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 동림사(東林寺)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화엄(華嚴)스님이 계십니다. 이 화엄스님은 동산(東山)큰스님의 제자로서, 특별한 출가인연을 가지고 계십니다.
1925년생인 화엄스님은 일본 경도(京都)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남양군도로 끌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미군들과 전투를 치르던 어느 날, 갑자기 공중에서 포탄이 떨어져 수십 개의 파편이 다리 속으로 박히는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고, 파편 제거수술을 완벽하게 받아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이상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항상 저리고 아파서 올바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절뚝절뚝 걷게 되었습니다. 이 부상때문에 제대를 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영영 불구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또 엎친 데 덮친다고, 때마침 그와 사귀던 여인마저 기숙사에 불이 나서 타죽고 말았습니다.
몸도 좋지 않은데다 마음의 상처까지 받은 그는 수양을 하기 위해서 부산 범어사 대성암(大聖庵)으로 들어갔고, 그곳 스님들은 그에게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외울 것을 권하였습니다.
처음 심심풀이 삼아 보문품을 읽던 그는 차츰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고, 나중에는 틈만 나면 목청을 가다듬어 '관세음보살'을 염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을 대성암에서 지낸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범어사 뒤의 금정산을 오르고 있는데, 산위로부터 갓을 삐딱하게 쓴 영감님 한 분이 내려오더니 대뜸 욕부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잇, 지질이도 쓸모없는 놈! 의사란 놈이 다리를 절뚝절뚝 절고 다녀? 침을 한 대 맞아야 되겠구먼."
영감님은 품속에서 넓적하게 생긴 대패침 하나를 꺼내서 콧김을 쐰 다음 상투에 쓱쓱 문질렀습니다.
"이리 와."
그리고 강압적으로 팔을 잡아당기더니 대패침으로 파편이 박혔던 허벅지를 꽉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아야!"
그는 고함을 지르면서 깨어났고, 깨고 보니 꿈인데 허벅지에서 고름이 한 사발이나 쏟아져 나와 있었습니다. 고름을 닦아낸 그는 방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고, 묘하게도 그토록 아프고 저렸던 다리가 멀쩡하게 나아있었습니다.
"내 다리가 낫다니! 의학을 전공한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 일이다. 인간의 의술이란 대의왕(大醫王)이신 불보살의 능력에 비한다면 태양 앞의 반딧불과 같은 것! 반딧불 같은 기술을 지닌 의사가 되어 무엇하랴. 정녕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됨이 옳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는 동산스님의 제자가 되어 법명을 '화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처음 사미계를 받을 때 내가 인계승(引繼僧) 노릇을 한 인연으로 그와는 꾸준히 친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교에는 대의왕이신 불보살님들이 가득합니다. 그 분들은 어떠한 병이라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감응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열쇠를 쥐고 있는가? 바로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부디 마음을 모아 기도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불보살의 밝은 자비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기도 (일타큰스님의 기도성취 영험담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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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불광(佛光)
1997년 6월호
선지식 탐방/경남 김해 동림사 조실 화엄(華嚴)스님
"아무데도 내가 없음을 알 때 세상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옵니다."
정리·사기순
화엄 스님은 1923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였으며 1945년 일본 대판의전을 졸업하였다. 1948 년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동산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화엄사 등 전국의 제방선원에서 20년 안거를 성만하였다. 범어사 주지·성원장, 김해 영구암 주지를 역 임하였으며, 12년 전 김해 동림사를 복원, 현재 동림사 조실로서 찾아오는 참선납자들을 제 접하는 한편 중생교화에 원력을 바치고 있다. 또한 스님은 그림과 서예에 달통, 여러 번의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무심(無心)으로, 일필휘지로 구사하는 달마도는 선화(禪畵)의 독보 적 경지를 구가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해 신어산(神魚山), 신령스러운 잉어가 살았다는 그 푸른 산빛 속에는 가야불교의 향기가 베일에 가린 채 스며있었다. 산빛 돌빛, 한 조각 바위의 문양만 보고도 그 역사를 읽어낼 수 있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말없는 설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언제나 그날 이 오려는가, 그저 큰스님 말씀에 집중하여 녹음기를 풀고 또 풀어낼 뿐, 큰스님들의 수행의 노래를, 그 참다운 삶의 실상을 제대로 전할 수 없어 늘 부끄럽고 죄송하다.
