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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현대 지장보살영험담 모음 (1~52)


1.

날마다 좋은 날

-승진, 지휘부대엔 무사고, 좋은 일만 생겨

귀의삼보하옵고, 먼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의 원력과 가피력에 감사드리옵니다. 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편안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실로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을 입었기 때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전생의 업이 너무나 무거웠던지 92년 10월에 부친께서 운명을 달리하셨고, 설상가상으로 93년 2월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셔서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양친부모를 다 잃고 그야말로 의기소침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때에 모처럼 가족과 함께 산을 찾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발길이 산 속의 절로 찾아 들었습니다. 산에는 어느 곳이나 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절에 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한 법당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안정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법당에 앉아 있다 온 뒤로 며칠 동안은 근무도 잘 되고 기분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의정부 지역으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고, 법당불사를 시작한 모부대로 보직되어 삼보에 본격적으로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동안 열심히 근무하는 한편 기도정진하였습니다. 그런데, 승진에 실패하였습니다. 전년도에 부모를 잃은 아픔에 이어 승진에서도 탈락되자 충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지질이도 복이 없는 것일까.'라는 자괴감과 함께 부처님도 필요없다, 세상만사가 다 싫어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말 그 때는 부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승진에 실패하던 날 직접 부처님을 뵙고 원망하며 푸념하기 위해 법당을 찾아가던 중 우연히 서울 강동구 길동 대흥사의 주지이신 지족 스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법당으로 가서 제 형편을 소상히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뒤 군생활을 하면서 생전에 부모님을 잘 못모신 점이 마음에 늘 걸리고, 승진에 대한 욕심도 떨쳐버리기가 힘듭니다. 막상 승진에 실패하고 보니 부처님까지 원망스럽습니다."라는 제 말씀을 들은 스님께서는 조상천도와 함께 지장기도를 지극하게 해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은 뒤 지극정성으로 조상천도재를 올렸고, 가족과 함께 경기도 벽제의 보광사에서 2100일 지장기도를 입재하고 날마다 지장기도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천도재를 지내고 지장기도를 올리면서 정말 신기한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어두웠던 제 표정이 밝아지고, 가족들 모두가 밝아지고, 어렵게 맡았던 보직이 쉽게 풀리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저를 경계하던 분들이 오히려 저를 생각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과거에 상관으로 모시던 분이 저를 적극 도와주었고, 동기생들 역시 무척이나 저를 생각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호택 스님과 인연이 되어 제가 부임한 부대에 법당불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해 제가 그토록 바라던 승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승진이후 지장보살님이 계시는 철원 심원사 인근의 군부대로 곧바로 보직이 결정되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부임이후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매일 아침 심원사를 찾아 지장보살님께 지장기도를 드렸는 바 심원사 영도 스님께서 2천만원을 보시하셔서 당시 근무처 부대의 신병교육대에 법당불사를 추진케 된 것을 비롯하여 제 부대의 모든 사고를 미리 막아주신 것도 지장보살님의 가피력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차가 언덕에서 굴러떨어졌지만 차도 그대로고 운전병 역시 하나도 안 다쳤고, 브레이크 고장으로 차가 논두렁으로 굴러야 할 상황임에도 거짓말처럼 낮은 지역으로 가서 논 옆에 서고, 황산이 병사의 눈 부위로 튀었지만 실명되지 않고 무사한 것 등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으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휴가갔던 병사가 위기에 처해있는 여자를 구하고, 제대를 앞둔 병사가 전역휴가를 반납하면서 훈련에 참가하여 부대를 빛낸 공으로 신문에 보도되는 등 제가 지휘하는 부대에는 항상 즐거운 일만 발생하고 좋은 일만 생깁니다.

이밖에도 가피입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지면관계상 이만 줄이고 신행생활에 대해 몇 말씀 덧붙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우리 인간은 욕심이 너무 많아서 기도하며 소원을 빌었을 때 금방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일 소원성취가 되지않으면 쉽게 기도를 포기하는데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없는 겁동안 쌓아온 전생의 업을 생각해 볼 때 약간의 기도만 가지고 어찌 그 두터운 업장을 다 녹일 수 있겠습니가? 전생에 진 빚이 얼마인가? 이것부터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빚도 갚지 못한 상태에서 저축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라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 좋은 일(보시)을 많이 하고, 업장소멸을 위한 기도를 해야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은행에 돈을 저축하지 않고 돈이 필요하여 은행에 간다 한 들 누가 주겠습니까? 무엇보다 보시와 기도의 생활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지극한 정성으로 지장기도를 올리는 동시에 조상천도를 반드시 해야합니다. 제 경험으로 비추어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와 아울러 조상님들이 잘 보살펴주셨기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고, 조상의 은덕으로 만사가 형통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 번째, 부부가 서로 존경하며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지장보살님같이 공경하고, 아내는 남편을 지장보살님같이 공경하며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기도를 하면 그 효험이 배가됩니다. 남편은 흥청망청 사는데 부인이 밤낮 기도를 해도 효험이 적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제 경험에 비추어 보시를 할 때 아끼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시하는 마음은 남에게 줄 수 있다는 행복한 마음이며, 보시한 것이 유용하게 쓰여지기 때문에 보시야말로 좋은 업을 쌓는 일이며, 업장소멸의 길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실로 보시하는 데 주저하지말아야 합니다. 보시라는 큰투자를 하지않고 인색하게 살면서 큰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입니다. 열심히 보시하면 하는 만큼 그 과보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일매일 시간날 때마다 하는 것이 바로 감사의 기도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화엄성중님 감사합니다. 호법신장님 감사합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아내님 감사합니다. 자식님 감사합니다. 상관님 감사합니다. 부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모든 사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나면 정말 하루하루가 즐겁고 매사 하는 일이 잘 풀리게 됩니다.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고, "모든 중생 다 구해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원력을 세우신 지장보살님을 만나 불가사의한 가피를 입고, 더 나아가 날마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위해 제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제 삶의 변화를 보고 많은 분들이 불법을 배우고 지장기도를 올리면서 감사의 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이 살기좋은 극락정토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쓰도록 가피 내려주신 부처님, 지장보살님, 조상님과 불법으로 잘 이끌어주신 심원사 영도스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이 글을 쓴 사공유님은 철원 심원사, 파주 보광사, 서울 강동구 길동의 대흥사에서 신심을 기른 분으로 현재 육군본부에 근무 중이며, 육군본부 호국사 불자이다.


출처: 지장보살영험록 김 종매외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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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아의 죽음과 해원(解寃)

불교를 깊이 신봉하는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있는데, 신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한 불자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의 생활은 즐거움이 충만하였으며, 계를 지키고 독경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아내인 종홍(鍾紅)보다 일찍 결혼한 몇 명의 여자친구들은 『지장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꾸준히 염송하며, 아울러 가족들에게 살생하여 보신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에 다들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 이들 아기의 공통된 특징은 키우는 과정에서 영리하고 잘 웃으며, 거의 울지 않으며 병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도 아기를 임신한 후 아기를 위하여 『지장경』을 염송하면서 선근이 깊은 아기를 낳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임신 기간 내내 아내는 입덧이 매우 심했다. 메스껍고 구토하며, 몸이 붓고 좌골신경통이 생겼고, 음식 맛도 모르겠고 밤에 잠도 편히 못 자고 하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고통을 다 맛보았다. 하지만 낳기 전에 마지막 임신검사까지 줄곧 태아는 모든 게 정상이어서 위안을 받았다.

출산 예정일은 정월 초하루, 이것은 더욱 전 가족을 기쁘게 하였다. 납월 30일 집집마다 모두 모여 설 떡을 먹고 폭죽소리가 대지에 울려 퍼졌다. 아내의 뱃속 아기도 특별히 힘을 주며 발로 찼다. 시어머니가 “이 아기는 아마 마음이 급한가 보다. 빨리 나와 폭죽을 터뜨리고 싶은가봐.”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무상한가 보다. 아이는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아’ 죽은 것이다. 죽은 때가 설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태아가 움직인 후 온 가족이 행복의 동경 속에 빠져있을 때 죽은 것이다.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들 부부의 곤혹과 고통은 물론이고,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 부부의 일 때문에 나는 그 해의 설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해산하는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아빠 맹위(孟偉)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아들의 체온을 영원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부림쳤다.

나는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하늘은 이렇게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불제자에게 이와 같은 횡액을 만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은 그들이 불교를 믿지 않는 부모와 친척들에게 ‘불교를 믿는 것은 미신이다’라는 구실까지 주게 되었고, 크게 보면 그들 부부의 도심(道心)을 잃게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묘법 노스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결코 애석해하는 반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직설적으로 “좋아, 잘 됐어!” 하고 말하셨다. 예상을 벗어난 말씀이셨다. 아울러 맹위의 할아버지가 도살장의 백정을 하면서 많은 돼지를 죽인 적이 없느냐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스님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번에 태에 든 신식은 특별히 빚을 받으러 온 원수이다. 따라서 그가 태에 들면서부터 산모를 괴롭히며 가족들에게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성심으로 염불하며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지속하자 그 태아는 점점 불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지장경』은 그를 대신하여 숙세의 업장을 없애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금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하였다. 맹위의 할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소멸하면서 다시는 자손들에게 보복하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왜 출산 때 죽었느냐? 그것은 첫째 모자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그가 경법(經法) 듣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최후까지 머물다가 간 것이다. 그는 지금 이미 천계(天界)로 수행하러 올라갔으며, 다시는 인간세계에 와서 원수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 부부가 불경을 염송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반드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집안에 태어나서 성장함에 따라 그들 가족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 최후에는 그 애의 손에 패가망신하게 될 운명이었다. 따라서 아이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재앙이나 사실은 화(禍)로 인하여 복을 얻은 셈이다. 그러니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깜짝 놀랐다. 즉시 비통에 빠져있는 아기 아빠에게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알고 보니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정말로 돼지 잡는 일을 하였으며, 죽기 전 이상한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묶어 놓지 않으면 쉬지 않고 주먹으로 두드렸으며, 그래야 그의 몸이 편안해졌다. 그분은 죽을 때 매우 고통스러워하였으며 또한 보기에도 흉측스러웠단다(이 일은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이 일 또한 그로 하여금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단다).

그분의 몇몇 자녀도 모두 병으로 고생하였다. 맹위의 부친은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했으며, 큰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서 10년을 지냈다고 한다. 맹위의 대에 이르러 그의 형은 사십도 못 되어 정신이 이상하여 하루종일 이것저것 의심하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그를 욕한다고 생각하여 직장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맹위와 그의 누나는 앞뒤로 척추디스크를 앓았으며, 누나는 수술을 해도 완치되지 않았다.

묘법 노스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맹위가 불법을 배우며 채식을 하고 불력(佛力)의 가피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혼하면 안 되며, 설령 결혼하더라도 자식이 없을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안은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하여 후대 자손들이 몰락하고 병이 많을 것으로 정해졌다.”

스님의 법어는 마치 한바탕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삿된 불을 껐으며, 모든 사람의 의혹을 해소하였다. 더욱이 맹위와 종홍 부부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으며, 부부는 지금 더욱 용맹 정진하고 있다. 나는 그들 부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제불 보살께서 그들을 가호하여 빠른 시일 내에 귀한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 믿는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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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장기도로 깨달음을 이룬 큰외삼촌

일타스님 글



우리 집안 41인의 승려 중 가장 먼저 출가한 분은 나의 큰외삼촌인 김학남(金學南, 1902∼1955)으로 나의 어머니인 성호 비구니의 바로 밑 동생입니다.


큰외삼촌은 할머니 평등월 보살의 기이한 입적을 접하고 열심히 절에 다니다가, 23세의 나이로 1924년에 출가하였습니다. 처음 만공(滿空) 스님을 찾아가 머리를 깎아줄 것을 청하자, 만공스님은 사형 혜월(慧月) 스님의 제자가 될 것을 권했습니다.


"나의 사형 중에는 혜월이라는 천진도인(天眞道人)이 한 분 계시지. 혜월 사형은 너무 천
진무구하여 남의 스승이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내가 주선하지 않는다면
사형은 평생 제자를 못 들일거야. 네가 그분의 첫 번째 제자가 되어 봄이 어떠하냐?"


큰외삼촌은 만공스님의 권유대로 혜월스님의 제자가 되어 법안(法眼)이라는 법명을 받았
습니다.


그뒤 큰외삼촌 법안스님은 오대산·금강산·천성산·지리산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이름 있는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참선정진을 하였습니다. 오직 바루 하나, 누더기 한 벌로 살면서 선방에만 다녔습니다.



유유자적(悠悠自適), 법안 스님은 그 어떠한 것에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는 무애(無碍)의 행을 거침없이 하였고, 어느 때는 시를 지으며 스스로의 경지를 점검하였습니다.

일천 봉우리 위의 한 칸 집이여
반 칸은 노승이 반 칸은 구름이 차지했구나
어느 때 서쪽 바람 불어 구름이 날아가면
하나뿐인 창으로 밝은 달이 서로 찾아와 비추네

千峰頂上一間屋
半間老僧半間雲
有時西風雲飛去
一窓明月來相照

이것은 스님이 금강산 토굴에서 지은 시입니다.

이렇게 10여 년을 참선정진하며 지내던 법안스님은 35세가 넘자 해인사 백련암으로 들어와, 영구천(靈龜泉)이라는 조그마한 샘을 파고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지장기도를 하리라 다짐 했습니다.


스님은 단순히 입으로만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과 하나가 되도록 마
음을 모으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2시간씩 네 차례, 하루 8시간의 기도를 시작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기도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5년이 경과하자 삼매(三昧) 속에 빠져들어 3,4일을 밥도 먹지 않고 대소변도 보지 않고,
마냥 서서 목탁을 두드리며 지장보살을 부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대중스님들은 "법안스님이 저토록 기도삼매에 자주 드는 것을 보니 머지 않아 깨달음을 이를 것이다."라고 하면서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9년이 되었을 때, 법안스님은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법당을 뛰쳐나오며 외쳤습니다.


"허공골(虛空骨)을 보았다! 허공의 뼈를 보았다!"


그리고는 짧은 오도송(悟道頌)을 지었습니다.


허공골 중의
유상 무상이여
상 속에는 부처가 없고
부처 속에는 상이 없다

虛空骨中
有相無相
相中無佛
佛中無相


그 때 백련암 스님들은 당시 법안스님의 기도성취를 축하하면서 '영구천구년지장기도기념
비(靈龜泉九年地藏祈禱紀念碑)'를 세웠는데, 그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지장기도를 통하여 한 경지를 이룬 큰외삼촌 법안스님은 걸림 없는 법문으로 대
중들을 교화하면서 더욱 자재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1955년 가을, 홀연히 서울 도선사 석
불 뒤의 바위 위에 앉아 아무도 모르게 입적하셨습니다.


이처럼 삼매를 이룬 기도는 오도(悟道)와 직결됩니다.

깨달음의 원(願)을 세우고 불보살과 하나가 되면 능히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삼매(三昧)!

부디 삼매를 이를 때까지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부지런히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나'의 불성(佛性)이 발현되어 우리를 해탈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출처: 일타스님 기도성취영험담 모음집 祈禱(기도) (도서출판 효림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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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장경의 힘]




황 전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말단 공무원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가 어쩔 수 없는 보증을 서 주다보니, 빈손으로 공무원 생활을 청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친정집이 여수 한산사 절 밑에 있는데, 아마 방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날 등산복 차림으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실례합니다.”

하고 대문을 들어서니 60대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스님께서 무슨 일로...”

하시면서 합장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받아본 합장이라 어떻게 답할 줄도 모르고 인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는 스님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이 아니네. 거사님이 대문을 막 들어오는데 내 눈에는 스님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할머니라 눈이 좋지 않아서 그러려니 생각하였습니다.

“할머니,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까?”

“방? 방이야 있지, 그런데 거사님은 불교를 믿나?”

“아닙니다. 저는 불교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방을 내 주지 않아! 거사님이 앞으로 불교를 믿는다면 방을 내주지.”

“그러세요?

저는 아직 불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할머니, 믿고 안 믿고는 나중 일이고, 방을 하나 주실 것인지 안 주실 것인지 결정을 하십시오.

할머니, 이 동네 약수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 약수터가 어디 쯤 있습니까?”

“약수터? 저 쪽에 있지.”

“할머니, 그러시면 제가 약수터에 갔다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방을 줄 것인가 주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약수터에 가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 다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할머니가 방을 공짜로 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할머니의 시집간 딸이 와서

내게 말을 해 주었습니다.

내게 방을 공짜로 내 준 이유는,

내가 약수터를 가고 있는데 제대로 가는지 할머니가 담장 너머로 보는 순간,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기면서 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 약수터로 가고 있었지만,

또 하나의 내가 밭 한 가운데에

결과부좌를 하고 합장을 하는데,

하늘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빛이

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방을 내 주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 옆에는 이백여 평의 밭에 농사를 짓고

밭 주변으로는 개집을 여러 채 지어 놓고 개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 집에서 그런대로 살기는 좋은데 많은 개들 때문에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돈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10여일 후 방 계약 날짜에 이사를 와 보니 개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다가가보니 개장에 있던 7,8마리의 개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밥을 줄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하던 개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어 있다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들이 죽은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내가 이 집에서 불교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량을 청소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온지가 몇 달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한산사가 있었지만 절에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절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할머니의 딸이 친정에 왔다가 나를 보더니 지장경 한 권을 건네주면서 심심하면 읽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주는 성의를 봐서 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장 넘겨보니 꼭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가 적혀진 책 같아서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지장경을 내 눈에 잘 띄는 마루 선반위에 올려놓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놓아두겠습니다. 심심하면 언제든지 읽어보세요?”

“알았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을 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나는 난생 처음으로 우리 할머니와 그 밖의 조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장경을 아무런 성의도 없이

그냥 몇 장을 넘겼을 뿐인데.

나는 순간적으로 그 책이 보통 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지장경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 손 가는대로 책장을 펴서 읽어보는데,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내 이야기가 거기에 적혀 있지 않겠습니까?

‘지장경 12품: 만약 미래세에 어떤 남자나 여인이 혹은 젖먹이 때나, 혹은 세 살, 다섯 살, 열 살 아래에 부모나 형제자매를 잃고서, 그 사람이 장성한 뒤에 부모나 권속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함에 어느 곳에 떨어졌는지,

어느 세계에 태어났는지, 어느 천상에 났는지 모르거든, 이 사람이 만약 정성껏 지장경을 3번 내지 일곱 번을 읽으면 알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온 몸을 적실 정도로 울었습니다.

고아들은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들이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일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런 고아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분들이 계신다는 생각에 울고 또 울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날 밤부터 잠들기 전에 지장경 첫 장에 그려져 있는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리고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지장경을 읽기 시작하면 잠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잠과 씨름을 하면서 읽고 또 읽었는데 일주일만에 겨우 한권 읽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1일 만에 3독을 마쳤습니다.




그날 밤 꿈에,

내가 천상에서 어린동자의 몸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지옥 구경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꿈에서는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나의 어머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싶어서

21일 만에 또 3독을 하고 나니,

그 날 밤 꿈에 나는 또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몇 개의 지옥을 구경하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책을 건네준 할머니 따님이

오후에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장경을 다 보셨지요?”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어제 밤에 꿈속에서

아저씨와 아저씨 부모님을 보았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 벼루에 먹을 한동안 가시더니 갑자기 맑은 물로 그 먹물을 짝! 씻어내 버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됐다.’

그러시는 겁니다. 거기까지 보고나서

꿈을 깼거든요.”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곧바로 절에 올라가 지장보살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출처: 황전스님 오도선방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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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벼랑끝에서... 지장보살님 가피를..."


저희 남편은 사진작가입니다. 그런데 2년전부터 차츰 눈이 안보여 결국엔 한쪽 눈을 실명 하게 되었고 나머지 한쪽도 거의 안보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2년동안 모든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아보았지만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 다 심원사 스님을 찾아 뵙고 상담을 하게 되었고 2003년 1월 31일날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를 지내고 나서 스님이 병원에 가봐라 하시기에 그 다음날 남편과 병원 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뇌사진(MRI촬영)을 여러번 찍었어도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뇌종양이 크게 보이더군요. 선천성 뇌종양이라는 의사말이 1월 중순사진에는 안보이고 2월 초에 찍은 사진에는 보이다니...

의학적으로 이런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이제 뇌종양이라는 병명은 받았지만 의사선생님 말씀이 날벼락처럼 느껴지더군요. 수술을 해야하느데 수술하다 죽을확률이 60%, 다시 회생활 확률이 40%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더군요. 또 수술이 성공한다 해도 종양의 반 밖에는 제거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였지요. 또 수술을 하지 않으면 1년정도 밖에 살수가 없다 고 하더군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수술을 하고 싶으면 내일 아침이라고 빨리 하자고 하더 군요.

저는 수술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고 남편자신도 결정을 못하였습 니다. 그래서 또 심원사 스님께 전화를 해 어떻게 해야할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말씀이 잠깐 기다리라며 오늘밤에 스님이 위패만모시고 구병시식을 하고 전화를 주겠다고... 저는 초조한 마음에 안절부절하고 있었는데 밤 9시경에 스님이 전화 주셔서 구병시식이 잘 되었으니 수술을 하라고 하시기에 스님을 믿고 수술서류에 사인을 하였습니다.

남편에게도 그대로 말하였더니 남편도 "나 맘편하게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수술실에 들어가던 남편이 갑자기 "나 보인다. 글씨가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 다. 한쪽밖에 안 남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수술은 성 공적으로 끝나고 남편은 살아서 저의 곁에 왔고 또 반밖에 제거할 수 없다는 종양은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남편은 자기 수명대로 잘 살 수 있게 되었고, 저는 지장보살님의 가피에 어떻게 보답하나 싶어 스님과 상의하여 저희 남편의 작품을 보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심원사 공양간에 걸려있는 대형 연꽃사진이 저희 남편의 작품입니다. 지장보살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심원사 스님들께도 이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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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장보살님의 무한한 가피에 두손모아 감사드립니다"

지난 2001년 아들이 1차, 2차, 3차 부도에 이어 4차 부도까지 나서 총 부도액만 몇십억원이 되었습니다. 부도를 막을 길이 없어 제가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은행에 저당 잡히게 되었 지요. 그러나 부도액을 전부 막을 수가 없어서 대지 400여평 되는 살고 있던 집마저도 모두 다 날려 버리게 되었습니다. 은행에서 근저당 가압류가 들어와서 처분하게 되는 고비를 맞 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소송이 계류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둘 곳이 없던 차에 혜성한의원 한보살님의 소개로 심원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바로 2003년 1월 17일, 제가 처음으로 지장보살님을 뵙게 된 날이었지요. 심원사 스님과 상담후에 심원사에서 거주하며 기도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에 도량소리와 함께 기상하여 촛불을 켜고 다기물을 올리며 새벽예불도 반드시 참석하였고 시간이 나는 대로 심원사 절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도량을 쓸고 공양간을 도와주며 시간이 나는대로 제 한몸 아끼지 않고 보시를 한 것이지요. 이 곳 철원은 눈도 많이 내리는 곳이라서 어느날은 10여시간동안 눈을 치운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몸살한번도 걸리지 않는 것은 다 지장보살님이 저를 지켜주시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매일매일 노동보시를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길 40 여일이 지난 어느 날 저는 재판에서 승소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고 약간의 재산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노후를 맞이 할 수가 있게 되었지요.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하여 심원사 지장보살님을 찾을 계획입니다. 여러 신도님들도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신다면 저처럼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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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장보살님의 너무나 크신 가피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5남매의 어머니입니다. 저의 남편은 5년전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장남은 대학1학년부터 영가장애로 아프기 시작하여 대학교도 중퇴하였습니다.

저는 장남의 병을 고쳐보고자 14년동안 천도재, 굿, 만신 등 안찾아 가본 곳이 없을정도로 돌아다니며 일년 평균 2,000만원이상의 재산을 탕진하였으나 아들은 점점 더 심해만 갔습니다. 생활도 궁핍해지고, 사는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안정자보살님 소개로 심원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심원사스님과 상담하고 천도재 및 구병시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장남은 정 신병원에 입원을 고려하고 있었으나 구병시식 후 많은 차도를 보여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십 수년간의 마음고생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쁨이었습니다.

저의 업장이 두터운지 2002년 12월에는 손주가 교통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의식을 잃은지 17일째 저는 또다시 스님을 찾아와 상담하고 천도재를 하였습니다. 천도재를 지내고 이틀만에 손주는 기적처럼 의식이 들어왔고,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대학졸업반입니다. 취직시험때 필기시험 성적은 좋은데 면접만 보면 떨어 져서 스님께 기도를 부탁한지 3일만에 한진중공업이라는 대기업에 합격하였습니다. 저는 짧은 기간안에 지장보살님의 너무나 큰 가피를 받았습니다. 지장보살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또 저를 지장보살님에게 인도해주신 안정자보살님과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심원사 스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미약하나마 이글을 통해 올립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처: 지장도량 심원사(www.simwon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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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보살님, 오늘은 3천배를 해보시지요."

부천에 사는 자비심(가명)보살은 가끔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내원궁에서 같이 기도하던 스님이 밑도 끝도 없이 3천배를 권하자 의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에 10시간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면서 3천 배를 마쳤다.

그 다음 날 부천으로 돌아간 보살은 주차장에 남편의 자가용이 없는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외출했나싶어 열쇠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집의 문은 열려있었다. 혹시 도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보살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가 반갑게 아내를 맞는 것이었다.

"여보,여보. 나 정말 큰일 날 뻔했어.죽지않은게 정말 믿기지 않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던 보살은 남편의 말을 듣자 등골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자가용을 몰고 나갔는데 아마 속도를 좀 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전봇대와 충돌해서 차가 전복되어 폐차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남편은 털끝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사건현장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자비심보살은 그 모든 게 도솔암 내원궁에서 3천배를 드린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 그 때 힘들고 귀찮은 생각에 스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부처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지장보살님, 살펴주신 덕분에 남편이 철갑옷을 입은 마냥 조금도 다친 곳이 없으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보살은 그 일이 있은 후 형편이 허락하는 한 자주 도솔암을 찾는다고 한다. 하기야 남편의 목숨을 구해주신 지장보살님이 계신 곳인데 아무리 길이 멀다해도 어찌자주 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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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도솔암의 지장보살님은 특히 병고로 고생하는 불자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언젠가 대
구에 사는말기 유방암 환자였던 한 보살이 찾아와 지극 정성으로 기도한 지 23일 째 지장보살님이 방광하심과 동시에 그 보살은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 방광의 정도가 얼마나 휘황찬란했던지 새벽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에 불이 난 불 알고 허겁지겁 뛰어올라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2)

1996년 여름, 대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주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만 몰두하다가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을 때에는 유방암이 이미 말기에 이르러 수술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불자였던 그녀는 갑자기 찾아든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가 문득 결심을 하였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한번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나의 죄업 때문이 아니더냐. 마지막으로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업장을 소멸하고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자. ‘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그녀는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도솔암으로 찾아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365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끼니때마다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므로 ,하루 한두 끼만 먹으며 도솔암의 내원궁에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힘닿는 데까지 절을 하였다.

23일째 되는 날 밤, 땀과 눈물로 옴 몸이 흠뻑 젓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라.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잠만 자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그리고는 불단 위의 지장보살님께서 내려와 가슴 뒤쪽의 등을 어루만지더니 대침(大鍼)으로 세번을 찔렀다.

지장보살님께서 세번째 침을 빼는 순간, 그녀는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났고 ,갑자기 가슴주위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같은 시각 ,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으로부터 붉고 푸른 색의 빛이 하늘로 뻗쳐 오르는 것을 보고 환희의 예배(예경)를 올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예정 했던 백일기도를 마치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암에 걸렸던 자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 지장신앙,지장기도법, 김현준저, 도서출판 효림 ,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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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목포에 사는 보광화 보살은 육순이 넘으면서부터 꺼림칙한 꿈에 시달려야했다. 꿈 속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친구가 나타나 보살에게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네, 갈 길이 먼데 뭘 그리 꾸물대는가? 빨리 나를 따라가세."

보광화 보살은 꿈 속에서 너무 피곤하니 5분만 더 잔 후 출발하자고 애걸했다. 그러나 친구는 흉흉한 기세로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그치기 일쑤였는데 그 옆에는 돌아서있는 탓인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여자가 보따리를 들고 서 있더란다. 딱 5분만 , 딱 5분만, 보살은 그렇게 친구와 실랑이를 하다가 잠에서 깨어나곤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을 꾸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 꿈을 꾼 후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고, 또 한번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보살은 잠자리에 드는 일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보살은 도솔암 지장보살님이 영험하시다는 말을 듣고 만사 제쳐좋고 달려가 기도를 하다가 쉬는 틈을 이용해 한 스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스님은 지장경을 매일 독송하며 지극히 지장보살염불을 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라고 가르침을 주셨다고 한다.

과연 도솔암에 다녀와 매일 지장경을 독송한 이후 보살은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았을 뿐더러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도 전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영험도량에서 기도성취한 이야기 진 현종저 대원미디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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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관음전ㆍ도솔암 도솔천내원궁ㆍ참당암 약사전에 각각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지장 삼장(三藏)을 탱화가 아닌 불상으로 모시고 있는 유일한 사찰이다. 이는 성종 때의 중창이 왕실의 원찰(願刹)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선왕(先王)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먼저 지장을 모시고, 이에서 나아가 삼장을 모심으로써 이곳을 지장신앙의 중심지로 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장보살과 관련된 각종 영험담이 이어지고 있어,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기도 도량으로서 사시사철 기도하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음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상(보물 제279호)과 관련된 대표적인 영험담은, 일제강점기에 도난을 당하였다가 다시 선운사로 돌아오게 된 일이다.



1936년 당시 일본인 2명과 우리나라 사람 1명이 공모하여 보살상을 훔쳐간 뒤, 거금을 받고 팔아넘겨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지장보살상이 소장자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서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으니,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소장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후로 병이 들고 가세(家勢)가 점점 기울게 되자 꺼림칙한 마음에 보살상을 다른 이에게 넘겨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이 소장자의 꿈에 나타났고, 이를 무시하여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게 되자 그 역시 다시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이 보살상을 소장한 사람들이 겪은 일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소장하게 된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고창경찰서에 신고하여 모셔갈 것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시 선운사 스님들과 경찰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보살상을 모셔오게 되었는데, 이때가 도난당한 지 2년여 만인 1938년 11월이었다. 당시 잃어버린 보살상을 다시 모시고 온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에도 사건에 대한 이러한 개요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처: www.koreatemp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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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 혜숙님의 법보신문과의 인터뷰 내용

"11년 전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차도가 없던 중 한 불자의 소개로 심원사를 알게 됐습니다. 반신반의하고 심원사를 찾았습니다. 두 번째 오던 날, 철야기도를 하는데 지장보살님이 저를 보고 웃고 계셨습니다. 다음날 집에 돌아갔더니, 글쎄 남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있는게 아닙니까? 그 후론 집안의 대소사가 모두 잘 풀렸습니다. 그런데 3년 전 남편이 일때문에 충격을 받아 또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 부부는 확신을 갖고 기도하여 다시 병을 이겨냈습니다. 지금 우리 내외는 매주 심원사를 찾고 있으며, 1박 2일 혹은 2박 3일씩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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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임 인숙 보살은 3대독자인 남편과 결혼하여 이미 두 딸을 두고 있었다. 1976년 세 번째 임신을 하자 아들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하다가 임신 8개월째 인공중절을 하려고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병원문을 박차고 나왔단다.

이윽고 임보살은 이듬해 1월 귀여운 옥동자를 낳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갔는데, 허리 디스크라는 진찰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3주간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완쾌되지 않은 채 다시 군병역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다. 물론 허리 디스크로 판명되었고 병무청에서는 입대에 지장이 있는데 증빙서류로 종합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를 가지고 오라했다.

임보살은 광명회 문 창기법사를 찾아 상담한 끝에 임신 8개월 때 중절하려는 마음을 품었던 것이 탈이 난 것이라 여기고, 21일 동안 매일 시간을 정해 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21일 기도가 끝난 날 상계동 백병원에서 MRI촬영을 받았는데 끌쎄 아무렇지도 않다는, 즉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또 신기하게도 4번 척추뼈에 있었던 멍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보살의 아들은 현역입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논산 훈련소로 들여보낸 보살은 집에 와서 이렇게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했다.

"이미 저희가 살고있는 가평으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아들, 지장보살님의 아들로 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들이 보면 욕심많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아들은 6주 훈련을 마치고 가평으로 운전교육을 받으러왔고 지금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경기도 양주군 모 부대에서 근무를 하고있다니,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임보살은 항상 부처님과 천지만물에 감사하는 태도로 만사를 자신있게 처리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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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대원화 보살은 어느날 심원사에 차를 몰고 오다가 너무 졸려 길에 차를 세워놓고 잠깐 잠이 들었단다. 그런데, 꿈 속에서 맑은 물에 고기 두마리가 서로 만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개울가득 물고기가 가득차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어 마치 극락정토를 보는 것과도 같았다. 잠시 후, 잠이 깬 보살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참 이상한 꿈이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징조일까?"

그 때는 ,IMF로 불경기가 혹심했던 참이라 대기업도 줄줄이 도산하는데 대원화보살집에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 생겼다. 그 혹독한 불경기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커다란 일을 수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대원화 보살은 지장보살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라 믿고 더욱 열심히 심원사를 찾으며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



12~14

출처: 알기쉬운 지장보살, 지장기도 이야기 진 현종저 , 은행나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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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장천일기도회향 100일을 앞두고


900일이란 시간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고 보면 손가락

틈새로 떨어지는 모래알같이 흘려 보내기가 쉽다
게다가 내면적으로는 전혀 변화 없이 흘려 보내는 게 보통 하는

일이다.반면 어떤 서원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은 매 순간을

헤아리면서 보낸다.
때문에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없어서 양으로 엄청난 시간을

가지며항상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위치가 바른가를 점검하기

때문에 방향을잃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 커다란 변화를

얻어내게 된다.

이렇게 나는 지금으로부터 900일 전에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그 연유는 이렇다.
우리 집 가장과 나는 대학시절 만나 5년을 사귀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둔 중년의 부부이다.
그러던 중 10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훌훌 단신 고향으로 내려가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몇 달이면 끝이 날 줄 알았던 준비기간이 1년,2년으로 길어지자 우리
가정의 경제는 물론이려니와 정신적으로도 버티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도 난 끊임없이 부처님을 찾아가 그의 일이 잘되어서 어서

이 고통에서 헤어나기만을 기도하였다.
그간의 어려움을 다 벗고 완벽한 사업체로 일어서려는 순간

그 사람은삐끗 제 길을 벗어나 외간여자와 겉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바짝 차렸어도 버텨 나가기가 힘이 든 상태였던 그

기업이 풍전등화처럼 훅 불어 꺼진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결과이리라.
뿐만 아니었다.
그 동안 빌어다 쓴 주변의 빚을 갚지도 않은 채 그이와 또한 여자는
서류 일체를 몰래 뒤로 팔아 이익을 챙기려고까지 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빚쟁이들의 덜미에 잡혔고 아이들과 내가 살던

전셋집만이라도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기도해온 덕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성과 판단을 몽땅 잃었다.
옷가지를 챙겨들고 집을 나가 그 여자와 아예 동거로 들어갔다.
서류 상 그 회사의 주주로 되어 있던 내가 그의 권한을 위임받아

빚을 안는 조건으로 회사를 넘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사정사정하여 겨우 오백 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10년 간 벌어둔 재산을 몽땅 부어 버린 허탈감과 남편에게 버려

졌다는배신감, 어린 두딸을 어떻게 길러야 할 지에 대한 불안감 등 ….
밤이면 더욱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밤을 꼬박 새웠고,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당시 내 모습을 본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까맣게 타들어 간다고 하였다.
천일 기도는 바로 이때에 시작되었다.
시어머니 제사를 21일 앞두고 매일 지장전을 드나들 때였다.
우연히 만난 한 보살님이 본인도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 지장경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다음날부터 매일 한번씩 지장경을 읽고 108배씩 절하며 지장보살을
1000번씩 염송하였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천주 염주를 돌리며 염불을 하였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참으로 오랜만에 잠이 푹 들수 있었던 그 감사 함,그것이 첫 번째 변화였다.


100일이 지날 때쯤이었다.
문득 이러다간 우리 세 모녀 굶어 죽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의 일은 제쳐두고 내가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되었다
각 가정으로 직접 교재를 갖다 주면서 학생을 마다 잠깐씩 지도 해주는 눈높이 교사였다.
이 일이 비록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우선 생계 대책이 되었다는 고마움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방문해야 할 집이 아파트 5층이면 층계 첫발을 디딜 때부터 한쪽 손에는 학생에게 줄 교재가 두둑이 든 가방에 들려 있었다.
나에게 커다란 짐인 반면 삶의 보람은 다름 아닌 두딸이었다.
일을 끝내고 지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올라갈 때면 내 마음은 그리움으로 꽉 차 있었다.
어떤 때는 유치원에서 일찍 온 작은딸을 잠시보고 나갈 때가 있다.
아이는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고양이 추적을 시작한다.
가슴에 종이별을 달고 한 손에는 다림질용 분무기를 들고 고양이에게
선포한다.
"넌 체포되었다. 손들고 나와라"

고양이는 재빨리 싱크대 밑으로 식탁으로 피해 다니다가 결국 침대 밑이나
책상아래에서 잡히고 만다.
고양이 꼬리를 잡아당겨서 밖으로 꺼낸 뒤 얼굴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댄다.
" 은우, 그별은 뭐야?"
"경찰 표시야, 난 경찰이니까."
사춘기를 맞은 큰딸아이는 엄마에게 반발하기도 했다.
저녁나절 후다닥 뛰어 나간 딸. 결국 공원에서 만났다.
은비는 얼마나 자신이 슬픈지를 엄마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도 엄마를 편히 해주지 못해서 괴롭다고 하였다.
점차 내가 안정을 되찾아가면서 큰 딸아이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집안 분위기 탓에 책을 좋아하고 조숙해진 아이가 글짓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장려상, 입상,우수상,장원...차례차례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비록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지만 아이들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휴일이면 함께 산책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우리 두 딸들이 큰 위안을 받는 곳은 다름 아닌 어린이 법회,
학생법회였다.
부처님의 밝은 미소가 언제나 우리 두 아이의 마음을 밝게 해주었다.
학교에서 떠나는 여행길에 은비가 대관령에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너무 사랑해요."
어느덧 기도는 500일을 넘기고 600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저녁나절 집에 올라갈 때면 2층 아랫 계단에서부터 큰 딸애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을 누르면 "엄마,피곤하시죠."하고 큰딸아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 시간까지 나는 아파트 13층의 꽁꽁 언 복도를 걸어다니며 각
집을 방문했다.
그 때마다 어둠 속에서 비치는 가정의 아늑함과 버려지듯 둘이 있을 때모습을 가슴 아프게 비교하기도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지도하던 한 남자아이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 어머니는 사업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몸이 고달프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전혀 돌볼 수 없는 직장에서 벗어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결국 나는 집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점포를 하나 갖게 되었다.
종목은 커튼·침구 수예를 취급하는 가게여서 빈 시간에는 경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끔 책상과 의자를 갖추어 놓았다.
물론 이 곳에서 틈틈이 아이들 지도도 할 수 있었다.


우리 작은 딸의 유치원 졸업식 날 엄마는 또 눈물을 흘렸다.
2년 동안 스포츠 센터를 다니면서 엄마는 입학식 날 겨우 한 번 왔을 뿐이었는데 누구 못지 않게 씩씩하게 앞장서서 수영하는 아이를 보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올 봄에는 큰딸이 우리가 사는 지역 내 중고교학생 백일장에서 시 부문에 입상하였다.
엄마가 피곤해서 먼저 잠이 든 뒤에도 작가가 될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을
읽고 원고를 수정하느라 은비의 책상에는 자정이 넘도록 스탠드가 커져 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운 날이었다.
우리 세 모녀는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고 만족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두 딸들은 서해 간월도에서 고기에게 좁쌀도 주었고 수덕사에서 참배도 하였다.




불과 두 주 전의 내 생일에는 두 아이가 너무 분주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집 앞 베란다에는 20개가 넘는 촛불이 출렁이고
있었다.
절에서 쓰고 버린 몽당초를 모아 와서 엄마 주위에 켜 주었다.
'소원성취'만 남아있는 부처님께 올려진 초.
하늘의 별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딸들의 눈동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모든 평안은 내가 지장보살을 염하면서
내 자리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900일 전에 난 내 자신이 땅을 기어다니는 벌레처럼 비굴하게 느껴졌었다.어떻게 하면 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하고 한탄했다
이제 나는 번데기를 벗어나 고치를 뜷고 나가려는 나비로 변한 자신을 느낀다.
요즘 들어서 나는 내 스스로 복이 없지 않고 오히려 많다고 생각한다.

불과 한두 차례 작은 실수로도 파산을 하는 가정이 많음에 비해 태풍과 풍랑을 만났음에도 나와 내 두 딸이 안전할 수 있고 또 그 속에서 오히려
더 굳어지고 성숙해졌음에 아주 깊은 감사를 느낀다.
이제 100일만 더 있으면 회향이다.
회향의 바른 의미는 그동안 기도하고 닦아온 나의 정성을 주위에 돌린다는 것이다.
비단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편과 그 여자 그리고 그 누구에게라도 부처님의 자비를 보이리라…





내가 이제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관찰해보니
항하사 겁을 설하여도 다 할수 없네
한순간만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한량없는 이익이 하늘과 땅에 넘쳐나리라.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왕보살 마하살







《출전: 지장보살 영험록, 김종매외, 불광출판부,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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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 글을 쓰신 분은 30대 초반의 여성불자입니다.
이 분도 지장신앙 지장기도법에 소개되어있는 지장기도법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1)

얼마전에 선명하진 않지만 꿈속에서 어떤 스님이 내 머리에 우유를 부어주시는

꿈을 꾸었다.


2)

나는 지장보살본원경을 먼저 읽은 후 항상 천알염주(千珠)를 돌리면서 지장보살을 일념으로 생각하며 친아버지와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런데 어느날 꿈에서 할머니와 아빠가 똑같은 색종이로 접은 것 같은 파란색

배 2척에 한분씩 타서 강물을 건너가시면서 아주 환한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며 사라지셨다.



천도가 되신건가? 그런데 왜 여러명이 아니고 한 배에 한분씩일걸까?

하여간 얼굴표정은 너무 환했고 미소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아마..천도가 되신거겠지?



그리고 요즘들어 자꾸 스님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한 옛날 초가집의 누추한 방에 앉아있는데 스님이 들어오셨는데

내게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곤 잠깐 앉아있다 나갔는데 스님이 계셨던 자리에는 책 몇권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스님꿈은 내가 스님한테 꾸지람을 듣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어떤 스님이 나에게 광명진언을 외워보라 하셨는데

난 자면서 생각을 했다. 분명히 이거 내가 달달 외고 있었던 주문인데

왠일인지 꿈속에서는 전혀 한글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깨어나보니 너무나 잘 외워지던데...꿈속의 그 스님앞에선 어버버가 되버리는 것이었다.



글구 다시 참회진언도 외워보라고 했는데 이것도 분명히 외워 갖고 있던 주문인데

그 스님이 계시니 한자도 못외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스님이 공부좀 하라고 역정을 내면서 가셨다.



하여간 희한한 꿈들이다.



