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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아미타불근본비밀신주경』에서


아미타불의 명호에는 무량무변하고 불가사의하고 매우 깊고 비밀스러우며,

수승하고 미묘하고 위없는 공덕을 구족하고 있느니라.

어째서 그러한가?


‘아미타’ 세 글자 속에는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성문·아라한

모든 경전·다라니신주·무량한 행법들이 다 들어있느니라.


그런 까닭에 저 부처님의 명호가 바로 위없는 진실하고 지극한 대승법이며,

바로 위없는 수승하고 청정한 요의의 묘행이며, 바로 위없는 가장 수승하고

미묘한 다라니이니라. 이제 게송을 설하겠다.


아자는 시방삼세불이요,

미자는 일체제보살이요,

타자는 팔만 가지 거룩한 가르침이요,

세 글자 속에 다 갖춰졌느니라.


사리불이여!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에 대해 듣고서 뛸 듯이 기뻐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칭념하고 깊이 믿어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몸으로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을 누리거나,

비천함을 바꾸어 부귀함을 얻게 하거나,

과보를 얻어 숙세의 업에 따른 병환의 고통을 면하거나,

단명함을 바꾸어 수명이 연장됨을 얻거나,

원수가 원한을 내려놓아 자손이 번영하고

심신이 안락하며 뜻대로 만족할 수 있게 되느니라.

이와 같은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阿彌陀佛名號,具足無量無邊、不可思議、甚深祕密、殊勝微妙、無上功德。

所以者何?「阿彌陀」三字中,有十方三世一切諸佛,一切諸菩薩、聲聞、阿羅漢,

一切諸經、陀羅尼神咒、無量行法。

是故,彼佛名號,即是爲無上真實至極大乘之法,即是爲無上殊勝清淨了義妙行,

即是爲無上最勝微妙陀羅尼。而說偈曰:

阿字十方三世佛

彌字一切諸菩薩

陀字八萬諸聖敎

三字之中是具足

舍利弗!若有衆生,聞說阿彌陀佛,不可思議功德,歡喜踴躍、至心稱念,深信不懈,於現在身,

受無比樂;或轉貧賤獲得富貴,或得果免宿業所追病患之苦,或轉短繆壽延長,或怨家變恨,

得子孫繁榮,身心安樂,如意滿足。如是功德,不可稱計。


(따라서 한 구절 아미타불은 부처님의 왕이요, 법의 왕이요, 진언의 왕이요, 공덕의 왕임을 알 수 있다.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한 부처님만 부르는 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모든 보살·모든 경전과 진언을 지송하고 모든 수행을 닦는 것과 같다. 이른바 ‘팔만사천 법문을 육자로써 전부 거두어들인다’는 것이고, 또한 ‘8교를 죄다 포괄하고 5종을 원만히 섭수한다’는 것이다. 임종할 때 정토에 왕생할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심신의 안락함을 얻게 된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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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백팔 염불로 원결을 풀고 영가를 천도하다 


1994년에 부친께서 위독하시어 타이베이 삼군총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병원 11층의 7호 병실에 있었는데 평소 대부분 혜정이 곁에서 병간호를 하였다. 옆방 6호 병실의 환자는 70세 노부인이었는데, 어느 날 오후에 6호 병실의 간병인이 와서 노부인이 나에게 가르침을 청할 일이 있다며 옆방으로 좀 건너가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바로 그녀를 따라 6호 병실로 갔더니 노부인의 얼굴에 피곤하고 근심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무슨 일로 찾으시냐고 묻자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눈만 감으면 사람 그림자 두 개가 보이는데 얼굴만 뚜렷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고 또 산 하나가 무너져서 저를 덮칠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너무 두려워서 감히 눈을 감을 수가 없기 때문에 계속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괴롭습니다. 스님, 이건 무슨 원인일까요?”라고 말했다

      

이것은 이른바 원친채주의 장애입니다. 만일 원수라면 빚을 받으러 온 것이고, 조상이나 친인척이라면 공덕을 달라고 온 것입니다. 우리는 세세생생 모두 수많은 원친채주들이 우리에게 그들을 위해 공덕을 지어서 천도를 해주고 이고득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당신은 연세도 많고 병도 위중하고 신체가 허약하므로 쉽게 인연 있는 귀신들과 감응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만 이것은 결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당신이 나무아미타불육자명호만 부르면 해결할 수 있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습니다. 염불을 하다가 잠이 오면 회향게 한번 읽고 잠들면 됩니다. 아미타불의 공덕은 대단히 커서 육도중생을 구제할 수 있으므로 칭념만 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곁에 앉아있던 간병인은 내가 노부인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는 본인도 불교도라며 매일 조석으로 부처님께 향을 올리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스님들처럼 조석기도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그녀에게


 당신은 비록 조석기도를 할 시간이 없다지만 향을 피우고 나서 최소한 백팔 염주를 돌리며 백팔 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그 다음에 회향게 한 번은 읽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해도 이·삼분밖에 안 걸립니다.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해도 이·삼분도 없을 리는 없습니다. 염불은 간단하면서도 공덕이 커서 매일매일 실천한다면 조석기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전에 향까지 올렸는데 그냥 떠난다면 너무 아깝지 않나요? ·삼분의 시간은 누구나 다 있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마음이 없을까봐 두려울 뿐이지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일리가 있다며 이제부터 내가 가르쳐준 대로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부친이 계신 7호병실로 돌아왔다. 이튿날 오전 755분에 그 간병인은 6호병실로 출근을 하면서 먼저 7호병실로 나를 찾아왔다. 병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매우 기뻐하며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나에게 건너면서


“스님! 이 해바라기 씨를 드십시오. 전 오늘 매우 기쁩니다. 저는 연속 일주일동안 매일 밤에 저의 조상과 남편이 꿈에 보였었는데 어제 밤에만 꿈속에 나타나지 않고 아침까지 잠을 푹 잤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조부와 남편이 연속 일주일 동안 꿈속에 나타난 것은 아무런 원인이 없는 게 아니다. 아마 그녀에게 공덕을 지어 그들로 하여금 이고득락하게 해달라는 암시일 것이다. 그녀는 어제 밤 향을 올릴 때 내가 말한 대로 최소한 백팔 번 염불을 했더니 그 공덕으로 그녀의 조상이 이익을 얻고 다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염불은 정말로 간단하고 빠르고 공덕이 크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급히 옆 방 6호 병실로 출근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7호 병실로 와서 나에게 말했다.


 그 노부인도 어제 밤에 아주 잘 주무셨어요. 주무시다가 소변을 봐서 침대 시트가 다 젖었는데도 계속 주무셨습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매우 감동하고 위안이 되었다. 염불을 했기에 귀신이 이미 아미타불의 공덕을 얻고 떠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연세도 많고 병도 위중한데다가 잠도 못 잤으니 결과는 몹시 위험해졌을 것이다.    (혜정스님 적음)

 

출처/ 純淨時代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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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이 적힌 문자에 손이 닿자 광명이 보이다 


경전에서 ‘육근호용六根互用’을 설한 적이 있다. 즉,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귀로는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등등이다. 

 

이것은 신통의 경계로서 범부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초능력이 있는 사람 가운데 귀로써 글을 보고 또는 손으로 글을 인식할 수 있는 자도 있다. 

대만대학의 이사잠李嗣涔 교수와 중앙연구원의 왕유공王唯工 교수, 그리고 기타 몇 분의 대학교수들이 요 몇 년동안 과학적인 방법과 기구를 사용하여 손가락으로 글자를 식별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어린이 세 명을 데리고 실험을 진행했었다고 한다. 수백 차례의 시험을 통해 그들에게 모두 손가락으로 글자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실험방법은 문자 또는 부호(기호)·그림 등을 종이 위에 적거나 인쇄하여 밀봉포장한 다음에 요 몇 명의 어린이들이 손가락으로 접촉하게 하여 그들이 이속에 어떤 글자 또는 어떤 그림인지를 감지하게 하는 동시에, 측정 기구로 그들의손바닥·팔뚝 그리고 두뇌의 반응을 측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세 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몇 십초 또는 몇 분 이내에 백프센트 정확하게 손으로 ‘본’ 것이다. 

1999년 8월 말, 며칠 동안의 실험 도중에 어떤 교수가 ‘불佛’자를 적어 그들에게 주면서 손으로 식별하도록 하였다. 신기하게도 이 ‘불’이라는 글자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불’자가 아닌 온통 매우 밝은 빛이었으며, 빛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었고, 심지어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상쾌해지게 만드는 우렁찬 웃음소리도 들렸으며, 스님·절 등도 보였다고 한다. 또한 대만식 발음기호로 적은  ‘ㄈㄛ’, 또는 영문으로 적은 ‘Buddha’에서도 밝은 빛이번쩍이는 것만 보이고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다른 글자나 그림이라면 바로 어떤 글자 또는 어떤 그림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빛도 없고 소리도 없었다고 하였다. 만약 ‘불’자와 함께 연결되어 있는 문장이었을 때, 예컨대 ‘불산佛山’·‘불미급佛米級’·‘비불리산장比佛利山莊’· ‘애불륵사봉埃佛勒斯峰(에베레스트산)’ 등의 경우, 그 결과 앞뒤 글자만 보이고 

‘불’자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불’자가 있는 곳은 온통 밝은 빛이었고, 심지어 불자 근처의 글도 광명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고유한 부처님의 명호, 예컨대 ‘아미타불’ 혹은 ‘약사불’·‘미륵불’ 등이라면 이를 더욱 초월하여 광명만 있을 뿐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약사불’을 식별할 때에는 “한약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중간에 어떤 사람이 귀신 ‘귀鬼’자를 그 중의 한 명에게 식별하라고 주었더니, 그는 종잇조각을 만지면서 “온통 캄캄하다”고 말했다. 


일분 정도 지나 또 “매우 어두운 검붉음”이라 말하였고, 30초 더 지나서야 ‘귀’자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방금 줄곧 매우 춥고 매우 불편했었다고 하였다. 
(이상의 실험은 이사잠 교수가 지은 『믿기 어렵다―과학자들이 신비한 에너지장을 탐구하다』에서 발표함)

요 몇 명의 어린이들이 정말로 초능력에서 말하는 세 번째 눈이 있거나 외부의 영적 존재가 붙었는지는 우선 논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번의 실험이 뜻밖에도 몇 분의 과학자들로 하여금 놀랍고 찬탄하고 감동하고 흥분하고 온갖 상념이 끓어오르게 하였다. 또한 견문을 크게 넓혔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으며, 실험실 전체의 분위기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불교내의 신성한 어휘 또는 특수한 음절에 신기한 에너지와 수승한 기능이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범부의 육안으로는 흰 종이에 검은 글자뿐이어서 전혀 특이할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초능력(영적 세계)의 ‘세 번째 눈’ 속에는 찬란한 광명 또는 장엄한 이상異像들로 보였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상 밖에도 부처의 세계가 존재하며,  ‘부처님 명호’가 불국토로 들어가는 통로임을 드러내고 증명해낸 것이다.

경전에서 늘 말씀하시길 “부처님마다 모두 치성熾盛한 광명이 있다”고 하셨다. 이른바 “부처님과 부처님의 도는 똑같고, 광명과 광명에는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중에 특별히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은 “존귀하고 최고여서 제불의 광명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고 찬탄하셨다.

