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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피

가피와 영험록 2020. 11. 20. 20:56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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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양(梁) 나라 때,
수도승 도융(道融)이 강릉(江陵) 땅을 돌아다니면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정법을 포교하면서
사신(邪神)을 모시는 음사(陰祠)를 헐고
사신의 우상을 불질러 태우며
미신을 타파하기에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도융이 토굴에서 좌선을 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수많은 잡귀들이

성난 표정과 성난 목소리를 지르면서 떼지어 몰려왔다.
그 중 잡귀의 우두머리인 무시무시한 귀신이
시퍼런 칼을 뽑아들고 단칼에 도융의 목을 칠듯히 덤비면서
도융을 향해 격노하여 꾸짖었다.

“너 이놈,
너는 어찌하여 귀신이 영험이 없다고 주둥이를 놀리고,
우리가 거처하며 대접받는 집들을 없애는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괘씸한 네 놈을 죽여 우리의 한을 풀겠다!”
칼을 들고 길길이 날뛰는 귀신 우두머리와
귀신 떼거리들을 보고 일순 도융은 더럭 겁이 났으나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서 좌선 자세를 흐뜨리지 않고
가슴에 합장한 채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귀신의 우두머리가 시퍼런 칼을 높이 들어
도융의 목을 힘껏 내려 치려는 순간,
이때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같은 질타가 들려오며
금빛 갑옷을 입은 신장이 금색광명을 내뿜으며
손에는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나타나
잡귀들을 순식간에 때려잡고 도망치는 잡귀들을 향해
주문(呪文)을 외우니 모두 포박되어 잡혔다.

금빛 갑옷의 신장은 도융에게 합장하여 예를 표하면서
부처님의 정법을 세상에 널리 반포할 것을 부촉하면서
잡귀들을 잡아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후로 도융에게는 두 번 다시 잡귀들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은 이와 같아서
고해중생들이 일심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여 제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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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죽게 된 금오 스님

 

현대의 대선사 금오(금오. 1896~1968) 스님이 젊었을 때인 1920년대 초기.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인 수월(水月) 스님을 뵙고 지도를 받기 위해 만주 봉천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조선과 만주와 러시아 땅이 합해지는 회령 지방을 조금 지나 막 러시아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적 떼들이 어느 부잣집을 털다가 반항하는 주인을 죽인 강도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부잣집 안주인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러시아 경찰들은 불심검문을 하다가 장비처럼 생긴 금오 스님을 체포하여 그 부인에게 보였습니다.


"이 사람이 그 마적 떼요?"
"그런 것 같아요. 마적 떼 대장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정신이 없는 그 부인의 말 한마디에 금오 스님은 완전히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고문을 당하면서 자백을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나는 수도하는 승려이지 마적 떼가 아닙니다."


러시아 경찰은 믿지 않고 밤낮없이 고문을 계속하더니, 며칠이 지나자 고문을 중단하고 감옥에만 가두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일까? 고문을 그만두고 감옥에만 가두어 두다니…….'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조선인 한 명이 그 감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학교 선생인 그는 '산골짜기에 아편을 심었다가 발각되어 잡혀온 것'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묻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이 살인강도의 누명을 쓰고 들어온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스님, 범인은 이미 잡혔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석방시켜 주지 않는 거요?"
"아마 스님은 이 감옥에서 나가기가 어려울 걸요!"
"왜요?"
"우선 조선 사람은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힘을 써 주지 않습니다. 설사 러시아 쪽에서 풀어 준다고 하더라도, 조선 사람이 러시아 감옥에 죄 없이 갇혀 있었다는 것을 구실로 일본은 러시아에게 보상을 요구합니다. 러시아로서는 공연한 말썽거리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차라리 감옥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보복을 두려워한 그 부잣집 안주인이 돈을 써서 스님을 풀어 주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큰일이구나. 이 감옥에서 살다가 죽어야 하다니! 이토록 난감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필경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탈출하는 수밖에는 딴 도리가 없겠구나.'
금오 스님은 감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참선도 화두도 그만두고 오로지 관세음보살의 구원만을 갈구하며 부지런히 염불하였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밤, 어떤 사람이 철창 바깥에 나타나 감방 안을 들여다보더니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쇠창살 두 개를 잡고 쑥 뽑아 올리자, 쇠창살이 그대로 빠져 버렸습니다. 그는 뽑힌 쇠창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스님을 향해 '씩-' 웃고는 다시 쇠창살을 꽂아 놓고 사라졌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이 일을 접한 금오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 쇠창살 두 개를 뽑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쇠창살이 쑥 뽑히는 것이었습니다. 철창을 통해 감방을 빠져나온 스님은 형무소 문 쪽으로 다가갔고, 때마침 문지기들이 졸고 있어 몰래 기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형무소를 탈출하여 달려가다가 다리가 아파 수수밭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탄 간수들이 나타나 수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다시 안전한 곳을 찾아 피해 가는데, 한 간수가 말을 몰아 쫓아오더니 잡으려고는 하지 않고 묻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탈옥수 한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소?"
"보지 못했는데요."
"이상하다. 어디로 사라졌지?"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가피로구나.'
스님은 불보살님의 은혜에 크게 감격하며, 만주 봉천의 깊은 산림 속 토굴에 계신 수월 스님을 찾아가 1년 동안 모시고 열심히 정진하였습니다.

 

금오 스님은 후일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그때의 일을 자주 들려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참선하는 수좌도 가끔은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이 금오 스님의 말씀처럼 참선수행자도 장애가 있으면 한바탕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원(願)을 새롭게 가꾸고, 가피를 입을 일이 있으면 가피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목숨과 관련된 일이라면 일념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바탕 열심히 기도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불보살님께서 큰 힘을 주실 것입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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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웅스님 (대구 법흥사 주지)


기복으로 기도를 한 경우에도 기도에 몰입하여 마음이 비워지고 순수해졌
을 때 영험이 나타나는 것이지, 마음속에 뭔가를 바라는 욕심이나 조급함이
가득차 있을 때는 영험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 주변에서는 기도의 영험사례가 적지 않습니다만 기도를 통해 스스로 병을
치유한 나(일웅스님)의 체험담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60세가 가까워지자 기력이 예전같지가 않았습니다.

40대시절 포교에 매진하면서 한편으로는 태고·조계종간의 분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기력을 소진했던 탓인지 피로가 누적되고 쉽게 회복되지
가 않았습니다.

몸은 곧 마음을 반영합니다.

몸이라는 글자의 한획만 바꾸면 맘이 되는데 이는 곧 마음의 준말입니다.
예로부터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고 했어요.

자기몸이라도 함부로 굴리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지요. 종단사태 이후
십수년을 쉴 사이없이 신경을 과도하게 쓰다보니 병이 올 수 밖에요.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 먹어도 차도가 없자 큰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간경화말기증세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승려로 살다가 죽으니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부처님전에 기도나 열심히 하다가 임종을 맞이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관세음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는데 여러달이 지나면서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밤, 도저히 오늘밤을 넘길수 없겠다 싶었어요.

'과거 수억겁을 지나오면서 아프지 않은 때가 있었겠는가, 아프고 아프지
않은 것은 오직 마음의 상(相)일 뿐이다’고 한 생각을 돌이켜 몸을 간신히
추스리고는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일체가 다 내자신이 지은 업장때문임을
참회하고 성불의 인연짓기를 발원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기도중에 하얀 소복을 입은 부인이 찾아왔는데
안면은 있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요사채로 인도하니

“요즈음 스님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어떻습니까?”고 안부를 물어요.”

“아직 많이 아픕니다”고 하니

부인이

"제가 아픈 곳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해서 아픈 곳을 보여주었더니
부인은 손으로 환부를 만지며 약봉지를 꺼내고는 먹기를 권해요.

꼭꼭 씹어서 먹었더니 부인은 “스님,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찬바람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아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이 아니라
법당에 앉아서 추운줄도 모른채 잠시 삼매에 빠져있었더라구요.

아프던 몸이 어느새 말끔하고 머리가 맑아요.

돌아서서 법당안을 둘러보니 부처님뒤 후불탱화에 그려진 백의관음께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랐지요.

비몽사몽간에 본 그 부인의 모습이 바로 백의관음이었던 것입니다.

이일이 있은 뒤로 차츰 병이 나아져서 예전의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내 체험을 얘기했지만 기도의 힘은 상상이상으로 큽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거나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수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에는 ‘나’라는 아상이 개입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상을 제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

올해가 서기 2002년이므로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때는 서기 1982년도 이야깁니다.

수원에 수원포교당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거기 원주를 보던 스님이 몸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폐결핵 3기로, 대수술을 받으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수술비가 무려 1000만원이나 드는데 이 수술비를 마련할 방법도 없고 해서 부처님께 기도하다가 몸을 바꾸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밀양 표충사에서 겨울 한 철 100일 기도를 정하고 목숨을 건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100일 기도 가운데 80일 가량이 지난 어느 날 새벽에 추운 법당에서 2시간이나 기도를 하던 중에 스님은 피를 토하고 졸도하여 의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의식이 가물가물하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두 명과 간호원 셋이 들어와서 옷을 벗기고는 자기의 허파를 떼어내어 썩은 곳은 오래내고 꿰매고 붙이고 하더니 제 모습을 갖춘 허파를 다시 가슴에 붙여주고는 법당 밖으로 나가더라는 겁니다.

생시도 아니고 꿈도 아닌 비몽사몽간에 허파의 대수술이 법당에서, 스님의 눈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스님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3시간 반이나 법당에 쓰러져 있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는데, 폐결핵 3기였던 자신의 병이 깨끗이 나아 의사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스님은 그 후 부처님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곳곳의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1000일 기도를 회향했다고 합니다.


출처: 대흥사 홈페이지(http://www.daeheungsa.com) 한북님글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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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의 가피로 목숨을 건진 한용운 스님

 

승려요, 독립운동가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스님은 1905년 설악산 백담사로 출가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관음 기도처로 이름 높은 오세암(五歲庵)에서 보냈습니다. 스님은 이 오세암에서 불경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틈틈이, 관세음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1910년, 일본이 이 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국권을 찬탈하자, 망국의 울분을 참을 길 없었던 스님은 1911년 가을, 행장을 수습하여 표연히 만주로 떠났습니다. 스님은 만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곳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만나 막막한 나라의 앞길을 의논하고 서로를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간도 지방에 도착한 스님은 동포들을 만나 이역(異域)의 생활을 묻기도 하고, 고국의 사정을 전하기도 하였으며, 그곳의 독립지사로 협력하여 동포를 보호할 방법과 독립운동의 방향 등을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족투사를 양성하는 의병학교를 순방하여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깨우쳐 주고 또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통화현(通化縣)에 갔을 때입니다. 그곳은 이상한 불안이 감격과 희망 속에 뒤범벅된 묘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조밥으로 연명하면서도 밤이면 관솔불을 켜 놓고 천하 대사를 논의하는 한편, 화승총을 가지고 조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온 사람에 대해 처음에는 불안으로 감시했고, 그 다음에는 의심으로, 마침내는 목숨을 빼앗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어찌된 영문인지 한용운 스님도 그곳에서 정탐꾼의 혐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만주 통화현에서도 한참을 들어간 두메산골에서 자고 나오는데, 스님을 바래다준다며 20세 전후의 한국 청년 3인이 따라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길은 차츰 산골로 접어들었고, 일행은 굴라재라는 고개를 넘게 되었습니다.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우거져 대낮에도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고, 길이라고는 풀섶에 나무꾼들이 다니는 미로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스님의 뒤를 따라오던 청년 한 명이 총을 쏘았습니다. 순간 귓전이 선뜩함을 느꼈고, 연이어 두 번째 총소리가 나자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방의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때 스님은 그들을 돌아보며 잘못을 호령하고자 목청껏 소리를 질렀으나, 성대가 끊어졌는지 혀가 굳어졌는지 전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는 할 말을 다했는데 말소리를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피가 댓줄기처럼 뻗쳤고, 격렬한 아픔이 전신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다가 심한 통증이 사라지면서 지극히 편안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지금이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구나. 이제 죽는구나.'

 

이윽고 편안한 감각까지 사라지면서 스님은 완전히 혼절하여 죽음의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했던 신앙이 환체(幻體)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바로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 아름답구나. 기쁘구나.'


앞이 눈부시게 환해지면서 절세의 미인,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어여쁜 여인이 섬섬옥수에 꽃을 쥐고 누워 있는 스님을 향해 미소를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총을 맞고 누워 있는 사람에게 미소를 던지다니!'

 

순간 스님은 달콤하면서도 분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관세음보살께서 꽃을 던지며 말했습니다.
"네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느냐?"

 

그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스님은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날은 어두웠고 피는 도랑이 되어 흘렀으며, 총을 쏜 청년 가운데 한 명은 짐을 조사하고 다른 한 명은 확인 살인을 위해 큰 돌을 들고 스님을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스님은 황급히 일어나 그 자리를 겨우 피하고, 피를 철철 흘리며 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핏자국을 보고 뒤쫓을 그들이 자신들의 마을 쪽으로 가면 안심하고 천천히 쫓아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떻게 넘었는지도 모르게 산을 넘어 청(淸) 나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갔습니다.


그곳의 마을 사람들은 마침 촌장(村長) 집에서 계(契)를 하고 있는데, 피를 흘리며 들어오는 스님을 보고 지혈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때 총을 쏜 청년들이 쫓아왔고, 스님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총을 쏠 테면 쏘아라."


그들은 어쩐 일인지 총을 쏘지 않고 달아났으며, 스님은 귀 뒤와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의사는, "매우 아플 테니 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스님은 굳이 마다하였습니다. 생뼈를 깎아내는 소리가 빠각빠각 나는 수술인데도 스님은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끝까지 견뎠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활불(活佛)이로다."
치료를 다 마친 의사는 감탄하여 치료비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용운 스님은 평소 관세음보살을 깊이 섬겼기 때문에 절대 절명의 순간에 이르러 큰 가피를 입었던 것입니다. 이후 스님은 불교개혁 운동과 독립운동을 하면서 초인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신력의 힘이 아니라, 총을 맞은 그때 관세음보살의 가피 아래에서 생사를 초월한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한용운 스님의 경우처럼, 평소의 섬김이 위기를 구하고 업을 녹이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 올바른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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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천도는 말뜻 그대로 경전을 한자 한자 정성껏 써내려가면서 영가를 깨우치고 좋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축원을 해주는 천도법이다. 이러한 사경천도의 영험담은 수없이 많지만, 여기에서는 사경 중에 특이한 일이 있었던 통도사 정진(正眞)스님의 예를 들고자 한다.

 

조선시대 말 통도사 백련암에서 승려생활을 했던 정진스님은 울산에 살았던 아버지 송유양이 돌아가셨을 대 49제를 지내주었으므로 마땅히 천도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다. 포졸옷을 입은 7~8명의 장정이 달려들어 바닷가로 끌고 가더니, 강제로 배에 태워 무인도에다 내려놓은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스님’하고 불렀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시며 법명은 어떻게 됩니까?”
“통도사 백련암에 있는 정진입니다.”
“고향은 어디입니까?”
“울산이오.”

“아이구 내 아들아!”

 

그때서야 상대를 자세히 살펴보니, 고초에 시달려 핼쑥해진 모습은 예와 같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아버지 송유양이었다.
“아버지, 이것이 어찌된 노릇입니까?”

“아들아. 세상에 살 때 재산이 있는 양반이라 하여 사람들을 괄시하고 짓밟은 과보로, 지금 나는 뱀들이 우글거리는 요사지옥(繞蛇地獄)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단다. 제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합니까?”

“내가 이 지옥에 들어온 후로 여기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난 이가 꼭 한 사람 있다. 그는 주욱 소주 땅에서 관리 노릇을 했던 정익수라는 사람인데, 그의 아들 태을이 법화경을 천 번 읽으며 천도해 준 공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느니라. 너도 나를 위해 법화경 한 질을 베껴 쓰고 독송하여,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그리고는 무엇에 의해 끌려가는지 몸을 벌벌 떨며 말하였다.
“또 지긋지긋한 고문의 시간이 되었구나. 부탁이다. 제발 내 말을 잊어버리지 말아라.”
“아버지, 아버지!”

정진스님은 소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스님은 울산의 어머니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하고, 전국을 다니며 탁발하였다. 왜냐하면 경을 쓰는데 필요한 종이와 금가루 뿐만이 아니라, 경전을 쓰는 이에 대한 양식과 의복과 사례금, 기도하는 동안 법당스님과 고양주와 머슴들에게 쓸 비용까지 모두 마련해야 했지 때문이다.

이렇게 경비가 마련되자 순천 선암사의 대강백이요 명필로 이름난 김경운(金警雲) 스님을 모셔와 검은 색 한지에 금으로 법화경을 써줄 것을 청하였다.

 

금가루로 글씨를 쓰면 붓이 금방 마모되어 버린다. 경운스님이 법화경 8권 중 4권을 쓰고 나자 처음 마련했던 붓들이 모두 마모되어 버렸다. 때마침 눈이 많이 와서 붓을 사러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청소를 하기 위해 방문을 열자, 족제비 한 마리가 뛰어들어와 아랫목에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나가거라, 추워서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여기는 네가 들어올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족제비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손으로 밀어내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경운스님은 느낀 바가 있어 족제비에게 말하였다.

 

“효자 정진스님의 아버지를 위한 거룩한 불사에 네 몸의 털을 보태겠다는 것이나? 네 뜻이 그렇다면 받아들이마.”
경운스님이 살아있는 족제비의 꼬리털을 모두 뽑는 동안 족제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맙구나. 이것으로 붓을 만들면 이 경전을 다 쓰고도 남겠구나.”

그때서야 족제비는 방에서 나갔고, 경운스님이 법화경 사경을 끝내자, 정진스님은 통도사 적멸보궁에 금글씨로 쓴 법화경을 올리고 축원하였다.

 

“아버지를 위해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밤 정진스님의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말하였다.
“고맙다. 네 덕분에 요사지옥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오르게 되었구나. 스님 노릇 잘하기 바란다.”

또, 아내의 꿈에도 나타나 당부하였다.

 

“여보,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은 남 앞에서 잘난 척하거나 잘 입고 잘 먹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자꾸 베풀어주고 공덕을 쌓으며 사는 것이라오. 당신 농 속의 옷만 하여도 평생 입고도 남으니 더 이상의 옷을 가지려 하지 마시오. 소작하는 사람들이 가을에 양식을 가지고 오면 적다고 책하지 말고 ‘고맙다’고 하면서 주는 대로 받으시오. 어떻게 하든 복을 닦으시고. 나는 당신과 스님 아들이 있어 이렇게 제도를 받았지만, 당신 뒤에는 그렇게 해 줄 사람이 없으니 당신 복은 당신이 닦아야 할 것이오.”

 

그때가 1901년이었고, 현재 이 금자법화경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정진스님은 지옥에 빠진 아버지를 천도하면서 실지로는 법화경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

다만 사경 전이나 사경 중에 정성을 다하였을 분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요사지옥을 벗어나 천상으로 인도되었다. 이처럼 사경의 공덕이란 크고도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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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사경의 공덕


종이를 살 때에 벌써 천당에 태어나다.


중국 낙양사람 하현령은 당나라 고종 용삭 2년에 경성에서 죽었는데,
명부에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그 재조(才操)를 아깝게 여겨 주부(主簿) 벼슬을 시켰다.

그 다음 해 인덕 연중에 하씨의 고향 사람이 죽어 명부에 들어가서 하씨를 만났는데,

하씨가 그에게 묻기를,

"그대가 어찌하여 이곳에 왔소?"하니, 대답하기를

"귀졸(鬼卒)에게 잡히어 왔습니다.",하므로

내가 문서를 검렬하여 본 결과 그대는 남의 비명(非名)으로 잘못 온 것을 발견하였소.
그대를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려보내 줄 것이니 환생하는 즉시
책을 베껴 쓰는 인연을 맺도록 더욱 힘쓰시오." 하였다.

고향 사람이 하씨에게 하직하고 떠나려 할 때에 문득 같은 마을에
살던 노파 한 사람을 만났다. 그를 보고 하는 말이,

"그대가 여기에 와 가지고, 어찌 나의 고통 받는 곳을 보지 않겠소" 하므로,
그가 승낙하고 지옥을 둘러보는데, 커다란 가마에서 물이 펄펄 끓으며 죄인을 삶고 있었다.
노파가 다시 부탁하기를,

"그대는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다 하니, 우리 영감을 찾아보고 나의 부탁이라 전하고,
나를 위하여 "법화경" 한 부를 쓰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면 내가 이 무서운 죄보를 벗고 좋은 곳에 태어날 것입니다.
만일 승락을 하신다면 앞으로 약 열흘쯤 지나서
그대는 내가 살던 동리 앞 강가로 찾아 와서 전해 주시오." 하였다.

그 사람이 승낙하고 그 길로 깨어나서 즉시 그 노파의 영감을 찾아가
지옥에 갔던 이야기를 설명하고 급히 "법화경"을 쓰라고 하였다.

그 영감이 즉시 종이를 사서 필경사로 하여금 "법화경"을 쓰게 하였다.
그 사람이 그 후 열흘의 기한이 되어 강가로 찾아갔는데,
지옥에서 만나보던 노파는 아니 오고 다른 늙은이가 나타나서
그를 보고 하는 말이,

"그대가 전일 지옥에서 법화경을 써 달라고 부탁을 받은 사람인가" 그가 대답 하기를,
"과연 그러한 언약이 있었소."

늙은이 말하기를,

"그를 부탁하던 부인은 그 영감이 경을 쓰기 위하여 종이를 사던 날에 벌써
천상락을 받아 태어났으므로 오늘날 그대와 만나 보지 못하게 되어서 하는 수 없이
나에게 부탁하여, 그대를 만나보고 법화경의 힘을 입어 벌써 이고득락(離苦得樂)한
사연을 전해 주라고 하여 대신 왔소."

하고는 인홀불견(因忽不見)이 되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법화경의 공덕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되어 그 귀부터는 자신도 법화경을 읽고 베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홍찬전 제10권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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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업을 녹인 기도 (일타스님 글)

 

경상북도 울진에는 불영사(佛影寺)라는 절이 있읍니다. 절 앞에 있는 연못에 앞산 바윗돌위에 서 계신 부처님의 모습이 비친다 하여 그림자 "영"자를 쓰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신령스럼 영험이 잇었다고 하여 영(靈) 자를 써서 불영사(佛靈寺)라고도 합니다. 그 신령스런 영험담은 다음과 같읍니다.

 

조선 중기, 서울 남산골에 백극재 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백극재는 오로지 책만 읽을뿐, 생업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집안이 가난하기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지경 이었읍니다.

하는 수 없이 그의 아내 강씨 부인은 친정을 드나들며 구걸을 하다시피 하여 겨우 생계를 이어갔읍니다. 그러나 강씨 부인은 이와같은 가난 속에서도 남편에 대한 불만을 갖지 않았읍니다. 또한 결혼 전에는 친정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으나, 출가 후 집이 가난하여 절에 다니기가 어려워지자 혼자 기도하고 염불하였읍니다. 그녀는 기도를 할 때마다 절에 가지 못하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면서 부처님께 서원했읍니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만 벼슬하게되면 잊지않고 공양도 올리고, 공부하는 스님들 시봉도 들고, 불사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성심껏 보시하겠읍니다."

 

이러한 강씨의 정성이 헛되지 않아 이듬 해 남편 백극재는 장원급제하여 경상도 울진 현감으로 부임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호사다마 라고나 할까, 그렇게 건강하던 남편이 부사로 부임한 지 3일만에 이렇다 할 병도 없이 그대로 죽고 말았읍니다.

 

비통함을 이기지 못한 강씨 부인은 몸이 채 식지도 않은 남편의 시신을 불영사 법당 앞으로 옮겨 식음을 전폐한 채 7일 낮밤으로 기도를 하였읍니다.

 

"부처님! 저의 남편을 다시 살려 주십시요. 부처님의 영험으로 가난을 벗고 현감이 되어 부처님의 은혜를 갑고자 하였는데, 이렇게 죽는다면 너무 억울하옵니다.

부처님! 일월의 광명이 사사로움 없이 널리 비추는 듯 하지만, 높은 산을 먼저 비추고 맑은 물에 먼저 나타납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은 인연없는 중생까지도 마치 홀어머니가 외아들 생각하듯 하시겠지만 신심있는 자에게 먼저 이를 것이요, 인연 있는 중생에게 먼저 미치지 않겠읍니까? 부디 저의 남편을 살려주옵소서."

 

강씨 부인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으로 낮밤을 잊고 7일동안 기도를 올렸읍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깜박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붉은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남편의 몸에서 툭 나오더니 불쾌한 얼굴로 소리쳤읍니다.

 

"에잇, 지독하다, 지독해! 나와 저이는 구생(九生)에 원한을 맺은 원수 인고로 어느때 어느 곳에서도 세상의 낙(樂)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었는데, 부인의 간절한 기도에 부처님이 감응 하셨으니 나는 이제 구생의 원한을 풀고 가노라."

 

이렇게 말을 마친 원귀(怨鬼)는 하늘로 둥둥 떠서 연기처럼 사라졌읍니다.

 

깜짝 놀라서 깨어보니 죽었던 남편이 부시시 눈을 뜨는 것이었읍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그들 부부는 다시 살아난 그 자리에 환생전(還生殿)을 짓고, <법화경> 7권을 금자(金字)로 사경(寫經)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였읍니다.

 

이 이야기는 이문명(李文命)이 쓴 불영사의 환생전기(還生殿記)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 누구든지 마땅이 녹여 없애야 할 업이 잇다면 오로지 지극 정성으로 참회하십시요. 죄를 멸하여 복이 이르면 신령스러움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마치 파도가 없어지면 물이 고요해지고, 고요한 물에는 하늘의 달이 그대로 비치는 것과 같으며, 먼지가 가득한 거울에는 사물이 제대로 비치지 않지만, 먼지만 닦아내면 밝은 형상이 그대로 나타내는 것과 같읍니다.

우리 모두 올바른 참회를 이루어, 업의 결박을 벗어난 대자재(大自在)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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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화(久法華)의 왕생 이야기


송(宋) 가구(可久)는 명주(明州)에 살았다 법화경(法華經)
을 읽으면서 정토(淨土)에 태어나기를 발원(發願)했으므로
당시(當時)에 흔히 구법화(久法華)라고 불렀다.

원우(元祐) 8년(年)[1093] 나이 81세(歲)에 앉아서 죽었다.
3일후(日後)에 다시 깨어나 사람들에게 내가 정토(淨土)의
경계(境界)를 보니 경(經)에서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
지 않았다.

연화대(蓮華臺) 위에마다 태어날 자(者)의 이름을 표기(標
記)해 두었는데 한 금대(金臺)에는 성도부(成都府) 광교원
(廣敎院) 훈(勳)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한 곳에는 명주
(明州) 손십이랑(孫十二郞)이 적혀 있었으며 한곳에는 가구
(可久)의 이름도 있었다.

또한 한 은대(銀臺)에는 명주(明州) 서도고(徐道姑)의 이름
이 적혀 있었다하고는 다시 죽었다.

5년후(年後)에 서도고(徐道姑)가 죽었는데 기이(奇異)한 향
기(香氣)가 방에 가득했으며 12년후에 손십이랑(孫十二郞)
이 죽을 때는 하늘 음악(音樂)이 허공(虛空)에서 쟁쟁(錚錚)
하여 모두 가구(可久)가 말한 것과 일치(一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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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에서 사리가 나오다
지엄(智凞) 스님은 동주(同州) 사람이다.
나이 열세살 때 범승(梵憎)을 만나서 출가하여 계업사(戒業寺)에서 법화경·유마경·반야경 등을 배워서 그 깊은 뜻을 구명하여 마침내 통달하고, 말과 행동이 다 뛰어난 고결한 법사가 되었다.
현경(顯慶) 3년에 태주(泰州) 선장현(仙掌辯)의 여러 도속들이 지엄스님을 영선사(靈仙寺)로 청하여 법화경을 강설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이 절의 환향(還香)스님의 방에 거처하게 되어 첫날밤에 법화경을 책상 위에 펴 놓고 한 대문을 찾아서 독송하려고 하였다.
환향스님과 시자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는데, 지엄스님이 향을 피우자마자, 홀연 법화경의 부처불(佛)자에서 세 개의 사리가 나왔다.
오색 광명이 경위에 찬란히 퍼지고, 사리는 이리저리 흘러 다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였다.
환향스님이 곧 절의 다른 여러 스님들에게 알려 모두 와서 예배하고 함께 사리를 거두어 모시려고 하니까, 사리는 도로 부처불자로 흘러 들어갔다.
스님들이 슬피 울며 예배한 다음, 향을 피우고 다시 진용(眞容) 뵙기를 발원하니, 사리가 다시 부처불자 가운데서 나와 흘러 다니다가 잠시 후에 다른 부처불자로 들어가 차례로 없어졌다.
지엄스님은 법화경을 수십 번을 강설하여, 영험을 느끼고 상서로움을 얻은 일이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부터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스님과 아는 사람들은 한사람 한 사람 찾아보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홀연 어느 날 아침에 정원을 깨끗이 소제한 다음, 단정히 앉아 선정(禪定)에 들어가서 그대로 입적하였다.
기이한 향기와 기운이 온 집에 가득 차서 이레가 지나도록 남아 있었고, 그 혀는 입적하고서도 몇 해후까지 썩지 않고, 머리털이 2치나 자랐으며, 얼굴빛이 생전과 같아, 식견 있는 사람들은 다 그는 득도(得道)했다고 하였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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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영험

 

 

수나라 문제(文帝)때의 일이다.
보통(寶通)이란 스님이있었는데 법화경 다라니품을 읽어 매양 신령스러운 이적을 보였다.
그 소문이 널리퍼져 귀신 들린 사람들이 자주 스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어느날은 양교촌(楊橋村)에 사는 조씨(趙氏)가 찾아와 아내에게 귀신이 든것 같다며 도움을 청했다.
스님은 조씨집을 찾아가 귀신에게 타일렀다.
"너는 이마을에 사는 귀신이니 이 마을 사람들에게 복을 주어야 할텐데 왜 도리어 사람을 괴롭히는가?"
그러자 한귀신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것은 내가한짓이 아니라 졸개 귀신들이 한짓입니다. 졸개들을 꾸짖어 못하게 하겠습니다."라고했다.
그 귀신이 졸개 귀신을 꾸짖자 조씨의 아내는 곧 병에 차도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않아 이번에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


조씨아내가 온종일 노래를 부르며 무어라고 중얼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님이 다시 찾아가보니 앞서 꾸중을 들었던 졸개귀신이 부인옆에 있었다.
스님은 귀신에게 호통을 쳤다.


"저번에 타일렀는데 왜 아직도 가지않고 있느냐? 지금 당장 떠나지않으면 내가 다라니품을 읽어 네머리를 일곱조각 으로 쪼개어 놓을 것이다." 귀신은 스님이 다라니품을 읽겠다고하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하며 도망을 갔다.


그 뒤부터 조씨의 아내는 귀신에 시달리는 일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여서집 ,현응록 ,홍찬전" 등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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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을 읽고 인도 환생한 꿩

동진(東晋) 때 법지(法志)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여항산(餘航山)에 암자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법화경을 외워 잠시도 게으름이 없었다.

이 때 암자 옆에 보금자리를 치고 있는 꿩 한 마리가 스님의 경 읽는 소리가 들리면 곧 날아와서 스님의 옆에 앉아, 마치 모시고 서서 경을 듣는 것 같았다. 이러기를 7년, 하루는 꿩이 매우 초췌한 모습으로 스님에게 왔다. 스님이,


「너는 비록 날짐승이지마는, 능히 경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짐승의 몸을 벗고 나면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
하고 위로해 주었는데, 이튿날 새벽에 꿩이 죽어 스님이 묻어 주었다.
그날 밤에 스님이 잠이 들려 하는데, 꿈에 한 어린이가 나타나서 두 번 절하고,
「저는 전에 스님 곁에 있던 꿩입니다 스님의 경 외우시는 것을 들은 인연으로 지금산 남쪽 왕씨(王氏)네 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른쪽 겨드랑 아래의 솜털이 있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
하였다.


이튿날 아침 법지스님이 그 집을 찾아가 물어보았더니, 과연 왕씨 집에서 아들을 낳아 재를 올리고 있었다. 스님이 막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이 대뜸,
「우리 스님 오신다.」
하여 모두들 기이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법지스님께 보였다. 스님은 아기의 옷을 벗겨 두루 살펴보니 과연 겨드랑 밑에 꿩의 솜털이 세 줄로 나 있었다. 아이는 일곱 살 때 출가하겠다고 해서 부모가 허락하여 산으로 들어가 열다섯 살에 머리를 깎았다. 겨드랑 밑에 꿩 털이 있으므로 이름을 담익(曇翼)이라 하였는데, 법화경을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외웠다. 스님이 되자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도를 물어 종승(宗乖)을 확고하게 깨닫고 큰 변재 (辯才)를 얻었다.


동으로 회계(會稽)지방을 유력 (淺歷)하여 진망산(秦望山)에 이르렀다. 그는 돌을 깨고 띠를 떠서 이 산에 오래 머물러 있기로 하고 오로지 법화경만을 열 두 해나 계속해서 외웠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땅거미가 질 무렵에 몸에 화려한 옷을 입고 손에 흰 돼지 한 마리와 마늘 두 통이 들어 있는 대바구니를 든 한 여인이 나타나 스님의 앞으로 와서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저는 산 아래 아무개 딸인데 산에 들어와 고사리를 뜯다가 호랑이를 만나 쫓겨 왔어요 날이 이미 저물어가고 나무가 우거져서 이리와 승냥이가 마구 날뛰니 돌아가다가는 목숨이 온전할 수 없겠지요. 어떻게 하룻밤 묵어 갈 수 없을까요?」
스님은 쓸데없는 혐의를 받을 것이라고 굳이 거절하고 들어주지 않았으나, 여인이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애절하게 흐느껴 울므로, 스님은 하는 수 없이 풀을 깐 자리를 여인에게 내어주고는 곧 돌아앉아서 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삼경쯤 되어 여인이 배가 아프다고 신음하면서 스님을 쳐다보았다. 스님은 약을 주었다.


그러나 여인은 그래도 아프다고 더욱 울부짖으며,
「스님께서 제 배를 좀 문질러 주시면 아픈 것이 나을 것 같아요. 만약 문질러 주지 않으시면 저는 죽어요. 불법은 자비와 방편으로 근본을 삼는다는데, 스님은 저를 구원해 주시지 않고 제가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계시겠어요?」
하고 애걸했다. 스님은,
「나는 대승계(大乘戒)를 받은 중인데 어떻게 여인의 몸을 만진단 말이오.」
하고 여전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여인의 애절하고 간곡한 청을 끝내 물리칠 수가 없어서 석장(錫杖)의 머리를 수건으로 싸가지고 멀찌감치 앉아서 여인의 배를 문질러 주니, 잠시 후에 여인이,
「이 젠 괜찮아요. 」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에 여인이 암자에서 뜰로 나오자 채색 옷은 상서로운 구름으로 변하고, 돼지는 흰 코끼리로 변하고, 마늘은 두 송이 연꽃으로 변했다. 여인은 연꽃을 손에 들고 코끼리에 올라앉아 구름을 타고 허공으로 올라가,
「나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다. 네가 오래지 않아 내게로 돌아올 것이므로 특별히 와서 너를 시험해 본 것이다. 네 마음이 물속의 달과 같아서 더럽힐 수가 없구나.」


하고는 홀연히 멀어져 갔다. 이 때 하늘에서 하늘 꽃이 비 오듯 내리고, 땅이 크게 진동했다.
이 날 태수(太守) 맹공(孟公)이 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왔더니, 홀연히 남쪽에 상서로운 구름이 엉겨 있고 빛이 마당을 환히 비추는데, 구름 아래에서는 음악 소리가 은은히 들려 왔다. 하도 기이하여 음악이 들려오는 곳을 찾아가 스님을 만나, 보현보살이 스님을 시험해 보고 가는 것 일을 알았다.


그래서 태수는 곧 이 사실과 스님의 도행을 나라에 보고하였다.
조정에서는 칙명으로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법화사(法華寺)라 하였다.
때는 진(晋)나라 안제(安帝)의 의희(義熙) 13년(서기 417)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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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께서 아시고 계시겠지만

지금은 법화경 문수원을 녹취하고 있지만,

모든 법을 전해주고 마지막 맏아들에게 전해 주었던 큰스님께서도 비유하셨 듯

석양의 아름다운 빛 - 법화경속에서

저는 다시 부처님의 간절한 가르치심 한 말씀에 그만 ‘그 사람’을 만나게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만은 아니었고,

생물만이 아니었던 ‘그 사람’.

 

 

일불승 (一佛乘),

우리는 쉽게 그 말을 들어왔고, 쉽게 접해왔으나

누구에게나 그것은 단 하나의 거대한 화두요, 헤매던 나그네의 종착역임에 분명합니다. 아버지를 잊었던,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가난한 아들의 성(城)입니다.

 

 

 

저는 법화경을 녹취하기 전에 여러 번 관세음보살님의 현몽하심을 보았습니다.

눈부신 그 자태로 제게 주신 메시지는 “법화경 녹취를 하라!”였습니다.

거듭 거듭 매일 밤 오셔서

저의 마음을 송두리째 비춰주신 간절하신 그 메시지.

그러나 저는 사회에 떳떳이 나설 수 없는 이혼녀였기에 1년을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합당한 법화경 녹취자가 계시기를 기원하면서.

 

또 다시 계속적인 관세음보살님의 현몽이 1주일이 넘은 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 저것 재고 있는‘이 사람’‘그 사람’은 아니었던 것을.

 

준비기도를 하고 큰스님께 법화경 녹취에 대해 여쭈어 법화경 녹취를 시작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큰스님 법문속에 내 모두를 몰입하고 집중하여, 온 몸과 마음으로 .

저의 경우에는 법화경 녹취나 기타 불사를 할 때

항상 깨끗이 씻고, 양치도 자주 하고, 또 녹취 도중에 무심코 피부 및 다른 부위를 긁는다든지 간지러워 손을 대는 즉시 일어나 손을 씻었습니다.

하룻밤에 수 십번 욕실을 들락거리며 씻었으나, 단 한번도 어긴 적은 없습니다.

특별히 제가 신심이 돈독해서가 아니라,

제가 부처님과 큰스님께 드릴 것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 고백은 제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법화의 세상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외에도 물론 부끄럽고, 부족함 투성이지만 모든 육근(六根)행(行)

 

을 스스로 경계해 가며 그렇게 지내왔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일자 일배(一字一拜) 선사의 그 정성, 금니, 은니 불경을 몸소 쓰신 선사들의 정성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정성이라고 까지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모든 불자님들도 그러하시 듯,

어떠한 일도 어떠한 사물도 내게는 불사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생명이니까요. ‘그 사람’의 생명이자, 수 많은 사람, 또 우주의 생명이니까요.

 

제게는 아무리해도 잘 낫지 않는 두 가지 병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때문에 허리가 몹시 아팠고 어릴 때 부터 다리가 아파

관절염 증세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오는 날, 새벽에 밤에 허리가 아파야 되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왜 허리가 안 아플까?

순간적으로 저는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현재 법화경을 녹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 네가 법화경을 공부하고 있잖아!’

갑자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극히 온화하고 너무나 편안한 무엇이랄까,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저의 몸과 마음을 포옥 싸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안심'의 가피를 입었다고 표현함이 마땅한 줄 느낍니다.

그때 그 희열과 그 기쁨과 감사란!

저는 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그 이후로 저의 허리는 한번도 아픈 적이 없습니다.

물론 다리도 아픈 적이 없습니다.

감기는 한번도 걸린 적이 없고, 모든 병과 근심이 없어졌습니다.

능엄경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의 화두를 계속 들고 있으며 동시에 법화경 녹취를 진행하던 중, 만물의 소리에서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1주일 후, 한번은 귀에서 물이 조금 나는 것 같더니

세상의 만물의 소리가 빛의 소리와 같이 명쾌히 들려와 현재까지

그런 가피속에 살고 있습니다.

 

코가 맡는 냄새도, 입의 냄새도 마찬 가지입니다.

제 주변의 혈육이나 가까운 지인의 모든 일들이 쉽게 풀려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많이 망설이다가 깨달음의 언급은 삼가고, 다만 현상의 일들만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위의 일 외에도 많지만 이 사실들은 법화경에서 이미 예시한 부처님 말씀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님 말씀이 조금도 허망하거나,

거짓됨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 정말 부끄럽지만

법화경의 영험에 대해 밝히기로 한 것입니다.

2008년 1월 13일 일요일

明星華 합장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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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시조 천태지자 대사

석지자는 성이 진씨이며 영천 사람이다. 십팔 세 때 상주 과원사에서 출가하고 이십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면 율장에 정통하고 선정을 닦았다. 남악의 혜사대사를 앙모하여 찾아가 도를 물으니, 혜사가 말하기를 "옛날 영산회상에서 함께 법화경을 들었는데 숙세인연으로 다시 만났구나." 하고서 곧 보현행법을 보이고 넷 안락행을 설하였다.

 

이에 주야로 각고정진하여 교리를 밝히고 관행을 닦았는데 하루는 법화경을 독송하다가 홀연 선정에 들어 총지가 발현되니, 법화경 깨치기를 태양광명이 만상을 밝게비치는 것같이 하고 제법 실상을 통달하되, 청풍이 태허공에서 걸림없이 노는 것과 같이 하였다. 깨달음을 스승께 사뢰니, 혜사가 찬탄하여 말하기를 "네가 아니면 증득하기 어렵고 내가 아니면 알기 어렵도다. 들어간 것은 법화삼매의 전방편이요, 발현된 총지는 선다라니이니라. 가령 문자법사가 천만 명이 있을지라도 너의 변재를 대적치 못하리니, 법설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제일 되리라."하였다.


그 후 사부대중의 간청에 의하여 와관사에서 팔 년 동안 법화경을 강설하니, 양나라 진나라 대덕들이 운집 청법하고 왕후 장상들이 모여들었으나, 처음 사십 명이 수행함에 이십 명이 도를 증하고, 다시 백 명이 수행함에 이십 명이 도를 증득하였으며, 또 다시 이백 명이 수행함에 십여명 도를 증하여 대중이 많이 모일수록 도를 증하는 자는 줄어들어 자행을 방해할 뿐이었다. 이에 진나라 대건 칠 년 삼십팔세 때 선제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고 천태산에 들어가 초암을 맺고 십 년 동안 원융삼관을 정밀히 닦았다.

 

때에 천마가 십 년 동안을 갖가지로 괴롭혔으나 터럭만큼도 동요됨이 없이 말하기를 "너의 재주는 다할 때가 있으려니와 나의 부동은 무궁하니라" 하니, 천마가 새벽에 호승으로 현형하여 참회하고 맹세하기를 "이제부터는 스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옹호하고 교화를 돕겠나이다"하였다.


지자대사는 수나라 개황 십칠 년 육십 세 때 십일월 이십사일 입멸시까지 진나라 문제 선제와 수나라 양제의 삼제에게 계를 주었고,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의 삼대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저서를 남기셨으며, 삽십오 사찰을 창건하고, 십오 회 대장경을 서사하였으며, 금불상 십만 구를 조성하시고, 사천 명의 승을 득도시켰으며, 삼십 명의 종사에게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하셨고, 닦고 배우는 이가 사찰에 가득찼으며, 선도는 진 수 두 나라 오십여 주에 뻗쳐 그 수를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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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광은 신라인이다. 연광은 명문 대가에 태어나 여려서 승이 되었는데 견식과 도량이 남보다 뛰어났으나 외진 나라에 태어나 자랐으므로 정교에 통하지 못했다. 수나라 인수 연간에 수나라에 가 오희에 이르렀는데 마침 지자대사를 만났다. 대사가 연광에게 묘법을 잘 해설해주어 그는 명심하고 아침 저녁으로 배워서 몇 해 안되어 홀연히 크게 깨치니, 대사가 연광더러 묘법연화경을 강설하라 하였다.

 

연광이 경을 강설하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모두 탄복하였다. 뒤에 연광은 천태 별원에서 묘관을 닦고 있었는데 홀연 많은 사람이 나타나서 "천제께서 법사님의 강설을 청하십니다" 하였다. 연광이 묵연히 허락하자, 문득 기절하였는데 열흘이 지나도 안색이 평상시와 같다가 도로 깨어났다. 법기가 되는 업을 성취한 연광은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수십 명과 함께 큰 배를 타고 떠났다.

 

바다 가운데 이르렀을 때, 배가 갑자기 꼼짝 않더니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물결을 헤치며 뱃머리로 다가와서 "바다신께서 법사님을 청하십니다. 잠시 수궁에 가셔서 경을 강설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다. 연광이 말하기를 "빈도의 이 몸은 중생들을 이익케 하고자 맹서했으나, 이 배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사람들은 같이 가고 배는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라고하여 모두 배에서 내려 한참을 가노라니, 큰 거리가 똑바르게 나고 길가에는 향기 그윽한 꽃이 만발하였다.

 

바다신이 십만 시종을 거느리고 나와서 연광을 맞아 대궐안으로 들어가니, 구슬 벽이 휘황찬란하여 정신이 황홀했다. 연광이 자리에 올라 법화경을 강설하여 마치자 바다신은 진귀한 보배를 수 없이 보시하고 도로 배까지 전송하여 주어 배에 올랐다. 본국으로 돌아온 연광은 날마다 법화경을 독송하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쉬는 일이 없었다.

 

팔십 세에 입적하여 화장하였는데 두골과 혀만은 타지 않아 온 나라 사람들이 와서 보고 모두 드물게 있는 일이라 감탄하였다. 연광법사에게는 누이 동생 둘이 있어 일찍부터 불교를 돈독히 믿었다. 연광법사의 두골과 혀를 가져다 모셔 놓고 공양드리는데 자주 두골과 혀에서 법화경외우는 소리가 들리고 누이 동생이 모르는 글자가 있어 물으면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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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용삭(신라 문무왕1~3, 661~663)연간 수도 장안에 사는 고문은 항상 "법화경"을 읽고 있었다.
하루는 말을 타고 순의문을 나섰는데, 얼마 안가서 말을 탄 사람 들이 쫓아와 고문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염라대왕이 보내어 당신을 잡으러 왔소'


고문이 달아나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면할 수가 없었다. 붙들려 말에서 끌어내려져 머리채를 잡아채 갔다. 그 후 땅에 쓰러진 그를 집안 사람들이 들것에 싣고 집으로 데려왔다. 한참 후에 고문은 소생하여 말하였다. '염라대왕이 내게 묻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스님의 과자를 훔쳤으며, 어찌하여 삼보를 헐뜯었는냐? 법에 따라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여 나는 할말이 없었는데, 대왕이 판결하기를 과자를 훔친죄는 철환 450개를 삼켜 4년간 괴로움을 받아야 마땅하고 삼보를 헐뜯은 죄는 혀를 뽑아 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잠시 후에 또 정신을 잃고 무엇을 삼킨 듯이 목구멍이 막히고 온몸에 붉은 물집이 생기면서 몹시 괴로워 하였다. 그렇게 하루를 지낸후에 정신이 들었다. 그가 다시 살아나 말하기를 '내가 어떤 지옥에서 나흘동안 철환을 삼키고 있었는데, 그 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혀를 뽑으려고 했으나, 뽑히지를 않았다.

 

그래서 문서를 다시 조사해 보고서는 '이사람은 항상 "법화경"을 읽었으므로 혀가 뽑혀지지 않는다'하며 하여 석방해 주어 다시 살아났다. 후에 고문은 화도사의 원만에게 법을 듣고 참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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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344~413?또는350~409?)은 구자국(龜玆國:서역에 있던 나라. 지금 중국 산강성 부근)사람이다. 7세에 출가하여 매일 천개의 게송을 외었다. 그의 어머니가 월지국에 가서 아라한 한분 에게 구마라집을 보였다.


"이 사미는 35세에 크게 불법을 펴서 수많은 사람을 제도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가, 하루는 구마라집에게 말했다.
"방등의 깊은 가르침을 중국에 펼치는 일이 오로지 너에게 달렸다."
이때 부견(符堅)은 관중(關中:지금의 섬서성)에 옹거하고 있었는데, 태사(太史) 진(秦)이 말했다.


"덕이 있는 상서로운 별이 외국에 나타났으니, 이는 큰 지혜를 가진 분으로 중국에 모셔 오면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부견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여광(呂光)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자국을 정벌도록 하였다.
"나도 서역에 구마라집이라는 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현상은 필시 그분을 두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광이 구마라집을 얻어 양주(凉州)에 도착했을때, 부견이 요장에게 살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여광은 관중 밖에 옹거하여 스스로 후량(後凉)이라고 일컬었다. 요장이 죽고 그의 아들 흥(興)이 왕위에 올랐는데, 종묘에 갑자기 연리수(連理樹)가 나오고, 소요원(逍遙園)의 꽃이 다른 꽃으로 변하자 요흥은 이를 상서로 여겨 여광을 정벌하고, 구마라집을 장안으로 맞아들여 국사의 예로 대우하였다. 요흥은 소요원에서 여려 승려와 함께 구마라집의 강설을 들었다.


구마라집은 한자에도 통달하여, 전에 번역된 경전과 산스크리트본(胡本)을 비교하여 잘못된 점을 살폈다. 홍시 8년(406), 초당사에서 승려 리(利)등 팔백여 명과 사방의 의학(불교) 승려 이천여 명을 모아 옛 경전을 고증, 교정하여 "묘법연화경" 한부 일곱 권을 역출하였다. 구마라집은 입종에 다달아 말했다.


"이 법화경을 여러분이 힘써 유포시켜 주시오. 만약 번역한 것에 오류가 없다면, 내가 죽은 후에 몸을 태워도 혀는 타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는 열반에 들어 다비를 하니, 과연 혀는 타지 않은 그대로 였다.
구마라집의 전기는 "양고승전"과 남산 "감통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위천인(韋天人) 이 이렇게 말했다.


"구마라집은 총명해 대승을 잘 이해하여, 과거 칠불(七佛) 이래로 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번역하고 전해 법왕(부처님)께서 남기신 뜻을 잘 드러냈다. 세속에서는 계를 허물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의심할 필요조차 없다. 구마라집은 삼현보살(三賢菩薩)의 지위에 오른 분이었으니, 이런 분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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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권은 무겁고 죄의 문서는 가벼워



유씨는 옹주 만년현 평강방 사람으로 당나라 고종 2 년에 이틀 동안 앓고 죽었는데,

죽은 지 육일이 지나도록 그의 가슴이 따뜻하였다.



그래서 가족들은 장례 치를 준비를 마치고 날짜까지 받아 놓았으나 감히 염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칠일째 되던 날 새벽에 그가 갑자기 다시 살아나서 말하기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큰 성으로 들어가니 궁전과 누각이 웅장하고 주변



자연환경이 아름다웠다.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가니 바로 이때 염라대왕이

큰 목소리로 네가 세상에서 지은 공덕을 말하라 하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법화경 두 권을 읽었을 뿐이고 그 밖에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대답했더니,



염라대왕이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조목조목 기록해 놓은 문서를 찾아내서 법화경

두권과 달아보고 법화경 두 권이 죄를 기록해 놓은 문서보다 무겁다 하며 죄의

문서를 버리고, 이 사람은 구십살까지 살아야 한다 하고 죄의 문서를 맡아보는

이에게 나를 석방하여 세상으로 돌려 보내라고 명령하여 이제 내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 하였다.



유씨는 마침내 수계를 받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순금으로 법화경을

정성드려 한자 한자 옮겨써서 오래오래 공양하였다.<弘贊傳第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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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연꽃에 의탁



옥엄은 낭야 임기 사람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대궐 안에서 문서를 맡아보는

사람이었고, 옥엄의 벼슬은 황문랑에 이르러 신안태수가 되었는데 항상 정성이

지극하여 불교 수행을 열심히 하였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고

법화경을 여러 해 계속 독송했다.



그의 동생인 옥고도 역시 채식을 하며 법화경을 매일 독송했다. 그러다가 옥엄이

죽었는데 동생인 옥고의 꿈에 형이 나타나서, 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 무량수불의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철엽 연꽃안에 태생하여 오백년 뒤에나 태에서 나와

부처님을 뵙게 될 것이다.

 

 

애써 법화경을 외웠기 때문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었지마는 어리석고 의혹이 많았기 때문에 태속에 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네게

알려주는 것이니 너는 부지런히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옮겨써라 하고 작별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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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더 주고 어깨에 기록



법랑스님은 중국 황하강의 북쪽 산동성에 있는 무성 사람으로 강소성에 있는

팽성 정도사에 가서 사미스님이 되어 있을 때부터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쓰기

시작하여 늙도록 멈추지 않았다.



개황 13년에 쉰세 살의 나이로 죽었는데 칠일만에 염라대왕을 만났다.

대왕 앞에 여섯 도인이 있있는데 왕이 첫 번째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덕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예, 유마거사가 세존의

제자들과 대승불교에 관해 문답한 경인 유마경을 독송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왕은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하고, 다시 둘째번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행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다.

「저는 세존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가섭. 고귀덕왕. 사자후. 교진여 네 보살의

물음에 대해 일승불성의 미묘한 뜻을 설하신 경인 열반경 열 권을 독송했습니다.」



라고 하니, 왕이 역시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 하고, 세 번째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덕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다. 세 번째 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는 참회멸죄,

왕법론 및 제천옹호의 사상을 설하신 금광명경을 독송했습니다.」라고 하니

왕은 역시 남쪽에 가 서 있으라 했다.



왕이 다시 넷째번 스님에게 물으니 그 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는 열반경을

강설했습니다.」하니 왕은 「서쪽으로 가 서 있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 스님에게 물으니 스님은 「저는 인도의 천진보살이

화엄경의 십지품을 해석한 십지론을 강설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왕은 눈살을 찡그리고 「북쪽에 가 서 있으라」하고 여섯째번 스님에게도

물어보고 남쪽에 가 서 있으라 하였다.

왕이 이번에는 법랑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행업이 있는고?」



「법화경을 독송했습니다.」하고 스님이 대답하니 왕이 「동쪽에 가 서

있으라.」하였다.

그리고 왕은 사람을 시켜 북쪽에 있는 사람은 지옥도로 데려가게 하고

서쪽에 있는 사람은 축생도로 데려가게 하고 남쪽에 있는 네스님은 인간세상으로

데려가게 한 다음, 법랑스님은 천상세계로 데려가서 그 태어날 곳을 보게 하고

나이를 여든다섯살로 늘려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스님은 천궁에서 돌아와 홀연 깨어났는데 어깨위에 여든다섯 살이라는 붉은

글자가 은은히 나타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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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가 연꽃으로 변해



혜초스님은 단양 건원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법화경

독송을 업처럼 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라에서 영을 내려 승려 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하고 단속했다.



이에 스님은 기와굴 속에 숨어서 여러 해를 지내게 되었는데, 뒤에 금령이

없어져 자유롭게 되자 숨어 지내던 기와굴의 주인을 찾아가서, 빈도(貧道)가

이 안에서 법화경을 천여 번이나 독송했으니 깨끗이 소제하여 공양하시고 다시

기와 굽는데 쓰지 마십시오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스님의 말을 믿지 아니하고

수리하여 전처럼 기와를 구웠는데 꺼내보니 모두 연꽃모양으로 변하여 사방의

벽에 덮여 있었다.



이에 먼데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와 보고 모두 감탄하기를 마지 않았다.

또 혜초스님이 일찍이 절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을 때 사나운 짐승이 와서

들었는데 스님이 수계를 시키니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온순했으며 스님이,

신도는 이제 돌아가오 하니 맹수는 순순히 가버렸다.



이렇듯 스님이 하신 일들은 이승과 저승을 다 수없이 감동시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뒤에 병이 들어서 위독해지자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니

혜초스님은, 오래 산다고 기뻐할 것도 없고, 일찍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하고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서 조용히 숨을 거두시니 나이 일흔일곱 무덕 5년

(서기 622) 12월 6일이었다.



문인 중에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어 역시 법화경을 일만여 번이나

독송했는데, 임종하는 날 번개와 하늘꽃이 하늘에서 분분히 떨어지고 하늘의

음악이 요란히 들려와 절에 있던 스님들이 모두 보고 들었다. 또 스님은

연화대가 맞으러 오는 것을 보고 단정히 서서 합장하고 입적하였으니

사방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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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자를 쓸 적에 이미 인간에 환생하다





수나라 개황 연중에 혜초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언제나



착실히 수행을 하셨다.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한번은 데리고 있던 제자 한 명이 나이 이십이 되어



병들어 죽기에 이를 무척 애석하게 여기셨다.

 





그러던 어느날 혜초스님이 비몽사몽 간에 태산부군묘에



이르게 되어 태산부군에게 여쭈되, 일전에 제자 한 명이



일찍 죽었사온데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하니, 태산부군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사람은 죄와 복이 모두 없는 까닭에



아직 미결로 이곳에 있노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혜초 스님이 만나 보기를 청하니 곧 응락하여



사자 한 명을 안내로 동쪽으로 수십보를 걸어가다가 이윽고



그 제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혜초스님이 반가워 하며 고와 낙이



어떠하냐 묻기에 제자가 대답하되, 다만 얽매어 있어 자유로운



행동을 못할뿐이고 고와 낙이라는 것은 아무 감상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 태어나고자 하나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으니 스님께서



제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스승이 어떤 공덕을 지어야 하겠는가 하니 제자가,



법화경 한 벌을 조성하시고 회향재로 일백명 스님들께



만발 공양 시켜 주소서 하고 간곡히 청하니, 혜초가 승낙하였는데



문득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에 혜초스님은 꿈에서 약속한 대로 법화경 한 벌을 쓰고



수행하는 스님 일백 명에게 공양하여 마치기를 다한 후



다시 꿈을 얻어 태산부군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경을 쓰고 재를 올린 사연을 말씀드리니 태산부군이 하는



말씀이,

 

 

 

「잘 하였소. 그대의 제자는 스님이 경을 쓸 적에



묘법연화경의 묘자를 막 쓰고 나자마자 좋은 곳에 태어났습니다.

 




제군이라는 땅에 사는 왕무라는 사람의 집에 남자로 태어났으니



세 살 먹거든 한번 찾아 보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얻은 후 삼년이 지난 뒤에 혜초 스님은 왕씨 집을



찾아가 지난 사연을 설명하고 어린 것을 보여 달라 한즉



그 부모 이상히 생각하여 어린 것을 안고 나와 보이는데,

 





갑자기 어린 것이 혜초대사의 품으로 달려들며 슬피 울거늘



모두가 기이하다 여겼다. 혜초가 그 부모에게 잘 양육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돌아왔는데 그 아이 장성하여서는 스스로



출가하기를 원하여 다시 혜초대사를 섬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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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경을 외우니 후대하고 보내주다




감문교위 이산룡은 무덕연중에 모진 병으로 죽었으나 이상하게도

가슴이 따뜻하여 가족들이 차마 염습을 못하고 있었는데 칠일 만에

깨어나 다음과 같이 명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죽어 명부에 들어가 어느 관청에 이르렀는데 그 집 정원은

굉장히 넓고 죄수 수천명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칼도 차고 고랑도

채워진채 모두 복면을 하고 서 있었는데, 뜰의 대청 위에는 염라대왕이

높은 걸상에 앉고 좌우로는 많은 관원이 시위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염라대왕이 묻기를, 너는 평생에 무슨 복업을 닦았는가 하기에,

나는 우리 고을 사람들이 부처님께 재를 올릴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시주에 동참하여 왔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염라대왕이 다시 묻기를, 너 혼자 선업을 닦은 일은 없는가 하기에,

법화경 두 권을 늘 지송하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왕이 놀라며 나를

뜰로 오르라 하여 올라서니, 그곳에 동북간으로 높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왕은 그곳에서 내가 경을 외워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나는 좌에 올라 실상 묘법연화경 서품제일이라 경을 외우니 왕이

일어서 공손히 합장 예배하며 말하길, 법사께서는 그만 그치소서 라고

하기에 내가 좌에서 내려 다시 뜰 아래를 돌아보니 아까 가득 차 있던

죄인들이 한 명도 없는지라. 놀라 서 있는데 왕이 가로되, 그대의 경을

지송하는 복이 단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 뜰 아래 있던



여러 죄수들까지도 모두 경의 제목 외움만을 듣고도 모두 그 죄를 면하게

된 것이니 어찌 그대를 착하다 하지 않으리오. 이제 그대를 풀어주어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오리라 하여 그곳에서 수십보쯤 걸어 나오는데 왕이

다시 부르며 시위 관리들을 보고 하는 말이, 이 사람을 데리고 가 지옥을

보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관리들이 왕의 명을 받들어 나를 데리고 동쪽으로 백여보를 걸으니

문득 높다란 성벽이 보이는데,무쇠로 쌓여 있는 그 성벽 가장자리로

많은 구멍이 뚫려 있어 모든 남녀가 땅에서부터 그 구멍으로 날려 들며

다시는 나오지 못하거늘 관리가 설명하되 이는 무간 지옥입니다. 각각

사람마다 지은 업에 따라 옥에 들어가 죄를 받는 모양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한편 슬프고 한편 겁이 나 나무불 삼자로 염불하고 또 한 곳에

이르니 커다란 가마가 있어 불이 활활 타며 물이 펄펄 끓는데 그곳의 모든

사람이 앉아서 졸고 있기에 그대들은 웬 사람인가 하고 물은즉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들은 죄가 많아서 이 끓는 가마속으로 들어갈 터인제 그대가 나무불



삼자를 지송하여 주신 공덕으로 옥중 죄인과 같이 하루 쉬라는 명을 얻어 듣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와 같이 앉아 졸고 있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에 더 구경할 마음이 없어 걸음을 급히 하여 인간으로 나왔는데 문득



세 사람이 앞을 가로막고 나서며 나에게 하는 말이, 대왕께서 그대를 풀어주나

우리들의 수고는 잊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 미처 내가 뭐라 하기 전에 관리가

설명하는 말이, 저 사람들은 일전에 그대을 명부로 잡아온 자들입니다.



한 사람은 포승를 맡은 자니 붉은 줄로 그대를 묶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방망이를 맡은 자니 방망이로 그대를 때린 사람이며, 마지막 한 사람은

자루임자로 자루를 가지고 그대의 혼을 잡아 넣은 사람입니다.



오늘 그대가 인간으로 환생함을 보고 무슨 보수를 청하는 모양입니다

라고 하니, 내가 겁이 덜컥나서, 미처 누군지 알아 보지 못하였습니다.

청컨데 집으로 돌아가서 물품을 준비 하겠으니 어는 곳에서 보내 드리리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길 물가나 마무 밑 모두 좋습니다 하기에



허락하고 하직하여 들아오니 집안은 곡성이 낭자하고 장례 준비로 정신이

없던 터였습니다 라고 말을 마쳤다.



이산룡이 이같은 경로로 환생한 며칠 후에 종이로 돈을 만들고 비단과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물가에 나가서 위채를 불사르는데, 갑자기

세사람이 나타나 하는 말이 그대가 실신을 하지 않고 이제 좋은 물품을

가져다 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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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높이 하여 경을 독송함에 수호 병정이 뜰에 가득하다

 



승영이라는 스님은 젊어서 출가하여 강양 영제사에 머물러 있었는데 나이가

늙도록 법화경을 독송하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웃 방에 다른 법사 한 분이 있어 항상 승영이 소리 높여 법화경을

읽는 것이 자기 간경에 방해가 된다 하여 승건이라는 스님에게 승영의

고성독경을 못하도록 부탁하였다.

 


승건이 허락하고 그날부터 권고하기로 하였는데, 마침 승영이 달이 창에

밝음을 이용하여 언제나처럼 경을 외우거늘 승건이 막 승영에게로 가려고

할 때 멀리 바라보니, 승영의 방앞에 수천의 사람이 있어 몸에 의갑주를

굳게 하고 창과 활을 지니고 합장하고 끓어 앉아 정성스럽게 그 송경소리를

듣거늘 승건이 크게 놀라 가만히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이웃방의 법사를 찾아가 어젯밤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승영에게

그들의 허물을 크게 참회하였다.

승영이 혹 출입을 하면 팔부신장의 호위하는 형적이 항상 나타났는데

개황연중에 영제사에서 열반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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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등으로 스물여섯 번 쳐서 전생 원수를 풀다

 



청나라 사람 정백인은 오래도록 양주 땅에 살면서 법화경을 지송하고

또한 관세음보살을 정성껏 섬겼다.



그런데 을유년 여름 나라에 난리가 나서 적국 군사가 양주 땅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정씨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며 피난할 방책을 구하였더니

어느 날 밤 꿈에 보살이 일러 가로되 너의 가족 십칠 명중에 십육명은환난을

면할 수 있지만 오직 너 하나만은 어려움을 면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씨가 꿈에서 깨어 지극정성으로 관세음보살님께 다시 기도하니 그날밤 꿈에

보살이 또 일러 가로되 너는 전생에 왕마자라는 사람을 칼로 스물여섯번이나

쳐서 죽였으니 지금 그 목숨을 갚게 되는지라. 가족 십육 명을 다른 곳에 안전히

옮긴 후에 네가 혼자 기다리다 당할지언정 가족에게는 누를 끼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정씨가 마음깊이 참회하고 시키는 대로 행하였더니 닷새 후 적군이 집안으로

달려들거늘 정씨 나서며 그중 자신을 죽이려 칼을 빼고 달려든 적군에게 물어

가로되 그대의 성명이 왕마자인가, 내가 그대에게 스물여섯 번의 칼로 빚진 것이

 



있으니 나를 속히 죽일지어다. 그것 말고 나와 그대가 다른 원수진 일은

없도다 라고 하였다. 이에 적병이 놀라 묻기를 네가 어찌 나의 성명을

알았느냐 하기에 정씨는 관세음보살이 꿈 속에서 이르신 말씀을 전하였다.

 


정씨의 이야기를 듣고 난 적병이 탄식하며 하는 말이 네가 전생에

나를 죽인 까닭에 그런 것인지 지금 너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나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게 되면 오는 세상에 다시

네가 나에게 보갚음을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보살이 현몽까지 하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게 되면 이는

성현을 저버림이라.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하고 즉시 칼등으로 정씨를

스물여섯 번 치는 시늉을 하고 원한을 풀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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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성호를 생각함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다

 



나는 유제규 평화교당에 다니면서 불전에 예경하고 법사스님의 설교를

듣는 한 신자입니다. 인연이 닿아 정지월이라 하는 젊은 법사 스님에게서

관음보살 보문품이라는 법문을 들은 후로는 그 불경을 따로

지송하기로 하고 우리 내자와 더불어 보문품독송 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관음보살에 대한 신앙을 날로 더하고 달로 깊어가게

하였는데 그러던 중 얻은 신앙담을 이제 하고자 합니다.

바로 지난 십이월 십팔일 밤의 일입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매우

나빠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홉 시나 되어서 각각 취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밤마다 보문품 한 번 독송과 관음보살 삼천념을 하는 성벽이 있는지라.

그날도 열두 시까지 일과를 마치고 잠이 들어 약 삼십 분 가량이나 되었을까

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어떤 백의 노부인이 와서 잡아 일으키며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려고 했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전혀 기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 부인은 이상하게도 선명히 눈앞에 보이며 일이 급하니

어서 일어나라 하며 몸을 잡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정신을 처려보니 그 백의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서 누워자는

내자가 손발을 달싹이지도 못하고 눈을 흡뜨고 말 한 마디 내지르지

못하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나는 황겹공포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 왔다갔다

하며 집안 사람들을 일으키는 한편 내자의 신체를 주무르며 코밑을

부벼주고 인공호흡을 시킨 후 정신을 차리라고 목이 터지도록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숨소리가 점점 사라지며 죽음길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불쌍하다며 울음소리를 내고 의사도 와서 보고

단념하라고 선언할 뿐입니다. 나도 울음을 그칠 수 없음에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었으나 문득 한 생각에 관음보살을 생각하고 일심염불공과

능명제유고라는 법구를 떠올리게 되었고 일심으로 오직 관음보살을



부르면서 내자의 기사회생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자가 이와 같은

급병이 난 것은 식물의 중독이라 생각하여 의사에게 주사 넣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의사는 심장마비라 하며 돌아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모든 걸 단념하고 오직 관음보살만을 염송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내자가 호흡을 시작하며 정신이 도는 듯 살며시 눈을

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 되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집안 사람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고 나 또한 하도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라 관음성력에 감격할 뿐이었습니다.



내자가 그렀듯 회생한 것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백의부인의

현몽은 나뿐만 아니었습니다. 내자도 그 부인을 보았다 하며 그 부인에게서

무슨 약수를 얻어 마시고 겨우 숨을 트게 되었다 합니다. 중생이 피곤액하여

무량고핍신이라도 관음묘지력으로 능구세간고라는 법구를 보문품의

법문으로만 믿다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관음묘지력을 실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원문은 소화 사년 이월 불교지에 기재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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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닥친 술냄새에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명나라 부경 형부가에 있는 축봉사는 에전에 전단불상에 공양을 올리던 절이었다.

신종제 말년 제주라는 스님이 주지로 있었는데 성품이 진실하고 부처님을

엄숙하게 받들기는 하나 다만 술 한 가지를 끊지 못하는게 큰 흠이었다.



어느 날 꿈에 험상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지옥의 사자입니다. 생전에 아무개 노파가 착한 일을 한 가지도 한 일이 없었기에

지금 지옥에 갇혀 있어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월 삭망 때마다

이 절에 와서 예배하고 과일을 가져다 스님께 공양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스님은 그러한 인연을 생각해서 그 노인을 위해 법화경 한 부질을

읽어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인홀불견 되는지라 스님이 꿈에서 깨어나 그 노파의 생전일을 생각하니 지옥 사자의 말이 틀림이 없었다.



이에 칠월 보름날 백종재를 기다려 그 노파의 위패를 접어놓고 부처님

앞에 끓어앉아 법화경을 읽어 나갈 때 다섯권째에 이르러 읽기는 뜨겁고

목은 몹시 말랐다. 그만 일어나서 차를 찾아 보았으나 얻지 못하여 부엌

탁자 위의 술병 하나를 발견하고 흔들어 보니 아직 남은 것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병을 기울여 찬 술 한 모금을 그대로 마시고 다시 불전에 끓어앉아

일곱권 법화경을 다 읽어 마쳤다.



그 이튿날 밤 꿈 전에 왔던 지옥 사자가 다시 와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

법화경 네 권까지 읽었을 때 마침내 지옥 일대는 금색 광명이 내려 쪼여서

그 노파가 막 지옥을 여의고 곧 선처에 수생하려 할 찰나인데 별안간

한 무더기 술 냄새가 들이침에 광명은 어느 결에 없어지고 법화경

다섯권째에서 일곱권째까지 읽는 동안 술냄새는 마찬가지이므로 그 노파는

힘을 얻지 못하여서 그대로 갇혀 있습니다" 하였다.



주지스님은 그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하여져서 그 즉시로 일어나

다시 목욕하고 정의정복을 갈아입고는 불전에 나아가 지성참회한 후

법화경 다섯권째에서 일곱권째까지 정성을 다하여 읽어 마쳐주고

그후로부터 한 평생을 마치도록 술을 엄금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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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 귀신과 산의 호랑이가 도덕을 흠앙하다




홍명이라는 스님은 회계산음 땅 사람이라, 일찍이 출가하여 산음

운문사에 있으면서 항상 법화경을 외우며 정근하고 예참하기를 가히

주야불철이더니 아침마다 일어나 앞으로 나가보면 비어 있던 물병에

깨끗한 물이 가득차 있곤 했으니 이것은 천동천녀가 비밀히 내려와

시봉을 하여준 것이다.



또 어느날은 홍명이 경을 읽고 있는데 커다란 범이 들어와 법상

아래 엎드려 경을 잠심하여 듣다가 물러나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어떤 날은 조그마한 아이가 와서 홍명법사의 송경함을 듣는지라,



홍명이 묻되 "너는 어떤 아이냐" 하니 그 아이 대답하되 "저는 옛적 이 절에

어린 중으로 있으면서 대중의 공양할 밥을 먼저 훔쳐 먹은죄로

뒷간 지키는 귀신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도력이 높음을 알게 되어

가끔 와서 경을 듣게 됩니다.

원컨대 법사의 높고 높은 송경공덕으로 이 죄업을 면케 하여 주옵소서"

하는지라. 홍명법사가 듣고 측은히 생각해서 재를 베풀어 천도식을

행하며 법화경 산림을 하여 주었더니 칙귀가 그 공덕으로 선도에

태어남을 현몽하였다.

홍명법사는 제나라 영명 사년에 백림사라는 절에서 열반하니

춘추가 여든넷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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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속에 불형을 나타내니 문종이 화상을 모시게 하다




당나라 태화 연중 문종제가 조개 먹는 것을 좋아하여 해변 관리들은 조개

진상하기에 골몰함으로써 민간에 끼치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

하루는 어찬 가운데 커다란 조개 하나가 있어 다깨어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종이 이것을 기이하다 생각하고 즉시 향을 사르며 기도를 드리니 그곳에서

별안간 관음형상이 솟아 오름에 상호가 구족하였다.

곧 금함에다 모시고 흥선사라는 절에 사승하여 여러 스님들로 하여금 예배

공양케 하고난 후 여러 신하들에게 물으시되,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 하였다.



이에 어느 대신이 여쭈기를 대일산에 유정선사가 불법이 깊어 모르는 것이

없다 합니다 하였다. 문종께서 즉시 선사를 불러 그일을 물으니, 선사 대답하기를

신이 듣사오니 어떤 물건이라도 헛되이 응하는 법이 없는지라. 이는 폐하의

신심을 열어줌이외다. 그런 고로 법화경에 말씀하기를 제왕신으로 제도할 자에

응해서는 곧 제왕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법을 설한다 하셨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가로되 보살의 몸은 벌써 내가 보았으나 아직 법문을 듣지 못하였노라 하였다.



선사가 다시 여쭈어 가로되 폐하께서는 그 일을 예사롭다 느끼십니까 아니면

이상하다 느끼십니까. 또 그일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되

희귀한 일이라 내가 깊이 신앙하노라 하였다. 선사가 가로되 그러시다면

폐하께서는 벌써 법문을 들어 마쳤습니다 하였다.



이때 임금이 깨닫고 크게 즐거워하며 다시는 조개를 먹지 않겠다 맹세하고

천하 사찰에 조서하여 모두 관음상을 모시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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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독송으로 어머니가 천상에 나다
당나라(唐) 소장백 최의기(崔義起)의 장인 소문종(簫文鍾)은 평소에 늘 법화경을 독송하여 수천 번에 이르러 죽었고, 그의 아내도 용삭(龍朔) 3년(서기 663) 5월에 죽었는데, 삼칠일이 되는 날 재를 올렸더니, 딸 소옥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
「내가 살아서 삼보를 믿지 않아서 이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법화경을 독송하고 재를 올려 나를 좀 구해다오.」
하였다.
그러나 나이 어린 딸이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대로 있는데, 20일 만에 다시 어머니가 나타나,
「네가 내 고통받는 것을 직접 보아야 하겠구나.」
하고 소옥을 데리고 대성궁부(大城宮府) 화탕지옥(火湯地獄)으로 들어갔다.
지옥의 참혹한 상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홀연 그녀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너의 어머니가 생전에 화를 잘 내고 시기심이 많았으므로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나는 지금 너의 어머니를 구할 힘이 없으니, 네가 법화경을 읽어 천도해 주어라.」
하고 한 스님이 법화경 한 권을 주고 사라졌다.
소옥이 잠에서 깨어나니, 사흘 동안을 죽었다가 깨어났다고 집안사람들이 크게 기뻐했다.
소옥이 일심으로 법화경을 읽고 또 읽었다. 그랬더니 꿈에 어머니가 다시 나타나서,
「네가 법화경을 읽어 주어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계로 가게 되었다.」
고 하였다.
그 후 인덕(麟德) 원년(서기 664)에 설장군(薛將軍) 집에서 재를 올릴 때에도 범승(梵僧)을 청하여 그 법화경을 읽어 많은 영험이 있어, 모든 사람이 찬탄하였다.

 

한글 법화경 전체보기 (클릭 →) http://cafe.daum.net/amtb/62Bc/454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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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경천도(讀經薦度)


독경천도는 이름 그대로 영가에게 공덕이 되는 경전을 읽어주면서 행하는 천도법이다.

이렇게 공덕을 심어주는 경전들을 불가에서는 공덕경(功德經)이라고 하는데,
현재 널리 읽혀지고 있는 공덕경으로는 금강경, 아미타경, 지장경, 관음경,
약사경, 법화경 등이 있다.


이들 공덕경 중 어떤 경전을 택하여 읽어도 효과는 같으므로,
형편에 맞게 하나를 택하여 꾸준히 읽어주면 된다.

이제 구체적인 요령을 말하기 전에,
서울 신당동에 살았던 자명성 보살의 독경천도 영험담을 함께 음미해 보자.


1. 지장경을 읽어 사돈댁 영가를 천도하다.


자명성 보살이 불교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50대 초반에 3년 동안 신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사돈의 권유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다가,
꿈에 흰옷을 입은 할머니로부터 10여 차례 약물을 받아 마시고
완쾌됨으로써 불교를 깊이 믿게 된 것이다.



이 자명성 보살이 2남 2녀의 막내딸을 시집 보낼 즈음, 신랑집에서 예단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예단 한복판에 예물로 보내오지도 않은 족두리가 선명하게 보이면서,
꿈속인데도'무엇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사돈댁의 원귀가 예단에 묻혀 온 것이라 느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돈댁이 손을 대는 사업마다 모두 실패를 하고,
가족들도 이상하리만치 어려운 사정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보살은 꿈에서 깨어나자 곧바로 지장경을 독송하고 기원하였다.


"예단에 싸여 온 영가가 사돈댁과 인연이 있는 영가이든 또 다른 영가이든,
부처님과 지장보살의 공덕을 입어 밝은 길로 나아가지이다."



"예단에 싸여 온 영가들과 사돈댁 집안의 영가들이 극락에 왕생하여지이다."


이러한 축원을 하며 보살은 며칠동안 지장경을 하루에 한 편씩 정성껏 읽어주었다.

그러자 꿈에 옷을 단정히 입은 여자가 기쁨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 공손히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런데도 예단에 싸인 족두리는 여전히 보였으므로 계속 지장경을 독송하고 축원하였다.
20일이 지나자꿈에 족두리를 쓴 단정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정중한 자세로 정성을 다해 절을 하고 사라졌다.


자명성 보살은 사돈댁 영가를 위해 백 일을 기도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계속하였고,
백 일이 다 되었을무렵 노란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손에 흰 수건을 들고 나타나 절을 하고는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사돈댁에 원한이 있는 영가들이 구원을 받을 인연을 찾아왔다가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모두 천도되었음을 보살은 직감하였다.

그 뒤 자명성 보살 사돈 집안의 우환은 저절로 사라졌고,
사업도 잘 풀려 예전처럼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2. 부모은중경사경과 지장경 독송으로 아버지의 영가를 천도하다.



현재 모전문대학의 교수로 있는 정박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럽에서 박사 학위의 심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임종의
소식을 듣고도 아내만을 고국으로 보내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논문심사를 마치고 박사가 되어 귀국한 정박사는 여러 학교를 찾아
교수 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오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던 정박사는 속칭 '보따리 장사'라고 하는
시간강사가 되었고, 아내는 학원강사가 되어 가정을 꾸려갔다.
그러나 돈은 늘 모자랄 뿐이었다.

또한 정박사의 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누더기를 입고 나타나
꾸짖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놈아!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버지의 꿈, 가난한 살림, 몇 년째 시간강사 신세 등으로 정박사의
신경은 갈수록 날카로워졌고, 아내와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차츰 살아있다는 것까지 구차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충남 천안 광덕사를 찾은 정박사는 한 스님으로부터
영가 천도에 관한 말씀을 듣고, 광덕사 명부전의 지장보살님 앞에서
발원을 하였다.

"지장보살님! 불효자식에 대한 한을 품고 땅에 묻혀 계신 아버님을 위해,
49재를 지내는 마음으로 49일 동안 부모은중경 1부를 사경하고
지장보살본원경을 1백독 하겠나이다. 부디 아버님을 극락왕생케 하소서."

집으로 돌아온 정박사는 그날부터 지장보살님 앞에서 발원한 대로
실천을 하였다. 그러나 한 차례 읽는데 2시간씩 소요되는 지장경을
두번씩 읽고, 한시간 가량씩 부모은중경을 쓰는 것이 여간 힘들지않았다.
강의 등 평소 생활을 그대로 하면서 하루 5시간을 더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박사는 적당히 타협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생각을 경책하면서
불효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잠을 줄였고, 버스 속에서도 지장경을 읽어
지장보살님 앞에서 한 약속을 지켰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제사를 지내고 잠이 든
정박사는 꿈에서 다시 아버지를 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전처럼
누더기를 입지않고 아주 좋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은 아니었구나. 네 덕에 이 아버지는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좇아 달려가다가
정박사는 깨어났다. 그 뒤부터 정박사의 꿈에는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해 가을 전문대학의 교수로 채용되었다.

이 정박사의 경우처럼 영가천도는 당사자가 직접하여야 한다.
굿을 한다고 하여, 부적을 쓴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서 올리는 천도재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절에 계신 부처님이나 신장, 그리고 기도를 하는 스님들도
'나'의 정성에 감응하여 움직여주시는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영가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도 '나'요, 천도를 하여 복되게 사는 것도
'나'라는 것을....... 그런데'나'의 문제를 어떻게 남에게
미룰 것인가?


내가 직접 하겠다는 자세와 각오가 없으면 천도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3. 금강경독송으로 삼촌의 영가를 천도하다.




1988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있는 울산 학성선원에
다니는 불자중 미장원을 하는 미혼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고향은 경상남도 진영으로, 가족으로는 과수원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오빠,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었다.

또 그녀에게는 숙부가 있었는데, 진영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매일같이 술만 퍼마시고 살았다.

어느 해, 추석전날 아버지는 동생인 숙부에게 장에가서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오도록 시켰다. 그러나, 해가
저물었는데도 숙부는 돌아오지 않았고, 대신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일러주었다.

"자네 동생이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 쓰러져있는데,
죽은 것이나 아닌지 도무지 깨어나지 않네."

온 가족이 마을 사람을 따라 현장에 가보았더니, 호흡과
맥박도 멎고 손과 발도 식어있었다. 오직 가슴만 따뜻할
뿐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명절 전에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집에 두지않고 바로 산에 묻는 풍속이 있었다. 그 풍속대로
가족들은 숙부를 산에 묻게되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였다. 그 숙부의
영가가 '죽지도 않은 나를 파묻었다'며 보복을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시집을 간 언니에게서 먼저 시작되었다. 언니가
갑자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살림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는 수없이 친정에 데려다놓았더니, 집에 사람이 없을 때
혼자 집을 나갔다가는 집을 찾아오지 못했다. 그 때마다
온 집안과 동네사람들은 언니를 찾아 헤매어야했다.

가출이 잦아지자 그녀는 언니를 울산으로 데려와, 낮에는
미장원에서 밤에는 집에서, 하루 24시간을 함께 지내야했다.

또, 멀쩡했던 막내동생도 군에서 제대를 한 뒤부터 정신이
이상해져서, 칼이건 낫이건 손에 잡히는대로 들고 가족을
죽이려하였다. 할 수없이 가족들은 그 동생을 기둥에 묶어놓고,
어머니가 하루 세 끼밥을 떠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어야만했다.

집안이 이 지경에 이르러 굿도 여러차례 하였지만 효력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그 녀가 학성선원으로 찾아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방법을 묻기에 말하였다.

"안 죽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숙부를 그냥 땅에 파묻었으니
그 원결(怨結)이 얼마나 깊겠느냐? 지독한 원결은 지극한
기도가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 하루에 한글 금강경을 21번씩
백일동안을 읽을 수 있겠느냐?"

미장원을 하는 그녀가 하루에 금강경을 21번씩 읽으려면
잠을 제대로 잘 수조차 없기때문에, 참으로 무리한 주문이라
하지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 힘들겠지만 해보아라. 집안을 위하여 작은
아버지를 천도해 드려라."

그리고, 10 여일이 지났을 때 그녀가 다급한 음성으로
전화를 하였다.

"스님, 언니가 집을 나갔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그만 내버려둬라. 길거리에 쓰러져 죽었으면 그만이고,
살아있으면 기도 마칠 때쯤 찾아올거다. 언니를 찾으려하지말고
기도나 열심히해라."

"그래도 스님...."

"내 버려둬. 너에게는 기도하는 일이 더 바빠."

그녀는 금강경 독송의 기도를 계속하였고, 백일을 다 채우기
7일을 앞두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진영의 집에서 온 전화로,
울산역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언니를 데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으니
가보라는 것이었다.

과연 언니는 그 집에 있었고, 음식점 주인은 언니를 보호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약 70일전, 얌전하게 생긴 아가씨가 음식점으로 들어왔는데,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완전 거지옷이오, 얼굴에는 때가 가득
묻어있었으며, 이름도 사는 곳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사다가 입혔더니,
그 집에서 나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틀 전에
말을 하였다.

"우리 친정집은 진영입니다. 아버지는 과수원을 하시고요."

그리고는, 아버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억해내어 집으로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백일기도가 끝나기 7일 전에 기억을 회복한 언니는 다시
시댁으로 들어가 아기를 낳고 잘 살고 있으며, 가족을 죽인다고
했던 막내동생도 예전의 상태로 돌아와 착하게 살고있다.


또 그녀는 기도를 하다가 이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사랑으로는
맛볼수없는 깊은 환희를 맛보게 되었고, 지금도 모범적인 불자로
잘 살아가고있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4 우룡큰스님저 영가천도


옮긴이의 말:


영가천도를 위한 경전독송에는 한문을 직독직해할 실력이 되지않는이상 잘 번역된 한글경전으로
소리내어서 독송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공부많이하신 분들이 하나같이 이르시는 말씀입니다.

또한 영가천도 기도에 경전을 묵독하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아주 큰 소리로 할 것까지는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이상 조금 크게 영가님들께 들려드린다는 자세로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경전독송을 통해서 영가천도가 되지만 때로는 사경, 절, 주력, 염불과 같이 하기도하고 그것도 마음대로
순서를 할 것이 아니라 검증되고 잘 조화가되는 조합으로 하여야합니다. 임의로 이것저것 갖다붙여서 하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3배, 발원문3회독송, 지장보살본원경1편(=1권) 독송, (108참회), 나무지장보살염불 1080번, 광명진언 108번, 3배
이렇게 영가천도기도하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기도외 시간에도 광명진언을 끊임없이 소리내어 외시면 좋습니다.

매일 최소한 광명진언을 1080번이상은 외시는 것이 좋습니다.

.........................................................................................................................................................................

죽음의 종류와 영가천도 (우룡큰스님 법문)


오늘 법문은 ‘죽음, 어떻게 대비하고 다스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신도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일이 무엇일까요? 흔히 요즘은 돈 세상이라 하며, 돈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돈을 벌어서 재산을 모으는 일이 가장 큰 일일까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은 명예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데, 그 명예가 가장 중요할까요?

아니면 천하를 휘두를 권세를 잡는 것이 가장 보람있는 일일까요?

아니면 결혼을 하여 2세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일까요?

인간살이에서는 돈도 벌어야 하고, 명예나 권세도 필요하고 중요할 때도 있으며, 가정생활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중생살이입니다.

그러나 돈이나 명예나 권세는 허망합니다. 거기에 인생을 바칠 수는 없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갖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가장 큰 일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큰 일은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일입니다.

자기의 생사문제보다 인생사에서 더 크고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이 세상이 존재하며 내가 있어야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으며, 나 없는 세상 무슨 뜻이 있으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희망이요 환희요, 행복이요, 축복이요, 존재 자체이며, 그 무엇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리하여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출생하면 기뻐하고
경사났다 하며, 축하하고 잔치도 벌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집안에 송아지가 나고, 강아지가 태어나도 주인은 싱글벙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이웃이나 친지에게서 축하도 받습니다.이와 같이 출생은 기분좋은 일이고 즐거운 일이며, 축복받을 일입니다.

이 출생이야말로 인생의 대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출생은 괴로움의 시작이요 죽음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출생의 끝은 죽음입니다.이 세상에 죽음처럼
확실하게 오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 있는 물체는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반드시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을 피할 곳은 이 세상에 아무데도 없습니다. 죽음에는 남녀노소(男女老少)도 없고, 빈부귀천(貧富貴賤)도 없습니다.

천하장사(天下壯士)나 영웅호걸(英雄豪傑)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효자라도, ‘너 나대신 죽을래?’하면 펄쩍 뛸 것이며,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죽음을 부탁하면 화를 벌컥 낼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비참하고 괴로운 것이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속담에도,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하고 “죽은 석숭(石崇, 중국 진나라 때 큰 부자)보다 산 돼지가 낫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죽음을 큰일 중의 큰일이라 합니다.경(經)에는 죽음의 종류가 네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수명이 다하여 죽는 죽음’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죽음을 말하는데 수명이 다해 죽는 것은, 비유하자면 기름이 다 타고 나면 등불이 자연히 꺼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수명이 다하여 자연스럽게 죽는 것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목숨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더 살려고 몸부림치고 괴로워 해도 때가 되면 한 줌의 흙이나 한 방울의 물로 변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기간은 생명체에 따라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기도 하고, 봄·여름에 생겨서 가을·겨울에 없어지기도 하고, 몇십 년 몇백 년을 존재하다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비록 빠르고 늦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둘째는 ‘복이 다하여 죽는 죽음’입니다.

경에 이르시기를, “세간 사람들은 생사도 모르고 육안으로 죄와 복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일체 중생의 목숨은 마치 물거품이 기(氣)가 다하면 소멸하듯이 자신이 지닌 복의 과보가 다하면 죽게 됩니다. 이는 많은 재산을 흥청망청 다 써버린 부자가 전락하여 끝내 굶어죽거나 얼어죽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 번째의 유형은 ‘뜻밖의 죽음’입니다.

보통 말하는 횡사(橫死)입니다. 나이나 건강으로 보아서 아직 죽을 때가 안된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경우입니다.

요즘 많이 일어나는 교통사고라든가, 전쟁에 끌려가서 전사(戰死)한다든가, 화재로 죽는다든가,
남에게 타살된다든가, 호랑이나 늑대 같은 짐승들에게 물려죽는 등 불의의 사건이나 사고로 죽는 것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죽음’입니다.

앞의 세가지 죽음은 예측할 수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도 없지만, 자유자재한 죽음은 스스로 알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죽음입니다. 이런 죽음을 생사해탈의 경계라 합니다.

수행이 깊은 고승들처럼 생사가 자유로워 태어나고 싶으면 태어나고, 죽고 싶으면 죽는 죽음입니다.이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앞에서 죽음은 가장 비참하고 처절하며 누구나 두려워하고 피하려 한다고 했지만, 그 죽음도 수행만 잘하면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고 웃으면서 갈 수도 있습니다. 선가에서는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데 비유합니다.
옷을 입다가 옷이 낡거나 때가 묻으면 갈아 입듯이 새 몸을 받는다고 합니다.

수행이 대단한 선사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보통 예언을 합니다.

“내가 모일 모시에 가겠다”고 합니다. 이 예언은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 수명이 그 날 그 시까지 밖에 안 된다는 수명의 기한을 말하는 경우도 있고, 그 날 그 시까지만 살다가 죽겠다,
자기의 의지, 자기의 뜻을 밝힌 예언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기한을 말한 것보다 자기의 의지를 밝힌 경우가 더 대단하다고 봅니다.

옛날에는 어떤 큰 스님이 입적(入寂)하시면 문상간 객스님의 첫마디가 “어떻게 가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갔느냐, 즉 앉아서 갔느냐, 서서 갔느냐, 아니면 세속의 보통 사람처럼 인사불성인 상태로
괴롭게 갔는지 묻고 그것으로 그 스님이 도인인가, 보통 스님인가를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고승이라면 대부분 좌탈입망(坐脫立亡), 앉아서 가셨습니다.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처럼 꼿꼿하게 앉아서 정진하다가 가신 분도 있고, 어떤 대선사는 점심 공양하고 대중스님과 함께 차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서면서, “나는 갈라네”하기에 처소까지 모셔드렸더니 앉자마자 “잘 있어”하면서 가시더랍니다. 어떤 스님은 서서 돌아가신 분도 있고, 어떤 스님은 높고 높은 미류나무 위에 올라가서 돌아가서 제자들이 시신을 내리는데 애를 먹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중국 당(唐)나라 때 등은봉(鄧隱峰)화상의 죽음은 유명합니다.

어느 날 스님은 대중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였습니다.

“제방의 큰 스님들이 돌아가실 때 앉아서 가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것이야 신통할 것이 없는 것이고,
선 채로 몸을 바꾸면 좀 신기하다고 할까?”

어떤 고승이 대꾸합니다.

“그렇습니다. 서서 간다면야 좀 특별하지요. 그러나 없었던 일은 아닙니다.

3조 승찬(僧璨)대사께서 큰 나무 밑에서 선 채로 대적정(大寂靜)에 드셨다는 기록이 있지 않습니까?”

은봉스님이 말을 받습니다.

“그렇지, 그러면 거꾸로 서서 갔다는 선사는 없는가?”

대중이 말이 없자,
“나는 거꾸로 서서 가야 겠다” 합니다.

순간 노인답지 않게 두 손으로 땅을 짚자마자
다리를 공중으로 번쩍 들고 거꾸로 서는 것이었습니다.

대중스님들이 아연실색하여 여기 저기서 모여 들었습니다.

화상은 거꾸로 선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입고 있는
법복이 조금도 흘러내리거나 벗겨지지 않고 몸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 소문이 퍼져 신도와 일반인이 구름같이 모여서 찬탄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에 장례식을 올리기 위하여 시신을 납관(納棺)하게 되었습니다.

시신은 여전히 거꾸로 선 자세 그대로 꼿꼿하여 아무리 밀고 당겨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중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황당해 하였습니다.

이때 한 여승이 대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더니 시신을 보고 꾸중을 하였습니다.

“오라버니 스님, 이 무슨 짓입니까? 살아서도 기행(奇行)을 하더니 열반에 들어서도 이렇게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까?”그러자 그렇게 꿈쩍도 않고 거꾸로 서있던 시신이 여동생이 손끝으로
슬쩍 밀자 힘없이 넘어졌습니다.이 여동생 스님도 오래 전에 도를 깨친 선승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실화입니다. 아주 대단한 스님은 이렇게도 죽음을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여러분과 같은 불교 신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중국 당나라때 방온(龐蘊, ?∼808)이라는 유명한 불자가 있었습니다.
불교 역사상 인도의 유마(維摩)거사와 쌍벽을 이루는 대단한 도인입니다.

방거사는 자기뿐만 아니라 부인과 아들 딸까지 일가 4인이 모두 도를 깨쳐
“사자굴 가운데 다른 동물이 있을 수 없다”라는 말과 같이 도인 아닌 사람이 없었습니다.
방거사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과거(科擧)보러 가는 길에 어떤 스님을 만났습니다.

“어디 가십니까?”“과거 보러 갑니다.”

“그래요? 과거에 합격해서 관(官)에 뽑히는 것보다 부처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방거사는 곰곰이 생각하니 부처되는 것이 바르고 더 좋은 길일 것 같아 길을 바꾸어
당시에 선승으로 유명한 마조 도일(馬祖道一)스님의 문하로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여 크게 깨치게 됩니다.

방거사는 부모에게서 상속한 재산이 많은 갑부였는데, 재물은 허망하여 도 닦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하며,
일부는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눌 수 없는 것은 동정호(洞庭湖)에 쳐넣고 맙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의식주는 해결해야 악업(惡業)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대나무로 조리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시장 바닥에서 무우 몇단 배추 몇포기를 놓고 팔아도 그만 못 팔아도 그만 오직 수행하며 살았습니다.

말년에는 호북(湖北) 양주 땅에 들어가 바위굴로 집을 삼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걸림없이
한가한 도인이 되어 살았습니다.

거사가 죽을 때가 되어 암굴 속에서 밖에 있는 총명한 딸 영조(靈照)를 불러 물었습니다.

“해가 어디까지 왔느냐? 오시(午時)가 되거든 알려라.”

영조가 대답합니다.“해가 이미 중천에 있습니다. 아버지, 일식을 하니 빨리 나와 보십시오.”

거사가 문밖으로 나가서 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사이 영조는 방으로 얼른 들어가 아버지가 좌선하던 자리에 앉아서 합장한 채로 가버립니다.

죽음을 그렇게 마음대로 한 처녀 도인도 있었습니다.

거사는 해를 보고 방으로 들어가서 보니 딸 영조가 방거사의 마음을 헤아리고 먼저 죽은 모습을 보고는,
보통 아버지들 같으면 울고불고 야단들이겠지만 “내 딸이 아주 재빠르구나” 한마디 뿐이었습니다.

깨친 사람의 분상에서는 죽음도 슬퍼하고 괴로워 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거사가 딸 영조의 다비를 마치고 일주일 되던 날입니다.

그 고을의 태수(太守) 우적이 암굴을 찾아왔습니다.

두사람은 오랜만에 만난지라 그간 쌓였던 정회를 풀고,
도에 관한 여러 가지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거사가 문득 일어나더니, 읊습니다.

“빈꽃의 그림자는 어지러이 떨어지고, 태양불꽃의 파도는 거세게 물결치는구나”

거사는 앉더니 태수의 무릎을 슬그머니 배고는 영구히 침묵하여 입적(入寂)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멀리 떨어져 있는 부인에게 전하였더니 조금도 놀라거나 슬퍼하는 기색이 없이 담담하게 원망하였습니다.

“이 어리석은 딸과 무지한 늙은이가 나한테는 알리지도 아니하고 가버렸으니 이럴 수가 있는가.”

태수의 사자가 방거사의 아들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전하였습니다.
이 때 아들은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사자로부터 애통한 소식을 듣고도 얼굴조차 변하치 않았습니다.

다만 김 매던 호미를 놓아버리면서 “그래요?”하고 대답하더니 서서 가버렸습니다.

사자는 아들이 간 줄도 모르고 얼마를 있어도 마치 고목나무처럼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기고
건드려 보니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놀라고 당황한 사자는 쏜살같이 부인한테로 달려가서 이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못난 자식 같으니……”비통해 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못났다고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 부인은 녹각사(鹿角寺)라는 절에서 남편과 아들 딸의 재를 지냈습니다.

유나(維那)스님이 부인에게 회향축원을 청했습니다.

부인이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뽑아서 머리 뒤에 다시 꽂고 나서 “회향을 다 마쳤습니다.”하고 곧 나가 버렸습니다.
대단한 법문입니다. 후에 부인은 고향 사람들에게 고별인사를 하고 떠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불자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아마 못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죽음도 옷을 갈아입듯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수행의 힘입니다.

수행이 지극하여 깊은 선정에 들어가면 생사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이상은 자기의 성품을 보아 스스로 부처가 되고 열반(涅槃)의 경지에 들어가 생사까지도 초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본래는 부처입니다.
래 부처라는 것은 본바탕은 부처님과 꼭 같다는 것입니다.
즉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생사까지도 초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안 할 뿐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죽음이 두렵고 내생이 걱정스럽거든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수행하십시오.

염불을 하든지, 주력을 하든지, 아니면 선을 하든지 어느 한 가지는 반드시 하십시오.

수행법 중에서 최상승법은 화두참선입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과 진정한 보람은 수행에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수행을 깊게 해서 깨달음을 얻고 열반을 성취한 사람은 사후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진리의 세계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사후를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수행이 산 사람이 생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이라면,
천도(薦度)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다스려 주고 선도(善途)에 태어나게 해주기 위한 의식입니다.

수행이 누구나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듯, 천도도 영가를 위하여 반드시 해야 되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한줌의 흙이나 물로 변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숨이 떨어지자마자 육체를 떠납니다.

육체를 벗어난 영혼을 불가에서는 영가라 하고, 중음신(中陰身)이라고도 합니다.

이 영가 중음신이 전생의 업에 따라서 새 몸을 받아 윤회하면서 살아가는 세계를 크게 나누어 3계(三界)라 하고,
이를 세분하여 6도(六途)라고 합니다.

3계는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로 나눕니다.

중생들의 탐욕의 정도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한 것입니다.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있듯이 우주도 중생의 마음에 의해 건립된 것입니다.
따라서 중생의 마음의 차이, 즉 정신적인 욕구의 차이에 의해 살기 좋은 세상 또는 그렇지 못한 세상이 생긴 것입니다.

욕계는 욕망의 세계, 곧 욕심이 많은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말합니다.

욕망은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물질욕, 음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 등이 극심한 세계,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욕계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욕계입니다.색계는 물질 위주의 세계를 뜻합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물질은 아주 아름답고 깨끗하기 때문에 욕계의 오염된 물질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세계는 욕계의 중생보다 복력이 월등하게 많은 중생들이 태어나 복락을 누리는 세계입니다.
무색계는 앞의 두 세계와는 달리 비물질적인 세계,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입니다.
무색은 물질이 아닌 진리의 체성(體性)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중생들은 아직은 정신적으로 아주 작은 번뇌가 남아 있으므로 완전한 낙원이 아니고
사바세계의 중생에 속합니다. 하지만 욕계와 색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평화와 복락이 많은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삼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며, 이곳에서 더욱 정진하면 마침내 중생의 탈을 벗고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곳입니다.

중생은 이 세계를 윤회하면서 나고 죽고를 되풀이 하는데, 이를 삼계윤회라 하고 비록 무색계는 살기 좋은 곳이긴 하지만
복락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기 때문에 이를 마치 불난 집과 같다고 하여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 합니다.

다음은 육도(六道)가 있습니다. 도(道)는 길(途)과 같은 말이고 또 취(趣)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취(趣)는 간다는 뜻의 한자말입니다. 어떤 절대자나 주재가 있어서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
스스로가 자신은 지은 업력에 따라 끌려가서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가서 난다’는
뜻으로 왕생(往生)이라 하고, ‘길’이라든지 ‘취’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육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갈래길을 말합니다.
앞의 셋은 악도(惡道) 또는 악취(惡趣)라고 하는데 악한 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길이고,
뒤의 세 길은 선업을 많이 쌓은 중생이 태어나는 길입니다.

지옥도(地獄道)는 가장 악한 죄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지옥은 ‘지하의 감옥’이라는 뜻으로 경전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인간계에서
지하로 2만 유순 가량 내려가면 있다고 합니다.

지옥 중에서도 가장 아래층에는 무간지옥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위로 차례 차례로 8대 지옥이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8대 지옥은 같은 지옥이지만 그 업력에 차이가 있어 최초의 지옥은 죄업이 가벼운 중생이 태어나고,
최후의 지옥인 무간지옥은 가장 극악한 죄인이 태어나는 곳으로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입니다.

무간지옥은 ‘고통이 쉴새 없다’는 뜻으로 무간이라고 합니다.

아귀도(餓鬼道)는 우리가 보통 귀신이라고 하는 존재와 같습니다.
전생에 악업을 짓고 탐욕을 많이 부린 자가 아귀로 태어나는데 항상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아귀들의 생활은 각양각색으로 스스로 죄보를 받는 아귀도 있고 우리 인간계에 내려와 인간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아귀도 있다고 합니다.

이 아귀의 세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계에서 인간과 함께 거주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별도로 아귀들만이 사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부류입니다.

축생도(畜生道)는 짐승, 물고기, 곤충 등을 말합니다.
축생은 고통이 많고 즐거움은 적으며 식욕과 음욕만 강하여 부자형제간에도 의리가 없고
싸우고 서로 잡아먹기 때문에 항상 공포 속에서 살게 되는 괴로운 중생입니다.

아수라도(阿修羅道)는 육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세계입니다.

그러나 아수라는 성을 잘 내며 싸움을 잘하는 중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광경을 아수라장이라고 하는 경우도 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아수라는 앞의 삼악도와는 달리 삼선도에 들기도 하지만 악업을 지어서 태어나기 때문에
악도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선도와 악도의 중간지점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도는 바로 우리들을 말합니다.

인도(人道)는 천상 다음으로 선한 복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괴롭다고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천상보다 더 바람직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상은 복락이 너무 많아서 다음 생의 괴로움을 생각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복이 다하면 다시
더 낮은 세계에 윤회할 수 있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마음과 행실을 잘 닦으면 영원히 윤회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도(天道)는 하늘나라, 천상(天上), 천유(天有), 천계(天界)라고도 하는데, 육도 가운데 가장 높고 복력이 뛰어난
중생이 사는 세계 또는 그 중생을 말합니다.

천도에 사는 중생을 천인(天人) 또는 천중(天衆)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신(神)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이상 삼계와 육도는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인간이 바라는 이상의 세계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벗어나기 위하여 수행을 해야 하고 천도가 필요합니다.

천도는 전생에 지은 업이 두터워 지옥세계, 아귀세계, 축생계와 같은 악도에 떨어질 영가나 중음신으로
새 인연을 맺지 못하고 우주 고혼이 되어 떠돌아 다니는 영혼에게 부처님의 진리의 법음(法音)을 들려주어서
영가 스스로 깨닫게 하고,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의 가피를 입게 하며, 스님들의 법력과 유가족들의 공덕으로
새 인연을 맺어 극락세계나 천상세계, 인간세계 또는 아수라세계 등 선도에 태어나게 하는 의식입니다.

천도의 종류에는 49재 천도와 일반 천도, 특별 천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49재는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매 7일마다 재(齋)를 베풀고 선도로 인도하는 의식입니다.
특별천도재는 49재를 올려도 천도가 되지 못하고 100일, 1년, 수년, 수십년 심지어 수백년이 지나도
천도가 안 되는 영가를 위하여 특별히 베푸는 재입니다.

이런 영가는 지난 생애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천도가 어렵다고 합니다.

일반천도재는 7월 백중 우란분재(盂蘭盆齋)처럼 법계(法界)의 유주무주(有主無主)
모든 고혼을 다 모시는 재를 일컫습니다.

천도의 방법에는 보통 염불천도(念佛薦度), 독경천도(讀經薦度), 사경천도(寫經薦度)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염불천도는 이름 그대로 불보살님의 명호를 지극하게 간절하게 불러서 그 가피력으로
영가를 좋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천도법입니다.

천도할 때 많이 부르는 불보살님의 명호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입니다.
어느 불보살님이나 영가를 천도시킬 권능은 있지만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의 서원력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아미타불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중생은 누구나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근본 원을 세우고 있으며,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삼악도를 벗어나도록 하고 마침내는 육도윤회로부터 해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단한 서원을 세운 분입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그 원력에 의지하게 되면 영가가 그 분들의 가피를 입어
선도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염불천도입니다.

둘째, 독경천도입니다.

독경천도는 영가에게 공덕이 될 경전을 읽어줌으로써 천도하는 법입니다.
공덕경(功德經)에는 『금강경』, 『아미타경』, 『지장경』, 『관음경』, 『법화경』등을 많이 읽습니다.
공덕경 중에서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택하여 천도 기간 중 매일 몇 번씩 또는 몇 수십 번씩 읽어주면 됩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빠뜨리는 날이 없어야겠습니다.

공덕경을 읽을 때는 이해할 수 있는 경전을 택하십시오.

한문 경전을 많이 읽는데, 한문 해독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문 원문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한문 해독이 충분하지 못한 이는 한글로 풀어 해석해 놓은 것을 읽으십시오.

읽는 사람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영가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가는 육신이 없고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존재이므로 독경자의 이해가 꼭 선행되어야 합니다.

