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떻게 ‘심불전도心不顚倒’를 보증할 것인가 (정종淨宗법사 법어 / 정전스님 역)
출처/純淨時代
『아미타경』의 이 단락과 관련해서 우리는 이미 설명을 드렸습니다.
첫째,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바로 많은 선근과 많은 복덕이다.
둘째,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바로 ‘일심불란’이다.
이 두 가지 관문을 우리가 모두 통과하였으니,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큰 돌멩이 두 개를 다 치운 거나 다름없습니다. 좋아요, 이제 우리는 좀 쉴 수가 있습니다. 자, 가슴들을 쫙 한번 펴보세요. “아! 일심불란이라는 이 큰 돌멩이가 줄곧 마음을 짓누르고 있어서 곧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었는데, 오늘 끝내 그것들을 뒤엎어버렸으니 참으로 통쾌하구나!” 우리는 홀가분해졌고 이제 힘도 생겼으니, 승승장구로 추격하여 다시 어떻게 ‘심불전도’를 보증할 것인가라는 세 번째 난관을 공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의 두 관문을 해결하고 나니 또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염불이 곧 많은 선근이다. 좋아요, 됐습니다. 그럼 저는 전수염불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일심불란이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난제難題가 있다니…… 예! 일심전념을 하는 것이 바로 일심불란이라면, 그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요, 저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어려움이 남아있습니다. 만에 하나 임종할 때 혼수상태에 빠진다든가, 정념을 일으킬 수 없다든가, 잊어버렸다든가, 부처님 명호를 부를 수 없다든가…… 그때는 어떡해야 합니까? 왜냐하면 『아미타경』에서 ‘마음이 뒤바뀌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마음이 뒤바뀌지 않도록’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1) 오해를 깨트림
【오해 1】
사실은요,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상황은 아예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상황은 절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단락의 경문에 대해 우리가 오해를 하였기 때문에 걱정이 생겨난 것인데, 만약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오해를 하였을까요?
첫 번째 오해입니다. 보통사람들은 모두 ‘평소에 염불을 얼마나 많이 했든 상관없이 만약에 임종하는 순간에 염불을 못한다면, 평소의 한 염불 역시 공염불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임종할 때 염불을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시고 비로소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고 여기는데, 이러한 이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임종할 때 염불을 못하면 왕생할 수 없다는 것은 평소에 염불하지 않고 왕생을 원하지 않던 사람을 지목하는 것으로서, 그 사람이 지금 곧 목숨이 끊어지려 하는데, 이때에도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기회가 없어서 목숨이 끊어지면 바로 윤회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임종염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관경』의 하배삼품의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경우인데, 임종할 때 한 번·열 번을 염불하여 왕생을 하였습니다. 『관경』에서 말하고자하는 의미는, 설사 일생동안 온갖 악업을 짓다가 임종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염불을 만난 사람도 겨우 열 번·한 번의 염불로 모두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모두 왕생할 수 있는데, 하물며 평소에 염불하던 사람이라면 왕생에 더욱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선도대사께서 “전수염불은 왕생을 하는데 정정의 업이어서 열이면 열이 모두 왕생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임종할 때 염불을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정토삼경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모두 평생의 염불을 말한 것인데, 다만 표현함에 있어서 치중하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무량수경』의 ‘내지 십념’과 ‘일향전념’은 총강령·총원칙·총요구로서, 위로는 평생의 염불을 포함하고 아래로는 임종의 열 번한번의 염불을 포함합니다. 『관경』의 하삼품에서 말하는 것은 임종염불의 상황으로, 이로써 일생의 염불을 포괄하는 것이며, 『아미타경』의 하루나 이레까지에서 말하는 것은 평생염불의 상황인데, 아울러 이로써 임종의 염불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법문을 만나고 나서 아직 하루의 수명이 남아있으면 하루 동안 염불을 하고, 아직 이레의 수명이 남아있으면 이레 동안 염불을 하는 것으로, 수명의 장단에 따라서 한평생 염불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우리는 아래에 다시 전문적으로 연구토론을 할 것입니다.
평소에 ‘하루에서 이레 동안 명호를 집지하여 일심불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믿음과 발원이 견고한 전수염불하는 사람은, 이 사람은 어떨까요? 그도 역시 죽을 거잖아요! 그는 일생동안 염불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곧 목숨을 마칠 때가 되었는데, 어떻습니까? 이어서 그 다음의 경문에서 말씀하셨지요.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날 것이니라.
其人臨命終時,阿彌陀佛,與諸聖眾,現在其前。
평생을 염불하던 사람은 임종할 때 부처님께서 성중들과 함께 자연히 그 사람 앞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에 그 사람이 염불을 하든 못하든 간에 부처님과 성중들이 모두 오셔서 몸을 나투시기 때문에 경문에서는 임종할 때에도 다시 염불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지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이란 바로 평생에 전수염불을 하던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평소에 염불하며 왕생하기를 발원하였기 때문에 평소에 이미 원인을 심어서 이때에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평소에 염불을 했다하더라도 임종할 때에도 반드시 염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시지 않아 왕생할 수 없을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문에 대한 아주 분명한 오해입니다.
【오해 2】
계속해서 두 번째 오해는 자신에게 임종할 때 ‘마음이 전도되지 않도록’ 보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선 왕생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아미타경』의 경문에 의거하면 임종할 때 ‘마음이 전도되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힘으로 보증을 해주시는 것으로서, 평생을 전수염불하여 임종할 때 부처님께서 자연히 영접하러 오시는데,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셔서 자비원력으로 우리를 가지加持해 주시어 자연히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정념가운데 머물게 하여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다음의 경문에서 말씀하셨지요.
그 사람이 임종할 때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곧바로 아미타불의 극락국토에 왕생하게 되느니라.
是人終時,心不顚倒, 即得往生,阿彌陀佛,極樂國土。
그럼 부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에 이 사람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마지막 한 숨을 내쉬고는 목숨을 마치게 되는데, 이때 찰나 간에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됩니다. 경문에서 직접 이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는 ‘마음이 전도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 여전히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것 역시 부처님께서 영접을 오시면서 가지를 해주신 결과이지 우리 범부들 자신의 능력은 아닙니다.
현장대사께서 번역하신 『아미타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자비롭게 가지와 보호를 하여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해주시니라.
慈悲加佑,令心不亂。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 것’이 바로 ‘마음이 전도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자비롭게 가지와 보호’를 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마음이 어지럽지 않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들은 매우 괴롭습니다. 사대가 흩어지는 괴로움·가족과 헤어지는 괴로움·몸을 버려야하는 괴로움과 과거의 모든 업력들이 나타나게 되는 등의 갖가지 괴로움들이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께서 비로소 우리에게 “내가 큰 광명을 놓아 이때에 반드시 너희들을 영접하고 위로하러 올 것이다”고 위로를 해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안온해질 수 있도록 하신 것이지요.
