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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감사하는가 ?

 

스님께서는 기도를 말씀 하시면서 종종 감사를 권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부족함이 있어서 성현에게 가호를 청하는 것인데

감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사할 줄 모르면 기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에 대한 감사이며 대 지혜, 대위신력으로 항상 은혜롭게 조화 있게, 완전하게, 우리를 가호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 입니다.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우리는 아직 그런 은혜를 받지 못했으므로 이제부터 받고자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받은 다음에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느냐 말할 것입니다.그렇습니다. 받았으니까 감사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자비하시게 완전한 것을 이미 주신 것을 긍정해야 합니다.이것이 믿음 입니다. 이 믿음을 바탕 하여 끊임없이 감사하며 일심 정진할 때 부처님께서 주신 은혜는 더욱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현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을 돌려보면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노력 없이 받고 있는 수많은 은혜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 성취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공덕의 나타남이므로 진리성에 대한 전면적 긍정과 믿음의 순수성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모르는 기도는 이루기 어려운 것 입니다. 감사 가운데서 수행해 갈 때 감사한 내용은 더욱 가까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실로 감사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만나는 것이며, 감사에서 진리가 자신에게서 꽃 핀다 하겠습니다.

혹 어떤 사람이 감사는 기도 성취를 위한 가정적 방편이라 한다면, 그것은 큰 착오입니다. 하늘에 구름이 끼어서 태양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서 찬란한 태양 광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현실감각이 비록 부처님 공덕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자비공덕은 이미 변합 없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고, 우리의 생명과 환경과 생활위에 은혜는 나타나고 있는 것 입니다.

감사해야 성취합니다. 감사해야 부처님을 만납니다. 끊임없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_ 광덕스님 법문 집에서 발 췌 _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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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느 ROTC장교의 영혼 부탁

(광덕스님 글)


이것은 필자가 봉은사를 맡아 있던 1965년 여름의 일이다. 그 해 홍수가 났다. 신문에는 피해복구공사 중에 장교(중위) 한 분이 순직했음을 알았다. 그 얼마 후 한 노신사 부부가 봉은사를 찾아왔다. 신문에서 본 그 군인의 천도를 의논해 온 것이다. 노부부는 망인의 부모님었다. 7재를 올리기로 한 그 얼마 후 노신사의 이야기다.

"얼마 전 점심을 먹고 잠깐 앉아 있다가 아마 잠깐 졸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역력합니다. 내 곁에 죽은 자식이 찾아오지 않았겠어요. 나는 멍청히 그 애의 얼굴만 쳐다 보았어요. 그 애는 평상시와 같이 활달했어요.

나에게 하는 말이 '아버지, 어머님을 위로 해 주십시요. 어머님은 제가 죽었다고 저렇게 슬퍼하고 계시는데 조금도 그러실 것 없습 니다. 아버지 저기를 보십시요.' 합디다.

그래 손으로 가르키는 곳을 보니 좀 떨어진 멀 지 않은 곳에 한 세계가 벌어져 있지 않겠어요. 자세히는 못 보았어도 아름다운 동산에 거루고각이 대궐같이 솟아 있었어요.

자식이 하는 말이 '저 집이 멀지 않아 제가 가서 살 집입니다. 이 세상 즐거움이란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아버님 어머님 부디 제 걱정을 하지 말아주십시요.

그리고 아버님은 이제 좀 한가로우시니 어머님을 위로해 주십시요. ' 하지 않겠어요. 사실 저는 얼마 전까지 시골에서 공직생활(면장이었다)을 하며 살아왔고, 우리집 사람은 아이가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서울에 와 있었어요. …"

노부부에게는 아들이란 이 하나뿐이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ROTC장교로 입대했었다.
그런데 7재가 지난 후 다시 그의 어머니에게도 나타났다. 현몽이었다. 안락처로 간다는 인사였다.



2. 여고생 영혼의 어리광

(광덕스님 글)


그 때는 필자가 범어사 선원에 있던 1951년 여름의 일이다. 산 너머 양산군 동면 내송리 사베부락에서 중년 부부가 찾아왔다. 맏딸이 갑자기 죽어서 서러워서 왔다.

딸은 동래여고 3년,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두고 바깥마당에 나가더니 차에 밀려 쓰러졌다. 외상 하 나 없는데 혼은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의 7재는 올려지고 위패는 지정전 한 모퉁이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절에 재식이 겹치는 날이면 병풍이 여럿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쉬울 때 나는 여학생 영단에 펼쳐 있던 병풍을 다른 곳으로 가져다 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님이 왔다.

망인의 현몽을 전해 온 것이다.
"어제 낮 방에서 비몽사몽간에 애가 보였어요. 그리고 생전에 어리광 부리듯 내 두 무릎에 매달리면서 '스님들 정성으로 제가 아주 좋은 데로 간답니다. 그런데 내 곁에 병풍은 왜 자주 가져가지요?' 하며 못마땅해 하더군요."

이 사실은 필자만이 아는 사실이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학생 영단에 놓으려고 다홍빛 산리라를 몇 번이고 꺽어왔다. 그 후 7재를 마친 후에도 부부는 오래도록 절에 와서 염불을 하고 설법을 들었다.

7재 후에 죽은 딸이 부모에게 기쁜 얼굴로 현몽하며 '이제 저는 아주 좋은 곳으로 태어납니다. 엄마 아빠 안녕'하더라는 것이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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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승 문 답

원저 :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


구 술 : 여주선생
수 록 : 임유양
번 역 : 박금규(원광대학교 사범대 한문교육과 교수)

 




번역자의 이끄는 말

이 '저승문답'은 최근(1945) 중국의 제2의 포청천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명판관 여주(黎澍)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이다.

여주선생은 다 아는 바대로 나이 많고 덕이 높고 또 명판관으로 법률계에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는 늘 평소에 자신이 저승의 재판관으로 다년간 있었고,
수면중에 잠깐 명부(冥府)에 가서 그 옥안(獄案)들을 처리했노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때 중국군의 참모장 임유양은 그와 매우 절친한 사이로 그러한 저승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바쁜 와중에도 어느 날 하루 짬을 내어 본격적으로 임참모장이 그간의 경위를 직접 묻고
그에 대한 여주선생의 구술(口述)을 손수 수록하여 저승문답이란 한 권의 책이 이루어진 것이다.

흔히들 요즘 신세대인들은
자칭 소위 과학과 문화를 연연하여 저 신명세계 귀신이야기를 하면
아주 질겁을 하고 무슨 벌레를 씹었거나 똥밟은 것처럼 몸서릴 치고 도망간다.
그리고 아주 무지몽매한 미개인 취급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 신명세계를 부정하는 현대 문화인들이
살인, 강도, 강간, 부정, 비리를 이처럼 서슴없이 자행하는 것일까?
생혈을 빨고 인육을 뜯는 저 막가파나 지존파 등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이 '심령' '신명세계'에 중점을 두고 교화하는 것일텐데,
이렇게 번창한 종교의 주장이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불교의 윤회설은 차치하고서라도 인류의 영원한 스승인 공자도 그 주역(周易) 계사편에서

" 역은 위로는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지리를 살피고 있다.
그러므로 이승과 저승의 일을 알며, 사물의 시초를 미루어 사물의 종말을 알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이치를 알 수 있으니,
정기(精氣)가 엉기어 모인 것이 생물이 되고, 변하여진 것이 영혼인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실체와 정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였고, 또 중용(中庸)에서 말하기를,

" 귀신의 덕됨이 왕성하기도 하구나.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본체가 되어 있어 빠뜨릴 수가 없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위 사대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귀신을 무시한다든지 귀신을 말하기를 꺼린다는 것은
바로 공자를 무시한 것이며, 주역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우주 자연의 섭리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모난 것이 있으면 둥근 것이 있는 것이다.

이걸 미루어 생(生)과 멸(滅),음(陰)과 양(陽),유(幽)와 명(明),인(人)과 귀(鬼)가
모두 상대적으로 넓혀져 존립하는 것이 사물의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두렵고 놀라서 무서워 떨면서 지나온 일들을 반성하고 다짐하였다.

귀신을 믿고 안믿고간에 어쨌든 이 한편의 책은 권선징악의 공이 모두 갖추어 있어서
세상인심을 바로 잡는 데에 유익된 바가 없지 않겠기에 여기에 번역하여 게재하는 바이다.


선생이 지난날, 일찍이 저승의 재판관이 되었었다 하셨는데 정말 그랬습니까?
그렇습니다. 세간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모두 괴이하게 여길 터이지만
나로서 볼 것 같으면 그 일이 일상적인 일이어서 조금도 괴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느 때의 일이었습니까?
청나라말 광서(光緖) 경자(庚子, 1900)무렵의 일로써, 내 나이 열아홉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소임은 어떤 직무에 관계했으며 어느 부 밑에 속했습니까? 그리고 직원은 몇 명이 있었는지요?
동악부(東嶽府) 아래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동악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건을 집행한 뒤에 공사를 가지고 보고를 올렸을 뿐입니다.
나는 그때 분정(分庭)의 정장(庭長)을 책임 맡았었는데, 따로 배심원 네사람을 두었었고
봉사한 귀졸(鬼卒)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저승재판관을 몇 년이나 맡았었습니까? 그리고 그 일은 매일 가서 처리했습니까?
또 어느 지방을 관할했었습니까?
전후 4~5년간을 했었고, 날마다 가서 했습니다.
관할구역은 화북(華北)의 다섯 성을 맡았었습니다.

저승에서는 왜 선생을 재판관으로 삼았었는지요?
나 또한 일찍이 같은 사건을 맡아서 조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또 수전세(數前世)에서도 저승판관을 했었습니다.
그 속세 인연의 끈으로 해서 다시 그 일을 맡았을 뿐입니다.

저승에도 규정 법률이 있습니까? 있다면 선생은 그런 율법을 학습하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재판에 착오가 없을 수 있을까요?
내가 그 규정 법률이 있었던 것을 못 보았던 것 같은데,
다만 그 제안을 판결하면 저절로 그 급소에 정확히 들어맞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선생이 맡아서 했던 일은 어떤 종류의 사건이었습니까?
내가 맡았던 일은 사람이 죽은지 10개월 이내의 것으로,
그 사람의 생전에 지은 선행과 악행의 사건을 맡아서 했습니다.
기한을 넘긴 일을 따로 맡아서 처리하는 주무자가 있었습니다.

선생은 그때에 염라대왕을 보았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의 생전에 하였던 선악의 행위를 귀신이 어떻게 다 알고 다 볼 수 있단 말입니까?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 귀신은 형체가 없는 것도 능히 다 볼 수 있고, 소리가 없는 것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인간 세계의 온갖 사상과 행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귀신은 스스로 다 알고 다 알 수 있습니다.
그 기록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귀신은 사람의 머리 위의 붉고, 누렇고, 희고, 검은 빛깔을 보고서
그 사람의 행위와 생각의 선악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죄 지은 귀신도 또한 교활한 변명을 합니까?
예. 극히 많습니다. 죄 지은 귀신은 그가 지은 죄악에 대해서 역시 교활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다가 그 죄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때에서야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일찍이 한 귀신을 심판하는데,
그 사람이 생전에 겉으로는 위선적인 행위를 닦으면서 남 모르게 못된 짓을 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악행 범죄의 사실에 대해서 극력 부인을 하는데,
내가 보니까 그 사람의 죄악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증거를 확실히 파헤쳐서 극형을 가하려 하는 찰라에,
그 귀신이 뜻밖에 금강경(金剛經)을 외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좌우 배심원들이 그 귀신의 머리 위에 붉은 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심판을 정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그 배심원들이 그 귀신한테서 뇌물을 받고 사정에 끌려서 그러는가 하고
이에 형을 더 무겁게 가하려 하니 그 귀신이 더욱 힘써 금강경을 외우는 것입니다.
좌우 배심원들이 나더러 "빨리 일어나서 삼가 공손히 서 있어라"고 하더군요.

내가 이르기를 ,
" 나는 공판정의 우두머리인데 어찌하여 범죄자를 향하여 공손히 서 있어야 하느냐? "고 했더니,
좌우 배심원들이 이르기를, "아닙니다. 이 귀신의 머리정수에 불광(佛光)이 이미 나타났는데,
그런데도 그를 심판하면 부처님을 모독한 게 되니 심판을 정지한 것만 못합니다"라 해요.

 


내가 그때 그들을 보니까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두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공경한지 극히 장엄해요.

내가 그들에게 묻기를,"그러면 이 죄인을 어떻게 판별하여 처리하려 하는가?" 하고 따졌더니,
그들이 이르기를, "그를 판결하기를 사람의 태에 보내기를 수차례하여 그로 하여금
금강경을 기억하여 외울 수 없을 때를 기다려 그때에 가서 다시 그 죄를 다스리면 됩니다."그래요.

내가 말하기를,
"그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면 그로 하여금 오히려 유익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또 그를 수차례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면, 그가 응보(應報)를 받게 되는 것은
수백년 이후라야 되는데, 어찌 그리 더디게 하여 그르치려 하는가?" 고 했더니

좌우에서 말하기를,
"그로 하여금 잠깐 태어났다가 금방 태안에서 죽게 하면
몇 년이 안 가서 이미 몇 대를 거친 것이 되니, 그가 지은 죄업은 죄업대로 과보를 받게 되고,
금강경을 외운 것은 또한 금강경을 외운 공덕이 있게 되니,
이 두 가지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훗날 그가 지은 죄업을 분별하여 응보를 받게 하면
두 가지 일이 조금도 어그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마침내 그렇게 하도록 윤허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귀신의 뜻은 얼이 빠져 꿈속 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맑고 성성하여 평상시와 같습니까?
맑고 성성하여 살아 있을 때와 같습니다.

저승에 들어갈 때는 매일 어느 때입니까? 그리고 그 안건을 심리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최초에는 매일 해질 무렵이지만, 그후로는 대낮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오후에 갑니다.
오고 갈 적에는 모두 간단한 상여를 타고 가는데, 달리는 발걸음이 매우 빠릅니다.
그리고 안건을 심리하는 시간은 언제나 짧은 시간 내에 합니다.
그러나 복잡한 안건을 만나면 역시 연장하여 여러 날이 걸리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안건은 극히 적습니다.

저승에 들어갈 때에 그 사람의 신체는 현재 수면(睡眠)상태입니까?
저승에 들어갈 때에는 몸은 평상 위에 누워 있고 모습은 깊이 잠이 든 것 같습니다.
마시지도 않고 먹지 않아도 또한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친한 벗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또 불편한 일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눈을 감은 채 건성건성 대답하는데, 모습이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았습니다.
어떤 객이 와서 묻고 하면 또한 그 물음에 따라 대답하는데,
다만 말이 입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 객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승 갔다가 되살아 나오면 정신도 또한 피곤한 줄을 깨닫습니까?
정신은 조금 피곤하고 모습은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습니다.

저승길에도 음식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음식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승 재판관의 복장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또 그 공문의 격식은 어떻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으로 있을 때는 아직 청나라가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복장과 공문의 격식은 모두 만주국 청나라의 법식과 똑 같았습니다.
다만 중화민국이 들어선 이후로는 고쳐져서 새 제도를 따랐습니다.

저승판관도 역시 봉급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다만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도 쓸 곳이 없기 때문에 수령하지 않습니다.

저승의 형벌의 종류는 얼마나 됩니까?
저승의 형벌의 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이 인간세상의 형벌에 비교하면 참혹하기가 백배나 됩니다.
만약 지금 사람들이 그걸 본다면 참혹한 형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경력으로 보면, 인류가 차라리 인간 세상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절대로 저승 법정에서는 형벌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는 형을 받으면 형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형이 끝난 뒤에도 또 다시 그 죄과에 따라 재형을 받습니다.

비유하자면,
이 세상에서는 열 사람을 죽였다면 그 죄는 한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반드시 열 번의 형을 받습니다.

형이 끝나면 다시 생을 바꿔 태어난 십대의 생까지 살인죄의 사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톱으로 자르고, 맷돌로 갈고, 칼끝이 뾰쪽뾰쪽 세운 산 위를 맨발로 걸어서
오르게 하고, 기름 가마솥에 넣고 수레로 사지를 찢고 하는 등의 형이 실제로 있습니다.
죄의 응보는 참으로 두렵습니다. 이와 같으니까요.

저승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떤 종류의 덕행입니까?
그리고 최악의 죄로는 어떤 종류의 죄업입니까?
저승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남자는 충과 효이고, 여자는 절개와 효도입니다.
이 두 가지를 행한 사람은 비록 죄업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반드시 경감하여 줍니다.

최악으로 여기는 것은 음탕과 살인죄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살인죄는 또 음탕에 비하여 더욱 무겁습니다.

만약에 음탕으로 인하여 인명까지 살해한 자는
두 가지 중죄를 함께 저질렀기 때문에 한결 죄를 덧씌운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만가지 악 가운데 음탕이 첫째요, 백가지 선 가운데 효도가 먼저다"라고
한 말이 참으로 헛말이 아닙니다.

저승에는 이미 문장으로 이루어진 성문법률(成文法律)이 없는데,
그 죄의 가볍고 무거운 것을 어떻게 저울질합니까?
여기에서 그 범죄의 동기와 발생의 결과를 보고 그 정황을 살피고 사리를 참작하여서
그 경중을 결정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절도죄를 한 것을 가지고 비유한다면,
그 절도질을 한 사람이 본래 생계에 압박되어 한 것이고,
망녕되어 다른 나쁜 데에다가 쓰려고 한 짓이 아니라면,
그리고 도둑맞은 사람이 부자인 한 사람에만 관계되었고, 그 액수도 크지 않으며,
또 그 부자의 생계에 별 영향도 없고 그 부자가 그 도둑맞은 것에 대해 또한 크게 애석하게
여기지도 않는다던가, 또 그 도둑맞은 것이 장차 그걸 가지고 가서 음탕한 짓이나, 도박을 하거나,
담배, 술등 정당하지 못한 부정한 곳에 용도로 쓰려고 한 것이라면, 그 죄는 되려 가볍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도둑맞은 부자가 그것을 하인들에게 의심을 두고 심하게 꾸중을 하여,
그 책망을 받은 하인이 억울하고 분이 나서 자살을 하게 되었다면,
또 가난한 사람의 쌀 사고 약 살 돈이라면,
그리고 도둑맞은 것으로 인하여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또는 압박을 받아 스스로 몸을 빼어 싸움에 뛰어들어 인명을 살상하는 데 이르렀다면
그 정황을 살필 때 매우 무겁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는 보통의 절도죄만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저승의 법정에서 죄를 심판할 때도 간혹 착오가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저승법정에서는 범인의 죄상에 대해서 모두 일찍이 정밀히 조사해 두었고,
또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 심판은 지극히 공정합니다.
따라서 착오된 일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 범인은 하룻사이 또는 일생동안에 한 생각 일어났다가 한 생각 없어지는 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또 선행을 한 것, 악행을 저지른 것을 바로 자기도 다 기억을 못합니다.
그러나 저승 법정에서는 사람들의 공과 죄를 아주 미세한 것까지도 죄다 기록되었다면
또 어찌 그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것이 이와 같음을 꺼리지 않을까요?
사람의 사상이란 게 마치 한 생각 일어났다가 한 생각 사라지고
갑자기 해놓고선 이내 잊어버리곤 하여 저 공중의 새 발자국 같고 물위에 뜬 거품 같아서
저승에서도 역시 다 기재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한 마음을 오로지 쏟아서 그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떠나지 않으면
비록 나타나지 않은 행위일지라도 또한 공과 죄가 있으면 기록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생각이 행위로 이뤄진다면 그 공과 죄는 더욱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죽은 뒤에 역시 저승에 가서 재판을 받습니까?
저승 법정에서 관리하는 것은 모두 업(業)안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용록(庸碌)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들로서 큰 선행도 없고 큰 악행도 없는 사람들을 관리합니다.

만약에 크게 수행한 사람은
죽은 뒤에 곧바로 극락,천당(天界)에 올라가기 때문에 저승을 거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승명부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저승에서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중 혹시 천당에 오르는 것이 조금 늦는 사람은 어쩌다가 저승을 거쳐가기도 하는
데, 이런 사람이 저승에 오면, 저승판관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려서서 그를 맞이합니다.
그러면 그 혼백은 걸을 때 마다 점점 높아져서 마치 구름사다리를 걷는 것 같습니다.
그가 저승법정에 가까이 오면 그 높이가 법정지붕의 용마루와 나란히 섭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름점고가 끝나는 즉시 곧바로 천당에 오르기 때문에 잡아매어 둘 수가 없습니다.

저승법정에서도 서양인을 잡아옵니까? 만약에 서양인이 오면 피차에 언어는 어떻게 회통합니까?
만약에 양인이 없다면 양인이 죽은 뒤에는 어디에 가서 심판을 받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이 되었을 때가 마침 경자년(庚子,1900)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공격한 지
55일만에 항복한 뒤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군대와 민간인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승에도 다소의 서양사람들이 법정에 들어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승에서는 저절로 그들의 말이 통해(通解)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난리에 죽은 한 제독(提督)과 또 충성으로 나라를 보위하다가 의분이 복받쳐
슬퍼하고 한탄하다가 몸을 버린 자가 심리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나는 친히 그들이 똑같이 곧바로 천계(天界)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한번도 그들의 심리를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중국의 저승 재판소가 이 한 곳만이 아니고,
또 구미(歐美)의 각 나라도 또한 따로 저승 재판소가 있어서 각기 그 정황에 따라 처리합니다.

저승에서는 어떻게 이승 사람을 써서 저승으로 데려갑니까?
부유하고 고귀한 사람들은 그 저택에는 항상 많은 신들이 수호하고 있고,
그 사람의 좌우에서 심부름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날쌔고 힘이 장사이어서
양기(陽氣)가 왕성하기 때문에, 저승사자가 그 사람 병상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장군이 병영 안에서 병들어 죽으면 그 4주동안은 경위가 삼엄하고 창과 대포가
죽 늘어서 있으며, 영내의 병사들은 또 모두 소년들이어서 양기가 펄펄 끓고 있어서
저승사자 귀신이 그 앞에 가까이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산 사람의 혼을 써서 그를 끌어갑니다. 그래서야 심리할 안건이 도달합니다.

칼로 목이 잘려 죽거나 기타 참혹하게 죽은 귀신들은 그 몸뚱이와 머리가 온전치 못한데,
그 영혼들은 보통 병들어 죽은 귀신들과 구분이 있습니까?
그 영혼만은 모두 온전하여 보통귀신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직 그 얼굴 모습만이 조금 모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상처에 핏자국이 남아 있고, 용모가 참척하여 고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귀신도 또한 소멸의 기한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내가 본 옛 귀신은 멀리는 송나라, 원나라 때까지에만 이르고,
당나라 이상의 귀신은 절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선불(仙佛)이 된 분을 제외하고는 만고에 길이 생존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에 이르는 동안에 용모가 점점 변하여 가는데,
귀신의 용모도 또한 나이에 따라 노쇠해집니까?
귀신의 용모는 그 병들어 죽을 때까지는 똑 같습니다.
해가 오래 지났다고 해서 노쇠해지지 않습니다.

저승에도 낮과 밤이 있고, 해와 달, 별들이 있습니까?
저승에도 역시 낮과 밤이 있어 이승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오직 해와 달, 별들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정확한 모습은 마치 사천(四川)에 큰 안개가 낀 것 같고
화북(華北)에 뿌연 황사 덮인 날씨와 같아서 이승의 밝은 세계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귀신들은 따스한 8시 이후부터 11시까지에 이르러서야 그칩니다.
그리하여 귀신들은 양기가 터지기 시작하면 모두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 피하여 숨습니다.
오후에 그늘이 점점 많아지면 외출합니다.

저승에도 역시 춥고 덥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다만 여름에는 이승같은 무더위가 없고 겨울에도 이승같은 매서운 추위에 비해 덜 춥습니다.

저승에도 역시 음식점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승 사람이 만든 종이돈을 저승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까?
예, 음식점이 있지요. 거기에는 나물 음식종류가 많습니다.
이승 사람이 만든 지전(紙錢)을 저들도 또한 사용하여서 물건을 살수가 있습니다.

저승에서도 매일 세끼 밥을 먹습니까?
거기에서는 매일 한끼만 먹어도 여러 날 배부를 수 있어서 날마다 꼭 세끼를 먹지 않습니다.

저승에서도 잠을 잡니까?
예, 거기에도 역시 침상과 잠자리, 요, 이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자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겨우 가다가 잠깐 벽에 기대든지, 눈을 감고 조금 쉬든지 하면 곧 수면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승사람들처럼 매양 잠잘 때 꼭 7~8시간씩 자는 것은 아닙니다.

저승에도 시가지가 있고, 상점이 있습니까?
예, 있지요. 그러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여기 인간 세상의 작은 점포와 다름이 없습니다.
거기서 파는 것은 음식과 잡용품들이 많고, 다만 웅장하고 화려하고 넓고 큰 인간세계의
큰 공사(公司)라든지 양행(洋行)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승에서 만든 음식을 귀신들도 먹습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그 기(氣)만을 흠향할 뿐이요, 진짜로 먹지는 않습니다.

만약 여름철에 식품이 두 그릇이 있어서
한 그릇은 귀신에게 제공을 했고, 다른 한 그릇은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 제공한 음식은 제공하지 않은 음식과 비교하여 반드시 먼저 부패합니다.
그것은 귀신이 이미 그 음식의 기를 섭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저승의 음식을 이승의 것과 비교하여 어떤 게 더 좋습니까?
아마 이승의 것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귀신도 그 분묘에 가서 살고 쉬고 하는 곳으로 삼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 처음 죽을 때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역시 고통이 있습니까?
사람이 죽을 때는 모두 질병이 있고,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는 마치 방문을 열고 외출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곤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아프고 괴로운 고통을 되돌아보면 도리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가 처자식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는 두고 온 재산에 미련을 두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숨이 떨어지지 못하면 영혼이 쉽게 육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때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만약이 사람이 타고난 성품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고,
처자식과 재산에 대해서 또한 미련과 끌리는 욕심이 없다면,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곧바로 옷을 벗듯이 훌훌 떠나가는데,
조금도 힘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경을 외워 죽은 혼령을 천도하면 망인에게 결국 이익이 있습니까?
스님이 경을 외우면 망인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특별히 일괄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비유하자면 그 사람이 생전에 큰 선행을 하였으면 죽은 뒤에 곧바로 극락,천계에 오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본래 경 읽은 공덕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생전에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 즉시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 역시 쉽게 이 경 읽은 공덕을 받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보통 사람에게 이르러서는 생전에 큰 선행도 악행도 없는 사람은 경을 읽어서
천도를 얻으면 어두운 지옥세계가 환하게 밝아져서 죄업이 경감되고 이익이 특별히 커집니다.
그리고 경을 외우는 사람의 도의 행적이 높고 낮음에 따라서 또한 막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경을 외우는 사람이 도가 높은 고승이고 효자 현손과 관계가 있으면,
그 경 한권을 외우는 것이 보통 중이 외우는 것보다 열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어떤 보통 평범한 스님이라도 경을 지극 정성으로 외우면 또한 상당한 이익이 있습니다.

만약에 행이 없는 막행막작의 스님이고 또 마음이 전일치 못하여 건성건성 외운다면
이익도 적을 뿐 아니라, 어떤 때는 터럭 끝만큼도 이익 되는 게 없습니다.
더구나 망인의 과보에는 효과에 이르지 못합니다.

또 송경의 가장 좋은 효과는 망인의 7일,49일 이내가 좋고,
이 기간을 지나면 망인이 지은 업에 따라 이미 다른 데에 생을 바꿔 태어나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공덕이 돌아가서 죽은 자는 바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귀신과 사람의 수효가 어느 것이 더 많고 어느 편이 더 적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귀신을 무서워하는데, 귀신도 사람을 무서워합니까?
귀신세계의 귀신의 수효는 인간세계의 사람들의 수효에 비해 그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오고 가고 가고 오고 울타리에 맞대고 담벼락에 붙어 있어 가는 곳마다 모두 다 귀신들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도, 귀신들은 길 한 가운데보다는 도로 양편 곁으로 많이 걸어 다닙니다.
사람들은 밝은 곳을 따라 다니는데, 귀신들은 어두컴컴한 곳을 따라 다닙니다.

그런데 사람도 귀신을 무서워 하지만 귀신도 또한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그리하여 귀신도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또한 반드시 피하여 달아나 버립니다.
정직한 사람과 군자는 귀신도 반드시 공경하지만 그 귀신들이 업신여기고 농락하는 자는
모두 심성이 바르지 못하거나 시운이 쇠미해진 사람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오후부터 해질 무렵 저녁 늦은 시간까지는 길을 걸어갈 때에
절대로 길 양편 가장자리나 어두컴컴한 그림자 진 곳은 걷지를 말아야 합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문밖에 나설 때에는 반드시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걷되
가끔씩 기침소리를 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피해 달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뜻밖에 나오면 귀신과 대질러서 그 충격으로 거꾸러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람 몸도 역시 오싹 한기가 끼치고 겁내어 떨리게 되는데,
이것은 음과 양이 서로 상충되어 피차가 모두 불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걸어 다니는 것과 산사람이 걷는 것과 구분이 있습니까?
귀신의 발 부위는 분명치 못하여 마치 안개 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고
걸음걸이가 매우 빨라서 사람의 느린 걸음과는 같지 않습니다.

귀신이 닭울음소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햇빛이 밝아오면 영혼이 불안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햇빛을 피하여 달아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불이 달궈진 큰 기계의 용광로 열기를 무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몸가짐이 품행있는 귀신은 역시 닭울음소리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선생의 전세에서부터 쌓은 그 근기가 이와 같고 또 보통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셨으니,
아마 내세에도 역시 윤회생사(輪回生死)를 면제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윤회생사를 뛰어 넘는다는 게 어찌 그리 용이할 수 있습니까?
즉 나의 내생에도 역시 면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같은 종사자에게 부탁하여 이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르기를,
나의 내세에는 응당 반드시 하남과 남양일대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단 수십년 이내에 세상의 물정과 세태인사(世態人事)가 변천하여
아마 저승의 기록도 고쳐질 수도 있을겁니다.

저승의 관리들도 역시 인간세상을 바꿔 생을 받아 태어납니까?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현재 공무원으로 있는 사람은 특히 높이 취직하는 것이
무직자인 보통사람에 비해 쉬운 것과 같습니다.

귀신이 인태(人胎)에 들어가는 것은 수태(受胎)시에 즉시 들어 갑니까?
아니면 출산시에 들어갑니까?
두 가지 다 있습니다.

여러 귀신들이 우글우글 왕성한 것은 오랜동안 저승에 떨어져 있어서
어찌하여 일찍이 빠져 나오지 않는 것입니까?
사람은 적고 귀신은 많기 때문에 그에 배당하여 분배할 수 없어서입니다.
그리고 또 태어나는 집도 그 귀신과 원래 인연이 있어야지 바야흐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생전에 교제가 넓어서 서로 아는 사이가 많다 보면
바로 그 사람 집에서 투태 되기가 자연 쉬워집니다.

만약에 빈궁한 사람이 늙어 죽을 때까지 동구 밖까지도 나가보지 못해서
평소 사람들과의 교제가 극히 적으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 귀신무리에 젖어들어
생을 받는 어떤 기회의 인연으로 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오랫동안 기다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인연이 있는 자를 만나면 이에 곧 생을 받아 투태하게 됩니다.

