸는데, 때가 되어 수탉이 한 번 울면 대중들은 모두 기상을 했다지요. 대중들이 법당에 들어가거나 공양시간에 공양을 하러 갈 때도 수탉은 어김없이 따라다녔답니다. 사람들이 바닥에 흘린 밥알은 그 수탉이 다 주어먹었답니다. 공양을 마치고 자리에서 염불을 하고나서 나갈 때가 되면 수탉은 대중들의 맨 뒤에 따라나섭니다.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하고 계속 부르면 이 수탉도 뒤에서 꼬곡꼬곡하는 소리를 내는데 마치 사람들을 따라 염불하는 것 같았답니다. 희한하지 않나요? 이것은 제한노법사의 말씀입니다. 또 대중들을 따라서 요불을 하고, 사람들이 요불을 마치고 법당 밖으로 나가면 수탉도 따라서 나갔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요불을 마치고 다 나갔는데 이 수탉은 나가려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법당소임을 맡은 스님이 말했지요. “넌 왜 아직 안 나가는 거니? 염불을 마쳤으니 이제 문을 잠가야해!” 법당 문을 잠그는 것은 사람들이 와서 어지럽힐까봐 걱정돼서이지요. 수탉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더니 바로 불단 앞에 서서 머리를 치켜들고 꼬곡꼬곡하며 크게 세 번 소리를 지르고는 죽었습니다! 서서 죽었습니다. 보세요! 수탉이 뭘 불렀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을 정확히 발음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염불만 하면 수탉은 따라서 부르고 따라서 요불도 했습니다. 보세요, 얼마나 영성靈性이 있습니까? 이 사건은 제한노법사님이 온주의 두타사에서 방장을 하고 계실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축생의 염불왕생에 대해 증명을 하고 증거를 남기려는 것입니다.

 

(담허노법사 불칠법문)

 

 


 

8. 사납고 싸움을 좋아하던 닭이 염불하며 서서 죽다

 

청나라 광서光緖 29(1903)년, 허운화상이 곤명昆明의 복흥사福興寺에서 패관수행을 하던 때였다.

하루는 영상사迎祥寺로부터 스님 한분이 오셔서 절에 방생한 수탉 한 마리가 있는데, 몸무게가 수근數斤에 달하고 아주 사납고 싸움을 좋아하여 다른 닭들이 모두 머리와 날개를 다쳤다고 하였다. 운공(허운화상)은 곧바로 그 닭을 위해 삼귀의와 오계를 설하시고 염불을 가르쳤다. 그러자 그 닭은 다시는 싸우지 않고 홀로 나무위에서 살았으며, 더 이상 벌레와 개미를 죽이지 않고 먹이를 주지 않으면 먹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종소리와 경쇠소리만 들으면 대중들을 따라서 법당에 들어갔으며, 예불을 마치면 어김없이 나무위에서 머물렀다. 또 사람들이 염불을 가르치면 불불불 하는 소리도 내었다.

그 뒤로 2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예불을 마치고는 똑바로 서서 머리를 들고 세 번 날갯짓을 하면서 염불하는 모습으로 서서 죽었다. 그 모습이 며칠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감실에 넣어 묻어주었다.

 

(허운화상연보虛雲和尙年譜)

 

 


 

9. 염불이 끊이지 않던 수탉이 서서 죽다

 

명나라 사종숭정년간思宗崇禎年間(1628-1643), 오설애吳雪崖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복주福州(福建)에서 사리(司理:소송사건을 주관함)직을 맡고 있었는데, 평생을 독실한 불자로 살았다. 현지 개원사의 스님들은 대다수가 육식을 하며 계행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오설애는 돌에다 글을 새겨서 그들의 범계를 제지하고자 하였다.

 

하루는 오설애가 선방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닭이 염불하는 소리가 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리를 따라 그 닭을 찾아서 스님들에게 말했다. “스님들께서는 개원사에 이미 오랫동안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닭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런 축생들조차도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신들은 머리 깎고 출가를 하고도 파계를 하였으니, 실제로 이 염불할 줄 아는 닭보다도 크게 못한 줄 아시오!” 개원사의 스님들은 그제서야 재계齋戒를 지키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그래서 오설애는 이 닭을 관청에 데려가서 기르게 되었는데, 이 닭은 항상 염불을 하며 중단하지 않았다. 나중에 오설애는 단양(안휘)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기에 이 닭을 해회암으로 보내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중생들을 제접하는 도량이어서 이렇게 하면 원근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닭은 해회암에 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염불하며 서서 왕생하였는데, 대중들은 닭을 위해 탑을 만들어 모셨다고 한다.

(정토의 새벽 종 淨土晨鐘)

 

 


 

10. 폐관 삼년에 수탉이 서서 죽다

 

명나라 중주(호남)지방의 승려 각원覺圓은 여산의 동림사에서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올리기 위해 패관수행을 함으로써 모금하고 있었다.

 

이 때에 호관(護關)을 하던 스님이 화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가서 탁발하고 돌아오는데, 수탉 한 마리가 이 스님을 따라 중도까지 나선 것이었다. 닭을 발견한 스님은 그 닭을 다시 화씨 성을 가진 사람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화씨 성을 가진 사람이 집 문을 닫아버리자 이 수탉은 지붕으로부터 날아 나와 스님의 뒤를 쫓아서 각원법사가 폐관수행하는 곳까지 따라와서는 바깥에서 배회하며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원법사와 함께 삼년을 폐관하게 되었다.

 

나중에 법사는 수탉을 동림사로 데려 가서 수계를 해주었다. 매일 대중들이 법당에 들어가 염불을 할 때마다 수탉은 대중들을 따라서 염불을 하였다.

 

이렇게 일 년이 지나서 대중공양을 마치자 수탉은 곧바로 서서 왕생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동림사 옆에 묻어주었다.

 

(정토의 새벽 종 淨土晨鐘)

 

 


 

11. 거위 한 쌍이 염불하여 선후로 왕생하다

 

민국 9년(1920), 장추선張抽仙거사가 암수 거위 두 마리를 곤명의 운서사雲棲寺에 보내어 방생하였다. 허운화상이 거위들을 위해 삼귀의와 오계를 설하자 모두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들었으며, 계를 설해 마치자 머리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뒤로 낮에는 깨끗한 물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산문을 지켰다. 매일 조석예불을 할 때마다 사람들을 따라서 법당에 들어가 목을 길게 빼고 관불觀佛을 하면서 잠시도 눈을 때지 않았다. 또 염송하는 소리를 들으면 시청을 하고 염불소리를 들으면 크게 울고 요불을 하면 따라서 요불을 하는데 오래오래 변함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다 좋아하였다.

 

이렇게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암 거위가 문득 대웅전 문 앞에서 세 바퀴를 돌더니 머리를 들고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몇 번을 길게 울면서 죽었다. 털이 시들지 않아 나무함에 넣어 묻어주었다.

수컷은 밤마다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았는데, 그 마음이 마치 암 거위를 연모하는 것 같았으며, 목욕도 하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았으니 그 모습이 매우 슬퍼보였다. 그러나 매일 법당에 들어왔으며, 예전처럼 관불을 하였다.

 

유나스님은 수컷 거위가 괴로워하며 즐겁지 않은 모습을 보고는 경쇠를 치면서 일어주었다. “너는 짝을 잃고 매우 괴로워하고 있구나. 네가 관불을 안다면 마땅히 아미타불을 불러서 극락왕생을 구해야지 이 괴로운 몸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중들이 너를 도와 염불을 할 터이니 너는 왕생할 생각을 마음에 두고 들어야 한다.” 한 번 경쇠를 칠 때마다 한 번의 부처님 명호, 이렇게 대략 수십 번 염불을 하고 나서 목을 구부려 부처님께 절을 하는 모습을 하더니 다시 일어나서 세 바퀴를 돌고 날갯짓을 한 번하고는 날개를 거두고 발을 굽히면서 바로 죽었다.

여전히 작은 관에 넣어서 두 거위에게 무덤 하나를 만들어 주었으며, 장위문張爲文이 이를 기록하였다. (허운화상연보)

 

 


 

12. 고요함을 즐기던 흰 거위가 염불왕생하다

 

민국 21(1932)년, 허운화상은 고산방생원鼓山放生園을 만들었다. 이듬해 6월 초이튿날 사중 스님들과 남녀 거사 500여명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수많은 방생자 가운데 당연히 허공虛公이 단에 올라 설법하게 되었는데, 원음圓音으로 연설하니 다른 부류들도 똑같이 이해를 하였다.

