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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정성과 부처님 가피>

-광우스님-


얼마 전에 소나무 애청자인 불자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연세가 팔십이 넘으신 거사님입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체험한
불보살님의 영험담을
꼭 전해주고 싶다는 바램으로
저에게 연락을 하신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거사님의 울음 섞인 이야기를
경청하였습니다.

아~!
저 또한 한 사람의 자식이요,
한 사람의 불제자로서,
마음 뭉클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이 가슴 떨리는 소중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


얼마 전에 전화가 왔다.
최00거사님이다.
평소 소나무(http://www.btn.co.kr/pro/Program_contents.asp?ls_StSbCode=CATPR_01&PID=P938)의 애청자이다.
소나무를 보면서
어머니가 체험하셨던 기도 가피가
자꾸 생각이 났다.
불자님들과 꼭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광우 스님에게 연락을 했다.
그 이야기를 풀어본다.

부모님은 나주 근처에
작은 마을에서 살고 계셨다.

어머니가 아들 넷을 낳았는데 모두 죽었다.
아들을 낳기만 하면,
낳는 차례대로 5~6살을 못 넘기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아이 넷을 떠나보냈다.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가슴을 치면서
전생의 업보가 두꺼워
팔자가 더럽다고 한탄하셨다.
아버지는 홧병이 나서
매일 술에 빠져 살며 폐인처럼 지냈고
항상 어머니를 구박했다.

어머니는 불심이 깊었다.
틈만 나면 절에 가셨고,
매일 염불을 하셨다.
항상 관세음보살을 염불하셨다.
어머니는 홀로 품팔이를 하며
근근이 끼니를 때우셨다.
그 퍽퍽한 살림 속에서도
조금씩 모아둔 쌀을 쥐고서
절에 가 불공을 올렸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이
나주에 있는 복암사라는 절이었다.
집에서 절까지 10킬로미터를 걸어 가야했다.

어머니는 절에 가면
부처님 앞에서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늘 관세음보살을 염불했다.

어느 날이었다.
새해 첫 날을 맞이하였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설날부터 집 안 물건을 다 때려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어머니는 서러워 우셨다.
그리고 다음 날도 아침 일찍 절에 가셨다.

법당에 앉아 부처님 앞에서
숨죽여 울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염불을 하셨다.
합장한 손으로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한없이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그러다가,
순간 비몽사몽이었다.
염불하다가 깜빡 졸았나보다.
꿈을 꾸었다.

꿈에, 왕관을 쓴 보살님이 나타났다.
잉어 2마리를 주면서 말씀하셨다.
“집에 가져가서 잘 키워라.”

화들짝 놀라며 치마폭에
잉어 2마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잉어를 키웠다.
갑자기 큰 집의 형님이 찾아왔다.
큰 집 형님이 잉어 한 마리만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한 마리를 건네 주었다.
며칠 후 큰 집 형님이 다시 찾아왔다.
자기가 키운 잉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가 급히 고개를 돌려
자기가 키우던 잉어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생기 활발하게 펄펄 살아있었다.
어머니는 잉어를 보며 안심 하였다.

순간,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법당 안이었다.
“희한한 꿈이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법당 안에서 잉어 꿈을 꾸고 나서
얼마가 지난 뒤에 임신을 하였다.
신기한 것이 비슷한 시기에
큰 집 형님도 임신을 하였다.
달이 차서 어머니는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지금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최거사님이다.
같이 임신했던 큰 집 형님도
아들을 낳았는데
얼마 안 되어 아기가 세상을 떠났다.
법당에서 꾸었던 꿈 그대로였다.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다시 삶의 희망을 되찾았다.
남편이 술 마시고 구박해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의지할 수 있는 아이가 생긴 것이다.
마지막 낳은 아들도 5살을 못 넘길까
잠시 걱정도 했지만,
꿈에서 관세음보살이 점지해준 자식이니,
이번에 낳은 아들은
끔찍한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나
불보살이 보호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매일 새벽에 기도를 올렸다.
오십 여 가구가 사는 시골 마을에는
우물이 두 개가 있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첫물을 뜨고
정안수를 올린 뒤에 손을 비비면서
하염없이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관세음보살님, 부디
우리 아들 건강히 자라게 해주시고,
하는 일 모두 다 잘 풀리게 해주십시오.
그저 우리 아들 건강하고
잘 되게 해주십시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오직 아들이 잘되기만을 빌었다.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던 분이었다.

어머니 나이가 40대 즈음,
아들의 나이가 7~8살 때였다.
어머니 젖가슴에 큰 혹이 자랐다.
지금 생각하니 유방암이었던 것 같다.

병원 없는 시골 마을
가난한 주부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시신을
방 안 한구석에 두고
장례 준비를 하러 나갔고
어린 아들은 차가워진
어머니 품에서 엄마 몸을 주무르며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숨이 끊긴 뒤였다.
어머니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저승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걷다 고개를 넘으려는데
갑자기 왕관을 쓴 보살님이 나타났다.
“어디 가느냐?”

어머니가 왕관 쓴 보살님을 쳐다보니
하얀 닭을 안고 계셨다.
왕관을 쓴 보살님이
닭을 어머니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이 닭을 놓지 말고 잘 갖고 있거라.”

그리고 보살님은 사라졌다.
어머니는
얼떨결에 닭을 받았는데
가슴에 안은 닭이 갑자기
부리로 어머니의 젖가슴을 마구 쪼아댔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지만
놓지 말라 했기에 꾹 참고
닭을 계속 안고 있었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마구 쪼던 닭이
갑자기 어머니의 목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꼬끼요!!!”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머니는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딘가, 정신은 몽롱한데
멀리서 아들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들이 자신의 옆에서
목이 찢어질라 울고 있었다.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는 생각했다.
“내 아들 두고 이대로 갈 순 없다.
이대로 갈 순 없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정신을 차렸다.
마을에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고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그 시대,
가난한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민간 치료를 했다.
기껏해야 약초를 찧어서
가슴에 바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였다.
어머니의 혹이 난 한쪽 가슴이
저절로 터져버렸다.
터진 가슴에서 피고름이 줄줄 쏟아졌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어머니의 병이
완전히 자연 치유되었다.
40대 후반 죽을 고비를 넘긴 어머니는
평생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셨다.
103세까지 사셨다.
103세.

어머니의 태몽과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아들은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의심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어머니가 체험한 삶의 기록이다.

나이 드신 어머니의 가슴을 보면
한쪽 가슴이 완전히 일그러지고
찢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어머니는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아들은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에도
아들은 좌절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관세음보살이 점지해준 아들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관세음보살님이 분명히 도와주실 것이다.
난 분명히 성공할 것이고,
어머니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아들은 사회에 나가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모든 일에 한 치의 틈도 없이
성실하게 살아갔다.

아버지 때문에 술이라면
덜덜 떠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담배도 피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살았다.

아들은 자수성가하였다.
어느 제약 회사의 임원이 되었고,
중국의 대학에 명예교수가 되었고
국내 지방 대학에 총장을 지냈다.
부모님을 애타게 그리며 쓴
시집으로 문학계의 상을 받았다.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아내는
나라에서 주는 훈장까지 받았다.

이 모든 영광이 불보살님의 가피요,
어머니의 정성과 헌신이었다.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사님이 자꾸 우는 것이다.
왜 우냐고 물으니,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추운 겨울 한 새벽에 정안수 떠놓고
오직 아들만을 위하여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염불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늙은 아들 눈에는 선하다.

거사님이 울면서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지금 들려드린 이야기는
결코 한 치의 거짓도 없으며
모두 어머니께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부디 불자 분들에게 전해주시오.
부처님은 분명히 계시고
보살님은 분명히 계시다.
불보살님의 가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증거가 우리 어머니이다.”

_()__()__()_


지금 이야기를 올린
거사님은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사진과 프로필이 등재된
유명인사입니다.
다만,
거사님의 소중한 사생활을 위해
개인 정보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거룩하신 보살님들이여,
귀의합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Posted by 慧蓮(혜련)
|


<아미타염불 가피로 어머니 치매가 치유되다>


얼마 전에,
승가대학교에서 학업에 정진 중인
사미니 스님이
잠시 볼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평소에 친분이 있기에
스님과 차 한 잔 마시며
짧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
사미니 스님이 저에게
직접 전해준 이야기입니다.

사미니 스님의
같은 문중이며 한참 위 항렬인
선배 비구니 스님이 체험하고
사미니 스님에게
직접 들려준 이야기랍니다.

이 신비한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신심이 나서,
순간 생각하기를,
‘광우 스님에게 말해주어야겠다.
불교TV 소나무에서
많은 불자들에게 전해주면
불자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
싶은 마음에
저에게 전해준 이야기입니다.

사미니 스님의 법공양에
감사드립니다.

///

어느 비구니 스님이 계십니다.
속세 나이가 60 안팎 정도 되십니다.
비구니 스님에게는
연세가 많은 노모가 계시는데
갑자기 치매가 오셨습니다.
치매에 걸린 후로
몇 년 정도 흘렸나 봅니다.

노모의 치매가 호전될 기미도 없고
주변의 가족 분들도
점점 지쳐갑니다.
문득,
비구니 스님은 결심합니다.
‘어머니의 평온과 안락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올리자.’

비구니 스님은
어머니가 더 이상 병고에
고통 받지 않고
편안하시기를 발원하며
매일 매일 간절히
염불 기도를 올립니다.
매일 매일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정성스럽게 부르며
정진하였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 날 꿈을 꿉니다.
스님이 꿈속에서
평소처럼 염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퍽하면서
몸에서 시커먼 것이
쏟아지더랍니다.
깜짝 놀라
뭔가 하고 보았더니
바닥에
시커먼 하루살이 벌레가
수북이 쌓여있더랍니다.

꿈속에서도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손이 쑥 나오더니,
장삼자락으로
그 벌레들을 빗질하듯
싹 걷어가더랍니다.
그리고 벌레는 사라지고
바닥은 아주 깨끗해졌답니다.

꿈에서 깨고 난 뒤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호전 증상을 보이더니,
지금은
그 지독한 치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아주 건강하게 지내신답니다.

비구니 스님도
자신이 겪은 일이지만
너무나 놀랍다고 합니다.

_()_ _()_ _()_

불법은 심오하고
불보살의 가피는
중생의 앎으로
헤아리기 어렵도다.

선지식께서
늘 말씀하시길,
우리 앞에 펼쳐진
행복과 불행이 모두
자기가 지은 업연이라 합니다.

눈앞의 장애를 소멸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업장부터 녹여야합니다.

누구나 믿음을 갖고
바른 마음으로
꾸준히 정진한다면
반드시
업장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소원을 성취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일념’ 이라고 합니다.
기도가 일념이 되면
결정코 가피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일념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간절함’이라고 했습니다.
간절함은 곧 ‘정성’입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간절하게,
꾸준히 오랫동안
염불한다면
틀림없이
불보살님의 가피와
자비 광명을 체험하게
될겁니다.

기도하는 분들이
꼭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똑같이 기도를 해도
전생의 복이 많은 사람은
기도 성취를 빨리 이루고,
전생의 업장이 두꺼우면
기도 성취가 더디게 일어납니다.
이것도 자신이 지은
업연이겠죠.

중요한 것은,
좋은 일이 일어나든
나쁜 일이 일어나든
염불하는 그 자리가
곧 가피라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가피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염불해서 편안한 그 마음이
가피인 것입니다.

당장 효과가 있냐 없냐에
빠지지 말고
꾸준히 정성스럽게
평생 닦는 마음으로
공덕의 길을 걸을 뿐입니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평온하시기를
안락하시기를
일체 중생이 다함께
행복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Posted by 慧蓮(혜련)
|

경남 김해 동림사(東林寺)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화엄(華嚴)스님이 계십니다. 이 화엄스님은 동산(東山)큰스님의 제자로서, 특별한 출가인연을 가지고 계십니다.

1925년생인 화엄스님은 일본 경도(京都)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남양군도로 끌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미군들과 전투를 치르던 어느 날, 갑자기 공중에서 포탄이 떨어져 수십 개의 파편이 다리 속으로 박히는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고, 파편 제거수술을 완벽하게 받아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이상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항상 저리고 아파서 올바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절뚝절뚝 걷게 되었습니다. 이 부상때문에 제대를 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영영 불구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또 엎친 데 덮친다고, 때마침 그와 사귀던 여인마저 기숙사에 불이 나서 타죽고 말았습니다.

몸도 좋지 않은데다 마음의 상처까지 받은 그는 수양을 하기 위해서 부산 범어사 대성암(大聖庵)으로 들어갔고, 그곳 스님들은 그에게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외울 것을 권하였습니다.

처음 심심풀이 삼아 보문품을 읽던 그는 차츰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고, 나중에는 틈만 나면 목청을 가다듬어 '관세음보살'을 염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을 대성암에서 지낸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범어사 뒤의 금정산을 오르고 있는데, 산위로부터 갓을 삐딱하게 쓴 영감님 한 분이 내려오더니 대뜸 욕부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잇, 지질이도 쓸모없는 놈! 의사란 놈이 다리를 절뚝절뚝 절고 다녀? 침을 한 대 맞아야 되겠구먼."

영감님은 품속에서 넓적하게 생긴 대패침 하나를 꺼내서 콧김을 쐰 다음 상투에 쓱쓱 문질렀습니다.

"이리 와."

그리고 강압적으로 팔을 잡아당기더니 대패침으로 파편이 박혔던 허벅지를 꽉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아야!"

그는 고함을 지르면서 깨어났고, 깨고 보니 꿈인데 허벅지에서 고름이 한 사발이나 쏟아져 나와 있었습니다. 고름을 닦아낸 그는 방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고, 묘하게도 그토록 아프고 저렸던 다리가 멀쩡하게 나아있었습니다.

"내 다리가 낫다니! 의학을 전공한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 일이다. 인간의 의술이란 대의왕(大醫王)이신 불보살의 능력에 비한다면 태양 앞의 반딧불과 같은 것! 반딧불 같은 기술을 지닌 의사가 되어 무엇하랴. 정녕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됨이 옳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는 동산스님의 제자가 되어 법명을 '화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처음 사미계를 받을 때 내가 인계승(引繼僧) 노릇을 한 인연으로 그와는 꾸준히 친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교에는 대의왕이신 불보살님들이 가득합니다. 그 분들은 어떠한 병이라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감응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열쇠를 쥐고 있는가? 바로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부디 마음을 모아 기도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불보살의 밝은 자비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기도 (일타큰스님의 기도성취 영험담 모음집)

....................................................................................
월간 불광(佛光)

1997년 6월호

선지식 탐방/경남 김해 동림사 조실 화엄(華嚴)스님
"아무데도 내가 없음을 알 때 세상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옵니다."

정리·사기순

화엄 스님은 1923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였으며 1945년 일본 대판의전을 졸업하였다. 1948 년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동산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화엄사 등 전국의 제방선원에서 20년 안거를 성만하였다. 범어사 주지·성원장, 김해 영구암 주지를 역 임하였으며, 12년 전 김해 동림사를 복원, 현재 동림사 조실로서 찾아오는 참선납자들을 제 접하는 한편 중생교화에 원력을 바치고 있다. 또한 스님은 그림과 서예에 달통, 여러 번의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무심(無心)으로, 일필휘지로 구사하는 달마도는 선화(禪畵)의 독보 적 경지를 구가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해 신어산(神魚山), 신령스러운 잉어가 살았다는 그 푸른 산빛 속에는 가야불교의 향기가 베일에 가린 채 스며있었다. 산빛 돌빛, 한 조각 바위의 문양만 보고도 그 역사를 읽어낼 수 있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말없는 설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언제나 그날 이 오려는가, 그저 큰스님 말씀에 집중하여 녹음기를 풀고 또 풀어낼 뿐, 큰스님들의 수행의 노래를, 그 참다운 삶의 실상을 제대로 전할 수 없어 늘 부끄럽고 죄송하다.

선(禪)을 해야 비로소 부처님의 본뜻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만,

"선이라, 선이 뭐 따로 있나요, 선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지극한 정성이 선입니다. 지성으로 하면,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면 선 아닌 게 없습니다.

선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 멸진정(滅盡定)에 이르는 외도선이 있지요. 개구리, 뱀 따위가 가을이 되면 동면상태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봄이 되어야 깨어나는데 잠들고 있는 그 동안은 일 초 일 분도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잠들고 있을 때는 밥 먹을 걱정도 없 고, 망상도 없고, 일체 생각이 없지요.

외도선은 개구리와 뱀이 동면상태에 든 것처럼 멸진정에 들어가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 데 인도에는 지금도 외도선 수행자가 많이 있습니다. 멸진정은 선을 해보면 반드시 겪게 되 기 마련인데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 경계를 넘어 꿈 가운데서도 명명백백하게 나 를 알고,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놓치지 않고 제 본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 의 본성은 물론이고 이 우주의 이치를 깨치는 방법이라야 비로소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깨쳤다고 해서 당장에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깨쳐도 망상은 없어지지 않아요. 세 세생생 익힌 습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는 없지요. 다만 깨치고 나면 망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자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수행을 하다보면 우주가 콧구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던가, 자기는 물론이고 남의 전생, 금생일을 다 꿰뚫어 보기도 하고, 자기 몸이 방광(放光)하여 밤중에도 세상이 다 보이 는가 하면, 산문 밖에 사람이 오는 것도 알고,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신통력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다 외도라, 거기에 빠지면 공부는 더 이상 진전이 없습니다.

그런 외도에 빠지지 않고 본래면목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며 용맹 정진해야 하는데, 무엇 보다 오계를 잘 지키고, 선방에 앉아서 망념이라도 부지런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만히 앉 아 있으면 생각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파도가 치니 물결이 이는 것과 같이 본 래 조용한 마음에 파도가 안 치니 십오야 달이 밝게 비치는 것입니다. 일체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아 공부가 잘 되면 동(動)이 곧 정(靜)이 되고 정(靜)이 곧 동(動)이 됩니다.
물론 선방에서 가부좌 틀고 앉아 있는다고 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행에 길을 들이기 위해서 선방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길을 들이다 보면 칠흑같이 어 두워진 마음이 환해져서 '나다 너다' 하는 일체의 분별이 없어지고 그야말로 대자유인의 경 지에서 노닐 수 있게 됩니다."

하안거 입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공부하는 수좌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좀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선방에서 앉아 있는 것은 그저 부처님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합 니다. 선이라는 것은 지극한 신심으로 이 마음을 비우고 시방 제국토에 이 마음을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쳤을 때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이치를 알게 되고, 본래 간직한 평등 한 성품이 드러나게 되는, 한마디로 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 젊은 납자들이 선방에 가기 전에 찾아와서 묻곤 하는데, '중 바로 되었을 때 불교가 뭔지 모를 때 닦아야 한다. 초발심의 그 순수한 마음에 장판때가 오르고, 부처때가 오르고, 절때가 오르고 신도때가 오르고 잘 먹고 잘 사는 때가 오르면 금생에 공부 못 한다. 만일 이러저러한 때가 오르기 전에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면 일찍이 하산하라. 아니면 인연처소에 가서 천일이고 백일이고 지성껏 기도를 하여 마음을 텅 비우라'라고 말해줍니다."

참선 수행과 아울러 기도를 강조하시는 데에는 특별한 뜻이 있으실 듯합니다.

"참선과 기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고 지극한 정성으로 하면 되 는 것입니다. 참선이다 기도다 이름만 달랐을 뿐이지 실은 하나입니다. 참선하고 기도해서 잠자는 것도 잃어버리고 밥먹는 것도 잃어버리고, 여태까지 쌓은 지식이니 지혜니 하는 것 도 전부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참선하는 것, 기도하는 것도 다 잃어버리는 그 자리, 지성껏 그 자리에 들어가야 비로소 참선이니 기도니 하는 이름을 불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래의 자기 마음자리에 들어가면 그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고 늙은이도 젊은이 도 아니고 부처도 중생도 아닌, 나다 남이다 일체 구별이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본지풍광의 마음자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근원적으로는 참선과 기도가 둘이 아닌데 밖으로 드러난 모양이 다를 뿐인데… 참 선한다고 수십년 선방에 다닌 사람이 참선과 기도를 병행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조 하느냐 그것이 궁금한 게지요?

선방에서 수행을 한 30년 했으나 깨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요. 또 선방에서 만난 수많은 스님들 가운데 진짜 참선의 맛을 본 납자가 몇 되지 않아요. 선이 그렇게 어려운 것 입니다. 실로 참선은 대기대승(大機大勝)의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확철대오하기가 힘든게 사 실입니다.

수십년 장판때를 묻히고 앉았는 데도 왜 이렇게 안 되는가 고민 중이었는데 언젠가 고승 전을 보게 되었지요. 고승전에 의하면, 100명의 성불한 스님네들 중에 99명이 염불을 해서 깨쳤다는 것입니다. 참선이 깨달음의 지름길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다 생겁에 익힌 버릇 때문에 참선이 그토록 힘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생부터의 습(習)인 시기, 질투, 미움 등 갖은 악업을 지닌 채 참선을 하다보면 힘이 모자라고 마장이 생기는데 먼저 그 업장을 기도로 녹여야 합니다. 병아리가 아무리 안 에서 몸부림쳐도 나올 수 없다가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주었을 때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 는 것처럼 기도를 해서 자기 업을 뚫고 나와야 한단 말입니다. 그야말로 줄탁동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선과 기도를 병행해야 업을 삭이고 견성을 하기 쉽습니다."

수행하시면서 인상에 남는 일화가 많으실 듯 합니다.

"거짓말 같은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게 다 사도(邪道)요, 쓸데없는 망상이라, 구태여 한 가지 얘기하라면, 선방에 다닐 때였는데 해제철이 되면 걸망 지고 돛대 없는 배처럼 바람 부는 대로 만행을 다녔지요.

그렇게 다니다보면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기 마련인데, 절은 너무 멀고 마을의 여염집 에선 음식이다 뭐다 차려놓고 법문해달라고 성화라 아직 공부가 덜 되었는데 누구를 제도하 겠는가 싶어서 아예 마을 어귀의 상여집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루는 상여집에서 가부좌 틀고 앉아 끄떡끄떡 졸고 있었는데 몽 중에 여자귀신이 나타나 '스님이 왔는데 대접할 게 없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나서 퍼뜩 정신이 들었지요. 귀신이 날 보고 있다는 것은 공부가 덜 된 것이라 생각하니 '아차' 싶어 화두를 챙겼지요.

내가 항상 들고 있는 화두가 '견문각지시심마(見聞覺知是甚?)라, 보고 듣고 깨치고 아는 놈, 이 놈이 뭐꼬'인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앉아 있다가 다시 졸음이 와 앉은 채로 잠들었 는데 몽중에도 화두가 생생히 살아 있었지요. 그렇게 앉아 있자니 귀신이 '스님이 어디갔지' 하며 밤새도록 찾아 다니더군요. 그밖에도 특이한 경험은 많이 했으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런 현상에 집착하면 이미 불도(佛道)와는 삼만팔천리 멀어지게 되는것입니다."

일타 스님이 쓰신 책에서 스님의 출가 이야기를 읽었는데 매우 신비로웠습니다.

"1944년 일본의 대판의전에 다닐 때 학도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끌려 갔다가 다리에 중상 을 입었습니다. 해방 후 다리가 아파서 요양차 범어사에 갔었는데 그 길로 출가를 하게 되 었지요.

처음엔 스님이 뭔지도 몰랐어요. 다만 다리가 너무 아파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수 주를 외우면 다리가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범어사 미륵암에서 그저 일구월심 천수 주를 외웠습니다. 그런데 한 6개월 천수주를 외우니 지리천문 알게되고, 7개월째, 8개월째 에는 수천리 밖이 보이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이었는데, 법당의 신중탱화에서 신장이 튀어나오더니 환부를 도려내는 것입니다. 꿈속에서도 아파서 아이구 소리를 내며 눈을 뜨고 보니 법당 바닥에 파 편이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그 전까지 신비한 경계를 대할 때 하고는 또다른 무엇이 가슴을 확 내리치더군요. 아하, 이게 마음의 힘이로구나, 마음을 깨치면 이 몸을 조복받는 것은 물론이요,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부처가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스님, 터만 남아있는 동림사를 복원, 큰법당에도 지장보살을 모셨고,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펼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나는 그냥 앉아만 있었지 복원은 우리 절 조보살이 화주해서 신도들 전체가 한 것입니 다. 지장보살을 특별히 모신 뜻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 속에서 지수화풍 사대의 혜택을 입으며 살고 있지요. 지장보살은 땅과 같이 중생을 키 우고 중생을 살리는 원력보살입니다. 아무리 악한 중생일지라도 지장보살의 마음땅에 떨어 지면 어질어지고 착해집니다.

지옥중생이 다 성불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은 삼 세 부처님의 모체요, 삼세제불의 근본입니다. 48상의 가없는 몸을 나투시어 산 중생뿐만 아 리나 죽은 중생까지 두루 건지시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널리 펼치면서 남은 생을 회향할까 합니다.

요즘 조상공경, 부모공경할 줄 모르는데 참으로 큰일입니다. 조상과 부모는 나무뿌리에 비 유할 수 있습니다. 나무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실하고 열매가 실한 것처럼 조상과 부모를 잘 공경해야 후손이 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조상공경, 부모공경하는 사회가 되어야지 지 금처럼 조상은 물론이고 부모도 몰라보는 사회는 말세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 우선 당장 말초적으로 제 편한 것만 즐기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진실하고 참된 삶을 보여 주는 게 우리 불자의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 찾아오는 신도 님들에게 산 지장보살이 되기를, 모든 것을 공경하고 살리는 일을 해야 은혜로운 삶이 열림 을 강조하고 있지요."

스님, 다가오는 미래세계에 대해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예측하면서 불교를 중심으로 정신 혁명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구두선이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불자들이 시대를 이끌어가며 희망차게 살 수 있도록 한 말씀 더 부탁 드립니다.

"현재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는데, 지금처럼 사람들이 물질에만 급급하고 자기 자신의 겉껍데기만을 위해 아웅다웅 산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절망적일 것입니다. 그나마 눈 밝은 이들이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단히 다행한 일이지요. 불교사상의 근본이 뭡니까? 자기를 텅 비우고 자기의 진면목인 불성을 찾아 성불하자, 부처 되자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교학 갖고는 안됩니다. 스스로 수행해야 합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수행하면 나라고 하는 아상(我相)이 무너져 내립니다. 사실 이 세상의 온갖 문제가 이 아상 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한 아상이 스러지면 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이 나오듯 우주 법계가 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수행을 하면 '내가 없구나, 내가 없 구나 아무 데도 내가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없는데, 또 남이 없는데 무슨 욕심을 부릴 것이며 누구에게 성을 내고 화를 내겠습니까.

우리 불자들만이라도 이 세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자실 자기가 자기를 잡아먹고 사는 줄을 몰라요. 열심히 정진해서 '나다, 남이다' 하는 잘못된 견해를 두드려잡아야 합니다. 모 든 중생을 부처님처럼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철저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선(禪)임 을 뚜렷이 알고 언제 어느 때나 그 마음 놓치지 않으면 공부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한 사 람들이 많아질 때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불국토가 될것입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종원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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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명자(가명)씨는 타고난 미모에 지성미마저 넘쳐 흘렀는데,
성격이 좀 까다로워 결벽증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결혼하기 2년 전쯤 한 청년의 구혼을 거절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입맞춤하고 포옹하는 등의 사랑의 행위가
매우 추하게 여겨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 청년에게 거의 겁탈당할 뻔하다가 가까스로
그 자리를 벗어났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씨의 부모가
서둘러 지금의 남편과 중매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그 청년은 어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해왔다.

"당신 남편에게 과거가 있는 여자라고 말하겠다.
어디 잘 사나 두고보자."

이런 상황에서 어찌 마음이 편했겠는가? 김씨는 그 때문에
남편과의 잠자리마저 여의치 못해 거의 의무로 여기게 되었고,
결혼후 1년쯤 지났을 때는 신경쇠약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체중이 겨우 40킬로그램 미만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병원에 다니던 김씨는 그 사이에 임신중절을 한 번 했다.
남편과 시부모가 극진히 간호하여 건강이 다소 회복되기는 했지만
왠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不貞부정의 상징처럼 여겨져 그 후에도
임신하면 곧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중절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두 차례나 했다.

결혼 생활이 4년째 접어들면서 차차 부부생활에도 익숙해진
김씨는 아기를 하나 낳았다. 그녀는 이제야말로 마음의 병도
없어지고 몸도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6년째가 되자, 밤에 악몽을 꾸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자 몸에 아프지
않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러다가 "아가야, 용서해다오" 읽고는 묘각 스님에게 연락을
드린 후 찾아와 의논한 끝에 시댁과 남편 모르게 수자령을
천도하기로 했다.

3개월에 걸쳐 방생을 세 번했고, 처음 방생한 날로부터
100일동안 지장보살염불을 했다. 세 아이를 지워버린 사실을
지극히 참회하면서 하루에 1만번씩 지장보살을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째 접어들자 악몽이 차츰 사라지고
입맛도 생겨 마침내 건강도 회복되었다. 그러자 기피하던
잠자리도 즐겁게 변해 남편과의 금실도 좋아졌다.

그 당시 김씨는 임신 8개월이었다고 한다.

..............................................................................
2.


묘각 스님은 어느 촌로로부터 한 번은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를 받으셨다고 한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아가야, 용서해다오.'를 읽고 편지를
올립니다. 저는 나이 69세, 안 사람의 나이는 60세로 농촌에서
어렵게 지내는 농군입니다. 자식이 열이나 되는데, 85년
4월초에 큰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람을 치어
발을 부러뜨려,없는 살림에 논밭을 팔아 합의를 보고 수습을 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 해 가을, 안사람의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은 정신이상이 고질이 되어 혼자 지껄이고 웃기도하며 청승맞게
울기도 했다고 한다.

이웃사람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는
남편이 이웃집 아낙네와 통정을 했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다니기도 했다.
처음엔 미친 소리로 치부하던 동네사람들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자
촌로는 딱 죽고 싶은심정이었단다. 그래서 잡신이 씌인게 아닌가해서
푸닥거리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아무 효험도 없었다고한다.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돌이켜보니, 20여년 전에 자식은 많고 살림은 어렵고해서 6개월짜리
태아를 낙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2개월 된 아이를
남모르게 지워버린 일도 있습니다. 스님께서 쓰신 책을 읽고 혹시나
그 아이들의 靈障영장인가해서 부끄럼을 무릅쓰고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올바른 하교를 부탁드립니다."

스님은 편지를 받고 전화를 걸어 그 촌로를 상경하게하여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촌로는 집안이 너무 어려워 서울오는 차비까지 이웃에서 간신히
빌려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튿날 스님이 두 아이의 불명을 짓고 천도할 준비를 하자, 촌로는
아무 준비없이 왔으니 일단 그냥 내려가겠다고 자리를 뜨려했다.

촌로의 사정을 이미 알고 계셨던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제자인 제가 돈이 없다고 천도를 안 해드리겠습니까? 딱한
일을 보고 외면한다면 어찌 불제자라 하겠습니까? 아무 걱정마시고
천도나 정성껏 하십시오."

천도재가 끝나자 스님은 촌로에게 매일 지장경을 독송하고 츰부
다라니를 외게했다. 반 년쯤 후 촌로가 찾아와 집사람의 이상한
증세가 사라지고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하고는 그 동안 빚을
진 것 같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하면서 주섬주섬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놓는데, 어느덧 그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괴어있었다.

스님 역시 눈물을 훔치며 공양주보살에게 촌로가 가져온 곡식을
깨끗이 씻어 오게해서 불단에 올리고는 함께 예불을 올리셨다고한다.


.............................................................................
3.

1991년 당시 23세의 정이(가명)라는 여인이 편지를 보내
스님에게 상담을 청했다.

그 결과 그녀는 무려 30명의 수자령을 천도했다.

아니 30명이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정이는 가난한 어촌에 태어나 중학교만 마치고 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보려고 야학에도 열심히 다니는 소녀였다. 그다지
미인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천성이 밝고 붙임성이 좋아 공장의
남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어느해 여름 야유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평소 잘알고 지내던
주임과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정이는 그날 술을 처음 먹어보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한다. 정신이 깼을 때 정이는 이미
그 남자와 넘지않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취방으로 돌아와 그 다음날로 공장을 옮겼다.

그러나 그 남자와의 인연은 질겨 결국 동거까지 하게되었고, 그 과정에
두차례 중절수술을 했다.