3)



어제밤 나는 천알염주를 돌리면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다.

효림출판사의 지장기도 지장기도법에 나와있는대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세생생 알게모르게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구니가 찾아왔는지 자꾸 졸음이 왔다.


그렇게 나는 졸다가 다시 염주를 돌리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느순간부터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상태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친구가 보이는 것이었다.

내친구가 나와! 라고 크게 소리치자 내 몸에서

귀신 하나가 빠져나왔다.

귀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진 않았다. 시커멓고 흐물흐물한 모습에
어느정도 사람의 모양새는 띠고 있었다.그냥 느낌으로 귀신이라는
느낌이 전달 되어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은 엄청난 충격과 진동을 겪어야만 했다.

마치 우주선이 성층권을 빠져나오듯이 말이다.



나는 아마도 그 동안 빙의 되어있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4)

꿈 속에서 지장보살님을 뵈었다.


내가 뵌 지장보살님은 흰색 옷을 입고 계셨으며 온 몸에서 광채가 났다.

난 지장보살님께 나의 아빠에 대해서 물었다.



지장보살님은 날 쓰다듬으시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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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당신은 정말 내 남편이시네요. (www.ekayana.or.kr에서 퍼옴)


94년 9월말 경부터 제 인생에서 가장 알찬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감사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장경 독송을 시작한 이유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도 힘든 결혼 생활에 저는 찌들고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집안 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얼마 후 24세의 나이로 결혼하였습니다. 남편 된 사람은 인물도 잘 생겼고, 집안도 좋은 편이어서 저는 둘이 힘을 합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시 시험 공부를 해 한의과 대학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신한 아이를 유산까지 시켜가면서 직장 생활을 하여 생활을 책임졌고, 남편은 입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부 터 저는 시댁에 적응을 못하고 시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해 시숙님과 동서 형님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편 을 가르듯이 형님은 형님, 우리는 우리, 시부모님은 시부모님이라는 식의 상태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은 한 집에서 살 수가 없어서 집을 얻어 이사를 나왔습니다.

남편의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경제 사정은 날로 어려워졌습니다. 몇 년간 어려운 생활을 하다보니 저도 남편도 지쳤습니다. 게다가 시부모님도 경제 사정이 나빠졌습니다. 젊어서는 큰 사업을 하시던 분들이라 씀씀이는 무척이나 크셨습니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으로나 우리보다는 몇 배나 나은 두 분 시숙님들을 마다 하시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조그만 일에도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남편은 술까지 먹고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했다가 그만두고, 그러면 공부는 그만두고 돈이나 벌어달라고 하면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하는 등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라 부모님께는 하소연 할 처지도 못 되었습니다.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교회며 점치는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간만 마음을 채워주었을 뿐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으므로 저의 갈등과 고민은 더욱더 쌓여갔습니다. 저는 생기를 잃어 갔고 저의 결혼생활은 해가 갈수록 악순환이 되었습니다. 살아갈 희망도 없었고 또 뚜렷이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항상 잠재의식에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죽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정도로 저는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죽지는 못하고 이런 고통에서 헤어나고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였습니다.

이혼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평소에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던 ㅇㅇ사에 계시는 보살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 속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이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비췄습니다. 그러나 보살님은 아마도 남편은 나에게 받을 빚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빚은 갚아야지 회피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니 정 이혼을 하고 싶으면 지장경 독송을 한 뒤 맑은 머리로 판단하여 이혼을 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가지고 지장경 독송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49번 독송을 발원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절에 와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는 집이나 직장에서 독송하였는데 불심이 깊지도 못한 내가 기도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경전을 읽으면 남편은 무슨 나쁜 일이나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눈초리를 보냈고, 직장에서 쉬는 틈에 경전을 읽으려고 하면 직장의 상사들이 눈치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짬을 내 지장경 독송을 계속하였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가정살림을 하는 제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지장경 독송을 하루에 한 번씩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도 저에게 불만이 많으시던 시부모님과 시숙님들, 그리고 동서 형님들께서 달라지신 것입니다. 전에는 직장에까지 전화를 하여 잘잘못을 따지시던 시어머님께서 일체 전화를 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숙님들도 "우리 제수씨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씀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감격하여 지장보살님께 한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장기도를 드리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저는 정말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매달렸고, 불평도 많이 했으며, 울면서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이런 모든 것을 잘 받아 주셨고, 그런 모든 것을 먼저 자신이 변화해야 된다는 것을 꿈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나쁜 꿈으로 잠자리가 항상 불편했는데 지장기도 중반쯤에 꿈 속에서 광륵사의 창건주이신 여화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여화스님은 "부처님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말로 표현할 수없고 근심 걱정이 없고 좋은 곳이다. 꼭 성불하여서 부처님 세계에서 만나자. 나는 부처님 세계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잠자리가 편안했고 나쁜 꿈에 시달리는 일이 없어졌으며 지금은 꼭 보여 주실 것만 꿈에 보여 주십니다. 고민도 많고 말도 생각없이 하던 제가 조금은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말을 할 때도 조심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제 자신을 미워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머리가 맑아져 조심해서 말을 해야 된다는 걸 알았고, 저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차츰 술을 덜 마시게 되었고 조금만 마셔도 취해서 많이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49독이 끝난 후 유산한 아이와 남편의 어렸을 때 죽은 형의 천도재를 봉행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좋아지던 남편이 갑자기 난폭하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을 원하면 하고, 은 행에 있는 빚은 나중에 벌어서 갚아줄테니 지금은 저보고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실망하여 절에 가고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성으로 기도를 했는데 왜 그럴 까?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광륵사 보살님을 밖에서 만나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내가 남편과 시댁 어른들께 진 빚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이 날까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빚을 졌다니.. 그런데 빚쟁이도 아닌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달라고 떼를 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를 물어 보셨습니다. 얼른 이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빚 받으러 온 사람에게 빚도 안 갚고 내쫓으려고만 하니 빚쟁이가 더 날뛸 수밖에 없으니 이제부터는 지장경을 읽은 공덕으로 빚을 갚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부터 내가 진 빚이 있으면 정말로 갚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지장경 독송을 시작했습니다.


지장경 100번 읽으면 사주팔자가 달라진다는 법사님의 말씀에 저는 100번 읽을 것을 발원했고, 지장경 100번 독송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금 남편이 변했습니다.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적은 돈이지만 결혼 후 몇년 만에 월급봉투를 가져왔습니다.

남편과의 이혼 문제로 시작된 지장보살님과의 만남으로 우리 집안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가 시댁 식구들의 변화입니다. 동서 형님 두 분 중 한 분은 지장경을 독송하며 절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다른 한 분은 관세음보살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시아버님과 남편은 집에서 지장경 독경 테이프를 듣고 또 지장경을 독송하고 계십니다. 어려웠지만 지장경을 100번 독송하고 나니 이제는 모든 일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고 미래에 희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100독을 마친 뒤 꿈을 꾸었는데 제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꿈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나의 남편이구나. 아니 지장보살님이 모자란 나를 이끄시기 위해 남편으로 화현한 것이었구나. 그렇지 않았으면 어찌 내가 지장보살님을 찾았겠으며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 시간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은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을 만나뵙고 의논하여 결정내리시면 어떨까요. 이혼은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부처님과 지장보살님과의 만남은 쉽지 않으며 한순간이 평생을 좌우할 것입니다.


나무 남방화주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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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낙태로 얻은 아픔이었는데..(www.ekayana.or.kr에서 퍼옴)


작년 여름 휴가 때 우리 가족은 온천에서 여름 휴가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에 ㅇㅇ사에 들렀습니다. 이 절에는 남편이 존경하는 스승님의 부도탑(浮屠塔)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고, 남편의 학창시절 친구이며 오랫동안 불교공부도 같이 한 친구 분이 법사님으로 계시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도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들른 것입니다. 법사님이 서울에 계실 적에 만났었기 때문에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 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하며 오랜 시간 대화를 하였습니다.

이야기하던 중 저는 무심코 남편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 이상 어떻게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었 습니다. 옆에 있던 보살님이 제 편을 들어줬습니다.그랬더니 남편이 "아프다고 해서 한약도 지어 주고, 병원에가서 종합진찰을 해본 결과 병이 없으니 신경만 안 쓰면 된다고해서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해줘도 아프다고 하니, 낸들 어쩌라는 말이야"하며 그 동안의 심정을 하소연이나 하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법사님이 혹시 유산한 아이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법사님은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이미 생명체이기 때문에 태아일 때 죽은 아이라해서 전혀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무주고혼(無住孤魂)이 된다. 일본에서는 유산한 아이들을 수자령(水子靈)이라고 해서 천도시키는 일이 일반화 되어있는 것 같더라. 지난 번 텔레비젼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엠(M)의 작가도 그냥 완전한 픽션으로 극본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34세로 결혼한 지 6년이 넘었습니다. 결혼 후 곧 임신을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다음에 곧 임신이 되었는데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유산을 한 뒤부터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집안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하고는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겨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좋아지지는 않아 그 다음에는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임신이 되도 몸이 아프니 또 유산을 시키고, 그렇게 하여 6명의 아이를 유산시키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혹시 산후조리가 안되어 그런가 하고는 다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정성껏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병명이 없이 아프다고 하니 가족들은 이제는 '복에 겨워 그런다'고 하며 관심도 안 갖고 남편마저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저대로 몸도 아프고 마음도 상해 이혼까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 때 온천물에 목욕 좀 하자면서 내려왔다가 광륵사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했고 법사님은 그러면 지금부터 지장경을 독송한 뒤에 내일 아침에 아이들의 천도를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불교를 믿었지만 저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심지어는 남편이 못마땅하게 할 때는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서 비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는지 법회에도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장경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하니 밤을 새워서라도 읽으려고 결심하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졸려서 한번도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몇 년만에 처음으로 달콤한 잠을 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저는 공양물을 준비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동안 눈물이 마구 나왔습니다. 죽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리고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유산된 아이들의 천도기도를 드리고 나니 아픈 것도 덜 아프고 가슴에 맺혀있던 것이 풀린 것 같이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라 오후에 출발을 하려니 법사님께서 집에 가서 지장경을 100번 읽어서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와 유산시킨 아이들과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께서 좋은 세계에 나시기를 발원하며 열심히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몸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지장보살님 정말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까? 제 아픈 몸이 씻은 듯이 나았고 저는 다시금 평범한 가정주부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된 것입니다. 평소에 무관심했던 불교에 대해 귀의심(歸依心)을 내게 되었고, 이제는 불제자가 되어 지장경 독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다시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지장보살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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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떠나가다.(www.ekayana.or.kr에서 퍼옴)


광륵사와는 93년 음력 사월 초파일부터 인연을 맺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불교 청년회에서는 매년 초파일날이 되면 부서별로 인원을 나누어 일손이 부족한 사찰을 찾아가서 봉사를 한다.

그 해엔 우리 부서에서 ㅇㅇ사를 돕기로 하였기 때문에 나는 다른 회원들과 함께 ㅇㅇ사에 갔다. 아침엔 신도분들을 안내하고 저녁에는 점등하는 것을 도와 드렸다. 일이 거의 마무리되어 집에 오려고 하는데 법사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주 들르라고 하셨다. 그렇게해서 난 마음이 착잡하고 울적할 때마다 ㅇㅇ사에 가 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법사님과 보살님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는 법우님이 나의 모습이 항상 병색이 깃들인 것처럼 보인다며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약간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영가 천도를 봉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ㅇㅇ사에 들러 법사님께 상의를 드렸다.

법사님은 나에게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면 그 분들을 위해 지장경을 독송해 드리면 좋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39세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고깃배를 타셨는데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나가시면 저녁 늦게 돌아오셨다. 9년이 지났지만 언제나 아버지의 싱글벙글 웃으시는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들에게 힘들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항상 웃으셨던 것 같다.

사고는 갑자기 일어났다. 뉴스에서는 날씨가 흐리다고만 했는데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다. 배에 타신 다섯 사람 중에 아버지만 물에 빠져 돌아가셨다. 우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3년 뒤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싫었고 식욕도 없고 옆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 같았다. 몸은 언제나 불편했고 위장병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런 뒤 나는 광주로 와서 직장엘 다녔다. 나는 평소에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무서운 꿈을 많이 꾸었다. 그래서 깨어 있을 때도 누가 꼭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껴 마음이 무겁고 소화도 잘 안되며 피로도 많이 느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욕심은 많아 몸은 더욱 피로를 느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소한 한마디 말에도 상처를 많이 받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내 쪽에서 먼저 방어자세를 취하는 바람에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그러니 평소에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밝게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작은어머니도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작은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셨는데 고생만하다가 생활이 좀 나아지니까 중병에 걸렸던 것이다. 작은어머니네 형제분도 젊어서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작은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께 '사람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돌아가시던 날 밤에 할머니께는 '어머니, 저기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나를 잡으러 옵니다. 어서 저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하세요. 전 가기 싫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또 오빠는 심장병으로 고생을 많이 해 왔다. 갓 태어났을 때 이불 위가 아닌 맨 방바닥에 눕혀 있었고, 어머니는 오빠의 옆 에서 잠이 들어 계셨다. 할머니께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는데 방이 뜨거워지자 오빠는 뜨겁다고 울었으나 할머니는 방안에 어머니가 있으니 신경도 안 쓰고 불을 계속 지피셨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오빠는 뜨거운 열이 심장에 박혀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계신다.

돌아가신 분들과 오빠의 심장병 이야기를 하니 법사님께서는 우선 지장경을 49번 읽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기도를 드릴 때 항상 영가님에게 극락왕생 하시라고 하면서 기도를 드리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영가님들에게 '갈 길을 못 갔으면 얼른 극락왕생 하시고, 나쁜 곳에서 고생하고 계시면 좋은 곳에 태어나세요'라고하면서 지장경을 독송했다.

매일 한번 씩 지장경을 읽었다. 처음 지장경을 읽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하루에 한 번씩 지장경을 독송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한 분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틈이 날 때마다 읽었다.

49일째 되는 날 꿈을 꾸었다. 누더기 옷을 걸친 스님 한 분이 나타나셔서 나의 등을 두드리며, '기특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그 다음 날은 어떤 할아버지가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왔다갔다하시면서 "밥은 먹을 수 있되, 쌀은 먹을 수 없다."라는말을 하셨다. 나는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쌀을 씻어서 불에 끓이면 먹을 수 있는 게 아닙니까?"라는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그게 아니니라."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아 처음부터 많은 것을 원하니 차근차근 공부하라는 가르침인 것 같았다. 아마 그 할아버지는 지장보살의 화신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나서 나의 아버님과 작은 어머니, 그리고 나와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해 정성껏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천도재가 끝난 뒤에 나는 오빠의 건강 회복과 나의 괴로움이 소멸되기를 바라면서 지장경 100독을 발원하였다. 어려웠지만 무사히 지장경 100독을 성취하였고, 지장경 100독을 끝내는 날 밤에 꿈을 꿨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내 주의를 빙빙 돌다가 떠나갔다.

그 뒤부터는 잠도 잘 자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신경질적인 성격도 많이 없어졌고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매우 원만해졌다. 또한 오빠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오빠는 아직 수술을 한번 더 받아야 하므로 앞으로도 계속 지장경을 읽을 생각이다.

나는 지장경을 독송함으로써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더 깊어졌고, 나도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어야겠다는 발원도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전해 주어 그들도 나와 같은 기쁨을 맛보게 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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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바른 정신을 되찾다.


광륵사를 찾게 된 것은 같은 동네에 사는 ㅇㅇ사 신도 분의 덕택이다. 그 신도 분은 ㅇㅇ사 창건시부터 열심히 절에 다니시던 보살님의 며느리로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당신이 뒤를 이어서 열심히 부처님께 정성을 올린다고 했다.

그 보살님은 자신도 몸이 아파 지장보살님께 공양을 올린다고 지장경을 독송하니까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하시면서 나에게도 절에 가서 살 면서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5년 전에 남편을 사별(死別)했다. 남편은 두 아들과 세살난 딸, 그리고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이천만원이 넘는 빚을 남겨 놓은 채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 남편은 평소에 간경화를 앓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일찍 떠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죽기 전에는 마을의 이장도 맡아 했고,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파는 일도 크게 했었다. 그 해만 잘 넘기면 잘 살 수 있었는데 갑자기 죽으니 나무들은 헐값에 넘어가고 채권자들의 빚 독촉이 심했다.

바깥 일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내게는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할 시간도 없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중3, 중2 되는 아들 둘과 세 살난 딸, 그리고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공장을 다니면서 논과 밭을 팔아서 빚을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그런데 남편의 1주기가 되는 제사를 모시고는 나는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옷이며, 이불 등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태워 버린 것이다. 가족들이 나를 나주 정신병원으로 데리고갔다. 약을 타다 먹으면서 요양을 하니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는 빚을 갚기 위해서 광주 시내의 큰 식당으로 가서 일을 했다. 1년 정도 일을 하여 오백만원을 모았고, 그 돈으로 다시 은행돈을 일부 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정신병이 도진 것이다. 죽은 남편이 당신을 못잊어서 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교회에도 다녀 보았고, 큰 굿도 했다. 그러나 별로 차도가 없었다. 시어머님은 내가 무섭다고 시누이네 집으로 가셨고, 집에는 어린 딸과 나만 남았다. 다행히 큰 아들은 공업고등학교 3학년으로 취업을 나갔고, 둘째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채로 마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해서 간 상태였다.

그런데 나에게 어떤 조그마한 선연(善緣)이 있었는가 절에서 살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나도 이렇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딸과 함께 절에 가서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여 그 신도 분을 따라 ㅇㅇ사로 갔다. 다행히 절에 먼 친척 되시는 할머니도 한 분 계셨다.

법사님께서 이것 저것을 물어보셨다. 같이 간 신도분께서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법사님이 좋은 일하는 셈치고 병을 고쳐서 광륵사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하셨다.

법사님께서는 "절에서는 부처님께 공양만 잘 올리면 누구든지 편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지금은 약사경과 또 다른 책을 만드는 일로 무척이나 바쁘니 기도 방법을 가르쳐 줄테니 혼자 해 보십시오."라고 하셨다.

나는 가르쳐 주신대로 열심히 하려고 했으나 남편이 항상 가슴에 있으면서 나를 그냥 앉아 있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법당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산으로 마당으로 돌아다니면서 남편에게 얼른 극락세계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떠나지를 않는 것이다.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내가 절에서도 며칠 못 살고 올 것이라고 했으며, 시댁 식구들과 친정 식구들 모두가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며칠이 지난 후 법사님이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면서, 나보고 3일만 집에 갔다 오라고 하시면서 차비를 주셨다. 그런데 나는 집에 가기가 너무 싫어 앞문으로 나갔다가 몰래 뒷문으로 방에 들어가 있었다. 세 번이나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시고는, 법사님께서 '그러면 정신을 잘 차리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있으라' 고 하셨다. 그런데 그 삼일간 나는 더 미쳐서 날뛰었나 보다.

법사님이 오시니까 삼일간 절을 관리하던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못 고칠 것 같다고 정신병원에 보내야 된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법사님이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법당으로 들어가 절을 하면서 지장보살님의 명호를 부르시면서 따라 하라고 하셨다. 일곱 살난 딸 아이도 함께 기도를 했다.

딸아이에게는 엄마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나중에 안 일인데 거의 1080배 정도 했다.

그 다음날 함께 과일을 먹는데 보살님이 웃으면서 "아줌마는 어째 배고픈 귀신이 있는 사람 같네요" 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굿을 하면서 무당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죽은 시동생이 '배가 고파 죽겠으니 밥좀 주고 장가좀 보내 달라. 우리 어머니는 너무 지독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는 열일곱에 공장에 다니던 중 동료들과 장난을 하다가 드라이버에 찔려서 즉사한 시동생이 있었다. 우리 시댁은 그 시동생이 죽으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중의 대부분을 남편이 위궤양 수술과 간이 나빠 병원에 입원할 때 병원비로 썼고, 나머지는 남편이 남긴 빚을 갚는 데 썼다. 그런데다 시어머님은 너무 속상하여 그 시동생 일은 생각도 하기 싫다고하며 제사도 안 지낸다는 말을 했다.

보살님이 "아줌마는 다른 때는 청소하던 빗자루도 던지고 달아나는데 음식 드시라고 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 다른 사람들이자리에 앉기도 전에 먼저 먹고 일어서는 것을 보니 배고픈 귀신 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다음날 부처님께 시동생과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조석으로 절을하며 지장보살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였다. 그때가 백중이 돌아오기 한달 쯤 전이었다. 이렇게 기도를 한 후에 백중 날 조상님들과 시동생 그리고 남편의 천도재를 함께 봉행하며 좋은 곳에 가시기를 발원하였다. 그 이후 나는 많이 좋아졌다.

아침 저녁으로 건강과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더니 몸도 마음도 아주 편하며, 객지에 있는 아들들도 모두 무사히 잘 있다. 특히 둘째 아들은 다섯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력이 약해 모든 일을 금방 잊어 버려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서 중학교만 겨우 졸업한 상태로 취직해 있었는데 아주 많이 좋아졌다.


이 모든 것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라 생각한다. 무한히 감사한 마음이다.



출처: 광륵사 홈페이지(www.ekaya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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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근무지에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휴게소에서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다.

회한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운전을 했다.

도착하여 보니 이미 영안실에 계셨다.
평소에 아버지께 불효만 했기때문에 가슴은 터질 듯 아팠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보았다.
49일 동안 지장경을 100독을 읽어드려야 겠다고 마음을 정하였다.
아침에 1권 저녁에 한권씩 읽기로 하고 열심히 하였으나 아침기도는 그르지 않았으나 저녁기도가 회식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일주일을 남겨두었는데 49권을 더 읽어야 했다. 막재날까지 마칠려면 하루에 7독(14시간)을 독경해야했다.

마침 휴가기간이라 막재날 아침까지 겨우 100독을 마치고 재를 마치던 날 몽중 가피기가 있었다.

옥상에서 팡파레와 축제가 열리는 듯한 소리에 올라가 보니 스님이 상여를 매고
"자! 서편 공덕장으로 가자"는 소리가 들렸다.

재를 마치고 큰 스님이 관해보시더니 보살님과 주변 식구들이 열심히 기도를 해서 좋은 곳에 가셨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여러 차례의 기도를 해왔지만 가장 힘들었던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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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시 찾은 건강과 행복

광륵사를 처음 찾아왔던 날은 우연찮게도 음력으로 12월 8일 성도재일이었다. 아픈 사람들이 많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서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갖고 있다가 그날 불쑥 마음이 내켜서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발걸음이 있기까지는 너무 많은 고통과 방황이 계속되고 있었고 스물하나의 젊은 나이로서는 버티기 힘든 나날이었다.

나는 전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취직을 하였으나 몸이 아파 일주일만에 그만두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열정은 높았지만 아무 것도 못 하고 집에만 있으니 몸도 그렇고 마음까지 점점 불안하여 헤어날 수 없는 괴로움의 늪에 빠져 들어갔다. 부모님과 가족들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고 3때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병.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척추 교정으로 유명하다는 활기원으로, 지압 받는 곳, 단전호흡원, 한의원 등등...지치도록 돌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병원에서는 급히 입원하라해서 입원하여 종합진찰을 하면 병명을 모른다고하고, 활기원에서도 다른 아픈 사람들은 모두 치유가 되어 나가는데 나 만 치료가 되지 않으니 특이체질인 것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척추에서 물까지 빼 보았고, 단전호흡원에 가서 체조도 해 보고, 나중에는 마음의 병인가 싶어 성당에도 다녀 봤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괴로움으로 찌들려갔고 어느 때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부모님께 불효한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론 옮기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몸이 아프니 밤에는 불면증마저 생겼다. 내가 이러니 어머니의 걱정은 태산이셨다.

그러다가 아는 언니와 함께 ㅇㅇ사를 찾게 되었고, 법사님으로부터 많은 말씀을 듣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원인 모르게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업의 과보이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전
생의 악업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지금 살아가면서 더 커다란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지장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하셨다.


더구나 예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취미로 사냥을 자주 하셨고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객사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불쌍하게 죽은 영가들을 천도하는 것이 병을 낫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지장경을 2번씩 독송하기로 했다. 몸이 아파 걷기도 힘든 내가 소리를 내어 독송을 하고 경전 한 품이 끝날 때마다 3번씩 절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의심이 갔다.

다행히 함께 온 언니도 어려서부터 몸이 아파 고생하던 사람이라 이번 기회에 지장경을 백 번 읽기로 발원하고 함께 기도를 시작했다. 아침에 절에 와서 법당에 가서 예배를 드린 후 지장경을 한 번 읽고 방에서 누워 쉬다가 오후에 다시 일독을 하였다.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법당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투르기만했다. 하지만 아픈 몸이 나을 수 있다는 말만을 믿고 아픈 것을 참고 독경을 겨우 마쳤다. 절을 하는데도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통증을 느꼈다. 사람들은 내 몸이 이렇게 아프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생겼다. 첫날 지장경 독송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잠을 자는데 다른 때와는 달리 불면증으로 시달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대신 밤에 꿈을 꾸었다. 초췌해 보이는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칼로 나의 얼굴을 여러 번 그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인데 왠지 낯설지 않 아서 그를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약간의 아픔을 느 낀 것도 같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약간의 점액이 느껴지기도했다.

이런 꿈을 꾸고 난 다음 날은 전날보다 몸이 가벼워져 절도 조금 더 할 수 있었다. 그날도 지장경을 두번 독경하였다. 한번에 2시간 정도 걸리니 하루에 꼭 4시간을 소리내어 지장경을 읽은 것이다. 그날 밤에도 꿈을 꿨다.

어느 조그마한 방이었다. 그런데 방문이 미닫이인 것으로 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 방안에 있는데 초록뱀이 자꾸만 방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평소 뱀을 가장 싫어하는 나는 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그 뱀은 중간쯤 들어오다가 방문에 걸려 죽고 말았다.


셋째 날에도 다시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많고 의사와 간호사들도 많았다. 아마도 종합병원인 듯했다. 그런데 한 장소에서 접수도 받고 진찰도 받았다. 칸막이도 없었다. 난 빨리 진찰을 받고 싶어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의사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간호사에게 "왜 진찰을 받을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하고 항의를 했다.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화내 본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나의 의견만 주장하다가 깨어났다.


넷째 날의 꿈이다. 엄마와 숙모, 나 이렇게 셋이서 버스를 탔다. 처음 본 거리의
풍경이 차창에 나타났다. 버스를 내려 어떤 동네로 올라갔는데, 지대가 높은 것으로 보아 산동네인 것 같았다. 올라가기도 힘들고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조그마한 절이 보였다.

엄마와 숙모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시고 난 그곳에서 전에 지압을 해 주시던 아저씨를 만났다. 어떤 아저씨랑 둘이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에게 왜 요즘은 지압 받으러 오지 않느냐며 걱정하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저씨가 "그럼 내가 네 몸을 낫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마. 첫째는 잠잘 때 베개를 허리에 놓고 자고, 둘째는 어떤 책을 주면 이 책을 열심히 보아라."라고 하셨다.

그 책을 받고 법당으로 들어갔으나 엄마와 숙모는 안 계시고 법당 안은 허전했던 것
같다.


다섯째 날의 꿈이다. 같이 기도하는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아는 어떤 할아
버지가 있는데 산 속에서 할머니와 같이 아주 젊고 건강하게 사신다." 그런 말을 듣고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 산속으로 가니 그 분들은 흰 머리가 하나없이 건강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방이 많이 있었고 그 방안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큰 건물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계단식 강당처럼 아주 큰 공간이 나왔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앞은 아주 작게 보일 정도로 컸다. 맨 앞 단상에는 동으로 된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법회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옆에 언니와 그 친구가 있었다. 중간에 땅콩을 나눠 주면서 이걸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난 받아서 맛있게 먹고 노래도 부르면서 법회를 마쳤던 것 같다.

여섯째 날 꿈이다. 고등학교 때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면서 제과점으로 불렀다. 가 보았더니 서너 명의 친구가 한 테이블에 앉아 음료수, 피자, 치킨 등을 시켜 놓고 자기들은 먹지 않으면서 나더러 살이 쪄야 하니까 많이 먹으라고해서 나 혼자 맛있게 먹었다.

일곱째 날 꿈이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이 내 눈 앞에 끝이 없이 펼쳐졌다. 물 위에 크나큰 다리들이 줄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한강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덟째 날 꿈이다. 산 속에 초가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백발의 노인이 한 분
살고 계셨다. 영화 속에서 본 듯한 그런 첩첩 산중이었다. 밖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초가집 마루에 많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할아버지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있는 듯했다.

이런 꿈을 꾸며 지장경 독송을 4주일쯤 계속했다. 그런데 차 차 잠도 잘 자고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져갔다. 지장경을 읽으며 인과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런 뒤로는 '내 인생은 이렇게 망가져 불행하고 어둡기만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어졌다. 지금은 내가 지은 악업으로 괴로움을 받지만 이제부터 선업을 지으면 언젠가는 즐거운 과보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몸이 조금 나아지니 이제 생활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씩만 독경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직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죽음을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지장보살님께 너무나도 감사하다. 집안 식구들도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너무도 놀라신다. 다시 한 번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에 감사드리며 더욱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출처: 광륵사(www.ekaya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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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방광(放光)을 한 장처사의 지팡이



수십 년 전 경북 예천에 장처사(張處士)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처사는 지팡이를 하나 짚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지 지극하게 '지장보살'을 염했습니다.


어찌나 지극하게 불렀던지 ,잠을 자면서도 지장 보살을 염하였다고 합니다.
장처사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이 제상(際床)을 차려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는데 ,그 제상에 올려놓은 지팡이가 밤만 되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팡이에서 뿜어 나온 빛이 온 방을 밝혀 불을 켜지 않아도 방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뒤 화장을 하면서 그 지팡이도 같이 불에 태웠는데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에서 사리가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출처: 일타큰스님저 기도 (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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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

약 20년 전 , 서울에 사는 법연거사는 40대중반에 이르러 조상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 조상의 영가천도와 누이동생의 임신을 기원하며 백일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누이동생이 결혼을 한지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여 불화가 잦았고 ,자주 친정으로 쫓겨 오기도 하였다.

법연 거사는 매일 진관사의 지장보살님께 나아가《지장보살본원경》총13품중 1품 또는 2품을 읽은 다음 ,〈지장보살예찬문〉을 읽으며 158배를 드렸다.

그리고 30분정도 ‘지장보살’의 명호를 외웠다.

이렇게 매일 같이 지장기도를 한지 80일가량이 되었을 때 아기를 갖지 못했던 누이동생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끝마치는 날 새벽녘에 참으로 묘한 꿈을 꾸었다.

꿈에 보통보다 약간 작은 키에 남루한 한복 차림의 노인이 나타나 말을 하였다.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다. 너의 덕을 입어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

그리고 집안 어른들로부터도 장호원에 조상이 살았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하였으므로 , 의아해 물었다.

“누구신지요” 저는 감사의 인사를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서울 장위동에 살았던 법연거사의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내 손자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포졸 두 사람이 나타나 노인을 모시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노인은 이미 남루한 한복 대신에 찬란한 장군복을 바꾸어 입고 있었다.

노인은 거듭 법연거사에게 ‘고맙다’ 는 인사를 하였고 포졸들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노인을 모시고 사라졌다.

너무나 실감나는 꿈을 꾼 법연거사는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당숙모에게 전화를 하여 장호원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 그와 같은 할아버지가 계셨다는 말은 들었으나 나도 뵈온 적은 없다.

네가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 ?

이렇게 법연거사는 지장기도를 통하여 집안의 근심 이었던 누이동생의 잉태를 도왔고 , 가족들에게 완전히 잊혀져 있었던 선대 조상을 천도하였던 것이다.


【 출전: 지장신앙,지장기도법, 김현준, 효림, 2000년도 】



2) 산이 다하고 물이 다 한 곳에

지장보살님이 주신 아기 -



불광법회를 만나고서 비로소 부처님의 크신 위덕과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상님께서 극락 왕생하시고 저의 누이동생도 보살펴 주시고 형제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고 감사하였습니다.저는 9남매 중에 맏이인데 집안과 형제들에 대한 책임도 컸지만 그무렵 출가한 동생이 소생이 없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개울에서 목욕하고 가까이 있는진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 앞에 공양올리고 지장보살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관사 부처님은 그전부터 자주 참배한 부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는 날 법당 문앞에 서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머리카락이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습니다. 몸은 굳어지고 어떤 전율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았습니
다.



저는 손에 염주를 들고 단단히 마음먹고 법당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법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때의 지장보살님과 시왕님의 무서운 상호를 지금껏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노하신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법당 밖으로 밀어내는 것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첫날이니까 물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에는 시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무서운 때는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꽉 감고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경드렸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장보살경 1품 또는 2품을 읽고, 지장예찬문을 읽으며 백 오십 팔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0분간을 일심염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는 듯 법당에서 나오곤 하였는데 이러한 힘든 경계가 1주일 후에야 바뀌었습니다.



차차 그런 경계가 사라져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지장보살님이 반겨 주시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어찌 장부가 그런 요망한 말을 하느냐고 꾸지람 하시겠지만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표정이 나날이 반겨하시고,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법당 근처에 오기만 하여도 반겨주시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하였고 그 사이에는 오직 환희심과 감사로나날이 지나갔습니다. 집안 이야기를 드리자면, 제 여동생이 충청도 제천에 사는데 결혼하여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후사를 바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채 세월이 흐르니 어른들의 불만이 겹쳐서 불화가 빚어지고 마침내는 몇번이나 친가로 쫓겨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차례 겪고 나니 친정의 큰 오라비라고 하는 책임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
리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세달 가까이 되니 임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동안 하도 걱정했던 일이라믿기지 않더니 드디어 달이 차 금년 봄에 아들을 순산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난산을 예고했습니다만 저는 부처님만 믿고 아들 순산을 선언하고 집에 왔더니 과연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백일 기도를 마친 저는 계속하여 또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은 또 꿈이야기냐 하시겠지만 이 꿈은 정말 꿈같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새벽녘인데 꿈속에 어떤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작은편이고 남루한 한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덕을 입어서 내가 좋은 데 간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느니라.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라고 한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서울 장위동에 사시는 저의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리고서는 "이 사람이 내 손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역사물 TV에서 보던 포졸형식을 한 두사람이 나타나서 그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노인은 새옷으로 갈아 입었고 그것은 옛 장군복 같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와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포졸 형색을 한 사람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실감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 저는이상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
습니다 진관사에 가서 기도하고 그 길로 사무실로 나가 당숙모댁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숙모는 올해 83세이신데, 16세에 시집오신 저희 집안의 산 역사이십니다. 전화로 "장호원할아버지가 계셨습니까."하고 물으니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본 대로 형상을 말씀드리니 "내가 그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다. 그
데 너는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상님을 위한 기도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숙모는 "참 잘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조상님을 위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잘했구나"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경전 말씀에 일체중생이 미혹하여 어둠을 방황하고 불보 살님이 능히 이를 구원하신다 하였고 일심으로 염불 기도하면 모든것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은 우리가 알수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의 한 단면
이라고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확실히 이름모를 분까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꿈에 본 무주고혼

그런데 저에게는 저의 생친이 계시고 또 큰아버님이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말을 바꾸면 큰아버님 앞으로 몫이 지어진것입니다. 두 어른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신 지 오래입니다.



저는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까닭인지 아버님에 대한 사모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을 믿으면서부터 제사는 정성드려 올렸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듯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다. 매일 아침 개울에 가서 냉수욕을 하고 진관사에 참배하고 지장보살님 앞에 무릎
을 꿇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며예배하고 예배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정근일과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에는 아버님을 위한 기도와 아울러 저의 기도인연 으로 무주고혼들까지도 모두 부처님 은혜를 입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 일과를 정확히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하면서 홀로 정근하고부처님앞에 약간의 공양을 올렸을 뿐 무주고혼들을 위하여 시식은 8월18일 회향날로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진관사 개울에는 빠알간 꽃물이 다 흘러가고 어느덧 여름이 한창인때였습니다. 그때가 7월말 경이었는가 합니다. 새벽 늦게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낯익은 진관사 일주문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건데 별안간 수십, 수백명의 낯설은 사람들이 모여들
어 저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관사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를 둘러 싸며 "배가 고프오, 못살겠소. 어서 먹을 것을 주오."하고 일제히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오는 8월 18일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는 소참이나마 준비해서 대접하겠오."하였으나 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배가 고파 못견디겠오. 어서 밥을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난처해졌는데 순간 저의 곁에 위풍이 당당하고 키가9척이나 됨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이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니오. 우리 병력을 풀어야 하겠오. 객귀들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더니 금방 일단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모와 군복이 배당되어 곧 입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어 스크럼을 짜고 빈틈없이 줄을 서서 전진하였습니다.그런데 여전히저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도 20일만 기다리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저 대대장이라는 사람을 말하기를 저들에게 무엇인가 먹여야지 그냥 두면
안된다."하더니 어디서 날라 왔는지 큰 밥통에 밥과 나물이 운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어 군대용 반합에 담아서 우리 군인들이 숟가락으로 퍼서 저들을 먹였습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한줄로 서서 그 앞에 밥을 먹겠다고 모여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쉴사이 없이 퍼먹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러는 사이에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객귀들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서의 대대장이라는 9척이나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그것은 좀체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 이런 고생을 한다. 마음을 밝히자면 부처님을 믿어라. 그리고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라. 그리고 부처님 믿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가라. 이번에 너희들이 배부르게 먹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법연거사의 은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
라"



이말을 들은 군중들은 일제히 저를 향하여 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하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혹 기독교신지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하니 역시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법연거사의 은덕으로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극락세계로 가게 된다." 하며 앞서 말을 기독교적 표현으로 바꾸어 되풀이하고 나서 "법연거사에게 감사하라"하였습니다. 역시 그들도 앞으로 나와 저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보는듯 생생한 것은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것은 흡사 법회를 마치고 나오는 저희들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객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듣는 말이라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주고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이번 기도의 목표인 선망부모와 무주고혼을 위한 기도가 성취됐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나 현실생활이 다가 아니며 사후 영혼의 생활만도 다가 아닌 불멸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도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제가불자의 독경,염불의 공덕이 경전말씀 그대로 불가사의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지장보살은 절에서만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또한 가지는 중생세계에는 무주고혼과 같이 시장(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고 구재하여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겠습니까? 불법만이 제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 우리 부처님만이 모든 생명을 밝히고, 구원해 주는 영원한 광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효성을 일으키고 자비심을 일으켜 조상님과 무주고혼에
게 부처님의 법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3년)


출처: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불광출판부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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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홍서주 보살이 약 20년 전에 체험한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합판상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리점으로부터 거래대금 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자 대리점 사장은 묘한 제안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건만 해결하고 나면 아주 괜찮아집니다. 1,500만원만 융통해 주십시오. 300만원도 바로 드리고, 1,500만원은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500만원씩 세 달 동안 갚겠습니다."
아들은 300만원을 받을 욕심으로 누나의 남편인 매형에게 1,500만원을 빌려 대리점 사장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주보살은 은행에 대리점의 신용을 알아보았더니 언제 부도가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1,50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잘못되면 딸의 가정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판이었다.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지장보살예찬문>을 독송하며 158배씩의 절을 올리고, 지장보살염불을 하였다. 자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이 어려움을 막아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마침내 500만원 1장의 기한이 돌아왔고, 그 전날밤 보살은 꿈을 꾸었다. 많은 조상들이 배를 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배가 진흙벌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복차림의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타나 배를 밀었고, 배는 물에 떠 순조롭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오후 5시 10분전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살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꼭 도와주실 것을 믿고 속으로 소리쳤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시가 되자 은행원이 '현찰로 줄까, 수표로 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보살의 기쁨과 놀라움과 감사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계속하였고 두 번째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또 꿈을 꾸었다.

아들이 큰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그넷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네를 멈추려 하였지만 어찌나 힘차게 흔들리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넷줄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지난 번 꿈에 배를 밀어주었던 분이 나타나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말을 하였다.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던져라."
어느새 보살의 손에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던졌더니 곧바로 받아 끊어지려는 그넷줄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보살은 꿈 속에서도 조이던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좋아하였고, 두 번째 약속어음 500만원도 마감시간이 다 되어 해결되었다.

세 번째도 서주보살에게는 현몽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자 법당과 비슷한 넓은 방이 나타났으므로 거기로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모습이 매우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문밖에서 안을 살피더니 보살을 보고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길을 잃어 집으로 갈 수가 없지? 이 길을 따라가라."
보살과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오자 아래쪽에 사는 동네와 빈집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 약속어음도 잘 해결되어 1,500만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대리점은 그 후 곧 부도가 나서 망하였다고 한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 김현준저 지장신앙 지장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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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법운거사부부의 죽음을 초월한 지장기도


며칠 전 불성계발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때였다. 이날의 주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의 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노출을 하는 것이었다.

법운(法雲)거사가 초대받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 1년 6개월은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 고통이
끝난 날은 생애 최고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법운 거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포교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 자비행 보살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지요.

아내는 열심히 절에 나가고 신심도 깊었지만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에
너무 힘이 들었던지 나에게 의논을 했어요.

글쎄, 그 고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어요.

매일 저녁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날짜까지 정확히 알려주면서 1년 6개월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내가 다니는 사찰 스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기도만 열심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기도는 되지 않고 고민만 점점 깊어 갔던 모양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심이 너무나 약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그래서 법사님께 상담을 드렸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시기에 순간 무슨 해결방법이 있구나 하고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법운 거사의 모습은 너무나 근심스러워 보였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잘못 될 수도 잇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법운 거사님, 지금부터 아내를 끔직히 사랑해 주세요.
신혼부부 시절의 사랑으로 돌아 가세요. 아내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공덕을 지으면 지금의 이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공(功)을 드려 덕(德)이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지장경』「제6품 여래찬탄품」에보면 '만약 십재일에 불 ·보살과
모든성현의 존상 앞에서 『지장경』을 읽으면 모든 재앙과 고난이 없으며 ,
그가 사는 집안에 어른이나 어린이가 현재 또는 미래 백천 세계에 영원히
악도를 여의게 될 것이다'하였지요
그러니 지금부터 십재일뿐만 아니고 매일 지장 보살의 말씀을 믿고 함께 기도해 나갑시다.
법운 거사님은 이 제의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다음날, 법운 거사의 자택에 방을 비워 작은 원불을 모시고 몇 사람이 모여
점안법회를 실시하였다.

법문을 통하여 지장보살의 원력에 대하여 설법을 하였다.

"지장보살님은 구원의 보살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힘들어 하실 때 지장보살님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믿는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불심은 믿는 이의 마음속으로 배어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마음으로 섞이고 ,그러함이 느껴져서 서로 통할 때
부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기도할 때 신앙의 힘은 솟아나고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화·복은 자재롭게 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염부제 중생을 살펴보니,몸 움직이고 생각 일으킴에 죄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열반경』에서'온갖 제유(諸有)를 벗어남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제유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차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밝은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대자연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유독 인간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서 지옥을 떠도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인간의 고통의 세계를 절대로 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주시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믿고 나면 어떠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 있을 것입니다.

이날부터 법운거사 부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모시고 『지장경』을 읽었다.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관하게 생활했다.

법운거사를 아끼는 법우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한번씩 모여 『지장경』을 독경하며 ,강설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하였다.