 

정금초鄭琴樵거사가 방생한 거위 한 떼 속에는 흰색 수컷 거위 한 마리가 있었는데 무게가 열여섯 근에 달했다. 우두커니 외진 곳에 서 있으면서, 그 뒤로 목욕도 하지 않고 무리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부처님을 모신 누각 밑에서 살금살금 기어 다니는데, 먹이를 줘도 먹지 않고 소량의 물만 마시면서 사람을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떤 사람이 너는 ‘응당 염불해야 한다.’고 일러주면 날개를 펴고 소리를 지르는데 마치 아미타불을 부르는 소리 같았으며 여러번 해봐도 틀리지 않았다. 또 대종과 목어 소리를 들으면 구슬프게 우는데, 마치 법문을 듣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거위를 안고서 법당에 들어가면 차분하게 불상을 주시하면서 어떤 생각에 잠긴 듯 하였으며, 예불을 마쳤는데도 여전히 떠나기 아쉬워하였다.

 

17일 밤, 대중을 따라서 평소대로 예불을 드리고는 갑자기 아미타불 네 자를 높은 소리로 불렀으니, 그 소리가 역력하게 들렸다. 9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눈을 감고 꼿꼿이 서 있어서 법당 밖으로 안고 나와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허물을 벗은(죽은) 것이었다.

 

다음 날 매장용 구덩이로 보내졌으나 여전히 따뜻하고 유연하고 향기롭고 깨끗하여 차마 그냥 묻을 수가 없었다. 정금초거사는 그 기이함을 드러내기 위해 스님들처럼 다비할 것을 청하고는 거위를 위해 무덤을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마침 무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닷새 후에 다비식을 거행하였으나 이상한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불학반월간佛學半月刊』 64 및 88기)

 

 


 

13. 서방에서 온 앵무새가 다시 서방으로 돌아가다

 

영남지방의 어느 유생이 키우던 흰색 앵무새였는데, 아침마다 필히 ‘관음성호’·‘백의신주’를 외웠으며, 아울러 ’귀거래사歸去來辭‘·’적벽부赤壁賦‘ 및 이태백의 여러 가지 시를 외울 수 있었다.

간혹 새벽일과를 마치지 못했을 때 다른 시문詩文을 가르치더라도 응하지 않았다.

 

하루는 유생에게 “나는 서방에서 왔는데, 이제 다시 서방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는 그날 밤 홀연히 죽었다.

(견문록)

 

 


 

14. 구관조가 염불하여 입에서 연꽃이 피다

 

송나라 원우(元祐:1086-1093)년간, 장사군長沙郡에 사는 어느 한 분이 구관조 한 마리를 길렀다. 이 구관조는 우연히 한 스님이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바로 따라서 칭념하였는데, 온종일 염불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집에서는 이 구관조를 스님에게 드렸다.

 

시간이 지나 새가 죽자 스님은 관을 갖추어 묻어주었는데, 갑자기 입으로부터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어떤 이가 게송을 짓기를,

신령한 구관조 한 마리

스님따라 아미타불 부르고

죽어 묻은 평지 연꽃 피어오르니

사람인 우리도 그만 못하구나.

 

또, 천태 황엄 정등사의 관스님이 구관조 한 마리를 길렀는데, 항상 사람들을 따라 아미타불을 불렀다. 하루는 아침에 새장에서 서서 죽었기에 땅을 파서 묻어주었더니, 혀끝에서 자줏빛 연꽃이 피어난 것이었다.

구관조를 위해 대지율사가 게송을 적었는데, ‘닫힌 새장에 서서 죽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나, 자줏빛 연꽃으로 변화하니 크게 기이하도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불조통기 佛祖統記)

 

 


 

16. 가릉조가 염불하여 연꽃이 피다 (1)

 

타이베이의 남항南港에 구邱거사라는 분이 있는데, 불법을 배우기 전에는 자주 술을 마시면서 흐리멍덩하게 살았으나 인연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수행을 한 뒤부터는 염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번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장에서 ‘가릉조迦陵鳥’ 한 마리를 샀는데, 처음에는 재미를 위해 가릉조에게 ‘아미타불’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매일 같이 부르도록 가르치다보니 오랜 시일이 지나 이 새는 사람을 볼 때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새가 염불을 하는 것을 듣고는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 새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구거사는 매우 아쉬웠습니다. 어렵사리 새에게 염불하도록 가르쳐놓았으니 참으로 아까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사람이 죽어서 입관하는 방식에 따라 직접 나무판자로 작은 나무함을 하나 만들어 그 새를 넣고는 뒷산에서 장소를 찾아 새를 묻어주었습니다.

 

마침 구거사가 세심한 사람이어서 틈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살펴보면서 간 김에 그곳을 손질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향 한 자루가 타는 반시간 동안 새에게 염불을 해주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은연중에 귓가에서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고 부르는 새 소리가 매우 친근하게 들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가릉조 한 마리가 평소에 그가 책을 보던 방의 창살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구거사는 매우 기뻐하여 마음속으로 혹시 그 새가 다시 부활한 게 아닌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생각을 너무한 탓에 그는 틀림없이 그 새일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새는 조금 있다가 그만 날아가 버렸는데, 날아갈 때 또 한 번 아미타불! 하고 불렀습니다.

 

구거사가 ‘가릉조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바로 새를 묻은 장소에 달려가 보았더니, 보지 않았으면 몰라도 보고 난 뒤 바로 오체투지를 하면서 꿇어앉게 되었습니다. 구거사가 높이 솟아오른 곳을 보았더니 뜻밖에도 옅은 자주색 연꽃과 같은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것이었습니다. 구거사가 주변에 있는 들꽃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이런 품종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매우 희귀하고도 불가사의하여 바로 집에 가서 카메라를 가져와 사진을 찍어서 확대를 하였는데, 확대를 하고 나서 다시 보니 연꽃과 매우 닮은 것이었습니다. 삼일 뒤, 죽은 가릉조가 그의 꿈속에 나타나 외쳤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 뒤로 구거사는 염불을 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공덕력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날짐승조차도 염불하여 모두 왕생할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 사람들이겠습니까!

 

(『지청법사地淸法師가 과보의 견증을 말하다』 제2집)

 

 


 

17. 가릉조가 염불하여 연꽃이 피다 (2)

 

십여 년 전에 제가 도원桃園의 중력中儮에서 포교를 할 때, 내력內儮에서 동童거사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집은 삼합원三合院 형태의 전통식 건축물이었는데, 작은 법당이 있어서 평소에 근 열 분에 달하는 사형사저들이 모여 함께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도 아마 거기에 머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동거사의 집에도 가릉조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조류 중에 앵무새와 가릉은 선근형에 속하여 당신이 그 새에게 간단한 말을 가르쳐 주면 따라서 말할 줄도 알고, 염불을 가르쳐주면 염불도 할 줄 압니다. 특히 가릉조의 머리는 굉장히 좋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동거사는 가릉조에게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매번 사람을 볼 때마다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만약 우리의 염불도 가릉조처럼 올곧은 마음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분별하지 않고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부른다면 왕생을 하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농담이지만 제 뜻은 이 새가 동거사의 오랜 기간 훈련을 받고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사실은 그 새의 선근과 복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루는 인연이 별로 좋지 않아서 가릉조가 죽었습니다. 처음엔 동거사가 발견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늘 새장 앞을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가릉조가 왜 네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 안타깝게도 가릉조가 새장속의 나무 막대기 위에 서서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동거사는 매우 감동을 하였습니다. 가릉조는 본래 축생도에 속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아침저녁으로 동거사의 한 구절 부처님 명호의 공양에 의지하여 마침내 이처럼 두터운 선근이 있어서 서서 왕생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이것 역시 핵심은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어느 날 제가 다시 내력으로 돌아가 동거사를 찾았는데, 문득 가릉조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동거사에게 “거사님의 새 보살은요? 방생하셨나요?”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지요. “그런 거 아닙니다! 가릉조는 이미 보름 전에 왕생했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말을 하면서 바로 저를 데리고 집 뒤에 있는 화원으로 갔습니다.

 

순간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뜻밖에 남항 구거사 집의 가릉조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가릉조를 묻어둔 곳에서 대략 농업시대에 유통되었던 오원짜리 동전크기의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연꽃을 닮았을 뿐더러 오직 이 한 송이밖에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동거사는 이 꽃이 자라난 범위에 따라서 땅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둘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 꽃은 가릉조의 뾰족한 주둥이로부터 자라나온 것이었습니다. 보세요, 불가사의하지 않나요? 이때 가릉조의 몸으로부터 은은한 향기까지 났다니까요. 참으로 불가사의했습니다! 가릉조가 왕생한지 이미 보름이 지났는데도 몸에 나쁜 냄새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깃털조차도 아직 광택이 있었으니, 보고 나서 아깝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는 가릉조가 주인의 조연에 의해 이러한 복을 심게 되었고, 또 천 년의 긴 세월 동안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만약에 우리가 정진을 한다면 절대 가릉조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서로 격려를 해주십시오! 이 ‘나무아미타불’ 명호의 공덕은 무량무변하여 우리가 수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숙세의 업장을 소멸한다든지 아니면 복과 지혜를 늘린다든지 자손·권속들을 보살핀다든지 하는 소원들을 모두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지장경』의 「업연품」·「업감품」·「지옥품」에 의하면 저를 포함해서 누구도 도망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부정업不淨業·부정연不淨緣·부정물不淨物들이 우리 일상의 신구의 가운데 가득히 여러 겹으로 쌓여 있어서, 자신의 업을 정화시키려면 반드시 자력과 타력에 의지하여 함께 나란히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지청법사地淸法師가 과보의 견증을 말하다』 제2집)

 

 


 

18. 지성으로 염불하자 다람쥐가 서상을 나타내다

 

1998년 9월 방생을 할 때, 제가 병든 다람쥐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원래 생각하기를 한동안 키우다가 다시 방생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다람쥐가 아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정신은 갈수록 나빠지더니 나중에는 겨우 숨만 붙어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람쥐를 새장 속에서 꺼내어 침대위에 내려놓고, 저도 침대 맡에 앉아서 한편으로 다람쥐에게 염불을 해주면서 한편으로 아미타불께서 접인 해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다람쥐에게 염불기를 틀어주고 낮에는 제가 다시 이어서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다람쥐는 염불소리 가운데서 천천히 호흡을 멈추었습니다.

