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Posted by 慧蓮(혜련)
|

www.btn.co.kr/btntv/contents.asp?ls_StSbCode=CATPR_05&PID=P1254

Posted by 慧蓮(혜련)
|
Posted by 慧蓮(혜련)
|
Posted by 慧蓮(혜련)
|

https://www.youtube.com/channel/UCY76WrhJEUW_vbKWzap9AfA 무량수여래회 자항 김성우님

 

https://www.youtube.com/user/TheAmita9 원왕생님

 

https://www.youtube.com/channel/UCvxoyrHUuxd8ZvpW13pB74w 불재님

 

https://www.youtube.com/channel/UC6LILZM8nijf8cVVm9UNIQg 서방정토님

 

https://www.youtube.com/channel/UCHHrZxeFeV4BNdWEHvo_XOA 원이룬님

 

 

 

 

Posted by 慧蓮(혜련)
|
Posted by 慧蓮(혜련)
|

나무아미타불 염불 영험기 (최근 실화)

출처 / 불광출판사에서 2008년에 출판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부록에서 발췌

 

중국의 원영 굉오스님의 권수염불문(勸修念佛文)을

불광출판사에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이란 제목으로

정원규님이 번역하여 내 놓았습니다.

 

--------------------------------------------

 

1. 염불로 목숨을 구하고 광명이 비치다.

 

아래 이야기는 심장마비로 죽음의 순간에 주위 사람들의 염불과 자신의 염불로 다시 살아난 실화이며 이 이야기를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는 말씀은 나에게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나는 3년 동안 두 번이나 심장발작을 겪었다. 고비를 넘긴후 자세히 회상해 보니 그때 내가 받은 고통은 바로 내가 집에서 도살한 돼지가 겪은 고통과 같았다.

 

1993년 당시 진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던 장금문 선생이 나를 찾아와서 차를 좀 밀어줄 것을 청하였다. 나는 감기가 든 상태여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힘껏 차를 밀고나서 갑자기 심장에 격렬한 통증이 오면서 쓰러졌다.

장선생이 그때의 이야기를 나중에 해 주었다.

 

당시에 이미 나는 쇼크 상태여서 만약 즉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죽을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죽었지만 심식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심장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몸의 사대가 분리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장선생이 쓰러진 나를 차에 차에 실어 자신의 집으로 옮겨 놓고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장선생이 집안 사람들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와 서로 나누는 대화를 명료하게 듣고 있었다.

일찍이 내가 그 가족들에게 염불을 권해서 장 선생의 부인과 그 모친이 모두 와서 나를 위해 염불을 해 주었다.

 

그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들이 염하는 부처님 명호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허공에서 빛을 발하면서 나타났다. 즉시 내 몸도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사람마다 염불하면서 발하는 광명의 밝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장선생의 부인이 평소에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온 까닭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불현듯 나도 염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염불을 했다.그때 나는 자신이 직접하는 염불의 광명이 특히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염불할 때는 우리는 그 공덕의 7분의 1만 받는다고 한 『지장경』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 발작으로 심신이 압박받고 있을 때 나는 다행히 장선생 가족이 도와주는 조념염불의 광명과 인도로 정념으로 염불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고통을 덜고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너무 나빠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병원의 의사도 나를 보고는 이미 저승으로 갔으니 의학적인 처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직계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시술할 수 있다 하였다. 장선생은 그 말에 화가 나서 의사와

다투었다. 그는 직계가족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텐데 그러면 환자를 살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화를 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전심으로 염불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장선생 한 사람 뿐이어서 염불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즉시 나는 내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구름 비행기를 탄 것같이 빠르게 줄곧 떨어지는데 마치 한빙지옥에 이른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더 어둡고 추웠다. 온 몸을 칼로 베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내가 느낀 감각을 표현하자면 경전에 이른 것과 같이 바람칼로 온 몸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다행이도 평소에 염불을 열심히 해온 공덕이 있어서 위기 일발의 시점에 선근이 작용하였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 염불일념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슬프게 한구절의 ‘아미타불’을 토해냈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 내가한 염불소리가 커서 병원 사람들이 모두 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그 즉시 눈앞에 조그마한 광명이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나무아미타불’ 을 염하자 그 광명은 앞에서 더 크게 커졌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졌고 눈을 뜨고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면서 나는 저승의 귀신문에서 나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다.

나무아미타불.

 

------------------

 

2. 부처님의 광명이 몸을 보호하다.

 

위서금씨는 29세 때 토성 승천사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남자다.비록 스님께서 염불하라고 가르쳤지만 그 자신은 좌선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바쁜 중에서도 좌선을 할뿐, 근본적으로 염불할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 후 대략 반 년 정도 지난 8월 26일 아침에 가스가 폭발하여 심한 화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전신의 55퍼센트 이상 화상을 입었는데, 대부분 상반신의 중요부위였다. 다음은 그분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다.

 

내가 정신을 잃고 혼미해지자 의식이 흐리멍텅 해지면서 주변이갈수록 음랭하고 사방이 검고 어두워 졌다. 마음속으로 점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나를 강제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너무나 공포스러웠고, 죽음이 두려워 살아나려고 발버둥쳤다.

 

화상을 입은 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인명무상이라는 말을 이때 체득 할 수 있었다. 몸을 제되로 가누지 못하는데 갑자기 부처님께 귀의할 때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염불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였다. 부처님께 목숨을 구해주실 것을 간절히 빌면서 필사적으로 염불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참 염불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광명이 온몸을 덮더니 한 순간에 모든 흑암과 한랭, 공포가 없어 졌다. 광명이 내 몸을 비추자 추운 겨울에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따뜻해지고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몸에서도 고통이 사라졌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나를 구하신 것이라고 느꼈다. 그 광명은 매우 강하고 밝았다. 마치 풍차가 돌 듯 “쏴, 쏴”하면서 천천히 회전하였다. 그리고 아기가 어머니를 의지하는 느낌처럼 친밀하고 포근하며,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온 세상이 광활하며 매우 가볍고 편안하며 자재하였다.

 

마치 부처님의 광명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염불했다.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고 염하는 가운데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남자와 여자들이 “그가 깨어났다. 그가 깨어났어!”라며 고함치는 소리였다. 그때 광명이 사라지면서 내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사실 가스폭발 며칠 전 나는 좌선을 하던 중에 이상한 일을 겪었다. 그나 좌선하면서 마음이 매우 고효해졌을 때 갑자기 두세 사람이 매우 흉악스럽게 나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들렸다.

“찾았다. 찾았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아주 부드러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원한을 품고 서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들이 천도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 좋지? 이 사람은 선근이 많으니 너희들은 그의 목숨을 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놓아주지 않을 태도이었다.

 

“안 돼! 안 돼! 우리들은 반드시 그를 찾아 빚을 받아야 마음이 편해져.”

그 여자가 다시 그들에게 그러지 말 것을 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들은 기어코 나를 해치려 하였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는 모골이 송연하여 계속 좌선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내용이 내 모릿속에 여전히 맴돌면서 매우 불안했다. 그리고 나서 2, 3일 후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길흉화복은 모두 것이 다 스스로 지은 업이며,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것이다. 절대로 원인을 만들지 않았는데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한 것은 틀림없이 전생에 그들에게 나뿐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본래 나는 죽었어야 할 과보인데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염불 공덕으로 무거운 업의 과보를 가볍게 받은 것이다.

 

<금강경>에도 나온 것과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독송하여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면 그것은 악도에 떨어질 중한 업이 가벼운 업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매우 다행한 일로 여겼다. 만약 그때 염불하지 못했으면 죽어서 틀림없이 삼악도에 떨어졌을 것이다.

 

------------

 

3.죽음의 액난에서 벗어나다

 

나는 금년으로 70세가 되었다. 40여년 전 항주의 유명한 항주성가인 보천구와 요상림에게 사주팔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두 사람 다 나의 수명이 51세라고 하였다.

 

나는 그말을 듣기 전에도 본래 인생이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온갖 풍파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서 속수무책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덕극이 쓴 <기도지귀>를 읽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방법은 바로 보리심을 발하여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 후 날마다 ‘십념염불’을 지속하였다. 당시 나는 내 수명이 51세라는 예언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1950년 나는 큰 국영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날마다 업무와 갖가지 학습, 운동 때문에 비교적 긴장된 생활을 하였지만 남몰래 염불을 지속하면서 ‘번개가 쳐도 움직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 ’견고한 염불심을 갖는 경지에 이르렀다.

 

1971년, 내 나이 51세가 되는 해였다. 그해에 나는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몸이 좋지 않았다. 1분당 심장 박동수가 100까지 자주 올라갔고 또 치질로 대량의 출혈이있었다. 그럼에도 운동과 갖종 학습 일정이 빡빡해서 치료받을 갈 시간초자 없었다.

 

그해 4월 3일 저녁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잠을 잘 무렵 평소 습관대로 침대에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열 번을 묵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는 것이었다. 마치 심장이 몸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면서 가슴이 심하게 답답해졌다. 원래 내가 머물던 기숙사의 전등은 밝았는데 갑자 기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내 앞에서 10미터 정도 되는 곳에 귀신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그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계속해서 염불에 몰두하였다. 약 2분 정도 후에 금색 찬란한 모습이 나타났는데 당시의 장엄한 모습은 정말 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러자 시커먼 귀신의 그림자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 오른 쪽 위에서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 부처님의 오른손을 내린 장엄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배를 올리지 않고 여전히 합장한 채로 염불을 계속했다. 염불소리에 따라 심장 박동이 점점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비몽사몽 속에서 기숙사의 전등은 여진히 밝게 빛나고 있고, 나는 합장한 채 입으로 염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보다 더 불가사의 한일이 일어났다. 치질 때문에 대량으로 출혈이 생겼던 곳에 아무약도 쓰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출혈이 멈추고, 심박수도 분당 80회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부처님의 가피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심 염불은 단지 극락왕생만을 위한 것인 줄로만 알았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부처님의 대자대지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몰랐다. 일심으로 염불하는 삶이 큰 재난이나 병고를 만나게 되면 아미타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감응하여 가피를 내려 액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평상시에도 이러하니 임종에 이르러 일심으로 염불하면 당연히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염불법문은 만 명의 사람이 닦으며 만 명의 사람이다 왕생하며, 만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인광 대사의 법문을 나는 지금 더 깊이 믿으며 의심하지 않는다.

 

-------------

 

4.원귀를 물리치다.

 

석현진 스님은 사천성 출신으로 자는 서귀이다. 출가하기 전에 현의 현장을 역임하는 동안 많은 토적들을 살육하였다. 출가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영파 자계의 오뢰사에 머물때의 일이다. 매일 밤 많은 토적들이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흉폭하게 분노하면서 창을 들고 자기에게 목숨을 요구하는 꿈을 꾸었다.

 

그때 그는 매우 두려웠지만 용맹심을 발하여 오로지 아미타불 염불에 전념하였다. 밤낮으로 쉬지않고 정진하여서 마침내 꿈속에서도 염불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꿈에 토적을 보면 염불로써 그들을 교화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츰 꿈에 나타나는 토적들이 순화되더니 수개월 후에는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진 스님과 가장 오랫 동안 함께 지냇는데, 그는 자주 자신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염불공덕의 불가사의함을 찬탄하였다.

 

 

홍일대사가 직접 듣다 <정종문변>에서 발췌

 

________________________

 

5.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낫다.

 

사람의 질병은 대부분 업보 때문에 생긴다. 업보가 다 하지 않았더라도 병이 빨리낫기를 원하면 부처님의가피를 구해야 한다. 세상에는 실력 있는 명의들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불보살님께 기도하여 치유된 사례가 많이 있다. 최근에 소료 군과 같은 경우가 염불을 통해야 구제된 사례이다.

 

소료악 군은 항주출신으로 19세때 상해에서 중병을 앓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의사가 진단을 해보더니 이병을 치료할 희망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소군이 병원에 입원한 지 7일 후 저녁에 갑자기 소 머리에 말의 얼굴을 한 귀신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의 침대 곁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병실 안은 전등 빛이 매우 밝았고, 그의 정신도 명료 하였다. 그는 이 귀신들이 자기를 잡으러온 것이며, 자신이 곧 죽게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일어나 생각했다. 만약 귀신이 있으면 받드시 불보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무아미타불”하고 큰소리로 염불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염불을 시작하자 갑자기 귀신들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감히 그의 몸 근처에는 접근하지 못하였다.

 

소료 군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의 염불이 정말로 부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귀신의 습격도 능히 물리치는 것을 보고는 일심으로 계속 염불하였다. 귀신들이 그를 붙잡지 못하자 나중에는 염라대왕이 직접 나왔다. 염라대왕은 녹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천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미타불 염불소리에 수레가 멈추어 염라대왕도 소 군의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위급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군은 염불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의사들이 할 수 없이 그를 다른 병실로 옮겼다. 그 뒤에도 그는 계속 염불을 했는데, 약 5일이 되자 갑자기 금칠 차란한 광명이 나타났다. 마치 하늘의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래로 내려 오면서 차츰 커지 더니 온 세상을 비추었다.

 

그 광명 속에 한분의 금빛 부처님이 공중에 우뚝 서 계셨는데, 부처님의 발 아래에는 금색 구름이 있고 부처님의 몸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부처님은 왼손에 염주를 들고 합장하신 채 소군을 마주보시며 미소 짓고 계셨다. 더 없이 자비로운 얼굴에 매우 친근한 모습이었다. 아미타 부처님이셨다.

 

귀신들의 무리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잠시 후 부처님의 모습도 사라졌다. 소군은 아미타부처님의 강림을 친견하고 흥분했지만, 병으로 인한 고통은 이미 사라졌다. 그 다음날 퇴원하였는데, 마치 정상적인 상태로 다 회복된 것처럼 몸이 상쾌했다.

 

-----------------

 

6.고양이의 원한을 풀다.

 

1998년 안휘성 구화산 천지암에 주석하는 비구니 태 스님이 나를 찾아아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였다. 스님은 최근 매일 밤 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자신의 목숨을 요구한다고 했다. 너무나 두려워서 꿈에서 깨고 나면 그 밤에는 더 이상 잠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신이 어릴 때 개구쟁이라서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 죽인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호북성에서 출가하여 이곳 구화산으로 왔고 그 일은 이미 수십 전 전의 일인데 고양이가 잠을 잘 때마다 자신을 찾아온다 하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돈을 들여 큰 절에 가서 큰스님을 청하여 구병시식이나 천도재를 올리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었다.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이 존경심과 청정심으로 하면 천도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무성의하게 대충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스님이 직접 그 고양이에게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를 이야기하고 염불해주어서 극락왕생하게 하는 것이 더 났습니다. 스님에게 원한을 품은 고양아가 극락왕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 원한이 풀리겠습니까?

 

그 고양이는 수십 년 동안 당신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먼 곳으로 와서 출가하고 절에 머물지라도 그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젊어서 기가 왕성할 때는 고양이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늙어서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쇠해져서 꿈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염불왕생을 구하지 않으면 스님이 임종을 맞았을 때 더 공포 스런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들이 세세생생 맺어온 원한의 상대가 어찌 이 고양이 한 마리뿐이겠습니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을 것인데 우리가 언제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사대비하신 아미타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이런 죄의 근기를 미리아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발원하셨습니다. 수많은 겁 동안 수행을 쌓은 공덕이 “나무아미타불”여섯 글자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명호를 염하는 중생은 모두 극락왕생하여 성불하게 되는 공덕입니다. 단지 우리들은 일심으로 믿고 아미타 부처님께 의지하면 됩니다. 여섯 글자의 명호를 염하기만 하면 반드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그 고향이도 구제하여 극락세계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마음은 평등하며 사람과 축생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떤 이가만약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극락정토를 수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더욱 강할 것입니다. 무엇 대문에 수십 년 동안 괴롭게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목숨을 요구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스님이 스스로 믿으며 염불하고 또 고양이에게도 그렇게 설법하여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십시오. 그러면 둘 다 모두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니 원한은 일부러 풀지 않아도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천도불사가 아닙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직접 천도하시어 서방정토에서 성불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략 이렇게 말하였다. 또한 “시방의 중생이 만약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는 아미타 부처님의 대비의 서원과 “십념이라고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하는”도리를 반복하여 말하였다.

태 스님은 매우 기뻐하면서 물었다. “내가 돌아가서 염불할 때 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놓고 이렇게 설법해야 합니까?”

 

“그렇게 해도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고양이는 그림자처럼 수십 년 동안 당신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전에 스님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세우지 않아도 스님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 적이 없습니다. 인과 는 허망하지 않아서 마차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방금 우리가 나눈 대화를 고양이는 모두 남김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고양이를 위해염불하고 아미타 부처님께서 자비로 제도하시는 도리를 가르치면 고양이가 반드시 듣고 극락왕생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3일이 지난 후 태 스님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기쁨이 충만하였다. 나를 만나고 사찰로 돌아갔던 그날 저녁부터 고양이가 오지 않았고, 그래서 며칠 동안 잠을 잘 잤다고 하였다. 태 스님은 겨우 고양이 한 마리를 물에 빠트려 죽게 하였는데 줄곧 붙어서 이 먼 구화산까지 따라왔고 수십년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중생의 업력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로움 가득한 서원을 듣고 나서 바로 고양이가 마음에 맺힌 원한을 풀었으니, 부처님의 서원과 광명이 가득한 여섯 글자의 명호는 더욱 불가사의하다.

 

성안 법사 진술, 성소법사 기록

 

----------------------

 

7.지옥의 괴수를 물리치다.

 

인간세계에 살면서 지옥에 가서 업무을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대략 십수 년 전 소주에 홍 거사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열 몇 살 때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집안 사람들이 급히 의사를 청해 진료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몸에서는 여전이 열이 높음과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인사불성일 뿐 죽은 것은 아니라서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다. 3일 정도 지나자 그는 저절로 깨어났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그는 저승에 다녀왔다고 한다. 두명의 저승사자가 찾아와서 부탁하여 지옥에 가서 공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인간세계로 돌아와 깨어난 뒤에 이 일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이후 한 해에 최소한 십여 차례는 지옥에 다녀왔고 그때마다 2, 3일 정도 걸렸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자, 그의 가족들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홍 거사가 저승세계의 관리라는 것도 알게되었지만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지옥의 중생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친분 있는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조금 내비치면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경건한 염불 수행자로 살았는데, 한 번은 가족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구절의 “아미타불” 염불이 인간세계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만 지옥에서는 그 효력이 매우 크다고 하였다. 그가 겪은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지옥에서 공무를 보는데, 한 번은 갑자기 하얀 수염을 기른 스님 한 분이 나타났다. 그 스님은 모습이 매우 장엄했는데, 손에는 불자를 들고 염라대왕전으로 왔다. 그 스님을 본 염라대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 스님은 지옥에서 막힘없이 어디나 다니셨는데, 지옥 중생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시면 수시로 염불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단지 스님이 입에서 “나무아미타불” 한 구절만 나오면 지옥 중생에게 고통을 주는 형구가 모두 일시에 정지되는 것이었다.한번은 한 무리의 험상궂은 야수가 어떤 사람을 쫓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평소 홍 거사가 알던 사람이었는데, 공포에 질려서 필사적을 달아나고 있었다.

 

야수에게 쫓기던 그 사람이 홍 거사 쪽으로 달여왔다. 바쁘게 엄무를 보고 있던 홍 거사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했다. 흰 수염을 기른 스님이 하시던 염불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염불이 효력이 있었다. 쫓아오던 야수의 무리가 즉시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이 일로 홍 거사는 염불의 수승함을 잘 알게 되었고, 후에 매우 경건한 염불 수행자가 되었다.

 

백성장로 진술

 

--------------

 

8.임종시 원귀를 물리치고 왕생하다.

 

대만 용해시 각미진 왕강촌에 사는 농민 곽아장의 극락왕생 이야기이다. 곽아장 거사는 금년(1995년) 음력 8월 26일에 60세의나이로 염불을 하면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에 힘쓰면서 살아왔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부터는 농사를 그만두고 양어장만 경영하였다.

 

그는 위장이 나빠서 자주 고생했는데 금년 들어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위암 말기로 판명되었다. 8월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통증 때문에 고통이 심해서 2시간마다 진통제를 맞았다. 병고에 시달리다 보니 성미도 호랑이같이 사납게 변했다. 그런데 그는 자꾸 바다 괴물이 보인다고 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의 아내조차도 문 앞에 원귀들이 머리를 기웃기웃 들이미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러던 중 다행이 염불수행을 열심히 하는 스님을 뵙게 되었다. 스님은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아미타불 염불을 권했다. 하늘이준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면 조속히 회복할 것이고, 만야 명이 다했다면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으며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들은 곽 거사는 매우 기뻐하며, 염주를 돌리며 전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염하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모두 그를 도와서 조념염불을 했다.

 

염불을 시작한 뒤 암으로 인한 통증이 많이 줄어들어서 진통제 주사도 하루에 2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물고기 형상을한 남자 괴물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닷세 정도 지나고 나서는 침대에서 가볍게 내려와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방 한 쪽 벽에는 세 분의 불보살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상이었다. 그런데 그 세불보살상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인간세계를 떠날 때가 다가온 것을 알았다. 그는 침대에서 꿇어 앉아 합장 자세를 취했는데, 일생 동안 한 번도 이런 자세를 한 적이 없었다. 합장한 채 염불을 하는 그이 얼굴에는 점차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평안하게 극락정토에 왕생한 것이다.

 

숨을 거둔지 8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몸의 온기가 식었지만 머리 위 백회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던 배도 쑥 들어갔다. 염을 하기 위해서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힐 때 온몸의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얼굴은 마치 살았는 듯 하였다.

 

이런 상서를 보이는 것은 곽 거사가 극락정토에 왕생했다는 증거이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온 가족들의 꿈 속에 그가 나타났다. 평안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가족을 만나러 온 그의 뒤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세분 불보살님이 계셨다.

 

임우천 씀 . 1995. 11. 25

 

-------------------------

 

9.숙세의 원혼을 제도하다

 

보길 스님은 대만출신의 비구니스님이다. 이 스님은 출가하기 전 속가에 있을 때 나쁜 말로 남 욕하기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과 악연을 맺었다. 나중에 신죽 청초호의 영은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두 눈을 모두 실명하여 장님이 되었다. 70여 세가 되었을 때 다시 병이 둘었는데, 온 몸이 퉁퉁부어 올랐다. 그래서 무상 선사가 폐관수행하고 있던 금강동으로 찾아가 울며 하소연하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습니다. 저를 고해에서 구제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무상 선사가 부탁을 듣고 보길 스님의 거처에 와보니 소변을 누고 치우지도 못하여 매우 더럽고 악취가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보길 스님이 울면서 말했다. 10여 명의 원귀가 밤낮으로 자기를 때리는데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심지어 그 원귀들의 이름까지 말하며 구제해주기를 간청했다. 보길 스님에게 속가 남동생의 부인이 병문안을와 있었다. 무상 선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의 시누이 되는 저 스님이 부르는원귀들의 이름을 아십니까.”

“모두 스님이 출가전에 해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 사람들이 원혼이 되어 나타나 스님을 때려서 온몸이 부어오르고 살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무상 선사는 보길 스님을 위해 방을 청소하고 침대 한 가운데구멍을 내고 그 아래에 통을 놓아 대소변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보길 스님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울고 짖으며 몸부림치다가 그 구멍속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무상스님이 간곡함 음성으로 말했다.

“스님이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염하며 서방극락정토왕생을 구하여야 비로소 이고득락 할 수 있습니다.”

“눈 앞이 캄캄해서 염불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개 하는 염불을 따라서 하십시오.”

그렇게 염불을 시작했는데 한 시간 가량 지나자 보길 스님이 갑자기 기쁨에 찬 얼굴로 말했다.

“지금 제 앞에 밝은 광명이 보입니다. 나를 때리며 괴롭히던 그 10여 명의 원귀들이 저쪽에서서 웃고 있습니다.”

 

그때 그 원혼들이 보길 스님의 몸을 빌어서 말했다.

“무상 스님의 자비에 감사 드립니다. 지은 죄업이 막대한 저 앞 못 보는 노인네가 뜻밖에 저희들을 고통에서 구제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무상 스님이 말했다.

 

“원한은 풀어야 되지 맺으면 안 됩니다. 당신들도 함께 따라서 아미타불을 염하십시오. 그러면 죄업이 있더라도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비로소 생사의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길스님에게도 경건한 마음으로 따라서 함께 염불하게 하였다. 다시 한 시간 남짓 염불을 계속 하였다.

 

“지금 온 천지에 광명이 가득합니다. 저 구름 위에 흰옷을 입은 성스러운 분들이 우리들을 영접해서 서방극락세계로 갑니다.”

보길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합장한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평안하게 왕생하였다. 부풀어 올랐던 스님의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 오고 조금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상서가 보였다.

 

-염불감응견문기-

 

죽음에 이르러 고통에 핍박받고 원혼이 나타나니

어떤 법으로 구제할 수 있는가?

 

오직 부처님꼐 의지하여 염불할 뿐이네.

부처님께서 광명을 비춰 보호하시니

 

몸과 마음이 온안하고 나와 남이 모두 제도되는구나.

염불을 몰랐다면 지옥에 떨어졌으리

.

삼악도를 전전하며 어느 떄나 구제될 수 있을 것인다?

염불공덕 불가사의하니,모두 아미타불의 대비 원력이네.

 

- 염불감응견문기- 를 지은 혜정스님의 게송

 

 

------------------

 

10.전생에 도살한 소의 혼령을 제도하다.

 

사천성 남부에 사는 유정밀거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섭씨아주머니의 이야기이다. 섭 씨는 자신이 과거 생에 도살한 96마리 소의 귀신 때문에 자주 고통스런 발작에 시달리고 있었다.

 

1932년 2월 유거사 집에서 일을 돕고 있던 중 갑자기 심한 발작이 일아났다. 섭 씨의 온몸에 붉은 부스럼이 돋아났는데 통증과 가려움이 몹시 심했다.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은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가 강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주의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막아서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하고 소동을 부리면서, 자신이 전생에 소를 도살한 것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유정밀 거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이유를 섭 씨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주인님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십니다. 저는 섭 씨가 아닙니다. 저는 먼 과거생에 섭씨에게 죽임을 당한 소입니다. 그래서 지금 섭 씨에게 목숨 빚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 거사가 그들을 타일렀다.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째서 섭 씨 한데 죽은 것만 생각하느냐? 사실은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그 과보로 소로 태어났고 또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무슨 이유로 너희 목숨을 빼앗았겠느냐?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인 것은 잊고, 단지 그녀가 너희를 죽인것만 기억하는구나. 이렇게 원수를 찾아 돌고 도는 것을 고통스런 윤회라고 한다. 영원히 서로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그 말씀이 옳다면, 저희들이 잘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목에는 아직 피가 흐르고 칼에 잘린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고통 때문에 섭 씨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걱정마라. 내가 그 고통을 멈춰주겠다.”

우 거사는 찻잔에 차를 반쯤따라서 감로주를 세 번 외운 뒤 섭 씨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그러나 섭 씨는 찻잔을 들지 못했다.

 

“소의 발굽이 누르고 있어 찻잔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찻잔을 들어 먹여주었다. 섭씨는 얼른 차를 받아 마시드니 기뻐서 말했다. “정말로 신묘한물입니다.”

 

그녀는 목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미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만지면서 말하기를 “소 발굽도 이미 벗어버렸습니다. ”다시 머리를 만지면서 “뿔도이미 없어졌습니다.”

유거사는 이어서 윤회의 고통을 설명하고 또 극락세계의 안온한 즐거움과 영원히 생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나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느냐?”

“거사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어찌 원치않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의 죄업이 깊고 무거운데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발원하여 일심으로 염불하며 저극락세계를 흠모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아미타부처님을 청하여 너희들을 영접하게하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오랜 동안 먹이를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프니 먼저 먹을 것을 주세요.”

 

우 거사는 그렇게 하기를 허락하였다.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과 밥을 담아 변식진언을 일곱 번 염하고 나서 대나무 밭에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의 혼령들이 말했다.“

우 거사는 곧 빈 공터에서 향과 초를 사르며 아미타 부처님을 공손히 청했다. 그리고 왕생주, 반야심경, 대비주와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였다.

 

함께 지켜 보던 유거사의 처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보아라. 아미타부처님께서 장육금신으로 오셔서 높이 서계신다. 모두 빨리 무처님을 따라 가거라!”

“너희들은 극락정토가 보이느냐?”

“보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하냐?”

 

96마리 소의 혼령들이 극락정토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정토경전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말했다.

“저희들은 여러해 동안 섭씨를 괴롭혀서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거사님의 가르침과 인도로 저희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원한이 하루아침에 녹았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섭 씨도 아미타불염불을 일심으로 하여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랍니다. 거사님과 거사님의 가족들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저희들도 반드시 부처님을 따라서 맞이하겠습니다. 오늘 저희를 위해 염불해주신 것은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후 조용해졌다. 얼마 후 섭씨 아주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말하였다.

“내가 마치 꿈속에서 성에 갔다가 서쪽 거리로 가는데 한 무리의 흉포한 소때를 만났습니다.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갑자기 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 경치가 변했는데, 아름다운 숲 가운데 평평한 풀밭이 있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갑자기 밥 냄새가 강하게 나더니, 소떼가 숲에서 밥을 먹으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 후 다시는 소의 혼령이 섭씨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리고 섭 씨도 채식 하면서 열심히 염불수행을 하였다. 유정밀 거사는 1934년 봄 서강에서 출가하였다. 법명이 혜정이다. 위의 이야기는 출가하기 전에 겪은 일은 기록한 것이다.

 

----------------

 

11.어떤 비구스님의 전생 기억

 

적공(寂空)스님의 전생과 극락왕생발원

 

여러 수행자들이여, 이글은 내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가르침 청하여 시방삼세의 모든 본존이신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것으로 진실하여 하나의 거짓도 없음을 밝혀둔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여러분이 나의 일을 거울 삼아 교훈을 얻어서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이다. 여러분이 하루라도 빨리 불도를 수행하려는 바른 마음을 일으키고 큰 보리심을 발해서 용맹정진하고 계를 지키며 일념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여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육도윤회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란다.

 

또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곧바로 보리를 증득하고 무상정등정각을 이룬 뒤 각자의 원(願)에 따라 다시 돌아와 여섯 가지 윤회의 세계에 몸을 나투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기 바란다.

 

 

나의 속가 성은 이(李)씨이다. 1989년 3월 해공(海空)법사를 은사로 불문에 귀의하였고,적공(寂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불가에 입문한 뒤, 하루하루 예불과 좌선을 열심히 하였다. 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늘 경전을 가까이하면서 불법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1992년 8월 25일 저녁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 정좌하고 있었다. 저녁 10시 경 갑자기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서 나 자신의 과거 생의 모습을 휜히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너무나 슬퍼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열심히 불법을 공부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94년 8월29일 저녁 법당에서 염불을 할 때는 더 나아가 속가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의 과거 생의 모습까지 휜히 알게 되었다. 그 후 숙명(宿命) 즉, 과거생의 모습과 윤회에 대에 여러 차례 불보살의 증명을 얻게 되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과거생의 기억은 여러 차례 증명을 통해서 입증된 것을 비로소 감히 밝히는 것이다.

 

600년 전 나는 출가한 비구였다.

나는 20세에 출가하여 삼당대계(三堂大戒)를 받고 50여 년을 수행하였다 .선한 업도 많이 지었지만, 속세의 일에 탐욕을 일으키고 연연하여 인간계와 천상계의 복된 과보를 바라고, 정토왕생은 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육도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삼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으며 빚을 갚아야 했다.

 

스님으로서의 삶을 마친 뒤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향락을 탐하게 되었는데, 온 종일 술과 여자를 탐하며 지내는 생황을 하였다 .내 주변에는 여덟 명의 시녀가 있었는데, 비록 여색을 탐하지는 않았지만 명예를 좇고 재물에 욕심내고 이익을 탐한 과보가 커서 악업을 지었다.

 

하지만 전생에 출가수행한 공덕이 크기 때문인지, 목숨을 마친 뒤에 벼슬아치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뒤 많은 병사를 거느리는 장군이 되었는데, 그 풍모가 당당하고 늠름하였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었다. 부귀영화가 넘쳐서 다 누리지 못 했고, 산해진미도 또한 넘쳐서 다 먹지 못했다.

 

온 종일 주지육림 속에서 보내곤 했는데, 당시 24명의 시녀를 옆에 두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면서 다시금 온갖 나쁜 업을 짓게 되었다. 특히 병사들에게 명령 내려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람의 머리를 벤 뒤 그 시체를 강이나 개천에 버렸고 수풀에 숨은 적군도 모두 찾아내어 죽이는 등 많은 죄업을 지었다.

 

그리하여 그 몸을 벗은 뒤에는 삼악도에 떨어져 열 번을 윤회전생하면서 악업의 과보를 갚아야 했다.

 

먼저 세 번은 두꺼비의 몸을 받았다.

왜냐하면 장군으로 살때 많은 사람의 머리를 베어 죽이고 그 시체를 개천에 버렸기 때문이다. 그 과보로 머리 없는 두꺼비로 태어나 수시로 막대기에 맞고 낚시에 걸리고 복부가 뒤집혀서 물에서 죽어서 그 시체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났다. 심지어 근육이 뽑히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를 갚았다.

 

이렇게 세 번 두꺼비의 몸을 받은 뒤, 다시 뀡의 몸을 네 번 받았다.

그 이유는 장군으로 살 때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두려움에 떨면서 수풀에 숨어있는 적군을 찾아내서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입의 쾌락을 탐하여 온종일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살았다. 그 과보로 뀡의 몸을 받아서 창에 찔리고, 칼에 베여서 지지고 삶기고 볶이는 고통을 당하면서 빚을 갚아야했다.

 

네 번이나 뀡의 몸을 받고도 악업을 다 갚지 못하여, 다시 돼지 몸을 세 번 더 받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먹기만 좋아하고 일하기는 싫어했기 때문이다. 시녀들이 밥을 가져오면 입을 벌려 먹고, 옷을 가져오면 손을 벌려 입히게 하고, 늘 고기 먹을 생각만 하면서 나쁜 업을 지었다.

 

그 때문에 돼지의 몸을 받아서 먹다 남아 버리는 음식과 상한 음식을 먹게 되었고, 채찍이나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이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천 번 만 번 칼에 잘리고 뜨거운 솥에 들어가서 갖가지 고통을 당하였다. 두 번 사람 몸을 받아서 입의 쾌락을 탐한 악업의 과보를 이렇게 갚게 되었다.

 

일체의 고통과 모든 즐거움은 모두 나 스스로 지어서 직접 받는 것 (자작자수自作自受) 이며, 인과응보는 참으로 조금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여러 수행자들이여, 내가 삼악도를 윤회전생하면서 받은 갖가지 고통에 대해 알았을 때 너무도 상심하여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지극히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600년 전 수행으로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했으면서도 인간과 하늘의 복을 탐하고 왜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는가? 이 헛된 탐욕때문에 임종의 자리에서 한 생각 잘못하여 열 번이나 삼악도에 떨어졌구나.

 

붉은 흙먼지 가득한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600년을 헛되이 윤회하였구나. 어찌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니겠는가. 600년!!! 이토록 긴 세월을 그리 비천하게 보내다니 또 어찌 부끄러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떤 귀신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인과의 가르침을 믿고 생명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진실로 자기 자신이 윤회해온 과정을 알고 나서 어찌 본사 석가모니불, 본존 관세음보살과 시방삼세 일체재불, 모든 대보살의 자비로운 가피에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제자가 자기의 본사, 본존의 면전에 꿇어 앉아 자기의 숙명을 이해하고 불법을 배우면서 또 한 단계 진일보하였을때, 또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 해야 불보살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열심히 불법을 배우고 일념으로 염불하면서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걱하였다. 사람의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 배우기 어려움을 생각하자, 현생에 어렵게 얻은 사람의 몸으로 열심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불보살님께 죄송하고 부모님께 죄송한 일이다.

 

옛 성현께서 말씀하지 않았는가 "사람 몸얻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얻었고, 불법 듣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들었네, 이번 생에 불국정토에 가지 않으면 다시 어느 때에 갈 수 있으리오?"

 

사람 몸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번 생에 반드시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수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귀신이 왔을 때 뒷 일을 기약할 수 없다. 사람이 임종에 이르렀을 때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 즉,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연꽃 가운데 화생하여 부처님을 뵙고 열심히 수행하여 성불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해냈는가? 아니다. 나는 잠잘때 꿈에 빠지며 또한 망념도 많다. 만약 꿈을 꿀 때조차 정념(正念)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임종의 자리에서 반드시 서방극락정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서원하였다.

오늘 이후로 수시로 계(戒)의 조문을 굳게 기억하여, 지계(持戒)의 금강 같은 날카로운 검으로 오욕육진(五慾六塵)을 베고 삼독(三毒)을 소멸하겠다. 자주자주 무상(無常)을 생각하고 항상 사성제를 사유하며 자비심을 닦아 일체 중생을 숙세의 부모로 여기고, 늘 삼보와 스승의 은덕을 기억하겠다. 생각 생각마다 무상보리를 잊지 않고 용맹정진하겠다. 계를 지키며 염불하여 성불할 때까지 영원히 물러나지 않겠다. 나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여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을 것을 서원한다.

 

나는 비구로 살면서 열심히 수행하였으나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두 생에 걸쳐 인간의 복보(福報)를 얻었다. 그러나 선을 쌓고 덕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갖가지 악을 지어 삼악도에 열 번이나 떨어졌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으로 그 과보를 갚고 나서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600년 세월을 헛되이 보내며 인과응보를 절감하였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어찌하여 아귀도와 지옥도에는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내가 출가하여 불법을 배운 공덕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부유한 집에 태어나 갖가지 악업을 지었지만 단지 축생도에만 떨어져 윤회하며 과보를 갚은 것이다.

 

악업의 인연이 다하고 나서, 불법에 대한 종자가 다시 한번 좋은 인연을 만나서 싹을 튀웠고 그리하여 현생에 다시 출가하여 불법배우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불법의 종자를 심은 다음에 이 종자가 썩지 않는다면 적당한 토양과 온도를 만났을 때 곧 싹을 튀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는 대광명장(大光明蔣)이며 한 번 이근(耳根)을 스치면 영원히 도(道)의 종자가 된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고 쫑카파 대사가 『보리도차제론』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출가생활 오십년에 생사해탈 구하잖고

스스로를 얽어매어 다음생의 복된과보

생각하며 닦았다가 육백년을 윤회했네

부귀공명 비유하면 칼날끝의 꿀과같아

삼악도에 떨어져서 모든빚을 갚게되네

고기반근 탐닉하여 여덟냥을 갚게되고

금수축생 떨어져서 여러차례 윤회했네

참선하여 숙세일을 명백하게 알고보니

스승님은 성인이요 내자신은 범부로세

금생과보 확실하게 전생인연 때문이니

스승에게 절하오며 금강선을 닦아가네

굳센정진 영원토록 물러나지 아니하고

곧장바로 보리좌의 구품연대 오르리라.

 

 

사천성 중강(中江)에서 1995.10.17 일

-적공(寂空) 스님-

 

 

----------------------------------------

 

이상으로 위의 모든 이야기는 불광출판사에서 나온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이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실화들을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들은 자신이 아프거나 가족 등 주변 분이 아플 때나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주시길 간곡히 권합니다.

 

나무아미타불

 

 

Posted by 慧蓮(혜련)
|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A0%95%EC%A0%84%EC%8A%A4%EB%8B%98&sp=SBSYAQE%253D

Posted by 慧蓮(혜련)
|

염불자를 내영하시는 극락 성중도

 

 

아미타불 명호와 황제의 초청장 비유

 

예를 들어 왕궁은 국왕이 거처하고 문무대신들이 국정을 위해 출입하는 곳으로, 일개 백성이 왕궁에 가려면 자신의 신분에 의지해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국왕의 소견召見이 있고, 국왕의 명령이 있고, 국왕의 성지가 있다면 백성이 국왕을 알현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대중이 답하기를) 알현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약간의 상상력을 갖고 저에게 협조를 해주셔야 합니다. 모두 눈을 감으십시오. 시간이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현재의 이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청나라의 두루마기와 마고자를 입고 머리는 길게 변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하문시도 없고 단지 작은 노점들과 찻집들만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합니다.

“영명英明하신 황제페하 만세!”

어떤 사람이 놀립니다.

“아, 이 영감! 언제 한번 영감도 자금성의 금란전金鑾殿에 가셔서 황제페하를 알현하여 진급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얼마나 좋겠소? 덩달아 덕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잠꼬대 그만 하소, 우리 같은 일개 백성이 어떻게 황제를 뵐 수 있겠소!”

 

이 때 마침 옆에 기개가 비범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황제를 공경하고 찬탄하는 소리를 듣고, 게다가 황제를 뵙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절실하다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황제를 뵙게 할 방법이 있습니다!”

“응? 당신이 누구신데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나에게 다 방법이 있소!” 그리고는 종이와 붓을 가져와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요?”라고 묻고는 그의 이름을 종이위에 적습니다. “아무개가 입궁하여 알현할 것을 특별히 허락한다”, 그 밑의 낙관은 ‘강희康熙’였습니다. [주: 청(淸) 성조(聖祖)의 연호(1662~1722)]

 

강희황제의 성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럼 이 백성은 황궁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중)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일반 백성·오탁악세의 범부들이고, 우리가 칭념하고 있는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는 보통 글자가 아니라 아미타불께서 직접 초청해 주시는 서명입니다! 아미타불께서 서명하신 초청장을 들고서 아미타불의 국토에 가는 것은,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아미타불께서 제18원에서 말씀하시기를,

“시방중생(당신과 나)들이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초청) 내지 십념(서명)을 한다면, 반드시 나의 나라에 왕생한다”고 하셨습니다. 육자명호가 바로 아미타불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지聖旨이고, 육자명호가 바로 아미타불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초청장이자 소견서召見書입니다.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불러주시는 육자명호가 있는데, 어떻게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겠습니까?

 

 

이 외에, 예컨대 우리가 황제를 알현하려고 하는데, 당신이 말단 관리인 현령縣令를 찾아서 서명을 받는다면 쓸모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여러분들이 말해보세요, 현령이 당신에게 서명을 해주면서 “됐소! 나의 글을 들고 직접 찾아가면 될 것이네”

라고 말한다면 쓸모가 있겠습니까?