경전을 읽을 때는 영가를 앞에 모시고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려 준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껏 읽어야 합니다.

그냥 계획대로 읽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정성도 없이 집중하지도 않고 읽으면 영가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뜻을 새기듯이 이해하면서 성심성의껏 읽으십시오

셋째는 사경천도입니다.

경전을 한자 한자 정성껏 씀으로써 영가를 깨닫게 하여 선도로 인도하는 천도법입니다.
어떤 스님은 법화경 사경천도를 하는데 한 자 한 자를 정성껏 쓰고 지장보살을 간절하게 부르며
삼배를 하고 또 한자 한자를 썼다고 합니다.

사경은 앞에서 말한 공덕경 중에서 하나를 택해서 시간을 정해놓고 쓰든지,
양을 정해놓고 쓰는 것도 좋습니다. 쓰는 도구는 붓이 좋지만 펜이나 싸인펜을 사용해도 좋습니다.

독경과 사경을 함께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또 염불과 독경과 사경을 하면서 공덕경이나 다른 경전이나 어록을 택해서 법보시를 한다든가
방생을 하는 것도 영가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천도법 중에서 염불천도가 불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영가의 천도를 하는 천도법이라면, 사경천도와 독경천도는 법보(法寶)에 의지하여 법문을 영가에게 들려주고 영가의 이름으로 공덕을 쌓아 줌으로써 천도를 시키는 것입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백 세의 부모도 천도가 된다”하였고, “극악무도한 영가도, 악업을 지은 영가도 천도되어 선도에 태어나거나 천상락(天上樂)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영가천도를 하면 영가에게만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유가족에게 더 큰 이익이 따릅니다.

『지장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이를 위하여 재를 지내면 그 공덕의 7분의 1만 죽은이에게 가고 7분의 6은 재를 지내는 사람에게 간다”고 하였습니다.

천도재는 단지 가신 사람의 명복을 빌고 제도하는데 그치지 말고,
자기 천도의 기회를 삼아 새롭게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되게 해야겠습니다.
천도재는 영가를 위한 효행(孝行)중의 효행이요, 선행 중의 선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가족이 망자를 위해 아무리 괴로워하고 몸부림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도재는 영가와 인연만 계합되면 선도에 태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악도에 태어날 영가를 좋은 세계로 안내하고 인도하여 제도하는 것은 영가를 위해서 최상의 공덕이 될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사람은 나이 40세만 되면 죽음을 준비해야 된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무슨 말이냐, 한창 나이에!”하며 펄쩍 뛰실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준비된 죽음을 맞이해야 됩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올 수도 있고, 한밤중에 급습하듯이 올 수도 있습니다.

언제 오더라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고, 웃으면서 맞이한다든가, 자유자재로 맞이해야 잘 사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되거든 수행을 깊숙이 하여 염불하시는 사람은
염불삼매(念佛三昧)는 꼭 들어보시고, 참선하시는 분은 선정(禪定)에는 꼭 들어 보십시오.

그 경계만 되어도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고 생이 곧 사요,
사가 곧 생이라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런 정도를 체험하면 죽음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이해가 되고,
천도는 왜 해야 하는지 바로 느끼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고, 법당에 들어가면 부처님께 절이 저절로 나오고,
존안(尊顔)을 바로 뵙기가 송구스럽고 고마운 눈물이 앞을 가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띠끌세계를 벗어나서 본 모습이 드러나니밝고 묘하고 신령(神靈)하도다
한 점의 공적영지(空寂靈知)여 일체를 벗어났고 일체를 초월하여 생사까지도 초탈하였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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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불정존승다라니 영험담

1.

부산 연지동에 사는 이혜진씨의 이야기이다.

이 보살님은 갑상선 후두암으로 항상 병마와
싸우며 병원을 전전하며 살아야했다.

착하고 고운 심성으로 이웃을 돌보며 살아온
그녀로서는 이 괴로운 나날이 무척이나 힘들고
한탄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보살은 이름모를 스님 한 분
을 우연히 만나 가슴 속에 있는 병마와함께
느끼는 고통을 그 스님에게 하소연하였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그 스님은 엷은 미소와
함께 경전하나를 그 보살님의 손에 쥐어주면서
이야기하시기를

"이 경전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높은 경지의
불정존승다라니경이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수지독송하고 불심으로 천 번을 사경해
보십시오."

보살님은 고마움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그 스님
의 말씀을 생활속에 옮겨 열심히 공부에 전념
하였다.

그 기도가 절반을 넘어 칠백 회 사경에 이르렀을 때
"불정존승다라니경" 주위에 기이한 빛과 신비로운
향기가 책 주위를 맴돌더니 그 보살님의 몸을 휘감아
도는 것이 아닌가!

그 상서로운 부처님의 영험한 증험을 보고 보살님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더욱 더 정진하여 기도를 마
쳤을 때는 불치병으로 따라다니던 후두암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대학병원을 찾아 마지막 진료를 받은 결과

"중증이라 치료가 도저히 불가능하였었는데...정말
기적입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살님은 이 모든 것이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과 그 스님
의 은공이라 생각하여 스님이 계시는 문수사를 찾아서
그 곳에 다니며 지금도 열심히 기도와 정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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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 영도구 청학동 백련사에 다니는 노보살님에게는
사법시험에 다섯 번 낙방한 아들이 있었다.

힘든 가정형편에 모든 것을 투자하여 일심으로 뒷바라지
한 노보살에게는 이번 시험이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시험이 될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이요, 그 아들 또한 그러
하였다.

지극 정성으로 부처님께 엎드려 귀의하는 노보살의 눈물겨움이
하늘에 닿았는지 주지스님께서 불정존승다라니경을 한 권 주시
며 기도방법을 일러주셨다.

노보살은 외우고, 쓰고, 독송하며 일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였
고, 그 아들 역시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21편 사경하고 21편
독송함을 하루도 그치지않았다한다.

1998년 사법시험에 그는 당당히 최종합격하였고, 지금 현재는
창원지검에서 존경받는 검사로 근무중이라한다.

불정존승다라니경을 읽은 후 이루어진 영험록에 관한 이야기들은
수없이많다.

병이 나은 사람, 취직이 된 사람, 돌발적인 사고를 모면한 사람 등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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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에 다니던 양미란씨는 우연히 불정존승다라니경을 얻게되어
소중히 지니고 하루도 빠짐없이 21편씩 독송하면서 기도하였다.

얼마 후 그토록 힘들다는 모기업 입사시험에서 65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취직이 되었고

불치병 백설풍이 얼굴까지 번져 괴로워하던 어떤 보살은 불정존승다라니경
5000권을 찍어 법보시하였더니 무서운 피부병이 치유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불정존승다라니경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최상의 높고 높은 진리의
다라니이며 모든 악도를 깨끗이 하는 경전이므로 항상 지송하고
수행하며 여러 고뇌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널리 펼치어 현세에는
업장소멸하고 내세에는 성불하옵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 기원드리는
바입니다.

나무 불정존승다라니경


출처

발행처: 대각선원
인쇄처: 도서출판 계림

2006년 10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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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무아미타불카페 아비라 훔님 불정존승다라니 독송영험담

불정존승다라니라는 다라니를 사이트에서 검색하여 다시 시도를 해보았고
제게 제일 잘 맞는 다라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정존승다라니의 가장 큰 특징은 천수다라니와는 거꾸로 단전으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머리끝까지 차서 다시 거꾸로 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뜨거워서 입이 마르는데 그렇게 얼마간 지나면 입안에 침이
돌기 시작해서 뜨거우면서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천수다라니 빼고 가장 많은 독송한 다라니로 정말 너무 많은 체험들을해서
필설로는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다라니의 가장 큰 특징은 폐부에 깊이 스며들어 호흡기가 약한 사람이나
폐쪽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가장 탁월한 효과를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다라니를 하게되면 절대로 감기에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다라니는 일정시간이 지나면 빠지기 시작해서 보충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 다라니는 많은 보충을 필요로 하지 않고 아주 오래 체내에 남습니다.

보통 다라니를 오래해서 몸이 변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기운들을 감지하게되고 오염을 받게 되는데 이 다라니는 주위에 강한
필드를 형성을해서 그런 것을 막아주고 효과적으로 정화시켜줍니다.

그리고 빙의제거에 매우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고 저도 그로인한 많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 다라니를 하는 동안 꿈속에서 직접 관정을 받기도하고
두번에 걸쳐 UFO와의 조우도 하였고 많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으로는 고차원의 영적 존재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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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금강반야사에 다니시는 금강심 보살님 친구분이 버섯재배 하시는 분인데
허리가 아파 가보니 병원에서 척추암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서울의 병원에 가 진단을 받으니 또 척추암이라고 합니다.
하도 요즘 오진이 많으니 마지막으로 다른 병원에 가 보았는데도 역시 척추암이라 합니다.

그래서 금강심보살님이 불정존승다리니를 주면서 기도하라고 했는데 발음이 익숙하지 않으셨던지
독송 대신 사경을 했다고 합니다. 계속 사경을 하다가 수술 날짜를 받고 수술을 하려고 칼을 대 보니
암이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너무 너무 좋아서 불정존승다리니 사경하신 것을 옆에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고 하네요.

나무불정존승다라니

나무불정존승다라니

나무불정존승다라니

아 참 스님께도 고맙다고 직접 만든 대추엑기스도 한 박스 주셨네요.~^^


출처: blog.naver.com/bo97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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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朝議大夫조의대부 겸 侍御史시어사 무철의 글




<불정존승다라니>란 일체 여래의 비밀을 담고 있는 곳집이요, 總持의 法門이며, 大日如來의 智印지인이라, 吉祥스럽고 극히 淸淨하여, 一切惡道를 부수는 大神力을 가진 다라니니라.

옛날 儀鳳의봉년간에 인도의 붓다빠리가 전한 本본이 천하와 사찰에 두루 퍼져서 지송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어려서부터 항상 잊지 않고 지녔었는데, 영태 첫해에 아내를 잃고 난 뒤에 간절함을 배로 해서 出離法출리법을 구했다.

그 때 殿中전중 시어사인 장나란 사람이 항상 이 다라니를 지송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내가 개인 방에 있는데 조연히 와서 말하기를, “내 이제 究竟의 道를 얻었다.”고 하기에 내가 범상치가 않고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이라 여기고 공경스럽게 물어보니 존승다라니라고 하기에 내가 그에게 외어보라 하니, 그 문장이 온전하고 넓었으며 글읽는 소리가 아름답고 (내가 외우는 것과) 많이 달랐다.

절하고 그것을 외운뒤에 말했다. “나는 이것을 王 開士에게서 받았으며, 왕 개사는 금강지 삼장에게서 받았는데, 금강지 대사가 이르시기를, ‘서쪽나라에서도 이 本본은 稀貴희귀하다. 내가 범본을 가지고 왔기에 비밀히 전하노라.’고 했다 한다.”

나는 앉은채로 기이하기 그지 없는 일이라고 감탄하고 나서 그에게 그 本을 구했지만 얻지 못하였다. 갑자기 장차 몸뚱이가 죽게 되면 항상 후회가 남을 것이요, 후회해도 소용없으리라 생각하고는 매번 정사(부지런히 정진하는 居士거사)들을 만날 때마다 곧 구하기 위해 물어보았다. ....

드디어 승제공을 만나니 과연 이 본문이 있었도다.

開元개원 년간에 오대산 아래에 정미롭게 수행하는 한 居士거사가 있었는데, 일이 있어서 遠行원행을 하느라 서로 떨어져 있던 중에 父親부친이 사망하는 바람에 집에 돌아와보니 만날 수 없자, 돌아가신 부친이 받은 善惡선악의 과보를 알고 보기를 바라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존승다라니를 수 십만번 외웠다.

하지만 정성과 바람이 간절했음에도 전혀 알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드디어 산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한 노인을 만났다.

그가 이르기를, “너는 진실로 다라니를 애써 부지런히 기억하여 잊지 않았다. 그러나 빠지고 생략된 문구가 많으니, 내가 이제 온전한 본래의 다라니 문구를 주겠다.”고 하기에 거사가 절하고 받으니, 천 번을 외우면 되리라고 했다.

그리하여 거의 수 일이 지났을 무렵에 밤중에 홀연히 고리로 된 노리개가 내는 소리와 피리 소리가 들리더니 뜰의 지붕으로 내려왔다. 이 때 거사가 놀라 일어나서 보니 수 십명의 天人의 무리가 한 사람의 天仙천선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가 앞에 와서 말하기를, “너는 나를 모르겠느냐?”

거사가 “모르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天仙천선이 이르기를, “나는 너의 애비다. 近年근년에 네가 존승다라니를 지송했기에 그 복의 힘을 내가 얻었고, 그런 뒤에 수 개월이 지난 이후에 쌓인 복은 앞서 네가 쌓은 복의 배가 되었다. 네가 다시 무슨 本본을 얻었기에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겠구나.

나는 이제 너의 힘으로 인해 天仙천선의 王왕이 되었다. 그러니 네가 持念지념한 功效공효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알겠구나.“

말을 마치고는 위로 올라가거늘 거사는 뛸듯이 기뻐하며 절하며 보내었노라.
그때부터 더욱 정진하다가 뒷날에 東京동경에 이르렀다.

왕소부라고 하는 오롯이 잘 수행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역시 불타파리의 존승본으로써 송지한 것이 수수만에 달했다.

홀연히 밤중에 꿈에 한 인도의 승려가 와서 말하기를, 어진이여! 염송하는 것이 매우 정성스럽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대가 외우는 本본에 약간의 잘못이 있어서 그 공덕이 얇도다.”고 하니 왕소부는 머리를 땅에 숙여 절하면서 참된 글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인도의 승려는 널리 본래의 문구를 주었다.

그가 문구를 입으로 전해주기를 마치자 문까지 승려를 바래다 주었다. 그 때 光景광경은 마치 대낮과 같았고 평상 앞에 되돌아와 보니 종 녀석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

홀연히 소리쳐서 깨워서 날이 밝았는데 왜 아직까지 자고 있냐고 꾸짖으니, 그 종녀석이 말하기를, “이제 겨우 한밤중입니다.”하기에 보니 홀연히 빛은 사라지고 저녁이었다.

왕소부는 이 기이한 일을 본 이후로 눈을 감고 외우되 정신이 또렷또렸하고 맑고 和暢화창하였다. 더욱 더 부지런히 정진했다.

天寶천보 첫 해에는 오대산에 있었던 왕거사와 왕소부 모두 동도에 있었지만 서로 알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홀연히 왕소부가 갑작스레 죽었다가 7일이 지나서 소생하였다.

城성 가운데 일을 벌리기 좋아하는 자들이 있어서 다들 그 까닭을 물으니, 거사 즉 왕개사도 함께 방문하여 다시 살아난 까닭을 물었다.

왕소부가 이르기를,

“내가 처음 누웠을 때 갑자기 두 관리가 와서 말하기를, ‘따라 오라.’하였다.

수 십리를 가니 한 큰 나무 아래 이르러서 두 관리가 쉬기에 나도 쉬었다.

홀연히 존승다라니가 생각나서 눈을 감고 21번을 외우고 눈을 뜨고 돌아보니 두 관리는 이미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잠깐 뒤에 네 사람이 또 이르러서 꿇어 앉고는 말하기를, ‘당신은 어떻게 수행했길래 이같은 이익이 있습니까? 전에 당신을 내쫓던 두 관리는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왕소부가 이르기를, ‘나는 다만 존승다라니를 외웠을 뿐이다.’라고 하니 네 사람이 말하기를, ‘오직 이 공력이 원인이었군요. 부디 저희에게 그것을 들려주시어 고난에서 구제해 주십시오.’

왕소부가 또 다시 그윽히 눈을 감고 21번을 외우고 눈을 떠보니 또다시 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공중에서 창과 갑옷 소리가 들렸고, 한 神人신인이 紫色자색의 옷을 입고 창과 갑옷을 끼고 있었으며 그를 호위하는 시종들의 威儀위의는 더욱 성했다.

앞에와서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나는 5道도의 冥府명부의 관리입니다. 지위도 높고 이름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神道신도에 속해 있기에 天上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전의 여섯 사람은 당신의 법력에 의해 각자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이제 부디 곡 마음을 굽혀서 걸음을 제가 사는 곳에서 외워 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이 외운 복의 음덕의 나머지에라도 적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서로 따르면서 한 비탈에 서 있는 집에 이르렀다. 네 모난 둘레가 수 십리였고, 모두 죄인들이 목에는 칼을 쓰고 발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으며, 손에는 수갑을 차고 있었다.

결박된 죄수들이 벌을 정하기 위해 북나무로 訊問신문받는 곳이었다. 神신은 왕소부더러 높은 자리에 올라 오게 하고 자신은 평상에서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들었다.

왕소부는 눈을 감고 다라니에 뜻을 두고는 49번을 외웠다. 그리고나서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보니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직 끊어진 칼과 부서진 나무 빈 칼만이 있을 뿐이었다.

왕소부는 놀랍고도 오싹했다.

홀연히 네댓 명의 사람이 와서 이르기를, ”왕께서 속히 보내어 나의 관아의 어려움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장부..하여 나의 명부의 벼슬 관아를 부수고는 드디어 왕소부를 몰아서 한 빈 계곡에 들어가게 했다. 문득 깨어나 숨을 쉬고 보니 살아난 것이었다. 실로 존승다라니의 불가사의한 공력이었다.

이리하여 오대산인과 왕개사와 왕소부는 이미 業因업인이 같아서 각각 지니고 있던 本본을 陳述진술해서 문구를 비교하면서 조사해보았다. 그랬더니 많거나 적거나 .....한 本과 같았다. 피차가 서로 축하했다.

왕산인이 말했다.

“내가 가진 본은 오대산의 성스러운 분께서 받았소.”

왕소부가 말했다.

“내가 가진 본은 神僧신승에게서 받은 것이라오.”라 하고,

왕개사는 “내가 지닌 본은 金剛智금강지 三藏삼장에게서 받은 것이라오.”라 했다.

그리고는 梵語범어로 새긴 경전이 있는 것을 보고 세 사람이 다 놀랐다.

함께 그 本을 조사해 보니 소리의 내용과 글자수가 일치했다.

그러므로 알라. 중생이 법을 듣고 교법을 유전함에는 어떤 때는 교법을 유포하고 어떤 때는 갓을 ..... 이는 곧 금강지 삼장의 범본에서 역출한 것이니 불타파리가 전한 본과 비교해 보니 문구가 약간의 차이만 있을뿐 대부분이 같았다.

舊本구본은 대개 9句구(문장이 끊어지는 곳) 69字자였는데 그 밖의 것도 불타파리본에는 다 같추어져 있었다.

僧승 惠琳혜림은대장경의 목록을 편찬하면서 대장경에 들어가지 않았던 600여권의 경과 아울러서 내가 기술했지만 빠뜨렸던 다라니감응영험을 거두었다. 나는 몸소 같은지 여부를 조사했다. 그리고 序言서언을 권말에 실었으니, 원화 14년 기축년이다. .

일찌기 명부의 관리에게 추궁을 당했지만 진언의 불가사의한 위력으로 마침내 모든 괴로음을 받지 않게 되었고 겸하여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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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불정존승다라니경 全文전문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羅尼經) 장경각발행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큰 비구 천이백오십인과 큰 보살 만이천인과 함께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시었다.



그때 삼십삼천 선법당(善法堂)의 모임에 한 천자(天子)가 있었으니, 이름을 선주(善住)라고 하였다.

큰 하늘들과 함께 동산에서 놀고 그들과 더불어 존귀함을 받았으며,

천녀(天女)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기쁘게 노닐면서 갖가지 음악으로 서로 즐기며 모든 쾌락을 누렸다.

밤이 되어 선주천자는 문득 이런 소리를 들었다.



"선주천자야, 너는 이레 후면 목숨이 다할 것이며

명을 마치면 남섬부주에 태어나 일곱번 축생의 몸을 받았다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게 되리라.

지옥에서 나온 뒤로는 사람 몸을 받아 빈천한 집에 태어날 것이며, 탯속에서부터 두 눈이 없으리라."



이 소리를 들은 선주천자는 깜짝 놀라 모골이 송연하고 두려움에 떨며 근심에 잠겨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곧 제석천에게 달려가 슬피 울며 예배드린 후 이렇게 아뢰었다.



"제 말씀을 들으소서. 저는 천녀들과 어울려 모든 쾌락을 누리다가 문득 이런 소리를 들었나이다.

'선주천자야, 이레 후면 목숨이 다할 것이며, 명을 마치면 남섬부주에 태어나 일곱번 축생의 몸을

받았다가 지옥에 떨어지리라. 지옥에서 나온 뒤에는 사람 몸을 받지만 빈천한 집에 태어날 것이며,

어머니의 태 안에서부터 두 눈이 없으리라.'고 하였나이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나이다. 천제(天帝)시여, 어떻게 하여야 저의 이런 고통을 면할 수 있겠나이까?"



제석천은 선주천자의 말을 듣고 심히 놀라, '이 선주천자는 어째서 일곱번이나 악도의 몸을 받을까'

하고 깊이 생각하였다. 잠시 선정에 들어 관하자, 곧 선주가 받게 될 일곱 악도의 몸을 보았다.

그는 돼지, 개, 여우, 원숭이, 뱀, 까마귀, 솔개 등의 몸으로 더러운 것을 먹고 있었다.



이때 제석천은 선주천자가 일곱번 악도에 떨어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을 살펴보고

마음이 괴로웠다. 곰곰 생각해 보니,

선주가 그와 같은 고통을 면하려면 오직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귀의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같이 생각한 제석천은 그날 밤 초저녁에 여러 가지 꽃과 향과 미묘한 하늘옷으로 장엄하고

기원정사로 나아갔다. 부처님 발에 엎드려 절하고 오른쪽으로 일곱번 돌고 널리 공양을 베푼 뒤,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아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선주천자는 어떻게 하면 일곱번 받을 축생의 몸을 면할 수 있겠나이까?"

하고, 앞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그때 부처님의 정수리 위에서는 온갖 광명이 나와 시방세계에 두루 차고,

그 빛이 돌아와 부처님을 세 겹 에워싸고 부처님의 입으로 들어가니,

부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제석천에게 말씀하셨다.



"천제여, 다라니가 있으니 그 이름은 여래불정존승(如來佛頂尊勝)이니라.

이 다라니는 능히 모든 악도를 깨끗하게 하며, 생사와 번뇌를 제거하며,

모든 지옥과 염라왕세계와 축생의 고통을 면하게 하며 지옥을 깨뜨려 선도(善道)로 나아가게 하느니라.



천제여, 이 '불정존승다라니'를 어떤 사람이 들어 한번이라도 귓전을 지나기만 하면,

전생에 지은 일체 지옥의 악업이 모두 소멸되고 청정한 몸을 얻게 되느니라.

그래서 나는 곳마다 기억이 또렷하여 한 부처님 세계에서 한 부처님 세계에 이르고,

한 하늘에서 한 하늘에 이르며, 三十三천을 두루 지나 나는 곳마다 잊어버리지 않느니라.



천제여, 어떤 사람이 명을 마치려 할 때에 잠시라도 이 다라니를 생각하면 수명이 늘어나고,

몸과 말과 뜻이 청정해져서 몸에는 고통이 없고 그 복리(福利)를 따라서 가는 곳마다 안온할 것이다.

모든 부처님이 보살펴 주고 천신들이 항상 지켜 줄 것이며, 남에게 공경을 받으며,

나쁜 업장이 소멸되고, 모든 보살들이 같은 마음으로 도와 줄 것이니라.



천제여, 또 어떤 사람이 잠시라도 이 다라니를 독송하면

이 사람에게는 모든 지옥과 축생과 염라대왕계와 아귀의 고통이 파괴 소멸되어 남은 고통이 없느니라.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 세계와 천궁과 일체 보살들이 사는 문에 걸림이 없어 마음대로 들어가리라."



이때 제석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중생을 위하여 수명을 늘게 하는 그 법을 설해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제석천이 이 큰 자비심의 다라니법을 즐겨 듣고자 함을 아시고 곧 주(呪)를 설하셨다.



나모바가바테. 트라이로캬. 프라티비시스타야. 붇다야. 바가바테. 타댜타. 옴. 비숟다야.

사마사만타. 바바사. 스파라나 가티가하나. 스바바바비숟데. 아비심차투맘. 수가타바라바차나.

아므르타비사이카이. 아하라아하라. 아유산다라니. 솓다야솓다야. 가가나비숟데.

우스니사비자야비숟데. 사하스라라스미삼수디테. 사르바타타가타바루카니. 사트파라미타파리푸라니.

사르바타타가타흐르다야. 디스타나디스티타. 마하무드레.

바즈라카야. 숨하타나 비숟데. 사르바바라나바야 두르가티 파리숟데. 프라티니바르타야. 아유숟데.

사마야디스티테. 마니마니마하마니. 타타타부타. 코티 파리숟데 비스포타 보디숟데.

자야자야. 비자야비자야. 스마라스마라. 사르바붇다. 디스티타숟데. 바즈리바즈라가르베.

바즈람바바투 마마. 샤. 사리람 사르바사트바남차. 카야 파리비숟데. 사르바가티 파리숟데.

사르바타타가타 스차메 사마스바사얌토 사르바타타가타. 사마스바사 디스티테.

붇댜 붇댜. 비부다야 비부다야. 사만타 파리숟데. 사르바타타가타 흐르다야. 디스타나디스티타.

마하무드레 스바하.



부처님께서 다라니를 설하신 다음 제석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주(呪)의 이름은 일체 악도를 깨끗이 없애는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이니,

능히 모든 죄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온갖 더러운 악도의 고통을 덜어 주리라.



천제여, 이 다라니는 八十八항하사 구지 백천 부처님들께서 다같이 말씀하고 기쁘게 받아 지녔으며,

여래의 지혜 인(智印)으로 인가하셨나니,

이는 모든 중생의 三악도의 고통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이며,

모든 지옥, 축생, 염라왕세계의 중생들을 해탈케 하기 위함이니라.

위급한 고난을 만나 생사의 바다에 떨어진 중생을 해탈케 하기 위해서이며,

명이 짧고 복이 엷어 구호할 수 없는 중생과 악업에 섞이어 물들기 좋아하는 중생들을 위해서

설한 것이니라.



또 이 다라니는 남섬부주에 주지(住持)하는 힘인 까닭에, 삿된 소견과 선악(善惡)을 믿지 않아

三악도 중에서 유전(流轉)하면서 생사고뇌(生死苦惱)하며, 박복하여 바른 길을 잃고 헤매는,

이와 같은 중생들로 하여금 빠짐없이 도움을 입어 온갖 괴로움에서 해탈케 하고자 함이니라."



부처님은 다시 제석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다라니를 설하여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그대는 선주천자에게 일러 주고,

또 수지독송하여 잊지 아니하고 좋아하며 공양할 것을 마음에 새겨 두게 하라.

또 남섬부주의 모든 중생들에게 이 다라니를 널리 펴면 이익이 무량할 것이며 또한 모든 천자를 위해

이 다라니의 인(印)을 설하여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그대는 마땅히 잘 지니고 기억하고 지켜서 잊지 않도록 할지니라.



천제여, 어떤 사람이 잠깐이라도 이 다라니를 들으면

천겁 동안 쌓인 악업과 무거운 장애로 해서 받을 온갖 유전하는 생사를 받지 않고,

지옥, 아귀, 축생, 염라왕 세계, 아수라의 몸, 야차, 라찰, 귀신, 모기, 등에, 거북, 개, 뱀이나

모든 날짐승이나 맹수, 혹은 꿈틀거리는 생물 내지는 개미의 몸을 다시는 받지 않느니라.

모든 부처님과 일생보처(一生補處)인 보살과 같은 회상에 태어나거나

바라문 집안이나 찰제리, 혹은 부잣집에 태어날 것이다.



천제여,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귀한 곳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이 다라니를 들은 인연으로

나는 곳마다 청정한 것이니라.

천제여, 보리도량 중 가장 수승한 곳에 이른 것도 모두 이 다라니를 찬탄한 뛰어난 공덕 때문이니라.



천제여, 이 다라니는 또 이름이 길상(吉祥)이니라. 왜냐하면 일체의 三악도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이 [불정존승다라니]는 일장마니(日藏摩尼)라고 하는 보주(寶珠)와 같아서 깨끗하여 티가 없고,

청정하기 허공과 같으며, 광명이 두루 비추니, 중생들이 이 다라니를 가짐도 그와 같으며, 또

염부단금(閻浮檀金)이 밝고 맑고 부드러워 사람들이 좋아하고,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느니라.

어떤 중생이 이 다라니를 가짐도 그와 같아서 착하고 청정함을 인해서 착한 길에 태어나느니라.



천제여, 이 다라니가 있는 곳에서 쓰고 베껴서 유통하거나 받아 지녀 독송하거나, 혹은 듣고 공양하는 사람은 모든 악도가 다 청정해지며, 지옥고가 다 소멸되느니라.



부처님은 이어서 제석천에게 말씀하셨다.



천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다라니를 써서 높은 당기(幢) 위에 두거나 높은 산에 두거나, 혹은

다락 위에 두거나, 내지 탑 속에 안치하여,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일반 남녀들이

당기를 눈 앞에서 보거나 멀리서 바라보거나, 서로 가까워 그 그림자가 몸에 비추거나,

혹은 다라니를 안치해 둔 대에 바람이 불어 그 먼지가 날아와 몸에 붙기만 하여도,

저 중생들은 지은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져 지옥, 축생, 염라왕의 세계, 아귀, 아수라의 몸 등

받아야 할 악도의 고통을 전혀 받지 않고, 또한 죄의 때에 물들거나 더러워지지 않느니라.



천제여, 이런 중생들은 다 모든 부처님에게서 수기(授記)를 받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되리라. 하물며 많은 공양구와 꽃과 향, 당번, 보배일산, 의복, 영락 등으로 장엄하여

네거리에 탑을 세워 다라니를 안치하고 합장 공경하며 돌면서 귀의하고 예배함이겠느냐.

천제여, 이와 같이 공양한 사람을 마하살타(摩詞薩土垂)라 하느니라.

그는 참 불제자이며, 법을 가진 대들보이며, 또한 그는 여래의 전신사리탑(全身舍利塔)이니라."



그때에 염마라법왕이 한밤에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갖가지 하늘옷과 아름다운 꽃과 향으로 장엄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나서 부처님을 일곱번 돌고 예배한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큰 힘인 이 다라니를 찬탄하여 지니는 사람을 항상 따라 다니면서 수호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호념하겠나이다."



그때 세간을 보호하는 사천왕이 부처님을 세번 돌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여래께서는 저를 위해 다라니 가지는 법을 널리 말씀해 주소서."



부처님은 사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잘 듣거라. 너를 위해 말해 주리라. 이 다라니를 받아 가지는 법은 단명한 중생들을 위해

설한 것이니, 마땅히 먼저 목욕하고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고 달이 둥근 보름날 재계(齋戒)를 갖고

이 다라니를 외우되, 천번을 채우면 단명한 중생이 장수하고 병고를 여의게 되며,

모든 업장이 모두 소멸되고 일체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날아다니는 새와 온갖 축생들도 이 다라니를 한번이라도 들으면, 그 몸이 다한 뒤에는

다시 그런 몸을 받지 않으리라.



그리고 만약 어떤 사람이 몹쓸 병을 얻어 이 다라니를 들으면 곧 모든 병이 소멸될 것이며,

악도에 떨어질 일도 끊어져 정토(淨土)에 왕생하리라. 그 뒤로는 다시 포태(胞胎)의 몸을 받지 않고

불, 보살의 자리에 화생(化生)하여, 태어난 모든 곳을 잊지 않고 항상 지난 세상 일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전생에 지은 무거운 죄업으로 목숨을 마치면

그 악업을 타고 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이나 염라왕의 세계, 혹은 아귀나 무간지옥에 떨어지며,

혹은 물속에 나거나 짐승이나 다른 종류의 몸을 받게 되느니라. 그러나

한줌 흙을 쥐고 이 다라니 二十一번을 외운 뒤 망자의 뼈 위에 뿌리면 곧 하늘에 태어나게 되리라.



또 어떤 사람이 날마다 이 다리니를 二十一번씩 외우면

일체 세간의 광대한 공양을 녹이게 되고, 몸을 버린 뒤에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리라.

만약 항상 외우고 생각하면 큰 열반을 얻어 수명이 늘어나고 수승한 즐거움을 누릴 것이며,

이 몸을 마치면 곧 미묘한 부처님 세계에 왕생하여 항상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한 곳에 모여,

부처님들이 깊은 뜻을 말씀해 주시고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어

몸의 광명이 모든 부처님 세계에 비추느니라.



이 다라니를 외우려면 먼저 불전에 깨끗한 흙을 가지고 단을 만들되 대소간에 네 모로 만들고,

온갖 화초로 단상을 꾸미고, 여러 가지 좋은 향을 사루라.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어 호궤하고 마음으로 항상 염불하며, 다라니를 사모하는 인(印)을 짓되

손가락 끝을 마주 대어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뒤 가슴 위에 합장하고 이 다라니를 백八번 외우면,

단 가운데에 마치 구름이 비내리듯 온갖 꽃이 비오듯 하여

八十八구지 항하사 나유타 백천 부처님께 두루 공양하나니, 저 부처님께서 다 같이 칭찬하시기를,

'착하고 희유하도다. 이가 참 불자로다. 곧 장애 없는 지혜삼매를 얻고 큰 보리심 장엄삼매를 얻으리라.'

고 하실 것이다. 이 다라니를 갖는 법이 이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을 계속하셨다.



"천제여, 내가 이 방편으로써 일체 중생이 지옥에 떨어질 것을 해탈케 하여

모든 악도가 청정하게 될 것이며, 다라니 가진 자로 하여금 더욱 수명이 늘게 하리라. 천제여,

그대는 내 다라니를 가지고 가 선주동자에게 주고 七일을 채운 뒤 선주를 데리고 와서 나를 보라."



이때 천제는 세존에게서 이 다라니법을 받아 가지고 자기 처소로 돌아가 선주천자에게 주었다.

선주천자는 이 다라니를 받아 엿새 동안 밤낮으로 법다이 받아 가지니 모든 원이 이루어졌다.

그가 받을 온갖 악도의 고통에서 해탈되고, 보리도에 머물러 수명이 한량없이 늘어나니,

크게 환희하여 큰 소리로 찬탄하였다.



"희유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희유한 묘법이옵니다.

실로 드문 밝은 증험이며 심히 얻기 어려운 해탈을 저로 하여금 얻게 하셨나이다."



그때에 제석천이 七일이 되자 선주천자와 여러 하늘 대중들을 거느리고

꽃과 향과 당기, 번기, 일산, 하늘옷, 영락 등으로 미묘하게 장엄하고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큰 공양을 베풀며, 미묘한 하늘옷과 모든 영락을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고 부처님을 백천번 돌고

매우 환희하여 한쪽에 앉아 법을 들었다.



부처님은 금빛 팔을 펴서 선주천자의 이마를 만지고 나서, 법을 설해 보리의 수기를 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경은 이름이 모든 악도를 깨끗이하는 [불정존승다라니]이니, 너희들은 잘 받아 가지라."



이때 대중들은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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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불정존승다라니경 수행을 위한 불정존승다라니경 문구인용및 수행법해설



이렇게 나는 들었습니다.

한 때, 바가봔께서는쉬라봐스티 城에 있는 아난타삔다다 곧 고아와 외로운이에게 베푸는 정원내의 제타 [태자가 기증한] 숲에....중략.....




그리고나서 붓다께서 主 싹끄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의 만뜨라는 <모든 惡道를 淨化하는 우슈니싸 윗자야 다라니>라고 알려져 있다. 그것은 모든 나쁜 까르마에서 기인한 장애와 모든 惡道의 괴로움을 박멸할 수 있다.

하늘의 주인이여, 이 위대한 다라니는 88억개의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붓다들이 다 함께 선언하신다. 모든 붓다들은, 위대한 바이로짜나 여래의 지혜의 도장에 의해 진실임이 입증된 이 다라니를 기뻐하고 지지한다. 이는 때문이다.“天帝여, 이 다라니는 88꼬띠1) 百千의 갠지스江의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들께서 다 같이 말씀하시고 기쁘게 받아 가지시며, 여래의 智印으로써 이 다라니의 印을 삼으셨으니, 일체 중생의 惡道를 부숴버리기 위해서이며, 모든 지옥 傍生 염라왕 세계의 중생들을 해탈케 하기 위해서이며, 고통스런 생사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해탈케 하기 위해서이며, 수명이 짧고 福이 얇아 도울 수 없는 중생과 惡業과 섞이고 물들기를 좋아하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설하는 것이니라.


이 다라니를 설하는 것은 지옥과 동물 그리고 야마왕의 영역과 같은, 惡道에 떨어져 있는 이들을 고통스러운 응보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이며, 태어남과 죽음의 바다 속에 떨어지는 것이라는 당면한 위험에 처한 존재들을 구해내기 위해서이며, 수명이 짧고 불운한, 제도하기 난감한 존재들을 돕고 모든 종류의 惡行을 저지르기를 좋아하는 존재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 다라니는 南쪽 세계인 잠부洲(우리가 사는 곳)를 住持하는 힘으로써, 지옥과 같은 惡道의 중생과 갖가지로 生死에 流轉하는 福없는 중생과 善惡業을 믿지 않고 바른 길을 잃은 중생들을 해탈케 하기 위해 說하는 것이니라.

또한 잠부洲 세계의 거주자와 그곳에서 관리되는 존재 때문에, 이 다라니에 의해 현현된 힘이 지옥과 다른 나쁜 영역에 있는 모든 존재들, 불행한 사람들과, 탄생과 죽음의 순환안에서 회전하는 이들과, 善行과 惡行의 존재를 믿지 않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이들로 하여금 해방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시 붓다께서 다짐하여 말씀하셨다.

“내 이제 이 신성한 다라니를 너에게 맡기노라. 너도 또한 이것을 데봐의 아들인 쑤스티타

에게 전파하라. 그리고 그에 더하여 이 다라니를 받은 너 자신도 유지하고 낭송하며, 잘 생각하고 새기며, 기억하고 존경하라. 이 다라니 묻드라는 잠부주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에게 광범위하게 발표되어야 한다. 이 다라니 묻드라가 발표되어야 하기에, 나도 또한 모든 천상의 존재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것을 너에게 맡기는 것이다.

하늘의 주인이여, 그대는 이것을 부지런히 받치고 보호해서 결코 잊혀지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늘의 주인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단 한 순간 만이라도 이 다라니를 듣는다면, 그는 수 천겁 전부터 쌓여 온 나쁜 까르마에서 기인한 까르마의 보복과 호된 장애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탄생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맴돌게 할, 나쁜 길에 있는 모든 종류의 형태, 곧 지옥, 배고픈 귀신, 동물, 야마王의 영역, 아쑤라, 약끄샤, 락끄싸라, 귀신 그리고 精靈, 뿌따나, 까따뿌따나, 아빠쓰마라, 모기, 각다귀, 거북, 개, 이무기, 새, 사나운 짐승, 벼룩이가 꾄 피조물, 그리고 개미와 다른 생명형태 등으로....


한 순간 동안 이 다라니를 들음으로써 저절로 생기는 공덕으로 인해, 일단 이 생애가 끝나면, 그는 모든 붓다들과 일생보처의 지위에 있는 보살들이 함께 있는, 붓다의 나라에 다시 태어나거나, 高貴한 브라흐민이나 끄샤뜨리야 家門이나, 어떤 다른 부유하고 명성있는 가계에 태어날 것이다.

하늘의 주인이여, 이 사람은 단순히 이 다라니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위에서 언급한 번영하고 평판좋은 가계 중의 하나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하늘의 주인이여, 심지어 가장 승리를 거둔 보디만다를 얻는 것도 이 다라니의 칭찬할 만한 효능을 찬탄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 다라니는 <모든 惡道를 정화할 수 있는 상서로운 다라니>로도 알려져 있다.


이 우슈니싸 윗자야 다라니는, 순수하고 흠이 없고 허공처럼 깨끗하며 그 광휘는 모든 것을 비추는 해(日) 마니 진주라는 보석과 같다.


만약 어떤 존재가 이 다라니를 지지한다면 그들도 또한 그처럼 빛나고 순결할 것이다. 이 다라니는 잠부다나에서 나는 빛나고 순수하고 부드러우며 오물에 더럽혀질 수 없으며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 하는 금과 비슷하다.


하늘의 주인이여, 이 다라니를 지지하는 존재는 꼭 그 처럼 순수하다. 이 순수한 practice의 효능에 의해, 그들은 善道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하늘의 주인이여, 누군가가 배포를 위해 이 다라니를 쓰거나, 다라니를 보급하거나, 받거나, 지지하거나 낭송하거나, 듣거나 존경함으로써 이 다라니가 머무는 곳에서는, 모든 惡道를 정화하게 할 것이며, 모든 지옥에 있는 불행과 고통들이 완전히 박멸될 것이다.


붓다께서 다시 주 싹끄라에게 신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다라니를 써서 키 큰 기의 꼭대기나 높은 산이나 키 큰 빌딩이나 심지어 탑안에 보관할 수 있다면, 하늘의 주인이여, 만약 빅쿠나 빅쿠니, 우빠싸까나 우빠씨까,평신남이나 평신녀


붓다께서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죽기 전에 모든 심각한 惡行을 저질렀다면, 그의 죄받을 행동에 따라 그는 마땅히 지옥이나 동물, 야마왕의 영역, 배고픈 귀신, 또는 심지어 거대한 아뷔찌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수생 동물이나 많은 형태의 새와 동물들 가운데 하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사망한 사람의 해골의 한 부분을 얻어서 한 줌의 흙을 쥐고서 이 다라니를 21번 반복해서 부른 뒤에 그 흙을 그 뼈위에 흩는다면, 그 땐 그 죽은 이는 하늘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


붓다께서 다시 더 덧붙이셨습니다.

“만약 이 다라니를 매일 21번씩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모든 막대한 세속적인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죽은 뒤엔 궁극의 축복의 세계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 만약 이 다라니를 계속해서 읽는다면, 그는 위대한 빠리닙바나를 얻을 것이며, 가장 특별한 축복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숨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天帝여, 이 다라니의 이름은 ‘一切惡道를 깨끗이 없애는 如來佛頂尊勝다라니’라 하나니, 罪業들로 인한 일체장애를 제거하고 온갖 惡道의 고통을 덜어주느니라.




“天帝여, 이 다라니는 88꼬띠1) 百千의 갠지스江의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들께서 다 같이 말씀하시고 기쁘게 받아 가지시며, 여래의 智印으로써 이 다라니의 印을 삼으셨으니, 일체 중생의 惡道를 부숴버리기 위해서이며, 모든 지옥 傍生 염라왕 세계의 중생들을 해탈케 하기 위해서이며, 고통스런 생사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해탈케 하기 위해서이며, 수명이 짧고 福이 얇아 도울 수 없는 중생과 惡業과 섞이고 물들기를 좋아하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설하는 것이니라.

또한 이 다라니는 南쪽 세계인 잠부洲(우리가 사는 곳)를 住持하는 힘으로써, 지옥과 같은 惡道의 중생과 갖가지로 生死에 流轉하는 福없는 중생과 善惡業을 믿지 않고 바른 길을 잃은 중생들을 해탈케 하기 위해 說하는 것이니라.




“天帝여, 이 佛頂尊勝다라니를 어떤 사람이 한 번이라도 들으면 전생에 지은 지옥에 갈만한 온갖 악업이 모두 소멸되고 깨끗한 몸을 얻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한 불국토에서 또 한 불국토에 이르며, 한 하늘 세계에서 또 한 하늘 세계에 이르며, 33天을 두루 지나면서 태어나는 곳마다에서 전생을 기억하여 잊지 않으리라.




“天帝여, 어떤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잠시라도 이 다라니를 생각하면 수명이 다시 늘어나고, 몸과 말과 뜻이 淸淨해져서 몸에는 고통이 없고, 가는 곳마다 福과 이로움이 따라 서 안온할 것이다. 모든 부처님이 보살펴 주시고, 天神들이 항상 지켜줄 것이며, 사람들에게 공경받고, 나쁜 업장이 소멸되고, 모든 보살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보호할 것이다.




“天帝여, 또 어떤 사람이 잠시라도 이 다라니를 讀誦하면, 이 사람에게는 일체의 지옥 傍生 염라대왕의 세계와 아귀의 고통이 파괴 소멸되어 남은 것이 없게 되며, 모든 佛國土와 모든 하늘의 궁전과 일체 보살들이 사는 門에 걸림없이 마음대로 들어가느니라.




“天帝여, 잠시라도 이 다라니를 들은 사람은, 千劫을 두고 쌓은 惡業과 무거운 장애로 인하여 받을 온갖 끝없는 生死의 흐름에 빠지지 않고, 地獄 餓鬼 傍生 염라왕의 세계 아수라의 몸 야차 나찰 귀신 모기 등에 거북 개 뱀이나 모든 날짐승이나 맹수 혹은 꿈틀거리는 생물에서부터 나아가 개미에 이르기까지의 몸을 다시는 받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과 一生補處보살과 같은 會上에 태어나거나, 바라문 집안이나 王族 혹은 富貴하고 훌륭한 집안에 태어나느니라.




“天帝여, 이 다라니는 광대한 威神과 큰 功德을 갖추고 있으며, 큰 힘이 있어서, 또한 大吉祥이라 이름하느니라. 日藏寶珠가 깨끗하여 티가 없고 淸淨하기 虛空과 같으며, 있는 곳마다 光明을 비추듯이, 이 다라니도 그러하여 두는 곳마다 그 같은 威神이 있느니라.




“이 다라니를 지니는 자는 온갖 罪惡에 모두 물들지 않으며, 부드럽고 윤택하고 청정하고 티없는 것이 잠부나다에서 나는 金과 같으며, 이 다라니를 베껴서 유통하거나 받아 지니거나, 讀誦하거나, 듣고 공양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모든 惡道가 다淸淨해지며, 온갖 地獄의 苦惱가 다 消滅하느니라.




“만약 누군가가 이 다라니를 써서 높은 당기 위에 두거나, 높은 산에 두거나, 혹은 누각 위에 두거나, 나아가 탑 속에 안치했을 때, 어떤 비구 비구니나, 우바새 우바이나, 일반남녀가 당기 등의 위를 보거나 혹은 가까이 다가가서 그 그림자가 몸에 비치거나, 혹은 바람이 불어 산이나 당기 등의 위에 있는 다라니에 있던 먼지가 날아와 몸에 붙기만 해도, 天帝여, 그 중생들은 자신이 지은 죄업으로 응당 惡道에 떨어져 지옥 축생 염라왕의 세계 아귀 세계 아수라의 몸 등 악도의 고통을 받아야 함에도 모두 다 받지 않고, 또한 죄의 때[垢]에 물들거나 더러워지지 않느니라. 이들은 모두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授記를 받고 不退轉을 얻게 되리라.




“만약 네거리에 탑을 세워 이 다라니를 안치하고 갖가지 꽃다발과 香과 당번, 옷, 영락 등 온갖 공양물로 장엄하고서 합장공경하고 탑돌이 하고 귀의하고 예배한다면, 그 공덕은 無量하니라. 이와 같이 공양하는 이를 마하살, 참다운 佛子, 法의 대들보, 如來의 全身 사리탑이라 이름하느니라.




“날아다니는 새와 온갖 傍生들과 모든 惡趣의 종류들도 귀로 이 다라니를 한 번이라도 들으면, 그 몸이 다한뒤에 다시는 그런 惡趣의 몸을 받지 않으며, 아주 몹쓸 병에 걸린 사람도 이 다라니를 들으면, 곧 모든 병이 소멸될 것이며, 惡道에 떨어질 일이 끊어져 죽은 뒤엔 즐거운 세계에 태어나되, 다시는 胞胎로 태어나지 않고 항상 연꽃에 化生하며, 태어나는 곳마다에서 항상 前生을 기억하리라.




부처님께서 4天王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수명이 짧은 사람이 오래 살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름날, 깨끗하게 목욕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8齋戒를 받고서 이 다라니를 읽되 千번을 채우면, 모든 業障이 소멸되고, 영원히 病의 고통을 여의게 되며, 목숨이 늘어나고, 일체 지옥의 온갖 고통에서 또한 벗어나게 되느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일찌기 온갖 극히 무거운 죄를 지어서 목숨을 마친 뒤에 그 악업의 정도에 따라 지옥에 떨어졌거나, 축생이나 염라왕세계, 혹은 아귀나 대무간지옥에 떨어졌거나, 혹은 물속에 났거나 짐승과 같은 異類의 몸을 받게 되었다 해도, 만약 한 줌의 흙에 이 다라니를 21편 읽은 뒤 그 죽은 자의 몸에서 뼈조각을 취하여 그 뼈에 흩으면, 그는 곧 하늘 세계에 태어나리라.




“만약 날마다 이 다라니를 21편씩 읽으면, 罪는 滅하고 福은 늘어나서 일체 세간 사람들의 愛敬을 받게 되며, 몸을 버린 뒤에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리라.




“만약 항상 이 다라니를 읽고 지니면, 목숨을 마친 뒤에 온갖 淨土에 태어나되, 한 불국토에서 또 한 불국토에 이르는 일체의 불국토에서 큰 빛을 비추며,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하고, 모든 부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며, 授記를 받아 이윽고 큰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할 것이니라.




“이 다라니를 외우는 법은, 먼저 불전에 깨끗한 흙으로 壇을 만들되, 크건 작건 정사각형으로 만들고, 갖가지 풀과 꽃으로 단상을 꾸미고, 여러가지 좋은 향을 사르라.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댄채 互跪2)하고서 한마음으로 부처님3)을 생각하라. 그리고는 다라니의 印을 맺는데, 먼저 두 손을 합장하고서 두 집게 손가락의 손톱이 서로 등을 보게끔 구부리고 두 엄지로 두 집게 손가락의 끝을 눌러 마치 손가락을 튕기는 듯한 형세를 하고 심장 위에 두고서 이 다라니를 108편 외우고4) 나면, 그 단에서 구름이 꽃비를 뿌리는 것처럼 되어 88꼬띠개의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수많큼 많은 부처님께 두루 공양케 되니, 그 부처님들이 다 같이 칭찬 하시기를, ‘싸두5), 싸두! 희유하도다. 그대는 참 佛子로다. 大보리를 장엄하며, 그 마음에 걸림없는 지혜를 얻으리라.’고 하리라.



3) 먼저 두 발을 붙이고 선 상태에서, 불전에 절할 때 처럼 무릎을 꿇고 앉는데, 이때 발가락은 그대로 땅을 버티고 발뒤꿈치는 들어서 바닥에서 띄운채 엉덩이와 닿는다. 또한 오른쪽 무릎만 바닥에 닿게 하고 왼쪽 무릎은 바닥에서 띄워서 무릎을 비스듬히 오른쪽 무릎위로 기울인다. 그러면, 오른쪽 무릎과 두 발의 발가락만 땅에 닿는 불안정한 자세가 된다. 그리고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려서 마치 앞으로 나아가려는 형세를 취한다. 이것이 바른 호궤 자세다. 참고로 두 무릎을 다 땅에 대면 長跪라고 하며, 보다 편한 자세로서 오래 유지하기가 쉽다.

4) 비로자나불을 觀한다.

5) 외우는 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하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한다.

6) 칭찬, 찬성할 때 쓰는 인도말.


출처: 네이버 무루찻집 불교참선카페 닙바나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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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5 불정존승다라니 산스크리트어 발음과 불정존승다라니 해석


1. 산스크리트어 발음

1)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羅尼經)
Usnisa Vijaya Dharani Sutra

우스니사 비쟈야 다라니 수트라


Namo Bhagavate Trailokya Prativisistaya Buddhaya
나모 바가와떼 트라일로캬 프라띠비시스타야 붓다야
Bhagavate Tadyatha, Om, Visuddhaya-Visuddhaya
바가와떼 따디야타 옴 비슛다야 비슛다야
Asama-Sama Samantavabhasa-Spharanagati Gahana Svabhava Visuddhe,
아사마-사마 사만따바하사-스파라나가띠 가하나 스와하바 비슛데
Abhinsincatu Mam Sugata Vara Vacana
아빈신챠투 맘 수가따 바라 바챠나
Amrta Abhisekai Maha Mantra-Padai
아메르따 아빈세카이 마하 만트라-파다이
Ahara-Ahara Ayuh Sam-Dharani
아하라-아하라 아유 삼-다라니



Sodhaya-Sodhaya Gagana Visuddhe
소다야-소다야 가가나 비슛데
Usnisa Vijaya Visuddhe Sahasrarasmi, Samcodite,
우스니사 비쟈야 비슛데 사하슈라라스미 삼쵸디떼
Sarva Tathagata Avalokani, Sat-Paramita, Paripurani,
사르와 따타가따 아발로카니 사뜨-파라미타 파리푸라니
Sarva Tathagata Mati Dasa-Bhumi, Prati-Sthite,
사르와 따타가따 마띠 다샤-부미 프라띠-스디떼
Sarva Tathagata Hrdaya Adhisthanadhisthita Maha-Mudre
사르와 따타가따 햐르다야 아디스타나디스티따 마하-무드레



Vajra Kaya Sam-Hatana Visuddhe
바즈라 카야 삼-하타나 비슛데
Sarvavarana Apaya Durgati, Pari-Visuddhe, Prati-Nivartaya Ayuh Suddhe
사르와바라나 아파야 듀르가띠 파리-비슛데 프라띠-니와르따야 아유 슛데
Samaya Adhisthite Mani-Mani Maha Mani
사마야 아디스티떼 마니-마니 마하 마니
Tathata Bhutakoti Parisuddhe Visphuta Buddhi Suddhe
따타따 부따코띠 파리슛데 비스풋따 부디 슛데
Jaya-Jaya, Vijaya-Vijaya, Smara-Smara Sarva Buddha Adhisthita Suddhe
자야-자야 비자야-비자야 스마라-스마라 사르바 붓다 아디스티따 슛데
Vajri Vajragarbhe, Vajram Bhavatu Mama Sariram.
바즈리 바즈라가르베 바즈람 바바뚜 마마 샤리람



Sarva Sattvanam Ca Kaya Pari Visuddhe
사르와 사트바남 챠 카야 파리 비슛데
Sarva Gati Parisuddhe
사르와 가띠 파리슛데
Sarva Tathagata Sinca Me Samasvas Ayantu
사르와 따타가따 신챠 메 사마스와스 아얀투
Sarva Tathagata Samasvasa Adhisthite,
사르와 따타가따 사마스와사 아디스티떼
Buddhya-Buddhya, Vibuddhya-Vibuddhya,
붓디야-붓디야 비붓디야-비붓디야
Bodhaya-Bodhaya, Vibodhaya-Vibodhaya Samanta Parisuddhe
보다야-보다야 비보다야-비보다야 사만따 파리슛데
Sarva Tathagata Hrdaya Adhisthanadhisthita Maha-Mudre Svaha
사르와 따타가따 햐르다야 아디스타나디스티따 마하-무드레 스와하



2)


네이버 무루찻집 불교참선카페 닙바나(jabiren)님 글

나´모- ㅂ하 (거)가봐떼- 뜨라일로´-끼야 쁘라띠위(上)쉬스따-야 붇ㄷ하´-야 ㅂ하(上)가봐떼-

따댜´따- :

옴- / 위숃-하야 위숃-하야 아싸´(上)마-싸´(上)마 싸(거)만따(거)-봡하(거-)싸 쓰파라(上)나 가띠 가´하나 쓰왑하(거)-바 위슏´헤- 압(上)히쉰´짜뚜맘-. /

쑤´가따 봐´라 봐´짜나- 아므리땁-히쉐´-까이 마하-만´뜨라 빠´다이-./

아´(거)-하라 아´(거)-하라 / 아´(거)-유 싼ㄷ하´-라니 /

숃´-하야 숃´-하야 가´가나 위슏´ㄷ헤- /

우슈니´-사 위´자야 위슏´ㄷ헤- /

싸´하쓰라 라´쓰미 싼쬬´-디떼- 싸´르봐 따타´(거)-가따-봘로´-까니 사(上)뜨 빠´-라미따(거)- 빠리뿌´-라니 싸´르봐 따타´(거)-가따- 흐리다얃-히스타-낟-히스티따 마하´-묻드리- /

봐´으라 까´-야 쌍하따(上-)나 위슏´ㄷ헤- /

싸르봐-봐´라나 납하´야 두´르가띠 빠리위슏´ㄷ헤- /

쁘라띠(上-)니봐´르따야 아´-유(쉬) 슏´ㄷ헤- / 싸(上)마얃-히스티떼- /

만´니 만´니 마하´-만니 / 따타-따(거)-부-따 꼬´-띠 빠리슏´ㄷ헤- /

위´씁푸따 붇´ㄷ히 슏´ㄷ헤- /

자´야 자´야 위´자야 위´자야 쓰마´(上)라 쓰마´(上)라 /

싸´르봐 붇ㄷ핟-히스티따 슏´ㄷ헤- /

봐´으리- 봐´으라- 가´릅헤- / 봐´으람- ㅂ하´(上-)봐뚜 마마[본인 이름] 샤리람 /

싸르봐 쌋뜨와 난(上)- 짜 까-야 빠리위슏ㄷ헤- /

싸르봐 가띠 빠리위슏ㄷ헤- / 싸르봐 따타-가따(上-) 쉰차메 싸(上)마- 쉬와-싸얀뚜 /

싸르봐 따타(거)-가따 싸(거)마-쉬와-싿(上)-히스티떼- / 붇히´야 붇히´야 / 위붇히´야 위붇히´야 / 볻´-하야 볻´-하야 / 위볻´-하야 위볻´-하야 / 싸(上)만´따 빠리슏´ㄷ헤- /

싸´르봐 따타´(거)-가따- 흐리다얃-히스타낟-히스티따 / 마하-묻´드리 / 쓰와´-하- //


2.

불정존승다라니해석

귀의 불세존 삼계최상 불세존

여여하여 옴 청정청정하고 평등평등하여 일체유정과 길을 가는 자 태어나려는 모든 자의 자성이 청정

부처의 놀라운 위신력으로 감로의 관정을 베풀어 불사를 이루게 하소서 맑은 삶을 가지게 하소서 청정

허공이 청정 불정존승이 청정 천만광명이 찬란히 비추고 일체여래의 초월지혜가 원만하고

일체여래의 심장과 하나되어 마하무드라를 이루네

금강신을 완성 청정 일체의 두려움 악취가 완전 청정 모든 장애가 삶에서 청정

삼밀 가지 보주 보주 대여의보주로 무량중생을 요익케 하고 청정 굳건히 지키소서 청정한 보리심

승리 승리 완전한 승리를 이루니 일체불과 하나되어 청정

금강 금강장 금강인 내 몸은 사리를 이루고 일체존재가 그 몸으로 완전히 청정해진다

모든 길이 청정 일체여래의 평등한 자성으로 일체여래의 평등한 자성을 가진다

깨달음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고 지혜 지혜 완전한 지혜를 이루어 일체가 완전 청정

일체여래의 심장과 하나되어 마하무드라를 이루네


출처: http://blog.naver.com/aksunya/140022197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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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6. 불정존승다라니경 해설


우리가 보는 이 “불정존승다라니경”은

불타파리(佛陀波利)가 당(唐)의 고조(高祖) 영형(永涥) 이년(二年)(683)에 번역한 것과

의봉(義鳳) 사년(四年)(679)에 두행의(杜行顗)가 번역한 것이 전해집니다.



팔만대장경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정토교 계열의 경전이며,

경의 주된 내용은 불정존승다라니경의 송지(誦持)에 의해 망자(亡者)의 정토왕생을 밝힌 것입니다.



경을 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경의 제목, 설법 장소, 설법자,

법을 청하는 사람, 청중과 경의 내용을 살펴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러한 관점으로 간략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떤 경(經)이든 제목이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든가 마하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든지 말입니다.



이 경의 제목은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多羅尼經)입니다.

그럼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죠, 화두처럼.



이 경의 제목에 있어서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불(佛) : 부처님의 미묘한 법문은

정(頂) : 만법의 정수리이며,

존(尊) : 다시 만나 보기 어려운 존귀한 법이며,

승(勝) : 일체 세간의 어려움을 능히 이기는 신묘한 힘이 담긴

다라니(多羅尼) : 말로써 표현되지 않는 숨겨진 지혜의

경(經) : 말씀.

경을 보면 항상 제목을 눈여겨보세요.

경의 제목은 그 경의 핵심을 농축해 놓은 것이거나 예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 계시었다. “

자, 경을 보면 설해 진 장소가 나오죠. 또, 그 장소가 옮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소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눈감고 생각해 보니, 이런 뜻일 것 같아요.

경이 설해진 것이 사바세계인 것은 법의 증명과 현재 중생계에

법이 있음을 증언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디에 가서 법을 구할 것입니까?

하늘 위도 아니고, 땅 속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주위, 우리가 사는 곳에 법은 함께 있습니다.



“ 그 때 삼십삼천 선법당(善法堂)의 모임에 한 천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선주(善住)라고 하였다. ”

경을 읽을 때는 그 경에 나오는 어휘 하나 하나를 주위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지름길입니다.

특히 어렵게 한문경을 읽지 말고 한글경을 읽되 한문본을 옆에 놓고 항상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미도 있고 불교를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그럼 위 절을 살펴봅시다.

선법당은 착한 법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선주라는 이름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이름인데, 착함에 주한다는 뜻이죠,

바로 선함에 주체가 되고 기본적으로 명(明)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모든 중생은 본시 청정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습관과 삼독(탐, 진, 치)으로 인해 그 밝은 성품이 흐려진 것이죠.

아니 흐려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밝은 성품을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품을 밝히기 위해서는 착한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기본적 조건이죠. 따라서 착한 사람은 깨닫기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춘 것이지 깨달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밝은 성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밤이 되어 선주 천자는 …… 다른 도리가 없었다.”

여러분은 윤회를 믿습니까? 글쎄요. 전 믿는 편이죠.

하지만 항상 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의심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경에서는 윤회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일단 천상의 사람이라도 그 복이 다하면 나쁜 곳으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 경에서는 선주천자가 그 복이 다하여 천상에서 축생으로, 축생에서 지옥으로,

그리고 다시 인간으로 이렇게 흘러갑니다. 왜 계속 나쁜 곳으로 흘러 가냐 하면

천상에서 복이 감하는 이유는 천상의 삶이 너무 행복하므로

자신의 쾌락만을 찾을 줄 알지 복을 지을 생각을 안합니다. 그래서 본전을 자꾸 까먹지요.

그래서 일단 축생계로 떨어지면 사는데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에

복은 커녕 착한 일도 할까말까 합니다. 더구나 그런 상황에서 윤회를 벗어나고자

법에 대한 보리심을 낸다는 것을 생각하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따라서 계속 나쁜 곳으로만 가죠. 그러다 지옥에 도착하면 여기는 업을 갚는 곳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업이 소멸되면 다시 사람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비록 사람이 되었어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거나 자신의 몸에 장애를 안고 태어납니다.

따라서 천상에 주하는 신(神)도 하나의 귀의처는 되나

우리를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해방시켜 주지는 못합니다.

바른 법의 귀의와 참된 성품의 봄만이 참생명이 열리는 길이며,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경은 제석천이 부처님께 묻는 구도로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제석천이 선주천자의 받을 과보를 선정을 통해 보는데

선정이란 고요하고 청정한 마음의 밝음으로 인연의 바른 관계를 바르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 선도(善道)로 나아가게 하느니라.”

부처님의 정수리에서 나온 빛이 시방세계에 가득참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여래의 법신이 곧 우주법계란 뜻입니다. 또한 신묘한 힘을 보이시어

굳은 신심을 나게 해 스스로 청정한 자성을 자각토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그 외에 더 많은 뜻을 내포하는데 한 번 화두 삼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 절은 결국 중생은 스스로 지옥, 축생의 문(門)을 만들지만

불타는 이를 깨뜨려 뭇 중생을 선도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 후에 불타는 다라니를 설하시는데

다라니란 것은 무지한 중생의 구제를 위해 불타의 뜻과 의지와 신력(神力)을 모아 둔 복전입니다.



이 경의 전체적인 주제는 불자나 불자 아닌 이나 모두다

평등한 구제를 하여야 한다는 것과 그러한 마음을 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







석 진호의 불정존승다라니경 주해서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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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현대 지장보살영험담 모음 (1~52)


1.

날마다 좋은 날

-승진, 지휘부대엔 무사고, 좋은 일만 생겨

귀의삼보하옵고, 먼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의 원력과 가피력에 감사드리옵니다. 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편안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실로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을 입었기 때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전생의 업이 너무나 무거웠던지 92년 10월에 부친께서 운명을 달리하셨고, 설상가상으로 93년 2월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셔서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양친부모를 다 잃고 그야말로 의기소침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때에 모처럼 가족과 함께 산을 찾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발길이 산 속의 절로 찾아 들었습니다. 산에는 어느 곳이나 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절에 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한 법당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안정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법당에 앉아 있다 온 뒤로 며칠 동안은 근무도 잘 되고 기분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의정부 지역으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고, 법당불사를 시작한 모부대로 보직되어 삼보에 본격적으로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동안 열심히 근무하는 한편 기도정진하였습니다. 그런데, 승진에 실패하였습니다. 전년도에 부모를 잃은 아픔에 이어 승진에서도 탈락되자 충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지질이도 복이 없는 것일까.'라는 자괴감과 함께 부처님도 필요없다, 세상만사가 다 싫어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말 그 때는 부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승진에 실패하던 날 직접 부처님을 뵙고 원망하며 푸념하기 위해 법당을 찾아가던 중 우연히 서울 강동구 길동 대흥사의 주지이신 지족 스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법당으로 가서 제 형편을 소상히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뒤 군생활을 하면서 생전에 부모님을 잘 못모신 점이 마음에 늘 걸리고, 승진에 대한 욕심도 떨쳐버리기가 힘듭니다. 막상 승진에 실패하고 보니 부처님까지 원망스럽습니다."라는 제 말씀을 들은 스님께서는 조상천도와 함께 지장기도를 지극하게 해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은 뒤 지극정성으로 조상천도재를 올렸고, 가족과 함께 경기도 벽제의 보광사에서 2100일 지장기도를 입재하고 날마다 지장기도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천도재를 지내고 지장기도를 올리면서 정말 신기한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어두웠던 제 표정이 밝아지고, 가족들 모두가 밝아지고, 어렵게 맡았던 보직이 쉽게 풀리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저를 경계하던 분들이 오히려 저를 생각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과거에 상관으로 모시던 분이 저를 적극 도와주었고, 동기생들 역시 무척이나 저를 생각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호택 스님과 인연이 되어 제가 부임한 부대에 법당불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해 제가 그토록 바라던 승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승진이후 지장보살님이 계시는 철원 심원사 인근의 군부대로 곧바로 보직이 결정되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부임이후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매일 아침 심원사를 찾아 지장보살님께 지장기도를 드렸는 바 심원사 영도 스님께서 2천만원을 보시하셔서 당시 근무처 부대의 신병교육대에 법당불사를 추진케 된 것을 비롯하여 제 부대의 모든 사고를 미리 막아주신 것도 지장보살님의 가피력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차가 언덕에서 굴러떨어졌지만 차도 그대로고 운전병 역시 하나도 안 다쳤고, 브레이크 고장으로 차가 논두렁으로 굴러야 할 상황임에도 거짓말처럼 낮은 지역으로 가서 논 옆에 서고, 황산이 병사의 눈 부위로 튀었지만 실명되지 않고 무사한 것 등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으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휴가갔던 병사가 위기에 처해있는 여자를 구하고, 제대를 앞둔 병사가 전역휴가를 반납하면서 훈련에 참가하여 부대를 빛낸 공으로 신문에 보도되는 등 제가 지휘하는 부대에는 항상 즐거운 일만 발생하고 좋은 일만 생깁니다.

이밖에도 가피입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지면관계상 이만 줄이고 신행생활에 대해 몇 말씀 덧붙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우리 인간은 욕심이 너무 많아서 기도하며 소원을 빌었을 때 금방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일 소원성취가 되지않으면 쉽게 기도를 포기하는데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없는 겁동안 쌓아온 전생의 업을 생각해 볼 때 약간의 기도만 가지고 어찌 그 두터운 업장을 다 녹일 수 있겠습니가? 전생에 진 빚이 얼마인가? 이것부터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빚도 갚지 못한 상태에서 저축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라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 좋은 일(보시)을 많이 하고, 업장소멸을 위한 기도를 해야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은행에 돈을 저축하지 않고 돈이 필요하여 은행에 간다 한 들 누가 주겠습니까? 무엇보다 보시와 기도의 생활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지극한 정성으로 지장기도를 올리는 동시에 조상천도를 반드시 해야합니다. 제 경험으로 비추어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와 아울러 조상님들이 잘 보살펴주셨기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고, 조상의 은덕으로 만사가 형통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 번째, 부부가 서로 존경하며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지장보살님같이 공경하고, 아내는 남편을 지장보살님같이 공경하며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기도를 하면 그 효험이 배가됩니다. 남편은 흥청망청 사는데 부인이 밤낮 기도를 해도 효험이 적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제 경험에 비추어 보시를 할 때 아끼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시하는 마음은 남에게 줄 수 있다는 행복한 마음이며, 보시한 것이 유용하게 쓰여지기 때문에 보시야말로 좋은 업을 쌓는 일이며, 업장소멸의 길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실로 보시하는 데 주저하지말아야 합니다. 보시라는 큰투자를 하지않고 인색하게 살면서 큰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입니다. 열심히 보시하면 하는 만큼 그 과보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일매일 시간날 때마다 하는 것이 바로 감사의 기도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화엄성중님 감사합니다. 호법신장님 감사합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아내님 감사합니다. 자식님 감사합니다. 상관님 감사합니다. 부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모든 사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나면 정말 하루하루가 즐겁고 매사 하는 일이 잘 풀리게 됩니다.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고, "모든 중생 다 구해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원력을 세우신 지장보살님을 만나 불가사의한 가피를 입고, 더 나아가 날마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위해 제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제 삶의 변화를 보고 많은 분들이 불법을 배우고 지장기도를 올리면서 감사의 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이 살기좋은 극락정토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쓰도록 가피 내려주신 부처님, 지장보살님, 조상님과 불법으로 잘 이끌어주신 심원사 영도스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이 글을 쓴 사공유님은 철원 심원사, 파주 보광사, 서울 강동구 길동의 대흥사에서 신심을 기른 분으로 현재 육군본부에 근무 중이며, 육군본부 호국사 불자이다.


출처: 지장보살영험록 김 종매외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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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아의 죽음과 해원(解寃)

불교를 깊이 신봉하는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있는데, 신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한 불자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의 생활은 즐거움이 충만하였으며, 계를 지키고 독경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아내인 종홍(鍾紅)보다 일찍 결혼한 몇 명의 여자친구들은 『지장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꾸준히 염송하며, 아울러 가족들에게 살생하여 보신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에 다들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 이들 아기의 공통된 특징은 키우는 과정에서 영리하고 잘 웃으며, 거의 울지 않으며 병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도 아기를 임신한 후 아기를 위하여 『지장경』을 염송하면서 선근이 깊은 아기를 낳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임신 기간 내내 아내는 입덧이 매우 심했다. 메스껍고 구토하며, 몸이 붓고 좌골신경통이 생겼고, 음식 맛도 모르겠고 밤에 잠도 편히 못 자고 하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고통을 다 맛보았다. 하지만 낳기 전에 마지막 임신검사까지 줄곧 태아는 모든 게 정상이어서 위안을 받았다.

출산 예정일은 정월 초하루, 이것은 더욱 전 가족을 기쁘게 하였다. 납월 30일 집집마다 모두 모여 설 떡을 먹고 폭죽소리가 대지에 울려 퍼졌다. 아내의 뱃속 아기도 특별히 힘을 주며 발로 찼다. 시어머니가 “이 아기는 아마 마음이 급한가 보다. 빨리 나와 폭죽을 터뜨리고 싶은가봐.”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무상한가 보다. 아이는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아’ 죽은 것이다. 죽은 때가 설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태아가 움직인 후 온 가족이 행복의 동경 속에 빠져있을 때 죽은 것이다.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들 부부의 곤혹과 고통은 물론이고,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 부부의 일 때문에 나는 그 해의 설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해산하는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아빠 맹위(孟偉)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아들의 체온을 영원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부림쳤다.

나는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하늘은 이렇게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불제자에게 이와 같은 횡액을 만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은 그들이 불교를 믿지 않는 부모와 친척들에게 ‘불교를 믿는 것은 미신이다’라는 구실까지 주게 되었고, 크게 보면 그들 부부의 도심(道心)을 잃게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묘법 노스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결코 애석해하는 반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직설적으로 “좋아, 잘 됐어!” 하고 말하셨다. 예상을 벗어난 말씀이셨다. 아울러 맹위의 할아버지가 도살장의 백정을 하면서 많은 돼지를 죽인 적이 없느냐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스님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번에 태에 든 신식은 특별히 빚을 받으러 온 원수이다. 따라서 그가 태에 들면서부터 산모를 괴롭히며 가족들에게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성심으로 염불하며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지속하자 그 태아는 점점 불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지장경』은 그를 대신하여 숙세의 업장을 없애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금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하였다. 맹위의 할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소멸하면서 다시는 자손들에게 보복하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왜 출산 때 죽었느냐? 그것은 첫째 모자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그가 경법(經法) 듣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최후까지 머물다가 간 것이다. 그는 지금 이미 천계(天界)로 수행하러 올라갔으며, 다시는 인간세계에 와서 원수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 부부가 불경을 염송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반드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집안에 태어나서 성장함에 따라 그들 가족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 최후에는 그 애의 손에 패가망신하게 될 운명이었다. 따라서 아이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재앙이나 사실은 화(禍)로 인하여 복을 얻은 셈이다. 그러니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깜짝 놀랐다. 즉시 비통에 빠져있는 아기 아빠에게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알고 보니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정말로 돼지 잡는 일을 하였으며, 죽기 전 이상한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묶어 놓지 않으면 쉬지 않고 주먹으로 두드렸으며, 그래야 그의 몸이 편안해졌다. 그분은 죽을 때 매우 고통스러워하였으며 또한 보기에도 흉측스러웠단다(이 일은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이 일 또한 그로 하여금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단다).

그분의 몇몇 자녀도 모두 병으로 고생하였다. 맹위의 부친은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했으며, 큰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서 10년을 지냈다고 한다. 맹위의 대에 이르러 그의 형은 사십도 못 되어 정신이 이상하여 하루종일 이것저것 의심하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그를 욕한다고 생각하여 직장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맹위와 그의 누나는 앞뒤로 척추디스크를 앓았으며, 누나는 수술을 해도 완치되지 않았다.

묘법 노스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맹위가 불법을 배우며 채식을 하고 불력(佛力)의 가피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혼하면 안 되며, 설령 결혼하더라도 자식이 없을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안은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하여 후대 자손들이 몰락하고 병이 많을 것으로 정해졌다.”

스님의 법어는 마치 한바탕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삿된 불을 껐으며, 모든 사람의 의혹을 해소하였다. 더욱이 맹위와 종홍 부부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으며, 부부는 지금 더욱 용맹 정진하고 있다. 나는 그들 부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제불 보살께서 그들을 가호하여 빠른 시일 내에 귀한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 믿는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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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장기도로 깨달음을 이룬 큰외삼촌

일타스님 글



우리 집안 41인의 승려 중 가장 먼저 출가한 분은 나의 큰외삼촌인 김학남(金學南, 1902∼1955)으로 나의 어머니인 성호 비구니의 바로 밑 동생입니다.


큰외삼촌은 할머니 평등월 보살의 기이한 입적을 접하고 열심히 절에 다니다가, 23세의 나이로 1924년에 출가하였습니다. 처음 만공(滿空) 스님을 찾아가 머리를 깎아줄 것을 청하자, 만공스님은 사형 혜월(慧月) 스님의 제자가 될 것을 권했습니다.


"나의 사형 중에는 혜월이라는 천진도인(天眞道人)이 한 분 계시지. 혜월 사형은 너무 천
진무구하여 남의 스승이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내가 주선하지 않는다면
사형은 평생 제자를 못 들일거야. 네가 그분의 첫 번째 제자가 되어 봄이 어떠하냐?"


큰외삼촌은 만공스님의 권유대로 혜월스님의 제자가 되어 법안(法眼)이라는 법명을 받았
습니다.


그뒤 큰외삼촌 법안스님은 오대산·금강산·천성산·지리산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이름 있는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참선정진을 하였습니다. 오직 바루 하나, 누더기 한 벌로 살면서 선방에만 다녔습니다.



유유자적(悠悠自適), 법안 스님은 그 어떠한 것에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는 무애(無碍)의 행을 거침없이 하였고, 어느 때는 시를 지으며 스스로의 경지를 점검하였습니다.

일천 봉우리 위의 한 칸 집이여
반 칸은 노승이 반 칸은 구름이 차지했구나
어느 때 서쪽 바람 불어 구름이 날아가면
하나뿐인 창으로 밝은 달이 서로 찾아와 비추네

千峰頂上一間屋
半間老僧半間雲
有時西風雲飛去
一窓明月來相照

이것은 스님이 금강산 토굴에서 지은 시입니다.

이렇게 10여 년을 참선정진하며 지내던 법안스님은 35세가 넘자 해인사 백련암으로 들어와, 영구천(靈龜泉)이라는 조그마한 샘을 파고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지장기도를 하리라 다짐 했습니다.


스님은 단순히 입으로만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과 하나가 되도록 마
음을 모으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2시간씩 네 차례, 하루 8시간의 기도를 시작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기도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5년이 경과하자 삼매(三昧) 속에 빠져들어 3,4일을 밥도 먹지 않고 대소변도 보지 않고,
마냥 서서 목탁을 두드리며 지장보살을 부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대중스님들은 "법안스님이 저토록 기도삼매에 자주 드는 것을 보니 머지 않아 깨달음을 이를 것이다."라고 하면서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9년이 되었을 때, 법안스님은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법당을 뛰쳐나오며 외쳤습니다.


"허공골(虛空骨)을 보았다! 허공의 뼈를 보았다!"


그리고는 짧은 오도송(悟道頌)을 지었습니다.


허공골 중의
유상 무상이여
상 속에는 부처가 없고
부처 속에는 상이 없다

虛空骨中
有相無相
相中無佛
佛中無相


그 때 백련암 스님들은 당시 법안스님의 기도성취를 축하하면서 '영구천구년지장기도기념
비(靈龜泉九年地藏祈禱紀念碑)'를 세웠는데, 그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지장기도를 통하여 한 경지를 이룬 큰외삼촌 법안스님은 걸림 없는 법문으로 대
중들을 교화하면서 더욱 자재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1955년 가을, 홀연히 서울 도선사 석
불 뒤의 바위 위에 앉아 아무도 모르게 입적하셨습니다.


이처럼 삼매를 이룬 기도는 오도(悟道)와 직결됩니다.

깨달음의 원(願)을 세우고 불보살과 하나가 되면 능히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삼매(三昧)!

부디 삼매를 이를 때까지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부지런히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나'의 불성(佛性)이 발현되어 우리를 해탈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출처: 일타스님 기도성취영험담 모음집 祈禱(기도) (도서출판 효림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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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장경의 힘]




황 전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말단 공무원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가 어쩔 수 없는 보증을 서 주다보니, 빈손으로 공무원 생활을 청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친정집이 여수 한산사 절 밑에 있는데, 아마 방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날 등산복 차림으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실례합니다.”

하고 대문을 들어서니 60대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스님께서 무슨 일로...”

하시면서 합장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받아본 합장이라 어떻게 답할 줄도 모르고 인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는 스님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이 아니네. 거사님이 대문을 막 들어오는데 내 눈에는 스님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할머니라 눈이 좋지 않아서 그러려니 생각하였습니다.

“할머니,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까?”

“방? 방이야 있지, 그런데 거사님은 불교를 믿나?”

“아닙니다. 저는 불교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방을 내 주지 않아! 거사님이 앞으로 불교를 믿는다면 방을 내주지.”

“그러세요?

저는 아직 불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할머니, 믿고 안 믿고는 나중 일이고, 방을 하나 주실 것인지 안 주실 것인지 결정을 하십시오.

할머니, 이 동네 약수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 약수터가 어디 쯤 있습니까?”

“약수터? 저 쪽에 있지.”

“할머니, 그러시면 제가 약수터에 갔다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방을 줄 것인가 주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약수터에 가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 다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할머니가 방을 공짜로 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할머니의 시집간 딸이 와서

내게 말을 해 주었습니다.

내게 방을 공짜로 내 준 이유는,

내가 약수터를 가고 있는데 제대로 가는지 할머니가 담장 너머로 보는 순간,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기면서 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 약수터로 가고 있었지만,

또 하나의 내가 밭 한 가운데에

결과부좌를 하고 합장을 하는데,

하늘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빛이

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방을 내 주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 옆에는 이백여 평의 밭에 농사를 짓고

밭 주변으로는 개집을 여러 채 지어 놓고 개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 집에서 그런대로 살기는 좋은데 많은 개들 때문에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돈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10여일 후 방 계약 날짜에 이사를 와 보니 개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다가가보니 개장에 있던 7,8마리의 개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밥을 줄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하던 개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어 있다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들이 죽은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내가 이 집에서 불교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량을 청소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온지가 몇 달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한산사가 있었지만 절에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절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할머니의 딸이 친정에 왔다가 나를 보더니 지장경 한 권을 건네주면서 심심하면 읽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주는 성의를 봐서 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장 넘겨보니 꼭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가 적혀진 책 같아서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지장경을 내 눈에 잘 띄는 마루 선반위에 올려놓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놓아두겠습니다. 심심하면 언제든지 읽어보세요?”

“알았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을 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나는 난생 처음으로 우리 할머니와 그 밖의 조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장경을 아무런 성의도 없이

그냥 몇 장을 넘겼을 뿐인데.

나는 순간적으로 그 책이 보통 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지장경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 손 가는대로 책장을 펴서 읽어보는데,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내 이야기가 거기에 적혀 있지 않겠습니까?

‘지장경 12품: 만약 미래세에 어떤 남자나 여인이 혹은 젖먹이 때나, 혹은 세 살, 다섯 살, 열 살 아래에 부모나 형제자매를 잃고서, 그 사람이 장성한 뒤에 부모나 권속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함에 어느 곳에 떨어졌는지,

어느 세계에 태어났는지, 어느 천상에 났는지 모르거든, 이 사람이 만약 정성껏 지장경을 3번 내지 일곱 번을 읽으면 알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온 몸을 적실 정도로 울었습니다.

고아들은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들이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일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런 고아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분들이 계신다는 생각에 울고 또 울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날 밤부터 잠들기 전에 지장경 첫 장에 그려져 있는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리고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지장경을 읽기 시작하면 잠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잠과 씨름을 하면서 읽고 또 읽었는데 일주일만에 겨우 한권 읽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1일 만에 3독을 마쳤습니다.




그날 밤 꿈에,

내가 천상에서 어린동자의 몸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지옥 구경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꿈에서는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나의 어머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싶어서

21일 만에 또 3독을 하고 나니,

그 날 밤 꿈에 나는 또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몇 개의 지옥을 구경하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책을 건네준 할머니 따님이

오후에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장경을 다 보셨지요?”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어제 밤에 꿈속에서

아저씨와 아저씨 부모님을 보았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 벼루에 먹을 한동안 가시더니 갑자기 맑은 물로 그 먹물을 짝! 씻어내 버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됐다.’

그러시는 겁니다. 거기까지 보고나서

꿈을 깼거든요.”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곧바로 절에 올라가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출처: 황전스님 오도선방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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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벼랑끝에서... 지장보살님 가피를..."


저희 남편은 사진작가입니다. 그런데 2년전부터 차츰 눈이 안보여 결국엔 한쪽 눈을 실명 하게 되었고 나머지 한쪽도 거의 안보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2년동안 모든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아보았지만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 다 심원사 스님을 찾아 뵙고 상담을 하게 되었고 2003년 1월 31일날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를 지내고 나서 스님이 병원에 가봐라 하시기에 그 다음날 남편과 병원 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뇌사진(MRI촬영)을 여러번 찍었어도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뇌종양이 크게 보이더군요. 선천성 뇌종양이라는 의사말이 1월 중순사진에는 안보이고 2월 초에 찍은 사진에는 보이다니...

의학적으로 이런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이제 뇌종양이라는 병명은 받았지만 의사선생님 말씀이 날벼락처럼 느껴지더군요. 수술을 해야하느데 수술하다 죽을확률이 60%, 다시 회생활 확률이 40%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더군요. 또 수술이 성공한다 해도 종양의 반 밖에는 제거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였지요. 또 수술을 하지 않으면 1년정도 밖에 살수가 없다 고 하더군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수술을 하고 싶으면 내일 아침이라고 빨리 하자고 하더 군요.

저는 수술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고 남편자신도 결정을 못하였습 니다. 그래서 또 심원사 스님께 전화를 해 어떻게 해야할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말씀이 잠깐 기다리라며 오늘밤에 스님이 위패만모시고 구병시식을 하고 전화를 주겠다고... 저는 초조한 마음에 안절부절하고 있었는데 밤 9시경에 스님이 전화 주셔서 구병시식이 잘 되었으니 수술을 하라고 하시기에 스님을 믿고 수술서류에 사인을 하였습니다.

남편에게도 그대로 말하였더니 남편도 "나 맘편하게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수술실에 들어가던 남편이 갑자기 "나 보인다. 글씨가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 다. 한쪽밖에 안 남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수술은 성 공적으로 끝나고 남편은 살아서 저의 곁에 왔고 또 반밖에 제거할 수 없다는 종양은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남편은 자기 수명대로 잘 살 수 있게 되었고, 저는 지장보살님의 가피에 어떻게 보답하나 싶어 스님과 상의하여 저희 남편의 작품을 보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심원사 공양간에 걸려있는 대형 연꽃사진이 저희 남편의 작품입니다. 지장보살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심원사 스님들께도 이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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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장보살님의 무한한 가피에 두손모아 감사드립니다"

지난 2001년 아들이 1차, 2차, 3차 부도에 이어 4차 부도까지 나서 총 부도액만 몇십억원이 되었습니다. 부도를 막을 길이 없어 제가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은행에 저당 잡히게 되었 지요. 그러나 부도액을 전부 막을 수가 없어서 대지 400여평 되는 살고 있던 집마저도 모두 다 날려 버리게 되었습니다. 은행에서 근저당 가압류가 들어와서 처분하게 되는 고비를 맞 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소송이 계류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둘 곳이 없던 차에 혜성한의원 한보살님의 소개로 심원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바로 2003년 1월 17일, 제가 처음으로 지장보살님을 뵙게 된 날이었지요. 심원사 스님과 상담후에 심원사에서 거주하며 기도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에 도량소리와 함께 기상하여 촛불을 켜고 다기물을 올리며 새벽예불도 반드시 참석하였고 시간이 나는 대로 심원사 절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도량을 쓸고 공양간을 도와주며 시간이 나는대로 제 한몸 아끼지 않고 보시를 한 것이지요. 이 곳 철원은 눈도 많이 내리는 곳이라서 어느날은 10여시간동안 눈을 치운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몸살한번도 걸리지 않는 것은 다 지장보살님이 저를 지켜주시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매일매일 노동보시를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길 40 여일이 지난 어느 날 저는 재판에서 승소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고 약간의 재산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노후를 맞이 할 수가 있게 되었지요.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하여 심원사 지장보살님을 찾을 계획입니다. 여러 신도님들도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신다면 저처럼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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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장보살님의 너무나 크신 가피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5남매의 어머니입니다. 저의 남편은 5년전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장남은 대학1학년부터 영가장애로 아프기 시작하여 대학교도 중퇴하였습니다.

저는 장남의 병을 고쳐보고자 14년동안 천도재, 굿, 만신 등 안찾아 가본 곳이 없을정도로 돌아다니며 일년 평균 2,000만원이상의 재산을 탕진하였으나 아들은 점점 더 심해만 갔습니다. 생활도 궁핍해지고, 사는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안정자보살님 소개로 심원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심원사스님과 상담하고 천도재 및 구병시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장남은 정 신병원에 입원을 고려하고 있었으나 구병시식 후 많은 차도를 보여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십 수년간의 마음고생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쁨이었습니다.

저의 업장이 두터운지 2002년 12월에는 손주가 교통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의식을 잃은지 17일째 저는 또다시 스님을 찾아와 상담하고 천도재를 하였습니다. 천도재를 지내고 이틀만에 손주는 기적처럼 의식이 들어왔고,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대학졸업반입니다. 취직시험때 필기시험 성적은 좋은데 면접만 보면 떨어 져서 스님께 기도를 부탁한지 3일만에 한진중공업이라는 대기업에 합격하였습니다. 저는 짧은 기간안에 지장보살님의 너무나 큰 가피를 받았습니다. 지장보살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또 저를 지장보살님에게 인도해주신 안정자보살님과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심원사 스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미약하나마 이글을 통해 올립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처: 지장도량 심원사(www.simwon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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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보살님, 오늘은 3천배를 해보시지요."

부천에 사는 자비심(가명)보살은 가끔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내원궁에서 같이 기도하던 스님이 밑도 끝도 없이 3천배를 권하자 의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에 10시간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면서 3천 배를 마쳤다.

그 다음 날 부천으로 돌아간 보살은 주차장에 남편의 자가용이 없는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외출했나싶어 열쇠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집의 문은 열려있었다. 혹시 도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보살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가 반갑게 아내를 맞는 것이었다.

"여보,여보. 나 정말 큰일 날 뻔했어.죽지않은게 정말 믿기지 않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던 보살은 남편의 말을 듣자 등골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자가용을 몰고 나갔는데 아마 속도를 좀 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전봇대와 충돌해서 차가 전복되어 폐차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남편은 털끝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사건현장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자비심보살은 그 모든 게 도솔암 내원궁에서 3천배를 드린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 그 때 힘들고 귀찮은 생각에 스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부처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지장보살님, 살펴주신 덕분에 남편이 철갑옷을 입은 마냥 조금도 다친 곳이 없으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보살은 그 일이 있은 후 형편이 허락하는 한 자주 도솔암을 찾는다고 한다. 하기야 남편의 목숨을 구해주신 지장보살님이 계신 곳인데 아무리 길이 멀다해도 어찌자주 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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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도솔암의 지장보살님은 특히 병고로 고생하는 불자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언젠가 대
구에 사는말기 유방암 환자였던 한 보살이 찾아와 지극 정성으로 기도한 지 23일 째 지장보살님이 방광하심과 동시에 그 보살은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 방광의 정도가 얼마나 휘황찬란했던지 새벽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에 불이 난 불 알고 허겁지겁 뛰어올라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2)

1996년 여름, 대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주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만 몰두하다가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을 때에는 유방암이 이미 말기에 이르러 수술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불자였던 그녀는 갑자기 찾아든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가 문득 결심을 하였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한번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나의 죄업 때문이 아니더냐. 마지막으로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업장을 소멸하고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자. ‘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그녀는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도솔암으로 찾아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365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끼니때마다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므로 ,하루 한두 끼만 먹으며 도솔암의 내원궁에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힘닿는 데까지 절을 하였다.

23일째 되는 날 밤, 땀과 눈물로 옴 몸이 흠뻑 젓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라.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잠만 자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그리고는 불단 위의 지장보살님께서 내려와 가슴 뒤쪽의 등을 어루만지더니 대침(大鍼)으로 세번을 찔렀다.

지장보살님께서 세번째 침을 빼는 순간, 그녀는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났고 ,갑자기 가슴주위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같은 시각 ,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으로부터 붉고 푸른 색의 빛이 하늘로 뻗쳐 오르는 것을 보고 환희의 예배(예경)를 올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예정 했던 백일기도를 마치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암에 걸렸던 자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 지장신앙,지장기도법, 김현준저, 도서출판 효림 ,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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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목포에 사는 보광화 보살은 육순이 넘으면서부터 꺼림칙한 꿈에 시달려야했다. 꿈 속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친구가 나타나 보살에게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네, 갈 길이 먼데 뭘 그리 꾸물대는가? 빨리 나를 따라가세."

보광화 보살은 꿈 속에서 너무 피곤하니 5분만 더 잔 후 출발하자고 애걸했다. 그러나 친구는 흉흉한 기세로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그치기 일쑤였는데 그 옆에는 돌아서있는 탓인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여자가 보따리를 들고 서 있더란다. 딱 5분만 , 딱 5분만, 보살은 그렇게 친구와 실랑이를 하다가 잠에서 깨어나곤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을 꾸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 꿈을 꾼 후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고, 또 한번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보살은 잠자리에 드는 일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보살은 도솔암 지장보살님이 영험하시다는 말을 듣고 만사 제쳐좋고 달려가 기도를 하다가 쉬는 틈을 이용해 한 스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스님은 지장경을 매일 독송하며 지극히 지장보살염불을 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라고 가르침을 주셨다고 한다.

과연 도솔암에 다녀와 매일 지장경을 독송한 이후 보살은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았을 뿐더러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도 전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영험도량에서 기도성취한 이야기 진 현종저 대원미디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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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관음전ㆍ도솔암 도솔천내원궁ㆍ참당암 약사전에 각각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지장 삼장(三藏)을 탱화가 아닌 불상으로 모시고 있는 유일한 사찰이다. 이는 성종 때의 중창이 왕실의 원찰(願刹)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선왕(先王)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먼저 지장을 모시고, 이에서 나아가 삼장을 모심으로써 이곳을 지장신앙의 중심지로 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장보살과 관련된 각종 영험담이 이어지고 있어,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기도 도량으로서 사시사철 기도하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음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상(보물 제279호)과 관련된 대표적인 영험담은, 일제강점기에 도난을 당하였다가 다시 선운사로 돌아오게 된 일이다.



1936년 당시 일본인 2명과 우리나라 사람 1명이 공모하여 보살상을 훔쳐간 뒤, 거금을 받고 팔아넘겨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지장보살상이 소장자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서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으니,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소장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후로 병이 들고 가세(家勢)가 점점 기울게 되자 꺼림칙한 마음에 보살상을 다른 이에게 넘겨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이 소장자의 꿈에 나타났고, 이를 무시하여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게 되자 그 역시 다시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이 보살상을 소장한 사람들이 겪은 일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소장하게 된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고창경찰서에 신고하여 모셔갈 것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시 선운사 스님들과 경찰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보살상을 모셔오게 되었는데, 이때가 도난당한 지 2년여 만인 1938년 11월이었다. 당시 잃어버린 보살상을 다시 모시고 온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에도 사건에 대한 이러한 개요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처: www.koreatemp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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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 혜숙님의 법보신문과의 인터뷰 내용

"11년 전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차도가 없던 중 한 불자의 소개로 심원사를 알게 됐습니다. 반신반의하고 심원사를 찾았습니다. 두 번째 오던 날, 철야기도를 하는데 지장보살님이 저를 보고 웃고 계셨습니다. 다음날 집에 돌아갔더니, 글쎄 남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있는게 아닙니까? 그 후론 집안의 대소사가 모두 잘 풀렸습니다. 그런데 3년 전 남편이 일때문에 충격을 받아 또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 부부는 확신을 갖고 기도하여 다시 병을 이겨냈습니다. 지금 우리 내외는 매주 심원사를 찾고 있으며, 1박 2일 혹은 2박 3일씩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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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임 인숙 보살은 3대독자인 남편과 결혼하여 이미 두 딸을 두고 있었다. 1976년 세 번째 임신을 하자 아들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하다가 임신 8개월째 인공중절을 하려고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병원문을 박차고 나왔단다.

이윽고 임보살은 이듬해 1월 귀여운 옥동자를 낳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갔는데, 허리 디스크라는 진찰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3주간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완쾌되지 않은 채 다시 군병역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다. 물론 허리 디스크로 판명되었고 병무청에서는 입대에 지장이 있는데 증빙서류로 종합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를 가지고 오라했다.

임보살은 광명회 문 창기법사를 찾아 상담한 끝에 임신 8개월 때 중절하려는 마음을 품었던 것이 탈이 난 것이라 여기고, 21일 동안 매일 시간을 정해 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21일 기도가 끝난 날 상계동 백병원에서 MRI촬영을 받았는데 끌쎄 아무렇지도 않다는, 즉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또 신기하게도 4번 척추뼈에 있었던 멍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보살의 아들은 현역입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논산 훈련소로 들여보낸 보살은 집에 와서 이렇게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했다.

"이미 저희가 살고있는 가평으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아들, 지장보살님의 아들로 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들이 보면 욕심많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아들은 6주 훈련을 마치고 가평으로 운전교육을 받으러왔고 지금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경기도 양주군 모 부대에서 근무를 하고있다니,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임보살은 항상 부처님과 천지만물에 감사하는 태도로 만사를 자신있게 처리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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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대원화 보살은 어느날 심원사에 차를 몰고 오다가 너무 졸려 길에 차를 세워놓고 잠깐 잠이 들었단다. 그런데, 꿈 속에서 맑은 물에 고기 두마리가 서로 만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개울가득 물고기가 가득차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어 마치 극락정토를 보는 것과도 같았다. 잠시 후, 잠이 깬 보살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참 이상한 꿈이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징조일까?"

그 때는 ,IMF로 불경기가 혹심했던 참이라 대기업도 줄줄이 도산하는데 대원화보살집에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 생겼다. 그 혹독한 불경기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커다란 일을 수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대원화 보살은 지장보살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라 믿고 더욱 열심히 심원사를 찾으며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



12~14

출처: 알기쉬운 지장보살, 지장기도 이야기 진 현종저 , 은행나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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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장천일기도회향 100일을 앞두고


900일이란 시간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고 보면 손가락

틈새로 떨어지는 모래알같이 흘려 보내기가 쉽다
게다가 내면적으로는 전혀 변화 없이 흘려 보내는 게 보통 하는

일이다.반면 어떤 서원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은 매 순간을

헤아리면서 보낸다.
때문에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없어서 양으로 엄청난 시간을

가지며항상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위치가 바른가를 점검하기

때문에 방향을잃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 커다란 변화를

얻어내게 된다.

이렇게 나는 지금으로부터 900일 전에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그 연유는 이렇다.
우리 집 가장과 나는 대학시절 만나 5년을 사귀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둔 중년의 부부이다.
그러던 중 10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훌훌 단신 고향으로 내려가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몇 달이면 끝이 날 줄 알았던 준비기간이 1년,2년으로 길어지자 우리
가정의 경제는 물론이려니와 정신적으로도 버티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도 난 끊임없이 부처님을 찾아가 그의 일이 잘되어서 어서

이 고통에서 헤어나기만을 기도하였다.
그간의 어려움을 다 벗고 완벽한 사업체로 일어서려는 순간

그 사람은삐끗 제 길을 벗어나 외간여자와 겉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바짝 차렸어도 버텨 나가기가 힘이 든 상태였던 그

기업이 풍전등화처럼 훅 불어 꺼진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결과이리라.
뿐만 아니었다.
그 동안 빌어다 쓴 주변의 빚을 갚지도 않은 채 그이와 또한 여자는
서류 일체를 몰래 뒤로 팔아 이익을 챙기려고까지 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빚쟁이들의 덜미에 잡혔고 아이들과 내가 살던

전셋집만이라도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기도해온 덕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성과 판단을 몽땅 잃었다.
옷가지를 챙겨들고 집을 나가 그 여자와 아예 동거로 들어갔다.
서류 상 그 회사의 주주로 되어 있던 내가 그의 권한을 위임받아

빚을 안는 조건으로 회사를 넘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사정사정하여 겨우 오백 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10년 간 벌어둔 재산을 몽땅 부어 버린 허탈감과 남편에게 버려

졌다는배신감, 어린 두딸을 어떻게 길러야 할 지에 대한 불안감 등 ….
밤이면 더욱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밤을 꼬박 새웠고,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당시 내 모습을 본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까맣게 타들어 간다고 하였다.
천일 기도는 바로 이때에 시작되었다.
시어머니 제사를 21일 앞두고 매일 지장전을 드나들 때였다.
우연히 만난 한 보살님이 본인도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 지장경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다음날부터 매일 한번씩 지장경을 읽고 108배씩 절하며 지장보살을
1000번씩 염송하였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천주 염주를 돌리며 염불을 하였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참으로 오랜만에 잠이 푹 들수 있었던 그 감사 함,그것이 첫 번째 변화였다.


100일이 지날 때쯤이었다.
문득 이러다간 우리 세 모녀 굶어 죽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의 일은 제쳐두고 내가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되었다
각 가정으로 직접 교재를 갖다 주면서 학생을 마다 잠깐씩 지도 해주는 눈높이 교사였다.
이 일이 비록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우선 생계 대책이 되었다는 고마움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방문해야 할 집이 아파트 5층이면 층계 첫발을 디딜 때부터 한쪽 손에는 학생에게 줄 교재가 두둑이 든 가방에 들려 있었다.
나에게 커다란 짐인 반면 삶의 보람은 다름 아닌 두딸이었다.
일을 끝내고 지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올라갈 때면 내 마음은 그리움으로 꽉 차 있었다.
어떤 때는 유치원에서 일찍 온 작은딸을 잠시보고 나갈 때가 있다.
아이는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고양이 추적을 시작한다.
가슴에 종이별을 달고 한 손에는 다림질용 분무기를 들고 고양이에게
선포한다.
"넌 체포되었다. 손들고 나와라"

고양이는 재빨리 싱크대 밑으로 식탁으로 피해 다니다가 결국 침대 밑이나
책상아래에서 잡히고 만다.
고양이 꼬리를 잡아당겨서 밖으로 꺼낸 뒤 얼굴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댄다.
" 은우, 그별은 뭐야?"
"경찰 표시야, 난 경찰이니까."
사춘기를 맞은 큰딸아이는 엄마에게 반발하기도 했다.
저녁나절 후다닥 뛰어 나간 딸. 결국 공원에서 만났다.
은비는 얼마나 자신이 슬픈지를 엄마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도 엄마를 편히 해주지 못해서 괴롭다고 하였다.
점차 내가 안정을 되찾아가면서 큰 딸아이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집안 분위기 탓에 책을 좋아하고 조숙해진 아이가 글짓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장려상, 입상,우수상,장원...차례차례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비록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지만 아이들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휴일이면 함께 산책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우리 두 딸들이 큰 위안을 받는 곳은 다름 아닌 어린이 법회,
학생법회였다.
부처님의 밝은 미소가 언제나 우리 두 아이의 마음을 밝게 해주었다.
학교에서 떠나는 여행길에 은비가 대관령에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너무 사랑해요."
어느덧 기도는 500일을 넘기고 600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저녁나절 집에 올라갈 때면 2층 아랫 계단에서부터 큰 딸애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을 누르면 "엄마,피곤하시죠."하고 큰딸아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 시간까지 나는 아파트 13층의 꽁꽁 언 복도를 걸어다니며 각
집을 방문했다.
그 때마다 어둠 속에서 비치는 가정의 아늑함과 버려지듯 둘이 있을 때모습을 가슴 아프게 비교하기도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지도하던 한 남자아이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 어머니는 사업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몸이 고달프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전혀 돌볼 수 없는 직장에서 벗어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결국 나는 집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점포를 하나 갖게 되었다.
종목은 커튼·침구 수예를 취급하는 가게여서 빈 시간에는 경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끔 책상과 의자를 갖추어 놓았다.
물론 이 곳에서 틈틈이 아이들 지도도 할 수 있었다.


우리 작은 딸의 유치원 졸업식 날 엄마는 또 눈물을 흘렸다.
2년 동안 스포츠 센터를 다니면서 엄마는 입학식 날 겨우 한 번 왔을 뿐이었는데 누구 못지 않게 씩씩하게 앞장서서 수영하는 아이를 보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올 봄에는 큰딸이 우리가 사는 지역 내 중고교학생 백일장에서 시 부문에 입상하였다.
엄마가 피곤해서 먼저 잠이 든 뒤에도 작가가 될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을
읽고 원고를 수정하느라 은비의 책상에는 자정이 넘도록 스탠드가 커져 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운 날이었다.
우리 세 모녀는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고 만족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두 딸들은 서해 간월도에서 고기에게 좁쌀도 주었고 수덕사에서 참배도 하였다.




불과 두 주 전의 내 생일에는 두 아이가 너무 분주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집 앞 베란다에는 20개가 넘는 촛불이 출렁이고
있었다.
절에서 쓰고 버린 몽당초를 모아 와서 엄마 주위에 켜 주었다.
'소원성취'만 남아있는 부처님께 올려진 초.
하늘의 별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딸들의 눈동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모든 평안은 내가 지장보살을 염하면서
내 자리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900일 전에 난 내 자신이 땅을 기어다니는 벌레처럼 비굴하게 느껴졌었다.어떻게 하면 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하고 한탄했다
이제 나는 번데기를 벗어나 고치를 뜷고 나가려는 나비로 변한 자신을 느낀다.
요즘 들어서 나는 내 스스로 복이 없지 않고 오히려 많다고 생각한다.

불과 한두 차례 작은 실수로도 파산을 하는 가정이 많음에 비해 태풍과 풍랑을 만났음에도 나와 내 두 딸이 안전할 수 있고 또 그 속에서 오히려
더 굳어지고 성숙해졌음에 아주 깊은 감사를 느낀다.
이제 100일만 더 있으면 회향이다.
회향의 바른 의미는 그동안 기도하고 닦아온 나의 정성을 주위에 돌린다는 것이다.
비단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편과 그 여자 그리고 그 누구에게라도 부처님의 자비를 보이리라…





내가 이제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관찰해보니
항하사 겁을 설하여도 다 할수 없네
한순간만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한량없는 이익이 하늘과 땅에 넘쳐나리라.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왕보살 마하살







《출전: 지장보살 영험록, 김종매외, 불광출판부,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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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 글을 쓰신 분은 30대 초반의 여성불자입니다.
이 분도 지장신앙 지장기도법에 소개되어있는 지장기도법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1)

얼마전에 선명하진 않지만 꿈속에서 어떤 스님이 내 머리에 우유를 부어주시는

꿈을 꾸었다.


2)

나는 지장보살본원경을 먼저 읽은 후 항상 천알염주(千珠)를 돌리면서 지장보살을 일념으로 생각하며 친아버지와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런데 어느날 꿈에서 할머니와 아빠가 똑같은 색종이로 접은 것 같은 파란색

배 2척에 한분씩 타서 강물을 건너가시면서 아주 환한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며 사라지셨다.



천도가 되신건가? 그런데 왜 여러명이 아니고 한 배에 한분씩일걸까?

하여간 얼굴표정은 너무 환했고 미소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아마..천도가 되신거겠지?



그리고 요즘들어 자꾸 스님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한 옛날 초가집의 누추한 방에 앉아있는데 스님이 들어오셨는데

내게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곤 잠깐 앉아있다 나갔는데 스님이 계셨던 자리에는 책 몇권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스님꿈은 내가 스님한테 꾸지람을 듣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어떤 스님이 나에게 광명진언을 외워보라 하셨는데

난 자면서 생각을 했다. 분명히 이거 내가 달달 외고 있었던 주문인데

왠일인지 꿈속에서는 전혀 한글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깨어나보니 너무나 잘 외워지던데...꿈속의 그 스님앞에선 어버버가 되버리는 것이었다.



글구 다시 참회진언도 외워보라고 했는데 이것도 분명히 외워 갖고 있던 주문인데

그 스님이 계시니 한자도 못외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스님이 공부좀 하라고 역정을 내면서 가셨다.



하여간 희한한 꿈들이다.



3)



어제밤 나는 천알염주를 돌리면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다.