 

다람쥐가 죽고 나서 저와 염불기는 교대로 다람쥐를 위해 여덟 시간을 염불해 주었습니다. 염불도중에 손으로 가볍게 밑에서 위로 다람쥐의 몸을 더듬어 보았더니 온몸이 완전히 차가워졌는데도 정수리만은 온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게 바로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지 않나요? 저는 정말이지 이게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짝 두 번을 만져보니 여전히 정수리가 약간 따뜻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저는 다람쥐를 이틀을 더 두고 계속 염불기를 틀어주었습니다. 48시간이 지나서 제가 다람쥐를 손바닥에 올려놓았을 때, 다람쥐의 전신은 굉장히 유연하여 작은 팔다리를 마음대로 굽힐 수 있었는데, 전혀 딱딱하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다람쥐를 나무 밑에다 묻어 주었습니다.

 

다람쥐가 왕생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저는 모릅니다. 다만, 정수리가 맨 마지막에 차가워졌고, 또 이틀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온몸이 부드러운 현상으로부터 봤을 때, 저는 다람쥐가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갔을 거고, 틀림없이 악도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다람쥐가 내생에서 행복하기를 축원합니다. 이 일을 겪고 난 저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하는 공덕이 확실히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더욱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2005년 5월 7일 조석령趙錫玲 기록)

 

 


 

19. 유구필응有求必應하여 토끼가 왕생하다

 

올 봄에 아들이 토끼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굉장히 귀여웠습니다. 바구니에 넣어 기르면서 매일 한 번씩 풀어주었더니 거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골칫거리가 생겼습니다. 토끼가 똥을 너무 많이 싸고 또 냄새까지 지독했습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저는 토끼를 안고서 불상 앞에 서서 아미타불과 마음을 터놓고 말씀드렸지요. “나무아미타불:

첫째, 제가 이 토끼를 방생하고 싶지만, 어디에다 방생하든 간에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잡혀서 ‘맛있는 음식’이 될 가능성이 있고, 설사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더라도 다른 동물들로부터 상해를 입게 되므로, 이 첫 번째는 실행될 수 없습니다.

둘째, 저는 이 토끼가 일주일 내에 죽기를 원합니다.(아이고! 인정머리가 없네요!) 제 생각에는 이 토끼가 수없이 육도윤회를 하면서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칭념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에 이 토끼가 제가 기르는 동안에 죽게 된다면 저는 이 토끼가 부처님의 명호를 따라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랍니다.”

 

그 뒤로 저는 각별히 신경 써서 토끼를 길렀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난 그날 아침에, 저는 평소대로 토끼를 거실에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토끼는 여기저기 막 뛰어다니지 않고 계속 저만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딜 가던 토끼도 그곳으로 따라왔는데, 이런 현상은 요 며칠 동안 없었던 것입니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저는 문득 창턱위에 있는 토끼우리에 토끼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 큰 일 났습니다! 토끼는 우리 밑에서 전신이 축 처져서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토끼를 안고 법당에 들어가 소파에 앉아서 가슴 아파하며 토끼를 들고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하면 이름듣고 왕생하고자 하는 이는 모두 다 저 나라에 왕생하여 저절로 불퇴전에 이르게 되느니라. 나무아미타불……” 이때가 오후 6시 10분이었는데, 6시 25분까지 염불하고는 토끼의 복부 쪽에 아직 미약한 기복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봤더니 아무리 봐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저는 아마도 이미 아미타불께서 데려갔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시 몇 분 정도 염불을 하였는데, 갑자기 토끼가 길게 한번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소리는 가늘고 날카로우면서도 크게 울렸습니다. 토끼의 그 당시 상태로는 절대 그처럼 울리고 그처럼 길게 울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 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쁘고 흥분되고 해탈하는 심정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 긴 울음소리와 함께 뒷다리를 쭉 뻗고는 죽었습니다. 저는 다시 부처님의 명호로써 한동안 토끼를 배웅하고 싶어서 계속해서 밤 7시까지 염불하였습니다. 토끼가 저희 집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죽는 이날 까지 꼬박 7일이 걸렸습니다.

 

그 뒤로 매번 제가 채소를 씻거나 청소를 하면서 작은 벌레나 거미나 날벌레나 잠자리 등을 보게 되면, 항상 그들을 위해 세 번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주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제 손바닥에서 마구 날뛰던 벌레들이 부처님의 명호를 듣기만 하면 옴짝달싹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염불을 다하고 나서 다시 도망을 가려 할 때, 저는 가볍게 입김을 불어서 그들을 바깥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2000년 10월 6일 정생淨生거사가 사실을 기록함)

 

 


 

20. 실험실의 토끼에게 염불하여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다

 

2008년 10월, 우리는 ‘호흡에 미치는 영향과 혈압의 변화’에 대한 생리실험을 진행하였다. 그 때 내가 비록 불법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동물을 가지고 실험한다는 것은 여건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염불기를 가지고 가서 실험대위에 있는 토끼들을 위해 ‘나무아미타불’육자명호를 틀어주고 마음속으로도 염불을 해주었다. 그 당시 나는 부처님의 명호를 통해 토끼들이 받게 되는 고통과 공포를 덜어줌과 동시에 그 토끼들이 내생에는 불법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두 시간 넘게 지나서 우리 팀의 실험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이때 토끼는 기관지가 이미 절단되었고, 경동맥·정맥과 미주신경 등도 모두 절단되었으며, 실험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실험 약품들을 투여한 상태였다. 그 당시 토끼는 눈을 살짝 감고 두 귀는 힘없이 아래로 축 처져 있었으며, 호흡이 미약하고 전신에 전혀 윤기가 없었다. 팀장은 나에게 회수통에다 토끼를 버리라고 하였다. 토끼를 손에 들고 있었더니 온몸이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지기에 토끼를 위해 부처님의 명호를 몇 번 불러주었다. 막 토끼를 회수통에 넣으려던 순간,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는 것이었다. ‘아직 한 시간정도 지나야 수업을 마치는데, 왜 토끼를 위해 염불해주지 않지?’ (우리 팀의 토끼는 선생님이 직접 시교示敎한 토끼이여서 한 시간 일찍 실험을 끝냈다.)

 

그래서 나는 토끼를 품에 안고서 가슴 앞에 걸려 있는 염불기를 토끼와 아주 가깝게 대고는 또 작은 목소리로 염불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어떠한 기적이 나타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다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 토끼를 위해 염불을 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반시간 정도 염불하고 나서 놀랍게도 힘없이 살짝 감고 있던 토끼의 두 눈이 뜻밖에도 이미 떠져 있었고 두 귀도 기적처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본래 미약했던 호흡도 현재 이미 염불하는 소리를 따라서 리듬감 있게 진행되었다(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토끼의 기관지와 미주신경은 이미 다 끊어졌는데, 어떻게 입과 코는 여전히 호흡을 따라서 열었다 닫았다 하는지 였다.)! 그 순간 나의 마음에는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심이 일어났으며, 토끼의 차분하고 생기 있는 모습을 보고는 염불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염불을 하다 보니 토끼의 정신은 더욱 좋아지고 두 눈에 눈빛이 형형하였으며 몸도 따뜻하게 변하였다. 갑자기 토끼의 두 눈이 축축해지더니 눈가에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물 몇 방울이 걸려 있었다. 토끼가 감동을 한 걸까, 아니면 기뻐서일까?