불교를 배운 사람은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고 도교를 배운 사람은 통천복지에 태어나지만
유교를 배운 사람들은 죽은 뒤에 어디에 가서 태어납니까?
역시 하늘나라 천계(天界)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선생은 그 뒤에 어찌하여 저승판관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원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고,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휴직하기를 빌었지만 번번이 모두 허락을 받지 못했었는데
그 뒤에 동사자들이 금강경(金剛經)을 많이 외우도록 가르쳐 주어서 그 법대로 시행했더니
그 공덕이 쌓여 2천번 이상이 찼기 때문에 드디어 다시는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선생은 평소에도 늘 귀신을 볼 수 있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으로 있을 때에는 귀신을 호출했을 때나 안했을 때를 막론하고 늘 귀신을
볼 수 있었지만 중화민국(中華民國)초 이후부터는 귀신을 보는 것이 점점 적어지더니,
중화민국 10년 이후에는 완전히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맨 처음 저승판관으로 들어오라는 것을 어떻게 통지 받았습니까?
어느 날 밤에 꿈속에서 옛 의관을 단정히 갖춘 한 사람이 찾아와서
내 방으로 들어서서 이르기를 "중대한 일이 있어서 정성스레 받들어 모시려하니
수고스럽겠지만 바쁜 일을 도와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어떤 일을 위임하려는 지는 모르나, 다만 내 힘이 모자랄까 두렵다"고 하였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제발 윤허만 해준다면 할 수없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하기에,
나는 그가 본 뜻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오직 그의 예의바른 용모가 단정하고 공경하며,
그 태도가 지극정성 간절하여 정의상 차마 물리칠 수가 없어 마침내 묵묵히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약속한 수일 뒤에 곧 모시러 오겠노라고
다짐하고 드디어 이별하였습니다. 깨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내 자신 속으로 한낮 꿈이라 여기고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드디어 4~5일이 지난뒤에,
꿈속의 그 사람이 또 와서는 내게 일러 말하기를 "지난번의 승낙해주신 은혜를 받잡고
특별히 가마를 준비하여 정성스레 받들어 모시려고 왔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내가 보니까 말 한 필의 수레가 문밖에 메어 있어서 드디어 함께 수레에 올랐더니,
얼마 안가서 어떤 관아(官衙)에 이르렀습니다.

수레에서 내려서 그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 사람이 나를 인도하여 한 행랑방에 이르러 자리에 앉은지 조금 후에 바로
대청마루에 올라 안건을 심리하도록 청하였는데, 한 범죄인을 끌어다가 놓고
좌우배심원들이 원안을 진술하여 주면서 나에게 판결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본래 이의 설정을 모르는데 어찌 감히 망령되이 판결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거절을 하니,
좌우 배심원이 이르기를, "그대가 성심으로 미루어 헤아려 보면 그 의사가 어떠한지를
곧 법에 비추어 징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기에 내가 잠깐 자세히 생각해보고 이르기를
"이러 이러한 것이냐"고 했더니, 좌우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곧 나에게 판결문에 서명하도록 하고 죄범을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마차로 나를 돌려 보내주었습니다.

선생의 부모님도 이 실정을 아셨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이 된 최초에는 그 비밀을 잘 보전하려고 감히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었는데,
그 뒤에 부모님이 내가 빈방에 혼자 있으면서도 간간이 사람과 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차차 그 실정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대개 내가 저승판관이 된 뒤부터는
항상 저승친구들의 왕래가 있었는데 오직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이 들을 수 있었지,
다른 사람은 모두 듣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오직 나의 말만을 들었었지요.

저승친구들이 올 때에는 역시 음식을 많이 장만하고 초대합니까?
아닙니다. 다만 맑은 차 한 잔이면 이미 그 정을 다하는 데 족합니다.

저승에서도 역시 해마다 그 명절과 휴가가 있습니까?
예. 이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음력 설날과 청명, 한식, 단오, 추석, 동짓날 등을 만나면 역시 반드시 며칠을 쉽니다.
그러나 단 아직 일, 월, 화, 수, 목, 금, 토 등의 주일은 없었습니다.

귀신은 어떻게 그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까?
모든 귀신들은 모두 마음대로 변환(變幻)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저승 법정의 허가를 얻어야 됩니다.

선생은 일찍이 무슨 무슨 중요한 안건을 심판하였습니까?
일체의 모든 안건이 모두 다 매우 평범한 안건으로서
절대로 인정과 사리의 밖의 것은 없었습니다.
또 그 죄상도 환히 밝아서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복잡 다단하여 밝히기 어려운 정황은 없었습니다.

일찍이 각처를 유람한 경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소의 머리를 하고 말 얼굴을 한 귀신이 정말 있습니까?
모두 가면의 도구를 쓰고 흉폭한 혼령들을 공포케 하려고 한 것입니다.
만약 어질고 착한 혼령들에게는 이런 흉칙한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새, 짐승의 혼령은 역시 새, 짐승의 형상을 하였습니까?
이것은 따로 한 부에서 맡아서 관할한 바로써 나에게는 관계치 않았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승에서도 염불하면서 수행하는 자가 있습니까?
염불을 하고 송경(誦經)을 한 사람은 이미 이런 공덕이 있는데, 저승의 모든 귀신들이 어찌
빨리 염불 송경을 하여 지옥에서 벗어나서 극락,천당으로 오르기를 구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염불을 할 줄을 모른다면 어찌 다른 사람의 염불하는 것을 따라서 본받지 않는지요?
한 번 저승에 도착하면
바로 그의 업력(業力)에 가로 막혀서 자연 그 염불하고 송경할 줄을 모릅니다.
즉 우리가 염불하고 송경을 하면 저들도 보고들은 바가 없기 때문에
수행은 마땅히 이 한 입기운이 끊어지기 전에 해야지 한번 숨이 끊어지면 힘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귀신은 이미 형체가 없는 것(無形)을 볼수가 있고 소리가 없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우리들의 염불 수행하는 것은 도리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자기의 업력에 가리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험삼아 비교하여 봅시다.
세간의 어떤 사람이 본래 신앙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굶주리고 추위에 핍박되어서
우리들의 염불수행에 대하면 역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곧 그로 하여금 우연히 보고 듣게 하면
그러나 그 사람의 욕심에 끌리고 얽매여서 그 신심(信心)이 일어나지 않고,
또 신심이 견고하지 않아서 마침내 수행하지도 않고 염불하지도 않습니다.
저 귀신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귀신의 말소리와 우리 인간의 말소리와 어떻게 다릅니까?
귀신의 말소리는 날카롭고 짧고도 급합니다.

이 세상을 귀신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과 귀신이 함께 섞이어 사는 게 되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승과 저승이 둘로 동떨어진 것인게 결국 그 경계는 어떻게 구분합니까?
그 나눠진 경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분계가 없는 것 같기도 하여
이런 정황은 참으로 뚜렷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산 사람의 혼과 죽은 사람의 귀신이 그 형상과 그 얼굴빛이 차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는 그 때 거기에 대해서는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당연히 조금은 분별이 있지요?

귀신도 역시 어떤 감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 그들도 역시 감각이 있어 심히 괴로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몹시 슬픈 것이 많습니다.

귀신이 사람의 태에 들어갈 때(入胎)에 저승에서는 무슨 교훈(敎訓)이 없습니까?
가령 그들로 하여금 악을 돌이켜 선으로 향하라는 말 따위 말입니다.
없습니다. 오직 새나 짐승의 태에 던져질 때에는 귀신으로 하여금 그 정황을 모르게 하고,
또 남자 여자를 바꿔 만들 때에는 반드시 어떤 누각에서 좋은 경치를 구경케 한다든지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속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갖게 합니다.

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해와 달이 밝게 비치고 있는데,
어찌 저 저승(幽界)에는 비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어떤 물건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만일 이승과 저승이 다른 지역이라면 어떻게 사람과 귀신이 함께 길을 갈 수가 있습니까?
항상 구름과 안개가 막아 가리웠기 때문에, 저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을 보지 못합니다.
다만 귀신들은 밝은 데서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만 갈 수 있고 더욱이
그 밤사이에 활동하기 때문에 사람과 귀신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저승에서는 어떤 책력을 씁니까? 음력입니까? 양력입니까?
그리고 모든 공문서에 역시 년, 월, 일을 씁니까?
예, 만청(滿淸)시대에는 만청시대의 책력을 썼고,
공문서에서 쓰는 년, 월, 일도 이승과 똑 같습니다.

저승에도 또한 비,바람,눈,서리가 있습니까?
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승의 비, 바람, 눈 서리를 만날 때 저승의 모든 귀신들이 역시
그 추위에 덜덜 떨면서 괴로워하고 또 잔뜩 웅크리고 오그라들어 편치 못한 상태를 보입니다.

귀신들도 또한 서로 응수(應酬)하고,애경사에 경축하고 조문하는 예절이 있습니까?
예, 이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향촉(香燭)은 어디에 쓰입니까?
촛불은 그 광명(光明)을 취하고, 향은 그들을 불러오게 하는 데 쓰입니다.

폭죽은 어디에 쓰입니까?
귀신들은 폭죽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므로 적의하게 쓰일 데가 없는것 같습니다.

그 염불송경이 그렇게 큰 공덕이 있다면, 유가의 경서를 읽는 것도 또한 공덕이 있습니까?
예, 공덕이 있습니다.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은 위다요,도교의 호법신은 왕영관(靈官)인데
유교도 또한 호법신이 있습니까?
모릅니다. 유교는 신도(神道)로써 설교하지 않기 때문에 호법신의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경전, 서적은 귀신의 가호를 받는 것은 역시 의심할 의의가 없습니다.

저승의 봉급은 어디에서 마련하여 옵니까?
이것 역시 금전, 양곡, 세금의 항목으로 거두어들인 것입니까?
일찍이 이것에 대해서 그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들은 나에게 묻지 말라고 부탁합디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사람의 머리 위의 빛깔은 무슨 색으로써 선과 악을 삼습니까?
붉고, 희고, 누런 색을 좋게 여기고, 검은 색을 나쁘게 여깁니다.

귀신이 사람으로 변하고, 사람이 귀신으로 태어난다면
결국 이 세간에는 사람이 먼저입니까, 귀신이 먼저입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마땅히 두 방면으로 나누어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먼 상고시절 이전에 혼돈이 처음 열리고 순박(醇朴)한 기운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먼저 인간이 있은 뒤로부터 뒤에 귀신이 있었고, 그 후세에는 귀신이 먼저 있은 뒤로부터
사람이 있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도 역시 생각이 있어서 이승의 아내와 여자아이들을 그리워합니까?
예, 귀신들도 역시 매우 그리워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일이 오래가면 자연 담백해집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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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클래식 음악 들은 간장, 맛보니…깜짝

음악이 요리사 … 식품도 ‘뮤직 푸드’ 시대

중앙일보 | 김호정기자 |

 

 

 

식품업체 '대상'의 전북 순창공장 간장 숙성실에서는 대형 스피커를 통해 하루 24시간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을 들으며 익은 장맛이 좋다'는 연구 결과를 참고해 클래식을 틀어주는 것이다. 간장이 6개월 동안 숙성되며 듣는 음악은 모두 13곡. 바흐. 비발디의 느리고 편안한 음악이 대부분이다. 장판규 순창공장 운영팀장은 " 사람 심장박동과 비슷한 속도의 음악을 주로 고른다"고 설명했다.

 가공식품도 음악을 들려주며 만드는 '뮤직 푸드' 시대다. 가축이나 작물이 잘 자라도록 음악을 틀어주던 것에서 나아가 이젠 가공식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음악 감상을 시키고 있는 것. 과자·술·생수를 만드는 데도 음악이 쓰인다. 음악을 활용하는 이유는 이런 방법이 식품의 품질을 높인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됐고, 소비자에게 좋은 이미지도 심을 수 있어서다. 이런 효과에 비해 투자 비용은 별로 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미생물이 음악에 반응=국내 '뮤직 푸드'의 원조는 '청정원' 브랜드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대상이다. 일찌감치 1997년 '햇살담은 간장'에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여기엔 과학적 근거가 있다. 한국식품연구원 이남혁 박사는 "음악을 들려주면 오래 숙성해야 얻어낼 수 있는 부드럽고 순한 맛이 빨리 발현된다"고 말했다.

실제 물과 효모를 섞은 뒤 음악을 들려주면 효모의 활동이 활발해져 발효가 잘 된다는 점이 연구 결과 입증됐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진동이 효모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음악 요법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 이 회사는 96년 비스킷 '아이비'를 출시했다.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굽는 이 과자는 신맛이 남아 고민이었다. 정명교 크라운해태제과 연구소장은 "발효식품 특유의 맛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신맛을 없애주는 재료를 넣어보면 담백한 맛이 사라져 딜레마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해결책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중 "가축과 식물에 음악을 들려주면 튼튼하게 잘 자란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다. 아이비를 발효시키는 사흘 동안 클래식 음악 16곡을 틀어놨더니 신맛을 내는 프로피온산이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반죽을 부풀게 하는 효모의 개체 수 역시 음악을 들려줬을 때 훨씬 빨리 늘었다.

보통 때는 발효가 시작되고 3일 뒤 효모 수가 1g당 4850만 마리가 됐으나, 음악을 계속 들려주면 그 5배가 넘는 2억5000만 마리까지 늘었다. 유산균도 음악을 들은 반죽에 2.3배 많았다.

아이비의 성공에 힘입어 크라운해태제과는 2010년 '맛동산' 제조법을 바꿨다. 반죽 발효 과정에서 국악을 틀어주기 시작한 것. 윤영달(67)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2007년 창단한 '락음 국악단'의 정기공연 내용을 들려준다. 요즘 맛동산 반죽이 듣는 것은 주로 최근 작곡한 창작 국악이다.

 ◆물에도 귀가 있다=생수 '제주삼다수'는 음대 교수의 자문을 받은 오페라·교향곡부터 직원들이 좋아하는 최신 가요까지 CD 다섯 장 분량 음악을 24시간 듣는다. 물을 마이크로필터로 걸러내는 공정에서 넉 대의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준다.

 부산 대선주조가 만드는 'C1' 소주는 숙성탱크 속에서 모차르트 오페라와 교향곡을 감상한다. 이렇게 하면 소주 입자 크기가 음악을 틀지 않았을 때의 60% 정도로 작아지고, 그 결과 쓴맛이 덜해진다는 게 대선주조 측의 설명이다.

 또 음악을 들려주면 물과 알코올 분자 또한 골고루 섞여 소주의 맛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물과 알코올 분자가 골고루 섞이는 이유는 음악이 '진동'이기 때문이다.

 디저트카페 '망고식스'에서 재료로 쓰는 망고는 레게, 라틴 재즈를 감상하며 익어간다. 과일을 딴 뒤 한 번 더 익히는, 이른바 '후숙 과정'에서 음악을 들려준다. 처음 당도 12브릭스에서 시작한 망고는 2~3일 뒤 보통 14~15브릭스까지 익는데, 음악을 들으면 17브릭스까지 올라간다. 17브릭스란 망고 100g에 당(糖) 17g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식품과 음악의 만남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호의적이다. 뮤직 푸드의 원조인 대상 '햇살담은 간장'은 출시 8년 만에 판매 1억 병을 돌파하고 시장점유율 50%에 근접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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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신명에 얽힌 신이한 이야기


꿈, 전생, 원한, 기도, 보은, 조상님 제사...
이 세상에는 인간과 신명에 얽힌 신이(神異)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명계를 다녀온 사람들의 체험담도 흥미롭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늘과 땅, 신명계에 맞닿아 있는 삶의 실체를 더듬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탈런트 이창훈씨가 본것은?
1995년 늦은 봄,
MBC 드라마 "전쟁과 사랑" 촬영차
국내 연기자들이 필리핀에 체류할 때다.

당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이창훈씨는
유독 많은 대사를 외우기 위해 현지에서 독방을 썼다.

도착 이틀째 되던 날,
낮잠을 자던 이창훈씨는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웃으며 얘길 나누는 두 소녀가 눈에 띄었다.

순간 그들을 도둑으로 생각한 이창훈씨는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지갑 속의 돈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돈을 셀 때마다 한 장씩 없어지는가 하면, 놀라서 지갑을 떨어뜨리자 지갑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소녀들은 잠겨진 방문을 열지도 않고서 그냥 통과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밤이면 밤마다 소녀들의 혼령은 어김없이 출몰하여 이창훈씨를 괴롭혔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서 목덜미에 불어대는 뜨거운 입김과 목소리만으로 그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러던 차에, 로비에 모인 연기자들도 귀신얘기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탤런트 전현씨도 낮잠을 자다가 귀신을 보았다는 것.

잠을 자고 있는데 가위에 눌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을 떠보니,
웬 남자가 자신의 목을 마구 조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호텔 주인장에 따르면,
앞서 이 호텔 3층에서 웬 아버지와 딸이 묵었다가 어느 날 모두 비명횡사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들 혼령을 봤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한다.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 중에서)



50년 전의 저주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꿈속에 나타난 정체 모를 여인.
걱정스러운 마음에 절을 찾은 어머니는 스님으로부터 심상찮은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스님이 아버지의 쾌유기도를 올리던 도중에 여자혼령과 맞닥뜨린 것이다.
자기는 강씨 문중과 얽힌 악연이 있어 그러는데 왜 일을 가로막느냐고 노려보더란 것이다.

산에서 내려온 어머니는 할머니로부터 50년 전에 일어났던 한 사건을 듣게 된다.

할머니의 좋지 않은 사주를 이유로
문중에선 할머니를 대신해 대를 이를 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 민씨를 맞아들인다.

그런데 하필 그 때부터 집안에는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된다.
문중 어른들은 이것을 민씨의 소행으로 보았고, 이로써 오해의 골이 깊어만 갔다.
급기야 도둑으로까지 몰린 민씨는 갖은 모욕과 수모를 당하고 길바닥에 내쳐진다.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민씨를 놓고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도 하고, 약을 먹고 죽었다고도 하고, 소문만 무성할 따름이었다.

누명을 쓰고 내쫓긴, 한 맺힌 민씨의 혼령은
50년 동안이나 강씨 문중을 떠돌며 패가망신의 기회만 엿보고 있었고,
급기야 아버지에게까지 덮친 것이었다.

이후 어머니는 100일 기도를 정성껏 올렸고, 아버지도 차츰 건강을 회복하였다.

(iTV 미스터리극장 「위험한 초대」 제19회)



출산의 비밀
독자(獨子) 집안으로 시집간 어느 여인이 있었다.

집안에선 응당 아들 생산을 기대했고,
첫출산을 하게 된 그녀는바라던 아들은 커녕 윗입술이 둘로 갈라진 언청이 딸을 낳고 만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또다시 출산을 하게 되지만, 오히려 첫째보다 증세가 더 심한 언청이 딸을 낳는다.
애기는 젖을 빨 수 없어 일주일만에 죽는다.

그 후로 시아버지로부터의 혹독한 시집살이가 이어지고,
속이 타들어간 그녀는 뒤늦게 출산에 얽혀 있는 비밀을 밝혀낸다.

여기에는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죽기 전의 시어머니는 집안을 위해 헌신을 다했지만,
남편의 숱한 핍박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다.

하루는 남편이 몰래 지화(紙貨)를 숨겨둔 아궁이에다
불을 지폈다가 그 돈을 홀랑 태워버린다.

그 일로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내쫓겨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얼마 후 길거리에서 숨을 거둔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와 그 남편은
시아버지가 외출한 틈을 타 시어머니께 제사를 올려드린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시어머니의 시신이 묻힌 곳을 찾게 되어 그 곳을 파보게 된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 시어머니 시신의 입술을 나무뿌리가 뚫고 지나가 있는 게 아닌가.
딸애들이 한결같이 언청이였던 이유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부모의 묘자리가 자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SBS 「토요미스테리극장」 제24회)



저승 다녀왔소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창식부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놓은 빚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조금씩 갚아가려고 열심히 일하지만
추수해 놓은 볏단들이 불에 타버려,
돈을 꾸어 준 월촌에게 집문서까지 뺏기고 만다.

그러던 중 창식은 물에 빠진 월촌의 아들을 구해주고
자신은 그만 물에 빠져 운명을 달리한다.

그럼에도 월촌은 감사는커녕 빌려준 돈 받을 궁리뿐.

돈을 갚기 위해 몸으로라도 때우라는 월촌의 강요에
마침내 창식의 아내는 딸을 더불고 그 집 부엌데기로 들어온다.

월촌은 아직 젊은 그녀를 훔쳐보며 흑심까지 품는데….

그때부터 월촌 눈에는 죽은 창식의 모습이 나타난다.
식솔들 걱정에 창식의 혼령이 이승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굿판까지 벌인 가운데 무당은 해결책을 내놓는다.
정화수 떠놓고 북쪽을 향해 1,000배 올리고 식솔들 빚을 탕감해 주라는 것.
월촌은 이 말에 흥분한 나머지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이승을 떠난 월촌은 저승길에서 창식의 혼령을 만나고,
그 동안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이에 창식은 저승에서 이승으로 나가는 방책을 일러준다.

불구덩이를 헤쳐갈 수 있는 장화와 급할 때 써먹는 열매,
그리고 수문장의 왼쪽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라는 것이다.

일러준 대로 하여 이승으로 무사히 넘어올 수 있었던 월촌.

이승에선 5일장을 치르던 중 다시 깨어난 그는
두 모녀에게 사죄하고 창식과의 약속대로 선행을 베풀며 살았다.

(iTV 미스터리극장 「위험한 초대」 제16회)



저승에서 얻은 비방
지난 86년 어느 날,
약초상을 하던 이승갑씨는 죽은 사촌동생에게 이끌려 저승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찍이 돌아가신 어머니와 상봉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올 때도 안됐는데 왜 왔냐’며 호통을 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선 ‘이왕에 온 걸음이니 다리 아픈 사람과 아기 못 낳는 사람들을 위해 처방을 줄 테니
가서 사람들을 고쳐줘라’며 처방전을 내주신다.

이렇게 해서 깨어난 이승갑씨는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처방전을 술술 써 내리기 시작한다.
그 처방전에 따라 관절염환자와 불임환자들에게 약을 지어주었는데, 효험이 톡톡히 들어맞았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가 가끔 현몽하여 환자들이 올 것을 미리 알려주시는가 하면,
10년 전 처음 자신이 정해준 약값 그대로만 받으라는 말씀도 해주시곤 한다.

약을 팔아 얻는 이익보다는 아프고 병든 이들을 치료하는데 더 마음을 쏟고 있는 이승갑씨!!!
그는 자신의 이러한 삶이 다만 어머니의 뜻에 따르고 있을 뿐이라며 겸손해 한다.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 제99회)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충청남도 진천 지방과 경기도 용인 지방에서는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이 구전되어 온다.

이는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구절에는 삶과 죽음의 질서를 오가며 생긴
기막힌 사연 하나가 숨어 있다.

옛날 진천 땅에 추천석이란 사람이 살았다.
하루는 그가 잠시 잠들었다가 애절한 통곡 소리에 잠을 깬다.

그 통곡 소리의 주인은 바로 옆에 있던 자기의 아내였고, 곧이어 자식들도 따라 우는 것이다.

“왠 갑작스런 울음이요?”

아내에게 물었지만, 아내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목놓아 울기만 했다.

“우리를 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시다니…. 흑흑!”

그는 싸늘하게 누워 있는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제야 지금 자신은 혼(魂)이 된 상태라는 걸 알아차리고서 멈칫거렸다.

곧이어 저승사자들을 따라 명부전(冥府殿)으로 인도되어 간 그는 염라대왕 앞에 엎드렸다.

“어디서 왔느냐?”
“예, 소인은 진천에서 온 추천석이라 하는 자입니다.”
“뭐라?”

염라대왕은 대경실색하였다.
용인의 추천석을 불러들여야 했는데, 저승사자들의 실수로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온 것이었다.

염라대왕은 진천 땅의 추천석을 즉각 풀어주고
용인 땅의 추천석을 데려오라고 명을 다시 내렸다.
일이 꼬이려 했던지 두 사람은 이름과 생년월일이 똑같았던 것이다.

그는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이승의 자기 집으로 쏜살같이 내려왔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육신은 땅에 묻히고 집에는 위패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몸둥아리를 되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아내를 연이어 불렀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실의에 빠진 채 멍하니 있다가 문득 묘한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용인 땅 추천석의 몸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용인으로 냅다 뛰었다.
혼이 떠난 용인 땅 추천석의 몸엔 다행히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얼른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슬프게 통곡을 하던 용인 땅 추천석의 가족들은
꿈틀대며 몸을 일으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기뻐 날뛰었다.

“여보, 다시 살아났구려!”

용인 땅 추천석의 몸을 빌린 그는 여인에게 자초지종을 그대로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여인과 아들딸은 죽음에서 깨어난 헛소리로만 여겼다.

어떠한 말도 먹혀들지 않자,
그는 하룻밤을 마지못해 보내고 다음날로 즉시 진천을 향해 내달렸다.
아내라는 여인과 자식들은 그런 그를 실성한 사람인양 생각하고는 붙잡고자 뒤따라 뛰었다.

진천 고향집에 도착한 그는 상복을 입은 아내에게 외쳐댔다.

“여보, 나요 내가 돌아왔소.”
“뉘신지요, 여보라니요…?”

그녀는 돌아온 남편이라 외치는 남자의 말을 곧이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모멸감이 들었고 이내 동네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뒤따라 온 용인 땅 추천석의 아내는 남편이 잠시 미쳤다며 계속 용서를 구했다.

그는 계속 자신의 처지를 필사적으로 설명하지만
동네사람들에게 매질까지 당하고선 결국 관가로 끌려갔다.

고을 원님은 그의 사연을 쭉 듣고서 다음과 같은 명쾌한 판결을 내렸다.

“진천 땅의 추천석은 사자의 잘못으로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 왔으나,
자기의 육신이 이미 매장되었으므로 할 수 없이 용인 땅에 살던 추천석이 버리고 간 육신을
빌린 것이라 생각하노라.

진천 땅 추천석은
조상의 내력과 그 가족의 생년월일은 물론 논밭 등의 재산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알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지금의 저 추천석은 진천에서 살던 추천석의 혼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 死居龍仁할 것을 판결하노니,
양가의 가족도 그대로 실행토록 하라! ”

진천 땅 추천석의 혼이 들어간 그 사내는
생전에 자기의 주장대로 진천 땅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고,

이후 세상을 뜨자
그 육신은 본래 용인 땅에 살았던 추천석의 것이므로 그곳 가족이 찾아가게 되었다.

한편 이런 일이 있어서인지 그 이후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전한다.
현재 충북 진천 땅에 입구에 다다르면 ‘生居鎭川’이라는 표지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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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인가?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여 무시하며 살지 마십시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하여

우리를 복되게도 하고 깊은 불행 속으로 빠뜨리기도 합니다.

 

 

울산에서 방어진 쪽으로 가다보면

현대조선소 조금 못 미쳐에 남목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에 당집이 있었는데,

아파트 단지 이면도로를 만들면서 당집을 철거하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동장이 당집을 철거한 지 꼭 석달되는 날 죽어버렸습니다.

후임 동장도 석달 만에 죽었습니다.

또 그 다음에 간 동장도 석달 만에 죽었습니다.

당집을 철거한 다음 동장 세 명이 차례로 세상을 하직한 것입니다.

그것도 꼭 세 달의 간격을 두고….

 

 

네 번째로 남목 동장으로 가게 된 사람의 부인은 불자였는데,

크게 근심하여 나에게 상담을 하였습니다.

“스님, 울산시청에 근무하던 제 남편이 남목 동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스님, 불한해 죽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가급적이면 동네 노인들과 상의하여

호젓한 자리에다 당집을 새로 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뒷날의 이야기이고,

남편께서는 당장 출근을 해야 할 형편이니,

반야심경 3편씩을 외우게 하십시오.

그리고 보살님은 남편을 대신하여 기도를 하십시오.

하루 두 시간 내지 세 시간씩 집에서 백일 동안 기도를 하십시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당집을 철거하거나 불도저 등으로 산을 마구잡이로 밀어

화를 당하였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영(靈)의 세계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에게 직접 닦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개 넘겨 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무시해 버립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 세계나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님니다.

그 존재의 생존 양식이 우리와 달라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을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지내는 제사를 통해 이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제사를 지내면 죽은 조상이 옵니까?

소위 말해 귀신이 제사음식을 먹습니까?

 

 

경주 남산의 동북쪽 기슭에 보리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1990년대 초,

이 보리사에서 40대의 보살이 아버지의 49재를 지냈습니다.

그녀는 49일 동안 아버지를 위하여

경전도 많이 읽고 염불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한가지 일에 정성을 모아 몰두하면 식()이 맑아지듯이,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천도한 그녀도

어느 때 보다 마음이 맑았습니다.

드디어 49일이 되어 막재를 지내는 날,

그녀가 법당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법당으로 들어오시드니

영단 쪽으로 가는 모습이 선연히 보이는 것이였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아이구, 아버니께서 어디에 앉으실까?”

위패를 비롯하여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영단 위에

아버지가 앉을 만한 공간이 없음을 느끼고 그렇게 소리친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예상 밖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영단에 모시는 위패는 보통 종이로 연꽃을 만들어 그 위에 세웁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바로 그 연꽃 위에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자세로 앉는 것이였습니다.

가족들이 바치는 잔을 매우 기쁘게 받으시고 ,

차려 놓은 음식을 매우 흡족해하면서 맛있게 드시는 것이였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스님, 그날 이후 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죽어 초상을 치고 49재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남들이 하는 것처럼 피상적으로 하였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저쪽 세계가 참으로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 좁은 연꽃 위에 편안히 앉으시고,

가족들이 올리는 전과 차린 음식을 그렇게 흐믓하게 드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을 눈꺼풀에 덮여 있는

이 눈으로만 쳐다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음의 주부들은 제사음식 장만하는 것을 많이 힘들어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현실적인 이익을 소중히 여기는

현대인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돈에 힘까지 들여 푸짐하게 차려 놓은 음식 가운데

밥 한톨 드신 흔적이라도 있고,

술 한 모금 마신 표라도 있으면 보람이라도 있을텐데,

다녀 가신 것조차 느낄 수 없으니,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힘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드시는 분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지니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생존 양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이 줄어들지 않는 것일 뿐,

실제로 먹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곧, 그분들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의 세계가 아니라

영적인 법신(法身)의 세계에 살고,

인간이 볼 수 없는 법신의 몸으로 와서 드시는 것이기 때문에

오신 것을 느낄 수도 없고,

먹은 흔적조차 없는 것일 뿐,

실지로는 오시고 또 먹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불자들이 보리사에서 49재를 올린 경주 보살처럼,

영가가 직접 와서 좌정을 하고 음식을 드시는 것을 체험하였다면,

그야말로 제사음식을 만드는 일에 정성을 다할 것이고,

위패를 모시는 정도가 아니라 조상들이 와서 앉을 수 있는

자리까지도 제사상 앞에 따로 마련할 것입니다.

 

 

간절히 당부하건데,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다고 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반쪽의 세계를 무시하며 살지를 마십시오,

‘죽으면 그만이요,

이 세상 외의 다른 세상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지 마십시오.

