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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책과 격려 

어느 시골,
작은 천주교회의 주일 미사.
신부를 돕던 소년이 실수하여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신부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며 떠는
소년의 뺨을 치며 버럭 소리쳤다.

“다시는 제단 앞에 나타나지 마라.”

소년은
그 일 이후 일생동안
천주교회에 발을 딛지 않았다.

이 소년이 바로
공산주의 대지도자인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다.

***********************

어느 큰 도시 주일 미사.
신부를 돕던 소년이 역시 실수하여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신부는 놀라 떨며 
금방 울 것 같은 소년을 사랑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가만히 속삭였다.

“괜찮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잖니?
나도 어릴 때 실수가 많았단다.
너도 훌륭한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이 바로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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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

칭찬의 덕

살며 감사하며 2018. 1. 23. 08:01



 

예쁘다고 칭찬을 들은 사람이 아닌,

칭찬을 한 사람이 더 아름답고 예뻐지는 신기한 현상.

 

자율신경계에는 인칭의 구별이 없다.

주어가 누구냐에 상관 없이 그 모든 것을

말한 사람의 일이라고 해석해버린다.

 

때문에 자기자신에게도 칭찬하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아름답다고 칭찬한다면

그 말에 따라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사토 도미오의 <거울 앞에서 외쳐라> 중에서...

 

Posted by 慧蓮(혜련)
|

<양파도 칭찬 받아야 `쑥쑥'>

(철원=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칭찬은 `양파'도 춤추게 한다"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 최전방지역의 한 군부대가 내무반에서 양파를 키우며 칭찬의 효과를 살펴보는 이색 실험을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육군 3사단 포병연대는 작년 12월 2일부터 각 내부반별로 한 쌍의 양파를 똑 같은 장소에 놓고 병영생활에서 칭찬과 폭언, 사랑과 미움이 생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에 장병들은 한쪽의 양파에게는 좋은 말과 관심을 표시하고 다른 양파는 병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해소할 겸 욕설과 폭언을 3개월째 퍼붓고 있다.

또 칭찬을 해주는 양파는 마치 애완견을 다루듯이 잎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거나 정성스럽게 물을 갈아주었으며 욕설을 하는 대조군 양파는 손가락으로 슬쩍 찌르는 행동을 병행했다.



이 결과 장병들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양파는 뿌리를 빨리 내리고 풍성하게 성장한 반면 폭언을 들은 양파는 덜 자라거나 가늘고 심지어 구불어지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병사들은 이 같은 `사랑의 양파 키우기'를 통해 칭찬과 배려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하게 됐으며 이를 통해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하는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정성운(24) 병장은 "칭찬을 받으면 잘 자라는 양파와 폭언으로 점점 죽어가는 양파를 보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나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부대 관계자는 "병사들의 폭언과 욕설이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자는 연대장의 제안으로 실험을 시작했다"면서 "칭찬받는 양파는 건강하게 성장하는 반면 욕설과 스트레스를 받은 양파는 성장이 느리거나 시들시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Posted by 慧蓮(혜련)
|

기뻐하면 운명이 열린다 / 광덕스님


몸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권위있는 의사가 중병을 선언하면
그때부터 환자의 증세를 호소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일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한 병사는 별안간 고열이
났다. 군의는 후송해야 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병사 본인은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후송된다는 것이 하도 기쁘고 기뻐서 뛸 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오래지 않아서 곧 정상이 되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가 기뻐한 것이 병을 고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개 공포심을 가지면 병 증세가 나타나고 기뻐하면 병은 빨리
낫는다. 이것은 진실이다.이 진실은 널리 활용되어야 한다.
이 진실은 병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일체 불행한 일을 몰아내는 데는 기뻐하는 것이 제일의 첩경인
것이다. 건강해지면 기뻐할 수 있으리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건강해질까? 약을 먹어서..... 이렇게만 알고 있다면 잘못이다.

약을 먹고 있다는 안심감이 치료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불안, 초조, 회의, 공포심은 병을 급격히 악화시키고 없는
병도 불러 일으킨다. 사업도 경색으로 몰아 넣는다. 불행이
몰려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생명력이 활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왕성한
생명력을 떠나서 행복이 올 수 없고 번영이 올 수 없다.
초조 불안에 쌓인 사람에게 건강이 올 리 없다. 의기 소침한 처량한
표정의 사람에게는 행운이 찾아 들지 않는 법이다.

왕성한 활력 - 이것이 인생에 승리를 가져온다.
마음에서 기쁨이 솟아날 때 건강은 조절되고 행운은 모여 든다.
희망과 활기가 넘치는 사람을 사람들은 신뢰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기가 없는 사람, 표정이 어두운 사람, 거기에는 오던 벗도 그에게서
떠난다.우리는 환경이 이루어져야 기뻐지고 표정이 밝아지고 생기가
난다고 하지 말자. 주인은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가 마음에 기쁨을 일으킬 때 우리의 환경에는 밝은 일이
모여든다. 건강도 있고, 사업의 번영도 있고 행운은
그를 따르는 것이다.

고난을 당하면 이것이 나의 밝음을 더하는 한 소재인 것을 알고
보다 크게 활기를 내고 희망을 부풀게 하며 기쁨과 용기를
온몸에 가득 채우자.

그리고 모든 생활에서 나의 밝고 발랄한 기쁨을 발휘하자.
이것이 주체적인 자기를 사랑하는 길이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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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을 칭찬하고 찬탄하는데 입으로 지은 자신의 죄업이 깨끗하게될까?



진운 스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구업(口業)을 지으면서 하루 하루 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천수경 첫머리에 "淨口業眞言 - 수리수리마하수리수
수리사바하" 라는 진언이 나온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는 뜻은 입으로 지은 온갖 죄를 깨끗이
하는 참다운 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입으로 지은 온갖 죄를 "수리
수리마하 수리수수리사바하"라고 입으로 암송하거나 외운다고 과연
입으 로 지은 죄가 소멸할까?

진언의 신비한 힘에 의하여 또는 심리적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언의 내용을 알고 암송하거나
소리내어 염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있는 것이다.

淨口業眞言의 뜻은 남을 칭찬하고 찬탄하라는 내용이다. 왜 남을
칭찬하고 찬탄하는데 입으로 지은 자신의 죄업이 깨끗하게될까?
사람의 마음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모두는 물이 모래에
흡수되듯이 마음에 저장이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 하는 것은 마음에 저장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일 지난 일을 기억할 수 없다면 생활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회는 곧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칭찬하고 찬탄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기에 입으로 지은
업을 정화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칭찬과 찬탄의 말은 듣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동시에 칭찬과 찬탄을 한 본인도 그 영향을 바로 받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말한 것을 남도 듣지만 동 시에 스스로 듣기
때문이다. 어느 講師가 그 날 강의할 내용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강의 도중에 그 내용이 정리되는 경험을
겪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던 중에 정리되지 않았던 이야기와 줄거리의
내용이 정리가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이 말한 것을 자신의 귀로 듣기
때문이다.따라서 "淨口業眞言 -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라고
외 우는 것보다 남을 칭찬하고 찬탄하는 일이야말로 일상 생활 속의
정구업진언이 되는 것이다.

만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칭찬과 찬탄을 하거나 악담과 이간질,
허망하게 속이는 말을 한다면 상대방을 不信의 늪으로 이끄는 일이다.
이는 상대방을 파멸의 구덩이에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그렇게 되어 정서불안이나 정신분열증을 불러 일으켜 파탄에 이르게 된다.

마음속에 불만이 있는 분들은 지금 이 시간부터라도 남을 칭찬하고
찬탄하는 습관을 가져 보라. 그러면 가정이 화목해지고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사회가 밝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 칭찬과 찬탄은
구업을 짓는 행위이다. 칭찬과 찬탄을 아끼지 맙시다.

아이에게나 직장 동료, 이웃에게 칭찬과 찬탄하는 말(言語)의 파장은
눌려있던 마음이나 상처입은 마음 우울한 마음이나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녹여주는
훌륭한 약으로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淨口業眞言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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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에 응답하는 물의 신비


인간의 인체(人體)는 70~8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물이 각종 소리, 문자, 생각에 반응하는 것을
밝혀준 책이 일본에서 발행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파동 연구가인 '에모또 마사루'가 물의 '동결결정사진'을 모아 발간한
『물로부터의 전언』이 그것이다.