 

그 당시에 나는 토끼를 위해서 이렇게 염불해주면 토끼가 왕생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문득 어떤 사람이 무릎을 꿇고 환자를 위해 독경을 해주던 광경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토끼에게 염불을 해주었다. 그 당시에 나는 주변의 일체를 잊어버리고(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그 당시에 어떻게 토끼 한 마리를 위해 무릎을 꿇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토끼를 위해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준 것이었다. 어느새 토끼 몸의 털들은 점점 윤기가 흐르기 시작하였고, 특히 입주변의 털들은 특별히 희고도 빛났다. 토끼의 모습은 조용하고 차분하였는데, 절대 몇 시간의 실험을 거친 뒤 온몸이 이미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을 당한 토끼 같지가 않았었다. 토끼의 태연자약한 모습은 마치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았으며, 심지어 정상적인 토기보다 더 사랑스러웠고 마치 갓난 애기처럼 귀여웠다. 아무리 많은 문자로도 토끼의 그 당시 표정을 묘사할 수 없었으며, 지금에 이르러 다시 생각해봐도 아직도 그 때문에 몹시 놀라며 감탄하게 된다.

 

수업을 마치자 다른 팀의 실험도 끝이 났다. 실험에 사용되었던 토끼들은 회수통에 버려져 몇 번 발버둥 치다가 이내 숨을 거두었다. 나는 내가 부른 부처님의 명호가 그 토끼들을 전부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해주기를 바랐다. 내 손위에 있던 맨 먼저 실험을 한 이 토끼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부득불 회수통에 넣을 수밖에 없었기에 그 토끼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난 이제 가야해, 넌 슬퍼하지 말고 안심하고 극락세계로 가!” 갑자기 토끼가 두어 번 발버둥을 치더니 다시 눈물 두 방울을 떨구었다. 나는 토끼를 내려놓으면서 왕생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실험실을 떠나면서 나는 여전히 토끼를 위해 염불을 해주었다. 숙소에 돌아온 뒤에도 염불하여 회향해 주면서 오로지 토끼가 이미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무아미타불!

 

(맹춘련 2009년 10월 26일 광서 중의학원에서)

 

 


 

21. 죽은 소가 천도되어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다

 

19년 전에 나는 나무를 나르려고 한 두 살 된 소 한 마리를 샀는데, 아주 귀여웠다. 나는 그 소를 매우 아끼면서 절대 남들이 사용하도록 빌려주지 않았다. 이 소는 일을 하는데 힘이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 일반적으로 아무리 큰 소라도 7·80센티 정도 되는 나무를 끌 수 있었지만 나의 이 소는 키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1·2미터나 되는 나무도 끌 수 있었다. 수레를 메울 때도 한번 젖히기만 하면 스스로 들어갔으며, 매년 겨울이 되면 나에게 수천 원씩 벌어다 주었다.

 

나와 소는 차츰차츰 감정이 생겨 친형제처럼 서로 감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소가 설사 눈앞에 없더라도 나는 어느 산골짜기에 있고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알아서 가기만 하면 생각한대로 거기에 있었다.

 

어느덧 십여 년이 지나 소가 늙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고 걸음걸이에도 힘이 없었기에 나는 소를 잡는 사람에게 팔았더니 당일 밤에 그 소가 눈물을 흘리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에 내가 그 소를 보러 갔다가 마음이 몹시 불편하여 먹을 것을 주었더니 한입도 먹지 않았는데, 저녁에 죽임을 당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후로부터 나는 자주 이 소를 꿈꾸었다. 어떤 때는 나를 막 쫓아와서 나를 공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에게 경고를 주기도 하였다. 이 소를 꿈꿀 때마다 이튿날이 되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으니, 몇 년 동안 하나의 법칙이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 소를 꿈꾸고 나면 이튿날에는 아예 일을 나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 소가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아마도 나에 대해 한편으로 사랑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원망하기도 해서일 것이다.

 

내가 상해에 와서도 여러 번 꿈꾼 적이 있는데, 둘째 누나 왕항매王恒梅가 날더러 칠일동안 염불을 하되 매일 백팔염주를 21바퀴 돌리고 염불을 하고 난 뒤에 소에게 회향해 주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소가 다시는 나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아마도 부처님의 공덕으로 천도된 게 아닌가 싶다.

 

(진염권秦艶權 구술 정종淨宗 기록 2004년 10월 30일 상해에서)

 

 


 

22. 아미타불의 성호로써 96마리 소의 혼령을 제도하다

 

96마리 소의 혼령은 사천성(四川省) 남부에 사는 유정밀(劉淨密)거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섭씨 아주머니가 전생에 도살한 소들이다. 섭 씨는 사천 사람으로 시집을 간 뒤로부터 자주 귀신들에게 시달렸는데, 매년 반드시 몇 번 발작을 하였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민국21년(1932) 2월 유거사 집에서 가사를 돕던 도중 갑자기 심한 병이 생기더니 온몸에 붉은 색 흉이 지면서 통증과 가려움이 몹시 심하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밖으로 달려 나가 강을 찾아서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하였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저지를 당했는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를 도살하는 참혹한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가 낭랑하여 곡조를 이루었고 소동을 그치지 않았다.

 

유정밀 거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섭 씨가 대답했다. “어르신은 도량이 넓고 크십니다. 저는 섭 씨가 아니라 그녀가 먼 과거 생 이전에 만현萬縣(지명)에서 백정노릇을 할 때 죽임을 당한 소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에게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인데, 96마리가 있습니다.”

 

이에 유정밀거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사실은 너희들이 먼저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다음에 소가 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녀가 어떻게 마침 너희 96목숨만을 빼앗았겠느냐? 지금 너희들은 먼저 그녀를 죽인 것은 잊고서 그녀가 너희들을 죽인 것만 기억하고 있으니 이렇게 원수를 찾아 돌고 도는 것을 고통스런 윤회라고 부른다. 영원히 서로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만약에 그러하다면 저희들이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목에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고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 고통 때문에 그 근원을 생각하여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소의 말을 들은 유정밀은 “그걸 없애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찻잔에 차를 반쯤 따라오라고 하인에게 시키고는 감로주甘露呪를 세 번 외운 뒤 섭 씨에게 마시라고 하였다. 그런데 섭씨의 손이 굽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소 발굽으로 어떻게 찻잔을 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인을 시켜 섭씨에게 먹여주었다.

 

차를 마시자마자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로 신묘한 물입니다.”

그러고는 섭씨의 목을 만지면서 “이미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손을 만지면서 “소 발굽도 이미 벗어버렸습니다.”고 말하고, 다시 머리를 만지면서 “뿔도 이미 없어졌습니다.”고 말했다.

너무나 경사스러운 나머지 허공을 향해서도 말했다.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만약에 앞으로 다시 나를 우왕보살牛王菩薩이라고 부르면 그때는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유정밀은 이어서 그들을 위해 윤회할 때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또 극락세계의 안온하고 즐거우며 영원히 생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음에 대해 설명하고는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느냐?”

“어르신의 말씀대로라면 어찌 원치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은 죄업의 장애가 두터운데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발원하여 염불하며 저 극락세계를 기뻐하며 흠모한다면, 내가 너희들을 위해 아미타 부처님을 청하여 너희들을 영접하게 하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오랫동안 굶주리고 있었으니 먼저 음식을 조금 주시길 바랍니다.”

 

유정밀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과 밥을 담아 변식진언을 일곱 번 외우고 나서 대나무 밭에 뿌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의 혼령들이 “우리는 이제 많이 먹어서 배가 부릅니다.”라고 말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유정밀은 곧 뒷 창문 쪽의 공터에서 향과 초를 사르며 아미타 부처님을 공손히 청하고는 왕생주, 반야심경, 대비주 및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였다.

 

이때 유거사의 처 왕지서汪志西가 방에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보아라. 아미타부처님께서 청하자마자 바로 오셔서 창밖에 장륙금신丈六金身으로 높이 서계신다. 모두 빨리 준비하여 부처님을 따라가거라!”

또 묻기를 “너희들은 극락정토가 보이느냐?”고 하자 “보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그 모습이 어떠하냐?”고 묻자 극락정토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정토경전에 모두 부합하였다.

 

들은 떠나기 전에 지성으로 감사드리며 말했다.

“이번에 베풀어 주신 호의는 저희들로 하여금 여러 생의 원한이 하루 아침에 녹게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여러 해 동안 섭씨를 괴롭혀서 항상 고통에 시달리게 하였지만 이제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섭씨 이 사람도 어르신께서 자비로 거두시어 염불하여 함께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타일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날에 어르신 부부가 서방정토에 왕생하실 때 저희들이 반드시 부처님을 따라 영접하러 올 것이며, 오늘 날 염불한 공덕을 다시 돌려드려서 어르신이 받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조용해졌다.

 

얼마 후 섭씨가 깨어났는데 그녀에게 묻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마치 꿈속에서 성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 서쪽 거리로 가다가 한 무리의 소떼가 흉악한 모습으로 저를 향해 오는 것을 봤습니다. 그 소들의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긴장되고 겁이나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주변 경치가 변하여 평평한 바닥과 우거진 나무숲이 깨끗하고 신선하고 아름다워서 놀기에 딱 좋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밥 향기가 평소보다 강하게 나더니, 소떼가 숲에서 밥을 먹으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그 후 다시는 소의 혼령이 섭씨를 괴롭히지 않았고, 섭 씨도 줄곧 채식을 하였다.

