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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대사 일곱가지 불살생과 적석도인 일곱가지 방생

 

 

연지대사 일곱가지 불살생

 

첫째. 생일에 살생하지 말라.

 

상서(尙書)에 말씀하시기를 슬프다. 부모시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하셨다 하였으니, 내 몸이 출생하던 날은

어머니께서 거의 죽을 뻔 하시던 때라 이날은 결코 살생을 경계하며 재계(齋戒)를 가지고 널리 착한 일을

행하여야 먼저 가신 부모님께는 삼악도를 여의고 천상과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공덕을 지어드리며 만약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신다면 복과 수명을 늘어나게 함이거늘,

 

 

애달프다! 어찌하여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실 때 고통을 겪으시고 곤란을 겪으며 목숨이 위태롭던 일들을

모두 잊고 망령되이 생명을 살해하여 위로는 부모님께 누를 끼치고 아래로는 자신에게 이롭지 못하게 하는고!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둘째. 자식을 낳거든 살생하지 말라.

 

 

대저 사람이 자식이 없은즉 슬퍼하고 자식이 있으면 기뻐하면서 모든 금수(禽獸:짐승)도 각각 그 새끼를

사랑함은 생각지 못하는구나! 나의 자식이 태어남은 기뻐하면서 남의 새끼를 죽게 함은 어찌 마음이 편안할까?

대저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남에 덕을 쌓지는 못할지언정 도리어 살생을 하여 업을 짓는 것은 가장

어리석음인데도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셋째. 제사(祭祀) 지냄에 살생하지 말라.

 

 

돌아가신 조상님의 기일(忌日)과 춘추(春秋) 소분(掃墳: 벌초하는 날)에 마땅히 살생을 삼가하여 먼저가신

조상님의 명복을 빌어드려야 하거늘 도리어 살생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한갓 악업만 더하게 되나니 대저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돌아가신 조상님께 올릴지라도 어찌 구천(九泉:저승)에 가신 유골을 일으켜

흠향(歆饗:음식을 잡수시게 하는 것)하시게 할 수 있겠는가?

 

조금도 이익(利益)은 없고 해(害)만 됨이거늘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넷째. 혼례(婚禮)에 살생하지 말라.

 

 

대저 혼인이라는 것은 백성이 살아가는 시초가 아닌가, 살아 가자는 시초인 혼례에 살생을 하는 것은 이치가

벌써 틀린 것이요, 또 혼례는 좋은 일, 즉 길사(吉事)인데, 좋은 날 길일(吉日)에 거꾸로 흉한 일을 행함이

참혹하지 않은가? 또 결혼식을 하면 반드시 부부로써 서로 평생을 해로(偕老)하기를 축사하나니 사람은

해로하기를 원하면서 금수(禽獸)는 먼저 죽게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도리란 말인가?

 

 

또 시집을 보내는 집에서 삼일동안 촛불을 끄지 않는 것은 모녀가 서로 이별하는 것을 아파하기 때문이나니

사람은 이별하는 것을 괴로워하면서 금수는 이별을 당하게 함을 전혀 돌이켜 보지 못하단 말인가?

혼례에 살생하는 것이 이토록 참혹한 행위이거늘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다섯째. 잔치를 베풀 때에 살생하지 말라.

 

좋은 일로 잔치를 베품에 주인과 손님이 서로 마주하여 담담한 다과와 신선한 야채, 나물과 채소 국에다

향기로운 과일로 잔치를 베품에 전혀 방해됨이 없거늘 어찌 살생을 즐겨하여 살아있는 생명의 목을 따고

배를 가름에 비명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한단 말인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어찌 이런 비명소리를 듣고서 측은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단 말인가?

만약 우리가 저 축생의 입장이라면 어찌 비참하지 않겠는가?