남자는 시간이 흐르자 정이에게 싫증을 느꼈는지 술과 노름으로
조금있던 저축을 다 까먹고는 사라져 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에 건강마저 나빠진 정이는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생활비도
못대고 밥만 축낸다는 핀잔만 들었다. 그래도 고향이라고 그 곳에서
몸을 추스린 정이는 다시 도시로나와 공장을 전전했지만 결국
호스티스 생활로 접어들게 되었다.

돈은 잘 벌게 되었다. 집에 송금도 많이해서 효녀라는 말을 듣고
대접도 극진히 받았다. 그러나 그게 과연 행복이었을까?

정이는 얼마가지않아 이유없이 아프고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때문에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있기 일쑤였다.

악몽은 늘 이랬다. 갓난아이를 안아주거나 업어주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꼭 악귀처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거나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이
깼다가 다시 들라치면 이젠 그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날이면 꿈 속에서 아이들이 때렸던 곳이 너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정이는 여러 병원과 한의원을 찾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래서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묘각 스님과 인연이 되어 천도재를 올린 정이는 집으로 돌아가
츰부다라니와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를 매일 한 편씩 100일동안 사경을 했다.

사경을 끝내던 날 밤, 정이는 꿈에 구름 속에 계신 부처님을 보고
환희심을 느꼈다.

그 날부터 기분이 몹시 좋아진 정이는 거짓말처럼 몸이 좋아졌고,
이에 불보살이 시방세계에 상주하심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지금 정이는 착실한 남편을 만나 아들 하나를 낳고 어느 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
4.

기독교신자인 오부인은 어느날 묘각 스님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다.

"스님, 일전에 친구집에서 스님이 쓰신 "아가야, 용서해다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요즘 身病신병으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닌데,
아무래도 중절한 아이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불교를 믿지않아도 아이의 영혼을 천도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대자대비하신 불보살님께서 종교를 가려가며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어찌되었든 같은
종교인의 입장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시고 한 번 절에 들르십시오."

며칠 후 찾아온 오부인은 친정이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시집을 간
후 시댁 식구들에게 모두 기독교를 전도한 그야말로 모범적인 교인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님은 그런 오부인이 왜 중절 수술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더란다.

그러자 오부인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 땐 너무 살기가 어려워
그만 큰 죄를 짓고 말았다며 가슴아파했다. 오부인은 한 번의 유산과
두 번의 중절 수술을 했는데, 특히 허리와 어깨가 몹시 아팠다고 한다.

처음엔 오부인도 중년이 넘으면 생기는 그저 그런 병이라고 치부했는데,
좀처럼 통증이 가시지않아 좋다는 병원을 여러곳 전전했지만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몸이 아파 누워있는 나날이 많자 가정살림도 점점 엉망이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잘되던 남편의 사업마저 기울어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게 되었다.

오부인은 묘각스님과 상담한 후 절에서 천도재를 지낸 뒤 100일을
작정하고 집에서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자아게를 하루 한 편씩 사경했다고한다.

그리고 그 사경은 나중에 부처님 앞에 모셔졌다.

100일이 거의 가까워질 무렵 오부인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질이던 허리와 어깨의 통증이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남편의 사업이 다시 잘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져서
살만해진 오부인은 불교쪽으로 기운 생각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속된 말로 불교가 최고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종교가 다르다해도 불보살님들은 고통받는 중생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1~4 출처: 알기쉬운 지장보살 지장기도 이야기(진 현종저, 도서출판 은행나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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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태아 영가로 인한 흉사는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에서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이 태아 영가를 중요시 하는 이유
역시 태아 영가로 인한 많은 흉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한 번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7번의 윤회전생을 한 후
겨우 인간의 몸을 받는다고한다.

인간의 몸을 받으려는 순간 본의 아니게 태중에서 낙태된 태아령
은 원망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태아 영혼은 이름도 없고 장례식
도 없이 단지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예전에는 강가에 띄어졌다.

때문에 태아의 영혼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고 있는 삼도천
(三途川)을 건너 불계(佛界)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부모의
공양 없이는 갈 수 없으므로 공양해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
이 더욱 쌓여 간다.

13년, 17년, 23년…. 공양을 올리지 않거나 천도재를 지내지 않으면
세월이 지나도 태아 영가는 중음신으로 떠돌게 된다.

태아영혼을 방치하면 그 때부터 태아령은 가족을 괴롭힌다.
태아령은 제일 먼저 어머니 몸을 악화시키고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가 난 태아령은 스스로 부모를 불러, 하루라도 빨리 삼도천을
부모와 함께 건너야 한다는 생각에, 가정에 흉사를 안겨주기도
한다.


통계에 의하면 태아가 낙태된 지 3주기, 7주기, 13주기, 17 주기
되는 해에 재앙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13주기, 17주기에 재앙이
심하다고 한다.

이 중 제일 심한 해가 17주기. 우리로 말하면 중학생 초기, 고등
학생 초기에 해당한다. 이때에 부모는 기도와 참회로서 태아령을
위로해 주는 것이 좋다.


일본에서는 부모가 병들었을 경우, 자녀의 입학시험·결혼·신축·
사업 시기 등에 태아령을 위안하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6, 7개월 된 태아를 낙태할 경우 흉악령이 되지 않도록 반드시
공양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절아의 영혼이 지펴있는 사람이 많다.

그 영장이 생기는 사람들은 원인이 분명치않은 병에 걸린다거나,
사업상 지장을 받는다거나 하는 여러 형태로 고뇌하게된다.

그러다가 다행하게도 그런 일들이 바로 영장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천도불공으로 그 영장을 벗어나는 사람도 꽤 많다.

여기 소개하는 체험담은 내가 수집한 6천여건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영장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참고가 되리라 생각하여
소개하는 바이다.


천도한 중절아가 목숨을 구해주다

"우울증이라고나 할까요, 극도의 노이로제에 걸려서..."

지바시(千葉市)에 사는 오오가와(41살)씨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따라온 부인도 몹시 어두운 표정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나요?"

"그럭저럭 5,6년 되었을까요, 여러가지로 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낫질않아요."

"그럴만한 무슨 이유가 있을겁니다."

살 맛을 잃은 노이로제 환자

내 질문에 부인이 대답하려고하자 오오가와씨는 가로막으며 자신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업의 실패입니다. 조그만 공업사를 경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6,7년 전부터
계속 부진했습니다. 초조해졌죠.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점점
더 안되는거예요. 자금을 조달하려고 뛰어도 좀처럼 되질않아요. 어떤 때는 단돈
30만원도 마련이 되지않을 때도 있었어요. 일감이 있어도 운영자금이 없어서
못하게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점점 이상해졌군요."

"그렇습니다. 잘 안되려니까 무엇을 해도 안되더군요. 그것때문에 노이로제가
되었고, 지금까지 세 번이나 자살미수를 저지를 정도로 살맛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어졌습니다."

"그래, 그 공업사는 어떻게 되었나요?"

"빚으로 넘어갔습니다. 친척이 되는 사람이지요. 전에는 대게 신세를 지던 사람인데
이제는.... 분명히 내가 그 사람에게 빚을 졌으니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오오가와씨는 눈에 띄게 초조해졌고 이야기를 더 계속하려고 했다.

그러나 더 들어봐야 사업이 실패한 구차스런 이야기일테고, 그보다도
차라리 그가 그토록 궁지에 빠지게된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중절한 아이때문에 탈이 생기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자녀는..."

"사내아이 하나입니다."

부인이 대답했다.

"부인께서는 임신중절을 한 일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 애 하나만 낳고 더 낳질 못했어요."

"오오가와씨는 부인과의 사이에는 중절하신 일이 없으신데
혹시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

"......"

"예, 있습니다."

부인이 대신 대답을 한다. 오오가와씨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아마 대여섯번은 되지요?"

내 질문에 부인이 대답한다.

"맞습니다. 제가 아는 것만도 여섯 번이나 됩니다."

"오오가와씨께서 사업에 실패하신 것도, 지금 같은 병에 걸린 것도
모두 그 중절아들의 원한때문입니다."

"미친 소리...그럴 리가 있나?"

오오가와씨는 갑자기 화를 내듯이 큰소리를 쳤다.

"그렇지 않아요. 자기 자신이 새 생명을 끊었는데요..."

"지워버린 아이의 영혼때문에 탈이 나다니 어리석은 소리요."

"아니예요. 저는 믿어요."

막무가내로 믿으려하지 않고 대들려는 남편을 제지하고 부인이
나섰다.

"무슨 소리야. 어떻게 지운 아이의 탈이 난단말야?"

오오가와씨는 부인에게 대들었다.

"어떻게라뇨? 당신이 아무리 아니라고해도 지금 현실적으로
당신이 당하고 있지않아요? 그 아이들의 영혼을 천도해주고
원한을 풀어주지않으면 앞으로 더 심한 일이 생길거예요."


반신반의로 천도해보니...

나는 오오가와씨를 설득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같아 그 부인에게
천도해주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남편이 뭐라고 하든 천도
시키도록 종용했다.

그리고 4개월쯤 지났을 때 그 내외가 다시 찾아왔다.

"거, 참 신기하군요. 안식구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했는데
탈이 차츰 걷히기 시작한 거예요. 천도불공을 하는 동안에 아주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난쟁이처럼
아주 작은 아이가 눈앞에 나타나더니 자살을 못하게 하더라구요.

그 뿐 아니라, 더 신기한 일이 생겼어요. 전에 어느 큰 회사의
일을 맡아서 해준 것이 잘못되어 그것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회사가 엉망이 되기 시작했었는데, 그 잘못이 회사 자체의 실수
였다는 것이 판명되어 손해보았던 큰 돈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오오가와씨는 겸연쩍은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그런 일들이 모두 중절아의 천도 덕분이예요."

옆에 있던 부인의 말에 그는 아무 말없이 그저 끄덕이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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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악몽은 사라지고, 자식도 얻고...


히로시마시에 사는 요오꼬부인에게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저는 결혼한지 8년되는 33세의 주부입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결혼 후 아홉 번이나 유산을 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임신하면 석 달을 못 채우고 유산이 되고 맙니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아무리 해도 아이를
못 낳습니다. 임신할 때마다 이번만은 꼭 낳으리라 생각하고
의사선생님께도 각별히 부탁을 드리고 조심을 하는데도 유산이
되고맙니다.

왜 그럴까요? 남편과 시어머니는 어서 아기를 낳으라고 성화입니
다만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실은, 결혼 전에 꼭 한 번 중절한 일이 있는데 그 중절아 때문에 탈이
나서 유산이 되는지요?

요즘은 무서운 꿈에 시달립니다. 꿈 속에서 손발이 문들어진 아이,
얼굴은 해골이고 몸은 멀쩡한 도깨비 같은 것들이 제게 덤벼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저의 목을 조르기도 합니다. 매일 밤 꼭 같은 꿈을 꾸느라고
한숨도 자지를 못합니다.

한 번 중절했다고 말씀드린 것은, 어느 남자와 둘이서 부부가 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22살 때였지요. 그런데, 그 남자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넉 달째 부득이 중절을 했습니다.

넉 달째 접어들었기 때문에 중절 때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과거를 깨끗이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결단을 내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지금 남편과 알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복이 없는지 낳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사경(寫經)으로 중절아의 영혼 천도를...


그 편지를 받은 뒤 직접 본인을 면담하고 조사해보았다. 그 결과 역시
중절아의 탈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그녀는 곧 천도불공을 시작했다. 그녀는 사경하는 방법을 택했다.

매일 중절아를 위해 기도하고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천도 불공의 효험이 차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일 시달리던 꿈은 안꾸게 되었고 몇 달이 지났다.

"덕택에 임신을 했느데 또 유산이 될까 걱정이 됩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영장을 일으켰던 중절아의
천도를 했으니까 유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무사히 순산을 했다. 건실한 아들이었다. 그들 부부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시어머니도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이어서 이제까지는 영혼이니 영장이니하는
것은 귓전으로도 듣지않던 시어머니도 아홉 구의 유산아 영혼을 위해
그녀와 같이 천도불공을 시작했다.

중절아의 영혼 천도로 영장이 소멸되었는지, 태어난 아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온 집안이 손자를 중심으로 밝은 나날을 보내게되었다.


얼마 뒤 "둘째가 생겼어요."
하는 그녀의 밝은 음성을 들었다.

이 부인처럼 영장이 가시고 자식을 얻었다는 사람이 꽤 많다.

의학적으로 보아, 유산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절아의 영장을 없게
함으로써 악몽은 사라지고 자식복도 얻게 된 사람들은 모두
중절아의 영혼 천도를 한 덕분인 것이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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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사도 포기했던 방광염이...


중절아의 탈이 방광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꽤 많다.


수많은 편지가운데 방광염으로 고생한다고 호소하는 수가 대단히많다.



중절아의 천도불공을 부탁했는데 좀처럼 낫지않아...

나고야시에 사는 가정주부 하시모또부인(47세)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했다.


저는 수년 전부터 방광염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침도 맞고 뜸도 뜨고
남이 좋다는 것은 다 했으며 병원에도 무척 다녔습니다.권유하는 이가
있어서 한약도 많이 썼고 약초치료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문지에 끼어있던 광고문이었
습니다. 그 광고에는 방광염을 비롯하여 갖자기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있었고 그 원인이 모두 중절아의 영장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병을 고치려는 일념으로 곧 동자관음(童子觀音 주: 일본에는
태아령천도시 80%정도가 지장보살모시고, 20% 정도가 관음보살모심)
을 봉안하고 중절아의 천도를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효험이 없어 편지를 냈더니 본산(本山)으로 오라는
회신이 왔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보았으나 여전히 효험이 없
었습니다.

제발, 저의 방광염이 중절아로 인한 것인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동안 여덟 번 중절했고 그 천도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그 부인을 만났다. 그리고, 방광염이 정말 중절아의 탈인지
심령연구가에게 부탁해서 알아보았다.

그 결과 분명한 중절아의 영장임이 판명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천도를 하도록 권유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하도록 했다.

그녀는 타력과 자력의 차이-천도는 오히려 스님이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기때문에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병을 고치려는 일념으로 나의 지시대로 했다.


남에게 맡겼던 천도를 자신이 직접하다.

그 부인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니, 지금 남편이 세번째
였다. 웬일인지 결혼 6,7년만에 병사하였단다. 그것도 세 사람이
다 급사하였다.

더 자세히 조사해보니 남편이 죽은 해가 대체로 전 남편과의 사이에
생긴 아이를 중절하고 3년째 아니면 5년째와 7년째에 해당하는 해였
다.

-덕택에, 정말 선생님 덕분에 방광염이 나았습니다. 의사선생님도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처럼 오랫동안 갖은
치료를 다 받아도 낫지않아 고민하던 방광염이 완전히 나아서 지금은
아주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부인과 비슷한 경우, 비슷한 체험을 한 분이 제게 오셨던 분 가운데
약 20여명이나 된다. 물론 한 마디로 방광염이라고는 하지만 그 증세는
각기 다 다르다.

심한 사람, 덜 심한 사람, 또 햇수로 보아도 4년, 5년 어느 경우는
10년씩 된 사람도 있었다.

누구나 다 병원에 다니며 효험이 있다는 약은 모두 써 보았고 갖가지
치료를 다 받아보았으나 낫지 낳았던 사라드리다.

그들은 모두 세 번 내지 열 번씩 중절을 한 사람들이었으나 중절아 1구
1구를 모두 지극하게 천도해주고 거짓말처럼 깨끗이 방광염이 나았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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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부부의 불화를 없애고자..

"안 살거야! 나가버려!"

남편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닥치는대로 집어던지고..

도꾸시마현(우리나라의 도)에 사는 니시사까 부인(38세)은
남편이 던진 물건에 맞아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꾹
참고 견디며 매일매일을 눈물로 지내게 되었다.

그것은 어느날, 참으로 우연히도 오랫동안 비밀로 지켜왔던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있었던 임신이 탄로가 나자 남편이
몹시 화가 난 것이었다. 그녀는, 정말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던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정말 잘못했다고 아무리 빌어도, 그는 좀처럼 용서하지
않았다.

그녀는 14년전, 당시 근무하고 있던 어느 식품회사의 상사
에게 강제로 당했고, 그 결과 불행하게도 임신을 했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들은 그 상사에게 결혼하도록 종용했다.
다행히 그 남자는 독신이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수도 있었는데 그 남자는 임신한 아이는 물론 그녀를 강제로
범했다는 사실조차 부인했다.

이런 복잡한 관계도 있고해서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병원에
가서 중절수술을 받았다. 그 때는 이미 5개월째였다.

꼭 13년전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3년째 되던 해에 중매로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고 곧 딸을 낳았다. 7년 전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부상을 당해 실업상태여서 중절을 했었고 5년 전에
아들을 낳았다.



13년 전의 중절이 이제야 탈이 나

그녀 부부는 옆에서 보기에도 금실이 좋았고, 실제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였다. 그런데, 우연히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13년 전의 중절사건이 남편에게 탄로난 것이다.

남편은 그녀의 과거를 용서하지 않았고, 부부사이는 날이
갈수록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혼문제까지 대두되었다.

그로부터 두 부부는 한 지붕밑에 살면서도 마치 남남처럼
지냈다. 드디어 남편은 나가 살게되었고, 결혼 후에 딱 끊었던
외도를 다시 시작하게되었고 여자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있엇기에 이혼할 생각은 없었
다. 더구나 두 아이와 헤어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었다.

그럴 즈음, 그녀는 아는 사람에게서 13년전의 중절아와 7년전 중
절아의 탈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게되었다.

그녀는 두 중절아의 천도를 시작했다. 보름, 한 달, 두 달이 지났
다. 그 사이 남편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효험
이 있음을 확신하고 더욱 열심히 했고, 사경도 시작했다.

"애들 데리고 바람이나 쐬러가지...."

어느 날, 남편의 느닷없는 말에 그녀는 놀랍기도하고 기쁘기도해서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그녀는 탈이 가장 심한 13년과 7년되는 두 아이의 영장을 받았던 것
이다.

부부의 불화를 자력으로 천도해서 영장을 없애고 다시 가정의 평화를
찾은 것이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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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석달 천도불공을 했더니, 암이라던 병이....


"배하고 등이 몹시 아파서..."

오오사까에 사는 게이꼬라는 주부(41살)가 병색으로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아직 아이들은 어리고, 경제도 넉넉치 못해서 시간일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 어디가 어떻게 나쁜가요?"

"배가 묵직하고 등이 당기는 것 같아서, 위장도 아프고 토할 것
같아요."

"허리는 괜찮은가요? "

"허리도 똑같이 아파요. 심할 때는 서있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요."

"어지럽지는 않은가요?"

"현기증도 있어요. 그래서 앉았다가 갑자기 일어나지 못해요."

"언제부터 그렇지요?"

"벌써 4,5년은 되었지요."

"병원에도 가보셨나요?"

"그럼요, 갔었지요. 변검사, 혈액검사 갖가지 검사를 다 했지만
번번이 이상이 없다고해요. 내 꼴이 이러니 집안이 온통 초상집
같아요.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

그녀는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안색도 나쁘고 말하는 것도 기운이
없어보였다.

"얼마 전에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근종같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투로 보아 자궁암인 것 같아요."

"암 검사를 했나요?"

"아뇨, 아직 안했어요. 만약 검사를 했다가 암이 확실하다면 저는
이제 더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도 여기저기가 아파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는데..."

그녀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하고 빌고 있었다.

"중절을 여러 번 하셨군요?"

"예? ...예, 그래요. 그것하고 병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녀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절아의 무서운 영장을 비로소 알고..

"당신의 여러가지 병증세를 보아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하여 탈이
난 것 같군요. 중절을 일곱 번쯤 하셨군요."

'어떻게 그런 것을...맞아요. 네 번은 중절을 했고, 세 번 자연유산
했어요. 그런데, 그 일이 나를 괴롭힐까요?"

"중절아의 영장이 무섭다는 것을 모르셨나요?"

"예, 몰랐죠."

나는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한 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죽 설명해
주었다.

"예,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군요. 그렇지만 제가 중절아들의 원한을 사서
탈이 났군요."

"그런 것 같아요."

나는 그녀에게 일곱 명의 중절아의 영혼을 천도하도록 권했다.

"그렇게하면 제 병이 나을까요?"

"그럼요. 적어도 반 이상은 나을 것입니다. 자궁암도 더 악화되지않고
나을 것입니다. 우선 자궁암이 확실한지 의사의 진찰을 받아보세요.
그리고, 천도도 하시고...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반신반의 야릇한 표정으로 천도방법을 메모해갔다.

그저 신기하다고 할 수 밖에....

"정말 신기하군요. 뼈 아프던 것도 현기증도 나았어요."

그녀는 천도불공을 시작하고 나서 석달 쯤 지나니까 몇 년을 두고
고생하던 몇 가지 병이 전부 나았다고 하며 그저 놀랄 뿐이었다.

"자궁암은 어떻던가요?"

"예, 그것도 나았어요. 먼젓번에는 자궁암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엊그제는 검사결과 암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석 달 남짓 동안의 경위를 보고하듯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탄력이 있었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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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속는 셈치고 천도했더니...

"어-, 어--, 어..."

도꾜시에 사는 미꼬여인(30세)은 이층으로 올라가다가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과 온몸은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4년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집안에서 일을 하거나 2층에 올라가다가도 그런 증세가 일어났다.

여남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두 세번씩 쉬지않으면 안되었다.

병원에 가서 알아본 결과 심장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이후부터
가족들은 그녀를 아주 정교한 유리그릇 다루듯이 위했다. 그녀
자신도 무척 조심했고 언제 어디서 또 발작이 일어날지 몰라서
늘 불안해했다.

"전에 심장이 약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나요?"

"아뇨, 그런 일을 없었어요."

"갑자기 나빠졌군요."

"예, 그래요. 요새는 약을 항상 지니고 다녀요. 찬거리를 사러
갈 때도 겁이 나요."

"중절한 일이 있으시지요?"

"....."

"정확히 대답해보세요. 없으면 없다...있으면..."

"예, 있어요. 세 번..."

"제일 처음 중절이 언제였지요?"

"저..8년 전, 아니 9년 전일거예요."

"8년하고 9년하고는 아주 다릅니다. 정확한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8년 전인 것 같아요."

"기억이 안나시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러나 너무 무책임하군요. 살인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살인이라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화가 난 듯했다.

"중절을 살인과 진배없습니다. 당신의 병은 그 원한때문입니다.
탈이 난 거예요."

"중절아 때문에요?"

"예, 중절아의 영혼이 지핀 것입니다. 죽지 않으려면 그 세아이의 영을
지극하게 천도해주세요. 지극하게 하면 병도 낫습니다."

포기상태이던 심장병이 차츰차츰....

그녀는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자신의 병이 중절아의 영장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설득할 마음이 나지않아 내 말을
믿거나 말거나 일단 천도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긴 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세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일이 있은지 두 달이 지났을 때, 그녀가 찾아왔다.

나는 그 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하, 효험이 있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천도를 한 덕분인가봐요. 심장이 아주 편해졌어요. 두근거리는 증세가
아주 없어져서 이젠 이층에도 단숨에 올라갈 수 있게되었어요."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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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필사적인 천도가 기적을...

"아이를 좀 살려주세요!"

1년 전쯤 와까야마에 사는 나까무라(31살)부인으로부터 한 통
의 편지를 받았다.

절실한 내용의 편지사연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저의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병약했고 게다가 오른쪽 반이
(右半身) 부자유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빈혈증까지 겹쳐
한 달에 한 번씩 수혈을 받아야합니다.

저나 남편은 매우 건강한 편인데 어쩌다 이렇게 병약한 아이가
태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병이 나으면 다른 병이 생기
고, 의사선생님께서도 놀랄 정도로 병약합니다.

왜 그런지 그 원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혹 조사할 일이 있으시면
억지로라도 아이를 데리고 갈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여쭙고자 합니다.

실은 이 아이를 배고 반 년쯤 되었을 때 친구집에서 알게 된 심령
연구가한테서,

"당신에게는 중절아의 영혼이 지펴있습니다. 그 탈로 해서 이 번에
낳는 아기는 병약할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절한 사실은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했었습니다. 남편과의 혼전교섭으로 임신했을 때 중절을 했
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일입니다.

그 심령가의 말대로, 중절아가 있을 때에는 그 다음에 낳는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요. 지금 아이가 병약한 것이 정말 그 때문인지요.

저는 그 사람말이 믿겨지지 않아서 혼전에 중절한 아이를 천도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몸이 부자유하고 병약한 아이가 태어나서
정말 중절아의 탈이 아닌가 생각을 하지만 솔직히 말씀한다면 반신
반의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지도있으시기 바랍니다.

목욕재계 사경으로 병약한 아이의 영장을 없애다

나는 그 부인에게 이제라도 곧 중절아의 천도를 하도록 권했다.
천도여하에 따라서는 그 부자유한 아기, 병약한 아기를 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법은, 지장보살사불과 반야심경의 사경을 하되, 부부의 나이를 합친
만큼 하는 것이었다.

그 부인은 나의 권유대로 그 방법으로 천도를 시작했다. 그 부인은 꼭
목욕재계를 하고 천도를 했다.

한 겨울이어서 목욕재계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중절한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천도함으로써 병약한 아기를 구하겠
다는 일념으로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을 때 이런 편지가 왔다.

-기적이 생겼습니다. 정말 무엇이라고 감사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지시해
주신대로 저는 중절아의 영혼 천도에 온 정성을 바쳤습니다.

사경한 것을 절에 바치고 1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오른쪽
손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 바로 저희 눈앞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매일처럼 다니던
병원에도 거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는 직접 중절아의 무서운 영장을 체험했으며
동시에 온 정성을 다해 중절아의 영혼을 천도하여 다행히 중절한 아이의
영혼이 고이 쉬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서 나도 모르게 울고
맙니다. 반드시 이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 날을 위
해서 저희 부부는 앞으로도 천도불공을 계속할 작정입니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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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죽고싶도록 심하던 안색과 기미가...

"심령치료를 하면 이 기미가 없어질까요?"

하루는 젊은 여성이 찾아와서 상담을 신청했다.

신청서에는 21살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만나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낯빛이 마치 흙빛깔이고 살갗이 온통 시커멓다. 마치 죽은
사람의 살색같았다. 얼굴에는 커다란 기미가 가득해서 차마 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병원에도 가보았나요?"

"병원이란 병원은 다 가보았어요. 그런데, 낫지를 않아요.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구요. 주사, 먹는 약, 갖가지로 애써보았지마나 아무 효과가
없었어요."

"의사들은 무슨 병이라고 하던가요?"

"아주 어려운 병명인데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오오사까에서 회사에 다니는 이찌마양은 힘이 하나도 없어보였고,
반은 포기상태로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창피해서 사람 앞에 나서기조차 두려워서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는데 자살도 못하고..심령치료로 고쳐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 안된다면 이번에야말로 죽고 말겠어요."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가 막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만약 안고쳐주면 죽어버리겠다는 말투도 말투려니와 그런 마음가짐
으로는 고칠 수 있는 병도 고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치고 싶은가요?"

"그러니까 왔지요."

그녀는 이제 자포자기의 상태였다. 나는 그녀의 병증세로 보아 중절아의
영장이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중절이나 유산을 한 일이 없나요?"

"없는데요.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요."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머리를 숙였고 목소리는 모기소리만했다.



낫고 싶은 마음은 접어두고 우선 중절아의 영혼천도부터...

나는 그녀의 태도로 보아 병의 원인이 중절아의 영장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경험으로 보아 젊은 여성, 특히 미혼 여성에게 중절사실을 물었을 때, 정말
없을 경우네는 냉정하게 명확히 부정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아무래도
자신없이 부정을 한다.

따라서 이 아가씨가 입으로는 부정했지만 틀림없는 중절아의 영혼 탈이 난 것
이라고 확신하고 심령연구가에게 보였다.

"아가씨는 감추려고 하지만 두 번 중절했군. 아마 16세 때, 18세 때였을 게야.
내 말이 맞지?"

심령가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지적이 있자 그녀는 드디어 사실을 고백했다.

"비밀로 해 주세요. 부모님이 모르고 계시거든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물론 아가씨가 비밀로 해달라면 비밀로 지켜주지. 그렇지만 아가씨는 그
영혼을 천도해주지 않으면 안돼요. 그렇지 않으면 그 병은 낫질 않아요."

나는 그녀에게 중절아의 영혼천도를 권했다. 처음에는 매우 망설이더니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하면서 중절아의 영혼을 천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영혼 천도를 하면 정말 나을까요?"

"병을 고치기 위해 천도한다면 안되고 우선 자신의 잘못...살인한 죄를
뉘우치고 중절아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해야해요."

그리고 넉 달이 지났을 때,

"보세요. 검은 색이 많이 나아졌어요."

처음 왔을 때와는 딴판으로 밝은 표정으로 다시 찾아왔다.

"천도 불공을 마치고 반달쯤 지나니까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검은 기미가 스러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기뻐서..."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고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그 뒤로도 그녀는 천도 불공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머지
않는 장래에 그녀가 괴로워했던 얼굴의 기미, 검은 살갗은 차츰
희어지리라...

출처: 석묘각 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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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세의 청춘을 좀먹는 원흉은?

"살려주세요."

오오사까시에 사는 스기모또 부인이 나의 상담실을 찾아온 것은
5월 하순이었다.

나는 '상담신청 카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스기모또부인
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카드에는 20살이라고 적혀있는데 보기에는 27,8세 나이에서 30세
가까이 되어보였다. 게다가 얼굴은 창백하였고 젊음이라고는 그림
자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병약한 안색이었다.

병원에 가보았으니 아무 효험이 없어...

"어디 아픈가요?"

나는 말문을 열었다.

"엉망이예요. 몸도 머리도..."

스기모또 부인은 힘없이 대답하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벌써 3년, 아니 4년째 허리가 몹시 아파서 똑바로 펴지도 못하고
구부리지도 못해요. 좀 창피한 얘기지만 변소에 가도 금방 앉리를
못하고, 또한 일어서지도 못해요.

그뿐 아니라, 허리에서 넙적다리까지 저려서 기분이 몹시 나빠요.
어떤 때는 발목까지 저려오기도하고, 오른쪽 손이 저리기도 하고
요. 머리는 언제나 묵직하고 기분이 산뜻해보질 못해요. 왜 그런가
요? 병원에도 숱하게 다녔지만 좀처럼 낫질 않아요."

"산부인과 계통도 안 좋겠군요."

"예, 생리불순인데다 너무 아파서 2,3일은 누워있어야해요. 게다가
요즈음은 거기가 헐어서..."

스기모또 부인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같이 잠자리도 어렵겠군요."

"예, 못해요. 그래서 밤낮 그이에게 구박을 받아요. 그렇지만
못하겠는걸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대로라면 그이하고도 헤어지
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스기모또 부인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 고개를 떨군다.

"중절한 일이 있겠군요."

"예, 예-- 있어요. 다, 다섯번 쯤..."

스기모또 부인은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말하고는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다.

"중절한 아이들을 천도해 주셨나요?"

"아뇨, 안했어요. 그런 걸 몰랐거든요."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죠. 중절한 얘기를 구체적으로 해보세요."

하는 내 말에 그녀는 한참 망설이더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19살되던 해 봄, 5번째 중절 수술을 했는데...

"15살되던 해에 처음으로 중절수술을 했어요. 그이하고 바다에 놀러
갔다가 임신을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알까봐 몰래 수술을 했지요.
무서웠어요.

16살 때 여름에도 중절을 했어요. 그 때는 언니가 눈치를 채고 그이하
고 헤어지라고 호되게 야단을 쳤지요. 그 뒤로는 무척 조심을 했는데
17살 때 겨울에 수술을 받았어요.

그 때는 부모님도 언니도 몰랐는데, 18살 되던 해 정월에 임신했을
때는 들켜서 되게 야단을 맞고 중절수술을 받았어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는데 그때부터 몸이 엉망이
되었어요. 19살때 봄에 다섯 번째 수술을 했는데 그 때는
이미 몸이 말이 아니었어요. 어지럽고, 허리가 아프고, 회사에도
못 나가게되어 매일 누워서 지냈어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몸의 고통을 참느라고 안간힘을 다하는
그녀가 가엾기조차 했다.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중절수술을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지금 또 임신중인..."

"이번에 그냥 낳아야지요."

"그이가 낳지 말래요."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지금 당신의 병은 '중절아'때문에 탈이 난
거예요. 영병(靈病)이예요."

"그래도 그이는....탈이 무슨 탈이냐고 믿질 않아요. "

"부인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이보세요. 당신들은 둘이서 살인을 한 것
이예요. 다섯이나 되는 아기를 죽인거예요. 그 어린 것 즉 태아가 원한
을 품어서 탈이 난 것이란 말이예요."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한 탈에 관해 그 실례
를 그 부인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남편을 데리고 오게해서 '중절아'
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나서,

"두 분이 같이 그 어린 것들의 천도 불공을 하세요."
하고 강력하게 권유했다.

