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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출처 http://zhengjian.or.kr/zhengjian/

 

 

천고에 만나기 힘든 기이한 인연

작자: 정중(鄭重) 정리

[정견망] 송나라 시대에 한 젊은이가 술에 취해 다른 사람과 재물을 다투다가 화가 나서 상대방을 세게 때렸고 맞은 사람은 넘어져 죽어버렸다. 그는 죄가 두려워 먼 곳으로 도망쳤다. 나중에 참회하고 출가해 수행을 했는데 크게 깨우쳤으며 명심견성(明心見性)하여 대선사가 됐고 또 강단에 올라 설법을 했는데 배우는 사람이 수백 명이었다.

그가 70여세일 때 갑자기 어느 날 새벽 목욕 후에 자리에 올라 여러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움직이지 말고 말도 하지 말고 이 노승을 보거라. 40년 전의 사건을 끝을 맺어야 겠다."

그는 정오까지 앉아 있었는데 어느 병사가 갑자기 절에 오더니 활을 당여 선사를 쏘아죽이려 했다. 노선사는 그 병사에게 합장하며 말했다.

"노승은 여기에서 이미 오래 기다렸소이다!"

병사는 매우 놀라 즉시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

"저는 스님과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왜 만나자 마자 당신을 죽이고 싶은 것일까요?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노선사는 말했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하지요. 그러니 시간을 끌지 말고 손을 쓰시지요."

아울러 고개를 돌려 뭇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은 이 거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그 후에 집으로 돌려보내라. 만일 조금이라도 그를 나무란다면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며 스승을 배반하는 것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다!"

병사는 선사의 말을 듣고 더욱 의혹이 일어 반드시 선사의 설명을 듣고 싶어했다.

선사는 말했다.

"당신은 이미 한생을 지나 윤회하여 태에 들었으니 자연히 지난 생의 일을 잊어버렸겠죠." 그러며 예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원래 병사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큰소리로 한수의 시를 낭랑하게 읊었다.

서로의 원한은 언제 갚으려나

겹겹이 얽혀 있으니 어찌 우연이겠는가?

선사가 다 설명해주어

오늘은 서천(西天)으로 가는구나!

말을 마치고 화살을 들고 서서 왕생(往生)했다(서서 죽어 혼이 천당으로 올라갔다).

선사는 자리에서 내려와 그를 위해 머리를 깎아주고 법명을 붙여주었으며 옷을 갈아입힌 후 그를 불당의 감실(龕)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선사는 가부좌하여 앉고 사람들에게 작별을 하고 나서 좌화(坐化)했다(앉아서 죽어 혼이 천당으로 올라갔다는 뜻)

40년 전에 살인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데 비록 빚을 갚는 것이 좀 늦었을 뿐 빚은 갚아야 하는 이치는 바뀌지 않는다. 다행히 이 두 사람은 모두 높은 성품을 갖추어서 정면으로 만났을 때 원래는 원수로 맞아야 하지만 반대로 좋은 인연으로 맺었다. 이 병사는 죽음으로 목숨을 빚진 사람을 핍박하지 않고 오히려 이로 인해 수행했으며 그 자리에서 도를 얻었다. 또 선사는 기다려서 그가 목숨을 빚진 사람을 재촉했으며 이 때문에 피차의 원한을 풀었다. 그 즉시 한 사람은 왕생하고 한 사람은 좌화했으니 천고에 만나기 힘든 기이한 일이다.

만약 선사가 진정하게 득도하지 못했거나 이 병사가 높은 성품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는 반드시 빚을 받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즉 살인은 자살과 다름없는 이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명나라의 감산(憨山)대사가 한 말이 있다.

"생각은 일어나는 곳에서 반드시 간파해야하며 일은 이르지 않았을 때 함부로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악념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자를 수 있다면 업력의 근본은 그 자리에서 제거된다. 망념도 일어날 곳이 없다. 그래서 속세를 초탈하여 성인이 되는 관건은 다 여기에 있다."

출전: 집복소재지도(集福消災之道)
 

 


 

 

 

황금으로 운명을 바꾼 동자

작자: 자열(紫悅)



[정견망] 원상보(袁尙寶)의 자는 충철(忠徹)인데 고향에 살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집에서 일하는 한 동자를 보았다. 동자의 용모가 수려하고 성격이 기민하여 상보는 그가 마음에 들었으나 그의 관상이 주인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해 친구에게 그를 쫒아버리라고 했다. 이 친구는 비록 평소에 그의 신기한 관상술을 우러러 보고 있었지만 속으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상보는 또 여러 번 그 일을 제기했다. 그 친구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동자는 영문도 모르고 쫓겨나서 의지할 데가 없어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일하며 여러 사람 집을 다니며 빌붙어 살았다. 어느 날 밤 어느 낡은 절간에 거처를 정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벽에 구석에 떨어진 승복을 발견했다. 승복 안주머니에 황금과 은 수백 냥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본래 그것을 가지려 했으나 마음을 바꿔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운명이 천박하여 주인의 환심을 얻지 못하고 이런 화를 만나 쫓겨나게 됐다. 만일 오늘 탐욕심이 크게 일어나서 이런 물건을 삼킨다면 그건 불의한 일이 아닌가. 하늘은 나를 더욱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이곳을 지키며 주인이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날이 밝자 동자는 예전대로 절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곡소리가 들렸는데 문득 보니 어떤 부인이 얼굴을 가리고 울며불며 오는데 사방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찾으면서 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말했다.

"우리 남편은 군졸인데 사고로 감옥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죄를 물으면 마땅히 죽어야 하는데 지휘관은 이 사건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 일을 알고 즉시 가산을 팔고 곳곳에서 돈을 빌려 약간의 금은으로 바꾸어 그에게 바치려고 했습니다. 찢어진 승복 안에 싸매어 줄곧 휴대하고 다녔는데 이 절에 들어와 잠시 쉬고 나서 뜻밖에 깜빡 잊고 떠나버렸습니다. 지금 온데 다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으니 남편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자가 그 금은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물어본 후 승복을 가져와서 부인에게 돌려주었다. 부인은 감격해마지 않아 일부를 사례금으로 주려고 했으나 동자는 결코 받지 않으려 했고 부인은 할 수 없이 다 갖고 갔다. 남편은 이후 석방됐다.

이 부인은 동자의 미덕을 잊지 못해 도처에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렸다. 그곳 지휘관은 이 일을 듣고 매우 놀라 사람을 보내 이 동자를 찾아 집에서 키웠다. 그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고 동자의 미덕과 지혜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그를 양자로 삼았다.

수년이 지난 후 지휘관은 퇴직하게 됐다. 이 양자는 부친의 직위를 세습하게 됐고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가 원래 자기를 고용했던 주인을 찾아갔다. 주인은 찬탄하며 말했다. "원군의 관상술이 어찌 이같이 잘못 됐을꼬!" 그래서 그에게 원상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만류했다. 이어서 그에게 낡은 하인의 옷을 입게 해서 차를 받들고 가도록 했다.

원상보가 보더니 놀라 일어나며 말했다. "이 사람은 원래 이 집에서 일하던 아이가 아니오? 그는 이 집을 떠났는데 지금 어째서 다시 이곳에 나타났소?" 옛 주인은 고의로 그가 쫓겨난 후 돌아갈 곳이 없어 오늘 또 왔다고 말했다.

원상보는 웃으며 말했다. "나를 놀리지 마시오. 지금 그는 당신의 하인이 아니라 삼품 무관이오. 용모와 얼굴을 보니 지난날과 완전히 다릅니다. 혹시 아주 좋은 일을 해서 이같이 된 것이 아니오?" 동자는 이에 상세히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 친구는 비로소 탄복하며 충심으로 원상보의 관상술이 신기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찬탄했다.

옛말에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그것을 증명하기에 족하다. 원래 동자의 운명은 다만 남의 하인으로 어렵게 살 운명이었는데 낡은 절에서 거액의 재물을 얻고서 비록 잠시 챙기려 했지만 생각을 바꿔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자기의 운명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돈을 잃은 부인 남편의 억울한 옥살이도 해결됐는데 그 부인까지 합해 세 사람을 구한 셈이 됐다.

물론 이것은 자비로운 하늘이 준 은혜이며 덕을 중하게 보는 하늘이 준 보답이다. 누가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던가?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하고 선을 행하고 덕을 쌓으면 하늘은 반드시 당신을 보호할 것이다.

- 육찬(陸粲)의 "경사편(庚巳編)"에 근거

 

 

 


 

일반 백성을 도살해 여러 차례 돼지로 환생
 
 
작자: 우진(宇眞)
 
정견망
 
옛말에 이르기를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면 칠층 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데 생명은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면 큰 공덕을 쌓고 큰 복을 얻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반대로 목숨을 해치면 바로 천리 하늘의 이치가 용납할 수 없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은 천상에서 안배하여 정한 것이므로 누구도 감히 신의 안배를 흩뜨릴 수 없으며 반드시 엄한 하늘의 제재를 받는다. 만일 살생의 업이 너무 많으면 일생(一生)일세(一世)에 다 갚지 못하므로 세세생생 축생으로 떨어져 피살되어 상환하며 줄곧 빚이 다 갚을 때까지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도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말의 다른 방면의 체현이다.
 
북송 시기에 송태조 조광윤 수하에 무예는 출중하지만 성격이 사납고 살생을 좋아하는 조한(曹翰)이란 장군이 있었다. 조한은 태조의 명을 받들어 강주성(江州城)을 함락한 후 포로로 잡힌 장군 호칙(胡則)을 참수하여 대중들에게 전시하라고 명령하고 또 부하에게 군대를 이끌고 도성으로 들어가 성중의 백성 수만 명을 도살하고 재물을 마음대로 약탈하며 호주머니를 채우게 했다.
 
조한의 잔인한 도살 행위는 하늘을 진노케 하여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는 악보를 받아 사망하게 되었다. 사후에 그는 축생도에 떨어져 돼지의 태에 들었으며 사람들에게 도축당해 잡아먹히는 것으로 업채(業債)를 갚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죄에 대한 보응은 그의 처자에 까지 미쳤다. 그의 아들은 다 자라기도 전에 요절했고 아내는 곤궁하게 살다가 마침내는 창기로 전락했다.
 
명나라 시기에 무관(無關) 지방에 유옥수(劉玉壽)란 지방장관이 있었다. 그의 집에서는 돼지 한 마리를 길렀다. 유옥수가 돼지를 잡으려고 하는 하루 전날 밤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한사람이 그에게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는 꿈을 꾸었다. 유옥수는 깨어난 후 잘 생각해보니 이 꿈은 자기가 잡으려는 돼지의 영혼이 나타난 것이라고 연상하게 되었다. 유옥수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니 착한 마음이 우러나 이 돼지를 죽이지 않기로 했고 이때부터 이 돼지를 잘 길렀다. 1년 후 이 돼지는 자연사했다.
 
어느 해 유옥수는 조정의 명을 받들어 귀주(貴州)로 발령받아 갔는데 도중에 큰 병에 걸렸다. 꿈속에 건장한 사내가 걸어와 그 앞에 서는데 얼굴에는 간구하는 표정을 드러내었다. 유옥수가 그 이름과 내력을 묻자 그는 대답했다.
 
 저는 송나라의 대장군 조한입니다. 당시 강주성을 점령한 후 무고하게 사람을 죽이고 인명을 초개같이 여겨 하늘에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누차 악보를 받아 축생으로 떨어졌으며 이전에 부하도 악귀, 지옥도 등에 떨어졌고 저도 돼지의 몸을 받았으니 장관께서 구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유옥수는 역시 범부에 불과한데 어떻게 당신을 구한단 말입니까?” 그는 당신의 심지가 선량하고 돼지라 잡혀죽는 것을 불쌍히 여깁니다. 당신이 왕년에 제 목숨을 구해주시고 일년간 길러준 일을 기억하십니까?”
 
유옥수는 깨닫는 바가 있는 듯 했지만 미심쩍은 듯 말했다. “기억이 납니다. 이전 집에서 돼지 한 마리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게 어째서 당신인줄 알겠소? 현재는 또 어디에 가서 당신을 구하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지난날의 빚 때문에 나는 이미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디로 가서 또 돼지로 태어날지 모릅니다. 금일 당신과 인연과 은혜가 있어 귀주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는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잠시 후 또 장탄식하며 말했다.
 
저는 당나라 시기에 한때 작은 관리가 되었었는데 어느 법사님이 불경을 강의하는 것을 듣고 나도 가서 공양하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 공덕으로 인해 세세생생 전생하여 관리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선에 대한 보답을 다 누렸습니다. 하지만 송나라 초에 악하게 생령을 살해했기에 누누이 이런 악보를 받습니다. 오늘 또 다행히 은인을 만나서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 물리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금후에 돼지가 잡힌 것을 보거나 우는 소리를 듣거나 사람이 잡아먹는 것을 보시면 기도를 해주시거나 아미타불을 외워주시면 우리 무리들은 잠시 고통을 참을 수 있고 인연 있는 자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살인한 죄업으로 인해 칼에 잘리는 고통을 받았고 송나라로부터 명나라에 이르는 600여 년 동안 아직까지도 축생의 탈을 벗지 못하고 있으니 징벌의 인과는 정말 심합니다! 은인님, 저는 일찍이 이 고해를 벗어나 다시 사람의 몸 받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말을 마치고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하는데 눈물을 비 오듯 흘려 잠시 후 바닥이 다 젖을 정도였다. 유옥수는 차마 어쩌지 못해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명나라의 감산대사(憨山大師)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몽유집(夢遊集)>에 사실을 기록해놓아 지금까지 유전되고 있다. 보아하니 이 일은 절대 꾸며낸 일이 아니다. 옛말에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고 악에는 악의 보응이 있다이 말은 천고불변의 천리이다.
 
 <명현집(名賢集)>에 이런 말이 있다. 휴의시래세 수방시거시(休倚時來勢須防時去時-세도가 있을 때 함부로 하지 말고 어려울 때를 대비하라는 의미)이 말은 인생의 철학의 자못 포함하고 있다. 권고하건대 이전의 폭정의 권세에 빌붙어 양민백성을 해치고 더군다나 진선인의 선량한 민중을 박해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의 앞길을 위해 생각해보라. 즉시 회개하고 잘못을 고쳐 공을 세워 보상하여 미래를 바꾸라. 선과 악은 행함은 자기 일념의 사이에 있다.
 
 복을 받느냐 화를 받느냐 하는 것도 전부 자기의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절대 악보가 내리기를 기다리지 마라. 그 때 후회해도 늦을 것이다
 

 

 

 


 

 

 

인과응보- 한 눈이 멀게 된 사람

 
작자: 진언(真言)
 
 
정견망
 
이것은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 년 전 흑룡강성 화천현(樺川縣)의 한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 마을에 장인(張仁)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감자로 당면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큰 존중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가을 감자를 캔 후 장인에게 당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큰형님이 생산대에서 출납 및 보관을 맡고 있었는데 감자와 당면의 출고와 입고를 모두 책임지고 있었다.
 
 어느 날 이수둔(梨樹屯)이란 마을에서 한 사람이 와서 백여근의 젖은 당면을 샀다. 근당 가격이 0.25원이었으므로 모두 합해 약 20여 원이었다. 생산대에서 계산을 해야 했지만 당시 농민들은 연말이 되기 전까지 경제적인 수입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당면을 외상으로 사는 일이 다반사였다. 연말이 되어 이익을 분배할 때 결산을 하는데 이수둔에서 온 사람 역시 빚을 갚아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났다. 이치대로라면 당연히 돈을 보내 결산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시 생산대에는 구식 전화기 밖에 없었는데 이 전화기로 어렵게 그를 찾아 물어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결산하러 왔던 날 마침 큰형님이 일이 있어서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한 노인이 있어 그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당면 일은 이미 끝이 났기 때문에 일이 번거롭게 되었다. 그 혼란하던 시기에 하루 종일 일해 봐야 몇 푼 못 벌지도 못하는데 잘못하면 노동력이 적고 식구가 많은 집에서 연대채무를 져야 했다. 당시 계란 하나에 겨우 5,6, 땔감 한 짐에 0.18원에 불과했으니 20여원은 상당히 큰 돈이었다.
 
 이 돈이 어긋나자 큰형님은 화가 났다. 당면을 떼먹은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장인(張仁)에게 물어보니 더욱 시치미를 뗐다. 형님은 당시 젊은 나이임에도 화가 나가 병이 들었다. 모친이 병약했던 우리 집에서 유일한 노동력이었던 큰형님이 병이 났으니 설상가상이었다.
 
  모친은 기어이 작업대를 찾아가 장부를 찾아 조사하고자 했다. 모든 장부는 다 있었는데 유독 이수둔 당면의 장부만 찾을 수 없었다. 만약 뿌리를 찾지 못하면 바로 출납원이 공금을 몰래 쓴 것으로 되며 이 때문에 비판 받는 일이 때때로 발생하곤 했다. 다행히 직원 중에서 마음 좋은 사람이 신경을 써주어 친필로 증거 편지를 써주었다. 그는 또 장인을 찾아갔다. 그러자 장인은 비로소 자신들이 그 돈으로 고기를 사고 술을 마셨다고 실토했다. 이렇게 하여 형님은 누명을 벗게 되었다. 화가 난 형님은 당장 출납원 자리를 그만두었고 한참 후 건강도 회복했다.
 
그때 겨울 어느 날 어머니가 밖에서 돌아와 말했다.
 
“(장인)이 보응을 받았구나. 하늘에는 정말 눈이 있구나! 아 글쎄 장인이 옥수수를 싣기 위해 말발굽을 살필 때 갑자기 뛰는 말발굽에 맞아 한쪽 눈이 실명했다는구나.”
 
  여기까지 말하여 어떤 사람은 이는 우연의 일치일 뿐 보응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북성 탁주(涿州)시 동성방진(東城坊鎮) 파출소 경찰 하설건(何雪健)이 어머니 연배인 파룬궁 수련생을 강간하여 8년형을 판결 받았고 또 천벌을 받아 고환암에 걸려 고환을 전부 절제해야 했다. 그는 수술 이후 세 차례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차마 죽지 못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일도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선과 악에 대한 응보는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조금도 오차도 없다. 선을 심으면 선한 보답이 온다. 중공은 1949년 정권을 탈취한 이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운동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8천만 명이 넘는 양민을 죽게 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는데 사악한 당이 생명을 살해한 것은 하늘의 징벌을 받아야 한다.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릴 것이다. 귀주의 망당석(亡黨石 중국공산당망이란 글자가 적힌 바위)은 바로 하늘의 뜻을 나타내며 사람들에게 공산당관련 조직을 탈퇴하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하늘의 뜻에 따르야만 하늘의 보호를 얻을 수 있다. 이미 13천만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공산당관련 조직을 탈퇴했다.
 
 

 

 

인과실록: 불상을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다
 
작자: 진자성(秦自省)
 
정견망
 
농서(隴西 지금의 감숙성을 포함하는 중국 서북부 지역)의 이대안(李大安)은 공부상서(工部尚書 조선의 공조판서에 해당) 이대량(李大亮)의 형이다. 당나라 무덕(武德 당고조 이연의 연호 618-626) 시기 이대량이 월주(越州)총관을 지낼 때의 일이다. 대안이 수도인 장안에서 동생을 방문한 후 돌아가자 대량은 몇 명의 노비를 딸려 보냈다.
 
대안 일행은 곡주(穀州) 녹교(鹿橋)에 이르러 여관에 투숙했다. 이때 한 노비가 대안을 살해하고자 했다. 노비는 대안이 잠들기를 기다려 단검을 찔렀는데 단검이 목을 꿰뚫고 나무 판에 꽂혔다. 노비가 검을 뽑고자 했으나 뽑지 못하고 황급히 도망쳤다.
 
잠에서 깨어난 대안이 다급히 노비들을 불렀다. 노비들이 이 참혹한 광경을 보고 단검을 뽑으려고 하자 대안이 저지하며 말했다. 일단 검을 뽑으면 나는 죽는다. 그러니 우선 붓과 종이를 가져오너라.
 
노비들이 급히 지필묵을 준비하자 대안은 유서를 쓰고 또 관아에 신고하게 했다.
 
 
대안이 유서를 다 쓸 무렵 현 관리가 도착했다. 그는 급히 단검을 뽑은 후 상처를 치료하는 약을 썼다. 대안은 당시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마치 꿈속으로 돌아간 듯했는데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길이 한척에 두께 4-5치 가량되는 돼지고기처럼 보였다. 그 고기는 땅에서 두 척 정도 떨어져 문 앞에서 침상에 도달하며 소리를 내었다. “빨리 내 살을 돌려다오!”
 
 
대안이 나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대체 언제 네게 빚을 졌단 말이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밖에서 틀렸구나, (이 사람이) 아니야!”라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 후 아까 그 고기처럼 보이던 것이 목소리를 따라 방밖으로 나갔다.
 
 
대안의 영혼도 따라서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깊이가 아주 얕고 맑았다. 서쪽 기슭에 5치 크기의 황금색 불상이 있었는데 갑자기 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녹색가사를 걸친 승려로 변했다. 그가 대안에게 말했다.
 
다치셨습니까? 지금 당신의 고통을 풀어줄 테니 곧 편히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돌아간 후에는 염불을 잘하고 선을 닦으셔야 합니다!”
 
승려는 손으로 대안 목의 싱처를 어루만지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대안은 승려가 입었던 가사의 등 부위에 붉은 색 비단으로 수선한 곳이 한군데 있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크기는 한치 정도였는데 아주 선명하게 드러났다.
 
 잠시후 대안은 정신이 돌아왔고 상처 부위도 더는 아프지 않아 일어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십여 일 후 장안의 이씨 집안 자제들이 고향에 돌아온 대안을 환영하기 위해 모였다. 대안은 사람들에게 이번 여행에서 겪었던 사건에 대해 들려주었다. 이때 한 여자 종이 그의 말을 듣고 놀라서 말했다.
 
주인님께서 출발하시자마자 부인께서 저더러 주인님을 위하여 불상을 제작하게 하셨습니다. 공방에서 불상의 가사에 색칠할 때 붉은 모래 하나가 위에 떨어졌습니다. 제가 공인(工人)에게 모래를 닦아내라고 권했지만 그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붉은 점이 아직도 불상에 남아 있는데 주인님께서 묘사하신 것과 꼭 같습니다.”
 
 이대안은 불상을 살펴보니 가사의 등 부위에 붉은 점이 있었는데 마치 수선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 신기한 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이때부터 불법(佛法)을 믿기 시작했다.
 
 이대안의 아내 하후(夏侯)씨는 낭주자사(郎州刺史) 하후현(夏侯絢)의 동생이다. 이 이야기는 내(원저자인 당림을 말함) 하후현에게 직접 들은 것이다. 나중에 대안의 조카가 대리시경(大理寺卿 고대에 형벌을 관장하던 정삼품 장관급 직위)으로 부임할 때 또 한 번 들었다.
 
 
출전: 당림(唐臨)명보기(冥報記)

 

 


 

 

인과응보는 진실하다
 
 
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하남(河南) 예서(豫西) 산촌지역에는 탄광이 많다. 우리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탄광이 있는데 탄광 공장장이 이웃 마을 사람이다.
 
 1980년대 사람들은 비교적 순박했다. 지금 관리들처럼 그리 뽐내거나 겉치레를 하거나 한눈에 돈만 밝히며 탐오하거나 뇌물 받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사람이 공장장이 된 후 가정에 무슨 변한 곳이 없었다. 생활상 의복 치장이나 모두 보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 그가 청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6살 난 손자가 있는데 새해를 쇨 때 집집마다 돼지 잡고 만두 빚느라 바쁘다. 이 집은 마당에서 벽돌로 화로를 만들어 사용하려고 했다. 그의 집에 화로 위에 솥을 올려놓아 돼지를 잡은 후 털을 뽑는데 사용하려고 했다. 그의 손자가 놀기를 좋아하여 어른들이 안볼 때 잘못하여 뜨거운 물을 쏟았다. 물이 아이 몸에 닿아 아이는 크게 울며 불며 소리쳤다. 어른 들이 황망히 아이를 병원에 보냈다. 나중에 대도시 병원에 보내어 치료했고 돈도 많이 썼다. 마침내 아이는 나았으나 후유증이 남았다. 온 몸에 피부가 다시는 이전처럼 매끄럽지 않고 피부는 두꺼비 껍질처럼 흉했다.
 
 그는 아무리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럴까. 이 문제는 그가 퇴직한 후에도 답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부근에 점 잘 치는 사람이 있다고 들어 선물을 가지고 찾아가 그 원인을 물었다.
 
 
그러자 점장이가 말했다.
당신 집 문 앞에 커다란 돌이 있지 않습니까?”
 
있소이다. 수년간 휴식하거나 서늘한 바람을 쐬거나 밥 먹을 때도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점장이가 말했다. “그 바위 아래 두꺼비가 한 마리 있는데 나중에 정()이 되었고 당신 손자는 그 두꺼비가 탁생한 것이오. 믿지 못하겠거든 돌아가서 바위를 열어 두꺼비가 있는지 보시오.”
 
그는 듣고 매우 놀랐다. 그래서 물었다. 이 아이가 대체 무슨 죄가 있나요?”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소리도 못했다. 그가 돌아와 문 앞의 바위를 열어보니 그 아래 큰 구멍이 있는데 두꺼비 동굴이 있었으며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있었다.
 
 그때 이후 그는 인과응보의 일을 믿었다. 사실 그는 공장장을 지낼 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많은 돈을 뇌물로 받았다. 그는 이외 사람들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삼척 머리 위에 신령이 있어서”, 보응을 받는 것은 시간 문제였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노인들이 많은 인과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나는 믿었으며 자기를 단속했다. 좋은 사람이 되자. 몰래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지. 학교에 다닌 후 선생님으로부터 교과서로부터 무신론의 일을 배웠다.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봉건사회 사람들이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을 때 스스로 도취되어 만들어낸 것이다. 또 통치 계급이 자기의 통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등등. 이런 사설(邪說)의 미혹 아래에서 나는 요동쳤고 믿다 말다 했으며 사람들이 가장 유행하는 한마디 말로 위안했다. 믿지 않아도 안 되지만 다 믿어도 안 된다.’
 
 2006 <9평공산당>을 읽고 비로소 깨달았다. 노인들이 했던 이야기가 정말이었구나. 중화 오천년 전통문화는 인류의 진정한 문화이며 공산당이 헐뜯고 모함한 것이 사실 옳은 것이었구나. 공산당이 극력 고취했던 것이 바로 왜곡된 사설이었다. 공산당이야 말로 진정한 사교이며 인류를 훼멸하기 위한 목적이구나.”
 
 중공은 이미 중국대륙에서 몇 대()의 사람들을 독해시켰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9평공산당>을 읽고 각성했다. 당단대 조직을 퇴출하기로 선택하고 중공과 결렬하며 서방에서 온 유령의 독해와 통제를 벗어나 진정한 염황의 자손(炎黃子孫 중국인)이 되고 있다.
 
 

 

 

음행을 하거나 음란물을 판 사람들에게 경계가 되는 이야기(6)
 
작자: 정념행(鄭念行) 정리
 
 
정견망
 
1. 음행한 자가 나중 생에 보응을 받다
 
청나라 가선현(嘉善縣)에 지() 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을유년에 향시(鄕試 지방에서 치르는 1차 과거시험)를 보고 돌아와 자기 친구인 고() 모에게 말했다.
내가 최근 정신이 흐릿하며 좀 불안한데 마치 무슨 귀신은 것이 나를 감고 장난치는 것 같으이. 내가 절에 가서 큰 법사님을 찾아 부처님 앞에 참회해야 업을 면할 것 같네.”
 
친구가 말했다. “그런 일이라며 마땅히 늦어서는 안 되니 빨리 가보게.”
 
두 사람이 절에 가서 스님을 찾은 후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지 모는 갑자기 흐리멍덩해지더니 이어서 미친 듯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실 채권자가 그의 입을 빌어 한 말이다). “나는 삼세(三世)에 원한을 졌는데 오늘에야 너를 찾아 원수를 갚는구나!”
 
스님이 물었다. 대체 무슨 원한입니까?”
 
상대방이 말했다. 나는 전세에 그의 부하였고 그는 대장군이었습니다. 그는 내 아내가 젊고 미인인 것을 보고 고의로 내게 소수의 약한 병력을 이끌고 몇배나 많은 강적을 대적하게 하여 나를 사지에 빠트렸습니다. 내가 사망한 후 그가 아내를 차지하려 했지만 아내가 따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중에 지모가 죽은 후 나라에서 충성을 인정받았으므로 그에게 원수를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그는 또 출가 수행하여 고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법신이 그를 따라 다니며 호위하는 바람에 또 원수를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생에 그는 재상이 되었고 정책을 잘 써서 복록과 신의 보호를 받아 나는 또 원수를 갚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생에 그는 마땅히 공명이 있어야 했으나 최근 여자를 강간한 죄업이 있어 천제에 의해 공명이 잘려 나갔고 복신(福神)과 녹신(祿神)이 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손을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다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원한은 풀어야지 맺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라도 그만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상대방이 말했다. 비록 그렇더라도 내 마음의 한은 풀 수가 없소, 원수를 갚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는 데 어찌 그를 쉽게 놓아줄 수 있겠소!” 곧 지모는 괴성을 지르며 비틀거리며 절문을 향해 달려가더니 땅에 쓰러져 일곱 구멍이 피를 흘리며 죽었다.
 
 
2. 음행을 저지른 자가 급사하다
 
강절(江浙)에 오()모라는 서생이 있었다. 그는 늘 한 여인을 건드리려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친구 방모에게 계책을 논의하여 방모는 그에게 비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얼마 안 되어 그의 부친이 꿈을 꾸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 아들은 본래 진사에 붙어야 했는데 마음씀씀이가 나쁘므로 천제께서 이미 그의 갑과(科甲)의 공명을 다 삭제 했습니다. 그의 친구 방()모는 본래 천한 소인배인데 현재 다른 사람의 사악한 일을 도왔으니 염라왕은 이미 그를 기름 끓는 지옥에 쳐 넣기로 판결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장을 끊어 죽일 것입니다.”
 
부친이 꿈에서 깨어난 후 매우 놀라 날이 밝은 후 얼른 달려가 그의 아들을 찾았다. 아들의 말을 들으니 방모는 어제 갑자기 급성 복통으로 급사했다고 한다.
 
얼마 안 되어 오모는 정신분열증을 앓아 봉두난발을 하고 더러운 얼굴로 시내를 들락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3. 음란한 그림을 그려 참혹한 보응을 받다
 
청나라 때 복건성에 제갈윤(諸葛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문적으로 음란한 색정화(色情畫)를 그렸는데 아주 정밀하게 잘 그렸다. 이 재주로 그는 성내에서 먹고 살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매우 진짜 같고 또 특히 음탕하므로 매우 유명해졌다. 그의 그림은 고가에 팔렸으며 많은 부유한 집 자제들과 귀공자들이 분분히 그에게 그림을 부탁하거나 구매했다. 그는 곧 부자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몇 명의 도적이 그가 사는 곳에 침입했다. 그가 소리를 지르자 강도는 어둠속에서 칼을 휘둘러 그의 한 손을 자르고 계속하여 몇 번 그를 찔러 그는 절명했다. 강도들은 그의 재물을 모두 가지고 도망쳤다.
 
나중에 광동의 이효렴(李孝廉)이 그의 친구 집에서 그가 남긴 그림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이런 음화가 만약 유출되어 전해진다면 반드시 청춘남녀들이나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잘못 기로에 빠져 들거야.하며 이효렴은 이 그림을 친구에게서 모두 사서 불태워 버렸다. 그 결과 이효렴은 그해 진사에 붙었고 수년 후 두 아들도 차례로 과거에 붙었다.
 
음란한 그림(최근의 음란물이나 영화를 포함)이나 색정적인 것은 개인은 물론 사회에 대해서도 지극히 해롭다. 문화가 있거나 없거나 사람이 본 후에는 정신을 혼미하여 방탕하게 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정이 새거나 양기가 빠지는 등 허약한 증세를 얻는다. 어떤 가정은 아내와 이별하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들어간다. 또 원대한 앞길을 망친다. 하늘아래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많은데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구태여 하여 덕을 해치고 자기를 해치는가. 이렇게 하면 기술이 뛰어날수록 죄는 더 중하며 응보는 더욱 참혹하다!
 
 
4. 음란한 책을 써서 참혹한 보응을 받다
 
작가 예()모는 남녀간에 애정과 음욕 일색인 음란한 원고를 쓰고 있었다. 원고를 거의 완성할 무렵 꿈에 한 신령을 보았는데 그를 매우 엄하게 야단쳤다. 그는 깬 후 매우 부끄럽게 여겨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러나 그 원고를 불에 태울 결심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의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경제가 곤란하게 되었다. 예모는 계속 글을 써서 원고를 완성했고 서적상에게 넘겨주었다.
 
얼마 안 되어 그의 눈이 멀었고 손에 종기가 났으며 손가락이 구부러져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는 그가 음서를 지어서 그런 보응을 받은 것을 알았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서 고통스럽게 죽었다.
 
 
5. 음란물을 팔다 참혹한 보응을 받다
 
강남 모 지역에 주상(朱祥)이라는 서적상이 있었다. 그는 폭리를 취하기 위해 도판으로 인쇄하고 또 음란 소설을 고가에 빌려주거나 팔았다. 그의 친구가 여러 차례 이런 음란물을 팔지 말라고 하며 악보나 재난을 당한다고 권했다.
 
주모는 이것은 가소롭고 낡아빠진 미신이라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2년 후 주모의 시력이 흐릿해지더니 두 눈이 실명이 되었다. 많은 명의를 찾아가 보고 돈도 많이 썼으나 치료되지 않았다.
어느 날 서점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제때에 도망치지 못하고 하반신에 화상을 입었다. 근육이 썩고 악취가 진동했다 매일 고통으로 슬피 울다가 삼일 후 죽었다.
 
죽기 전에 그는 말했다. 나는 음란서적, 그림 등을 인쇄하고 팔았다. 비록 돈을 벌었지만 병치료 하느라 다 써버렸고 또 사람을 해친 것이 적지 않아 이런 참혹한 보응을 받는다. 정말 죄과를 받아야 한다. 당신들은 나를 교훈 삼아 다시는 덕을 해치는 음화 음서를 일을 하지 마시오.” 의 아내는 나중에 생활이 곤란하여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고 나중에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인신매매단에게 넘어가 후사가 끊겼다.
 
 
6. 음란영화를 팔다 보응을 받다
 
광서(廣西) 북해시(北海市)에 황()모라는 50대 인물이 있었다. 그는 돈벌이를 위해 겉으로는 테이프 복제하는 가게를 경영해지만 몰래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항구 등지에서 색정적인 테이프를 대량 구매하여 빌려주고 또 대량 불법 복제하여 팔았다. 그의 보응은 뚜렷했다. 아들이 마약을 하다가 마약 수용소에 들어갔고 무수한 돈을 썼다. 딸은 고등학교 다닐 때 사회의 불량청소년과 어울려 다니다 가출했고 광동에 가서 매음을 하여 창기가 되었다. 그의 점포는 공안국에서 조사받아 영업 취소당했고 벌금형을 받았다. 장사를 할 수 없어 매우 곤란했다. 그는 매우 후회했다. 이는 음란물 영업하여 자기 일가를 해친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송대 담치도인(淡癡道人)<옥력보초(玉曆寶鈔)>의 부록자료 2004년 판본에 근거한 것임)

 

 


 

 

인과응보 실록 : 참새가 은혜를 갚다
 
 
작자 : 정실(程實) 정리
 
[정견망]
 
주지상(周之庠)은 방생(放生)을 좋아했다. 그는 참새를 좋아해 늘 집 처마아래에 곡식을 놓아 새들이 쪼아 먹게 했다. 그는 중년에 실명을 했으나 여전히 참새에게 모이 먹이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주지상이 갑자기 병이 들어 기가 끊어졌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있었기에 가족들은 염을 하지 않고 지켜보았는데 그가 나흘 밤낮이 지나고 나서야 깨어났다. 깨어난 후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내가 우리 집을 나서서 혼자 어두운 들을 걷고 있었는데 매우 고요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좀 두려워 재빨리 수십 리를 날아갔는데 어느 도성이 보였다. 성 밖은 적막하며 연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잠시 후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돌아가신 선친이었다. 나는 부친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부친이 물었다.
 
누가 너더러 여기에 오라 하더냐?”
 
나는 길을 잃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부친은상관없다.”하며 나를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느 관아 앞에 도착하자 한 노인이 두건에 도복을 입고 나왔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시고는 매우 놀라며 부친을 책망했다.
 
넌 정말 멍청하구나. 어째서 아들을 여기로 데려 왔느냐?”
 
그러면서 부친을 물리치신 후 나를 끌고 가셨다. 이때 매우 추악하게 생긴 두 저승사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기왕 여기에 왔는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할아버지와 다투며 나를 빼앗으려 했다.
 
 이때 갑자기 수만 마리의 참새 떼가 사방에서 날아오더니 저승사자를 쪼기 시작했고 사자는 놀라 도망쳤다. 할아버지는 나를 성 밖까지 보호해주었고 참새는 나를 따라오며 날개로 가리고 둘러싸서 나를 보호했다. 약 수십 여리 까지 걸어왔을 때 조부가 지팡이로 내 등을 탁치며집에 도착했다!”고 했다. 이때 나는 꿈에서 깬 것 같았고 이승으로 돌아와 살아났다.
 
 주지상은 또 이때부터 눈이 밝아졌고 지금까지도 편안히 잘 살고 있다.
 
  자료출처: 청나라 원매(袁枚)가 저술한자불어(子不語)

 

 


 

 

1. 거위가 죽음으로 은혜를 갚다

명나라 말기에 있었던 일이다. 항주부(杭州府)에 조(趙) 씨 성을 가진 관리가 한명 있었는데 성격이 인자하고 살생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말이 되어 어떤 사람이 거위 한 마리를 선물로 보내왔다. 식구들은 삶아 먹으려 했으나 조 씨는 극력 저지했다. 그믐날 식구들이 또 삶아 먹자고 했으나 조 씨가 막았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단옷날이 되었는데 가족들이 또 잡아먹자고 했는데 조 씨가 화를 내어 잡아먹지 못했다. 

단오가 지나 5월 17일에 조 씨가 병이 났다. 6월 초하루가 되자 병세가 위급해졌다. 조 씨는 푸른 옷을 입은 귀신이 자신을 저승의 관아로 데려가는 것을 보았다. 세 사람이 앞에서 호소하는 것을 보았는데 판관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양 모씨와 그의 노부인도 보였는데 그들도 모두 잡혀왔다. 막 조 씨를 심판하려 할 때 갑자기 거위 한 마리가 일어나더니 조 씨에게 사람의 말로 했다. “당신은 빨리 돌아가세요, 제가 대신하겠습니다!”그래서 조 씨는 원래 왔던 길로 되돌아왔고 자기의 시체를 보았다. 그 때 막 관속에 입관된 뒤였다. 조 씨는 혼과 몸이 합해지자 깨어났다. 그러나 거위는 그날 우리 안에 죽어 있었다. 조 씨가 양 모씨에게 찾아가보니 두 사람 모두 같은 날 사망한 사실을 알았다. 

어떤 사람은 의심이 들어“주자의 말에 따르면 생사의 일은 부자지간도 서로 대체하지 못한다. 조 모는 비록 거위에게 은혜가 있지만 거위가 어떻게 조 모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하지만 법성(法性)은 원명(圓明)하며 중생은 같은 몸이어서 서로 융합한다. 정성이 지극하면 어찌 감응이 없겠는가? 거위가 조 모를 구한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2. 나쁜 마음으로 양을 삶은 모자가 보응을 받다

법원주림(法苑珠林)의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장안에서 어떤 사람이 아들의 출생 한 달을 맞아 큰 잔치를 치르려 했다. 양을 한 마리 잡으려고 했는데 양이 여러 차례 아이 엄마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며 애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들떠보지 않고 하인을 시켜 양을 잡았다. 

잠시 후 하인이 양을 잡아 솥에 넣어 삶고 있었는데, 부인은 아이를 안고 보러 왔다. 그 때 갑자기 솥이 깨지더니 뜨거운 물이 흘러드는 바람에 불길이 확 튀어 오르며 뜨거운 화염이 모자의 얼굴로 쏟아져 두 사람 다 타죽었다.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어느 귀왕(鬼王)은 아들이 500명이나 있었다. 가장 어린 아들 이름이 빈가라였다. 그런데 귀모(鬼母)도 매우 포악하여 다른 사람의 자녀를 잡아먹었다. 세존은 그녀의 작은 아들을 밥그릇에 숨겨놓았다. 귀모가 7일 동안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아들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서 부처님에게 물었다. 부처님은“너는 500명의 아들이 있는데 그 중 겨우 하나가 없어졌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수심에 잠겼느냐? 세상 사람이 낳은 아들은 아깝지 않느냐? 너는 왜 그들을 잡아먹느냐?”하고 묻자, 귀모가 대답했다. “만약 제가 오늘 빈가라를 찾을 수 있다면 오늘부터 다시는 사람의 아이를 잡아먹지 않겠습니다.”부처님은 그녀의 아들이 밥그릇 안에 있다고 알려주었고 귀모는 자기의 400여 명의 아들을 모이게 하여 힘을 써서 그릇을 들어 올리려고 헸으나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세존에게 가서 간구했다. 

부처님은“네가 만일 귀의하고 오계(五戒)를 받는다면 네 아들을 돌려주겠다.” 하고 말했다. 귀모는 곧 부처님 앞에서 계를 받고 귀의했다. 부처님께서는 “계를 잘 받았다. 너는 가섭부처님 시절에 갈기왕(羯肌王)의 딸이었는데 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금생에 귀신이 되어 보응을 받는 것이다.”하고 말해 주었다.(상세한 것은 잡보장경 참조) 허 - 천하에 귀모 같은 사람이 적다고 할 수 있는가? 


3. 남을 죽여 제사 지내다 자신이 죽다

죽창수필(竹窗隨筆)에 따르면 전당(錢塘) 지방에 김(金) 모씨가 있었는데 소식하며 살생계를 지키며 매우 경건했다. 죽은 후 혼이 어느 어린이 몸에 붙어서 말했다. “나는 선업을 많이 쌓지 않아서 정토에 왕생하지 못하고 다만 저승에 있지만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 매우 즐겁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를 꾸짖으며 말했다. “당신은 왜 닭을 잡아 내 묘소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가? 이같이 업을 지으니 오늘 어떤 사람이 나를 감시하러 왔는데 나는 이전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김씨의 며느리가 아이를 밴 후 그에게 물어보니 그가 말했다. 
“네가 처음 낳을 사내아이는 문제가 없지만 두 번째 사내아이를 나을 때 모자가 모두 죽을 것이다.”식구들은 매우 놀라 이 일을 기록해 놓았는데 그대로 다 실현되었다. 

제사에 반드시 모두 채소만을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세 가지가 깨끗한 고기라야 한다.(죽이는 소리를 듣지 않은 것, 죽이는 걸 보지 않은 것, 자기를 위해 죽이지 않은 것) 세상에는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한 사람이 돼지나 양을 잡아 조상에게 제사지내며 득의양양해하는데 이렇게 해야 조상들을 빛낸다고 여긴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칭찬이 자자하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조상들은 과연 이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겠는가? 결과는 생명만 해칠 뿐으로 부모를 떨어지게 한다. 죽은 자는 아는데 통한의 구천에 떨어진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채소로 제사를 지내 성의를 표하면 된다. 

노자는“화(禍)는 복이 기댈 곳이며 복이란 화가 숨어 있는 곳이다.”바로 이렇다. 본래 좋은 일이 실제로 나쁜 일이 되어 버리며, 본래 나쁜 일이 실제로 좋은 일이 된다.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것은 비록 좋은 일이긴 해도 살생으로 제사지내 크게 먹고 마시며 사치스럽게 지내면 좋은 일이 나쁜 일로 변한다. 가난한 사람은 거친 밥에 자기 본분을 지키며 비록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도 일생 평안하며 좋게 끝을 맺으면 나쁜 일이 좋게 변한다. 

출전: 청나라 시대 주사인(周思仁)의 《안사전서(安士全書)》

 

 


 

 

 인과응보실록: "보응은 그림자처럼 따른다"


작자: 공학겸(恭學謙)

[정견망]
 

1. 문언박의 동료가 소로 변해 빚을 갚다.

송나라 문로공(文潞公) 문언박(文彥博)이 장안의 사법 수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제방 축조를 시찰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한 마리 소가 갑자기 사람의 말을 했다.

"나와 문언박은 같은 조정에서 20년간 관직을 지냈습니다. 오늘 내가 어떤 면목으로 그를 만나겠습니까!"

수로를 관리하는 한 사병이 소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이상하게 느껴 이 일을 시찰하러 온 문언박에게 보고했다.

문언박이 그 사병에게 명해 소를 끌고 오라고 했다. 이 소는 문언박 앞에 오자 땅에 엎드려 고개를 낮추고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문언박은 소를 가리키며 주변 사람에게 큰 소리로 탄식했다. "이 동료는 살아있을 때 공금을 몰래 훔쳤기 때문에 오늘 이런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때부터 문언박이 집에 돌아가서 장부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명해 돈 20관을 꺼내어 이 소에게 주고 먹이를 더 주라고 했다.

관부의 돈은 사람들이 낸 세금이다. 문언박 과거 동료는 소로 변해서 제방 축조에 참여했는데 이는 바로 그가 빚진 백성들의 빚을 갚으러 온 것이었다. 현재의 관리들은 이 인과응보의 이 사실을 보고 자세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2. 목숨을 해치면 하늘의 징벌을 받는다

소주(蘇州)에 기름 파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어느 날 기름을 팔 때 어느 부잣집 문 앞을 지나다가 그 집의 다섯 살 난 아이가 머리에 붉은 모자를 쓰고 가슴에 금장식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 나쁜 마음이 생겨 아이를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금장식을 빼앗고 아이를 죽였다. 그래서 그는 갑자기 부자가 됐다. 나중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가 죽인 아이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때문에 그는 이 아들을 몹시 싫어했다.