효림출판사의 지장기도 지장기도법에 나와있는대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세생생 알게모르게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구니가 찾아왔는지 자꾸 졸음이 왔다.


그렇게 나는 졸다가 다시 염주를 돌리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느순간부터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상태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친구가 보이는 것이었다.

내친구가 나와! 라고 크게 소리치자 내 몸에서

귀신 하나가 빠져나왔다.

귀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진 않았다. 시커멓고 흐물흐물한 모습에
어느정도 사람의 모양새는 띠고 있었다.그냥 느낌으로 귀신이라는
느낌이 전달 되어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은 엄청난 충격과 진동을 겪어야만 했다.

마치 우주선이 성층권을 빠져나오듯이 말이다.



나는 아마도 그 동안 빙의 되어있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4)

꿈 속에서 지장보살님을 뵈었다.


내가 뵌 지장보살님은 흰색 옷을 입고 계셨으며 온 몸에서 광채가 났다.

난 지장보살님께 나의 아빠에 대해서 물었다.



지장보살님은 날 쓰다듬으시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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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당신은 정말 내 남편이시네요. (www.ekayana.or.kr에서 퍼옴)


94년 9월말 경부터 제 인생에서 가장 알찬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감사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장경 독송을 시작한 이유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도 힘든 결혼 생활에 저는 찌들고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집안 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얼마 후 24세의 나이로 결혼하였습니다. 남편 된 사람은 인물도 잘 생겼고, 집안도 좋은 편이어서 저는 둘이 힘을 합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시 시험 공부를 해 한의과 대학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신한 아이를 유산까지 시켜가면서 직장 생활을 하여 생활을 책임졌고, 남편은 입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부 터 저는 시댁에 적응을 못하고 시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해 시숙님과 동서 형님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편 을 가르듯이 형님은 형님, 우리는 우리, 시부모님은 시부모님이라는 식의 상태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은 한 집에서 살 수가 없어서 집을 얻어 이사를 나왔습니다.

남편의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경제 사정은 날로 어려워졌습니다. 몇 년간 어려운 생활을 하다보니 저도 남편도 지쳤습니다. 게다가 시부모님도 경제 사정이 나빠졌습니다. 젊어서는 큰 사업을 하시던 분들이라 씀씀이는 무척이나 크셨습니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으로나 우리보다는 몇 배나 나은 두 분 시숙님들을 마다 하시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조그만 일에도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남편은 술까지 먹고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했다가 그만두고, 그러면 공부는 그만두고 돈이나 벌어달라고 하면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하는 등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라 부모님께는 하소연 할 처지도 못 되었습니다.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교회며 점치는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간만 마음을 채워주었을 뿐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으므로 저의 갈등과 고민은 더욱더 쌓여갔습니다. 저는 생기를 잃어 갔고 저의 결혼생활은 해가 갈수록 악순환이 되었습니다. 살아갈 희망도 없었고 또 뚜렷이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항상 잠재의식에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죽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정도로 저는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죽지는 못하고 이런 고통에서 헤어나고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였습니다.

이혼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평소에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던 ㅇㅇ사에 계시는 보살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 속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이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비췄습니다. 그러나 보살님은 아마도 남편은 나에게 받을 빚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빚은 갚아야지 회피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니 정 이혼을 하고 싶으면 지장경 독송을 한 뒤 맑은 머리로 판단하여 이혼을 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가지고 지장경 독송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49번 독송을 발원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절에 와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는 집이나 직장에서 독송하였는데 불심이 깊지도 못한 내가 기도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경전을 읽으면 남편은 무슨 나쁜 일이나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눈초리를 보냈고, 직장에서 쉬는 틈에 경전을 읽으려고 하면 직장의 상사들이 눈치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짬을 내 지장경 독송을 계속하였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가정살림을 하는 제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지장경 독송을 하루에 한 번씩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도 저에게 불만이 많으시던 시부모님과 시숙님들, 그리고 동서 형님들께서 달라지신 것입니다. 전에는 직장에까지 전화를 하여 잘잘못을 따지시던 시어머님께서 일체 전화를 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숙님들도 "우리 제수씨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씀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감격하여 지장보살님께 한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장기도를 드리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저는 정말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매달렸고, 불평도 많이 했으며, 울면서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이런 모든 것을 잘 받아 주셨고, 그런 모든 것을 먼저 자신이 변화해야 된다는 것을 꿈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나쁜 꿈으로 잠자리가 항상 불편했는데 지장기도 중반쯤에 꿈 속에서 광륵사의 창건주이신 여화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여화스님은 "부처님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말로 표현할 수없고 근심 걱정이 없고 좋은 곳이다. 꼭 성불하여서 부처님 세계에서 만나자. 나는 부처님 세계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잠자리가 편안했고 나쁜 꿈에 시달리는 일이 없어졌으며 지금은 꼭 보여 주실 것만 꿈에 보여 주십니다. 고민도 많고 말도 생각없이 하던 제가 조금은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말을 할 때도 조심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제 자신을 미워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머리가 맑아져 조심해서 말을 해야 된다는 걸 알았고, 저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차츰 술을 덜 마시게 되었고 조금만 마셔도 취해서 많이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49독이 끝난 후 유산한 아이와 남편의 어렸을 때 죽은 형의 천도재를 봉행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좋아지던 남편이 갑자기 난폭하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을 원하면 하고, 은 행에 있는 빚은 나중에 벌어서 갚아줄테니 지금은 저보고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실망하여 절에 가고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성으로 기도를 했는데 왜 그럴 까?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광륵사 보살님을 밖에서 만나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내가 남편과 시댁 어른들께 진 빚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이 날까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빚을 졌다니.. 그런데 빚쟁이도 아닌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달라고 떼를 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를 물어 보셨습니다. 얼른 이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빚 받으러 온 사람에게 빚도 안 갚고 내쫓으려고만 하니 빚쟁이가 더 날뛸 수밖에 없으니 이제부터는 지장경을 읽은 공덕으로 빚을 갚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부터 내가 진 빚이 있으면 정말로 갚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지장경 독송을 시작했습니다.


지장경 100번 읽으면 사주팔자가 달라진다는 법사님의 말씀에 저는 100번 읽을 것을 발원했고, 지장경 100번 독송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금 남편이 변했습니다.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적은 돈이지만 결혼 후 몇년 만에 월급봉투를 가져왔습니다.

남편과의 이혼 문제로 시작된 지장보살님과의 만남으로 우리 집안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가 시댁 식구들의 변화입니다. 동서 형님 두 분 중 한 분은 지장경을 독송하며 절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다른 한 분은 관세음보살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시아버님과 남편은 집에서 지장경 독경 테이프를 듣고 또 지장경을 독송하고 계십니다. 어려웠지만 지장경을 100번 독송하고 나니 이제는 모든 일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고 미래에 희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100독을 마친 뒤 꿈을 꾸었는데 제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꿈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나의 남편이구나. 아니 지장보살님이 모자란 나를 이끄시기 위해 남편으로 화현한 것이었구나. 그렇지 않았으면 어찌 내가 지장보살님을 찾았겠으며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 시간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은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을 만나뵙고 의논하여 결정내리시면 어떨까요. 이혼은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부처님과 지장보살님과의 만남은 쉽지 않으며 한순간이 평생을 좌우할 것입니다.


나무 남방화주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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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낙태로 얻은 아픔이었는데..(www.ekayana.or.kr에서 퍼옴)


작년 여름 휴가 때 우리 가족은 온천에서 여름 휴가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에 ㅇㅇ사에 들렀습니다. 이 절에는 남편이 존경하는 스승님의 부도탑(浮屠塔)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고, 남편의 학창시절 친구이며 오랫동안 불교공부도 같이 한 친구 분이 법사님으로 계시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도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들른 것입니다. 법사님이 서울에 계실 적에 만났었기 때문에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 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하며 오랜 시간 대화를 하였습니다.

이야기하던 중 저는 무심코 남편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 이상 어떻게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었 습니다. 옆에 있던 보살님이 제 편을 들어줬습니다.그랬더니 남편이 "아프다고 해서 한약도 지어 주고, 병원에가서 종합진찰을 해본 결과 병이 없으니 신경만 안 쓰면 된다고해서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해줘도 아프다고 하니, 낸들 어쩌라는 말이야"하며 그 동안의 심정을 하소연이나 하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법사님이 혹시 유산한 아이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법사님은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이미 생명체이기 때문에 태아일 때 죽은 아이라해서 전혀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무주고혼(無住孤魂)이 된다. 일본에서는 유산한 아이들을 수자령(水子靈)이라고 해서 천도시키는 일이 일반화 되어있는 것 같더라. 지난 번 텔레비젼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엠(M)의 작가도 그냥 완전한 픽션으로 극본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34세로 결혼한 지 6년이 넘었습니다. 결혼 후 곧 임신을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다음에 곧 임신이 되었는데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유산을 한 뒤부터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집안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하고는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겨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좋아지지는 않아 그 다음에는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임신이 되도 몸이 아프니 또 유산을 시키고, 그렇게 하여 6명의 아이를 유산시키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혹시 산후조리가 안되어 그런가 하고는 다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정성껏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병명이 없이 아프다고 하니 가족들은 이제는 '복에 겨워 그런다'고 하며 관심도 안 갖고 남편마저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저대로 몸도 아프고 마음도 상해 이혼까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 때 온천물에 목욕 좀 하자면서 내려왔다가 광륵사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했고 법사님은 그러면 지금부터 지장경을 독송한 뒤에 내일 아침에 아이들의 천도를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불교를 믿었지만 저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심지어는 남편이 못마땅하게 할 때는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서 비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는지 법회에도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장경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하니 밤을 새워서라도 읽으려고 결심하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졸려서 한번도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몇 년만에 처음으로 달콤한 잠을 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저는 공양물을 준비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동안 눈물이 마구 나왔습니다. 죽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리고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유산된 아이들의 천도기도를 드리고 나니 아픈 것도 덜 아프고 가슴에 맺혀있던 것이 풀린 것 같이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라 오후에 출발을 하려니 법사님께서 집에 가서 지장경을 100번 읽어서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와 유산시킨 아이들과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께서 좋은 세계에 나시기를 발원하며 열심히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몸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지장보살님 정말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까? 제 아픈 몸이 씻은 듯이 나았고 저는 다시금 평범한 가정주부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된 것입니다. 평소에 무관심했던 불교에 대해 귀의심(歸依心)을 내게 되었고, 이제는 불제자가 되어 지장경 독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다시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지장보살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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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떠나가다.(www.ekayana.or.kr에서 퍼옴)


광륵사와는 93년 음력 사월 초파일부터 인연을 맺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불교 청년회에서는 매년 초파일날이 되면 부서별로 인원을 나누어 일손이 부족한 사찰을 찾아가서 봉사를 한다.

그 해엔 우리 부서에서 ㅇㅇ사를 돕기로 하였기 때문에 나는 다른 회원들과 함께 ㅇㅇ사에 갔다. 아침엔 신도분들을 안내하고 저녁에는 점등하는 것을 도와 드렸다. 일이 거의 마무리되어 집에 오려고 하는데 법사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주 들르라고 하셨다. 그렇게해서 난 마음이 착잡하고 울적할 때마다 ㅇㅇ사에 가 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법사님과 보살님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는 법우님이 나의 모습이 항상 병색이 깃들인 것처럼 보인다며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약간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영가 천도를 봉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ㅇㅇ사에 들러 법사님께 상의를 드렸다.

법사님은 나에게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면 그 분들을 위해 지장경을 독송해 드리면 좋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39세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고깃배를 타셨는데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나가시면 저녁 늦게 돌아오셨다. 9년이 지났지만 언제나 아버지의 싱글벙글 웃으시는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들에게 힘들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항상 웃으셨던 것 같다.

사고는 갑자기 일어났다. 뉴스에서는 날씨가 흐리다고만 했는데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다. 배에 타신 다섯 사람 중에 아버지만 물에 빠져 돌아가셨다. 우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3년 뒤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싫었고 식욕도 없고 옆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 같았다. 몸은 언제나 불편했고 위장병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런 뒤 나는 광주로 와서 직장엘 다녔다. 나는 평소에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무서운 꿈을 많이 꾸었다. 그래서 깨어 있을 때도 누가 꼭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껴 마음이 무겁고 소화도 잘 안되며 피로도 많이 느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욕심은 많아 몸은 더욱 피로를 느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소한 한마디 말에도 상처를 많이 받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내 쪽에서 먼저 방어자세를 취하는 바람에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그러니 평소에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밝게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작은어머니도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작은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셨는데 고생만하다가 생활이 좀 나아지니까 중병에 걸렸던 것이다. 작은어머니네 형제분도 젊어서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작은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께 '사람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돌아가시던 날 밤에 할머니께는 '어머니, 저기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나를 잡으러 옵니다. 어서 저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하세요. 전 가기 싫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또 오빠는 심장병으로 고생을 많이 해 왔다. 갓 태어났을 때 이불 위가 아닌 맨 방바닥에 눕혀 있었고, 어머니는 오빠의 옆 에서 잠이 들어 계셨다. 할머니께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는데 방이 뜨거워지자 오빠는 뜨겁다고 울었으나 할머니는 방안에 어머니가 있으니 신경도 안 쓰고 불을 계속 지피셨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오빠는 뜨거운 열이 심장에 박혀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계신다.

돌아가신 분들과 오빠의 심장병 이야기를 하니 법사님께서는 우선 지장경을 49번 읽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기도를 드릴 때 항상 영가님에게 극락왕생 하시라고 하면서 기도를 드리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영가님들에게 '갈 길을 못 갔으면 얼른 극락왕생 하시고, 나쁜 곳에서 고생하고 계시면 좋은 곳에 태어나세요'라고하면서 지장경을 독송했다.

매일 한번 씩 지장경을 읽었다. 처음 지장경을 읽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하루에 한 번씩 지장경을 독송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한 분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틈이 날 때마다 읽었다.

49일째 되는 날 꿈을 꾸었다. 누더기 옷을 걸친 스님 한 분이 나타나셔서 나의 등을 두드리며, '기특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그 다음 날은 어떤 할아버지가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왔다갔다하시면서 "밥은 먹을 수 있되, 쌀은 먹을 수 없다."라는말을 하셨다. 나는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쌀을 씻어서 불에 끓이면 먹을 수 있는 게 아닙니까?"라는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그게 아니니라."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아 처음부터 많은 것을 원하니 차근차근 공부하라는 가르침인 것 같았다. 아마 그 할아버지는 지장보살의 화신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나서 나의 아버님과 작은 어머니, 그리고 나와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해 정성껏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천도재가 끝난 뒤에 나는 오빠의 건강 회복과 나의 괴로움이 소멸되기를 바라면서 지장경 100독을 발원하였다. 어려웠지만 무사히 지장경 100독을 성취하였고, 지장경 100독을 끝내는 날 밤에 꿈을 꿨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내 주의를 빙빙 돌다가 떠나갔다.

그 뒤부터는 잠도 잘 자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신경질적인 성격도 많이 없어졌고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매우 원만해졌다. 또한 오빠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오빠는 아직 수술을 한번 더 받아야 하므로 앞으로도 계속 지장경을 읽을 생각이다.

나는 지장경을 독송함으로써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더 깊어졌고, 나도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어야겠다는 발원도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전해 주어 그들도 나와 같은 기쁨을 맛보게 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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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바른 정신을 되찾다.


광륵사를 찾게 된 것은 같은 동네에 사는 ㅇㅇ사 신도 분의 덕택이다. 그 신도 분은 ㅇㅇ사 창건시부터 열심히 절에 다니시던 보살님의 며느리로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당신이 뒤를 이어서 열심히 부처님께 정성을 올린다고 했다.

그 보살님은 자신도 몸이 아파 지장보살님께 공양을 올린다고 지장경을 독송하니까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하시면서 나에게도 절에 가서 살 면서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5년 전에 남편을 사별(死別)했다. 남편은 두 아들과 세살난 딸, 그리고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이천만원이 넘는 빚을 남겨 놓은 채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 남편은 평소에 간경화를 앓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일찍 떠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죽기 전에는 마을의 이장도 맡아 했고,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파는 일도 크게 했었다. 그 해만 잘 넘기면 잘 살 수 있었는데 갑자기 죽으니 나무들은 헐값에 넘어가고 채권자들의 빚 독촉이 심했다.

바깥 일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내게는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할 시간도 없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중3, 중2 되는 아들 둘과 세 살난 딸, 그리고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공장을 다니면서 논과 밭을 팔아서 빚을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그런데 남편의 1주기가 되는 제사를 모시고는 나는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옷이며, 이불 등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태워 버린 것이다. 가족들이 나를 나주 정신병원으로 데리고갔다. 약을 타다 먹으면서 요양을 하니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는 빚을 갚기 위해서 광주 시내의 큰 식당으로 가서 일을 했다. 1년 정도 일을 하여 오백만원을 모았고, 그 돈으로 다시 은행돈을 일부 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정신병이 도진 것이다. 죽은 남편이 당신을 못잊어서 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교회에도 다녀 보았고, 큰 굿도 했다. 그러나 별로 차도가 없었다. 시어머님은 내가 무섭다고 시누이네 집으로 가셨고, 집에는 어린 딸과 나만 남았다. 다행히 큰 아들은 공업고등학교 3학년으로 취업을 나갔고, 둘째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채로 마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해서 간 상태였다.

그런데 나에게 어떤 조그마한 선연(善緣)이 있었는가 절에서 살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나도 이렇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딸과 함께 절에 가서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여 그 신도 분을 따라 ㅇㅇ사로 갔다. 다행히 절에 먼 친척 되시는 할머니도 한 분 계셨다.

법사님께서 이것 저것을 물어보셨다. 같이 간 신도분께서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법사님이 좋은 일하는 셈치고 병을 고쳐서 광륵사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하셨다.

법사님께서는 "절에서는 부처님께 공양만 잘 올리면 누구든지 편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지금은 약사경과 또 다른 책을 만드는 일로 무척이나 바쁘니 기도 방법을 가르쳐 줄테니 혼자 해 보십시오."라고 하셨다.

나는 가르쳐 주신대로 열심히 하려고 했으나 남편이 항상 가슴에 있으면서 나를 그냥 앉아 있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법당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산으로 마당으로 돌아다니면서 남편에게 얼른 극락세계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떠나지를 않는 것이다.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내가 절에서도 며칠 못 살고 올 것이라고 했으며, 시댁 식구들과 친정 식구들 모두가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며칠이 지난 후 법사님이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면서, 나보고 3일만 집에 갔다 오라고 하시면서 차비를 주셨다. 그런데 나는 집에 가기가 너무 싫어 앞문으로 나갔다가 몰래 뒷문으로 방에 들어가 있었다. 세 번이나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시고는, 법사님께서 '그러면 정신을 잘 차리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있으라' 고 하셨다. 그런데 그 삼일간 나는 더 미쳐서 날뛰었나 보다.

법사님이 오시니까 삼일간 절을 관리하던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못 고칠 것 같다고 정신병원에 보내야 된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법사님이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법당으로 들어가 절을 하면서 지장보살님의 명호를 부르시면서 따라 하라고 하셨다. 일곱 살난 딸 아이도 함께 기도를 했다.

딸아이에게는 엄마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나중에 안 일인데 거의 1080배 정도 했다.

그 다음날 함께 과일을 먹는데 보살님이 웃으면서 "아줌마는 어째 배고픈 귀신이 있는 사람 같네요" 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굿을 하면서 무당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죽은 시동생이 '배가 고파 죽겠으니 밥좀 주고 장가좀 보내 달라. 우리 어머니는 너무 지독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는 열일곱에 공장에 다니던 중 동료들과 장난을 하다가 드라이버에 찔려서 즉사한 시동생이 있었다. 우리 시댁은 그 시동생이 죽으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중의 대부분을 남편이 위궤양 수술과 간이 나빠 병원에 입원할 때 병원비로 썼고, 나머지는 남편이 남긴 빚을 갚는 데 썼다. 그런데다 시어머님은 너무 속상하여 그 시동생 일은 생각도 하기 싫다고하며 제사도 안 지낸다는 말을 했다.

보살님이 "아줌마는 다른 때는 청소하던 빗자루도 던지고 달아나는데 음식 드시라고 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 다른 사람들이자리에 앉기도 전에 먼저 먹고 일어서는 것을 보니 배고픈 귀신 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다음날 부처님께 시동생과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조석으로 절을하며 지장보살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였다. 그때가 백중이 돌아오기 한달 쯤 전이었다. 이렇게 기도를 한 후에 백중 날 조상님들과 시동생 그리고 남편의 천도재를 함께 봉행하며 좋은 곳에 가시기를 발원하였다. 그 이후 나는 많이 좋아졌다.

아침 저녁으로 건강과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더니 몸도 마음도 아주 편하며, 객지에 있는 아들들도 모두 무사히 잘 있다. 특히 둘째 아들은 다섯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력이 약해 모든 일을 금방 잊어 버려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서 중학교만 겨우 졸업한 상태로 취직해 있었는데 아주 많이 좋아졌다.


이 모든 것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라 생각한다. 무한히 감사한 마음이다.



출처: 광륵사 홈페이지(www.ekaya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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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근무지에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휴게소에서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다.

회한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운전을 했다.

도착하여 보니 이미 영안실에 계셨다.
평소에 아버지께 불효만 했기때문에 가슴은 터질 듯 아팠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보았다.
49일 동안 지장경을 100독을 읽어드려야 겠다고 마음을 정하였다.
아침에 1권 저녁에 한권씩 읽기로 하고 열심히 하였으나 아침기도는 그르지 않았으나 저녁기도가 회식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일주일을 남겨두었는데 49권을 더 읽어야 했다. 막재날까지 마칠려면 하루에 7독(14시간)을 독경해야했다.

마침 휴가기간이라 막재날 아침까지 겨우 100독을 마치고 재를 마치던 날 몽중 가피기가 있었다.

옥상에서 팡파레와 축제가 열리는 듯한 소리에 올라가 보니 스님이 상여를 매고
"자! 서편 공덕장으로 가자"는 소리가 들렸다.

재를 마치고 큰 스님이 관해보시더니 보살님과 주변 식구들이 열심히 기도를 해서 좋은 곳에 가셨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여러 차례의 기도를 해왔지만 가장 힘들었던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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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시 찾은 건강과 행복

광륵사를 처음 찾아왔던 날은 우연찮게도 음력으로 12월 8일 성도재일이었다. 아픈 사람들이 많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서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갖고 있다가 그날 불쑥 마음이 내켜서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발걸음이 있기까지는 너무 많은 고통과 방황이 계속되고 있었고 스물하나의 젊은 나이로서는 버티기 힘든 나날이었다.

나는 전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취직을 하였으나 몸이 아파 일주일만에 그만두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열정은 높았지만 아무 것도 못 하고 집에만 있으니 몸도 그렇고 마음까지 점점 불안하여 헤어날 수 없는 괴로움의 늪에 빠져 들어갔다. 부모님과 가족들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고 3때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병.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척추 교정으로 유명하다는 활기원으로, 지압 받는 곳, 단전호흡원, 한의원 등등...지치도록 돌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병원에서는 급히 입원하라해서 입원하여 종합진찰을 하면 병명을 모른다고하고, 활기원에서도 다른 아픈 사람들은 모두 치유가 되어 나가는데 나 만 치료가 되지 않으니 특이체질인 것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척추에서 물까지 빼 보았고, 단전호흡원에 가서 체조도 해 보고, 나중에는 마음의 병인가 싶어 성당에도 다녀 봤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괴로움으로 찌들려갔고 어느 때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부모님께 불효한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론 옮기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몸이 아프니 밤에는 불면증마저 생겼다. 내가 이러니 어머니의 걱정은 태산이셨다.

그러다가 아는 언니와 함께 ㅇㅇ사를 찾게 되었고, 법사님으로부터 많은 말씀을 듣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원인 모르게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업의 과보이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전
생의 악업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지금 살아가면서 더 커다란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지장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하셨다.


더구나 예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취미로 사냥을 자주 하셨고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객사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불쌍하게 죽은 영가들을 천도하는 것이 병을 낫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지장경을 2번씩 독송하기로 했다. 몸이 아파 걷기도 힘든 내가 소리를 내어 독송을 하고 경전 한 품이 끝날 때마다 3번씩 절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의심이 갔다.

다행히 함께 온 언니도 어려서부터 몸이 아파 고생하던 사람이라 이번 기회에 지장경을 백 번 읽기로 발원하고 함께 기도를 시작했다. 아침에 절에 와서 법당에 가서 예배를 드린 후 지장경을 한 번 읽고 방에서 누워 쉬다가 오후에 다시 일독을 하였다.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법당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투르기만했다. 하지만 아픈 몸이 나을 수 있다는 말만을 믿고 아픈 것을 참고 독경을 겨우 마쳤다. 절을 하는데도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통증을 느꼈다. 사람들은 내 몸이 이렇게 아프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생겼다. 첫날 지장경 독송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잠을 자는데 다른 때와는 달리 불면증으로 시달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대신 밤에 꿈을 꾸었다. 초췌해 보이는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칼로 나의 얼굴을 여러 번 그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인데 왠지 낯설지 않 아서 그를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약간의 아픔을 느 낀 것도 같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약간의 점액이 느껴지기도했다.

이런 꿈을 꾸고 난 다음 날은 전날보다 몸이 가벼워져 절도 조금 더 할 수 있었다. 그날도 지장경을 두번 독경하였다. 한번에 2시간 정도 걸리니 하루에 꼭 4시간을 소리내어 지장경을 읽은 것이다. 그날 밤에도 꿈을 꿨다.

어느 조그마한 방이었다. 그런데 방문이 미닫이인 것으로 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 방안에 있는데 초록뱀이 자꾸만 방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평소 뱀을 가장 싫어하는 나는 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그 뱀은 중간쯤 들어오다가 방문에 걸려 죽고 말았다.


셋째 날에도 다시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많고 의사와 간호사들도 많았다. 아마도 종합병원인 듯했다. 그런데 한 장소에서 접수도 받고 진찰도 받았다. 칸막이도 없었다. 난 빨리 진찰을 받고 싶어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의사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간호사에게 "왜 진찰을 받을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하고 항의를 했다.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화내 본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나의 의견만 주장하다가 깨어났다.


넷째 날의 꿈이다. 엄마와 숙모, 나 이렇게 셋이서 버스를 탔다. 처음 본 거리의
풍경이 차창에 나타났다. 버스를 내려 어떤 동네로 올라갔는데, 지대가 높은 것으로 보아 산동네인 것 같았다. 올라가기도 힘들고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조그마한 절이 보였다.

엄마와 숙모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시고 난 그곳에서 전에 지압을 해 주시던 아저씨를 만났다. 어떤 아저씨랑 둘이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에게 왜 요즘은 지압 받으러 오지 않느냐며 걱정하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저씨가 "그럼 내가 네 몸을 낫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마. 첫째는 잠잘 때 베개를 허리에 놓고 자고, 둘째는 어떤 책을 주면 이 책을 열심히 보아라."라고 하셨다.

그 책을 받고 법당으로 들어갔으나 엄마와 숙모는 안 계시고 법당 안은 허전했던 것
같다.


다섯째 날의 꿈이다. 같이 기도하는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아는 어떤 할아
버지가 있는데 산 속에서 할머니와 같이 아주 젊고 건강하게 사신다." 그런 말을 듣고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 산속으로 가니 그 분들은 흰 머리가 하나없이 건강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방이 많이 있었고 그 방안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큰 건물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계단식 강당처럼 아주 큰 공간이 나왔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앞은 아주 작게 보일 정도로 컸다. 맨 앞 단상에는 동으로 된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법회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옆에 언니와 그 친구가 있었다. 중간에 땅콩을 나눠 주면서 이걸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난 받아서 맛있게 먹고 노래도 부르면서 법회를 마쳤던 것 같다.

여섯째 날 꿈이다. 고등학교 때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면서 제과점으로 불렀다. 가 보았더니 서너 명의 친구가 한 테이블에 앉아 음료수, 피자, 치킨 등을 시켜 놓고 자기들은 먹지 않으면서 나더러 살이 쪄야 하니까 많이 먹으라고해서 나 혼자 맛있게 먹었다.

일곱째 날 꿈이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이 내 눈 앞에 끝이 없이 펼쳐졌다. 물 위에 크나큰 다리들이 줄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한강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덟째 날 꿈이다. 산 속에 초가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백발의 노인이 한 분
살고 계셨다. 영화 속에서 본 듯한 그런 첩첩 산중이었다. 밖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초가집 마루에 많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할아버지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있는 듯했다.

이런 꿈을 꾸며 지장경 독송을 4주일쯤 계속했다. 그런데 차 차 잠도 잘 자고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져갔다. 지장경을 읽으며 인과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런 뒤로는 '내 인생은 이렇게 망가져 불행하고 어둡기만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어졌다. 지금은 내가 지은 악업으로 괴로움을 받지만 이제부터 선업을 지으면 언젠가는 즐거운 과보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몸이 조금 나아지니 이제 생활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씩만 독경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직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죽음을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지장보살님께 너무나도 감사하다. 집안 식구들도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너무도 놀라신다. 다시 한 번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에 감사드리며 더욱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출처: 광륵사(www.ekaya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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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방광(放光)을 한 장처사의 지팡이



수십 년 전 경북 예천에 장처사(張處士)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처사는 지팡이를 하나 짚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지 지극하게 '지장보살'을 염했습니다.


어찌나 지극하게 불렀던지 ,잠을 자면서도 지장 보살을 염하였다고 합니다.
장처사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이 제상(際床)을 차려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는데 ,그 제상에 올려놓은 지팡이가 밤만 되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팡이에서 뿜어 나온 빛이 온 방을 밝혀 불을 켜지 않아도 방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뒤 화장을 하면서 그 지팡이도 같이 불에 태웠는데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에서 사리가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출처: 일타큰스님저 기도 (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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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

약 20년 전 , 서울에 사는 법연거사는 40대중반에 이르러 조상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 조상의 영가천도와 누이동생의 임신을 기원하며 백일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누이동생이 결혼을 한지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여 불화가 잦았고 ,자주 친정으로 쫓겨 오기도 하였다.

법연 거사는 매일 진관사의 지장보살님께 나아가《지장보살본원경》총13품중 1품 또는 2품을 읽은 다음 ,〈지장보살예찬문〉을 읽으며 158배를 드렸다.

그리고 30분정도 ‘지장보살’의 명호를 외웠다.

이렇게 매일 같이 지장기도를 한지 80일가량이 되었을 때 아기를 갖지 못했던 누이동생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끝마치는 날 새벽녘에 참으로 묘한 꿈을 꾸었다.

꿈에 보통보다 약간 작은 키에 남루한 한복 차림의 노인이 나타나 말을 하였다.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다. 너의 덕을 입어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

그리고 집안 어른들로부터도 장호원에 조상이 살았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하였으므로 , 의아해 물었다.

“누구신지요” 저는 감사의 인사를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서울 장위동에 살았던 법연거사의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내 손자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포졸 두 사람이 나타나 노인을 모시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노인은 이미 남루한 한복 대신에 찬란한 장군복을 바꾸어 입고 있었다.

노인은 거듭 법연거사에게 ‘고맙다’ 는 인사를 하였고 포졸들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노인을 모시고 사라졌다.

너무나 실감나는 꿈을 꾼 법연거사는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당숙모에게 전화를 하여 장호원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 그와 같은 할아버지가 계셨다는 말은 들었으나 나도 뵈온 적은 없다.

네가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 ?

이렇게 법연거사는 지장기도를 통하여 집안의 근심 이었던 누이동생의 잉태를 도왔고 , 가족들에게 완전히 잊혀져 있었던 선대 조상을 천도하였던 것이다.


【 출전: 지장신앙,지장기도법, 김현준, 효림, 2000년도 】



2) 산이 다하고 물이 다 한 곳에

지장보살님이 주신 아기 -



불광법회를 만나고서 비로소 부처님의 크신 위덕과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상님께서 극락 왕생하시고 저의 누이동생도 보살펴 주시고 형제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고 감사하였습니다.저는 9남매 중에 맏이인데 집안과 형제들에 대한 책임도 컸지만 그무렵 출가한 동생이 소생이 없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개울에서 목욕하고 가까이 있는진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 앞에 공양올리고 지장보살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관사 부처님은 그전부터 자주 참배한 부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는 날 법당 문앞에 서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머리카락이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습니다. 몸은 굳어지고 어떤 전율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았습니
다.



저는 손에 염주를 들고 단단히 마음먹고 법당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법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때의 지장보살님과 시왕님의 무서운 상호를 지금껏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노하신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법당 밖으로 밀어내는 것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첫날이니까 물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에는 시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무서운 때는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꽉 감고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경드렸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장보살경 1품 또는 2품을 읽고, 지장예찬문을 읽으며 백 오십 팔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0분간을 일심염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는 듯 법당에서 나오곤 하였는데 이러한 힘든 경계가 1주일 후에야 바뀌었습니다.



차차 그런 경계가 사라져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지장보살님이 반겨 주시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어찌 장부가 그런 요망한 말을 하느냐고 꾸지람 하시겠지만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표정이 나날이 반겨하시고,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법당 근처에 오기만 하여도 반겨주시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하였고 그 사이에는 오직 환희심과 감사로나날이 지나갔습니다. 집안 이야기를 드리자면, 제 여동생이 충청도 제천에 사는데 결혼하여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후사를 바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채 세월이 흐르니 어른들의 불만이 겹쳐서 불화가 빚어지고 마침내는 몇번이나 친가로 쫓겨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차례 겪고 나니 친정의 큰 오라비라고 하는 책임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
리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세달 가까이 되니 임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동안 하도 걱정했던 일이라믿기지 않더니 드디어 달이 차 금년 봄에 아들을 순산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난산을 예고했습니다만 저는 부처님만 믿고 아들 순산을 선언하고 집에 왔더니 과연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백일 기도를 마친 저는 계속하여 또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은 또 꿈이야기냐 하시겠지만 이 꿈은 정말 꿈같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새벽녘인데 꿈속에 어떤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작은편이고 남루한 한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덕을 입어서 내가 좋은 데 간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느니라.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라고 한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서울 장위동에 사시는 저의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리고서는 "이 사람이 내 손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역사물 TV에서 보던 포졸형식을 한 두사람이 나타나서 그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노인은 새옷으로 갈아 입었고 그것은 옛 장군복 같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와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포졸 형색을 한 사람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실감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 저는이상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
습니다 진관사에 가서 기도하고 그 길로 사무실로 나가 당숙모댁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숙모는 올해 83세이신데, 16세에 시집오신 저희 집안의 산 역사이십니다. 전화로 "장호원할아버지가 계셨습니까."하고 물으니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본 대로 형상을 말씀드리니 "내가 그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다. 그
데 너는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상님을 위한 기도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숙모는 "참 잘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조상님을 위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잘했구나"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경전 말씀에 일체중생이 미혹하여 어둠을 방황하고 불보 살님이 능히 이를 구원하신다 하였고 일심으로 염불 기도하면 모든것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은 우리가 알수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의 한 단면
이라고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확실히 이름모를 분까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꿈에 본 무주고혼

그런데 저에게는 저의 생친이 계시고 또 큰아버님이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말을 바꾸면 큰아버님 앞으로 몫이 지어진것입니다. 두 어른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신 지 오래입니다.



저는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까닭인지 아버님에 대한 사모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을 믿으면서부터 제사는 정성드려 올렸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듯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다. 매일 아침 개울에 가서 냉수욕을 하고 진관사에 참배하고 지장보살님 앞에 무릎
을 꿇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며예배하고 예배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정근일과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에는 아버님을 위한 기도와 아울러 저의 기도인연 으로 무주고혼들까지도 모두 부처님 은혜를 입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 일과를 정확히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하면서 홀로 정근하고부처님앞에 약간의 공양을 올렸을 뿐 무주고혼들을 위하여 시식은 8월18일 회향날로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진관사 개울에는 빠알간 꽃물이 다 흘러가고 어느덧 여름이 한창인때였습니다. 그때가 7월말 경이었는가 합니다. 새벽 늦게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낯익은 진관사 일주문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건데 별안간 수십, 수백명의 낯설은 사람들이 모여들
어 저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관사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를 둘러 싸며 "배가 고프오, 못살겠소. 어서 먹을 것을 주오."하고 일제히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오는 8월 18일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는 소참이나마 준비해서 대접하겠오."하였으나 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배가 고파 못견디겠오. 어서 밥을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난처해졌는데 순간 저의 곁에 위풍이 당당하고 키가9척이나 됨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이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니오. 우리 병력을 풀어야 하겠오. 객귀들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더니 금방 일단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모와 군복이 배당되어 곧 입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어 스크럼을 짜고 빈틈없이 줄을 서서 전진하였습니다.그런데 여전히저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도 20일만 기다리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저 대대장이라는 사람을 말하기를 저들에게 무엇인가 먹여야지 그냥 두면
안된다."하더니 어디서 날라 왔는지 큰 밥통에 밥과 나물이 운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어 군대용 반합에 담아서 우리 군인들이 숟가락으로 퍼서 저들을 먹였습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한줄로 서서 그 앞에 밥을 먹겠다고 모여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쉴사이 없이 퍼먹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러는 사이에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객귀들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서의 대대장이라는 9척이나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그것은 좀체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 이런 고생을 한다. 마음을 밝히자면 부처님을 믿어라. 그리고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라. 그리고 부처님 믿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가라. 이번에 너희들이 배부르게 먹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법연거사의 은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
라"



이말을 들은 군중들은 일제히 저를 향하여 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하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혹 기독교신지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하니 역시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법연거사의 은덕으로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극락세계로 가게 된다." 하며 앞서 말을 기독교적 표현으로 바꾸어 되풀이하고 나서 "법연거사에게 감사하라"하였습니다. 역시 그들도 앞으로 나와 저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보는듯 생생한 것은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것은 흡사 법회를 마치고 나오는 저희들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객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듣는 말이라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주고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이번 기도의 목표인 선망부모와 무주고혼을 위한 기도가 성취됐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나 현실생활이 다가 아니며 사후 영혼의 생활만도 다가 아닌 불멸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도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제가불자의 독경,염불의 공덕이 경전말씀 그대로 불가사의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지장보살은 절에서만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또한 가지는 중생세계에는 무주고혼과 같이 시장(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고 구재하여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겠습니까? 불법만이 제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 우리 부처님만이 모든 생명을 밝히고, 구원해 주는 영원한 광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효성을 일으키고 자비심을 일으켜 조상님과 무주고혼에
게 부처님의 법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3년)


출처: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불광출판부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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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홍서주 보살이 약 20년 전에 체험한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합판상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리점으로부터 거래대금 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자 대리점 사장은 묘한 제안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건만 해결하고 나면 아주 괜찮아집니다. 1,500만원만 융통해 주십시오. 300만원도 바로 드리고, 1,500만원은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500만원씩 세 달 동안 갚겠습니다."
아들은 300만원을 받을 욕심으로 누나의 남편인 매형에게 1,500만원을 빌려 대리점 사장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주보살은 은행에 대리점의 신용을 알아보았더니 언제 부도가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1,50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잘못되면 딸의 가정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판이었다.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지장보살예찬문>을 독송하며 158배씩의 절을 올리고, 지장보살염불을 하였다. 자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이 어려움을 막아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마침내 500만원 1장의 기한이 돌아왔고, 그 전날밤 보살은 꿈을 꾸었다. 많은 조상들이 배를 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배가 진흙벌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복차림의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타나 배를 밀었고, 배는 물에 떠 순조롭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오후 5시 10분전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살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꼭 도와주실 것을 믿고 속으로 소리쳤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시가 되자 은행원이 '현찰로 줄까, 수표로 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보살의 기쁨과 놀라움과 감사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계속하였고 두 번째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또 꿈을 꾸었다.

아들이 큰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그넷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네를 멈추려 하였지만 어찌나 힘차게 흔들리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넷줄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지난 번 꿈에 배를 밀어주었던 분이 나타나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말을 하였다.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던져라."
어느새 보살의 손에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던졌더니 곧바로 받아 끊어지려는 그넷줄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보살은 꿈 속에서도 조이던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좋아하였고, 두 번째 약속어음 500만원도 마감시간이 다 되어 해결되었다.

세 번째도 서주보살에게는 현몽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자 법당과 비슷한 넓은 방이 나타났으므로 거기로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모습이 매우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문밖에서 안을 살피더니 보살을 보고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길을 잃어 집으로 갈 수가 없지? 이 길을 따라가라."
보살과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오자 아래쪽에 사는 동네와 빈집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 약속어음도 잘 해결되어 1,500만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대리점은 그 후 곧 부도가 나서 망하였다고 한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 김현준저 지장신앙 지장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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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법운거사부부의 죽음을 초월한 지장기도


며칠 전 불성계발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때였다. 이날의 주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의 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노출을 하는 것이었다.

법운(法雲)거사가 초대받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 1년 6개월은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 고통이
끝난 날은 생애 최고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법운 거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포교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 자비행 보살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지요.

아내는 열심히 절에 나가고 신심도 깊었지만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에
너무 힘이 들었던지 나에게 의논을 했어요.

글쎄, 그 고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어요.

매일 저녁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날짜까지 정확히 알려주면서 1년 6개월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내가 다니는 사찰 스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기도만 열심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기도는 되지 않고 고민만 점점 깊어 갔던 모양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심이 너무나 약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그래서 법사님께 상담을 드렸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시기에 순간 무슨 해결방법이 있구나 하고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법운 거사의 모습은 너무나 근심스러워 보였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잘못 될 수도 잇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법운 거사님, 지금부터 아내를 끔직히 사랑해 주세요.
신혼부부 시절의 사랑으로 돌아 가세요. 아내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공덕을 지으면 지금의 이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공(功)을 드려 덕(德)이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지장경』「제6품 여래찬탄품」에보면 '만약 십재일에 불 ·보살과
모든성현의 존상 앞에서 『지장경』을 읽으면 모든 재앙과 고난이 없으며 ,
그가 사는 집안에 어른이나 어린이가 현재 또는 미래 백천 세계에 영원히
악도를 여의게 될 것이다'하였지요
그러니 지금부터 십재일뿐만 아니고 매일 지장 보살의 말씀을 믿고 함께 기도해 나갑시다.
법운 거사님은 이 제의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다음날, 법운 거사의 자택에 방을 비워 작은 원불을 모시고 몇 사람이 모여
점안법회를 실시하였다.

법문을 통하여 지장보살의 원력에 대하여 설법을 하였다.

"지장보살님은 구원의 보살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힘들어 하실 때 지장보살님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믿는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불심은 믿는 이의 마음속으로 배어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마음으로 섞이고 ,그러함이 느껴져서 서로 통할 때
부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기도할 때 신앙의 힘은 솟아나고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화·복은 자재롭게 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염부제 중생을 살펴보니,몸 움직이고 생각 일으킴에 죄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열반경』에서'온갖 제유(諸有)를 벗어남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제유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차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밝은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대자연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유독 인간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서 지옥을 떠도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인간의 고통의 세계를 절대로 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주시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믿고 나면 어떠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 있을 것입니다.

이날부터 법운거사 부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모시고 『지장경』을 읽었다.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관하게 생활했다.

법운거사를 아끼는 법우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한번씩 모여 『지장경』을 독경하며 ,강설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하였다.

저승사자가 나타난다는 마지막 날 저녁에 많은 법우들이 가정법회를 열고 법우들이 돌아간 후 우리부부는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지장보살 님이 구름을 타고 나셨어요. 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서서히 아내 앞으로 다가 오셨어요.

우리는 너무나 감격했어요. 지장보살님을 친견(親見)하다니,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지장보살 님의 입안에서 향내음이 넘쳐 나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온몸을 감싸니 1년 6개월 동안 긴장된 몸과 마음이 일시에 가벼워짐을 느꼈어요.

너무나 편안 했어요!

세상에 태어나 가장 환희로운 순간을 맞이했던 겁니다.

이곳이 극락이구나 생각하면서.'아!지장 보살님 감사합니다'하고는 눈을 뜨니 새벽이었어요. 온몸이 촉촉이 젖어 있었어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살아 있구나 하는 확인이었지요. 나는 아내의 땀을 딲아 주었어요.

부부는 3천겁의 인연이라 했던가, 부부는 이생에서 인연맺어 살아 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고, 괴로움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가정에 부처님을 모시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던 법운 거사님이 오늘은 왠지 존경스럽다.

1년6개월의 긴시간 동안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진하던 법운거사 부부의 사랑은 불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들 법운거사 부부처럼 깊은 종교적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랴?



『출전: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정우서적,2000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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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불연(佛緣)을 맺게 해준 지장 기도


콜레라에 걸린 첫돌 된 아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싸고 토하고 밤새 울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싸고 토하니 아이는 탈진상태가 되고 나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죄받을 소리지만 서도 저 아이가 차라리 죽었으면 싶었다.

오죽이나 보기에 안타깝고 가슴이 메어지면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을까 ,
탈진한 아기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물론 병원은 매일 매일 열심히 다녔으나 웬일인지 설사도 멈추지 않고
토하는 것도 별차도가 없었다.

마침내 아이는 눈을 아예 감고 헐떡거리고만 있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은 없는 듯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를 등에 업고 며칠 밤을 꼬박 세우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를 윗목에 이불을 덮어씌운 채 밀어 놓았다.

이젠 도저히 어쩔 수도 없으니 차라리 죽으면 저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멎으면 그만 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 설상가상 애들 아빠는 집에를 며칠째
안 들어오고 있었다.

애들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친정 건넌방에 잠시 와 있을 때였다.
그땐 어디에도 매달릴 끄나풀도 없으며 의지할 곳도 없는 처지였다.
종교가 무엇인지 조차도 알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친정 건넌방에 얹혀 있는 처지인데도 ,아이들
고모가 결혼을 했다가 아이를 하나 낳아 놓고 억울하게 죽었기에 ,나는 아무것도
해놓지 못하나 항상 마음속으로 그 고모가 좋은 곳으로 극락 왕생 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음력 4월이면 그 고모의 밥 한 그릇 이라도 형식상으로라도 윗목에 떠놓았다.

물론 뭔가를 알고 했음이 아니고 다만 이상하게 아이들을 위하여 그
고모님의 밥을 떠놓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몇 년 전에 우연히 ,아주 우연히 금호동 극장 옆 민가에 절이 있기에
아이를 업고 지나가다가 무심코 들렀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나 그곳은 너무 작고 초라했으며 다시 되돌아
나오고 싶었던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아이를 업은 나 역시 젊고 초라한 모습이었으리라.
머리를 기른 나이든 아주머니가 힐끗 쳐다보더니 본체 만체 하고 자기 일만
계속 했다.

나 역시 계면쩍어서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오려는데
가만히 아주 조용하게 "지장보살"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 왔다.
밖으로 나오려던 나는 뒤를 돌아봤다.

저게 무슨 소린가? 나는 소리나는 데로 몇 발짝 옮겼다.
냄새까지 나는 집 ,아주 더럽고 지저분한 집이었다.

한쪽 방에 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그곳을 들여다 보았더니 아주
초췌하고 늙고 나이든 남자가 냄새나는 방에 누워 있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지장보살을 외고 있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빨리 그 집을 나와 버렸다. 왜 그리 그곳이 지저분하고 싫었던지....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아이가 사경을 헤매는 데 나도 모르게 그때의
그 꺼림 직한 집에서 흘러나오던 "지장 보살"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지장보살"아마도 아픈 사람이 불러서 좋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초라하고 병에 찌든 모습의 그 남자가 부르던 소리.

"지장보살"나는 무심코 아이를 윗목에 밀어 놓은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사람인지 귀신인지 누군 지는 몰라도
나는 울면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찾았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무엇인지 모를 상대를 그렇게 애절하게 찾았다.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30년이 넘는 그때부터 나는 지장 보살 님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리라.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부모 조상 탓이라고 내가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환경 자체도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몇 시간인가, 얼마 나였나 모르는데 문득 이게
아니다.

아이를 업고 오랜 경험이 있는 나이 드신 의사가 있는 소아과를 찾아가자
하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정신 없이 지장기도를 하다 보니 윗목에 아이는 헐떡이고 있고 밖은
어느덧 밤11시가 넘었는지 깜깜했다.


어떻게 아이를 업고 달려갔는지 모른다. 다른 때는 병원간판도 많이도
보이더니 그날 따라 아무리 병원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밤11시가 넘은 뒤라 문도 다 닫았을 것이다.

나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송장처럼 차디찬 아이를 등에 업고
얼마나 한참을 헤맸는지 모른다.

저 만큼서 아주 히미 하게 ㅇㅇ의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아이가 하도 말라서 등에 아이가 있는지 조차도 감각이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만난 듯 ㅇㅇ의원 앞으로 가서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또 두드렸다. 양심도 체면도 없었다.
한참 만에야 문을 비스듬히 열고 그때 내 생각으로는 60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가 짜증스런 얼굴로 내다보았다.

"할아버지 , 살려 주세요. 아이가 죽어요"크게 소리쳤다.
"누구요?"
하더니 그 할아버지는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를 구해 주세요. 제발!"하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못해 할아버지는 "들어와"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낡고 허름한 진찰실이었다.
정말로 수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를 딱딱한 침상에
눕히고는 아이의 눈을 벌려보고 배를 만지더니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이런 애를 이렇게 될 정도로 놔두었어 ,죽일 것들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다 낡은 서랍 속에서 천천히 알약을 몇 개 꺼내서 하얀
그릇에다 득득 갈기 시작했다.
약을 가는 그릇이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고 그릇이 너무 더러웠다.
약을 갈아서 또 물약 같은 것을 꺼내더니 "이 것 먹여" 하면서 퉁명스럽게
내주었다.
나는 무조건 밤에 의사를 만난 것이 감사하고 약을 받은 것이 기뻤다.
어떻게 집을 왔는지 모른다. 인사나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아이는 너무나 탈진 상태로 죽은 듯이 입을 벌릴 줄 몰라서 내 입에다 약을
한 모금 물어서 아이 입에다 조금씩 흘려주었다.
반은 아마도 흘렸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에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잤을 까? 찬기가 느껴져서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이불이
들썩들썩 거렸다.
놀란 가슴에 이불을 벗기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아기는 두손을 저으며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가! 아가! 소리치며 아이를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무심코 시계를 바라보았더니 새벽 5시가 넘어 있었다.
서너 시간을 잔 듯 했다. 나도 지친 몸이라 잠이 들었으리라.
우리 아기는 그렇게 살았다.
필히 죽을 것을 그 할아버지가 살리 신게 아니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무작정 아이를 안고 허공에 대고 절을 했다.
보리차를 미지근하게 데워서 입에다 떠 넣어주니 아이는 받아먹었다.
그리곤 곧 잠이 들었다.
나도 아기를 안고 잠이 들었다.

며칠 뒤 나는 몸을 추스르고 아이를 회복시킨 다음에 그냥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아이를 업고 그 감사한 할아버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헌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하는가.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몰라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간 길을 돌아서 또 가고 또다시 되돌아서 그 날밤의 기억을 아무리
되새겨서 그곳을 찾으려 하였으나 허사였다.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아무리 찾으려 하였으나 허탕을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갔다.

이 불쌍한 인간을 가슴아픈 일을 당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지장보살님을
시켜서 우리아이를 구해주신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금호동을 며칠씩이나 뒤져도 못 찾다니 …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인연으로 몇마디 흘러들은 "지장보살님"감사합니다.
지장 보살 님의 위신력은 무궁 무진 하다는 것도 이제야 비로소 진지하게
나마 느끼고 살고 있지 않은 가 생각한다.



내가 이제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관찰해 보니,
항하사 겁을 설하여도 다 할 수 없네.
한 순간만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한량없는 이익이 하늘과 땅에 넘쳐나리라.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보살!!
두손을 모아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왕보살 마하살!!!






출처: 오! 지장보살님 나는 언제 지옥문을 두드리나이까?(박영옥 , 관음문화사, 2002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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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교통 사고 후 새 삶을 열게 한 간절한 지장기도



오늘 혜광(慧光) 거사는 5계를 받고 불자가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는 남자신도가 수계를 받는다는 것은
불교계의 현실로 대단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수계법회에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30여 명의 새 불자 가운데 혜광 거사는 첫 번째로 수계를 신청했으며 ,
오늘 만큼은 직장을 뒤로하고 부처님 전을 찾은 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혜광 거사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직장에 야간근무를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연락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올라갔다. 중 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를
바라보니 앞이 캄캄했다.
온몸에 붕대를 감아 놓아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식물인간이 되어 피부는 검게 변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넋이 나간 상태라 도무지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혜광 거사의 아내 보명심 보살은 포교원의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해온 신심이
돈독한 보살이었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보살님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지장보살님이 옆에 계십니다.
오늘처럼 어려 울 때 지장보살을 부르면 반드시 가피를 주실 것입니다.
자, 힘내세요. 저와 함께 이 순간부터 함께 기도합시다.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회복할 가능성이 단 1%뿐이라도 기도하면 불보살님은
응답해주십니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간과 위, 장의 파열로 인하여 오장육부에 지혈이 되지 않아 의사 선생님도 가재로
그냥 봉해 놓은 상태였다.
중 환자실을 나오는 사람들마다 말을 못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살님의 손을 잡고 다시금 지극한 마음을 다하여 기도했다.
"대원본존이신 지장보살이시여,당신의 고통받는 중생이 찾으시면 기꺼이 다가오셔서
고통속의 중생을 건지시기 위하여 성불도 늦추셨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제자 보명심 보살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생명이 위독하오니
살펴주시옵소서.

오늘 이러한 병고는 모두가 지난날 지은바 어두움의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지장 보살님, 이 고통 속에 잇는 가엷은 중생이 생명을 건지면 저는 반드시
진실한 불자로 평생토록 살아가도록 인도하겠나이다.

이러한 원을 세우고 보명심 보살님과 약속을 했다.

100일 동안 매일새벽4시, 그리고 사시(오전9∼11시),저녁7시에 함께 기도하며
회향은 환자가 완쾌된 후 포교원에서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원이었지만 지잘 보살님의 원력은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였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간절한 기도는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기도를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직 한 생명을 살려 보려는 순수한 열망으로 기도했다.
포교원 신도들도 각종 기도나 법회를 봉행 하면서 다함께 마음을 합하여
기도에 임해주었다.
간절한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지나가듯이 숨죽이며
환자를 지켜보기를 50여 일이 되던 날 새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살님의 전화였다.
"법사님 남편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금씩
좋아진다고 그러셨어요."
"아. 그래요 잘됐군요. 올라가 뵙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환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2차 수술 후 회복만 되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까진 산 넘어 산이었다. 불 보살 님께 감사 드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금 간절함을 더하여 기도에 몰입했다.
드디어 환자는 다행스럽게 2차 수술을 마치고 며칠 후 눈을 떴다.
그리고 고통을 호소하듯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였다. 환자의 이마를
어루만져주고 ,합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환자는 눈을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쉬는 모양이었다. 병실을 나왔다.
"보살님 ,힘 내세요.이제 확실하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열심히 기도합시다"

보살님도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환자를 면회하는 시간외에는 오직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있었다.
환자는 3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오장육부가 성한 곳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3차 수술이 무난히 끝나 회복되었고 산소마스크
도 뗄 수가 없었다.
조금씩 움직이고 말을 하더니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문병을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몸의 피부 색깔도 조금씩 제 색깔을 띠기 시작하였다.
70여 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죽을 먹기 시작했다.
지옥을 넘나들며 처절한 고통을 당하던 혜광 거사는 이제 계절이 바뀌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육신 어느 한곳도 성 한곳이라고는 없지만 모두가 회복되었고 전신건강도
되찾게 되었다.
100일이 되던 날 환자는 그렇게도 원하던 퇴원을 했다.
그리고 포교원에 도착하여 회향기도를 봉행하였다.
많은 신도들의 축하 속에 조금은 힘들어 하면서도 그의 눈에는 삶에 대한 강한 집념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환희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순간 불자의 길을 가기 위하여 수계를 받는 저 모습이 마치 도를 구하려
출발하는 수행자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계사가 수계자에게 연비하는 동안 헤광거사는 대중과 함께 끓임 없는 참회진언을 하고 있었다.
다시금 계사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연비 할 때의 따끔한 그 찰나에 여러 생에 지은 모든 죄업이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면서 사라지듯 순간에 소멸되었습니다."
헤광 거사는 자신에게 들려오는 청정한 스님의 말씀에 합장으로 공감하여
감격해 하였다.





나무 유명교주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남방화주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 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법사,정우서적,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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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음이 답답하고 외롭고 허전할 때 , 나와 그 형님은 각각 홀로 이름

난 절에 바람처럼 다녔었다. 절은 교회와 달리, 왔다고 잘왔노라 반기

는이 없고, 간다고 잘가라고 배웅하는 이 없었다. 물론 그런 점이 우리

를 더욱부처님 앞으로 끌려가게 한 힘 이었는지, 혹은 인연이 그런것이

었는지...


절하는 법도 몰랐고, 염불도 모른채 , 답답한 마음에 보문사, 전등사,

수덕사, 구룡사, 낙산사,,,기타 도착해서는 고작 남들 절하는 모습

뻘쭘히 넘겨다 보다가 경내 한바퀴 휘돌아 보고 돌아 오는게 고작이었

다. 그래도 다녀오지 않은것 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러길 수년이 흐른 어느날 어느 보살님의 권유로 작은 절에 이름을 올

리고 지장경 한권과 108염주를 스님께 서 주신걸 받아 가방에 챙겨넣고

인연을 맺은지 불과 6개월 남짓 되었을까?

형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100일 지장경 완독 하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일이 바빠 새벽에 귀가하는 날 에도 2시간 넘게 걸리는 기도를 빠지지
않고 지성으로 하셨는데, (나는 7일 만 하였는데도 엄청 힘들어 서 7일
기도로 끝내고 나의 능력에 맞게 천수경 1독씩 으로 매일 바꾸어 하고있다.)

100일 기도 완료 이틀전 형님을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들게 하던 부동산 매매가
이뤄질 거 같다는 부동산사장님의 전갈이 왔다. 누가 봐도 그 물건은 임자가
나설 것같지 않아 모두가 포기 하라고 했던 물건 이 었는데 매월 수백만원의 고
리만 지불하면서 골머리를 썩혀 왔었으며, 명의가 4명이나 더 되어 있어
문서에 도장 찍을 일 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로선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도저히 성사가
불가능 해 보였다. 한옥 보존지역 이라 신축은 도저히 불가능하며, 본채에
새로 증축을 하여 지붕이 기와 와 스렛트가 맞물려 외관도 우스워 보였으니...

그러나 기도도 무사히 끝내고, 잔금까지 무사히 받았다. 우리는 그 것을

지장기도의 영험이 아니면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한다.


형님과 나는 그 이후 3000배 7번 완성을 하리라 하며, 참회기도를 하고

있다. 반드시 어떤 원을 세워놓고 하는것은 아니고,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것 같아 너무나 즐겁다.


출처:나무아미타불카페 불교의 영험록 송 ㅇㅇ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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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석장을 짚고 단을 내려와 제게로 걸어오시던 지장보살님” 저는 오늘도 그 모습을 뵙니다

精進行/28기 출처:능인선원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빛과 색이 있습니다. 들에 핀 이름 없는 한 포기 들풀도, 작은 조약돌 하나도 그만의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과 색을 지장보살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소리가 잠든 세계, 승화된 빛으로 다가서시던 그 모습은 천상의 재현처럼 성스러운 한줄기 찬란한 빛이셨습니다. 석장을 짚고 불단을 내려와 춤을 추듯 제게로 걸어오시며 손을 흔드시던 지장보살님을 친견하며 저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지장보살을 염송했습니다.

탐욕으로 지친 병든 육신을 이끌고 능인 법당을 찾아와 두 무릎을 꿇고 오열로 참회했던 그날은 묵묵히 미소로 저를 지켜만 보시던 지장보살님이셨습니다. 아버님 위패를 법당에 모시고 작은 일부터 찾아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신문 접기, 교도소 봉사, 법당 청소 등을 하며 열심히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고향에 온 것처럼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 집에 돌아 갈 생각조차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도 중에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보니 더욱 몸을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패들을 모셔 놓은 영가단에 초하루, 지장재일은 꽃을 사다 꽂기 시작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을 꽂는 전날 밤 꿈에는 꼭 지장보살님이 매번 다른 색깔의 꽃을 들고 나타나십니다. 저는 지장보살님이 들고 계셨던 꽃을 사다 꽂습니다. 노란꽃, 빨강꽃, 국화, 백합 등등......

요즘은 상조회 시다림 봉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장스님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망자를 위로하여 저승 먼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도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불자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삼성병원 시다림 봉사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어느 영가가 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시다림을 나간 상조회 법우20명이 열심히 영가천도를 해주고 마지막 목탁을 치고 나서보니 어제 본 그 영가가 영정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가 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실이었습니다.

요즘도 우리 능인 상조회에서는 조를 나누어 쉴 틈이 없이 시다림 봉사를 다닙니다. 법당에서도 천도재, 49재, 막재등을 지냅니다. 쉼 없이 기도하고 수행 정진해야 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가들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참회가 필요합니다. 육신을 벗은 영가들에게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영가천도를 해주고 난 날은 가끔은 극락에 가는 꿈을 꿉니다. 온 천지가 보석으로 장식된 그곳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신비로웠습니다. 살갗을 스치는 감촉이 너무도 부드러워 꿈을 깨고 나면 화가 났습니다. 훗날 내가 육신의 몸을 벗으면 갈 곳이기에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곳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은 지광스님 말씀 잘 듣고 부처님 법 따라 수행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살면 됩니다.

법당에 들어서면 하심하는 마음으로 청소하고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히 다루며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도 닦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칭 법당의 왕언니입니다. 누구라도 초발심으로 우리 능인선원을 찾아오는 법우들이 있으면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항상 지광 스님 화이팅을 외치며 작은 힘이지만 부처님을 위해 쓰고싶습니다.

내일도 삼성병원에 시다림봉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생명이 영가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처: 능인선원 (www.gotobuddh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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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반야화님글

저의 하루는 지장보살님을 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과 함께 시작한 하루하루는 늘 상쾌합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할때는 물론 절에 와서 노래하고 차를 탈때
도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된 것은 지장보살님의 큰
가피를 입고 자연스럽게 생긴 신행생활입니다. 불교를 믿고 부처님
과 지장보살님께 귀의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직접 가피를 입고나서야
오늘과 같이 철석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약간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병고의 시련 속에서 "지옥중생을 다 건지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나도 이제부터는 "지장보살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리라.."는 새로운
서원과 희망을 갖게 되니, 그또한 지장보살님의 크신 위신력이라
믿습니다.

몇 년 전 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픈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수술을 한다해도 건강을 다시 찾을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사실 주사나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한 특이체질이고... 마이신
등 항생제에 대한 알러지가 있어 평소 감기에 걸려도 약도 못먹어
한약과 민간요법으로 이겨내곤 했는데, 대수술이라니...
그때 불현듯 수술하고 죽을바에야 죽을 힘 다해 기도정진이나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 , 스님께서하라는 대로 지장백일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수술 일 주일 전,그날도 전 삼보사 법당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불자님들과 함께 소리 높여 염불하는 고성염불의 지극한 마음으로 하
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불단에 모셔진 지장보살님께서 다기그릇
을 들고 제 앞으로 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선 다기물을
제게 주시면서 다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렵 목이 아파서
음식물을 넘기기 힘든 상태라 목은 말랐지만, 먹기싫다고 하니,
지장보살님께선 마치 어머니가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밥을 떠먹여 주듯, 먹기싫어 뿌리치는 아기에게 다 먹이려고 애쓰는
어머니처럼 제게 다기물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 제가 다 먹을
때까지 자비로운 눈빛으로 지켜보시던 지장보살님께서는 제가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곤 다시 불단 위에 앉으시는 것이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자 불자님들은 여전히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물을 얻어먹은 다음 날부터 제
몸은 날아갈 만큼 가벼워졌습니다. 기도할 때도 몸이 아파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했었는데, 마치 새 몸을 갖다 붙인 것 같았고,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병마가 싹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수술 예정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서 재진찰을 해봤는데
기적이라며 놀라워하시는 의사선생님을 뵈면서 저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전 "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하신 지장보살님께서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으로 저를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지장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답니다." 라는 답변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현대의학으론 수술을 해도 목숨을 장담못한다고 했는데 수술도
하지않고 지장보살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서
저는 늘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불자로써 부끄럼없는 삶,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기전에는 성불을
하지 않겠노라는 지장보살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
이 절절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때도 모든 중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생활속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 너와 내가 모두 중생의 탈을 벗어 이땅을 극락세계로
만드는 큰 일꾼이 되길 기원하면서 하루하루 지장보살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영원히 이 땅이 불국토되기를 기원하면서 지장보살님을 염하고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며 이웃에게 법음을 전하리라는 원력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전에 서원드립니다.


* 이글을 쓰신 반야화님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은평구 역촌동 삼보사 합창단단장으로써 법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


출처: 지장보살영험록 김 종매외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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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신행이야기







"오로지 할 뿐"




선법경 임순빈










15년 전 직장선배가 “이번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아침 8시까지 동대 앞 태극당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따라 나선 것이 부처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선배를 따라 간 곳은 한달에 한번 가는 ‘불교문화기행’이었는데 충북 보은의 법주사였다.




유교집안의 나와 형제들은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성경이며 찬송가가 더 익숙한 편이었다. 불교교리는 물론, 부처님이 뭔지, 절3배 하는 것도 모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법당에 들어가 좌복을 깔고 법사의 선창에 따라 ‘한글 108대참회문’으로 108배를 하는데 나는 한쪽 구석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껏 절을 하고, 그 내용은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잘못된 일과,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교는 할머니들이 불상 앞에 쌀이나 초 등을 올려놓고 복이나 비는 기복종교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모든 죄업이 몸과 말과 뜻으로 지었다는 것과 다른 종교에는 없는 회향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진작 불교가 이런 종교인 줄 알았으면 ‘아까 나도 할 걸’하는 아쉬움과 매달 가는 불교문화기행이 기다려졌다. 나도 108대참회 하러.

더구나 사찰에 있는 모든 조형물들이 불교정신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명을 듣고는 불교문화를 배우는데 신이 났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교공부도 하고 그런 신행생활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불교공부는 잘 할 수 없었지만 직장에서 가까운 조계사에서 108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제쯤 제대로 불교공부를 하고 신행생활을 온전히 해보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후 퇴직을 하고 능인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교리공부를 하고 경전을 배우는 사찰을 찾아 경전공부를 하면서 집에서는 108배를 했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불교가 무슨 종교인지 알게 해 준 분(불교문화기행 지도법사)이 “사람에게서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타고난 업보와 뜻하지 않은 장애들이 수시로 찾아들어 그렇다.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공부를 잘하여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한차례 깊은 참회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신년들어 지장기도를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에 그러겠다고 하고 이런 형식으로 100일간 해보라고 하셨다.

매일 108배를 하고 별 어려움없이 지내던 나는 “그래. 업장만 다 녹이면 내 앞날은 탄탄대로” 일거라는 생각이 들자 기도만 잘 회향하면 반드시 신천지가 열릴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 기도를 많이 하신 보살님께 여쭈었다.

지장기도를 잘 하면 기도성취가 빠르지만 대신 마장도 많다는 얘기와 마장의 사례들을 들었다.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하여 집에서 기도하기로 하고 절에 안오면 궁금해 하실 친한 도반 두분께만 말씀드렸다.




지장기도 요령은

1. 먼저 3배 올리고

2. 지장보살본원경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독송

3. ‘나무지장보살’ 천번 염송

4. 지장보살예찬문 외우며 158배

5. 지장보살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천번 염송




그리고 기도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다짐하기를

1. 기도시간에 전화기 코드 빼고

2.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전화 및 외출 절대 안함

3. 100일간 오로지 身口意 三業을 조심하고 지장보살님의 가피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지장경을 읽을 때에도 영가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하고 읽다가 잡념이 들면 읽은 기억이 나는 대목부터 다시 읽었다.

‘나무지장보살’과 지장보살예찬문을 외우면서 158배, ‘지장보살’ 천번 염송을 하는 동안에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기도시작 1주일 후 꿈을 꾸었다.

기도당시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내 옷을 입고서 우리집에 오셨다.

바쁘신 듯 현관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좋은데 놀러 가는데 너한테만은 얘기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다.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빨리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총총히 가시는데 어찌나 섭섭한지 APT 1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햇빛에 빛나는 잔잔한 바다와 배 한척, 아무도 없는 깨끗한 백사장과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고 APT 주차장 앞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어머님은 그들과 같이 그 배를 타고 같이 가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님과 다른 영가님들이 천도되었음을 알고는 ‘열심히 기도해서 어떻게든 기도성취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고 더욱더 신심이 났다.




기도를 시작한 53일 뒤 또 꿈을 꾸었다. 지장기도를 하면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한옥집에서 의사같은 하얀 까운을 입은 거사가 사람들을 진료하고 있었는데 줄이 한참 길었다. 그집 안에서 큰언니가 나를 불렀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옷을 다 벗고 엎드려 누우라고 하면서 목부터 허리까지 침을 꽂고는 허리를 문지르는데 허리가 지릿지릿 아픈 것이었다.

나는 아픈 데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병이 있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 됐으니 내려 오란다. 옆방으로 가서 내 몸을 보니 온통 생선가시같은 침이 꽂혀 있었다. 침을 빼고는 그 방을 나왔다.

그렇게 꿈을 깨고는 다음날 기도시간부터 단 5분을 앉아 있을 수 없이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장인가? 이 마장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낸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허리가 아프면서 지장경을 읽는데 경전 위로 개미들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무 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몇 년 전 집에 이유없이 개미들이 들끓었던 생각이 났다.

그때 개미에게 진심瞋心을 내고 억지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생도 했었다. 아아! 그때 개미에게 화를 내고 개미를 죽임에 과보를 받는구나!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더니. 화를 내고 살생한 과보를 받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계속 개미영가에게 참회하고 허리가 아픈지 2주쯤 된 어느 날 기도시간에 지장경을 읽고 있는데 스르르 예전처럼 허리가 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번 기도로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해주십사 더욱 간절히 참회하였다.




그 후 80일이 조금 지나 다시 꿈을 꾸었다.

세면대에서 가슴이 답답해서 토하는 꿈을 꾸었다. 입에서 한참동안 피고름이 나오는데 새끼손톱만한 노란 근(종기의 근)이 튀어 나왔다. 종기처럼 근이 나오면 다시 진물이 날 때까지 짜야한다는 생각에 다시 토하는데 또 피고름이 나오더니 또 같은 크기의 노란 근이 나오면서 피고름이 멈추는 것이었다. 세면대에서 입을 씻고 나오니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나를 반가워한다.




기도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의 기도생활에 대한 점검을 해 보았다.

70%정도만 만족할 뿐 100일 회향하고 그 다음날로부터 다시 7일을 하고 마지막 회향을 했다.




기도회향 후 도반보살님이 궁금하고 보고싶다고 전화를 주셨다.

전화 속에서도 느끼시나 보다. 목소리가 아주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고 하셨다.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서 빛이 나고 맑아지고 편안해 보인다고 무엇을 했길래 그렇게 좋아졌느냐고 묻는다.




나의 업을 녹이고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여 시작했던 기도가 어머님과 영가님들의 천도와 身業과 口業을 소멸하는 가피를 입게 되었다.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어 연緣이 닿으면 과보를 받는다고 했다. 자기의 업을 녹이고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가고자 하시는 분은 한번 꼭 해보시기를 권해 본다.




가까이 사는 신심 깊은 후배가 가끔 집으로 놀러 온다.

서로 공부이야기도 하고 집안의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후배는 늘 나에게 “언니는 복이 많은 줄 알라”는 말을 한다.

하루는 후배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중에 금전으로도, 누구의 의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도대체 무슨 업과 인연으로 그러한가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은 그런 인연을 만나지 않았을 뿐 앞으로도 다음생에도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산다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인간 몸 받지말고 성불해야지.(인간 몸 받아야 또 불법인연 만나겠지만)

왜 이제까지 성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願을 크게 세워야 한다면서 기실 작은 소원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성불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참선을 해야지.”

후배는 오래전부터 참선을 해왔고 나에게도 참선을 권해 왔었다. 때마침 참선공부 하느라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도반을 만나 힘을 얻은 것을 보자 더욱 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수련회에서 배웠던 참선을 하기 시작하고 부처님께 ‘꼬옥 선지식 만나기를, 좋은 도반 만나기를’ 발원했다.




다행히 기도공덕으로 공부를 지도해 주실 큰 선지식을 만나 禪法門과 화두드는 법, 공부인의 자세등 자상한 가르침을 주셨다.

큰스님께서는 “무릇 생명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 한다. 우리가 죽는 순간 어떠한 마음상태로 가느냐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은 임종 그 순간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화두잡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화두 놓지 말 것”을 당부 하셨다.




앞으로 나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깨친다는 조바심 버리고 “오로지 할 뿐”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이겨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초발심인 나를 따끔한 조언으로 일깨워 주시는 묘법륜보살님과 따뜻한 격려로 발심케 하는 법공심보살님께 감사드린다.




그동안 탐진치 삼독에 빠져 나라는 상을 버리지 못하여 헐떡이며 어리석게 살아 온 것 깊이 깊이 참회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바른 행을 실천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본래 부처인 도리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을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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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우물자리를 가르쳐주신 지장보살님

부산도림사는 사찰의 위치상 상수도 시설을 하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물은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기존의 지하수로는 늘 물이 부족해서 물의 양이 많은 샘을 새로 파려고 했다.

90년 봄, 기술자를 데려다 여기 저기 적당한 곳 몇 군데를 파 보았는데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스님은 기술자에게 의지하지 말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지장보살님께 일념으로 [샘 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밤,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서, 스님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아무말 없이 산으로 올라가신다.

스님은 지장보살님께 합장을 한체채조용히 쳐다보다가, 따라 오라는 뜻이라는 것을 곳 알아차리고 뒤라 갔다.

산 7부 능선에 다다른 지장보살님은 손을 펴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땅위에 내려놓으니, 거북은 이리저리 한참 기어다니다가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꿈에 본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너무나 꿈이 생생해서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잡초를 헤치고 이리 저리 찾고 있는데, 풀숲에 놀랍게도 지난밤에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것과 비슷한 작은 구멍이 있지 않는가!

스님은 확신을 갖고 그 곳을 팠다. 그랬더니 거기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좋은 물이 많이 나와서, 지금은 그 물로 식수, 생활 용수 ...... 등 모두를 충당하고, 물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우물이 완성되고 몇 달이 지나자,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금붕어 3마리를 절 입구 잔디 위에 내려 놓고 가신다. 스님은 그 자리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서, 지금 금붕어를 기르고 있다. 물이 너무 좋아서 금붕어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생기 있게 잘 살고 있다.



34. 귀에 소리 나는 병을 고친 재일교포


재일 교포 차□식씨는 오래도록 일본에 살다가 90년도 봄 한국으로 돌아 와서, 지금은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에 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업에도 성공해서 돈도 좀 벌었고, 한 때는 민단의 간부직도 지낸 유능한 사람이다. 7년전 본부인이 죽자, 한국에 나와 살고 있는데, 일본에 있을 때 노후에는 한국에 와서 살려고 부인을 시켜 일본의 재산을 미리 한국으로 갖고와서 적당한 곳에 투자를 해 놓았다. 그런데 부인이 갑자기 변을 당해 죽자, 부인이 일본에서 갖고 온 재산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차□식씨는 심증이 가는 곳을 모두 탐문 해보았으나 결국 재산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이상한 병만 얻었다. 혼자서 살기가 불편해서 5년 전에 재혼을 했는데, 재혼한지 3달 뒤, 본부인이 꿈에 나타나서 차□식씨에게 욕을 하고 머리를 때리는 꿈을 꾸었는데, 그때부터 머리 위에서 이상한 잡음이 나며 두통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온갖 약을 다 써 보고, 여러 병원을 다 찾아 다녔으나 증상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후에도 꿈에 본부인이 보이기만하면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두통과 잡음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절망에 빠진 차□식씨는 어느 날 도림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스님의 권유에 따라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파 마늘등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과 고기를 삼가하고,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정성을 다 해서 스님과 함께 새벽예불를 올렸다. 어느 날 아침, 법당에서 혼자서 절을 하는데 그날은 기분이 좀 좋아서 절을 많이 하기로 결심하고 30번쯤 절을 하고 그만 두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108배를 해라! 108번 절을 해라!] 하였다. 뒤돌아보니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놀라움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108배를 올렸다.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스님은 그저 가만히 미소짓기만 하였다. 7일 기도를 마친 날 새벽, 차□식씨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의 본부인이 커다란 붉은 연꽃을 손에 들고 골프장 보다 더 널찍한 잔디밭을 천천히 걸어서 산 위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꾼 다음부터 두통도 없어졌고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도 없어졌다.

차□식씨는 모두가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매월 지장재일에는 도림사에 나가 지장보살님께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작성자: 권 영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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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나의 경험인데, 그러니까 79년도에 지독한 질병에 걸려서
식음을 전폐하고 사경을 헤멘적이 있다.

그 때에 진실로 지장보살전에 엎드려 참회하고
일주일 기도를 올린적이 있다.

하루에 총 2 시간 밖에 하지 아니했는데도 마지막 날에는
거의 완쾌되어 밥을 한사발 먹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도중에 아픈 부위가
이상한 소리와 함께 마치 무슨 신이한 존재가 수술을 하는
것과도 같음이 매우 희안하더라는 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 바로 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한계상황에 마주치면 대개 신앙을 찾는
심정을 나는 이해하기로 하였다,


출처: 천불동 천문천답 PBOBJANG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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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우란분절을 앞두고


우란분절 을 앞두고 영가천도를 위해 기도 중입니다.
49일간 영가천도를 위해 기도 드리고자 발원하고 입재하여 기도하다 보니
몇 년 전 제가 불교에 입문하기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나의 뇌리에 스침은
왜 일까.

아마도 저를 불교에 입문하게 했던 계기가 되었기에 더욱더 생각이 생생한가 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전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이다 보니 절에 다닌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 묵묵히 불자가 아닌
사람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하지만 전생에 불연이 있었는지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은 부처님께 다가가고픈 간절한 마음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교 경전을 구입하여 가족들 몰래 뜻도 모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간만 나면 읽었습니다.
가게를 하면서 시간나는 대로 경전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때는 일념으로 읽을 줄도 모르고, 기도의 목적으로 읽을 줄도 모르고
오직 즐겨 읽을 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라니가 혀도 잘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는데
자꾸자꾸 반복해서 일념으로 독경하다보니 이상하게 다른 부분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지는 신기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뜻도 모르면서 왜 그리도 빨려 들어가는지, 어떠한 힘에 의해
빨려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매료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불보살님의 가피가 계셔서 원하는 일이 꼭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나의 마음에 욕심으로 꽉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경전은 물론 불교에 관한 책을 탐독하며 한발한발
불자의 길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어느 날 며칠을 밤마다 꿈에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보이시며 왜 집을 지어주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생소한 꿈이었기에 이상하다 생각하고 시어머님께 말씀드리니
교회에 다니시는 시어머님이셨기에 나의 꿈 이야기를 듣고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하시면서 나의 말을 무시해 버리셨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시어머니로서는 당연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날 밤도 그 다음 날 밤도 며칠 밤을 똑같은
꿈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또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님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사실은 아버님 산소에
잡초가 많아서 제초제를 뿌렸는데 잘못 뿌려 잔디가 다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불자가 아닌 저로서는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났는지
남편한테 부탁하여 깨끗한 모래를 구해서 일곱 번 씻어 말린 다음 21일 기간을
정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장경 1품에서 13품까지 읽고 츰부다라니 지독하고
광명진언 108독을 하고 영가천도를 위한 발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기도를 하는데 며칠 밤을 왜 집을 지어주지 않느냐며
선몽하던 아버님이 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도기도를 하겠다고 마음만 내도 천도가 되는가 보다 생각하고
더욱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21일 기도를 마치고 시골에 모셔진 아버님 산소에 광명 진언한 모래와 음식을 준비하여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아버님 산소가 잔디는 물론 흙이 새까맣게 타 있었습니다.
기도 드린 모래를 뿌려드리고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드리고 아버님께 다녀온 날 밤
꿈에 어떤 흰옷 입은 할머니 한 분과 아버님께서 집에 오셔서 할머니는 방에
앉아 계시고 아버님께서는 웃으시며 나가시는데 순간 하늘에서 밝은 광채가 났습니다.
그 이후에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이 당신도 일요일마다 애들 데리고
절에 다니라며 허락을 하였습니다. 5년 전의 일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일요 법회에 참석하게 되어
절에서 아주 열심히 다니는 불자로 꼽히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절에 다니며 기도 정진 열심히 하는 제게도 참기 어려운 장애가 있습니다.
나의 정진을 시험이라도 하시기 위한 부처님의 뜻인지 아니면 제가 쌓은 업인지
시련의 장애가 옵니다. 하지만 기도 정진으로서 이겨내려 열심히 노력합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일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내 마음 단속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자로 생활하기 전에는 아상을 못 버리고 나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상대의 잘못만을 생각하며 원망하고 미워하다 보니 더욱더 괴로운 것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듯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불자로서 생활하며 덕 높으신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불서들을 읽으며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상대에 있는 게 아니고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잘못으로 돌리며 내 마음 단속을 위해 노력해도
참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행해왔던 습인지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얼마 전(요즘)의 일입니다.
남편과 다툼이 있었는데 화를 내며 나가는 남편이 너무나 야속하고
미운 생각에 속이 상하여 잊으려고 기도를 드리는데 집중이 되지를 않고
마음 속엔 남편을 원망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혼자 중얼거렸죠. 남편을 원망하며 왜 그럴까 하고
잘못을 남편에게 돌리는 원망과 원망에서 오는 미움으로 구업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아니면 나를 깨우치게 하시려는 부처님의 뜻이었는지
경전을 모셔둔 책장을 보니 경전이 옆으로 비틀어지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순간 반듯이 놓으려고 책장 문을 여는데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책장 문이 갑자기 떨어져 박살이 났습니다.
순간 내가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한 업을 지었기에 그 과보를 받는구나
생각하고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참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어떤 고통과 괴로움이 내가 하는 기도를 방해 한다해도
절대 마장과 장애가 아닌 나의 기도 정진을 더욱더 돈독히 하라는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뭔가를 갈망함이 크면 더욱더 매달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불보살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나의 해이해진 마음을 채찍하기 위한 스승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 닫혀 있었더라면
제가 어떻게 불자로서 생활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게 부처님의 가피와 보살님의 가호하심이라 생각하고
감사 드리고 항상 초발심의 마음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이 내 마음 안의 일임을 알고 생활한다면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생활하지는 않겠지요?

내 마음 단속 잘 하여 어리석은 행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루하루 불은에 감사 드리고 부처님께서 주신 위신력의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더욱더 열심히 정진하려고 서원을 세워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불자님들의 가정에 부처님의 향기가 충만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글· 김갑숙/서울 용산구 거주

월간 불광 2000년 8월호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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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목숨을 연장해 주신 지장보살님


점촌에 사는 임정□ 여인은 윗대부터 김룡사에 다녔으며, 특히 지장 기도를 열심히 해 왔다.

지금 환갑이 지난 임여인은 약 10년 전 우연히 얻은 기관지 질환으로 무척 고생을 해 왔고,
지난 겨울에는 증상이 너무 심해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었다.

병원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밤 꿈에 저승차사 3명이 검은 옷을 입고 임정□여인을 찾아와서 무조건 따라 가자고 한다. 꿈속에서도, 저승차사를 딸아 가면 이 세상
을 하직하는 날이고 죽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마디 대항도 할 수 없고 또한
피할 수도 없는 절대 절명의 위엄에 눌려 가자는 대로 따라 갔다.

그런대 문밖에 나가 정신을 차려 보니 거기에는 낯선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 두 사람이 말없이 서 있었다. 임정□ 여인은 그 사람들과 함께 저승차사를 따라 어디론가 걸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천천히 걸어가도 몸이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잘 걸어갈 수가 있었다.

저승차사가 그들을 대려 간 곳은 김천에 있는, 임정□ 여인의 동생 집이었다.
그리고 동생 집에 있는 개집 앞에 다다르자, 개집 속으로 들어가라 한다. 함께 간 두 남녀는 아무말 없이 시키는 대로 개집으로 들어가는데, 임정□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나서, [지장보살심 나는 싫어요. 지장보살심 나는 싫어요. ]하면서 개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저승차사들은 임정□여인을 한참 노려보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깨니 꿈이었다. 온 몸에 땀이 나서 이불이 흠뻑 저졌다.

며칠 뒤 꿈이 너무 이상해서 오랜만에 동생집에 가보 기로 했다.
병고에 시달리느라 동생을 못 만난지도 1년이 넘는 듯 했다. 그래서 몇 마디 안부를 묻고나서 [너의 집에 개를 기르느냐?]하고 말하니 [암개를 한 마리 기르는데, 몇 일 전에 새끼를 세 마리 낳았어. 한 말리는 죽은 것을 낳고, 두 마리는 암컷 수컷 한 장운데 아주 귀여워. 언니 한 번 볼래?] 하며 개집으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개집이 꿈에서 본 개집과 꼭 같았고, 개가 새끼를 낳은 것도, 저승차사가 그들에게 개집에 들어가라고 말한 날짜와 꼭 같았다. 임정□은 겁이 났다. 그리고 만일 자기가 개집으로 들어갔더라면 지금 이 집 개로 환생했을 것이
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그 강아지 두 마리는 꿈에서 본 두 남녀의 환생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임정□은 동생에게 그 강아지는 특별한 강아지니, 함부로 팔지 말고 언니에게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를 구해 주신 김룡사 지장보살님께 한없는 감사를 들이고, 다음 생에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더욱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영험이 많으신 김룡사 지장보살에 더 기도하고 살기로 맹서 하였다.

(김룡사에서 만난 임정□)


출처: www.andongkwon.pe.kr 권영한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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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1920년경의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씨(張氏)집안으로 시집을 간 양벽원(梁璧垣) 거사의 딸은 광산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하남(河南) 지방으로 가서 임신을 하였다. 차츰 해산할 날이 다가왔으나 외진 곳이라 해산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부부가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종이에 ‘나무지장왕보살(南無地藏王菩薩) : 중국에서는 지장보살을 지장왕보살이라 많이 칭함)’이라 써서 딸에게 보내며 당부하였다.

“매일 아침, 향을 피우고 지장보살게 삼배를 올린 다음, 지장왕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기도하여라. 반드시 순산하게 될 것이다.”

딸은 아버지가 보내준 글씨를 벽에 붙이고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기도하였으며, 그 결과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아들을 순산하였다.

2년 뒤 그녀는 또 임신하였으며, 전과 같이 기도하여 아무런 고통 없이 딸을 낳았다. 두 아이의 상호는 매우 단정하였으며 총명하고 또한 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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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얼마 전, 시댁에 갔다가 문득 오래 전에 읽은 “지장경”생각이 나서 어머님께 여쭈어보니 읽지 않고 놓아 두셨다길래 제가 가져 왔습니다. 바깥사람 일로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서 틈틈이 읽어 보려고요.

집에 와서 무심히 읽다가 정말로 깜짝 놀랄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씁니다.

바깥사람의 병세가 좋아진 얼마 후에 꿈을 꾸게 되었더랬습니다.

- 제가 어디론가 꼭 가야하는데 그 가야할 길이 매우 좁은 골목길이었고 그 골목에는 늑대인지 악어모양 괴물인지 모를 이상한 동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 이빨로 뼈와 살을 찢어내 죽여 피가 사방에 흥건한 처참한 모양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섭기는 하였지만 목적지로 가는 길이 그 길 밖에 없어서 어쨌든 각오를 하고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막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뒤에서 어떤 스님이 저를 부르시고는 팔을 잡더니 뒤로 돌아서 다른 넓고 큰 길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길이 매우 밝고 따뜻하며 쾌적한 길이어서 곧 마음이 평온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다음부터는 이 길로 다니시오. 얼마나 좋은 길입니까?”하시며 고개를 올라가 멀리 사라지셨습니다. -
잠에서 깨어 무언가 감사함을 입었다는 것은 알았으나 스님이나 절과는 인연이 먼지라 곧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장경 제8품”에 꼭 그 꿈과 같은 구절이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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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미혹하여 본집을 잃고 험한 길로 잘못 들어섰는데, 그 길에는 숱한 야차와 호랑이· 사자· 독사· 따위가 있어서, 그 사람이 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저 여러 악독한 짐승들과 곧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한 선지식이 있어서, 큰 술법을 가지고서 모든 악독한 것들을 잘 막아 낼 수 있는 분이었는데, 갑자기 미혹한 사람이 그 험한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을 보고 이 선지식이 말하였다.
「이 딱한 사람아! 어쩌자고 이런 길로 들어섰는가? 무슨 기이한 술법이라도 있어서 저 모든 사나운 것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사람이 문득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험로임을 깨닫고 곧 물러서며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때 그 선지식이 손을 잡고 이끌어 독물을 막으며 좋은 길로 인도하여 안전하게 해주고는 또 말하였다.
「딱한 사람아, 이 다음부터는 저 길을 다시는 밟지 말게. 저 길로 들어가면 좀체로 벗어날 수 없고, 더구나 목숨을 잃게 된다네.」
길 잃었던 사람은 깊이 감동하였다. 서로 작별할 때에 선지식이 또 말하기를
「만약 모든 길가는 사람을 보거든 친지거나, 아니거나, 남자든 여자든 간에 저 길에는 여러 가지 사납고 독한 것들이 많아서 목숨을 잃게 된다고 말해주어,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취하지 않도록 하게.」
라고 하는 것과 같느니라. 이렇게 지장보살이 대자대비를 갖추어 죄고 중생을 구출하여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게 하고 묘락을 누리게 하여 주면, 그들이 업도의 괴로움을 알고서 거기를 벗어나 다시 겪어가지 않는 것은, 저 길 잃은 사람이 험로에 잘못 들어갔다가 선지식을 만나 이끌려 나오게 되어 영원히 다시는 들어가지 않는 거와 같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들어가지 말도록 권하면, 자연히 이 미혹한 것으로부터 해탈케 되고 다시는 악도에 들어가지 않는 거와 같느니라...... <제 8 품 염라왕들을 찬탄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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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스님이 지장보살님이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깥사람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때에도 도움을 주시더니 저도 모르게 저를 도와주시고 계셨다니 감사한 마음과 환희심이 들었습니다.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는 저를 이렇게나 돌보아주시다니요.
저는 마음속으로 감사드리는 것 밖에 모릅니다. 하지만 이 감사함을 님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_()()()_

출처: 나무아미타불카페 미타사랑님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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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어느 육군대령의 이야기


어느날 북가좌동의 이씨 성을 가진 보살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살님의 친구 남편이 군인인데 갑자기 목이 돌아가서 병원에가도 소용이 없고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기에
문득 스님생각이 나서 염치없이 전화를 드린다고 하면서, 수고스럽지만 환자가 절에 올 수가 없으니 수고
좀 하셔서 북가좌동을 찾아주셨으면한다고 정중히 부탁을 하였다.

군인이면 할 일이 많고 나라를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고 편한 잠자리를 하는 것도 모두 그들의 노고가 있음이라 생각하고 큰 마음을 먹고
북가좌동을 찾아갔다.

이 보살님의 안내를 받아서 나는 그 군인댁으로 갔다.

2층집이었다. 환자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람의 목이 어떻게 저렇게 돌아갈 수가
있을까? 180도 가까이 뒷목에 얼굴이 돌아가 있지않은가?

무척이나 당황할만한 일이었다.

휴가를 받고 나와서 잠시 자다 일어나보니 그렇게 되어있다고했으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으리라.

지압도 해보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물리치료도 했으나 치료할 때만 부드럽지 다시 몇 시간이 지나면
도로 원상태로 목이 돌아가고 이젠 시간이 지나서 아프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우연히 이보살님이 나의 이야기를 해서 마음이 쏠리기에 부탁을 드렸다고 하였다.

정릉의 절에 있을 때라 정릉에서 스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부인은 기대도하고 한편 또한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을
어떻게 절에서 스님이 고칠 수가 있나하고 반신반의하면서도 안팎으로 집을 깨끗이 정리를 해놓고 있었다.

이보살님과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역시나 실망의 눈빛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스님께서 오신다고 하더니...하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보살님은 "이 분이 내가 이야기한 정릉 스님이셔."하고 간결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는 "이 스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아주 용한 분이셔."하고 다시 덧붙였다. 괜히 어쭙잖게 칭찬을
듣는 것 같아서 별로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나보다.

아무런 말이 없이 여자는 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저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머리까지 기르시고 저희들보다 더 멋쟁이시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영 마음이 내키지않는군요."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냥 그 길을 나오려고 하는데, 이보살님이 신경질을 내면서 퉁명스럽게 "왜 그래요? 바쁘신 분을 정말 어렵게
오시라고해서 이렇게 모셨는데...그래도 정 의심스러우면 기도를 하고난 뒤 아저씨가 다 나으면 사례를 하면되지."
하고는 오히려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와중에 거실을 한 번 휘 둘러보았더니 벽에 예수의 그림이 있었다.

아하! 종교가 다르구나. 묘한 감정이 생겼다.

나는 누가 나를 비웃고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있으나 종교적인 대립은 절대로 지고싶지않다. 역시 나도 중생심이
남보다 강한 탓이리라.

나는 마음속으로 그래 종교가 다르다면 한 번 해볼 일이다, 어떠한 인연이든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또한 인연이려니
인연을 맺어보자하고 생각하여서

"좋습니다. 사례는 나중 문제고 일단 병이나 신경을 써 봅시다. 나 역시 아무런 능력이 없으니 부처님께 한 번 매달려봅시다."
하고 공연히 여길 온게 아니고 군인이기에 그 노고에 보답하고자 왔으니 마음을 열고 인연을 맺어보자 하였다.

그리고, 필히 한마디를 더 해주었다.

"천도식과 구병시식을 하여서 병이 차도가 있거든 필히 나에게 사과를 하시고 불교를 꼭 믿으십시오."하고는 그 집 주소와
이름을 적어서 절로 돌아왔다.

차를 타고 오면서 공연히 그들이 괘씸한 생각도 들고 잠시 잠깐사이 봉변을 당한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 하늘을
보고 웃었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수없이 겪는 일이지만 대중들은 스님이라 하면 삭발을 하고 법복을 입고 해야만 스님인줄 알고 있기에
번번이 당하는 또 하나의 곤욕이 아니던가.

머리를 기르고 성직자 생활을 하는 나의 입장은 어쩌면 비구 비구니 스님들보다 몇 천배 힘들고 고통이 따르나 또 한편
생각하면 이것또한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극복해나간다.

일단 이왕에 한사람이라도 포교를 하기위하여 나는 또 기도를 시작하였다. 아마도 오기가 깃들이지 않았다고는 말못하리라.

아상(我相)과 중생심이 가득한 우리 중생들은 우선은 눈앞에 보여주고 손에 쥐어주어야만 느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나는 자신이 넘쳤다. 그때만해도 젊음이 있고 또한 무서운게 없었다.

기어이 저 군인의 목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 날의 멋쩍었던 일을 깨끗이 사과를 받으리라.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다른 기도를 할 때도 항상 마찬가지이지만 온 정열을 다하여 "나반존자"를 염송하기 시작했다.

아무개의 목을 제대로 고쳐주소서.

무엇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오게되었는지 가르쳐달라고 미친듯이 나반존자를 염송하기 시작한지 일주일쯤이었다.

이 팔이 부러져도 이 몸이 이 자리에서 기도를 하다가 재가되어도 나는 알고싶었다.

나반존자님의 대답을 들어야만했다.

아! 이게 웬일인가? 수많은 기도중에 여러가지 많은 허상이나 환청도 있었지만 넓은 벌판에 하얀 홑이불을 덮어쓴 시체4구가
눈만 빼꼼이 쳐다보고 누워있지 않은가?

나반존자! 나반존자! 더욱더 큰 소리로 기도를 했다.

온 몸에 전율이 왔다.

그래! 이것이다. 나는 그 군인의 병이 이 4구의 시체와 인연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집에 전화를 걸어서 군인을 바꾸어
달라고했다. 불편한 몸으로 전화를 받은 군인에게 4구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군인은 깜짝 놀라면서 하는 말이 오래 전에 자기가 소대장으로 있을 때 훈련도중에 대원들이 총기를 청소하다가 사고가
나서 군인 네 명이 사고를 당하여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단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등에다가 죽은 군인을 업고 부대로 돌아온 적이 있으나 항상 그 때 생각을하면 목이 메이고 가슴이
아프다고 하였다. 허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게 무슨 일이냐고 반문하였다.

나는 그게 본인의 병의 원인이며 그 4구 시체의 영혼들을 천도를 해야만 목이 제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강경하게 이야기했다.

군인은 그런데 그 일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나로 인한 사고도 아니고 저희들이 부주의한 탓에
생긴 일인데요하였다.

그러나 잠시 머뭇거리던 군인은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저의 집을 찾아주십시오. 염치없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하고 아주 정중하게 부탁을 하였다.

나는 이왕에 시작된 일, 전생의 인연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처음 먹은 마음대로 도와주기로 했다.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땐 정말로 정중하게 대접을 받았다. 부인 역시 이보살님 보는 데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다소곳이
이야기를 들었다.

군인은 사실 그 후 아주 자주 그 날의 악몽을 꿈꾸고는 땀에 흠뻑 젖어서 제대로 잠도 못자고 시달리는 날이 있었으나
집사람이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기에 혼자만 시달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스님께서 기도를 입재하신 날부터 그 날 4명의 군인한테 깊은 골짜기로 무섭게 내쫓기는 꿈을 계속 꾸었다한다.
그런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이 일을 스님께서 말씀하시니 놀랄 일이라고 하였다.

나는 "강대령님, 그들 원혼들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하여 억울하여서 뭔가 그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밤마다
꿈에 나타난 듯합니다. 비록 강대령님의 실수는 아니었으나 그 부대의 책임자이셨고 또 강대령님이 그들과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원혼을 달래줍시다."하였더니 선뜻 승낙을 하였다.

그리고, 부인을 불러서 "스님께서 하라시는대로 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처음 만남의 어색함과는 달리 한마음으로 진실로 음식을 장만하여 지장보살님앞에서 그들의 천도재를 잘 지내주었다.

부인 역시 절에 나와 정말로 열심히 기도를하고 처음 해보는 절이나마 땀을 흠씬 흘리면서 무사히 천도재를 마쳤다.

그 후 10일이 지난 후에 강대령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님 감사합니다. 천도재를 지낸 후에 그들을 꿈에 또 보았습니다. 깨끗하게 흰 옷을 입은 4명의 젊은이들이 고맙다고
몇 번이나 절을 한 후 떠났습니다. 그 다음날 세수를 하려고하니 무척이나 목이 편안하고 세면대에 서서 거울을 보니
정말로 기적처럼 목이 편안하고 기적처럼 목이 바로 돌아왔습니다. 지극한 이 천도의 이치를 영혼들은 신령스럽게도
아는가봅니다."하고 말을 했다.

바로 전화를 드리려하였으나 며칠 경과를 보느라고 이제야 전화를 한다고 하였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전: 혜강 박영옥저 우리 곁에 지장보살 오셨네 (광연문화刊)



41. 늘 술에 취해있는 남편을 기도로 고치다.


S동에 사는 K씨는 한 달에 25일 이상을 술에 취해서 온 가족들을 괴롭혔고 자신의 인생도 폐인이 되어가고있었다.

"스님, 정말로 못 살겠어요. 차라리 이혼을 하든 도망을 가든 해야할까봐요."하고 속이 상해서 K씨의 부인은 하소연
을했다.

남편은 매일 술에 찌든 채 얼굴이 새까맣게 되고 추해져서 이젠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고하였다. 그렇다고
정신병원에 넣으려고하니 자식들이 있는데 그럴 수도 없고 죽고만 싶다고했다.

허나 한가지 그렇게 인사불성이 되게 술을 많이마시고 술주정을 해도 술이 깨어서 정신이 돌아오면 그렇게 얌전하고
뼈가 저리게 후회를 한다고한다.

"다시는 술을 먹지 않는다."고 맹세를 수없이 한단다. 허나 그 맹세도 잠시뿐 아침부터 시작해서 그 이튿날 또 그 이튿날
아침까지도 손에서 술병을 놓으려하지않고 자연히 남과도 다투게되고 가족들의 불화는 더욱더 악화가되어서 이젠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다고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빠가 늦게 들어오면 또 술에 취해서 괴롭힐까봐 불안에 떨고 잠도 못자는 날이 수없이 많다고하였다.
이제는 아이들도 아빠를 불신하고 피하고있다고 한다.

본인은 며칠씩 술에 취해서 꿈속에서 살지만 가족과 아내는 모든 일들이 마비가 되고 일도 못하고 집안이 엉망이 되었기에
근심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한다고했다.

더구나 이젠 방 한칸도 제대로 지니고 살 수가 없게되었다. 동네사람들에게도 신용을 잃고 구멍가게에도 눈덩이처럼 빚이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가 없음은 당연하였다. K씨의 아내는 자주는 법회에 못 나오지만 불가의 인연을 맺은 불자였다.

그러나 워낙 생활에 쫓기다보니까 한번도 제대로 나와 상담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있었다.

아니, 창피해서 더 가정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나중에 K씨의 부인은 털어놓았다.

자신이 무슨 죄가 이리 많아서 매일 속을 썩어야하는지 한숨과 한탄으로 밤을 지새는 날이 수없이 많았기에 인생에 지친 탓도
있었으리라.

가족들의 얼굴들이 모두가 누렇게 떴다. 술을 먹은 사람은 술을 먹어서 떴고 가족들은 시달림과 지침에서 웃음을 잃게되어서
누렇게 떴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K씨의 부인은 나에게 전화를하여 상담해줄 것을 요청했다. 법회 때는 어떻게 정신없이 왔다가야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조용히 의논을 드릴 수가 없기에 그냥 갈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스님, 애들 아빠를 구해주세요. 이제는 도저히 저렇게는 못삽니다. 어떻게 구해주세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심상치가
않아요. 뭔가 귀신이라도 붙은 듯이 행동을 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가족 모두가 집단자살이라도 해야할 판이니 제발 스님께서
어떻게 구해주세요."라고 하소연을 하면서 부인은 울었다.

본인도 술이 깨고 나면 다시는 안 먹겠다고 후회하고 제발 어떻게 자신을 해달라고 부인에게 오히려 매달린다고하였다.

이상한 일이라고 수없이 술을 안 먹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술을 먹게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라고 가족들에게 몇 번인가 하소연도 했다고한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술을 먹고 몸을 상하게했으면 지금쯤 간이나 뱃속의 모든 기능이 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어야할 게 아닌가?

그런데, 검사결과 모두가 다 정상이라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결과 K씨의 부인에게

"그럽시다. 우리 인력으로 안되는 일이라면 정말로 위대한 힘을 가진 분께 한 번 의지를 해볼 수도 있지요. 또 압니까?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여러 불보살님과 조상님들의 음덕으로 술병을 고칠지....." 혹시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술을 먹는다
면 분명히 고칠 수가 있을겁니다."하고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조상천도재를 하기로 하였다.

선망부모, 일가친적이나 무주 유주 고혼들의 왕생극락기도를 해준다면 100분의 1이라도 술병이 고쳐지지 않을까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허나 지장천도재를 하려해도 우선은 물질적인 것이 난관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곤란한 문제였다. 나 역시 신도들에게 금전적인 것을 요구할 때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기도 했다. 물질적인 것은
참 나의 기도정진과 수행생활에 무척이나 장애이기도 했다.

허나 모든게 금전이 안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음이 현실세계라 안타까운 일이다. 부처님은 제아무리 돈이나 모든 공양구를
드린다고 하여도 끄덕도 없이 앉아계시건만, 우리 현실은 물질이 있어야만 모든게 움직일 수 있음이 아니던가?

K씨의 경우도 오로지 지장보살님께 매달려서 지옥,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빠져 허덕이는 영가들을 천도하여서 모든 영가들의
맺힌 마음을 풀어주고 밝고 맑은 곳으로 영혼을 인도함으로써 K씨의 정신도 맑게 안락을 찾을 수 있지않을까.

지금껏 수많은 기도를 해보았지만 지금부터는 지장보살시대에 지장천도재가 제일 빠른 지름길이 되게될 것이다.

K씨로 하여금 마음의 안위를 얻게되어 술을 스스로 멀리 할 수 있게끔 영가천도재를 지극히 해볼 것을 권하였다.

정말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 조촐하게 음식을 장만하여서 K씨의 조상천도재를 잘 지내주었다. 나 역시 입에서 쓴 내가
나고 배창자가 다 터지는 듯한 힘든 기도이다.

지장천도재를 한번하고 나면 어지러워서 자리에서 일어나기에도 힘겨울 때도 있다. 앉아서 식은 땀이 다 나도록 지장보살님을
찾고 아미타불을 염송하다보면 온몸이 한겨울에도 땀으로 흠뻑 젖는다.

"지장보살님이시여! 여기 가엾은 저를 보아주십시오. 여기 죄많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오늘 이 공덕으로 제발 오늘 이 기도를
하는 우리 신도댁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하고 목청껏 염불을 한다.

여기 불쌍한 저로 인하여 감히 부처님을 욕되지않게 하소서. 부처님의 위대하신 원력을 보여주셔서 불법이 널리 펴져서 길이길이
빛나게 하소서.

인연이 있든 없든 스쳐간 영가들이든 오늘 묘한 법을 들으시고 감응하사 K씨를 구렁텅이에서 건져 주시고 이들에게 불법의
위대함을 보여주소서.

사람답게 살다가게 바른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K씨의 전생의 업연을 소멸하고 음주재액을 소멸하소서.

뜬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듯이 K씨의 업연도 모두 말끔히 씻어주소서.

나쁜 인연 다 버리고 나쁜 악업 다 소멸케 하소서.

K씨 부인의 눈물 때문이기도했지만 이들과의 일대사 인연의 고리를 풀기위해서 기도하는 나의 볼에서도 역시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영가들의 천도재를 수없이 하면서 나는 수없이 운다. 왜! 그렇게 슬플까? 알지도
못하는 영가들의 죽음이 슬퍼서는 아닐 것이다.

부처님의 묘한 법문 속에 나 자신도 모르는 눈물이 흘러내림을 어찌할 수 있으랴.

K씨의 아내 역시 절에를 자주 찾는 편은 아니었다. 고된 생활고에 시달리는 몸이기에 절집에 오는날이 많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법문 속에서도 나의 구슬픈 목소리로 하는 염불때문인지 남편의 염려때문인지 기도가 끝날 때까지
마룻바닥에 방석도 없이 기도를 한 탓에 무릎이 시뻘겋게 까졌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절이었기에 아픔도 잊은 채 절을 했으리라.


하여튼 천도재를 지낸 후 K씨는 정말로 기적처럼 술을 끊게 되었음이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은 열심히 사업도 하고 생활이 윤택하여서 집도 사고 사장님 소리도 듣고 열심히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먹고 살겠다고 바빠서 자주 절에 못찾아와서 스님께 죄송하고 부처님께 죄송하다고 가끔은 전화를 한다.

K씨의 술버릇역시 보이지않는 조상님들의 업연을 풀어줌으로써 점차로 술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지장보살시대임을 절실히 느끼면서, 우리들은 직접 보고 듣지않은 일들은 강넌너 불구경하듯이 남의 일처럼
느끼지를 못하지만, 세상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문명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해도 믿음의 강한 지남철은 기도를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제 아무리 달고 맛이 있어도 그 사랑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느낄 수 있듯이 기도역시 그렇다.