에모또 마사루 지음
(1999년 6월 발행 파동출판사)

에모또의 물에 대한 연구는

미국의 물 연구가 Lee H.Lorenzen박사의 '육각수'
역시 Lee박사가 소개한 '공명자장분석기',
이 두가지를 접목시키는 데서 비롯한다.

에모또에 의하면 좋은 물, 나쁜 물,
즉 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는 눈으로는 쉽게 알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여러가지 물을 얼려서 결정사진을 잡는데 성공하여
가시화함으로써 '물의 얼굴'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에모또는

'결정사진을 볼 때는 6각형이 뚜렷한 결정구조
를 이루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촬영을 위해 결정체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몇천번이나 보아왔다.
그렇게 하다보니 신기하게도 물에
생명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본래 물은 '좋은 물이 되자! 좋은 물이 되고 싶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전하려고 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

그는 단순히 물의 결정사진 뿐만 아니라,
물에다 음악을 들려주거나 기도를 보내거나 글자를 보여주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물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자 하였다.


水라고 하는 文字는…


물의 결정사진 촬영시에는 어떤물도
옆의 사진과 같은 상태를 일단 거쳐서 물로 돌아갑니다.

물이 얼어서 결정이 되었다가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물로 돌아가기 직전의 어느 한순간,

-5℃에서 0℃사이에 있어서,
'水'라는 한자와 똑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옛적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서 '水'라는 글자를 만들었을까요.



바하의 '골드베르그의 변주곡'을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이 곡은 바하가 신세졌던 골드베르그님을 위하여
감사의 뜻을 담아서 바친 곡이라고 합니다.

기본이 되는 정제수와 비교하면
6각형이 생기고 있는 모습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성장을 촉진한다고 한다면
좀 철학적이지요.



쇼팽의 '이별곡'을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유명한 피아노 곡으로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친숙한 곡입니다.

그리고 연구팀이 이 결정사진을 얻었을 때만큼
깜짝 놀란 적도 없었습니다.

'이별곡'이기 때문일까,
기본적인 6각의 결정체에서 멋지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잘게 쪼개어졌군요.
현미경의 배율은 같았는데도 말입니다.



한국민요 '아리랑'을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아시다시피 한국의 민요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헤어져 가는 연인끼리의 이별가.

떠나는 남자를
뒤에서 전송하는 여인이
애절하게 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것과 흡사한 결정이지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결정은 매우 아름답고
잘 균형잡힌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골든베르그'변주곡을 들려주었을 때
나타난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너는 나를 괴롭게 해. 죽여버리겠어'를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이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들이다.

이러한 단어들에 물을 노출시키자 물은 이내
우리가 예상했던 그대로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정은 추하게 왜곡되어 이그러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명백하게 '너는 나를 괴롭게 해. 죽여버리겠어'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폭력적 언어들이 마구 횡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하여 뭔가 해야하는 때가 다가왔다.



Healing음악, 'Hado'를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이 음악은 아픔을 진정시키고
몸의 면역기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사진은 특별한 기술을 구사하며 제작된
미국의 치유음악 CD를 들려준 결정체입니다.

가지 부분이 힘차게 쑥쑥 뻗어 있어 마치 영양가가 높은
식용 버섯처럼 아름다운 결정사진입니다.

실제로 이 곡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생리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Heavy Metal'의 곡을 들려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이 노래의 가사 내용은 노여움이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을 매도하고 있는 듯한 곡입니다.

기본적인 6각구조의 결정체가
보기 좋게 산산조각이 나 있습니다.
이 곡조에 대해서
물은 뚜렷이 부정적인 반응을 모이고 있습니다.

꼭 Heavy Metal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가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500명의 사랑의 기운과 혼을 받아 응답하는 물


일본 전국에 있는 500명의 파동 Instructors
(내가 주최하는 파동학의 졸업생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1997년 2월 2일 오후 2시,
사무실의 나의 탁자 위에
동경 시나가와의 수돗물을 담은 컵을 얹어 놓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여러분의 상념(想念)을 발신(發信)하여 주세요.

물론 이 물이 좋은 물이 될 수 있게
'물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소원을 담아서,
각지에서 동시적으로
'사랑의 기운과 혼(魂)을 보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전국 각지에서
'사랑의 기운과 혼'을 보내온 결과로 얻은 결정사진이 바로 이 사진입니다.
물론 물리적인 작용은 조금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훌륭한 결정을 얻게 된 것에 대해서,
촬영반 일동은 감동을 넘어서 눈물이 솟는 것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본래의 물(시나가와의 수돗물)-실험 전의 촬영

평범한 수돗물이 500명 사랑의 기운과 혼을 받아
위의 결정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물에 문자를 보여주다


물에 음악을 들려준 것에 대해
물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물에게 문자를 보여준다면…'
이라고 하는 문제에 접근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손으로 쓴 글자가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친
일정한 문자를 병에 붙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물은
문자에 대해서는 분명한 응답을 보여주었습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실험자에게 미리 사전정보를 주지 않고 실험하거나,
실험자를 바꿔보아도 같은 반응이 나왔습니다.


하루 밤 동안 병에 붙여두었던 '바보자식'이란 문자를 보고 있었던 물의 사진입니다.
'어떤 헤비메탈 곡'을 들려주었던 물의 사진과 매우 닮았습니다.

또 같은 뜻을 갖는 영어의 'You Fool'도 붙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같았습니다.



'사랑.감사'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물의 결정체


수없이 많은 결정사진을 촬영해 왔습니다만,
이 사진만큼 아름다운 결정을 본 적은 없습니다.

역시 이 세상에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능가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

몸의 둘레에 있는 물 또는 몸안에 있는 물
이와 같이 변화하여 준다면…….


물의 '동결결정사진'이란 얼린 물을 현미경에 놓고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초특수상황의 한 순간에 촬영하여 얻어진 6각구조의 사진이라고 한다.

물의 결정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시료용 물 한 방울을 실험용 접시에 떨어뜨린 후 냉동실에 2시간 동안 보관한다.
그 결빙상태에서 물 결정을 추출하여 현미경으로 200~500배의 배율로 촬영한다.

한번만 찍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에서 가능하면 많이 촬영한다.
찍을 때마다 물의 결정이 조금씩은 달라지지만,
시료에 따라 격자(grid) 또는 판상(laminar)결정구조 등의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밥은 향기가 좋다

과학부 기자

▲ 왼쪽:감사하다 / 오른쪽:망할자식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는 물 결정에 관한 실험 이후에 또 다른 실험을 하였다.
그 대상은 밥이었다. 밥을 똑같은 두 유리병 속에 넣었다.그런 다음에 한 유리병에는 ‘감사하다’ 라는 글귀를 붙이고


다른 유리병에는 ‘망할 자식’ 이라는 글을 써서 붙여 놓았다.

날마다 두 초등학생에게 그 글귀를 각각 병에 대고 읽게 하였다.

 

‘감사하다’ 가 붙어있는 유리병을 향하여서는 감사하다고 말하고‘망할 자식’이 붙어 있는 병에 대하여는 망할 자식이라고 말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달을 지속하고 보니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밥은
발효되어 향기로운 누룩 냄새가 났다.
그러나 ‘망할 자식’ 이라는 말을 들은 밥은 부패해서
검은 색으로 변하였으며 악취를 풍겼다.

실험 보고서에서 “이번 실험을 통해서 단지 물만이 이런 정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도 외부 정보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좋은 정보로 인하여 미생물이 사람에게 유익한 발효작용을 할 수 있고,
악의적인 정보는 사람에게 유해한 부패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유효미생물을 연구하는 일본의 히가 데루오는 말하기를,
“사실 미생물 세계에서 나쁜 균과 좋은 균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대부분의 균은 무해하고 기회주의적인 균이다.
이런 균은 나쁜 균과 좋은 균의 세력을 살피다가 강한 쪽으로 붙는다.” 라고 하였다.
이 사실은 외부의 정보에 따라 밥이 발효하는가
부패하는가를 결정한다는 마사루의 실험결과와 일치하고 있다.