(대중이 답하기를)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요, 지방행정 장관을 찾아서 서명을 받으면 쓸모가 있겠습니까? 쓸모가 없습니다. 그도 감히 서명할 수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각 부처의 최고 장관을 찾아가 서명을 받으면 쓸모가 있겠습니까? 역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이 육자명호는 아미타불께서 직접 우리에게 분부하신 것이고, 기타 모든 법문은 마치 최고 장관이나 지방 장관이나 말단 관리와 같은 것이어서 그들을 찾아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려 한다면, 그들도 전부 손을 저으면서 “아,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위덕이 없습니다”며 우리에게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면 ‘당신은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고 일러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면 아미타불의 명호에 승탁乘託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육자명호 속에는 아미타불의 위없는 공덕을 포함하고 있고, 또 육자명호는 아미타불께서 우리들에 대한 직접적인 선소(宣召:부처님의 부르심)여서 마치 국왕의 소견과 같고 국왕의 호령과 같아서 아무런 장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모든 신하와 백성들에게는 전부 이런 위덕이 없습니다. 경전에서는 ‘시방제불이 다 같이 무량수불의 위신공덕威神功德의 불가사의함을 찬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는 이 『아미타경』속에서 우리에게 명호를 집지하는 것이 바로 많은 선근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명호를 집지함’을 제외한 모든 행은 전부 적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이어서 왕생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치입니다.

출처 純淨時代

Posted by 慧蓮(혜련)
|

가장 좋은 인연법(因緣法)은 염불법



#

인연(因緣)

원인과 결과를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원인인 인()

조건인 연()이 만나면

결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연법(因緣法)

인연과법(因緣果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생긴 결과입니다.

이것에 벗어나는 예외는 하나도 없습니다.

 

#

중생이 6도 윤회의 고통에 빠지는 것도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도

모두 인연법입니다.

인연법을 연기법이라고도 합니다.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결국 죽는 것도 연기법입니다.

무명 때문에 결국 태어나는 것도

인연법입니다.

 

#

만나서 헤어지는 것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도

인연법입니다.

일어나서 사라지는 것이

원인과 결과입니다.

그래서

일어난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맙니다.

 

즐거움을 원인으로

괴로움이 있습니다.

또한 괴로움을 원인으로

즐거움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즐거움이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습니다.

태어날 원인이 없으면

태어나는 결과가 없습니다.

괴로울 원인을 만들지 않으면

괴로운 결과가 없습니다.

 

모든 인연의 근본원인은

어리석음과 욕망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내 마음대로 하려는

원인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내가 걸리지 않는 원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행복도 불행도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내가 짓는 행위의

결과입니다.

좋은 행위를 하면 좋은 결과가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쁜 결과가

나옵니다.

 

부처님은

생사윤회의 원리를 깨달아

무명의 깨뜨리고

생사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위없는 행복을 찾으신 분입니다.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여

위없는 행복을 찾아갑니다.

 

정토법문도 인연과법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생사윤회를 벗어나고

만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으로

영겁의 세월을 닦아

극락정토를 건설하신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아미타부처님의 48가지 원 중에

18원에 의하여 중생들이

평소 염불하다가 임종 시에 10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면그 공덕으로

누구나 극락세계에 태어납니다.

 

극락세계에 태어나 부처님 수업을 받아

끝내는 모두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즉 생사윤회를 완전히 벗고

아미타부처님처럼

만 중생을 제도하게 됩니다.

 

이 정토법문은

간결하고 요긴한 법문으로

염불을 지심으로 하면

이것이 원인이 되어살아생전에는

크고 작은 일을 다 성취하여 행복을 누리고

사후에는 가장 평안한 극락세계에 태어납니다.

이 또한 인연과법입니다.

 

그렇습니다.

극락에 태어날 인연을 지어야

극락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극락에 태어나는 인()

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극락에 태어나는 연()

아미타불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임종 시에 10번 부르는 것도 연()입니다.

이 인연으로 극락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인연은

극락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염불하면 염불이 원인이 되어

지금 바로 마음이 편하게 되고

사후에는 확실히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인연을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인연법은

염불법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인스님-

Posted by 慧蓮(혜련)
|

예시 (例示) 닭을 위해 염불하자 부처님께서 닭을 내영하다  

 

저희 처형의 딸, 다시 말해 저희 작은 조카딸은 어릴 적부터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제 아들이 막 출생할 무렵, 겨우 한 살 남짓밖에 안 되던 조카가 장모님과 함께 저희 집에서 한 달 정도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조카가 혼자서 뛰어노는 것을 보고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동생하고 놀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집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기에 다시 “동생이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더니, “둘째 고모의 뱃속에 있자나요.”라고 답했답니다. 조카딸의 집 근처에 있는 임산부들은 뱃속에 들어있는 애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조카가 말만하면 정확히 맞췄답니다. 여러 번 말했지만 매번 맞았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자주 조카딸한테 물었다고 합니다. 저희 애도 조금은 볼 수 있었습니다. 불경에 설하시길, 어린이들의 마음은 단순하고 질박하며 오염이 적어서 흔히 이러한 능력들이 있으나, 성장하여 지식이 열리게 되면 어릴 때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능력들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2004년 정월 초삼일 날, 저희 가족은 외갓집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장인장모님께서 닭을 잡고 있었는데, 그 당시 이미 불자였던 저는 황급히 마음속으로 닭을 위해 아미타불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간을 염불하고 나서 다시 방에 들어가 닭을 위해 잠깐 동안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그 일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낮에 제가 옆집에 저희 애를 찾으러 갔었는데, 옆집에도 이미 닭을 두 마리 잡아놓은 상태었습니다. 저희 애도 그 곳에 있었고요. 제가 평소에 항상 아들에게 모든 동물들에 대해 자비심이 있어야 하고, 만약에 그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광경을 목격한다면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주라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아들에게 닭을 죽이는 것을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봤다면서 누나(저희 조카딸)와 함께 닭을 위해 염불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아미타불께서 연꽃을 가지고 닭을 데리러 오셨는데, 닭이 연꽃위에 오르자마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올라가서 부처님을 따라 갔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 저는 혼자 조카에게 달려가서 물어보니 두 애의 말이 똑같았습니다.  

 

저녁식사를 할 때, 저는 갑자기 아침에 장인장모님께서 죽였던 그 닭이 생각나서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물었지요. “너희 집의 닭은 어떻게 된 거니?” 조카는 생각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아미타불이 데려갔어요.”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닭을 잡을 때는 아직 이른 새벽이어서 조카딸이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닭을 위해 염불한 것을 조카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물었지요.


“네가 어떻게 안 거니?” “오늘 아침에 꿈속에서 봤어요. 꿈속에서 아미타불이 분홍색 연꽃을 가지고 우리 집 닭을 데리고 갔어요.” 조카의 대답이었습니다.  경전에서 설하길, 아미타불께서 사십팔대원을 세우셨는데, 오로지 죽은 영가들을 서방으로 영접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닭도 중생이므로 누군가 염불해준 인연으로 서방에 왕생한 것은 이상할 것도 없겠지요.


제 생각에는 만약에 시장을 가는 사람마다 염불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부처님을 따라서 서방에 왕생하겠습니까! 닭이 스스로 공부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도와서 염불했음에도 역시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의 지능은 더욱 수승하므로, 먼저 불경을 읽어서 이치를 깨닫고 나서 열심히 수행을 한다면 극락왕생이 더더욱 쉽지 않겠습니까?  

 

                 (이강李剛 2006년 5월 20일 광주에서)


 -------------------------------------------


 동물이 극락왕생 할 수 있는 이유

 실예 ‘닭을 위해 염불하자 부처님께서 닭을 내영하다’에 대한 법문

 

일반적으로 정토왕생을 하려면 설사 성인이 아니다하더라도 지혜가 뛰어나고 용맹정진하는 대수행자이어야 하고, 설사 대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선근이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전에서 설하기를 일생 동안 악업만 짓고 선이 없는 사람이 다음 생에 반드시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하지만, 그 사람이 임종할 때에 떨어질락 말락 하기 전에 한번만 염불해도 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러나 이 왕생사례는 더욱 기이하고 또 기이하다:

 

첫째, 왕생자는 닭이지 사람이 아니다.

 

둘째, 닭자신이 염불한 게 아니라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닭을 위해 염불해 주었다.

 

셋째, 닭에게 염불해준 사람은 고승대덕이 아니고, 또 오래 수행하여 공부가 깊은 사람도 아니며, 단지 초심자, 심지어 불법을 모르는 어린이였다.

 

넷째, 염불자가 단지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면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하였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을 뿐이니, 정신을 집중시키고 청정한 마음으로 관상 등을 한 게 아니다.

 

다섯째, 염불하는 사람의 수가 한·두 사람밖에 되지 않았기에 많은 대중이 아니었다.

 

여섯째, 염불하는 시간이 짧아서 몇 번·수십 번, 몇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곱째, 염불을 할 때가 마침 닭이 막 도살을 당하여 몹시 두렵고 고통스러워 할 때여서 전혀 평소의 여유롭고 편안함이 없었다.

 

여덟째, 하루사이에 발생한 두 건의 닭을 잡은 사건에서 똑같이 염불을 만나 똑같이 부처님의 영접을 받았고 효과도 완전히 똑같았다. 따라서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필연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이한 왕생사례는 기록자 개인이 당일 날 직접 들은 것이고, 게다가 어린이들이 단순하고 질박하여 거짓말로 속일 이유가 없으므로 당연히 믿을 만하다. 현재의 사례로써 옛날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옛날의 기록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옛날의 사례로써 현재의 사례를 검증해보면 현재 사건이 그릇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고금의 시간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다고 하나 아미타불의 구제에는 영원히 변함이 없고 불법의 진리는 시공을 초월한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줄 뿐만 아니라 경문과 조석祖釋에 유력한 사실적 증거가 된다.

 

첫째, 아미타불의 구제의 수승함과 용이함·불가사의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어리석고 둔한 축생들이 불법에 대해 아무런 견문과 수행 없이 겨우 임종 시 도살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아미타불의 접인을 받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으니, 누구라도 염불만 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둘째, 축생류의 중생들은 본래 업장이 두터워서 해탈하기 어렵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축생들이 도살을 당하는 가운데 오직 이 한두 마리만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과거 생에 선근이 있어서 오늘의 인연이 성숙함이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왕생론』에서 “부처님의 본원력을 만나면 헛되이 지나치는 자가 없다.”고 설하신 바와 같다. 또한 축생류의 중생들은 사람들처럼 강한 분별심이 없기 때문에 도살을 당할 때


누군가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줌으로 인해 아미타불께서 바로 몸을 나투실 때에, 도리어 쉽게 저 부처님 명호의 원력과 광명의 섭취에 수순하여 곧바로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할 수 있다. 마치 경에서 “도의 자연스러움”이라 설하시고, 또 “자연히 이끌린다.”고 설한 바와 같다. 또 설하시길, “반드시 윤회를 고리를 끊고 안양국에 왕생하여 단숨에 오악취를 끊게 되리니, 악도는 저절로 폐쇄된다.”고 하셨다. 이는 당연히 축생들에게 어떤 수행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의 도에 수순하여 저절로 이끌린 결과이다.

 

『무량수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량수불의 위신력과 광명은 가장 높고 뛰어나서 모든 부처님의 광명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 만약 삼악도의 괴로움에서 이 광명을 보게 된다면 모두 휴식을 얻으며, 다시는 괴로움을 겪지 않고 목숨이 다한 뒤에 모두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장엄경』 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삼악도 가운데 지옥·아귀·축생들이 모두 나의 나라에 태어나 나의 법화法化를 받고 머지않아 모두 성불하게 된다.”

 

셋째,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사유력과 조작력으로 인해 만약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간다면 쉽게 승천할 수 있고, 만약 삿된 사유로 나아가 온갖 악업을 짓는다면 곧바로 타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는 자는 적고 삿된 생각으로 악업을 짓는 자는 많기 때문에 경전에서 사람 몸을 받은 이는 손톱에 낀 먼지의 수와 같고 사람 몸을 잃은 이는 대지의 흙의 수와 같다고 설하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불법을 닦더라도 만약 자신의 분별심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하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가장 수승한 법문에 도리어 장애가 될 것이다. 지금 현재도 어떤 사람은 수많은 경론들을 읽었지만 아미타불의 구제법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임종할 때 엉망진창으로 도리어 저 축생류의 중생들이 장엄하게 왕생하는 것만 못하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경에서 설하시길, “교만하고 악하고 게으른 사람은 이 법문 만나도 믿기 어렵다.”고 하였고, 또 “가기 쉬운 극락에 가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셨으니, 바로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얻기 힘든 사람 몸을 얻었으면 마땅히 선법에 수순하여 나아가야 하고 특히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넷째, 삼악도의 중생들이 평소에 아무런 수행 없이 극락왕생을 한 경우가 있고, 인도人道의 중생들이 부지런히 온갖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부처님의 원력에 수순하고 수순하지 않고 에 달려 있다. 따라서 비록 왕생을 원하나 저 부처님의 서원을 믿지 못하고서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강한 분별심이야말로 왕생을 장애하는 원흉이다. 만약 이러한 생각만 없다면 모든 사람이 염불할 수 있고 염불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다섯째, 아미타불의 명호와 아미타불의 본신이 일체인 까닭에 담란대사께서 ‘명호가 곧 법이다名卽法’고 설하고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다名體不二’고 설하신 것이며, 칭명을 할 때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소리에 응하여 바로 오셔서 몸을 나투신다.’고 설한 것이다. 또한 명호와 광명이 일체인 까닭에 칭명하는 사람은 필히 부처님 광명의 섭취를 받기 때문에


선도대사께서 『아미타불』과 『관경』에 의거하여 해석하시길, “저 부처님의 광명이 무량하여 시방국토를 비추는데 장애가 없어서 오직 염불하는 중생을 살피시어 섭취하여 버리지 않기 때문에 아미타라 부르는 것이다.”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도 칭명염불만 하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으로 바로 섭취하신다.


예컨대 이 사례에서 닭이 비록 염불할 줄 모르지만 누군가 염불을 해준 덕택에 아미타불께서 즉각 몸을 나투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몸이 나툰 이상,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어 업장을 소멸시키고 안락함을 주게 되니, 비록 삼악도의 중생일지라도 이 광명을 보면 모든 고통이 전부 쉬게 되고 한 생각만 되돌리면 바로 안락국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미타불의 명호 속에 본래 갖춰진 자연스런 기능이다.

 

여섯째, 따라서 사람들을 위해 조념을 해주거나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천도를 해주고자 한다면 모든 불사佛事 가운에 염불만한 게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경전과 진언을 외우거나 관상을 하려면, 만약 수행을 오래하여 심력이 집중되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자가 아니면 그 효과는 크게 뒤떨어질 것이며 심지어 부작용도 생길 수 있지만 염불은 단지 입만 열면 부처님께서 바로 몸을 나투시고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비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 사례에서 닭을 위해 염불한 사람은 단지 불교를 갓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고, 또 불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어린애가 단지 입에서 나오는 데로 산란한 마음으로 칭념한 것에 불과하며, 게다가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께서 똑같이 영접하러 오신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큰 스님이거나 아니면 수행을 오래하여 공부가 아주 깊은 사람을 요구하지 않음이니, 아미타불의 ‘명호와 본체가 둘이 아니고’·‘광명과 명호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 이로써 왜 위험하고 위급한 곳·어둡고 두려운 곳에 있을 때 염불만 하면 바로 재난을 소멸하고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염불하면 바로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보호해주시고, 부처님께서 바로 광명을 놓아 섭취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여덟째, 무릇 도살장·병원·화장터·묘지·사고다발지역 등의 음침하고 청정치 못한 장소에는 흔히 업장과 나쁜 기운들이 많아 사람들로 하여금 불길한 예감이 들고 두려운 느낌이 생기게 한다. 이때에 만약 염불할 수 있다면 비단 자신이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부처님의 광명으로 머리를 감싸주시는 보호를 받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연 있는 중생들을 이익케 하여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제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장소에 있는 중생들은 왕왕 몹시 원망하고 몹시 괴로워하기 때문에,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런 환경 속에 들어가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한 사람이 아무런 방호조치 없이 총탄이 빗발치는 거리를 걷다가 쉽게 총알에 맞게 되는 것처럼 나쁜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이 염불해야만 큰 재난을 피할 수 있고 큰 복을 쌓을 수 있으며 큰 공덕과 큰 이익이 생기게 된다.

 

아홉째, 식탁위에 육류가 올라온 경우를 만났을 때 혹 입으로 칭념을 하거나 아니면 마음속으로 묵묵히 아미타불을 불러서 그 공덕을 도살당하여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에게 준다면, 그들의 고통과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줄일 수 있고, 나아가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천도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채식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나 어떤 상황에서 완전한 채식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 참회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도살당한 중생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줘야 한다. 만약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한편으로 진탕 먹고 마시면서 한편으로 맛이 좋니 안 좋니 하며 평점을 매긴다면, 그렇다면 도살되어 불에 구워지고 삶겨진 중생들이 틀림없이 몹시 고통스럽고 또 그들의 분노와 원망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므로 육식을 한 모든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깊고 무거운 업보를 받아야 할 것이다.

 

열째, 아무튼 어떠한 경우라도 모두 염불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염불을 꺼리는 장소가 바로 죄업을 짓고 불길하고 부정한 장소이며, 또한 부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장 염불이 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때에 도리어 염불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염불은 평소부터 그 습관을 길어야 한다.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조건과 한계를 정하여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 말고, 마땅히 아무런 조건 없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구제에 수순해야 한다.

 

          정종淨宗스님  2008년 8월에 적음


동물의 극락왕생 사례 모음 보기 http://cafe.daum.net/amtb/ZEF/672

Posted by 慧蓮(혜련)
|

"지극한 염불로 극락세계에서 다시 만납시다"


 청담 큰스님이 옛 아내에게 보낸 편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 동안 염불공부 잘하셔서 죽을 때에 귀신한테 끌려서 삼악도로 가지 아니하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님 회상으로 가실 자신이 섰습니까?

 

모진 병 앓고 똥이나 싸버리고 정신없이 잡귀신들에게 끌려가서 무주고혼이 되어서

밤낮으로 울고 천만겁으로 돌아다니면서 물 한 그릇도 못 얻어먹는 불쌍한 도가비

귀신이나 면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다 늙어서 서산에 걸린 해와 같이 금방 쏙 넘어가게 될 형편이 아닙니까?

살림걱정, 아이들 걱정 이 걱정 저 걱정 다 해봐야 보살에게는 쓸데없는 헛걱정이오,

죄업만 두터워질 뿐이니 다 제쳐놓고 염불공부나 부지런히 하시오. 앞날이 급했지 않습니까?

내나 보살이나 얼마 안 있어 우리들이 다 죽어서 업을 따라서

제각기 뿔뿔이 흩어질 것이 아닙니까?



 

부디 쓸데없는 망상은 다 버리시고 염불만 부지런히 하셔야지요.

곧 떠나게 된 인간들이 제 늙은 줄도 모르고 망상만 피우고 업만 지으면

만겁의 고생을 어찌 다 감당할 것이오?

 

극락세계만 가놓으면 우리가 만날 사람은 다 만날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다 집어치우고 자나 깨나 나무아미타불, 급했습니다. 부탁입니다. 절하고 빕니다.





대도성보살 귀하

 

늙은 중 합장ㅡ

 

 


조계종 통합종단 초대 총무원장과 종정을 지내며,

청정 승단을 재건코자 혼신의 노력 기울이던 청담순호(靑潭 淳浩, 1902~1971).

1954년 식민지 불교의 청산을 기치로 본격화된 정화운동 중심에는 그가 있었고,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꾼 것도 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청담의 위법망구(爲法忘軀)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잇따른 승려대회를 비롯해 데모와 할복사건, 유혈충돌, 법정투쟁 등 숱한 희생과 곡절.

그 속에서 종단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청담은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문득문득

옛 아내를 떠올리고는 했다. 남편과 막내딸을 불문(佛門)으로 떠나보내고,

온갖 번민과 근심 끓이고 산다는 그녀의 소식을 접할 때면 팔만사천 번뇌를 여의었다는

청담조차 모래 위에 부어진 물처럼 아픔이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자물쇠도 열쇠도 없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괴로워 할 그녀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젊은 날 진주 호국사에서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는 그에게 ‘목마름이야 물로 다스릴 수 있지만

마음이 탈 때에는 무엇으로 끌 수 있느냐’는 한 노스님의 말을 듣고 시작된 출가에의 의지.

대를 이어야할 2대 독자가 삭발 출가하려 하자 아버지는 서둘러 그를 혼인시켰고,

청담과 차점이(1905~1988)와의 인연도 이렇게 시작됐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넉넉지 못한 농가로 시집와 소처럼 일하고 양처럼 순종했던 여인.

자신이 백양사로 해인사로 구름처럼 떠돌 때에도 그저 지켜만 보고,

일본에서 출가자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던 착한 여인.

고성 옥천사로 출가한 청담이 고향을 찾아가 이혼수속 얘기를 꺼냈을 때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아내의 야윈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모습을 그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기왕지사 출가했으믄 스님다운 스님이 되셔야지예.

 지야 뭐, 당신이 하자는대로 해드리겠심니더.”


1930년 봄, 고향 낙성법회에 법문 왔다가 한사코 매달리시는 어머니에 이끌려

 다시 찾은 고향집. 마지막 소원이라며

“가문 이을 씨앗 하나만 심어 놓고 가라”는 어머니의 한 맺힌 절규에

청담은 목건련을 떠올리며 ‘불쌍한 어머니, 저분을 위해서라면 지옥엔들 가지 못하랴.’라고

마음을 굳혔다. 동시에 아들을 낳지 못해 주변의 핍박과 자괴감에 두고

두고 시달릴 젊은 아내에게 옛 지아비로서 마지막 의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룻밤 파계. 첫 닭이 울기도 전 버선도 신지 않은 채,

속가 뛰쳐나온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아! 수행자인 내가…...

수미산 같은 이 죄업을 어찌 다 씻을고.’

가혹하리만치 매서운 청담의 참회와 인욕수행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홑옷에 맨발 차림. 청담의 눈물겹도록 처절한 만행은 덕숭산, 오대산, 설악산, 묘향산을 거쳐

북간도까지 이어졌다.

여윈 볼을 할퀴고 지나가는 칼바람에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을 때도 늘 맨발이었다. 살은 얼어 찢겨 나가고 발은 쩍쩍 갈라져 피가 솟았다.

‘눈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이 있으면 청담 스님이 다녀간 자리’라는 말이 수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늙은 홀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출가의 길을 선택한 청담은 가족들 고통을 떠올리며

스스로 다그치며 피나는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청담이 서른 넷 이른 나이에 묘향산 설령대에서 오도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모든 부처와 조사는 어리석기 그지없어
어찌 현학의 이치를 깨우쳤으랴.
만약 누가 나에게 한 소식 한 바를 묻는다면
길가에 서 있는 고탑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하리라.

오랫동안 괴롭혀오던 마음의 갈증이 해갈된 청담.

하지만 이 무렵 그에게 들려온 속가의 얘기는 그를 안타깝게 했다.

옛 아내가 또 딸아이를 낳았으며,

이로 인해 시어머니로부터 혹독한 시집살이를 당하고 있다는 것. 청담은 어머니가

더 이상 죄업을 지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늙은 홀어머니를 직지사 서전암으로 모셔와서 출가토록 했다.

‘아들 스님’의 당부대로 비구니 성인(性仁)은 묵은 한을 내려놓고 열심히 염불정진 했다.

훗날 어머니가 임종을 얼마 앞두고 며느리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으며,

며느리도 사찰에 머물며 임종 때까지 시어머니를 돌봤다는 얘기를 들은 청담은

슬픔에 앞서 두 여인의 화해에 안도의 한 숨부터 먼저 내쉬었다.


청담과 차점이가 다시 만난 건 몇 해 뒤인 1943년 여름.

복천암에서 생식하며 안거수행을 하던 청담은 사월초파일날 상주경찰서로 연행됐다.

잦아들지 않는 독립운동에 골머리 앓던 일제는,

기미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청담이 북간도 간 이유를 집요하게 추궁했고,

법(法) 찾아 수월을 만나러 갔다는 그의 항변에도 연일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인욕제일 청담이건만 두 달여 계속된 잔학한 고문에 결국 실신했고,

피투성이 된 채 사경을 헤매야 했다.

이 때 멀리 진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달려온 이가 차점이였다.

 “시님, 시님…. 이게 뭔 일이란 말입니꺼.”


낡고 찢긴 옷에 피골이 상접한 청담의 모습에 차점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마지막 남아있던 땅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청담을 경찰서에서 빼내

상주포교당으로 옮겼다.

차점이는 청담의 곁에 머물며 24시간 지극정성으로 병구완을 했다.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청담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고 조금씩 거동도 가능해졌다.

청담은 희끗희끗 흰머리가 돋기 시작한 옛 아내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성껏 들려주었다.

차점이는 무뚝뚝하기만 하던 그에게서 처음으로 따뜻함이 느껴져 왔다.

지아비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냥 이렇게 세월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남편이 아니라 바람과 구름이 되어 떠도는 수행자였다.

몸을 추스릴 수 있게 되자 청담은 또다시 운수행각에 나섰고,

차점이는 그런 청담에게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바랑을 조심스레 건넸다.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살리는 것이 보살입니다.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염불도 지극정성으로 하도록 해요.”

“예, 시님…. 알겠심니더.”


다시 몇 해가 흘러 일제의 탄압이 극도에 이른 1945년 초, 청담은 차점이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젊은 남자는 징용으로, 처녀는 정신대로 끌고 가고 있으니

둘째 딸을 데려다가 스님으로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파계를 해가며 까지 낳은 아이,

청담은 어쩌면 속세부터 이어져온 佛緣이라는 생각에 절친한 도반 성철의 도움을 얻어

머리를 깎도록 했다.


그러나 차점이는 막상 자신의 뜻대로 딸이 출가했건만 어린 딸이 절 생활은 잘 하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한시도 걱정 끊이질 않았다.

딸 묘엄이 조선 최고의 강백이라는 운허의 문하에서 공부할 때도,

뒤늦게 동국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청도 운문사로 내려가 강원을 개설해 학인들을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차점이는 수시로 딸이 있는 곳을 찾았고 청담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늘 안타깝기만 했다. 청담은 절을 찾아 온 차점이에게 대도성(大道性)이라는

법명을 주고 걱정과 욕심을 내려놓을 것을 당부했지만 소용없었다.


조계종 종정직을 사퇴한 이듬해인 1968년, 청담은 옛 아내에게 간절한 편지를 띄웠다.

이제는 이런 저런 근심걱정 다 접어놓고 자신의 업장이나 닦으라고,

그래서 훗날 정토에서 다시 만나자고….


1971년 11월 15일 청담이 홀연히 열반에 들자 대도성은 자신의 삶을 지탱했던

대들보가 무너지는 듯했다. 십수 년 간 조석으로 기도하고 염불도 했건만

가슴 한 켠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허전함은 어찌할 수 없었다.

몇 해 뒤 보다 못한 묘엄은 대도성을 절로 모셔와 손수 머리를 깎아 출가토록 한 뒤

대도(大道)라는 법명과 함께 스님으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대도는 절에서 생활하며 옛 남편의 뜻을 따라 염불과 경전독송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세상사가 꿈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이슬 같다’던 청담의 말을,

비로소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1988년 5월 12일 마침내 대도는 고단한 삶의 여정을

접고 무정했던 남편, 인자했던 삶의 스승 청담이 있는 아미타불 회상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청담 스님이 대도성 보살님께 보낸 편지는 현재 서울 도선사 청담기념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에 날짜가 기록돼 있지 않아 청담 스님이 정확히 언제 보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당시 대도성 보살님과 같이 생활했던 손자인 부산대 철학과 김용환 교수는

1968년에 할머니가 청담 스님으로부터 그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으며,

편지의 내용으로 미뤄보더라도 그 무렵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2일 입적한 봉녕사 승가대 학장 묘엄스님

 

(수원=연합뉴스) 비구니계의 원로이며 경기도 수원 봉녕사의 승가대학장인 묘엄 스님이 2일 오전 9시 5분 봉녕사에서 입적했다. 2011.12.2 << 문화부 기사 참조, 대한불교조계종 >> cool@yna.co.kr

 

비구니계의 큰어른인이자 봉녕사 승가대학장 세주당(世主堂) 묘엄(妙嚴·80) 스님이 2011.12. 2일 오전 9시 5분 경기 수원 봉녕사에서 입적(入寂)했다. 법납은 67년. 세수 80세.

 

 뛰어난 율사(律師)였던 묘엄 스님은 조계종 2대 종정을 지낸 청담(淸潭·1902~1971) 큰스님의 친딸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대 존경받는 고승들로부터 선·교·율 삼장을 전수받았는데.1945년 성철(性徹·1912~1993) 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다. 또 율사 자운(慈雲)스님으로부터 율장(律藏)을, 대강백 운허스님으로부터는 경학(經學)을 사사했다. 


Posted by 慧蓮(혜련)
|

부처님께서 염불을 권하는 경전들 


[내용 요약]



<아미타경> 

사리불아, 만약에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말씀을 듣고 명호(名號)를 잡아 지녀 혹은 일일 혹은 이일 삼일 사일 오일 육일 칠일 동안 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때에 아미타 부처님이 여러 성중과 함께 그 앞에 나타나시니라. 이 사람은 목숨이 다하는 때에도 마음이 뒤바뀌지 아니하니 아미타불의 극락국토에 곧장 왕생하게 되느니라. 


[반주경] 

만약에 어떤 사람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1일동안 염불하고 2일에도 생각을
끊이지 않고 계속하면 아미타불이 앞에 나타나 곧 왕생한다. 


[무량수경] 

아미타불을 염하는 마음을 꼭 잡고 끊이지 않으면 곧 왕생한다. 

[대비경] 

낮과 밤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주위 사람들에게 서로 권하면 함께 왕생한다.

 
[대보적경] 

열번 생각하면서 저 무량수불을 부르면 죽음을 맞이할 때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임을 결정해 준다. 


[관무량수경] 

오역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질 중생이 지옥의 불길이 앞에 나타날 때 열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곧 왕생한다. 


[대법고경] 

임종시에 능히 부처님을 관하거나 염불하지 않았으나 아미타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만 있어도 곧 왕생한다. 


[미타대경] 

염불을 하는 것에 대하여 의심을 내면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결의경] 

말법시대 일만년 동안은 염불하는 것이 가장 견고한 수행이다. 



[월장경] 

나의 가르침의 말법시대에도 수많은 중생이 행을 일으켜 도를 닦을 것이지만 
마지막에는 한 가지 얻을 것이 있을 터인데 그것은 오직 염불의 한 문이니라. 
가히 통하여 그 길에 들어서서 염불을 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구하면
만명 가운데 한 명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불성경] 

항상 보살이 있는데 한 분은 관세음이라 하고 또 한 분은 대세지라고 이름한다. 
오색구름 위에 여섯 개의 이빨을 한 흰 코끼리를 타고 때때로 연화대에서 
염불하는 사람들을 맞이하여 부동국(극락)에 태어나 자연히 즐겁게 한다. 


[법화경]

 

 

만일 여래께서 멸도하신 후 500년에 이르러 어떤 여인이 이 경전을 듣고 그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하면, 그 목숨을 다 마친 뒤에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큰 보살 대중들이 둘러 있는 곳에 가서 연꽃 가운데의 보배 자리에 태어나리라. 
 

그리하여 다시는 탐욕하려는 번뇌가 없고, 성내고 어리석은 번뇌도 없으며, 또한 교만하고 질투하는 여러 가지의 더러운 번뇌가 없으리라. 그리고는 보살의 신통과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서 눈이 청정해지며, 이 청정한 눈으로 7백만 2천억 나유타 항하의 모래 같은 여러 부처님 여래를 보게 되느니라.

 

[화엄경]

 

또 이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는 마지막 찰나에 온갖 기관은 모두 무너지고 친속들은 모두 떠나게 되고 모든 세력은 모두 잃어져서, 정승이나 대관이나 궁전 안팎의 코끼리·말·수레·보배나 숨은 광들이 하나도 따라오지 않더라도 이 열 가지 원은 서로 떠나지 아니하고, 어느 때에나 앞길을 인도하여 잠깐 동안에 극락세계에 가서 나게 되리라.

 

가서는 곧 아미타불과 문수사리보살·보현보살·관자재보살·미륵보살 들을 뵈올 것이며, 이 보살들은 몸매가 단정하고 공덕이 구족하여 아미타불을 둘러 앉은 가운데서 이 사람은 자기 몸이 연꽃 위에 나서 부처님의 수기 받음을 볼 것이며, 수기를 받고는 무수한 백천만억 나유타 겁을 지나면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시방세계에서

 

지혜의 힘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이롭게 할 것이며, 오래지 않아서 보리 도량에 앉아 마군을 항복 받고 원만하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고 미묘한 법륜을 굴리어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 같은 많은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고 근기를 따라서 교화하여 성취시키며,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모든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시방제불 보살과 종사들의 찬양


 

칭찬정토불섭수경에는 시방제불이 극락정토를 극구 찬양 하셨고

보적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버지인 정반왕에게 염불 왕생을 간절히 권하셨고

보살내계경에는 보살의 세 가지 원주에 두 번째 원이 아미타불 국토인 극락세계에 왕생을 원하는 것이고

 
화엄경에는 보현보살이 왕생을 발원 하셨고
문수발원경에는 문수보살이 왕생을 발원 하셨고
선종 제십이조인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에서 아미타불을 찬양 하였고 세친보살의 무량수경론에서 왕생을


이 외에도 선종에서 많은 선덕들이 미타법문을 겸해서 닦은 이가 많으며 혹은 비밀리에 닦기도 하고

 법문을 설하기도 하고 논문을 지어서 극락왕생을 권장하기도 하고 경문을 주석하여 미타법문을 광포 한 이들이 많았다.

임제종의 백장회해선가는 그가 지은 백장청규에서 병승과 망승을 위하여 나무아비타불 육자 명호 염불을 염송하게 하였다. 또한 선종 이 외의 율종 삼록종 천태종사들도 미타법을 겸해서 닦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여 닦게도 하고 미타문 소의경전을 주석하여서 미타신앙을 광포한 이가 많았다

 


※[팔만 대장경 총 940여부 가운데 270여부에서 아미타불과 극락 
그리고 염불을 말씀하셨다.] 


이 밖에도 [업보차별경] [정토경] [문수경] [대집경] [대화엄경] [금색등경] 
[천친론] [보왕론] [기신론] 등 팔만 대장경 총 940여부 가운데 
270여부에서 아미타불과 극락 그리고 염불을 말씀하셨다. 


 

 

먼 미래에 이 세상에서 불법이 망하고 모든 경전이 다 없어진다 하더러도

나는 자비한 마음으로 말세 중생을 가엾이 여겨 특히 이 무량수경 만은

백년을 더 오래 머물게 할 것이니라

 

그래서 누구든지 이 무량수경을 만나서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는 그들의 소원대로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 할 수 있을 것이니라

 

[무량수경에서]

Posted by 慧蓮(혜련)
|

시방세계 부처님은 본래 다 가까이 할 수 있거늘 어찌하여 유독 아미타불만 추천하는가?

그 속에는 세 가지 연고(緣故)가 있다.

 

첫째는 서원이 깊고 무거우며(誓願深重),

둘째는 사바세계와 인연이 있으며(娑婆有緣),

셋째는 중생교화와 연관이 있다.(化道相關)

 

서원이 깊고 무거운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미타 부처님은 옛날 아직 부처가 되기 전에 48가지 큰 원을 세우셨는데, 그 중 세 가지 원은 오로지 염불중생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발하셨다.


그 대의(大義)는,

“내가 부처가 된 후 만약에 중생들이 보리심을 내어 온갖 공덕을 쌓고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여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혹 나의 이름을 듣고 온갖 착한 일을 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생각한다면 비록 하루 밤낮일지라도,

혹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열 번만 나의 이름을 불러도,

이러한 모든 중생들이 만약 나의 나라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부처님의 원력이 얼마나 크신지 알 수 있다.

 

사바세계와 인연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무량수경에서 “내가 이 경을 설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무량수불과 아울러 그 국토를 보게 하였고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을 수 있으니 내가 멸도(滅度)를 한 후에 다시 의심을 내어서는 안되느니라. 앞으로 올 세상에서 경도(經道)가 다 멸(滅)하더라도 내가 자비로서 중생들을 가엾이 생각하여 특별히 이 경(經)을 백년동안 더 머물게 하리니 그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만나거든 소원에 따라 모두 생사고해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경전에 “이 무량수경이 멸하고 나서 불법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다만 아미타불 사자명호(四字名號)만 남아 중생을 구제 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사바세계와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말법시대의 중생이지만 승(僧), 속(俗), 남(男), 녀(女)와 빈(貧), 부(富), 귀(貴), 천(賤)을 불문하고 불교를 조금 아는 자들도 많이 신향(信向)을 한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미타불을 부를 줄 알며 어리석고 포악하며 믿음이 없는 무리들도 혹 큰 어려움이나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혹 찬탄하거나, 원망하며 한탄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미타불을 부른다.

이런 일들은 전부 권장하지 않아도 자발적이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하는 것이니 어찌 인연이 있다 하지 않겠는가.

 

중생교화와 상관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두 나라의 성인께서는 각각 정토(淨土)와 예토(穢土)에 계시면서 절(折), 섭(攝) 두 문으로 중생들을 조복시켜 사바에서는 고통과 촉박, 마장과 번뇌(魔惱)로 꺽어서 사바세계의 혼탁한 경계를 싫어하게 하고 정토에서는 청정과 즐거움, 연장(延)과 불퇴전으로 거두어 극락세계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중생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


석가세존이 삼승(三乘: 성문, 연각, 보살)의 교화 외에 못 다 건진 중생들은 곧 아미타불이 건질 대상이므로 대승의 여러 경전에서 반복하여 신신부탁 하고 왕생을 권장하며 칭찬한 것이 곧 중생교화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 가지 연고가 있으므로 유독 아미타불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은 태어나는 괴로움(生苦)이 있지만,

저곳에는 연화 화생(蓮花化生)이므로 어찌 태어날 고통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사계절이 순서대로 바뀌고 노쇠(老衰)가 서로 침범해 오지만,

저곳에는 춥고 더운 변화가 없는데 어찌 늙는 괴로움(老苦)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사대(四大)가 조화롭지 못해 질병이 많지만,

저곳에는 화(化)하여서 얻은 몸이 향기롭고 깨끗하니 어찌 병고(病苦)가 있겠는가!


이곳에는 옛부터 70이 드물고 무상(無常)이 신속하지만,

저곳에는 수명이 무량하니 어찌 죽는 고통(死苦)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친한 감정과 애착이 있지만,

저곳에는 부모와 처자식조차 없는데 어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愛別離苦)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원망하고 미워하고 원수와 만나게 되는 괴로움이 있지만,

저곳에는 최상의 착한 사람들과 모이므로 어찌 원수와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이 있겠는가!


이곳에는 혹 온갖 어려움과 춥고 배고픔이 있고 아무리 욕심 부려도 늘 부족하지만,

저곳에는 옷과 음식, 진귀한 보물이 다 갖추어져 있어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는 혹 몸뚱이가 못생기고 더러우며 더러 육근이 부족하고 추하지만,

저곳에는 외모가 단정하고 몸에는 광명이 있다.


이곳에는 생사가 윤전(輪轉)하지만,

저곳에는 영원히 무생(無生)을 증득한다.

이곳에는 사취(四趣: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괴로움이 있지만,

저곳에는 삼악도란 이름조차 없다.


이곳에는 구릉과 구덩이, 가시나무가 숲을 이루고, 흙과 돌로 된 산에는 온갖 보기 흉한 더러움으로 가득 찼지만,

저곳에는 땅이 황금으로 되어 있고 보배나무가 하늘을 치솟으며 누각은 일곱 가지 진귀한 보배로 높이 세워지고 연꽃은 네 가지 색깔로 핀다.


이곳에는 석가불이 이미 열반 하셨고 미륵불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저 곳에는 무량수불이 현재 법을 설하고 계신다.

이곳에는 단지 관음, 세지의 거룩한 이름을 우러러 볼 뿐이지만,

저곳에는 두 보살과 친한 친구가 된다.


이곳에는 온갖 마구니와 외도들이 바른 수행을 어지럽게 괴롭히지만,

저곳에는 부처님의 교화로 통일되어 마구니와 외도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곳에는 악마와 요괴들이 사악한 소리로 서로 번뇌를 부추키지만,

저곳에는 물과 새, 나무(水鳥樹林)들이 전부 미묘한 법을 널리 펴고 있다.

 

두 국토를 서로 비교해 보면 환경과 조건이 크게 다르니 어찌 한 번에 다 들 수 있겠는가.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환경이 빼어난 점은 중생들이 청정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조건이 빼어난 부분으로는 왕생한 자들의 수행력을 도와줄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현들이 두루 극락을 가리키고 있다.

 

정토왕생은 본디 곧장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부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물러남도 없으며 수명이 한량없어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수명이 짧고 병치레가 많은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거니와 혼침(昏沈)하여 잠을 자는 시간만 하더라도 인생의 반은 차지한다.

게다가 보살은 아직 격음(隔陰: 전생을 기억 못함)의 어두움이 있고 성문은 출태(出胎)의 번민이 있다.

척벽촌음(尺璧: 직경이 한척인 보옥.寸陰: 매우 짧은 시간: 시간이 소중하면서 짧음.)을 이미 열에 아홉은 잃어 버렸으니 스스로 물어(自問) 아직 불퇴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고 한 점의 확신마저 서지 않았으니 어찌 마음이 섬뜩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꼭 서방정토로 왕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확실한 생애(生涯)를 위함이다.

 

이원정 거사  <불법도론> 중에서 - 건봉사 서현스님 번역 -

Posted by 慧蓮(혜련)
|

     정토로 가는 길 (연종집요蓮宗集要)

 

석가모니불께서 온갖 중생들이 육도 중에서  수레바퀴처럼 돌아다니며 고를 받으면서도 그 고를 벗어날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성도하신 후에 사십여 년 동안 팔만 법장을 설법 하시어 중생이 육도를 벗어나 성불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중생으로서 처음 발심하여 성불하기까지에는 삼아승기겁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닦아야하니 그러는 동안에는 무수한 생사를 반복하면서 한량없는 고난을  받아야 하므로 부처님께서 성불하는 법을 가르쳐주시며 생각하시기를 이법이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고도 어려워서 중생들이 이 말을 듣고 겁이 나서 발심하지 못하거나 혹은 도를 닦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폐단이 있을까 염려하시어 빨리 성불할 수 있는 별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 법이 연종법문이니 어떤 중생이나 여러 생을 지내지 아니하고 일생에 염불한 공덕으로 육도윤회를 벗어나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아미타불의 설법을 듣고 필경에는 성불하는 법문이다.


다른 법문은 자기의 힘으로 도를 닦아서 온갖 번뇌를 끊어야 육도의 윤회를 면하고 성불하는 것이며 만일 조금이라도 번뇌가 남아 있으면 성불은 고사하고 육도의 윤회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종법문은 자기의 염불하는 수행과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인하여 설혹 임종할 때에 번뇌를 다 끊지 못하였더라도 대혹왕생 즉 혹을 띤 채 왕생하여 성불하게 되는 것이니  다른 법문에 비하여  알기 쉽고 행하기 쉽고 닦기 쉽고 성불하기 쉬운 절묘한 법문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一.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


서방정토(西方淨土)란 것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와 같은 예토[穢土]에 대비하여 하는 말이니 서방[西方]의 성자[聖者]가 계시는데 오탁[五濁]의 더러움이 없는 정토[淨土]이므로 서방정토(西方淨土)라한다.