기도를 해 본 자만이 기도의 영험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원력을.....



출처: 혜강 박영옥저 오! 지장보살님이시여, 나는 언제 지옥문을 두드리나이까? (관음문화사刊)




옮긴이註: 천도재를 정법사찰에서 잘 지내도 좋으나 개인이 바른 방법으로 정성껏 영가천도 100일 기도를 하셔도 좋습니다.




42. 글쓴이: 청정화

제가 영명사 주지 스님을 처음 뵌 것은 2003년 음력 정월 초였다.

2003년은 내 개인적으로 지장기도 10년 되던 해였고 2003년이 시작될 무렵에 나는 서울에 사는 언니로부터
광명진언을 21일간 1000독 하면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곧바로 광명진언을 열심히 하루도 빼먹지 않고 21일간 했다.
21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통도사 원주스님으로 계셨던 지범스님을 뵙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범스님이 광명진언 21일간 1000독으로 만나게 된 스승이신 줄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스님으로부터 지장기도 시작하기 전에 광명전에서 26일간의 신장기도와 49일간의 지장기도를 회향하면서
천도재를 지내라고 지침 받았다.

나는 스님을 뵙기 전에는 3일 이상 절에 다닌 적도 없었고 건강상태는 협심증, 부정맥, 갑상선 기능저하 라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스님이 주신 기도량을 소화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하루하루 몸은 굉장히 피곤하고 또한 스님을 거역 할 수는 없고 때로는 너무나 힘들어서
“ 여기는 절이지 학교도 아닌데... 그리고 스님은 호랑이 선생님도 아닌데 꼭 이렇게 해야만 하나 ? 라는
의문이 짙게 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이 기도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냈다.

기도회향하던 날 얼마나 감개무량했던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백중 회향 후 스님은 구미 영명사로 소임을 맡아 떠나셨다.

스님께서 영명사로 가신 후 약 2달 후쯤 영명사에서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

스님께서는 천도재를 지내기 전에는 반드시 천도재를 위한 기도 숙제를 내 주신다.

무상계 33번, 광명진언 600번, 지장정근 5000번 이상 이었다. 기도는 집과 가까운 통도사에서 했다.

어느 날 나는 기도를 마치고 부산 집으로 가기위해 차를 고속도로로 올렸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대형트럭이 내차를 들이받고, 내차는 튕겨서 앞에 가던 소형트럭을 들이받았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한참 후 주변의 도움으로 차에서 겨우 내려 의식을 차렸는데, 내 차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앞뒤가 심하게 부셔져 있었고 주변에는 경찰차, 응급차, 렉카 등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와 있었다.

경찰의 질문에 답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고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대형 3중 충돌사고가 나서 차량이 앞뒤로 다 부셔졌는데도 몸은 전혀 다치지 않다니...

나는 그저 부처님께 감사드릴 뿐 이었다. 아울러 이렇게 기도를 하게 이끌어 주신 지범 스님께도..
내 일생에 이토록 부처님의 위신력을 실감한 적은 없었다.

사고 다음날도 나는 절에 갔다. 의사는 사고 후유증이 상당할거라 했지만 나는 별 탈 없이 무난히 지냈다.
그리고 천도재도 무사히 지냈다. 천도재를 지낸 후, 스님의 기도소리가 나에게는 많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2004년 백중기도 때부터 나는 영명사에 자주 가게 되었다.

영명사는 백중기도를 100일간 모두 16재를 지낸다.

나는 처음에 입재는 했으나 16재를 전부 다닐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입재 후 초재에도 나는 그냥 안가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에 어느 무서운 남자 4~5명이
내 방에 들어와 나를 무섭게 내려다 봤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떴다. 나는 너무 무서웠고 가만히 누워 있다보니 혹시 그남자들이 신장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영명사로 갔다. 그리고 2재 때도 지난번과 꼭 같은 남자들이 꿈에 나왔다.

하도 이상해서 또 영명사로 갔다. 다음 3재때도 이번에는 설마하면서 안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번 꿈에는
스님이 화엄경 약찬게를 하시면서 내 머리 위에서 목탁을 치셨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또 영명사로 갔다.

나는 3재까지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이제는 남은 백중기도를 힘닿는데 까지 열심히 절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5재인지 6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쯤 나는 새벽에 너무 피곤해서 못일어 날 뻔 했는데 또 꿈속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서 놀래 깨어보니 알람은 꺼져있고 시계는 새벽 5시30분 나는 또 서둘러서
구미로 가는 제시간에 차를 탈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부산에서 구미에 있는 영명사까지 백중기도 16제를 빠지지 않고 무사히 회향했다.

나는 이렇게 영명사에서 천도재와 백중기도를 지내면서 어느새 지병으로 앓던 몇 가지 병들이 없어졌다.

첫째는 심장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뒤로 넘어져서 목 부분을 다쳐서 한 4년 동안 목에서
허리까지 너무 아파 20분 이상 서 있기가 힘들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80%이상 거의 다 나았다.

그리고 또 명치부분에 조그만 공이 항상 있는 걸 느꼈다. 열이 조금나면 그 공이 아주 조금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몸살기운과 동시에 소화가 아주 안 되었다. 그런데 그 공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리고 유년기부터 앓아오던 편두통은 완전히 나았다. 그 외 많은 잔병을 자주 앓곤 했는데
영명사 삼천 지장보궁 지장보살님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그러한 아픔들이 감쪽같이 없어지고
지금은 부산에서 구미 영명사까지 먼 거리지만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간다.

2004년 추석을 일주일 앞둔 음력 8월8일경에 영명사 법당에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던 날.
그날 새벽에 친정 어머니가 꿈을 꾸셨다. 영명사 법당에 아주 가느다란 실처럼 생긴 조그마한 꽃이 피었는데
잘 보이지 않아서 애쓰고 있으니 어느 남자가 말하길 “그것은 그렇게 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좀 엎드려서
위를 향하여 보아야지‘’ 라고 말했단다. 그말 그대로다.

우담바라의 위치는 지장보살님 바로 밑 법상에 피었다. 그것도 용과 봉황에 피었다.

친정 엄마는 영명사에 가 보신 후 깜짝 놀라셨다. 꿈에서 보신 그 위치 그대로 였으니.....

우담바라가 핀 후 기도를 하면 그전에 느끼지 못한 그 어느때보다도 기운을 느낀다고 기도하는 불자들마다
한결같은 말이다. 나 역시 집에서 몸이 좀 불편하다가도 절에 다녀오면 오히려 몸이 편안 해지고 마음이
맑아짐을 느낄 수가 있다.

특히 마지막 토요일 철야정진 때는 기도의 묘미 내지는 매력을 느껴 보기도 한다. 철야기도는 사시 기도와는
다른 분위기다. 노천의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신 지장왕 보살님, 육지장 보살님, 그리고 사람마다 업이 제각기 이듯,
제 각각의 다른 표정을 짓고 계신 삼천 지장보살님 전이 우아한 가로등빛을 받아 더욱 더 성스럽게 보이고,
지장보살님전에 켜진 수많은 촛불의 빛남은 어둠에 처해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어려운 실정을 밝게 이끌어 주실 것 같고,
우리 모두의 어두운 업을 촛불로 밝혀서 우리들의 업장을 소멸해 주실 것만 같다.

수많은 촛불대 위에 주지스님께서는 이번 을유년 새해의 축원문을 적어 놓으셨다.

“지장보살님! 저희에게 가피를 내리소서.” 나는 이 글귀에 가슴저려오는 감동을 느꼈다.
꼭 우리에게 가피가 내릴 것 같다.

노천에 걸린 이 글귀를 보며 갑신년(음력)을 보내는 마지막 철야기도 속에 주지스님과 함께
지장보살 예찬문 219배후 2시간의 지장정근과 3시간의 지장경 독송을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 했다.



주지 스님의 지도로 이 시간까지 기도해 오면서 기도와 업장 소멸에는 편법이 없고 오로지 순수하게
부처님께 귀의하고 업을 차츰 녹여 가고 조그만 기도의 힘이라도 주변과 함께 나누어 가야겠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처음에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스님께 여쭈었더니
“사람마다 제 각기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기도를 하는게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우리 개인에게 맞는 기도, 그리고 그 때의 상황에 맞는 기도의 지도를 해 주신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 모른다.

특히, 나 개인적으로는 스님의 정성에 감동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기도에 대한 힘을 받는다.
예를 들자면 백중기도때 스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노천에 휘날리는 “영가님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소서. 수자령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소서.” 라는 번을 보면 영가님들께서 꼭 극락세계로
가실 것 같은 확신감이 든다.

기도를 하면서 스님과 상담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것을 억지로 하려하지 말고 순리대로 하라는 말씀에서
나의 잘못된 부분을 통감하여 고치려고 애쓴다. 두서없이 적은 글이 스님이나 혹은 불자님들께 조금이나마
누가 됐다면 이해를 구할 뿐입니다.

이 글을 마감하면서 영명사 주지스님께서 이번 새해에 쓰신 “ 지장보살님! 저희에게 가피를 내리소서.” 라는 글귀가
여러분 모두에게 회향되어 을유년 한해가 불자님들 모두에게 좋은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불기 2548년 12월 말에 청 정 화

출처: 구미 영명사(www.youngmyungsa.or.kr)



43.


아기를 보내주신 지장보살님


글쓴이: 신공덕행(申功德行)



“엄마, 사랑해.”하며 제 가슴을 꼭 껴안고 유치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유경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가슴 벅찬 기쁨을 느낍니다.

제 자식 예쁜 것은 인지상정인데 유별스럽기도 하다며 혹여 흉보는 사람이 있다 해도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일곱 살 난 딸의 행동 하나하나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딸만 생각하면 부처님과 지장보살님, 지금 동산사에 계신 주지 법전스님께 고마운 마음이 샘솟듯 용솟음칩니다.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지고 지장보살이 절로 나옵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저는 13년 전 남편과 연애결혼을 하고 서울 신림2동의 다세대 주택에 보금자리를 꾸몄습니다.
부부 금슬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좋았는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에는 저와 비슷한 또래로 거의 같은 시기에 신접살림을 차린 이웃이
두 집이나 있었는데 그이들은 결혼 초에 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배가 남산처럼 부른가싶더니 아기 울음소리가 나고, 하얀 기저귀를 옥상 빨랫줄에 척척 널어 놓은 것을
보노라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이웃에 아기가 있는데다 평소 아기를 예뻐해서 그런지 결혼 후 1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자 속상하고
불안했습니다. 유명한 산부인과라고 소문난 큰 병원에 가서 진찰도 받아보고, 아기를 잘 들어서게 해준다는
탕약도 거금을 들여 한 달에 세재나 내리 먹었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대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배란조정을 몇 달이나 했는데도 효과가 없어서 나중에는
인공수정까지 했습니다. 남편도 저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다 그토록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애써도 안 되자 병원에서 복강경 검사를 해본 후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두렵기도 하고 자포자기의 마음도 생겨 그 뒤부터 병원에 아예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만 2년이 넘어도 아이가 안 생기자 점차 주변 사람들의 염려도 커졌습니다.

남편이 막내인데다 시부모님께서 이미 돌아가셨는지라 시댁에서는 그렇게 눈치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찾아뵙는 시백부 백모님의 “왜 아직도 아이가 없느냐?
노력을 더 해보라.”는 걱정어린 말씀에 민망해서 나중에는 고향에 내려가기가 싫었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고 마음을 비워 아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해도
아기들만 보면 너무나 예뻐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의 의미를 그 때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혼자 슬퍼하고 눈물지으며 아이 갖기를 갈망했습니다.
아이가 없으니 친척, 친지도 만나기 싫었습니다.

백일이며 돌잔치 집에라도 가는 날이면 아무리 태연자약하려 해도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이 때문에 애면글면하고 있는데 어느 날 신문에 끼어 있는 지장사 불교대학 1기생 모집
광고전단을 보고 신림동의 지장사를 찾아갔습니다.

친정과 시댁 집안이 다 불교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불교에는 늘 관심이 있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불교 공부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선뜻 불교대학에 등록을 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마음씨 고운 보살님들도 알게 되어 참 행복하게
절에 다녔습니다. 잠시나마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한 고통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보살님이

“결혼한 지 3년이 되어 가는데 애기가 없어서 어떻게 해요 100일 지장기도를 열심히 하면 성취할 수 있을 텐데.
스님도 이상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100일기도를 권하시면서 왜 공덕행보살에게는 하라는 말씀이 없으시지.

아마 때가 되어 스님께서 100일기도를 권하실 때 꼭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보살님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겠노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스님께서 1995년 5월 초에
100일 지장기도를 하라고 하셨고 스님 말씀대로 100일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꼭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잠도 많은데다 그 무렵 남편이 외국 출장 중이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던 터라 사실 새벽기도는 버거웠으나 스님께서 시키는 대로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집과 지장사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는데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절에 가서 예불 드리고,
지장기도를 했습니다.

간혹 술 취한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아서 무섭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지장보살을 염하면 두려움이 스르르
물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출장간 남편이 한 달 만에 돌아온 뒤부터는 남편과 함께 절에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만큼 간절하게 기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기에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께서
아이를 보내주셨을 것입니다.

불가사의한 것은 6년 동안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었는데, 100일기도를 회향한 지 두 달 만에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더니 찜찜한 얼굴로 안 좋은 꿈을 꿨다고 하면서 얘기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꿈만 꾸면 태몽인가 싶어 꿈 내용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터라 얘기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당신이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뛸 듯이 기뻐하며 병원에 갔지. 병실에 아주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아기가 있기에
우리 아긴가 싶어서 안으려 했더니 간호원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른 아기를 가리키더라고. 근데 작고 비리비리하게
생긴 아기를 지장사 주지 스님이 안고 계시다가 우리 아기라며 날 주시더군. 애가 얼마나 약해 빠졌던지 칠삭둥이 같았어.”

남편의 얘기를 들은 뒤 “꿈은 반대라는 말도 있지 않아요? 꿈에서 스님을 뵈면 좋고, 지장보살님은 꿈에서 스님으로
나타나신다네요.”라며 남편에게 위로 섞인 말을 해주면서도 제 마음 또한 그리 편치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생리날짜가 다가왔는데 생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출혈이 있어서 이상히 여기면서 일주일을
버티다가 새벽에 임신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그 때의 그 떨림과 흥분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임신 반응선에 나타난 보라색 선을 보고 또 보고, 혹시라도 지워질까 들락날락하면서 5분 간격으로 그 줄을 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남편에게 잘못 이야기했다가 실망시키면 안 되겠기에 일주일 동안 꾹 참고 있다가 동네의 종합병원에 가서 다시
테스트를 해보니 임신은 맞는데 자궁 입구에 혹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날 혹을 제거하는 수술인 줄 알고 수술대 위에 누웠었는데 알고 보니 낙태수술이라는 말을 듣고
깜작 놀라 수술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어떻게 가진 아긴데, 말도 안 돼’하는 심정으로 다음에 오겠다고 하자, 담당의사는 “현재 아기 상태도 안 좋다.
다음에 건강한 아기를 가지도록 하라. 내 친동생이라도 나는 수술하라고 권할 것이다‘라고 하며 수술할 것을
종용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로 그 시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장사 보살님이 잠간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제가 아기를 엎어 놔서 아기가 새파랗게 질려 울고 있는 것을 법전스님께서 소리를 버럭 지르시며
“아기 제대로 누이라.”고 호통 치셔서 아기를 똑바로 누이자 그제야 아기가 숨을 크게 쉬면서 얼굴이 편안해지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제 아이의 태몽을 꿔주시기도 했습니다.

뒷날 그 이야기를 듣고 스님께 여쭙자, 인연이 깊으면 그렇듯 신이한 꿈을 대신 꿔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날 당장 백방으로 수소문 해보고 모 종합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은 결과,

“걱정할 정도로 혹이 큰 것은 아니다. 다만 유산기가 있으니 특히 몸조심하고, 자궁무력증이 있어서
태아가 크면 자연유산할 수 있으니 자궁입구를 묶어주는 수술을 해아 한다.”는 소견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두 달간 꼼짝도 않고 누워 있고 친정어머니께서 대신 살림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위험하다는 기간을 잘 보냈는데 24주째 정기검진에서 임신중독증 초기 증상이 나타나 입원해서 한 달 후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임신성당뇨가 와서 또다시 40일 동안 입원하고 있는 중 양수가 터져서
7개월 20일 만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임신중독증인데도 순산을 하고 1.59킬로그램의 작은 아기지만 울음소리도 크고
매우 건강하다며 축하해주었습니다.

남편은 태기가 있기 전에 꾸었던 꿈과 상황이 똑같다며 참으로 신이한 일이라고 거듭 말하면서 지장기도 덕분에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감동적으로 말했습니다.

남편의 신심은 그 때부터 눈에 띄게 깊어져 지장사 부부법회의 총무로 있으면서 전법에도 힘쓰고 절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지금은 동산사에서 법전스님을 모시고 불자로 열심히 신행 활동중)

한편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이틀 만에 나온 아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만 같은 아기인지라 우리 부부는
한동안 교대로 아기를 보면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아기가 제대로 숨을 쉬는지 노심초사 관찰하면서 의사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일분일초까지 재어 젖을 먹이며
애지중지 키운 아기는 무럭무럭 잘 자라 백일 무렵에는 우량아가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애를 보며 얼마나 장한 생각이 드는지 백일도 되기 전에 지장사에 데리고 갔는데 스님을 보자마자
아기가 활짝 웃으며 스님께 가려고해서 안겨드리니까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며 엄마 품으로 얼굴을 묻는 아이가 스님께 안기려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지장보살님이 보내주신 아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서울에서 물 흐르는 대로, 즉 진리대로 순리대로 살라고 유경(流京)이라 이름지어주셨고,
아이의 법명은 진불심(眞佛心)이라 지어주셨습니다.

현재 스님의 유발상좌인 유경이는 제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조금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은 천재인 것 같다는 착각 속에 산다는 말도 있지만 저 또한 유경이가 어릴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두 돌이 되기 전에 스스로 숫자개념을 알아차리고, 세 돌도 되기 전에 한글을 깨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찌나 말도 빨리 하고 어휘개념도 풍부한지 주윗분들로부터 “기도해서 낳은 아이라 다르다. 참 똑똑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지적인 측면보다는 유경이의 맑고 밝은 성품, 착한 마음씨를 볼 때 더욱 기쁩니다.

얼마 전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데, “유경이는 참 보기 드문 아이에요. 똑똑한 것은 물론이고 착하기 그지없는
데다 애가 참 조숙해요. 글쎄 친구들에게 다니면서 ‘너는 이런 면이 좋다. 너는 이것을 잘하는구나. 너는 좋은 친구야.’
하면서 칭찬을 하고 다니는 겁니다.

아이들끼리 질투하는 것은 봤어도 칭찬하고 다니는 애는 유경이가 처음이에요.

또 심술궂은 아이가 조금 약한 아이를 놀리면 ‘너 그렇게 하면 못써. 너는 착한 아인데 왜 나쁜 짓을 하려고 하니?
친구 놀리지 마.’하는 겁니다. 이다음에 유경이는 훌륭한 인물이 될 겁니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또 한 번 유경이를
보내주신 지장보살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저는 진실로 유경이를 갖고 유경이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제 힘이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햇빛이 식물을 자라게 하듯 태양 같은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가 없었다면 저희 가정이 어떻게 이렇듯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가 유경이를 낳은 지 6년 만에 동생을 갖게 된 것 또한 지장보살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임신 소식을 듣고 “엄마, 스님께 먼저 말씀드려야지.”하면서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사랑스러운 우리 딸
유경이가 돌아올 시간입니다.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어 제 딸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누구든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전생의 업장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지장보살님께 의지해서 지극하게 기도하면 그 모든 업장을 다 녹여버리고
행복한 인생을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체험했기에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지금 유경(진불심)이는 초등학교 6학년 동생 유정(보리심)이는 7살이랍니다. 둘다 너무 맑고 천진불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아버지(정담거사) 어머니(공덕행보살) 이렇게 4식구가 행복하게 부처님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실한 기도와 수행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지장보살 영험록(김종매외, 불광출판부간), 동산사 홈페이지(www.dongsansa.org)


44. 운호스님의 지장기도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스레 약하였던 운호스님(가명, 비구니스님)은 주위로부터 나이 삼십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자주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근근히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적령기에 '영원 생명'을 찾는 공부를 하고 싶어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다시 강원공부를 마쳤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한 '나'의 것이 되기보다는 겉을 맴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운호스님은 다시 대만으로 갔다. 그러나 약하기 그지없었던 몸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정녕 출가사문일진대,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가 환희심을 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렇게 병약하고 무능한 나를 보고 누가 신심을 낼 것인가?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슬픈 생각에 잠겨 있던 스님은 때마침 대만에서 유행하고 있던 점찰법(占察法:십악과 십선을 적은 윷 같은 모양의 木輪을 던져 전생의 업을 알아보는 법)을 행하였다.

스님은 ≪점찰선악업보경≫에서 설한대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 다음, 목륜(木輪)을 던졌다. 그러자 '살생업'이 많다는 괘가 나왔다.


'아, 살생을 많이 한 자는 몸이 약한 과보를 받는다고 했거늘, 나의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픈 것이 전생의 업보라는 것을 왜 깨닫지를 못하였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죄업을 참회하여 업장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출가한 후 10년 동안 제대로 기도 한 번 못하였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님은 지장기도를 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지장경≫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1번 독송을 하고, '나무지장보살'을 천 번 부른 다음, <지장예찬문>을 외우며 158배를 한다. 그리고 <지장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 천 번을 불렀으며, 기간을 21일로 정하였다.


스님의 기도 목적은 업장 참회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를 시작하자 원래의 기도 목적과는 달리 집안의 조상들이 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스님은 7일 마다, 한 번씩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여 불보살님과 조상님, 그리고 유주무주고혼(有主無主孤魂)들께 시식(施食)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첫 7일째, 조상들이 흰 옷을 입고 공양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이에 두 번째 7일과 세 번째 7일에는 '변식진언(變食眞言)'을 외우며 영가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관상(觀想)하였다. 음식을 적게 마련하였을지라도 진언을 외우며 관상을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그 음식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상을 하여서인지 스님은 공양이 차츰 뷔페식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 조상님들은 상을 차려 놓은 특별실에서 공양을 들고, 유주무주고혼들은 아주 큰 홀에서 뷔페식으로 공양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7일날에는 모두가 음식을 먹고 천도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스님은 영가천도라는 부수적인 가피를 입은 것이다.


가피를 입어 환희심이 가득하였던 스님은 기도기간을 백일로 늘여 잡고 더욱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다. 30일째 되는 날 스님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스님은 지장보살께서 머물러 계신다는 어느 절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마구니, 요상하게 생긴 마구니,


심지어는 외국 비구니의 모습을 띤 마구니까지 입구에 일렬로 늘어서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장삼을 크게 휘둘렀고, 그 순간 모든 마구니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며 항복을 하였다.
스님이 당당한 걸음으로 절문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수각(水閣)에서 손을 씻어라."

말씀을 따라 수각에 들어가 손을 씻자, 오른손을 씻은 물은 새까맣게 변하였고 왼손을 씻은 물은 반쯤 까만 회색빛이 되었다.
'아! 몸으로 지은 신업(身業)이 소멸되었구나.'


살생 등의 나쁜 짓을 주로 저지른 것이 오른손이었기에 그 씻은 물이 새까만 색, 왼손은 오른손을 도와 나쁜 업을 짓는 보조역할을 하였기에 그 씻은 물이 회색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손을 씻고 신업의 소멸을 느끼고 나자 스님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고, 꿈속에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나 35일째 되는 날, 운호스님은 한국의 여러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고, 65일째 되는 날에는 비구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다.


이것이 자서수계(自誓授戒)이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스스로가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꿈속에서 불보살님으로부터 직접 수계를 받는 자서수계법을 설하고 있는데, 운호스님은 이 법에 의해 수계를 받아 마친 것이다.


그리고 백일 기도를 회향하는 날, 스님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다며 노천온천이 있는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님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줄이 너무나 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며 서 있었다.


그때 마침 대만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비구니가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비구니는 스님을 손짓하여 부르더니 자기 앞에 서도록 하였다.마침내 노천온천으로 들어 순서가 되었을 때 대만 비구니는 온천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운호스님은 왠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주위를 살피다가 조금 떨어진 반석 위에 까만 옷을 입고 앉아 계시는 아는 처사님을 발견하였다. 처사님은 8년 동안 지장기도를 한 분이었다. 스님은 그분 앞으로 가서 아래의 옷을 모두 벗은 다음 쭈그리고 앉았다. 처사님은 스님의 입 바로 밑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여기에 악귀가 붙어 있노라."
그리고 여드름을 짜듯 두 손가락으로 입 밑을 누르자, 고름이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 되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되느니라."

운호스님은 그 말씀 끝에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었음을 느꼈다. 또한 '삿된 생각만 조심하라'는 것은 의업(意業)을 조심하면 된다는 깨우침이었다.
환희로움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은 벗어 놓은 옷을 입은 다음, 허공을 날아 2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스님보다 키가 두 배나 큰 분이 넷이나 있었다. 그때 건물 아래로부터 스님을 찾는 대만 비구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운호스님, 운호스님…."

"저 여기 있어요. 잘 가요."

서로가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순간 운호스님은 꿈에서 깨어났고, 백일기도 또한 마쳤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도 전까지는 경전을 보고 있으면 내용이 분명히 다가오지 않았으나, 기도 후부터는 내용이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기도 후 스님은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을 믿기 시작하였는데, ≪아미타경≫ 등을 읽으면 삽화가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보듯이 극락 세계의 여러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경전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총명득력(聰明得力)! 총명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던 몸도 그 누구보다 건강하여졌다. 이후 스님은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 인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도력이 매우 높은 티벳의 고승들을 만나 그 분들의 지도 아래 현재 용맹정진을 하고 계신다.


스님의 원래 목적은 업장소멸에 있었고, 처음에는 21일 동안만 기도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조상들이 나타났고, 이에 스님은 영가천도를 해주고자 하였다.


영가들이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관상(觀想)하면서 시식을 행한 결과, 많은 영가들이 가피를 입어 삼칠일(21일)만에 모두 천도가 되었다.


신심이 크게 일어난 스님은 21일 기도를 백일기도로 연장하여 더욱 열심히 매진한 결과, 꿈에서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는 자서수계를 성취하였으며, 몸으로 지은 죄업인 신업(身業)이 소멸되는 꿈과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는 가피를 입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신업과 구업이 소멸되자 스님에게는 건강과 총명이 가득하여 졌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길도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곧, 백일지장기도를 통하여 영가천도, 업장소멸, 자서수계, 총명득력, 건강 및 새로운 스승을 만나 향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가피까지도 모두 얻은 것이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 김현준저 지장신앙 지장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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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월간 불광(www.bulkwang.org)

2007년 1월호 우리스님 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스님편 인터뷰(사기순님 글) 중 일부 전재



묘허스님이 회주로 계신 단양 방곡사, 신탄진 신흥사, 김해 원명사가 다 유명한 지장도량이다.

김해 원명사 지장보살상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눈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이적을 보여 입소문이 자자한데,
방곡사에 모신 거대한 지장보살입상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숙세부터 맺어진 지장보살과의 인연


“은사스님(故 화엄큰스님)은‘아들을 의사로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을 돕겠다’는 모친의 권유로 오사카 의대를 졸업하셨지요. 이차대전 때 일본군 군의관으로 끌려가자, 모친이 매일 저녁 등을 밝혀 놓고 지장보살님께 기도하였는데, 어느 날 등이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등이 없어졌던 바로 그날 밤 아들은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결에 뛰어나와 등불을 따라갔는데, 그때 미군들이 막사를 폭격하여 다 죽고 혼자 살아남아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이적을 체험하시고 일생 동안 지장기도를 하셨고, 은사스님도 어머니의 지장신앙을 이으셨습니다.”

은사스님의 뜻을 받들어 머무는 곳마다 지장도량으로 일구니 보기 드문 효상좌라고 찬탄하니, 불가(佛家)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참으로 지중하다며, 숙세(宿世:전생)부터 인연이란다.

“어머님이 생남불공을 드렸는데, 꿈속에 노스님이 아기를 안고 나타나셔서 키우다가 돌려달라기에 꿈속에서도 자식을 갖고 싶은 마음에 ‘예’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경전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머리를 깎은 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어머님은 지장보살님에게 얻은 아들이 결국 출가하고, 지장보살을 받드니 다 인연의 소치라고 하셨지요.”

불교에는 팔만 사천 가지 방편문이 있다.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제도하고 그 모두를 성불시킨 뒤에 스스로 성불하겠다.’는 지장보살의 큰 서원을 현실 속에 구현할 때 고통의 사바세계가 그대로 평화로운 불국토가 될 것이다.


46. 자명성보살의 사돈댁 영가천도


독경천도(讀經薦度)


독경천도는 이름 그대로 영가에게 공덕이 되는 경전을 읽어주면서 행하는 천도법이다.

이렇게 공덕을 심어주는 경전들을 불가에서는 공덕경(功德經)이라고 하는데,
현재 널리 읽혀지고 있는 공덕경으로는 금강경, 아미타경, 지장경, 관음경,
약사경, 법화경 등이 있다.



이들 공덕경 중 어떤 경전을 택하여 읽어도 효과는 같으므로,
형편에 맞게 하나를 택하여 꾸준히 읽어주면 된다.

이제 구체적인 요령을 말하기 전에,
서울 신당동에 살았던 자명성 보살의 독경천도 영험담부터 함께 음미해 보자.



자명성 보살이 불교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50대 초반에 3년 동안 신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사돈의 권유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다가,
꿈에 흰옷을 입은 할머니로부터 10여 차례 약물을 받아 마시고
완쾌됨으로써 불교를 깊이 믿게 된 것이다.



이 자명성 보살이 2남 2녀의 막내딸을 시집 보낼 즈음, 신랑집에서 예단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예단 한복판에 예물로 보내오지도 않은 족두리가 선명하게 보이면서,
꿈속인데도'무엇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사돈댁의 원귀가 예단에 묻혀 온 것이라 느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돈댁이 손을 대는 사업마다 모두 실패를 하고,
가족들도 이상하리만치 어려운 사정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보살은 꿈에서 깨어나자 곧바로 지장경을 독송하고 기원하였다.


"예단에 싸여 온 영가가 사돈댁과 인연이 있는 영가이든 또 다른 영가이든,
부처님과 지장보살의 공덕을 입어 밝은 길로 나아가지이다."



"예단에 싸여 온 영가들과 사돈댁 집안의 영가들이 극락에 왕생하여지이다."


이러한 축원을 하며 보살은 며칠동안 지장경을 하루에 한 편씩 정성껏 읽어주었다.

그러자 꿈에 옷을 단정히 입은 여자가 기쁨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 공손히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런데도 예단에 싸인 족두리는 여전히 보였으므로 계속 지장경을 독송하고 축원하였다.
20일이 지나자꿈에 족두리를 쓴 단정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정중한 자세로 정성을 다해 절을 하고 사라졌다.


자명성 보살은 사돈댁 영가를 위해 백 일을 기도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계속하였고,
백 일이 다 되었을무렵 노란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손에 흰 수건을 들고 나타나 절을 하고는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사돈댁에 원한이 있는 영가들이 구원을 받을 인연을 찾아왔다가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모두 천도되었음을 보살은 직감하였다.

그 뒤 자명성 보살 사돈 집안의 우환은 저절로 사라졌고,
사업도 잘 풀려 예전처럼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47.

현재 모전문대학의 교수로 있는 정박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럽에서 박사 학위의 심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임종의
소식을 듣고도 아내만을 고국으로 보내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논문심사를 마치고 박사가 되어 귀국한 정박사는 여러 학교를 찾아
교수 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오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던 정박사는 속칭 '보따리 장사'라고 하는
시간강사가 되었고, 아내는 학원강사가 되어 가정을 꾸려갔다.
그러나 돈은 늘 모자랄 뿐이었다.

또한 정박사의 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누더기를 입고 나타나
꾸짖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놈아!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버지의 꿈, 가난한 살림, 몇 년째 시간강사 신세 등으로 정박사의
신경은 갈수록 날카로워졌고, 아내와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차츰 살아있다는 것까지 구차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충남 천안 광덕사를 찾은 정박사는 한 스님으로부터
영가 천도에 관한 말씀을 듣고, 광덕사 명부전의 지장보살님 앞에서
발원을 하였다.

"지장보살님! 불효자식에 대한 한을 품고 땅에 묻혀 계신 아버님을 위해,
49재를 지내는 마음으로 49일 동안 부모은중경 1부를 사경하고
지장보살본원경을 1백독 하겠나이다. 부디 아버님을 극락왕생케 하소서."

집으로 돌아온 정박사는 그날부터 지장보살님 앞에서 발원한 대로
실천을 하였다. 그러나 한 차례 읽는데 2시간씩 소요되는 지장경을
두번씩 읽고, 한시간 가량씩 부모은중경을 쓰는 것이 여간 힘들지않았다.
강의 등 평소 생활을 그대로 하면서 하루 5시간을 더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박사는 적당히 타협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생각을 경책하면서
불효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잠을 줄였고, 버스 속에서도 지장경을 읽어
지장보살님 앞에서 한 약속을 지켰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제사를 지내고 잠이 든
정박사는 꿈에서 다시 아버지를 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전처럼
누더기를 입지않고 아주 좋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은 아니었구나. 네 덕에 이 아버지는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좇아 달려가다가
정박사는 깨어났다. 그 뒤부터 정박사의 꿈에는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해 가을 전문대학의 교수로 채용되었다.

이 정박사의 경우처럼 영가천도는 당사자가 직접하여야 한다.
굿을 한다고 하여, 부적을 쓴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서 올리는 천도재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절에 계신 부처님이나 신장, 그리고 기도를 하는 스님들도
'나'의 정성에 감응하여 움직여주시는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영가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도 '나'요, 천도를 하여 복되게 사는 것도
'나'라는 것을....... 그런데'나'의 문제를 어떻게 남에게
미룰 것인가?

내가 직접 하겠다는 자세와 각오가 없으면 천도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46~47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4 우룡큰스님저 영가천도


48.

태아(胎兒)를 위해 읽은 지장경(地藏經)



내가 하이보를 안 지 3, 4년 되었다. 그녀는 얌전하고 아름다우며 또 매우 총명한 여대생으로 동북지역 출신이다. 그녀의 엄마는 매우 오래 전부터 불교를 신봉한 노보살이다. 금년 초 임신한 지 7개월 된 하이보는 나에게 아기가 뱃속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매우 심하게 움직인다고 털어놓으면서 해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매일 『지장경』을 독송하되 연속 7일을 독송하면 아기의 숙세의 업의 빚이 소멸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모자지간의 전세의 악연이 평온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이렇게 하면 아기를 낳을 때도 고통 없이 순산할 것이고, 아기가 출생한 후에도 안락하여 기르기 쉬울 것이며, 작은 병이 있어도 쉽게 회복될 것이고 만약 채식을 할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이보가 나에게 계란을 먹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나는 현재 시장에서 파는 계란은 모두 양계장의 계란으로 부화될 수 없는 무정란이기 때문에 잠시 먹어도 된다고 하였다.

2개월 후 하이보는 전화를 걸어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고, 방금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으며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안하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지장경 일곱 편을 독송하라고 하였을 때 , 그녀는 마음속으로 49편을 독송해야겠다고 발원하였단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일편을 독송한 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아이는 다음날 출생하게 되었다.

출산할 때 의사가 그녀에게 힘을 주라고 하자 그녀는 관세음보살을 염했다고하였다. 마음속으로 염하자마자 의사가 “머리가 보인가”고 말하였다. 의사가 통통한 애라고 하자 그녀는 기뻐서 눈물이 나왔단다.

내가 그녀에게 퇴원 후 가능한 적게 말하고 푹 쉬라고 하자 그녀는 자기는 원기가 매우 좋으며 괜찮다고 하였다. 아울러 자기가 4일 동안 입원해 있을 때 자기만 순산하였을 뿐 다른 산모들은 모두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했다고 하였다. 산모들이 제왕절개수술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병원에서는 수입을 늘리기 위하여 수술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왕절개 수술로 애를 낳았으면 몸 상하고 돈 들고 할텐데 이것도 업력의 소치가 아닌가.

10일 후 하이보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애를 안고 집으로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고 조금도 울지 않으며 3일 후에는 웃기도 하였단다. 그런데 지금 연속 일주일을 울었다고 한다. 우유를 먹여도 울고 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고 울기만 하니, 아기 체온을 체크해 보아도 열은 나지 않았는데 도무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혹시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것은 아닌지 물어보았다. 그녀의 말이 시어머니가 고향에서 오셨는데, 산모가 고기도 안 먹는다고 화를 내면서 그녀에게 붕어탕을 먹으라고 하였단다. 그녀가 젖도 잘 나오니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는데도 시어머니는 젖이 맑아야 되니 반드시 붕어탕을 먹어서 보신해야 된다고 하면서 억지로 먹였다고 한다.

또한 다음날은 시어머니가 현장에서 잡아 는 암탉을 사와 고아먹이겠다고 하시는데, 자기는 조금도 먹을 생각이 없으나 시어머니가 현장에서 잡아 파는 암탉을 사와 고아먹이겠다고 하시는데, 자기는 조금도 먹을 생각이 없으나 시어머니가 화를 낼까 두려워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물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이르기를, “아기가 우는 까닭은 당신이 아기에게 49편의 지장경을 독송해주어 이미 업이 소멸되었으며, 혜근(慧根)이 증장되어 당신의 비린내 나는 젖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붕어탕을 먹지 않으면 아기는 반드시 울지 않을 것이니 시험해 보라.”고 하였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내일 닭을 고아오실텐데 붕어탕을 먹지 않는 것은 힘들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절대로 살아있는 닭을 죽이면 안 되며, 당신이 한 걸음 물러나 닭과 고기를 먹되 삼정육(三淨肉)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매일 이러한 물고기와 닭을 위하여 왕생주(往生呪)를 몇 번 독송하여 그들을 천도시켜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방법이며 이렇게 하면 이들 생명이 당신에 대한 원한심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와 시어머니가 정말로 뜻을 합쳤어도 아기는 한동안 여전히 젖을 먹을 때 울었으며, 단지 우유를 먹은 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이보는 “보아하니 애기가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는가 봅니다”고 조금은 농담하듯이 말하였다.

며칠 후 하이보의 친정어머니가 동북지방에서부터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 엄마가 그녀로 하여금 다시는 비린내나는 음식을 먹기를 원하지 않으니, 주방이 넓지 못하다는 핑계로 그녀와 외손자를 데리고 동북으로 와 요양을 하게 하였단다.

지금 아기를 보니 활기차고 귀여운 게 나날이 튼튼해져 가족들은 매우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중국 과경거사 지음, 한국 각산 정원규거사 번역, 불광출판부간)







49.

모든 중생의 안락을 기원하는 지장기도


황효주(덕운행) /한약사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지장기도를 드린 지도 어느덧 7년이 넘었다.

『자비도량참법』은 중국 양나라의 무제가 죽은 애첩 치씨를 천도하기 위해 여러 고승대덕을 불러 모아 만든 경전에서 중요한 부분만 간추린 것이다. 우리가 지은 업이 불러오는 결과와, 우리가 기도한 공덕으로 육취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회향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고인의 천도는 물론, 자신의 업장소멸과 다른 중생의 안락을 기원하고 싶다면 이보다 좋은 경전은 없으리라 본다.

보통 아침 5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약 1시간 정도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기도를 드린다. 이 책은 권당 90쪽 정도 되는 분량으로 모두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일 한 권씩 읽으니 열흘이면 책 전체를 완독하게 된다. 100일이면 『자비도량참법』 전권을 10번 읽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7년 동안 지장기도를 하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는 사경까지 곁들이고 있다.

『자비도량참법』 수행은 매번 할 때마다 느끼는 바가 사뭇 다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흐르는 물은 항상 가득하지 않고 맹렬한 불도 늘 타는 것이 아니며 해는 떴다가 어느덧 지고 보름달도 찼다가 기우나니, 부귀하고 영화로운 이도 덧없음이 이보다 더하리.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님께 예배하여라”라는 부분이다. 인간은 늘 만족하며 살 수 없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보다 기대치가 높다보니 늘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욕심이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고 기대치를 조금만 낮게 잡으면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항상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럴 때면 더없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니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늘 웃는 낯으로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다. 또 진심으로 환자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약을 지어주니 그분들의 쾌유도 빠른 듯하다.


『자비도량참법』을 통해 지장기도를 하며 겪은 좋은 일들과 신비한 경험은 숱하게 많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새벽에 지장기도를 마친 후 왠지 기분이 이상하여 출근하는 아들에게 몸조심하라고 각별히 일렀다. 그날 퇴근해서 귀가한 아들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침 출근길에 잘 나가던 차가 고속도로 중간에서 갑자기 서더란다. 당황한 아들이 차에서 내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속도로에서 서 있다가 다시 차를 타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동이 걸렸다. 그렇게 얼마쯤 달리다 아들은 끔찍한 사고현장을 보게 되었다. 불과 몇 킬로미터 앞에서 17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아들이 갑자기 서버린 차를 살펴보느라 도로 중간에서 지체하고 있을 사이 그처럼 어마어마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만약 그날 잘 달리던 차가 아무 이유 없이 서버리지 않았다면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들은 그 모든 일이 엄마의 기도 덕분이라며, 여태까지 그런 엄마의 신행 생활을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에 받은 자신의 성과급에서 3백만 원을 내가 다니는 절에 보시했다. 지금껏 내가 신행 생활하는 데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50년 동안 불교를 접하며 이런저런 수행을 해 보았지만 내게는 지장기도만큼 맞는 것이 없었다. 지장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가정의 평화는 물론 내 마음의 평화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항상 문제는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긴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나쁜 인연이 생길 리 없다. 형제나 부모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면 그보다 먼 타인과의 좋은 관계는 바랄 수 없는 일이다. 더 많은 불자들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로 마음의 안정과 가정의 평화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리|한재희


출처: 월간 불교와 문화 (www.buddhistculture.co.kr) 2007년 12월호에서 옮김



50.



지장경 독송이 주는 영험




전라북도 전주 중화산 2동 계명 거사




달빛은 다정하고 밤 하늘엔 소근대는 푸른 별의 대화가 가득합니다.

어쩐지 잠이 올 것 같지 않고 내 주위의 소소한 일상과 상념들로 머릿속이 혼란스럽습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가진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간파하시고 일체가 괴로움이라 설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번뇌요, 우리가 떨치기 힘든 망상인가 봅니다.




6남매 고이 길러놓고, 행여 잘못될세라 하얀 밤 뒤척이시며 잠 못 이루시던 내 어머니, 이젠 세수 93세로 모든 기력 쇠진하고 정신마저 혼미하여, 이승과의 이별을 가까이 두신 내 어머니, 천수를 다 하시는 그 날까지 혹 병마라도 침입하여 온갖 고통과 근심으로 생을 마감하시면 그 안타까움 어찌할까?




지금 이 순간도 외롭고 쓸쓸한 노인 요양병원 침대에서 아픔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과 한숨으로 하루하루 지겨운 시간을 견뎌내시는 우리 장모님,




힘든 회사 생활에 지쳐 건강까지 해쳐가며 버텨보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중등학교 교원 임용고시에 도전해 보겠다는 큰 아들의 꿈,




우리 부부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갑작스런 병마의 침투와 수술, 그리고 저철했던 치유과정......




이렇게 끝없이 꼬리를 물고 밀려오는 온갖 고통과 괴로움 등 세상만사가 왜 이렇게 아픔과 시련으로 얼룩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참 좋은 우리 절’ 덕명불 보살님의 안내로 지장경 독송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내용인가 싶어 목차를 훝어 보니 부록편에 지장경 독송 영험록이 실려 있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고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어지러운 마음과 몸을 어딘가에 의지해 보고 싶은 기대감에 사로잡혀 독송해 보기로 마음먹고 우선 독송하기 전 수행과정을 정성스럽게 해야겠다 싶어 먼저 시방에 두루하시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음 간절한 서원 발원과 정구업 진언 세 번, 오방 내외 안위제신 진언 세 번, 개경계, 개법장진언, 신묘장구 대다라니 세 번, 참회게 참회진언, 발사홍서원, 발원이 귀명례 삼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독송 후 지장경 독송, 이런 순서로 매일매일 기도에 정진하였습니다. 신심의 의지를 곧게 세우기 위해 아주 특별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지장경 독송에 몰입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독송이 156회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기적일까요?

부처님은 대자비로 몸을 삼으시니 병자에겐 어진 의원 되시고, 길 잃은 자에겐 바른 길 가르쳐 주시어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이익할 것임을 가르쳐 주셨음에 부처님의 가피가 이 미천한 몸에도 내리셨나 봅니다.


올 해 세수 93세의 어머니가 감기 한 번 걸리시지 않고, 2층 계단을 오르내리시며, 건강하고 근심 걱정없이 하루 하루를 즐겁게 보내시고 계시며


사경을 몇 차례나 넘기셨던 장모님께서도 지금은 아픔의 고통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맞고, 주위 환자분들에겐 덕담과 위로의 말을 전해주시며


큰 아들 역시 별 어려움없이 임용고시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 또한 치료 경과가 좋아 지금은 생기를 되찾고, 건강한 삶의 일상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부처님의 크신 자비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불자가 쓴 지장경 독송 영험록을 읽고 내가 또다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동안 나의 고뇌와 아픔을 따뜻이 녹여주신 부처님의 자비와 지장경에 다시 한 번 감사의 큰 절 올리옵고, 불법을 깨닫는 일에 게으름 멀리하고 뒤늦게 만난 소중한 인연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부디 다른 불자들께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생의 영원한 지침이 되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각자가 지닌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장경 독송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발원해 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지장보살



출처 : 대한불교 조계종 참좋은 우리절(I Love Buddha) 글쓴이 : 익명회원


51.


작년 여름에 사랑하는 남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9재도 지냈지만 시댁과의 예기치 않은 불화로 아이와 함께 나와서 살고있는 동안 49재 첫재만 지내고 그이후엔 찾질 못하였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목도하는 죽음앞에서 늘 인생무상을 느끼겠지만 예기치 않았던 이런 일에 내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지 연애결혼을 한 우리 내외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는지 답답함속에서 저는 불교관련 서적을 닥치는대로 읽어가다가 지장경 독송을 통해 남편이 바른곳으로 가길 원하는 마음에 집에서 독송을 하였습니다.

몇번인가 남편이 꿈에서 나타났지만 좋은 모습으로 있는것도 보았으나 그렇게 있길 원하는 저의 망상이 꿈에서 나타난 거려니 하고 지장경을 여건이 허락하는 한 독송을 하였습니다. 남편 사진도 옆에 놔두면서요....

경전을 독송하는동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임종전에 아미타불 부처님만 따라서 가라고 외쳤고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면서 염불도 했지만 터져나오는 울음에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시댁과의 불화를 지켜봤을 남편이 꿈에서 눈물 훔치는 꿈도 꾼지라 정말 열심히 독송하였습니다.

어쩌면 그건 제가 제 스스로 위안삼아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더 들더라구요 답답하니까. 얼마전 꿈엔 아이의 모습을 한 남편을 보고 제가 이제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서 자긴 이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인간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극락세계에 최하품으로 나더라도 윤회를 없애 성불하는게 최고지만 생전에 우리다시 태어나서 만나진다면 다시 만나 오래 살자고 했던 약속때문일까요? 그렇게 답하더군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도 힘들고 부처님 가르침 받는 것도 힘들다지요? 그래도 그 꿈꾸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웃기게도 이기적이지만 넌 다시 태어나는구나 난 살아내야 하는데 라는 씁쓸한 웃음이 지어지지만요... 참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라 하대요..... 남편관련꿈을 꾸고 나면 늘 새벽4시 10분에서 20분 사이었거든요 망상이 지어낸 나의 꿈.... 때문인지 요즘은 삶에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하고 삽니다. 차에 출퇴근 할때도 염불테잎틀고 따라하고요 부처님의 가피력이겠지요? 지장보살님의 서원때문이겠지요?


나무아미타불카페 김 ㅇㅇ님 글 옮김



52.

지장기도 체험담

나무아미타불 파랑새78님 글 옮김


(i)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부모님이 불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말 그대로 왔다 갔다만 했을 정도입니다.

그저 향냄새가 너무 좋아서 법당에 몇 시간씩 앉아있기도 하고 맘이 동하면 법당에 있는 경전도 한 번 읽어보기도 했었죠.

대학원 진학을 앞둔 27살때의 일이었습니다. 1여년 전부터 잠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무섭고 뭔가가 계속 괴롭히고 하는 일이 점점 그 시기가 짧아지더니 맨 정신에도 귀신이 보이고 어느 날은 TV에서나 보았던 저승사자 3명이 삼각 구도로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저승사자는 덩치가 무척 크고 3명 모두 다리는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또렷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여러번이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 밑이 검다며 저승사자 같다는 말도 자주 들었고 이유없이 아프고 힘이 없고 모든 의욕이 떨어지고 밤마다 무엇가에 시달리고 고함지르기를 몇 달간 계속되었습니다.

단지 몸이 약해져서 그럴거라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그 당시에도 딱히 종교가 없던 터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었고 뭔가에 빌어야 한다는게 용납이 안되더군요.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잖아요.



지장보살님이 누군지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얼마나 해야하는지.... 정말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석가모니부처님만 알았지 무슨 보살님의 이름이 이렇게 다양한지... 그 중에 나름 택한 것이 지장보살님이었습니다.

지장기도는 정말 힘든 기도다..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기도라는 등... 이상한 말들이 자꾸 들리더라구요.

전, 맘속으로 "그런게 어딨어??!! 정성껏 진심으로 하면 되는거지... 설마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저 했습니다. 오로지 지장보살님만 생각하면서 염불을 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하루에 만 번씩 그렇게 간절히 부르기를 100일을 했습니다.

밤 8시 부터 시작하기로 한 시간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뛰어서 집에 오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기도 하고 씻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린채로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두고 바로 지장보살님 사진 앞에 앉아서 또 염불하고...

'지장보살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정말 신내림 싫거든요. 만약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만 한다면 절 그냥 데려가주세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요...'

정말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죽을 각오'로 지장보살님만 부르고 부르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잖아요.

그렇게 울고 있으니까 정말 지장보살께서 와주시더군요.



100일 회향하던 , 회향 의식을 마치고 너무 고되서 동생 침대에 대자로 벌러덩 눕는 그 순간,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한참동안 전율이 나면서 몸이 공중으로 뜨더라구요. 정말 본 사람이 있어서 이것이 거짓이 아닌란걸 아실거에요. 말도 안나오고 무섭더라구요. '지장보살님~~ 절 데려가시려나보네요... '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못 나와~~~!!!!?" 하는 호통치는 젊은 여자의 청아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요.

그 순간 온 몸에서 큰 덩어리 같은 것이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빠져나가면서 몸이 침대로 떨어졌어요.

정말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날 밤 꿈을 꾸게 되었는데, 목욕탕에서 때로 벗기고 있는데 어떤 어린 꼬마 두명이 들어오길래 여긴 여탕이니 나가라고 하니까 성년의 남자가 들어오면서 "걱정말고 깨끗이 씻어라. 내가 다 데리고 갈테니... 이제 괜찮을거다."

하는 말과 함께 두 명의 어린 남자를 데리고 나가셨어요.

너무 생생해서 신기했어요.

그 뒤로 이유없이 아픈 몸도 아무렇지도 않았고 꾸는 꿈마다 조상이 천도된 꿈이라는 말과 업장이 소멸되는 꿈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달 동안 절에 들어가서 기도 한 경험도 있는데 기도 시작 전날에 가슴안에서 시커먼 물체가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했고 15일 후쯤에 스님이 오라고 해서 가니까 얼굴만한 연꽃 화분 앞에 앉으라고 하시더라구요. 스님이 꽃잎을 떼서 먹여주고 있는데 하늘에서 셀수도 없이 많은 꽃비가 내리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회향 전 날밤에 자려고 눕자마자 비로자나 부처님의 커다란 손이 얼굴쪽으로 오더니 얼굴을 쓰다듬는거에요. 이건 꿈도 아니고 너무 신기하고 포근했어요. 어떠한 반응도 없이 그러고나서 그냥 편하게 잠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로 개인적으로 100일 기도를 3번정도 연달아서 더 했는데 꿈을 너무너무 많이 꾸는거에요.

특징적인 거는.... 입에서 벌레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그리고 스님들이 안 나올때가 없었습니다. 법당에서 춤도 추시고 같이 놀자며 사람들 사이로 데리고 오셔서 함께 춤추등...

그리고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굶주린 듯한 애기에게 뭘 먹여주고 있는데 큰 절벽같은 돌 위에서 화려한 장삼을 걸친 스님께서 미소짓는 얼굴로 서 계시기도 하는 등의 꿈들이요.

모두 다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였습니다.

너무 간단하게 쓰려니까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네요....^^;;

요즘은 자연스럽게 기도하는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은 토요일마다 삼천배, 능엄주와 광명진언 독송 등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전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인 불보살님이 늘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니까 자다가고 뿌듯한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늘 밝은 곳에 복 많이 짓는 하루하루가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ii)


안녕하세요...파랑새78이에요.
얼마전에 올린 제 글이 이렇게 반응이 많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쪽지가 너무너무 많이 와서 업무에 지장이...^^ 그래서 공개적으로 올립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네요...

사실 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떼쓰기 작전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전, 오랜 수행을 한 수행자도 아니구요, 교리를 많이 공부한 사람도 아닙니다. 어까지나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올리는 글이니까 태클은 사양합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라고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부디 정답이 아닌 참고 사항으로만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님들의 맘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이런 말은 누구나 흔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보다 더 정확한 정답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경험한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님들께서 제가 완치되었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제 견해로는 이건 병이 아니고 '의지문제라' 봐요.

세상은 내가 중심이에요. 못할 일이 없어요. 내가 하기 싫음 안하면 되요. 칠성줄은 타고 나서 신내림을 안받으면 안된다는니 지장기도는 너무 센 기도라서 함부로 하면 안된다느니.. 누가 그래요?? 스님이든 법사님이든 그런 말은 무시하세요. 삿된 말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부처님만 믿으세요.

흔히 이런 힘든 경우에 점을 보러간다든지, 용하다는 스님들께 뭘 좀 보러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일로 스님들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스님들은 점 봐주는 분들이 절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절대 점 치지 말라고 경전에 수없이 말씀하셨느데, 스님들 죄짓게 하지 마시고 정법을 만나시길 바래요.



어떤 기도든 님들이 된다 생각하면 무조건 됩니다.

일단 된다!!! 라는 결론을 마음에 문신으로 세겨두고 기도를 시작하세요. 결과는 그냥 부처님께 맡겨두세요. 미혹한 중생의 탈을 쓴 우리가 무슨 재주로 점을 치고 미래를 예측하겠습니까.

점 쳐주는 그 사람은 얼마나 바르게 잘 사는 사람인지.. 불보살님들 이름 팔아서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지부터 물어보세요.

그냥, 밝은 결과를 마음에 새기고 부처님께 맡기는 수밖에요.

아음이라는 거 신기하고 무서운 겁니다.

그리는 그대로 이루어지니까요. 밝은 결과만 그리시길 바래요.



저도, 지장기도는 함부로 하면 안되는 기도라느니, 너무 센 기도라서 마장이 심하다느니...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당연히 기도가 잘 되고 있으니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기는건 당연한거 아닐까요??

원래 잘 나가는 사람들 주위엔 질투한는 못된 인간들이 많은 거니까... 그거 무서워서 포기하실거면 안하는게 낫죠.

지장보살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석가여래께서 일체 모든 중생들을 너에게 내가 맡기겠다... 하신 분이 지장보살님이세요.

미혹한 중생들을 위해 성불까지 포기하신 엄청한 원력을 가지신 분이신건 아시죠??

일체 모든 마를 항복받으신 석가여래께서 위촉하신 지장보살님을 감히 누가 !!!! ^^

어쨌든 일단 아무 걱정 마시라는 말부터 해드릴께요.

제일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저랑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친구보고는 관세음보살 닮았다 그러구요, 저보고는 지장보살님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스님들조차 그러시더라구요.

친구 역시 5년 전쯤에 저와 비슷한 일들로 인해서 굿도 하고 산 기도도 다니는 등... 몇 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말 안해도 아시겠죠??

돈은 엄청나게 깨지고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어요.

기도라는 건 누구에게 비는 행위가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지난세월부터 오늘에까지 자신이 지은 데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나는 것 일뿐입니다.

'참회'를 통해서 풀어야죠.

그것 뿐입니다.

말을 하자면 무당들도 잡신이 들어와서 자신도 어쩌지를 모르는데 누가 누구를 구제하고 어쩐단 말인가요??

더 큰 힘에 의지하세요.

진리에 의지하고 그 진리를 등불로 삼아서 자신을 참회하는 것이 제일 우선입니다.

추천하건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모르시겠거든 절을 하세요..

친구도 절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지금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데요...

힘이 드시면 108배 만이라도 100일을 잡으시고 지난 시간 지은 죄를 무조건 참회하고 이 법을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부처님께 바치세요.

성철스님 말씀이 절을 하는게 업장소멸에 가장 큰 약이라고 했어요.

업이 녹아내리는 것을 스크린으로 보여줄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직장을 관두고도 절만 할려할거라시면서요.



카페회원님들의 비슷한 질문이 많아서 참고로 제 기도체험을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정답이 아니며 참고로 하세요. 어디까지나 제 체험담에서 나온 제 견해니까요.




전 대학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한 기도가 지장기도라서... 그것도 목숨걸어두고 한 기도가 되다보니까 몸에 익숙해졌나봐요.
그리고 그 당시 전, 일반적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는 '염불'을 택한겁니다.

집에서만 했습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루에 천 원 혹은 삼천 원... 혹은 만 원... 여유가 없을 때는 몇 백원씩 저금통으로 만든 불전함에 불전을 넣고 얼마간 모이면 저희 동네에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익명으로 쌀 한가마니 보시하면서 기도에 임했습니다.

장소에 연연해 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북쪽이 좋은 사람, 동쪽, 서쪽... 등등... 말이 많은데,

내가 앉아서 불보살을 생각하는 그 자리가 법당이고 그 곳이 적멸보궁이지 따로 어느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어떤 기도가 좋다는 개념은 '없다'라는게 제 견해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토속신앙이나 타력신앙에 뿌리가 깊어서 기도는 오로지 빌어야 한다는 개념이 짙고 상황에 따라서 영가기도엔 지장기도, 극락왕생땐 아미타불, 현세를 위해선 관음기도, 취직이나 일의 성취는 신중기도 등으로 분리를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은 왜 염불만 했나..하는 건데요, 제 나름대로는 단 하나에 집중하고 싶어서였어요.

그 당시 제 상황은 신내림을 받아야하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숨 넘어가는 어린 애기처럼 살려달라고 지장보살님만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던거죠...

보통 신내림은 거부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아닙니다!!!

무속인은 자기도 귀신이 몸에 들어와서 어쩌지를 못하는데 누가 누구를 구한다 말인가요??

더 큰 힘과 원력에 의지해서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을까요?

잡신은 잡신일 뿐이고 선신이라면 인간에게 해꼬지 같은 건 하지 않을거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생각)


그 기도가 끝나고 곧 바로 들어간 100일기도 역시 '지장기도'였어요.

그 때는 제가 다니던 회사에 사표까지 내면서까지 강원도 월정사에서 30일간 삭발염의하고 단기출가를 해서 행자교육을 받고 온 바로 그 시점입니다. 님들께서 알아보시면 아시겠지만 한 달간 세속 생활을 STOP 상황으로 만들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행자교육이라는 거 헉!! 힘듭니다.

말 그대로 스님이 되기전에 행자 생활을 하고 오는건데, 인간도 아니고 스님도 아닌 존재라고 보시면 되요.

이 과정에서 '하심'을 크게 배웠죠.

태어날때 부터 미숙아로 태어나서 몸도 워낙 약한대다가 울기도 엄청 울어서 오대산에 소문이 자자했어요...스님들이 많이 괴로웠죠^^ 더 크게 발심해서 진짜 출가하시는 분들 아주 많습니다.

일체모든 만물은 부처다... 어찌 눈에 보이는 모든게 공경의 대상이지 않고 감사하지 않았겠어요.



교육중에 금강경 사경을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기도수행법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더 가까이 깊이 음미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삿된 일과 정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나름의 가치를 세운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모든 상황은 내가 만든것이고 나의 죄는 스스로의 참회를 통해서 풀어야 겠다... 그리고 인과의 무서움과 밝고 큰 원력으로 세상을 다시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지장보살본원경' 상권,하권 일자일배 기도를 했어요. 100일을 잡았죠.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비라기도 이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일단, 100일이라는 시간동안 5신채와 술, 고기를 먹지 않았구요, 오로지 기도생각뿐이었습니다.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죠. 모든 일이 그렇듯이 미쳐야 이뤄집니다. 기도 목적은 '업장소멸'이었습니다.

그 기간중에 전 엄청나게 많은 꿈을 꾸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꿈에 너무 연연해 하시면 위험해요~~ 무(無) 꿈이 대(大)꿈이다. 성철큰스님 말씀이에요.

제가 근기가 워낙 약하니까 꿈으로라도 일러주는 거겠죠.

100일을 한 번도 안빠지고 퇴근 후, 절에 가서 예를 올린 뒤 바로 사경기도를 했어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걸리더라구요.

일상을 마치고 저녁에 기도를 하다보니 사경중에 법당에서 자다가 스님께서 깨운 경험도 몇 번있고 절 문이 잠겨버러셔 스님깨워서 문 열고 집 간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절에선 문제아였어요...^^

아시겠지만, 기도 중에 오는 경계가 무지 많습니다.

고기 먹을 일, 회 먹을 일, 회식자리...물론 술도 포함이구요, 연락 잘 안오던 친구들도 만나자고 연락오구요.

어떤 분은 집안에서 마찰도 많고 건강한 애기가 아프기도 하더라네요.

전, 모두 다 마장이라고 생각하고 뿌리쳤어요. 부처님 만나러 가는 시간이 저에겐 더 즐겁고 중요하고 소중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죠. 하지만, 굉장히 망설이게 되고 힘들었던건 사실이에요^^;

그 날 분량만큼 일자일배 사경이 끝나면 그 날 했던 양을 한 번 읽고 스님들께서 강의한 관련 책으로 내용 공부도 하면서 뜻을 맘에 새기는 것으로 그 날 기도는 마무리됩니다.

무조건 독경한다고 끝나는게 아니고 부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일러주시려나 하는 맘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 순간은 2500여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부처님께서 지금 나에게 직접 법문을 해주고 계시는 시간이에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죄를 참회하게 되고 업장이 소멸되는 거라 봅니다. 이건 분명한 말이에요. 이 얼마나 다행하고 수승한 일이겠어요~ 사람 몸 받기 힘들고 불법 만나기는 더욱 힘들다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전, 기도 마지막 부분에 항상 했던 말이..

"사랑하는 부처님, 일체중생이 모두 행복하게
하소서..."로 마무리 했습니다.

원을 크게 세우시길 바래요. 과녁을 크고 크게 만들어야 화살 쏘기가 쉽겠죠?

부처님이나 지장보살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겠어요.

나만 잘 되고자 '밥 주세요' '돈 주세요' '취직시켜 주세요' ... 얼마나 밉겠어요^^

사실 처음부터는 아니고 기도 해 나가면서 마음이 커지더라구요.. 저도 처음에는 달라고만 했지만 해 나가면서 느껴지는게 분명히 있습니다.

비록 졸다가 나오더라도 내가 오늘 너무 피곤하니까 부처님께서 잠시 자게 하셨나보나.. 생각하고 또 감사함에 울컥하기도 하면서 하루 기도를 마치고 절밖으로 나오면 그 엄청난 환희... 님들께서도 꼭 느껴보시길 바래요~~~

직장다닌다, 학교다닌다, 일이 많아서... 집안 일이 있어서... 결혼을 한 주부라서 애들이 있어서...모두 다 핑곕니다.

미혼이라고 시간이 많고 기혼이라고 시간 없는 게 절대 아닙니다.

70~80평생 중 고작 100일 정도 투자 할 의지조차 없으시다면,

그런 나약한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기도 할 생각 하지마시고 그냥 그렇게 사세요!!!

생전 코피 한 번 안 나본 저는 기도 중에 코피도 여러 번 쏟았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구요, 인과의 법칙은 에누리 없다는 걸 우선 뼈속깊이 아셔야 합니다.

모두 다 자신의 지은 바 결과일 뿐입니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님들의 죄를 면해줄 수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이 말 하니까 갑자기 화가 나는데....^^;;

스님들도 왜 이런 말을 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

자기 기도는 자신이 해야 합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죠??

어느 절에 무슨 기도를 붙였는데, 스님께서 실수로 어떤 분의 축원을 빼먹은 거에요.

그 신도가 노발대발 화도 나고 섭섭하기 하고... 그래서 스님에게 따지기기도 하고 섭섭함에 울기도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러다 다른 절로 옮겨버리고..

스님보고 절에 다니나요?? 허.. 참...

자기 자신이 그 도량에 있고 거기서 기도하는데 스님 축원 한 마디가 뭐 대숩니까??

자기는 온갖 나쁜 말을 입에 담고 섭섭한 생각으로 성내는 마음을 내고 어리석게 행동해서 기도 잘 한 그 복까지 까먹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스님께서 축원해주시는 그 공덕보다 본인 스스로 3배라도 하며 영가를 위해서든, 본인을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 축원 하는게 더 올바르고 수승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기도를 하시는 도중에 어떠한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큰 공부가 되실겁니다.

불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하잖아요. 정말인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절에 다니시는 분이나 절 신도분은 매일 3000배씩 12년째, 8년째, 짧게는 100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학교 선생님도 여럿 계신데 이분들은 시간이 많아서 하시겠어요??

집에서 학교에서 틈틈이 하시고 그 만큼 원력이 밝고 크기 때문에 극복하고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참, 그리고 기도할 때 아침, 밤 상관은 없어요. 책에서 보니까 지장기도는 밤 9시~11시 사이가 좋다고 하는데, 저는 퇴근 후 7시 부터 9시 30분까지 했어요.

저의 어머니 경우도 늘 일과로 지장기도만 하시는데, 새벽 4시부터 108배와 지장보살 염불, 반야심경 11독, 밤 8시부터 광명진언 540독, 반야심경 11독하고 마치시더라구요.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얼만큼 지극정성으로 꾸준히..가 중요하죠.



그리고 지장보살님 사진을 두지 말라는 말은 근거없습니다.

조선시대때 억불 정책으로 인해서 집안에 불보살 사진이나 불상을 모시지 못하게 한 유교사상이 아직 뿌리내려져 있어서 하는 말이에요.

혹 궁금하시면 큰스님들께 여쭤보시면 압니다. 그야말로 근거없는 미신입니다.

저의 집에는 지장보살님 불화를 모셨습니다. 절에서 점안식을 하고 와서요. 불당처럼 된 건 아니구요. 작은 향 하나 켜두고 기도해요. 이런 것도 부담되면 원상을 걸어 두셔도 좋다네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가 맘 속으로 불보살을 생각하고 앉은 그 자리가 법당입니다. 아무것도 모시지 안아도 됩니다.

시방삼세 모든 우주법계에 두루 불보살님께서 계시고 다 아시고 다 보고 계십니다.

기도 순서가 좀 틀렸다고 넌, 복 조금만 가져가... 하실 분들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상에 집착하다보면 삿된 소견에 빠지기 쉬우니까 늘 주의하시고 기도하셨으면 해요~^^



그리고 지장기도 중에 능엄주와 광명진언은 왜 하나 하는 질문이 여러 분 계시던데요.

능엄주는 성철스님 문중에서 주로하는 부처님 비밀주문 중 하난데요, 기도 중에 오는 경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능엄주 독송만을 기도법으로 택해서 기도 하시는 분도 많은데, 부처님 정수리 광명이라고도 하더라구요.

모든 일체 마를 타파하는 주문으로 알고 있는데, 이 주문만큼 출처가 분명한 주문은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직접 이 주문으로 모든 마를 극복하고 도를 이루었다고 능엄경에도 나와있어요. 기회되면 읽어보시길 바래요.

어떤 스님은 능엄주는 너무 큰 주문이라서 일반재가자들이 하는 게 아니라고 큰일 난다고도 하시던데 그건 올바른 말이 못된다고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능엄경에 부처님께서 능엄주의 공덕부분에 하신 말씀이 분명히 나와있으니까 헛소리 하는 사람들의 근거없는 말들에 현혹되지 마세요.

모든 진언이 그렇듯이 능엄주는 대단한 큰 힘이 있는 건 아주 분명하고 착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방해를 면할 수있답니다.

저도 여러번의 100일 기도 하는 동안 하루에 5독 이상은 했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 중에 왜 광명진언을 하냐는 질문에 관해선데요.

광명진언은 지장보살예찬문에도 나옵니다.

광명진언은 법신인 비로자나부처님의 진언이고 모든 불보살님의 총주이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대광명으로 살아있는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다하네요. 원효대사도 이 진언의 공덕을 크게 말씀 하셨다고 하니 영가 기도 때 아주 좋으리라 봅니다.



어떤 기도가 더 수승하고 좋다는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같은 내용이라도 각각의 근기에 따라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셨다고 하잖아요.

너무 몰라서 살려달라고 오로지 구걸하듯 염불을 시작했지만, 염불 역시 마음을 밝히는 최상승의 기도법이라고 합니다.

저도 아직 제게 맞는 기도법을 찾는 중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해보는 중입니다.

3000배, 능엄주 108독, 광명진언 1080독, 독경, 사경, 염불...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가 장애가 있다는 말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상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그 한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전, 지장보살님이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두건까지 하셨네, 지장보살님은 센스쟁이~~', '너무 이쁘다'... 그러면서 기도했어요. 기도 시작할 땐 늘 '사랑하는 지장보살님, 제자 OO는...'

이렇게 시작했죠.

내가 사랑한다는데 대자대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싫다고 무서운 얼굴로 내치시겠요??

지장보살님뿐만 아닙니다.

관세음 보살님도, 용수보살님도, 대세지 보살님도... 누구라고 마찬가지라고 봐요.

지장기도 중에 관세음보살님이 꿈에 나오셔서 답변해주는 경우도 무수히 많고, 관음기도 중에 보현보살님이 답변해주는 경우도 흔한 일입니다.

각각 근기가 다른게에요.

영가 천도라고 해서 지장보살님이 최고다라는 것도 아닙니다.

불법을 옹호하는 모든 일체 신들과 불보살님은 다 아십니다.

아미타불~~ 하셔도 되고 지장보살~~석가보니불~~ 관세음보살~~~ 모두 다 산자와 죽은 자를 이익되게 하시겠다고 큰 원력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부디 어떤 삿된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한 분의 불보살을 님의 주불로 정하셔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길 바래요.



그리고 염불기도를 했다고 하니까 그 방법에 대해서 물으신 분들도 있는데요,

염불할때 전 천주를 이용했어요. 기도 할려하니까 엄마가 사주시대요~~

소리는 자신의 귀에 들릴 정도로 했구요, 처음엔 똑똑한 발음으로 시작해서 틈을 주지 말고 빠르게 했어요. 그게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발음에 상관 안했구요, 염불할 때 지장보살님이 나에게 광명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맘 속으로 그리면서 하세요.

어떤 날엔 넘 하기싫을 때가 있는데 경계니까 필히 주의하시고 그럴땐 큰 소리로 하니까 도움이 되더라구요.

잘 되는 날엔 기도가 잘 되고 있다 생각하고 더 많이 했구요. 하지만 마장이 온다는 것도 기도가 잘 되니까 방해하는 요소가 생기는 거니까 실망마시고,

"아~ 내가 잘하고 있는거구나!!"하세요. 포기만 안하시면 됩니다.

저도 절에 작은 할아버지 위패를 모셨는데 요즘엔 집에서 합니다.

영가는 식이 맑아서 님께서 맘 속으로 부르면 금방 알아차리고 온다네요...

어디든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영가위패 모셔진 절에 가셔서 기도 하심이 좋을 듯해요.

전, 절에서 기도할 때 늘 동방이라고 하는 고름달린 옷을 챙겨입고 합니다.

옷이 뭐 중요하냐 하겠지만, 중요합니다.

트레이닝 복 입고 기도하는 것이랑 법복을 정식으로 바르게 차려입고 하는 건 마음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꼭 동방이 아니라도 기도 때 입는 옷은 늘 깨끗이 하셔서 입으시길 바래요.



그리고 사람들은 기도 중에 꿈을 꿔야 하는데... 왜 난, 꿈을 안꾸지?? 기도를 잘 못하고 있나?? 하시면서 너무 꿈에 의지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정말.... 그게 뭐라고..기도하면서 너무 신비스러움 쪽으로 의미를 두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말들에는 현혹되지 마시길 바래요.

부처님께선 해몽도 하지 말라 하셨어요. 다 마음 작용인거죠. 해몽도 하기 나름이잖아요.

가피라는 게 별거에요??

힘든 기도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인해서 긍정적인 사고가 형성되면서 업장이 소멸되고 가피를 받는거에요.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 마시고 그 날 그 날의 기도에 최선만 다하면 되지 언제 가피를 받나...하는 쓸데없는 생각하는 시간에 염불 한 번 더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제 경우는 6월 26일 까지 금강경 사경을 마칠 계획이에요. 그리고 자나깨나 오고갈때 늘 광명진언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꿈속에서도 가능해지기위해....^^

그리고 6월 27일 부터 우란분절(백중)날까지 제가 사랑하는ㅋㅋ 지장보살님께 일체영가의 왕생극락을 위해 그리고 늘 부처님 곁에 태어나게 되기를 발원하며 기도 드릴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영가기도는 계속하시지만 개인적으로 작은 할아버지(아버지 삼촌)를 위한 기도를 이번엔 집중적으로 하려고 해요.

제겐 특별하신 분이라서요.

결국, 기도라는건 내가 편하자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돌고 돌다보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아시리라 봅니다.



영가 장애가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시는 분들은 부디 불보살님께 '...해 주세요'등의 기도보다는

'잘못했습니다'의 참회기도와 '...일체 중생의 행복을 발원합니다' 혹은 '... 부처님전에 부디 복 많이 짓게 하소서..;등의 크고 밝은 원을 세워서 기도 하셨으면 합니다.

부처님은 해달라고 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두 자기 지은 바 대로 인과의 법칙만이 있을뿐입니다.

그것을 일러주신분이 부처님이고 강을 건너는 뗏목으로 알라고 하셨어요.

뗏목도 이미 강을 건넌 사람에겐 필요없듯이 상에 집착하지 마시고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생각하서서 늘 불보살님의 가피로 소원성취하시길 바라고 밝은 곳에 복 많이 지으셔서 오늘 여러분이 기도 한 공덕이 씨앗이 되어 반드시 탐스러운 열매가 맺어지는 날이 오기를 발원합니다.



부디 님들께서도 기도성취하시고 일체생명에게 회향 잘 하셔서 맑고 밝은 분이 되시길 바래요~~

님들과 인연있는 모든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바라며 이만 줄일게요.

너무 급하게 써서 도움이 된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럼~~~^^



참고.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기도가 있는데 영가장애 있으시면 알려드릴께요.. 쪽지 날려주세욤.^^


53.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저자 과경거사 번역 각산 정원규 / 불광출판사(02-420-3200)




원 저자인 묘법스님은 1916년에 태어 나시어, 수년 동안 오대산에서 폐관 수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이루셨다. 시절인연이 도래하자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을 교화하셨다.
특히 생생한 인과법문을 통해 업장을 소멸함으로써 치유시키는 신이한 힘을 가지셨다.

말년에는 은둔수행을 하시다가 2004년 (87세)입적하셨다.
중국에서 발간된 이 책의 원 제목은 [현대인과 실록]으로서
원저자의 뜻에 의해 비매품으로 발간, 배포되었다.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는 중국 오대산의 전설적인 은거승
묘법스님의 생생한 일화와 법문들을 정리한 《현대인과실록》이라는 책을
번역·출간한 것으로 주로 인과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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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묘법 노스님께서 하남성(河南省) 어느 시에서 거사들을 위하여 『지장보살본원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재물, 곡식, 음식, 의복 등 절의 상주재산 중 만약 한 물건이라도 주지 않은 것을 취하는 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겁을 지내도 빠져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한 물건이라도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가? 바로 절의 동의 없이 사사로이 가져가는 절 안의 모든 물건, 즉 풀, 나무를 포함한다. 만약 절의 물건을 사사로이 가져간 사람은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때 40여 세 된 어느 여신도가 갑자기 긴장하며 물었다. “저는 어느 절의 비구니 주지스님과 상당히 관계가 좋으며, 그 스님을 공양한 지도 수십년이 되어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어떤 때는 주지스님 방에 가서 안 계시면, 우리 집처럼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염주며 작은 불상 등을 가져오곤 합니다. 그것들은 어쨌든 다른 사람이 공양한 것으로서 주지스님이 조만간 다른 사람에게 보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지스님과 사이가 좋으니 제가 먼저 가져가게 됩니다. 이것도 훔친 것이 됩니까?”




묘법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 마음에는 훔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물건은 결코 주지스님이 당신에게 가져가라고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는 것은 무슨 행위이겠습니까?”




그 여신도는 다소 긴장하면서 말했다.

“작년에 절의 연못에 몇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저는 일찍부터 꽃이 열매를 맺으면 몇 개를 집으로 가져가 심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열매를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고 한 개만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내년에는 이 연못에 이 꽃이 피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꽃 열매를 가져가는 것도 훔치는 것입니까?”




노스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지만 긴장하고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지장보살본원경』을 여러 번 읽었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혜가 없으니 도리어 죄업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경을 읽었기 때문에 오늘 비로소 도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늘 가득한 큰 죄도 참회하면 소멸된다.’고 하였습니다. 불전(佛殿)에서 참회해야 하며, 절대로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져간 물건이 아직 집에 있으면 주지스님께 돌려주고, 스님 앞에서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꽃 열매에 관해서는 다시 열매를 맺게 되었을 때 절에 주어 심어야 할 것이며, 더욱 절을 위하여 다른 좋은 꽃을 공양하면 모든 죄업이 소멸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도리를 도반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공덕은 더욱 많을 것입니다.”




노스님의 법문은 여사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노스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들이 경을 읽는 것은 먼저 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도리를 이해하면 지혜가 생기게 되며, 자기가 겪었던 여러 가지의 고통이 과거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초래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따라서 조만간 악의 원인을 끊게 되고, 다시는 새로운 악의 종자를 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남은 악업은 자신의 염불, 독경 및 참회정진에 달려 있습니다. 아울러 독경, 염불의 공덕을 법계의 중생에게 회향하면, 과거 자기가 지었으나 아직 발아하지(나타나지) 않은 악업의 종자는 시들게 되고 결국에는 소멸될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계(五戒)를 지니고 십선(十善)을 닦는 선남자,

선여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경을 읽고 염불하여 중생에게 회향하면,

큰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왜냐하면 여러분이 청정한 몸과 입과 뜻으로 ‘나무 아미타불’ 혹은 ‘나무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은 자신이 성심성의로 불보살에게 귀의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며, 중생들로 하여금 더욱 불보살에게 귀의하도록 감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성심은 불보살과 감응도교(感應道交)할 수 있으며, 부처님의 광명이 당신에게 비치게 됩니다.”




노스님은 계속하여 법문하셨다.

“많은 염불수행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염불할 때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고 열이 나는 감각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감응(感應)이 염불하고 있는 그대에게 오는 것이며, 부처님의 빛으로 가피를 내리는 것으로서 과거 업장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때 주위에는 그대가 보지 못하는 하늘선인, 지신, 아귀, 떠도는 고혼(孤魂)들이 모여 당신이 얻는 염불의 수승한 감응을 보게 되며, 그들도 염불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함께 염불하게 됩니다. 그들이 염불하게 되면 그들도 즉시 부처님의 가피를 얻게 되어 승화되고 해탈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총이나 칼에 맞아 죽은 사람, 사지(四肢)가 완전하지 못한 떠도는 고혼, 물에 빠져 죽거나 목을 매어 죽었거나 독약을 먹어 죽었거나 교통사고로 죽은 귀신, 그리고 태(胎)에 들지 못하거나 혹은 1년을 기다려 같은 업으로 대신 죽을 자를 찾아야 태에 들 수 있는 망혼(亡魂) 등은 단지 부처님 명호를 한 번 염하기만 하면, 사지가 즉시 완전하게 회복되며 즉시 태에 들게 되어 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염불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얻는 이익도 커집니다.




염불, 독경을 하면 이익을 받는 자가 적게는 백, 천, 많게는 천, 만이 될 것입니다. 그 중에는 당신 주위의 화초, 수목, 동물을 포함하여 무량한 중생들이 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이익을 받는 중생이 얼마나 되는가는 당신 수행의 깊고 얕음에 달려 있습니다.




1994년 내가 보타산(普陀山) 보제사(普濟寺)에 갔을 때였습니다. 앞뜰의 큰 용수(榕樹) 나무가 갑자기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호궤합장하면서, 나에게 『반야심경』의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가 무슨 뜻이냐고 설명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반야심경』을 들었습니까?”




그 수신이 말했습니다. “미국 만불성성(萬佛聖城)의 선화 상인께서 방금 『반야심경』 강의를 끝마치셨는데, 저는 ‘무고집멸도’ 이 구절에서 이해가 되지 않으니 노스님께서 법문해주십시오.”




“선화 상인은 미국에서 경을 강의하시는데, 당신은 보타산(普陀山)에서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선화 상인의 불경 강의는 진허공 모든 법계 중생들이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선화 상인과 같이 그러한 공덕과 법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주위에서 혹은 당신이 거주하는 도시, 시골에서 천상과 지하의 중생들이 당신의 독경, 염불 소리에 따라 이익을 받지 않는 중생이 없습니다.




따라서 염불인은 반드시 계를 지켜서 자신의 몸과 입과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 자신도 무궁한 이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들도 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공덕은 자연히 커지게 되며, 무시이래로 지어온 당신의 죄업은 점점 소멸됩니다. 매일 염불, 독경하면 무량한 복을 얻으며 무량한 죄업을 없앨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본원경』에서 견뢰지신(堅牢地神)이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현재와 미래의 중생을 살펴보니, 거주하는 곳 남쪽의 깨끗한 곳에 흙, 돌, 나무로 감실(불단)을 만들어 그 가운데 그림을 그리든지 혹은 금은동철로 지장보살의 형상을 만들어서 안치하여 향을 올려 공양하고 우러러 예배 찬탄하면 이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열 가지의 이익을 얻습니다. 그 열 가지 이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토지가 풍성하며 2. 가택이 평안하며 3. 돌아가신 망자가 천상에 태어나며 4. 현생에서 장수하며 5. 구하는 것을 뜻에 따라 얻게 되며 6. 수재·화재가 없으며 7. 삿된 귀신을 물리치며 8. 악몽을 없애고 9. 출입 시 천신이 보호하며 10. 성스러운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미래 세상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거주하는 곳에 이 경전과 지장보살상을 모시면서, 경전을 독송하고 지장보살께 공양하면 저는 항상 주야로 저의 신력(神力)으로 이 사람을 호위할 것입니다. 물, 불, 도적으로 인한 피해는 물론 큰 재난, 작은 재난 등 일체의 나쁜 일들이 모두 소멸될 것입니다.”




경에서 분명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불상(佛像)을 공양하면 열 가지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와 같이 불상에 공양하고 찬탄하며 예불하는 사람이더라도 부모에게 불효하고 살생과 육식을 끊지 못하고, 매일 입으로는 욕하고 이간질한다면, 그 사람은 ‘평안(平安)’, ‘장수(長壽)’, ‘수의(隨意)’, ‘천신(天神)의 가호(加護)’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비록 불보살상에 공양하지만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보살은 당신에게 바로 오늘과 같이 정법을 들을 수 있게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몇 분이나 고기와 오신채를 끊었는지 손을 들어보십시오. (수십 명 중에서 세 사람만 손을 들었다.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만이 불교를 믿은 후 고기를 끊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단지 돼지, 소, 양고기는 먹지 않지만 해물은 먹고 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어릴 적부터 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으로서 오신채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수계(受戒), 염불, 『지장보살본원경』 독송을 오래 지속하면, 부처님께 구할 필요도 없이 당신의 병이 점점 가벼워지고 회복되는지, 혹은 당신의 소원이 실현되는지 안 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하지만 당신의 소망은 반드시 국가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현재, 미래의 백천만억의 소원과 백천만억의 일을 구하려면, 지장보살께 귀의하고 예배하며 공양, 찬탄하면, 이와 같은 소원과 소망은 모두 성취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진어자(眞語者)며, 실어자(實語者)며, 불망어자(不妄語者)이므로 진실만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수행자들이 『지장보살본원경』을 자세히 연구하기를 바라며, 실천하는 가운데 모두 법의 이익을 함께 받기를 원합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수의 게송을 설하면서 마무리하였다.







부처님은 마음을 떠나지 않았으며

묘법(妙法)은 경(經) 가운데서 구해야 하네.

자구(字句) 하나 행간(行間)이 모두 양약(良藥)이므로

팔만사천 가지 근심 걱정을 치료하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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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과거 지장영험담모음 (1~37)


1.

지장보살이 된 신라왕자 김교각

苦行고행의 길 택한 金喬覺김교각


성덕왕의 맏아들 金守忠김수충설 유력
眞身진신모신 고찰, 中國 민족 성지로


중국 안휘성 합비시(合肥市) 남쪽에 구화산(九華山:해발 1342m)이 있다. 구화산은 아미산 보타산 오대산과 함께 중국의 4대 불교 성산(聖山)의 하나로 꼽히는데 무려 80여개의 사찰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구화산을 성산으로 만든 인물이 김교각(金喬覺)이란 신라 왕자 출신 승려이다.

김교각은 `쌀 보내준 은혜에 보답함(酬惠米)'이란 시에서

비단 옷 납의로 갈아입고/불법을 닦으려 바다 건너 구화산에 이르렀네/나 본래 왕자의 몸으로/수행의 길에서 오용지를 만남이여

라고 자신이 신라의 왕자임을 스스로 밝혔다.



그는 서기 794년(신라 원성왕 10년)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이는 그가 696년(효소왕 5년)에 태어났음을 뜻한다. 그는 24세 때인 719년(성덕왕 18년) 당나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가 무엇 때문에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중국으로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의 사주전(謝澍田) 교수는 그가 성덕왕의 장자 김수충(金守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삼국사기' 성덕왕 13년(714)조는 왕자 김수충을 당에 보내 숙위케 하자 당 현종이 그에게 제택(第宅)과 비단옷을 내렸다고 전하고 있고, 성덕왕 16년조는 견당대감(遣唐大監) 김수충이 돌아와 문선왕(공자) 10철 72제자의 그림을 바치자 이를 대학(大學)에 안치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문선왕 10철 72제자 등은 모두 유교와 관련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김교각이 과연 김수충인가는 의문이 있다.




신라서 겪은 정치경험
자유로운 참선 밑거름


이처럼 김교각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구화산에는 그에 관한 수많은 일화들이 전한다. 그는 도당(渡唐)할 때 신라의 삽살개를 가져왔다고 전하고 있는데, 평생 그의 수행을 도왔다는 삽살개는 상으로 만들어져 현재 구화산을 지키는 영물로 여겨지고 있다.



다른 하나가 낭랑탑(娘娘塔)으로서, 현재는 기단만 남아 있는데 신라 여인을 위해 세워졌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낭랑탑 기단 위에는 명안천이 있는데, 김교각의 어머니가 신라에서 구화산으로 찾아와 울음을 그치지 않아 눈을 상했는데 교각이 화성사 앞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어머니의 눈을 씻기자 눈이 나았다 한다.



이 우물에 세운 보탑을 후세사람들이 명안천이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성전(二聖殿)은 김교각의 외삼촌으로서 그를 데리러 왔다가 도리어 그에게 감화되어 승려가 된 소우(昭佑) 소보(昭保) 두 사람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인데 현재도 두 사람을 기리는 이성회가 매년 열린다.



이런 전설 외에 김교각이 고향으로 떠나는 자신의 동자에게 준 시는 그의 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문이 쓸쓸하여 집 생각 하더니/절방을 하직하고 구화산을 떠나는구나/난간에 기대어 죽마 타던 어린시절 그리워하던 너/금같은 불도의 땅도 너를 붙잡지 못하는구나/첨병곡의 달 구경도 마지막이며/자명구의 꽃놀이도 끝이 났구나/서운해 눈물 흘리지 말고 잘 가거라/노승은 안개와 노을을 벗하리라'



사찰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떠나는 어린 동자를 떠나보내며 김교각은 자연스레 고향 산천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교각은 `안개와 노을을 벗'하며 수행을 계속했다. 당시 불교계는 선종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으나 김교각이 경전을 읽고 참선을 계속하면서도 특정한 종파에 매달리지 않은 것은 신라에서 겪은 정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교각을 지장보살로 만든 것은 그가 입적한 후에 벌어진 신비로운 일 때문이다. 99세 때 김교각은 주위의 모든 승려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입적했는데 사찰에서는 그의 육신을 돌항아리에 넣었다. 3년 후에 열어보니 그때까지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해서 사람들은 그를 지장의 화신이라 여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장보살은 석가의 위촉을 받아 그가 죽은 후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의 무불(無佛)시대에 6도의 중생을 교화, 구제한다는 보살인데, 중생이 모두 제도한 후에 깨달음을 이룰 것이며, 지옥이 빌 때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의 서원(誓願)을 김교각은 육신으로 실현한 셈이었다.



김교각 스님을 지장보살이라고 확신한 당시 사람들이 그의 육신에 금을 입히고 3층 석탑을 세웠는데 후인들이 그 위에 세운 사찰이 바로 육신보전(肉身寶殿)이다. 김교각의 진신(眞身)을 모신 이 고찰은 797년 지었으며, 청나라 때 중건되었는데, 중국 민중불교의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백토와 쌀, 모닥불로 수행
99세 모든 것 버리고 입적


그가 신라 왕실을 버리고 중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그 자신의 자각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신라왕실의 권력투쟁에 염증을 느낀 결과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는 현실의 유한한 가치보다 이상의 무한한 가치를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김교각은 식량과 의복이 부족할 때는 스스로 농사짓고 땔감을 해 날랐으며, 그래도 부족하자 백토와 쌀을 섞어 먹고, 모닥불만으로 한기를 이겼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수행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의 육신이 썩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쟁의 시대, 증오의 시대, 갈등의 시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었던 김교각의 생애는 하찮은 것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우리들에게 다시금 인생의 의미를 생각게 해 준다.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


2.


나옹스님의 효심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 고려의 유명한 스님 나옹화상(법명 회근, 1320∼1376)은 춘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길을 시자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지금의 양주땅 회암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이천 영월암이 있는 설봉산 기슭을 오르는 스님의 발길은 찌뿌듯한 날씨처럼 무겁기만 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가까이서 울리는 요령소리가 스님의 귓전을 울렸다.

『허, 또 누가 이생을 하직한 게로군.』

자신의 출가 당시 화두였던 사람이 오고가는 생사의 도리를 되뇌이면서 막 산모퉁이를 돌아
서려던 나옹 스님은 초라한 장의 행렬과 마주쳤다. 상여는 물론 상주도 없이 눌수그레한 영감이 요령을 흔들며 상엿소리를 구슬피 메기고, 그 뒤엔 장정 하나가 지게에 관을 메고, 무거운 듯 힘겹게 걷고 있었다. 바로 뒤엔 두 명의 장정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따랐다. 행렬은 스님을 보자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허리를 굽혔다.

『누가 갔는데 이처럼 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예, 아랫마을 돌이어멈이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거참 안됐구먼. 얼마 전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마지막 가는 돌이어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염불을 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
다. 평소 마을을 지나다 몇 번인가 본 돌이어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난 뒤충격을 받아 남의 집 물건을 예사로 훔치고 자주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등 포악해졌다.

처음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가두어야 한
다고 하여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만 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마음마저 착잡한 스님은 문득 출가 전 자신이 고뇌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스님이 스무살 때였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고 약속한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비통에 잠긴 나옹은 「사람은 죽으면 어딛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어른들께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벗과의 사별을 인생의 근본문제로 받아들인 나옹은 그 길로 공덕산 요연 스님을 찾아갔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으나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이 말에 요연 스님은 나옹의 공부가 보통 경지가 아님을 알았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나옹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스님은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1347년 중국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났다. 연경 법원사에 도착하여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화상을 만나 계오(契悟)했다.
2년간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 처림에게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친견하던 스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아올랐으나 스님은 출가사문의 본분을 내세워 멀리서 왕생극락을 기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머니 생각을 모두 떨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스님은 선정에 들어 어머니의 행적을 좇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옹 스님의 어머니 정씨는 뜻밖에도 환생하지 못하고 무주 고혼이 되어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자신을 원망했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던 자신의 불효가 한스러웠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터우시길래 구천
을 맴돌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 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인 아닐까?」

스님은 지옥고에 허덕이는 어머니를 제도한 목련존자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천도하기로 결심
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 지장 보살님 앞에서 어머니 천도 기도를 시작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옥의 한 중생까지도 제도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나옹 스님의 독경은 간정했다. 그렇게 기도하기 49일째 되던 날, 나옹 스님은 철야정진에 들어갔다.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전, 나옹 스님은 지장보살님의 전신에서 발하는 환한 금빛 광채를 보았다. 그것은 눈부신 자비의 방광이었다.

스님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지장보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지장 보살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했다. 고통받은 지옥 중생 때문에 지옥 문전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
장보살님이 어머니를 천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아, 지장보살님께서 내 기도에 감응하시어 눈물로써 현현하고 계시는구나.」 나옹 스님은
기도가 성취되어 기뻤다.

『어머니, 이제 아들에 대한 섭섭하신 마음을 거두시고 편히 극락에 드십시오.』 기도를 마친나옹 스님은 선실에 입정하여 이미 천도왕생하신 어머니를 보았다.

그 이후부터 영월암 지장보살님 앞에는 선망 부모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
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에서 14안거를 성만하면서 후학을 제접하고 신도들을 교화했다. 이 마애지장 보살상은 지난 1984년 12월 보물 제822호로 지정됐다





3.


지장도량 _ 철원 보개산 심원사

심원사는 지장도량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찰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1리 72번지에 위치한 심원사는 ‘생지장보살 도량(生地藏菩薩 道場)’으로 불린다.

심원사에는 ‘지장영험비’가 있으며, 지장보살의 영험함을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사냥꾼 형제의 출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17년(720) 의 일로 보개산 아래 마을에 산짐승을 잡아 목숨을 이어가던 이순석(李順碩)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형제는 사냥에 나서 보개산 너머 담터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마침 큰 멧돼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고, 순석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화살을 쏘았다. 마치 금란가사를 두른 듯한 누런 멧돼지는 왼쪽 앞다리에 화살을 맞고 보개산 정상인 환희봉 쪽으로 달아났다.

사냥꾼 형제는 핏자국을 따라 멧돼지가 멈춘 곳에 이르러 바라보니 금빛 멧돼지는 볼 수 없고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 돌로 된 지장보살상이 맑은 물이 넘쳐나는 샘물 가운데 상반신만 내놓은 채 있었다. 화살을 뽑으려 했으나 석상은 태산 같은 무게로 꿈적도 하지 않았다. 크게 놀란 형제는 깨달은 바 있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대성(大聖)이시여! 저희들을 죄에서 구해 주시려고 이 같은 신변(神變)을 나타내신 것임을 알겠나이다. 만약 내일 이 샘물 곁에 있는 돌 위에 앉아 계신다면 마땅히 출가하여 수도하겠나이다.” 다음 날 형제가 그곳으로 가 보니 과연 석상이 돌 위에 있으므로 두 사람은 바로 300여 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출가하였다.

샘 옆의 숲 속에 돌을 모아 대(臺)를 쌓고 항상 그 위에 앉아 정진하였으므로 그곳을 석대암(石臺庵)이라고 불렀다. 암자에는 자신들의 화살에 맞은 석상을 모셨다. 견불령(見佛嶺)과 대광리(大光里)라는 지명도 지장보살석상의 영험에서 유래한다.

고려 초의 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심원사 아래 마을에 어려서 열병을 얻어 장님과 앉은뱅이가 된 이덕기와 박춘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심원사 대종불사를 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온 화주 스님에게 “대종불사에 시주하면 부처님의 가피로 재앙이 소멸되고, 현생에서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화주가 되기로 약속했다.

3년여 동안 이들은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시주를 하였으며, 마침내 대종불사의 타종식 날이 되었다. 첫 타종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앉은뱅이 박춘식은 오색구름을 타고 밝은 구슬을 손에 지닌 지장보살님께서 하늘에서 심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앉은뱅이는 “지장보살님이 보인다”고 소리치며 장님의 등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자 두 다리가 쭉 펴지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덕기 또한 “어디! 어디!”하고 소리치며 눈을 비비자 앞이 보였다. 그들은 산 마루 위의 오색구름에 쌓여 큰 빛을 발하고 힜는 지장보살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절하였다. 마침내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었다.

그들이 지장보살님을 본 고개를 견불령, 그들이 살던 마을을 부처님의 큰 광명이 머무르는 동네라 하여 대광리라 불렀다. 애초에 심원사가 개창된 곳은 지금의 심원사에서 서남쪽으로 약20km떨어진 경기도 연천군 보개산(寶蓋山)이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영주산(靈珠山, 보개산의 옛이름)에 흥림사(興林寺, 심원사의 옛 이름)로 창건하였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왕사로 유명한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주지로 주석하며 삼창(三創)하고 산이름을 영주산에서 보개산으로 절이름을 심원사로 고쳐 불렀다. 이후 수많은 영험이 생기며 사세가 확장되었으며 근세에까지 금강산 유점사에 딸린 말사(末寺)로 석대암, 지장암, 남암 등의 산내암자와 250칸의 당우, 1609위의 불상, 탱화, 탑이 있었던 대찰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6.25 전쟁의 참화로 본당이 천불전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천불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고 석대암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의 절터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8호인 부도 12기와 아미타불 입상, 사적비, 공적비 만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부도 가운데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 의승군을 이끌었던 제월당 경헌(霽月堂 敬軒) 스님의 부도는 옥개석 운룡문(雲龍紋) 조각 솜씨가 빼어나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야 하며, 아미타불입상을 포함해 사지(寺址)에 대한 전체적인 문화재조사가 시급하다는 것이 문화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옛 절터는 군부대 안에 있어 순례하려면 미리 군부대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4.


문둥병을 고친 지장기도

조선 순조 때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석대 지장암(현재의 생 지장 도량 강원도 철원소재 의 심원사)에 문둥이가 구걸하러 떼거리로 몰려왔다.

암자의 주지 스님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다가 10여 세 가량 보이는 어린아이가 문둥병에 걸려 다니는 것이 측은하여 문둥이 떼거리 중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이에게 말했다.

"이보게, 저 아이는 여기 두고 가시게.

이 겨울에 저 아이가 헐벗은 채 구걸을 다니는 것은 무리인 듯 싶으니
여기 두고 갔다가 봄에 다시 데리고 가시게."

"그렇게 맡아 주신다면 저야 고맙지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데리고 다니다
보니 우리도 귀찮을 때가 많았습니다."

문둥이 떼거리는 어린아이를 두고 떠났다.

이 아이의 이름은 영기(永奇)인데 부모가 일찍 돌아간 뒤 문둥병에 걸려 돌아 다녔던 것이다.

이 아이를 제대로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 스님은 아이에게 말했다.

"이대로 다녀서는 사람노릇을 못하겠구나. 너의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는데 한번 해보겠느냐?"

"이런 몸으로 살다 죽느니 스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주지스님은 아이의 결심이 굳음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법당에 계신 지장 보살 님께 청수를 떠놓고 절을 하면서 하루에 천 번씩
지장 보살 님을 부르고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기원하거라."

영기는 추위도 피할 수 있고 먹을 것도 주리지 않게 주면서 기도하게 해주시는 스님이 너무 고마워 주야를 가리지 않고 법당에서 절을 하며 염불을 하였다.

이렇게 50일 가량 되었을 때였다. 그 날도 밤에 기도를 하는데 꿈에 어떤 노장스님이 나타나시더니 손자를 어루만지듯 만지시는 것이었다.

"불쌍한 아이구나. 아무 죄도 없는 것이 부모 탓으로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이구나.
그래도 네가 과거에 불연(佛緣)이 있어 여기를 찾아 온 것이다. 잘 했다."


노장 스님은 머리끝에서 눈·코·입이 있는 얼굴 부위를 만지시고 ,등과 팔
어깨·다리 등 수족 전체를 어루만져 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영기는 몸이 아주 날아갈 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노장 스님은 영기를 고루 고루 어루만져 주시고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네가 병이 낫거든 중이 되거라. 훌륭한 도승이 되어야 한다."

영기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을 꾼 후 영기는 하루 하루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다.

결국 문둥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다.

전신에 퍼져 곪아있던 부스럼도 간 곳이 없고 ,맨송맨송하게 빠졌던 눈썹도
새까맣게 나고, 까마 잡 하던 살결도 아주 맑게 변했다.

자신의 모습이 전과 다르게 바뀌고 나자 영기는 자진하여 주지스님께 중이
되겠다고 지원하고는 머리를 깎았다.

이분이 바로 동방의 율사로 이름이 높은 남호(南湖)대사이다

스님이 어려서 이러한 가피를 받은 까닭에 남보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경학 도 잘 배우고 글씨도 잘 익혔다.

그리하여 명필과 문장을 겸한 율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5. 아버지를 구하고 천상에 나게하다.

唐의 무주자사의 딸인 조씨는 평소의 지장보살님께
깊이 공경심을 내어 참으로 그 신심이 간절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들은 믿음이 전혀 없었는데
이를 안타까워한 조씨는 자신이 가진 여러 패물과
옷감을 팔아서 부모님을 위하여 높이가 석자가 되는
금색 지장보살님을 조성하여 정성을 다해 공양하고 모시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바깥일로 출타하시고 어머니 혼자 계셨는데
그날밤 도둑이 들어와 문 틈을 옆보니, 금빛이 찬란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운 마음에 빈손으로 돌아가
그 이튿날 옷을 바꿔 입고 그집에 가보니 연세가 높은 노부인
한사람만 있을 뿐 지난 밤에 본 금빛옷을 입은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도둑은 너무나 이상하게 생각하여 노부인에게 물으니,
금빛 옷을 입은 사람은 없고 시집간 딸이
금빛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다 하였다.

도둑은 고개를 숙여 생각하기를, 이 집은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는 곳이라 생각하여 노부인에게 지난밤의
자신의 행동을 다 말하고는 진정으로 참회하며 돌아갔다.

그일이 있은 후에 아버지가 무주성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연히 과거 자신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그사람은 아버지를 보자 바로 칼을 빼어 목을 치려하였다.

엉겁결에 놀라 피할 수도 없는 가운데 순간 금빛옷을 입은
스님이 나타나 손으로 칼을 막다가 칼날이 스님의 머리에 맞아
땅에 쓰러졌다.

그러자 그 사람의 눈에는 칼을 맞은 스님이 자신의 원수인
아버지의 얼굴로 보여졌는지 피를 흘리고 쓰러진 것을
확인한 후에 황급히 가버렸다.

한참 후에 아버지는 꿈속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려 좌우를 둘러봐도
쓰러진 스님은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너무도 놀랍고 신기한 일이라,
가던 길을 멈추고 시집간 딸집에 찾아가 자초자종을 말하고는
부녀가 지장보살존상께 예경하려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지장보살님을 보니 칼을 맞은 듯한 상처와 금색이 조금 변한 것이 눈에보였다.

순간 조씨는 지장보살님께서 화현하시어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신 것을 알고 깊이 감사하였다. 그후로
부모님 두분도 신심이 일어나 딸과 더불어 지장보살님을 믿고 예경하였다.

후일 아버지는 79살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돌아가신 뒤
35일이 지나 딸의 꿈에 아버지 몸에서 금빛 광명을 내며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시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기쁜 나머지 묻기를,

'어버님은 어디에 나셨습니까.' 하니.

아버지는

'나는 동사보처[同事補處]에 태어났다. 나뿐만 아니라
이 하늘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지장보살님의 인도를
받아 태어나느니라. 너도 지장보살님을 잘 공경하여라.

너의 어머니는 13년이 지난 후에 오게되며, 너는25년후에,
사위는 28년후에 여기로 오게 될것이다하며 홀연 사라졌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어머니와 조씨부부 모두 그 날짜에 이르자
사바세계를 떠나갔다.

그 뒤로는 무주 고을 안에 지장보살님의 형상이나 화상을 조성하여
예배 공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또한 감응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6. 지장보살 성상을 조성하여 어머니를 지옥고에서 구하고 천상에 나게하다.



당나라 진도독(陳都督)의 딸은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울고만 있었다.

그대로 놓아두면 조만간 꼭 죽을 것만 같아 그의 아버지는 딸을 붙들고
백가지로 위로하며,

"네가 참된 효녀라면 너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이제 집에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모실터이니 네가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여라."고 하였다.

성상이 완성되자 그의 딸이 어버지 앞으로 나와 청하였다.

"아버지, 이번에 모신 지장보살님은 어머님께서 계셨던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지장보살님을 우러러보고 지장보살 염불도
하고자 합니다."

진도독은 딸이 마음을 돌린 것이 기뻐서 딸의 말대로 어머니 침실에 존상을 모시게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딸은 지장보살께 밤낮으로 예배 공양하며 염불을 쉬지 않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러는사이 딸의 마음도 안정되고 텅 비어 쓸쓸한 바람이 부는 듯했던
집안에도 차차 훈기가 도는 어느날 밤, 진도독의 효녀는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갸륵하다, 효녀여. 너의 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있느니라.
나도 옛날 너와 같은 딸이 되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나의 아버지는 이름이
시라선견이었고, 어머니의 이름은 열제리였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태어난 곳을 몰라 애태우다가 마침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인도를 힘입어 어머니가 지옥에 빠져 한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발원하여 기도하며 어머니로하여금 천상에 나게하였더니라.

그 때부터 내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기로 맹세하였다.
이제 너의 효심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효성이 장하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 방광설법을 하여 너의 어머니를
죄고에서 건져내어 천상에 나게 하여주리라."

이 말씀을 마치자 스님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밝은 얼굴에 자비스런 웃음을 띠고 진도독의 딸 가까이에 오셨다.

도독의 딸이 얼핏 보니 스님의 옷자락이 불에 타 있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옥에 들어갔을 때 불꽃에 탄 것이다."라고 하자
스님의 모습은 다시 사라지고 꿈이 깨었다.

진도독의 딸은 꿈을 깨고 나서 어머니가 천상에 태어난 것이 기뻤다.

그리고 애달픈 마음, 그리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괴로운 마음,
가슴 터질 듯한 슬픈 마음 그 모두가 사라지고 가슴 속이
환히 열리는 듯 하였으며 가슴에는 기쁜 마음이 잠잠히 피어올랐다.



7. 염라청에서 만난 지장보살



당나라 옹주 운현땅의 이씨부인은 신심이 두터워
부처님의 법을 받드는데 정성을 다하는 분이었다.

항상 재일(齋日)을 지키고 수행이 남달리 뛰어나
집에 나무로 조성한 1자 6치 가량되는 지장보살을
모시고부터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씨부인에게는 쉰 살 되는 한 여종이 있었다.

그는 소견이 삿되고 불법을 믿지 않으므로
자기 주인이 불법 믿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씨가 외출한 틈을 타서 지장보살 존상을
앞산 아래 풀숲에 버리고 돌아왔다.