보이는 반쪽 세상 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반쪽 세상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그 반쪽 세계가 언제나 평소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불자의 살림살이 중에서 우룡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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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부처님 명호를 부르니 염주에 힘이 있다

 

민국75년(1986년)의 어느 날, 혜정스님이 타이베이에 사는 뇌거사 집에 갔었는데, 대화

도중에 그는 모 스님이 지니고 있던 염주에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혜정스님은 평소에 뇌거사에게 약간의 영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를

시험해보기 위해 손목에 차고 있던 단주를 그에게 건너 주면서 “이 염주는 어떤가요?”

라고 물었다. 단주를 건네받은 그가 말했다. “이 염주는 별거 없어요” 사실 이 염주는

평소에 책상위에 올려놓고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외출할 때 잠시 손목에 차고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혜정스님은 다시 호주머니에서 평소에 자주 사용하던 108염주를 그에게 건네주며

“이 염주는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내민 손이 염주에 닿자마자 곧바로 그의 입에서

“아! 있어요! 이 염주에는 매우 힘이 있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혜정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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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 참배 - 나무아미타불 목걸이 이야기

 

글쓴이 / 동견 출처 - http://cafe.daum.net/dharmalamp/Qse8/57

 

 

 

강원도 건봉사 서현스님의 차방에 도착하여 차를 한잔씩 주시며,
나무아미타불이 적혀있는 금색으로 된 목걸이와 아미타부처님의 접인상이 그려져 있는 카드(?)를 나눠주셨습니다.

서현스님께서 이 목걸이를 보시하게 된 사연이 있다면서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들이 걸리는 병에는 사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 있고, 업장병과 원한병이 있습니다.
사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생기는 병은 대부분 약으로 치료가 되지만, 업장병과 원한병은 약으로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불치병이나 태어날때부터 갖고 있는 병은 대부분이 업장병과 원한병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불치병이나 암에 걸려도 나으신 분이 계시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또한 잘라내도 다시 재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그 부위를 잘라냈다고 하더라도 원한은 남아서 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재발하는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한 보살님이 시집간 그 집에 고모가 한 분 계시는데, 키도 크고 덩치고 좋으신데 돼지를 잡는 일을 하셨습니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돼지 한마리의 뒷 다리를 잡으면 그냥 번쩍 들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자임에도 힘이 그렇게 좋았다고 합니다.
남자들도 꼼짝 못할 정도로 기가 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염불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꾸 비웃고 다녔습니다. 채식을 하면 장사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무슨 미신을 믿냐고, 이 맛있는 고기를 두고 채식을 하냐고 화를 내었습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몇년 후엔 그 보살이 병에 걸렸습니다.

복수가 차는데 일주일마다 한번씩 뽑아줘야만 원상복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주하다보니 기력이 쇠해서 힘이 하나도 없고 배만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삶을 뒤 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죽였는데 이러다가 지옥가게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너희 오빠가 스님이니 스님께 나를 데려가달라. 부처님께 귀의하겠다.' 하여 스님에게 갔습니다.
스님은 목걸이를 하나주고 108염주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집에 가서 염불이라도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살아온 지를 알고 있으니 지금 이 병은 업장병이니 염불을 열심히 하라.' 라고 보살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보살은 도벽도 가지고 있어서 집에 온 후에도 훔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도벽의 습때문에 자신의 집에 호박이 있음에도 호박을 보면 몸이 불편함에도 갖고와야 직성이 풀리고..욕도 잘 하였습니다.

어느날 보살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피를 토했습니다.
그런데 대낮에 문 앞에 3명의 저승사자가 보였습니다.

한명은 나이가 좀 든 저승사자, 두명은 젊은 귀신이었습니다.
한 귀신은 쇠사슬을, 한 귀신은 탕약을 들고 있었습니다.


늙은 귀신이 빨리 가서 저 사람에게 약을 먹이고 그 후 쇠사슬로 묶어서 끌고 가자고 지시를 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보니 세명의 귀신이 앞에 와 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평소에 염불에도 신심도 없고 해서 처음에 많이 아플 때에만 좀 하였습니다.

염불을 좀 했더니 호전이 되어서 게을러져서 안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날도 염불은 생각도 안났다고 합니다.


젊은 귀신이 보살님을 향해 쇠사슬을 던졌더니 목에 빛이 번쩍 나더니 튕겨져 나갔습니다.
목에 나무아미타불 목걸이를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몇번을 시도하다가 안되니 다리라도 묶어보라고 하여 다리에 던지니

갖고 있는게 염주뿐이여서 그걸로 막았더니 염주에도 광명이 번쩍 났습니다.
그동안 염주로 나무아미타불 하며 염불을 했더니 염주에도 부처님의 에너지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몇번은 다리에 맞았는데, 추후에 그 사실을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들이 집에 와서 다리를 보니 멍든 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그 보살이 보살의 남편에게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면 저승사자가 와서 잡아간다. 그래도 아직도 욕을 하느냐'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 영가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염불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임종시가 되니 스님께 조념염불을 해달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스님들 20명이 차를 대절해서 갔습니다.
오전에 도착해서 염불을 해주는데 점심때가 되어서 동생집에 가서 공양을 하고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보살이 누워서 염불하면서 그러지 말고 여기서 공양하라고 했지만

스님들이 괜찮다고 동생집에 가서 공양하고 오겠다고 하며 나갔습니다.


공양 후 와서 보니 집안 염불소리가 아주 이상하게 들렸다고 합니다.
칭명염불. '나무. 아미. 타불. 나무. 아미. 타불.' 하고 끊어서 천천히 합니다.
그런데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하고 엄청 빠르게 염불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봤더니 그 보살이 머리를 막 흔들며 빠르게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경쇠를 뺏어서 빨리하다가 천천히 원래 속도로 돌아가서 보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랬냐고'

그 보살이 말하길,
동생집에 공양하러 간다고 갔으니 그래도 자신의 집에 왔으니까 배웅을 해주겠다고 나갔는데 보살이 나간 게 아니고
식이 빠져나간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따라 나간다고 나간거였겠죠.
문 밖에 보니 큰 마당 앞에 귀신들이 새카많게 있었습니다.


키 큰 몇몇 귀신들이 갈고리 같은 창을 갖고 있고, 문짝만 한 큰 칼을 갖고 있고..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그 보살을 향해 달려드니
그 보살은 급해서 빨리 집안에 들어가서 염불을 빠르게 했었던 것입니다.

머리를 잡고 염불을 하다보니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후의 이야기가 더 있지만 결국에는 이 분은 극락왕생하였습니다. 그리고 몇일 후에 몸을 나투어 보여주었습니다. 이 목걸이에도(나무아미타불 글귀) 그런 귀신들이 범접을 하지 못하는 힘이 있습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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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명호공덕 불가사의」

신선한 사과 네 개에 단어 각각 '너를 싫어해' '너를 미워해' '감사해' '아미타불' 서로 다른 문자를 썼고, 다섯 번째 사과는 대조를 위해 글을 쓰지 않고 일정 시간 간격으로 사진을 찍어 비교했습니다.
시간을 따라 보면 사과는 점차 변화했고 100일 후에 놀라운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아미타불"을 쓴 사과만 멀쩡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http://cafe.daum.net/amtb/5d9g/1876

아미타불 명호공덕 불가사의

「아미타불 명호공덕 불가사의」신선한 사과 네 개에 단어 각각 '너를 싫어해' '너를 미워해' '감사해' '아미타불' 서로 다른 문자를 썼고, 다섯 ...

cafe.daum.net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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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바세계에서 어떻게 해야 진실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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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사바세계에서 어떻게 해야 진실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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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법사 답)

 


  대답: 이 질문은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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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바세계는 고뇌의 세계이고 감인堪忍의 세계입니다. 바로 괴롭기 때문에 우리는 즐거움(행복)을 얻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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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이고득락하길 바라지만 무엇이 진실한 즐거움일가요? 또 어떻게 해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 일반인들은 무엇이 진실한 즐거움인지 맛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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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의 입장에서는 즐거움을 세 가지, 즉 외락外樂·내락內樂·법락락法樂樂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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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외락은 오욕락, 혹은 인천의 복락을 말합니다. 사람의 감각기관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으로서 일종의 가장 거친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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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컨대 무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 정말 시원하다고 한다거나, 배고파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 배불리 먹게 해준다거나, 얼어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따뜻하게 입혀준다거나,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물품과 재물, 남녀 간의 감정과 성의 만족감, 사람의 명예감과 사회의 존중과 성취감, 적절한 음식, 양호하고 충족한 수면 등등,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말하는 재물·섹스·명예·음식·수면등을 말합니다. 물론 상세히 나누자면 더욱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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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런 즐거움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을 오욕락이라 부릅니다. 이는 외락이자 가장 저급하고 가장 거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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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외락은 대중을 미혹시키기가 쉽고 일반인들에게 타락 심지어 범죄의 인연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왕왕 이 오욕락을 추구하기 위해 끝없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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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외락도 무상하여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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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혼인을 원했지만 최후에는 이혼을 하게 되고, 몸이 건강하길 바랐으나 결국 대부분이 늙고 병들게 되고, 효도하는 아들을 원했으나 마침 이 아들이 말을 듣지 않고…… 이런 일들은 너무 많아서 낱낱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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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즐거움은 겉으론 즐거움 같아 보이지만 뒷면은 큰 고통이고, 심지어 즐거워하는 그 순간이 바로 고통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진실하지 않은 즐거움이라 부릅니다. 이 즐거움은 변화무상하여 괴로움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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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마치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오랜 시간 걷다보니 너무 힘이 들어 큰 나무 아래 앉았더니 , 정말 즐겁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앉아있으니까 또 허리가 시큰거리고 등이 아파서 다시 좀 걷고 싶어집니다. “, 좀 걸으니까 정말 편안하고 즐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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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즐거움이라는 것은 바로 앞의 괴로움이 누적된 것에 대한 임시조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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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앉는 것 자체의 체성이 즐거움이라면 오래 앉을수록 더욱 즐거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앉아있을수록 더욱 힘들어집니다. 만일 걷는 것이 즐거운 것이라면 마땅히 많이 걸을수록 더욱 즐거워야 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많이 걸을수록 더욱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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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돈을 벌고 나서도 매우 힘들고 막연해져서 투신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는 고통만 알지 돈이 많은 사람에게도 돈이 많은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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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사람은 이 세상에서 돈이 있든 없든 진토양난입니다. 그래서 망망고해라고 부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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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두 번째 즐거움은 내락이라 부릅니다. 내락이란 내적인 것으로, 불법에서 말하는 선정의 낙(선정의 즐거움을 음식으로 삼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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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의 오욕(····)에 의거하는 게 아니라 내적인 선정의 경험을 통해 느끼는 일종의 희락·평안·청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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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상이 분분하고 산란한 중생들은 이런 느낌을 느끼기 힘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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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욕의 낙은 욕계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가장 저급한 것에 속합니다. 선정의 낙은 색계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선정공부가 매우 높으면 무색계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도 들어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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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진정한 수행자들은 선열禪悅과 선락禪樂을 체험하고 나면 전혀 세간의 오욕락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같은 급 같은 차원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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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욕락은 죄를 지을 수 있고 미혹하고 전도될 수 있습니다. 선열의 낙도 구경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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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이 선락을 얻으면 교만심을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신선이 되고 싶어 합니다. 혹은 이런 선의 경계에 물들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삼계에 머물게 됩니다. 설사 사선천四禪天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삼계 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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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세 번째 낙은 법락락法樂樂입니다. 바로 불법을 통해 생겨난 생명의 희락喜樂입니다. 여기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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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는 성도법문의 법희법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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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깨달음을 얻고 견성·견도를 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가 어떤 것인지를 친견하고 마음속에 절대적인 안온함과 희락이 생겨나는 것을 법락락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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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무명을 타파하고 법성을 깨달아 제대보살님들과 같아지면 그런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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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생사윤회를 초월하고 삼계를 벗어난 일종의 본래 있는 불성 가운데서 솟아난 절대적인 청정·무분별·본유·자연스러운 법희법락입니다. 우리 범부들은 당연히 그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 또 하나는 바로 정토법문의 염불의 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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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염불을 하면서 여전히 일개 범부이고 오욕락도 완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재산도 매우 궁핍하고 가정도 남들만 못하고 사회에서도 지위가 없을 수 있고, 잘 먹지도 못하고 밤잠도 설칠 수 있으며 선정의 경험은 더욱 없는 산란한 범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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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마음만큼은 절대적으로 편하여 이번 생을 마치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하여 성불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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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이 세간에서 안정적이고 자재하게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으며 일향염불을 하게 됩니다. ‘이미 소멸된 고통은 바닷물과 같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괴로움은 털끝에 묻은 물과 같다는 이런 해탈자재하고 소탈한 심정으로 이 세간에서 인연 따라 지내며 인연 따라 권화하고 스스로 믿고 남도 믿도록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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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생각엔 전수염불하는 사람은 모두 이런 염불의 법희법락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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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생활 속에서 자질구레한 일들, 예컨대 자녀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 등의 여의찮은 일들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고 고통스런 심신의 느낌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은 도리어 우리들이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의지와 정토에 대한 동경과 염불에 대한 신심을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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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생활 속의 고뇌들은 마치 혼탁한 흙탕물이 염불의 연꽃에 더 많은 영양을 공급하고 우리의 염불의 연꽃이 더욱 향기를 피우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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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괴로움을 만나면 세상 사람들처럼 단지 괴로움에서 괴로움으로 들어가 끝까지 괴로워하며 비전이 없는 게 아니라 도리어 괴로울수록 더욱 염불의 미묘한 향기가 있게 되고 더욱 염불의 법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염불인들의 법락의 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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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이, 또 더욱 많은 인연 있는 분들께서 모두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염불의 진실한 낙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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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것들은 모두 부질없고 의미 없는 것들이어서 전광석화電光石火와도 같습니다. 인천의 복락은 모두 거짓된 것이고 모두 구경 영원한 의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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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출처/ 純淨時代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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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부처님의 ‘치아 사리’에 나타난 ‘놀라운 광경’

2500년 된 석가모니 부처님의 치아에서 발견된 ‘사리’는 초현실적인 물질로 구성됐다. 작은 진주 모양의

이 사리는 다이아몬드 보다 훨씬 더 견고했는데, 1000배로 확대하니 믿기 어려운 광경이 나타났다.

1056년 중국 산시성 잉 지역에서 제작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높은 다층 목조 구조물  ‘꺼트(gett)’는 나무를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만든 탑이다. 단 한 개의 못질도 없이 지은 이 탑은, 여러 차례의 대지진과 전쟁, 그리고 번개를 견뎌내며
오늘까지 무사히 남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이유를 탑 안에서 발견한 신비하고 신성한 유물들 때문이라고 한다.
Wikipedia

1974년 220피트 10인치(67.31m) 높이의 탑을 보수하면서 발견한 이 희귀한 물질은, 이 고대 건축물의 이름과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처의 치아는 7개만 존재한다고 알려졌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약 2500년

전에 살았던 석가모니 부처의 치아 2개를 발견한 것이다.

Aboluowang

중국은 마오쩌둥 집권 시기에 강행한 ‘문화대혁명’으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귀중한 보물이 많이 소실됐지만, 부처의

치아가 몰수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2개의 치아는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는, 미국 보석 협회의 세계적 파트너가 운영하는 실험실로 보내졌다.

이 초현실적 물질 ‘사리’는 불교의 정신적 거장들 몸체를 화장한 뒤 남은 재에서 발견한 것이다. 사리는 화장한다고

없어지지 않으며, 진주나 유리 혹은 조약돌처럼 보이고 다양한 색상과 광택을 지니고 있다.

Aboluowang

전문가팀 가오 빈 박사가 전자 현미경으로 사리를 1000배 확대해본 결과, 놀랍게도 큰 부처를 중심으로 4명의 작은

부처가 둘러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Aboluowang

놀라운 사실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다른 실험 결과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치아의 연대는 2500년으로

추정됐지만, 치아에 끼어 있는 사리의 연대는 30억 년 전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사리에 열전도 측정기를 사용한 결과, 1000~2600W/mK의 높은 열전도율이 나타났다. 다이아몬드가 100K를

초과하는 온도에서 1000W/mK의 최고 열전도율을 가진 것으로 볼 때, 이 사리는 다이아몬드를 뛰어넘는 열전도율을

가진 것이다.


물질의 미세 구조 파괴 여부를 관찰하는 흑연화(graphitization) 민감도를 분석하기 위한 2000T의 압력 실험을 수행한

결과, 이 유물은 미세 구조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전문가팀은 “이 사리는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단단한

물질로 파괴할 수 없는 물질”이라고 말했다.

Aboluowang

가오 박사는 “다이아몬드의 화학 성분을 보면 무기 탄소 함유량이 99.98%이다. 이것은 자연 상태의 다양한 광물질들에

 있는 단일 요소로 이루어진 유일한 물질입니다”라고 설명했다.그는 “수천만 가지의 자연적, 인공적 결정체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7개의 범주 중 하나에 속하는데 사리는 육각결정체에 속한다”라고 덧붙였다.


50여 년 전 육각형 구조를 가진 새로운 형태의 다이아몬드가 애리조나 북쪽에 떨어진 우주 암석에서 발견됐다. 그 암석은

결정학자인 데임 캐서린 로스데일의 이름을 따서 론스달레이트(Lonsdaleite)라고 했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 가오 박사는 “부처의 치아에서 발견된 사리의 구조는 론스다레이트와 유사하지만, 확실한 검증을

위해 추가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사리에 대해 적외선 검사 등 많은 검사를 진행한 결과 사람이 만든 물질이 아님이 확인할 수 있었다. 사리의 성분은

98.07%는 탄소였고 나머지는 아연, 안티몬, 텔루륨으로 구성돼 있었다.검사 결과를 본 가오 박사는 대만 웹사이트

‘아볼루어왕(Aboluowang)‘에 “너무 놀라워요! 믿을 수가 없어요!”라며“이 유물들은 정말 값진 보물들이에요!”

감탄했다.


가오에게 사리를 화폐 가치로 평가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도저히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며 가격을

 매길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사리 1개 당 25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출처 /  


 http://www.ntdtv.kr/economy/science/2500%EB%85%84-%EC%A0%84-%EB%B6%80%EC%B2%98%EC%9D%98-%EC%B9%98%EC%95%84-%EC%82%AC%EB%A6%AC%EC%97%90-%EB%82%98%ED%83%80%EB%82%9C-%EB%86%80%EB%9D%BC%EC%9A%B4-%EA%B4%91%EA%B2%BD.htm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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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자살하면 사후가 어떻게 되나요?                        

 

 

#

어떤 젊은이가 전화가 왔습니다.

20대 초의 남자인데 지적장애인 이었습니다.

스님 질문이 있습니다.

자살하여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질문은 정말 자살하면 사후가 궁금하다는 것 보다

현재 자신의 괴로움을 표현하고

괴로움의 탈출구를 찾는 마음이 강합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먼저 많은 질문을 되묻는 것이 좋습니다.

 

전화 주신 분은 어디에 사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소득이 얼마이요, 누구와 살고 있지요?”

현재 사는 것이 힘이 많이 드는가요?”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세요?”라고

  되묻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이나 처지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자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위 사례 주인공은 어느 지방에 살고 있는

20살의 지적장애인으로 청년입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하루 4시간 근무로 한 달 60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장애인을 대하는 세상의 눈길이 따갑고

사는데 허무감을 느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도 돈을 많이 벌고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은데

자신의 처지로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단체가 자살을 하여도 하느님만 믿으면

천국에 태어난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사실인지

필자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필자가 자살에 대한 내용을 게재한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전화가 온 것입니다.



 

#

지적 장애인이라 너무 어려운 이야기는 할 수 없었습니다.

법우님 지금 많이 괴롭지요?”

, 스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 스님

그러면 매일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세요.”

“??”

아미타불은 극락에 계신 부처님 이름입니다.

아미타불의 뜻은 한 없이 밝다는 뜻입니다.

지금 법우님의 마음은 괴롭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계속 외우면

내 마음이 밝아져 괴로움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잘 했습니다. 법우님

그래서 누가 나를 괴롭혀도 나무아미타불

내 마음이 우울해도 나무아미타불

내 마음이 슬퍼도 나무아미타불

부모님이 나를 나무라도 나무아미타불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해도 나무아미타불하세요.

걸을 때도 나무아미타불

차를 타도 나무아미타불

아침에 눈을 나무아미타불

밤에 잠을 자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세요.

그러면 틀림없이 괴로운 마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할 수 있겠어요?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잘 했습니다. 법우님

이렇게 아미타불을 부르다가

만약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서

숨이 넘어갈 때도 아미타불을 부르세요.

10번 힘차게 불러 보세요.

그러면 아미타불이 많은 성중을 거느리고

나타나 법우님을 극락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제 잘 알겠지요?”

네 스님, 나무아미타불

 

법우님 이렇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고

그냥 자살을 하면 지금 법우님이 받는 고통보다

천 배 만 배 더 큰 고통을 사후 세계에서 받게 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살하려고 하지 마세요.

불교에서는 살생이 가장 나쁘다고 합니다.

이보다 백배 천배 더 나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이제 자살할 생각을 절대 하지 마세요.

잘 아시겠지요?

, 스님. 잘 알겠습니다.

다음에 마음이 힘들면 또 전화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법우님

항상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세요.

나무아마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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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업[karma]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업에도 세 가지 업이 있습니다.

몸으로 행동하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몸으로 좋은 행동을 하고, 입으로 좋은 말을 하며,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은 선업(善業)이라 합니다.

 

그러나 신체를 이용해 사람을 해치거나 때리는 것,

입으로 악한 말을 하거나 이간질 하는 것,

생각으로 좋지 않은 것을 마음에 품는 것은

나쁜 업[惡業]이라 합니다.



 

#

이 우주의 법칙 중에 인과의 법칙이 있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법칙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착한 업을 지으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업을 지으면 악한 과보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행동을 삼가고,

좋은 업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계율로 제정해 놓고,

착한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혹 사람이 나쁜 악업[행동]을 지었다고 가정해봅시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이 용서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쁜 악업을 지은 만큼 그 당사자가 과보를 받는다.’는 진리입니다.

이를 업보라고 합니다.

곧 행위만큼 과보가 따르는 인과응보입니다.

악업으로 지은 업보는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고의로 업을 지을 때는

반드시 그 보를 받나니 현세에 받을 때도 있고,

내세에 받을 때도 있다.”

- 중아함 3사경(思經).



 

#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업보에 의해 윤회하는 것입니다.

곧 현세의 좋은 행동을 하면, 다음 생에 좋은 곳이나

경제적 요건을 갖춘 곳에 태어남이요,

그렇지 못하면 축생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현 삶도

과거 자신이 지은 것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과 윤회 사상이 함께 설명되는 것입니다.



 

#

어느 종교에서도 뿌린 만큼 거두리라

[As you sow, so you shall reap].’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적인 진리가 아니더라도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원리가 세상의 법입니다.

봄에 장미 꽃씨를 뿌리면 여름에 장미꽃이 피어나고,

호박 씨앗을 심으면 반드시 호박이 열리고 호박꽃이 핍니다.

 

그런데 나쁜 행동을 했는데도 떵떵거리고 잘 사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착하게 사는데도 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과응보 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악이나 악업으로 인한 과보는 어느 시간,

어느 생에서도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법구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악의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받는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완전히 익었을 때 악인(惡人)은 반드시 죄를 받는다.”

 

선의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재앙이 따른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완전히 익었을 때, 선인(善人)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

 

“ ‘그것을 해도 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조그만 악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비록 한 방울 한 방울이 적을지라도

그 물이 고여 큰 항아리를 채우나니,

이 세상의 큰 죄악도 작은 악이 쌓여서 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자비불교정토회

다음카페 개운선원 정인(正印)합장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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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0여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 2,550여년 후 현대과학자들의 합창

한국일보 2006-11-22 (수) 



술 한모금 마시지 않았다. 고기 한점 먹지 않았다. 무용학교 교사 클레어 실비아 여사는 엄격한 금주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쉰 살 넘어 그가 달라졌다. 심심하면 맥주를 들이켰다. 궁금하면 먹어댔다. 결심이 바뀐 것도, 의지가 나약해진 것도 아닌데도...

더욱 기이한 변화는 따로 있었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들이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기억되는’ 것이었다. 환각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잠시 헛생각을 했나. 역시 아니었다. 전생이란 게 이것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변화의 시기는 금방 찾아졌다. 쉰 살 넘어 받은 폐와 심장 이식수술 이후부터였다. 찾다 찾다 못찾던 변화의 근원도 종국에는 이식수술에서 찾아졌다. 장기기증자(팀 라미랜드, 사망 당시 18세)가 맥주 등을 즐긴 것으로 밝혀졌다. 기증자 가족들과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실비아 여사에게 생긴 뜬금없는 기억들은 라미랜드의 몫이었다.


지난 2003년 내셔널 인콰이어러지에 보도된 이 ‘믿지 못할 실화’는 수수께끼 희귀사례가 아니다. 보스턴대 연구팀에 따르면, 이식수술을 받은 연구대상자의 20%가량이 기증자의 기억과 취향까지 이어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왜 그럴까. 뇌 뿐만 아니라 각 신체부위 세포들에도 나름의 기억소자가 있어 신체부위 기증자의 기억을 기증받은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기억소자는 대대손손 번식을 통해 까마득한 조상에서 후손으로, 늘 먹는 음식을 통해 동(식)물에서 사람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한다. 화석연구 신화연구 사례연구 등 과학적 검증을 거쳐 상당부분 공인된 사실이다.


갓난아기 때 부모를 여의어 후천적 모방기회를 갖지 못한 자식이 커가면서 ‘자주 혹은 간혹’ 부모를 닮은 사고방식이나 행동유형을 보이는 이유도 기억소자 전이(유전) 이론으로 설명되곤 한다. 뱀을 본 적도 없고 뱀에 대해 들은 적도 없는 어린이들이 뱀을 처음 보면


십중팔구 징그러워하고 무서워하는 반응을 보이는 근원 또한 이 이론으로 풀이된다. <주라기 공원>이나 <브이> 같은 영화에서 보듯, 태고적 지구의 지배자였던 공룡 등 파충류를 상대로 인류가 벌인 처절한 생존투쟁이 인류의 기억소자에 각인되고 전이돼온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식물의 속성과 그것이 인간에게 전이되는 과정 및 결과에 주목한 연구들은 수두룩하다. 이 문제를 집중탐구한 <기(氣)의학>의 저자 이상명 교수(부산 동의대 화학과)의 이론과 서구의 식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섞어서 간추리면 대강 이렇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에너지(氣, aura)의 파동(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은 서로 물결처럼 이어져 영향을 주고받는다.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음식의 에너지(기), 즉 일종의 속성이 사람에게 전달된다. 육식성 동물(육식주의자)은 초식성 동물(채식주의자)에 비해 성적 욕구가 강하고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동물의 온갖 성호르몬과 죽을 때의 고통·공포로 생기는 아드레날린이 전이돼 인체를 긴장시키기 때문이다.


 식물에도 오라(에너지)가 있다. 상추는 가위로 자르려는 순간에는 약간 붉은 빛으로 변하고, ‘맛있게 먹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입에 넣는 순간에는 보다 밝은 빛으로 변한다(이 이론의 주창자들과 신봉자들에 따르면, 전자는 상추의 방어적 에너지(공포)의 발산으로, 후자는 그 순간 인간의 유쾌한 에너지가 상추에게 전이되고 상추가 이를 수용한 때문이다).


문제는 동식물 에너지를 완전분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차이다. 이 교수 등에 따르면, 음식이 된 식물은 대개 두세시간에서 며칠 사이에 그 식물적 속성(고유의 에너지)이 사라지고 인간에게 필요한 에너지로 변화된다


(식물성 에너지의 변화시간은 제아무리 골초라도 두세시간만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인체내 담배의 독성이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연구결과와 공교롭게 일치한다. 역으로 담배의 독성, 즉 속성에 길들여진 상습흡연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두세시간을 견디기 어렵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반면, 동물성 음식으로 전이된 동물적 속성은 -그 음식의 소화 분해 배설과 관계없이- 적어도 1년이상, 보통 수십년, 심한 경우 100년이상 인체(人體)에 남아 인성(人性)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나아가, 육식으로 인간의 영혼이 동물에너지(일종의 혼령)와 중첩돼 업을 형성해 흉사가 빚어지게 하는 악순환(카르마)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는 이론으로 연결된다.

이를 수용하든 거부하든 무관심하든, 세계각국의 내로라하는 보건의료계 식료품계 등 권위자들이 육식자제와 채식권장을 소리높여 외쳐온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육식기피 채식생활이 미국 등 선진국일수록 풍요의 또다른 상징, 웰빙의 중요한 기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물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우리 곁에서 함께 성장하는 지구상의 다른 종족이다. 동물들은 열등하지 않으며 형태가 다른 자아들이다.(헬렌 니어링)
육식을 끊는 행위는 모든 대륙의 자연을 대대적으로 회복시키는 생태계적 르네상스가 동반될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육식의 종말> 저자)


이처럼 그 출발점은 제각각이다. 의료전문가들은 질병 예방과 완화를 위해서, 다이어트 전문가는 살빼기와 살안찌기를 위해서, 동물애호가들은 애호하는 동물의 보호를 위해서 등등. 그런데 2,550여년 전에 석가모니는 종교적 측면을 포함한 그 모든 관점을 아우르며 살생을 엄금하고 육식을 멀리할 것을 가르쳤다.


◇유효기간별 동물성 음식물의 업(카르마) 

 
▷1년=해삼 굴 멍게 멸치 조개 번데기 생선알
▷3년=소 닭 돼지 바다가재 달팽이 새우
▷5년=고등어 갈치 광어 도다리 아구돔
▷3~5년 칠면조 해파리
▷5-10년=참치
▷10년=조기 꽁치 대구 오리 오징어 홍어
▷20-30년=복어 붕장어
▷30년=잉어 오소리 가물치 자라
▷50년=개 멧돼지
▷70년=뱀장어 뱀 사슴 노루
▷100년이상=거북
※출처 : 동의대 이상명의 교수의 <기의학>

            

 <정리-한국일보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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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우리출판사 발행    죽음을 준비 합시다 (현장스님 역) 


 


중음신(中陰身) 제도법(濟度法)


[불법을 알게 되면 태어남과 죽음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죽지 않는 오직 한 방법은 태어나지 않는 길이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무생(無生;나지 않음)의 경지를 깨달아야 한다. 무생만이 죽지 않는 길이니 영생을 구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죽음과 환생사이의 영혼을 제도하는 밀교와 정토의 가르침

      - [중음신(中陰身)제도법(濟度法)]



"중음신제도법"은 본디 밀종(密宗)에서 전하는 해탈 법 가운데 하나다.


정토종의 제도법과 밀종의 제도법은 그 뿌리가 같다. 다만 밀종에서는 중유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현교인 정토종에서는 중유의 세계는 말하지 않고 제도법만 다루고 있음이 다르다 하겠다.


그렇다면 두 가지 제도법 가운데 어떤 제도법이 이 말법시대에 적합한 제도법이 될 것인가? 밀법수행자는 지혜로운 근기가 있어야하고, 특별한 인연으로 깨우침을 얻은 금강상사(金剛上師)를 만나야 한다.