 

극락세계[極樂世界]는 시방정토[十方淨土]중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시는 정토[淨土]로써 고[苦]는 없고 낙[樂]만 있으므로 극락세계[極樂世界]라 하며 다른 정토보다 가장 수승[殊勝]한 정토이다.


二.극락세계의 유래[由來]


무량겁[無量劫] 전에 세자재왕불[世子在王佛]이 출세[出世]하시고 그 나라에 교시가[橋尸迦]라는 국왕이 있었는데 보리심을 발하여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비구[法藏比丘]가 된 후에 세자재왕불 앞에서 사십팔원[四十八願]을 세우고 그 소원이 성취되어 성불하였으니 그가 곧 아미타불[阿彌陀佛] 이시고 그 부처님이 교화[敎化]하시는 국토[國土]가 극락세계이다.


三.극락세계의 [位置]


화엄경[華嚴經]에  보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맨 아래에 풍륜[風輪]이 있고 풍륜위에 향수해[香水海]가 있으며, 향수해 가운데에 대연화[大蓮華]가 있고 연화위에 십불가설[十不可說], 불찰[佛刹], 미진수[微塵數], 찰종[刹種]이 있으니 이것을 화장세계[華藏世界]라 하며 그 많은 찰종들은 모두 이십중세계[二十重世界]로 되어있다.


그 한 복판에 있는 찰종의 제십삼층[第十三層]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가 있는데, 십삼불찰[十三佛刹] 미진수세계로 둘러 싸였으며 사바세계의 서쪽으로 십만 억 세계를 지나가서 극락세계가 있으니 극락세계는 사바세계와 같이 제 십삼 층에 있다.


 

四.극락세계와 삼계[三界]와의 비교[比較]


극락세계는 삼계(三界 즉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이외의 정토[淨土]이니 삼계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一).극락세계는 오욕[五慾]등이 없으므로 욕계[欲界]가 아닌 비욕계[非欲界]이다.


욕계는 육천(六天 즉 위에서부터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화락천[化樂天], 도솔천[도率天], 야마천[夜摩天], 도리천[忉利天], 사왕천[四王天]인데 타화자재천에서 야마천까지는 공중에 의거[依居]하므로 공거천[空居天]이라 하고 도리천 사천왕은 수미산[須彌山]에 머무르므로 지거천[地居天]이라 한다. 단 해와 달과 별은 공거천에 속한다.)


인[人] 아수라[阿修羅] 귀[鬼] 축생[畜生], 지옥[地獄]의 총칭이고 오욕(五欲 즉 재욕[財欲] 색욕[色欲] 음식욕[飮食欲] 명예욕[名譽欲] 수면욕[睡眠欲] 등이 있는 유정[有情]의 주소다.


(二). 극락세계는 땅에 의거[依居] 하므로 색계가 아닌 비색계[非色界]다.


색계는 욕계의 위에 있고 선정[禪定]을 닦아서 태어나는 제천중[諸天衆]의 주소[住所]니 이미 모든 욕[欲]을 여의고 물질[物質]이 뛰어나게 묘하며 정묘[精妙]하므로 색계라 하며 이 색계에 다음 十八天이 있다.


위에서부터 색구경천[色究竟天] 선견천[善見天] 선현천[善現天] 무열천[無熱天] 무번천[無煩天] 광과천[廣果天] 무상천[無想天] 복생천[福生天] 무운천[無雲天] 이상은 사선천[四禪天]이고 변정천[邊淨天] 무량정천[無量淨天] 소정천[小淨天] 이상은 삼선천[三禪天]이며,광음천[光音天] 또는 극광정천[極光淨天],무량광천[無量光天],소광천[小光天],이상은 이선천[二禪天]이고, 대범천[大梵天],범보천[梵補天],범중천[梵衆天], 이상은 초선천[初禪天]이다.이상 제천이 공거천이다.


(三)극락세계는 형상[形象]이 있으므로 무색계[無色界]가 아니다,

무색계는 식심[識心]만 있어서 심묘[深妙]한 선정[禪定]에 머무르므로 무색계라한다.

무색계는 물질[物質]이 없으므로 그 방처[方處] 를 정할 수 없으나 과보[果報]가 수승[殊勝]하므로 색계위에 있는 것이다.

무색계에 사천[四天]이 있으니 즉 위에서부터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인데 거처[居處]로써 이것을 나눌 수가 없으나 그 선정[禪定] 수명[壽命] 등의 승열[勝劣]에 의하여 차등을 세운 것이다.


五,극락세계의 별명


극락은 범어[梵語]로 수마제[須摩堤.須摩題]수마야[,須摩耶],수가마제[須呵摩提],소가박제[蘇珂?帝]를 번역한 것이며, 그 별명이 三十여종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극락(極樂), 안락(安樂), 안양(安養), 묘락(妙樂), 묘의(妙意), 호의(好意), 서방(西方), 서찰(西刹), 정토(淨土), 정방(淨邦), 연방(蓮邦), 연찰(蓮刹), 보국(寶國), 보방(寶邦), 보찰(寶刹, 낙방(樂邦), 불회(佛會), 보토(報土), 무위(無爲), 밀엄국(密嚴國), 청정처(淸淨處), 엄정국(嚴淨國), 제지토(諸智土), 열반성(涅槃城), 진여문(眞如門),  제불가(諸佛家),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장엄국(極樂莊嚴國),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대승선근계(大乘善根界), 대원청정보토(大願淸淨報土), 일승청정무량수세계(一乘淸淨無量壽世界).


청태국[淸泰國]을 극락의 별명으로 쓰는 이가 있으나 청태국은 부모[父母]등이 있는 미타국[彌陀國]으로서 예토[穢土] 출현[出現]의 상 이므로 청태국을 곧 극락정토라 함은 잘못이다.

 

 

六.극락세계의 장엄[莊嚴]


장엄은[莊嚴]은 선미[善美]로써 국토를 장식하는 것이니 극락세계의 장엄은 다음과 같다.


(가). 극락세계는 땅이 칠보[七寶]로 되어 광채가 빛나고 기묘하며 청정하기가 시방세계에 뛰어나고 국토의 넓기가 한량없으며 땅이 평탄하여 산과 구렁과 골짜기가 없고 바다와 강이 없으며 대, 중, 소의 보배 연못이 있고 육도[六道]중 지옥, 아귀[餓鬼], 축생, 아수라와 용[龍]이 없다.


(나). 극락세계에는 비와 눈이 없고 해와 달이 없으나 항상 밝고 어둡지 아니하여 밤과 낮이 없거니와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으로 낮을 삼고 꽃이 지고 새가 쉬는 것으로 밤을 삼으며, 극락세계의 일주야는 사바세계의 일겁[一劫]이요 또한 기후도 차고 더운 것이 없어  항상 봄과 같이 온화하고 밝으며 상쾌한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다). 극락세계는 땅위에서 허공에 이르기까지 한량이 없는 여러 가지 보배와 백 천 종류의 향[香]으로 되었으며, 장엄한 것이 기묘하고 절승하며 광채가 휘황한 것은 다 말 할 수 없다.

 또 누각[樓閣]이 마음대로 높고 커서 공중에 떠 있는 것도 있고 마음대로 높거나 크지 못하여 땅위에 있는 것도 있나니 이것은 전생에 도를 닦을 때에 덕이 후하고 박함에 말미암은 것이다.


(라). 극락세계에는 여러 가지 보배로 된 보망[寶網]이 그 나라를 덮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보배나무도 위에는 보망이 덮이었고 그 주위에는 보배 난간[欄杆]이 둘렸으나 교묘하게 꾸미고 광채가 산란한 것은 형언 할 수 없고, 또 바람이 약간 불면 보배나무와 보배그물에서 미묘한 법음[法音]이 나며 꽃다운 향기가 퍼지고 나무에서 나는 소리가 백 천 종류의 음악소리와 같으며, 또 극락세계에는 각종 음악이 있어서 끊기지 아니하는데  그 소리가 시방세계의 음악 중에서 제일이며 또 모든 하늘에서 백 천 가지의 향화[香華]와 백 천 가지 음악을 가지고 내려와서 불[佛] 보살[菩薩]께 공양[供養]한다.


(마). 극락세계에는 바람이 불면 꽃이 흩어져서 전국에 가득차고 하늘에서도 꽃비가 오는데 제각기 그 빛을 따라 쌓이고 섞기지 아니하며 부드럽고 고우며 찬란한 광채와 꽃다운 향기가 나고 꽃이 네 치나 쌓이며 발로 밟으면 네 치를 들어갔다가 발을 들면 도로 올라오며 꽃이 시들면 바람에 날려 없어진다.


(바). 극락세계에는 칠보로 된 팔공덕수[八功德水]가 가득 찼는데 목욕할 때에는 물이 덥고 찬 것과 늘고 주는 것이 마음대로 되어서 더워라 하면 더워지고 차라 하면 차지고 무릎까지 올라오라하면 무릎까지 올라오고 허리까지 올라오라하면 허리까지 올라오고 목까지 올라오라하면 목까지 올라오고 또 다시 내려가라면 내려간다.


(사). 극락세계에는 각색연화가 전국에 차 있으며 칠보로 된 연못에는 크기가 수레바퀴 같은 각색 연화가 미묘하고 향기롭고 정결하며 또 물이 연꽃사이로 흘러서 아래위로 돌면서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데 제각기 소원대로 듣게 된다. 가령 설법소리를 듣고자 하면 설법소리를 듣게 되고 음악소리를 듣고자하면 음악소리를 듣게 된다.


(아). 극락세계에는 부처님과 보살이 설법하시거니와 아미타불이 변화하여 만든 여러 가지 기묘한 새들이 온화하고 청아[淸雅]한 소리로 주야육시[晝夜六時]에 설법한다.


(자). 극락세계에 태어날 때에는 칠보로 된 연못 속의 연화에 화생[化生]하여 젖으로 기르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자라고 수명이 무수겁[無數劫]이요, 온몸이 금빛으로 광명이 있으며, 용모가 잘 나고 못난 것이 없이 한결같고 형상[形象]이 단정하며 정결하고 수승하기가 세간[世間]사람이나 하늘사람으로는 비교할 수 없다.

 

인간의 걸인을 인간 임금에 비하면 그 추악하기가 비유할 수 없어 임금이 百千萬배나 수승하고 인간 임금이 사람 중에는 존귀하지만 전륜성왕[轉輪聖王]에 비하면 그 추악하기가 걸인을 임금에게 비한 것과 같고 전륜성왕이 천하에서는 제일이나 도리천왕[忉利天王]에게 비하면 도리천왕이 百千萬배나 수승하고 도리천왕을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에 비하면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이 百千萬배나 수승하고 타화자재천왕을 극락세계의 聖人에게 비하면 극락세계의 성인들이 百千萬배나 수승하다고 한다.


(차). 극락세계에는 여인이 없다. 설사 여인이 왕생 하더라도 여인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장부[丈夫]가 된다.


(카). 극락세계의 사람은 육신통[六神通] 즉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신경통[神境通], 누진통[漏盡通]을 구족[具足]한다.


(타). 극락세계는 음식을 먹을 때에는 각색 보배 그릇이 마음대로 앞에 오는데 그 가운데에 백미[白米]가 구존[具存]한 음식이 담겨 있고 먹은 뒤에는 자연히 녹아 흘러서 남는 찌꺼기가 없고 혹은 빛만 보고 냄새만 맡아도 저절로 포만[飽滿]하여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자연히 화[化]하여 가며 다시 먹고자 하면 또 앞에 나타난다.

의복도 입고자하면 마음대로 앞에 와서 놓이는데 바느질하거나 빨래하거나 물들이거나 다듬이 하는 일이 없다.


(파). 극락세계에는 사람들이 모두 지혜가 있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도덕[道德] 아닌 것이 없으며 입으로 말하는 것이 바른 일 아닌 것이 없고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며 미워하거나 시기하는 일이 없으며 제각기 질서를 지키고 어긋나는 일이 없어서 움직이는 것이 예의[禮儀]에 맞고 화목하기가 형제 같으며 말이 진실하고 서로 가르쳐 주면 기쁘게 받아 어김이 없으며 신기[神氣]가 고르고 고요하며 체질[體質]이 가볍고 맑다.


(하). 극락세계에는 낙[樂]만 있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苦]가 없나니 태생[胎生] 하는 데는 고가 있으나 화생[化生]하는 데는 연화에 화생하므로 생고[生苦]가 없으며 춘하추동이 없고 절기가 바뀌지 아니하며 기후가 항상 온화하므로 노고[老苦]가 없으며 화생한 몸이 미묘하여 향기롭고 정결하므로 병고[病苦]가 없으며 수명이 한량이 없으므로 사고[死苦]가 없다.



七. 극락세계 장엄[莊嚴]의 종류[種類]와 명칭[名稱]


극락세계의 정보[正報],  의보[依報]의 장엄을 표시[表示]하는데 십종장엄[十種莊嚴] 이십사락[二十四樂] 삼십종익[三十種益] 등이 있으며 다음과 같다.

정보[正報]는 과거의 업[業]으로 인하여 받는 나의 심신[心身]을 정보라 하니 범부[凡夫]나 성인[聖人]의 몸이다.

 

즉 인人 천天 제신諸神 보살 부처님 등을 말함이고 의보[依報]는 범부와 성인의 심신에 따라 존재[存在]하는 일체세간[一切世間]의 사물을 의보라 하니 국토[國土]등을 말하는데 이는 곧 정토[淨土], 예토[穢土]등을 말한다.



*십종장엄[十種莊嚴]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에 의하면 정보장엄[正報莊嚴]과 의보장엄[依報莊嚴]을 다음과 같이  열 가지로 분류한다.


1. 法藏誓願修因莊嚴 [법장서원수인장엄]

2. 四十八願願力莊嚴 [사십팔원원력장엄]

3. 彌陀名號壽光莊嚴 [미타명호수광장엄]

4. 三大士觀寶像莊嚴 [삼대사관보상장엄]

5. 彌陀國土安樂莊嚴 [미타국토안락장엄]

6. 寶河淸淨德水莊嚴 [보하청정덕수장엄]

7. 寶殿如意樓閣莊嚴 [보전여의누각장엄]

8. 晝夜長遠時分莊嚴 [주야장원시분장엄]

9. 二十四樂淨土莊嚴 [이십사락정토장엄]

10.三十種益功德莊嚴 [삼십종익공덕장엄]


*이십사락[二十四樂]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에 이십사락[二十四 樂]을 말 하였는데 극락정토의 二十四종의 락상[樂相]이며 다음과 같다.


1. 난순차방락 欄楯遮防樂

2. 보망라공락 補網羅空樂

3. 수음통구락 樹陰通衢樂

4. 칠보욕지락 七寶浴池樂

5. 팔수징의락 八水澄漪樂

6. 하견금사락 下見金砂樂

7. 계제광명락 階梯光明樂

8. 누대능공락 樓臺凌空樂

9. 사연화향락 四蓮華香樂

10.황금위지락 黃金爲地樂

11.팔음상주락 八音常奏樂

12.주야양화락 晝夜兩華樂

13.청신책여락 淸晨策勵樂

14.엄지묘화락 嚴持妙華樂

15.공양타방락 供養他方樂

16.경행본국락 經行本國樂

17.중조화명락 衆鳥和鳴樂

18.육시문법락 六時聞法樂

19.존념삼보락 存念三寶樂

20.무삼악도락 無三惡道樂

21.유불변화락 有佛變化樂

22.수요라망락 樹搖羅網樂

23.십문동성락 十聞同聲樂

24.성문발심락 聲聞發心樂



* 삼십종익[三十種益]


극락정토 삼십종의 즐거운 상[相]이니 이것을 삼십락[三十樂]이라고도 한다.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에 정토왕생을 권하기 위하여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무량수경[無量壽經]의 사십팔원[四十八願]에 의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니 다음과 같다.


1.수용종종공덕장엄청정불토익  [受用種種功德莊嚴淸淨佛土益]

2.대승법락익   [大乘法樂益]

3.친근공양무량수불익  [親近供養無量壽佛益]

4.유력시방공양제불익  [遊歷十方供養諸佛益]

5.어제불소문법수기익  [於諸佛所聞法受記益]

6.복혜자량질득원만익  [福慧資糧疾得圓滿益]

7.속증무상정등보리익  [速證無上正等菩堤益]

8.제대사등동일집회익  [諸大士等同一集會益]

9.상무퇴전익  [常無退轉益]

10무량행원염념증진익  [無量行願念念增進益]

11.앵무사리선양법음익  [鸚鵡舍利宣揚法音益]

12.청풍동수여천중락익  [淸風動樹如千衆樂益]

13.마니수류선설고공익  [摩尼水流宣說苦空益]

14.제악음성주제법음익  [諸樂音聲奏諸法音益]

15.사십팔원홍서원중영절삼도익  [四十八願弘誓願中永絶三塗益]

16.진금신색익 [ 眞金身色益]

17.형무미추익 [ 形無美醜益]

18.구족육통익 [ 具足六通益]

19.주정정취익 [ 住正定聚益]

20.무제불선익 [ 無諸佛善益]

21.수명장원익 [ 壽命長遠益]

22.의식자연익 [ 衣食自然益]

23.유수중락익 [ 唯受衆樂益]

24.삼십이상익 [ 三十二相益]

25.무유실여인익 [ 無有實女人益]

26.무유소승익 [ 無有小乘益]

27.이제팔난익 [ 離諸八難益]

28.득삼법인익 [ 得三法忍益]

29.신유광명주야상광익 [ 身有光明晝夜常光益]

30.득나라연역익 [ 得那羅延力益]



八. 태궁[胎宮]


태[胎]는 태생[胎生]이요 궁[宮]은 궁전[宮殿]이니 불지[佛智]의 불가사의[不可思議]를 의혹[疑惑]하는 행자[行者]가 자력[自力]으로 선[善]을 닦아 왕생[往生]을 원하면 저 정토에 왕생하되 연화 중에 포함되어 낳지 못하는 것이 마치 사람이 태중에 있어서 암둔[闇鈍]함과 같으므로 태생이라 하며 스스로 궁전 중에 머무름과 같이 생각하므로 궁전이라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의하면 만약 어떤 중생[衆生]이 의혹하는 마음으로 모든 공덕[功德]을 닦아서 저 나라에 낳기를 원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의혹하여 믿지 아니하면서도 오히려 죄 복[罪 福]을 믿으며 선본[善本]을 닦아서 그 나라에 낳기를 원하면 이 중생들이 저 궁전에 낳아서 五白세가 되도록 부처님을 뵈옵지 못하며

 

경법[經法]도 듣지 못하며 보살 성문[聲聞]의 성중[聖衆]도 볼 수 없으므로 이것을 태생이라 하거니와 만약 중생들이 부처님의 제지[諸智]를 믿고 모든 공덕을 지어 신심[信心]으로 회향[廻向]하면 이 중생들이 칠보화[七寶華] 중에서 자연히 화생하여 가부좌[跏趺坐]하고 잠깐 동안에 신상광명[身上光明]과 지혜공덕이 구족 성취하리라.] 하였다. 


극락세계의 삼성(三聖)


一. 삼성(三聖)의 인행(因行)

  삼성(三聖)은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이신 아미타불과 그 왼편에 계신(左脇侍)관세음보살님과 오른편(右脇侍)에 계신 대세지보살님을 말함이니 그의 인행(因行)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지나간 겁에 용진왕이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을 때에 신하의 두 딸인 녹파나와 세택가가 따라 들어가서 도를 배웠으니 왕은 지금의 아미타불이시고 녹파나는 관세음보살이시고  세택가는 대세지보살이시다.


二. 삼성과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과의 인행관계(因行關係)


삼성과 석가모니불과의 인행(因行)시의 관계된 사적의 일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지나간 겁에 한 세계가 있었으니 이름이 산제람(刪堤嵐)이요, 겁(劫)의 이름은 선지(善持)이다. 그 때에 한 전륜성왕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무쟁념(無諍念)인데  이분이 곧 아미타불이시고, 그 때의 대신(大臣)의 이름은 보해(寶海)이니 이분이 곧 석가모니불이시고, 보해의 아들이 출가하여 성불(成佛)하니 이분이 곧 보장여래(寶藏如來)이시다.


전륜성왕의 제일태자(第一太子)는 불순(不咰)이니 이분이 곧 관세음보살이시고, 제이왕자(第二王子)는 니마(尼摩)이니 이분이 곧 대세지보살이시다. 제삼왕자(第三王子)는 왕중(王衆)이니 곧 문수보살(文殊菩薩)이시고, 제팔왕자(第八王子)는 민도(泯圖)이니 이분이 곧 보현보살(普賢菩薩)이시다.


전륜성왕이 보해의 지도(指導)로 보장여래 앞에서 정토에 성불하기를 발원(發願) 하였고 왕의 천명의 아들과 팔만사천(八萬四千)의 소왕(小王)들도 보해의 지도로  발심하지 아니한 이가 없고 또 보해의 팔십며의 아들과 삼억 제자들도 보해의 지도로 발심하였으니 현겁(現劫) 때의 천불(千佛)과 당래(當來)의 미륵불(彌勒佛)도 보해의 제자이다.


*비화경(悲華經)    



전륜성왕과 보해가 모두 보장여래에게 성불하려는 발원을 하였는데 전륜성왕은 청정장엄세계(淸淨莊嚴世界)에서 성불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를 발원하시고 정토(淨土) 극락세계에서 성불하여 아미타불이 되시고, 보해는 오탁고뇌세계(五濁苦惱世界)에서 성불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敎化)하기를 발원하고 예토(穢土) 사바세계에서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이 되시었다.


三. 아미타불(阿彌陀佛)


(一). 아미타불의 인행시의 사적(事蹟)


아미타불이 무량겁 중 인지(因地)수행 시에 전륜성왕, 국왕, 왕자, 비구, 보살 등이 되셨는데 그 사적 중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 지나간 겁에 월계불(月髻佛)때에 전륜성왕이 있으니 이름이 혜기(慧起)인데, 선(善)을 닦아 복전(福田)을 심었으니 전륜성왕이 곧 아미타불이시다.


*지인경(智印經)


(나). 지나간 겁에 사자유희금광불(獅子遊戱金光佛)때에 한 국왕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승위(勝威)인데 부처님께 공양하고 선정(禪定)을 닦았는데 국왕이 곧 아미타불이시다.


*여환삼마지무량인법문경(如幻三摩地無量印法門經)


(다). 지나간 겁에 전륜성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지화(持火)요, 태자의 이름은 승공덕(勝功德)인데, 출가하여 불법을 수행 하였다.

태자는 곧 아미타불이시다.

*일향출생보살(一向出生菩薩)


(라). 지나간 겁에 무구염칭기왕불(無垢焰稱起王佛)때에 정명비구(淨命比丘)가 제경(諸經) 십사억(十四億) 부(部)를 가지고 중생의 원요(願樂)에 따라서 널리 설법 하셨다.

정명비구(淨命比丘)가 곧 아미타불이시다.


*대승방등총지경(大乘方等摠持經)


(마). 지나간 겁에 산상불(山上佛)이 멸도(滅度) 하신 뒤에 명상보살(明相菩薩)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서 널리 사리보탑(舍利寶塔)을 세웠다. 이 보살이 곧 아미타불이시다.

*대법거타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二).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과의 인행관계(因行關界)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인행 시에 관계된 사적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 지나간 겁에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때에 十六왕자가 출가하여 모두 성불하였으니 第九왕자는 아미타불이시고, 第十六왕자는 석가모니불이시다.

*법화경(法華經)


(나). 지나간 겁에 성리혜여래(成利惠如來)때에 한 국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염의(焰意)요, 그 태자의 이름은 복염(福焰)이니 왕이 태자와 함께 불법을 수행하였는데 국왕은 아미타불이시고, 태자는 석가모니불이시다.

*보적경(寶積經)


(다). 지나간 겁에 길의여래(吉義如來) 때에 한 국왕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액진무(額眞無)요, 그 태자의 이름은 덕광(德光)이니 왕이 태자와 함께 불법을 수행하였으니 국왕은 阿彌陀佛이시고,  태자는 釋迦牟尼佛이시다.


(라). 지나간 겁에 수달(首達)이라는 연장자(年長者)가 있었는데 그 제자 중에 유선(惟先)이라는 제자가 육만인(六萬人)을 교화하고 지혜와 용맹(勇猛)이 있는 것을 보고 모두들 숭배하려 하니 수달이 여러 학자에게 말하기를 [유선은 나이어리고 지혜가 적다]하고 유선을 비방하였으므로 수달이 지옥고(地獄苦)를 받았으니 수달은 아미타불이시고, 유선은 석가모니불이시다.

*불설생경(佛說生經)

 

(三). 아미타불 성불의 내력(來歷)


보장여래(寶藏如來)께서 무쟁념전륜성왕(無諍念轉輪聖王)을 위하여 정법(正法)을 說하시니 왕이 여래와 성중(聖衆)을 청하여 석 달 동안을 공양 하였고 또 불순태자(不純太子), 니마왕자(尼摩王子)등 천분의 왕자들도 도 여래께 공양하면서 三百五十세를 지냈으니 모두 보해(寶海)가 전륜성왕과 왕자와 무량중생(無量衆生)에게 권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이때에 보장여래가 삼매(三昧)에 들어 대광명(大光明)을 놓으시어 시방세계를 비치시니 오탁예악(五濁穢惡)의 세계도 있고 혹은 청정 미묘한 세계도 있는지라 전륜성왕이 보장여래께 이렇게 여쭈었다.

 

[모든 보살들이 무슨 업(業)으로 인하여 청정세계(淸淨世界)를 취(取)하며 무슨 업으로 인해서 부정세계(不淨世界)를 취 하나이까]하였더니, 여래(如來)께서 [보살의 원력(願力)으로 청정국을 취하기도 하고 예악(穢惡)국토를 취하기도 하느니라.]하셨다.

 

왕이[내가 이제 진실하게 보리도(菩提道)를 행하여 부정한 국토를 취하려 하지 아니하기를 원하오니 내가 성도(成道) 할 때에는 내 국토가 청정하여 모든 냄새와 더러운 기운이 없을 뿐 아니라 지옥 아귀 축생도 없고 중생들이 모두 금색이며 여인이 없고 한번 화생한 후에는 수명이 무량하며

 

또 다른 세계의 중생들이 내 이름을 듣고 모든 선의 근본을 닦아서 내 국토에 낳기를 원하는 이는 그 목숨이 마친 뒤에 와서 반드시 낳게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오역(五逆)을 지었거나 성인(聖人)을 비방하거나 정법(正法)을 파괴한 이는 제외할 것입니다.]하였다.


왕이 이와 같이 깊은 원을 발한 뒤에 부처님께 수기(授記)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여래께서는 [서방으로 百千萬億 불토(佛土)를 지나서 존음왕여래(尊音王如來)의 세계가 있으니 청정한 장엄(莊嚴)이 너의 소원과 같으니라. 저 부처님이 입멸(入滅)하신 뒤에 또 세 부처님이 나셨다가 입멸하시고

 

그 후에 第一 항하사아승기겁(恒河沙阿僧祇劫)을 지내고 第二 아승기겁에 들어갈 때에는 그 세계를 안락(安樂 곧極樂)이라 할 것이고, 너는 이때에 성불하여서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가 되리라] 하셨다. 그다음에 제일태자 불순과 제이왕자 니마도 대원(大願)을 발하니 부처님께서 장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주셨다.


지나간 겁에 정광여래(錠光如來)가 세상에 나시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부처님이 차례로 나시고 하여 차례로 五十二 부처님이 나시고 그 다음에 五十三번째 부처님이 나셨는데 그 이름이 세자재왕여래(世子在王如來)이시다.

 

이때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그 국왕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에 기뻐하여 나라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비구(法藏比丘)가 되었다. 법장비구는 부처님께 여쭈기를 [제가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마음을 발하였사오니 경법(經法)을 많이 연설하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마땅히 수행하여 청정한 묘토(妙土)를 취하려 하오니 저로 하여금 속히 정각(正覺)을 이루어서 중생의 생사와 고의 근본을 뽑아 버리게 하옵소서.]

 

세자재왕불께서 이백이십억이나 되는 모든 불국토의 추하고 묘한 것을 말씀하시고 그 심원대로 이 여러 세계를 모두 보게 하셨더니 법장비구는 오 겁(五劫) 동안이나 여러 부처님의 청정한 국토와 행을 생각한 뒤에 그 가운데서 고르고 골라 취하여 부처님 앞에서 사십팔원을 세웠다. 이때에 대지가 진동하며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공중에서 소리하기를 [결정 코 무상정각을 이루리라]하였다.


법장비구는 이때부터 불가사의 조재영겁에 무량의 덕행을 닦아 모은 후에 그 원이 만족하여 정각을 이루었으니 이름이 무량수불이고, 그 세계는 극락세계라 부르니 즉 여기서 서방으로 십만억 불토를 지나가서 그 세계가 있고 성불하신지는 십겁이 되며 지금도 그 세계에서 설법하시는 중이라 한다.


 법장비구가 세운 사십팔원은 다음과 같다.


 

사십팔원

 

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三악도(惡道)가 있다 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수명이 다한 뒤에 다시 삼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몸에서 찬란한 금색 광명이 빛나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모양이 한결같이 훌륭하지 않고, 잘 나고 못난 이가 따로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숙명통(宿命通)을 얻어 백천억 나 유타겁(劫)의 옛 일들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백천억 나 유타의 모든 세계를 볼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천이통(天耳通)을 얻어 백천억 나 유타의 많은 부처님들의 설법을 듣고, 그 모두를 간직할 수 없다면, 저는 차 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타심통(他心通)을 얻어 백천억 나 유타의 모든 국토에 있는 중생들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 가 되지 않겠나이다.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신족통(神足通)을 얻어 순식간에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나라들을 지나가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모든 번뇌를 여의는 누진통(漏盡 通)을 얻지 못하고 망상을 일으켜 자신에 집착하는 분별이 있다면, 저는 차라 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만약, 성불하는 정정취(正定聚)에 머물지 못하고, 필경에 열반(涅槃)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 지 않겠나이다.


1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저의 광명이 한량이 있어서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불 국토를 비출 수가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저의 수명이 한정이 있어서 백천억 나유타겁 동안만 살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성문(聲聞)들의 수효가 한량이 있어서, 三천 대천세계의 성문과 연각(緣覺)들이 백천겁 동안 세어서 그 수를 알 수 있는 정도라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수명은 한량이 없으오리니, 다만 그 들이 중생 제도의 서원에 따라 수명의 길고 짧음을 자재로 할 수는 있을지언 정, 만약 그 수명에 한량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좋지 않은 일은 물론이요, 나쁜 이름이라도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십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들이 저의 이 름(아미타불)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십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제 이름(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제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모든 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불국토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울 제, 그들의 임종 시에 제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들을 마중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저의 불국토(극락세계)를 흠모하여 많은 선근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마음을 회향(回向)할 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 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모두 三十二대인상(大人相)의 훌 륭한 상호(相好:몸매)를 갖추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 다.


2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불국토의 보살들이 제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면, 필경에 그들은 한생(生)만 지나면 반드시 부처가 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자리에 이르게 되오리다. 다만 그들의 소원에 따라, 중생을 위하여 큰 서원을 세우고 선근공덕을 쌓아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또는 모든 불국토에 다니며 보 살의 행을 닦아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또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위없이 바르고 참다운 가르침을 세우고자 예사로운 순탄한 수행을 초월하여 짐짓, 보현보살의 공덕을 닦으려 하는 이들은 자재로 그 원행(願行) 에 따를 것이오나, 다른 보살들이 일생보처에 이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입고, 모든 부 처님을 공양하기 위하여 한참 동안에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불국토에 두루 이 를 수가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드리는 공덕 을 세우려 할제, 그들이 바라는 모든 공양하는 물건들을 마음대로 얻을 수 없 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일체지혜를 연설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천상의 금강역사(金剛力士)인 나 라연(那羅延)과 같은 견고한 몸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과 일체 만물은 정결하고 찬란하게 빛나며, 그 모양이 빼어나고 지극히 미묘함을 능히 칭량할 수 없으오리니, 만약 천안통을 얻은 이가 그 이름과 수효를 헤아릴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을 비롯하여 공덕이 적은 이들까지 도,그 나라의 보리수나무가 한없이 빛나고 그 높이가 사백만리나 되는 것을 알아 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스스로 경을 읽고 외우며 또한 남 에게 설법하는 변재와 지혜를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 나이다.

3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보살들의 지혜와 변재가 한량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불국토가 한없이 청정하여, 십방 일체의 무량무수 한 모든 부처님 세계를 모두 낱낱이 비쳐봄이 마치 맑은 거울로 얼굴을 비쳐 보는 것과 같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지상이나 허공에 있는 모든 궁전이나 누각이나 흐르는 물이나 꽃과 나무나, 나라 안에 있는 일체 만물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보배 와 백천가지의 향으로 이루어지고, 그 장엄하고 기묘함이 인간계나 천상계에 서는 비교할 수 없으며, 그 미묘한 향기가 시방세계에 두루 풍기면, 보살들은 그 향기를 맡고 모두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되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의 중생 들로서, 저의 광명이 그들의 몸에 비치어 접촉한 이는 그 몸과 마음이 부드럽 고 상냥하여 인간과 천상을 초월하오리니,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 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보살의 무생법인(無生法忍)과 깊 은 지혜 공덕인 다라니 법문을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 겠나이다.


3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세계의 여인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 보리심을 일으키고 여자의 몸을 싫어한 이가 목숨을 마친 후에 다시금 여인이 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 가 되지 않겠나이다.


3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수명이 다한 후에도 만약 청정한 수행을 할 수 없고, 필경에 성불하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 겠나이다.


3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땅에 엎드려 부처님을 예배하며 환희심과 신심을 내어 보살행을 닦을 제, 모든 천신(天神)과 인간들이 그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의복을 얻고자 하면 생각하는 대 로 바로 훌륭한 옷이 저절로 입혀지게 되는 것이, 마치 부처님이 찬탄하시는 가사가 자연히 비구들의 몸에 입혀지는 것과 같으오리니, 만약 그렇지 않고 바느질이나 다듬이질이나 물들이거나 빨래할 필요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 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누리는 상쾌한 즐거움이 일체 번 뇌를 모두 여읜 비구와 같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청정 한 불국토를 보고자 하면, 그 소원대로 보배나무에서 모두 낱낱이 비쳐 보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에 그 얼굴을 비쳐 보는 것과 같으오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여러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부처님이 될 때까지 육근(根)이 원만하여 불구자가 되는 일이 없으오리니 만 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들은 이는 모두 청정한 해탈삼매를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에 머물어 한 생각 동안에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도 오히려 삼매를 잃지 않 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도 수 명이 다한 후에 존귀한 집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 겠나이다.


 

4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한없 이 기뻐하며 보살행을 닦아서 모든 공덕을 갖추오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들으면, 그들은 모든 부처님을 두루 뵈올 수 있는 삼매를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 에 머물어 성불하기까지 언제나 불가사의한 일체 모든 부처님을 뵈올 수 있으 오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은 듣고자 하는 법문을 소원대로 자 연히 들을 수 있으오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 나이다.


4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나서 일체 공덕이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이를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 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만 듣고도 바 로, 설법을 듣고 깨닫는 음향인(音響忍)과 진리에 수순하는 유순인(柔順忍)과 나지도 죽지도 않는 도리를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하지 못하고, 모든 불법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를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법장비구가 세운 四十八願 중 第十八願은 이러하다.

[설혹 내가 성불하더라도 시방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신요(信樂)하고 내 나라에 나고자하여 내 이름을 念하기를 열 번을 하고라도 만일 내 나라에 나지 못하면 나는 정각(正覺)을 취하지 아니 하겠나이다. 다만 오역(五逆)과 정법(正法)을 비방한 이는 제외할 것이니라.]

 


(四).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의 국토(國土)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의 보신토(報身土)와 화신토(化身土)는 다음과 같다.


불신(佛身)을 세 가지로 나누니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이다.


법신(法身)은 법(法)은 진여(眞如)이니 진여의 이체(理體)가 증현(證顯)된 부처님의 진신(眞身) 곧 빛깔도 형상(形象)도 없는 본체신(本體身-곧 본바탕의 몸)을 말함이요.


보신(報身)은 인위(因位)에서 지은 한량없는 원행(願行)에 과보(果報)로 나타난 상호장엄(相好莊嚴)의 불신(佛身)을 말함이며,


응신(應身 혹은 應化身)은 중생을 화도(化度)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응현(應現)하는 몸을 말함이다.


응신을 다시 응신(應身) 화신(化身)으로 분별(分別)하면 二千五百여년전에 인도에 출현(出現)하신 석가모니불은 응신이고 부처님 형상(形象)이 아닌 인(人), 천(天), 귀(鬼), 축(畜), 등으로 소화(所化)의 류(類)에 따라서 화현(化現)하는 비불형(非佛形)의 몸은 화신(化身)이라 한다.


阿彌陀佛의  報身土 - 극락세계

                  化身土 - 청태국


釋迦牟尼佛의 報身土 - 무승장엄국

                    化身土 - 사바세계


阿彌陀佛의 화신토인 청태국(淸泰國)은 [성왕(聖王)의 주소(住所)니 그 성(城)의 종광(縱廣)이  十千유순(由旬)이다.

그 가운데 찰제리종(刹帝利種)이 가득하게 차고 부(父)는 월상전륜왕(月上轉輪王)이고, 모(母)는 수승묘안(殊勝妙顔)이며, 장자(長子)는월명(月明), 봉사제자(奉事弟子)는 무구칭(無垢稱), 지혜제자(智慧弟子)는 현광(賢光)이라] 하였다.



釋迦牟尼佛의 보신토인 무승장엄국(無勝莊嚴國)은 [사바세계에서 西方으로 四十二 항하사(恒河沙)등의 많은 부처님 국토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무승(無勝)이라 칭한다. 그 국토를 어찌하여 무승이라 하는가? 그 국토에 있는 장엄(莊嚴)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평등하여 고하(高下)가 없는 것이 극락세계와 같고 또 동방(東方)의 만월세계(滿月世界)와 같다. 내가 그 세계에 출현(出現)하여 중생을 교화(敎化)하기 위하여 이 세계의 염부제(閻浮提)중에서 현(現)에 법륜(法輪)을  전(轉)한다.] 하였다.



(五). 석가모니불의 홍은(鴻恩)


중생들이 아미타불의 성호(聖號)인 만덕홍명(萬德洪名)을 일심(一心)으로 억념(憶念: 깊이 생각에 잠김.)하면 임종시(臨終時에)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

 

그 이유는 아미타불의 사십팔원 중에[중생이 내 나라에 나려 하는 이가 내 이름을 열 번만 염하면 임종 할 때에 내 나라에 나서 뛰어나게 기묘한 락을 받으며 수명이 무량하리라.]하셨으니 부처님의 이 서원이 있는 까닭으로 중생들이 염불하면  곧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한 것이요 중생의 자력이 아니다. 자력은 성취하기가 어렵고 불력에 의하여야 성취하기가 쉬운 것이다.

 

아미타불의 성호를 염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일은 석가모니불이 말씀하시지 아니하셨으면 중생들이 알지 못하였을 것인데 석가모니불께서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등을 말씀하시고 염불을 권장하셔서 중생들이 이 염불법문을 알게 되었으며 간단한 이 묘법으로 인하여 오랜 세월과 한량없는 고난을 겪지 아니하고 일생 중에 왕생 성불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는 일심으로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큰 은혜에 보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六). 현교(顯敎)와 밀교(密敎)와의 구별(區別)


석가모니불이 말씀하신 대소승경전(大小乘經典)을 다 현교라 하고 이것은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설법하신 것인데, 그 이유가 현연(顯然)하여 알기 쉬우므로 현교라 하며, 대일여래(大日如來)가 말씀하신 금강계(金剛界), 태장계(胎藏界)의 양부(兩部)를 다 밀교(密敎: 대일여래가 자기내증의 법문을 개설한 비밀하고 심오한 진실의 교법)라 한다.

이것은 여러 부처님이 내증(內證)하신 경계(境界)이니 등각보살(等覺菩薩)도 알 수 없으므로 밀교라 하니 즉 진언종(眞言宗)입니다.


(七). 밀교에서 말하는 아미타불의 명칭


밀교에서는 아미타불을 무량수불 무량광불이라 하는 외에 또 감로왕이라고도 칭하고 무량수불을 법신(法身), 무량광불을 보신(報身), 감로왕을 응신(應身)이라 하였으며 또 관자재왕(觀自在王) 이라고도 칭한다.


(八). 아미타불의 상형(像形)과 인상(印相)


아미타불의 색신상(色身像)은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 말씀하셨거니와 그 상형과 인상이 현교와 밀교가 각각 다르다. 현교에는 좌상 입상의 구별이 있고 밀교에는 금강계와 태상계의 구별이 있다.

 

현교에는 좌상 입상이 다 라발(螺髮)의 출가형(出家形)이요, 밀교에서는 좌상은 금강계, 태장계의 양부가 모두 정인(定印)을 맺었으니  이것은 미타성도자리(彌陀成道自利)의 상(相)이요. 입상은 이 정인을 분리하여 상하로 나누어 오른손을 들고 왼 손을 내리지 이것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공중에 머물러 서 계신 아미타불이니 중생을 맞아서 정토로 접인 하시는 화타(化他)의 모습이다.

 

밀교에서는 금강계의 좌상은 보관형(寶冠形)으로 정인을 맺으신 모습이고, 태장계의 좌상은 라발형으로 정인을 맺고 두 눈을 조금 감고 아래를 보시는 모습이다. 지금 인도에 남아있는 불상을 보면 중인도에는 라발형의 불상이 많고 북인도 건태라지방의 불상에는 대개 파상(波狀) 모양이 있는데,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라발형의 불상을 모신다.




(九).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해석(解釋)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나무(南無)는 나모(南謨 南模 南牟 .......), 나마(南摩), 나망(南忙), 납막(納莫), 납모(衲慕), 낭막(曩莫), 낭모(曩謨)라고도 쓰며 귀명(皈命), 귀의(歸依), 귀투(歸投), 귀례(歸禮), 예배(禮拜), 경례(璥禮), 신종(信從), 계수(稽首), 굴슬(屈膝), 구제(救濟)구아(救我), 도아(度我)라 번역한다.


귀명(皈命)의 귀(皈)는 백(白)으로 돌이킨(反)다는 뜻이니 곧 물들은(染 ) 돌이켜서 정(淨)을 이룬다는 뜻이다.


또 귀명에서 세 가지 해석이 있다.