우리가 임종할 무렵, 아미타불께서 큰 광명을 놓아서 우리들을 영접하러 오실 때, 우리의 모든 업장과 모든 괴로움과 불안함은 즉각 상쾌함으로 변하여 마음은 아주 편안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비로소 “자비롭게 가지와 보호를 하여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심과 부처님의 서원과 공덕이 우리를 가지하고 우리를 보호하여 우리의 마음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지 우리 자신에게 마음이 전도되지 않을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에게 먼저 마음이 전도되지 않을 능력이 있은 다음에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들 잘 들으셔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마음이 전도되지 않아야만 비로소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염불을 하면 부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비로소 마음이 전도되지 않는 것이지요. 이점을 확실히 아셔야 합니다!
【오해 3】
세 번째 오해는 ‘부처님께서 비록 임종할 때 나를 영접하러 오신다고는 하셨지만, 만약에 그때 내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다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겉모습이 혼미해 있으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겉모습은 비록 혼미해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아주 뚜렷하게 바깥 경계들을 인식하고 있어서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면 우리는 아주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염불감응록』제3집 제136편에 귀양貴陽에 사는 장묘신蔣妙信 연우님의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두 눈이 실명된 맹인으로 평소에 전수염불을 하셨는데, 대변을 보시다가 너무 힘을 준 탓에 뇌혈관이 파열되었지요. 여러 날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바로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셨으니, 난 이제 왕생한다!”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가 당일 날 오후에 왕생하셨는데, 가시는 모습이 아주 좋았습니다. 선천적인 실명으로 일생동안 색깔조차 분간하지 못하던 맹인이 혼수상태에서 부처님께서 그녀를 영접하러 오신 모습을 친견하셨다니 이 얼마나 희귀합니까! 게다가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도 염불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실 때는 눈이 먼 것도 장애가 되지 않고, 혼미한 것도 장애가 되지 않으며, 임종 직전에 염불을 했느냐 못했느냐 여부도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평생에 염불을 하여 우리의 마음과 아미타불의 마음 사이에 서로 감응을 이루어서 자연히 왕생하는 것입니다. 마음(心識)은 어둡지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파괴되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뒤에서 우리는 다시 두 가지 현실의 사례를 들어 증명을 하도록 할 겁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쇼크 상태에 빠져서 인사불성이 되었다면,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신체기관의 고장으로 인해 혈관이 막혔다거나 정신이 혼미해진 것뿐이므로, 그것은 임종할 때 마음의 상태는 아닙니다.
【명종의 세 단계】
임종에서 명종命終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심식心識에는 이른바 세 단계가 있으니, 곧 명료심위·자체애위·불명료심위가 있습니다.
첫째는 명료심위明了心位입니다: 명종상태에 가까워질 때, 전5식인 눈·귀·코·혀·몸에는 여전히 작용이 있고 제6의식도 여전히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으며 심식도 뚜렷하게 깨어있기 때문에 ‘명료심위’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곧 사망에 이르게 되면서 사대오온이 흩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지만, 다른 방면에서는 또 아주 분명하게 자신이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처자식과 집안의 재산과 재물 등 평생을 사랑하던 사람이나 물건을 마주할 때, 마음속으로 차마 헤어질 수가 없어서 참으로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되지요.
둘째는 자체애위自體愛位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온갖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이때가 되면 몸과 마음은 더욱 더 허약해지고 전5식은 이미 작용을 일으키지 않아서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으며, 오직 제6의식의 미세한 생각만 존재하게 됩니다. 이때에는 이미 벌써 자신의 일만으로도 힘에 벅차기 때문에 바깥의 처자식과 재물 등에 대한 생각도 내버리고서 오로지 한 가지 생각, 즉 자신의 몸을 애착하고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마음만 있게 되기 때문에 ‘자체애위’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맨 마지막은 불명료심위明了心位입니다: ‘난심위亂心位’라고도 부르지요. 즉 죽는 순간을 말합니다. 몸에 대해 아무리 집착하고 아껴 봐도 보존할 수가 없어, 이때가 되면 모든 신체의 기관들이 기능을 멈추게 되며, 제6의식 역시 신체기관의 기능들이 사라짐에 따라 사라지게 됩니다. 제6의식의 작용이 없으면 윤회환생을 좌우하는 아뢰야식이 떠오르게 됩니다. 금생 및 세세생생의 선악업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마치 꿈을 꿀 때 제6의식이 비교적 약하기 때문에 순서·논리·조리가 전혀 없고, 시간·공간도 모두 매우 혼란하여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주인 하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바로 이와 같아서 업력의 종자가 떠오르게 되면 마치 한 나라에 국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에 왕이 없기 때문에 도적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서로 왕이 되려고 다투게 되는데, 이때는 누구의 힘이 강한지를 봐서 그 사람이 왕이 됩니다. 같은 이치로 목숨을 마칠 때 현생 및 역겁歷劫의 선악업력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게 되는데, 업력이 나타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중에 가장 맹렬한 선악의 업력을 따라서 선악의 도 가운데 태어나게 되며, 조금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사람이 빚을 지게 되면 가장 큰 빚쟁이가 먼저 끌어당기게 되고, 마음의 실마리는 여러 갈래지만 무거운 쪽으로 치우쳐 떨어지기 되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사람들은 죽을 때 모두 이와 같아서 앞에서 말한 세 단계 중에 어느 단계에 처해있든 막론하고 모두 극심한 괴로움과 두려움이 생기고, 놀라고 당황하여 허둥지둥하게 됩니다. 『무량수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목숨이 다하려 할 때 회한과 두려움이 번갈아 엄습해 온다”고 하셨는데, 그 뜻은 목숨이 다하려 할 때 후회하고 놀라고 두려운 생각이 한꺼번에 마음속을 향해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후회할까요? 예전에 항상 명예를 위하고 이익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사업을 위해 살기만 했을 뿐, 여태껏 자신의 생사대사를 위해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과거에 선행을 실천하고 공덕을 쌓지 않았으며 불법을 수행하여 생사대사를 위해 준비해두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놀라고 두렵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갈 것이지를 몰라서 두려운 것이지요.
사람이 이때가 되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른바 전도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이 일어나기도 하고, 삿된 견해가 생겨하기도 하고, 미련이 생겨나기도 하고, 난폭해지기도 하고, 부부간의 애정이 생겨나기도 하는데, 이때에 원친채주冤親債主들도 이 기회를 노리고 와서 방해를 하여 정념을 잃게 만듭니다.
【내영은 명료심위에서다】
그러나 염불하는 사람은 이상의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는 것은 바로 첫 번째 명료심위에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왕 임종조념을 할 때 임종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영접하러 오신 불보살님들을 친견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염불하는 사람도 비록 죽음의 고통은 있지만 아주 경미하지요. 왜냐하면 아미타불과 제대보살님들의 내영이 있어서 부처님의 광명으로 두루 비춰주시고 부처님의 힘으로 보살펴주시기 때문에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마음이 착란을 일으키지 않으며, 명료심위에서 기쁜 마음으로 정념왕생正念往生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삼경을 대조함
【세 가지 시기】
『아미타경』속에 세 가지 단계가 있는데, 하나는 평소, 하나는 임종, 또 하나는 명종입니다.