유정밀 거사는 민국23년(1934) 봄 서강(西康)에서 출가하여 법명은 혜정(慧定)이고, 위의 이야기는 출가하기 전에 겪은 일은 기록한 것이다.

 

(『개대환희 皆大歡喜』제1집)

 

 


 

23. 돼지가 영성이 있어서 배불하며 염불하다

 

2003년 8월, 나는 부모님을 뵈러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보니 돼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곧 잡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록 이 돼지를 구해줄 힘이 없었지만 아미타불께서 돼지를 구제하여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돼지를 향해 나무아미타불명호를 불러주고 삼귀의를 해주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오늘 승보의 이름으로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을 전하기 위해 너에게 법문을 해주겠다. 네가 과거 생에 어리석은 한 생각으로 인해 삼보를 공경하지 않고 인과를 믿지 않았으며 갖가지 악업을 지었기에 윤회가운데 떨어져 오랜 세월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금생에도 축생이 되어 피와 살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지은 빚을 갚느라고 사람들에게 도살을 당하는 것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만약에 내 말을 알아듣는다면 당장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나무아미타불을 믿고 아미타불의 구제에 의지하고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에 올라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다시는 윤회의 괴로운 과보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위해 48대원을 세우시고 시방중생을 구제하여 모두 당신이 성취하신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신다. 비록 네가 축생이지만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기필코 왕생할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아미타불의 구제를 받아야 한다.”

 

축생도 감정이 통하는지라 내가 말을 마치자 이 돼지는 바로 먹이를 먹던 것을 중단하고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보면서 입으로 “흥·흥·흥”하는 소리를 내었는데 마치 염불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뒤로 도살되기 전까지 부친께서 매일 돼지에게 네 번씩 염불을 가르쳤는데, 그때마다 돼지는 앞발굽을 꿇고 앉아있었으니 마치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왕씨 도살업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야! 이상한 일! 내가 여러 해 동안 돼지를 잡았지만 당신 집의 돼지와 같은 경우는 보지 못했네. 글쎄 고기를 밤새 놔뒀는데도 이튿날에 여전히 따뜻하였으니 정말 보살이 영험을 나타낸 것이야. 앞으로 나도 염불을 해야겠어!”

 

(석종도釋宗道 기록)

 

 


 

24. 악업도 아미타불의 구제를 장애하지 못하다

 

나의 귀의은사이신 북경 법원사法源寺 진명鎭明노스님은 나와 같은 고향으로, 모두 사천성四川省 재동현梓潼縣 사람이고 일생동안 오로지 정토수행만 하신 분이다.

 

1992년 내가 아직 출가하기 전에 나에게 전수염불하기를 권하기 위해 노장께서는 늘 나의 손을 잡고서 벽에 써져 있는 연지대사의 법어 한 단락을 가리키며 나에게 읽어주시곤 하셨는데, 지금까지도 그 법어를 기억하고 있다. “대장경에서 설명하는 것은 계·정·혜에 지나지 않는다. 염불이 바로 계·정·혜인데 어찌 따로 문장을 찾고 글을 쫓을 필요가 있겠는가!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고 목숨 또한 견고하게 오래가지 못하나니 원컨대 모든 행자들은 정업을 급선무로 삼기를 바란다.” 아울러 직접 나에게 당신이 어렸을 적에 고향 재동현 자강진에서 발생한 ‘비록 악인의 파괴를 만났으나 여전히 염불왕생한’ 실제의 사례를 말씀해 주셨다.

 

이 사례가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신심을 줄 수 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이 선하다. 다만 그 당시에 감동적인 이야기만 듣느라 당사자들의 이름에 대해 유심히 듣지 않았고, 또 스님께서 1996년에 왕생하셨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름에 대해 이미 자세히 조사할 수가 없어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사천성 재동현에 농촌 부부 한 쌍이 있었는데, 나이는 대략 마흔 살 정도였고 자식은 없었다. 하루는 아내가 매우 기뻐하며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에게 아주 기쁜 소식 하나를 말할게요!”

“무슨 좋은 일인데?”

“내가 오늘 사람들의 권유를 받았는데, 이제부터 채식하며 염불해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고요.”

 

평소에 부처님을 믿지 않았기에 금은보화와 같은 재물을 얻었다는 기쁜 일인 줄 알았던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 “내 마누라는 반드시 나와 같아야지 어떻게 남들처럼 무슨 부처를 미신한단 말인가! 안 돼! 내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어.”

 

남편은 마음속으로 작정을 하고 나서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둘은 한 밥솥에 밥을 지어 먹는데 당신이 채식을 한다면 설마 가마솥과 부엌을 따로 나눈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고기를 먹어야 하니까 당신이 나에게 시집와서 내 마누라가 된 이상, 내가 먹을 수 있도록 해줘야 돼.”

“걱정 마세요, 당신에게 피해주지 않을 테니까!”

 

아내는 식사 준비를 할 때 먼저 남편의 몫을 만들어서 밥상위에 올려놓고 다시 본인 몫의 채식을 준비하였다. 이를 본 남편은 돼지기름 한 숟가락을 퍼서 아내의 채식에다 넣어 그녀가 깨끗한 채식을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매번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일부러 입을 닦으면서 말하였다. “고기를 먹은 사람은 죄가 없지만 고기로 요리를 한 사람은 죄가 있어!” 이렇게 두 번·세 번 반복하고 나서 결국 아내가 채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계획이 뜻대로 되자 매우 기뻐하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그래야지! 부부가 잘 살고 있는데 무슨 채식을 하고 무슨 염불을 한단 말이야! 부처를 믿으면 서로 할 말도 없게 되는데 얼마나 재미없을까!” 또 생각하기를, “채식은 이미 내가 막았고, 이젠 염불을 못하게 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런데 염불은 아무 때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걸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구나.”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마침내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그거야! 내가 그녀에게 나쁜 일을 하여 죄를 짓게 만들면 분명히 염불도 못하게 될 거야.” 남편이 비록 부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염불하는 사람은 선행을 하고 덕을 쌓으며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염불할 자격이 없는 게 아니겠는가! 채식도 좋은 일도 못하고서 염불만 한다면 아마 부처님께서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그녀가 스스로 염불을 포기하게 될 거다.

 

이에 남편은 돼지를 잡아서 고기를 파는 직업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매일 이른 아침마다 강제로 아내에게 돼지다리를 꽉 누르라고 하였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돼지 다리를 눌렀다. 돼지를 다 잡고 나서 남편은 또 일부러 말하였다. “돼지를 잡은 사람은 죄가 없고 돼지를 누른 사람은 죄가 있어!”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마치 간장이 찢어지는 듯 가슴이 아팠다.

 

과연 그날부터 아내의 염불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남편은 영험한 이 방법이 마음에 들어 매번 돼지를 잡을 때마다 예전대로 아내에게 돼지의 다리를 누르도록 하였다. 그 뒤로 돼지가 죽어가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염불소리를 대신하였으며, 다시는 아내의 염불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집의 안과 밖·침대 시트와 이부자리를 전부 깨끗하게 청소하고 씻고 가지런하게 정리를 하였는데 마치 명절을 보내는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물어보았다.

“당신의 행동을 보니 마치 먼 길을 떠나려는 것 같은데, 대체 뭘 하려는 것인가?”

“이제 집으로 가려고요.”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시 물었다.

“당신의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친정집에는 이미 사람이 없어! 여기가 바로 당신 집인데 다시 어떤 집으로 돌아간다는 거야?”

 

아내가 대답하였다.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는데 내가 돌아갈 집은 당신이 말하는 집이 아니라 서방극락세계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당신이란 사람은 심보가 너무 나빠서 내가 본래 채식하는 염불인이 되고 싶었는데 채식을 못하게 만들었고, 채식을 못하더라도 염불만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은 또 나더러 당신을 도와 돼지 다리를 누르라고 했어요. 게다가 매번 ‘돼지를 잡은 사람은 죄가 없고 돼지를 누른 사람은 죄가 있다.’고 말했으니, 고의로 내가 염불을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어요. 나는 당신의 심보가 말로 타이를 수 없을 만큼 고약하다는 것을 보고 또 어떤 나쁜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다시는 당신이 보는 앞에서 염불하지 않았죠. 요 몇 년 사이에 나는 줄곧 마음속으로 염불하였는데, 내가 누르고 있던 돼지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전부 마음속으로 염불하면서 기도했어요: 돼지야! 내가 참으로 죄업이 두터워서 너를 구해줄 수 없으니 아미타불께서 빨리 너를 데리고 정토왕생을 하도록 해야겠어! 그러면서 돼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염불을 했지요. 그러나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은 요 몇 년 동안 내 손으로 눌렀었던 돼지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이미 극락세계에 왕생을 했다는 거죠. 내가 그들에게 염불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삼일 뒤에 전부 아미타불과 함께 내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영접하러 오겠다고 했어요.”