(一). 나의 신명(身命)을 던져 불타(佛陀)에 귀취(歸趣)하는 뜻이요

(二). 부처님의 교명(敎命)에 귀순(歸順)하는 뜻이고,

(三). 명근(命根)으로써 일심(一心)의 본원(本源)에 환귀(還歸)하는 뜻이니 곧 중생의 육근(六根)이 일심(一心)으로부터 생겨서 그 근원을 배반하고, 육진(六塵)으로 나타나서 八萬四千의 진로(塵勞)를 일으키는 것이므로 이제 명근으로서 육근을 통틀어 거두어들여 그 일심의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므로 귀명이라 한다. 통틀어 말하면 중생이 불타를 향하여 지심(至心)으로 귀의(歸依) 신순(信順)하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아미타(阿彌陀)]는 범어(梵語)로 두 이름이 있다.

 

하나는 아미타유사(阿彌陀臾斯)니 무량수(無量壽)라 번역하고,

다른 하나는 아미타바(阿彌陀婆)니 무량광(無量光)이라 번역한다.

무량수(無量壽)는 아미타불의 수명이 무량무변(無量無邊) 아승기겁(阿僧祈劫)이니 곧 아미타불의 수명은 한량이 없어서 수로 계산할 수도 없는 까닭으로 무량수라 한다.


불수(佛壽)에는 법신수(法身壽), 보신수(報身壽), 응신수(應身壽)의 세가지가 있다,

 

법신수는 빛도 없고 형상도 없이 삼제(三際)에 통하므로 무시무종(無始無終) 즉 시초도 없고 종말도 없어서 수량(壽量)의 장단(長短)을 말할 수 없는 것이요.


보신수는 인위(因位)에서 지은 한량없는 원(願)과 행(行)의 과보(果報)로 나타난 만덕(萬德)이 원만한 불신이므로 한번 얻으면 유시무종(有始無終) 즉 시초는 있고 종말은 없는 것이니 수(壽)가 무량(無量)이고

응신수는 왕궁(王宮)에 탄생하셨다가 쌍림(雙林)에 열반(涅槃)하신 서석모니불과 청태국(靑泰國)의 아미타불과 같이 중생을 교화하시려는 부처님이 중생의 기류(機類)에 따라 나타내시는 몸이므로 유시무종(有始無終) 즉 시초도 있고 종말도 있어서 수량(壽量)에 기한(期限)이 있는 것이다,


[불명경(佛名經)]에 의하면 응신불(應身佛)의 수명이

월면불(月面佛)은 一일 一야,

일면불(一面佛)은 千八白세(歲)

묘성분성불(妙聲分聲佛)은 六十白세

지자재불(智自在佛)은 十二千세

범면불(梵面佛)은 二十二千세

대중자재불(大衆自在佛)은 六十千세

위덕자재불(威德自在佛)七十六千세 

마혜수라불(摩醯首羅佛)一億세 

범성불(梵聲佛)은 十億세


또 현겁(賢劫)의 七불(佛)인

비사부불(毘舍浮佛)은 二千겁(劫)

시기불(尸棄佛)은 六十千겁

비바시불(毘바尸佛)은 八十千겁(劫)

구류손불(拘留孫佛)은 十四소겁(小)

가섭불(泇葉佛)은 二十소겁

구나함모니불(痀那含牟尼佛)은 三十소겁

석가모니불(釋泇牟尼佛)은 一白년이라]하였다.


[무량광(無量光)]은 아미타불의 광명이 무량(無量)하시고 장애(障礙)없이 시방국(十方國)에 두루 비친다는 뜻이다.


광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신광(身光: 즉 몸광 또외광(外光), 색광(色光)이라고도 한다.)이니 몸에서 나는 광이요, 다른 하나는 심광(心光즉 마음광 즉 내광(內光), 지혜광(智慧光)이라고도 한다)이니 심지(心地)가 명랑한 것인데 불보살의 광명의 지혜로써 나오므로 지혜가  광명이요 광명이 지혜다.

 

또 광명에 상광(常光)과 방광(放光또는 현기광[現起光]이라고도 한다)이 있으니 상광은 불보살의 머리나 몸에 항상 있는 원광(圓光)이요, 방광은 필요한 때에 임시로 놓으시는 광이니 가령 발 무릎 배꼽, 마음 입 눈썹 사이 등에서 놓으시는 광 같은 것인데


부처님께서 발 아래로 놓으시는 광은 지옥도(地獄道)에 비추어 유익(有益)하게 하시는 것이요, 무릎에서 놓으시는 광은 축생도(畜生道)를, 음장(陰藏)에서 놓으시는 광은 귀도(鬼道)를, 배꼽은 아수라도(阿修羅道)를, 마음은 인도(人道)를, 입은 이승(二乘)사람을 눈썹 사이는 대승(大乘)사람이라한다.


[불(佛)은 불타(佛陀)를 약한 말이요 또 부타(浮陀, 部陀), 부도(浮圖 浮屠), 부두(浮頭), 발타(勃陀), 발타(勃馱), 모타(母陀), 몰타(沒陀), 몰타(沒馱)라고도 하며 각자(覺者) 지자(智者)번역한다.

 

각자(覺者)의 각(覺)에는 각찰(覺察), 각오(覺梧)의 두 뜻이 있으니

 

(一). 각찰(覺察)은 번뇌(煩惱)를 깨달아 살펴서 해(害)하지 않게 하는 것이 세상 사람이 적(敵) 있는 것을 각지(覺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일체지(一切智)라 한다.

 

(二).각오(覺悟)는 제법(諸法)의 사리(事理)를 각지(覺知)하여 요료(了了)분명한 것이 잠이나 꿈을 깨여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일체종지(一切種智)라 말한다.


스스로 깨달으며 또는 능히 다른 이를 깨닫게 하여 자타(自他)의 각행(覺行곧 스스로 깨닫고 자비로 행하는 것) 이 아주 부족함이 없는 것을 불(佛)이라 칭하니 즉 자각(自覺)은 범부(凡夫)와 다르고 각타(覺他)는 이승(二乘)과 다르며 각행(覺行)이 아주 부족함이 없는 것이 보살과 다른 것을 말한 것이니 그 이유는 범부는 자각할 수 없고 이승은 자각하되 각타의 행(行)이 없고 보살은 자각하되 각행(覺行)이 원만하지 못한 것이다.


지자(智者)는 이지(二智)를 충분히 갖추어 일체제법(一切諸法)을 각지(覺知)하는 것이  분명한 까닭으로 지자(智者)라 하며 세 가지의 지혜가 있다.

 

(一).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총상(總相)을 개괄적(槪括的)으로 아는 지혜인 일체지(一切智)와

 

(二). 중생을 교화(敎化)하기 위하여 능히 화도(化道)의 종류와 차별을 아는 지혜인 도종지(道種智또는 化道智,  薩智)와

 

(三)일체만법(一切萬法)의 별상(別相)을 낱낱이 정밀하게 아는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삼종이 있다.



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一). 관세음보살의 명칭과 의의


관세음은 구역이며 관음 또는 광세음이라 하며 신역에서는 관세자재 또는 관자재라 한다. 관세음이란 뜻은 세상 사람이 부르는 소리를 관하여 고통을 구한다는 뜻인데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서는[세간을 보고 소리를 따라서 고통을 구한다]하였고,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삼업(三業)의 귀의(歸依)를 보고 중생의 고를 빼어준다]하였다. 관음(觀音)은 관세음(觀世音)의 세자를 약한 것이요, 광세음(光世音)은 보살의 신광(身光)이 중생에게 비친다는 뜻이고, 관세자재(觀世自在)는 세계를 보아서 고를 빼고 낙을 주는 것이 자재(自在)하다는 뜻이요 관자재(觀自在)는 관세자재(觀世自在)를 약한 것이다.


(二). 천관(天冠)중의 화불(化佛)


관세음보살의 색신상(色身相)은 관무량수경에(觀無量壽經)에 천관(天冠)중에 서 있는 화불이 있으니 높이가 二十五유순(由旬)이라 하였는데 존각(存覺)의 보은기(報恩記)에는 관음은 사장(師長)의 은덕(恩德)이 무거운 것을 표하여 아미타를 이고 있는 것이다 하였다.


(三). 관세음보살의 인지(因地)


관음삼매경(觀音三昧經)에 말씀 하시기를 관음이 나(석가모니불)보다 먼저 성불하여 정법명왕여래(正法明王如來)가 되고 나는 고행 제자가 된 일이 있었는데 이 보살의 대비원력으로 일체 보살을 발기하고 모든 중생을 성숙하기 위하여 현재의 보살이 되었다고 하였다.

*

지나간 겁에 아미타불이 용진왕으로 계실 때에 시녀(侍女)이던 녹파나가 곧 관세음보살이시다.

*

지나간 겁에 한 임금이 있었으니 이름이 장엄이시고 왕비는 보응이며 삼녀가 있으니 첫째는 묘안이고 둘째는 묘음이고 셋째가 묘선이니 묘선이 곧 관세음보살이시다.

*

지나간 겁에 천광왕정주여래가 출세(出世)하여 대비심대다라니를 설하고 금색 손으로 관세음보살의 정수리를 만지시면서 네가 심주(心呪)를 가지고 미래악세(未來惡世)에서 일체 중생을 위하여 이랄(利樂)을 지어라 하였다. 이때에 관세음보살은 초지(初地)보살로써 이 주문을 듣고 곧 뛰어서 第八地 보살이 되었다.

*

지나간 겁에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한 국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선수(善首요), 태자의 이름은 선광(善光)이었다. 이때에 공왕관세음불이 出世 하였는데 선광태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제가 무수겁(無數劫)이래로 삼독(三毒)이 덮이어 악업을 많이 짖고 생사에 끊임없이 변천하다가 비로소 부처님 광명이 제 몸에 비침을 만나 생사고(生死苦)를 깨닫고 열가지 비원을 발 하였사오니 제가 미래세에 관세음이라 하고 일체 세계에서 일체신(一切身)을 나타내어 일체 중생의 고통 받는 것을 구하겠나이다. 하였으니 선광태자는 곧 관세음보살이시다.

*

지나간 겁에 금강사자유희여래가 出世 하시니 그때에 나라 이름이 무량덕취안락시현이요, 임금은 위덕(석가모니불)이다. 이 임금이 정원에서 삼매에 들었을 때에 좌우 땅에서 연화가 솟아나고 꽃 가운데에 두 동자가 화생하여 가부좌하고 앉았으니 하나는 보의요, 하나는 보상이다.  보희는 곧 관세음보살이시다.


(四). 관세음보살의 사호(賜號)와 성불의 수기(授記)


지나간 겁에 무쟁념전륜왕의  태자인 불순이 즉 지금의 관세음보살이신데 그 때에 대비9大悲)의 원을 세우니 보장불이 수기 하시기를 네가 일체 중생을 보고 대비심을 내어 그들의 모든 고뇌와 번뇌를 끊고 중생으로 하여금 안락에 머무르게 하려기에 이제 너를 관세음이라 이름하고 무량수불이 열반 한 후에 그 국토를 일체 진보소성취세계라 할 것이고 네가 성불하여 변출일체광명공덕산왕여래라 칭하리라 하셨다.

[悲華經]


지나간 겁에 금강사자유희여래때에 연화에 화생한 보희(관세음보살), 보상(대세지보살) 두 동자가 여래의 설법을 듣고 보리심을 발하니 성덕왕(석가모니불)이 열반하신 후에 관세음보살이 정각을 이루어 국토를 중보보집장엄이라 하고 불호는 보광공덕산왕여래라 칭하리라 하셨다.

[觀世音得大勢菩薩授記經] 


(五). 관세음보살의 각종형상(各種形象)과 변화분신(變化分身)


관세음보살은 정관음외에 여러 가지의 형상이 있으니 육관음 팔관음 십오관음 삼십삼관음 등이 있고 또 여러 가지 변화신을 나타내는데 여인상을 많이 나타내는 까닭으로 세상 사람들이 이보살의 근본이 여신인줄 오해하는데 여인상을 나타내는 것은 중생과 접근하시기에 편리하도록 함이며,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후부터 여인상으로 조성 하였다.이 변화신에 대하여는 릉엄경(楞嚴經)에는 삼십이응신을 말하고 법화경에는 삼십삼신을 말하였다.


(六). 관세음보살의 정토


인도의 남해안에 관세음보살의 주처(住處)가 있으니 보타낙가산인데 광명산  해도산 소화수산이라 번역하고 산의 모형은 팔각이다.

*

신역 화엄경에는 남방에 보탈낙가산이 있고 그 산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관자재요 해상에 산이 있으니 성현이 많고 중보(衆寶)로 이루어져 극히 청정하고 꽃과 과일나무가 우거진 숲이 넓게 꽉 퍼져 있으며 천류지소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며 용맹한 장부 관자재가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위하여 산에 머무르고 그 서면에는 바위골짜기사이에 샘물이 흘러 형영(擤映)하며 나무가 우거져 울창하고 향내가 좋은 풀이 유연하며 오른편으로 돌아 땅에 널리 퍼져있고 관자재보살이 금강보석위에 결가부좌 하신다고 하였다.

*

화엄경탐현기에는 남인도의 남변에 있는 산이 천축으로 본명은 포다라산이니 바른 번역은 없고 뜻을 번역하여 소수만장엄산인데 소수화가 항상 광명이 있어서 대비광명보무시현을 표한다고 하였다.

*

서역기에는 말라야산 동쪽에 포탈낙가산이 있으니 산경이 위험하며 바위골짜기가 기울어지고 산길에  못이 있어 거울과 같이 맑으며 물이 흘러 산을 이십 번을 둘러  남해로 들어가며 못가에는 석천궁(石天宮)이 있어 관자재보살이 왕래하신다 하였고, 천수경에는 한 때에 석가모니불이 보타낙산의 관세음궁전 보장엄도량중에 계시다고 하였다.



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一). 대세지보살의 명칭과 의의


범어로 마하나발을 득대세 또는 대세지라 번역하고 약하여 세지라 한다.

아미타불에 비지이문(悲智二門)이 있으니 관세음보살은 자비문(慈悲門)을 표하고 대세지보살은 지혜문(智慧門)을 표하는데 이름을 대세지라 한 것은

 

첫째 그의 큰 지혜가 모든 곳에 이르는 까닭이요

둘째 지혜광으로써 모든 중생에게 널리 비치어 삼도(지옥, 아귀, 축생)를 여의고 무상력을 얻게 하는 까닭이요

셋째 이 보살이 발을 들여 놓는 곳에 삼천대천세계와 마(魔)의 궁전이 진동하는 까닭이요

넷째 세간의 국왕대신과 같이  위세가 자재한 까닭이다.

즉 이 성자가 이와 같이 대비자재한 지위를 얻었으므로 이렇게 이름 하였다.


(二). 육계상(肉髻上)의 보병(寶甁)


대세지보살의 색신상은 관무량수경에 육계위에 있는 보병에는 모든 광명을 담아서 불사(佛事)를 나타낸다 하셨고, 또 존각의 보은기(報恩記)에는 세지는 부모의 은혜가 막중한 것을 표현하여 보병 중에 전생부모의 유골을 넣었다고 하였다. 


(三). 대세지보살의 인지(因地)


대세지보살이 항하사겁 전에 초일월광불께 염불삼매를 배워 닦으시고 항상 이 세계에서 염불하는 중생을 섭취하여 정토에 왕생하게 하신다는 것은  릉엄경(楞嚴經)중에 보살이 말씀하셨으니 염불법문(念佛法門)을 전하신 시조(始祖)가 되시고 중국의 혜원등은 중국 연종(蓮宗)의 초조(初祖)라 할 것입니다.

*

지나간 겁에 아미타불이 용진왕으로 계실 때에 그 시녀이던 세택가가 곧 대세지보살이시다.

*

지나간 겁에 무쟁념전륜왕의 제이왕자인 니마가 곧 대세지보살이시다.

*

지나간 겁에 금강사자유희여래가 출세(出世)하였을 때 위덕왕이 정원에서 삼매에 들었을 때에 그 좌우 땅에서 솟은 연화중에 화생한 보상동자가 곧 대세지보살이시다.


(四). 대세지보살의 사호(賜號)와 성불(成佛)의 수기(授記)


*

지나간 겁에 보장불이 무쟁념전륜왕의 제이태자인 니마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네가 큰 세계를 취하려 하므로 너를 득대세라 이름하고 또 미래에 성불하여 선주진보산왕여래라 칭하리라 하셨다.

[非華經]

*

지나간 겁에 금강사자유희여래때에 두 동자가 연화에서 화생하여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보리심을 발하였는데 석가모니불이 말씀하시기를 보상은 관세음보살이 열반 한 뒤에 성불하여 선주공덕보왕여래라 칭하리라 하셨다. 

 

  

제三장. 왕생(往生)의 예(例)



一. 아미타불을 친견(親見)한 실례(實例)


*


천축(인도의 옛 이름) 계두마사의 오통보살(五痛菩薩)이 신력(神力)으로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불을 뵈옵고 여쭈기를 사바세계의 중생이 정토에 나기를 원 하오나 성상(聖像)을 뵈옵지 못하와 강림하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 부처님께서 네가 먼저 내려가면 내가 따라 나타나리라 하셨다. 오통보살이 돌아와 보니 성중이 이미 오셨는데 한 부처님과 오천 보살이 각기 연화에 앉으시고 또 나뭇잎위에 계시었다. 이에 그 형상을 모사하여 전국에 널리 퍼뜨렸다.


*


중국 수나라 때에 승려 혜해(慧海)가 강도의 안락사(安樂寺)에 머물러 지성으로 염불하더니 승려 도전이 제주에서 아미타불상을 모시고 왔는데 그 미묘하고 정교함이 세간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내력을 물은즉 이것은 천축의 계두마사의 오통보살이 극락세계에 가서 그려 온 것이라 하니 혜해가 감격하여 지성으로 예배하며 보니 신광이 찬란하게 비치었다. 이에 그 상을 본떠 그리며 극락에 왕생하기를 간절히 원 하였는데 그 후에 대수롭지 않은 병이 있더니 밤에 문득 일어나 서쪽을 향하여 예배한 후에 가부좌하고 새벽에 화거(化去)하였는데 산 사람과 같았다.[往生集]


*


중국 당나라 때에 승려 법조는 연종의 제四조인데 대종의 대력4년(서기769년)에 호동사에서 오회염불도량(五會念佛道場)을 개설하였는데 이때에 상운이 가득히 덮이고 구름속에 누각이 나타나며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 두 보살이 나타나서 허공에 가득하므로 형주 사람들이 분향하며 우러러 절 하였다. 


*


중국 송대에 여인 기씨는 구용(句容) 갈제지의 처인데 대대로 선술(仙術)을 배웠으나 기씨는 홀로 불법을 좋아하여 성심으로 염불하였다. 하루는 베를 짜다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니 공중이 청명하고 문득 보개(寶蓋) 당번(幢幡)이 서방으로부터 오는데 그 가운데에 부처님이 계시고 금색광명이 찬란하게 비치므로 기씨는 베 짜기를 멈추고 자세히 뵈오며 마음으로 기뻐서 경(經)에 말씀하신 무량수불이신가하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갈제지를 끌어 부처님 계신 곳을 가리켜 보이나 남편은 단지 부처님의 반신과 번개(幡蓋)만을 보았다. 이때에 동리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불법(佛法)에 귀의한 사람이 많았다한다.


*


중국 당나라 때의 여인 요파는 상당사람인데 범파라는 분이 염불을 권하므로 요파는 가연(家緣)을 끊고 일심으로 염불하더니 임종 때에 아미타불이 공중에 강림하시고 관음 세지 두 보살이 모신 것을 뵈옵고 요파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범파를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어찌 부처님을 뵈옵게 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잠간만 계시면 범파와 작별하겠나이다. 하더니 범파가 이르매 요파는 서서히 화(化) 하였다.


*


중국 명나라의 승려 원과는 임종 날에 제자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죽은지 10년 후에 화장하라하였다. 제자가 10년 후에 관을 들고 뜰에 이르니 관 속에서 불이 일어나 타버렸다. 이때에  승려와 불자들이 보니 구름 속에 극락세계의 전경이 나타나는데 칠중란수 칠중라망 칠중항수 칠보지 누각 궁전이 금 은 유리 파려 자거 적주 마노 등으로 장엄하고 연못속에 청 황 적 백의 연화와 백학 공작 앵무 사리 가릉빈가 공명조 등이 불경에 말씀하신 것과 다르지 아니하고 공중에서 천악이 울렸다 한다. 


*


중화민국 거사 강암남은 안휘성의 무원사람인데 만년에 강역원거사의 권고로 매일아침 송경 염불하더니 서기1932년3월에 등에 종기가 발병하여 다시 살아나지 못할 줄을 알고 염불에 더욱 힘을 쓰니 병은 비록 중하나 고통을 느끼지 아니하며 또 서방극락세계를 관견한지라 강 거사에게 편지하기를 제가 3월25일 인시에 뇌우가 있은 뒤에 하늘이 낮같이 밝더니 문득 서방극락세계의 진경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 칠보장엄과 보수 보탑 등이 모두 기이하지 아니한 것이 없고 부처님이 공중에서 말씀하시는데 분명하게 들리지 아니하고 곧 흩어져 버렸으니 이로써 극락세계가 확실히 있는 줄을 알았노라 하였다.  강암남은 그 뒤부터 더욱 부지런히 염불하다가 그 해 4월 22일에 염불하면서 화거하였다.


[淨土聖賢錄]

 
 



二. 왕생을 내보(來報)한 실예(實例)


*


중국 진나라 때에 궐공측거사가 여산(廲山)백련사(白蓮社)에서 염불의 정업(淨業)을 닦다가 극락에 왕생한 후에 그의 친구가 낙양의 백마사(白馬寺)에서 궐거사의 기제사를 지내는데 수목(樹木)과 전우(殿宇)가 문득 금색이 되고 공중에서 소리하여 말하되 [나는 궐공측이다 극락에 나기를 원하여 이미 왕생하였노라]하고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아니하였다


*


중국 송(宋)나라 때에 가구가 명주에 있으면서 항상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며 정토에 나기를 원하므로 사람들이 구법화(久法華)라 부르더니 1093년에 나이 八十으로 앉은 채로 왕생 하였다가 三일만에 다시 살아나서 [내가 극락에 가서 모든 뛰어난 아름다운 현상을 보니 불경에 말씀하신 내용과 같았고 이 세상에서 정업을 닦는 이는 그 곳의 연화대(蓮華臺)위에 이름이 표기(標記)되었는데 금대(金臺)에 표기된 이는 성도(成都)에 있는 광교원(廣敎院)의 훈공(勳公), 명주(明州)의 손십이랑(孫十二郞), 가구(可久)요. 은대에 표기된 이는 명주 (明州)의 서도고(徐道姑)]라 하고 말을 마치고 다시 화거(化去)하였다. 五년후에 서도고는 운명할때에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고 十二년후에 손십이랑은 운명할 때에 천악(天樂)이 울리어서 가구의 말이 모두 증험 되었다.


*


중국 송나라 때에 위세자(魏世子)가 자녀를 데리고 염불하였으나 그 모는 염불하지 아니하였는데 그 딸이 十四세에 병사하였다가 七일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 모에게 말하기를 [내가 극락에 가서보니 아버지와 오빠들은 이미 연화가 있어서 죽은 뒤에는 마땅히 왕생할 터인데 어머니의 연화는 없어서 마음에 대단히 섭섭하므로 내가 다시 와서 알려 주니 염불하세요.]하고 눈을 감았다. 그 모는 이 말을 듣고 감동하여 곧 신심(信心)을 발하여 부지런히 염불하다가 죽은 뒤에 극락에 왕생하였다,

 


三. 극락에 왕생하였다가 다시 와서 중생을 제도(濟度)한 실예(實例)




각명묘행보살(覺明妙行普薩)은 중국 진(晉)나라 때의 사람으로 빈한한 집에 태어났는데 그 빈고(貧苦)로 인하여 발원하기를 [내가 전부터 지은 행업(行業)으로 이 빈궁고(貧窮苦)를 받는 것인데 내가 만약 아미타불을 뵈옵고 극락국에 나서 일체 공덕을 성취하지 못하면 설사 몸을 잃어버리더라도 마침내 퇴식(退息)하지 않겠다]하고 七일 七야를 일심(一心)으로 염불하다가 마침내 아미타불의 상호(相好)광명을 보니 부처님이 각명묘행(覺明妙行)이란 칭호를 주시며 친히 수기(授記)하심을 받고 그 후 75세에 앉은 채로 해탈(解脫)하여 극락에 왕생하였다가 다시 이 세계에 와서 비구 거사 왕 신(臣) 여인 걸인 등이 되기도 하며 혹은 현신(顯身)혹은 은신(隱身)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濟度)하였다.


四. 극락삼성(極樂三聖)이 극락 왕생을 예보(豫報)



연종(蓮宗)의 초조(初祖)혜원대사(慧遠大師)가 여산(廬山)동림사(東林寺)에서 못에 백련(白蓮)을 심고 123인으로 더불어 백련사(白蓮社)를 설치하고 三十년 동안 염불의 정업(淨業)을 닦았다. 처음 十一년중에 극락삼성(極樂三聖)을 세 번 뵈었으나 대사는 발설하지 아니하더니 三十년 되던 七월 그믐날 저녁에 아미타불 신(身)이 허공에 가득하고 원광(圓光)중에 여러 화불(化佛)이 계시며 관음 세지 두 보살이 좌우에 모시고 서 계셨는데 아미타불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본원력(本願力)으로 와서 너를 위안(慰安)하노니 七일후에는 네가 내 나라에 왕생하리라]하셨는데 대사는 八월 초엿새에 대중을 모아 훈계(訓戒)하고 단정하게 앉아 화거(化去)하니 나이 八十三세이다.


五 .극락삼성(極樂三聖)이 대중(大衆)을 내영(來迎)



  신라 경덕왕(景德王)17년 (서기 758년)무술(戊戌)년에 고성현(固城懸)원각사(圓覺寺 고려 때 에는 烈山縣 西鳳寺로, 현대에는 固城郡 乾鳳寺로 개명 하였다. 에서 발징화상(發徵和尙)이 승려 정신(貞信) 양순(良順)등 31인과 더불어 염불만일회(念佛萬一會)를 설치하고 염불하였는데 신도 1820인이 스스로 발심(發心)하여 그중 120인은 의복을 공급하고 1700인은 식량을 공급하더니 원성왕(元聖王)3년 (서기787년)정묘(丁卯)년에 도량(道場)문밖에 큰물이 나서 넘치며 아미타불이 관음 세지 두보살과 더불어 자금연대(紫金連臺)를 타시고 문 앞에 이르러 금색 팔을 펴시어서 염불대중을 접인(接引)하시니 대중이 크게 기뻐 뛰면서 좋아하였고 부처님은 대중을 거느리시고 반야선(般若船)에 올라 극락으로 다시 돌아 가셨는데,  이때에 도량승려 31인은 육신으로 하늘로 올라가  상품상생(上品上生)왕생하고 의복과 식량을 공급하던 염불신도 1820인 중 913인은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화(化)하여 상품상생에 왕생하고 다른 18인은 상품중생(上品中生)에, 31인은 하품하생(上品下生)에 각기 왕생하였다.


제 四 장. 사바(裟婆)와 극락(極樂)과의 비교(比較)


一. 삼계(三界)와 극락의 비교


삼계(三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 하는데 삼계안의 중생들이 모든 혹(惑 곧 번뇌<煩惱>)으로 인하여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거니 와 극락세계에는 안에 더러운 종자(鐘子)가 없어 밖으로 정방(淨方)을 나타내고 사폭류(四瀑流)를 멀리 여의어서 길이 삼계에 뛰어난 까닭으로 욕계라 한다.



*삼계


욕계-오욕(五欲) 등의 탐욕(貪欲)이 있는 까닭으로 욕계라 한다.

색계-형상(形狀)이 있는 까닭으로 색계라 한다.

무색계-형상은 없고 의식(意識)만 있는 까닭으로 무색계라 한다.


*극락


비욕계-음욕(淫慾)과 단식(段食)이 없는 까닭으로 욕계가 아니다.

비색계-땅에 의지(依支)하여 있고 색경(色境)에 염착(染着)하지 아니하므로 색계가 아니다.

비무색계-형상이 있는 까닭에 무색계가 아니다.


二. 육도(六道)와 극락의 비교


육도(六道)는 일체 중생이 자기의 지은 업(業)을 따라 육도를 돌아다니면서 낳았다 죽었다 하는 것을 쉬지 않고 연해 돌아다니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가 한정 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으므로 윤회(輪廻)라 한다.


 그 예를 들면 천중(天中)에서 죽어 인중(人中)에 낳고 인중에서 죽어 천중에 낳고 천중에서 죽어 지옥에 낳고 지옥 중에서 죽어 천중에 낳고 천중에 죽어서 아귀 중에 낳고 아귀 중에서 천중에 낳고 천중에 죽어서 축생 중에 낳고 축생 중에서 죽어 천중에 낳고 천중에서 죽어 다시 천중에 낳고 또 지옥 아귀 축생도에 ....

 이와 같이 윤회하거니와 극락세계에는 윤회하는 일이 없으며 일체중생은 남녀 노유(老幼)빈부 귀천을 물론하고 다만 신(信 ) 원(願) 행(行)만 가지고 일심(一心)으로 나무아미타불 혹은 아미타불을 행, 주, 좌, 와,(行, 主, 座, 臥,)에 생각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으면 죽을 때에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부처님을 뵈옵고 무생인(無生忍)을 깨닫게 된다.


三,  도솔천과 극락의 비교


 도솔천은 욕계육천(欲界六天)중의 제三천인 야마천(夜摩天)과 제五천인 화락천(化樂天)의 중간에 있는 제四 天인데 해면에서 三十二萬 유순(由旬) 허공에 많이 모인 구름위에 있고 종광(縱廣)이 八萬 유순이다.


 도솔천궁 이 있는데 이궁에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의 구별이 있으며 내원에는 보살이 있고 외원에는 수 없이 많은 천인들이 살고 있다.

 내원에서는 미륵보살(彌勒菩薩)에게 친근(親近)하는 까닭으로 퇴전(退轉)되는 일이 없으나, 외원에서는 오욕(五慾)에 탐착(貪着)하고 십악(十惡 )을 지으므로 흔히 삼도(三途)에 떨어진다.

 

극락세계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교주(校主)

극락  아미타불은 이미 성불(成佛)하셔서 지금 극락세계에 계시다.

도솔  미륵보살은 아직 일생보처(一生補處)로서 성불하지 못하였다.


주처(住處)

극락  극락은 정토(淨土)요 삼계(三界)를 초월(超越)한 위가 없는 不可思義)한 국토(國土)이다.

도솔  사바예토(裟婆穢土)요 욕계의 열천(劣天이다 (미륵보살이 계신 내원만은 정토다).


권속(眷屬)

극락  여인이 없다.

도솔  남녀가 많이 동거(同居)한다.


수명(壽命)

극락  무량아승기겁(無量阿僧祇劫)이다

도솔  四千세다.

그러나 중요(中夭)가 있어서 천수(天壽)다하자 못한다.

인간의 四百년이 도솔천의 一일 一야다.


내외원(內外院)

극락  내외원의 구별이 없고 일미평등(一味平等)하다.

또 구품(九品)의 우열이 있으나 모두 정정취(正定聚)에 머물므로 모두 성현(聖賢)이다.

도솔  내원 외원의 구별이 있다 혜업(慧業)이 많으면 내원에 낳아서 퇴전하지 않으나 혜업이 적고 복(福)이 많으면 외원에 떨어져서 윤회를 면치 못하고 삼도(三途)에 떨어진다.


신색(身色)

극락  순(純)진금색이요 광명이 百千유순을 비친다.

도솔  천형(天形)이 비록 청정(淸淨)미묘하나 죽을 때에는 오쇠상(五衰相)이 나타나서 신광(身光)을 잃어버린다.

 

상호(相好)

극락  아미타불 본원력(本院力)에 의하여 모두 삼십이대상(三十二大尙l 있고 좋음과 추함이 없다.

도솔  상호(相好)가 비록 단정하고 엄숙하나 남녀가 같지 않고 좋음과 추함이 있어 다르다.


고락(苦樂)

극락  근심과 괴로움이 없다.

도솔  우수(憂受) 희수(喜受) 고수(苦受) 낙수(樂受) 사수(捨受)의 오수(五受)가 있다.


권생(勸生)

극락  극락왕생을 권하는데 경문(經文)도 많을 뿐 아니라 석가모니불과 시방제불(十方諸佛)이 성실하고 간절하게 권하신다.

도솔  도솔천에 왕생을 권하는데 오직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만 있을 뿐이고 제불(諸佛)이 권하시는 것도 없고 범연(汎然)하여 간절하지 못하다.


멸죄(滅罪)

극락  나무아미타불을 일칭(一稱)하면 팔십억겁(八 十億劫)의 생사(生死) 중죄(重罪)를 멸(滅 )하고 극락에 왕생한다.

도솔  미륵보살의 명호(名號)를 일칭 하면 천이백겁 생사의 중죄를 제(際)하고 또 미륵보살의 명호를 듣고 합장(合掌)공경(恭敬)하면 五十劫 생사의 중죄를 제하며 또 미륵보살에게 경례하면 百겁 생사의 죄를 제한다.


접인(接引)

극락  극락에 왕생할 때에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으로 성중(聖衆)이 와서 맞는다.

도솔  도솔천에 왕생할 때에는 미륵보살이 미간(眉間)을 놓아 맞으신다.


수생(受生)

극락  칠보지(七寶池) 연화중에 화생한다.

도솔  남녀의 무릎 위 품속에 수생(受生)한다.



四. 인계(人界)와 극락의 비교


인계와 극락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극락 연꽃에 화생 하므로 출생 고가 없다.

인계 피와 살로 된 몸이 출생 고가 있다.


극락 추위와 더위가 변천하지 아니하므로 늙는 고가 없다.

인계 시절이 바뀌므로 날마다 쇠약하여 늙어간다.


극락 화신(化身)이 향기롭고 정결하므로 병이 나는 고가 없다.

인계 사대(四大)가 고르기가 어려우므로 병이 많이 난다.


극락 수량(壽量)이 한이 없으므로 죽는 고가 없다.

수명의 한정이 있을 뿐 아니라 죽을 때에 고가 있다.


극락 육친이 없으므로 이별하는 고가 없다.

인계 육친의 애정이 있어서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으면 좋겠는데 반드시 떠나게 되는 고가 있다.


극락 극히 착한 이들이 모여 있으므로 미운 원수를 만나는 고가 없다.

인계 미운 원수를 만나지 아니하였으면 좋겠는데 반드시 만나게 되는 고가 있다.


극락 의식(衣食)과 보물이 되어 있는 것을 받아쓴다.

인계 고난과 기한(飢寒)이 많으므로 탐(貪)하여 구하는 것이 맞지 아니한다.


극락 용모가 단정하고 몸에 광명이 있다.

인계 형체가 추악하고 병이 있는 몸이 많다.


극락 극락에 한번 태어난 후에는 다시 육도 윤회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삼악도란 이름조차 없다.

인계 수레바퀴가 도는 것과 같이 육도를 연해 돌아다니며 생사의 고를 받는다.


극락 극락의 땅은 황금으로 되어 평탄하고 보수가 하늘에 닿았으며 누각(樓閣)은 칠보(七寶)로 되고 연화가 네 가지 색으로 된다.

인계 땅이 흙과 돌로 되었으며 모든 산과 언덕 구덩이가 있고 모두 추악하다


극락 지금 극락에 아미타불이 계시어서 설법을 하신다.

인계 서가모니불이 이미 열반(涅槃)하시고 미륵불(彌勒佛)이 아직 나시지 아니 하였다


극락 극락에는 무수한 성인(聖人)들과 같이 승우(勝友)가 된다.

인계 여기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친히 뵈옵지 못하고 단지 존호(尊號)만 흠모(欽慕)할 뿐이다.


극락 부처님의 교화(敎化)가 통일되고 모든 마(魔)와 외도(外道)가 없다.

인계 모든 마와 외도들이 정행(正行)을 요란(搖亂)한다.


극락 성중(聖衆)이 모두 청정하고 여인이 없다.

인계 여색(女色)과 악우(惡友)와 올바르지 못한 말이 행자(行者)를 미혹(迷惑)하게한다.

극락 물과 새와 나무와 수풀들이 모두 묘법(妙法)을 설법한다.

인계 악한 모든 짐승과 이매등이 요망스럽고 간사한 소리를 낸다.


五 시방제불(十方諸佛)보살과 종사(宗師)들의 찬양(讚揚)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에는 시방제불(十方諸佛)이 극락정토를 극구(極口)찬양하셨고, [보적경(寶積經)]에는 서가모니불이 부왕(父王)정반왕(淨飯王)께 염불 왕생을 권하셨고,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에는 보살의  삼원(三願)중 第二원(願)이 아미타불국에 왕생을 원하는 것이고,

 

[화엄경(華嚴經)]에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왕생을 발원하셨고, [문수발원경(文殊發源經 )]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왕생을 발원하셨고, 선종(禪宗)제 十二조(祖)인 마명보살(馬鳴菩薩)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왕생을 권장(勸獎)하였고, 선종 제 十四조인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아미타불을 찬양하였고, 세친보살(世親菩薩)의 [무량수경론(無量壽經論)]에서 왕생을 발원 하였다.


   선종의 마명보살 용수보살 이외에 선종의 선덕(先德)들이 정토법문(淨土法門)을 겸해서 닦으 되 혹은 들어나게 혹은 비밀하게 닦고 자기뿐만이 아니라 극락정토를 찬양하여 법문(法門)을 설(設)하기도하며, 논문(論文)을 지어서 극락왕생을 권장하기도 하고, 또 정토 경문(經文)을 주석하여서 정토법문을 발양(發揚)한 이가 많았으며 임제종(臨濟宗)의 백장회해선사(百丈懷海禪師)는 그 지은 백장청규(百丈淸規)에서 병승(病僧)과 망승(亡僧)을 위하여 나무아미타불을 염송(念誦)하게 하였다.


또 선종 이외에 율종(律宗)삼론종(三論宗)천태종(天台宗)화엄종(華嚴宗)법상종(法相宗)등 각종(各宗)의 종사(宗師)들도 정토를 겸해서 닦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권하여 닦게도 하고 또 정토경(淨土經)을 주해하기도 하여서 정토를 떨쳐 일으킨 이가 많았다.

 

제 五장  연종(蓮宗)의 염불방법(念佛方法)


一 염불(念佛)의 의의(意義)


연종(蓮宗)에서 염불하는 본뜻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의 힘으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염(念)하는 것인데,  이는 아미타불 이 세우신 四十八원(願)중에 [유정(有精)]이 내이름을 지성(至誠)으로 염하면 임종시(臨終時)에 내나라에 낳게 하신다]는 원(願)이 있는 까닭이 있다 .

 

(-)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가장 수승하시고 가장 존귀하시고 자비(慈悲)하시다

(=)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유정(有情)과 연(緣)을 맺으신 것이 가장 많으시다

(三)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원력(願力)으로 유정을 접인(接引)하시는 것이 가장  많으시다

(四)시방제불(十方諸佛)의 정토(淨土)중에 아미타불의 정토가 가장좋다

(五)시방제불(十方諸佛)의 정토중에서 아미타불의 정토가 가장 가깝다

(六)시방제불(十方諸佛)의 명호(名號)중에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하는 공덕이 가장 많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을 오로지 염하고 다른 부처님을 염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二  염불(念佛)의 종류(種類)

 

염불법(念佛法)에 실상염불(實相念佛)관상염불(觀像念佛)관상염불(觀想念佛)칭명염불(稱名念佛)의 네가지가 있다

 

(-)실상염불(實相念佛)은 부처님의 법신(法身)이 있는것도 아니고 공(空)한것도 아닌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이(理)임을 관념(觀念)하는 것인데 이것은 有情)의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해오(解悟)하는 이가 드문 법이다

 

(=)관상염불(觀相念佛)은 단정히 앉아서 부처님의 만든상(像)또는 화상(畵像)등의 상신(像身)을 관념하는 것이니 상신이 없어지면 그 관념이 사이가 떨어져 끊어지는 염불법이다

 

(三)관상염불(觀相念佛)은 고요히 앉아서 부처님의 원만하신 상호(相好)만 상념(想念)하는 것인데 이것은 유정(有情)의 마음은 굵고 경(境)은 가늘어서 능히 묘관(妙觀)을 이루기 어려운 법이다

 

(四)칭명염불(稱名念佛)은 지명염불(持名念佛)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염(念)또는 창(唱)하는 것인데 이것은 가장 간단하고 수행(修行)하기 쉬우며 왕생하기 쉬운 것이므로 네가지 염불법 중에 손쉬운 방법이다


三 염불수행(念佛修行)의 요건(要件)


염불법문(念佛法門)에는 신(信) 원(願) 행(行)의 세 조건을 구비하여야 극락에 왕생하기 쉽고 구비하지 못하면 왕생하기 어려운 것이다.

 

 신(信)은 믿는것이니 아미타불의 四十八원(願)과 석가모니불의 교어(敎語)와 시방제불(十方諸佛)의 찬탄(讚歎)을 굳게 믿는 것이다.

[유마경(維摩經)에는[서방정토(西方淨土)에 가고자 할진대 깊이 믿는것이 견고(堅固)하여야 하나니 정토의 항하사(恒河沙)제불(諸佛)은 모두 정토를 정신(正信)하던 사람들이라]하셨고 [연지대사(蓮池大師)]는 (정토에 왕생하려면 진심으로 믿어야 하나니 千사람이 믿으면 千사람이 왕생하고 만(萬)사람이 믿으면 萬사람이 왕생한다]하였고, [종경록(倧鏡錄)]에는[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천불(千佛)이라도 구(救)할수 없느니라]하였다.

 

원(願)은 어느때에나 항상 사바세계의 생사고(生死苦)를 싫어하고 극락정토의 보리의 낙(樂)을 사모(思慕)하여 선악(善惡)의 업(業)을 짓는대로선업(善業)은 회향(廻 向)하여 정토에 나기를 원(願)하고, 악업(惡業)은 참회(懺悔)하여 정토에 낳기를 원하되 자기 혼자서만 왕생할것을 원할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이 함께 왕생하기를 원할것이다.

 

 [지도론(智度論)]에도 행(行)만 하는 공덕은 성취할수 없으므로 원이 있어야 하나니 비유(臂喩)하면 소가 수레를 끌수 있지만 모는 사람이 있어야 가려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것과 같이 정토에 왕생하는 원도 이와 같으니 행하는 복덕(福德)은 소와같고 원은 모는 사람과 같다]하였고,

 

 [화엄경행원품(華嚴經行願品)]에는 [이사람이 임종(臨終)할때에 최후 찰라에 온갖 근(根)들이 모두 흩어져 망가지고 온갖 친속(親屬)들을 모두 여의어 버리고 온갖 위세(威勢)를 모두 잃어버리고 내지는 코끼리 말타고 다니는 수레 진보(珍寶)등이 하나도 따라오지 못하지마는 이 원력(願力)만은 떠나지 아니하고 어느때에나 항상 그 앞을 인도(引導)하여 한 찰나 중에 극락세계에 왕생하게된다]고 하였다.

