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준언거사의 염불왕생 극락기
오증(悟證)법사님은 1999년 6월, 싱가포르에 이르러 정공노법사님을 배알(拜謁)하였다. 그리고 정종학회(淨宗學會)의 여러 법사님들과 법우님들께 동생 진준언거사님이 암에 걸린 후 염불하며 극락왕생한 수승한 사적을 강술(講述)하였는데 지금 전문(全文)을 아래와 같이 발표한다.
자비하신 사부상인(師父上人:정공노법사), 자비하신 법사 여러분, 법우대덕 여러분. 아미타불!
오증(悟證)은 대만으로부터 싱가포르에 이르러 동생 진준언거사님이 염불하며 극락세계에 왕생한 진실한 사적(事迹)을 사부상인께 말씀드렸습니다.사부상인께서는 몹시 기뻐하시면서 오증더러 이곳에서 여러분들께 이 사적을 말씀드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 사적은 오증이 직접 겪은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들께 증명해드릴수 있으며 모든 분들에게 비할바 없는 큰 믿음을 가져다주어서 진정으로 믿음과 원력을 갖추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여러분들께 진준언 거사님의 평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진준언은 1967년 12월 13일, 대만의 꼬우슝(高雄)시에서 태어 났으며 1997년 4월 21일 풍원(豊原)시 자택에서 편안하게 왕생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31세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총명하고 활발하였으며 마음씨가 착하고,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사람됨이 너그럽고 정직하였으며 사람을 대할 때 성실하고 겸손하였고 항상 양보할 줄 알았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들을 공경할 줄 알았으며 그 어떤 안 좋은 습관도 없었습니다.
항상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여 세속에 물들지 않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기에 부모님으로부터 깊은 사랑과 환심을 얻을 수 있었으며 스승과, 어르신들의 칭찬과 친구들의 추대를 한껏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훌륭한 본보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진준언이 불법을 만나게 된 인연은 이러하였습니다.
모친께서 불교를 믿는 인연으로 저의 집안은 불화가정(佛化家庭:온 가족이 함께 불법을 믿고 실천하는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진준언 거사님은 삼보에 귀의한 후 아주 공경스럽게 삼보를 호지(護持)하였고 보시도 자주하였습니다.
그 후, 오증(悟證)이 출가하는 인연으로 사부님(淨空法師)이 강해(講解)하신 무량수경(佛說大乘無量壽莊嚴淸淨平等覺經)및 기타 법문 테이프와 동영상 법문을 듣고 나서 사바세계의 오탁악세와 극락세계의 갖가지 의정(依正)장엄 및 우주와 인생, 그리고 육도윤회의 사실진상(事實眞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이해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쁜 학업 때문에 우선 공부에 전념하고 힘써 향상을 꾀하기 위해 또 스스로 아직 젊다고 여겼으므로 일단 학업완성, 사업성취, 생활안정, 등등 한 걸음 한 걸음씩 자신의 소망을 실현한 후 나이가 들어서 그때 가서 불법을 배워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하였습니다.
불법 및 인생의 가치와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생사대사(生死大事)에 대해 충분히 중시하지 못하고 경솔했던 것 이였습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불법의 바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탐구하지 못하고 정성스럽게 부지런히 수행을 하지 못하였으며 다만 가끔씩 염불을 하면서 ‘무량수경’과 ‘대비주’를 독송하곤 하였습니다.
다음은 진준언 거사님의 병을 앓게 된 과정과 마음상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93년 8월 1일부터 1994년 7월 31일 까지 이 기간에는 중앙연구원 물리연구소와 협력하여 티타늄과 코발트합금 및 그 박막의 물리적 성질의 연구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의 성과는 많은 선배님들로부터 높은 평가와 인정을 받았습니다.
병역(兵役)을 마친 후 곧 미국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에서 전기학을 전공하였으며 석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졸업 후 미국의 ATT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 9월 중순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직장 동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수송 되여 구급치료를 받은 그는 뜻밖에도 위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사로부터 병명을 듣고 난 그는 매우 차분함을 보였습니다. 병실에 누워 염불을 하였으며 날마다 <무량수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전화하여 오히려 부모님께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였습니다.
