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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세 명이 일심으로 염불한 이야기  

 

2015-10-24 유묘음劉妙音 淨土宗弘願寺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되어 있어서 실명을 갑을병정 등으로 대신함. 나무아미타불)

 

1

 

2002년 8월부터 2003년 6월까지 10개월 동안 나는 교도소에서 전후로 여섯 명의 사형수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중생은 모두 목숨을 아끼고 죽기를 두려워하는데, 특히 사전에 죽는 날짜를 아는 사람이라면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더욱 사망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기를 갈구하고, 또한 이번 생명이 종결된 후, 다음 생의 생명에 좋은 안심입명처가 있기를 갈구한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거의 다 불법을 믿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 중에 특히 내가 감동을 받았던 것은 2005년 1월 11일에 사형집행을 받은 유갑劉甲이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아주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부처님을 믿고 염불한 것이다.

 

교도소에 있을 때 우리는 삼 개월을 함께 생활했었는데 거의 매일같이 그는 질문을 했었다. 나중에 내가 95공장으로 갔지만 우리는 거의 매주에 편지 한통씩 오갔었다. 우리가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도 오로지 부처님만 부르고 오로지 의심만을 푸는 것일 뿐, 다른 것이 전혀 없었으니 진정으로 명실상부한 ‘연우’라고 말할 수 있다.  

 

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문외한에서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믿음으로 염불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질박하면서 고생스럽던 그의 구도역정은 나를 매우 감동시켰다.

 

그에게는 훌륭한 누님 한분이 계시는데, 그에 대해 극진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었다. 교도소에는 법률이외의 서적을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그의 누님은 그의 요구에 따라 그를 위해 경전과 조사논주들을 구한 다음에 편지의 형식으로 베껴서 그에게 주었다. 나는 줄곧 그와 그의 누님으로부터 감동과 격려를 받았었다.  

 

교도소에는 17,8명이 24시간을 40m²정도 되는 방에서 비좁게 살고 있었는데, 그중에 또 16,7m²쯤 되는 일하는 공간이 있었고, 먹고 마시고 대소변을 보고 잠을 자는 것도 전부 그 속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는 매일 고정적으로 염불을 만 번씩 하다가 나중에는 2만 번으로 늘렸으며, 산념散念은 더욱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부처님께 절을 수백 배씩 하였는데, 족쇄를 차고 있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쉽지 않았겠는가!

 

2

 

유을劉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나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불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저는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고, 또 불법의 이치를 이해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으며, 심오한 이론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해야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만 지옥에 가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만 저의 죄업을 속죄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매일 저와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부릅시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당신이 걱정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소용이 있을까요?”  

 

“이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 뒤로 그는 더 이상 큰 소리로 억울하다고 외치지 않았고 더 이상 욕을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명호만 불렀다.   

 

나는 2004년 8월 15일에 교도소에 들어갔고, 그는 9월 1일에 사형집행선고를 받았는데, 선고를 받고 나서도 형벌을 받는 침대위에서 십일 동안 묶여 있다가 9월 10일이 돼서야 사형을 집행하였다. 그 기간에, 특히 그가 침대위에 손발이 묶여있는 열흘 동안 나는 매일 그에게 밥을 먹여주고 담뱃불을 붙여 주고 몸을 닦아주고 그를 도와서 대소변을 보도록 하였으니, 그로서는 매우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아미타부처님께서 파견해 온 게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나도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받은 사람이라며 당신도 염불하고 나도 염불하여 우리가 가는 곳은 동일한 곳이라 일러주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몹시 기뻐하였다.  

 

9월 9일 밤 그가 나에게 말했다. “저의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형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베푸는 잔치에 가는 것 같습니다. 방금 꿈속에서 아주아주 청결하고 깨끗하여 조금도 때 묻지 않은 곳에 간 것 같았는데, 제가 기뻐하니까 바로 깨어났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저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매우 감사하고 아미타부처님께도 매우 감사합니다!”  