아이가 자라서 다섯 살이 됐을 때 마침 여름날 날이 매우 뜨거울 때였는데 상인은 잠깐 잠이 들었다. 아이는 그의 머리에 은비녀가 꼽혀 있는 것을 뽑아서 그의 가슴팍에 그으며 놀았다. 그 상인은 파리가 그를 무는 것으로 착각하고 손을 들어 팍 쳤는데 그 은비녀가 자기 가슴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재물을 탐하고 목숨을 해치는 사람에게 권한다. 절대 자기의 분수가 아니면 구하지 말라. 악은 보응이 있고 그림자처럼 따른다. 사람을 해친 자는 하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집복소재지도(集福消災之道)"

 

 


 

 

인과응보 실록 – 마음이 바르지 못해 공명이 깎여



작자 : 진필겸(陳必謙) 정리

[정견망]

복건에 이(李) 씨 성을 가진 수재(秀才)가 있었는데 박학다식했다. 어느 날 경성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도중 구주(衢州)의 한 객줏집에 들렀다. 그 전날 객줏집 주인이 꿈을 꾸었는데 토지신이 나타나 "내일 복건성의 이 수재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유숙할 것이다. 그는 이번 과거에 장원을 할 것이니 그를 잘 대접해야 한다." 하고 말했다.

다음 날 복건성에서 한 사람이 왔는데 과연 성이 이 씨이며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길이라고 했다. 객줏집 주인은 꿈에 토지신이 일러준 대로 아주 각별하게 대접을 잘 해 주었으며 꿈에 토지신이 한 말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이수재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분이 좋았으며 밤에 누워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번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높은 관리가 되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가난할 때 얻은 아내는 못생겨서 내 부인이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장래에 관리가 되면 젊고 예쁜 여자를 구해서 새로 장가를 들어야지." 그가 맘속으로 이렇게 헤아리고 있는데 누가 알았으랴, 신령은 그가 마음속에 좋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읽고서 그의 공명을 삭제해버렸다. 그러나 이수재는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나름대로의 계획을 갖고 있었으며 시험에 응시했다.

십여 일이 지나 그 객줏집 주인 꿈에 또 그 토지신이 나타나 "저, 이수재는 마음속에 불량함을 품고 있어서 공명을 아직 성취하지 못했다. 그는 아내를 버리고 다른 처자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한다. 그러니 명부에서는 이미 그의 공명을 삭제해 버렸다." 하고 말했다. 객줏집 주인은 토지신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며칠이 지나 이수재가 시험에 떨어지고 돌아와 객줏집 주인을 만나자 매우 부끄러워하면서도 "주인이 환몽을 꾸고 거짓말을 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헛된 꿈을 꾸게 했다."고 오히려 야단을 쳤다.

객줏집 주인도 그에게 애석하다고 말하면서 "제 꿈이 거짓이 아니라 이 수재 당신의 마음이 옳지 않은 것이지요." 했다. 그리고는 그가 떠난 다음날 밤 꿈에서 토지신에게 들은 말을 해주었다. 이 수재는 듣고 나서 크게 놀라고 부끄러워하며 돌아갔다.

바로 이러하다 :
 

좋은 일 이루어지지 않음은 원인이 있으니

어찌 안을 방어하고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가

아마 이수재 같은 이는

의로운 사람을 배신하는 나쁜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가?

好事不成有原因

何防內找自捫心

許是也如李秀才

背信棄義生壞心



"좌화지과(坐花志果)" 중에서


 

 


 

 

인과응보 실록 - 신의 위엄은 범할 수 없다



작자 : 동북 대법제자

[정견망]

중국 5천년 문명은 신전문화(神傳文化)지만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후 독재 정권에 이용하여 무신론의 거짓을 전 국민을 세뇌시켰다. 전통을 훼멸하고 전 민중을 선동하고 이끌어 하늘, 땅, 사람과 싸우며 "그 즐거움이 무궁하다."고 까지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죄의 대가는 잔혹하고 무궁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빠짐없이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공산당 수괴와 각급 탐관오리들은 자기가 선양하는 무신론을 믿지 않고 신에게 절을 하며 신을 모시며 또 부처님에게 자기의 관직과 재산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면서 그들은 그런 일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지 백성은 공산당 간부의 무신론의 거짓을 믿고 신령을 감히 범하다가 하늘의 벌을 받아 재앙이 아들은 물론 그 후의 자손에까지 미치고 있는데,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조금도 허구가 없음을 밝힌다.

내가 소학교 3학년 때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우리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돌연 강풍이 사방에서 일어나면서 천지가 암흑으로 변했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며 비는 대야로 쏟아 붓듯이 퍼부어 내렸다. 우르릉 쾅쾅하는 소리가 마치 머리 위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려 정말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서 목을 길게 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수업을 맡은 선생님은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번개가 너희들을 칠 것 같으냐?"

마침내 수업이 끝났다. 거리를 지날 때 사람들의 말이 분분했다. "절을 부쉈는데 앞장섰던 누구누구가 벼락을 맞아 죽었대!" 그런데 죽었다는 사람의 그 이름은 우리 마을의 백부가 아닌가?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 백부라 불렀다. 지금 살아 있다면 110세는 넘었을 것이다) 속으로 매우 놀라고 또 슬펐다. 그러나 "우리도 부숴버린 절에서 벽돌을 가져다가 화장실을 짓는데 쓰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나서 은근히 겁도 났다. 나중에 나는 외지에 나가 공부하고 일을 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60년이 지났다.

금년에 고향에 돌아와 동생을 만나 이야기 하는 중 나도 모르게 벼락 맞아죽은 그 백부의 후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그러자 동생과 제수는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말했다. "얼마나 비참한지 말도 마세요!"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내는 정신이 이상해져 멍청하게 살다가 얼마 안 되어 죽었고, 그는 손자가 둘 었는데 하나는 20세 때 노천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어떤 사람에게 맞아 죽었으며, 다른 하나는 살인 혐의로 감옥에 삼년간 갇혀 있다가 나중에 무죄 석방 되어 집으로 돌아왔으나 2년 후 30세 때 죽었다고 했다.

동생과 제수는 또 그때 절을 부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다른 사람은 벼락에 맞아죽진 않았지만 매우 가난하게 살았고 두 다리에 병이 생겨(종기 같은 병) 뼈를 찌르는 듯이 아파 일어설 수 없고 길을 걸을 수도 없어 기어 다니다 죽었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 역시 두 다리에 종기가 나서 마찬가지로 기어 다녔다. 두 손자 중 하나는 20세 때 토끼를 쫓다가 언 강물에 빠져 죽었는데 이듬해에야 겨우 시체를 건져 올렸다. 또 다른 손자는 양곡을 실어 보낼 때 사람들에게 밀려 차에 깔려 죽었다. 외손녀는 생활 태도가 안 좋아 남편에게 맞아 죽었고 외손자는 강간, 강도죄로 현재 감옥에 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매우 처량함을 느꼈다. 무지한 사람들이 신(神)을 모욕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니 얼마나 불쌍한가? 나는 하나의 천리(天理)를 알았다. "신령(神靈)은 절대 모독해선 안 된다."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자기의 목숨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손 후대에까지 벌을 받으며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신에게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다. 동시에 자연히 공산당이 "하늘과 싸우니 즐거움이 무궁하도다" 하는 천지를 가득 채운 거짓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그것은 무진장의 재난을 가져다 줄 뿐 무슨 낙이 있는가? 그 죄는 무궁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삿된 무신론(無神論)은 거짓말이라 홍조(紅潮)는 무생문(無生門)으로 흘러가네"

"말겁 시기에 신으로 돌아오리니 중생을 구도해 과거 인연 풀리라" (홍음3)

선량한 사람들이여, 절대 신의 뜻을 위배하거나 멋대로 행하지 말라. 신이 우리를 구하러 왔는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는가? "진선인(眞善忍)"은 우주 대법이니 부디 존중하기 바란다. 오직 대법만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


 


 

 

인과응보실록 : 남의 목숨을 해쳐 보응을 받다

작자 : 상룡(翔龍)



[정견망] 많은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면 보응을 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늘 무절제하게 나쁜 일을 하며 재물을 탐하여 목숨을 해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하늘의 그물은 성근 것 같아도 누락이 없어 악한 일을 하면 반드시 징벌을 받는다.

금(金)나라 하동북로(河東北路) 정양현(定襄縣 지금의 산서성 정양 남쪽) 마을에 왕호(王胡)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아들 왕생(王生)은 태화(泰和 1201-1208) 연간에 사람을 데리고 오대산에 성지순례를 갔다. 반쯤 갔을 때 말이 갑자기 놀라더니 왕생을 낙마시켰다. 수행하던 하인이 왕생을 구해 집으로 돌아왔다.

왕생이 깨어난 후 상태가 이상해져서 귀신같은 말을 하며 분노한 모습으로 아버지 왕호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관병의 체포를 벗어났으니 그 재물들을 균등하게 나누어 당신들이 치부할 수 있게 해 주겠소. 무엇 때문에 나쁜 마음을 품고 나를 불태워 죽이려는 거요. 당신들을 이렇게 오래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찾았으니 얼른 목숨을 내놓으시오." 하고는 부엌칼을 가지고 사람을 보는 대로 마구 찔렀다.

왕호는 어쩔 수 없이 당시 유명했던 하(何) 도사를 불러 귀신을 쫓아달라고 부탁했다. 하 도사가 술법을 해 보니, 왕씨 부자에 의해 억울하게 불에 타 죽은 어떤 귀신이 원한의 소송을 한 것이다. 하 도사가 그 귀신의 말을 듣고 나서 왕호에게 설명하기를 "반드시 진심으로 참회하고 원혼을 초도하시오. 그래야만 이 일을 화해할 수 있을 거요." 하고 말했다.

왕호는 하 도사의 요구대로 제단을 차려 놓고 사실대로 실토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왕씨 일가가 부자가 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왕호는 원래 기와를 굽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 아들 왕생을 데리고 산동의 기와 가마로 갔다. 금나라 장종(章宗) 명창(明昌) 2년(1191년) 어느 날 각처에서 약탈을 일삼던 9명의 강도가 관병의 추적을 피해 왕호의 기왓가마로 도망쳐 숨어들어 왕호 부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많은 금과 은의 재물을 가지고 있는데 만일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 관병의 추격을 피할 수 있게 하여 생명을 보전한다면 이 재산을 당신 부자와 함께 공평하게 나누겠소." 하고 간청했다.

하지만 재물을 보고 욕심이 생긴 왕 씨 부자는 이 9명의 강도를 기왓가마 속에 숨겨 관병의 수색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관병이 떠나간 후에 왕가 부자는 갑자기 나쁜 마음이 생겨 이 가마에 불을 지펴 강도들을 태워 죽였다. 그리고는 강도의 모든 재물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몇 년 만에 그곳에서 최고의 부자가 되었던 것이다.

왕호가 참회하고 하 도사는 또 귀신들을 초도해 주었다. 그 후 왕가는 사당을 세워 대낮부터 저녁까지 기도를 해 주었다. 그러나 아들 왕생은 며칠 되지 않아 죽었다.

비록 왕가 부자가 살해한 것이 강도이고 또 빼앗아 온 것이 불의의 재물이지만 마지막에는 현세(現世)의 보응을 받았고 이로부터 선악은 정말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선심을 가지고 나쁜 짓을 적게 하기 바란다. 이렇게 해야만 자기에게 좋은 미래를 남겨줄 수 있다.


 


 

 

인과응보 실록 : 새 잡는 것을 직업으로 하다 아들이 단명

작자 : 상룡(翔龍)



[정견망] 나쁜 일을 한 보응은 아마 자기에게 떨어지거나 가족의 몸에 떨어진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나쁜 일을 한 사람에 대한 징벌이다.

금(金)나라 말기 하남(河南) 평흥현(平興縣)에 남함두촌(南函頭村)에 메추라기를 잡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장(張)노인이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그에게 "메추라기(鵪鶉)"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장 씨는 늦게 외아들을 얻었는데 장동(張童)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장동이 갑자기 죽어버렸다. 장 씨 부부는 늙어 의지할 데가 없자 정말 울며불며 거의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그들은 아들을 따라 죽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다. 장동을 매장할 때 장 씨는 땅에 그저 한두 척 되는 구덩이만 파고 그 위에 벽돌로 묘를 쌓았다. 사람들이 왜 아들 묘에 보루를 쌓았느냐고 묻자 그는 슬피 말했다. "내 아들은 살아 있소!" 사흘이 되자 장 씨 부부는 다시 묘지에 와서 통곡하며 아들을 부르는데 갑자기 묘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놀라워하며 말했다. "아들의 혼이 정말 돌아왔소!" 그러면서 얼른 관을 파서 아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장동이 깨어난 후 미음을 마신 후 부모에게 그간의 경과를 이야기했다. 처음 죽었을 때 저승사자가 자신을 저승으로 데리고 갔다. 장동은 울면서 저승판관에게 고했다. "우리 부모님은 늙고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제가 그들을 좀 더 모시고 다시 와서 죽으면 안 되겠습니까?"

저승 관리가 장동의 효성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말했다. "오늘 네가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말해라. 메추라기 잡는 직업을 포기할 수 있다면 네 명(命)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이야!"

장 씨는 즉시 망 등 새 잡는 도구를 다 불태워버리고 그 후 다시는 메추라기를 잡지 않았다.


 


 

 

무지로 화를 부르지 말라

작자 : 흑룡강성 신명(辛明)



[정견망]

사천성(四川省) 성도시(成都市) 쌍류현(雙流縣) 합림향(合林鄉) 고봉촌(高峰村)에 절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절을 "고산사(高山寺)"라 부른다. 고산사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길이가 1,200미터에 달하며 50여 존의 불보살(佛菩薩)과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이 18층 지옥에 떨어져 업의 빚을 갚고 고생하는 장면이 있다. 중공이 정권을 잡기 전에는 주위 10리에서 8개 향(鄕)의 사람들이 모두 와서 향을 피우며 신명의 보우를 기도했다.

1950년 중공(중국공산당)이 지주를 없애는 운동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촌장(村長) 고지운(高志雲)과 무장부장(武裝部長) 왕청운(汪清雲)이 한 무리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곡괭이, 호미 등 연장을 들고 이유도 말하지 않고 그 절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삼층 높이의 불상이 순식간에 다 부서졌고 절간 내의 모든 것들을 전부 밖으로 내팽개쳐졌다. 산허리에는 온통 신상의 파편, 끊어진 팔, 다리 등이 널려 있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촌장 고지운은 불상의 도금을 탐욕스럽게 긁어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후 사악한 정부의 촌사무소는 신성한 성지를 점령해 버렸다.

대략 2년 후 촌장 고지운은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려 개처럼 기어 다니기만 했고 일어설 수 없었는데 오래지 않아 사망했다. 무장부장 왕청운 역시 괴질에 걸렸는데 고칠 수 없었다. 매일 오후가 되면 그때부터 그는 늘 혼자 있기를 두려워했다. 매우 무서운 표정이었고 밤이면 많은 사람이 자기를 잡으러 온다고 했다. 매일 밤 잠들지 못하고 고통이 극심하여 감당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점쟁이를 찾아가보라고 하여 가서 점을 치니 점쟁이가 "그가 불상을 부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왕청운은 집 뒤의 못 옆에 집을 하나 짓고 다섯 존(尊)의 불상을 모시고 매일 불공을 드렸다. 이름을 "왕가묘(汪家廟 왕씨 집안의 사찰)"라 하고 많은 향불을 피우게 했다. 나중에 그의 괴상한 병은 저절로 나았다.

이것은 정말 신상(神像)을 훼손해 악보(惡報)를 받았으며 다시 신을 모셔와 복을 받은 것이다.

 


 


인과응보 – 남의 이혼을 도와 장원을 잃다

작자 : 정수신(程守信)



[정견망]

사명(四明)지역에 갈정내(葛鼎鼐)라는 사람이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매일 학교를 갈 때마다 늘 토지신을 모시는 사당(土地廟) 앞을 지나야 했다.

어느 날 묘축(廟祝 신묘에서 향불을 관리하는 사람)의 꿈에 토지신이 나타나 말했다. "갈 장원이 매번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내가 일어나서 그에게 인사를 해야 하니 많이 번거롭다. 네가 나를 위해 작은 담을 쌓아 나를 그 안에 가리게 하여 내가 늘 그에게 일어서서 존경을 표하지 않아도 되게 하라." 하고 부탁을 했다.

묘축은 토지신의 뜻에 따라 작은 담을 쌓기로 하고, 막 일꾼을 모아서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또 꿈에 토지신이 부탁했다. "너는 담을 쌓을 필요가 없다. 갈정내가 남의 이혼서류를 쓰는 것을 도와주었고 이 때문에 그의 공명은 이미 하늘에서 지워졌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경의를 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당시 향리(鄕裏)에 자기 아내를 버리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글을 쓸 줄 모르므로 갈정내에게 대필을 부탁했던 것이다. 갈정내는 즉시 기뻐하며 이혼 문서를 써주었다. 그 사람은 그래서 얼른 갈 곳 없는 본처를 버렸다.

나중에 갈정내는 사당지기가 전하는 말을 듣고는 크게 후회하여 진력을 다해 이혼한 남편을 찾아가서 이혼했던 여인과 다시 재혼을 하도록 하여 혼인을 회복하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나중에 과거시험에서 그는 과연 장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행동을 후회하고 뉘우쳤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그래도 향시에는 붙게 해 주어 성에서 거인(擧人)으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관직은 부사(副使)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출처: 집복소재지도


 


인과응보: 선한 행적을 지운 후 관직을 박탈당한 문인들

작자: 엄자율(嚴自律)



[정견망]

1. 진수(陳壽)가 책을 쓰는데 사심을 내다 해를 당해 죽다




진(晉)나라 역사학자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지을 때 당시 생활이 곤란했다. 그래서 정량주(丁梁州)에게 말했다. "나에게 양식을 1천곡 빌려 준다면 당신에게 좋은 전기를 써주겠소."

정량주는 진수의 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진수는 그의 전기를 써주지 않았다. 진수가 쓴 "삼국지"가 완성된 후 사람들은 모두 그가 쓴 글에 문제가 있다고 하며 진수가 불공평한 마음을 품었다고 비난했다. 나중에 진수는 과연 해를 당해 죽었다.

2. 선한 행적을 지운 후 관직을 박탈당한 문인들




예전에 두 명의 문인이 있었는데 명을 받들어 강음현(江陰縣)의 현지(縣志)를 편찬하는 일을 맡았다. 그들이 구(舊) 현지를 보니 수절한 부인 두 명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그들은 이런 일은 평범하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 두 사람의 기록을 지워버렸다.

그날 밤 성황묘의 어느 도사는 두 부인이 성황신을 향해 울며 호소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 두 사람은 일생동안 고생하며 수절했는데 죽은 후 우리가 수절한 사실이 현지에 기록됐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유도 없이 어떤 사람이 지워버렸습니다."

성황신은 듣고 난 후 말했다. "그 두 명의 문인은 본래 마땅히 공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이 다른 사람의 착한 일을 지워버렸으니 마땅히 그들의 관록도 지워야 한다." 두 부인은 성황의 말을 듣고 읍을 하고 감사하며 절을 하고 물러났다.

얼마 안 되어 두 문인은 그 도사가 해준 이 말을 듣고 반박했다. "이것이야 말로 허튼 소리요!" 두 문인은 이런 인과응보의 이치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해 두 문인은 과연 시험에서 성적이 너무 나빠 자격을 박탈당했고 이 때문에 억울해 하다 죽었다.

3. 운명을 고친 석광




예전에 석광(席匡)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점을 잘 본다는 관상가를 만났다. 그 관상가는 그에게 모 년에 죽을 것이라고 했다. 석광은 그 말을 듣고 매우 우려했다.

나중에 석광이 우연히 다른 사람이 규중에 남녀 간의 추문을 말하는 것을 듣게 됐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대해 단정히 앉아 매우 의분(義憤)한 모습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한 사람은 마음속으로 매우 부끄러워 다시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추문은 그래서 감춰지게 됐다.

관상가가 말한 그해가 됐다. 석광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병이나 무슨 재난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석광은 관직에 올랐고 태보(台輔)까지 이르렀다.

그 관상가는 나중에 석광의 상황을 알고 말했다. "어느 자리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추문을 이야기 하는데 앉아 침묵해 그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을 멈춘다면 이는 말없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석광은 이 방면에서 우리가 배울 모범입니다. 그의 수명이 길어지고 관직이 올라간 것은 바로 신령의 보답을 받은 것입니다."

4. 정선이 실언을 피하다




정선(鄭瑄)은 위인됨이 소박하고 말수가 적었다. 그는 말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크게 떠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의 질투를 일으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 중에 나쁜 일을 한 사람이 그 속에 있을 수 있는데 만일 그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가 비록 말은 않지만 마음속에 유감을 가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관직을 지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관리가 되면 청렴해야 한다!" 그러면 청렴하지 않은 관리가 듣고는 화를 낼 것입니다. 친구에게 "친구가 되면 마땅히 피차간에 솔직하게 왕래해야 한다" 그러면 솔직하지 않은 친구가 듣고는 화를 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고의로 그런 말을 했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적게 하며 얼굴에 기뻐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문제를 묻는다면 그가 묻는 문제에 답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실수를 피할 수 있어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정선이 말하는 것은 처세의 요결을 깊이 터득한 것이다.

- "집복소재지도(集福消災之道)"에서


 

 

인과응보 실록: 남의 말(言)을 훔쳐 목숨을 잃다

작자:정실(程實)



[정견망] 주(周)나라 때 양산(梁山)에서 산사태가 났다. 진(晉)나라 임금이 대부(大夫 관직명) 백종(伯宗)을 불러 산이 무너진 정황을 알아보려 했다.

백종은 조정으로 임금을 보러가는 도중에 어느 마부를 만나 그에게 물었다.

"너는 최근에 무슨 소식을 듣지 못했는가?"

마부가 대답했다.

"들었습니다. 양산에서 산이 무너졌는데 무너져 내린 토석이 강을 막아버려서 물이 흐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임금께서는 이 일 때문에 마침 대부 백종을 불러 만나보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상의하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백종이 물었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가?"

마부가 말했다.

"매우 간단합니다. 임금께서 문무백관을 친히 이끌고 양산에 가서 신령에게 울며 제사를 지내면 강은 흐를 것입니다."

백종이 임금을 알현하자 과연 이 일에 대해 물었다. 백종은 마부의 말대로 건의했다. 임금이 그대로 받아들여 시행했더니 강물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임금은 매우 기뻐하며 백종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제사 지내는 방법으로 이 난제를 해결할 줄 알았소?"

백종이 답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입니다."

공자(孔子)는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난 후 말했다.

"아, 백종 이 사람은 후대가 끊어지겠구나! 남의 좋은 말(言)을 훔쳐 자기의 말로 삼았으니!"

나중 과연 백종은 해를 입어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대부의 지위도 끊겼다.

아! 백종은 그저 다른 사람의 한마디 말을 가로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엄중한 천벌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성과와 소득을 훔치면 더욱 나쁜 보응을 받게 될 것임을 상상할 수 있다!

출처: "집복소재지도(集福消災之道)"
 


인과응보실록: 억울한 옥사로 가뭄이 들다

작자:육진(陸眞)



[정견망] 승상 서평후인 우정국(于定國)은 서한(西漢) 선제(宣帝) 시대 사람이다. 집은 동해군 하비현에 있었다. 우정국의 부친은 "우공"이라고 불렸다. 우공은 한때 현의 옥리(獄吏)를 지낸 적이 있고 나중에 승진해 군(郡)의 옥관부좌로 지냈다. 그는 판결을 공정하게 하고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다스린 적이 없었다. 군에서 법령을 어긴 자가 있으면 우공의 판결을 거치면 감히 사실을 은폐할 수 없었다. 동해군 백성은 우공이 살아있을 때 그를 위해 사당을 만들었는데 "우공사"라고 했다.

동해군에 효부가 있었는데 자녀가 없고 젊어서 과부가 되었지만 시어머니를 공경하게 모시고 매우 근검했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개가시키려고 했으나 그녀는 응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이웃 사람에게 말했다. "나를 매우 공손하게 모시는 이 효성스러운 며느리가 자녀도 없고 과부가 된 지도 오래되고 나는 이미 늙었소. 어떻게 젊은 사람을 이렇게 오래 두겠소?" 얼마 안 되어 시어머니는 목매어 죽었다. 시어머니의 딸은 관부에 가서 말했다. "모친의 며느리가 죽인 것입니다."

관부에서는 며느리를 체포했고 그녀는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사건을 조사하는 관리는 독한 형벌과 고문으로 다스려 효부는 고통을 못 이기고 거짓 죄명을 시인했다.

이 안건은 확정된 후 상급 관부에 보내졌다.

우공(즉 우정국의 부친)은 이 효부가 시어머니를 모신지 십년 동안 효성으로 소문이 났는데 시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태수는 그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우공은 여러 차례 변론했으나 태수의 의견을 바꿀 수 없어 병을 핑계로 관직을 사직했다.

태수는 결국 효부를 사형에 처했고 이후 군에서는 삼년간 가뭄이 들었다.

후임 태수가 가뭄의 원인을 점쳐보고 우공을 찾아 정황을 물었다. 우공은 "그 효부를 죽이지 말아야 했습니다! 전임태수가 억지로 그녀를 사형에 처했기에 대 가뭄이 이곳에 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신임태수는 소를 잡아 효부의 묘에 제사를 지냈다. 태수 이하의 관리는 모두 직접 가서 제사를 올렸다. 그러자 하늘에서는 감응이 있어 즉시 큰비가 내렸고 그해는 오곡이 풍성해졌다. 군의 사람들은 이 때문에 더욱 우공을 존중했다.

우공은 자기의 집을 짓는 목수에게 말했다. "대문을 높고 크게 지어주시오. 내가 판결한 안건은 억울한 일이 없었으므로 나의 후손은 반드시 임금의 봉토를 받는 높은 관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오. 이 대문은 큰 수레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오."

나중에 그의 아들 우정국은 관연 과연 승상이 되어 서평후에 봉해졌다.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과 "한서(漢書) 우정국전(于定國傳)"에 근거함]

 


 

 

인과응보 실록: 사람의 셈은 하늘만 못하다

작자:화한(華翰)

【정견망】

청나라 시대의 작가 증연동(曾衍東)은 자신이 쓴 <소두붕(小豆棚)>에서 다음과 같은 실화를 기록했다.

완평(宛平-지금은 북경 풍대구)에 단유익(單有益)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리대금으로 많은 돈을 벌었으며 아무리 작은 이자라도 사정없이 모두 챙겼다. 우연히 먼 곳에서 오거나 전적으로 급한 돈을 구하러 온 사람이면 고리를 받아도 될 것임을 알고 돈을 빌려주기 전 선이자를 떼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신이 그에게 백원을 빌리면 먼저 30원을 이자로 내야 하니 일단 삼십원을 떼고 70원만 준다. 하지만 계산은 백원을 빌려준 것으로 친다. 갚을 날이 되면 원금과 이자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그곳 사람들은 그를 단주판(單算盤-계산을 잘한다는 뜻)이라고 불렀다. 그와 사귄 사람들 중 손해 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단주판"은 다른 사람의 기물(器物)을 보고 마음에 들면 무슨 수를 쓰든지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말았다. 수법이 치밀하고 지독해 그의 가정환경은 곧 부유해졌다. 그는 좋은 집을 짓고 실내에 골동품을 진열했으며 매우 귀한 몸이 되었다. 아내 하나에 첩을 넷이나 거느렸고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두었다. 또 하녀에, 하인이 끄는 마차를 탔으며 있을 것은 모두 다 있어 아주 의기양양했다.

어느 날 단주판이 마당에서 낮잠을 자는데 꿈에서 푸른 옷을 입은 관리가 커다란 주판을 들고 와서 탁자위에 놓는데 주판 알은 모두 오얏만큼 컸다. 주판의 가로목에는 백, 십, 분, 양 등의 숫자가 없었으며 대신 처, 첩, 자, 녀, 재산, 농토 등의 글자가 씌어 있었다.

그 관리가 말했다. "너는 사람들의 재물을 약탈해 이렇게 큰 재물을 모았다. 하늘에서 셈을 제대로 하고자 한다. 악산(惡算)으로 당신의 각산(刻算)을 벌할 것이다."(그 뜻은 하늘에서는 당신의 장부를 정리하여 무수한 차례의 고리대금을 단번에 청산하려 한다는 뜻)

그러면서 그 관리가 손으로 그 주판의 알을 탁탁 튕기자 모든 알이 다 움직였다. 모두 하나씩 지워지고 다만 "여(女)"자 한자 아래에 한 알의 주산 알만 남았다. 관리는 셈을 끝내고 나서 그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사 이 여자를 없애더라도 아직 당신의 죄악을 다 갚지 못할 것이오. 잠시 그녀를 남겨두는데 이후에 다시 와서 나머지 빚을 받아갈 것이오!"

관리는 그 커다란 주판을 들더니 "단주판"에게 보여줬는데 단주판이 갑자기 깨어났다.

이때부터 단가에는 전염병이 크게 일어나더니 전 가족이 다 죽었고 딸 하나만 남았다. 그녀는 병이 들지 않았으나 창기가 되었다. 단주판 자신은 죽음을 면했지만 집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거지가 되었다.

이 글은 <소두붕>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문장의 제목이 <큰 주판>이다. 이 큰 주판이 가리키는 것은 자연히 그 관리가 가져온 하늘의 큰 주판이다. 단씨가 늘 쓰던 주판은 사리사욕을 위한 작은 주판일 뿐이다. 사람의 셈은 하늘의 셈보다 못하다. 이는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내가 직접 목격한 현세현보

작자: 탁진(濯塵)

【정견망 2010년 5월 4일】 내가 12살 되던 해, 즉 1947년의 일이다. 우리 마을에 갑자기 많은 병사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들을 현대대(縣大隊 역주: 중공이 조직한 민병대)라고 불렀다. 우리 마을은 아주 구석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병사를 본 적이 없었다.

소위 현대대는 바로 현에서 새로 징병된 민병(民兵)으로 농촌에서 선발해 이곳에 주둔한 사람들이었다. 아이의 눈에는 이것도 신기한 일이어서 늘 접근하고 싶어했다. 하나둘씩 멀리서 보다가 점점 그들에게 가까이 갔고 심지어 그들의 숙사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대다수 매우 선량하다고 느꼈다. 다만 몇몇 사람은 좀 흉악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결코 자원하여 병사가 된 것이 아니었고 강제로 잡혀 어쩔 수 없이 온 사람이었다.

한번은 그들이 대회를 열어 전체 병사들은 모두 운동장에 앉아 있고 위에서 교도원이 훈화를 했는데 대체적인 뜻은 때가 되면 전선으로 나가 싸울 준비를 해야하니 태도를 표명하라는 것이었다. 교도원이 물었다. "너희들은 전선으로 가서 싸우겠는가? 아니면 후방에 남아 지키겠는가?" 그러자 절대 다수가 대답했다. "후방에 남아 지키겠습니다."

단 한사람만이 "전방이나 후방이나 마찬가지니 분부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많은 사병들은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거짓 열성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이 전선이 어디 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중화민국 정부 군대와 싸우는 것으로 바로 내전이었다.

평소에 그들은 백성들과 왕래가 있었는데 백성들에게 가축을 빌린다던지 맷돌을 빌린다던지 하는 일이 있었다. 한번은 그들이 일부러 작은 당나귀를 빌려간 후 일을 너무 많이 시켜 당나귀가 쓰러졌다. 당나귀가 오래살기 힘들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당나귀 주인과 상의해 당나귀를 잡아 사병들의 생활을 좀 개선하고자 했다.

입으로는 "3대규율이니 주의할 8가지" 등을 외치지만 사실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수작이었다. 또 한번은 어느 농민을 잡아 들보에 매달아 놓고 그 집의 가축이 대대의 농작물을 먹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마을의 팔로군(八路軍)의 규율이었다.

이제 본론을 말하자.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에 지성묘(至聖廟)가 있었다. 사당 내에는 많은 동으로 된 불상이 있었고, 공자와 그의 제자들도 있었다. 또 관우(關帝라고 한다) 그의 사자인 주창(周昌), 지장왕, 현무대제, 태상노군, 팔선 등등 많은 분들이 모셔져 있었다.

현대대가 오기 전까지 이곳에는 마을 사람들이 올리는 분향이 끊이지 않았지만 대대가 온 후 사당을 부수기 시작했다. 조각상은 전부 철거한 후 농가의 마차를 징발해 모두 실어서 현성으로 보냈다. 이때 2개의 불상은 수레에 싣지 못해 사찰밖에 버려졌다. 두 병사가 상의하더니 이 불상을 폭파하기로 했는데 나머지 사병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제지하지도 않았다.

이 두 사병은 하나씩 맡아 폭파하기로 했다. 그들은 두개의 수류탄을 묶어 빈 동상 속에 던져 넣고 수류탄의 뇌관에 긴 끈을 묶어 다른 한쪽은 손으로 불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고 와서 준비! 하고 소리쳤다. 곧 폭발음이 들렸고 화약 냄새가 온통 퍼졌다. 방금까지 건재하던 불상은 파편으로 사분오열이 되었다.

당시 우리 어린이들은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해 멀리서 신나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뒤에서 걱정했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게 된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밤이 되자 그 두 병사는 모두 괴상한 병에 걸렸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나고 아파서 떼굴떼굴 굴렀다. 손발이 다 가렵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으며 멈추지 않았다. 어떤 병사가 바깥에 나가서 무당한데 물어보니 불상을 폭파한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두 병사는 해가 밝기도 전에 비명횡사했다.

이런 종류의 현세현보(現世現報)는 내가 어렸을 때 인근 마을에서 늘 나타났었다. 하지만 모두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다. 유독 이 사건만 내 주위에 일어난 것이며 지금까지 눈에 역력하다.

1949년 이후 절이 모두 다 파괴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늘 동냥하던 노스님이나 도사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아직도 종교에 관한 일이나 인과응보의 일을 듣는 사람은 큰일을 만난 것처럼 전전긍긍한다. 백성들에게 신앙자유와 인과를 믿지 않도록 한 현실은 이렇게 조성된 것이다. 유구한 신전문화읮 전통을 지닌 중화민족의 큰 비애가 아닐 수 없다.

 


 

 

불가고사: 7차례 창에 찔려 묵은 빚을 갚다

작자: 대법수련생
 

【정견망 2010년 4월 21일】

청나라 순치(順治) 원년에 있었던 일이다. 안휘성 청양(青陽)에 오육방(吳六房)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의 하인 중에 오모(吳毛)가 있었다. 오모는 줄곧 진지하고 성실하게 부처님을 믿었으며 계율을 지키고 선을 닦았다. 그는 또 매일 불호(佛號)를 외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한 와중에 일부 난병(亂兵)들이 강을 건너왔다. 오 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떠났고 오모만 홀로 남아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오모는 불행히도 난병들이 휘두른 창에 7차례나 찔렸다. 나중에 그의 동생이 달려와 그를 살펴볼 때에야 가까스로 의식이 돌아온 오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업장(業障)이 많아 장차 7차례에 걸쳐 돼지의 몸으로 태어나 고통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재계하고 염불한 힘으로 7차례 창에 찔리는 것으로 과거에 맺었던 원한들을 풀었으니 이제 곧 서방정토로 갈 것이다!" 말을 마친 후 그는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며칠 후 오육방이 비몽사몽간에 공중에 뜬 신인(神人)을 보았다. 앞뒤로 당번(幢番 신불 앞에 세우는 깃발)을 세우고 존엄하기 그지없었다.

신인은 그에게 "저는 오모입니다. 지금 인연이 있어 천계(天界)에 가는데 지나는 길에 당신께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오육방은 그가 이미 아주 좋은 곳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는 곧 그의 초상화를 그려 더욱 공경하게 예를 올렸다.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믿었던 오모는 일곱 차례나 창에 찔려 사망했다. 속인이 보기에 그의 죽음은 비명횡사한 참혹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의 진상은 도리어 일곱 차례 창에 찔리는 형식으로 미래 일곱 세(世)에 걸쳐 받아야 할 고통을 없애버린 것이다. 아울러 그의 생명이 위치한 층차도 높아졌으니 사실은 아주 좋은 일이다.

인간세상에서 중생의 인연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 대법제자로서 고통을 당할 때는 반드시 바른 믿음이 확고하다면 세간에서 어떤 형식으로 표현되든지 막론하고 최후의 결과는 반드시 좋을 것이다.

 

  


 

 

인과응보 실록 - 항복한 군사들을 살육한 백기는 만 겁에도 용서할 수 없어

작가 : 샤오후이(晓辉)

[정견만 2008년 3월 19일]

진조 대장 백기는 매번마다 군대를 통솔하여 출정할때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한번은 조나라와의 전투에서 그는 기만수단으로 투항한 군사 40만 명을 살육하여 시체를 산같이 쌓았다. 죄악이 하늘에 사무쳐 얼마 안 지나 대장 백기는 진나라에서 살해당하고 자손들까지 멸족되었다.

수나라 개황년간에 태부사승 조원창이 죽었다가 부활한 후 그가 음간에서 본 정경을 이야기했다. 주무제는 세 갈래의 집게에 묶여 한 방안에 갇혀 있었다. 주무제가 조원창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인간세상으로 돌아가면 수나라 황제에게 나의 갖가지 죄행은 모두 조사 처리되었다고 알려주시오. 오직 불법(佛法)을 멸한 죄업이 너무나 중하다. 감면은 불가능한 것이다. 나를 위해 공덕비석을 세워 내가 지옥에서 탈리하도록 되길 희망한다." 조원창이 죽음에서 벗어난 후 똥구덩이에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이 나왔길래 누군인가고 물어니 지옥의 옥리(冥吏)가 답하는 말이 "진나라 대장 백기다"라고 했다.

당나라때 우뢰가 한 마리 소를 쳐죽였는데 소의 몸에는 "백기"라는 글자가 있었고, 명조때 우뢰가 한 마리의 지네를 쳐죽였는데 몸에는 "백기"라는 두글자가 있었다. 백기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가히 알 수 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불법(佛法)을 멸한 것은 죄업이 모두 큰 것이다. 백기와 주무제의 말로는 오늘날 악인들의 경종인 것이다."

(자료출처 : "태상감응편")


 


 

 

<<속고승전·지현(智炫)전>>에 보면 지현(智炫)이 변론에서 도사 장빈(張賓)을 힘껏 꺽어 버리자 무제는 도교의 단점을 덮어두고 불교가 깨끗하지 않다며 배척하였다. 이에 지현은 "도교의 부정(不淨)이 더 심합니다"라고 답변하였다.

북주 무제는 도사들이 힘써 다투지 않았다면서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불교와 도교 두 종교를 금지한다. 경전(經典)과 불상(佛像)을 모두 없앨 것이며 승려와 도사를 모두 평민으로 환속시킨다." 이 조서는 반포된 직후부터 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불상을 녹이고 경전을 불태우며 승려들을 구타하고 탑을 파괴하고…… 보찰(寶刹) 가람을 모두 속인의 주택으로 삼으며 승려들은 흰옷을 입혀 평민으로 환속시킨다."

이때 촉신주(蜀新州) 과원사(果愿寺)의 승려인 승맹(僧猛)은 수도에 가서 무제와 멸불정책의 부당성을 논(論)하였고, 정애(靜 ) 법사(法師)도 또한 무제를 직접 만나 멸불정책의 잘못을 지적하였으나 모두 밖으로 축출되었다. 의주(宜州)의 승려인 도적(道積)은 다른 7명과 함께 단식하여 목숨을 끊었는데 그 사적(事跡)이 아주 장렬하였다.

건덕(建德) 6년(577년)에 북제(北齊)를 멸망시킨 이후 북주의 무제는 멸불정책을 원래 북제(北齊)의 영토까지 확대 실시하였다. 무제는 친히 북제의 수도인 업성( 城, 지금의 하북성 임장현(臨 縣) 남서쪽 20km 지점 장수( 水)에 인접해있다)에 가서 승려들을 궁전에 불러들인 후 폐불령(廢佛令)을 내려 원래 북제 국경내에서도 멸불할 것을 명령했다. 사원이 훼멸될 위기에 처하였으나 참가한 500여명의 승려들은 모두 머리들 숙이고 명령을 듣고 있었는제 오직 혜원(慧遠) 화상만이 소리를 높여 항변하였다.

"폐하! 지금은 권력을 믿고 계시지만 삼보(三寶, 불법승(佛法僧)을 말한다)를 파괴하시면 곧 사악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아비지옥(阿鼻地獄, 불교에서 말하는 18층 지옥의 이름이다)에 떨어지게 되는데 폐하께서는 두렵지 않으십니까?"

무제가 이 말을 듣고는 매우 화가 나서 두 눈을 부릅뜨고 화상을 바라보면서

"짐은 단지 백성들이 편안하다면 지옥의 고통이라도 사양하지 않겠다."

혜원화상이 반박하면서 "폐하께서 사법(邪法)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여 지금 고업(苦業)을 짓고 있으니 백성들도 모두 폐하와 같이 지옥에 떨어질 터인데 그들이 어디에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무제는 이 권고를 듣지 않고 폐불정책을 원래 북제땅까지 확장하여 실시하였다. 결과적으로 4만여 개의 사찰이 모두 왕공(王公)들의 집으로 하사되었고 일체 경전이나 불상이 불더미 속으로 들어갔다. 사원의 재산은 모두 관(官)에 귀속되었으며 승려들은 칙령에 의해 평민으로 환속되었다.

오래지않아 무제는 몸에 악질(惡疾)을 앓게되어 전신이 문드러지다가 죽었다. 새로운 황제인 주정제(周靜帝)가 등극한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황제가 양견(楊堅, 수(隨)나라를 세운 개국황제이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북주(北周)는 이로써 멸망하였다.

수나라 황제가 새로 나라를 세운지 11년째 되던 해에 대부시승(大府寺丞) 조문창(趙文昌)이 갑자기 죽었는데 오직 심장부위에만 온기(溫氣)가 남아있었다. 집사람들이 감히 염(殮)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참 후에 다시 소생하였다. 그는 소생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처음에 죽었을 때 어떤 사람이 나를 염라대왕에게 끌고 갔는데, 염라대왕이 내게 "너는 일생동안 무슨 좋은 일을 했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저는 집안이 어려워서 특별히 공덕(功德)을 세운 일이 없고 단지 매일 근면하게 불경을 묵념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이 말을 듣고는 합장을 하며 머리를 숙이고는 찬양하면서 "아주 훌륭하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염라대왕은 사람을 파견하여 나를 남문(南門) 밖으로 나가게 해주었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무제(武帝)가 문간방안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3겹이나 되는 족쇄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는 내게 "당신은 우리나라 백성 같은데 잠시 이곳에 왔다가면 내가 할말이 있소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즉각 절을 하고 무제를 배알했다.

무제가 "나를 아는가?"하고 묻기에

"저는 과거에 폐하의 시위(侍衛)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무제는 곧 "과거에 내 신하였다면, 지금 돌아가서, 나를 대신하여 황제에게 말해주게나. 내가 지은 허다한 죄에 대해 모두 능히 명확히 설명할 수 있었지만 단지 불법을 없앤 무거운 죄만은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바라건데 수나라 황제께서 나를 위해 자그마한 공덕을 세워주셨으면 하네."라고 말했다.

남문 밖을 나가기 위해 기다리고있는데 한사람이 똥통 속에 머리만 남긴 채 잠겨있는 것을 보았다. 길가의 사람에게 물으니 바로 진(秦)나라의 대장이었던 백기(白起)가 이곳에 잡혀와서 아직 죄를 다 갚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문창은 집에 돌아온 후에 곧 부활하였다. 이에 곧 황상(皇上)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설명 드리니 황제가 천하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사람마다 돈을 약간씩 내어 무제를 초도(超度)하기 위한 법사(法事)를 베풀 자금을 마련하게 하였다. 당시 3일 동안이나 큰 제사를 치렀는데 이 일이 수사(隨史)에 기록되어있다.

후기: 지금 중국대륙에서 고금(古今)의 모든 고문방법을 총 동원하여 법륜불법(法輪佛法) 수련생들을 박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단지 18층 지옥뿐이 아니라 몇 백층, 몇 천층, 만만(萬萬)층 지옥에 떨어져도 지나치지 않다.

자료내원 : 《태평광기(太平廣記)》, 《구도석도(九都釋道)》, 《중국에 영향을 끼친 100가지 사건(影向中國的100次事件》 등을 참조하였다.

 


 

 

 

 

윤회이야기: 착한 말이 현령으로 환생 

작자: 길광우(吉光羽) 

[정견망] 소흥(紹興)의 여조렵(呂兆鬣)이란 사람이 과거에 급제한 후 섬서(陝西) 한성(韓城)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시독학사(侍讀學士 벼슬이름) 엄동우(嚴冬友)는 그의 좋은 친구였다. 

한번은 대화 도중 엄동우가 물었다. “여공의 이름이 조렵인데 무슨 뜻으로 붙인 이름인가요?” 

그러자 여공이 대답했다. 

“나는 전생에 북쪽 변방에 통주(通州) 진가(陳家)에서 기르는 말이었으며 희끗희끗한 색이며 갈기가 세자나 됐습니다. 진가가 나를 길렀으니 은혜가 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자기의 전생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날 마굿간에 있다가 진씨 부인이 아이를 낳는데 사흘이 지나도 낳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친척이 “난산이라 어느 집 산파를 불러와야만 아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집은 삼십 리 밖에 있는 마을이라 한 시진 반만에는 돌아올 수 없으니 어떻게 할까요?” 

다른 친척이 말했습니다. “얼른 사람을 시켜 긴 갈기 말을 타고 가면 사람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치자 과연 어느 늙은 하인이 와서 나를 탔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평생 주인집 콩이나 사료를 먹었는데 오늘 여주인이 위급하니 이것이 바로 내가 은혜를 갚을 때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는데 도중에 깊고 험한 계곡을 만났습니다. 양 절벽 사이가 1장(丈-3.3m)이 넘었는데 만약 내가 돌아간다면 반드시 시간을 지체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인을 구하려는 마음이 절박해 몸을 날려 뛰었으나 뜻밖에 계곡으로 떨어져 뼈가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하인은 내 등에 타고 있었기에 직접 벽에 부딪히지 않아 죽음을 면했지요. 