스기모또 부부는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한 탈을 없애기위해 천도불공을
드리고나서

"거짓말 같아요.....깨끗이 나았어요."
하고 자못 신기하다는 듯이 희색이 만면해서 이야기하는 그녀를
나는 바라보았다.

그녀가 내게 다녀간 지 두 달 뒤였다.

"애기도 낳게 되었어요."

무척 기뻐했다.


출처: 석묘각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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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가정주부의 새로운 삶


필자(묘각스님)가 용인에 있을 때 찾아온 어느 부인의 이야기이다.

"스님, 이렇게 죄를 짓고도 부처님의 가피를 바란다는게 너무 뻔뻔스럽지
않겠습니까?""

그 부인은 눈물로 그 동안의 행적을 고백하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으니 이제 제가 할 일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죄가
된다지만, 죄를 조금 더 짓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저는
용서를 빌지는 않겠습니다. 죽은 뒤에 지옥에서 지은 죄의
과보를 받고나서 부처님께 예배하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필자는 그 부인에게 죄와 복에 대한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3년 사이에 10번이나 낙태를 한....

이 부인이 필자를 찾아오는데는 한 달이 걸렸다. 전화를 몇 차례
나 한 뒤였다. 염치도 없고 용기가 나지않는다면서 전화로만
연락을 하던 끝에

"죽기 전에 다 털어놓기나 해야겠습니다."

면서 찾아왔다.

그러나 와서도 죄를 많이 지었다고만 할 뿐 좀처럼 속 사정을 말하
지않았다.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 동안에 차츰 마음도 가라앉고 모든
것을 단념한 듯이 자기의 과거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24살 때, 친척의 소개로 한 1년간 교제하다가 결혼, 평범한 가정생활
을 하면서 아이도 둘을 낳고 그런대로 잘 살았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에 입학할 무렵, 우연한 일로 알게된 어떤 남자와 정이 들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두번 그 남자를 만나서 점심도 먹고 어쩌다 극장에도 가곤
했는데, 그러는 사이 그 남자에게 완전히 빠지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그 남자와는 넘지말아야할 선을 넘게되었고 이렇게되다보니 남편과의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게되어버렸다.

집에서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눈치채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 남자와
의 교제는 3년가까이 계속 되었으며 그 사이 10번이나 낙태수술을 했다.

그러다가 남자쪽에서 차츰 멀리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떠나면 웬일인지
이상스럽게도 꼭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다. 남편에게 부끄럽고 죄가
되는 줄 알면서도 더 애절하게 이 남자를 그리워하게되었다. 남자는
더 이상의 불장난은 서로의 파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감쪽같이 직장도 옮기고
이사를 해버렸다. 종적을 감춘 것이다. 한 달 가까이 찾아다녔으나
헛일이었다.

남자를 찾아다니던 한 달사이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되었고 차츰
이성을 되찾게되었다. 자기가 왜, 이 남자에게 그렇게 빠져들었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3년쯤 세월이 흘렀는데, 남편이
실직하게 되자 생활이 어려워진데다가 자신은 몸에 병이 생겼다.

병원에 다녀도 낫질않았다. 누워있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하루 살아
가는 것이 그렇게 힘겨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가야,
용서해다오'책을 보게되었다.

완전히 책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필자에게 첫번 째 전화를 했다.
그러나, 좀 처럼 모든 것을 다 고백할 용기가 나질않는다고했다.

다섯 번째, 용기를 내서 방문하기로 약속을 하고 만나게된 것이다.


열 아이의 법명(法名)을 짓고 천도


이 여인은 다음날부터 참회와 아이들의 천도를 시작했다.

100일을 한정하고

기도 입재(入齋)는 필자의 절에서 하고, 그 여인은 집에서 필자는 절에서
각각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매달 초하루 보름날은 절에서 불단에 마지를
올리고 공양를 드렸다. 열 아이 모두 법명을 지어 하단(下壇)에 모셨다.

그 여인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시간씩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을 외웠다.

그리고, 낮에는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 자아게(自我偈)를 10장씩 사경했다.


백일기도하고 새 삶을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 강에 나가 방생을 했다. 필자와 그 여인과 둘이
서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 전 강에 나가 동녘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방생을
했다. 안개가 자욱한 물가에 서서 조용히 목탁을 치면서...

그 후 그 여인은 오랫만에 건강을 되찾게되었고, 가정도 안정되었다.

몇 년째 직업없이 하루하루의 끼니마저 걱정해야했던 남편이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지못했던 우연한 인연으로 취직을 하게되면서 차츰 가정ㅇ에 웃음이 피어
나게 된 것이다.

그 부인은 지금 집안 살림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다 기울이는한편,
자신과 같이 불행의 늪에서 남모르게 고뇌하는 여인들을 위해 노력하고있다.

그 사이 3명이나 되는 미혼모와 그 유산아들의 천도를 해주었고 지금도 열심히
그런 여인들을 찾아 고뇌를 덜어주는 일에 열중하고있다.

이러한 일들이 어찌 불보살님들의 중생을 위한 신통묘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무석가모니불!


출처: 석묘각 스님저 아가야, 용서해다오 (간경도감刊)


아기의 영혼천도에 관하여 궁금하신 분은 편지나 전화로
상담하시면됩니다.

서울 사당5동 235-92번지 국청사 묘각스님 (02)538-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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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낙태로 얻은 아픔이었는데...


작년 여름 휴가 때 우리 가족은 온천에서 여름 휴가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에 광륵사에 들렀습니다.

이 절에는 남편이 존경하는 스승님의 부도탑(浮屠塔)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고, 남편의 학창시절 친구이며 오랫동안 불교공부도 같이 한 친구 분이
법사님으로 계시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도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들른 것입니다. 법사님이 서울에 계실 적에 만났었기 때문에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 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하며 오랜
시간 대화를 하였습니다.

이야기하던 중 저는 무심코 남편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 이상 어떻게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보살님이 제 편을 들어줬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아프다고 해서 한약도 지어 주고, 병원에가서 종합진찰을
해본 결과 병이 없으니 신경만 안 쓰면 된다고해서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해줘도
아프다고 하니, 낸들 어쩌라는 말이야."하며 그 동안의 심정을 하소연이나
하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법사님이 혹시 유산한 아이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법사님은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이미 생명체이기 때문에 태아일 때 죽은
아이라해서 전혀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된다.

일본에서는 유산한 아이들을 수자령(水子靈)이라고 해서 천도시키는 일이
일반화 되어있는 것 같더라. 지난 번 텔레비젼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엠(M)의
작가도 그냥 완전한 픽션으로 극본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34세로 결혼한 지 6년이 넘었습니다.

결혼 후 곧 임신을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다음에 곧 임신이 되었는데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유산을
한 뒤부터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집안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하고는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겨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좋아지지는 않아 그 다음에는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임신이 되도 몸이 아프니 또
유산을 시키고, 그렇게 하여 6명의 아이를 유산시키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혹시 산후조리가 안되어 그런가 하고는 다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정성껏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병명이 없이 아프다고 하니
가족들은 이제는 '복에 겨워 그런다'고 하며 관심도 안 갖고 남편마저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저대로 몸도 아프고 마음도 상해 이혼까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 때 온천물에 목욕 좀 하자면서 내려왔다가 광륵사
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했고 법사님은 그러면 지금부터 지장경을
독송한 뒤에 내일 아침에 아이들의 천도를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불교를 믿었지만 저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심지어는 남편이 못마땅하게 할 때는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서 비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그 이야기
가 듣기 싫었는지 법회에도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장경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하니 밤을 새워서라도 읽으려고 결심하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졸려서 한번도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몇 년만에 처음으로 달콤한 잠을 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저는 공양물을 준비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동안 눈물이 마구 나왔습니다. 죽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리고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유산된 아이들의 천도기도를 드리고나니 아픈 것도 덜 아프고 가슴에 맺혀있던
것이 풀린 것 같이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라 오후에 출발을 하려니 법사님께서 집에 가서 지장경을
100번 읽어서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와 유산시킨 아이들과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께서
좋은 세계에 나시기를 발원하며 열심히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몸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지장보살님 정말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까?

제 아픈 몸이 씻은 듯이 나았고 저는 다시금 평범한 가정주부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된 것입니다.

평소에 무관심했던 불교에 대해 귀의심(歸依心)을 내게 되었고,
이제는 불제자가 되어 지장경 독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다시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지장 보살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출처: 무등산 광륵사 (www.ekaya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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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ㄷ사의 태아령 천도기도에 동참한 광주의 한 보살님은 기도 접수한
날 밤에 꿈을 꾸었다. 극락전에 와서 기도를 모시는데 법당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 보니 꾀죄죄한 아이들이 수없이 몰려들어서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때묻은 손으로 불전에 올려진 과일과 떡을 가리키고
자기들 입을 가리키며 먹을 걸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위패만 올리고 제물을 차려주지 못한 것을 깨닫고 몇사람이 떡과 우유,
과일 등을 준비해 와 관욕(영가 목욕의식)부터 시작하여 천도재를 정성
스럽게 베풀어 주었다.

이튿날 새벽 예불을 모시는데 깨끗하고 말쑥해진
아기들이 한 줄로 서서 법당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기도중에 보였다.

그 신도가 애들을 보며 "웬 애들이 들어오지?"하고 말하니, 애들이
돌아보고 손가락질 하면서 "우리 보고 애들이래. 자기들도 애들이면서……"
하고는 영단 위패로 사라졌다고 한다.


출처:월현사 포교원간 영험의 진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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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부산의 한 보살님은 여섯 번 중절 수술을 하고 난 뒤 늘
기운없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전화로
태아천도기도접수를 하였다.

그날 밤 꿈속에 아기를 낳아 품에 안았는데 아기의 눈이
아닌 어른의 눈이 자기를 원망의 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젖을 꺼내어 먹으라고 했더니 갓난 아기가 입을 열어 또렷한
발음으로 "업장이 많은 여자의 젖은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식은 땀이 흐르고 계속 그 원망스런
눈빛이 자기를 지켜보는 것 같아 절에와서 3일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잠을 자는데 꿈속에 본 아기가 연못가에서 놀고 있었다.

아기 손을 덥석 잡으며, "여기 있었구나. 어서 집으로 가자."하고 말하니,
아기가 엄마 손을 뿌리치며 "나는 법당에 가서 스님법문 들어야 돼요."
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법당으로 향하였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보살님은 몸이 놀랍게 가벼워졌고, 또한
지장보살님전에 눈물의 기도를 하고 돌아갔다.


출처: 대원사 떠도는 어린 넋들을 위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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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난 1999 년 전남 담양군 대덕면 법천사에서의 일입니다.

당시 그 곳에 있던 불자님들이 우란분절에는 그저 조상 영가분의
천도만 하여 왔던 터라 소승이 태아령을 한다 하니 모두가 궁금하여
많은 문의가 쇄도했던 때 입니다.

당시 불자님들에게 태아령에 대한 법문도 해주고
왜 태아령 천도를 꼭 해주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자
다음날 부터 하나 같이 꿈속에 동안 잊고 지냈던
낙태 영가들이 나타 났다고들 했었지요.

당시 법천사 신도 회장보살님과 총무보살님과
당시 기도에 동참했던 약 20 여명의 불자님이
기도 회향을 하는 날 전날 밤
믿기지 못할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기도 회향을 마치자
이구동성으로 하기 시작 했었습니다.

꿈의 내용인즉.....

어떤 바다인지는 모르는데 맑은 물 한 가운데
부처님이 조그만 배를 타시고 그 배 안에는
핏덩이 같은 아이들이 무척 많이 탔었답니다.


그래서 그 꿈을 꾼 보살님들은 하나 같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꿈 속에서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했었답니다.


그러자 부처님과 같이 한 배를 탄 낙태영가 아이들이 웃으며
손 짓을 하며 배를 타고 멀리 멀리 떠나더랍니다.


그 꿈을 한 두불자님이 꾼 것이 아니라
당시에 동참했던 약 20 여명의 불자님들이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답니다.
그리고 회향을 마치고 난 뒤에도 당시에 참석했던 불자님들은 종종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거의 매주 미타정근을 하곤 했던
기억들이 우란 분절만 되면 떠오릅니다.


낙태...........
그것은 해서도 아니 되지만
혹시라도 누가 주위에서 '낙태'를 하려한다면 말리십시오.


그것은 또 다른 방생과도 같은 귀한 보시입니다.
물가에 고기를 넣어 주는 것만이 방생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죽이려는(낙태) 그 사람에게
부처님 법을 가르치어 자식을 살생하는 것을 막을 때
그 것 이상 큰 방생의 공덕은 없는 것 입니다.


(출처-보살의 친구 토굴지기님 글. 네이버 아비라카페에서 다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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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의 한 부인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았다.

모아놓은 돈도 물려받은 논밭도 없었던 그녀는 세 자녀를
키우기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해미면의 산부인과에서
청소부노릇을 해야만했다.

조그마한 시골의 산부인과였기에 그 지역사람들보다는
인근지역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고, 낙태수술은 하루
10건에 이르렀다.

자연 그녀는 저녁마다 그 핏덩이들을 치워야만했다.

그러나,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특별한 생각도없이
그 핏덩이들을 쓰레기통에 담아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눈앞에는 핏덩이가 아니라
사람의 몸을 완전히 갖추고있는 태아가 방치되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충격을 느낀 그녀는 그 낙태아를
다른 핏덩이들처럼 취급할 수가 없었다.

그 녀는 자기 돈으로 하얀 천을 구입하여 그 아기를
돌돌말아 싼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변의
산기슭에 묻어주었다.


그날 밤 그녀는 발가벗은 아기 수십 명이 찾아와서
매달리며 호소하는 꿈을 꾸었다.

"아줌마,나도 그렇게 해줘! 나도 버리지말고 천에 싸서
묻어줘!"

밤새도록 발가벗은 아기들에게 시달리다 깨어난 그녀는
핏덩어리를 버리는 산부인과 청소부의 일이 인간으로서는
할 짓이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로 그녀는 산부인과 청소부일을 그만두고 음식점으로
직장을 옮겼다.





약 30년 전, 우리나라에 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울산시 중구 우정동의 북쪽 마을에는 마을 공동의
큰 우물이 하나 있었으며, 그 마을에는 48세가 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막내 시누이가 있었는데,
죽은지 몇 년만에 꿈에 나타나 반가운 얼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언니야! 나하고 같이 살자, 언니야."


그날 이후 그녀는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고, 고민에 빠져
들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아기를 낳아야 하다니......'

한편으로는 창피스럽기도 하고 키울 일도 걱정이 되어
집안 어른들과 의논하였다.

"너의 고충은 알겠다만 꿈이 심상치가 않구나. 힘들겠
지만 아이를 지워버리지 말고 낳도록 하려무나."

그녀는 친한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창피하지도 않느냐?" 나이 오십에 아이를 낳다니....
수술해, 수술!"


그녀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수술을 하였다. 그러나 많
은 나이에 낙태수술을 한 때문인지 회복이 쉽지않아 줄
곧 누워 있다가, 일주일 가량 지났을 무렵 몸이 조금 좋
아졌으므로 물을 긷기 위해 새벽녘에 동네 우물로 갔다.

그 우물은 평소 때 뚜껑을 닫아 두었다가 물을 길을
때만 뚜껑을 열도록 되어 있었다.

그녀가 물을 긷기
위해 우물 뚜껑을 여는 순가, 머리를 산발하고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의 시누이가 우물 속으로부터 솟아올랐다.

그리고 당장에 잡아먹을 듯한 분노의 음성으로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요년!"

그녀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였다. 그때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였고, 집안에는 강당하지 못할 재앙이 계
소해서 터졌다.

불자였던 그녀는 아침 저녁으로 울산 해남사 법당에
가서 참회를 하며 용서를 구하였고,그렇게 3년을
참회하고 나자 병이 사라지고 집안 풍파가 완전히
가라앉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에 살고있는 40대후반의 보살은 결혼 후 몇 해가
지나고나서부터 줄곧 병고 속에서 지냈다. 더욱이
큰 아들이 말을 못하는 장애자였으므로 언제나
가슴에는 못이 박힌 듯했다.



"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이 아이가 내가 죽은
다음에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아이의 말문을
열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녀는 아이의 입을 열게하려고 푸닥거리도하고
교회와 성당에도 가고 사찰도 찾았다.

조그마한 희망이라도보이면 어디로든 찾아가서
방법을 묻고 기도를 하였다. 한 번은 나에게
20여명에 이르는 일가친척을 위한 49일 천도기도를
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49일동안 직접 천도를
해 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비구니 한 분을
소켜시켜주고, 마지막날 마무리를 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마침내 49일째가 되어 내가 가서 천도의 중심예식들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 배송염불(拜送念佛)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옆에서 합장을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부인에게
7~8명의 아기가 달라붙어 부인을 끌고 꼬집고 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한 아이가 머리카락을 당기자 부인의
몸을 뒤로 젖혀졌고, 또 다른 아이가 오른쪽 팔을
잡아당기자 오른쪽으로 넘어졌으며, 뒤에서 앞으로
콰당 넘어지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도 또렷하게 보이는데, 부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 이 보살님이 의식하지 못하고있는 핏덩이의
원결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윗대 조상과 일가친척의
천도는 되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혼자 생각을 하였는데, 과연 천도재가 끝난 뒤에도
부인에게는 여전히 고통이 따르고 근심걱정이 해결되지
않았다. 곧 수원보살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은 집안의
영가들은 모두 천도의 대상으로 삼아 이름을 올리고 천도를
하였지만, 낙태한 태중의 영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하였기때문에 그 영가들의 원결을 풀어줄 수가 없었고,
자연 고통은 계속 되었던 것이다.



2년의 세월이 흘러 그 부인을 다시 만나게되었을 때,
나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낙태수술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스님, 무려 일곱 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큰아들을 낳았고요."



나는 천도 마지막날 보였던 아이들이 낙태수술을 받은
원혼임을 확신하고 부인에게 당부하였다.



"이제부터는 낙태수술을 한 그 영가들을 향하여
참회를 하면서 천도를 해드리십시오."





낙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원결을
맺는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평균 70만 명에 이르는
신생아가 태어난다.

이에 비해서 낙태수술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태중 아기는 150만이 넘어서고 있다. 태어나지
못하는 아기가 태어나는 아기의 두 배를 넘으며,
그 기록은 단연 세계 제일이다.

실로 인공유산의 장면을 초음파 영상으로 촬영한
것을 보면 너무나도 끔찍하다. 3개월 된 태아가
양수 속에서 놀라서, 날카로운 수술기구가 들어오면
깜짝 놀라 자궁벽 쪽으로 피해 달아난다. 수술 기구의
움직임을 간파하여,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그렇지만 수술 기구는 달아나는 태아를 흡입하여
뽑아버린다.

기계에 온 몸이 난자당하여 핏덩이 상태로 세상의 공기와
접하게 되는 태아영가......

많은 사람들이 임신 중절 수술 후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태아영가는
여전히 생명을 지닌 한 존재로서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어둠의 세계로 부터 구원을 받기를,
누군가가 구원을 해주기를 갈구한다.


그리고 위의 이야기에서 처럼, 이 태아영가가 원결을
지니는 경우에는 어머니와 집안에 무서운 보복을
전개하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태아영가와 형제가 되는 다른
아이에게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곧 그
집안의 아이가 무기력과 자살충동에 빠지거나, 고독에
잠기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며, 부모를 미워하고,
돈을 마구 써버리는 등의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나아가 낙태영가의 원결 때문에 기형아나
정신박약아를 낳게 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태중 영가의 장애는 만만하지가 않는 것이다.
어찌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태중 영가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천도를
해주어야 하는가?

그 방법은 일반 천도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기간을 백일 또는 49일로 정하여, 하루 1시간 가량
염불을 하거나, 독경 또는 사경을 하거나, 광명진언
등의 진언을 외워주면 된다.

단 한가지 꼭 당부드릴 것은 '어머니의 지극한 참회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었든, 어머니된
'나'의 순간적인 판단 결여로 인해 '나'를 찾아온
인연을 마다함으로써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데
대해서 깊이 참회하는 기회를 가져야한다.


"내가 어리석고 참된 길을 몰라 죄를 지었구나.

부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불보살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행복의 나라로 나아갈지어다"

"부처님, 지장보살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죄없는
이 어린 영가를 불국토로 인도하소서"

이렇게 끊임없이 참회하고 축원하면 태중아기
영가는 저절로 천도가 된다. 그리고 절에서 천도를
할 때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입는 신생아복과 양말등을
모두 준비하여, 스님의 지시에 따라 재를 지내면 된다

결코 낙태한 사실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고 쉬쉬 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인생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영가의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때에 낙태수술을 받은 이가
대부분 이지않은가. 그러면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 태중아기 영가를 천도시켜주면 된다


거듭 이야기하건대, 낙태아 천도의 기본 마음가짐은 참회이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4 '영가천도'(우룡큰스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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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들 낳으려 딸 셋 중절…영가 저주로 불행 닥쳐

얼마 전 40대 주부 Y씨가 찾아와 중학생 아들이 가출을 했다며
속상해했다. 최근 갑자기 반항이 심해지더니 독서실에 간다며
나간 아이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고 했다.

나는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약속하고 돌려보냈다.

일주일 뒤 그녀는 가출했던 아들과 함께 법당을 찾았다.

 "이제 다시는 집나가지 않도록 구명시식을 올려주세요."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얼굴이 바싹 말라 있었다. 그때였다.

내 눈에 여섯 명의 태아령이 모자(母子) 주변을 부유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아들 몰래 물어보니 산아제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네 명의 태아를 중절수술을 했다고 고백했다.

수술한 태아보다 많은 수의 태아령이 있다고 말하자 Y씨는 몰랐던
사실을 떠올리듯 "아, 두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정말 난감했다. 아무리 태아라도 자기 자식인데 몇 명을 수술했는지
모를 정도로 무감각하다니.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다. 솔직히 그동안 민감한 상황이라 말을
아꼈지만 요즘 구명시식을 청하는 20대부터 40대 부부들 중 중절
수술한 태아령이 평균 여섯 영가가 넘는다. 최근 구명시식을 받은
모 가수는 33명의 태아령을 초혼하기도 했다.

이미 영계는 중절수술의 심각성을 여러 번 경고했다.

태아령의 포화로 국운(國運)까지 흔들리고 있다.

태식(胎息)이란 말이 있다. 태아의 숨소리란 뜻으로 태아는 두 달만
되면 어머니와 함께 숨을 쉰다. 이때부터 영혼이 깃들기 시작, 태아는
모체의 일부분이 아닌 영육의 혼합체로 성장한다. 태교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태아는 백지 상태의 맑은 영혼이기에
모태의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옛 말에 임신한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외출을 하면 훗날 아이가 108번 가출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중절수술은 대개 임신 3개월 즈음에 하니, 이제 막 태식이 시작된
태아령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이유 없이 죽어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다.

엄연히 살인행위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중절수술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부모들이 찾아와 자기 자식은 잘되길 바라니 참으로 이기적이란
생각뿐이다.

나는 과거 태아령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몸소 체험했다.

20년 전 얘기지만 영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던 O여인이 나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놨다. 그녀는 딸만 셋을 낳고 네 번째 임신
중이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무심코 이번엔 틀림없이
아들이긴하나 낳으면 남편이 위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중, 아내가 정부에서 권장한 복강경 수술을 받다가
정작 배꼽이 두꺼워 수술은 못하고 6시간 동안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아
사경을 헤맨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O여인은 내 말을 듣고 낙태시기를 훨씬 넘긴
상태였던 네 번째 아기를 지우기 위해 6시간 동안 수술을 받고 있었다.

O여인에게서 낙태된 태아령이 극도로 분노해 내 아내와 나에게 고통을
준 뒤 떠난 것이다.

Y씨처럼 아들의 잦은 가출로 괴로워하던 K여인은 아들을 낳기 위해
위로 딸 셋을 중절 수술했다. 그녀는 남편의 바람기로 괴로워하며
온갖 정성을 다해 아들을 키웠지만 아들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태아령은 자신들을 죽이면서까지 낳은 아들을 키우며
어머니가 반성하고 후회하길 바랐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태아령은 천도되지 못한 채 지상을 떠도는 태아령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과보를 받을 것이라 예고했다.

늘어나는 자살, 이혼, 불륜 등을 막기 위해서는 낙태율을 줄이고 태아령을
위로하는 천도의식을 병원과 가정 등에서 올려줘야 한다며 한숨쉬었다.

"다음 생에는 꼭 세상의 빛을 봤으면 좋겠어요." 해맑은 태아령들이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길 간절히 소원했다.


출처: 스포츠조선 차길진법사의 영혼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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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낙태아 영가들을 위해서 49 일동안 물론 가정에서도
지장경독송,광명진언과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를
함께해서 그런지몰라도 삼일전과 49 일날 꿈에

그 간의 수많은 영가가 손잡고 강강수월래를 하는데,
주위가 참 맑고 밝으며,영가의 얼굴이 진짜로 동자승
같이 ,모두가 복숭아 얼굴이예요.


출처: 네이버 보살의 친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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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어느 날, 전라도에 사는 보살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여동생이 있는데, 자꾸만 유산이 되어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동생 나이가 몇 살인데요? "

"40이 넘었었어요, 몇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가졌는데
양수가 나와 병원에 입원했어요, "

"몇 개월 정도 됐습니까? "

"이제 4개월 째 들어서요? "

"스님, "

"왜 자꾸만 유산이 될까요? "

"이번에도 아이가 유산이 되며 어떻게 하지요?
제부는 아들 하나 보았으면 하는 마음인데......정말 걱정이에요. "

"보살님, 이 아이는 유산된 태아의 원결로 인하여 이렇게 된거이니,
하루속히 태아영가 천도재를 우선 먼저 해주세요,
그러면 괜찮아 질 거예요."

보살은 놀란듯이

"태아영가 천도재요? 조상에게 지내는 천도재는 알겠는데, 그게 뭔가요? "
"네... 잘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세요. 우리 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요. 태아 영가 천도재는 세상의 빛을 보고 태어나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서 사라진 낙태되거나 유산된 태아를 엄마, 아빠가 참회하여
원결을 풀어주는 기도입니다."

이 말을 듣던 보살은 동생에게 얘기를 해주었고,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다.
그 후 흐르던 양수는 멈추고, 엄마는 퇴원하여 몸조리하여 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게 되었다.

지금도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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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혜영이의 죽음

혜영이는 착하고 예쁜 눈망울을 가진 5살 된 여자아이였다.
어느날, 아빠하고 장난치며 놀다가 갑자기 저 세상에 가게 되었다.
갑작스런 혜영이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혜영이의 부모...시체부검까지
하였지만, 죽음의 원인에 대해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혜영이 부모. 그 슬픔은 더욱 커져만 갔다.

"스님, 죽은 혜영이가 자꾸만 보여요."
"그래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가요?"
"슬픈 모습이었어요."
하며 혜영이의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혜영이가 극락에 가지 못하고, 저승에서 헤매고 있는거 같습니다."
"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혜영이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부처님께 열심히 염불공덕을 올리십시오. "
"그러면 우리 혜영이가 극락으로 갈 수 있나요?"
"그럼요. 부처님께 진심으로 열심히 기도를 하신다면 이루어질 거예요. "

장례를 치르고 혜영이의 반혼재를 맞이하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가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스님? 갑자기 배가 고파서 장을 볼 수가 없네요."
"저도 그래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네. 우리 빨리 물건 사서 들어가요."

절에 도착하니 일하던 보살님도 배가 고파 음식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네... 왜들 그러지..?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먼저 배고픔을 달래고
일을 하기로 했다.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혜영이를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혜영이를 위해 49일 천도재를 지내는데, 3재 때에 혜영이 엄마는
죽은 혜영이의 태몽을 꾸게 되었다.

그 후 염원으로 혜영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기도를 드렸는데, 49일 회향하고, 얼마 있다가 혜영이의 엄마가
아이를 가지게된 것이다. 그 아이는 누나를 닮은 사내아이로 태어났다.

혜영이의 부모는 말할 수 없이 기뻤고, 사내아이가 죽은 딸이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온 것으로 믿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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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낙태 아이와 엄마마음

어느 여름, 우연히 "엄마, 아빠 참회도량"이라는 구담사 푯말을 보고
들른 보살이 있었다. 그 보살은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절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들어서지 않네요."

"병원엔 가보셨어요?"

"네, 아무 이상이 없대요. 그런데도, 아기가 들어서지 않아요. "

그러면서 보살은 낙태한 얘기까지 꺼내 놓았다.

보살은 혼기 놓친 꽉찬 노처녀로 우연히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 사랑을 하게 되었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상태라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 아이를 가지면 허물이 되고 직장도 그만두게 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고, 게다가 남자 집에서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아이를 낙태하게 되었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르고 아이는 낳지 못하고 계속
낙태만 해왔다. 그후 결혼을 하여 아이를 가지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유산이 계속 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던 나는

"아이의 원결 때문이군요."

"원결이요?"

"네. 낙태된 아이는 엄마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낙태시킨 엄마는 그
아이의 원결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하고 계속해서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에 대한 참회기도를 열심히 하면 바람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보살은 아이를 갖고싶은 마음에 그 자리에서 낙태된 아이를 위한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

"보살님의 뜻이 그러하시면 그 아이의 영혼을 위해 참회하는 마음에서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라고 한 뒤,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천도재를 올리는데, 마지막으로 낙태시킨 아이의 영혼이 보이는
것이었다. 영혼은 4개월 된 아이로서 엄마가 나쁜 마음을 먹고 낙태했기
때문에 원결이 되어 유산이 되는 것이었다.

"보살님 마지막 아이를 지울 때 무슨 마음을 가졌나요? "

울면서 하는 말
"생명을 낙태시켜 미안한 마음에 마지막 아이한테는 네가 차라리 기형아나
병신이 되어 엄마의 인연이 다 되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낙태시킨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말못하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태아가, 엄마의
태속에서 그 뜻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교도 중요하지만 태교도 중요하다. 엄마의 생각이
전달되기 때문에 3-4개월 이후부터는 태교방법을 중요시해야 한다.

그뒤로 보살은 아이 낳는 것보다. 참회기도로서 회향하고 있다.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이 맺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25.

멀어진 부부사이

낙태 이후, 부부 사이가 멀어졌다. '사니, 안사니' 하더니만 세월이 5년이나 흘렀다.

그 고통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 인 것 같다.

천도재를 하던 도중 보살이 하는 이야기가
"스님, 제가 낙태 할 때 꿈을 꾸었는데요, 아이를 낙태시키려고 가기
전날 꿈에 사나이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엄마 왜 나만 죽이려고 해?
형은 저렇게 예뻐해 주고 나는 왜 죽이려고 하냐면서 저를 똑바로
쳐다보고 하는 말에 놀라 일어났어요."

그 날 남편은 하지 말라고 말렸으나 보살은 꿈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가정이 힘들어 키우지 못한다면서 결국 아이를 지워버렸다. 그 후 집안은
싸움이 계속 일어났고, 남편은 직장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모아둔 돈으로
주식에 투자를 했지만 그마저 다 날리게 되어 힘들게 되었다. 부인도 직장에
다니지만 해고를 당해, 힘든 생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도와주었지만 해결이 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어 갔다.

보살은 결혼 전 남편하고 연애하여 아이를 갖게 되었다. 남편 졸업식에
갔다와서 그 날밤 갑자기 입이 삐뚤어지고 풍을 맞게 되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어 약물치료도 못 한 채 큰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뒤 그 상태로 둘째
아이도 낳게 되었다. 젊은 엄마가 풍이 있어 눈과 입이 실룩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참 안타까웠다.

세월이 흘러, 어느날 보살이 하는 말이
"스님, 제가 왜 풍이 왔는지 한번 기도해 주세요"
"보살님, 구병시식 한번 해보지요."
"구병시식이 뭔가요?"
"이유 없이 아픈 사람과 몸에 있는 책주귀신을 천도 해주는 것입니다. "
하고 대답하였더니, 보살은
"그러면 한번 해보죠."
하고 나서 구병시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구병시식을 해도 차도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하고
또다시 하였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보살님 조상영가 천도재를 올려 주세요"

그래서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는데, 영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영가축원을 하면서 관하여 보니,

시어머니 영가의 혼령이

"살아생전에 가정을 어렵게 꾸려 나갔는데, 그만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한끼조차 먹기 어려웠던터라 약을 사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결핵과
풍으로 인하여 죽게 되었는데, 살아생전 약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 이 되어 며느리가 결혼 전 산소에 왔을 때 혼령이 붙은 것입니다.
내가 살아생전 약을 못 먹었으니 한약재를 보약과 중풍약을 지어서 함께 무덤에
뿌려주면 낳을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
위해 보살을 모시고 한의사에게 진맥을 보고, 보약을 조제하여 시어머니
산소에 뿌렸다. 그 후 일주일 지나고 보름이 되자 보살의 입이 제대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표시가 나지 않을 만큼 좋아졌다.
결국 낙태된 태아는 시어머니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맺어진 인연으로서
엄마가 모르고 낙태를 하여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보살님, 태아영가 천도재를 지내는 동안 남편과 함께 참회기도를 하세요 .
죽은 아이의 원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참회기도를 하시면, 지금보다도
한결 편안해지실 겁니다."