상사란 밀주(密呪)를 전하는 이를 말하는데 밀종에 귀의한 수행자는 상사가 전해준 이 주문을 날마다 염송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을 맞을 때 밀주의 가지력(지켜주는힘)으로 중유에 빠지지 않는다. 혹 중유에 빠진다 해도 밀법의 힘으로 그 중유에서 빠져나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참으로 깨우침을 얻은 금강상사는 봉황의 털보다 더 드물고 더구나 그런  금강상사를 만나는 일은 더 어렵다. 물론 상사 없이도 한 가지 밀주를 정해놓고 수행할 수는 있겠지만 말법시대에 홀로 밀주 수행을 이루기란 참으로 어렵다 하겠다. 거의 대다수의 중생이 죽을때 중유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이시대에 밀주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적기에 그 가지력 또한 약하다는 말이다.


 말법시대에 밀주를 수행하는 일이란 마치 도둑을 보고 입으로만 경찰을 부르는 것과 같다. 입으로만 경찰을 불러서는 도둑을 물리칠 수 없다. 도둑을 물리치려면 전화로 경찰을 불러야 한다.


지혜 있는 이가 밀주를 수행함이란 이와 같다.  정토종의 염불문에는 조건이 없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바르게 염불만 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정토에 갈 수 있다. 이것이 가장 간편하고 정확한 해탈법이다.


 이 염불문 속에서는 지혜로운 이, 어리석은 이, 죄가 있는 이, 죄가 없는 이, 업이 가벼운 이, 업이 무거운 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중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염불하면 왕생하는데 어찌하여 이 책에서는 중유의 세계를 설명하는가?  염불수행을 하지 않는 불교인과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 중유의 세계를 알려주고 그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일러주기 위함이다.

 

제1장 : 불교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구제법의 다른점

1. 다른 종교의 구제법


다른  종교란 불교 밖의 종교로, 신(神)을 섬기는 종교를 말한다.

신을 섬기는 종교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 섬기는 일신교(一神敎)와 여러 신을 섬긴다는 다신교(多神敎)가 있다. 신을 섬기는 종교의 공통점은 자신이 섬기는 신이 아니면 모두   부정해 버린다는 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믿는 신과 교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가르친다. 역사상 일어났던 수많은 종교 간의 분쟁과 전쟁이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자신의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사악 하다는,신을 섬기는 종교의 가르침은 중생을 구제하기에 앞서 파멸에 빠뜨리기 일쑤다.


이와 같이 신을 섬기는 종교는 그 가르침이 가진 한계 때문에 사람을 구하고 돕는다는 생각이 넓지 못하고 구제할 대상도 신을 맞는 이들로 한정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러한 구제법이 "신의 뜻"이라 믿기에 "따르는 이는 살 것이요 따르지 않는 이는 죽을 것 이다"는 그릇된 가르침을 불멸의 진리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종교의 생명은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중생을 섬기고 보살피는 정신이다. 자신이 믿는 신을 섬기는 이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정신은 바로 그 종교가 갖는 자비의 폭이 좁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이다.


신을 섬기지 않거나 신을 모르는 사람, 또 지옥이나 짐승의 세계에서 괴로움을 받는 중생들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자비심을 귀히 여기는 이라면 이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2.불교의 구제법


불교는 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다. 인과법을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 깨우치는  일을 삶속에서 이루어내는 길이요, 가르침이 불교다.


물론 불교에서도 신과 천국에 매달리지 않고 사는 것을 더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긴다. 삶의 가치를 하나라고 고집할 때 삶을 이어주는 유기 관계는 어김없이 깨지고 그 본디 생명력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신을 섬기든 섬기지 않 든 그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고집함이 없이 사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런 저런 신을 섬기는 이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 왔을 때 삶의 진실을 말씀 하셨을 뿐 섬기는 신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바른 가르침이란 주의(主義)가 아니라 삶의 진실에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바로 삶의 진실에 눈을 뜨는 일이다.


깨달음이란 덧없음과 무엇이, 무엇이 아님을 밝게 몸소 겪는 일이다. 선과 악, 참과 거짓, 신과 사람의 덧없음, 그것이 그것 아님을 밝게 알 때만 끝없는 자비심이 피어난다.

그래서 깨달은 이는 종교나 중생의 모습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행복과 기쁨을 공양(共養)하는 것이다.

 

악마까지도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나도 행복하겠다는 마음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불교의 독특한 정신이라 하겠다. 신을 섬기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악마는 선과 악이 맞섬을 상징한다. 그런 종교에서는 또 사람은 죄악에 물든 존재라 규정한다.

 

 신을 믿으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악마를 따르면 영원히 타락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신을 내세우는 종교에는 인류의 시작부터 악마가 등장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의 죄악을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전지전능한 신이 왜 완전한 사람을 창조하지 못했나 하는 점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악은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죄악은 삶의 현상이요. 삶의 사건이다 현상과 사건은 참으로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예측 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결정짓는 힘을 업(業)이라 하는데 이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겪는 선악 갈등의 괴로움은 업기운 (業氣運)의 맑고  어두움 가볍고 무거움에 달린 것 이지 신이나 악마의 존재와는 관계가 없는 것 이다.


아무튼 크게 깨달은 이는 삶의 진실에 들어 맞게 살뿐 틀 지워진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깨달은 이, 곧 부처님이나 보살들은 꼭 착하고 좋은 모습만으로 악인을 구제 하지는 않는다.


악인의 모습으로 착한 사람을 제도하기도 한다. 불교는 조직으로 힘을 삼는 종교가 아니라 끝이 없는 자비심으로 힘을 삼는 종교다.  불교는 어떤 종교를 따르는 중생이든 어떤 모습을 한 중생이든 그들이  괴로움에 빠졌을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나고 죽는 윤회의 흐름을 길이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조직이나 단체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삶의 진실에 눈을 뜨고 업의 기운을 바꾸는 일을 중히 여길 뿐 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고 또 마땅히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 이것이 불법(佛法)이다.


우리가 불법을 가벼이 여기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괴로움은 더욱 커지고 길어질 것 이다.  그러므로 참된 불교인이라면 순간, 순간 중생의 괴로움을 잊지 말아야 하고 기회를 찾아 인연을 만들어 그들을 이끌면서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업이 무거워 진실성과 조화성을  나 몰라라 하는 삶의 방식에 깊이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생을 바르게 제도 하려면 너나 가릴 것 없이 그 어떤 보상 조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중생의 삶을 당장 바꾸어 줄 수 없더라도 바른 가르침이란 반드시 꽂을 피우기 마련인 죽지 않는 빛과 생명의 씨앗임을 확신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구제 정신이다. 특히  중음신 구제법은 의식이 아홉 배 맑아져 지난 일을 환히 기억할 수 있는 중유기에 든 중생을 위한 가르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 중요함과 뛰어난 공덕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제 2 장 : 죽음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1.왜 태어나는가?


죽음은 태어남에서 생긴다.

죽음과 태어남은 윤회하는 삶의 주된 특징으로, 어리석음(無明)의 힘을 알맹이로 삼는다.


참으로 우리들의 삶이란,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꿈속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무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이 같은 어리석음의 파동이 겹겹이 일어나서 업을 키워나가는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리석음에서 일어난 업의 생은 컴퓨터의 기억장치처럼 삶의 모든 행동의 뿌리가 되어버린다. 어리석음에서 일어난 업력은 나와 ‘맞다’ 또는 ‘안 맞다’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이 같은 생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지어낸다. 그래서 힘살, 뼈, 피따위를 ‘나’ 라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앞뒤 안 가리고 이 나를 지키려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럼으로 해서 ‘나’ 라는 존재를 고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업력에 따라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미움 따위를 가린다. 그래서 저마다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업력이 같은 사람이 모이면 친근감이 생기고 업력이 다른 사람이 모이면 관계가 성글어 진다. 이른바 정신없이 어지러운 탁‘濁’이 생기는 것이다.


업력은 몸으로써 자기를 한껏 나타내려고 한다. 또 고집된 ‘나’ 로 하여금 이득이 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얻으려는 한 마음으로 차차 눈, 코, 귀, 혀, 촉각신경과 생각하는 기능 같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지어낸다.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형성되면 고집된 가짜 ‘나’ 가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활동은 먼저 바깥과의 접촉에서 시작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같이 모든 감각기관이 저마다 그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바깥과의 접촉은 어머니 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태교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접촉에 따라 여러 가지 느낌이 아주 민감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 에게 이득과 편안함을 주는 것이면 즐겁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싫어하고 맞선다.


그래서 사람의 성격이 바뀌면 좋아하지 않던 것을 좋아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떤 사물에 좋고 나쁜 특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업력의 차이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면 그것을 가지려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것이 소유욕이다.


가지려는 욕심도 소유욕이지만 갖지 않으려는 욕심도 소유욕이다. 중생은 이 같은 방식으로 ‘나’ 라는 몸뚱이를 끝까지 소유하고 싶어서 가지가지 억지를 부린다. 이것이 중생의 삶인데 죽음은 이런 저편에 있는 것으로 두려움과 괴로움을 던져준다.


2.왜 죽는가?


중생의 삶이란 무명의 업력이 일으킨 파장이다. 그렇다고 중생의 삶이 업력 하나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업력과 더불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조건들이 함께 해야 중생의 삶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태어남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경전에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천만겁을 헤맨다.”고 했다. 이 말을 새겨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려움을, 한 번 사람 몸을 잃게 되면 길이 삼악도에 떨어져 헤매게 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마음 때문으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누구를 죽이거나 삿된 음행, 거짓말, 도둑질을 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짐승이나 지옥처럼 만들어, 죽으면 바로 그 업의 힘에 따라 그런 곳에 태어나게 된다. 업력에 따라 받은 몸을 보신(報身)이라 하고 업력에 따라 받은 세계를 보토라고 한다.


태어난 뒤로도 많은 조건들에 따라 업력은 바뀌어 가고 삶을 지탱하는 조건들이 다 하게 되면 죽게 된다. 사람마다 업력이 다르기 때문에 목숨도 저마다 다르다, 목숨은 결코 신이 정해 준 것이 아니다. 목숨이 저마다 다른 것은 ‘원인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는 말씀처럼 아주 마땅한 이치이다.


중생은 결과만 보고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생의 원인이 내생의 결과 됨을 알지 못한다. 만약 삶의 진실을 깨달아 인과에 눈을 뜨지 않으면 윤회하는 삶의 괴로움은 태어날 때마다 이어질 것이다.


중생의 생명은 삼라만상과 마찬가지로 조건의 형성으로 태어나고 조건의 이어짐으로 살아가고 조건이 무너짐으로 시들어가고 조건의 없어짐으로 죽는다. 이것이 이른바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生老病死의 변치않는 네 과정인 것이다.


좋은 조건을 태어나면 살아가기에 좋다. 그래서 좋은 인연을 만드는 일이 수행에 필요한 길이 된다. 불법을 알게 되면 태어남과 죽음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죽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태어나지 않는 길이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無生의 경지를 깨달아야 한다. 무생만이 죽지 않는 길이니 영생을 구하는 일은 환상일 뿐이다.


3 죽음이란 무엇인가?


중생은 저마다 업에 따라 몸과 세계를 받는다. 사람들은 업력과 환경이 비슷하기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는다. 이 같은 삶의 조건들이 사라지면 업력도 바뀌고 보고 듣는 세계도 바뀐다.


이처럼 업이 다른 세계로 옮기는 것을 佛敎에서는 전류(轉琉)라 한다.

현대과학에 빗대어 말하면 업력은 전파와 같다.

같은 세계에 태어난 중생은 한 전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삶의 조건이 사라지면 전파가 바뀌어 세계가 달라진다. 죽은 사람은 이제 더는 있었던 세계를 볼 수 없고 산 사람은 죽은 이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마치 TV 채널 1과 채널 2의 전파가 틀려서 채널에 따라 화면이 달라지는 현상과 같다. 중생은 지난 생의 업력에 따라 새로운 몸과 세계를 받는다. 이 같은 진실은 어떤 신의 이름을 불러도 바뀌지 않는다.


부처님은 “모든 존재는 자성(자기라고 고집할 만한 성품)이 없어서 저마다 허상일 뿐이다.”고 가르쳤다.

죽음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태어남과 죽음의 관계를 밝게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면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준비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왜 불교도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이런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매우 어긋나는 말이다. 업력이 끝나지 않았다면 마땅히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과보를 받기 싫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오히려 나쁜 업을 짓게 되어 다음 생에 더 많은 괴로움을 받게 된다.


죽음을 맞는 준비란 무엇인가? 생명의 기원과 그 끝을 알아 모든 생명이 다 거쳐 가는 과정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날마다 염불하면 업력이 부처님의 감응을 받아, 죽을 때 윤회가 사라진 정토에서 태어날 수 있다. 염불수행을 정성스레 하면 스스로 죽을 날짜를 알 수 있고 병고가 없이 맑은 선정 속에서 극락왕생한다. 이것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염불과 인연을 맺지 못한 불자나 다른 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이들이 죽음을 맞을 때 스스로 구제하는 자기 구제법을 다음 장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자기 구제법이란, 비록 나쁜 내생의 길이 나타나도 그 길에 들지 않고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특별한 법이다.



제 3 장 : 네 요소(四大: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地水火風)가 흩어짐


1.죽음의 앞뒤


사람은 한 기간의 업보가 끝나면 저절로 죽음을 맞는다. 불법을 수행한 사람이라면 죽음을 맞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을 때 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재산 때문에,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설사 이 같은 문제가 없고 걱정 않는 사람일지라도 죽음 앞에서 큰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여러 가지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종교를 믿었건 상관없이 스스로의 업력에 따라 가지가지 현상들을이 보인다.


살아서 十善을 베푼 이는 천상의 노래가 들리고 하늘사람이 이끌어 준다. 또 악을 행한 이는 지옥이나 아귀 모습이 나타나 끝없는 괴로움을 받는다.


이같이 악을 행한 이들은 심한 병고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때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그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이가 없다면 그는 업력에 따라 삼악도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큰 선이나 큰 악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면 죽을 때 며칠이나 몇 주 동안 앓기도 하고, 야차, 맹수, 원혼 같은 괴이한 현상을 보기도 한다. 이것 모두가 스스로의 업력이 불러온 것이다.

이때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어떤 이는 눈을 감으려 하지 않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려 하고 어떤 사람은 큰 소리로 욕하면서 눈앞의 괴물을 내쫓으려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네 가지 기운(四大)은 흩어지게 된다.


2. 네 기운이란 무엇인가?


네 기운이란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인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기운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우주법계에 없는 곳 없기에 크다(大)라고 부른다. 사람의 사대는 어머니 뱃속에 들면서부터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자라면서 네 기운은 강하고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


이때 네 기운은 무엇을 판단하는 기능을 지닌 ‘나’가 된다.

사람이 죽으면 네 기운이 흩어지고 인식작용도 사라진다. 다만 업력에 따라 또 하나의 생명을 가진 네 기운을 이루어 그 업력의 기능을 수행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는 이 점을 명심해서 네 기운의 덧없는 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


3. 네 기운(地, 水, 火, 風)이 흩어짐


네 기운으로 뭉친 몸이 흩어질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흙 기운이 물 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이때 죽음을 맞는 사람은 둘레의 압력이 아주 세게 몸을 짓눌러 오는 것을 느끼는데, 그 흙 기운은 몸의 모든 털구멍 속으로 스며들어 와 내장과 뼈를 짓누른다. 매우 심하게 숨이 막히고 큰 괴로움 속에서도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옆에 있는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의 몸이 떨리고 손발에 경련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 만지거나 주물러서는 안 된다. 이 같은 행동은 죽음을 맞는 사람에게 더욱 더 심한 괴로움을 줄 뿐이다.


다음은 물 기운이 불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몸은 찬 기운이 세게 느껴지고 뼈마디와 내장이 얼어붙는 듯한 괴로움이 하고 심해서 방 안에 난로가 있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같은 괴로움은 알몸으로 얼음 속에 있는 것보다 더하고 얼굴빛이 잿빛으로 바뀌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다음으로 불기운이 바람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죽는 사람은 몸의 기능이 다 되어 저항력이 사라지면서 더욱 심한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갑자기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불에 타는 듯한 괴로움이 내장과 팔다리에 스며들고 힘살과 힘줄을 도려내는 듯한 괴로움으로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버린다.


불에 타는 듯이 얼굴이 붉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마시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길어지다가 마침내 숨길이 멈춘다.


마지막으로 바람기운이 흩어진다. 갑자기 심한 바람기운이 죽는 이의 온몸을 몰아치며, 몸이 조각조각 먼지로 흩어지는 극심한 괴로움을 겪게 된다.


이쯤이면 네 기운이 흩어지고 힘살이 무너져 의학에서는 죽음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제8식이 아직 떠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죽음이라 하지 않는다. 이때 친척들은 절대로 죽는 이의 몸을 만져서는 안 된다. 몸을 만지면 죽는 이에게 극심한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화를 나게 하여 죽는 이가 삼악도에 떨어질 수 있다.


죽음을 맞는 사람은 나쁜 신뿐만 아니라 선신이 나타나도 따라가지 말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죽음을 맞기 앞서 넉 달이나 한 달, 3주나 이틀 동안이라도,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 염불행자는 죽을 때 아래와 같은 상서로운 현상을 경험한다.


①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다.


② 죽을 날짜를 뚜렷이 안다.


③ 온갖 끄달림이 사라진다.


④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⑤ 단정히 않아 합장한다.


⑥ 평화로운 빛이 온몸을 감싼다.


⑦ 염불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는다.


⑧ 미묘한 향기가 밀려온다.


⑨ 하늘의 음악이 들려온다.


⑩ 지켜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위의 상서 가운데 두 가지만 나타나도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특히 두 번째, 죽을 날짜를 알 수 있는 상서는 아주 중요하다.



4. 죽을 때의 다른 징조들


사람이 죽을 때 스스로가 살아온 삶의 습기인 선과 악이 모두 눈앞에 나타난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이는 아랫몸이 먼저 식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이는 윗몸이 먼저 식는다.


마지막으로 식는 곳이 얼굴인 사람은 하늘나라에, 심장이면 사람, 배면 굶주린 아귀, 무릎이면, 짐승으로 태어나고, 발이 마지막으로 식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나 윤회를 벗어난 사람은 온몸의 온도가 식어버리고 다만 머리 위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


[지옥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사나운 얼굴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사랑하는 사람한테도 무서운 얼굴을 한다.


l 공중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고 한다.


l 다른 사람이 좋은 말을 해도 듣지 못한다.


l 매우 슬프게 운다.


l 똥, 오줌을 못 가린다.


l 눈을 감고 뜰 생각을 못한다.


l 자주 얼굴과 머리를 가린다.


l 옆으로 누워서 가래를 삼킨다.


l 입과 온몸에서 나쁜 냄새를 풍긴다.


l 다리를 몹시 떤다.


l 코가 옆으로 기운다.


l 눈에 핏발이 선다.


l 엎드려 눕는다.


l 몸을 움츠리며 왼쪽으로 눕는다.



[아귀를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입술을 자주 핥는다.


l 몸이 뜨겁다.


l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 무언가 먹으려 한다.


l 눈을 뜨면 감을 줄을 모른다.


l 두 눈이 말라 버린다.


l 오줌을 안 누고 똥을 가리지 못한다.


l 오른쪽 무릎이 먼저 차가워진다.


l 오른손으로 자주 주먹을 쥔다.



[짐승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보고 싶어 한다.


l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츠리려 한다.


l 온몸에 땀이 흐른다.


l 목소리가 쉬어버린다.


l 입맛을 계속 다진다.



[사람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편안하고 착한 생각이 든다.


l 몸이 아프지 않다.


l 말이 많지 않고 부모 생각을 한다.


l 배우자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고 친척의 이름을 듣기 좋아한다.


l 선악을 가려내고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


l 마음이 진실 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l 친척과 가족을 알아본다.


l 친척들이 한일을 칭찬한다.


l 집안일을 부탁하고 재산을 터놓는다.



[천인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연민심이 생긴다.


l 착한 생각이 든다.


l 기쁜 생각이 든다.


l 밝은 생각이 든다.


l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다.


l 코가 옆으로 기울지 않는다.


l 화내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l 재산과 가족에게 미련이 없다.


l 눈이 맑다.


l 웃는 얼굴을 한다.



제 4 장 : 중유기로 들어가는 앞뒤단계


 

1.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임종중음(臨終中陰)


죽어 몸과 마음이 흩어져 버리면 신령한 의식인 영식靈識이 중음이 세계로 들어간다.

이때 생긴 신령스런 몸이 바로 中陰身이다.


중음신은 괴로움, 두려움, 허둥댐의 시기를 맞는다. 죽음에 바로 든 이가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갖는다.


첫 번째 기회는 죽는 순간 첫 번째 빛이 나타날 때이고 두 번째 기회는 죽은 뒤 빛이 나타 날 때 이다. 중음신이 이때 나타나는 빛을 바르게 가릴 수 있다면 바로 해탈을 얻는다.


실상중음(實相中陰)


l 첫 번째 7회의 해탈기회와 위기


죽은 뒤 사흘 반부터 열흘 반까지를 이른다. 이 시기에 중음신은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일곱 번 갖는다. 그러나 육도에 윤회할 수 있는 위기도 7번 갖게 된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잘 알아두고 해탈의 빛을 잘 헤아려 알면 바로 해탈에 이른다.


l 두 번째 7회의 해탈기회와 위기


죽은 뒤 열흘 반부터 열이레 반까지 이른다. 이 시기에도 중음신은 해탈할 기회를 일곱 번, 육도 윤회할 위기도 일곱 번 맞는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잘 알아두고 해탈의 빛을 잘 헤아려 알면 바로 해탈에 이른다.


투생중음(投生中陰)


죽은 뒤 열이레 반부터 49일까지를 이른다.


중음신은 환경이 더 없이 나빠져 육도에 태어나 다시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받게 될 시기이다. 이때 중음신은 냉정하게 이 책에서 일러준 가르침을 생각해 내어 스스로를 육도윤회에서 건져내야 한다.


중음신은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고 또 어떤 모습과 소리가 보이고 들리더라도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아미타부처님께서 정토로 이끌어 주시기까지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염불해야 한다.


2.임종


몸을 구성하고 있던 네 요소가 흩어지고 제8식이 몸을 떠나면 中有기에 이르니 이때의 몸을 中有身이나 중음신(中陰身)이라 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방황기이다.


죽을 때 마지막 숨을 내뱉고 들이쉬지 않는다고 온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이때 둘레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울거나 만져서는 안 된다.


이렇듯 죽은 듯한 상태가 얼마나 이어지는 가는 죽은 이의 건강상태에 달렸다. 구멍에서 노란 액체가 나오면 죽었다고 할 수 있다.


죽은 이가 아미타불을 염불하게 되면 큰 빛을 볼 수 있다.

이런 빛은 두 번 나타난다. 영식이 몸을 떠나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사나흘이 지나야 깨어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음신이 되는 첫날이다. 그래서 중유기간인 49일은 죽은 그날이 아닌 사나흘이 지난 뒤부터 계산한다.


3.중음신의 일반상황


중음신은 일종의 미묘한 네 요소(사대)로 이루어진 몸으로, 생전의 아홉 배에 이르는 기억력을 지니고 있고 대부분이 스스로가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장례를 치르는 친척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때서야 자신이 죽은 몸 곁으로 와 자신의 죽음을 확인한다.


어떤 중음신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없는 것을 보고 죽었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 이때 중음신은 무척 마음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자마자 큰 괴로움을 느낀다.


중음신은 생전의 몸을 잊지 못해 자주 죽은 몸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때 마다 타는 듯한 괴로움을 느낄 뿐이다.


중음신은 이렇게 정처 없이 헤맨다. 잠시 쉬려고 하지만 중음신은 사람과 달리 목숨이 길지 못하다. 어떤 때는 살아있던 때의 몸이 그리워 집에 돌아가 보지만 몸은 이미 땅 속에 있거나 불에 태워져 사라져 버린 뒤다. 중음신의 괴로움은 더욱 커가고 끝내 중음신은 이 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을 찾는다.


이때 중음신이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바로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중음신은 괴로움에 휩싸이게 되고 구원을 갈망하는 사이에 여섯 가지 빛을 보게 된다.


이 여섯 가지 빛은 육도윤회의 빛으로 자기와 감응이 깊은 세계의 빛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늘세계는 흰색,

사람은 노란색,

아수라는 연초록색,

짐승은 연파랑 색,

아귀는 연붉은색,

지옥은 검은색 빛이다.


이 빛들은 약한 빛으로 큰 밝음이 없다.


만약 중음신이 이 여섯 가지 빛 가운데 어느 한 빛 속으로 빠져들면 윤회의 굴레를 쓰게 된다. 중음신은 이 빛들이 뜻하는 바를 모르기 때문에 오직 직감과 업력으로 빛을 선택한다.


이때 오방불계(五方佛界)에 계시는 부처님들이 윤회하는 삶들을 건지려고 다섯 가지 빛을 뿌린다. 매우 밝지만 찬란하지 않은 파란빛, 청정한 흰빛, 곱고 부드러운 노랑 빛, 고귀한 붉은 빛, 맑고 성스러운 풀빛이 그것이다.


중음신은 이 빛에 따르면 바로 정토에 태어난다.


그러나 중음신은 스스로의 업력 때문에 이 빛을 두려워하면

마계(魔界)의 빛으로 잘못 알아 윤회(輪廻)의 길로 빠지고 만다.


이 부처님의 빛은 함께 나타나지 않고 하나씩 나누어서 나타난다.


4.악업을 받는 낌새


짐승


중음신(中陰身)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기절하여 다시 깨어난다. 몹시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장례식에서 동물이나 집짐승을 죽여 만든 음식으로 대접하면 무서운 형상이 나타나 삼악도로 이끈다. 그러므로 반드시 채식으로 상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자는 큰 괴로움을 당한다.


중음신의 몸은 아주 가벼운 깃털처럼 바람 따라 정처 없이 휘날리게 된다. 또 갑자기 맹렬한 빛과 함께 우렁찬 천둥소리가 터지고 손에 흉기를 든 무서운 야차가 끝없이 나타나고 무서운 맹수들이 쫓아오고 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큰 불꽃이 쫓아온다.


중음신은 겁에 질려 도망친다. 횐 색, 검은색, 붉은색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높은 낭떠러지에 이른다. 야차와 맹수들은 계속 쫓아온다. 그때 홀연히 동굴이 보여 너무 기쁜 나머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동굴은 짐승의 세계다. 야차와 맹수와 소리와 불꽃은 생전에 지은 자신의 업력(業力)이 일으키는 환상(幻像)이다.


흰색, 검은색, 붉은색은 업의 세 요소인 세 가지 毒素이다.


중음신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흔들림 없이 아미타불을 염불해야한다.


아귀(餓鬼)


아귀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아귀의 삶은 ‘구해도 얻을 수 없음’으로 줄곧 이어진다.


중음신에게 이 같은 악업이 있다면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나 동굴에 홀로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아귀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보통 복덕이 있는 아귀와 복덕이 없는 아귀로 나눈다.


복덕이 있는 아귀를 세력 귀라 부른다. 세상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 가운데는 이 세력 귀들이 끼어 있다. 야차, 산신, 토지신이 여기에 속한다. 생전에 보시를 하면서 가난한 이를 도왔으나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거나 남을 속여서 돈을 모은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복덕이 없는 귀신에는 소아귀, 다아귀, 전아귀의 세 종류가 있다.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남을 위해 베풀지도 않은 이는 소아귀로 태어난다. 소아귀는 얼굴이 검고 말랐고 남색이나 붉은색이다. 눈에 눈물이 흐르고 손발이 부서지고 머리카락이 기러 얼굴을 가리고 있다. 목마름이 심하나 자손이 제사지내는 음식이나 절에서 공양하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다아귀도 소아귀와 비슷하나 소아귀보다 괴로움이 심하다.

전아귀는 완전히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입에서 불길이 나와 음식이 입에 닿자마자 타버린다.

거기다 배는 크고 목구멍은 바늘보다 가늘어 배고픔이 극심하다. 우란분회에서 공양하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만약 중음신이 이런 아귀와 감응할 징조를 느끼면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해야한다.


지옥


중음신이 살아있을 때 아주 나쁜 업을 지었다면 아래와 같은 현상을 보게 된다.


슬픈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그 음악소리를 따라가면 검거나 횐 돌로 만든 집이나 동굴로 들어서게 되고 깜깜한 지하도를 건너게 된다. 이것은 지옥에 떨어질 징조이니 중음신은 한마음으로 염불해야한다.


또 어떤 중음신은 추운 비바람 속에서 갑자기 뜨거운 불을 보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불이 있는 곳으로 가면 불꽃지옥에 떨어진다. 거꾸로 뜨거운 바람 속에 있다가 시원한 바람을 마나 그 바람 곁으로 가면 얼음지옥에 떨어진다.


이럴 때도 중음신은 한마음을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아수라


아수라는 본디 좋은 세계에 들지만 자주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싸우는 것을 좋아하니 아주 좋은 세계라고 볼 수는 없다.


남자 아수라는 하늘사람들과 쉬지 않고 싸움을 하고 여자 아수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행자의 수행을 방해 한다.

아수라는 비록 괴로움을 받지는 않지만 목숨이 다하면 삼악도에 떨어질 위험이 많다.


살아있을 때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선악을 가려 낸 중음신은 중유기에 아름다운 숲을 보게 된다.

또 두 개의 불 바퀴가 나란히 도는 것을 보고 좋아서 가까이 가면 아수라로 태어난다.


이럴 때 중음신(中陰身)은 반드시 염불을 해야 한다.


5.선업을 받는 낌새


사람 


『아함경』에 따르면 인간계에는 네 가지 세상, 사대부주(四大部州)가 있다. 동승부주,남섬부주,서우하주,북구로주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사람이 살고 있는 남섬부주 말고는 불법이 없다.


북구로주는 복과 목숨이 길고 향락에 빠지기 쉬운 곳으로 절대로 이곳에 태어나서는 안 된다. 동승신주를 감응한 중은신은 아름다운 기러기들이 살고 있는 큰 호수를 보게 된다. 이런 경치에 이끌리면 이곳에 태어난다.


남섬부주에 감응한 중음신은 심한 추위로 피할 곳을 찾게 되는데 업에 따라 큰 집이나 작은집을 만나게 된다. 만약 벽만 있는 집을 만나게 되면 가난한 이로 태어난다. 이럴 때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모든 현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서우하주에 감응한 중음신은 소가 풀을 뜯는 호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많고 오래 살 수 있으나 불법이 없는 곳이니 절대로 따라 들어가면 안 된다.

중음신은 사람으로 태어나기 앞서 남녀가 결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아버지와 가까이 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면 여자로, 어머니와 가까이 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면 남자로 태어난다.


중음신은 자유로워 시공에 걸립이 없으나 한 번 어머니 배 안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남녀가 결합한 모습을 보게 된 중음신은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해야 된다.


하늘사람


살아 있을 때 착한 업을 쌓은 중음신(中陰身)은 중유기(中有期)에 부드럽고 흰 빛을 보게 되고 기분이 날아갈 듯 편안하다.

하늘세계와 하늘사람들을 보게 되고 마음이 기쁘다.


어떤 이는 죽을 때부터 하늘음악 소리를 듣게 되어 둘레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늘세계는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 저마다 각가지 즐거움이 넘치고 목숨이 길기지만 인연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는 길에 들게 되니,

 

 이 같은 하늘 세계에 끄달려서는 안 된다. 중음신은 하늘세계나 하늘 사람인 천사들을 보면 여기 끌리지 말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그래야 윤회에서 벗어난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제 5 장 : 사람이 죽어서 49동안에 겪는 일들과 자기구제법


임종중음(臨終中陰)...죽은 직후 영혼의 상태


죽음을 맞는 이의 숨길이 끊어진지 스무 시간이나 서른 시간이 되면 죽은 이의 심령(心靈)은 밝은 빛 속에 있으면서 잠깐이나마 더 없는 편안함과 만족을 느낀다.


