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성의 슬픈 이야기 (부처님께서 관무량수경을 설해지게 된 동기)
지금부터 2600여 년 전쯤 중부 인도에 부국강병으로 경쟁하던 두 나라가 있었다. 하나는 카필라 왕국이었고, 또 하나는 마가다 왕국이었다. 그 두 나라의 왕들은 모두 다 덕망있는 군주들로서 백성들을 어짊으로 잘 다스렸기 때문에 인도 전역에서 가장 살기 좋고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손꼽히게 되어 모든 작은 나라 왕들이 매우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그 두 나라의 왕에게는 나이가 모두 50이 다 되어가는데도 왕위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부유한 나라들이었지마는 이상하게도 그들 사이에는 후손이 생겨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카필라 국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났다. 그 소식을 들은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은 미칠 것만 같았다. 팽팽하게 맞서오던 균형이 무너지고 모든 세력이 이제 카필라국의 정반왕에게 넘어간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도 이제 기필코 왕자를 가져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는 모든 신전에 수많은 은전을 내리고 복을 빌어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간곡히 기도를 했다. 그러나 별 효험이 없었다. 이웃의 싯다르타 태자는 나날이 성장해 가고 있는데 그에게는 왕자가 태어날 기미조차 없으니 그 초조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결과는 모두 헛일로 끝나 버렸다. 빔비사라 왕은 전국에서 이름난 모든 주술가와 점술가를 궁중으로 불러들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통하게 미래를 잘 예언한다는 한 명의 선인을 힘들게 가려내어 그에게 은밀히 물어 보았다.
“내 팔자에는 정녕 자식이 없는가? ”
“왕으로 태어나 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은 전생에 수많은 공덕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자식이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나는 왜 자식이 없는가?”
“대왕에게 자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왕의 혈통을 받고 태어날 만한 복을 가진 자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즉 대왕을 아버지로 모시고 태어날 만한 복을 가진 자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 자식이나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복이 있건 복이 없건 간에.”
대왕은 애가 탔다. 거지 자식이라도 좋으니 자식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넋두리를 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고양이 새끼를 낳고 호랑이는 호랑이 새끼를 낳습니다. 모두 다 자기의 분수와 복덕에 따라 자기에게 맞는 자식이 태어나 같이 어우러져 살게 됩니다. 대왕의 가계에는 후일 왕이 될 그런 재목이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복이 없는 정령들은 왕비마마의 태중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만약 복덕이 갖추어지지 않는 정령을 억지로 태중에 착임시키면 대왕도 나라도 그 복없는 자식에 의해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식이 없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고통이 아닌가? 더군다나 저 카필라 국의 싯다르타 왕자는 나날이 커가고 있는데, 이러다가 후일 내 나라가 저 왕자에게 빼앗기지나 않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에게는 엄청난 복덕이 있기 때문에 그 복덕의 힘이 있는 한 결코 나라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이 없는 자식이 태어나면 대왕의 복을 그 왕자에게 반으로 나누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적은 복덕을 갖고서는 나라가 이처럼 계속 풍요롭게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 평생에 결국 왕자를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단 한명이 대왕의 왕자로 태어날 복을 거의 완벽하게 다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 복이 완전해지면 그가 곧 죽게 되고, 그러면 이내 왕비마마의 태중에 잉태되고 드디어 아주 고귀한 신분의 왕자로 탄생할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대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도대체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대왕은 마른 침을 삼키며 숨쉴 틈도 주지 않고 그 점술가를 다그쳤다.
“그는 선인이며 현재 비부리산 동굴에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가자. 내가 직접 찾아가리다.”
대왕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점술가가 황급히 그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간곡하게 만류했다.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가 대왕의 태자로 태어나는 복을 완벽하게 구비하려면 아직도 삼 년이나 더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지금 가시면 그의 수행에 장애가 생겨 그만큼 복덕을 쌓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왕은 생각했다. 3년 동안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그 시간은 너무 길다. 3년 동안 저 정반왕과 모든 왕들의 눈치를 보아가며 비웃음을 받아야 한다니. 이왕 내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어 있다면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그는 결심하고 일어섰다. 그 선인과 담판을 지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군사들을 지휘하여 비부리 산으로 말을 달려 나아갔다. 그리고는 이잡듯이 그 산을 뒤져 동굴에 은거하고 있던 백발의 수행자를 간신히 찾아내었다. 왕은 모든 신하들과 군사들을 뒤로 물리고 선인과 담판을 짓기 시작했다.
“언제 죽을 것인가?”
“3년이 남았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지금 죽어서 내 왕자로 태어나도록 하시오.”
대왕은 윽박지르듯이 애걸했다.
“아니 됩니다. 그러면 천리를 어기게 됩니다. 내가 지금 스스로 죽는다고 해도 이 복을 가지고서는 대왕의 자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기껏해야 공주 정도로 태어나는 복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3년이 지나야만 대왕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덕망 있는 태자로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다시 생각했다. 3년은 너무 길다. 만약 내가 지금 자식을 가지면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사건이 될 수 있는 일인데, 3년 동안 기다려야 한다니 그것은 절대 안될말이다. 내가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혹 정신이 혼미하여 선정을 베풀지 못해 복덕을 소비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나라도 왕자도 모두 다 잃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니 한시가 더욱 급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도저히 죽을 수가 없단 말인가? 그대의 신통 같으면 분명 왕자나 공주 몸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을 터인데.”