‘부처님 명호’와 접촉하면 밝고 따뜻하고 편안했지만,
‘귀’자와 접촉하면 반대로 온통 캄캄하고 음랭하며 매우 불편함을 느낀다.

따라서 중생이 부처님을 억념하며 염불하면 그 사람의 몸에는 불광이 생기고, 현생에서는 본래 있던 지혜를 계발하고 어두운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으며, 임종할 때 정토에 왕생하여 다 같이 무량광 무량수를 증득할 수 있다.     (혜정 적음)


생각건대: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은 가장 존귀하고 제일이어서 제불의 광명이 능히 따라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처님의 광명이 있는 곳에는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원결이 풀리며 악은 선으로 바뀌게 된다.
만약 삼악도에서 이 광명을 본다면 다시 고뇌가 없고 모두 해탈을 입게 된다.
귀신이 있는 곳은 불길한 곳이므로 응당 부처님의 명호를 둠으로써 망령을 천도해야 한다.

출처 /純淨時代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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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이 정수리에 머물다


1. 염불하여 광명이 나오다


  염불하여 광명이 나오다


  (1)

  해창촌海昌村에 어느 노파가 죽은 뒤에 영혼이 가족의 몸에 붙어서 자신이 살아생전에 겪었던 일들에 대해 하소연하였다. 게다가 저승의 일까지도 너무나 상세하게 말하였기에, 사람들이 그 사람 주위를 둘러싸고 경청하고 있었다.


  한번은 사람들이 넋을 잃고 듣고 있었는데,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갑자기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 노파의 영혼이 그에게 말했다. “자네가 항상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어찌 성불하지 못하겠는가?”


  그 사람이 물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노파가 답하기를, “자네가 마음속으로 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자네의 몸에 있는 광명을 보았네”


  일자무식한 촌민이 우연히 염불을 몇 번 한 것뿐인데도 귀도의 중생들이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였으니, 하물며 오래 수행한 사람이겠는가? 그래서 염불의 공덕은 불가사의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연지대사의 『죽창수필』)


  (2)

  1944년, 나는 아내 원신과 함께 적성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때 원신의 나이가 25세였다.


  어느 날 아침에 아내는 하산하여 논밭사이의 작은 길을 걸으면서 일심으로 염불하고 있었다. 이때 태양이 막 산위를 올라와 아침햇살이 대지를 두루 비추고 있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우연히 보게 된 아내는 머리위에 둘레가 어깨넓이와 가지런하고 직경이 대략 두 자 남짓한 원형의 빛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그 미묘하고 찬란한 빛은 불상 뒤편의 원광을 닮았다.


  아내는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여겼지만 여전히 계속 걸으면서 염불하였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는데, 원광은 여전히 매우 밝았다. 아내는 이것이 염불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험 삼아 염불을 멈추고 세속의 잡다한 일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그림자를 보았더니 원광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이로써 염불하면 몸에 불광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해량의 『가허즉허可許則許』)


  (3)

  내가 예전에 미국에서 홍법을 한 적이 있었는데, 법회가 끝난 뒤에 어떤 미국인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저는 신통을 배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기를, 그가 본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들의 입에서 전부 한줄기 광명이 나온다고 하였다. 성심이 있는 사람들이 나타낸 광명은 엄청 커서, 거의 온 지구를 감쌀 정도로 컸고, 성심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낸 광명은 아주 작아서 한 번씩 깜박거릴 정도로 미약한 광명일 뿐이라고 했다.


  그 미국인이 말하기를, 본인은 이처럼 수승한 경계를 봤기 때문에 불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법장스님의 『보은불칠』)




불칠법회에서 방광하다


  영암산에서는 매번 불칠법회를 할 때마다 항상 불가사의한 감응들이 있곤 한다.


  한번은, 불칠법회를 하는 날 아침 일찍이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산문으로 몰려와서 다짜고짜 문지기스님에게 물었다.


  “노스님! 어제 밤 절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손실이 크지 않겠지요?”


  “화제라니요? 어디에 화제가 있었던가요?”


  “예! 어제 밤 절에 불이 났었잖아요?”


  “누구한테서 들은 말인가요?”


  “누구한테 들은 게 아니라 저희들이 두 눈으로 직접 본 거예요. 어제 밤 10시쯤 되었을 때, 스님네 절에서 불빛이 활활 타올라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였어요. 날이 어두워서 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특별히 달려와서 보는 거예요”


  그러고는 문지기스님이 동의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벌떼같이 절 안으로 뛰어 들어갔으며, 절 안의 모든 물건들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것을 다 확인하고서야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산하였다.


  이 일은 급속도로 빨리 퍼져나가서 절 안의 사람들도 다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것은 어제 밤에 염불을 해서 얻은 감응이라고 생각했다.   (석진화 『참학쇄담參學瑣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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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방광하다


  모친이 전수염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경정산 홍원사에서 출판한 『염불감응록』 한 질을 모친에게 보내주었다. 이 책의 사례들은 대다수가 나무아미타불을 전념하여 얻은 수승한 이익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모친은 몹시 기뻐하며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아주 정성스럽게 꾸준히 염불정진하였다.


  한번은 모친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어느 날 밤에 모친이 염불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평소보다 훨씬 밝은 광명이 방안에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형광등의 불빛보다도 2,30배나 더 밝은 이 광명은 눈부실 정도로 특별히 밝았으며, 대략 2,3분 정도 지속하였다. 모친이 이 빛의 근원지를 찾아보았더니, 『염불감응록』 제2집 표지의 극락접인도에 있는 불상에서 나온 광명이었다.


  내가 모친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아미타부처님께서 어머님에게 나중에 틀림없이 어머님을 서방극락세계로 영접하러 오실 거라고 수기를 해주시는 것이며, 또한 모든 염불인들에게 명호를 부르며 대원선에 오른 사람은 반드시 영접하러 오시고 극락왕생하여 성불하게 해주시겠다고 수기를 해주시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동림사 종친 기록 2005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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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이 몸을 보호하다


  위서금거사는 29세 때 토성土城의 승천사承天寺에서 삼보에 귀의하였다. 비록 스님이 그에게 염불을 하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본인은 좌선에 취미가 있었기에 오로지 선수행만 하고 염불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대략 반년이 지난 8월 26일 아침, 집안에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하여 전신에 55%가 회상을 입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상반신의 중요부위였으며, 얼마 후 사람도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깨어난 뒤에 위거사는 본인 스스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그때 나의 의식이 몽롱하여 점점 더 음랭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변은 몹시 어두워서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참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나를 데려가려는 것 같았는데, 죽음이 두려워서 발부둥치며 일어서려 하였으나, 화상의 정도가 너무 심하여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경에서 ‘사람의 목숨이 덧없다’는 말씀을 이때 나는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문득 귀의할 때 스님이 나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치던 장면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크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면서 일심으로 아미타불께서 목숨을 구해주기를 빌었다. 정말로 필사적으로 진심으로 간절하게 불렀다. 한참 염불하고 있는데, 갑자기 빛 한 덩어리가 나의 전신을 감싸주더니 순식간에 모든 어둠과 음랭함과 두려움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광명이 내 몸을 비추자 추운 겨울에 햇볕을 쬐는 것보다 더 따뜻하고 편안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갑자기 아주 고요하고 편안해졌으며, 몸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아미타부처님께서 방광을 하여 나를 구해주려 오셨음을 직감하였다. 그 빛은 매우 강하고 밝았으며, 마치 풍차처럼 ‘쏴, 쏴!’하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회전하였다. 그 느낌은 매우 친근하고 익숙하였는데, 마치 아기가 온 마음으로 어머니를 의지하는 것처럼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놓아버렸으며, 마음이 탁 트이면서 몹시 홀가분하고 몹시 자재하였다.


  위거사는 말을 하면서도 마치 부처님의 광명 속에 잠겨있는 듯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있었다. 염불을 하고 있는데 귓가에서 사람들이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는 남자의 목소리도 있었고 여자의 목소리도 있었는데 다들 기쁜 목소리로 “그가 깨어났다, 그가 깨어났다!”고 외쳤다. 이때 광명도 사라졌다. 나는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마침 응급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살아난 것을 보고서 다들 한 숨을 돌렸다.


  위거사가 또 말했다.


  사실 가스폭발이 있기 며칠 전에 그는 이상한 일을 겪었다. 그날 그가 좌선을 하여 마음이 아주 고요해졌을 때 갑자기 두 세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몹시 흉악스런 말투로 그를 가리키며 “찾았다, 찾았어! 바로 이 사람이야, 바로 이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그런데 또 어떤 여자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더 이상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마라. 내가 당신들을 천도시켜 주면 안 되겠니?


이 사람은 선근이 많은 것 같은데 당신들은 이 사람의 혜명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그만둘 수 없다면서 “안 돼! 우리는 반드시 그에게 복수하고 말겠어!”라고 말했다. 그 여자가 다시 그들을 타이르는 말들을 했으나, 그들은 기어코 가만두지 않겠다고 고집하였다. 그 말을 들은 위거사는 온몸에 소름이 끼쳐서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내용은 여전히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마음속으로 엄청 불안해하였다. 결국 이삼일 뒤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길흉회복은 모두 우리 자신이 지은 업으로,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듯이 절대 원인을 심지 않았는데 과보를 받는 일이 없다. 내가 이 사고를 당한 것도 틀림없이 전생에 그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기꺼이 나의 과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본래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지금 큰 재난에도 죽지 않은 것은 무거운 업을 가벼운 과보로 받은 것이라 말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때 만일 염불을 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고, 게다가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정토문서』 제3집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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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부처님께서 염불하는 소리 가운데 서계시다


  나에게는 염불하고 독경하는 습관이 있어서 새벽기도와 저녁기도를 하는데 십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얼마 전에 깡패 조직의 두목 급 인물이 사형을 당했는데, 그가 형장에서 사형을 당하던 그 순간 나는 문득 느끼는 바가 있었다. 느낌상 어떤 사람이든 간에 형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두려움을 느낄 텐데 이 사람은 아주 용감한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제사를 지내며 절을 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무척 슬펐다.


  이전에 그가 교도소에서 관세음보살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림이 아주 섬세하고 좋았던 것으로 봐서는 그도 인재였을 텐데 한 걸음 잘못 디뎠기 때문에 계속 잘못된 쪽으로 걸어간 게 아닌가 싶었다. 바로 이때 나는 작은 소원 하나를 빌었다. 나에게 매일 염불하고 독경하는 습관이 있으니 그에게 회향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전혀 안면이 없었고, 텔레비전에서만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이렇게 염불해서 그에게 회향을 해주면, 그가 도대체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삼일 째 염불하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염불과 독경을 하고 있었다. 이때 나는 그가 온 것이 보였다. 그의 곁에는 옛날 복장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그러나 정작 본인이 입고 있는 것은 일반인들과 같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절을 받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아가씨, 저는 아가씨에게 절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부처님께 절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아가씨가 부르고 있는 명호 속에 계시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 “요 며칠 동안 독경을 하여 저에게 회향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제가 이렇게 해도 당신에게 효과가 있습니까? 저는 당신과 전혀 안면이 없는데도 받을 수 있습니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움도 됩니다. 제가 이승에서 죄를 지어 심판을 받고 사형을 당했는데, 지금은 두 번째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아가씨가 저를 위해 독경을 해주셔서 저의 죄업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위안이 되었다.