평소란 바로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명호를 집지하여 하루나……이레 동안 일심불란하게’ 전수염불을 하는 것으로, 이것이 평소입니다. 그럼 임종에는 어떨까요? 임종할 때 당신은 자연히 그 결과를 얻게 되지요: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십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신 다음은 곧 세 번째 단계인 명종입니다.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 마음이 뒤바뀌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는 것이 먼저이고, 우리가 목숨을 마칠 때에 마음이 뒤바뀌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이므로, 우리의 마음이 뒤바뀌지 않아야만 비로소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경문의 순서는 아주 분명합니다.
그것 역시 아미타불의 제19원과도 완전히 딱 들어맞습니다.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내가 그 사람 앞에 나타나 영접을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 따라서 우리 전수염불하는 사람들은 ‘임종할 때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시지 않을까봐 두렵고, 내가 왕생할 수 없을까봐 두려워요……’라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미타불의 보증】
48원 가운데 제19에서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미타불께서 다음과 같은 보증을 해주셨습니다.
임종 시에 내가 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을 둘러싸고 나타나지 못한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臨壽終時, 假令不與大眾圍繞,現其人前者,不取正覺。
“너희가 나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목숨을 마칠 때에 내가 너희를 영접하러 올 텐데, 만약에 내가 오지 않는다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
아미타불께서는 성불을 하셨나요?
(대중) 성불하셨습니다!
성불하셨지요. 그분이 성불을 하셨다면 이 발원은 실현되었을까요, 실현되지 않았을까요?
(대중) 실현되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만약에 왕생하기를 원한다면, 그분께서 그때가 되면 오실까요, 오시지 않을까요? 그분께서 일시적으로 잊어버린다거나 약속을 어긴다거나 오시지 않는다거나 그럴까요?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실 겁니다! 그럼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셨을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전도될까요?
(대중) 아닙니다!
우리는 전도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마음은 자연히 정념 가운데 머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심부전도’는 아미타불의 서원이 우리를 위해 보증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임종할 때 내영을 해주시므로 목숨을 마칠 때에 마음이 전도되지 않는 것이지요.
【구품 하나하나가 모두 전도되지 않는다】
왕생하는 사람들의 임종상황과 관련해서 『아미타경』에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설하셨는데, 두 구절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임종할 때 부처님과 성중들이 나타나 영접을 해주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목숨을 마칠 때에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곧바로 왕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경』에서는 하나하나 세부적인 사항으로 나누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셨는데, 아홉 가지로 귀납할 수 있습니다.
⑴ 부처님과 성중들이 오신다. 수행자가 임종을 할 때에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대중들이 함께 호호탕탕하게 오시는데, 번幡과 꽃들이 밝게 비치고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허공에 가득합니다.
⑵ 시자가 꽃을 들고 있다. 문득 보니 관음·세지 양대보살께서 두 손으로 직접 연화보대蓮花寶台를 받쳐 들고서 공손히 아미타불을 모시고 곁에 서 계시면서 친절하게 우리들이 연화보대에 올라오기를 기다리십니다.
⑶ 아미타불께서 방광을 하신다. 이때에 아미타불께서는 큰 광명을 놓아 곧장 수행자의 몸을 비추시는데, 수행자가 부처님의 광명에 비춰지면 모든 업장들이 완전히 없어져서 마음에 위안을 얻고 크게 기뻐하게 되며, 기뻐하는 마음속에서 목숨을 뚝 마치게 됩니다.
⑷ 아미타불께서 손을 내미신다. 이때에 아미타불께서는 무수한 화불化佛들과 함께 동시에 보배 손을 펴서 드리우며 수행자를 불러 영접하십니다.
⑸ 손을 잡고 연화대에 오른다. 수행자가 부처님께서 드리워주신 보배 손에 잡히게 되면 자연히 몸과 마음이 가볍게 떠올라 곧바로 연화보대에 오르게 됩니다.
⑹ 아미타불께서 찬탄하고 위로를 해주신다. 아미타불께서 부처님의 입으로 직접 말씀을 해주시는데, 보살대중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찬탄을 하시면서 “선남자여! 그대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까닭에 모든 죄가 소멸되어 내가 그대를 영접하러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⑺ 수행자가 기뻐한다. 이때에 수행자는 이미 부처님께서 직접 몸을 나투시어 영접하러 오신 것을 보았고, 또 보살님들이 두 손으로 연화대를 받쳐 들고 기다리시는 것을 보았으며, 또 부처님의 광명이 곧장 자신의 몸을 비추시는 것을 보았고, 또 빛을 뿌리며 드리워주시는 보배 손의 접인을 받았으며, 또 자신이 이미 연화대에 앉아있음을 보았고, 더욱이 몸소 찬탄과 위로를 해주시는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고서 기쁘기가 그지없고 그지없이 기뻐하게 되었으니, 더욱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로 연화좌에서 머리를 숙여 부처님께 예배를 합니다.
⑻ 수행자가 보고 듣다. 위에서 말한 모든 상황들을 왕생하는 사람이 직접 경험하고 똑똑히 두 눈으로 보고 정확히 두 귀로 들었기에, 아주 뚜렷하여 조금도 어렴풋하고 답답함이 없습니다.
⑼ 부처님을 따라 왕생한다. 수행자가 아직 연화대에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머리를 들어보니 어느새 이미 아미타불의 극락보국에 도착하여 칠보로 된 연못 가운데서 화생을 하였습니다.
구품은 모든 범부중생을 대표하는 것으로, 상근기·중근기·하근기·선인·악인, 그리고 상상품의 용맹정진을 하는 무리들과 하하품의 임종십념을 하는 근기들도 전부 그 속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경』에서 말하는 구품내영의 구체적인 세부사항들에 대해 비록 각 품 사이에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체적인 상황은 같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왕생하는 사람들이 임종하기 전에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신 것부터 명종을 한 다음에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하는 하나하나의 모든 광경에 이르기까지 전부 직접 보고 직접 들은 것이므로,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여 조금도 애매모호하지가 않아서, 마음이 전도되는 일들이 절대 존재하지 않으며 다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따라서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듯이 우리 염불하는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죽는 것입니다. 보세요, 『관경』에서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신 것을 보고서 우리는 ‘뛸 듯이 기뻐하고(歡喜踴躍)’·‘마음으로 크게 기뻐한다(心大歡喜)’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전도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3) 사례를 들어 설명함
【뢰조하의 이야기】
여기서 현실의 사례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일반인들은 ‘만약에 내가 혼수상태에 빠진다면 어떻게 왕생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걱정을 하기 때문이지요. 사실은 사람이 비록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아니면 식물인간이 되어도 마찬가지인데, 이것은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뢰조하賴朝河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대만 사람으로 군대에서 총기와 탄약을 관리하는 사병이었습니다. 하루는 실수로 탄약이 폭발하였는데 마침 그가 폭발사고를 당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의식을 잃고 말았지요. 얼굴과 몸 전체에 모두 화상을 입고서 의식을 잃었지만 정말로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봤을 때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을 못하고 오직 미약한 호흡만 있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서둘러 긴급치료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봤을 땐 완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상황이었지만, 그는 아주 뚜렷하고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그는 자신의 신식(神識:영혼)이 몸을 떠나 있는 것을 보았고, 주변에 수많은 의사들이 거기서 자신을 구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의 몸은 한 겹 한 겹으로 미라와 같이 싸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옆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도 그는 아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지요. 그를 치료할 때 어떤 사람이 이렇게 건의를 했습니다. “이 사람을 대만 본도에 보내서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곳 병원의 치료여건이 비교적 좋습니다”(그가 어디에 있었냐면 마조馬祖라는 곳에 있었는데, 바깥 섬이었지요) 그러자 옆에 있던 의사한분이 동의를 할 수 없다며 말했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이 사람은 곧 죽게 생겼습니다. 이렇게 허약한데 어떻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의사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그는 아주 분명하게 들었는데, 그가 좋다 싫다는 의견을 말하고 싶었지만 의사들이 들을 수가 없었기에 공연히 애만 태울 뿐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 그는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답니다. 게다가 그의 눈은 저절로 천안통을 갖추어서 벽을 사이에 두고 의사들이 옆방에서 어느 여성 환자에게 수술을 하는 광경도 아주 뚜렷이 볼 수 있었으며, 위층도 볼 수 있고 아래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벽의 장애도 받지 않고 단번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는 즉각 그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있었으니, 그렇게 신기합니다.