이씨가 집에 돌아와 보니 보살상이 보이지 않으므로
걱정만 하던차에 누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있어
문밖에 나가보니 앞산 밑 풀 숲에서 이상한 광명이 비치고 있었다.

느낀 바 있어 광명이 나는 풀 숲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생명같이 모시던 지장보살 존상은 풀 숲에 누워 있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빙긋이 웃어보였다.



이씨 부인은 눈물과 웃음과 울음이 섞인 감동으로
지장보살을 다시 모셔다가 정성껏 봉안하고 예배하고
염불하면서도 그것이 여종의 소행인 줄은 몰랐다.

그 때 여종이 갑자기 쓰러져 인사불성이 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에 온갖 방법으로 구환하니 잠시후 깨어나 통곡하며
말하였다.



"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가 조금 전에 누군가에 잡혀 정신없이 끌려갔는데
당도한 곳이 명부였습니다.

거기에서는 말탄 관리들이 서첩을 읽는데

"너는 성상을 모욕하여 대죄를 범하였으니 결박지어
대왕 앞에 심판을 받게 하고 마땅히 지옥에 잡아 넣어
큰 고통을 받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때 한 스님이 그곳에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 이 사람은 우리 신도 집에서 일하는 종이니 비록
나의 형상을 보기 싫다고 내다 버리기는 하였으나
나는 그사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왕은 이 사람을 불쌍히 보아 도로 살려주기 바랍니다."
하셨습니다.

염라대왕은 곧 저를 방면하여주시니 저는 그 말을 듣고
곧 저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저는 부처님을 좋아하지 아니했고 지장보살을 내다버린 것을
뼈아프게 참회하면서 그 자리에 꿇어 앉아
'나무지장보살'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뉘우쳤습니다.
그랬더니 그곳 명부에 있던 죄인들에게 채워졌던 고랑쇠가
지장보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데까지는 전부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저의 손을 이끌어 염라청에서 막 나오면서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읍니다.

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종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이씨부인 앞에
엎드려 일어날 줄 몰랐다.

이씨부인은 그를 달래어 지장보살 앞에 예경을 드리며 참회하게 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그 고을 사람들은 불법의 신비한 영험에 놀랐고
크게 신심을 일으켜 부처님 법을 받들며 지장보살 신앙이 높아졌다.

이씨 부인과 여종도 신앙이 몇배나 더 깊어졌다.




8. 길가에서 주운 지장보살의 영험




당나라 간주(簡州) 금수현(金水縣)에 살던 등시랑(鄧侍郞)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사람은 본래부터 부처님을 믿어왔다.
그는 어느날 길가에서 지팡이 머리 같은 것을 주웠는데
거기에는 스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등시랑은 그것을 주어서 집에 가지고 와 벽에 꼿아 두고,
二, 三년이 지나서 등시랑은 병이 들어 죽었다. 염라청에
끌려간 그에게 염라대왕은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는데 그때에 한 스님이 홀연히 나타나니,

형용이 매우 누추했으나, 대왕은 벌떡 일어나 자리에서
내려와 공경스러이 합장하며 그 앞에 꿇어앉아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더라.

스님이 답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신도이니, 꼭 죄를 사하여 주기를 바라오."
하시는 것이었다.

대왕은 대답하기를

"이 사람은 죄업이 이미 결정되었고, 또한 수명과 식록까지
모두 다하였으므로 죄를 사해 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했다.

스님이 다시 말하시기를

" 내가 옛적에 삼십삼천 선법당(善法堂)에 있을 때, 부처님께서
나에게 부촉하시기를 <죄업이 정해진 모든 유정 중생들도
구제하라>고 하셨으며, 내가 죄업 중생들을 제도코자 하는
것은 오늘 처음 시작하는 일도 아니니 이 사람은 그다지
중한 죄를 범한 것도 없는데 어찌 구제 하지 못한단 말이오?"
하셨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나더니, 공손스러운 말로 여쭙기를

" 대사님 원력이 크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시니 마치
금강산과 같습니다. 대사님의 뜻이 그러하시니
이 사람을 곧 인간으로 내보내겠습니다."
하더라.

이 말을 들은 스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나의 손목을 잡고
오던 길로 다시 인도해 주셨다. 우리 마을 가까이 와서
헤어질 때 스님께 법호를 여쭈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장보살이니라. 네가 인간에 있을 때에 길가에서
나의 형상을 보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소중하게 주어다
너의 집 벽에 꽂아둔 일이 있지 않느냐? 그것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지팡이 머리에 내 얼굴만 새겨두고 밖의
나머지는 새기지 못한 것이니라.

그래서 나의 형상이 이렇게 추하니라. 네가 나를 소중히
한 마음씨가 갸륵하다."

이 말을 마치다 문득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시랑이 깨어난 뒤에 생각이 나서 자기 집 벽에 꽂아둔 지팡이를
다시 보니, 과연 그 말씀과 같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팡이 가운데가 갈라졌으므로 전단향목을 구하여
다시 五촌 가량 크기를 보충하여 조성하였다.

시랑이 죽을 곳에서 살려준 지장보살의 은공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여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 뒤로부터는 지장보살
형상이 때때로 광명을 놓아 집안을 밝게 비쳤다.

시랑은 크게 환희심이 나서 이번에는 아주 새로이 지장보살을
크게 조성해 모시고 자기 집을 절로 만들었으며, 절 이름을
지장대(地藏臺)라 하고 작은 지팡이 등상까지 함께 모시고
예배 공양하며 염불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 소문은 원근에 곧 퍼져서 예배 공양하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장대는 마침내 큰 절이 되었다.


9. 지옥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다

唐의 종산현에 開善寺란 절에 오래된 지장보살존상이 계셨는데
아무도 누가 조성한지 몰랐다.

하지만 보살님 주변에는 항상 은은한 빛이 사방에 비치는 듯 하여
예경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였는데,
양주 관찰사인 '등종'이 나이 60살이 되어 병으로 죽었는데
어쩐지 몸에 온기가 식질 않아 그대로 두었는데
하루가 지나서 다시 일어나 정신을 차려 한차례 울더니,
곧바로 개선사의 위치를 묻고는 자손들과 함께 가자고 하였다.

절에 도착한 등종은 스님께 묻기를, 이절에 지장보살존상을
찾고자 한다하였다.

스님이 인도하여 그곳에 당도하니. 등종이 예배 공양하며
스님께 부탁하여 자신의 집에 모셔가길 원하니,스님이 그 연유를 물었다.

등종이 대답하기를, 제가 죽음에 임박하여
저승사자를 따라 염라대왕 앞에 끌려 갔는데 왕이 말하기를,

'너는 죽을 때가 되지 않았으니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받들고 널리 이웃에 전하여라.

하지만 이왕 지옥에 왔으니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보고가라 하였다.

왕이 한사람을 불러 인도하여 그곳을 나가 동북쪽으로 조금나가니
큰철로 된 성이 있고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습니다.

내가보니. 잠깐 동안에 불이 크게 타오르는데 여러 불기둥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님 한분이 검게 타오르는 불 가운데서 사람들을 교화하니
순간 타던 불꽃이 일시에 사라지며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같았습니다.

다시 다른 철로 된 여러성에 나아가 살펴보니.열여덟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루 말로 다할수 없었습니다.

그중에서 다시 스님이 보이시는데 다른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계셨습니다.

거의 다보고 나오는데 스님께서 같이 나오시며

"나를 알겠느냐?"하시기에 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종산 땅에 있는 개선사 지장보살이다.

예전 지장법사의 제자중에 智滿지만이란 스님이 있었는데
삼악도 가운데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하기 위하여 나의 모습을
조성하였으므로 내가 그원을 따라서 열여덟 지옥에서 수많은
작은 지옥까지 다니면서 교화하는것이다.

그가운데 전생에 착한 업을 지은 사람은 한번 마음을 내면 바로
지옥의 고통을 벗어나고 힘이 약한 사람은
단지 고통을 벗어날 인연만 심고 착한 업도 없고
삿된 견해가 깊은 사람은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여
끝내 지옥의 고통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착한 업을 지었으나 힘이 약한 사람은 교화하기 쉽지만
악한 세계에 들어가면 이는 마치 목석과같다.

이와같이 깨닫지못한 사람은 죄업이 다하여 스스로
벗어날 때만 기다리고 과거에 착한 업이 움직일 때면
참회가 되고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너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법력을 받들어
지옥의 고통을 면해주니 인간세상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뜻을 전하여라."하시기에
눈을 들어 스님의 모습을 보니 몸의 높이가
삼척이고 이마위에서 광명이 나오는데
무엇이라 말할 수없을만큼 자비롭고
위엄이 있었습니다.

또 스님께서 저에게 두 게송을 말씀하셨는데,

'인간세계에 살면서 도를 닦을 수 있으니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도 신심을 낸다면 끝내 얻을 것이다.

만일 악한 세계에 들어가 죄업이 마음을 가리게 되어
선악마저 분별하지 못한다면 구제받기 참으로 어렵도다.

늙고 쇠약한 사람들이 길을 가고자 할때 팔다리를 부축하여
나아갈 수 있으나 병이 들어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될수 없듯이. ..



10. 법문을 받들고 다시 살아나다.


당나라 종산(種山) 개선사(開善寺)의 지장보살 존상에 얽힌 실화이다.

이 지장보살은 높이는 三척인데 그 둘레에서는 항상 큰 광명이 났으며
배광(背光)이 四척 五촌이나 뻗었다고 한다.

그런데 개선사가 있던 양주(揚州)의 도독 등종(鄧宗)이 나이 61세
되던 해, 가벼운 병으로 눕더니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의 가족들은
너무 급히 당한 일이고, 또한 가슴이 따뜻하므로 염하지 않고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하루를 지낸 다음날 밤중에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말없이 슬피 통곡하더니 이윽고 자손들에게
입을 열었다.

" 나를 개선사에 데려다 다오"
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개선사에 도착한 등도독은 말없이 지장보살 앞에 나아가더니, 한번
쳐다보고는 그만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울고
나서 또한 여러번을 우러러보면, 예경하더니, 이윽고 주위
사람에게 말문을 열었다.

" 내가 죽을 때 四품 벼슬로 보이는 관인이 와서 나를 끌고 가더니,
마침내 당도한 곳이 염라대왕 앞이었습니다. 대왕은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직 죽을 때가 멀었으니 다시 인간에 돌아가거라
그리고 부처님 법을 받드는 것으로 너의 집 사업을 삼도록 하여라.

이곳 지옥이라는 데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세상
사람들로는 전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네가 지옥을 한 번 구경하고
가겠느냐? 네가 돌아가서 지옥이라는 곳이 과연 무섭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관인을 따라 동북방 쪽으로 三--六리 가량이나 가니, 거기에는 쇠로
만들어진 큰 성이 있는데 쇠문이 꽉 닫혀 있었고, 성 안에 들어서니
맹렬한 불길이 솟아오를고 쇠 녹은 물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를 자세히 살펴보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고초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을 본즉, 맹렬한 불길을 헤치며
고초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교화하고 계시는 스님이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스님이 가시는 곳은 금방 불꽃이 멎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지옥 구경을 하였는데 한 성에 이르니,
그 가운데는 또 무서운 지옥이 있어서 十八이나 되는 큰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양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또 앞서의 스님이 보였는데 불길을 멎게 하고, 죄인을
교화하는 것은 앞서와 같았습니다. 내가 차마 볼 수 없는 지옥의
가지가지 광경을 낱낱이 구경하고 돌아올 때에 그 스님도
지옥에서 나오시며 나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네가 나를 알겠느냐?>

저는 사실대로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였더니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개선사에 있는 지장보살이니라. 옛날 智滿법사가 三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나의 형상을 만들어 모셨으므로
내가 지만 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매일 한 번씩 지옥에 까지 다니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에서 보면 지옥 속에서도 혹 선근이 남아 있어 착한 마음이
강한 자는 내말 한 번에 곧 발심하여 지옥고를 벗어나며, 사견만
많은 자는 고통을 벗어나기 어려우니라.

그 중 선근이 미약한 자는 오히려 교화하기 쉬우나, 한 번 지옥에
들어가기만 하면 좀체로 구제하기 매우 힘드느니라.

그런데도 세간에서 악한 업력만 기른 사람은 자기 허물을 깨달을 줄
모르고, 오직 고통받는 일과 빠져나올 것만 기다리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세상에 살면서 선근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는 마음을
낼 것이니, 너는 부처님의 법력을 받아 세상 사람들이 지옥고를
받지 않도록 일러주고 힘쓰도록 하라.
어서 인간에 나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 뜻을 전하여라.>

이 말씀을 듣고 고개를 들어 스님을 처다보니, 이제까지의 스님의
몸은 어느덧 적어져 키는 三척 정도로 보이고 이마에서 환하게
광명이 났으며 눈이 유난히 빛났습니다.

내가 공손히 예배를 드리고 돌아서려 하니, 스님께서는 이런 글귀를
일러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도 도 닦을 수 있나니

모든 선근 끊인 자도 발심하면 다 되네.

악도에 떨어져서 죄업이 익어지면

깨달을 맘 못내니 구원하기 어려워라.


노쇠한 사람들이 길을 가고자 할 때

팔다리를 부축하면 나아갈 수 있어도

누워서 부동하면 어찌 할 수 없나니

중생들이 지은 바 정업도 그같니라.


스님께서는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그 스님이 일러주신 말씀을 잊을까봐 그것만을
생각하느라고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지금까지 와서 이제 여기 지장보살의 존상을 우러러 뵈오니,
지옥에서 보던 바와 똑같고 또한 그때에 말씀하신 것이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이 말을 들은 개선사 스님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던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고, 또한 기이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몇 번이고 지장보살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서 신심이 두텁고 솜씨좋은 화공을 청하여 앞서부터 모셔왔던
지장보살 탱화를 본떠서 다시 그리게 하고 앞서의 탱화와 함께
그대로 모셨다.



11. 존상의 썩은 나무와 호랑이난


당나라 화주(華州) 혜일사(慧日寺) 법상(法尙)스님의
출가에 관계된 이야기이다.

스님이 출가하기는 삼십 칠세 때인데 그때까지는
사냥하는 것을 즐기며 지내왔다.

여느 때와 같이 사냥 길에 나서 산을 누비고 다니다가
숲 속에서 간간이 어떤 빛이 보여 그곳에 가보니
거기에는 길이가 겨우 한자 남짓한 썩은 나무토막만이있었다.

어쩐지 기이한 생각이 들어 나무토막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호랑이를 만나 의식을 잃고 말았는데 그의 꿈같은
의식 속에는 홀연히 한 스님이 나타나 자기를 가리고
호랑이에 맞서 싸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호랑이에게 호령을 하니 호랑이는 어디론지 사라졌다.

"나를 이렇게 구해 주시는 당신은 누구시오?"

"나는 지장보살인데 네가 주워 둔 숲속의 썩은 나무가 곧 나의 몸이니라.

옛날에 너의 증조부가 이곳에 절을 짖고 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셨었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절은 퇴락하고 다 없어졌으며,
그 당시의 나의 모양도 썩은 오직 나무 속만 남아 있었더니,
네가 그 후손으로 나의 광명을 보게 되었으므로 그 인연으로
내가 너를 구해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법상은 깨어났다.

그의 곁에는 그가 탔던 말이 울고 서 있었으며 호랑이는 간데 없었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니, 그곳은 바로 자기가 썩은 나무를 주웠던 바로 그곳이었다.

호랑이에게 쫓기어 피하며 돌아다니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게
그 썩은 나무가 있던 곳으로 와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얼마를 지나 법상은 큰 결심을 하고 빛이 나던 곳에 절을 지어,
자기가 주운 썩은 나무에 향을 썩은 진흙을 발라 지장보살존상을 조성하여 모셨다.

그리고 절 이름을 혜일정사(慧日精舍)라 하고 증조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출가하여 열심히 수도 정진하였다.

법상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행하다가 78세가 되는
이월 이십 사일에 입적하였는데 그때 곁에 있던 도반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좀 전에 지장보살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는 자씨여래(慈氏如來 ; 미륵불)의 삼회(三回) 설법 중에
제 이회(二回)에서 도를 깨칠 사람이다.
이제 죽게 되면 곧 도리천에 나게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천상에 나면 오욕락의 즐거움이
비할 데 없다고 하오니, 천상에서 쾌락을 받다 가는
보리도(菩提道)를 잊기 쉽다고 하옵니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 뵈올 날이 멀어지지 않겠습니까?'고
하였더니 지장보살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너희 소원대로 하여라.
네가 만약 극락정토에 가서 나고자 하거든,
마땅히 아미타불을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전심전력 생각하라.
그러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곧 아미타불을 전심전력으로 생각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였더니,
"이제 원을 이루어 정토 세계로 떠납니다."라고 한 다음
합장하고 앉아서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왕생하였다.


12. 상투속에 모신 지장보살 방광


당나라에 별가(別駕) 벼슬을 한 건갈(健渴)에 대한 이야기다.
건갈은 신심이 돈독하였고 그의 일상수행은 매우 청정하였다.

항상 지장보살을 받들어 모시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단향나무를 구하여 높이가 세 치되는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하여 상투머리 속에 정중히 감추어 모셨다.

그러니 다닐 때나 머무를 때나 눕거나 앉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나 생각에서 잊지 않았다. 가히 생각생각에 지장보살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장흥년(長興 서기930년)에 건갈은 새로운 관명을 띠고
부임하는 중이었다. 어느 후미진 냇가에 다다르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건갈은 더욱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건너
산 밑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그를 부르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일찍이 그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건갈은 <이제 올 것이 왔구나>생각을 하였더니, 그 사나이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민망하리만치 정중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 당신이 이 길로 부임하는 것을 알고서 미리 다리 밑에
숨어 있었소. 멀리서 당신 혼자서 말타고 오는 것을 보았는데 다리
가까이 와서는 갑짜기 스님 한 분이 지나가실 뿐, 당신도 말도
보이지가 않았소.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고 한참 지켜보았지만, 역시 당신은 보이지 않고
스님 한 분만이 다리를 건너가셨는데 다시 한참 있다 보니, 당신이
여전히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겠소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하잖은 일 가지고 당신과 원한을 맺고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니, 이것은 잘못되었다 생각하오. 당신은 분명히
부처님이 도우시는 사람같소. 이제 내가 과거 일을 다 풀어버리니
당신도 마음을 놓으시오."

하는 것이었다. 건갈이 죽은 것은 청태(淸泰) 2년(서기935년), 그의
나이 78세 때인데 임종하면서 그는 단정히 앉아 합장하여 염불하고
있었다.

그의 상투에서는 유난히 밝은 광명이 퍼져 나와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그는 고요 속에 잠겨 들어갔다.




13. 신들린 여자가 스님이 되다.


송나라 요성향리(遼城鄕里)는 가호가 2천여호가 되었는데
모두가 불교에 대한 신심이 매우 두터웠다.

대개들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의 두 보살을 신앙하였고
관음경(觀音經)과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을 존중하였다.

송나라 태종(太宗) 태평(太平)년(서기 976년)에 전염병이
크게 만연하여 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를 걱정한
성주(城主)가 지장보살께 기도하였더니, 지장보살존상에서
방광하여 그 광명은 온 성내(城內)에 뻗쳤고 병든 자는
나았으며 죽었다고 버린 자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온 성내에 염불 소리가 가득 넘치게되었다.

그 때 있었던 일이다. 신들려서 무속의 일을 하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불법을 믿지않은 채 병으로 죽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살아나더니,
곧장 성안의 큰 절로 찾아가서 지장보살 존상앞에
엎드려 울며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모인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나는 접신한 사람이 아닙니까?
내가 이번에 죽어서 악귀에게 묶여가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내가 섬기는 신에게 구원해달라고
애걸복걸해보았지만, 신은 악귀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못하였습니다.

내가 큰 고초를 받고 있는 중에 마침 한 스님이 나타나시더니,
악귀에게 풀어주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네가 참으로 어리석기도하구나.
부처님은 믿지않고 다시 무슨 신을 믿는단 말이냐?
나는 큰 절에 있는 지장보살이다. 성주(城主)의 청을 받아
성내 사람들을 구하다가 이제 너를 만나 구하여 주는 것이다.

너는 집에 돌아가 바른 신심을 내어라. 귀신은 자기 죄업으로
받는 몸인데 다른 사람을 어찌 구해줄 수 있겠느냐? 돌아가는대로
동리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나는 여기 지장보살님
은덕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신들린 여자는 그 이후 느낀 바 있어 불법에 귀의하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14. 아귀가 천상에 태어나다.



송나라 양주자사(楊州刺史) 장건신(張健信)의 집안 이야기다.

그는 딸 하나를 둔 채 상처(喪妻)하였는데 그의 딸은 어머니
생각을 잠시도 잊지않고 슬퍼하였다.

하루는 장씨 딸 꿈에 어머니가 찾아와 딸에게 말하였다.

"내가 세간에 살며 너를 낳아 기를 때, 나의 친가나 집안의
권세만 믿고 너무 교만하였다. 또 탐욕심이 너무 심하였으므로
나는 죽은 뒤 곧 아귀보를 받았다.

아귀의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구나. 밤낮으로 죽었다 살았다하는
고통이 반복되고 굶주려 시장하기는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 한 달에
한 번도 배를 채우기가 어렵다.

다만 24일 새벽이면 어떤 스님이 아귀성중에 들어와 음식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그때 잠시 시장한 것을 잊을 뿐이다.

알아보니 아귀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먹이는 스님은 지장보살이셨다.

지장보살께서 음식을 베풀어줄 때에는

"너희들은 마땅히 보리심을 발하라. 나는 지장보살이다."
하시었다.

나는 비록 이 말씀을 들었지만, 너무 심한 탐욕심에 얽혀있어서
발심하지 못하고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내 딸아, 네가 나를
도와주고자하거든, 지장보살님을 공양하여다오.

나를 위하여 꼭 지장보살님 등상을 조성하여 모시고
예배공양하여 주기를 부탁한다."

꿈을 깬 뒤 장씨녀는 있는 재물을 모아 팔아서
지장보살 등상을 조성하였다. 그런 다음 일심으로
예배 공양하며 기도를 게을리 하지아니하였다.

그러기를 얼마안해서 장씨녀의 꿈에 장씨녀 집에
어머니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몸에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온 몸에서
서기광명(瑞氣光明)을 놓으며, 허공에서 자유로이
걸어내려와서 말하였다.

"착하다. 내 딸이여. 네가 착한 공덕을 지어주어서
그 공덕으로 이제 내가 천상에 가서 나게되었다.

너는 앞으로도 더욱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지장보살께
예배공양하여라. 너와 나는 장차 미륵보살이 계시는
하늘에 함께 날 것이며, 또한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듣게될 것이다."


꿈을 깬 장씨녀는 만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15. 조상이 지장보살께 귀의한 은덕


중국 형주(荊州) 땅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현재 전해지지않으나 글보다는 오히려 사냥을 업으로
하는 사냥 선비였던 듯하다.

그의 별명만이 전해지는데 별명이 안웅(雁雄: 기러기영웅)인
것으로 보아 족히 짐작이 간다.

사냥을 즐기면서살며 이럭저럭 쉰 살이 되어서 열병을 앓다가
죽었는데 3일만에 그가 살아나 하는 말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앓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곁에 오더니 다짜고짜 가자고
방망이로 을러댔다. 그리고, 몇 개의 대문이 달린 집을 지나
염라대왕 앞에 꿇어앉혀졌다.

거기에는 맷돼지, 노루, 토끼, 꿩 그 밖의 여러가지 새들이
수천 마리가 모여있었다. 또한 기러기도 여러 마리 있었다.

그런데, 그 들짐승들은 일제히 목을 빼고 염라대왕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저 짐승들이 하는 말을
모두 사람의 말처럼 역력하게 알 수 있었다.

"대왕님, 저 놈이 우리를 죽이고 우리 자식을 죽인 안웅입니다.
저 놈을 엄하게 다스려 주십시오."하고 있었다.

대왕이 그 말을 듣더니 하는 말이 "너희들 말이 맞다.

안웅은 틀림없이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의 조부가
지장보살님에게 귀의했느니라. 그러므로 나로서는 저 안웅이
그 사람의 손자인 것을 아는 이상 그의 고초를 면하게 해줄
수밖에 없다."하였다.

나는 귀가 번쩍띄었다. 꼼짝없이 이제는 지옥으로 가나보다
하였더니, 지장보살님 공덕으로 살게된 것이었다.

나는 감격해서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소리높이 불렀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뜰 가운데 있던 모든 짐승들이 금시에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나를 놓아주시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하는 말을 듣고 금방 돌아온 것이다." 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안웅의 생활은 일변하였다.

자칭 "나는 부처님의 종이다." 하면서 사방에 돌아다니며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을 찬탄하였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죽었다 살아난 경위를 말하면서,
지장보살을 일심으로 생각할 것을 권하고 다녔다.




출처: 우리출판사간 지장경 (고성훈역)



16. 지장보살존상을 조성하고 죄가 멸하다.

후주(後周)때 상서(尙書)벼슬을 하였던 백열은 삼보를
지극히 공경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부인이
난산(難産)으로 인하여 죽었다.

그래서,백열은 그 부인의 영가를 천도하기 위하여
지장보살의 등신상을 조성하고 천도재를 베풀고
지성을 다하여 예배공양하고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수 일후에 죽은 부인이 백열의 꿈에 나타났다.

깨끗한 옷을 입고 사뭇 밝은 얼굴을 하고와서 백열에게 말하였다.


"제가 아내 노릇을 다 못하고 죽었는데 나를 위하여 공덕을
닦아주시니 그 은혜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오랜 옛날에 어떤 사람의 처가 되었을 때
자식을 낳지못하였기 때문에, 남편이 항상 자식없는 것을
한탄하는 것을 보고 제가 첩을 얻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첩은 오래지않아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 때 남편이
그 첩을 매우 사랑하기에 제가 그만 질투심이나서 음식에
독약을 타먹여 모자를 죽였습니다.

이런 죄업때문에 저는 죽어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여섯 겁을
지내며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간세계에
태어나서도 아기를 낳다가 죽기를 57번이나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또 아기를 낳을 때 고통을
받다가 죽기는 하였으나 당신이 나를 위하여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조성하고 착한 공덕을 닦아주신 덕분에 저의 죄업은 이제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도리천에 태어나 무궁한 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며
이제 여자의 몸은 영영 받지않게 되었습니다.

도리천 선법당(善法堂)에서는 매월 24일에 지장보살님의 법회가
있사온데 그 법회는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국토에 몸을 나투시는
지장보살께서 주재하십니다.

또 지장보살께서는 도리천 무우수(無憂樹)나무 밑에서 설법을
자주 하시는데 지장보살님은 출가한 스님의 모습을 나투시고
그 몸에서는 금빛 광명이 납니다.

이 번에 지장보살님께서 저에 대해서 "너희 부부가 나의 등상을
조성하여 지성으로 수행하니 너희는 영영 고취(苦趣)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저를 위하여 성상을 조상하고 재를 베풀고 기도해주신
공덕으로 이와같이 영영 악도에서 벗어나고 천상에 나게되었으며
보리심을 발하여 불법을 닦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열은 잠이 깬 뒤에도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던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방안에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없어지고
한량없는 기쁨만이 가슴에 넘쳐왔다.


출처: 지장보살영험록 (김종매외, 불광출판부刊)


17. 저승 문앞에서 만난 지장보살

송[宋]나라의 승준 스님은 출가하여 수행도 선업도 짓지 않고
오히려 방탕한 생활로 일관했는데,

어느 해인가,

그는 병이 들어 죽었다가 며칠후 깨어나더니,

매우 슬피 울며 간절히 참회하며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를,

" 죽어서 저승사자를 따라 큰 성문에 도착하였는데
홀연히 한 스님께서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장보살이다. 그대가 한 때 신심에 지극하여
내 형상을 그리고서 마음을 다하였지만 마음이 타락하여
예경과 공양을 하지 않고 큰 절 뒷산에 버리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대가 나를 모신 공덕을 생각하여 지옥을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겠다하시고는 게송을 말씀하시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마음이 모든 부처를 짓는 줄 알아야 한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이 글을 외우게 되면 지옥문이 부서지고 정토의 문이 열려 업보는 소멸될 것이다."
하시고는 자취를 감추셨는데, 나는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서 성안에 이르자,

염라왕이 묻기를 "그대는 살아 생전에 무슨 공덕을 쌓았는가?"하니, 나는 "오직 한 게송만 기억할 뿐입니다."하니,

대왕이 말하기를,

"지금 외울수 있는가?"하여 나는 큰 소리로 외웠더니,

나의 소리가 닿는 곳마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모두 해탈되었다.

염라왕이, " 됐다, 그만하라,"하며 다시 인간 세상에 가라하여
이렇게 깨어난 것"이라 하였다.

그 후로 승준 스님은 지장 보살님께 참회와 예경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여러 절로 다니면서 많은 스님들께 이같은 일을 말하였는데
듣는 대중들은 반드시 발심하였다고한다.


18.존상에서 밝고 환한 빛이 나타나다.

당[唐]의 익주 땅 법취사 법당에 그려진 지장 보살님 형상은
다리를 길게 드리우고 법상에 앉아 계신 성스러운 모습이였는데,
이는 유명한 화가인 장승요가 그린 것이다.

후에 그 절에 사는 스님께서 똑같이 베겼는데 항상 은은하게
둥근 금빛이 나타나는 것 같아 신도들이 매우 감탄하여
모두가 베껴 가정에 모셨는데,
여전히 밝은 빛이 나오는 것 같아 보였다.

소문은 널리 알려져 황제가 사는 궁궐까지 들어가
황제가 손수 한폭을 모셔와 궁중에 모시고 정성껏 공양을 올리자,

장안에 사는 모든 백성들이 절에 몰려와 지장 보살님 형상을
베껴서 집에서 예경하였는데 밝고 환한 모습 그대로여서
백성 모두가 지장 보살님의 큰 위신력을 깊이 믿었다고 한다


19. 천일 기도에 나타난 지장보살님

송[宋]의 공관사[空觀寺]에 사는 정법 스님과 승준 스님은 다 같이
지장보살님께 귀명하여 매월 지장 재일 때마다
지장 보살님의 형상을 베껴 그리면서 발원하기를
보살님께서 응신[應身]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천일이 다 되어 하루는 정진하는데, 한 순간 누군가 말하기를,
젊은 스님이 절의 처마 밑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듣고
느낀 바가 있어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고 공경히 맞으려 나갔는데
한두 마다 말을 하고는 밖을 나가기에 얼른 따라나서니
벌써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정법 스님이 홀로 앉아 스님, 스님하고 외치니,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여 흔들어 깨워 물으니,
자초지종을 말하여 사람들이,
"그 스님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묘한 원은 그만하면 되었는데 의기[意氣]는 어찌하여 더딘가,"하였다고 한다.

모두들 듣고 나서 말하기를, "너는 이미 지장 보살님을 친견하였다.
그러나 네가 생각하는 것은 실천할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보살이 나타나
의기가 짧다고 하신 것이다."하니.

정법 스님은 " 이미 성인께서 나타나셨으니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
기쁜 마음으로 깨달음을 구하겠다."하며 스스로 다짐을 했는데,

후일 꿈에 다시 지장 보살님께서 나타나 이르시기를,

"전에 그대가 만난 지장 보살이다. 네가 나의 응화신을 보고싶어하지만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너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는 나의 형상을 많이 그렸기에 영원히 삼악도에 들어가지 않으며
육신을 벗어나면 도리천에 태어나 미륵 부처님께서 사바 세계에
내려 오실때 반드시 성불의 예언을 받을 것이다.

지장 보살을 염하는 너의 마음을 따르는 것은 그림자가 형상을 의지하는 것과 같다."
하시었다.

정법 스님은 꿈에 깨어난 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더니,
자신의 바루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지장 보살님의 존상을 조성하였으며,
항상 지장 보살님의 형상을 그려서 공양을 했는데 여러 묘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20.지장 보살님의 이름을 불러 악한 귀신을 내쫓다.

당[唐]의 이신사[李信思]는 노수 지방의 사람이었는데,
친척이 삼십 여명이나 되었다.

어느 날 이상하게 생긴 그림자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가족
가운데 어떤 사람은 병이 들어 헛소리 하며 또 귀신같은
환상이 보이고 다른 사람은 심지어 피를 토하거나 기절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매우 놀란 이거사는 근처 사찰에 계시는 스님께 말씀드려 보았더니,

스님께서 오랫동안 생각하시다가 말씀하시기를,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마갈제국 비부라산 아래에 사는 교제 장자 집안에도
이와같은 악한 귀신이 나타나 그 집에 모든 권속이 쓰러지고 병이 들며
기절하는 사태가 열흘이 지나도록 끊이질 않아 지장 보살님을 청하여
다라니로써 악한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자를 구했습니다.

이거사님도 이와 같은 법력에 의지하여 지장 보살님께 깊이 신심을
내어 귀의한 다음 일심으로 지장 보살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하였다.

이거사는 크게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여 지장 보살존상을 직접 그려
집에 모시며 예경을 다하였는데 그후로는 노수 지방에 그런 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21.지장 보살님 가호로 사악한 귀신도 집 앞을 피해가다.

당[唐]의 노주자사 강거통은 평소에 신심이 매우 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인연으로 여러 해 동안 지장 보살님을 받들어 모시다가
다시 발심하여 한지를 구하여 지장 보살님의 존상을 그리려는데
여러 색을 칠하기도 전에 환한 빛이 나타나는 듯하여 믿음이 한층 더 했다.

어느날 꿈에 말을 탄 두 사람이 자신을 쫓아 오자 피할 수 없어
두려운 마음으로 서 있는데, 그들이 말에 내려 탄식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잘못 판단하였다. 비록 염라 왕의 명령일지라도
지장보살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어찌 할 수 없다."하며 가 버렸다.

꿈을 깬 후 매우 기쁜 마음으로 더욱 정성을 다하여
지장보살님을 받들어 모셨는데 마침 나라에 전염병과
여러 가지 귀신병이 나돌아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꿈속에 푸른 옷을 입은 귀신이 강거사의 집 앞을 지나면서

"이 집은 지장보살의 집이다. 모두들 반드시 문 안에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다."하였다.

그런 후에 모두가 무사하였다.

세월이 흘러 강거사는 일이 있어 먼 길을 가다가 겨울이라
눈 속에 길을 잃어버렸는데 불안한 마음에 지장보살을
간절하게 불렀는데 어디선가 앵무새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늙어서는 병이 들었는데 정성으로 지장 기도를 한 후에 병이 다 나았다.

꿈에 한 스님이 와서 이르기를, "너는 푸른 새를 죽인 과보로 지옥에
가야하지만 지장보살님의 가호로 그 업을 면하였다.

이후로 점차 병이 나아서 며칠후 정토에 날 것이다."하였다.

이 말을 듣고 꿈에서 일어난 강거사는 지장 보살님께 깊은 감사의
예경을 올렸는데 병은 이미 다 나았고 스님께서 예언한대로 이틀이
지나자 강거사는 지장 보살님의 명호[正念]를 외는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났다.



22. 지장보살님을 단 한번 생각해도 지옥을 벗어나다.

송[宋]의 최이계는 장안의 관찰사였는데 한번은 죽은 후 이틀만에 소생하여 주변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었을 때 어떤 사람들이 나의 양 겨드랑이를 잡고 가는데 도중에 수많은 병사들이 흰 말을 모는 행렬이 보았으며 마침내 동북쪽에 큰 성에 이르러 여러 기와집에 당도하였는데 그들의 모습은 모두가 검은 관을 쓴 사람으로서 족히 삼십 여명이 되었다.

모두가 염라왕이었으며 마침내 앉아 있는 염라왕 앞에 나가니, 나에게 묻기를, "너는 살아 생전에 어떤 분을 받들어 모셨는가?"하여 "저는 지장 보살님을 모셨으며 모든 스님들께 공양하였습니다."하니,

왕은 이르기를, "허허 그래 이미 대성인을 모셨으니, 이는 천상의 복이다."하니,

그곳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은 수명이 다하지 않았습니까?"하여 염라왕이 한 권의 책을 읽고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지장 보살님의 은혜로 명을 다하지 않았소," 하더니, 사자를 불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어찌하여부처님을 믿는 사람의 수명만 잡아 오는가,?"하고 흰 말을 탄 사람을 책망하고는 벌을 주었는데, 저승에서 며칠이 지나자 염라왕이 나에게 묻기를, " 그대는 세상에 돌아가고 싶은가,?" 하기에 내가 그렇다고 하자.

왕이 말 한 필과 사자 두 사람을 시켜서 동북쪽을 가니 사방 수 십리에 큰 철로 된 집이 하나 있는데 쇠끊는 물과 불꽃이 가득 차있고 그 다음 철로 만든 집에는 이계의 조부모들의 모습이 모두 있는 것이 보였다. 모습을 보니, 목에다 칼을 걸고 있기도 하고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몸에 쇠줄이 묶여 있으면서 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손자인 이계를 보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너는 반드시 우리 모두를 구해야 할 것이다."하여 조상님들께 지장 보살님의 명호를 생각하라고 말씀드리며 스스로 다짐을 하고 지장 보살님을 마음속 깊이 염하여 또 한 성에 나아가니, 쇠로 만든 평상에 어디선가 안면이 익은 스님이 앉아 있는데 몸은 숯과 같았고 맹렬한 불꽃이 붙고 있어서 내가 묻기를, "스님은 청정한 수행을 하셨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하니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저는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수행하였으며 마음과 실행아 서로 맞지 않아 침구와 평상이 변하여 고통을 주는 기구가 되었고 의복과 음식은 변하여 쇠옷과 끊는 구리물이 되었습니다. 불자님은 반드시 저희들을 구해주십시요"하였다.

나는 스님께 말하기를, "스님은 꼭 지장 보살님을 생각하십시요,?"하고 나왔다.

그뒤로 수십 개의 성을 보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받고 있었는데 대체로 세상에서 보던 사람들이었다.

다시 적사 지옥에 이르니, "칼로 만든 나무와 구리로 된 기둥이 백천 개였는데 죄인들이 그 위에 있는데 모두 이계를 보면서,"우리를 구해주십시요"하고 애원을 하니, 나는 "오직 지장 보살님을 생각하십시요,"하였다.

이와같이 황사. 백사. 초사지옥 등의 일곱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어떤 푸른 집이 있는데 길가에 보배 나무와 온갖 과일이 아름답게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물으니, 저승 사자는 "지장 보살님을 받들어 모시거나 형상을 그린 족자나 등신불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정토 세계나 도리천에 태어나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되고 그림이나 등상을 믿지 않고 받들어 모신 사람은 이곳에 머문다"하였다.

다시 앞을 나아가니,

큰 성안에 보배로 만들어진 방이 있는데 그 안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남녀들이 행복한 가운데 춤을 추며 그 가운데 이계의 조부모와 육친들이 보여서 너무나 기뻐하여 물으니, 그들이 말하기를, "전에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었으나 그대가 지장 보살님을 생각하라 말 한마디로 바로 천상에 태어났다,"하였다.

내가 여기는 어디냐고 물으니, 이곳은 복을 받는 곳인데 수명도 길고 모든 괴로움이 멀리 떠난 곳으로 미륵 부처님의 삼회 설법을 만나면 모든 고통이 다해진다."하였다.

내가 묻기를, "그렇게 되면 어떤 땅에 태어나 만나게 됩니까?"하니.

"옛날 지장 보살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부처님의 부탁을 받고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원을 세웠고 미륵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까지 오십 육억 칠천만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만약 정토 세계와 제 사천에 태어 나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그 복이 적은 사람은 모두 이 복받는 집에 태어나 다시 악한 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미륵 부처님만을 친견하길 기다릴 뿐이로다."하였다.

그러고 난후 다시 염라왕 앞에 돌아와 사자를 돌려 보내고 난후 이계는 세상에 살아 나왔다고 한다.


17~22 지장신행회(cafe.daum.net/jjnd) 서진님 글


23.


진[秦]의 장응이란 사람은 평소에 무속을 섬겨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수없이 잡스런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어느때 집을 이사한 후에 아내가 병에 걸렸는데 여러 방법으로 기도하며 치료를 하였으나 가진 재산만 다 없애고 도리어 병이 위중하여 졌다.

본래 장응의 아내는 평소 신심이 깊은 불자로서 병석에 누워 하루는 장응을 보더니 말하기를, "지금 저의 병이 갈수록 깊어져 당신이 귀신에게 아무리 기도한다 한들 별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전에 복을 지어보십시요"하였다.

어찌할바 몰라 당황하던 장응은 아내가 말하는 절에 가서 축담개라는 스님을 만나 전후 사정을 얘기하니, 스님께서 이르기를, "부처님의 법은 병을 고치는 약과 같은데 약을 보고도 먹지 않으면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하니.

장응이 신심을 일으켜 기도하는 마음을 내자,

담개 스님이 기도 입제를 정해 주었다.

절에서 돌아온 장응은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키가 작은 사람이 장응이 사는 집의 남쪽 문을 들어 오면서 말하기를, "그대의 집이 어찌하여 이처럼 더러운가?"하니.

담개 스님이 뒤를 따르면서 말하기를, "이제 마음을 내었으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요"하였다.

장응은 잠을 자고 일어 났지만 꿈은 너무도 생생하여 정성을 다하여 높은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튿날 담개 스님께서 그 집에 가니 장응은 꿈 얘기를 하며 오계를 받기를 청하여 법답게 행하고 집에 모셔둔 잡신들의 형상을 모두 없애고 삼보에 청하여 공양을 올린 다음 스님과 이웃에게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 그날 이후로 아내의 병이 점차로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날 이후 어느 땐가 장응은 바닷가 염전에서 소금을 사서 돌아오다가 갯가에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어떤 사람 세명이 쇠갈고리로 장응을 끌어 당겼다.

장응은 엉겁결에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하니.

그들은 놓지 않고 말하기를, "종이 주인을 배반하고 달아 난지 이미 오래되었다."하였다.

장응이"나를 놓아주면 너희들에게 술 한되를 주겠다."하니.

그들이 놓아주면서"단지 뒤에 오는 사람이 너를 잡아 갈까 두려울 뿐이다."하였다.

장응이 잠에서 깨어나자 갑자기 배가 아파 오면서 설사가 심하여 온 집안이 고통을 겪고 담개 스님과 함께 오랫동안 걱정을 하였으나 병은 더욱 심해졌는데 어느날 갑자기 기절했다가 며칠만에 깨어났는데 그동안 겪은 일을 말하였다.

"자신이 기절하자 몇 사람이 강철 갈고리로 그를 당겨 북쪽으로 데려가 어느 언덕에 내려 놓았는데 거기에는 쇠물이 끊는 솥과 칼등 무서운 기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순간 장응은 지옥임을 알아 담개 스님의 법명을 부르려고 했지만 잊어버리고 그저"스님 저를 구해주십시요."하였다.

부처님 명호가 생각나서 막 불렀는데 한 사람이 서쪽에서 부터 왔다.

키가 작았지만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그들을 때리면서" 이사람은 부처님의 제자인데 왜 여기까지 들어오게 했는가?"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갈고리를 든 사람들은 다 흩어져 가고 금강저를 든 사람은 장응을 데리고 가면서 말하기를, "너는 수명이 다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지장보살츰부주를 외우고 지장 보살 명호를 불러라, 3일 후에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하였다.

그동안 겪은 얘기를 하고 난후 장응은 갑자기 마음이 슬퍼져 3일 동안 기도하며 공양을 올린다음 다라니를 외우며 절에 사람을 보내 담개 스님의 법명을 적어 가슴에 아로새겼다.

그리고 나서 점심때를 지나 부처님께 예경하고 게송으로 찬탄한 다음 온 집안 식구에게 작별 인사를하였다.

깨끗하게 목욕을 한후에 새 옷을 갈아 입고 잠을 자는듯이 천상으로 갔다.


24.

중국 명주 지방에 평범하게 어부로서 고기잡으며 가정을 꾸려가는 이름모를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가 어느날 바다에 나가 전날 던져 놓은 그물을 걷어 올리는데 그물안에 스님의 모습과 비슷한 등상을 하나 얻었다.

그렇지만 기분이 이상하고 출처도 잘 알지 못하며 두려워 다시 바다속에 다시 버렸더니, 그날 밤 꿈에 어떤 스님이 광명을 놓으면서 나타나더니, 어부에게 이르기를, "네가 어찌 나를 버리는냐?"하기에, 어부가 대답하기를, "어떤 스님이시기에 저에게 그러하십니까?"하였더니,

스님께서 다시 이르시기를, "나는 온갖 중생들을 생사의 고통에서 구제하는 지장 보살인데, 오랜 세월 동안 바다 가운데 있으면서 바다에 사는 여러 중생들을 제도하여 그 절반을 천상에 나게 하였으며, 이제 너희 고기잡는 사람들을 위하여 내 몸이 스스로 그물속으로 들어갔느니라,"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후 어부는 그물을 놓은 그 자리에 돌아가 지장 보살 존상을 다시 건진 다음 그 앞에서 어리석은 자신을 마음속 깊이 참회하며 마음을 크게 내어 사찰을 창건하여 지장 보살님을 모시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였는데 어부의 진실한 마음과 그 인연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귀의하고 예경하였다고 한다.



23~24 지장신행회 무우수님 글


25.

조계형(趙桂馨)은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 사람인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경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부부가 다같이 50살이 되었어도 자손이라고는 아들 존금(存金)뿐
이었다.

존금이 서당에 들어가 글을 배우던 기미년 가을에 이질병이 들어
손 쓸사이도 없이 수일 만에 죽어버렸다.

계형부부는 넋을 잃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약도 변변히 써보지도
못한 채 졸지에 죽어버렸으니 세상에 살 생각이 없어졌다.

너무도 원통하여 부부는 아주 몸져 누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꿈에서 지장보살을 만났다.

지장보살은 그에게 위로하면서 말하였다.

"너무 상심마라. 너의 아들은 명(命)이 다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네가 너무나 애통해하기에 혼신을 잠시 붙들어두었다.

지금 어떤 사람 집에 죽은 사람이 있어 혼신이 그 곳에 바꾸어
있게 하였으니 금년 겨울에 구화산(九華山)으로 가보아라.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꿈을 깬 다음 놀랍기도하고 기쁘기도하고 의심도 났다.

꿈을 꼭 믿을 수는 없어도 평소에 부처님을 공경하던 계향인지라
불보살의 위신력이라면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해 12월 계형부부는 함께 구화산에 참배하였다.

막 법당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막 존금이만한 처음보는 아이가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부부를 보더니 큰소리로 "아버지! 어머니!"하고 부르며
달려와 안겼다.

부부는 이상하여 아이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며 집은 어디냐?"

아이의 집은 그 곳에서 멀지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며
또렷또렷한 말씨가 죽은 존금과 똑같았다.

얼굴과 모양은 달랐어도 분명 그의 혼신은 존금인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계형은 눈물을 흘려가며 반가와하면서 지장보살존상앞에 무수히
절을 올렸다.

꿈에서 들은 바와 같이 지장보살이 신통력으로 자기들 부부를 도와
주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계형부부는 자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를 낳은
부모들이 아이를 빼앗아갔다고 관가에 송사하기에 이르렀다.

그 아이는 관가에서 수령에게 말하기를

"나는 조존금입니다. 나의 혼신이 조씨인이상 조씨 아버지와 살겠습
니다."하고 육신의 본 집으로 돌아가기를 마다하였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도 매한가지였다. 혼신이야 알 바아니고 분명한
자기자식이니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존금은 두 집을 왔다갔다하며 두 집의 자식노릇을 하기로
하였다.

그 후 계형은 슬픔을 잊고 더욱 독경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리고, 부처님법을 찬양하는 글과 불법의 오묘한 이치를 책으로
만들어 널리폈다.

출처: 지장보살영험록(불광출판부)



26.


지장신앙으로 귀먹은 병을 고치다

운철조는 오래 전부터 귀를 앓더니 마침내 귀가 먹어 버렸다.

그를 생각하는 고마운 분이 여러 차례 염불을 권하고 편지까지 써 보냈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 벗이 지장경을 보내면서 열심으로 읽어보라고 권하였더니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0여편을 읽고 나서 깊이 지장보살을 신앙하게 되어 독경과 염불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에 경쇠 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고 또 염불소리도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는 10년 동안 소리를 못 듣고 있다가 소리를 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의심도 들었다.
그날부터 귀가 열려서 평상시 같이 잘 들렸는데 새벽 4시에 경쇠소리와 염불소리는 매일 들려왔다.

어떤 때는 저녁에도 역력하게 경쇠소리와 염불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수십귀의 게송도 들려왔는데 그 소리는 참으로 신기하고 묘하여 평생에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그 후 하루는 게를 먹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염불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다른 소리는 다 들리는데 새벽 염불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자기에게 허물이 있는 것을 뉘우쳤다.

「종신토록 게를 다시 안먹겠습니다.」

라고 맹세하고

「나무지장왕보살」
하고 염불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새벽 염불소리는 또 들려왔다.

그는 너무나 신묘한 기쁨과 놀라움을 억제하지 못하고 돈 2백원(元)을 내어 지장경을 출판하여 널리 법보시하였다.


<지장보살영험설화> 연인사 도창스님


27.


전란에서 기도하고 천안통을 얻다

이것은 신미년 전군(입주군)이 들어왔을 매에 당했던 일이다.


당시 진금선(陳琴禪)은 부역에 동원 되었고 그의 여동생 정(情)도 또한 군을 따라갔고 이웃의 많은 사람들이 징발되어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사이에 여러 집이 불안 초조하여 견딜 수가 없어서 마침내덕이 있어 존경받는 진금선에게 물어왔다.

그러나 그도 알 길이 없었다.

그는 한 가지부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런 때에 지장보살께 기도하면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심으로 기도하면 지장보살의 위신력으로 모두가 무사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들 모여 문을 달고 3일간 정성껏 기도하였다.

그리고 지장보살 명호도 수천, 수 만 번 불러보았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시원한 건 없었다.

진금선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아직 우리의 성의가 부족한 것이다 하고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다들 모여 앉아 지장보살을 묵념하시오. 」
하였다.

그때 진금선도 함께 지장보살을 묵념하고 있는데 향이 반쯤 탔을 때 비몽사몽간에 한 경계가 벌어졌다. 한 산천이 보이고 그 사이를 통한 작은 길이 보이며 자기 여동생이 뭐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있더니 한 스님이 다녀갔는데 앞서 나타났던 산천이 또 보였다.

작은 길을 거슬러 깊은 산으로 올라가니 길가에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고, 그 아래에 송장이 하나 보인다. 깜짝 놀라니 대중은 여전히 염불하고 있었다.

그 후 며칠 안 되어 잡혀갔던 사람들은 모두 돌아왔다.

그러나 진금선의 여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적군에게 잡혀 죽은 것이었다.

기도 중에 나타났던 경계가 분명히 금선의 여동생이 죽은 것을 보여 주었으며 또한 기도공덕으로 스님 모양을 한 지장보살이 나타나시어 모든 사람들을 무사히 돌아오게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장보살 본원경에 이르기를

「사람이 능히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보고 그 이름을 만번만 부르면 마땅히 보살이 큰 위신력의 몸을 나타내어 그 사람의 권속들이 난 곳을 일러 주고 혹은 꿈에 보살이 친히 그 사람을 데리고 가 그의 권속이 태어난 세계를 보여준다. 」
하였으니 과연 진실한 말씀이다.


<지장보살영험설화> 연인사 도창스님


28.

지장경을 읽고 무사히 산액을 넘기다

다음의 글은 상입기(湘入記)에 기록된 것을 요약한 것이다.
경오년 봄에 나의 내자 건강에 이상이 있는 듯하였다.

순산 달이 석 달 가까이 남았는데도 태동이 없는 것이다.
배가 불러 근근히 걸음을 걷는데 걱정이 대단하였다.

그때 생각난 것이 10년 전에 어떤 스님이 하던 말이다.
「당신 나이 36세에는 산액(産厄)이 있으니 특별히 주의하시오.」
하더니만 그것이 들어맞는가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하던 중에 지장보살 본원경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외가 함께 지장보살을 생각하며 지장보살 본원경을 정성껏 독송하고 지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새벽에 순산을 하였는데 태신은 썩었고 그나마도 거꾸로 나왔다.
이러고도 무사했으니 기이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그해 분명한 산액이 있어서 상배(喪配)당할 액난이 있었는데 지장보살의 가피력으로 무사하게 된 것을 믿게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맹세를 새로이 하여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지장보살의 은혜를 보답하기로 하였다.

내가 믿기로는 약으로 못 고치는 병은 지성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독경하며 방생하기를 권한다.

결코 살생은 하지 말 것이다. 산난이 있더라도 반드시 순산할 것이다.
우리 부처님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니 내가 곧 그 증명자요 체험자이다.


<지장보살영험설화>



**연인사 道窓스님



29.

삿된 신의 장난을 물리치고 건강을 회복하다

황장혜주(黃莊慧珠) 거사는 복주(福州)사람이다.

24세 때 여소(茹素)라는 사람을 따라 처음 부처님을 믿게 되었다.

그 무렵 그의 집에는 사신(邪神)을 숭배하여 제사 지냄이 요란하였다. 거사는 이런 폐습을 없애버리자고 분연히 제사 지내는 토신 형상을 고기 키우는 항아리에 던져 버렸다.

그랬더니 얼마 안가서 거사는 점점 몸이 쇠약해졌는데 전신에 종기가 생겨 병상에 눕게 되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거사는 토신의 침범이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때 거사는 생각하기를

「나는 부처님 믿는 사람이다. 사신을 숭배하는 것을 옳다고 놔둘 수 없다. 내가 지금 병들었으니 불보살님이 나를 안구하시면 누가 구해 주겠는가.」

하고 정성을 오로지 하여 마음속에서 일심으로 기도하였다.

(대비관세음보살과 대원지장보살은 항상 인간과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시니 어찌 나를 버리시겠는가. 내가 비록 이대로 죽게 될지라도 지장보살 생각하는 것은 쉬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그리고서 매일 수 만 번씩 성호를 불렀다. 그러기를 일주일이 지나 거사는 꿈을 꾸었다.
꿈에 찬 바닷가에 갔는데 물이 끓어오르고 물빛이 검다.

그리고 수많은 슬픈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런 중에 문득 한 스님이 나타나더니 바다 위를 나는 듯이 다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스님 이르는 곳마다 신음소리가 잠잠해지고 물이 맑아지는 것이었다.
꿈을 깨자 거사는 꿈속에서 본 스님이 지장보살인 것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기뻐서 견딜 수가 없어서 일어나서 보니 아프던 몸이 날듯이 가벼웠다.

어느 사이에 병이 다 나아버린 것이다.

그는 지금 매우 건강하다. 그는 항상 그의 오늘의 행복은 지장보살의 은덕이라고 말한다.


**연인사 道窓스님**
출처:http://cp0433.culturecontent.com


30.

독경 예배로 기형성 관절을 고치다

원경암(袁鏡庵) 거사의 어머니 장씨는 천성이 매우 착하고 밝은 분이었다.
문학에도 능통하고 가사에도 극진하여 이웃의 칭찬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 신앙이 지극했고 특히 관음경과 지장보살 신앙이 극진하다.
그가 오늘날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모으며 건강하고 활기 있게 지내는 동안에 다음과 같은 지장보살의 영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에 육식을 즐겨하지 않았다. 삿된 미신도 일체 물리쳤다.

그리고 염불 일과를 빼놓지 않았는데 어느 해 별안간 걸음걸이가 둔해지고 두 팔이 올라가지 않으며 아파서 몸져눕게 되었다.

효험이 있다는 약은 모두 구하여 썼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생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욱이 병상에 누운 후로는 열심히 지장보살을 생각하였다.

그의 아들 경암은 생활에 시달려 기도할 시간을 낼 수 없었으므로 지장보살 본원경 전 23품의 내용을 대강 기억하고 매품의 제목을 모두 암송하였다.

그리고서 절할 때마다 경제목을 외우고 뜻을 음각하며 절 한 번씩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지장보살 명호를 수백 번씩 불렀다.

그와 같이 몇 달이 지나서 하루는 그의 어머니가 깊은 잠이 들어서 깨어나지를 못했다.
가족들과 이웃들이 모두가 당황하고 의사도 손을 못 쓰고 두었더니 사뭇 오랫만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몸이 아픈 것이 사라지고 걷기 시작하여 지금은 매일 예불 독경기도를 하면서 피로한 줄 모른다.

그가 어떤 업연으로 금생에 중병을 얻었다가 이제 그의 신심과 아들의 효성으로 지장보살의 가피력을 입은 것이 틀림없다.

경암은 지금도 어머니의 건강과 함께 지장보살 찬탄을 잊지 않고 있다.

**연인사 道窓스님**
출처:http://cp0433.culturecontent.com


31.

부모님께 효도하고 존상공덕으로 수명을 늘여 살아난 진건

대주(臺州) 땅에 진건(陳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용모가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사람에게 칭송을 받았다. 부모님을모시면서 지극 정성으로 잘 받들었지만 부모님이 이 현생에서 뿐만 아니라 긴 미래까지 복락을 누리게 해드릴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을 위하여 지장 ·관음 두 존상을 조성하였는데 높이는 3자였다.
지성으로 예배하고 염불하며 부모님의 건강과 복락을 기도하면서 지냈다.
그러더니 건덕(乾德) 4년(서기 572년)갑자기 병이 났다. 금방 의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효자가 죽은 것으로 알고 집안사람들과 이웃이 다 모여 슬피 하였는데 얼마 안가서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그 동안에 있었던 일을 말하였다.

『내가 아파서 신음하는 중에 어느덧 나는 어딘가를 가고 있었습니다. 얼마를 가서 성문과 같은 큰 문을 지나 어떤 큰 궁궐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생각에 여기가 염라대왕이 계신 곳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느덧 내 좌우에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 두 보살이 와 계셨으며 내가 염라대왕 앞에 이르니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나의 단월인데 효성이 지극하오. 효도를 아직 다 못 마치고 왔으니 대왕은 이 사람을 다시 인간으로 내보내주기 바라오. 」

염라대왕은 그 말을 듣고 장부 같은 것을 몇 장 넘기더니

「이 사람의 수명은 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아직 수명이 많이 남았습니다. 」

다시 두 보살이 말하였습니다.

「수명은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니며 또 고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소. 나의 단월에게 선업을 닦게 하겠다는데 어찌 그것이 안 된단 말이오? 」

염라대왕은 책을 다시 몇 장 넘기면서 살펴보더니 말하였다.

「이 사람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존상을 조성한 공덕이 있습니다.
그러니 수명을 40년 더 이어주겠습니다. 」

그러자 염라대왕 곁에 있던 관인이 대왕에 게 말하였다.

「진건에게 40년을 더 연장시켜주면 복록도 그만큼 있어야 할텐데 어렵게 되지 않겠습니까? 」

「염라대왕은 두 가지 말을 할 수 없소. 40년의 명을 이어 주겠소.」
그랬더니 두 보살이 저를 집까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진건의 효성으로 보아 마땅한 일이라 하면서 모두가 기뻐하며 두 보살 존상 앞에 두 손을 모았다.



32.

지장경을 읽고 지장보살 명호를 부른뒤 병이 낫고 복을 얻다


노산(魯山)에 한 소년이 병으로 누워 있었다.

날마다 하늘의 달만 쳐다볼 뿐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였다.

그때 양병원 거사가 그 산에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지장보살의 영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열심히 지장경을 생각하라고 일러 주었다.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지장경을 존중하면 선세에 진 모든 죄업이 소멸된다는 것을 믿게 된 그 아이는 정성껏 지장보살을 생각하였다.

그러기를 10여일 만에 그 아이는 병이 완쾌되어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양병원 거사는 너무나 기뻐서 지장보살 영험록 만권을 출판하여 사방에 돌려주어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믿게 하였다


33.


독경공덕으로 어머니의 명을 연장시킨 이화좌군

좌군(左君) 이화(履和)는 본래 불법을 지극히 믿었던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도 또한 지장경을 독실하게 독송하며 지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약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보시하였다.

약을 만들 때는 반드시 대비주(천수다라니)를 일심으로 지송하며 만들었는데 약의 효험이 매우 좋았다. 이화가 24세 때 그의 어머니가 병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화는 스님을 청하여 지장경을 3일간 정성껏 독송하였다.

그랬더니 그의 어머니는 비몽사몽간에 지장보살을 뵈었다.

위의는 스님의 모양을 나투셨고 광명이 나는 몸과 형용할 수 없는 안온감을 주는 표정은 곧 지장보살임을 알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말을 하였다.

「너의 수명은 벌써 다 되었다. 그러나 네가 정성껏 나를 생각하고 또한 착한 일을 많이 하였으니 수명을 1기 (12년) 만이라도 더 늘려주도록 하마. 」
하였다.

꿈을 깨면서부터 어머니의 병은 차차 차도가 있어 얼마안가 완쾌하였고 그 뒤 36년이나 더 세수를 누렸다.



34.

종이에 쓸 지장보살 명호에 예배하고 순산한 양부인


양벽원(梁璧垣) 거사의 장녀는 장(張)씨 집으로 시집갔다.

하남(河南)땅으로 광산하는 남편을 따라 갔는데 그때는 마침 임신하여 해산이 가까웠다.
그런데 그 곳에는 해산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양벽원거사는 딸이 걱정이 되어 종이에
「나무 지장왕보살」
이라고 써서 딸에게 보내면서,

「매일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지장보살에게 예배하고 기도하라. 그러면 반드시 순산할 것이다. 」
하였다.

그 딸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벽에 지장왕보살 명호를 써 붙이고 그 앞에 향을 사르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과연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시원스럽게 순산하였다. 아들이었다.

2년을 지나 또 임신하였는데 그 때도 전과 같이 하여 아무 고통 없이 딸을 낳았다.
아기의 상호가 단정하고 총명하였으며 매우 착했다.


<지장보살영험록>


35.

기도한 물을 마시고 위장병을 고치다

비구니 관원(觀願) 스님은 원래 복건성(福建省)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광주(廣州)에서 국난으로 순국한 후 출가하여 주로 계율을 배웠다.

그 후 출가 수행하는 중에 평소부터 약했던 몸이었으나 어느덧 위장병이 생겨, 마침내 미음으로 연명하기를 반년에 이르렀다.

온갖 세간의 약이나 치료법을 써 보았지만 도무지 효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지장보살 성덕대관(聖德大觀)」
이라는 책에 그려진 지장보살 존상을 보고 크게 환희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지장보살전에 향과 꽃과 그 밖의 공양구를 힘껏 장만하여 공양하면서 예배 기도하기를 7일이 되었다.

기도하는 동안은 오직 묵언하고 참회 발원을 쉬지 않았다.

7일이 지난 후 맑은 물 한 그릇을 지장보살 존상 앞에 올려두고 하루 밤낮 동안 지장보살을 일심으로 생각한 다음 그 물을 마셨다.

그 후부터 위장병이 완쾌되고 건강하여 오늘날 지장보살 성덕을 크게 건양하고 있다.


36.

지장보살본원경의 신묘한 감응

중국 수[隨]나라 때 사람인 조문약은 죽은지 7일이 되었는데 가족들이 염하여 관에 넣으려는 순간 문약의 한쪽 발이 갑자기 오므려졌다.

이에 가족들이 두려운 마음에 문약을 넣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차에 문약이 살아서 일어나므로 이를 본 모두가 기뻐하여 그 까닭을 물었더니,

문약이 말하기를 "죽음에 이르러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염라대왕 앞에 인도되었는데 왕이 묻기를, "너는 살아 생전에 무슨 복을 지었는가? 하여, 문약이 말하기를, "지장 본원경을 받아지녔습니다."하니, 염라왕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장하십니다. 그 복이 제일입니다. 비록 당신이 복과 선행을 지었기는 하나 오신 김에 지옥 세계의 죄업을 지은 사람들이 그 죄를 받는 곳을 보여드리겠습니다."하였다.

사람을 시켜 문약을 안내하게 하여 북쪽으로 열 걸음을 가니,

하나의 담장이 있었는데 작은 홈이 파져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안쪽 담장 벽에 사람이 있다가 손으로 문약의 머리를 잡아서 끌어내었는데 매우 고통스러웠다.

담장안에는 가마솥에서 끊는 물과 여러 고통을 주는 도구들에 의해 죄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이루 말로 다할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돼지와 양 그리고 물고기와 거위. 오리등 수많은 짐승들이 다투어 문약에게 대들어 목숨을 해하려 들어,

문약이 큰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의 몸을 먹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덤벼드는가?"하니,

그 짐승들이 소리 높혀 "너는 모월 모일 모시 모처에서 나의 머리와 다리를 먹었고 여러 갈래로 찢어 남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무엇 때문에 숨기는가?"하니,

문약이 가만이 생각해보니,

짐승들이 하는 소리가 사실이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모든 죄를 깊이 참회하며 여러 짐승들에게 살려주기만 빌었다.

하지만 문약은 평소 복을 닦고 착한 과보를 갖추었으므로 짐승들에게 용서를 받고 다시 염라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한그릇의 물을 문약에게 먹게 하고 다섯 개의 못으로 머리와 손 그리고 발에다 박은 후 놓아주었다.

저승에서 돌아와 죽음에서 깨어나 이 일을 사람들에게 자세히 말할때도 머리와 손 발이 아팠는데,

후일 오랜 선행을 한 후에야 통증이 점차로 사라졌다.

문약은 이후 더욱 지장본원경을 독송하고 잠시도 쉬지 아니하였는데 주변 여러 권속과 스님들께 이런 사실과 지장경을 받아 지니도록 권하였다.

후에 볼일이 있어 한 역관의 대청위에서 잠시동안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푸른 옷을 입은 한 여인이 급하게 달려와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문약이 놀라 깨어나 곧 역장을 불러 묻기를, "혹시 그대가 나를 위해 살생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까?"하니,

역장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문약공을 위하여 작은 양 한마리를 죽이려 했습니다."하여

"그 양이 무슨 빛깔이었습니까?하니,

"푸른 빛깔의 양이었습니다."하였다.

문약이 말하기를, "역장은 그 양을 바로 놓아주십시요. 그 양의 값은 제가 드리겠습니다."하였다.[중략]

참으로 지장경의 은밀한 감응은 알수 없는 것이다.



37. 지장보살본원경 독송으로 목숨을 연장하다.


이화와 그의 어머니는 본래 신심이 깊고 특히 평송에 지장본원경을 깊이 믿으며 평소에 독송하였다.

평소 이웃을 향해 약을 만들어 보시했는데 반드시 심묘장구대다라니를 일심으로 암송하며 정성껏 만들었는데 먹는 사람마다 매우 영험이 있었다.

이화가 24살때 홀연 어머니가 병이 생겨 혼수 상태에 빠져 가까운 사찰에 모셔와 지장본원경을 3일간 간절한 정성으로 독송했는데 혼수 상태에 빠진 어머니 앞에 지장 보살님이 나타나셨다.

모습은 스님이었으나 모습에서 나타나는 광명과 어머니에게 비쳐주는 지극한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지장 보살님이라 알게 되었다.

지장 보살님은 어머니에게, "너의 수명은 다하였다. 그러나 네가 평소에 나를 생각하고 선업을 많이 지었으므로 수명을 12년을 더 연장하도록 하겠다" 하시었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후 어머니의 병은 점차로 차도가 있더니, 36년이나 더 사셨다고 한다.


출처: 지장신행회(cafe.daum.net/jjnd) 무우수님 글

38. 지장기도하고 이가 새로 난 거사

송나라 천복사(千福寺) 동북쪽 산모퉁이에 지장보살 존상이 한 분 계셨다.
높이는1장 6자이니 크기로 말하면 퍽 큰 동상이다.
그런데 어느 때 누가 조성하였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직 그 신령스런 영험에 대하여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지장보살에 예참한 사람은 반드시 감응을 입는다고 전해왔으며 실지로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예배 공양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만큼 그 영특한 영험도 분명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한 거사의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인데 수많은 영험 중 너무나 기이한 것이어서 널리 소문난 이야기다. 그 절 밑에 한 거사가 있었다.

나이가 37세가 되었는데도 웬일인지 그때까지 이빨이 한 개도 나지 않았다. 물론 온갖 약이나 방법을 다해 본 것은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도 잇몸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약이나 방법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단념하고 천복사지장보살께 기도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는 대단한 결심을 하고 지장보살 앞에 엎드렸다.
7일 7야 음식을 먹지 많는 단식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를 7일이 다 되어 날이 밝으면서 기도를 마치려 하는데 갑자기 새벽녘이 되어 꿈을 꾸게 되었다. 거사는 꿈속에서 지장보살을 만났다. 지장보살은 아무 말 없이 다만 자비하신 미소를 머금으시고 거사의 이마를 한참동안 만져 주셨는데 얼마 있다가 꿈에서 깨어나니 몸이 나는 듯이 가볍고 마음이 상쾌하였다.
어쩌다가 손을 입에 대어보니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완전하게 이빨이 나 있는 것이다. 너무나 놀라웠다.
거사는 정신없이 손으로 이빨을 만져왔다.
그리고 하나 둘 세어 보았다.
아래에 열아홉, 위에 열아홉 해 38개가 잠시 조는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이 거사가 이빨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지장보살님의 영험에 못지않게 지방 사람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이제 이빨이 났다는 사실은 또 한 번 천지가 진동하리 만큼 놀라운 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지장보살 앞에 구름처럼 모여들고 지장보살 신앙은 더욱 널리 퍼져갔다.

<지장보살영험설화>


**연인사 道窓스님**
출처:http://cp0433.culturecont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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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지장신앙과 그 이익


1. 지장신앙

1)

지장기도 / 이법산 스님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정각원장

지장보살(地藏菩薩) 기도는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복덕증장(福德增長)하는 참으로 현실적 수행정진이다. 지장보살을 평소 많이 부르고 마음에 새기면 반드시 어두운 마음의 죄업이 사라지고 밝고 훈훈한 복과 덕이 얼굴을 맑고 밝게 해주어 보는 사람 만나는 모든 이가 반가워하고 기뻐하게 된다. 삶이 고통스럽고 머리가 영리하지 못한 것도 모두가 다 나쁜 습관인 업장 때문이다.

업장을 녹여버리면 머리가 맑아서 공부도 잘하고 생각이 분명하여 일에 판단이 올바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거나 실수가 없다. 업장이 두터우면 생각이 멍청하고 머리가 둔탁하여 하는 일마다 실수가 연발하여 괴로운 마음으로 생활이 괴로워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겁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지장기도를 하고,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도 지장기도를 하여 업장을 녹여버리면 마음과 몸이 가뿐하게 되어 삶이 참되고 행복해질 것이다.

지장보살은 왼손에 마니주(摩尼珠)를 갖고 오른손에 육환장(六環杖)을 들고 있는 자비로운 스님의 모습이다. 마니주는 여의주(如意珠)라고도 하며 지혜를 상징한다. 이 여의주는 누구에게나 유익함을 주고 무엇이나 염원하는 일을 성취 할 수 있다는 뜻이며, 마니주는 어떤 상대이든 접촉함에 따라 변화하며 그 상대의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해 주는 보배 구슬이라는 의미이다.

육환장은 고리가 여섯개 달린 지팡이다. 이 지팡이는 지혜의 칼(慧劍)이라고 하며 육적(六賊)을 다스리며 육도행(六度行)을 실천한다는 상징이다. 육적이란 눈(眼)·귀(耳)·혀(舌)·몸(身)·의(意) 등 육근(六根)이 상대하는 형색(色)·소리(聲)·향기(香)·맛(味)·촉감(觸)·법(法) 등 육경(六境)을 가르키며, 이 여섯 가지 경계를 통하여 마음을 어지럽히고 유혹하여 본래 깨끗한 마음을 어둡게 물들여 어리석은 죄업을 짖게 되고, 그 죄업으로 고통스런 과보를 받게 되기 때문에 이 육경인 육적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육도행은 대승보살의 6가지 바라밀행이니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말하며 이 보살의 실천행을 통하여 모든 생명들과 함께 성불의 길로 나아감을 뜻한다. 지장보살님이 가진 마니주는 본체적(本體的) 지혜를 뜻하며, 육환장은 묘용적(妙用的) 실천을 상징한다. 지장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이 체용(體用)을 채득하여 업장이 소멸하고 복덕이 증장될 것이다.

지장보살님이 모셔진 지장전(地藏殿) 법당은 명부전(冥府殿) 혹은 덕왕전(德王殿)이라고도 한다. 지장전에는 저승에 가서 심판받을 명부시왕(冥府十王)을 모셨기 때문이며, 지장전에 기도하면 복덕을 증장시킨다는 의미에서 덕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 기도는 다른 기도와 같이 천수경을 하고 공양을 올리고 지장보살 정근(精勤)을 하고 축원하는 등의 절차는 거의 같다. 갖추어 하자면 지장예참(地藏禮懺)을 하며 160번의 절을 한다. 「나무남방화주(南無南方化主)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地藏菩薩)」하고는 「지장보살」명호를 입으로 부르고 마음으로 참구(參究)한다. 지장보살을 첨앙(瞻仰)하거나 마음속에 새기며 잡념이 들거나 졸음이 와서 잊으면 안되게 마음과 입이 하나가 되어 정성껏 「지장보살」을 백번·천번·만번 시간과 힘자라는 대로 찾아야 한다.
정근(精勤)이 끝날때는 지장보살 멸정업진언(滅淨業眞言)-옴 바라 마니 다니 사바하-를 3·7편 한다.

다음은 게송(偈頌)을 염송한다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神力) 항하사겁설난진(恒河沙劫說難盡)
견문첨례일염간(見聞瞻禮一念間) 이익인천무량사(利益人天無量事)
고아일심귀명정례(故我一心歸命頂禮)

지장보살의 위의와 신통력은, 항하사겁에도 다 말할 수 없네,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는 한 생각에, 세상의 모든 일을 이익하게 하시네.
그러므로 나는 한 마음 목숨바쳐 예배합니다.

그리고 ‘원멸사생육도법계, 유정다겁생래제업장, 아금참회계수례, 원제제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하며 세 번 절하고,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하고 다음은 축원(祝願)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기도는 생축(生祝) 즉 살아있는 사람 축원부터 먼저하고, 돌아가신 부모 친척과 유주무주(有主無主)의 외로운 영가(靈駕)들의 축원을 다음에 하지만, 지장기도 축원은 영가 축원을 먼저하고 생축은 다음에 하는 것이 상례이다.

또 지장기도를 3일, 7일, 21일, 49일, 100일 등으로 하고는 회향할 때 대부분 영가 천도시식을 한다. 이 지장기도는 산사람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여 보이지 않는 느낌의 세계인 명부(冥府)를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영혼과 이세상의 모든 영혼이 극락왕생 할 때,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가 편안하고 즐거울 때 현실의 세계도 당연히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는 곧 마음의 세계이다. 마음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마음의 본체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모든 영혼의 업장을 내가 지장보살님께 기도하여 소멸시켜 그들이 편안할 때 나의 마음은 자연히 고요하여 지혜로워지고 모든 망상과 괴로움이 사라진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지장기도를 많이 하면 병고와 근심이 사라진다고 한 의미가 바로 이러한 이치에서이다





2)

지장보살 신앙에 대하여 - 한길로(한길정진원 원장)



불교의 신앙에는 자력(自力)면과 타력(他力)면이 있다.



자력적인 면은, 참나[眞我]가 곧 부처여서, 모든 부처님과 참나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참나에 충실하면 그게 곧 불교생활인데 무슨 다른부처를 신앙한다는 것이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처와 둘이 아닌 참나는 절대의 존재여서 상대적인 모든 것을 초월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며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그 모든 것이 없다는 것도 없는 자리인 것이다.



이러한 자리는 이러한 경지(境地)에 도달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자리여서 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중생의 의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세계인 현상계(現象界)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에게는 아무리 절대의 나[絶對我]니, 참나[眞我]니, 자성불(自性佛)이니 해봐야 헛바퀴 도는 이야기에 그칠 뿐이다.



더러 견성(見性)·오도(悟道)했다는 사람이 있어서 자력을 주장하고 타력을 비하하는 것을 보지만, 이 사람이 남과 상대되는 나를 보는 사람이라면, 다시 말하여 상대적인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결국 그의 주장이 제 그의 몸뚱이를 참나로 알고, 제 그 몸뚱이를 근거로한 욕구를 따르면서 이 현상적인 나가 그대로 부처요, 이 현상적인 욕구가 그대로 평상심(平常心)인 도(道)라고 하는 것밖에 안된다.



이것이 자력을 주장하는 중생이 빠지기 쉬운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참으로 자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상대의 차원인 현상계에 머물고 있는 중생에게는 타력 신앙만이 제격에 맞는 신앙이요,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는 길인 것이다.



현상계는 분명한 상대의 세계여서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세계가 바로 이 인연으로 화합된 현상세계여서 이 상대의 현상세계에는 중생이 있으므로 부처가 있고,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으며 어둠이 있으므로 밝음이 있고 괴로움이 있으므로 분명 구원도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 말하는 신앙은 절대의 세계의 절대불(絶對佛:法身佛)이 일체를 초월한신 경지에서 이 중생을 위한 인연으로 상대의 차원인 중생계에 현상신(現像身:중생들이 대할 수 있는 몸)으로 나타나셔서 중생을 교화 구제하시는 타력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다.



지장보살은 어떠한 부처님인가?



지장(地藏)이라는 명호부터 알아보자.



지(地)는 대지(大地)를, 장(藏)은 함장(含藏)을 의미한다. 지장보살은 대지처럼 모든 중생의 귀의처(歸依處)가 되며 중생을 위한 자비와 지혜와 화도(化導)와 육성(育成)의 힘을 완전하고 원만하게 갖춰서 지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부처님을 남방화주(南方化主)라고도 하는데, 남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남염부제(南閻浮提,南贍部洲라고도 함)이고 이 남염부제의 교화를 전담한 주인공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다.



지장보살에 대한 말씀은 지장경(地藏經:地藏菩薩本願經의 약칭)에 자세히 말씀되었는데, 이 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도리천( 利天)에 태어나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도리천에 올라가면서 법회를 열으셨고, 그 때 거기에는 시방의 모든 세계에서 한량 없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오셔서 함께 동참하셨다고 하였다.



이렇게 모이신 불·보살 중에 지장보살은 과거 한량 없는 이승지겁 전에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한 중생이라도 제도되지 못한 자가 았으면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끊임 없이 지금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행을 계속한다는 것이며, 이 보살이 특히 이 남염부제에 인연이 깊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에게 특별한 부촉(付囑)을 하셨는데, 그것이 석가모니불이 열반하신 뒤 미륵불이 출현하실 때까지 그 동안의 남염부제에서의 중생구제를 해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부처님 중에서 가장 수승한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대원본존(大願本尊)이시고 남염부제의 중생교화를 부처님의 간절하신 부촉으로 전담(專 )하셨기 때문에 우리 남염부제에 사는 중생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부처님보다도 가깝고 인연 깊으신 부처님이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 신앙과 지장보살 신앙이 성행하고 있는데 대체로 관세음보살님은 현실생활에 어려움을 구제하여 주신다고 해서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이라 하고, 지장보살님은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여 주신다고 해서 고혼천도 지장보살이라고 한다.



그래서 관음신앙은 현세 이익을 위할 제 필요한 신앙이고, 지장신앙은 저승에 가는 이한테만 필요한 신앙으로 알고, 49재나 기타 영혼 천도 할 때에만 지장보살을 찾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장경에 보면 지장보살의 형상을 우러르고 예배하고 또 그명호를 부르면 그 공덕으로 하늘에서의 그 천복(天福)이 다한 사람도 다시 그 복이 연장된다는 말씀도 있고, 그리고 어떠한 중생이고간에 중병으로 죽어갈 때 그 부모나 형제 등 권속들이 그 환자를 위하여, 그동안 그 환자 본인이 탐착하여 모은 재산으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불사를 하면 그 공덕으로 병이 나아 수명이 연장되고, 만일 그 업보의 명이 다하였고, 또 무거운 죄업이 있어서 악도에 떨어지게 된 자라도 그 죄업장이 소멸되어서 다시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고도 하셨다.



그리고 이미 죽은 부모나 친척들이 어디에 태어났는지 혹은 악도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지장보살님께 기도하면 이미 악도에 떨어진 자면 구출되어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고, 또 능히 37일 동안만 지성껏 기도하면 지장보살님의 분화신(分化身)이 나타나서 죽은 이의 현재의 상황을 알리어 직접 보게도 한다는 말씀도 있다.



또 중생을 구제하고 싶다는 보살의 서원을 세우고 지장보살님께 일심으로 기원하면 그러한 큰 원도 빨리 성취된다는 것이며, 또 업장 지중한 중생이 대승경전을 배워서 익히려하나 그 업장 때문에 자꾸 잊어버리는 경우엔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님께 업장소멸을 발원하면서 살생과 간음 등 범계(犯戒)함이 없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다스리고, 지장보살님께 바쳤던 청수(淸水:다깃물)를 마시면서 삼칠일 이상 정진을 계속하면 지장보살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정수리에 물을 부어주시는데, 이런 꿈을 깨고나면 곧 총명해진다는 것도 말씀하셨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학생들의 진학문제가 아주 큰 문제여서 학생 본인은 물론, 그 부모형제까지도 따라서 지독한 열병을 앓는데, 그래서 이 병으로 더러는 재산과 명예와 지위를 날리고 심하면 목숨까지도 날리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무리해서 돈이나 권력 따위에 의한 부정한 수단을 꾀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본인의 생각부터 바르게하여 앞으로 겨레와 나라를 위한 올바른 일꾼이 될 것을 서원하고 그 순수하고 갸륵한 마음으로 '업장을 소멸하여 주옵소서...''대중을 위하여 봉사하는 옳은 일꾼이 되어지이다...'하고 지장보살님께 37일 이상 기도 정진을 하였으면...하고 권하고 싶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빈궁·병약·집안의 불안정·권속의 분산·꿈자리 사나움 따위도 없어지며 또 부득이해서 험난한 곳에 가더라도 미리 지장보살 명호를 만 번 이상 부르면 지나는 곳마다 그곳의 선신(善神)들이 보호해서 안전하게 된다는 말씀도 하셨다.



한데, 지장경에 정성을 드리는 방법으로 자주 말씀된 것이 지장보살님의 형상과 명호에 관한 것이다.



지장보살님의 형상을 그림으로 혹은 조성해서 모시라는 말씀도 있고, 지장보살의 형상에 우러러 예배·공양하며,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라고 하신 것인데 여기에 내용적인 중요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대체로 겉모양은, 그것의 내용이 겉에 표출된 것이다. 예를 들면 사나운 인상은 사나운 마음이 표출된 것이고, 선량한 얼굴은 착한 마음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교묘한 말과 얄팍한 아첨으로 위장을 잘하는 자라 하더라도 정당한 이의 밝은 눈 앞에는 그 간교(奸巧)한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중생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 중생의 내용인 용렬함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고 부처님의 원만구족하신 상호는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와 원만하신 덕성(德性)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저 원만하신 만덕존상을 우러러 예경할 때, 부처님의 저러한 상호의 이면에는 원만구족하신 광명·생명·자비·지혜의 본원주체(本元主體)가 있어서 거기서 천지만물 일체중생을 포용하여 기르는 신령한 생명의 빛과 인자한 덕화의 기운이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걸 생생하게 느끼는 감동으로 벅차서, 다른 어떠한 의혹이나 불신 따위 중생의 업장운(業障雲)이 말끔히 사라져버린 상태로 되는 것이 기도하는 자에게 갖춰져야할 일심(一心)인 것이다. 이러한 일심으로 불상을 우러르면서 오직 감사와 감동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옳은 염불이요, 정진이다.



만일 이러한 감동이 없다면 아무리 불상을 우러러 예배하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더라도 그건 마치 글을 읽으면서 그 뜻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수박 겉핥기의 염불이 되어서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의할 점은 모든 부처님은 결국 한 법신(法身)의 작용이므로 자타의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이 앞장서면 지장보살과 기타 모든 불·보살이 그 뒷바리지를 하시고 지장보살이 선두에 서면 관세음보살 등이 그 뒷받침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걸 모르면 관세음보살을 항상 모시던 사람이 지장보살 기도를 하게 되면 관세음보살이 서운해 하실 것 같고, 지장보살만 의지해온 사람이 관세음보살을 찾으면 지장보살이 덜 좋아하실 것 같은 유치한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 그때 그때의 경우에 순응해서 어떠한 부처님께 기도를 드려도 그 부처님을 초점으로 해서 모든 부처님의 힘이 집중투사(集中投射)되어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2.


지장보살을 신앙하는 이익

<7종 이익> 지장보살본원경 제13품 촉루인천품

1. 속히 성현의 땅에 오른다.(速超聖地)
2. 악업이 소멸된다.(惡業消滅)
3. 모든 부처님이 지켜준다.(諸佛護臨)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菩提不退)
5. 본원력이 더욱 더 커진다.(增長本力)
6. 숙명을 통달한다.(宿命皆通)
7.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畢竟成佛)



<10종 이익> 지장보살본원경 제11품 지신호법품

1. 농사짓는 땅에 풍년이 든다.(土地豊穰)
2. 집안이 안전하고 편안하다.(家宅永安)
3. 조상들이 천상에 태어난다.(先亡生天)
4. 현세의 가족들이 장수한다.(現存益壽)
5.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진다.(所求遂意)
6.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無水火災)
7. 재물의 헛된 손실이 없다.(虛耗避除)
8. 나쁜 꿈을 꾸지 않게 된다.(杜絶惡夢)
9. 출입할 때 신장들이 보호한다.(出入神護)
10. 성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多遇聖人)



<28종 이익> 지장보살본원경 제13품 촉루인천품

1. 천인과 용이 항상 지켜준다.(天龍護念)
2. 선한 과보가 나날이 더해진다.(善果日增)
3. 성인들과 좋은 인연을 맺는다.(集聖上因)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菩提不退)
5.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진다.(衣食豊足)
6. 질병이 침범하지 않는다.(疾疫不臨)
7.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離水火災)
8. 도둑으로 인한 재앙이 없다.(無盜賊厄)
9.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人見欽敬)
10. 귀신들이 돕고 지켜준다.(鬼神助持)
11. 여자는 다음 생에 남자가 된다.(女轉男身)
12. 여자라면 좋은 가문에 태어난다.(爲王臣女)
13. 용모가 단정하고 빼어나다.(端正相好)
14. 여러 생 동안 천상에 태어난다.(多生天上)
15. 때로는 제왕이 되기도 한다.(或爲帝王)
16. 육신통 중 숙명통을 성취한다.(宿智命通)
17. 구하는 바를 다 이루게 된다.(有求皆從)
18. 가족 친척들이 모두 화목하다.(眷屬歡樂)
19. 뜻밖의 재앙이 모두 소멸된다.(諸橫消滅)
20. 나쁜 업의 길이 영원히 없어진다.(業道永除)
21. 가는 곳마다 모두 통한다.(去處盡通)
22. 밤에는 꿈이 안락하다.(夜夢安樂)
23. 조상들이 괴로움을 벗어난다.(先亡離苦)
24. 다시 태어날 때 복을 타고난다.(宿福受生)
25. 모든 성현들이 찬탄한다.(諸聖讚嘆)
26. 총명하고 근기가 빼어나게 된다.(聰明利根)
27 자비심이 더욱 풍부해진다.(饒慈愍心)
28.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畢竟成佛)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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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명자(가명)씨는 타고난 미모에 지성미마저 넘쳐 흘렀는데,
성격이 좀 까다로워 결벽증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결혼하기 2년 전쯤 한 청년의 구혼을 거절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입맞춤하고 포옹하는 등의 사랑의 행위가
매우 추하게 여겨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 청년에게 거의 겁탈당할 뻔하다가 가까스로
그 자리를 벗어났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씨의 부모가
서둘러 지금의 남편과 중매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그 청년은 어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해왔다.

"당신 남편에게 과거가 있는 여자라고 말하겠다.
어디 잘 사나 두고보자."

이런 상황에서 어찌 마음이 편했겠는가? 김씨는 그 때문에
남편과의 잠자리마저 여의치 못해 거의 의무로 여기게 되었고,
결혼후 1년쯤 지났을 때는 신경쇠약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체중이 겨우 40킬로그램 미만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병원에 다니던 김씨는 그 사이에 임신중절을 한 번 했다.
남편과 시부모가 극진히 간호하여 건강이 다소 회복되기는 했지만
왠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不貞부정의 상징처럼 여겨져 그 후에도
임신하면 곧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중절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두 차례나 했다.

결혼 생활이 4년째 접어들면서 차차 부부생활에도 익숙해진
김씨는 아기를 하나 낳았다. 그녀는 이제야말로 마음의 병도
없어지고 몸도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6년째가 되자, 밤에 악몽을 꾸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자 몸에 아프지
않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러다가 "아가야, 용서해다오" 읽고는 묘각 스님에게 연락을
드린 후 찾아와 의논한 끝에 시댁과 남편 모르게 수자령을
천도하기로 했다.

3개월에 걸쳐 방생을 세 번했고, 처음 방생한 날로부터
100일동안 지장보살염불을 했다. 세 아이를 지워버린 사실을
지극히 참회하면서 하루에 1만번씩 지장보살을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째 접어들자 악몽이 차츰 사라지고
입맛도 생겨 마침내 건강도 회복되었다. 그러자 기피하던
잠자리도 즐겁게 변해 남편과의 금실도 좋아졌다.

그 당시 김씨는 임신 8개월이었다고 한다.

..............................................................................
2.


묘각 스님은 어느 촌로로부터 한 번은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를 받으셨다고 한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아가야, 용서해다오.'를 읽고 편지를
올립니다. 저는 나이 69세, 안 사람의 나이는 60세로 농촌에서
어렵게 지내는 농군입니다. 자식이 열이나 되는데, 85년
4월초에 큰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람을 치어
발을 부러뜨려,없는 살림에 논밭을 팔아 합의를 보고 수습을 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 해 가을, 안사람의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은 정신이상이 고질이 되어 혼자 지껄이고 웃기도하며 청승맞게
울기도 했다고 한다.

이웃사람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는
남편이 이웃집 아낙네와 통정을 했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다니기도 했다.
처음엔 미친 소리로 치부하던 동네사람들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자
촌로는 딱 죽고 싶은심정이었단다. 그래서 잡신이 씌인게 아닌가해서
푸닥거리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아무 효험도 없었다고한다.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돌이켜보니, 20여년 전에 자식은 많고 살림은 어렵고해서 6개월짜리
태아를 낙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2개월 된 아이를
남모르게 지워버린 일도 있습니다. 스님께서 쓰신 책을 읽고 혹시나
그 아이들의 靈障영장인가해서 부끄럼을 무릅쓰고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올바른 하교를 부탁드립니다."

스님은 편지를 받고 전화를 걸어 그 촌로를 상경하게하여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촌로는 집안이 너무 어려워 서울오는 차비까지 이웃에서 간신히
빌려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튿날 스님이 두 아이의 불명을 짓고 천도할 준비를 하자, 촌로는
아무 준비없이 왔으니 일단 그냥 내려가겠다고 자리를 뜨려했다.

촌로의 사정을 이미 알고 계셨던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제자인 제가 돈이 없다고 천도를 안 해드리겠습니까? 딱한
일을 보고 외면한다면 어찌 불제자라 하겠습니까? 아무 걱정마시고
천도나 정성껏 하십시오."

천도재가 끝나자 스님은 촌로에게 매일 지장경을 독송하고 츰부
다라니를 외게했다. 반 년쯤 후 촌로가 찾아와 집사람의 이상한
증세가 사라지고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하고는 그 동안 빚을
진 것 같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하면서 주섬주섬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놓는데, 어느덧 그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괴어있었다.

스님 역시 눈물을 훔치며 공양주보살에게 촌로가 가져온 곡식을
깨끗이 씻어 오게해서 불단에 올리고는 함께 예불을 올리셨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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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91년 당시 23세의 정이(가명)라는 여인이 편지를 보내
스님에게 상담을 청했다.

그 결과 그녀는 무려 30명의 수자령을 천도했다.

아니 30명이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정이는 가난한 어촌에 태어나 중학교만 마치고 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보려고 야학에도 열심히 다니는 소녀였다. 그다지
미인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천성이 밝고 붙임성이 좋아 공장의
남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어느해 여름 야유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평소 잘알고 지내던
주임과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정이는 그날 술을 처음 먹어보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한다. 정신이 깼을 때 정이는 이미
그 남자와 넘지않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취방으로 돌아와 그 다음날로 공장을 옮겼다.

그러나 그 남자와의 인연은 질겨 결국 동거까지 하게되었고, 그 과정에
두차례 중절수술을 했다.

남자는 시간이 흐르자 정이에게 싫증을 느꼈는지 술과 노름으로
조금있던 저축을 다 까먹고는 사라져 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에 건강마저 나빠진 정이는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생활비도
못대고 밥만 축낸다는 핀잔만 들었다. 그래도 고향이라고 그 곳에서
몸을 추스린 정이는 다시 도시로나와 공장을 전전했지만 결국
호스티스 생활로 접어들게 되었다.

돈은 잘 벌게 되었다. 집에 송금도 많이해서 효녀라는 말을 듣고
대접도 극진히 받았다. 그러나 그게 과연 행복이었을까?

정이는 얼마가지않아 이유없이 아프고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때문에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있기 일쑤였다.

악몽은 늘 이랬다. 갓난아이를 안아주거나 업어주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꼭 악귀처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거나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이
깼다가 다시 들라치면 이젠 그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날이면 꿈 속에서 아이들이 때렸던 곳이 너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정이는 여러 병원과 한의원을 찾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래서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묘각 스님과 인연이 되어 천도재를 올린 정이는 집으로 돌아가
츰부다라니와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를 매일 한 편씩 100일동안 사경을 했다.

사경을 끝내던 날 밤, 정이는 꿈에 구름 속에 계신 부처님을 보고
환희심을 느꼈다.

그 날부터 기분이 몹시 좋아진 정이는 거짓말처럼 몸이 좋아졌고,
이에 불보살이 시방세계에 상주하심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지금 정이는 착실한 남편을 만나 아들 하나를 낳고 어느 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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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독교신자인 오부인은 어느날 묘각 스님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다.

"스님, 일전에 친구집에서 스님이 쓰신 "아가야, 용서해다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요즘 身病신병으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닌데,
아무래도 중절한 아이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불교를 믿지않아도 아이의 영혼을 천도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대자대비하신 불보살님께서 종교를 가려가며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어찌되었든 같은
종교인의 입장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시고 한 번 절에 들르십시오."

며칠 후 찾아온 오부인은 친정이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시집을 간
후 시댁 식구들에게 모두 기독교를 전도한 그야말로 모범적인 교인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님은 그런 오부인이 왜 중절 수술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더란다.

그러자 오부인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 땐 너무 살기가 어려워
그만 큰 죄를 짓고 말았다며 가슴아파했다. 오부인은 한 번의 유산과
두 번의 중절 수술을 했는데, 특히 허리와 어깨가 몹시 아팠다고 한다.

처음엔 오부인도 중년이 넘으면 생기는 그저 그런 병이라고 치부했는데,
좀처럼 통증이 가시지않아 좋다는 병원을 여러곳 전전했지만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몸이 아파 누워있는 나날이 많자 가정살림도 점점 엉망이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잘되던 남편의 사업마저 기울어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게 되었다.

오부인은 묘각스님과 상담한 후 절에서 천도재를 지낸 뒤 100일을
작정하고 집에서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자아게를 하루 한 편씩 사경했다고한다.

그리고 그 사경은 나중에 부처님 앞에 모셔졌다.

100일이 거의 가까워질 무렵 오부인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질이던 허리와 어깨의 통증이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남편의 사업이 다시 잘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져서
살만해진 오부인은 불교쪽으로 기운 생각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속된 말로 불교가 최고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종교가 다르다해도 불보살님들은 고통받는 중생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1~4 출처: 알기쉬운 지장보살 지장기도 이야기(진 현종저, 도서출판 은행나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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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태아 영가로 인한 흉사는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에서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이 태아 영가를 중요시 하는 이유
역시 태아 영가로 인한 많은 흉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한 번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7번의 윤회전생을 한 후
겨우 인간의 몸을 받는다고한다.

인간의 몸을 받으려는 순간 본의 아니게 태중에서 낙태된 태아령
은 원망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태아 영혼은 이름도 없고 장례식
도 없이 단지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예전에는 강가에 띄어졌다.

때문에 태아의 영혼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고 있는 삼도천
(三途川)을 건너 불계(佛界)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부모의
공양 없이는 갈 수 없으므로 공양해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
이 더욱 쌓여 간다.

13년, 17년, 23년…. 공양을 올리지 않거나 천도재를 지내지 않으면
세월이 지나도 태아 영가는 중음신으로 떠돌게 된다.

태아영혼을 방치하면 그 때부터 태아령은 가족을 괴롭힌다.
태아령은 제일 먼저 어머니 몸을 악화시키고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가 난 태아령은 스스로 부모를 불러, 하루라도 빨리 삼도천을
부모와 함께 건너야 한다는 생각에, 가정에 흉사를 안겨주기도
한다.


통계에 의하면 태아가 낙태된 지 3주기, 7주기, 13주기, 17 주기
되는 해에 재앙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13주기, 17주기에 재앙이
심하다고 한다.

이 중 제일 심한 해가 17주기. 우리로 말하면 중학생 초기, 고등
학생 초기에 해당한다. 이때에 부모는 기도와 참회로서 태아령을
위로해 주는 것이 좋다.


일본에서는 부모가 병들었을 경우, 자녀의 입학시험·결혼·신축·
사업 시기 등에 태아령을 위안하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6, 7개월 된 태아를 낙태할 경우 흉악령이 되지 않도록 반드시
공양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절아의 영혼이 지펴있는 사람이 많다.

그 영장이 생기는 사람들은 원인이 분명치않은 병에 걸린다거나,
사업상 지장을 받는다거나 하는 여러 형태로 고뇌하게된다.

그러다가 다행하게도 그런 일들이 바로 영장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천도불공으로 그 영장을 벗어나는 사람도 꽤 많다.

여기 소개하는 체험담은 내가 수집한 6천여건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영장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참고가 되리라 생각하여
소개하는 바이다.


천도한 중절아가 목숨을 구해주다

"우울증이라고나 할까요, 극도의 노이로제에 걸려서..."

지바시(千葉市)에 사는 오오가와(41살)씨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따라온 부인도 몹시 어두운 표정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나요?"

"그럭저럭 5,6년 되었을까요, 여러가지로 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낫질않아요."

"그럴만한 무슨 이유가 있을겁니다."

살 맛을 잃은 노이로제 환자

내 질문에 부인이 대답하려고하자 오오가와씨는 가로막으며 자신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업의 실패입니다. 조그만 공업사를 경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6,7년 전부터
계속 부진했습니다. 초조해졌죠.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점점
더 안되는거예요. 자금을 조달하려고 뛰어도 좀처럼 되질않아요. 어떤 때는 단돈
30만원도 마련이 되지않을 때도 있었어요. 일감이 있어도 운영자금이 없어서
못하게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점점 이상해졌군요."

"그렇습니다. 잘 안되려니까 무엇을 해도 안되더군요. 그것때문에 노이로제가
되었고, 지금까지 세 번이나 자살미수를 저지를 정도로 살맛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어졌습니다."

"그래, 그 공업사는 어떻게 되었나요?"

"빚으로 넘어갔습니다. 친척이 되는 사람이지요. 전에는 대게 신세를 지던 사람인데
이제는.... 분명히 내가 그 사람에게 빚을 졌으니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오오가와씨는 눈에 띄게 초조해졌고 이야기를 더 계속하려고 했다.

그러나 더 들어봐야 사업이 실패한 구차스런 이야기일테고, 그보다도
차라리 그가 그토록 궁지에 빠지게된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중절한 아이때문에 탈이 생기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자녀는..."

"사내아이 하나입니다."

부인이 대답했다.

"부인께서는 임신중절을 한 일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 애 하나만 낳고 더 낳질 못했어요."

"오오가와씨는 부인과의 사이에는 중절하신 일이 없으신데
혹시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

"......"

"예, 있습니다."

부인이 대신 대답을 한다. 오오가와씨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아마 대여섯번은 되지요?"

내 질문에 부인이 대답한다.

"맞습니다. 제가 아는 것만도 여섯 번이나 됩니다."

"오오가와씨께서 사업에 실패하신 것도, 지금 같은 병에 걸린 것도
모두 그 중절아들의 원한때문입니다."

"미친 소리...그럴 리가 있나?"

오오가와씨는 갑자기 화를 내듯이 큰소리를 쳤다.

"그렇지 않아요. 자기 자신이 새 생명을 끊었는데요..."

"지워버린 아이의 영혼때문에 탈이 나다니 어리석은 소리요."

"아니예요. 저는 믿어요."

막무가내로 믿으려하지 않고 대들려는 남편을 제지하고 부인이
나섰다.

"무슨 소리야. 어떻게 지운 아이의 탈이 난단말야?"

오오가와씨는 부인에게 대들었다.

"어떻게라뇨? 당신이 아무리 아니라고해도 지금 현실적으로
당신이 당하고 있지않아요? 그 아이들의 영혼을 천도해주고
원한을 풀어주지않으면 앞으로 더 심한 일이 생길거예요."


반신반의로 천도해보니...

나는 오오가와씨를 설득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같아 그 부인에게
천도해주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남편이 뭐라고 하든 천도
시키도록 종용했다.

그리고 4개월쯤 지났을 때 그 내외가 다시 찾아왔다.

"거, 참 신기하군요. 안식구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했는데
탈이 차츰 걷히기 시작한 거예요. 천도불공을 하는 동안에 아주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난쟁이처럼
아주 작은 아이가 눈앞에 나타나더니 자살을 못하게 하더라구요.

그 뿐 아니라, 더 신기한 일이 생겼어요. 전에 어느 큰 회사의
일을 맡아서 해준 것이 잘못되어 그것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회사가 엉망이 되기 시작했었는데, 그 잘못이 회사 자체의 실수
였다는 것이 판명되어 손해보았던 큰 돈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오오가와씨는 겸연쩍은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그런 일들이 모두 중절아의 천도 덕분이예요."

옆에 있던 부인의 말에 그는 아무 말없이 그저 끄덕이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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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악몽은 사라지고, 자식도 얻고...


히로시마시에 사는 요오꼬부인에게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저는 결혼한지 8년되는 33세의 주부입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결혼 후 아홉 번이나 유산을 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임신하면 석 달을 못 채우고 유산이 되고 맙니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아무리 해도 아이를
못 낳습니다. 임신할 때마다 이번만은 꼭 낳으리라 생각하고
의사선생님께도 각별히 부탁을 드리고 조심을 하는데도 유산이
되고맙니다.

왜 그럴까요? 남편과 시어머니는 어서 아기를 낳으라고 성화입니
다만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실은, 결혼 전에 꼭 한 번 중절한 일이 있는데 그 중절아 때문에 탈이
나서 유산이 되는지요?

요즘은 무서운 꿈에 시달립니다. 꿈 속에서 손발이 문들어진 아이,
얼굴은 해골이고 몸은 멀쩡한 도깨비 같은 것들이 제게 덤벼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저의 목을 조르기도 합니다. 매일 밤 꼭 같은 꿈을 꾸느라고
한숨도 자지를 못합니다.

한 번 중절했다고 말씀드린 것은, 어느 남자와 둘이서 부부가 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22살 때였지요. 그런데, 그 남자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넉 달째 부득이 중절을 했습니다.

넉 달째 접어들었기 때문에 중절 때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과거를 깨끗이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결단을 내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지금 남편과 알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복이 없는지 낳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사경(寫經)으로 중절아의 영혼 천도를...


그 편지를 받은 뒤 직접 본인을 면담하고 조사해보았다. 그 결과 역시
중절아의 탈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그녀는 곧 천도불공을 시작했다. 그녀는 사경하는 방법을 택했다.

매일 중절아를 위해 기도하고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천도 불공의 효험이 차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일 시달리던 꿈은 안꾸게 되었고 몇 달이 지났다.

"덕택에 임신을 했느데 또 유산이 될까 걱정이 됩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영장을 일으켰던 중절아의
천도를 했으니까 유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무사히 순산을 했다. 건실한 아들이었다. 그들 부부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시어머니도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이어서 이제까지는 영혼이니 영장이니하는
것은 귓전으로도 듣지않던 시어머니도 아홉 구의 유산아 영혼을 위해
그녀와 같이 천도불공을 시작했다.

중절아의 영혼 천도로 영장이 소멸되었는지, 태어난 아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온 집안이 손자를 중심으로 밝은 나날을 보내게되었다.


얼마 뒤 "둘째가 생겼어요."
하는 그녀의 밝은 음성을 들었다.

이 부인처럼 영장이 가시고 자식을 얻었다는 사람이 꽤 많다.

의학적으로 보아, 유산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절아의 영장을 없게
함으로써 악몽은 사라지고 자식복도 얻게 된 사람들은 모두
중절아의 영혼 천도를 한 덕분인 것이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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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사도 포기했던 방광염이...


중절아의 탈이 방광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꽤 많다.


수많은 편지가운데 방광염으로 고생한다고 호소하는 수가 대단히많다.



중절아의 천도불공을 부탁했는데 좀처럼 낫지않아...

나고야시에 사는 가정주부 하시모또부인(47세)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했다.


저는 수년 전부터 방광염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침도 맞고 뜸도 뜨고
남이 좋다는 것은 다 했으며 병원에도 무척 다녔습니다.권유하는 이가
있어서 한약도 많이 썼고 약초치료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문지에 끼어있던 광고문이었
습니다. 그 광고에는 방광염을 비롯하여 갖자기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있었고 그 원인이 모두 중절아의 영장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병을 고치려는 일념으로 곧 동자관음(童子觀音 주: 일본에는
태아령천도시 80%정도가 지장보살모시고, 20% 정도가 관음보살모심)
을 봉안하고 중절아의 천도를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효험이 없어 편지를 냈더니 본산(本山)으로 오라는
회신이 왔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보았으나 여전히 효험이 없
었습니다.

제발, 저의 방광염이 중절아로 인한 것인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동안 여덟 번 중절했고 그 천도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그 부인을 만났다. 그리고, 방광염이 정말 중절아의 탈인지
심령연구가에게 부탁해서 알아보았다.

그 결과 분명한 중절아의 영장임이 판명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천도를 하도록 권유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하도록 했다.

그녀는 타력과 자력의 차이-천도는 오히려 스님이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기때문에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병을 고치려는 일념으로 나의 지시대로 했다.


남에게 맡겼던 천도를 자신이 직접하다.

그 부인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니, 지금 남편이 세번째
였다. 웬일인지 결혼 6,7년만에 병사하였단다. 그것도 세 사람이
다 급사하였다.

더 자세히 조사해보니 남편이 죽은 해가 대체로 전 남편과의 사이에
생긴 아이를 중절하고 3년째 아니면 5년째와 7년째에 해당하는 해였
다.

-덕택에, 정말 선생님 덕분에 방광염이 나았습니다. 의사선생님도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처럼 오랫동안 갖은
치료를 다 받아도 낫지않아 고민하던 방광염이 완전히 나아서 지금은
아주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부인과 비슷한 경우, 비슷한 체험을 한 분이 제게 오셨던 분 가운데
약 20여명이나 된다. 물론 한 마디로 방광염이라고는 하지만 그 증세는
각기 다 다르다.

심한 사람, 덜 심한 사람, 또 햇수로 보아도 4년, 5년 어느 경우는
10년씩 된 사람도 있었다.