저승사자가 나타난다는 마지막 날 저녁에 많은 법우들이 가정법회를 열고 법우들이 돌아간 후 우리부부는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지장보살 님이 구름을 타고 나셨어요. 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서서히 아내 앞으로 다가 오셨어요.

우리는 너무나 감격했어요. 지장보살님을 친견(親見)하다니,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지장보살 님의 입안에서 향내음이 넘쳐 나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온몸을 감싸니 1년 6개월 동안 긴장된 몸과 마음이 일시에 가벼워짐을 느꼈어요.

너무나 편안 했어요!

세상에 태어나 가장 환희로운 순간을 맞이했던 겁니다.

이곳이 극락이구나 생각하면서.'아!지장 보살님 감사합니다'하고는 눈을 뜨니 새벽이었어요. 온몸이 촉촉이 젖어 있었어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살아 있구나 하는 확인이었지요. 나는 아내의 땀을 딲아 주었어요.

부부는 3천겁의 인연이라 했던가, 부부는 이생에서 인연맺어 살아 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고, 괴로움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가정에 부처님을 모시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던 법운 거사님이 오늘은 왠지 존경스럽다.

1년6개월의 긴시간 동안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진하던 법운거사 부부의 사랑은 불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들 법운거사 부부처럼 깊은 종교적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랴?



『출전: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정우서적,2000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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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불연(佛緣)을 맺게 해준 지장 기도


콜레라에 걸린 첫돌 된 아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싸고 토하고 밤새 울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싸고 토하니 아이는 탈진상태가 되고 나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죄받을 소리지만 서도 저 아이가 차라리 죽었으면 싶었다.

오죽이나 보기에 안타깝고 가슴이 메어지면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을까 ,
탈진한 아기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물론 병원은 매일 매일 열심히 다녔으나 웬일인지 설사도 멈추지 않고
토하는 것도 별차도가 없었다.

마침내 아이는 눈을 아예 감고 헐떡거리고만 있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은 없는 듯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를 등에 업고 며칠 밤을 꼬박 세우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를 윗목에 이불을 덮어씌운 채 밀어 놓았다.

이젠 도저히 어쩔 수도 없으니 차라리 죽으면 저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멎으면 그만 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 설상가상 애들 아빠는 집에를 며칠째
안 들어오고 있었다.

애들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친정 건넌방에 잠시 와 있을 때였다.
그땐 어디에도 매달릴 끄나풀도 없으며 의지할 곳도 없는 처지였다.
종교가 무엇인지 조차도 알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친정 건넌방에 얹혀 있는 처지인데도 ,아이들
고모가 결혼을 했다가 아이를 하나 낳아 놓고 억울하게 죽었기에 ,나는 아무것도
해놓지 못하나 항상 마음속으로 그 고모가 좋은 곳으로 극락 왕생 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음력 4월이면 그 고모의 밥 한 그릇 이라도 형식상으로라도 윗목에 떠놓았다.

물론 뭔가를 알고 했음이 아니고 다만 이상하게 아이들을 위하여 그
고모님의 밥을 떠놓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몇 년 전에 우연히 ,아주 우연히 금호동 극장 옆 민가에 절이 있기에
아이를 업고 지나가다가 무심코 들렀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나 그곳은 너무 작고 초라했으며 다시 되돌아
나오고 싶었던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아이를 업은 나 역시 젊고 초라한 모습이었으리라.
머리를 기른 나이든 아주머니가 힐끗 쳐다보더니 본체 만체 하고 자기 일만
계속 했다.

나 역시 계면쩍어서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오려는데
가만히 아주 조용하게 "지장보살"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 왔다.
밖으로 나오려던 나는 뒤를 돌아봤다.

저게 무슨 소린가? 나는 소리나는 데로 몇 발짝 옮겼다.
냄새까지 나는 집 ,아주 더럽고 지저분한 집이었다.

한쪽 방에 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그곳을 들여다 보았더니 아주
초췌하고 늙고 나이든 남자가 냄새나는 방에 누워 있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지장보살을 외고 있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빨리 그 집을 나와 버렸다. 왜 그리 그곳이 지저분하고 싫었던지....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아이가 사경을 헤매는 데 나도 모르게 그때의
그 꺼림 직한 집에서 흘러나오던 "지장 보살"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지장보살"아마도 아픈 사람이 불러서 좋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초라하고 병에 찌든 모습의 그 남자가 부르던 소리.

"지장보살"나는 무심코 아이를 윗목에 밀어 놓은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사람인지 귀신인지 누군 지는 몰라도
나는 울면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찾았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무엇인지 모를 상대를 그렇게 애절하게 찾았다.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30년이 넘는 그때부터 나는 지장 보살 님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리라.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부모 조상 탓이라고 내가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환경 자체도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몇 시간인가, 얼마 나였나 모르는데 문득 이게
아니다.

아이를 업고 오랜 경험이 있는 나이 드신 의사가 있는 소아과를 찾아가자
하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정신 없이 지장기도를 하다 보니 윗목에 아이는 헐떡이고 있고 밖은
어느덧 밤11시가 넘었는지 깜깜했다.


어떻게 아이를 업고 달려갔는지 모른다. 다른 때는 병원간판도 많이도
보이더니 그날 따라 아무리 병원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밤11시가 넘은 뒤라 문도 다 닫았을 것이다.

나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송장처럼 차디찬 아이를 등에 업고
얼마나 한참을 헤맸는지 모른다.

저 만큼서 아주 히미 하게 ㅇㅇ의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아이가 하도 말라서 등에 아이가 있는지 조차도 감각이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만난 듯 ㅇㅇ의원 앞으로 가서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또 두드렸다. 양심도 체면도 없었다.
한참 만에야 문을 비스듬히 열고 그때 내 생각으로는 60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가 짜증스런 얼굴로 내다보았다.

"할아버지 , 살려 주세요. 아이가 죽어요"크게 소리쳤다.
"누구요?"
하더니 그 할아버지는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를 구해 주세요. 제발!"하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못해 할아버지는 "들어와"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낡고 허름한 진찰실이었다.
정말로 수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를 딱딱한 침상에
눕히고는 아이의 눈을 벌려보고 배를 만지더니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이런 애를 이렇게 될 정도로 놔두었어 ,죽일 것들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다 낡은 서랍 속에서 천천히 알약을 몇 개 꺼내서 하얀
그릇에다 득득 갈기 시작했다.
약을 가는 그릇이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고 그릇이 너무 더러웠다.
약을 갈아서 또 물약 같은 것을 꺼내더니 "이 것 먹여" 하면서 퉁명스럽게
내주었다.
나는 무조건 밤에 의사를 만난 것이 감사하고 약을 받은 것이 기뻤다.
어떻게 집을 왔는지 모른다. 인사나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아이는 너무나 탈진 상태로 죽은 듯이 입을 벌릴 줄 몰라서 내 입에다 약을
한 모금 물어서 아이 입에다 조금씩 흘려주었다.
반은 아마도 흘렸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에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잤을 까? 찬기가 느껴져서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이불이
들썩들썩 거렸다.
놀란 가슴에 이불을 벗기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아기는 두손을 저으며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가! 아가! 소리치며 아이를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무심코 시계를 바라보았더니 새벽 5시가 넘어 있었다.
서너 시간을 잔 듯 했다. 나도 지친 몸이라 잠이 들었으리라.
우리 아기는 그렇게 살았다.
필히 죽을 것을 그 할아버지가 살리 신게 아니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무작정 아이를 안고 허공에 대고 절을 했다.
보리차를 미지근하게 데워서 입에다 떠 넣어주니 아이는 받아먹었다.
그리곤 곧 잠이 들었다.
나도 아기를 안고 잠이 들었다.

며칠 뒤 나는 몸을 추스르고 아이를 회복시킨 다음에 그냥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아이를 업고 그 감사한 할아버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헌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하는가.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몰라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간 길을 돌아서 또 가고 또다시 되돌아서 그 날밤의 기억을 아무리
되새겨서 그곳을 찾으려 하였으나 허사였다.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아무리 찾으려 하였으나 허탕을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갔다.

이 불쌍한 인간을 가슴아픈 일을 당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지장보살님을
시켜서 우리아이를 구해주신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금호동을 며칠씩이나 뒤져도 못 찾다니 …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인연으로 몇마디 흘러들은 "지장보살님"감사합니다.
지장 보살 님의 위신력은 무궁 무진 하다는 것도 이제야 비로소 진지하게
나마 느끼고 살고 있지 않은 가 생각한다.



내가 이제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관찰해 보니,
항하사 겁을 설하여도 다 할 수 없네.
한 순간만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한량없는 이익이 하늘과 땅에 넘쳐나리라.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보살!!
두손을 모아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왕보살 마하살!!!






출처: 오! 지장보살님 나는 언제 지옥문을 두드리나이까?(박영옥 , 관음문화사, 2002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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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교통 사고 후 새 삶을 열게 한 간절한 지장기도



오늘 혜광(慧光) 거사는 5계를 받고 불자가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는 남자신도가 수계를 받는다는 것은
불교계의 현실로 대단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수계법회에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30여 명의 새 불자 가운데 혜광 거사는 첫 번째로 수계를 신청했으며 ,
오늘 만큼은 직장을 뒤로하고 부처님 전을 찾은 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혜광 거사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직장에 야간근무를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연락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올라갔다. 중 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를
바라보니 앞이 캄캄했다.
온몸에 붕대를 감아 놓아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식물인간이 되어 피부는 검게 변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넋이 나간 상태라 도무지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혜광 거사의 아내 보명심 보살은 포교원의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해온 신심이
돈독한 보살이었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보살님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지장보살님이 옆에 계십니다.
오늘처럼 어려 울 때 지장보살을 부르면 반드시 가피를 주실 것입니다.
자, 힘내세요. 저와 함께 이 순간부터 함께 기도합시다.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회복할 가능성이 단 1%뿐이라도 기도하면 불보살님은
응답해주십니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간과 위, 장의 파열로 인하여 오장육부에 지혈이 되지 않아 의사 선생님도 가재로
그냥 봉해 놓은 상태였다.
중 환자실을 나오는 사람들마다 말을 못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살님의 손을 잡고 다시금 지극한 마음을 다하여 기도했다.
"대원본존이신 지장보살이시여,당신의 고통받는 중생이 찾으시면 기꺼이 다가오셔서
고통속의 중생을 건지시기 위하여 성불도 늦추셨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제자 보명심 보살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생명이 위독하오니
살펴주시옵소서.

오늘 이러한 병고는 모두가 지난날 지은바 어두움의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지장 보살님, 이 고통 속에 잇는 가엷은 중생이 생명을 건지면 저는 반드시
진실한 불자로 평생토록 살아가도록 인도하겠나이다.

이러한 원을 세우고 보명심 보살님과 약속을 했다.

100일 동안 매일새벽4시, 그리고 사시(오전9∼11시),저녁7시에 함께 기도하며
회향은 환자가 완쾌된 후 포교원에서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원이었지만 지잘 보살님의 원력은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였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간절한 기도는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기도를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직 한 생명을 살려 보려는 순수한 열망으로 기도했다.
포교원 신도들도 각종 기도나 법회를 봉행 하면서 다함께 마음을 합하여
기도에 임해주었다.
간절한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지나가듯이 숨죽이며
환자를 지켜보기를 50여 일이 되던 날 새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살님의 전화였다.
"법사님 남편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금씩
좋아진다고 그러셨어요."
"아. 그래요 잘됐군요. 올라가 뵙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환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2차 수술 후 회복만 되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까진 산 넘어 산이었다. 불 보살 님께 감사 드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금 간절함을 더하여 기도에 몰입했다.
드디어 환자는 다행스럽게 2차 수술을 마치고 며칠 후 눈을 떴다.
그리고 고통을 호소하듯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였다. 환자의 이마를
어루만져주고 ,합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환자는 눈을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쉬는 모양이었다. 병실을 나왔다.
"보살님 ,힘 내세요.이제 확실하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열심히 기도합시다"

보살님도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환자를 면회하는 시간외에는 오직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있었다.
환자는 3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오장육부가 성한 곳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3차 수술이 무난히 끝나 회복되었고 산소마스크
도 뗄 수가 없었다.
조금씩 움직이고 말을 하더니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문병을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몸의 피부 색깔도 조금씩 제 색깔을 띠기 시작하였다.
70여 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죽을 먹기 시작했다.
지옥을 넘나들며 처절한 고통을 당하던 혜광 거사는 이제 계절이 바뀌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육신 어느 한곳도 성 한곳이라고는 없지만 모두가 회복되었고 전신건강도
되찾게 되었다.
100일이 되던 날 환자는 그렇게도 원하던 퇴원을 했다.
그리고 포교원에 도착하여 회향기도를 봉행하였다.
많은 신도들의 축하 속에 조금은 힘들어 하면서도 그의 눈에는 삶에 대한 강한 집념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환희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순간 불자의 길을 가기 위하여 수계를 받는 저 모습이 마치 도를 구하려
출발하는 수행자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계사가 수계자에게 연비하는 동안 헤광거사는 대중과 함께 끓임 없는 참회진언을 하고 있었다.
다시금 계사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연비 할 때의 따끔한 그 찰나에 여러 생에 지은 모든 죄업이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면서 사라지듯 순간에 소멸되었습니다."
헤광 거사는 자신에게 들려오는 청정한 스님의 말씀에 합장으로 공감하여
감격해 하였다.





나무 유명교주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남방화주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 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법사,정우서적,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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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음이 답답하고 외롭고 허전할 때 , 나와 그 형님은 각각 홀로 이름

난 절에 바람처럼 다녔었다. 절은 교회와 달리, 왔다고 잘왔노라 반기

는이 없고, 간다고 잘가라고 배웅하는 이 없었다. 물론 그런 점이 우리

를 더욱부처님 앞으로 끌려가게 한 힘 이었는지, 혹은 인연이 그런것이

었는지...


절하는 법도 몰랐고, 염불도 모른채 , 답답한 마음에 보문사, 전등사,

수덕사, 구룡사, 낙산사,,,기타 도착해서는 고작 남들 절하는 모습

뻘쭘히 넘겨다 보다가 경내 한바퀴 휘돌아 보고 돌아 오는게 고작이었

다. 그래도 다녀오지 않은것 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러길 수년이 흐른 어느날 어느 보살님의 권유로 작은 절에 이름을 올

리고 지장경 한권과 108염주를 스님께 서 주신걸 받아 가방에 챙겨넣고

인연을 맺은지 불과 6개월 남짓 되었을까?

형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100일 지장경 완독 하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일이 바빠 새벽에 귀가하는 날 에도 2시간 넘게 걸리는 기도를 빠지지
않고 지성으로 하셨는데, (나는 7일 만 하였는데도 엄청 힘들어 서 7일
기도로 끝내고 나의 능력에 맞게 천수경 1독씩 으로 매일 바꾸어 하고있다.)

100일 기도 완료 이틀전 형님을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들게 하던 부동산 매매가
이뤄질 거 같다는 부동산사장님의 전갈이 왔다. 누가 봐도 그 물건은 임자가
나설 것같지 않아 모두가 포기 하라고 했던 물건 이 었는데 매월 수백만원의 고
리만 지불하면서 골머리를 썩혀 왔었으며, 명의가 4명이나 더 되어 있어
문서에 도장 찍을 일 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로선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도저히 성사가
불가능 해 보였다. 한옥 보존지역 이라 신축은 도저히 불가능하며, 본채에
새로 증축을 하여 지붕이 기와 와 스렛트가 맞물려 외관도 우스워 보였으니...

그러나 기도도 무사히 끝내고, 잔금까지 무사히 받았다. 우리는 그 것을

지장기도의 영험이 아니면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한다.


형님과 나는 그 이후 3000배 7번 완성을 하리라 하며, 참회기도를 하고

있다. 반드시 어떤 원을 세워놓고 하는것은 아니고,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것 같아 너무나 즐겁다.


출처:나무아미타불카페 불교의 영험록 송 ㅇㅇ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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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석장을 짚고 단을 내려와 제게로 걸어오시던 지장보살님” 저는 오늘도 그 모습을 뵙니다

精進行/28기 출처:능인선원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빛과 색이 있습니다. 들에 핀 이름 없는 한 포기 들풀도, 작은 조약돌 하나도 그만의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과 색을 지장보살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소리가 잠든 세계, 승화된 빛으로 다가서시던 그 모습은 천상의 재현처럼 성스러운 한줄기 찬란한 빛이셨습니다. 석장을 짚고 불단을 내려와 춤을 추듯 제게로 걸어오시며 손을 흔드시던 지장보살님을 친견하며 저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지장보살을 염송했습니다.

탐욕으로 지친 병든 육신을 이끌고 능인 법당을 찾아와 두 무릎을 꿇고 오열로 참회했던 그날은 묵묵히 미소로 저를 지켜만 보시던 지장보살님이셨습니다. 아버님 위패를 법당에 모시고 작은 일부터 찾아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신문 접기, 교도소 봉사, 법당 청소 등을 하며 열심히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고향에 온 것처럼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 집에 돌아 갈 생각조차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도 중에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보니 더욱 몸을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패들을 모셔 놓은 영가단에 초하루, 지장재일은 꽃을 사다 꽂기 시작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을 꽂는 전날 밤 꿈에는 꼭 지장보살님이 매번 다른 색깔의 꽃을 들고 나타나십니다. 저는 지장보살님이 들고 계셨던 꽃을 사다 꽂습니다. 노란꽃, 빨강꽃, 국화, 백합 등등......

요즘은 상조회 시다림 봉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장스님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망자를 위로하여 저승 먼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도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불자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삼성병원 시다림 봉사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어느 영가가 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시다림을 나간 상조회 법우20명이 열심히 영가천도를 해주고 마지막 목탁을 치고 나서보니 어제 본 그 영가가 영정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가 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실이었습니다.

요즘도 우리 능인 상조회에서는 조를 나누어 쉴 틈이 없이 시다림 봉사를 다닙니다. 법당에서도 천도재, 49재, 막재등을 지냅니다. 쉼 없이 기도하고 수행 정진해야 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가들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참회가 필요합니다. 육신을 벗은 영가들에게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영가천도를 해주고 난 날은 가끔은 극락에 가는 꿈을 꿉니다. 온 천지가 보석으로 장식된 그곳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신비로웠습니다. 살갗을 스치는 감촉이 너무도 부드러워 꿈을 깨고 나면 화가 났습니다. 훗날 내가 육신의 몸을 벗으면 갈 곳이기에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곳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은 지광스님 말씀 잘 듣고 부처님 법 따라 수행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살면 됩니다.

법당에 들어서면 하심하는 마음으로 청소하고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히 다루며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도 닦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칭 법당의 왕언니입니다. 누구라도 초발심으로 우리 능인선원을 찾아오는 법우들이 있으면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항상 지광 스님 화이팅을 외치며 작은 힘이지만 부처님을 위해 쓰고싶습니다.

내일도 삼성병원에 시다림봉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생명이 영가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처: 능인선원 (www.gotobuddh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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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반야화님글

저의 하루는 지장보살님을 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과 함께 시작한 하루하루는 늘 상쾌합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할때는 물론 절에 와서 노래하고 차를 탈때
도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된 것은 지장보살님의 큰
가피를 입고 자연스럽게 생긴 신행생활입니다. 불교를 믿고 부처님
과 지장보살님께 귀의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직접 가피를 입고나서야
오늘과 같이 철석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약간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병고의 시련 속에서 "지옥중생을 다 건지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나도 이제부터는 "지장보살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리라.."는 새로운
서원과 희망을 갖게 되니, 그또한 지장보살님의 크신 위신력이라
믿습니다.

몇 년 전 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픈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수술을 한다해도 건강을 다시 찾을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사실 주사나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한 특이체질이고... 마이신
등 항생제에 대한 알러지가 있어 평소 감기에 걸려도 약도 못먹어
한약과 민간요법으로 이겨내곤 했는데, 대수술이라니...
그때 불현듯 수술하고 죽을바에야 죽을 힘 다해 기도정진이나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 , 스님께서하라는 대로 지장백일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수술 일 주일 전,그날도 전 삼보사 법당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불자님들과 함께 소리 높여 염불하는 고성염불의 지극한 마음으로 하
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불단에 모셔진 지장보살님께서 다기그릇
을 들고 제 앞으로 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선 다기물을
제게 주시면서 다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렵 목이 아파서
음식물을 넘기기 힘든 상태라 목은 말랐지만, 먹기싫다고 하니,
지장보살님께선 마치 어머니가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밥을 떠먹여 주듯, 먹기싫어 뿌리치는 아기에게 다 먹이려고 애쓰는
어머니처럼 제게 다기물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 제가 다 먹을
때까지 자비로운 눈빛으로 지켜보시던 지장보살님께서는 제가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곤 다시 불단 위에 앉으시는 것이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자 불자님들은 여전히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물을 얻어먹은 다음 날부터 제
몸은 날아갈 만큼 가벼워졌습니다. 기도할 때도 몸이 아파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했었는데, 마치 새 몸을 갖다 붙인 것 같았고,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병마가 싹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수술 예정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서 재진찰을 해봤는데
기적이라며 놀라워하시는 의사선생님을 뵈면서 저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전 "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하신 지장보살님께서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으로 저를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지장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답니다." 라는 답변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현대의학으론 수술을 해도 목숨을 장담못한다고 했는데 수술도
하지않고 지장보살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서
저는 늘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불자로써 부끄럼없는 삶,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기전에는 성불을
하지 않겠노라는 지장보살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
이 절절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때도 모든 중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생활속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 너와 내가 모두 중생의 탈을 벗어 이땅을 극락세계로
만드는 큰 일꾼이 되길 기원하면서 하루하루 지장보살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영원히 이 땅이 불국토되기를 기원하면서 지장보살님을 염하고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며 이웃에게 법음을 전하리라는 원력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전에 서원드립니다.


* 이글을 쓰신 반야화님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은평구 역촌동 삼보사 합창단단장으로써 법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


출처: 지장보살영험록 김 종매외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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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신행이야기







"오로지 할 뿐"




선법경 임순빈










15년 전 직장선배가 “이번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아침 8시까지 동대 앞 태극당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따라 나선 것이 부처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선배를 따라 간 곳은 한달에 한번 가는 ‘불교문화기행’이었는데 충북 보은의 법주사였다.




유교집안의 나와 형제들은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성경이며 찬송가가 더 익숙한 편이었다. 불교교리는 물론, 부처님이 뭔지, 절3배 하는 것도 모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법당에 들어가 좌복을 깔고 법사의 선창에 따라 ‘한글 108대참회문’으로 108배를 하는데 나는 한쪽 구석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껏 절을 하고, 그 내용은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잘못된 일과,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교는 할머니들이 불상 앞에 쌀이나 초 등을 올려놓고 복이나 비는 기복종교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모든 죄업이 몸과 말과 뜻으로 지었다는 것과 다른 종교에는 없는 회향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진작 불교가 이런 종교인 줄 알았으면 ‘아까 나도 할 걸’하는 아쉬움과 매달 가는 불교문화기행이 기다려졌다. 나도 108대참회 하러.

더구나 사찰에 있는 모든 조형물들이 불교정신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명을 듣고는 불교문화를 배우는데 신이 났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교공부도 하고 그런 신행생활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불교공부는 잘 할 수 없었지만 직장에서 가까운 조계사에서 108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제쯤 제대로 불교공부를 하고 신행생활을 온전히 해보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후 퇴직을 하고 능인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교리공부를 하고 경전을 배우는 사찰을 찾아 경전공부를 하면서 집에서는 108배를 했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불교가 무슨 종교인지 알게 해 준 분(불교문화기행 지도법사)이 “사람에게서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타고난 업보와 뜻하지 않은 장애들이 수시로 찾아들어 그렇다.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공부를 잘하여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한차례 깊은 참회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신년들어 지장기도를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에 그러겠다고 하고 이런 형식으로 100일간 해보라고 하셨다.

매일 108배를 하고 별 어려움없이 지내던 나는 “그래. 업장만 다 녹이면 내 앞날은 탄탄대로” 일거라는 생각이 들자 기도만 잘 회향하면 반드시 신천지가 열릴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 기도를 많이 하신 보살님께 여쭈었다.

지장기도를 잘 하면 기도성취가 빠르지만 대신 마장도 많다는 얘기와 마장의 사례들을 들었다.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하여 집에서 기도하기로 하고 절에 안오면 궁금해 하실 친한 도반 두분께만 말씀드렸다.




지장기도 요령은

1. 먼저 3배 올리고

2. 지장보살본원경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독송

3. ‘나무지장보살’ 천번 염송

4. 지장보살예찬문 외우며 158배

5. 지장보살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천번 염송




그리고 기도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다짐하기를

1. 기도시간에 전화기 코드 빼고

2.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전화 및 외출 절대 안함

3. 100일간 오로지 身口意 三業을 조심하고 지장보살님의 가피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지장경을 읽을 때에도 영가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하고 읽다가 잡념이 들면 읽은 기억이 나는 대목부터 다시 읽었다.

‘나무지장보살’과 지장보살예찬문을 외우면서 158배, ‘지장보살’ 천번 염송을 하는 동안에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기도시작 1주일 후 꿈을 꾸었다.

기도당시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내 옷을 입고서 우리집에 오셨다.

바쁘신 듯 현관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좋은데 놀러 가는데 너한테만은 얘기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다.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빨리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총총히 가시는데 어찌나 섭섭한지 APT 1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햇빛에 빛나는 잔잔한 바다와 배 한척, 아무도 없는 깨끗한 백사장과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고 APT 주차장 앞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어머님은 그들과 같이 그 배를 타고 같이 가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님과 다른 영가님들이 천도되었음을 알고는 ‘열심히 기도해서 어떻게든 기도성취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고 더욱더 신심이 났다.




기도를 시작한 53일 뒤 또 꿈을 꾸었다. 지장기도를 하면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한옥집에서 의사같은 하얀 까운을 입은 거사가 사람들을 진료하고 있었는데 줄이 한참 길었다. 그집 안에서 큰언니가 나를 불렀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옷을 다 벗고 엎드려 누우라고 하면서 목부터 허리까지 침을 꽂고는 허리를 문지르는데 허리가 지릿지릿 아픈 것이었다.

나는 아픈 데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병이 있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 됐으니 내려 오란다. 옆방으로 가서 내 몸을 보니 온통 생선가시같은 침이 꽂혀 있었다. 침을 빼고는 그 방을 나왔다.

그렇게 꿈을 깨고는 다음날 기도시간부터 단 5분을 앉아 있을 수 없이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장인가? 이 마장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낸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허리가 아프면서 지장경을 읽는데 경전 위로 개미들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무 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몇 년 전 집에 이유없이 개미들이 들끓었던 생각이 났다.

그때 개미에게 진심瞋心을 내고 억지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생도 했었다. 아아! 그때 개미에게 화를 내고 개미를 죽임에 과보를 받는구나!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더니. 화를 내고 살생한 과보를 받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계속 개미영가에게 참회하고 허리가 아픈지 2주쯤 된 어느 날 기도시간에 지장경을 읽고 있는데 스르르 예전처럼 허리가 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번 기도로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해주십사 더욱 간절히 참회하였다.




그 후 80일이 조금 지나 다시 꿈을 꾸었다.

세면대에서 가슴이 답답해서 토하는 꿈을 꾸었다. 입에서 한참동안 피고름이 나오는데 새끼손톱만한 노란 근(종기의 근)이 튀어 나왔다. 종기처럼 근이 나오면 다시 진물이 날 때까지 짜야한다는 생각에 다시 토하는데 또 피고름이 나오더니 또 같은 크기의 노란 근이 나오면서 피고름이 멈추는 것이었다. 세면대에서 입을 씻고 나오니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나를 반가워한다.




기도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의 기도생활에 대한 점검을 해 보았다.

70%정도만 만족할 뿐 100일 회향하고 그 다음날로부터 다시 7일을 하고 마지막 회향을 했다.




기도회향 후 도반보살님이 궁금하고 보고싶다고 전화를 주셨다.

전화 속에서도 느끼시나 보다. 목소리가 아주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고 하셨다.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서 빛이 나고 맑아지고 편안해 보인다고 무엇을 했길래 그렇게 좋아졌느냐고 묻는다.




나의 업을 녹이고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여 시작했던 기도가 어머님과 영가님들의 천도와 身業과 口業을 소멸하는 가피를 입게 되었다.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어 연緣이 닿으면 과보를 받는다고 했다. 자기의 업을 녹이고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가고자 하시는 분은 한번 꼭 해보시기를 권해 본다.




가까이 사는 신심 깊은 후배가 가끔 집으로 놀러 온다.

서로 공부이야기도 하고 집안의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후배는 늘 나에게 “언니는 복이 많은 줄 알라”는 말을 한다.

하루는 후배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중에 금전으로도, 누구의 의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도대체 무슨 업과 인연으로 그러한가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은 그런 인연을 만나지 않았을 뿐 앞으로도 다음생에도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산다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인간 몸 받지말고 성불해야지.(인간 몸 받아야 또 불법인연 만나겠지만)

왜 이제까지 성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願을 크게 세워야 한다면서 기실 작은 소원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성불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참선을 해야지.”

후배는 오래전부터 참선을 해왔고 나에게도 참선을 권해 왔었다. 때마침 참선공부 하느라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도반을 만나 힘을 얻은 것을 보자 더욱 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수련회에서 배웠던 참선을 하기 시작하고 부처님께 ‘꼬옥 선지식 만나기를, 좋은 도반 만나기를’ 발원했다.




다행히 기도공덕으로 공부를 지도해 주실 큰 선지식을 만나 禪法門과 화두드는 법, 공부인의 자세등 자상한 가르침을 주셨다.

큰스님께서는 “무릇 생명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 한다. 우리가 죽는 순간 어떠한 마음상태로 가느냐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은 임종 그 순간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화두잡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화두 놓지 말 것”을 당부 하셨다.




앞으로 나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깨친다는 조바심 버리고 “오로지 할 뿐”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이겨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초발심인 나를 따끔한 조언으로 일깨워 주시는 묘법륜보살님과 따뜻한 격려로 발심케 하는 법공심보살님께 감사드린다.




그동안 탐진치 삼독에 빠져 나라는 상을 버리지 못하여 헐떡이며 어리석게 살아 온 것 깊이 깊이 참회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바른 행을 실천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본래 부처인 도리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을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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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우물자리를 가르쳐주신 지장보살님

부산도림사는 사찰의 위치상 상수도 시설을 하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물은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기존의 지하수로는 늘 물이 부족해서 물의 양이 많은 샘을 새로 파려고 했다.

90년 봄, 기술자를 데려다 여기 저기 적당한 곳 몇 군데를 파 보았는데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스님은 기술자에게 의지하지 말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지장보살님께 일념으로 [샘 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밤,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서, 스님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아무말 없이 산으로 올라가신다.

스님은 지장보살님께 합장을 한체채조용히 쳐다보다가, 따라 오라는 뜻이라는 것을 곳 알아차리고 뒤라 갔다.

산 7부 능선에 다다른 지장보살님은 손을 펴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땅위에 내려놓으니, 거북은 이리저리 한참 기어다니다가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꿈에 본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너무나 꿈이 생생해서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잡초를 헤치고 이리 저리 찾고 있는데, 풀숲에 놀랍게도 지난밤에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것과 비슷한 작은 구멍이 있지 않는가!

스님은 확신을 갖고 그 곳을 팠다. 그랬더니 거기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좋은 물이 많이 나와서, 지금은 그 물로 식수, 생활 용수 ...... 등 모두를 충당하고, 물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우물이 완성되고 몇 달이 지나자,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금붕어 3마리를 절 입구 잔디 위에 내려 놓고 가신다. 스님은 그 자리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서, 지금 금붕어를 기르고 있다. 물이 너무 좋아서 금붕어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생기 있게 잘 살고 있다.



34. 귀에 소리 나는 병을 고친 재일교포


재일 교포 차□식씨는 오래도록 일본에 살다가 90년도 봄 한국으로 돌아 와서, 지금은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에 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업에도 성공해서 돈도 좀 벌었고, 한 때는 민단의 간부직도 지낸 유능한 사람이다. 7년전 본부인이 죽자, 한국에 나와 살고 있는데, 일본에 있을 때 노후에는 한국에 와서 살려고 부인을 시켜 일본의 재산을 미리 한국으로 갖고와서 적당한 곳에 투자를 해 놓았다. 그런데 부인이 갑자기 변을 당해 죽자, 부인이 일본에서 갖고 온 재산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차□식씨는 심증이 가는 곳을 모두 탐문 해보았으나 결국 재산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이상한 병만 얻었다. 혼자서 살기가 불편해서 5년 전에 재혼을 했는데, 재혼한지 3달 뒤, 본부인이 꿈에 나타나서 차□식씨에게 욕을 하고 머리를 때리는 꿈을 꾸었는데, 그때부터 머리 위에서 이상한 잡음이 나며 두통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온갖 약을 다 써 보고, 여러 병원을 다 찾아 다녔으나 증상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후에도 꿈에 본부인이 보이기만하면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두통과 잡음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절망에 빠진 차□식씨는 어느 날 도림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스님의 권유에 따라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파 마늘등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과 고기를 삼가하고,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정성을 다 해서 스님과 함께 새벽예불를 올렸다. 어느 날 아침, 법당에서 혼자서 절을 하는데 그날은 기분이 좀 좋아서 절을 많이 하기로 결심하고 30번쯤 절을 하고 그만 두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108배를 해라! 108번 절을 해라!] 하였다. 뒤돌아보니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놀라움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108배를 올렸다.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스님은 그저 가만히 미소짓기만 하였다. 7일 기도를 마친 날 새벽, 차□식씨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의 본부인이 커다란 붉은 연꽃을 손에 들고 골프장 보다 더 널찍한 잔디밭을 천천히 걸어서 산 위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꾼 다음부터 두통도 없어졌고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도 없어졌다.

차□식씨는 모두가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매월 지장재일에는 도림사에 나가 지장보살님께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작성자: 권 영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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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나의 경험인데, 그러니까 79년도에 지독한 질병에 걸려서
식음을 전폐하고 사경을 헤멘적이 있다.

그 때에 진실로 지장보살전에 엎드려 참회하고
일주일 기도를 올린적이 있다.

하루에 총 2 시간 밖에 하지 아니했는데도 마지막 날에는
거의 완쾌되어 밥을 한사발 먹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도중에 아픈 부위가
이상한 소리와 함께 마치 무슨 신이한 존재가 수술을 하는
것과도 같음이 매우 희안하더라는 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 바로 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한계상황에 마주치면 대개 신앙을 찾는
심정을 나는 이해하기로 하였다,


출처: 천불동 천문천답 PBOBJANG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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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우란분절을 앞두고


우란분절 을 앞두고 영가천도를 위해 기도 중입니다.
49일간 영가천도를 위해 기도 드리고자 발원하고 입재하여 기도하다 보니
몇 년 전 제가 불교에 입문하기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나의 뇌리에 스침은
왜 일까.

아마도 저를 불교에 입문하게 했던 계기가 되었기에 더욱더 생각이 생생한가 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전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이다 보니 절에 다닌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 묵묵히 불자가 아닌
사람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하지만 전생에 불연이 있었는지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은 부처님께 다가가고픈 간절한 마음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교 경전을 구입하여 가족들 몰래 뜻도 모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간만 나면 읽었습니다.
가게를 하면서 시간나는 대로 경전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때는 일념으로 읽을 줄도 모르고, 기도의 목적으로 읽을 줄도 모르고
오직 즐겨 읽을 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라니가 혀도 잘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는데
자꾸자꾸 반복해서 일념으로 독경하다보니 이상하게 다른 부분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지는 신기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뜻도 모르면서 왜 그리도 빨려 들어가는지, 어떠한 힘에 의해
빨려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매료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불보살님의 가피가 계셔서 원하는 일이 꼭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나의 마음에 욕심으로 꽉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경전은 물론 불교에 관한 책을 탐독하며 한발한발
불자의 길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어느 날 며칠을 밤마다 꿈에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보이시며 왜 집을 지어주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생소한 꿈이었기에 이상하다 생각하고 시어머님께 말씀드리니
교회에 다니시는 시어머님이셨기에 나의 꿈 이야기를 듣고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하시면서 나의 말을 무시해 버리셨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시어머니로서는 당연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날 밤도 그 다음 날 밤도 며칠 밤을 똑같은
꿈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또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님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사실은 아버님 산소에
잡초가 많아서 제초제를 뿌렸는데 잘못 뿌려 잔디가 다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불자가 아닌 저로서는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났는지
남편한테 부탁하여 깨끗한 모래를 구해서 일곱 번 씻어 말린 다음 21일 기간을
정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장경 1품에서 13품까지 읽고 츰부다라니 지독하고
광명진언 108독을 하고 영가천도를 위한 발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기도를 하는데 며칠 밤을 왜 집을 지어주지 않느냐며
선몽하던 아버님이 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도기도를 하겠다고 마음만 내도 천도가 되는가 보다 생각하고
더욱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21일 기도를 마치고 시골에 모셔진 아버님 산소에 광명 진언한 모래와 음식을 준비하여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아버님 산소가 잔디는 물론 흙이 새까맣게 타 있었습니다.
기도 드린 모래를 뿌려드리고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드리고 아버님께 다녀온 날 밤
꿈에 어떤 흰옷 입은 할머니 한 분과 아버님께서 집에 오셔서 할머니는 방에
앉아 계시고 아버님께서는 웃으시며 나가시는데 순간 하늘에서 밝은 광채가 났습니다.
그 이후에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이 당신도 일요일마다 애들 데리고
절에 다니라며 허락을 하였습니다. 5년 전의 일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일요 법회에 참석하게 되어
절에서 아주 열심히 다니는 불자로 꼽히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절에 다니며 기도 정진 열심히 하는 제게도 참기 어려운 장애가 있습니다.
나의 정진을 시험이라도 하시기 위한 부처님의 뜻인지 아니면 제가 쌓은 업인지
시련의 장애가 옵니다. 하지만 기도 정진으로서 이겨내려 열심히 노력합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일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내 마음 단속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자로 생활하기 전에는 아상을 못 버리고 나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상대의 잘못만을 생각하며 원망하고 미워하다 보니 더욱더 괴로운 것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듯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불자로서 생활하며 덕 높으신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불서들을 읽으며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상대에 있는 게 아니고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잘못으로 돌리며 내 마음 단속을 위해 노력해도
참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행해왔던 습인지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얼마 전(요즘)의 일입니다.
남편과 다툼이 있었는데 화를 내며 나가는 남편이 너무나 야속하고
미운 생각에 속이 상하여 잊으려고 기도를 드리는데 집중이 되지를 않고
마음 속엔 남편을 원망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혼자 중얼거렸죠. 남편을 원망하며 왜 그럴까 하고
잘못을 남편에게 돌리는 원망과 원망에서 오는 미움으로 구업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아니면 나를 깨우치게 하시려는 부처님의 뜻이었는지
경전을 모셔둔 책장을 보니 경전이 옆으로 비틀어지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순간 반듯이 놓으려고 책장 문을 여는데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책장 문이 갑자기 떨어져 박살이 났습니다.
순간 내가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한 업을 지었기에 그 과보를 받는구나
생각하고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참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어떤 고통과 괴로움이 내가 하는 기도를 방해 한다해도
절대 마장과 장애가 아닌 나의 기도 정진을 더욱더 돈독히 하라는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뭔가를 갈망함이 크면 더욱더 매달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불보살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나의 해이해진 마음을 채찍하기 위한 스승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 닫혀 있었더라면
제가 어떻게 불자로서 생활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게 부처님의 가피와 보살님의 가호하심이라 생각하고
감사 드리고 항상 초발심의 마음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이 내 마음 안의 일임을 알고 생활한다면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생활하지는 않겠지요?

내 마음 단속 잘 하여 어리석은 행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루하루 불은에 감사 드리고 부처님께서 주신 위신력의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더욱더 열심히 정진하려고 서원을 세워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불자님들의 가정에 부처님의 향기가 충만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글· 김갑숙/서울 용산구 거주

월간 불광 2000년 8월호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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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목숨을 연장해 주신 지장보살님


점촌에 사는 임정□ 여인은 윗대부터 김룡사에 다녔으며, 특히 지장 기도를 열심히 해 왔다.

지금 환갑이 지난 임여인은 약 10년 전 우연히 얻은 기관지 질환으로 무척 고생을 해 왔고,
지난 겨울에는 증상이 너무 심해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었다.

병원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밤 꿈에 저승차사 3명이 검은 옷을 입고 임정□여인을 찾아와서 무조건 따라 가자고 한다. 꿈속에서도, 저승차사를 딸아 가면 이 세상
을 하직하는 날이고 죽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마디 대항도 할 수 없고 또한
피할 수도 없는 절대 절명의 위엄에 눌려 가자는 대로 따라 갔다.

그런대 문밖에 나가 정신을 차려 보니 거기에는 낯선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 두 사람이 말없이 서 있었다. 임정□ 여인은 그 사람들과 함께 저승차사를 따라 어디론가 걸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천천히 걸어가도 몸이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잘 걸어갈 수가 있었다.

저승차사가 그들을 대려 간 곳은 김천에 있는, 임정□ 여인의 동생 집이었다.
그리고 동생 집에 있는 개집 앞에 다다르자, 개집 속으로 들어가라 한다. 함께 간 두 남녀는 아무말 없이 시키는 대로 개집으로 들어가는데, 임정□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나서, [지장보살심 나는 싫어요. 지장보살심 나는 싫어요. ]하면서 개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저승차사들은 임정□여인을 한참 노려보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깨니 꿈이었다. 온 몸에 땀이 나서 이불이 흠뻑 저졌다.

며칠 뒤 꿈이 너무 이상해서 오랜만에 동생집에 가보 기로 했다.
병고에 시달리느라 동생을 못 만난지도 1년이 넘는 듯 했다. 그래서 몇 마디 안부를 묻고나서 [너의 집에 개를 기르느냐?]하고 말하니 [암개를 한 마리 기르는데, 몇 일 전에 새끼를 세 마리 낳았어. 한 말리는 죽은 것을 낳고, 두 마리는 암컷 수컷 한 장운데 아주 귀여워. 언니 한 번 볼래?] 하며 개집으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개집이 꿈에서 본 개집과 꼭 같았고, 개가 새끼를 낳은 것도, 저승차사가 그들에게 개집에 들어가라고 말한 날짜와 꼭 같았다. 임정□은 겁이 났다. 그리고 만일 자기가 개집으로 들어갔더라면 지금 이 집 개로 환생했을 것이
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그 강아지 두 마리는 꿈에서 본 두 남녀의 환생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임정□은 동생에게 그 강아지는 특별한 강아지니, 함부로 팔지 말고 언니에게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를 구해 주신 김룡사 지장보살님께 한없는 감사를 들이고, 다음 생에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더욱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영험이 많으신 김룡사 지장보살에 더 기도하고 살기로 맹서 하였다.

(김룡사에서 만난 임정□)


출처: www.andongkwon.pe.kr 권영한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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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1920년경의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씨(張氏)집안으로 시집을 간 양벽원(梁璧垣) 거사의 딸은 광산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하남(河南) 지방으로 가서 임신을 하였다. 차츰 해산할 날이 다가왔으나 외진 곳이라 해산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부부가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종이에 ‘나무지장왕보살(南無地藏王菩薩) : 중국에서는 지장보살을 지장왕보살이라 많이 칭함)’이라 써서 딸에게 보내며 당부하였다.

“매일 아침, 향을 피우고 지장보살게 삼배를 올린 다음, 지장왕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기도하여라. 반드시 순산하게 될 것이다.”

