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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된 왕중주 

         (일타스님)              

      

  6.25사변 직후의 일입니다. 금강산에 계시던 이혜명스님이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나를 비롯한 여러 스님께 한 편의 실화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혜명 스님은 경전에도 밝을 뿐 아니라 재를 지내는 등의 각종 의식 집전은 물론 범패도 아주 잘 하셨습니다. 그래서 '팔방미인 큰스님'으로 불리어지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한때 중국의 불교성지를 두루 참배하고 명승지를 구경하였는데, 한 번은 중국 상해의 큰 공원을 들렀더니 공원 한 쪽 편의 까만 소한 마리를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스님도 이상한 호기심이 생겨 소 앞에 세워 놓은 게시판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그 간판에 적힌 글은 더욱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남녀노소 여러분들이여, 이 소의 배를 보십시요..."  이렇게 시작하여 장광설을 늘어놓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상해 근처에 큰 부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이유 때문에 죽마고우인 왕중주에게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 주도록 부탁하고 상당한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중주에게 등기서류뿐만 아니라 인감도장까지를 모두 맡겼습니다.

그러나 왕중주는 친구의 은혜로운 부탁을 등지고 합법적으로 모든 재산을 가로챘습니다. 하늘처럼 믿었던 친구가 자기 재산을 교묘하게 사취한 것을 알게 된 부자는 분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재산을 다 빼앗기고 거지가 되다시피한 그는 조금 남은 패물을 팔아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게 됐습니다. 그리고 논과 밭을 갈 암소를 한 마리 사서 길렀습니다. 몇 해가 지나자 암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 배에 글씨가 몇 자 새겨진 흔적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자기를 배신했던 철천지원수 왕중주의 이름 석 자였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알아본 결과, 왕중주가 얼마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한으로 가득 차 있던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 원수가 죄값을 치루려고 내 집에 태어난 것이구나... 이 놈! 잘 만났다. 사람이 죽을려면 3년 전분터 환장한다는 말은 있다만, 너처럼 환장한 놈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 네가 죽어 이제 빚을 갚으로 온 모양이다만, 송아지로 내 집에 태어난 것만으로 나의 분하고 원통한 빚을 다 갚는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이제부터 네 놈에게 원수를 갚을 터이니 견뎌 보아라."

 이렇게 다짐을 한 그는 아주 모지고 기이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왕중주의 후신인 송아지를 가두어 놓고 끼니 때마다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밤중이 되면 촛불을 밝혀 놓고 시퍼렇게 간 칼을 들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여 있는 송아지 목에 큰 칼을 들이대고는 살기 띤 음성으로 속삭였습니다.


 "네 이 놈! 왕중주, 이 나쁜 놈!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더냐? 네 놈이 이리와 같은 놈이었으니 그런 짓을 했겠지. 이 나쁜 놈! 내 너를 지금 당장은 죽이지 않는다. 조금 더 키워서 잡되 그것도 단번에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네 놈앞에 숯불을 피워 놓고 시퍼렇게 칼을 갈아 하루에 살 한 점씩만 베어낸 다음,네 놈이 보는 앞에서 구워 술안주로 삼을 것이다. 네 이 놈! 단단히 들어 두어라!"


 그는 이 일을 매일같이 계속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중주의 이름이 새겨진 송아지는 뻐쩍 마르기만 할 뿐 자라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왕중주의 아들이 느닷없이 찾아와서 마당 한 가운데에 넙적 엎드려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네, 제발 널리 용서해 주시옵고 우리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 재산을 돌려드림은 물론 모든 것을 영감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부디 아버지만 살려 주십시오."

 아들은 수없이 절을 하면서 간청했습니다.


 "나는 지금 꼭 돈만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너의 아버지 소행이 너무나 괘씸하고 분함을 참을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너는 어찌된 일이냐? 어떻게 이 사연을 알게 되었느냐?"