"정말요? 그런데, 남편이 안 하면 어떻게 하지요."

"네.. 하지만 낙태는 두 사람이 잘못을 한 것이기 때문에 두 분이 참회기도
를 해야합니다. 아빠가 참회해야만 아이는 업장소멸이 될 거예요. 같이
하세요"

며칠후 보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돌아간 뒤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글쎄
눈물을 머금고 '난 그 아이 생각을 많이 했소. 우리 참회기도하고 어머니
영혼도 함께 기도해주십시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스님께, 천도재를
올리겠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 드렸어요."
"지금 어디 가시는 길이신가봐요."
"네.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제사 모시러 대구에 내려가는 길이에요,
감사합니다. 시어머니께 참회하고 용서를 빌겠어요."
하며 저번보다도 밝은 모습이었다.

지금 부부는 하는 일이 힘은 되지만 잘되고 있고, 계속해서 참회기도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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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인연

절에 오면 열심히 일을 도와주고, 예쁘게 꽃꽂이도 곧잘 해주는 보살이
있다. 그 보살에게는 딸만 둘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를 더 가지고
싶어했다. 할 수 없이 남편의 소망대로 아이를 가지기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유산이 되는 것이었다.

"스님, 아들과의 인연이 없나봐요."

"아니, 왜요?"

"하도 남편이 성화해서 아이를 가지기로 했는데, 자꾸만 유산이 되네요.
어떡하면 좋죠."

"글쎄요. "

그래서 보살은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에

"태아영가 천도재를 해주면 어떨까요? 그동안 유산되었던 아이들을 위로해
주면 나을 것 같은데요."

"그러세요. 아이들도 나름대로 한이 됐을 거예요."

그 말이 있은 후, 태아영가 천도재를 지내게 되었고, 얼마 후 정말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보살은 그만 심한 운동으로 또 유산이 되고 말았다.

보살은 울면서 하는 말,

"제가 또 업을 짓게 되었네요. 아이에게 미안해요."

하며 자책을 하는 것이었다.

낙심한 보살을 위해,

"보살 아이는 다시 인연이 있으니 열심히 기도하고 참회기도 하세요."

하자 보살은 다시 일심으로 기도하기 시작을 했고, 드디어 잘생긴 아들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보살은 잘 생긴 아들과 함께, 부처님께 인사드리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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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년을 참회하는 마음

몇 년 전 M이라는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날것이다. 사랑하던 부모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지만 헤어지면서 아이를 낙태시키게 되고, 그 낙태된 아이는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낙태시킨 아이는 과거의 부모를 기억하고
원결로 태어나서 복수하고 죽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일이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어느 신도님의 사연이다.

사찰에 오면 묵묵히 일을 도와주시는 보살이 있다. 보살은 신심이 많고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기도로 살아가시는 분이다.

보살에게는 자식이 하나 있는데, 엄마하고 무슨 악연이 있는지, 보고
마주치기만 하면 인상을 찌푸리고 거친 말과 행동을 일삼았다. 또한,
이리가면 저리 가고, 저리가면 이리 가는 등 눈을 마주치기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 탓에 주위에는 친구 하나 없었고,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방안에서만 자기
얼굴을 예쁘게 가꾸는 행위만 20년 넘게 해왔다. 그런 자식을 보고 걱정이 됐던
보살은 좋다는 것은 다해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그 상태
그대로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구담사를 찾은 보살은

"불교신문에서 태아영가 천도재에 대한 글을 읽고, 이렇게 인연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자식을 위해 좋은 기도는 다해보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희망이려니 하고 오게 되었습니다.
태아영가 천도재를 올리면서 참회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생각에 동의를 하여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태아영가
천도재를 하면서 깜짝 놀라게 되었다. 태아령이 하는 말이,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나를 가져 놓고, 엄마 마음대로 나를 낙태했지?
낙태 한 후, 아빠하고 헤어지고, 2년 후에 다시 만나 결혼하여 40이
되어서 아이를 가졌지? 그 나이에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한데, 바로
그 아이는 엄마가 지워버렸던 아이가 지금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난거야.
그 자식 때문에 고통받고 눈물로 살게될 거야"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 당시 지워버렸던 여자아이가 지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 하지만 사실이다. 사연은 이러했다.

보살은 시집갈 나이를 훌쩍 넘은 노처녀로 있다가, 사랑하는 이가 있어
연애를 하여 아이를 가지게 되였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임신이 되고
말았는데.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니,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6개월 정도 된 아이를 낙태시키게 되었고, 그 뒤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만나 결혼하여 지금의 아이를 낳게 되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무서운 악연일까? 핏덩어리라고 생각하고 생명이 아닌 줄 알았던
것이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결국 숨을 쉬고 있는
생명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아영가 천도재를 지내고 난 뒤, 엄마를 힘들게 하던 자식은 많이
온순해지고, 자기보다는 엄마를 위해 생각을 해주게 되었다. 엄마는 행복을
느끼며, 오늘도 그 자식을 위해 엎드려 참회하고 부처님께 발원하고 있다.

태아의 영혼은 이름도 없고, 장례식도 없이 버려졌기 때문에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고 있는 삼도천을 건너 불계에 가고 싶어도 부모의 공양
없이는 이루워질 수 없기 때문에 공양을 해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은 깊이 쌓여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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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행복한 가정

이들 부부는 대학 때 만나 연애하여 결혼을 하였다. 결혼하기 전 아이를
가졌었지만 형편이 되지 못해 아이를 그만 낙태시키고 말았다.

결혼을 하고 난 후, 첫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상하게 부부 사이는 한없이
멀어져만 갔다.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고, 사업상
바빠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자주 빈번했다. 또한, 사랑보다 부부의 의무와
책임감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걱정이 된
엄마는 공부는 잘하는데, 왜 운이 따라 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스님, 아이에게 자꾸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네요.
정말 귀한 아들인데...첫아이를 낙태하고 난뒤, 어렵게 지금의 아들을
낳았는데, 아빠하고 상극 이예요, 남들은 첫 자식을 낳으면 좋아하는데
정이 없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낙태된 아이의 원결 때문에 일어나게 된 거 같습니다."
"원결이요?"
"낙태된 아이의 원한이라고 하면 맞을 거예요."

공부는 잘 하는데 아빠하고 부딪히면 어긋나는 아이 행동에 엄마는 화가나
부부싸움이 계속 일어났고 결국 이혼까지 갈 정도로 사이가 나빠져 큰아이를
위한 태아영가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일인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혼한다고 떠들어댔던
부부가, 갑자기 정이 깊어져 주위 사람들이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혼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
"이혼은요? 사업 열심히 해서 우리 아이 잘 키워야지요. "
"스님, 아빠의 악연으로 우리아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번 기도에 감사
드립니다. 법복 한 벌 해드릴께요"
"감사합니다. 좋은 아빠가 되어 주시고, 더욱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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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어느 노보살님의 꿈

그동안 모르고 지내온 죄를 소멸하기 위해 참회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노보살님. 머리는 백발이 되어 보이지만 얼굴 속에는 자비의 모습이
떠오르는 그런 보살님이다.

5재 때 관욕 하기에 신발을 사놓고, 절에 갈 날만을 기다리던 노보살은
"다리가 아파 가지 못 할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참회기도를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데. 제가 노살님의 몫까지
열심히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집에서 해주세요."
"스님 고맙습니다. 뒤늦게 가슴속에 담아두고 살아온 낙태시켜버린 아이를
위해 이렇게 기도해주고 참회하니 마음이 가볍네요 가슴속에 늘 담아둔
아이를 살생한 죄 부모로써 잘못했다는 그 한마디로 아이가 극락왕생하고
다음 생에 좋은 인연을 만날 수만 있다면 저는 이생에서 마지막 기도의
발원입니다. "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49일간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는데, 5재때 노보살님의 꿈에 어린아이가
나타나

"제가 신발이 없어 갈 수가 없어요."

하면서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음날 놀란 노보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님, 제가 신발을 사두고 가지 못하니, 아이가 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 6재때 꼭 가져오세요."
그리고 나서 노보살은 효자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


"오지 못할 뻔했는데, 아들이 '어머니 절에 가요. 어서 신발을 신어서
보내드려야지요.'하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오게 됐어요"
하면서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그 태아령은 그 날밤 꿈에 나타나서 신발을 신고,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면서 떠났다. 지극한 노보살님의 정성으로 태아령은 기쁜 마음에
새 신을 신고 멀리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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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해외에서도 천도재를 하다

태아영가 천도재는 해외에서도 접수를 하여 기도한다. 93년 처음시작
할 때는 여성동아 잡지를 통해 알리게 되었는데, '태아영가 천도재가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워요.' 하면서, 해외에 계시는
보살님들로부터 반응이 꽤 좋았다.

지금도 '우리 아기 잘 부탁한다'는 전화통화 반갑게 상담해주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보살은 일본 오사카에 사는 제일교포이다.
낙태시킨 아이가 여러 명 있어, 기도하고싶다는 것이었다.

오사카에 사는 보살에게

"일본에서도 하는데 왜 멀리서 기도합니까?"
하고 묻자,

보살은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49일 기도 접수하고 해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요? 제가 일본에 현지 답사를 갔을때도 수자공원을 많이 보긴했지만
천도재를 해주는 곳이 드물더군요. 그런데, 보살님 어떻게 아셨어요?"

"불교신문을 보고,한국에서도 태아영가 천도재를 한다는걸 알게 됐어요."

"이렇게 멀리서도 인연이 되네요."

하며, 보살에게 태아영가 천도재를 해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3재가 지나고 나서, 보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님, 제가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어떤, 꿈을 꾸셨는데요?"

"꿈에 아이 셋이 나타나서 '엄마, 우리 셋은 떠나가는데 저기 아직 남아
있어요.' 엄마가 더 기도하여 같이 가게 천도시켜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은 한국에 있을 때 맺어진 아이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일본에서
맺어진 아이들입니다. ."

"그렇군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기도를 하면, 나머지 태아영가도 천도시켜
극락왕생의 길을 함께 갈 수 있어요."

"정말요?"

"그럼요. 진심으로 원한다면 기도를 열심히 하세요."

"고맙습니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뒤, 한국에 잠깐 볼일이 있어 나왔는데,

"우리 아기 잘 부탁해요? 저도 남아있는 태아영가를 위해 참회기도를
열심히 기도 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음에 우리 아이 보러 올께요."
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남은 태아영가를 위해 참회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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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안녕하세요..

불자로써 부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배우기 위해 독수리타법으로
컴퓨터를 자주 이용합니다.

지난 6월 초순쯤 태아영가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구담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2003년 봄부터 저는 병명도 없이 허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약물특수검사를 하여도 뚜렷한 병명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5시간 이상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허리에 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잠을 자야하는 시간이 무서웠습니다.

낮에는 건강한 사람이지만 밤만 되면 허리에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을 정도로 모든 가족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하지만.. 구담사를 알게 된 이후로는 저의 삶이 밝아졌습니다.

태아영가 기도를 올린 후 그날 밤에 아이들이 떠나는 꿈을 꾸고
난 후로는 신기하게도 허리에 고통이 없어졌습니다.

잠시 겪은 고통이었지만 태아영가 아이들은 20년 동안 저의
참회기도를 기다렸나봅니다.

저는 마음속에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처님의 가피력과, 지장보살님의 원력으로 3년 동안
참회기도를 하게 되어 구담사 지율스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20년을 참회하지 못한 죄인으로써 스님의 원력으로 3년을 동참하게
되어 죄의식을 조금이나 갚을 수 있을까요..?

스님... 불자의 이름으로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처럼 고통을 겪고
있는 불자님이 계신다면 참회기도에 동참하여 밝고 맑은 지혜로써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구담사 지율스님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건강하시며 태아영가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감사합니다.


출처: 구담사(www.gudam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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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성장 장애로 자라지 않는 여학생


경기도 용인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여자 아이가 부모에게 이끌려 나를 찾아왔다.

나이는 분명 열일곱 살인데 육안으로는 다섯살 정도로 보였다.

손가락 뼈도 너무나 가늘어서 도저히 사람의 형상으로는 볼 수 없었다.

뚜렷한 병명도 없이 밥도 못 먹고 미음과 주사에 의지한다고 했다.

아이의 부모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도 자식을 기르는 입장에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영시를 해보니, 육십 대로 보이는 산부인과 의사가 한 여자의 양쪽에서 낙태 수술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애를 둘이나 낙태시켰나요?"

"네, 두 번 낙태 수술받았는데요."

아이의 어머니에게 의사의 인상을 말하였더니 자신이 수술받은 병원의 의사가 맞다고했다.

"낙태아가 딸을 못 자라게하고 있어요."

두 명의 낙태아가 현재의 딸에게 붙어 성장장애를 일으킨 경우였다.

아이의 모습은 머리만 크고 팔과 다리는 가느다란 게, 초음파 검사할 때 화면에 보이는
태아의 모습 그대로였다.

"태아의 영혼위해서 영가천도를 하세요. 아니면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참회의 기도를 해야만
딸을 구할 수 있을겁니다. 나는 원인만 찾아 드릴 뿐 내가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예요. "

일본에서는 불가피하게 낙태수술을 할 경우에 산부인과병원에서 태아의 시체를 작은 용기에
담아 태아의 시신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용역 회사에 넘겨준다.

용역회사에서는 정중하게 화장한 후, 그 유해를 지정된 사찰에 봉안하여 태아영가의 천도불공을
봉행하는데, 현재 그와 같은 사찰이 2,000여개도 더 된다고한다.

일본인은 靈영의 세계에 대해 일찍 깨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임신 몇 주부터 태아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엄연히 어머니의 뱃속에서 착상되었을 때부터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그러니 임신초기에
낙태를 하더라도 그것은 엄격히 말해 살인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출처: 김진영저 영혼의 눈 -제3의 눈을 통해서 난치병을 치료해주고 불행의 원인을 상담해주는
초등학교 여선생님의 이야기 (도서출판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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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어린아이의 뇌종양이 불가사의하게 사라지다!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미야코 아사코(42세)


감사합니다.

저는 두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제가 이 가르침에 접하게 된 것은 1972년 2월 7일이었습니다.

저의 둘째 딸은 구미코라고합니다.

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양호실에서 쉬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이상하니 한 번 뇌파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장 내과 선생에게 갔더니 의사선생님은

"이 아이는 간장이 나쁘고 혈압도 낮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학교에 가도 좋지만 운동은 피하고 TV도 보지않도록하며 일찍 자고
등하교시에는 보살펴주도록 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머리의 통증은 좋아졌으나 안색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기때문에 또 내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머리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아마 괜찮을겁니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걱정이 되어서 미지마 중앙병원에 데리고 가서 거기서 뇌파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이 아이는 뇌종양인데 천 명중 한 명 있을정도로 아주 특이한 예입니다.
가령 수술을 하거나 안하거나 3개월의 생명입니다. 이 아이가 원하는대로 해주세요.

저희들로서는 도울 길이 없습니다. 오카야마 대학병원이나 국립병원에 가보시든지...

봄방학까지는 버틸 겁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정말 이 아이는 틀린 것입니까?"하고 힘없이 묻자

"안됐습니다만 체념하십시오."하는 것이 의사의 마지막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중 숙모집에 들렀습니다.

숙모는 'ㅇㅇ의 집'의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의사선생님이 포기했다면 神佛신불께 매달려봅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어떻게하면 좋을까하다가

"그렇다. 이제는 어디에도 매달릴 곳은 없다. 신불께 도움을 청해보자'생각하고
그 길로 곧 구라시키 시 히로에에 있는 마츠이 요시오 선생님 댁으로가서 개인지도를
받기를 결심하고 숙모와 남편과 함께 선생을 방문상담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당신은 남편에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손위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습니까?"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사이가 나빠 얼굴만 봐도 늘 싸움이었고, 투덜투덜 잔소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라는 것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츠이 선생은 "남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이의 병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남편에게 감사하고 아이에게도 감사하지 않는 한, 아이도 집안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신불의 자식이므로 병은 본래없습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그렇다! 그렇다! 정말 내가 나빴다'고 마음속 깊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지도를 하시는 중에, 선생은 다시

"당신은 낙태한 적은 없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유산도, 낙태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자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공양해야한다고 하면서
유산아의 위패 적는 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장 집으로 돌아와서 불단앞에서 '감로의 법우(주:ㅇㅇ의 집의 경전으로
모든 종교에 보편된 진리를 이야기한 경전, 불교의 반야경과 유사함)'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반쯤 읽었을 무렵 아이는 조용히
잠이 들어 기분좋게 자는 것 같았습니다.

오랫만에 '고마운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나도 며칠 째 잠을 자지 못했기때문에
어느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는데, 문득 눈을 떠보니 아이의 머리위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며칠 동안 뜬 눈으로 지샜기때문에 내 눈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하고 잠깐 눈을 감고있다가 떠 보니 이번에는 더욱 많은 순백의 연기가 천정에
가득히 번져오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그렇다! 이제 이 아이는 병이 나았다. 신불께서 내눈에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저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기는
밤중 내내 아이의 머리위에서 위로 퍼져 방안이 연기로 가득찼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방안을 이리저리 헤매이고 있는 동안에 날이 밝았습니다.

새벽 5시 10분이 되어 무의식중에 감로의 법우를 읽었습니다.

그러자 웬일입니까? 방안에 가득찬 연기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구미코는 열이 더욱 높아졌고 저는 "큰 일이다, 큰일이다."를
반복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주사를 놓아주셨습니다만 열은 40도가 넘도록 올라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구미코는 갑자기 밥이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며칠이나 밥을 먹지않았으므로, 저는 기뻐서 부엌으로 달려가서 죽을 끓여주었더니
그 죽이 맛있다고 하면서 두 공기를 먹었습니다.

다 먹고나서는 "이제는 자고 싶어....'하면서 그대로 쓰러져 쿨쿨 기분좋게 아침까지 잠을
푹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열은 깨끗이 내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구미코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어머니, 머리가 가벼워졌어요. 아프지않고 왠지 기분도 좋아요. 오늘은 학교에
가도 되지요?"라고 즐거운 듯이 말했습니다.

저는 "잘됐다! 이 아이는 신불의 자식이다. 정말 잘 됐다."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니?"하고 물으니 "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때부터 구미코는 깨끗이 나아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神佛이 이렇게 고마운 존재인가하고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으로 되지않는 것도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단지 인간은 신불의 자식, 진심이 되기만하면 어떤 일이라도 구원된다고 통감하고 있습니다.

ㅇㅇ의 집의 감로의 법우의 공덕으로 병은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니구치 선생님을 비롯해서 마츠이 선생님 그리고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1973. 10. 2. 오카야마 현립체육관)


34.



낙태아 참회기도 / 일행 (불자모임광장카페)



무지가 죄라더니

낙태가 죄가 되는줄 모르고

병원을 자주 갔습니다...........



자식을 여럿 키울 경제적 여유도 없어서

하나만 잘키우려고 큰아이낳고

둘째를 8년만에 낳았으니....

그 동안 병원을 들락날락 했더랍니다.



어느날부터

꿈에서 벌거벗은 아이가 보이고

아이를 업고 다니는 꿈을 가끔씩 꾸었습니다..



그래도 무지하여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애들 꿈은 좋지 않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무슨일이지 집안이 풍지박산 날 정도까지 갔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사는 세월이 있었고

부부사이도 좋지않아 사네마네 다투는 시간들 이었습니다.



남편을 임금 모시듯 받들고 살았는데

자꾸 미운 마음이 들어 정이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절에 와서야........그것이 큰 죄인줄 알고...

모든 원인이 영가장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누구하고도 상의할 줄도 모르고

일타스님 책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했습니다.

참회기도하고 지장전에 공양물 올리고

집에서 광명진언으로 영가천도 기도를 했습니다.



21일간 육식 안 하고

경을 읽는 시간으로 보내고

21일 기도를 한번 더했습니다.



온 몸이 가렵기 시작하는데

이상스럽게도 하반신만 두드러기가 나고

15일 지나니 상반신으로 올라오는 겁니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해 먹어도 효과가 전혀 없고

오히려 더 하는 것입니다.



밤에 잠을 못이루고 긁어대기 시작하면

피부는 벌겋게 달아 오릅니다.

이때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기도중 장애가 있다고 하던데

올테면 와보라 죽기뿐이 더하겠나...ㅎ



그런데

간절한 참회가 들어가지 않고.......

장애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도를 하면

잘 안되더군요.........



조상님만 천도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어느날 .......

지장경을 보고....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이 내 아이들 같아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더니

눈물이 나오면서...

미안하다..미안하다..내가 잘못했구나...

부모가 어리석어 세상밖에 못나오게 했구나..

세상에 나왔더라면 지금 쯤 성인이 되어 있을텐데...

부모 잘못 만나서 세상 구경도 못하고

성불의 길도 막았구나...



참회하고 또 참회를 했습니다.

꽃을 들고 절에 가는 길에도

광명진언을 외워주고

극락 왕생을 빌었습니다.



(다시는 태어남이 없게 기도를 해야 한답니다..)



어느날부터 발가벗은 간난아이가 아니라

두세살로 보이는 아이가 옷을 차려입고 꿈에 나타나더니

갈수록 아이가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하루는 아이들 몇 명을 목욕을 시켜 주었는데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끝으로 아이들 꿈은 다시는 안꾸게 되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경 읽고

절에 자주가고

여러 수행도 해보고

봉사도 해보고

보시도 해보고



좋다는 것은 다 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하고 모자라고

오계도 지키지는 못하지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낙태아 천도는 간절한 참회가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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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몸이 아프고 하는 일마다 안되는 여자

어느 교수님의 부인은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몸이 아프고 하는 일마다 안된다고
하였다.

부지런하기때문에 일은 많이 벌여놓는데 되는 일이 없어 걱정이라는 것이다.

눈을 감고 원인을 찾으니, 교수님과 똑같이 생긴 남자아기가 보였다.

"아이를 유산시킨 적 있습니까? 남자 아이인데요."

"네, 있습니다. 결혼 초기에 아이가 들어섰는데 낳아서 키울 형편이 안됐거든요.
7개월 정도에 뗐는데, 의사가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태어났으면 교수님하고 똑같이 생기고 똘똘했겠네요. 태어나서 한 세상 잘 살고 싶었는데,
태어나지 못하게한 원망때문에 하는 일도 안되고 몸도 아픈 것입니다. 절에가서 잘못했다고
참회하며 천도해야겠네요."

"집사람이 절에 다니는데, 스님이 그런 말을 한 적 있대요. 유산시킨 아이 때문에 몸이
아프고 하는 일이 안되는 거라고요."

이런 경우처럼 아이를 유산시키는 인간의 마음은 참 이기적이다.

자신과 아기 둘 다에게 편하고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않다.

정작 유산된 아기의 마음은 인간으로 태어나 잘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 원망만
가득한 채 이승을 떠도는 것이다.

영가가 이승을 떠돌거나 주변에 있으면 몸이 아프고 되는 일이 없다.

그런 반면, 아기들은 천도가 잘된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영가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좋은 곳으로 환생할 것이다.


출처: 김진영저 영혼의 눈-제3의 눈을 통해 난치병을 치료해주고 불행의 원인을 상담해주는
초등학교 여선생님의 이야기(도서출판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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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낙태의 죄


낙태(落胎)를 하는 것은 부부간의 살생죄(殺生罪)이다.

닭, 오리, 물고기,돼지, 소, 양을 죽이는 죄와 비교하면 훨씬 더 중하다.

묘법 노스님께서 만난, 이러한 낙태로 말미암아 초래된 질병의 사례는 너무도 많았다.
심장병이 가장 많았으며 환자의 대부분은 여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낙태는 당사자뿐 아니라 의사, 국가정책 등 여러가지 원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방면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현재 이러한 문제에 봉착
하는 것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간단히 쓰려고한다.

국가(중국)의 인구 억제정책은 올바른 것이다. 모든 기혼 남녀는 가족계획을 엄격히
실행해야한다. 정책이 허락하지않는 임신에 낙태를 하는 것은 그 잘못이 본인에게
있다. 따라서 부부는 마땅히 적절하게 피임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낙태는 살생이므로 그에 따른 과보는 반드시 자기 스스로 받게된다.

왜냐하면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겁에 회복하기 어렵다."고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뱃속에 든 신식(영혼 )은 사람이 되기위하여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당신들과 인연이 있어 비로소 태(胎)에 든 것인데, 결과적으로 당신에 의해 낙태
되면 이 생명(아기)의 원한심은 소멸되기가 쉽지않은 것이다.

당신은 국가정책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
임신은 부부의 음욕심이 중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또한 부주의하여 임신이
된 것인데, 도리어 국가정책을 앞에 놓으려한다.

불법을 믿으면서 낙태를 한 적이 있는 부부는 부처님전에 죄업을 참회해야한다.
아울러 생명을 잃은 아기에게 죄를 인정하면서,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니 간절히 용서를 구해야한다. 그리고, 아기에게 인간의 괴로움을 말해
주면서 다시는 인간세상에 오지않도록 말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염하도록 하고 그를 위하여 지장경 혹은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을 3회 혹은 7회 독송해주어야한다.(매아기마다)

꿇어앉아 독송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당신이 정말로 성심으로
참회한다면 낙태때문에 조성된 각종 질병은 모두 좋아질 것이다.

낙태에 참여한 의사, 간호사들은 자비심을 가져야하며, 수술 과정에서 태아를 위하여
묵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해야한다.

만약 매일 아침 또는 저녁에 자기가 수술한 태아를 위하여 지장경, 천수대비주,
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의 경을 한 번씩 독송하여 천도해주면, 당신은 바로 보살의
마음을 가진 분이다.

수술한 의사 등은 비록 주요 책임은 없을지라도 결국 낙태에 참여하였기때문에,
위의 방법으로 참회하면 죄를 소멸할 뿐아니라 또한 공덕이 있을 것이다.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을 깊이 열독하면 무량한 이익을 얻게될 것이다.


출처: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속편)

불광출판부刊 중국 과경거사엮음 각산 정원규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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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태아(胎兒)영가의 천도는 왜 중요하며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생명을 스스로 해치지 말라. 타인으로 하여금 죽이도록 하지도 말라. 또한 다른 사람들이 살해하는 것을 용인해서도 안된다.

이것은 부처님이 정하신 계율 중 첫째인 불살생계(不殺生戒)이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고 살생과 폭력을 금지하는 자비의 불법에 있어 가장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인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인공낙태의 형태를 접하면서 생명체로서 존엄되어야 할 권리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박탈당하고 살태(殺胎)되어 중음신으로 구천을 떠돌아야 하는 낙태아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낙태아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였기 때문에 이승에 대한 애착을 더 갖게 되며 따라서 중음신(中陰身)으로 남아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다.

중생은 죽음이후 선업(善業)이 아주 강하면 49일을 기다리지도않고 선도(善道)에 즉시 태어나고 악업(惡業)이 아주 강하면 이 역시 즉시 악도에 태어난다. 극선극악하지않은 영은 보통 49일간의 살아있을 때의 업과(業果)의 옳고 그름을 판단받는 기간을 거친다고 이야기된다.

그리고, 아직 태어남을 얻지못하고 있는 몸을 가진 영혼을 모두 중음신이라 한다.

중음신 중에서도 특히 태아영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태중에서 죽은 것이기에 이승의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크다. 그런 태아영은 빨리 삼도천(三途川)을 건너서 불계(佛界)에 가고 싶어 하지만 부모의 공양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공양해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쌓여간다.

중음계에 떠도는 태아령을 13년 17년 23년이 지나도록 방치해두면 그때부터는 가족을 괴롭힌다고 한다. 제일 먼저 어머니의 몸에 악화를 일으키게 되고,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노여움이 길어지면 태아영은 스스로가 부모를 불러서 하루라도 빨리 삼도천을 부모와 함께 건너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정에 흉사를 안겨주는데 그러한 행위는 부모의 공양을 받고 중음계를 벗어나려 했던 소망이 이뤄지지 않음으로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살인, 자살, 변사자의 영을 흉악영이라 하는데 태아영의 경우에 있어서는 임신 6~7개월이 된 후에 낙태했을 경우 흉악영이 된다고 한다.

영가들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이치를 모르고 자신이 지녔던 육체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므로 내생에 대한 준비를 못하고 결국 선도(善道)와 극락세계에 가지 못하고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된다.

이들 중음신은 과거에 살았던 세상은 물론 어디든지 볼 수 있는 천안(天眼)과 무엇이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승에서 천도를 목적으로 한 의식을 지내주면 즉각 천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름도 없고 부모도 없는 중절아, 유산아, 사산아라고 할지라도 불교적 생명관으로 볼 때 그들은 분명한 생명체이며 수태와 동시에 악업의 과(果)로 인하여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가여운 마음을 내어 지성으로 천도하고 무주구혼이 되어 떠도는 영혼을 달래주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와 인연을 맺어서 모태(母胎)에 머물며 날마다 달마다 자라는 동안 어버이의 자애를 믿었거늘 그 자애를 받지 못해 세상에 나게 될 육신을 잃었구나

‘아버지 살려줘요’

‘어머니 살려줘요’

어린 영혼은 애원해도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어둠을 헤매는 영이 되었구나. 의지할 육신을 여의고 중유(中有)에 떠도는 영혼의 갈데없는 외로운 여행...........

사후(死後) 산 아래 이승과 저승 사이에 삼도(三道)의 강이 흐른다. 이 추운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자식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이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 핏덩이들이 모래밭에서 고사리 손을 모아 회향의 탑을 쌓는다. 한 층을 쌓아 올려서는 아버지를 위해서, 또 한 층을 쌓아 올려서는 어머니를 위해서 또 한층은 고향의 형제들을 위해서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삼도의 강을 건너려 회향의 탑을 쌓는다.

그러나 하나의 탑이 완성되어 갈 때쯤이면 지옥의 귀신이 나타나 호통을 치며 탑을 무너뜨려 버린다. 애써 쌓아올린 탑이 무너져 내리면 어린 영혼들은 그만 모래밭에 쓰러져 서럽게 울다 지쳐서 잠이 들어 버린다. 그때 지장보살이 눈물을 흘리며 나타나서 옷자락으로 어린 영혼을 감사 안으면서 ‘너희들은 단명해서 죽은 것이다. 이승과 저승은 아주 다른 세계여서 너희 부모를 만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이 명부세계에서 부모로 생각하고 의지 하여라’ 하면서 삼도의 강을 건네 준다“

이 이야기는 일본어로 쓰여진 불교찬가에 있는 내용을 옮긴 것이다


출처: 영가천도의 중요성 (성지관음회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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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주안 용화사는 화두(話頭)로 삶의 지혜를 열어 가는 큰 사찰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평생 위패를 모시는 절이다.

신도들 끼리 작은 모임을 갖었는데 회원 중에 아들이 어린아이 짓거리를 하여
큰 스님께 친견을 하니 태아령이 빙의(憑依)가 되었다하여 절에 위폐를 모셨는데도
별 차도가 없다고 걱정을 하였다.

아들은 한달에 두 세번 정신적으로 발작 증세를 일으키곤 한다고 하였다.
부인과 스무살 남짓한 아들은 빙의를 떨처 버리기 위하여 금강경을 옮겨 쓰는
사경을 하였지만 혼란스러움은 차도가 없었다고 하였다.

부인은 자시 100 일 기도를 시작 하였다.
부인은 자신의 신심만 믿고 고려경탑다라니를 구입하지 않고 하였다.

손 없는 날 밥제사를 차리고 자시 기도를 하는데 아들이 이성을 잃고 고함을 첬다.
제사 상 위에 발가 벗은 아기가 누워 있는 모습을 아들만 본 것이다.
부인은 지장경과 극락경을 주문하였고 나는 기도 방법을 알려 주었다.

저승길을 향하던 영가들은 생전의 집착 때문에 길을 잃고
불량스러운 패거리가 되어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고
선방스님들의 수행담을 들은 적이 있다.

영가들이 습관적으로 음식 맛을 기억하고 음식을 기다릴 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중요 하지만
다음 세계로 인연을 찾아 갈 것을 주선 해 주고 그들이 근본적으로 떠남으로서
살아 있는자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 하다고
주장하는 스님도 있다.