당시 암세포의 위치가 임파조직을 상당히 압박 하였으므로 상황이 매우 위급하였습니다. 의사는 신속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홀로 타국에 있는 관계로 부모님이 보살펴 주기에는 너무나 불편하였기 때문에 대만으로 돌아와서 치료를 받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뒤 타이베이(台北) 영민(榮民)병원에서는 검진을 받은 후 의사는 수술 후 생존율이 낮고 생활의 질이 매우 떨어질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이 말을 들을 그는 즉시 이런 생활을 원치 않는다고 표명하였습니다.
왜냐면 만약 수술시 불행하게 염불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사망하면 육도윤회에 떨여저서 극락왕생을 망칠까 크게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암세포가 확산되지 않고 위와 식도의 일부를 절제 한다고 볼 때, 설사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상당히 긴 시간을 몸 조리 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의 상태가 필연적으로 매우 떨어지므로 심력을 다하여 정성껏 염불을 할 수 없음을 걱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명이 아직 얼마 남았는지도 알 수 없는데 차라리 남은 생명을 잘 활용하여 체력이 남아 있을 때 집으로 돌아가 바싹 힘을 내어 열심히 염불하여서 부처님의 자비하신 원력을 의지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와 상의하여 수술을 받지 않고 화학치료도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부모님은 비록 마음이 내키지 않고 서운하였지만 평소 불법을 배워 왔기 때문에 과감히 이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온갖 반연을 내려놓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오증(悟證)또한 평소 사부님의 가르침을 한마디 한마디씩 그에게 들려주자 그는 곧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오증은 또 그에게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본래부터 무상하여 언젠가는 우리 모두 이 길을 걸어야 하며 반드시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데 그 누구라도 벗어나지 못한다.부모님은 내가 잘 보살펴 드릴 테니 마음 놓고 걱정하지 말라,
더구나 네가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일생에 불과(佛果)를 이루어 무량한 신통, 지혜, 도력을 갖출 수 있는데, 그래야만 진정으로 우리들을 보살피고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반드시 온갖 반연을 내려놓고 열심히 염불하여 극락세계 왕생을 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육도에서 윤회를 하지 않는 것이다 .”
진준언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부터 비로소 채식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한의사를 찾아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퇴원을 하자 한의사는 모친께 쇠고기와 당근을 푹 삼아서 그에게 피를 보충해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중생의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고집하면서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고 다만 경련을 억제할 수 있는 약물과 제산제(制酸劑)만을 복용하였습니다.
처음 그는 여전히 한 가닥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기에 선지식이 삼천배를 하여 숙세의 업장을 참회하라고 권하자 곧 받아들였습니다.하지만 삼천배를 반쯤 하였을 때 또 다시 출혈로 인해 병원에 실려가 수혈을 받게 되었습니다.
입원해있는 동안 “지장보살 본원경” 녹음테이프를 듣고 지옥의 갖가지 죄상(罪相)을 알게 된 그는 금생에 반드시 생사를 해결하고 삼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극락세계로 왕생해야 겠다는 신념을 더욱더 견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보모님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지 못하여서 퇴원하자마자 또 다시 선지식을 찾아서 가지(加持)와 개시(開示)를 구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매일 부처님께 300배씩 절을 하고 향하나 탈 시간동안 염불하였으며 “불설료치병경”을 21편씩 독송하였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줄곧 염불을 하였고 이따금 88불 예참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일심으로 염불하고 예불을 한 후부터 그는 더 이상 아프거나 출혈하는 증상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더러 이제까지 진통제주사 한대도 맞지 않았는데 병원의 의사들 조차도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날로 야위어져 갔으며 나중에는 치력이 점점 떨어지더니 더 이상 예불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 혼자 염불하면서 잡념이 많음을 느끼고 왕생주를 지송하면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그는 부처님전에 나아가 아미타불께 발원하였습니다.
“만약 수명이 아직 남아있다면 하루 빨리 낫게 해주시고,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출가수행하면서 널리 법을 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수명이 다 하였으면 자비하신 아미타불께서 제가 왕생주를 30만 번 독송한 후에 저의 연꽃으로 극락세계로 접인해 주십시오.”
이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몽산시식에 동참하여 자신의 업장을 참회하였습니다.그러던 1996년 12월 4일 그는 5계를 받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계를 받은 후 계율을 청정히 지키면서 부지런히 십선업을 닦았으며 진정으로 정토업을 닦는 3가지 복(淨業三福)을 실천하였습니다.
