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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륜스님은 원로 비구니 큰스님으로 용인 법륜사의 창건주이신

스님의 저승체험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스님이 17살 때였다고 한다.

스님의 속가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는 선비집안으로 매우 부유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귀한 딸이 죽어 온 집안이 충격에 휩싸였다.

 

스님은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밤색 말을 타고 시커먼 옷을 입은 두 저승사자가 와서 나를 데려 가는데

그들은 말을 타고 가고 나는 걸어서 갔다.

저승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나를 문밖에 세워두고, 저승사자들이 염라대왕에게 나를 데려왔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들에게 큰소리로 꾸짓기를

 

그 울타리 넘어 마흔살 된 김 아무개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왜 엉뚱한 사람을 데려왔느냐 !  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다가 그들이 다시 나와서 나를 염라대왕 앞으로 데리고 갔는데

죽음의 심판관 중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염라대왕이 나를 뻔히 쳐다보더니

 

"저승이라는 길을 오면서 다 살펴보아 알겠지만, 자신이 전생(죽음 이전)에서 한 일들을 조금도 숨길 수가 없느니라

자신이 전생에 착한 일을 한 것과 악한 일을 한 것에 따라

그 형벌이 정해지고 천상이나 지옥등 갈 길이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숨기거나 속일 수가 없다.

명경대라는 거울 앞에 세우면 살아온 모든 흔적이 남김없이 자동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돌아가거든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보고 들은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면서

죄 짓지 말고 살라 하고, 너도 착한 일 하면서 잘 살거라" 하였다.

 

염라대왕은 저승사자들에게 나를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고,

울 넘어 아저씨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저승은 각각의 역할이 있었는데

처음에 그 사람의 업에 따른  무게를 재는 사람부터 시작하여

선, 악에 대한 과보의 양이 정해지면 그 과보를 응징하는 등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이행하고 있었다.

 

저승길을 빠져 나와 다시 이승길로 돌아 오는 길에는 말을 태워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다.

꽝하고 천둥치듯 굉음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고

온집안 식구들에게 제일 먼저 "저 울 넘어 아무개 아저씨 어떻게 됐어요?" 하고 묻자

가족들은 조금 전 죽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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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원로 비구니 상륜스님이

2007년12월 28일 오전 8시 47분 경기도 용인 법륜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8살, 법랍 60살.

고인은 1946년 통도사로 출가했으며,

비구니로서 만공 스님의 제자로

비구니 선(禪)을 중흥시킨 법희 스님을 시봉했다.

 

고인은 1971년 북한산 승가사 주지로 취임해

퇴락한 사찰을 30여 년간 중창 불사해 명찰로 만들었다.

이어 2005년용인 문수산에 법륜사를 창건해

입적하기 전까지 회주로 있었다.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비구니 목련회 회장,

불교방송 후원회장 등을 지냈다.

30일 오전 10시 용인 법륜사에서

영결식을 봉행한 뒤

예산 수덕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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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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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에 줄지어 서있는 근조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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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 생전에 불사를 하셨던 법륜사 도량의 웅장한 모습입니다.

절 마당에 있는 것은 스님을 운구할 리무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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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에 들러 참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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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을 마치고.....줄지어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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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당 상륜스님은 생전에 깨끗한 것을 좋아하셨답니다.

가시는 길을 하얀 눈꽃이 장엄하였습니다.

 수덕사에 도착한 후 다비장으로 향하는 행렬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비를 시작하기 위해 관을 다비장소에 모셨습니다.

"

팔십여년 환같은 세상에 놀다가

금일 오음의 껍데기를 벗어내리고

근원으로 돌아가니

확연히 공적한 곳에 한 물건도 없어라.

무슨 보리와 생사가 있을까보냐."

 

....설정스님의 법어중에서...

 

스님께서는 이제 영면에 드셨습니다.

금생에 혼신을 다하여 불사를 하신 공덕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여 주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願我臨欲命終時 盡除一切諸障碍 面見彼佛阿彌陀 卽得往生安樂刹
원아임욕명종시 진제일체제장애 면견피불아미타 즉득왕생안락찰
원하오니 저희들이 이내목숨 다할적에 일체장애 벗어나서
눈앞에서 아미타불 뵈온즉시 극락국토 왕생하길 원합니다

    願往生    願往生    願生極樂見彌陀    獲蒙摩頂受記別
원왕생    원왕생    원생극락견미타    획몽마정수기별
    願往生    願往生    願在彌陀會中坐    手執香華常供養


원왕생    원왕생    원재미타회중좌    수집향화상공양
    願往生    願往生    願生華臧蓮華界    自他一時成佛道
원왕생    원왕생    원생화장연화계    자타일시성불도
 
가고지고 가고지고 극락세계 태어나서
아미타불 뵈옵고서 마정수기 받고지고


가고지고 가고지고 미타회중 나도가서 
두손으로 향과꽃을 공양하기 원하고저

가고지고 가고지고 연화세계 태어나서
 나와남이 모두함께 성불하기 원하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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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의 염라대왕이 엎드러 절하는 염불공덕


행책대사 (연종 제10조 스님)

이 스님은 청나라 강희 때의 스님으로 지금으로 부터
약 300 여년 전에 계셨던 스님이시다. 속성은 장씨이며
이흥 사람으로 그의 부친은 전창이라고 하는 분이시다.