 

행(行)에는 정행(正行)과 조행(助行)이 있으니 정행(正行)은 나무아미타불의 여섯자(字))혹은 아미타불의 넉자를 항상 염(念) 혹은 송(誦)하는 것이다.

 조행(助行)은 (1) 예배 공양하고 (2)주문(呪文)경문(經文)을 염송(念誦)하고 (3)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하고 (4)애정을 끊고 (5)모든선사(善事)를 행하고 (6)닦은 공덕을 극락에 회향(廻向)하는 것이다.

 

 신, 원, 행,의 신,원은 눈과 같고 행은 발고 같으며 또 신,원은 소와 같고 행은 수레와 같으며 또 신,원은 바둑판의 줄과 같고 행은 바둑과 같으므로 이 신,원,행,의 셋중에서 하나만 없어도 성취하지 못한다.

 

 더욱 신,원이 주재(主宰)가 되어 인도하는 것이므로 신,원만 한결같이 되면 모든 선행(善行)이 모두 정토(淨土)의 자량(資糧)이 되며 설혹 불행히 잘못 악사(惡事)를 지었더라도 성심으로 참회(懺悔)하고 상속심(相續心)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족히 왕생의 묘행(妙行)이 되는 것이다

四 정행염불(正行念佛)


(-)정행염불의 가지가지


염불하는 사람은 행, 주, 좌, 와(行主左臥)에 항상 서쪽을 향하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일심(一心)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할 것이다.


 염불에는 출성념(出聲念)무성념(無聲念)의 구별이 있고, 또 출성념에는 고성념(高聲念)과 저성념(底聲念)이 있으며, 무성념에는 미동순설념(微動脣舌念)무성밀념(無聲密念)이 있고, 또 기수념(記數念)불기수념(不記數念)이 있다.


 [고성념은 고성지(高聲持)라고도 하고 큰 소리로 불명(佛名)을 외우는 것이며 저성념은 저성지(底聲持)라고도  하여 작은 소리로 불명을 외우는 것이다.

 

  미동순설념은 금강념(金剛念)금강지(金剛持)반명반묵지(半明半黙持)라고도 하고 입술만 움직이어 곁에 있는 사람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무성밀념은 묵념(黙念)묵지(黙持)삼매념(三昧念)이라고도 하고 소리 없이 속으로 염하는 것이다.

 

 기수념은 기수지(記數持)라고도 하고 염불할 때에 염주(念珠)를 가지고 수를 세는 것이다. 불기수념은 불기수지(不記數持)라고도 하고 염불할 때에 염주로 세지 아니하는 것이다. 기수념 불기수념은 제각기 마음대로 할 것이나 처음 염불하는 사람은 염주를 가지고 세는 것이 좋다.


(二) 염송(念誦)할 때의 주의할 일


一 거사(居士)로써 염불할 때의 의복은 일부러 가사(袈娑)같은 법의(法衣)를 입을 것은 없고 평상복(平常服)도 좋으며, 또 목탁(木鐸)이나 광쇠같은 것을 치는 것도 주위의 환경에 따라서 치거나 치지 않는 것을 임의로 할 것이다.


二 염불할 때에는 항상 생각하기를 자기의 몸이 큰 연꽃 위에서 결가부좌 하고 합장(合掌)하거나 아미타불의 수인(手印)을 맺고 부처님이 광명을 놓아 내 몸을 비춰 주시는 형상(形狀)을 생각할 것이다.


三 염불할 때에는 마음의 지극한 정성이 간절하고 긴장하기가 마치 부모상(喪)을 만난 때의 애절(哀切)함과 같이 또는 자기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생각과 같이 주릴 때에 밥을 생각하는 것과 같이 목마를 때에 물을 구하는 생각과 같이 병났을 때에 약을 찾는 것과 같이 젖 잃은 아이가 어머니를 찾는 것과 같이 옥(獄)에 갇혔을 때에 나오기를 바라는 생각과 같이 원수가 따라올 때에 피하려는 것과 같이 수재(水災)화재(火災)를 구(救)할 때 의 생각과 같이 닭이 알을 품었을 때와 같이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四 염불은 출성념(出聲念)이거나 무성념(無聲念)이거나 형편이 좋은 것을 따라 자유로 하되 식사할 때나 대소변 할 때나 누웠을 때나 옷을 벗었을 때나 목욕할 때에는 무성념으로 할 것이다. 이것은 소리를 내는 것이 불경(不敬)한 까닭이요, 염불의 공덕은 출성념이나 무성념이 일반이다.

 

五 출성념은 고성념이 힘이 들거든 저성념을 할 것이고 저성념이 불편하거든 금강념이나 묵념을 할 것이고 금강념 묵념이 혼침(昏沈)할 경우에는 저성념이나 고성념을 할 것이다.

 

六 불명(佛名)을 염송(念誦)때에 자음(字音)과 구절(句節)을 분명히 할 것이며 염송 할 때에 만약 잡념(雜念)이 일어나거든 염송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도록 하면 잡념이 점점 감하여 질것이다.


七 염불하는 장소는 구태여 정적(靜寂)한 곳만 구하려 하지 말고  염불에만 오로지 마음을 써서 끊임없이 계속하면 좋다. 염불이 완전히 익지 못한 이는 정적한 장소가 좋거니와 정적한 곳에서만 염불하던 사람이 혹시 번잡한 곳에 가게 되면 염불에 방해되는 일이 있을 것이므로 처음부터 환경의 여하에 불구하고 염불에만 오로지 마음을 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八 염불을 권하는 사람들이 혹은 먼저 망상(妄想)을 버리라 하기도 하고 염불하는 사람도 망상이 생기는 것을 근심도 하거니와 망상은 성현(聖賢)들도 아주 끊어 버리기 어렵거늘 하물며 범부중생으로써 어떻게 망상을 모두 끊을 수 있으랴. 망상을 끊지 못한 범부로써도 평소에 왕생한 이가 많은 것은 평소에 신, 원이 견고(堅固)하고 항상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아 부처님의 본원(本願)에 부합하므로 섭수(攝受)를 입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설사 망상이 없다 하더라도 염불하지 않으면 왕생할 수 없나니 마치 어두운 밤에는 구름이 없더라도 달이 없으면 달빛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고 염불하는 사람은 망상이 있더라도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니 마치 빛나는 태양의 빛이 대지(大地)에 퍼지어 사람들이 모두 수용(受用 )하여 작업(作業)할 수 있는 거와 같다 여기에 이러한 계가 있다.


[미타일구법중왕(彌陀一句法中王) 

잡념분분야불방(雜念紛 紛也不妨)

만리부운차혁일(萬里浮 雲遮赫日)

인간처처유여광(人間處 處有餘光)]


즉 [미타일구(彌陀一句)가법중의 왕이니 망상이 뒤얽혀 갈피를 잡을 수 없더라도 무방하다 비유하면 만리에 뜬구름이 해를 가리더라도 인간 곳곳에 나머지 광이 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우익대사(藕益大師)는 말하기를[깊은 신심(信心)과 간절한 원(願)을 가지고 염불하면 망상이 많은 이는 곧 하품하생(下品下生)이라]하였으니 비록 하품(下品)에 낳더라도 모든 상선인(上善人)과 한곳에 모여 법락(法樂)을 함께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불할 때에 망상을 떨어 버리려고 애쓰지 말고 염불에만 오로지 마음을 써서 끊어지지 아니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九 염불에 마음을 오로지 하여 어지러워지지 않는 것은 생각의 흩어짐으로부터 성취되는 것이니 먼저 생각의 흩어짐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야 어떻게 일심(一心)을 성취할 수 있으랴 마치 글자를 배운 뒤에라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거늘 글자도 배우지 아니하고 글부터 먼저 지으려는 것과 같으며, 또 모든 기술(技術)이 서투른 데서부터 익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심(信心)이 견고하고 원이 간절하면 염불하는 것이 끊어지지 아니하거나 쉬는 일이 적어지고 생각의 흩어짐도 점점 적어져서 일심에 이르는 것이다. 또 설사 일심이 되지 못하더라도 이와 같이 수행하면 하품(下品)에는 반드시 왕생 할 수 있는 것이니 중요한 비결은 오직 [행주좌와염념불사(行主左臥念念不捨)]의 여덟 자에 있다.


十 참구염불(叅究念佛)이란 [염불자수(念佛者誰)즉 염불 할 때에 이것이 누군가]하여 염불에 참선(叅禪)을 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염불이 둘로 나뉘어져서 한결같지 못하고 부처님의 본원(本願)과도 서로 어울리지 못하므로 왕생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국의 중봉선사(中峯禪師)는 (참선에는 염불을 겸할 것이나 염불에는 참선을 겸하는 것이 불가하다)하였다.

 

 선종(禪宗)은 원래 [시심마(是甚麽)즉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화두(話頭)법문(法門)이 있는데 중국의 학자(學者)가 참선으로 깊이 깨달아서 확고한 힘을 얻지 못하는 이가 많고 혹은 염불을 겸해서 닦는 이도 있으며 혹은 염불로 바꾸고 고치는 이도 있으므로, 선종종사(禪宗宗師)들이 부득이 한 가지 방편으로 참구염불을 권하였으나 이것은 정토종(淨土宗)의 근본 취지가 그러한 줄로 아는 이가 있다.


十一 세상 사람들 중에는 [현세(現世)를 발원(發願)하려면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내세(來世)를 발원 하려면 아미타불을 염한다]는 오해를 가진 이들이 있다.

아미타불은 원래 대비원력(大悲願力)로 염불 중생을 접인(椄引)하셔서 극락세계에 왕생케 함은 물론이거니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도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중생을 접인 왕생케 하시는 터인즉, 누구나 극락왕생을 발원하였으면 아미타불을 염하거나 관세음보살을 염하거나 대세지보살을 염하거나 모두 극락에 왕생하는 것인즉 관세음보살 이라고 현세에서만 중생을 호념(護念)하시는 것은 아니다.


十二 세상 사람들이 염불한다 하면 아미타불 을 염하거나 관세음보살 혹은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을 통칭(通稱)하여 모두 염불한다고 한다.


 염불하는 사람 중에는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이가 많으니 이것은 관세음보살이 사람들의 괴로움을 건져 주시고 어려움을 도와주신다 하여 세상 사람들이 세복(世福)곧 자손 부귀 장수 등을 누리기를 발원하는 까닭이요.

 아미타불을 염하는 이가 적은 것은 내세(來世)의 일이라 하여 반신반의 하여 현세의 복락(福樂)과 같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며 또 지장보살을 염하는 사람은 더러 있으나 대세지보살을 염하는 이는 없는 모양이다.


十三 부처님이나 보살을 염할 때에 두 분이나 세 분을 합하여 염하는 이도 있으나 이것은 한분을 염하는 것 보다 여러분을 염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으로 여러 분을 염하나, 염불은 원래 일심(一心)이 되어야 하는데 만약 여러 분을 염하면 염불이 한결같지 못하여 한 분만을 일심으로 염함만 같지 못하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교화(敎化)하시고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많은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濟度)하여 우선 심한 고를 면하고 사람, 하늘 등 선도(善道)에 낳게 하시는 보살이시므로 망자(亡者)를 천도(薦度)할 때에는 항상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것은 망자가 죄고(罪苦)를 벗고 선도에 낳기를 애원(哀願)하는 것이다.


十四 관세음보살도 지금 극락세계의 보처(補處)보살로 계셔서 중생을 접인(椄引)하여 극락에 왕생케 하시거니와 그러나 아미타불은 그 四十八원(願)중에 유정(有情)이 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염하면 죽을 때에 극락에 왕생하게 하기를 발원하셨는데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원(願)이 없으시다.

 

 또 부처님은 법왕(法王)이시고 보살은 법신(法臣)이시므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공덕은 아미타불을 염하는 공덕만 못할 것이다. [능엄경(楞嚴經)에 사바세계에 현주(現住)하는 보살이 六十二億항하사수(恒河沙數]라 하였다.

(三). 염불의 사구(四句)의 구별(區別)


사바세계는 생멸(生滅)이 덧없이 헛된 탁악세계(濁惡世界)요, 극락세계는 생사(生死)가 없고, 영구불변 진실한 청정세계건마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당장에 극락세계를 보지 못하고 찬탄(讚嘆)한 장엄(莊嚴)의 뛰어나고 훌륭한 말을 듣고 옅은 지견(知見)으로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 많아서 도리어 사바세계를 진실한 세계로 인정하고 극락세계를 허망(虛妄)한 세계로 인정하여 확실히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세상 사람이 염불하는데 사구(四 句)의 구별이 생기게 되니


곧 무원염불(無願念佛) 속원염불(俗願念佛) 진원염불(眞願念佛) 양원염불(兩願念佛)이다.


(가).무원염불은 극락왕생도 현세탁복(現世濁福)곧 자손 부귀 장수 등도 발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염불하면 좋다는 말만 듣고 염불하는 것이다.


 원래 염불법문(念佛法門)은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염불하여야 왕생하게 되는 것인데 왕생 하려는 발원이 없이 염불만 하여서는 왕생하기가 어렵다.


(나).속원염불(俗願念佛)은 현세(現世)의 속계(俗界)탁복(濁福)만을 발원하여 염불 하는 것이니, 이는 미망(迷妄)한 최하의 비열(卑劣)한 발원이다.


 부처님이 四十九년 동안을 설법하신 것은 육도(六道)를 중생들이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끝이 없이 전전(轉轉)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돌아가며 고를 받는 것을 제도(濟度)하시어 속히 성불(成佛)하는 길을 가르치신 것이거늘 육도를 벗어날 생각은 없고 현세에 눈이 어두워 이 탁악세계(濁惡世界)에서 고의 원인이 되는 탁복(濁福)만을 받으려 발원하니 실로 연민(憐憫)할 중생이다.


(다).진원염불(眞願念佛)은 극락왕생만을 발원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하면 저절로 현세에서는 몸과 마음이 안온(安穩)하고 가내가 태평하며 하는 일이 여의(如意)할 뿐 아니라 죽을 때에 반드시 왕생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현세와 미래에 있어서의 효과는 참으로 일거양득의 법이니 염불하는 사람은 명심하여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라).양원염불(兩願念佛)은 속원(俗願)과 진원(眞願)을 겸하여 염불하는 것이니 이것은 두 원(願)이 뒤섞이어 구별이 안 되어 발원이 한결같지 못하고 부처님의 본뜻과도 어긋나므로 왕생하기 어렵다.

 

(四) 염불삼매(念佛三昧)


삼매(三昧)는 옛말이오. 새말에는 삼마지 (三摩地)라 쓰고 정정(正定)등지(等持)라 번역한다. 정정(正定)은 올바르지 못하고 어지러움을 여의므로 정(正)이라 하고 마음이 한경(境)에 머무르게 하므로 지(持)라 한다.

염불삼매(念佛三昧)라 함은 염불하는 이가 마음으로써 부처님께 반연((攀緣)하며, 부처님으로써 마음에 얽매어 마음과 마음이 서로 상속(相續)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면, 이때에 안으로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밖으로 경계(境界)가 침입(侵入)하지 아니하여, 여러 가지 수(受)를 받지 아니하고, 정주(正受)를 얻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염불삼매 라 한다.


 염불삼매를 구별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관념(觀 念 )하거나 혹은 일심으로 법신(法身)의 실상(實相)을 관념하거나 (이상 두 가지는 관상염불[觀相念佛]또는 일심으로 불명(佛名)을 칭념(稱念)하는 행법(行法)을 닦는 것을 염불삼매라 하니 이것은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라 한다.

 

(=).

위의 세 가지 인행이 과(果)를 이루어 마음이 선정(禪定)에 들어서 혹은 불신(佛身)이 눈앞에 나타나거나 혹은 법신(法身)의 실상에 꼭 들어맞는 것을 염불삼매라 하니 이것은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라 한다.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는 이것을 수(修)라 하고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는 이것을 발득(發得곧 지혜가 생기므로 점점 얻게 되는)이라 한다.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는

[염불삼매를 성취함에는 오연(五緣)이 있으니


(1).계행(戒行)을 지니고 범하지 아니 할 것.

(2).사견(邪見)을 일으키지 아니할 것.

(3).아첨(阿諂)하며 교만(僑慢)하지 아니 할 것.

(4).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성내고 원망하며 강새암하지 아니할 것.

(5).용건정진(勇健精進)]할 것 이라 하였다.

(五).선지식(善知識)에게 배워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한 번 보고 들은 것이 선악(善惡)간에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것을 바꾸어 고치기가 대단히 어려운 모양인데 이것을 선입견(先入見)이라 한다.

 

 이 선입견이 있는 사람은 소견(所見)만 고집하며 또 옳은 법(法)을 가르쳐 주어도 시키는 대로 잘 쫒지 아니하고, 자기의 소견(所見)만 고집하며 또 옳은 법을 알지 못하므로, 이법 저 법을 섞어서 행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은 모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선지식 이라는 것은 자기도 옳은 도(道)를 닦으면서 다른 사람을 옳은 道로 가르쳐 이끄는 이를 말함이니 불보살도 선지식이요, 옳게 잘하는 이는 다 선지식 이다. (부정한 도를 가르치는 스승이나 벗은 악지식(惡知識)이다).


 경(經)에 말씀 하시기를

[도(道)를 얻는 데는 선지식이 전인연(全因緣)이라]하셨고, 성암법사(省庵法師)는 (세간(世間)의 사소한 기술(技術)도 선생이 있어야 하거늘 하물며 불법에 있어 서랴.] 하였으니 공부하는 데는 선지식을 만나야 하는 것이며, 임종 때에는 선지식이 더욱 긴요한 것이다.


 만일 선지식을 만났거든 그의 지도하는 대로 곧 실행 하여야 하나니 다른 일을 핑계하고 차일피일 하다가 필경 실행하여 보지도 못하고 명(命)을 마치어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면 이 보다 더 큰 원통한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적실화상(寂室和尙)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이 정토를 닦으려 하거든 지금 몸이 건강할 때에 부지런히 닦을 것이다. 만일에 지금은 바쁘니까 조금 한가하거든 닦겠다. 하거나 지금은 가난하니까 부자가 되거든 닦겠다. 하거나 아직 나이 젊으니까 늙어지거든 닦겠다. 하면서 닦지 아니 하다가 별안간에 죽게 되면 잘못 된 뒤에 아무리 후회 하여도 어찌 할 수가 없으리라]하였다.

 


(六) 일념(一念)이 다념(多念)과 같다는 설(設)


한번 불명(佛名)을 염(念)하는 것이 여러 번 염하는 것과 같으냐 다르냐 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1) [락방문류(樂邦文類)]에 [서가모니불이 계실 때에 어떤 속가(俗家)의 늙은 남녀 두 사람이 곡식 한말을 가지고 수를 세어 가면서 아미타불을 염하여 정토왕생을 원하는 것을 보시고 [나무서방정토극락세계 삼십육만억일십일만구천오백 동명동호 대자대비 아미타불(南無西方淨土極樂世界 三十六萬億一十九千五百同名同號 大慈大悲 阿彌陀佛)]을 한번 염하는 것이 많은 곡식 수와 같이 염하는 것과 공덕이 같다]고 말씀 하셨다 한다.


 그러나 이 불호는 모든 정토계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당나라 비석선사(飛錫禪師)의 [보왕론(寶王論]에 비로소 이 불호로써 [일념다념문(一念多念門)]을 세웠고, 다음에 시랑(侍郞: 벼슬이름) 왕고(王古)가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에 이 일을 말하였다.


 그 후에 [삼문직지(三門直指)]에는 [나무서방정토극락세계불신장광상호무변 금색광명 변조법계 사십팔원 도탈중생 불가설 불가설 전불가설 항하사불찰 미진수 도마죽위 무한극수 삼백육십만억일십일만구천오백 동명동호 대자대비 아등도사 금색여래 아미타불 (南無西方淨土極樂世界 佛身長廣 相好無邊 金色光明 邊照法界 四十八願 度脫衆生 不可說 不可說 轉不可說 恒河沙佛刹 微塵數 稻麻竹葦 無限極數三百六十萬億一十一萬九千五百 同名同號 大慈大悲我等導師 金色如來 阿彌陀佛)]의


명호(名號)가 [금색아미타불경(金色阿彌陀佛經)]에서 나온 것인데, 한 번 염하고 한 번 절하면 十념 예념(禮念)한 공덕과 같다고 하셨다. 위의 두 불호는 염불하는 사람이 이것을 참고로 한 번 볼 뿐이고 항상 [나무아미타불]혹은 [아미타불]만 오로지 염할 것이다


(2) 十념하여 왕생하는 것보다도 一념에 왕생하여 불퇴지(不退地)에 오르는 것이 정당하다.


그 이유는 오역(五逆)과 사중죄(四重罪)도 모두 一念에 악업(惡業)을 이루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것이 활 쏘는 것과 같고, 또 一念에 선업(善業)을 이루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팔을 굽히는 것과 같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도 [일념염불(一念念佛)에 모다 왕생한다]하셨으나[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十念]이라 한 것은 임종 시에 극병(劇炳)이 있어서 기운이 없고, 마음이 줄어들므로 十念을 불러서 一念을 돕게 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의 장선화(張 善和)는 백정(白丁)을 직업으로 하여 생전에 지은 업(業)이 순전히 흑업(黑業)이므로 이와 같은 사람은 설혹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염불을 가르쳐 주더라도 一念만으로는 부족하므로 十念으로써 그 부족한 것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염심(念心)이 왕생하고 심신(心神)이 어리석고 둔하지 아니하면 다만 一念으로도 족하니 마치 실과 머리카락 같은 묘목(苗木)을 심어서 百아름이나 되는 거목(巨木)이 되는 것과 같이 一念의 힘이 굉장히 큰 것이다.



(三)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모두 一念으로 결과하는 것인데 一念이 일체염(一切念)을 갖추어 있으므로 一念이 十念보다 열(劣)하지 아니하고 또 十念이 즉 一念이므로 十念이 一念보다 우(優)할 것 없으나 부처님이 혹 一念을 말하시고 十念을 말씀하신 것은 여래(如來)의 뛰어난 방편(方便)이시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실 때에 간이(簡易)한 곳에서는 간이하게 말씀하시고 번다(繁多)한 곳에서는 번다하게 하셨으니, 간이한 곳에서 一念을 가르치신 것은 그 온 정력을 다하는 마음이 치밀하고 한결같으므로 一念이 다념(多念)보다 승(勝)한 까닭이고 또 번다한 곳에서 十念을 가르치신 것은 숙습(宿習)이 짙으므로 다념이라야 제거(除去)할 수 있으니 적은 염으로 삼매(三昧)를 이루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방편에 불과하고 실은 一이 곧 二요 二가 곧 一인 즉 一念 十念 분별 할 것이 없다.

 

(七) 십념 왕생(十念往生)의 의의(意義)


어떤 이가 묻기를[경에는 중생의 지은 업(業)이 저울과 같아서 무거운 데로 먼저 끌린다 하였는데 중생들이 오늘날까지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한 적이 없거늘 어떻게 임종 시의 十念염불로 곧 왕생 할 수 있겠는가. 만일 十念으로 왕생한다면 무거운 데로 끌린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하였더니 그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은 나쁜 업(業)이 중하고 十念의 선(善)이 경(輕)하다 하거니와 十念으로 왕생되는 것은 곧 마음에 있고 연(緣 )에 있으며 결정(決定)에 있는 것이므로 시간의 오래고 짧음이나 일의 많고 적은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마음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허망(虛妄)하고 전도(顚倒)된 마음으로 짓는 것이요 이 十念은 선지식(善知識)의 안위(安慰)에 의하여 실상법(實相法)을 듣고 염불하는 것이므로 하나는 허망하고 하나는 진실하거늘 어찌 대비할 수 있으랴 千념이나 묵은 어두운 방도 일찰나(一刹那)의 광명으로 밝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유일마니보경(遺一摩尼寶經)에는 [중생이 비록 수천거억만겁(數千巨億萬劫)을 애욕중(愛慾中)에서 죄에 덮여 있더라도 만일 불경을 듣고 一念이 선(善)하면 죄가 사라져 없어진다]하셨으니 이것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나)연(緣)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망상(妄想)에 의하고 또 번뇌(煩惱)과보(果報)중생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나 이 十念은 무상신심(無上信心)에 의하고 또 아미타불의 진실 청정한 한량없는 공덕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독(毒 )한 화살을 맞아 골육(骨肉)이 깨어져 상하였더라도 멸제약고성(滅除藥鼓聲)을 들으면 화살이 나오고 독이 제거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연(緣)에 있는 것이다.

 

 릉엄경[楞嚴經)]에 [비유하면 한약이 있으니 이름이 멸제(滅除)라 만약 전쟁할 때에 이 약을 북에 바르면 그 북소리를 듣는 이는 화살이 빠지고 독이 제거되는 것이니 보살마하살(菩薩摩?薩)도 이와 같이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에 머무르면 그 이름을 듣는 이가 삼독(三毒)의 화살이 저절로 빠져 나온다]하였다.


(다)결정(決定)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유후심(有後心) 유간심(有間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요 이 十念은 무후심(無後心) 무간심(無間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 결정에 있는 것이다 [지도론(智度論)]에는 [일체 중생이 임종 시에 죽는 고(苦)가 매우 절박하여 대단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므로

 

 이때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대용맹(大勇猛)을 발하여 마음과 마음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증상선근(增上善根)이 되어 곧 왕생케 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적(敵)을 대하여 진(陣)을 쳐부술 때에 평생에 있는 힘을 다 쓰는 것 같이 이 十念의 선근(善根)도 그러한 것이고 또 임종 시에 一念의 사견증상악심(邪見增上惡心)이 생기면 능히 삼계(三界)의 복(福)을 기우려서 곧 악도(惡途)에 들어가게 된다]하였다. [安樂集]


임종 시의 염불하는 마음 밖에 후심(後心)이 없고 후심이 없으면 딴 생각이 섞이지 않으므로 임종 시에는 무후(無後)무간(無間)의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맹렬하고 날카로운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고 평상시의 악업(惡業)은 유후(有後)유간(有間)의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맹렬하지 못하고 날카롭지 못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十念에 왕생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경계(境界)에 있고 정(淨)에 있는 것이다.


(가) 마음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허망심(虛妄心 )이요, 염불하는 것은 진실심(眞實心)이니 진실로서 허망(虛妄)을 떨어버리는 것이 마치 千년이나 된 어두운 방에 아침해의 밝은 빛을 막지 못하는 것 같은 것이다.


(나) 경계(境界)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전도경계(顚倒境界)에 연(緣)한 것이요 염불은 뛰어나게 기묘한 공덕에 연한 것이니 眞正)으로써 허위(虛僞)를 여의는 것이다.


(다) 정(淨)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염의(染意)요, 염불하는 것은 정심(淨心)이니 정심이 염의를 이기는 것이 마치 동자(童子)의 칼이 능히 천장(千丈)의 노끈을 끊으며 작은 불이 능히 萬속(束)의 땔 나무를 태우는 것 같은 것이다.

 

[문]중생의 지은 죄업(罪業)이 산같이 쌓이었는데 어떻게 十念으로 그 죄업을 멸(滅)할 수 있겠는가. 비록 百萬念을 하더라도 그 많은 죄업을 다 없앨 수 없거늘 어떻게 죄업을 다 없애지 못하고 정토에 왕생하겠는가. 이에 대하여 다음의 세 가지 뜻이 있다.

 

(-) 그 악업을 멸하지 아니하더라도 정토에 왕생할 이는 임종 시에 정념(正念)이 앞에 나타나 능히 시초 없는 이래로 또는 일생 이래의 지은 선업을 이끌어 서로 도와서 왕생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名號)는 통틀어 만덕(萬德)을 이룬 것이니 일념염불(一念念佛)하는 이는 즉 一念중에 통틀어 만덕을 염하는 것이다.

 

(三) 시초 없는 이래의 악업은 망상(妄想)으로 지은 것이니 어두움과 같고 염불공덕은 진심으로 생기는 것이니 태양과 같다. 태양이 나오면 온갖 어두운 것이 없어지듯이 진심이 잠깐 일어나면 망심(妄心) 이 제하여지는 것이므로 임종 시에 十念을 성취하면 반드시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


[문] 평시에 약간 염불하던 사람이라도 임종 시에 十念으로 왕생한다고 반드시 때를 정해 약속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평시에 염불하지 않던 사람이 어떻게 임종 시의 十念으로 왕생할 수 있겠는가.


(답) 약간 염불이라는 것은 일심으로 계속 염불하지 아니하고 매일 몇 번씩 염불함을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하지 아니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약간 염불한 사람이거나 염불하지 아니한 사람이거나 임종 때에는 짧은 시간의 심력(心力)이 맹렬한 까닭에 十念으로 왕생할 수 있으니 다음 세 가지 뜻이 있다.


(-) 짧은 시간의 심력이 능히 종신(終身)토록 악 지은 사람을 이기는 것이니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 힘이 맹렬하여 이 마음의 맹렬한 결심이 곧 대심(大心)이며 몸을 버리는 일이 급하기가 마치 전쟁터에 들어 간 사람이 신명(身命)을 아끼지 아니함과 같은 것이다.

 

(=) 혹 승(乘 )이 급하고 계(戒)가 더디더라도 임종 시에 염불을 권하면 곧 신심(信心)이 생기고 비록 현세(現世)수행(修行)하지 않았더라도 역시 숙세(宿世)의 선업(善業)이 강하므로 임종 시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十念에 성공하는 것이다.


(三)염불할 때에 반드시 깊은 후회가 있어서 자신의 온 정력을 다하는 마음과 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얻은 이 十念이 능히 百千萬念 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經 )에 말씀하시기를[일체 중생이 아미타불의 원력에 지지(支持)되어 세세(世世)에 놓지 아니하시니 이 뜻이 있으므로 부처님의 대원해(大願海) 중에서 그 이름을 한 번 일컬으면 능히 八十億 겁 생사 중죄를 멸하고 곧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한다]하였다.

 

(八). 십념왕생(十念往生)과 주의 할 일


사람이 만약 과거의 선인(善因)이 있으면 임종 시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十念이 성취되어 왕생하기 쉬울 것이요, 또 과거의 인(因)이 없더라도 임종 시에 일심(一心)으로 十念을 계속하고 운명 전 후에 행사를 법에 맞추어 실행하면 왕생할 수 있다.


 그러나 十念이라는 것은 평소에 대단히 분망한 사람이 아침에나 저녁에 十念씩 하거나 또는 평시에는 염불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임종 시에 선지식 에게 염불하라는 권고를 받고 十念하는 것과 같이 오래도록 염불할 여가가 없을 경우에는 十念법을 응용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중에는 十念왕생이란 말을 듣고 임종 시에 十念만 하면 왕생 할 수 있다. 하여 평시에는 염불하지 아니하고 임종 시에만 十念하려는 이가 있으니, 평시에 염불하지 아니하고 임종의 十念만 믿다가 만일 과거의 인(因)도 없고, 평시에 염불한 공덕도 없는 이로서 불의의 사고나 기타 환경으로 인하여 임종 시에 염불을 못하게 되거나 행사를 법에 맞추어하게 하지 못하게 되면 왕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부지런히 염불하여 왕생할 자량(資糧)을 예비(豫備)하여야 임종 시에 왕생하기 쉬우려니와 생품(生品)도 반드시 높을 것이다.


[문] 일생에 악업(惡業)을 지었더라도 임종 시에  염불만 하면 업(業)을 벗고 왕생한다 하니 생시에 세사(世事)에 만 분망하다가 임종 시에 염불하여도 무방 하겠는가.


[답] 소위 역악범부(逆惡凡夫)로서 임종 시에 염불하는 이는 숙세(宿世)의 선근공덕(善根功德)이 있으므로 선지식을 만나서 염불하게 되는 것이거니와 이러한 요행은 만에 하나도 있기 어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 열 가지의 사람이 임종 시에 염불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있으니

(-)선우(善友)를 만나지 못하는 이

(=)업고(業苦)가 몸에 얽힌 이

(三)중풍으로 말을 못하게 되는 이

(四)미친 듯이 어지러움으로 실심(失心)한 이

(五)수화(水火)의 재(災)를 만난 이

(육)호랑(虎狼)이 에게 죽은 이

(七)임종(臨終)에 악우(惡友)를 만난 이

(八)혼미(昏迷)하여 죽은 이

(九)군진(軍陣)에서 전사하는 이

(十)급한 낭 떨어지나 높은 바위에서 낙사(落死)하는 이 등 이다



 

(九). 염불하는 기간(期間)의 장단(長短)의 의의(意義)


[문]. [관경(觀經)에는 [임종 시에 一念내지 十念으로 왕생한다]하였고, [아미타경(阿彌陀經)]에는 [一일 내지 七일 동안 일심불란(一心不亂)하면 왕생한다]하였으며,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몸과 목숨이 끝나도록 한결 같이 염불하여야 왕생한다]하였으니, 몸과 목숨이 끝나도록 염불하여야 왕생한다면 一念 十念 一일 七일에 왕생 한다는 말은 허언(虛言)일 것이고 一일 내지 七일이 참말이라면 몸과 목숨이 끝나도록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답]. 위의 세 가지 말이 모두 허언이 아니다.

 중생이 정토의 가르침을 듣는데 일음과 늦음이 있고 발심할 때에 더딤과 빠름이 있으며 수명에 장단이 있으므로, 제경(諸經)의 교설(敎說)이 동일하지 아니한 것이다.

 

 만약 임종 시에 처음으로 선우(善友)를 만나서 발심 염불하여도 왕생할 것이고, 또 一,二일 내지 여러 날 후에 명(命)이 다 할 사람에게는 그 명을 따라서 염불할 것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고, 장수한 이에게는 그 목숨이 다하도록 염불하라고 가르쳤을 것이므로, 삼경(三經)의 교설(敎說)이 같지 아니한 것이다.


 즉[관경(觀經)]에는 [금방 임종하려는 이에게 대하여는 一念 十念에도 왕생한다] 하신 것이고, [아미타경(阿彌陀經)]에는 [몇 날을 지나서 운명할 이에게 대하여는 一 일 내지 七 일 동안 염불하면 왕생한다]하신 것이고,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장수할 이에게 대하여는 장시간 염불하면 역시 왕생한다]하신 것이다.


또 [아미타경(阿彌陀經)]의 一일 내지 七일의 기한은 이둔(利鈍)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이고, [무량수경(無量壽經)]과 [고음성왕경(鼓音聲王經)]의 十念, [대집경(大集經)]의 七七일과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의 九十일은 둔근(鈍根)을 위한 말씀을 하신 것이니, 十念 이나 一일 등은 기한이 너무 짧고 七七일 九十일은 너무 길거니와 그중 七일이 중도(中道)에 처(處)한 것이다.



 

정행염불 10.관상염불(觀想念佛)하는 법(法)


관상염불(觀想念佛)은 행자(行者)가 먼저 서향(西向)하여 결가부좌(結跏趺坐)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하고, 아미타불의 수인(手印)을 맺은 뒤에 부처님의 몸빛이 진금색(眞金色)으로 되신 일장육척(一丈六尺)의 불상(佛像)이 칠보(七寶)로 된 연못 위에 서 계시거나 앉아 계신 것을 관념(觀念)하며, 또 삼십이상(三十二相)을 한 상(相)씩 낱낱이 관념하거나 혹은 미간(眉間)백호상(白毫相)만 관념하는데,

 

이 백호상을 관념하는 것이 오래 되어서 숙습(宿習)하면 자연히 감응(感應)되어 32상을 관념하는 법은 32상 중의 발바닥이 편평하게 찬 족하평만상(足下平滿相)에서부터 관념을 비롯하여 거슬러 올라가며, 한 상(相)씩 관념하여 정계육골상(頂髻肉骨相)에  까지 이르고, 다시 정계육골상에서부터 순(順)으로 내려오면서, 한 상씩 관념하여 족하평만상까지 이르되 조금도 다른 관념이 없이 똑똑하게 관념하는 것이다.


 미간 백호상을 관념하는 법은 부처님의 눈썹 사이에 위로 향하여 흰 털 하나가 있는 것을 미간 백호상이라 하니 빛깔이 선명하고 희며 광채가 있고 맑기가 백설(白雪)보다 더 희며 부드럽기가 도라면 과 같고 여덟모가 졌으며 가운데가 비고 주위가 다섯 치 이며 잡아당기면 길이가 일장오척(一丈五尺)이요 놓으면 오른 편으로 다섯 번 비틀려서 유리통과 같이 된다고 한다. 이 상(相)을 관념하는 법도 32상을 관념함과 같이 조금도 다른 잡념이 없이 명확하고 똑똑하게 관념하는 것이다.

 
 

五 조행염불(助行念佛)


행자(行者)가 조행을 닦으려면 먼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함에는 신심원리(身心遠離)희족소욕(喜足小欲)사성종(四聖種)의 삼정인(三淨因)이 있다. 이것을 신기청정(身器淸淨)의 삼인(三因)이라고도 한다.


(-) 신심원리(身心遠離)는 몸에는 악우(惡友)등과 악연(惡緣)을 멀리 여의고 마음에는 악(惡)의 사상분별(思想分別)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지니 이 신심원리를 성취하려면 희족소욕에 의하여야 한다.


(=) 희족소욕(喜足小欲)의 희족(喜足)이라 함은 이미 얻은 의복 음식 등에 만족함을 말함이고 소욕(小欲)은 아직 얻어지지 아니 하였을 때 크게 구하지 아니함이니 이것으로써 불희족대욕(不喜足大欲)을 고친다. 불희족대욕은 욕계(欲界)의 탐번뇌(貪煩惱)요 희족소욕은 무탐(無貪)의 심소(心所)니 삼계(三界)및 무루(無漏)에 통하는 것으로 이 희족소욕에 의하여 사성종(四聖種)에 머물음을 얻는다.


(三)사성종(四聖種)은 의복희족성종(衣服喜足聖鐘), 음식희족성종(飮食喜足聖種), 와구희족성종(臥具喜足聖鐘), 악단수성종(樂斷修聖鐘)의 네 가지를 말함인데, 앞의 셋은 의복 음식 와구(곧 住處)에 대하여 희족(喜足)의 마음에 머무는 것을 말함이요. 뒤의 하나는 번뇌(煩惱)를 끊고 성도(聖道)를 닦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니 이것은 삼계(三界)의 탐(貪)을 버리는 것이므로 무탐(無貪)을 성(性)으로 한다 할 것이다. 이 사성종의 네 가지는 모두 성도(聖道)를 낳게(生起)하는 시초이므로 성종(聖種)이라 한다.


(=) 예배(禮拜)

행자(行者)는 매일 조석으로 사성례(四聖禮)를 행하여야 할지니 먼저 깨끗한 방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삼성(三聖)의 상(像)이나 화상(畵像)을 모시되 아미타불을 동향(東向)하여 모시고 그 왼편에는 관세음보살, 오른편에는 대세지보살을 모실 것이다. 만일 삼성의 상이 없으면 아미타불상 만을 동향으로 모시고 그 앞에는

 

 향로 하나를 놓고 다른 물건은 많이 두지 말 것이다 만약 불상이 없으면 불명(佛名)을 써서 족자(簇子)를 만들어 걸 것이며 그것도 없으면 서향(西向)하여 사성례(四聖禮)만을 행하되 먼저 분향하고 바로 서거나 꿇어앉거나 결가부좌 혹은 반가부좌하고 합장(合掌)또는 아미타불 수인(手印)을 맺고 사성예문(四聖禮文)을 외우며 예배한 후에 물러난다.

 

 조석으로 사성례 뿐 아니라 무시로 불상에 예배하여야 할지니, 불상에 대하여는 진불(眞佛)을 뵈옵는 것과 같이 공경하고 조금도 소홀한 생각을 가지지 아니하여야 한다.  [염불경(念佛鏡)]에 석가모니불이 그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을 위하여 도리천(忉利天)에 올라 가셔서 설법하시고 90일이나 계셨는데, 그 때에 인도의 우진왕(優瑱王)이 부처님을 생각하나 뵈올 수가 없으므로 장인(匠人)을 보내어

 

불상(佛像)을 만들었더니, 부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므로 우진왕이 모든 신하(臣下)를 거느리고 맞을 때에 불상도 부처님을 맞아서 부처님이 불상과 같이 서시니 불상이 부처님과 흡사한지라 부처님이 손으로 불상의 이마를 만지시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미구에 열반(涅槃)할 터이니 네가 오래 세간에 있어서 유정(有情)을 교화하라]하셨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도 불상을 공경하시거늘 하물며 유정이야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리오. 또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에는 [한 사냥꾼이 가사(袈裟)를 입었더니 코끼리가 일어나서 공경한 덕으로 코끼리는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서 91겁(劫)동안이나 낙(樂)을 받았다.  불상도 이와 같이 공경하면 존귀(尊貴)영화(榮華)를 누리고 정토에 난다]하셨다. 불상의 시초는 인도의 우진왕이 최초에 전단(栴檀)나무로 불상을 만들고 파사왕(波斯王)은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다.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에는 예불(禮佛)일배(一拜)에 열 가지 공덕을 얻는다 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 묘색신(妙色身)을 얻는다.

(=)말을 내면 사람이 믿는다.

(三)중(衆)에서 처(處)하여 두려움이 없다.

(四)부처님이 항상 돌보아 주신다.

(五)큰 위의(威儀)를 갖춘다.

(六)많은 사람이 친히 붙는다.

(七)하늘이 애경(愛敬)한다.

(八)큰 복덕(福德)을 갗춘다.

(九)명종(命終)하면 왕생한다.

(十)속히 열반(涅槃)을 증(證)한다.


(三) 공양(供養)


공양(供養)은 공급(供給)자양(資養)하는 뜻이니 제불(諸佛)께 공양하기 위하여 향(香)화(華)음식 등을 공양하는 것이니 공양에 세 가지가 있다.

 

(-)이양 공양(利養供養)은 음식 의복 와구(臥具 곧 住處)등이고,

(=)공경 공양(恭敬供養)은 향(香)화(華)등명(燈明)증개(增蓋)당번(幢幡)등이며,

(三)행 공양(行公供養)은 보리심 을 발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行)을 닦는 것이다. 이양공양과 공경공양을 합하여 재공양이라 하고 행 공양을 법공양(法供養)이라 한다.


(四) 경문(經文)과 주문(呪文)


불경(佛經)이나 주문(呪文)도 불상(佛像)과 같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여야 하며 깨끗한 곳에 두되 경책위에 다른 외전(外典)이나 물건을 놓지 말 것이며, 또 경(經)을 볼 때에는 깨끗한 손으로 단정히 앉아서 보고 몸을 파탈(擺脫)하였을 때나 누웠을 때와 같이 술 취하였을 때에는 보지 말 것이며 경(經)책을 베개로 삼지 말고 아무리 헌 경책이라도 불을 때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경전(經典)과 세간(世間)의 서적이 문자는 비록 같으나 불경은 중생을 널리 이익케 하는 것이며, 천룡팔부(天龍八部)가 모두 옳은 줄로 믿고 받드는 것이므로 이것을 범연한 서적에 비할것이 아니다.  세간의 폐서는 설사 다 태워 버리더라도 오직 불경만은 태워 버릴 수 없나니, 불경(佛經)의 복혜(福慧)가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세간의 서적보다 월등한 까닭이다. 불경이 헐어 못 쓰게 되어 읽을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 깨끗하게 태운 후에 그 재를 정한 헝겊에 사서 강물에나 바다에 띄워 보낼 것이다.