정업 3복이란
“첫째, 부처님께 효도하고 스승님을 받들어 모시며 자비심으로 산 생명을 죽이지 않고 십선업을 닦는다.
둘째, 삼귀의를 받아 지니고 여러 계율을 갖추어 위의를 범하지 않는다 .
셋째, 보리심을 발하고 깊은 인과를 믿으며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힘써 권면해야 한다.”입니다.
그리고 또한 “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大勢至菩薩念佛圓通章)”의 녹음테이프와 사부님이 강해(講解)해주신 “무량수경(佛說無量壽莊嚴平等覺經)”강의 기록을 듣고 난후 또 “역대정토고승선집(歷代淨土高僧選集)”및 “근대왕생수문록(近代往生隨聞錄)”등 글들을 보았는데 사바세계와 극락세계, 세간과 출세간의 사리인과(事理因果)에 대해 철저히 자각하게 되었고 정토왕생에 대한 수많은 진실한 사례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인광대사의 문초정화록“菁華錄”가운데 葉福備거사에게 보내는 글에서 대사님이 가르쳐 주신 十念計數念佛방법을 읽고 난 그는 환희심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저에게 이 방법이야 말로 참으로 육근을 도섭(都攝)하고 정념(淨念)이 이어질 수 있는 불가사의 한 방법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이 방법대로 염불하니 가장 심攝心하고 득력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염불 하였습니다. “아미타불아미타불아미타불, 아미타불아미타불아미타불, 아미타불아미타불아미타불아미타불” 그러나 염주는 돌리지 않고 다만 마음속으로 부르고 마음속으로 염불한 숫자를 기억하였습니다.
그는 또 저에게 만약에 일찍이 이 요령을 알았다면 왕생주를 독송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부처님 전에 발원을 한 이상 원願이 원만해지고 나서 다시 전심으로 염불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요즈음 사람들이 불법을 배워도 성취할 수 없는 이유는 경을 듣고 나서 진지하게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지 않고 다만 불교학 상식정도로만 보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나에게는 아직 얼마든지 내일이 있고, 죽음이란 나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겼으므로 하루하루 시간만 헛되이 보내면서 진지하게 염불수행을 하지 않았고 생사심이 간절하기 않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경우 암에 걸려서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게다가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래도 진지하게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삼악도에 떨어질게 뻔 하므로 금생에 어떻게든 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하루 일찍 불법을 닦지 못한 점을 참회하면서 스스로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병을 앓게 된 후에서야 깨닫고 이제야 수행을 시작하니 이미 너무 늦었다고 한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이가 젊고 몸이 건강할 적에 노력하여 힘써 불법을 배우고 수행을 해야지 늙기를 기다려서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온갖 반연(攀緣)들을 간파(看破)하고 내려놓았으며(放下)더 이상 병이 낫기를 바라지 않고 반드시 극락왕생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이 법문해주신 수행방법에 따라 하나하나씩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갔으며 완전히 가르침대로 봉행하였습니다.
그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을 일절 보지 않았으며 잡담도 하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염불수행에만 매진하였습니다. 간혹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문병 오면 곧 자리를 회피하고 더불어 일상의 잡담들은 나누지 않았고 다만 부모님께 대신 접대하여 자신의 뜻을 전해 달라 부탁하였습니다.
그의 휴식시간은 다만 공양을 할 때와 잠을 잘 때 뿐 이였으며 쓸데없는 일로 공부에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매일 공양을 마친 후 수저를 놓자마자 염불경행(念佛經行)하였으며 하루 종일 두 세 마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저희들이 걱정되어 한 위로의 말마저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이미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으므로 생사의 일이 크고 사람의 목숨이 무상함을 절실히 느꼈기에 남은 시간을 취대한 잘 활용하여 용맹정진하며 염불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수행하는 모습은 마치 폐관수행과 같아 그토록 진지하고 정성을 다해 정진하였는데 저희들도 그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고 더욱더 실혈을 기울여 그를 보살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났지만 그는 결코 게으름을 피우거나 방일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부님이 법문해주신 의심하지 않고(不懷疑) 끊어지지 않으며(不間斷) 뒤섞이지 않아야(不夾雜 )한다는 가르침과, 진성(眞誠), 청정(淸淨), 평등(平等), 정각(正覺), 자비(慈悲), 그리고 간파(看破), 방하(放下), 자재(自在), 수연(隨緣), 염불(念佛)과 보리심을 내어 한결같이 전념하라(發菩提心 一向專念)는 가르침을 완전히 실천 하였습니다.