내가 죽은 후 곧바로 흰 수염을 가진 노신선을 보았는데 그는 나를 관아로 데리고 갔습니다. 새 깃털로 장식한 모자를 쓴 신선이 당상에 앉아 있다가 흰 수염의 노신선을 맞이하며 말했습니다. “이 말은 매우 선량한 마음이 있군! 사람도 이런 마음이 있기 어려운데 하물며 축생이라니!” 그 신선은 공문을 쓰더니 그 위에 몇 글자 전자체(古篆字) 고문자를 써서 사람을 시켜 공문을 내 발굽에 매달며 분부했습니다. “그를 좋은 곳으로 보내라.” 

그리고 나는 점점 올라갔는데 나도 모르게 윤회로 진입했으며 소흥 여(呂)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1년만에 머리카락이 반으로 나뉘어 마치 말갈기가 늘어진 것처럼 됐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조렵((兆鬣)이라고 붙인 것입니다. 

- 청나라 원매(袁枚)의 ‘자불어(子不語)’에서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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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저지른 일의 갚음은 실수로 받는다.


부처님이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일이다.
한 노인은 일찍 아내를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가난하고 외롭게 살았다.

그는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고,

출가하려고 부처님을 찿아가
그의 뜻을 말했다.

부처님은 그를 가엾이 여겨 출가를 허락하였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비구가 되고

아들은 어리기 때문에 사미승이 되어,

항상 아버지와 함께 마을로 들어가 걸식하고 저물게 돌아왔다.

그날도 그들은 먼 마을에까지 가서 걸식을 하느라고

해가 저물어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버지는 노쇠했기 때문에 걸음이 느렸다.
아들은 숲속에서 사나운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잔뜩 겁이 났다.

급히 아버지를 부축하여 밀고 가다가

그만 발을 헛딛어 아버지를 땅에 넘어뜨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길로 죽고 말았다.

그러니 아버지는 아들에 의해 죽은 셈이었다.
사미 혼자서 울면서 돌아오는 것을 보자

비구들은 그에게 물었다.
" 너는 아침에 스승(아버지)과 함께 걸식하러 나가더니

어째서 스승과 같이 오지 않고 홀로 돌아오느냐?"

사미는 사실대로 스님들에게 말했다.

스님들은 그 사미를 몹시 꾸짖었다.
"너는 아주 못된 놈이다.

제 손으로 밀쳐 스승을 죽게 하다니."

그들은 곧 부처님께 이 일을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그 스승이 죽었지마는 그것은 사미의 악의에서가 아니니라."
하시고, 그의 아들인 사미를 불러 물으셨다.
" 너는 네 스승을 밀쳐 죽였느냐?"


사미는 울면서 대답했다.
" 그렇습니다. 하지만 악의에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의 말을 시인하시고 말씀하셨다.
"사미여, 네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너한데는 조금도 악의가 없다.


지나간 세상에서도 그와 같이 악의없이 죽인 일이 있었느니라."
과거 무량 아승지겁 전에 부자끼리 한 곳에 살고 살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는 병이 났었는데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면

파리가 이마에 날아와 자꾸 귀찷게 하였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시켜 파리를 쫓게 하고 잠을 좀 청하려고 하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아 파리를 쫓았지만,

파리는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붙고 하였다.

아들은 귀찮게 구는 파리 때문에 화가
나서, 번쩍 일어나 큰 몽둥이를 들고 파리를 내쫓았다.

그러다가 그만 잘못하여 아버지의 이마를 때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길로 죽었다.

그러나 그때는 나쁜 마음으로 일부러 죽인 것은 아니었느니라.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그때의 그 아버지는 오늘의 사미요, 그때
몽둥이로 아버지의 이마를 쳤던 아들은

오늘 길에서 넘어져 죽은 노비구이니라.

그때도 고의가 아닌 실수로 죽였기 때문에

오늘의 갚음도 실수로 된 것이다."

- 현우경 아오살부품 / 賢愚經 兒誤殺父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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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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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세인과[三世因果]경 *


                                *   부처님 말씀 *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다운 삶을 살기위해서는
많은 복을 닦아야함은 더 설명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복을 닦고 지어도
갖은 고생을하는 사람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전생에 지은 업보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쁜 짓을 수없이 하는데도
벌을 받기는커녕 잘 사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전생에 쌓은 공덕이 남아서 입니다.

법구경에 말씀하시길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누린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익은 때에는
악한 사람은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
선의열매가 익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은 때에는
선한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전생과 내생에 대한 삼세 인과경을 설하여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복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欲知前生事 今生受自是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欲知未來事 今生作自是
욕지미래사 금생작자시

전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생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음 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네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라.
하였습니다.

인과란 현생도 미래생도 영겁에도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

삼세인과경[三世因果經]

한때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고 계실 때
아난존자가 자리로부터 일어나 부처님께 절을 올린다음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착하지 못한 짓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삼보를 공경하지 않고 부모에 불효하며
삼강과 오륜이 무너지고 마음들이 사악하여
남을 해치고 살생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부자와가난한 사람이 뒤 섞여 고르지 아니하오니
어떠한 업보를 지었기에 이러하나이까?
바라 건데 세존께서는 자비로서
저희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세히 말씀하여 주옵소서.
하고 설법 듣기를 간절히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와 1천2백5십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참으로 착 하도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법해 주리니 청정한 마음으로 잘 듣도록 하여라.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잘살고 못살고 귀하고 천하며
수없는 고통을 받고 한량없는 복을 누리는 것은
모두가 전생에 지은 인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 인과란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 먼저 부모에 효도하여야 하며
* 삼보를 받들고 공경하고
*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사랑하며
* 열심히 보시를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되나 니라.

1. 금생에 귀한 벼슬자리에 오르는 사람은
   전생에 불상을 조성하여 모시고,
   부처님께 개금불사를 한 공덕이니라.

2.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잘 사는 사람은
   전생에 다리 놓고 길 닦은 공덕이니라.

3. 능라금수 좋은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은
   전생에 스님들께 옷 보시 많이 한 공덕 이니라.

4.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한 사람은 전생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과 음식을 많이 베푼 공덕이니라.

5.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전생에
   돈 한푼 밥 한그릇 남에게 베풀지 않은 탓이니라.

6. 좋은 집 큰 집에 사는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께
   시주 공양 많이 하고 남을 도와준 공덕 이니라.

7. 복록이 풍족하고 덕이 많은 사람은 전생에 절 짓고
   부처님 모신 공덕이니라.

8. 얼굴이 잘생기고 미모가 뛰어난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께 신선한 꽃 공양 올린 공덕이니라.

9. 총명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은 전생에 책을 많이 읽고
   부처님 경전을 많이 읽고 널리 보급한 공덕이니라.

10.아름답고 착한 여자를 아내로 얻은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께 많은 사람을 귀의 시킨 공덕이니라.

11.부부가 백년을 해로 하는 사람은
   불자간을에 화합 시키고 형제 친척에 화목한 공덕이니라.

12.부모에게 사랑 받으며 함께 사는 사람은
   전생에 혼자된 사람을 잘 돌봐주고 공경한 공덕이니라.

13. 부모 없이 외롭고 힘들게 사는 사람은
    전생에 인정이 없고 사람을 미워한 과보니라.

14. 자손에게 효도 받고 복되게 사는 사람은
   전생에 남에게 친절하고 생명을 사랑한 공덕 이니라.

15. 자식이 없거나 손이 없는 사람은
   전생에 생명을 함부로 많이 죽인 과보니라.

16. 금생에 장수하는 사람은 전생에 산목숨을
    많이 사서 방생한 공덕이니라.

17  금생에 수명이 짧아 오래 살지 못하는 사람은
    전생에 산목숨 많이 죽이고 생명을 해친 과보니라.

18. 금생에 홀아비 신세로 외롭게 사는 사람은
    전생에 남의 아내와 간음한 과보니라.

19. 금생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는
    전생에 남편을 우습게 여기고 천대한 과보니라.

20. 하인이나 종노릇 하듯 천한 사람은
    전생에 남을 무시하고 천히 여긴 탓이니라.

21. 두 눈이 밝고 또 밝은 삶을 누리는 사람은
    전생에 인등불을 많이 밝힌 공덕이니라.

22. 눈이 멀고 보지 못 하는 사람은
    전생에 남의 재산 사기치고 많이 속인 과보이니라.

23. 귀머거리로 태어난 사람은
    전생에 부모나 부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한 과보니라.

24. 꼽추로 태어난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께 절하는 사람을 비방하고 거만부린 과보니라.

25. 팔이 없거나 손이 불구인 사람은
    전생에 남의 물건을 많이 훔치고 손버릇 나쁜 탓이니라.

26. 다리가 없거나 저는 사람은 ]
    전생에 도로 막고 올가미로 짐승 잡은 탓이니라.

27. 금생에 소나 말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남의 빚을 갚지 않고 떼먹은 과보이니라.

28. 돼지나 개로 태어나게 된 것은
    전생에 남을 속이고 저 혼자만 욕심 부린 과보니라.

29. 병이 많아 고통을 받는 사람은
    전생에 다른 이에게 매질을 많이 한 과보니라.

30. 병이 없고 항상 건강한 사람은
    전생에 병든 사람을 보살펴 주고 간병한 공덕이니라.

31. 감옥살이 자주하는 사람은
    전생에 남의 사정보지 않고 악한일 많이 한 과보니라.

32. 독약을 먹고 죽은 사람은
    전생에 냇물 막고 독약 풀어 고기 잡은 과보니라.

33. 난장이로 태어난 사람은
    전생에 불경 책을 막 돌리고,다른 사람을 얕잡아 본 과보니라.

34. 귀가 멀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전생에 남의 말을 무시하고, 염불소리를 비방한 과보니라.

35. 위장이나 피부병 등이 심한 사람은
    전생에 남의 가슴 아프게 하고 버릴 음식 남 준 과보니라.

36. 수염이나 머리털이 없는 사람은
    전생에 개나 염소 돼지 토끼 등의 가죽을 볏 기고
    털을 뽑아 생으로 죽인 과보니라.

37. 남에게 존경을 받고 덕망이 놓은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 전에 절을 많이 올린 공덕이니라.

38. 부부 화합하고 자손이 잘 되는 사람은
    전생 부처님 법을 받들고 선근인연 심은 공덕이니라.

39. 목소리가 아름답고 감미로운 삶은
    전생에 염불독경 많이 하고
    듣기 좋은 노래 많이 부른 공덕이니라.

40. 의식주가 풍족하고 복된 삶을 누리는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께 시주공양 많이 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보시한 공덕이니라.

41. 자식들에게 학대 받는 부모는
    전생에 부모를 학대하고 자식을 돌보지 않고
    다른 여자나 남자와 놀아난 과보이니라.

42. 방탕하고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은
    전생에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부부싸움 많이 하고
    욕설 함부로 한 과보니라.

43. 좋은 음식 눈앞에 두고 속병 때문에 먹지 못하는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 공양 먼저먹고
    남 잘되는 것 배 아파한 과보이니라.

44. 벙어리로 태어나거나 식도나 목병을 앓는 사람은
    전생에 남 헐뜯고 악담한 과보이니라.

45. 성불구의 몸이 되어 고통 받는 사람은
    전생에 남의 여자나 남자와 불륜하고 겁탈한 과보니라.

46. 금생에 참변이나 천재지변으로 죽는 사람은
    전생에 남의 집에 불 지르고
    총과 칼로 많은 사람 죽인 과보니라.

47. 혀를 두개 가진 간사한 뱀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남의 말을 많이 하고 이간질한 과보니라.

부처님께서 삼세인과경을

설해 마치시고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다.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오늘 선행을 하고 복을 지으면
언제 어디서도 안정을 얻고 사람들의 공경을 받으리라.
만가지업이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이니 고통을
받은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인과를 믿지 않으면 반드시 무서운 과보를 받으리라.
멀리는 자손에게 있고 가까이는 자기 몸에 있으리라.

만약 전생의 인과법을 묻는 자가 있거든
동서고금의 복되게 잘 사는 사람과
빈천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라.

만약 후세의 인과를 묻는 자가 있거든
금생에 질투하고 악독한 사람을 보라.
그는 반드시 죽어서 뱀이나 소와 말과 같은
축생 보를 받고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라.

중생들이 지은 인과를
말로 다 하자면 끝이 없으나 간단히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천이백오십인과 하늘의 천룡팔부 호법신장과
일체생령이 모두 크게 기뻐하며
신수봉행하기를 맹세하고 물러갔다.

이 삼세인과경은 한권의 책자로 이루어져 있으나
원문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쉽게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요점만 간추려서 정리하였습니다.

      ***보살계 수계식 법문 중에서***

                   글 * 법 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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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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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금탕편(佛法金湯編)》 제11권에는 송나라를 건국한  초대황제인 태조 조광윤과 마의 화상과의 대화가 실려 있다.

 

중국 송나라(송나라:960~1279)의 창시자이며 초대 황제(960~976 재위)인  태조 조광윤은 전에 후주(後周)의 금군 고위 장교로 있을 때 후주 세종(世宗) 시영(柴榮)이 불교를 금지하고 보살의 동상을 녹여 화폐를 주조하는 것을 보고 몰래 마의 화상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자고이래로 멸불(滅佛)한 황제가 있습니까?”

마의가 대답했다. “하필 고인의 일을 물을 것 있습니까? 세종의 가족이 곧 보응을 받는 것을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조광윤이 물었다. “주상께서는 총명하여 현인에게 일을 맡기고 밤낮 노력하며 부지런히 힘쓰며 천하 통일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당태종과 같은 풍모가 있는데 천하는 언제쯤 평안해질까요?”

마의 화상이 말했다. “갑자년이 되면 천하가 안정될 것입니다.”

조광윤이 물었다. “고대 제왕이 불법(佛法)을 훼멸한 것과 주나라와 비교하면 결과가 어떻습니까?”

마의가 말했다.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가 불상과 절을 부수고 불경을 불사르며 승려들을 묻어 죽인 적이 있습니다. 그는 7년 후 환관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그의 부자 모두 불행하게 죽었습니다. 북주(北周)의 무제(武帝)는 절과 경전을 훼멸하고 스님을 강제 환속시킨 적이 있습니다. 얼마 후 온몸에 악질이 돋고 전신이 썩어 죽었는데 향년 겨우 36살이었고 3년이 안 되어 나라도 망했습니다. 당 무종(武宗)이 절을 부수고 멸불했을 때에도 그해에 단약에 중독되어 사망했는데 향년 불과 32살이었습니다. 이후 황소의 난이 일어나면서 당나라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조광윤이 말했다. “장기간 나라가 혼란해 백성들은 전쟁을 싫어합니다. 불법을 훼멸함은 국가의 복이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의가 말했다. “이미 흰 기운의 징조가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성스럽고 영명한 황제가 나타날 것이며 그 황제를 따라 불법도 흥성해지고 또 무궁하게 전해질 것입니다. 부디 제 말을 잘 기억하십시오.”

과연 마의 화상의 말대로 주 세종은 멸불 후 4년 만에 폭사했고 후주 역시 조광윤에 의해 소멸되었다. 조광윤은 송나라의 개국 황제가 된 후 마의 화상의 당부를 기억해 절을 중건하고 사원에 많은 전지를 내렸다. 또 불법을 널리 알려 나라가 안정되고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불법도 따라서 흥성해졌다.

이것이 중국 역사상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멸불(滅佛) 사건이다. 멸불을 시행한 네 황제는 모두 악보(惡報)를 받았으며 결국 아주 처참했다. 정상적으로 사망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도 멸망하거나 전란이 발생했다. 이 네 명의 황제가 인간세상에서 받은 악보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사후는 어떠했을까? 고서에는 북주 무제 우문옹의 사후에 대한 기록만 있을 뿐 다른 세 사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남북조 시대 북주(北周)와 북제(北齊)에는 불교가 매우 성행했다. 북주의 무제 우문옹은 정권을 맡은 후 이렇게 생각했다. ‘출가인은 재산이 없고 농사도 하지 않고 세금도 바치지 않으니 국가의 재정 수입이 감소되며 천하통일의 대업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불교 도교를 금지하라. 경전과 불상을 모두 없애고 사문, 도사를 모두 환속케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발표된 후 즉시 시행되었다. 이때 적지 않은 승려들이 서울로 들어가 법을 수호했으며 무제를 찾아가 멸불정책은 잘못임을 간했으나 모두 쫓겨났다. 서기 577년 무제는 북제를 멸망시킨 후 불교를 없애는 명령을 반포해 원래 북제에 있던 불교를 전부 멸하고 사원을 모두 파괴했다.

당시 많은 승려들이 감히 항의조차 하지 못했지만 유독 혜원화상만은 무제의 악행에 대해 소리 높여 항변했다. “폐하께선 지금 왕의 힘으로 삼보(불법승)를 파괴하시는데 이는 나쁜 짓이며 아비지옥(18층 지옥)은 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폐하께선 안녕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무제는 이 말을 듣자 화가 나서 소리쳤다. “백성들이 즐거울수만 있다면 짐은 지옥에 들어가는 고통도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혜원이 반박하며 말했다. “폐하께선 사법(邪法)으로 사람을 다스리며 현재 고통스런 업을 심고 있습니다. 백성들도 폐하와 함께 지옥에 떨어질 텐데 어디서 즐거움을 얻겠습니까?”

마침내 무제는 권고를 듣지 않고 원래 북제 경내에서 대대적인 멸불정책을 실시했다. 결과 4만여 곳의 절에서 모든 경전과 불상이 불에 탔고 사원의 재산은 관에 몰수 되었으며 승려들은 모두 강제로 환속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제는 악질에 걸려 온몸이 썩어가며 죽어갔다. 3년이 안 되어 수문제 양견이 북주를 멸망시키고 수나라를 세웠다.

<법원주림>에 다음과 같은 사건이 기술되어 있다. 수나라 개황 11년 대부사승 조문창이 갑자기 죽었는데 유독 가슴에만 약간의 온기만 있었다. 가족들이 감히 입관하지 못하고 있는데 얼마 후 그는 살아났다. 사람들이 놀라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조문창은 식구들에게 말했다. “내가 처음 죽었을 때 어떤 사람이 나를 끌고 염라대왕 앞으로 갔다. 염라대왕이 내게 ‘너는 일생동안 무슨 복덕을 지었느냐?’하고 묻기에 내가 대답했다. ‘저는 가정이 가난해 공덕을 세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다만 매일 <금강반야경>만 외웠습니다.’ 염라대왕이 내 말을 듣더니 칭찬하며 말했다. ‘좋군, 네가 <금강반야경>을 읽은 공덕은 매우 크오.’

염라왕은 즉시 사람을 시켜 나를 데리고 가더니 창고를 뒤져 금강반야경을 꺼내왔다. 나는 <금강반야경>을 염라왕 앞에 받들고 섰다. 염라왕은 한 사람에게 경을 들고 서쪽에 서 있으라고 하고 나를 동쪽에 서게 하고는 외우게 했다. 나는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웠다. 염라대왕은 매우 기뻐하며 사람을 시켜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람을 시켜 나를 남쪽 문으로 나가게 했는데 문 입구에 도착하자 무제가 옆의 방에서 삼중으로 족쇄가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를 소리쳐 불렀다. ‘그대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오. 잠시 이리로 좀 와 보시오. 내 할 말이 있소이다.’ 그래서 나는 즉시 가서 만났다.

무제가 말했다. ‘나를 알아보겠소?’


내가 말했다 ‘저는 전에 폐하의 시위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무제가 말했다. ‘그럼 나의 과거 신하로군. 그대는 집에 돌아가 수나라 황제에게 상주해주게나. 내가 지은 많은 죄는 모두 변명할 여지가 있지만 멸불(滅佛)을 실시한 죄는 너무 커서 사면 받을 수 없으므로 황제더러 나를 위해 약간의 공덕을 지어주시길 청하네. 이렇게 선을 쌓아 내가 지옥을 떠날 수 있도록 해주시게.’

나는 그의 청에 응답하고 떠나갔다. 남문을 벗어날 때 한 사람이 분뇨 구덩이 속에 있는데 머리만 위에 떠 있어서 나를 데리고 가는 사람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이는 진나라 대장 백기요. 그는 사십여 만 명의 항복한 조나라 군졸들을 묻어 죽여 하늘을 범하는 대죄를 지었기에 이곳에 감금되었는데 죄악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조문창은 집에 도착해 살아난 후 이 일을 수나라 문제에게 주상했고 문제는 영을 내려 사람들에게 돈을 내어 주 무제를 초도하는 법사를 지냈다. 삼일간의 큰 제사를 지냈으며 아울러 이 일을 기록하여 <수서(隋書)>에 써넣었다.

고대 통치자의 멸불은 이처럼 비참한 결말이 났다. 그렇다면 오늘날 통치자가 멸불한 결과는 또 어떠하겠는가?

<9평 공산당>에 의하면 중공은 법도 없고 하늘도 없으며 공산당만이 홀로 위대하다고 하면서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다. 독재정부를 건립하기 위해 무신론을 크게 떠벌리며 사람에겐 전생이나 내생이 없고 인과응보가 없다고 고취시켰다. 중공의 모택동은 “하늘과 싸우고” “소귀신과 뱀신”을 비판했으며 “절대 그것들이 자유로이 범람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모택동을 두목으로 하는 중공의 명령 하에 정권 초기 종교에 대해 잔혹한 진압을 했으며 각종 회도문(會道門)의 취소를 명령했다. 1950년 시작되어 전국에 파급된 신앙박해 운동 중 각급 정부는 기독교, 천주교, 도교, 불교 등의 조직을 해산했고 교회, 절, 불당의 구성원들은 정부에 등록하고 반성하게 했다. 등록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조사해서 드러나면 엄정하게 다스렸다.

1951년에는 또 문건을 반포해 회도문 활동을 계속 진행하는 자에게 사형 혹은 무기 징역에 처하게 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이 당시 운동에서 300여만 명의 신도, 방회의 구성원이 피살되었다. 가정 기독교 신도 중 13만 명이 거주지 감시를 당했다. 또 1957년 이전에 일만 일천 명의 신도가 피살되었고 대량의 신도들이 임의로 구금되거나 벌금을 강요당했다. 문화혁명 중에는 또 무수한 절이 파괴되었고 승려들은 길거리로 내몰렸으며 티벳에서는 90%의 사찰이 파괴되었다.

중공 두목에게는 정말 법과 하늘이 없는가? 아니다! 이때부터 인간세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도 모택동이 지은 죄는 집안에 재앙이 미쳤고 그의 최후는 매우 비참했다. 모택동에겐 10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과반수가 요절하거나 실종되었다.

첫째 아들 모안영은 한국 전쟁 중에 미군에 의해 맞아 죽었고 둘째 모안청은 정신병으로 병사했다. 부인인 강청은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았고 집행이 2년 늦추어졌다. 나중에 무기로 감해졌으나 1991년 5월 14일 자살했다.

중공 특무 두목 주은래는 너무나 나쁜 일을 많이 저질러 자식이 없었고 후대가 끊어졌다.

그렇다면 이들의 사후(死後)는 어떠했을까? 성도 동쪽 교외의 석능에는 저승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에 따르면(천지에는 인간, 귀, 신의 삼계가 있는데 인간은 양계에 있고 귀는 음계에 신은 천계에 있다) 모택동과 주은래는 사후에 모두 지옥에 갔으며 18층 지옥에 갇혀 있다고 한다. 그들의 죄는 깊고 깊어 아직도 다 갚지 못했으며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또 1975년에 그가 저승에 내려가보니 모택동의 꽃나무(매 개인은 음간의 화원에 자기의 운명과 신체에 관련된 꽃 나무가 있다. 꽃이 시드는 것은 사람의 운명과 신체의 좋고 나쁨을 반영한다)는 이미 다 시들었고 이 사람의 목숨이 거의 다 하려고 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생산대 사람에게 말했다. “모택동 내년을 넘기지 못한다.” 대대의 한 가난한 농민이 이 말을 본 향 혁명 위원회에 전달했고 그는 이 때문에 “위대한 수령 모 주석을 악독하게 모멸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잡혀있었다. 1976년 모택동이 그의 말대로 죽자 그는 풀려 날 수 있었다.


 

출처 - http://zhengjian.or.kr/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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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의 인과실화 모음  (0) 2018.01.22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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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전생의 사례

우리 불교에서는 삼생이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생과 현재 즉 금생 그리고 미래생
이것을 한꺼번에 삼생이라 하는데
나고 죽고 나고 죽음을 반복하면서 사는것을
윤회전생이라 합니다

하지만 깨달아 숙명통을 보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과거생이 어떠하였는지
미래생이 어떠할지를 알수가 없으므로
자신의 과거와 미래사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와같은 게송을 가르칩니다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욕지내생사 금생작자시

전생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받는것이 그것이요
내생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짓는것이 그것이라
하는 의미로 과거에 지은바가 금생의 결과로 나타나고
금생에 행하는 바가 미래생을 결정짓게 되므로
지금 현재의 삶을 바르게 살아가면
혹 과거에 지은 잘못도 소멸해갈수 있으며
미래의 생에 있어서도 염려할바가 없게 되는것입니다

윤회전생의 사례가 심심찮게 전해오는데
오늘은 조선 말의 김성근(1835~1919)이라는
대감 이야기를 한번 적어보려 합니다

김성근이 삼십대 무렵에 전라감사로 내려갔다가
원등암이라는 절에 석함이 하나 전해오는데
전라감사만이 열수 있다고 전해오는 소리를 듣고
궁금한 마음에 가서 석함에 손을 대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석함이 열립니다

이전의 감사들은 모두 열지 못하였는데
김성근의 손에는 아주 쉽게 열려서 들여다 보니 
 
 
遠岩山上日輪月(원암산상일륜월)
影墮都城作宰身(영타도성작재신)
甲午以前海奉僧(갑오이전해봉승)
甲午以後金聲根(갑오이후김성근)
원암산 위의 한 바퀴 둥근 달이 있는데
그림자가 한성에 비쳐 재상의 몸을 받으리라,
갑오년 전에는 해봉이란 승이었다가
갑오년 후에는 김성근이 되었구나.
(여기서 갑오년은 1834년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글을 보는 순간 김성근대감은 자신의 전생이
석함을 만들고 위의 글을 지은 해봉스님이었음을 알고
다시 한수를 짓는데 이러합니다

昔年曾遊遠岩山(석년증유원암산)
誤落漢城作宰申(오락한성작재신)
甲午以前海奉僧(갑오이전해봉승)
甲午以後金聲根(갑오이후김성근)
석년에 일찍이 원암산에 노닐다가
한성에 잘못 떨어져 재상의 몸을 받았구나!
갑오년 전에는 해봉이란 승이었다가,
갑오년 후에는 김성근이 되었구나.

해봉스님은 갑오년인 1834년에 입적하시면서
자신의 후생이 어디에 날지
이름이 무엇이 될지 미리 아셨던 것으로
훗날 과거에 석함을 닫은 이가 석함을 열었으니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인과의 도리가
이 한가지 일에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대사의 환생을 암시하는 글이 또 있으니
대사가 머문 원등암에는 불경과 일반서적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 불경을 정리하여
나한굴에 모셔 놓으면서 지었다는 시에서도
그 후생의 행리처를 알수있게 합니다

羅漢神靈世所稀(나한신령세소희) 
何事佛經在窟外(하사불경재굴외)
我移經典安窟內(아이경전안굴내) 
以是因緣再還生(이시인연재환생)

나한의 신령을 세상에서 이르는 바인데
어찌하여 불경을 굴밖에 두었는고
내가 경전을 가려 옮겨 굴안에 모셨으니
이런 인연으로 다시 환생할 것일세.

道光十四年 甲午五月十五日
(도광십사년 갑오오월십오일)

海東沙門海峯聲餐(해동사문해봉성찬) 
焚香埋於(분향매어) 
淸凉山遠燈庵十六窟中(청량산원등암십육굴중) 
도광 14년(1834년) 갑오 5월 15일에
해동사문 해봉성찬은 향을 사르고 삼가
청량산 원등암 16굴 가운데 묻어 두노라

김성근대감은 자신의 전신이 해봉대사임을 알고
자신의 호 앞 글자를 바다해자를 쓰고
뒷글자를 선비사자를 써서 해사海士 김성근이라
스스로 자호하였고 원등암을 위하여
불량답을 마련해 드리는등 불사에 힘썼다고 전합니다

해사 김성근대감은 서재필의 외숙으로
전생의 습을 이어 글도 잘쓰는 명필이어서
훗날 1912년에 선찰대본산 금정산 범어사 라는
범어사 일주문의 편액을 쓰고
도리사의 편액과 주련등을 썼는데
지금도 범어사와 도리사를 들고나는
선남자 선녀인들을 어서 오라고 맞이하고 있답니다

출가수행자로써 한생각 문득 일으킨것이
한성의 재상으로 나게 되었으니
이는 윤회전생하는 이치와 인과를 모르는
후생들을 위한 대사의 자비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는 저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삼세심불가득이라 하시고
임제스님은 친절하게
과거와 미래를 논하지 말라는 뜻에서
수처작주 입처개진이요
(머무는 자리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곳마다 참되게 하라)
즉시현금 갱무시절이라 하셨으니
(오직 지금 즉시 현재일뿐 다른 시절은 없다)
이 순간순간을 참되게 살아가는 자세면
이루지 못하고 통하지 않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 덕분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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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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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業報)와 윤회(輪廻)

윤회란 간단히 말해서 수레바퀴가 돌 듯 우리 인생이 한없이
과거로부터 무궁한 미래를 향하여 나(生)고 죽음(死)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윤회를 하는데는 반드시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업(業)이다.

모든 존재는 다 자기가 지은 업이 주체가 되어 그것을 인(因)으로
하고 다른 조건을 연(緣)으로 해서 윤회를 한다. 업(業)이란 세력
또는 행위란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체의 행위는 세력으로
잠재했다가 다른 조건을 만나면 결과를 낳으며 다시 그같은
순환과정을 반복적으로 이끌어간다.

업(業)은 크게 3업(身·口·意)과 10업으로 세분한다.

즉 몸으로 살생·도둑질·음행을 하고, 입으로는 거짓말·이간질·
이치에 닿지 않는 말·욕설을 하며, 뜻으로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그래서 이를 10악업(十惡業)이라고 한다.

반대로 악업을 선업으로 바꿀 수도 있다. 살생 대신 방생을 하고
훔치지 않고 나누어 주는 것 등이다. 악업의 반대는 선업(善業)이
된다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는 말이 있듯이

선인(善因)은 반드시 선과(善果), 악인(惡因)은 악과(惡果)를
가져온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못된 짓을 하고도 잘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어찌된 일인가. 인과는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과보를 받는 시기가 다르다.

예를 들면 비옥한 땅에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가 맺는다. 그러나
씨는 좋으나 밭이 나쁘면 열매가 좋지 않다. 또 밭은 좋으나 씨가
나쁜 경우, 씨도 밭도 다 나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을 했든 나쁜 일을 했든 과보를 바로 받는 것도 순현업(順現業)
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생에 받는 것을 순생업(順生業)이라 하고,
그보다 더 나중에 받는 것을 순후업(順後業)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종자(因)와 밭(緣)이 어떻게 결합하고 작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업(業)을 짓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 업을
도와서 고통의 과보를 낳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혹이다. 우리의
마음이 밝지 못하고 흐려서 악업을 짓고 악업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의
결과를 받는 것이다.

미혹(迷惑)은 다른 말로 번뇌라고도 한다. 인간의 심신을 어지럽히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번뇌는 성질로 보아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있다. 선천적인 것은 구생혹(俱生惑)이라 하고 후천적인
것은 분별혹(分別惑)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번뇌는 다시 1백 8가지로 세분되어 흔히 108번뇌라고 한다.
염주알을 108개로 만들어 돌리는 것은 마음을 정화시켜 108의 번뇌를
끊고자 하는 뜻이다. 이처럼 인생은 혹(惑), 업(業), 고(苦)를 되풀이
하면서 살아가는데 시간적으로 전생(前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을
되풀이 한다.

또는 어제, 오늘, 내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무한한 과거에서
미래로 반복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육도(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을 윤회한다. 다시말하면 감옥이 지옥이요
투쟁이 아수라요, 굶주림이 아귀요, 쾌락이 천상이요,

본능에 의한 행동이 축생이요, 이성에 의한 행동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은 실제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삶을 반복하고 천상과 인간은 실제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삶을 반복하고 천상과 인간의
모습을 갖는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같은 삶은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삼세육도의 윤회란 사후의 세계에서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삼세육도의 윤회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삼세육도의 삶이란 곧 고통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삼세육도를 윤회하는 고통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우선 연기의
법칙을 철저히 깨달아 무아(無我)의 무집착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인간의 대전환, 행동의 대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대전환이 깨달음이고
해탈이다.


◎ 십선(十善)과 십악(十惡)

< 열가지 바른 계행(十善, 十戒)>

·방생(放生) : 남을 살리는 생활을 하라 … 살생(殺生)
·근면(勤勉) : 남을 돕는 생활을 하라. … 투도(偸盜)
·정음(正 ) : 깨끗한 생활을 하라. … 사음(邪淫)
·정어(正語) : 성실한 말을 하라. … 망어(妄語)
·진어(眞語) : 정직한 말을 하라. … 기어(綺語)
·애어(愛語) : 화합될 말을 하라. … 양설(兩舌)
·실어(實語) : 고운 말을 하라. … 악구(惡口)
·보시(布施) : 욕심을 버리는 생각을 하라. … 탐애(貪愛)
·자비(慈悲) : 기뻐하는 생각을 하라. … 진에(瞋 )
·지혜(智慧) : 슬기로운 생각을 가지라. … 치암(痴暗)



<열가지 악한 짓(十惡, 十業)>

·살생(殺生) : 죽이는 것 … 방생(放生)
·투도(偸盜) : 도둑질 하는 것 … 근면(勤勉)
·사음(邪淫) : 음란한 것 … 정음(正 )
·망어(妄語) : 거짓말하는 것 … 거짓말하는 것 … 정어(正語)
·기어(綺語) : 꾸며대는 것 … 진어(眞語)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것 … 애어(愛語)
·악구(惡口) : 나쁜 말을 하는 것 … 실어(實語)
·탐애(貪愛) : 탐내는 것 … 보시(布施)
·진에(瞋 ) : 성내는 것 … 자비(慈悲)
·치암(痴暗) : 우치한 것 … 지혜(智慧)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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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년된 두꺼비를 죽인 과보


지금부터 소개하는 이야기는 수년 전에 방영되었던 모방송사의 프로그램 "ㅇㅇㅇ 속으로"에
나온 내용이다.


오래 전에 시골 어느 작은 마을에서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부부가 살고있었다.

마침 부인은 임신중이었다. 시골생활이 한 여름엔 파리, 모기가 많기 마련인데 두꺼비가
파리,모기를 잘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두꺼비를 잡아와 집안에 들여놓으니 아닌게
아니라 파리, 모기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남편은 신이 나서 두꺼비를 자꾸 잡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백 살은 족히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두꺼비를 잡아와서는 아내의 약이 되겠다며 두 다리를 꽁꽁 묶어 방문 앞에 매달아놓았다.

부인은 두꺼비가 너무 오래되었기도하고, 집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파리, 모기가 없어지니까
그만 놓아주라고 사정했지만 남편은 부인의 말을 무시하고 두꺼비를 매달아놓은 채 두꺼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리하여 두꺼비는 산 채로 매달려 말라 죽었다.

산달이 되어 부인은 이쁜 딸을 낳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갓 태어난 아이의 발목에 잘록하게 묶인 자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자국은 커가면서 없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발목이 잘록한 것이 부끄러워 항상 발목을 가리고 다녔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딸아이가 열한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렇게 이쁘기만 하던 딸 아이의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피부가 두꺼비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하더니 점차 피부색깔도 두꺼비처럼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렸다.

딸아이의 엄마는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딸아이는 점점 더 두꺼비와 닮아가더니 몸형태도 두꺼비처럼 변해갔다.

아무 죄도 없는 딸의 운명은 아버지의 잘못으로 그렇게 두꺼비 형상으로 바뀐 채 부끄러워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고 항상 어둠속에 숨어사는 것이다.

지금은 깊은 산속 동굴 같은 어두운 곳에 숨어서 어느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고한다.

이제 사십대 중반이 된 이 여자는 아직도 밝은 곳에는 아예 나오지를 못한다고한다.


출처: 동티 (김진영저, 영혼의 눈개정판, 도서출판 답게)



2. 피할 수 없는 과보- 염소를 괴롭혀서 죽인 과보



1975년 내가 태백산 도솔암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어떤 집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생김이 아주 흉한 째보였습니다.

볼 두쪽이 쌍으로 째어진 째보여서 아이가 울때 마다
째어진 뺨이 팔딱거렸으며,뾰족한 턱의 모양이 무슨
짐승처럼 보이는 데다가 우는 소리는 꼭 염소울음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찌나 불량스러웠던지, 돌이 막 지나
두 살된 아이 인데도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수하기 위해 잠깐 벗어놓은 시계를 구정물에
집어 던지는가 하면 화장대의 화장품은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으며, 병이고 항아리고 모두 다 깨뜨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두고 집안 식구들까지 기이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몇해 전, 식구들이 모두 영양실조에 걸려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때 이웃사람들이 염소고기를 먹으면 좋다고 하기에
염소 한 마리를 구해서 잡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염소를 그냥 잡으면 노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으므로 죽이기 직전에 방법을 쓴다는 것입니다.

염소 목에다 줄을 걸고 무거운 짐을 끌게 하여 모진
고통을 주면 노린내가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집안 식구들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염소를 논밭으로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끌고 다녔습니다.

탈진한 염소는 마침내 쓰러져 죽었고, 가족들은 그 염소를
삶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직후 곧 태기가 있어 이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 집안 사람이나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의 생김새와
울음소리,나쁜 짓만 골라하는 아이의 짓거리를 보고
"저것이 집안을 망치고 원수를 갚으러 태어난 것이
틀림 없다."며 하나 같이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며,
원인 없이 결과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우주와 인생의 모든 것을 인과와 연기의
전개로 보며, 인과 의 도리를 벗어난 우연론이나
창조론은 전부 이단으로 봅니다.

어떻게 하다 우연히 생겨난 세계라거나 또 전지전능한
신이 이 우주의 생명체를 창조했다면, 설사 잠깐의
실수로 잘못 창조하고 잘못 관리했다면 즉시 다시 개조
하고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역사의 현실은 그렇지
가 않습니다.

우주와 인생의 신비는 오직 불교의 육도윤회를 통한
무시 이래의 인과법으로 풀지 않고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교의 인과론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운명론
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운명론은 모든 것을 태어날 때의 사주팔자와 함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율적인
의지와 창조적인 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삶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불교의 인과론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나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현재와 같은 삶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받고 있는 이 결과는 어제의 행위가 원인이
된 것이고, 오늘 내가 짓는 행위는 내일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인과론은 내일을 창조하고 오늘의
과오와 고뇌를 근원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인과론 입니다.

숙명적인 운명론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절대로 가벼이 흘려서는 안됩니다.

인과의 법칙이 확연하고 과보의 응징이 엄격한 것은,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출처: 일타큰스님저- 윤회와 인과응보 이야기 (도서출판 효림)



3. 개구리 살생의 과보

출처: cafe.daum.net/choirheen 필명 인간문화재님 글



저의 지난 개구리 살생과 그 후유증에 대해서 잠시 적겠습니다.
이것을 적는 이유는 우정에 의한 살생이든, 효심에 의한 살생이든 살생에 대한 대가는 살생한 자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저는 평소에 머리를 잘 다쳤습니다. 야구공에 맞고, 빨래줄에 목이 감기고, 벽에 부딪치고....
27살 때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그 전의 1년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인생을 살아오면서 머리를
집중적으로 다쳐서 지금도 항상 머리를 조심하고 다닙니다.

31살 때에 어떻게 알게 된 분이 있는데 영적으로 좀 밝은지 당신 머리를 잘 다치지 않느냐,
당신 머리에 뒷 다리 두 개가 없는 개구리가 안떨어지려고 앞발을 당신 머리에 박고
필사적으로 매달려있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서 뭐가 어째하면서 당신 숨통을 끊어주겠다고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선배 한 명, 후배 한 명, 저 이렇게 세 명이서 개구리를 잡으러 갔었습니다.
그 날따라 개구리가 아주 많이 잡혔습니다.
마대자루로 세 자루나 잡았습니다. 각각 한 자루씩 메고 오는데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고 모두 지쳤습니다.

그 때 6학년이었던 선배 형이 지금은 가을이기때문에 개구리가 동면에 들지 않았고 개구리 뱃속이 지저분하고
독도 있을 것 같으니 상체는 못먹는다, 그러니 개구리 상체는 버리고 가져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루에서 개구리를 꺼내 바위에 머리를 쳐서 죽인 후에 칼처럼 생긴 돌로 허리를 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그 형이 너무 힘이드는지 죽이지도 않고 산 채로 개구리 허리를 돌로 찧어서 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형의 너무 지친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 자루에서 개구리를 꺼내어서 개구리가 살아있는데도 산 채로 개구리를
돌로 찧어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개구리 상체는 살아서 도망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후배는 옆에서 지켜만 봤습니다.
그 때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는데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간 기억이 납니다.



4. 소의 혀를 자른 과보가 세 명의 자식에게 가다.



4~49 출처: 연지대사의 방생행복 살생불행(연지대사저, 만법 김상근역, 삼보제자刊)


당나라 때 한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악독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점심 때 밭을 둘러보러 나갔더니, 이웃집 소 한마리가 자기 밭에 들어와
곡식을 짓밟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고약한 성질에 노기가 충천하여 소리를 질렀다.

"애써 지어놓은 곡식을 네가 마음대로 짓밟고 뜯어먹고 있으니 네가 살고싶지않은
모양이구나."

욕을 하며 코웃음을 치며 다시 말하였다.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않을거야. 네가 내 곡식을 먹었으니 내가 네 혀를 잘라버릴거야.
그래도 곡식을 뜯어먹을 수 있나 두고보자."

소는 잘못한 것을 알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소리도 못 내었다.

그러나, 농부는 용서하려 하지않고 소고삐를 바짝 조여서 소머리를 치켜들고
비수를 빼어 소 혀를 잘라버렸다.

소는 아픔을 참고 비명을 질렀다.

후에 농부가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마다 말을
시작한 후에 한 반년 후면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농부는 몹시 애통해하였으나 아이들이 벙어리가 된 까닭을 알지못하였다. 그리고,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녔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 때 돌연히 십 수년 전에 소의 혀를 자른 일이 생각이 났고 그 업보가 나타난 것임을
알게되었다.

짐승의 일이라 대단치않게 생각했었는데 인과가 그의 세 자식의 몸에 떨어질 줄은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다.


5. 개구리의 응징

중국 안휘성 무위현에 이발업을 하고 있는 양기수라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생김새가 노루머리에 쥐눈상을 가져 몹시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마음이 좁아 사소한 일에도 양보가 없으며 품행이 좋지도 않았다.

또 개구리 요리를 제일 좋아하였다. 그래서, 식사 때마다 개구리 요리를 빼놓지않았다.
그의 개구리 요리솜씨가 일품이어서 그와 같이 몰려다니는 한 패거리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의 개구리 요리솜씨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칭찬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소리가 높아질수록, 그는 신이 나서 개구리가 마치 자기원수가 되는
듯이 한 마리라도 놓칠새라 모조리 보는대로 잡았다.

이런 식으로 40여세가 되도록 그는 개구리를 계속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그가 신나게
자고 있는데 홀연히 온 몸이 근질근질하며 흐리멍덩한 사이에 이불이며, 베개며, 옷소매 속이
며 사방에 개구리가 들어있었다.

그는 "참 이상하다."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개구리를 모두 붙잡아 솥에다 넣고 끓였다. 그리곤 침대에 올라가니 침대위에도
개구리가 가득 있었다. 이리하여 개구리와 싸우느라 그날 밤에 한 숨도 자지 못하였다.

그 이튿날 이웃사람을 불러놓고 어젯밤 당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돌연히 등을 긁으면서,

"개구리가 또 왔네."하고 중얼거렸다.

조금 있다가 또,

"개구리가 내 눈 속에도 있네."

"개구리가 내 머리 속에도 있네."하면서 그는 자기가 쓰는 면도칼로 머리와 눈썹을 전부
깎아버렸다.

그러나 같이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개구리를 본 사람이 없었다.

이웃사람들은 "틀림없이 미쳤나봐."하며 수군거렸다.

이로부터 만 6년동안 그는 하루도 편안하게 지내지못하고 고통속에 지내다가 마침내
광기가 심하여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6. 새끼의 죽음에 오장이 찢긴 어미 사슴


숲속의 새벽은 문자그대로 적막 그것이었다.

아침 햇살이 대지를 비추기 시작하여 숲속에 비쳐오니 모든 산들을 신선하고 아름다운
밝은 빛으로 물들였고, 잔잔히 흐르는 작은 시냇물은 고기비늘처럼 찰랑거려 그 경치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었다.

그 때 홀연히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작은 시내위로 휙 지나가더니 고요한 풀밭에 발을 멈추고
무엇을 찾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바로 커다란 귀에 칼날 같은 눈썹에 호랑이 눈을 하고 머리엔 수건을 동여맸으며
왼팔엔 활을 들고 오른쪽 옆구리엔 화살 통이 매달려있으며, 그 모습이 기개당당한
허진군이었다.

그는 자연경치를 좋아하며 더욱이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그 때 한 마리의 작은 사슴이 숲속에서 뛰어나왔다. 허진군은 반가워 기뻐하며 활에
화살을 재고, 슝하는 소리와 동시에 작은 사슴은 땅에 쓰러지고 그가 쓰러진 사슴을
잡으러 뛰어가려하자, 바로 그 때 한 마리의 어미 사슴이 번개처럼 뛰어나왔다.