“3년만 기다려 주십시오. 복을 완벽하게 갖추어야 제가 대왕의 뒤를 이었을 때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락할 수 있습니다. 복덕이 갖추어지지 않는 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천기가 어지럽고 백성이 불안할 뿐만 아니라 나라에 큰 재난이 그치질 않게 됩니다.”
선인은 애원했다. 그러면서 또,
“카필라 국에 태어난 싯다르타 태자는 분명 부처가 될 것입니다. 저는 전륜성왕이 되어 전 세계를 통일하여 하나의 거대한 동일국가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애원이 대왕의 귀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는 칼을 빼어들었다. 그리고는 애원하며 부복하고 있는 선인의 목을 내리쳤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점술가도 그 자리에서 목을 베었다.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비부리 산을 짙게 훑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왕비 위제희에게 태기가 있었다. 그 선인의 영혼이 잉태된 것이 분명했다. 왕과 대신들은 기쁨에 들떠 있었다. 이제 당당하게 왕자를 가진 대국의 왕이 될 수 있다는데 대하여 위안을 가지게 되었다. 드디어 아주 잘 생긴 왕자가 탄생했다. 왕은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모든 죄수들을 특별사면했다. 모든 이웃나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태자의 탄생을 축하하고 진귀한 예물을 바쳤다. 대왕은 이제 부러울 것이 없었다.
잔치가 무르익어갈 때 대왕은 정반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유명한 관상가를 불러 태자의 관상을 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왕자의 얼굴에 원한이 서려 있습니다. 이것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대왕과 무슨 원한이 얽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잘못 하다가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나라마저 위태롭게 될는지 모릅니다.”
그 말을 듣고 빔비사라 왕은 새삼스럽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인은 결국 원한을 가지고 태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아사세라고 했다. 그 뜻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원한을 가졌다는 의미로 미생원이라고 번역된다.
왕은 큰 고민에 빠졌다. 이제 어떻게 할 도리가 엇었다. 그는 관상가를 옥에 가두고 왕비와 함께 왕자를 안고 큰 누각위로 올라가 술을 줄기차게 퍼마시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장성했을 때를 생각하니 두려움이 일어나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그는 술에 취해 혼미한 상태로 결국 아이를 누각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다. 즉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엄지손가락 하나만 부러지고 멀쩡한 상태로 구성지게 울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손가락 하나만 부러졌다고 해서 절지(折指)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무리 원한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일단 자기 자식으로 태어났고 또 저렇게 슬피울고 있는 것을 보니 측은하기가 이를 데 없어 왕은 가급적 모든 것을 잊고 그 태자를 잘 키우기로 결심했다.
왕자는 어쨌거나 부왕의 바람대로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준수한 모습에다 준수한 기골로 모든 학문과 무예를 연마하면서 왕위를 이어받을 재목으로 나날이 성장해 나아갔다.
어느날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빔비사라 왕은 그제야 한시름 놓게 되었다. 이제 카필라 왕국은 자기의 경쟁국이 될 수 없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왕자는 어느새 건장한 청년태자가 되어 있었고, 이제 인도 전역을 아무런 장애없이 하나로 통일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던 걸림돌도 속시원하게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편 싯다르타 태자가 대각을 이루어 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이 인도 전역에 퍼져 나갔다. 그 소식을 매우 충격적으로 전해들은 곡반왕의 아들, 즉 부처님에게는 사촌동생이 되고 아난 존자에게는 친동생이 되는 데바닷다가 흑심을 품고 출가를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싯다르타 태자를 시기하고 질투해 왔다. 태자는 그 때문에 여러 번 아주 헤어나오기 힘든 어려운 일에 봉착되기도 했다. 이제 그가 불교교단에 들어와 복 없는 부처님 제자 500여 명을 감언이설로 꾀어 그의 제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따로 하나의 독립된 교단을 만들어 언제나 부처님께 사사건건 시비하고 맞서면서 늘 도전적으로 부처님을 모함해 궁지에 몰아 넣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처님을 파멸시켜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술수와 유언비어를 사방으로 퍼뜨리고 다녔다. 그는 부처님을 죽이고 자기가 부처가 되어 전 인류의 사표가 되고 전 중생계의 귀의처가 되어야 겠다는 야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사세 태자를 만나 그에게 권력의 힘을 빌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사세 태자를 유혹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전륜성왕이 되라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러면 자기는 부처님을 살해하고 부처가 되겠다고 했다. 그러면 천하가 우리 것이고 그것을 함께 공유해서 태평성세를 누리자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아사세 태자는 이제 과거의 원한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현 듯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부왕과 왕비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자기를 애지중지 곱게 키워주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제 부왕의 모습과 목소리는 물론 그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사세 태자는 내면에서 치솟아오르는 원한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반역을 일으켜 부왕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모든 왕권을 찬탈하여 즉시 왕위에 올랐다. 그와 동시에 제바달다를 왕사로 추대하였다. 이것이 바로 왕사성에서 일어난 희대의 비극적 사건이 된 것인고, 관무량수경이 설해지게 된 동기가 되어진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내용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상 공파스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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