 

 부처님이 극락세계의 일만을 말씀하신 경문(經文)에[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아미타경(阿彌陀經)]이 있는데,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은 번다(繁多)하여 항상 읽기 어려워서 간혹 보는 것이 좋고, [아미타경]은 간단하여 외우기 편리하므로 이 경과 왕생주(往生呪)등을 매일 한번이나 여러 번 외워도 좋으며, 왕생에 관한 경문이나 주문 이외의 경문이나 주문은 읽거나 외우지 말 것이다.


(五) 참회(懺悔)


참(懺)은 앞서지은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는 장차 지을 허물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다. 염불하는 사람은 앞서 지은 죄업(罪業)을 참회하고 다시 죄업을 짓지 아니하여야 한다. 참회하지 아니하면 무량겁(無量劫)이래의 죄업이 제거되지 못하는 것이니, 마치 때 묻은 옷은 빨아야 신선하고 먼지 앉은 거울은 닦아야 밝은 것과 같이 업장(業障)이 제거되어야 마음이 청정(淸淨)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부처님 앞이나 자기의 마음속에서 진심성의(眞心誠意)로 불전(佛典)에 죄장(罪障)을 참회할 것이며, 또 어쩌다가 죄과(罪過)를 범하였거든 시각을 지체하지 말고 곧 참회 하여야 한다. 참회에는 작법참(作法懺 )취상참(取 相懺)무생참(無生懺 )의 세 가지가 있다.


(-)작법참(作法懺)은 불전(佛典)에 향하여 죄과를 낱낱이 펴 놓아서 언어 동작의 소작(小作)이 법도(法度)에 따르는 것이니 이것은 계율을 범한 죄를 멸하는 것이다.

 

(=)취상참(取相懺)은 매우 성실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부처님이 오시어서 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지시는 등의 상서로운 징조를 느끼는 것을 기한(期限)으로 하는 것이니 이것은 번뇌(煩惱)의 죄성(罪性)을 멸하는 것이다.

 

(三 )무생참(無生懺)은 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단정히 앉아서 무생(無生)의 이(理)를 관(觀)하는 것이니, 이것은 중도(中道)를 장(障)하는 무명(無明)을 멸하는 것이다. 일구(一句)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능히 80억겁(劫)의생사의 중죄(重罪)를 멸하며, 염불이 세 가지 참회에 통하는 것이니, 참회하며 염불하는 것이 간단하고 쉬운 참회법이 된다.


(六 ) 애련탐착(愛戀貪着)을 끊을 것


예전에 어떤 사람이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겁결에 [나무불(南無佛)]을 부른 공덕으로 선근(善根)이 익어져서 나중에 성불하였다는 것과 같이 불법을 알면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설혹 지옥에 떨어졌다가도 그 뒤에 사람이 되어 다시 불법을 닦아서 육도(六道)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끝이 없이 전전(轉轉)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면할 수 있거니와 만약 전혀 불법을 알지 못하면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자주법사개시록(慈舟法師開示록錄)에 영긍기신타지옥(寧肯己身墮地獄)불이불법작인정(不以佛法作人情) 즉 차라리 내 몸이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불법으로 인정(人情)을 짓지 말라 하였다. 이것은 나는 염불할 생각이 있으나 권속(眷屬)들이 반대하면 애정에 끌리어 염불을 단념하는 것을 인정을 짓는다고 한 말이다 처자 권속은 전세의 인연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니 연(緣)이 있으면 모였다가 연이 다하면 서로 헤어지고, 헤어진 뒤에는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옛말에 [부모는 은혜가 깊고 부부는 의(義)가 무거우나 필경에는 서로 이별하는 것이니 마치 새가 한 나무에 함께 앉았다가도 제 각기 여러 곳으로 날아가는 것과 같다]하였거니와 이것은 죽을 때가 오면 각기 헤어져 버린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처자 권속의 애정이 아무리 무겁고 길더라도 죽을 때에는 할 수 없이 이별하게 되는 것이고, 재산이 아무리 아깝더라도 죽 을 때에는 맨손으로 가는 것이니, 이것을 공수래(空手來)공수거(空手去)라고 한다. 옛말에[일일무상도(一日無常到) 방지몽리인(方知夢裏人) 만반장불거(萬般將不去) 유유업수신(唯有業隨身) 단염아미타(但念阿彌陀) 왕생안락국(往生安樂國)]하였다.

 

즉 [죽을 때가 오면 다른 것은 모두 가지고 가지 못하나 오직 업(業)만은 따라가는 것인데, 다만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극락국에 왕생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처자 권속이나 금, 은, 재산은 고스란히 놓고 가거니와 일생에 지은 선악의 업만이 끝까지 나를 따라가는 것이니 나쁜 업을 지었으면 악도로 가고 착한 업을 지었으면 선도로 가고 염불하는 업을 지었으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거나 혹은 이런 말을 듣더라도 믿지 아니하고 처자 권속과 토지 재산 등에만 애착하다가 임종시에 대사(大事)를 그르쳐서 왕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七) 염불하는 사람은 마땅히 자비심(慈悲心) 희사미(喜捨心) 지계심(持戒心) 정진심(精進心) 인욕심(忍辱心) 겸하심(謙下心) 평등심(平等心)등 일체 선심(善心)으로 염불하며 극락에 왕생하기를 구하면 임종시에 반드시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그 마음이 부처님의 뜻과 서로 맞아 부처님의 자비(慈悲)로 접인(接引)하시는 까닭이다.

 

 그러나 만일 간탐심(慳貪心) 진한심(瞋恨心) 치애심(癡愛心) 오만심(傲慢心) 질투심(嫉妬心) 기광심(欺誑心) 첨곡심(諂曲心) 모해심(謨害心)같은 일체 악심(惡心)으로 염불하며 극락에 왕생하기를 구하면 임종시에 왕생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은 그 마음이 부처님의 뜻과 서로 어긋나서 부처님도 자비(慈悲)를 드리워서 접인(接引)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은 청정심(淸淨心)을 발하여 탁악심(濁惡心)을 버리고 염불할 것이니 염불은 입으로만 염하는데 있지 않고, 심행(心行)이 정직하여야 비로소 효과를 얻는 것이므로 행자(行者)는 반드시 이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자비심(慈悲심)-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이 자(慈)요 고(苦)를 없애주는 것이 비(悲)니 즉 중생에게 낙을 주려는 마음과 고를 없애주려는 마음이다 또는 고를 없애주는 것을 자(慈),낙을 주려는 것을 비(悲)라 하기도 한다.


*희사심(喜捨心)-정사(淨捨), 정시(淨施)라고도 한다. 기쁜 마음으로 재물(財物)을 보시(布施)하는 마음이다.


*지계심(持戒心)-불법에 제정(制定)한 계행(戒行)을 받아 가지는 마음이다.


*정진심(精進心)-온갖 곤란을 물리치고 선법(善法)을 닦고, 악법(惡法)을 끊는 마음이다


*인욕심(忍辱心)-온갖 모욕(侮辱)과 번뇌를 참고 원한(怨恨)을 일으키지 아니하는 마음이다.


*겸하심(謙下心)-다른 사람에게 대하여 내 몸을 낮추어 공손(恭遜)하는 마음이다.


*평등심(平等심)-일체 중생에게 대하여 원친(怨親)등의 차별이 없이 한결같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간탐심(慳貪心)-물건을 아끼고 남에게 주지 않으며 탐내어 구하면서 만족할줄 모르는 마음이다.


*진한심(嗔恨心)-눈을 부릅뜨고 한탄(恨歎)하는 마음이다.


*치애심(癡愛心)_ 아깝게 여기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오만심(傲慢心)-잘난체 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질투심(嫉妬心)-미워하고 속을 태우는 마음이다.


*기광심(欺誑心)-남을 속이는 마음이다.


*첨곡심(諂曲心)-남에게 아양 거리며 교묘히 돌려서 귀염을 받으려는 마음이다.


*모해심(謀害心)_모략(謀略)을 써서 남을 해롭게 하려는 마음이다.


*심행(心行) 심의(心意-즉 마음과 정신)의 작용을 말함이다.

 자기가 얻은 신념(信念)에 따라 삼업(三業)으로 일어나는 행업(行業)을 말한다.


(八) 선사(善事)를 행할 것.


염불하는 사람은 반드시 오계(五戒)와 십계(十戒)를 가질 것이고, 오계 십계를 계속하여 가지기 어려울 경우에는 팔관재계(八關齎戒), 육재일(六齎日), 십재일(十齎日), 월재일(月齎日)을 가질 것이며 부모를 효도(孝道)로써 받들어 모시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며 형제간에 우애(友愛)하고 부부간에 화순(和順)하며 친척과 화목하고 사찰(寺刹)을 지으며 불상(佛像)을 만들고

 

부처님께 공양하며 승려에게 보시(布施)하고 경문(經文)을 출판하며 선법(善法)을 널리 통용케 하고 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며 떠는 사람에게 옷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며 죽은 이에게 관(棺)을 주고 다리를 놓으며 길을 닦는 등 善事)공덕을 지어 정토에 회향(回向)하여 극락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할 것이다.


(九) 세간효(世間孝)와 출세간효(出世間孝)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의 조행(助行)으로 부모에게 세간(世間)의 孝와 출세간(出世間)의 孝를 행하여야 하나니, 세간의 효는 부모에게 승순(承順)하고 감지(甘旨)로 부모를 받들어 모시며 작록(爵祿)으로 부모를 영화(榮華)롭게 하는 등이요. 출세간의 효는 부모에게 염불법문(念佛法門)을 권하여 정토에 왕생케 하는 것이니, 세간의 효는 소효(小孝)요 출세간의 효는 대효(大孝)다.


 부모의 열가지 대은(大恩)이 있으니

(-)회탐수호은(懷眈守護恩)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三)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四)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五)회간취습은(回幹就濕恩)

(六)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七)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八)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九)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十)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이다.


[최승불정존승다라니 정제업장경]에는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개에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須彌山)을 百千萬 번을 돌아서 피가 흘러 복사뼈까지 잠기더라도 그것으로 하루 동안 젖먹인 은혜도 갚을 수 없거늘 어찌 나쁜 마음으로 경하게 성을 내리오]하셨고,  [대승본생심지관경]에는 자부(慈父)비모(悲母)의 장양(長養)으로 인하여 모든 남녀가 모두 안락(安樂)하나니

 

 자부의 은혜는 산과 같이 높고 비모의 은혜는 바다와 같이 깊다]하셨고, 또 [사람이 부모의 모든 은혜를 갚기 위하여 一劫동안을 지나도록 매일 삼시로 자신의 살을 베어 부모를 받들어 모시어도 一일의 은혜도 갚을 수 없다]하셨고, 또[부모의 은혜는 부(父)에 자은(慈恩)이 있으며, 모(母)에 비은(悲恩)이 있다.


 어머님의 비은(悲恩)은 내가 세간(世間)에 사는 一겁(劫)동안에 말하여도 다 말할 수 없나니, 가령 어떤 사람이 정행대바라문 백사람 오통제대신선 백사람 선우(善友) 백사람들을 칠보(七寶) 위묘당(妙堂)에 모시고 百千가지의 아주 썩 잘 만든 진기하고 맛 좋은 음식과 모든 영락과 많은 보배와 전단 침향의 향나무와 백보로 장식한 앉고 까는 침구와 모든 병을 치료하는 백가지 탕약으로써 百千겁이 차도록 일심(一心)으로 공양하더라도 일심(一心)의 효순심(孝順心)으로써

 

아주 적은 물건으로 비모를 받들어 모시며 곳을 따라 공경하여 모시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셨고, 또 [모든 세간에 무엇이 가장 부(富)하며 무엇이 가장빈(貧)하냐 비모가 집에 있는 것이 부(富)요, 비모가 있지 않는 것이 빈(貧)이며 비모가 있을 때가 한낮이요 비모가 죽었을 때가 해가 진 것이며, 비모가 있을 때가 달빛이 밝은 것이고 비모가 죽었을 때가 어두운 밤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지런히 효행(孝行)을 닦아서 부모를 효도로써 받들어 모시면 공불(供佛)하는 것과 복이 같을 것이니 이와 같이 부모의 은혜를 갚으라]하셨다


(十) 이종회향(二種廻向)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善根公德)을 돌리어서 다른 중생에게나 자기의 보리열반(菩提涅槃)에 취향(趣向)하는 것을 회향(廻向)이라고 하고 또 망자(亡子)를 위하여 선근(善根)을 닦는 추선(追善)도 회향이라 하는데 이 회향에 왕생회향(往生廻向) 환상회향(還相廻向)의 두 가지가 있다.

 

(-)왕생회향(往生廻向)은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시(廻施)하여 다른 중생과 함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염불할 때에 발원이 없이 염불하거나 세간의 탁복(濁福)을 발원하여 염불하거나 세간 탁복과 극락왕생을 혼동하여 발원 염불하면 극락에 왕생하기 어려우니 단지 왕생만 발원하여 염불하고 그 공덕을 극락에 회향하여야 왕생이 쉽고 품위(品位)도 높을 것이며, 설사 그릇 악행(惡行)을 지었더라도 성심(誠心)으로 참회하고 상속심(相續心)을 끊으면 참회하는 힘이 능히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니라.


(=)환상회향(還相廻向)은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일체 공덕을 성취하고 다시 사바세계에 돌아와서 중생을 제도하여 불도(佛道)에 향하게 하는 것이다.


(十日)염불인(念佛人)의 신광(身光)


[정토첩요(淨土捷要)에는 대아미타불경(大阿彌陀佛經)에 말씀 하시기를 [염불하는 사람은 四十리(里)광명(光明) 몸빛이 있어 마(魔)가 능히 범치 못한다]하셨고, [비장지남(秘藏指南)]에는 [중국 동성(桐城)의 두 사람이 함께 객지에 갔다가 한 사람이 객사하매 그 동행(同行)이 장사를 치룬 뒤에 그 유산을 갖고 망자의 집에 가서 그 처에게 부음(訃音)과 유산을 전하였더니, 그 미망인이 부음을 전한 동행에 대하여 자기 남편을 살해(殺害)한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거늘 그 동행은 대단히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망자(亡者)의 영전에 가서 자기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니,

 

 망자의 귀신이 이 말을 듣고 동행의 억울함을 변명하기 위하여 망자의 귀신이 동행과 함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동행이 우연히 아미타불을 한번 염불하였더니 귀신이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어찌하여 광(光)을 놓아 나를 무섭게 하는가]하니 동행이 또 한 번 염불하니 귀신이 무서워하면서 [네가 한 번 염불하는데 네 가슴에서 별안간 십여장)十餘丈)이나 되는 오색광(五色光)이 나와서 내 마음과 눈을 어지럽히고 아찔하게 하니 다시는 너와 같이 갈수 없으므로 네가 혼자 내 집에 먼저 가서 내 처를 나에게 보내면 내가 너의 억울함을 잘 설명하겠노라]하였다.

그 후 그 동행은 깨닫고 출가하여 고승(高僧)이 되었다]고 하였다

 
 

제 六장 연종(蓮宗)의 원섭(圓攝)과 염불공덕(念佛功德)


一. 연종일문(蓮宗一門)이 일체법문(一切法門)을 원섭(圓攝)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여섯 자(字)의 만덕홍명(萬德洪名)이 일체법문(一切法門)을 원섭(圓攝)한다. 그러므로 우익대사(藕益大師)는 [삼장(三藏)십이부경(十二部經)의 교리(敎理)와 선종(禪宗)의 천칠백공안(千七百公案)이 그 속에 있고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과 삼취정계(三聚淨戒)도 그 속에 있다]하였고, 연지대사(蓮池大師)는[일구(一句)아미타불 팔교(八敎)를 해라(該羅)하고 오종(五宗)을 원섭(圓攝)한다]하였다.


二 염불공덕(念佛功德)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여섯 자(字)의 공덕은 다음과 같다.


[나(南)는 항하사성공덕(恒河沙聖功德)이 구족(具足)하다.

[무(無)는 돌아간 七대(代)웃조상이 고(苦)를 여의고 낙(樂)을 얻는다.

[아(阿)는 삼십삼천태허(三十三天太虛)가 진동(震動)한다.

[미(彌)는 무량억겁생사(無量億劫生死)의 죄가 단번에 없어진다.

[타(陀)는 八萬四千마군(魔群)이 갑자기 없어진다.

[불(佛)은 八萬四千 무명업식(無明업業識)이 한꺼번에 없어진다.


염불하는 사람은 현세와 내세에 열 가지 공덕을 얻는 것이니 다음과 같다.


(-)모든 하늘의 큰 힘 있는 신장(神將)과 그 권속(眷屬)이 밤낮으로 형상(形狀)을 숨겨서 염불하는 사람을 지켜 보호한다.

(=)관세음보살 같은 스물다섯의 큰 보살과 일체 보살이 항상 염불하는 사람을 따라서 지켜 보호 하신다.

(三)모든 부처님이 밤낮으로 항상 염불하는 사람을 호념(護念)하시고 아미타불이 광명을 놓으셔서 섭수(攝受)하신다.

(四)야차(夜叉)나찰(羅刹)과 같은 일체악귀(一切惡鬼)가 해치지 못하고 일체독사(毒蛇)독룡(毒龍)독약(毒藥)이 침범하여 해를 끼치지 못한다.

(五)화재(火災)水災)원적(怨賊),칼 화살 옥(獄)에 갇힘과 형구(形具)와 수갑(手匣)을 채우는 것과 비명(非命)에 죽는 것 잘못 죽는 것 등을 모두 받지 아니한다.

(六)지은 죄가 사라져 없어지고 전에 생명을 살해하였더라도 다 벗어나 다시 마음에 생각이 얽매이지 않는다.

(七)꿈을 정직하게 꾸고 또 아미타불의 뛰어나게 기묘한 색신(色身)을 뵈옵는다.

(八)마음이 항상 기쁘고 얼굴빛이 윤택하며 기력이 충실하고 하는 일이 모두 길(吉)하고 이(利)하다.

(九)일체 세간 사람들이 부처님께 공경 예배하는 것과 같이 염불하는 사람에게 공경 예배한다.

(十)임종시에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없고 정념(正念)이 앞에 나타나서 아미타불과 여러 성자(聖者)의 보살이 금대(金臺)를 가지고 오시고 임종하는 사람이 극락에 왕생하여 미래세(未來世)가 다 하도록 뛰어나게 기묘한 낙(樂)을 받는다.


고성염불(高聲念佛)의 열 가지 공덕은 다음과 같다


(-)능히 잠을 밀어내어 없앤다.

(=)천마(天魔)가 놀라서 두려워 한다.

(三)소리가 시방(十方)에 두루 가득 찬다.

(四)삼도(三途)가 고(苦)를 쉰다.

(五)바같 소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六)마음이 흩어 지지 아니한다.

(七)용맹(勇猛)하게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나아가게 한다.

(八)제불(諸佛)이 크게 기뻐하신다.

(九)삼매(三昧)가 앞에 나타난다.

(十)정토에 왕생한다.


염불공덕과 보살공덕의 비교(比較)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에는 [一百겁(劫)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것이 일식경(一食頃)지장보살을 염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고,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에는 [다겁(多劫)중에 지장보살을 염불하는 것이 아미타불의 일성(一聲)을 염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귀원직지(歸元直指)에[사천하(四天下)의 칠보(七寶)로써 불, 보살, 연각 성문 등에 공양하는 것이 사람에게 염불일성(一聲)을 권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악방문류(樂邦類)]에 [만약 사람이 사사(四事)곧 음식 의복 와구(臥具곧 住處를 말함) 탕약(湯藥)등의 지극히 좋은 물건으로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중에 있는 아라한(阿羅漢)벽지성인에게 공양하는 것이 합장(合掌)하고 염불일성(一聲)을 부르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열반경(涅槃經)]에 [한 달 동안을 의식(衣食)으로써 일체 중생에게 공양하는 것이 일념(一念)염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염불 공덕과 독경(讀經) 문경(聞經) 강경(講經) 공덕의 비교(比較)


염불 공덕과 독경수도(讀經修道)공덕에 비교하면 염불 공덕이 가장 많은 것이다.

 염불 공덕을 문경(聞經)공덕에 비교하면 염불 공덕이 백천만(百千萬) 배가 많다.

 [관경(觀經)]에 [하품하생인(下品下生人)이 명종시(命終時)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십이부경제목(十二部經題目)을 설법하는 것을 들으면 천겁죄(千劫罪)를 없애 버린다 하고 지자(智者)가 아미타불 十구(口)를 가르쳐 염불하면 八十억億겁(劫) 생사(生死)의 죄를 없애 버린다]하였다.


 염불 공덕을 강경(講經) 공덕에 비교하면 염불 공덕이 百千萬 배가 많다 강경(講經)은 돈을 세는 것과 같고 염불은 돈을 쓰는 것과 같으니, 돈을 세는 것은 비록 많아도 빈고(貧苦)를 제하지 못하고 전에 지은 죄가 없어지지도 아니하며, 공덕도 되지 아니하나 돈을 쓰는 것은 비록 많지 아니하여도 능히 신명(身命)을 구제하고 공덕을 얻는 것이 무량한 것이다.

제 七장  제사(諸師)의 법어(法語)와 연종(蓮宗)과 선종(禪宗)


一. 제사(諸師)의 법어(法語)

 

제사(諸師)가 칭명염불법(稱名念佛法)에 대하여 불법을 설(說)한 중에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선도대사(善導大師)의 말


선도대사는 염불수행에 대하여 전수(專修) 무간수(無間修)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수(專修)]

중생이 업장(業障)이 두텁고 경(境)은 가늘며 마음은 미하여 관법(觀法)을 성취하기가 어려우므로 대성(大聖)이 이를 불쌍히 여기사 명호(名號)만 오로지 생각함을 권하셨다.

 이것은 이름은 부르기 쉽고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함이 잘 되어서 곧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능히 염념(念念)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여 명(命)이 마칠 때가지 반드시 됨을 기약하면 열이면 열이 왕생하고 백이면 백이 왕생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깥의 잡연(雜緣)이 없어서 정념(正念)을 얻게 되고 부처남의 본원(本願)에 서러 맞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순종(順從)하는 까닭이니 이것을 전수(專修)라 한다.

 

 그러나 만약 전수(專修)를 버리고 여러 가지 업(業)을 닦아서 왕생을 구하는 이는 백(百)에 하나나 둘이고 千에 三, 四인 밖에 왕생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잡연(雜緣)이 어지럽게 일어나서 정념(正念)을 잃고 부처님의 본원(本願)과 서로 맞지 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부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계념(繫念)이 계속하지 못하고 염불을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여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마음이 없고 비록 업행(業行)은 있으나 항상 명리(名利)와 서로 맞고 잡연(雜緣)에 접근하기를 좋아하여 정토에 왕생함을 스스로 장애(障碍)하는 까닭이다.


 [무간수(無間修)]

 몸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께만 예배하고 다른 예배는 섞지 아니하며 입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르고, 다른 명호(名號)는 부르지 아니하고 다른 경은 읽지 아니하며 뜻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섞지 아니하며 만일 탐(貪) 진(瞋) 치(癡)를 범하였거든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곧 참회하여 항상 청정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무간수(無間修)니라.


(2). 영명대사(永明大師)의 말


행자(行者)가 일심(一心)으로 삼보(三寶)에 귀명(歸命)하고 보(報)가 끝나도록 정진(精進)하여 닦되, 앉고 누울 때에 얼굴을 항상 서쪽으로 향하고 행도(行道)예배할 때나 염불 발원할 때에 지성으로 간절하게 하고, 다른 생각은 없는 것이 마치 형장(刑場)에 나갈 때와 같이 옥중에 갇혔을 때와 원수에게 쫒길 때와 수화(水火)의 재난을 만났을 때와 같이, 일심(一心)으로 구원을 구하되 빨리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 무생(無生)을 증(證)하기를 원하며 함령(含靈)을 널리 제도하고 삼보(三寶)를 융숭(隆崇)하며 사은(四恩)갚기를 서원(誓願)할 것이다.

 

 이와 같이 지성을 다하면 허사가 되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말과 행이 일치하지 아니하며 신(信)과 원(願)이 가볍고 적어서 염념(念念)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는 마음이 없고 자주 자주 끊어지면서 임종시에 극락에 왕생하기를 바라면 업장(業障)이 가려져서 선우(善友)를 만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이 괴롭게 굴어 정념(正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이 인(因)이요 임종이 과(果)가 되는 것이니 인이 실하면 과가 허하지 않는 것이 마치 소리가 화(和)하면 울리는 소리가 순하고 형상(形狀)이 곧으면 그림자가 단정한 것과 같은 것이다.


(3). 연지대사의 말


요점만 가려서 정확하게 말하면 마음을 단정히 하고 악을 멸하면서 염불하는 이를 선인(善人)이라 하고, 마음을 섭수(攝受)하고 산란(散亂)을 제하면서 염불하는 이는 현인(賢人)이라 하고, 마음에 깨닫고 혹(惑)을 끊으면서 염불하는 이를 성인(聖人)이라 한다.


 세상 사람은 누구를 물론하고 모두 염불할 수 있으니 염불 법문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물을 것 없이 일심으로 염불만 하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인즉 한 사람도 염불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가령 부귀한 사람은 의식이 넉넉하니 염불하기 좋고 가난한 사람은 집이 작고 성가심이 적으니 염불하기 좋고 자손이 있는 사람은 나의 힘을 덜어 주니 염불하기 좋고 자손이 없는 사람은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으니 염불하기 좋고 무병한 사람은 몸이 건강하니 염불하기 좋고 병 있는 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운 줄 아니까 염불하기 좋고

 

한가한 사람은 마음이 번거롭지 아니하니 염불하기 좋고 바쁜 사람은 바쁜 중에라도 틈을 탈 수 있으니 염불하기 좋고 출가한 사람은 세간을 뛰어 났으니 염불하기 좋고 집에 있는 사람은 이 세계가 화택(火宅)인 줄을 아니 염불하기 좋고 총명한 사람은 정토 일을 잘 아니 염불하기 좋고 어리석은 사람은 별로 능한 것이 없으니 염불하기 좋고 계행을 가지는 사람은 계행이 불법이니 염불하기 좋고 경을 읽는 사람은 경이 부처님의 말씀이니 염불하기 좋고 참선하는 사람은 선(禪 )이 부처님의 마음이니 염불하기 좋고 깨달은 사람은 불도를 증(證)하였으니 염불하기 좋은 것이다.


(4). 우익대사(藕益大師)의 말


염불공부는 다만 진실한 신심(信心)이 귀중한 것이니

첫째로 나는 앞으로 될 불(佛)이요, 아미타불은 이미 이루어진 불(佛)로서 그 체(體)가 둘이 아닌 것인 줄을 믿을 것이고, 둘째로 사바(娑婆)의 고(苦)와 극락(極樂)의 낙(樂)을 믿어서 고를 싫어하고 낙을 구할 것이고, 셋째로 지금의 일거일동이 모두 서방극락세계로 회향(廻向)할 수 있음을 믿을 것이다.  


 만일 회향하지 아니하면 비록 상품선(上品善)이라도 왕생하지 못하고 회향할 줄 알면 비록 악행(惡行)을 지었더라도 빨리 상속심(相續心)을 끊고 참회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참회하는 힘만으로도 능히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계(戒)를 가지고 복을 닦는 등 여러 가지 승업(勝業)으로 어찌 정토에 왕생하지 못할 이(理)가 있으랴.

 

 염불 일문(一門)이 百千법문(法門)을 원섭(圓攝)하는데 염불이 정행(正行)이 되고 계(戒) 정(定) 혜(慧) 등이 조행(助行)이 되어 정(正) 조(助)를 합행(合行)하며 순풍을 만난 배와 같을 것이고, 다시 판삭(板索: 곧 널빤지와 밧줄)을 가하면 빨리 저 언덕에 이를 것이다.

 

 염불의 법이 비록 많으나 지명염불(持名念佛)이 가장 간편하고 지명염불법 중에도 기수념(記數念)이 더욱 좋으니라.

 

 자력(自力)으로 혹(惑)을 끊고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것을 수출삼계(竪出三界)라 칭하니 일이 어렵고 공(功)이 차차 이루어지는 것이고, 불력(佛力)으로 접인(接引)하여 서방에 왕생하는 것을 횡초삼계(橫超三界)라 칭하니 일이 쉽고 공(功)이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다.


혜원조사(慧遠祖師)는

“공(功)이 높고 낳기 쉽기로는 염불이 첫째라” 하였고 경(經)에는 “말세에는 億億 사람이 수행하여도 성도하는 사람이 드물거니와 오직 염불을 의지하면 도탈(度脫)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는 마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 같아서 공력(功力)이 들지 아니하는 것인데 능히 서방의 지름길을 열성 있고 진실하게 믿고 지성으로 발원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는 이는 참으로 대장부(大丈夫)라 하려니와 만약 참되지 못하고 원(願)이 간절하지 못하며 행(行)에 진력하지 아니하면 이는 부처님의 대자비(大慈悲)로 주시는 배에 중생이 타기를 즐겨 하지 않는 것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라 윤회(輪廻)하는 고를 빨리 벗으려면 지명염불(持名念佛)하여 극락에 왕생함을 구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극락에 왕생코자 하면 신(信)을 전도(前導)로 하고 원(願)을 후편(後鞭)으로 함이 가장 필요하니라.

 신(信)이 결정되고 원(願)이 간절하면 흩어진 마음으로 염불하여도 반드시 왕생할 수 있거니와 신이 진실치 못하고 원이 지극하지 못하면 일심으로 염불하더라도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信)이란 것은 (1).아미타불의 원력(願力)을 믿고 (2).석가모니불의 교어(敎語)를 믿고  (3).육방(六方)제불(諸佛)의 찬탄(讚歎)을 믿는 것이니 세간의 성인(聖人)군자(君子)도 헛된 말이 없거늘 하물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고 육방 제불이 어찌 헛된 말이 있으랴 이것을 믿지 아니하면 참으로 구(救)할 수 없는 것이니라.


원(願)이란 것은 일체 시중(時中)에 사바(裟婆)에서 생사(生死)하는 고를 싫어하고 정토에서 보리(菩提)의 낙(樂)을 좋아하며 선악(善惡)의 지은 바를 따라서 선(善)은 회향(廻向)하여 왕생하며 악(惡)은 참회하여 왕생을 바라고 다시 두 뜻이 없을 것이니, 신과 원이 구비하면 염불은 정행(正行)이 되고 악을 뉘우치고 고치면 선을 닦는 것이 모두 조행(助行)이 되어 공행(功行)의 깊고 얕음을 따라서 구품(九品) 사토(四土)를 나누어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 .

 

 만약 깊은 신심과 간절한 원력(願力)으로 염불하면서도 염불할 때에 마음이 흩어져 어지러운 이는 하품하생(下品下生)에 날 것이고 염불할 때에 흩어져 어지러운 마음이 점점 적어진 이는 하품중생(下品中生)에 날 것이고 염불이  사일심불란에 이르러 먼저 견혹(見惑) 사혹(思惑)을 끊고 또 능히 무명(無明)을 복단(伏斷)하는 이는 상삼품생(上三品生)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信), 원(願) 으로 지명염불하는 이는 능히 구품(九品)에 왕생함이 틀림없고 또 신, 원으로 지명염불하여 업장(業障)을 없애고 혹(惑)을 띠고 왕생하는 이는 범성동거정토(凡聖同居淨土)에 날 것이고 신, 원으로 지명염불하여 견혹 사혹을 모두 끊고 왕생하는 이는 방편유여정토(方便有餘淨土)에 왕생하고 신, 원으로 지명염불하여 일분(一分) 무명(無明)을 깨뜨린 이는 실보장엄토(實報莊嚴土)에 왕생하고 신, 원으로 지명염불하여 구경(究竟)의 곳(處)에 들어가 무명을 단진(斷盡)한 이는 상적광정토(常寂光淨土)에 왕생할 것이니 그러므로 지명염불이 능히 사토(四土)를 정(淨)하는 것이 또한 틀림없는 것이다.


(5). 육조대사(六朝大師)


[선정쌍수집요(禪淨雙修集要)]에는 옛 적에 한 사람이 육조대사(六朝大師)에게 묻기를 “염불에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하고 묻는 말에

 

육조대사는 “일구(一句)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만세(萬世)의 괴로움을 뛰어나는 묘도(妙道)요, 불(佛)을 이루고 조(祖)가 되는 정인(正因)이요, 삼계(三界)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이요, 마음을 밝히고 성(性)을 보는 혜등(慧燈)이요, 지옥을 깨뜨리는 맹장(猛將)이요, 많은 올바르지 못한 것을 베는 보검(寶劍)이요, 五千대장(大臧)의 골수(骨髓)요, 팔만총지(總持)의 중요한 길이요,

 

흑암(黑暗)을 여의는 명등(明燈)이요,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양방(良方)이요, 고해(苦海)를 건너는 타고 가는 배요, 삼계(三界)에 뛰어나는 지름길이요, 최존(最尊) 최상(最上)의 묘문(妙門)이며, 무량무변(無量無邊)의 공덕이니라. 이 일구(一句)를 기억하여 염념(念念)이 항상 나타나고 시시로 마음에 떠나지 아니하여 일이 없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일이 있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안락할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병고(病苦)가 있을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살았을 때에도 이렇게 염불하고 죽어서도 이렇게 염불하여 이와 같이 일념(一念)이 분명하면 또 무엇을 다시 남에게 물어서 갈 길을 찾으랴. 이른 바 일구미타무별념, 불로탄지도서방(一句彌陀無別念,不勞彈指到西方)이라”하였다.


二 . 연종(蓮宗과 선종(禪宗)


(1). 영명대사(永明大師)


영명대사는 후세의 학자에게 염불과 참선(叅禪)의 관계를 알게 하기 위하여 정선(淨禪)사료간(四料簡)을 지어서 그 뜻하는 바를 알게 하였으니 다음과 같다.

사료간(四料簡)


유선유정토(有禪有淨土)-유여대각호(猶如戴角虎)

현세위인사(現世爲人師)-내세작불조(來世作佛祖)


무선유정토(無禪有淨土)-만수만인거(萬修萬人去)

약득견미타(若得見彌陀)-하수불개오(何愁不開悟)


유선무정토(有禪無淨土)-십인구차로(十人九蹉路)

음경약현전(陰境若現前)-별이수타거(瞥爾隨他去)


무선무정토(無禪無淨土)-철상병동주(鐵床竝銅柱)

만겁여천생(萬劫與千生)-몰개인의호(沒箇人依怙)


이 사료간(四料簡)에 대하여 중국 청나라 때의 인광대사(印光大師)가 해석한 개의(槪意)는 다음과 같다 .


유선유정토(有禪有淨土) 행인(行人)이 선종(禪宗)을 깨달아 견성(見成)하고 또 여래의 권실법문(權實法門)을 갖추어 안중(眼中)에 오직 신, 원, 염불의 일법(一法)으로써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行)을 행하는 것이다.


유여대각호(猶如戴角虎) 행인이 정토와 선을 같이 닦으면 대지혜(大智慧) 대선정(大禪定) 대변재(大辯才)가 있어서 사마(邪魔)와 외도(外道)가 이름만 들어도 낙담상혼(落膽喪魂)하고 호랑이가 뿔난 것 같아서 사나운 위엄 있는 기세가 짝 없는 것이 가위(可謂) 금상첨화(錦上添花)다.


현세위인사(現世爲人師) 배우는 사람에게는 그 능력(能力)과 성능(性能)을 따라서설법(說法) 교화(敎化)하여 상중하근(上中下根)이 하나도 그 혜택을 입지 아니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내세작불조(來世作佛祖) 임명종(臨命終)대에 부처님의 접인(接引)을 입어서 상품(上品)에 왕생(往生)하여 곧 부처님을 뵈옵고 무생인(無生忍)을 증(證)하여 속히 성불하는 것이다.


 무선유정토(無禪有淨土) 비록 견성(見性)을 못하더라도 결심하고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만수만인거(萬修萬人去) 지성으로 염불하면 감응도교(感應道交)하여 부처님의 섭수(攝受)하시는 것을 입어서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오역(五逆) 십악(十惡)도 임종 때에 부끄러운 마음을 발하고 염불하여 십성(十聲) 내지 일성(一聲)에도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


 약득견미타(若得見彌陀)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부처님을 뵙는 것이다.


 하수불개오(何愁不開梧) 부처님을 뵈옵고 불법을 들어 깨닫는 것이다.


 유선무정토(有禪無淨土) 선종(禪宗)을 깨달아서 견성(見性)은 하였으나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십인구차로(十人九蹉路) 왕생도 구하지 않고 견혹(見惑) 사혹(思惑)의 번뇌도 끊지 못하므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면치 못하여 생사(生死)의 바다는 깊고 보리(菩提)의 길은 멀어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크게 깨달은 사람도 열 사람중 아홉 사람은 이러한 것이다.


 음경약현전(陰境若現前) 음경(陰境)은 중음신(中陰身)의 경(境)이니 즉 임명종(臨命終)때에 현생(現生)과 지나간 겁(劫)의 선악(善惡)의 과보(菓報)를 가져 오는 업(業)의 큰 힘이 나타나는 것이다.


 별이수타거(瞥爾隨他去) 음경(陰境)이 한번 나타나면 순식간에 가징 맹렬한 선악의 과보를 가져오는 업의 큰 힘을 따라서 선악도(善惡道)중에 태어나서 조금도 능히 자기의 힘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다.


 무선무정토(無禪無淨土) 선종(禪宗)을 깨닫지 못하고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구하지도 아니하고 다른 법문을 닦아서 혹(惑)을 끊어 진리를 증(證)하지도 못하고 또 부처님의 자력(自力)에 의하여 혹을 가진 채로 왕생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철상병동주(鐵床並銅柱) 다른 법문을 닦아서 혹을 끊지는 못하였으나 그 공덕을 많이 지었으면 第二의 생(生)에는 인천(人天)에 태어나서 그 복보(福報)를 받는 중에 오욕(五欲)에 빠져서 악업(惡業)을 많이 짓고 악보(惡報)를 면하기 어려워서 第三의 생(生)에는 지옥에 떨어져서 철상(鐵床)동주(銅柱)의 형구(形具)로써 그 죄보(罪報)를 받는 것이다.


 몰개인의호(沒箇人依怙) 모든 부처님 보살이 비록 자민(慈愍)을 드리우시나 악업장(惡業障)이 무거운 까닭으로 능히 그 이익(利益)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2). 혜원조사(慧遠祖師)


혜원조사는 말하기를 [요사이 선종(禪宗)들이 염불하며 정토를 닦는 이를 보고는 착상수행(着相修行)한다 하며 비방하고 참선견성(叅禪見性)하여 진상(眞常)을 돈오(頓悟)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므로


천근(淺根)한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염불도 아니 하고 경(經)도 보지 아니하며, 진무(塵務)중에 있어서 입으로는 참선(叅禪)을 말하나 마음에는 도(道)를 행하지 아니하며 정토를 비방하고 왕생을 믿지 아니하니,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으로 아미타불이 무상(無上)한 심묘선(深妙禪)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커다란 도리(道理)를 궁구(窮究)하지 아니하고 분별(分別)을 망생(妄生)하는 것이니 참선견성(叅禪見性)코져 하면 따로 화두(話頭)를 들것이 없이 다만 일구(一句)아미타불만 가지고 자참자념(自叅自念)하여 오래 되면 자연히 소득이 있을 것이오. 이때에 설사 개오(開悟)하지 못하더라도 명종(命終)하면 상품상생(上品上生)을 얻을 것이다]하였다 .


(3). 감산대사(憨山大師)


감산대사는 말하기를 참선[叅禪)하는 이가 많으나 반드시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것 아니고 염불하는 이는 생사에서 벗어날 것을 의심할 것 없나니 왜냐 하면 참선은 상(想)을 여의기를 요하나 염불은 오로지 상(想)에 있는 것인데 중생이 오랫동안 망상(妄想)에 침륜(沈淪)하여 이 상(想)을 여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만일 염상(念想)으로써 정상(淨想)으로 변하면 이것은 독(毒)을 다스리는 것을 바꾸어 놓는 법이다 그러므로 참구(叅究)는 깨닫기가 어렵고 염불은 이루기가 쉬운 것이다]하였다.


(4). 왕룡서거사(王龍舒居士)


왕룡서거사는 말하되 [참선(叅禪)하여 크게 깨달아서 생사(生死)의 윤회(輪廻)를 벗어나는 것이 진실로 상(上)이 되거니와 이에 이르는 이가 百에 二,三인도 없고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닦으면 윤회를 벗어나 생사(生死)가 자여(自如)하여 萬에 하나도 빠지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나는 승가(僧家)의 상근기(上根器)에 권하고져 하는 것은 참선하는 외에 매일 짤막한 겨를을 내어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권하고 싶다 만약 참선하여 크게 깨달아서 윤회를 벗어났다 하더라도 오히려 불지(佛地)와 떨어진 거리가 극히 멀고도 멀으므로 다시 아미타불을 가서 뵈옵고 전례(展禮)하여 치경(致敬)하는 것이 무엇이 불가(不可)하며 만약 크게 깨닫지 못하고 수수(壽數)가 문득 다하여 명종 하더라도 서방에 가서 부처님을 뵈옵고 법을 들으면 어찌 크게 깨닫지 아니할 것을 근심 하리오

 

만약 정토를 닦지 아니하면 업연(業緣)을 따라 가는 것을 면치 못하는 것이므로 청초당(靑草堂) 오조계선사(五祖戒禪師) 진여철(眞如喆)도 윤회에 골몰하였으니 참으로 가외(可畏)한 일이다 만일 이 도를 정심(情心)으로 닦아 사람을 화도(化導)하고 다시 서로 권화(勸化)하게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명승(名僧)이라 하여 반드시 그말을 낙종(樂從)할 것이니 그 이익(利益)됨이 무궁하고 반드시 상품상생(上品上生)에 나리라]하였다


(5). 철오대사(徹梧大師)


철오대사는 말하기를 [관 무량수경(觀無量壽經)]의 [시심작불(是心作佛) 시심시불(是心是佛)]과 선종(禪宗)의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비교하면 참으로 직절(直截)통쾌하다 왜냐하면 견성(見性)은 어렵고 작불(作佛)은 쉬운 까닭이니, 견성은 심(心), 의(意), 식(識)을 여의고 영광(靈光)이 병로(迸露)하여야 비로소 견성이 되는 것이므로, 견성은 어렵고 작불(作佛)은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염지(念持)하며 부처님의 의보(依報) 정보(正報)를 관(觀)하면 곧 작불이 되므로 작불이 쉬운 것이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부처님을 생각할 때에 그 마음이 곧 32상(相) 80종호(八十種好)라]하셨으니 이것이 부처님을 상념(想念)함으로써 곧 작불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작불과 시불(是佛)의 이치가 둘이 아닌 것과 견성과 성불(成佛)의 어렵고 쉬운 것이 이렇게 판이하게 다르니, 염불로써 참선에 비교하면 더욱 직절 통쾌한 것이다.


