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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며 염불하다


  정광란程光蘭노보살은 올해 70세이며, 호남 임례臨澧사람이다. 노보살은 며느리를 데리고 옷 수선 가게를 하며 손자가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야 했기에 낮이든 밤이든 일거리를 찾아 해야만 했다.


  노보살은 불법을 배우는데 특히 경건하고 정성스러웠다. 일이 바쁜 관계로 항상 밤 12시에 일을 마친 뒤에서야 법당에 들어가 꿇어앉아서 경전을 독송하는데, 한 번 독송하면 3시간이었다. 수면부족으로 늘 졸다 보니 경전도 자주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면 다시 주워서 정신을 차리기를 반복하면서 끝까지 버티며 독송을 마쳤다. 매일 이러다 보니 정말로 고되었다.


  작년에 내가 노보살에게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를 것을 권하며 “염불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않으시니,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반드시 왕생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노보살은 몹시 기뻐하며 연달아 “염불법문이 너무 좋아요!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후부터 노보살은 의복을 재단하면서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옷을 만들면서도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가끔 새벽 3시까지 야간작업을 하면서도 줄곧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하루는 노보살이 일을 하면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옆에 1미터도 채 안 되는 곳에 석탄 난로가 있었고 난로위에는 압력 냄비에다 죽을 끊이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경과하여 압력 냄비가 갑자기 폭발하였다. 강한 압력은 냄비 뚜껑을 천장위로 튕겨버렸고, 냄비도 폭발로 인해 쓸모없게 되었으며, 펄펄 끊는 죽은 온 집안에 뿌려졌다. 노보살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닦아보니 도처에 죽이었다. 정상대로라면 이처럼 고온의 죽이 얼굴에 묻으면 화상으로 엉망이 될 텐데, 이상하게도 노보살은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노보살의 이웃집에서도 똑같은 압력 냄비의 폭발이 있었는데, 입원으로 쓴 돈만 만원이 넘었다. 


  이 어찌 염불인은 부처님의 보호를 받는 게 아니겠는가?


               (요비耀悲거사 기록 2002년 1월 18일)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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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염불하다


  만일 누군가 당신에게 “이 세상은 무상하여 사람의 목숨을 보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신은 길을 걸을 때 수시로 재난을 소멸하기 위해 길을 걸으면서 염불을 하는 게 가장 좋다”라고 권한다면, 아마도 그에게 눈을 부라리며 그가 또 상투적인 말을 한다고 여길 것이다. 여기서 내 자신이 몸소 겪은 사건인데, 폭발사건 속에서 위험을 모면한 경험을 말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노력하고,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이 걸을 걷든 아니면 운전을 하든 간에 염불을 잊지 말 것을 일깨워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전에 광흠노스님을 친견하러 갔을 때, 노스님은 자비롭게 나에게 “염불을 해야 한다. 염념마다 부처님을 떠나선 안 된다”고 권면하셨다. 매우 부끄럽게도 나의 마음속에는 망상이 하도 많아서 늘 노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없었다. 의사생활이 너무 바쁘다 보니 최대한 길을 걸을 때마다 한 걸음 걷고 한 번 “아미타불”을 부르는 습관을 기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길을 걷는 습관은 정말로 나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나로 하여금 한 차례 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였는데, 사제 폭탄의 폭발로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는 것을 면하게 한 것이다! 


  그날은 어느 토요일 밤이었다. 그 당시 나는 꼬우쑹의 완종합병원에서 내과 의사를 맡고 있었다. 토요일은 나에게 있어서 한가한 주말이 아니라 더 바쁘고 더 학습이 필요한 날이다. 왜냐하면 병원 측에서 의술이 뛰어난 교수들을 초청하여 합동 진찰을 하고, 아울러 우리 임상하는 의사들에게 지도를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줄곧 밤 7시 넘게 바쁘다가 간신히 일단락 지었다. 대충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어머님은 아마 또 굶으시며 내가 돌아가 함께 저녁식사하기를 기다리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걸어서 계단을 내려갔다. 병원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갑자기 두 발이 스스로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해 있다가 다시 “아미타불, 아미타불……”하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그 다음 이유 없이 자동으로 몸을 뒤로 돌렸다. 나 자신도 왜 그런지 몰랐다. 무슨 일을 잊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문득 그날 밤 대만대학의 유정휘劉禎輝교수가 밤에 진료를 하는 것을 보고는(유교수는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주 자비롭고 또 성심성의껏 후학들을 가르친다) 유교수를 따라 진료를 하여 좀 더 많이 배워서 환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번은 내가 처음으로 유교수를 따라 야간 진료를 보러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진료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대략 다섯 여섯 걸음 정도, 아무튼 열 걸음이 채 안되어 갑자기 등 뒤에서 강렬한 섬광과 함께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그 진동에 의한 흔들림은 나의 가슴조차 약간 아플 정도였다. 나는 도로의 전봇대 위에 있는 축전지에 무슨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보지도 않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으며, 계속 염불하며 진료실을 향해 걸어갔다. 갑자기 사람들이 떠들썩하더니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제폭탄이 폭발했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다쳤다!” 나는 머리가 단순한데다가 평소에 또 폭탄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게다가 지금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폭탄이 폭발할 수 있느냐고 생각했다. 나의 머릿속에는 아무래도 아마 어린 동생들이 실험을 한다고 폭죽을 만드는 재료를 사용하다가 폭발한 게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갑자기 본래 병원입구에서 줄을 서서 고객을 기다리고 있던 택시기사가 보였는데, 폭발로 인해 배가 갈라지고 창자마저 튀어나온 것이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스스로 창자를 껴안고 병원까지 뛰어들어 와서 쓰러졌다. 의료진들은 서둘러 그를 위해 구급치료를 하였고, 병원 윗층에 있던 많은 환자들도 아래로 뛰어내려 왔다. 그들도 천장의 페인트마저 진동으로 떨어질 정도로 대지가 진동하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주말에 누구도 이런 참사가 발생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부처님께서 “세간은 무상하고 사람목숨은 숨 쉬는 사이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로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방금 내가 염불하여 부처님 채널의 광명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었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본래 업력의 인연을 따라 병원을 나섰을 것이고, 그러면 폭발로 인해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폭탄은 병원입구의 주차장에서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바로 한때 파문을 일으켰던 ‘태비사건台肥案件’이다.


