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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륜각 보살의 염불과 왕생

 

보국사 태원큰스님 구술

 

 

이 법륜각 보살은 서울 정릉 보국사 신도이다. 1923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면서 정릉의 보국사에 다녔다. 법륜각 보살은 처음에는 참선에 관심을 가지고 참선수행을 하였는데, 인천 용화사의 송담큰스님을 친견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간화선을 수행하였다 한다.

 

그렇게 참선에 몰두하였으나 간화선이 최상승인지라 자신의 근기에 맞지 않다고 여기고 있던 차, 1960년경 보국사에서 대동염불회를 조직하여 정토염불법을 크게 펼치신 자운(慈雲, 1911~1992)큰스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정토염불을 알게 되었다.

자운노스님께서는 3.1운동 독립선언에 참여한 33인이었던 용성(龍城)큰스님의 전법제자로, 1981년부터 전계대화상을 역임하셨으며, 해인사에 계실 때 수산(秀山)스님과 함께 만일염불회를 결사하시어 정토왕생업을 닦으셨고 또 보국사에 오셔서는 대동염불회를 조직하시어 정토염불을 널리 펼치신 분이시다.

1992년 스님께서 해인사에서 열반하실 때에는 “서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단정히 앉아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명하면서 조용히 입적하시니 향기가 진동하고 묘음이 청아하였으며 염불소리와 함께 입으로부터 오색광명이 서쪽하늘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법륜각 보살은 보국사에서 이러한 자운스님으로부터 정토법문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동안 수행하던 참선을 내려놓고 서방정토에 귀의하여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하였다. 이로부터 30여 년간을 한결같이 하루에 10만독 씩 염불하셨다고 한다. 10만독이라면 하루종일 염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하루는 보국사 주지이신 태원스님께서 법륜각보살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법륜각 보살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주를 돌리고 있었다. 스님께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불하면 염불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물었다.

법륜각 보살은 웃으면서 “그래도 염불이 됩니다.”고 대답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의아스러웠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염불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륜각 보살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걸림없이 염불이 돌아가는 경지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보국사의 대동염불회는 만일염불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대단한 신심과 원력으로 염불결사를 한 모임으로, 대표는 회서 홍인표거사가 맡고 있었다. 홍인표거사는 임종 후 사리가 나올 정도로 철저히 수행하셨다 한다. 그리고 그가 지은 <연종집요>는 한국근현대불교사에서 정토에 대해 가장 최초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서술을 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법륜각 보살은 바로 이러한 대동염불회의 수행분위기 속에서 염불수행에 매진하였던 것이다. 재가자들이 모여 이렇게 염불수행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물론 자운노스님의 원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운스님께 비구계를 받으시고 스님과 함께 해인사에서 염불만일회를 결사한 수산스님께서도 대구에서 염불선원을 세우시어 수많은 재가 염불행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수산스님께 염불법을 배우신 법장(法藏)스님께서도 경주 미타사에서 1985년 염불만일연회를 결사하시어 20년 넘게 염불수행과 포교를 해 오시는데, 여기에는 자운스님의 크신 원력이 밑받침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법륜각 보살은 평소 심장이 안 좋았는데, 왕생 수개월 전에는 병환이 심해져 몇 차례 병원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길게는 열흘, 짧게는 일주일 정도 입원하였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즈음에 법륜각 보살과 아시는 분이 보살님을 도와드리며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법륜각 보살이 병원에 입원할 때도 늘 함께 따라가서 간병해 주곤 하였다.

법륜각 보살은 간병도우미인 그분에게 불교를 가르쳐주어 불법에 귀의하게 하고 보국사에도 함께 가곤 하였다. 1998년 어느 날, 법륜각 보살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였다. 이때도 간병인이 함께 가서 간병을 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병환과 노환이 심해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임종할 때가 다 된 것이었다.

법륜각 보살은 침대에 누워서 임종에 임박한 상황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부처님이 오신다!”, “부처님이 오신다!”하고 두 번이나 외치고는 몸소 침대에서 내려와 서쪽을 향하여 세 번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돌아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것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간병인이 분명히 목격한 사실이다.

간병인은 나중에 태원스님께 이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태원스님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예전에 법륜각 보살이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염불이 된다는 말을 비로소 의심없이 믿었을 뿐 아니라 평소에 지극한 정성으로 염불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웬만한 수행력을 지닌 고승이라 해도 임종에 이르러서는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상황이기에 앉아있기도 불가능한 처지인데, 법륜각 보살은 임종을 바로 앞둔 상황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와 삼배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에 지극정성으로 염불한 공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러한 염불공덕으로 임종 직전에 아미타부처님의 내영(來迎)을 받고 가피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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