나중에 그는 대만 본도로 이송되었습니다. 부대에 있는 친구들이 마조에서 종자粽子를 만들어 먹으면서 말했지요. “뢰조하가 만약에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면 오늘 밤의 종자를 그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의 이름이 불리자 그는 바로 듣고서 본도로부터 마조까지 왔답니다. 이름이 불리었을 때 그는 이미 도착하여 “이 종자들을 잘 포장해서 뢰조하가 먹도록 몇 개를 보내자”라는 뒤 부분의 말도 들었습니다.
총 23일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에 대해, 그는 아주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삼일 동안 그는 아주 좋은 향기를 맡았는데, 무슨 원인일까요? 그의 어머님은 감응이 있어서 마음속으로 매우 불안하였답니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그래서 뢰조하의 형더러 전화를 해서 현재 그가 어떠한지 알아보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뢰조하가 폭발사고를 당한 뒤에 부대에서 그의 가족들이 불안해 할까봐 소식을 봉쇄하였기 때문에 그의 형이 전화를 해봐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더욱 불안한 느낌이 들어 스님을 찾아서 여쭤봤습니다. “스님, 어떡하면 좋을까요?” 스님이 그녀에게 말했지요. “당신이 오로지 염불만 하시면 재난을 소멸하고 모든 게 다 좋아질 겁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연락을 하려해도 연락이 닿지가 않거든요) 집으로 돌아온 뒤에 정성을 다해 염불을 하셨습니다. 그 삼일 동안 그녀는 아주 정성스럽게 집중하여 염불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최고급의 전단향도 사오셨습니다. 그 결과, 삼일 동안 그의 어머님이 부처님께 올리셨던 전단향의 향기를 뢰조하가 병원에서 맡았던 것입니다. 보세요, 이렇게 감응을 이루고 이렇게 불가사의합니다. 전화로 연락할 수도 없고 모든 소식이 끊겨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염불을 하면 감응할 수가 있어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례는 최소한 다음의 몇 가지 점을 설명합니다.
첫째, 사람이 죽으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그대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그가 정신을 잃고 있었지만, 식물인간처럼 말도 못하고 음식도 못 먹는다고 해서 그가 혼미해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의 심식은 뚜렷이 깨어있어서 아주 분명히 느끼고 있었지요. 심지어 그를 치료해주시던 의사들도 타지에서 모셔온 분이어서 본래 그가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23일 뒤에 깨어나서 그분들의 이름을 전부 부를 수 있었답니다. 사람들이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지요. “나는 자네와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었는데, 자네가 어떻게 나의 이름을 안 거니?” 그가 대답했습니다. “당신들 동료들끼리 서로 부르는 이름을 제가 들은 지 벌써 20여일이나 지났기 때문에 제가 당신을 알아보는 거죠!” 그가 입을 열자마자 이름을 불렀으니 얼마나 신기합니까?
셋째, 그에게 신통력이 있어서 그의 이름만 부르면 바로 현장에 도착한다는 점입니다.
그럼 우리도 생각을 해보자고요, 그의 신통이 클까요, 아니면 아미타불의 신통이 클까요? (대중) 아미타불입니다!
그의 몸은 타이베이의 병실에서 식물인간처럼 그 곳에 누워있었지만, 마조에 있는 친구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즉시 그는 마조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조차도 이러한 신통력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가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겠습니까?
【아미타불께서 소리에 응하여 바로 나타나다】
우리가 여기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아미타불께서 즉각 이곳에 오신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열 사람이 부르면 부처님은 열 사람 곁으로 오십니다. 그분은 백천만억의 분신分身을 나툴 수 있으니까요!
선도대사님은 『관경소』에서 이렇게 묘사하셨습니다.
중생이 행을 일으켜 입으로 항상 부처님을 부르면 부처님께서 바로 들으시고; 몸으로 항상 부처님께 예경하면 부처님은 바로 보시고; 마음으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은 바로 아신다. 중생이 부처님을 억념하면 부처님 역시 중생을 억념하신다. 중생이 부처님을 뵙기 원하면 부처님은 바로 그 생각에 응하여 눈앞에 나타나신다. 衆生起行, 口常稱佛, 佛即聞之; 身常禮敬佛, 佛即見之; 心常念佛, 佛即知之。 衆生憶念佛者, 佛亦憶念衆生。 衆生願見佛, 佛即應念, 現在目前。
중생들이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부처님은 즉각 들으시고, 중생들이 몸으로 부처님께 예배를 하면 부처님은 즉각 보시고, 중생들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억념하면 부처님은 즉각 아신다는 것입니다. 중생이 염불하며 부처님을 뵙기를 원하면 부처님은 즉각 그 사람 앞에 나타나시니, 바로 이렇게 빠릅니다!
선도대사님께서는 『관경』의 하품을 해석하실 때에 “아미타불께서 소리에 응하여 바로 나타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관경』에서 하품중생의 사람은 부처님의 명호를 한 번 밖에 부르지 않았지만 아미타불께서 즉각 그 사람 앞에 나타나셔서 그를 영접하여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하였습니다. 마치 당신을 부르는 우리의 소리에 응답하듯이 즉각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왕생은 아주 아주 쉬운 겁니다.
이 사례 역시 임종할 때에 비록 식물인간·혼수상태 등등이더라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제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조념을 해준다지만 그 사람은 이미 혼수상태에 빠졌잖아요! 제가 그에게 법문을 해준들 그가 들을 수 있을까요? 그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에게 염불을 해주면 효과가 있을까요?”