선(禪)을 해야 비로소 부처님의 본뜻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만,
"선이라, 선이 뭐 따로 있나요, 선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지극한 정성이 선입니다. 지성으로 하면,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면 선 아닌 게 없습니다.
선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 멸진정(滅盡定)에 이르는 외도선이 있지요. 개구리, 뱀 따위가 가을이 되면 동면상태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봄이 되어야 깨어나는데 잠들고 있는 그 동안은 일 초 일 분도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잠들고 있을 때는 밥 먹을 걱정도 없 고, 망상도 없고, 일체 생각이 없지요.
외도선은 개구리와 뱀이 동면상태에 든 것처럼 멸진정에 들어가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 데 인도에는 지금도 외도선 수행자가 많이 있습니다. 멸진정은 선을 해보면 반드시 겪게 되 기 마련인데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 경계를 넘어 꿈 가운데서도 명명백백하게 나 를 알고,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놓치지 않고 제 본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 의 본성은 물론이고 이 우주의 이치를 깨치는 방법이라야 비로소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깨쳤다고 해서 당장에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깨쳐도 망상은 없어지지 않아요. 세 세생생 익힌 습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는 없지요. 다만 깨치고 나면 망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자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수행을 하다보면 우주가 콧구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던가, 자기는 물론이고 남의 전생, 금생일을 다 꿰뚫어 보기도 하고, 자기 몸이 방광(放光)하여 밤중에도 세상이 다 보이 는가 하면, 산문 밖에 사람이 오는 것도 알고,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신통력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다 외도라, 거기에 빠지면 공부는 더 이상 진전이 없습니다.
그런 외도에 빠지지 않고 본래면목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며 용맹 정진해야 하는데, 무엇 보다 오계를 잘 지키고, 선방에 앉아서 망념이라도 부지런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만히 앉 아 있으면 생각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파도가 치니 물결이 이는 것과 같이 본 래 조용한 마음에 파도가 안 치니 십오야 달이 밝게 비치는 것입니다. 일체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아 공부가 잘 되면 동(動)이 곧 정(靜)이 되고 정(靜)이 곧 동(動)이 됩니다.
물론 선방에서 가부좌 틀고 앉아 있는다고 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행에 길을 들이기 위해서 선방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길을 들이다 보면 칠흑같이 어 두워진 마음이 환해져서 '나다 너다' 하는 일체의 분별이 없어지고 그야말로 대자유인의 경 지에서 노닐 수 있게 됩니다."
하안거 입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공부하는 수좌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좀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선방에서 앉아 있는 것은 그저 부처님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합 니다. 선이라는 것은 지극한 신심으로 이 마음을 비우고 시방 제국토에 이 마음을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쳤을 때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이치를 알게 되고, 본래 간직한 평등 한 성품이 드러나게 되는, 한마디로 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 젊은 납자들이 선방에 가기 전에 찾아와서 묻곤 하는데, '중 바로 되었을 때 불교가 뭔지 모를 때 닦아야 한다. 초발심의 그 순수한 마음에 장판때가 오르고, 부처때가 오르고, 절때가 오르고 신도때가 오르고 잘 먹고 잘 사는 때가 오르면 금생에 공부 못 한다. 만일 이러저러한 때가 오르기 전에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면 일찍이 하산하라. 아니면 인연처소에 가서 천일이고 백일이고 지성껏 기도를 하여 마음을 텅 비우라'라고 말해줍니다."
참선 수행과 아울러 기도를 강조하시는 데에는 특별한 뜻이 있으실 듯합니다.