글과 생각이 하나의 정보에너지로 작용하여 미생물에게 영향을 준다는 위 실험결과는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미생물이 그러하다면 다른 일반 세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수히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있는 인간의 경우,
이들 각각의 세포가 외부 정보에너지에 이와 같이 반응한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바로 건강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명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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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도 칭찬 받아야 `쑥쑥'

(철원=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칭찬은 `양파'도 춤추게 한다"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 최전방지역의 한 군부대가 내무반에서 양파를 키우며 칭찬의 효과를 살펴보는 이색 실험을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육군 3사단 포병연대는 작년 12월 2일부터 각 내부반별로 한 쌍의 양파를 똑 같은 장소에 놓고 병영생활에서 칭찬과 폭언, 사랑과 미움이 생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이에 장병들은 한쪽의 양파에게는 좋은 말과 관심을 표시하고 다른 양파는 병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해소할 겸 욕설과 폭언을 3개월째 퍼붓고 있다.
 
또 칭찬을 해주는 양파는 마치 애완견을 다루듯이 잎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거나 정성스럽게 물을 갈아주었으며 욕설을 하는 대조군 양파는 손가락으로 슬쩍 찌르는 행동을 병행했다.
이 결과 장병들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양파는 뿌리를 빨리 내리고 풍성하게 성장한 반면 폭언을 들은 양파는 덜 자라거나 가늘고 심지어 구불어지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병사들은 이 같은 `사랑의 양파 키우기'를 통해 칭찬과 배려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하게 됐으며 이를 통해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하는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정성운(24) 병장은 "칭찬을 받으면 잘 자라는 양파와 폭언으로 점점 죽어가는 양파를 보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나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부대 관계자는 "병사들의 폭언과 욕설이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자는 연대장의 제안으로 실험을 시작했다"면서 "칭찬받는 양파는 건강하게 성장하는 반면 욕설과 스트레스를 받은 양파는 성장이 느리거나 시들시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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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사표, 청화 스님의 눈물나는 구도 일화들  

 

50년 토굴수행과 장좌불와 실천한 까닭은?


 


“큰스님, 얼마만큼 부처님을 그리워해야 합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외로운 토굴생활이 마땅하신가요?”

“공부하다 보면 감사한 마음이 끝이 없어서 계속하여 눈물이 납니다. 수건 두 개를 걸어놓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염불을 권하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염불은 제일 하기 쉬우면서도 공덕 또한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빨리 초승(超乘)할 수가 있습니다.”

“토굴 생활이 적적하실 때가 있으신지요?”

“바람이 있고 달이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신묘한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1982년 백장암에서 자훈 박병섭 거사가 청화 스님께 한 질문)


반세기동안 장좌불와와 하루 한 끼 식사 등 투철한 수행과 무소유를 실천한 당대의 선승. 선(禪)은 물론 현대의 철학과 자연과학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사상을 바탕으로 불교수행의 회통(會通)을 주장한 원통(圓通)불교의 주창자. 한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모든 이의 고통을 어루만진 성자. 청화 큰스님을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수식어들이다.


청화 스님은 “금생 세연이 다했으니 이제 가련다” 라며 2003년 11월12일 곡성 성륜사에서 열반했다. 스님은 그 이전에 “올 때도 빈손이었는데 마지막 가는 길을 호화롭게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거적떼기에 말아서 일반 화장터에 가서 태운 뒤 그냥 뿌려라. 그렇게 해서 장례비용이 다소 남으면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하라”고 유지를 남겼다. 스님에게는 스님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누구나 다 하는 다비식도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청화 스님의 구도를 향한 초인적인 수행 방법은 생명을 내건 것이었다. 그중 일반인들에게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잠과 식사의 절제에 관한 부분이다. 생식가루 한 되로 100일 동안 엄동설한을 났다는 이야기. 하루 한 끼의 식사로 앉으면 자꾸만 굽어지는 허리를 펴기 위해 포대로 기둥에 허리를 묶고 참선한 이야기. 겨울 산 속, 불도 없이 석달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수행한 이야기. 겨울 한밤 중 일어나는 번뇌ㆍ망상을 다스리기 위해 머리에 찬물을 끼얹고는 얼굴과 온 몸에 고드름이 언 채로 수행 정진하던 일화 등등.

 

스님은 실제로 50여년 동안 병환이 나지 않는 한 눕지 않는 장자불와를 실천했다. 또한 열반에 드는 날까지 하루 한끼의 식사 외에는 하지 않았다. 입적하는 날까지 80의 노구에 형형한 눈빛을 빛내던 스님은 당신의 고행에 대해 “정신과 육체에 모두 이로운 일이었다며 잠을 자지 않고 하루 한끼만 먹어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스님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일 수 있는 음식과 잠의 문제를 해결해 신체의 리듬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마침내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대자유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스님의 일대기를 정리한 『성자의 삶』(사회문화원)에는 청화 스님이 당신의 토굴 수행을 자세히 회상하는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몸뚱이도 분명 내 마음이 머물고 있는 집이라서 너무 무리하면 그만치 장애가 된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 장좌불와 한다고 버티며 토굴 생활을 그래저래 30년을 했다. 수행자로는 꽤 많이 한 편이다. 또한 토굴 생활이라는 것은 혼자이니까 저절로 묵언을 하게 된다. 한 4년 동안 오로지 묵언을 지키고 안 나오기도 했다. 묵언도 나같이 많이 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먹는 것은 낮 한 때인데, 아궁이에 불을 땔 때는 밥을 해서 먹기도 하지만 반찬은 깨와 소금을 볶아 섞은 것이나 김가루를 간장으로 버무린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미숫가루만 먹고 석 달 동안을 지내기도 했다. 그것도 결제 들어갈 때 짐도 무겁고 하니까 서너 되나 되는 미숫가루로 한철을 지내기도 했다.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하루에 한 컵씩 먹고 석 달 동안을 지낸 것이다.


그리고 어떤 때는 하루에 둥글레 가루 한 스푼을 물에 타 마시며 석달 동안 지냈다. 또한 어떤 때는 생쌀을 물에 불렸다가 한 숫갈씩 먹기도 하였다. 하여튼 내 토골 생활이라는 것은 표현하자면 비참한 생활이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내 몸뚱이를 너무나 확대하지 않는가 하여 몸에 대하여 가엾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분히 유익했다고 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에 힘을 얻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철두철미하게 다 바르게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에는 나같이 토굴 생활을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권고할 생각은 없다.”


청화 스님은 1923년 무안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강호성. 14세에 일본에 건너가 5년제 중학을 졸업했고 귀국해서는 교육사업에 뜻을 두어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고향에 망운중학교를 세우고 잠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출가해 부인과 아들 하나를 두기도 했지만, 해방 후인 47년(24세) 장성 백양사 운문암에서 근대의 숨은 도인으로 알려진 금타 화상을 은사로 출가를 결행한다.


이후 무안 혜운사, 두륜산 진불암, 지리산 백장암과 벽송사, 구례 사성암, 용문사 염불선원, 보리암 부소대, 부산 혜광사, 두륜산 상원암, 월출산 상견성암, 지리산 칠불사 등 전국의 토굴을 오가며 수행정진에 매진했다. 남이 보건 보지 않건, 평생 하루 한끼 공양을 실천하고 눕지 않는 수행을 보여 온 것은 물론이다.

 

64년 지리산 벽송사에서 31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는 두지터 산정(山頂) 옛 암자자리에서 청화 스님은 산죽과 억새로 막을 짓고 한 겨울을 지냈다. 이 때의 상상을 초월한 고행을 제자인 성본 스님은 이렇게 증언한다. “큰스님께서는 두지터에 대나무와 억새풀로 임시 처소를 만들어 극도의 고행 정진을 하셨다.


한 겨울 지리산 높은 곳에서 더욱이 생식하시며 불을 때지 않은 바위에 앉아계시니 상상이나 되는가. 큰스님은 가부좌하고 계셨는데, 온 몸이 얼어서 얼굴은 검푸르다 못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정작 맑고 온화한 모습으로 그렇게 편안히 대하셨다.


 순간 가슴이 미어지더라. 큰스님께서 나를 보고 일어서시는데 다리가 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얼른 주물러 드리니까 ‘괜찮네, 괜찮네’ 하시며 손수 몸을 쓰다듬으시며 일어나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성자의 길을 간다는 것, 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았다.”