안동에서 발견된 고려경탑다라니는 길 잃은 영가들을 다음 세계로 안내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첫번 제사 때 염주를 흔들며 신들린 사람처럼 날뛰던 아들은

두번째 제사에는 조용하였고

부인 꿈 속에서 나타난 태아령은 극히 평화로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고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들은 몸이 날아갈듯이 가벼워졌다며 좋아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정신적 혼란에서 벗어나 정상적 생활을 한다고한다.


출처: 이 성남의 생활불교 (cafe.daum.net/sanbang910. www.sanb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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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심령학적 측면에서 본 중절아

세계 최고의 낙태천국 한국.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바캉스 베이비나 크리스마스 베이비 붐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령도 초월해버린 것이 현실이다.

여대생에서 여고생으로, 최근에는 여중학생, 급기야는
초등학교 학생까지 산부인과를 찾는 풍조가 되어 버렸다.

마치 몸에 난 종기나 부스럼 정도로 태아를 제거하고 있다.
그런데 태아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심령연구가들은 중절아의 영혼은 엄청난 원한을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시각으로 낙태문제를 바라보았다.

하루에 4,500명, 1년에 150만 명. 우리나라에서 낙태로
소리없이 죽어가는 생명들이다.

인구 2억이 넘는 미국의 150만, 프랑스의 17만, 스웨덴의 30만,
일본의 50만건과 비교해 부끄럽게도 세계 1위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가 65만 명 이라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큐렛에 의해 찢기고 잘린 채 버려지는 생명은 25배가
넘는다는 말이다.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는 중절 수술까지 합하면
낙태아 수는 더욱 불어날 것이다.

하루에 1만명 이상의 생명이 뱃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다.

수태되는 순간 형성되는 인간의 생명과 거기에 깃든 영혼을 생각
한다면 15~20분간의 수술로 생명을 살해하고 미련없이 돌아설
수만은 없다.

가족계획이나 우생학적 차원 또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중절을
한다 해도 역시 생명을 살해하기는 매일반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낙태를 결정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 못할 사연’들을 털어놓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자신의 뱃 속에서 자라는 생명을 좋아서 죽일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거예요. 그 여자들의
괴로움, 여자들의 마음 같은 것은 모를 거예요.”

임신중절을 했을 때도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그 일념만으로 큰
걱정거리를 덜었다는 생각뿐이지, 도의적인 죄의식이나 뒤처리
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수술하고 나서는 짐을 덜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죠. 홀가분
했어요. 낳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개운하기도 하고.”

마치 거추장스러운 혹 하나 떼어낸 듯한 말투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다른 결정이었다는 부모의 항변으로도
중절아의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심령연구가들의 견해다.

조계종 차길진 법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치병은 중절아의
영혼때문일 경우가 많다.

부모, 형제에 탈을 일으키는 중절아의 영혼은 원령, 악령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바삐 성불하여 천도되어 영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사표시로서 탈을 일으키거나 한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예부터 영장은 7대에 걸쳐 탈이 난다는 말이 전해온다. 실제로
중절아의 영혼으로 인한 탈로 생긴 병은 매우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

석묘각 스님에 따르면 간질병, 만성비염, 부인병, 성불능,
유방암, 자궁암, 방광염, 노이로제, 야뇨증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통, 두통, 생리통, 생리불순으로
지목된다.

드물지만 여성의 성기에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는 습진, 허물
벗겨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석묘각 스님은 “이런 병은 일반 의학적인 측면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병이지만, 이런 병이 병원 치료로 치유가 되지 않는다거나
원인이 확실치 않은 경우 일반은 영병(靈病)이라고 보아야 할 것
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중절한 일이 있다고 해서 이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반드시 영병이라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병원에 가서 충분히 조사받고 치료를 해보고, 도저히 낫지 않을
때 영병, 영장이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석묘각 스님에 따르면 영가천도를 위해 절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
은 영병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등의 이유로 온다고 한다.

3년 사이에 10번이나 낙태를 한 40대 여인의 경우도 그 좋은 예다.

24살 때 결혼한 이 여인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남편 몰래 어떤 남자를 만나 정을 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 남자의 품속에서 헤매었다.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자 서슴없이 낙태를 했고 남자와의 관계는 3년 가까이
지속되었으며 10번의 낙태수술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가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3년후 남편은 실직하고 자신은 몸에 병이 생겼다.

병원에 다녀도 낫지를 않았다. 누워있는 날이 더 많았다.
중절아의 영혼때문이었다.

석묘각 스님이 낙태아 10명을 천도해준 후 그 여인은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중절아의 영장은 때로 부부의 잠자리에 끼어들기도 한다.

남편과의 잠자리를 할 때마다 통증이 심해 묘각스님을 찾은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3년 가까이 성기가 짓물러 허물이 벗겨지고 용변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성교는 생각지도 못했다.

중절아의 영혼은 남성의 경우도 예외없이 덤빈다고 한다. 그들의
대부분이 몇 명씩 중절아가 있고 그 영혼을 천도한 결과 모두
완치되었다고 한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중절아의 영혼을 천도해주기도 한다.

가난 때문에 낙태한 이 여인은 한번의 유산과 두 번의 중절수술로
온몸이 아프고 몸이 개운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진찰도 받았으나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해 스님을 찾은
사람도 있다.

그녀 역시 천도를 하고 1백일 기도를 한 결과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차길진 법사도 중절아 천도 경험이 적지 않다. 차길진에 따르면
중절아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빙의되어 괴롭히는 일도 있다고 한다.

40대 가정주부 김아무개의 경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어느날 갑자기
자리에 눕게 된 김아무개는 온몸이 나른하고 허리 어깨가 저리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밤이면 꿈을 꾸게 되는데 그것이 묘한 것이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고 머리를 붕대로 감고 한쪽 팔이 잘려나간 아이가
“엄마, 엄마’ 하며 좇아오는 꿈이었다.

이처럼 중절아의 영혼은 뱃속에서 찢겨진 모습 그대로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중절아의 영혼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태아의 모습이었다. 팔이 하나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으스러져
있었다. 마치 물에 뜬 풍선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중절아의 영혼은 천도를 해주면 정상적인 모습을 갖춰 영계로 올라
간다는 것이 심령가들의 견해다.

석묘각 스님은 “영가천도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 영혼들이 몰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천도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잘 보여준다.
나에게 안겨 만지고, 비비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낙태는 의사들 가운데서도 꺼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42)씨는 “태아의 두개골을 부수어 태내에서 꺼내는
일은 바로 살인 그것”이라고 지적한다.

조산원 이모(36)씨는 “태내에 있는 아기를 끄집어 내어 약물에
담가 죽이는 일이 있다. 그럴 때면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
어머니로서 매우 견디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중절아는 산 채로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모 간호사는
“용기에 버려진 태아가 살아서 꼼지락거리는 때가 있다.

산 채로 용기에 담겨 버려지는 경우도 몇 번 보았다. 여자로서
절대 낙태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간호사 가운데 중절아의 영체(靈體)를 본 사람도 있다.

조산원으로 일했던 이모씨는 다음과 같은 체험을 전했다.

“진찰실 옆방에 누웠다. 눈앞이 환해지고 사람 얼굴 같은 것이
둥그런 원이 되어 돌았다. 우는 얼굴 같기도 하고 웃는 얼굴
같기도 했다. 중절아들의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왔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말을 했더니 몇 사람은 같은 체험을
했다며 새파랗게 질렸다.”



주간현대 (306호, 2003. 4.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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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1)


태아영가 이야기 1




며칠 전에 스승님을 잘 아는 보살님의 소개로 왔다면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40십대 후반 쯤 되어 보이기는 하나,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지
화장기없는 우울한 표정은 나이를 더 들어보이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불교를 믿지 않고 교회를 다닌다는 말로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가정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그녀는 몇 달 전부터 꿈만 꾸면 옷을 입지 않은 간난아이를 등에 업거나 목욕을
시키기도하고 젖을 먹이는 꿈을 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꿈을 꾼 후부터는
자상하던 남편도 갑자기 손찌검을 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형제가
있는데 갑자기 서로 싸우고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 꿈을 꾸기 전에는 아들 형제간에 사이가 좋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어머님과의 사이가 예전보다 더 악화가 되어서 도저히 시어머님과
함께 살 수가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스님, 제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교회를 다니는데 절까지 찾아왔겠습니까? 도대체
우리 가정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보살님, 혹시 최근에 아이를 낙태한 일이 있습니까?”




“예, 몇 달 전에 생각지도 않은 아이가 생겨서 아무도 몰래 병원에 가서 낙태를
시켰습니다. 그것이 뭐 잘못되었습니까?”




“보살님,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아이를 원치 않으면 피임을 했어야지
임신한 아이를 유산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그 유산된 태아영가가
보살님의 집안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보살님이 꿈속에서 목욕시키고 젖을 먹이고 등에
업고 다니는 그 아이가 바로 태아영가입니다.




그 태아영가가 보살님과 전생부터 인연이 되어 그 시기를 기다리다가 때가 되자 보살님의
몸을 통해서 인간으로 태어나려고 했는데 보살님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자신의 아이인줄만 알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했으니 그 태아영가가 얼마나
그 한이 많겠습니까?

그래서 그 한풀이를 한 것입니다. 보살님, 태아영가가 얼마나 인간이 되고 싶고 어머니가
그리웠으면, 단 몇 개월밖에 살 수 없었지만 어머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젖을 빨고 등에 업히고
그러겠습니까? 보살님 가정을 예전처럼 다시 찾고 싶다면 그 태아영가를 달래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스님, 제가 무지해서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저는 절에 다니지도 않고 교회를 다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절에서는 영가 천도라는 것이 있는데 교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보살님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과 상의 하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빠른 시일에 그 태아 영가를 달래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태아영가가 좋은 곳으로 갈 때까지 보살님이 받는 그 고통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녀가 돌아간 후에 황전이는 스승님께 물었습니다.




“스승님, 태아영가가 무슨 힘이 있어서 가정을 그렇게 괴롭히는 것입니까?”




“생각을 좀 해보게나. 부처님께서도 다시 죽어 인간의 몸 받기 어렵다고 했는데, 그 받기
어려운 몸을 받으려고 몇 년에서, 몇 백 년, 아니 길게는 몇 천 년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어머님 자궁을 겨우 하나를 차지했는데 단 몇 개월도 살지 못하고 낙태라니 그 한이 얼마나
많겠는가?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지 그 태아영가의 한도 한이지만, 우주에는 생명을 다루는 법계가 있는데
이 법계의 질서를 무너뜨린 그 죄가 더 무서운 것이며, 그 죄 또한 받고 있는것 인데 그 것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네. 그러한 도리는 도(道)가 깊어져야 알지 그전에는 알 수가 없다네.




불교를 깊이 알지 못한 사람들은 뱃속에 있는 아이가 어린아이인 줄만 알고 있다네. 몸만
어린아이지 그 영혼은 수만 생을 윤회한 업(業)중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지.......

몸이야 죽으면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돌아가지만 그 영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네.

그 영혼은 세세생생 지는 자신의 업을 등에 지고 아승지겁을 윤회하면서 도(道)를 닦아
생사를 초월할 때까지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원한다네. 천상에서 수행하는 것보다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 고통 속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 도(道)를 이루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라네. 고통이 있어야 도(道)를 닦을 마음이 생기지 고통이 없으면 무슨 도(道)를
닦을 마음이 생기겠는가?”




“스승님,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업보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의 업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주의 질서이며 부처님의 자비이네. 만약에 어린아이가 자신의 세세생생
짓는 전생의 나쁜 업(業)을 다 안다면 자살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네.......”




“나무아미타불.......”




**[참된 귀의라는 것은]**




다른 어머님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그 어머님이 자신의 자궁을 빌려서

태어나려는 아이를 무슨 자격으로

막는가?




아이의 육신은 부모의 소유라고 하지만

그 영혼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네.

정말 몰랐다는 무지한 변명을 하지만

그것은 이 사바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이네.




허나 영혼의 집을 잃어버린 태아영가나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한 그 벌은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네.




눈물을 글썽이며 목청을 높이며

귀의한다고, 귀의한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러한 도리를 알아 순응하는 것이

부처님께 참으로 귀의 한 것이라네.




2)

태아영가 이야기 (2)




잘 아는 보살님의 안내로 스승님과 황전이가 저녁 초대가 있어서 찾아간 곳은
정원이 잘 가꾸어진, 별장 같은 집이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서자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안주인으로 보이는 보살님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을 가리는 색안경을 쓰고 우리를
맞이했다.

부엌에서는 가정부가 저녁을 차리려고 분주한 것이 보였다. 저녁 준비를 기다리는
동안에 따뜻한 차 한 잔을 하면서 안내한 보살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스님,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이 보살님이 제 친구인데 남편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큰 회사 사장이고 시아버지나, 친정아버지는 각자 큰 회사를 경영하는 회장님들
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협력하여 어려움을 도와주곤 하였는데 갑자기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저 보살님 사장님이 무슨 사고가 생겨서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러한 상황이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답니다.”




그 보살님의 말을 이어서 이번에는 안주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갑자기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방문을 들어서자마자
점쟁이가 하는 말이,




“아이를 낙태했구만! 팔자에 있는 자식인데 낙태를 하면 어떻게 해!”




그녀는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에게는
슬하에 다 큰 남매가 있었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임신한 것이 남들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이라 아무도 몰래 그 아이를 낙태를 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낙태를 하고
병원문을 막 나서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이 사고가 나서 검찰에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녀는 지금도
어리벙벙하고 있었다.




“스님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모두를 태아영가 천도를 하라고 그러는데
천도를 하면 모든 일이 원상복구가 될까요? 이 친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한 짓인데...”




“아무것도 모른다. 보살님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무지함 때문에 소중한 생명 하나가
세상구경도 못하고 사라져버렸는데, 어찌 천도를 한다고 원상복구가 되겠습니까?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참으로 지혜가 없어요.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점쟁이를 찾아가든지,
아니면 여러 도인들을 찾아가든지 해서 그 해결책을 물어본 후에 일을 저지르면 좋으련만
이미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니 참 답답하지요.”




“스님, 이미 이렇게 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무지한 중생이 아닙니까?”




“우선 태아 영가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받았을 그 고통... 살이 찢어지는 그 고통을 보살님이
함께 느껴야 합니다. 몸은 비록 그 무지함 때문에 없어졌지만 그 영혼은 보살님의 몸에 남아서
보살님을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보살님이 잘 아는 절에 가서
참회를 하면서 끝도 없는 절을 해야 합니다. 무릎에 피가 나도록, 아니 태아영가가 보살님이
받는 고통과 참회를 보고 스스로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연후에 태아영가 천도를 참으로 잘하는 도인 스님을 만나서 그 영가 천도를
하십시오. 설사 보살님이 무릎에 피가 나오도록 절을 하고 도인 스님을 만나서 천도를 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러한 참회는 오직 태아 영가를 위한 것이지, 그 어떠한 것도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내가 이토록 무섭게 말을 하는 것은 다시는 이러한 일을 반복하지
말라는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니 그런 줄 아십시오.”

스승님은 차갑게 말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 중에 하나가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악업(惡業)을

소멸하려는 것인데




착한 일은 고사하고 악업만 더 짓고

있으니 이를 어이할꼬!




사람으로 태어나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서 인과응보의 도리를 배우나

정작 실천하지는 못하는 구나.




사람이 불법을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멍에를 벗어나기 위함인데

그 삶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구나.




이를 어이 할꼬!




41.



인과응보에 대해서 묻는 이에게




황전이가 이러한 글을 쓰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도대체 신심 있는 불자들이 그동안 어떤 불교공부를 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인과응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기 이전에 이미 우주의 질서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에 그러한 도리를 모르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서 설하신 것이다.




인과응보를 살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요즘 세상에 다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쁜 짓을 많이 하는 사람이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더 잘산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있기 때문이다. 경전을 보면 무슨 일을 하던 복이 우선이라고 했다. 자신이 지은 복은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인간은 본래 착한데 나뿐 짓을 한 사람은 이생에 전생의 나쁜 업(業)의 영향을 받아 나쁜 짓을 할 수 밖에는 없지만, 어느 전생에 심어놓은 복의 씨앗이 이생에 열매를 맺으니 그 복을 먼저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생에 나쁜 짓을 한 죄는 어느 생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본인이 도(道)를 닦아서 생사해탈 하기 이전에는 결국 다 받아야 한다. 결코 우주법칙인 인과응보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생에 영가를 낙태한 사람은 그 어떤 방법이든 그 벌을 받게 되어있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인가가 문제일 뿐이다.




황전이가 낙태를 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오랜 세월동안 관찰해 왔었다. 여기서 다 드러낼 수는 없지만 참고삼아서 몇 가지만 드러내 보겠다.




이 태아영가의 한(恨)이 무한해서 낙태한 본인을 이유도 없이 온 몸을 아프게 하고, 자궁에 병을 일으키고, 사업을 망하게 하고, 사기를 당하거나, 지금 받기로 되어 있는 돈을 갑자기 받지 못한다거나. 착하던 자식들이 갑자기 난폭해지고 엉뚱한 길로 간다. 부부사이를 갈라놓고 남편을 폭군으로 만드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았다. 이토록 태아영가의 한(恨)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 것은 그 사람들의 업(業)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러한 사건들이 태아영가로 인한 작용인 줄 모른다. 그저 운이 좋지 않거나 살다보면 흔히 생길수도 있다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지금 누가, 낙태 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본인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인데 설사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해도 인과응보란 뿌린 대로 거둘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다만 지금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됐지만...




황전이도 불법수행 중에 지금 가장 많은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 몇 백 년, 몇 천 년 전에 죽인 사람들의 원결이다. 황전이도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특히 중국이나 한국에서 장군을 많이 했다. 그 장군을 하면서 죽인 사람들이 지금 이 생에 와서 황전이가 도(道)를 이루지 못하도록 끝없이 방해를 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쓰는가하면 경전을 보지 못하도록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아프게 하고, 눈을 흐리게 하고, 때로는 온 몸에 기운을 다 없애버리고, 마음먹고 좌선이라도 하면 온갖 생각을 일으켜 좌선도 하지 못하게 한다. 그 밖에도 말로는 할 수없는 육체적 고통은 물론, 우연처럼 좋지 않는 일들이 무진장하게 벌어진다. 그런데 수 백 년, 수 천 년 전의 원결들이 왜 하필이면 이생에 지금 드러나는 것일까?




수행이 깊어지기 전에는 다른 업(業)들이 활개를 치도록 놔두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서 활개를 친 업(業)들을 어느 정도 닦아 놓으니까, 황전이의 몸과 마음 속에 깊이 숨어 있었던 수 천 년 전의 원결들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덤벼드는 것이다.




그래서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하지 않던가? 도(道)가 높아지니 더 큰 마군들이 일제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구니 또한 황전이가 어느 전생에 뿌린 씨앗이니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도력이 높은 눈 밝은 스승님을 만나지 못하면 도(道)가 눈앞에 와 있는 경지에서 다 무너지는 것이다.




**이 도리를 누가 알꼬?**




참고로 수행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어느 시골병원에서 있었던 인과응보 이야기의 실화 하나를 여기에 적어보겠다.




70대 할머니가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임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가족들이 문병을 왔는데 이 할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고양이 모습으로 변하더니 야옹! 하고 고양이 흉내를 하고 온 병실을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모두들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중년이 되면서부터 류마치스 관절염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관절염에 좋다는 고양이를 무려 오십 마리 정도를 지금까지 약으로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복도 복이지만, 인간의 힘이 어느 한계에 도달했을 때에도 그 원결이 드러나 복수를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참구하고 또 참구해야 할 것이다.**




**[인과응보]**




동물들도 그 생명을 죽이면

그 혼령이 그에게 복수를 한다.




당장 고통을 받는 자가

있는가 하면 먼 훗날에 그가

고통을 당하는 자도 있다.




그 고통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의 눈동자 속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동물을 많이 죽인 자나

살인자의 눈동자를 보라...




하물며 영혼을 가진 태아를 낙태한

그대를 편히 잠들도록 하겠는가?




그래서 부처님께서 불법 수행자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수행자가 동물을 잡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고기 속에는 죽기 싫어서

안달하는 동물의 한(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낙태를 한 태아영가의 그 한은

어떠하겠는가?


40~41

출처: 황전스님의 오도선방 (cafe.daum.net/535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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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어느 낙태아 영가이야기


우리나라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1년에 행해지는 낙태 건수가 20초에 1건, 하루에 6,000건, 1년에 2백만 건 이상이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인구 2억이 넘는 미국의 150만 건(1985), 인구 1억 3천의 일본 50만 건(1987), 프랑스의 17만 건(1987), 스웨덴의 3만 건(1984)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낙태 천국의 나라이다. 만약 그 생명체들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들은 어디에 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숫자다. 다수의 사람들은 과학의 이름을 빌어 영혼의 독립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아직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와 영혼을 다룰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과학은 현재, 영혼이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현대과학의 수준을 뛰어넘는 숙제다.

불교에서는 정자와 난자의 결합 외에 영혼이 머무는 또 하나의 의식계(中有)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명의 입태入胎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 중유中有는 생명체의 정신과 형체를 이루는 직접적인 원인이자 조건인데,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부모를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업은 유전자를 선택한다). 그러므로 태아는 수태 순간부터 하나의 '원인原因이 있는' 생명체로 인정되며 인위적인 낙태는 살인으로 본다. 다시 말해 생명 탄생의 인과因果를 피하는 낙태행위는 악업惡業이 또 하나의 악업을 보태는 역업逆業이 될 수 있다.

경기도 모처에서 요식업을 하고 있는 B(여:33세)씨 에게는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여 철(가명, 6세))이라는 6살짜리 아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집안의 근심거리가 된 것은, 아들이 4살 되던 해 여름, 시골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고 나서부터다.

평소에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심한 고열의 열병을 한달 정도 앓고 나더니, 눈에 초점이 흐려지고, 얼굴 표정이 이상해지면서 사람을 대할 때면 이유도 없이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뿐이고, 그런 증상은 정서장애 내지는 단순한 행동 발달장애에서 올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애매 모호한 진단만 내렸다.

그러나 아이의 건강상태는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두 달 전부터는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자기 아빠를 매섭게 흘겨보면서 "우리 아빠가 아니야!" "우리 아빠가 아니야" 하면서 소리를 질러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아이의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까지 그렇게 고함을 질러댄다는 것이다.

처음 아이가 그럴 때는 아이 나름대로 그저 아빠한테 무슨 불만이 있어 그렇거니 하고 예사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런 행동이 여전하고, 그렇게 고함을 질러댈 때 아이의 얼굴은 마치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고 했다. 그 모습이 거슬려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꾸중을 하면 아이는 혀를 쏘옥 내밀면서 눈을 하얗게 흘기는데, 그 이상한 모습이 어떨 때는 너무 싫고 소름끼치게 느껴진다고 했다.

리딩을 통해 그 아이의 영적 문제를 점검해 나가자, 그 아이의 몸 속에는 신체가 찢겨진 상태의 어린 아기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그 아기가 현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영적 현상의 원인이었다. 계속해서 진행된 리딩에서 밝혀진 내용은, 그 아기의 영혼은 철이 어머니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낙태한 태아로 밝혀졌다. 그래서 그 태아의 영혼이 철이의 몸을 빌려(빙의되어) 현재의 아빠를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리딩의 내용이 묘(?)하게 진행되었지만, 다행한 것은 그런 사실들을 철이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인정하고, 아이가 나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도움을 청해왔기 때문에 어색해지려는 분위기가 편안해 졌다. 그 이후의 시간에서 진행된 빙의령憑依靈의 정령淨靈작업에서, 그 낙태령과 철이 어머니는 2차 대전 때 유태인 모자母子로 살았을 때도, 독일군의 핍박으로 서로 헤어져 학살당하는 아픈 과거생의 인연도 있었다. 그래서 아기의 영혼은 지금의 생에서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태어남의 기회를 봉쇄당하자, 자신의 모태母胎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렬해져 B씨의 주변을 떠돌다가, 지금의 철이에게 빙의된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처럼 어떤 영혼이 자신의 태어남의 기회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단 당했을 때, 그 존재들의 분노와 사나움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다른 통로를 통한 기회를 엿보다가, 앞의 사례에서 처럼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다른 개체에게 빙의라는 방법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빙의憑依가 일어나려면 빙의될 사람이 그에게 붙으려는 존재와 뭔가 비슷한 인자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즉 빙의체의 파동과 그 대상자의 파동이 일치해야만 빙의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 사례의 경우는, 아이가 4살 무렵 할아버지 댁에 갔다온 후, 심한 고열로 인한 열병을 앓았을 때, 그때 아이의 영적 보호망이 약해져서 생긴 빈틈을 타고, 그 아기의 영혼이 빙의되었던 경우이다


출처: www.lifereading.net (박진여의 전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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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낙태아영가천도

심령연구가 이해원


(1)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법한 아이를 안고 부모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찾아왔다. 아이는 얼굴이며 팔이며 손등, 사타구니까지 잔뜩 빨갛게 부풀어 오른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었다.
병원을 다니다 다니다 좋아지지 않자 수소문 끝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엄마를 보니 낙태아의 영가가 들어 있었다.

일단 그 낙태아 영가를 불러냈다.
“왜 너는 거기에 있니?”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었는데…. 발도 생기고 손도 생기고… 준비가 다됐는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난감했다.

영가의 원한이 너무 깊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를 낙태한 것이 6개월이 넘어서였다. 그 때의 낙태란 한꺼번에 꺼낼 수가 없으니 조각조각 잘라내는 것이다.

다리를 잘라 꺼내고 손을 잘라 꺼내고 얼굴을 잘라 꺼내는 것이다. 그 잘라진 부위들에 정확히 애기의 아토피 피부염의 발진이 있었다.

“가거라. 너희 엄마도 이렇게 빌고 있잖니?”

“절대 못 가. 내가 왜 가. 절대 용서 못해”

영가는 절대 못 가겠다며 발악을 했다. 그날 보내기는 틀린 일인 것 같았다. 다음날 다시 오라 이르고 그날은 그냥 돌려보내야 했다.
다음 날이 되어 다시 그 가족이 찾아왔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다시 달래고 달래보는 수밖에…….

“아이야 너 이름도 못 가졌구나?
네 이름을 지어줄까?
남자 아이니 준호라고 하마.
어때 좋지?

낙태아들은 아까도 말한 것처럼 돈이나 먹을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식으로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낙태아들이 당연히 이름이 없다.

이름을 지어주고 낙태를 한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이름을 지어주자 금새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았다.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이다.


“준호야. 네가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니 엄마한테 말해서 네가 일주일 동안 엄마 품에서 살게 해주마. 어떠니?”
아이는 기꺼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갈 수 있겠니?’

아이는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 거듭 다짐을 받고 난 아이 엄마한테 정성을 다해 배냇저고리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거기에는 준호라는 이름을 새겨 넣도록 했다.

그리고 애기 이불도 준비시키고 베게도 준비 시켰다. 애기를 안을 수 있는 포대기도 준비시켰다.
“일주일 동안 진짜 준호가 살아 있는 것처럼 애기를 안아주고 재우고 얼러주고 그렇게 하세요. 온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주일 뒤에 뭔가 느껴질 겁니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후회를 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기꺼이 그러마고 했고 가족을 그렇게 돌려 보냈다. 아이 엄마는 내가 시킨 대로 일주일 간을 지냈다.

살아있는 애를 보듯이 엄마 옆에 항시 배냇저고리를 두고 베개를 받쳐 눕히고 안고 얼러주었다. 재울 때도 토닥거리고 자장가도 불러주고 실제 애기를 키우듯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이 된 그날 밤이었다.

엄마의 꿈에 애기가 나타났다. 애기는 얼굴과 팔과 손등, 그리고 사타구니. 진짜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으로 부어올랐던 부분에서 하얀 풀 같은 것이 덮인 것을 쓱쓱 거둬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가야지’ 그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간 것이다. 그리고는 애기의 몸에 나있던 아토피 피부염이 씻은 듯이 나았다.

단 일주일 뿐이었지만 그렇게도 받고 싶었던 어머니의 사랑과 미안함을 충분히 느낀 영가가 제 스스로 부모를 용서하고 가버린 것이다.
이렇듯이 낙태아의 영가들은 돈이나 먹을 것 등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아의 천도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거나 음식을 잘 차릴 것을 요구하는 무속인들은 다 거짓이다.
오직 부모들의 진심 어린 속죄나 사랑만이 낙태아를 비로소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낙태아의 영가들 중에는 그런 저런 사정들을 알고 그냥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고 떠도는 영가들도 있다. 부모에게 맺힌 원한이 없이 그냥 지들끼리 어울려 떠돌아 다닌다.

대신 어떻게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염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해원정사에는 애기를 갖고자 치성을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한다고 하면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 내가 낙태아 천도를 많이 하고 위령비도 짓고 그러다 보니 떠돌던 낙태아 영가들이 이곳 해원정사에 많이 놀러오는 형편이다.

잘못 치성을 드리다가는 그런 낙태아 영가들이 실려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인연에 의한 임신이 아니다. 잘못된 인연은 악연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낙태아 영가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에 굶주렸기 때문에 진심으로 대해주고 보듬어주면 금방 좋아한다.

심지어 나를 따라다니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듯 영가들이 무슨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것처럼 뿔 달리고 손톱 길고 그렇게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운이다.

꼭 바람 소리 같은 ‘우~ 우~ 우~’하는 소리를 낸다. 그렇게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가 다시 어디로 사라지기도 하고 머물다가 경 읽는 소리에 이끌려 좋은 곳으로 가기도 한다.


나는 돈에 욕심이 없다.
돈 역시 하늘이 주시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낙태아 영가들의 천도를 한 다음엔 그 부모로부터 다만 얼마가 됐든 돈을 받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음식을 차려놓거나 낙태아들이 돈을 원해서가 아니다.


진심으로 속죄를 하고 잘못을 비는 것으로 낙태당한 아이들을 보낼 수는 있었지만 생명을 죽인 그 업보는 어쨌든 남아 있게 된다.
그 업보를 씻는 일을 내가 대신 해주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남을 도와야 한다고 입으로는 떠들지만 실상 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고 어색해 한다. 그런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난 그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학교 등록금을 내준다던지 아니면 양로원에 기부한다던지, 꼭 필요한 데 쓰려는 데 돈이 모자란 사람이라던지 하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데에 쓴다. 물론 돈을 낸 그 사람들의 이름으로 한다.


여러 사람이 그 사람에게 은덕을 기리게 되면 그만큼 업보의 무게가 가벼워지게 된다. 그렇게 업보를 씻게 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 또한 내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런 것도 아니라면 그나마 인연이 닿아 천도제를 지내준 영가들도 있지만 그마저 못 받고 떠도는 낙태영가들을 위해 법당에 분유나 옷들을 놔둔다. 물론 낙태아들이 그런 것을 먹을 줄도 모르고 입을 줄도 모르지만 자신들을 위해 놔주었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정을 느끼면서 만족해 하는 것으로 보람을 느낀다.

물론 낙태아의 영가 천도를 나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 나름대로의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방법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허울만 좋아서는 영가 천도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런 것은 결단코 배격해야 한다.

내가 영가천도를 하고 나면 부모의 얼굴이나 아이들의 얼굴에서 바로 화색이 돈다. 너희 엄마를 이제 그만 놔줘라.
너희 형제를 놔줘라.
그러면 바로 아팠던 부분이나 답답했던 부분이 나아버린다.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영가 천도를 한다고 하고 보내고 다했는데 뭔가 찜찜하고 나아지는 기미도 보이지 않고 그런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낙태아의 천도제 뿐만이 아니다. 돼지다 소다 하면서 잔뜩 차려놓고 과일에 옷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지내는 천도제는 다 사람들이 만족하자고 하는 짓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 가짐이고 정성이다.

일단 돈의 개념을 두고 얼마나 남겨먹을까 하는 심정으로 하는 천도제는 의미가 없다. 천도제를 지내고 영가가 제 갈길을 찾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내 소명임을 기쁘게 생각하고 잘 해낸 것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이득을 생각해서는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낙태아 영가의 천도는 즉각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낙태아를 여러 명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물론 모든 낙태아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러 명이 모여 있으면 리더가 생기듯 영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한 아이를 보내면 또 다른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고 그 아이를 보내면 또 다른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니 천도제를 또 해주어야 한다. 또 그 때만 잘못했다고 뉘우치는 척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하고 나서도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다신 그러지 않아야 한다.