가족들은 죽은 이의 이런 상태가 깨뜨려지지 않도록 잘 살펴주고 정토염불법을 닦는 벗들이나 스님들을 불러 염불로 중음신의 의식을 더욱 밝혀주어야 한다.


염불을 해주면 중음신은 의식이 어두워지지 않고 바로 눈부신 빛 속에서 해탈에 이를 수 있으니 이것이 중음신에 해탈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이다.


잠깐 동안 밝은 빛이 터졌다 사라지는 경계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때 중음신은 스스로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살아 있을 때처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이들을 보고 그들이 나누는 말을 듣는다.

 

이때는 무서운 업력(業力)에서 나오는 갖가지 환영(幻影)이 나타나기 전으로 중음신은 아주 밝은 빛 속에 있다.


만약 중음신이 살아 있을 때 이 가르침을 보거나 들었다면 바른 생각을 일으켜 계속 터지는 빛 속으로 해탈할 수 있다.


그러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부르거나 그밖에 무서운 모습들을 보게 되면 이는 중음신을 삼악도로 이끌려는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또 아름다운 하늘여인이 맞이하려 해도 결코 마음이 흔들려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윤회하는 괴로움 바다에 빠지게 된다. 살았을 때 움켜쥐었던 그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려야 한다.

꿈같고 물거품 같은 그것들에 끄달리고 그것들을 잊지 못하는 것은 중음신에게 큰 괴로움을 줄 뿐이다.


다 놓아버리지 않으면 끝내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다시 육도윤회에 빠지게 된다.


모든 생각을 다 버리고 아미타부처님께서 정토로 이끌어 주시어 나고 죽는 괴로움에서 건져 주시기를 마음 다해 기원해야 한다.


2.실상중음(實相中陰)..본격적인 저승길에 들어선 영혼


살아 있을 때 바른 가르침이나 스승을 만나지 못한 중음신은 중유기(中有期)에 헤매고 괴로워한다.


죽은 뒤 사흘부터 다시 깨어난 중음신은 눈, 귀, 혀, 몸, 의식의 기능이 본디대로 살아나 중유기간인 49일 동안 활동한다. 장님이나 벙어리였던 중음신도 이 기간에는 걸림 없이 보고 말할 수 있다. 중음신의 몸과 의식은 지극히 섬세하고 맑아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다. 중음신은 가족과 벗들이 슬피 울고 외쳐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중음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음신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가족과 벗들에게 마음이 상해 자리를 떠난다. 이 단계에서는 업력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환영들이 잠깐씩 나타나기도 한다.

중음신은 해탈의 기회를 7번, 육도윤회에 빠질 위기도 7번 맞이한다.


만약 중음신이 이 가르침을 잘 외우지 못하거나 아미타불을 염불할 수 없어 업력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 무서운 현상들에 휘몰려 정신없이 쫓겨 다닌다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 가운데 떨어져 무서운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

 

중음신은 앞장에서 말한 일반현상 말고도 날마다 여러 가지 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에 휘말려 들지 않으려면 그 낱낱 현상들을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반드시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희락부제존(喜樂部諸尊)자기제도법


[죽은 뒤 첫이레 동안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투는 여러 불보살을 만남]


첫째 날 : 중음신은 마치 맑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보이는 온통 파란색의 세계를 본다.


그 파란색의 한가운데서 비로자나부처님이 사자좌에 앉아 가슴으로 부터는 눈이 부신 파란빛을 중음신에게 내린다. 이 때 부드럽고 옅은 흰빛도 함께 온다.

중음신은  이 흰빛이 아니라 반드시 파란빛으로 들어 가야한다.


둘째 날 : 물 기운의 맑고 깨끗한 흰빛이 중음신을 향해 쏟아진다.


이는 금강부의 부처님이 상황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이끌려고 내리는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있다. 이때 안개와 같은 검은 빛이 함께 오는데 이빛은 지옥의 빛이니 결코 들어가서는 안 된다.


셋째 날 : 흙 기운의 눈이 부신 황금빛이 중음신에게 내려온다.


이는 보생여래(寶生如來)가 보마보좌(寶馬寶座)를 타고 중음신을 건지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허공장보살과 지장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다. 이때 옅은 노란색에 파란색을 띤 빛이 함께 내려온다. 이 빛은 사람세계로 이끄는 빛이다. 해탈을 바라는 중음신은 눈부신 황금빛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넷째날 : 불기운에 붉은 보배광명이 중음신에게 내려 온다.


이는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이 공작왕(孔雀王)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건지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있다.


이 때 아귀세계로 이끄는 연 붉은 빛도 함께 내려온다.

결코 붉은 보배광명을 피하면 안 된다. 아귀세계에 빛은 부드럽지만 욕심이라는 업의 기운에서 나오는 빛이다.


다섯째 날 : 바람기운의 맑고 깨끗한 초록빛이 중음신에게 내려온다.


이는 불공성취불(佛空成就佛)이 인신조체수왕(人身鳥體獸王)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건져내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금강수 보살과 제개장보살이 있다. 이때 아수라 세계로 이끄는  어두운 초록빛도 함께 내려온다.


어두운 초록빛은 성내고 탐내는 나쁜 업의 기운에서 나타난 것이니 절대 이빛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여섯째 날 : 이날에는 아직 방황하고 있는 무거운 업의 중음신을 향해 앞에 나타난 다섯 부처님들의 빛이 함께 내려온다.

이 빛은 본디 맑고 깨끗한 스스로의 깨달음의 빛인 참고향이니 중음신은 이 가운데 한 빛을 따라가게 된다. 이때 자신의 업력에 빛인 옅은 빛도 함께 나타난다.

하늘나라는 옅은 흰빛, 사람은 옅은 노란빛, 아수라는 옅은 초록빛, 짐승은 어두운 파란빛, 아귀는 옅은 피 빛, 지옥은 뽀얀 검은빛이다.


이 같은 빛들은 깨달음의 빛 속에 섞여 내려온다.

결코 맑고 눈부신 빛을 피해 약하고 부드럽고 어두운 빛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살았을 때 신을 숭배하고 하늘나라에 태어나기를 소망했던 중음신들은 그런 소망을 비워야 한다. 만약 비우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는 흰빛을 따르면 나고 죽는 윤회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일곱째 날 : 엿새 동안에 기회를 다 놓친 중음신은 다시 7일을 맞이하게 된다. 이 날은 오부존자(五部尊者)가 동, 서, 남, 북, 중앙에서 오른손으로는 항복수인(降伏手印)을 지으면서 보배 칼을 높이 들고 왼손에는 피가 담긴 해골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중음신에게 빛을 내린다.


이 때 짐승에 길로 이끄는 파란빛이 내려온다. 존자가 내려 주는 빛 속에는 천배로 증폭된 천둥소리가 들린다. 중음신을 결코 두려워 면서 짙은 파란빛으로 들어서서는 안 된다.


존자들에 내려주는 지혜에 빛은 본래 스스로의 본디 광명에서 오는 것이고 축생도의 빛은 어리석은 업력(業力)에서 나온 것이다.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淨土)에서 태어난다.




분노부제존(忿怒部諸尊)의 자기구제법…살아생전에 화를 낸 업력이 나타남


죽은 뒤 둘째 7일 동안에 성낸 모습 짓는 불보살을 만나게 된다.


자비의 모습으로 인도받지 못한 중음신은 분노의 모습을 통해 이끌림을 받게 된다.


악업을 지은 중음신은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친근감이 일어나 고향에 돌아 온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불보살은 중생의 악한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가지가지 성내는 모습을 나투어 그 중생을 제도한다. 이것은 중생을 괴로움에서 건지려는 불보살의 자비이자 스스로의 깨달음의 성품이 스스로를 회복하려는 자연스런 움직임이다. 이때 중음신은 이런 현상이 불보살의 자비이고 스스로의 의식이 지어낸 현상임을 알아 겁내거나 달아나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제도법을 한번 보게 되면 의식이 아홉 배나 맑아진 중유기에서 바르고 두려움 없이 윤회를 벗어 날 수 있다.


이것은 중유기에서 자기를 제도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니 종교와 상관없이 다른 방법으로 자기를 구할 수 없다.


여드렛 날 :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홍갈색의 몸을 하고 얼굴 셋에 손이 여섯이고,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색, 왼쪽얼굴은 붉은색, 가운데 얼굴은 흙 갈색으로 온 몸이 불꽃에 휩싸여 있고 아홉 개의 눈으로 빛을 쏘아 내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과 눈썹에서는 번개 같은 빛을 내고 산이 무너지는 큰소리로 ‘아라하, 하하!’하고 소리친다. 이는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중음신을 건져주려고 나타낸 모습이다. 절대 겁내지 말고 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아흐렛 날 : 금강부의 피를 빨아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파란색으로 얼굴 셋에 팔은 여섯 개,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얼굴은 붉은빛, 가운데 얼굴은 파란빛이다.


이는 자신의 업식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금강보살의 화현으로 귀의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흘 날 : 보부(寶部)의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황색으로 얼굴 셋에, 팔이 여섯, 발이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 얼굴은 붉은빛, 가운데 얼굴은 노란빛이다.


이는 업식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보생여래(寶生如來)의 화신(化身)으로 귀의(歸依)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열 하룻날 : 연화부의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녹색으로 얼굴 셋, 팔 여섯,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 얼굴은 파란빛, 가운데 얼굴은 붉은빛이다. 이는 자신의 업력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귀의 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 이튿날 : 갈마부의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녹색의 얼굴 셋, 팔이 여섯에, 발이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색, 왼쪽얼굴은 파란빛, 가운데 얼굴은 풀빛이다.


이 또한 자신의 업력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불공성취불(佛空成就佛)의 화신(化身)으로 귀의(歸依)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열 사흗날 : 이때는 중음신의 업력에서 나오는 집착으로 허깨비와 같은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주 위험하다. 이때는 동서남북 그리고 그 사이와 위, 아래 팔방에서 무서운 얼굴을 한 분노존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중음신의 업력에서 일어난 환상(幻像)이니 절대 겁먹거나 달아나지 말고 한마음으로 귀의 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 나흗날 : 이날에 중음신 스스로의 업에서 나타난 화내는 존자와 이십팔여신이류존자(二十八女神異類尊者)들이 보인다. 그 모습은 다음과 같다.


1.동쪽 


l 짙은 붉은색의 소머리와 방패, 해골을 들고 있다.


l 황홍색의 뱀머리와 연꽃을 들고 있다.


l 검은 초록색의 표범머리와 삼지창을 들고 있다.


l 검은 원숭이 머리와 굴레를 들고 있다.


l 붉은 곰머리와 짧은 창을 들고 있다.


l 흰곰 머리와 쇠줄을 들고 있다.




2.남쪽


l 노란색의 박쥐머리와 칼을 들고 있다.


l 붉은 사자머리와 향로를 들고 있다.


l 붉은 전갈머리와 연꽃을 들고 있다.


l 흰독수리 머리와 방패를 들고 있다.


l 검은녹색의 여우머리와 곤봉을 들고 있다.


l 검은 황색의 호랑이 머리와 해골그릇을 들고 있다.




3.서쪽


l 검은 녹색에 독수리 머리와 짧은 곤봉을 들고 있다.


l 붉은색 말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송장을 들고 있다.


l 흰독수리 머리와 곤봉을 들고 있다.


l 노란개머리와 방패, 칼을 들고 있다.


l 붉고 목이 길면서 부리가 굽은 새머리와 활을 들고 있다.


l 녹색 사슴머리와 보배 솥을 들고 있다.


4.북쪽


l 파란색의 늑대머리와 작은 깃발을 들고 있다.


l 불고 굽은 뿔을 한 산양머리와 앞이 날카로운 곤봉을 들고 있다.


l 검은 멧돼지 머리와 이빨로 이어진 고리를 들고 있다.


l 붉은 까마귀 머리와 아이의 송장을 들고 있다.


l 검녹색의 코기리 머리와 송장, 해골을 들고 있다.


l 파란색 뱀머리와 긴 줄을 들고 있다.


5.바깥쪽에 있는 네 문


l 동문 : 검은 꾀꼬리 머리와 쇠고리를 들고 있다.


l 남문 : 노란 산양머리와 밧줄을 들고 있다.


l 서문 : 붉은 사자머리와 쇠줄을 들고 있다.


l 북문 : 녹색의 뱀머리와 종을 들고 있다.


이 같은 진노존자(嗔怒尊者)들은 모두 자비심에서 태어난 모습이니 겁내지 말고 잘 가려내어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바로 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만약 중음신이 49일 동안에도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고 헤매게 되면 온갖 마왕들이 흉악하고 난폭한 모습으로 중음신을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이럴 때도 중음신은 절대로 겁내지 말고, 염불발원(念佛發願)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3.투생중음(投生中陰)


투생중음과 심판


투생중음이란 다시 태어나는 중음신을 말한다.


중음신이 만약이 지은 악업에 걸려 두렵고 무서움의 괴로움을 받으면서 죽은 지 17일반이 지나도록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면 처참하고 더욱 괴롭고 무서운 경계를 만나게 된다.


악업을 지은 중음신은 무섭게 불어 대는 악업의 바람에 날리고 끝없는 암흑 속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죽여라! 죽여라!”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산목숨을 즐겨 죽인 중음신은 나찰에게 잡아먹히거나 무서운 맹수들에게 쫒기거나 추위, 뜨거움, 큰물, 눈 조각, 암흑, 거친 바람, 무너지는 산, 하늘까지 타오르는 불길, 살을 에이는 칼바람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만난다.


중음신은 줄 곳 무섭고 두려움에 쫓겨 스스로의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붉은빛, 흰빛, 검은빛의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다.


이때 중음신이 받는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 없고 그 처참하기가 그 보다 더할 수 없다. 생각은 재처럼 죽고 뜻은 얼음처럼 차가워져서 춥지 않은데도 심하게 떤다.


이에 중음신은 자신이 머물던 몸을 찾지만 몸은 이미 죽어 얼었거나 썩었거나 아니면 화장이 되었거나 땅에 묻혀 있는 것을 보고는 큰 바위틈에 짓눌리는 것 같이 말할 수 없는 큰 괴로움을 받는다. 이때 육도로 이끄는 빛이 중음신을 비추는데 만약 중음신이 몸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 여러 갈래 빛 가운데 어느 한 빛 속으로 들어가 끝없는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받게 된다.


이때 중음신은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사나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칠 흙 같은 어두운 안개 속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의 무리들이 하늘 가득 타오르는 불꽃을 보기도 하고 큰 산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또 성난 바다가 덮쳐오는 듯한 소리를 듣기도 하고 귀를 막는 희고 붉고 검은 세계의 큰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한다. 중음신이 두려워 거나 놀라서 숨을 곳을 찾으면 가지가지 짐승의 몸으로 태어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저 두렵고 무서운 중음의 상황들이란 실재하지 않는 허깨비로, 놀라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 마음을 기울여 아미타불을 부르면 한 생각 사이 금빛 몸의 아미타불께서 백호로 눈부신 빛을 비추시며 바로 눈앞에 나타나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이다.


중음신은 가지가지 험한 모습을 한 귀왕들에게 심판을 받고 온갖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음신은 이 모든 현상이 스스로가 지은 나쁜 업에서 흘러나온 현실임을 알고 『반야심경』에서의 가르침인 “모양이 비어 있음이고 비어 있음이 곧 모양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가르침이나 『금강경』말씀인 “모든 모습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如來)를 보리라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의 진실한 뜻을 잘 관조해야 한다.


그러면 중음신은 살아있을 때보다 아홉 배 맑은 영성으로 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만약 그래도 진실한 뜻이 밝혀지지 않으면 모든 두려운 모습들에 눈을 팔지 말고, 다만 아미타불만을 지극하게 부르면 험한 중음계를 벗어나 정토에 태어난다.


만약 중음신이 남녀가 음행하는 모습을 보거든 냉정함을 잃지 말고, 절대로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샘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만에 하나 이런 마음을 내면 바로 윤회하는 아기집 속에 들어가 짐승의 몸을 받아도 본인의 의식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이럴 때 중음신은 결코 탐애, 성냄, 교만, 시기심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평정을 잃지 말고 오직 염불하는 마음만을 이어가야 한다.


만약 이 같은 노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경계가 실재가 아님을 깨닫기 어려우면 음행하는 남녀를 관세음보살의 화현으로 보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한마음 한뜻으로 예배하면 모든 욕심이 사라져 아기집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또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거룩한 모습의 아미타부처님께서 눈앞에 나타나 어느새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


윤회하는 아기집에 들어가지 않는 길


희락부의 오방부처님의 빛과 분노제존의 빛은 중음신 스스로의 본디 생명이 빛이다.


그 빛을 받고도 지어놓은 나쁜 업력에 이끌려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또 바른 생각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지 않아 해탈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면 중음신은 더더욱 험하고 위험한 투생중음의 단계로 접어든다.


투생중음기의 중음신은 스스로의 선악업력의 감응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떨어지거나 옆으로 옮아가는 느낌이 든다. 뒤이어 폭풍, 찬바람, 우박, 진눈깨비, 암흑이 펼쳐지는 상황을 만나거나 누군가 뒤쫓아 오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업을 쌓지 못한 중음신은 괴로운 경계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쁘고 좋은 업을 쌓은 중음신은 아주 편안한 느낌을 갖는다.


중음신은 스스로의 업력에 따라 다시 태어날 몸을 받는데 이때 중음신을 이끄는 빛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중음신이 한번 이 빛 가운데 들어서면 다시 윤회하는 삶인 육도의 아기집속에 빠져들게 된다.


투생중음기에 모든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참되고 맑은 생각을 일으키면 바로 육도윤회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약 음행하는 남녀를 보면 흔들림이 없도록 해야 되고 결코 마음이 움직여 탐애심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신의 생명의 어머니인 관세음보살이 화현하신 모습이라 여기고 절하고 예배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아기집의 문이 저절로 닫힌다.


만약 중음신이 아주 무거운 업력 때문에 위에서 말한 방법으로도 여전히 아기집의 문이 닫히지 않아 이미 아기집 속에 들어갔음을 알게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다시 아기집을 벗어 날 수 있다.


아기집에 들어갈 때 스스로의 경계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허깨비임을 관찰하고 거짓을 참으로 삼는 집착을 깨뜨리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아기집을 벗어나 해탈에 이른다. 중음신은 앞에 펼쳐지는 현상들을 이렇게 밝게 보아야 한다.


“아! 부모여, 함께 몸을 섞는 모습이여, 검은 빗줄기여, 거친 바람이여, 간장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리여, 울부짖는 귀신의 외마디여, 모두가 덧없어 참으로 있는 것이 없구나.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그것이 어떤 소리든 그것은 마치 물거품처럼, 거울 속의 그림자처럼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것은 다만 나의 업식에서 일어난 모습과 소리인 것을…이제 다시 내가 그것들과 함께 어우러진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나의 업식도 본디 덧없는 것인데 하물며 그것이 지어낸 모습과 소리가 실재일 수 있는가!


이 같은 진실을 모르고, 거짓을 참으로 삼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여겨 끝없는 윤회의 강물에 휩쓸려 지금에 이르렀으니 아! 윤회여, 이제는 사라지거라, 물거품 같은 윤회여.”


이렇게 관조하면 어느 새 큰 평화로움이 밀려오고 중음신은 태어남이 없는 고요함 속에 더없이 말고 밝아져 윤회하는 아기집을 영원히 떠나게 된다.


거듭 말하지만 중음기에는 살아 있을 때보다 영성의 힘이 아홉 배나 밝으니, 이 힘을 한껏 활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투생중음신은 난생, 태생, 습생, 화생 가운데 어느 하나로 태어나게 된다.

정자와 난자가 서로 만나는 순간 중음신은 큰 쾌락을 느끼며 이 쾌락 속에서 의식을 잃고 알이나 태속에서 몸을 받고 태어나 두 눈을 뜬 뒤에야 자신이 돼지, 소, 개, 염소 또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또는 육도에 윤회하는 몸을 받아 갖가지 괴로움을 받게 된다.


거꾸로, 지금 살아서 닦는 수행은 중음기보다 아홉 배나 어려운 수행이라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이생에 닦는 수행이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중음기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큰 것이다.


만약 근기가 낮고 업장이 무거운 데다 한량없는 옛 생부터 지어온 나쁜 버릇으로 모든 해탈법문이 도움이 되지 않는 중음신은 제4장에서 밝힌, 투생중음이 맞는 여섯 가지 세계를 잘 가리고 나아갈 길을 바르게 잡아 마지막 해탈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제 6 장 : 제 8 식과 중음신(中陰身)-마지막 의식구조


1.식(識)의 감응


중유기에 경험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전능한 신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가장 깊은 의식 구조인 제 8식(아뢰야식)이 지어낸 현상들이다. 어찌 중유기의 현상들 뿐 이겠는가.


태어남, 죽음, 윤회, 괴로움, 즐거움 같은 삶의 현상들도 다 마찬가지다.


제 8식은 주관과 객관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삶의 마당인데 갈무리한 삶의 모든 내용과


그 기능이라는 쪽에서 아뢰야식 이라고 한다.


아주 강력한 탐욕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생의 아뢰야식은 끝없는 망상 속에서 자기를 본떠 만들어서 몸과 환경을 지어 가는데 그 과정이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뢰야식의 특징은 놀라운 갈무리 능력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저지르는 모든 삶의 경험들을 컴퓨터와 같이 고스란히 갈무리한다.


이렇게 갈무리한 낱낱의 삶의 경험들을 종자, 곧 씨앗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때 말하는 씨앗의 개념은 수행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


그리고 아뢰야식(제8식)은 이러한 씨앗과 씨앗 사이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유기적 생명활동이라는 점에서 콩씨, 팥씨나 컴퓨터의 기억내용과는 다르다.


중생이 수많은 삶을 살면서 얻은 삶의 경향은 모두가 욕심, 성냄, 어리석음, 잘난 체함. 삿된 의심 같은 번뇌에서 온 것이다. 번뇌가 없다면 윤회의 괴로움도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삶을 윤회로 이끄는 뒤바뀐 삶의 경향을 업(業)이란 한다.


중생은 이 같은 업으로 스스로의 삶의 마당인 제8식을 삼고 있는 것이다.


8식은 새로운 생명활동을 결정짓는 힘이다. 죽을 때는 마지막으로 떠나고 다시 태어날 때는


먼저 들어가 생명형성의 조건을 결정짓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지어놓은 8식에서 터져 나오는 삶의 현상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할 때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져든다.


중유기에도 마찬가지이다.


8식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환상들을 바르게 읽지 못하면 윤회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창조신을 숭배하고 삶과 죽음까지도 창조신의 조화로 여기는 행위도 자신이 지어놓은 깊은 의식인 8식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처럼 중유기에 든 중생이 8식의 감응을 바르게 아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8식에서 일으키는 선악의 생각에 따라 중음신은 천당이나 지옥 같은 가지가지 세계를 지어낸다. 그러나 이렇게 지어낸 세계는 좋든 싫든 영원한 것은 없다. 지어낸 세계에 따라 그 기간이 길거나 짧은 차이는 있지만 이것은 모두 8식의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과보로, 8식의 조건이 바뀌면 세계고 바뀌기 마련이다. 신을 섬기면 신의 세계가 나타나고 욕심을 섬기면 욕심의 세계가 나타난다.


중생의 어리석음은 이같이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8식의 현상들을 진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있다.


제8식 아뢰야식이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일이야 말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관(如實觀)이고 어리석음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2.염불법문(念佛法文)의 감응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이들은 염불법문의 오묘함을 알지 못한다.


중생은 시작이 없는 옛적부터 스스로의 삶을 굴려온 허깨비 같은 8식의 힘을 한꺼번에 없애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끝없는 자비원력을 일으켜 중생들로 하여금 건너기 힘든 윤회의 강을 쉽게 뛰어 넘게 하신다.


아미타불의 자비원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8식의 본디 모습인 아미타불의 세계를 청정한 마음으로 불러 정토에 태어나게 한 뒤 그 근기에 따라 저도 모르게 8식에 녹아 있는 삼독번뇌를 남김없이 없애주는 위없는 방편을 말한다.


이것은 중생이 윤회하는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힘 있는 실천법이다.


사람이건 앵무새건 원숭이건 지극한 한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그는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 윤회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나무아미타불’은 신비한 암호와도 같아서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괴로움일지라도 쉽게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업장이 무거운 중생일수록 염불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종파가 있고 종파에 따른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


가르침은 저마다 뛰어나고 훌륭하다. 그러나 염불법문 밖의 가르침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려면 많은 생을 두고 닦은 숙세(宿世)의 근기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중생의 성품이 흐리고 생활이 복잡한 시대에는 섣불리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수행법이나 실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오직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왕생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아미타경』을 비롯해 『무량수경』.『관무량수경』.『법화경』.『화엄경』.『능엄경』.『대집경』.『대운경』 『반주경』같은 많은 경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문수보살,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도 염불을 발원했고, 마명스님, 용수스님, 혜원스님, 천태스님, 원효스님, 서산스님, 감산스님, 같은, 불문이 수많은 용상대덕(龍象大德)들이 염불법문을 수행했다.


염불법문은 불법의 큰 줄기다. 선종(禪宗)에는 돈(頓),점(漸)두 파가 있는데 돈파(頓波)에서는 근기(根機)에 따라 문득 깨달아 불법의 모든 것을 이루게 하고 점파(漸派)에서는 점차로 수행을 닦아 본성을 되찾게 하는 가르침을 편다.


염불법문은 돈, 점의 수행공덕을 함께 이루어 준다.


또 꾸준히 염불하면 스스로 죽을 날을 알게 되어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죽음을 맞는 법을 몸으로 가르치고 보여 주어서 그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공부를 하게 하는 큰 공덕을 지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죽음에 거의 다다라 좋은 스승을 만나서 염불수행을 하다 바로 정토에 태어나기도 하니, 이것은 돈파(頓波)에서 말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참선수행은 마념(魔念)의 침해를 쉽게 받지만 정토수행(淨土修行)에는 그럴 위험이 거의 없다.


밀종(密宗)의 수행은 만트라를 수지하는 수행법이지만 밀법수행도 숙세의 근기가 있어야 한다. 끈기 있게 애써 수지한다면 이룰 수도 있지만 죽음을 잘 맞을 수도 있다는 보장이 없다.


죽을 때 무거운 업장 때문에 자칫 정념(正念)을 잃어 만트라를 수지하지 못한다면 다시 윤회 속에 빠지고 만다.


염불법문은 말법시대에 가장 맞는 수행법이다. ‘아미타불’,이 염불은 만트라 가운데 만트라로서 한 번 불러도 왕생하고 열 번 불러도 왕생한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염불법문처럼 쉽고 간단한 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다른 수행법을 실천하는 것은 마치 장님이나 귀머거리 같다.”


염불법문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저 딴 생각 없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아미타불의 큰 원력을 믿게 되고 윤회하는 괴로움을 절실히 느껴 해탈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시작 없는 옛날부터 지어온 업장을 참회하고 참된 귀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덧없는 나고 죽음의 절박함을 알게 되어 결코 게으르지 않게 된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진리의 힘을 8식의 내용이 바뀌면서 본디의 자기 모습인 끝없이 밝은 佛性이 환히 드러나니 이것이 바로 ‘자성미타(自性彌陀)’이다. 자성미타는 생명의 참 모습이자 부처님의 염통이다.


중생은 삼독번뇌로 육도의 업보를 받게 되고 깨달음으로 정토에 태어난다. 날마다, 날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8식이 부처님의 세계로 피어나고, 그릇된 업으로 살면 8식이 삼악도를 지어낸다.


또한 염불도 입과 마음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해야지 입만 염불하고 마음으로는 나쁜 생각을 한다면 무슨 공덕이 있겠는가. 오히려 악한 사람일지라도 참마음으로 염불하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3.부모불(父母佛)의 감응


머무름이 없는 열반인 무주열반에 드신 부천님은 인연중생을 건져 주시려고 가지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중음신의 윤회는 비록 업력 때문에 이루어지지만 중음신은 윤회할 생명으로 아기집 속에 들어가기 앞서 부모가 결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음행의 업에 물든 중생은 쉽게 생각이 뒤집혀 버린다. 이 일을 잠깐 뉘우쳐 보지만 그것은 이미 아기집 속에 든 뒤의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남녀가 끌어안고 있는 쌍신불의 모습을 나투신다.


부모불의 모습에 이끌려 들어와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바른 귀의를 이룬 중음신은 정토에 태어나게 된다. 이 같은 부모불의 모습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은 중유기에 들어간 중음신이 이 같은 모습을 보면 곧 다가가 정토에 왕생하라는 뜻이다.


부모불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부모불에 사악한 느낌을 갖기 쉽다. 하지만 부모불이 사악하다고 한다면, 사람을 창조해 놓고 지어낸 사람이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나쁜 짓을 저지를 때 사정없이 벌을 내리는 창조신은 어떠한가.


부모불의 모습까지 나투며 끝까지 어린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부처님의 자비심은 참으로 끝이 없다 하겠다.


 

제7장 : 죽는 법과 죽는 이 보살펴 주기


1.죽기에 앞서  주의할 일들


l)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정신이 아직 맑을 때 스님을 모셔온다. 그래서 정토에 대한 믿음과 반드시 그 곳에 태어나겠다는 원을 일으켜 주고 기쁜 마음으로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제지보살이 크나큰 빛살을 타고 오시어 정토로 이끌어 주시는 것 말고는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흔들림이 없도록 잘 일러주어야 한다.




2) 죽을 사람이 염불하기를 싫어하거나 괴로워 발버둥치거나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업장이 드러난 것으로 정토에 태어나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참회하거나 왕생주(往生呪)를 108번 지송하거나 『지장경』을 읽고 그 공덕을 죽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서 함께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3)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더는 목숨을 이어가기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바로 가족들과 상의해서 빨리 병에서 집으로 데려간다.


죽은 사람이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염불하도록 해야 한다.



4) 죽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고 혹시나 당부할 일이 있는지 물어서 죽은 사람이 죽은 뒤의 일을 걱정하거나 매달리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당부하거나 정리할 일을 다 말하게 한 뒤로는 모든 세상인연을 다 놓아버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 육도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5) 가족들은 죽는 사람의 곁에 모여 함께 염불한다. 불보살님께서 자비를 드리워 죽는 사람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길 정성스런 마음으로 기원해 주어야 한다.



6) 가족들이나 벗들은 절대로 죽는 사람의 마음이 약해질 만큼 지나치게 부드럽고 사랑스런 말을 건네거나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죽는 사람이 가족에 끄달려서 바른 생각을 잃고 나쁜 길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목숨을 거둔 뒤에 주의할 일들



죽는 사람의 의식은 숨을 거둔 뒤에도 몸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으면서 여전히 지각활동을 하고 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12시간쯤 지나 죽는 사람의 온몸이 차갑게 식고 의식이 몸을 떠난 뒤에 비로소 죽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12시간 안에는 모든 행동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여 죽은 이가 동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 좋은 방편으로는 죽은 이를 편한케 하여 바른 믿음을 내게 해준다.