 

이러한 용맹정진 이후, 오산 사성암에서 청화 스님은 물러섬이 없는 수행 경지인 불퇴전지(不退轉地)에 드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화 스님은 60년대 중ㆍ후반 이후 세 번에 걸쳐 이곳에 주석하면서 ‘안 자고 안 눕고 하루 한 끼만 드시고’ 초인적인 신심으로 몸을 던져 공부하셨다. 사성암에서 보인 스님의 초인적인 용맹정진은 제자들에게 가슴시린 수행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별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 이렇다.

 

암주 보살은 홑겹옷을 입은 청화 스님이 걱정되어 이불을 가지고 올라가 보면, 한겨울 바위틈에서 나오는 찬 샘물을 받아 아주 천천히 머리에서부터 붓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죄스러워 혼비백산으로 내려와 멀리서 냉수 붓는 소리를 들으면서 암주보살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독하신 어른, 천하에 강하신 어른, 30년 동안 이 암자를 지키고 살았어도 저렇게 한 겨울 찬물 부으며 공부하시는 스님은 처음 뵙는구나”하고 경탄하면서 얼마나 추우실까 생각해서 소리내 울면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1970년 청화 스님은 전남 장흥군 부산면 심천리에 삼칸 능엄사(현 금선사)를 창건하고, 장좌불와한 채 둥들레 나무뿌리로 만든 한됫박 남짓한 가루로 6개월을 넘겼다. ‘먹지 않아도 기쁨을 느끼는 모습’[無食喜樂]을 도반들 눈앞에서 보여준 것이다.

 

이어 청화 스님은 78년 전남 영암 월출산 도갑사 견성암에서 3년 결사로 안거하였다. 해인주(김안순) 보살의 증언이다. “큰스님은 상견성암에 계실 때도 무엇을 통 안드셨다. 냄비에 밥을 하다 보면 까딱 실수로 태우기 쉽고 그러면 쌀 아까워, 씻기 사나워 참 고약스럽다고 하셨다. 거기에 금쪽같은 공부 시간이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스님은 물에 불린 생쌀하고 솔잎을 드셨다. 그러다 그만 치아가 다 못 쓰게 되어버렸다고 그러시더라. 그 말씀을 듣자마자 바로 미숫가루를 해 가지고 갔는데, 기척이 없었다. 서운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땔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 오시더라. 육십이 가까운 큰스님의 그 모습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나왔다. 그 와중에도 큰스님께서 얼른 보따리를 받아서 그대로 부처님 앞에다 놓고 기도를 해주시더라. 공양도 안드시고….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토굴수행을 꼭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대중수행을 하지 않고 토굴수행을 선택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청화 스님의 다음 말씀을 들어보면 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삼매를 수행할 때 인연조건이란 독처한거(獨處閑居)라. 우리가 대중적으로 공부할 때는 사실 오로지 삼매에 들기는 좀 어렵다.


왜냐하면 주변 조건에 관심을 둬야 하니까. 우리가 보살심으로서 더불어 닦는다고 생각할 때는 모르거니와 정말로 내가 꼭 며칠 동안에 깨달아야 겠다고 비장하게 마음 먹을 때는 한가한 데서 독처에서 지내면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성자의 삶』중에서)

 

청화 스님은 계행을 잘 지켜서 몸이 청정하면 마음도 청정해지고, 어느날 갑자기 확 트인 때가 있다고 했다. 그 때 가서는 자기 몸에 아무런 부담이 없어 자기 몸을 위하여 남을 희생시킬 수가 없다고도 했다. 공부를 해서 마음이 일념이 되면 ‘몸도 마음도 쑥 빠져버리는’[身心脫落] 환희가 충천하는 기분이 된다고 한다.


자기 몸에 대해서 부담이 없을 때 마음은 더욱 더 맑아지고 천지ㆍ우주 모두가 생명으로 보여 참다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다가 정말로 빛을 보고 몸이 가벼워지면 유연선심(柔軟善心: 부드럽고 선한 마음)이 되어 착한 마음이 차근차근 깊어진다는 것이다.

 

청화 스님은 우주에는 빈틈없이 청정한 적광(寂光: 고요한 빛)이 충만해 있음을 확신하며 지혜와 선정이 같이 어우러진 공부에 성심을 다했다. 생각생각 부처님의 본 성품을 놓치지 않고 안팎으로 충만한 광명자리를 염불, 참선으로 참구하였다. 위대한 생명을 그대로 믿고 몸도 마음도 잊은 채 천지ㆍ우주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이미 성품을 보아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장좌불와로 보임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견도여파석(見道如破石)이요, 우리가 진리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돌을 깨는 것과 같다. 마치 돌을 깰 때는 순간에 파삭 깨듯이, 견도할 때도 문득 활연대오해서 훤히 깨달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수도여우사(修道如藕絲)라, 우리가 연뿌리를 딱 부러뜨리면, 연뿌리라는 것이 실이 있어서 그냥 안 부러뜨려진다. 끈끈하니 실이 나온다. 그와 똑같이, 수도할 때도 쉽지가 않다. 수도도 돌 깨듯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습기를 녹일 때는 오랫동안 두고 두고 녹여야 한다는 말이다.

 

깨달은 그 자리를 안 놓치고서 닦아나갈 때는 공덕이 성취가 되어서, 장양성태(長養聖胎)라. 성자의 태를 오랫동안 길러 나간다. 성인 자리에서는 자타, 시비의 구분이 다 없는 자리라고 우리가 분명히 느껴버리는, 그런 성태(聖胎)를 두고두고 오랫동안 닦아 나가는 것이다. 장양성태는 우리가 공부하는 분상에서 지킬 중요한 성구이다. 사량 분별로 닦는 것이 아니라, 무념수(無念修)로 닦는 수행을 성태장양이라 한다. 이렇게 닦아나갈 대는 구구성성(久久成聖)이라, 두고두고 일구월심으로 닦아 나가서, 비로소 참다운 구경지인 성인의 지위가 된다는 말이다.”(『성자의 삶』중에서)


청화 스님은 1985년 태안사를 다시 세우면서 비로소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스님은 3년동안 묵언정진하며 직접 등짐을 지고 터를 닦아 10년만에 태안사를 다시 일으켰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세수로 60이 넘어서이다. 마치 조주 스님이 80세까지 중국 천하를 주유하며 만행을 한 뒤에야 비로소 조주 관음원에서 법을 펴기 시작했듯이, 자신의 공부에 더욱 만전을 기한 다음 전법에 나서는 모습과 같았다.

 

끝없는 고행으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스님은 그러나 타인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으로 스님은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경어를 사용하고 언제나 똑 같은 맞절로 사람들을 맞았다. 스님은 자신을 보러 산문 밖에 찾아오면 이름 없는 거지라도 다 받아들일 만큼 자애로운 분이었다.


입적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몸 안의 한 점 기운을 짜내어 후학들을 위해 법문하시던 큰스님의 자비심은 철저한 수행으로 얻은 깨달음을 아낌없이 후학들에게 회향한 아름답고도 감동 깊은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일생동안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인 스님의 전설과도 같은 용맹정진의 자세는 오늘도 무문관에 들어가는 수행자들이 본받아야 할 영원한 수행자의 전범(典範)이 아닐 수 없다.