어미 사슴은 부상당한 새끼사슴 곁에서 비명을 지르며 울면서, 혀로 연신 화살의
상처를 핥아주었다. 그러나 밥 한끼를 먹을 시간쯤 지났는데 새끼사슴은 죽고
말았다. 그러자, 어미 사슴도 비통을 못 이겨 그 자리에서 같이 쓰러져 죽고 말았다.

허진군은 그것을 보고, 너무나 괴이한 일이라 허리춤에서 비수를 꺼내, 어미 사슴의
배를 가르고보니, 그 어미의 간장이 토막토막 잘려있어, 그 새끼가 죽은 것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비통하고 상심한 나머지 간은 부서지고 창자는 잘라진 것이었다.

허진군은 크게 감동하여 자기 스스로 못할 짓을 한 것을 깨닫고, 죄를 뉘우치고 그 즉시
활을 부러뜨려 땅에 버리고 화살은 모두 개울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스승을 찾아 십수년의 수행끝에, 드디어 도를 이루었다.



7. 석달동안 비명지르는 과보


희미한 등불이 가물가물한 보신탕집에는 손님이 가득 앉아 빈 자리가 없었다.

개고기를 즐겨먹는 손님들은 삼삼오오 둘러않아 몹시 벅적거렸다.

가게 뒤에는 주인 조승원이 또 한 마리의 개를 죽여 항아리 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개를 잡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 또 보신탕집을 내어 장사가 퍽 잘되었다.

그는 조수를 한 사람 썼는데 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였다.

"아저씨, 이 개는 참 살이 쪘지요?"

조승원은 득의연(得意然)하게 웃으며,

"너 참 제법이구나. 이 개는 이번에 우리에게 은전을 15전이나 벌어주었지."

주인과 조수는 항아리곁에 쭈그리고 앉아 한편으로는 물을 끓이고 한편으로는
칼을 갈아 죽은 개를 요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돌연히 그 때에 그들이 분명히 죽인 개가 항아리속에서 높이 뛰어나와 나는 듯이
조승원의 몸을 향해 덮쳤다.

동시에 조승원의 목덜미를 물고 놓지를 않았다.

조승원은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개고기를 먹고있던 손님들도
모두 뛰어나와 죽은 개가 조승원을 물고있는 것을 보았다.

조승원의 목에선 선혈(鮮血)이 쏟아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조승원은 죽은 개한테 물린 상처에 의사를 청하여 치료하고 약을 썼으나 별 효험이
없고 상처는 점점 악화되어 매일 밤낮으로 고통을 참지못해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삼개월을 끌다가 마침내 저승길로 가고 말았다.

보신탕없이 못살겠다던 사람들도 이 일이 있은 후론 개고기를 먹으려하지 않았다.




8. 뱀을 죽인 업보가 아들에게 가다.


강산(江山) 성남 지방에 성질이 나빠 살생을 좋아하는 농부가 있었다.

나이가 40여세에 슬하에 아들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청나라 동치 6년 5월 농부가
어느 날 괭이를 메고 들에 나가다가 홀연히 커다란 뱀 한마리를 발견하였다.

그 큰 뱀은 농부를 보자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낼름거리는 것이 마치 두려움에 질려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요건 꼭 죽여야 해. 놓쳐서는 안되지."

농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추호의 인정도 없이 재빠른 솜씨로 괭이를 내리쳐
달아나려는 그 뱀을 두 동강이를 내고 말았다.

뱀은 당장 꼼짝못하고 죽어버렸다.

농부는 즐거운 듯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은 9살이었다.

바로 농부가 뱀을 죽인 그날 밤에 그 아이는 꿈속에서 커다란 뱀에게 물렸다.

이튿날 새벽에 놀라 깨어나니 오한이 일고 열이 났다.

그 아이는 잠꼬대처럼 계속해서,

"아이 아퍼, 아이 아퍼."하며 비명을 질렀다.

농부는 야심한 한밤중이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가슴만 죄었다.

의원을 부르러 가려고 할 때, 그 아이가 갑자기 혀를 기다랗게 내미는데 그 모양이
꼭 자기 손에 맞아죽은 뱀과 같았다.

참 놀라운 일이었다.

농부는 "얘야, 얘야."하고 가슴졸이며 아들을 불렀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가련한 아들은 목숨을 거두어 죽고 말았다.




9. 전쟁과 재앙의 원인


보양 한 곳에서 또 10명이나 납치를 당하였다.

그들은 손과 발이 모두 마적 떼들에게 잘려서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양양지방에는 또 해일이 일어 바닷물이 거꾸로 넘쳐 올라와 마을을 덮쳐 수백 호의
주민들이 하룻밤 사이에 모든 재산과 집을 잃고 들어갈 곳이 없게되었으며,
수십 명의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 죽기까지 하였다.

이런 소식이 한 입건너 두 입건너 전달이 되자, 뜻이 있는 이배덕이라고 하는 사람은
도교신자로서 마음이 매우 선량하고 인자하였다.

혼자 생각하기를,

'왜 최근에 이러한 재난이 겹칠까?"

'왜 백성으로 하여금 편안히 살지 못하게 할까?"

그는 돌연히 도력이 높은 임도장이 생각이 났다.

'그 분에게 가서 여쭤보면 이러한 재난의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일부러 이선관이라고하는 道觀도관(도교의 사찰)에 찾아가 임도장을
만났다.

임도장은 때마침 방석을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서 좌선하고 수도를 하고있었다.

이배덕을 보자,

"이진사, 안녕하시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소?"

"도장님, 도장님께 여쭈어보고 싶은 일이 있어 왔습니다. 최근에 각지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도적떼들이 봉기하여 사방에서 살인하고 방화를 하니 참으로 두렵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도장께서도 들은 바가 있으시지요?"

이배덕이 이렇게 묻자, 그는 대답하였다.

"빈도는 산문 밖을 잘 나가지않기 때문에 소식을 잘 모릅니다."

"죄없는 생령들이 무슨 까닭으로 이런 재난을 당해야합니까?"하고 이 배덕은 다시
여쭈어 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잔인한 습성이 풍조를 이루고 있으니, 예를 들어 살생을 하고 육식을 하고
이러한 악습이 길러지고, 이런 악습이 시일이 거듭되니 살생의 중업이 깊어 하늘에 맞닿으니
하늘에서 물과 불과 기근및 살생을 내려 사람의 생명을 앗아다가 그 동안 인간에 의하여
살해된 다른 생령들에게 저질러진 악업에 대해 報(보) 갚음을 받는 것이오.

사실 이러한 천도의 보응(報應)도 그렇게 시원스러운 일은 못되지요."

하고 임도장은 대답하는 것이었다.



10. 음식을 탐하는 자의 업보


청나라 도광년간의 심태수란 사람이 인색하지 않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는 돈을 정당한데 쓰느냐 아니냐 하는 것도 따져보지않고 생각나는 대로 썼으며,
친구들과 먹고 마시고 하기를 좋아하며 많은 친구들이 그에게 한턱 얻어먹은 사람이
적지않았다.

그의 사치로 말하자면 사는 집도 특별한 장식을 하였고 자는 침실은 황궁과 같았고,
입는 옷도 화려하고 일용품도 모두 기묘한 것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심태수는 먹는 것을 제일 탐하였다.

하루 세 끼를 오리의 뇌 아니면, 곰 발바닥, 상어 지느러미, 노루포 등 끼니마다 가장 정교하고
귀중한 음식만 골라먹었다.

이렇게 매일을 생활하다보니, 알게모르게 무수한 생명을 살해하게 된 것이다.

퇴직을 한 후에는 호화로운 건물을 구입하여 거기에 기화요초를 심고 집안 뜰에는
인공 석산과 분수며 개울을 만들어 집안에 들어온 사람이 천궁(天宮)에 들어온 듯 느끼게
하였다.

또 음식을 해먹는데 있어서도 좋다는 것만 골라서 먹곤하였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소? 살아있는 동안 잘먹고 잘지내지 않으면 살아도 헛사는게
아니겠소?"

그러나 뜻이 있는 사람들은 그가 하는 행위를 별로 탐탁치않게 생각하였다.

"보시오. 어느 날엔가 그 업보를 받게 될 것이오."하고 말하였다.

과연 10여년이 경과되자 가세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더니 그는 정신이 이상해 미친
사람이 되고말았다.

병이 발작하면 그는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상관하지않고 무엇이나 음식인줄 알고
보는대로 집어다가 게걸스럽게 입안에 집어넣었다.

마치 이야기에 나오는 아귀와 같았다. 심지어는 잿더미며 물컵까지도 깨부수어서
마구 집어먹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는 이런 일로
인해 심하게 내상을 입어 죽고 말았으니, 사실은 너무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은 결과일
것이다.


11. 포악한 살생의 말로


옹주의 육효정이라고 하는 사람은 당나라 정관 연간에 살았던 조그마한 관리였다.

보통 살림살이였으나 그가 살고있는 집 뜰안은 매우 넓었다.

육효정은 인색할 뿐 아니라 남을 용서할 줄 모르고 퍽 잔악한 성격이었다.

집에서 부리는 아랫사람에 대해서도 조그마한 잘못만 있어도 야단을 치고
심하면 구타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동물에 대해선 더더욱 애호하는 마음이
없었다.

한 번은 우연히 그 집 남쪽에 한 그루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 위에 꿀벌둥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곧 일꾼들에게 그 꿀벌둥지를 빨리 옮겨 버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꿀벌들은 여전히 그 나무에 모여서 살면서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육효정은 화를 버럭 내고 일꾼더러 곧 부엌에 가서 끓는 물을 가져오게하여 그 물을
벌둥지에 부어버리니 어미나 새끼 벌 할 것없이 모두 비명(非命)에 죽고 말았다.

이듬해 오월 날씨가 몹시 더운 때였다.

육효정은 대청마루에 기대 잠깐 잠이 들었다.

돌연히 '아야야!'하고 깨어지는 듯 비명을 질렀다.

그는 소리를 치면서 반사적으로 입술을 만졌다.

그 아픔이 폐부에까지 찌르는 것 같았다. 어디서 날아왔는디 커다란 벌 한마리가
그가 자고 있는 틈에 그의 입술을 쏜 것이었다.

그의 입술은 삽시간에 뻘겋게 되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일꾼을 불러 의사를 청하고, 입술에다 소염약을
바른다고 야단법석이었으나 그 벌의 독침이 얼마나 지독하였던지 입술이 부어 온
입안을 가득 채워 약을 마실 수도 없이 되었다.

의사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마도 벌의 독기가 심장을 찌른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의 초췌한 모습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 때에 그는 홀연히 지나간
일이 회상되었다. 무수한 죄없는 꿀벌을 잔인하게 죽였던 일이 생각난 것이다.

그 때 그 일이 오늘의 고통스런 과보를 초래하지 않았나하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의
회개도 너무 늦었다.

그는 눈을 서서히 감더니 다시는 뜨지않았다.


12. 살생의 업보로 패가망신하다.


서씨는 고씨 집안에서 여러 해동안 충실히 일해 온 일꾼이었다.

나이는 이미 50여세가 되었으며 일을 하면 아주 깨끗이 처리하고 조금도 꾸물거리는
일이 없어 주인 고유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일어나 일을 하지않고 아직 자고 있어서, 평소에 일찍
일어나 일하던 그라 주인 고유성은 매우 이상히 여겨 그의 방에 가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는 문을 두드린 후 한참 있어서야 문을 열고 나오는데, 절뚝절뚝 걸음을
바로 걷지못하고 몹시 아픈 듯이 괴로워하였다.

그래서, 고유성은 이상하여 물었다.

"자네 다리가 왜 그런가?"

"무릎에 빨간 종기가 하나 났는데, 단독 종기인 것 같습니다."하고
서서 말했다.

또 이어서 말하길,

"어젯밤 꿈에 수많은 드렁허리(논장어)가 나타나 그 중 가장 큰 두마리가 눈을
부릅뜨고 저를 향하여 덤벼들어 제 양 무릎을 물어뜯어 너무너무 아파서 깨어났는데
움직일 수가 없어 빨리 나와서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고유성은 또 물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일세. 어쩌면 그런 꿈을 다 꿀까?"

"실은 20살 때 저는 동관시장에서 국수집을 열고, 주로 드렁허리 국수를 팔아서 유명해졌습니다.
매일 드렁허리 수십 근씩을 소비하였는데 그것을 삼십년이나 하였지요. 그래서 돈을 3,000금이나
저축했습니다. 그 돈으로 동백기름을 사서 저축해 놓았는데 이유없이 불이 나서 전부 타 버렸습니
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자기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지만 꿈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고유성은 집에 있는 만금유를 꺼내서 발라 주었더니, 곧 다 나을 수가 있었다.

하루는 문을 닫고 잠을 자는데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놀라서 일어난 서서방은,

"커다란 두 마리의 드렁허리가 꿈속에 나타나 지난 번의 상처를 또 물었는데, 저 깊은 마음속까지
너무나 아파 못살 것 같습니다."

서서방은 눈물을 흘리며 기운없이 대답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종기가 곪아터져 뼈속까지 드러나더니, 결국은 죽고 말았다.



13. 진씨집안의 네째 아들이 죽임을 당하다.

군량미 수송관 이춘담이 계사년 삼월에 군량을 실은 배를 수송하던 수송선이, 회령현
대장구 지방의 강위에 도착했다.

그의 부하 공개란 사람이 홀연히 꿈을 꾸었는데, 머리가 희고 긴 흰 수염을 기른 한 노인이
나타나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내일 큰 난을 당하게 됩니다. 바라건대 나를 꼭 좀 구해주시오. 훗날 반드시 보답하겠
습니다."

꿈을 깬 공개는 참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튿날 옆을 지나가던 배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무슨 일이 생겼나?'

공개는 혼자서 생각했다. 강위에 큰 수달피 한 마리가 물위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하는
것을 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구경하며 소리를 지르며 그물을 던져 잡고있었다.

수달피는 잡혀 배위에 올라왔다.

공개는 어젯밤 꿈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동하여 주저하지않고 오백냥을 꺼내 그 이웃배의
선원들로부터 수달피를 사가지고 방생하려고했다.

모두들 그 수달피를 팔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고약하게 생긴 진씨집안의
네째아들은 고집을 부리고 반대했다.

수달피 파는 것을 반대할 뿐 아니라 곧바로 쇠창을 꺼내서 무슨 앙갚음이나 하는 듯이
수달피의 머리에다 대고 찔렀다. 그러자 삽시간에 머리에서 선혈이 흘러나와 바다를
빨갛게 물들이고 수달피는 죽고 말았다.

"하하하! 수달피 고기가 가장 영양이 있고 맛이 있지."

진사는 혼자서 너털웃음을 웃었다. 사람은 모두 잔인한 습성이 있어서 무지한 사람들은
모두 진사의 말을 곧이듣고, 모두 같이 어울려 수달피 고기를 나누어먹었다.

수달피 고기를 먹고 난 후 얼마 안있다가 고기먹은 사람은 모두 복통이 일어났다.

그 중 陳四진사의 고통은 더욱 심하였다. 그는 실신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수년간 수양을 하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일시의 액운을 만나, 모두 다 나를
팔겠다고 대답했는데 너 혼자 반대하고 나를 찔러 죽였으니, 이제 내 목숨을 다시
돌려달라."하는 소리는 몹시 처량하고 비참하게 들렸다.

뱃사람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기도를 드렸으나 진사는 며칠 동안 앓다가 비참한 신음소리를
내고 죽고 말았다.


14. 돼지 도살의 업보

안휘성 합비현 배두진에 돼지만 20여년 잡아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宣四(선사, 선씨집 넷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동안 모아진 재산이 적지않아, 집이 세 채, 하나는 자기가 살고 두 채는 세를 주고 있어 형편으로
따지자면 그런 생활을 하지않아도 될 처지였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고 더욱이 그는 살생에 이골이나서, 여전히 매일 칼을 번쩍번쩍
갈아서 무수한 돼지를 잡았다.

하루는 새벽녘에 한편으론 물을 끓이고, 한편으론 돼지를 잡고 있을 때 그의 처가 측간에를
가니, 그 곁에 있는 돼지우리에 어떤 부인 둘이 누워있었다.

자세히 보았지만 틀림없이 사람이 누워있는 것이었다.

그는 급히 뛰어가 자기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당신 이제 돼지 잡는 것 그만두시지요."라고 하자,

남편은 큰 소리로 웃으며,
"당신이 눈이 어른거려 잘못 보았겠지. 그럴 리가 있겠소?"

선사의 처는 돼지잡는 칼을 변소에 던져버렸다.

그 날은 남편이 돼지를 죽이지는 않았으나
전혀 뉘우치는 빛은 없었다.

이튿날 그의 처가 친정식구들을 불러와 선사와 담판을 지었다.

"만약 당신이 계속 이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나는 당신과 헤어지겠소."라고 말했다.

선사는 고집을 부리고, 여러 해동안 살아온 부부간의 정도 고려않은 채,
"헤어지면 헤어졌지, 뭐 그리 두려울게 있어."하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결국은 토지와 재산을 등분하여 가지고 처는 생김생김이 단정한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살았다.

선사는 여전히 돼지잡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었다.

마지막엔 집안의 돼지를 다 죽이고 자식이 돌연히 까닭없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고
따로 사는 처가 통곡을 했는데도 선사는 조금도 깨닫는 기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번의 자극으로 돼지잡는 일은 그쳤으나, 이젠 또 도박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었다.

그러더니 점점 더 도박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운이 나빠서인지 혹은 귀신이 장난을 부리는지 宣四(선사)가 도박을 하기만하면 잃었다.
있는 돈 모두 날려보내고, 마지막엔 나누어가진 전답까지 노름빚으로 다 몰아넣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돼지잡는 일을 시작했으나 한달이 못되어 괴질병을 얻어 입과 코에서
때없이 짙은 피가 흘러나오며, 몹시 고통스러웠다.

조석으로 침대에서는 돼지가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내곤했다.

이렇게 한 일년동안 시달리며 고생하다가 결국은 그 병으로 참혹하게 죽고말았다.



15. 벼락맞은 소백정

사향필기(四鄕筆記)라고 하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청나라 도광원년 4월 초여름 정오 하늘에는 먹구름이 빽빽이 차있고 햇볕은 없었다.
돌연히 비바람이 몰아치며 뇌성벽력이 치니 심히 무서웠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급히 피했는데 이 때에 한 골목길에 어떤 사람이 꿇어앉은 듯한
모습으로 비참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 사람은 벼락에 정통으로 맞아 온 몸에 불이 붙어 얼굴은 까맣게 타고 근육은 피말려
아픔을 참지못하여 입술을 깨물어 피가 흐르고 양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세상에 형벌이 많다고는 하나, 어찌 벼락을 맞아 영혼까지 갈기갈기 찢기는 이런 고통이
또 있을까.

화상을 입어 몸뚱이는 차마 볼 수 없는 형태로 흐느적거려서 금방 벌레라도 온 몸에서
꿈틀거릴 것 같았다. 그 사람은 타서 헝클어진 자신의 살덩이를 한 조각 한 조각씩 뜯어서
자신의 입에다 쑤셔넣는데 차마 옆에서 그 흉측한 광경을 볼 수 없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게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뜯어먹으며 한편으로는,
"야, 쇠고기 맛있다. "하며 소리쳤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머리끝이 쭈뼛쭈뼛하였다.

그는 이런 형태로 몇 달을 버티다가 죽고말았다.

죽은 후의 그의 몸뚱이는 뼈만 남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하였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죽었어?"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이 도계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살쟁이 범등산이다.
그는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소를 죽였는지 모르는데, 한편으론 팔고 한편으론 자기가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뽐내면서 사람들에게,

'나는 절대로 가난으로 고생은 안해. 세상엔 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소가 있는한
나의 재산은 줄어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래 성질이 포악하여 남과 다투기를 잘하고, 다투기만하면 사나운 맹수와
같아서 모두들 그를 무서워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16. 소를 잡는 백정의 몰락

복건성 정화현 동향마을에 조부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도살에 종사하는
백정이었다.

매일 적어도 소 세마리 이상을 죽여 수입이 괜찮았다.

점점 그의 재산은 불어나 얼마 안가서 면내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조부가 늙자, 그 아들 광화가 또 아버지의 도살업을 계승하였다.

그 집 대문앞에는 둥그런 커다란 나무도마가 있는데 전문적으로 소대가리를
빠개는데 쓰는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이미 여러 해동안 쓰지않고 있었다.

괴상한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둥근 나무도마가
갑자기 소대가리로 변해서 거리를 누비며 굴러다녔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또 어떤 사람은 밤에 조씨 집에서 많은
소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사흘 째 되는 날 조씨 아들 광화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쇠고기를 파는데, 한 병사가
와서 흥정을 하였다.

서로 손해를 안보려고 우기다가 결국은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광화가 홧김에
내리친 칼에 그 병사가 머리가 깨지고 유혈이 낭자하여 병사는 죽고 말았다.

조부구는 늙어서 기운은 없고, 아들이 살인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일어서다가 정신을 잃고 쓰려져 결국 죽고말았다.

아버지는 멀쩡히 산 채로 놀라죽고 아들은 살인을 하여 형을 받아야하고 조씨 집안은
이렇게하여 몰락하였다.

가련한 고아들과 부녀자들은 아침저녁 끼니도 어렵게 되었다.

"참 알 수 없는 노릇인데, 그 집안이 이렇게 가난해질 줄이야."하고 어떤 사람은
한탄했다.

"이것은 살생의 업이 너무 지나쳐 필연적으로 닥쳐야할 재앙이오."

어떤 불교신자는 말하였다.

"그러게 사람이란 가능한한 살생을 피하고 화기애애한 얼굴을 해야하며 모두들 육식을
적게해야 서로 화나는 일도 적어 이웃간에 안녕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동향마을에 도살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모두 조씨 집안의 패가참상을 교훈을 삼아 다투어 직업을 바꾸었다.

그 후 그 지역은 아주 태평한 마을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청나라 가경 말년에 있었던 실화로서 쇠고기를 즐겨먹는 것은 실로 백해무익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17. 아들을 쏜 사슴 사냥꾼

산도지방은 풍경이 아름다워 어디를 둘러보나 푸릇푸릇한 청산이었다.

그러나, 오당이란 사람은 여기에 아름다운 산수풍경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들과 같이 이 산에 자주 오는 손님이었다. 그는 사냥하러 온 것이다.

오당은 화살과 화살통을 등에 메고 나서면, 사냥의 명수 그 말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활을 쏘되 헛발을 쏘는 일이 없었으며 마음가는데 손이 가고,
손이 가는데 마음이 몰아져서 백발백중이었다. 어떠한 맹수라도 그 눈에 한 번
띄면 난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사자를 만난 것처럼 난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이 때에 멀리 한 마리의 뿔달린 새끼동물이 어른거렸다. 새끼사슴이었다.

이 귀여운 새끼사슴도 오당의 동정을 받지는 못했다.

그는 재빨리 화살을 꺼내 활에 재어 '슝'하고 정면으로 조준하여 쏘았다.
새끼사슴은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왼쪽 곁엔 다른 한 마리의 큰 사슴이 그 광경을 보고 상심하여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어미인 듯 새끼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것 같았다.

사슴은 한 번 슬픈 소리로 울어대더니, 인기척을 느끼곤 곧 숨어버렸다.

오당은 아들과 같이 풀이 우거진 숲에 숨었다. 그 사슴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그 사슴이 다시 나타나 새끼 사슴의 상처를 핥고 있었다. 이 때를 놓칠 새라
오당은 또 화살을 쏘아 새끼를 핥아주고 있는 이 어미 사슴까지 쓰러뜨리고
말았다.

두 마리의 사슴을 잡은 오당이지만 아직도 만족을 못 느끼고 이리저리 둘러보아
또 사슴이 나타나지 않나 살펴보았다.

과연 저쪽 멀리 사슴 한 마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활을 당겨쏘았다.

그 사슴도 땅에 쓰러졌다. 그런데, 화살을 맞은 사슴의 비명소리는 사슴소리
같지않고 사람의 비명소리 같았다.

급히 뛰어가 살펴보니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은 사슴이 아닌 자기 아들이었다.

오당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시체에 엎드려 애통해하였다.

그 때 공중에서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당아, 너의 자식이 죽으니 너도 슬픈가? 사슴이 새끼를 사랑하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느냐? 네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사슴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외치는 소리는 온 산에 메아리쳤다.

그가 이상히 생각해 머리를 들고 공중을 바라보고 있을 때 덤불 속에서 맹호
한 마리가 나타나 활을 쏘는 그 손을 덥석 물어자르니, 그는 그대로 쓰러져
피에 묻혀 죽고 말았다.



18. 개처럼 죽은 보신탕 애호가


풍습읍이란 조그마한 소박한 마을이 있었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사가 업이었고 모두 다 근검절약하고 자기본분을 지켜 생활이
안락하였다.

그런데, 유독 심이라고 하는 주민은 소자본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경영에 능하여
적지않은 돈을 모으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술마시기를 좋아하였고, 더욱이 개고기조림을 안주로 술마시는 것을 즐겼다.

향기 그윽하고 뜨끈뜨끈하고 얼큰한 개고기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 것은 정말 인생의
최고의 쾌락이라고 그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평소에 늘 친한 친구를 불러 개고기로 주연을 베풀기를 좋아했다. 그리하여, 평생동안
그로 인해 죽은 개는 부지기수였다.

건륭 병자년에 그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더니 끝내는 병으로 눕게되었다. 그의 병은
의사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안되어 병세는 더욱 심해지고 사람이 자주 혼미 속에 빠져서 인사불성이 되곤했다.

혼미 중에 그는 이렇게 말을 했다.

"또 검은 개 한 마리..아이고 무서워! 또 얼룩개가 나한테 덤벼드네. 또 개 한 마리 두 마리..
저렇게 많은 개가 나에게 덤벼드네. 아이고 무서워!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그러나 처자식의 눈엔 개가 보이지않았고, 그가 공중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발을 구르는 것이
마치 장님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손을 휘젓는 것과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아마도 미친 것 같군."하고 말했다.

그가 죽을 때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양 손을 땅에 딛어 개모양을 하고, 개 짖는 소리를 몇 번
지르더니 그냥 죽어버렸다.


19. 소잡는 칼에 혀가 잘려죽다.


어느 허술한 점포에서 돌연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텅하고 무엇이 떨어지는가싶더니, 한 사람이 땅에 쓰러져있었고, 입에선
선혈의 붉은 피가 마치 샘물이 솟아나듯 펑펑 쏟아져 쓰러진 그 사람의
주위사방으로 흘러퍼졌다.

이 때 여러 사람이 점포에 들어가 살펴보니 땅에 떨어져 죽어있는 사람은
바로 소잡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백정이었다.

성이 수씨인 백정은 참으로 참혹하게 죽어있었다.

예리한 칼이 그 사람의 혀를 잘라 죽게한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온 마을에는 수씨 백정이 처참하게 죽은 원인에 대해서
쑥떡 공론이 돌기 시작했다.

사건의 경과는 이러하였다.

수씨는 원래 소를 잡는 백정으로서, 매번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소의 혀를
잘라내어 술안주로 삼았다. 평생동안 수도없이 많은 소를 잡는데 쓰던 칼을
문 위 선반위에 돌려놓았다.

그런데, 그 날 돌연히 두 마리의 쥐가 그 선반위에서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백정 수씨는 호기심에 차서 입을 떡 벌리고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생각했으랴? 그 쥐들이 싸우면서 칼을 건드려 떨어뜨렸다.

그 칼은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있는 수씨의 입에 명중되었다.

조금도 벗어남이 없이 수씨의 혀를 두동강 내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이웃사람들이 백정 수씨가 죽은 진상을 알고 모두 탄식하였다.

"그 사람이 평생 살생도 살생이지만, 소 혓바닥을 잘라가지고 술안주로 배를 채우더니
결국은 쥐 두 마리가 휘두른 칼에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구나.

보아하니 인과응보라. 이런 것을 보면 인과응보가 헛소리가 아닌 것이야."



20. 자라가 빼앗긴 목숨을 복수하러오다.


오령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부자로서 매우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오령은 평소에 특별한 음식을 좋아하였다.

한 번은 오가에 큰 잔치가 열려서 요리사는 시장에 나가서 커다란 자라를 한 마리
사왔다.

요리사는,

"이렇게 큰 자라의 고기맛은 특별히 좋을거야. 우리 집 도령이 좋아하실거야."하며
칼을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그 때 자라목을 치려는 순간 자라는 눈물을 떨구며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요리사는 그 모습을 주인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이런 것을 어떻게 죽이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오령은

"바보같은 자식, 칼 이리 내놔. 내가 죽이겠다."하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살기등등하여 번쩍이는 칼을 들고 흉악한 모습으로 눈을 부릅뜨고
부엌에 들어와 땅에서 눈물을 떨구고 있는 큰 자라를 향하여 우렁차게도 칼을
내리치니 그 자리에서 자라의 목이 떨어졌다.

떨어진 자라목은 팔딱 몇 번 뛰다가 부엌천장에 올라가 붙었다.

"아, 맛있다, 맛있다."

오령은 한편으론 먹으면서 한편으론 찬탄하였다. 그러나 고기 몇 조각을 먹었을 때
돌연히 눈이 흐려지며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아이유, 이렇게 많은 자라가..."하며 그는 공포에 질려 소리를 쳤다.

"여기도 있네."하고 오령이 두려워하자 그 아들은 오령을 부축해 침실로 들어갔다.

"여기도 모두 자라야."하고 무서워 떨면서 침대가리개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그 다음엔 "아이고야, 아이고야."하면서 아프다고 소리치며 신음하였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수백 마리의 자라가 발을 물어뜯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엔 한 마리의 자라도 보이지아니했다.

3일동안 오령은 이렇게 고함을 지르며 고통을 이기다가 결국은 발작하며 죽고말았다.




21. 살생의 업보로 악창이 나 죽다.

청나라 때 소흥지방에 위새라고 하는 무위도식하는 건달이 있었다.

그는 총 쏘는 재주가 좋아 사냥을 잘하였다. 특히 날짐승을 잘 잡았는데 새를 잡으면
팔기도하고 요리도하여 술안주로 하였다. 그의 손에 죽은 새는 부지기수였다.

그는 또 강에 나가 장어도 잘 잡고 개구리도 잘 잡고 거북이와 자라도 잘 잡았으며
심지어는 독약을 놓아 새를 잡기도 했다.

또 약을 뿌려 많은 고기를 잡고, 새 둥지를 허는 등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골라가면서
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살생을 하지말고 농사를 짓고 농업에 종사하라고 권하였다.

그는 들은 체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의 일에 간섭한다고 그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런 생활이 길어지자 그 죄업이 갈수록 깊어져 결국은 악창의
병을 얻었다.

온 몸에 난 두드러기는 산비둘기 알만큼씩 크고, 그 두드러기 속은 쇠구슬같은
것이 들어있는 듯이 단단하고, 건드리면 아프기가 그지없었다. 몸에 열이나 타는
듯하였고, 드디어는 온 몸이 헤겨지기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 누워 아픔을 견디지못하여 비명을 질렀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고통 속에서 죽었다. 그가 죽자 많은 개구리, 자라, 거북이, 양 등과
각종 새떼들이 날아들어 그의 살을 모두 뜯어먹어 버렸다.

그의 처는 원한의 보복이라고 생각하고 그 새들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삽시간에 뼈만 남고 그의 후손이 끊기고 말았다.


22. 현세에 나타나는 업보


이 이야기는 아주 잔인한 이야기이다.

옛날 어느 현장이 평소에 가위 발바닥과 살아있는 양 심장을 즐겨먹었다.

그가 거위 발바닥을 먹을 땐 거위를 가마솥위에 매달아놓고 밑에서 불을
세게 때서 솥이 점점 뜨거워지면, 거위의 발바닥이 점점 부어오르고 온
몸의 피가 그 발바닥에 집중되는데, 마지막엔 거위가 죽게되는 것이다.

거위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곤하였다.

그 현장은 고통받는 거위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며 그는
또 하인들에게 명하여 양을 산 채로 기둥에다 묶어놓고 산 채로 양의 가죽을
벗기고 겨드랑이밑 늑골을 칼로 잘라 손을 넣어 양의 심장과 간을 꺼내어
요리를 하여 술안주로 하였다.

현장은 이렇게하여 얼마나 많은 거위와 양을 죽였는지 모른다.

모두 이런 방식으로 잡아먹었다.

어느 날 선비차림의 사람이 들렀다. 그에게 살생을 하지말라고 권하였다.

현장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커녕 오히려 그 사람을 야단쳤다.

"당신은 장래에 지독한 등창에 걸려 죽을 것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선비는
가버렸다.

과연 얼마 안되어 현장은 악창에 걸렸다. 의사는 다 찾았으나 그의 악창을
고쳐주는 의사는 없었다.

그는 결국 악창으로 죽게되었는데, 숨이 떨어지기도 전에 온 몸이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였다.



23. 개에 물려죽은 개백정


가정 남상읍에 채륙이라고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개를 잡아 그 고기를
파는 것을 업으로하는 사람이었다.

때는 마침 섣달 그믐깨라 개고기가 가장 잘 팔리는 때라서 한 밑천 잡을 생각
을 하니 기뻤다.

여러 해 개를 잡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개 잡는 방법도 아주 가볍고 편하게하고
있었다.

이 날도 채륙은 해질 무렵에 개를 잡기위하여 개를 항아리 속에 집어넣고 뜨거운
물로 개가죽을 불려 개의 털을 뽑는 방법으로 개를 잡았다.

그는 개를 잡다가 돌연히 눈꺼풀이 팔딱거리고 귀가 윙윙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하며 보통 때와는 다른 느낌을 느꼈다.

개를 다루는데 조금 소홀한 바람에 자는 듯이 숨이 끊어진 것 같았던 개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항아리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개가 뛰쳐나오는 바람에 크게
놀랐다.

번개처럼 빠른 솜씨로 그는 개를 다시 넘어뜨렸다. 그 개도 몸을 구부려 펄떡 뛰어올라
덥석 그 사람의 팔뚝을 물었다. 개가 얼마나 세게 물었던지 그는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가련한 비명소리를 듣고 이웃사람중에 한 사람이 나무 몽둥이를 들고 나와 개의
아가리를 벌려 떼었으나 이빨이 마치 쇠갈고리처럼 채륙의 어깨에 박혀 무슨 수를 써도
빠져 나오지를 않았다.

아무도 이 다 죽어가는 개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내리라곤 생각지 못하였다.

개의 이빨엔 독이 있었던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독은 점점 몸에 스며들어가 심장까지
독이 뻗치게되었다.

채륙은 땅에서 이리구르고, 저리 구르고 아픔을 견디지못하여 두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흐르고 똥오줌을 다 싸게 되었으나 온 몸의 힘이 다해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이어서 얼굴색은 변하여 파랗게 질리고 두 눈은 툭 튀어나와 보기에도 흉측하였다.

마침내 껄덕껄덕 두어 번 숨을 들이키는 것 같더니,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니 눈 깜짝할
사이에 개에게 물려죽고 말았다. 그가 죽자 개는 그제야 물었던 입을 놓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채륙이 개에 물려죽은 이야기가 소문으로 온 읍에 퍼져나가자 읍내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 감히 개고기를 먹으려 하지않았다.



24. 새를 쏘아죽인 업보로 새에게 쪼여죽다.

넓은 이마, 성긴 머리카락, 흰 창을 내놓고 늘 흘겨보는 눈, 매부리코, 처진 입술,
엉성히 드러내 보인 이빨, 그러나 작달만한 키에 뚝심이 센 이 사람이 바로 사람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보산 이북재란 사람이다.

이북재는 정당하지 못한 일에 머리가 잘 돌아가 하려고하는 일이 욕심이많고, 성격이
남달리 잔인하였다.

그 집은 매우 부유하였고, 집은 지세가 바다에 면하여 집 사방에 대나무를 잔뜩 심어
습기를 방지하였고, 많은 새들이 그 집 숲속에 집을 짓고 살았다.

이북재는 어렸을 때부터 총을 쏘아 새를 잘 잡았다.

"아, 또 한마리 잡았다!"

새집이 둥지 채 떨어지자 그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였다. 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그는 더욱 수렵을 좋아하여 사냥하는 것을 일상의 소일로 삼았다.

세월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니 이북재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어느 날 새벽에 집사람들이 보니 그가 창가에 서서 두 손으로 무엇을 쫓는 듯하였다.

그러더니 손으로 이마를 만지면서,

"그것들이 쪼는 것이 되게 아프네."하고 말했다.

그러더니 뒤이어 또 손으로 이마를 가리었다. 그 다음엔 어깨를 또 가렸다.

다음엔 또 팔뚝을, 등을, 허벅지를, 복사뼈를, 계속해서 손을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아야! 아야!"하면서 외치는 것이었다.

그는 새, 새, 새 하면서 공포에 떠는 모양이 마치 고양이를 본 쥐와 같은 형상이었다.

그러나, 집식구들에겐 새 한마리는 커녕 반마리도 보이지않았다.

"나 안되겠는데...."


돌연히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두 손과 발에 경련이 일어나 발을 뻗칠 수가 없었고,
머리는 앞으로 쭉 내밀어 몸을 엎드리는 형상을 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공중에 나는 큰 새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탄식하였으나, 구출할 방법이 없었다.

과연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이 새의 살생자는 죽고 말았다.



25. 닭고기를 즐겨먹던 딸이 요절하여 돼지로 환생하다.


기효란 선생의 저술 속엔 이런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하남성
신진현 모 왕씨의 이모의 이야기이다.

한 호화로운 관선이 부두에 닿았을 때 한 고관 집 중년부인이 창가에 기대고 서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때 나도 유모와 같이 그 배에 있었다.

부두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경삼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 부인을 알아보고,

"아이유, 현감부인이 아니세요?"

그렇다. 그는 현감부인이었다. 그런데, 무슨 슬픈 일이나 원한이 있어서 그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 마침내 유모는 현감부인의 하소연을 듣게되었다.

실은 현감부인이 한 괴상한 꿈을 꾼 것이다.

꿈 속에 어려서 죽은 딸이 사람들에게 결박을 당한 채 함부로 찔리고하여 비참한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현감부인은 계속 비참한 딸의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것이었다.

유모가 답답해서 배의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더니, '아!'하고 깜짝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배에서 도살쟁이가 태어난지 얼마안된 새끼돼지를
죽이고 있었다.

돼지에게서는 선혈이 쏟아지고 돼지는 비명을 지르니 그 모습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특히 돼지가 발을 묶은 빨간 끈이 현감부인이 꿈속에서 본 딸의 손을 결박했던
빨간 끈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곧 부인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부인은 그 말을 듣고 기절할 듯이 슬퍼하였다.

부인은 곧 많은 돈을 내어 그 돼지를 모두 샀다. 비록 회생시킬 수는 없지만 몸뚱이
라도 온전하게 보전시키기 위해서였다.

후에 현령 집에서 심부름하는 종복들이 그 소식을 알게되었다. 입빠른 무리들은
그 사건을 이리말하고 저리말하고 돌아다녔다.

그들의 딸은 한 끼도 닭고기없이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위해서 잡은 닭만도 7백마리도
더 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 아이는 열여섯에 요절을 하였으니, 어찌 닭고기를 너무
좋아한 업보가 아니겠는가!



26. 소를 도축한 과보


구리빛의 튼튼한 피부, 얼굴엔 뻐청수염, 불이 번득이는 듯한 흉악한 빛을 내는 소망울같은
두 눈, 이것이 바로 고연룡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 지방에서 소잡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중에 손꼽히는 사람으로 독종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 모두들 호랑이같이 무서워하였다.

고연룡의 집은 시장부근에 있는 아주 넓은 목조건물이었다. 거기에는 고연룡과 그의 처와 두
아들이 함께 살고있었다.

그 두아들들도 모두 힘이 장사고 행동이 거칠어 그의 아버지와 같았으며
소를 잡는데 매우 익숙하였다. 그의 처도 칼질솜씨가 아주 제법이어서 남편에 뒤지지않았다.

방안에는 널찍한 구리로 만든 침대가 있었는데 고연룡부부가 쓰는 것이었다. 두 아들은 땅바닥에
깔 것을 깔고 그냥 잤다. 집안에 설비는 별 것 없었지만 굉장히 큰 나무도마가 있는데 그것은 소를
잡는데 쓰는 것이었다. 문에는 여러가지 갈고리가 걸려있는데 소다리, 소머리, 소어깨, 소꼬리 등을
걸어놓고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이렇게 전식구가 소를 잡아 파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으니 그 들에게 살해된 소가 얼마나될지 부지
기수였다. 후에 고연룡이 돌연히 눈병이 생겼는데 고치지를 못하고 끝내 실명하고 말았다. 참으로
업친데 덮친다더니, 고연룡의 처도 나이가 많아서인지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려서 몸 전신이 헤겨지고
벌려져 옷자락이 스치기만하여도 칼로 찌르는듯이 아팠다.

고연룡의 처는 침대위에서 혼자말로,

"저승의 현관은 마치 소를 잡는 방법으로 나를 이렇게 칼로 찔러서 아리게하겠지? 아이고
아파라."

그 여자의 목소리는 처참하기 그지없이 차마 들을 수 없었다.

그를 보살피는 아주머니는 이것을 낱낱이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살생을 업으로
하는 업보가 무섭다는 것을 알았고, 그 중에서도 소를 잡는 업보는 더욱 크다는 것을 알았다.

소는 사람들에게 공이많은데 왜 하필이면 소를 잡아먹을까하고 탄식하였다.



27. 개미를 몰살시킨 업보


넓고 푸릇푸릇한 묘포(꽃밭)에는 구사륙이 열심히 정리한 덕분에
매우 정결하여 보는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묘포 안에는 사람 눈을 즐겁게 해주는 꽃나무가 있었다.

구사륙은 공부를 많이 아니했으나 원예에 대해서 경험이 풍부하고 재능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보고 원예의 명수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무지하다고
하기보다 오히려 잔인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원예하는 사람들에겐 벌레를 잡아죽이는 일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는 평소에 기어다니는
벌레도 잔인하게 죽이곤했다.

한 번은 그가 꽃나무를 심다가 상당히 깊은 개미굴을 발견하였다.

그 안에는 무수한 개미들이 왔다갔다했다. 사륙은 급히 부엌으로 뛰어갔다.

펄펄끓는 물을 한 냄비 들고 나와서는 주저함이 없이 개미구멍에다 부어댔다.
물론 개미들은 말할 것도 없이 뜨거운 물에 몰살당한 것이었다.

사륙은 좋다고 깔깔대며 웃어댔다.

무더운 여름이 되었다. 더위는 사람을 견딜 수 없게하였다.

사륙은 웃통을 벗고 평소와 다름없이 화원에 가서 일을 하였다.

콧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제법 득의연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상당한 저축이 되어있었고 나이 삼십이 넘었으니 결혼도 할 때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혼자서 상상하였다.

장씨집 둘째 딸이 미모가 일색인데 몸매도 날씬하며
그 부드럽고 하얀 손은 아주 고왔던 것이다.

'만약 그녀를 처로 맞이한다면 그는 참 복있는 사람이겠지.
그러나 못할게 뭐가 있어!'하며 혼자서 이런 일을 상상하곤
하였다.

'돈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던데!'하면서 입이 저절로 찢어지도록
웃곤 하였다.

그 때에 그는 홀연히 자신의 가슴팍 근처에 빨간 점이 여러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개나 되나 숫자를 헤어보려니까 삽시간에 전신으로 번지더니 물집이 잡혔다.

그리고, 빨간 물집을 만지니 그 속에서 개미가 튀어나오면서 자지러지도록
아팠다.

그는 그러한 고통을 며칠을 못참고 견디다가 그는 마침내 죽고 말았다.



28. 업으로 생긴 병을 참회하다.


항주의 황수원은 사람들이 다 아는 상처를 잘 치료하는 명의로서 이름이 원근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하루는 얼굴이 흉악하게 생긴 장년의 젊은이가 한 사람 그의 앞에 나타났다.

집안에 들어서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연이어 아프다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윗옷을
벗고 등을 내밀며, 황수원 명의에게 좀 봐달라고 하였다.

황수원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등에는 커다란 뾰루지가 하나 나 있었다.

말이 뾰루지이지 그 크기가 큰 대야만하였고, 그 주위엔 조그마한 뾰루지가 가득 나
있었으며 그곳에서 나는 냄새가 아주 고약하였다.

"이대로 두다가는 전부 썩겠는데..."

황수원이 이렇게 말하자,

"뭐요?" 하며 그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황의원은 다시 말했다.

" 이 증상은 백조조왕(百鳥朝王:수많은 새가 왕을 향해 경의를 표함)이라고하는 고칠 수
없는 악성종기입니다."

황수원은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콧등에 흘러내린 돋보기 안경을 끌어돌리며 그 손님에게
물었다.

"당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겠소?"

황수원이 물었다.

"나는 평소에 새를 잡는 수렵꾼이오. 낮에는 총으로 새를 잡고 밤에는 새둥지를 헐어서
새를 잡는 일을 하며 10여년을 살아왔소."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렇지. 평소에 당신의 살생업보가 중하여 이런 병을 얻은 것이오. 살생한 것에
따르는 인과응보입니다."

황수원은 단호히 말하였다.

"그러면 어찌해야 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 사람은 황수원에게 물었다.

황수원은 대답하였다.

"대장부가 잘못을 알았으면 고쳐야지. 지금부터라도 살생을 하지않으면 내가 한 번 병을
고쳐보겠소."

의사는 그에게 부처님앞에서 뉘우치고 채식을 하겠다고 맹세하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의사의 지시대로 한 결과, 반달이 안지나서 병세가 아주 좋아졌다.


그 사람은 직업을 바꾸어 채소장사를 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니 생명을 건지게된 것이었다.



29. 여우를 죽인 업보

회남지방에 왕화남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부자로 그 지방에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장사가 잘되어 가게를 확장하려고 이웃 빈집을 정리하는데 집안 사람들이 그 빈집에서
세 마리의 영루를 발견하고 온 식구들이 소리치며 쫓았다.