진준언의 임종 시 서상(瑞像)은 이러하였습니다.
왕생하기 3일전 그는 우리에게 마음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증에게 자신은 전부 간파하고 내려놓았으며 모든 일을 다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또 부모님께 그의 병은 그분들에게 보여주려고 示現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몸을 잘 챙기지 못해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서 더 이상 부모님을 시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돌봐주게 하였으며 게다가 더욱이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보내야만 하는 현실을 부모님께 참회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부모님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하고는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은 그에게 “이 일은 네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다 업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부모는 절대 너를 탓하지 않는다."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는 또 모친께 “어머님은 금생에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왕생할 자신이 있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아마도 왕생할 수 있겠지” 모친의 이 대답을 들은 그는 즉시 모친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 그래서야 안 됩니다. 반드시 극락왕생을 진심으로 믿고 진심으로 발원해야 하며 진심으로 염불하여 진정으로 마음을 안주(安住)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마친 그는 곧장 正念을 들어 염불하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하루 밤낮이 지났을 때 그의 호흡은 점점 가빠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게다가 기력까지 부족해진 그는 소리 내어 염불하지 못하고 다만 마음속으로 염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모친이 매우 걱정되어 “아직 염불하고 있는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염불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표시하였습니다. 이 순간 그의 눈은 매우 맑고 밝았는데 마치 갓난아기처럼 짙은 남색이었으며 정신은 매우 또렷하여 조금도 번뇌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줄곧 그의 옆에서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당시 우리의 마음속에는 온통 그를 도와 正念을 불러 일으켜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 때 그는 갑자기 혼신의 힘을 다하여 큰소리로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하며 염불하였는데 이런 상황이 전후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는 혼신의 힘을 써서 염불하는 도중에 편안히 왕생하였는데 아미타불의 “아”자에서 숨이 끊어졌기 때문에 눈과 입이 약간 벌어져 있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시체를 이동하지 않고 계속하여 그를 위해 염불하였습니다. 이렇게 10분 정도 지나서 부모님은 계속 염불을 하였고 오증은 그에게 법문을 해 주면서 이렇게 권하였습니다.
“만약 네가 진정으로 부모님께 효도한다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불하여 부처님을 따라 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한다. 부모님은 내가 잘 보살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 이 말은 마친 후 저는 공간을 두고 그의 체온을 감지해보았습니다.
“정수리는 성인, 두 눈은 하늘로 태어나며, 사람은 가슴, 아귀는 배, 축생은 무릎으로, 지옥은 발바닥으로부터 떠난다.(頂聖眼天生, 人心餓鬼腹, 畜生膝盖離, 地獄脚板出): 이 게송은 잡보장경 가운데 나오는 말로서 운명할 때 신식神識이 몸의 어느 부위로부터 떠나는가에 따라 어느 도로 윤회를 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신식이 정수리로 빠져나간 사람은 온 몸이 다 식었지만 정수리만 따뜻한데 이로서 성인 혹은 정토왕생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부위도 이와 같이 미루어 알 수 있다”
이 때 그의 정수리는 따뜻하였고 이마는 차가웠으며 가슴은 더욱 차가웠고 다른 부위는 완전히 식어버렸습니다. 오증은 다시 그를 위해 일심으로 염불하였습니다.
진준언이 왕생한 후의 서상은 이러하였습니다.
그날 진준언의 왕생소식을 들은 이웃들과 친척, 그리고 각지의 법우님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발심하여 오셔서 교대로 조념을 해주었는데 조념하러 오신 분들은 대략 100여명 정도 되었습니다.
오전 10시쯤 되었을 때 오증은 서방삼성西方三聖이 그를 접인 하러 몸을 나투신 것을 보았는데 진준언은 연분홍색 연꽃위에서 저를 향해 뒤돌아보며 한번 웃고는 곧 서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뒤 오후 4시쯤 되었을 때 갑자기 공중으로부터 진준언의 한없이 기쁨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증스님, 오증스님. 난 지금 극락세계에 있어요, 난 지금 아주 즐거워요.”