 하나는 부처님의 말씀이요, 하나는 조사(祖師)의 말이니,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경하며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가. 학자는 한 번 완미(玩味)하여 검점 (檢點)하면 반드시 이 말이 그릇되지 아니한 것을 수긍할 것이다]하였다.


(6). 인광대사(印光大師)


인광대사는 염불하는 사람은 선가(禪家)의 참구(叅究)에 간섭할 것이 아니요.

참구염불(叅究念佛)도 염불할 때에 이것이 [누군고] 하는데 치중해야 깨닫기만 구할 뿐이다. 행인(行人)이 신(信), 원(願)으로써 염불하여 왕생하게 되면 깨닫지 아니하는 자가 없고 ,또 깨달아 흑업(黑業)이 다하면 마땅히 생사를 마칠 것이되 만약 깨닫기만 구하고 신, 원이 없는 경우에는 흑업이 다하지 못하였으면 능히 자력(自力)으로 생사를 마칠 수도 없고,

 

 또 능히 불력(佛力)에 의하여 생사를 마칠 수도 없으므로 자력 불력에 모두 근거가 없어서 윤회(輪廻)를 면하지 못하는 것인데 법신보살(法身菩薩)도 성불하기 전에는 모두 불력에 의하므로 업력(業力)의 범부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니 불력 자력의 대소가 어찌 천연(天淵)의 차이에 그치리오]하였다.

(八)장.  유심정토(唯心淨土)와 자성미타(自性彌陀)의 변론(辯論)


세상사람 중에 혹은 극락정토와 교주(敎主) 미타(彌陀)를 부인(否認)하면서 유심(唯心)이 정토(淨土)인데 유심 외에 무슨 정토가 따로 있으며, 자성(自性)이 미타(彌陀)인데 자성 외에 무슨 미타가 또 있겠는가. 하여 오해하는 이가 있다 이에 대한 선덕(先德)들의 가려 밝힌 중에서 몇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왕룡서거사(王龍舒 居士)의 설(設)


참선하는 사람들이“유심정토(唯心淨土)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주장하여 극락세계를 부인하려는 이가 있으나 그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왜냐 하면 서방정토가 이치도 있고 사실의 형적도 있는 것이니 그 이치로 말하면 능히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므로 일체가 모두 청정하니 진실로 유심정토가 되는 것이요.

 

 사실의 형적으로 말하면 실로 극락세계가 있어서 부처님께서 틀림없이 자세히 말씀하셨으니 어찌 헛된 말씀이라 하랴. 사람마다 성불할 수 있는 것이며 또 자성미타란 말도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갑자기 이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니 마치 불상(佛像)을 조각할 만한 좋은 재목이 있더라도 불상을 조각한 연후에야 비로소 불상이라 칭할 것이요.


 재목을 그대로 두고 불상이라고 예배 공양할 수는 없는 것 같은 것이니 소위 유심(唯心)이 정토니 따로 정토가 없고 자성(自性)이 미타니 따로 미타가 없다는 것은 옳지 못한 주장이다. 또 어떤 이는 정토가 있는 것을 믿으면서도 유심설(唯心設)에 구애되어 서방에 왕생할 것이 없다하거나 참선은 직접으로 견성(見性) 성불(成佛)하는 것이므로 아미타불을 볼 것이 없다는 말은 모두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 하면 저 서방 정토는 탐(貪). 연(戀), 진(瞋), 치(癡)가 없거니와 우리의 마음에도 탐, 연, 진 ,치가 없는가. 또 서방 정토에는 옷을 생각하면 옷을 얻고 음식을 생각하면 음식을 얻으며 고요하고자 하면 고요하여지고 가고자 하면 가는 것이지마는 내가 옷을 생각하여 얻지 못하면 찬 것이 마음을 고달프게 하며 음식을 생각하여 얻지 못하면 주림이 마음을 고달프게 하며 고요하고자 하다가 고요할 수 없으면 흩어져 움직이게 하는 것이 마음을 고달프게 하고 가고자 하다가 갈 수 없으면 계루(繫累)가 마음을 고달프게 하니 소위 유심정토라 함은 진실로 이르기 쉽지 못한 것이다.


 아미타불은 복혜(福慧)가 충분히 갖추시고 신통(神通)이 광대(廣大)하여 지옥을 변하여 연화를 만드시는 일이 손바닥을 뒤집기보다 쉽고 한이 없는 세계를 보시는 것이 눈앞에 있는 것 같거늘 나는 항상 숙업(宿業)이 깊고 무게가 있어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하거늘 어떻게 연화로 고쳐 만들 수 있으며 또 벽 사이의 거리의 일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한이 없는 세계를 볼 수 있으랴.

 

 소위 자성미타라 함은 참으로 이르기가 어려운 것이므로 나의 마음이 정토가 될 수 있다 하나 별안간에는 정토가 될 수 없는 일이고 나의 성품이 가히 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하나 갑자기는 될 수 없는 것이거늘 어찌 정토를 소홀히 생각하고 닦지 아니하며 아미타불을 버리고 뵈옵기를 원치 아니 하리요.


정토의 업(業)을 닦아서 아미타불을 뵈옵고 보리(菩提)를 이루기는 어렵지 않거니와 만약 이 세계에서 참선(叅禪)하여 견성(見性) 성불(成佛)하기는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정토를 수행하는 것이 참선에 방해되지 않거늘 어찌하여 참선하는 이는 정토를 소홀히 여기고 닦지 아니하겠는가.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에 말씀하시기를 “시방(十方)의 한량이 없는 보살이 있어 아미타불국에 왕생하였다”하였거늘 나는 어떠한 사람인데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치 아니하니 내가 과연 모든 보살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하는가. 통틀어 말하면 [유심정토와 자성미타]란 말은 많은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니라.

즉 정토법문을 지송(持誦)수행하면 사람마다 반드시 정토에 낳아서 속히 윤회(輪廻)를 벗을 것이니 저 거짓과 불성실한 마음이 있는 이로부터 그 거리의 먼 것이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2). 성암대사(省庵大師)의 설(設)


누가 묻기를“즉심시불(卽心是佛)인데 어찌하여 다시 아미타불을 보려는가.” 하였더니 답하기를 “즉심시불이란 말은 얼음을 가리켜 물이라 하는 말과 같다 즉 얼음이 비록 물이기는 하나 물이 얼어붙었으므로 태양의 열을 빌려서야 비로소 녹아 풀어져서 물이 되는 것과 같이 마음이 불(佛)이기는 하나 전체가 어지럽고 어두움 속에 있으므로 불일(佛日)의 힘을 빌려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거늘 어찌 사리에 어두운 마음만을 고집하고 부처님을 뵈옵기를 원하지 아니 하리요” 또 묻기를 [즉심정토(卽心淨土]라 하는데 어찌하여 다시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가 하였더니 답하기를[즉심정토라 함은 나무를 가리켜서 기둥이라 함과 같다.


 즉 나무가 기둥이 될 수는 있거니와 나무 그대로가 기둥이 되지는 못하는 것과 같이 마음이 비록 정토를 지을 수는 있으나 마음 그대로가 정토는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十二시(時)중에 일체 경계(境界)에 대하여 한털끝 만치라도 잡념(雜念) 염오심(染汚心)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곧 예상(穢相)이 공(空)하지 못한 것이거늘 어떻게 즉심정토라 하겠는가. 이와 같은 말은 모두 스스로 속는 것이다 만일 정토에 왕생하지 아니하면 유심정토가 끝끝내 드러나지 못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3).  대우선사(大佑禪師)의 설(設)


어떤 이가 묻기를 관경(觀經)에는 [이 마음이 불을 짓고 이 마음이 곧 불이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다른 불을 염불하는가.] 하고 답하기를 [마음이 본래 부처이므로 저 부처를 염불하게 하는 것이다] 범망경(梵網經)에는 [나는 앞으로 될 부처요, 여러 부처는 이미 이룬 부처인줄 알라]하였으니, 너의 마음의 부처님 앞으로 될 부처이고 아미타불은 이미 이룬 부처이다.


 앞으로 될 부처는 오랫동안 욕해(欲海)에 잠겨서 번뇌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 출리(出離)할 때를 정하여 약속함이 까마득하나 이미 이룬 부처는 이미 보리(菩提)를 발하고 위신(威神)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 중생을 도와서 보호하시므로 여러 부처님이 염불을 권하신 것이니, 즉 나의 앞으로 될 부처로써 다른 이미 이룬 부처를 구(求)하여 도와서 보호를 얻는 것이다 .


그러므로 중생이 만약 염불하지 아니하면 성인과 범부가 영원히 사이가 떨어지고 부자(父子)가 항상 괴리(乖離)하며 오래도록 윤회(輪廻)에 처(處)하여 서로 떨어진 거리가 먼 것이니라.


四  극락정토 권(權) 실(實)의 변(辯)


중국 당나라 때의 조백(棗栢) 이통형장자(李通玄長者)가 화엄합론(華嚴合論)을 짓고, 그 중에 십종정토(十種淨土)의 육권사실(六權四實) 즉 열 가지 정토 중에 여섯은 권(權)이요, 넷은 실(實)이라는 것을 열거 하면서 그 중의 아미타불 정토를 권이라 하고 실이 아니라 하였으나, 이 장자는[사십화엄경(四十華嚴經)]이 당나라에 들어오기 이전이어서[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보지 못한 까닭으로 아미타불 정토를 실이 아니고 권이라고 그릇 인정한 것이다.


 누가 묻기를[서방 정토는 성인(聖人)이 권방편(權 方便)에 들어가게 되면 무엇 타력(他力)을 빌리리오.] 하였더니 답하기를[부처님이 계신 때의 문수(文殊) 보현(普賢)보살과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마명(馬鳴) 용수(龍樹)보살과 중국의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와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가 모두 왕생을 발원하였으니, 이네들이 모두 둔근이겠는가.


 [보적경(寶積경)]에는 석가모니 세존께서 부왕(父王)께 정토왕생을 권하여 육萬 석종족(釋種族)이 모두 왕생하였으니 이네들은 모두 평범한 이들이라 하랴 또 이 성현(聖賢)들이 모두 지금의 소위 재능이 예리하고 뛰어난 이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만일 서방 정토를 권이라 하면 어떠한 것을 실이라 하겠는가. 중국의 손신로학사(孫莘老學士)가 처음에 정토를 의심하다가 양차공(楊次公)과 왕민중시랑(王敏仲恃郞)을 만나서 논(論)하는 도(道)가 꼭 들어맞아 드디어 의심을 풀었다 양차공 왕민중시랑 두 사람은 선(禪)을 배우다가 모두 정토 귀의(歸依)에 쉬지 않고 노력하였으니 정토는 성인(聖人)의 권설(權設)이 아니고 진실로 선려(禪侶)의 서지(棲止)할 곳이다

 
 

제 九장  운명(殞命)의 전후


1. 사대(四大)가 이산(離散)


사람의 몸을 만들어서 이루어진 것 가운데 단단한 것은 지대(地大)에 속하고 흐르는 것은 수대(水大)에 속하고 더운 것은 화대(火大)에 속하고 움직이는 것은 풍대(風大)에 속한다. 이 네 가지를 사대(四大)라 하니 사람이 죽을 때에는 이 사대가 제 각기 흩어지는 것이다.


 [염불구도중음법(念佛救 度中陰法)]에는 [지대(地大)가 수대(水大)에 내릴 때에는 전신에 무거운 압력을 느끼며 내장과 뼈마디에까지 미치어 숨이 막혀 답답하고 무거운 고통은 말할 수 없나니, 이때에 수족이 끌어당기고 근육이 떨린다.

 

 수대가 화대(火大)에 내릴 때에는 전신이 한냉하고 냉기가 골수에 들어가 내장이 떨리며 간장이 얼음 같이 차서 화로 불로도 냉고(冷苦)를 제하기 어려운 것인데 이때에는 얼굴빛이 회백(灰白)하고 숨이 차고 몸이 떨리게 된다.

 

 화대가 풍대(風大)에 내릴 때에는 생기(生氣)가 태반이나 감퇴하여 저항력이 약하고 바람을 부치면 불이 성하는 모양 같아서 내장과 외지(外肢)가 다리고 찌는 것 같고 살과 힘줄을 베고 쪼개는 것 같은데, 이때에는 얼굴빛이 붉고 신기(神氣)가 혼미(昏迷)한 것이요 풍대가 따로 떨어질 때에는 문득 광풍(狂風)이 온 몸을 불어 찢어 부스러뜨리는 것과 같은 감각을 느끼며 그 고통의 극심함은 형용할 수 없는데 이때에 사대가 흩어지며 육근(六根)이 망가지고 오직 그 신식(神識)만이 생전에 지은 업(業)의 경중을 따라서 과보(果報)를 받아 간다]하였다.


 [중유론9中有論)]에는 [장차 죽을 때에는 사대(四大)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순서로 따로 따로 떨어지는데 지대(地大)가 분리할 때에는 신체는 무거운 물건으로 온 몸을 누르는 것 같고, 네 팔다리는 끌어당기는 것 같은데 극히 고통이 되고 그 다음에 수대(水大)가 따로 떨어질 때에는 몸에 땀이 나고 혹은 머리에서 땀이난다.]하였다.


[지도론(智度論)]에는 [악업(惡業)을 지은 사람은 풍대(風大)가 먼저 흩어지므로 몸이 움직이며 화대(火大)가 먼저 가므로 몸이 덥고 선행(善行)을 한 사람은 지대(地大)가 먼저 가므로 몸이 고요하며 수대(水大)가 먼저 가므로 몸이 차다]하였다.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는 [임종시에 도풍(刀風)이 모두 일어나 천 개의 뾰족한 칼로 몸을 찌르는 것 같다]하였다. 이와 같이 사대가 흩어질 때에 악도에 가서 날 사람은 죽을 때에 고통을 받으나 인도에 날 사람은 별로 고통이 없고 천도에나 극락세계에 왕생할 사람은 고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상쾌한 감각이 있다고 한다.


2. 신식(神識)이 시체(屍體)에서 떠나가는 방법


신식(神識)즉 속칭 영혼(靈魂)이 시체에서 떠나갈 때에 전신이 별안간에 일시에 식어지는 것이 아니고 몸 아래서부터 먼저 식거나 혹은 몸 위서부터 먼저 식는다.


 몸의 더운 기운이 최후에 발에 와서 식으면 지옥에 낳는 것이요 무릎에 와서 식으면 축생도에 낳는 것이요 배에 와서 식으면 귀도(鬼道)에 낳는 것이요 가슴에 와서 식음녀 인도(人道)에 낳는 것이요 눈에 와서 식으면 천도(天道)에 나는 것이고 정수리에 와서 식으면 성도(聖道)즉 극락에 나는 것이다 아수라(阿修羅)는 종류가 많아서 식는 곳을 확실히 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3. 아뢰야식(阿賴耶識)과 중유(中有)


우리가 안이비설신의(眼耳費舌身義)의 육근(六根)으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경(六境)에 대하여 보고,(見) 듣고,(聞) 맡고,(嗅) 맛보고,(味) 닿고,(覺) 알고,(知)하는 것을 잘 알아서 분별하는 작용(作用)을 생(生)하는 것을 식(識)이라 하니 곧 안이비설신의의 육식(六識)이라 하고 여기에 말나식(末那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가하여 팔식(八識)이라 한다. 사람이 처음 생길 때에는 아뢰야식 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말나식과 육식이 생기며 죽을 때에는 육식과 말나식이 먼저 가고 아뢰야식이 나중에 가나니 아뢰야식은 곧 우리의 신식 즉 영혼이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수태(受胎)할 때에는 아뢰야식이 먼저 오는 까닭으로 아이가 태중에 있어서 활동하게 되고 사람이 죽은 후에는 전신 중의 어느 부분이든지 더운 기운이 아주 없어져야 아뢰야식이 완전히 떠난 것이다 아뢰야식이 처음 와서 우리의 신심(身心)이 생긴 것을 생유(生有)또는 생음(生陰)이라 하고 출생한 후부터 죽기 전까지의 신심을 본유(本有)라 하며 죽은 뒤의 신심을 사유(死有)또는 사음(死陰)이라 하고 사유 후와 생유 전의 중간에 있는 신심을 중유(中有)또는 중음(中陰) 중음신(中陰身)이라 하니 이 네가지 종류를 사유(四有)라 한다.

 

 이 사유는 오직 아뢰야식의 이름을 바꾸었을 뿐이고 그 본질(本質)은 바구지 아니한 것이니 중유가 곧 아뢰야식이요 아뢰야식이 곧 중유이다[구사론(俱舍論)]에서는 사유(四有)의 시간을 말하되[생유(生有),사유(死有)는 각각 생사(生死)의 일찰나간(一 刹那間)]이고 본유(本有) 중유(中有)는 길고 짧음이 같지 않다]하였고 [유식론(唯識論)]에는 [생유(生有) 사유(死有)는 일찰나간 보다 조금 길고 본유(本有) 중유(中有)는 길고 짦음이 일정하지 않다]하였다


4. 중유(中有)의 작용(作用)


중유(中有) 의 형체(形體)는 본유(本有)의 양(量)과 같다 하며 혹은 사람의 중유는 일체의 반이라 하고 또 욕계(欲界)의 중유는 五, 六 세의 아이와 같고 오근(五根)이 완전히 갖추었으나 의복이 없으며 색계(色界)의 중유는 신량(身量)이 원만한 것이 본유와 같고 의복이 몸과 같이 있고 보살은 형량(形量)이 원만하며 모든 용모 형상이 구비하고 의복이 있으며 인천(人天)의 중유는 깨끗하고 삼악도(三惡道)의 중유는 흑암(黑暗)하며, 또 지옥에 날 중유는 그 형상이 지옥과 같고, 하늘에 날 중유는 하늘 사람과 같다고 한다.


 중유는 냄새를 먹는데 그 먹는 냄새는 복덕(福德)을 따라서 차별이 있으니 즉 복 있는 중유는 꽃과 과실 같은 경청(輕淸)한 냄새를 먹고 복 없는 중유는 대소변과 썩은 음식 과 같은 것의 더러운 냄새를 먹는데 중유가 먹는 분량이 극히 적어서 중유가 비록 많아도 모두 먹을 수가 있다 한다. 중유의 견량(見量)은 중유의 승열(勝劣)에 따라 같지 아니하니 승(勝)한 중유는 열(劣)한 중유를 보거니와 열한 중유는 승한 중유를 보지 못하며 같은 종류의 중유는 서로 본다고 한다.


 중유가 신통력(神通力)이 강하고 속하여 공중을 날아다니는 까닭으로 금강산도 장애가 되지 아니하고 부처님도 억제 할 수 없으며 산과 물과 돌과 벽과 내지 수미산(須彌山)같은 것도 무난히 통과하여 다니되 오직 보리가아(菩提泇蕥)즉 부처님의 금강좌(金剛座)와 모체의 자궁은 통과하지 못하며 또 일찰나(一刹那)에 사대주(四大洲)와 수미산을 돌아다니며 어느 곳에나 순식간에 왕래할 수 있으므로 중유가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한 번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즉각에 앞에 와 서 있고 또 중유가 모든 근(根)이 영리하여 전에 지은 일을 잘 기억하되 그 기억력이 생시보다 九배(倍)나 되고 생시에 비록 용열(庸劣)하고 둔탁(鈍濁)하던 사람이라도 중유에 들면 매우 영민(潁敏)하게 되는 것이다


5. 중유(中有)의 생연(生緣)을 얻는 기한(期限)


중유가 생유로 낳기 전에 중유로 머물러 있는 기한에 대한 네 가지 설이 있다

(-) 비바사제사(琵婆沙諸師)는 [일체의 중유가 태어나기를 즐겨 구하므로 속히 생(生)을 받고 반드시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하였고,

(=)세우존자(世友尊者)는 [七일을 극장(極長)으로 한다]하였고,

(三)설마달다존자(設摩達多尊者)는 [七七일을 극장(極長)으로 한다]하였고,

(四)법구존자(法救尊者)는[머물러 있는 기한이 일정하지 않다]하니,


 즉 수생(受生)하는 연(緣)에 더딤과 빠름이 있고 만약 생연(生緣)을 만나지 못하면 중유가 항상 있다는 것이다.


 [법화문구(法華文句)]에는 [인간의 중유는 동자(童子)와 같고 반드시 七일을 一기(期)로 하여 본생처(本生處)에 나는데, 만약 七일이 끝날 때까지 생연(生緣)을 얻지 못하면 또 다시 중유 七일을 계속하여 第二, 七일의 종말에 또 본생처에 낳고 이렇게 七일을 一기(期)로 하여 그 기한이 가장 긴 것은 제 七기까지 이르고 七기의 종말에는 반드시 어는 곳에든 태어나는 것이니 이 七七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칭한다.


 이와 같이 생연을 아직 결정짓지 못한 동안에 추천(追薦)하는 일을 베풀어 그 힘으로 좋은 곳에 나기를 바랄 것이다.]하였다. 


[관정경(灌頂經)]에는 [명종한 사람이 중음(中陰)중에 있어서 몸이 소아와 같고 죄 복이 아직 결정짓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복을 닦아서 망자(亡者)의 신식(神識)으로 하여금 정토에 낳기를 원하면 이 공덕으로 반드시 왕생하게 된다]하였다.

 
 


제 十장  운명(殞命)할 때의 행사(行事)


 사람이 운명(殞命)하기 전에 미리 준비할 일과 주의 할 일이 있거니와 운명 후에도 주의 할 일은 법대로 염불하며 도를 잘 닦은 운명 시에도 행사를 잘하여야 할 것이거니와 평시에 염불했다 하여도 법대로 못한 사람은 운명할 때에 행사를 잘하지 아니하면 극락에 왕생하기 어렵고 평시에 염불을 아니한 사람이라도

 

 운명할 때에 행사를 잘 하면 극락에 왕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운명 전후의 행사가 망자(亡者)에게 이와 같이 큰 관계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사람이 운명하려 할 때에는 빨리 운명하기만 기다리고 운명한 후에는 속히 장사하려는 생각만 하고 긴요한 행사를 하지 아니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러므로 그 운명 전후에 행할 일과 주의할 것은 다음과 같다


一. 서방삼성(西方三聖)의 상(像)을 모실 것


운명할 사람의 방에는 극락세계의 삼성(三聖)의 상(像)(흑이나 나무나 금속이나 돌로 만든 불상)또는 화상(畵像)을 모시되 동향으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아미타불의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을 모실 것이며 만약 삼성의 상을 구하기 어려우면 아미타불 상만 동향하여 모시고 불상 앞에는 향로와 [아미타경] 등 왕생에 관한 경책 이외에는 다른 물건을 많이 놓지 말 것이고 불상이 없으면 [나무아미타불]여섯 자나 [아미타불] 넉 자를 글씨로 크게 써서 모셔도 좋고 그것도 할 수 없으면 다만 서향하여 염불할 것이다


二. 운명(殞命)하는 사람은 일심(一心)으로 염불할 것


운명하는 사람은 자기 일신상 일이나 집안일이나 세상사를 모두 방하착(放下着)하고 오직 극락왕생만을 발원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할 것이며 설사 병고(病苦)가 중하더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염불만 할 것이다.

 

 이렇게 염불하는 사람은 만약 목숨이 다하였으면 반드시 극락에 왕생할 것이고 또 만약 목숨이 다하지 아니하였으면 병이 속히 나을 것이니 이는 매우 성실한 마음의 염불로 인하여 지난 세사의 업장(業障)을 없애 버리는 까 닦이다.

 

 그러나 잡념(雜念)을 하거나 병이 나을 생각만 하고 염불을 성실하게 하지 아니한 사람은 왕생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병이 낫기만 바라고 왕생을 구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설사 목숨이 다하지 아니하였더라도 병이 속히 낫지 못하고 도리어 병고가 더하게 되느니라.


三.  다른 이는 염불을 권하며 조념(助念)할 것


행자(行者)가 평시에 염불법을 알고 법대로 수행한 사람도 운명할 때에 가족 친척들이 옆에서 조념(助念)함이 매우 유익하거니와 염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염불을 하였더라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한 사람의 운명할 때에는 조념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운명할 사람이 조념 할 경우와 조념을 싫어하여 반대할 경우에는 조념하는 방법이 같지 아니하다.

 

(-). 운명할 사람이 병이 없거나 병이 경하여 정신이 있고 조념을 희망 혹은 반대하지 않는 때에는 친족들이 반을 짜서 매일 교대로 염불하여 염불소리가 운명할 사람의 귀에 들리게 하며 운명할 때까지 계속하되 소리의 높음과 낮은 것과 느린 것과 빠른 것과 목탁을 치는 여부는 운명할 사람의 의사에 의할 것이다.


(=). 운명할 사람이 정신이 혼미(昏迷)하거나 병이 중하여 자신이 염불하지 못하더라도 조념하는 사람들은 매일 반을 자서 교대하여 운명할 때가지 고성으로 염불할 것이고 혹 운명할 사람이 염불하기를 싫어하거나 자기는 물론 조념까지도 반대할 경우에는 운명할 사람에게 염불 소리를 듣는 것 이 크게 이익 되는 것을 간절히 설명할 것이며 운명할 사람이 듣고 듣지 않는 것에 불구하고 운명할 때까지 염불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四. 운명할 때의 좌와(坐臥)는 자유로 하게 할 것.


평소에 염불을 하지 아니하였거나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사람이면 운명할 때의 몸 가지는 태도를 자유에 맡길 것이고 억지로 서향하게 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평시에 법대로 수행한 사람이면 운명할 때에 몸 가지는 태도에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 서향하여 전가부좌(全跏趺坐) 혹은 반가부좌(半跏趺坐)하고 합장(合掌)하거나 혹은 아미타불 수인(手印)을 맺고 염불하면서 운명 하는 것.


(=). 서향하여 오른쪽으로 누워 염불하는 것이니 이것을 길상유(吉相遊)라 한다. 서가모니불께서도 열반(涅槃)하실 적에 이렇게 누우셨다.


(三). 서향하여 곧게 서서 합장하거나 아미타불 수인을 맺고 운명하는 것의 세 가지다.


五.  가족의 주의 할 일


가족이나 친족들은 운명할 사람에게 언어와 행동을 매우 조심하여 왕생의 큰일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다.


(-). 운명할 사람에게 슬픈 기색을 보이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 것이며,

(=). 운명할 사람에게 애정을 못 이기어 섭섭한 말이나 집안일이나 세상일을 말하지 말 것이며

(三). 요란하게 떠들지 말아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일로 인하여 운명하는 사람에게 슬픈 마음을 일으키거나 애정에 끌리거나 다른 일에 마음이 산란하게 되면 정념(正念)을 잃고 악도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무당 판수 외도(外道)들의 하는 행사를 혼용하지 말 것이니, 이것은 해만 있고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불법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까닭이 된다.

 

운명한 후에도 조념(助念)을 계속하되 염(殮)하는 시간을 제하고는 四十九일까지 영전(靈前)에서 가족들이 염불할 것이며 또 선지식(善知識)을 청하여 중유(中有)에게 설법하되 [중유가 어떠한 경계(境界)를 당하든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고 일심(一心)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라]고 설명하여 들려주면 중유는 염불하는 소리와 선지식의 설법을 듣고 부처님의 힘을 얻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망자(亡者)가 정신을 잃은 후에 곧 울거나 옷을 갈아입히거나 손발을 거두거나 몸을 자리를 움직여서 옮기지 말고 신식(神識)이 다 떠나간 후에 최소한 8시간 이후에 행사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시체에 만약 한 곳이라도 따듯한 기운이 있으면 신식이 아직 다 떠난 것이 아니고, 그 시체가 다만 입으로 말만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이고 지각(知覺)은 아직 남아 있으므로 이때에 우는 소리를 들으면 애정이 생기고 불법 생각이 식어지는 까닭으로 애정의 마음을 따라서 몇 번이고 형상을 바꾸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에서 해탈(解脫)할 수 없고 몸을 자리를 움직여서 옮기면 고통이 되어 성난 마음이 생기고 불법 생각이 적어져서 악도에 떨어지기 쉬우니라.

 

 이때에 가장 이익을 얻는 것은 염불이 제일이고 가장 해를 끼치고 왕생에 절대 불가한 것은 떠드는 소리나 흔드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망인이 운명하자마자 손발을 거둔다고 손목과 발목을 묶어서 염(殮 )할 때까지 두는 습관이 있으나 이것은 운명 후에 시체를 그대로 두면 골절이 굽어 굳어져서 염하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하는 일이나 만일 신식이 시체에서 떠나기 전에 손발을 거두다가 신식이 고통을 느끼어 성이 나면 안 될 것이니, 손발을 거두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그대로 두었다가 설사 굽어 굳더라도 뜨거운 물에 수건을 담갔다가 물을 짜고 굳은 곳에 대어 두면 굳은 것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니 염려할 것 없다.  또 유가(儒家)의 습관인 초혼(招魂)도 부를 필요가 없으니 지성으로 염불하여 망자의 명복(冥福)을 빌면 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명부(冥府)에 가지 않고 곧 극락으로 직행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시체를 염할 적에 금강경탑다라니 천수탑다라니 수구다라니 등을 넣어서 망인이 다라니의 공덕으로 선도(善導)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위의 다라니 외에 대관정광진언(大灌頂光眞言)즉 광명진언(光明眞言)이 가장 좋으니 이것은 글자 수가 간단하여 二十여 자에 불과하고 또 범자(梵字)의 획(劃)이 시체에 닿으면 정토에 태어난다는 계송(偈頌)이 있으니

진언범자촉시골-(眞言梵字觸屍骨)

망자즉생정토중-亡者卽生淨土中)

견불문법친수기-見佛聞法親授記)

속증무상대보리-(速證無上大菩提)라 하였다.


망인을 위하여 복을 짓는 도(道)는 보시(布施)가 위주(爲主)이며 그 중에서도 망인의 유물로 복을 짓는 것이 가장 좋으니 망인이 많은 이익을 얻는 까닭이다.

 [무상경(無常經)]에는 [망인의 신구(新舊)의복이나 몸에 따라 쓰던 물건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 망인을 위하여 부처님, 달마(達磨),승가(僧家)에 보시하면 이로 인하여 망자의 업장(業障)이 가벼워지고 공덕 복리(福利)의 이익을 얻을 것이니 좋은 의복을 시체에 입혀 보내는 일은 하지 말라]하였다.

 

 그러므로 망인의 유산이 있으면 전폐(錢幣)로 바꾸어서 불상(佛像)을 장엄(莊嚴)하고 경전(經典)을 출판하고 승가에 보시할 것이며, 또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생물(生物)을 놓아 보내는 등 유정에게 유익한 일을 할 것이다.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는 [만일 부모가 죽어서 아귀도에 낳았을 때에 그 자손이 망령(亡靈)을 위하여 복을 지으면 아귀가 곧 이익을 얻을 것이요. 만일 망령이 천도(天道)에 낳았으면 천도에는 뛰어나게 기묘한 보장(寶藏)을 성취하였으므로 인간의 물건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지옥에 낳았다면 몸에 극심한 고를 받으므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축생도 그러하며 아귀도 원래 애탐간린(愛貪慳隣)으로 인하여 아귀도에 떨어진 것이므로 아귀가 된 후에는 항상 그 허물을 후회하고 추천(追薦)의 이익을 생각하므로 그 이익을 얻는 것이니 슬기가 많은 사람은 아귀를 위하여 부지런히 복덕을 지을 것이라]하였다.

(슬기가 많은 사람이란 즉 智者의 뜻이다)


[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灌頂隨願往生十方淨土經)]에는 [유정(有情)이 삼보(三寶)를 믿지 않고 법계(法戒)를 행(行)치 아니하다가 죽은 뒤에 삼도팔난(三途八難)에 떨어져서 모든 고통을 받을 적에 친족들이 망인을 위하여 복을 닦으면 七분(分) 중에 一분의 복을 망인이 얻는다]하였고,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는 [세상에 있을 때에 선인(善因)을 닦지 아니하고 많은 중죄((重罪)를 지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친척들이 망인을 위하여 온갖 성사(聖事)를 지으면 망인은 七분(分)의 一 공덕을 얻고 六분 공덕은 산 사람이 얻는다]하였다.


六 . 법사(法師)는 도행(道行)이 구족(具足)한 이를 청할 것.


상중(喪中)에 법사(法師)를 청할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도행(道行)이 진정(眞正)하고 지해(智解)가 명철(明哲)한 이를 택할 것이니 법사의 계행(戒行)이 깨끗지 못하였거나 법요(法要)의 의식(儀式)이 분명하지 못하거나 사리(私利)를 탐(貪)하는 일이 있거나 하면 중유(中有)가 신통력(神通力)이 있어서 아는 까닭으로 실망하거나 회한(悔恨)하여 성난 마음이 생기면 고취(苦趣)에 떨어지기 쉬우니라.

 

 중국의 송(宋)나라 소흥년간(紹興年間)의 회음(淮陰)때에 어떤 사람이 딸이 죽어 한식이 지나도록 천도(薦度)하지 못함을 한탄하여 그 어머니가 머리털을 잘라 팔아 돈 六百을 만들어 법사를 청하여 불사를 지으려 하였더니 마침 승려 다섯 사람이 문 앞을 지나가므로 맞아 들여서 불사를 청하였더니 그 승려들이 서로 미루다가 그 중 한 승이 허락하고 금광명경(金光明經) 일부를 독송(讀誦)하여 회향(廻向)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노상(路上)에서 먼저 간 네 사람의 동행을 만나 술집에 들어갔더니 별안간에 창밖에서 소리하여 부르기를 [경 읽은 스님은 술을 마시지 말라]하는지라 승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는 스님이 금광명경을 읽던 집 주인의 죽은 딸로서 오랫동안 어두운 데 빠져 있다가 법사의 독경 공덕으로 죄업(罪業)을 벗고 나오게 되었는데 법사가 만일 술을 먹어서 재(齋)를 깨드리면 나는 벗어날 수 없노라]하고 어디론지 가버렸다. 그리하여 그 승려들은 이 말을 듣고 마침내 지계(持戒)수행하여 성도(成道)하였다 한다.


七. 제사(祭祀)에 살생(殺生)하지 말 것


제사(祭祀)에 생물(生物)을 죽이는 것은 크게 금하고 꺼려야 할 것이니 즉 살생으로 인하여 중유(中有)가 악보(惡報)를 받게 되는 것이다 중유가 살생하는 것을 보고는 살생하지 말라고 가족에게 이르지마는 가족이 알아듣지 못하고 살생하면 중유는 성난 마음을 내어 곧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제물에 살생하지 말고 소찬(素饌)으로 차리고 조객에게도 육류(肉類)를 대접하지 말 것이며 설사 조객에게는 불만이 있을망정 망인에게는 죄를 얻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는 [너희들이 살생한 것으로 음식을 차려 놓고 아무리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더라도 망인에게는 터럭만큼도 이익이 되지 못하고 단지 죄연(罪緣)만 맺게 되어 죄가 더욱 깊고 무거워질 뿐이다.

 

 가령 내세나 현세에 성분(聖分)을 얻어서 인(人) 천(天) 중에 태어날 것이라도 죽게 된 때에 모든 식구들이 이 악인(惡人) 즉 살생 같은 것을 지은 인연으로 망인에게 해와 괴로움을 받게 되어 인(人), 천(天)에 낳는 일이 늦어질 것이거늘 하물며 망인이 생시에 조금도 선근(善根)이 없으면 각각 본업(本業)에 따라 스스로 악보(惡報)를 받게 되겠거늘 어찌하여 식구들의 잘못으로 망인의 업(業)을 더하게 하랴 비유컨대 먼 곳에서 오는 사람이 양식(糧食)은 끊어진지가 삼일이 되었는데 등에 짊어진 짐은 무게가 百근이 넘는데 만일 별안간에 이웃 사람을 만나서 또 다른 물건을 첨가한다면 짐이 무거워서 꼼짝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八. 왕생의 징조(徵兆)와 서응(瑞應)에 구애되지 말 것.



염불인 중에 극락에 왕생할 사람은 죽을 때에 이상한 징조나 여러 가지 길한 징조가 나타나는 것이 보이는 것이니 염불인은 그런 일에 구애되지 말고 극락왕생만 발원(發願)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만 할 것이다.

 

 가령 길한 징조가 나타나는 것이 보이더라도 거기에 마음이 움직이어 염불이 한결같지 못하거나 염불을 중단하여서는 옳지 않으니 길한 징조가 나타나는 것이 보일수록 더욱 침착하며 일심으로 염불을 계속할 것이며 또 길한 징조가 나타나는 것이 보이지 않더라도 역시 일심으로 염불을 계속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구제하시는데 현저히 하시기도 하고 은연히 하시기도 하여 범부로서는 추측할 수 없는 것이니 설사 일시에 길한 징조가 나타나는 것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로 인하여 실망하지 말고 일심으로 염불할 것이다 이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이 극락에 왕생하는 요결(要訣)이니라.

 

제 十一장.  구품왕생(九品往生)과 변의 (辨疑)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삼배생(三輩生)이 있는 것을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는 삼배생을 구품(九品)으로 나누었다 극락정토에 왕생하는데 그 행업(行業)의 우열(優劣)에 따라서 구품의 계급을 세운 것이다.

(-). 상품상생(上品上生)은 금강대(金剛臺)를 타고 저 나라에 가서 난다.

(=). 상품중생(上品中生)은 자금대(紫金臺)를 타고 가서 저 나라에 가서 나되 하룻밤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三). 상품하생(上品下生)은 금연화(金蓮華)를 타고 가서 나되 하루 낮 하루 밤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四). 중품상생(中品上生)은 연화대(蓮華臺)를 타고 가서 낳되 오래지 아니하여 연꽃이 핀다.

(五). 중품중생(中品中生)은 칠보연화(七寶蓮華)를 타고 가서 나되 七일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六). 중품하생(中品下生)은 연화대 말이 없고 곧 극락세계에 가서 낳는 다는 말뿐이다

(七). 하품상생(下品上生)은 보연화(寶蓮華)를 타고 가서 나되 七七일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      다

(八). 하품중생(下品中生)은 천화(天華)를 타고 가서 나되 六겁(劫)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九). 하품하생(下品下生)은 금연화를 타고 가서 나되 十二대겁(大劫)을 지낸 뒤에 연꽃이 핀다.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 상품하생자 와 하품하생자가 타는 연화를 모두 금연화라 하였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 구품왕생은 수행에 우열(優劣)이 있고 성중(聖衆)이 맞는데 많음과 적음이 있고 연꽃이 피는데 이름과 늦음이 있고 진대(珍臺) 보화(寶華)에 모두 차별이 있는데 상품하생과 하품하생에 같이 금연화라 하여 차별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답] 이에 대하여 세 가지 해석이 있으니


(-). 하품하생의 금연화는 왕생하는 사람이 타는 것이 아니고 맞으러 오신 부처님이 타신 연화인가 한다.

 그 사람이 업장(業障)이 무거워서 부처님은 뵈옵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의 좌대(座臺)만 뵈옵는데 그것도 분명치 못하며 일륜(日輪,일륜이라 한 것은 華를 일륜에 비유한 것이고 그 量이 큰 것을 형용한 것이다)과 같이 몽롱하게 보는 것이다.

 

(=). 하품하생의 사람이 업장이 무거워서 부처님이 맞으시는 것을 뵈옵지 못하고 오직 금연화만 얻어 정토에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경(觀經)에는 금연화가 그 사람 앞에 머문다 하였으니 만일 이것이 타는 연화라면 어찌하여 보화(寶華)에 앉는다고 말하지 아니 하였으랴.


(三). 하품하생의 금연화는 타는 연화니 상품하생의 금연화와 이름은 같으나 크고 작은 것과 승(勝)하고 열(劣)한 것과 추(僦)하고 묘한 것이 다른 것이다.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 중품하생자에는 부처님이 와서 맞으신다는 말이 없는데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구품왕생은 모두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으로 인하여 행인(行人)을 맞아서 불국토에 낳게 하시는 것인데 오직 중품하생은 성중(聖衆)이 와서 맞는다는 말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답] 이에 대하여 해석이 두 가지가 있으니


(-). 부처님의 48원에 [행인(行人)의 임종 때에 만일 와서 맞지 아니한다 하면 정각(正覺)을 취하지 아니한다]하였고 또 하품하생(下品下生)에도 성중이 와서 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중품하생에 그 말이 없는 것은 혹은 번역한 사람이 빼였거나 혹은 생략하고 말하지 아니한 것일 게다.

 

(=). 아미타불의 四十八원 중에 [시방(十方)중생이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여 모든 공덕을 닦고 지심으로 발원하여 내 나라에 나려 하는데, 그 임종 때에 가령 대중(大衆)으로 더불어 그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아니한다면 정각(正覺)을 취하지 않는다]하셨으니, 이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무상(無上)대보리심(大菩提心)을 발하는 것인데 중품(中品)의 세 사람은 무상 대보리심을 발하지 못하고 오직 공덕만 닦아서 왕생하려는 것이므로 왕생할 때에 오셔서 맞으신다는 말이 없는 것이 경문에 빠진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와서 맞으시지 않더라도 그 본원(本願)에 어김이 없는 것이다.


 정법(正法)을 비방(誹謗)한 자는 제하고 오역(五逆) 십악(十惡)을 짓더라도 왕생할 수 있다는데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왕생하기를 원하는 이는 모두 왕생할 수 있으나 오직 오역과 정법을 비방한 자는 제한다]하였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오역 십악을 짓고 모든 불선(不善)을 갖추었더라도 왕생할 수 있다]하였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답]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오역과 정법을 비방한 두가지 중죄(重罪)로 인하여 왕생하지 못한다]한 것이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오역 십악 등 죄를 지었으나 정법을 비방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왕생하게 된다는 것이니 이것은 오역죄를 지었더라도 정법을 비방하지 아니하였으면 왕생할 수 있고 오역죄를 짓지 아니하였더라도 정법을 비방하면 왕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경에[오역죄인은 아비대지옥(阿鼻大地獄)에 떨어져서 一겁(劫) 중죄(重罪)를 받고 정법을 비방한 자는 아비지옥에 떨어졌다가 이 겁(劫)이 다하면 또 다시 다른 곳의 아비지옥으로 옮겨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百千 아비지옥을 지나는데 부처님도 그 나올 시절을 알지 못한다]하셨으니

 

정법을 비방한 죄가 극히 무거운 까닭이요, 또 정법은 곧 불법이니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이 정법을 비방하면서 어찌 정토에 나기를 원할 이가 있겠는가. 가령 부처님 국토가 안락(安樂)한 것만 탐하여 왕생을 원하는 이가 있다 하면 이것은 물이 아닌 얼음을 구함이며 또 연기 없는 불을 구함과 같으니 어찌 그 얻을 이가 있으리오.