 

푸른바다 김성우 두 손 모음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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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인디언 격언 모음








그대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과 친척들을 잘 보살펴라

그들에게 가장 좋은 숙식을 제공하고 존경과 경이로 대하라

 




사람의 눈은 혀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생각의 씨를 뿌리면 행동의 열매를 얻는다.
행동의 씨를 뿌리면 습관의 열매를 얻는다.
습관의 씨를 뿌리면 인격의 열매를 얻는다.
인격의 씨를 뿌리면 운명의 열매를 얻는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사람이건 공동체건 버려진 것이든 또는 다른 그 무엇이든

그대의 땀과 노력이 스며들지 않은 것은

그대의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토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아이들로부터 빌려온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라

인간이건 동식물이건 그 모든 것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소망과 말에 경의를 표하라

비록 그대의 생각과 같지 않더라도

간섭하거나 비난하거나 비웃지 말라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나니

그들의 수준에 알맞은 여정을 가지고 있나니

그들 자신의 길을 가도록 허용하고 도와주어라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욕하지 말라

그대가 우주를 향해 내보낸 부정적인 에너지는

그 몇 갑절로 그대에게 되돌아 오느니라

 

 



인간은 실수하게 마련이며

용서받지 못할 그 어떠한 실수도 존재하지 않느니라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하다




 

음식을 먹기 전에 언제나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그 음식에 대해 감사하라 





심지어 막대기와 돌맹이까지도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신비한 힘의 표현이며,

그 자체로 영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결국 육체의 질병을 일으키고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주나니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면을 보는 습관을 기르라



 


자신의 길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거든 관대하게 대하라

길 잃은 영혼에게서 나오는 것은

무지와 자만 노여움과 질투 욕망뿐이니

그들이 제 길로 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주먹은 상대방을 상처주고 자신도 아픔을 겪지만
기도는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한 부분이며

지구공동체의 한 가족이며 동반자이니라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씨앗이다

그들의 비어있는 순수한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 길러라

삶의 학습과 체험의 지혜라는 물을 뿌려주어라

그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라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그대의 불편한 감정과 독기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느니라




 

언제 어디서나 오직 진실되게 행동하라

정직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거쳐야 할 시험이니라

 



 

그대 자신의 삶에 균형을 유지하라

몸 마음 정신 영혼 모두

어느 한 곳에도 치우침없이

조화롭고 굳세고 순수하고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게 단련된 육체는 마음을 강인하게 만들고

의식의 풍요로운 성장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느니라




 

결정을 내릴 때에는

그대가 원하는 모습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인지한 상태에서 하라

그대의 행위로 인한 모든 결과는

바로 그대의 책임이니라

 

 



다른 이의 영역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라

남의 물건에 허락없이 접근하거나 손대지 말라

특히 다른 사람의 영적이고 종교적인 부분에는 간섭하지 말라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느니라



 

 

먼저 그대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리고 자기자신의 성장과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고 난 연후에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라

자신의 본분을 잊은 상태에서 하는 봉사는

진정한 것이 아니니라

 

 



다른 사람들의 철학적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라

자신의 지식과 믿음이 옳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말라

 

 



그대에게 주어진 물질과 행복 그리고 행운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라

그리고 나눔 봉사와 헌신을 필요로 하는

사회활동에 참여하라

 

 



겸손함을 갖고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라.

그때만이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혼자뿐이라고 주장해도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든것들 속에서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걸어간 길에 의해 우리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은 좋은 것이 그대에게 돌아온다.

 



 

모든 살아있는 것을 존중하라.

그러면 그것들도 널 존중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특히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선

  



 

대답하지 않는 것 또한 대답이다.

 

 



누구도 그대의 양심을 대신할 수가 없다.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난 그대를 이끌고 싶지 않다.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난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옆에서 걸으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가슴으로 물어라.

그러면 가슴에서 나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구도 그대를 대신해 살 수 없다.




 

어제 때문에 오늘을 다 보내지 말라.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필요없는 말이 섞여 나온다.
원래 귀는 닫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입은 언제나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말라.

울음은 그대의 마음으로부터 슬픔에 찬 생각들을 내보내 준다.


 



돈이 생기면 우선 책을 사라.
옷은 헤어지고, 가구는 부셔지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위대한 것들을 품고 있다.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그것에는 그대를 위한 많은 보물이 담겨 있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대지를 처음 그대로 내버려 두라.





삶은 결코 죽음과 분리되어 있는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이다.

 



 

평화를 외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평화롭게 행동하고,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속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여 있음을 깨닫지 않고서는

나라들 사이에 평화란  존재할 수 없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이 위대한 정령의 가장 큰 선물이다.

 




논쟁은 아무 소득이 없다.

너는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다.

 

 



방향을 가리켜 보이지만 말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라.

 


 

 

가장 풍부한 의미를 담고있는 말은 침묵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만번 말하면 현실로 이루어진다





적게 먹고 적게 말하면 삶에 아무 문제가 없다





말해주더라도 잊어버릴것이다

보여주더라도 기억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를 참여하게 해준다면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너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고 세상은 줄거워했다

너가 죽었을 때 세상이 울고 너는 기쁠 수 있도록 삶을 살아라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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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향기로 돌아오소서 -




출생엔 선, 후 분명하건만 떠남엔
청춘과 백발 분별치 아니하는가


부운(孚雲) 세상사 서러워 여린 바람에도
흐느끼는 영전(靈前)의 촛불,
기약할 수 없는 시간, 별리의 안타까움에
혈육의 정은 차마 촛농 되어 눈물 떨구나니


생사유전의 밤 그 기나긴 어둠,
여섯 갈래 휘몰아치는 바람의 외침소리,
그대여 시리도록 서글픈 노랫소리, 무언의 법문 아니런가
"거친 삼계의 황야에서 진정한 기쁨, 참 안식처 그 어데 있더냐" 고


사대(四大)의 헛된 안목으로 말하지 마소
"이끼 낀 세월의 뒤안길엔 광음(光陰)에 빛 바랜 기억,
추억으로 밖에 응답할 수 없는 공허한 터,
홀로 선 빈자리엔 달빛만이 찾아 오는가"라고


그대 가는 길 두 손 모아 광명 등 밝히오니
상주불변 극락청정토 아미타여래
48원 가이 없는 공덕의 옷소매로 품으시나니
지장서원 본받아 연꽃향기로 돌아오소서


우리 다시 만나리니 위없는 보리, 대 자유인으로
그리하여 너와 내가 우리 되고 우리가 하나 되어
우리 환희의 노래는 법열(法悅)의 메아리로
영겁(永劫)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리니



불기2535년(1991.11월 作)

대한불교청년회 활동시절,
동문수학했던 법우님의
극락왕생과 환상회향을
기원한 추모의 自作詩.


※여섯 갈래 휘몰아치는 바람의 외침소리 : 생사윤회하는 육도윤회의 고달픔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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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사랑

1

스승 밑에서 수행을 시작한지 한달밖에 안된 제자가 있었다. 

처음 스승의 발밑에 엎드려 입문을 청할적에 제자는  

세상의 모든 욕망을 끊고 오직 영혼의 안정과

평화만을 위해 노력 하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제자의 마음에는 날이 갈수록 현실에 대한 애착만 깊어갔다.

욕망을 끊어야 겠다는 마음은 더욱 욕망에 대한 

집착을 불러 일어킬 뿐이었다.


견디다 못한 제자는 스승을 찾아가 자신의 속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스승님, 저는 제마음을 다스리려고 무진 애를 썻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의 마음은 오히려 세상의 즐거움에 더욱 끌리고 있습니다. 

속세에 있을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소한 일들까지도 

이제 그것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리워 지기만 합니다.


도대체 저의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만 할까요?. 

가끔씩 저는 스승님께 알리지도 않고 몰래 이곳을 떠나 

현실로 되돌아 가고픈 충동을 강하게 느낌니다. 

자비로우신 스승님! 제발 제가 이같은 부정한 마음을 

다스릴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스승님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시요. 

스승님 발아래 엎드려 간절히 애원 합니다."

 

제자의 눈물어린 호소를 들은 스승은 조용히 그의 팔을 잡아 일어킨 다음

부드럽고 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얘야. 나는 네가 속으로 얼마나 모진 갈등을 격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는 욕망의 뿌리는 좀처럼 뽑아 버릴수가 없단다.

욕망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은 도리어 욕망의 뿌리만 더욱 깊게 만든다.

만일 네가 욕망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리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그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너는 속세로 되돌아 가야한다.

가거라 가서 현실속에서 네가 원하는 욕망을 누리면서

얼마동안 생활해 보도록 하여라.

욕망의 뿌리는 욕망속에서만 찾을수 있단다.

하지만 언제나 자유와 깨달음에 대한 생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 하여라!

그러면 너의 목적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부터 너는 10년 동안 현실속에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자 전혀 두려워 하지 말고 

더 이상 늦기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 현실로 되돌아 가도록 하여라."



2


제자는 스승의 말에 따라 집으로 되돌아와 결혼을 한뒤

가정을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정성껏 생활을 이끌어 나가면서도

언제나 스승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그는 어려운일에 맞닥드릴 때 마다 마음속으로

스승을 생각하면서 자비로운 은총을 간구했다.

그의 세상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그는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루는 그제자의 집에 수행자의 복장을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바로 제자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지못한 제자의 아들은

남루한 차림의 수행자를 발견하자마자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소리쳤다.


"엄마! 문앞에 웬 거지차림의 수행자가 왔어요.