사람도 미안하다 미안하다 계속 그러면 화를 풀고 누그러지듯 영혼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 위기만 모면하려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래 놓고 뒤에 가서 딴 소리를 하면 그 영가가 다시 돌아온다. 다시 돌아와 더 큰 해를 입게 된다



(2)

지금은 불의 시대라는 말을 앞장에서 한 적이 있다. 그 말은 사람들의 성격과 시회상에 불의 성질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불은 한번 타오르기 어렵지만 일단 붙고 나면 끊임없이 잘 타는 불. 또 어떤 불은 불이 붙기도 어렵고 꺼지기도 쉽게 하는 불. 또 어떤 불은 쉽게 붙어 오래도록 잘 타는 불. 한 번 붙어 온 대지를 타오르게 하는 불이 있는가 하면 한 집안의 따뜻한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는 불.

그러나 지금 시대를 지배하는 불의 성질은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지는 그런 성냥개비에 붙는 불, 그런 불이다. 옛날 시골에 가면 아침 저녁으로 구들을 데우기 위해 불을 지폈다. 장작은 불이 붙기는 어렵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하루 밤쯤은 너끈히 견디며 아랫목을 따뜻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 장작을 피우기 위해 쓰는 짚이나 콩대 등은 불이 화르륵 붙었다가 꺼지고 화르륵 붙었다가 꺼지고 그런다. 바로 그런 불의 시대이다.

그런 불의 성격이 시대를 지배하다 보니 사람들은 지속적이지가 못하다. 무엇인가에 매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견디며 참을 줄 모른다. 요즘 말로 하면 인스턴트식에 빠져버린다. 사랑도 공부도 꿈도 모두가 시시각각 변한다. 노력은 안 하고 결과만을 보기를 기대한다. 그러니 로또다 뭐다 하면서 복권이 활개를 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기가 만연하고 도둑질이 늘어난다. 사람들의 생활은 일희일비하고 인내하고 노력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들이 다 컴퓨터며 TV며 라디오 등 말초적인 것들을 만족시키고 자극하는 서구 문명을 너무나 빨리 쉽게 받아 들임으로써 일어난 일들이다. 우리의 것을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어머니의 정성스런 음식 대신 라면이나 햄버거 등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자라나 부모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의미를 모르는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

지속되는 것이 없으니 뒷일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즐기고 먹고 마시고 놀면 그 뿐이다. 사랑도 친구도 공부도 일도 그저 한 순간을 지나쳐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시대이니 하물며 생명인들 존중 받을 것인가? 이런 마음가짐을 고치지 않고는 낙태는 더더욱 늘어날 것이다. 아무리 피임법을 떠들고 출산을 장려하고 정부정책을 고친다 해도 생명 자체가 존중 받지 못하고 경시 받는 풍조에서는 낙태의 문제가 줄어들 리가 없다.

사람은 이 세상에 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남에게 베풀러 왔는지 아니면 남에게서 베품을 받으러 왔는지. 하늘이 정해 놓은 내 역할을 알고 받아들이고 기꺼워해야 한다. 나를 그렇게 돈에 고생을 시키고 사람에 어렵게 하고 몸을 아프게 해서 하늘이 나에게 깨우쳐 주려 했던 것이 이 낙태아 영가들에 대한 소명 때문이었다. 이 문제는 많은 종교인들이나 무속인들이 떠들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 기운을 느끼고 그 기운과 맑은 마음으로 교감하지 않는 한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낙태아를 대할 때는 내 마음이 아무런 사심이 없어야 한다. 그저 순수하고 맑은 영혼들이기 때문에 어떤 욕심이나 사심을 갖고 대하는 것을 금방 알아챈다. 그래서 마음을 맑고 밝게 유지한 상태로 대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오랫동안 기공수련을 하고 마음을 닦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나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낙태아의 영가들은 ‘아가’하고 부른다고 쉽게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런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고 경계심이 많은 이유도 있다. 그저 느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가만히 끌어안고 얼굴을 갖다 대면 그 느낌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면 자애롭고 따스한 마음으로 품어줘야 한다. 야단치고 돈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건 낙태아 영가로서는 못 견딜 일이다. 오히려 원한만 더 쌓이는 꼴이 된다.

사람들 사이에 나오면 괴롭다. 영가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도 물건을 사다가도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다가도 그 영가들의 기운이 느껴지고 그 아픔들이 느껴진다. 그러면 가슴이 아프고 그 영가들이 한없이 딱하게 느껴진다.
길을 가다가 산부인과 의사들을 만나게 되면 그 뒤에 줄줄이 늘어선 영가들의 기운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영가들은 물론 자기를 죽인 애비나 어미에게도 달라붙지만 자기의 몸을 조각내고 잘라낸 산부인과 의사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당연히 산부인과 의사들 어깨 위에 실려서 틈이 나기를 기다린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행복하다. 기분 좋다를 계속해서 얘기하고 그렇게 느끼도록 애쓰면 그런 기운이 찾아 들고 머문다. 그러나 불행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를 계속해서 얘기하고 느끼면 사기가 침범할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그 틈을 영가들은 노리고 있는 것이다.

낙태는 인간계에서도 이렇게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을 낳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천계에서도 문제가 된다. 이미 인연법에 따라 하계로 내려 보냈고 거기에서 인연을 만나고 업보를 쌓거나 업보를 풀고 다음 생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기회들을 아예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살생은 어떤 경우이던지 그 죄를 씻지 못한다. 하물며 부모 자식간의 인연은 그 깊이와 인연이 하늘에 닿을 정도인데 그것을 깨는 것은 바로 천륜을 깨는 행위이다. 그 업보는 말로 다 설명을 못할 정도이다.

해원정사 터는 맑고 밝고 순수한 영혼들이 자리잡아 공부를 하고 하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터다. 이곳에 낙태아 위령비를 건립하고자 했던 뜻도 그러하다. 위령비를 건립했더니 낙태아의 영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쁜 사기들도 같이 몰려들어 현재는 중단한 상태이지만 해원정사 터에는 수많은 낙태아 영가들이 놀러오고 머물며 또 좋은 곳으로의 인연을 찾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도를 하거나 마음이 맑아지면 그들이 우우 하고 몰려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최근 들어 육신이 맑지 못하고 자꾸만 탐을 내 곡기를 전혀 금하고 영혼과 기를 유지해 사람들을 도와줄 정도만으로 육신의 욕심을 자제하고 있다. 힘들기는 하지만 어떨 때는 그 낙태아 영가들이 힘을 주고 응원을 해준다. 그렇게 그 영가들은 맑고 순수한 영혼들이다.



낙태란 것이 숨기고 싶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성문화가 개방되고 섹스가 공공연한 일이 되고 남의 여자를 탐하고 남의 남자를 탐하는 일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벌어지고 있지만 낙태 사실은 아무래도 숨기고 싶은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이다. 그러니 숨기고 감춘다. 숨기고 감출수록 낙태아 영가들은 더욱 슬프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자식으로서 인정 받고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낙태아의 영가가 씌였다고 하면 미안한 마음이나 자정을 갖기는커녕 벌레나 붙은 듯 싫어하고 빨리 떼어내고 싶어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가의 영가는 더욱 더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낙태아의 영가는 나 같은 능력자가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본인이 진정으로 느끼고 반성하고 그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보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일반 영가들을 천도시킬 때와 다른 점이다. 그런데 본인이 그걸 느끼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도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낙태아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싫은 기색이 역력하거나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드러냈을 때처럼 피하고 싶어한다. 내게 상담을 하러 찾아온 사람 중에도 여러 사람이 낙태아 얘기를 듣자 마자 발길을 끊었다. 가족의 화합을 깨게 되는 경우를 극히 조심하면서도 어쨌든 풀어야 할 문제이니 나도 어렵사리 말을 꺼내는 데도 말이다.

그 사람들이 행여 다행스럽게 다른 능력자를 찾아 그 문제를 해결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 고통을 참고 살아가거나 그 자식들이 그 고통을 겪고 있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 영가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업보를 쌓고 있는 셈이다. 충분히 좋은 길로 갈 수 있는 것을 자신의 안위 때문에 숨기고 피하려고 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꼭히 당사자들의 문제라고 볼 수만은 없다. 시대가 그러하고 그런 풍조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음이 개탄스러운 일이다. 충분히 벌을 받고 있고 고통을 받고 있는데 굳이 우리가 좋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저 더 이상 그런 업보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소명이고 역할이다.

거듭 거듭 강조하지만 낙태는 중죄 중의 중죄이다. 씻을 수 없는 죄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어떻게든 좋은 곳으로 보내려고 하는 마음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저 감추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낙태를 가급적 안 하는 것이이 좋다. 아니 그보다 먼저 사랑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이 중하기 때문에 사랑에 신중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에 신중하고 하룻밤의 풋사랑이나 쾌락에 몸과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면 낙태의 문제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피임법으로 아기를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인스턴트식의 사고관은 그저 편리한대로 즐거운 대로를 추구하게 되고 피임법의 의미조차 사라지는 것이다.

정말 피치 못해 낙태를 하게 될 경우에는 진실로 아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가를 이해시켜야 한다. 꼭 능력자를 찾아 천도제를 지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스스로가 마음을 열고 아가에게 사죄를 하게 되면 대부분의 낙태아 영가들은 부모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고 떠나간다. 그냥 건성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지는 말고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라.
날을 잡아 밤 열한 시 정도부터 그 아가에게 자신이 지금 처한 현실과 아가가 태어났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며 그런 비참한 현실을 만들지 않기 위해 슬프지만 이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편지를 쓰라. 적어도 열장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빌고 또 빌어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픔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라. 그렇게 하고 나면 그날 밤 꿈 속에서 그 아이가 용서하고 좋은 곳으로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는 많음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다. 사람들은 그 어려움과 고통을 주로 일시적인 쾌락으로 풀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업보를 만들어 더 깊은 수렁으로 스스로를 던져버리는 일과 같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수록 마음을 닦고 하늘이 내려주신 맡은 바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다. 이렇게 말해주면 사람들은 대부분 잘 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 앎이 행동이 되지 못하는 시대이기에 하계는 더욱 혼탁해지고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명해주어도 그것을 하기 귀찮아 한다. 더 빠른 방법은 없느냐고 오히려 묻는다. 그러나 세상 이치라는 것이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시간을 들여 정성을 들여야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벌어지는 현상만을 보고 메스를 드는 건 우매한 짓이다. 그 현상이 왜 야기되었고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스승의 역할이다. 진정한 스승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찾아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 그런 스승들이 있다.

종교에 귀의하고 있는 분들은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사회를 계도하고 이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이 시대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시대이다. 종교인 스스로가 스스로의 이득 때문에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인다. 종교의 이름을 팔아 자기의 이득만을 챙긴다. 큰 세상의 원리는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득에만 열중하도록 가르친다. 진정한 스승이라고 볼 수 없다.

또 많은 무속인들이 신이라는 이름을 빌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들이 모시는 신이 이렇게 복잡 다단한 현실을 처리해주기는 너무나 어렵다. 더구나 그 영가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어찌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영가들을 내쫓을 수 있단 말인가. 영가에 들려 영가의 말을 전하는 것은 영가의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속인들은 스스로 정진하고 좀더 맑고 밝은 영혼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할 것이다.

느낌으로 보느냐 믿음으로서 치유하느냐 영가의 힘을 빌리느냐 이런 것들은 그저 유한한 인간으로서 기댈 곳을 찾을 뿐이다. 낙태영가는 낙태 그 자체만으로도 큰 죄지만 또 다른 죄업을 짓게 되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업보의 수렁에 빠져들게 해서 더 큰 죄이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 지를 알고 깨닫고 진정으로 참회하고 마음을 맑고 밝게 하는 것만이 이 혼란스런 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더 이상의 죄업을 짓지 않는 길이다. 머리로 알게 되면 마음으로 행하라. 그것이 옳은 일이다. 그래야 하는 시대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은 정말 나쁜 짓을 저지르고 못된 인간이라 할지라도 죄를 참회하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면 벌을 주려고 나가던 손도 거두게 된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하늘도 끊임없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에는 감복하고 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진심이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3)


다혜(가명)라는 여자아이가 생각난다. 당시 나를 찾아왔을 때는 아직 어린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이 아이는 도무지 학교 갈 생각이 없는 아이였다. 학교를 빠지기는 다반사로 하고 집을 나가 한동안씩 연락을 끊는 것도 밥 먹듯이 했다.
그럴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답답한 엄마는 수소문 끝에 나를 알게 되었고 찾아오게 되었다.

엄마가 와서 상담을 하는데 보니 낙태아 영가가 실려 있었다. 낙태아 영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을 하니 이 엄마는 거의 실신할 듯 했다. 자신이 그렇게 많은 남자를 만나고 많은 아이를 낙태한 것도 가슴 아픈데 자기의 아이가 그런 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넋을 놓아 버렸다. 나는 일단 그 낙태아 영가를 불러내었다. 지금 그 아이가 어딨는지 묻자 낙태아 영가는 지금 어디 어디에서 남자랑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울며 불며 찾아간 엄마 앞에 정말 그 아이는 그렇게 있었다. 자기의 옛날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렇게 데리고 와서 달래서 다시 학교를 보내고 또 도망가고 그러기를 몇 차례……

결국 출석일수가 모자라 졸업장을 못 받고 말았다. 그 엄마가 낙태한 아이 수가 많아 영가 천도를 해도 또 사단이 나고 또 사단이 나고 그런 것이다. 결국 영가 수만큼의 천도를 해야 했다.

그러고 나자 비로소 아이는 마음을 잡게 되고 지금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가끔 연락이 와서 나 때문에 대학에 다니고 마음을 잡았다고 고마워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자기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물론 결과야 다행스럽게도 제 자리를 찾았지만 그 딸이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떨 것이며 그 엄마는 딸을 무슨 낯으로 대할 것인가?
순간적인 쾌락을 좇아 몸을 함부로 굴리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낙태를 한 결과가 자기가 낳은 딸한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로 비수가 되어 결국 돌아온 것이다


출처: 시사포커스 (www.sisafocus.co.kr) 심령연구가 이해원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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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산부인과에 수자망령(태중에서 죽은 영혼)들

한번은 어느 부인이 찾아와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 병원에 가보시지 라고 말하자.
병원에 벌써 몇 주째 다니고 있는데 전혀 차도고 없고 냉이 심하고 아랫배가 몹시 땅긴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없냐고 물으니 병원에서 말하기를 자궁에 물혹이 하나 있다고 했다.

보통 물혹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라며 몇 달 지켜본 후 수술을 하든지 치료를 하던지 하자고
했단다.

내가 가만히 보니 병원에서 오히려 병을 옮겨 온 것 같아 보였다. 처음 왜 산부인과에 가게 됐냐고
물으니 보살이 “그냥 냉이 좀 있어서 갔는데 산부인과에 다녀오고 난 뒤 오히려 배가 땅기고 아픈
증상이 생겼습니다”고 했다.

선정에 들어 관으로 그 보살을 살펴보니 주위에 태중에서 죽은 애기 영혼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태중에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의 결정으로 제거된 태아들이 원혼이 되어 떠돌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붙거나 자신의 어머니로 착각하고
붙어서 죽기전에 배안에 있었기 때문에 배에 붙어 배를 아프게 만든 것이었다.

보살에게 이사실들을 이야기 하고 수자재(태중에서 죽은 연혼을 달래는 재)를 지내는 것이 좋을 듯 싶다고 하고 재를
지내기로 했다.

몇일 뒤 재를 지내는 데 이 수자영이 무척이나 외로웠던 모양이다. 잘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겨우 떼게 되었는데 무척이 울어댔다. 그 애의 감정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슬픈 감정이
북받쳐오를 정도였으니 그 한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복중 태아라고 하여 함부로 낙태하여 서는 안되겠다. 그 역시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으나 엄연한
한 생명체이다.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막는 의미에서도 함부로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불가기공 혜인선원(www.bulga.co.kr) 영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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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나무아미타불카페 일심행2님 글


이 카페의 신행수기를 읽다보니 저도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요..

백중 기도중 제가 애혼영가를 위한 기도를 올렸지요
애기가 못알아 들을까봐 우리말 금강경을 3일동안
사경하면서 영가천도를 발원했습니다

사경을 회향하기 위해 제가다니던 사찰 나한전
영단에 올려놓고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백팔 대참회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밤새 주력하고
다음날 제가 다니던 한국불교대학에다 사경한 금강경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틀날 꿈에 애혼영가가 큰 비닐 용기에 같혀서
숨막혀 하며 무언으로 너무나 슬퍼했는데 제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순간적으로 손으로 그 비닐을 뜯어내니
영가의 몸이 연분홍빛으로 변하며...환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애혼영가가 천도가 되지 않았을까
믿고 싶었습니다.

거룩하고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께
귀명정례하나이다 ()()()


대구에서


46. 나무아미타불 카페 금빛여울님 글

 


 

3,4년전에

저의 부부는 천도재를 생각하고

선지식님께 부탁하여

백일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 선생님께선 하루만에 끝내는 천도가 아닌

지극 정성인 기도를 스스로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백일기도가 다 끝나갈 무렵

저와 남편은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까만 보자기로 아기를 업고 어디론가 가는데

도중에 물속이 다 들여다 보이도록 아주 맑고 깨끗한 강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 강을 건너려고 등에 업은 아기를 내려놓는데

그 아기가 내려놓자마자 스물 대여섯살정도의 아주 잘 생긴 청년으로 변하여 서 있는것입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늘 가지고 다니던 열쇠꾸러미를 그만 놓치고 말았는데 그 열쇠꾸러미가 강물에 빠져버렸습니다

다행히도 그 열쇠 꾸러미는 열쇠고리에 달린것이 방수천으로 된 주머니여서인지 강물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제가 난감해하고 있는데

아기에서 청년으로 변신?한 그 청년이 강물에 성큼 들어가서는

아무말없이 열쇠꾸러미를 건져 무심한 표정으로 제게 전해주는것입니다.

 

강물의 깊이는 그 청년이 서 있을때 가슴이 채 안차는 정도였습니다

그 열쇠를 받고는 꿈에서 깨었습니다

 

제가 이십몇년전 (불법을 모르고 살던 그때 )낙태했던 영가가 컸다면 그 정도였을것 같은생각이 들어서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제 말대로 그 낙태영가가

아기에서 지나온 세월만큼 커서 청년이 된 좋은 모습으로 보인것이며

깨끗한 강건너 간것이라고 기도가 잘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천도재를 지내면서

제 꿈을 보고 그저 기도가 잘 된것인가보다하고 생각하였는데...

 

제 남편은

천도재 백일 기도 회향을 3일 앞두곤

꿈을 꾸었는데

아버지가 제사를 지내고 계시고 있고

제사상 앞엔 자신의 사진이 놓여있었으며

아버지가 술 한잔을 올리고 그 영정 사진에 절을 하시더랍니다

자신은

그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다가 꿈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남편이 아버지의 먼 조상이었나보다라며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그렇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천도는 결국

자신에게 하는것이기도 하네요?

하고 여쭈니

그럴 수 있다는것입니다

 

저는

님의 글을 읽고

엔젠 04:54 new
제사나 천도는, 자기에의 제사이고, 천도입니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 자기와 인연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제사나 천도가 되어 자기를 승화시킵니다.

라는 엔젠스님께서 올려주신 답변에 대해 1000% 공감하고

특히 제사나 천도나 기도가 자신을 승화시킨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제 가슴에 담으면서

제 경험을 올려봅니다.

 

또한

사가 08:36 new
이미 다른 생명을 받아 났어도 후손이나 형제자매가 지어주는 공덕(천도재등)으로 복덕이 더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제사를 안 지내준다고 조상님들의 모습이 꿈에 나타나는 일들이 있는 걸 보면
제사는 안 지내도 된다고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사를 지내되 조상님들을 위해 경전을 독송해 드리거나
사찰에서 조상님들을 위해 공양을 올리는 게 좋은 제사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라는 사가님의 말씀처럼

저도 그렇게 생각되어져 (제사때는 경전을 읽어드리는것보다 더 좋은것이 없다는 생각에)

부모님의 제사를 지낼때는 사찰에서처럼 고기나 생선도 올리지않고

모든것을 간소화하여

따뜻한 밥과 과일 한가지 국정도만 올려놓고

경전을 1~2시간 독송해드립니다

 

언젠가 추석을 지내는 일본 사람들을 보니

커다란 접시에 과일 하나 꽃 한송이 차 한잔 떠놓고 조상님께 예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

제사 문화도 저랬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저의 천도재를 경험하곤

저는 그렇게 실천해보고 있습니다

 

제 경험이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47. 태아영가를 천도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다

 

나무아미타불 카페 천상의 나팔꽃(안산 지장사 승현스님) 글

 

봄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한 가을밤이다.


내일 비가 예보되어 그런지 하늘은 이미 짙은 어둠과 함께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분다.

 

가만히 창문을 닫고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려 한다.

 

수요일부터 중국 소림사에 간다. 그래서인지 지금 글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마음을 비우고 적어본다..

 

스님이 되어 정진하는 가운데 수많은 인연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너무도 상상하기 힘든 고통속의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의 사연을 접할 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됩니다.

오늘 제가 다룰 내용도 그 중 한분의 사연있는 이야기 입니다.

 

어느날, 중년쯤 되어보이는 보살님의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님! 저는 너무 업이 많은가 봅니다..


수척한 모습에 얼굴에 만가지의 걱정을 가득안고 있는 표정이다..


보살님,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16살에 시집도 아니고 지금의 남편에게 납치를 당해서

살게 되었는데, 나중에 안것이지만 저희 남편은 불량배였습니다..


학교가던 저를 그냥 잡아다가 강간을 하고는 문을 잠가 놓고는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생활이었지만 뾰족히 방법도 없었습니다.


문이 잠겨져서... 그렇게 수년을 살았습니다.

삼년이 지나서 틈 생겨서 도망을 갔다가 도중에 붙잡혀서 죽도록 맞앗습니다..

아마 상상도 못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그냥 될대로 되라는 하며 생각하고 살면서

아이들을 둘을 낳았는데, 그 아이들 역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아들은 집을 나갔고, 딸은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역시 집을 나갔습니다.


왜 집을 나갔는데요?


둘다 부모가 싫답니다..그것도 아버지가 매일 폭력을 행사하니,

둘다 나에게 편지만 써놓고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허구헌날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는 부수고 때리는 것만

보고 살았으니 어디 얼굴들고 살겠어요.. 그러니 다 소리없이 나간 것입니다..


그럼 보살님은 왜 나가시지 않으셨어요?

저는 나갔다가 죽도록 맞았지요.. 그리고 나가도 마땅히 갈 곳도 없습니다..

친정에 가면 나로 인해 친정식구들까지 모두 위협을 받을까봐

아예 친정은 엄두도 내지를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지만 이제는 나이도 많고, 또 나간다고해도

마땅하게 갈 데도 없습니다. 남편한테 하도 맞아서 한쪽 귀도 먹었고요,

머리도 하도 맞아서 멍청해 졌습니다... 하면서 눈물을 닦는다....

그냥 어쩔수 없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한심하죠?


아닙니다... 참 보살님께서 어려운 인생을 잘 견디며 살아오셨습니다..

남편 원망을 많이 하셨겟습니다.


네.. 처음에는 원망만 한것이 아니라, 남편이 잘 때 죽이려고 하기도 하고, 술에 약을 타려고도 많이 했지요.. 저 놈을 죽이고 나도 죽자 하는 마음까지 했으니까요..


아.. 많이 힘든 것을 잘 참으셨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다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모든이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면, 고통을 겪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왜 그런 삶들이 있느냐 하면 그것은 다 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업이요?

네.. 업이란, 소리를 처음 들으셨나요?


네.. 제가 절에 다닐 상황도 안되었고, 남편이 지금은 늙어서 조금 덜해져서 그렇지 정말...아..휴........감정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보살님, 마음을 가다듬으시고, 천천히. 천천히. 진정하세요....


보살님!

사람의 업이란?

자기가 지은 인연을 말합니다.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내가 쌓은 인연이 모여서 나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년이 되고, 일년이 모여서 일생을 이루듯이,

그 하루하루의 인연 속에서 짓고 맺는 인연들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낳게 합니다.


그럼 저는 제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했기에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요?

꼭 이것 하나다라고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말씀을 드릴태니 한번 깊게 생각을 해보세요..


제가 보기에는 보살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다른 이들의 삶보다 더 큰 고통과 장애를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받았습니다.


이런 인연을 받을 만큼의 업은 살생 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살생이요?.. 그게 무슨?...


보살님, 태아를 유산하지 않으셨나요?

유산이라면, 제가 남편에게 끌려와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던터라서 지금 아이들 위로 5명이나 했습니다..그게 그리 큰 죄가 되나요?


네.. 보살님의 입장에서는 그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수도 있겠지만 큰 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가요.. 저는 그게 죄가 되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뱃속에서 나오지도 않은, 그 작은 태아가 그렇게 죄가 된다니.....

사실, 저도 약을 먹고 낙태를 하면서 죄라고 생각을 아주 안해본 것은 아닙니다.. 너에게는 불쌍하지만 어쩔수가 없다 하면서 생각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도 잠시, 분노가 항상 먼저 치밉니다.

강제로 겁탈하듯 나를 범하고, 조금 미진하면 나를 패고 하니 그게 어디 사랑도 아니고.. 폭행을 당하며 생긴 임신이기에 무조건 이 남자의 아이는 죽어도 안 낳는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보살님,, 조금 마음을 비우시고,, 천천히 생각을 하세요..

보살님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도 억울하겠지요..


맞습니다,... 저는 그저 내가 무조건 안된다는 생각과 또 아이가 나와봐야 자기 아빠가 강패라 그 인생인들 또한 앞으로 뭐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다 유산을 해왔습니다. 더불어 이 남자도 아이 낳지 말라고 약을 사다주곤 했습니다..


보살님도 양심의 가책은 있었던 것 처럼 보이긴 합니다.


여러명을 유산시키고 난뒤, 제가 생각을 했습니다.

너도 나중에 자식으로 인해 고통좀 받아봐라 하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유산 안시키고 둘을 낳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고등학교도 다 안마치고 집을 나갔고, 딸도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편지 한장 써놓고 나갔습니다..


부모도 싫고 이런 집도 싫다고 잔뜩 원망하는 글만 써놓고는...

지금 생각하니, 제가 너무 죄가 많습니다..


아이들한테 사랑은 커녕, 남편을 고통받게 하려고만 하였으니........

보살님, 사람은 각자 지은 업으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보살님께서 아이의 입장에 대한 고려는 크게 안해 보신듯 합니다..


아마도 제가 보기에는 본인의 상황이 더 절박하고 고통스러웠던 까닭 같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아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태중에 들었던 태아의 입장을 한번 바꾸어서 생각해 보세요...


태아에 입장에서요?

네..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 사람의 몸을 받을 기회를 얻고 두 분을 부모로 만나서 자신의 업장을 닦고, 자신들의 소원을 펼치기 위해 나오려고 한 그 자체를 상실하였기에 그 태중 영가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죽어간 태아들에게, 그나마 죽게 한뒤에도 두분의 따뜻한 마음 사랑과, 참회의 작은 관심마져 가져주지 못하면 다른 생을 찾아 갈 수 조차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언제까지나 건너갈 수 없는 삼도고의 강을 사이에 두고 두려움과 고통속에서 눈물만 흘리다가 그나마 크고 작은 귀신들에게 잘못 걸리면 붙들여 가서 큰 고통속에 빠져서 수없는 세월동안 이 세상에 태어날 인연조차 만나지를 못합니다.

그럴때 지장보살님께서 그곳에 이르면, 그때에야 아이들이 숨어 있다가 나와서 지장보살님의 손을 잡고 그 강을 건너간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작은 생명이.. 아직 뱃속에서 나오지도 않은 태아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정말 몰랐으며 처음 듣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모르시겠지요...

불교를 모르고, 또 절에 다니시지도 않으셨으니?

정말 죄송합니다..

저에게 죄송할 것이 아닙니다.. 태아에게 하여야지...

어느 누구나 큰 나라에, 잘사는 집에, 좋은 환경에 태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군들 보살님 같은 분에게 태어나고 싶겠습니까?

그럼에도 그게 자기의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힘이 듭니까?

보살님도 보살님 같은 분이 어디 하나둘이겠습니까?

아들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죽어간 생명이 이루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제가 왜 마음대로 태어나고 싶은 곳으로 못 태어나는지 간단히 말씀을 들여 보겠습니다..

모든 생명이 대게, 잘 살고, 힘이 있고, 화목한 가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영혼들이 가다가 다시 생각을 합니다..

내가 그곳을 간다 한들 그 집에서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맞는 곳을 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어떻게요?

예를 들면, 보살님이 만약에, 공부를 못해서 학교를 제대로 졸업도 못하고 부모님의 가정도 어렵다고 가정을 했을때,

어느날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일류 대학을 나왔고 집안도 굉장히 부자입니다..

그러면 보살님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아 나와 이사람은 인연이 아니구나 하겠습니까?

마음이야 처음에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결혼을 못할 것 같네요.. 너무 차이가 나서요... 바로 그것입니다,..

인연이 안맞기에 다가 가다가 말게 됩니다.. 더 이상 다가가면 상처만 더 커지게 될것이게에 돌아섭니다..

그럼에도 달려들면 나중에 더 불행하게 인연이 갈립니다,..

아시겠지요.. 네..

그것처럼, 영혼도 같은 마음을 먹습니다.

그래서 업의 남겨진 기운으로 인하여, 스스로 자기의 마음에 맞는 그런 환경과 조건을 찾아듭니다.

모든 것이 인연따라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네.. 어려운 것 같지만 대강 이해가 갑니다..

그럼 저는 우리 태아들을 위해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요?

그 태아 영가들의 길을 닦아 주셔야 합니다..

어떻게요?

부처님의 힘을 빌어서 천도의 복을 지어주면 됩니다..

태아들을 위로하고, 부처님께 공양하고, 다음 생을 밝게 태어나도록 복연을 만들어 주면 될 것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수일내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삼일뒤 태아의 천도불공을 모셨다..

일주일이 지나서 보살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스님, 이게 복인가요?

뭔데요?

그토록 찾으려 해도 연락이 안닿았던 아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집에 들리겠다고...

참 잘되었습니다...

이틀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스님, 또 기쁜일이 있습니다.

또 뭔데요?

이번에는 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집에 아이들 데리고 찾아오겠다고요...

그래요... 아주 좋은 소식입니다...

일주일 후 보살님이 잔뜩 과일이며 떡을 싸들고 찾아오셨다.

스님.. 너무 행복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네.. 죽을 정도 까지 좋은 일이 뭔대요?

사실 제가 그런 환경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그래도 아들, 딸을 생전에 한번 보고라고 죽었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삼일전에, 손자를 데리고 며느리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딸이 어제 왔는데, 사외하고 외손녀, 외손자를 데리고 와서 우리에게 절을 하고는 앞으로 잘 모시겠으니 오래오래 살라고 하는데... 그만 눈물이..계속흘러서... 아들, 딸 손을 잡고 고맙다. 고마워... 해준것도 없었는데, 너희가 이렇게 잘 성장해서 찾아들 와주니 너무 기쁘다.. 또 손자 외손녀들까지 함께 데리고 와주니 나는 더이상의 소원이 없구나...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지랄맞고 성질 나쁜 남편이,, 고맙구나..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도록 할태니, 너희 엄마보러 자주 오너라, 나는 상관없지만 너희 엄마 참 불쌍한 여자다.. 그러니 자주 들렀으면 좋겠다.. 하는 겁니다.. 하늘이 뒤집어 지는 소리를 하니,

지옥에도 빛이 드는 구나 하는 생각에 지난 세월, 그래도 모진 목숨 끊지 않고 살다보니, 참 이런날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아들.딸, 손자 손녀가 간뒤에도 밤새도록 잠을 못잤습니다..

 

그냥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제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부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하면서 베게닛을 다 적셨습니다..

 

그리고도 오늘 아침에도 전혀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좀더 빨리 가서 부처님을 뵙고 절을 하며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정말 행복하셨겠어요...

이르다 뿐이겠어요..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합니다..

오고가며 부딪히는 모든 것이 다 이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 이게 다 스님 덕분입니다..

무슨 소리를... 제가 무슨,

다 지장보살님의 원력이고, 위신력의 가피 때문입니다,..

앞으로 스님, 절에오면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글세요... 갑자기 생각을 하자니....

아.. 도량 청소를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한달 뒤 이번에는 아들. 딸. 손자. 외손자, 외손녀들을 데리고 왔다.. 보살님 남편은 왜 안오셨어요.

아직은 죄가 많아서 부끄럽다고요.. 좀더 복을 짓고 업을 닦은 다음에 반드시 와서 인사드린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래도 생각하는 것이 많이 나아졌네요..