스님이나 함께 염불할 수 있는 벗들을 불러 죽은 이의 상황에 따라 정토로 이끌어 준다.

염불할 때는 실제 상황에 따라 때에 맞게 이끌어 주고 왕생에 대한 믿음과 바람을 일깨워 준다.




2) 번갈아 가면서 염불한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경건하게 염불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죽은 이의 신식(神識)이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고 아울러 염불 공덕을 죽은 이에게 돌려준다.



3)결코 죽은 이의 몸을 만지거나 흔들어서는 안 된다.


죽은 이의 몸을 바삐 씻거나 옷을 입히거나 영양제 주사바늘 같은 것을 뽑거나 하는 것은 죽은 이에게 말할 수 없이 큰 괴로움을 주는 행동이다.


만일 어쩔 수 없이 죽은 이를 옮겨야 할 때는 반드시 큰 소리로 염불해야 한다.


끊임없이 주의해야 할 것은 모기, 파리, 개미 같은 벌레가 죽은 이의 얼굴이나 몸에 붙거나 기어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4) 소리 내어 울거나 죽은 이의 몸에 눈물을 떨러 트려서는 안 된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거든 다른 곳에 가서 울고 가라앉으면 다시 돌아와 염불해준다.




5)시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


염불하는 곳에서 기침이나 하품, 재채기를 하거나 전화소리, 가족들이 의논하는 소리를 내서 염불하는 망자의 의식을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




6) 세상 풍습에 따라 죽은 이에게 종이돈을 올리는 등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죽은 이에게 끄달리는 마음을 일으켜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방해  해서는 안 된다.


또 염불하는 방안의 공기를 더렵혀서 염불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7) 병원에서 목숨을 마친 이의 몸을 냉동처리 하거나 방부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


냉동처리 하면 죽은 이에게 얼음 지옥에 빠진 것과 같은 괴로움을 준다.


송장이 썩을 까봐 걱정되면 좋은 향을 피우거나 얼음을 방안에 놓아두되 절대로 얼음을 송장위에 놓거나 너무 가까운 곳에 두어서는 안 된다.



8) 송장이 차갑게 식은 뒤에 두어 시간 지난 뒤에 목욕을 시켜주고 옷을 입힌다.


절대로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잘 아는 이나 경험 있는 이를 불러서 처리해야 한다.


만약 이런 사람이 없거든 가족들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뼈마디가 굳었을 때에는 더운물에 적신 수건을 덮어 주면 저절로 펴진다.




9) 화장은 7일 뒤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에 하나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크게 다치거나 병을 앓다 죽은 경우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3.왜 염불해 주어야 하는가?




죽은 이가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염불해주는 이는 왕생정토에 대한 도리와 방법을 분명히 알아야 죽은 이를 도울 수 있다.


죽은 이에 따라 신식(神識)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다. 숨길이 끊어져 죽으면 살아온 삶의 경향이 낱낱이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이것이 본성에 달라붙어 바깥 경계를 향해 설쳐댄다.


이때에는 완전히 업이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는데 힘이 큰 업일수록 곧바로 들어난다.


악업(惡業)을 많이 지은이는 악종자(惡種子)의 힘이 커서 이 씨앗의 기운이 들어나면 삼악도에 떨어진다. 선업(善業)을 많이 지은이는 善種子가 하늘 세계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살아 있을 때 염불공부를 한 이라면 염불 씨앗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염불 씨앗의 힘이 아주 커서 다른 씨보다 먼저 나타나면 불보살의 힘이 아주 커서 다른 씨보다 먼저 나타나면 불보살의 자비광명을 따라 정토에 태어난다.


그러나 염불씨앗의 힘이 적어서 잘 나타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곁에서 염불을 도와주면 죽은 이의 염불씨앗이 쉽게 나타나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경전을 독송한 이, 만트라 수행을 한 이 가릴 것 없이 죽음에 다다르면 오직 ‘아미타불’이 염불씨앗이 나타나야 힘이 되고 빛이 되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4. 어떻게 죽는 이를 도울 수 있는가?


『지장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이가 죽은 날에는 산목숨을 죽이는 일 같은 나쁜 인연을 짓거나 신에게 기대는 행동을 하지 말라.


왜 그런가? 이 같은 행위가 털끝만큼도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쁜 인연만을 크고 깊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 이런 말씀도 있다.


“만약 죽은 지 49일 안에 널리 착한 일을 지어 모든 중생들이 나쁜 세계를 여위게 하고 하늘이나 사람으로 태어나 뛰어나고 묘한 기쁨을 얻게 해준다면 그 공덕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위해 49일 안에 복을 닦는 일이야 말로 죽은 이나 살아 있는 이에게 가장 뛰어난 공덕이요 이익 된다 하겠다.


아래 사항들은 49일 동안 지킬 일들이다.




1) 장례음식은 필히 나물을 써야 한다.


짐승을 죽여 재물로 쓰면 죽은 이에게 죄업을 더해 고통을 줄 뿐이다.


2)가족들은 49일 동안 최소한 나물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찾아온 손님들도 그렇게 맞아야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된다.



3)『관경』에 말씀하시길 “한 번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팔십억 겁의 악업이 사라진다.”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위해 가족들이 날마다 염불해 주는 일이야 말로 가장 절실하고 큰 공덕이며 저세상이나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4) 사람이 죽은 지 49일 안에는 부부일지라도 잠자리를 해서는 안 되며 5계를 잘 지켜야 한다.



5)죽은 이가 모은 재산은 좋은 일에 잘 쓰고 그 공덕을 죽은 이 에게 돌려준다.



6) 스님이 죽은 이를 천도 해줄 때는 가족과 벗들을 불러 바른 생각을 세워 부지런히 수행할 수 있는 인연을 심어 주고 그 공덕을 죽은 이에게 돌려준다.



7) 가족들은 49일 동안 절에 가서 죽은 이를 천도해준다.

천도는 정성이 중요하지 천도재에 드리는 재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5. 장례지내는 법



1)스님이나 불교장례를 잘 아는 이를 불러서 할일들을 잘 처리 한다.


2) 장례는 간소하면서 엄숙하게 치루고 가족의 체면 때문에 돈을 허투루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삼보(三寶)께 공양을 올리고 경전을 보시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갇힌 생명들을 놓아 주는 일을 해서 죽은 이게도 참된 도움이 되고 가족들에도 큰 복이 되게 해야 한다.


3) 화장을 하면 절이나 납골당에 잘 모신다.




6. 정토에 태어나는데 걸림돌이 되는 나쁜 습관들


염불수행자가 죽을 때 바른 생각이 뚜렷하다면 이는 정토에 태어나는 길을 얻은 셈이지만 살생하는 습관과 음행한 습관이 있다면 이는 왕생정토에 태어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죽이는 습관


경전 말씀에 “고기를 먹으면 좋은 공덕을 구해도 이룰 수 없고 모든 하늘신이 가까이 하지 않고 만나는 중생들이 무서워한다. 죽으면 나쁜 곳에 떨어져 큰 괴로움을 받는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따르면 고기를 즐겨 먹는 이는 원한을 품고 죽은 중생들의 기운 때문에 하는 일이 뜻과 같이 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집안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고 사업이 잘 풀리고 아이들이 효순하고 서로 화목하기를 아무리 바란들 이 같은 바람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온갖 번뇌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속에서 길이 헤매게 된다.


염불수행자가 5계도 지키지 못하고 죽은 중생의 몸을 부끄럼도 없이 아귀처럼 먹는 다면 이미 자비심이 죽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름만 염불수행자요, 불교인으로써 짓는 일마다 마업(魔業)을 이루니 염불수행자는 참으로 이를 삼가 해야 한다.


고기를 먹어 생기는 좋지 않는 재앙은 죽을 때 낱낱이 나타난다.


원한을 품은 중생들이 끝없이 나타나 죽음을 맞는 염불행자에게 바른 생각을 잃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여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고 삼악도에 떨어지게 한다.


삼악도에 떨어지면 부끄러움 없이 삼켰던 고기 한 점 한 점에 깃든 아픔과 원한을 다 갚아야 한다.


또 삼악도를 벗어나 사람으로 태어나도 목숨이 짧고 병이 많은 과보를 받게 되니, 세 치 혀끝으로 맛을 탐해 저지른 끝없는 재앙이 끝내 정토에 나는 일을 이룰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지혜 있는 이라면 고기 먹는 나쁜 습관을 결정 코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짐승의 알과 오신채는 염불수행자가 먹어서는 안 될 먹거리로,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현식론(顯識論)』에 이런 말이 있다.


“생명의 형태는 태(胎),란(卵),습(濕),화(化)네 가지가 있다. 알은 이 가운데 두 번째의 생명형태다. 알에는 미묘한 목숨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중생의 목숨이란 그 신령스럽고 묘하기가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알 하나를 먹는 일은 목숨 하나를 죽이는 일과 같다.


『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삼매를 이루고자 하는 중생은 세상 사람들이 즐겨 먹는 오신채를 입에 대지도 말아야 한다.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욕이 일어나고 날로 먹으면 성내는 기운이 커진다.”


이 말씀에 비춰보면 오신채에 들어 있는 정갈하지 못하고 탁한 기운은 사람의 욕심을 길러주고 오신채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는 사람의 성내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경에 말씀하시기를 “오신채를 먹는 이는 비록 경전을 막힘없이 말하더라도 시방세계 모든 하늘 신들이 그 냄새를 싫어해 다 멀리 떠나버린다.” 하셨다.


이와 같이 오신채가 주는 허물과 화는 음심과 화내는 마음을 키우는 일 말고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주는 호법 신장들이 멀리 떠나버리게 하여 날로 복덕이 줄어들고 깨달음을 이룰 수 없게 된다.




음행에 대한 생각과 음행습관




오늘날의 세상풍조를 보면 남녀가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 절제할 줄을 모르고 한 몸뚱이의 즐거움만을 탐내 뱃속아이를 지우는 살생 업을 되풀이하고 자기 살붙이를 무참히 죽이고 있다.


호랑이나 독사도 자기 새끼는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이렇듯 멋대로 자기자식을 죽이니 죽은 아이들이 원한을 품지 않겠는가?


이 같은 나쁜 업과 그 인과를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이 같은 짓을 저지르고도 집안이 평안하고 식구가 화목하고 몸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풀리고 아들딸이 효순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모든 선은 효도를 으뜸으로 삼고 모든 악은 음욕을 머리로 삼는다.”는 말이 있다. 염불수행자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부부 사이라도 법도가 없이 애욕을 탐해서는 아니 되는데 삿된 음행이야 더구나 안 될 일이다. 음욕을 탐하거나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으로 그 과보가 빠르고도 무서워 화가 자손에까지 미친다.


『원각경』말씀에 “저 모든 세계 모든 중생의 모습인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은 다 음욕으로 몸과 마음을 받는다.”고 하셨고


『능엄경』말씀에 “저 모든 세계 육도중생이 마음에 음욕이 없으면 생사윤회를 따르지 않는다. 너희가 닦는 삼매는 본디 욕심과 번뇌를 벗어난 세계이니 음욕을 없애지 않으면 번뇌를 벗어날 길이 없다.”하셨다.


그러므로 생사윤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음욕과 음행 짓는 습관을 끊어 없애고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음행하는 업과 음행하는 습관은 우리의 신식(神識)을 속박해서 해탈할 수 없게 하는 크나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음욕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말끔히 없애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 중음에 태어나 남녀가 음행하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날 때 염불하는 바른 생각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음행하는 경지에 들어가 순식간에 사생육도를 맴도는 중생의 몸을 받아 윤회의 온갖 괴로움을 받게 된다.


다시 정리해 보자.


목숨을 죽이는 일과 음행하는 일은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다.


그것은 살아서 과보도 무섭거니와 죽어서는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가로막는 무거운 업장이 된다.


죽을 때 염불하는 바른 생각이 또렷하도록 하려면, 죽이고 음행하는 나쁜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죽여서 그 고기를 먹고 음행하고 사음하는 악업을 하루라도 빨리 끊어버리고


스스로의 삶과 죽음의 세계를 바르게 지켜보아야 한다.


계율을 잘 지키고 채소 음식을 먹으면 결정코 한때 쾌락에 눈이 멀어 끝없는 괴로움의 세계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 8장 : 한 번 보고 한 번 들어도 정토에 태어난다.


1.정토에 태어나게 하는 기회



(1)늘 공경히 염불수행을 닦는 이는 죽을 때 스스로 죽을 시간을 알 수 있고 마음이 뒤집히는 일이 없이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잠깐 사이에 정토에 태어난다.

이들은 중음의 단계를 거치는 일 없이 바로 해탈세계에 이른다.


 다른 수행법으로 공부를 이룬 이나 스스로를 제도하는 법인 이 책을 익혀 공부한 이도 중음의 세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른다.


(2)수행한 공력이 (1)만 못해도 이 책을 익혀 공부한 이는 죽어 나타나는 빛을 바르게 인식하는 힘으로 바로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또 아미타불을 놓치지 않고 부르는 바른 생각의 힘으로 정토에 태어나 해탈한다.


 (3)비록 공부가 보잘것없는 이라도 죽은 뒤 열나흘 동안 이 책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보고 들어서 거룩한 빛을 잘 가려내어 그 속에 들어가거나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바로 해탈한다.


(4)착한 인연도 보잘것없고 업장이 깊고 무거워 한두 번 방황하다 나쁜 길에 들어선 중음신이라도 이 책에서 말한 가르침을 보고,  기억하고, 생각하여 가르침에 따라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부처님의 자비원력의 힘으로 극락정토에 태어나 바로 해탈한다.


(5)죽어 두렵고 무서움에 시달리는 이라도 이 책의 가르침을 보거나 듣고 아미타불을 부르면 바로 해탈한다. 또 이 책에서 가르치는, 아기집에 들어가지 않는 법과 아기집을 잘 가리는 법에 따르면 원하는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


(6)어리석기 말할 수 없는 이라도 아미타불의 큰 원과 가피의 힘을 믿고 따르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원만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바른 스승과 가르침을 만나 앞으로 완전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



2.어떻게 이 가르침을 보고 듣고 해탈하는가?


(1) 죽으면 아는 힘이 살아있을 때보다 아홉 배가 밝아진다.


그래서 여러 가지 빛이 나타나거나 모습이 나타날 때 이 가르침을 기억하거나 보고 듣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거나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아미타부처님이 정토로 이끌어 주시어 육도윤회의 나고 죽는 괴롬바다를 벗어난다.


(2) 죽은 이가 중음신이 되면 거칠고 걸림이 많던 몸이 사라져 모든 것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감수성에서 한마음으로 지극하게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에 태어나 해탈할 수 있다.


(3) 거센 업의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중음신은 뛰어난 감각과 아는 힘이 있다.


그래서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걸림이 없어진다. 이 가르침을 일러주는 이의 부름을 한번만 들어도 곧바로 그곳에 가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한번 가르침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마음이 열리고 뜻이 밝아져 마음 다해 아미타불을 부르게 되고, 그러면 정토에 태어나 해탈을 얻는다.


3.육도윤회를 벗어나는 법


 스스로 벗어나는 법


살았을 때 늘 이 책을 읽고 죽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마음에 새겨두자.


그러면 죽은 뒤에 무섭고 두려운 현상이 나타났을 때 살았을 때보다 아홉 배 뛰어난 기억력과 영상으로 가지가지 현상을 바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

또 두려움 없이 한마음으로 염불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길을 끊어버린다.


다른 이의 해탈을 도와주는 법


이 책에 나와 있는 중음세계의 여러 가지 단계를 잘 이해한 뒤에 죽은 이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을 베풀어 준다. 또 죽은 이가 가장 크게 매달리는 것, 큰 걱정거리에 대해 그것이 덧없고 이익이 없는 것들임을 가장 간단하고 알기 쉽게 차근차근 일러준다. 그리고 죽은 이가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둘레상황에 대해 알려고 할 것 없이 청정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게 한다.


죽은 이는 이렇게 해서 눈부신 빛의 몸, 끝없는 빛의 몸인 아미타부처님을 따라 극락정토에 태어나 참된 해탈을 얻게 된다.



다른 이의 해탈을 도와주는 보기


 먼저 청정한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여 아미타불을 108번 부른 뒤 죽은 이에게 아미타부처님의 가피가 내리길 기원한다.


"ㅇㅇㅇ영가시여, 허둥대거나 방황하거나 두려워 하지마소서.ㅇㅇㅇ영가시여,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 소리와 지금 내가 영가에게 드리는 말에 크게 귀를 여소서. 영가는 이제 죽음에 이르러 떠도는 중음세계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불보살님만이 영가를 도울 수 있으니 영가는 의심하지 말고 깊고 맑은 믿음을 일으키소서.


불꽃이 휘날리고 얼음바람이 휘몰아쳐도 한마음 한뜻으로 한결같이 아미타불만을 부르소서.


이렇게 하면 두려움과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이렇게 하면 악업에서 일어나는 두려운 현상들이 맑게 개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영가를 품에 안아 정토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영가시여, 세상 그 어떤 것도 본디 덧없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과거. 현제. 미래. 그 어떤 일도 놓아버리고 한 순간 한 순간 아미타불을 부르소서. 누구도 영가를 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아미타불만이 영가의 빛이 되고 길이 될 수 있으니 맑은 맘 다 기울여 우리와 함께 아미타불을 부릅시다."


염불은 많이 할수록 좋다. 짧아도 108번 하고 그 공덕을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해 주면 영가는 반드시 극락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제 9 장 :  염불은 한 생각에 해탈 하는 길


1.어떤 중생이라도 염불하면 해탈한다.


인광(印光:1862-1940.중국 정토종 13조)조사께서 쓰신 극락도<極樂圖>머리글 가운데는 정토법문을 높이 기리는 이런 말씀이 있다


"정토법문은 이 마음이 부처되고 이 마음이 부처임을 가르치는 법문이다. 선종에서 말하는 '바로 마음을 가리킴도,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룬다는 정토의 가르침만 못하다.


 깨달음을 이룬 모든 수행자들은 모두 이 드높은 가르침을 드날렸으니 정토법문은 위. 아래. 가운데 중에 모든 근기의 중생들을 함께 끌어안고 율종. 선종. 같은 여러 종파들을 다 아우르는 법문이다.


정토법문은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고 모든 강물을 다 받아들이는 큰 바다와 같다.


변(邊),원(圓),돈(頓)점(漸)의 모든 가르침이다 이 법문 가운데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 없고, 삼승(三乘)과 오성(五性)을 한데 아울러 모두 참 진리를 얻게 하고 성인과 범부를 함께 이끌어 정토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구계(九界)가 모드 귀의하고 시방세계가 함께 찬탄하고 경전마다 이 가르침을 밝히고 논장마다 이 가르침을 펴니, 이는 가르침의 가르침이고 위없는 일승의 큰 빛이라 이를만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말법시대 중생들에게 이 정토법문에 귀의해 해탈 하라고 가르치셨다.


관음, 세지, 문수, 보현, 같은 모든 위대한 보살들도 정토법문을 수행하고 아미타불을 염불해서 극락정토에 태어나 물러섬이 없는 땅에 이르러 온전한 깨달음을 이루라고 권하셨다.


2.염불법문에는 어떻게 한 생각에 부처를 이루는 힘이 있는가?


이런 힘의 뿌리는 아미타불의 48원의 알맹이인 "결정코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하겠다(決定正覺願)".는 원력과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게 하겠다(十念往生願)". 는 원력에 있다.


"결정코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하겠다."는 원력이란 무엇인가?


극락정토에 태어난 이는 이미 지은 업장의 무겁고 가벼움에 가릴 것이 없이 한결같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하겠다는 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토에 갈수 있는가?


아미타불을 부르면 그렇게 된다.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원력이란 무엇인가?


아미타부처님은 과거 원력 보살로 수행할 때 "내가 만약 성불하면 시방중생이 나의 국토에 태어나기를 소원하고 내 이름을 열 번만 부르면 정토에 태어나게 하리라. 만약 한 중생이라도 정토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리라,"는 원을 세우셨다.


시방중생이란 사람뿐만이 아니다. 중음세계의 중생이든 나아가 짐승, 아귀, 지옥중생 할 것 없이 신령하고 밝은 깨달음의 성품은 그대로이니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손에 이끌려 정토에 태어나 성불하고 만다.


더욱이 중음세계의 중생은 그 영성이 생전보다 아홉 배가 밝으니 이 같은 영성으로 지극하게 아미타불을 부르면 아미타불의 원력을 타고 한 생각 사이에 정토에 태어나 깨달음을 이룬다.



3.중음세계가 아무리 험해도 아미타불만을 부르면 벗어날 수 있는가?



성불하기에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중음신에게 보이는 온갖 밝은 빛, 기쁨과 성냄의 모습을 나투는 여러 성상과 나찰, 맹수, 우박 같은 현상은 모두 스스로의 의식이 바뀌어 나타난 모습이다.


살아 있을 때 중음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죽어서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경계를 만나면 그런 경계들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해 자성불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구제할 기회를 놓쳐 윤회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만다.


이와 같이 참으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고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구하면 문득 허망 된 의식의 흐름이 끊어지고 변화해 나타난 허망한 경계들이 사라진다.


아미타불은 결코 스스로 세우신 서원을 저버리시는 법이 없다. 부르는 소리를 따라 바로 오시고 이끌어 정토에 태어나게 하신다. 부르는 중생이 비록 삼천 대천 세계의 큰 불로 가득 찬 곳에 있다 하더라도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이 활활 타는 불꽃 바다를 뛰어넘어 정토에 태어나 바로 깨달음을 이룬다.



4.죄업이 깊고 무거운 중생도 아미타불을 부르면 구제될 수 있는가?


그것은 스스로에게 달렸다. 그대로 믿고 정토에 태어나기만을 바라고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틀림없이 구제될 수 있다.


<관무량수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중생이 오계. 팔계. 구족계. 같은 청정한 계율을 깨뜨리고 살면서도 참회하는 마음이 없다면 죽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죽어 지옥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때 대부분은 "이제는 영영 지옥을 피할 길이 없겠구나"하고 체념해 버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런 때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 광명이 끝없는 아미타불의 공덕과 서원을 찬탄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염불하면 팔십억 겁의 죄업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무서운 지옥불은 맑고 서늘한 바람이 되어 가지가지 하늘 꽃을 흔들고 그 꽃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부르는 중생을 맞아 주시니 한 생각에 극락정토의 연꽃 속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죄업이 무겁고 깊어 지옥, 아귀, 축생, 같은 삼악도에 떨어져 끝없는 괴로움을 받을 이라도 염불하는 한 생각 속에 팔십억 겁의 죄업을 없앨 수 있다.


그리하여 아미타불의 원력을 타고 극락정토에 태어나, 길이 윤회의 바다를 건너 바로 깨달음을 이룬다.


그러니 지옥에 떨어질 중생이라도 죽어 지옥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때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한 생각에 깨달음을 이루게 됨이 결코 허망한 말이 아님을 뚜렷이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인과에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질 이가 어떻게 아미타불을 부르는 한 생각으로 무서운 인과의 그물을 벗어날 수 있는가?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부르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거나 뜻밖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인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의 씨앗이 무르익어야 피어난다. 지옥불 앞에서 아미타불을 염불 하는 마음이야말로 무르익은 인연이요. 공덕의 끝이 아닌가. 그래서 부처님과 조사님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염불하는 공덕은 금강을 먹는 것과 같아서 그 기운과 힘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팔만 겁 전에 길을 가던 나그네가 큰 호랑이를 만났다. 나그네는  너무 바쁜 나머지 "나무불(南無佛)"하고 외쳤다. 이한마디 염불 공덕으로 나그네는 팔만 겁이 지난 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아라한과를 이루었다.


염불수행자는 결코 염불공덕을 의심 하지 말고 나고 죽음을 생각하는 참 마음으로 용맹염불 해야 한다.


염불이야말로 금강식(金剛識)인 것이다.


5. 염불문은 늙은이에게나 맞는, 낮은 수행법이 아닌가?


정토법문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지혜 있고 공덕을 짓는 이의 말이 아니다.


왜 그런가.


정토법문을 믿고 수행할 수 있는 이는 수많은 생을 통해 수행 공덕을 쌓는 큰 지혜 인으로 낮은 근기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량수경>에 "이미 복과 지혜를 닦지 않은 이는 이 정토 법문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다." 하셨고 또 "어떤 선남자 선 여인이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기쁜 마음을 일으켜 우러러 아미타불께 귀의하고 염불수행 한다면 이런 이는 작은 근기가 아님이라. 그런 사람은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제자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참으로 정토법문을 듣고 맑은 믿음으로 받들어 실천하는 이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지난 생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수행한 복덕과 지혜가 크고 깊은 이들로써 으뜸가는 부처님 제자인 것이다. 부처님조차도 찬탄하신 이 법문을 얕잡아 보는 일은 참으로 삼가고 삼가 할 일이다.


염불법문의 수승한 공덕은 <화엄경>이나 <법화경>에서도 잘 밝혀주고 있다. 더 깊이 공부해보려는 이는 <정토오부경>을 보면 된다.


<무량수경> 에서 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의 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고 <아미타경>에서는 근기가 서로 다른 중생들이 염불수행으로 빠짐없이 구제를 받는 불가사의한 경계를 알 수 있다.


또<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과 <화엄경><보현보살행원품> 에서는 시방세계의 모든 큰 보살들이 깨달음의 과위에 올라서야 염불법문의 뛰어남을 알고 한마음으로 염불하고 부처를 이루어 모든 중생들에게 염불해서 극락정토에 태어나길 가르치심을 알 수 있다.


아. 우리가 지금 이같이 수승한 염불법문을 만나게 된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이생에 이같이 으뜸가는 법문을 만났으니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간절한 원을 세우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토에 태어나길 희망하자.


이생에 만난 이 귀중한 인연을 헛되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6. 이 시대에는 어떤 수행을 닦는 것이 가장 좋을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대집경>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법 시대에는 수없이 많은 이들이 수행하나 깨달음을 이룬 이는 참으로 드물다. 염불수행만이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말법시대에는 가르침도 많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가르침과 사람의 근기가 서로 맞지 않아서 깨달음을 얻은 이가 드물다.


염불법문을 수행하는 이만이 나고 죽음의 괴롬바다를 뛰어넘고 육도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빛 가운데 빛이시고 부처님 가운데 부처님이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앞서 말법중생들에게 해탈과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정토법문을 남겨 주셨다. 불자라면 부처님이 일러주신 이 정토법문을 기쁘게 받아 지녀야 할 것이다.



7. 마(魔)는 수행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인데, 염불법문을 수행하면 마(魔)가 없을까?



<수능엄경 오십음마장)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다.


"여러 귀신의 무리들과 함께하는 말법시대에 이르면 천마(天魔),외도, 귀신, 요정 같은 기운들이 불길처럼 일어나 모든 수행자들을 괴롭힌다.


참선이나 밀법을 닦는 이가 계율을 지키지 않고 바른 견해가 없으면 바로 마군의 그물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고 염불법문을 받아 지닌 이는 삿된 마군의 괴롭힘에 걸려들지 않는다."


왜 그런가?


<십왕생경>말씀을 보자.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토에 나기를 원하면 아미타불께서 스물다섯분의 큰 보살을 보내어 수행자를 보살펴. 가거나 앉거나 머물거나 눕거나 밤이거나 낮이거나 어떤 때 어떤 곳을 가림 없이 악귀나 악신이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또<아미타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경>을 받아 지니거나 여러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이 선남자 선여인들은 모두 부처님들께서 보살펴 주시나니, 모두 물러섬이 없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듯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수행자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들이 보살펴 주시사 언제나 40리에 뻗치는 밝은 빛 속에 있어 어떤 마(魔)도 가까이 할 수 없다.


염불법문이야말로 이 말법시대 중생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가장  근기에 맞는 수행법이자 생사해탈을 가장 완전하고 빠르게 이루어주는 성불의 문이다.


8.염불 수행자는 꼭 채식을 해야 하나?


<수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육도에 윤회하는 중생이라도 마음에 죽이는 기운이 사라지면 더 이상 태어남과 죽음의 윤회를 따르지   않는다. 삼매를 닦아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죽이는 마음을 없애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


고기가 맛이 있고 그래서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죽이는 마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는 마음을 없애려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수행법으로 수행을 하든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태어남과 죽음의 윤회에서 해탈할 수 없다.


목숨을 죽이거나 그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빚을 진 생명들이 나타나 바른 생각을 잃게 하여 정토에 태어나는 길에 큰 걸림돌이 된다.


염불 수행자는 언제 어디서나 혼자 몸이 아니라 보이고 들리는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겠다는 큰 자비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비심이야말로 염불수행자의 생명이다. 그래서 염불수행자는 채식을 해야 하고 알이나 오신채도 먹어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관무량수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맑은 업을 닦아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중생은 마땅히 다음과 같은 복덕을 쌓아야 한다.


첫 번째는 부모께 효도하고 스승께 헌신하고 자비심으로 목숨을 사랑하면서 열 가지 착한 업을 닦는 일이다. 두 번째는 삼보께 귀의하고 맑은 계율을 받아 지녀 자비행자의 위의를 잃지 않는 일이다. 이와 같이 맑은 업은 삼세 모든 부처님들이 깨달음을 이룬 씨앗이니 정토행자는 염불과 정업을 닦는 일을 치우침 없이 함께 닦아 나가야 한다.


<지장경>말씀에 "깊고 큰 업력은 해탈의 길을 막는 수미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고 하셨다. 비록 아미타부처님의 서원과 자비심이 끝이 없기는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 집착을 놓아 버리지 못하고 맑고 바른 생각으로 염불하지 못하는 중생은 제도해 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염불하고 한편으로는 죽이고 즐겨 고기를 먹다가 죽음에 이르러서 바른 생각을 잃어 버리면 길이 삼악도에 떨어지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것은 스스로 지여 스스로 받는 과보이지 부처님의 자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고기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그래도 염불 수행이 아주 잘 된다 나는 채식에 집착 하지 않는다. " 이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생명을 죽이는 기운이 살아있는 입으로 어떻게 염불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은 자비심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사바세계의 모습과 소리와 맛과 냄새와 느낌과 생각에서 해탈하여 저 맑은 나라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수행자라면 어떻게 사바의 어두운 고기 씹는 버릇에 집착 하겠는가?


연지대사는 말했다


 "죽이고 그 고기를 즐겨 먹는 마음이여!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흉악하고 슬프고 독한 마음이 또 어디 있으리."


자비심은 모든 불보살의 생명이다. 자비의 세계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고기 먹는 나쁜 업을 즐겨 쌓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고기를 즐겨 먹으면 오래 살지 못하고 병치레를 많이 하는 과보를 받게 된다. 병에 걸려 괴로울 때 바른 생각으로 염불 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은 "사람 몸을 잃어버리는 중생은 땅과 같은데 사람 몸을 잃지 않는 중생은 손톱 밑에 흙과 같다"고 말씀 하셨다.


슬프다. 맛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즐겨 고기를 먹다가 사람 몸을 잃어버리고 삼악도에 떨어져 헤매는 중생이 수미산과도 같음이여!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생명을 죽이면 그 생명을 갚아 주어야 한다. 중생은 이 같은 인연의 고리 속에서 길이 나고 죽는다."


정토에 태어나길 발원하는 염불행자는 반드시 나고 죽음의 흐름을 끊어 버려야 한다. 목숨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어. 나고 죽음의 씨앗을 만드는 일은 염불행자가 할일이 아니다.