반드시 효과가 있습니다! 반드시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그가 아주 분명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은 절대로 그에게 미안한 얘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개야, 내가 죽었는데도 여전히 나에 대한 험담을 하다니! 당신은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은가!” 그땐 좋은 말로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어야 하는데, 그럼 그는 아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상인(혜정법사)의 사촌매형은 한평생을 오로지 교사생활만 하시던 분이셨는데, 종교신앙이라곤 전혀 없었을 뿐더러 종교를 연구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는 63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30여년의 교사생활을 하셨지요. 이 30년 동안에 그는 교육계에서 40여 차례 표창을 받았고 25차례 공을 세웠으며, 또한 대만의 최고지도자의 접견도 받았으니, 교육방면의 그의 성과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에 대해 굉장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셨으며 거기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었지요.
그가 63세가 되던 해에 그의 학교에서 100주년 개교기념일 행사를 하게 되었는데, 개교기념일 행사에 관한 업무들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얼굴이 시퍼렇고 검게 변하여 급히 병원으로 보내어 구급치료를 하였지요. 그의 딸이 와서 보고는 깜짝 놀라 “아버지!”하고 부르는 소리에 기적이 나타나 심장의 박동은 회복되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를 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때 그의 부인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아! 나에겐 아직 스님생활을 하고 있는 사촌동생 한명이 있잖아. 아마 스님에게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래서 스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녀는 스님에게 무슨 신통력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고명한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스님께선 병원으로 오신 뒤에 그 상황을 보시고는 바로 그에게 염불을 해주셨지요. 그의 병이 매우 위중하여 중환자실에 계셨기에 매번 30분씩 매일 세 번을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이 30분 중 15분가량의 시간을 가족들로 하여금 그에게 말을 걸도록 하였지요. “아버님! 우리는 당신을 매우 사랑합니다. 꼭 살아나셔야 합니다!” 그의 부인도 그의 머리를 빗겨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머리를 빗는 것을 많이 좋아하셨는데, 제가 머리를 빗겨드릴게요, 아주 멋져요!”(그는 한평생 부처님을 믿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은 15분 동안은 스님께서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아주 정성스럽게 염불을 하셨지요.
환자는 줄곧 깨어나질 못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43일이 지났습니다.
43일 째 되던 날 그의 셋째 딸(평소에도 불교를 믿지 않았습니다)은 어떻게든 자신의 아버지를 살리려고(그들은 매우 효순하였습니다) 하는데, 마침 어느 도량에서 불공드릴 준비를 하면서 “아무개님, 여기로 오셔서 불공을 한번 드려보세요, 아마도 당신의 아버님께 도움이 되실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바로 거기로 가서 염불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염불을 하다가 점심 11시가 되었을 때 하나의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아주 큰 연꽃위에 장엄하게 앉아서 허공중으로부터 표연하게 내려오셨는데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출가한 스님들처럼 빡빡 깍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게다가 입고 있던 옷도 스님들이 입는 가사, 비스듬히 걸친 가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딸은 종교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기에 이런 현상을 보고도 이것이 서상이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질 않았습니다.
이때 그녀가 전화 한통을 받았지요. “아버님이 곧 임종할 것 같아, 빨리 돌아와”(같은 시간에 그녀의 아버지는 심장박동을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매우 슬퍼하며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그녀는 매우 슬펐습니다.
그 당시, 이 도량에 티벳 라마 한분이 계셨는데 점심공양을 할 때 그녀가 급히 떠나려는 것을 보시고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남아서 공양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녀를 대신해서 대답을 하였지요. “그녀의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급히 서둘러 가셔야 합니다” 라마께서 그녀를 위로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당신의 아버님은 현재 부처님과 함께 계셔요. 오늘 우리가 여기서 드린 불공 중에 가장 성공적인 불공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공을 드릴 때 라마께서는 진언을 외우고 계셨지만 그녀는 진언을 외울 줄 몰랐습니다. 불자가 아니었기에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남들이 진언을 외울 때 그녀는 혼자서 아미타불만 불렀던 것입니다. 대략 11시 정도에 이런 광경을 본 것이었지요.
이 광경은 충분히 그녀의 아버지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셨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한평생 불교를 믿지 않으셨는데다가 빛이 나도록 머리를 빗고, 매끈하고 줄이 선 양복까지 입고 계셨는데, 어떻게 딸이 본 아버지의 모습처럼 뜻밖에도 그런 출가자의 모습이겠습니까? 게다가 어떻게 가사를 입고 연꽃에 앉아서 방광을 하며 오셨겠습니까?
이에 대해 혜정법사님께서는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사실 요 43일 동안 그가 계시던 병원의 중환자실은 폐관수행을 하는 관방關房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혜정법사님께서 그에게 법문하시기를, “아무개님, 당신은 현재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이 바로 사망하기 전 단계라는 겁니다. 만약에 살아날 수 있다면 당연히 아주 좋겠지만, 살아날 수 없다면 곧 죽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평소 종교신앙이 있든 없든 잠시 차치하고, 만약에 사후세계가 없다면 그럼 그만이겠지만,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육도윤회를 해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므로 마땅히 염불하여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절대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 당신을 싫어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 그에게 염불을 매번 15분씩 세 번, 총45분을 해주셨으며, 평소에도 염불기 한 대를 머리맡에 틀어놓고 하루 24시간을 부처님명호를 들려주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처럼 장엄하게 왕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에 그가 법문을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아, 이건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라고 느끼고서 염불을 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땐 ‘그 사람은 완전히 죽은 사람이잖아요, 저기에 누워서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불러도 듣지를 못하고 말을 걸어도 대답을 못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상황입니다. 우리 염불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평소에 염불을 하였기 때문에 그와 같은 그런 상황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많이 좋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때가 되면 아미타불께서 틀림없이 오셔서 우리를 영접해주시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마음속으로 편안하고 즐겁고 가뿐하게 아미타불을 따라서 극락세계로 갈 것입니다.
【염불을 한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죽을 때 상황】
다들 죽을 때의 상황을 알고 싶으세요? 염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온 하늘과 땅이 컴컴하고 염라대왕과 큰 귀신 작은 귀신들이 작살과 칼과 쇠사슬……등등을 들고서 칼 빛과 검 그림자가 온 하늘을 가리며 몰려와서 그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그럼 염불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이때는 온통 상서롭고 온화한 기운들로 가득하지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땐 우리가 크게 숨을 쉬고 작게 숨을 쉬고, 눈을 크게 떴다 작게 떴다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심식은 이미 아미타불께서 영접하러 오신 것을 봤습니다. 아! 온통 부처님의 광명으로 가득한 가운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그리고 수많은 불보살님들이 호호탕탕하게 무량무변하게 계시고, 공중에서 미묘한 하늘음악을 연주하고, 하늘에서 갖가지 미묘한 연꽃들이 흩날려 떨어지며, 갖가지 미묘한 향기들이 허공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보살 성중들은 손에 보배 연꽃을 들고 우리 앞에 다가 오시고, 우리가 밤낮으로 그리던 아미타불께서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시어 대광명을 놓아 우리를 가지加持해 주십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그대가 한결같이 염불한 까닭에 내가 그대를 영접하러 왔노라!”고 하시면서, 보배 손으로 한번 손짓하면 우리는 순식간에 연화보대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그 때에 우리는 대단히 기뻐하지요! 직접 부처님의 존안을 친견하고서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우리는 절을 합니다. 선도대사님께 두 구절 말씀이 있는데, 우리들의 왕생의 쉬움과 수승함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머리 숙여 예불할 땐 이 세상이었는데, 머리 들어보니 이미 아미타불의 나라에 이르렀다네. 低頭禮佛在此界, 擧頭已到彌陀國。
우리가 머리를 숙여 예불을 할 때에는 아직 사바세계였으나, 머리를 들어 보니 이미 극락세계에 이르렀다는 말이지요. 바로 이렇게 빠르고 이렇게 쉽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에 일향전념만 한다면 임종할 때 정념이 없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주 분명하고 아주 뚜렷하게 자신이 성중들을 따라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점은 모두 난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복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많은 선근’――염불이 바로 많은 선근입니다.다들 할 수 있겠지요? (대중)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선근이 없을까봐 걱정하실 건가요? (대중) 아닙니다!