  (도증道證법사의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다』 《毛毛蟲變蝴蝶》에서 발취함)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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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다


  1999년 여름, 이층침대가 있는 버스가 성도에서 출발하여 영현榮縣으로 떠났다.


  버스는 쾌속운전을 하는 도중에 아무런 이상현상이 없었다. 이아산二峨山을 넘어서 잇달아 매우 긴 연속 내리막길이었다. 옛 도로로 가고 있었기에 도로사정이 나빠서 노면에 수많은 작은 구덩이들이 있었다.


  갑자기 승객들은 차제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타이어가 급속도로 노면의 작은 구덩이 속으로 굴러들어갔다가 다시 튕겨져 나와 계속해서 앞의 작은 구덩이 속으로 돌진하였고, 차의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버스기사는 땀 범벅이가 되어 반복하여 급히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을 확인하고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듯이 우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큰일 났어요, 브레이크가 안 돼요!” 버스의 속도가 너무 빠른 상황에서 기어를 저속기어로 바꿀 방법이 없는데다가 도로 옆에 또 비빌 수 있는 바위가 없었기에 그는 핸들을 꽉 잡고 아래로 돌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신이 곧 찾아오게 되자 차 안의 사람들은 하나하나 얼굴이 창백해졌고, 놀라서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차 안에 하옥수夏玉秀와 오숙용吳淑蓉 두 불제자가 있었는데, 그녀 둘은 아주 빠르게 염불을 하고 있었다. 특히 오숙용의 마음은 매우 침착하였다. 그녀는 자부이신 아미타부처님께서 틀림없이 수수방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기에 명호를 부르는데 특별히 간절하였고 또 매우 힘이 있었다.


  몇 십초 뒤에 오숙용은 비록 눈을 감고 있었고, 앉아 있는 위치도 차량의 중간부분이었지만, 버스의 범퍼 앞쪽에 가로로 차 넓이보다 길고 여러 가지 빛깔이 있는 너무나 장엄한 둥근 불광佛光 한줄기가 보였다. 불광을 본 오숙용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더욱 열심히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절망 속에서 문득 제동장치의 기능이 회복되었음을 발견한 버스기사는 기뻐하며 사람들에게 브레이크가 다시 작동한다고 말해주었다.


  버스가 무사히 영현으로 돌아온 뒤에 바로 정비사를 불러 검사를 맡겼다. 버스 밑으로 들어간 정비사는 차체 뒷부분의 브레이크호스가 벌써 떨어져 나간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서 기사에게 물었다. “이 차는 진작부터 제동장치가 없었는데 어떻게 성도에서 여기까지 운전해 오신 겁니까?”


  버스기사는 분명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녀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의 기적으로 영현의 도반들은 크게 고무되었고, 대중들의 신심 또한 더욱 견고해졌다.


             (영현의 삼보제자 노인욱 기술 盧仁旭記述 2001년3월)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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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차밖에 서있다


  유장평, 남, 45세, 귀양사람으로, 모 공공기관의 운전기사이다. 매번 부모의 집에 돌아올 때마다 노인들은 항상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하며 그에게 염불하라고 타일렀다. “염불만 하면 부처님의 광명의 보호를 받게 되고, 한 사람이 염불하면 차안의 모든 사람이 평안하게 된단다.” 그러나 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는 염불을 하지 않았다.