 정법 비방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 어떤 것이 정법을 비방하는 것인가


답] 만약 부처도 없고 불법도 없다면 보살도 없고 보살법도 없다는 소견(所見)을 제가 생각하였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그 마음이 결정된 것이 모두 비방이다.


문]  이런 것은 단지 자기에게 관한 것인데 중생에게 무슨 해독(害毒)이 있어서 오역 중죄보다 더 중하다 하는가.


답] 여러 부처님과 보살이 세간(世間) 출세간(出世間)의 선법(善法)을 설법하시지 아니하면 중생을 교화하는 이가 어떻게 선악(善惡)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세간의 온갖 선법이 모두 없어지고 출세간의 모든 현성(賢聖)이 모두 없을 것이 아닌가. 그대는 오직 오역죄가 중한 줄만 알고 오역죄가 정법이 없는 데서부터 나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법을 비방하는 죄가 가장 무거운 것이다 오역죄가 혹은 왕생할 수 있다 하고 혹은 왕생하지 못한다 하므로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 [관경(觀經)]에는 [오역죄 등을 범하고도 왕생할 수 있다]하고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오역죄 등을 범하면 왕생하지 못한다]하였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 하는가.


답] 이에 다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 은 사람에 대하여 해석한 것인데

 첫째는 오래 전부터 대승심(大乘心)을 발한 사람이 악연(惡緣)을 만나서 역죄(逆罪)를 지은 것이 아사세왕과 같은 것인데 이것은 비록 역죄를 지었으나 반드시 깊이 후회하고 발심하여 깨달은 세계로 들어가기를 구하므로 능히 중죄를 없애 버리고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관경의 뜻이고

 

 둘째는 자고이래(自古以來)로 대승심(大乘心)을 발하지 못한 사람이 또 역죄를 짓고도 많이 후회 하지 못하면서 능히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지 못하므로 왕생하지 못 하는 것이니 이는 무량수경의 뜻이다.


(=). 는 행(行)에 대하여 해석한 것인데 행에 정(定)과 산(散)이 있다.


첫째 사람이 다시 역죄를 지었더라도 능히 十六정관 (正觀)의 선행(善行)을 닦고 깊이 불덕(佛德)을 관(觀)하면 중죄를 없애 버릴 것이므로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이는 관경의 뜻이고,

 

둘째 사람이 역죄를 지은 뒤에 능히 관불삼매(觀 佛三昧)를 닦지 못하면 비록 여선(餘善) 즉 다른 선행(善行)을 지었더라도 능히 죄를 없애 버릴 수 없으므로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무량수경의 뜻이다.

 
 

제 十二장. 염불하여 왕생한 예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극락에 왕생한 사람들이 심히 많으나 이들 가운데서 몇 사람만 다음에 적어 본다.


一.  우리나라 사람


(-) 광덕(光德)과 엄장(嚴莊)

신라의 문무왕(文武王)때에 광덕(光德) 엄장(嚴莊)두 사문(沙門)이 있어 사이가 매우 두터워서 항상 서로 약속하기를 먼저 극락에 가는 사람이 뒤 사람에게 알려 주자고 하였다 광덕은 경상북도 경주에 있는 분황사(芬皇寺) 서쪽 마을에 은거(隱居)하면서 신 삼는 일을 업으로 하고 아내를 두고 살았고 엄장은 남악(南岳)에 있으면서 농사를 짓고 혼자 살았다.

 

 하루는 석양(夕陽)볕이 산마루에 옆으로 비스더미 비치어 솔나무 그늘이 고요히 내리는데 광덕이 창 밖에서 “나는 벌써 서방 극락에 갔으니 그대는 잘 있다가 나를 따라 오라”하는 소리에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구름 속에서 풍악 소리가 들리며 광명이 땅에까지 뻗치었다

 

 이튿날 광덕을 찾아가 보니 과연 죽었다.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함께 장사를 치르고 그 아내에게 “광덕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떠한가.”하였더니 그 아내가 허락하므로 그 집에 그대로 머물러 살다가 어느 날 동침을 요구하였더니 아내는 이상하게 여기면서 “스님이 정토에 왕생하려 함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서 생선을 잡으려 함과 같소.”하였다.

 

 그러므로 엄장이 “광덕도 그랬을 터인데 어찌하여 나는 그렇지 못하는가.”하였다.

 아내는 또 말하기를 “남편이 나와 십년을 같이 살았지만 한 번도 한 자리에서 잔 적이 없었는데 하물며 몸을 더럽힐 리가 있으랴 남편은 매일 단정히 앉아서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거나 혹은 십육관(十 六觀)을 닦았으며 그러다가 관(觀)이 성취되고 달빛이 창틈으로 들어오면 달빛 위에 올라가 가부좌하고 앉아서 지성으로 공부하였으니, 그러고야 서방 극락세계에 아니 가고 어디로 가겠소.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첫 걸음부터 알 수 있다는데 이제 스님의 하는 것을 보면 동으로는 갈지 모르나 서방으로는 갈 것 같지 못 합니다.”하였다.

 

 엄장은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부끄럽게 여겨 돌아 와서 원효(元曉)스님을 찾아보고 정성껏 공부하는 방법을 물었더니 원효스님은 쟁관(諍觀)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엄장은 그 후부터 일심(一心)으로 관(觀)을 닦다가 역시 서방 정토에 왕생하였다.


(=) 욱 면(郁面)

신라 경덕왕(景德王)때에 강주(康州) 지금의 진주(晉州)의 선남(善男) 수십 명이 모여 서방에 왕생하기를 원하여 그 고을 경내(境內)에 미타사(彌陀寺)를 처음으로 세우고 萬일 기한으로 염불회를 결성하고 염불하였다. 이 때 아간귀진(阿干貴珍) 집의 계집종 욱면이 상전(上典)을 따라와서 길 뜰 가운데 서서 염불을 하곤 하였다.

 

 주인이 저할 일을 아니하고 따라 와서 염불하는 것을 밉게 여겨 매일 곡식 두 섬씩을 주면서 하루 저녁에 찧게 하였더니 욱면은 일경(一更)쯤 되어 벌써 찧어 마치고 곧 절에 가서 또 염불을 하면서 밤낮으로 게으르지 아니하였다. 마당 가운데 좌우 양쪽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노끈으로 말뚝에 메고 합장(合掌)한 채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지성으로 수행하더니 한 번은 공중에서 소리 나면서“욱면 아씨도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 하는 것이었다. 대중이 이 소리를 듣고는 욱면을 권하여 법당에 들어가서 대중과 함께 염불하게 하였다.

 

 그러한지 얼마 후에 하늘 풍악이 서쪽에서 들려오면서 욱면이 자리에서 솟아서 지붕을 뚫고 공중으로 올라가서 서쪽으로 향하더니 교외(郊外)에 이르러 형체를 버리고 진신(眞身)을 나타내어 연화위에 앉아 광명을 놓으면서 천천히 서방으로 가는데 풍악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였다. 승전[僧傳)]에는 동량화주(棟樑化主) 팔진(八珍)은 관음보살이 변하시여 나타나신 것으로 신도(信徒)千인을 데리고 있으면서 두 반으로 나누어 한 반은 노력을 제공하고 한 반은 수행하였다.

 

 노력하는 반에서 일 보는 사람이 계(戒)를 지키지 못하고 축생도에 떨어져서 부석사(浮石寺)의 소가 되어 항상 경(經)을 싣고 다니더니 경을 실었던 공력(功力)으로 아간귀진의 집에 변해 낳아서 계집종이 되었으니 이름이 욱면이라 볼 일이 있어 하가산(下柯山)에 갔다가 꿈을 꾸고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였다 한다.

 

 아간(阿干)의 집이 혜숙법사(惠宿法師)가 처음으로 세운 미타사(彌陀寺)에서 떨어진 거리가 멀지 아니하였고 아간이 매양 미타사에 가서 염불하였는데 욱면도 따라 가서 뜰 가운데서 염불하였다 하며 이렇게 염불하기 九년 동안 을미년 정월 二十一일에 예불(禮佛)하다가 지붕을 뚫고 공중으로 올라 가다가 소백산(小伯山)에 가서 신 한 짝을 떨어 뜨렸는데 그 곳에 보리사(菩提寺)를 지었고 산 밑에 이르러 육신(肉身)을 버렸는데 그 곳에 二보리사를 짓고 현판을 [욱면등천지천]이라 하였다 한다.


(三)  염불사(念佛師)

경주(慶州)의 남산 동족에 피리촌(避里村)이 있고 촌중에 절이 있으니 이름을 피리사(避里寺)라 하였다. 그 절에 스님이 있으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소리가 성중(城中)三百六十방(坊)十七萬호(戶)가 다 같이 듣게 되는데 그 소리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들리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존경 하면서 [염불스님]이라고 불렀다. 염불 스님이 입적(入寂)한 뒤에 흙으로 등상을 만들어서 민장사(敏藏寺)에 모시고 그가 있던 피리사는 염불사라고 이름을 고치고 그 절 곁에 있는 작은 절 이름을 양피사(讓避寺)라 하였다.


(四)  포천산(布川山)의 다섯 비구(比丘)

삽양주 동북(東北) 二十리 쯤에 포천산 이 있고 산중에 석굴(石窟)이 있어 매우 이상하고 고와서 마치 사람이 일부러 파서 만든 것 같았다. 다섯 비구(比丘)가 그 굴에 와서 있었는데 이름은 알 수 없고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기 수십년이 되었다.

 

 하루는 문득 성중(聖衆)이 서쪽으로부터 와서 맞으므로 다섯비구가 각각 연대(連臺)에 올라 앉아 공중에 떠서 가다가 통도사(通度寺) 문밖에 이르러 유련(留連) 하면서 하늘 풍악이 잡히었다. 절승이 나가 보니 다섯 비구가 무상(無常) 고(苦) 공(空)의 이(理)를 풀어 밝히고는 육신(肉身)을 벗어 버리고 대광명(大光明)을 놓으면서 서쪽으로 가버렸다. 육신을 버린 곳에 절승들이 정사(亭榭)를 짓고 치루(置樓)라 이름 하였는데 지금도 있다 한다.


(五)  발징화상(發徵和尙)

신라 경덕왕(景德王)때에 발징화상이 건봉사(乾鳳寺)에서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설치하고 지성으로 염불하다가 도반(道伴)三十一명과 함께 허공으로 올라가 왕생한 일은 第三장 五에 있다.

 
 

二.  중국사람


(-) 혜원대사(慧遠大師-蓮宗 初祖)

 

대사(大師)는 동진(東晋)때 안문(雁門)의 번루(煩樓)사람으로 성은 가(賈)씨요 이름은 혜원(慧遠)이다. 나이 31세에 출가하고 태원(太元)15년에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승속(僧俗)123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結成)하고 염불 수행하면서 30년 동안 산 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처음 11년 동안에 세 번이나 성상(聖像)을 뵈었으나 말하지 아니하다가, 그 후 19년 만에 즉 의희(義熙)12년 (서기 四一六년)7월 그믐날에 정(定)에서 일어날 때에

 

아미타불 신(身)이 허공에 가득하고 원광(圓光)속에 무수한 화신(化身)이 있으며 관음 세지 두 보살이 모시고 서 계셨는데 아미타불이 말씀하시기를[내가 본원력(本願力)으로 와서 너를 위안하노니 네가 七일 후에는 마땅히 내 나라에 나리라]하시고 또 불타야사(佛陀耶舍) 혜지(慧持) 혜영(慧永) 유정지(劉程之)등이 옆에 있다가 읍(揖)하면서 [사(師)가 우리보다 먼저 뜻을 세웠는데 지금에야 오십니다 그려]하였다. 이해 八월 초하룻날에 병이 나더니 초엿새 날에 도중(徒衆)을 모아 훈계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입적(入寂)하니 나이가 83세이다.


(=) 선도대사(善導大師)蓮宗 弟二祖)


 대사(大師)는 당(唐)나라 사람으로 정관년(貞觀年)중에 서하(西河) 도작선사(道綽禪師)의 구품도량(九品道場)을 보고 기뻐하여 말하기를[이것이 참으로 불(佛)에 들어가는 진요(津要)니 다른 행업(行業)을 닦아서는 우벽(迂僻)하여 성취하기 어렵고 오직 이 법문아라야 속히 생사를 초출(超出)하리라]하고

 

 이에 주야로 예송(禮誦)하되 집에 있어서는 장괘(長跪) 창불(唱佛)하고 밖에 나가서는 정토법문을 연설하기 三十여년 동안 잠을 자지 아니하며 계행(戒行)을 깨끗이 가져 범치 아니하고 좋은 음식은 남에게 주고 나쁜 것은 자기가 먹으며 가사(袈裟)와 병발(甁鉢) 등도 자기가 지고 다니며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지 아니하였으며 타인과 동행하면 세상의 일을 말하게 된다고 항상 혼자 다녔다.

 

또 아미타경 十萬여 권을 쓰고 정토변상(淨土變相) 三百벽 을 그렸으며 탑(㙮) 절을 수리하며 영조(營造)하고 항상 사람을 교화(敎化)하였다 그의 교화를 받은 사람 중에는 아미타경은 十萬 번 내지 五十萬 번을 외운 이가 있고 불명(佛名)을 萬번 내지 十萬번을 일과로 하는 이도 있어서 그 중에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어 정토에 왕생한 이도 많았다.

 

 어떤 이가 [염불하면 정토에 왕생하느냐]물으면 대사는 답하되 나와 같이 염불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리라]하고 대사가 이에 스스로 一 성(聲)을 염불하니 한 광명이 입에서 나오고 十성하고 百성하매 광도 또한 이 수 대로 나왔다 대사가 하루는 [나는 이제 서(西)로 돌아가겠다]하고 절 앞에 있는 버드나무에 올라가서 서향하여 축원하되[부처님이 나를 접인(接引)하시고 보살들이 나를 도우시어 나로 하여금 정념(正念)을 잃지 않고 안양(安養곧 極樂)에 왕생케 하소서]하고 몸을 던져서 죽으니 고종(高宗)이 그 신이(神異)함을 알고 절 현판을 내려 주면서 [광명(光明)]이라 하였다.


(三) 영명지각 연수대사(永明知覺 延壽大師) 蓮宗 弟六祖)


대사는 북송(北宋)때의 단양(丹陽)사람으로 이름은 연수(延壽) 자(字)는 충현(沖玄)이고 호(號)는 포(抱)한 자이다. 나이 三十이 넘어서 출가하여 영명사(永明寺)에 머물렀으므로 세상에서 영명선사(永明禪師)라 칭하였고 또 오월(吳越)의 충의왕(忠懿王)이 지각선사(知覺禪師)라 호(號)를 내려 주었다. 대사가 출가 후 처음에 선종(禪宗)의 법안종(法眼宗)에 속하였다가 뒤에 염불의 정업(淨業)을 전수(專修)하여 매일 일백팔사(一百八事)를 행하여 밤에는 별봉(別峰)에 가서 행도염불(行道念佛)하는데 옆의 사람들이 천악(天樂)소리를 들었다.

 

 대사는 十五년 동안 영명사에 있으면서 제자 千七百 인을 도(度)하였고 계(戒)를 준 것이 萬여 인 四十萬 본(本)의 미타탑(彌陀塔)을 찍어서 보시하고 또  관음변재(觀音辯才)로써 염불을 권장하여 연종(蓮宗)을 널리 퍼뜨려 실행되게 함에 진력하였는데 세상에서 지씨(慈 氏)가 하생(下生)하였다 칭한다. 대사는 임종 때에 갈 때를 미리 알고 개보(開寶)八년 二월 二十六일 새벽에 일어나 분향하고 가부좌하고 앉아서 화(化)하였다 수가 七十二세이다.


(四)  운서연지 주굉대사(雲棲蓮池株宏大師 蓮宗 第八祖)


대사는 명(明)나라 때 항주(杭州) 인화현(仁和縣)사람으로 성은 심씨(沈氏) 이름은 주굉(株宏)자(字)는 불혜(佛慧)이고 호(號)는 연지(蓮池)이다 대사는 四十이 넘어서 출가 하였는데 세상에서 연지대사(蓮池大師) 또는 운서화상(雲棲和尙)이라 불렀다.

 

 처음에 대사의 이웃집에 한 노파가 있어서 불명(佛名)수천 번을 일과로 부르므로 그 연고(緣故)를 물으니 노파가 말하기를 [선부(先夫)가 염불하다가 병 없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염불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알고는 그 후부터 정토에 마음을 두어 안두(案頭)에[생사사대(生死事大)]넉 자를 써서 스스로 경책(警策)하고 그 후에 선종(禪宗)의 제사(諸師)를 만나 진리를 깨달았으나 더욱 연종을 널리 퍼뜨려 실행되게 함에 전력하여 널리 염불을 권장하였다.

 

 대사는 계살문(戒殺文) 등을 지어 계율(戒律)을 다시 일으키고 중선(衆善)을 널리 닦아서 정업(淨業)에 자(資)하고 또 아미타경소초(阿彌陀經疏抄)등의 저서가 많이 있는데 후세의 사람이 집록(集錄)하여 운서법휘(雲棲法彙)라 하였다. 대사가 만력(萬曆)四十년 七월 七일 저녁에 말하기를[나는 내일 가겠다]하더니 이튿날 저녁에 미질(微疾)이 있어 눈을 감고 앉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대중에게 말하기를 [노실(老實)하게 염불하라]하고 서향하여 염불하면서 앉아서 화(化)하니 나이 八十一 세이다.


(五)  승 예(僧叡)


진(晉)나라 때의 장악(長樂)사람으로 여산(廬山)에 들어가 혜원(慧遠)에 의하여 염불의 정업(淨業)을 닦아서 안양(安養-곧 極樂)에 왕생하기를 원하여 행, 주, 좌, 와(行主左瓦)중 서(西)를 등지지 않더니 원가(元嘉) 十六년에 병 없이 문득 승중(僧衆)을 모아 작별을 고하고 목욕한 후에 서향하여 앉아서 합장하고 화(化)하니 오색향연(五色香煙)이 가득하였다. 나이 六十七세이더라.


(六)  유정지(劉檉之)


진(晉)나라의 팽성(彭城) 사람으로 성은 유(劉)씨 이름은 정지(檉之)이고 자(字)는 중사(仲思)호(號)는 유민(遺民)이다. 정지(檉之)는 처음에 부참군(俘叅軍)이 되었다가 공경(公卿)들의 인천(引薦)을 모두 사퇴하고 여산(廬山)에 들어가서 햬원(慧遠大師) 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정토업(淨土業)을 닦았다.

 

 정지가 정중(定中)에 불광(佛光)이 땅에 비치어 금색이 되는 것을 보았고 또 염불할 때에 아미타불의 옥호광(玉毫光)이 비치며 손을 드리워 위접(慰接)하시는 것을 뵈옵고 정지가[어찌 감히 여래께서 나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옷으로 덮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까]하니, 부처님이 이마를 만지시며 가사를 끌어 덮어 주셨고, 다른 날 꿈에는 칠보지(七寶池)에 들어가 청백색의 연화를 보고 그 물이 잠잠한데 목에 원광(圓光)이 있고 가슴에 만자가 있는 사람이 연못물을 가리키면서 [팔공덕수(八功德水)를 마시라]하매 정지가 그 물을 마셨더니,

 

 맛이 달고 꿈이 깬 뒤에도 이상야릇하게 좋은 향기가 털구멍에서 발하는지라, 이에 대중에게 말하기를[내가 정토의 연(緣)이 왔다]하고 불상(佛像)에 대하여 분향재배하면서 축원하기를 [내가 서가모니불이 남기신 가르침에 의하여 아미타불이 계신 것을 알았으니 이 향을 서가여래께 공(供)하고 다음에 아미타불과 묘법연화경(妙法連華經)에 공(供)하고 일체 유정(有情)이 모두 정토에 원하나이다.]하고 서향하여 합장하고 앉아서 화(化)하니 때는 진의희(晋義熙) 六년이요. 수가 五十九세이다.


(七)  문언박(文彦博)


송(宋)나라 때에 분주(分州) 개휴(介休)의 사람인데 자(字)는 관부(寬夫)이다. 송나라의 인(仁) 영(英) 철(哲)의 四왕조(王朝)에 역사(歷仕)하여 출장입상(出將入相)한지 五十여 년에 벼슬이 태사(太師)에 이르고 역경윤문사(譯經潤文使)를 겸하여 노국공(㯝國公)을 봉(封)하였다.

 

 노국공이 원래 불법에 귀신(歸信)하여 만년(晩年)에는 아미타불을 전념(專念)하고 발원하기를[내가 항상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불도에만 열중하여 일체선(一切善)을 근수(勤修)하기를 원하며 내가 심종(心宗)을 깨닫고 널리 모든 함식(含識)을 제도(濟度)하기를 원한다]하고 경사(京師)에 있어서 정엄법사(淨儼法師)로 더불어 十萬 인을 모아 정토회(淨土會)를 만들었더니, 사대부(士大夫)를 쫓는 이가 많았고 임종(臨終)에 안연(晏然)히 염불하며 앉아서 화(化)하니 九十二 세이다.


(八)  왕일휴(王日休)


송(宋)나라 때의 여주(廬州) 용서(龍舒)사람으로 자(字)는 허중(虛中)이다.

 위인(爲人)이 마음이 바르고 얌전하며 검소하고 깨끗하였으며 고종조(高宗朝)에 국학진사(國學進士)가 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나가지 아니하였고 경사(經史)를 박통(博通)하였으나 하루아침에 버리고 말하기를 [이것은 다 업습(業習)이요,

 

 구경법(究竟法)이 아니니 나는 서방으로 돌아간다]하고 그로부터 염불에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불도에만 열중하였고 나이 六十에 포의소식(布衣蔬食)으로 천배(拜)하며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을 지었는데 왕공(王公) 사대부(士大夫)로부터 도자(屠者) 걸개(乞丐) 노복(奴僕) 비자(婢子) 배우(俳優) 기녀(妓女)등에 이르기까지 정토법문(淨土法門)으로써 귀의(歸依)하기를 권인(勸引)하였으며 쉬운 말로써 간곡히 알아듣게 일러 주는 것이 부형이 자제(子弟)를 교훈하듯이 하였다.

 

 왕일휴는 명종(命終)하기 三일 전에 여러 친지에게 작별을 고하며 다시 보지 못하겠다는 말이 있더니 기일에 이르러 평소와 같이 염불하다가 문득 큰 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고 [부처님이 와서 맞으신다]하면서 서서 화(化)하였다.

 
 

(九)  서 뢰(徐雷)


중회민국 절강(浙江) 낙청(樂淸) 사람으로 음주(飮酒)와 야유(冶遊)를 좋아하여 팽할(烹割) 음연(飮讌)이 허일(虛日)이 없더니 경신년(庚申年)즉 1920 년 정월 보름날 밤에 어떤 사람의 수족을 네 기둥에 얽어매고 두 귀졸(鬼卒)들이 몽둥이로 그 등을 치는데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뢰가 가까이 가서 보니 곧 자기라 놀랍고 두려운 중에 사지(四肢)는 얽어매었고 등에는 통겪(痛擊)을 받으므로 아픔을 참지 못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더니 공중에서 염불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따라서 염불하다가 깨어나니 등이 아직도 아픈지라 대단히 무서워서 평일에 사행(邪行)하던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후회되기 짝이 없었다.

 

 곧 맹성(猛省)하여 [내가 들으니 불도를 배우면 가히 생사(生死)를 요(了)할 수도 있고 지옥의 고를 면할 수도 있다더라]하고 그 후부터 앞서 저지른 악행(惡行)을 통개(通改)하고 매일 아미타불의 명호(名號)와 [화엄경 보현행원품(華嚴經普賢行願品)]을 외우더니 하루는 저녁에 그 처에게 말하기를 [내일은 불보살이 오셔서 나를 접인(接引)하실 터이니 방을 깨끗하게 하고 분향 예배하라]하고 이튿날에 목욕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서 염불하면서 죽었다.


(十)  정진니(淨眞尼)


당나라 때의 니승(尼僧)으로 장안(長安)의 적선사(積善寺)에 있으면서 열성 있고 진실하게 염불하더니 하루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다섯 달 동안에 열 번 부처님을 뵈었고 또 보연화(寶蓮華)위에 동자가 유희하는 것을 보았으니 나는 상품생(上品生)을 얻었노라]하고 가부좌하고 화(化)하니 서광(瑞光)이 절 안에 가득하였다.


(十一)  과인니(果仁尼)


 중화민국 팽택(彭택澤) 도(陶)씨의 딸로 광서(光緖) 병오년(丙午年)에 읍(邑)의 정토암(淨土庵)에서 출가하여 중화민국 원년(元年)즉 서기 1913년에 정토법문(淨土法門)을 듣고 곧 신심(信心)을 발하여 부지런히 염불하더니 갑자년(甲子年)겨울에 대단하지 않은 병이 있었는데, 그 도제(徒弟) 상삼(常參)이 섣달 八일 꿈에는[동자 넷이 앞에서 당번(幢幡)을 들고 또 네 사람은 뒤에서 교자(轎子)를 메고 말하기를[이 집 사장(師丈)을 접인(接引)하여 서방으로 간다]하였고,

 

다음 해인 을축년(乙丑年) 四월 二十일 과인니의 꿈에는 어떤 스님이 왼 손에는 연화발(連華鉢)을 들고 오른손은 아래로 드리워 무릎을 지나는데 과인니에게 말하기를[너는 마땅히 六월 五일에 연좌(連座)에 오른다] 하였고, 또 六월三일 상삼(常參)의 꿈에는 어떤 스님의 신장이 열 자가 넘으며 붉은 가사(袈裟)를 입고 가슴 앞에 한 가닥의 띠를 비스듬히 걸었는데 [나무서방아미타불]이라 썼고 머리에는 연꽃잎 모지를 쓰고 이마에는 백연화(白蓮華) 일타(一朶)를 나타내고, 한 부처님이 그 위에 가부좌하고 앉으셔서[이 집 사장(師丈)을 청하여 같이 간다]하셨다.

 

 六월 초 五일에 과인니가 서쪽으로 돌아 갈 것을 예언하여 도제(徒弟)들이 와서 조념(助念)하였고 점심 후에 과인니가 대중에게 이르기를[날씨가 매우 덥고 나는 무시에 갈 터이니 각기 집에 돌아가서 목욕하고 다시 와도 늦지 않다]하였다. 그래서 대중이 제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보니 과인니는 가부좌하고 앉아서 염불 수성(數聲)에 화거(化去)하였다. 이튿날 감(龕)에 넣었을 때에도 용모가 생시와 같았고 유서에 의하여 골회(骨灰)를 길에 흩으려 뜨려 중생의 연(緣)을 맺었다.


(十二) 독고황후(獨孤皇后)


 수(隨)나라 문제(文帝)의 황후(皇后)로서 성은 독고(獨孤)이다 황후는 비록 궁중에 있으나 깊이 여질(女質)을 싫어하고 대승(大乘)을 존경하고 사모하여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며 염불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정의(淨衣)를 갈아입고 침수향(沈水香)을 씹어서 입을 깨끗이 하였다.

 

 인수(仁壽) 二년 즉 서기 六O二년 八월 갑자일에 영안궁(永安宮)에서 죽었는데 이상야릇하게 좋은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고 천악(天樂)이 하늘에서 떨쳐 울렸다.

 문제(文帝)가 범승(梵僧) 사제사나 에게 무슨 길조(吉兆)이냐고 물었더니 범승은 정토에 아미타불이 계시는데 황후가 정토에 왕생하셨으므로 이런 길조가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十三)  왕 씨(王氏)


송(宋)나라 형왕(王)의 부인으로 성은 왕씨인데 정업(淨業)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닦아 밤과 낮에 끊임없이 쉬지 아니하였고 모든 첩과 계집종들을 인도하여 서방 정토에 마음을 돌리게 하였는데, 그 중의 한 첩이 게으르므로 왕부인이 꾸짖기를 [너 한 사람으로 나의 규구(規矩)를 깨뜨릴 수 없다] 고 하니 그 첩이 뉘우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력을 다하여 나가다가 하루는 동무들에게 말하여 [나는 가노라]하더니, 그날 밤에 이상야릇하게 좋은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면서 병 없이 죽었다.

 

 이튿날 그 동무가 왕부인에게 꿈에 죽은 첩을 만났는데 [부인의 훈책(訓責)으로 말미암아 서방에 왕생케 되어 덕을 느낌이 무량 하노라.] 하거늘 그 사실을 부인에게 말하였더니 왕부인은 내가 꿈을 꾸어야 믿겠다. 하더니 그날 밤 부인의 꿈에 죽은 첩이 나타나 여전히 그렇게 치사하는지라 부인은 나도 서방 정토에 가 볼 수 있느냐 하니 첩이 갈 수 있다. 하면서 죽은 첩이 부인을 인도하여 한 곳에 이르니 큰 연못 속에 연화가 있는데 크고 작은 것이 간착(間錯)하였으며 혹은 성하게 잘 된 것도 있고 혹은 시들은 것도 있거늘 부인이 그 연고를 물으니 죽은 첩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이 서방 정토를 닦는 이가 겨우 일념(一念)을 발하여도

 

이 못에 연꽃 한 송이가 생기는데 정력을 다하여 나가는 이는 성하게 잘되고 게으른 이는 시드는 것이니 만일 오래오래 정력을 다하여 나가서 쉬지 아니하면 염(念)이 성숙하고 관(觀)이 성취되어 육신(肉身)을 버리고 이 가운데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조복(朝服)을 입고 보관(寶蒄) 영락(瓔珞)으로 몸을 장엄(莊嚴)하고 앉았으므로 부인이 누구냐고 물으니 죽은 첩이 말하기를 [양걸(楊傑)이라]한다.

 또 한 사람은 조복(朝服))을 입고 앉았으나 꽃이 시들었으므로 누구냐고 물으니 죽은 첩이 마우(馬玗)라]한다. 부인이 나는 어느 곳에 나느냐 물었더니 죽은 첩이 부인을 인도하여 수리(數理)를 가서 바라보니 한 화대(華臺)가 황금색과 푸른색이 찬란하고 광명이 휘황(輝惶)한데 죽은 첩이 이것이 부인의 생처(生處)로서 금대(金臺) 상품상생(上品上生)이라 하였다.

 

부인이 꿈을 깨니 기쁨과 슬픔이 교집(交集)한다. 부인은 이 해 생일에 일찍 일어나 향로를 받들고 관음각(觀音閣)을 바라보면서 섰거늘 권속들이 앞에 가서 자세히 보니 이미 화거(化去)하였다.


(十四) 염불파(念佛婆)


원(元)나라 때에 어떤 염불할머니가 있었는데 지순(至順) 원년(元年) 경오년(庚午年) 즉 서기 1320년에 절서지방(浙西地方)에 여러 해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이가 많았다. 굶어 죽은 송장들을 육화탑(六和塔) 뒷산 큰 구렁에 가져다가 버렸더니 그 중에 한 여자 송장은 수십 일을 지내어서도 썩지 아니하고 언제나 여러 송장들 위에 올라와 있는지라 이상하게 여겨 그 송장의 몸을 뒤져 본 즉 품속에 작은 주머니가 있고, 그 속에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세 폭이 들어 있었다.

이 일을 관청에서 알게 되어 관(棺)에 넣어 화장하였는데 화염(火炎)중에 보살 상(像)이 나타나고 광명이 찬란하였다. 이로 인하여 발심 염불하는 이가 심히 많았다 한다.


(十五)  장선화(張善和)


당(唐)나라 때 사람으로서 소 잡는 직업을 하였더니 임종 때에 수십 마리 소가 사람의 말을 하면서 [네가 나를 죽였으니 내 목숨을 도로 내노라]하므로 장선화는 대단히 무서워서 처를 불러 급히 승(僧)을 청하여 염불하게 하여달라 하므로 처가 승을 청하니 승이 와서 말하기를[관경(觀經)]에 말씀하시기를[만일 중생이 불선업(不善業)을 지어서 마땅히 악도(惡道)에 떨어질 사람이라도 아미타불을 지성으로 십념(十念)하면 八十억 겁(劫)의 생사(生死)의 죄를 없애 버리고 곧 극락세계에 왕생 한다. 하셨으니 곧 염불하라]하였다. 

 

장선화는 지옥이 조금의 여유도 없이 매우 급하게 되었으니 향로를 가져 올 겨를이 없다 하면서 왼 손으로 불을 들고 오른 손으로 향을 잡고서 서향하여 소리를 높여 염불하니 십성(十聲)이 차기도 전에 문득 말하기를[부처님이 오시어서 나를 맞으신다]하고 죽었다. 지옥이 조금의 여유도 없이 매우 급한 것을 보고 안타깝고 황급하여 그 간절한 정성이 다시 딴 생각이 없으므로 이때의 十념이 다른 때의 百千萬億 념(念)을 초과하는 것이니 결정코 왕생하는 이치가 실로 이와 같은 것이다

 


아미타경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덕망이 높은 큰 비구 대중 천 이백 오십 인이 함께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모두 위대한 아라한들로서 널리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진 선지식들이었다. 곧 장로 사리불, 마하목건련, 마하가섭, 마하가전연, 마하구치라, 라바다, 주리반타가, 난타, 아난타, 라후라, 교범바제, 빈두로파라타, 가루타이, 마하겁빈나, 박구라, 아누루타 등의 여러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문수사리법왕자와 아일다보살(미륵보살), 건타하제보살, 상정진보살 등의 여러 위대한 보살들과, 범천, 제석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상 대중들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十만 억의 불국토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는데, 그 이름을 극락이라 하느니라.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명호(이름)를 아미타불이라 하며, 지금 현재도 그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사리불아, 그 나라 이름을 어찌하여 극락이라 부르는가 하면, 그 나라의 중생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다만 모든 즐거움만을 받으므로 극락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또한 극락세계에는 일곱 겹의 난간이 있으며, 일곱 겹의 그물이 드리우고, 또한 일곱 겹의 가로수가 무성한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금.은.유리.파려 등의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두루 온 나라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그 나라를 극락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또 극락세계에는 七보로 된 연못이 있는데,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춘 청정한 물이 그 안에 가득하며, 그 보배 못 바닥은 순전한 금모래가 깔려 있고, 사방 못 가에는 층계가 있는데, 금.은.유리.파려 등의 보배로 이루어졌느니라. 그리고 그 층계 위에는 누각이 있으며, 그것은 금.은.유리.파려.자거.진주.마노 등의 七보로 장엄하게 꾸며져 있느니라.또한 보배 연못 가운데는 큰 수레바퀴만한 연꽃이 수없이 피었는데, 푸른꽃에서는 푸른 광채가 나고, 누른 꽃에서는 누른 광채가, 붉은 꽃에서는 붉은 광채가, 흰 꽃에서는 하얀 광채가 나는데, 지극히 미묘하여 향기롭고 정결하느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는 이러한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그리고 극락세계에는 항상 천상의 음악이 청아하게 울려퍼지고, 황금으로 이루어진 땅 위에는 밤낮으로 끊임없이 천상의 만다라꽃이 비오듯이 흩날리고 있느니라. 그래서 극락세계의 중생들은 언제나 새벽마다, 가지가지의 미묘한 꽃을 꽃바구니에 담아서, 다른 十만억 불국토의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리느니라. 그리고 바로 식전에 극락세계에 돌아와서 식사를 마치고는 산책을 즐기느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는 이와같은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그리고 또 사리불아, 극락세계에는 여러 빛깔의 기묘한 새들이 있는데, 백조와 공작과 앵무새.사리새.가릉빙가.공명새 등이 밤낮없이 항상 평화롭고 청아한 노래를 하느니라. 그 소리는 한결같이 설법 아님이 없으며 五근(根)과 五력(力)과 七보리.八성도(聖道) 등 성불하는 가르침을 아뢰고 있느니라. 그래서 극락세계의 중생들은 이 소리를 듣고,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생각하고 불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느니라.


사리불아, 그대는 이 새들이 이 세상의 새들처럼 실제로 죄업의 과보로써 생겼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극락세계에는 지옥.아귀.축생 등의 三악도가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그 불국토에는 三악도라는 이름도 없는데, 어찌하여 축생인 새가 실제로 있을 수 있겠느냐? 이러한 여러 새들은 모두가 아미타불께서 법문을 널리 베풀고자 하시는 자비로운 위신력이 변화하여 이루어진 것이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에는 사늘한 미풍이 불어서 갖가지 보배 나무와 보배 그물을 흔들면, 마치 백천 가지 음악이 일시에 울리는 것과 같으니라. 그래서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생각하고 불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느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는 참으로 이러한 헤아릴 수 없는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사리불아, 그대 생각에 저 극락세계의 부처님을 어찌하여 아미타불이라고 부르는 지를 아느냐?

 

 사리불아, 저 부처님의 광명은 한량이 없어서, 시방세계의 모든 나라를 두루 비추어도 걸림이 없으니, 그러므로 무량한 광명의 부처님(無量光佛) 곧 아미타불이라 하느니라. 또한 그 부처님의 수명과 그 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는 아승지겁이니, 그러므로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無量壽佛) 곧 아미타불이라 이름하느니라. 사리불아,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지는 이미 열 겁(十劫)의 세월이 지났느니라.


사리불아, 저 아미타불에게는 무수히 많은 성문(聲聞)제자들이 있어서 모두 아라한의 깨달음을 성취하였는데, 그 수는 산수로 능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또한 여러 보살 대중들도 이와같이 많으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는 이와 같은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모두, 다시 미혹되지 않고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경지에 있는 이들이며, 그 가운데는 다음 생(生)에 부처가 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의 보살들도 한량없이 많아서 산수로는 능히 다할 수 없으며, 다만 무량 무수한 아승지로 비유할 뿐이니라.

사리불아, 극락세계의 거룩한 장엄을 들은 중생들은 마땅히 서원을 세워,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그들은 극락세계에서, 가장 선량한 이들과 한 데 모여 살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사리불아, 적은 선근과 하찮은 복덕의 인연으로는 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느니라.


사리불아, 만약 착한 사람들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 명호(이름)를 굳게 지니어, 하루나 이틀이나 혹은 사흘.나흘.닷새.엿새 혹은 이레동안을 두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거나 부르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 사람이 수명이 다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인 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투시느니라. 그래서 그는 끝내 마음이 뒤바뀌지 않고 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느니라.


사리불아, 나는 이와 같은 위없는 이익이 되는 도리를 알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 이 말을 들은 중생들은 마땅히 서원을 세워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내가 이제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하는 것처럼, 동쪽 여러 세계에 계신 아촉비불.수미상불.대수미불.수미광불.묘음불을 비롯한 항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께서도 또한 각기 그 계시는 나라에서, 두루 三천대천 세계에 미치는 간곡하고 진실한 설법을 하시기를,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믿을지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찬탄하시고 호념(護念)하시는 불가사의한 공덕이 있는 이 경을 진심으로 믿으라.}고 하시기를,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믿을지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찬탄하시고 호념하시는 불가사의한 공덕이 있는 이 경을 진심으로 믿으라.}고 하시느니라. 사리불아, 서쪽 여러 세계에 계시는 무량수불.무량상불.무량당불.대광불.대명불.보상불.정광불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부처님들께서도, 각기 그 계시는 나라에서, 두루 三천대천 세계에 미치는 간곡하고 진실한 설법을 하시기를,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믿을지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찬탄하시고 호념하시는 부사의한 공덕이 있는 이 경을 진심으로 믿으라.}고 하시느니라.


사리불아, 북쪽 여러 세계에 계시는 염견불.최승음불.난저불.일생불.망명불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부처님들께서도, 각기 그 계시는 나라에서 두루 三천대천 세계에 미치는 간곡하고 진실한 설법을 하시기를,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믿을지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찬탄하고 호념하시는 부사의한 공덕이 있는 이 경을 진심으로 믿으라.}고 하시느니라. 사리불아, 저 아래쪽 여러 세계에 계시는 사자불.명문불.명광불.달마불.법당불.지법불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부처님들께서도 각기 그 계시는 나라에서 두루 三천대천 세계에 미치는 간곡하고 진실한 설법을 하시기를,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믿을지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찬탄하시고 호념하시는 부사의한 공덕이 있는 이 경을 진심으로 믿으라.}고 하시느니라. 사리불아, 저 위쪽 여러 세계에 계시는 범음불.숙왕불.향상불.향광불.대염견불.잡색보화엄신불.사라수왕불.보화덕불.견일체의불.여수미산불 등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부처님들께서도, 각기 그 계시는 나라에서, 두루 三천대천세계에 미치는 간곡하고 진실한 설법을 하시기를,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믿을지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찬탄하시고 호념하시는 부사의한 공덕이 있는 이 경을 진심으로 믿으라.}고 하시느니라. 사리불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찌하여 이 경 이름을 [모든 부처님들께서 호념(護念)하시는 경]이라고 하는 지를 아느냐? 그것은, 만약 착한 사람들이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신 바 [아미타불의 명호(이름)와 이 경의 이름]을 듣고 잊지 않으면 그들은 모든 부처님들께서 함께 기억하여 보호하시게 되고,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아, 그대들은 마땅히 내 말과 여러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잘 믿어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어느 누구이든,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이미 발원하였거나, 이제 발원하거나, 또는 장차 발원한다면 그들은 모두 위없는 바른 진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극락세계에 벌써 왕생하였거나, 이제 왕생하거나, 또한 장차 왕생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아, 나의 가르침을 믿는 선량한 이들은 마땅히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내가 이제 모든 부처님들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함과 같이, 저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또한 나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하시기를,


{석가모니불께서 참으로 어렵고 희유한 일을 능히 하셨도다. 시대가 흐리고, 견해가 흐리고 번뇌가 흐리고, 중생이 흐리고, 수명이 흐린 이 사바세계의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 능히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시고, 중생들을 위하사 세상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미묘한 법을 말씀하셨도다.}하시느니라.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五탁의 악한 세상에서 갖은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 모든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이 믿기 어려운 미묘한 법을 설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아미타경)을 설법하여 마치시니, 사리불을 비롯한 여러 비구들과 모든 세간의 천인(天人).아수라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깊이 명심하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아미타경 끝



회향발뤈문(回向發願文)


계수서방안락찰 접인중생대도사 아금발원원왕생 유원자비애섭수

稽首西方安樂刹 接引衆生大道師 我今發願願往生 唯願慈悲哀攝受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輿衆生 當生極樂國 同見無量壽 皆共成佛道


 

 - 蓮宗集要(연종집요) / 홍인표 편저 - 

 

. 

 

홍인표 거사님 소개 → http://cafe.daum.net/amtb/ZED/541

홍인표 거사님 존영 → http://cafe.daum.net/amtb/ZED/545

 


 


최근 극락왕생 사례집 바로가기     → http://cafe339.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ZEF

 

아미타불 염불듣기 바로가기         → http://cafe339.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6Kfz

 

염불신행 도움자료 바로가기         →1. http://cafe339.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8L2t

                                                  2. http://cafe339.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ZED

                                                  3. http://cafe339.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4BkF

                                                  4. http://cafe.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JWIu

 

 

 

 


Posted by 慧蓮(혜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