아마 먹을 것을 구하러 왔나봐요.어서 나와 보세요."

제자의 아내는 무척 인색하고 욕심이 많은 여인이었다.


아이의 외침을 들은 제자의 아내는 문으로 다가가

다짜고짜 남편의 스승에게 욕을 퍼부었다.


"아니 아침부터 재수없게 웬 거지야!


어서 썩 꺼지지 못해!! 당신이 진정한 도인이라면


스스로 먹을 것을 챙겨서 다녀야지


왜 못사는 사람에게 와서 먹을 것을 구걸해?"


스승은 제자의 아내가 아무리 지독한 욕설을 퍼부어도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제자의 아내가 제풀에 지처 잠잠해지자

스승은 비로소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구걸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이집 주인이며


당신 남편인 사람을 만나러 왔다.


어서 가서 남편을 불러 오도록 하여라."


그 순간 아내의 외침을 궁금하게 여긴 남편이 문으로 나왔다.

그는 문밖에 서 있는 수행자가 바로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자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급히 스승앞으로 달려가 무릅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아니 스승님께서 이곳에 웬일로 오셨습니까?

밖에서 서계시지만 말고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제자는 정중하게 스승을 안으로 모신다음 손과 발을 씻을 물과

갖가지 음식을 대접했다. 하지만 스승은


제자의 모든 대접을 물리치면서 말했다.


"애야 이제 약속한 십년이 다되었다. 지금쯤 나는


네가세상에서 원하는일은 다 누려 보앗으리라 믿는다.


자 이제는 나와함께 산으로 돌아가지 않겟니?"


그러자 제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3


"존경하는 스승님. 제 자신은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다 맛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언제라도 스승님이 계신곳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저야 떠나면 그만 이겠지만 저 어린 것들은 누가돌보겠습니까?


저의 아이들은 아직은 아버지의 보살핌이 필요함니다.


하오니 제가 몇 년만더 이곳에 머물러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이를 교육시키고 짝을 맺어주는 것은


바로 부모가 해야할 도리이자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스승님!! 제발 저로 하여금 자신이 행해야할 의무를


저버린 비열한 사람이란 소리를 듣지않게 해주십시오."

제자의 말을들은 스승은 아무말없이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 가셨다.

세월이 흘러 스승이 다시 제자를 찾았을 때


제자의 아내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제자역시 늙은 노인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제자의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여 제각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이제야말로 세상을 등질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말햇다.

하지만 제자의변명은 끊나지 않았다.


"스승님 당신의 말씀대로 이제 저는 가정을 이끄는자가 행해야할

모든 의무를 다 완수 했습니다.


나의 아이들은 모두 성장하여 제각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 하기에는


아직도 그들은 어리기만 함니다.


그들은 세상의 쾌락에 흠뻑 젖어 잇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책임감도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가 자식들을 떠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파멸하고 말것입니다. 하오니 스승님!!


저에게 조금만더 시간을 주십시오.


저는 자식들에게 책임감과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가르쳐야만 함니다.

스승님! 제발 저에게 자식들이 온전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칠 기회를 주십시오. 이 일만 끝나면 반드시 스승님을 따라


세상을 등지고 철저하게 수행에만 전념 하겠습니다."


스승은 이번에도 말없이 돌아갓다.

다시 7년이 흘렀다.스승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제자의 집을 찾았다.


스승이 집앞을 도착해보니 커다란 개가 집앞을 지키고 있엇다.

개를 보는 순간!! 스승은 그 개가 바로 자신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실제로 제자는 2년전에 노환으로 죽고 말앗다.


제자는 죽은뒤 자신이 전생에 지은 업보에따라 개로 태어났다.

개로 태어난 제자는 가족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하여

자신이 생전에 살던 집을 지키고 있었다. 스승은 곧 바로 개의 영혼을 불렀다.


"얘야! 너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래 이제는 나와 함께 산으로 가서 수행에 전념할수 있겟지?"


하지만 개로 변한 제자의 집착은 여전히 끈질겼다.


"존경하는 스승님! 저는 확실히 2년전에 이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저의 자식들도 물질적으로 커다란 안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적들이 있습니다.


지난 2년동안 저는 이집앞에서 제자식들을 해치려는


적들을 막아내기위해 온갖 노력을 다햇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스승님을 따라 떠나 버린다면


누가 제 자식들을 지켜주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자식들도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오니 제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몇 년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4


이리하여 다시 10년이 흘러갔다.


스승이 다시 제자의 집을 찾았을 때는


제자의 후생인 개도 이미 죽고 없었다.


스승은 자신의 신통력으로 제자를 찾아 보았다.


제자는 이번에는 무서운 독을가진 코브라로 환생을하여


집에있는 철제 금고를 지키고 있었다!!


스승은 두 번씩이나 환생을 해서도 가족과 집 그리고


재산에 대한 집착을 끊어 버리지 못한 제자가 안타까웠다.


스승은 이제는 제자의 잘못된 환상을 없앨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스승은 즉시 제자의 손자를 불러 이렇게 경고 했다.


"얘야. 집안에 있는 철제 금고 가까이에 아주 무서운 독을 가진 코브라가 있다.

뱀은 아주 위험한 동물이니


어서 없애 버리도록 하라.하지만 절대 죽이지는 말아라.


단지 작대기로 때려 등을 부러뜨린 다음에


나에게 가져 오도록 하여라."


스승의 말을 들은 제자의 손자는 깜작놀라 철제금고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곳에는 스승의 말대로 코브라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혀를 날름 거리고 있었다.


손자는 즉시 집안 사람들을 불러 작대기를 가져오게하였다.


집안 사람들은 코브라를 빙둘러싼 다음 손에 작대기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승의 당부대로 코브라가 죽지안고 단지 움직일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윽고 코브라가 축 늘어지자 스승은 조심스럽게


그의 목을 거머줜채 번쩍들어 그의 목에다 걸치고서 집을 나섰다.

스승은 그들에게 코브라가 누구라는 사실을 귀뜸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두들겨 팬 코브라가


자신들의 할아버지란? 사실을 전혀 눈치챌수 없었다.


손자의 가족들은 오히려 무서운 코브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스승에 깊이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축 늘어진 코브라를 목에걸고 자신의 은거지로 돌아오면서


스승은 부드럽게 말했다.


"얘야 ! 세상 어느누구도 자신의 감각과 마음을 완전하게


만족 시킬수는 없단다. 욕망이란 끝이 없단다.


욕망은 항상 하나가 사라지기전에 수십개의 다른 것들이 나타나는 법이란다.


욕망의 꼬리는 끝이없이 계속 이어진단다.

욕망을 끊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순간 그것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결코 욕망의 고리는 끊기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욕망의 뿌리를 알고 그것을 끊어 버리는유일한 길이다.


욕망을 벗어나는길은 오직 욕망의 이같은 본질을 분명하게


알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란다.


이제 너는 마음의 눈을 떠도록 하여라!


지금이라도 네가 올바른 분별력을 기른다면 최소한


다음 생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말이 끝나자 코브라로 변한 제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쳤다.


"언제나 자비로우신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3세에 걸쳐

오직 무한한 사랑만으로 하찮은 저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욕심에 눈이 먼 저는 언제나 말로만 당신을 따른다고 했을뿐

실제로는 현실의 유혹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려는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끈질기게 저를 기다리며보살펴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그처럼 저를 기다려 주신 까닭을 알게 됐습니다.


깨달음은 다른 어느누가 가져다 주는 선물이나 은총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 성취하는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제가 개로 태어나고, 다시 뱀이 된 이 순간까지

오직 이 한가지 진리를 스스로 깨달을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스승의 사랑이 가장 신성하다고 하는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수 있습니다.


진실로 어느 누구의 사랑이 스승의제자에 대한 사랑만 하겠습니까?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에는 어떠한 이기심이나


다른 의도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이제 저는 스승님을 통하여 이 모든 사실을 확 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제 자신의 어리석은 의심과


욕망으로 스승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제자는 마지막 힘을 다 짜내어 스승에게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거두었다.


끝(영감을 주는 책의 내용 중에서)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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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일본에는
한 줄짜리 시를 쓰는 사람들이 있어 왔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것 없이 먼길을 여행하고
방랑하며 한 줄의 시를 썼다.