누구나 다 병원에 다니며 효험이 있다는 약은 모두 써 보았고 갖가지
치료를 다 받아보았으나 낫지 낳았던 사라드리다.

그들은 모두 세 번 내지 열 번씩 중절을 한 사람들이었으나 중절아 1구
1구를 모두 지극하게 천도해주고 거짓말처럼 깨끗이 방광염이 나았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
8.

부부의 불화를 없애고자..

"안 살거야! 나가버려!"

남편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닥치는대로 집어던지고..

도꾸시마현(우리나라의 도)에 사는 니시사까 부인(38세)은
남편이 던진 물건에 맞아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꾹
참고 견디며 매일매일을 눈물로 지내게 되었다.

그것은 어느날, 참으로 우연히도 오랫동안 비밀로 지켜왔던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있었던 임신이 탄로가 나자 남편이
몹시 화가 난 것이었다. 그녀는, 정말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던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정말 잘못했다고 아무리 빌어도, 그는 좀처럼 용서하지
않았다.

그녀는 14년전, 당시 근무하고 있던 어느 식품회사의 상사
에게 강제로 당했고, 그 결과 불행하게도 임신을 했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들은 그 상사에게 결혼하도록 종용했다.
다행히 그 남자는 독신이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수도 있었는데 그 남자는 임신한 아이는 물론 그녀를 강제로
범했다는 사실조차 부인했다.

이런 복잡한 관계도 있고해서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병원에
가서 중절수술을 받았다. 그 때는 이미 5개월째였다.

꼭 13년전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3년째 되던 해에 중매로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고 곧 딸을 낳았다. 7년 전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부상을 당해 실업상태여서 중절을 했었고 5년 전에
아들을 낳았다.



13년 전의 중절이 이제야 탈이 나

그녀 부부는 옆에서 보기에도 금실이 좋았고, 실제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였다. 그런데, 우연히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13년 전의 중절사건이 남편에게 탄로난 것이다.

남편은 그녀의 과거를 용서하지 않았고, 부부사이는 날이
갈수록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혼문제까지 대두되었다.

그로부터 두 부부는 한 지붕밑에 살면서도 마치 남남처럼
지냈다. 드디어 남편은 나가 살게되었고, 결혼 후에 딱 끊었던
외도를 다시 시작하게되었고 여자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있엇기에 이혼할 생각은 없었
다. 더구나 두 아이와 헤어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었다.

그럴 즈음, 그녀는 아는 사람에게서 13년전의 중절아와 7년전 중
절아의 탈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게되었다.

그녀는 두 중절아의 천도를 시작했다. 보름, 한 달, 두 달이 지났
다. 그 사이 남편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효험
이 있음을 확신하고 더욱 열심히 했고, 사경도 시작했다.

"애들 데리고 바람이나 쐬러가지...."

어느 날, 남편의 느닷없는 말에 그녀는 놀랍기도하고 기쁘기도해서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그녀는 탈이 가장 심한 13년과 7년되는 두 아이의 영장을 받았던 것
이다.

부부의 불화를 자력으로 천도해서 영장을 없애고 다시 가정의 평화를
찾은 것이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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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석달 천도불공을 했더니, 암이라던 병이....


"배하고 등이 몹시 아파서..."

오오사까에 사는 게이꼬라는 주부(41살)가 병색으로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아직 아이들은 어리고, 경제도 넉넉치 못해서 시간일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 어디가 어떻게 나쁜가요?"

"배가 묵직하고 등이 당기는 것 같아서, 위장도 아프고 토할 것
같아요."

"허리는 괜찮은가요? "

"허리도 똑같이 아파요. 심할 때는 서있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요."

"어지럽지는 않은가요?"

"현기증도 있어요. 그래서 앉았다가 갑자기 일어나지 못해요."

"언제부터 그렇지요?"

"벌써 4,5년은 되었지요."

"병원에도 가보셨나요?"

"그럼요, 갔었지요. 변검사, 혈액검사 갖가지 검사를 다 했지만
번번이 이상이 없다고해요. 내 꼴이 이러니 집안이 온통 초상집
같아요.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

그녀는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안색도 나쁘고 말하는 것도 기운이
없어보였다.

"얼마 전에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근종같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투로 보아 자궁암인 것 같아요."

"암 검사를 했나요?"

"아뇨, 아직 안했어요. 만약 검사를 했다가 암이 확실하다면 저는
이제 더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도 여기저기가 아파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는데..."

그녀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하고 빌고 있었다.

"중절을 여러 번 하셨군요?"

"예? ...예, 그래요. 그것하고 병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녀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절아의 무서운 영장을 비로소 알고..

"당신의 여러가지 병증세를 보아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하여 탈이
난 것 같군요. 중절을 일곱 번쯤 하셨군요."

'어떻게 그런 것을...맞아요. 네 번은 중절을 했고, 세 번 자연유산
했어요. 그런데, 그 일이 나를 괴롭힐까요?"

"중절아의 영장이 무섭다는 것을 모르셨나요?"

"예, 몰랐죠."

나는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한 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죽 설명해
주었다.

"예,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군요. 그렇지만 제가 중절아들의 원한을 사서
탈이 났군요."

"그런 것 같아요."

나는 그녀에게 일곱 명의 중절아의 영혼을 천도하도록 권했다.

"그렇게하면 제 병이 나을까요?"

"그럼요. 적어도 반 이상은 나을 것입니다. 자궁암도 더 악화되지않고
나을 것입니다. 우선 자궁암이 확실한지 의사의 진찰을 받아보세요.
그리고, 천도도 하시고...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반신반의 야릇한 표정으로 천도방법을 메모해갔다.

그저 신기하다고 할 수 밖에....

"정말 신기하군요. 뼈 아프던 것도 현기증도 나았어요."

그녀는 천도불공을 시작하고 나서 석달 쯤 지나니까 몇 년을 두고
고생하던 몇 가지 병이 전부 나았다고 하며 그저 놀랄 뿐이었다.

"자궁암은 어떻던가요?"

"예, 그것도 나았어요. 먼젓번에는 자궁암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엊그제는 검사결과 암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석 달 남짓 동안의 경위를 보고하듯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탄력이 있었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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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속는 셈치고 천도했더니...

"어-, 어--, 어..."

도꾜시에 사는 미꼬여인(30세)은 이층으로 올라가다가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과 온몸은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4년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집안에서 일을 하거나 2층에 올라가다가도 그런 증세가 일어났다.

여남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두 세번씩 쉬지않으면 안되었다.

병원에 가서 알아본 결과 심장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이후부터
가족들은 그녀를 아주 정교한 유리그릇 다루듯이 위했다. 그녀
자신도 무척 조심했고 언제 어디서 또 발작이 일어날지 몰라서
늘 불안해했다.

"전에 심장이 약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나요?"

"아뇨, 그런 일을 없었어요."

"갑자기 나빠졌군요."

"예, 그래요. 요새는 약을 항상 지니고 다녀요. 찬거리를 사러
갈 때도 겁이 나요."

"중절한 일이 있으시지요?"

"....."

"정확히 대답해보세요. 없으면 없다...있으면..."

"예, 있어요. 세 번..."

"제일 처음 중절이 언제였지요?"

"저..8년 전, 아니 9년 전일거예요."

"8년하고 9년하고는 아주 다릅니다. 정확한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8년 전인 것 같아요."

"기억이 안나시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러나 너무 무책임하군요. 살인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살인이라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화가 난 듯했다.

"중절을 살인과 진배없습니다. 당신의 병은 그 원한때문입니다.
탈이 난 거예요."

"중절아 때문에요?"

"예, 중절아의 영혼이 지핀 것입니다. 죽지 않으려면 그 세아이의 영을
지극하게 천도해주세요. 지극하게 하면 병도 낫습니다."

포기상태이던 심장병이 차츰차츰....

그녀는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자신의 병이 중절아의 영장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설득할 마음이 나지않아 내 말을
믿거나 말거나 일단 천도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긴 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세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일이 있은지 두 달이 지났을 때, 그녀가 찾아왔다.

나는 그 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하, 효험이 있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천도를 한 덕분인가봐요. 심장이 아주 편해졌어요. 두근거리는 증세가
아주 없어져서 이젠 이층에도 단숨에 올라갈 수 있게되었어요."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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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필사적인 천도가 기적을...

"아이를 좀 살려주세요!"

1년 전쯤 와까야마에 사는 나까무라(31살)부인으로부터 한 통
의 편지를 받았다.

절실한 내용의 편지사연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저의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병약했고 게다가 오른쪽 반이
(右半身) 부자유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빈혈증까지 겹쳐
한 달에 한 번씩 수혈을 받아야합니다.

저나 남편은 매우 건강한 편인데 어쩌다 이렇게 병약한 아이가
태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병이 나으면 다른 병이 생기
고, 의사선생님께서도 놀랄 정도로 병약합니다.

왜 그런지 그 원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혹 조사할 일이 있으시면
억지로라도 아이를 데리고 갈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여쭙고자 합니다.

실은 이 아이를 배고 반 년쯤 되었을 때 친구집에서 알게 된 심령
연구가한테서,

"당신에게는 중절아의 영혼이 지펴있습니다. 그 탈로 해서 이 번에
낳는 아기는 병약할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절한 사실은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했었습니다. 남편과의 혼전교섭으로 임신했을 때 중절을 했
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일입니다.

그 심령가의 말대로, 중절아가 있을 때에는 그 다음에 낳는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요. 지금 아이가 병약한 것이 정말 그 때문인지요.

저는 그 사람말이 믿겨지지 않아서 혼전에 중절한 아이를 천도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몸이 부자유하고 병약한 아이가 태어나서
정말 중절아의 탈이 아닌가 생각을 하지만 솔직히 말씀한다면 반신
반의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지도있으시기 바랍니다.

목욕재계 사경으로 병약한 아이의 영장을 없애다

나는 그 부인에게 이제라도 곧 중절아의 천도를 하도록 권했다.
천도여하에 따라서는 그 부자유한 아기, 병약한 아기를 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법은, 지장보살사불과 반야심경의 사경을 하되, 부부의 나이를 합친
만큼 하는 것이었다.

그 부인은 나의 권유대로 그 방법으로 천도를 시작했다. 그 부인은 꼭
목욕재계를 하고 천도를 했다.

한 겨울이어서 목욕재계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중절한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천도함으로써 병약한 아기를 구하겠
다는 일념으로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을 때 이런 편지가 왔다.

-기적이 생겼습니다. 정말 무엇이라고 감사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지시해
주신대로 저는 중절아의 영혼 천도에 온 정성을 바쳤습니다.

사경한 것을 절에 바치고 1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오른쪽
손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 바로 저희 눈앞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매일처럼 다니던
병원에도 거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는 직접 중절아의 무서운 영장을 체험했으며
동시에 온 정성을 다해 중절아의 영혼을 천도하여 다행히 중절한 아이의
영혼이 고이 쉬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서 나도 모르게 울고
맙니다. 반드시 이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 날을 위
해서 저희 부부는 앞으로도 천도불공을 계속할 작정입니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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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죽고싶도록 심하던 안색과 기미가...

"심령치료를 하면 이 기미가 없어질까요?"

하루는 젊은 여성이 찾아와서 상담을 신청했다.

신청서에는 21살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만나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낯빛이 마치 흙빛깔이고 살갗이 온통 시커멓다. 마치 죽은
사람의 살색같았다. 얼굴에는 커다란 기미가 가득해서 차마 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병원에도 가보았나요?"

"병원이란 병원은 다 가보았어요. 그런데, 낫지를 않아요.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구요. 주사, 먹는 약, 갖가지로 애써보았지마나 아무 효과가
없었어요."

"의사들은 무슨 병이라고 하던가요?"

"아주 어려운 병명인데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오오사까에서 회사에 다니는 이찌마양은 힘이 하나도 없어보였고,
반은 포기상태로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창피해서 사람 앞에 나서기조차 두려워서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는데 자살도 못하고..심령치료로 고쳐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 안된다면 이번에야말로 죽고 말겠어요."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가 막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만약 안고쳐주면 죽어버리겠다는 말투도 말투려니와 그런 마음가짐
으로는 고칠 수 있는 병도 고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치고 싶은가요?"

"그러니까 왔지요."

그녀는 이제 자포자기의 상태였다. 나는 그녀의 병증세로 보아 중절아의
영장이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중절이나 유산을 한 일이 없나요?"

"없는데요.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요."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머리를 숙였고 목소리는 모기소리만했다.



낫고 싶은 마음은 접어두고 우선 중절아의 영혼천도부터...

나는 그녀의 태도로 보아 병의 원인이 중절아의 영장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경험으로 보아 젊은 여성, 특히 미혼 여성에게 중절사실을 물었을 때, 정말
없을 경우네는 냉정하게 명확히 부정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아무래도
자신없이 부정을 한다.

따라서 이 아가씨가 입으로는 부정했지만 틀림없는 중절아의 영혼 탈이 난 것
이라고 확신하고 심령연구가에게 보였다.

"아가씨는 감추려고 하지만 두 번 중절했군. 아마 16세 때, 18세 때였을 게야.
내 말이 맞지?"

심령가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지적이 있자 그녀는 드디어 사실을 고백했다.

"비밀로 해 주세요. 부모님이 모르고 계시거든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물론 아가씨가 비밀로 해달라면 비밀로 지켜주지. 그렇지만 아가씨는 그
영혼을 천도해주지 않으면 안돼요. 그렇지 않으면 그 병은 낫질 않아요."

나는 그녀에게 중절아의 영혼천도를 권했다. 처음에는 매우 망설이더니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하면서 중절아의 영혼을 천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영혼 천도를 하면 정말 나을까요?"

"병을 고치기 위해 천도한다면 안되고 우선 자신의 잘못...살인한 죄를
뉘우치고 중절아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해야해요."

그리고 넉 달이 지났을 때,

"보세요. 검은 색이 많이 나아졌어요."

처음 왔을 때와는 딴판으로 밝은 표정으로 다시 찾아왔다.

"천도 불공을 마치고 반달쯤 지나니까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검은 기미가 스러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기뻐서..."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고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그 뒤로도 그녀는 천도 불공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머지
않는 장래에 그녀가 괴로워했던 얼굴의 기미, 검은 살갗은 차츰
희어지리라...

출처: 석묘각 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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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세의 청춘을 좀먹는 원흉은?

"살려주세요."

오오사까시에 사는 스기모또 부인이 나의 상담실을 찾아온 것은
5월 하순이었다.

나는 '상담신청 카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스기모또부인
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카드에는 20살이라고 적혀있는데 보기에는 27,8세 나이에서 30세
가까이 되어보였다. 게다가 얼굴은 창백하였고 젊음이라고는 그림
자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병약한 안색이었다.

병원에 가보았으니 아무 효험이 없어...

"어디 아픈가요?"

나는 말문을 열었다.

"엉망이예요. 몸도 머리도..."

스기모또 부인은 힘없이 대답하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벌써 3년, 아니 4년째 허리가 몹시 아파서 똑바로 펴지도 못하고
구부리지도 못해요. 좀 창피한 얘기지만 변소에 가도 금방 앉리를
못하고, 또한 일어서지도 못해요.

그뿐 아니라, 허리에서 넙적다리까지 저려서 기분이 몹시 나빠요.
어떤 때는 발목까지 저려오기도하고, 오른쪽 손이 저리기도 하고
요. 머리는 언제나 묵직하고 기분이 산뜻해보질 못해요. 왜 그런가
요? 병원에도 숱하게 다녔지만 좀처럼 낫질 않아요."

"산부인과 계통도 안 좋겠군요."

"예, 생리불순인데다 너무 아파서 2,3일은 누워있어야해요. 게다가
요즈음은 거기가 헐어서..."

스기모또 부인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같이 잠자리도 어렵겠군요."

"예, 못해요. 그래서 밤낮 그이에게 구박을 받아요. 그렇지만
못하겠는걸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대로라면 그이하고도 헤어지
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스기모또 부인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 고개를 떨군다.

"중절한 일이 있겠군요."

"예, 예-- 있어요. 다, 다섯번 쯤..."

스기모또 부인은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말하고는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다.

"중절한 아이들을 천도해 주셨나요?"

"아뇨, 안했어요. 그런 걸 몰랐거든요."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죠. 중절한 얘기를 구체적으로 해보세요."

하는 내 말에 그녀는 한참 망설이더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19살되던 해 봄, 5번째 중절 수술을 했는데...

"15살되던 해에 처음으로 중절수술을 했어요. 그이하고 바다에 놀러
갔다가 임신을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알까봐 몰래 수술을 했지요.
무서웠어요.

16살 때 여름에도 중절을 했어요. 그 때는 언니가 눈치를 채고 그이하
고 헤어지라고 호되게 야단을 쳤지요. 그 뒤로는 무척 조심을 했는데
17살 때 겨울에 수술을 받았어요.

그 때는 부모님도 언니도 몰랐는데, 18살 되던 해 정월에 임신했을
때는 들켜서 되게 야단을 맞고 중절수술을 받았어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는데 그때부터 몸이 엉망이
되었어요. 19살때 봄에 다섯 번째 수술을 했는데 그 때는
이미 몸이 말이 아니었어요. 어지럽고, 허리가 아프고, 회사에도
못 나가게되어 매일 누워서 지냈어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몸의 고통을 참느라고 안간힘을 다하는
그녀가 가엾기조차 했다.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중절수술을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지금 또 임신중인..."

"이번에 그냥 낳아야지요."

"그이가 낳지 말래요."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지금 당신의 병은 '중절아'때문에 탈이 난
거예요. 영병(靈病)이예요."

"그래도 그이는....탈이 무슨 탈이냐고 믿질 않아요. "

"부인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이보세요. 당신들은 둘이서 살인을 한 것
이예요. 다섯이나 되는 아기를 죽인거예요. 그 어린 것 즉 태아가 원한
을 품어서 탈이 난 것이란 말이예요."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한 탈에 관해 그 실례
를 그 부인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남편을 데리고 오게해서 '중절아'
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나서,

"두 분이 같이 그 어린 것들의 천도 불공을 하세요."
하고 강력하게 권유했다.

스기모또 부부는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한 탈을 없애기위해 천도불공을
드리고나서

"거짓말 같아요.....깨끗이 나았어요."
하고 자못 신기하다는 듯이 희색이 만면해서 이야기하는 그녀를
나는 바라보았다.

그녀가 내게 다녀간 지 두 달 뒤였다.

"애기도 낳게 되었어요."

무척 기뻐했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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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가정주부의 새로운 삶


필자(묘각스님)가 용인에 있을 때 찾아온 어느 부인의 이야기이다.

"스님, 이렇게 죄를 짓고도 부처님의 가피를 바란다는게 너무 뻔뻔스럽지
않겠습니까?""

그 부인은 눈물로 그 동안의 행적을 고백하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으니 이제 제가 할 일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죄가
된다지만, 죄를 조금 더 짓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저는
용서를 빌지는 않겠습니다. 죽은 뒤에 지옥에서 지은 죄의
과보를 받고나서 부처님께 예배하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필자는 그 부인에게 죄와 복에 대한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3년 사이에 10번이나 낙태를 한....

이 부인이 필자를 찾아오는데는 한 달이 걸렸다. 전화를 몇 차례
나 한 뒤였다. 염치도 없고 용기가 나지않는다면서 전화로만
연락을 하던 끝에

"죽기 전에 다 털어놓기나 해야겠습니다."

면서 찾아왔다.

그러나 와서도 죄를 많이 지었다고만 할 뿐 좀처럼 속 사정을 말하
지않았다.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 동안에 차츰 마음도 가라앉고 모든
것을 단념한 듯이 자기의 과거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24살 때, 친척의 소개로 한 1년간 교제하다가 결혼, 평범한 가정생활
을 하면서 아이도 둘을 낳고 그런대로 잘 살았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에 입학할 무렵, 우연한 일로 알게된 어떤 남자와 정이 들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두번 그 남자를 만나서 점심도 먹고 어쩌다 극장에도 가곤
했는데, 그러는 사이 그 남자에게 완전히 빠지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그 남자와는 넘지말아야할 선을 넘게되었고 이렇게되다보니 남편과의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게되어버렸다.

집에서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눈치채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 남자와
의 교제는 3년가까이 계속 되었으며 그 사이 10번이나 낙태수술을 했다.

그러다가 남자쪽에서 차츰 멀리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떠나면 웬일인지
이상스럽게도 꼭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다. 남편에게 부끄럽고 죄가
되는 줄 알면서도 더 애절하게 이 남자를 그리워하게되었다. 남자는
더 이상의 불장난은 서로의 파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감쪽같이 직장도 옮기고
이사를 해버렸다. 종적을 감춘 것이다. 한 달 가까이 찾아다녔으나
헛일이었다.

남자를 찾아다니던 한 달사이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되었고 차츰
이성을 되찾게되었다. 자기가 왜, 이 남자에게 그렇게 빠져들었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3년쯤 세월이 흘렀는데, 남편이
실직하게 되자 생활이 어려워진데다가 자신은 몸에 병이 생겼다.

병원에 다녀도 낫질않았다. 누워있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하루 살아
가는 것이 그렇게 힘겨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가야,
용서해다오'책을 보게되었다.

완전히 책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필자에게 첫번 째 전화를 했다.
그러나, 좀 처럼 모든 것을 다 고백할 용기가 나질않는다고했다.

다섯 번째, 용기를 내서 방문하기로 약속을 하고 만나게된 것이다.


열 아이의 법명(法名)을 짓고 천도


이 여인은 다음날부터 참회와 아이들의 천도를 시작했다.

100일을 한정하고

기도 입재(入齋)는 필자의 절에서 하고, 그 여인은 집에서 필자는 절에서
각각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매달 초하루 보름날은 절에서 불단에 마지를
올리고 공양를 드렸다. 열 아이 모두 법명을 지어 하단(下壇)에 모셨다.

그 여인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시간씩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을 외웠다.

그리고, 낮에는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 자아게(自我偈)를 10장씩 사경했다.


백일기도하고 새 삶을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 강에 나가 방생을 했다. 필자와 그 여인과 둘이
서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 전 강에 나가 동녘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방생을
했다. 안개가 자욱한 물가에 서서 조용히 목탁을 치면서...

그 후 그 여인은 오랫만에 건강을 되찾게되었고, 가정도 안정되었다.

몇 년째 직업없이 하루하루의 끼니마저 걱정해야했던 남편이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지못했던 우연한 인연으로 취직을 하게되면서 차츰 가정ㅇ에 웃음이 피어
나게 된 것이다.

그 부인은 지금 집안 살림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다 기울이는한편,
자신과 같이 불행의 늪에서 남모르게 고뇌하는 여인들을 위해 노력하고있다.

그 사이 3명이나 되는 미혼모와 그 유산아들의 천도를 해주었고 지금도 열심히
그런 여인들을 찾아 고뇌를 덜어주는 일에 열중하고있다.

이러한 일들이 어찌 불보살님들의 중생을 위한 신통묘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무석가모니불!


출처: 석묘각 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아기의 영혼천도에 관하여 궁금하신 분은 편지나 전화로
상담하시면됩니다.

서울 사당5동 235-92번지 국청사 묘각스님 (02)538-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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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낙태로 얻은 아픔이었는데...


작년 여름 휴가 때 우리 가족은 온천에서 여름 휴가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에 광륵사에 들렀습니다.

이 절에는 남편이 존경하는 스승님의 부도탑(浮屠塔)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고, 남편의 학창시절 친구이며 오랫동안 불교공부도 같이 한 친구 분이
법사님으로 계시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도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들른 것입니다. 법사님이 서울에 계실 적에 만났었기 때문에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 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하며 오랜
시간 대화를 하였습니다.

이야기하던 중 저는 무심코 남편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 이상 어떻게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보살님이 제 편을 들어줬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아프다고 해서 한약도 지어 주고, 병원에가서 종합진찰을
해본 결과 병이 없으니 신경만 안 쓰면 된다고해서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해줘도
아프다고 하니, 낸들 어쩌라는 말이야."하며 그 동안의 심정을 하소연이나
하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법사님이 혹시 유산한 아이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법사님은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이미 생명체이기 때문에 태아일 때 죽은
아이라해서 전혀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된다.

일본에서는 유산한 아이들을 수자령(水子靈)이라고 해서 천도시키는 일이
일반화 되어있는 것 같더라. 지난 번 텔레비젼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엠(M)의
작가도 그냥 완전한 픽션으로 극본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34세로 결혼한 지 6년이 넘었습니다.

결혼 후 곧 임신을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다음에 곧 임신이 되었는데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유산을
한 뒤부터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집안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하고는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겨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좋아지지는 않아 그 다음에는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임신이 되도 몸이 아프니 또
유산을 시키고, 그렇게 하여 6명의 아이를 유산시키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혹시 산후조리가 안되어 그런가 하고는 다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정성껏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병명이 없이 아프다고 하니
가족들은 이제는 '복에 겨워 그런다'고 하며 관심도 안 갖고 남편마저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저대로 몸도 아프고 마음도 상해 이혼까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 때 온천물에 목욕 좀 하자면서 내려왔다가 광륵사
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했고 법사님은 그러면 지금부터 지장경을
독송한 뒤에 내일 아침에 아이들의 천도를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불교를 믿었지만 저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심지어는 남편이 못마땅하게 할 때는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서 비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그 이야기
가 듣기 싫었는지 법회에도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장경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하니 밤을 새워서라도 읽으려고 결심하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졸려서 한번도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몇 년만에 처음으로 달콤한 잠을 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저는 공양물을 준비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동안 눈물이 마구 나왔습니다. 죽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리고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유산된 아이들의 천도기도를 드리고나니 아픈 것도 덜 아프고 가슴에 맺혀있던
것이 풀린 것 같이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라 오후에 출발을 하려니 법사님께서 집에 가서 지장경을
100번 읽어서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와 유산시킨 아이들과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께서
좋은 세계에 나시기를 발원하며 열심히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몸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지장보살님 정말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까?

제 아픈 몸이 씻은 듯이 나았고 저는 다시금 평범한 가정주부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된 것입니다.

평소에 무관심했던 불교에 대해 귀의심(歸依心)을 내게 되었고,
이제는 불제자가 되어 지장경 독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다시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지장 보살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출처: 무등산 광륵사 (www.ekaya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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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ㄷ사의 태아령 천도기도에 동참한 광주의 한 보살님은 기도 접수한
날 밤에 꿈을 꾸었다. 극락전에 와서 기도를 모시는데 법당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 보니 꾀죄죄한 아이들이 수없이 몰려들어서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때묻은 손으로 불전에 올려진 과일과 떡을 가리키고
자기들 입을 가리키며 먹을 걸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위패만 올리고 제물을 차려주지 못한 것을 깨닫고 몇사람이 떡과 우유,
과일 등을 준비해 와 관욕(영가 목욕의식)부터 시작하여 천도재를 정성
스럽게 베풀어 주었다.

이튿날 새벽 예불을 모시는데 깨끗하고 말쑥해진
아기들이 한 줄로 서서 법당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기도중에 보였다.

그 신도가 애들을 보며 "웬 애들이 들어오지?"하고 말하니, 애들이
돌아보고 손가락질 하면서 "우리 보고 애들이래. 자기들도 애들이면서……"
하고는 영단 위패로 사라졌다고 한다.


출처:월현사 포교원간 영험의 진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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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부산의 한 보살님은 여섯 번 중절 수술을 하고 난 뒤 늘
기운없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전화로
태아천도기도접수를 하였다.

그날 밤 꿈속에 아기를 낳아 품에 안았는데 아기의 눈이
아닌 어른의 눈이 자기를 원망의 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젖을 꺼내어 먹으라고 했더니 갓난 아기가 입을 열어 또렷한
발음으로 "업장이 많은 여자의 젖은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식은 땀이 흐르고 계속 그 원망스런
눈빛이 자기를 지켜보는 것 같아 절에와서 3일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잠을 자는데 꿈속에 본 아기가 연못가에서 놀고 있었다.

아기 손을 덥석 잡으며, "여기 있었구나. 어서 집으로 가자."하고 말하니,
아기가 엄마 손을 뿌리치며 "나는 법당에 가서 스님법문 들어야 돼요."
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법당으로 향하였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보살님은 몸이 놀랍게 가벼워졌고, 또한
지장보살님전에 눈물의 기도를 하고 돌아갔다.


출처: 대원사 떠도는 어린 넋들을 위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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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난 1999 년 전남 담양군 대덕면 법천사에서의 일입니다.

당시 그 곳에 있던 불자님들이 우란분절에는 그저 조상 영가분의
천도만 하여 왔던 터라 소승이 태아령을 한다 하니 모두가 궁금하여
많은 문의가 쇄도했던 때 입니다.

당시 불자님들에게 태아령에 대한 법문도 해주고
왜 태아령 천도를 꼭 해주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자
다음날 부터 하나 같이 꿈속에 동안 잊고 지냈던
낙태 영가들이 나타 났다고들 했었지요.

당시 법천사 신도 회장보살님과 총무보살님과
당시 기도에 동참했던 약 20 여명의 불자님이
기도 회향을 하는 날 전날 밤
믿기지 못할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기도 회향을 마치자
이구동성으로 하기 시작 했었습니다.

꿈의 내용인즉.....

어떤 바다인지는 모르는데 맑은 물 한 가운데
부처님이 조그만 배를 타시고 그 배 안에는
핏덩이 같은 아이들이 무척 많이 탔었답니다.


그래서 그 꿈을 꾼 보살님들은 하나 같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꿈 속에서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했었답니다.


그러자 부처님과 같이 한 배를 탄 낙태영가 아이들이 웃으며
손 짓을 하며 배를 타고 멀리 멀리 떠나더랍니다.


그 꿈을 한 두불자님이 꾼 것이 아니라
당시에 동참했던 약 20 여명의 불자님들이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답니다.
그리고 회향을 마치고 난 뒤에도 당시에 참석했던 불자님들은 종종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거의 매주 미타정근을 하곤 했던
기억들이 우란 분절만 되면 떠오릅니다.


낙태...........
그것은 해서도 아니 되지만
혹시라도 누가 주위에서 '낙태'를 하려한다면 말리십시오.


그것은 또 다른 방생과도 같은 귀한 보시입니다.
물가에 고기를 넣어 주는 것만이 방생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죽이려는(낙태) 그 사람에게
부처님 법을 가르치어 자식을 살생하는 것을 막을 때
그 것 이상 큰 방생의 공덕은 없는 것 입니다.


(출처-보살의 친구 토굴지기님 글. 네이버 아비라카페에서 다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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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의 한 부인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았다.

모아놓은 돈도 물려받은 논밭도 없었던 그녀는 세 자녀를
키우기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해미면의 산부인과에서
청소부노릇을 해야만했다.

조그마한 시골의 산부인과였기에 그 지역사람들보다는
인근지역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고, 낙태수술은 하루
10건에 이르렀다.

자연 그녀는 저녁마다 그 핏덩이들을 치워야만했다.

그러나,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특별한 생각도없이
그 핏덩이들을 쓰레기통에 담아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눈앞에는 핏덩이가 아니라
사람의 몸을 완전히 갖추고있는 태아가 방치되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충격을 느낀 그녀는 그 낙태아를
다른 핏덩이들처럼 취급할 수가 없었다.

그 녀는 자기 돈으로 하얀 천을 구입하여 그 아기를
돌돌말아 싼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변의
산기슭에 묻어주었다.


그날 밤 그녀는 발가벗은 아기 수십 명이 찾아와서
매달리며 호소하는 꿈을 꾸었다.

"아줌마,나도 그렇게 해줘! 나도 버리지말고 천에 싸서
묻어줘!"

밤새도록 발가벗은 아기들에게 시달리다 깨어난 그녀는
핏덩어리를 버리는 산부인과 청소부의 일이 인간으로서는
할 짓이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로 그녀는 산부인과 청소부일을 그만두고 음식점으로
직장을 옮겼다.





약 30년 전, 우리나라에 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울산시 중구 우정동의 북쪽 마을에는 마을 공동의
큰 우물이 하나 있었으며, 그 마을에는 48세가 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막내 시누이가 있었는데,
죽은지 몇 년만에 꿈에 나타나 반가운 얼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언니야! 나하고 같이 살자, 언니야."


그날 이후 그녀는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고, 고민에 빠져
들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아기를 낳아야 하다니......'

한편으로는 창피스럽기도 하고 키울 일도 걱정이 되어
집안 어른들과 의논하였다.

"너의 고충은 알겠다만 꿈이 심상치가 않구나. 힘들겠
지만 아이를 지워버리지 말고 낳도록 하려무나."

그녀는 친한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창피하지도 않느냐?" 나이 오십에 아이를 낳다니....
수술해, 수술!"


그녀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수술을 하였다. 그러나 많
은 나이에 낙태수술을 한 때문인지 회복이 쉽지않아 줄
곧 누워 있다가, 일주일 가량 지났을 무렵 몸이 조금 좋
아졌으므로 물을 긷기 위해 새벽녘에 동네 우물로 갔다.

그 우물은 평소 때 뚜껑을 닫아 두었다가 물을 길을
때만 뚜껑을 열도록 되어 있었다.

그녀가 물을 긷기
위해 우물 뚜껑을 여는 순가, 머리를 산발하고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의 시누이가 우물 속으로부터 솟아올랐다.

그리고 당장에 잡아먹을 듯한 분노의 음성으로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요년!"

그녀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였다. 그때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였고, 집안에는 강당하지 못할 재앙이 계
소해서 터졌다.

불자였던 그녀는 아침 저녁으로 울산 해남사 법당에
가서 참회를 하며 용서를 구하였고,그렇게 3년을
참회하고 나자 병이 사라지고 집안 풍파가 완전히
가라앉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에 살고있는 40대후반의 보살은 결혼 후 몇 해가
지나고나서부터 줄곧 병고 속에서 지냈다. 더욱이
큰 아들이 말을 못하는 장애자였으므로 언제나
가슴에는 못이 박힌 듯했다.



"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이 아이가 내가 죽은
다음에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아이의 말문을
열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녀는 아이의 입을 열게하려고 푸닥거리도하고
교회와 성당에도 가고 사찰도 찾았다.

조그마한 희망이라도보이면 어디로든 찾아가서
방법을 묻고 기도를 하였다. 한 번은 나에게
20여명에 이르는 일가친척을 위한 49일 천도기도를
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49일동안 직접 천도를
해 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비구니 한 분을
소켜시켜주고, 마지막날 마무리를 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마침내 49일째가 되어 내가 가서 천도의 중심예식들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 배송염불(拜送念佛)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옆에서 합장을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부인에게
7~8명의 아기가 달라붙어 부인을 끌고 꼬집고 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한 아이가 머리카락을 당기자 부인의
몸을 뒤로 젖혀졌고, 또 다른 아이가 오른쪽 팔을
잡아당기자 오른쪽으로 넘어졌으며, 뒤에서 앞으로
콰당 넘어지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도 또렷하게 보이는데, 부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 이 보살님이 의식하지 못하고있는 핏덩이의
원결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윗대 조상과 일가친척의
천도는 되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혼자 생각을 하였는데, 과연 천도재가 끝난 뒤에도
부인에게는 여전히 고통이 따르고 근심걱정이 해결되지
않았다. 곧 수원보살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은 집안의
영가들은 모두 천도의 대상으로 삼아 이름을 올리고 천도를
하였지만, 낙태한 태중의 영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하였기때문에 그 영가들의 원결을 풀어줄 수가 없었고,
자연 고통은 계속 되었던 것이다.



2년의 세월이 흘러 그 부인을 다시 만나게되었을 때,
나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낙태수술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스님, 무려 일곱 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큰아들을 낳았고요."



나는 천도 마지막날 보였던 아이들이 낙태수술을 받은
원혼임을 확신하고 부인에게 당부하였다.



"이제부터는 낙태수술을 한 그 영가들을 향하여
참회를 하면서 천도를 해드리십시오."





낙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원결을
맺는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평균 70만 명에 이르는
신생아가 태어난다.

이에 비해서 낙태수술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태중 아기는 150만이 넘어서고 있다. 태어나지
못하는 아기가 태어나는 아기의 두 배를 넘으며,
그 기록은 단연 세계 제일이다.

실로 인공유산의 장면을 초음파 영상으로 촬영한
것을 보면 너무나도 끔찍하다. 3개월 된 태아가
양수 속에서 놀라서, 날카로운 수술기구가 들어오면
깜짝 놀라 자궁벽 쪽으로 피해 달아난다. 수술 기구의
움직임을 간파하여,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그렇지만 수술 기구는 달아나는 태아를 흡입하여
뽑아버린다.

기계에 온 몸이 난자당하여 핏덩이 상태로 세상의 공기와
접하게 되는 태아영가......

많은 사람들이 임신 중절 수술 후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태아영가는
여전히 생명을 지닌 한 존재로서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어둠의 세계로 부터 구원을 받기를,
누군가가 구원을 해주기를 갈구한다.


그리고 위의 이야기에서 처럼, 이 태아영가가 원결을
지니는 경우에는 어머니와 집안에 무서운 보복을
전개하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태아영가와 형제가 되는 다른
아이에게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곧 그
집안의 아이가 무기력과 자살충동에 빠지거나, 고독에
잠기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며, 부모를 미워하고,
돈을 마구 써버리는 등의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나아가 낙태영가의 원결 때문에 기형아나
정신박약아를 낳게 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태중 영가의 장애는 만만하지가 않는 것이다.
어찌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태중 영가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천도를
해주어야 하는가?

그 방법은 일반 천도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기간을 백일 또는 49일로 정하여, 하루 1시간 가량
염불을 하거나, 독경 또는 사경을 하거나, 광명진언
등의 진언을 외워주면 된다.

단 한가지 꼭 당부드릴 것은 '어머니의 지극한 참회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었든, 어머니된
'나'의 순간적인 판단 결여로 인해 '나'를 찾아온
인연을 마다함으로써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데
대해서 깊이 참회하는 기회를 가져야한다.


"내가 어리석고 참된 길을 몰라 죄를 지었구나.

부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불보살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행복의 나라로 나아갈지어다"

"부처님, 지장보살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죄없는
이 어린 영가를 불국토로 인도하소서"

이렇게 끊임없이 참회하고 축원하면 태중아기
영가는 저절로 천도가 된다. 그리고 절에서 천도를
할 때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입는 신생아복과 양말등을
모두 준비하여, 스님의 지시에 따라 재를 지내면 된다

결코 낙태한 사실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고 쉬쉬 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인생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영가의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때에 낙태수술을 받은 이가
대부분 이지않은가. 그러면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 태중아기 영가를 천도시켜주면 된다


거듭 이야기하건대, 낙태아 천도의 기본 마음가짐은 참회이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4 '영가천도'(우룡큰스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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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들 낳으려 딸 셋 중절…영가 저주로 불행 닥쳐

얼마 전 40대 주부 Y씨가 찾아와 중학생 아들이 가출을 했다며
속상해했다. 최근 갑자기 반항이 심해지더니 독서실에 간다며
나간 아이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고 했다.

나는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약속하고 돌려보냈다.

일주일 뒤 그녀는 가출했던 아들과 함께 법당을 찾았다.

 "이제 다시는 집나가지 않도록 구명시식을 올려주세요."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얼굴이 바싹 말라 있었다. 그때였다.

내 눈에 여섯 명의 태아령이 모자(母子) 주변을 부유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아들 몰래 물어보니 산아제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네 명의 태아를 중절수술을 했다고 고백했다.

수술한 태아보다 많은 수의 태아령이 있다고 말하자 Y씨는 몰랐던
사실을 떠올리듯 "아, 두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정말 난감했다. 아무리 태아라도 자기 자식인데 몇 명을 수술했는지
모를 정도로 무감각하다니.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다. 솔직히 그동안 민감한 상황이라 말을
아꼈지만 요즘 구명시식을 청하는 20대부터 40대 부부들 중 중절
수술한 태아령이 평균 여섯 영가가 넘는다. 최근 구명시식을 받은
모 가수는 33명의 태아령을 초혼하기도 했다.

이미 영계는 중절수술의 심각성을 여러 번 경고했다.

태아령의 포화로 국운(國運)까지 흔들리고 있다.

태식(胎息)이란 말이 있다. 태아의 숨소리란 뜻으로 태아는 두 달만
되면 어머니와 함께 숨을 쉰다. 이때부터 영혼이 깃들기 시작, 태아는
모체의 일부분이 아닌 영육의 혼합체로 성장한다. 태교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태아는 백지 상태의 맑은 영혼이기에
모태의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옛 말에 임신한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외출을 하면 훗날 아이가 108번 가출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중절수술은 대개 임신 3개월 즈음에 하니, 이제 막 태식이 시작된
태아령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이유 없이 죽어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다.

엄연히 살인행위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중절수술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부모들이 찾아와 자기 자식은 잘되길 바라니 참으로 이기적이란
생각뿐이다.

나는 과거 태아령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몸소 체험했다.

20년 전 얘기지만 영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던 O여인이 나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놨다. 그녀는 딸만 셋을 낳고 네 번째 임신
중이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무심코 이번엔 틀림없이
아들이긴하나 낳으면 남편이 위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중, 아내가 정부에서 권장한 복강경 수술을 받다가
정작 배꼽이 두꺼워 수술은 못하고 6시간 동안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아
사경을 헤맨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O여인은 내 말을 듣고 낙태시기를 훨씬 넘긴
상태였던 네 번째 아기를 지우기 위해 6시간 동안 수술을 받고 있었다.

O여인에게서 낙태된 태아령이 극도로 분노해 내 아내와 나에게 고통을
준 뒤 떠난 것이다.

Y씨처럼 아들의 잦은 가출로 괴로워하던 K여인은 아들을 낳기 위해
위로 딸 셋을 중절 수술했다. 그녀는 남편의 바람기로 괴로워하며
온갖 정성을 다해 아들을 키웠지만 아들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태아령은 자신들을 죽이면서까지 낳은 아들을 키우며
어머니가 반성하고 후회하길 바랐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태아령은 천도되지 못한 채 지상을 떠도는 태아령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과보를 받을 것이라 예고했다.

늘어나는 자살, 이혼, 불륜 등을 막기 위해서는 낙태율을 줄이고 태아령을
위로하는 천도의식을 병원과 가정 등에서 올려줘야 한다며 한숨쉬었다.

"다음 생에는 꼭 세상의 빛을 봤으면 좋겠어요." 해맑은 태아령들이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길 간절히 소원했다.


출처: 스포츠조선 차길진법사의 영혼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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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낙태아 영가들을 위해서 49 일동안 물론 가정에서도
지장경독송,광명진언과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를
함께해서 그런지몰라도 삼일전과 49 일날 꿈에

그 간의 수많은 영가가 손잡고 강강수월래를 하는데,
주위가 참 맑고 밝으며,영가의 얼굴이 진짜로 동자승
같이 ,모두가 복숭아 얼굴이예요.


출처: 네이버 보살의 친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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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어느 날, 전라도에 사는 보살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여동생이 있는데, 자꾸만 유산이 되어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동생 나이가 몇 살인데요? "

"40이 넘었었어요, 몇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가졌는데
양수가 나와 병원에 입원했어요, "

"몇 개월 정도 됐습니까? "

"이제 4개월 째 들어서요? "

"스님, "

"왜 자꾸만 유산이 될까요? "

"이번에도 아이가 유산이 되며 어떻게 하지요?
제부는 아들 하나 보았으면 하는 마음인데......정말 걱정이에요. "

"보살님, 이 아이는 유산된 태아의 원결로 인하여 이렇게 된거이니,
하루속히 태아영가 천도재를 우선 먼저 해주세요,
그러면 괜찮아 질 거예요."

보살은 놀란듯이

"태아영가 천도재요? 조상에게 지내는 천도재는 알겠는데, 그게 뭔가요? "
"네... 잘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세요. 우리 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요. 태아 영가 천도재는 세상의 빛을 보고 태어나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서 사라진 낙태되거나 유산된 태아를 엄마, 아빠가 참회하여
원결을 풀어주는 기도입니다."

이 말을 듣던 보살은 동생에게 얘기를 해주었고,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다.
그 후 흐르던 양수는 멈추고, 엄마는 퇴원하여 몸조리하여 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게 되었다.

지금도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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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혜영이의 죽음

혜영이는 착하고 예쁜 눈망울을 가진 5살 된 여자아이였다.
어느날, 아빠하고 장난치며 놀다가 갑자기 저 세상에 가게 되었다.
갑작스런 혜영이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혜영이의 부모...시체부검까지
하였지만, 죽음의 원인에 대해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혜영이 부모. 그 슬픔은 더욱 커져만 갔다.

"스님, 죽은 혜영이가 자꾸만 보여요."
"그래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가요?"
"슬픈 모습이었어요."
하며 혜영이의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혜영이가 극락에 가지 못하고, 저승에서 헤매고 있는거 같습니다."
"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혜영이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부처님께 열심히 염불공덕을 올리십시오. "
"그러면 우리 혜영이가 극락으로 갈 수 있나요?"
"그럼요. 부처님께 진심으로 열심히 기도를 하신다면 이루어질 거예요. "

장례를 치르고 혜영이의 반혼재를 맞이하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가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스님? 갑자기 배가 고파서 장을 볼 수가 없네요."
"저도 그래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네. 우리 빨리 물건 사서 들어가요."

절에 도착하니 일하던 보살님도 배가 고파 음식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네... 왜들 그러지..?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먼저 배고픔을 달래고
일을 하기로 했다.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혜영이를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혜영이를 위해 49일 천도재를 지내는데, 3재 때에 혜영이 엄마는
죽은 혜영이의 태몽을 꾸게 되었다.

그 후 염원으로 혜영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기도를 드렸는데, 49일 회향하고, 얼마 있다가 혜영이의 엄마가
아이를 가지게된 것이다. 그 아이는 누나를 닮은 사내아이로 태어났다.

혜영이의 부모는 말할 수 없이 기뻤고, 사내아이가 죽은 딸이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온 것으로 믿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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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낙태 아이와 엄마마음

어느 여름, 우연히 "엄마, 아빠 참회도량"이라는 구담사 푯말을 보고
들른 보살이 있었다. 그 보살은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절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들어서지 않네요."

"병원엔 가보셨어요?"

"네, 아무 이상이 없대요. 그런데도, 아기가 들어서지 않아요. "

그러면서 보살은 낙태한 얘기까지 꺼내 놓았다.

보살은 혼기 놓친 꽉찬 노처녀로 우연히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 사랑을 하게 되었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상태라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 아이를 가지면 허물이 되고 직장도 그만두게 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고, 게다가 남자 집에서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아이를 낙태하게 되었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르고 아이는 낳지 못하고 계속
낙태만 해왔다. 그후 결혼을 하여 아이를 가지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유산이 계속 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던 나는

"아이의 원결 때문이군요."

"원결이요?"

"네. 낙태된 아이는 엄마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낙태시킨 엄마는 그
아이의 원결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하고 계속해서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에 대한 참회기도를 열심히 하면 바람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보살은 아이를 갖고싶은 마음에 그 자리에서 낙태된 아이를 위한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

"보살님의 뜻이 그러하시면 그 아이의 영혼을 위해 참회하는 마음에서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라고 한 뒤,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천도재를 올리는데, 마지막으로 낙태시킨 아이의 영혼이 보이는
것이었다. 영혼은 4개월 된 아이로서 엄마가 나쁜 마음을 먹고 낙태했기
때문에 원결이 되어 유산이 되는 것이었다.

"보살님 마지막 아이를 지울 때 무슨 마음을 가졌나요? "

울면서 하는 말
"생명을 낙태시켜 미안한 마음에 마지막 아이한테는 네가 차라리 기형아나
병신이 되어 엄마의 인연이 다 되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낙태시킨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말못하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태아가, 엄마의
태속에서 그 뜻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교도 중요하지만 태교도 중요하다. 엄마의 생각이
전달되기 때문에 3-4개월 이후부터는 태교방법을 중요시해야 한다.

그뒤로 보살은 아이 낳는 것보다. 참회기도로서 회향하고 있다.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이 맺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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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멀어진 부부사이

낙태 이후, 부부 사이가 멀어졌다. '사니, 안사니' 하더니만 세월이 5년이나 흘렀다.

그 고통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 인 것 같다.

천도재를 하던 도중 보살이 하는 이야기가
"스님, 제가 낙태 할 때 꿈을 꾸었는데요, 아이를 낙태시키려고 가기
전날 꿈에 사나이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엄마 왜 나만 죽이려고 해?
형은 저렇게 예뻐해 주고 나는 왜 죽이려고 하냐면서 저를 똑바로
쳐다보고 하는 말에 놀라 일어났어요."

그 날 남편은 하지 말라고 말렸으나 보살은 꿈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가정이 힘들어 키우지 못한다면서 결국 아이를 지워버렸다. 그 후 집안은
싸움이 계속 일어났고, 남편은 직장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모아둔 돈으로
주식에 투자를 했지만 그마저 다 날리게 되어 힘들게 되었다. 부인도 직장에
다니지만 해고를 당해, 힘든 생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도와주었지만 해결이 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어 갔다.

보살은 결혼 전 남편하고 연애하여 아이를 갖게 되었다. 남편 졸업식에
갔다와서 그 날밤 갑자기 입이 삐뚤어지고 풍을 맞게 되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어 약물치료도 못 한 채 큰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뒤 그 상태로 둘째
아이도 낳게 되었다. 젊은 엄마가 풍이 있어 눈과 입이 실룩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참 안타까웠다.

세월이 흘러, 어느날 보살이 하는 말이
"스님, 제가 왜 풍이 왔는지 한번 기도해 주세요"
"보살님, 구병시식 한번 해보지요."
"구병시식이 뭔가요?"
"이유 없이 아픈 사람과 몸에 있는 책주귀신을 천도 해주는 것입니다. "
하고 대답하였더니, 보살은
"그러면 한번 해보죠."
하고 나서 구병시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구병시식을 해도 차도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하고
또다시 하였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보살님 조상영가 천도재를 올려 주세요"

그래서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는데, 영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영가축원을 하면서 관하여 보니,

시어머니 영가의 혼령이

"살아생전에 가정을 어렵게 꾸려 나갔는데, 그만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한끼조차 먹기 어려웠던터라 약을 사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결핵과
풍으로 인하여 죽게 되었는데, 살아생전 약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 이 되어 며느리가 결혼 전 산소에 왔을 때 혼령이 붙은 것입니다.
내가 살아생전 약을 못 먹었으니 한약재를 보약과 중풍약을 지어서 함께 무덤에
뿌려주면 낳을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
위해 보살을 모시고 한의사에게 진맥을 보고, 보약을 조제하여 시어머니
산소에 뿌렸다. 그 후 일주일 지나고 보름이 되자 보살의 입이 제대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표시가 나지 않을 만큼 좋아졌다.
결국 낙태된 태아는 시어머니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맺어진 인연으로서
엄마가 모르고 낙태를 하여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보살님, 태아영가 천도재를 지내는 동안 남편과 함께 참회기도를 하세요 .
죽은 아이의 원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참회기도를 하시면, 지금보다도
한결 편안해지실 겁니다."

"정말요? 그런데, 남편이 안 하면 어떻게 하지요."

"네.. 하지만 낙태는 두 사람이 잘못을 한 것이기 때문에 두 분이 참회기도
를 해야합니다. 아빠가 참회해야만 아이는 업장소멸이 될 거예요. 같이
하세요"

며칠후 보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돌아간 뒤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글쎄
눈물을 머금고 '난 그 아이 생각을 많이 했소. 우리 참회기도하고 어머니
영혼도 함께 기도해주십시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스님께, 천도재를
올리겠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 드렸어요."
"지금 어디 가시는 길이신가봐요."
"네.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제사 모시러 대구에 내려가는 길이에요,
감사합니다. 시어머니께 참회하고 용서를 빌겠어요."
하며 저번보다도 밝은 모습이었다.

지금 부부는 하는 일이 힘은 되지만 잘되고 있고, 계속해서 참회기도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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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인연

절에 오면 열심히 일을 도와주고, 예쁘게 꽃꽂이도 곧잘 해주는 보살이
있다. 그 보살에게는 딸만 둘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를 더 가지고
싶어했다. 할 수 없이 남편의 소망대로 아이를 가지기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유산이 되는 것이었다.

"스님, 아들과의 인연이 없나봐요."

"아니, 왜요?"

"하도 남편이 성화해서 아이를 가지기로 했는데, 자꾸만 유산이 되네요.
어떡하면 좋죠."

"글쎄요. "

그래서 보살은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에

"태아영가 천도재를 해주면 어떨까요? 그동안 유산되었던 아이들을 위로해
주면 나을 것 같은데요."

"그러세요. 아이들도 나름대로 한이 됐을 거예요."

그 말이 있은 후, 태아영가 천도재를 지내게 되었고, 얼마 후 정말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보살은 그만 심한 운동으로 또 유산이 되고 말았다.

보살은 울면서 하는 말,

"제가 또 업을 짓게 되었네요. 아이에게 미안해요."

하며 자책을 하는 것이었다.

낙심한 보살을 위해,

"보살 아이는 다시 인연이 있으니 열심히 기도하고 참회기도 하세요."

하자 보살은 다시 일심으로 기도하기 시작을 했고, 드디어 잘생긴 아들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보살은 잘 생긴 아들과 함께, 부처님께 인사드리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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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년을 참회하는 마음

몇 년 전 M이라는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날것이다. 사랑하던 부모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지만 헤어지면서 아이를 낙태시키게 되고, 그 낙태된 아이는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낙태시킨 아이는 과거의 부모를 기억하고
원결로 태어나서 복수하고 죽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일이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어느 신도님의 사연이다.

사찰에 오면 묵묵히 일을 도와주시는 보살이 있다. 보살은 신심이 많고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기도로 살아가시는 분이다.

보살에게는 자식이 하나 있는데, 엄마하고 무슨 악연이 있는지, 보고
마주치기만 하면 인상을 찌푸리고 거친 말과 행동을 일삼았다. 또한,
이리가면 저리 가고, 저리가면 이리 가는 등 눈을 마주치기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 탓에 주위에는 친구 하나 없었고,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방안에서만 자기
얼굴을 예쁘게 가꾸는 행위만 20년 넘게 해왔다. 그런 자식을 보고 걱정이 됐던
보살은 좋다는 것은 다해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그 상태
그대로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구담사를 찾은 보살은

"불교신문에서 태아영가 천도재에 대한 글을 읽고, 이렇게 인연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자식을 위해 좋은 기도는 다해보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희망이려니 하고 오게 되었습니다.
태아영가 천도재를 올리면서 참회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생각에 동의를 하여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태아영가
천도재를 하면서 깜짝 놀라게 되었다. 태아령이 하는 말이,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나를 가져 놓고, 엄마 마음대로 나를 낙태했지?
낙태 한 후, 아빠하고 헤어지고, 2년 후에 다시 만나 결혼하여 40이
되어서 아이를 가졌지? 그 나이에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한데, 바로
그 아이는 엄마가 지워버렸던 아이가 지금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난거야.
그 자식 때문에 고통받고 눈물로 살게될 거야"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 당시 지워버렸던 여자아이가 지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 하지만 사실이다. 사연은 이러했다.

보살은 시집갈 나이를 훌쩍 넘은 노처녀로 있다가, 사랑하는 이가 있어
연애를 하여 아이를 가지게 되였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임신이 되고
말았는데.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니,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6개월 정도 된 아이를 낙태시키게 되었고, 그 뒤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만나 결혼하여 지금의 아이를 낳게 되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무서운 악연일까? 핏덩어리라고 생각하고 생명이 아닌 줄 알았던
것이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결국 숨을 쉬고 있는
생명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아영가 천도재를 지내고 난 뒤, 엄마를 힘들게 하던 자식은 많이
온순해지고, 자기보다는 엄마를 위해 생각을 해주게 되었다. 엄마는 행복을
느끼며, 오늘도 그 자식을 위해 엎드려 참회하고 부처님께 발원하고 있다.

태아의 영혼은 이름도 없고, 장례식도 없이 버려졌기 때문에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고 있는 삼도천을 건너 불계에 가고 싶어도 부모의 공양
없이는 이루워질 수 없기 때문에 공양을 해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은 깊이 쌓여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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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행복한 가정

이들 부부는 대학 때 만나 연애하여 결혼을 하였다. 결혼하기 전 아이를
가졌었지만 형편이 되지 못해 아이를 그만 낙태시키고 말았다.

결혼을 하고 난 후, 첫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상하게 부부 사이는 한없이
멀어져만 갔다.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고, 사업상
바빠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자주 빈번했다. 또한, 사랑보다 부부의 의무와
책임감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걱정이 된
엄마는 공부는 잘하는데, 왜 운이 따라 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스님, 아이에게 자꾸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네요.
정말 귀한 아들인데...첫아이를 낙태하고 난뒤, 어렵게 지금의 아들을
낳았는데, 아빠하고 상극 이예요, 남들은 첫 자식을 낳으면 좋아하는데
정이 없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낙태된 아이의 원결 때문에 일어나게 된 거 같습니다."
"원결이요?"
"낙태된 아이의 원한이라고 하면 맞을 거예요."

공부는 잘 하는데 아빠하고 부딪히면 어긋나는 아이 행동에 엄마는 화가나
부부싸움이 계속 일어났고 결국 이혼까지 갈 정도로 사이가 나빠져 큰아이를
위한 태아영가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일인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혼한다고 떠들어댔던
부부가, 갑자기 정이 깊어져 주위 사람들이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혼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
"이혼은요? 사업 열심히 해서 우리 아이 잘 키워야지요. "
"스님, 아빠의 악연으로 우리아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번 기도에 감사
드립니다. 법복 한 벌 해드릴께요"
"감사합니다. 좋은 아빠가 되어 주시고, 더욱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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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어느 노보살님의 꿈

그동안 모르고 지내온 죄를 소멸하기 위해 참회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노보살님. 머리는 백발이 되어 보이지만 얼굴 속에는 자비의 모습이
떠오르는 그런 보살님이다.

5재 때 관욕 하기에 신발을 사놓고, 절에 갈 날만을 기다리던 노보살은
"다리가 아파 가지 못 할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참회기도를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데. 제가 노살님의 몫까지
열심히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집에서 해주세요."
"스님 고맙습니다. 뒤늦게 가슴속에 담아두고 살아온 낙태시켜버린 아이를
위해 이렇게 기도해주고 참회하니 마음이 가볍네요 가슴속에 늘 담아둔
아이를 살생한 죄 부모로써 잘못했다는 그 한마디로 아이가 극락왕생하고
다음 생에 좋은 인연을 만날 수만 있다면 저는 이생에서 마지막 기도의
발원입니다. "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49일간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는데, 5재때 노보살님의 꿈에 어린아이가
나타나

"제가 신발이 없어 갈 수가 없어요."

하면서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음날 놀란 노보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님, 제가 신발을 사두고 가지 못하니, 아이가 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 6재때 꼭 가져오세요."
그리고 나서 노보살은 효자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


"오지 못할 뻔했는데, 아들이 '어머니 절에 가요. 어서 신발을 신어서
보내드려야지요.'하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오게 됐어요"
하면서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그 태아령은 그 날밤 꿈에 나타나서 신발을 신고,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면서 떠났다. 지극한 노보살님의 정성으로 태아령은 기쁜 마음에
새 신을 신고 멀리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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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해외에서도 천도재를 하다

태아영가 천도재는 해외에서도 접수를 하여 기도한다. 93년 처음시작
할 때는 여성동아 잡지를 통해 알리게 되었는데, '태아영가 천도재가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워요.' 하면서, 해외에 계시는
보살님들로부터 반응이 꽤 좋았다.

지금도 '우리 아기 잘 부탁한다'는 전화통화 반갑게 상담해주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보살은 일본 오사카에 사는 제일교포이다.
낙태시킨 아이가 여러 명 있어, 기도하고싶다는 것이었다.

오사카에 사는 보살에게

"일본에서도 하는데 왜 멀리서 기도합니까?"
하고 묻자,

보살은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49일 기도 접수하고 해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요? 제가 일본에 현지 답사를 갔을때도 수자공원을 많이 보긴했지만
천도재를 해주는 곳이 드물더군요. 그런데, 보살님 어떻게 아셨어요?"

"불교신문을 보고,한국에서도 태아영가 천도재를 한다는걸 알게 됐어요."

"이렇게 멀리서도 인연이 되네요."

하며, 보살에게 태아영가 천도재를 해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3재가 지나고 나서, 보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님, 제가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어떤, 꿈을 꾸셨는데요?"

"꿈에 아이 셋이 나타나서 '엄마, 우리 셋은 떠나가는데 저기 아직 남아
있어요.' 엄마가 더 기도하여 같이 가게 천도시켜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은 한국에 있을 때 맺어진 아이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일본에서
맺어진 아이들입니다. ."

"그렇군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기도를 하면, 나머지 태아영가도 천도시켜
극락왕생의 길을 함께 갈 수 있어요."

"정말요?"

"그럼요. 진심으로 원한다면 기도를 열심히 하세요."

"고맙습니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뒤, 한국에 잠깐 볼일이 있어 나왔는데,

"우리 아기 잘 부탁해요? 저도 남아있는 태아영가를 위해 참회기도를
열심히 기도 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음에 우리 아이 보러 올께요."
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남은 태아영가를 위해 참회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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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안녕하세요..

불자로써 부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배우기 위해 독수리타법으로
컴퓨터를 자주 이용합니다.

지난 6월 초순쯤 태아영가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구담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2003년 봄부터 저는 병명도 없이 허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약물특수검사를 하여도 뚜렷한 병명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5시간 이상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허리에 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잠을 자야하는 시간이 무서웠습니다.

낮에는 건강한 사람이지만 밤만 되면 허리에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을 정도로 모든 가족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하지만.. 구담사를 알게 된 이후로는 저의 삶이 밝아졌습니다.

태아영가 기도를 올린 후 그날 밤에 아이들이 떠나는 꿈을 꾸고
난 후로는 신기하게도 허리에 고통이 없어졌습니다.

잠시 겪은 고통이었지만 태아영가 아이들은 20년 동안 저의
참회기도를 기다렸나봅니다.

저는 마음속에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처님의 가피력과, 지장보살님의 원력으로 3년 동안
참회기도를 하게 되어 구담사 지율스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20년을 참회하지 못한 죄인으로써 스님의 원력으로 3년을 동참하게
되어 죄의식을 조금이나 갚을 수 있을까요..?

스님... 불자의 이름으로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처럼 고통을 겪고
있는 불자님이 계신다면 참회기도에 동참하여 밝고 맑은 지혜로써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구담사 지율스님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건강하시며 태아영가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감사합니다.


출처: 구담사(www.gudam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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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성장 장애로 자라지 않는 여학생


경기도 용인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여자 아이가 부모에게 이끌려 나를 찾아왔다.

나이는 분명 열일곱 살인데 육안으로는 다섯살 정도로 보였다.

손가락 뼈도 너무나 가늘어서 도저히 사람의 형상으로는 볼 수 없었다.

뚜렷한 병명도 없이 밥도 못 먹고 미음과 주사에 의지한다고 했다.

아이의 부모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도 자식을 기르는 입장에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영시를 해보니, 육십 대로 보이는 산부인과 의사가 한 여자의 양쪽에서 낙태 수술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애를 둘이나 낙태시켰나요?"

"네, 두 번 낙태 수술받았는데요."

아이의 어머니에게 의사의 인상을 말하였더니 자신이 수술받은 병원의 의사가 맞다고했다.

"낙태아가 딸을 못 자라게하고 있어요."

두 명의 낙태아가 현재의 딸에게 붙어 성장장애를 일으킨 경우였다.

아이의 모습은 머리만 크고 팔과 다리는 가느다란 게, 초음파 검사할 때 화면에 보이는
태아의 모습 그대로였다.

"태아의 영혼위해서 영가천도를 하세요. 아니면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참회의 기도를 해야만
딸을 구할 수 있을겁니다. 나는 원인만 찾아 드릴 뿐 내가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예요. "

일본에서는 불가피하게 낙태수술을 할 경우에 산부인과병원에서 태아의 시체를 작은 용기에
담아 태아의 시신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용역 회사에 넘겨준다.

용역회사에서는 정중하게 화장한 후, 그 유해를 지정된 사찰에 봉안하여 태아영가의 천도불공을
봉행하는데, 현재 그와 같은 사찰이 2,000여개도 더 된다고한다.

일본인은 靈영의 세계에 대해 일찍 깨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임신 몇 주부터 태아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엄연히 어머니의 뱃속에서 착상되었을 때부터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그러니 임신초기에
낙태를 하더라도 그것은 엄격히 말해 살인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출처: 김진영저 영혼의 눈 -제3의 눈을 통해서 난치병을 치료해주고 불행의 원인을 상담해주는
초등학교 여선생님의 이야기 (도서출판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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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어린아이의 뇌종양이 불가사의하게 사라지다!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미야코 아사코(42세)


감사합니다.

저는 두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제가 이 가르침에 접하게 된 것은 1972년 2월 7일이었습니다.

저의 둘째 딸은 구미코라고합니다.

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양호실에서 쉬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이상하니 한 번 뇌파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장 내과 선생에게 갔더니 의사선생님은

"이 아이는 간장이 나쁘고 혈압도 낮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학교에 가도 좋지만 운동은 피하고 TV도 보지않도록하며 일찍 자고
등하교시에는 보살펴주도록 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머리의 통증은 좋아졌으나 안색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기때문에 또 내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머리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아마 괜찮을겁니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걱정이 되어서 미지마 중앙병원에 데리고 가서 거기서 뇌파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이 아이는 뇌종양인데 천 명중 한 명 있을정도로 아주 특이한 예입니다.
가령 수술을 하거나 안하거나 3개월의 생명입니다. 이 아이가 원하는대로 해주세요.

저희들로서는 도울 길이 없습니다. 오카야마 대학병원이나 국립병원에 가보시든지...

봄방학까지는 버틸 겁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정말 이 아이는 틀린 것입니까?"하고 힘없이 묻자

"안됐습니다만 체념하십시오."하는 것이 의사의 마지막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중 숙모집에 들렀습니다.

숙모는 'ㅇㅇ의 집'의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의사선생님이 포기했다면 神佛신불께 매달려봅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어떻게하면 좋을까하다가

"그렇다. 이제는 어디에도 매달릴 곳은 없다. 신불께 도움을 청해보자'생각하고
그 길로 곧 구라시키 시 히로에에 있는 마츠이 요시오 선생님 댁으로가서 개인지도를
받기를 결심하고 숙모와 남편과 함께 선생을 방문상담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당신은 남편에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손위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습니까?"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사이가 나빠 얼굴만 봐도 늘 싸움이었고, 투덜투덜 잔소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라는 것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츠이 선생은 "남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이의 병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남편에게 감사하고 아이에게도 감사하지 않는 한, 아이도 집안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신불의 자식이므로 병은 본래없습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그렇다! 그렇다! 정말 내가 나빴다'고 마음속 깊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지도를 하시는 중에, 선생은 다시

"당신은 낙태한 적은 없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유산도, 낙태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자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공양해야한다고 하면서
유산아의 위패 적는 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장 집으로 돌아와서 불단앞에서 '감로의 법우(주:ㅇㅇ의 집의 경전으로
모든 종교에 보편된 진리를 이야기한 경전, 불교의 반야경과 유사함)'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반쯤 읽었을 무렵 아이는 조용히
잠이 들어 기분좋게 자는 것 같았습니다.

오랫만에 '고마운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나도 며칠 째 잠을 자지 못했기때문에
어느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는데, 문득 눈을 떠보니 아이의 머리위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며칠 동안 뜬 눈으로 지샜기때문에 내 눈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하고 잠깐 눈을 감고있다가 떠 보니 이번에는 더욱 많은 순백의 연기가 천정에
가득히 번져오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그렇다! 이제 이 아이는 병이 나았다. 신불께서 내눈에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저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기는
밤중 내내 아이의 머리위에서 위로 퍼져 방안이 연기로 가득찼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방안을 이리저리 헤매이고 있는 동안에 날이 밝았습니다.

새벽 5시 10분이 되어 무의식중에 감로의 법우를 읽었습니다.

그러자 웬일입니까? 방안에 가득찬 연기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구미코는 열이 더욱 높아졌고 저는 "큰 일이다, 큰일이다."를
반복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주사를 놓아주셨습니다만 열은 40도가 넘도록 올라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구미코는 갑자기 밥이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며칠이나 밥을 먹지않았으므로, 저는 기뻐서 부엌으로 달려가서 죽을 끓여주었더니
그 죽이 맛있다고 하면서 두 공기를 먹었습니다.

다 먹고나서는 "이제는 자고 싶어....'하면서 그대로 쓰러져 쿨쿨 기분좋게 아침까지 잠을
푹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열은 깨끗이 내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구미코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어머니, 머리가 가벼워졌어요. 아프지않고 왠지 기분도 좋아요. 오늘은 학교에
가도 되지요?"라고 즐거운 듯이 말했습니다.

저는 "잘됐다! 이 아이는 신불의 자식이다. 정말 잘 됐다."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니?"하고 물으니 "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때부터 구미코는 깨끗이 나아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神佛이 이렇게 고마운 존재인가하고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으로 되지않는 것도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단지 인간은 신불의 자식, 진심이 되기만하면 어떤 일이라도 구원된다고 통감하고 있습니다.

ㅇㅇ의 집의 감로의 법우의 공덕으로 병은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니구치 선생님을 비롯해서 마츠이 선생님 그리고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1973. 10. 2. 오카야마 현립체육관)


34.



낙태아 참회기도 / 일행 (불자모임광장카페)



무지가 죄라더니

낙태가 죄가 되는줄 모르고

병원을 자주 갔습니다...........



자식을 여럿 키울 경제적 여유도 없어서

하나만 잘키우려고 큰아이낳고

둘째를 8년만에 낳았으니....

그 동안 병원을 들락날락 했더랍니다.



어느날부터

꿈에서 벌거벗은 아이가 보이고

아이를 업고 다니는 꿈을 가끔씩 꾸었습니다..



그래도 무지하여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애들 꿈은 좋지 않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무슨일이지 집안이 풍지박산 날 정도까지 갔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사는 세월이 있었고

부부사이도 좋지않아 사네마네 다투는 시간들 이었습니다.



남편을 임금 모시듯 받들고 살았는데

자꾸 미운 마음이 들어 정이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절에 와서야........그것이 큰 죄인줄 알고...

모든 원인이 영가장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누구하고도 상의할 줄도 모르고

일타스님 책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했습니다.

참회기도하고 지장전에 공양물 올리고

집에서 광명진언으로 영가천도 기도를 했습니다.



21일간 육식 안 하고

경을 읽는 시간으로 보내고

21일 기도를 한번 더했습니다.



온 몸이 가렵기 시작하는데

이상스럽게도 하반신만 두드러기가 나고

15일 지나니 상반신으로 올라오는 겁니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해 먹어도 효과가 전혀 없고

오히려 더 하는 것입니다.



밤에 잠을 못이루고 긁어대기 시작하면

피부는 벌겋게 달아 오릅니다.

이때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기도중 장애가 있다고 하던데

올테면 와보라 죽기뿐이 더하겠나...ㅎ



그런데

간절한 참회가 들어가지 않고.......

장애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도를 하면

잘 안되더군요.........



조상님만 천도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어느날 .......

지장경을 보고....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이 내 아이들 같아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더니

눈물이 나오면서...

미안하다..미안하다..내가 잘못했구나...

부모가 어리석어 세상밖에 못나오게 했구나..

세상에 나왔더라면 지금 쯤 성인이 되어 있을텐데...

부모 잘못 만나서 세상 구경도 못하고

성불의 길도 막았구나...



참회하고 또 참회를 했습니다.

꽃을 들고 절에 가는 길에도

광명진언을 외워주고

극락 왕생을 빌었습니다.



(다시는 태어남이 없게 기도를 해야 한답니다..)



어느날부터 발가벗은 간난아이가 아니라

두세살로 보이는 아이가 옷을 차려입고 꿈에 나타나더니

갈수록 아이가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하루는 아이들 몇 명을 목욕을 시켜 주었는데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끝으로 아이들 꿈은 다시는 안꾸게 되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경 읽고

절에 자주가고

여러 수행도 해보고

봉사도 해보고

보시도 해보고



좋다는 것은 다 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하고 모자라고

오계도 지키지는 못하지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낙태아 천도는 간절한 참회가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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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몸이 아프고 하는 일마다 안되는 여자

어느 교수님의 부인은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몸이 아프고 하는 일마다 안된다고
하였다.

부지런하기때문에 일은 많이 벌여놓는데 되는 일이 없어 걱정이라는 것이다.

눈을 감고 원인을 찾으니, 교수님과 똑같이 생긴 남자아기가 보였다.

"아이를 유산시킨 적 있습니까? 남자 아이인데요."

"네, 있습니다. 결혼 초기에 아이가 들어섰는데 낳아서 키울 형편이 안됐거든요.
7개월 정도에 뗐는데, 의사가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태어났으면 교수님하고 똑같이 생기고 똘똘했겠네요. 태어나서 한 세상 잘 살고 싶었는데,
태어나지 못하게한 원망때문에 하는 일도 안되고 몸도 아픈 것입니다. 절에가서 잘못했다고
참회하며 천도해야겠네요."

"집사람이 절에 다니는데, 스님이 그런 말을 한 적 있대요. 유산시킨 아이 때문에 몸이
아프고 하는 일이 안되는 거라고요."

이런 경우처럼 아이를 유산시키는 인간의 마음은 참 이기적이다.

자신과 아기 둘 다에게 편하고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않다.

정작 유산된 아기의 마음은 인간으로 태어나 잘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 원망만
가득한 채 이승을 떠도는 것이다.

영가가 이승을 떠돌거나 주변에 있으면 몸이 아프고 되는 일이 없다.

그런 반면, 아기들은 천도가 잘된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영가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좋은 곳으로 환생할 것이다.


출처: 김진영저 영혼의 눈-제3의 눈을 통해 난치병을 치료해주고 불행의 원인을 상담해주는
초등학교 여선생님의 이야기(도서출판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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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낙태의 죄


낙태(落胎)를 하는 것은 부부간의 살생죄(殺生罪)이다.

닭, 오리, 물고기,돼지, 소, 양을 죽이는 죄와 비교하면 훨씬 더 중하다.

묘법 노스님께서 만난, 이러한 낙태로 말미암아 초래된 질병의 사례는 너무도 많았다.
심장병이 가장 많았으며 환자의 대부분은 여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낙태는 당사자뿐 아니라 의사, 국가정책 등 여러가지 원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방면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현재 이러한 문제에 봉착
하는 것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간단히 쓰려고한다.

국가(중국)의 인구 억제정책은 올바른 것이다. 모든 기혼 남녀는 가족계획을 엄격히
실행해야한다. 정책이 허락하지않는 임신에 낙태를 하는 것은 그 잘못이 본인에게
있다. 따라서 부부는 마땅히 적절하게 피임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낙태는 살생이므로 그에 따른 과보는 반드시 자기 스스로 받게된다.

왜냐하면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겁에 회복하기 어렵다."고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뱃속에 든 신식(영혼 )은 사람이 되기위하여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당신들과 인연이 있어 비로소 태(胎)에 든 것인데, 결과적으로 당신에 의해 낙태
되면 이 생명(아기)의 원한심은 소멸되기가 쉽지않은 것이다.

당신은 국가정책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
임신은 부부의 음욕심이 중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또한 부주의하여 임신이
된 것인데, 도리어 국가정책을 앞에 놓으려한다.

불법을 믿으면서 낙태를 한 적이 있는 부부는 부처님전에 죄업을 참회해야한다.
아울러 생명을 잃은 아기에게 죄를 인정하면서,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니 간절히 용서를 구해야한다. 그리고, 아기에게 인간의 괴로움을 말해
주면서 다시는 인간세상에 오지않도록 말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염하도록 하고 그를 위하여 지장경 혹은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을 3회 혹은 7회 독송해주어야한다.(매아기마다)

꿇어앉아 독송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당신이 정말로 성심으로
참회한다면 낙태때문에 조성된 각종 질병은 모두 좋아질 것이다.

낙태에 참여한 의사, 간호사들은 자비심을 가져야하며, 수술 과정에서 태아를 위하여
묵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해야한다.

만약 매일 아침 또는 저녁에 자기가 수술한 태아를 위하여 지장경, 천수대비주,
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의 경을 한 번씩 독송하여 천도해주면, 당신은 바로 보살의
마음을 가진 분이다.

수술한 의사 등은 비록 주요 책임은 없을지라도 결국 낙태에 참여하였기때문에,
위의 방법으로 참회하면 죄를 소멸할 뿐아니라 또한 공덕이 있을 것이다.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을 깊이 열독하면 무량한 이익을 얻게될 것이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속편)

불광출판부刊 중국 과경거사엮음 각산 정원규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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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태아(胎兒)영가의 천도는 왜 중요하며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생명을 스스로 해치지 말라. 타인으로 하여금 죽이도록 하지도 말라. 또한 다른 사람들이 살해하는 것을 용인해서도 안된다.

이것은 부처님이 정하신 계율 중 첫째인 불살생계(不殺生戒)이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고 살생과 폭력을 금지하는 자비의 불법에 있어 가장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인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인공낙태의 형태를 접하면서 생명체로서 존엄되어야 할 권리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박탈당하고 살태(殺胎)되어 중음신으로 구천을 떠돌아야 하는 낙태아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낙태아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였기 때문에 이승에 대한 애착을 더 갖게 되며 따라서 중음신(中陰身)으로 남아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다.

중생은 죽음이후 선업(善業)이 아주 강하면 49일을 기다리지도않고 선도(善道)에 즉시 태어나고 악업(惡業)이 아주 강하면 이 역시 즉시 악도에 태어난다. 극선극악하지않은 영은 보통 49일간의 살아있을 때의 업과(業果)의 옳고 그름을 판단받는 기간을 거친다고 이야기된다.

그리고, 아직 태어남을 얻지못하고 있는 몸을 가진 영혼을 모두 중음신이라 한다.

중음신 중에서도 특히 태아영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태중에서 죽은 것이기에 이승의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크다. 그런 태아영은 빨리 삼도천(三途川)을 건너서 불계(佛界)에 가고 싶어 하지만 부모의 공양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공양해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쌓여간다.

중음계에 떠도는 태아령을 13년 17년 23년이 지나도록 방치해두면 그때부터는 가족을 괴롭힌다고 한다. 제일 먼저 어머니의 몸에 악화를 일으키게 되고,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노여움이 길어지면 태아영은 스스로가 부모를 불러서 하루라도 빨리 삼도천을 부모와 함께 건너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정에 흉사를 안겨주는데 그러한 행위는 부모의 공양을 받고 중음계를 벗어나려 했던 소망이 이뤄지지 않음으로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살인, 자살, 변사자의 영을 흉악영이라 하는데 태아영의 경우에 있어서는 임신 6~7개월이 된 후에 낙태했을 경우 흉악영이 된다고 한다.

영가들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이치를 모르고 자신이 지녔던 육체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므로 내생에 대한 준비를 못하고 결국 선도(善道)와 극락세계에 가지 못하고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된다.

이들 중음신은 과거에 살았던 세상은 물론 어디든지 볼 수 있는 천안(天眼)과 무엇이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승에서 천도를 목적으로 한 의식을 지내주면 즉각 천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름도 없고 부모도 없는 중절아, 유산아, 사산아라고 할지라도 불교적 생명관으로 볼 때 그들은 분명한 생명체이며 수태와 동시에 악업의 과(果)로 인하여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가여운 마음을 내어 지성으로 천도하고 무주구혼이 되어 떠도는 영혼을 달래주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와 인연을 맺어서 모태(母胎)에 머물며 날마다 달마다 자라는 동안 어버이의 자애를 믿었거늘 그 자애를 받지 못해 세상에 나게 될 육신을 잃었구나

‘아버지 살려줘요’

‘어머니 살려줘요’

어린 영혼은 애원해도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어둠을 헤매는 영이 되었구나. 의지할 육신을 여의고 중유(中有)에 떠도는 영혼의 갈데없는 외로운 여행...........

사후(死後) 산 아래 이승과 저승 사이에 삼도(三道)의 강이 흐른다. 이 추운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자식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이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 핏덩이들이 모래밭에서 고사리 손을 모아 회향의 탑을 쌓는다. 한 층을 쌓아 올려서는 아버지를 위해서, 또 한 층을 쌓아 올려서는 어머니를 위해서 또 한층은 고향의 형제들을 위해서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삼도의 강을 건너려 회향의 탑을 쌓는다.

그러나 하나의 탑이 완성되어 갈 때쯤이면 지옥의 귀신이 나타나 호통을 치며 탑을 무너뜨려 버린다. 애써 쌓아올린 탑이 무너져 내리면 어린 영혼들은 그만 모래밭에 쓰러져 서럽게 울다 지쳐서 잠이 들어 버린다. 그때 지장보살이 눈물을 흘리며 나타나서 옷자락으로 어린 영혼을 감사 안으면서 ‘너희들은 단명해서 죽은 것이다. 이승과 저승은 아주 다른 세계여서 너희 부모를 만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이 명부세계에서 부모로 생각하고 의지 하여라’ 하면서 삼도의 강을 건네 준다“

이 이야기는 일본어로 쓰여진 불교찬가에 있는 내용을 옮긴 것이다


출처: 영가천도의 중요성 (성지관음회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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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주안 용화사는 화두(話頭)로 삶의 지혜를 열어 가는 큰 사찰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평생 위패를 모시는 절이다.

신도들 끼리 작은 모임을 갖었는데 회원 중에 아들이 어린아이 짓거리를 하여
큰 스님께 친견을 하니 태아령이 빙의(憑依)가 되었다하여 절에 위폐를 모셨는데도
별 차도가 없다고 걱정을 하였다.

아들은 한달에 두 세번 정신적으로 발작 증세를 일으키곤 한다고 하였다.
부인과 스무살 남짓한 아들은 빙의를 떨처 버리기 위하여 금강경을 옮겨 쓰는
사경을 하였지만 혼란스러움은 차도가 없었다고 하였다.

부인은 자시 100 일 기도를 시작 하였다.
부인은 자신의 신심만 믿고 고려경탑다라니를 구입하지 않고 하였다.

손 없는 날 밥제사를 차리고 자시 기도를 하는데 아들이 이성을 잃고 고함을 첬다.
제사 상 위에 발가 벗은 아기가 누워 있는 모습을 아들만 본 것이다.
부인은 지장경과 극락경을 주문하였고 나는 기도 방법을 알려 주었다.

저승길을 향하던 영가들은 생전의 집착 때문에 길을 잃고
불량스러운 패거리가 되어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고
선방스님들의 수행담을 들은 적이 있다.

영가들이 습관적으로 음식 맛을 기억하고 음식을 기다릴 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중요 하지만
다음 세계로 인연을 찾아 갈 것을 주선 해 주고 그들이 근본적으로 떠남으로서
살아 있는자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 하다고
주장하는 스님도 있다.

안동에서 발견된 고려경탑다라니는 길 잃은 영가들을 다음 세계로 안내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첫번 제사 때 염주를 흔들며 신들린 사람처럼 날뛰던 아들은

두번째 제사에는 조용하였고

부인 꿈 속에서 나타난 태아령은 극히 평화로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고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들은 몸이 날아갈듯이 가벼워졌다며 좋아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정신적 혼란에서 벗어나 정상적 생활을 한다고한다.


출처: 이 성남의 생활불교 (cafe.daum.net/sanbang910. www.sanb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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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심령학적 측면에서 본 중절아

세계 최고의 낙태천국 한국.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바캉스 베이비나 크리스마스 베이비 붐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령도 초월해버린 것이 현실이다.

여대생에서 여고생으로, 최근에는 여중학생, 급기야는
초등학교 학생까지 산부인과를 찾는 풍조가 되어 버렸다.

마치 몸에 난 종기나 부스럼 정도로 태아를 제거하고 있다.
그런데 태아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심령연구가들은 중절아의 영혼은 엄청난 원한을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시각으로 낙태문제를 바라보았다.

하루에 4,500명, 1년에 150만 명. 우리나라에서 낙태로
소리없이 죽어가는 생명들이다.

인구 2억이 넘는 미국의 150만, 프랑스의 17만, 스웨덴의 30만,
일본의 50만건과 비교해 부끄럽게도 세계 1위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가 65만 명 이라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큐렛에 의해 찢기고 잘린 채 버려지는 생명은 25배가
넘는다는 말이다.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는 중절 수술까지 합하면
낙태아 수는 더욱 불어날 것이다.

하루에 1만명 이상의 생명이 뱃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다.

수태되는 순간 형성되는 인간의 생명과 거기에 깃든 영혼을 생각
한다면 15~20분간의 수술로 생명을 살해하고 미련없이 돌아설
수만은 없다.

가족계획이나 우생학적 차원 또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중절을
한다 해도 역시 생명을 살해하기는 매일반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낙태를 결정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 못할 사연’들을 털어놓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자신의 뱃 속에서 자라는 생명을 좋아서 죽일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거예요. 그 여자들의
괴로움, 여자들의 마음 같은 것은 모를 거예요.”

임신중절을 했을 때도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그 일념만으로 큰
걱정거리를 덜었다는 생각뿐이지, 도의적인 죄의식이나 뒤처리
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수술하고 나서는 짐을 덜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죠. 홀가분
했어요. 낳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개운하기도 하고.”

마치 거추장스러운 혹 하나 떼어낸 듯한 말투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다른 결정이었다는 부모의 항변으로도
중절아의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심령연구가들의 견해다.

조계종 차길진 법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치병은 중절아의
영혼때문일 경우가 많다.

부모, 형제에 탈을 일으키는 중절아의 영혼은 원령, 악령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바삐 성불하여 천도되어 영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사표시로서 탈을 일으키거나 한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예부터 영장은 7대에 걸쳐 탈이 난다는 말이 전해온다. 실제로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한 탈로 생긴 병은 매우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

석묘각 스님에 따르면 간질병, 만성비염, 부인병, 성불능,
유방암, 자궁암, 방광염, 노이로제, 야뇨증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통, 두통, 생리통, 생리불순으로
지목된다.

드물지만 여성의 성기에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는 습진, 허물
벗겨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석묘각 스님은 “이런 병은 일반 의학적인 측면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병이지만, 이런 병이 병원 치료로 치유가 되지 않는다거나
원인이 확실치 않은 경우 일반은 영병(靈病)이라고 보아야 할 것
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중절한 일이 있다고 해서 이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반드시 영병이라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병원에 가서 충분히 조사받고 치료를 해보고, 도저히 낫지 않을
때 영병, 영장이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석묘각 스님에 따르면 영가천도를 위해 절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
은 영병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등의 이유로 온다고 한다.

3년 사이에 10번이나 낙태를 한 40대 여인의 경우도 그 좋은 예다.

24살 때 결혼한 이 여인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남편 몰래 어떤 남자를 만나 정을 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 남자의 품속에서 헤매었다.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자 서슴없이 낙태를 했고 남자와의 관계는 3년 가까이
지속되었으며 10번의 낙태수술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가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3년후 남편은 실직하고 자신은 몸에 병이 생겼다.

병원에 다녀도 낫지를 않았다. 누워있는 날이 더 많았다.
중절아의 영혼때문이었다.

석묘각 스님이 낙태아 10명을 천도해준 후 그 여인은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중절아의 영장은 때로 부부의 잠자리에 끼어들기도 한다.

남편과의 잠자리를 할 때마다 통증이 심해 묘각스님을 찾은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3년 가까이 성기가 짓물러 허물이 벗겨지고 용변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성교는 생각지도 못했다.

중절아의 영혼은 남성의 경우도 예외없이 덤빈다고 한다. 그들의
대부분이 몇 명씩 중절아가 있고 그 영혼을 천도한 결과 모두
완치되었다고 한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중절아의 영혼을 천도해주기도 한다.

가난 때문에 낙태한 이 여인은 한번의 유산과 두 번의 중절수술로
온몸이 아프고 몸이 개운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진찰도 받았으나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해 스님을 찾은
사람도 있다.

그녀 역시 천도를 하고 1백일 기도를 한 결과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차길진 법사도 중절아 천도 경험이 적지 않다. 차길진에 따르면
중절아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빙의되어 괴롭히는 일도 있다고 한다.

40대 가정주부 김아무개의 경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어느날 갑자기
자리에 눕게 된 김아무개는 온몸이 나른하고 허리 어깨가 저리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밤이면 꿈을 꾸게 되는데 그것이 묘한 것이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고 머리를 붕대로 감고 한쪽 팔이 잘려나간 아이가
“엄마, 엄마’ 하며 좇아오는 꿈이었다.

이처럼 중절아의 영혼은 뱃속에서 찢겨진 모습 그대로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중절아의 영혼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태아의 모습이었다. 팔이 하나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으스러져
있었다. 마치 물에 뜬 풍선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중절아의 영혼은 천도를 해주면 정상적인 모습을 갖춰 영계로 올라
간다는 것이 심령가들의 견해다.

석묘각 스님은 “영가천도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 영혼들이 몰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천도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잘 보여준다.
나에게 안겨 만지고, 비비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낙태는 의사들 가운데서도 꺼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42)씨는 “태아의 두개골을 부수어 태내에서 꺼내는
일은 바로 살인 그것”이라고 지적한다.

조산원 이모(36)씨는 “태내에 있는 아기를 끄집어 내어 약물에
담가 죽이는 일이 있다. 그럴 때면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
어머니로서 매우 견디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중절아는 산 채로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모 간호사는
“용기에 버려진 태아가 살아서 꼼지락거리는 때가 있다.

산 채로 용기에 담겨 버려지는 경우도 몇 번 보았다. 여자로서
절대 낙태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간호사 가운데 중절아의 영체(靈體)를 본 사람도 있다.

조산원으로 일했던 이모씨는 다음과 같은 체험을 전했다.

“진찰실 옆방에 누웠다. 눈앞이 환해지고 사람 얼굴 같은 것이
둥그런 원이 되어 돌았다. 우는 얼굴 같기도 하고 웃는 얼굴
같기도 했다. 중절아들의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왔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말을 했더니 몇 사람은 같은 체험을
했다며 새파랗게 질렸다.”



주간현대 (306호, 2003. 4.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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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1)


태아영가 이야기 1




며칠 전에 스승님을 잘 아는 보살님의 소개로 왔다면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40십대 후반 쯤 되어 보이기는 하나,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지
화장기없는 우울한 표정은 나이를 더 들어보이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불교를 믿지 않고 교회를 다닌다는 말로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가정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그녀는 몇 달 전부터 꿈만 꾸면 옷을 입지 않은 간난아이를 등에 업거나 목욕을
시키기도하고 젖을 먹이는 꿈을 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꿈을 꾼 후부터는
자상하던 남편도 갑자기 손찌검을 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형제가
있는데 갑자기 서로 싸우고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 꿈을 꾸기 전에는 아들 형제간에 사이가 좋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어머님과의 사이가 예전보다 더 악화가 되어서 도저히 시어머님과
함께 살 수가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스님, 제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교회를 다니는데 절까지 찾아왔겠습니까? 도대체
우리 가정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보살님, 혹시 최근에 아이를 낙태한 일이 있습니까?”




“예, 몇 달 전에 생각지도 않은 아이가 생겨서 아무도 몰래 병원에 가서 낙태를
시켰습니다. 그것이 뭐 잘못되었습니까?”




“보살님,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아이를 원치 않으면 피임을 했어야지
임신한 아이를 유산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그 유산된 태아영가가
보살님의 집안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보살님이 꿈속에서 목욕시키고 젖을 먹이고 등에
업고 다니는 그 아이가 바로 태아영가입니다.




그 태아영가가 보살님과 전생부터 인연이 되어 그 시기를 기다리다가 때가 되자 보살님의
몸을 통해서 인간으로 태어나려고 했는데 보살님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자신의 아이인줄만 알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했으니 그 태아영가가 얼마나
그 한이 많겠습니까?

그래서 그 한풀이를 한 것입니다. 보살님, 태아영가가 얼마나 인간이 되고 싶고 어머니가
그리웠으면, 단 몇 개월밖에 살 수 없었지만 어머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젖을 빨고 등에 업히고
그러겠습니까? 보살님 가정을 예전처럼 다시 찾고 싶다면 그 태아영가를 달래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스님, 제가 무지해서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저는 절에 다니지도 않고 교회를 다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절에서는 영가 천도라는 것이 있는데 교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보살님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과 상의 하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빠른 시일에 그 태아 영가를 달래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태아영가가 좋은 곳으로 갈 때까지 보살님이 받는 그 고통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녀가 돌아간 후에 황전이는 스승님께 물었습니다.




“스승님, 태아영가가 무슨 힘이 있어서 가정을 그렇게 괴롭히는 것입니까?”




“생각을 좀 해보게나. 부처님께서도 다시 죽어 인간의 몸 받기 어렵다고 했는데, 그 받기
어려운 몸을 받으려고 몇 년에서, 몇 백 년, 아니 길게는 몇 천 년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어머님 자궁을 겨우 하나를 차지했는데 단 몇 개월도 살지 못하고 낙태라니 그 한이 얼마나
많겠는가?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지 그 태아영가의 한도 한이지만, 우주에는 생명을 다루는 법계가 있는데
이 법계의 질서를 무너뜨린 그 죄가 더 무서운 것이며, 그 죄 또한 받고 있는것 인데 그 것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네. 그러한 도리는 도(道)가 깊어져야 알지 그전에는 알 수가 없다네.




불교를 깊이 알지 못한 사람들은 뱃속에 있는 아이가 어린아이인 줄만 알고 있다네. 몸만
어린아이지 그 영혼은 수만 생을 윤회한 업(業)중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지.......

몸이야 죽으면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돌아가지만 그 영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네.

그 영혼은 세세생생 지는 자신의 업을 등에 지고 아승지겁을 윤회하면서 도(道)를 닦아
생사를 초월할 때까지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원한다네. 천상에서 수행하는 것보다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 고통 속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 도(道)를 이루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라네. 고통이 있어야 도(道)를 닦을 마음이 생기지 고통이 없으면 무슨 도(道)를
닦을 마음이 생기겠는가?”




“스승님,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업보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의 업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주의 질서이며 부처님의 자비이네. 만약에 어린아이가 자신의 세세생생
짓는 전생의 나쁜 업(業)을 다 안다면 자살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네.......”




“나무아미타불.......”




**[참된 귀의라는 것은]**




다른 어머님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그 어머님이 자신의 자궁을 빌려서

태어나려는 아이를 무슨 자격으로

막는가?




아이의 육신은 부모의 소유라고 하지만

그 영혼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네.

정말 몰랐다는 무지한 변명을 하지만

그것은 이 사바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이네.




허나 영혼의 집을 잃어버린 태아영가나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한 그 벌은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네.




눈물을 글썽이며 목청을 높이며

귀의한다고, 귀의한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러한 도리를 알아 순응하는 것이

부처님께 참으로 귀의 한 것이라네.




2)

태아영가 이야기 (2)




잘 아는 보살님의 안내로 스승님과 황전이가 저녁 초대가 있어서 찾아간 곳은
정원이 잘 가꾸어진, 별장 같은 집이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서자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안주인으로 보이는 보살님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을 가리는 색안경을 쓰고 우리를
맞이했다.

부엌에서는 가정부가 저녁을 차리려고 분주한 것이 보였다. 저녁 준비를 기다리는
동안에 따뜻한 차 한 잔을 하면서 안내한 보살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스님,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이 보살님이 제 친구인데 남편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큰 회사 사장이고 시아버지나, 친정아버지는 각자 큰 회사를 경영하는 회장님들
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협력하여 어려움을 도와주곤 하였는데 갑자기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저 보살님 사장님이 무슨 사고가 생겨서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러한 상황이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답니다.”




그 보살님의 말을 이어서 이번에는 안주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갑자기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방문을 들어서자마자
점쟁이가 하는 말이,




“아이를 낙태했구만! 팔자에 있는 자식인데 낙태를 하면 어떻게 해!”




그녀는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에게는
슬하에 다 큰 남매가 있었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임신한 것이 남들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이라 아무도 몰래 그 아이를 낙태를 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낙태를 하고
병원문을 막 나서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이 사고가 나서 검찰에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녀는 지금도
어리벙벙하고 있었다.




“스님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모두를 태아영가 천도를 하라고 그러는데
천도를 하면 모든 일이 원상복구가 될까요? 이 친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한 짓인데...”




“아무것도 모른다. 보살님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무지함 때문에 소중한 생명 하나가
세상구경도 못하고 사라져버렸는데, 어찌 천도를 한다고 원상복구가 되겠습니까?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참으로 지혜가 없어요.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점쟁이를 찾아가든지,
아니면 여러 도인들을 찾아가든지 해서 그 해결책을 물어본 후에 일을 저지르면 좋으련만
이미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니 참 답답하지요.”




“스님, 이미 이렇게 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무지한 중생이 아닙니까?”




“우선 태아 영가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받았을 그 고통... 살이 찢어지는 그 고통을 보살님이
함께 느껴야 합니다. 몸은 비록 그 무지함 때문에 없어졌지만 그 영혼은 보살님의 몸에 남아서
보살님을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보살님이 잘 아는 절에 가서
참회를 하면서 끝도 없는 절을 해야 합니다. 무릎에 피가 나도록, 아니 태아영가가 보살님이
받는 고통과 참회를 보고 스스로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연후에 태아영가 천도를 참으로 잘하는 도인 스님을 만나서 그 영가 천도를
하십시오. 설사 보살님이 무릎에 피가 나오도록 절을 하고 도인 스님을 만나서 천도를 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러한 참회는 오직 태아 영가를 위한 것이지, 그 어떠한 것도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내가 이토록 무섭게 말을 하는 것은 다시는 이러한 일을 반복하지
말라는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니 그런 줄 아십시오.”

스승님은 차갑게 말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 중에 하나가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악업(惡業)을

소멸하려는 것인데




착한 일은 고사하고 악업만 더 짓고

있으니 이를 어이할꼬!




사람으로 태어나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서 인과응보의 도리를 배우나

정작 실천하지는 못하는 구나.




사람이 불법을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멍에를 벗어나기 위함인데

그 삶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구나.




이를 어이 할꼬!




41.



인과응보에 대해서 묻는 이에게




황전이가 이러한 글을 쓰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도대체 신심 있는 불자들이 그동안 어떤 불교공부를 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인과응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기 이전에 이미 우주의 질서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에 그러한 도리를 모르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서 설하신 것이다.




인과응보를 살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요즘 세상에 다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쁜 짓을 많이 하는 사람이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더 잘산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있기 때문이다. 경전을 보면 무슨 일을 하던 복이 우선이라고 했다. 자신이 지은 복은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인간은 본래 착한데 나뿐 짓을 한 사람은 이생에 전생의 나쁜 업(業)의 영향을 받아 나쁜 짓을 할 수 밖에는 없지만, 어느 전생에 심어놓은 복의 씨앗이 이생에 열매를 맺으니 그 복을 먼저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생에 나쁜 짓을 한 죄는 어느 생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본인이 도(道)를 닦아서 생사해탈 하기 이전에는 결국 다 받아야 한다. 결코 우주법칙인 인과응보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생에 영가를 낙태한 사람은 그 어떤 방법이든 그 벌을 받게 되어있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인가가 문제일 뿐이다.




황전이가 낙태를 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오랜 세월동안 관찰해 왔었다. 여기서 다 드러낼 수는 없지만 참고삼아서 몇 가지만 드러내 보겠다.




이 태아영가의 한(恨)이 무한해서 낙태한 본인을 이유도 없이 온 몸을 아프게 하고, 자궁에 병을 일으키고, 사업을 망하게 하고, 사기를 당하거나, 지금 받기로 되어 있는 돈을 갑자기 받지 못한다거나. 착하던 자식들이 갑자기 난폭해지고 엉뚱한 길로 간다. 부부사이를 갈라놓고 남편을 폭군으로 만드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았다. 이토록 태아영가의 한(恨)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 것은 그 사람들의 업(業)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러한 사건들이 태아영가로 인한 작용인 줄 모른다. 그저 운이 좋지 않거나 살다보면 흔히 생길수도 있다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지금 누가, 낙태 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본인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인데 설사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해도 인과응보란 뿌린 대로 거둘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다만 지금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됐지만...




황전이도 불법수행 중에 지금 가장 많은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 몇 백 년, 몇 천 년 전에 죽인 사람들의 원결이다. 황전이도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특히 중국이나 한국에서 장군을 많이 했다. 그 장군을 하면서 죽인 사람들이 지금 이 생에 와서 황전이가 도(道)를 이루지 못하도록 끝없이 방해를 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쓰는가하면 경전을 보지 못하도록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아프게 하고, 눈을 흐리게 하고, 때로는 온 몸에 기운을 다 없애버리고, 마음먹고 좌선이라도 하면 온갖 생각을 일으켜 좌선도 하지 못하게 한다. 그 밖에도 말로는 할 수없는 육체적 고통은 물론, 우연처럼 좋지 않는 일들이 무진장하게 벌어진다. 그런데 수 백 년, 수 천 년 전의 원결들이 왜 하필이면 이생에 지금 드러나는 것일까?




수행이 깊어지기 전에는 다른 업(業)들이 활개를 치도록 놔두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서 활개를 친 업(業)들을 어느 정도 닦아 놓으니까, 황전이의 몸과 마음 속에 깊이 숨어 있었던 수 천 년 전의 원결들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덤벼드는 것이다.




그래서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하지 않던가? 도(道)가 높아지니 더 큰 마군들이 일제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구니 또한 황전이가 어느 전생에 뿌린 씨앗이니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도력이 높은 눈 밝은 스승님을 만나지 못하면 도(道)가 눈앞에 와 있는 경지에서 다 무너지는 것이다.




**이 도리를 누가 알꼬?**




참고로 수행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어느 시골병원에서 있었던 인과응보 이야기의 실화 하나를 여기에 적어보겠다.




70대 할머니가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임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가족들이 문병을 왔는데 이 할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고양이 모습으로 변하더니 야옹! 하고 고양이 흉내를 하고 온 병실을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모두들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중년이 되면서부터 류마치스 관절염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관절염에 좋다는 고양이를 무려 오십 마리 정도를 지금까지 약으로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복도 복이지만, 인간의 힘이 어느 한계에 도달했을 때에도 그 원결이 드러나 복수를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참구하고 또 참구해야 할 것이다.**




**[인과응보]**




동물들도 그 생명을 죽이면

그 혼령이 그에게 복수를 한다.




당장 고통을 받는 자가

있는가 하면 먼 훗날에 그가

고통을 당하는 자도 있다.




그 고통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의 눈동자 속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동물을 많이 죽인 자나

살인자의 눈동자를 보라...




하물며 영혼을 가진 태아를 낙태한

그대를 편히 잠들도록 하겠는가?




그래서 부처님께서 불법 수행자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수행자가 동물을 잡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고기 속에는 죽기 싫어서

안달하는 동물의 한(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낙태를 한 태아영가의 그 한은

어떠하겠는가?


40~41

출처: 황전스님의 오도선방 (cafe.daum.net/535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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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어느 낙태아 영가이야기


우리나라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1년에 행해지는 낙태 건수가 20초에 1건, 하루에 6,000건, 1년에 2백만 건 이상이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인구 2억이 넘는 미국의 150만 건(1985), 인구 1억 3천의 일본 50만 건(1987), 프랑스의 17만 건(1987), 스웨덴의 3만 건(1984)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낙태 천국의 나라이다. 만약 그 생명체들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들은 어디에 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숫자다. 다수의 사람들은 과학의 이름을 빌어 영혼의 독립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아직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와 영혼을 다룰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과학은 현재, 영혼이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현대과학의 수준을 뛰어넘는 숙제다.

불교에서는 정자와 난자의 결합 외에 영혼이 머무는 또 하나의 의식계(中有)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명의 입태入胎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 중유中有는 생명체의 정신과 형체를 이루는 직접적인 원인이자 조건인데,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부모를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업은 유전자를 선택한다). 그러므로 태아는 수태 순간부터 하나의 '원인原因이 있는' 생명체로 인정되며 인위적인 낙태는 살인으로 본다. 다시 말해 생명 탄생의 인과因果를 피하는 낙태행위는 악업惡業이 또 하나의 악업을 보태는 역업逆業이 될 수 있다.

경기도 모처에서 요식업을 하고 있는 B(여:33세)씨 에게는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여 철(가명, 6세))이라는 6살짜리 아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집안의 근심거리가 된 것은, 아들이 4살 되던 해 여름, 시골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고 나서부터다.

평소에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심한 고열의 열병을 한달 정도 앓고 나더니, 눈에 초점이 흐려지고, 얼굴 표정이 이상해지면서 사람을 대할 때면 이유도 없이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뿐이고, 그런 증상은 정서장애 내지는 단순한 행동 발달장애에서 올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애매 모호한 진단만 내렸다.

그러나 아이의 건강상태는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두 달 전부터는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자기 아빠를 매섭게 흘겨보면서 "우리 아빠가 아니야!" "우리 아빠가 아니야" 하면서 소리를 질러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아이의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까지 그렇게 고함을 질러댄다는 것이다.

처음 아이가 그럴 때는 아이 나름대로 그저 아빠한테 무슨 불만이 있어 그렇거니 하고 예사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런 행동이 여전하고, 그렇게 고함을 질러댈 때 아이의 얼굴은 마치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고 했다. 그 모습이 거슬려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꾸중을 하면 아이는 혀를 쏘옥 내밀면서 눈을 하얗게 흘기는데, 그 이상한 모습이 어떨 때는 너무 싫고 소름끼치게 느껴진다고 했다.

리딩을 통해 그 아이의 영적 문제를 점검해 나가자, 그 아이의 몸 속에는 신체가 찢겨진 상태의 어린 아기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그 아기가 현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영적 현상의 원인이었다. 계속해서 진행된 리딩에서 밝혀진 내용은, 그 아기의 영혼은 철이 어머니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낙태한 태아로 밝혀졌다. 그래서 그 태아의 영혼이 철이의 몸을 빌려(빙의되어) 현재의 아빠를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리딩의 내용이 묘(?)하게 진행되었지만, 다행한 것은 그런 사실들을 철이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인정하고, 아이가 나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도움을 청해왔기 때문에 어색해지려는 분위기가 편안해 졌다. 그 이후의 시간에서 진행된 빙의령憑依靈의 정령淨靈작업에서, 그 낙태령과 철이 어머니는 2차 대전 때 유태인 모자母子로 살았을 때도, 독일군의 핍박으로 서로 헤어져 학살당하는 아픈 과거생의 인연도 있었다. 그래서 아기의 영혼은 지금의 생에서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태어남의 기회를 봉쇄당하자, 자신의 모태母胎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렬해져 B씨의 주변을 떠돌다가, 지금의 철이에게 빙의된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처럼 어떤 영혼이 자신의 태어남의 기회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단 당했을 때, 그 존재들의 분노와 사나움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다른 통로를 통한 기회를 엿보다가, 앞의 사례에서 처럼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다른 개체에게 빙의라는 방법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빙의憑依가 일어나려면 빙의될 사람이 그에게 붙으려는 존재와 뭔가 비슷한 인자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즉 빙의체의 파동과 그 대상자의 파동이 일치해야만 빙의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 사례의 경우는, 아이가 4살 무렵 할아버지 댁에 갔다온 후, 심한 고열로 인한 열병을 앓았을 때, 그때 아이의 영적 보호망이 약해져서 생긴 빈틈을 타고, 그 아기의 영혼이 빙의되었던 경우이다


출처: www.lifereading.net (박진여의 전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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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낙태아영가천도

심령연구가 이해원


(1)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법한 아이를 안고 부모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찾아왔다. 아이는 얼굴이며 팔이며 손등, 사타구니까지 잔뜩 빨갛게 부풀어 오른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었다.
병원을 다니다 다니다 좋아지지 않자 수소문 끝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엄마를 보니 낙태아의 영가가 들어 있었다.