당시 그의 목소리는 온통 환희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뛸 듯이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또한 희열로 가득한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참으로 너무너무 수승하였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오증은 얼른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하여 일심으로 염불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또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나, 누나!” 어, 자세히 들어보니 틀림없는 진준언의 목소리였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그제야 주의를 기울여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난 지금 참말로 극락세계에 있어요. 왜 안 믿는 거예요? 난 거짓말하지 않았다니까요!” 이 말은 들은 저는 기쁜 나머지 저절로 탄성의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가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왕생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으므로 저는 그에게 “만약 네가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면 어느 국토로 왕생하였는가?” 묻자 그는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입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계속해서 “그럼 무슨 품위(品位)인가?”라고 물으니 “중품 하생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사구시(實事求是)하기 위해 다시 그에게
“만약 네가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면 나에게 증명해 보거라. 어머님이 말씀하신 대로 ‘눈을 감고 입도 다물고 웃어보아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즉각 저에게 “못 믿겠으면 이불을 걷어 보세요. 난 지금 눈을 감고 입도 다물고 웃고 있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뒤 제가 이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 역시 그 당시 똑같은 느낌을 받았었는데 극락세계에 왕생한 진준언의 기쁨과 환희와 희열로 가득한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조념한지 13, 14시간 정도 지났을 때 부친께서 다라니 이불을 열어 젖혀 보았더니 참으로 너무나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명히 그가 얘기한 대로 눈은 감겨져 있었고 입은 다물어져 있었으며 얼굴에는 웃음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얼굴은 볼그스름하면서 윤기가 돌았는데 생시보다 더 맑았고 더욱 장엄하였으며 여지껏 이렇게 즐겁게 웃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우리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펄쩍펄쩍 뛸 뻔 하였습니다. 이 때 부친께서는 그의 정수리, 가슴, 그리고 이마 등 세 곳을 차례로 만져보았습니다.
온 몸이 싸늘하게 식었지만 유독 정수리만이 따뜻하였습니다. 참으로 너무나 수승하였습니다.
24시간이 지난 후 입관을 하기 위해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갈아입혔는데 갈아놓은 옷은 모두 매우 깨끗하였고 맑은 향기가 나면서 더럽지 않았습니다.
온 방 안에서는 기이한 향기로 가득하였는데 특히 그가 쓰던 방은 향기가 유난히 짙었습니다. 서로 다른 향기가 한 차례 한차례씩 풍겨왔는데 이러한 향기는 일 년 남짓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향기는 한 번 맡은 사람들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청량하고 청정하여 안정과 길상吉祥을 가져다주는 듯 하였는데 느낌은 비록 이러하지만 사실상 말로서 표현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왕생한지 7일째 되던 날 영전에 향을 올릴 때 올렸던 향은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돌면서 환향(還香)의 모양으로 말리더니 다시 펼쳐졌다가 빠져나갔다가 다시 이렇게 돌고 돌고 또 돌면서 마치 한 송이 연꽃모양이 되었다가 기타 다른 형상들을 이루었습니다. 게다가 매우 무겁게 말렸음에도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움직이고 움직이고 또 움직이면서 오른쪽으로 360°를 돌았으며 부처님 전에 올렸던 향 또한 환향모양으로 오른쪽으로 90°로 말렸습니다. 그 후에도 이 두 곳의 향은 자주 이렇게 빙빙 돌곤(회전)하였습니다. 출관한 후 1년 동안 법당에 올렸던 향은 늘 이처럼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났으며 1년 전에 올렸던 꽃 또한 유난히 생명력이 있어 오래도록 시들지가 않았는데 보는 사람마다 경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 날 저녁 7시쯤 되었을 때 오증은 밖에 볼일이 생겨 차를 탔는데 차에 오르자마자 한줄기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향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달콤하기 그지없었는데 이런 향기로운 맛은 이 세상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느낌을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하기가 어려웠는데 다만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후련하였으며 매우 상괘하고 환희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때부터 출관 전까지 줄곧 24시간을 교대로 조념하면서 오로지 한마디 부처님 명호외 기타 어떠한 불사도 하지 않았으므로 전체적인 자기장(磁氣場)이 특별히 편안하고 포근하였습니다. 조념을 하러 오신 이웃, 친척과 친구들 그리고 각지에서 오신 법우님들은 전부 자신의 몸이 영당(靈堂)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타불칠(打佛七)을 하는 듯 한 느낌이었는데 그야말로 너무나 수승하였습니다.