만약에 걱정이 된다면 그래도 염불을 해야 합니다. 염불만 하면 바로 많은 선근이니까요.
두 번째, ‘일심불란’――전專이 바로 일심불란입니다. 전심專心이 바로 일심이고 전념專念이 바로 불란입니다.다들 할 수 있겠습니까? (대중)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심불란’은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가 전수염불하고 일심불란하게 염불만 한다면 임종할 때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실까요, 오시지 않을까요? (대중) 오십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는데, 그럼 우리는 전도될까요, 전도되지 않을까요? (대중) 전도되지 않습니다!
전도되지 않아요! 반드시 왕생합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점은 모두 난관이 되질 않습니다. 만약에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미타불을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 기뻐하게 될 겁니다. 좋아요! 염불이 바로 많은 선근이니, 나는 현재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전일함이 바로 일심불란이므로 나는 전일하고 또 전일할 것입니다. 이렇게 임종할 때가 되면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영접하러 오시므로, 목숨을 마칠 때에 나의 마음은 뒤바뀌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스런 겁니다.
그렇다면 『아미타경』의 이 단락의 경문은 아주 간단하고 아주 분명하여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다음은 아직 두 가지 작은 문제가 남아 있는데, 약간의 마무리 작업이니 우리는 그것을 해결해보겠습니다. |
4. ‘선남자·선여인’에 관해서
【염불이 바로 선남녀이다】
첫 번째 문제, 무엇이 ‘선남자·선여인’일까요?
경문에서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명호를 집지한다”고 하셨지요.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비록 염불을 하더라도 만약에 오계십선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왕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미타경』에서 선남자·선여인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러하다면 우리 많은 사람들은 또 눈이 휘둥그레질 겁니다. 자신을 생각해 보면 ‘오계십선을 실천하였는가? 아니다!’ 그럼 왕생할 수 없으면 어떡하지? 이것도 문제입니다.
사실은 이것 역시 문젯거리가 되는 게 아니라 경문에서 말씀하신 ‘선남자·선여인’에 대해 오해를 한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아미타불께서 스스로 ‘시방중생’을 구제하시겠다고 발원을 하셨는데, 시방중생에는 삼배구품과 일체 선악범부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불께서 어떻게 중간에서 방해를 하며 오직 선인만이 염불해서 왕생할 수 있을 뿐, 악인은 염불을 해도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경문에서는 분명히 ‘선남자·선여인’을 말씀하셨으니,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먼저 정답부터 말씀드릴게요. 당신이 염불을 하면 바로 선남자·선여인이고, 당신이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설사 오계십선을 닦는다하더라도 역시 ‘선남자·선여인’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관경』에서 부처님의 찬탄】
우리는 경문의 증거를 보겠습니다. 예컨대 『관경』하품상생의 경우, 본래 십악의 죄를 지은 사람이었지요. 경문에서 ‘많은 나쁜 짓을 저질러 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하셨는데, 살생·투도·사음·망어·양설·악구·기어·탐·진·치…… 등을 전부 다 범했습니다. 그는 한평생 좋은 일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나쁜 짓만 일삼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곧 죽게 되었는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마땅히 진정한 악인이라 불러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럼 임종하기 직전에는요, 그가 선지식을 만났는데, 선지식은 그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쳐주셨지요. 그래서 그가 바로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자 아미타불께서 즉각 나타나 그를 영접하시면서 찬탄을 하셨는데, 뭐라고 찬탄하셨습니까?
선남자여!
그대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까닭에
모든 죄가 소멸되어 내가 그대를 영접하러 왔노라
善男子! 以汝稱佛名故, 諸罪消滅,我來迎汝。
한번의 염불을 했기 때문에 아미타불께서 그를 선남자라고 찬탄하신 것이지 그의 평소 행위에 의해서 찬탄한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그에게는 온갖 나쁜 행위만 있었기에 언급할 수가 없거든요. 그가 염불을 한 까닭에 아미타불께서 그에게 ‘선남자’라는 칭호를 한 것입니다. 왜 염불만 하면 선남자라 불릴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염불을 하면 모든 죄업이 사라지고 공덕을 구족하고 악인이 선인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 까닭에 ‘내가 그대를 영접하러 왔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선남자’든, ‘모든 죄업이 소멸됨’이든, ‘내가 그대를 영접하러 왔노라’든 모두 염불을 했기 때문이므로, 네 구절 가운데 ‘그대가 염불을 한 까닭’이 핵심입니다. 즉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까닭에 선남자라 부르는 것이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까닭에 모든 죄업이 소멸되는 것이며,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까닭에 내가 그대를 영접하러 왔노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죄가 얼마나 큰지를 막론하고 당신이 염불만 한다면 악을 선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관경소』의 해석】
우리는 선도대사님의 해석 몇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관경소·산선의』
『아미타경』에서 설하시길,
“일체 범부가 일일에서 칠일 동안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전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
고 하셨다.
《彌陀經》中說:“一切凡夫,一日七日,一心專念彌陀名號,定得往生。”
선도대사님은 『아미타경』의 경문을 인용하여 해석을 하셨는데, ‘선남자·선여인’을 ‘일체범부’로 해석하셨습니다. 따라서 ‘일체’라고 말한 이상, 그 속에는 선인도 포함하고 악인도 포함하므로 일체 선악범부를 말하는 것이지요.
【『관념법문』의 해석 1】
2. 『관념법문』
『아미타경』에서 설하시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남자·여인이 하루나 이레 동안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전념한다면, 그 사람이 임종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자연히 오셔서 영접하게 되어,
곧바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하셨다.
《彌陀經》中說:“佛言:若有男子、女人,或一日、七日,一心專念,彌陀佛名。
其人命欲終時,阿彌陀佛與諸聖衆自來迎接,即得往生西方極樂世界。”
이 단락의 경문 중에서 선도대사님은 ‘선善’자를 생략해버리고, 직접 ‘남자·여인’이라 말씀하셨는데, 이것 역시 선악에 관계없이 선악을 모두 그 속에 포함한다는 의미입니다.