일단 그 낙태아 영가를 불러냈다.
“왜 너는 거기에 있니?”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었는데…. 발도 생기고 손도 생기고… 준비가 다됐는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난감했다.

영가의 원한이 너무 깊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를 낙태한 것이 6개월이 넘어서였다. 그 때의 낙태란 한꺼번에 꺼낼 수가 없으니 조각조각 잘라내는 것이다.

다리를 잘라 꺼내고 손을 잘라 꺼내고 얼굴을 잘라 꺼내는 것이다. 그 잘라진 부위들에 정확히 애기의 아토피 피부염의 발진이 있었다.

“가거라. 너희 엄마도 이렇게 빌고 있잖니?”

“절대 못 가. 내가 왜 가. 절대 용서 못해”

영가는 절대 못 가겠다며 발악을 했다. 그날 보내기는 틀린 일인 것 같았다. 다음날 다시 오라 이르고 그날은 그냥 돌려보내야 했다.
다음 날이 되어 다시 그 가족이 찾아왔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다시 달래고 달래보는 수밖에…….

“아이야 너 이름도 못 가졌구나?
네 이름을 지어줄까?
남자 아이니 준호라고 하마.
어때 좋지?

낙태아들은 아까도 말한 것처럼 돈이나 먹을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식으로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낙태아들이 당연히 이름이 없다.

이름을 지어주고 낙태를 한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이름을 지어주자 금새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았다.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이다.


“준호야. 네가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니 엄마한테 말해서 네가 일주일 동안 엄마 품에서 살게 해주마. 어떠니?”
아이는 기꺼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갈 수 있겠니?’

아이는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 거듭 다짐을 받고 난 아이 엄마한테 정성을 다해 배냇저고리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거기에는 준호라는 이름을 새겨 넣도록 했다.

그리고 애기 이불도 준비시키고 베게도 준비 시켰다. 애기를 안을 수 있는 포대기도 준비시켰다.
“일주일 동안 진짜 준호가 살아 있는 것처럼 애기를 안아주고 재우고 얼러주고 그렇게 하세요. 온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주일 뒤에 뭔가 느껴질 겁니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후회를 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기꺼이 그러마고 했고 가족을 그렇게 돌려 보냈다. 아이 엄마는 내가 시킨 대로 일주일 간을 지냈다.

살아있는 애를 보듯이 엄마 옆에 항시 배냇저고리를 두고 베개를 받쳐 눕히고 안고 얼러주었다. 재울 때도 토닥거리고 자장가도 불러주고 실제 애기를 키우듯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이 된 그날 밤이었다.

엄마의 꿈에 애기가 나타났다. 애기는 얼굴과 팔과 손등, 그리고 사타구니. 진짜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으로 부어올랐던 부분에서 하얀 풀 같은 것이 덮인 것을 쓱쓱 거둬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가야지’ 그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간 것이다. 그리고는 애기의 몸에 나있던 아토피 피부염이 씻은 듯이 나았다.

단 일주일 뿐이었지만 그렇게도 받고 싶었던 어머니의 사랑과 미안함을 충분히 느낀 영가가 제 스스로 부모를 용서하고 가버린 것이다.
이렇듯이 낙태아의 영가들은 돈이나 먹을 것 등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아의 천도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거나 음식을 잘 차릴 것을 요구하는 무속인들은 다 거짓이다.
오직 부모들의 진심 어린 속죄나 사랑만이 낙태아를 비로소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낙태아의 영가들 중에는 그런 저런 사정들을 알고 그냥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고 떠도는 영가들도 있다. 부모에게 맺힌 원한이 없이 그냥 지들끼리 어울려 떠돌아 다닌다.

대신 어떻게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염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해원정사에는 애기를 갖고자 치성을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한다고 하면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 내가 낙태아 천도를 많이 하고 위령비도 짓고 그러다 보니 떠돌던 낙태아 영가들이 이곳 해원정사에 많이 놀러오는 형편이다.

잘못 치성을 드리다가는 그런 낙태아 영가들이 실려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인연에 의한 임신이 아니다. 잘못된 인연은 악연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낙태아 영가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에 굶주렸기 때문에 진심으로 대해주고 보듬어주면 금방 좋아한다.

심지어 나를 따라다니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듯 영가들이 무슨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것처럼 뿔 달리고 손톱 길고 그렇게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운이다.

꼭 바람 소리 같은 ‘우~ 우~ 우~’하는 소리를 낸다. 그렇게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가 다시 어디로 사라지기도 하고 머물다가 경 읽는 소리에 이끌려 좋은 곳으로 가기도 한다.


나는 돈에 욕심이 없다.
돈 역시 하늘이 주시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낙태아 영가들의 천도를 한 다음엔 그 부모로부터 다만 얼마가 됐든 돈을 받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음식을 차려놓거나 낙태아들이 돈을 원해서가 아니다.


진심으로 속죄를 하고 잘못을 비는 것으로 낙태당한 아이들을 보낼 수는 있었지만 생명을 죽인 그 업보는 어쨌든 남아 있게 된다.
그 업보를 씻는 일을 내가 대신 해주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남을 도와야 한다고 입으로는 떠들지만 실상 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고 어색해 한다. 그런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난 그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학교 등록금을 내준다던지 아니면 양로원에 기부한다던지, 꼭 필요한 데 쓰려는 데 돈이 모자란 사람이라던지 하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데에 쓴다. 물론 돈을 낸 그 사람들의 이름으로 한다.


여러 사람이 그 사람에게 은덕을 기리게 되면 그만큼 업보의 무게가 가벼워지게 된다. 그렇게 업보를 씻게 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 또한 내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런 것도 아니라면 그나마 인연이 닿아 천도제를 지내준 영가들도 있지만 그마저 못 받고 떠도는 낙태영가들을 위해 법당에 분유나 옷들을 놔둔다. 물론 낙태아들이 그런 것을 먹을 줄도 모르고 입을 줄도 모르지만 자신들을 위해 놔주었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정을 느끼면서 만족해 하는 것으로 보람을 느낀다.

물론 낙태아의 영가 천도를 나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 나름대로의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방법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허울만 좋아서는 영가 천도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런 것은 결단코 배격해야 한다.

내가 영가천도를 하고 나면 부모의 얼굴이나 아이들의 얼굴에서 바로 화색이 돈다. 너희 엄마를 이제 그만 놔줘라.
너희 형제를 놔줘라.
그러면 바로 아팠던 부분이나 답답했던 부분이 나아버린다.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영가 천도를 한다고 하고 보내고 다했는데 뭔가 찜찜하고 나아지는 기미도 보이지 않고 그런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낙태아의 천도제 뿐만이 아니다. 돼지다 소다 하면서 잔뜩 차려놓고 과일에 옷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지내는 천도제는 다 사람들이 만족하자고 하는 짓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 가짐이고 정성이다.

일단 돈의 개념을 두고 얼마나 남겨먹을까 하는 심정으로 하는 천도제는 의미가 없다. 천도제를 지내고 영가가 제 갈길을 찾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내 소명임을 기쁘게 생각하고 잘 해낸 것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이득을 생각해서는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낙태아 영가의 천도는 즉각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낙태아를 여러 명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물론 모든 낙태아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러 명이 모여 있으면 리더가 생기듯 영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한 아이를 보내면 또 다른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고 그 아이를 보내면 또 다른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니 천도제를 또 해주어야 한다. 또 그 때만 잘못했다고 뉘우치는 척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하고 나서도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다신 그러지 않아야 한다.


사람도 미안하다 미안하다 계속 그러면 화를 풀고 누그러지듯 영혼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 위기만 모면하려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래 놓고 뒤에 가서 딴 소리를 하면 그 영가가 다시 돌아온다. 다시 돌아와 더 큰 해를 입게 된다



(2)

지금은 불의 시대라는 말을 앞장에서 한 적이 있다. 그 말은 사람들의 성격과 시회상에 불의 성질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불은 한번 타오르기 어렵지만 일단 붙고 나면 끊임없이 잘 타는 불. 또 어떤 불은 불이 붙기도 어렵고 꺼지기도 쉽게 하는 불. 또 어떤 불은 쉽게 붙어 오래도록 잘 타는 불. 한 번 붙어 온 대지를 타오르게 하는 불이 있는가 하면 한 집안의 따뜻한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는 불.

그러나 지금 시대를 지배하는 불의 성질은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지는 그런 성냥개비에 붙는 불, 그런 불이다. 옛날 시골에 가면 아침 저녁으로 구들을 데우기 위해 불을 지폈다. 장작은 불이 붙기는 어렵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하루 밤쯤은 너끈히 견디며 아랫목을 따뜻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 장작을 피우기 위해 쓰는 짚이나 콩대 등은 불이 화르륵 붙었다가 꺼지고 화르륵 붙었다가 꺼지고 그런다. 바로 그런 불의 시대이다.

그런 불의 성격이 시대를 지배하다 보니 사람들은 지속적이지가 못하다. 무엇인가에 매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견디며 참을 줄 모른다. 요즘 말로 하면 인스턴트식에 빠져버린다. 사랑도 공부도 꿈도 모두가 시시각각 변한다. 노력은 안 하고 결과만을 보기를 기대한다. 그러니 로또다 뭐다 하면서 복권이 활개를 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기가 만연하고 도둑질이 늘어난다. 사람들의 생활은 일희일비하고 인내하고 노력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들이 다 컴퓨터며 TV며 라디오 등 말초적인 것들을 만족시키고 자극하는 서구 문명을 너무나 빨리 쉽게 받아 들임으로써 일어난 일들이다. 우리의 것을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어머니의 정성스런 음식 대신 라면이나 햄버거 등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자라나 부모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의미를 모르는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

지속되는 것이 없으니 뒷일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즐기고 먹고 마시고 놀면 그 뿐이다. 사랑도 친구도 공부도 일도 그저 한 순간을 지나쳐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시대이니 하물며 생명인들 존중 받을 것인가? 이런 마음가짐을 고치지 않고는 낙태는 더더욱 늘어날 것이다. 아무리 피임법을 떠들고 출산을 장려하고 정부정책을 고친다 해도 생명 자체가 존중 받지 못하고 경시 받는 풍조에서는 낙태의 문제가 줄어들 리가 없다.

사람은 이 세상에 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남에게 베풀러 왔는지 아니면 남에게서 베품을 받으러 왔는지. 하늘이 정해 놓은 내 역할을 알고 받아들이고 기꺼워해야 한다. 나를 그렇게 돈에 고생을 시키고 사람에 어렵게 하고 몸을 아프게 해서 하늘이 나에게 깨우쳐 주려 했던 것이 이 낙태아 영가들에 대한 소명 때문이었다. 이 문제는 많은 종교인들이나 무속인들이 떠들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 기운을 느끼고 그 기운과 맑은 마음으로 교감하지 않는 한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낙태아를 대할 때는 내 마음이 아무런 사심이 없어야 한다. 그저 순수하고 맑은 영혼들이기 때문에 어떤 욕심이나 사심을 갖고 대하는 것을 금방 알아챈다. 그래서 마음을 맑고 밝게 유지한 상태로 대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오랫동안 기공수련을 하고 마음을 닦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나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낙태아의 영가들은 ‘아가’하고 부른다고 쉽게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런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고 경계심이 많은 이유도 있다. 그저 느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가만히 끌어안고 얼굴을 갖다 대면 그 느낌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면 자애롭고 따스한 마음으로 품어줘야 한다. 야단치고 돈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건 낙태아 영가로서는 못 견딜 일이다. 오히려 원한만 더 쌓이는 꼴이 된다.

사람들 사이에 나오면 괴롭다. 영가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도 물건을 사다가도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다가도 그 영가들의 기운이 느껴지고 그 아픔들이 느껴진다. 그러면 가슴이 아프고 그 영가들이 한없이 딱하게 느껴진다.
길을 가다가 산부인과 의사들을 만나게 되면 그 뒤에 줄줄이 늘어선 영가들의 기운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영가들은 물론 자기를 죽인 애비나 어미에게도 달라붙지만 자기의 몸을 조각내고 잘라낸 산부인과 의사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당연히 산부인과 의사들 어깨 위에 실려서 틈이 나기를 기다린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행복하다. 기분 좋다를 계속해서 얘기하고 그렇게 느끼도록 애쓰면 그런 기운이 찾아 들고 머문다. 그러나 불행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를 계속해서 얘기하고 느끼면 사기가 침범할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그 틈을 영가들은 노리고 있는 것이다.

낙태는 인간계에서도 이렇게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을 낳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천계에서도 문제가 된다. 이미 인연법에 따라 하계로 내려 보냈고 거기에서 인연을 만나고 업보를 쌓거나 업보를 풀고 다음 생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기회들을 아예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살생은 어떤 경우이던지 그 죄를 씻지 못한다. 하물며 부모 자식간의 인연은 그 깊이와 인연이 하늘에 닿을 정도인데 그것을 깨는 것은 바로 천륜을 깨는 행위이다. 그 업보는 말로 다 설명을 못할 정도이다.

해원정사 터는 맑고 밝고 순수한 영혼들이 자리잡아 공부를 하고 하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터다. 이곳에 낙태아 위령비를 건립하고자 했던 뜻도 그러하다. 위령비를 건립했더니 낙태아의 영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쁜 사기들도 같이 몰려들어 현재는 중단한 상태이지만 해원정사 터에는 수많은 낙태아 영가들이 놀러오고 머물며 또 좋은 곳으로의 인연을 찾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도를 하거나 마음이 맑아지면 그들이 우우 하고 몰려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최근 들어 육신이 맑지 못하고 자꾸만 탐을 내 곡기를 전혀 금하고 영혼과 기를 유지해 사람들을 도와줄 정도만으로 육신의 욕심을 자제하고 있다. 힘들기는 하지만 어떨 때는 그 낙태아 영가들이 힘을 주고 응원을 해준다. 그렇게 그 영가들은 맑고 순수한 영혼들이다.



낙태란 것이 숨기고 싶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성문화가 개방되고 섹스가 공공연한 일이 되고 남의 여자를 탐하고 남의 남자를 탐하는 일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벌어지고 있지만 낙태 사실은 아무래도 숨기고 싶은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이다. 그러니 숨기고 감춘다. 숨기고 감출수록 낙태아 영가들은 더욱 슬프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자식으로서 인정 받고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낙태아의 영가가 씌였다고 하면 미안한 마음이나 자정을 갖기는커녕 벌레나 붙은 듯 싫어하고 빨리 떼어내고 싶어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가의 영가는 더욱 더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낙태아의 영가는 나 같은 능력자가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본인이 진정으로 느끼고 반성하고 그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보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일반 영가들을 천도시킬 때와 다른 점이다. 그런데 본인이 그걸 느끼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도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낙태아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싫은 기색이 역력하거나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드러냈을 때처럼 피하고 싶어한다. 내게 상담을 하러 찾아온 사람 중에도 여러 사람이 낙태아 얘기를 듣자 마자 발길을 끊었다. 가족의 화합을 깨게 되는 경우를 극히 조심하면서도 어쨌든 풀어야 할 문제이니 나도 어렵사리 말을 꺼내는 데도 말이다.

그 사람들이 행여 다행스럽게 다른 능력자를 찾아 그 문제를 해결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 고통을 참고 살아가거나 그 자식들이 그 고통을 겪고 있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 영가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업보를 쌓고 있는 셈이다. 충분히 좋은 길로 갈 수 있는 것을 자신의 안위 때문에 숨기고 피하려고 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꼭히 당사자들의 문제라고 볼 수만은 없다. 시대가 그러하고 그런 풍조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음이 개탄스러운 일이다. 충분히 벌을 받고 있고 고통을 받고 있는데 굳이 우리가 좋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저 더 이상 그런 업보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소명이고 역할이다.

거듭 거듭 강조하지만 낙태는 중죄 중의 중죄이다. 씻을 수 없는 죄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어떻게든 좋은 곳으로 보내려고 하는 마음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저 감추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낙태를 가급적 안 하는 것이이 좋다. 아니 그보다 먼저 사랑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이 중하기 때문에 사랑에 신중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에 신중하고 하룻밤의 풋사랑이나 쾌락에 몸과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면 낙태의 문제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피임법으로 아기를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인스턴트식의 사고관은 그저 편리한대로 즐거운 대로를 추구하게 되고 피임법의 의미조차 사라지는 것이다.

정말 피치 못해 낙태를 하게 될 경우에는 진실로 아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가를 이해시켜야 한다. 꼭 능력자를 찾아 천도제를 지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스스로가 마음을 열고 아가에게 사죄를 하게 되면 대부분의 낙태아 영가들은 부모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고 떠나간다. 그냥 건성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지는 말고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라.
날을 잡아 밤 열한 시 정도부터 그 아가에게 자신이 지금 처한 현실과 아가가 태어났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며 그런 비참한 현실을 만들지 않기 위해 슬프지만 이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편지를 쓰라. 적어도 열장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빌고 또 빌어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픔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라. 그렇게 하고 나면 그날 밤 꿈 속에서 그 아이가 용서하고 좋은 곳으로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는 많음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다. 사람들은 그 어려움과 고통을 주로 일시적인 쾌락으로 풀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업보를 만들어 더 깊은 수렁으로 스스로를 던져버리는 일과 같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수록 마음을 닦고 하늘이 내려주신 맡은 바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다. 이렇게 말해주면 사람들은 대부분 잘 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 앎이 행동이 되지 못하는 시대이기에 하계는 더욱 혼탁해지고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명해주어도 그것을 하기 귀찮아 한다. 더 빠른 방법은 없느냐고 오히려 묻는다. 그러나 세상 이치라는 것이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시간을 들여 정성을 들여야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벌어지는 현상만을 보고 메스를 드는 건 우매한 짓이다. 그 현상이 왜 야기되었고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스승의 역할이다. 진정한 스승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찾아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 그런 스승들이 있다.

종교에 귀의하고 있는 분들은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사회를 계도하고 이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이 시대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시대이다. 종교인 스스로가 스스로의 이득 때문에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인다. 종교의 이름을 팔아 자기의 이득만을 챙긴다. 큰 세상의 원리는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득에만 열중하도록 가르친다. 진정한 스승이라고 볼 수 없다.

또 많은 무속인들이 신이라는 이름을 빌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들이 모시는 신이 이렇게 복잡 다단한 현실을 처리해주기는 너무나 어렵다. 더구나 그 영가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어찌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영가들을 내쫓을 수 있단 말인가. 영가에 들려 영가의 말을 전하는 것은 영가의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속인들은 스스로 정진하고 좀더 맑고 밝은 영혼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할 것이다.

느낌으로 보느냐 믿음으로서 치유하느냐 영가의 힘을 빌리느냐 이런 것들은 그저 유한한 인간으로서 기댈 곳을 찾을 뿐이다. 낙태영가는 낙태 그 자체만으로도 큰 죄지만 또 다른 죄업을 짓게 되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업보의 수렁에 빠져들게 해서 더 큰 죄이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 지를 알고 깨닫고 진정으로 참회하고 마음을 맑고 밝게 하는 것만이 이 혼란스런 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더 이상의 죄업을 짓지 않는 길이다. 머리로 알게 되면 마음으로 행하라. 그것이 옳은 일이다. 그래야 하는 시대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은 정말 나쁜 짓을 저지르고 못된 인간이라 할지라도 죄를 참회하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면 벌을 주려고 나가던 손도 거두게 된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하늘도 끊임없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에는 감복하고 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진심이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3)


다혜(가명)라는 여자아이가 생각난다. 당시 나를 찾아왔을 때는 아직 어린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이 아이는 도무지 학교 갈 생각이 없는 아이였다. 학교를 빠지기는 다반사로 하고 집을 나가 한동안씩 연락을 끊는 것도 밥 먹듯이 했다.
그럴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답답한 엄마는 수소문 끝에 나를 알게 되었고 찾아오게 되었다.

엄마가 와서 상담을 하는데 보니 낙태아 영가가 실려 있었다. 낙태아 영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을 하니 이 엄마는 거의 실신할 듯 했다. 자신이 그렇게 많은 남자를 만나고 많은 아이를 낙태한 것도 가슴 아픈데 자기의 아이가 그런 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넋을 놓아 버렸다. 나는 일단 그 낙태아 영가를 불러내었다. 지금 그 아이가 어딨는지 묻자 낙태아 영가는 지금 어디 어디에서 남자랑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울며 불며 찾아간 엄마 앞에 정말 그 아이는 그렇게 있었다. 자기의 옛날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렇게 데리고 와서 달래서 다시 학교를 보내고 또 도망가고 그러기를 몇 차례……

결국 출석일수가 모자라 졸업장을 못 받고 말았다. 그 엄마가 낙태한 아이 수가 많아 영가 천도를 해도 또 사단이 나고 또 사단이 나고 그런 것이다. 결국 영가 수만큼의 천도를 해야 했다.

그러고 나자 비로소 아이는 마음을 잡게 되고 지금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가끔 연락이 와서 나 때문에 대학에 다니고 마음을 잡았다고 고마워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자기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물론 결과야 다행스럽게도 제 자리를 찾았지만 그 딸이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떨 것이며 그 엄마는 딸을 무슨 낯으로 대할 것인가?
순간적인 쾌락을 좇아 몸을 함부로 굴리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낙태를 한 결과가 자기가 낳은 딸한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로 비수가 되어 결국 돌아온 것이다


출처: 시사포커스 (www.sisafocus.co.kr) 심령연구가 이해원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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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산부인과에 수자망령(태중에서 죽은 영혼)들

한번은 어느 부인이 찾아와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 병원에 가보시지 라고 말하자.
병원에 벌써 몇 주째 다니고 있는데 전혀 차도고 없고 냉이 심하고 아랫배가 몹시 땅긴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없냐고 물으니 병원에서 말하기를 자궁에 물혹이 하나 있다고 했다.

보통 물혹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라며 몇 달 지켜본 후 수술을 하든지 치료를 하던지 하자고
했단다.

내가 가만히 보니 병원에서 오히려 병을 옮겨 온 것 같아 보였다. 처음 왜 산부인과에 가게 됐냐고
물으니 보살이 “그냥 냉이 좀 있어서 갔는데 산부인과에 다녀오고 난 뒤 오히려 배가 땅기고 아픈
증상이 생겼습니다”고 했다.

선정에 들어 관으로 그 보살을 살펴보니 주위에 태중에서 죽은 애기 영혼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태중에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의 결정으로 제거된 태아들이 원혼이 되어 떠돌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붙거나 자신의 어머니로 착각하고
붙어서 죽기전에 배안에 있었기 때문에 배에 붙어 배를 아프게 만든 것이었다.

보살에게 이사실들을 이야기 하고 수자재(태중에서 죽은 연혼을 달래는 재)를 지내는 것이 좋을 듯 싶다고 하고 재를
지내기로 했다.

몇일 뒤 재를 지내는 데 이 수자영이 무척이나 외로웠던 모양이다. 잘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겨우 떼게 되었는데 무척이 울어댔다. 그 애의 감정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슬픈 감정이
북받쳐오를 정도였으니 그 한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복중 태아라고 하여 함부로 낙태하여 서는 안되겠다. 그 역시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으나 엄연한
한 생명체이다.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막는 의미에서도 함부로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불가기공 혜인선원(www.bulga.co.kr) 영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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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나무아미타불카페 일심행2님 글


이 카페의 신행수기를 읽다보니 저도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요..

백중 기도중 제가 애혼영가를 위한 기도를 올렸지요
애기가 못알아 들을까봐 우리말 금강경을 3일동안
사경하면서 영가천도를 발원했습니다

사경을 회향하기 위해 제가다니던 사찰 나한전
영단에 올려놓고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백팔 대참회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밤새 주력하고
다음날 제가 다니던 한국불교대학에다 사경한 금강경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틀날 꿈에 애혼영가가 큰 비닐 용기에 같혀서
숨막혀 하며 무언으로 너무나 슬퍼했는데 제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순간적으로 손으로 그 비닐을 뜯어내니
영가의 몸이 연분홍빛으로 변하며...환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애혼영가가 천도가 되지 않았을까
믿고 싶었습니다.

거룩하고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께
귀명정례하나이다 ()()()


대구에서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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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제 중국 백옥 광산주위에서 조그만 옥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읍니다

어떤 영리나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것이 아니구 순수한 맘에 불제자로서 올립니다

지금부터 5년전에 높이5미터 폭2미터 한백옥 불상(석가모니불)을 주문받아서

제작중이였읍니다

 

여느때와 같이 새벽에 목욕하구 향불피우고 간단히 기도를 드리구 광산으로 향했읍니다

참고로 대형좌불상은 원석이 넘커서 운반할 차량이 없읍니다

그래서 광산에서 70%공정을 마친후에 공장으로 모셔옵니다

원석을 앞에두고 관계자분들 전부 참석하여 간단히 제를 올렷읍니다

아무 사고없이 아주 선한맘 선한눈빛 인자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들어달라고 기도를 했읍니다

그날은 아무일없이 존맘에 산을 내려왔읍니다

 

저는 부처님이란 맘속에만 있는줄 알았구요? 그때 까지만해도 진정한 불제자라구 할 수 없었읍니다

그날 밤은 이상하게 꿈자리가 아주 사나워서 밤잠을 설쳣읍니다

날이 밝아 5톤 트럭에 장비들을 싣고 광산으로 향했읍니다

꿈자리가 안좋아서 공인들에게 심심당부를 했구요!

오늘하루 조심하라고 일러 두엇읍니다

 

광산길은 아주 험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대형 사고납니다

전 잠을 못자서 졸구있엇는데 갑자기 차가 멈추엇읍니다

내려서보니 누군가가 길중간을 질러서 도랑을 팠엇읍니다

폭이50센티는 되었는데 깊이 파여서 도저히 지나가지를 못할지경이엿읍니다

고민끝에 돌로 메꾸어서 지나가기로 하구 열심히 돌을 나르는데

 

그때 60 되는 노인 한 분이 다가와서 하신는 말씀이 이길은 자기땅이니 갈려면

돈을 달라는 것이엿읍니다 첨에는 무지 화가 났엇읍니다

그런데 날이 날인만큼 꾹참고 얼마주면 되느냐고 물었는데

ㅎㅎㅎ 터무니없는 금액을 달라는 것이엿읍니다

웃음이 나오더군요?

한국돈으로 환산 260만원을 달라는것입니다

 

중국인들은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 말리지두 못합니다

그래서 저두 모르게 나온말!!

영감님!! 지금 저희들은 부처님을 제작하기 해서 광산으로 갑니다

그러니 조금만 받고 길을 열어주시지요?

1시간을 좋게 이야기를 햇는데 끝까지 달라는 거에여?

할수없이 가까운 길을 두고 우리는 멀리 돌아서 광산으로 향햇읍니다

도착하니 오후1시였읍니다

 

공인들은 전부다 화가낫지만 저까지 그럴수는 없었어여

달래구 해서 조용히 제를 올렷읍니다

그날은 기분이 그래서 전부철수하구 다음날부터 하기로 하구 내려왔읍니다

다음날 아침에 혹 싶어서 공인들을 시켜서 그노인을 찿아가보라고 햇읍니다

1시간쯤후 공인들이 상기된 목소리로 사장님 어제 그노인 어제저녁에

이상해서 병원으로 실려갓는데 심장마비로 사망을 햇다는 것입니다

 

그말을 듣는 순간 부처님이 노하신걸로 생각하구 한편으로는 설마!!

그후로 우린 그길을 자연스럽게 지나갈수 있엇읍니다

시일은 흘러서 7개월이 흘렀읍니다 물론 그동안은 아무일없이 지내왔읍니다

어느날 70%공정을 마치고 부처님을 모시러 가는 날이였읍니다

한참 정신없이 상차 업한다구 바쁜데 오토바이를 타구 웬건장한 청년한분이

다가와서 누가 사장이냐고 물엇읍니다

 

다가가서 물엇는데 이유인즉 자리세를 달라는 겁니다

기가 막히더군요?

만약 안주면 못간다구 하면서 동네 깡패들을 불러러 간다구 돌아서 가버렷읍니다

만약 오면 적당히 달라면 줄생각으로 상차작업을 계속햇읍니다

상차작업은 하루정도로는 안되구 빨라야 2일이 소요됩니다

반공정을 마치고 우린 내려왔읍니다

 

그날 밤 또잠을 설쳣읍니다

국가세금 지방세금 공상세금 깡패들까지 휴!!!!

다음날 일부돈을 준비해서 광산으로 향햇읍니다

도착하자마자 주위사람들이 급하게 우릴찿았읍니다

이유인즉 어제 오토바이를 타구 왔던 그사람이 어제 산을 내려가다가

오토바이사고로 한쪽다리가 불구가 됐다는 겁니다

헉!!!!

순간 소름이 끼치더군요?

이건 우연치고는 너무일치 했읍니다

 

동네있는 사람들은 부처님이 가시는 길을 막아서 벌을받아 그렇게 됐다구

소문이 났엇읍니다

부처님은 맘속에만 있는줄 알앗는데....

그져 형식인줄만 알앗는데...

한참을 멍하니 바보처럼 부처님을 바라보고 잇엇읍니다

 

정신을 차리고나서 바로 부처님께 3배를 올렷읍니다

도착후 전바로 절에 스님께 찿아가서 문의를 했는데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벌을 준분은 자비하신 부처님이 아니시구

부처님을 지키시는 신장님이라고 하셧읍니다

스님께서도 그참!! 자비로운 부처님에 염력이 여기까지 미치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중국말로 아미타푸!!!!

 

전 그후로 부처님을 진심으로 믿게 었읍니다

스님에게 참으로 존말씀을 전해들엇는데..

욕심많고 시기하고 남을 흠담하고 맘이 삐딱한 사람일수록 확율적으로 사악한 악귀가

몸으로 치고 들어올 확율이 많타구 햇읍니다

들어오면 악귀가 몸을 지배하여 파멸로 이끈다구 그랫읍니다

 

반대로 선행을 하구 선말말과 넓은 맘 봉사활동을 많이 하시면 몸속에 영이 맑아서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니 좋은일 많이하며 열심히 살아가라고 하셧읍니다

이상은 실화이구요!!! 졸필이지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여기 오시는 님들 모두모두 성불하시기를................

 

밤배(bada5678)님 글입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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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나는 언제부터인지 산을 좋아했습니다. 피아노를 다루는 사업을 하는
만치 음악에도 깊이 끌렸지만 말없는 자연이 더 마음을 당겼습니다.
산에 가면 대개는 절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산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산의 핵심이 절 인듯 느껴졌습니다.
절이 없는 산에는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게도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절에 가서 염불 수행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부처님앞에
가서 합장하고 절을 하고 나서 뜰 앞에 앉아서 멍청히 풍경소리를

듣거나 벽화나 단청한 귀퉁이에 눈길을 던지고 있는 그런 취미일
뿐이었습니다. 서울 근처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적으로 절도
어지간히 더듬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절과 친근해지고 스님들과
가까워지고 불법에도 슬그머니 들어와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한걸음 한걸음 산에 오르고 큰 나무 밑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멀리 꾸불꾸불 산길 끝에 펼쳐진 절의 모습 그것은
산의 경치라기보다 제 마음의 고요하고 신선한 구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는동안에 경전을 대하고 염불을 하고 차차 산에 다니는 재미가
깊어 갔습니다. 그래서 몇번 법회에 나가 교리를 배우고 염불 수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10년쯤 전의 일이었던가 싶습니다.

그후 불광법회를 만나 부처님의 크신 은덕속에 내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의 생활을 믿음의 생활로 차차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독경과 염불, 예불로 시작하여 회사에 가서도
반야심경 1편으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출근하려고 차에 올라서도
먼저 반야심경을 암송하였습니다.불광법회에서 공부하면서 과분하게도
법회의 임원이 되어 여러 불자님들과 함께 믿음을 전법을 위한 정진을

하게 되니 하루하루 기쁨을 나날이 새로울 뿐입니다.
몇번인가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부처님께 감사하면서 그 모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제는 더욱 기도 정진하여 믿음의 힘을 키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나날입니다. 그런 중에 근래 기도를 통해서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실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지장보살이 주신 아기

불광법회를 만나고서 비로소 부처님의 크신 위덕과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상님께서 극락왕생하시고

저의 누이동생도 보살펴 주시고 형제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고 감사하였습니다.저는 9남매 중에 맏이인데 집안과 형제들에
대한 책임도 컸지만 그무렵 출가한 동생이 소생이 없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개울에서 목욕하고 가까이 있는진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 앞에 공양올리고
지장보살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관사 부처님은 그전부터 자주 참배한 부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는 날 법당 문앞에 서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습니다. 몸은 굳어지고 어떤 전율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저는 손에 염주를 들고 단단히 마음먹고 법당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법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때의 지장보살님과
시왕님의 무서운 상호를 지금껏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노하신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법당 밖으로 밀어내는 것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첫날이니까 물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에는
시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무서운 때는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꽉 감고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경드렸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장보살경 1품 또는 2품을 읽고 지장예찬
문을 읽으며 백 오십 팔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0분간을 일심 염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쫒기는 듯 법당에서 나오곤 하였는데 이러한
힘든 경계가 1주일 후에야 바뀌었습니다.

차차 그런 경계가 사라져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지장보살님이 반겨
주시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어찌 장부가
그런 요망한 말을 하느냐고 꾸지람 하시겠지만 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표정이 나날이 반겨하시고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법당 근처에 오기만 하여도 반겨주시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하였고 그 사이에는
오직 환희심과 감사로 나날이 지나갔습니다. 집안 이야기르 드리자면
제 여동생이 충청도 제천에 사는데 결혼하여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후사를 바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채 세월이
흐르니 어른들의 불만이 겹쳐서 불화가 빚어지고 마침내는 몇번이나
친가로 쫒겨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차례 겪고 나니
친정의 큰 오라비라고 하는 책임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세달 가까이 되니 임신 소식이 들려욌습니다.
그동안 하도 걱정했던 일이라 믿기지 않더니 드디어 달이 차 금년
봄에 아들을 순산했습니다.병원에서 의사는 난산을 예고했습니다만
저는 부처님만 믿고 아들 순산을 선언하고 집에 왔더니 과연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백일 기도를 마친 저는 계속하여 또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은 또 꿈이야기냐 하시겠지만
이 꿈은 정말 꿈같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새벽녘인데 꿈 속에 어떤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작은편이고 남루한 한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덕을 입어서 내가 좋은
데 간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느니라.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라고 한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서울 장위동에 사시는 저의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그리고서는 "이 사람이 내 손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역사물 TV에서 보던 포졸형식을 한 두사람이 나타나서
그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노인은 새옷으로 갈아 입었고 그것은 옛 장군복 같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와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포졸 형색을 한 사람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실감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 저는 이상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진관사에 가서 기도하고 그 길로 사무실로 나가
당숙모댁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숙모는 올해 83세이신데 16세에 시집오신 저희 집안의 산
역사이십니다. 전화로 "장호원 할아버지가 계셨습니까."하고 물으니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본 대로 형상을 말씀드리니, "내가
그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너는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상님을 위한 기도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숙모는 "참 잘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조상님을 위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잘했구나"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경전 말씀에 일체중생이
미혹하여 어둠을 방황하고 불보살님이 능히 이를 구원하신다 하였고
일심으로 염불 기도하면 모든것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은 우리가 알수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의
한 단면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확실히
이름모를 분까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꿈에 본 무주고혼

그런데 저에게는 저의 생친이 계시고 또 큰아버님이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말을 바꾸면 큰아버님 앞으로 몫이 지어진것입니다.
두 어른 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신 지 오래입니다.

저는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까닭인지 아버님에 대한 사모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을 믿으면서부터 제사는 정성드려
올렸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듯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개울에 가서 냉수욕을 하고 진관사에 참배하고 지장보살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며 예배하고
예배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정근 일과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에는 아버님을 위한 기도와 아울러 저의 기도인연
으로 무주고혼들까지도 모두 부처님 은혜를 입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 일과를 정확히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하면서 홀로 정근하고 부처님앞에 약간의
공양을 올렸을 뿐 무주고혼들을 위하여 시식은 8월18일 회향날로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진관사 개울에는
빠알간 꽃물이 다 흘러가고 어느덧 여름이 한창인 때였습니다.

그때가 7월말 경이었는가 합니다. 새벽 늦게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낯익은 진관사 일주문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건데 별안간 수십,
수백명의 낯설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관사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를 둘러 싸며 "배가 고프오, 못살겠소. 어서
먹을 것을 주오."하고 일제히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오는 8월 18일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는 소참이나마 준비해서
대접하겠오."하였으나 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배가 고파 못견디겠오. 어서 밥을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난처해졌는데 순간 저의 곁에 위풍이 당당하고
키가 9척이나 됨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이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니오. 우리 병력을
풀어야 하겠오. 객귀들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더니 금방 일단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모와 군복이 배당되어 곧 입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어 스크럼을 짜고 빈틈없이 줄을 서서
전진하였습니다.그런데 여전히 저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도 20일만 기다리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저 대대장이라는 사람을 말하기를

"저들에게 무엇인가 먹여야지 그냥 두면 안된다."하더니 어디서 날라
왔는지 큰 밥통에 밥과 나물이 운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어 군대용 반합에 담아서 우리 군인들이
숟가락으로 퍼서 저들을 먹였습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한줄로 서서 그 앞에 밥을 먹겠다고 모여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쉴사이 없이
퍼먹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러는 사이에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객귀들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서의 대대장이라는 9척이나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좀체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 이런 고생을
한다. 마음을 밝히자면 부처님을 믿어라.

그리고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라. 그리고 부처님 믿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가라. 이번에 너희들이 배부르게 먹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법연거사의 은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이말을 들은 군중들은 일제히 저를 향하여 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하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혹 기독교신지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하니 역시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법연거사의 은덕으로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극락세계로
가게 된다."

하며 앞서 말을 기독교적 표현으로 바꾸어 되풀이하고 나서
"법연거사에게 감사하라"하였습니다. 역시 그들도 앞으로 나와 저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보는듯
생생한 것은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것은 흡사 법회를 마치고 나오는 저희들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객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듣는 말이라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주고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이번 기도의
목표인 선망부모와 무주고혼을 위한 기도가 성취됐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나 현실생활이 다가 아니며 사후 영혼의 생활만도
다가 아닌 불멸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도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제가불자의
독경,염불의 공덕이 경전말씀 그대로 불가사의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지장보살은 절에서만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중생세계에는 무주고혼과 같이
시장(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고 구재하여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겠습니까?
불법만이 제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 우리 부처님만이
모든 생명을 밝히고 구원해 주는 영원한 광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효성을 일으키고 자비심을 일으켜 조상님과 무주고혼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83.12월)



출처: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43인의 불교신행수기), 불광출판사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Posted by 慧蓮(혜련)
|

[경전을 지키는 신장님과 싸움]

 

(황전스님 글 http://blog.daum.net/dhehdka/7511762)

 

조그만 암자에서 초발심으로 열심히 행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무슨 공부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하루 세 번 부처님께 예불만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서 한 거사님이 찾아왔기에 물었습니다.

“우리 문중이 선학원인데, 부처님 경전을 공부해야 합니까? 아니면 선(禪)공부를 해야 합니까?”

“문중이 선학원이면 당연히 선(禪) 공부를 해야지요.”

“그렇다면, 선(禪) 공부를 하는데 제일 먼저 무슨 책을 먼저 보면 되겠습니까?”

 

“육조단경을 보면,

선(禪)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며칠 후에 육조단경을 구해서 읽어 보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을 보아야만이 선(禪)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말에 억지로 책장을 뒤적였지만 모르는 선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책을 억지로 절반쯤이나 읽었을까?

도저히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책을 덮으려다가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무념(無念) 을 종지를 삼는다.’

 

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육조단경을 단 한 글자도 이해를 못해서

짜증이 나 있었는데,

무념을 종지를 삼는다는 말에 그만

육조단경을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혼자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무념을 종지로 삼으라고! 무념이란 생각이 없는 백치나 바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뭣, 이따위 책이 다 있어!

그러니까 나보고 바보가 되는 공부를 하라 그 말이여?”

나는 정말로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 날도 습관처럼 새벽 예불을 마치고 좌선을 하는데

그 날 따라 자꾸만 졸음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도저히 버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 쓰러지듯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사천왕처럼 생긴 거인 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한 거인은 큰 칼을 들고 있었고, 또 한 거인은 철퇴를, 또 한 거인은 커다란 쇠몽둥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당신들 누구요?”

 

그러자, 세 거인이 동시에 말을 하였습니다.

“네 이놈, 어디서 감히 육조단경을 집어 던져?

그 경이 어떤 경이라고!”

커다란 눈을 굴리면서 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쨌단 말입니까?

세상에 경전이라고 해서 보았는데

‘무념’을 종지로 삼으라고 하니 성질이 안 나겠습니까?

 

나 보고 바보가 되라 그 말입니까?”

 

하고 겁 없이 대들었습니다.

“더 이상 말을 들을 것도 없소. 당장 목을 쳐버립시다.”

하고 한 거인이 큰 칼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래요? 당장 치시지요!

나는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요!

어서 치세요! 어서요!”

하고 내가 목을 내밀자 한 거인이 말했습니다.

“목을 치기 전에 우리가 문제를 하나씩 냅시다.

세 문제를 다 알아 맞히면 살려주고 맞히지 못하면

그 때 목을 칩시다.”

하고 거인들끼리 동의를 하자

“문제는 무슨 문제, 나 그런 것 필요 없으니 그냥 죽이라니까!”

하고 소리를 치며 대들었습니다.

거인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어쨌든 문제나 들어 봐.”

 

하고 칼을 든 거인이 먼저 문제를 내자

나는 바로 답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철퇴를 든 거인이 두 번째 문제를 내자

또다시 바로 답을 말하자, 쇠몽둥이를 든 거인이 문제를 냈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누운 채 두 다리가 위로 올라가고

머리와 팔도 위로 올라가면서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눈을 떠 보니 어려서 많이 받아본

돛단배라는 벌이었습니다.

 

새벽4시 반부터 오전 11시가 되어도

몸은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세 번째 문제를 풀어보려고 대 소변은 물론,

목과 손발이 저려오는 것을 참아가면서 아무리 끙끙대도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할 수 없이 소리를 쳤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소리치는 순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는 경전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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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의 신장님들]

 

황 전

 

한 동안 나는 오쇼 라즈니쉬가 강의를 한

조사어록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벽암록 해석]을 읽다가

이 책을 다 보고 나면 무슨 책을 볼까? 하고 한 생각을 일으키자, 갑자기 [능엄경]이 떠올랐습니다.

 

나에게는 능엄경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서 능엄경을 구하지?’

하고 생각을 깊이 하고 있는데, 지리산에서 茶를 만드는 거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雨前茶가 나왔는데 시음을 하자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가 녹차를 마시고 있는데

책꽂이에 두꺼운 능엄경이 꽂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내가 차를 마시면서 능엄경을 계속 바라보자

거사님이 내 마음을 알았는지

능엄경을 뽑아들더니 내게 주었습니다.

 

첫 아들을 얻고 나서, 그 기쁨을 부처님께 회향하려고 능엄경 백 권을 사서 다 보시를 하고 딱 한 권이 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능엄경을 보려고 책상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몇 장 남지 않은 벽암록을 다 보고나서 능엄경을 보려는 생각으로 벽암록을 펴는데, 이상하게 똥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능엄경에서는 꽃향기가 났습니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벽암록과 능엄경의 냄새를 번갈아가면서 맡아보았으나 똥냄새와 꽃향기가 갈수록 진하게 풍겨왔습니다.

나는 꽃향기 때문에 능엄경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능엄경 앞에 결과부좌를 하고 10분정도 꽃향기를 맞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려고 능엄경을 잡는 순간, 이번에는 꽃향기가 작은 떨림과 함께 온 몸을 감고 도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한동안 그 떨림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매일 매일 시간이 나는 대로 능엄경을 보았으나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던지 되지 않던지 상관하지 않고 그냥 읽고 또 읽다보니 ‘대불정능엄신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지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를 내어 읽어보려고 해 보았지만 그 발음조차 제대로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에 있는 도반에게 이 ‘대불정능엄신주’에 대해서 물어보니, 저녁예불을 마친 후에 요령을 흔들어 가면서 염불하듯이 읽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도반이 시키는 대로 저녁마다 요령을 흔들어가며 능엄신주를 읽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나는 자기 전에 보통 한 시간 정도 좌선을 하다가 잠을 자곤 했는데, 그날은 좌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숨을 자고나서 다시 좌선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옷을 입은 채로 자리에 눕자, 알 수 없는 기운이 온 몸을 감쌌습니다.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눈을 떠보니,

법당에 검은 옷을 입은 당당한 모습을 한 남자들이

수백 명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남자들 가운데 귀품이 있어 보이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여인에게 다가서 물었습니다.

 

“혹시 관세음보살님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님...”

내가 환희심에 합장을 하자 관세음보살님께서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시면서 그 많은 남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신장님들, 이 스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많이 지켜봐 주십시오.”

 

그러자 신장님 중의 한분이 말하기를,

“관세음보살님, 이 스님은 아직 性的인 경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공부가 잘 되지 않습니다.”

“신장님들, 머지않아 그 경계를 벗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관세음보살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자 모두를 합장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관세음보살님께서 함께 갈 곳이 있다면서 어디론가 가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내가 지리산 도반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스님, 그 능엄신주는 신장님들의 이름입니다. 스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간절하게 신장님들을 부르니 모두 오신 모양입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스님도 이 신장님들을 만나 본적이 있습니까?”

“그럼요! 만났으니까 스님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능엄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능엄경을 보호하는 신장님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부처님 경전들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 줄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능엄경을 다 읽은 후에,

부처님 앞에 능엄경을 올려놓고,

이 경전을 보시한 거사님 가족에게

부처님의 가피를 부탁하며 절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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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경의 힘]

 

황 전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말단 공무원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가 어쩔 수 없는 보증을 서 주다보니, 빈손으로 공무원 생활을 청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친정집이 여수 한산사 절 밑에 있는데, 아마 방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날 등산복 차림으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실례합니다.”

하고 대문을 들어서니 60대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스님께서 무슨 일로...”

하시면서 합장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받아본 합장이라 어떻게 답할 줄도 모르고 인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는 스님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이 아니네. 거사님이 대문을 막 들어오는데 내 눈에는 스님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할머니라 눈이 좋지 않아서 그러려니 생각하였습니다.

“할머니,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까?”

“방? 방이야 있지, 그런데 거사님은 불교를 믿나?”

“아닙니다. 저는 불교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방을 내 주지 않아! 거사님이 앞으로 불교를 믿는다면 방을 내주지.”

“그러세요?

저는 아직 불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할머니, 믿고 안 믿고는 나중 일이고, 방을 하나 주실 것인지 안 주실 것인지 결정을 하십시오.

할머니, 이 동네 약수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 약수터가 어디 쯤 있습니까?”

“약수터? 저 쪽에 있지.”

“할머니, 그러시면 제가 약수터에 갔다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방을 줄 것인가 주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약수터에 가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 다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할머니가 방을 공짜로 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할머니의 시집간 딸이 와서

내게 말을 해 주었습니다.

내게 방을 공짜로 내 준 이유는,

내가 약수터를 가고 있는데 제대로 가는지 할머니가 담장 너머로 보는 순간,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기면서 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 약수터로 가고 있었지만,

또 하나의 내가 밭 한 가운데에

결과부좌를 하고 합장을 하는데,

하늘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빛이

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방을 내 주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 옆에는 이백여 평의 밭에 농사를 짓고

밭 주변으로는 개집을 여러 채 지어 놓고 개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 집에서 그런대로 살기는 좋은데 많은 개들 때문에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돈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10여일 후 방 계약 날짜에 이사를 와 보니 개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다가가보니 개장에 있던 7,8마리의 개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밥을 줄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하던 개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어 있다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들이 죽은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내가 이 집에서 불교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량을 청소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온지가 몇 달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한산사가 있었지만 절에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절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할머니의 딸이 친정에 왔다가 나를 보더니 지장경 한 권을 건네주면서 심심하면 읽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주는 성의를 봐서 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장 넘겨보니 꼭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가 적혀진 책 같아서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지장경을 내 눈에 잘 띄는 마루 선반위에 올려놓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놓아두겠습니다. 심심하면 언제든지 읽어보세요?”

“알았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을 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나는 난생 처음으로 우리 할머니와 그 밖의 조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장경을 아무런 성의도 없이

그냥 몇 장을 넘겼을 뿐인데.

나는 순간적으로 그 책이 보통 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지장경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 손 가는대로 책장을 펴서 읽어보는데,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내 이야기가 거기에 적혀 있지 않겠습니까?

‘지장경 12품: 만약 미래세에 어떤 남자나 여인이 혹은 젖먹이 때나, 혹은 세 살, 다섯 살, 열 살 아래에 부모나 형제자매를 잃고서, 그 사람이 장성한 뒤에 부모나 권속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함에 어느 곳에 떨어졌는지,

어느 세계에 태어났는지, 어느 천상에 났는지 모르거든, 이 사람이 만약 정성껏 지장경을 3번 내지 일곱 번을 읽으면 알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온 몸을 적실 정도로 울었습니다.

고아들은 세상에서 잊어진 사람들이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일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런 고아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분들이 계신다는 생각에 울고 또 울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날 밤부터 잠들기 전에 지장경 첫 장에 그려져 있는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리고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지장경을 읽기 시작하면 잠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잠과 씨름을 하면서 읽고 또 읽었는데 일주일만에 겨우 한권 읽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1일 만에 3독을 마쳤습니다.

 

그날 밤 꿈에,

내가 천상에서 어린동자의 몸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지옥 구경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꿈에서는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나의 어머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싶어서

21일 만에 또 3독을 하고 나니,

그 날 밤 꿈에 나는 또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몇 개의 지옥을 구경하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책을 건네준 할머니 따님이

오후에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장경을 다 보셨지요?”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어제 밤에 꿈속에서

아저씨와 아저씨 부모님을 보았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 벼루에 먹을 한동안 가시더니 갑자기 맑은 물로 그 먹물을 짝! 씻어내 버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됐다.’

그러시는 겁니다. 거기까지 보고나서

꿈을 깼거든요.”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곧바로 절에 올라가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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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신비]

黃田

 

내가 한동안 경전에 심취해 있던 시절 이야기 입니다.

지리산에 있는 작은 암자에 공부를 많이 한 선승이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공부를 하다가 의문난 점이 있으면 찾아가서

법을 묻고 하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그날도 나는 지리산을 지나는 길에 그 암자에 잠시 들러서 몇 가지 법을 묻고 있는데,

갑자기 책꽂이에 꽂힌 몇 권의 법화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승을 만나러 몇 년 동안 왔지만 법화경이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스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아직까지 법화경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법화경 여분이 있으면 한 권만 주십시오. 이상하게 오늘은 법화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십니까? 내가 법화경을 인연 따라 보시를 해왔는데 이제 몇 권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가 이 법화경 10권을 드리겠습니다. 스님도 인연 따라 누구든 보시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스님은 법화경을 내게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스님, 이 법화경은 대단한 경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무서운 경이기도 합니다.

이 경을 읽다가 몸이 다친 수행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스님은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아무런 뜻도 모르고 그냥 읽는 경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법화경의 깊이를 알고자 하면 이 법화경을 읽을 자격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스님, 경전을 보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합니까?

그냥 인연 따라 보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다른 경전은 몰라도 내 경험에 의하면

법화경만은 자격을 갖추어야 만이,

법화경이 가지고 있는 그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자격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님이 하도 진지하게 말을 해서 믿지 않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 자격은 수행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딱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법화경을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법화경을 가지고 내 암자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새벽 예불이 끝나고 나면 염불을 하듯 법화경을 몇 편씩 읽어 나갔습니다.

어떤 경험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일주일 동안 3독을 했지만 아무런 경험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그 스님이 법화경을 신중하게 모시라고 나에게 그런 방편을 썼구나 생각하고,

그 스님이 했던 말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8일째 되던 날, 새벽예불을 마치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법화경 첫 장을 여는 순간, 온 몸에 전기 같은 전율이 감싸고 돌더니, 내 입에서 나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30여분 동안 그 통곡이 끝나자

눈물에 눈이 씻기어 그랬는지는 몰라도

눈이 매우 밝아져 있었고, 항상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알 수 없는 앙금들이 다 녹아버렸는지 가슴이 펑 뚫린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법화경을 보시했던 스님을 찾아가 통곡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 축하드립니다. 스님은 법화경 읽을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백여 권의 법화경을 보시했는데 법화경을 읽고 스님처럼 법화경 읽을 자격을 갖추고 찾아온 사람은 처음입니다. 아마 이제부터 법화경은 물론이지만 다른 경전도 잘 보일 것입니다.”

 

“스님, 어째서 그렇습니까?”

“법화경에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전생에 스님이 했던 공부를 이생에 다시 이어줍니다.

그래서 그 법화경의 힘이,

이생에 스님이 지은 업장을 녹여준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한 힘입니까?”

 

나는 그 스님의 말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몰라도,

법화경의 신비한 힘을 경험한 후로는 불법에 대해서

하나를 알면 열을 알고,

열을 알면 백을 알게 되었다.

 

이보다 더 신비한 힘이 어디 있을까요?

 

(황전스님 글 http://blog.daum.net/dhehdka/7511762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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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백일기도로 눈 뜬 중년신사 (법철스님 글 전재)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향가 가운데 도천수대비가를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千手), 천안(千眼)의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향가를 통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중생이 슬픔속에 관음보살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만산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화창한 봄 날.

필자(법철스님)가 주지로 있던 산새소리 가득한 전남 강진 무위사에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필자는 그때 무위사 큰법당인 극락보전 앞에 있는 고목나무 밑에 놓여 있는 깨어진 멧돌 위에 정좌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남자는 필자에게 정중히 합장 인사를 하고는 어눌한 음성으로 무위사에 관세음보살님의 국보 벽화가 봉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원천리 찾아왔으며 관음기도를 지성껏 모셔보고 싶노라고 허락을 구해왔다.

그는 슬픈 얼굴로서 후리후리한 키에 회색 양복을 입었고 한 손에는 낡은 트렁크를 힘겹게 들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나 필자는 이내 그의 설명을 듣고 속사정을 알았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는 경북 포항 사람으로 그동안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며 일개미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 왔다. 갑자기 두 눈이 어두워 오더니 마침내 눈 뜬 장님이 되다시피 되고 말았다.
“아, 내가 앞을 못 보게 되다니….”
그는 나날이 잃어가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발악하듯 몸부림을 치며 유명하다는 병원의사는 성지순례하듯 찾았다.

병원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절망에 빠져 울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 마지막으로 신불(神佛)께 기도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 그는 무위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오정수(吳定洙). 필자는 오정수씨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무위사에서 기도할 것을 흔쾌히 허락하였다.

오정수는 각오의 뜻으로 삭도로 머리칼을 밀어 버렸다. 그리고 극락보전안에 있는 후불벽화인 수월백의관음벽화 앞에서 촛불과 향화를 받들면서 백일을 기한하고 천념 염주를 헤아리며 지성으로 관음기도를 올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정수의 간절한 기도소리는 무위사의 적막한 도량을 넘쳐 흘렀다.

죽기를 한하고 지성으로 기도하던 오정수는 백일기도가 끝나가는 즈음에 놀랍게도 두 눈이 밝아졌다고 부르짖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확신합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오정수는 다시 트렁크를 들고 필자 앞에 섰다. 눈이 웬만하니 걱정하며 고대하는 처자에게 달려가고 싶고,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 가장의 책무를 다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작별하는 즈음에 오정수는 호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 그동안 산사에서 체류하게 해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부족한 돈이지만 시주금으로 받아달라고 간청하며 필자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 필자는 빙긋 웃고 다시 그 돈을 돌려주며 기도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치하만 했을 뿐이었다.

“우리 인연 있어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필자는 멀어져가는 버스 차창을 통해 오정수씨의 흔드는 손을 답례하여 마주 손을 흔들면서 내내 앞서의 신라의 향가를 생각하였다.

― 무릎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천안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무위사 수월백의관음보살님이 고해중생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고해대중이여, 우주에 의지할 성인 가운데 관세음보살님을 권장하오니, 우리 모두 때가 되면 이승의 인연들을 작별하면서 한과 눈물속에 홀로 머나먼 저승으로 떠나갈 때 까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인생을 살아갑시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세연이 다해 육신의 탈을 벗고 어둠속에 홀로 울며 머나먼 윤회의 길을 떠나려 할 때 반드시 광명으로 나투며 현신하여 우리의 영혼을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2. 김 갑숙님 관음신앙 수기 모음

 

(1)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니



꿈에 흰옷 입은 할머니가 나타나
옆구리서 뱀한마리를 떼어낸 후
두통과 위장병이 깨끗이 나았다


나는 전생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지중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갔었다.
그 때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이었다.

친구들이 교회에가면 맛있는 것과 선물을 많이 준다는
소리에 솔깃해서 따라 갔던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온 몸이 으스스해지는 전율을 느꼈다.

아멘’ 소리도 듣기 싫었다. 더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선물의 유혹도 뿌리치고 서둘러 교회를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부터 어떤 일이있어도 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남 송광사로 수학여행을 갔다.

송광사 법당에 계신 부처님을 보고 어린 마음에도 어찌나
환희심이 나던지 넋을 잃고 부처님의 상호를 쳐다봤다.
또 향내음이 왜 그리도 좋던지, 전생에 불연이 있었기에
이러한가 혼자 생각해 보곤 한다.

16년전 나는 남편과 중매로 만나 결혼을 했다. 하고 보니
시댁은 기독교 집안이었고 남편은 장남이었다.

내가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니 부처님께 귀의하기란
쉽지않았다. 하지만 기독교집안이라 해서 싫은 내색 보이지
않고 묵묵히 생활했다.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교회로 전도하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마음이 상하시지않게 "네"란 대답만 드릴뿐 가게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가족들 몰래
불경을 공부했다.

경전의 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열심히 독경하고,
불교서적도 많이 탐독했다. 중요한 내용에는 밑줄까지 쳐가며
공부를 하다보니 <반야심경>등 법회 때 제일 많이 독송되는 경들이
줄줄 외워졌다.

결혼한지 3년 후인 13년 전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일년 후 1주기 제사를 시어머니 뜻대로 기독교식인 추도식
으로 모신후 큰 사고가 일어났다.

누가 보아도 차사고가 날 장소가 아닌 가게 앞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밤에 잠을 자려다말고 남편이 가게 앞에 세워놓은 차에 탔는데
큰 사고가 났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나가는 남편을 극구 말릴
것을 하고 후회를 하게 되었다.

왜 자려다 말고 나갔느냐고 묻는 나에게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뭔가
끌리는 듯하고 자꾸 마음과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나로서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가 막힌 큰 사고였다.
그 후 우리부부는 사고 수습을 하느라 며칠은 가게 일도 볼 수
없을 정도로정신이 없었다.

나는 시아버지께서 제사를 유교식으로 모셔줄 것을 원하시어
장남인 우리 부부를 깨우쳐 주시려고 잠자려던 남편을 이끌고
나가 큰 사고를 내게 하시지 않았나 하는 얼토당토한 의심이
자꾸만들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뜻을 어길수가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음해 또다시 우리 집안엔 시련이 닥쳐왔다. 그 때도 시어머니의
뜻대로 시아버지 제사를 추도식으로 모신후 였다.

당시 6살이던 아들이 가게 앞에서 놀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치어 어깨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한 달이나 입원을 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시아버지 제사를
추도식으로 지낸 다음 계속적으로 일어났기에 마음이 찜찜했지만
차마 시어머니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큰 시누이가 어머니께 말씀드릴테니 올케가
기독교식이 아닌 전통식으로 정성스럽게 제사를 모시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용기를 얻었다. 남편과 상의를 하여 전통식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 후 법현스님이 쓰신 불교식으로 제사모시는
법에 대한 글을 읽고 지금은 불교식으로 모시고 있다.

그후 지금까지 우리 집안에 큰 사고없이 잘 지내고 있다.

아마 기독교 집안 맏며느리이지만 불교와의 인연이 있는
나를 일깨워주려고 그러한 어려움이 있지않았나 생각해본다.

그 후부터 나는 더욱 더 발심을 해 불교공부에 본격 매진했다.
절에 가야 부처님을 만나뵐 수 있고 절에 가야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처처마다 아니 계신 곳 없으신 부처님께 나는
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문을 읽고 관음정근, 발원문 순으로 하루도
빠지지않고 기도정진을 하였다.

무엇을 하든지 항상 불보살님을 관하고 나는 부처님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런데 나는 몸이 너무나 아픈
시련을 겪어야 했다.

머리가 터질 것같은 통증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서 며칠을 생활해야
했다. 내가 몸져 눕자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업친데 덮친 격이라고 했던가. 위장병까지 생겨 소화가 되지 않아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도 병명은 나오지 않고
신경성이라고만 할뿐이었다.

나는 불보살님께 의지하고픈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나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께 의지했다.

어느날 관세음보살님을 일심으로 간절히 부르다
잠이들었다.

꿈에 하얀 옷을 입은 할머니 한분이 내 옆구리에서 뱀 한마리를
떼어내 어느 바위에 던지니 그 뱀이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
지지 않는 꿈을 꾸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며칠을 두통과 위장병에 시달리던 나는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웠다.

불보살님이 나에게 감응해주신 것인가! 나는 은혜에 보답드리고자
더욱더 발심을 내어 기도정진하게 되었다.

나는 더 큰 발심을하고 가족들 몰래 가까운 절로 새벽기도를 다녔다.
하루종일 가게 보느라 피곤했지만 새벽기도에 동참하여 부처님을
만난다는 환희로움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열심히 다니며 날마다 108배를 했다.

그렇게 기도정진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밤마다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며칠 동안이나 보였다.

아버지께서 천도를 원하심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가족들 몰래
절에다 아버지 영가위패를 모시고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영가를
위해 기도를 했다.

집에서는 49일 동안 <지장경> 1품에서 13품까지 독송하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츰부다라니는 21번, 광명진언은 108번, 지장정근은
1080번을 염송했다.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기도도 했다. 나는 49일 기도 회향 후
깨끗한 모래를 구해서 일곱 번 씻어말려서 하루에 광명진언 108번씩
염송하기를 21일 동안 했다.

그리고는 남편과 애들을 데리고 시골에 모셔진 아버지 산소에
가서 뿌려드렸다.

그날 밤 또 꿈을 꾸었다. 어느 할머니 한 분과 아버지, 두분이서
집으로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방에 계시고 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면서 밖으로 나가시는데
하늘에서 밝은 광채가 나는 꿈을 꾸었다.

그 후로 그렇게 꿈에 보이시던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지를 않으셨다.
천도가 된 것으로 생각해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어느날 밤 꿈에 하얀 옷을 입으신 할머니께서 나를 어느
깊은 산 속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엔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잔디 위에는 집 한채가 있었는데 그 집에서 남편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꿈을 꾸고 난 후 기독교
집안의 장남이었던 남편이 내가 정식으로 절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
하는 행운이 있게 됐다.



모든 원인이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참고 견디며

일체유심조 교훈을 생활화하고 있다


나한테 일어난 모든 일이 불보살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피와 보살님의 가호하심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마음에도 없는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기독교 집안의 장남이지만 불보살님의 가피로 마음의 문이
열려 부처님께 귀의하게 해준 남편의 배려가 너무나 고맙다.

덕분에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일요법회에 참석하여 덕 높으신
스님의 법문을 듣고 열심히 배우고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불교의 진리는 이론에 있지 않고 실천에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잊지않고 명심하여 부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발심하고 있다.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내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해결이 될 때까지
신경쓰고 고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결국 내 몸을 망치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신경쓰고 걱정하기
보다는 불보살님께 의지하여 기도정진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불보살님을 믿으며 의지하고 정진하다 보니 모든 일이 스스로 잘되어감을
느끼고 있다.

얼마전 치아에 이상이 생겼는지, 아니면 턱에 이상이 있었는지 잇몸의
통증으로 입을 벌리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
으로 참는 나에게 남편이 내일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검사를 받아 결과가 나쁘다면 최악의 경우 수술까지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저는 관세음보살님만 믿겠습니다. 제가 의지할 곳은
관세음보살님뿐입니다”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하며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쉼없이
외쳤다. 한 호흡에 몇번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념으로
부르다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에 하얀 옷을 입으신 할머니께서 하얀 천을 내 턱밑에
깔아주셨다. 그 하얀천에는 탑이 그려져 있었고 그 탑 속엔 빨간
글씨가 빽빽히 적혀 있었다.

할머니는 이것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나를 안심시키고는 천을
정성스럽게 깔아주셨다. 이 꿈을 꾸고 난 다음날 나는 또 거짓말같은
기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통증으로 입을 벌리지 못할
정도로 아팠던 내 입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병원에 가라던 남편은 내가 꾀병을 했다고 할 정도로 믿지를 않았다.
나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감사드리고 더욱 발심하여 기도정진하게 되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불보살님께서 주신 은혜에 보답드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아침 저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한다. 작은 보시함을 만들어
기도할 때마다 적은 돈이나마 꼬박꼬박 보시함에 담았다.

한달동안 모은 적은 돈이지만 매월 말일에 그 돈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교방송 후원금으로 회향하고 있다. 불보살님께 입은 은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받은 은혜에 보답드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내가 받은 가피를 또 한가지 더 적어보고자 한다.

내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다. 그렇게 착하고 부모 말씀이라면 순종하던
아이였다. 그러던 그 아이가 지난 여름 방학 때부터 밖으로만 나가려고
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아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끝내는 엄마인 내가 제일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춘기때의 반항이려니 하면서도 변해 가는 아들을 타일러도
보고 꾸중도 해보았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매도 들어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아들과 마주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흐리멍텅하게 정신이 없는 듯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섬뜩했다. 내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를 보는 듯 낯설었다.
그렇다고 마약같은 것을 복용한 것도 아닐텐데 눈에 초점없음이
이상했다.

나는 놀라서 추궁하던 말을 멈추고 내 방에 들어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무엇을 의미하는 눈물인지도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려내렸다.

그리고 내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은 업장으로 자식을 통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참회의 기도를 열심히 일심으로 했다.
나는 100일을 정해서 아침에 예불문 천수경 관세음보살보문품
관음정근 발원 반야심경 순으로 기도가 끝나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108번씩 하는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를 시작한지 60일 정도 되는 어느 날 아들이 나에게 말을 했다.

“엄마, 너무 걱정하시지 마세요, 공부 열심히 해서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들이 되겠습니다”라고 말이다. 나는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나는 내 업이 많아서 아들이 이렇게 되었구나 생각하고 부처님께
내가 지은 업으로 내 자식들이 불행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해주소서
하고 발원하고 열심히 기도정진하고 있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아들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여름불교학교에
보내고 부처님께 다가가게 했다. 엄마의 소망을 마다하지 않고 불교
학교에도 잘 다니던 아들이 순간 나쁜 길로 빠지려함이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을 원망하고 탓하기 보다는 모든게 다 내가 지은 업을 아들을
통해서 받고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참회의 기도를 했다. 짧은 날이었지만 나에게 참회의
기도를 하게끔 깨우쳐준 아들은 지금은 학업에 열중하며 착하게
생활하고 있다. 모든게 불보살님의 가피라 생각한다.

이후에도 나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피를 체험했다.

그 체험을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아만심을 버리고 하심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내게 주어진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전생에 나의 숙제라는
생각을 하며 기도로써 극복하며 생활하고 있다.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밖에서만 찾으려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해결하려 했던 나는 불법을 만나고부터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불보살님을 의지하여 믿으며 어떠한 어려움도 기도로써 이겨내고자
한다.

마음 한 번 바꾸면 삼라만상이 부처님의 향기로 가득한 것을 모르고 항상
너와 나를 분별하여 무명 속에서 생활하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을 새기며 마음 한 번 바꾸니
고통의 괴로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도 전생에 내가 지어놓은 업을 받게 되는구나
생각하고 인욕으로써 참고 견디며 내가 지어놓은 업이 이 고통으로
인해서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중생의 어버이이신 불보살님이 주신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한다.

모든 중생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다 행복하기를 바라며 나도 열심히
정진할 것을 약속한다.



김갑숙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현대불교신문(www.buddhapia.co.kr) 전재

(2)


꿈에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받다

글· 김갑숙


제가 佛光불광과 인연이 된 지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불교에 입문하기 훨씬 전부터 「불광」을 구독해왔으니
불광이 저를 부처님 품안으로 이끈 스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연히 군법당에서 불광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니 우연이라기
보다 마음이 스산하여 문득 법당에 새벽기도를 갔다가 불광을
보고 열심히 구독해왔습니다.

저는 불광을 읽으면서 점차 불자가 되어갔고 본격적으로 불교에
입문한 지는 3년쯤 되었습니다.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라 불교에
귀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절에만 가야 부처님을
만난다는 생각을 버리고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만나려고 노력하며
집에서 열심히 경전을 읽고, 염불하며 기도정진하고자 100일, 21일
기간을 정해놓고 계율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야심경, 천수경 등… 몇 가지의 경전을 달달 외우게
되었습니다. 뜻은 잘 모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예불부터 시작하여
아침을 지으면서도 외우고 무엇을 하든지 머리 속에는 나는 불자다라
는 단어를 생각하고 입으로는 경전을 달달 외웠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금강경 사경하고 하루종일 기도가 끝나면 불교에 관한
책을 읽으며 불교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몇 년 부처님의
가피가 계셨음인지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이 절에 나가라고 허락
하였습니다.

남편은 지금은 저보다 더 적극적인 불자가 되었으니 그 또한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얼마 전 원인 모르게 몹시도 아팠습니다. 머리가 쏟아지는 통증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위장병까지 나서
음식만 먹었다 하면 소화를 못 시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였지만 신경성이라고만
하지 뚜렷한 병명이 없었습니다.

약으로만 의지하던 저는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려 보기로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어떠한 어려움도 다 해결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각으론 관세음보살님을 관하고 입으로는 쉬임없이 불렀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라구요.

그렇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에 관세음보살님께서 저의 옆구리에서 뱀 한 마리를 떼어내려
하는데 그 뱀이 극구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님께서 힘껏 잡아당겨 떨어지는 뱀을 어느 바위에 던지니
그 바위에 그 뱀이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고 난 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며칠 동안이나 저를 괴롭게 만들던 통증이 언제 아팠느냐는
듯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전 관세음보살님의 몽중가피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픔이 있을 때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꿈에 관세음보살님만
나타나시면 어려움이나 아픔이 사라졌습니다. 지면 관계상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전 지금도 관음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와 관세음보살님의 가호하심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제가 불자로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요?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항상 제 잘못은 없고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는 듯 생각하고 상대방에 대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는데 불법을 만나고부터는 상대방의 잘못보다 나의 업을 생각하게
되었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도 왜 이럴까 하는 마음보다 제 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어머님께서도 교회에 나가시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제가
불자로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몇 년 전에 제 손을 잡으시면서 우리 집안을 맏며느리인
저에게 다 맡겨도 되겠다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로 큰 힘이 되어주십니다.

일상생활 처처마다 만나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보답코자
불자로서 하루하루 보람있게 항상 불보살님을 잊지 않고 생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기도정진하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출처: 월간 불광 1999년 5월호



(3)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대화가 없었다면…

글·반야행 김갑숙

상대방의 생각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대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희 가게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섬짓해 집니다. 상대방의 생각보다는 내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자존심이란 씨앗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작은 오해로 며칠을 고민하게 되었던 것임을 깨닫고 나의 어리석음에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가게를 하면서 생활하는데 지금의 가게에서 8년이나 주인댁과 아무 일 없이 살게 되었고 저희 부부는 열심히 생활한 덕에 아파트를 사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한 지 2년이 되었지만 내 집 장만하고 생활하는 마음의 풍요로움에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저희 부부는 30분 거리의 집과 가게를 왔다갔다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작은 오해로 하마터면 가게를 옮기게 될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요즈음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저와 아무런 상의 한마디 없이 남편이 일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주인 아저씨와 가게 임대료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임대료를 내려줄 수 없으면 가게를 빼달라고 대책없이 말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저와 남편간에 충분한 상의 뒤에 남편이 결정한 것으로 알고 가게를 빼려고 복덕방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놀라서 온몸에 힘이 빠지며 잠을 자지도 못하고 밥을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아무런 의욕이 없었습니다.

무엇에 그리도 집착을 하여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의욕 없이 맥이 탁 풀어져서 정신없이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 저는 절대 가게를 옮길 수가 없습니다.' 하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남편한테 다시 한번 주인아저씨와 충분한 대화를 나눈 다음 결정지으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였지만 남편의 마음은 자존심 때문인지 단호했습니다.

순간 저는 '부처님 제가 무슨 지은 업이 많아서 갑자기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제가 지은 업이라면 어떠한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겠습니다.'라며 참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렸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께서 저를 외면하시지 않으신다면 저좀 도와주세요.

저는 혼자서 간절히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리다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길이 있으리란 믿음으로 제가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기도하라 하시며 도움을 주시는 스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스님은 "걱정하지 말고 한 사람이 뒤로 한발 물러서서 다시 한번 잘 얘기해보고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남편과 주인아저씨를 위해 아침, 저녁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세음보살님께 일심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변하지 않는 주인 아저씨와 남편의 팽팽한 자존심의 신경전을 내가 대화로써 풀어보자.' 하고 주인아저씨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저씨의 속마음은 먼저 대화해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의 말씀은 제 걱정과 달리 제 생각도 남편생각과 같은 줄 알고 가게를 빼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에요 아저씨! 저는 여기서 가게를 하고 싶습니다." 하였더니 아저씨의 대답은 제 걱정과는 달리 내 보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 대화로써 상대의 작은 오해가 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팽팽하던 남편의 마음도 순순히 풀어지며 그냥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혹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망설이던 제 자신의 어리석음에 쓴웃음이 납니다. 혹시 주인 아저씨가 먼저 제가 살게 해달라고 해주길 원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생각도 해 봅니다.

저의 간절한 기도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없었고 제 마음을 털어놓는 대화가 없었다면 저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게 얻는다고 노심초사했겠지요.

이번 일로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나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보다는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불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해 봅니다.

관세음보살님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월간불광 99년 12월호

 

3.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받아 마시고


대구시 동구 덕곡동 대덕화보살님의 수기


저는 오래전부터 대장염을 앓아왔습니다.
빈혈이 심해 병원에 갔다가
궤양성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도 몇 년간 꾸준히 다녔지만
증세는 좋아졌다간 다시 나빠지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간 치료하면 낫는다고 하는데
저는 완치가 되지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식이요법은 물론 좋다는 약은 다 먹어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빈혈로 밖을 다니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모든 약을 중단하고 음식물로써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데
몸이 그 음식을 받아주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유산을 권했습니다.
산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

그러다가 남편이 결혼 전에 가끔씩 나가던 영남불교대학에서
'좋은인연 신문'을 가지고 왔더군요.
집에서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워 뭐든지
읽을거리를 가져다 주곤 했습니다.
그 신문을 보다가 신행수기를 써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로써 가피를 입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도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졸라 절을 찾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습니다.
또 지금 낳지 않으면 언제 또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몸이 더 건강해지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이상하게도 영남불교대학·관음사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노천법당에 서 계시는 관세음보살남을 뵙는 순간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습니다.그
러나 남편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법당을 둘러보면서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인지 곧 어지럼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제 안색을 살핀 남편이 저를 얼른 노천법당에 앉혔습니다.

그러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몸에서 힘이 좍 빠져나가고
저는 그만 남편에게 기댄 채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남편이 제 몸을 주무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봐도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언뜻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제 옆에 서계신 관세음보살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관세음보살님!
아기를 낳고 싶어요.살려주세요'

관세음보살님이 곁으로 다가오시더니 제 이마를 짚어보시고는
손에 든 감로수병을 천천히 기울였습니다.
갑자기 온몸에 향기로운 감로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저는 감로수에 머리까지 다 잠겨버렸습니다.
감로수는 햇살을 받아 사방으로 무지개 빛을 뿌렸습니다.
잠시 후 관세음보살님이 다가오시더니
다시 이마에 손을 짚으셨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 많은 감로수를 저 혼자 다 써버려서 어떡합니까!"

관세음보살님은 환하게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감로수는 곧 저의 마음이니 한량없습니다.
이 온 우주,온 법계를 적시고도 수억겁 동안 흐릅니다."

저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그 감로수의 물결 속에서
삼배를 올렸습니다.절을 하면서도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마치 날아갈듯 했습니다.

"여보!"

남편의 절박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회주스님께서 제 이마에 손을 얹고 계셨습니다.

"보살님,괜찮으십니까? 구급차를 불러두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저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무릎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괜찮습니다.스님."

"여보?"

남편이 울먹이며 저를 불렀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마시고 완전히 몸을 담그기까지 했어요!"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괜찮은지 의심스러워 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보았습니다.
정말 멀쩡했습니다.어지럽거나 구토 증세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나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뛰어도 보았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서야 남편은 제가 하는 말을 믿었습니다.

대장염은 물론이고 빈혈과 그 외
합병증도 증세가 완화되어 있었습니다.
생활하는데 조금의 불편도 없었고 약을 먹지 않고도
빈혈이 차츰차츰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2주 쯤 뒤에는 현기증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이까지도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후,저는 가끔 회주이신 우학스님의 꿈을 꿉니다.
한번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출연료를 받아야겠구만'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우학스님의 은덕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출처: 인드라망 카페 (cafe.daum.net/indelamang)

 

4.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로 일웅스님의 병이 치료되다.


대구 법흥사 주지로 일웅스님이 계십니다.
지금도 주지스님으로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스님께서 직접 겪으신 체험담입니다.

"기복으로 기도를 한 경우에도 기도에 몰입하여 마음이 비워지고
순수해졌을 때 영험이 나타나는 것이지,
마음속에 뭔가를 바라는 욕심이나 조급함이 가득차 있을 때는
영험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 주변에서는 기도의 영험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스스로 병을 치유한 나(일웅스님)의 체험담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60세가 가까워지자 기력이 예전같지가 않았습니다.
40대시절 포교에 매진하면서 한편으로는 태고·조계종간의 분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기력을 소진했던 탓인지
피로가 누적되고 쉽게 회복되지가 않았습니다.
몸은 곧 마음을 반영합니다.
몸이라는 글자의 한획만 바꾸면 맘이 되는데 이는 곧 마음의 준말입니다.
예로부터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고 했어요.

자기 몸이라도 함부로 굴리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지요.
종단사태 이후 십수년을 쉴 사이없이 신경을 과도하게 쓰다보니
병이 올 수 밖에요.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 먹어도 차도가 없자
큰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간경화말기증세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승려로 살다가 죽으니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지막으로 부처님전에 기도나 열심히 하다가 임종을 맞이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관세음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는데
여러달이 지나면서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밤, 도저히 오늘밤을 넘길수 없겠다 싶어요.
“과거 수억겁을 지나오면서 아프지 않은 때가 있었겠는가,
아프고 아프지 않은 것은 오직 마음의 상(相)일 뿐이다’고 한 생각을 돌이켜
몸을 간신히 추스리고는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일체가 다 내자신이 지은 업장때문임을
참회하고 성불의 인연짓기를 발원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기도중에 하얀 소복을 입은 부인이 찾아왔는데
안면은 있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요사채로 인도하니
“요즈음 스님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어떻습니까?”고 안부를 물어요.”
“아직 많이 아픕니다”고 하니

부인이
“제가 아픈 곳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해 아픈 곳을 보여주었더니

부인은 손으로 환부를 만지며 약봉지를 꺼내고는 먹기를 권해요.
꼭꼭 씹어서 먹었더니 부인은 “스님,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찬바람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아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이 아니라
법당에 앉아서 추운줄도 모른채 잠시 삼매에 빠져있었더라구요.
아프던 몸이 어느새 말끔하고 머리가 맑아요.
돌아서서 법당안을 둘러보니 부처님뒤 후불탱화에 그려진 백의관음께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랐지요.
비몽사몽간에 본 그 부인의 모습이 바로 백의관음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차츰 병이 나아져서 예전의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내 체험을 얘기했지만 기도의 힘은 상상이상으로 큽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거나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수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에는 ‘나’라는 아상이 개입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상을 제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나무 관세음 보살..

 

5.

 

낭월 (朗月)스님의 관음기도 영험담

(낭월스님 글)

가끔은 방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운(運)도 불리하고 여건도 좋지 않으면
종종 등장하는 것이 기도를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를 하면 과연 "효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반문을 받는 것도
당연한 코스(?)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 대한 낭월의 경험담을 들려 드림으로써
나름대로의 소견을 밝히도록 할 참이다.

물론 실화일 뿐이며 단 한 글자도 조작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1. 발단
낭월의 나이 20세였다.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 해였다고만 말씀을 드린다.
그 해의 간지는 丁巳년이었고, 1977년이었기도 하다.
그러니까 실제 나이로는 21살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어느 봄날 아침에 자고 났는데, 천지가 온통 붉은 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물은 가까이는 보이고 멀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3~4일이 지나면서 점차로 그 붉은 기운은 짙어지더니
마침내는 아무 것도 식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는 고사하고 자신의 밥그릇을 찾아 먹기도 곤란한 지경이 되었다.

대구에 있는 동산병원이라고 하는 종합병원을 찾았다.
하루 종일 검사를 한 다음에 내린 결론은 '失明'이었다.
시력을 쓸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리고는 끝이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으니 공부는 끝났고 자신의 생계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하였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자신이 건강할 적에는 부모형제가 필요 없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 잘도 돌아다니지만, 막상 병이 들면 아무 곳에서도 오라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계시는 집으로 가서 민간약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몇 달을 보냈다.
병명은 '초자체혼탁'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대의 의술로는 치료를 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
답이 명확하게 나왔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마음에 대해서 벗님은 생각이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입장에서는 절망이라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2.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기도 동기

막판에 몰리면 지푸라기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낭월에게 주어진 것은 기도를 하는 것밖에 달리 답이 없었다.
그대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기도라도 해야 뭔가 숨통이 트일 것으로 생각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듬거리면서 찾아간 곳은 동해의 양양 낙산사였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기도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막판에서나마 마지막 기도를 한번 해보고 세상을 하직하고 몸을 바꿔서
다시 공부를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많이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비록 경치는 보이지 않았지만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낙산사에 도착을 했다. 시간은 저녁 11시경이었다.
원주 스님을 찾았더니 밤중에 중이 돌아다닌다고 푸념을 하셨다.
이해는 되지만 낭월의 상황은 그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죄송하기만 했다.

3. 첫 번째의 힌트 '감이 좋았다'
새벽에 꿈을 꿨다. 꿈에도 낭월이 낙산사로 기도를 하러 왔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절 안에서 늙은 여스님이 동자를 데리고
바삐 어디론가 출장을 가시느라고 나오고 있었다. 합장을 했다.
그래도 꿈에는 사물이 바로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 비구니 스님이 흘낏 보시더니 걸음을 멈추고 하시는 말씀.

"기도하러 왔구만? 하고 있어! 난 좀 급히 다녀올 데가 있네~!"
"예, 다녀오십시오."

그 뿐이다. 비구니 스님이 사라진 곳을 멀거니 바라다보다가 꿈을 깼다.
그리고 그 감은 매우 좋았다.
몇 달 동안의 암흑에서 빛을 발견할 가망성을 얻었다고 해야 하겠다.
아마도 그 비구니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이었을 것이라고 저 좋을 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는 주지스님을 찾아서 기도를 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게 될 줄은
이미 꿈을 깨고 나서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100일간의 기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3. 하루 16시간의 정진
막판에서 할 일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느끼고 또 깨달았다.
잠자는 시간 6시간과 공양시간 3시간을 빼고는 모두 기도에 매달렸다.
그야말로 자나깨나 '관세음보살'이었다. 그렇게 집중이 잘 될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겠다.
잡념이 없어진다는 것은 큰 일을 당하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잡념이 많다는 말은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망상은 한가로움의 푸념인 것이다.
참으로 절박한 막다른 길에서는 오로지 일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고 해도
아마 실감이 드실 것이다. 그 해는 낙산사의 해수관음보살을 점안한 해인 것으로도
기억이 된다. 낭월의 기도는 낙엽도 다 지고 난 늦가을에 시작되었다.

4. 스님들의 조언 "무리하지 말아라"
당시에 함께 살았던 대중 스님들이 6명인가 되었는데 하나같이 낭월의 기도를
염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도를 시작한지가 며칠이나 되었을까 싶은 날에
책임자 되시는 분이 조용히 불러서 말씀하셨다.

"스님. 고생이 많소. 근데 지금 스님의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대중 스님들이 불안해하고 있구랴. 왜냐면 기도하다가 쓰러지겠다는 염려로 인해서요.
그러니 매일 8시간만 법당에서 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조용하게 한다면 대중도 편안하고
본인은 자신의 기도가 법당에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닌 줄은 알 것이므로
그 방법을 택해 보도록 하시오."

그 말을 듣고 보니 또한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불안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따르기로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목탁을 두드리면서 하는 기도 시간만
줄었다는 것이지 여전히 목숨을 달고 관세음보살에 매달렸다.
물론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그래도 새벽에 눈을 뜨면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로 불빛을 바라다 봤고,
여전히 같은 상태에서 실망감을 갖게 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5. 잊지 못할 기억을 갖는 꿈
약 두 달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기도는 순일하게 진행이 되었다. 기도를 마치고는 생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으로 인해서
담담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다음 생의 준비를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 나가던 상황이었다. 그 어느 날 밤에 꿈을 한 자리 얻었다. 지금도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낭월이 동해안 유람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 지역의 사령관 댁을 발견하고는
방문을 하였다. 들렸으니 인사를 하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인해서이다.
그 집은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한참 올라가서 있었다. 계곡이 가팔랐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초가집이 있었고, 문안을 드리고 절을 세 번했다.
물론 속인에게 절을 세 번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지만, 당시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그 분이 하는 말씀.

"자, 저쪽 밝은 데로 가시지." 해서 창가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해맑고 따스한 햇살이 쏘여들었다.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말했다.
"그래 혹 나에게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지."
"예 실은 전입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 어디 보세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민 것은 예전에 동산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였다.
그는 진단서는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질문만 했다.
"거기에 이러이러한 항목이 있나?"
"아뇨, 없습니다."
"그럼 저러저러한 항목은 있나?"
"그러한 항목도 없는데요."
"그럼 염려할 것 없네. 내가 해결해 줌세."
"예, 고맙습니다."』
이것이 꿈의 전부였다. 그리고 잠에서 깨여나니 새벽 1시 반이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아무리 벗님이 둔하다고 해도 이게 무슨 메시지인지는 감이 잡히실 것으로 짐작을 한다.
이제 눈을 고쳐주겠다는 암시가 아니고 뭐겠느냔 말이다.
그대로 가사장삼을 걸치고 법당으로 가서는 목이 터져라 하고 관세음보살을 불러댔다.
그리고 아침 공양을 하는데 대중들이 낭월의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가 술렁술렁함을 느꼈다. 어느 스님이 말했다.

"기도를 하시다가 오늘 새벽에는 다른 것을 하시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이 말은 혹시 기도하다가 돌아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서 의사를 타진해 보는 것으로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말씀 드렸다.

"아, 대중 스님들께 미안합니다. 기도가 잘 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은 함께 기뻐해 줬다.

6. 한 겹씩 벗겨지는 혈의 장막
그렇게도 세상을 붉은 천지로 만들었던 짙은 색이 그 후로 조금씩조금씩 옅어져갔다.
그 환희심을 벗님도 이해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나자
저 멀리 안개 속으로 느꼈던 사물들이 어느 정도 식별을 할 수가 있는 정도가 되었다.
비로소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뜨면 매일 쳐다보던
전등의 유리 윤곽선이 시야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그 무렵의 마음은 그야말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7. 묵언(默言) 기도
100일 기도의 회향을 3주일 남겨놓고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묵언을 하기로 했다.
묵언은 수행의 한 방법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대중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중은 당연히 허락을 했고, 그래서 이제는 아무와도 말을 나눌 필요가 없이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을 했다. 약 90일 정도가 경과하자 이번에는 신문지의 글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도는 더욱 흥겹게 진행이 되었다. 밖에서 산책을 하는데 관광객들이 자꾸 질문을 하는 것이 귀찮아서 '묵언'이라고 쓴 패를 가슴 앞에 달았다.
그러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 아래에다가 '말못함'이라는 추가문구를 넣었다. 비로소 효과가 있었다.
"에구... 쯧쯧... 벙어리 스님이네...."
"나이도 젊은데 우짜다가....."
"얼굴도 참하구만..... 안되었다..... 쯧쯧...."

8. 회향
드디어 백일 기도를 마쳤다. 전날 내린 눈이 대지를 하얗게 바꿨고,
그 빛은 반사가 되어서 법당을 환하게 비췄다.
그러나 낭월이 보기에는 법당의 관세음보살님이 방광을 하시는 것으로만 보였다.
참으로 원만한 성취가 된 셈이다.

9. 후기
그로부터 3년인가 지나서 다시 낙산사를 찾았다.
그 절의 스님이 관광객을 상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3년 전에 눈먼 스님도 여기에서 기도를 해서 눈이 밝아졌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혼자서만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그 스님은 모를 것이다.

10. 기도 권유
이러한 기도의 경험을 갖고 있는 낭월이다.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경험으로 확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통일이 되어서 소원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반드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되겠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절대자들도 절대로 없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없는 것도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이고, 寅木대운의 丁巳년의 흉함도 戊午년의 고통도
기도를 통해서 말끔히 정돈을 했다는 것도 노력은 기적을 만든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낭월이 방문자에게 기도를 하시라는 권유는 그냥 단순히 말이 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 글을 읽으시는 벗님은 아실 것이다.
물론 운이 흉할 적에 권유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11. 그 때의 간절함은 어디로 가고.....
기도를 할 적에는 눈만 보이면 쓸데없는 것은 절대로 보지 않고
오로지 경전만 보도록 할 것이며,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중생들에게
빛이 되도록 하겠다는 서약을 백천번도 더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를 관세음보살 님이 보신다면 아무래도
한숨을 쉬시지나 않을까 싶다.
그래도 단 한가지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저 어디엔가 '그 분'은 반드시 계시고,
언제라도 온몸으로 부른다면 답을 들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더불어 고민을 나누면서도 그러한 절박함을 경험했기에
어쩌면 더욱 절실하게 이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역경이 반드시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고,
인생의 성장 과정에서 어쩌면 한번 정도는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여하튼 일생 눈으로 인해서 겪는 고통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전생에 살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

※ 낭월 스님은 현재 계룡산(鷄龍山)의 남쪽 감로사에 주석하고 계십니다.

6.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

-일타스님의 생활속의 기도법-

꿈은 우리 생활의 그림자요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낮에 먹은 마음이 그대로 연장되어 밤의 꿈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이 몽중가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망이 꼭 이룩되게 해주십사' 하고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 사람의 소망에 부응하는 편지 한 장을 주거나,
약을 주거나, 차를 한 잔 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와 같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망은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라고 한다.

곧 꿈속에서 받는 통지서는 합격 통지서요,
차를 한 잔 받아 마시거나 청심환 한 알을
얻어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징조이다.
꿈 가운데 열쇠를 하나 받으면 이튿날
생각지도 않던 돈이 들어오게 된다.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기도 영험담 중에는
삼종가피 중 이 몽중가피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약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 미아리에 40대의 보살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닦은 복이 많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돈도 잘 벌고 가정도 잘 돌보는 남편을 만났으며,
아이들도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여 근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안이 허는 병이 생겼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온 입안이 헐어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한의원을 찾아가니
'입안이 허는 병은 위장에서 온다'고 하며
위장약을 지어 주었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 더니,
마침내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여위어만 갔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
아이들의 재롱도 귀찮게 느껴질 뿐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가까이 있는 절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엎드리면 이빨이 다 쏟아지는 것 같아 절도 할 수 없었다.
입안이 퉁퉁 붓고 헐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 입병 좀 낫게 해주십시오."

온 종일 부처님만 쳐다보면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열심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을 내려 오셨다.
그리고는 다기(茶器)에 담겨 있는 물을 찻잔에 가득 따라 주셨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려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셨다.

"그냥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넘겨라."

그녀는 시키는 대로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거짓 말처럼 입병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매운 음식, 짠 음식,
그 어떠한 것을 먹어도 입안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감격하여 불교 신문에 이 사실을 투고하였다.
글 솜씨는 서툴지만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을 알리고자 투고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꼭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 念'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생각하면 그것이 참된 염불이요,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7.

 

백의관음의 가피를 입다- 김 태환스님(태고종 보광사 주지스님)


불교는 소원성취의 길 - 태환스님(보광사 주지)

(1) 큰 병에 걸리다

한 평생 살도록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어 병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다. 학생 때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활발히 했었고, 출가한 후에는 참선 수행을 꾸준히 했으므로 도대체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체험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 12월25일, 의례 하듯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아령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어 달려갔다.

용변을 마치고 나오려 하는데, 오른쪽 가슴에서 무슨 숨기운이 곧바로 치솟더니 오른쪽머리에 숨구멍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스런 기분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원래 건강하여 이 나이까지 버스를 타더라도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었고, 걸음도 빨라 젊은 사람도 따라오기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길이 한번에 몸에 뻗친 다음부터는 걸음이 불편해지고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1월3일 '간염예방접종주사'를 맞으러 우리 사찰 신도네 병원인 시흥의 김택준내과를 가게되었다. 그런데 의사가 "스님, 전에는 참 건강해 보이셨는데, 오늘 뵈니 어째 숨소리도 이상하네요." 하기에 "내가 뭐 이상하오? 난 건강합니다." 하였다.

그래도 의사는 "스님, 아무래도 이상하니 진찰 좀 해봅시다."하곤 X레이 검사를 해보더니 '기흉(氣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폐에 구멍이 두 군데 나고 제 위치를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즉시 입원을 권했지만 "내가 무슨 입원이냐?"라고 일축하곤 귀사 하였다. 그러나 사찰의 보살한테 의사가 몇 번이고 전화를 하여 입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몇 번 식구들과 실갱이를 벌리다 결국 병원에 이끌려 갔다. 그래서 1월5일 한강성심병원 819호실에 입원하였는데, 진찰을 해보더니 오후에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른쪽 가슴을 마취시켜 구멍을 내더니 한 7cm가량의 관(?)같은 것을 넣으니 아주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폐와 근육 사이의 불필요한 바람을 뺐으니 이제 원만하게 붙어 이상이 없으리라 하였다. 그후 며칠간 경과를 진찰하더니, 8일에는 뭔가 굳어지며 이상이 있다하더니 11일에는 물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었다. 물을 빼는 치료를 며칠 하더니, 이 치료 갖곤 안되니 권위자인 홍박사를 찾아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였다. 17일엔 옆구리에 물주머니를 달고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에 임하게 되었다. 19일엔 정밀검사를 한 다음 일주일 후인 24일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2)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다

물론 평상시에 늘 염하던 '관세음보살'을 불러왔지만, 수술실로 가면서부터는 더욱 일심으로 불렀다. 부르다 거꾸러져 죽어버리면 몰라도, 숨이 붙어 있는 한은 쉼이 없이 염불하리라 작정하였다.

항시 관음보살 님의 대자대비에 젖어서 살아온 탓인지, 마음이 동요되거나 불안한 것을 몰랐다. "나에게 세상 인연이 다했으면 관음보살님 께서 숨을 걷어 가실 것이고, 만일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뭔가 영험을 보이시겠지. 알아서 하십쇼." 라며 오로지 관음보살 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9시에 수술을 시작하려는데, 비몽사몽간에 백의관음이 보이는 것이었다. 하얀 장삼도포에 머리와 얼굴도 온통 새하얀 보살님 주변에 여섯의 동자들이 있는데, 평소에 내가 지극히 좋아하던 연꽃이 쑥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활짝핀 연꽃 아래로 동자들이 모여들자 연의 뿌리가 또한 땅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백의관음님이 "산삼, 산삼, 산삼!"하고 '산삼'소리를 세 번 하는 것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 소리까지였다. 그 이후 난 마취 상태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장장 8시간의 대수술이 진행되었다. 이런 경우 수술 후에 몇시간이고 감각 없이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한 이틀간 정신을 못 차린다 하는데, 수술이 딱 끝나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수술 안 하십니까?" 물으니, 깜짝 놀란 의사는 "수술 끝났습니다."고 얼떨결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의사들 모두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놀라 마지않았다. 갈증이 나서 물을 찾으니 물을 주기에 시원스레 마셨다. 마신 것이 있으니 얼마 후엔 하기 마련.

소변을 보겠다고 하니 변기를 받쳐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들어 누워서는 용변을 못 보니,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였다. 간호사가 한사코 변기를 받치며 재촉하고 의사들이 권하였지만,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는 소변보기 싫다고 우겼다.

그때가 25일 아침이었는데, 내 고집에 고개를 흔들어 대던 의사 한사람이 "정 일어나려면 일어나쇼!"라고 퉁명스레 내뱉었다. 괜히 고집세우는 것이지 어찌 상체의 반을 절개한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겠냐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소피를 시원스레 보았다.

침대에 돌아오니 의사와 간호사가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뭔가 다릅니다."고 한 의사는 입을 열었다. 나중에 다른 환자들의 상태를 듣고는, 이미 수술 전에 백의관음께서 현신 하시어 수술 내내 가피력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 관세음의 영험에 감격하여 무수히 감사의 염불을 하였다. 아마도 나에겐 이 세상에서 보살 행을 더하라고, 자비하신 모습을 보이신 것임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나 퇴원할 수 있느냐고 홍박사에게 물으니, 대개 1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니 내년 2월쯤에나 퇴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입원4주만인 2월22일에 퇴원할 수 있었다.

(3) 소원성취의 조건

육체는 숨넘어가면 썩어 없어지는, 아침 이슬과 같은 것이어서, 이것이 영험을 나타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험을 일으키고 무엇이 생명의 주인공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래면목인 불성(佛性)인 것이다.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모두가 실로 부처님 생명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주인공을 파악하는 일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밭(心田)을 가는 수행을 해야한다. 그리 하여 자신의 참된 생명가치를 깨달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경지를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서 비로소 모든 소원은 남김없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꼭 출가하여 사찰에서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항상 자기의 본래 생명인 관세음보살 님을 성취되는 것이다. 출세간 적인 일의 성취는 물론, 우리의 평범한 소원도 성취시키는 것이 불교인 것이다


8.

 

삼풍 붕괴 현장의 기적 같은 생환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순식간에 일어난 서울 서초동 삼풍 백화점의
붕괴사고는 온 나라를 경악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5백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인재 서울의 한 최고급 백화점의 붕괴가 가져다 준
충격! 사람들은 한동안 삶의 방향을 잃은 듯 애만 태워야 했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준 기적이 있었습니다.

사지(死地)에서 230여 시간 만에 구출되어 첫 번째 기적을 연출한
20세의 최명석군, 285시간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18세의 유지환양,
19세 소녀의 힘으로 죽음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16여일 만인 377시간만에 제3의 기적을 일궈낸 박승현양.
그런데 이들의 기적적인 생환 뒤에 하나같이 기도와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특히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15일 17시간을 버틴 박승현 양의 생존은
우리 불자들에게 큰 교훈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간밤에 놀러온 고등학교 동창 정원이와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 새벽에야
잠이 든 탓인지 승현이가 6월 29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몸이
찌뿌등한 상태였습니다. 그날은 원래 비번이었지만,
집안 일이 있다는 선희 언니와 근무 날짜를 교대하였던 것입니다.
‘바꾸지 말 것을 그랬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친구 정원이와
삼풍백화점으로 함께 출발했습니다.
오후 5시 50분. 정원이와 항께 지하 3층 식당에서 간식을 먹은 승현이는
지하 1층의 아동복 코너로 갔고,
정원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매장 으로 향했습니다.
승현이가 매장안의 카운터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바닥이 쿵 소리를 내며 크게 흔들리더니 천정에 붙어 있는
벽돌들이 눈앞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승현아! 피해!"
누군가가 소리를 쳤지만 바닥이 흔들리고 먼지가 앞을 가려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물탱크가 뒷머리를 때려 승현이는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사방은 깜깜했고 뒷머리에서는 피가 흘러 뜨뜻했습니다.
옷을 찢어 머리에 댄 승현이가 조심스레 손발을 뻗어 보았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몸을 옆으로 굴려 보니
두세 바퀴 구를 정도의 여유는 있었습니다.
사방에서는 절규와 신음소리가 들렸고, 오른쪽에서는 같은 매장에서
근무하는 언니의 비명소리도 들렸습니다.
머리 뒤에서도 옆 매장에서 근무하는 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서로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바닥을 만져 보니 물이 고여 있었지만
심한 냄새가 나는 녹물이어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원한 포도주스가 내내 승현이의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같은 매장에 근무하는 언니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언니 ?
그러나 옆 매장의 언니만 힘없는 신음소리를 낼 뿐 같은
매장 언니의 대답은 영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승현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옆 매장 언니의 꺼져가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도 곧 죽을 것 같애----
"언니, 언니 !"
그러나 정적뿐이었습니다
그때 포크레인이 머리 위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누가 구하러 왔는가 보다
입이 바짝 탔습니다. 그러나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오히려 양쪽 옆의 콘크리트 더미가 밀려들면서
팔을 제대로 뻗을 수도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른쪽 무릎에도 콘크리트 더미가 밀려들어 무릎을 펴기도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습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돼. 나는 꼭 살아야해.
몇 달 전 장사가 안 된다고 식당을 그만둔 엄마 아빠를 위해서도,,,...

동시에 승현이는 평소 다녔던 금용사 주지 월공스님의 법문이 떠올랐습니다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염송 하세요.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원을 천수천안(千手千眼),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승현이는 그때부터 관세음보살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찾았습니다.

한편, 승현이의 어머니 고순영 보살도 낮에는 서울교육대학교에 설치된
실종자 가족본부 임시 법당에서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불렀고,
밤에는 금용사를 찾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공을 드렸습니다.
안팎에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시간의 흐름마저
잊어버린 승현이가 갈증과 허기로 입술이 새까맣게 타들어 올 때쯤이었습니다.
깜빡 잠이 든 승현이에게 연초록빛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는
숲이 보였습니다. 동시에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습니다.
타는 목을 축일 수 있는 감로수도 거북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승현이는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눈에 익은 그곳은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자주 찾았던 월계동 금용사였습니다.
승현이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법당을 향해 합장을 했습니다.
그때 법당으로부터 노스님 한 분이 천천히 걸어나와,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무언가를 승현이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빨간 사과였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눈을 뜨자 사과는 손에 없었고, 잠깐의 자유는 꿈이었습니다.
갑자기 위에서 "탕탕탕" 소리가 들렸습니다.
때마침 지하 1,2층 잔해 제거를 하던 안양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잔해더미 속에서 높이 10cm, 너비 30cm가량의 구멍을 발견하고,
구멍을 넓히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순간 승현이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살려 주세요.
이때가 7월 15일 오전 10시 58분.생존자 확인 무전이 지휘본부에 전달되었고
현장과 온 나라는 환호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발견된 지 불과 17분만에 구조되어 승현이는 병원 으로 향했습니다.
15일 17시간 만에 구출되어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진 승현이를 진찰한 의사들은,
"맥박이 조금 빠를 뿐, 호흡과 혈압은 거의 정상적인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의료진들은 승현이가 매몰된 후 구조될 때까지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물을 전혀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보통 5--7일. 길게 잡아야 7--10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위 있는 의사들은 한결 같이 말했습니다.

"오래 물을 먹지 않아 탈수현상이 일어나면 콩팥 기능에 이상이
먼저 발생하는데, 박승현 양은 콩팥 기능에 별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물을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바,
만일 사실이라면 놀라운 기적으로,의학적으로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박승현 양의 상상을 초월한 기적 같은 생환! 과연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관세음보살의 가피요 불보살의 불가사의한 신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첫 번째 기적을 보인 최명석 군의 어머니도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심정으로
간절히 관세음보살을 불렀고, 유지환 양의 어머니 정광임 보살도 낮에는
자원봉사자, 밤에는 중풍으로 입원한 남편을 간호하면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였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염송을 통하여 이룩된 이 세 기적은 불심(佛心),모심의 승리요,
온 국민의 승리로서 영원히 기록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9.

 

출처: 생활속의 관음경 (우룡큰스님저, 도서출판 효림발행)

 

몇 년전 90세 가까운 나이로 돌아가신 덕운성 보살은 50대 중반에 자궁암에 걸렸습니다. 부잣집 외동 아들인 남편이 평생을 돈 쓰는 재미로 살면서 남편이 물려받은 재산은 물론 처갓집 재산까지 모두 탕진하고 죽었으므로, 덕운성 보살은 날품팔이를 하며 혼자 1남 2녀를 키웠습니다.

"말기 자궁암입니다. 앞으로 3개월정도는 살 수 있으니 주변을 정리하시지요."

대구 동산병원의 의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것은 그녀의 두 딸은 결혼을 하고 아들은 중앙대학교 전자공학과 2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자궁암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30여년 전에는 말기 자궁암이 반드시 죽는 병에 속하였기에, 덕운성 보살에게는 의사의 말이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서울로 시집을 간 큰 딸에게 울면서 사실을 알리자, 큰 딸은 포기할 수 없다며 세브란스 병원으로 모셔가 다시 진찰을 하게 했습니다.

"3달은 너무 성급한 진단입니다. 그러나 6개월 이상은 보장하기 힘듭니다.""

그녀는 의사를 붙들고 울면서 사정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를 2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제 아들이 대학 2학년이니,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단칸 셋방이 있는 김천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매달릴 데가 없었습니다. 오직 한 분, 관세음보살님 뿐이었습니다.

기도비가 없었던 그녀는 집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은 물론이요 틈만 나면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백일기도 마지막 날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는 김천 청암사 극락암에 모셔진 42수관세음보살상(지금은 도난 당하였음)앞에서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백발의 노스님 한 분이 불단 앞에 나타나 약 세 봉지를 주셨습니다. 엉겁결에 무릎으로 기어가 약봉지를 받았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먹어라."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노스님은 부처님 앞에 놓인 다기물을 손바닥에 부어주셨고, 그 물로 한 봉지를 먹고 나자 또 물을 부어주며 말했습니다.

"또 먹어라."

"마저 먹어라."

세 봉지째 약을 먹었을 때 어떻게나 거슬리든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을 깨고나서도 그 약 냄새는 그녀의 몸과 집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은 그녀는 말기 자궁암이 완전히 나아 아들의 대학 졸업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30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10.

 

대원심 보살 아들의 병을 완치시켜주신 관세음보살


안성에 사는 대원심 보살은 아들이 위암말기로 진단되어 죽음을 선고받자 괴로움을 가눌 길이 없어 청룡사의 관세음보살을 찾아갔다. 이미 80세가 넘은 노보살인지라 절을 올리기 힘든 처지였다. 대원심 보살은 다만 가만히 벽에 기대어 앉아 관세음보살을 우러러보며 念(염)하였다.

"관세음보살님,부모가 죽은 다음 자식이 죽는 것이 이 세상의 순리이온데, 저의 업이 얼마나 중하길래 이렇게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하나이까? 자비로우신 관세음보살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3일 밤낮을 아들의 병이 기적처럼 쾌유되기를 기원하며 관세음보살을 찾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 때 스님 한 분이 활짝 핀 연꽃 한송이를 대원심보살에게 주었다. 꿈을 꾼 것이었다.

보살은 상서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치유불능이라는 진단을 했던 서울대학교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재검사결과 위암의 흔적은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담당의사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라며 매우 신기해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아들의 병을 완치시킨 것이었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관음신앙. 관음기도법 김 현준저

 

11.