그의 부친은 유교의 선비로서 일찍부터 감산대사와 친하여
사귀어 왔다. 그런데 감산대사께서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삼년 후 꿈에 감산대사께서 주장자를 짚고 방에 들어와

은연히 앉으심을 보고 임신이 되어 낳으신 분이 행책대사이시다.
어렸을때 이름을 몽감이라 불렀다 23세 때에 무림땅 이안사에
출가하여 약암선사에 의지해 사시면서 그 스님에게 공부하는

법을 배워서 5년간을 눕지 않고 애써 정진하셔서 마침내
깊은 진리의 법원을 깨달으셨다. 그후 보은사에 머물면서
식암 영선사를 만나 정토수행에 법문을 듣고 정토수행을
열심이 하셨다

그리고는 또 다시 전당에 있는 초석법사와 천태교리를
열람해 보시고는 다 같이 정실에 들어가서 법화삼매를
닦으셔서 그 교리에 궁극을 통달하셨다.

강희 2년에 이르러 항주 법화산 서쪽 시냇가에 조그만 암자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서 전적으로 염불수행을 하시어 많은
힘을 얻으셨다

그 곳에서는 7년간을 계시고는 그후 오산보인원에 가시어
정토종을 크게 일으켜서 모든 학자들과 일반 신도들을
교화 지도 하시어 정토수행자가 날로 늘어나 마침내
정토종이 크게 번창하게 되었다.

행책대사께서는 강희 21년7월19일에 55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그 당시 손부상이란 분의 장남 손한이란 분이 병으로
앓다가 죽었는데 하루를 지나 다시 깨어나서 하는 말이
명부(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던 중에 각중에 밝은 광명이

천지를 밝게 비추니 염라대왕이 엎드려 절을 하더라는
것이다.그리고는 저승의 염라대왕이 하는 말이

"방금 이 광명은 청나라 행책대사께서 왕생극락 하시면서
비추신 광명인데 너희들이 그 광명의 빛을 받은 인연으로
많은 죄업이 소멸되어 다시 환생 시켜주니 나가서 많은
공덕을 짓도록 하라" 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한분이 그 당시 죽었다가 깨어난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남관 밖에 살고 있는 오성자라는 분인데 이 분도
역시 깨어나서 손씨와 똑 같은 말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분들은 크게 발심하여 염불수행을 철저히
행하였다.

자료출처 = 왕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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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대사 (연종 제6조)


이 스님은 송나라 스님으로서 16세에 글을 지어
천재로 뽑힌적이 있는 아주 비상한 글 재주가 있엇다

일찍이 불가에 출가하려 하였으나 부모님이 허락을
아니하여 못하였으나 세속에 계시면서 불심이 돈둑
하였다

어린시절부터 법화경을 수지독송하셨으며 법화경을
보실 때에는 글을 한목에 다섯줄씩 봐 나가셨다
참으로 비상한 천재이신 것이다

그리고 세속에 계시면서도 살생이라고는 벌래 한마리를 죽이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항상 방생하시기를 좋아 하셨으며 육식과
오신채같은 것도 드시지 않으셨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셔서 고을 원 살이를 하게 되셨다 그런데
다니시다가 산짐승이나 물고기를 파는 것을 보면 그것을 꼭 사서
방생을 하셨다 그리하여 자기 돈이 없을 때에는 공금으로 사서
방생을 해 주셨다

그와 같이 수년을 하다보니 마침내는 많은 공금을 축을 내어
그런 사실이 나라에서까지 알게되어 처형을 받게 되었다
그당시 나라에 법은 공금을 사적으로 쓴 자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어 죽이게 되어있었다

당시 전왕이 명을 내리기를 죄인을 형틀에 매달아 칼로 목을
치려고 할때 죄인의 안색이 변하거든 목을 베고 안색이 변하지
않거든 목을 베지 말고 풀어 주라고 명했다

형리가 그와 같은 명을 받아가지고 죄인을 형틀에 매달아
칼을 들어 목을 치려해도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태연
하였다 그리하여 형리가 조전왕의 분부대로 풀어주었다

그러한 일을 한번 당하고 나서는 인생의 무상함을 크게
느끼시고는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번에 꼭 죽을
사람이었는데 부처님 덕에 살은 것이니 이제 부처님 제자가
되고자 하니 나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알고 잊어 주기를
바란다고 하시고는

명주땅 용책사 영명대사에게 출가하시어 스님이 되셨다
그때 스님의 연세는 34세 였었다 그후 천태산의 소국사에게
찾아가서 그곳에서 대도를 성취하시게 되셨다