【『관념법문』의 해석 2】
3. 『관념법문』
『아미타경』에서 설하시길,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든,
일체 죄업 짓는 범부들이 다만 마음 돌려 아미타불을 부르며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되,
위로는 백년을 다하고 아래로는 칠일, 일일, 열 번, 세 번, 한 번 등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다면)
목숨을 마치려고 할 때, 부처님과 성중들이 자연히 영접하러 오시어 바로 왕생을 하게 된다”
고 하셨다.
《彌陀經》云:“若佛在世,若佛滅後,一切造罪凡夫,但回心念阿彌陀佛,願生淨土;
上盡百年,下至七日、一日,十聲、三聲、一聲等;
命欲終時,佛與聖衆,自來迎接,即得往生。”
이 단락은 더욱 명쾌합니다. ‘일체 죄업 짓는 범부’라고 말한 것은, 곧 당신이 선한 범부든 아니면 악한 범부든 막론하고 일단 범부라면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은 더욱 높습니다. 염불을 완전한 선으로 간주한 것이므로, 염불의 선에 견주어 볼 때 범부의 선은 여전히 죄업이어서 전혀 선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경문에서 ‘선남자·선여인’을 말한 것은 그가 이미 염불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말한 것이고, 선도대사님의 해석은 본래 그가 아직 염불을 하지 않은 각도에서 말한 것입니다. 본래는 ‘일체 죄업을 짓는 범부’였지만 염불을 해서 ‘선남자·선여인’으로 불리게 된 것이므로, 이는 『관경』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미타경』에서 말하는 선의 기준】
세간 사람들이 말하는 윤리도덕의 관념도 우리는 선이라 부르지요. 우리는 “아무개는 선을 닦고 덕을 쌓은 선인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은 세간의 윤리도덕을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극락왕생하여 성불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렇다면 오계십선으로는 자격이 안 되므로 ‘선남자’라 불릴 자격이 없겠지요.
이 ‘선남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걸까요? 『아미타경』의 앞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 으뜸가는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사느니라.
諸上善人,俱會一處。
또 ‘적은 선근과 복덕’을 가진 사람은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으뜸가는 훌륭한 사람’이란 당연히 아비발치阿鞞跋致의 보살과 일생보처一生補處의 보살들을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등급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계십선을 으뜸가는 선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광대사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세간의 선업을 만약에 염불의 정업淨業에 견주어 말한다면 여전히 악업이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윤회하는 것이고 여전히 오염된 것이어서 기껏해야 우리로 하여금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도록 해줄 수 있을 뿐, 생사해탈하도록 해줄 순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아라한과 같은 성인일지라도 만약에 아비발치·일생보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분들은 성불의 싹을 틔울 수 없는 ‘바싹 마른 새싹과 썩은 종자焦芽敗種’에 불과하므로, 선이 아니라 악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선이라 불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염불을 하면, 육자명호 속에 아미타불의 과지의 공덕이 원만히 구족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선근·큰 선근·가장 수승한 선근·위없는 선근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선남자·선여인’으로 불리를 것입니다. 그러니 오직 선을 닦고 덕을 쌓는 사람만이 자격이 있고 능력이 있고 아주 좋은 선심善心이 있어서 그런 사람이 염불해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나는 어떤가? 망상도 있고 잡념도 있고, 또 나쁜 생각들도 있기에 나는 염불해도 아마 왕생할 수 없을 거야’ 이렇게 의심하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염불만 하면 모두 ‘선남자’라 불리게 되고, 장래에 왕생하여 ‘으뜸가는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게’ 됩니다.
이것이 ‘선남자·선여인’에 대한 해석입니다.
5. ‘약일일약칠일’에 관해서
【임종에 이를 때까지】
두 번째 문제, 무엇이 ‘약일일……약칠일’일까요?『
아미타경』에서 ‘명호를 집지하여 약일일……약칠일 일심불란하게(執持名號, 若一日……若七日,一心不亂。)’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약일일……약칠일’은 하루나 이레에 한정된 게 아니라 한평생을 염불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방금 우리가 배운 선도대사님의 『관념법문』에서는 “위로는 백년을 다하고 아래로는 칠일·일일·열 번·세 번·한 번에 이르는 등”이라 해석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아미타불의 48대원 중 제18원에서 말하는 ‘내지 십념’입니다. ‘내지’란 곧 많게는 한평생의 염불로부터 적게는 열 번·한 번의 염불을 말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선도대사님께서 총괄적인 설명을 해주셨지요.
한번 발심하고 나서,
맹세코 이번 생이 다할 때가지 물러남이 없이,
오직 정토왕생을 기약으로 한다.
一發心以後,誓畢此生,無有退轉,唯以淨土爲期。
이것을 ‘약일일……약칠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일단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심하면, 나는 죽을 때까지 한평생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를 말하는 겁니다.
경문의 ‘약若’은 ‘또는或者’과 같은 정해지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부정사不定詞입니다. 그럼 왜 정해지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이 법문을 만나게 되는 시간에는 각자 빠름과 늦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은 이 법문을 만나고 나서 그 다음날에 바로 숨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 하루 동안 그가 일심불란하게 전수염불을 한다면, 이것을 ‘약일일, 일심불란’이라 부르고, 또 어떤 사람이 삼일 째 되는 날에 숨이 끊어져 이틀 동안 염불할 시간이 있었다면, 이것을 ‘약이일, 일심불란’이라 부르며, 또 어떤 사람이 염불하여 칠일이 되는 날에 숨이 끊어졌다면, 이것을 ‘약칠일, 일심불란’이라 부릅니다.
이치대로라면 그 뒤로 아직 약팔일·구일·십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럼 언제까지일까요? 쭉 목숨을 마칠 때까지입니다. 그런 까닭에 『아미타경』에서 “약일일……약칠일”을 설하고 나서 바로 이어서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라고 설하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매우 분명한 것은 쭉 임종할 때까지 끊임없이 명호를 집지해야만 비로소 ‘목숨을 마치려 할 때’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선 이 시기에 당신더러 염불을 하지 말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겠지요.
그러나 어쨌든 끝없이 예를 들 수는 없기 때문에 칠일을 들어 기한으로 삼은 것인데, 이것 역시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표현법으로서 칠일을 하나의 주기로 삼은 것입니다. 칠일이 지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여 약일일·약이일……약칠일이 되는 것이지요.
또 지나면 다시 약일일……약칠일, 끝없이 반복됩니다. 이는 마치 한 주에 칠일이 있는 것처럼 칠일이 지나면 다시 처음부터 월요일·화요일…… 계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끝없이 길어도 역시 칠일이어서 칠일이 곧 영원한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목숨이 끝나야만 비로소 상관없게 되겠지요.