그럼요.. 요즘은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저에게 아이들에게 아주 모범적인 아버지, 남편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너무 좋으시겠어요..

네. 이제는 살맛이 납니다.

요즘은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불러요 스님,,

하 하 하.... 호 호 호...

이렇게 즐겁게 맞이하고, 이야기하며 보냈다..

그 뒤 그 먼 화성시에서 한달에 한번이상은 꼭 오셨다...

이 일이 있은 뒤, 초하루 법문을 통해서 태아 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역설한뒤, 몇일뒤 합동 천도를 봉행하였다

그날 법문을 하자 여기저기서 많은 불자들이 눈물을 닦았다.

행복한 이 불자의 인연을 여러분에게 들려 드리게 되어서 전하는 나도 기

쁩니다..

좀 장중한 내용을 오래도록 눈여겨 읽어내린 여러분의 묵은 업장이 소멸하여 이 불자님처럼 나날이 행복하고 복된 인연이 끊이지 않기를 기원드립니다.

아울러, 이 세상 모든 태아들이 이 인연공덕으로 지장보살님의 가피속에 명도의 어두운 세계에서 벗어나서 극락세계의 밝은 광명 속에 왕생하시길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나무유명교주 고혼천도 지장보살마하살

 

지장사 주지 승현 합장

 

48. 낙태영가 천도 행복의 시작

 

나무아미타불 카페 달고니님 글

 

 

나무 아미타불 지장왕보살 마하살

저와 같은 직장에서 절친했던 형이 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된장찌게에 저녁식사 중 자기부인이 병도 없는데, 두통, 허리등 이상하게 아픈곳이 많아 병원 검사비만 몇백만원 들었어도 이유를 모른다기에, 말을 듣다 혹시 낙태 하신적 있나요? 형수님!

형 하는말, 요즘 낙태는 어느집이나 다하지 않나! 자연스러운 말투에
몇 명 했어요?, 두명했지!
죄책감은 없어요? 처가집이 용하다는 무속인에게 굿하고 부적받아 붙쳤어.


여기까지가 자식낙태에 대한 생각이라 참 안타까운 생각에, 우룡스님의 저서 영가천도의 수자영가(낙태아) 천도 법문 중 전주에서 있었던 실화를 말해주었습니다.


끝까지 말을 듣던 형에게 자식 죽인
잘못을 인정하는지 물어보니, 다소 후회하는 모습에 낙태자녀들을 천도 해줄 생각은 없나요? 물었습니다.


형왈, 비용이 비싸고 종교도 무속쪽에 가까워 부인이 굿하고 했는데, 다시 그런 천도의식을 하는것이 부담이야!


다시, 말을 이어 꼭 거창하게 비싼비용 을 들여 천도하는 것만이 길이 아니라
정성으로 자신 스스로 천도하는 것도 좋은결과를 본사례가 있다하였고, 이 형의 100일기도 인연은 시작됩니다


(준비물 : 신생아용 젖병두개, 우유, 과자, 사탕과 단향 30분용)

기도는 불보살님께 대한
참회발원문(3번 독송),
한글반야심경(10번 독송),
삼푸대다라니(10번 독송),
지장정근(20분 독송),
자녀에 대한 참회문인 영가시어 및 회향발원문 각각(3번 독송) 까지 총 30분 전후의 기도시간이 소요되는 백일기도문을 A4용지 한면에 넣어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형이 기도 시작한지 보름째 아침에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오라고해, 영문을 몰라 찾아갔더니, 어제 저녁 평상시처럼 기도를 끝내고 피곤하여서 등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무언가 자신의 귀를 당기고, 머리카락 당기고
배를 치는등 너무나 무서워서 벌벌벌 떨다 아침이 되서야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다 얼른 옷입고 출근해서 나를 찾아 자초지정을 말하는데, 저역시 꿈속이 아니란 말에 소름이 돋는데!!


머리카락이 솟았다가 가라앉았으나, 이거 기도방법이 문제인가?


잠시간 생각하고 혹시 이전 기도 시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어제 기도간에 실수한거 없었나요?


형은 어제 기도가 끝나고, 너무 배가
고파서 우유젓병 두개를 컵에 담아 마신점 빼고... 아! 그렇구나!
낙태된 수자영가는 말그대로 신생아나 마찬가지 인데, 30분 기도 끝났다고 아기들이 먹던 우유를 아빠라는 분이 배고프다고 먹었으니, 그 수자영가가
화가 나는건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말을 듣던 형이 그럴수가! 반야심경을 한번만 염송해도 일체귀신이 물러가나
수자영가는 형의 자녀들이기에 천도를
받기위해 기도에 응하고, 우유공양도 받으면서 아! 아빠가 좋은곳으로 이제 보내주시는 구나 하는데, 배고픈 자녀 우유를 먹었으니 화나서 아빠를 때려, 신호를 보낸거라 말하였습니다.


이후 기도가 끝나면 배고프면 다른 간식을 먹어야지, 자녀 수자영가 기도
공양음식은 먹지말라고 당부한 후부터 100일 기도기간 단 한번도 같은 일 없이 기도회향 하였답니다.


수자영가 천도이후 가장 좋아진 일은 부인을 항상 아프게한, 두통을 비롯핫 여러 통증이 사라져 건강을 찾았으며,
본인도 직업운이 대통하여 승진하여 부와 명예를 한번에 얻었습니다.


얼마뒤 형의 연락이와 이런좋은 일이 있도록 도와주어 고맙다는 말을 듣고
저역시 보람을느끼며 100일 기도간 음식조절, 언행조심 등 수고하셨다고 서로 격려했다.

끝으로 부처님법은 진실로 죽은 사람, 산사람 모두에게 큰 이익이 있으나 이 좋은 법을 두고도 행복을 찾지 못하는 여러 사람에게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늘 함께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선조유신 선조유연
믿음과 인연있는 이에 광명이 깃든다.

나무 아미타불 지장왕보살 마하살

 

49. 태중영가천도 기도법

 

나무아미타불카페 천상의 나팔꽃(승현스님) 글

 

(송계서)

 

모든 불자들은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들어라. 

내가 이제 모든 부처님의 대계서를 설하고자 하노라. 

대중은 묵연히 듣고서 스스로 죄가 있거든 마땅히 참회하라. 

참회하면 안락하고, 참회하지 않으면 죄가 더욱 깊어지리라. 

죄가 없는 자는 묵연하라. 묵연한 연고로 모든 대중이 청정한줄 아느니라. 

모든 대덕 청신사와 청신녀들은 자세히 들어라, 부처님께서 

멸도 하신 후 저 말법시대에 항상 바라제목차를 존경하라. 하셨으니, 

바라제목차라 함은 곧 이러한 계법을 말함이니라. 

이 계를 가지는 자는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만남과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음과 같고, 병든 이가 쾌차함을 얻음과 같으며, 갇혔던 이가 감옥을 벗어남과 갔으며, 멀리 갔던 이가 집에 돌아옴과 같으니라. 

마땅히 알라. 이계는 곧 대중들의 큰 스승이니라.  

만약 부처님이 세상에 더 계실지라도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내기 어렵고, 선한 마음은 발하기 어려우니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작은 죄를 가벼이 여겨 재앙이 없다 하지 말라. 

물방울이 비록 작으나 큰 그릇에 찬다 하시니, 

찰나 동안에 지은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짐이라. 

한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겁을 지나도 다시 받기 어려우니라. 

젊은 날이 머무르지 아니함이 마치 달리는 말과 같고, 사람의 목숨은 무상함이

폭포수보다 빠르나니, 

오늘은 비록 살아 있으나 내일은 또한 보증하기 어렵느니라. 

대중들은 각각 일심으로 부지런히 정진하고, 삼가 게으른 생각에 잠겨서 방일하지 말 것이니, 밤이라도 마음을 수습하고, 생각을 삼보에 두어서 헛되이 지내지 말지어다. 

한갓 피로함만 베풀면 다음에 깊이 후회하리라. 

대중들은 각각 일심으로 삼가 이계를 의지하여 여법하게 수행할지니라.

 

세상이 무상함을 알면 굳이 업을 짓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이 늘 항상 영원한 것처럼 여기기에 부질없는 인연을 끊임없이 맺어서, 업을 더해 갈애(욕망)속에서 허덕이다가 죽음을 맞는다.

 

다행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의 나이를 먹고 불법을 익혔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하면 만겁을 윤회하더라도 결코 벗어나지 못하리라.

 

다들 천국이나 극락을 원하면서 입으로는 떠들고 가기를 바라지만, 앉고 있는 마음이 항상 내 앞에 있는데 어찌 갔다고 단정하리요.

 

더욱 세상의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유산시킨 태아들은 그 영문도 모르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죄의식이 없어 그것이 죄 된 줄도 모르고 그냥 살아가면서도 전혀 태아를 위한 기도한번 제대로 못해주니,

 

이 또한 어리석다 아니할 수가 없구나.

 

비롯함이 없이 태어나서 나의 인생 불행하다 여기지 말라.

 

너의 행위 하나로 인해 수많은 억울한 영혼이 구천을 떠돌며 울부짖고 있거늘, 노력해도 잘 안 된다 말하고 기도해도 소용없다 말하는구나.

 

입장 바꿔 그대가 태아심정 되어보면 억울하고 분통하여 그 원한이 하늘을 덮고도 남으리라.

 

지장 경에 이르기를, "사람의 행동이 죄 아님이 없고 업 아님이 없다." 하였거늘, 오늘도 죄없는 목숨들이 나의 편리함의 인연 따라 죽어감이 한없으니,

 

죽고서도 풀곳없고, 가고파도 가지 못하는, 이 가련한 영혼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나의 잘못 참회하며, 밝은 길로 향하도록 인연공덕을 지어줘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비와 참회인연 공덕으로 수없는 태아들이 비로소 저 삼도고 에서 벗어나서 지장보살님의 품안에 들게 되어 왕생극락 할 것이니, 이 글을 대하시는 분들은 이 기도법대로 그동안 쌓아온 죄업을 조금이나마 닦아가길 바랍니다.

 

 

***  수자령 천도하는 법  ***

 

1.수자(태아)령을 천도하고자 하는 이는 먼저 목욕 재계하고 정성스런 공양물을

준비하여 지장보살님 전에 올립니다.

 

2.지장보살님께 태아 령을 천도함을 고합니다.

 

=몇 년 몇 월 몇 일 행효자 000가 나와 인연이 있어서, 나의 품에 안겨왔던 태아영가를 위해 천도하고자 하오니, 지장보살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이 도량에 저와 함께 하시여 오늘 천도될 태아 령을 인도하여 주소서.(세 번 고합니다.)

 

3.지장보살님 전에 몸과 마음을 다해서 108배를 올립니다.

 

=절을 한번 할 때마다 지장보살 멸정업진언 (옴 바라 마니다니 사바하를 일곱 번씩하고 일곱 번을 쓰도록 합니다.)

 

4.지장경의1품에3품 4품 7품 8품 12품 13품을 염송합니다.

 

5.고요하게 앉아서 지장보살님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며, 지장보살 명호를 손끝에 마지가 올 때까지 염송합니다.

 

=나무 유명교주 태아천도 지장보살............................................

 

마지(손끝에 전기=찌릿 찌릿한 느낌)가 오면 말합니다.

 

망 00씨 태중 아기 영가야!

 

"이 엄마(아빠)가 너무 어리석어서 너에게 한 못된 짓을 용서해다오.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너의 꿈을 짓밟았으니, 나의 죄가 너무 크구나,

 

나도 부모님이 있기에, 나의 부모가 나에게 그런 짓을 했다면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말하면 이상하겠지만 너를 지우고 수없는 날을 괴로워했단다. 그렇지만 그때는 너에게 이렇게 하는 방법을 모르고 지나왔으니 그저 미안하고 죄스러운 생각뿐이란다.

 

나의 아가야!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바보짓을 해놓고 용서를 구하는 미련한 부모는 안 되겠다고 엄마(아빠)약속할게.

 

"기쁜 소식이 있단다. 너를 이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해줄 방법을 찾았단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너를 지장보살님의 품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게.

 

나의 사랑! 우리 아기, 사랑해!

 

지장보살님의 이름을 기억해라.

 

지장보살님은 너를 항상 지켜주시며, 영원한 안락으로 이끌어주실 유일한 분이란다.

 

"지장보살님! 이 죄 많은 어리석은 중생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소서.

 

삼도고의 고통바다 벗어나지 못한 일체 수자령을 보호하고, 도깨비와 일체귀신 모두 쫓아 소멸하고, 손바닥의 보배구슬 빛을 놓아 이끌어서, 극락으로 접인 하여 이끄시는 현재의 주불이신 지장보살님이시여, 부디 크신 은혜 베푸시어, 참회하고 공덕 맺은 00씨의 태아 령을 부처님께 맡기오니, 자비원력 나투시어 피안의 저 국토로 밝은 빛에 광명놓아 인도하여 주옵소서.

 

나무 유명교주 태아천도 지장보살마하살.(줄친곳을 세번읽고 세 번 절한다)

 

6.지장보살님의 모습을 그린다.(사불)

 

지장보살님을 그리고 밑에 적는다.

 

봉행제자 000가 00씨 태아영가를 지장보살님께 맡기오니 극락으로 왕생토록 인도하여 주소서.

 

(예= 봉행제자 김 달봉이 김해김씨 소생 태아 령을 지장보살님 전에 맡기오니 극락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7.지장보살 십선계를 낭송하여 이기적인 삶의 태도를 반성하고 대승보살의 삶을 살겠다고 발원합니다.

 

**지장보살 십선계**

 

1). 나는 살생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염하리라.

 

2).나는 도둑질 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물을 얻을 수 있기를 염원하리라.

 

3).나는 음란한 삿된 짓을 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기갈이 생기지 않기를 염원하리라.

 

4).나는 속이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기를 염원하리라.

 

5).나는 이간질 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항상 화합하여 기쁨을 나누기를 염원하리라.

 

6).나는 나쁜 말 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평안하여 산란해지지 않기를 염원하리라.

 

7).나는 잡담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여러 가지 곤란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염원하리라.

 

8).나는 탐내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마음의 방황을 멈추고 진실한 평안을 얻기를 염원하리라.

 

9).나는 성내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서로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 것을 염원하리라.

 

10).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인과응보를 무시하는 그릇된 생각이 들지 않기를 염원하리라.

 

8.자비축원문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

 

기운달이 차서 둥근달이 되듯.

 

이와 같은 수행의 공덕으로,

 

나와 더불어 모든 이웃들이,

 

원한과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해맑게 드리운 기도가, 그 힘을 얻을 태아들의 왕생극락으로 이어져서 세상의 억울한 모든 태아 령들의 소리 없는 울음소리가 그치기를 기원합니다.

 

항상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나의 이익만 보시지 말고, 남의 입장이 되어 바라보고 살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나만 보면 중생이요, 남을 먼저 생각하면 보살입니다.

 

긴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성불하시고, 행복한 삶의 성취를 이루세요.

 

행 복 하 세 요.

 

승현 스님..^^

 

50. 

 

지난 1999 년 전남 담양군 대덕면 법천사에서의 일 입니다.
당시 그 곳에 있던 불자님들이 우란분절에는 그저 조상 영가분의 천도만 하여 왔던 터라
소승이 태아령을 한다 하니 모두가 궁금하여 많은 문의가 쇄도 했던 때 입니다.

당시 불자님들에게 태아령에 대한 법문도 해주고
왜 태아령 천도를 꼭 해주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자
다음날 부터 하나 같이
꿈속에 동안 잊고 지냈던 낙태 영가들이 나타 났다고들 했었지요.

당시 법천사 신도 회장보살님과 총무보살님과
당시 기도에 동참했던 약 20 여명의 불자님이
기도 회향을 하는 날 전날 밤
믿기지 못할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기도 회향을 마치자
이구동성으로 하기 시작 했었습니다.

꿈의 내용인즉.....
어떤 바다인지는 모르는데 맑은 물 한 가운데
부처님이 조그만 배를 타시고 그 배 안에는
핏덩이 같은 아이들이 무척 많이 탔었답니다.

그래서 그 꿈을 꾼 보살님들은 하나 같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꿈 속에서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했었답니다.

그러자 부처님과 같이 한 배를 탄 낙태영가 아이들이 웃으며
손 짓을 하며 배를 타고 멀리 멀리 떠나더랍니다.

그 꿈을 한 두불자님이 꾼 것이 아니라
당시에 동참했던 약 20 여명의 불자님들이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답니다.
그리고 회향을 마치고 난 뒤에도
당시에 참석했던 불자님들은 종 종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거의 매주 미타정근을 하곤 했던 기억들이 우란 분절만 되면 떠오릅니다.

낙태...........
그것은 해서도 아니 되지만
혹시라도 누가 주위에서 '낙태'를 하려 한다면 말리십시요.

그것은 또 다른 방생과도 같은 귀한 보시입니다.
물가에 고기를 넣어 주는 것만이 방생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죽이려는(낙태) 그 사람에게
부처님 법을 가르치어 자식을 살생하는 것을 막을 때
그 것 이상 큰 방생의 공덕은 없는 것 입니다.

출처: 보살의 친구(cafe.naver.com/bosar79)카페  토굴지기 진각님 글

 


51.네이버 노력하자 블로그 초보도인님 글

 

낙태를 하면 그안에 아기 영이 그대로 배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남은 경우엔 산모에겐 이상하게 우울감을 느끼게 만들고 자신감 떨어지게 만들고

이유없는 슬픔을 가지게 된다.


산모의 마음이 아니라 아기 영의 마음인데 그렇게 본인은 자신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천도를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하게 사라진다.


수행이란 나 아닌 것을 벗겨내기만 하면 된다.

이게 기본이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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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에 눌린 사람들에게 권하는 염불
 
 
(법철스님)

나는 78년 초여름부터 초겨울까지, 강원도 춘천 소양 댐 안에 자리한 청평사(淸平寺) 뒷 편에 있는 토굴에 홀로 기거하고 있었다. 토굴의 지붕은 오래된 함석지붕이었고, 황토 벽돌로 지은 작은 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난생처음 산도깨비를 만났다.

나의 토굴에서의 일상의 생활은 공양시간이면 숲길을 내려가 큰절인 청평사에서 공양을 하고, 다시 혼자 숲길을 걸어 토굴에 돌아왔다. 나는 낮에는 경서를 보기도 하고, 밤에는 호롱불을 밝히우고 화두를 들고 면벽 참선을 했다. 의복을 세탁할 때는 토굴 옆 계곡에서 세탁을 하여 넓직한 바위에 널어놓고 역시 넓직한 바위에 돌 벼개를 하고 누워서 하늘을 우러러 보기도 하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그 해 추석날, 큰절에서 점심공양을 마치고 토굴 옆 계곡의 바위 위에 돌벼개를 하고 누워 푸른 하늘을 우러르니 갑자기 고향의 어머님 생각이 나고, 이어서 비감한 마음이 되면서 뜨거운 눈물이 양볼을 적시었다. 순간, 나는 비마(悲魔)가 나를 사로잡는다고 자책하여 마지 않았다. 수행자들이 특히 병든 수행자들이 비마가 들면 자살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수행자에게 비마는 무서운 것이다.

나는 얼른 생각을 달리 가졌다. (아아, 나는 얼마나 자유스럽고, 복된 사람이냐. 집착할 것이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에서 홀로 토굴생활을 하면서 자유스럽게 마음공부를 하지 않느냐. 호주머니에 동전 한 잎이 없어도 평안한 마음으로 오늘은 바위에 누워 푸른 하늘을 우러러 즐거워한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해도 욕망과 근심걱정이 많아서 몇몇이나 나와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어디서 왔는지 다람쥐 두 마리가 나타나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와서 친근히 바라본다. 두 눈을 감으니 온 천지에 계곡물 소리뿐이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제행무상 법문을 하는 것 같아 황급히 토굴에 돌아와 면벽 참선을 했다. 나는 승려가 된 후, 남다른 습관을 만들었다. 밤에 잠을 잘 때, 언제나 방문을 안으로 잠그지 않는 것이다.

방문을 안으로 잠근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생명에 대한 집착이요, 겁을 먹는 자세라고 생각하여 문을 잠그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고 귀신이고 그 무엇이든 나를 찾고 싶으면 찾으라는 뜻에서다. 토굴에서도 예외 없이 밤에는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 나는 그때 토굴에서 자리를 깔고 정식으로 잠을 청해 본적이 없었다. 면벽 참선을 하다가 졸음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시 잠이 들뿐이었다.

토굴에서 홀로 수행하는 나에게 어느 날, 마장(魔障)이 찾아왔다. 그 날도 호롱불을 켜놓고 면벽참선을 하다가 졸음이 몰려와 쓰러지는 비몽사몽간에 개 대가리에 온몸이 누런 털로 덮힌 사람 몸에 개처럼 꼬리가 달린 자가 방문을 열고 불쑥 들어왔다. 그자의 키는 4∼5세의 아이 크기였다. 그 자의 두 눈은 사납게 번쩍였다. 그자는 누워있는 나를 번쩍이는 두 눈으로 내려보고는 톱날 같은 이빨을 악물고 내 몸 위로 올라타고서는 말없이 털로 덮힌 두 손으로 나의 목을 바싹 죄기 시작했다. 숨이 칵칵 막혀왔다.

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뜨고서 벽력같이 그자를 질타했다. (네 이놈! 감히 누구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썩 물러나지 못할까!) 나의 완강한 저항에 그자는 놀라 목을 죄든 손을 풀고서 내 몸에서 내려와 방안에 서서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후다닥 방문을 열고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달아났다. 그 자는 이틀사이로 나를 찾아와 비몽사몽간의 똑같은 방법으로 나의 목을 죄었다.

그때마다 나는 땀을 뻘뻘흘리면서 그자를 꾸짖고, 그 자는 달아나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스스로 문제를 풀수가 없어서 청평사를 떠나 존경하는 대선배 고승을 찾아갔다. 나는 고승에게 전후사정을 말씀드리고 대책을 여쭈었다. 고승은 파안대소 하면서 대답했다.

“수행자들에게는 마장이 있기 마련이네. 수행자로써 마장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진짜 수행자가 아니지. 더구나 산 속에 혼자 수행하고 있으면 더더욱 마장이 생기다네. 자네의 목을 죄는 그 자는 산소, 즉 산도깨비일세. 여우나, 이리, 오소리 등의 정령이라고 말할 수 있지. 산도깨비는 자네를 그곳에서 내쫓으려고 하는 것이지.

그 증세는 보통사람들의 가위눌리는 것이나 오십보 백보이지. 산도깨비는 수행자가 자기를 무서워하면 더욱 기승을 부리고 마침내는 목숨까지 빼앗으려 든 다네. 산도깨비는 수행자의 마음의 허(虛)와 기(氣)의 허(虛)를 기막히게 탐지하여 나타나 조화를 부린다네. 처방이 있다면, 첫째, 주력(呪力)을 통해 마음의 원기를 튼튼히 하고, 둘째, 잠자는 습관을 바꿔야 하네. 예컨대 동쪽에다 머리를 두고 자다가 산도깨비가 나타났다면, 남쪽으로 머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지.

천수주(千手呪)를 하면 좋지만은 너무 길 것이니 잠들기 전에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을 반복하여 소리내어 부르고, 간절히 그 소리를 듣는 기도를 하면 그까짓 산도깨비는 물론이려니와 일체 가위 눌리는 증세는 금새 사라진다네. 나무관세음보살의 주력에는 우주의 신장(神將), 신병(神兵)들이 수호하는 불가사의한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네.”

나는 토굴에 돌아와 밤에는 백팔염주를 한 알씩 헤아리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즉 주력의 수행을 시작했다. 나는 잠 속에서도 주력을 하고 있었다. 과연 어느 날 밤, 산도깨비는 방문을 열어 들어오지는 않고 고개만 디밀고 잠시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더니 방안에 들어오지 않고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산도깨비는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잠이 들기 전 주력을 한다.

밤이면 비몽사몽간에 가위에 눌리고, 요괴정령이 목을 죄어 생사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여, 이 글을 접하는 즉시 의심하지 말고, 믿는 마음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옷깃을 정제하여 향로에 향을 피우고 정좌하여 백팔염주를 헤아리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명호정근의 주력을 하시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 구름이 걷히면 푸른 하늘이 나타나듯 한다는 것을 보장하는 바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좌보처(左補處)보살이신 관세음보살님


불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님은 항상 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無量壽佛)의 좌보처(左補處)보살로
항상 적정삼매(寂靜三昧)에 계시면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으시고(不離一步),
시방세계에 두루 모습을 나투시어(刹刹現身)
중생의 고난을 구해주시는 대성인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남성과 여성의 성(性)을 초월한 분으로서
중생을 고난에서 구하지만 전해오는 바를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백의를 입고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왼손으로는 중생을 구원하는 감로수가 들어 있다는
정병(淨甁)을 든 천상천하에 유일한 복덕과 지혜를 갖춘
아름다운 여인상으로 많이 나투고 있으니, 이는
관세음보살님이 우주의 일체중생의
대자대비한 어머니의 상징인 것이기도 하다.

또 관세음보살님은 인적이 끊긴 외로운 섬(海岸孤絶處)에
있다는 성산(聖山)인 보타낙가산(寶陀洛迦山)의
죽림원(竹林院)에서 상주 하면서, 고난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설흔두가지의 몸을 나투고(三十二應身),

열 네가지 두려움이 없는 위력(十四無畏力)과 네 가지
불가사의한 덕(四不思議德)을 걸림이 없이 받아
쓰기도(受用無碍)하면서, 팔만사천의
빛나는 머리(八萬四千 迦羅首)와 팔만사천의 팔과 손
(八萬四千母陀羅臂)에 항마(降魔)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신기(神器)를 들고,

팔만사천의 청정하고 보배로운 눈(八萬四千淸淨寶目)으로
우주를 통찰하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대자비로
항마를 위해서는 위신력(或慈或威) 을 보이며

우주에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이(分形散體) 몸을 나투워
고해중생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감응도교(感應道交)를
이루면 기도중생의 마음속의 구하는 바에 따라서 반드시
낙을 얻게(拔苦與樂) 해주는 대성인이시다.

고해대중이여, 이제부터라도 현세의 짧은 무상한
허욕에서 심기일전 하여 마음을 비우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을 가슴으로 영접할지어다.

그대 가슴에 마음을 비우고 오직 관세음보살님을 영접하면
그대의 가슴에도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심이 충만하게되고,
그대의 초능력인 잠재의식이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하여 자가
발전을 일으켜 마침내 관세음보살님과 일체를 이루어,

그대가 지은 업의 윤회의 고통에서 반드시 해탈하여 살아서
마음의 평안과 소원의 성취는 물론이요,
세연이 다해 그대 홀로 저세상의 먼길을 외롭게 떠날때
관세음보살의 인도를 받을것이다.

믿음으로 고해를 향해 소리쳐 송(頌)하노니,
대자대비하신 구세주 관세음보살님시여 우주의 오직 한 분,
청정법신불의 화신이로다 관세음보살님시여,
업보의 윤회에서 고통받는 고해의 중생을 인도하여 주소서

이교(異敎)에 올바른 정신을 빼앗기고, 탐욕으로 올바른
정신을 빼앗긴 자들의 속안(俗眼)에 관세음보살이 어디있느냐,
보이지 않는다, 하면서, 불신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도다.

믿음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불신의 업보로서 하루낮
하룻밤에 만번 살고 만번 죽어야 하는(一日一夜 萬生萬死)의
생사윤회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는 분, 관세음보살을 믿는 중생들은,
어둠속에 대광명을 만나듯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살아서나
죽어서나 관세음보살님의 가호로 윤회의 업보가 소멸되어
마침내는 극락세계로 인도받아 영원한 영화속에 살 것이로다.

아침에도 관세음보살님께 경배 드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고
(朝念觀世音菩薩), 저녘에도 관세음보살님께 경배 드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는(暮念觀世音菩薩)
바른 신행을 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반드시
제불보살(諸佛菩薩)과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축복을 받을것이로다
 
 
법철스님 프로필


1948년 출생
조계종 스님
9대 종회의원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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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1〉 기도영험은 실재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정진하라


예로부터 불가에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얻어 어려움을 벗어나거나 소원하는 바를 이룬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불자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찾는 보살님이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이름 중에 관음사가 가장 많다는 통계조사가 있을 정도로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불자들의 귀의심은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영험이야기라든가 기도성취 이야기를 하면
옛날 전설의 고향에서나 일어날 일이라며 애써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전설 또는 꿈속에서나 어울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기도 가피로 성취되는 사례가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으니까요.

불교계에는 관세음보살 영험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진실을 믿지 않으려 하니
제가 살고 있는 신흥사 신도님들이 성취한 영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다 알다시피 불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참선을 하던지, 염불을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각자에 맞는 신행활동을 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신행활동의 목표는 성불, 즉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되어 고해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 불자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러나 이 사바세계에서 살아가다 보면 참 어려운 일을 많이 겪게 됩니다.
중생들이란 본래 업장이 무겁기 때문에 성불의 길을 향해 가더라도
부처님과 보살님께 절대적으로 귀의하여 기도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부처님의 성품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겁 생애를 통해 지은 업장이 그 소중한 보배를 가리고 둘러싸고 있어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냥 법회에 참석해서 순서대로 법회를 진행하고 돌아가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 업장을 소멸하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소원하는 바를 성취하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기도의 성취, 영험 등에 대해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불교를 머리로만 믿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결코 옳은 길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화엄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의 죄업은 무거워서 언제까지 가도 부처님을 만나 뵙지도 못한 채
거짓된 세계를 계속하여 헤매면서 일어나는 고통을 받고 있다.

부처님은 이런 중생들을 구하고자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
부처님은 시방의 중생들 앞에 나타나서 온갖 세계에 있는 고통을 없애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하고자 세상에 오신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큰 서원을 세워 실천하면 성취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현실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를 영험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영험은 옛날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해서 고난을 극복하고
매사에 희망이 솟고 자신감이 넘쳐나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부처님은 반드시 기도에 가피를 내려주실 테니까요.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자료출처: 법보신문 2002. 4. 3 / 6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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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 〈2〉신묘장구대다라니의 위력

 

 

 다섯번 독송으로 백천만겁의 죄 소멸

불자들이 가장 많이 외우는 경전으로는 단연 천수경을 꼽을 수 있습니다. 천수경에는 ‘신묘장구대다라니’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다라니 독송기도의 가피가 매우 신묘하고 크다고 합니다. 이 대다라니를 3번 정도 독송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원력의 간절함에 따라서 21번이나 천 번씩 독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수경의 뜻을 풀이하면 ‘부처님이 설하신 천의 손과 천의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의 넓고 크고 원만하여 걸림이 없는 큰 자비심의 총지경’입니다. 범어(梵語)인 다라니는 한문으로 총지(總持)라고 하는데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뜻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업장을 소멸하고 파한다고 해서 ‘파업장다라니’라고도 하고, 지옥, 아귀, 축생 등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고 해서 ‘멸악취다라니’라고도 하며, 또 아주 딱한 사람을 구해주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다고 해서 ‘무애다라니’라고도 하고, 수명이 짧은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면 오래 살수 있다고 해서 ‘수다라니’라고도 하고, 속히 불도를 이룬다고 해서 ‘속초상지다라니’라고도 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모든 다라니의 근본이기 때문에 불공할 때에도 천수경을 외우고, 돌아가신 분을 극락세계로 가게 하는 49재나 천도재에도 독송되며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구병시식 등에도 빠짐없이 사용됩니다. 이렇듯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불교의식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근본 염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수억 겁 전부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원을 세운 대자대비한 보살님이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당신의 발원을 성취하기 위해 석가모니 부처님께 이렇게 사뢰었습니다.