"참선과 기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고 지극한 정성으로 하면 되 는 것입니다. 참선이다 기도다 이름만 달랐을 뿐이지 실은 하나입니다. 참선하고 기도해서 잠자는 것도 잃어버리고 밥먹는 것도 잃어버리고, 여태까지 쌓은 지식이니 지혜니 하는 것 도 전부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참선하는 것, 기도하는 것도 다 잃어버리는 그 자리, 지성껏 그 자리에 들어가야 비로소 참선이니 기도니 하는 이름을 불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래의 자기 마음자리에 들어가면 그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고 늙은이도 젊은이 도 아니고 부처도 중생도 아닌, 나다 남이다 일체 구별이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본지풍광의 마음자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근원적으로는 참선과 기도가 둘이 아닌데 밖으로 드러난 모양이 다를 뿐인데… 참 선한다고 수십년 선방에 다닌 사람이 참선과 기도를 병행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조 하느냐 그것이 궁금한 게지요?
선방에서 수행을 한 30년 했으나 깨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요. 또 선방에서 만난 수많은 스님들 가운데 진짜 참선의 맛을 본 납자가 몇 되지 않아요. 선이 그렇게 어려운 것 입니다. 실로 참선은 대기대승(大機大勝)의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확철대오하기가 힘든게 사 실입니다.
수십년 장판때를 묻히고 앉았는 데도 왜 이렇게 안 되는가 고민 중이었는데 언젠가 고승 전을 보게 되었지요. 고승전에 의하면, 100명의 성불한 스님네들 중에 99명이 염불을 해서 깨쳤다는 것입니다. 참선이 깨달음의 지름길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다 생겁에 익힌 버릇 때문에 참선이 그토록 힘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생부터의 습(習)인 시기, 질투, 미움 등 갖은 악업을 지닌 채 참선을 하다보면 힘이 모자라고 마장이 생기는데 먼저 그 업장을 기도로 녹여야 합니다. 병아리가 아무리 안 에서 몸부림쳐도 나올 수 없다가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주었을 때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 는 것처럼 기도를 해서 자기 업을 뚫고 나와야 한단 말입니다. 그야말로 줄탁동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선과 기도를 병행해야 업을 삭이고 견성을 하기 쉽습니다."
수행하시면서 인상에 남는 일화가 많으실 듯 합니다.
"거짓말 같은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게 다 사도(邪道)요, 쓸데없는 망상이라, 구태여 한 가지 얘기하라면, 선방에 다닐 때였는데 해제철이 되면 걸망 지고 돛대 없는 배처럼 바람 부는 대로 만행을 다녔지요.
그렇게 다니다보면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기 마련인데, 절은 너무 멀고 마을의 여염집 에선 음식이다 뭐다 차려놓고 법문해달라고 성화라 아직 공부가 덜 되었는데 누구를 제도하 겠는가 싶어서 아예 마을 어귀의 상여집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루는 상여집에서 가부좌 틀고 앉아 끄떡끄떡 졸고 있었는데 몽 중에 여자귀신이 나타나 '스님이 왔는데 대접할 게 없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나서 퍼뜩 정신이 들었지요. 귀신이 날 보고 있다는 것은 공부가 덜 된 것이라 생각하니 '아차' 싶어 화두를 챙겼지요.
내가 항상 들고 있는 화두가 '견문각지시심마(見聞覺知是甚?)라, 보고 듣고 깨치고 아는 놈, 이 놈이 뭐꼬'인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앉아 있다가 다시 졸음이 와 앉은 채로 잠들었 는데 몽중에도 화두가 생생히 살아 있었지요. 그렇게 앉아 있자니 귀신이 '스님이 어디갔지' 하며 밤새도록 찾아 다니더군요. 그밖에도 특이한 경험은 많이 했으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런 현상에 집착하면 이미 불도(佛道)와는 삼만팔천리 멀어지게 되는것입니다."
일타 스님이 쓰신 책에서 스님의 출가 이야기를 읽었는데 매우 신비로웠습니다.
"1944년 일본의 대판의전에 다닐 때 학도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끌려 갔다가 다리에 중상 을 입었습니다. 해방 후 다리가 아파서 요양차 범어사에 갔었는데 그 길로 출가를 하게 되 었지요.