왕화남은 여우를 몹시 싫어하였다. 그래서, 그 여우를 잡아 없애야 시원할 것 같아
그는 소리쳤다.

"후환이 없도록 여우식구들을 모두 없애야한다. 한 마리도 놓아줘서는 안된다."

그러나 결국 한 마리는 놓치고 말았다. 한 마리를 놓쳐 화가 난 김에 잡은 두 마리를
잔인하게 때려 죽어버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부터 그 전당포 창고에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모두들
여우가 행패를 부린다고 말하였다.

청나라 가경 을해년 가을이었다. 창고에 까닭없는 불이 나서 창고가 나서 타고있었다.
천만다행히 일찍 발견하여 많은 손해는 없었다. 그러나 또 몇달 후 똑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창고에서 여우가 장난을 치는 것으로 보였따.

이리하여 왕화남은 창고에 있는 물건과 창고를 통째로 사마녀금을 받고 진부자에게 넘겨버리려고
했다.

쌍방이 매매계약을 하기로 된 하루 전날 진씨 부잣집 식구들이 공중에서 조용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와 왕가네 집안과는 원한이 있다. 너희는 절대로 그것을 사서는 아니된다."

진씨의 처가 그 소리를 아주 역력하게 들었다.

그래서 자기 남편에게 그것을 사지말라고 강력히
저지하였다.

매매계약이 성립되지않아, 왕화남은 울며 겨자먹기로 자기가 그 창고를 다시 쓸 수
밖에 없었다.

"아유, 내 창고에 그 많은 금은보화는 어떻게 해?"

왕화남은 미친 듯이 방에서 뛰쳐나왔다. 바지와 버선도 신지않은 채 두루마기만 걸치고
뛰쳐나왔다.

그 일이 있은 후 신축년 3월 어느 날 밤이었다.

창고에 불이 난 것이다. 그 불은 순식간에 온 집안으로 번져갔다.

그 불은 마침내 왕가네 온 재산을 다 태워 잿더미로 만든 것이다.



30. 양의 혀를 뽑아 말을 못하는 과보를 받다.


당나라때 번과라고 하는 사람이 장안에 살고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무예를 익혔으나 사람됨이 악하지 아니하여 현청에 하층관리로
취직하여 생활하면서 늘 다른 많은 소년들과 내왕을 하였다.

어느 날 버려진 무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양 한 마리를 보았다.

양은 홀로 풀과 나무열매를 따먹고 있었다.

반과는 다른 사람과 힘을 합하여 양을 붙잡아 집으로 끌고갔다.

도중에 양이 "메에~ 메에~" 울어서 반과는 그 양 주인이 우는 소리를 듣고 올까봐
두려워 양의 혓바닥을 뽑아버렸다.

그리고난 후 자신이 영리하여 일처리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양을 잡아가지고 동무들과 마시고 즐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 년이
지난 후부터 반과는 돌연 혀가 점점 속으로 오므라 들어가서 조그맣게되어, 말을
잘 할 수가 없었다.

반과는 병을 빙자하여 관가에 사직서를 냈다.

현감 정 여경은 그가 거짓으로 빙자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불러 검사를 해보니 과연
혀가 거의 없고 혀뿌리가 콩알만하게 적어져 있었다.

현령이 그 원인을 묻자 반과는 붓을 들고 글을 써서 대답하였다.

현령은 부하에게 명령하여 죽은 양의 명복을 빌어주라고 하면서 반과로 하여금
법화경을 쓰게 하였다.

반과는 마침내 발심하여 독실한 신앙심을 내어 계를 지키고 채식을하며 양의 명복을
빌었다.

일년 후에 반과의 혀는 점점 커지면서 예전과 같이 되었다.

반과는 너무 너무 기뻐서 급히 현령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니 현령도 매우 기뻐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령은 반과를 이정으로 승격시키니, 현령 정여경은 매우 청렴결백하여
원근이 모두 칭송하였다.

후에 현령 정여경은 감찰어사가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다



31. 소와 함께 솥에서 삶아진 도살쟁이


"가기 싫어도 할 수 없어! 가야해!"

흉악한 얼굴에 건장한 체격을 갖춘 도살쟁이가 안 끌려가려는 소를
힘껏 잡아채며하는 소리였다.

그 늙은 소는 자기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것을 알고 죽어라고 버티고 안가는
것이었다.

"제기랄! 안 갈테냐!" 하며 도살쟁이는 채찍으로 갈겼다.

어느 가게 앞에 이르자 그 늙은 소는 갑자기 두 무릎을 꿇고 주저앉더니 방울만한
눈망울을 서서히 아래로 떨어뜨렸다.

가게주인은 그 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말을 하였다.

"여보, 얼마면 이 소 팔겠소?"

"이 소의 몸값은 팔천 냥짜리지만 팔지는 않겠소."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내가 만 냥을 낼테니 어떻소?"


마음씨 착한 가게주인은 그 소를 죽음에서 구하고 싶었다.

뜻밖에도 그 도살쟁이는 저주스러운 웃음으로 웃으며,

"이 놈의 소는 정말 고약한 소요. 내가 반드시 죽여서 꼭 살을 도려내야만 속이
시원하겠소. 얼마를 줘도 안팔겠소."하고 말했다.

늙은 소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도살쟁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도살쟁이는 이 소가 계속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자 그는 생각을 바꾸어서 도살장에 끌고가서
팔지않고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아예 자기 손으로 소를 잡아 토막을 내어 커다란
가마솥에 집어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쇠고기는 푹 고아야 맛이 있기때문에 우선 한잠 자고 일어나려고 방에
들어가 부인고 함께 잠이 들었다.

새벽녘이 되자 도살쟁이는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부엌에 들어가 소를 끓이고 있는 솥을
열었다.

그런데, 부엌으로 간 지가 한참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이상해서 부인도 일어나
가마솥 가까이 가보았다.

솥뚜껑은 열려있고 부글부글 끓는 소리만 들렸다. 그런데, 수증기 속에서 괴이한 냄새가
풍겨왔다.

정신을 가다듬어 자세히 보니 이게 웬일인가?

깜짝 놀란 부인은 나무토막같이 뻣뻣해졌다.

가련한 그의 남편이 가마솥에 거꾸로 빠져서 쇠고기와 같이 부글부글 끓여져서 완전히
익혀진 것이었다.


32. 채찍을 맞아 전신의 뼈가 부서지다.



옛날에 광동지방에 문무를 겸비한 총병관이 있었다.

성은 장씨요, 이름은 성도였다. 그는 건장하고 튼튼하여 만부가 당할 수 없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뼈대가 있는 선비 집안의 후손이라 붓을 들면 훌륭한 휘호를 써내려
남에게 뒤지지않았고, 간혹 명인들이 내방하여 작시하고 시를 읊을 때도 그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명성은 사방에 전해지게 되었다. 다만 한가지 그는 개고기를 먹는
버릇이 있었다. 부엌에선 개고기를 끓이지 않는 날이 없어, 보통 사람이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이 개고기를 매일 먹었다.

그래서, 그가 어디든 가기만하면 그 지방의 개들이 모두 그를 향해 짖어댔다. 마치
개들은 그 사람이 자기들의 원수나 되는 것처럼 놓아두질 않았다.

장성도는 관운이 형통하여 건영지방의 지방관이 되었는데 하루는 순시차 무의산을
올랐다. 날이 어두워 더 갈 수가 없어 구곡주라는 곳에 머물러 하루 투숙하게 되었다.

부하들은 그가 개고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개를 잡아 그의 식욕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튿날이었다. 산위에 올라가면 천유관이란 도교사원이 있었는데 그 곳이 명승지란
소리를 듣고 구경하러 올러갔다.

장성도가 정각문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한 줄기 금광이 눈을 찌르더니 앞이 몽롱해지면서
아찔하여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였다.

부하들이 달려와 그를 부축해 세웠으나 그는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온 몸이 마비가 되어
실오라기만한 힘도 없었다.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과 같은 느낌이 들어 모두들 정신을 차려 자세히 살펴보니 두 눈은
딱감고 있었고 이마가 서늘해져서 이미 숨이 끊어져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 절안의 도사인 최원영이
여러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다.

"그 분이 쓰러진 것은 대전(大殿)의 좌상이신 왕령관이 현신하여 그 위력을 보이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이 사원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신성함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분은 관위가 높은 나리이기 때문에 차마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진입을 저지하지
못했더니, 결국 그의 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군요."

그 때에 한 사람이 나서서 물었다.

"그런데 왜 온 몸이 뼈마디가 없는 것 같이 되었습니까? 참 이상하지 않아요?"

최도사는 대답했다.

"그 이유는 그 사람 전신의 뼈가 부서졌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문에 들어섬과 동시에
왕령관의 채찍에 얻어맞은 대문이지요."

설명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33. 제사에 살생을 꺼리다.


" 참 어려운 일이지요. 일생동안 그렇게 계를 지키고 경건한 생활을 했으니..."

이사희가 말했다.

"누가 아니래요? 그야말로 모범 불자이시지요."

나대광도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고하는 말은 바로 김석연을 두고하는 말이었다.

김석연은 실로 정성스럽고 착한 사람이었다. 원근의 불교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병으로 죽으니 나이 겨우 사십 세였다.

"선업을 닦은 날짜가 길지못하여 서방정토에 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저승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안락하다. 그리고, 이승과의 왕래도 매우 자유스럽다."

이것은 김석연이 어떤 집안 식구의 한 어린아이에게 꿈에 나타나 한 말이었다.

또 하루는 그의 부인의 꿈에 나타나 매우 화난 얼굴로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당신은 왜 그리 어리석소? 어쩌면 그렇게도 우매한 짓을 하는거요?"

그 부인이 그 뜻을 몰라 물어보았다.

"당신, 무슨 말씀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당신이 내 무덤 앞에 닭을 잡아다 제사를 지내지 않았소? 지금 저승의 관리가 나를 따라다니며
나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소."

"그럼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늘아이가 곧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태아가 남아
인지 여아인지 사실대로 말씀해주세요."

김석연은 탄식하면서 대답했다.

"남자아이요. 별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 이후에 또 남자아이를 낳을 것인데 그 때는 좀
어렵겠소."

"무엇이 어렵다는 것입니까?"

"모자의 생명이 모두 어렵겠소."

과연 후에 김석연의 말대로 되었다.



34.

명 만력 계축년에 진강의 전참장군이 부하 병졸을 이끌고 배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배가 강위에 떠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갈 때 진참 장군은 배선실안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끼룩끼룩 공중에서 기러기의 비명소리가 그치지않고 들려왔는데 참으로
처량하게 들렸다.

배가 백리 조금 갔을 때도 여전히 그 기러기는 배위를 선회하면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알고보니 다른 기러기 한 마리가 전장군의 부하에게 잡혀 우리 속에 갇혀있는 것이었다.
배끝에 매달아 놓은 새장속에는 한 마리의 기러기가 끼룩끼룩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배가 부두에 거의 닿을 무렵에 장 속에 있는 기러기가 돌연히 고개를 쳐들고 공중을 쳐다보며
크게 울어댔다.

이어서 화살처럼 한 기러기의 그림자가 떨어져 내려왔다. 그것은 공중의 기러기가 배에 매달아
놓은 새장을 향하여 내려온 것이었다.

새장 안에 있는 기러기는 목을 밖으로 내밀고, 두 기러기는 서로 목을 비벼댔다. 마치 다정한
부부가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모습과 같았다.

이러한 광경은 병사들의 동정을 얻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질이 포악한 두 병사는 심지어 칼을
들고 기러기의 목을 내려치니 순식간에 가련한 기러기들의 목에선 피가 흐르며 죽고말았다.

기러기 울음소리가 돌연히 멈추자 전장군은 선실 밖으로 나와서 그 모습을 보았다.

병사들의 잔인한 행동을 본 장군은 분노하여 말하였다.

"너희 두 놈은 왜 그렇게 잔인한가? 아무 죄도 없는 생명을 그렇게 처참하게 죽이다니!
한 사람에게 곤장 30대씩의 벌을 내리겠다."

이 두 병사는 각각 곤장 30대의 벌을 받고 또 후에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괴질병을 얻어
한 달 가까이 앓다가 모두 죽고 말았다.


35.

귀주성 어느 지방에 육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생선을 좋아해서 매끼마다 드렁허리(논장어) 요리가 없으면 밥을 먹지를
않았다.

"드렁허리가 맛이 좋단 말이야."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때면 늘 이와같이 말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가면 늙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육씨도 나이가 육십에 이르렀다.

어느 날 시장에 가서 살이 통통한 드렁허리 몇 마리를 샀다.

"생선 사시려고요? 이것 모두 신선합니다. 얼마나 살이 쪘는데요."하고 생선장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육씨는 생선가게에 다가가 팔을 걷어 올리고 생선이 헤엄쳐다니는 통 안에 손을 깊숙이
넣어 크고 살찐 드렁허리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는 늘 이렇게 잡은 경험이 많아서 드렁허리를 만져보면 그 드렁허리가 상품인지 하품인지
그 질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육씨가 물 속에 손을 넣고 더듬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얼굴색이 남색으로
변하였다.

생선가게 아저씨가 다가와서 보니 언제 그랬는지 통 속에 집어놓은 육씨의 팔뚝에 드렁허리가
달려들어, 팔뚝을 물고 있었다.

그 비명소리에 시장 안의 생선장사들과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 마음씨 고운 사람이 육씨 집에 알려서 아버지를 데려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팔뚝을 물고있는 드렁허리들은 한 마리도 물고있는 그의 팔뚝을 놓지않았다.

심지어 몸뚱이가 잘리어 나가도 드렁허리 머리는 여전히 팔뚝 문 것을 놓지않았다.
그래서, 드렁허리를 뜯어내는 데는 팔뚝을 도려내느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팔뚝의 살은 다 잘리어 나가고 뼈만 남게 되었다.

육씨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다가 결국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36.


은안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집안 사람들에게 물었다.

"거참 이상한 일이다. 누가 내 나귀를 죽였느냐? 나귀를 죽여서 가죽을 벗겨 집 뜰안에
던져 놓았으니 참으로 악질이구나."

은안인의 집안의 나귀가 욕심많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암살을 당하여 고기만 가져가고
가죽만 뜰 안에 던져진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길에서 홀연히 어떤 사람이 은안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죽을 날이 다 되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내일 와서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후 그 사람은 보이지않았고 은안인은 몹시 두려웠다.

그는 평소에 자문사의 스님과 친했으며 자주 내왕하였다. 그래서, 그는 곧장 자문사로
달려가 대웅전 부처님 앞에 앉아 밤이 길어도 법당을 나가지를 아니하였다.

이튿날, 과연 몽롱한 중에 말을 탄 사람과 몇 십명의 귀졸들이 칼과 장대를 들고 절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절로 들어오더니 멀지감치 떨어진 곳에서,

"빨리 나오너라."하며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러나 은안인은 꼼짝도 하지않고 열심히 소리높여 염불만 하였다.

그 때 한 귀졸이 말하였다.

"어제 만났을 때 당장 잡아가야 하는 것인데, 놓아주었으니 오늘 그가 경을 읽고 염불하여
복을 닦으니 어떻게 잡아가겠소?"

마지막으로 파수꾼 하나만 남겨놓고 나머지 귀졸들은 모두 흩어져 돌아갔다.

망을 보고있던 귀졸이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할 일이 없어서 공연히 와서 당신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오. 당신이 이전에
죽인 그 나귀가 당신을 염라대왕께 고발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을 데려가지않으면
사건의 결말이 나지않기 때문이오."

은안인이 그제야 내막을 얼른 알아차리고 즉시 대답하였다.

"사실은 그 때 나귀는 어떤 모르는 사람에게 암살당하고 가죽만 우리 집에 던져졌을 뿐이오.
실은 내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대신 가서 나귀한테 말해주시오. 나귀를
위해서 불공을 드리고 천도재를 올려 저승에서 잘 살 수 있게 해줄 터이니 고소장을 풀어달라고
청을 좀 해주오."

"좋소. 그렇게 하겠소. 만일 나귀가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내일 다시 올 것이오. 나귀가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내일 다시 아니올 것이오."

귀졸은 이렇게 다짐해놓고 떠나갔다.

그런데, 이튿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은안인은 나귀를 위해서 천도재를 해주고 그 때부터 전가족이 채식을 하고 영원히 육식을
하지 않았다.



37. 살생하여 번 돈으로 먹은 과보

조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닷게를 팔아서 사는 것으로 업을 삼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매일 게를 잡아다 팔아서 쌀과 기름을
사서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고있었다.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어떻게 선도해야할지 몰랐다. 그리고, 아들이 게를 팔아 돈을
가져오면 실컷 먹고 즐겼다.

하루는 해가 저물어 방안이 어두워지자 방에 켜는 불은 콩만해서 어두컴컴해지며
갑자기 노모가 쓰러져 신음소리를 내었다. 조용이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서 이
광경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원래 그 노모는 무슨 정신이상의 발작을 일으킨 것이었다. 조용이 평소에 게를
시장에 가지고 갈 때에 게를 묶어둔 새끼줄을 계속 입에다 집어넣고 그것을
모두 삼키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을 보고 못하게 말렸지만 그 어머니는 손을
뿌리치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더니 홀연히 다시 입에 넣었던 새끼줄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때에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웃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그 모습을 구경하였다.

그 때 돌연히 사람들은 '아이유'하며 비명같은 소리를 질렀다.
왜냐하면 새끼줄이 입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동안, 장이며 폐에서 피가 그 새끼줄에
묻혀나와가지고 사방으로 피비린내를 풍겨 그 냄새가 지독하여 모두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내 아들이 번 돈으로 내가 뿌렸으니 이것은 내가 마땅히 받아야할 응보다. 이렇게 고통을
받지않는다면 장래에 더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하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조용은 말로 할 수 없는 비통을 느끼며 어머니 옆에 앉아서 같이 울었다.

이런 비참한 장면도 며칠이 못가서 그 어머니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38. 흉악하고 잔혹함이 업보를 나타내다.


맹병암 선생이 광애록이라고 하는 책을 지었는데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소주 어느 곳에 생선 전문요리점이 있었다. 주인 대대빈은 잔인하고 살생을 함부로 하고
몹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경영하는 이 식당이 남들보다 특별히 장사가 잘되는 것은 남모르는 원인이 있었다.

그가 개발한 특수한 요리법이 있는데 그 요리법은 대시루 속에 많은 쇠못을 박아놓고
살아있는 생선을 그 안에다 던져 넣고 고기가 이러저리 움직이는 동안 피가 흘러 그곳에
놓아둔 밀가루 국수에 피가 배기게한 후, 그 피가 스며든 국수로 요리를 하는데 특별한
맛이 있었던 것이다.

"하하, 수입이 대단히 짭잘한데..." 하면서 대대반은 주판을 놓으며 좋아했다.

그 때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직업을 바꿉시다. 이 장사는 너무나 잔인해요."

그러자,

"바보같은 녀석! 장사가 잘되는데 무엇이 어떻단 말이냐? 직업을 바꾸면 무엇으로 바꿔?
다른 장사가 이만한 수입을 얻게해줄 것 같아?"하면서 아들에게 말도 못붙이게 했다.

몇 년이 지나갔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가 출타하여 돌아오지않아 강기슭을 따라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그 때 '아, 아버지!'하며 아들은 통곡을 하였다.

강 위에 떠있는 그 아버지 대대반의 시체위에 수많은 고기들이 그의 허리를 감고있었다.


강뚝에는 점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비난이 분분하였다.


39. 개구리를 잡은 업보

청나라 도광 16년에 강음군 관청에서 농민들에게 개구리를 잡으면 엄벌에 처한다고
공고를 내붙였다.

왜냐하면 개구리는 농사에 해가되는 벌레들을 잡기때문에 오곡에 유익하고 해가 없는
동물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글 읽는 사람들은 그 공고내용을 글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러주었다.

그 때 장아희라고 하는 농민이 있었는데 그는,

"그걸 내가 알게 뭐야!"하고 무례한 소리를 하였다.

좋은 이야기로 한 두 번이나 그에게 충고하는 사람도 당연히 없어졌다.

원래 장아희는 개구리를 잘 잡으며, 글을 모르는 사람일 분만 아니라 성질이 거칠고
조심성이 엇으며 마음이 악독한 사람이었다.

해마다 그가 잡아다 파는 개구리가 부지기수였다.

"개구리 잡는 게 뭐가 나빠? 봐라, 내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데...개구리 덕분에 잘
살지않아?"

혼자서 빈정거리며 그는 개구리를 판 돈으로 술을 받아서 마시고 취하면 득의연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곤 하였다.

"음, 안되지. 관청에서 금하는 것에 위반된다고? 그게 무어 그리 대단해? 근년에 관청에서
금하는 것에 위반되는 것이 그 것뿐인가? 또 나뿐인가?"하면서 변명하곤했다.

어느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장아희가 실종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아침에 바람이 자고 비가 그쳤을 때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강가에 나갔다.
강가에 나갔던 사람들 모두 탄식을 하면서 바라보았다.

"이 것이 개구리를 잡은 업보인 것이야."

장아희는 물에 빠져 죽은 채 시체로 떠 있었다. 더구나 수도없이 많은 개구리들이 그의 몸에
달라붙어 고기를 뜯어먹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소름이 끼쳤고 업보의 무서움을
알게되었다.




40.

상주성 밖 횡림고을에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독종이었다.

횡림 마을에는 숲이 좋고, 큰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안에 갈대가 우거져서 많은 새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왕씨는 교묘한 방법으로 아주 촘촘하게 그물을 짜가지고 갈대숲에 그물을 쳐놓고
아주 사나운 매를 기르고 있었다. 그래서, 매를 날리면 새들이 갈대숲 안으로 쫓겨오는데,
그곳에 왕씨가 쳐놓은 그물에 몽땅 걸리곤하였다.

그물째로 거두어서 새를 압사시킨 다음 다음 시장에 내다가 파는데, 이것이 그가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식으로 생활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왜 사람들이 그를 독종이라고 말하느냐하면 그는 평소에 성질이 흉폭하고 도리에 어긋난
일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만약 누가 조금이라도 그가 쳐놓은 새 망을 건드리면 그는
아주 심한 욕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욕이란 욕은 다 되씹으며 종일 욕을 그치지 않았다. 이웃 마을에서도 그를 잘 아는지라
절대로 그와 상종을 안하려고 하였다.

후에 그 왕씨는 이상한 괴질병을 얻게되었다. 전신이 쑤시고 아파 견딜 수 없어 자리에
누워 뒤집어도 엎으려도 아프기때문에 종일토록 신음하였다.

용하다는 의사는 모두 청해보았으나 속수무책이었다.

평소에 독종으로 불려오던 왕씨의 횡포도 위풍도 모두 없어졌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집 앞을 지나가면,

" 나 좀 불쌍히 봐주시고 나 좀 살려주세요."하고 애원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신음하고 애원하면 그 소리가 꼭 참새들이 짹짹거리는 것 같이
들렸다.

며칠이 지난 후 어느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했는데 그는 자기 스스로 혀를 난도질하듯이
깨물고 일곱가지 구멍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었는데 그 모양이 처참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41. 잠깐 사이동안 만번 죽다.

옛날에 한 현장이 있었는데 그는 오랫동안 살생을 금하고 있었다.

그 부인은 천성이 포악하고 먹기를 좋아하여 음식탐을 몹시 냈으며, 매일 생명을 죽여
고급음식을 해먹는 것을 즐겨하였다.

한 해에는 마침 그의 생일이었다.

그 부인은 요리상게 시켜 잔치준비를 시키니 부엌에서는 돼지, 양, 닭, 오리의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현장은 그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그 부인에게 말했다.

"내일이 당신 생일인데, 잘 살고 있는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니 불쌍하지도 않소?
좀 복덕을 쌓으시오."

그 말을 듣고 부인은 화를 내며 말을 하였다.

"그런 법대로 불교를 믿고 살생을 금하면 며칠 후에 온 세상이 모두 짐승 세상이 되겠소.'
하며 들은 체도 않고 톡 쏘아붙였다.

이튿날 돼지를 죽이니 부인의 혼이 돼지의 몸에 실려 부인이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양을 죽이니 또 능지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개, 닭, 짐승을 죽일 때마다 짐승이 받는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받게되었다.

부엌에 요리사들이 짐승을 죽일 때마다 그 여자의 혼이 짐승에 붙어 칼을 칠 때마다
심한 고통을 느꼈다.

부인은 마침내 살생이 나쁘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스스로 살생을 금하였다.

먹기위해서 짐승을 죽이는 것을 금하였다.

늦게나마 진심으로 깨달아 무병장수하게 되었다.


42. 방생하여 속죄하다.



감소성 진강현 단도안항의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은 곧잘 자라를 잡아왔다.
그것을 잡으면 진귀한 것이기 때문에 늘 부잣집 영감님인 조군에게 바쳤다. 그러면 조군은
높은 값을 쳐서 주었다.

거북이를 잡으면 이익이 많이 생기기때문에 이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거북이를
잡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일 년여가 지났을 때 조군 영감은 꿈에 동악대제사당에 이르러, 어떤 사람의 고소로 그 사람과
재판을 벌이게 되었다.

그 사람은 신체가 커다랗고 몸집이 크고 머리는 삼각셩으로서 강중노원(강가운데에 있는 자라)
이라고 불렀다.

그는 동악황제에게 말하기를,

"조군 이 사람은 우리 족속들을 너무 많이 죽였습니다. 마땅히 중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자, 동악황제가 말하기를,

"조군, 너는 변명할 말이 있느냐?"하고 물었다.

조군은 말하였다.

"없습니다. 저는 사실로 평소에 자라고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무식한 이라도 죄없는 생명들을 마구 상해하는 것은 마땅치않은 일인데, 하물며
너는 상당히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찌 무식한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느냐?

살생을 많이하고나면 금부에서는 도저히 용서가 되지않는다."

이어서 동악황제는 위엄있게 호령하였다.

"네가 이제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살생을 금하고 방생을 많이하면, 또 개나 소나 모든 동물을
일체 죽여서는 안되고, 먹지도 말 것이며 계를 잘 지킨다면 과거의 너의 많은 죄를 속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옥중의 옥졸들을 시켜 곤장 몇 대를 쳐서 자라의 분을 좀 풀어주었다.

동악황제는 다시 분부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착한 생각을 하면 귀신은 곧 그 머리에 복을 내리느니라. 네가 만약 뜻을 세워 착한
일을 하면 훗날 반드시 착한 보답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나 만약 여전히 이전과 같이 그렇게 방자하고 육식을 즐겨하면 더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치고 귀졸들을 시켜 그를 삼엄한 동악제황의 대전(大殿)밖으로 끌어냈다.

깨어나고보니, 다시 이 세상이었다. 그러나, 양쪽 볼기짝이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고,
아직도 멍하니 감각이 없었으며 며칠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조군은 항상 저승에 들려서 재판을 받던 이야기를 조금도 빼지않고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으며,
집안 식구들과 합심하여 자라고기는 물론, 소, 돼지, 말고기 등 모든 육식을 절대 먹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대선사로 이름이 나게되었다.


43.


"선생님, 우리 남편 병이 좀 나았지요?"

사씨 부인이 초조해하면서 물었다.

의사선생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답을 하지않았다.

원래 사씨의 등에는 커다란 등창이 하나 났는데 그 주위에는 또 작은 뾰루지가
무수하게 있었으며 무슨 약을 바르고 먹어도 효험이 없었다.

"이것은 많은 새들이 임금새를 향하는 형상으로서 괴질 중의 죄질이오."하고
유명한 의사가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같이 온 다른 의사도 그의 말에 이어서 말하기를,
"이것은 참으로 돈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오."하고 말하였다.

목재상으로 부자가 된 사씨는 평소에 부지런하고 재산관리에 밝아서 맨손으로
부자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특별한 것은 음식을 가려먹는 식도락에 특별한 취미가 있었다.

그래서, 손님을 모시고 연회를 베풀거나, 혼자 먹더라도 아주 호화로운 식생활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백조조왕(百鳥鳥王)이라고 하는 음식이었다.

이 요리는 많은 참새를 잡아서 큰 거위 뱃속에 넣고 끓여서 먹을 때 젓가락으로
거위 배를 찌르면 많은 참새들이 쏟아져나와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평소에 그는 그 요리를 좋아해서 얼마나 많은 새를 죽였는지 모른다.

이제 그가 그 몸에 난 병증상이 바로 그 요리이름과 마찬가지로 백조조왕이었다.

큰 등창은 왕과 같고 작은 뾰루지는 참새와 같은 것이었다. 그 뾰루지들이 곪아터지면
그는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그 등창은 곪아터져서서 그 냄새를
차마 맡을 수 없었으니, 돈 많은 사씨이지만 별도리가 없이 이렇게 고통과 신음속에
죽어갔다.


44. 벼락이 탐욕스럽고 잔인한 사람을 치다.


법원주림(法苑珠林)이라고 하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때 발해 장사사람으로 봉원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요리에 능숙하였다. 특히, 짐승을 잡고 요리를 하는데 아주 능하였다.

한 번은 관륵사의 대관이 그를 요리사로 초청하게 되었다. 그 때에 서역지방의
귀빈 우전왕이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

관륵사 관리는 잔치를 열어 그를 초대하였다. 먹고 남은 양이 백여 마리나 되어
우전왕은 그들을 절에 보내어 방생을 하라고 하였다.

봉은칙은 남의 부탁을 받고 충실히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도 욕심이 발동하여,

'살이 통통하게 찐 양이 내 손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그것을 그냥 놓아 줄 수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고 비밀리에 그 100여 마리의 양을 도살꾼에게 팔아 넘겨서 의외의 횡재를
하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못내 흐뭇해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몇 년이 지나서 봉은칙은 그 일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여전히 고관대작들의
집에서 요리를 하며 수입도 짭짤하여 생활이 넉넉하고 풍요로왔다.

용삭 원년 여름 6월 달에 봉은칙이 선인문 밖을 거닐고 있을 때 홀연히 폭풍이 일더니
비가 쏟아졌다. 하늘이 먹구름이 덮여 새까많고 뇌성벽력이 치며 비가 담아 붓는 듯이
쏟아졌다.

벼락치는 소리가 어찌가 컸던지 성문 안팎이 한 덩어리가 되는 것 같았다.

벼락을 만난 봉은칙은 갑자기 당한 일이라 피할 수가 없어 그대로 땅에 엎드렸는데 두 눈은
튀어나오고, 머리는 흐트러져 어깨에 내리고 머리는 마치 떨어진 것 같이 땅에 뒹굴고 있었다.

과연 자세히보니 목이 끊어져 머리가 마치 칼로 친 것처럼 동강이가 나서 그 주위에 선혈이
낭자하였다.


"이거 그 유명한 봉은칙 아닙니까?"

그를 알아본 사람이 그의 참혹하게 죽은 모습을 보고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그 놀라운 광경에 어안이 벙벙하여 할 말을 잃었다.


그 때 누군가 곁에서 탄식을 하며 말을 가로채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그 욕심때문에 많은 방생양을 몰래 팔아버려 불의의
이익을 취했던 사람이니, 어찌 이러한 결과를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45. 양을 도축하고 양으로 변하는 과보를 받다.


전매계가 쓴 '얼보담기'에 다음과 같은 인과응보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설경관은 전문적으로 양을 잡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양고기와 양 내장을
전문으로 파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가 끓인 양 내장탕이 청아하고 고소하다하여 맛이 좋다고 원근에 알려져서 이 집앞은
항상 장바닥과 같이 문전성시를 이루어 사람이 몰려들었으며 어떤 사람은 먼 데서부터
그 양내장탕을 맛보려고 일부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장사는 날로 번창하고 수입은 날로 증가하여 몇 년이 안되어 큰 부자가 되었다.

그 친구들중에는 불교신자도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항상 그에게 권하였다.

"자네 이미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데 더 욕심부릴 것 뭐 있나? 살생업보란 무서운
것이어서 그 과보를 받지않을까 참 두렵네. 내 생각같아선 빨리 손을 씻고 다른 장사를
해보든지, 또 한편으로는 선행을 좀 베풀어 그 동안 쌓인 앞의 업에 대해서 보충을
함으로써 자손들에게 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더니, 그는 친구의 말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아니하였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코웃음을 치면서,

"어디 기다려보지 뭐. 나는 그 따위 업보니 인과니 하는 것을 믿지않아."

설경관이 40세가 되던 해에 그는 돌연히 병이 났다.

까닭없이 입이 툭 튀어나오고 아래턱이 길게 늘어지고 입 언저리의 수염이 마치
산양의 털처럼 뻣뻣해지며 두 눈에 정기가 없어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설경관의 얼굴은 양으로 변했어."

수군수군하는 사람들의 말은 발도 없이 멀리 뻗어나갔다.

구경 좋아하는 짓궂은 사람들은 사실여부를 확인하려고 일부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쯧...쯧..."

혀를 차며 이상하다고 하면서 그를 동정하였다.

그는 비록 만금을 가진 부자였지만 병을 고쳐줄 의사를 만날 수가 없었고 아무
아무도 양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그 얼굴을 사람얼굴로 바꿔줄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체념하고 세월가는대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피치못할 일이 있어서 설경관은 안휘에 갔다가 잘못하여 강물에 빠졌다.

그것을 목격한 즉시 관에 보고하여 관가 사람들이 나와 그를 건지려 하였으나
시체조차 건질 수가 없었다.


46. 혼백이 소의 고통을 받다.

구화산 지장보살 육신탑은 천수 백년간 전해내려오면서 선남선녀들이
계속 참배한 불교성지였다.

청나라 도광 20년에 어떤 신도들이 순례단을 조직하여 구화산에 이르렀다.

그 중 한 사람이 도찬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경건한 마음이 없었을 뿐 아니라
평상시에 육식을 좋아하고 살생을 즐겼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쇠고기를 좋아
하였다.

이 때에 대전(大殿)에 걸려있는 농사를 짓는 소를 죽이지말라는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 그림을 보고 도찬은 냉소를 하며,

"흥, 그런다고 내가 쇠고기를 안먹을 줄 알아?"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돌연히 그가 곤두박질 치더니 마치 파가 땅에 꽂혀있는
것처럼 머리를 땅에 대고 거꾸로 서서 입에서는 계속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은,

"흥, 지장보살님앞에서 함부로 말을 하다니, 신성한 성전을 모독한 것이야."하며
같이 온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래서 같이 온 일행은 지장왕보살 앞에 노여움을 풀어주시라고 모두 간절히 빌었다.

한참 후에 도찬은 깨어나서 바로 서기는 섰으나 양쪽 눈이 움직이지않아 자기 스스로를
의식하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한 것 같았다.

지장보살 대전(大殿)을 떠나서 모두들 들 것에다 도찬을 싣고 산을 내려와 천보마을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의 서당 방을 빌려 그 곳에서 쉬게하였다.

서당주인이 돌아와 도찬을 한 책상위에 올려놓고 흑야수의 수성이 발동할까 무서워서
그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았다.

이튿날 깨어보니 도찬을 묶은 끈은 모두 풀어지고 서실에 있는 책이며 차도구이며
책상위에 있는 이불이며 옷가지들이 모두 흩어지고 찢겨지고 낭자하게 흩어져있었다.

도찬은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소의 소리를 내면서 신음하였다.

도찬을 자기 집에 데려가니 식구들이 그 정황을 보고 급히 재를 올리고 맹세하기를
이제부터는 온 식구가 다시는 쇠고기를 먹지않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매년 7월 30일 지장보살 성탄일이면 구화산에 올라가 정성껏 기도하겠다고
애원하였다.

이렇게 10일이 지나자 도찬은 마침내 정신이 돌아오고, 피가 돌더니 아주 무서운 듯이
말하기를,

"아이, 힘들어! 나는 10일 동안이나 밭을 갈았어요."하고 말했다.


47. 열한 번째 소로 환생하다.

음산한 큰 건물 안에는 소머리를 하고 말 얼굴을 한 문지기가 있고, 또 양쪽에는 커다란
무장귀가 있었다.

이렇게 여러가지 춥지않아도 저절로 떨리는 형들들이 놓여있었다.

건물 중앙에도 까만 얼굴에 구리 방울같은 둥그런 눈을 가진 염라대왕이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 알았다. 내가 갑자기 죽더니 여기가 바로 저승이로구나."

윤지는 스스로 혼자서 생각하며 무서워 벌벌 떨었다.

그 때에 소머리에 말 얼굴을 한 귀졸이 큰소리로,

"굻어 앉아!"하고 소리쳤다.

그 때 그 옆에 또 한 사람이 꿇어앉았는데 자세히 보니 생전에 한 마을에 살았던
백정 이필이었다.

이필은 그의 얼굴을 가리키며 염라대왕에게 아뢰었다.

"모두 이 사람 때문이오. 만약 이 사람이 소를 먹지않았으면 나도 소를 죽이지 않았을거요."
하고 금방 변명을 하였다.

그러자 이렇게 서로 말다툼을 하자 염라대왕은 화가 치밀어 책상을 탁치며 말하였다.

"한 놈은 먹고 한 놈은 죽이고 죄는 똑같아. 소는 온 힘을 다하여 밭을 갈고 너희들의 생활을
도와주었는데 너희들이 어쩌면 죽이고 먹고 할 수가 있느냐? 양심은 도대체 어디가 있는
것인가? 먹으니까 많이 죽이게 되는 것이고, 만약 적게먹으면 적게 죽이게되고 안먹으면
안죽이게 되는 도리도 모른단 말이냐?

윤지 듣거라. 백정 이필은 지옥에 보내서 고통을 겪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너는 인간세상에서
쇠고기를 좋아학 매번 잔치를 할 때면 쇠고기가 아니면 젓가락을 대지않았으니 도대체 네가
먹은 소가 몇 마리나 되는지 알기나 하느냐?

윤지야, 너는 또 약처방을 잘못하여 열 한 사람이나 죽였다. 나는 너를 벌하여, 윤회전생을
시켜서 소가 되도록 하겠다. 그래서 세상을 살되 11번에 걸쳐 소의 목숨으로 태어나게
하겠다. 네가 쇠고기를 먹은 죄를 열한 번에 걸쳐 갚도록 하겠다. 물러가거라." 하고
염라대왕은 말을 마쳤다.

이 야기는 청나라 가경 말년에 임삭이라는 한 효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그 사람이
염라대왕 앞에 불려가 실제로 목격한 일이라 하여 인과실록에 기록한 이야기에서 나온 것
이다.


48. 소의 몸을 받은 백정의 업보


엽아삼은 오도향에 있는 유명한 백정이었다.

그는 칼질을 잘하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얼마 안있어서 부자가 되었다.

그는 때때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보세요. 소 잡고 쇠고기 장사하는게 무어 그리 나쁠 게 있소? 보시오. 나는 지금
없는게 없지않소?"

어떤 착한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살기(殺氣)가 너무 중하면 결코 좋은 일이 없어. 원한에는 앙갚음이 있고,
빚쟁이에게는 주인이 있는 것이오. 그래도 직업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오."

"직업을 바꾸라고요? 그럴 수는 없지. 다만 내가 계속 일을 하다가 늙어죽을 뿐만
아니라 내 자손에게도 대대로 업을 계승하도록 하겠소. 하하...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세상에 돈에 비길 것이 또 뭐가 있겠소? 나는 인과응보같은 쓸데없는 소리는
믿지않소."하고 엽아삼은 가슴을 뽐내며 말하엿다.

어느 날 엽아삼이 돌연히 알지 못할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러더니 이튿날 하루지나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그의 엉덩이가 퉁퉁 부었으며
온 몸에 멍이 들어있었다.

아무리 처와 자식들이 말려도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며 흐느적 흐느적 집밖으로 걸어나갔다.

웬 일인가 했더니 엽아삼은 마을장터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에게나 이렇게 말을
하였다.

"염라대왕께서 나더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셨소. 절대로 나쁜 짓은 하지말고
더더구나 짐승을 죽이지말라고... 나같이 저승에 가서 혹독한 형벌을 받은 고통을 어찌 이승의
생활에다 비교하겠소?"

그는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훌쩍거려서, 그 모습이 비참하여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죽고 말았다.

마침 대문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처와 자식은 시간이 가도 그가 돌아오지 않으므로
마음이 몹시 초조하였다.

그 때 앞을 바라보던 아들이 어머니께 말했다.


"엄마, 저기 좀 보세요. 아빠가 돌아와요."

그러나 돌아오는 아버지는 사람 몸에 소머리를 하고 있었다.



출처: 연지대사의 방생행복 살생불행 (연지대사저, 만법 김상근역, 삼보제자간)


49.


연지대사의
방생행복 살생불행

서문

만법 김상근(卍法 金相根)


이 책은 살생하여 불행의 업보를 받고 방생하여 행복을 누린 이야기들을 모은 방생 살생 과보의 사례집이다. 내용 중에는 불경에 전하는 옛날 인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전체 이야기는 모두 중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주로 청나라 때까지 수천 년 동안 중국에 전해 내려온 방생하여 이고득락 복덕을 누리고 살생하여 죄를 받고 화를 당해 불행해진 이야기들이다.

아마 명나라 때 연지대사께서 이야기를 모아 삽화까지 넣어 처음 간행하였던 모양이다. 그 후로 뜻있는 분들이 새로 발견된 이야기들을 보태어 거듭 출판하여 법보시로 유통시켰다.

20세기 중화민국 정부가 건국한 후 여부지(呂富枝)거사가 90여 편을 모으고 다시 매 편을 백화문체로 풀이하여 출판 보급하였다. 그것을 근래에 대만 대중시의 대중시불교연사(臺中市佛敎蓮社)에서 92편의 사례 이야기를 발간하였다.

이번에는 서두에 연지대사의 계살문과 방생문을 서문 대신 게재하여『연지대사계살방생문도설』이라 표제하여 청련(靑蓮)출판사에서 출판하여 법보시로 보급하였다. 뒤이어 어느 법우가 내용을 좀 고치고 윤색하여 초등학생 교양서로 출판하였다. 이 어린이 교양서는 다시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다.

대만에서는 어느 사찰이나 들어가면 법당 앞에 무료로 법보시하는 책들이 쌓여있다. 그 중에는 이 책의 일부를 뽑아 펴낸 팸플릿식 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책은 20여 년 전 역자가 대만 어느 절에서 무심코 들고 나와서 읽다가 재미있어 읽는 김에 바로 번역했던 것이다.

이번에 병원에 누워계시는 열전(悅田) 이복순 불자님의 자비와 법보시로 이 책이 법우님 손에도 1권 돌아가게 되었다. 다 읽고 나면 이웃과도 돌려 보아 모두들 불행을 피하고 행복한 세상 살게 되기를 바란다.

살생은 불교에서 5계의 첫째다. 생명 해치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계율이다. 사람을 해치는 일은 나라의 법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자연환경 속에서 나는 새 달리는 짐승 물속의 고기 등을 죽이는 것은 나라의 법으로는 심한 처벌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명을 죽이거나 해치면 불교의 교리로는 죄가 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 벌을 받게 된다.

이 책 사례로 보듯이 여러 가지로 죄 값을 치르고 있다. 예를 들면 잔인하게 소의 혀를 잘라버린 죄 값으로 그의 자식들 3명이 모두 벙어리로 태어난 과보, 개고기를 즐겨먹는 사람이 개를 잡다가 개에게 물려 사망한 과보, 평생 사냥꾼으로 살던 사람이 새가 쪼는 듯 두통을 일으켜 사망한 과보, 양 도살을 생업으로 살던 자가 말년에 양으로 변해 강물에 빠져 익사한 과보, 사냥을 즐기다 결국 자기 아들을 사슴인줄 알고 쏘아죽인 업보 등이 그 실례이다.

경우에 따라 그 업보를 금생에 자기가 직접 받는 경우, 혹은 금생에 자기 자식이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멀리는 후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장애자로 태어나고, 가난하여 어렵게 살고, 태어나 요절하는 등 참으로 두려운 일들이다. 우리가 살생을 금하고 자연환경을 잘 보호하여 살기 좋고 행복한 인간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자신들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삼가 하는 등󰡐안 하는󰡑생활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주는 일,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제하는 일처럼 적극적으로󰡐하는󰡑것이 바로 방생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면 나라에서는 포상하고 사회에서는 의인이라고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새, 뛰는 짐승, 기는 곤충, 물속의 고기의 생명을 구해주면 나라의 포상은 없으나 알게 모르게 내가 혹은 나의 자손들이 행복을 누리는 과보를 받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한 사례에서 보듯이 짧은 명을 타고난 사람도 방생을 하여 장수하게 되었고, 가난했던 사람이 방생하여 부자가 되었고, 천한 사람이 방생하여 귀하게 되었다. 또 방생하면 행운이 따라 과거에 급제하고 높은 벼슬을 하였다. 그러한 좋은 과보는 본인이 아니면 그 자손이라도 받게 되었다.

이상으로 미루어보아 방생을 하면 첫째 건강의 과보를 얻는다. 둘째 잘 생긴 사람으로 태어난다. 셋째 건강하게 장수한다. 넷째 총명해 지거나 총명하게 태어난다. 다섯째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된다. 등등 그 갖 가지 이익 된 과보는 다 열거할 수 없이 많다.

어떻든 살생은 불행을 초래하고 방생은 행복을 가져온다. 살생을 금하고 방생을 장려하는 것은 요새 유행하는 자연보호 환경보호 운동의 근간이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돌려보고 깨달은바가 있어 적극적으로 살생을 금하고 방생에 참여하여 우리 세상을 극락정토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기 바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http://cafe.daum.net/sambojeja (법보시전문카페 삼보제자)




5~49

출처: 연지대사의 방생행복 살생불행 (연지대사저, 만법 김상근역, 삼보제자간)




50 사냥개가 건드린 총에 맞아죽은 사냥꾼


서기 2007년 10월 17일

<저녁 8시뉴스>

<앵커>

멧돼지 사냥에 나섰던 남성이 총기 오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데리고 갔던 사냥개가 총기를 넘어뜨리면서 실탄이 발사된 겁니다.

박성훈 기자입니다.

<기자>

경남 남해군 남면 마을 뒷산.