  1999년 겨울의 하루, 유장평은 발차를 하기 전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마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다! 평소에 부모의 잔소리가 오늘은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차에 올라 편안하게 앉은 다음 정신을 가다듬고 모친이 가르쳐준 대로 핸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열심히 부처님의 명호를 몇 번 부르고, 또 타이어를 생각하며 열심히 몇 번을 불렀다. 아울러 마음속으로 축원도 하였다. ‘저 본인은 상관없지만 아미타부처님께서 이 차를 탄 사람들이 평안하도록 보호해주시기 바랍니다!’


  운귀고원雲貴高原은 귀양貴陽에서부터 안순安順에 이르기까지 평패平壩를 지나면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길에다가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도로도 비좁았다. 마침 이날은 하늘에서 짙은 안개가 내리고 있어서 유장평은 마음속으로 바싹 힘을 내어 염불하였다. 이때 맞은편에서 갑자기 덤프트럭 한 대가 달려왔다. 그는 마음속으로 놀라고 두려웠으나 여전히 염불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몰던 작은 차는 곧장 트럭 밑으로 들어갔고, 차의 천장이 완전히 뭉개졌다. 어느새 그는 멍해지면서 브레이크를 밟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를 포함해서 차안에 있던 네 사람 모두 뜻밖에 아무 일 없이 차밖에 서있었으며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로 불가사의하다.


                        (묘음거사 구술, 석정종 정리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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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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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편 재앙이 복이 되다


1. 염불하여 재난을 소멸하다


  비행기를 놓치다


  대체로 직접 염불의 영험을 겪어본 사람은 아미타부처님의 대자대비에 대해 비교적 믿기가 쉽다고 한다.


  올해 5월에 사천성 온강의 명성사에서 내가 관광객 몇 명과 얘기를 나눴었는데, 그중의 한 명이 특별히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는 내가 “어떠한 죄인도 마음을 돌려 염불을 한다면 모두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경전상의 증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관경』 하품하생의 ‘오역중죄를 지은 사람이 열 번의 칭명으로 극락왕생한’ 이 단락의 경문을 그에게 보여주었더니, 이 글을 보고 난 그는 매우 감동하여 이 책을 가지기를 갈망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혜정법사님이 편찬한 정토총서 한질을 주었다. 그는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매우 기뻐하였고, 특별히 절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그는 나와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인의 일생동안의 수행경력과 염불의 여러 감응들을 말해주었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은 일생동안 염불을 하여 수많은 감응들이 있었기에 아미타부처님에 대해 자연히 매우 신앙하고 있었지만, 아직 아미타부처님께 이렇게 크신 자비가 있어서 누구라도 염불하면 모두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며, 이전에 비록 염불을 하고 있었고, 매사가 뜻대로 되었으며, 아미타부처님에 대해 이제까지 의심한 적이 없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매우 막연하였다고 했다. 이제 마침내 염불을 하면 현세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정토에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마음에 갑자기 의지할 곳이 생겼으며, 붕 떠있던 마음도 드디어 놓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줄곧 홍법을 하겠다는 소원이 있었으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었는데, 이제 문득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거사님의 이름은 장기강張琦强이고, 나이는 50여세이며, 성도사람으로, 해외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한 번은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석조불상 한 점을 보았는데, 불상 옆에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가 있었다고 하였다. 어쩌면 부처님의 자비로운 얼굴이 그를 감동시켰을 수도 있고, 어쩌면 본인의 여러 생의 선근이 발현된 것 일수도 있는데, 그 후부터 그는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다만, ‘나무南無’를 ‘나무’로 읽지 않고 ‘난우’로 읽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아미타부처님께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내가 월병(月餠:중국 사람들이 추석에 만들어 먹는 둥근 과자)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였는데, 이튿날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정말로 그에게 월병을 준 것이다. 60년대 중국의 농촌에서 월병을 먹는다는 것은 어린애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과욕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후부터 그는 매일매일 틈만 나면 염불을 하였다. 책이나 필기도구 등이 필요할 때 부모님께 말씀드릴 용기가 나지 않아 아미타부처님께 소원을 빌면 그 소원들이 다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는 어릴 적부터 아미타부처님이 매우 영험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 출가를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제까지 염불을 중단한 적이 없었으며, 비록 현재 해외에서 장사를 하고 있지만 똑같이 매일 염불을 한다고 하였다.


  한 번은 홍콩을 경유하여 대륙으로 돌아오는데, 이유 없이 시간을 잘못 보았고, 택시기사도 엉뚱한 방향으로 차를 잘못 몰아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행기가 날아가버린 뒤였다. 그는 아쉬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갈아탈 수속을 밟으러 갔는데, 공항의 직원이 그에게 말했다. “그 비행기는 이륙한지 십여 분만에 사고가 나서 모든 인원이 조난을 당했으니, 당신이 그 비행기를 놓친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당시 공항에는 또 염불하는 독실한 노보살들이 있었는데, 본래 대륙으로 성지순례를 가려 하였으나 무슨 영문인지 똑같이 이번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석지수釋智隨 구술, 석정종釋淨宗 정리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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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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