"보살은 그 씨앗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그 열매를 두려워한다"하셨다. 태어남과 죽음의 고리 속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하는 수행자는 태어남과 죽음의 씨앗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의 씨앗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 삶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하련(夏蓮)거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슬프구나. 흐르는 과보의 물결이여. 흘러흘러 윤회의 바다에 넘치네. 아.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 가득한 괴로움의 불길이여. 목숨을 죽이는 한 생각에서 왔네."


염불행자는 채식을 해야 하는가?이것은 따지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염불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바른 길이요.기쁜 길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다른 중생들도 싫어한다. 염불행자는 언제나 스스로의 삶을 비춰보고 잘 다스려 나가야 한다. 




 제10장 :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빈틈없는 해탈공부




어렵고 어려운 일은

죽음뿐

모든 것이 사라 질 때

죽음이 올 때

그대여,

죽음을 죽음이라고 알아서

그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가?

나고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그대는 공부를

해 두었는가?


『화엄경』<보현행원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 모든 감각은 다 흩어져버리고 가족도 이웃도 다 떠나버린다. 명예도 위엄도 재물도 다 사라진다. 따르던 이들도 헐뜯던 이들도 함께 갈 수 없는 죽음의 길에 오직 함께하는 것은 정토를 그리던 이 마음뿐. 자나 깨나 아미타불을 그리던 마음의 빛이 죽음의 길을 환하게 비추어 한 순간에 정토에 태어나게 하리라.


정토에 태어나면 아미타불,문수보살,보현보살,관세음보살,미륵보살 같은 수많은 보살님께 에워싸여 연꽃 속에 태어나며 부처님께 수기를 받으리라.


죽으면 가장 아끼던 몸이며, 눈, 귀, 코, 혀, 같은 모든 감각기관이 한꺼번에 허물어져 다시는 쓸 수 없게 된다. 그뿐인가.

사랑하던 가족과 이웃들도 영영 헤어지게 되고 피땀 흘려 모은 재산도 아무런 힘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부리던 이라도 숨길 한번 끊어지면 한 사람도 뜻대로 부릴 수 없다. 이 같은 죽음을 맞이하여 창자를 끊는 듯한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중음의 세계는 친척도 없고, 벗도 없고 기댈 사람도 없다. 시커먼 어둠의 두려움 속에는 살려달라고 부를 이름도 모습도 없어 지은 업대로 곤두박질치며 온갖 괴로움을 받는다.


살아 있을 때 가족이나 이웃이 이런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힘이 될 수 있을까.나아가 우리는 스스로 이 같은 중음의 고통 속에 빠져있을 때를 대비해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나고 죽음만을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깔끔히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의 순간순간 속에서 삶의 온갖 현상은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음을 깨달아 욕심과 애착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아미타불을 그리는 마음을 키워나가고 보현보살의 열 가지 큰 원을 닦으면서 정토에 태어나기를 소원해야 한다.


이렇게 힘써 수행한 이는 죽음에 이르러 한꺼번에 온갖 세상 인연들이 사라질 때 불보살님의 가피의 빛살이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


그리하여 한 순간에 극락정토의 연화 속에 태어나 아미타불님의 수기를 받고 자기가 성불할 때와 나라와 이름을 밝게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뛰어나고 시원한 일인가! 이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이는 죽음을 뛰어넘어 번뇌의 굴레를 벗어나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아가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들까지도 인연 따라 구제하게 될 것이니 어찌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윤회의 깊은 강에서 건지지 못할까 걱정할 것인가.


죽은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도 이 정토의 맑은 가르침을 따른 다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보기가 어려운 모든 근심과 집착을 놓아 버리게 된다.


또 정토의 부신 빛살에 눈이 뜨여 한마음 한뜻으로 정토에 태어나길 소원하게 되나니, 다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게 되더라도 끝내 정토를 향한 큰 소망을 남김없이 어느 생엔가는 이루게 된다.


사람 몸을 받고서도 정토의 길 안 닦으면

보배산에 들어가서 빈손으로 나옴과 같도다.   




제11장 : 돌고 도는 생명의 수레바퀴


-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


1. 육도 중생을 위한 기도


티벳 불자들은 새해 초에 오체투지의 성지순례를 한다. 온몸을 땅 위에 던지면서 그 사람들이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는 자기의 소원이나 집안의 행복이 아니다. 조국 티벳의 독립도 아니다


티벳 불자들은 여섯 갈래의 존재계에 윤회하는 중생들이 모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축원한다. 그 사람들은 윤회하는 세계 속에서 얻는 행복과 권력과 재산 같은 것은 모두 참된 것이 아니고 괴로움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삶의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삼보에 귀의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고 본다.



2. 마음속의 세 마리 짐승, 세 가지 독


티벳의 절 어귀마다 그려놓은 벽화가 있는데.


“생명의 수레바퀴”라고 일컫는 이 그림은 욕심, 성냄, 어리석음 의 세 가지 독으로 선업과 악업을 쌓고 그 결과 끝없이 여섯 갈래를 윤회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맨 가운데 동그라미를 보면 세 마리 짐승이 서로 꼬리를 물고 시계바늘 가는 쪽으로 돌고 있다.


수탉은 뽐내기를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중생의 탐냄과 애욕을 나타내고, 독뱀은 미움과 샘냄처럼 다른 이를 해치려고 하는 원한과 분노를, 돼지는 고통의 원인과 소멸에 이르는 법(사성제)과 삼세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같은 진리를 모르고 망상과 모든 번뇌의 뿌리인 어리석음을 뜻한다.


바로 이 세 마리 짐승이 사람의 마음속에 살면서 여섯 갈래를 떠돌아 괴로움을 겪게 하는 뿌리가 된다. 그러니 괴로움과 두려움이 끝이 없는 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을 없애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세 마리 짐승을(탐심, 화내는 마음, 어리석음의 삼독) 원수처럼 여기고 잘 다스려야 한다. 두 번째 동그라미 오른쪽은 세 마리 짐승의 힘에 끌려 다니면서 어둠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림인데 이 세계는 나쁜 업과 나쁜 인연으로 맺어진 검은 업의 세계다.


동그라미 왼쪽 그림은 선지식을 만나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깨닫고 아미타불의 원력과 가피력으로 윤회세계에서 벗어나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내용이다.


그림 오른쪽 위 그림은 석가모니께서, 괴로움을 겪는 중생들이 해탈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도록, 오른쪽을 들어 해탈의 바른 길을 가르치고 계시는 내용이다.


왼쪽 윗 그림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이다.


죽을 때 바른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아미타불의 은빛광명의 길을 타고 곧바로 극락정토에 태어남을 보여 준다.


3. 여섯 갈래의 중생세계, 육도윤회


그림 가운데 있는 여섯 개 그림은 여섯 갈래의 윤회 세계를 뜻한다.

위쪽에는 계율을 지키고 공덕을 쌓아 태어나는 천상세계가 있고, 그 오른쪽에는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사람 세계가 있다. 그 아래에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가 떨어지는 굶은 아귀의 비참한 세계가 있다.


맨 아래 가장 큰 그림은 지옥세계의 여러 가지 괴로운 모습이다.


지옥 왼쪽에는 네 발 달린 짐승과 물고기, 새 같은 축생들의 세계가 있고, 그 위에는 질투와 싸움의 업보로 태어나는 아수라 세계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뿐 아니라 우주법계의 모든 생명들은 스스로 지은 선악의 업보에 따라 여섯 갈래의 세계에 끝없이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육도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큰 길이 있다.


첫째는 자기 수행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는 원인을 없애 열반에 이르는 성도해탈문(成道解脫門) 자력(自力)수행이고


둘째는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여 육도윤회에서 바로 벗어나는 왕생정토문(往生淨土門) 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윤회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윤회하는 중생들을 구해주는 일을 으뜸으로 한다.


꿈속에서 착한 일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꿈을 깨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해탈하지 못한 중생이 꿈에서 깨어나는 12가지 법칙이 있는데 이것을 12연기(緣起)라 한다. 12 인연법을 또렷이 깨달아야 자기만 알고 자기만 고집하는 그릇됨에서 벗어나 나만을 내세우지 않고(무아)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무소유) 해탈 세계에 이르러 고해를 벗어 날 수 있다.



4. 열두 가지 인연법칙(12연기)


육도윤회의 여섯 개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열두 개의 그림은 12 연기법을 그린 것이다


시계바늘 도는 쪽으로 첫 번째 그림은 어리석음인 ‘무명(無明)을 뜻한다. 눈 먼 늙은이 그림은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 삼세인과와 사성제 같은 진리의 가르침에 어두워 사물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처음의 한 생각을 나타낸다.


두 번째 그림은 행위를 뜻하는 ‘행(行)’을 나타낸다.


짐을 나르는 사람 그림은 업보가 만들어짐, 곧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집착하는 대상을 실제화 하는 현선작용이다.


세 번째 그림은 분별작용인 ‘식(識)’을 나타낸다. 나무 위의 원숭이 그림은 개체가 만들어지면 자기를 가운데 두고 분별작용을 계속하는 인식이 생겨남을 뜻한다.


네 번째 그림은 정신과 물질이 하나로 맞붙는 ‘명색(名色)을 나타낸다.


나룻배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그림은 정신적인 명(名)과 물질적인 색(色)이 결합하는 것을 뜻하는데, 명색(名色)은 식(識)을 인연으로 생긴다.


다섯 번째 그림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입(六入)’을 나타낸다.


창문이 여섯 개 달린 집 그림은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뜻하는데 위의 名과 색(色)이 결합하면 이 감각기관이 생긴다.


여섯 번째 그림은 감촉기관인 촉(觸)을 나타낸다.


다정한 여자와 남자 그림은 감각기관이 경계를 만나 느끼는 감촉작용을 상징한다.


일곱 번째 그림은 느낌작용인 ‘수(受)’를 나타낸다. 눈에 화살 맞는 사람 그림은 느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즐거움과 괴로움 등 모든 느낌을 뜻한다.


여덟 번째 그림은 이성을 그리는 감정인 ‘애(愛)를 나타낸다.


술 취한 사람을 여자가 시중들고 있는 그림은 즐거운 느낌에 따라 즐거움의 대상을 끝없이 갈구하는 눈 먼 욕망을 상징한다.


아홉 번째 그림은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인 ‘취(取)’를 나타낸다.


과일 따는 사람 그림은 욕망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바라는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의 작용을 뜻한다.


열 번째 와 열한 번째 그림은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는 존재가 만들어 지는 ‘유(有)’로 말미암아 생명이 탄생함을 나타낸다.


열두 번째 그림은 삶의 여러 가지 괴로움, 노사우비고뇌(老死優悲苦惱)’이다


송장 나르는 사람 그림은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삶의 갖가지 괴로움과 슬픔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12연기법은 모든 현상이 서로 관련되어 존재하고 인연 따라 일어난다는 인연(因緣生起)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모든 사물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사상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다.


12연기설은, 중생들이 업력에 따라 삼세에 걸쳐 끝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는 과정을 사실에 뿌리를 두고 12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관찰하는 법이다.


모든 괴로움과 불행의 원인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12 연기의 가르침이다.


불행한 사람은 어리석은 값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대품반야경』에 

“사람의 큰 죄는 어리석음이다. 불행과 괴로움은 어리석음의 갚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여 진리의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참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모든죄업 참회하고 나쁜습관 바꾸어서

이몸이제 맑고맑은 보살의길 닦으리라

아침이슬 우리인생 모든슬픔 사라져라

사람의삶 뜻이없다 어느누가 말했던가

비우고또 맑히는일 우리행복 아니던가


      南  無  阿  彌  陀  佛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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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대한 문답

 

* 이 글이 전에도 올라 온 적이 있으나, 원문과 간자체역을 참조하여 이전 글의 일부 오역을 바로 잡고 순서를 재조정한 것이므로 이미 내용을 아시는 분은 pass하십시오.

 

原題 :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

口述 : 여주(黎澍)선생

手錄 : 임유양

飜譯 : 박금규(원광대학교 사범대 한문교육과 교수)

再譯 : 금타

 

序文

 

여주 선생은 나이 많고 덕이 높고 또 명판관으로 법률계에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는 늘 평소에 자신이 저승의 재판관으로 다년간 있었고, 수면 중에 잠깐 명부(冥府)에 가서 그 옥안(獄案)을 처리했노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때 중국군의 참모장 임유양(林黝襄)은 그와 매우 절친한 사이로 그러한 저승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바쁜 와중에도 어느 날 하루 짬을 내어 본격적으로 임 참모장이 그간의 경위를 직접 묻고 그에 대한 여주선생의 구술을 손수 기록하여저승문답이란 한 권의 책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우리들의 한 생각의 善惡마저도 결국엔 귀신이 안다는 사실에 두렵고 놀라서 무서워 떨었다. 그리하여 내가 살아 평소에 했던 일을 점검해 보니 다행히 남에게 알리지 말아야할 일이 없으니 두렵긴 하나 스스로 위안이 되었다. “高明한 집안엔 귀신이 내려다본다.”고 하는 말이여! 진실하고 진실하도다! 이 한 편의 책은 권선징악의 공이 모두 갖추어 있어서 세상의 人心을 바로 잡는 데 유익한 바가 없지 않다고 여겨지기에 몇 마디 序文을 써서 조판에 붙이는 바이다.

文昌雲照坤   謹序 中華民國 33年(1944)4月8日

 

문1 : 선생께선 지난날 저승의 판관을 지낸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습니까?

●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모두 이상하게 여길 테지만, 내게 있어서는 그 일이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문2 : 맨 처음에 저승으로 들어오라는 것을 어떻게 통지 받았습니까?

● 어느 날 밤에 꿈속에서 옛 의관(衣冠)을 갖춘 사람이 찾아와서 내 방으로 들어서서 말하기를 “중대한 일이 있어서 정성스레 받들어 모시려하니 수고스럽겠지만 바쁜 일을 도와주십시오.”라고 합디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어떤 일을 맡기려는지 모르겠으나, 다만 내 힘이 모자랄까 걱정된다.”고 하였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그가 본뜻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만 그의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 공경스럽고, 그 태도가 정성스럽고 간절하기에 정의(情義)상 차마 물리칠 수가 없어서 마침내 우물쭈물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수 일 뒤에 와서 마중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별하였습니다. 깨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나 자신 단순히 꿈이라 여기고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드디어 4~5일이 지난 뒤에, 꿈속의 그 사람이 또 와서는 내게 말하기를 '지난번의 허락해주심을 받들어 특별히 가마를 준비하여 정성을 다하여 영접하러 왔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내가 보니까 마차(馬車) 한 대가 문밖에 멈춰있었습니다. 드디어 그와 함께 수레에 올랐더니, 얼마 안가서 어떤 관공서(官公署)에 이르렀습니다.

수레에서 내려서 그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 사람이 나를 인도하여 한 행랑방에 이르러 자리에 앉은 지 조금 후에 바로 대청마루에 올라 안건을 심리하도록 부탁받았는데, 한 범죄인을 끌어다가 놓고 좌우배심원들이 사건의 본말을 진술하여 주면서 나에게 판결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본래 이 사람의 정황을 모르는데 어찌 감히 망령되이 판결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거절을 하니, 좌우 배심원이 이르기를, “당신이 진심으로 추정해 보고서 생각이 어떻든 곧 모두 그대로 처리하면 됩니다.”라고 하기에 내가 잠깐 자세히 생각해보고 이르기를 “이러 이러한 것이냐?”고 했더니, 옆 사람들이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곧 나에게 판결문에 서명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죄인을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마차로 나를 돌려 보내주었습니다.

 

문3 : 그것이 어느 때의 일이었습니까?

● 청(淸)나라 末, 광서(光緖) 경자(庚子, 1900년) 무렵의 일로써, 그 때 내 나이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문4 : 선생의 부모님도 이런 사정을 아셨습니까?

● 처음에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감히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았었는데, 뒤에 부모님이 내가 빈 방에 혼자 있으면서도 간간이 사람과 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차차 그 실정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대개 내가 저승판관이 된 뒤부터는 항상 저승친구들의 왕래가 있었는데 오직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이 들을 수 있었을 뿐 다른 사람은 모두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오직 나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거지요.

 

문5 : 맡은 일은 어떤 것이었으며 어느 부서(部署) 밑에 속했습니까? 그리고 직원은 몇 명이 있었는지요?

● 동악부(東嶽部) 밑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동악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건을 집행하자마자 공문서(公文書)를 가지고 보고를 올렸을 뿐입니다. 나는 그때 분정(分庭)의 정장(庭長:法庭의 長)을 맡았었는데, 따로 배심원 네 사람을 두었었고 봉사하는 귀졸(鬼卒)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문6 : 저승재판관을 몇 년이나 맡았었습니까? 그리고 그 일은 매일 가서 처리했습니까? 또 어느 지방을 관할했었습니까?

● 전후(前後) 4, 5년간 했었고, 날마다 가서 했습니다. 관할 구역은 화북(華北)의 5성(省)을 맡았었습니다.

 

문7 : 저승의 관아는 왜 선생을 재판관으로 삼았었는지요?

● 나도 [그것이 궁금하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 까닭을 조사 해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내가 여러 생(生) 전에도 저승판관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숙세(夙世)의 인연에 끌려서 다시 그 일을 하게 된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문8 : 저승에 들어갈 때는 매일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안건(案件)을 심의(審議)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렸습니까?

● 초기에는 매일 해질 무렵이었지만, 그 후로는 대낮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만 반드시 오후에 갔습니다. 오고 갈 적에는 모두 어깨에 메는 가마를 탔는데, 달리는 발걸음이 매우 빨랐습니다. 그리고 안건을 심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언제나 몇 시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안건을 만나면 역시 여러 날까지 연장되기도 했습니다만, 이런 안건은 극히 적었습니다.

 

문9 : 저승에 들어갈 때 당신의 몸은 어떤 상태입니까?

● 저승에 들어갈 때는 몸은 평상 위에 누워 있고 용모는 깊이 잠이 든 것과 비슷합니다. 마시지도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저승에 들어가 있을 때 친한 벗들이 갑자기 찾아오면 불편해도 이 일을 그에게 알렸습니다. 눈을 감은 채 대답했는데, 그 때 상태는 마치 불면증에 걸린 상태와 비슷했습니다. 어떤 손님이 와서 물으면 또한 그 물음에 따라 대답을 하긴 하는데, 다만 말을 꺼내어 질문하지는 못했고, 또 손님과 무슨 말을 했는지도 [나중에]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문10 :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면 정신에 피곤을 느낍니까?

● 정신은 조금 피곤한데, 마치 불면증으로 인해 잠을 못 이룬 상황과 비슷합니다.

 

문11 : 선생은 염라대왕을 본적이 있습니까?

●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문12 : 저승의 관리의 복장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또 그 공문(公文)의 양식은 어떠했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이 되었을 때는 아직 淸나라가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복장과 공문의 양식은 모두 만청(滿淸: 滿洲 사람이 세운 나라. 淸나라)의 법식과 똑 같았습니다. 다만 중화민국(中華民國)이 들어선 이후로는 추측컨대 고쳐서 새 제도를 따르는 것 같습니다.

 

문13 : 저승의 관리도 봉급이 있습니까?

● 예, 있습니다. 다만 사람에게는 전혀 쓸 데가 없기 때문에 받지는 않았습니다.

 

문13 : 선생이 맡아서 했던 일은 어떤 종류의 사건이었습니까?

● 내가 맡았던 일은 사람이 죽은 지 10개월 이내의 것으로, 그 사람이 생전에 지은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의 사건을 맡아서 했습니다. 그 기한을 넘긴 일에 대해서는 따로 맡아서 처리하는 주무자(主務者)가 있었습니다.

 

문14 : 저승의 관리가 죄를 판정할 때, 간혹 착오가 있진 않았습니까?

● 절대로 없었습니다. 저승관리가 범인(犯人)의 죄상(罪狀)을 대할 땐, 미리 정밀히 조사하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므로 심판(審判)이 지극히 공평하고 진실합니다. 따라서 오류란 있을 수 없습니다.

 

문15 : 저승에도 문서화(文書化)된 규정된 법률[성문률(成文律)]이 있습니까? 있다면 선생은 그런 율법을 익힌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재판에 착오가 없을 수 있었습니까?

● 내가 그 규정 법률이 있는 것을 못 보았던 것 같은데, 다만 제출된 안건을 판결하면 저절로 그 핵심에 정확히 들어맞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문16 : 성문률(成文律)이 없다면, 그 죄의 무게를 어떻게 잽니까?

● 이것은 그 범죄의 동기(動機)와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結果)를 보고 그 정황(情況)을 저울질하고 이치를 참작하여서 그 경중(輕重)을 결정합니다.

 이제 잠시 도둑질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만약 그 도둑질을 한 사람이 본래 살길이 막막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지 [유흥비나 기타 부당한 용도와 같이] 헛짓에 쓰려고 한 것이 아니거나, 피해자가 부자(富者)이고 그 한 사람에만 관계되었고, 그 액수도 크지 않으며, 그 부자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영향도 없고 도둑맞은 것에 대해 크게 애석하게 여기지도 않는다던가, 혹은 그 도둑맞은 것이 [그 주인이] 장차 음란(淫亂)한 짓이나 도박이나 담배나 술의 구입 [등과 같은] 부당한 용도로 쓸 돈이었다면 그 죄는 오히려 가볍습니다.

 하지만 만약 도난당한 부자가 (도난당한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신의 아랫사람을 문책(問責)하고 그 결과 그 아랫사람이 그로 인해 격분(激憤)하여 자살하게 되었거나, 혹은 그 훔친 돈이 가난한 사람이 쌀을 사거나 약(藥)을 살 돈이었는데, 도난당함으로 인해 그 사람이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게 되었다면, 혹은 자백(自白)을 강요받은 사람이 앞장서서 싸움을 벌여 그로 인해 살인(殺人)을 하게 되었다면, 사안(事案)의 정황이 매우 무거우니, 절도(竊盜)와 관련된 일반 사안과 같이 볼 수 없게 됩니다.

 

문17 : 사람이 생전에 하였던 선악의 행위를 귀신이 어떻게 다 알고 다 보고서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습니까?

● 귀신은 형체가 없는 것도 다 볼 수 있고, 소리가 없는 것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인간 세계의 온갖 사상(思想)과 행위(行爲)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귀신은 저절로 다 보고 다 알 아서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귀신은 사람의 머리 위에 나타난 붉고, 누렇고, 희고, 검은 빛깔을 보고서, 그 사람의 행위와 생각이 선한지 악한지 아는데, 붉고, 희고, 누런색을 좋게 여기고, 검은 색을 나쁘게 여깁니다.

 

문18 :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하루 동안에도 일어났다가 없어지는 생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한 선행을 하기도 하고 악행을 저지른 것은 본인조차 다 기억을 못합니다. 그러나 명부의 관리가 사람의 공(功)과 과(過)를 기록할 때는 반드시 자질구레한 것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할 것인데, 어떻게 그들은 이런 일을 귀찮아하지 않습니까?

● 한 순간에 일어났다가 다음 순간에 사라지고, 잠깐 생각했다가도 곧장 잊어버리는 생각[사상(思想)]은, 마치 저 공중의 새의 자취나 물 위에 뜬 거품 같아서 그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미세해서 명부의 관아도 [그런 생각까지] 미리 기재(記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것에] 한마음으로 집중하면서 매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 비록 [그 생각이] 아직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공(功)과 죄(罪)가 있어서 귀신이 기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공과 죄는 더욱 잘 나타납니다.

 

문19 : 죄 지은 귀신 중에 교활한 변명을 하는 자도 있습니까?

● 예. 그런 경우가 극히 많습니다. 죄 지은 귀신은 그가 지은 죄악에 대해서 반드시 있는 힘을 다해 교활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다가 그 죄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때서야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한번은 여러 가지 악행을 저지른 어떤 귀신을 심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마도 생전에 겉으로는 위선적인 행위를 하면서 남모르게 못된 짓을 한 자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범죄 사실에 대해서 있는 힘껏 부인을 하는데, 내가 보니까 그 사람의 죄악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증거가 확실해서 빨리 형벌을 가하려는 데, 그 귀신이 뜻밖에도 금강경(金剛經)을 외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배심원들이 그 귀신의 머리 위에 붉은 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내게 심판을 정지해달라고 부탁해요.

 나는 그 배심원들이 그 귀신한테서 뇌물을 받고 사사로운 정(情)에 끌려서 그러는가 의심하고 이에 형(刑)을 가하려 하는데 그 귀신은 계속해서 경을 외우고 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배심원들이 급히 나더러 정중한 태도로 서 있으라고 부탁해요.

내가 이르기를, “나는 법정의 우두머리인데 어째서 범죄자를 향하여 정중하게 서 있어야 하느냐?”고 했더니, 옆에 있던 배심원들이 이르기를, “아닙니다. 이 귀신의 머리 정수리에 불광(佛光)이 이미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심판하면 부처님을 모독한 게 되니 심판을 정지한 것만 못합니다.”라고 해요. 내가 그때 그들을 보니까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두 손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지극히 정중하고 공손해요.

 내가 그래서 그들에게 묻기를, “그러면 이 안건은 어떻게 처리하려 하는가?”하고 물었더니, 그들이 이르기를 “그를 여러 번 사람으로 환생(還生)케 하는 것으로 판결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금강경(金剛經)을 기억할 수 없게 한 뒤에 그 때 가서 다시 그의 죄를 다스리면 됩니다.” 그래요.

 내가 말하기를 “그를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면 오히려 그에게 편의(便宜)를 주는 것이 아닌가? 또 그를 수차례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면, 그가 [악행에 대한] 응보(應報)를 받게 되는 것이 수 백 년 이후라야 되는데, 어찌 그리 과보가 더디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려 하는가?”라고 했더니 그들이 말하기를 “그로 하여금 잠깐 살다가 금방 죽을 사람으로 환생하게 하면 불과 몇 년 만에 여러 생을 살게 됩니다! 생각건대 지은 업에는 업대로 과보(果報)가 있고, 경을 읽은 것에는 경을 읽은 공덕이 있으니, 이 두 가지 [업과(業果)와 공덕은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이렇게 처리하고] 훗날 그가 받을 과보를 분별[하여 응보를 받게] 하면 두 가지 모두 착오가 없게 됩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마침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문20 저승의 관리가 가장 존중(尊重)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덕행(德行)입니까? 그리고 최악(最惡)의 죄로는 어떤 종류의 죄업(罪業)입니까?

● 저승에서 가장 존중하는 것은, 남자는 (忠)과 (孝)이고, 여자는 절개(節槪)와 (孝)입니다. 이 두 가지를 행한 사람은 비록 죄업이 있다 하더라도 경감(輕減)하여 줍니다.

연합군의 북경 공격 당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청조(淸朝)의 아무개 제독(提督)과, 또 충성으로 나라를 보위하다가 의분이 복받쳐 슬퍼하고 한탄하다가 몸을 버린 자가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재판을 받은 적이 없이 똑같이 곧바로 천계(天界)로 올라가는 것을 몸소 보았습니다.

 최악으로 여기는 것은 음탕(淫蕩)과 살인(殺人) 이 두 가지 업(業)입니다. 그리고 살인한 업은 또 음탕에 비하여 더욱 무겁습니다. 만약에 음탕으로 인하여 사람까지 살해했다면 두 가지 무거운 죄를 함께 저질렀기 때문에 죄가 한 단계 더 무거워집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만(萬) 가지 악(惡) 가운데 음탕(淫蕩)이 첫째요, 백(百) 가지 선(善) 가운데 효(孝)가 먼저다.’라고 한 말이 참으로 헛된 말이 아닙니다.

 

문21 : 저승의 형벌의 종류는 얼마나 됩니까?

● 저승의 형벌은 종류도 매우 많고, 잔인(殘忍)하기도 이 인간세상의 형벌에 비해 100배나 됩니다. 만약 요즘 사람들이 그걸 본다면 반드시 너무 참혹한 형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경험으로 보면, 인류가 차라리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형벌을 받을지언정, 결코 저승에서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형(刑)을 받고 형벌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형벌이 끝난 뒤에도 [또 다른 죄과가 있으면 그 수만큼] 다시 형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세상에서는 열 사람을 죽였다면 그 죄는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반드시 열 번에 걸쳐 형벌을 행하고, 저승에서의 그 형벌이 끝나면 다시 그가 전생(轉生)하는 10생 동안 모두 남에게 살해당하도록 판결합니다.

그런데 저승에서의 형벌에는 톱으로 자르고, 맷돌로 갈고, 칼끝을 뾰족뾰족 세운 산 위를 맨발로 걸어서 오르게 하고, 기름 가마솥에 넣기도 하는, 이와 같은 것이 실제로 있습니다. 갚아야 할 재앙이 이렇게 두렵습니다.

 

문22 : 사람이 죽어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고통이 있습니까?

●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는 것은 모두 질병 때문입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는 마치 방문을 열고 외출하는 것 같아서 전혀 곤란이 없습니다. 오히려 죽기 전에 있던 질병이 갑자기 치유된 것을 느끼고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집안 권속들이나 재산, 또는 이승의 어떤 것이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연연(戀戀)해하는 사람은, 숨이 떨어지지 못하여 영혼이 쉽게 육체를 벗어나지 못하니 이때는 [마치 거북이에게서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은] 큰 고통이 있습니다.

 반면에 타고난 성품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고, 처자식과 재산에 대해서도 탐내거나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곧바로 옷을 벗듯이 훌훌 떠나가는데,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문23 :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감각과 이성은 꿈속처럼 멍합니까, 아니면 맑고 성성하여 평상시와 같습니까?

● 맑고 깨어 있는 것이 살아 있을 때와 같습니다.

 

문24 : 소의 머리[牛頭]를 하고 말 얼굴[馬面]을 한 저승사자가 정말 있습니까?

● 모두 가면의 도구를 쓴 것으로서 흉폭한 혼령들을 공포케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질고 착한 혼령들에게는 이런 흉칙한 모습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문25 : 명부(冥府)는 어째서 항상 이승 사람을 찾아서 [사자(死者)의 영혼을 데려오는] 저승의 중요한 임무를 맡깁니까?

● 부귀(富貴)한 사람들은 그 저택에는 항상 많은 신(神)들이 수호하고 있고, 그 사람의 옆에서 심부름하는 사람들도 나이가 젊고 힘이 장사여서 양기(陽氣)가 왕성한 이들이 많기 때문에, 저승사자가 그 사람의 병상에 접근[해서 사자(死者)의 영혼을 받아 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무장(武將)이 병영(兵營) 안에서 병들어 죽으면, 그 동서남북 주위의 경비가 삼엄하고 창(槍)과 대포(大砲)가 숲처럼 늘어서 있으며, 또한 영내(營內)의 병사들도 모두 젊은이들이어서 양기(陽氣)가 넘칩니다. [따라서 보통의] 저승사자들로서는 그 사자(死者)의 영혼에 접근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상황에서는] 반드시 이승사람의 살아있는 영혼에 의뢰해서 임시로 저승사자의 역할을 맡겨서 가서 잡아 갑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법정에 출두케 할 수 있습니다.

 

문26 : 저승 세계에도 음식이 있습니까?

● 예,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문27 : 크게 수행한 사람도 죽은 뒤에 명부에 가서 판정을 들어야 합니까?