  이때, 갑자기 그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아가씨, 아가씨는 선서(善書:선을 행할 것을 권하는 책)를 보내고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나는 자주 바구니에 책을 담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나눠주기도 하고, 가끔씩 절에 보낼 때도 있었다.)


  “마땅히 방향을 바꿔서 구치소나 교도소로 보내야 합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가씨, 그런 곳에 간다고 해서 무슨 금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같이 법을 어긴 적이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사실 더욱 이런 책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저지른 잘못들이 좀 더 많거든요”

  “좋아요!” 그의 요구에 승낙하고 나서 나의 꿈도 끝이 났다.


  그러나 일이 비교적 바쁜 관계로 나는 그만 이 일을 잊어버렸다. 아마도 두 달쯤 지났을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절에 책을 가져다주고는, 간 김에 사람들이 가져다놓은 책들을 가지고 돌아와서 봤다. 나는 그 책의 내용을 보고서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어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에 출판사에서 본인들이 직접 “이런 책들은 응당 교도소와 구치소에 보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서야 나는 지난번의 그 꿈과 내가 승낙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승에서의 일들은 죽으면 다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죽은 후에도 정말로 두 번째 심판이 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을 더욱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여미금吕美琴 원고 제공 1997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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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불로써 겨루다


  당나라 때, 선도대사께서 장안의 서경사에서 금강법사와 염불의 수승함과 열등함에 대해 겨룬 적이 있었다. 대사께서 법상에 올라가서 발원하시기를, “여러 경전에 의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염불이라는 한 법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하루에서 칠일 동안, 일념에서 십념까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자는 반드시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셨다. 만일 이 일이 진실하여 중생을 속이는 말씀이 아니라면 법당에 계신 모든 불상들이 동시에 방광할 것이다. 만일 이 염불법문이 허망하여 중생들이 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면, 나 선도를 이 법상에서 곧바로 대지옥에 떨어져 긴 시간 고통을 받으며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대사께서 주장자로 법당 가운에 한 불상을 가리켰더니, 법당 내의 모든 불상들이 일제히 눈부신 광명을 놓았다.  (당나라 도경·선도의 『염불경』)




정토의 증인


  신장이가 본 것


  1994년 여름, 구영장부부는 여섯 살 된 손자 신장信璋를 데리고 오랜 이웃인 서경귀의 집에 가서 염불을 하였다. 신장은 큰 소리로 아주 열심히 염불하였는데, 애티가 나는 염불소리는 그 자리에 있던 대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조금 지나서 신장은 갑자기 옆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제가 아미타부처님께서 금빛이 나는 집안에서 설법하는 것을 봤어요”

  “어린이가 거짓말하면 못써”

  “할머니, 거짓말 아니에요. 정말로 아미타부처님을 봤어요”


  집에 돌아온 후, 신장은 또 할머니에게 “우리가 염불할 때, 아미타부처님께서 금빛이 나는 집안에서 설법하시는 것을 봤어요. 아미타부처님의 연꽃은 엄청 컸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연꽃은 좀 작았어요. 그리고 금빛이 나는 새와 금빛이 나는 나무도 봤는데, 집들도 다 금색이었어요”라고 말했으며, 또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그곳의 땅에는 흙이 없고, 땅위에는 전부 금색이었어요. 도처에서 금빛이 번쩍번쩍하는데 아주 아름다웠어요”라고 말했다.


  또 하루는, 신장과 할머니가 집에서 중국대륙의 경치를 소개하는 ‘대륙심기大陸尋奇’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대륙의 경치가 맑고 아름답다며 찬탄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신장이 듣고 나서 바로 “할머니, 그 경치는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서방극락세계야말로 아름다운 거예요!”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불법을 배운 지 얼마 안 되고, 또 글을 몰라서 경전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장이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도반(남편)인 구거사에게 물었다. “우리 신장이가 염불할 때 극락세계와 서방삼성, 그리고 그곳의 집과 나무와 새들이 전부 다 금색이라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구거사가 대답했다 “『아미타경』에서 말씀하시기를, 극락세계의 땅은 황금으로 되어 있고, 궁전누각들은 칠보로 장엄되어 있으며, 나열되어 있는 가로수들도 온갖 보배들로 이루어졌고, 부드럽고 우아한 새소리는 미묘한 법을 설하고 있으며……” 구거사의 소개를 듣고 난 할머니는 그제서야 신장이 한 말들이 전부 진짜였다는 것을 믿었다.  (구영장 구술, 경신 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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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이가 본 것


  나의 아버지 임창추林彰秋가 왕생한 후, 아미타부처님의 신력통의 가피로 인해 내 아들 임영정林穎廷이 수승한 기회를 만나서 서방극락세계를 방문하여 『무량수경』에서 설한 서방극락세계의 갖가지 성스러운 경계의 수승하고 장엄함을 증명하게 되었으니, 삼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의 아버지가 왕생한 후에 나는 늘 아들에게 “평소에 할아버지가 너를 그렇게 아끼셨는데, 지금 할아버지께서는 서방극락세계에 계신단다. 할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아미타불만 부르면 할아버지가 들을 수 있어! 네가 아미타불만 부르면 할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실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2003년 11살인 영정이가 초등학교 4학년을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가 왕생한지 5주년 되기 며칠 전인 1월 21일 아침에 영정이 어머니가 어서 기상하여 학교 갈 준비하라고 그를 불렀더니, 영정이가 일어나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말했다. “어머니, 할아버지께서 저를 극락세계로 데려가서 음식을 먹게 해주셨는데, 정말 맛있어요. 왜 저를 깨웠어요!”


  저녁식사를 할 때, 그의 누나가 “정말 맛있다”라고 말했더니, 영정이가 옆에서 듣고는 “흥”하면서 “서방극락세계의 음식이야말로 정말 맛있는 거야! 지금 먹고 있는 것을 어떻게 맛있다고 할 수 있니?”라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너를 서방극락세계로 데려간 거니? 그리고 너는 또 어떻게 할아버지가 너를 데려갔다는 것을 아니?”


  영정이가 대답했다.

  “어머니도 참! 제가 어떻게 할아버지를 못 알아볼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는 그저 머리를 빡빡 깎고 몸에서 빛이 나고 아미타부처님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어요. 어머니 그거 아세요? 할아버지 발밑에 있는 연꽃은 엄청나게 컸어요! 대형 트럭의 타이어크기와 같았는데, 분홍색이었어요.


저와 할아버지는 연꽃의 한가운데 서있었는데, 가운데는 파란색이었고, 우리가 하늘에서 날고 있는데, 구름이 발밑으로 흘러갔어요. 또 바람이 불어오니 정말 너무너무 시원했어요! 얼마 안 돼서 수많은 연꽃들이 보였는데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보라색·분홍색·노란색·흰색도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그 연꽃에는 우리들의 이름도 있다면서 아미타불을 자주 불러야 연꽃이 점점 더 크게 필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제 연꽃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으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곳의 집들은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황궁 같았어요. 그런데 집과 나무들은 전부 다 황금으로 되어 있어서 빛이 나고 땅에는 죄다 황금으로 깔려 있었어요. 그리고 나뭇잎들도 우리 집 바깥에 있는 나뭇잎들과 달랐어요! 그 나뭇잎들은 어머니가 착용하고 다니는 옥패와 같았는데, 여러 가지 색깔들이 있었고, 전부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그것은 칠보유리가 아니니?”

 

  영정이가 대답했다.

  “저도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 예뻤어요. 어머니도 이제부터 향수를 바르지 마세요. 서방극락세계의 하늘에는 늘 여러 가지 색깔의 꽃잎들이 보슬비처럼 내리고 있어요. 그런데 나와 할아버지의 몸은 젖지가 않았어요. 내가 깊이 숨을 한 번 들이마셨더니 시원하면서도 아주 상쾌한 향기가 나서 냄새가 아주 좋았는데, 절대 여자들이 바르는 향수 같지 않았어요! 그곳에는 또 엄청나게 큰 분수가 있었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그곳의 물은 노래도 부를 줄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그 물을 받아서 나더러 마시라면서 이 물을 마시면 내가 더욱 지혜가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물은 달콤하면서 시원했어요. 물을 마시니까 머리와 가슴도 따라서 시원해지더니 수영을 한 것보다 더 편안했어요”


  이어서 영정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 우리 이곳에는 불을 켜야만 빛이 나고,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 달라요? 정말 번거롭잖아요! 서방극락세계는 정말 좋은 곳이에요. 그곳 사람들은 사람마다 생김새도 똑같고 복장도 똑같고, 몸에는 이상하게도 전부 빛이 났어요. 나무에도 빛이 나고 집도 빛이 나고 땅도 빛이 나고 물도 빛이 나고 사람도 빛이 났어요. 형광등이 없이도 빛이 나니 정말 좋았어요. 빛이 약간 노란색이면서 부드러워서 아주 편안했어요. 그곳에 또 엄청 높은 산이 있는데, 무슨 산인지 맞춰보실래요?”


  누나 의진依蓁이가 말했다.

  “아리산이다!”


  영정이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누나는 정말 못 맞추네, 아리산이 어떻게 서방극락세계에 갈 수 있겠어! 제가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게요, 제가 본 그 산은 아미타부처님의 발가락이었어요. 나는 아미타부처님과 우리 집의 아미타부처님이 똑같이 생겼는지 너무 보고 싶었는데, 아미타부처님은 너무 높고 너무 컸어요!


나는 아미타부처님의 얼굴을 아예 볼 수가 없었지만 아미타부처님에게는 정말정말 좋은 냄새가 났어요. 향수를 바르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향기로울 수 없었어요. 누나, 내가 보기에 누나도 빨리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겠어. 그곳에 가면 누나의 피부도 희고 부드럽게 변할 거야. 할아버지는 나더러 당신과 함께 아미타부처님께 절을 하자로 했어요. 할아버지는 또 나에게 배가 안 고프냐고 물었어요. 더욱 신기한 것은 그곳의 물건들은 날아다닐 수 있어서 정말 대단했어요.


 내 앞까지 날아와서 멈추었는데, 그곳의 음식들은 엄청 맛있더라고요. 내가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나를 깨워버려서 너무 아쉬워요! 만일 어머니가 저를 깨우지만 않았으면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게 음식을 좀 가져가게 해달라고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을 거예요”


  연달아 며칠 동안 영정이는 수업이 끝난 후 재빨리 숙제를 다 해놓고 자발적으로 조금 일찍 잠을 자겠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호기심에 물었다.

  “영정이 너는 요즘 왜 이렇게 일찍이 잠을 자려는 거니? 어디 몸이 불편하니?”