 

만일 식탁에 아름다운 산해진미가 도마위의 고통으로부터 말미암아 왔다면 저 생명의 죽임을 통해 지극한

원한으로 나의 지극한 환락을 마련한 꼴이니 생각하는 동시는 비록 먹더라도 목이 멜 것이거늘 잔치를 하면서

살생하는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여섯째. 기도를 함에 살생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병이 들어 기도를 할 때 살생을 하여 상을 차리고 기도하여서 복 받아 병이 낫고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도리어 자기가 기도하는 목적이 죽음을 면하고 살기를 구하는 것임을 생각하지 못함이로다.

남의 목숨을 죽여서 자신의 목숨을 늘리고자 함이 벌써 천리(天理)에 어긋나지 않는가! 목숨은 늘리지도

못하고 살생업만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살생하여 자식을 구하고 살생하여 재물을 구하고 살생하여

벼슬을 구하면서 그 아들과 재물과 벼슬이 다 본인의 전생에 닦은 업보이며 그 분수에 따라 정해진 것이며

결코 귀신의 능력이 아닌데 이것을 알지 못하도다.

 

그리하여 어쩌다 혹 자신의 원대로 소원이 성취되면 이것을 귀신이 영험하다고 생각하여 더욱 믿고 더욱

살생하여 기도를 행하나니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일곱째. 살생하는 직업을 갖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의식주를 위해서 혹은 사냥도 하고 혹은 고기도 잡으며 혹은 소도 잡고 개도 잡아서 생계를

하지만은 나는 생각하기를 이 노릇을 하지 않더라도 밥을 먹지 못하고 옷을 입지 못하여서 굶어 죽었다거나

얼어 죽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노라.

 

살생하는 직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천리(天理)를 어그러뜨림이라 지옥과 깊은 인연을 심고 내세에 나쁜 과보를

받음이 이보다 심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다른 생계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아니 하는고,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적석도인(赤石道人) 일곱 가지 방생(放生)

 

첫째. 자식을 얻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방생하라.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얻고자 함에 약을 먹는데 온 힘을 쏟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 평생 약을 먹고도

효험을 보지 못하는 사례가 많나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병이 있어서 자식이 없거든 약을 먹고 병이

없는데도 자식이 없거든 방생을 하라고 말 하노니 대저 천지에 가장 큰 덕은 생명을 살림에 있음이라.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고 만물을 살려서 살려주고 살게 하는 이치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진실로 살게 해주는

마음으로 마음을 삼아서 저를 살게 해주는 것이 반드시 나를 살게 함이라 방생만 하고 보면 꼭 자녀를

얻게 될 것이다.

 

 

둘째. 자식을 임신하거든 반드시 방생하여 산모를 보전하라.

 

 

세상 사람들은 자식을 임신하여 혹 귀신에게 빌어서 순산과 안녕을 바라면서도 방생을 통하여 모든 일에

안전을 기약하는 훌륭한 인과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대저 잉태하여 자식을 보는 것은 사람과 만물이 다르지 않고 사람과 만물은 천지의 생명이라 짐승의 새끼

가짐을 내가 구하여 주는데 내가 자식을 잉태하면 어찌 하늘이 보호하지 않겠는가!

 

 

 

 

셋째. 기도함에 반드시 방생하여 복을 지어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밥을 드시고 귀신은 피를 마신다 하나니 이는 크게 잘못 이해한

까닭이다. 자고로 부처님께서는 하늘과 신의 스승이요, 신이란 부처님을 받들어 어김이 없는 자이라,

생명을 살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덕은 신과 부처님이 같으시니 진실로 신과 부처님의 덕을 깨달아서 금

수만물이 급한 경우를 당하거든 많고 적음을 가리지 말고 보는 대로 돈을 주고 사서 놓아 줄 것이며

만약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염불이라도 하여 주면 자연히 높은 천신들이 감동하여

복을 얻음이 한량없을 것이니라.

 

 

넷째. 예수재를 지내고저 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

 

 

세상 사람들이 언제나 스님을 청하여 불사를 짓고 미리 닦는 것은 진실로 죽은 뒤에도 육도에 윤회함에

업식이 아득하고 아득함이라. 미리 불보살님께서 어여삐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구하여서

예수재를 지냄이 아닌가!