 


길에서 마주치는 풍경에 대해,
작은 사물에 대해, 벼룩과 이와 반딧불에 대해,
그리고 허수아비 뱃속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와
물고기 눈에 어린 눈물에 대해......

 



한 줄의 시로 그들은 불가사의한 이 지상에서의 삶을
표현하고자 했다. 때로 그들에게는
한 줄도 너무 길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번개처럼, 우리들 생에 파고드는 침묵의 언어들!

 

 


(편의상 세 줄로 옮김니다)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있네... (이싸:1763~1827)

 

 

 



이 첫눈 위에

오줌을 눈 자는

대체 누구인가 ? (기가쿠)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모리다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1644~1694)








나는 떠나고

그대는 남으니

두번의 가을이 찾아오네 (부손1716~1827)









한밤중에 잠이 깨니

물항아리

얼면서 금 가는 소리... (바쇼)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 (소칸)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 (이싸)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우네... (소세키)








도둑이

들창에 걸린 달은

두고 갔구나...... (료칸)








내 앞에 있는 사람들

저마다 저만 안 죽는다는

얼굴들일세 (바쇼)








이 눈 내린 들판에서 죽는다면

나 역시

눈부처가 되리... (초수이)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파리가 있고

부처가 있다... (이싸)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안청소를 잘 안 하니까 (이싸)








아이들아,

벼룩을 죽이지 말라

그 벼룩에게도 아이들이 있으니 (이싸)








밤은 길고

나는 누워서

천년 후를 생각하네... (시키)








내집 천장에서 지금

자벌레 한 마리가

대들보 길이를 재고 있다 (이싸)








저세상이

나를 받아들일 줄

미처 몰랐네... 하진(죽음을맞이하며)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산 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기가쿠)









내 전생애가

오늘 아침은

저 나팔꽃 같구나... 모리다케(생애 마지막으로 쓴 시)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바쇼)










눈사람에 대해 나눈 말

눈사람과 함께

사라지네... (시키)









눈 내리 아침!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소에는 미움받는 까마귀조차도... (바쇼)









쌀을 뿌려 주는 것도

죄가 되는구나

닭들이 서로 다투니... (이싸)









오래된 연못

개구리

풍덩! (바쇼)









우리가 기르던 개를 묻은

뜰 한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시키)










겨울비 속의

저 돌부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싸)









한번의 날까로운 울음으로

꿩은 넓은 들판을

다 삼켜 버렸다... (이메이)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 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이싸)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흰

나뭇가지였겠지 (타다토모)









봄의 첫날

나는 줄곧 가을의

끝을 생각하네... (바쇼)









우리 두 사람의 생애

그 사이에

벗꽃의 생애가 있다... (바쇼)









너무 오래 살아

나 역시 춥구나

겨울 파리여! (인생의 마지막 시) 타요조











내가 죽으면

무덤을 지켜 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 버렸네... (시메이)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

하지만,하지만......

(어린 두 딸을 잃고 아들마저 죽은 뒤 쓴 시)이싸










사립문에

자물쇠 대신

달팽이를 얹어 놓았다 (이싸)










은하계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는가

나의 떠돌이 별은... (이싸)










땔감으로 쓰려고

잘라다 놓은 나무에

싹이 돋았다... (본초)










물고기는 무엇을 느끼고

새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한 해의 마지막 날... (바쇼)










대문 앞에 난

단정한 노란 구멍,

누가 눈 위에 오줌을 누었지? (이싸)










모든 종교와 말들을 다 떠나니

거기 자두꽃과

벗꽃이 피었구나... (난후꼬)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임종때 남긴 시)이싸









절에 가니 파리가

사람들을 따라

합장을 하네...(바쇼)










지금부터는

모든 것이 남는 것이다

저 하늘까지도...(이싸) 쉰 살 생일을 맞아










울지마라,풀벌래야

사랑하는 이도 별들도

시간이 지나면 떠나는 것을!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이니,

눈사람아...... (소세키)









매미 한 마리 우는데

다른 매미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이 늦은 가을... (이싸)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쇼세키)정치인의 초대를 받고서 답장으로 쓴 시.










하루 종일

부처 앞에 기도하며

모기를 죽이다...(이사)









그녀가 젊었을 때는

벼룩에 물린 자리조차도

예뻤다네...(이사)









작년에 우리 둘이 바라보던

그 눈은 올해도

내렸는가......(바쇼)

 



 

하이쿠 시인 바쇼(1644~1694)의 여행 규칙



같은 여인숙에서 두 번 잠을 자지 말고, 아직 덥혀지지 않은 이불을
청하라.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지 말라.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어떤 것, 같은 땅 위를 걷는 어떤 것도 해치지
말라.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말라.
물고기든 새 종류든 동물이든 육식을 하지 말라. 특별한 음식이나
맛에 길들여지는 것은 저급한 행동이다. '먹는 것이 단순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라.



남이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시를 지어 보이지 말라. 그러나 요청을
받았을 때는 결코 거절하지 말라.

위험하거나 불편한 지역에 가더라도 여행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꼭 필요하다면 도중에 돌아서라.



말이나 가마를 타지 말라. 자신의 지팡이를 또 하나의 다리로 삼으라.

술을 마시지 말라. 어쩔 수 없이 마시더라도 한 잔을 비우고는
중단하라. 온갖 떠들썩한 자리를 피하라.



다른 사람의 약점을 지적하고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말라. 남을
무시하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은 가장 세속적인 짓이다.

시를 제외하고는 온갖 잡다한 것에 대한 대화를 삼가라. 그런 잡담을
나눈 뒤에는 반드시 낮잠을 자서 자신을 새롭게 하라.



이성간의 하이쿠 시인과 친하지 말라. 하이쿠의 길은 집중에 있다.
항상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



다른 사람의 것은 바늘 하나든 풀잎 하나든 취해서는 안 된다. 산과
강과 시내에게는 모두 하나의 주인이 있다. 이 점을 유의하라.

산과 강과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하라. 하지만 그 장소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글자 하나라도 그대를 가르친 사람에게 감사하라.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가르치지 말라. 자신의 완성을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남을 가르칠 수 있다.

하룻밤 재워 주고 한 끼 밥을 준 사람에 대해선 절대 당연히 여기지
말라.



사람들에게 아첨하지도 말라. 그런 짓을 하는 자는 천한 자이다.
하이쿠의 길을 걷는 자는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 하루가 시작될 무렵과 끝날
무렵에는 여행을 중단하라.



다른 사람에게 수고를 끼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이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출처 / 류시화님의 "한 줄도 너무 길다"에서 발췌

 

 

 

 

    

   

 

 


 


  ☼ 봄(春)의 하이쿠

  舞う街のコンビニ獨りかな (さくらまう / まちのコンビニ / ひとりかな)

   벚꽃 춤추고 / 거리의 편의점에 / 나 홀로 있네


  菜の花とところどころにいいポ-ズ (なのはなと / ところどころに / いいポ-ズ)

   유채 꽃밭과 / 곳곳의 사진 찍는 / 제각기 포즈


  へい越しに古家藤の花故人しのぶ (へいごしに / こかふじのはな / ひとしのぶ)

   폐가(廢家) 담 넘어 / 홀로 핀 등꽃 / 옛 님 그리네


  ☼ 여름(夏)의 하이쿠

  ひとり居の暑さに增やす蟬の聲 (ひとりいの / あつさにふやす / せみのこえ)

   홀로 남은 낮 / 무더위를 더하는 / 매미의 소리


  森の中みささぎ眠り苔の花 (もりのなか / みささぎねむり / こけのはな)

   고요한 숲속 / 천년에 잠든 왕릉 / 이끼 꽃 입다


  夏草や明日を待ちつつ無人驛 (なつくさや / あすをまちつつ / むじんえき)

   여름 잡초 속 / 내일을 기다리는 / 외딴 무인역


  ☼ 가을(秋)의 하이쿠

  つとめての亡父を慕う川の (つとめての / ぼうふをしたう / かわのきり)

   이른 새벽녁 / 망부(亡父)가 사무치는 / 강가의 안개


  こんにちは脇見を知らず渡り鳥 (こんにちは / わきみをしらず / わたりどり)

    내 인사에도 / 먹이 활동 열심인 / 무심한 철새


  枝先に柹烏と人の知惠くらべ (えださきにかき / からすとひとの / ちえくらべ)