● 저승 관아가 관장하는 것은 모두 업(業) 속에서 사는 사람들로서, 큰 선행이나 큰 악행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만약 열성적으로 수행한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 곧바로 천계(天界)에 올라가기 때문에 명부(冥府)를 거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명부의 책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심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중 간혹 [공덕의 행이 비교적 얕아서] 천계(天界)에 오르는 것이 조금 늦는 사람은 저승을 거쳐 가야 하는데, 이런 사람이 저승에 오면, 명부의 관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합니다. 그러면 그 혼백은 걸을 때마다 점점 높아져서 마치 구름사다리를 걷는 것 같습니다. 그가 저승법정에 가까이 오면 그 높이가 법정(法庭)지붕의 용마루와 나란해 집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름 점고(點告)가 끝나는 즉시 곧바로 천계(天界)에 오르기 때문에 잡아매어 둘 수가 없습니다.

 

문28 : 명부의 관아에는 서양인(西洋人)도 옵니까? 만약에 서양인이 오면 서로 간에 말은 어떻게 통합니까? 만약에 오는 서양인이 없다면 서양인이 죽은 뒤에는 어디에 가서 심판을 받습니까?

● 내가 저승판관이 되었을 때가 마침 경자년(庚子, 1900년)으로 8개국 연합군이 북경(北京)을 공격하여 파괴한 뒤였기에 중국과 외국의 군인과 민간인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승에도 다소의 서양인들이 법정(法庭)에 출두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승에서는 저절로 그들의 말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명부(冥府)만도 한 곳만이 아니고 [여러 곳에 있듯이], [내가 확인 해보지는 않았지만] 구미(毆美)의 각 나라에도 [그 곳 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명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정리(情理)에 맞습니다.

 

문29 : 칼에 찔려 죽거나, 기타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은 그 몸뚱이와 머리가 온전치 못한데, 그 영혼들은 보통의 병들어 죽은 귀신들과 차이가 있습니까?

● 그 영혼만은 모두 온전하여 보통 귀신과 다름이 없습니다. 다만 그 얼굴 모습만이 조금 모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상처에 핏자국이 남아 있고, 용모가 애처로워 고통이 있는 듯 할뿐입니다.

 

문30 : 사람은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동안에 용모가 점점 변하여 가는데, 귀신의 용모도 나이에 따라 노쇠해집니까?

● 귀신의 용모는 병들어 죽었을 당시의 모습과 똑 같으며, 세월이 지남에 따라 노쇠(老衰)해지지는 않습니다.

 

문31 : 귀신도 소멸의 기한이 있습니까?

● 예, 있습니다. 내가 본 영혼은 오래된 이는 송(宋:960~1279)나라, 원(元:1279~1368)나라 때까지 있었고, 다만 당(唐:618~907)나라 이전의 귀신은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연대가 오래된 귀신은 벌써 다른 존재로 윤회해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선(神仙)이나 부처가 된 분을 제외하고는 만고(萬古)에 길이 생존할 수 없습니다.

 

문32 : 저승에도 낮과 밤이 있고, 해와 달, 별들이 있습니까?

● 저승에도 역시 낮과 밤이 있어 이승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해와 달, 별들만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상황은 마치 큰 안개가 낀 사천(四川)의 날씨나 황사(黃砂)가 불어 덮인 화북(華北)의 날씨처럼 어두워서, 이승의 밝음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또 귀신들은 매일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는 활동을 그치고 머무는 데, 양기(陽氣)가 왕성한 것을 겁내기 때문에 그 시간엔 모두 그늘지고 어두운 곳으로 피하여 숨습니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점차로 밖으로 나와서 활동합니다.

 

문33 : 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해와 달이 밝게 비치고 있는데, 어째서 저승에는 비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어떤 물건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만일 이승과 저승이 다른 지역이라면 어떻게 또 사람과 귀신이 함께 길을 갈 수가 있습니까?

● 항상 구름과 안개가 차단(遮斷)하고 있기 때문에, 저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보지 못합니다. 다만 귀신들은 [대낮에는]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만 갈 수 있고 특히 밤사이엔 더욱 [상황이 귀신이 다니기에 적합하므로] 사람과 귀신이 동행(同行)할 수 있습니다.

 

문34 : 저승에도 비, 바람, 눈, 서리가 있습니까?

●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승에서 비, 바람, 눈, 서리가 내리면, 저승의 모든 귀신들도 그 추위에 덜덜 떨면서 괴로워하고, 또 잔뜩 웅크리고 오그라들어 편치 못한 상태를 보입니다.

 

문35 : 저승에도 추위와 더위, 그리고 4계절이 있습니까?

● 예, 있습니다. 다만 여름에는 이곳 같은 열기(熱氣)가 없고, 겨울은 이곳에 비해 더 춥습니다.

 

문36 : 저승에도 음식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승 사람이 만든 종이돈을 저승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까?

● 예, 음식이 있지요. 그 중 나물 음식은 종류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승 사람이 제사 때 태우는 종이돈을 사용해서 물건을 살 수가 있습니다.

 

문37 : 저승에서도 매일 세끼 밥을 먹습니까?

● 그곳에서는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여러 날 배부를 수 있어서 날마다 꼭 세끼를 먹지는 않습니다.

 

문38 : 저승에도 시가지(市街地)가 있고, 상점(商店)이 있습니까?

● 예, 있지요. 그러나 규모가 매우 작은데, 여기 인간 세상의 작은 점포와 다름이 없습니다. 거기서 파는 것은 대부분 음식과 잡화용품들이고, 웅장하고 화려하고 넓고 큰 인간세계의 큰 회사나 상사(商社) 같은 것은 없습니다.

 

문39 : 이승에서 바친 음식을 귀신들도 먹습니까?

● 그렇습니다. 다만 그 기(氣)만을 흠향할 뿐이요, 진짜로 먹지는 않습니다. 만약 여름철에 음식이 담긴 두 그릇이 있어서 한 그릇은 귀신에게 제공을 했고, 다른 한 그릇은 제공하지 않았다면 귀신에게 제공한 음식이 반드시 먼저 부패합니다. 그것은 귀신이 이미 그 음식의 기(氣)를 섭취하였기 때문입니다.

 

문40 : 저승의 음식은 이승의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게 더 좋습니까?

● 아마 이승의 것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문41 : 저승에서도 잠을 잡니까?

● 예, 거기에도 역시 침상과 잠자리, 요, 이불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자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가다가 잠깐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조금 쉬든지 하면 곧 수면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승사람들처럼 매양 꼭 7~8시간씩 자는 것은 아닙니다.

 

문42 : 귀신도 그 분묘(墳墓)에 가서 그곳을 살고 쉬고 할 곳으로 여깁니까?

● 그렇습니다.

 

문43 : 귀신의 말소리는 우리 인간의 말소리와 어떻게 다릅니까?

● 귀신의 말소리는 날카롭고 짧습니다.

 

문44 : 귀신이 걸어 다니는 것이 산사람이 걷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까?

● 귀신의 발 부위는 분명치 못하여 마치 안개 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고, 걸음걸이가 매우 빨라서 사람의 느린 걸음과는 다릅니다.

 

문45 : 귀신이 닭울음소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 닭 울음소리는 동이 트는 것을 대표합니다. 귀신은 동틀 녘이 지난 뒤에 태양(太陽) 빛이 나올 때의 양기(陽氣)를 겁내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단 닭울음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불안해져서 숨으러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불이 달궈진 큰 기계의 용광로 열기(熱氣)를 무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품행(品行)이 있는 귀신(예를 들어 土地神이나 城隍堂神 등)은 닭울음소리를 겁내지 않습니다.

 

문46 : 귀신이 사람의 태속에 들어가는 것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그 순간 들어갑니까? 아니면 나중에 출산(出産)할 때 들어갑니까?

● 두 가지 경우가 다 있습니다.

(만행스님의 법어집 <항복기심>에 따르면, 태어나는 사람들의 총명함과 영리함, 지능지수 등이 다른 이유는 영혼이 태아로 들어와 머무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순간에 영혼이 날아들면 그 영혼은 母體의 자궁에서 10개월을 머물며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아주 둔하고 靈性이 거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물질만 추구하고 지능도 아주 낮다. 또 임신한지 4,5개월 되었을 때 들어가는 영혼은 비교적 총명하게 태어난다. 반면에 모체가 해산할 무렵에 영혼이 태아에 들어가면 이 영혼은 두어시간 정도만 자궁에서 머무는데, 이런 사람의 靈氣는 맑게 깨어 있으면서 의식도 똑똑하고 出生하면서부터 修行할 줄 안다. 이런 사람들은 설사 宗敎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의 언어 행위 수양 등은 모두 道人의 표준 생활에 부합된다. 그러면 어떤 영체가 자궁에 머무는 시간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業力의 차이인데, 부처님 공부를 하는 사람의 영체가 자궁에 머무는 시간은 대략 한두 달, 심지어 몇 시간 내지 몇 분 정도 밖에 되지 않기도 한다. 童貞 상태에서 出家한 스님의 영체는 모체에서 머무는 시간이 몇 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문47 : 귀신과 사람의 수효가 어느 것이 많고 어느 편이 더 적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귀신을 무서워하는데, 귀신도 사람을 무서워합니까?

● 귀신세계의 귀신의 수효는 인간세계의 사람들의 수효에 비해 그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울타리 가까운 곳, 담벼락 곁 등 가는 곳마다 모두 다 귀신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길 가운데로 다니고, 귀신들은 도로 양편 곁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밝은 곳을 다니는데, 귀신들은 어두컴컴한 곳으로 많이 다닙니다.

 그런데 사람도 귀신을 무서워 하지만 귀신도 또한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그리하여 귀신도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반드시 피하여 달아나 버립니다. 더욱이 마음씨가 올바른 사람과 덕(德)이 높고 훌륭한 사람은 귀신들조차도 반드시 공경하여 멀리합니다. 다만 귀신들이 업신여기고 농락하는 경우는, 심성(心性)이 바르지 못하거나 시운(時運)이 쇠미해진 사람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오후부터 해질 무렵까지는 길을 걸어갈 때에 길 양편 가장자리나 어두컴컴한 그림자 진 곳은 걷지를 말아야 합니다. 해질 무렵에 문밖에 나설 때에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걷거나, 가끔씩 기침소리를 내어서 그들이 피해 달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뜻밖에 나오면 귀신과 대질러서 그 충격으로 귀신이 거꾸러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람 몸도 역시 오싹한 한기(寒氣)가 끼치고 겁이 나서 떨리게 되는데, 이것은 음(陰)과 양(陽)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피차(彼此)가 모두 불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문48 : 귀신들은 오랜 동안 저승에 떨어져 있어서 그 숫자가 우글우글한 데도 어찌하여 진작 빠져 나오지 않는 것입니까?

● 사람은 적고 귀신은 많기 때문에 그에 배당하여 분배할 수 없어서입니다. 그리고 또 태어나는 집도 그 귀신과 원래 인연이 있어야 비로소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생전에 교제가 넓어서 서로 아는 사이가 많으면, 잉태되기가 자연 쉬워집니다.

하지만 만약에 사람이 빈궁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동구 밖을 벗어나지 못해서 평소에 사람들과의 교제가 극히 적으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 귀신무리에 젖어들어, 생(生)을 받는 어떤 기회의 인연으로 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오랫동안 기다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인연이 있는 자를 만나면 이에 곧 가서 잉태되게 됩니다.

 

문49 : 승도(僧道: 佛敎의 스님과 道敎의 道士)들을 초청하여 경(經)을 읽어 죽은 혼령을 천도(遷度)하게 하면 망인(亡人)에게 도움이 됩니까?

● 승도(僧道)가 경을 외우면 망인(亡人)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그 망인이 생전에 큰 선행을 하였다면 죽은 뒤에 곧바로 천계에 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본래 이 공덕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생전에 크나 큰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 즉시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 역시 이 공덕을 받아 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전에 큰 선행도 악행도 없는 우리 보통 사람들은 경(經)을 읽은 공덕을 입으면 저승에서 영예가 높아지고 죄업이 경감되니 이익이 특별 큽니다.

 그리고 경을 외우는 사람의 도행(道行)의 높고 낮은 것에 따라 그 이익이 막대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사람이 도(道)가 높은 고승(高僧)이거나 효자(孝子)거나 어진 후손[賢孫]이라면, 그가 경(經) 한 권을 읽는 것은 평범한 스님이 외우는 공덕의 열 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보통 평범한 스님이라도 경을 정성을 다하여 삼가는 마음으로 읽으면 또한 그에 상당하는 이익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도행(道行)도 없는 승도(僧道)가 더구나 정성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면 이익이 매우 미미하게 되고, 심지어 터럭 끝만큼도 이익 되는 게 없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정성이 지극하지 못한 허물일 뿐입니다. 또 송경(誦經)은 망인이 죽은 지 49일 이내에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데, 이 기간이 지나면 망인은 지은 업에 따라 생을 바꿔 이미 다른 곳에 태어나 버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천도의 공덕을 바랄지라도 몇 번의 생을 거친 뒤에 그들에게 돌아가며 죽은 자가 즉각적인 효력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문50 : 저승에서도 염불하면서 수행하는 자가 있습니까? 염불을 하고 송경(誦經)을 한 공덕이 이처럼 크다면, 저승의 모든 귀신들은 어째서 빨리 스스로 염불 송경을 하여 극락왕생(極樂往生)하고자 않습니까? 만약에 염불을 할 줄 몰랐다 해도 어째서 다른 사람이 염불(念佛)할 때 그것을 본받아 따라하지 않는지요?

● 일단 저승에 도착하면 바로 자기의 업력(業力)에 막혀서 자연히 염불하고 송경할 줄을 모르게 됩니다. 즉, 우리가 염불하고 송경을 해 준다 해도 저들은 보고 들은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수행(修行)은 한 모금의 기운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해야지, 한번 숨이 끊어지면 힘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문51 : 귀신은 형체가 없는 것(無形)을 볼 수가 있고 소리가 없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면, 어째서 그들은 우리들이 염불수행하는 것을 대하고도 도리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단 말입니까?

● 자기의 업력(業力)에 가려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을 한 번 보십시오. 본래 신앙(信仰)이 없는 사람들이나 굶주림과 추위에 핍박받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염불수행하는 것을 만나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설사 우연히 보고 듣거나, 또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붙어서 하게 하려 해도, 신심(信心)이 일어나지 않거나, 혹 뜻이 있다 해도 견고(堅固)하지 않아서 결국엔 수행하지도 않고 염불하지도 않으니, 저 귀신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문52 : 염불하고 불경을 읽는 것이 그렇게 큰 공덕이 있다면, 유가(儒家)의 경서(經書)를 읽는 것도 공덕(功德)이 있습니까?

● 예, 공덕이 있습니다.

 

문53 : 지금 세상은 유불도(儒佛道)의 세 종교가 정립(鼎立)해있어 신앙이 각각 다른데, 저승에서 존중하는 것은 어느 종교(宗敎)인가요?

● 세 종교를 다 존중합니다만, 다만 그 중에서 불교를 가장 중히 여깁니다.

 

문54 : 불교를 배운 사람은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고, 도교를 배운 사람은 동천복지(洞天福地)에 태어나지만, 유교를 배운 사람들은 죽은 뒤에 어디에 가서 태어납니까?

● 역시 하늘나라[天界]에 태어납니다. [영혼이] 소멸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문55 : 불교(佛敎)의 호법신(護法神)은 ‘위타’요, 도교(道敎)의 호법신은 왕영관(王靈官)인데, 유교(儒敎)도 호법신이 있습니까?

● 모릅니다. 유교는 신도(神道)를 설교하지 않기 때문에 호법신의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경전, 서적이 귀신의 가호(加護)를 받는 것은 역시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문56 : 선생은 일찍이 무슨 중요한 안건(案件)을 심판한 적이 있습니까?

● 일체의 모든 안건이 모두 다 매우 평범한 안건으로서 인정(人情)과 사리(事理)의 밖엣 것은 결코 없었습니다. 또 그 죄상(罪狀)도 환히 밝고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복잡하여 밝히기 어려운 정황은 없었습니다.

 

문57 : 일찍이 각처를 유람한 경력이 있습니까?

● 없습니다.

 

문58 : 선생은 평소에도 늘 귀신을 볼 수 있습니까?

● 내가 저승판관으로 있을 때에는 신식(神識)이 몸에서 나가거나 말거나를 막론하고 늘 귀신을 볼 수 있었지만 중화민국(中華民國) 초(初) 이후부터는 귀신이 보이는 일이 점점 적어지더니, 민국 10년(1921년) 이후에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59 : 저승친구들이 올 때도 이승 친구들을 대할 때처럼 음식을 많이 장만하고 초대합니까?

● 아닙니다. 다만 맑은 차 한 잔이면 이미 충분합니다.

 

문60 : 저승에도 해마다 명절과 휴가가 있습니까?

● 예. 이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음력 설날과 청명, 한식, 단오, 추석, 동짓날 등을 만나면 역시 반드시 며칠을 쉽니다. 그러나 단 아직 요일(曜日)은 없었습니다.

 

문61 : 귀신은 어떻게 그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까?

● 귀신들은 모두 자신의 모습을 변환(變換)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저승 관아의 허가를 얻어야 됩니다.

 

문62 : 새, 짐승의 혼령은 역시 새, 짐승의 형상을 하였습니까?

● 이것은 별도의 부서에서 맡아서 관할했기에 나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문63 : 이 세상을 귀신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과 귀신이 함께 섞이어 사는 게 되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승과 저승이 둘로 동떨어진 것인데, 결국 그 경계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 그 나눠진 경계[分界]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여 이런 문제의 정황은 실로 분명하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문64 : 산 사람의 혼과 죽은 사람의 귀신이 그 형상과 그 얼굴빛이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 이전엔 그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당연히 조금은 차이가 있지요.

 

문65 : 귀신도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 예. 그들도 역시 극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는 애처롭고 슬픈 것이 많습니다.

 

문66 : 저승에서도 가정을 이루고 권속(眷屬)이 있습니까?

●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이승에서의 원래 가족이었던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저승세계에도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일이 있습니다.

 

문67 : 저승에서는 어떤 역법(曆法)을 씁니까? 그리고 모든 공문서(公文書)에 년, 월, 일을 씁니까?

● 예, 만청(滿淸)시대에는 만청시대의 책력(冊曆)을 썼고, 공문서에서 쓰는 년, 월, 일도 이승과 똑 같습니다.

 

문68 : 귀신이 사람의 태(胎) 속에 들어갈 때 저승에서는 무슨 훈계(訓戒)하는 말이 없습니까? 가령 악(惡)을 돌이켜 선(善)으로 향하라는 말 따위 말입니다.

● 없습니다. 오직 새나 짐승의 태에 던져질 때에는 귀신으로 하여금 그 정황을 모르게 반드시 (그 들어갈 태(胎)를) 환(幻)으로 남자 여자 모양이나 어떤 누각과 같은 좋은 경치로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으로 그 구렁텅이 속에 들어가게 합니다.

 

문69 : 사람은 귀신으로부터 환생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럼 저승에서 부부관계에 의해 새로 태어난 아이는 무엇에 관련되어 환생한 것입니까?

● 사람이 죽은 뒤의 (몸에) 남은 기운이 투입(投入)된 것입니다.

 

문70 : 저승에 태어난 아기는 장래에 (죽어서 다른 것)으로 환생할 수 있습니까?

● 불가능합니다.

 

문71 : 귀신이 사람으로 변하고 사람이 귀신으로 태어난다면, 결국 이 세간에는 사람이 먼저입니까, 귀신이 먼저입니까?

● 여기에 대해서는 마땅히 두 방면으로 나누어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먼 상고(上古)시절 이전에 혼돈이 처음 열리고 순박(醇朴)한 기운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먼저 인간이 있고 나서 그 뒤에 귀신이 있었고, 그 후세에는 귀신이 먼저 있은 뒤로부터 사람이 있게 되었습니다.

 

문72 : 귀신들도 접대(接待)하거나, 경축(慶祝)하고 조문(弔問)하는 예절이 있습니까?

● 예, 이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문73 : 향(香)과 촛불은 어디에 쓰입니까?

● 촛불은 그 광명(光明)을 취(取)하고, 향은 그들을 불러오게 하는 데 쓰입니다.

 

문74 : 폭죽은 어디에 쓰입니까?

● 귀신들은 폭죽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쓰일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문75 : 저승의 봉급은 어디에서 마련하여 옵니까? 이것 역시 금전, 양곡, 세금의 항목으로 거두어들인 것입니까?

● 이전에 그것에 대해서 그들에게 물어 본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에게 묻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디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문76 : 귀신들도 이승의 아내와 자녀(子女)들을 그리워합니까?

● 예, 그들도 역시 몹시 못 잊어합니다. 그러나 시일(時日)이 오래 지나면 자연히 그리움이 약해집니다.

 

문77 : 저승의 관리들도 다른 세상에 몸을 바꿔 태어납니까?

●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현재 공무원으로 있는 사람은 특히 높이 취직하는 것이 보통사람에 비해 쉬운 것과 같습니다.

 

문78 : 선생께서 전세(前世)에서부터 쌓은 근기가 그와 같이 보통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셨으니, 아마도 내세(來世)에는 윤회생사(輪回生死)를 면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윤회를 벗어나는 일이 어찌 그리 쉽겠습니까? 그런 즉 내생에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일찍이 같은 일을 하는 이에게 부탁하여 이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르기를, “당신은 내세에 반드시 하남성(河南省)의 남양현(南陽縣) 일대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미 그 때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기에 그 간에 내가 지은 業이 있어서 아마 저승 기록이 다시 고쳐졌을 수도 있습니다.

 

문79 : 선생은 그 뒤에 어찌하여 저승판관 노릇을 그만두게 되었습니까?

● 내가 원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고,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휴직하기를 부탁했지만 번번이 모두 허락을 받지 못했었는데 그 뒤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금강경(金剛經)을 많이 읽으라고 가르쳐 주기에, 법대로 시행했더니, 독송하기 2000번 이상을 채우자 드디어 다시는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終>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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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이 엎드러 절을 하다 (행책대사와 연수대사)

1.행책대사


이 스님은 청나라 강희제 때의 스님으로 지금으로 부터

약 300여년 전에 계셨던 스님이시다.

속성은 장씨이며 이흥 사람으로 그의 부친은 전창이라고 하는 분이시다.

그의 부친은 유교의 선비로서 일찍부터 감산대사와 친하여 사귀어 왔다.

그런데 감산대사께서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삼년 후 꿈에
감산대사께서 주장자를 짚고 방에 들어와 은연히 앉으심을 보고
임신이 되어 낳으신 분이
행책대사
이시다.

어렸을때 이름을 몽감이라 불렀다 23세 때에 무림땅 이안사에 출가하여

약암선사에 의지해 사시면서 그 스님에게 공부하는 법을 배워서 5년간을

눕지 않고 애써 정진하셔서 마침내 깊은 진리의 법원을 깨달으셨다.

그후 보은사에 머물면서 식암 영선사를 만나
정토수행에 법문을 듣고

정토수행을 열심이 하셨다 그리고는 또다시 전당에 있는 초석법사와

천태교리를 열람해 보시고는 다 같이 정실에 들어가서 법화삼매

닦으셔서 그 교리에 궁극을 통달하셨다.

강희 2년에 이르러 항주 법화산 서쪽 시냇가에 조그만 암자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서 전적으로 염불수행을 하시어 많은 힘을 얻으셨다 . 그 곳에서는

7년간을 계시고는 그 후 오산보인원에 가시어 정토종을 크게 일으켜서

모든 학자들과 일반 신도들을 교화 지도 하시어 정토수행자가 날로

늘어나 마침내 정토종이 크게 번창하게 되었다.

행책대사께서는 강희 21년7월19일에 55세 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그 당시 손부상이란 분의 장남
손한 이란 분이 병으로 앓다가 죽었는데

하루를 지나 다시 깨어나서 하는 말이 명부(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던 중에

각중에 밝은 광명이 천지를 밝게 비추니 염왕(염라대왕)이 엎드려 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방금 이 광명은 청나라 행책대사께서 왕생극락하시면서

비추신 광명인데 너희들이 그 광명의 빛을 받은 인연으로 많은 죄업이 소멸되어

 다시 환생 시켜주니 나가서 많은 공덕을 짓도록 하라" 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한분이 그 당시 죽었다가 깨어난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남관 밖에

살고 있는 오성자라는 분인데 이 분도 역시 깨어나서 손씨와 똑같은 말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분들은 크게 발심하여 염불수행을 철저히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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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수대사 (연종 제6조)


이 스님은 송나라 스님으로서 16세에 글을 지어
천재로 뽑힌적이 있는 아주 비상한 글 재주가 있엇다

일찍이 불가에 출가하려 하였으나 부모님이 허락을
아니하여 못하였으나 세속에 계시면서 불심이 돈둑
하였다

어린시절부터 법화경을 수지독송하셨으며 법화경을
보실 때에는 글을 한목에 다섯줄씩 봐 나가셨다
참으로 비상한 천재이신 것이다

그리고 세속에 계시면서도 살생이라고는 벌래 한마리를 죽이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항상 방생하시기를 좋아 하셨으며 육식과
오신채같은 것도 드시지 않으셨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셔서 고을 원 살이를 하게 되셨다 그런데
다니시다가 산짐승이나 물고기를 파는 것을 보면 그것을 꼭 사서
방생을 하셨다 그리하여 자기 돈이 없을 때에는 공금으로 사서
방생을 해 주셨다

그와 같이 수년을 하다보니 마침내는 많은 공금을 축을 내어
그런 사실이 나라에서까지 알게되어 처형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나라에 법은 공금을 사적으로 쓴 자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어 죽이게 되어있었다

당시 전왕이 명을 내리기를 죄인을 형틀에 매달아 칼로 목을
치려고 할때 죄인의 안색이 변하거든 목을 베고 안색이 변하지
않거든 목을 베지 말고 풀어 주라고 명했다

형리가 그와 같은 명을 받아가지고 죄인을 형틀에 매달아
칼을 들어 목을 치려해도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태연
하였다 그리하여 형리가 조전왕의 분부대로 풀어주었다

그러한 일을 한번 당하고 나서는 인생의 무상함을 크게
느끼시고는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번에 꼭 죽을
사람이었는데 부처님 덕에 살은 것이니 이제 부처님 제자가
되고자 하니 나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알고 잊어 주기를
바란다"고 하시고는

명주땅 용책사 영명대사에게 출가하시어 스님이 되셨다
그때 스님의 연세는 34세 였었다 그후 천태산의 소국사에게
찾아가서 그곳에서 대도를 성취하시게 되셨다

처음 대도를 성취하시기전에 지자암에서 90일간을 정진하시는데
잠을 안자고 애써 정진하시어 마침내 정에 들게 되었다
여러날을 정에 드시어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여 법안종 제 5조의
조사가 되신 것이다

그런데 당시 선정에서 출정을 하고 보니 옷자락 속에 종달새가
집을 지어 놓았다 참으로 수승한 대근기이시며 보통 사람들은
모두가 살기가 있어서 짐승들이 보면 달아나는 것이거늘

이 스님에게는 오직 자비한 마음 뿐으로 살생을 하지 않고 방생을
수없이 많이 해오시어 몸에 살기가 전혀 없어 따스한 정이 풍기기
때문에 새가 날아 와서 옷자락 속에 집을 지워 놓은 것이니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들어보지 못한 참으로 훌륭하고 장하신 분이다

부처님께서는 육년수행시에 머리위에다 까치가 집을 지었다고 하며
그 인연공덕으로 까치가 부처님 열반후 천년이 지나 제나국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연수선사께서는 법화경을 독송하며 많은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면서
염불정토수행을 하셨다 많은 중생들을 위하여 매일같이 설법과
만행을 행하심에 하루도 쉼이없이 행하셨으며

산에 사는 조류, 금수,미물들을 위하여 천주봉에 올라 가시어
법화경을 외우시고 높은 소리로 염불을 해주셨다 그와 같이
3년을 하시고 난 어느날 정에 드시어 관세음 보살을 친견하여
관세음보살께서 감로수로 입을 씻어 주시었다

그후부터는 관음 변재가 열리어 말씀을 하시매 청산유수같은
법문이 나오며 듣는 자가 모두 환희심을 내어 발심을 하게 되며
또한 모두 염불하여 왕생발원을 하게 되었다

스님에게 법을 배우려 모여든 대중이 2천여명이 넘었으며 스님께서는
낮으로는 대중들을 위해 설법과 설계등을 해주시고 저녁으로는
산에 올라가시어 짐승과 미물들을 위하여 밤을 세워 염불을 하시었는데

대중들이 들으니 스님께서 염불하시는 산위에서 아름다운 천악이
울려 오곤 하였다 스님께서는 매일같이 아침 일찍부터 행하시는
것이 예불,송경,염불,설법,설계,시식,방생등 모두 백여덟 가지나
되는 덕행을 닦으셨다

그리하여 월나라 왕께서 이 스님의 수행이 장하심을 알고는 절을
크게 지어 드려 정자사라고 이름하고 스님의 호를 지각선사라고
주셨다 스님께서는 또한 많은 글을 지으셔서 세상에 남기셨으니
그 권수가 무려 197권이나 되는 많은 글을 지으셨다

개보 8년 2월 26일 새벽에 대중을 모아 고별인사를 하시고는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으셔서 향을 사루고 염불하시고는 고요히
열반에 드시었다 후에 다비를 하고나니

많은 사리가 나와 탑에다 모시어 지금까지 보존해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연수대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저승의 염라대왕까지도 존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연수대사께서 열반하신 후 얼마를 지나고나서 타지에서 스님
한분이 오셔서 그 절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스님께서는
아침부터 하루종일 연수대사의 사리탑을 돌고 있었다 몇날 몇일을
그와같이 사리탑을 돌고 있어서

그것을 본 대중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스님에게 사유를 물어
보았다 그 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무주땅에 살던 승려인데
전생죄업으로 병을 앓다가 죽어서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런데 염라대왕의 전당 안에 어떤 스님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염라대왕이
단에 오를 때에 그 초상화에 향을 사루고 예배를 드리고는 단에 올라가서
죄인들을 심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기는 아직 명이 남아 있는데 잘못 데려온 것이라 하며 다시
나가서 수행을 잘 하라고 하면서 환생명령을 하였다 그리하여
벽에 걸린 초상화가 어느 스님인지를 물어 보았다

그러니 염라대왕이 말해주기를 이 스님은 송나라 영명사에 계시었던
분으로 극락왕생하신 연수대사이신데 이 스님처럼 모든 덕행이
구족원만한 분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고 하며

특히 인간세상 사람으로서 이 스님처럼 많은 생명을 구제해주신
자비로운분은 고금을 통해 드문 것으로 그 덕이 너무나 높고 장하시어
숭배하고 있노라고 염라대왕이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환생한 후 이 스님의 사리라도 참배하고자 찾아온 것이며
탑을 도는 뜻은 후세에라도 이 스님을 따르고자 하여 탑을 돌고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연수대사의 덕행은 참으로 장하신 것이었다 이러한 인간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저승의 염왕까지도 존경해 받드는 휼륭한
스님이시며 법안종의 제 5조가 되시는 선종의 대선지식이시며

관음변재를 얻으신 교종의 대 선지식이기도 하신 선종 양교를 겸하신
대 선지식께서 염불수행을 하시어 정토발원을 하신 것이어늘
어찌 범부로서 염불하지 않고 나태 할 수 있으리오


출처: 왕생록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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