 

그러므로 자고로 세간의 자선은 방생보다 더 좋음이 없으니 내가 자비심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 방

생하여 불보살님의 자비로우신 큰 덕에 감동을 받게 되면 반드시 그 복으로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게 될 것이니라.

 

 

다섯째. 재계를 가짐에 반드시 방생하라.

 

제불보살님께서 중생들이 재계를 가짐을 좋아 하시는 이유는 만물을 어여삐 여기사 자비심으로 보호하기를

바라는 까닭이라, 일체 중생이 불자 아님이 없나니, 진실로 재계를 가지는 날에 더욱 방생으로 선행을 보태면

제불보살님께서 몇 배나 더 환희심을 내지 않겠는가!

 

 

여섯째. 녹을 구함에 먼저 방생하여 복을 지으라.

 

 

개미가 송기(宋祈)에게 보은하고 용자(龍子)가 사막(思邈)에게 은혜를 갚았으니 방생하여 이익을 얻음은 결코

헛되지 않음이라, 대저 부귀명복은 요행으로 되지 않고 오직 복을 짓는 자라야 반드시 명복을 얻나니 사람이

어진 마음으로 미물의 생명을 불쌍히 여겨서 죽어가는 미물의 목숨을 구제할 것 같으면 나의 구제를 입은

생명이 기회를 엿보아 보답할 것은 정해진 이치가 아니겠는가!

 

 

일곱째. 염불함에 반드시 방생부터 하라.

 

 

산중에 있어 참선을 오래도록 하다가 하루아침에 견성오도(見性悟道)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번뇌로 뒤 덮인

속세에 묻혀 살면서 염불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더욱이 말할 나위 없이 자비심으로써 방생을 주로 할지라.

미물을 구제함이 사람을 구제함보다 낫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극형을 범하는 것은 대개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그 죄과를 받음이나 미물들이 참혹한 환란을 만남은 무슨 연유로 말미암은 것인가? 누구든지 연지대사와

영명연수선사의 방생으로써 급한 업무를 삼는 것을 보아 깨달음을 얻을지니라.

 

 

진호스님의 방생에 대한 부언

 

아! 얼마나 거룩하신 말씀인가! 대저 방생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천인의 마음이라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기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림은 게을리 할지라도 방생부터 부지런히 하라 하노니 어찌함인가? 보라 어떤 사람이

자식을 많이 두었는데 모두가 각각 스스로 지은 죄업으로 어떤 자식은 옥에 갇히고 어떤 자식은 물이나 불의

재난 중에 빠져 있거든 이웃 사람이 그 여러 자식들의 고통은 모른체하고 진수성찬을 차려서 그 아버지에게

공양을 올린다 하면 그 아버지 된 자가 그 밥맛이 있다 하겠는가?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와 반대로 옥에 갇힌 자식을 힘을 써서 풀려나오게 하여주고 물과 불의 재난에 빠진

자식을 건져 준다면 그 아버지는 밥을 먹지 아니하여도 배가 부를 것이고 또 건져준 사람에 대하여 감사한

생각이 먼저 예를 든 진수성찬을 차려서 자신에게 받든 이웃 사람에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대저

부처님은 태란습화 사생의 모든 생명을 외아들 돌보듯 생각하시는지라 한 중생이라도 고통을 받는다면

 

 

부처님의 대자대비로써 뼈가 끊어지는 듯 불쌍히 여기실지니 그 고통 받는 중생을 건져주는 자에게 복을

주심이 공양을 받드는 자보다 천만억배나 수승할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공부인들도 부모의

입과 몸을 기름보다는 부모의 마음을 받듬이 참으로 효자라 하였으니 우리 불교신자도 부처님의 마음을

체달하여 연지대사와 적석도인의 말씀을 실행함이 급선무라 여겨 힘써 행하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 석문의범 편집자 진호 스님 -

 

<석문의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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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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