45살 강 모 씨는 개 12마리와 함께 멧돼지 사냥에 나섰습니다.

8부 능선에서 달아나는 멧돼지를 잡은 강 씨가 비탈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총알 한 발이 발사됐습니다.

사냥개가 강 씨의 총을 건드린 겁니다.

[김 모 씨/최초 발견자 : 복부에 피를 많이 흘렸더라고요. '왜 그럽니까' 하니까 개가 총을 건드려서 총에 맞았다. 빨리 병원 가자.]


총은 나뭇가지에 살짝 걸쳐둔 상태.

멧돼지를 잡은 직후여서 안전장치 역시 풀려 있었습니다.

엽사들은 멧돼지를 잡아 흥분한 사냥개들이 총을 밀쳐 쓰러뜨린 다음 그 사냥개의 뒷발이 방아쇠에 걸리면서 총알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 씨/엽사협회 회원 : (개가) 이렇게 온다 그러면 (총에) 팍 부딪히잖아요. 달릴 때 발바닥 전체가 아니고 앞발 가지고 달린다고. 그러니까 발가락이 우연히 (방아쇠에) 기어들어가서 격발이 되는 거라...]

강 씨는 하복부에서 겨드랑이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박성훈기자



51

어느 노승(老僧)이야기




어느 가을 날 명산대천을 찾아 만행을 하다가 해가 질 무렵에 어느 작은 암자에 도착했다. 내일이면 또 다른 명산대천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는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이 암자에서 하룻밤 묵고 갈 생각으로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작은 법당에서 지장보살을 정근 하는 염불소리와 함께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암자에는 법당에서 기도하는 스님 말고는 아무도 없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황전이는 그 스님의 기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기도가 끝날 때 까지 마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기도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밤 10시쯤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 스님이 기도를 마치고 법당 문을 나서다가 황전이와 마주쳤다. 그 스님은 70이 넘어 보였으며 얼굴에는 온통 주름과 칼자국뿐이었다. 젊어서 조폭을 하다가 늙어서 중이 되어 젊은 날의 죄를 참회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노승과 황전이는 밤늦도록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황전이가 노승에게 '얼굴에 칼자국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노승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황전이에게는 그 미소가 슬픈 미소로 보였다.




“이 암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나의 얼굴을 보고 모두 놀라서 도망치듯 돌아가지요. 내가 무슨 범죄자 얼굴을 하고 있나 보지요. 허기야 내가 나를 보아도 범죄자의 얼굴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젊은 수좌는 나를 보고도 놀라지도 않고 하룻밤 묵게 해달하고 하니, 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거든요.......”




노승은 가슴속 깊이 새겨 있는 앙금을 하나씩 털어내기 시작했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가슴속 깊이 새겨진 앙금을 끄집어내는 그 과정도 또 다른 수행이지만, 그 앙금 속에 감춰진 아픔을 말없이 들어주는 것 또한 수행인 것이다. 무엇이든 드러나게 해서 바람에 날려 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수행이 어디 있겠는가? 노승과 황전이는 그 날밤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이 인연이라 밤새도록 그 앙금을 바람에 날리는 수행을 했다.




그 노승은 젊어서 영업용 택시 운전을 무사고로 한 덕분에 개인택시 면허를 얻을 수 있었다. 개인택시를 하면서 두 아들도 생겼고 아이들에게 착한 아빠가 되었다. 개인택시를 하다 보니 생활도 그런대로 여유가 좀 생겼다. 가정생활이 순탄하다보니 그는 좀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찾아 택시가 쉬는 날은 사냥총을 들고 이산 저산을 찾아다니면서 사냥을 즐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엽총으로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쾌감에 만족하지 않고 그러한 새나 동물들이 땅에 쓰러져 파닥거리거나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잭크 칼로 새나 동물들의 얼굴과 몸 등을 찔러서 동물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 상황을 즐겼던 것이다.




그는 동물들은 잔인하게 죽이는 중독에 빠지면서 점점 난폭한 남편과 아버지로 변해갔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보다 가족들이 자신의 폭력 앞에 굴복하는 모습이, 죽음 일보직전의 동물들을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한층 쾌감을 주었다.




이 말법시대에는 사람마다 죄가 극에 달했는지 그도 더 이상 그러한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지, 온 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만 했다.




그는 여러번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얼굴에서부터 온 몸을 수 없이 많은 수술을 받았다. 자신이 동물을 잡아서 잭크 칼로 동물들을 찔렀던 그 자국, 그 자리를 수도 없이 수술이란 미명아래 칼로 얼굴과 온 몸을 난도질을 당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칼자국의 고통을 받은 후에 자신이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인 벌을 지금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냥을 더 이상은 하지 않았지만 그 고통이 오래 오래 남아 있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는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 누구에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보다는 자신의 죄를 남에게 보이기가 싫었다. 그러나 그는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 대신에 가족에 대한 폭력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그는 자신이 가족에게 폭력을 쓰는 것이 동물들의 원혼들에 빙의되어 그러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영업을 하고 있는데 마침 노스님 한 분이 택시에 타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노스님에게 자신이 그동안 사냥을 통해서 동물을 잔인하게 죽인 사실과 그 벌로 지금 자신의 몸이 수술 칼로 난도질을 당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절에 가서 그 동물들을 천도를 해 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스님은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동물을 잡아 죽인 것도 큰 죄인데,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는 동물들을 잔인하게 칼로 쿡쿡 찔러 죽이면서 쾌감을 느꼈다니 참으로 무서운 죄로다!

이 무서운 죄가 어찌, 천도를 하고 참회를 한다고 해결 되겠소? 아무도 기사님 같은 사람을 천도해 줄 사람은 없소. 기사님이 직접 중이 되어 그 동물들을 천도를 하시오!”




“아니, 저보고 중이 되어 직접 동물들을 천도를 하란 그 말씀입니까?”




“그렇소, 가족들에게 먹고 살만한 재산을 남겨두고, 깊은 산속에 홀로 암자를 하나 지으시오. 그래서 무릎에서 피가 나도록 절을 하면서 참회를 하고 지장염불을 하루 종일, 3년 동안 한 후에 득력이 생기거든 그때 스스로 그 동물들을 천도를 하시오!”




그 후 택시기사는 참회하는 마음이 생겨 그 즉시 머리를 깎고, 이곳에 있는 작은 암자를 하나 사서 하루 종일 염불참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노승은 지금 전생에 자신의 인과응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전생에 지어놓은 악업들이 시절인연이 되자 그 노승에게 드러나 더욱 나쁜 악업을 짓게 하는 것이다. 좋은 업을 지어도 모자라는 판에 악업에 악업을 더하니 어느 생에게 악업으로부터 자유롭겠는가? 참으로 악업의 생사가 끝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말을 남겼지만, 본래 부처가 어떻게 이러한 악업을 끝도 없이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설사 본래 부처였다 할지라도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본래 부처였다는 위선을 떨기 이전에 좋은 업이라도 많이 지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자유] **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한다.

본래 선한 이것을 부처라고

착각을 한 것 같다.




선이란 악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착각은 자유다.




말법시대에는 생사해탈을

통해서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착각을 통해서 자유로워지려고

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란 원력과 공덕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출처: 황전스님의 오도선방(cafe.daum.net/5351650)


52. 나무아미타불카페 아훔님 글


저의 친한 형님도 고라니를 잡아먹고 한 달에 교통사고가 2번이나 났습니다.

고라니를 잡았다고 했을 때, 놓아주라고 그렇게 경책을 했건만.....그의 운명인지 말 안들으시더니....
결국 6개월 이상 병원신세를 지더군요.


53.

어릴 적 뱀을 많이 죽인 과보



저는 예전에 어린시절(6-7살) 뱀을 많이 죽였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곳에 저수지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뱀들이 있었습니다..



개구리가 많기 때문이죠



저는 또래들과 함께 그곳에서 뱀을 잡아 죽이는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백마리는 족히 되었을겁니다.



죽이는 방법도 잔인했죠



긴 대나무 꼬챙이로 내리쳐서 잡았으니까요



그 댓가로 저는 밤마다 뱀들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꿈속에 뱀들은 참으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싸늘한 냉기속에 어두움..그속에서 기어다니는 수많은 뱀들...



저에게 위협을 가한다거나 공격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 뱀들은 거의 30년간 꿈속에 나타나 저를 괴롭히더니



능엄주를 하고 난 뒤부터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벌써 2년 정도 되었네요



불교 공부를 하고나니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얼머나 무서운 짓을 했는지..







뱀들을 죽인 댓가로 또다른 과보도 받았더군요



뱀들을 매타작해서 죽였듯이 저도 현실에서 엄청 매타작을 당했습니다..



맞다가 맞다가 지쳐 실성한 일도 있었으니까요



거의 3년간 맞으면서 살았습니다..



한번은 연탄구덩이속에서 각목으로 맞았는데



실컷 맞고 옷을 벗어보니 온몸에 멍투성이었습니다.



희한하게도 저를 3년간 매타작한 그 분의 띠가 뱀띠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과보는 초등학교때부터 많이 아팠죠



그 건강하던 아이가 독감..열..두통을 달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학년별 개근상이 없을 정도로 말이죠







아무튼 능엄주로 인해서 뱀꿈은 꾸지 않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그 뱀들에게 진정으로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나무아미타불...()()()..


출처: 달마가 영어를 만났을 때 카페 파스텔님글







54.

살생의 응보


열 가지의 불선업(不善業) 가운데 살생과 사견(邪見)의 죄가 가장 크다. 경에서 이르기를, “살생보다 더 큰 죄는 없으며, 열 가지 불선업 가운데 사견의 죄가 가장 중하다.”라고 하였으며, ‘계살방생문(戒殺放生文)’에서 이르기를, “세간에서 지중한 것은 생명이며, 천하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살상이다.”라고 하였다. 화지(華智) 린포체는 불경에 근거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약 하나의 유정을 죽이면, 오백생을 갚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큰 중생을 죽이든지 작은 중생을 죽이든지간에 반드시 오백 번의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살생의 업이 중한 사람이라면, 내생에 얼마나 많은 고귀한 자신의 생명으로 상환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래도 함부로 살생을 할 수 있겠는가?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한 유정(有情)을 살해하면 일 중겁(中劫)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게 된다.” 이와 같다면 일 중겁은 얼마나 긴 기간이며, 이 사람은 어느 때 바야흐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연지(蓮池)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하늘 가득한 악업을 지으면, 만세에 깊은 원수를 맺게 된다. 일단 죽음에 이르면 즉시 지옥에 떨어져 끊는 물, 뜨거운 불, 검수(劍樹), 도산(刀山)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죄를 마친 후에는 여전히 축생이 되어 원한을 서로 보복하기를 목숨으로 갚으며, 축생에서 벗어나 사람이 되면 병이 많고 단명하게 된다. 뱀에 물리고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며, 칼이나 병기에 죽음을 맞는다. 혹은 형벌을 받아 죽으며, 독약을 마셔 죽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살생의 업이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들이 어떤 한 중생을 죽이면, 자신이 죽은 후에 이러한 중생으로 변하여 같은 액난을 받게 될 것이다. 『능엄경(楞嚴經)』에서 이르기를, “사람이 양을 잡아먹으면, 사람은 죽어 양이 되고 양은 죽어 사람이 되어 이를 반복한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종류의 중생은 세세생생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악업이 갖춰지는데, 미래세가 다하도록 끝이 없다.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 겁을 지내도 항상 생사 속에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보적경(寶積經)』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이전에 한 사람의 부자가 있었다. 그는 양고기를 먹고 싶었으나 아들이 반대할까 두려워 거짓을 꾸몄다. 그의 집 풍수가 좋은 것은 밭가에 있는 큰 나무의 수신(樹神)이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양을 잡아 신에게 공양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아들은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나무 옆에 작은 사당을 지어 양을 잡아 수신에게 공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자는 죽었으며, 거짓말을 하고 살생을 한 과보 때문에 축생에 떨어져 양이 되었다. 그 다음해 그의 아들은 또 양을 잡아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마침 그의 부친이 변한 양이 선택되었다. 그 양은 울부짖으며 한사코 묶이려고 하지 않았다. 양이 땅에 엎드려 있을 때 문 밖에 한 분의 나한(羅漢)이 와서, 전세의 인연을 설명하고 그의 아들로 하여금 그의 부친이 양으로 변한 경과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때 아들은 매우 괴로워하고 후회하면서, 당장 사당을 허물고 그때부터 악을 끊고 선을 행하였다. 그리고 영원히 살생하지 않고 방생을 하였으며, 아울러 삼보에 귀의하고 인과를 깊이 믿게 되었다.

그리고 불경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목건련과 덕생 비구가 일찍이 해변가에 이르렀을 때, 온몸이 화염에 타면서 크게 우는 사람을 보았다. 주위에는 무수한 아귀들이 그에게 불화살을 쏘고 있었다. 목건련이 신통으로 인연을 관찰해보았다. 이 사람은 전생에 사냥꾼으로 살면서 살생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살아생전에도 여러 해를 고통 받았으며, 죽은 후에는 지옥에 떨어져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 밖에도 다른 이야기가 있다.

옛날 사위국 비로택가 왕이 군대를 이끌고 석가족이 사는 곳을 침략하여, 팔만 명의 석가족을 살해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 인연을 관찰해보니, 이전에 석가족이 어부로 살면서 많은 물고기를 죽인 과보였다. 비로택가왕과 그 대신은 당시 두 마리의 큰 물고기가 전세하여 사람이 된 것이었다. 따라서 비록 우리들의 육안으로는 전생과 후생의 인연을 볼 수 없지만, 자기가 살생한 악업은 항상 따라다닌다. 일단 인연이 성숙할 때 그 과보가 현전한다. 만약 천안통을 얻으면 인과를 알 수 있다.

『백업경(百業經)』에서 이르기를,

“유정의 모든 업은 백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모일 때 그 과보가 성숙된다.”라고 하였다.

여러 경과 율에서도 모두 말씀하시기를,

“모든 업은 백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비광(智悲光)의 『공덕장론(功德藏論)』에서 이르기를,

“하늘의 금시조가 높이 날 때 비록 그 몸을 볼 수 없을 지라도, 유정의 모든 업과 같이 인연이 모일 때 반드시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뜻은 비유하면 금시조가 높이 날 때 우리들은 비록 그 몸을 볼 수 없을지라도 결코 금시조의 몸이 없는 것은 아니며, 단지 우리들이 줄곧 그 금시조를 따라가면 금시조가 내려앉을 때 그 몸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생한 악업이나 방생한 선업은 현재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없을지라도,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성숙될 때 그 과보가 현전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두려워한다.

『공덕장석(功德藏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주 이전 석가세존이 국왕이었을 때, 그 권속은 날이 가물어 기우제를 지내면서 동물을 살생하여 신에게 공양하였다. 그때 국왕은 불쌍한 마음을 내어 그렇게 하지 말도록 권하면서 말하였다. ‘남염부제에 천지가 가물어 내가 공양할 여력이 없으니, 내 권속 중에서 천 명을 죽여 신에게 공양하여 비를 구하려고 한다.’

이때 모든 신하와 백성은 죽는 게 두려워, 신에게 바쳐지지 않기를 원하였다. 그때 왕이 ‘그대들과 나는 본래 자신의 목숨을 아낀다.’라고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도살을 기다리는 가축들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동정의 연민을 가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크게 분노하면서 꼭 죽이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죽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모든 작은 동물도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 고와 낙의 느낌을 갖고 생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니, 함부로 상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 중국 강소성 양주성(揚洲城) 밖에 ‘사육(四六)’이라고 부르는 농민이 있었는데, 그는 논밭을 개간하고 꽃과 나무 심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땅을 팔 때 무수한 개미들이 살고 있는 개미굴을 발견하였다. 그는 흉악하고 죽이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집에서 한 통의 끓는 물을 가져와서 직접 개미굴에 부어넣어 무수한 개미들을 전부 죽게 하였다.

그해 8월의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갑자기 무수한 개미들이 그의 몸에 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깨어나서 보니 온몸의 살에 무수한 붉은 반점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다음날 조그만 반점은 붉은 물집으로 변하여, 그 속에서 개미들이 살을 물어뜯으니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고통으로 울부짖으면서 며칠 후 사망하였다.

이것은 인간으로 살아있을 때의 과보이며, 죽은 후에는 삼악도의 한량없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마땅히 살생의 불가사의하며 두려운 업보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본래 세상의 모든 중생은 자기의 생명에 집착한다. 지옥의 중생 외에는 모두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지옥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빨리 죽기를 바란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총살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를 여러 가지 방편으로 구출해 준다면 진정한 생명의 은인이 될 것이다. 구출된 사람은 온갖 상념이 끓어오르면서, 은혜가 산같이 중하고 바다같이 깊은 것을 느끼면서 감격해 마지않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만약 유정이 살해되는 것을 보고, 비록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일지라도 방생하면 이러한 덕이 있게 될 것이다.

『구사론(俱舍論)』에 따르면, 만약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살생하든지 혹은 다른 사람이 살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 이 업은 ‘축적되나 아직 저지르지 않은 업’이라 칭하며, 이 사람은 직접 도살한 사람과 동등한 죄가 있다고 한다.

만약 꿈속에서 죽이든지 혹은 벌레나 개미 등을 모르고 밟아 죽였다면, 이것은 살해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지었지만 축적되지 않는 업’이라 칭하며, 큰 죄는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살생하여 얻은 재물로 스님께 공양한다든지 혹은 사원과 불상을 짓거나 하면, 공덕이 없을 뿐 아니라 큰 과실이 있게 된다.

그리고 불경과 『구사론』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칼, 창, 그물 등 살생의 도구를 사거나 팔거나 하면 매매 쌍방은 모두 지옥에 떨어지며, 아울러 그러한 공구가 없어지기 전에는 나날이 무량한 죄업이 증가하게 된다고 하였다.

가르침에 의하면,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 도살자, 사냥꾼 등 살생의 업을 꾸려나가면, 그 집안 사람은 모두 각자 지옥에 한 번은 떨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약 산골짜기에 살생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든 산골짜기는 길상함을 얻을 수 없다. 아울러 한 찰나도 그런 사람과 접근하거나 교제하면 안 된다. 그들이 다른 집에 가면 많은 불길한 일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들의 물품을 몸에 지니면 자기 몸의 삼보(三寶)의 가피력이 소멸될 수 있다.

따라서 마땅히 불살생계를 지켜야 하며, 그러면 큰 공덕이 있다. 설령 영원히 살생을 끊을 수 없을 지라도 일 년, 혹은 일 개월, 심지어 하루라도 살생 끊기를 발원해야 한다.

이상에서 서술한 살생의 과실을 명백히 이해한 후, 우리들은 마땅히 삼보전에서 견고한 서원을 발하여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중생을 살해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할 것이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중국 과경거사지음, 한국 각산 정원규거사 옮김, 불광출판부간)

자료출처 : 불자모임광장



57.


몇년 전, 며느리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입니다.

며느리는 관련된 책을 통해 나름대로 태교를 했고,
저 역시 가끔 태교에 대해 아는 바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방으로 일을 간 사이에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며느리가 오래동안 입맛을 잃자,
가족들이 걱정한 나머지 며느리를 데리고
동네에 있는 횟집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리고는 살아있는 생선을 잡아 회를 먹은 것입니다.
뱃속에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임신부가 살생을 하다니 !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지만,
며느리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줄까봐 참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두달 후, 며느리가 몸을 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산 과정에서 엄청난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를 낳다가 의사의 실수로 과다출혈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밤새도록 피를 흘린다가 새벽 3시경에야 앰블런스에 실려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고,
뇌에 피가 공급되지 못해 그만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생선회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몸속의 새 생명을 위해 오히려 방생을 해주어야 할 임신부가
생명을 죽이는 참혹한 살생의 현장에,
그것도 산 생명을 죽여서 날로 먹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인과응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며느리를 대신해 참회하기 위해 강화 보문사로 달려가
부처님께 매달렸습니다.
멸업장진언 옴 아르륵게 사바하 ....
그리고 며칠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식물인간이었던 며느리의 엄지 발가락이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입원한 지 두 달만에 퇴원하였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며느리는 온전치 못합니다.
그나마 살아난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생명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 일이었습니다.


출처: 사찰생태연구소 연구소 사무국님 글


58. 다음 아비라 카페 번지에님 글

그리고 이거는 제 주위분들 이야기인데요..엄마의 사촌언니와 그 남편분이..경기도에 아주아주 큰 돼지농장을 하셨었어요..

돼지농장을 하시니...하는일은 매일 살생일수 밖에 없었죠..도살은 직접하지 않으셨지만 남을시켜 잡게하시고

제 기억에 초등학교때 그 으리으리한 농장집에 가서 한아름 잔뜩 사주신 과자를 먹으며 노는데 밖에서 꽥꽥하는 소리가 들리고

창밖을 보니 이모부가 돼지머리에 뭘 씌우시고 몽둥이로 돼지를 때려;;잡으시더라구요..작은 돼지를요..

그리고 그 잡은 돼지고기를..삶아 드시곤 하셨는데.................전 역겨워서 도저히 먹을수가 없었어요..

어린나이긴 했지만..항상 이모부랑 이모는 눈빛이 무섭고 집에선 비린내가 나서 그집에 가는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는데

몇년전 엄마한테 엄마사촌언니는 요즘 뭐하셔..?물어봤을때..두분다 돌아가셨대요.

너무 희안한게..두분다 50을 넘기지 못하고 가셨는데, 같은달에 돌아가셨대요.

그리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이놈의 돼지새끼들...이놈의 돼지들..하고 술만드시면 막 헛것이 보인다는듯이 씩씩대고 하셔서

알콜중독초기이신가..하고 집에서 사람들이 걱정도 했었다네요.

항상 두통에 시달리셨었고, 술만드시면 돼지를 욕하면서 막 휘두르고 맨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시고..

이모(엄마사촌언니)는 자궁에 종양이 자꾸만 생기고 역시나 똑같은 두통과 숨막힘..

그러더니 어느날 이모부는 돼지를 실은 트럭을 운전을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운전대를 잡은 채 돌아가셨고요..

9일이후에 이모도 자궁에 종양이 갑자기 심해져 피를 쏟으시며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두분 다...눈을 부릅뜨고 가셨다네요...



그리고 제 전 남자친구의 할아버지 역시..큰 돼지농장의 주인이셨는데요..

역시나 매일 일이 사람시켜서 돼지 잡게하고..그랬었대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입원해 계신걸 제가 한국왔을때 몇번 뵙기도

했는데, 병원에서도 병명을 알수없는 온몸에 종양이 자라나고 뇌며..다리며..식물인간처럼 나중에 되어버리시더라구요.

그리고 가끔 정신을 놓으신듯 항상 허공을 향해 뭘 집어던지거나 휘두르시며 "이것들!!"하며 싸우려고 하시고

막 갑자기 간병하시던 할머니를 우산으로 때리기도 하시는듯 이상하셨대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그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것이 싫었는데 할아버지가 저를 자꾸 보고싶어하신다는거에요..제일 큰손자의

여자친구라고..다른사람들은 못느꼈는지 모르지만 할아버지 병실에는 제가 태어나 처음 맡는 악취와 할아버지가 자꾸

이상하게 거부감이 느껴져서(죄송하지만 그냥 솔직히 쓰는거에여ㅠㅠ) 병실의 악취를 견디지못하고 마시고 왔던 요구르트를

다 토해내기까지 했었어요..그런데 다른사람들은 그 냄새가 안난다는거에요~~ㅜㅜ저는 정말 처음 맡아보는 역한 냄새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나중에 심해지셨을때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가족들도 못알아보면서도 남인 저는알아보시구

"할아버지,얘가 누군지 알아요?"하면 "우리손자 여자친구잖아..하하"하면서 알아보시고 해맑게 웃곤하셔서..남자친구 가족들이

저를 자주 부르시는 바람에..가야했었더랬죠ㅠㅠ할아버지가 유독 제앞에서는

혀가굳고 음식도 잘 먹지못하고 누워서 대소변을가리는 자신의 그런모습이 부끄러운지 굉장히 티 안내려고 노력까지

하시는바람에...



그리고 제 전 남친도..제가 "너희 할아버지가 살생업이 많아서 그런거야.."하고 말하니까 자기도 사실 그런생각이 들었는데

집안식구들은 그런걸 별로 믿지않는 눈치라 답답했대요..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었어요.

"솔직히 니가 날 너무 따라다녀서 사겨주긴 하는건데(<-이렇게 쓰지 민망하지만 전 진짜 이렇게 얘기했었더랍니다ㅠㅠ),

난 인과를 믿거든? 그리고 조상이 지은업, 자손도 다 받게 돼있어. 난 나도 구제하지못하는 중생이라

업이많은 사람이랑 못사귀겠어. 나랑 사귀고 싶으면 맨날 기도 열심히 하고 죽은 돼지들한테 좋은데 가라고 발원해주구

너네 할아버지가 돼지를 많이 죽게했으니 고기도 먹지마.그럼 계속 만나줄게"



그랬더니 그 잘먹던 애가..정말 너무 놀랍게 고기 한점도 그날부터 입도 안대고요..고기는 물론 오신채도 입에 대지 않더라구요.

걔도 저랑 같은곳에서 있던 유학생이었거든요..외국에서는 고기빼고 먹을게 거의 없는 식단인데도

너무 철저하게 고기류를 입에 안대고 정말 너무 착실하게 경전도 아침저녁으로 세번씩 읽고...........맨날 절보면서

고맙다고..니가 맨날 큰스님들이야기,인과이야기 해줄때 듣는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저한테 막 절까지 하더라구여ㅜㅜ

원래 걔가 착한 부류의 남자애가 아니었기에..전 아니..얘가 정신줄은 놓았나..?의심이 갈 정도였죠..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더니 그애 눈빛도 참 선하게 바뀌고..보기 좋더라구요. 정말 감동했던건 어떤 유혹에도 눈길한번 안주고

너무 멋지게 고기 끊기를 2년넘게 했었어요. 철저히 베지테리안 메뉴..

그리고 참 웃겼지만^^;인사도 맨날 합장하는식으로 바꿔서 한동안 같은 클래스의 백인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59. 구렁이를 죽인 과보


13년전 타 종교인과 충주 월악산 부근 신선봉 등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등산을 마치고 하산을 하던 중 구렁이 한마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타종교인은 구렁이를 보자마자 잔혹하게 머리를 비틀어 죽이더군요.

자기들 종교에서는 뱀을 안좋게 생각한다면서요.

그 때까지 한국통신에 근무 하시면서 직장 생활 잘하셨었는데요. 그후 얼마지나지 않아 사표를 내고 나오더니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돈으로 버섯 농장을 크게 하셨는데요. 그만 IMF 때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불행의 시작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그 분이 갑자기 위암 판정을 받더니 병원에서 수술을 받더군요. 병원 에서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되었다고 했습니다만 몇일 지나지않아 또 수술하고 또 수술하고를 반복하더니 끝내 위를 다들어 내더군요.

몇 년에 걸친 암투병으로 전재산을 다까먹고 살던 집까지 팔고 결혼도 안한 아들하나와 딸하나 그리고 와이프를 두고 사망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살생하지말라고 가르칩니다.

십계 중에서도 첫 번째가 殺生有擇살생유택입니다

특히 뱀으로 환생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전번에 글을 올렸었습니다.

지금은 비공개 또는 삭제 처리 한 것 갇은데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인간계는 천상계의 지배를 받는답니다.

축생계의 영역 그중에서도 뱀으로 태어나는 원인 몇가지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색계의 무리들과 독한 마음을 품은 자들과 자살한 무리들과 이간질 그외 업이 막중한 무리들 대부분이 구렁이 살모사 독사 등의 몸을 받게 됩니다. 그런 뱀을 살생하게 되면 그뱀을 죽인 사람이 업을 대신 받게 됩니다.


얼마 전 TV에서 스리랑카의 사찰에서 스님과 함께 아무것도 먹지않고 100일 기도를 하는 구렁이를 본 적이 있는데요. 왜 구렁이가 백일 기도를 하는 걸까요 해탈하고 싶어서 입니다.

이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구렁이의 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에 제가 올린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본 니가타에 갔을 적에 자살해 죽은 남자가 큰구렁이의 모습으로 저에게 찾아와 해탈 시켜 달라고 한 것 기억나실겁니다.

이글은 아직 삭제 안했으니까요 안보신 분들은 보시기 바랍니다

축생들은 인간 몸받기를 소원하나 쉽지않답니다.

더더욱 佛法 만나기는 어렵답니다.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2009.01.30 속리산 선유동 토굴에서 HWATA

출처: blog.daum.net/hwawa2580


60.  네이버 천상의 나팔꽃 카페 지장사 주지 승현스님글 중

 

 

이번에는 인과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내가 어린 시절, 행길 옆에 사냥을 업으로 살아가는 분이 살았는데, 늘 살생을 하였습니다. 

 

그 분이 죽게 되는 그 해 겨울에는 78마리나 짐승을 잡았으며, 그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죽게 되었는데, 죽는 과정이 안좋았다. 

 

온 몸이 퉁퉁부었으며, 뱀에 물린 것 마냥 온 몸의 이곳 저곳에 이빨 자국이 났으며, 고통에 못이겨서 살려달라며 신음을 두달 가량하며 추위에 떨다가 대낮에 죽었다. 동네 사람 누구 할것없이 누구 아버지는 너무 많은 짐승을 죽여서 몸이 붓고 뱀에 물린것 마냥 이빨자국이 온몸에 나고 몸이 시커멓게 탄것처럼 흉하게 돼서 죄값으로 고통받다가 죽었다고 말할 뿐, 아직 젊은데 참 안됐어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 해 눈도 많이 내려서 짐승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살기가 어려워 민가의 근처에 내려오는 일이 비일 비재 했는데 이 사람은 오히려 그런 동물들을 가엾게 여김이 없이 손쉽게 덧을 놓고 총을 쏴서 죽이고 살았으니 고통을 받을 만 하다 하겠다. 그의 가족 또한 동네를 이사갔다.  

 

아마도 그런 좋지 않은 말을 듣고 살아가기는 버거웠을 것이라 여기진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귀한 목숨에는 차이가 없다. 

 

지금은 많아 바뀌어서 환경문제나 생태계에 관심과 손길이 많아 지고 있으나 그래도 우리가 처한 이 나라 곳곳에 중생의 신음과 절규가 끊이지 않음을 보면 어찌 우리 인생의 삶이 평탄하기를 바라리요. 

 


 




註: 살생을 경계하는 뜻으로 살생의 인과 실화를 모았습니다만 생명존중과 방생을 장려하기위한 방생의 영험담 모음과
그 공덕에 대해 보시려면 나무아미타불 카페 불교의 영험록란의 방생의 영험담 모음/방생의 의의와 공덕이란 글을 보시면 됩니다.  

 

57. 태아의 죽음과 해원(解寃)

불교를 깊이 신봉하는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있는데, 신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한 불자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의 생활은 즐거움이 충만하였으며, 계를 지키고 독경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아내인 종홍(鍾紅)보다 일찍 결혼한 몇 명의 여자친구들은 『지장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꾸준히 염송하며, 아울러 가족들에게 살생하여 보신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에 다들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 이들 아기의 공통된 특징은 키우는 과정에서 영리하고 잘 웃으며, 거의 울지 않으며 병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도 아기를 임신한 후 아기를 위하여 『지장경』을 염송하면서 선근이 깊은 아기를 낳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임신 기간 내내 아내는 입덧이 매우 심했다. 메스껍고 구토하며, 몸이 붓고 좌골신경통이 생겼고, 음식 맛도 모르겠고 밤에 잠도 편히 못 자고 하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고통을 다 맛보았다. 하지만 낳기 전에 마지막 임신검사까지 줄곧 태아는 모든 게 정상이어서 위안을 받았다.

출산 예정일은 정월 초하루, 이것은 더욱 전 가족을 기쁘게 하였다. 납월 30일 집집마다 모두 모여 설 떡을 먹고 폭죽소리가 대지에 울려 퍼졌다. 아내의 뱃속 아기도 특별히 힘을 주며 발로 찼다. 시어머니가 “이 아기는 아마 마음이 급한가 보다. 빨리 나와 폭죽을 터뜨리고 싶은가봐.”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무상한가 보다. 아이는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아’ 죽은 것이다. 죽은 때가 설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태아가 움직인 후 온 가족이 행복의 동경 속에 빠져있을 때 죽은 것이다.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들 부부의 곤혹과 고통은 물론이고,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 부부의 일 때문에 나는 그 해의 설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해산하는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아빠 맹위(孟偉)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아들의 체온을 영원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부림쳤다.

나는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하늘은 이렇게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불제자에게 이와 같은 횡액을 만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은 그들이 불교를 믿지 않는 부모와 친척들에게 ‘불교를 믿는 것은 미신이다’라는 구실까지 주게 되었고, 크게 보면 그들 부부의 도심(道心)을 잃게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묘법 노스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결코 애석해하는 반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직설적으로 “좋아, 잘 됐어!” 하고 말하셨다. 예상을 벗어난 말씀이셨다. 아울러 맹위의 할아버지가 도살장의 백정을 하면서 많은 돼지를 죽인 적이 없느냐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스님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번에 태에 든 신식은 특별히 빚을 받으러 온 원수이다. 따라서 그가 태에 들면서부터 산모를 괴롭히며 가족들에게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성심으로 염불하며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지속하자 그 태아는 점점 불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지장경』은 그를 대신하여 숙세의 업장을 없애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금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하였다. 맹위의 할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소멸하면서 다시는 자손들에게 보복하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왜 출산 때 죽었느냐? 그것은 첫째 모자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그가 경법(經法) 듣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최후까지 머물다가 간 것이다. 그는 지금 이미 천계(天界)로 수행하러 올라갔으며, 다시는 인간세계에 와서 원수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 부부가 불경을 염송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반드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집안에 태어나서 성장함에 따라 그들 가족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 최후에는 그 애의 손에 패가망신하게 될 운명이었다. 따라서 아이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재앙이나 사실은 화(禍)로 인하여 복을 얻은 셈이다. 그러니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깜짝 놀랐다. 즉시 비통에 빠져있는 아기 아빠에게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알고 보니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정말로 돼지 잡는 일을 하였으며, 죽기 전 이상한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묶어 놓지 않으면 쉬지 않고 주먹으로 두드렸으며, 그래야 그의 몸이 편안해졌다. 그분은 죽을 때 매우 고통스러워하였으며 또한 보기에도 흉측스러웠단다(이 일은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이 일 또한 그로 하여금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단다).

그분의 몇몇 자녀도 모두 병으로 고생하였다. 맹위의 부친은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했으며, 큰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서 10년을 지냈다고 한다. 맹위의 대에 이르러 그의 형은 사십도 못 되어 정신이 이상하여 하루종일 이것저것 의심하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그를 욕한다고 생각하여 직장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맹위와 그의 누나는 앞뒤로 척추디스크를 앓았으며, 누나는 수술을 해도 완치되지 않았다.

묘법 노스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맹위가 불법을 배우며 채식을 하고 불력(佛力)의 가피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혼하면 안 되며, 설령 결혼하더라도 자식이 없을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안은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하여 후대 자손들이 몰락하고 병이 많을 것으로 정해졌다.”

스님의 법어는 마치 한바탕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삿된 불을 껐으며, 모든 사람의 의혹을 해소하였다. 더욱이 맹위와 종홍 부부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으며, 부부는 지금 더욱 용맹 정진하고 있다. 나는 그들 부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제불 보살께서 그들을 가호하여 빠른 시일 내에 귀한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 믿는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불광출판부)

 

자료 총정리/원통보전님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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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放生)의 공덕은 어떠합니까 ?


다시 묻기를 “방생(放生)의 공덕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그 공덕은 매우 큽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불성(佛性)이 있으며 성불할 수 있습니다.
단지 미혹 망상으로 인하여 축생 등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생사에 윤회하면서, 각자의 마음씨와 행위에 따라 갖가지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전에 자기의 가족이었을지라도 (모습이 바뀌면)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자비심을 발하여 재물을 들여 방생하면, 현생에서는 병을 없애고 수명이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단명하고 병이 많은 고통은 모두 과거의 살생을 한 나쁜 업 때문입니다.

방생은 천지간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덕에 합치되며, 부처님의 자비심이며,

관세음보살의 고난구제의 마음이며,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입니다.

방생하는 사람은 천지간에서 불보살의 자비를 대신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흉함이 길함으로 변하며, 병이 없고 고뇌가 없으며,

자손이 창성(昌盛)하고 가문이 길상(吉祥)할 것입니다.

방생하는 사람은 방생되는 자의 감사의 은혜를 받게 되며,
살생하는 사람은 살해되는 자의 원한을 받게 됩니다.

눈앞의 은혜와 원수는 바로 미래의 복(福)과 화(禍)의 원인 이며, 그 과보는 거울과 같이 밝습니다.”


- 지공스님 / 인과법문 -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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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신남신녀 여러분! 이번 호의 법문은 ‘윤회의 실상을 깨달아 영원을 살아가자’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윤회(輪廻),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쓰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하고 심도있는 말중의 하나가 바로 윤회라 할 수 있습니다.
윤회란 돈다는 뜻입니다. 흔히 비유하기를 다람쥐 쳇바퀴를 굴리듯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생사윤회란 말을 많이 쓰는데, 어떤 생명체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윤회는 현실이고 엄연한 사실인데 현대인들은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윤회 사상을 알지 못하고 윤회와 실상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니 답답하지않을수없습니다.

옛날에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만년에 어렵게 아들을 얻자 하객들이 줄지어 찾아와 득남을 축하하였는데 스님 한 분이 찾아와서는 축하는 커녕 오히려 큰 소리로 통곡을 했습니다. 부자가 몹시 의아해서 물었습니 다.

“선사님, 무슨괴로운일이있으십니까? 무엇때문에슬퍼하십니까?”
그러자비통한얼굴로선사가대답했습니다.
“내가 슬퍼하는 것은 당신 집에 죽을 사람이 한 명 더 늘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죽음처럼 확실하게 오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있는 물체는 누구든지, 반드시,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을 피할 곳은 이 세상에 아무 데도 없습니다. 죽음에는 남녀노소(男女老少)도 없고, 빈부귀천(貧富貴賤)도 없습니다. 천하장사(天下壯士)나 영웅호걸(英雄豪傑)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대신할수없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효자라도“너 나 대신 죽을래?”하면 펄쩍 뛸 것이며,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죽음을 부탁하면 화를 벌컥 낼 것입니다. 그것은가장비참하고괴로운것이며, 마지막이라고생각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몸은 한 줌의 흙이나재로 변하지만 영혼은 아주 없어지지 않고 인연 따라 또 다른 몸을 받아태어나기를끊임없이거듭한다는것입니다.
『불설보요경(佛說普耀經)』에이런말씀이있습니다.
“무릇 죽음이란 형상이 무너지되 정신만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성인은  몸을  환난(患難)으로 여기는데 어리석은 자들은 보배로 여겨 죽음에 이르기까지 싫어함이 없구나.”
인생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는 죽음이 있지만, 생명의 본질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육체는 생사가 있지만 정신은 태어남도 죽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오직 육체적으로만 존재할 뿐, 영혼이다, 정신이다 하는 생명의 근원인 불성(佛性) 자체는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로 우리가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은 죽음이 있는 육체가 아니라 생사가 없는 영원한 생명인 정신을 중요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자들이 자주 독송하는『반야심경』에는‘무노사(無老死)’라 는 경구가 있고, 또‘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무노사’란‘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뜻이요, ‘불생불멸’이란‘태어남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는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엄연히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현실이 존재하는데, 태어남이 없다거나 불생불멸이라는 말은 이해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신도 여러분께서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육신은 분명히 나고 죽음이 있지만 영혼만은 생사가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고 철저히 믿으시기를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생사문제를‘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까’하는 대 명제를 가지고 출가하셨다가 생사 없는 도리를 발견하여 인류에 위대한 공헌을하셨습니다.
49재를 지낼 때 영가(靈駕)에게 들려드리는 천도재의 의식문 가운데 이런말씀이있습니다.

태어남이란 어느곳에서 오며,
죽음이란 어디로 가는것인가?
태어난다는것은 한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것과 같고,
죽음이란 한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것과 같도다.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없고,
태어나고 죽고 오고 가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한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있어서
맑고 맑아 태어나고 죽음을 따르지 않느니라.

영가법문을 할 때는 꼭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영가가 이생을 하직하고 저 세상으로 갈 때는 반드시 듣고 가야 할 법문입니다. 산 사람들도 선망 부모(先亡父母)나 친지, 도반 등을 마지막으로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꼭 한 번 보아야 할 소중한 내용입니다.

인생의 오고 가는 것이 저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한 조각 구름과 같습니다. 저 창공에 떠가는 구름은 무수한 습기가 모여서 한 조각의 구름을 이루었듯이, 태어나는 것도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즉 흙과 물과 불기운과 바람기운이 일시적으로 인연되어 계합된 것이 이 몸뚱이 입니다.

구름이 떠가다가 바람이 분다든가 태양이 솟으면 사라지듯이, 지수 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인연을 다하여 흩어지는 것을 죽음이라 합니다.

참으로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 육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뜬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것, 생사의 오고감도 이와 같습니다.

저 허공중에 떠가는 구름은 실체가 없습니다. 어떤 모양이나 형상이 없는 것이 구름입니다. 그 구름이 흩어지고 사라지면 아무 흔적이 없듯이, 태어나고 죽고하는인생의 오고 감도 또한 그러하여 아무 흔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살가죽, 힘줄, 뇌, 골수 등은 흙의 성분으로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큰 흙덩어리가 되었다가 점점 작아져서 결국은 먼지로 변하고 그것마저 바람에 날려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침, 고름, 피, 눈물, 변등은물의성분으로돌아가서그물도증발되어사라지고맙니다.

그러나 오직 한 물건만은 항상 홀로 뚜렷하여 생사를 따르지 않고 맑고 고요합니다. 이 한 물건, 항상 맑고 고요하고 홀로 뚜렷한 그것은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으며,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므로 절대 태어남도 없고 절대 죽음도 없으므로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고하였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 그것은 육신을 떠납니다. 육체를 벗어난 그것을 영가라 합니다. 영가는 세세생생(世世生生) 윤회하면서 인연 있던 곳을 떠돌아다닙니다. 죽음에서 새 인연을 맺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중간적인 존재를 중음신(中陰身)이라고합니다.

그러면 중생은 어떤 세상을 윤회할까요? 불교에서는 중생이 윤회하면 서 살아가는 세계를 크게 나누어 3계(三界), 이를 세분하여 6도(六道)가 있다고 합니다. 이 우주에는 삼천대천세계(三天大天世界)라고 하는 광대 무변한 세계가 펼쳐져있는데 이를 구분하면 3계6도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삼계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3계’는 욕계(慾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말합니다. 삼계는 탐욕의 정도에 따라 이 우주를 구분한것입니다.

‘욕계’는 욕(慾)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 욕망의 세계, 곧 욕심이 많은 중생사는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욕망이 앞서는 세계입니다. 구체적인 욕망으로는 다섯 가지 욕망을 들 수 있습니다. 물질욕, 식욕, 음욕, 수면욕, 명예욕 등이 극심한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욕계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가 욕계입니다.

‘색계’는 물질 위주의 세계를 말합니다. 한자로 색(色)은 물질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물질은 아주 아름답고 깨끗하기 때문에 욕계의 오염된 물질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욕계의 중생보다 복력이 월등하게 많은 중생들이 태어나 복락을 누리는 세계입니다.

‘무색계’는 앞의 두 세계와는 달리 비물질적인 세계,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입니다. 무색(無色)은 물질이 아닌 진리의 체성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중생들은 아직은 정신적으로 아주 작은 번뇌가 남아 있으므로 완전한 이상 낙원은 아니고 사바세계의 중생에 속합니다. 하지만 욕계와 색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평화와 복락이 많은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삼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며 이곳에서 더욱 정진하면 마침내 중생으로서 탈을 벗고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곳입니다. 중생은 이세계를 윤회하면서 나고 죽고를 되풀이하는데 이를 삼계윤회라 하고, 비록 무색계는 살기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복락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기 때문에 이를 마치 불난 집과 같다고 하여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불교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나는 것이 니라 이 삼계윤회를 뛰어넘어 부처님이 되는데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대부분 살기 좋은 하늘나라에 태어나기를 바라는데 비하여 불교의 이상은 단지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생사윤회를 단절하는 성불에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다음은 육도(六道)가 있습니다. 도(道)는 길도(途)와 같은 말이고, 또 취(趣)라는 말과도 같은 뜻입니다. 취(趣)는‘ 간다’라는뜻의 한자말입니다.
어떤 절대자나 주재자가 있어서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 스스로가 자신이 지은 업력에 의해 끌려가서 태어나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가서 난다’는 뜻으로 왕생(往生)이라 하고, ‘길’이라든지‘취’라는표현을쓴것입니다.
‘육도’는 천상(天上),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아귀(餓鬼), 축생(畜 生), 지옥(地獄)의 여섯 갈래 길을 말합니다. 앞의 셋은 선도(善導) 또는 선취(善趣)라 하고, 뒤의 셋은 삼악도(三惡道), 악취(惡趣)라고 합니다. 앞의 세 길은 비교적 선한 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길이고, 후자는 상대적으로 악업이 강한 중생이 태어나는 길이기때문입니다.

지옥도(地獄道)는 가장 악한 죄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지옥은 지하의 감옥이라는 뜻으로 경전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인간계에서 지하로 2만 유순 가량 내려가면 있다고 합니다. 지옥 중에서도 가장 래층에는 무간지옥이 있는데 이 지옥의 위치는 4만 유순의 지하에 습니다. 여기서부터 위로 차례차례로 8대 지옥이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8대 지옥은 같은 지옥이지만 그 업력이 차이가 있어 최초의 지옥은 죄업이 가벼운 중생이 태어나고 최후의 지옥인 무간지옥은 가장 극악한 죄인이 태어나는 곳으로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입니다. 무간지옥은 아비지옥이라고도 하는데 ‘아비’는  곧 ‘무간’과 같은 뜻으로 ‘고통이 쉴새없다’ 는뜻으로 무간(無間)이라고 하는것입니다.