딸은 아버지가 보내준 글씨를 벽에 붙이고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기도하였으며, 그 결과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아들을 순산하였다.

2년 뒤 그녀는 또 임신하였으며, 전과 같이 기도하여 아무런 고통 없이 딸을 낳았다. 두 아이의 상호는 매우 단정하였으며 총명하고 또한 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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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얼마 전, 시댁에 갔다가 문득 오래 전에 읽은 “지장경”생각이 나서 어머님께 여쭈어보니 읽지 않고 놓아 두셨다길래 제가 가져 왔습니다. 바깥사람 일로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서 틈틈이 읽어 보려고요.

집에 와서 무심히 읽다가 정말로 깜짝 놀랄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씁니다.

바깥사람의 병세가 좋아진 얼마 후에 꿈을 꾸게 되었더랬습니다.

- 제가 어디론가 꼭 가야하는데 그 가야할 길이 매우 좁은 골목길이었고 그 골목에는 늑대인지 악어모양 괴물인지 모를 이상한 동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 이빨로 뼈와 살을 찢어내 죽여 피가 사방에 흥건한 처참한 모양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섭기는 하였지만 목적지로 가는 길이 그 길 밖에 없어서 어쨌든 각오를 하고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막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뒤에서 어떤 스님이 저를 부르시고는 팔을 잡더니 뒤로 돌아서 다른 넓고 큰 길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길이 매우 밝고 따뜻하며 쾌적한 길이어서 곧 마음이 평온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다음부터는 이 길로 다니시오. 얼마나 좋은 길입니까?”하시며 고개를 올라가 멀리 사라지셨습니다. -
잠에서 깨어 무언가 감사함을 입었다는 것은 알았으나 스님이나 절과는 인연이 먼지라 곧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장경 제8품”에 꼭 그 꿈과 같은 구절이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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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미혹하여 본집을 잃고 험한 길로 잘못 들어섰는데, 그 길에는 숱한 야차와 호랑이· 사자· 독사· 따위가 있어서, 그 사람이 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저 여러 악독한 짐승들과 곧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한 선지식이 있어서, 큰 술법을 가지고서 모든 악독한 것들을 잘 막아 낼 수 있는 분이었는데, 갑자기 미혹한 사람이 그 험한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을 보고 이 선지식이 말하였다.
「이 딱한 사람아! 어쩌자고 이런 길로 들어섰는가? 무슨 기이한 술법이라도 있어서 저 모든 사나운 것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사람이 문득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험로임을 깨닫고 곧 물러서며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때 그 선지식이 손을 잡고 이끌어 독물을 막으며 좋은 길로 인도하여 안전하게 해주고는 또 말하였다.
「딱한 사람아, 이 다음부터는 저 길을 다시는 밟지 말게. 저 길로 들어가면 좀체로 벗어날 수 없고, 더구나 목숨을 잃게 된다네.」
길 잃었던 사람은 깊이 감동하였다. 서로 작별할 때에 선지식이 또 말하기를
「만약 모든 길가는 사람을 보거든 친지거나, 아니거나, 남자든 여자든 간에 저 길에는 여러 가지 사납고 독한 것들이 많아서 목숨을 잃게 된다고 말해주어,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취하지 않도록 하게.」
라고 하는 것과 같느니라. 이렇게 지장보살이 대자대비를 갖추어 죄고 중생을 구출하여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게 하고 묘락을 누리게 하여 주면, 그들이 업도의 괴로움을 알고서 거기를 벗어나 다시 겪어가지 않는 것은, 저 길 잃은 사람이 험로에 잘못 들어갔다가 선지식을 만나 이끌려 나오게 되어 영원히 다시는 들어가지 않는 거와 같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들어가지 말도록 권하면, 자연히 이 미혹한 것으로부터 해탈케 되고 다시는 악도에 들어가지 않는 거와 같느니라...... <제 8 품 염라왕들을 찬탄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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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스님이 지장보살님이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깥사람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때에도 도움을 주시더니 저도 모르게 저를 도와주시고 계셨다니 감사한 마음과 환희심이 들었습니다.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는 저를 이렇게나 돌보아주시다니요.
저는 마음속으로 감사드리는 것 밖에 모릅니다. 하지만 이 감사함을 님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_()()()_

출처: 나무아미타불카페 미타사랑님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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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어느 육군대령의 이야기


어느날 북가좌동의 이씨 성을 가진 보살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살님의 친구 남편이 군인인데 갑자기 목이 돌아가서 병원에가도 소용이 없고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기에
문득 스님생각이 나서 염치없이 전화를 드린다고 하면서, 수고스럽지만 환자가 절에 올 수가 없으니 수고
좀 하셔서 북가좌동을 찾아주셨으면한다고 정중히 부탁을 하였다.

군인이면 할 일이 많고 나라를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고 편한 잠자리를 하는 것도 모두 그들의 노고가 있음이라 생각하고 큰 마음을 먹고
북가좌동을 찾아갔다.

이 보살님의 안내를 받아서 나는 그 군인댁으로 갔다.

2층집이었다. 환자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람의 목이 어떻게 저렇게 돌아갈 수가
있을까? 180도 가까이 뒷목에 얼굴이 돌아가 있지않은가?

무척이나 당황할만한 일이었다.

휴가를 받고 나와서 잠시 자다 일어나보니 그렇게 되어있다고했으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으리라.

지압도 해보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물리치료도 했으나 치료할 때만 부드럽지 다시 몇 시간이 지나면
도로 원상태로 목이 돌아가고 이젠 시간이 지나서 아프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우연히 이보살님이 나의 이야기를 해서 마음이 쏠리기에 부탁을 드렸다고 하였다.

정릉의 절에 있을 때라 정릉에서 스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부인은 기대도하고 한편 또한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을
어떻게 절에서 스님이 고칠 수가 있나하고 반신반의하면서도 안팎으로 집을 깨끗이 정리를 해놓고 있었다.

이보살님과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역시나 실망의 눈빛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스님께서 오신다고 하더니...하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보살님은 "이 분이 내가 이야기한 정릉 스님이셔."하고 간결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는 "이 스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아주 용한 분이셔."하고 다시 덧붙였다. 괜히 어쭙잖게 칭찬을
듣는 것 같아서 별로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나보다.

아무런 말이 없이 여자는 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저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머리까지 기르시고 저희들보다 더 멋쟁이시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영 마음이 내키지않는군요."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냥 그 길을 나오려고 하는데, 이보살님이 신경질을 내면서 퉁명스럽게 "왜 그래요? 바쁘신 분을 정말 어렵게
오시라고해서 이렇게 모셨는데...그래도 정 의심스러우면 기도를 하고난 뒤 아저씨가 다 나으면 사례를 하면되지."
하고는 오히려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와중에 거실을 한 번 휘 둘러보았더니 벽에 예수의 그림이 있었다.

아하! 종교가 다르구나. 묘한 감정이 생겼다.

나는 누가 나를 비웃고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있으나 종교적인 대립은 절대로 지고싶지않다. 역시 나도 중생심이
남보다 강한 탓이리라.

나는 마음속으로 그래 종교가 다르다면 한 번 해볼 일이다, 어떠한 인연이든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또한 인연이려니
인연을 맺어보자하고 생각하여서

"좋습니다. 사례는 나중 문제고 일단 병이나 신경을 써 봅시다. 나 역시 아무런 능력이 없으니 부처님께 한 번 매달려봅시다."
하고 공연히 여길 온게 아니고 군인이기에 그 노고에 보답하고자 왔으니 마음을 열고 인연을 맺어보자 하였다.

그리고, 필히 한마디를 더 해주었다.

"천도식과 구병시식을 하여서 병이 차도가 있거든 필히 나에게 사과를 하시고 불교를 꼭 믿으십시오."하고는 그 집 주소와
이름을 적어서 절로 돌아왔다.

차를 타고 오면서 공연히 그들이 괘씸한 생각도 들고 잠시 잠깐사이 봉변을 당한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 하늘을
보고 웃었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수없이 겪는 일이지만 대중들은 스님이라 하면 삭발을 하고 법복을 입고 해야만 스님인줄 알고 있기에
번번이 당하는 또 하나의 곤욕이 아니던가.

머리를 기르고 성직자 생활을 하는 나의 입장은 어쩌면 비구 비구니 스님들보다 몇 천배 힘들고 고통이 따르나 또 한편
생각하면 이것또한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극복해나간다.

일단 이왕에 한사람이라도 포교를 하기위하여 나는 또 기도를 시작하였다. 아마도 오기가 깃들이지 않았다고는 말못하리라.

아상(我相)과 중생심이 가득한 우리 중생들은 우선은 눈앞에 보여주고 손에 쥐어주어야만 느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나는 자신이 넘쳤다. 그때만해도 젊음이 있고 또한 무서운게 없었다.

기어이 저 군인의 목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 날의 멋쩍었던 일을 깨끗이 사과를 받으리라.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다른 기도를 할 때도 항상 마찬가지이지만 온 정열을 다하여 "나반존자"를 염송하기 시작했다.

아무개의 목을 제대로 고쳐주소서.

무엇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오게되었는지 가르쳐달라고 미친듯이 나반존자를 염송하기 시작한지 일주일쯤이었다.

이 팔이 부러져도 이 몸이 이 자리에서 기도를 하다가 재가되어도 나는 알고싶었다.

나반존자님의 대답을 들어야만했다.

아! 이게 웬일인가? 수많은 기도중에 여러가지 많은 허상이나 환청도 있었지만 넓은 벌판에 하얀 홑이불을 덮어쓴 시체4구가
눈만 빼꼼이 쳐다보고 누워있지 않은가?

나반존자! 나반존자! 더욱더 큰 소리로 기도를 했다.

온 몸에 전율이 왔다.

그래! 이것이다. 나는 그 군인의 병이 이 4구의 시체와 인연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집에 전화를 걸어서 군인을 바꾸어
달라고했다. 불편한 몸으로 전화를 받은 군인에게 4구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군인은 깜짝 놀라면서 하는 말이 오래 전에 자기가 소대장으로 있을 때 훈련도중에 대원들이 총기를 청소하다가 사고가
나서 군인 네 명이 사고를 당하여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단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등에다가 죽은 군인을 업고 부대로 돌아온 적이 있으나 항상 그 때 생각을하면 목이 메이고 가슴이
아프다고 하였다. 허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게 무슨 일이냐고 반문하였다.

나는 그게 본인의 병의 원인이며 그 4구 시체의 영혼들을 천도를 해야만 목이 제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강경하게 이야기했다.

군인은 그런데 그 일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나로 인한 사고도 아니고 저희들이 부주의한 탓에
생긴 일인데요하였다.

그러나 잠시 머뭇거리던 군인은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저의 집을 찾아주십시오. 염치없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하고 아주 정중하게 부탁을 하였다.

나는 이왕에 시작된 일, 전생의 인연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처음 먹은 마음대로 도와주기로 했다.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땐 정말로 정중하게 대접을 받았다. 부인 역시 이보살님 보는 데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다소곳이
이야기를 들었다.

군인은 사실 그 후 아주 자주 그 날의 악몽을 꿈꾸고는 땀에 흠뻑 젖어서 제대로 잠도 못자고 시달리는 날이 있었으나
집사람이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기에 혼자만 시달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스님께서 기도를 입재하신 날부터 그 날 4명의 군인한테 깊은 골짜기로 무섭게 내쫓기는 꿈을 계속 꾸었다한다.
그런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이 일을 스님께서 말씀하시니 놀랄 일이라고 하였다.

나는 "강대령님, 그들 원혼들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하여 억울하여서 뭔가 그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밤마다
꿈에 나타난 듯합니다. 비록 강대령님의 실수는 아니었으나 그 부대의 책임자이셨고 또 강대령님이 그들과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원혼을 달래줍시다."하였더니 선뜻 승낙을 하였다.

그리고, 부인을 불러서 "스님께서 하라시는대로 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처음 만남의 어색함과는 달리 한마음으로 진실로 음식을 장만하여 지장보살님앞에서 그들의 천도재를 잘 지내주었다.

부인 역시 절에 나와 정말로 열심히 기도를하고 처음 해보는 절이나마 땀을 흠씬 흘리면서 무사히 천도재를 마쳤다.

그 후 10일이 지난 후에 강대령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님 감사합니다. 천도재를 지낸 후에 그들을 꿈에 또 보았습니다. 깨끗하게 흰 옷을 입은 4명의 젊은이들이 고맙다고
몇 번이나 절을 한 후 떠났습니다. 그 다음날 세수를 하려고하니 무척이나 목이 편안하고 세면대에 서서 거울을 보니
정말로 기적처럼 목이 편안하고 기적처럼 목이 바로 돌아왔습니다. 지극한 이 천도의 이치를 영혼들은 신령스럽게도
아는가봅니다."하고 말을 했다.

바로 전화를 드리려하였으나 며칠 경과를 보느라고 이제야 전화를 한다고 하였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전: 혜강 박영옥저 우리 곁에 지장보살 오셨네 (광연문화刊)



41. 늘 술에 취해있는 남편을 기도로 고치다.


S동에 사는 K씨는 한 달에 25일 이상을 술에 취해서 온 가족들을 괴롭혔고 자신의 인생도 폐인이 되어가고있었다.

"스님, 정말로 못 살겠어요. 차라리 이혼을 하든 도망을 가든 해야할까봐요."하고 속이 상해서 K씨의 부인은 하소연
을했다.

남편은 매일 술에 찌든 채 얼굴이 새까맣게 되고 추해져서 이젠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고하였다. 그렇다고
정신병원에 넣으려고하니 자식들이 있는데 그럴 수도 없고 죽고만 싶다고했다.

허나 한가지 그렇게 인사불성이 되게 술을 많이마시고 술주정을 해도 술이 깨어서 정신이 돌아오면 그렇게 얌전하고
뼈가 저리게 후회를 한다고한다.

"다시는 술을 먹지 않는다."고 맹세를 수없이 한단다. 허나 그 맹세도 잠시뿐 아침부터 시작해서 그 이튿날 또 그 이튿날
아침까지도 손에서 술병을 놓으려하지않고 자연히 남과도 다투게되고 가족들의 불화는 더욱더 악화가되어서 이젠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다고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빠가 늦게 들어오면 또 술에 취해서 괴롭힐까봐 불안에 떨고 잠도 못자는 날이 수없이 많다고하였다.
이제는 아이들도 아빠를 불신하고 피하고있다고 한다.

본인은 며칠씩 술에 취해서 꿈속에서 살지만 가족과 아내는 모든 일들이 마비가 되고 일도 못하고 집안이 엉망이 되었기에
근심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한다고했다.

더구나 이젠 방 한칸도 제대로 지니고 살 수가 없게되었다. 동네사람들에게도 신용을 잃고 구멍가게에도 눈덩이처럼 빚이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가 없음은 당연하였다. K씨의 아내는 자주는 법회에 못 나오지만 불가의 인연을 맺은 불자였다.

그러나 워낙 생활에 쫓기다보니까 한번도 제대로 나와 상담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있었다.

아니, 창피해서 더 가정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나중에 K씨의 부인은 털어놓았다.

자신이 무슨 죄가 이리 많아서 매일 속을 썩어야하는지 한숨과 한탄으로 밤을 지새는 날이 수없이 많았기에 인생에 지친 탓도
있었으리라.

가족들의 얼굴들이 모두가 누렇게 떴다. 술을 먹은 사람은 술을 먹어서 떴고 가족들은 시달림과 지침에서 웃음을 잃게되어서
누렇게 떴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K씨의 부인은 나에게 전화를하여 상담해줄 것을 요청했다. 법회 때는 어떻게 정신없이 왔다가야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조용히 의논을 드릴 수가 없기에 그냥 갈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스님, 애들 아빠를 구해주세요. 이제는 도저히 저렇게는 못삽니다. 어떻게 구해주세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심상치가
않아요. 뭔가 귀신이라도 붙은 듯이 행동을 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가족 모두가 집단자살이라도 해야할 판이니 제발 스님께서
어떻게 구해주세요."라고 하소연을 하면서 부인은 울었다.

본인도 술이 깨고 나면 다시는 안 먹겠다고 후회하고 제발 어떻게 자신을 해달라고 부인에게 오히려 매달린다고하였다.

이상한 일이라고 수없이 술을 안 먹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술을 먹게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라고 가족들에게 몇 번인가 하소연도 했다고한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술을 먹고 몸을 상하게했으면 지금쯤 간이나 뱃속의 모든 기능이 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어야할 게 아닌가?

그런데, 검사결과 모두가 다 정상이라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결과 K씨의 부인에게

"그럽시다. 우리 인력으로 안되는 일이라면 정말로 위대한 힘을 가진 분께 한 번 의지를 해볼 수도 있지요. 또 압니까?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여러 불보살님과 조상님들의 음덕으로 술병을 고칠지....." 혹시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술을 먹는다
면 분명히 고칠 수가 있을겁니다."하고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조상천도재를 하기로 하였다.

선망부모, 일가친적이나 무주 유주 고혼들의 왕생극락기도를 해준다면 100분의 1이라도 술병이 고쳐지지 않을까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허나 지장천도재를 하려해도 우선은 물질적인 것이 난관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곤란한 문제였다. 나 역시 신도들에게 금전적인 것을 요구할 때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기도 했다. 물질적인 것은
참 나의 기도정진과 수행생활에 무척이나 장애이기도 했다.

허나 모든게 금전이 안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음이 현실세계라 안타까운 일이다. 부처님은 제아무리 돈이나 모든 공양구를
드린다고 하여도 끄덕도 없이 앉아계시건만, 우리 현실은 물질이 있어야만 모든게 움직일 수 있음이 아니던가?

K씨의 경우도 오로지 지장보살님께 매달려서 지옥,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빠져 허덕이는 영가들을 천도하여서 모든 영가들의
맺힌 마음을 풀어주고 밝고 맑은 곳으로 영혼을 인도함으로써 K씨의 정신도 맑게 안락을 찾을 수 있지않을까.

지금껏 수많은 기도를 해보았지만 지금부터는 지장보살시대에 지장천도재가 제일 빠른 지름길이 되게될 것이다.

K씨로 하여금 마음의 안위를 얻게되어 술을 스스로 멀리 할 수 있게끔 영가천도재를 지극히 해볼 것을 권하였다.

정말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 조촐하게 음식을 장만하여서 K씨의 조상천도재를 잘 지내주었다. 나 역시 입에서 쓴 내가
나고 배창자가 다 터지는 듯한 힘든 기도이다.

지장천도재를 한번하고 나면 어지러워서 자리에서 일어나기에도 힘겨울 때도 있다. 앉아서 식은 땀이 다 나도록 지장보살님을
찾고 아미타불을 염송하다보면 온몸이 한겨울에도 땀으로 흠뻑 젖는다.

"지장보살님이시여! 여기 가엾은 저를 보아주십시오. 여기 죄많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오늘 이 공덕으로 제발 오늘 이 기도를
하는 우리 신도댁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하고 목청껏 염불을 한다.

여기 불쌍한 저로 인하여 감히 부처님을 욕되지않게 하소서. 부처님의 위대하신 원력을 보여주셔서 불법이 널리 펴져서 길이길이
빛나게 하소서.

인연이 있든 없든 스쳐간 영가들이든 오늘 묘한 법을 들으시고 감응하사 K씨를 구렁텅이에서 건져 주시고 이들에게 불법의
위대함을 보여주소서.

사람답게 살다가게 바른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K씨의 전생의 업연을 소멸하고 음주재액을 소멸하소서.

뜬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듯이 K씨의 업연도 모두 말끔히 씻어주소서.

나쁜 인연 다 버리고 나쁜 악업 다 소멸케 하소서.

K씨 부인의 눈물 때문이기도했지만 이들과의 일대사 인연의 고리를 풀기위해서 기도하는 나의 볼에서도 역시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영가들의 천도재를 수없이 하면서 나는 수없이 운다. 왜! 그렇게 슬플까? 알지도
못하는 영가들의 죽음이 슬퍼서는 아닐 것이다.

부처님의 묘한 법문 속에 나 자신도 모르는 눈물이 흘러내림을 어찌할 수 있으랴.

K씨의 아내 역시 절에를 자주 찾는 편은 아니었다. 고된 생활고에 시달리는 몸이기에 절집에 오는날이 많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법문 속에서도 나의 구슬픈 목소리로 하는 염불때문인지 남편의 염려때문인지 기도가 끝날 때까지
마룻바닥에 방석도 없이 기도를 한 탓에 무릎이 시뻘겋게 까졌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절이었기에 아픔도 잊은 채 절을 했으리라.


하여튼 천도재를 지낸 후 K씨는 정말로 기적처럼 술을 끊게 되었음이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은 열심히 사업도 하고 생활이 윤택하여서 집도 사고 사장님 소리도 듣고 열심히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먹고 살겠다고 바빠서 자주 절에 못찾아와서 스님께 죄송하고 부처님께 죄송하다고 가끔은 전화를 한다.

K씨의 술버릇역시 보이지않는 조상님들의 업연을 풀어줌으로써 점차로 술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지장보살시대임을 절실히 느끼면서, 우리들은 직접 보고 듣지않은 일들은 강넌너 불구경하듯이 남의 일처럼
느끼지를 못하지만, 세상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문명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해도 믿음의 강한 지남철은 기도를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제 아무리 달고 맛이 있어도 그 사랑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느낄 수 있듯이 기도역시 그렇다.

기도를 해 본 자만이 기도의 영험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원력을.....



출처: 혜강 박영옥저 오! 지장보살님이시여, 나는 언제 지옥문을 두드리나이까? (관음문화사刊)




옮긴이註: 천도재를 정법사찰에서 잘 지내도 좋으나 개인이 바른 방법으로 정성껏 영가천도 100일 기도를 하셔도 좋습니다.




42. 글쓴이: 청정화

제가 영명사 주지 스님을 처음 뵌 것은 2003년 음력 정월 초였다.

2003년은 내 개인적으로 지장기도 10년 되던 해였고 2003년이 시작될 무렵에 나는 서울에 사는 언니로부터
광명진언을 21일간 1000독 하면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곧바로 광명진언을 열심히 하루도 빼먹지 않고 21일간 했다.
21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통도사 원주스님으로 계셨던 지범스님을 뵙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범스님이 광명진언 21일간 1000독으로 만나게 된 스승이신 줄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스님으로부터 지장기도 시작하기 전에 광명전에서 26일간의 신장기도와 49일간의 지장기도를 회향하면서
천도재를 지내라고 지침 받았다.

나는 스님을 뵙기 전에는 3일 이상 절에 다닌 적도 없었고 건강상태는 협심증, 부정맥, 갑상선 기능저하 라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스님이 주신 기도량을 소화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하루하루 몸은 굉장히 피곤하고 또한 스님을 거역 할 수는 없고 때로는 너무나 힘들어서
“ 여기는 절이지 학교도 아닌데... 그리고 스님은 호랑이 선생님도 아닌데 꼭 이렇게 해야만 하나 ? 라는
의문이 짙게 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이 기도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냈다.

기도회향하던 날 얼마나 감개무량했던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백중 회향 후 스님은 구미 영명사로 소임을 맡아 떠나셨다.

스님께서 영명사로 가신 후 약 2달 후쯤 영명사에서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

스님께서는 천도재를 지내기 전에는 반드시 천도재를 위한 기도 숙제를 내 주신다.

무상계 33번, 광명진언 600번, 지장정근 5000번 이상 이었다. 기도는 집과 가까운 통도사에서 했다.

어느 날 나는 기도를 마치고 부산 집으로 가기위해 차를 고속도로로 올렸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대형트럭이 내차를 들이받고, 내차는 튕겨서 앞에 가던 소형트럭을 들이받았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한참 후 주변의 도움으로 차에서 겨우 내려 의식을 차렸는데, 내 차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앞뒤가 심하게 부셔져 있었고 주변에는 경찰차, 응급차, 렉카 등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와 있었다.

경찰의 질문에 답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고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대형 3중 충돌사고가 나서 차량이 앞뒤로 다 부셔졌는데도 몸은 전혀 다치지 않다니...

나는 그저 부처님께 감사드릴 뿐 이었다. 아울러 이렇게 기도를 하게 이끌어 주신 지범 스님께도..
내 일생에 이토록 부처님의 위신력을 실감한 적은 없었다.

사고 다음날도 나는 절에 갔다. 의사는 사고 후유증이 상당할거라 했지만 나는 별 탈 없이 무난히 지냈다.
그리고 천도재도 무사히 지냈다. 천도재를 지낸 후, 스님의 기도소리가 나에게는 많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2004년 백중기도 때부터 나는 영명사에 자주 가게 되었다.

영명사는 백중기도를 100일간 모두 16재를 지낸다.

나는 처음에 입재는 했으나 16재를 전부 다닐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입재 후 초재에도 나는 그냥 안가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에 어느 무서운 남자 4~5명이
내 방에 들어와 나를 무섭게 내려다 봤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떴다. 나는 너무 무서웠고 가만히 누워 있다보니 혹시 그남자들이 신장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영명사로 갔다. 그리고 2재 때도 지난번과 꼭 같은 남자들이 꿈에 나왔다.

하도 이상해서 또 영명사로 갔다. 다음 3재때도 이번에는 설마하면서 안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번 꿈에는
스님이 화엄경 약찬게를 하시면서 내 머리 위에서 목탁을 치셨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또 영명사로 갔다.

나는 3재까지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이제는 남은 백중기도를 힘닿는데 까지 열심히 절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5재인지 6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쯤 나는 새벽에 너무 피곤해서 못일어 날 뻔 했는데 또 꿈속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서 놀래 깨어보니 알람은 꺼져있고 시계는 새벽 5시30분 나는 또 서둘러서
구미로 가는 제시간에 차를 탈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부산에서 구미에 있는 영명사까지 백중기도 16제를 빠지지 않고 무사히 회향했다.

나는 이렇게 영명사에서 천도재와 백중기도를 지내면서 어느새 지병으로 앓던 몇 가지 병들이 없어졌다.

첫째는 심장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뒤로 넘어져서 목 부분을 다쳐서 한 4년 동안 목에서
허리까지 너무 아파 20분 이상 서 있기가 힘들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80%이상 거의 다 나았다.

그리고 또 명치부분에 조그만 공이 항상 있는 걸 느꼈다. 열이 조금나면 그 공이 아주 조금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몸살기운과 동시에 소화가 아주 안 되었다. 그런데 그 공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리고 유년기부터 앓아오던 편두통은 완전히 나았다. 그 외 많은 잔병을 자주 앓곤 했는데
영명사 삼천 지장보궁 지장보살님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그러한 아픔들이 감쪽같이 없어지고
지금은 부산에서 구미 영명사까지 먼 거리지만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간다.

2004년 추석을 일주일 앞둔 음력 8월8일경에 영명사 법당에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던 날.
그날 새벽에 친정 어머니가 꿈을 꾸셨다. 영명사 법당에 아주 가느다란 실처럼 생긴 조그마한 꽃이 피었는데
잘 보이지 않아서 애쓰고 있으니 어느 남자가 말하길 “그것은 그렇게 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좀 엎드려서
위를 향하여 보아야지‘’ 라고 말했단다. 그말 그대로다.

우담바라의 위치는 지장보살님 바로 밑 법상에 피었다. 그것도 용과 봉황에 피었다.

친정 엄마는 영명사에 가 보신 후 깜짝 놀라셨다. 꿈에서 보신 그 위치 그대로 였으니.....

우담바라가 핀 후 기도를 하면 그전에 느끼지 못한 그 어느때보다도 기운을 느낀다고 기도하는 불자들마다
한결같은 말이다. 나 역시 집에서 몸이 좀 불편하다가도 절에 다녀오면 오히려 몸이 편안 해지고 마음이
맑아짐을 느낄 수가 있다.

특히 마지막 토요일 철야정진 때는 기도의 묘미 내지는 매력을 느껴 보기도 한다. 철야기도는 사시 기도와는
다른 분위기다. 노천의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신 지장왕 보살님, 육지장 보살님, 그리고 사람마다 업이 제각기 이듯,
제 각각의 다른 표정을 짓고 계신 삼천 지장보살님 전이 우아한 가로등빛을 받아 더욱 더 성스럽게 보이고,
지장보살님전에 켜진 수많은 촛불의 빛남은 어둠에 처해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어려운 실정을 밝게 이끌어 주실 것 같고,
우리 모두의 어두운 업을 촛불로 밝혀서 우리들의 업장을 소멸해 주실 것만 같다.

수많은 촛불대 위에 주지스님께서는 이번 을유년 새해의 축원문을 적어 놓으셨다.

“지장보살님! 저희에게 가피를 내리소서.” 나는 이 글귀에 가슴저려오는 감동을 느꼈다.
꼭 우리에게 가피가 내릴 것 같다.

노천에 걸린 이 글귀를 보며 갑신년(음력)을 보내는 마지막 철야기도 속에 주지스님과 함께
지장보살 예찬문 219배후 2시간의 지장정근과 3시간의 지장경 독송을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 했다.



주지 스님의 지도로 이 시간까지 기도해 오면서 기도와 업장 소멸에는 편법이 없고 오로지 순수하게
부처님께 귀의하고 업을 차츰 녹여 가고 조그만 기도의 힘이라도 주변과 함께 나누어 가야겠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처음에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스님께 여쭈었더니
“사람마다 제 각기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기도를 하는게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우리 개인에게 맞는 기도, 그리고 그 때의 상황에 맞는 기도의 지도를 해 주신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 모른다.

특히, 나 개인적으로는 스님의 정성에 감동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기도에 대한 힘을 받는다.
예를 들자면 백중기도때 스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노천에 휘날리는 “영가님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소서. 수자령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소서.” 라는 번을 보면 영가님들께서 꼭 극락세계로
가실 것 같은 확신감이 든다.

기도를 하면서 스님과 상담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것을 억지로 하려하지 말고 순리대로 하라는 말씀에서
나의 잘못된 부분을 통감하여 고치려고 애쓴다. 두서없이 적은 글이 스님이나 혹은 불자님들께 조금이나마
누가 됐다면 이해를 구할 뿐입니다.

이 글을 마감하면서 영명사 주지스님께서 이번 새해에 쓰신 “ 지장보살님! 저희에게 가피를 내리소서.” 라는 글귀가
여러분 모두에게 회향되어 을유년 한해가 불자님들 모두에게 좋은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불기 2548년 12월 말에 청 정 화

출처: 구미 영명사(www.youngmyungsa.or.kr)



43.


아기를 보내주신 지장보살님


글쓴이: 신공덕행(申功德行)



“엄마, 사랑해.”하며 제 가슴을 꼭 껴안고 유치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유경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가슴 벅찬 기쁨을 느낍니다.

제 자식 예쁜 것은 인지상정인데 유별스럽기도 하다며 혹여 흉보는 사람이 있다 해도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일곱 살 난 딸의 행동 하나하나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딸만 생각하면 부처님과 지장보살님, 지금 동산사에 계신 주지 법전스님께 고마운 마음이 샘솟듯 용솟음칩니다.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지고 지장보살이 절로 나옵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저는 13년 전 남편과 연애결혼을 하고 서울 신림2동의 다세대 주택에 보금자리를 꾸몄습니다.
부부 금슬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좋았는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에는 저와 비슷한 또래로 거의 같은 시기에 신접살림을 차린 이웃이
두 집이나 있었는데 그이들은 결혼 초에 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배가 남산처럼 부른가싶더니 아기 울음소리가 나고, 하얀 기저귀를 옥상 빨랫줄에 척척 널어 놓은 것을
보노라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이웃에 아기가 있는데다 평소 아기를 예뻐해서 그런지 결혼 후 1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자 속상하고
불안했습니다. 유명한 산부인과라고 소문난 큰 병원에 가서 진찰도 받아보고, 아기를 잘 들어서게 해준다는
탕약도 거금을 들여 한 달에 세재나 내리 먹었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대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배란조정을 몇 달이나 했는데도 효과가 없어서 나중에는
인공수정까지 했습니다. 남편도 저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다 그토록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애써도 안 되자 병원에서 복강경 검사를 해본 후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두렵기도 하고 자포자기의 마음도 생겨 그 뒤부터 병원에 아예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만 2년이 넘어도 아이가 안 생기자 점차 주변 사람들의 염려도 커졌습니다.

남편이 막내인데다 시부모님께서 이미 돌아가셨는지라 시댁에서는 그렇게 눈치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찾아뵙는 시백부 백모님의 “왜 아직도 아이가 없느냐?
노력을 더 해보라.”는 걱정어린 말씀에 민망해서 나중에는 고향에 내려가기가 싫었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고 마음을 비워 아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해도
아기들만 보면 너무나 예뻐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의 의미를 그 때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혼자 슬퍼하고 눈물지으며 아이 갖기를 갈망했습니다.
아이가 없으니 친척, 친지도 만나기 싫었습니다.

백일이며 돌잔치 집에라도 가는 날이면 아무리 태연자약하려 해도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이 때문에 애면글면하고 있는데 어느 날 신문에 끼어 있는 지장사 불교대학 1기생 모집
광고전단을 보고 신림동의 지장사를 찾아갔습니다.

친정과 시댁 집안이 다 불교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불교에는 늘 관심이 있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불교 공부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선뜻 불교대학에 등록을 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마음씨 고운 보살님들도 알게 되어 참 행복하게
절에 다녔습니다. 잠시나마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한 고통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보살님이

“결혼한 지 3년이 되어 가는데 애기가 없어서 어떻게 해요 100일 지장기도를 열심히 하면 성취할 수 있을 텐데.
스님도 이상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100일기도를 권하시면서 왜 공덕행보살에게는 하라는 말씀이 없으시지.

아마 때가 되어 스님께서 100일기도를 권하실 때 꼭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보살님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겠노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스님께서 1995년 5월 초에
100일 지장기도를 하라고 하셨고 스님 말씀대로 100일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꼭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잠도 많은데다 그 무렵 남편이 외국 출장 중이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던 터라 사실 새벽기도는 버거웠으나 스님께서 시키는 대로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집과 지장사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는데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절에 가서 예불 드리고,
지장기도를 했습니다.

간혹 술 취한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아서 무섭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지장보살을 염하면 두려움이 스르르
물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출장간 남편이 한 달 만에 돌아온 뒤부터는 남편과 함께 절에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만큼 간절하게 기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기에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께서
아이를 보내주셨을 것입니다.

불가사의한 것은 6년 동안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었는데, 100일기도를 회향한 지 두 달 만에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더니 찜찜한 얼굴로 안 좋은 꿈을 꿨다고 하면서 얘기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꿈만 꾸면 태몽인가 싶어 꿈 내용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터라 얘기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당신이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뛸 듯이 기뻐하며 병원에 갔지. 병실에 아주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아기가 있기에
우리 아긴가 싶어서 안으려 했더니 간호원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른 아기를 가리키더라고. 근데 작고 비리비리하게
생긴 아기를 지장사 주지 스님이 안고 계시다가 우리 아기라며 날 주시더군. 애가 얼마나 약해 빠졌던지 칠삭둥이 같았어.”

남편의 얘기를 들은 뒤 “꿈은 반대라는 말도 있지 않아요? 꿈에서 스님을 뵈면 좋고, 지장보살님은 꿈에서 스님으로
나타나신다네요.”라며 남편에게 위로 섞인 말을 해주면서도 제 마음 또한 그리 편치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생리날짜가 다가왔는데 생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출혈이 있어서 이상히 여기면서 일주일을
버티다가 새벽에 임신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그 때의 그 떨림과 흥분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임신 반응선에 나타난 보라색 선을 보고 또 보고, 혹시라도 지워질까 들락날락하면서 5분 간격으로 그 줄을 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남편에게 잘못 이야기했다가 실망시키면 안 되겠기에 일주일 동안 꾹 참고 있다가 동네의 종합병원에 가서 다시
테스트를 해보니 임신은 맞는데 자궁 입구에 혹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날 혹을 제거하는 수술인 줄 알고 수술대 위에 누웠었는데 알고 보니 낙태수술이라는 말을 듣고
깜작 놀라 수술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어떻게 가진 아긴데, 말도 안 돼’하는 심정으로 다음에 오겠다고 하자, 담당의사는 “현재 아기 상태도 안 좋다.
다음에 건강한 아기를 가지도록 하라. 내 친동생이라도 나는 수술하라고 권할 것이다‘라고 하며 수술할 것을
종용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로 그 시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장사 보살님이 잠간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제가 아기를 엎어 놔서 아기가 새파랗게 질려 울고 있는 것을 법전스님께서 소리를 버럭 지르시며
“아기 제대로 누이라.”고 호통 치셔서 아기를 똑바로 누이자 그제야 아기가 숨을 크게 쉬면서 얼굴이 편안해지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제 아이의 태몽을 꿔주시기도 했습니다.

뒷날 그 이야기를 듣고 스님께 여쭙자, 인연이 깊으면 그렇듯 신이한 꿈을 대신 꿔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날 당장 백방으로 수소문 해보고 모 종합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은 결과,

“걱정할 정도로 혹이 큰 것은 아니다. 다만 유산기가 있으니 특히 몸조심하고, 자궁무력증이 있어서
태아가 크면 자연유산할 수 있으니 자궁입구를 묶어주는 수술을 해아 한다.”는 소견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두 달간 꼼짝도 않고 누워 있고 친정어머니께서 대신 살림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위험하다는 기간을 잘 보냈는데 24주째 정기검진에서 임신중독증 초기 증상이 나타나 입원해서 한 달 후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임신성당뇨가 와서 또다시 40일 동안 입원하고 있는 중 양수가 터져서
7개월 20일 만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임신중독증인데도 순산을 하고 1.59킬로그램의 작은 아기지만 울음소리도 크고
매우 건강하다며 축하해주었습니다.

남편은 태기가 있기 전에 꾸었던 꿈과 상황이 똑같다며 참으로 신이한 일이라고 거듭 말하면서 지장기도 덕분에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감동적으로 말했습니다.

남편의 신심은 그 때부터 눈에 띄게 깊어져 지장사 부부법회의 총무로 있으면서 전법에도 힘쓰고 절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지금은 동산사에서 법전스님을 모시고 불자로 열심히 신행 활동중)

한편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이틀 만에 나온 아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만 같은 아기인지라 우리 부부는
한동안 교대로 아기를 보면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아기가 제대로 숨을 쉬는지 노심초사 관찰하면서 의사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일분일초까지 재어 젖을 먹이며
애지중지 키운 아기는 무럭무럭 잘 자라 백일 무렵에는 우량아가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애를 보며 얼마나 장한 생각이 드는지 백일도 되기 전에 지장사에 데리고 갔는데 스님을 보자마자
아기가 활짝 웃으며 스님께 가려고해서 안겨드리니까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며 엄마 품으로 얼굴을 묻는 아이가 스님께 안기려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지장보살님이 보내주신 아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서울에서 물 흐르는 대로, 즉 진리대로 순리대로 살라고 유경(流京)이라 이름지어주셨고,
아이의 법명은 진불심(眞佛心)이라 지어주셨습니다.

현재 스님의 유발상좌인 유경이는 제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조금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은 천재인 것 같다는 착각 속에 산다는 말도 있지만 저 또한 유경이가 어릴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두 돌이 되기 전에 스스로 숫자개념을 알아차리고, 세 돌도 되기 전에 한글을 깨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찌나 말도 빨리 하고 어휘개념도 풍부한지 주윗분들로부터 “기도해서 낳은 아이라 다르다. 참 똑똑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지적인 측면보다는 유경이의 맑고 밝은 성품, 착한 마음씨를 볼 때 더욱 기쁩니다.

얼마 전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데, “유경이는 참 보기 드문 아이에요. 똑똑한 것은 물론이고 착하기 그지없는
데다 애가 참 조숙해요. 글쎄 친구들에게 다니면서 ‘너는 이런 면이 좋다. 너는 이것을 잘하는구나. 너는 좋은 친구야.’
하면서 칭찬을 하고 다니는 겁니다.

아이들끼리 질투하는 것은 봤어도 칭찬하고 다니는 애는 유경이가 처음이에요.

또 심술궂은 아이가 조금 약한 아이를 놀리면 ‘너 그렇게 하면 못써. 너는 착한 아인데 왜 나쁜 짓을 하려고 하니?
친구 놀리지 마.’하는 겁니다. 이다음에 유경이는 훌륭한 인물이 될 겁니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또 한 번 유경이를
보내주신 지장보살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저는 진실로 유경이를 갖고 유경이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제 힘이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햇빛이 식물을 자라게 하듯 태양 같은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가 없었다면 저희 가정이 어떻게 이렇듯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가 유경이를 낳은 지 6년 만에 동생을 갖게 된 것 또한 지장보살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임신 소식을 듣고 “엄마, 스님께 먼저 말씀드려야지.”하면서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사랑스러운 우리 딸
유경이가 돌아올 시간입니다.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어 제 딸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누구든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전생의 업장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지장보살님께 의지해서 지극하게 기도하면 그 모든 업장을 다 녹여버리고
행복한 인생을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체험했기에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지금 유경(진불심)이는 초등학교 6학년 동생 유정(보리심)이는 7살이랍니다. 둘다 너무 맑고 천진불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아버지(정담거사) 어머니(공덕행보살) 이렇게 4식구가 행복하게 부처님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실한 기도와 수행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지장보살 영험록(김종매외, 불광출판부간), 동산사 홈페이지(www.dongsansa.org)


44. 운호스님의 지장기도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스레 약하였던 운호스님(가명, 비구니스님)은 주위로부터 나이 삼십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자주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근근히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적령기에 '영원 생명'을 찾는 공부를 하고 싶어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다시 강원공부를 마쳤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한 '나'의 것이 되기보다는 겉을 맴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운호스님은 다시 대만으로 갔다. 그러나 약하기 그지없었던 몸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정녕 출가사문일진대,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가 환희심을 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렇게 병약하고 무능한 나를 보고 누가 신심을 낼 것인가?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슬픈 생각에 잠겨 있던 스님은 때마침 대만에서 유행하고 있던 점찰법(占察法:십악과 십선을 적은 윷 같은 모양의 木輪을 던져 전생의 업을 알아보는 법)을 행하였다.

스님은 ≪점찰선악업보경≫에서 설한대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 다음, 목륜(木輪)을 던졌다. 그러자 '살생업'이 많다는 괘가 나왔다.


'아, 살생을 많이 한 자는 몸이 약한 과보를 받는다고 했거늘, 나의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픈 것이 전생의 업보라는 것을 왜 깨닫지를 못하였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죄업을 참회하여 업장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출가한 후 10년 동안 제대로 기도 한 번 못하였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님은 지장기도를 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지장경≫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1번 독송을 하고, '나무지장보살'을 천 번 부른 다음, <지장예찬문>을 외우며 158배를 한다. 그리고 <지장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 천 번을 불렀으며, 기간을 21일로 정하였다.


스님의 기도 목적은 업장 참회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를 시작하자 원래의 기도 목적과는 달리 집안의 조상들이 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스님은 7일 마다, 한 번씩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여 불보살님과 조상님, 그리고 유주무주고혼(有主無主孤魂)들께 시식(施食)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첫 7일째, 조상들이 흰 옷을 입고 공양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이에 두 번째 7일과 세 번째 7일에는 '변식진언(變食眞言)'을 외우며 영가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관상(觀想)하였다. 음식을 적게 마련하였을지라도 진언을 외우며 관상을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그 음식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상을 하여서인지 스님은 공양이 차츰 뷔페식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 조상님들은 상을 차려 놓은 특별실에서 공양을 들고, 유주무주고혼들은 아주 큰 홀에서 뷔페식으로 공양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7일날에는 모두가 음식을 먹고 천도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스님은 영가천도라는 부수적인 가피를 입은 것이다.