출관하기 하루 전날 밤. 대략 100에서 2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여 조념을 하였는데 인원이 다 모이기 전 하늘에서 별안간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마치 감로수를 퍼붓는 듯 하였습니다. 얼마 후 인원이 다 모이자 내리던 비가 멎었는데 조념하던 거사님들의 마음은 온통 법희(法喜)로 충만하였습니다.
출관 당일 화장터의 사무가 바쁜 관계로 우리에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화장후 다만 염주 알처럼 생긴 진주와 같은 백색 사리 한 과와 비록 원형이지만 비교적 불규칙적인 초록색에 남색을 띤 사리 한 과, 총 2과를 수습하여 기념으로 남겨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유골을 정업정사淨業精舍에다 모시려고 차를 타고 가는 도중, 하늘에서 갑자기 먼지와 같은 것들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오증은 마음에 두지 않고 다만 정성을 다해 간절하게 염불만 하였습니다.
화장터에서 맨 손으로 사리를 고르고 주웠기 때문에 제 손에는 뼈가루가 묻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안에서는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었으므로 먼지가 있을 리가 만무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뜻밖에도 금싸락이 저의 가사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제 손에 묻어있는 뼛가루 가운데에서도 금황색의 작은 사리 한 과가 있었고 가사위에는 수정과 유리싸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동행하던 사람들은 전부 불가사의함을 느끼고 지금까지 이런 현상을 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8시 쯤 여거사님 한분이 딸과 함께 오셔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하였습니다.
아직 사진을 찍기 전 갑자기 초록색에 남색을 띤 그 사리는 먼저 초록빛을 놓았는데 색깔은 마치 비취처럼 청록색이었으며 매우 투명하여 에메랄드와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났는데 정말로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백색사리 또한 똑같이 변해 있었습니다.
당시 모친과 오증은 어안이 벙벙하여 한참동안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야말로 너무나 수승하고 너무나 불가사의하였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은 후 그 여거사님은 오증의 가사에 금싸락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아쉽게도 사진이 너무 흐려서 여기서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진준언 거사의 생전 공부하는 과정과 그의 일생, 그리고 그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원력으로 염불하며 극락세계왕생을 발원하여 임종 시 정념(正念)이 분명한 상태에서 부처님의 접인을 받은 사실과 또 그의 여러 가지 서상으로부터 불설무량수경 가운데 아미타불의 제 18원, 십념필생원十念必生願의 원문
“내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 중생들이 나의 이름을 듣고 지심으로 믿고 기뻐하며 모든 선근을 한결같이 회향하여 나의 나라로 태어나고자 한다면, 내지 10 념만 하더라도 나의 나라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결코 정각을 이루지 않겠다.”와
불설아미타경에서 설하신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고 1일 내지 7일 동안 명호를 지송하여 일심불난一心不亂에 이르면 그 사람은 임종시에 아미타불과 여러 성중들이 그의 앞에 몸을 나투시어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 마음이 전도되지 아니하면 곧 아미타불의 극락국토에 왕생한다.”
는 경문(經文)과 불설관무량수불경에 말씀하신 “중품하생이란,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자하게 행세한다면, 이 사람이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선지식을 만나서 자세히 아미타불의 국토인 극락세계의 안락하고 장엄한 일들과 법장비구의 48대원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목숨을 마치면 마치 힘센 장사가 팔 한번 굽혔다가 펴는 잠깐 동안에 바로 극락세계에 태어나리라.”라는 경문을 몸소 증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믿음(信), 발원(願), 실천(行)이 진정으로 갖추어지기만 하면 틀림없이 극락세계로 왕생하여 일생에 성불할 수 있습니다.
오증은 오늘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부님의 자비스런 가르침과 은혜에 감사드리고 아울러 오증으로 하여금 이곳에서 여러분들과 법연(法緣)을 맺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동생 진준언에게 도움을 주셨던 모든 선지식들과 법우님들께 십이분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오증은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느끼고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시일이 오래 지나고 또한 강의를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서툴고 빠뜨린 부분이 있을 텐데 강술이 적절치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하신 사부님과 여러 법사님, 여러 법우 대덕님들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간청합니다. 아미타불!
이 자리에서 모든 보고 들은 분들께서 다 함께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힘쓰고 모두 법의 이익(法益)을 얻으시기를 기대하며 모든 분들이 복과 지혜가 늘어나고 광수(光壽)가 무량하기를 축원 드립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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