 

10월 새벽 5시에 나는 같은 방을 쓰는 18명 전부에게 그를 위해 염불하여 배웅해 주도록 하였다. 나는 한편으로 그를 위해 목욕을 시켜주고 옷을 입혀주면서 한편으로 그에게 말했다. “좀 있다가 여기서 나갈 때 당신의 나머지 공범 세 명을 만나게 될 텐데, 정념을 유지하여 그들을 따라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 바랍니다. 당신은 오로지 염불만 하고 있다가 총소리가 나면 당신은 극락세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걱정 마세요, 선생님! 제가 바로 어리석어서 사형을 받게 된 것인데, 다시는 어리석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형장으로 갈 것이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아미타부처님께서 저를 마중 나오시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좋아요! 아미타부처님을 뵙거든 부처님께 좀 일찍 저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 좀 해주세요.”  

 

아침에 경찰이 데리고 나갈 때 그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을 사부님(師父)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저는 속가 제자여서 사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여전히 저를 선생님이라 불러 주세요” 말이 끝나자 그는 꿇어앉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의 절을 받으십시오.” 나는 그더러 아미타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라고 하였다. 그가 삼배를 올린 뒤에 사법경찰이 데리고 감방을 나가는데, 이때 그의 얼굴에는 새로 태어난 듯한 행복감과 만족감이 넘쳐흘렀다.

 

3

 

같은 감방을 쓰던 양병楊丙이란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저에게 두 명의 목숨 빚이 있는데, 아미타부처님께서 이런 저를 받아주실까요? 저는 죄업이 너무나 무거워서 18층 지옥에 떨어질 사람입니다. 저는 지옥에 가기 싫고 더 이상 고통을 받기 싫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살해한 그 모자를 구제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저의 목숨은 초 단위로 계산되고 있어서 빠른 시일 내에 죽을 것 같습니다. 저를 구해주세요, 선생님! 선생님께 절을 하겠습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아미타부처님께 절을 하세요! 오직 그분만이 당신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아미타부처님께서 어떻게 발원하고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극락세계를 성취하셨는지를 일러주고, 또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부르면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일러주었다.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신 “일체 선악범부가 왕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아미타부처님의 대원업력에 올라타는 것을 증상연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염불하면 모두 왕생한다”는 등의 이치에 대해 듣고 난 그는 들을수록 더욱 기뻐하였으며, 염불왕생에 대한 신심으로 가득하고 법희로 충만하여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알겠습니다. 저는 마치 아미타부처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을 것 같습니다. 저는 반드시 아미타부처님을 꽉 잡고 놓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그분을 따라 극락세계에 갔다가 시간이 되면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선생님을 마중하러 오겠습니다.”  

 

우리는 한 달 넘게 같이 생활하였다. 그가 매일매일 취한 듯 홀린 듯 염불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참으로 공부가 아주 깊은 ‘전문적인 수행자’를 보는 것 같았는데, 명호를 제외한 다른 일들에 대해 그는 전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매일매일 상소장을 적지 않았나요? 왜 지금은 적지 않으십니까?”  

 

그가 대답했다. “예전에는 항상 요행을 바라면서 구차하게 살려고만 생각하고 항상 처벌을 회피하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그것은 망자에 대해 다시 한 번 모독하는 것이고 망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죄를 짓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인연과보의 도리를 말씀하신 뒤에 저는 알았습니다. 설사 운 좋게 법률의 제재로부터 벗어나더라도 역시 인과응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양심을 속여 가며 무슨 상소를 하지 않고 안심하고 염불해서 왕생한 다음, 다시 그들 모자를 구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감방을 옮기는 바람에 우리는 헤어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매일 염불하는 것 외에 여전히 염불만 하였고,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함께 염불하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교도소에서 95공장으로 복역하러 온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양병이 사형집행 전에 저더러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생님께서 안심하시라고 하면서, 염불을 하면서 형장으로 걸어가겠다고 했고, 반드시 선생님과 아미타부처님께서 실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가 사형집행 전에 어떻게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향을 사르고(담배로 대신함), 부처님께 절을 하고 염불하고, 차분하고 여유롭게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사법경찰을 따라서 감방을 나섰다는 말을 들으니, 어떤 마음에서인지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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