 

남편이 들어보니 그야말로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아내의 정신이 잘못되었나 싶어서 손으로 아내의 이마를 만져보면서 말했다. “지금 고열이 나서 헛소리하는 거니, 아니면 삼년 동안 염불을 못해서 답답해 미친 거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을 내가 모를까봐! 내가 돼지를 잡을 때 당신이 다리를 눌러놓고, 그러고도 극락세계에 간다고?” 곧 우스갯소리로 여기면서 밖에 나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 마누라가 돌았나봐, 자기가 삼일 뒤에 무슨 극락세계를 간다고 말하질 안나, 또 돼지들도 극락세계에 갔는데 다시 부처와 함께 와서 자기를 데리러 온다고 하질 안나. 정말 금시초문이야! 그 누구도 죽길 원치 않고 모두 잘 살고 싶어 하지. 무슨 사람이 그것도 기쁘게 죽으려 한단 말인가!” 호기심이 많은 시골사람들이라 이 말을 듣고는 모두 그때 가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구경하려 하였다.

 

삼일 째 되는 날, 남편은 기상을 하자마자 온 방안에 가득한 기이한 향내를 맡고서 몹시 궁금하여 온 집안을 살펴보았으나 이 향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오늘이 바로 아내가 간다고 했던 날이라는 게 생각이 났는데, 설마…… 몰래 아내를 쳐다보니 마침 가지런하게 몸치장을 하고 있는 것 외에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

 

런데 별다른 점이 없는 가운데 계속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게 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한 평생 마누라의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한 번 믿어보고 도대체 어떻게 극락세계 고향으로 돌아가는지를 봐야겠다!” 그래서 남편은 암암리에 관찰을 하였다.

 

마을에서 구경을 하려던 사람들도 당연히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저희 고향에서는 모두 사합원四合院형식의 집들인데, 이날 아침부터 길을 지나가는 척하면서 문틈과 담 위로 머리를 내밀어 들여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몸치장을 마친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의자 하나를 가져다 문 앞의 중앙에다 놓고는 얼굴은 구경꾼들을 향하고 두 발은 가지런히 내려놓고 두 손은 합장하여 눈을 감은 채 염불하였는데, 열 번도 안 되어 화색이 도는 얼굴로 그 자리에서 바로 왕생하였다.

 

이를 본 남편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한동안 멍청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본래 아내가 말로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진짜로 자신을 버리고 가버릴 줄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눈앞에 생생하고 갑자기 닥쳐온 현실은 그로 하여금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였다. 순간적으로 부처님의 위대함과 실제로 존재함은 한 가닥 번쩍이는 광선처럼 그의 마음속 깊이 비쳐 들어 자신이 잔인하게 생명을 죽이고 남의 수행을 파괴하며 부처님을 비방하고 믿음이 없었던 등등의 죄악을 남김없이 환하게 드러냈다. “아!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이제 어떡하지?” 다시 뒤집어 생각을 하였다. “내 마누라도 채식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돼지를 잡을 때 그녀도 다리를 누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염불하고도 불국토로 갔으니 그럼 내가 염불해도 갈 수 있지 않겠어! 안 돼! 나도 더 이상 이 직업을 해서는 안 되겠어, 지옥을 간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야, 나도 내 마누라를 따라가야겠어.” 그 뒤로부터 남편도 염불인이 되었다.

 

내가 지금 아무런 보류 없이 그 당시 들었던 풍성한 법의 요리法餐를 동행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드려서 아미타불의 아무런 조건이 없는 구제를 함께 누리기 바란다. 극악한 사람도 염불하면 필히 구제하니 이것이 바로 아미타불의 자비이다!

 

(2001년 5월 18일 연명演明법사 기록)

 

 

 


 

 

부록1】

 

1. 이승에서 옆집 닭을 훔치자 저승의 기록부에 바로 기록되다

 

양호(兩湖:호남성과 호북성의 통칭)지방에 생원(선비) 한 명이 있었는데, 그 마음씨가 매우 정직하였다. 마침 저승의 일곱 번째 전(第七殿: 태산왕전)에 일손이 부족하여 옥황상제가 그에게 잠시 그 빈자리를 대신하도록 명하였다. 매번 며칠이 지날 때마다 생원은 저승에 들어가 업무를 봐야 했다. 다만 그가 할 일은 기록부만 조사할 뿐이어서 따로 판결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지은 업이 다름으로 인해 받게 될 죄와 복도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매번 사람들이 스스로 칼로 된 산과 검으로 된 나무(刀山劍樹)위를 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서둘러 옆에 있던 사람들을 시켜서 구하려 하였으나 그 사람을 구하려 할수록 더욱 빨리 올라가서 결국은 그 사람들을 구해줄 방법이 없었다.

 

하루는 기록부를 읽다가 부인의 죄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죄목에는 ‘옆집의 닭 한 마리를 훔쳤는데, 닭털까지 해서 무게가 총 한 근 열두 냥이다.’라고 적혀있어서 그 페이지를 접어서 표시를 해두었다.

 

이승에 돌아온 뒤 그는 부인에게 옆집의 닭을 훔쳤었냐고 물었다. 처음에 부인은 아니라고 부인하였지만 나중에 저승에서 본 것을 말해주자 그제서야 자수하였다. “옆집의 닭이 말리던 곡물을 먹어서 실수로 그 닭을 때려죽였는데, 옆집 부인이 욕설을 퍼부어 창피를 줄까봐 두려워서 그 닭을 숨겨두었으니 아직 발견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닭을 찾아서 저울에 달아보니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한 근 열두 냥 이었다. 두 부부는 몹시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면서 죽은 닭과 그 닭의 값을 쳐서 옆집에 배상해주면서 사죄하였다.

 

얼마 후에 그가 다시 저승에 출근하여 그 기록부를 펼쳐보니 접었던 흔적은 그대로지만 부인의 죄목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익대사 『견문록』)

 


 

 

 

2. 시부모가 닭의 몸을 받아 경을 읽어서 천도시키다

 

휴녕休寧 주촌朱村에 주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밖에서 장사를 하였다. 주씨의 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고 부인 허씨만 집에 있었는데, 우연히 계란 열 몇 개를 암탉이 품게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밤에 허씨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시부모가 밖에서 들어오시더니 모두 불은 색 머리띠를 하고 있었고 안색이 비참해 보였다. 허씨가 입을 열어 여쭈려고 하는데 갑자기 닭장 앞에 이르러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에 가서 보니 병아리 두 마리가 껍질을 깨고 나온 것이었다. 허씨는 이내 깨달았다. “이는 틀림없이 시부모이시다.” 그래서 병아리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물에 빠뜨려 죽인 다음 스님을 모셔다 삼일 동안 경전을 읽게 하여 시부모의 죄업이 사라지기를 기도하였다.

 

몇 달 뒤에 다시 꿈속에 시부모가 나타나 사의를 표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살아생전에 살생을 너무 많이 하여 저승에서 그 벌로 닭으로 태어나게 하여 끓는 물과 타는 불의 고통을 받게 하였다. 지금 다행히 며느리가 대신 참회를 하였기에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게 되었다.”

 

(유곡원의 『우태선관필기右台仙館筆記』· 11)

 

 


 

 

3. 삼보를 공경하지 않아 닭의 몸을 받다

 

고소姑蘇 신당항神堂港에 사는 친척 반봉암潘奉巖의 별명은 성노서盛老鼠였다. 어느 날 시골에 사는 외조카를 찾아간 성노서는 조카가 닭을 잡아서 요리를 해드리려 것을 애써 말려 면하게 되었다.

그 날 밤에 죽은 며느리가 나타나서 사의를 표하면서 말하였다. “그 닭이 바로 저의 후신입니다. 제가 삼보를 공경하지 않아 축생의 몸을 받게 되었는데, 다행히 어르신의 자비력의 덕택으로 어제 칼도마에 오르는 것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칠년 전에 잃어버린 비녀 하나가 대나무 통에 들어있으니 시어머니께서 찾아 갖도록 하십시오.”

 

잠에서 깨어난 성노서는 이 닭을 달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정말로 대나무 통에서 잃어버린 비녀를 찾게 되었다. 이에 두 부부가 모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함께 보타산에서 출가를 하였다. 그 후에 부인은 앉아서 왕생하였고 남편 역시 선종을 하였다.

 

(우익대사의 『견문록』)

 


 

 

4. 삼보를 공경하지 않아 참회하여 개 몸을 벗다

 

고소姑蘇 주치화周致和는 약을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한번은 죽은 며느리가 여동생의 몸에 붙어서 말하였다. “제가 삼보를 공경하지 않아서 그 벌로 개 몸을 받았습니다. 매일 주방의 하인들로부터 매를 맞고 있어서 그 고통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으니 속히 저를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물었다.

“내가 너를 위해 자비참법 기도를 해준다면 네가 이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참법의 힘에 의지한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에 부모가 주씨 집에서 개를 데리고 돌아오니 삼일이 지나 죽었다.