   가지 끝의 감 / 까마귀와 나만의 / 지혜 겨루기


  ☼ 겨울(冬)의 하이쿠

  の里二人暮らしのありがたさ
(ふゆのさと / ふたりぐらしの / ありがたさ)

   산골의 겨울 / 홀로 아닌 노(老)부부 / 생(生)의 고마움


  夕暮れに大根の葉っぱ冬を呼ぶ (ゆうぐれに / だいこんのはっぱ / ふゆをよぶ)

   해질 무렵에 / 무우밭 잎사귀는 / 겨울 부른다


  大寺の雪道の果て小犬待つ (おおてらの / ゆきみちのはて / こいぬまつ)

   절 찾아나서 / 눈길 헤쳐 간 그곳 / 아, 강아지뿐




오늘 날, 일본 국내에는 하이쿠 결사체가 약 1800여개, 매달 발행되는 하이쿠 잡지(동인지)가 약 700여종, 하이쿠를 직접 지으면서 즐기는 인구가 약 10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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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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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스님의 눈물


옛날, 일본에 양관(良寬1758-1831)이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되었으므로
동생이 집안의 대를 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에게 마저 자식이 없어 양자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양자가 이만저만 속을 썩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밝힐 뿐 아니라, 싸움꾼에 노름까지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양자 때문에 속을 썩이다 썩이다가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양자를 패기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문중회의를 열기 위해 집안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며 당연히
그 자리에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자 큰아버지인
양관 노스님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회의가 열리자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양자의 못된 점을
조목조목 늘어놓으며, 양자를 패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양관 노스님께 결론을 내려줄 것을 청했습니다.

"이 집안의 가장 웃어른은 스님이시니 스님께서 마지막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처음부터 한 마디 말씀도 없이 묵묵히 듣고만 계셨던 양관스님께서는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습니다.

"벌써 날이 저물었구나. 이제 그만 절로 돌아가야겠다..."

방을 나온 양관스님이 짚신을 신기 위해 마루 끝에 걸터앉자,
그 문제꾸러기 양자가 달려와 신을 신겨주고 짚신끈을 묶어
주었습니다.

자신을 내몰지 않은 큰아버지 양관 노스님에 대한
뭉클한 정감을 느껴 은연중에 신을 신겨 드린 것입니다.

그때 신끈을 묶고 있는 양자의 손등에 몇 점의 물방울이 떨어져,
고개를 들어 스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 물방울은 노스님의 주름진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었습니다.


노스님의 눈물.......


그날 이후 양자의 성격과 행동은 백팔십도로 달라져 너무나 착한 사람
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족 수십 명이 달래고 꾸짖어도 고쳐지지 않았던 양자의 버릇이
노스님의 눈물로 완전히 고쳐진 것입니다.



이처럼 불자는 자비의 눈물이 있어야 됩니다. 

 

그 내면에 이웃을 향한 자비의 눈물이 있어야 하고
참된 인정이 있어야 하고 피가 통하여야 합니다.

 

일체 불보살님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모든 중생을 위한 지장보살님의 눈물이 그러하듯이...

모든 중생을 위한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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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 (료칸良寬 ; 1758-1831) 스님은 에도시대 후기의 고승이며, 시인. 화가로도 이름이 높다. 22세 때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시작했다. 철저한 청빈주의, 고행주의로 일생을 살았으며 시와 그림에 능통하였다. 료칸스님이 산깃슭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살 때였다. 어느날 밤 도둑이 들었으나 가난한 스님에게서 훔쳐갈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실망한 도둑을 붙잡고 료칸스님에게 말했다.

 

 "그대는 우리 집까지 먼길을 왔는데 빈손으로 가서야 되겠는가? 이 옷을 벗어 줄 터이니 가져 가시게." 도둑은 스님이 벗어 주는 옷을 들고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뛰었다. 벌거숭이가 된 료칸 스님은 뜨락에 앉아 달을 바라보며 중얼 거렷다. "저 아름다운 달까지 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달은 줄 수도 훔칠 수도 없구나." 

 

한번은 그 지방의 번주(藩主)가 료칸 선사를 초청하기 위해 심부름하는 사람을 보냈다. 마침 료칸 스님이 탁발을 하러 나가고 없었다. 심부름꾼은 스님을 기다리는 동안 암자 주위의 무성한 잡초를 뽑고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이윽고 돌아온 료칸 스님이 주위를 돌아보면서 탄식했다. "풀은 다 뽑아 버렸으니 이제는 풀벌레 소리도 듣지 못하겠군."

 

심부름꾼이 돌아가 료칸 스님의 궁핍한 생활을 전하자 번주는 다시 심부름꾼에게 스님을 돕겠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이에 선사는 다음과 같은 하이쿠(俳句)로 답하여 이를 사양했다. "땔 정도의 낙엽은 바람이 가져다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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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걸하다 소나기를 만나

잠시 낡은 사당으로 비를 피하네

우습구나, 바랑 하나와 바리때 하나

생애 맑고 깨끗한 무너진 집의 바람

 

 

今日乞食逢驟雨

暫時廻避古祠中

可笑一囊與一鉢

生涯潚灑破家風

 

 

- 驟雨 / 良寬

 

 

료칸[良寬, 1758-1831]은 무욕의 화신, 거지 성자로 불리는 일본의 선승이다. "다섯 줌의 식량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라는 말이 뜻하듯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무욕과 무소유의 최고 경지를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료칸은 떠돌이 걸식 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써가며 내면의 행복을 유지했다. 말 그대로의 청빈을 실천하며 산 사람이다. 단편적으로 듣게 되는 료칸의 일화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료칸의 생애를 통해 대현[大賢]은 곧 대우[大愚]와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깨달음이란 바보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료칸은 평생 명성을 멀리 하며, 어린아이와 작은 생명들을 사랑했다. 늙어서도 료칸이 제일 좋아한 것은 아이들과 어울려 연을 날리고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것이었다.

 

 

'료칸 선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이나 산으로 놀러 가기를 좋아했다. 그때마다 한참을 돌아서 간다거나 어떤 곳에서는 마치 장애물 경주를 하듯 겅중겅중 뛰어넘으며 갔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꽃을 밟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애써 핀 꽃을 밟는 것은 꽃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또한 꽃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데 그것을 밟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료칸 선사는 탁발을 하는 도중에 새 떼를 만나면 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새들이 날아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을라치면 어느새 새들이 날아와 걸망 속에 든 쌀이나 잡곡을 쪼아먹곤 했지만 선사는 굳이 그들을 쫓으려 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어느 날 료칸 선사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 배의 뱃사공은 성질이 못된 이였다. 그는 료칸 선사가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음을 알고 '좋다. 오늘 내가 이 선사가 화내는 모습을 한번 봐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손님이 선사 한 사람뿐이었다. 뱃사공은 강 한가운데서 실수인 척하며 노로 물을 튀겨 선사의 옷을 적셨다. 선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뱃사공은 '어럽쇼!' 하며 이번에는 배를 좌우로 크게 흔들어 선사를 강물에 빠뜨렸다. 선사는 헤엄을 칠 줄 몰라 곧 익사할 지경이었다. 뱃사공도 결코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강물로 뛰어들어 선사를 구해냈다.

선사는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뱃사공님,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죽었을 것이오."

배가 선착장에 닿자 선사는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덕분에 생명을 구했소. 감사합니다."'

 

 

료칸의 말년에 시인이며 제자인 데이신[貞心,1798-1872] 비구니와의 정신적인 사랑 또한 범인들과는 다른 것으로 기억된다. 료칸은 데이신을 통해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남녀간에 육체적 욕망을 떠난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이 가능할까,인간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무욕과 무집착, 무소유의 삶을 실천할 수 있을까를 료칸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정신적, 영적 경지를 속세의 우리들이 감히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허망한 꿈을 쫓아 평생을 허둥대다가 가는 우리들에게 선사의 생은 죽비소리 같은 깨침을 준다.

 

료칸의 또 다른 시가 있다.

 

 

한평생 입신 출세에는 뜻이 없어

자연 그대로 천진에 몸을 맡기고 사네

자루 속 석 되의 쌀

이로리 옆 한 다발의 땔감

누가 미오(迷悟)를 묻는가

명리는 티끌과 같은 것

밤비 내리는 초암

두 다리를 마음껏 쭉 펴고 사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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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통한 실험 등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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