처음 대도를 성취하시기전에 지자암에서 90일간을 정진하시는데
잠을 안자고 애써 정진하시어 마침내 정에 들게 되었다
여러날을 정에 드시어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여 법안종 제 5조의
조사가 되신 것이다

그런데 당시 선정에서 출정을 하고 보니 옷자락 속에 종달새가
집을 지어 놓았다 참으로 수승한 대근기이시며 보통 사람들은
모두가 살기가 있어서 짐승들이 보면 달아나는 것이거늘

이 스님에게는 오직 자비한 마음 뿐으로 살생을 하지 않고 방생을
수없이 많이 해오시어 몸에 살기가 전혀 없어 따스한 정이 풍기기
때문에 새가 날아 와서 옷자락 속에 집을 지워 놓은 것이니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들어보지 못한 참으로 훌륭하고 장하신 분이다

부처님께서는 육년수행시에 머리위에다 까치가 집을 지었다고 하며
그 인연공덕으로 까치가 부처님 열반후 천년이 지나 제나국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연수선사께서는 법화경을 독송하며 많은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면서
염불정토수행을 하셨다 많은 중생들을 위하여 매일같이 설법과
만행을 행하심에 하루도 쉼이없이 행하셨으며

산에 사는 조류, 금수,미물들을 위하여 천주봉에 올라 가시어
법화경을 외우시고 높은 소리로 염불을 해주셨다 그와 같이
3년을 하시고 난 어느날 정에 드시어 관세음 보살을 친견하여
관세음보살께서 감로수로 입을 씻어 주시었다

그후부터는 관음 변재가 열리어 말씀을 하시매 청산유수같은
법문이 나오며 듣는 자가 모두 환희심을 내어 발심을 하게 되며
또한 모두 염불하여 왕생발원을 하게 되었다

스님에게 법을 배우려 모여든 대중이 2천여명이 넘었으며 스님께서는
낮으로는 대중들을 위해 설법과 설계등을 해주시고 저녁으로는
산에 올라가시어 짐승과 미물들을 위하여 밤을 세워 염불을 하시었는데

대중들이 들으니 스님께서 염불하시는 산위에서 아름다운 천악이
울려 오곤 하였다 스님께서는 매일같이 아침 일찍부터 행하시는
것이 예불,송경,염불,설법,설계,시식,방생등 모두 백여덟 가지나
되는 덕행을 닦으셨다

그리하여 월나라 왕께서 이 스님의 수행이 장하심을 알고는 절을
크게 지어 드려 정자사라고 이름하고 스님의 호를 지각선사라고
주셨다 스님께서는 또한 많은 글을 지으셔서 세상에 남기셨으니
그 권수가 무려 197권이나 되는 많은 글을 지으셨다

개보 8년 2월 26일 새벽에 대중을 모아 고별인사를 하시고는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으셔서 향을 사루고 염불하시고는 고요히
열반에 드시었다 후에 다비를 하고나니

많은 사리가 나와 탑에다 모시어 지금까지 보존해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연수대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저승의 염라대왕까지도 존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연수대사께서 열반하신 후 얼마를 지나고나서 타지에서 스님
한분이 오셔서 그 절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스님께서는
아침부터 하루종일 연수대사의 사리탑을 돌고 있었다 몇날 몇일을
그와같이 사리탑을 돌고 있어서

그것을 본 대중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스님에게 사유를 물어
보았다 그 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무주땅에 살던 승려인데
전생죄업으로 병을 앓다가 죽어서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런데 염라대왕의 전당 안에 어떤 스님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염라대왕이
단에 오를 때에 그 초상화에 향을 사루고 예배를 드리고는 단에 올라가서
죄인들을 심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기는 아직 명이 남아 있는데 잘못 데려온 것이라 하며 다시
나가서 수행을 잘 하라고 하면서 환생명령을 하였다 그리하여
벽에 걸린 초상화가 어느 스님인지를 물어 보았다

그러니 염라대왕이 말해주기를 이 스님은 송나라 영명사에 계시었던
분으로 극락왕생하신 연수대사이신데 이 스님처럼 모든 덕행이
구족원만한 분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고 하며

특히 인간세상 사람으로서 이 스님처럼 많은 생명을 구제해주신
자비로운분은 고금을 통해 드문 것으로 그 덕이 너무나 높고 장하시어
숭배하고 있노라고 염라대왕이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환생한 후 이 스님의 사리라도 참배하고자 찾아온 것이며
탑을 도는 뜻은 후세에라도 이 스님을 따르고자 하여 탑을 돌고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연수대사의 덕행은 참으로 장하신 것이었다 이러한 인간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저승의 염왕까지도 존경해 받드는 휼륭한
스님이시며 법안종의 제 5조가 되시는 선종의 대선지식이시며

관음변재를 얻으신 교종의 대 선지식이기도 하신 선종 양교를 겸하신
대 선지식께서 염불수행을 하시어 정토발원을 하신 것이어늘
어찌 범부로서 염불하지 않고 나태 할 수 있으리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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