 "저희 선친이 어르신네의 은공을 저버리고 사취한 것을 저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사오나 자세히는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러 달 전부터 어머니와 저의 꿈에 선친께서 자주 나타나서 그 동안 지은 죄를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르신네 집의 소로 태어나 죄 값을 갚으려 하지만, 그 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소의 몸을 버리고 나더라도 다시 무서운 지옥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의 괴로움도 괴로움이거니와 재산을 어서 돌려드려야만 당신의 죄를 벗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살아생전에 자세한 내용을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당신이 떳떳하지 못한 행동 가족들이 아는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었고, 그 내용을 알면 저희들이 떳떳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르신네께서 계신 이 곳을 꿈속에서 일러주셨습니다.


 이제 저희가 모든 재산 문서를 이렇게 가지고 와서 사죄를 드리오니, 널리 용서하시옵소서. 부디 이것을 거두어 주시고 저희 아버지를 돌려 주시기만 하면, 그 은혜 백 번 죽어도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는 지극정성으로 간청하는 아들의 효심에 감동하여 재산을 되돌려받고 송아지를 내어 주었습니다.


 왕중주의 아들은 아버지 후신인 송아지를 데리고 가서 음식도 잘 대접하고 각별히 보살폈습니다. 그 소가 자란 다음에는 공원에다 좋은 우리를 지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정성껏 여물을 쑤어 대접하면서, 오고가는 만 천하 사람들이 이 소를 보고 경각심을 일으켜서 인과를 믿고 선행을 닦으라는 뜻으로 사연을 쓴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윤회를 깨우친 진재열의 죽음

 (일타스님)    

 1952년 3월 2일,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옥천사에서는 윤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절에서 나무를 하던 부목 진재열이 몇 사람의 일꾼들과 함께 산에 나무를 베러 갔다가, 굴러내리는 통나무에 치어 질식사를 하였습니다.


 시체는 즉시 옥천사로 옮겨졌으나, 진재열의 영혼은 옛 고향 집으로 갔습니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의 혼은 집에 오자마자 길쌈을 하고 있는 누나의 등을 짚으며 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어머니와 함께 길쌈을 짓던 누나가 갑자기 펄펄 뛰면서 머리가 아파 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누나가 아프다고 하자 면목이 없어진 그는 한 쪽에 우두커니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리밥과 풋나물을 된장국에 풀어 바가지에 담아 와서 시퍼런 칼을 들고 이리저리 내두르며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네 이놈 객귀야, 어서 먹고 물러가라."

 기겁을 한 재열은 '그래도 절 인심이 좋구나' 생각하며 옥천사로 올라왔습니다.

 얼마를 오다 보니 아리따운 기생들이 녹색 옷에 홍색 띠를 두르고 장구를 치며 노는 모습이 가히 볼 만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한 젊은 여자가 다가와서 같이 놀자며 옷자락을 잡아 끌었습니다. 그 때 재열은 "환락에 빠진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절문 앞에 이르렀을 때 평소와는 달리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맨 수십명의 무인들이 활을 쏘아 잡은 노루를 구워 먹으면서 함께 먹을 것을 권하였습니다. 재열은 이를 간신히 뿌리치고 옥천사의 자기 방으로 돌아왔고, 그와 동시에 죽었던 재열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집에서 보았던 누나와 어머니는 물론 여러 조객들이 자기를 앞에 놓고 슬피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던 재열은 울다 말고 기절초풍을 하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여기 와서 울고 계십니까?"

"네 놈이 어제 오후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죽었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초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은 진정 일장춘몽이었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재열은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집에서 누나가 아픈 일이있었습니까?"


살아나다

"그럼, 멀쩡하던 년이 갑자기 죽는다고 하여 밥을 바가지에 풀어서 벼렸더니 다시 구나."


 재열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생들이 놀던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비단 개구리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지 않겠습니까? 또 절 문 앞의 무인들이 활 쏘던 곳으로 가 보니 벌들이 집을 짓느라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무릎을 쳤습니다.

"윤회생사가 바로 이러한 것이로구나.내가 만일 그 기생 틈에 끼었으면 나는 분명 비단 개구리가 되었을 것이고, 무인의 틈에 끼었으면 벌 새끼가 되고 말았을 게 아닌가?"

 이 때 재열은 윤회전생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 뒤 열심히 불도를 닦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옥천사에 가면 들을 수가 있습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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