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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과 “나무아미타불”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부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까?


  대답: 대다수 중국인들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이 명호에 대해 낯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러본 적이 있고 본 적이 있으며 혹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부처님 명호는 거의 불교의 대명사가 될 정도입니다.


  이 명호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어떻게 불러야 효과가 있을까요?

  신앙이 없고 잘 모르는 사람도 부를 수 있을까요? 

  부르면 무슨 이익이 있을까요?


  일반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불법의 입장에서 말하면 이 명호는 우리가 들어봤거나 본 적이 있는 모든 명사·이름·언어와 다릅니다. “나무아미타불”은 부처님의 명호로서 사람의 이름과도 같습니다. 부처님의 이름은 사람의 이름과 같은 점이 있는데, 모두 한 사람을 대표하거나 한 부처님을 대표합니다. 예컨대 우리 사람의 이름이 곧 한 사람을 대표하므로 이름과 실체는 관련이 있지요. 부처님의 명호는 곧 부처님 자신이며 부처님의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실질적인 작용이 없고 이익이 없으며 공덕이 없습니다. 사람은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한 평생 부르지 않습니다.


  그럼 부처님의 명호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부처님의 명호에는 부처님의 공덕과 이익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은, 예컨대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 만일 그가 유엔 사무총장이 아니고 일반인이라면 그의 이름은 단지 그 사람 개인의 신분·가정·능력·복보·운명 등등만 대표할 뿐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가 유엔 사무총장직을 맡게 되면 이 이름은 달라지겠지요. 그 속에는 그의 권력과 이 직업에 상응하는 모든 할 수 있는 일들이 이 이름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그가 한 번 사인을 하면 바로 그에 상응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부처님의 명호는 더욱 달라서 부처님의 명호는 성불을 해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세간 사람들 중에는 아무개 부처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명호는 수행공덕이 원만하여 성인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러한 이름이 있게 되기 때문에 명호와 우리 범부들의 이름은 다릅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와 광대한 신통은 어디에서 드러날까요? 바로 부처님의 명호 속에서 명호를 통해 작용을 일으킵니다.


  민간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염불을 하거나 관세음보살을 부를까요? 다들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합니다. “관세음보살님, 제가 평안하고 부귀하고 돈 많이 벌고 높은 관직이 오를 수 있게 살펴주십시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는 관세음보살님의 신통·지혜·원력을 대표하고,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는 아미타부처님의 신통·지혜·원력을 대표합니다.


  부처님의 명호자체에 공덕과 이익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부르기만 하면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신앙하고 언제 명호를 만났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나무아미타불”을 눈으로 봤든 귀로 들었든 상관없이 모두 공덕과 이익이 있습니다.


  『관무량수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염념 중에 80억겁의 생사중죄를 소멸하느니라.


  80억겁은 80년 8만년이 아닌 80억 뒤에 또 ‘겁’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겁’이란 얼마나 긴 시간이냐면 경전에 하나의 비유가 있는데 반석겁磐石劫이라 부릅니다. 큰 돌이 있는데 길이가 20킬로에 넓이도 20킬로, 높이도 20킬로가 됩니다. 천상에 사는 천인이 백년마다 한 번씩 인간세상에 내려와서 얇고 가벼운 천으로 돌 위를 한 번 스치고 가는데 백년에 한 번씩 스쳐서 이 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를 반석겁이이라 부른다는 겁니다. 이 시간은 너무나 길어서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면 우리의 80억겁의 모든 생사중죄를 소멸할 수 있습니다.


  ‘중죄’는 보통의 죄가 아닙니다. ‘죄’는 곧 업장입니다. 예컨대 탐심·진심·치심이 있고, 육식하고 남을 욕하고 타인과 대중을 해를 끼치는 등등이 있습니다.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무엇이 ‘죄’인지를 모를 수 있습니다. ‘난 성실한 양민이다. 나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마치 우리 모두 죄가 없는 사람 같습니다. 이 ‘죄’는 세간에서 말하는 범법·범죄가 아닙니다. 


  불법의 입장에서 말하면 사람마다 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행위·신체·언어 그리고 우리의 생각마다 모두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으로는 살생과 육식을 하고 사회와 대중들 심지어 가족들을 해를 끼치는 나쁜 일들을 하게 되고, 입으로는 욕설을 하고 사기를 치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구나 할 줄 아는 것으로 스승이 없이도 스스로 터득하게 됩니다. 또 우리의 마음도 설사 어떤 사람들은 말로써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도 마음속에는 화내는 마음이 있습니다. 번뇌가 일어날 때도 남에게 좋지 않은 생각들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으로 짓는 업도 ‘죄업’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해탈을 못하고 공덕이 원만하지 않으면 모두 죄업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번뇌가 있고 고통이 있고 순조롭지 못한 일들을 만나게 되는데, 자기 자신에게 또 해결할 능력이 없다보니 관음재일이나 미타성탄과 같은 재일들을 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절에 가서 향을 사르고 절을 하러 갑니다. 이렇게 어려움만 만나면 불보살님들을 찾아가지요. 


  불보살님들에게 이런 능력이 있고 명호 속에 공덕이 있기 때문에 불보살님의 명호만 부르면 우리의 업장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간혹 번뇌가 일어날 때 염불만 하면 마음이 청정해지기도 하고, 만일 우리가 지혜를 얻고자 하면 염불을 해도 역시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복보를 증장시키고 싶으면 염불만 해도 복보를 증장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염불하기 전에 매우 가난하고 혹은 몸이 좋지 않다거나 번뇌가 매우 많았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운명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염불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염불하면 내일 바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개개인마다 효과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겁니다. 부처님의 명호자체에 이러한 잠재적 능력이 있기에 우리가 부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상응하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예컨대 수박처럼, 수박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먹기만 하면 갈증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많이 목마른 사람도 수박을 먹으면 바로 갈증이 사라집니다. 이 효과는 매우 뚜렷합니다.


  우리가 이 명호를 부르면 불법의 이치를 알든 모르든, 신앙이 깊든 깊지 않든, 심지어 어린이들이 별 생각 없이 불러도 업장소멸의 방면에서 나타나는 효과는 똑같습니다. 


  만일 신앙이 있고 불법을 이치를 이해하고 명호의 공덕이 타인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염불이 업장소멸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방향에 영향을 끼쳐서 우리의 인생의 질을 더욱 높이고 더욱 광명한 경계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불법은 중생들에게 사실 더욱 크고 더욱 많은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해탈을 하게하고 우리로 하여금 고해로부터 벗어나 해탈과 성불의 길로 걸어가게 해주는 것이지요. 불법 중에 이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입니다.


  염불하면 성불을 할 수 있기에 이 이익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우리는 성불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명호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큰 이익입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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