  영정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NO! 제가 좀 더 일찍 자려고요. 그래서 계속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하고 부르다 보면 할아버지께서 다시 한 번 저를 서방극락세계로 데려가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곳의 음식들은 정말 너무나 맛있어서 정말 다시 먹고 싶거든요”    (2003년 6월 21일 임어국林於國 기록)


글 출처 / 純淨時代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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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도에 떨어짐을 면하다


  진실한 꿈


  나의 부모님은 모두 독실한 불제자이다. 채식하며 염불하고, 살생을 삼가며 방생하고, 선행을 즐기며 베풀기를 좋아하였고, 특히 인과응보를 깊이 믿었다. 그분들의 생활 속에서 어떤 여의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항상 순순히 받아들이고 여태껏 하늘을 탓하고 남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7살 되던 그해 봄에 전염병의 유행이 몹시 창궐하여 도시 전체의 남녀노소 절반 이상이 모두 중병에 걸렸는데, 나 역시 모면하지 못하고 병에 걸려 침대에 누워있었다. 고열만 나고 땀이 나지 않아서 유명한 의사들을 두루 청하여 침을 맞고 약을 먹어봤으나 전부 효과가 없었다. 부모님은 온종일 나의 머리맡을 지키며 수심에 차 있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 하나의 신심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들의 딸은 불보살님이 보호해주시므로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문득 자신의 병이 완전히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체중이 많이 줄어서 길을 걸을 때 두 발이 말을 듣지 않고, 마치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날려가는 것 같았는데, 점점 더 멀리 날아가더니 어느새 낯선 곳에 이르렀다. 사방을 둘러보니 기차역이었다. 수없는 여객들이 개찰구에서 길게 늘어서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앞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것은 개찰구에서 있는 사람이 개찰을 하지 않고 한 명 한 명씩 인원수만 집계하고는 바깥으로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나도 영문을 모른 채 사람들의 뒤에 서서 긴 줄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플랫폼에 들어선 나는 우연히 사람들 사이에 나의 친척과 친구·이웃, 그리고 또 부친의 학생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들은 전부 멍하니 레일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나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열차 하나가 역에 들어왔다. 열차 안에는 이미 적잖은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고, 플랫폼에 있던 사람들도 서로 앞 다투어 열차위로 비집고 올라갔다. 내가 올라갈 차례가 되었을 때는 이미 송곳 꽂을 만한 곳도 없었기에, 하는 수없이 두 손으로 남의 옷을 꽉 잡고 차문에 바짝 기대고 서있었는데, 수시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조마조마해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몸이 건장하고 힘 있는 남자 한 명이 기차위로 뛰어올라왔다. 한 눈에 나를 알아본 그는 얼굴에 놀라고도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 정말로 여기에 있었구나”라고 말했다. 마치 사전에 내가 여기로 올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말을 하면서 찻간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나의 시선도 그의 동작을 따라 움직였다.


얼핏 보니, 그는 찻간 주위를 매우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이때서야 나는 차창의 위쪽에 한 장 한 장씩 차례대로 무수한 작은 종잇조각들이 붙어있었고, 종잇조각마다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남자는 손을 뻗어 그중의 한 장을 찢어버리고는 내 앞으로 와서 “내가 이미 너의 이름을 찢어버렸다”고 말하였다. 


  “감사해요”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사람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네, 집에 돌아가서 네 아버님께 고맙다고 말하게나!” 그는 계속해서 “이제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다.


  이때 기차는 이미 엄청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들어서 겨드랑이에 끼고는 나는 듯이 기차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나는 놀라서 “아”하고 크게 소리 질렀는데, 귓가에 어머니의 온화하고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무서워하지 마라, 엄마가 여기 있다” 나는 눈을 뜨고서야 자신이 여전히 침대위에 누워있었고, 온몸의 옷들이 땀에 흠뻑 젖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몸이 많이 가뿐해졌고 배고픔도 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한편으로 가볍게 나를 위해 땀을 닦아주면서 한편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됐다! 정말 고맙게도 이제 땀을 흘리는구나”


  알고 보니, 나는 이미 꼬빡 하루 밤낮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에요, 아버님, 아버님께 감사드려야 해요” 내가 말했다.


  “나한테 감사하다고?” 어머니는 나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어리둥절해하였다.


  “예! 그분이 말씀하셨거든요!”


  “그분이 말했다고? 그분이 누구시냐?” 어머니도 그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꿈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아버지는 급히 나가서 한 집 한 집씩 내가 꿈에서 본 그 친척과 친구들을 찾아가 보았다. 결국은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돌아와서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있고, 어떤 사람은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나는 병이 빨리 나았을 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더욱 건강해졌다. 


  (순의舜仪의 『진실한 꿈』 『보리수월간』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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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


  1991년 봄, 나는 고열이 내려가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기억한다.


  입원한 첫날밤에 병실에는 환자가 나 혼자만 있었고, 막내딸이 나를 보살펴주고 있었으며, 전등은 줄곧 켜져 있었다.


  10시쯤 되었을 때, 나는 정신은 뚜렷하였으나 마음속은 매우 불안하였다. 문득 오른쪽 상단에 있는 침대 맡에 회색 옷을 입은 귀신이 보였는데, 다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나 눈을 뜨던 눈을 감든 간에 계속 침대 맡에 서있는 그 귀신이 보였기에 너무나 긴장되었다. 


    바로 이때, 왼쪽 상단의 침대 맡에 체격이 큰 스님 한 분이 나타났는데, 가사를 입고 머리에는 ‘불’자가 적혀있는 모자를 쓰고는 고색창연한 큰 나무의자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나는 이 대불大佛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자상하고도 장엄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무슨 이유인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고, 대불도 줄곧 그 의자위에 앉아계셨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남편이 왔다. 나는 밤새 일어난 상황을 그에게 알려 주면서 또 “대불께서 지금도 여기에 앉아계신다”고 말했다.


  내 남편은 믿지 않았다. 나는 단시간에 그로 하여금 믿게 할 수가 없어서 안달이 나서 말했다. “정말로 아직 여기에 계셔요.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에요” 내 말이 막 끝나자 대불은 사라져버렸다.


  그 당시 나는 아직 불교에 입문하지 않았기에 불법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만일 모자에 ‘불’자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무슨 영문인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만일 그 당시에 아미타부처님께서 나를 구제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불법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아울러 나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불교에 입문하도록 권하였다. 나무아미타불!          (안휘 귀지安徽貴池 호아묘胡阿妙 기술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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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가마


  (1)

  예전에 천축국에 바라문 한 명이 있었는데, 불교를 믿지 않고 늘 악업을 지었다.


  그의 부인은 오히려 신심이 청정한 염불인이었다. 부인은 항상 남편에게 “당신도 아미타불을 부르세요!”라고 타일렀지만 남편은 듣질 않았다.


  이 남편은 자신의 부인을 깊이 사랑하여 만족할 줄 몰랐다. 한번은 부인이 남편에게 “부부란 비익조와 같은데, 당신은 왜 항상 제 말을 듣지 않습니까? 당신이 제 뜻을 따르지 않는 한, 저도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남편이 물었다. “나는 사람이 너무 어리석어서 당신처럼 염불을 지속할 수 없는데, 어떡하면 좋은가?”


  이에 부인이 “우리 약속해요, 매일 저녁기도가 끝날 때마다 제가 금고 한 번씩 칠 테니, 그때마다 당신은 ‘나무아미타불’을 한번 씩 부르세요”라고 말했더니 남편도 동의하였다. 


  삼년 뒤에 남편은 병에 걸려 침대위에 누워서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부인이 손으로 남편의 옆구리를 더듬어 보니 줄곧 따뜻하였기에 그가 죽지 않았다고 의심하여 그를 안장하지 않았다.


  5일 뒤에 드디어 깨어난 바라문은 울면서 부인에게 말했다. “내가 죽어서 화탕지옥에 떨어졌는데, 나찰녀가 쇠막대기로 사람들을 마구 때리고 있었소.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그 쇠막대기가 기름 가마에 부딪혔는데, 내가 듣기에 당신이 금고를 두드리는 소리 같아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한번 불렀소.


이때 본래 찌는 듯이 덥던 지옥이 시원한 연못처럼 변하더니 도처에 연꽃이 피어있었으며, 이 염불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중생들이 전부 극락세계로 왕생하였소. 염라대왕이 나를 돌려보내기로 결정하고는 나더러 이 기이한 일을 사람들에게 말해주라고 하면서, 아울러 나에게 시 한 수를 적어주었소.


  만일 사람이 죄를 많이 지으면,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나,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자마자

  맹렬한 불길은 시원한 연못으로 변한다네.


  바라문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그의 이야기를 말해주었고, 이를 들은 사람마다 뛸 듯이 기뻐하며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정토성현록』)


  (2)

  내가 14,5살 때 우리 집 뒤편의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강 하나가 있었는데, 강물이 맑고 고요하여 거위와 오리들이 장난치고 있었으며, 자연의 정취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강물이 오염되어 물에서 장난치던 오리와 거위들이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더니 이어서 한 마리 한 마리씩 잇달아 죽어버렸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 키우던 오리 몇 마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매하고 완고하며 무지했던 나는, 이때 돌연 나쁜 생각이 들어서 오리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오리고기 먹을래요”라고 말했더니 어머니가 “먹고 싶으면 네가 직접 죽여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겨우 남은 병든 오리 한 마리가 내 칼에 죽은 귀신이 되었고 내 밥그릇 속의 요리가 되고 말았다.


  1990년 23살이 되던 해에 나는 영구에 있는 능엄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절을 위해 보일러에 불을 때기로 발심하였다. 대략 15분 간격으로 한번 씩 석탄을 넣어야 했기에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하여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 염주 열 바퀴 돌리면서 대략 1000번 정도 염불하였다. 북방의 날씨가 춥고 겨울도 길어서 매일 보일러를 땔 때마다 16시간이 필요하고 온수를 보내는 기간도 6개월에 달하였다. 나도 마침 이 기회를 타서 전심으로 염불할 수 있었으니, 자유롭게 반복적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정진할 수 있었다. 


     이때 내가 죽인 오리가 뜻밖에 나를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첫날은 그 오리가 오리 장에서 걸어 나오는데 살아생전처럼 서 있다가 다시 곧바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났다가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열심히 나를 향해 걸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상한 것은 오리의 목에 노란색 작은 목도리를 걸치고서 본래 절단된 곳을 가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무척이나 ‘도날드 덕’을 닮았다. 이와 같은 꿈을 반복해서 세 번을 꾸었다. 


  나는 그 당시도 그다지 개의치 않았고, 오로지 오리를 위해 회향하지도 않았으며, 예전처럼 명호만 전념하였더니 그 뒤로 다시는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리는 틀림없이 좋은 곳에 태어나려고 나에게 공덕을 구하러 왔다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의 공덕에 힘입어 극락왕생했을 것이다. 