 

(우익대사의 『견문록』)

 


 

 

5. 돈 삼분을 빚져 돼지가 되어 상환하다

 

남안현 산간에 한 주민이 밤에 일어났다가 옆집에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을 쫓으며 그 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들어가려 하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그의 돈을 겨우 삼분밖에 빚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들어가라고 한단 말인가?” 쫓던 자가 지팡이로 때리자 그제서야 들어갔다.

 

주민은 자못 기이하게 여기어 이튿날 아침에 옆집으로 가서 물어보니 어제 밤에 돼지 한 마리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주민은 다시 의심하였다. 왜냐하면 돼지의 값이 삼분밖에 안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돼지가 뒷간에 떨어져 죽었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돈 삼분을 주고 그 돼지를 사게 되어 주민의 의심이 풀렸다.

 

(우익대사의 『견문록』)

 

 


 

6. 남에게 다섯 금을 빚져 당나귀가 되어 상환하다

고소姑蘇 김용천金龍川에게 처남 하나가 있는데 남호南濠에서 국수가게를 하고 있었다. 한 번은 그 집의 식구들이 당나귀를 때렸더니 당나귀가 갑자기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네 노주인에게 다섯 금의 빚이 있어서 일을 해주는 것인데,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채찍질을 할 수 있는가?”

식구들이 크게 놀라 당나귀의 말을 그 주인에게 전해주었다. 주인이 부친이 보관하던 옛날 장부를 찾아서 살펴보니 과연 다섯 금을 빌린 차용증 한 장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용증을 가지고 당나귀 앞에서 찢어버리며 말하였다. “내가 이미 당신의 채무를 면해 주었다!” 이에 당나귀가 망설이더니 그만 죽었다.

(우익대사의 『견문록』)

 

 


 

7. 소 세 마리가 빚을 갚는데 그 힘에 강약이 있었다

 

호주부湖州府 무강현武康縣에 관리 한명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잊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1남 2녀를 만나서 그 뒤를 쫓아 향환鄕宦 낙駱씨 집에 갔더니, 세 사람이 곧장 낙씨 집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의아해 하였다. 그래서 저녁 무렵까지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아 문지기에게 사람을 찾았더니, 문지가가 거짓말로 자신을 속이려 한다면서 서로 다투게 되었다.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각방에 출산상황을 조사해보라고 명하자 암소 한 마리가 막 송아지 세 마리를 낳았는데,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 마리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관리를 불러 살피도록 하니 소 세 마리의 털색이 본인이 본 세 사람의 복장 색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고서야 이 세 사람이 이미 소로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그 사람들의 이름을 조사해보니 전부 낙가에게 빌린 쌀을 갚지 않은 이들이었다.

 

나중에 소 세 마리가 커서 그 힘에도 강약이 있었는데, 빚을 많이 진 자는 힘이 세고 빚이 적은 이는 힘이 약했으니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우익대사의 『견문록』)

 


 

 

8. 밤에 돼지의 말을 듣고 직업을 바꾸다

 

송강해구淞江海口에 주씨 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습관적으로 덩치가 큰 돼지를 받아서 도살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숭정기묘(崇禎己卯:1639)년 정월 사이 두 번째 북을 치는 시간에 우연히 뒷간을 가려고 일어났다가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도둑이라 의심하였다.

 

그래서 몽둥이를 들고 소리를 따라서 찾아갔더니 돼지우리에서 복건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괴롭구나! 난 내일이면 틀림없이 죽게 될 거야!”

“당신은 본래 일곱 번 돼지 몸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 여섯 번을 받았으니 머지않아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다. 나는 다섯 번 돼지 몸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 첫 번째이니 더 괴롭구나!”

 

그 사람은 본래 복건성의 고향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그 말을 듣고서 크게 놀라 드디어 악업을 그만두었다.

 

(우익대사의 『견문록』)

 


 

부록 2

 

‘닭을 위해 염불하자 부처님께서 닭을 내영하다’에 대한 법문

 

일반적으로 정토왕생을 하려면 설사 성인이 아니다하더라도 지혜가 뛰어나고 용맹정진하는 대수행자이어야 하고, 설사 대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선근이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전에서 설하기를 일생 동안 악업만 짓고 선이 없는 사람이 다음 생에 반드시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하지만, 그 사람이 임종할 때에 떨어질락 말락 하기 전에 한번만 염불해도 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러나 이 왕생사례는 더욱 기이하고 또 기이하다:

 

첫째, 왕생자는 닭이지 사람이 아니다.

 

둘째, 닭자신이 염불한 게 아니라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닭을 위해 염불해 주었다.

 

셋째, 닭에게 염불해준 사람은 고승대덕이 아니고, 또 오래 수행하여 공부가 깊은 사람도 아니며, 단지 초심자, 심지어 불법을 모르는 어린이였다.

 

넷째, 염불자가 단지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면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하였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을 뿐이니, 정신을 집중시키고 청정한 마음으로 관상 등을 한 게 아니다.

 

다섯째, 염불하는 사람의 수가 한·두 사람밖에 되지 않았기에 많은 대중이 아니었다.

 

여섯째, 염불하는 시간이 짧아서 몇 번·수십 번, 몇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곱째, 염불을 할 때가 마침 닭이 막 도살을 당하여 몹시 두렵고 고통스러워 할 때여서 전혀 평소의 여유롭고 편안함이 없었다.

 

여덟째, 하루사이에 발생한 두 건의 닭을 잡은 사건에서 똑같이 염불을 만나 똑같이 부처님의 영접을 받았고 효과도 완전히 똑같았다. 따라서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필연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이한 왕생사례는 기록자 개인이 당일 날 직접 들은 것이고, 게다가 어린이들이 단순하고 질박하여 거짓말로 속일 이유가 없으므로 당연히 믿을 만하다. 현재의 사례로써 옛날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옛날의 기록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옛날의 사례로써 현재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현재 사건이 그릇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고금의 시간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다고 하나 아미타불의 구제에는 영원히 변함이 없고 불법의 진리는 시공을 초월한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줄 뿐만 아니라 경문과 조석祖釋에 유력한 사실적 증거가 된다.

 

첫째, 아미타불의 구제의 수승함과 용이함·불가사의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어리석고 둔한 축생들이 불법에 대해 아무런 견문과 수행 없이 겨우 임종 시 도살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아미타불의 접인을 받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으니, 누구라도 염불만 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둘째, 축생류의 중생들은 본래 업장이 두터워서 해탈하기 어렵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축생들이 도살을 당하는 가운데 오직 이 한두 마리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과거 생에 선근이 있어서 오늘의 인연이 성숙함이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왕생론』에서 “부처님의 본원력을 만나면 헛되이 지나치는 자가 없다.”고 설하신 바와 같다. 또한 축생류의 중생들은 사람들처럼 강한 분별심이 없기 때문에 도살을 당할 때 누군가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줌으로 인해 아미타불께서 바로 몸을 나투실 때에, 도리어 쉽게 저 부처님 명호의 원력과 광명의 섭취에 수순하여 곧바로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할 수 있다. 마치 경에서 “도의 자연스러움”이라 설하시고, 또 “자연히 이끌린다.”고 설한 바와 같다. 또 설하시길, “반드시 윤회를 고리를 끊고 안양국에 왕생하여 단숨에 오악취를 끊게 되리니, 악도는 저절로 폐쇄된다.”고 하셨다. 이는 당연히 축생들에게 어떤 수행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의 도에 수순하여 저절로 이끌린 결과이다.

 

『무량수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량수불의 위신력과 광명은 가장 높고 뛰어나서 모든 부처님의 광명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 만약 삼악도의 괴로움에서 이 광명을 보게 된다면 모두 휴식을 얻으며, 다시는 괴로움을 겪지 않고 목숨이 다한 뒤에 모두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장엄경』 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삼악도 가운데 지옥·아귀·축생들이 모두 나의 나라에 태어나 나의 법화法化를 받고 머지않아 모두 성불하게 된다.”