아귀도(餓鬼道)는 우리가 보통 귀신이라고 하는 존재와 같습니다. 귀신은 수천 종류가 있는데 이는 모두 아귀도에 속하는 중생입니다. 전생에 악업을 짓고 탐욕을 많이 부린 자가 아귀로 태어나는데, 항상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아귀들의 생활은 각양각색으로 스스로 죄보를 받는 아귀도 있고, 우리 간계에 내려와 인간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아귀도 있다고 합니다. 이 아귀의 세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계에 인간과 함께 주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별도로 아귀들만이 사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부류입니다.

축생도(畜生道)는 짐승, 물고기, 곤충 등을 말합니다. 축생은 고통이 많고 즐거움은 적으며, 식욕과 음욕만 강하여 부자 형제간에도 의리가 없고, 싸우고 서로 잡아먹기 때문에 항상 공포 속에서 살게 되는 괴로운 중생입니다.

‘아수라도(阿修羅途)’는 육도세계에서 매우 부유한 세계입니다. 그러나 아수라는 성을 잘 내며 싸움을 잘하는 중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광경을 아수라장이라고 하는 경우도 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아수라는 앞의 삼악도와는 달리 삼선도에 들기도 하지만 악업을 지어서 태어나기 때문에 악도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선도와 악도의 중간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도’는 바로 우리 인간들을 말합니다. 인도(人道)는 천상 다음으로 선한 복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괴롭다고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천상보다 바람직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상은 그 복락이 너무 많아서 다음 생의 괴로움을 생각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복이 다하면 다시 더 낮은 세계에 윤회하게 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마음과 행실을 잘 닦으면 영원히 윤회를 벗어날 수있기때문입니다.

‘천도(天道)’는 하늘나라, 천상(天上), 천유(天有), 천계(天界)라고도 하는데, 범어 데바(deva)를 번역한 말입니다. 천도는 육도 가운데 가장 높고 복력이 뛰어난 중생이 사는 세계 또는 그 중생을 말합니다. 천도에 사는 중생을 가리키는 경우에는 천인(天人), 또는 천중(天衆)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신(神)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천도는 욕계와 색계, 무색계의 천도가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위치로 보면 욕계천이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무색계의 천도가 가장 위에 존재하는데 천도에도 복력의 차이에 의해 태어나는 세계가 각양각색인 것입니다.

욕계천에는 사왕천을 비롯한 6욕천이 있고, 색계에는 크게는 초선천, 제2선천, 제3선천, 제4선천 등 사선천(四禪天)이 있지만 이를 세분하면 범중천등 17천이 됩니다. 무색계에 속하는 하늘에는 공무변천, 식무변 천, 무소유처천, 비상비비상처천등사무색계 천이 존재합니다.
이곳 천도는 각기 특색이 있는데 욕계천은 전생의 복력, 색계천과 무색계천은 전생에 담은 정진력, 즉 정신적인 수준의 차이에 의해서 태어나는 하늘이 정해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하늘 나라의 장엄함이라든지 중생들의 복된 생활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생략 하겠습니다.

존경하는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고통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윤회의 원인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윤회의 원인이고 주범일까요?
『미륵보살소문경(彌勒菩薩所聞經)』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십악(十惡)을 행하는 인연 때문에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 지고, 십선(十善)을 행하는 인연 때문에 천계(天界)와 인계(人界)에 태어난다.”고하셨습니다.

범부 중생들이 악도와 선도에 태어나는 것은 선악을 행하는 인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은 업이 되어 그 업력의 끄달림에 따라 선도에 태어나기도 하고 악도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 선악의 무게에 따라 과보가 다르게 나타나는 줄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윤회의 원인이 되는 중요한 몇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업력의 무게에 따라 생을 받습니다.

 
사람의 행위에 따라 좋은 업인(業因)을 뿌리면 좋은 열매가 맺고, 나쁜업인에는 악의 과보가 따릅니다. 사람이 어질고 착한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복을 받게되고, 나쁜짓을 하면 상당한 죄과를 받게됩니다.
이것을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 즉 좋은 씨앗을 뿌리면 잘 태어나고, 나쁜일을 하면 악도에 태어나게됩니다.
둘째, 습(習)을 따라 생을 받습니다.

 
평소에 아미타불을 많이 염송하여 습관이 된 사람은 의외의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되더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아미타불’을 염송하게 되면 이때 ‘아미타불’을 한번 부른 것이 몇 십년 동안 염송한 것보다도 더 큰 효과가 되어 그 공덕으로 윤회가 없는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에 왕생하게 됩니다.

 
셋째, 뜻을 따라 생을 받습니다.

 
죽은 후 어떤 생을 받는가는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평소에 온 마음으로 간절히 성불하기를 바랐다면 사후에도 이러한 뜻을 쫓아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일심으로 천상에 나기를 바랐다면 죽은 후에 이러한 염원을 따라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소 수행할 때에 어떻게든 생각이 끊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업력으로 생을 받든지 대부분 사람들은 사후에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터널을 지나면 누군가가 앞으로 와서 그를 맞이하는데 어떤 사람은 한척의 배에 의해 인도되어 생사의 바다를 건너 피안에 이르고, 또 어떤 사람은 소의 머리와 말의 얼굴을 한 귀졸(鬼卒)에게 이끌려 지옥으로 가고 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염불을 한 사람은 아미타불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신과 보살님 등 성인의 무리들이 와서 그를 맞이하여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케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불자들은 평소에 마음을 거두어 정념을 지키고 선을 행하여 악을 제거함으로써 심판을 두려워 하지않고 죽음을 겁내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윤회설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불자들 중에는 윤회설을 방편설(方便說 )이라고 주장하여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윤회설을 부정하는 것은 생각하는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지식이 가볍고 얕기 때문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무지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과경』에이런말씀이있습니다.
“만일 전생의 일을 묻는다면 금생에서 받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요,
만일 내생의 일을 묻는다면 현세에 짓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습니다.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 이는 오직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내가 스스로 지어서 받고, 자기의 업은 스스로 받는다’는 말은 단지 금생만의 문제가 아니고 생사윤회의 한없는 고통의 바다에서도 엄격하게 적용 되는 철칙입니다.

윤회를 부정하면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을 백년 미만의 한 생으로 국한시키게 됩니다. 현재 살고 있는 이 일생만을 자기의 전 생애로 생각하게 되므로 스스로 생명을 단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게되니얼마나 불행한 일 입니까.

만약 미래가 없다면 목숨 또한 한 순간에 불과할진대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불안하고 외롭겠습니까? 윤회를 믿을 때 인생의 방향을 바꿀 여지가 있고, 이루지 못한 꿈이 이루어질 날이 있으며, 다음 생을 기다릴 여유가 생길것입니다.

윤회는 결코 신앙의 체계나 이론이 아니며, 더욱이 인생의 냉혹함을 피하기 위한 무정(無情)의 최후의 재판, 즉 죽음에 대한 심리적인 위안도 결코 아닙니다. 윤회는 전생과 내생을 해석하는 정밀하고 정확한 과학입니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윤회를 분명하게 아셔서 불교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신남신녀여러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이 세상에 죽음처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 죽음에 대한 준비는 하지 않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죽음이란 누구나 예상하는 가장 확실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대신할 수도 없는 사건입니다. 죽음은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엄습하듯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젊고 건강하다고 할지라도 숨 한번 들이켰다가 내쉬지 못하면 내생입니다. 죽음을 이겨낼 자, 이 세상에 누구도 없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처절하고 비참하고 괴로운 것이 죽음입니다. 그런 죽음인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어떤 갑부가 평생 노랭이처럼 돈을 모았다가 갑자기 죽을 때가 되어 의사를 붙들고 애걸복걸하기를“내 재산 반을 줄 터이니 제발 3개 월만더살게해주십시오.”하며 몸부림치더랍니다. 이 부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하면 갑자기 당하는 일처럼 속수무책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썩은 나무토막처럼 허망하게 한 생을 마감합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과도한 공포에 떨 필요는 없습니다. 죽음도 단지 삶의 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생명은 결코 한 생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시고, 미래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오랫동안 살던 집이 무너져 더 튼튼하고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과 같고, 옷이 헤어지면 고운 새옷으로 갈아입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죽음을 극복하는 길, 생사를 뛰어넘어 영원히 살 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길,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덮고 있는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의 무명장막을 걷어내는 길 뿐입니다. 이 길은 달리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부단히 실천을 통해 이루어질 뿐입니다.
구두선(口頭禪)이나 공염불(空念佛)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彼岸)의 세계요, 오직 수행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安息處)입니다.

유명한 달마(達磨) 대사는 말씀하시기를“만일 성품을 보지 못했다면 선지식이라 할 수 없나니, 비록 12부 경전을 다 외운다 할지라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삼계에 윤회하면서 고통을 벗어 날 기회가 없느니라.” 고하셨습니다.

‘성품을 본다’는 말은 곧 견성을 말합니다. 성품이란 불성이요, 불성은 곧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성품을 본다는 말은‘마음을 깨친다’는말 입니다.

불교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의 ‘성품을 보고 그 마음을 깨쳐’성불하는 것입니다. 그 성불의 경지가 생사를 초월하고, 생사를 자재하는 자리이고 윤회까지도 벗어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말로나 생각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성스러운 경지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참다
운 불자가 되어 다 함께 생사윤회의 고해를 건너 영원한 삶을 누리는 열반의 땅에 닻을 내립시다.

끝없는 옛적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생명의 유전(流轉) 속에서 불자모두가 하루 속히 자신의 장엄한 전당을 짓고 화려한 법의(法衣)를 입고 윤회를 벗어나 보리혜명(菩提慧明)을 성취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도 오는 곳 없고, 한 조각 사라져도 자취 또한 없구나.
아무리 보고 또 보고 보아도 구만리 장천(九萬里長天)에는 파란 하늘 뿐이로구나.


-축서사 계간지에서 -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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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제와 지공선사의 인과법문 문답록 38가지

 

(梁)나라 무제(武帝)의 이름은 소연(蕭衍)이며, 성품이 착하고 불법을 믿어 당시의 고승 지공(志公) 스님을 국사로 모셨다.

양무제 당시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 가 양무제와 문답한 내용은 유명하다.


황후 치(眼)씨는 불법을 믿지 않고 타고난 성격이 질투가 심하여, 왕궁 안의 사람을 학대하고 여러 가지 악을 지어 죽은 후 구렁이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무제는 잠이 오지 않아 서늘한 누각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갑자기 전각 아래에서 ‘스스스’ 하는 소리가 들려, 보니 한 마리의 구렁이가 배회하고 있었다.


무제가 크게 놀라워하자 구렁이가 사람의 말을 하였다.


“주상! 놀라지 마세요. 신첩은 황후이옵니다.

궁인을 괴롭혀 뱀의 몸으로 떨어졌습니다.”

 

뱀의 몸은 엄청나게 커서 몸을 숨길 구멍이 없었다.


배는 고프고 온 몸의 비늘마다 독충이 있어서 피를 빨아먹으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무제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제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무제는 뱀의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쓰러졌다가 한참 후에야 깨어나서 탄식하며 말하였다.


“사람이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악한 과보를 면하기 어렵구나.

급히 지공 스님을 모셔와야겠다.”

 



1.

무제가 지공 스님께 물었다.

“황후는 어찌하여 뱀의 몸을 받았습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황후는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인과를 믿지 않고 육궁의 궁녀들을 괴롭혔으며, 악독한 마음을 품고 나쁜 업을 한량없이 지었습니다.


다 인과응보이며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自作自受〕이니, 추호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천지(天地)가 벌을 내리는 것은 사실은 스스로가 초래하는 것입니다.

만약 죄를 범하지 않으면 염라대왕이 어떻게 벌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2.

무제는 스님께 황후의 고통을 구제해주실 것을 청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대왕은 성심으로 왕비들과 함께 재계를 지니고, 고승을 청하여 도량을 지어(법석을 만들어) 친히 예배하면서 참회를 해야 비로소 구제될 희망이 있습니다.”

 

무제는 즉시 진실한 마음을 내어 여러 왕비들과 함께 재계하면서 오백 명의 고승(高僧)을 청하여 참회의 법을 닦았다〔후에 이것을 양황보참(梁皇寶懺)이라고 칭하였다〕.

 

무제는 친히 부처님께 예배하면서 황후의 천도를 간절히 빌었다.


스님들이 예배 송경할 때 단 아래의 구렁이가 몇 번 몸을 선회하더니, 황후는 이미 천도되어 구름 속에서 천인(天人)의 몸을 나타내면서 감사의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은 불가사의하였으며, 무제는 그 후로 수행에 정진하고 경전을 연구하면서 불법의 오묘한 이치를 이해하였다.



3.

어느 날 무제가 지공 스님께 여쭈었다.

“부인은 이미 제도되어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선악의 업보는 과연 어둡지 않습니다.

짐(朕)은 금생에 한 나라의 주인이 되었는데 무슨 공덕으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답하셨다.

“대왕의 전세(前世) 인연은 대왕께서 듣고 부끄러워할까봐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무제는 다시 간절히 청하면서

“제자는 과거의 인연을 매우 알고 싶습니다.”고 하였다.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은 전세에 나무꾼이었습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벨 때 오래된 절이 있어 보니, 낡고 허물어져 산문(절)이 몰락한 것이었습니다.

지붕도 다 허물어져 절 안에 오래된 불상이 비바람에 젖어 있었으며 공양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시 나무꾼은 착한 마음을 발하여 자기의 대나무 삿갓을 벗어 불상의 머리에 덮어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보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나무꾼이 자신의 삿갓을 부처님께 공양한 것은 어렵고도 고귀한 행위입니다.

그 덕분에 인간이 되고, 왕의 몸을 얻게 된 것입니다.


대왕께서 전세에 이렇듯 착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이러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제는 과거 생에 매우 작은 일을 했는데 오히려 임금이 되었으니, 마음이 매우 기뻤다.


무제는 금생에 다시 큰 복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성지를 내려 나라 안 5리(五里)마다 하나의 암자를 짓게 하고 10리마다 절을 짓게 하였다.

날이 갈수록 짓는 절이 매우 많아졌다.


 

4.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제는 중병을 얻게 되었으며, 지공 스님께 가서 여쭈었다.


 “저는 이 즈음 크게 착한 일을 하고 나라 안에 많은 절을 지었는데, 어째서 큰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큰 선을 지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대왕께서 큰 악을 지었다고 말하렵니다.”


무제가 말하였다.

“저는 과거 생에 삿갓을 부처님께 덮어주고 임금의 자리를 얻게 되어, 금생에 착한 마음을 크게 내어 나라 안에 절을 많이 짓게 하였는데 어찌하여 악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왕은 전세에 부처님께 삿갓을 드린 것은 지성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큰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금생에는 아래에 하달하여 널리 절을 짓게 하였으며, 또 자기는 돈을 보내지도 않고 힘을 보태지도 않으면서 천하의 백성들에게 절을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의 신음소리는 하늘에까지 닿았는데 당신은 오히려 복을 얻기를 생각하십니다.

세상 사람을 괴롭혀 천하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당신이 비록 천자일지라도 만백성의 원성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악업을 지은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5.

무제는 듣고 보니 매우 부끄러웠다.

또 묻기를 “태자가 최근 온 몸에 부스럼이 나서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하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대왕께서 지은 악업(惡業)이 태자에게까지 연루된 것입니다.”


무제가 놀라서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액난(厄難)을 소멸시킬 수 있는지 자비로써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곳에서 넘어졌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전에 절을 지을 때 주지 않은 노임을 하루 빨리 내려 보내 보상해 주어서, 백성이 빈손으로 일하지 않게 하면 자연히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고아, 장애인 등을 불쌍히 여겨 도울 것이며, 노인을 사랑하고 어린이를 귀여워하며, 스님들이 와서 시주를 청하면 성심으로 보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수행하는 스님은 중생의 복전(福田)인데 (복을) 심지 않으니 정말 애석합니다.”

 


6.

무제가 또 물었다.

“사람이 보시하지 않고 복을 닦지 않으면 선망(先亡) 조상들이 어찌하여 괴로워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망 조상들이 살아생전에 선을 닦지 않아 죽은 후 저승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자손들이 복을 지어 그 공덕으로 인해 죄를 가볍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집안을 지키는 신, 조왕신(鋤王神), 지신(地神) 등도 세상 사람들이 선을 지어 함께 착한 힘을 받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7.

무제가 물었다.

“스님들의 수행은 좋은 일인데 어찌하여 밖으로 가서 시주를 받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대자대비로 중생을 아들과 같이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절을 나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순서에 따라 걸식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부처의 눈으로 세간을 봅니다.

비록 사람이 되어 단지 은애만 알고 연연해하면서 복을 지으려 하지 않으며,

업을 지을 줄만 알지 참회할 줄을 모릅니다.

목숨이 다하여 죽으면 저승세계로 들어가는데 큰 고뇌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도솔천(兜率天)에서 인간세상으로 하생하여 제왕가에 태어났으나,

출가하여 도를 닦아 정각(正覺)을 이루었습니다.


44년 동안 300여 회의 설법을 하였으며, 중생을 교화하여 악을 떠나 선으로 향하게 하고,

허망한 번뇌를 끊어 본래 구족한 불성(佛性)을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출가한 스님이 불경(佛經)을 연구하지 않고, 좌선 참선을 하지 않으며 염불수행을 하지 않고, 나무하고 물을 긷지 않고(즉 일을 하지 않고) 절을 돌보지 않으면, 신도들의 보시를 헛되이 소비하는 것이며, 네 가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니 그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좋은 스님은 마땅히 열심히 배우고 참선에 노력합니다.

만약 도심(道心)이 있는 스님이라면 용맹정진의 마음을 발해야 할 것이며,

만약 절의 당우와 불상이 허물어진 것을 보면 마땅히 시주를 모금하여 수리해야 할 것이며, 시주받은 물건은 사사로이 써서는 안 됩니다.


시주가 보시한 것은 모두 절의 소유로 귀속되며 시주의 복과 지혜가 증장됩니다.

이와 같으면 바야흐로 출가한 불제자, 도를 배우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천하에 착한 남자, 여자는 매우 많습니다.

만약 출가한 스님이 (그들을) 교화하지 않으면, 그들이 비록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복을 심을 곳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스님들의 책임입니다.

 

스님들이 와서 시주를 모으는데 제왕께서 만약 인색하여 보시하지 않으면,

그것은 제왕께서 빈궁한 업을 심는 것이며, 또한 복을 심을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8. 

“어떤 스님들은 열심히 수행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장난치며 세월을 보내면서,

절의 이름을 빌어 시주자를 소원하게 하면(즉 신도들에게 불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답하였다.

“만약 스님들이 절을 짓고 불상을 조각하고 그리며, 시주금을 모집하는 것은 그 곳 백성들에게 부처님을 뵙게 하고 불법을 듣게 하는 것이니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길을 뚫고 다리를 놓으며, 부처님께 공양하고 스님께 재를 베풀며 도량을 세우고 폐관하여 참선하며, 모든 것을 함께 사용하면 공덕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게으르게 세월을 보내고 우매하여 삿된 견해를 가지고 불경의 법문을 믿지 않으며, 스승의 말을 듣지 않고 고기, 오신채, 술 등을 사사로이 먹고 마시면 그 허물은 무량합니다.


밝은 스승의 가르침을 구하지 않고, 가르침과 경서, 계율을 배우지 않으며,

선악의 인과를 알지 못하고, 삼악도의 괴로운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진실로 스승과 부처님을 가슴 아프게 합니다.


비록 총림에 머물면서 절을 돌보지 않고 단지 자기의 안락만 추구하며,

손에 시주의 장부를 들고 곳곳으로 화주를 모집하면서 시주를 속이면,

부처님과 하늘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인과를 속여 시주의 재물을 속인에게 보내 사용하게 한다든지,

혹은 친척, 권속에게 주면서 삼보의 재물을 사사로이 사용하면,

소가 되고 말이 되어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혹은 정재(淨財)를 가지고 세속의 여자와 사귀고 삿된 마음이 치성하여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면, 더러운 이름이 나서 신도들의 믿음과 보시의 마음을 물러나게 하며

스승을 상심시키게 됩니다.


이런 것이 스님들이 삼악도의 업인을 심게 되는 것이며, 괴로운 과보가 다할 기약이 없으니, 하루 빨리 가사를 벗고 산문(절)을 나가느니만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속인들은 승려인 체 속여서

불상을 조성하고 절을 짓는다고 하면서 돈과 쌀을 모읍니다.


그것으로 처자를 먹여 살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은 귀신도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슬프고 탄식할 일입니다.


 (그들은)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천년, 만년의 고통을 초래하며,

부모와 친척에게까지 누를 끼쳐 함께 삼악도(三惡道)의 고통을 받게 합니다.


임종 때는 (악도에 떨어져) 끓는 솥에 떨어진 게와 같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착한 마음의 스님이라면 반드시 인과를 알고 마음에 사사로움이 없이 공평 정직하여, 절을 짓는 화주를 위하여 선(善)의 인(因)을 심고 반드시 선(善)의 과(果)를 얻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불법을 널리 펴 중생을 제도하면 부처님의 깊은 은혜를 갚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스님에게 시주들이 널리 공양하면 후일 함께 바른 과를 증득하게 될 것입니다.


올리는 공양물이 비록 작은 과일 하나라도 재를 올리는 당에 놓아야 하며,

이러한 공평한 마음을 가지면 불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9.

무제가 또 물었다.

“세상 사람이 돈과 쌀로써 부처님께 공양하고 스님께 재를 올리면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과 스님께 공양하면 그 공덕은 매우 많습니다.

미래세상에서 반드시 무량한 수승한 과보를 얻게 됩니다.


절에 양식이 충분하면 스님들이 안심하고 수도를 할 수 있습니다.

출가인은 속진을 벗어나 계율을 지키고 밝은 스승께 법을 구하며, 전심으로 노력하면 머지않아 마음을 밝혀 견성(見性)할 수 있으며, 부처를 이룰 것이 틀림없습니다.”

 


10.

무제가 물었다.

“사람이 죽은 후 스님을 청하여 천도(薦度)하면 죽은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오를 수 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황후가 이미 구제되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단지 가족들이 성심성의껏 해주기만 하면, 그리고 천도해 주는 스님이 계행(戒行)이 있는 분이면 구제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독경(讀經)하고 예참(禮懺)하면 재와 공양이 청정해지며, 절대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백천 사람도 모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 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살생하여 깨끗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인과를 알지 못하여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사람을 청하여 천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염불송경이 경건하지 않기 때문에 망자(亡者)에게 공덕이 없습니다.


생명을 살해하고 또 주육(酒肉)으로 도량(道場)을 더럽히면, 돌아가신 부모는 구제를 받지 못하고 도리어 살생의 업이 더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도재에는 반드시 고기와 오신채가 들지 않은 깨끗한 음식을 써야 합니다.


도산(刀山)지옥, 검수(劍樹)지옥이 모두 살생의 업으로부터 옵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악업의 연을 맺으면 더욱 깊고 중해진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청정하지 못한 불사(佛事)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제도코자 하면 먼저 반드시 자신을 제도해야 합니다.

고인이 이르기를, ‘한 사람이 도를 얻으면 아홉 조상이 승천한다.’라고 합니다.


마을에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그의 착한 힘을 타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탄승게(嘆僧偈)에서 이르기를,

‘덕이 있는 스님이 도량을 지어 엄정하게 재계하고

경문을 염송하며 성심으로 예불하면 많은 공덕이 있으며,

살아있는 사람과 망자가 모두 이익을 받고 길상함을 얻게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훈승송(訓僧頌)에서 이르기를,

‘손에 바라(징)를 들고 치면서

술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도량을 만들고 불경(佛經)을 더럽히는데,

(이건) 정말로 애석하며 망인(亡人)에게는

오히려 더욱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11.

또 물었다.

“어떤 사람은 잘 입고 잘 먹고 하며 많은 복을 누리는데,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답하셨다.

“전세에 보시를 많이 한 복입니다.

경에 이르기를, ‘인과응보이며 자작자수(自作自受)’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을 누리는 사람은 복을 다 누리면 안 되며, 복을 아끼고 늘려야 합니다.

복이 있으면 복을 짓기도 쉬우며, 도를 닦기도 편리합니다.


돈이 없으면 보시하려고 해도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복이 있어도 수행할 줄 모르고 이전의 복을 다 써버리면 괴로운 날이 다시 올 것이니, 하루빨리 깨달아 복을 아끼고 복을 닦으며 선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12.

무제가 탄식하며 물었다.

“어떤 출가인은 절에서 수행하지 않고 도리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절의 스님에게 손해를 끼치는데, 이것은 무슨 원인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이러한 무리들은 모두 성도(成道)를 막는 요사스런 마의 무리로서, 마음에 의심이 많고 한(恨)을 품어 스님의 모습을 지어 불법을 파괴하러 온 것입니다.


말법(末法)의 시대에는 사마(邪魔), 외도(外道)들이 스님의 옷을 입고 불법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돈을 긁어모으는데, 갖가지의 방법으로 불교를 파괴하려고 올 것입니다.


이러한 무리들은 절을 집으로 삼고 청정한 부처님의 땅을 더럽히며, 불법의 참된 모습을 파괴할 것이니, 죽어서는 아비지옥에 떨어져 무량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3.

무제가 또 물었다.

“불법은 미묘하여 능히 생사의 고해를 건널 수 있으며,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출가하여 이미 스승의 은혜를 깊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라서는 열심히 도를 배우지 않고 사중(寺中)의 돈과 쌀, 재물을 가지고 가서 환속하여 아내를 얻기도 하는데, 이러한 사람은 이후 어떻게 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러한 무리는 죄의 뿌리가 매우 깊고 두터우며, 복력(福力)이 천박합니다.


또한 출가하는 것이 해탈(解脫)의 길이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진실로 참회하면 안락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축생에서 몸을 바꿔 처음으로 인간의 몸을 얻게 된 무리로서 삿된 마음이 쉽게 생기며, 또 불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참회하여 고쳐야 하며, 작은 잘못이 큰 잘못으로 자라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불문(佛門)의 돈, 쌀, 재물은 시방의 시주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을 절약하여 보시한 돈으로서, 원래 절의 스님들이 안심하고 도를 닦게 하는 자량입니다.


스님들이 정진 수도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데, 도리어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환속하여 처를 얻고 머리를 기르는 것은 (축생의) 꼬리가 생기는 원인이며, 아내와 같이 하는 잠자리는 (지옥의) 쇠 침대입니다.


그때가 되면 염라대왕의 심판에서 도망가기 어렵습니다.


절에는 사왕(蛇王)보살이 불법을 보호하고 지키는데, 그때 가서는 육친 권속까지 연루되어 편안하지 못하며, 자신은 바로 지옥으로 들어가 천백만 년이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이전에 양(陽)씨 스님이 계셨는데 덕행이 단정하고 산에서 수행을 하던 좋은 스님이었으며, 수행에 성취한 바가 있어 하루는 선지식을 참방하러 가려고 하였습니다.


막 떠나려고 하는데 호법신장인 사왕(蛇王)이 가로막고는 비단 한 필을 돌려주어야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양씨 스님은 말하였습니다.

‘나는 산에 있으면서 무슨 비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사왕이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여기 처음 계실 때 종이 한 장으로 과자를 싸서 어머니에게 보낸 적이 있는데,

오늘 계산해 보니 비단 한 필을 돌려주어야 이 절에 빚이 없게 됩니다.’


양씨 스님이 말하였습니다.

‘지금 절에는 도를 수행하지 않고 함부로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많은데, 당신은 그들에게는 참견하지 않고 왜 나에게만 막고 빚을 받으려 합니까?’


사왕이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수행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지었으므로, 스스로 (그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일단 그들의 나쁜 악업이 가득 차면 목숨을 마칠 때 내가 그들에게 결판을 낼 것입니다.


그들은 죽어 지옥에 들어가 죄를 다 받고 나면 다시 축생의 몸이 되어 이전의 빚을 갚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지옥에 들어가기를 원하면 나도 당신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전에 부처님 앞에서 큰 서원을 발하기를, 무릇 절의 재물은 금은보화, 기타 기물, 쌀 등 크고 조그마한 것을 막론하고 모두 보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양씨 스님이 말하였습니다.

 ‘종이 한 장을 가져갔는데, 왜 비단 한 필을 갚아야 합니까?’


사왕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절의 재물을 관리합니다.


시주의 보시를 기록하는데,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의 과보를 얻습니다.

(절의 재물을) 낭비하고 손해를 끼치는 것을 일일이 기록하여 밤낮으로 그 이자를 계산하여 상환 받습니다.


나는 서원을 발하기를,

절의 벽돌과 기와가 재로 변해야 비로소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까지 계산해보니 당신은 비단 한 필을 갚아야 합니다.’


양씨 스님이 듣고는 몹시 놀라고 걱정되어 연이어 땅에 대고 절을 하며, 너그러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빌면서 즉시 방법을 강구하여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양씨 스님은 은 석 냥을 모아 절의 스님에게 돌려주고는 후인을 경계하는 게(偈)를 지었습니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 좌선하며

가람(절)의 밥값을 면하고자 하네.

만약 나의 경계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천년, 만년을 지옥에 떨어질 것이네.


 

지공 스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양씨 스님은 게를 읊고는 구름을 타고 가버렸습니다.



산문(절)을 침해하는 사람은 후손이 끊어지며, 절의 재물을 도둑질하면 화(禍)가 서로 잇따릅니다.


사왕보살도 게를 지어 경계하였습니다.”


 

옛날 영산회상에서 일찍이 서원을 발하여

절의 조그마한 풀 하나라도 지키려고 하네.

승려와 속인이 인과의 법칙을 지키지 않으면

한 치의 오차 없이 보응을 받으리라.


절의 재물을 침해하면 지옥의 인이며

재물을 도둑질하면 화가 서로 따르리라.

종이 한 장 가져가서 비단으로 갚고 공중으로 올라갔으며

빚의 업은 윤회에 떨어지게 하네.

 


14.

양무제가 또 물었다.

“어떤 스님은 돈을 많이 저축하고는 비록 전도됨이 없고 바르지 못한 행을 하지는 않으나, 보시하지 않고 법을 널리 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후 어떻게 됩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들은 스님의 본분사인 홍법이생(弘法利生)의 일을 망각하였으니 속인과 다름이 없으며, 재물을 지키는 수전노가 되어 탐심이 중하기 때문에 죽으면 아귀가 될 것입니다.


절에 재물이 남으면 절대로 이익을 꾀하여 사람들에게 빌려주지 말고 마땅히 홍법이생에 사용해야 하며, 자선보시를 하여야 비로소 불법과 시주에 대하여 떳떳합니다.


같은 수행자들이 나쁜 과보에 얽혀든 것은 숙세의 업장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고,

예배하고 송경하며 선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 불법 문중의 사람은 절대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향을 올리고 물을 바꾸는 데 편케 하기 위하여, 잠을 잘 때에는 옷을 벗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참구하고 예불할 것이며, 제때 종과 북을 쳐야 하며, 정진 수행해야 합니다.


염불, 송경, 예참의 일은 빠뜨리지 말고 위로는 사은(四恩)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악도의 중생을 구제할 것이며, 원력(願力)에서 물러나지 말고 수행함에 나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공(功)이 쌓이고 덕(德)이 모이면 마침내는 도과(道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인과를 믿지 않고 경·율을 보지 않으며, 스스로의 편견에 집착하여 삼보를 훼방하고 스승과 어른을 업신여기며, 상주재물을 파괴하고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이러한 사람들은 만약 잘못을 고쳐 자신을 새롭게 하지 않고, 악을 버리고 선을 닦지 않으면

장래 반드시 고통의 세계에 떨어져 받는 고(苦)가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소위 말하기를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여래의 정법(正法)을 비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15.

무제가 또 물었다.

“재보(財寶)를 보시하여 불보살의 형상을 조성하면,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장 수승한 무루(無漏)의 공덕입니다.


『조상공덕경(造像功德經)』에 이르기를,

‘말법시대에 불상(佛像)을 조성하는 사람은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 첫 법회에서 해탈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32상(相)의 인(因)이며 능히 성불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우전왕(優塡王)에게 말씀하시기를

‘불상을 조성하는 사람은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즐거운 복을 받으며, 신체가 단정하고 금빛이 나며,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항상 제왕이 되거나 대신, 장자, 현명하고 착한 가문의 아들, 부유하며 존귀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들은 무수겁을 지나면 성불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불상을 조성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정통하고 우수한 장인(匠人)을 선택하여,

함께 공경심을 일으키고 최상의 심혈을 기울이면 최상의 묘한 과보를 얻게 됩니다.

만약 장엄스럽지 못하면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불상을 조성하고 경을 간경할 때 공인(工人)과 함께 발심하여 청정하게 재계를 지켜야 합니다.


만약 술을 마시고 오신채를 먹으면 비록 조성하는 것이 많을지라도 공덕은 매우 적습니다.

만약 공경심과 재계를 지니면 복의 과보가 무량합니다.”

 



16.

무제가 또 물었다.

“스님들이 폐관(閉關)하여 좌선(坐禪)하면 그 공덕은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스님들이 재계(齋戒)하고 예배·송경하면 그 복덕은 헤아리기 어려운데,

하물며 일심으로 좌선하는 것이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심불란(一心不亂)하고 만법(萬法)이 모두 공(空)하면, 머지않아 공(功)을 이루며 반드시 성불(成佛)할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좋은 호법(護法) 거사가 있어 결연히 폐관수행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불법을 닦는 데 절대로 아만심을 가지지 말고 고요하여 어지럽지 않아야 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잠시라도 정좌하면 항하사의 칠보탑을 쌓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보탑은 필경에는 먼지로 변하지만, 청정한 일념은 정각(正覺)을 이룹니다.

그리하여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으며 세간의 깨끗한 복전이 될 것입니다.


사사(四事)공양에 감히 노고를 아끼면 만 냥의 황금도 소멸하게 될 것이며,

시주가 재물을 보시하여 성심으로 공양하면 그 공덕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17.

무제가 또 물었다.

“송경(誦經)의 공덕은 그 복이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송경의 공덕은 불가사의하며, 그 복도 상·중·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무제가 물었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불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상·중·하의 높고 낮음이 있다고 하십니까? 해설하여 주십시오.”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법은 평등하나 복을 짓는 데에는 상·중·하가 있습니다.


스님을 속가의 집으로 청하여 송경하는 것은 하품(下品)이며, 산과 들에서 송경하는 것은 중품(中品)이며, 절에서 송경하는 것이 상품(上品)입니다.


왜냐하면 속가의 집은 청정하지 못하며, 산과 들은 비교적 청정하며,

절은 청정한 곳이라 제불(諸佛)이 상주하기 때문에 상품이 됩니다.

 

경은 법보(法寶)로서 평범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 천룡이 보호하며,

삿된 마(魔)도 합장합니다.


따라서 향과 꽃과 등과 과일 등으로 공양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부족하면 공경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봉공하는 사람은 거칠고 침착하지 못한 행동으로, 경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하거나 움직이게 하여 전심하지 못하게 하면 안 됩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한 번 생각이 동하면 천 리나 벌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비유하면 길을 가는데 동반자를 잃는 것과 같으며, 스님들이 히히덕거리면 성심이 없으며 위의(威儀)를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경 속의 이치를 신해(信解)하지 못하고 마음이 원숭이나 말같이 달리면,

이것은 경을 읽는 사람의 과실이며 다른 사람과는 무관합니다.

 

만약 성심으로 재계하고 여법하게 예송(禮誦)하면서 자구를 분명하게 독경하는 사람은 단지 몇 권만 송하여도 공덕이 매우 많으며, 만약 웃거나 하면서 읽으면 많이 읽어도 이익이 없습니다.”



게송(偈頌)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경을 읽는데 공경스럽지 못하면

설령 많이 읽더라도 헛되며,

경건히 위의를 갖춰 읽으면

바야흐로 큰 복전(福田)이 되네.

 



18.

무제가 또 물었다.

“스님들이 재계를 지니지 않고 예불·송경하면 그 복덕은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재계를 지니지 않고 예불·송경하면 공덕이 전혀 없습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복을 구하려면 재계를 지켜야 하며, 재계를 지니면 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불사(佛事)의 문중에서는 또 경에 이르기를, ‘입으로 오신채, 술, 고기를 먹으면 49일간 더럽고 깨끗하지 못하니, 불전과 보탑에 감히 오르지 못하는데,

하물며 예불하고 송경함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능엄경』에서는

‘오신채를 먹는 사람은 귀신이 와서 입술을 핥으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날로 복덕이 소멸하고 죄장이 증가되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스님들이 재계를 지니지 않으면, 큰 공덕이 있는 불사에 시줏돈을 헛되이 쓰게 되는 것입니다.

 


경에 이르기를,


‘옛날에 세 사람이 동해를 건너가는데,

한 사람은 매우 총명한 사람으로서 한 척의 큰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갔으며,

다른 한 사람은 큰 물소를 이용하여 꼬리를 잡고 건너갔다.


또 다른 한사람은 배나 물소를 이용하지 않고 단지 한 마리의 돼지를 이용하여 돼지의 꼬리를 잡고 바다를 건너가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사람과 돼지 모두 바다에 빠졌으며, 도리어 사람들의 비웃음을 초래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비유는 불사를 하는 데 있어서 상·중·하 세 등급의 계행이 같지 않은 스님을 청하면,

얻는 복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사를 하여 복전(福田)을 구하는 데, 시주는 공경심과 공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스님은 재계와 위의를 가지고 경건하게 예배·송경하면서, 시주를 위하여 재난을 소멸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대장경(大藏經)의 공덕은 산보다 크며

그대에게 권하노니 절대로 경솔하게 다루지 말라.


만약 신심과 공경심이 없고, 재계와 정성도 없으면

헛되이 경을 읽는 것이네.


삼승(三乘)의 묘법을 고금에 전하여

인간과 천상을 널리 제도함은 큰 인연일세.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데는 염불이 가장 수승하며

인간과 천상의 길에서는 복을 짓는 것이 우선이네.

 



19.

무제가 물었다.

“탑에 절하며 예불하는 공덕은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반드시 먼저 목욕재계해야 합니다.


예불 일 배는 무량의 죄업을 소멸시키며, 절을 많이 하는 공덕은 무량합니다.

한 번 예불하면 한 번 전륜왕위로 오르게 되며, 이러한 예불공덕의 인연으로 온갖 복을 갖춘 상호(相好)의 몸을 얻게 됩니다.

 

예배 시에는 오체투지를 하여 세 가지〔身口意〕 업을 항복받으며,

일신을 단정하게 하여 불보살을 직접 대면한 것과 같이 해야 합니다.


비뚤어지고 삿되이 고개를 돌리고 히히덕거리며 이야기하고 가래를 뱉어

부처님의 땅을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단정하고 장엄스럽게 공경해야 하며, 예불 예탑 모두 같습니다.


탑에는 불보살 또는 고승의 사리를 공양하거나 불경과 불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삼보가 장엄한 승지(勝地)이니, 예배공양하고 탑을 돌면 큰 공덕이 있습니다.”



 

20.

무제가 물었다.

“염불(念佛)의 공덕은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염불의 공덕은 비할 바 없이 광대합니다.

만약 사람이 지성심으로 (아미타불) 염불 일 구를 염하면 팔십억 겁의 죄업을 소멸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명호를 염하여 1일 내지 7일 동안 끊어짐이 없이 일심불란하면, 그 사람은 임종 시에 아미타불의 극락국토에 왕생하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경에 이르기를,


‘성심으로 아미타불을 염하면 팔십억 겁의 생사중죄를 소멸하며,

염불인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면 반드시 왕생하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21.

다시 묻기를 “방생(放生)의 공덕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그 공덕은 매우 큽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불성(佛性)이 있으며 성불할 수 있습니다.


단지 미혹 망상으로 인하여 축생 등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생사에 윤회하면서, 각자의 마음씨와 행위에 따라 갖가지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전에 자기의 가족이었을지라도 (모습이 바뀌면)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자비심을 발하여 재물을 들여 방생하면, 현생에서는 병을 없애고 수명이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단명하고 병이 많은 고통은 모두 과거의 살생을 한 나쁜 업 때문입니다.

 

방생은 천지간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덕에 합치되며, 부처님의 자비심이며,

관세음보살의 고난구제의 마음이며,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입니다.


방생하는 사람은 천지간에서 불보살의 자비를 대신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흉함이 길함으로 변하며, 병이 없고 고뇌가 없으며,

자손이 창성(昌盛)하고 가문이 길상(吉祥)할 것입니다.

 

방생하는 사람은 방생되는 자의 감사의 은혜를 받게 되며, 살생하는 사람은 살해되는 자의 원한을 받게 됩니다.

눈앞의 은혜와 원수는 바로 미래의 복(福)과 화(禍)의 원인이며, 그 과보는 거울과 같이 밝습니다.”



 

22.

무제가 물었다.

“세간의 부유한 사람은 선(善)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 적은데 무엇 때문입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 사람들은 전생에 일찍이 보시를 많이 하였으며,

금생에 복을 누리는 것은 과거의 착한 인연이 성숙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생에 전세의 인연을 잊고 보시함에 인색한 마음을 내며,

부득이하여 보시를 하게 되면 마치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애석하게 느낍니다.

 

이 사람들은 복을 누리면서 복을 늘릴 줄을 모르며, 복이 다 할 때 인색한 마음 때문에 반드시 빈궁한 과보를 받게 됩니다.

마치 사람이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빈궁한 사람이 배고픔의 고통을 깊이 알고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보시하면(더욱이 스님에게 공양하면), 이 사람은 마치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과 같으며, 고가 다하면 반드시 복이 오게 됩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보시는 마치 우물 속의 샘물과 같아

아침에 가서 길어오면 저녁에 보충이 되며

삼 일 아침을 길러 가지 않으면

우물물이 어찌 가득 솟아나오겠는가!


 

23.

무제가 또 물었다.

“세간의 사람 중에는 불공평한 것이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매우 가난하고 부자는 매우 부유하며, 괴로운 사람은 매우 괴롭고 즐거운 사람은 매우 즐겁습니다.

이것은 무슨 인연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연과보는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으며, 만약 사람이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행하면

금후에는 반드시 안락하고 부귀하다고 하였습니다.

금생에 가난하고 괴로운 사람은 전생에 선행을 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괴로워도 선행을 닦을 줄 알고, 어떤 사람은 괴로움을 받고도 여전히 선행을 닦을 줄 모르니,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나한게(羅漢偈)에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부귀하고 빈궁함에는 각각의 원인이 있으며

숙세의 인연으로 정해진 것이니 억지로 구하지 말라.

봄에 종자를 뿌리지 않았으면서

빈손으로 황무지 밭에서 가을의 수확을 바라네.



24.

 무제가 또 물었다.

“부귀한 사람은 복을 누리면서 도리어 수명이 짧으며, 가난하고 괴로운 사람은 생활이 곤란하면서도 팔십여 세까지 장수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부귀는 보시(布施)로부터 온 것인데, 그가 구복(口腹)을 탐하여 널리 살생을 하고 생명을 해치므로 원결(怨結)을 맺어 병이 많고 수명이 짧게 됩니다.


선악의 업연(業緣)과 죄와 복의 과보는 추호도 틀림이 없습니다.

선을 찬양하고 악을 벌하는데, 모든 것은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입니다.


금생에 마침 복을 누릴 때, 전생에 갚아야 할 생명의 빚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오래 장수하면서 고독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전생에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보시한 것은 없지만 살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생에 오래도록 살지만 빈궁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인과는 분명하여 조금도 오차가 없다.

콩을 심었는데 어찌 팥이 나겠느냐!

선악에 복과 죄의 과보가 없다면

성인들이 어찌 그들을 믿고 따르게 하겠느냐!


 

25.

무제가 다시 물었다.

“스님에게 공양〔식사〕을 올리면 그 복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와 같은 적선(積善)은 큰 이익이 있으며, 신심이 오래도록 물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스님은 공양을 받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그 공이 얼마인지 그 밥이 온 곳이 쉽지 않음을 헤아려야 하며, 우리가 먹는 한 톨의 쌀은 농부의 땀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금생에 도를 깨닫지 못하면 축생이 되어 갚아야 하니, 반드시 송경·예불하며 부지런히 수행하여 위로는 네 가지 은혜를 갚고, 시주와 함께 복을 쌓고 재난을 소멸하여 불도(佛道)에 올라야 합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불법(佛法)의 문을 열려면

부처님을 공양하고 스님께 재(齋)를 베풀어야 하네.


여래의 가르침에는 수많은 방편이 있으니,

인간 천상에서 복을 심어야 하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강을 이루듯 복을 많이 쌓고

조그마한 보시가 감은(感恩)의 파도를 이루네.


믿기지 않거든 양무제를 보시게.

과거생에 삿갓 하나 보시하여 왕이 된 것을.

 


나한게에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조정의 재상과 왕후(제후)

부귀한 자 모두 전세에 복을 닦아 온 것이며

과거생에 사람이 되어 보시를 하고

단정한 모습 불법문중에서 구했네.

수행이 아니면 무엇을 얻겠는가?


부처를 이루는 것은 다 겁의 수행에서 온 것이네.

석가모니도 원래는 황궁의 태자였으며

관세음보살도 역겁(歷劫)의 수행으로 이루셨네.


아육왕(阿育王)은 왕궁의 즐거움을 연연해하지 않고

왕위를 버리고 산에 들어가 청정한 수행을 하였네.

여러 남녀와 현명한 분들에게 널리 권하노니

절대로 좋은 인연 짓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지공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마음속의 심화(心火)를 식히고 관리들에게 화풀이하지 마십시오.

나쁜 돈 천 관(貫)은 구하기 쉽지만, 좋은 돈 한 푼은 구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를 닦는 것을 끊지 마시고, 도를 이루면 재난과 장애를 면하는 길이 있습니다.


한가로이 놀기 위하여 육친을 끊으면, 훗날 재난과 횡화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미혹되어 수행하지 않으려 하며, 재물과 여자에 연연하여 그치지 않습니다.


산중에서 정좌하면 즐거움이 유유한데,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도처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지렁이도 불법을 들어 아는데 사람은 불법을 배우지도 않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릅니다.