  염불정진을 하는 기간 동안에 나는 또 꿈 하나를 꾸었었다. 꿈속의 광경은 몹시 음침하였는데, 두 사람이 좌우로 나의 두 팔을 잡고서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전방에 매우 큰 쇠 가마솥 하나가 있었는데, 직경이 십여 미터 정도 되는 솥에서는 후끈후끈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를 부축하고 있던 두 사람은 나를 가마솥 위에 있는 나무판자 위에 올려놓으려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들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막 나를 나무판자위에 들어 올렸을 때, 위급한 상황 속에서 나는 큰 소리로 한 번 “아미타불”하고 불렀다. 이때 나는 마치 『서유기』속에 나오는 손오공처럼 “휙”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 있던 어느 절의 담 위로 날아갔으며, 계속해서 담을 넘어서 절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머지않아 깨어나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오늘날까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여 인연 있는 자들이 견문할 수 있도록 위와 같이 적은 것이니, 염불의 수승함을 안다면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 최종에는 극락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친종 홍원사에서 적음 2005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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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집


  “한 구절 아미타불에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구족하고 있어서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간에 칭념만 하면 바로 부처님 광명의 섭취와 보호를 받아 재난이 소멸된다. 만일 당장 목숨을 마친다면 결단코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한다. 왜냐하면 아미타부처님의 명호가 곧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의 본체이면서도 아미타부처님 자신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세에는 안온하고 이롭고 즐거우며, 목숨을 마칠 때 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명호기능의 자연스런 작동이다”


  유묘음선생이 귀양의 용천사에서 경문과 조사논석에 근거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을 때, 일부 연우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고, 이른바 신심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염불한다고 해서 재난을 소멸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느냐?’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여죽거사만은 깊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죽거사가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말해주었더니, 수많은 연우들이 듣고 나서 이 명호의 불가사의한 공덕에 대해 모두 믿고 받아들이며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귀양지역에는 염불하여 부처님 명호를 저축해두었다가 죽은 뒤에 사용하는 풍속이 있다. 여죽거사도 이로 인해 아미타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녀 자신은 그 당시에 염불을 하지 않았다. 


  1993년 여름의 하루, 그녀는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쇠방망이를 들고 남편의 머리를 가격하여 바닥에 때려 눕혔는데,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그녀는 ‘사람을 때려죽였으니 자신도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에 준비해둔 수면제 120알을 꺼내서 술과 섞어 마시면 효과가 더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술과 물과 함께 복용하였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신이 홀로 큰 사막에 온 것을 발견하였는데, 온 천지가 어두컴컴하였고, 옆에 숲이 있었는데, 역시 어둠침침하였다. 이때 포졸처럼 생긴 키 큰 남자 두 명이 가운데 여자 한 명을 압송해 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녀의 죽은 어머니였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죽을 때와 똑같았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녀는 이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낯이 설어 결코 모자간의 정감은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보고도 마치 보지 못한 것처럼 그녀의 곁을 지나가면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키 큰 남자 두 명이 험악한 말투로 “우리를 따라 와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을 따라 갔다. 걷다 보니 대략 일 미터 정도 넓이의 도랑이 앞에 가로놓여 있었는데, 물이 검고 악취가 났다. 그들 세 명은 가볍게 뛰어서 건너갔지만, 여죽은 감히 뛸 엄두가 나지 않았고, 또 건너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직 집에 있는 두 애가 생각나서 바로 머리를 돌리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혼자 사막에서 목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이때 사방에 갑자기 불길이 일어나더니 활활 타오르는 화염은 아름다운 사합원식의 집 모양이 형성되었는데, 누군가 그녀를 불타는 집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였다. 그녀는 몹시 두려웠다. 남이 하는 염불소리를 들을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염불을 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그녀에게 염불하라고 일깨워준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두렵고 놀라서 허둥지둥하는 가운데 소리 내어 ‘아미타불’하고 한 번 불렀다. 이 염불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던 집 등의 무섭던 광경들은 즉각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그녀가 깨어나 보니, 자신이 병원의 병상위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의사가 그녀에게 위세척을 하고 관장을 하고 인공호흡을 한지 이미 세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느낌으로는 단지 사막에서 잠깐 동안 걸었을 뿐이었다.


  알고 보니, 남편의 피가 계단까지 흘러내려 이를 발견한 이웃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들 두 명을 병원으로 보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완전히 다른 시공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불법을 배우다가 “홀로 태어나고 홀로 죽으며, 홀로 가고 홀로 온다”“삼계는 불타는 집이다” 등의 경문을 배울 때, 그녀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여죽거사는 불교를 믿고 나서 정토수행을 하는데 특히 경건하고 정성스러웠으며,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어떤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죽거사는 그 당시 아직 불법을 배우고 염불을 하지 않았으며, 불법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신심은 말할 것도 없고, 수행도 전혀 없었다. 성내는 마음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업을 지어서 혼이 저승에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맹렬한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자 수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불길이 사라지고 저승에서 다시 이승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만일 수명이 다 했다면 틀림없이 『관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옥의 불길이 금색 연꽃으로 변하고, 일념사이에 극락왕생했을 것”이다. 


  염불왕생에 또 무슨 의심이 있겠는가!    


  (유묘음 구술 석정종 정리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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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성


  구양준생거사는 염불하는 사람으로, 올해 72세이며, 강서성 안원현 염강향에 살고 있다.


  올해 음력 6월 20일 아침에 심한 감기로 인해 자신을 부축하고 진료소에 주사를 맞으러 가달라고 아들을 불렀다. 그런데 막 주사를 맞은 노거사는 침대에 엎드려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 후 그는 중얼중얼 혼잣말로 “당신 먼저 들어가, 당신 먼저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또 큰소리로 “아미타불! 아미타불!”하고 부르더니 점점 더 빠르게 부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에 놀라 어리둥절해졌으며, 모두 노거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8시쯤 돼서 노거사는 갑자기 “누가 염불하는가? 좀 더 큰 소리로 불러라!”고 말했다.


  8시 20분쯤에 노거사가 깨어났다. 사람들이 방금 일어난 일을 그에게 말해주었더니 노거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음력 6월 29일 내가 노거사를 방문했다.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그 당시 막 주사를 맞고 나서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얼떨결에 누군가에 의해 어느 성으로 데려갔는데, 그 성에는 시꺼먼 연기가 뭉게뭉게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 그 사람이 나더러 빨리 성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더러 먼저 들어가라고 하였는데,


 그 사람은 강제로 나를 끌어당기며 나더러 들어가라고 하였소. 나는 너무나 무서웠는데, 문득 아미타불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죽기 살기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렀네. 갑자기 기적이 나타난 거야. 성의 오른쪽에서 엄청 밝은 빨간색 빛 한 덩어리가 나타났고, 뒤미처 왼쪽에도 엄청 밝은 빨간색 빛이 나타나더니 성이 그 빛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소! 그 뒤로 어렴풋이 누군가 염불을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눈이 뜨이질 않았네”라고 하였다.


  내 생각에 노거사가 비록 과거에 지옥의 업인을 지었으나 위급한 상황에서 큰 소리로 염불을 하였기에 결국 명호의 공덕력에 의지하여 위험한 처지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싶다.


  (조배홍의 『광화문선』 1995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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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


  맹인 유묘과는 귀양시 섬서로 취병항에 살고 있다.


  1996년 3,4월 사이 목욕탕에 목욕을 하러 갔다가 갑자기 심장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려서 딸을 불러 자신을 부축하여 휴식실로 가달라고 하였다. 딸이 보니 어머니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피부가 긴축되었으며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금장 쇼크를 일으킬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유묘과 본인은 정신이 맑아서 딸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피부도 갈수록 조이고 갈수록 두껍고 무거워져서 마치 소가죽처럼 거칠고 단단한데다가


온몸에 털이 자라나고 손발도 소 발굽 모양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소로 변할까봐 걱정하며 몹시 두려워하였다. 위급한 상황에서 문득 아미타부처님이 생각나 얼른 “아미타불”하고 불렀다. 부처님 명호를 한 번 부르자 온몸의 털이 조금 줄어들었고, 다시 한 번 부르자 또 조금씩 줄어들었다. 계속 염불하자 온몸의 털도 계속 줄어들면서 손발도 소 발굽모양에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사람도 이내 홀가분해졌으며, 길게 한 숨을 내쉬면서 의식을 회복하였다. 


  딸이 들은 어머니가 깨어나면서 제일성이 바로 “아미타불”이었다.


  그 뒤로 유묘과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염불하며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면서 다시는 감히 다른 잡념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귀양 용천사 유묘과 구술 유묘음 기록)


         글 출처 / 純淨時代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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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이 적힌 문자에 손이 닿자 광명이 보이다 


경전에서 ‘육근호용六根互用’을 설한 적이 있다. 즉,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귀로는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등등이다. 

이것은 신통의 경계로서 범부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초능력이 있는 사람 가운데 귀로써 글을 보고 또는 

손으로 글을 인식할 수 있는 자도 있다. 

대만대학의 이사잠李嗣涔 교수와 중앙연구원의 왕유공王唯工 교수, 그리고 기타 몇 분의 대학교수들이 요 몇 년

동안 과학적인 방법과 기구를 사용하여 손가락으로 글자를 식별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어린이 세 명을 데리고 실험을

진행했었다고 한다. 수백 차례의 시험을 통해 그들에게 모두 손가락으로 글자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실험방법은 문자 또는 부호(기호)·그림 등을 종이 위에 적거나 인쇄하여 밀봉포장한 다음에 요 몇 명의 어린이들이 

손가락으로 접촉하게 하여 그들이 이속에 어떤 글자 또는 어떤 그림인지를 감지하게 하는 동시에, 측정 기구로 그들의

손바닥·팔뚝 그리고 두뇌의 반응을 측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세 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몇 십초 또는 

몇 분 이내에 백프센트 정확하게 손으로 ‘본’ 것이다. 

1999년 8월 말, 며칠 동안의 실험 도중에 어떤 교수가 ‘불佛’자를 적어 그들에게 주면서 손으로 식별하도록 하였다. 

신기하게도 이 ‘불’이라는 글자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불’자가 아닌 온통 매우 밝은 빛이었으며, 빛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었고, 심지어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상쾌해지게 만드는 우렁찬 웃음소리도 들렸으며, 스님·절 등도 

보였다고 한다. 또한 대만식 발음기호로 적은  ‘ㄈㄛ’, 또는 영문으로 적은 ‘Buddha’에서도 밝은 빛이

 번쩍이는 것만 보이고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다른 글자나 그림이라면 바로 어떤 글자 또는 어떤 그림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빛도 없고 

소리도 없었다고 하였다. 만약 ‘불’자와 함께 연결되어 있는 문장이었을 때, 예컨대 ‘불산佛山’·‘불미급佛米級’

·‘비불리산장比佛利山莊’· ‘애불륵사봉埃佛勒斯峰(에베레스트산)’ 등의 경우, 그 결과 앞뒤 글자만 보이고 

‘불’자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불’자가 있는 곳은 온통 밝은 빛이었고, 심지어 불자 근처의 글도 광명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고유한 부처님의 명호, 예컨대 ‘아미타불’ 혹은 ‘약사불’·‘미륵불’ 등이라면 이를 더욱 초월하여 광명만 있을 뿐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약사불’을 식별할 때에는 “한약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중간에 어떤 사람이 귀신 ‘귀鬼’자를 그 중의 한 명에게 식별하라고 주었더니, 그는 종잇조각을 만지면서 

“온통 캄캄하다”고 말했다. 