 

셋째,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사유력과 조작력으로 인해 만약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간다면 쉽게 승천할 수 있고, 만약 삿된 사유로 나아가 온갖 악업을 짓는다면 곧바로 타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는 자는 적고 삿된 생각으로 악업을 짓는 자는 많기 때문에 경전에서 사람 몸을 받은 이는 손톱에 낀 먼지의 수와 같고 사람 몸을 잃은 이는 대지의 흙의 수와 같다고 설하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불법을 닦더라도 만약 자신의 분별심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하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가장 수승한 법문에 도리어 장애가 될 것이다. 지금 현재도 어떤 사람은 수많은 경론들을 읽었지만 아미타불의 구제법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임종할 때 엉망진창으로 도리어 저 축생류의 중생들이 장엄하게 왕생하는 것만 못하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경에서 설하시길, “교만하고 악하고 게으른 사람은 이 법문 만나도 믿기 어렵다.”고 하였고, 또 “가기 쉬운 극락에 가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셨으니, 바로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얻기 힘든 사람 몸을 얻었으면 마땅히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야 하고 특히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넷째, 삼악도의 중생들이 평소에 아무런 수행 없이 극락왕생을 한 경우가 있고,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부지런히 온갖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부처님의 원력에 수순하고 수순하지 않고 에 달려 있다. 따라서 비록 왕생을 원하나 저 부처님의 서원을 믿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강한 분별심이야말로 왕생을 장애하는 원흉이다. 만약 이러한 생각만 없다면 모든 사람이 염불할 수 있고 염불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다섯째, 아미타불의 명호와 아미타불의 본신이 일체인 까닭에 담란대사께서 ‘명호가 곧 법이다名卽法’고 설하고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다名體不二’고 설하신 것이며, 칭명을 할 때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소리에 응하여 바로 오셔서 몸을 나투신다.’고 설한 것이다. 또한 명호와 광명이 일체인 까닭에 칭명하는 사람은 필히 부처님 광명의 섭취를 받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아미타불』과 『관경』에 의거하여 해석하시길, “저 부처님의 광명이 무량하여 시방국토를 비추는데 장애가 없어서 오직 염불하는 중생을 살피시어 섭취하여 버리지 않기 때문에 아미타라 부르는 것이다.”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도 칭명염불만 하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으로 바로 섭취하신다. 예컨대 이 사례에서 닭이 비록 염불할 줄 모르지만 누군가 염불을 해준 덕택에 아미타불께서 즉각 몸을 나투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몸이 나툰 이상,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어 업장을 소멸시키고 안락함을 주게 되니, 비록 삼악도의 중생일지라도 이 광명을 보면 모든 고통이 전부 쉬게 되고 한 생각만 되돌리면 바로 안락국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미타불의 명호 속에 본래 갖춰진 자연스런 기능이다.

 

여섯째, 따라서 사람들을 위해 조념을 해주거나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천도를 해주고자 한다면 모든 불사佛事 가운에 염불만한 게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경전과 진언을 외우거나 관상을 하려면, 만약 수행을 오래하여 심력이 집중되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자가 아니면 그 효과는 크게 뒤떨어질 것이며 심지어 부작용도 생길 수 있지만 염불은 단지 입만 열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 사례에서 닭을 위해 염불한 사람은 단지 불교를 갓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고, 또 불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어린애가 단지 입에서 나오는 데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한 것에 불과하며, 게다가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께서 똑같이 영접하러 오신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큰 스님이거나 아니면 수행을 오래하여 공부가 아주 깊은 사람을 요구하지 않음이니, 아미타불의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고’·‘광명과 명호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 이로써 왜 위험하고 위급한 곳·어둡고 두려운 곳에 있을 때 염불만 하면 바로 재난을 소멸하고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염불하면 바로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보호해주시고, 부처님께서 바로 광명을 놓아 섭취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여덟째, 무릇 도살장·병원·화장터·묘지·사고다발지역 등의 음침하고 청정치 못한 장소에는 흔히 업장과 나쁜 기운들이 많아 사람들로 하여금 불길한 예감이 들고 두려운 느낌이 생기게 한다. 이때에 만약 염불할 수 있다면 비단 자신이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부처님의 광명으로 머리를 감싸주시는 보호를 받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연 있는 중생들을 이익케 하여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제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장소에 있는 중생들은 왕왕 몹시 원망하고 몹시 괴로워하기 때문에,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런 환경 속에 들어가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한 사람이 아무런 방호조치 없이 총탄이 빗발치는 거리를 걷다가 쉽게 총알에 맞게 되는 것처럼 나쁜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이 염불해야만 큰 재난을 피할 수 있고 큰 복을 쌓을 수 있으며 큰 공덕과 큰 이익이 생기게 된다.

 

아홉째, 식탁위에 육류가 올라온 경우를 만났을 때 혹 입으로 칭념을 하거나 아니면 마음속으로 묵묵히 아미타불을 불러서 그 공덕을 도살당하여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에게 준다면, 그들의 고통과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줄일 수 있고, 나아가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천도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채식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나 어떤 상황에서 완전한 채식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 참회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도살당한 중생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줘야 한다. 만약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한편으로 진탕 먹고 마시면서 한편으로 맛이 좋니 안 좋니 하며 평점을 매긴다면, 그렇다면 도살되어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이 틀림없이 몹시 고통스럽고 또 그들의 분노와 원망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므로 육식을 한 모든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깊고 무거운 업보를 받아야 할 것이다.

 

열째, 아무튼 어떠한 경우라도 모두 염불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염불을 꺼리는 장소가 바로 죄업을 짓고 불길하고 부정한 장소이며, 또한 부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장 염불이 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때에 도리어 염불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염불은 평소부터 그 습관을 길어야 한다.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조건과 한계를 정하여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 말고, 마땅히 아무런 조건 없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정종淨宗 2008년 8월에 적음

 


 

 

 

동물들의 극락왕생에 관한 질문과 대답

 

 

 

연우님 질문

 

동물들의 왕생에 의문이 드는점이 있는데 부처님의 원력은 평등하나 삼심이 갖추어지지않아도 왕생이 가능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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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스님 대답

 

나무아미타불_()_

 

연우님!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선도대사께서 삼심가운데 한 마음이라도 빠지면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삼심을 갖추지 못하면 당연히 왕생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이 동물들은 삼심을 갖추지 못한 것 같은데도 왕생을 하였으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동물들은 도대체 삼심을 구족한 걸까요, 구족하지 못한 걸까요? 구족했다고 말하자니 그렇지 않은 것 같고, 구족하지 못했다고 말하자니 분명히 왕생하였다고 말했기 때문에 당연히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선 법연대사님의 삼심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미타불의 정토는 염불하여 왕생하는 정토이다. (따라서 염불인은) 저절로 삼심이 갖춰진다.”

 

이 말씀은 아미타불께서 극락정토를 건립하시면서 오직 칭명염불을 왕생의 본원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왕생을 염원하면서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삼심의 의미를 몰라도 삼심은 저절로 갖춰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의미를 바꾸어 말하면 부처님께서 삼심을 설한 이유는 중생들이 한결같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 어째서 아미타불의 명호만 불러도 삼심을 구족하게 되는 걸까요?

선도대사께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습니다.

 

“나무란 말은 곧 귀명이요, 또한 회향발원의 뜻이며, 아미타불은 곧 그 행이다.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

 

두 분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삼심은 아미타불께 귀명하며 왕생을 염원하는 마음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동물들의 왕생사례 중에 1·2·3·4·5·6번의 사례에서는 동물들이 직접 염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우리는 아미타불의 명호와 아미타불의 본체가 일체一體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명호와 본체가 일체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가 있는 곳에는 부처님의 금색신이 계시고, 금색신이 계신 곳에는 부처님의 광명이 있으며, 그 광명은 항상 염불중생을 섭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동물들이 비록 직접 염불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그 동물들을 생각하며 염불을 하였기 때문에 염불하는 순간 부처님은 직접 몸을 나투시어 광명으로 비추어 주십니다. 부처님의 광명의 섭취를 받은 이 동물들은 순식간에 업장이 소멸되면서 바로 아미타불을 따라 갈 생각을 하게 되지요. 마치 추운 사람이 따뜻한 곳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말입니다.

 

동물들에게는 인간들처럼 강한 분별심이 없어서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을 구제해줄 인연을 만났을 때 거부하지 않는 이상, 자연히 그쪽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따라서 동물들이 직접 염불한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의 광명의 섭취를 받고 부처님을 따라 갈 마음을 내는 순간 바로 삼심이 갖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순간에도 왕생할 마음이 없다면 당연히 삼심을 갖추지 못하여 왕생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은 평생 염불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었던 걸까요? 마치 어떤 스님의 법문 중에 만명이 염불하면 3,5명밖에 왕생할 수 없다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분별심이 많아 항상 자력의 입장에 서서 자신이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본원력에 완전히 기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본원력을 의지하면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왕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력수행만 강조하여 잡행을 하다 보니 스스로 장애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장애란 바로 완전히 부처님께 귀의하며 왕생을 염원하는 삼심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만 명 가운데 삼심을 갖춘 3,5만이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서 오로지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지하는 전수염불을 버리고 자꾸 자력에서만 문제를 찾다보니 왕생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염불행자들이 반드시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러한 사례와 삼심을 구족하는 이치를 통해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왕생사례들, 예컨대 어떤 분들은 평생 염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극락왕생을 했다든지, 돌아가신지 수십 년이 넘은 조상들이 왕생하였다든지… 등등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상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동물들의 왕생 역시 삼심이 갖춰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동물들조차도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왕생할 수 있는데, 우리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 잘난 자력을 잠시 내려놓고 오로지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지하려 하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염불하면 곧 부처님의 대원선에 오른 것이니,

부처님의 대원선에 오른 이는 반드시 왕생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정업행자 정전 합장 ()

 

출처 / 순정시대(純淨時代)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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