가피를 입어 환희심이 가득하였던 스님은 기도기간을 백일로 늘여 잡고 더욱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다. 30일째 되는 날 스님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스님은 지장보살께서 머물러 계신다는 어느 절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마구니, 요상하게 생긴 마구니,


심지어는 외국 비구니의 모습을 띤 마구니까지 입구에 일렬로 늘어서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장삼을 크게 휘둘렀고, 그 순간 모든 마구니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며 항복을 하였다.
스님이 당당한 걸음으로 절문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수각(水閣)에서 손을 씻어라."

말씀을 따라 수각에 들어가 손을 씻자, 오른손을 씻은 물은 새까맣게 변하였고 왼손을 씻은 물은 반쯤 까만 회색빛이 되었다.
'아! 몸으로 지은 신업(身業)이 소멸되었구나.'


살생 등의 나쁜 짓을 주로 저지른 것이 오른손이었기에 그 씻은 물이 새까만 색, 왼손은 오른손을 도와 나쁜 업을 짓는 보조역할을 하였기에 그 씻은 물이 회색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손을 씻고 신업의 소멸을 느끼고 나자 스님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고, 꿈속에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나 35일째 되는 날, 운호스님은 한국의 여러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고, 65일째 되는 날에는 비구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다.


이것이 자서수계(自誓授戒)이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스스로가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꿈속에서 불보살님으로부터 직접 수계를 받는 자서수계법을 설하고 있는데, 운호스님은 이 법에 의해 수계를 받아 마친 것이다.


그리고 백일 기도를 회향하는 날, 스님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다며 노천온천이 있는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님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줄이 너무나 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며 서 있었다.


그때 마침 대만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비구니가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비구니는 스님을 손짓하여 부르더니 자기 앞에 서도록 하였다.마침내 노천온천으로 들어 순서가 되었을 때 대만 비구니는 온천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운호스님은 왠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주위를 살피다가 조금 떨어진 반석 위에 까만 옷을 입고 앉아 계시는 아는 처사님을 발견하였다. 처사님은 8년 동안 지장기도를 한 분이었다. 스님은 그분 앞으로 가서 아래의 옷을 모두 벗은 다음 쭈그리고 앉았다. 처사님은 스님의 입 바로 밑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여기에 악귀가 붙어 있노라."
그리고 여드름을 짜듯 두 손가락으로 입 밑을 누르자, 고름이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 되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되느니라."

운호스님은 그 말씀 끝에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었음을 느꼈다. 또한 '삿된 생각만 조심하라'는 것은 의업(意業)을 조심하면 된다는 깨우침이었다.
환희로움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은 벗어 놓은 옷을 입은 다음, 허공을 날아 2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스님보다 키가 두 배나 큰 분이 넷이나 있었다. 그때 건물 아래로부터 스님을 찾는 대만 비구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운호스님, 운호스님…."

"저 여기 있어요. 잘 가요."

서로가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순간 운호스님은 꿈에서 깨어났고, 백일기도 또한 마쳤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도 전까지는 경전을 보고 있으면 내용이 분명히 다가오지 않았으나, 기도 후부터는 내용이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기도 후 스님은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을 믿기 시작하였는데, ≪아미타경≫ 등을 읽으면 삽화가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보듯이 극락 세계의 여러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경전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총명득력(聰明得力)! 총명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던 몸도 그 누구보다 건강하여졌다. 이후 스님은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 인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도력이 매우 높은 티벳의 고승들을 만나 그 분들의 지도 아래 현재 용맹정진을 하고 계신다.


스님의 원래 목적은 업장소멸에 있었고, 처음에는 21일 동안만 기도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조상들이 나타났고, 이에 스님은 영가천도를 해주고자 하였다.


영가들이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관상(觀想)하면서 시식을 행한 결과, 많은 영가들이 가피를 입어 삼칠일(21일)만에 모두 천도가 되었다.


신심이 크게 일어난 스님은 21일 기도를 백일기도로 연장하여 더욱 열심히 매진한 결과, 꿈에서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는 자서수계를 성취하였으며, 몸으로 지은 죄업인 신업(身業)이 소멸되는 꿈과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는 가피를 입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신업과 구업이 소멸되자 스님에게는 건강과 총명이 가득하여 졌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길도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곧, 백일지장기도를 통하여 영가천도, 업장소멸, 자서수계, 총명득력, 건강 및 새로운 스승을 만나 향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가피까지도 모두 얻은 것이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 김현준저 지장신앙 지장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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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월간 불광(www.bulkwang.org)

2007년 1월호 우리스님 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스님편 인터뷰(사기순님 글) 중 일부 전재



묘허스님이 회주로 계신 단양 방곡사, 신탄진 신흥사, 김해 원명사가 다 유명한 지장도량이다.

김해 원명사 지장보살상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눈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이적을 보여 입소문이 자자한데,
방곡사에 모신 거대한 지장보살입상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숙세부터 맺어진 지장보살과의 인연


“은사스님(故 화엄큰스님)은‘아들을 의사로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을 돕겠다’는 모친의 권유로 오사카 의대를 졸업하셨지요. 이차대전 때 일본군 군의관으로 끌려가자, 모친이 매일 저녁 등을 밝혀 놓고 지장보살님께 기도하였는데, 어느 날 등이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등이 없어졌던 바로 그날 밤 아들은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결에 뛰어나와 등불을 따라갔는데, 그때 미군들이 막사를 폭격하여 다 죽고 혼자 살아남아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이적을 체험하시고 일생 동안 지장기도를 하셨고, 은사스님도 어머니의 지장신앙을 이으셨습니다.”

은사스님의 뜻을 받들어 머무는 곳마다 지장도량으로 일구니 보기 드문 효상좌라고 찬탄하니, 불가(佛家)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참으로 지중하다며, 숙세(宿世:전생)부터 인연이란다.

“어머님이 생남불공을 드렸는데, 꿈속에 노스님이 아기를 안고 나타나셔서 키우다가 돌려달라기에 꿈속에서도 자식을 갖고 싶은 마음에 ‘예’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경전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머리를 깎은 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어머님은 지장보살님에게 얻은 아들이 결국 출가하고, 지장보살을 받드니 다 인연의 소치라고 하셨지요.”

불교에는 팔만 사천 가지 방편문이 있다.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제도하고 그 모두를 성불시킨 뒤에 스스로 성불하겠다.’는 지장보살의 큰 서원을 현실 속에 구현할 때 고통의 사바세계가 그대로 평화로운 불국토가 될 것이다.


46. 자명성보살의 사돈댁 영가천도


독경천도(讀經薦度)


독경천도는 이름 그대로 영가에게 공덕이 되는 경전을 읽어주면서 행하는 천도법이다.

이렇게 공덕을 심어주는 경전들을 불가에서는 공덕경(功德經)이라고 하는데,
현재 널리 읽혀지고 있는 공덕경으로는 금강경, 아미타경, 지장경, 관음경,
약사경, 법화경 등이 있다.



이들 공덕경 중 어떤 경전을 택하여 읽어도 효과는 같으므로,
형편에 맞게 하나를 택하여 꾸준히 읽어주면 된다.

이제 구체적인 요령을 말하기 전에,
서울 신당동에 살았던 자명성 보살의 독경천도 영험담부터 함께 음미해 보자.



자명성 보살이 불교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50대 초반에 3년 동안 신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사돈의 권유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다가,
꿈에 흰옷을 입은 할머니로부터 10여 차례 약물을 받아 마시고
완쾌됨으로써 불교를 깊이 믿게 된 것이다.



이 자명성 보살이 2남 2녀의 막내딸을 시집 보낼 즈음, 신랑집에서 예단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예단 한복판에 예물로 보내오지도 않은 족두리가 선명하게 보이면서,
꿈속인데도'무엇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사돈댁의 원귀가 예단에 묻혀 온 것이라 느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돈댁이 손을 대는 사업마다 모두 실패를 하고,
가족들도 이상하리만치 어려운 사정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보살은 꿈에서 깨어나자 곧바로 지장경을 독송하고 기원하였다.


"예단에 싸여 온 영가가 사돈댁과 인연이 있는 영가이든 또 다른 영가이든,
부처님과 지장보살의 공덕을 입어 밝은 길로 나아가지이다."



"예단에 싸여 온 영가들과 사돈댁 집안의 영가들이 극락에 왕생하여지이다."


이러한 축원을 하며 보살은 며칠동안 지장경을 하루에 한 편씩 정성껏 읽어주었다.

그러자 꿈에 옷을 단정히 입은 여자가 기쁨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 공손히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런데도 예단에 싸인 족두리는 여전히 보였으므로 계속 지장경을 독송하고 축원하였다.
20일이 지나자꿈에 족두리를 쓴 단정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정중한 자세로 정성을 다해 절을 하고 사라졌다.


자명성 보살은 사돈댁 영가를 위해 백 일을 기도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계속하였고,
백 일이 다 되었을무렵 노란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손에 흰 수건을 들고 나타나 절을 하고는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사돈댁에 원한이 있는 영가들이 구원을 받을 인연을 찾아왔다가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모두 천도되었음을 보살은 직감하였다.

그 뒤 자명성 보살 사돈 집안의 우환은 저절로 사라졌고,
사업도 잘 풀려 예전처럼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47.

현재 모전문대학의 교수로 있는 정박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럽에서 박사 학위의 심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임종의
소식을 듣고도 아내만을 고국으로 보내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논문심사를 마치고 박사가 되어 귀국한 정박사는 여러 학교를 찾아
교수 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오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던 정박사는 속칭 '보따리 장사'라고 하는
시간강사가 되었고, 아내는 학원강사가 되어 가정을 꾸려갔다.
그러나 돈은 늘 모자랄 뿐이었다.

또한 정박사의 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누더기를 입고 나타나
꾸짖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놈아!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버지의 꿈, 가난한 살림, 몇 년째 시간강사 신세 등으로 정박사의
신경은 갈수록 날카로워졌고, 아내와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차츰 살아있다는 것까지 구차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충남 천안 광덕사를 찾은 정박사는 한 스님으로부터
영가 천도에 관한 말씀을 듣고, 광덕사 명부전의 지장보살님 앞에서
발원을 하였다.

"지장보살님! 불효자식에 대한 한을 품고 땅에 묻혀 계신 아버님을 위해,
49재를 지내는 마음으로 49일 동안 부모은중경 1부를 사경하고
지장보살본원경을 1백독 하겠나이다. 부디 아버님을 극락왕생케 하소서."

집으로 돌아온 정박사는 그날부터 지장보살님 앞에서 발원한 대로
실천을 하였다. 그러나 한 차례 읽는데 2시간씩 소요되는 지장경을
두번씩 읽고, 한시간 가량씩 부모은중경을 쓰는 것이 여간 힘들지않았다.
강의 등 평소 생활을 그대로 하면서 하루 5시간을 더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박사는 적당히 타협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생각을 경책하면서
불효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잠을 줄였고, 버스 속에서도 지장경을 읽어
지장보살님 앞에서 한 약속을 지켰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제사를 지내고 잠이 든
정박사는 꿈에서 다시 아버지를 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전처럼
누더기를 입지않고 아주 좋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은 아니었구나. 네 덕에 이 아버지는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좇아 달려가다가
정박사는 깨어났다. 그 뒤부터 정박사의 꿈에는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해 가을 전문대학의 교수로 채용되었다.

이 정박사의 경우처럼 영가천도는 당사자가 직접하여야 한다.
굿을 한다고 하여, 부적을 쓴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서 올리는 천도재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절에 계신 부처님이나 신장, 그리고 기도를 하는 스님들도
'나'의 정성에 감응하여 움직여주시는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영가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도 '나'요, 천도를 하여 복되게 사는 것도
'나'라는 것을....... 그런데'나'의 문제를 어떻게 남에게
미룰 것인가?

내가 직접 하겠다는 자세와 각오가 없으면 천도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46~47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4 우룡큰스님저 영가천도


48.

태아(胎兒)를 위해 읽은 지장경(地藏經)



내가 하이보를 안 지 3, 4년 되었다. 그녀는 얌전하고 아름다우며 또 매우 총명한 여대생으로 동북지역 출신이다. 그녀의 엄마는 매우 오래 전부터 불교를 신봉한 노보살이다. 금년 초 임신한 지 7개월 된 하이보는 나에게 아기가 뱃속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매우 심하게 움직인다고 털어놓으면서 해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매일 『지장경』을 독송하되 연속 7일을 독송하면 아기의 숙세의 업의 빚이 소멸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모자지간의 전세의 악연이 평온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이렇게 하면 아기를 낳을 때도 고통 없이 순산할 것이고, 아기가 출생한 후에도 안락하여 기르기 쉬울 것이며, 작은 병이 있어도 쉽게 회복될 것이고 만약 채식을 할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이보가 나에게 계란을 먹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나는 현재 시장에서 파는 계란은 모두 양계장의 계란으로 부화될 수 없는 무정란이기 때문에 잠시 먹어도 된다고 하였다.

2개월 후 하이보는 전화를 걸어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고, 방금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으며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안하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지장경 일곱 편을 독송하라고 하였을 때 , 그녀는 마음속으로 49편을 독송해야겠다고 발원하였단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일편을 독송한 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아이는 다음날 출생하게 되었다.

출산할 때 의사가 그녀에게 힘을 주라고 하자 그녀는 관세음보살을 염했다고하였다. 마음속으로 염하자마자 의사가 “머리가 보인가”고 말하였다. 의사가 통통한 애라고 하자 그녀는 기뻐서 눈물이 나왔단다.

내가 그녀에게 퇴원 후 가능한 적게 말하고 푹 쉬라고 하자 그녀는 자기는 원기가 매우 좋으며 괜찮다고 하였다. 아울러 자기가 4일 동안 입원해 있을 때 자기만 순산하였을 뿐 다른 산모들은 모두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했다고 하였다. 산모들이 제왕절개수술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병원에서는 수입을 늘리기 위하여 수술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왕절개 수술로 애를 낳았으면 몸 상하고 돈 들고 할텐데 이것도 업력의 소치가 아닌가.

10일 후 하이보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애를 안고 집으로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고 조금도 울지 않으며 3일 후에는 웃기도 하였단다. 그런데 지금 연속 일주일을 울었다고 한다. 우유를 먹여도 울고 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고 울기만 하니, 아기 체온을 체크해 보아도 열은 나지 않았는데 도무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혹시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것은 아닌지 물어보았다. 그녀의 말이 시어머니가 고향에서 오셨는데, 산모가 고기도 안 먹는다고 화를 내면서 그녀에게 붕어탕을 먹으라고 하였단다. 그녀가 젖도 잘 나오니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는데도 시어머니는 젖이 맑아야 되니 반드시 붕어탕을 먹어서 보신해야 된다고 하면서 억지로 먹였다고 한다.

또한 다음날은 시어머니가 현장에서 잡아 는 암탉을 사와 고아먹이겠다고 하시는데, 자기는 조금도 먹을 생각이 없으나 시어머니가 현장에서 잡아 파는 암탉을 사와 고아먹이겠다고 하시는데, 자기는 조금도 먹을 생각이 없으나 시어머니가 화를 낼까 두려워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물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이르기를, “아기가 우는 까닭은 당신이 아기에게 49편의 지장경을 독송해주어 이미 업이 소멸되었으며, 혜근(慧根)이 증장되어 당신의 비린내 나는 젖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붕어탕을 먹지 않으면 아기는 반드시 울지 않을 것이니 시험해 보라.”고 하였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내일 닭을 고아오실텐데 붕어탕을 먹지 않는 것은 힘들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절대로 살아있는 닭을 죽이면 안 되며, 당신이 한 걸음 물러나 닭과 고기를 먹되 삼정육(三淨肉)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매일 이러한 물고기와 닭을 위하여 왕생주(往生呪)를 몇 번 독송하여 그들을 천도시켜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방법이며 이렇게 하면 이들 생명이 당신에 대한 원한심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와 시어머니가 정말로 뜻을 합쳤어도 아기는 한동안 여전히 젖을 먹을 때 울었으며, 단지 우유를 먹은 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이보는 “보아하니 애기가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는가 봅니다”고 조금은 농담하듯이 말하였다.

며칠 후 하이보의 친정어머니가 동북지방에서부터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 엄마가 그녀로 하여금 다시는 비린내나는 음식을 먹기를 원하지 않으니, 주방이 넓지 못하다는 핑계로 그녀와 외손자를 데리고 동북으로 와 요양을 하게 하였단다.

지금 아기를 보니 활기차고 귀여운 게 나날이 튼튼해져 가족들은 매우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중국 과경거사 지음, 한국 각산 정원규거사 번역, 불광출판부간)







49.

모든 중생의 안락을 기원하는 지장기도


황효주(덕운행) /한약사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지장기도를 드린 지도 어느덧 7년이 넘었다.

『자비도량참법』은 중국 양나라의 무제가 죽은 애첩 치씨를 천도하기 위해 여러 고승대덕을 불러 모아 만든 경전에서 중요한 부분만 간추린 것이다. 우리가 지은 업이 불러오는 결과와, 우리가 기도한 공덕으로 육취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회향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고인의 천도는 물론, 자신의 업장소멸과 다른 중생의 안락을 기원하고 싶다면 이보다 좋은 경전은 없으리라 본다.

보통 아침 5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약 1시간 정도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기도를 드린다. 이 책은 권당 90쪽 정도 되는 분량으로 모두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일 한 권씩 읽으니 열흘이면 책 전체를 완독하게 된다. 100일이면 『자비도량참법』 전권을 10번 읽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7년 동안 지장기도를 하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는 사경까지 곁들이고 있다.

『자비도량참법』 수행은 매번 할 때마다 느끼는 바가 사뭇 다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흐르는 물은 항상 가득하지 않고 맹렬한 불도 늘 타는 것이 아니며 해는 떴다가 어느덧 지고 보름달도 찼다가 기우나니, 부귀하고 영화로운 이도 덧없음이 이보다 더하리.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님께 예배하여라”라는 부분이다. 인간은 늘 만족하며 살 수 없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보다 기대치가 높다보니 늘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욕심이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고 기대치를 조금만 낮게 잡으면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항상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럴 때면 더없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니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늘 웃는 낯으로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다. 또 진심으로 환자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약을 지어주니 그분들의 쾌유도 빠른 듯하다.


『자비도량참법』을 통해 지장기도를 하며 겪은 좋은 일들과 신비한 경험은 숱하게 많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새벽에 지장기도를 마친 후 왠지 기분이 이상하여 출근하는 아들에게 몸조심하라고 각별히 일렀다. 그날 퇴근해서 귀가한 아들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침 출근길에 잘 나가던 차가 고속도로 중간에서 갑자기 서더란다. 당황한 아들이 차에서 내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속도로에서 서 있다가 다시 차를 타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동이 걸렸다. 그렇게 얼마쯤 달리다 아들은 끔찍한 사고현장을 보게 되었다. 불과 몇 킬로미터 앞에서 17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아들이 갑자기 서버린 차를 살펴보느라 도로 중간에서 지체하고 있을 사이 그처럼 어마어마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만약 그날 잘 달리던 차가 아무 이유 없이 서버리지 않았다면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들은 그 모든 일이 엄마의 기도 덕분이라며, 여태까지 그런 엄마의 신행 생활을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에 받은 자신의 성과급에서 3백만 원을 내가 다니는 절에 보시했다. 지금껏 내가 신행 생활하는 데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50년 동안 불교를 접하며 이런저런 수행을 해 보았지만 내게는 지장기도만큼 맞는 것이 없었다. 지장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가정의 평화는 물론 내 마음의 평화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항상 문제는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긴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나쁜 인연이 생길 리 없다. 형제나 부모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면 그보다 먼 타인과의 좋은 관계는 바랄 수 없는 일이다. 더 많은 불자들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로 마음의 안정과 가정의 평화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리|한재희


출처: 월간 불교와 문화 (www.buddhistculture.co.kr) 2007년 12월호에서 옮김



50.



지장경 독송이 주는 영험




전라북도 전주 중화산 2동 계명 거사




달빛은 다정하고 밤 하늘엔 소근대는 푸른 별의 대화가 가득합니다.

어쩐지 잠이 올 것 같지 않고 내 주위의 소소한 일상과 상념들로 머릿속이 혼란스럽습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가진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간파하시고 일체가 괴로움이라 설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번뇌요, 우리가 떨치기 힘든 망상인가 봅니다.




6남매 고이 길러놓고, 행여 잘못될세라 하얀 밤 뒤척이시며 잠 못 이루시던 내 어머니, 이젠 세수 93세로 모든 기력 쇠진하고 정신마저 혼미하여, 이승과의 이별을 가까이 두신 내 어머니, 천수를 다 하시는 그 날까지 혹 병마라도 침입하여 온갖 고통과 근심으로 생을 마감하시면 그 안타까움 어찌할까?




지금 이 순간도 외롭고 쓸쓸한 노인 요양병원 침대에서 아픔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과 한숨으로 하루하루 지겨운 시간을 견뎌내시는 우리 장모님,




힘든 회사 생활에 지쳐 건강까지 해쳐가며 버텨보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중등학교 교원 임용고시에 도전해 보겠다는 큰 아들의 꿈,




우리 부부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갑작스런 병마의 침투와 수술, 그리고 저철했던 치유과정......




이렇게 끝없이 꼬리를 물고 밀려오는 온갖 고통과 괴로움 등 세상만사가 왜 이렇게 아픔과 시련으로 얼룩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참 좋은 우리 절’ 덕명불 보살님의 안내로 지장경 독송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내용인가 싶어 목차를 훝어 보니 부록편에 지장경 독송 영험록이 실려 있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고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어지러운 마음과 몸을 어딘가에 의지해 보고 싶은 기대감에 사로잡혀 독송해 보기로 마음먹고 우선 독송하기 전 수행과정을 정성스럽게 해야겠다 싶어 먼저 시방에 두루하시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음 간절한 서원 발원과 정구업 진언 세 번, 오방 내외 안위제신 진언 세 번, 개경계, 개법장진언, 신묘장구 대다라니 세 번, 참회게 참회진언, 발사홍서원, 발원이 귀명례 삼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독송 후 지장경 독송, 이런 순서로 매일매일 기도에 정진하였습니다. 신심의 의지를 곧게 세우기 위해 아주 특별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지장경 독송에 몰입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독송이 156회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기적일까요?

부처님은 대자비로 몸을 삼으시니 병자에겐 어진 의원 되시고, 길 잃은 자에겐 바른 길 가르쳐 주시어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이익할 것임을 가르쳐 주셨음에 부처님의 가피가 이 미천한 몸에도 내리셨나 봅니다.


올 해 세수 93세의 어머니가 감기 한 번 걸리시지 않고, 2층 계단을 오르내리시며, 건강하고 근심 걱정없이 하루 하루를 즐겁게 보내시고 계시며


사경을 몇 차례나 넘기셨던 장모님께서도 지금은 아픔의 고통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맞고, 주위 환자분들에겐 덕담과 위로의 말을 전해주시며


큰 아들 역시 별 어려움없이 임용고시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 또한 치료 경과가 좋아 지금은 생기를 되찾고, 건강한 삶의 일상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부처님의 크신 자비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불자가 쓴 지장경 독송 영험록을 읽고 내가 또다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동안 나의 고뇌와 아픔을 따뜻이 녹여주신 부처님의 자비와 지장경에 다시 한 번 감사의 큰 절 올리옵고, 불법을 깨닫는 일에 게으름 멀리하고 뒤늦게 만난 소중한 인연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부디 다른 불자들께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생의 영원한 지침이 되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각자가 지닌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장경 독송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발원해 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지장보살



출처 : 대한불교 조계종 참좋은 우리절(I Love Buddha) 글쓴이 : 익명회원


51.


작년 여름에 사랑하는 남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9재도 지냈지만 시댁과의 예기치 않은 불화로 아이와 함께 나와서 살고있는 동안 49재 첫재만 지내고 그이후엔 찾질 못하였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목도하는 죽음앞에서 늘 인생무상을 느끼겠지만 예기치 않았던 이런 일에 내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지 연애결혼을 한 우리 내외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는지 답답함속에서 저는 불교관련 서적을 닥치는대로 읽어가다가 지장경 독송을 통해 남편이 바른곳으로 가길 원하는 마음에 집에서 독송을 하였습니다.

몇번인가 남편이 꿈에서 나타났지만 좋은 모습으로 있는것도 보았으나 그렇게 있길 원하는 저의 망상이 꿈에서 나타난 거려니 하고 지장경을 여건이 허락하는 한 독송을 하였습니다. 남편 사진도 옆에 놔두면서요....

경전을 독송하는동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임종전에 아미타불 부처님만 따라서 가라고 외쳤고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면서 염불도 했지만 터져나오는 울음에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시댁과의 불화를 지켜봤을 남편이 꿈에서 눈물 훔치는 꿈도 꾼지라 정말 열심히 독송하였습니다.

어쩌면 그건 제가 제 스스로 위안삼아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더 들더라구요 답답하니까. 얼마전 꿈엔 아이의 모습을 한 남편을 보고 제가 이제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서 자긴 이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인간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극락세계에 최하품으로 나더라도 윤회를 없애 성불하는게 최고지만 생전에 우리다시 태어나서 만나진다면 다시 만나 오래 살자고 했던 약속때문일까요? 그렇게 답하더군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도 힘들고 부처님 가르침 받는 것도 힘들다지요? 그래도 그 꿈꾸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웃기게도 이기적이지만 넌 다시 태어나는구나 난 살아내야 하는데 라는 씁쓸한 웃음이 지어지지만요... 참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라 하대요..... 남편관련꿈을 꾸고 나면 늘 새벽4시 10분에서 20분 사이었거든요 망상이 지어낸 나의 꿈.... 때문인지 요즘은 삶에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하고 삽니다. 차에 출퇴근 할때도 염불테잎틀고 따라하고요 부처님의 가피력이겠지요? 지장보살님의 서원때문이겠지요?


나무아미타불카페 김 ㅇㅇ님 글 옮김



52.

지장기도 체험담

나무아미타불 파랑새78님 글 옮김


(i)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부모님이 불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말 그대로 왔다 갔다만 했을 정도입니다.

그저 향냄새가 너무 좋아서 법당에 몇 시간씩 앉아있기도 하고 맘이 동하면 법당에 있는 경전도 한 번 읽어보기도 했었죠.

대학원 진학을 앞둔 27살때의 일이었습니다. 1여년 전부터 잠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무섭고 뭔가가 계속 괴롭히고 하는 일이 점점 그 시기가 짧아지더니 맨 정신에도 귀신이 보이고 어느 날은 TV에서나 보았던 저승사자 3명이 삼각 구도로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저승사자는 덩치가 무척 크고 3명 모두 다리는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또렷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여러번이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 밑이 검다며 저승사자 같다는 말도 자주 들었고 이유없이 아프고 힘이 없고 모든 의욕이 떨어지고 밤마다 무엇가에 시달리고 고함지르기를 몇 달간 계속되었습니다.

단지 몸이 약해져서 그럴거라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그 당시에도 딱히 종교가 없던 터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었고 뭔가에 빌어야 한다는게 용납이 안되더군요.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잖아요.



지장보살님이 누군지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얼마나 해야하는지.... 정말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석가모니부처님만 알았지 무슨 보살님의 이름이 이렇게 다양한지... 그 중에 나름 택한 것이 지장보살님이었습니다.

지장기도는 정말 힘든 기도다..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기도라는 등... 이상한 말들이 자꾸 들리더라구요.

전, 맘속으로 "그런게 어딨어??!! 정성껏 진심으로 하면 되는거지... 설마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저 했습니다. 오로지 지장보살님만 생각하면서 염불을 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하루에 만 번씩 그렇게 간절히 부르기를 100일을 했습니다.

밤 8시 부터 시작하기로 한 시간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뛰어서 집에 오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기도 하고 씻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린채로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두고 바로 지장보살님 사진 앞에 앉아서 또 염불하고...

'지장보살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정말 신내림 싫거든요. 만약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만 한다면 절 그냥 데려가주세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요...'

정말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죽을 각오'로 지장보살님만 부르고 부르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잖아요.

그렇게 울고 있으니까 정말 지장보살께서 와주시더군요.



100일 회향하던 , 회향 의식을 마치고 너무 고되서 동생 침대에 대자로 벌러덩 눕는 그 순간,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한참동안 전율이 나면서 몸이 공중으로 뜨더라구요. 정말 본 사람이 있어서 이것이 거짓이 아닌란걸 아실거에요. 말도 안나오고 무섭더라구요. '지장보살님~~ 절 데려가시려나보네요... '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못 나와~~~!!!!?" 하는 호통치는 젊은 여자의 청아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요.

그 순간 온 몸에서 큰 덩어리 같은 것이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빠져나가면서 몸이 침대로 떨어졌어요.

정말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날 밤 꿈을 꾸게 되었는데, 목욕탕에서 때로 벗기고 있는데 어떤 어린 꼬마 두명이 들어오길래 여긴 여탕이니 나가라고 하니까 성년의 남자가 들어오면서 "걱정말고 깨끗이 씻어라. 내가 다 데리고 갈테니... 이제 괜찮을거다."

하는 말과 함께 두 명의 어린 남자를 데리고 나가셨어요.

너무 생생해서 신기했어요.

그 뒤로 이유없이 아픈 몸도 아무렇지도 않았고 꾸는 꿈마다 조상이 천도된 꿈이라는 말과 업장이 소멸되는 꿈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달 동안 절에 들어가서 기도 한 경험도 있는데 기도 시작 전날에 가슴안에서 시커먼 물체가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했고 15일 후쯤에 스님이 오라고 해서 가니까 얼굴만한 연꽃 화분 앞에 앉으라고 하시더라구요. 스님이 꽃잎을 떼서 먹여주고 있는데 하늘에서 셀수도 없이 많은 꽃비가 내리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회향 전 날밤에 자려고 눕자마자 비로자나 부처님의 커다란 손이 얼굴쪽으로 오더니 얼굴을 쓰다듬는거에요. 이건 꿈도 아니고 너무 신기하고 포근했어요. 어떠한 반응도 없이 그러고나서 그냥 편하게 잠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로 개인적으로 100일 기도를 3번정도 연달아서 더 했는데 꿈을 너무너무 많이 꾸는거에요.

특징적인 거는.... 입에서 벌레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그리고 스님들이 안 나올때가 없었습니다. 법당에서 춤도 추시고 같이 놀자며 사람들 사이로 데리고 오셔서 함께 춤추등...

그리고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굶주린 듯한 애기에게 뭘 먹여주고 있는데 큰 절벽같은 돌 위에서 화려한 장삼을 걸친 스님께서 미소짓는 얼굴로 서 계시기도 하는 등의 꿈들이요.

모두 다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였습니다.

너무 간단하게 쓰려니까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네요....^^;;

요즘은 자연스럽게 기도하는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은 토요일마다 삼천배, 능엄주와 광명진언 독송 등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전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인 불보살님이 늘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니까 자다가고 뿌듯한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늘 밝은 곳에 복 많이 짓는 하루하루가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ii)


안녕하세요...파랑새78이에요.
얼마전에 올린 제 글이 이렇게 반응이 많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쪽지가 너무너무 많이 와서 업무에 지장이...^^ 그래서 공개적으로 올립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네요...

사실 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떼쓰기 작전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전, 오랜 수행을 한 수행자도 아니구요, 교리를 많이 공부한 사람도 아닙니다. 어까지나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올리는 글이니까 태클은 사양합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라고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부디 정답이 아닌 참고 사항으로만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님들의 맘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이런 말은 누구나 흔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보다 더 정확한 정답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경험한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님들께서 제가 완치되었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제 견해로는 이건 병이 아니고 '의지문제라' 봐요.

세상은 내가 중심이에요. 못할 일이 없어요. 내가 하기 싫음 안하면 되요. 칠성줄은 타고 나서 신내림을 안받으면 안된다는니 지장기도는 너무 센 기도라서 함부로 하면 안된다느니.. 누가 그래요?? 스님이든 법사님이든 그런 말은 무시하세요. 삿된 말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부처님만 믿으세요.

흔히 이런 힘든 경우에 점을 보러간다든지, 용하다는 스님들께 뭘 좀 보러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일로 스님들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스님들은 점 봐주는 분들이 절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절대 점 치지 말라고 경전에 수없이 말씀하셨느데, 스님들 죄짓게 하지 마시고 정법을 만나시길 바래요.



어떤 기도든 님들이 된다 생각하면 무조건 됩니다.

일단 된다!!! 라는 결론을 마음에 문신으로 세겨두고 기도를 시작하세요. 결과는 그냥 부처님께 맡겨두세요. 미혹한 중생의 탈을 쓴 우리가 무슨 재주로 점을 치고 미래를 예측하겠습니까.

점 쳐주는 그 사람은 얼마나 바르게 잘 사는 사람인지.. 불보살님들 이름 팔아서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지부터 물어보세요.

그냥, 밝은 결과를 마음에 새기고 부처님께 맡기는 수밖에요.

아음이라는 거 신기하고 무서운 겁니다.

그리는 그대로 이루어지니까요. 밝은 결과만 그리시길 바래요.



저도, 지장기도는 함부로 하면 안되는 기도라느니, 너무 센 기도라서 마장이 심하다느니...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당연히 기도가 잘 되고 있으니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기는건 당연한거 아닐까요??

원래 잘 나가는 사람들 주위엔 질투한는 못된 인간들이 많은 거니까... 그거 무서워서 포기하실거면 안하는게 낫죠.

지장보살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석가여래께서 일체 모든 중생들을 너에게 내가 맡기겠다... 하신 분이 지장보살님이세요.

미혹한 중생들을 위해 성불까지 포기하신 엄청한 원력을 가지신 분이신건 아시죠??

일체 모든 마를 항복받으신 석가여래께서 위촉하신 지장보살님을 감히 누가 !!!! ^^

어쨌든 일단 아무 걱정 마시라는 말부터 해드릴께요.

제일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저랑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친구보고는 관세음보살 닮았다 그러구요, 저보고는 지장보살님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스님들조차 그러시더라구요.

친구 역시 5년 전쯤에 저와 비슷한 일들로 인해서 굿도 하고 산 기도도 다니는 등... 몇 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말 안해도 아시겠죠??

돈은 엄청나게 깨지고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어요.

기도라는 건 누구에게 비는 행위가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지난세월부터 오늘에까지 자신이 지은 데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나는 것 일뿐입니다.

'참회'를 통해서 풀어야죠.

그것 뿐입니다.

말을 하자면 무당들도 잡신이 들어와서 자신도 어쩌지를 모르는데 누가 누구를 구제하고 어쩐단 말인가요??

더 큰 힘에 의지하세요.

진리에 의지하고 그 진리를 등불로 삼아서 자신을 참회하는 것이 제일 우선입니다.

추천하건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모르시겠거든 절을 하세요..

친구도 절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지금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데요...

힘이 드시면 108배 만이라도 100일을 잡으시고 지난 시간 지은 죄를 무조건 참회하고 이 법을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부처님께 바치세요.

성철스님 말씀이 절을 하는게 업장소멸에 가장 큰 약이라고 했어요.

업이 녹아내리는 것을 스크린으로 보여줄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직장을 관두고도 절만 할려할거라시면서요.



카페회원님들의 비슷한 질문이 많아서 참고로 제 기도체험을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정답이 아니며 참고로 하세요. 어디까지나 제 체험담에서 나온 제 견해니까요.




전 대학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한 기도가 지장기도라서... 그것도 목숨걸어두고 한 기도가 되다보니까 몸에 익숙해졌나봐요.
그리고 그 당시 전, 일반적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는 '염불'을 택한겁니다.

집에서만 했습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루에 천 원 혹은 삼천 원... 혹은 만 원... 여유가 없을 때는 몇 백원씩 저금통으로 만든 불전함에 불전을 넣고 얼마간 모이면 저희 동네에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익명으로 쌀 한가마니 보시하면서 기도에 임했습니다.

장소에 연연해 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북쪽이 좋은 사람, 동쪽, 서쪽... 등등... 말이 많은데,

내가 앉아서 불보살을 생각하는 그 자리가 법당이고 그 곳이 적멸보궁이지 따로 어느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어떤 기도가 좋다는 개념은 '없다'라는게 제 견해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토속신앙이나 타력신앙에 뿌리가 깊어서 기도는 오로지 빌어야 한다는 개념이 짙고 상황에 따라서 영가기도엔 지장기도, 극락왕생땐 아미타불, 현세를 위해선 관음기도, 취직이나 일의 성취는 신중기도 등으로 분리를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은 왜 염불만 했나..하는 건데요, 제 나름대로는 단 하나에 집중하고 싶어서였어요.

그 당시 제 상황은 신내림을 받아야하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숨 넘어가는 어린 애기처럼 살려달라고 지장보살님만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던거죠...

보통 신내림은 거부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아닙니다!!!

무속인은 자기도 귀신이 몸에 들어와서 어쩌지를 못하는데 누가 누구를 구한다 말인가요??

더 큰 힘과 원력에 의지해서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을까요?

잡신은 잡신일 뿐이고 선신이라면 인간에게 해꼬지 같은 건 하지 않을거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생각)


그 기도가 끝나고 곧 바로 들어간 100일기도 역시 '지장기도'였어요.

그 때는 제가 다니던 회사에 사표까지 내면서까지 강원도 월정사에서 30일간 삭발염의하고 단기출가를 해서 행자교육을 받고 온 바로 그 시점입니다. 님들께서 알아보시면 아시겠지만 한 달간 세속 생활을 STOP 상황으로 만들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행자교육이라는 거 헉!! 힘듭니다.

말 그대로 스님이 되기전에 행자 생활을 하고 오는건데, 인간도 아니고 스님도 아닌 존재라고 보시면 되요.

이 과정에서 '하심'을 크게 배웠죠.

태어날때 부터 미숙아로 태어나서 몸도 워낙 약한대다가 울기도 엄청 울어서 오대산에 소문이 자자했어요...스님들이 많이 괴로웠죠^^ 더 크게 발심해서 진짜 출가하시는 분들 아주 많습니다.

일체모든 만물은 부처다... 어찌 눈에 보이는 모든게 공경의 대상이지 않고 감사하지 않았겠어요.



교육중에 금강경 사경을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기도수행법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더 가까이 깊이 음미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삿된 일과 정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나름의 가치를 세운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모든 상황은 내가 만든것이고 나의 죄는 스스로의 참회를 통해서 풀어야 겠다... 그리고 인과의 무서움과 밝고 큰 원력으로 세상을 다시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지장보살본원경' 상권,하권 일자일배 기도를 했어요. 100일을 잡았죠.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비라기도 이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일단, 100일이라는 시간동안 5신채와 술, 고기를 먹지 않았구요, 오로지 기도생각뿐이었습니다.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죠. 모든 일이 그렇듯이 미쳐야 이뤄집니다. 기도 목적은 '업장소멸'이었습니다.

그 기간중에 전 엄청나게 많은 꿈을 꾸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꿈에 너무 연연해 하시면 위험해요~~ 무(無) 꿈이 대(大)꿈이다. 성철큰스님 말씀이에요.

제가 근기가 워낙 약하니까 꿈으로라도 일러주는 거겠죠.

100일을 한 번도 안빠지고 퇴근 후, 절에 가서 예를 올린 뒤 바로 사경기도를 했어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걸리더라구요.

일상을 마치고 저녁에 기도를 하다보니 사경중에 법당에서 자다가 스님께서 깨운 경험도 몇 번있고 절 문이 잠겨버러셔 스님깨워서 문 열고 집 간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절에선 문제아였어요...^^

아시겠지만, 기도 중에 오는 경계가 무지 많습니다.

고기 먹을 일, 회 먹을 일, 회식자리...물론 술도 포함이구요, 연락 잘 안오던 친구들도 만나자고 연락오구요.

어떤 분은 집안에서 마찰도 많고 건강한 애기가 아프기도 하더라네요.

전, 모두 다 마장이라고 생각하고 뿌리쳤어요. 부처님 만나러 가는 시간이 저에겐 더 즐겁고 중요하고 소중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죠. 하지만, 굉장히 망설이게 되고 힘들었던건 사실이에요^^;

그 날 분량만큼 일자일배 사경이 끝나면 그 날 했던 양을 한 번 읽고 스님들께서 강의한 관련 책으로 내용 공부도 하면서 뜻을 맘에 새기는 것으로 그 날 기도는 마무리됩니다.

무조건 독경한다고 끝나는게 아니고 부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일러주시려나 하는 맘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 순간은 2500여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부처님께서 지금 나에게 직접 법문을 해주고 계시는 시간이에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죄를 참회하게 되고 업장이 소멸되는 거라 봅니다. 이건 분명한 말이에요. 이 얼마나 다행하고 수승한 일이겠어요~ 사람 몸 받기 힘들고 불법 만나기는 더욱 힘들다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전, 기도 마지막 부분에 항상 했던 말이..

"사랑하는 부처님, 일체중생이 모두 행복하게
하소서..."로 마무리 했습니다.

원을 크게 세우시길 바래요. 과녁을 크고 크게 만들어야 화살 쏘기가 쉽겠죠?

부처님이나 지장보살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겠어요.

나만 잘 되고자 '밥 주세요' '돈 주세요' '취직시켜 주세요' ... 얼마나 밉겠어요^^

사실 처음부터는 아니고 기도 해 나가면서 마음이 커지더라구요.. 저도 처음에는 달라고만 했지만 해 나가면서 느껴지는게 분명히 있습니다.

비록 졸다가 나오더라도 내가 오늘 너무 피곤하니까 부처님께서 잠시 자게 하셨나보나.. 생각하고 또 감사함에 울컥하기도 하면서 하루 기도를 마치고 절밖으로 나오면 그 엄청난 환희... 님들께서도 꼭 느껴보시길 바래요~~~

직장다닌다, 학교다닌다, 일이 많아서... 집안 일이 있어서... 결혼을 한 주부라서 애들이 있어서...모두 다 핑곕니다.

미혼이라고 시간이 많고 기혼이라고 시간 없는 게 절대 아닙니다.

70~80평생 중 고작 100일 정도 투자 할 의지조차 없으시다면,

그런 나약한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기도 할 생각 하지마시고 그냥 그렇게 사세요!!!

생전 코피 한 번 안 나본 저는 기도 중에 코피도 여러 번 쏟았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구요, 인과의 법칙은 에누리 없다는 걸 우선 뼈속깊이 아셔야 합니다.

모두 다 자신의 지은 바 결과일 뿐입니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님들의 죄를 면해줄 수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이 말 하니까 갑자기 화가 나는데....^^;;

스님들도 왜 이런 말을 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

자기 기도는 자신이 해야 합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죠??

어느 절에 무슨 기도를 붙였는데, 스님께서 실수로 어떤 분의 축원을 빼먹은 거에요.

그 신도가 노발대발 화도 나고 섭섭하기 하고... 그래서 스님에게 따지기기도 하고 섭섭함에 울기도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러다 다른 절로 옮겨버리고..

스님보고 절에 다니나요?? 허.. 참...

자기 자신이 그 도량에 있고 거기서 기도하는데 스님 축원 한 마디가 뭐 대숩니까??