일분 정도 지나 또 “매우 어두운 검붉음”이라 말하였고, 30초 더 지나서야 ‘귀’자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방금 줄곧 매우 춥고 매우 불편했었다고 하였다. 
(이상의 실험은 이사잠 교수가 지은 『믿기 어렵다―과학자들이 신비한 에너지장을 탐구하다』에서 발표함)

요 몇 명의 어린이들이 정말로 초능력에서 말하는 세 번째 눈이 있거나 외부의 영적 존재가 붙었는지는 우선 논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번의 실험이 뜻밖에도 몇 분의 과학자들로 하여금 놀랍고 찬탄하고 감동하고 흥분하고 온갖 상념이 

끓어오르게 하였다. 또한 견문을 크게 넓혔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으며, 실험실 전체의 분위기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불교내의 신성한 어휘 또는 특수한 음절에 신기한 에너지와 수승한 기능이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범부의 육안으로는 흰 종이에 검은 글자뿐이어서 전혀 특이할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초능력(영적 세계)의 ‘세 번째 

눈’ 속에는 찬란한 광명 또는 장엄한 이상異像들로 보였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상 밖에도 

부처의 세계가 존재하며,  ‘부처님 명호’가 불국토로 들어가는 통로임을 드러내고 증명해낸 것이다.

경전에서 늘 말씀하시길 “부처님마다 모두 치성熾盛한 광명이 있다”고 하셨다. 이른바 “부처님과 부처님의 도는 똑같고, 

광명과 광명에는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중에 특별히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은 “존귀하고 최고여서 제불의 광명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고 찬탄하셨다.

‘부처님 명호’와 접촉하면 밝고 따뜻하고 편안했지만,
‘귀’자와 접촉하면 반대로 온통 캄캄하고 음랭하며 매우 불편함을 느낀다.

따라서 중생이 부처님을 억념하며 염불하면 그 사람의 몸에는 불광이 생기고, 현생에서는 본래 있던 지혜를 계발하고 

어두운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으며, 임종할 때 정토에 왕생하여 다 같이 무량광 무량수를 증득할 수 있다.     (혜정 적음)


생각건대: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은 가장 존귀하고 제일이어서 제불의 광명이 능히 따라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처님의 광명이 있는 곳에는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원결이 풀리며 악은 선으로 바뀌게 된다.
만약 삼악도에서 이 광명을 본다면 다시 고뇌가 없고 모두 해탈을 입게 된다.
귀신이 있는 곳은 불길한 곳이므로 응당 부처님의 명호를 둠으로써 망령을 천도해야 한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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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서 염불하다


  사천성의 일부 지방에서 사람들은 수면위에 집을 짓고 사는데, 창문을 열면 바로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다.


  하루는 대오리제품을 만들던 노동자가 야간작업을 하다가 두 귀신이 물위에서 하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내일이면 나를 대신할 사람이 생겨서 수난水難에서 벗어날 수 있네”

  “정말로 기쁘구나! 그 사람은 누구인가?”

  “오후가 되면 석탄을 짊어진 사람이 석탄을 다 팔고 나서 거리에서 술을 마실 거야. 술에 취해 강가에서 물을 마실 때 내가 그를 물속으로 끌어들이면 그가 나를 대신할 수 있네”


  그들의 대화를 들은 멸공(篾工:대오리를 엮어서 제품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이튿날 오후가 되어 그는 창문을 열고서 손에 들고 있던 대오리를 창문 밖으로 걸쳐 놓고 앉아서 제품을 엮고 있었다.


  머지않아 정말로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사람은 짐을 내려놓고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양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데 몸이 약간 앞으로 기울면서 하마터면 강에 빠질 뻔하였다. 그는 한 모금 또 한 모금 물을 마시면서 끊임없이 “아미타불, 물이 맛있어!”라고 찬탄하였고, 물을 다 마시고 나서 아무런 사고 없이 어깨에 짐을 메고 가버렸다.  


  밤이 되어 다시 그 두 귀신의 대화를 들렸다.


  “자네를 대신할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는가?”

  “왔긴 왔었지. 그가 양손으로 물을 뜰 때 그를 끌어 당겼더니 거의 떨어 질 뻔했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한 번 ‘아미타불’을 부르는 바람에 내가 놀라서 계속 뒤로 물러났고, 눈에서 불꽃이 번쩍이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짐을 메고 멀리 가버렸네” (홍엽의 『자살 이후의 진상』 紅葉《自殺以後的眞相》)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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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며 염불하다


  (1)

  내가 아직 산부인과에서 실습생으로 있을 때 어느 여자 한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태아가 뱃속에서 죽어 수술을 해야 했다. 그녀는 태아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수술을 받아야하는 두려움에 직면하여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그녀를 보러 갔을 때, 나는 그녀에게 ‘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권하면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차마 일체 중생이 고통 받는 것을 볼 수 없어서 틀림없이 당신을 보우해주실 겁니다”고 말했다.


  마취를 하기 전 그녀는 쉬지 않고 줄곧 ‘아미타불’을 불렀다. 수술을 마친 뒤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염불은 정말로 기묘하고 정말로 좋습니다!” 그녀는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술 도중에 또 꿈을 꾸었는데, 영화에서 본 선녀보다 더 예쁜 보살이 그녀를 데리고 영화 속에서 본 선경仙境보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놀러 갔으며, 그곳에서 수많은 큰 연꽃들을 보았다고 했다. 나중에 어떤 목소리가 “시간이 다 됐으니, 돌아가도 좋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천천히 깨어났다고 했다. (곽혜진郭惠珍의사 서술)


  (2)

  내과에서 레지던트로 지내던 첫해의 어느 날 밤, 내가 중환자실에서 당직을 맡고 있을 때 응급실에 심근경색 환자 한 분이 실려 왔다. 호흡을 멈추고 혼수상태에 빠져 얼굴과 혀는 이미 검은 자줏빛으로 변했으며, 심전도와 혈액검사 보고서에는 심장에 이미 매우 심한 손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임의사의 경험에 의하면 이분보다 더 경미한 심근경색도 살릴 수 없었기에 환자의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나는 관례대로 염불을 하는 한편, 호스를 꽂아 응급치료를 하였다. 링거와 약물을 이미 사용하였지만 혈압은 전혀 재지지 않았고, 환자는 여전히 혼수상태여서 스스로 숨을 쉴 수 없었다. 환자의 아내가 비통해 하며 말했다. “하느님은 성실한 사람을 아낀다고 하시던데, 어찌 하느님은 저를 아끼지 않으신지요? 의사선생님, 최대한 살려만 주십시오. 설사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저는 그이를 보살펴주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일종의 질박한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녀에게 “사람은 큰 재난 속에서 대원을 세우고 염불해야만 돌파할 수 있습니다”고 일러주었다.

  “대원을 어떻게 세워야 합니까?”

  “본인의 정성에 따라 스스로 세워야 합니다”

  그녀는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 부부는 평생 채식하며 염불하겠습니다. 그이는 선생님이어서 나으면 불법을 홍양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녀와 자녀 몇 분에게 염주를 하나씩 나눠주면서 말했다. “오늘 밤 중환자실 밖에서 당신들이 아무리 조급해해도 소용없으니, 차라리 초조한 마음을 내려놓고 일인당 만 번씩 아미타불을 부르며 부처님의 가피를 구하는 게 나을 겁니다. 불력은 불가사의합니다. 우리도 힘을 다해 구해보겠으니, 그를 위해 염불을 해주십시오. 만일 그의 수명이 다했으면 극락왕생도 할 수 있습니다”


  그날 밤, 우리 의사 세 명은 저녁 7,8시부터 새벽 3시경까지 심전도 모니터를 바라보며 약물을 조절하였다. 그중 의사 한분이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 셋이서 밤새 지켜봤지만 혈압조차 재지지 않는 사람만 지켰구나!”


  그러나 네다섯 시 쯤 되어 그의 혈압은 기적처럼 다시 올라왔고, 사람도 차츰차츰 의식을 회복하였다. 나는 급히 중환자실 방문을 열고 가족들에게 알리려 하였다. 문을 열자 온가족이 일렬로 앉아서 염불을 하는데,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얼굴들은 나를 감동시켜 눈물을 머금게 하였다. 그의 자녀 한명은 종이위에다 “아버님! 저는 아버님께서 자상하신 두 눈을 다시 뜨시길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어느 청년 한 분이 병문안을 와서 어찌나 울던지 나는 그가 그분의 가족인줄 알았는데, 뜻밖에 이 청년이 “그분의 저의 선생님이십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남 집 담장밖에 지은 누추한 집에서 사시면서 당신의 봉급을 전부 꺼내어 우리 학생들을 길러주셨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없으셨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의사선생님, 선생님을 꼭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오열하였는데, 그제서야 나는 이 환자분이 예전에 ‘십대애심선생十大愛心老師’으로 당선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의식을 회복한 뒤에도 여전히 삼일을 꼬박 호흡기에 의지해야만 호흡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염불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심근경색을 제외하고도 가볍지 않은 폐결핵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생생하게 살아서 병원을 걸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다시 나를 찾아와서 함께 경전을 인쇄하기도 했다.


  심전도와 혈액검사 보고서를 보고, 다시 그의 회복을 지켜 본 의사들마다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였다. (곽혜진의사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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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기를 듣고 실면증을 치유하다


  1995년 말에 나는 병원에 어느 친척의 병문안을 갔었다. 병실에 들어설 때 뒤에서 40대 여성 한분이 따라 들어왔다. 옆 병실의 환자였는데, 병이 심해서 오육십 대처럼 보였다. 두 눈에 생기가 없고 눈 주위가 온통 시커멓고 얼굴은 초췌하였다. 길을 걸을 때도 매우 느릿느릿하였으며, 말을 할 때도 기운이 없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이미 꼬박 일주일동안 잠을 못자서 몹시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일러주었다. “이것은 업장입니다. 염불만 하면 업장을 소멸하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온몸에 전혀 힘이 없는데 어떻게 염불할 수 있겠습니까?”

  “좀 있다가 제가 염불기 한 대를 가져다 드릴 테니, 누워서 조용히 염불기에서 나오는 염불소리만 들으면 잠을 잘 수 있을 겁니다”


  친척의 병문안을 마친 나는 곧바로 병원을 나가 염불기 한 대를 사서 이 여성에게 가져다주었다. 아울러 그녀에게 조용히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든 입으로든 따라서 염불할 수 있으면 따라서 부르고,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조용히 듣기만 해도 빨리 잠들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튿날 오후, 내가 다시 병원에 친척을 보러 갔더니, 옆 병실의 그 여성분도 계셨는데 어제와는 전혀 딴사람 같았다. 기운도 있고 웃음도 있었으며, 어제처럼 그렇게 늙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면서 “제가 이어폰을 귀에다 끼고 조용히 염불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긴 시간을 푹 자고 일어났더니 정신도 맑고 병도 많이 나은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그 뒤로부터 그녀는 입원해있는 동안 매일 밤 반드시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염불소리를 듣고 있었고, 낮에 병상위에 누워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수면은 이미 완전히 정상이었다.


  며칠 뒤, 그녀의 병세가 빠르게 호전된 것을 발견한 의사는 그녀에게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퇴원하던 날,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청하여 법당을 설치하였다.     (혜정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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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정신병을 치유하다


  (1)

  잠강시 노신구 변하촌의 범인영凡仁榮은 올해 35세이다.