염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끝없이 되풀이되므로 선도대사께서 해석하시길, “칠일 밤낮 마음에 틈새 없고, 장시간 행을 일으켜 배가 됨도 모두 그러하네. 임종할 때 성중들이 꽃을 들고 나타나니, 심신이 용약하여 금색 연꽃에 앉노라(七日七夜心無間,長時起行倍皆然;臨終聖衆持華現,身心踴躍坐金蓮。) ”고 하셨지요. 배가 된다는 게 바로 곱절에 곱절을 반복한다는 말로서, 시시각각 죽음을 준비하되 죽지 않으면 계속해서 임종할 때까지 염불한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 체득】
‘약일일……약칠일’과 관련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목숨은 덧없다, 염불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왕생은 쉽다’ 등의 세 가지 체득이 있습니다.
⑴ 사람의 목숨은 덧없다: 매일 죽는 날이 다가올 것을 준비하면서 일찍 정토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오늘도 염불소리 가운데 또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 죽지 않았구나?! 아! 그럼 이것이 바로 약일일이고, 오늘도 또 죽지 않았다면, 이것이 바로 약이일입니다.
⑵ 염불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정토왕생을 간절히 바라는 가운데 자연히 염불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인데, 죽지 않고 한 숨만 붙어있어도 하루 동안 염불을 하는 겁니다. 칠일을 일주기로 반복하고, 또 칠일을 일주기로 반복하고 해서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만 있으면 염불하는 것이지요.
⑶ 왕생은 쉽다: 일일에서 칠일까지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한다고 하니, 듣기만 해도 아주 쉽고 환희심이 생기지요. 만약에 성도문의 수행을 말한다면 그들은 ‘삼대아승지겁’을 말해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감히 생각조차 못할 겁니다.
Ⅲ. 총결
【핵심 중의 핵심】
『아미타경』의 이 단락 경문에 대해 우리는 이미 자세히 배웠습니다. 다들 좀 복습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많은 선근과 복덕’에 관해서고, 둘째는 ‘일심불란’에 관해서고, 셋째는 ‘심부전도’에 관해서고, 넷째는 ‘선남자·선여인’에 관해서고, 다섯째는 ‘약일일……약칠일’에 관해서입니다. 이 다섯 가지 점에 대해 일반인들은 왕왕 글자 그대로 뜻을 짐작하기 쉬워서 오해가 생길 수 있지요. 그러나 만약에 선도대사님의 해석에 의거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아주 분명해질 것이고, 마음이 분명해지면 신심도 견고해지고 확고해져서 수행하는데 힘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선도대사님은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선도대사님의 해석은 곧 하나의 ‘전專’――전칭불명(專稱佛名: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전칭불명이 바로 ‘많은 선근’이요,
전칭불명이 많은 선근인 까닭에 ‘선남자·선여인’이라 부르는 것이요,
전칭불명하여 각자 수명대로 길고 짧음의 제한이 없는 것이 바로 ‘약일일·약칠일’이요,
전칭불명하되 순일하여 뒤섞임이 없는 것이 바로 ‘일심불란’이요,
전칭불명하면 임종할 때 부처님께서 자연히 영접하러 오시어 불력으로 보호해 주시므로 자연히 ‘심부전도’하여 정념으로 왕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이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고, 중점 중의 중점이며, 관건 중의 관건입니다.
【경문과 조사해석의 대조표】
다음은 『아미타경』의 이 단락 핵심경문과 선도대사님의 해석에 대해 문장별로 대조하는 도표를 만들었는데, 도표 위에는 선도대사님 저서의 명칭 및 문자를 인용한 『선도대사전집』중의 쪽 번호를 열거해 놓았습니다.
아미타경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명호를 집지하여 일일이든 ……칠일이든 일심불란하면 그 사람이 임종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이 사람 앞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칠 때 마음이 전도되지 아니하고 바로 아미타불의 극락국토에 왕생하게 되느니라 ⑴ 관경소 현의분48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들었으면 마땅히 명호를 집지해야 하는데 일일 내지 칠일 동안 일심으로 왕생을 발원하면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영접하여 왕생한다 ⑵ 관경소 산선의250 일체 범부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일일에서 칠일을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전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 ⑶ 관경소 산선의250 일체 범부는 죄와 복의 많고 적음, 시절의 오래고 가까움을 막론하고 다만 능히 위로는 백년을 다하고 아래로는 일일에서 칠일에 이르기까지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전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 ⑷ 관념법문 344 만약 어떤 남자와 여인이 <!--[if !supportEmptyParas]--> <!--[endif]--> 칠일 밤낮 및 일생을 다하여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전념하며 왕생을 발원한다면 <!--[if !supportEmptyParas]--> <!--[endif]--> ⑸ 관념법문 355 만약 어떤 남자여인이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일일이든 칠일이든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전념하면 이 사람이 임종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자연히 영접하러 오시어, 곧바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⑹ 관념법문 360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든, 일체 죄업 짓는 범부들이 <!--[if !supportEmptyParas]--> <!--[endif]--> 다만 마음 돌려 아미타불을 부르며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되, <!--[if !supportEmptyParas]--> <!--[endif]--> 위로는 백년을 다하고 아래로는 칠일, 일일, 열 번, 세 번, 한 번 등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다면)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목숨을 마치려고 할 때, 부처님과 성중들이 자연히 영접하러 오시어 바로 왕생을 하게 된다 ⑺ 왕생예찬 539 만약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들었으면 마땅히 명호를 집지해야 하는데 일일이든, 이일이든, 내지 칠일이든 일심으로 칭명염불을 하여 난잡하지 않으면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이 사람 앞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 사람이 죽을 때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바로 저 나라에 왕생하게 된다 ⑻ 왕생예찬 540 만약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을 칭념하되 칠일 및 일일이든, 아래로 십성 내지 일성·일념 등이든 <!--[if !supportEmptyParas]--> <!--[endif]--> 반드시 왕생한다 ⑼ 법사찬 437 <!--[if !supportEmptyParas]--> <!--[endif]--> 여래께서 요법을 선택하여 아미타불을 부르라 가르치시니 칠일 밤낮으로 마음에 틈새가 없고, 장시간 행을 일으켜 배가 됨도 모두 그러하네 전일하고 또 전일하게 임종할 때 성중들이 연꽃 들고 나타나시니, 심신이 용약하여 금색 연꽃에 올라앉게 되는데, 앉을 때 바로 무생법인 얻고, 일념사이 부처님 전으로 영접한다네
이 도표는 일목요연합니다. 『선도대사전집』가운데 총 아홉 곳에서 『아미타경』의 이 단락 경문을 인용하고 있지요.
‘선남자·선여인’을 해석하실 때 ‘선’자를 전부 생략해버렸고,
‘약일일·약칠일’을 해석하실 때는 곧 수명의 장단에 따른 ‘위로는 백년을 다하고 아래로는 한 번에 이르기까지’ 한평생의 염불이라 하셨습니다.
‘일심불란’이 바로 ‘일심전념’이라 해석하셨으며, 총 여섯 번 ‘전’자를 사용하셨습니다.
‘심부전도’는 모두 생략해버리고 해석하지 않으셨는데, 이것은 당연한 것이어서 해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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