 

생사의 절망 끝에도 관음은 계셨습니다/신화규(가정주부)

출처: 월간 불광(www.bulkwang.org)

내소사에 들어서는 순간,
천여 년을 거슬러 올라온 것처럼 세상살이의 시끄러움은 없다.
일주문을 지남과 동시에 날려 보내지 않았나 싶다.
이 곳의 모든 것들은 기본이 몇 백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낯설지 않고 정다운 느낌,
오래 전에 와 봤던 곳에 다시 온 느낌이다.
혹시 전생에 이 곳에서 수행하는 복을 누리지는 않았었는지….

유명한 대웅전의 문살무늬,
천년된 나무의 웅장함,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냥 편안하고 좋은 느낌,
이 자리가 바로 내 자리가 아닐까 싶다.
도량석 도시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잠을 깨어
상쾌한 공기와 천년가람의 숨결을 느끼며 들어선
빛바랜 대웅전의 새벽예불.
수술 후 처음으로 혼자 나선 여행길이다.

1.극심한 두통…알고보니 뇌종양

포교사가 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제대로 되지 않은 공부에
사람들 앞에서 포교사라고 말하기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끝이 없기만 한 부처님 공부,
하지만 운명적인 이 길이기에 나는 기꺼이
이 일을 천직으로 알고 공부하고 싶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다시 주신 나머지 인생은 회향하는 의미로
한 알의 의미 있는 씨앗의 역할을 하고 싶다.

6년 전 전철역 계단에서 갑자기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려
굴러 떨어진 후로 매일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너무 심해서 한 움큼의 진통제로 생활하다가 그것도 안 되자
새벽이면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술을 마시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엄마 역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병명을 몰라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MRI를 찍고서야 뇌종양이라는 병으로 판명이 되었다.
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혹이 너무 커서 죽는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그냥 담담하게 말했다.

“선생님 수술 한 번 하나요? 아니면 두 번 하나요?”

뇌수술은 성공해도 기본이 두 번이고 두 번 하고도 결국은
죽은 가까운 친구의 남편을 지켜보았었기 때문에
두 번의 수술이라면 하지 않고 그냥 전국에 있는
기도처에서 원 없이 기도나 하다 죽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 당시의 상황은 혹이 너무 커서 신경을 누르기 때문에
모든 기능이 정지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먹을 수도 없고 대소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됐었다.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걸을 수도, 집안일도 할 수 없었다.

옷을 뒤집어 입거나 거꾸로 입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판단이 안 될 정도로 심한 상태였다.
그 때의 심정으로는 그냥 정확한 병명을 알았으니 됐고,
그냥 그대로 죽어도 이 고통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이곳에서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노느니 염불한다고 108염주를 손에 들고 돌리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님 살려 주세요’라는 말도
‘아이들을 부탁해요’라는 원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무심의 마음으로 ‘저는 인연 따라 따르겠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뜻대로 하세요.’하는 마음으로 염주를 계속 돌렸다.

그 순간 가슴 속으로 치닫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가슴가득 차지한 그 무엇! 그 후로는 두려움도 고통도 없어졌다.
막연한 두려움에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가족들이 계속 설득하고 있던 중이었다.

제일 두려운 것은 수술 후 얼마일지 모르는 막연한 시간 동안
여러모로 나로 인해 고통 받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그냥 이대로 조용히 눈감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면'하는 생각이었다.

염주를 돌리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관세음보살님께서 금빛 찬란하게 나타나셔서
땀을 흘리며 더워서 쩔쩔매는 나에게 시원한 냉기를 주시며,
“덥지? 내가 시원하게 해줄게 걱정하지 마라.”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 후론 아무 두려움이 없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

“관음보살님, 뜻대로 하세요”

아이들 선생님께도 전화해서 숙제나 준비물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엄마가 없어서 그러니 이해 해달라는 부탁까지 해놓고
이것저것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빈 자리를
최대한 줄이려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수술을 위해 머리를 깎았지만 주위사람들에게
“두상이 이쁘냐, 미우냐?”고 농담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다니던 절의 스님과 신도들이 오셔서 어떤 위로의 말을 할지 몰라
쩔쩔매실 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반드시 살 거고
다시 살아나면 부처님 일을 할 거예요.”하고 말씀드렸더니,
“보살님은 앞으로 공부 많이 하실 거예요.”하신다.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그 때는 몰랐었다.

“신화규씨 정신이 드세요.
제 말을 알아 들으시겠으면 눈을 떠 보세요.”
그 말을 듣고 눈을 떴다.
여러 줄로 묶여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나를 둘러싸고 서있는 많은 사람들,
담당의사들과 간호사, 가족들이었다.
눈을 뜬 나에게 의사선생님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가’하는 판단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보았다.
‘이름이 뭐라든가,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자든가,
왼발을 들어 보라든가’라는 물음에 평상시와 같이 웃으면서
자신 있게 대답하고 하라는 대로 정확하게 하자
모두들 살았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그 때까지는 그냥 원래 예상 했던 대로 6시간의 수술 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 곳은 신경외과 중환자실이었고 나는 20시간의 생사를 가르는
대수술 끝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감동은 남다른 것이었던 것이다.

남편의 말로는 예상된 6시간이 지나고 12시간이 지나도
수술이 끝났다는 불은 안 꺼지고 아침 8시에
첫 번째로 들어간 사람이 저녁때가 되도 소식이 없더니
새벽이 되자 담당의사가 가족들을 소집해놓고
지혈이 안 되니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달리 방법이 없어 자기는 부처님도 믿지 않고
하나님도 안 믿고 기도 할 데도 없어서 나에게,
“당신은 할 수 있다. 당신은 할 수 있으니
당신의 의지로 꼭 일어나”라고 기도했단다.


2.수술대 위의 기적

수혈이 40봉 이상은 위험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계속 70봉 정도의 수혈을 하고 있을 때 지혈이 되었고,
의사선생님은 자기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서 기다렸을 뿐
말로만 듣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놀라워하셨다.

내가 부처님을 믿는 것을 모르니까 남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게 정말 있나 보다고 해서, 나는 조용히 자신 있게
“이건 신의 기적이 아니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천주교를 믿는 시어머님께도 기독교를 믿는 친구에게도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고….


3.관세음보살님 차라리 저를 데려가세요

나는 대수술을 받았음에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뇌수술 후의 중환자실은 마치 아비지옥을 연상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의가 혼수상태의 환자들로 소리소리 지르고 심지어는 욕을 하고
몸부림 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의가 진통제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는데
나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다.
수술실에서 옮겨진 뒤로 진통제 한 대 맞지 않고
삼매에 든 것 같은 편안한 마음과 표정으로 있었다.


4.아비규환의 중환자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의 생활은 시작됐고 그 곳에서
산소호흡기와 여러 개의 줄로 이어진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새벽예불과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일뿐이었다.
하루에 적어도 두 명씩은 죽어나가고,
새로 수술하고 와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
몇 달째 정신이 안 들어 울면서 하소연하는 보호자들,
나는 지옥을 미리 와본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금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 법만 미리 알았다면 이토록 고통도 느끼지 않고
편안하고 환희심 속에서 병원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신경외과의 중환자실은 24시간 긴장상태이기 때문에
불을 끄지 않는다. 달리 잠자는 시간이 없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아 새벽 4시쯤 되면
물을 놓고 기억나는 대로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을 하고
관음정근을 하고 그 물을 마셨다.
간호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혼자 모든 걸 해내려고 애썼다.

수술결과는 아무 것도 보장 받을 수 없었다.
팔다리의 마비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될지 수술 후에도
중풍환자처럼 팔다리 마비상태로 그냥 지내야 될지
어떤 후유증이 올지 다시 재수술을 해야 할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하지만 나는 매일 매일이 즐겁고 감사했다.
며칠 만에 멀겋게 나오는 미음에도 감사하고
친절한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면회 와서 걱정해주는 가족 친구들 남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신 관세음보살님 모두가 감사했다.

아직은 어린 둘째딸이 어린 나이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자
울다, 울다 그냥 갔다고 친정엄마가 전했다.
갑자기 엄마가 걷지도 못하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엄마 옆에서 심부름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너무나 급하다고 해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얼굴도 못 보고 당부도 못 하고 갑자기 와버렸다.
아이들 때문에 나는 내 힘과 의지로 일주일 만에 나가리라 작정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기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했다.
그 결과 너무도 빨리 회복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는 여러 개의 침대가 굉장히 넓게 분포돼 있는데,
나의 가장 가까운 쪽의 침대에 있는 50대 초반 정도의
아주머니 환자는 8개월째 혼수상태로 있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찾으며 부른다.
아마 무의식 중에도 엄마만 있으면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리라는 생각에서인가 보다.
밥도 안 먹고 약도 안 먹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산소호흡기와 뇌로 연결된 여러 줄 중 하나라도 빠지면
위험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온몸을 꽁꽁 묶어 놨다.
그러니 면회시간에 온 열 몇 살짜리 아들과 스물이 갓 넘은 듯한 딸은
엄마를 붙들고 “엄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라며 울다, 울다 간다.
그 어린것들이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 못해
의사선생님께 그냥 퇴원 시켜달라고 하소연한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울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했다.
‘관세음보살님 차라리 저분 대신에 저를 데려가세요.
저는 부처님 법 속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고 또 죽는다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부처님 법 속에서 살 테니까
저분 대신에 저를 데려가 주세요.’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그 아주머니에게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워서 꼼짝할 수는 없으니 천장을 본 채로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 제 말 잘 들으세요.
제 말 잘 들으면 엄마한테 가실 수 있어요.
지금처럼 밥도 안 드시고 약도 안 드시고
간호사선생님 말씀 안 들으시면 절대로 낫지 않아서
엄마한테 갈 수 없으니 꼭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50대 무의식 환자의 “엄마, 엄마”

그 아주머니께서 듣든지 못 듣든지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아주머니께서 그 때부터
식사도 하고 약도 고분고분 드신다는 것이었다.
그 후 갑자기 일반 병실로 옮겨도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중환자실에서 6일 만에 일반병실로 옮겼다.
그 후 그 아주머니의 상태를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잘 치료가 됐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반병실에 와서 재수술 들어가며 불안해하는 여대생에게
팔에 있던 합장주를 껴주며 기도해 주었고,
치매로 불안해하는 할머니께는 10년간 지닌 108염주를 쥐어주며
돌리는 법을 알려드렸을 때 편안해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런 인연들을 맺게 해주신 것에 대해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하지만 나의 너무나 부족한 공부를 절감하였고
여기서 퇴원하면 부처님 공부를 제대로 해보리라 결심했다.

그 이후로 2년간의 불교대학공부,
그 후에 다시 승가대학부설 김포불교대학에 재입학하여 포교사가 되었다.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며 지금은 제대로 된
포교사가 되어보려고 연수와 기도, 군법회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그 때 만난 관세음보살님은 지금도 매월 초하룻날이면
홍련암의 파도소리에 어우러지는 비구니스님의 간절한
염불소리와 함께 만난다.
병실에서 혼자 물 한 잔을 놓고 올리던 새벽예불을 이제
홍련암을 비롯해 직지사, 법주사 등 전국에 있는 모든 절에서
삼라만상을 깨우는 범종소리, 목탁소리와 함께 올리고 있다.


5.불교대학 입학…보살행 서원

언제까지 이 행복한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남겨진 시간동안 여러 방편으로 부처님법을 펴고 싶어
방송대 국문과에도 입학해서 하루를 48시간으로 쓰고 있다.
나를 걱정해주시는 분들은 건강을 염려하지만,
아직은 재발의 위험도 없이,
물론 약간의 후유증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그 또한
기도정진을 게을리 말라는 뜻으로 알고 함께하련다.

어디 어느 곳을 가나 부처님 법음이 가득한 이 도리를
보다 많은 이들이 깨달아‘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실천하는 진정한 불자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발원해본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은 절절히 느껴
형식적인 위로가 아닌 부처님 마음의 끝자락이라도
흉내 내며 가슴 아파할 수 있게 됐다.

이제 10월 첫째 주에는 매월 나가는 군법회의 창립법회행사,
둘째 주의 해인사 보살계 행사,
셋째 주의 적멸보궁 철야기도,
넷째 주의 선운사 문학기행 등 바쁜 일정이지만
만나는 사람 모두가 한 분 한 분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단풍이 지고 있는 초겨울에 나는 다시 또
새로운 부처님을 만나러 떠날 것이다.

-월간불광(www.bulkwang.org) 창간 30주년 기념 신행수기 공모 최우수상-

 

12.

 

오늘 또 다시 한번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을 체험하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지난 2년간 거의 매일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할 때마다 제가 아는 언니 기도를 항상 같이 했었습니다...



9년전 직장에서 알게 된 언니인데 알면 알 수록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품이 착해서 항상 마음이 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말도 하지 않고, 전하는 말은 물론이요 거짓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나 한번도 저에게 교회가라고 강요하지 않고 제 종교인 불교를 인정해 주는 그런 언니입니다.



그런데 ?언니가 반려자 인연을 찾지 못해 항상 힘들어 하고 외로워 하던 중 재 작년 하나뿐인 어머니 마져 돌아가시니 앞이 망막하고 힘들었던지 샤워하던 중 본인의 배를 칼로 자해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어찌나 가슴이 미어지던지....외국에 있어서 같이 있어주지도 못하는데..그로부터 꼭 언니가 원하는 베필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 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언니는 남자들을 만났지만 이상하게도 다들 하나같이 언니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어떤 사람은 언니돈 500 만원도 떼먹고 달아나더군요...그래도 전 언니에게 매일 말했습니다..내가 언니 기도 매일 하니까 언젠가는 내 기도 들어주실꺼야..언니는 말이라도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몇달전에 제가 그 언니 꿈을 꿨는데 언니가 꿈에서 너무나 서럽게 울면서 그 남자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냐면서 저에게 하소연을 하더라구요..그래서 바로 한국에 있는 언니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언니 지금 만나는 남자 있어? 있으면 그 남자 만나지마....언니가 또 상처 받을꺼 같애...그랬더니 언니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그리도 5일이 지났습니다. 그 언니한테 이 메일이 왔는데 내용이 심상치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전화를 했더니...언니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더라고요....말을 듣고 보니 기도 안차더라고요,...그리곤 놀랐습니다..이렇게 꿈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구나...



그리곤 한동안 연락을 안하다가 방금전 언니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는데...언니가 결혼을 한다는 겁니다...10월 정도인데 날짜는 아직 안 잡았고 결혼하자마자 신랑 따라서 일본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서류절차를 밟고 있다고 하더라고요...거기다가 언니가 임신 3개월 이라는 더 좋은 소식까지....언니가 나이가 마흔이 넘었기 때문에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도 포기 했었는데..게다가 남편될 사람이 아기를 갖기 아주 힘든 사람이라고 합니다...(무정자증은 아닌데 애들이 헤엄을 잘 못친다나?? 말이 좀 그렇긴 한데..)



두 사람다 너무 좋아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너무너무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그리고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을 계속 되뇌었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지난 2년동안 취직이 되질 않아서 기도하는 것에 많은 회의를 느끼지 시작했는데 다시한번 깨닫게 해 주신것 같습니다..이제 곧 제 기도도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불자님들 성불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원각행 합장.

출처: 나무아미타불 카페 원각행님 글 (cafe.daum.net/amtb)

 

 

13.

관세음보살님과의 인연

나의 인연 이야기

 

묘정스님 (통영 천음사 주지)

 

출처: 월간 불광 (www.bulkwang. org) 200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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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으로 흔히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인연설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쁜 환경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운명, 어떤 인연, 전생의 그 어떤 업, 어떤 복에 의해 태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살다 갈 것이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물음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각해 나가는 과정이 수행의 과정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로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디 고통없이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의 욕망 때문에 고통은 찾아 온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이 아주 어수선하고 시국도 어렵기 때문에 인생관이나 인생론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뚜렷한 주관없이 흔들리는 인생관, 종교관 등으로 인하여 고민에 빠져 있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분들을 위하여 저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저의 생각을 이렇게 적어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험이나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에 위안을 주는 염불이나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며 절실히 믿고 따르며 열심히 독송하는 것은 비단 불교만이 아닐 것이며 타종교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좀 더 나은 삶 이것입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세상의 그 어떤 종교든 자신에게 맞는 경이나 명호를 찾아서 한다면 마음의 위안도 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결혼을 하였으며 첫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첫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병고에 시달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병을 흔히들 신병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동네 사시는 보살님을 따라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을 만나게 되었고 불법에 심취되어 결국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아마 관세음보살님과 인연이 제 자신과 마음에 딱! 맞아 떨어졌나 봅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입니다. 천수대비주 주력을 하던 중에 여럿이 모여 3박 4일의 기도를 예상하고 부산에서 강릉 낙산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해수관음전에서는 비구스님 세 분, 비구니 한 분께서 천일기도 중이었습니다.


저희들이 동참하게 되어 3일기도 중에 저는 관세음보살님 진신을 만나보게 되었는데 그 광명은 말로나 글로써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환희심이 일어나고 제 자신도 모르게 스님들이 계시는 법당에서 대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들께서는 저를 보고 어떻게 기도를 해서 이렇게 좋은 가피를 보게 되었느냐고 묻더군요. 생각생각마다 관세음을 생각하고 대비주를 지송한 것밖에 없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행자가 되어 많은 경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불교가 인도의 산스크리스트어에 원전을 두고 있어 해석을 할 때 각자의 소견에 따라 풀이되었으므로 그 뜻이 본의아니게 이탈되거나 아니면 부처님의 말씀을 풀이없이 그대로 전달하였을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게 깊은 뜻과 뭉쳐진 의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 불교에 입문하는 불자들은 불교라는 종교가 어렵다거나 행동보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한 예로 저희 절에 오시는 분들도 저에게 한번씩 묻더군요 스님 왜 불교에서는 교보다 선에 중심을 더 둡니까? 제가 일반 불자가 되어 생각해보아도 선에 중심을 더 둔다고 보여집니다. 사실 교와 선이 같은 선상에 있는데도 말이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한 길을 가고 있듯이 저는 많은 경전을 공부하면서 천수대비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천수대비주에 이끌려 많은 공부를 하였으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절을 찾는 불자들에게 생활불교를 권하고 있으며 천수대비주를 집에서 항상 독송하라고 권장합니다.


여러 불자님들, 집에서 천수 대비주를 매일 지송하다 보면 어려움을 이겨나갈 것이며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관세음보살님을 만나보고 싶은 분들은 천일 동안 생각생각마다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든지 아니면 대비주를 하루에 108독을 하다보면 반드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실 것입니다. 불법의 가피는 본인이 닦는 만큼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14.

 

출처: cafe.daum.net/buruna21 온누리님 글

 

관세음보살을 꿈속에서 친견하다.

 

태고종 총무원의 부원장을 맡아 종단의 재정 안정에 힘쓰고 있는 혜공 스님,

항상 온화하고 자상하게 주위 사람들을 살피고 배려하기 때문에 늘상 찾는 사람들로 바쁘다.

일에 있어서는 원칙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면서도 어우러짐의 미학을 발휘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합리적인 인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태고종 종정을 역임하신 백암 스님이 속가의 아버지이자 불가의 스승이다.

승단 분규를 겪던 시절, 백암 스님은 대구로 내려와 살다가

동화사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팔공산을 다 뒤져서 갓바위 부처님을 찾아내었다고 한다.

당시의 갓바위 부처님은 소나무와 칡넝쿨이 우거진 속에 숨어(?) 있었다.

때문에 수행에는 안성맞춤이었지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불기에 담아서 올라가면 다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주변을 정리하여 땅을 일부 파내고 움막을 지어서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혜공 스님은 연세가 드신 백암 스님보다는 자신이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래 절에는 내려오지도 않고 열심히 기도 정진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뒤가 묵직하고 힘이 빠지더니 하혈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경북대병원에 가서 진단을 하였더니 직장암이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다른 병원을 몇 군데 더 가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요즘에는 의술이 발달해서 치료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암에 걸렸다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천형으로 여기던 터라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터여서 경북대학교 병원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하기 전날 백암 스님께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수술해서 나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하노?

신도들에게는 늘 부처님께 매달려 기도하면 소원성취한다고 말해 놓고……”

 

스님의 뜻이 무엇인지 읽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그러한 마음이 있어서 대답했다.

“저 수술 안 받으렵니다. 절에서 기도하겠습니다.

다만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우리 종단의 명찰인 선암사에 가서 기도 정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경북대병원에 가서 포기각서를 쓰고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진 선암사 원통전으로 향했다.

당시 선암사 주지 용곡 스님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원통전에서의 기도를 허락 받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죽음을 무릅쓴 기도에 들어갔다.

빗자루와 깨끗한 걸레를 여러 개 준비해서 법당 바닥을 열심히 쓸고 닦았다.

어리석음을 벗어나고자 애쓰는 슈리판타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심 없이 믿고 따른 것처럼 구석구석 닦고 또 닦았다.

 

별로 크지도 않은 법당이지만 몸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상태여서 닦기만도 힘이 들었다.

법당을 닦고 나면 간절한 마음으로 관음경을 읽은 뒤에

관세음보살을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 참회 정진을 하였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기도의 공덕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하였으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물러나지 않고 정진했다.

그러나 그것도 보름이 지나면서 아주 허망하게 느껴졌다.

만일 이 기도가 성취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자

엎드렸던 몸이 다시 일어나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엎드려 있는데 이상하게도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그러고 났더니 갑자기 그렇게 미워하며 죽이고 싶었던 어떤 사람이 생각났다.

 

은사 스님과 자기를 쫓아내기 위해서 무리를 지어 찾아와서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욕설을 하면서 몽둥이질까지 하였다.

자신과 부딪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연세가 드신 은사 스님마저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고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필 그 순간에 생각이 났고,

묘하게도 그에게 찾아가서 용서하고 미워한 마음을 사죄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리저리 그가 살고 있을 곳들을 마음속으로 찾아내어 만나서는 무릎 꿇고 빌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오히려 계면쩍어 하면서 자기들이 한 일이 본의가 아니었음을 내비쳤다.

그렇게 그 사람을 용서하고 나니 다시 기도하는데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잠자고 예불하고 공양하고

뒷간 가는 시간만 빼 놓고는 쉬지 않고 정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진하는 모습을 본 용곡 스님이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관세음보살님이 귀머거리가 아니라면 혜공 사주寺主의 기도를 들어주시것제.”라고 하였다고 한다.

 

삼칠일 기도를 마치기 전날 밤 4분정진의 마지막 기도를 하고 나서

몸을 씻고 잠이 들었는데 신기한 꿈을 꾸었다.

공양 시간이 되어 대웅전 왼쪽 옆에 있는 설선당說禪堂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중사찰에는 발우공양을 하므로

대중들이 청산, 백운으로 나뉘어 방안에 빙 둘러 앉았다.

수십 명의 대중이 발우를 펴고 공양을 하는데

갑자기 어간문이 활짝 열리더니 큰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다들 놀라서 쳐다보는데 자신은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주지 스님을 지나쳐 혜공 스님에게로 가서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진작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이제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품속에서 무슨 서류 봉투를 꺼내서 주었다.

 

관음경에 보면, 관세음보살이 중생교화를 위해 32응신을 나투실 때

국왕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어쨌든 다음 날부터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고,

며칠 뒤 경북대병원에서 다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주치의가 깜짝 놀랐다.

암 덩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기도를 통해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온몸으로 입은 것이다.

스님은 현재 백암 스님의 은법을 이어 관암사를 대구의 전법 사찰로 잘 지켜가고 있다.

“웬만한 것은 다 양보하는 것이 좋아. 정말 바쁘게 해야 할 일은 마음공부야.” 하며 웃는 그는 정말 닮고 싶은 스님이다.

 





15. 관음가피지묘력으로 강릉 성원사 대작불사 성취

 

<영험>불사금 든 손가방 휴게소에 ‘깜빡’
사람 눈엔 쓰레기봉지로…2시간만에 찾아

강원도 오대산 자락에 대가람 성원사를 개창하고, 선원을 열어 참선수행지도를 하고 있는 주경 스님이 경험한 관세음보살 가피 이야기다.

생전 생불로 추앙받았던 (강)청화 큰스님의 제자 주경 스님은 홍련암에서 기도를 하던 시절부터 남다른 기도정진력으로 정평이 난 스님이었다. 스님의 기도모습에 감동한 재가불자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님을 부처님처럼 존경하며 따르는 것을 보면 스님의 여법한 기도정진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주경 스님은 백두대간을 따라 새로운 수행처를 물색하던 중 지금의 성원사 터를 발견하고 대작불사의 원력을 세웠다.
스님의 원력과 정진력을 알고 있던 여러 불자들의 도움으로 스님은 불사를 시작할 수 있는 거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경상도 어느 지역에서 거금을 받아 손가방에 넣고 직접 운전을 하면서 강릉으로 올라오던 중이었다. 소중한 불사금이었기에 손가방을 늘 손에 들고 다녔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한 휴게실에 들렀다. 그런데, 그만 화장실 옷걸이에 손가방을 걸어놓은 것을 까맣게 잊은 채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강릉방향으로 차를 몰았던 것이다.

한 두 시간쯤 운전을 했을까. 강릉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 스님은 요기를 하기 위해 휴게소를 찾아, 국수 한 그릇을 먹고는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찾다가 그만 손가방을 먼저 들렀던 휴게소 화장실 벽에 걸어놓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혼비백산! 스님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가슴은 두근대고 조바심이 나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던 스님은 차를 돌려 먼저 들렀던 휴게소를 향했다.

가속페달을 밟으며 정신없이 달려갔다. 입에서는 저절로 관세음보살 정근이 터져나왔다. 늘 정근을 하던 터라 관세음보살 염불을 했겠지만, 스님은 이때처럼 간절하게 염불정근을 했던 기억이 드물었다고 술회했다.

정신없이 달려가 화장실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침 청소를 하는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스님은 숨찬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여기 화장실 옷걸이에 걸어놓은 손가방을 보지 못했소?”

“아, 손가방은 보지 못했고, 누가 비닐 쓰레기봉지를 걸어 놓았던데 그것은 그 안에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비닐봉지요? 아니, 손가방이 아니고요?”

“네, 스님. 비닐봉지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누가 쓰레기봉지를 저기에다 걸어놓았나 싶어 이제 막 치워버리려던 참이었어요.”

주경 스님은 부리나케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옷걸이를 살폈다.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손가방이 걸어놓을 때의 모습 그대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가방을 내려 급하게 열어보았다. 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순간 스님은 땅이 꺼지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방이 그대로 걸려 있군요. 고맙소. 아저씨.”

주경 스님은 청소부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돈 몇 만원을 꺼내 감사의 표시로 전했다. 생각지도 않은 돈을 받은 아저씨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돈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스님. 그게 손가방이었습니까? 이상하네. 금새 보았을 때도 분명히 비닐봉지였는데. 내가 잘못보지는 않았을 것인데. 참 희한한 일입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아저씨. 어쨌든 고맙습니다.”

주경 스님은 청소부 아저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 스님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스님은 이 모든 것이 관세음보살님께서 가피를 내린 것으로밖에는 달리 해석할 수 없었다.

그 화장실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을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이 손가방은 가방이 아닌 쓰레기를 담아놓은 비닐봉지로 보였다는 말이 아닌가. 가방으로 보였다면 손을 탔을 것이 분명할 터. 스님은 부지불식간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관세음보살님께서 가피지묘력으로 사람들의 눈에 이 손가방을 쓰레기 봉지로 보이게 위신력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일이 있은 후 주경 스님은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할 대작불사를 해낼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호가 함께하는 불사인데,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맨손으로 강원도 산골 산꼭대기에 오늘날과 같은 큰 도량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경 스님의 깊은 신심과 초인적인 기도정진력에 관세음보살님께서 내려주신 가피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경 스님은 지금도 도량을 돌아볼 때면 그 때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곤 한다. 간절한 기도가 있다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주경 스님. 스님은 어려울 때일수록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불자들에게 당부했다.

 

출처: www.mediabuddha .net

 

16. 관세음보살의 가피력

혜인 스님


기도는 절하면 참회기도라 하고 관음보살을 부르면 관음기도,
지장보살을 부르면 지장기도 입니다.
또는 성현의 명호나 경을 쓰면 사경기도라고 합니다
기도를 통해 무념무상의 상태로 계속 정진하다보면 탁한물이
고요해져 삼라만상이 비춰지듯 기도로 인해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기도는 일관되게 계속해야 힘이 생기며
우리눈에 보이지 않는 가피력을 얻게 됩니다.

가피력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몽중가피는 꿈 가운데 어떠한 선몽을 얻는 것이고,
명훈가피는 자신도 모르게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점점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증가피는 갑작스런 통찰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중요한것으로 저도 부처님의 가피를 받았습니다.
저는 전생에 술을 많이 마셨나봅니다.
그 과보로 어려서 학교다닐때 항상 30등 미만이었습니다.

절에 들어와서도 다른 도반하고 차이가 있었습니다.
천수경을 외워야하는데 외워지지가 않는것입니다.
도량송을 하다가도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면 끝이 안나와요.
비슷한 말이 많다보니 끝없이 반복하는것입니다.
그래서 불공이 들어오면 먼저 신도에게 천수경을 할줄아냐고 물었습니다.

천수경을 모르는 보살들 앞에서는 경을 서로 모르니
요령껏 불공을 했지만 경을 외우는 보살들은 겁이 난것이지요.
그래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천수경에보면 …만월보살 마하살 수월보살 마하살 군다리보살마하살…
이란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보살이름이 생각이 나지않아 …
목탁보살 마하살 요령보살마하살….했습니다.
그런데도 보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별탈없이 불공을 잘했습니다.

제주도 양진사 주지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양진선원을 건립하고 주지로서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피력을 얻지 못해 사람 다섯명만 모여도
가슴이 달달달 떨리고 얼굴이 발개져버리고
앞이 탁막혀 말을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낙성식이 두달정도남았는데 인사말은 한마디 해야하겠고
걱정이었습니다. 미리 준비를 해야하겠다하고
문자하나를 찾아 외운것이 원근각처였습니다.

멀고 가까운곳에서 오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이지요.
이말을 중심으로 말을 풀어야겠다 하고서 낙성식날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낙성식이 시작되고 사람들 앞에 서고보니
아니나다를까 앞이 탁 막혀버려요. 가슴은 떨리는 중에
다행히 미리 외웠던 원근각처라는 말은 생각이 났습니다.
원근각처에서 많이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원근각처에서…., 원근각처에서….
법회가 끝나고 어느 비구니스님이 인사말을 하는동안 원근각처를
8번 했다며 그말밖에는 할말이 그렇게도 없었냐며 웃었습니다.

이렇게 사람 다섯사람만 있어도 떨었던 이가
여기에 있는 혜인스님이었습니다.
또한 복이 없고 덕이 없어 출가한지 15년이 되어도
양말하나 러닝셔츠하나 사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구에서 해인사를 가는데 차비가 없어 많은 괄세도 받았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원주에서 강릉 보현사를 가는데 차비가 53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은 130원 밖에 없어 안내양에게 사정을 말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있던 운전기사가
130원 거리만큼만 태워주고 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중간에 내려 인근의 비구니스님 절에가서 사람들앞에서
노래하듯 초파일 연등만드는 비구니 스님 앞에서
초발심자경문을 외우고 차비를 얻어 보현사를 갔습니다.

해인사 강원에 있을때도 남들은 신도들이나 도반들이 책을 사주는데
저는 복이 없어 책한권 사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먼저 출가한 누이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
다른비구니 스님이 쓰던 책으로 강원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머리가 우둔하고 잠이 많고 가슴이 떨리고
복이 없었습니다.그런데 저는 관세음보살 주력염불을 하고
해인사 장경각에서 부처님전에 하루 5천배씩
이백일 동안 백만배를 하니 구름이 걷히니
달빛이 환하게 비추고 거울의 먼지를 닦으니
환한 모습이 보이듯이 자신이 환하게 보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후로 지금은 수만명을 앞에 두고 법문을 해도 떨리는 것이 없고
마음먹었다 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하겠다고 마음먹어서 안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주도 약천사 대웅전을 짓는데 돈이 백억원 이상이 들어갔습니다.
공부하는 승려가 돈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런데 기도한후 마음먹는대로 일이 되기에 부처님집을
최고로 지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한것입니다.

이제 제주도 중문단지에는 동양최대의 대웅전이
웅장하게 자리해 있습니다. 무사히 불사를 회향한 것입니다.
또한 백만배 절을 했으니 백만이란 숫자와 인연이 있어
백만평의 땅에 부처님마을을 조성하기로 하고
충북단양에 철쭉 백만그루를 심고있습니다.
현재 80만평을 이루었습니다.

사주와 관상이 나쁘더라도 운명적으로 이렇게 밖에 살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관상학적 이야기입니다.
길이 아니라도 불도저가 지나가면 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불교는 내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운명과 팔자는 바뀔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찾는 종교요,마음을 보는 종교요,마음을 아는 종교요,
마음을 깨달는 종교요, 마음을 잘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한마음이 청정하면 일신이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중생이 모두 청정해집니다.
마음이 달라지면 모습이 달라지고 관상이 바뀌면
내 운명과 팔자가 바뀝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저는 오늘의 여기에 있을수 없습니다.
소나무를 의지해 칡넝굴이 소나무를 타고 끝까지 올라갈수 있지만
잔디밭에 깔린풀은 석자도 올라가지 못합니다.
부처님과 부처님말씀 그리고 가피력에 의지하면
얼마든지 행운과 훌륭한 운명을 개척할수있는것입니다.
지난 과거를 회고해 보면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그리고 남 법문하던 것을 부러워하던 시절,

나도 언젠가는 내생에 가서라도 저런사람이 되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기도를 하고나니 내생까지 갈것도 없더군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오늘의 법회를 계기로 해서 기도 정진하는데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세음 보살기도에 대해 좀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보면

「무진의 보살은 잘 들어라. 관세음 보살을 부르는 자는
물에 들어가도 빠져죽지 않을 것이며,
불에 들어가도 타죽지 않을 것이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악한자에게 밀려 낭떨어지에 떨어 진다해도
다치지 않으리라. 죄가 있거나 없거나 수갑을 채우고
쇠사슬에 묶여 감옥살이를 해도 관세음 보살을 부르는 사람은
해탈을 얻으리라. 악한짐승 나쁜 귀신들이 혹은
태풍에 밀려도 결코 거기서 다치지 않고 살아가리라.

아들을 원하는 자여 관세음 보살을 부르라 귀한 아들을 얻으리라.
딸을 구하는 자여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 보살을 부르라
생각생각에 마음을 항상 관세음 보살에게 두어라.
우는아이에게 젖을 주듯이 관세음보살은 그대의 음성속에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서른두가지 몸을 나퉈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중생의 고통을 나누고 가지가지 방법으로 의사가 천만가지 약이 있어도
명의가 환자의 아픔아픔을 알아서 치료하듯이
관세음보살은 큰 의사이니 중생의 고통과 모든
근심걱정을 다 해결해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관세음보살 가피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습니다.
일제때 청일전쟁당시 만해 한용운스님이 서울 작은 토굴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학도병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끌려갔었습니다.

어느 보살이 삼대독자인 아들을 전쟁터에 보냈놓고 걱정을 하니
주위에서 만해 큰스님을 찾아보라하여 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만해스님은 생각생각 언제든지 관세음보살을 찾으라 했습니다.
좋은일이 있거나 나쁜일이 있거나 자나깨나
관세음보살을 찾으라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아들에게도 편지에 관세음보살을 염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아들이 죽었다고 부고가 오고 유골이 왔습니다.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보살은 낙심하여 관세음보살이고 부처님이고 필요없구나 했습니다.
49제를 지내고 자기팔자를 생각하며 실컷울고
자기도 죽으리라 식음을 전폐했는데 갑자기 밖에서
어머니 어머니 하며 아들의 목소리가 났습니다.
보살은 귀를 의심하고 혹 귀신이 온것아닌가 하며 문을 여니
군복입은 아들이 서있었습니다. 아니 귀신도 꼭 사람과 같네 하며
나가보니 귀신이 아닌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 중국에 왔었지요하며 묻는데 사연을 듣고보니
이러했습니다. 중국으로 끌려가 총알이 콩복듯 하는중에 하루는
보초를 서는데 산너머에서 재명아 재명아하면서 어머니가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목숨 중국까지 찾아온 어머니나 만나고
죽자라며 개울밑으로 도망쳐 어머니에게 가는데
어머니목소리는 계속멀어져 갔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못찾고 날이새 다시 부대로 돌아와보니
전우가 한명도 남지않고 모두 전사했습니다.

그래 혼자서 49일간을 걸어서 돌아온 것입니다.
보살과 아들은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살아났음을 알고
감사의 뜻으로 살던집을
관음암으로 바꾸어 평생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관세음 보살을 부르던지 지장보살을 염하든지
지극정성을 보이면 이렇듯 가피력은 반드시 옵니다

 

17. 관세음보살의 가피력

 

관세음보살의 가피력

 

기도 정진중 꿈에서 약병 받고…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부산 삼광사에 다녔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기도정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집안의 이런 분위기 탓에 친정 오빠들도 일부러 사찰을 찾아가 절을 올릴 정도로 불심이 깊었다.

하지만 내가 불가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친정 어머니의 병환이었다. 어머니는 5년전부터 병명도 모르는 상태로 몸져 눕게 되었다. 여기저기 이름있는 병원들을 다 찾아다녔지만 조금도 차도가 보이질 않았다. 온 집안식구들이 어머니 때문에 근심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옆집 아주머니가 어머니를 구인사로 보내 요양을 시키고 온 가족이 정성을 다해 기도해 볼 것을 적극 권했다.

처음에 가족들은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를 먼거리의 구인사로 보내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현대의학으로는 별다른 처방이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께 한 번 매달려 보기로 했다. 오빠들은 생업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구인사로 갔다. 구인사에서 방을 하나 얻어 어머니를 눕혀 놓고 나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1080 염주를 돌려가며 어머니 병이 낫게 해달라고 매일 5시간씩 기도를 올렸다.

구슬땀이 흘러 방석을 흠뻑 적실 정도로 정성껏 절을 했다. ‘부처님, 어머니를 살려 주세요.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이렇게 병들어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데려 가시고 어머니를 낫게 해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희구하며 염주를 굴렸다.

어머니에게도 누워서나마 부처님께 의지해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라고 권했다. 이 동안에는 가정일 등 모든일을 제쳐두고 오로지 어머니를 살려야 겠다는 일념으로 기도에만 집중했다. 절에서의 기도 정진은 한달 넘게 계속됐다.

한달이 지난 어느날,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이 어머니에게 먹이라고 약을 하나 주고는 미소를 머금고 하늘로 올라갔다. 소스라 치게 놀라 깨니 꿈이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자 오빠들에게 연락이 왔다. 노인들의 병에 유명한 한의사를 아는 사람한테 소개받았다며 부산으로 급히 내려 오라고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동래구쪽에 있는 한의원으로 갔다. 진맥을 본 한의사는 기가 몹시 약해져서 온 풍일 가능성이 많다며 침을 놓고 한약을 지어주었다. 한의사는 정성껏 치료를 할테니 한 번 믿어보고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어머니는 1주일에 두 번씩 통원치료를 받았다.

나는 집에서 <천수경>을 독송하며 계속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3개월을 치료받더니 어머니는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조금씩 걸어다니면서 식사도 정상적으로 하는 등 기력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비록 어머니의 병회복을 위해 부처님께 지극 정성을 드린 것이지만 이것이 계기가 돼 이제는 새벽과 밤에 집에서 예불을 모실 정도로 불교에 깊이 몰입해 있고, 참다운 불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머니께서도 항상 염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시며 부처님께 의지하고 계시다. 병명조차 모르고 앓으시던 어머니에게 의사를 만나는 인연을 맺어 주셨으니 이 모두가 다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한다.

 

김연숙(부산시 진구 범천동)

 

출처: 현대불교신문(www.buddhapia.com)

 

 

18.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감사드립니다.●

-출처/나무아미타불카페(cafe.daum.net/amtb)

안녕하세요.
저는 양양 낙산사에 다니는 불자입니다.
제가 이번에 기도하여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과거 숙생의 죄업이
산과 같이 많은 것을 느끼고 저로 인해 고통 받은
영가들을 위해 3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집에서 천수경을 한 번 읽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번씩 읽을 때마다
관세음보살님께 영가들을 극락왕생하여 주십사 3번씩 기원하였습니다.

3일째 날 회향하고 잠을 잤는데 제가 어느 절터에 있었습니다.
한 비구 스님이 아이 3명을 데리고 계셨는데
석불상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거처하는 집은 시골의 허름한 집같이 초라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일 작은 한 아이가 석불상을 들어서 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같이 불상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리면서 사탕을 줄터이니
불상을 깨트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잠이 깼습니다.
그 주에 저는 관세음보살님께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게 해달라고 사탕을 한 봉지 사가지고 갔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 사탕을 올리면서 간절히
영가들을 돌보아 달라고 기원하였습니다.
눈물을 너무나 많이 흘렸습니다.
천수경을 독경하면서도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저는 영가들이 아직도 천도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7일 기도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밤에 자기 전 한 시간씩 대비주를 외우며 다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항상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피를 기원하였습니다.
어제 기도회향을 하고 잠을 잤습니다.
그 날 피곤한 일이 있어서 잠을 설쳤습니다.

새벽에 잠이 어렴풋이 들었는데 바닷가였습니다.
백의관세음님이 아주 장대한 몸으로 동자 3명을 데리고 계셨습니다.
동자들을 모두 금신으로 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윽고 관세음보살님이 금색초롱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동자들도 그 뒤를 따라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며 환희스런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이 번 주에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감사하는 뜻으로 꽃을 회향하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함에 감사드리며
무릅끊고 지심귀명례합니다.
불자님들도 항상 대우주의 자비이신
관세음보살님을 칭명하시고 염불정진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19. 출처: 일타큰스님의 '기도' (도서출판 효림)

 

1960년대 초까지 가야산 해인사에는 인격을 구비한 강사요, 법사인 장보해(張寶海)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어린 시절 출가하여 해인사 백련암에서 노 스님을 시봉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15세가량이 되자 배가 불룩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위궤양으로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밥을 잘 먹지 못하다 보니 기운이 크게 떨어졌고, 기운이 떨어지다 보니 자주 드러눕게 되었으며,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수행은커녕 시봉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노 스님은 이러한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보해 스님을 불렀습니다.

"이놈아! 세상 사람들에게는 쌀이 양식이지만, 중에게는 신심이 양식이다. 중이 아픈 것은 신심이라는 양식이 모자라기 때문이야. 그렇게 신심 없이 빌빌거리며 살 바에는 마을로 내려가서 거지가 되어 살아라."

 

노 스님은 주장자로 때리면서 보해 스님을 내쫓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스님 네는 요즘 승려들과 달랐습니다. 교통이 불편하여 집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지만, 일단 절에서 쫓겨나면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여겼습니다.

 

보해 스님은 멀리 가지 못하고 백련암 조금 아래쪽의 가운데가 푹 파인 동구나무 속에 들어가 가마니를 덮고 누워 생각했습니다.

'노 스님께서 어찌 그릇된 말씀을 하셨으랴? 나의 병은 신심이 부족한 데서 온 것이 분명하리라. 지금부터라도 신심을 기르자. 일찍이 스님께서는 위급하고 어려운 일에 다다랐을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신심도 생겨나고, 나의 병도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기원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저는 지금 위급합니다.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꾸준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잠이 들면 자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허기가 지면 노 스님의 눈을 피하여 백련암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찾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또 부르고…….

 

약 7일이 지났을 무렵,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영천 은해사(銀海寺)에 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절 주위에는 소나무가 가득하고, 바위가 좋은 계곡에는 시퍼런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 참 좋구나. 해인사 계곡만 좋은 줄 알았더니 여기 계곡도 참 좋구나. 이 은해사는 처음 가는 절이니 옷을 단정히 입고 정신을 차려서 부처님께 절을 해야지.'

스님이 법당 앞의 배례석(拜禮石)에 이르러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순간, 법당 안에서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왔느냐?"

 

그리고는 법당 안으로부터 흰 가운을 걸치고 청진기를 건 스님, 주사기를 든 스님, 왕진가방을 든 스님들이 여러 명 나왔고,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스님이 말했습니다.

"여기, 이 침대 위에 누워라. 먼 길을 왔으니 수술을 해주어야지."

 

그 의사 스님은 배를 만져 보더니 부엌칼처럼 생긴 칼을 꺼내어 배를 쫙 가르는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창자들이 나오자 칼로 창자를 잘라내어 큰 시루에 옮겨 담았고, 금방 시루 하나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의사 스님이 옆에 있던 뚱뚱한 간호사에게 눈짓을 하자, 간호사는 시루를 이고 계곡으로 가서 콸콸 흐르는 물에 창자를 넣어 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창자 속에서 돌도 나오고, 모래도 나오고, 가시도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는 창자를 모두 씻은 다음 비틀어 짜더니, 깨끗이 닦은 시루에 담아 가지고 와서 배에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촉이 너무나 차서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앗! 차가. 으 차가워."

 

이렇게 창자를 모두 집어넣고 나서 바늘로 이불을 꿰매듯 배를 꿰매 주더니, 의사 스님이 소리쳤습니다.

"이제 됐다.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거라!"

 

보해 스님은 깨어났고, 깨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조금도 아픔이 없었던 은해사 의사 스님들의 대수술……. 스님은 꿈속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배를 만져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불렀던 배가 푹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배의 이곳저곳을 만져보았지만 조금도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날이 새자 보해 스님은 백련암으로 올라가 노 스님 앞에 꿇어앉았습니다.

" 스님, 배가 아프지 않습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이제 신심이 조금 생긴 것 같구나.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닦아라."

 

 

그 뒤 보해 스님은 해인사 강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약 10년이 지나 평소 꼭 가보고 싶었던 은해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묘하게도 은해사는 꿈속에서 수술을 받을 때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 나는 전생에 은해사 중이었던가 보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꿈속에서나마 전생 인연이 있는 이 절에 와서 병을 치료받게 된 것이 틀림없다."

 

보해 스님은 은해사로 승적(僧籍)을 옮겨 은해사에 살고 싶었지만, 노 님을 생각하여 해인사에 그대로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더욱 열심히 도를 닦다가 약 20년 전에 입적하였습니다.

 

 

20. 나무아미타불 카페 지혜월64님글

 

 

100일기도중 관세음보살 정근과 천수경,108를 했는데 70일쯤에 관세음보살불상이 안방문을 통해 제가 기도하고 있는 자리로 붕붕떠서 들어오시는것을 봤습니다.

 

물론 기도중이였기때문에 너무 놀란가슴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생시같은 느낌입니다... 그 후로 모든일이 술술풀렸습니다...

 

 

 

21. 대원심 보살 아들의 병을 완치시켜주신 관세음보살


안성에 사는 대원심 보살은 아들이 위암말기로 진단되어 죽음을
선고받자 괴로움을 가눌 길이 없어 청룡사의 관세음보살을
찾아갔다.

이미 80세가 넘은 노보살인지라 절을 올리기 힘든 처지였다.
대원심 보살은 다만 가만히 벽에 기대어 앉아 관세음보살을
우러러보며 念하였다.

"관세음보살님,부모가 죽은 다음 자식이 죽는 것이 이 세상의
순리이온데, 저의 업이 얼마나 중하길래 이렇게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하나이까? 자비로우신 관세음보살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3일 밤낮을 아들의 병이 기적처럼 쾌유되기를 기원하며 관세음
보살을 찾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 때 스님 한
분이 활짝 핀 연꽃 한송이를 대원심보살에게 주었다.
꿈을 꾼 것이었다.

보살은 상서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치유불능이라는
진단을 했던 서울대학교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재검사결과 위암의 흔적은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담당의사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라며 매우 신기해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아들의 병을 완치시킨 것이었다.


- 출처: 도서출판 효림 김현준저 관음신앙 관음기도법

 

 

 

 

22. 네이버 지식in wpgody님 글

 

51세 된 남자 인데요.

31세 때 결혼해서 바로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고 악몽을 꾸기 시작했어요.

제 아내도 마찬가지로 악몽을 꾼다고 하더라구요,.

 

온갖 병원을 찾아도 해결이 되지를 않고 신경성 질환이라고 하는데

신경을 쓰지 말고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라고 하더라구요.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는데 편안한 마음이 들겠어요?

 

친척의 소개로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로 소원이 잘 이루어 진다는 가까운 절에 큰스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죠.

그 후로 108배를 틈 날때 마다 절에가서 관세음보살님 전에 올렸죠.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매일 못가고 주말에 주로 갔죠.

젊은 사람이 절 108배도 제대로 못할 만큼 건강이 안 좋았죠.

주말에 가서 절도 하고 법당 청소도하고 봉사활동을 많이 했죠.

신도님들의 칭찬이 대단했죠.

제가 청소를 잘해서 법당이 깨끗해 졌다고 보시는 분마다 칭찬이 대단했죠.

더욱 힘이나서 뭐든 시간이 되는데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스스로 열심히 했죠.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 오면 연등도 만들고, 달고, 이름표도 붙이고, 행사진행도 돕고, 마치면 철거해서

잘 정리도 해 두고,

 

어느 날 꿈에 큰스님께서 가사장삼을 입으시고 나타나셔서

알약 세개를 주시면서 절 만번을 하고 한알씩 먹어라고 하시더군요.

몇 달을 벼르고 벼르다 제 생월에 30일간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시작했죠.

1일 부터 아침 일찍 절에 가서 천배씩 하고 출근 했죠.

10일째 만배를 채우는데 사타구니 아래 부터 발끝까지 무좀, 움직일때 뼈 또독또독 소리나는 것,

발 저림 현상, 일체의 장애가 없어 졌어요.

 

11일 부터 20일 까지 2만배를 채우는데 오목가슴까지 뱃속이 더부룩 한거나, 소화가 안되거나,

허리가 아프거나, 일체의 장애가 없어졌죠.

 

마지막 3만배를 마칠 즈음 어깨와 목이 만나는 지점까지 손이 저리거나 , 팔이 힘이 없거나, 손톱이

못생겻거나, 뼈가 으드득거리거나, 집중력이 흐리거나, 일체의 장애가 없이 15년간 하늘을 날듯이

가볍게 잘 살았죠.

그러면서 조금씩 게으름이 생기고 함부로 행동하고,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또 몸이 안 좋아졌죠.

2년여 죽을 고생하다 지금은 또 열심히 부처님의 가피아래 잘 살고 있죠.

 

간략하나마 요점은 정리된 것이니 , 진실로 사실임을 밝힙니다.

이 내용은 저의 주변인들은 모두 아는 일입니다.

 

 

23.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고 나서 죽음의 땅을 탈출한 이야기가 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민족의 기쁨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38선이 그어지기 시작하였다.

남한은 자유국가,북한은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북한은 무력으로 남북을 통일시킬 계획을 수립하고 전쟁준비에 박차를 기했다.
그리하여 허구한 날 주민들을 강제 노동과 군사 훈련 등으로 달달 볶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정권 유지를 위하여 주민들을 통제하였으며 개인의 자유마저
박탈해 버렸다.이 때 강원도 회양 땅에 최기일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공산치하를 견디다 못해 월남 하기로 작정하였다.

철조망을 뚫고 북한군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38선을 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돈을 받고 월남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는 전문
안내꾼이 있었다. 그들을 통하면 대체로 38선을 넘어올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갖가지 희비극이 벌어졌다.

최기일 역시 집과 재산을 모두 정리하여 안내꾼을 한 사람 매수한 뒤 야음을 틈타
남하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밤에만 행군하여 이틀만에 겨우 북방한계선을 넘어
38선 부근 한탄강에 이르렀으나 문제는 이 강을 어떻게 건너느냐였다.

당신 한탄강을 건너는 데 주로 사용된 유일한 방법은 야음을 이용하여 작은 배로
건너는것이었다.이제 약속한 대로 배가 온다면 그야말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조그마한 마음으로 한탄강가에서 배를 기다렸다.거기서 며칠을 기다리자
비로서 접선이 되어 다음 날 새벽 3시에 배가 오기로 약속이 되었다.

그는 본래 고향에서부터 불교신도로서 특히 관세음보살을 독실히 믿었던 사람이었다.
항상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여 왔는데 월남하게 되자 출발시점부터 더욱더 마음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사실 죽을 가능성이 많은 모험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의 마음 속에 믿는 것이라곤 오직 관세음보살뿐이었다.

최기일은 캄캄한 강가에서 초조하게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한 대로 배가 와야 하는데
만일 돈만 받아먹고 정작 배가 오지 않는다면 이것은 정말 큰일이었다.시간은 새벽 2시,
이제 한 시간만 기다리면 배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더욱더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런데 잠깐 졸았다고 생각이 되는 찰라에 평소 이북에 있을 적부터 모셔온 관세음보살상과
똑같은 부인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약속한 뱃사공은 결코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되니 시각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어서 속히
철로를 따라 남하하여라!"
그 부인의 말투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간곡하고 애절하게 타이르는 모습이었다.
그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나서 생각하였다.

"과연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일까?"
하지만 한탄강 위의 철길을 건너다가 자칫 발각이 되는 날에는 총알이 온몸을 벌집을 쑤셔
놓은 듯이 놔두지 않을 것이다. 한 시간만 기다리면 배가 오기로 되어 있는데 어렴풋 꾸었던
꿈을 믿고 모험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뱃사공을 믿느냐,관세음보살의 계시를 믿느냐?"
만일 뱃사공이 오지 않는다면 여긴 낭패가 아니었다. 일생일대의 운명의 순간이었다.
그는 결국 "약속한 뱃사공은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되니 속히 철길을 따라 남하하라"는
그 부인(관세음보살)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살금살금 철길을 지키고 있는 북쪽 초소로
다가섰다. 초소 안에는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는 드디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엉금엉금 기어서 철길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오로지 그의 마음 속엔 관세음보살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드디어 다리 끝이 보였다.
자유의 몸이 된 것이었다. 그는 그 동안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고는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출발부터 탈출하기까지 그야말로 숨막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하여 38선을 넘어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자기가 38선을 넘어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자기가 38선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엇던 것은 오로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서울로 와서도 끊임없이 절에 다니면서 관세음보살을 믿었다

이즈음 그러니까 그가 탈출하여 서울에서 산 지 여려 해가 지난 1905~60년대에 당시
서울에 남성 신도들로 주축이 되어 활동하던 거사림이라는 큰 신도단체가 있었다.
그는 여기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열심히 불교를 공부하였는데 특히 시간이 있을 때마다
월남하던 때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만해 한용운스님의 제자로서 같은 거사림회 회원이었던 김관호 선생이
듣고서 초고한 것을 김대은스님이 <관음신앙>이라는 책에 수록하였고 이것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출처: 나무아미타불 카페 발원님 글 옮김

 

 

24. 가난한 부부에게 다가온 관세음보살의 가피

 

출처: 법철스님 글 (www.bubchul.net)

 

해인사 밑 신부락에 박도일(朴道日)이라는 사십이 갓 넘은 사내가 처자와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젊은 부부는 부모로부터의 유산도 없었고, 배움이 없어 달리 일자리도 없고 하여 남편 박씨는 관광버스나 노선버스가 도착할 즈음이면 버스정류장에 달려가 관광객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여관에서 숙박을 하도록 하는 소위 호객행위와 함께 여관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부인 진씨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두 부부는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월세 방에 사는 가난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집을 장만하는 날을 기다리는 기약 없는 희망으로 살고 있으나, 서로 가족 사랑하는 마음은 남달랐고, 가난한 두 부부는 남다른 불심이 깊었는데,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다.

 

쉬는 날이면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온가족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기도를 올렸고, 집에서, 일하면서 염염불리(念念不離)의 마음으로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올렸다.

 

"대자대비하옵신 관세음보살님, 저희들이 알게 모르게 지은 전생의 악한 정업을 소멸하여 주소서."

박씨 부부의 지극지성의 기도는 드디어 관세음보살님과 감응도교(感應道交)를 이루는 날이 도래했다.

 

어느날, 풍채좋은 재일교포 노인이 수행원들을 데리고 수소문하여 왔노라며 박씨의 아내를 찾아왔다.

노인은 박씨의 아내인 진씨를 만나 고향을 물어보고 부모님의 성함을 묻는 등 여러가지 질문을 하더니 덮석 진씨의 손을 잡고 진한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나의 유일한 조카가 틀림없다. 내가 너의 막내 삼촌이다.

내가 십대 후반에 잘못을 저지르고 집을 뛰쳐 나갔는데 일본으로 밀항을 했단다.

내가 성공하여 부모형제를 도우려고 하였지만, 내가 몸담은 단체가 조총련이어서 조국에 돌아올 수가 없었지.

이제 정치적으로 내 문제가 해결되어 부모형제를 찾아 고향산천에 돌아오니 부모는 물론이요, 너의 부친인 나의 형마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더구나.

 

내가 조총련에서 활동하여 고향의 부모형제들이 얼마나 고통이 많았겠느냐.

내가 부모형제께는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지었다.

형의 혈육을 찾으니 그나마 죽고 너 혼자 남았더구나.

오늘에서야 너를 찾는 못난 삼촌을 원망해다오.”

노인은 조카의 손을 잡고 목을 놓아 울었다.

 

박씨 부부는 말로만 전해들은 삼촌에게 큰절을 올리고, 손자손녀도 예를 갖춰 작은 할아버지께 절을 올리게 했다.

 

삼촌은 조카 부부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겠나? ”

박씨 부부는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고개숙여 이렇게 말했다.
"배운 것은 없지만, 그저 무슨 일이던 열심히 하겠습니다. ”


처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한 달 후, 박씨 부부는 가족과 함께 서울 여의도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박씨는 용산에 있는 제법 큰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필자도 박사장의 초청을 받아 회사를 방문한 바 있다.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대운이 도래하니 사람이 변화하는가, 사장석에 버티고 앉은 박사장은 예전의 해인사 밑 호객꾼의 티는 말끔히 가시고 보이지 않았다. 박사장의 아내인 진씨도 여의도 아파트에 사는 품위있는 부인이 되어 있었다.

 

필자는 박사장의 후의로 배가 터지게 얻어먹고 여비도 두둑히 얻은 바 있다.

당시 진씨의 삼촌은 과거 박정희 시절에 조총련 재무부장을 역임한 재일 교포의 재력가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고국 땅이 미치도록 그리웁고 부모형제가 그리워지는데 거의 밤마다 소년시절 헤어진 부모와 형이 울고 있는 어린 조카를 부탁하더라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박정희 정권에 거액을 상납하고, 전향하여 대한민국에 들어와 꿈속에 울고 있는 어린 조카를 찾아 나선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관세음보살이 갑자기 나타나 황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박씨 부부의 경우는 관세음보살이 육친의 친화력을 작용하여 일본의 삼촌이 도와주도록 작용한 것이다.

이 또한 어찌 관세음보살의 부사의(不思議)한 기도의 응답과 가호가 아니겠는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뜻은 세웠지만, 전생의 나쁜 정업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속에 신음하는 고해대중이여,

영험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기도하며 인생을 살지어다.

 

25. 불가사의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

 

월간불광 창간 25주년기념 신행수기 당선작)
(월간불광 99년 11월호에 실림)

-글·김광현-

저는 지금도 마산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한 믿음을 갖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중생입니다.


월간 「불광」을 1999년 5월 20일에 처음 접하게 되어
여러 훌륭한 법어들과 재미있는 일화들을 감동 깊게 읽어본 후
저도 모르게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남과 다른 특이한 경험을 한 것이 있어
저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여러 불자님들에게 소개해 보고픈 욕심으로
이렇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칭 산골 중학교를 나와 광주상고를 졸업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곧바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자
해병대 하사관에 지원 입대하여 4년 6개월 동안 복무하였습니다.


해병대를 제대한 후 다시 사회로 돌아와 이것 저것
안해본 것 없이 해오다 결혼을 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곱게 키우며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0여년이 흐른 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저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죄악이라고 하는 살인을
저지르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그리하여 뜻하지 않게
저는 교도소에 수감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죄를 짓기 전에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기도하는
자세한 법은 몰랐어도 가끔씩 관세음보살님을 어느 누구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외곤 하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겐 어떠한 어려움이 없는지라 간절한
바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1심 재판을 시작하려는 그 시기부터 저는 가슴 밑에서 솟구쳐
나오는 눈물을 한없이 쏟아가며,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기,
아니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원칙을 지켜가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어 108번을 정확히 세어가며
관세음보살님에게 기도를 하고 나서 그 뒤에는 제 소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울부짖었음에도
불구하고 맨처음 1심 심리구형에서 무기징역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기징역이라는 검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재판 받은 후
대기하는 대기실 의자에 앉혀져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또다시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교도소를
향하여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너무 절망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어버릴까하는
잔인한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저도 모르게 정신이 맑아지며
부처님의 자비로운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뜻에서 용기를 내어
관세음보살님께 진심어린 구원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른 재소자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서
108번 관세음보살님을 부른 후
“제발 5년형만 받게 해주십시오.”라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속깊이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재판 전까지 열심히 관세음보살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1심 선거공판에서 저는 징역 10년 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저의 애절한 기도 소리를 듣고 저를
이렇게 도와주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저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재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2심 재판인 항소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관세음보살님을 믿고 용기 백배하여 항소를 하였습니다.
며칠 후 항소심을 받기 위하여 인천교도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이감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세음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한 덕분인지 인정미가 넘쳐
흐르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안양교도소에 이감간 후 저는 매일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드린 후
재판장님께 탄원서와 반성문을 적고 또 적었습니다.
거의 하루에 한 부씩 탄원서나 반성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는 더도 덜도 말고 징역 5년만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로 세월을 보내던 중 드디어 결심 재판날이
다가왔습니다.

 

재판 전날 꿈에서 관세음보살님을 만나 앞으로
다시는 하찮은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 애원하던
차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날 아침밥도 목이 메어 다 먹지 못한 채 또 수갑을 차고
법원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법정에 도착할 때까지 저도 모르게 입 속에서 중얼중얼
관세음보살님만 계속하여 찾게 되었습니다.
의지할 곳은 기도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웬일입니까?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담당 판사님께서 저에게 저지른 죄는 밉고 또 밉지만
수없이 많은 반성문과 탄원서를 보낸 점을 참작하여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형에 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는 느낌이었고 “법정에서 나가시오”
라는 말도 듣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제자리에 서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하고 있을 때 교도관이 제 손을 잡고 교도소를 향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재판은 끝이 났습니다.


다시 안양교도소로 돌아오자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세음보살님께 매일 기도하고 수많은 반성문을
제출한 덕분에 일어난 기적이라면서 저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날도 관세음보살님께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2개월 후 씩씩한 마음으로 의정부교도소로 남은 징역을 살기 위해
이감을 떠나는 날에도 저는 저도 모르게 관세음보살님을 108번
부르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여유를 부리며 짚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저를 틀림없이 좋은 방으로 보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제가 생활해야 할 방에
고향 동생이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게 작은 것 같지만 엄청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동생은 그 방에서 위치가 높은 자리에 있었으므로 여러모로
저를 배려해 주게 되니 저는 정말 마음 편하게 그곳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기도드린
관세음보살님의 보살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밖에 있을 때 해보지도 않은 핸드백 만드는 공장으로
출력을 해 1년 정도 수감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관세음보살님께 이제 제 소망은 그리운
가족들이 있는 집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 속에서 제가 피해를 입혔던 그분이 나타나
“너의 잘못을 이제 모두 용서해 줄테니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살인을 범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고
말하고 어디론지 떠나버리며 제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랐고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몸을 꼼짝도
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아침 기상시간에도 저는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교도관들과 동료 재소자의 등에 업혀 급히 의무실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이 아팠기 때문에 교도소의
의무실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어 사회의 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모든 분들은 제가 죽을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어도 어느 정도 의식은
남아있어서 마음 속으로는 관세음보살님께 간절히
빌 수 있었습니다.

 

저는 ‘ 저같이 할 일이 많이 남은 사람을 보내려 합니까? 살려주십시요’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홀어머님과 제 자식들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병신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몇 시간이 흘러 집에서 돈을 가지고 오자 응급처치를 하고
MRI촬영을 하게 되었으며, 아픈 몸으로라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은 아프지만 계속 관세음보살님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3일 지난 후 아내가 평상시에 집에서 입는 옷을 가지고 와서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게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아내의 말인즉 검찰에서 검사님이 오셔서 저를 형집행
정지시켜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아내는 방긋 웃으며 당분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통원치료를 계속 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야 비로소 ‘관세음보살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집에 한번 갔다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기쁜 마음으로 약 7개월 동안 치료를 해서
아픈 몸이 완쾌할 수 있었으며,
다른 정상인과 똑같은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다 해놓고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감이 된 후에도 모든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끝까지 관세음보살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하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계속 생기고 있지만 모두
생략하고 한 가지만 더 털어놓겠습니다.


마산교도소에서 몇 개월 생활하고 있던 어느 날
느닷없이 기쁜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저의 수인 번호를 관구실에서 부르길래 무슨 일이 잘못되었나,
집에서 면회 올 일도 없는데 하며 관구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감형 8개월이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인가 하여 머리도 쥐었다 놨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감형장을 가지고 제가 있는 공장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
주위에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혼자서 다 관세음보살님 덕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감형을 받게되어 올 9월 30일이면 관세음보살님 덕으로
가족의 품으로 안기게 되어 면회 안 오던 여든이 다된
홀어머님과 아들, 딸도 만나게 되었다고
여러 불자님께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이 신기하고도 감사한 이적을 가슴에만 묻어 두기에는
저의 기쁨이 너무나 커서 마침 월간 「불광」에서
신행 수기를 모집하고 있어 이렇게 글로 한 번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위의 글에서 밝힌 일은 한 점도 거짓이 없음을
관세음보살님께 아뢰며 이 글을 마감합니다.


간절한 기도는 언젠가는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 불자님들이 꼭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26.

 

관세음보살 가피로 죽음에서 살아나

 

관세음보살님은 대자대비의 화신이다.

항상 천개의 눈으로 중생의 고통을 살피시고 또한 천개의 손으로 중생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신다.

언제 어디서든지 부르면 곧바로 감응하시는 것이 관세음보살님이시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 죽음 직전에서 살아나 현실적인 방편으로 생활불교를 구현하고 있는 성지 관음회 혜천법사, 그는 연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무역회사를 경영하면서 불심이 돈독한 아내의 권유로 사찰에 가 법당에 참배를 하면서 그는 자신이 전생에 깊은 불연이 있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법당 본존불만 참배하자 " 법당에 있는 여러 부처님께 다 참배를 해야지 왜 본존불만 참배하냐"는 아내의 책망에 그는" 여러 부처님을 한 곳에 모셔놓고 참배를 했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이미 불성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무역업을 할 당시 큰 오다를 따기 위해 고심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항공봉투를 주시더군요. 예삿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거뜬히 일이 성사가 되었지요. 그때부터 마음 속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무역회사가 잘되어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잘 나가던 무역회사를 접어야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발끝부터 근육이 마비되더니 서서히 가슴까지 마비되는 병에 걸려 그만 눈 뜬 시체가 되었던 것이다.

병원의사들 또한 병명도 모른 채 손을 놓고 있었고 그는 참담한 심정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관세음보살님께 "제가 앞으로 할 일이 없다면 여기서 멈추지 마시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여기서 멈추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러자 목전까지 차 오른 마비증상이 3일 동안 멈추더니 서서히 풀리기 시작해 죽음 직전에서 다시 살아난 불가사의한 가피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그 후유증으로 걷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아직도 발끝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혜천 법사는 발등을 슬며시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20여년 전 성지 관음회 설립 동기를 설명한 혜천법사는 "팔만사천 대장경이 다 방편으로 설해 놓은 것이라"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방편에는 시비(是非)와 정사(正邪)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관세음보살님은 이 땅, 이 우주 어느 곳에라도 계시기 때문에 성지관음회(聖地觀音會)라고 명명했다는 그는 현재 전국적으로 회원이 3만여명이 된다며 강한 자부심을 피력했다

[출처] 불교인물탐방/ 성지관음회(聖地觀音會) 회장 혜천 법사/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방편에 시비(是非)와 정사(正邪)가 있을 수 없다 ㅡ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 죽음 직전에 다시 살아나 ㅡ|작성자 불계

 

27.

꿈에 관세음보살님 친견하고 치암이 낫다

 

6년전의 일입니다. 어쩌다 보니 앞니 위에 흰 몽우리가 생겨서 수수을 받았는데 다시 생겨서 치과를 찾으니 치근에 생기는 암이랍니다. 그래서 서울대학병원치과와 원자력연구소에서 방사선 치료도 여러차례받았지만 별효과를 보지못했습니다. 저는 놀라고 불안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몇몇친구들과 의논하니 두번이나 수술을 하고도 그렇게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기댈 곳은 부처님밖에 없다며 친구가 권하는대로 자정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밤 열두시에서 새벽한시까지 집에서 부처님을 향하고 앉아 염주를 쥐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에게 온 심념을 기울여서 염불을 하는 동안 부처님이 사뭇 저에게 가까이 감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삼일간의 기도를 마치고 잠이 들었습니다.
어ㅡ덧 꿈속에서 목에 염주를 건 스님모습의 성자를 만났습니다. 머리는 정결히 깎고 흰저고리에 회색바지의 한복차림이었는데 꿈속에서도 저는 관세음보살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심으로 염불하며 우러러 보았습니다. 어느덧 보살의 상호는 거룩한 빛을 더하는 듯하더니 목에 건 염주의 주세불 아래에서 샘줄기처럼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 물로 입을 씻어라"하시기에 저느 성큼 두손으로 받아서 입안에 머금고 입을 씻고는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자 관세음보살은 목에 걸었던 염주를 저의 목에 걸어 주셨고 꿈을 깨었습니다. 운각사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그런 꿈은 아무나 못꾸는 꿈이오 신심이 지극해서 감로수를 마셨오. 이젠 걱정마시오 라며 기뻐해 주셨습니다.

그 때 이후 이제 8년이 지났으니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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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광출판사에서 2008년에 출판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부록에서 발췌

 

중국의 원영 굉오스님의 권수염불문(勸修念佛文)을

불광출판사에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이란 제목으로

정원규님이 번역하여 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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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염불 가피

 

 

1. 염불로 목숨을 구하고 광명이 비치다.

 

아래 이야기는 심장마비로 죽음의 순간에 주위 사람들의 염불과 자신의 염불로 다시 살아난 실화이며 이 이야기를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는 말씀은 나에게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나는 3년 동안 두 번이나 심장발작을 겪었다. 고비를 넘긴후 자세히 회상해 보니 그때 내가 받은 고통은 바로 내가 집에서 도살한 돼지가 겪은 고통과 같았다.

 

1993년 당시 진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던 장금문 선생이 나를 찾아와서 차를 좀 밀어줄 것을 청하였다. 나는 감기가 든 상태여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힘껏 차를 밀고나서 갑자기 심장에 격렬한 통증이 오면서 쓰러졌다.

장선생이 그때의 이야기를 나중에 해 주었다.

 

당시에 이미 나는 쇼크 상태여서 만약 즉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죽을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죽었지만 심식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심장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몸의 사대가 분리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장선생이 쓰러진 나를 차에 차에 실어 자신의 집으로 옮겨 놓고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장선생이 집안 사람들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와 서로 나누는 대화를 명료하게 듣고 있었다.

일찍이 내가 그 가족들에게 염불을 권해서 장 선생의 부인과 그 모친이 모두 와서 나를 위해 염불을 해 주었다.

 

그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들이 염하는 부처님 명호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허공에서 빛을 발하면서 나타났다. 즉시 내 몸도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사람마다 염불하면서 발하는 광명의 밝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장선생의 부인이 평소에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온 까닭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불현듯 나도 염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염불을 했다.그때 나는 자신이 직접하는 염불의 광명이 특히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염불할 때는 우리는 그 공덕의 7분의 1만 받는다고 한 『지장경』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 발작으로 심신이 압박받고 있을 때 나는 다행히 장선생 가족이 도와주는 조념염불의 광명과 인도로 정념으로 염불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고통을 덜고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너무 나빠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병원의 의사도 나를 보고는 이미 저승으로 갔으니 의학적인 처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직계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시술할 수 있다 하였다. 장선생은 그 말에 화가 나서 의사와

다투었다. 그는 직계가족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텐데 그러면 환자를 살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화를 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전심으로 염불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장선생 한 사람 뿐이어서 염불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즉시 나는 내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구름 비행기를 탄 것같이 빠르게 줄곧 떨어지는데 마치 한빙지옥에 이른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더 어둡고 추웠다. 온 몸을 칼로 베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내가 느낀 감각을 표현하자면 경전에 이른 것과 같이 바람칼로 온 몸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다행이도 평소에 염불을 열심히 해온 공덕이 있어서 위기 일발의 시점에 선근이 작용하였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 염불일념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슬프게 한구절의 ‘아미타불’을 토해냈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 내가한 염불소리가 커서 병원 사람들이 모두 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그 즉시 눈앞에 조그마한 광명이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나무아미타불’ 을 염하자 그 광명은 앞에서 더 크게 커졌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졌고 눈을 뜨고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면서 나는 저승의 귀신문에서 나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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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의 광명이 몸을 보호하다.

 

위서금씨는 29세 때 토성 승천사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남자다.비록 스님께서 염불하라고 가르쳤지만 그 자신은 좌선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바쁜 중에서도 좌선을 할뿐, 근본적으로 염불할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 후 대략 반 년 정도 지난 8월 26일 아침에 가스가 폭발하여 심한 화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전신의 55퍼센트 이상 화상을 입었는데, 대부분 상반신의 중요부위였다. 다음은 그분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다.

 

내가 정신을 잃고 혼미해지자 의식이 흐리멍텅 해지면서 주변이갈수록 음랭하고 사방이 검고 어두워 졌다. 마음속으로 점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나를 강제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너무나 공포스러웠고, 죽음이 두려워 살아나려고 발버둥쳤다.

 

화상을 입은 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인명무상이라는 말을 이때 체득 할 수 있었다. 몸을 제되로 가누지 못하는데 갑자기 부처님께 귀의할 때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염불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였다. 부처님께 목숨을 구해주실 것을 간절히 빌면서 필사적으로 염불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참 염불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광명이 온몸을 덮더니 한 순간에 모든 흑암과 한랭, 공포가 없어 졌다. 광명이 내 몸을 비추자 추운 겨울에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따뜻해지고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몸에서도 고통이 사라졌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나를 구하신 것이라고 느꼈다. 그 광명은 매우 강하고 밝았다. 마치 풍차가 돌 듯 “쏴, 쏴”하면서 천천히 회전하였다. 그리고 아기가 어머니를 의지하는 느낌처럼 친밀하고 포근하며,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온 세상이 광활하며 매우 가볍고 편안하며 자재하였다.

 

마치 부처님의 광명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염불했다.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고 염하는 가운데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남자와 여자들이 “그가 깨어났다. 그가 깨어났어!”라며 고함치는 소리였다. 그때 광명이 사라지면서 내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사실 가스폭발 며칠 전 나는 좌선을 하던 중에 이상한 일을 겪었다. 그나 좌선하면서 마음이 매우 고효해졌을 때 갑자기 두세 사람이 매우 흉악스럽게 나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들렸다.

“찾았다. 찾았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아주 부드러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원한을 품고 서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들이 천도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 좋지? 이 사람은 선근이 많으니 너희들은 그의 목숨을 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놓아주지 않을 태도이었다.

 

“안 돼! 안 돼! 우리들은 반드시 그를 찾아 빚을 받아야 마음이 편해져.”

그 여자가 다시 그들에게 그러지 말 것을 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들은 기어코 나를 해치려 하였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는 모골이 송연하여 계속 좌선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내용이 내 모릿속에 여전히 맴돌면서 매우 불안했다. 그리고 나서 2, 3일 후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길흉화복은 모두 것이 다 스스로 지은 업이며,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것이다. 절대로 원인을 만들지 않았는데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한 것은 틀림없이 전생에 그들에게 나뿐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본래 나는 죽었어야 할 과보인데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염불 공덕으로 무거운 업의 과보를 가볍게 받은 것이다.

 

<금강경>에도 나온 것과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독송하여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면 그것은 악도에 떨어질 중한 업이 가벼운 업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매우 다행한 일로 여겼다. 만약 그때 염불하지 못했으면 죽어서 틀림없이 삼악도에 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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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죽음의 액난에서 벗어나다

 

나는 금년으로 70세가 되었다. 40여년 전 항주의 유명한 항주성가인 보천구와 요상림에게 사주팔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두 사람 다 나의 수명이 51세라고 하였다.

 

나는 그말을 듣기 전에도 본래 인생이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온갖 풍파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서 속수무책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덕극이 쓴 <기도지귀>를 읽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방법은 바로 보리심을 발하여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 후 날마다 ‘십념염불’을 지속하였다. 당시 나는 내 수명이 51세라는 예언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1950년 나는 큰 국영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날마다 업무와 갖가지 학습, 운동 때문에 비교적 긴장된 생활을 하였지만 남몰래 염불을 지속하면서 ‘번개가 쳐도 움직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 ’견고한 염불심을 갖는 경지에 이르렀다.

 

1971년, 내 나이 51세가 되는 해였다. 그해에 나는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몸이 좋지 않았다. 1분당 심장 박동수가 100까지 자주 올라갔고 또 치질로 대량의 출혈이있었다. 그럼에도 운동과 갖종 학습 일정이 빡빡해서 치료받을 갈 시간초자 없었다.

 

그해 4월 3일 저녁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잠을 잘 무렵 평소 습관대로 침대에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열 번을 묵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는 것이었다. 마치 심장이 몸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면서 가슴이 심하게 답답해졌다. 원래 내가 머물던 기숙사의 전등은 밝았는데 갑자 기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내 앞에서 10미터 정도 되는 곳에 귀신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그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계속해서 염불에 몰두하였다. 약 2분 정도 후에 금색 찬란한 모습이 나타났는데 당시의 장엄한 모습은 정말 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러자 시커먼 귀신의 그림자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 오른 쪽 위에서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 부처님의 오른손을 내린 장엄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배를 올리지 않고 여전히 합장한 채로 염불을 계속했다. 염불소리에 따라 심장 박동이 점점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비몽사몽 속에서 기숙사의 전등은 여진히 밝게 빛나고 있고, 나는 합장한 채 입으로 염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보다 더 불가사의 한일이 일어났다. 치질 때문에 대량으로 출혈이 생겼던 곳에 아무약도 쓰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출혈이 멈추고, 심박수도 분당 80회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부처님의 가피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심 염불은 단지 극락왕생만을 위한 것인 줄로만 알았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부처님의 대자대지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몰랐다. 일심으로 염불하는 삶이 큰 재난이나 병고를 만나게 되면 아미타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감응하여 가피를 내려 액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평상시에도 이러하니 임종에 이르러 일심으로 염불하면 당연히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염불법문은 만 명의 사람이 닦으며 만 명의 사람이다 왕생하며, 만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인광 대사의 법문을 나는 지금 더 깊이 믿으며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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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귀를 물리치다.

 

석현진 스님은 사천성 출신으로 자는 서귀이다. 출가하기 전에 현의 현장을 역임하는 동안 많은 토적들을 살육하였다. 출가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영파 자계의 오뢰사에 머물때의 일이다. 매일 밤 많은 토적들이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흉폭하게 분노하면서 창을 들고 자기에게 목숨을 요구하는 꿈을 꾸었다.

 

그때 그는 매우 두려웠지만 용맹심을 발하여 오로지 아미타불 염불에 전념하였다. 밤낮으로 쉬지않고 정진하여서 마침내 꿈속에서도 염불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꿈에 토적을 보면 염불로써 그들을 교화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츰 꿈에 나타나는 토적들이 순화되더니 수개월 후에는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진 스님과 가장 오랫 동안 함께 지냇는데, 그는 자주 자신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염불공덕의 불가사의함을 찬탄하였다.

 

 

홍일대사가 직접 듣다 <정종문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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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낫다.

 

사람의 질병은 대부분 업보 때문에 생긴다. 업보가 다 하지 않았더라도 병이 빨리낫기를 원하면 부처님의가피를 구해야 한다. 세상에는 실력 있는 명의들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불보살님께 기도하여 치유된 사례가 많이 있다. 최근에 소료 군과 같은 경우가 염불을 통해야 구제된 사례이다.

 

소료악 군은 항주출신으로 19세때 상해에서 중병을 앓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의사가 진단을 해보더니 이병을 치료할 희망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소군이 병원에 입원한 지 7일 후 저녁에 갑자기 소 머리에 말의 얼굴을 한 귀신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의 침대 곁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병실 안은 전등 빛이 매우 밝았고, 그의 정신도 명료 하였다. 그는 이 귀신들이 자기를 잡으러온 것이며, 자신이 곧 죽게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일어나 생각했다. 만약 귀신이 있으면 받드시 불보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무아미타불”하고 큰소리로 염불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염불을 시작하자 갑자기 귀신들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감히 그의 몸 근처에는 접근하지 못하였다.

 

소료 군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의 염불이 정말로 부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귀신의 습격도 능히 물리치는 것을 보고는 일심으로 계속 염불하였다. 귀신들이 그를 붙잡지 못하자 나중에는 염라대왕이 직접 나왔다. 염라대왕은 녹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천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미타불 염불소리에 수레가 멈추어 염라대왕도 소 군의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위급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군은 염불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의사들이 할 수 없이 그를 다른 병실로 옮겼다. 그 뒤에도 그는 계속 염불을 했는데, 약 5일이 되자 갑자기 금칠 차란한 광명이 나타났다. 마치 하늘의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래로 내려 오면서 차츰 커지 더니 온 세상을 비추었다.

 

그 광명 속에 한분의 금빛 부처님이 공중에 우뚝 서 계셨는데, 부처님의 발 아래에는 금색 구름이 있고 부처님의 몸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부처님은 왼손에 염주를 들고 합장하신 채 소군을 마주보시며 미소 짓고 계셨다. 더 없이 자비로운 얼굴에 매우 친근한 모습이었다. 아미타 부처님이셨다.

 

귀신들의 무리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잠시 후 부처님의 모습도 사라졌다. 소군은 아미타부처님의 강림을 친견하고 흥분했지만, 병으로 인한 고통은 이미 사라졌다. 그 다음날 퇴원하였는데, 마치 정상적인 상태로 다 회복된 것처럼 몸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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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양이의 원한을 풀다.

 

1998년 안휘성 구화산 천지암에 주석하는 비구니 태 스님이 나를 찾아아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였다. 스님은 최근 매일 밤 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자신의 목숨을 요구한다고 했다. 너무나 두려워서 꿈에서 깨고 나면 그 밤에는 더 이상 잠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신이 어릴 때 개구쟁이라서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 죽인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호북성에서 출가하여 이곳 구화산으로 왔고 그 일은 이미 수십 전 전의 일인데 고양이가 잠을 잘 때마다 자신을 찾아온다 하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돈을 들여 큰 절에 가서 큰스님을 청하여 구병시식이나 천도재를 올리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었다.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이 존경심과 청정심으로 하면 천도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무성의하게 대충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스님이 직접 그 고양이에게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를 이야기하고 염불해주어서 극락왕생하게 하는 것이 더 났습니다. 스님에게 원한을 품은 고양아가 극락왕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 원한이 풀리겠습니까?

 

그 고양이는 수십 년 동안 당신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먼 곳으로 와서 출가하고 절에 머물지라도 그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젊어서 기가 왕성할 때는 고양이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늙어서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쇠해져서 꿈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염불왕생을 구하지 않으면 스님이 임종을 맞았을 때 더 공포 스런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들이 세세생생 맺어온 원한의 상대가 어찌 이 고양이 한 마리뿐이겠습니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을 것인데 우리가 언제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사대비하신 아미타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이런 죄의 근기를 미리아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발원하셨습니다. 수많은 겁 동안 수행을 쌓은 공덕이 “나무아미타불”여섯 글자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명호를 염하는 중생은 모두 극락왕생하여 성불하게 되는 공덕입니다. 단지 우리들은 일심으로 믿고 아미타 부처님께 의지하면 됩니다. 여섯 글자의 명호를 염하기만 하면 반드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그 고향이도 구제하여 극락세계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마음은 평등하며 사람과 축생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떤 이가만약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극락정토를 수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더욱 강할 것입니다. 무엇 대문에 수십 년 동안 괴롭게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목숨을 요구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스님이 스스로 믿으며 염불하고 또 고양이에게도 그렇게 설법하여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십시오. 그러면 둘 다 모두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니 원한은 일부러 풀지 않아도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천도불사가 아닙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직접 천도하시어 서방정토에서 성불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략 이렇게 말하였다. 또한 “시방의 중생이 만약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는 아미타 부처님의 대비의 서원과 “십념이라고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하는”도리를 반복하여 말하였다.

태 스님은 매우 기뻐하면서 물었다. “내가 돌아가서 염불할 때 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놓고 이렇게 설법해야 합니까?”

 

“그렇게 해도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고양이는 그림자처럼 수십 년 동안 당신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전에 스님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세우지 않아도 스님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 적이 없습니다. 인과 는 허망하지 않아서 마차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방금 우리가 나눈 대화를 고양이는 모두 남김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고양이를 위해염불하고 아미타 부처님께서 자비로 제도하시는 도리를 가르치면 고양이가 반드시 듣고 극락왕생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3일이 지난 후 태 스님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기쁨이 충만하였다. 나를 만나고 사찰로 돌아갔던 그날 저녁부터 고양이가 오지 않았고, 그래서 며칠 동안 잠을 잘 잤다고 하였다. 태 스님은 겨우 고양이 한 마리를 물에 빠트려 죽게 하였는데 줄곧 붙어서 이 먼 구화산까지 따라왔고 수십년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중생의 업력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로움 가득한 서원을 듣고 나서 바로 고양이가 마음에 맺힌 원한을 풀었으니, 부처님의 서원과 광명이 가득한 여섯 글자의 명호는 더욱 불가사의하다.

 

성안 법사 진술, 성소법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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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옥의 괴수를 물리치다.

 

인간세계에 살면서 지옥에 가서 업무을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대략 십수 년 전 소주에 홍 거사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열 몇 살 때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집안 사람들이 급히 의사를 청해 진료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몸에서는 여전이 열이 높음과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인사불성일 뿐 죽은 것은 아니라서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다. 3일 정도 지나자 그는 저절로 깨어났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그는 저승에 다녀왔다고 한다. 두명의 저승사자가 찾아와서 부탁하여 지옥에 가서 공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인간세계로 돌아와 깨어난 뒤에 이 일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이후 한 해에 최소한 십여 차례는 지옥에 다녀왔고 그때마다 2, 3일 정도 걸렸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자, 그의 가족들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홍 거사가 저승세계의 관리라는 것도 알게되었지만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지옥의 중생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친분 있는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조금 내비치면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경건한 염불 수행자로 살았는데, 한 번은 가족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구절의 “아미타불” 염불이 인간세계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만 지옥에서는 그 효력이 매우 크다고 하였다. 그가 겪은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지옥에서 공무를 보는데, 한 번은 갑자기 하얀 수염을 기른 스님 한 분이 나타났다. 그 스님은 모습이 매우 장엄했는데, 손에는 불자를 들고 염라대왕전으로 왔다. 그 스님을 본 염라대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 스님은 지옥에서 막힘없이 어디나 다니셨는데, 지옥 중생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시면 수시로 염불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단지 스님이 입에서 “나무아미타불” 한 구절만 나오면 지옥 중생에게 고통을 주는 형구가 모두 일시에 정지되는 것이었다.한번은 한 무리의 험상궂은 야수가 어떤 사람을 쫓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평소 홍 거사가 알던 사람이었는데, 공포에 질려서 필사적을 달아나고 있었다.

 

야수에게 쫓기던 그 사람이 홍 거사 쪽으로 달여왔다. 바쁘게 엄무를 보고 있던 홍 거사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했다. 흰 수염을 기른 스님이 하시던 염불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염불이 효력이 있었다. 쫓아오던 야수의 무리가 즉시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이 일로 홍 거사는 염불의 수승함을 잘 알게 되었고, 후에 매우 경건한 염불 수행자가 되었다.

 

백성장로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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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임종시 원귀를 물리치고 왕생하다.

 

대만 용해시 각미진 왕강촌에 사는 농민 곽아장의 극락왕생 이야기이다. 곽아장 거사는 금년(1995년) 음력 8월 26일에 60세의나이로 염불을 하면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에 힘쓰면서 살아왔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부터는 농사를 그만두고 양어장만 경영하였다.

 

그는 위장이 나빠서 자주 고생했는데 금년 들어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위암 말기로 판명되었다. 8월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통증 때문에 고통이 심해서 2시간마다 진통제를 맞았다. 병고에 시달리다 보니 성미도 호랑이같이 사납게 변했다. 그런데 그는 자꾸 바다 괴물이 보인다고 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의 아내조차도 문 앞에 원귀들이 머리를 기웃기웃 들이미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러던 중 다행이 염불수행을 열심히 하는 스님을 뵙게 되었다. 스님은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아미타불 염불을 권했다. 하늘이준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면 조속히 회복할 것이고, 만야 명이 다했다면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으며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들은 곽 거사는 매우 기뻐하며, 염주를 돌리며 전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염하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모두 그를 도와서 조념염불을 했다.

 

염불을 시작한 뒤 암으로 인한 통증이 많이 줄어들어서 진통제 주사도 하루에 2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물고기 형상을한 남자 괴물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닷세 정도 지나고 나서는 침대에서 가볍게 내려와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방 한 쪽 벽에는 세 분의 불보살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상이었다. 그런데 그 세불보살상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인간세계를 떠날 때가 다가온 것을 알았다. 그는 침대에서 꿇어 앉아 합장 자세를 취했는데, 일생 동안 한 번도 이런 자세를 한 적이 없었다. 합장한 채 염불을 하는 그이 얼굴에는 점차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평안하게 극락정토에 왕생한 것이다.

 

숨을 거둔지 8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몸의 온기가 식었지만 머리 위 백회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던 배도 쑥 들어갔다. 염을 하기 위해서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힐 때 온몸의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얼굴은 마치 살았는 듯 하였다.

 

이런 상서를 보이는 것은 곽 거사가 극락정토에 왕생했다는 증거이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온 가족들의 꿈 속에 그가 나타났다. 평안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가족을 만나러 온 그의 뒤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세분 불보살님이 계셨다.

 

임우천 씀 . 199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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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숙세의 원혼을 제도하다

 

보길 스님은 대만출신의 비구니스님이다. 이 스님은 출가하기 전 속가에 있을 때 나쁜 말로 남 욕하기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과 악연을 맺었다. 나중에 신죽 청초호의 영은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두 눈을 모두 실명하여 장님이 되었다. 70여 세가 되었을 때 다시 병이 둘었는데, 온 몸이 퉁퉁부어 올랐다. 그래서 무상 선사가 폐관수행하고 있던 금강동으로 찾아가 울며 하소연하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습니다. 저를 고해에서 구제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무상 선사가 부탁을 듣고 보길 스님의 거처에 와보니 소변을 누고 치우지도 못하여 매우 더럽고 악취가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보길 스님이 울면서 말했다. 10여 명의 원귀가 밤낮으로 자기를 때리는데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심지어 그 원귀들의 이름까지 말하며 구제해주기를 간청했다. 보길 스님에게 속가 남동생의 부인이 병문안을와 있었다. 무상 선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의 시누이 되는 저 스님이 부르는원귀들의 이름을 아십니까.”

“모두 스님이 출가전에 해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 사람들이 원혼이 되어 나타나 스님을 때려서 온몸이 부어오르고 살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무상 선사는 보길 스님을 위해 방을 청소하고 침대 한 가운데구멍을 내고 그 아래에 통을 놓아 대소변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보길 스님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울고 짖으며 몸부림치다가 그 구멍속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무상스님이 간곡함 음성으로 말했다.

“스님이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염하며 서방극락정토왕생을 구하여야 비로소 이고득락 할 수 있습니다.”

“눈 앞이 캄캄해서 염불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개 하는 염불을 따라서 하십시오.”

그렇게 염불을 시작했는데 한 시간 가량 지나자 보길 스님이 갑자기 기쁨에 찬 얼굴로 말했다.

“지금 제 앞에 밝은 광명이 보입니다. 나를 때리며 괴롭히던 그 10여 명의 원귀들이 저쪽에서서 웃고 있습니다.”

 

그때 그 원혼들이 보길 스님의 몸을 빌어서 말했다.

“무상 스님의 자비에 감사 드립니다. 지은 죄업이 막대한 저 앞 못 보는 노인네가 뜻밖에 저희들을 고통에서 구제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무상 스님이 말했다.

 

“원한은 풀어야 되지 맺으면 안 됩니다. 당신들도 함께 따라서 아미타불을 염하십시오. 그러면 죄업이 있더라도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비로소 생사의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길스님에게도 경건한 마음으로 따라서 함께 염불하게 하였다. 다시 한 시간 남짓 염불을 계속 하였다.

 

“지금 온 천지에 광명이 가득합니다. 저 구름 위에 흰옷을 입은 성스러운 분들이 우리들을 영접해서 서방극락세계로 갑니다.”

보길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합장한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평안하게 왕생하였다. 부풀어 올랐던 스님의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 오고 조금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상서가 보였다.

 

-염불감응견문기-

 

죽음에 이르러 고통에 핍박받고 원혼이 나타나니

어떤 법으로 구제할 수 있는가?

 

오직 부처님꼐 의지하여 염불할 뿐이네.

부처님께서 광명을 비춰 보호하시니

 

몸과 마음이 온안하고 나와 남이 모두 제도되는구나.

염불을 몰랐다면 지옥에 떨어졌으리

.

삼악도를 전전하며 어느 떄나 구제될 수 있을 것인다?

염불공덕 불가사의하니,모두 아미타불의 대비 원력이네.

 

- 염불감응견문기- 를 지은 혜정스님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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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전생에 도살한 소의 혼령을 제도하다.

 

사천성 남부에 사는 유정밀거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섭씨아주머니의 이야기이다. 섭 씨는 자신이 과거 생에 도살한 96마리 소의 귀신 때문에 자주 고통스런 발작에 시달리고 있었다.

 

1932년 2월 유거사 집에서 일을 돕고 있던 중 갑자기 심한 발작이 일아났다. 섭 씨의 온몸에 붉은 부스럼이 돋아났는데 통증과 가려움이 몹시 심했다.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은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가 강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주의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막아서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하고 소동을 부리면서, 자신이 전생에 소를 도살한 것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유정밀 거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이유를 섭 씨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주인님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십니다. 저는 섭 씨가 아닙니다. 저는 먼 과거생에 섭씨에게 죽임을 당한 소입니다. 그래서 지금 섭 씨에게 목숨 빚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 거사가 그들을 타일렀다.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째서 섭 씨 한데 죽은 것만 생각하느냐? 사실은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그 과보로 소로 태어났고 또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무슨 이유로 너희 목숨을 빼앗았겠느냐?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인 것은 잊고, 단지 그녀가 너희를 죽인것만 기억하는구나. 이렇게 원수를 찾아 돌고 도는 것을 고통스런 윤회라고 한다. 영원히 서로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그 말씀이 옳다면, 저희들이 잘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목에는 아직 피가 흐르고 칼에 잘린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고통 때문에 섭 씨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걱정마라. 내가 그 고통을 멈춰주겠다.”

우 거사는 찻잔에 차를 반쯤따라서 감로주를 세 번 외운 뒤 섭 씨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그러나 섭 씨는 찻잔을 들지 못했다.

 

“소의 발굽이 누르고 있어 찻잔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찻잔을 들어 먹여주었다. 섭씨는 얼른 차를 받아 마시드니 기뻐서 말했다. “정말로 신묘한물입니다.”

 

그녀는 목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미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만지면서 말하기를 “소 발굽도 이미 벗어버렸습니다. ”다시 머리를 만지면서 “뿔도이미 없어졌습니다.”

유거사는 이어서 윤회의 고통을 설명하고 또 극락세계의 안온한 즐거움과 영원히 생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나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느냐?”

“거사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어찌 원치않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의 죄업이 깊고 무거운데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발원하여 일심으로 염불하며 저극락세계를 흠모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아미타부처님을 청하여 너희들을 영접하게하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오랜 동안 먹이를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프니 먼저 먹을 것을 주세요.”

 

우 거사는 그렇게 하기를 허락하였다.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과 밥을 담아 변식진언을 일곱 번 염하고 나서 대나무 밭에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의 혼령들이 말했다.“

우 거사는 곧 빈 공터에서 향과 초를 사르며 아미타 부처님을 공손히 청했다. 그리고 왕생주, 반야심경, 대비주와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였다.

 

함께 지켜 보던 유거사의 처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보아라. 아미타부처님께서 장육금신으로 오셔서 높이 서계신다. 모두 빨리 무처님을 따라 가거라!”

“너희들은 극락정토가 보이느냐?”

“보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하냐?”

 

96마리 소의 혼령들이 극락정토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정토경전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말했다.

“저희들은 여러해 동안 섭씨를 괴롭혀서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거사님의 가르침과 인도로 저희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원한이 하루아침에 녹았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섭 씨도 아미타불염불을 일심으로 하여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랍니다. 거사님과 거사님의 가족들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저희들도 반드시 부처님을 따라서 맞이하겠습니다. 오늘 저희를 위해 염불해주신 것은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후 조용해졌다. 얼마 후 섭씨 아주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말하였다.

“내가 마치 꿈속에서 성에 갔다가 서쪽 거리로 가는데 한 무리의 흉포한 소때를 만났습니다.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갑자기 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 경치가 변했는데, 아름다운 숲 가운데 평평한 풀밭이 있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갑자기 밥 냄새가 강하게 나더니, 소떼가 숲에서 밥을 먹으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 후 다시는 소의 혼령이 섭씨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리고 섭 씨도 채식 하면서 열심히 염불수행을 하였다. 유정밀 거사는 1934년 봄 서강에서 출가하였다. 법명이 혜정이다. 위의 이야기는 출가하기 전에 겪은 일은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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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어떤 비구스님의 전생 기억

 

적공(寂空)스님의 전생과 극락왕생발원

 

여러 수행자들이여, 이글은 내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가르침 청하여 시방삼세의 모든 본존이신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것으로 진실하여 하나의 거짓도 없음을 밝혀둔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여러분이 나의 일을 거울 삼아 교훈을 얻어서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이다. 여러분이 하루라도 빨리 불도를 수행하려는 바른 마음을 일으키고 큰 보리심을 발해서 용맹정진하고 계를 지키며 일념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여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육도윤회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란다.

 

또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곧바로 보리를 증득하고 무상정등정각을 이룬 뒤 각자의 원(願)에 따라 다시 돌아와 여섯 가지 윤회의 세계에 몸을 나투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기 바란다.

 

 

나의 속가 성은 이(李)씨이다. 1989년 3월 해공(海空)법사를 은사로 불문에 귀의하였고,적공(寂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불가에 입문한 뒤, 하루하루 예불과 좌선을 열심히 하였다. 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늘 경전을 가까이하면서 불법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1992년 8월 25일 저녁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 정좌하고 있었다. 저녁 10시 경 갑자기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서 나 자신의 과거 생의 모습을 휜히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너무나 슬퍼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열심히 불법을 공부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94년 8월29일 저녁 법당에서 염불을 할 때는 더 나아가 속가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의 과거 생의 모습까지 휜히 알게 되었다. 그 후 숙명(宿命) 즉, 과거생의 모습과 윤회에 대에 여러 차례 불보살의 증명을 얻게 되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과거생의 기억은 여러 차례 증명을 통해서 입증된 것을 비로소 감히 밝히는 것이다.

 

600년 전 나는 출가한 비구였다.

나는 20세에 출가하여 삼당대계(三堂大戒)를 받고 50여 년을 수행하였다 .선한 업도 많이 지었지만, 속세의 일에 탐욕을 일으키고 연연하여 인간계와 천상계의 복된 과보를 바라고, 정토왕생은 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육도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삼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으며 빚을 갚아야 했다.

 

스님으로서의 삶을 마친 뒤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향락을 탐하게 되었는데, 온 종일 술과 여자를 탐하며 지내는 생황을 하였다 .내 주변에는 여덟 명의 시녀가 있었는데, 비록 여색을 탐하지는 않았지만 명예를 좇고 재물에 욕심내고 이익을 탐한 과보가 커서 악업을 지었다.

 

하지만 전생에 출가수행한 공덕이 크기 때문인지, 목숨을 마친 뒤에 벼슬아치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뒤 많은 병사를 거느리는 장군이 되었는데, 그 풍모가 당당하고 늠름하였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었다. 부귀영화가 넘쳐서 다 누리지 못 했고, 산해진미도 또한 넘쳐서 다 먹지 못했다.

 

온 종일 주지육림 속에서 보내곤 했는데, 당시 24명의 시녀를 옆에 두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면서 다시금 온갖 나쁜 업을 짓게 되었다. 특히 병사들에게 명령 내려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람의 머리를 벤 뒤 그 시체를 강이나 개천에 버렸고 수풀에 숨은 적군도 모두 찾아내어 죽이는 등 많은 죄업을 지었다.

 

그리하여 그 몸을 벗은 뒤에는 삼악도에 떨어져 열 번을 윤회전생하면서 악업의 과보를 갚아야 했다.

 

먼저 세 번은 두꺼비의 몸을 받았다.

왜냐하면 장군으로 살때 많은 사람의 머리를 베어 죽이고 그 시체를 개천에 버렸기 때문이다. 그 과보로 머리 없는 두꺼비로 태어나 수시로 막대기에 맞고 낚시에 걸리고 복부가 뒤집혀서 물에서 죽어서 그 시체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났다. 심지어 근육이 뽑히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를 갚았다.

 

이렇게 세 번 두꺼비의 몸을 받은 뒤, 다시 뀡의 몸을 네 번 받았다.

그 이유는 장군으로 살 때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두려움에 떨면서 수풀에 숨어있는 적군을 찾아내서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입의 쾌락을 탐하여 온종일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살았다. 그 과보로 뀡의 몸을 받아서 창에 찔리고, 칼에 베여서 지지고 삶기고 볶이는 고통을 당하면서 빚을 갚아야했다.

 

네 번이나 뀡의 몸을 받고도 악업을 다 갚지 못하여, 다시 돼지 몸을 세 번 더 받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먹기만 좋아하고 일하기는 싫어했기 때문이다. 시녀들이 밥을 가져오면 입을 벌려 먹고, 옷을 가져오면 손을 벌려 입히게 하고, 늘 고기 먹을 생각만 하면서 나쁜 업을 지었다.

 

그 때문에 돼지의 몸을 받아서 먹다 남아 버리는 음식과 상한 음식을 먹게 되었고, 채찍이나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이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천 번 만 번 칼에 잘리고 뜨거운 솥에 들어가서 갖가지 고통을 당하였다. 두 번 사람 몸을 받아서 입의 쾌락을 탐한 악업의 과보를 이렇게 갚게 되었다.

 

일체의 고통과 모든 즐거움은 모두 나 스스로 지어서 직접 받는 것 (자작자수自作自受) 이며, 인과응보는 참으로 조금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여러 수행자들이여, 내가 삼악도를 윤회전생하면서 받은 갖가지 고통에 대해 알았을 때 너무도 상심하여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지극히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600년 전 수행으로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했으면서도 인간과 하늘의 복을 탐하고 왜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는가? 이 헛된 탐욕때문에 임종의 자리에서 한 생각 잘못하여 열 번이나 삼악도에 떨어졌구나.

 

붉은 흙먼지 가득한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600년을 헛되이 윤회하였구나. 어찌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니겠는가. 600년!!! 이토록 긴 세월을 그리 비천하게 보내다니 또 어찌 부끄러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떤 귀신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인과의 가르침을 믿고 생명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진실로 자기 자신이 윤회해온 과정을 알고 나서 어찌 본사 석가모니불, 본존 관세음보살과 시방삼세 일체재불, 모든 대보살의 자비로운 가피에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제자가 자기의 본사, 본존의 면전에 꿇어 앉아 자기의 숙명을 이해하고 불법을 배우면서 또 한 단계 진일보하였을때, 또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 해야 불보살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열심히 불법을 배우고 일념으로 염불하면서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걱하였다. 사람의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 배우기 어려움을 생각하자, 현생에 어렵게 얻은 사람의 몸으로 열심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불보살님께 죄송하고 부모님께 죄송한 일이다.

 

옛 성현께서 말씀하지 않았는가 "사람 몸얻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얻었고, 불법 듣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들었네, 이번 생에 불국정토에 가지 않으면 다시 어느 때에 갈 수 있으리오?"

 

사람 몸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번 생에 반드시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수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귀신이 왔을 때 뒷 일을 기약할 수 없다. 사람이 임종에 이르렀을 때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 즉,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연꽃 가운데 화생하여 부처님을 뵙고 열심히 수행하여 성불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해냈는가? 아니다. 나는 잠잘때 꿈에 빠지며 또한 망념도 많다. 만약 꿈을 꿀 때조차 정념(正念)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임종의 자리에서 반드시 서방극락정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서원하였다.

오늘 이후로 수시로 계(戒)의 조문을 굳게 기억하여, 지계(持戒)의 금강 같은 날카로운 검으로 오욕육진(五慾六塵)을 베고 삼독(三毒)을 소멸하겠다. 자주자주 무상(無常)을 생각하고 항상 사성제를 사유하며 자비심을 닦아 일체 중생을 숙세의 부모로 여기고, 늘 삼보와 스승의 은덕을 기억하겠다. 생각 생각마다 무상보리를 잊지 않고 용맹정진하겠다. 계를 지키며 염불하여 성불할 때까지 영원히 물러나지 않겠다. 나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여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을 것을 서원한다.

 

나는 비구로 살면서 열심히 수행하였으나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두 생에 걸쳐 인간의 복보(福報)를 얻었다. 그러나 선을 쌓고 덕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갖가지 악을 지어 삼악도에 열 번이나 떨어졌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으로 그 과보를 갚고 나서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600년 세월을 헛되이 보내며 인과응보를 절감하였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어찌하여 아귀도와 지옥도에는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내가 출가하여 불법을 배운 공덕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부유한 집에 태어나 갖가지 악업을 지었지만 단지 축생도에만 떨어져 윤회하며 과보를 갚은 것이다.

 

악업의 인연이 다하고 나서, 불법에 대한 종자가 다시 한번 좋은 인연을 만나서 싹을 튀웠고 그리하여 현생에 다시 출가하여 불법배우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불법의 종자를 심은 다음에 이 종자가 썩지 않는다면 적당한 토양과 온도를 만났을 때 곧 싹을 튀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는 대광명장(大光明蔣)이며 한 번 이근(耳根)을 스치면 영원히 도(道)의 종자가 된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고 쫑카파 대사가 『보리도차제론』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출가생활 오십년에 생사해탈 구하잖고

스스로를 얽어매어 다음생의 복된과보

생각하며 닦았다가 육백년을 윤회했네

부귀공명 비유하면 칼날끝의 꿀과같아

삼악도에 떨어져서 모든빚을 갚게되네

고기반근 탐닉하여 여덟냥을 갚게되고

금수축생 떨어져서 여러차례 윤회했네

참선하여 숙세일을 명백하게 알고보니

스승님은 성인이요 내자신은 범부로세

금생과보 확실하게 전생인연 때문이니

스승에게 절하오며 금강선을 닦아가네

굳센정진 영원토록 물러나지 아니하고

곧장바로 보리좌의 구품연대 오르리라.

 

 

사천성 중강(中江)에서 1995.10.17 일

-적공(寂空)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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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위의 모든 이야기는 불광출판사에서 나온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이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실화들을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들은 자신이 아프거나 가족 등 주변 분이 아플 때나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주시길 간곡히 권합니다.

 

나무아미타불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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