  15살 때 어느 날, 그는 방과 후 드렁허리鱔魚를 파러 갔다. 갑자기 채색 드렁허리 한 마리가 그의 앞에서 뛰쳐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으며, 문득 온몸이 불편하게 느껴져 집에 돌아와서 모친에게 목욕을 하겠다며 물을 끓여달라고 하였고, 스스로 온몸 위아래가 전부 말거머리들이라고 말하면서 씻고 또 씻었다. 그 후부터 그는 실성을 하여 때로는 정신을 차리고 때로는 멍청하였다.


  25살이 되던 해, 그는 다시 병이 재발하여 가출을 하였다가 무한시 장강대교에서 차량에 부딪쳐 두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행인들에 의해 병원으로 보내져 구급치료를 받고 다리에 철심을 박았는데 지금까지 꺼내지 않았다.


  그 뒤로 자주 발병하여, 걸을 수는 있지만 힘이 없어서 일을 할 수 없었다.


  20년 동안 그의 모친은 도처에서 의약을 구하고, 신불께 기도하며 천도재를 지냈지만 모두 효과를 볼 수 없었고, 모자의 생활은 극도로 어려웠다.


  작년 여름에 범인영은 또 발병하였다. 그의 누나 범연예凡蓮藝는 나에게 무슨 방범이 없냐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그더러 염불하라고 하세요. 만일 글자를 안다면 불서도 보시고요” 그래서 그녀에게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 한권을 주면서 친정에 가져가서 동생에게 보라하라고 일러주었다.


  불서를 받은 범인영은 책장을 펼치자마자 나무아미타불상을 보고는 몹시 기뻐했다. 다 보고 나서 그는 책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계속 염불하고 있는데 책속의 아미타부처님께서 표연히 나오시더니 그의 가슴을 향해 돌진해오는 게 보였다. 그 충격으로 몸이 잠깐 흔들렸고, 이 흔들림으로 즉각 머리부터 발끝까지 텅 빈 것 같이 몹시 상쾌하였으며, 머리도 한층 맑고 깨끗해지고 정신도 또렷해졌다.


  그 뒤로 범인영은 힘이 생겨서 짐도 짊어지고 농사일도 하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다.


  작년 12월 1일, 내가 농장으로 범인영 모자를 만나러 가면서 불서를 가져다주었다. 범인영이 나에게 말하기를, 그가 염불을 하면서 세 번을 기이한 향기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런 향기는 우리 이 세상에 없는 것이며, 시간은 20분에서 30분가량 지속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매번 향을 사를 때마다 서방삼성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범인영은 또 예전에 매번 발병할 때마다 먼저 눈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는데, 머리까지 올라가면 머리에 마비가 오고, 머리에 마비가 오면 사람은 통제력을 잃게 되었다고 말했다. 불법을 배우고 나서도 한 번 발생한 적이 있는데, 눈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을 때 바로 앉아서 염불을 하였더니 금방 좋아졌다고 했다. 그 뒤로 다시는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정요거사 기술 2001년 2월)


  (2)

  장수란張樹蘭, 여, 69세, 북경시 숭문구 사람이다. 1985년 남편이 갑자기 별세하는 바람에 정신에 이상이 생겨 늘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줄 몰랐다.


  어느 연우가 그녀에게 염불을 가르치자 그녀도 따라서 부르기는 하지만 정신이 마비되어 침울하고 초조해하였다. 때로는 법당을 뛰쳐나가 심하게 욕을 퍼붓기도 하였다. 한 번은 대중들이 염불을 하는데 잠이 들어서 법당에다 오줌을 싸기도 하였다.


  1992년 가을, 그녀는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자녀들에게 발각되어 병원에 가서 구급치료까지 받았다.


  1994년 여름, 장수란은 대중들과 함께 염불하다가 갑자기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보세요, 부처님께서 방광하십니다! 보세요, 부처님께서 방광하십니다!” 대중들도 서로 고개를 들어 보았고, 일시에 염불소리로 떠들썩하였다.


  그 뒤로 장수란은 무서운 그늘에서 벗어났으며, 진실로 아미타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느꼈다. 1994년 음력 12월 초파일에 그녀는 불문佛門에 귀의하였다.


  나중에 그녀는 섬서성으로 와서 우리 도량에 상주해 있었으며, 더욱이 아미타부처님께서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는 대비원력을 듣고서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것을 안 뒤로부터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삼보의 사업을 호지護持할뿐더러 아껴 먹고 아껴 쓰며 절을 집으로 삼았다. 환희심으로 염불하는 그녀의 염불소리를 수시로 들을 수 있었으며, 아울러 몸소 불법을 수호하느라 자신이 구제를 얻은 과정을 인연 있는 연우들에게 일러주며 대중들의 신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오직 나무아미타불, 다만 나무아미타불, 반드시 나무아미타불, 역시 나무아미타불……”  (정홍법사 기술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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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중상을 치유하다


  원강시 신항향의 곽등과郭登科는 시내에서 4번 버스를 운전하는 26살 기사였다.


  2003년 6월 13일, 그가 운전하던 차량이 다른 차량과 충돌하여 20여명이 다쳤는데, 그중 10명이 중상을 입었고, 본인은 가장 크게 다쳐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잃었다. 병원으로 보내 응급조치를 받고 삼일이 지나서야 깨어났는데, 5만원을 쓰고도 고칠 수 없었다. 돈이 없어 입원을 할 수 없는 관계로 집에 돌아와 치료하였다. 9월이 되어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더욱 심해져 하는 수없이 다시 병원으로 보내야만 했다.


  의사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그의 부모에게 말했다. “당신의 아들은 머리부위를 가장 크게 다쳤습니다. 치료를 하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의 발도 잘라야 하는데 지난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합니다”


  극심한 통증으로 그가 온종일 크게 소리를 지르는데 가족들도 모두 애가 타서 눈물을 흘렸다.


  하루는 그의 모친 진설진陳雪珍이 우리 염불당으로 와서 울먹이며 물었다. “제가 어떡하면 아들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이지 그녀에게 오직 아들 하나밖에 없는데 만에 하나 무슨 변고라도 있으면 노인은 어떻게 살겠는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병원에서 이미 진실한 상황을 당신에게 말해준 이상, 지금은 아미타부처님을 의지하여 아들을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아들도 염불하도록 한다면, 아미타부처님께서 틀림없이 건강을 회복하도록 해주실 겁니다. 내일부터 우리 염불당에서 삼일 간 염불하겠습니다”


  연우들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늦을세라 앞 다투어 돈을 기부했다.


  이튿날 그들 모자가 왔다. 나는 먼저 곽등과에서 아미타부처님께 공양 올렸던 감로수를 마시게 한 다음 대중들과 함께 염불하였다. 그날 밤, 그는 서방삼성이 그의 병을 치료해주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나서부터 예전처럼 아프지 않았다. 의사가 그에게 철심을 박는데도 전혀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자 둘은 갈수록 정성을 다해 염불하고 절을 했으며, 우리 염불당과 아주 가까운 곳에 방을 찾아서 세를 들어 살았다. 


  십여 일이 지나서 그는 천천히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병원의 원장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종교를 믿는데 이처럼 영험한가? 정말로 기적이네!”


  봐라! 육자명호가 얼마나 불가사의한지! (호남 원강 왕이진 기록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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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반신불수를 치유하다


  나의 큰 언니 양숙금의 병고는 특별히 심했었다. 1997년에 뇌혈전으로 발신불수와 실어증을 앓게 되었고, 작년 4월에는 큰 형부가 또 돌아가시고, 그 뒤로 또 중병으로 두 차례 구급치료를 받아야 했다.


  내가 여러 번 큰 언니에게 불법을 배우라고 타일렀으나 모두 듣지 않았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나는 부처님 전에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 큰 언니 양숙금은 지금 중병에 시달려 목숨이 숨 쉬는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피를 주시어 언니가 하루빨리 깨닫고 염불하며 부처님의 구제를 받아들이길 빕니다.”


  그 후에 내가 다시 큰 언니에게 염불을 권했더니 큰 언니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얼마 후, 큰 언니의 흰 머리카락 뿌리부분에 한 치 정도의 검은 머리카락이 자라났고, 본래 밥을 먹을 때 항상 식도를 긁던 귀에서 목까지 자란 경부의 큰 종물腫物도 현재 거의 다 사라졌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내가 다시 큰 언니에게 염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큰 언니가 마음속으로부터 웃는데,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


  큰 언니가 말했다. “난 이제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염불만 하여 아미타부처님께서 나를 위해 깔아주신 극락세계로 통하는 ‘나무아미타불’명호의 길만 걷겠다!” 이 말을 들은 나는 기쁠 뿐만 아니라 마음도 놓였다.


  “스님, 아미타부처님께서 큰 언니를 구해주신 게 맞지요?” (북경 묘홍 기술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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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간염을 치유하다


  나의 모친인 이숙진은 신앙심이 돈독하여 정토왕생을 발원하였다. 나는 항상 모친에게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만 부르라고 권하였으나, 모친은 늘 다른 경전과 진언을 내려놓지 않으려 하였다. 나중에 내가 홍원사에서 출판한 『염불감응록』 한질을 모친께 보내드렸다. 이 책에서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수승한 이익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친은 몹시 기뻐하며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자주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모든 걸 다 부처님께 맡겼고, 책도 다 이해했다”고 말했다.


  2003년 집안사업의 파산으로 손해를 보고 장자가 또 소송에 휘말리고 고부간의 관계도 좋지 않는 등의 압력과 타격으로 인해 모친의 마음은 장기간 답답하고 울적해하였으며, 오랜 시간 지속되다보니 을형간염까지 앓게 되어 음식을 가족들과 따로 드셔야 했다. 또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두 달 동안만 약을 드시고 더 이상 치료를 계속하지 않았다. 모친은 늘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고, 나는 전화 속에서 모친을 위로해드리며 모든 걸 내려놓고 전심으로 염불하라고 말씀드렸다.


  모친은 견뎌냈다. 또한 모든 걸 내려놓고 전심으로 염불하였으며, 틈만 나면 『염불감응록』을 읽었다. 이때의 모친은 정성을 다해 염불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번은 모친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세 명이 모친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을 보았다. 모친은 팔을 뻗고 있었는데, 약간의 액체가 팔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의사 세 명 가운데 어떤 의사는 의료기계를 깨끗이 씻고 있었고, 꿈속의 광경은 너무나 뚜렷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모친은 몹시 기뻐했다. 틀림없이 불보살님들이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셨다는 것을 안 것이다. 정말로, 나중에 병원에 가서 두 번이나 검사를 하였는데, 간병이 완치된 것이었다. 


  그 뒤로 모친은 늘 자신이 불법을 믿고 염불하여 깨달은 바와 감응으로써 일체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불교를 믿고 불법을 배우고 염불하여 다 같이 광명의 큰 보배바다로 들어갈 것을 권장하였다. (동림사 친종親宗 기록 2005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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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염불로 병을 치유하다


  염불로 암을 치유하다


  (1)

  체일諦一법사는 섬서성 서안 향적사 스님으로, 올해 70여세이다. 1999년 봄에 식도암을 앓고서 병원으로부터 위독하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절에 돌아온 후부터 침대에 누워 일어나기가 힘들었고, 온몸이 붓고 호흡이 곤란하였으며, 온종일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또한 혈관경화로 인해 진통제 주사조차 맞을 수 없었으니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체일스님은 자신에게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보시금을 전부 사중에 반납하였다. 죽은 뒤에 자신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어 원친채주들을 천도시키고, 아울러 자신이 아귀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건져달라는 것이었다.