자기는 온갖 나쁜 말을 입에 담고 섭섭한 생각으로 성내는 마음을 내고 어리석게 행동해서 기도 잘 한 그 복까지 까먹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스님께서 축원해주시는 그 공덕보다 본인 스스로 3배라도 하며 영가를 위해서든, 본인을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 축원 하는게 더 올바르고 수승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기도를 하시는 도중에 어떠한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큰 공부가 되실겁니다.

불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하잖아요. 정말인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절에 다니시는 분이나 절 신도분은 매일 3000배씩 12년째, 8년째, 짧게는 100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학교 선생님도 여럿 계신데 이분들은 시간이 많아서 하시겠어요??

집에서 학교에서 틈틈이 하시고 그 만큼 원력이 밝고 크기 때문에 극복하고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참, 그리고 기도할 때 아침, 밤 상관은 없어요. 책에서 보니까 지장기도는 밤 9시~11시 사이가 좋다고 하는데, 저는 퇴근 후 7시 부터 9시 30분까지 했어요.

저의 어머니 경우도 늘 일과로 지장기도만 하시는데, 새벽 4시부터 108배와 지장보살 염불, 반야심경 11독, 밤 8시부터 광명진언 540독, 반야심경 11독하고 마치시더라구요.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얼만큼 지극정성으로 꾸준히..가 중요하죠.



그리고 지장보살님 사진을 두지 말라는 말은 근거없습니다.

조선시대때 억불 정책으로 인해서 집안에 불보살 사진이나 불상을 모시지 못하게 한 유교사상이 아직 뿌리내려져 있어서 하는 말이에요.

혹 궁금하시면 큰스님들께 여쭤보시면 압니다. 그야말로 근거없는 미신입니다.

저의 집에는 지장보살님 불화를 모셨습니다. 절에서 점안식을 하고 와서요. 불당처럼 된 건 아니구요. 작은 향 하나 켜두고 기도해요. 이런 것도 부담되면 원상을 걸어 두셔도 좋다네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가 맘 속으로 불보살을 생각하고 앉은 그 자리가 법당입니다. 아무것도 모시지 안아도 됩니다.

시방삼세 모든 우주법계에 두루 불보살님께서 계시고 다 아시고 다 보고 계십니다.

기도 순서가 좀 틀렸다고 넌, 복 조금만 가져가... 하실 분들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상에 집착하다보면 삿된 소견에 빠지기 쉬우니까 늘 주의하시고 기도하셨으면 해요~^^



그리고 지장기도 중에 능엄주와 광명진언은 왜 하나 하는 질문이 여러 분 계시던데요.

능엄주는 성철스님 문중에서 주로하는 부처님 비밀주문 중 하난데요, 기도 중에 오는 경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능엄주 독송만을 기도법으로 택해서 기도 하시는 분도 많은데, 부처님 정수리 광명이라고도 하더라구요.

모든 일체 마를 타파하는 주문으로 알고 있는데, 이 주문만큼 출처가 분명한 주문은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직접 이 주문으로 모든 마를 극복하고 도를 이루었다고 능엄경에도 나와있어요. 기회되면 읽어보시길 바래요.

어떤 스님은 능엄주는 너무 큰 주문이라서 일반재가자들이 하는 게 아니라고 큰일 난다고도 하시던데 그건 올바른 말이 못된다고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능엄경에 부처님께서 능엄주의 공덕부분에 하신 말씀이 분명히 나와있으니까 헛소리 하는 사람들의 근거없는 말들에 현혹되지 마세요.

모든 진언이 그렇듯이 능엄주는 대단한 큰 힘이 있는 건 아주 분명하고 착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방해를 면할 수있답니다.

저도 여러번의 100일 기도 하는 동안 하루에 5독 이상은 했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 중에 왜 광명진언을 하냐는 질문에 관해선데요.

광명진언은 지장보살예찬문에도 나옵니다.

광명진언은 법신인 비로자나부처님의 진언이고 모든 불보살님의 총주이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대광명으로 살아있는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다하네요. 원효대사도 이 진언의 공덕을 크게 말씀 하셨다고 하니 영가 기도 때 아주 좋으리라 봅니다.



어떤 기도가 더 수승하고 좋다는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같은 내용이라도 각각의 근기에 따라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셨다고 하잖아요.

너무 몰라서 살려달라고 오로지 구걸하듯 염불을 시작했지만, 염불 역시 마음을 밝히는 최상승의 기도법이라고 합니다.

저도 아직 제게 맞는 기도법을 찾는 중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해보는 중입니다.

3000배, 능엄주 108독, 광명진언 1080독, 독경, 사경, 염불...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가 장애가 있다는 말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상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그 한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전, 지장보살님이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두건까지 하셨네, 지장보살님은 센스쟁이~~', '너무 이쁘다'... 그러면서 기도했어요. 기도 시작할 땐 늘 '사랑하는 지장보살님, 제자 OO는...'

이렇게 시작했죠.

내가 사랑한다는데 대자대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싫다고 무서운 얼굴로 내치시겠요??

지장보살님뿐만 아닙니다.

관세음 보살님도, 용수보살님도, 대세지 보살님도... 누구라고 마찬가지라고 봐요.

지장기도 중에 관세음보살님이 꿈에 나오셔서 답변해주는 경우도 무수히 많고, 관음기도 중에 보현보살님이 답변해주는 경우도 흔한 일입니다.

각각 근기가 다른게에요.

영가 천도라고 해서 지장보살님이 최고다라는 것도 아닙니다.

불법을 옹호하는 모든 일체 신들과 불보살님은 다 아십니다.

아미타불~~ 하셔도 되고 지장보살~~석가보니불~~ 관세음보살~~~ 모두 다 산자와 죽은 자를 이익되게 하시겠다고 큰 원력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부디 어떤 삿된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한 분의 불보살을 님의 주불로 정하셔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길 바래요.



그리고 염불기도를 했다고 하니까 그 방법에 대해서 물으신 분들도 있는데요,

염불할때 전 천주를 이용했어요. 기도 할려하니까 엄마가 사주시대요~~

소리는 자신의 귀에 들릴 정도로 했구요, 처음엔 똑똑한 발음으로 시작해서 틈을 주지 말고 빠르게 했어요. 그게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발음에 상관 안했구요, 염불할 때 지장보살님이 나에게 광명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맘 속으로 그리면서 하세요.

어떤 날엔 넘 하기싫을 때가 있는데 경계니까 필히 주의하시고 그럴땐 큰 소리로 하니까 도움이 되더라구요.

잘 되는 날엔 기도가 잘 되고 있다 생각하고 더 많이 했구요. 하지만 마장이 온다는 것도 기도가 잘 되니까 방해하는 요소가 생기는 거니까 실망마시고,

"아~ 내가 잘하고 있는거구나!!"하세요. 포기만 안하시면 됩니다.

저도 절에 작은 할아버지 위패를 모셨는데 요즘엔 집에서 합니다.

영가는 식이 맑아서 님께서 맘 속으로 부르면 금방 알아차리고 온다네요...

어디든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영가위패 모셔진 절에 가셔서 기도 하심이 좋을 듯해요.

전, 절에서 기도할 때 늘 동방이라고 하는 고름달린 옷을 챙겨입고 합니다.

옷이 뭐 중요하냐 하겠지만, 중요합니다.

트레이닝 복 입고 기도하는 것이랑 법복을 정식으로 바르게 차려입고 하는 건 마음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꼭 동방이 아니라도 기도 때 입는 옷은 늘 깨끗이 하셔서 입으시길 바래요.



그리고 사람들은 기도 중에 꿈을 꿔야 하는데... 왜 난, 꿈을 안꾸지?? 기도를 잘 못하고 있나?? 하시면서 너무 꿈에 의지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정말.... 그게 뭐라고..기도하면서 너무 신비스러움 쪽으로 의미를 두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말들에는 현혹되지 마시길 바래요.

부처님께선 해몽도 하지 말라 하셨어요. 다 마음 작용인거죠. 해몽도 하기 나름이잖아요.

가피라는 게 별거에요??

힘든 기도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인해서 긍정적인 사고가 형성되면서 업장이 소멸되고 가피를 받는거에요.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 마시고 그 날 그 날의 기도에 최선만 다하면 되지 언제 가피를 받나...하는 쓸데없는 생각하는 시간에 염불 한 번 더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제 경우는 6월 26일 까지 금강경 사경을 마칠 계획이에요. 그리고 자나깨나 오고갈때 늘 광명진언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꿈속에서도 가능해지기위해....^^

그리고 6월 27일 부터 우란분절(백중)날까지 제가 사랑하는ㅋㅋ 지장보살님께 일체영가의 왕생극락을 위해 그리고 늘 부처님 곁에 태어나게 되기를 발원하며 기도 드릴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영가기도는 계속하시지만 개인적으로 작은 할아버지(아버지 삼촌)를 위한 기도를 이번엔 집중적으로 하려고 해요.

제겐 특별하신 분이라서요.

결국, 기도라는건 내가 편하자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돌고 돌다보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아시리라 봅니다.



영가 장애가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시는 분들은 부디 불보살님께 '...해 주세요'등의 기도보다는

'잘못했습니다'의 참회기도와 '...일체 중생의 행복을 발원합니다' 혹은 '... 부처님전에 부디 복 많이 짓게 하소서..;등의 크고 밝은 원을 세워서 기도 하셨으면 합니다.

부처님은 해달라고 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두 자기 지은 바 대로 인과의 법칙만이 있을뿐입니다.

그것을 일러주신분이 부처님이고 강을 건너는 뗏목으로 알라고 하셨어요.

뗏목도 이미 강을 건넌 사람에겐 필요없듯이 상에 집착하지 마시고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생각하서서 늘 불보살님의 가피로 소원성취하시길 바라고 밝은 곳에 복 많이 지으셔서 오늘 여러분이 기도 한 공덕이 씨앗이 되어 반드시 탐스러운 열매가 맺어지는 날이 오기를 발원합니다.



부디 님들께서도 기도성취하시고 일체생명에게 회향 잘 하셔서 맑고 밝은 분이 되시길 바래요~~

님들과 인연있는 모든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바라며 이만 줄일게요.

너무 급하게 써서 도움이 된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럼~~~^^



참고.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기도가 있는데 영가장애 있으시면 알려드릴께요.. 쪽지 날려주세욤.^^


53.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저자 과경거사 번역 각산 정원규 / 불광출판사(02-420-3200)




원 저자인 묘법스님은 1916년에 태어 나시어, 수년 동안 오대산에서 폐관 수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이루셨다. 시절인연이 도래하자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을 교화하셨다.
특히 생생한 인과법문을 통해 업장을 소멸함으로써 치유시키는 신이한 힘을 가지셨다.

말년에는 은둔수행을 하시다가 2004년 (87세)입적하셨다.
중국에서 발간된 이 책의 원 제목은 [현대인과 실록]으로서
원저자의 뜻에 의해 비매품으로 발간, 배포되었다.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는 중국 오대산의 전설적인 은거승
묘법스님의 생생한 일화와 법문들을 정리한 《현대인과실록》이라는 책을
번역·출간한 것으로 주로 인과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



어느 날 저녁 묘법 노스님께서 하남성(河南省) 어느 시에서 거사들을 위하여 『지장보살본원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재물, 곡식, 음식, 의복 등 절의 상주재산 중 만약 한 물건이라도 주지 않은 것을 취하는 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겁을 지내도 빠져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한 물건이라도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가? 바로 절의 동의 없이 사사로이 가져가는 절 안의 모든 물건, 즉 풀, 나무를 포함한다. 만약 절의 물건을 사사로이 가져간 사람은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때 40여 세 된 어느 여신도가 갑자기 긴장하며 물었다. “저는 어느 절의 비구니 주지스님과 상당히 관계가 좋으며, 그 스님을 공양한 지도 수십년이 되어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어떤 때는 주지스님 방에 가서 안 계시면, 우리 집처럼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염주며 작은 불상 등을 가져오곤 합니다. 그것들은 어쨌든 다른 사람이 공양한 것으로서 주지스님이 조만간 다른 사람에게 보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지스님과 사이가 좋으니 제가 먼저 가져가게 됩니다. 이것도 훔친 것이 됩니까?”




묘법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 마음에는 훔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물건은 결코 주지스님이 당신에게 가져가라고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는 것은 무슨 행위이겠습니까?”




그 여신도는 다소 긴장하면서 말했다.

“작년에 절의 연못에 몇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저는 일찍부터 꽃이 열매를 맺으면 몇 개를 집으로 가져가 심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열매를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고 한 개만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내년에는 이 연못에 이 꽃이 피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꽃 열매를 가져가는 것도 훔치는 것입니까?”




노스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지만 긴장하고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지장보살본원경』을 여러 번 읽었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혜가 없으니 도리어 죄업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경을 읽었기 때문에 오늘 비로소 도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늘 가득한 큰 죄도 참회하면 소멸된다.’고 하였습니다. 불전(佛殿)에서 참회해야 하며, 절대로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져간 물건이 아직 집에 있으면 주지스님께 돌려주고, 스님 앞에서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꽃 열매에 관해서는 다시 열매를 맺게 되었을 때 절에 주어 심어야 할 것이며, 더욱 절을 위하여 다른 좋은 꽃을 공양하면 모든 죄업이 소멸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도리를 도반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공덕은 더욱 많을 것입니다.”




노스님의 법문은 여사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노스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들이 경을 읽는 것은 먼저 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도리를 이해하면 지혜가 생기게 되며, 자기가 겪었던 여러 가지의 고통이 과거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초래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따라서 조만간 악의 원인을 끊게 되고, 다시는 새로운 악의 종자를 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남은 악업은 자신의 염불, 독경 및 참회정진에 달려 있습니다. 아울러 독경, 염불의 공덕을 법계의 중생에게 회향하면, 과거 자기가 지었으나 아직 발아하지(나타나지) 않은 악업의 종자는 시들게 되고 결국에는 소멸될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계(五戒)를 지니고 십선(十善)을 닦는 선남자,

선여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경을 읽고 염불하여 중생에게 회향하면,

큰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왜냐하면 여러분이 청정한 몸과 입과 뜻으로 ‘나무 아미타불’ 혹은 ‘나무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은 자신이 성심성의로 불보살에게 귀의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며, 중생들로 하여금 더욱 불보살에게 귀의하도록 감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성심은 불보살과 감응도교(感應道交)할 수 있으며, 부처님의 광명이 당신에게 비치게 됩니다.”




노스님은 계속하여 법문하셨다.

“많은 염불수행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염불할 때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고 열이 나는 감각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감응(感應)이 염불하고 있는 그대에게 오는 것이며, 부처님의 빛으로 가피를 내리는 것으로서 과거 업장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때 주위에는 그대가 보지 못하는 하늘선인, 지신, 아귀, 떠도는 고혼(孤魂)들이 모여 당신이 얻는 염불의 수승한 감응을 보게 되며, 그들도 염불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함께 염불하게 됩니다. 그들이 염불하게 되면 그들도 즉시 부처님의 가피를 얻게 되어 승화되고 해탈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총이나 칼에 맞아 죽은 사람, 사지(四肢)가 완전하지 못한 떠도는 고혼, 물에 빠져 죽거나 목을 매어 죽었거나 독약을 먹어 죽었거나 교통사고로 죽은 귀신, 그리고 태(胎)에 들지 못하거나 혹은 1년을 기다려 같은 업으로 대신 죽을 자를 찾아야 태에 들 수 있는 망혼(亡魂) 등은 단지 부처님 명호를 한 번 염하기만 하면, 사지가 즉시 완전하게 회복되며 즉시 태에 들게 되어 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염불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얻는 이익도 커집니다.




염불, 독경을 하면 이익을 받는 자가 적게는 백, 천, 많게는 천, 만이 될 것입니다. 그 중에는 당신 주위의 화초, 수목, 동물을 포함하여 무량한 중생들이 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이익을 받는 중생이 얼마나 되는가는 당신 수행의 깊고 얕음에 달려 있습니다.




1994년 내가 보타산(普陀山) 보제사(普濟寺)에 갔을 때였습니다. 앞뜰의 큰 용수(榕樹) 나무가 갑자기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호궤합장하면서, 나에게 『반야심경』의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가 무슨 뜻이냐고 설명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반야심경』을 들었습니까?”




그 수신이 말했습니다. “미국 만불성성(萬佛聖城)의 선화 상인께서 방금 『반야심경』 강의를 끝마치셨는데, 저는 ‘무고집멸도’ 이 구절에서 이해가 되지 않으니 노스님께서 법문해주십시오.”




“선화 상인은 미국에서 경을 강의하시는데, 당신은 보타산(普陀山)에서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선화 상인의 불경 강의는 진허공 모든 법계 중생들이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선화 상인과 같이 그러한 공덕과 법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주위에서 혹은 당신이 거주하는 도시, 시골에서 천상과 지하의 중생들이 당신의 독경, 염불 소리에 따라 이익을 받지 않는 중생이 없습니다.




따라서 염불인은 반드시 계를 지켜서 자신의 몸과 입과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 자신도 무궁한 이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들도 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공덕은 자연히 커지게 되며, 무시이래로 지어온 당신의 죄업은 점점 소멸됩니다. 매일 염불, 독경하면 무량한 복을 얻으며 무량한 죄업을 없앨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본원경』에서 견뢰지신(堅牢地神)이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현재와 미래의 중생을 살펴보니, 거주하는 곳 남쪽의 깨끗한 곳에 흙, 돌, 나무로 감실(불단)을 만들어 그 가운데 그림을 그리든지 혹은 금은동철로 지장보살의 형상을 만들어서 안치하여 향을 올려 공양하고 우러러 예배 찬탄하면 이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열 가지의 이익을 얻습니다. 그 열 가지 이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토지가 풍성하며 2. 가택이 평안하며 3. 돌아가신 망자가 천상에 태어나며 4. 현생에서 장수하며 5. 구하는 것을 뜻에 따라 얻게 되며 6. 수재·화재가 없으며 7. 삿된 귀신을 물리치며 8. 악몽을 없애고 9. 출입 시 천신이 보호하며 10. 성스러운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미래 세상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거주하는 곳에 이 경전과 지장보살상을 모시면서, 경전을 독송하고 지장보살께 공양하면 저는 항상 주야로 저의 신력(神力)으로 이 사람을 호위할 것입니다. 물, 불, 도적으로 인한 피해는 물론 큰 재난, 작은 재난 등 일체의 나쁜 일들이 모두 소멸될 것입니다.”




경에서 분명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불상(佛像)을 공양하면 열 가지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와 같이 불상에 공양하고 찬탄하며 예불하는 사람이더라도 부모에게 불효하고 살생과 육식을 끊지 못하고, 매일 입으로는 욕하고 이간질한다면, 그 사람은 ‘평안(平安)’, ‘장수(長壽)’, ‘수의(隨意)’, ‘천신(天神)의 가호(加護)’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비록 불보살상에 공양하지만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보살은 당신에게 바로 오늘과 같이 정법을 들을 수 있게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몇 분이나 고기와 오신채를 끊었는지 손을 들어보십시오. (수십 명 중에서 세 사람만 손을 들었다.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만이 불교를 믿은 후 고기를 끊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단지 돼지, 소, 양고기는 먹지 않지만 해물은 먹고 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어릴 적부터 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으로서 오신채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수계(受戒), 염불, 『지장보살본원경』 독송을 오래 지속하면, 부처님께 구할 필요도 없이 당신의 병이 점점 가벼워지고 회복되는지, 혹은 당신의 소원이 실현되는지 안 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하지만 당신의 소망은 반드시 국가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현재, 미래의 백천만억의 소원과 백천만억의 일을 구하려면, 지장보살께 귀의하고 예배하며 공양, 찬탄하면, 이와 같은 소원과 소망은 모두 성취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진어자(眞語者)며, 실어자(實語者)며, 불망어자(不妄語者)이므로 진실만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수행자들이 『지장보살본원경』을 자세히 연구하기를 바라며, 실천하는 가운데 모두 법의 이익을 함께 받기를 원합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수의 게송을 설하면서 마무리하였다.







부처님은 마음을 떠나지 않았으며

묘법(妙法)은 경(經) 가운데서 구해야 하네.

자구(字句) 하나 행간(行間)이 모두 양약(良藥)이므로

팔만사천 가지 근심 걱정을 치료하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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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과거 지장영험담모음 (1~37)


1.

지장보살이 된 신라왕자 김교각

苦行고행의 길 택한 金喬覺김교각


성덕왕의 맏아들 金守忠김수충설 유력
眞身진신모신 고찰, 中國 민족 성지로


중국 안휘성 합비시(合肥市) 남쪽에 구화산(九華山:해발 1342m)이 있다. 구화산은 아미산 보타산 오대산과 함께 중국의 4대 불교 성산(聖山)의 하나로 꼽히는데 무려 80여개의 사찰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구화산을 성산으로 만든 인물이 김교각(金喬覺)이란 신라 왕자 출신 승려이다.

김교각은 `쌀 보내준 은혜에 보답함(酬惠米)'이란 시에서

비단 옷 납의로 갈아입고/불법을 닦으려 바다 건너 구화산에 이르렀네/나 본래 왕자의 몸으로/수행의 길에서 오용지를 만남이여

라고 자신이 신라의 왕자임을 스스로 밝혔다.



그는 서기 794년(신라 원성왕 10년)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이는 그가 696년(효소왕 5년)에 태어났음을 뜻한다. 그는 24세 때인 719년(성덕왕 18년) 당나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가 무엇 때문에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중국으로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의 사주전(謝澍田) 교수는 그가 성덕왕의 장자 김수충(金守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삼국사기' 성덕왕 13년(714)조는 왕자 김수충을 당에 보내 숙위케 하자 당 현종이 그에게 제택(第宅)과 비단옷을 내렸다고 전하고 있고, 성덕왕 16년조는 견당대감(遣唐大監) 김수충이 돌아와 문선왕(공자) 10철 72제자의 그림을 바치자 이를 대학(大學)에 안치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문선왕 10철 72제자 등은 모두 유교와 관련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김교각이 과연 김수충인가는 의문이 있다.




신라서 겪은 정치경험
자유로운 참선 밑거름


이처럼 김교각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구화산에는 그에 관한 수많은 일화들이 전한다. 그는 도당(渡唐)할 때 신라의 삽살개를 가져왔다고 전하고 있는데, 평생 그의 수행을 도왔다는 삽살개는 상으로 만들어져 현재 구화산을 지키는 영물로 여겨지고 있다.



다른 하나가 낭랑탑(娘娘塔)으로서, 현재는 기단만 남아 있는데 신라 여인을 위해 세워졌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낭랑탑 기단 위에는 명안천이 있는데, 김교각의 어머니가 신라에서 구화산으로 찾아와 울음을 그치지 않아 눈을 상했는데 교각이 화성사 앞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어머니의 눈을 씻기자 눈이 나았다 한다.



이 우물에 세운 보탑을 후세사람들이 명안천이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성전(二聖殿)은 김교각의 외삼촌으로서 그를 데리러 왔다가 도리어 그에게 감화되어 승려가 된 소우(昭佑) 소보(昭保) 두 사람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인데 현재도 두 사람을 기리는 이성회가 매년 열린다.



이런 전설 외에 김교각이 고향으로 떠나는 자신의 동자에게 준 시는 그의 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문이 쓸쓸하여 집 생각 하더니/절방을 하직하고 구화산을 떠나는구나/난간에 기대어 죽마 타던 어린시절 그리워하던 너/금같은 불도의 땅도 너를 붙잡지 못하는구나/첨병곡의 달 구경도 마지막이며/자명구의 꽃놀이도 끝이 났구나/서운해 눈물 흘리지 말고 잘 가거라/노승은 안개와 노을을 벗하리라'



사찰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떠나는 어린 동자를 떠나보내며 김교각은 자연스레 고향 산천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교각은 `안개와 노을을 벗'하며 수행을 계속했다. 당시 불교계는 선종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으나 김교각이 경전을 읽고 참선을 계속하면서도 특정한 종파에 매달리지 않은 것은 신라에서 겪은 정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교각을 지장보살로 만든 것은 그가 입적한 후에 벌어진 신비로운 일 때문이다. 99세 때 김교각은 주위의 모든 승려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입적했는데 사찰에서는 그의 육신을 돌항아리에 넣었다. 3년 후에 열어보니 그때까지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해서 사람들은 그를 지장의 화신이라 여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장보살은 석가의 위촉을 받아 그가 죽은 후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의 무불(無佛)시대에 6도의 중생을 교화, 구제한다는 보살인데, 중생이 모두 제도한 후에 깨달음을 이룰 것이며, 지옥이 빌 때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의 서원(誓願)을 김교각은 육신으로 실현한 셈이었다.



김교각 스님을 지장보살이라고 확신한 당시 사람들이 그의 육신에 금을 입히고 3층 석탑을 세웠는데 후인들이 그 위에 세운 사찰이 바로 육신보전(肉身寶殿)이다. 김교각의 진신(眞身)을 모신 이 고찰은 797년 지었으며, 청나라 때 중건되었는데, 중국 민중불교의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백토와 쌀, 모닥불로 수행
99세 모든 것 버리고 입적


그가 신라 왕실을 버리고 중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그 자신의 자각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신라왕실의 권력투쟁에 염증을 느낀 결과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는 현실의 유한한 가치보다 이상의 무한한 가치를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김교각은 식량과 의복이 부족할 때는 스스로 농사짓고 땔감을 해 날랐으며, 그래도 부족하자 백토와 쌀을 섞어 먹고, 모닥불만으로 한기를 이겼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수행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의 육신이 썩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쟁의 시대, 증오의 시대, 갈등의 시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었던 김교각의 생애는 하찮은 것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우리들에게 다시금 인생의 의미를 생각게 해 준다.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


2.


나옹스님의 효심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 고려의 유명한 스님 나옹화상(법명 회근, 1320∼1376)은 춘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길을 시자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지금의 양주땅 회암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이천 영월암이 있는 설봉산 기슭을 오르는 스님의 발길은 찌뿌듯한 날씨처럼 무겁기만 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가까이서 울리는 요령소리가 스님의 귓전을 울렸다.

『허, 또 누가 이생을 하직한 게로군.』

자신의 출가 당시 화두였던 사람이 오고가는 생사의 도리를 되뇌이면서 막 산모퉁이를 돌아
서려던 나옹 스님은 초라한 장의 행렬과 마주쳤다. 상여는 물론 상주도 없이 눌수그레한 영감이 요령을 흔들며 상엿소리를 구슬피 메기고, 그 뒤엔 장정 하나가 지게에 관을 메고, 무거운 듯 힘겹게 걷고 있었다. 바로 뒤엔 두 명의 장정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따랐다. 행렬은 스님을 보자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허리를 굽혔다.

『누가 갔는데 이처럼 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예, 아랫마을 돌이어멈이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거참 안됐구먼. 얼마 전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마지막 가는 돌이어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염불을 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
다. 평소 마을을 지나다 몇 번인가 본 돌이어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난 뒤충격을 받아 남의 집 물건을 예사로 훔치고 자주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등 포악해졌다.

처음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가두어야 한
다고 하여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만 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마음마저 착잡한 스님은 문득 출가 전 자신이 고뇌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스님이 스무살 때였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고 약속한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비통에 잠긴 나옹은 「사람은 죽으면 어딛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어른들께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벗과의 사별을 인생의 근본문제로 받아들인 나옹은 그 길로 공덕산 요연 스님을 찾아갔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으나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이 말에 요연 스님은 나옹의 공부가 보통 경지가 아님을 알았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나옹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스님은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1347년 중국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났다. 연경 법원사에 도착하여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화상을 만나 계오(契悟)했다.
2년간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 처림에게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친견하던 스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아올랐으나 스님은 출가사문의 본분을 내세워 멀리서 왕생극락을 기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머니 생각을 모두 떨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스님은 선정에 들어 어머니의 행적을 좇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옹 스님의 어머니 정씨는 뜻밖에도 환생하지 못하고 무주 고혼이 되어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자신을 원망했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던 자신의 불효가 한스러웠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터우시길래 구천
을 맴돌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 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인 아닐까?」

스님은 지옥고에 허덕이는 어머니를 제도한 목련존자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천도하기로 결심
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 지장 보살님 앞에서 어머니 천도 기도를 시작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옥의 한 중생까지도 제도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나옹 스님의 독경은 간정했다. 그렇게 기도하기 49일째 되던 날, 나옹 스님은 철야정진에 들어갔다.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전, 나옹 스님은 지장보살님의 전신에서 발하는 환한 금빛 광채를 보았다. 그것은 눈부신 자비의 방광이었다.

스님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지장보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지장 보살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했다. 고통받은 지옥 중생 때문에 지옥 문전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
장보살님이 어머니를 천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아, 지장보살님께서 내 기도에 감응하시어 눈물로써 현현하고 계시는구나.」 나옹 스님은
기도가 성취되어 기뻤다.

『어머니, 이제 아들에 대한 섭섭하신 마음을 거두시고 편히 극락에 드십시오.』 기도를 마친나옹 스님은 선실에 입정하여 이미 천도왕생하신 어머니를 보았다.

그 이후부터 영월암 지장보살님 앞에는 선망 부모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
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에서 14안거를 성만하면서 후학을 제접하고 신도들을 교화했다. 이 마애지장 보살상은 지난 1984년 12월 보물 제822호로 지정됐다





3.


지장도량 _ 철원 보개산 심원사

심원사는 지장도량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찰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1리 72번지에 위치한 심원사는 ‘생지장보살 도량(生地藏菩薩 道場)’으로 불린다.

심원사에는 ‘지장영험비’가 있으며, 지장보살의 영험함을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사냥꾼 형제의 출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17년(720) 의 일로 보개산 아래 마을에 산짐승을 잡아 목숨을 이어가던 이순석(李順碩)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형제는 사냥에 나서 보개산 너머 담터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마침 큰 멧돼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고, 순석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화살을 쏘았다. 마치 금란가사를 두른 듯한 누런 멧돼지는 왼쪽 앞다리에 화살을 맞고 보개산 정상인 환희봉 쪽으로 달아났다.

사냥꾼 형제는 핏자국을 따라 멧돼지가 멈춘 곳에 이르러 바라보니 금빛 멧돼지는 볼 수 없고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 돌로 된 지장보살상이 맑은 물이 넘쳐나는 샘물 가운데 상반신만 내놓은 채 있었다. 화살을 뽑으려 했으나 석상은 태산 같은 무게로 꿈적도 하지 않았다. 크게 놀란 형제는 깨달은 바 있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대성(大聖)이시여! 저희들을 죄에서 구해 주시려고 이 같은 신변(神變)을 나타내신 것임을 알겠나이다. 만약 내일 이 샘물 곁에 있는 돌 위에 앉아 계신다면 마땅히 출가하여 수도하겠나이다.” 다음 날 형제가 그곳으로 가 보니 과연 석상이 돌 위에 있으므로 두 사람은 바로 300여 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출가하였다.

샘 옆의 숲 속에 돌을 모아 대(臺)를 쌓고 항상 그 위에 앉아 정진하였으므로 그곳을 석대암(石臺庵)이라고 불렀다. 암자에는 자신들의 화살에 맞은 석상을 모셨다. 견불령(見佛嶺)과 대광리(大光里)라는 지명도 지장보살석상의 영험에서 유래한다.

고려 초의 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심원사 아래 마을에 어려서 열병을 얻어 장님과 앉은뱅이가 된 이덕기와 박춘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심원사 대종불사를 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온 화주 스님에게 “대종불사에 시주하면 부처님의 가피로 재앙이 소멸되고, 현생에서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화주가 되기로 약속했다.

3년여 동안 이들은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시주를 하였으며, 마침내 대종불사의 타종식 날이 되었다. 첫 타종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앉은뱅이 박춘식은 오색구름을 타고 밝은 구슬을 손에 지닌 지장보살님께서 하늘에서 심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앉은뱅이는 “지장보살님이 보인다”고 소리치며 장님의 등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자 두 다리가 쭉 펴지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덕기 또한 “어디! 어디!”하고 소리치며 눈을 비비자 앞이 보였다. 그들은 산 마루 위의 오색구름에 쌓여 큰 빛을 발하고 힜는 지장보살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절하였다. 마침내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었다.

그들이 지장보살님을 본 고개를 견불령, 그들이 살던 마을을 부처님의 큰 광명이 머무르는 동네라 하여 대광리라 불렀다. 애초에 심원사가 개창된 곳은 지금의 심원사에서 서남쪽으로 약20km떨어진 경기도 연천군 보개산(寶蓋山)이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영주산(靈珠山, 보개산의 옛이름)에 흥림사(興林寺, 심원사의 옛 이름)로 창건하였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왕사로 유명한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주지로 주석하며 삼창(三創)하고 산이름을 영주산에서 보개산으로 절이름을 심원사로 고쳐 불렀다. 이후 수많은 영험이 생기며 사세가 확장되었으며 근세에까지 금강산 유점사에 딸린 말사(末寺)로 석대암, 지장암, 남암 등의 산내암자와 250칸의 당우, 1609위의 불상, 탱화, 탑이 있었던 대찰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6.25 전쟁의 참화로 본당이 천불전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천불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고 석대암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의 절터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8호인 부도 12기와 아미타불 입상, 사적비, 공적비 만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부도 가운데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 의승군을 이끌었던 제월당 경헌(霽月堂 敬軒) 스님의 부도는 옥개석 운룡문(雲龍紋) 조각 솜씨가 빼어나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야 하며, 아미타불입상을 포함해 사지(寺址)에 대한 전체적인 문화재조사가 시급하다는 것이 문화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옛 절터는 군부대 안에 있어 순례하려면 미리 군부대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4.


문둥병을 고친 지장기도

조선 순조 때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석대 지장암(현재의 생 지장 도량 강원도 철원소재 의 심원사)에 문둥이가 구걸하러 떼거리로 몰려왔다.

암자의 주지 스님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다가 10여 세 가량 보이는 어린아이가 문둥병에 걸려 다니는 것이 측은하여 문둥이 떼거리 중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이에게 말했다.

"이보게, 저 아이는 여기 두고 가시게.

이 겨울에 저 아이가 헐벗은 채 구걸을 다니는 것은 무리인 듯 싶으니
여기 두고 갔다가 봄에 다시 데리고 가시게."

"그렇게 맡아 주신다면 저야 고맙지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데리고 다니다
보니 우리도 귀찮을 때가 많았습니다."

문둥이 떼거리는 어린아이를 두고 떠났다.

이 아이의 이름은 영기(永奇)인데 부모가 일찍 돌아간 뒤 문둥병에 걸려 돌아 다녔던 것이다.

이 아이를 제대로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 스님은 아이에게 말했다.

"이대로 다녀서는 사람노릇을 못하겠구나. 너의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는데 한번 해보겠느냐?"

"이런 몸으로 살다 죽느니 스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주지스님은 아이의 결심이 굳음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법당에 계신 지장 보살 님께 청수를 떠놓고 절을 하면서 하루에 천 번씩
지장 보살 님을 부르고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기원하거라."

영기는 추위도 피할 수 있고 먹을 것도 주리지 않게 주면서 기도하게 해주시는 스님이 너무 고마워 주야를 가리지 않고 법당에서 절을 하며 염불을 하였다.

이렇게 50일 가량 되었을 때였다. 그 날도 밤에 기도를 하는데 꿈에 어떤 노장스님이 나타나시더니 손자를 어루만지듯 만지시는 것이었다.

"불쌍한 아이구나. 아무 죄도 없는 것이 부모 탓으로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이구나.
그래도 네가 과거에 불연(佛緣)이 있어 여기를 찾아 온 것이다. 잘 했다."


노장 스님은 머리끝에서 눈·코·입이 있는 얼굴 부위를 만지시고 ,등과 팔
어깨·다리 등 수족 전체를 어루만져 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영기는 몸이 아주 날아갈 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노장 스님은 영기를 고루 고루 어루만져 주시고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네가 병이 낫거든 중이 되거라. 훌륭한 도승이 되어야 한다."

영기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을 꾼 후 영기는 하루 하루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다.

결국 문둥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다.

전신에 퍼져 곪아있던 부스럼도 간 곳이 없고 ,맨송맨송하게 빠졌던 눈썹도
새까맣게 나고, 까마 잡 하던 살결도 아주 맑게 변했다.

자신의 모습이 전과 다르게 바뀌고 나자 영기는 자진하여 주지스님께 중이
되겠다고 지원하고는 머리를 깎았다.

이분이 바로 동방의 율사로 이름이 높은 남호(南湖)대사이다

스님이 어려서 이러한 가피를 받은 까닭에 남보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경학 도 잘 배우고 글씨도 잘 익혔다.

그리하여 명필과 문장을 겸한 율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5. 아버지를 구하고 천상에 나게하다.

唐의 무주자사의 딸인 조씨는 평소의 지장보살님께
깊이 공경심을 내어 참으로 그 신심이 간절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들은 믿음이 전혀 없었는데
이를 안타까워한 조씨는 자신이 가진 여러 패물과
옷감을 팔아서 부모님을 위하여 높이가 석자가 되는
금색 지장보살님을 조성하여 정성을 다해 공양하고 모시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바깥일로 출타하시고 어머니 혼자 계셨는데
그날밤 도둑이 들어와 문 틈을 옆보니, 금빛이 찬란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운 마음에 빈손으로 돌아가
그 이튿날 옷을 바꿔 입고 그집에 가보니 연세가 높은 노부인
한사람만 있을 뿐 지난 밤에 본 금빛옷을 입은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도둑은 너무나 이상하게 생각하여 노부인에게 물으니,
금빛 옷을 입은 사람은 없고 시집간 딸이
금빛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다 하였다.

도둑은 고개를 숙여 생각하기를, 이 집은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는 곳이라 생각하여 노부인에게 지난밤의
자신의 행동을 다 말하고는 진정으로 참회하며 돌아갔다.

그일이 있은 후에 아버지가 무주성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연히 과거 자신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그사람은 아버지를 보자 바로 칼을 빼어 목을 치려하였다.

엉겁결에 놀라 피할 수도 없는 가운데 순간 금빛옷을 입은
스님이 나타나 손으로 칼을 막다가 칼날이 스님의 머리에 맞아
땅에 쓰러졌다.

그러자 그 사람의 눈에는 칼을 맞은 스님이 자신의 원수인
아버지의 얼굴로 보여졌는지 피를 흘리고 쓰러진 것을
확인한 후에 황급히 가버렸다.

한참 후에 아버지는 꿈속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려 좌우를 둘러봐도
쓰러진 스님은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너무도 놀랍고 신기한 일이라,
가던 길을 멈추고 시집간 딸집에 찾아가 자초자종을 말하고는
부녀가 지장보살존상께 예경하려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지장보살님을 보니 칼을 맞은 듯한 상처와 금색이 조금 변한 것이 눈에보였다.

순간 조씨는 지장보살님께서 화현하시어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신 것을 알고 깊이 감사하였다. 그후로
부모님 두분도 신심이 일어나 딸과 더불어 지장보살님을 믿고 예경하였다.

후일 아버지는 79살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돌아가신 뒤
35일이 지나 딸의 꿈에 아버지 몸에서 금빛 광명을 내며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시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기쁜 나머지 묻기를,

'어버님은 어디에 나셨습니까.' 하니.

아버지는

'나는 동사보처[同事補處]에 태어났다. 나뿐만 아니라
이 하늘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지장보살님의 인도를
받아 태어나느니라. 너도 지장보살님을 잘 공경하여라.

너의 어머니는 13년이 지난 후에 오게되며, 너는25년후에,
사위는 28년후에 여기로 오게 될것이다하며 홀연 사라졌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어머니와 조씨부부 모두 그 날짜에 이르자
사바세계를 떠나갔다.

그 뒤로는 무주 고을 안에 지장보살님의 형상이나 화상을 조성하여
예배 공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또한 감응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6. 지장보살 성상을 조성하여 어머니를 지옥고에서 구하고 천상에 나게하다.



당나라 진도독(陳都督)의 딸은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울고만 있었다.

그대로 놓아두면 조만간 꼭 죽을 것만 같아 그의 아버지는 딸을 붙들고
백가지로 위로하며,

"네가 참된 효녀라면 너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이제 집에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모실터이니 네가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여라."고 하였다.

성상이 완성되자 그의 딸이 어버지 앞으로 나와 청하였다.

"아버지, 이번에 모신 지장보살님은 어머님께서 계셨던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지장보살님을 우러러보고 지장보살 염불도
하고자 합니다."

진도독은 딸이 마음을 돌린 것이 기뻐서 딸의 말대로 어머니 침실에 존상을 모시게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딸은 지장보살께 밤낮으로 예배 공양하며 염불을 쉬지 않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러는사이 딸의 마음도 안정되고 텅 비어 쓸쓸한 바람이 부는 듯했던
집안에도 차차 훈기가 도는 어느날 밤, 진도독의 효녀는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갸륵하다, 효녀여. 너의 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있느니라.
나도 옛날 너와 같은 딸이 되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나의 아버지는 이름이
시라선견이었고, 어머니의 이름은 열제리였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태어난 곳을 몰라 애태우다가 마침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인도를 힘입어 어머니가 지옥에 빠져 한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발원하여 기도하며 어머니로하여금 천상에 나게하였더니라.

그 때부터 내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기로 맹세하였다.
이제 너의 효심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효성이 장하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 방광설법을 하여 너의 어머니를
죄고에서 건져내어 천상에 나게 하여주리라."

이 말씀을 마치자 스님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밝은 얼굴에 자비스런 웃음을 띠고 진도독의 딸 가까이에 오셨다.

도독의 딸이 얼핏 보니 스님의 옷자락이 불에 타 있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옥에 들어갔을 때 불꽃에 탄 것이다."라고 하자
스님의 모습은 다시 사라지고 꿈이 깨었다.

진도독의 딸은 꿈을 깨고 나서 어머니가 천상에 태어난 것이 기뻤다.

그리고 애달픈 마음, 그리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괴로운 마음,
가슴 터질 듯한 슬픈 마음 그 모두가 사라지고 가슴 속이
환히 열리는 듯 하였으며 가슴에는 기쁜 마음이 잠잠히 피어올랐다.



7. 염라청에서 만난 지장보살



당나라 옹주 운현땅의 이씨부인은 신심이 두터워
부처님의 법을 받드는데 정성을 다하는 분이었다.

항상 재일(齋日)을 지키고 수행이 남달리 뛰어나
집에 나무로 조성한 1자 6치 가량되는 지장보살을
모시고부터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씨부인에게는 쉰 살 되는 한 여종이 있었다.

그는 소견이 삿되고 불법을 믿지 않으므로
자기 주인이 불법 믿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씨가 외출한 틈을 타서 지장보살 존상을
앞산 아래 풀숲에 버리고 돌아왔다.



이씨가 집에 돌아와 보니 보살상이 보이지 않으므로
걱정만 하던차에 누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있어
문밖에 나가보니 앞산 밑 풀 숲에서 이상한 광명이 비치고 있었다.

느낀 바 있어 광명이 나는 풀 숲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생명같이 모시던 지장보살 존상은 풀 숲에 누워 있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빙긋이 웃어보였다.



이씨 부인은 눈물과 웃음과 울음이 섞인 감동으로
지장보살을 다시 모셔다가 정성껏 봉안하고 예배하고
염불하면서도 그것이 여종의 소행인 줄은 몰랐다.

그 때 여종이 갑자기 쓰러져 인사불성이 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에 온갖 방법으로 구환하니 잠시후 깨어나 통곡하며
말하였다.



"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가 조금 전에 누군가에 잡혀 정신없이 끌려갔는데
당도한 곳이 명부였습니다.