백년 인생을 헛되이 지내면 다시 사람 몸 얻기는 어렵고도 어렵습니다.

당신이 청산에게 어느 때 늙는가를 물으니, 청산은 당신에게 어느 때 한가한지를 묻습니다.”


 

26.

무제가 물었다.

“세상사람 중에 복과 수명을 다 같이 갖추고 모습이 원만한 자는 무슨 인연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이런 사람은 과거세상에서 불법을 믿고 재계하며 여러 착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장자나 부귀한 집안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습이 단엄하고 육근이 청정하고 신체가 건강하며,

병이 없고 재앙이 없으며, 주변 환경이 아름답고 복을 향유함이 자재합니다.


사람들이 공경하고 좋아하며, 처자·노복 등 모든 것이 여의하며, 재보가 풍요하여 수용에 다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전세에 보시하여 좋은 인연을 맺어온 복이며, 다른 사람이 빼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이 복을 누릴지라도 때에 맞춰 머리를 돌려야 합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복을 누림에는 다할 때가 있으니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겠느냐!

부귀는 일장춘몽과 같아서

잠깐 사이에 없어지고 마네.

만약 제때에 수행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없어진 후에는 슬퍼지리라.

 


지공 스님께서 또 부귀게를 읊으셨다.

 

차가운 바람, 살을 에이며 눈꽃이 휘날리는데

따뜻한 누각, 붉은 화로의 석탄불이 달아오르네.

얼마나 많은 대갓집의 부귀한 객이

금병에 든 술, 향기로운 음식 맛보았는가!


몸에는 비단옷에 솜저고리를 입고

날마다 고기와 과일 먹으니 입이 향기롭네.

숙세에 선의 싹을 심었으니

금생에 부귀하여 영화를 누리네.


선을 지음에 인과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금생에 장자의 집에서 복을 누리네.

만약 복을 누리면서 다시 복을 지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로구나

   



27.

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사람은 생산에 힘쓰지도 않고, 가계를 관리하지도 않고, 별 착한 일도 닦지 않으며, 오히려 당을 만들어 도적이 되는데 그 과보는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 사람은 과거 이래로 선근을 심지 않고 많은 악업을 심었으며, 또 선량한 사람을 모욕하였습니다.

금생에는 반드시 빈곤한 집에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잘못을 고쳐 착해질 줄을 모르며 도리어 더욱 나쁜 짓만 일삼습니다.


마치 설상가상과 같아서 하루아침에 악이 가득 차면 관가에 체포되며,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 나올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악하고 악독하며,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재물을 약탈하면서 자신의 부(富)만 도모합니다.


남들의 고통은 돌보지 않으니, 죄업이 산처럼 높습니다.

죽으면 지옥에 들어가 염라대왕전 업경대에서 죄장이 모두 드러나며,

부모와 육친 권속까지 연루되어 함께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죄를 마치고 사람이 되면 남은 죄업이 있으므로 빈궁하고 곤란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몸을 가릴 옷이 없고 배를 채울 먹을 게 없으니, 갖가지 고난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지공 스님이 또 탄식하며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손에는 밥그릇을 들고 거리에서 동냥하며

머리에는 두를 모자도 발에는 신발도 없이

밤에는 다리 밑과 차가운 집에서 묵으며

낮에는 자루를 들고 남의 집 문을 기웃거리네.


차가운 한풍에 눈이 휘날리면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이 이맛살을 찌푸리는가.

땔나무와 쌀이 없어 아이들은 배고프다 소리치며

아내는 남루한 옷을 입고 추위에 괴로워하는구나.


전생의 죄를 한탄하지 않고 금생에 다시 게으르며

천지를 원망하며 마음씨 또한 비뚤어져

집에는 벽도 없고 신발은 낡아 바닥이 없으며

찢어진 옷은 몸조차 가리기 어렵구나.


헝클어진 머리는 얼굴을 덮고

손가락은 생강마냥 울퉁불퉁하구나.

이러한 빈궁한 모습을 보니

모두 전생에 (부처님께) 향을 사르지 않았구나.


 

지공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유주(幽州) 사람 모간(毛侃)은 집이 가난하였으나 살 궁리를 찾지 않고 게으르게 지냈습니다.

인과를 믿지 않고 각지에서 스님들을 속여서 쌀과 돈을 얻어와 생활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그러지 말 것을) 힘써 권하면서 남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모간은 죽기 전 어느 날 밤 축생의 형상으로 변하였습니다.


다음날 돼지머리에 당나귀 발, 코끼리 귀에 사자코의 형상으로 어느 절로 들어가 청소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무슨 괴물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모간이 입을 열어 말하기를 ‘

나는 괴물이 아니며, 절을 속여 돈과 쌀을 편취한 모간입니다.

어젯밤 사왕보살에게 잡혀와 벌을 받아서 이러한 형상으로 변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산의 절에서 마당을 쓸면서 이러한 추한 과보를 받으며,

그 후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라고 말을 마치고는 다시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과보록(果報錄)』에 실려 후세에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유주지방의 모간이라는 사람은

절을 속여 재물을 취하면서 그 빚을 갚지 않으니

고기 같은 두 뺨에 큰 코끼리의 귀

당나귀 모습의 두 다리에 돼지 머리를 달았구나.


이전부터 지어온 악업이 끝이 없으니

절에서 땅을 쓸며 쉬지 못하는구나.

절을 왕래하는 객에게 권하노니

절의 물건은 절대로 탐하면 안 되노라.


 

28.

무제가 다시 물었다.

“산문(절)의 인과가 이와 같이 매우 크면, 감히 무서워 오는 사람이 없으면 곤란한 것 아닙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인과가 매우 크다는 것을 사람들은 깊이 믿고, 절대로 스님의 재물은 속여서 취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불법은 착한 사람은 절에 와서 함께 권하여 선을 행하고,

악한 사람은 삿됨을 고쳐 바름으로 돌아와 악을 없애고 선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항상 착한 일을 하면 바로 선인(善人)입니다.

어떤 사람은 착한 사람인 양 가장하여 절의 재물을 탐하여 취하는데,

착한 일을 빌어 거짓을 행하면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귀신과 같은 것입니다.”

 


29.

무제가 또 물었다.

“가사(袈裟), 계의(戒衣, 장삼)와 종·북 등 법구(法具)를 보시하면 그 복은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가사를 보시하면 일곱 생 동안 사람의 몸을 잃지 않으며, 계의를 보시하면 세세생생 배부르고 따뜻할 것입니다.


법기(法器)를 보시하면 음성이 우렁차고 좋은 명성을 얻게 되며, 양말과 신발을 보시하면 하인이 되지 않을 것이며, 짚신을 보시하면 길에서 돕는 사람이 있게 되며, 놀라고 위험한 경우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30.

무제가 물었다.

“스님들께서 사람들을 교화하는데, 우리들이 많은 재물을 보시하면서 도처로 시주를 구하러 가지 못하게 하면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그건 좋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시주를 구하는 것은 시주자에게 복을 심고 좋은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드시 한 사람만 교화해서는 안 됩니다.

널리 세상 사람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발심하여 복과 지혜를 닦아 함께 고해를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차라리 천집의 공양을 받을지언정, 한 집의 은혜를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스님들의 원입니다.


보시자는 자기의 힘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복을 지을 것이며, 보시는 마음에 있지 재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떨어지는 낙숫물도 그릇에 가득 차게 됩니다.

조그마한 선도 모으지 않으면 어찌 성인이 되겠으며, 조그마한 악도 그치지 않으면 자기 몸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환희심을 발하여 말로써 칭찬하면 그 복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인연 따라 보시하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씨를 잘 쓰는 것이 가장 뛰어납니다.”

 



고덕의 게송에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얼굴에 성냄이 없는 것이 참 공양이며

입에 성냄이 없으면 묘한 향기가 나오네.


마음에 성냄이 없으면 가치를 알 수 없는 보배이며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는 것이 참된 진리이네.


삼보의 문중에서는 복 닦기가 쉬우며

한 푼의 희사로 만 배의 보답을 받네.


그대와 더불어 견고한 창고에 맡기면

세세생생 복이 그치지 않으리라.



 

지공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세상사람 중에서 선을 짓고 복을 쌓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을 넉넉하게 가져야 합니다.

먼저 행하고 나서 후에 집의 아내에게 말하는 게 좋습니다.

아내가 원하지 않으면 서로 번뇌를 더하게 될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떤 큰 부자가 있었는데, 선을 좋아하고 보시를 좋아하였습니다.

선인(仙人) 여동빈(呂洞賓)이 감동하여, 그를 제도하기 위해 노인으로 변화하여

부자 앞에서 짚신을 팔려고 하였습니다.


그 장자는 짚신이 매우 좋은 것을 보고 사려고 가격을 물었습니다.

노인이 한 켤레에 황금 석 냥이라고 말하자, 그 부자는 돈을 가지러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 부인이 알고는 나무랐습니다.


‘당신 미쳤어요. 짚신 한 켤레에 어떻게 황금 석 냥이나 주고 사려고 합니까?’

장자는 아내의 소리를 듣고 노인의 짚신이 너무 비싸다고 사지 않았습니다.

여동빈 도사는 한 수의 게송을 읊고는 가버렸습니다.

 


황금 석 냥의 가격 높지 않으며

짚신은 매우 튼튼하게 만들었네.

장자는 아내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하는데

선인(仙人)으로 하여금 빈손으로 가게 하였으니!


 

부자가 게송을 듣고 급히 바깥으로 나왔으나, 노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그는 신선이 와서 시험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가슴을 치며 크게 후회하면서,

복의 인연이 천박한 것을 탄식하였습니다.


세간에는 어질지 못한 부인들이 많이 있어 남편이 좋은 일 하는 것을 물러나게 하며,

남편으로 하여금 착한 일을 지을 인연을 놓치게 할 수 있습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생에 이미 복을 심었으면

금생에도 자연히 큰 인연 있으나,

인색하여 놓지 못하니 신선은 가버렸으며

가슴을 치고 크게 후회해도 소용없구나.



 

31.

무제가 또 물었다.

“어떤 사람은 절과 스님을 관장하면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하지 않고 오로지 불사(佛事)를 하여 돈을 모읍니다.


여러 대중들에게는 각박하게 하고 자기에게는 후하게 하며,

스스로는 재계를 지니지 않으면서 도리어 다른 사람을 비방합니다.

권세에 의지하여 공평하게 하지 못하고

여러 대중을 욕하여 신심(信心)을 잃게 하는데,

(그런 사람은) 이후 어떻게 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절을 관장하려면 사람들의 사표가 되어야 하는데 어찌 쉽겠습니까?

자기의 행위가 전도(顚倒)되니 남을 가르칠 정법이 없으며, 계율과 청규(淸規)를 알지 못합니다.


잘난 체하여 남들의 공경을 받으려고 하며,

아만심이 높고 삿됨을 행하는 것이 위험할 지경입니다.


염치도 모르고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여럿이 모여 시끄럽게 굴면서 세상의 나쁜 소리를 지껄입니다.

이것은 바로 맹인이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날 복이 다하고 악이 가득차면 재난과 횡화가 몸에 덮치게 됩니다.

불법을 오염시킨 죄가 가볍지 않으니, 현재생에서도 고통스런 과보를 받지만

임종 후에는 지옥에 들어감이 화살과 같을 것입니다.”

 


32.

무제가 물었다.

“조정의 문무백관 중에는 세력을 믿고 백성을 괴롭히는 자가 있습니다.

일처리가 공평하지 못하면서 혹독한 형벌로써 백성의 재물을 탈취하는데,

이런 자들은 뒷날 그 과보가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러한 사람이 관리가 된 것은 전생의 복 덕분입니다.

복이 다하고 목숨을 마치면, 염라대왕의 업경대에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이 비춰져서

법에 따라 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죄가 가벼운 자는 축생이 되어 밭을 갈면서 빚을 갚을 것이며, 죄가 무거운 자는 교룡(蛟龍)이 되어 사천하에 비를 뿌리면서 빚을 갚게 될 것입니다.

오래도록 풍백(風伯), 우사(雨師)의 쇠몽둥이를 맞고, 온몸의 비늘에 온갖 독충이 살면서 선혈이 길게 흐르며, 주야로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 쉬지 못할 것입니다.

 


33.

무제가 다시 물었다.

“청렴한 관리는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공정하고 청렴한 관리는 임종 후 성황신(城隍神)이 되든지, 명산(名山)이나 신선이 사는 곳의 신(神)이 됩니다.


위로는 하늘의 칙명을 받고 아래로는 백성의 공양을 받으며, 중에서 음덕(陰德)이 성한 자는 저승을 주재하는 관리가 되든지 혹은 염라대왕이 되기도 합니다.”

 


34.

무제가 또 물었다.

“지방의 아문(衙門) 중에는 모든 것을 지방 관리들이 관장하면서

공평한 도리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의 권세에 의지하여 선량한 백성의 재물을 갈취하는데, 어떠한 과보가 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관리들이 관의 권세를 믿고 재물을 속여 취하며 백성을 해치는 자는

죽은 후 산중의 들짐승이 되어 사람만 보면 놀라 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백성을 위협하고 속였기 때문에, 금생에 놀라게 되고 살해되는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방의 경찰이나 토호들이 사람들의 재물을 사사로이 속여 취하는 자는

, 말, 돼지, 양 등 육축이 되어 과거의 빚을 사람들에게 갚습니다.


빚을 다 갚은 후에 다시 가난한 사람이 되어 남들의 멸시를 받으며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악의 과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으로서,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35.

무제가 물었다.

“황후는 구렁이의 몸으로 떨어졌는데,

나는 그녀가 생전에 무슨 악업을 지었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황후는 궁중에 있으면서 음험하고 악독하였습니다.


『묘법연화경』을 찢어 훼손하였을 뿐 아니라,

대왕이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것을 시기하였습니다.


육궁의 비빈들을 질투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혔으며,

삼보를 경멸하고 모욕하였습니다.


그녀는 거짓으로 스님에게 재를 베풀면서, 안에 고기를 넣어 스님의 청정한 계를 파괴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산승이 마음이 밝아 그녀의 나쁜 계략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여러 스님들에게 스스로 먹을 것을 준비하여 몸에 숨기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더러운 음식은 옷 속에 감추고, 자신이 가져온 깨끗한 음식을 먹게 하였습니다.


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황후는 입을 가리고 크게 웃으며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도리어 마음속으로 즐거운 마음을 내었습니다.


산승은 암자로 돌아오면서 더러운 음식을 밭에 버렸습니다.

, 마늘, 부추 등 오신채를 먹고 예불 송경하면, 호법신장이 보호하지 않으니 이익을 얻지 못합니다.


황후의 갖가지 죄악은 삼계의 선신, 악신들이 모두 보았으며, 지옥의 업경대에 더욱 분명하게 비춰졌습니다.

그녀는 작은 선량함도 없고 악업이 천 가지나 되니 뱀의 몸이 된 것입니다.


만약 대왕이 선을 닦지 않았으면 황후는 영원히 축생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에는 모두 과보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법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불법을 비방하고 허물기 때문에, 스스로 허물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국모(國母)가 존귀한데, 어찌 하필 구렁이 같은 무리에 떨어졌겠습니까?”

 

36.

무제가 또 물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과를 믿지 않고 갖가지 악업을 저지르며,

삼보(三寶)를 공경하지 않고 불교를 믿는 사람을 보면 훼방을 합니다.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선(善)으로 향하면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업(業)의 바다는 망망하나 머리를 돌리면 피안(彼岸)입니다.

죄를 알고 참회하며, 허물을 알고 고칠 줄 알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복을 닦으며 깨끗한 마음으로 수행하면 성불도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37.

무제는 미소를 머금고 말하였다.

“오늘 향을 피우고 스님께 전생과 미래의 선악에 대한 인과응보를 물어서,

일일이 다 알게 되어 마음이 밝아지고 즐거움이 끝이 없습니다.

제가 미처 물어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원컨대 스님께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여러 대중들에게 스님의 가르침을 듣게 함으로써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지공 스님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대왕이 물은 일을 대중들이 믿지 않을까 걱정인데, 하물며 대법(大法)은 어떻겠습니까?


나는 악업을 참회하는 몇 가지 법을 말하여 사람들에게 믿음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대중들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선(善)과 악(惡)의 두 바퀴는 원인에서 결과가 생기는 것이며,

결과 가운데서 또 원인이 생겨서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부귀와 빈천은 모두 선악의 업력(業力)으로부터 생깁니다.

 


경에 이르기를,

‘국왕과 제후 등 권세가 있고 부귀한 사람은 삼보(三寶)를 예경함에서 온다.

큰 부자는 보시에서, 장수(長壽)하는 것은 살생하지 않고 방생함으로써,

용모가 단정함은 인욕에서 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성취가 있음은 정진함으로써 생기며, 총명하고 재능이 있는 것은 지혜에서 생깁니다.

음성이 맑고 투명한 것은 삼보에 노래함으로써 오는 것이며, 병이 없음은 자비한 마음에서 옵니다.

그리고 용모가 아름다운 것은 공경에서 오며, 키가 작은 것은 남을 경멸하였기 때문이며, 못 생긴 것은 화를 내고 질투함으로써 생긴 것입니다.

지식이 없는 것은 배우지 않기 때문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어리석은 것은 과거생에 기술이 있어도 남에게 가르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벙어리는 사람을 욕하였기 때문에, 하천한 것은 트집을 잡고 빚을 갚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모가 추하고 검은 것은 사람에게 광명을 가린 연고이며, 의복을 갖추지 못한 것은 (불전에서) 살을 드러내고 불경하였기 때문입니다.

코끼리 다리와 당나귀 발은 행동이 경만하고, 다른 사람의 다리에 병이 있다고 조소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는 가운데 불안한 마음은 보시한 뒤 후회하며 아깝다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이며, 사슴이 된 것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이 마치 새장에 갇힌 것처럼 부자유스러운 것은 사람을 희롱하였기 때문이며, 몸에 악창이 생기는 것은 중생을 채찍으로 때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보고 기뻐하였기 때문이며, 살아서 궁형(宮刑)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을 우리 속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법 듣는 것을 어지럽게 하면 개의 무리에 빠지며, 무심히 법을 들으면 당나귀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먹을 것을 아까워하면서 혼자 먹으면 아귀세계에 떨어지며, 사람이 되어서는 빈궁하여 배고픔에 허덕이게 됩니다.

상하고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을 사람에게 먹이면 후에 돼지, 개의 무리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속이고 사기치고 기만하여 남의 물건을 빼앗으면, 후에 양의 무리에 떨어져서 껍질이 벗겨지고 고기를 먹히는 과보를 받게 됩니다.

재물을 도둑질하면 후에 소와 말로 태어나 사람의 부림을 받게 되며, 거짓말로 남에게 전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끓는 구리물을 마시고 혀를 빼 밭을 가는 발설지옥에 빠지게 됩니다.

죄를 다 받고 나면 까마귀로 태어나, 사람이 그 소리를 들으면 그가 죽기를 저주합니다.

술 취하는 데 탐닉하면, 후에 끓는 똥물지옥 가운데 떨어집니다.

죄를 마치고 나면 원숭이 가운데 태어나며, 후에 사람이 되어서도 미련스럽고 사리에 어둡습니다.

무지하고 힘을 탐하는 자는 후에 코끼리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부귀한 사람이 도리에 맞지 않게 아랫사람을 채찍으로 때리고 괴로운 일을 시키면, 나중에 물소의 무리에 태어나 코가 뚫려서 밭을 갈고 수레를 끌면서 묵은 빚을 갚게 됩니다.

사람이 깨끗하지 못한 것은 돼지무리에서 온 것이며, 간탐하는 사람은 개의 무리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잔인하고 흉악한 것은 양의 무리에서 온 것이며, 침착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사람은 원숭이의 무리에서 온 것입니다.

몸에서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은 고기와 자라 가운데서 온 것이며, 화를 잘 내고 독한 사람은 뱀의 무리에서 온 것이며, 사나운 사람은 호랑이 무리에서 온 것입니다.



모든 중생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믿음은 도의 근원으로 가는 공덕의 어머니이며, 모든 선근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허물은 모든 죄 중에서 최상입니다. 무간업(無間業)을 짓지 않으려면 마땅히 불법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38.

무제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오늘 스승님의 법문을 들으니 태양이 하늘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달이 호수에 비치는 것처럼 투철하고 분명하니, 깊이 믿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스님의 설법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가르침을 들음이 감로와 같습니다.

신하들에게 천하에 유포하게 하여, 즐거이 듣고 깊이 믿으며 경건히 받들어 행하게 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 천상의 사람이 믿고, 불법의 대해 속으로 들어가 신수봉행하기를 널리 원하옵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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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영혼의 세계 - 윤회의 실증을 위하여

 

성철스님 법어

 

출처 / 월간 해인 1983년 (20호~22호)

 

지난 수천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 논란이 되고 시비를 하면서도 완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로 영혼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 철학자, 종교가는 영혼이 꼭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학자들은 영혼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싸움은 수천년 동안 계속되어 내려 왔습니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는가? 대소승경론(大小乘經論), 대승이나, 소승이나, 경이나, 논이나를 막론하고 팔만대장경에서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생사윤회를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 아니고 생전에 지은 바 업(業)에 따라 몸을 바꾸어 가며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윤회는 우리 불교의 핵심적인 원리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윤회란 것은 확실히 성립되는 것인가? 근래 세계적인 대학자들은 영혼 자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윤회를 설명할 수 있겠읍니다까?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윤회는 부처님께서 교화를 위해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지 실제 윤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여 겁이 나서 사람들이 행동 잘 하게 할려고 교육적인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다 ' 그렇지만은 근래 과학문명 뿐만이 아니라 정신과학도 자꾸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또한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점차로 과학의 힘에 의해 입증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해탈의 길이 열릴 수 있는가? 해탈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그런 의문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판단을 내려야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로서, 신앙생활 하는 데에 불교 포교를 하는 데에 그리고 수행하여 성불하는 데에 본격적인 토대가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 알고, 바로 믿어야만 바른 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세계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 아니고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에 대해 세계적으로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빙성이 높고 객관성을 띄고 있는 연국방법으로 전생기억(前生記憶)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 두서너 살 된 어린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들이 말을 배우게 되면서 전생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생에 어느 곳에 살던 누구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조사를 해 보면 모두 사실과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생기억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 터어키 남부의 “아나다”라는 마을에 “이스마일”이라는 어린애가 있었습니다. 그 집은 정육점을 하는데, 난 후 일년 반쯤 되는 어느날 저녁에 아버지와 침대에 누어 있다가 문득 이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 나는 이제 우리 집에 갈련다. 이 집에는 그만 살련다. "

" 이스마일아!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네집이지 또 네집이 어디 있어. "

"아니야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야! 우리 집은 저 건너 동네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어. 내 이름도 “이스마일”이 아니야. “아비스스루무스”야 아비스스루무스라고 불러. 그렇지 않으면 불러도 대답 안 할테야. "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말했습니다.

-나는 저 건너 동네 과수원집 주인이야 50살 때 죽었어. 처음에 결혼한 여자는 아이를 못 낳아서 이혼하고 새로 장가를 갔어 그리고는 아이 넷을 낳고 잘 살았지. 그러다가 과수원에 일하는 인부들과 싸움이 일어나서 머리를 맞아 죽었어. 마굿간에서 그랬지, 그 때 비명 소리를 듣고 부인하고 애들 둘이 뛰어 나오다가 그들도 맞아 죽었어. 한꺼번에 네 사람이 죽었지. 그 후 내가 당신 집에 와서 태어난거야. 아이들 둘이 지금도 집에 있는데 그 애들이 보고 싶어서 안되겠어.

그리고는 자꾸 전생의 자기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런 소리 못하게 하면 웁니다. 그러다가 또 전생이야기를 합니다. 한번은 크고 좋은 수박을 사왔습니다. 이 어린애가 가더니 제일 큰 조각을 쥐고는 아무도 못 먹게 하는 것입니다.

-내 딸 “구루사리”에게 갖다 줄테야! 그는 수박을 좋아하거든.

그가 말하는 전생에 살던 곳은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그 지방사람이 간혹 이 동네에 오는 이가 있습니다. 한 번은 웬 아이스크림 장수를 보더니 뛰어 나가서 말했읍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알 턱이 있겠습니까.

-나를 몰라? 내가 “아비스스루무스”야. 네가 전에는 우리 과수원의 과일도 갖다 팔고 채소도 갖다 팔았는데 언제부터 아이스크림 장사하지? 내가 또 네 할례(割禮)도 해주지 않더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 사실과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꾸 자꾸 소문이 낫습니다. 결국 그 고장에서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비스스루무스”가 전생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자꾸 아이의 입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우리 아이를 달래려면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입니다. 확인도 해 볼 겸 아이를 과수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함께 가는 사람이 일부러 다른 길로 갈렬고 하면

-아니야 이쪽 기로 가야 해

하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과수원으로 조금도 서슴지 않고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과수원에는 마침 이혼한 전생 마누라가 앉아 있다가 웬 어린애와 그 뒤를 따라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눈이 둥그렇게 되어 쳐다 보았습니다. 어린애는 전생 마누라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 가더니 다리를 안으며 말했습니다.

-너 고생한다.

어린애가 중년의 부인을 보고 “너 고생한다”고 하다니! 부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너의 전생 남편인 “아비스스루무스”인데 저 건너 동네에서 태어나서 지금 이렇게 찾아왔어.

또 아이들을 보더니

-“사귀”, “구루사리” 참보고 싶었다.

하면서 흡사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을 자기가 맞아 죽은 마구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전에는 좋은 갈색 말이 한필 있었는데 그 말이 안보이니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팔았다고 하니 그렇게 아까와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던 여러 인부들을 보지도 않고서 누구누구 하면 한 사람 한사람씩 이름을 대면서 나이는 몇 살이고 어느 동네에 산다고 하는데 모두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생의 과수원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결국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되어 “이스마일”이 여섯 살이 되던 1962년 학자들이 전문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 검토하기 위해 조사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때 일본에서도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그 조사 보고서에서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전생기억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과수원 주인이 생전에 돈을 빌려 준 것이 있었는데 “아비스스루무스”가 죽어 버린 후 그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그 돈 빌려간 사람을 불렀습니다.

-네가 어느날 돈 얼마를 빌려가지 않았느냐. 내가 죽었어도 내 가족에게 갚아야 할 것이 아니냐. 왜 그 돈을 떼어 먹고 여태 갚지 않았어?

돈 빌려 간 날짜도 틀림없고 돈 액수도 틀림없었습니다. 안 갚을 수 있습니까! 이리하여 전생 빚을 받아 내었습니다. 이것은 죽은 “아비스스루무스”와 돈 빌려 쓴 두 사람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틀림없이 환하게 말하는데 이것을 누가 어린애에게 말해 줄 것이며 또 어린애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마일”은 “아비스스루무스”의 재생이라는 데에 확정을 짓고 보고서를 내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이스마일”의 예와 같은 전생기억의 사례는 학계에 보고된 것만 해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 중에 한 두가지만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몇 해전 스리랑카에서의 일입니다. 태어난지 3년 7개월된 쌍둥이가 자꾸 전생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대로 가서 알아보니 사실과 맞았습니다. 그래서 조사단이 이 아이를 전생 살았다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근처의 주민들을 수 백명 모으고 그 가운데에 그 아이의 전생의 부모형제들을 섞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더러 전생의 부모형제를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사이에서

-이 사람은 아버지, 이 사람은 어머니, 이 사람은 누나, 이 사람은 형님,

하면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의 전생기억을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세살되는 어느 아이는 전생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다이빙선수였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지금도 다이빙 할 수 있겠니?

-그럼요, 할 수 있고 말고요. 전에 많이 했는데요.

이리하여 세살되는 어린애를 높은 다이빙대 위에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린애는 다이빙을 하는 것입니다.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조금도 서툴지 않게 서슴없이 다이빙을 하는 것입니다. 전생기억이란 이런 식입니다.

또 흔히보면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生而知之)니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한번도 글을 배운 적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책을 내보여도 모두 읽을 줄 아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하는데 나면서부터 다 아는 것입니다. 이 생이지지가 바로 전생기억입니다. 전생에 배운 것이 없어지지 않고 금생에로 그대로 가지고 넘어온 것입니다. 또 처음 가보는 곳인데도 낮이 설고,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친근감이 가는 경우는 전생의 기억이 희미하게 되살아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전생 기억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매(昧)하여 전생기억이 캄캄하지만 조금 희미한 사람도 있고 분명한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전생기억이 분명하여 증거가 될만한 사람을 전문으로 조사연구하는 학자와 단체가 있는데 그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가 미국 버지니아 대학에 있는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입니다. 그는 세계 도처에 연락기구를 조직하여 전생기억을 가진 아이나 어른이 있어 연락해 주면 학자들은 보내어 갖가지로 조사 확인하여 그것이 확실한가를 알아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는 수년동안에 600여명의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그 중 대표적인 20여명의 사례를 뽑아서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윤회를 암시하는 20가지 사례”(Twenty Suggestive Cases of Reincarnation)라는 책입니다. 전생기억에 대한 보고서로는 가장 확신이 있고 누구나 반대하기 어려운 유명한 책으로 세계 각국에서 많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 수년이 지난 1975년 까지에는 1300여명의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수십명도 상당한 숫자인데 1,300명이라는 자료에 어떻게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또 전생기억 이외에 차시환생(借屍還生)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나는 것이 아니고 내 몸뚱이는 아주 죽어버리고 남의 송장을 의지해서, 바꾸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1916년 2월 26일자 중국 신주일보(神州日報)에 보도된 사실입니다.

중국 산동성에 최 천선(崔天選)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무식한 석공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32살이 되는 해에 그만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장사지낼 준비를 다 마친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곽(槨)속에 무슨 소리가 들리고 사람 척이 났습니다. 부랴부랴 곽을 깨고 풀어보니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 보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우리 아버지가 살았다.

하며 그 부모, 부인, 자식들이 기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식구들을 하나도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더니 정신착란이 되어서 집안 식구들도 못 알아보고 말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수 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에 기운을 차리고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식구들을 못 알아보고 또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본인도 퍽 답답한 것 같았습니다. 마침 주위에 붓과 벼루가 있는 것을 보더니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아주 잘 씁니다. 유식하다 이 말입니다. 본디는 일자무식(一字無識)인데. 그 글 내용을 보니 이 사람은 중국 사람이 아니고 안남(인도지나) 사람이었습니다. 그 곳에서도 글을 한자를 쓰지만 말은 다릅니다.

-나는 안남(안남) 어느 곳에 사는 유건중(유건중)이라는 사람인데 병이 들어서 치료하기 위해 땀을 낸다고 어머니가 두터운 이불을 덮어 씌워 땀을 내다가 그만 꼬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여기 이렇게 와 있다.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자기는 죽어 버리고 안남사람의 혼만 산동으로 온 것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전생입니다. 전생이란 것이 반드시 몸뚱이가 죽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다시 나는 것만이 아니고 죽은 몸뚱이 이대로가 다시 살아나는데 영혼만이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차시환생이라고 합니다. 남의 육체를 빌려서 다시 태어난단 말입니다.

 

그가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후 중국말을 조금씩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달 동안을 가르쳐서 중국말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꾸 전생에 살던 곳으로 갈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꾸 소문이 났습니다. 나중에는 북경대학에서 데리고 가서 여러가지로 정신감정을 해 보고 치료도 하고 하였습니다만 정신은 조금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또 그가 말한 안남에 사람을 보내어 조회를 해 보았습니다.

 

 과연 유건중이란 사람이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 확실하고 또 그가 말한 전생의 일이 모두 다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 최천선이라는 사람이 죽었다 깨어났으나 안남 유건중의 혼이 최천선의 몸을 빌려 환생하였다는 것이 완전히 증명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참 희귀한 일이라고 하여 정부에서 이사람에게 내내 연금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모두 당사자가 전생기억을 갖고 있어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만 또 심리학에서 전생을 조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최면술을 사용하여 그 사람의 전생을 알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연구된 것입니다. “연령역행(年齡逆行)”이라는 것입니다.

 

 최면을 걸어서 최면상태에서 사람의 연령을 자꾸자꾸 후퇴 역행시키는 것입니다. 즉 스무 살 되는 사람을 최면을 걸어서 열 살로 만듭니다. 그러면 열 살 먹은 사람이 되어 그때의 행동이나 말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또 네 살이 되도록 만듭니다. 그러면 네 살때의 노래를 하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한 살로 만들어 놓으면 울기만 합니다. 말도 못하고, 이런 것을 연령역행(Age Regression)이라고 하는 것인데 심리학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의학에서도 이것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이 났는데 아무래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연령역행을 시켜서 그 원인을 조사해봅니다. 그러면 10년이나 20년 전에 그 원인이던 것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간첩이 잡혔을 때에도 이용합니다. 본인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최면술을 사용하여 연령역핵을 시킵니다. 그러면 이전에 간첩교육 받던 것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녹음해 두었다가 다시 물어보면 꼼짝 못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전생문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연령역행을 하여 한 살로 만들어 둡니다. 4,50세 되는 사람도 손발을 바둥거리고 빽빽 울면서 어린애 몸짓만 할 뿐입니다, 이번에는 뭘 묻느냐 하면,

-네가 낳기 일년전, 이년전에는 어디 있었느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소 성명이 완전히 바뀌어져 버립니다. 예를 들어 여기 해인사 골짜기에 사는 사람을 연령역행을 시켜서 한 살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는 낳기 3년전을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소 성명이 바뀌어져서 전라도 어는 곳의 누구라든지, 일본 어는 곳 사람이라든지,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모두 전생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조사해서 사실과 맞춰보면 모두 맞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면상태에서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가서 전생을 알아보는 것을 정신과학에서 전생회귀(前生回歸)라고 합니다. 전생으로 돌아간다 이 말입니다. 전생으로 돌아가서 한 생 뿐만 아니고, 이생, 삼생… 여러 수십생까지 올라가는 방법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상 상태를 세 가지 계단으로 나눕니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의식상태입니다. 의식상태 안에 잠재의식이 있고 잠재의식 속에 무의식 상태가 있습니다. 이것은 의식이 완전히 끊어진 그런 상태입니다.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잠재의식은 어지간히 연구하여 발표하였지만 무의식에 대해서는 별로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 무의식 상태에 대해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영국의 케논(Sir Alexander Cannon) 박사입니다. 그는 원래 정신과 의사인데 명예박사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자들이 모여서 조직된 학술원(Academy)의 지도교수입니다. 그는 또한 영국 국가에서 주는 가장 최고의 명예인 나이트(Knight) 작위까지 받은 그런 대학자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 미국 등 5개국 학술원의 지도교수 이기도 합니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전생 조사에 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영혼도 있을 수 없고 윤회도 없다고 철두철미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최면술을 이용한 무의식 상태에서 전생회귀를 시켜보니 자꾸 전생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연령역행하여 열살, 한살 출생이전으로 역행시키면 전생, 삼생, 십생… 저 로마시대까지로 역행되어 전생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른 사실의 기록과 조사해 보면 모두 맞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1,382명에, 대한 전생자료를 수집하여 “인간의 잠재력”(The Power Within)이라는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1952년) 케논 보고서에 의하면 병이 들어서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는데 전생회귀를 통해서 조사해 보면 그런 병들이 전생에서 넘어온 것으로, 그 전생의 발병 원인에 의거해서 치료하니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전생요법으로 거기에 보면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만 보면 겁을 냅니다. 바다를 구경한 적도 없고 큰 강 옆에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물만 보면 겁을 내는데 아무리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생회귀를 시켜보니 그는 전생에 지중해를 내왕하는 큰 상선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상선의 상인들에게 잘못한 죄를 지어서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닷물 속으로 던져져서 빠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그러니 금생에 물만 보면 겁을 내는 것입니다. 이 원인에 의거해서 치유를 하니 병이 나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높은 계단을 무서워서 오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전생을 보니 그는 전생에 중국의 장군인데 높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곳만 보면 겁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케논 보고의 사례에 의거해서 학자들이 요법을 개발하여 요즈음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1977년 10월 3얼자 타임(Time)지에 보면 이에 판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잡지에서 자신 있게 보도할 때에는 부인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처럼 전생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병 치료에 있어서도 전생요법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는데도 전생과 윤회에 대해 의심을 갖는다면 불교 안 믿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전생이 있고 윤회를 한다고 할 때 어떤 법칙에서 윤회를 하는가? 내가 마음대로 김씨가 되고 남자가 되고 할 수 있는가? 케논 보고에 의거해서 살펴봐도 그것은 순전히 불교에서 얘기하는 인과법칙에 의한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인과법칙이란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聽因聽果)입니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착한 원인에는 좋은 결과가 생기고 나쁜 원인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긴다, 이 말입니다. 이제 전생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전생에 착한 사람이었는지 악한 사람이었는지를 알아서 그 사람의 금생의 생활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비교해 봅니다.

전생에 악한 사람이면 반드시 금생에 불행한 사람이고 전생에 착한 사람이면 반드시 금생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欲知前生事)
금생에 받는 그것이다. (今生受者是)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欲知來生事)
금생에 하는 그것이다. (今生作者是)


전생에 내가 착한 사람이었나 악한 사람이었나를 알고 싶으면 금생에 내가 받는 것, 지금 행복한 사람이냐 불행한 사람이냐를 살펴볼 것입니다. 내생에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불행하게 살 것인가를 알고 싶으면 지금 자신의 하는 일을 보면 알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의 정신과학에서는 인과(因果)를 인도 말인 카르마(Karma:業)라고 하여 이제는 세계적인 학술 용어가 되어 있습니다.인과문제에 대해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Edgar Cayce)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전기도 많이 나와 있는데 그를 “기적인”이라고 부르는데 기적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기적을 행사하느냐 하면 남의 병을 진찰하는데 주소 성명만 가르쳐 주면 수 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병을 모두 진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서 처방을 내고 병을 치료하는데 다 낫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무려 30,000명 이상이나 치료를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 앉아서 영국 런던에 있는 귀족들을 진찰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의 로마에 있는 사람들도 진찰하는 것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친구가 영국 런던에 갔는데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케이시에게 물어 봅니다. 그의 답을 듣고서 바로 뉴욕에서 런던에 전화를 해 봅니다. 그의 말이 그대로 맞습니다.

케이시가 병을 진찰해 보면 그 원인이 전생에서 넘어오는 것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교도였습니다. 예수교에는 전생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의 종교와 반대되는 것이라고 하여 병 치료 하는 것을 그만 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학자들이 종교와 학문과는 다르다고 그를 설득하여 학문으로서 끝까지 조사해 보자고 의논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병 치료하는 것은 그만 두고 전생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500명의 전생을 조사하였습니다.

 

 그의 사후 버지니아 배치(Virginia each)에는 그의 원거리 진찰과, 전생투시(前生透規)에 대한 수 많은 기록을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으며 많은 책들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초능력의 비밀”과 “전생의 비밀” 이 두 권은 공산 국가를 제외한 거위 모든 국가에서 번역되었습니다.

에드가 케이시의 전쟁투시에 의해 전생과 금생과의 인과를 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낳고 사는 부부간인데도 그 사이가 무척 나쁩니다. 그 전생을 알아보니 서로가 원한이 맺힌 사이입니다. 내외간에 잘 지내는 사람을 알아보니 전생에 아버지와 딸 관계입니다. 혹은 어머니와 아들 관계입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 하겠지만 우리들이 몰라서 그렇지 본래 인과란 그렇게 맺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업장은 두텁고 눈은 어둡고 이해가 가지 않으니 곤란한 것입니다.

 

숙명통(宿命通; 전생의 일을 환히 아는 능력)을 하여 전생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서 이런 때에 현대의 과학자들이 연구한 전생과 윤회 및 인과에 대한 좋은 자료를 소개하면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고 믿는데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 이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키가 작은 난장이입니다. 그 사람의 전생을 알아보니 부처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아만이 많아서 남을 무시하고 깔보면 내생에는 키 작은 과보를 받는다”는. 그래서 언제나 남을 올려다 봐야 하고 남이 내려다 보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부처님이 말씀하신 윤회를 한다, 인과가 있다는 것이 현대의 과학적 자료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 우주의 진리를 다 깨달은 부처님께서 윤회를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믿으면 그만이지 “케논”이라든지 “케이시”라든지 하는 과학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이미 2,500여년 전에 이미 모두 말씀했는데 현대과학이 여기에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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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자 몸에 마지막까지 남은 온기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다음생


착한 일을 많이 한 이는 아랫몸이 먼저 식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이는 윗몸이 먼저 식는다.


임종자의 체온이 식은 후  따뜻한 온기가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


얼굴인 사람은 하늘나라에 나고
심장(가슴)이면 사람으로 태어나고
배면 굶주린 아귀로
무릎이면 짐승으로 나고
발이 마지막으로 식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나 극락왕생하여 윤회를 벗어날 사람은 온몸의 체온이 식은 후에도 

다만 머리 위, 정수리에 따뜻한 기운이 마지막으로 남는다.

 

 

-티벳 사자의 서와 극락왕생사례 참고-

 

http://cafe.daum.net/amtb/5d9g/174

 

http://cafe339.daum.net/_c21_/bbs_list?grpid=2LVx&fldid=ZEF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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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직접쓰신 유명한 책인 '자기를 바로 봅시다'에 소개된 전생요법과 관련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만 보면 겁을 냅니다.
바다를 구경한 적도 없고 큰 강 옆에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물만 보면 겁을 내는데 아무리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생회귀를 시켜 보니,
그는 전생에 지중해를 내왕하는 큰 상선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상선의 상인들에게 죄를 지어서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닷물 속으로 던져져서 빠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러니 금생에 물만 보면 겁을 내는 것입니다.


이 원인에 의거해서 치료를 하니 병이 나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높은 계단이 무서워 오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전생을 보니,
그는 전생에 중국의 장군인데 높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곳만 보면 겁을 내는 것입니다.

이런 캐논 보고의 사례에 의거해서 학자들이 전생요법을 개발하여 요즈음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1977년 10월 3일자 ‘타임’지에 보면 이에 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잡지에서 자신 있게 보도할 때에는 부인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처럼 전생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병 치료에 있어서도 전생요법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는데도
전생과 윤회에 대한 의심을 갖는다면 불교를 안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전생이 있고, 윤회를 한다고 할 때 어떤 법칙에서 윤회를 하는가?
내가 마음대로 원하기만 하면 김씨가 되고, 남자가 되고 할 수 있는가?

캐논 보고에 의거해서 살펴보면
그것은 순전히 불교에서 얘기하는 인과법칙(因果法則)에 의한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인과법칙이란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 (惡因惡果)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착한 원인에는 좋은 결과가 생기고,
나쁜 원인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이제 전생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전생에 착한 사람이었는지 악한 사람이었는지를 알아서
그 사람의 금생(今生)의 생활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비교해보면
전생에 악한 사람이면 반드시 금생에 불행한 사람이고,
전생에 착한 사람이면 반드시 금생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에서 말씀하셨습니다.

[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금생에 받는 그것이다.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금생에 하는 그것이다. ]

전생에 내가 착한 사람이었나 악한 사람이었나를 알고 싶으면
금생에 내가 받는 것, 지금 행복한 사람이냐 불행한 사람이냐를 살펴보면 됩니다.


내생에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불행하게 살 것인가를 알고 싶으면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대 정신과학에서는 인과(因果)를 인도 말인 카르마(Karma,業)라고 하여
이제는 세계적인 학술용어가 되었습니다.

인과 문제에 대해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전기도 많이 나와 있으며 기적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를 ‘기적인’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기적을 행사하느냐?
남의 병을 진찰하는데,
주소 성명만 가르쳐 주면 수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병을 모두 진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서 처방을 내고 병을 치료하는데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무려 3만 명 이상이나 치료를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 앉아서 영국 런던에 있는 귀족들을 진찰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의 로마에 있는 사람들도 진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친구가 영국 런던에 갔는데,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케이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서 바로 뉴욕에 전화를 해보면 그의 말이 그대로 맞습니다.
케이시는 병을 진찰하면서 그 원인이 전생에서 넘어오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교도였습니다.
예수교에는 전생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의 종교와 반대되는 것이라고 하여 병 치료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학자들이, 종교와 학문은 다르다고 그를 설득하여,
이것을 학문적으로 끝까지 조사해 보자고 의논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병 치료하는 것은 그만두고 전생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500명의 전생을 조사하였습니다.
그의 사후에도 버지니아 비치에서는,
많은 학자들이 그의 원거리 진찰과 전생투시에 대한 수많은 기록을 연구하고 있으며
많은 책들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초능력과 비밀』과 『윤회의 비밀』,
이 두 권은 공산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번역되었습니다.

에드가 케이시의 전쟁투시에 의한 전생과 금생의 인과를 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낳고 사는 부부간인데도 그 사이가 무척 나쁩니다.
그 전쟁을 알아보니 서로 원한이 맺힌 사이입니다.

내외 간에 잘 지내는 사람을 알아보니
전생에 부녀 관계이거나 혹은 모자 관계입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 하겠지만 우리들이 몰라서 그렇지 본래 인과(因果)란 그렇게 맺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업장은 두텁고, 눈은 어두워 이해가 가지 않으니 곤란한 것입니다.
숙명통을 하여 전생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서 이런 때에 현대의 과학자들이 연구한 전생과 윤회 및 인과에 대한 좋은 자료를 소개하면
부처님 말씀을 믿고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키가 작은 난쟁이입니다.
그 사람의 전생을 알아보니 부처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야망이 많아서 남을 무시하고 깔보면 내생에는 키가 작게 되는 과보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을 올려다봐야 하고 남에게 내려다보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왔듯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 윤회를 한다 - 인과가 있다]는 것은

현대의 과학적 자료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본 스님이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 우주의 진리를 다 깨달은, 부처님께서 윤회를 말씀하셨으니
이것을 믿으면 그만입니다.

캐논이라든가 케이시라고 하는 과학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3천여 년 전에 모두 말씀하셨는데
현대과학이 이에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부처님 말씀 중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내 이해가 부족한 줄을 알아야지
무조건 배척하거나 반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며 알고 또 바르게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성철스님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 중에서

옮긴글입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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