처음엔 스님이 뭔지도 몰랐어요. 다만 다리가 너무 아파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수 주를 외우면 다리가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범어사 미륵암에서 그저 일구월심 천수 주를 외웠습니다. 그런데 한 6개월 천수주를 외우니 지리천문 알게되고, 7개월째, 8개월째 에는 수천리 밖이 보이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이었는데, 법당의 신중탱화에서 신장이 튀어나오더니 환부를 도려내는 것입니다. 꿈속에서도 아파서 아이구 소리를 내며 눈을 뜨고 보니 법당 바닥에 파 편이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그 전까지 신비한 경계를 대할 때 하고는 또다른 무엇이 가슴을 확 내리치더군요. 아하, 이게 마음의 힘이로구나, 마음을 깨치면 이 몸을 조복받는 것은 물론이요,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부처가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스님, 터만 남아있는 동림사를 복원, 큰법당에도 지장보살을 모셨고,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펼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나는 그냥 앉아만 있었지 복원은 우리 절 조보살이 화주해서 신도들 전체가 한 것입니 다. 지장보살을 특별히 모신 뜻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 속에서 지수화풍 사대의 혜택을 입으며 살고 있지요. 지장보살은 땅과 같이 중생을 키 우고 중생을 살리는 원력보살입니다. 아무리 악한 중생일지라도 지장보살의 마음땅에 떨어 지면 어질어지고 착해집니다.
지옥중생이 다 성불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은 삼 세 부처님의 모체요, 삼세제불의 근본입니다. 48상의 가없는 몸을 나투시어 산 중생뿐만 아 리나 죽은 중생까지 두루 건지시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널리 펼치면서 남은 생을 회향할까 합니다.
요즘 조상공경, 부모공경할 줄 모르는데 참으로 큰일입니다. 조상과 부모는 나무뿌리에 비 유할 수 있습니다. 나무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실하고 열매가 실한 것처럼 조상과 부모를 잘 공경해야 후손이 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조상공경, 부모공경하는 사회가 되어야지 지 금처럼 조상은 물론이고 부모도 몰라보는 사회는 말세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 우선 당장 말초적으로 제 편한 것만 즐기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진실하고 참된 삶을 보여 주는 게 우리 불자의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 찾아오는 신도 님들에게 산 지장보살이 되기를, 모든 것을 공경하고 살리는 일을 해야 은혜로운 삶이 열림 을 강조하고 있지요."
스님, 다가오는 미래세계에 대해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예측하면서 불교를 중심으로 정신 혁명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구두선이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불자들이 시대를 이끌어가며 희망차게 살 수 있도록 한 말씀 더 부탁 드립니다.
"현재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는데, 지금처럼 사람들이 물질에만 급급하고 자기 자신의 겉껍데기만을 위해 아웅다웅 산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절망적일 것입니다. 그나마 눈 밝은 이들이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단히 다행한 일이지요. 불교사상의 근본이 뭡니까? 자기를 텅 비우고 자기의 진면목인 불성을 찾아 성불하자, 부처 되자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교학 갖고는 안됩니다. 스스로 수행해야 합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수행하면 나라고 하는 아상(我相)이 무너져 내립니다. 사실 이 세상의 온갖 문제가 이 아상 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한 아상이 스러지면 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이 나오듯 우주 법계가 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수행을 하면 '내가 없구나, 내가 없 구나 아무 데도 내가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없는데, 또 남이 없는데 무슨 욕심을 부릴 것이며 누구에게 성을 내고 화를 내겠습니까.
우리 불자들만이라도 이 세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자실 자기가 자기를 잡아먹고 사는 줄을 몰라요. 열심히 정진해서 '나다, 남이다' 하는 잘못된 견해를 두드려잡아야 합니다. 모 든 중생을 부처님처럼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철저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선(禪)임 을 뚜렷이 알고 언제 어느 때나 그 마음 놓치지 않으면 공부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한 사 람들이 많아질 때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불국토가 될것입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종원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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