거기에서는 말탄 관리들이 서첩을 읽는데

"너는 성상을 모욕하여 대죄를 범하였으니 결박지어
대왕 앞에 심판을 받게 하고 마땅히 지옥에 잡아 넣어
큰 고통을 받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때 한 스님이 그곳에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 이 사람은 우리 신도 집에서 일하는 종이니 비록
나의 형상을 보기 싫다고 내다 버리기는 하였으나
나는 그사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왕은 이 사람을 불쌍히 보아 도로 살려주기 바랍니다."
하셨습니다.

염라대왕은 곧 저를 방면하여주시니 저는 그 말을 듣고
곧 저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저는 부처님을 좋아하지 아니했고 지장보살을 내다버린 것을
뼈아프게 참회하면서 그 자리에 꿇어 앉아
'나무지장보살'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뉘우쳤습니다.
그랬더니 그곳 명부에 있던 죄인들에게 채워졌던 고랑쇠가
지장보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데까지는 전부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저의 손을 이끌어 염라청에서 막 나오면서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읍니다.

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종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이씨부인 앞에
엎드려 일어날 줄 몰랐다.

이씨부인은 그를 달래어 지장보살 앞에 예경을 드리며 참회하게 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그 고을 사람들은 불법의 신비한 영험에 놀랐고
크게 신심을 일으켜 부처님 법을 받들며 지장보살 신앙이 높아졌다.

이씨 부인과 여종도 신앙이 몇배나 더 깊어졌다.




8. 길가에서 주운 지장보살의 영험




당나라 간주(簡州) 금수현(金水縣)에 살던 등시랑(鄧侍郞)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사람은 본래부터 부처님을 믿어왔다.
그는 어느날 길가에서 지팡이 머리 같은 것을 주웠는데
거기에는 스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등시랑은 그것을 주어서 집에 가지고 와 벽에 꼿아 두고,
二, 三년이 지나서 등시랑은 병이 들어 죽었다. 염라청에
끌려간 그에게 염라대왕은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는데 그때에 한 스님이 홀연히 나타나니,

형용이 매우 누추했으나, 대왕은 벌떡 일어나 자리에서
내려와 공경스러이 합장하며 그 앞에 꿇어앉아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더라.

스님이 답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신도이니, 꼭 죄를 사하여 주기를 바라오."
하시는 것이었다.

대왕은 대답하기를

"이 사람은 죄업이 이미 결정되었고, 또한 수명과 식록까지
모두 다하였으므로 죄를 사해 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했다.

스님이 다시 말하시기를

" 내가 옛적에 삼십삼천 선법당(善法堂)에 있을 때, 부처님께서
나에게 부촉하시기를 <죄업이 정해진 모든 유정 중생들도
구제하라>고 하셨으며, 내가 죄업 중생들을 제도코자 하는
것은 오늘 처음 시작하는 일도 아니니 이 사람은 그다지
중한 죄를 범한 것도 없는데 어찌 구제 하지 못한단 말이오?"
하셨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나더니, 공손스러운 말로 여쭙기를

" 대사님 원력이 크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시니 마치
금강산과 같습니다. 대사님의 뜻이 그러하시니
이 사람을 곧 인간으로 내보내겠습니다."
하더라.

이 말을 들은 스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나의 손목을 잡고
오던 길로 다시 인도해 주셨다. 우리 마을 가까이 와서
헤어질 때 스님께 법호를 여쭈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장보살이니라. 네가 인간에 있을 때에 길가에서
나의 형상을 보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소중하게 주어다
너의 집 벽에 꽂아둔 일이 있지 않느냐? 그것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지팡이 머리에 내 얼굴만 새겨두고 밖의
나머지는 새기지 못한 것이니라.

그래서 나의 형상이 이렇게 추하니라. 네가 나를 소중히
한 마음씨가 갸륵하다."

이 말을 마치다 문득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시랑이 깨어난 뒤에 생각이 나서 자기 집 벽에 꽂아둔 지팡이를
다시 보니, 과연 그 말씀과 같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팡이 가운데가 갈라졌으므로 전단향목을 구하여
다시 五촌 가량 크기를 보충하여 조성하였다.

시랑이 죽을 곳에서 살려준 지장보살의 은공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여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 뒤로부터는 지장보살
형상이 때때로 광명을 놓아 집안을 밝게 비쳤다.

시랑은 크게 환희심이 나서 이번에는 아주 새로이 지장보살을
크게 조성해 모시고 자기 집을 절로 만들었으며, 절 이름을
지장대(地藏臺)라 하고 작은 지팡이 등상까지 함께 모시고
예배 공양하며 염불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 소문은 원근에 곧 퍼져서 예배 공양하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장대는 마침내 큰 절이 되었다.


9. 지옥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다

唐의 종산현에 開善寺란 절에 오래된 지장보살존상이 계셨는데
아무도 누가 조성한지 몰랐다.

하지만 보살님 주변에는 항상 은은한 빛이 사방에 비치는 듯 하여
예경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였는데,
양주 관찰사인 '등종'이 나이 60살이 되어 병으로 죽었는데
어쩐지 몸에 온기가 식질 않아 그대로 두었는데
하루가 지나서 다시 일어나 정신을 차려 한차례 울더니,
곧바로 개선사의 위치를 묻고는 자손들과 함께 가자고 하였다.

절에 도착한 등종은 스님께 묻기를, 이절에 지장보살존상을
찾고자 한다하였다.

스님이 인도하여 그곳에 당도하니. 등종이 예배 공양하며
스님께 부탁하여 자신의 집에 모셔가길 원하니,스님이 그 연유를 물었다.

등종이 대답하기를, 제가 죽음에 임박하여
저승사자를 따라 염라대왕 앞에 끌려 갔는데 왕이 말하기를,

'너는 죽을 때가 되지 않았으니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받들고 널리 이웃에 전하여라.

하지만 이왕 지옥에 왔으니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보고가라 하였다.

왕이 한사람을 불러 인도하여 그곳을 나가 동북쪽으로 조금나가니
큰철로 된 성이 있고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습니다.

내가보니. 잠깐 동안에 불이 크게 타오르는데 여러 불기둥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님 한분이 검게 타오르는 불 가운데서 사람들을 교화하니
순간 타던 불꽃이 일시에 사라지며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같았습니다.

다시 다른 철로 된 여러성에 나아가 살펴보니.열여덟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루 말로 다할수 없었습니다.

그중에서 다시 스님이 보이시는데 다른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계셨습니다.

거의 다보고 나오는데 스님께서 같이 나오시며

"나를 알겠느냐?"하시기에 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종산 땅에 있는 개선사 지장보살이다.

예전 지장법사의 제자중에 智滿지만이란 스님이 있었는데
삼악도 가운데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하기 위하여 나의 모습을
조성하였으므로 내가 그원을 따라서 열여덟 지옥에서 수많은
작은 지옥까지 다니면서 교화하는것이다.

그가운데 전생에 착한 업을 지은 사람은 한번 마음을 내면 바로
지옥의 고통을 벗어나고 힘이 약한 사람은
단지 고통을 벗어날 인연만 심고 착한 업도 없고
삿된 견해가 깊은 사람은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여
끝내 지옥의 고통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착한 업을 지었으나 힘이 약한 사람은 교화하기 쉽지만
악한 세계에 들어가면 이는 마치 목석과같다.

이와같이 깨닫지못한 사람은 죄업이 다하여 스스로
벗어날 때만 기다리고 과거에 착한 업이 움직일 때면
참회가 되고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너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법력을 받들어
지옥의 고통을 면해주니 인간세상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뜻을 전하여라."하시기에
눈을 들어 스님의 모습을 보니 몸의 높이가
삼척이고 이마위에서 광명이 나오는데
무엇이라 말할 수없을만큼 자비롭고
위엄이 있었습니다.

또 스님께서 저에게 두 게송을 말씀하셨는데,

'인간세계에 살면서 도를 닦을 수 있으니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도 신심을 낸다면 끝내 얻을 것이다.

만일 악한 세계에 들어가 죄업이 마음을 가리게 되어
선악마저 분별하지 못한다면 구제받기 참으로 어렵도다.

늙고 쇠약한 사람들이 길을 가고자 할때 팔다리를 부축하여
나아갈 수 있으나 병이 들어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될수 없듯이. ..



10. 법문을 받들고 다시 살아나다.


당나라 종산(種山) 개선사(開善寺)의 지장보살 존상에 얽힌 실화이다.

이 지장보살은 높이는 三척인데 그 둘레에서는 항상 큰 광명이 났으며
배광(背光)이 四척 五촌이나 뻗었다고 한다.

그런데 개선사가 있던 양주(揚州)의 도독 등종(鄧宗)이 나이 61세
되던 해, 가벼운 병으로 눕더니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의 가족들은
너무 급히 당한 일이고, 또한 가슴이 따뜻하므로 염하지 않고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하루를 지낸 다음날 밤중에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말없이 슬피 통곡하더니 이윽고 자손들에게
입을 열었다.

" 나를 개선사에 데려다 다오"
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개선사에 도착한 등도독은 말없이 지장보살 앞에 나아가더니, 한번
쳐다보고는 그만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울고
나서 또한 여러번을 우러러보면, 예경하더니, 이윽고 주위
사람에게 말문을 열었다.

" 내가 죽을 때 四품 벼슬로 보이는 관인이 와서 나를 끌고 가더니,
마침내 당도한 곳이 염라대왕 앞이었습니다. 대왕은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직 죽을 때가 멀었으니 다시 인간에 돌아가거라
그리고 부처님 법을 받드는 것으로 너의 집 사업을 삼도록 하여라.

이곳 지옥이라는 데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세상
사람들로는 전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네가 지옥을 한 번 구경하고
가겠느냐? 네가 돌아가서 지옥이라는 곳이 과연 무섭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관인을 따라 동북방 쪽으로 三--六리 가량이나 가니, 거기에는 쇠로
만들어진 큰 성이 있는데 쇠문이 꽉 닫혀 있었고, 성 안에 들어서니
맹렬한 불길이 솟아오를고 쇠 녹은 물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를 자세히 살펴보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고초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을 본즉, 맹렬한 불길을 헤치며
고초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교화하고 계시는 스님이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스님이 가시는 곳은 금방 불꽃이 멎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지옥 구경을 하였는데 한 성에 이르니,
그 가운데는 또 무서운 지옥이 있어서 十八이나 되는 큰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양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또 앞서의 스님이 보였는데 불길을 멎게 하고, 죄인을
교화하는 것은 앞서와 같았습니다. 내가 차마 볼 수 없는 지옥의
가지가지 광경을 낱낱이 구경하고 돌아올 때에 그 스님도
지옥에서 나오시며 나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네가 나를 알겠느냐?>

저는 사실대로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였더니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개선사에 있는 지장보살이니라. 옛날 智滿법사가 三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나의 형상을 만들어 모셨으므로
내가 지만 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매일 한 번씩 지옥에 까지 다니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에서 보면 지옥 속에서도 혹 선근이 남아 있어 착한 마음이
강한 자는 내말 한 번에 곧 발심하여 지옥고를 벗어나며, 사견만
많은 자는 고통을 벗어나기 어려우니라.

그 중 선근이 미약한 자는 오히려 교화하기 쉬우나, 한 번 지옥에
들어가기만 하면 좀체로 구제하기 매우 힘드느니라.

그런데도 세간에서 악한 업력만 기른 사람은 자기 허물을 깨달을 줄
모르고, 오직 고통받는 일과 빠져나올 것만 기다리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세상에 살면서 선근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는 마음을
낼 것이니, 너는 부처님의 법력을 받아 세상 사람들이 지옥고를
받지 않도록 일러주고 힘쓰도록 하라.
어서 인간에 나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 뜻을 전하여라.>

이 말씀을 듣고 고개를 들어 스님을 처다보니, 이제까지의 스님의
몸은 어느덧 적어져 키는 三척 정도로 보이고 이마에서 환하게
광명이 났으며 눈이 유난히 빛났습니다.

내가 공손히 예배를 드리고 돌아서려 하니, 스님께서는 이런 글귀를
일러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도 도 닦을 수 있나니

모든 선근 끊인 자도 발심하면 다 되네.

악도에 떨어져서 죄업이 익어지면

깨달을 맘 못내니 구원하기 어려워라.


노쇠한 사람들이 길을 가고자 할 때

팔다리를 부축하면 나아갈 수 있어도

누워서 부동하면 어찌 할 수 없나니

중생들이 지은 바 정업도 그같니라.


스님께서는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그 스님이 일러주신 말씀을 잊을까봐 그것만을
생각하느라고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지금까지 와서 이제 여기 지장보살의 존상을 우러러 뵈오니,
지옥에서 보던 바와 똑같고 또한 그때에 말씀하신 것이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이 말을 들은 개선사 스님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던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고, 또한 기이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몇 번이고 지장보살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서 신심이 두텁고 솜씨좋은 화공을 청하여 앞서부터 모셔왔던
지장보살 탱화를 본떠서 다시 그리게 하고 앞서의 탱화와 함께
그대로 모셨다.



11. 존상의 썩은 나무와 호랑이난


당나라 화주(華州) 혜일사(慧日寺) 법상(法尙)스님의
출가에 관계된 이야기이다.

스님이 출가하기는 삼십 칠세 때인데 그때까지는
사냥하는 것을 즐기며 지내왔다.

여느 때와 같이 사냥 길에 나서 산을 누비고 다니다가
숲 속에서 간간이 어떤 빛이 보여 그곳에 가보니
거기에는 길이가 겨우 한자 남짓한 썩은 나무토막만이있었다.

어쩐지 기이한 생각이 들어 나무토막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호랑이를 만나 의식을 잃고 말았는데 그의 꿈같은
의식 속에는 홀연히 한 스님이 나타나 자기를 가리고
호랑이에 맞서 싸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호랑이에게 호령을 하니 호랑이는 어디론지 사라졌다.

"나를 이렇게 구해 주시는 당신은 누구시오?"

"나는 지장보살인데 네가 주워 둔 숲속의 썩은 나무가 곧 나의 몸이니라.

옛날에 너의 증조부가 이곳에 절을 짖고 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셨었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절은 퇴락하고 다 없어졌으며,
그 당시의 나의 모양도 썩은 오직 나무 속만 남아 있었더니,
네가 그 후손으로 나의 광명을 보게 되었으므로 그 인연으로
내가 너를 구해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법상은 깨어났다.

그의 곁에는 그가 탔던 말이 울고 서 있었으며 호랑이는 간데 없었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니, 그곳은 바로 자기가 썩은 나무를 주웠던 바로 그곳이었다.

호랑이에게 쫓기어 피하며 돌아다니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게
그 썩은 나무가 있던 곳으로 와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얼마를 지나 법상은 큰 결심을 하고 빛이 나던 곳에 절을 지어,
자기가 주운 썩은 나무에 향을 썩은 진흙을 발라 지장보살존상을 조성하여 모셨다.

그리고 절 이름을 혜일정사(慧日精舍)라 하고 증조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출가하여 열심히 수도 정진하였다.

법상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행하다가 78세가 되는
이월 이십 사일에 입적하였는데 그때 곁에 있던 도반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좀 전에 지장보살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는 자씨여래(慈氏如來 ; 미륵불)의 삼회(三回) 설법 중에
제 이회(二回)에서 도를 깨칠 사람이다.
이제 죽게 되면 곧 도리천에 나게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천상에 나면 오욕락의 즐거움이
비할 데 없다고 하오니, 천상에서 쾌락을 받다 가는
보리도(菩提道)를 잊기 쉽다고 하옵니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 뵈올 날이 멀어지지 않겠습니까?'고
하였더니 지장보살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너희 소원대로 하여라.
네가 만약 극락정토에 가서 나고자 하거든,
마땅히 아미타불을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전심전력 생각하라.
그러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곧 아미타불을 전심전력으로 생각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였더니,
"이제 원을 이루어 정토 세계로 떠납니다."라고 한 다음
합장하고 앉아서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왕생하였다.


12. 상투속에 모신 지장보살 방광


당나라에 별가(別駕) 벼슬을 한 건갈(健渴)에 대한 이야기다.
건갈은 신심이 돈독하였고 그의 일상수행은 매우 청정하였다.

항상 지장보살을 받들어 모시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단향나무를 구하여 높이가 세 치되는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하여 상투머리 속에 정중히 감추어 모셨다.

그러니 다닐 때나 머무를 때나 눕거나 앉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나 생각에서 잊지 않았다. 가히 생각생각에 지장보살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장흥년(長興 서기930년)에 건갈은 새로운 관명을 띠고
부임하는 중이었다. 어느 후미진 냇가에 다다르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건갈은 더욱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건너
산 밑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그를 부르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일찍이 그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건갈은 <이제 올 것이 왔구나>생각을 하였더니, 그 사나이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민망하리만치 정중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 당신이 이 길로 부임하는 것을 알고서 미리 다리 밑에
숨어 있었소. 멀리서 당신 혼자서 말타고 오는 것을 보았는데 다리
가까이 와서는 갑짜기 스님 한 분이 지나가실 뿐, 당신도 말도
보이지가 않았소.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고 한참 지켜보았지만, 역시 당신은 보이지 않고
스님 한 분만이 다리를 건너가셨는데 다시 한참 있다 보니, 당신이
여전히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겠소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하잖은 일 가지고 당신과 원한을 맺고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니, 이것은 잘못되었다 생각하오. 당신은 분명히
부처님이 도우시는 사람같소. 이제 내가 과거 일을 다 풀어버리니
당신도 마음을 놓으시오."

하는 것이었다. 건갈이 죽은 것은 청태(淸泰) 2년(서기935년), 그의
나이 78세 때인데 임종하면서 그는 단정히 앉아 합장하여 염불하고
있었다.

그의 상투에서는 유난히 밝은 광명이 퍼져 나와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그는 고요 속에 잠겨 들어갔다.




13. 신들린 여자가 스님이 되다.


송나라 요성향리(遼城鄕里)는 가호가 2천여호가 되었는데
모두가 불교에 대한 신심이 매우 두터웠다.

대개들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의 두 보살을 신앙하였고
관음경(觀音經)과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을 존중하였다.

송나라 태종(太宗) 태평(太平)년(서기 976년)에 전염병이
크게 만연하여 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를 걱정한
성주(城主)가 지장보살께 기도하였더니, 지장보살존상에서
방광하여 그 광명은 온 성내(城內)에 뻗쳤고 병든 자는
나았으며 죽었다고 버린 자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온 성내에 염불 소리가 가득 넘치게되었다.

그 때 있었던 일이다. 신들려서 무속의 일을 하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불법을 믿지않은 채 병으로 죽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살아나더니,
곧장 성안의 큰 절로 찾아가서 지장보살 존상앞에
엎드려 울며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모인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나는 접신한 사람이 아닙니까?
내가 이번에 죽어서 악귀에게 묶여가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내가 섬기는 신에게 구원해달라고
애걸복걸해보았지만, 신은 악귀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못하였습니다.

내가 큰 고초를 받고 있는 중에 마침 한 스님이 나타나시더니,
악귀에게 풀어주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네가 참으로 어리석기도하구나.
부처님은 믿지않고 다시 무슨 신을 믿는단 말이냐?
나는 큰 절에 있는 지장보살이다. 성주(城主)의 청을 받아
성내 사람들을 구하다가 이제 너를 만나 구하여 주는 것이다.

너는 집에 돌아가 바른 신심을 내어라. 귀신은 자기 죄업으로
받는 몸인데 다른 사람을 어찌 구해줄 수 있겠느냐? 돌아가는대로
동리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나는 여기 지장보살님
은덕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신들린 여자는 그 이후 느낀 바 있어 불법에 귀의하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14. 아귀가 천상에 태어나다.



송나라 양주자사(楊州刺史) 장건신(張健信)의 집안 이야기다.

그는 딸 하나를 둔 채 상처(喪妻)하였는데 그의 딸은 어머니
생각을 잠시도 잊지않고 슬퍼하였다.

하루는 장씨 딸 꿈에 어머니가 찾아와 딸에게 말하였다.

"내가 세간에 살며 너를 낳아 기를 때, 나의 친가나 집안의
권세만 믿고 너무 교만하였다. 또 탐욕심이 너무 심하였으므로
나는 죽은 뒤 곧 아귀보를 받았다.

아귀의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구나. 밤낮으로 죽었다 살았다하는
고통이 반복되고 굶주려 시장하기는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 한 달에
한 번도 배를 채우기가 어렵다.

다만 24일 새벽이면 어떤 스님이 아귀성중에 들어와 음식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그때 잠시 시장한 것을 잊을 뿐이다.

알아보니 아귀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먹이는 스님은 지장보살이셨다.

지장보살께서 음식을 베풀어줄 때에는

"너희들은 마땅히 보리심을 발하라. 나는 지장보살이다."
하시었다.

나는 비록 이 말씀을 들었지만, 너무 심한 탐욕심에 얽혀있어서
발심하지 못하고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내 딸아, 네가 나를
도와주고자하거든, 지장보살님을 공양하여다오.

나를 위하여 꼭 지장보살님 등상을 조성하여 모시고
예배공양하여 주기를 부탁한다."

꿈을 깬 뒤 장씨녀는 있는 재물을 모아 팔아서
지장보살 등상을 조성하였다. 그런 다음 일심으로
예배 공양하며 기도를 게을리 하지아니하였다.

그러기를 얼마안해서 장씨녀의 꿈에 장씨녀 집에
어머니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몸에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온 몸에서
서기광명(瑞氣光明)을 놓으며, 허공에서 자유로이
걸어내려와서 말하였다.

"착하다. 내 딸이여. 네가 착한 공덕을 지어주어서
그 공덕으로 이제 내가 천상에 가서 나게되었다.

너는 앞으로도 더욱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지장보살께
예배공양하여라. 너와 나는 장차 미륵보살이 계시는
하늘에 함께 날 것이며, 또한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듣게될 것이다."


꿈을 깬 장씨녀는 만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15. 조상이 지장보살께 귀의한 은덕


중국 형주(荊州) 땅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현재 전해지지않으나 글보다는 오히려 사냥을 업으로
하는 사냥 선비였던 듯하다.

그의 별명만이 전해지는데 별명이 안웅(雁雄: 기러기영웅)인
것으로 보아 족히 짐작이 간다.

사냥을 즐기면서살며 이럭저럭 쉰 살이 되어서 열병을 앓다가
죽었는데 3일만에 그가 살아나 하는 말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앓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곁에 오더니 다짜고짜 가자고
방망이로 을러댔다. 그리고, 몇 개의 대문이 달린 집을 지나
염라대왕 앞에 꿇어앉혀졌다.

거기에는 맷돼지, 노루, 토끼, 꿩 그 밖의 여러가지 새들이
수천 마리가 모여있었다. 또한 기러기도 여러 마리 있었다.

그런데, 그 들짐승들은 일제히 목을 빼고 염라대왕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저 짐승들이 하는 말을
모두 사람의 말처럼 역력하게 알 수 있었다.

"대왕님, 저 놈이 우리를 죽이고 우리 자식을 죽인 안웅입니다.
저 놈을 엄하게 다스려 주십시오."하고 있었다.

대왕이 그 말을 듣더니 하는 말이 "너희들 말이 맞다.

안웅은 틀림없이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의 조부가
지장보살님에게 귀의했느니라. 그러므로 나로서는 저 안웅이
그 사람의 손자인 것을 아는 이상 그의 고초를 면하게 해줄
수밖에 없다."하였다.

나는 귀가 번쩍띄었다. 꼼짝없이 이제는 지옥으로 가나보다
하였더니, 지장보살님 공덕으로 살게된 것이었다.

나는 감격해서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소리높이 불렀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뜰 가운데 있던 모든 짐승들이 금시에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나를 놓아주시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하는 말을 듣고 금방 돌아온 것이다." 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안웅의 생활은 일변하였다.

자칭 "나는 부처님의 종이다." 하면서 사방에 돌아다니며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을 찬탄하였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죽었다 살아난 경위를 말하면서,
지장보살을 일심으로 생각할 것을 권하고 다녔다.




출처: 우리출판사간 지장경 (고성훈역)



16. 지장보살존상을 조성하고 죄가 멸하다.

후주(後周)때 상서(尙書)벼슬을 하였던 백열은 삼보를
지극히 공경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부인이
난산(難産)으로 인하여 죽었다.

그래서,백열은 그 부인의 영가를 천도하기 위하여
지장보살의 등신상을 조성하고 천도재를 베풀고
지성을 다하여 예배공양하고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수 일후에 죽은 부인이 백열의 꿈에 나타났다.

깨끗한 옷을 입고 사뭇 밝은 얼굴을 하고와서 백열에게 말하였다.


"제가 아내 노릇을 다 못하고 죽었는데 나를 위하여 공덕을
닦아주시니 그 은혜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오랜 옛날에 어떤 사람의 처가 되었을 때
자식을 낳지못하였기 때문에, 남편이 항상 자식없는 것을
한탄하는 것을 보고 제가 첩을 얻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첩은 오래지않아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 때 남편이
그 첩을 매우 사랑하기에 제가 그만 질투심이나서 음식에
독약을 타먹여 모자를 죽였습니다.

이런 죄업때문에 저는 죽어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여섯 겁을
지내며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간세계에
태어나서도 아기를 낳다가 죽기를 57번이나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또 아기를 낳을 때 고통을
받다가 죽기는 하였으나 당신이 나를 위하여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조성하고 착한 공덕을 닦아주신 덕분에 저의 죄업은 이제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도리천에 태어나 무궁한 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며
이제 여자의 몸은 영영 받지않게 되었습니다.

도리천 선법당(善法堂)에서는 매월 24일에 지장보살님의 법회가
있사온데 그 법회는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국토에 몸을 나투시는
지장보살께서 주재하십니다.

또 지장보살께서는 도리천 무우수(無憂樹)나무 밑에서 설법을
자주 하시는데 지장보살님은 출가한 스님의 모습을 나투시고
그 몸에서는 금빛 광명이 납니다.

이 번에 지장보살님께서 저에 대해서 "너희 부부가 나의 등상을
조성하여 지성으로 수행하니 너희는 영영 고취(苦趣)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저를 위하여 성상을 조상하고 재를 베풀고 기도해주신
공덕으로 이와같이 영영 악도에서 벗어나고 천상에 나게되었으며
보리심을 발하여 불법을 닦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열은 잠이 깬 뒤에도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던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방안에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없어지고
한량없는 기쁨만이 가슴에 넘쳐왔다.


출처: 지장보살영험록 (김종매외, 불광출판부刊)


17. 저승 문앞에서 만난 지장보살

송[宋]나라의 승준 스님은 출가하여 수행도 선업도 짓지 않고
오히려 방탕한 생활로 일관했는데,

어느 해인가,

그는 병이 들어 죽었다가 며칠후 깨어나더니,

매우 슬피 울며 간절히 참회하며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를,

" 죽어서 저승사자를 따라 큰 성문에 도착하였는데
홀연히 한 스님께서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장보살이다. 그대가 한 때 신심에 지극하여
내 형상을 그리고서 마음을 다하였지만 마음이 타락하여
예경과 공양을 하지 않고 큰 절 뒷산에 버리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대가 나를 모신 공덕을 생각하여 지옥을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겠다하시고는 게송을 말씀하시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마음이 모든 부처를 짓는 줄 알아야 한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이 글을 외우게 되면 지옥문이 부서지고 정토의 문이 열려 업보는 소멸될 것이다."
하시고는 자취를 감추셨는데, 나는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서 성안에 이르자,

염라왕이 묻기를 "그대는 살아 생전에 무슨 공덕을 쌓았는가?"하니, 나는 "오직 한 게송만 기억할 뿐입니다."하니,

대왕이 말하기를,

"지금 외울수 있는가?"하여 나는 큰 소리로 외웠더니,

나의 소리가 닿는 곳마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모두 해탈되었다.

염라왕이, " 됐다, 그만하라,"하며 다시 인간 세상에 가라하여
이렇게 깨어난 것"이라 하였다.

그 후로 승준 스님은 지장 보살님께 참회와 예경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여러 절로 다니면서 많은 스님들께 이같은 일을 말하였는데
듣는 대중들은 반드시 발심하였다고한다.


18.존상에서 밝고 환한 빛이 나타나다.

당[唐]의 익주 땅 법취사 법당에 그려진 지장 보살님 형상은
다리를 길게 드리우고 법상에 앉아 계신 성스러운 모습이였는데,
이는 유명한 화가인 장승요가 그린 것이다.

후에 그 절에 사는 스님께서 똑같이 베겼는데 항상 은은하게
둥근 금빛이 나타나는 것 같아 신도들이 매우 감탄하여
모두가 베껴 가정에 모셨는데,
여전히 밝은 빛이 나오는 것 같아 보였다.

소문은 널리 알려져 황제가 사는 궁궐까지 들어가
황제가 손수 한폭을 모셔와 궁중에 모시고 정성껏 공양을 올리자,

장안에 사는 모든 백성들이 절에 몰려와 지장 보살님 형상을
베껴서 집에서 예경하였는데 밝고 환한 모습 그대로여서
백성 모두가 지장 보살님의 큰 위신력을 깊이 믿었다고 한다


19. 천일 기도에 나타난 지장보살님

송[宋]의 공관사[空觀寺]에 사는 정법 스님과 승준 스님은 다 같이
지장보살님께 귀명하여 매월 지장 재일 때마다
지장 보살님의 형상을 베껴 그리면서 발원하기를
보살님께서 응신[應身]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천일이 다 되어 하루는 정진하는데, 한 순간 누군가 말하기를,
젊은 스님이 절의 처마 밑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듣고
느낀 바가 있어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고 공경히 맞으려 나갔는데
한두 마다 말을 하고는 밖을 나가기에 얼른 따라나서니
벌써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정법 스님이 홀로 앉아 스님, 스님하고 외치니,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여 흔들어 깨워 물으니,
자초지종을 말하여 사람들이,
"그 스님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묘한 원은 그만하면 되었는데 의기[意氣]는 어찌하여 더딘가,"하였다고 한다.

모두들 듣고 나서 말하기를, "너는 이미 지장 보살님을 친견하였다.
그러나 네가 생각하는 것은 실천할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보살이 나타나
의기가 짧다고 하신 것이다."하니.

정법 스님은 " 이미 성인께서 나타나셨으니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
기쁜 마음으로 깨달음을 구하겠다."하며 스스로 다짐을 했는데,

후일 꿈에 다시 지장 보살님께서 나타나 이르시기를,

"전에 그대가 만난 지장 보살이다. 네가 나의 응화신을 보고싶어하지만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너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는 나의 형상을 많이 그렸기에 영원히 삼악도에 들어가지 않으며
육신을 벗어나면 도리천에 태어나 미륵 부처님께서 사바 세계에
내려 오실때 반드시 성불의 예언을 받을 것이다.

지장 보살을 염하는 너의 마음을 따르는 것은 그림자가 형상을 의지하는 것과 같다."
하시었다.

정법 스님은 꿈에 깨어난 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더니,
자신의 바루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지장 보살님의 존상을 조성하였으며,
항상 지장 보살님의 형상을 그려서 공양을 했는데 여러 묘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20.지장 보살님의 이름을 불러 악한 귀신을 내쫓다.

당[唐]의 이신사[李信思]는 노수 지방의 사람이었는데,
친척이 삼십 여명이나 되었다.

어느 날 이상하게 생긴 그림자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가족
가운데 어떤 사람은 병이 들어 헛소리 하며 또 귀신같은
환상이 보이고 다른 사람은 심지어 피를 토하거나 기절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매우 놀란 이거사는 근처 사찰에 계시는 스님께 말씀드려 보았더니,

스님께서 오랫동안 생각하시다가 말씀하시기를,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마갈제국 비부라산 아래에 사는 교제 장자 집안에도
이와같은 악한 귀신이 나타나 그 집에 모든 권속이 쓰러지고 병이 들며
기절하는 사태가 열흘이 지나도록 끊이질 않아 지장 보살님을 청하여
다라니로써 악한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자를 구했습니다.

이거사님도 이와 같은 법력에 의지하여 지장 보살님께 깊이 신심을
내어 귀의한 다음 일심으로 지장 보살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하였다.

이거사는 크게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여 지장 보살존상을 직접 그려
집에 모시며 예경을 다하였는데 그후로는 노수 지방에 그런 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21.지장 보살님 가호로 사악한 귀신도 집 앞을 피해가다.

당[唐]의 노주자사 강거통은 평소에 신심이 매우 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인연으로 여러 해 동안 지장 보살님을 받들어 모시다가
다시 발심하여 한지를 구하여 지장 보살님의 존상을 그리려는데
여러 색을 칠하기도 전에 환한 빛이 나타나는 듯하여 믿음이 한층 더 했다.

어느날 꿈에 말을 탄 두 사람이 자신을 쫓아 오자 피할 수 없어
두려운 마음으로 서 있는데, 그들이 말에 내려 탄식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잘못 판단하였다. 비록 염라 왕의 명령일지라도
지장보살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어찌 할 수 없다."하며 가 버렸다.

꿈을 깬 후 매우 기쁜 마음으로 더욱 정성을 다하여
지장보살님을 받들어 모셨는데 마침 나라에 전염병과
여러 가지 귀신병이 나돌아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꿈속에 푸른 옷을 입은 귀신이 강거사의 집 앞을 지나면서

"이 집은 지장보살의 집이다. 모두들 반드시 문 안에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다."하였다.

그런 후에 모두가 무사하였다.

세월이 흘러 강거사는 일이 있어 먼 길을 가다가 겨울이라
눈 속에 길을 잃어버렸는데 불안한 마음에 지장보살을
간절하게 불렀는데 어디선가 앵무새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늙어서는 병이 들었는데 정성으로 지장 기도를 한 후에 병이 다 나았다.

꿈에 한 스님이 와서 이르기를, "너는 푸른 새를 죽인 과보로 지옥에
가야하지만 지장보살님의 가호로 그 업을 면하였다.

이후로 점차 병이 나아서 며칠후 정토에 날 것이다."하였다.

이 말을 듣고 꿈에서 일어난 강거사는 지장 보살님께 깊은 감사의
예경을 올렸는데 병은 이미 다 나았고 스님께서 예언한대로 이틀이
지나자 강거사는 지장 보살님의 명호[正念]를 외는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났다.



22. 지장보살님을 단 한번 생각해도 지옥을 벗어나다.

송[宋]의 최이계는 장안의 관찰사였는데 한번은 죽은 후 이틀만에 소생하여 주변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었을 때 어떤 사람들이 나의 양 겨드랑이를 잡고 가는데 도중에 수많은 병사들이 흰 말을 모는 행렬이 보았으며 마침내 동북쪽에 큰 성에 이르러 여러 기와집에 당도하였는데 그들의 모습은 모두가 검은 관을 쓴 사람으로서 족히 삼십 여명이 되었다.

모두가 염라왕이었으며 마침내 앉아 있는 염라왕 앞에 나가니, 나에게 묻기를, "너는 살아 생전에 어떤 분을 받들어 모셨는가?"하여 "저는 지장 보살님을 모셨으며 모든 스님들께 공양하였습니다."하니,

왕은 이르기를, "허허 그래 이미 대성인을 모셨으니, 이는 천상의 복이다."하니,

그곳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은 수명이 다하지 않았습니까?"하여 염라왕이 한 권의 책을 읽고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지장 보살님의 은혜로 명을 다하지 않았소," 하더니, 사자를 불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어찌하여부처님을 믿는 사람의 수명만 잡아 오는가,?"하고 흰 말을 탄 사람을 책망하고는 벌을 주었는데, 저승에서 며칠이 지나자 염라왕이 나에게 묻기를, " 그대는 세상에 돌아가고 싶은가,?" 하기에 내가 그렇다고 하자.

왕이 말 한 필과 사자 두 사람을 시켜서 동북쪽을 가니 사방 수 십리에 큰 철로 된 집이 하나 있는데 쇠끊는 물과 불꽃이 가득 차있고 그 다음 철로 만든 집에는 이계의 조부모들의 모습이 모두 있는 것이 보였다. 모습을 보니, 목에다 칼을 걸고 있기도 하고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몸에 쇠줄이 묶여 있으면서 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손자인 이계를 보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너는 반드시 우리 모두를 구해야 할 것이다."하여 조상님들께 지장 보살님의 명호를 생각하라고 말씀드리며 스스로 다짐을 하고 지장 보살님을 마음속 깊이 염하여 또 한 성에 나아가니, 쇠로 만든 평상에 어디선가 안면이 익은 스님이 앉아 있는데 몸은 숯과 같았고 맹렬한 불꽃이 붙고 있어서 내가 묻기를, "스님은 청정한 수행을 하셨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하니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저는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수행하였으며 마음과 실행아 서로 맞지 않아 침구와 평상이 변하여 고통을 주는 기구가 되었고 의복과 음식은 변하여 쇠옷과 끊는 구리물이 되었습니다. 불자님은 반드시 저희들을 구해주십시요"하였다.

나는 스님께 말하기를, "스님은 꼭 지장 보살님을 생각하십시요,?"하고 나왔다.

그뒤로 수십 개의 성을 보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받고 있었는데 대체로 세상에서 보던 사람들이었다.

다시 적사 지옥에 이르니, "칼로 만든 나무와 구리로 된 기둥이 백천 개였는데 죄인들이 그 위에 있는데 모두 이계를 보면서,"우리를 구해주십시요"하고 애원을 하니, 나는 "오직 지장 보살님을 생각하십시요,"하였다.

이와같이 황사. 백사. 초사지옥 등의 일곱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어떤 푸른 집이 있는데 길가에 보배 나무와 온갖 과일이 아름답게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물으니, 저승 사자는 "지장 보살님을 받들어 모시거나 형상을 그린 족자나 등신불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정토 세계나 도리천에 태어나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되고 그림이나 등상을 믿지 않고 받들어 모신 사람은 이곳에 머문다"하였다.

다시 앞을 나아가니,

큰 성안에 보배로 만들어진 방이 있는데 그 안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남녀들이 행복한 가운데 춤을 추며 그 가운데 이계의 조부모와 육친들이 보여서 너무나 기뻐하여 물으니, 그들이 말하기를, "전에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었으나 그대가 지장 보살님을 생각하라 말 한마디로 바로 천상에 태어났다,"하였다.

내가 여기는 어디냐고 물으니, 이곳은 복을 받는 곳인데 수명도 길고 모든 괴로움이 멀리 떠난 곳으로 미륵 부처님의 삼회 설법을 만나면 모든 고통이 다해진다."하였다.

내가 묻기를, "그렇게 되면 어떤 땅에 태어나 만나게 됩니까?"하니.

"옛날 지장 보살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부처님의 부탁을 받고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원을 세웠고 미륵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까지 오십 육억 칠천만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만약 정토 세계와 제 사천에 태어 나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그 복이 적은 사람은 모두 이 복받는 집에 태어나 다시 악한 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미륵 부처님만을 친견하길 기다릴 뿐이로다."하였다.

그러고 난후 다시 염라왕 앞에 돌아와 사자를 돌려 보내고 난후 이계는 세상에 살아 나왔다고 한다.


17~22 지장신행회(cafe.daum.net/jjnd) 서진님 글


23.


진[秦]의 장응이란 사람은 평소에 무속을 섬겨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수없이 잡스런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어느때 집을 이사한 후에 아내가 병에 걸렸는데 여러 방법으로 기도하며 치료를 하였으나 가진 재산만 다 없애고 도리어 병이 위중하여 졌다.

본래 장응의 아내는 평소 신심이 깊은 불자로서 병석에 누워 하루는 장응을 보더니 말하기를, "지금 저의 병이 갈수록 깊어져 당신이 귀신에게 아무리 기도한다 한들 별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전에 복을 지어보십시요"하였다.

어찌할바 몰라 당황하던 장응은 아내가 말하는 절에 가서 축담개라는 스님을 만나 전후 사정을 얘기하니, 스님께서 이르기를, "부처님의 법은 병을 고치는 약과 같은데 약을 보고도 먹지 않으면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하니.

장응이 신심을 일으켜 기도하는 마음을 내자,

담개 스님이 기도 입제를 정해 주었다.

절에서 돌아온 장응은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키가 작은 사람이 장응이 사는 집의 남쪽 문을 들어 오면서 말하기를, "그대의 집이 어찌하여 이처럼 더러운가?"하니.

담개 스님이 뒤를 따르면서 말하기를, "이제 마음을 내었으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요"하였다.

장응은 잠을 자고 일어 났지만 꿈은 너무도 생생하여 정성을 다하여 높은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튿날 담개 스님께서 그 집에 가니 장응은 꿈 얘기를 하며 오계를 받기를 청하여 법답게 행하고 집에 모셔둔 잡신들의 형상을 모두 없애고 삼보에 청하여 공양을 올린 다음 스님과 이웃에게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 그날 이후로 아내의 병이 점차로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날 이후 어느 땐가 장응은 바닷가 염전에서 소금을 사서 돌아오다가 갯가에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어떤 사람 세명이 쇠갈고리로 장응을 끌어 당겼다.

장응은 엉겁결에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하니.

그들은 놓지 않고 말하기를, "종이 주인을 배반하고 달아 난지 이미 오래되었다."하였다.

장응이"나를 놓아주면 너희들에게 술 한되를 주겠다."하니.

그들이 놓아주면서"단지 뒤에 오는 사람이 너를 잡아 갈까 두려울 뿐이다."하였다.

장응이 잠에서 깨어나자 갑자기 배가 아파 오면서 설사가 심하여 온 집안이 고통을 겪고 담개 스님과 함께 오랫동안 걱정을 하였으나 병은 더욱 심해졌는데 어느날 갑자기 기절했다가 며칠만에 깨어났는데 그동안 겪은 일을 말하였다.

"자신이 기절하자 몇 사람이 강철 갈고리로 그를 당겨 북쪽으로 데려가 어느 언덕에 내려 놓았는데 거기에는 쇠물이 끊는 솥과 칼등 무서운 기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순간 장응은 지옥임을 알아 담개 스님의 법명을 부르려고 했지만 잊어버리고 그저"스님 저를 구해주십시요."하였다.

부처님 명호가 생각나서 막 불렀는데 한 사람이 서쪽에서 부터 왔다.

키가 작았지만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그들을 때리면서" 이사람은 부처님의 제자인데 왜 여기까지 들어오게 했는가?"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갈고리를 든 사람들은 다 흩어져 가고 금강저를 든 사람은 장응을 데리고 가면서 말하기를, "너는 수명이 다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지장보살츰부주를 외우고 지장 보살 명호를 불러라, 3일 후에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하였다.

그동안 겪은 얘기를 하고 난후 장응은 갑자기 마음이 슬퍼져 3일 동안 기도하며 공양을 올린다음 다라니를 외우며 절에 사람을 보내 담개 스님의 법명을 적어 가슴에 아로새겼다.

그리고 나서 점심때를 지나 부처님께 예경하고 게송으로 찬탄한 다음 온 집안 식구에게 작별 인사를하였다.

깨끗하게 목욕을 한후에 새 옷을 갈아 입고 잠을 자는듯이 천상으로 갔다.


24.

중국 명주 지방에 평범하게 어부로서 고기잡으며 가정을 꾸려가는 이름모를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가 어느날 바다에 나가 전날 던져 놓은 그물을 걷어 올리는데 그물안에 스님의 모습과 비슷한 등상을 하나 얻었다.