  평소에 참선만 하던 스님은 말수가 적은데다가 온종일 좌선만 할 뿐, 정토종에 대해 전혀 믿음이 없었다. 


  이때 죽음이 바로 코앞인데도 염불하여 왕생을 구할 줄 모르고 빨리 죽기만을 원했다.


  상정常正스님이 그에게 염불하라고 권하자 그는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에이! 평소에 공부를 똑바로 못해서 주인노릇을 못하는 것을 탓해야지 지금 입으로 염불 몇 마디 한다고 되겠소? 그만해……”


  상정스님의 노파심에서 거듭된 충고 끝에 체일스님은 그제서야 하는 둥 마는 둥 염불하기 시작했다.


  상정스님은 또 체일스님의 요사채로 옮겨와서 밤낮으로 그를 보살펴주었다. 밥과 물을 먹여주고 몸과 발도 씻겨주고 똥오줌도 받아내면서 살뜰히 돌보아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정스님은 늘 그와 함께 염불하면서 그에게 자신을 완전히 아미타부처님께 맡기라고 격려하였다.


  체일스님은 항상 신음소리에 부처님 명호가 섞여 있었다. “아이구! 아미타불, 내가 정말이지 생고생하네! 내가 스님만 아니었으면 자살했을 거야. 아미타불, 빨리 좀 오세요! 더 이상 고생하지 않게 해주세요! 아이구! 아이구! 아미타불, 제발 죽게 해주세요……”


  이렇게 3개월이 지나서 체일스님은 오히려 천천히 낫기 시작했다. 식도암도 낫고 온몸의 부종도 사라진 것이다!


  이후부터 체일스님은 참선을 버리고 정토로 돌아와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만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전수염불하며 왕생발원하라고 타일렀다.


  우리는 늘 그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참선도 하지 않고, 교를 배우지도 않으며, 한 구절 아미타불을 진심으로 불러야 한다……” (석정홍釋淨弘 기술)


  (2)

  내 이름은 개보성蓋寶成이고, 올해 45세이며, 천진시 사람이다. 1989년에 갑상선암에 걸려 좌측 갑상선을 제거하는 바람에 한동안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1995년 왼쪽 가슴에 큰 종양이 생겨 개흉수술을 하고 나서부터 온몸 전체에 변형이 왔다. 얼굴은 초췌하고 몸무게는 겨우 몇 십 근밖에 안 나갈 정도로 말라있었다. 1999년 양쪽 폐의 마디마디에 암세포가 잔뜩 자라나 이미 확산 전이되어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소식은 마치 청천벽력과 같아서 나는 온 하늘이 무너져 내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이때, 부친께서 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 모든 게 나에 대한 타격이 너무 커서 나는 죽음을 생각하였다.


  1999년 11월의 하루, 나는 아내와 아직 미성년자인 딸을 속이고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있고 7층 옥상에 올라가 남은 생을 끝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웃집 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 나를 끌어내리는 바람에 비극을 부르진 않았다.


  나의 외삼촌 마상의거사가 이 일을 알고 나서 나에게 삼세인과와 아미타부처님의 자비에 대해 말해주면서 염불하라고 타일렀다. “오직 염불만이 병도 치유할 수 있고 왕생도 할 수 있다”


  외삼촌 집에서 보배 손을 아래로 드리우신 아미타부처님의 성상聖像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으려는 것과 같아서 너무나 감동받았으며,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나중에 다섯 째 이모와 이모부가 나에게 법문을 해주고 또 많은 테이프와 불서들을 주었는데, 『삼경일론대의』와 『선도대사요의』등이었다. 나는 반복해서 듣고 보고 나서 지난 생에 업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이런 병고를 받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염불을 잘 해서 나중에 꼭 극락세계로 가서 대자대비하신 아버지 아미타부처님을 찾아뵙기를 발원하였다. 


  2000년 9월 17일 나는 불문에 귀의하고 오계도 받았다. 그 후부터 병든 몸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통증은 없었다. 병원에서 재진을 하는데 의사들이 모두 의아해하며 나에게 어디서 치료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저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합니다. 그 어르신께서 저를 구해주셨지요”


  예전에 수시로 사망할 수 있었던 나날들을 회상하며 나는 ‘한바탕 병고의 시달림 없이 어찌 아미타부처님의 크신 서원의 깊이를 알 수 있겠는가?’를 알았다.


  예전의 나는 진통제를 의지하여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혈색도 좋아지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통증도 기본적으로 다 사라졌다. 지금은 염불만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나무아미타불! (천진시 개보성蓋寶成 기술 2001년 7월)


생각건대: 마음속에 불법의 자비가 없다면 인생은 시련과 징벌이나 다름없다. 비록 바깥에 햇빛이 찬란해도 마음속은 여전히 온통 칠흑 같고 앞날은 절망적이다. 아미타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병고는 법희로 바뀌고 어둠은 광명으로 변하였다. 비록 죽지 않는 육신은 없으나 영원한 생명은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나의 생명이요, 나의 길이요, 나의 의지처요, 나의 귀착점이다.


                   (『염불감응록 2』 정종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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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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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카드가 보우하다


  (1)

  나불은羅佛恩거사는 성도사람으로, 올해 27세이다. 2001년 9월에 멀리 고향을 떠나 단신으로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로 일을 하러 갔다. 집을 떠날 때 불교를 믿던 모친께서 아미타부처님이 그려져 있는 작은 부처님 카드 한 장을 주시면서 그에게 외출할 때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니고, 돌아와서는 다시 공경스럽게 책상위에 올려놓으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래서 노인이 매일 염불할 때 자식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모두 감응이 있고, 모두 아미타부처님의 가호를 있을 거라고……


  자모慈母의 애심을 생각해서 부처님을 믿지 않던 나불은은 부처님 카드를 지갑 속에 넣고서 매일 밤 집에 돌아오면 지갑을 열고 잠 잘 때 머리 맡에 있는 나무상자 위에다 세워놓았다. 지갑에는 부처님 카드 외에 가족사진도 들어있었다. 매번 지갑을 열 때마다 그는 항상 사진속의 모친을 향해 “어머님, 제가 꼭 열심히 노력하여 절대 어머님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늘 모친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불상을 향해 공경스럽게 세 번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그해 12월 25일, 마침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이어서 다들 여행을 떠나자며 떠들어 댔다. 나거사는 마음속으로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서 남아프리카를 말할 때 어디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을 따라 휴가를 떠났다. 그래서 8인승 봉고차에 억지로 15명이 비집고 들어가 고속도로에서 질주하였다. (남아프리카의 고속도로는 넓고도 평탄하여 전 세계 제3위에 이름이 올라 있다) 


  그러나 긴 내리막길이 있는 구간에서 앞좌석에서 흥분된 목소리로 “170·180……200·205……”라며 차의 속도를 외치는 것을 듣고 있을 때, 갑자기 즐거움 끝에는 슬픈 일이 생긴다고 제어력을 잃은 차량은 마치 양철통처럼 앞으로 죽기 살기로 2,3백 미터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차에 있던 15명 가운데 나거사만 기적같이 목숨을 건진 것 외에 나머지 14명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사후에 그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모든 게 너무 빨리 일어나서, 마치 어릴 적에 무명실에다 돌멩이를 감아서 머리위로 휙휙 돌리는데 한 바퀴 또 한 바퀴 점점 더 빨라지다가 갑자기 실이 끊어지고 돌멩이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머릿속도 덩달아 하얗게 변했습니다. 다만 위험을 의식한 그 순간에 제가 ‘엄마야!’하고 부른 것 같았는데, 이때 한 줄기 금색광명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 금색광명에 완전히 둘러싸여 사람이 전혀 무게가 없는 것 같았고 또한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교통사고의 심각성을 말한다면, 당연히 전부 조난을 당해 한 명도 살아날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나거사만 홀로 죽음에서 벗어나고, 게다가 몸에 아무런 중상조차 입지 않을 수 있었던가? 많은 사람들이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모두 그의 몸에 휴대하고 다니던 아미타부처님의 불광의 섭취와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모친에 대한 그의 효심과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이로 인해 갑자기 남아프리카에 있는 수많은 화교들이 모두 부처님 카드를 찾고 있었다. 다들 몸에 휴대하여 출입이 평안하도록 부처님의 보우를 받으려는 것이었다.


  현재 독실한 불자가 된 나거사는 틈만 나면 늘 남아프리카의 중국 절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며 공양간 일을 돕는다거나 청소를 돕는다고 한다. 매번 화교들을 볼 때마다 늘 두 손으로 부처님 카드 한 장을 건네주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자신이 직접 부처님의 보호를 받아서 큰 재난에도 죽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나불은 구술, 뢰상흥 기록)


  (2)

  2002년의 어느 날, 유위파劉偉波(염불인 원수진袁秀珍거사의 아들이다)는 쌍타나(중국차 이름) 웨딩카를 타고 결혼 축하주를 마시러 갔다. 차속에 총 5명이 타고 있었고, 쌍타나 앞에는 또 웨딩카 다섯 대가 있었다.


  쌍타나가 완강 황모주의 오르막길 구간까지 갔을 때 아마도 운전기사가 도로상황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감속을 하지 않아서 승용차가 제방을 넘어 가파른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금방이라도 노반路盤 밖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으나 그다지 크지 않은 돌덩이에 막혀버렸다. 당시의 상황은 정말로 아찔했다. 승용차의 바퀴 세 개가 공중에 붕 떠 있었음에도 노반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했다!


  사고가 발생한 뒤에 앞에서 달리던 차량 다섯 대가 잇따라 돌아왔다. 쌍타나를 보는 순간 그들은 모두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차량이 그런 상황 속에서 의외로 노반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 불가사의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노반이 매우 높아서, 만에 하나 아래로 떨어졌다면 차속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납작해진 고깃덩어리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다들 있는 힘을 다해서야 쌍타나를 노면위로 끌어올렸다. 차안에 있던 다섯 명 중에 기타 네 명은 모두 정도가 다르게 부상을 입었지만 유위파만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네 사람 중에 지역의 사진작가 한 명이 있었는데(결혼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사진작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엉엉 울면서 아버지를 불렀다가 어머니를 불렀다가 부인을 불렀다가 아들을 불렀다가 하였다. 오늘 하마터면 이런 가족들과 영원히 헤어질 뻔 했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유위파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께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지역 사진작가는 눈물이 어려 흐릿한 눈으로 할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유위파는 양복주머니에서 작은 부처님 카드 한 장을 꺼내면서(나무아미타불의 성상聖像인데, 그 위에 또 육자홍명이 적혀 있었다) 사진작가에게 이 분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할아버지라고 일러주었다. 사진작가는 당장 이 작은 부처님 카드를 갖고 싶어 하였다. 유위파는 안 된다고 거절하며 그에게 말했다. “이 부처님 카드는 저와 함께 한지가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제가 전화위복이 되게 해주셨기에 당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저의 어머님한테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저희 집에 가셔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시고 한 장 모셔 가십니다. 당신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보우해주실 겁니다”           요진거사 기록 20057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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