그렇지만 기분이 이상하고 출처도 잘 알지 못하며 두려워 다시 바다속에 다시 버렸더니, 그날 밤 꿈에 어떤 스님이 광명을 놓으면서 나타나더니, 어부에게 이르기를, "네가 어찌 나를 버리는냐?"하기에, 어부가 대답하기를, "어떤 스님이시기에 저에게 그러하십니까?"하였더니,

스님께서 다시 이르시기를, "나는 온갖 중생들을 생사의 고통에서 구제하는 지장 보살인데, 오랜 세월 동안 바다 가운데 있으면서 바다에 사는 여러 중생들을 제도하여 그 절반을 천상에 나게 하였으며, 이제 너희 고기잡는 사람들을 위하여 내 몸이 스스로 그물속으로 들어갔느니라,"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후 어부는 그물을 놓은 그 자리에 돌아가 지장 보살 존상을 다시 건진 다음 그 앞에서 어리석은 자신을 마음속 깊이 참회하며 마음을 크게 내어 사찰을 창건하여 지장 보살님을 모시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였는데 어부의 진실한 마음과 그 인연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귀의하고 예경하였다고 한다.



23~24 지장신행회 무우수님 글


25.

조계형(趙桂馨)은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 사람인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경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부부가 다같이 50살이 되었어도 자손이라고는 아들 존금(存金)뿐
이었다.

존금이 서당에 들어가 글을 배우던 기미년 가을에 이질병이 들어
손 쓸사이도 없이 수일 만에 죽어버렸다.

계형부부는 넋을 잃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약도 변변히 써보지도
못한 채 졸지에 죽어버렸으니 세상에 살 생각이 없어졌다.

너무도 원통하여 부부는 아주 몸져 누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꿈에서 지장보살을 만났다.

지장보살은 그에게 위로하면서 말하였다.

"너무 상심마라. 너의 아들은 명(命)이 다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네가 너무나 애통해하기에 혼신을 잠시 붙들어두었다.

지금 어떤 사람 집에 죽은 사람이 있어 혼신이 그 곳에 바꾸어
있게 하였으니 금년 겨울에 구화산(九華山)으로 가보아라.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꿈을 깬 다음 놀랍기도하고 기쁘기도하고 의심도 났다.

꿈을 꼭 믿을 수는 없어도 평소에 부처님을 공경하던 계향인지라
불보살의 위신력이라면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해 12월 계형부부는 함께 구화산에 참배하였다.

막 법당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막 존금이만한 처음보는 아이가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부부를 보더니 큰소리로 "아버지! 어머니!"하고 부르며
달려와 안겼다.

부부는 이상하여 아이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며 집은 어디냐?"

아이의 집은 그 곳에서 멀지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며
또렷또렷한 말씨가 죽은 존금과 똑같았다.

얼굴과 모양은 달랐어도 분명 그의 혼신은 존금인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계형은 눈물을 흘려가며 반가와하면서 지장보살존상앞에 무수히
절을 올렸다.

꿈에서 들은 바와 같이 지장보살이 신통력으로 자기들 부부를 도와
주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계형부부는 자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를 낳은
부모들이 아이를 빼앗아갔다고 관가에 송사하기에 이르렀다.

그 아이는 관가에서 수령에게 말하기를

"나는 조존금입니다. 나의 혼신이 조씨인이상 조씨 아버지와 살겠습
니다."하고 육신의 본 집으로 돌아가기를 마다하였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도 매한가지였다. 혼신이야 알 바아니고 분명한
자기자식이니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존금은 두 집을 왔다갔다하며 두 집의 자식노릇을 하기로
하였다.

그 후 계형은 슬픔을 잊고 더욱 독경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리고, 부처님법을 찬양하는 글과 불법의 오묘한 이치를 책으로
만들어 널리폈다.

출처: 지장보살영험록(불광출판부)



26.


지장신앙으로 귀먹은 병을 고치다

운철조는 오래 전부터 귀를 앓더니 마침내 귀가 먹어 버렸다.

그를 생각하는 고마운 분이 여러 차례 염불을 권하고 편지까지 써 보냈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 벗이 지장경을 보내면서 열심으로 읽어보라고 권하였더니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0여편을 읽고 나서 깊이 지장보살을 신앙하게 되어 독경과 염불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에 경쇠 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고 또 염불소리도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는 10년 동안 소리를 못 듣고 있다가 소리를 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의심도 들었다.
그날부터 귀가 열려서 평상시 같이 잘 들렸는데 새벽 4시에 경쇠소리와 염불소리는 매일 들려왔다.

어떤 때는 저녁에도 역력하게 경쇠소리와 염불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수십귀의 게송도 들려왔는데 그 소리는 참으로 신기하고 묘하여 평생에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그 후 하루는 게를 먹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염불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다른 소리는 다 들리는데 새벽 염불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자기에게 허물이 있는 것을 뉘우쳤다.

「종신토록 게를 다시 안먹겠습니다.」

라고 맹세하고

「나무지장왕보살」
하고 염불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새벽 염불소리는 또 들려왔다.

그는 너무나 신묘한 기쁨과 놀라움을 억제하지 못하고 돈 2백원(元)을 내어 지장경을 출판하여 널리 법보시하였다.


<지장보살영험설화> 연인사 도창스님


27.


전란에서 기도하고 천안통을 얻다

이것은 신미년 전군(입주군)이 들어왔을 매에 당했던 일이다.


당시 진금선(陳琴禪)은 부역에 동원 되었고 그의 여동생 정(情)도 또한 군을 따라갔고 이웃의 많은 사람들이 징발되어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사이에 여러 집이 불안 초조하여 견딜 수가 없어서 마침내덕이 있어 존경받는 진금선에게 물어왔다.

그러나 그도 알 길이 없었다.

그는 한 가지부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런 때에 지장보살께 기도하면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심으로 기도하면 지장보살의 위신력으로 모두가 무사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들 모여 문을 달고 3일간 정성껏 기도하였다.

그리고 지장보살 명호도 수천, 수 만 번 불러보았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시원한 건 없었다.

진금선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아직 우리의 성의가 부족한 것이다 하고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다들 모여 앉아 지장보살을 묵념하시오. 」
하였다.

그때 진금선도 함께 지장보살을 묵념하고 있는데 향이 반쯤 탔을 때 비몽사몽간에 한 경계가 벌어졌다. 한 산천이 보이고 그 사이를 통한 작은 길이 보이며 자기 여동생이 뭐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있더니 한 스님이 다녀갔는데 앞서 나타났던 산천이 또 보였다.

작은 길을 거슬러 깊은 산으로 올라가니 길가에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고, 그 아래에 송장이 하나 보인다. 깜짝 놀라니 대중은 여전히 염불하고 있었다.

그 후 며칠 안 되어 잡혀갔던 사람들은 모두 돌아왔다.

그러나 진금선의 여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적군에게 잡혀 죽은 것이었다.

기도 중에 나타났던 경계가 분명히 금선의 여동생이 죽은 것을 보여 주었으며 또한 기도공덕으로 스님 모양을 한 지장보살이 나타나시어 모든 사람들을 무사히 돌아오게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장보살 본원경에 이르기를

「사람이 능히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보고 그 이름을 만번만 부르면 마땅히 보살이 큰 위신력의 몸을 나타내어 그 사람의 권속들이 난 곳을 일러 주고 혹은 꿈에 보살이 친히 그 사람을 데리고 가 그의 권속이 태어난 세계를 보여준다. 」
하였으니 과연 진실한 말씀이다.


<지장보살영험설화> 연인사 도창스님


28.

지장경을 읽고 무사히 산액을 넘기다

다음의 글은 상입기(湘入記)에 기록된 것을 요약한 것이다.
경오년 봄에 나의 내자 건강에 이상이 있는 듯하였다.

순산 달이 석 달 가까이 남았는데도 태동이 없는 것이다.
배가 불러 근근히 걸음을 걷는데 걱정이 대단하였다.

그때 생각난 것이 10년 전에 어떤 스님이 하던 말이다.
「당신 나이 36세에는 산액(産厄)이 있으니 특별히 주의하시오.」
하더니만 그것이 들어맞는가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하던 중에 지장보살 본원경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외가 함께 지장보살을 생각하며 지장보살 본원경을 정성껏 독송하고 지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새벽에 순산을 하였는데 태신은 썩었고 그나마도 거꾸로 나왔다.
이러고도 무사했으니 기이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그해 분명한 산액이 있어서 상배(喪配)당할 액난이 있었는데 지장보살의 가피력으로 무사하게 된 것을 믿게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맹세를 새로이 하여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지장보살의 은혜를 보답하기로 하였다.

내가 믿기로는 약으로 못 고치는 병은 지성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독경하며 방생하기를 권한다.

결코 살생은 하지 말 것이다. 산난이 있더라도 반드시 순산할 것이다.
우리 부처님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니 내가 곧 그 증명자요 체험자이다.


<지장보살영험설화>



**연인사 道窓스님



29.

삿된 신의 장난을 물리치고 건강을 회복하다

황장혜주(黃莊慧珠) 거사는 복주(福州)사람이다.

24세 때 여소(茹素)라는 사람을 따라 처음 부처님을 믿게 되었다.

그 무렵 그의 집에는 사신(邪神)을 숭배하여 제사 지냄이 요란하였다. 거사는 이런 폐습을 없애버리자고 분연히 제사 지내는 토신 형상을 고기 키우는 항아리에 던져 버렸다.

그랬더니 얼마 안가서 거사는 점점 몸이 쇠약해졌는데 전신에 종기가 생겨 병상에 눕게 되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거사는 토신의 침범이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때 거사는 생각하기를

「나는 부처님 믿는 사람이다. 사신을 숭배하는 것을 옳다고 놔둘 수 없다. 내가 지금 병들었으니 불보살님이 나를 안구하시면 누가 구해 주겠는가.」

하고 정성을 오로지 하여 마음속에서 일심으로 기도하였다.

(대비관세음보살과 대원지장보살은 항상 인간과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시니 어찌 나를 버리시겠는가. 내가 비록 이대로 죽게 될지라도 지장보살 생각하는 것은 쉬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그리고서 매일 수 만 번씩 성호를 불렀다. 그러기를 일주일이 지나 거사는 꿈을 꾸었다.
꿈에 찬 바닷가에 갔는데 물이 끓어오르고 물빛이 검다.

그리고 수많은 슬픈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런 중에 문득 한 스님이 나타나더니 바다 위를 나는 듯이 다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스님 이르는 곳마다 신음소리가 잠잠해지고 물이 맑아지는 것이었다.
꿈을 깨자 거사는 꿈속에서 본 스님이 지장보살인 것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기뻐서 견딜 수가 없어서 일어나서 보니 아프던 몸이 날듯이 가벼웠다.

어느 사이에 병이 다 나아버린 것이다.

그는 지금 매우 건강하다. 그는 항상 그의 오늘의 행복은 지장보살의 은덕이라고 말한다.


**연인사 道窓스님**
출처:http://cp0433.culturecontent.com


30.

독경 예배로 기형성 관절을 고치다

원경암(袁鏡庵) 거사의 어머니 장씨는 천성이 매우 착하고 밝은 분이었다.
문학에도 능통하고 가사에도 극진하여 이웃의 칭찬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 신앙이 지극했고 특히 관음경과 지장보살 신앙이 극진하다.
그가 오늘날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모으며 건강하고 활기 있게 지내는 동안에 다음과 같은 지장보살의 영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에 육식을 즐겨하지 않았다. 삿된 미신도 일체 물리쳤다.

그리고 염불 일과를 빼놓지 않았는데 어느 해 별안간 걸음걸이가 둔해지고 두 팔이 올라가지 않으며 아파서 몸져눕게 되었다.

효험이 있다는 약은 모두 구하여 썼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생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욱이 병상에 누운 후로는 열심히 지장보살을 생각하였다.

그의 아들 경암은 생활에 시달려 기도할 시간을 낼 수 없었으므로 지장보살 본원경 전 23품의 내용을 대강 기억하고 매품의 제목을 모두 암송하였다.

그리고서 절할 때마다 경제목을 외우고 뜻을 음각하며 절 한 번씩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지장보살 명호를 수백 번씩 불렀다.

그와 같이 몇 달이 지나서 하루는 그의 어머니가 깊은 잠이 들어서 깨어나지를 못했다.
가족들과 이웃들이 모두가 당황하고 의사도 손을 못 쓰고 두었더니 사뭇 오랫만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몸이 아픈 것이 사라지고 걷기 시작하여 지금은 매일 예불 독경기도를 하면서 피로한 줄 모른다.

그가 어떤 업연으로 금생에 중병을 얻었다가 이제 그의 신심과 아들의 효성으로 지장보살의 가피력을 입은 것이 틀림없다.

경암은 지금도 어머니의 건강과 함께 지장보살 찬탄을 잊지 않고 있다.

**연인사 道窓스님**
출처:http://cp0433.culturecontent.com


31.

부모님께 효도하고 존상공덕으로 수명을 늘여 살아난 진건

대주(臺州) 땅에 진건(陳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용모가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사람에게 칭송을 받았다. 부모님을모시면서 지극 정성으로 잘 받들었지만 부모님이 이 현생에서 뿐만 아니라 긴 미래까지 복락을 누리게 해드릴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을 위하여 지장 ·관음 두 존상을 조성하였는데 높이는 3자였다.
지성으로 예배하고 염불하며 부모님의 건강과 복락을 기도하면서 지냈다.
그러더니 건덕(乾德) 4년(서기 572년)갑자기 병이 났다. 금방 의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효자가 죽은 것으로 알고 집안사람들과 이웃이 다 모여 슬피 하였는데 얼마 안가서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그 동안에 있었던 일을 말하였다.

『내가 아파서 신음하는 중에 어느덧 나는 어딘가를 가고 있었습니다. 얼마를 가서 성문과 같은 큰 문을 지나 어떤 큰 궁궐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생각에 여기가 염라대왕이 계신 곳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느덧 내 좌우에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 두 보살이 와 계셨으며 내가 염라대왕 앞에 이르니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나의 단월인데 효성이 지극하오. 효도를 아직 다 못 마치고 왔으니 대왕은 이 사람을 다시 인간으로 내보내주기 바라오. 」

염라대왕은 그 말을 듣고 장부 같은 것을 몇 장 넘기더니

「이 사람의 수명은 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아직 수명이 많이 남았습니다. 」

다시 두 보살이 말하였습니다.

「수명은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니며 또 고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소. 나의 단월에게 선업을 닦게 하겠다는데 어찌 그것이 안 된단 말이오? 」

염라대왕은 책을 다시 몇 장 넘기면서 살펴보더니 말하였다.

「이 사람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존상을 조성한 공덕이 있습니다.
그러니 수명을 40년 더 이어주겠습니다. 」

그러자 염라대왕 곁에 있던 관인이 대왕에 게 말하였다.

「진건에게 40년을 더 연장시켜주면 복록도 그만큼 있어야 할텐데 어렵게 되지 않겠습니까? 」

「염라대왕은 두 가지 말을 할 수 없소. 40년의 명을 이어 주겠소.」
그랬더니 두 보살이 저를 집까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진건의 효성으로 보아 마땅한 일이라 하면서 모두가 기뻐하며 두 보살 존상 앞에 두 손을 모았다.



32.

지장경을 읽고 지장보살 명호를 부른뒤 병이 낫고 복을 얻다


노산(魯山)에 한 소년이 병으로 누워 있었다.

날마다 하늘의 달만 쳐다볼 뿐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였다.

그때 양병원 거사가 그 산에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지장보살의 영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열심히 지장경을 생각하라고 일러 주었다.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지장경을 존중하면 선세에 진 모든 죄업이 소멸된다는 것을 믿게 된 그 아이는 정성껏 지장보살을 생각하였다.

그러기를 10여일 만에 그 아이는 병이 완쾌되어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양병원 거사는 너무나 기뻐서 지장보살 영험록 만권을 출판하여 사방에 돌려주어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믿게 하였다


33.


독경공덕으로 어머니의 명을 연장시킨 이화좌군

좌군(左君) 이화(履和)는 본래 불법을 지극히 믿었던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도 또한 지장경을 독실하게 독송하며 지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약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보시하였다.

약을 만들 때는 반드시 대비주(천수다라니)를 일심으로 지송하며 만들었는데 약의 효험이 매우 좋았다. 이화가 24세 때 그의 어머니가 병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화는 스님을 청하여 지장경을 3일간 정성껏 독송하였다.

그랬더니 그의 어머니는 비몽사몽간에 지장보살을 뵈었다.

위의는 스님의 모양을 나투셨고 광명이 나는 몸과 형용할 수 없는 안온감을 주는 표정은 곧 지장보살임을 알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말을 하였다.

「너의 수명은 벌써 다 되었다. 그러나 네가 정성껏 나를 생각하고 또한 착한 일을 많이 하였으니 수명을 1기 (12년) 만이라도 더 늘려주도록 하마. 」
하였다.

꿈을 깨면서부터 어머니의 병은 차차 차도가 있어 얼마안가 완쾌하였고 그 뒤 36년이나 더 세수를 누렸다.



34.

종이에 쓸 지장보살 명호에 예배하고 순산한 양부인


양벽원(梁璧垣) 거사의 장녀는 장(張)씨 집으로 시집갔다.

하남(河南)땅으로 광산하는 남편을 따라 갔는데 그때는 마침 임신하여 해산이 가까웠다.
그런데 그 곳에는 해산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양벽원거사는 딸이 걱정이 되어 종이에
「나무 지장왕보살」
이라고 써서 딸에게 보내면서,

「매일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지장보살에게 예배하고 기도하라. 그러면 반드시 순산할 것이다. 」
하였다.

그 딸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벽에 지장왕보살 명호를 써 붙이고 그 앞에 향을 사르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과연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시원스럽게 순산하였다. 아들이었다.

2년을 지나 또 임신하였는데 그 때도 전과 같이 하여 아무 고통 없이 딸을 낳았다.
아기의 상호가 단정하고 총명하였으며 매우 착했다.


<지장보살영험록>


35.

기도한 물을 마시고 위장병을 고치다

비구니 관원(觀願) 스님은 원래 복건성(福建省)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광주(廣州)에서 국난으로 순국한 후 출가하여 주로 계율을 배웠다.

그 후 출가 수행하는 중에 평소부터 약했던 몸이었으나 어느덧 위장병이 생겨, 마침내 미음으로 연명하기를 반년에 이르렀다.

온갖 세간의 약이나 치료법을 써 보았지만 도무지 효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지장보살 성덕대관(聖德大觀)」
이라는 책에 그려진 지장보살 존상을 보고 크게 환희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지장보살전에 향과 꽃과 그 밖의 공양구를 힘껏 장만하여 공양하면서 예배 기도하기를 7일이 되었다.

기도하는 동안은 오직 묵언하고 참회 발원을 쉬지 않았다.

7일이 지난 후 맑은 물 한 그릇을 지장보살 존상 앞에 올려두고 하루 밤낮 동안 지장보살을 일심으로 생각한 다음 그 물을 마셨다.

그 후부터 위장병이 완쾌되고 건강하여 오늘날 지장보살 성덕을 크게 건양하고 있다.


36.

지장보살본원경의 신묘한 감응

중국 수[隨]나라 때 사람인 조문약은 죽은지 7일이 되었는데 가족들이 염하여 관에 넣으려는 순간 문약의 한쪽 발이 갑자기 오므려졌다.

이에 가족들이 두려운 마음에 문약을 넣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차에 문약이 살아서 일어나므로 이를 본 모두가 기뻐하여 그 까닭을 물었더니,

문약이 말하기를 "죽음에 이르러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염라대왕 앞에 인도되었는데 왕이 묻기를, "너는 살아 생전에 무슨 복을 지었는가? 하여, 문약이 말하기를, "지장 본원경을 받아지녔습니다."하니, 염라왕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장하십니다. 그 복이 제일입니다. 비록 당신이 복과 선행을 지었기는 하나 오신 김에 지옥 세계의 죄업을 지은 사람들이 그 죄를 받는 곳을 보여드리겠습니다."하였다.

사람을 시켜 문약을 안내하게 하여 북쪽으로 열 걸음을 가니,

하나의 담장이 있었는데 작은 홈이 파져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안쪽 담장 벽에 사람이 있다가 손으로 문약의 머리를 잡아서 끌어내었는데 매우 고통스러웠다.

담장안에는 가마솥에서 끊는 물과 여러 고통을 주는 도구들에 의해 죄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이루 말로 다할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돼지와 양 그리고 물고기와 거위. 오리등 수많은 짐승들이 다투어 문약에게 대들어 목숨을 해하려 들어,

문약이 큰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의 몸을 먹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덤벼드는가?"하니,

그 짐승들이 소리 높혀 "너는 모월 모일 모시 모처에서 나의 머리와 다리를 먹었고 여러 갈래로 찢어 남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무엇 때문에 숨기는가?"하니,

문약이 가만이 생각해보니,

짐승들이 하는 소리가 사실이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모든 죄를 깊이 참회하며 여러 짐승들에게 살려주기만 빌었다.

하지만 문약은 평소 복을 닦고 착한 과보를 갖추었으므로 짐승들에게 용서를 받고 다시 염라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한그릇의 물을 문약에게 먹게 하고 다섯 개의 못으로 머리와 손 그리고 발에다 박은 후 놓아주었다.

저승에서 돌아와 죽음에서 깨어나 이 일을 사람들에게 자세히 말할때도 머리와 손 발이 아팠는데,

후일 오랜 선행을 한 후에야 통증이 점차로 사라졌다.

문약은 이후 더욱 지장본원경을 독송하고 잠시도 쉬지 아니하였는데 주변 여러 권속과 스님들께 이런 사실과 지장경을 받아 지니도록 권하였다.

후에 볼일이 있어 한 역관의 대청위에서 잠시동안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푸른 옷을 입은 한 여인이 급하게 달려와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문약이 놀라 깨어나 곧 역장을 불러 묻기를, "혹시 그대가 나를 위해 살생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까?"하니,

역장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문약공을 위하여 작은 양 한마리를 죽이려 했습니다."하여

"그 양이 무슨 빛깔이었습니까?하니,

"푸른 빛깔의 양이었습니다."하였다.

문약이 말하기를, "역장은 그 양을 바로 놓아주십시요. 그 양의 값은 제가 드리겠습니다."하였다.[중략]

참으로 지장경의 은밀한 감응은 알수 없는 것이다.



37. 지장보살본원경 독송으로 목숨을 연장하다.


이화와 그의 어머니는 본래 신심이 깊고 특히 평송에 지장본원경을 깊이 믿으며 평소에 독송하였다.

평소 이웃을 향해 약을 만들어 보시했는데 반드시 심묘장구대다라니를 일심으로 암송하며 정성껏 만들었는데 먹는 사람마다 매우 영험이 있었다.

이화가 24살때 홀연 어머니가 병이 생겨 혼수 상태에 빠져 가까운 사찰에 모셔와 지장본원경을 3일간 간절한 정성으로 독송했는데 혼수 상태에 빠진 어머니 앞에 지장 보살님이 나타나셨다.

모습은 스님이었으나 모습에서 나타나는 광명과 어머니에게 비쳐주는 지극한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지장 보살님이라 알게 되었다.

지장 보살님은 어머니에게, "너의 수명은 다하였다. 그러나 네가 평소에 나를 생각하고 선업을 많이 지었으므로 수명을 12년을 더 연장하도록 하겠다" 하시었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후 어머니의 병은 점차로 차도가 있더니, 36년이나 더 사셨다고 한다.


출처: 지장신행회(cafe.daum.net/jjnd) 무우수님 글

38. 지장기도하고 이가 새로 난 거사

송나라 천복사(千福寺) 동북쪽 산모퉁이에 지장보살 존상이 한 분 계셨다.
높이는1장 6자이니 크기로 말하면 퍽 큰 동상이다.
그런데 어느 때 누가 조성하였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직 그 신령스런 영험에 대하여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지장보살에 예참한 사람은 반드시 감응을 입는다고 전해왔으며 실지로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예배 공양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만큼 그 영특한 영험도 분명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한 거사의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인데 수많은 영험 중 너무나 기이한 것이어서 널리 소문난 이야기다. 그 절 밑에 한 거사가 있었다.

나이가 37세가 되었는데도 웬일인지 그때까지 이빨이 한 개도 나지 않았다. 물론 온갖 약이나 방법을 다해 본 것은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도 잇몸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약이나 방법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단념하고 천복사지장보살께 기도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는 대단한 결심을 하고 지장보살 앞에 엎드렸다.
7일 7야 음식을 먹지 많는 단식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를 7일이 다 되어 날이 밝으면서 기도를 마치려 하는데 갑자기 새벽녘이 되어 꿈을 꾸게 되었다. 거사는 꿈속에서 지장보살을 만났다. 지장보살은 아무 말 없이 다만 자비하신 미소를 머금으시고 거사의 이마를 한참동안 만져 주셨는데 얼마 있다가 꿈에서 깨어나니 몸이 나는 듯이 가볍고 마음이 상쾌하였다.
어쩌다가 손을 입에 대어보니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완전하게 이빨이 나 있는 것이다. 너무나 놀라웠다.
거사는 정신없이 손으로 이빨을 만져왔다.
그리고 하나 둘 세어 보았다.
아래에 열아홉, 위에 열아홉 해 38개가 잠시 조는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이 거사가 이빨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지장보살님의 영험에 못지않게 지방 사람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이제 이빨이 났다는 사실은 또 한 번 천지가 진동하리 만큼 놀라운 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지장보살 앞에 구름처럼 모여들고 지장보살 신앙은 더욱 널리 퍼져갔다.

<지장보살영험설화>


**연인사 道窓스님**
출처:http://cp0433.culturecont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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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지장신앙과 그 이익


1. 지장신앙

1)

지장기도 / 이법산 스님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정각원장

지장보살(地藏菩薩) 기도는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복덕증장(福德增長)하는 참으로 현실적 수행정진이다. 지장보살을 평소 많이 부르고 마음에 새기면 반드시 어두운 마음의 죄업이 사라지고 밝고 훈훈한 복과 덕이 얼굴을 맑고 밝게 해주어 보는 사람 만나는 모든 이가 반가워하고 기뻐하게 된다. 삶이 고통스럽고 머리가 영리하지 못한 것도 모두가 다 나쁜 습관인 업장 때문이다.

업장을 녹여버리면 머리가 맑아서 공부도 잘하고 생각이 분명하여 일에 판단이 올바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거나 실수가 없다. 업장이 두터우면 생각이 멍청하고 머리가 둔탁하여 하는 일마다 실수가 연발하여 괴로운 마음으로 생활이 괴로워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겁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지장기도를 하고,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도 지장기도를 하여 업장을 녹여버리면 마음과 몸이 가뿐하게 되어 삶이 참되고 행복해질 것이다.

지장보살은 왼손에 마니주(摩尼珠)를 갖고 오른손에 육환장(六環杖)을 들고 있는 자비로운 스님의 모습이다. 마니주는 여의주(如意珠)라고도 하며 지혜를 상징한다. 이 여의주는 누구에게나 유익함을 주고 무엇이나 염원하는 일을 성취 할 수 있다는 뜻이며, 마니주는 어떤 상대이든 접촉함에 따라 변화하며 그 상대의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해 주는 보배 구슬이라는 의미이다.

육환장은 고리가 여섯개 달린 지팡이다. 이 지팡이는 지혜의 칼(慧劍)이라고 하며 육적(六賊)을 다스리며 육도행(六度行)을 실천한다는 상징이다. 육적이란 눈(眼)·귀(耳)·혀(舌)·몸(身)·의(意) 등 육근(六根)이 상대하는 형색(色)·소리(聲)·향기(香)·맛(味)·촉감(觸)·법(法) 등 육경(六境)을 가르키며, 이 여섯 가지 경계를 통하여 마음을 어지럽히고 유혹하여 본래 깨끗한 마음을 어둡게 물들여 어리석은 죄업을 짖게 되고, 그 죄업으로 고통스런 과보를 받게 되기 때문에 이 육경인 육적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육도행은 대승보살의 6가지 바라밀행이니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말하며 이 보살의 실천행을 통하여 모든 생명들과 함께 성불의 길로 나아감을 뜻한다. 지장보살님이 가진 마니주는 본체적(本體的) 지혜를 뜻하며, 육환장은 묘용적(妙用的) 실천을 상징한다. 지장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이 체용(體用)을 채득하여 업장이 소멸하고 복덕이 증장될 것이다.

지장보살님이 모셔진 지장전(地藏殿) 법당은 명부전(冥府殿) 혹은 덕왕전(德王殿)이라고도 한다. 지장전에는 저승에 가서 심판받을 명부시왕(冥府十王)을 모셨기 때문이며, 지장전에 기도하면 복덕을 증장시킨다는 의미에서 덕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 기도는 다른 기도와 같이 천수경을 하고 공양을 올리고 지장보살 정근(精勤)을 하고 축원하는 등의 절차는 거의 같다. 갖추어 하자면 지장예참(地藏禮懺)을 하며 160번의 절을 한다. 「나무남방화주(南無南方化主)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地藏菩薩)」하고는 「지장보살」명호를 입으로 부르고 마음으로 참구(參究)한다. 지장보살을 첨앙(瞻仰)하거나 마음속에 새기며 잡념이 들거나 졸음이 와서 잊으면 안되게 마음과 입이 하나가 되어 정성껏 「지장보살」을 백번·천번·만번 시간과 힘자라는 대로 찾아야 한다.
정근(精勤)이 끝날때는 지장보살 멸정업진언(滅淨業眞言)-옴 바라 마니 다니 사바하-를 3·7편 한다.

다음은 게송(偈頌)을 염송한다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神力) 항하사겁설난진(恒河沙劫說難盡)
견문첨례일염간(見聞瞻禮一念間) 이익인천무량사(利益人天無量事)
고아일심귀명정례(故我一心歸命頂禮)

지장보살의 위의와 신통력은, 항하사겁에도 다 말할 수 없네,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는 한 생각에, 세상의 모든 일을 이익하게 하시네.
그러므로 나는 한 마음 목숨바쳐 예배합니다.

그리고 ‘원멸사생육도법계, 유정다겁생래제업장, 아금참회계수례, 원제제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하며 세 번 절하고,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하고 다음은 축원(祝願)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기도는 생축(生祝) 즉 살아있는 사람 축원부터 먼저하고, 돌아가신 부모 친척과 유주무주(有主無主)의 외로운 영가(靈駕)들의 축원을 다음에 하지만, 지장기도 축원은 영가 축원을 먼저하고 생축은 다음에 하는 것이 상례이다.

또 지장기도를 3일, 7일, 21일, 49일, 100일 등으로 하고는 회향할 때 대부분 영가 천도시식을 한다. 이 지장기도는 산사람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여 보이지 않는 느낌의 세계인 명부(冥府)를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영혼과 이세상의 모든 영혼이 극락왕생 할 때,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가 편안하고 즐거울 때 현실의 세계도 당연히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는 곧 마음의 세계이다. 마음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마음의 본체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모든 영혼의 업장을 내가 지장보살님께 기도하여 소멸시켜 그들이 편안할 때 나의 마음은 자연히 고요하여 지혜로워지고 모든 망상과 괴로움이 사라진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지장기도를 많이 하면 병고와 근심이 사라진다고 한 의미가 바로 이러한 이치에서이다





2)

지장보살 신앙에 대하여 - 한길로(한길정진원 원장)



불교의 신앙에는 자력(自力)면과 타력(他力)면이 있다.



자력적인 면은, 참나[眞我]가 곧 부처여서, 모든 부처님과 참나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참나에 충실하면 그게 곧 불교생활인데 무슨 다른부처를 신앙한다는 것이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처와 둘이 아닌 참나는 절대의 존재여서 상대적인 모든 것을 초월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며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그 모든 것이 없다는 것도 없는 자리인 것이다.



이러한 자리는 이러한 경지(境地)에 도달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자리여서 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중생의 의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세계인 현상계(現象界)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에게는 아무리 절대의 나[絶對我]니, 참나[眞我]니, 자성불(自性佛)이니 해봐야 헛바퀴 도는 이야기에 그칠 뿐이다.



더러 견성(見性)·오도(悟道)했다는 사람이 있어서 자력을 주장하고 타력을 비하하는 것을 보지만, 이 사람이 남과 상대되는 나를 보는 사람이라면, 다시 말하여 상대적인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결국 그의 주장이 제 그의 몸뚱이를 참나로 알고, 제 그 몸뚱이를 근거로한 욕구를 따르면서 이 현상적인 나가 그대로 부처요, 이 현상적인 욕구가 그대로 평상심(平常心)인 도(道)라고 하는 것밖에 안된다.



이것이 자력을 주장하는 중생이 빠지기 쉬운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참으로 자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상대의 차원인 현상계에 머물고 있는 중생에게는 타력 신앙만이 제격에 맞는 신앙이요,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는 길인 것이다.



현상계는 분명한 상대의 세계여서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세계가 바로 이 인연으로 화합된 현상세계여서 이 상대의 현상세계에는 중생이 있으므로 부처가 있고,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으며 어둠이 있으므로 밝음이 있고 괴로움이 있으므로 분명 구원도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 말하는 신앙은 절대의 세계의 절대불(絶對佛:法身佛)이 일체를 초월한신 경지에서 이 중생을 위한 인연으로 상대의 차원인 중생계에 현상신(現像身:중생들이 대할 수 있는 몸)으로 나타나셔서 중생을 교화 구제하시는 타력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다.



지장보살은 어떠한 부처님인가?



지장(地藏)이라는 명호부터 알아보자.



지(地)는 대지(大地)를, 장(藏)은 함장(含藏)을 의미한다. 지장보살은 대지처럼 모든 중생의 귀의처(歸依處)가 되며 중생을 위한 자비와 지혜와 화도(化導)와 육성(育成)의 힘을 완전하고 원만하게 갖춰서 지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부처님을 남방화주(南方化主)라고도 하는데, 남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남염부제(南閻浮提,南贍部洲라고도 함)이고 이 남염부제의 교화를 전담한 주인공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다.



지장보살에 대한 말씀은 지장경(地藏經:地藏菩薩本願經의 약칭)에 자세히 말씀되었는데, 이 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도리천( 利天)에 태어나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도리천에 올라가면서 법회를 열으셨고, 그 때 거기에는 시방의 모든 세계에서 한량 없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오셔서 함께 동참하셨다고 하였다.



이렇게 모이신 불·보살 중에 지장보살은 과거 한량 없는 이승지겁 전에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한 중생이라도 제도되지 못한 자가 았으면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끊임 없이 지금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행을 계속한다는 것이며, 이 보살이 특히 이 남염부제에 인연이 깊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에게 특별한 부촉(付囑)을 하셨는데, 그것이 석가모니불이 열반하신 뒤 미륵불이 출현하실 때까지 그 동안의 남염부제에서의 중생구제를 해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부처님 중에서 가장 수승한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대원본존(大願本尊)이시고 남염부제의 중생교화를 부처님의 간절하신 부촉으로 전담(專 )하셨기 때문에 우리 남염부제에 사는 중생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부처님보다도 가깝고 인연 깊으신 부처님이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 신앙과 지장보살 신앙이 성행하고 있는데 대체로 관세음보살님은 현실생활에 어려움을 구제하여 주신다고 해서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이라 하고, 지장보살님은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여 주신다고 해서 고혼천도 지장보살이라고 한다.



그래서 관음신앙은 현세 이익을 위할 제 필요한 신앙이고, 지장신앙은 저승에 가는 이한테만 필요한 신앙으로 알고, 49재나 기타 영혼 천도 할 때에만 지장보살을 찾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장경에 보면 지장보살의 형상을 우러르고 예배하고 또 그명호를 부르면 그 공덕으로 하늘에서의 그 천복(天福)이 다한 사람도 다시 그 복이 연장된다는 말씀도 있고, 그리고 어떠한 중생이고간에 중병으로 죽어갈 때 그 부모나 형제 등 권속들이 그 환자를 위하여, 그동안 그 환자 본인이 탐착하여 모은 재산으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불사를 하면 그 공덕으로 병이 나아 수명이 연장되고, 만일 그 업보의 명이 다하였고, 또 무거운 죄업이 있어서 악도에 떨어지게 된 자라도 그 죄업장이 소멸되어서 다시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고도 하셨다.



그리고 이미 죽은 부모나 친척들이 어디에 태어났는지 혹은 악도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지장보살님께 기도하면 이미 악도에 떨어진 자면 구출되어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고, 또 능히 37일 동안만 지성껏 기도하면 지장보살님의 분화신(分化身)이 나타나서 죽은 이의 현재의 상황을 알리어 직접 보게도 한다는 말씀도 있다.



또 중생을 구제하고 싶다는 보살의 서원을 세우고 지장보살님께 일심으로 기원하면 그러한 큰 원도 빨리 성취된다는 것이며, 또 업장 지중한 중생이 대승경전을 배워서 익히려하나 그 업장 때문에 자꾸 잊어버리는 경우엔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님께 업장소멸을 발원하면서 살생과 간음 등 범계(犯戒)함이 없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다스리고, 지장보살님께 바쳤던 청수(淸水:다깃물)를 마시면서 삼칠일 이상 정진을 계속하면 지장보살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정수리에 물을 부어주시는데, 이런 꿈을 깨고나면 곧 총명해진다는 것도 말씀하셨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학생들의 진학문제가 아주 큰 문제여서 학생 본인은 물론, 그 부모형제까지도 따라서 지독한 열병을 앓는데, 그래서 이 병으로 더러는 재산과 명예와 지위를 날리고 심하면 목숨까지도 날리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무리해서 돈이나 권력 따위에 의한 부정한 수단을 꾀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본인의 생각부터 바르게하여 앞으로 겨레와 나라를 위한 올바른 일꾼이 될 것을 서원하고 그 순수하고 갸륵한 마음으로 '업장을 소멸하여 주옵소서...''대중을 위하여 봉사하는 옳은 일꾼이 되어지이다...'하고 지장보살님께 37일 이상 기도 정진을 하였으면...하고 권하고 싶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빈궁·병약·집안의 불안정·권속의 분산·꿈자리 사나움 따위도 없어지며 또 부득이해서 험난한 곳에 가더라도 미리 지장보살 명호를 만 번 이상 부르면 지나는 곳마다 그곳의 선신(善神)들이 보호해서 안전하게 된다는 말씀도 하셨다.



한데, 지장경에 정성을 드리는 방법으로 자주 말씀된 것이 지장보살님의 형상과 명호에 관한 것이다.



지장보살님의 형상을 그림으로 혹은 조성해서 모시라는 말씀도 있고, 지장보살의 형상에 우러러 예배·공양하며,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라고 하신 것인데 여기에 내용적인 중요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대체로 겉모양은, 그것의 내용이 겉에 표출된 것이다. 예를 들면 사나운 인상은 사나운 마음이 표출된 것이고, 선량한 얼굴은 착한 마음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교묘한 말과 얄팍한 아첨으로 위장을 잘하는 자라 하더라도 정당한 이의 밝은 눈 앞에는 그 간교(奸巧)한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중생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 중생의 내용인 용렬함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고 부처님의 원만구족하신 상호는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와 원만하신 덕성(德性)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저 원만하신 만덕존상을 우러러 예경할 때, 부처님의 저러한 상호의 이면에는 원만구족하신 광명·생명·자비·지혜의 본원주체(本元主體)가 있어서 거기서 천지만물 일체중생을 포용하여 기르는 신령한 생명의 빛과 인자한 덕화의 기운이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걸 생생하게 느끼는 감동으로 벅차서, 다른 어떠한 의혹이나 불신 따위 중생의 업장운(業障雲)이 말끔히 사라져버린 상태로 되는 것이 기도하는 자에게 갖춰져야할 일심(一心)인 것이다. 이러한 일심으로 불상을 우러르면서 오직 감사와 감동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옳은 염불이요, 정진이다.



만일 이러한 감동이 없다면 아무리 불상을 우러러 예배하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더라도 그건 마치 글을 읽으면서 그 뜻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수박 겉핥기의 염불이 되어서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의할 점은 모든 부처님은 결국 한 법신(法身)의 작용이므로 자타의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이 앞장서면 지장보살과 기타 모든 불·보살이 그 뒷바리지를 하시고 지장보살이 선두에 서면 관세음보살 등이 그 뒷받침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걸 모르면 관세음보살을 항상 모시던 사람이 지장보살 기도를 하게 되면 관세음보살이 서운해 하실 것 같고, 지장보살만 의지해온 사람이 관세음보살을 찾으면 지장보살이 덜 좋아하실 것 같은 유치한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 그때 그때의 경우에 순응해서 어떠한 부처님께 기도를 드려도 그 부처님을 초점으로 해서 모든 부처님의 힘이 집중투사(集中投射)되어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2.


지장보살을 신앙하는 이익

<7종 이익> 지장보살본원경 제13품 촉루인천품

1. 속히 성현의 땅에 오른다.(速超聖地)
2. 악업이 소멸된다.(惡業消滅)
3. 모든 부처님이 지켜준다.(諸佛護臨)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菩提不退)
5. 본원력이 더욱 더 커진다.(增長本力)
6. 숙명을 통달한다.(宿命皆通)
7.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畢竟成佛)



<10종 이익> 지장보살본원경 제11품 지신호법품

1. 농사짓는 땅에 풍년이 든다.(土地豊穰)
2. 집안이 안전하고 편안하다.(家宅永安)
3. 조상들이 천상에 태어난다.(先亡生天)
4. 현세의 가족들이 장수한다.(現存益壽)
5.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진다.(所求遂意)
6.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無水火災)
7. 재물의 헛된 손실이 없다.(虛耗避除)
8. 나쁜 꿈을 꾸지 않게 된다.(杜絶惡夢)
9. 출입할 때 신장들이 보호한다.(出入神護)
10. 성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多遇聖人)



<28종 이익> 지장보살본원경 제13품 촉루인천품

1. 천인과 용이 항상 지켜준다.(天龍護念)
2. 선한 과보가 나날이 더해진다.(善果日增)
3. 성인들과 좋은 인연을 맺는다.(集聖上因)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菩提不退)
5.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진다.(衣食豊足)
6. 질병이 침범하지 않는다.(疾疫不臨)
7.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離水火災)
8. 도둑으로 인한 재앙이 없다.(無盜賊厄)
9.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人見欽敬)
10. 귀신들이 돕고 지켜준다.(鬼神助持)
11. 여자는 다음 생에 남자가 된다.(女轉男身)
12. 여자라면 좋은 가문에 태어난다.(爲王臣女)
13. 용모가 단정하고 빼어나다.(端正相好)
14. 여러 생 동안 천상에 태어난다.(多生天上)
15. 때로는 제왕이 되기도 한다.(或爲帝王)
16. 육신통 중 숙명통을 성취한다.(宿智命通)
17. 구하는 바를 다 이루게 된다.(有求皆從)
18. 가족 친척들이 모두 화목하다.(眷屬歡樂)
19. 뜻밖의 재앙이 모두 소멸된다.(諸橫消滅)
20. 나쁜 업의 길이 영원히 없어진다.(業道永除)
21. 가는 곳마다 모두 통한다.(去處盡通)
22. 밤에는 꿈이 안락하다.(夜夢安樂)
23. 조상들이 괴로움을 벗어난다.(先亡離苦)
24. 다시 태어날 때 복을 타고난다.(宿福受生)
25. 모든 성현들이 찬탄한다.(諸聖讚嘆)
26. 총명하고 근기가 빼어나게 된다.(聰明利根)
27 자비심이 더욱 풍부해진다.(饒慈愍心)
28.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畢竟成佛)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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