“제가 아득한 옛날에 대비신주경을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원을 세우던 때 천광왕정주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저와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고 저에게 대비신주를 말씀해 주시면서 금빛 손으로 저의 이마를 어루만지시고 수기를 하시며 ‘너는 이 주문을 가지고 미래의 악세 중생을 크게 이익케 하라’고 부촉을 하셨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천수다라니를 주시면서 모든 중생들이 이익되게 하라는 말씀을 듣고 저는 초지보살에서 팔지보살로 뛰어 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만일 내가 미래에 능히 일체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다면 내 몸에서 팔만사천의 금강같은 머리와 팔만사천의 거룩한 눈과 팔만사천의 결인한 팔이 생기소서.’라고 발원하니 곧 제 몸에 팔만사천의 머리와 눈과 팔이 구족되었습니다. 그때 온 천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다 광명을 놓으시어 저의 몸을 비쳐주셨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정성껏 부르고 본사인 아미타불을 일념으로 생각한 후 일념으로 대비신주를 지성껏 하룻밤에 다섯 번만 외워도 백천만 겁 동안에 지어온 무거운 죄를 소멸하고 목숨을 마칠 때에 서방의 아미타 부처님께서 오셔서 손을 이끌고 소운대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하는 위대한 다라니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본심미묘대다라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대다라니 독송기도로 원력을 성취한 불자들이 요즘에도 많이 나타나고 것은 이런 연유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의 큰 불사를 이뤄질 수 있던 것 역시 대다라니 기도에 응답해 주신 가피력에 의해 가능했던 것입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2002. 4. 10 / 6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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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3〉 부처님 가피(加被)


불가에서는 가피(加被)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가피라는 불교용어는 일반사람들에게 생소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다.
기도 가피로 어떠어떠한 일을 성취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흔히 듣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 불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가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가피는 부처님이나 여러 불보살들이 자비를 베풀어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힘을 말합니다.
기도나 원력을 이루도록 해 주는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하면 쉽게 알 수 있겠지요.
가피는 가비(加備), 가우(加祐), 가위(加威)라고도 하는데,
그 사전적 의미는 불보살에게 위신력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가피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불교용어 중에는 가지(加持)라는 것이 있는데,
이 것은 불보살님의 대자대비한 힘이 중생에게 미쳐서 중생의 신심이 부처님께 감응되어 서로 어울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가호(加護)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요.

가피의 종류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몽중(夢中)가피’와 ‘현전(現前)가피’, 그리고 ‘명훈(冥勳)가피’가 그것입니다.
그러면 각각의 가피에 대해 사례를 들어 설명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몽중가피는 꿈속에서 부처님이나 보살 등을 만나 그 위신력에 힘입어 기도성취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자주 만나는 한 할머니의 경우인데,
이 할머니는 지난 1990년 10월 28일 삼천불을 모실 때 몽중가피를 성취한 분입니다.
당시 이 할머니는 복장물을 모실 때 큰법당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꿈속에서 부처님이 다가오시더니 약을 한 사발 주시어 그것을 마신 이후로는 지금까지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아픈 곳도 없으며 현재까지도 아주 건강하게 살고 계십니다.

두 번째 현전가피는 불보살님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서 구제를 해주시는 경우를 말합니다.

저 유명한 조선조 세조대왕이 고름이 줄줄 흐르는 등창병을 고치기 위해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서 기도를 하던 중
문수동자를 만나서 계곡에서 목욕을 한 후 마침내 병을 치료한 이야기는 바로 현전가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명훈가피입니다.
명훈가피란 꿈속에도 나타나지 않고 눈앞에도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그저 생각만 하면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가피로
세 가지의 가피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에 해당합니다.

몽중가피나 현전가피는 꿈속에서나 눈앞에 불보살님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망상이 생기기 때문에
스님들이 축원할 때에는 마음만 내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명훈가피력으로 기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흥사의 많은 불자들은 지극한 기도로 명훈가피를 입어 기도성취를 한 경우가 무수하게 많습니다.

요즘 항간에는 기도의 가피가 있느니 없느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자 여러분들은 이런 말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불보살님의 가피력은 반드시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너무 기도 가피에만 의존하여 그 것에 머무르려고만 하지 말고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여
마침내 성불에 이르도록 정진을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법보신문, 2002. 4. 24 / 6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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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4〉 집에서 기도하는 방법

'시간-내용’ 정하고 지키면 더 빨리 성취



기도는 반드시 절에서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는 어느 곳이든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니 장소가 아니라
그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도 주위가 어수선하거나 시끌시끌하면 방해를 받게 되므로
많은 불자님들이 절과 같은 조용한 장소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면 어디서 기도를 하던지 간에 우선 다음의 다섯 가지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기간을 정해놓아야 합니다.
백 일이면 백 일, 천 일이면 천 일로 정해 하루도 빼먹지 말고 단단한 각오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둘째, 기도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절에서는 보통 사분정근이라고 하여 하루 네 번 기도를 올리지만
일반인들은 그렇게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최소한 두 번, 가장 편리한 시간을 정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려면 잠도 줄여야 하고 일도 줄여야 할 때가 있는데 기도 성취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의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천수경을 읽고 관세음보살을 천 번 부르고
발원문과 각자의 소원을 부처님 전에 고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21편 읽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설사 집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반드시 공양물을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상에 향과 다기물, 공양미, 기도비를 정성껏 올려야 합니다.
기도가 끝난 후 다기물은 감로다로 변해 있어 마시면 심신이 맑고 건강해집니다.
공양미와 기도비는 봉투에 모아 두었다가 절에 가져다가 부처님께 올리면 됩니다.

다섯째, 기도 입재(시작)과 회향(마침)은 절에 가서 올려야 합니다.
이 때 공양미와 향, 초, 과일 3종류, 기도비를 준비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절과 집에서 동시에 발원과 축원 기도를 하는 것이니 그 성취가 훨씬 빠르고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기도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처님도 영험스러우셔야 하고 스님도 정성껏 기도를 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들의 지극한 정성입니다.
절에서만 기도해서 성취하는데 100일이 걸린다면
본인들이 집에서 함께 기도를 하면 50일로 줄어들게 됩니다.
정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기도 도량은 따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이 부처님이 계신 곳이요 기도처인 것입니다.
그럴진대 늘 자신과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도량이 청정하고 마음과 몸이 청정해야 불보살님들과 선신들이 내려와서 도와주시는 것이지요.
특히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의 중요성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린 음식을 먹고는 양치질만 하면 입이 깨끗해져
정구업(淨口業) 진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입니다.
정구업 진언이 되려면
입으로 짓는 거짓말, 꾸밈말, 이간질, 악담 등 네 가지를 다 사라지게 하고,
대신 진실한 말, 참된 말, 화합하는 말, 덕담으로 남을 칭찬하고 축원하는 마음가짐이 우선돼야 합니다.

바른 기도법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주변도 깨끗이 하고,
깨끗한 상에다 향을 올리고 , 다기물을 올리고, 마지를 올리고, 불전을 올리고,
또 초(전깃불이 환할 때는 생략해도 됨)를 올려야 합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법보신문, 2002. 5. 1 / 6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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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 〈5〉 신흥사 우물불사의 성취

한 바가지 물 아쉽던 곳…기도 후 ‘펑펑’


신흥사 불사를 하며 경험한 영험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신흥사는 절을 본격적으로 중창하기 시작한 후 기도도 잘 되고 신도도 갑자기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을 물이 부족한 것이 큰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지요.

인근의 군부대에서 물을 실어다가 샘에 부어서 그 물을 먹고,
빨래는 모았다가 서울에 있는 아는 절에 가서 빨아오는 등 물 때문에 겪는 고통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기계를 동원해 여러 차례 파 보았지만 물은 나오지 않아 그냥 돌아가는 일이 거듭되면서 막막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들리는 소문에 아주 비싼 기계를 들여다가 아주 깊이 구멍을 파면 물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지요.
그러나 비용이 천만 원이나 들어가는 터라 선뜻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 한 신심 깊은 보살님이 돈을 빌려줘 추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조건도 이자도 없이 빌려주겠다는 말씀에 몹시 고마웠지만
이 보살님께는 이미 다른 불사에도 도움을 받은 바 있어서
부득이하게 법회시간에 신도님들에게 부탁을 해서 천만 원을 모아 돌려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보살님 말씀이 지난번에도 그냥 보시를 했어야 했는데 빌려드리게 되어 영 마음이 불편했다며,
그 동안 부처님 전에 남편의 사업이 잘 되어 그 돈을 받지 않아도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정말로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몇 배의 돈을 벌어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면서
천만 원을 그대로 다시 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보시금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물 공사를 하는데 쓰기로 하고 잘 보관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몰라도 물이 부족해 겪는 불편은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아껴 쓰라는 말이 16년 동안 입에 붙어 버렸을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도량 곳곳에 ‘물을 아껴 쓰면 용왕님이 돌봐주십니다’라는 글귀를 써 붙이고,
야단도 치고 했지만 평소 물을 펑펑 쓰는 버릇이 든 아이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근 군부대의 지하수를 판 사장님을 소개받아 지하수 개발을 하기로 했는데,
비용이 천팔백만 원이나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고민을 하자 사장님이 팔백만 원은 시주를 하겠다고 선뜻 응해주시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맥이 빠져 있었습니다.
육중한 기계를 세워 놓고 기사들도 스님들도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지요.
보통의 경우 20미터나 30미터를 파면 물이 나오는 데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속이 타고 답답하고 막막해 걱정을 하며 부처님의 가피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지하 32미터를 파고들어 갔을 때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250∼300드럼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무려 500드럼이 넘는 물이 터져 나와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지요.
그래서 이제는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와도 물 걱정은 덜게 되었습니다.

사실 물 공사를 하기 전 큰스님이 삼성각 준공식에 오시어 큰절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
그 때 큰절이 되고 싶어도 물이 없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이 터진 것이지요.
정말로 큰절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많은 물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모두가 부처님께서 주신 큰 가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법보신문, 2002. 5. 8 / 6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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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 <6> 군부대가 무사고 부대로

총기사고 잦은 곳… 다기물 올리고 기도


이번 주에는 한 특수부대에서 경험한 영험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절 가까이에 있는 이 부대에서는 대포를 쏘는 훈련을 하다가 오발탄이 발사돼 사병 3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영결식에 염불을 해달라고 부탁이 와서 부대 안으로 들어갔지요.
포대 연병장에 영결식장을 차려 놓았는데 모두들 표정이 어둡고 침통했습니다.
군인 유가족들이 각목을 들고 포대장을 때려죽인다고 난리를 치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보름이 지날 즈음 또 초소에서 보초를 서던 군인이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을 했는데,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서 초소 천장에 붙어 함께 보초를 서던 군인들이 무서워서 공포에 떨고 있으니
와서 염불을 해달라고 전갈이 왔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일주일 후에 포대장이 드릴 말씀이 있다며 직접 절로 찾아왔습니다.
포대에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계속 일어나 걷잡을 수가 없으니
앞으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택불공을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흔연히 해준다고 하고 절에 와서 기도중이던 보살님들과 함께
독경상에 올릴 과일과 떡, 헌공물과 군인들이 먹을 음식까지 준비해 부대로 들어갔습니다.

부대 연병장에 자리를 마련하고 군인들 모두를 목욕재계 시켜 두시간 동안 독경을 했습니다.
독경기도가 진행되는 도중에 천주교 신자인 부대장부터 나와서 삼배를 하고
전체 군인들이 차례로 나와 절을 했습니다.
물론 부대 장병 중에는 천주교를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교회를 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워낙 사고가 잦으니 모두가 정성껏 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독경이 끝나고 부대 구석구석에 부처님 전에 올렸던 다기물을 솔가지에 묻혀 뿌렸습니다.
그 뒤론 그 부대에 거짓말처럼 사고가 사라졌습니다.
2,3년 뒤에는 사고 없는 부대로 뽑혀 무사고부대 상패까지 받아 상패가 포대장실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지요.

사고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 부대에는 불보살님의 가피로 경사가 겹치기로 일어났습니다.
해마다 포대들간에 포 쏘는 경연대회가 있는데
늘 대회에 나가면 군용트럭이 고장이 나서 차를 고치다가 입상을 못하는 불운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역시 포대장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서 대회 하루 전날 같은 방법으로
부대 연병장에 군용트럭 20여대를 세워놓고 독경을 한 뒤 다기물을 솔가지 묻혀 트럭에 골고루 뿌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차도 고장이 나지 않고 포도 잘 쏘아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 부대가 1등을 하기는 처음이라서 큰 경사가 났다며 부대까지 카퍼레이드를 하고 대단했었지요.
나중에 부대장이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절에 일이 있으면
군인들이 와서 울력을 하는 등 이제는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감로수로 변한 다기물을 뿌리면 모든 것이 안위가 되는 것입니다.
다기물을 올리고 정성을 드려 기도를 한 후 그 감로수를 마시면 병도 낫고 소원하는 일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지극한 정성에 있다고 합니다.
이 것을 의심하지 말고 명심하여 그대로 실천해 보십시오.
반드시 불보살님의 가피가 내려질 것입니다.

이 다기물은 천수물이라고도 하는데
그 유래는 부처님께서 인도 베살라에서 독경과 물뿌림으로 전염병을 퇴치하신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자료출처.....법보신문, 2002. 6. 12 / 6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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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7〉 49재와 천도재의 공덕


부인 영가 천도 후 ‘건강-경제’ 모두 안정


15년 전 부처님오신날이었습니다.
법당 앞에 까만 옷을 입은 남자 한 분이 하루종일 앉아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이 남자는 보름쯤 후에 다시 절에 찾아와 앉아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눈빛이 이상하고 횡설수설하는 것이 정상인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염불을 많이 하고 언제나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라’고 일러주고
천수경과 염주를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해 가을 벼를 벨 무렵 그 남자가 다시 절로 찾아와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습니다.

자살을 한 부인 이야기를 하면서
몇 십 년 동안 죽은 부인이 계속 귀에다 대고 천도재를 지내달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3살에 자살을 한 부인의 혼령이 남편한테 붙어서 계속 49재를 지내달라고 한 것인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 49재를 지내주지 못했다는 것이었지요.
그 뒤로는 부인이 산으로 가자면 산으로, 들로 가자면 들로 가는 등 온 산천을 헤매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산 기도도 해보고
교회에 가면 귀신 병이 낫는다는 말에 교회도 다녀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듣고 보니 사정이 매우 딱해서 부처님께 마지 한 그릇을 올리고 천도재를 지내주기로 했습니다.
다만 사중 돈으로 제사음식을 차리면
그 영가에게 빚이 되어서 더 좋은 데를 갈 수 없으므로 절에서는 염불을 봉사하고,
제사음식은 본인이 정성을 다해 차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가 벼를 베는 데 가서 사흘 동안 일을 하여 번 돈을 가지고 지장재일을 택해 천도재를 정성껏 지내 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도 아주 열심히 기도를 하였지요.

천도재를 지내고 난 뒤 그 남자의 병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 가족 모두가 가족법회에 열심히 나오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 후로 그 거사님의 부친이 여든 살이 되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염불을 하러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가는 길에 그 거사가 얼마 전까지 살았다는 옛 집에 들러 보았는데
그 집의 구석구석마다 관세음보살을 써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사를 해 살고 있는 집도 기와집이었는데,
서까래 기둥마다 모두 ‘관세음보살’이라고 써 붙여 놓았더군요.

이렇게 그 가정은 집에서도 열심히 기도를 하고
가족법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점차 건강도 좋아지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부친의 49재 공양비를 가지고 온 그 거사님은 부처님의 가피로 인해
텃밭도 사고 기와집도 사서 잘 살게 되었다면서 지난 이야기를 차분히 털어놓았습니다.
천도재를 지낸 이후로는 채소를 가꾸는 농사일도 잘되어 지금은 트럭도 사고 가산도 크게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가만히 지켜보면 천도재와 구병시식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의식을 치른 후 하나 같이 덕을 입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일이라고 해서 전혀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거사님의 경우처럼 정신이 이상한 사람 중 원인불명의 것은 대다수가 영가로 인한 것이 많습니다.
영가가 원하는 대로 천도재를 잘 지내주면서 영가를 위로하고
좋은 법문을 들려주어 해탈할 수 있게 해주면
정신병도 낫고 여러 가지 힘겨웠던 장애가 걷히는 것입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자료출처...법보신문, 2002. 6. 19 / 6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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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 〈8〉 부처님은 대의왕


108기도-다기물로 세안… 보름만에 문둥병 완쾌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병을 고친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기도가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들의 사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난치병을 고친 경우를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에 우리 절에서 농사를 처음 지을 때 일꾼이 한 분 들어왔습니다.
남양에 사는 분이었지요.
그런데 얼굴이 꼭 문둥병 환자 같았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처사님이 숙부와 함께
전라도에 가서 이백 몇 십 년 된 조상들 면례를 하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조상들 시신이 썩지 않고 그대로 있더랍니다.
그 시신의 얼굴을 긁다가 차 출발시간이 되어서 급히 묻어 놓고 돌아왔답니다.

그런데, 그 날 숙부는 밤차 타고 남양 집 앞까지 와서 갑자기 쓰러져 죽고
이 조카는 얼굴에 피부병이 생겨서 부글부글 끓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절에 일꾼으로 왔을 때가 4월이었으니까 10월부터 반 년 이상을 고생한 것입니다.

용인의 문둥병 환자촌에 가서 약을 사먹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낫지 않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주위사람들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흉한 모습이었으니까요. 그
래서 그에게 “부처님은 대의왕이시고 병을 잘 낫게 해주십니다.
아침저녁으로 법당에 들어가서 108배를 하고 다기물을 먹고
또 그 물로 얼굴을 씻고 하면 곧 나을 것입니다.”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불교를 믿기는 해도 남자들이 잘 안 해보던 일이어서 그런지 왠지 자꾸 꺼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노스님을 뵌다고 경상도에서 어떤 처사님이 오셔서
피부병을 앓고 있는 일꾼을 보고는, “저도 그렇게 병을 고치는 사람을 봤습니다.
피부병이 난 남자분이 절에 가서 일 년 동안 일해 드리면서
늘 다기물을 먹고 씻고 하더니 감쪽같이 나은 걸 봤어요.”하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꾼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 하루는 그 부인이 오더니 손님이 왔다고 하면서 남편을 데려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만신 할머니를 불러다가 굿 같은 것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더 악화되어 얼굴이 항아리처럼 부어 오르는 등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요.
다음날 그 일꾼이 절에 찾아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 봐요. 절에 있으면서 시키는 대로했으면 벌써 나았을 것인데
엉뚱한 일을 하니까 더 큰 일이 나지 않았느냐”고 야단을 치고는
그 날 저녁에 당장 구병시식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감쪽같이 부기가 싹 내렸어요.

그 때서야 그 일꾼은 뭔가 느끼는 것이 있었는지
아침, 저녁으로 들어가서 108배를 올리고
다기물 먹고 또 그 물로 얼굴을 씻고 이렇게 하기를 보름쯤 했고,
그 병이 싹 나아 버렸어요.
그분은 절에서 일한 덕분에 그분의 삼촌처럼 급살을 당하지도 않고
기도를 해서 병이 나은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위신력을 믿고
부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불자들의 앞날은 환하고 밝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자료출처...법보신문, 2002. 6. 26 / 6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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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9〉 불효한 딸이 효녀가 되다

천수경 1000 독에 불효딸 마음 돌려


부모의 자식 사랑과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 공양함과 부모님께 효도한 공덕이 똑같다”고 하였으며
“부처님이 삼계의 비할 데 없이 금색원만심을 성취한 것도 다생 동안 효도한 인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효를 행하는 이들이 드문 세태입니다.

우리절 신도 중에 부부가 둘 다 학교 교사인 집이 있습니다.
그 집에 딸이 둘인데 중3짜리 큰딸이 아주 고민거리였답니다.
대개 첫정이 크다고 큰딸과 엄마의 관계가 남다르기 마련인데
이 집 큰딸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이리 가라고 하면 저리 가고,
엄마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가면서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어머니가 숙제하라고 하면 원수처럼 바라보면서 저주스런 눈빛으로 쏘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어머니가 한 마디 하면 열 마디, 백 마디씩 대꾸를 하는데 그 어머니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교사로서 학교에서는 남의 자식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정작 내 자식은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속상해서 미칠 지경이에요.
난산이었는지라 태어날 때부터 죽을 고생을 시키더니 자라면서도 계속 그러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제가 낳은 자식이지만 원수 같을 때가 많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딸 생일 날 딸과 함께 절에 온 그 보살님은
18시간 동안 법당에 앉아서 천수경 천 독 기도를 했습니다.
그 날 데리고 온 딸에게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에서 제일 복 받고 아름다운 일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우선 네가 부모님 말씀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최고의 효도가 아니겠니?
그 다음엔 또 학생의 본분을 지켜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내가 이제까지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서 천독 기도를 하는 것은 봤지만
딸을 위해서 하는 것은 못 봤다.”고 하면서 몇 글자 적어 주었지요.

그 날 그 댁 큰딸은 집에 돌아가서 동생에게,
“내가 여태까지 나도 모르게 너무 부모님 속을 썩여 드렸나봐.
나도 부모님처럼 백일 기도를 해야겠어.” 하고 말하더니 동생과 함께 백일 기도를 시작하더랍니다.

그 때부터 두 딸은 저녁에 공부를 끝내고
밤 12시에 동전 몇 닢을 올려놓고 108배 절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과 3∼4일 뒤부터는 아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고 공부를 잘해서 마침내 서울의 명문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십 몇 년 동안 속을 썩이던 딸이 효순해지고 공부 잘하게 된 것입니다.
어떠세요. 기도는 정말 해야 되겠지요.

기도를 하면 이렇게 눈에 보이는 가피도 입지만 눈에 안 보이는 가피를 더욱 크게 입습니다.
향내가 몸에 배듯 은연중에 입는 가피를 명훈가피라고 합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는 것이 다 불보살님의 명훈가피를 입은 덕분입니다.

기운이 세고 건강한 사람은 쌀 한 가마니도 거뜬히 들어올리지만
몸이 약한 사람은 반 가마니도 못 드는 것처럼
평소 기도를 통해 힘을 기르면 설사 힘든 일에 부딪치더라도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는 것입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장

자료출처...법보신문, 2002. 7. 3 / 6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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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기도영험이야기〈10〉 행·불행은 마음먹기 나름


같은 법문 듣고도 결과는 ‘천양지차’


화엄경에 선용기심(善用其心), 즉 그 마음을 잘 쓰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말처럼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당하고도 그 사람 됨됨이와 마음씀에 따라서 그 일에 대한 생각이 천차만별이요,
뒷날 전개되어 가는 양상도 천양지차가 나는 것입니다.
요 근래 3일 사이 일어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수원에 사는 젊은 보살님이 와서 하는 이야기가

“스님, 저는 너무 가난해서 지하 사글세방에 살고 있는데
누가 스님께서 설법하신 기도 영험록 테이프를 줘서 듣고 이렇게 왔습니다.

전에는 이렇게 못사는 것이 다 남의 탓이라고 돌렸는데 법문을 듣고 보니
모두가 제 업장 탓이고 복을 짓지 못해 이렇게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장엄하게 법당을 지으시는데 서까래 하나 시주하려고 왔습니다.
시주금이 적지만 저에게는 큰돈입니다.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시주를 올리니까 너무 기쁩니다.”하고는 시주금을 내고 갔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수원에서 출퇴근을 하며
뒷산 너머 조그만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신 노 거사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이 거사님은 “스님, 영험록 테이프를 들어보았는데
스님이 너무나 돈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라며 아주 언짢아하더군요.

그 거사님의 말을 듣고 “그러세요?”하고는 허허 웃고 말았지요.
이 교장 선생님은 60세가 넘어 이제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로
서울의 어느 신도 신행단체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우리 신흥사 큰법당에 들려 도량이 떠나갈 듯이 크게 독경을 하고 가길래
신심이 깊은 분인 듯해 영험록 테이프를 하나 드렸더니 그것을 듣고 그렇게 기분 나빠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보살님은 3일 전에 똑같은 테이프를 듣고 신심 내어
그 가난한 환경에서도 시주를 하는가 하면 이 거사님은 이렇게 언짢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름 후에 다시 테이프를 듣고 서까래를 시주한 그 가난한 보살님이 와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사연인 즉, 친정 남동생은 잘 살면서도 이제까지 누나를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었는데
지난번에 찾아와서 시주를 하고 간 뒤 이틀 후에 남동생이 난데없이 찾아와서
누나가 살고 있는 사글세방이 너무 고생스러워 보인다며
2천만원 들여 전세방을 얻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글세를 살면 돈이 모아지지 않아 가난에서 헤어나기 힘들지만
일단 전세를 살게 되면 형편이 조금씩 나아질 것은 자명한 것이라며 그렇게 고마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사흘 후 그 똑같은 영험록 테이프를 듣고
스님이 돈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며 언짢아하던 노 교장 선생님은 늘 다니던 아침 출근길에서 교통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인명 피해로 인하여 퇴직금을 미리 타서 엄청난 피해보상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흘 간격으로 두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일체유심조,
즉 일체가 오직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됩니다.
같은 테이프를 듣고 한 사람은 환희심을 내어 시주하니 그런 좋은 일이 있고,
한 사람은 기분 나빠하더니 그런 나쁜 일이 있으니 말입니다.
이 사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 원장

자료출처....법보신문, 2002. 7. 10 / 663호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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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경 서문(觀音經 序文)

 


경의 유래와 내용


관음경이란 대승경전(大乘經典)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제二十五品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을 별행(別行)시켜 단행경(單行經)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별행시켜 관음경이라 전해오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이 경의 내용이 거의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는 법문으로 일관되어 있는 바, 고해중생이 피화구복(避禍求福)하는데 있어서 온 우주에 관세음보살의 원력과 위신력과 공덕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또 관음경이 법화경의 보문품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관세음보살이 고해중생의 구제를 위해 삼십이응신(三十二應身)으로 광대무변히 화신(化身)을 나투는(普門示現) 하는데서 연유한 것이다.

원래는 법화경에 보문품의 장행(長行)만 들어있었고, 게송(偈頌) 부분은 빠져 있었다. 천재번역가인 인도승 ‘구마라습’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의 보문품에는 산문체인 장행만 있고, 그 뒷부분인 게송, 즉 ‘세존묘상구’로 시작되는 게송 부분을 빠뜨린 것이다.

 

그런데 서력 7세기 경에 북인도로부터 중국에 도래한 천재번역승인 ‘달마굽다’, ‘사나굴다’두 인도승이 ‘첨품법화경(添品法華經) 七권 二十七품을 번역할 때, 비로서 보문품 게송 부분이 번역된 것이다. 관음경은 관세음보살을 우주와 고해인 현세의 ‘구세주(救世主’이며, 구세보살(救世普薩)로써 믿어 의심치 않고 신앙하는 모든 불자들의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삼아 오늘에 전하고 있다. 


  중국의 천태대사(天台大師)는 말하기를, “관(觀)은 각(覺)이요, 각을 이름하여 불(佛)이라 하고, 세음(世音)은 경(境)이요, 경은 곧 여래(如來)이다.”라고 정의 하였다. 다시말해 관세음(觀世音)은 불(佛), 여래(如來)를 뜻하는 것이다.
또 관세음보살은 정법왕여래(正法王如來) 부처님이시며, 우주의 본체인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 부처님의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의 한분이시며, 우주의 절대적인 사랑, 즉 대자대비 자체이다.

온 우주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어디서 생겼을까? 깨닫고 보면 일체가 우주의 본체인 법신불 비로자나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사바교주(沙婆敎主)이신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 등 일체 불보살이 모두 비로자나부처님이 고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투신 천백억화신중의 화신들이라는 것을 확철대오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화신이면서 비로자나 부처님과 둘이 아닌 본체 법신불이기 때문에 우주의 부성애(父性愛), 모성애(母性愛)를 갖고 고해중생을 오직 대자대비로써 구제하려 하시는 것이다.
  또한 관세음(觀世音)이라는 또다른 뜻은 세상소리(世音)를 관(觀)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고해이므로 관세음보살은 고해의 소리를 항상 들으시고 살피시며 마치 고해에서 생활하는 중생들을 적자(赤子)와 같이 보면서 부모심정(父母心情)으로써 이를 구제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향피워 예를 갖춰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하고 관세음보살께 일심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관세음보살은 반드시 감응도교(感應道交)로써 대자대비심으로 구제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니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할 것이다.

 

우주에 생명의 시작과 끝을 주재하시는 거룩한 한 분


 

우리는 우주의 본체로써 법신불인 비로자나 부처님께 경배를 올려야 한다.
법신불은 업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천백억화신으로 나투나니 제불보살이 모두 법신불의 화신이라는 것을 확철대오 대오 해야 한다.

다시말해 우주 대자대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은 누구이신가?
이 역시 우주에 오직 한 분 법신불의 화신이라는 것을 확철대오를 해야 한다.
전생에 자신이 지은 악의 정업으로 고통속에 신음하는 고해대중이여, 생사가 촉박하니 어서 마음을 열어 눈빛 같은 하얀 옷을 입으시고 한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다른 한손에는 감로수병을 드신 관세음보살을 그대의 가슴속에 구세주, 구세보살로 영접하시라.
즐거우나 슬프나 관세음보살을 신앙하고 의지하며 세상을 사시라.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은 그대들을 이승에서도 구제구원하고, 저승에서도 그대의 외롭고 슬픈 영혼을 반야용선에 태워 극락정토의 무량수(無量壽) 부처님 세계에 인도하여 영생과 복락을 누리게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철대오 하시라.


고해대중이여,
다생겁래의 악업의 정업을 소멸하려면, 관음경을 낭송하면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시라!!
*


관음경 1.  

 



觀音經 1.

 



時에 無盡意菩薩이 卽從座起하사 偏袒右肩하고 合掌向佛하사 而作是言하사대 世尊이시여 觀世音菩薩을 以何因緣으로 名觀世音이닛고 佛告無盡意菩薩하시되 善男子야 若有無量 百千億中生이 受諸苦惱하되 聞是觀世音菩薩하고 一心稱名하면 觀世音菩薩이 卽時에 觀其音聲하야 皆得解脫케 하나니라.

若有持是 觀世音菩薩 名字하면 設入大火라도 火不能燒하나니 由時菩薩의 威神力故며 若爲大水所漂라도 稱其名號하면 卽得 淺處하며 若有百千億衆生이 爲求金銀琉璃와 珊瑚琥珀眞珠等寶 하야 入於大海할새 假使黑風이 吹其船舫하야 漂墮羅刹國커든 其中에 若有乃至一人이라도 稱觀世音菩薩名者면 是諸人等이 皆得解脫 羅刹之難하리니 以是因緣으로 名觀世音하나니라.


【국역】
그때에 ‘무진의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의 옷을 벗어 걸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떠한 인연으로써 이름을 관세음보살이라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대답하신다.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중생이 모든 고뇌를 받게 되는 때에 관세음보살이 명호를 일심으로 부르면 곧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관찰하여 해탈을 얻게 하나니라. 만약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간직한 사람은 설사 대화재를 당할지라도 불이 능히 이 사람을 태우지 못하나니 이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이 미치기 때문이다.

 

만약 큰 물에 표류하게 될 때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즉시에 물이 얕은 곳에 이르게 되며, 만약 백천만의 중생이 금·은·유리·자거·산호·호박·진주등 보배를 구하기 위해서 큰 바다로 들어갔다가 가령 폭풍을 만나 배가 나찰귀국으로 밀려 떨어질 지라도 기 가운데 만약 한 사람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이가 있으면, 이 모든 사람들이 나찰의 환란에서 해탈케 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써 관세음보살이라고 이름하나니라.”

 

【이야기】
해인사 밑 신부락에 박도일(朴道日)이라는 사십이 갓 넘은 사내가 처자와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젊은 부부는 부모로부터의 유산도 없었고, 배움이 없어 달리 일자리도 없고 하여 남편 박씨는 관광버스나 노선버스가 도착할 즈음이면 버스정류장에 달려가 관광객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여관에서 숙박을 하도록 하는 소위 호객행위와 함께 여관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부인 진씨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두 부부는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월세 방에 사는 가난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집을 장만하는 날을 기다리는 기약 없는 희망으로 살고 있으나, 서로 가족 사랑하는 마음은 남달랐고, 가난한 두 부부는 남다른 불심이 깊었는데,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다.

쉬는 날이면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온가족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기도를 올렸고, 집에서, 일하면서 염염불리(念念不離)의 마음으로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올렸다.

"대자대비하옵신 관세음보살님, 저희들이 알게 모르게 지은 전생의 악한 정업을 소멸하여 주소서."

 

박씨 부부의 지극지성의 기도는 드디어 관세음보살님과 감응도교(感應道交)를 이루는 날이 도래했다. 어느날, 풍채좋은 재일교포 노인이 수행원들을 데리고 수소문하여 왔노라며 박씨의 아내를 찾아왔다. 노인은 박씨의 아내인 진씨를 만나 고향을 물어보고 부모님의 성함을 묻는 등 여러가지 질문을 하더니 덮석 진씨의 손을 잡고 진한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나의 유일한 조카가 틀림없다. 내가 너의 막내 삼촌이다. 내가 십대 후반에 잘못을 저지르고 집을 뛰쳐 나갔는데 일본으로 밀항을 했단다. 내가 성공하여 부모형제를 도우려고 하였지만, 내가 몸담은 단체가 조총련이어서 조국에 돌아올 수가 없었지. 이제 정치적으로 내 문제가 해결되어 부모형제를 찾아 고향산천에 돌아오니 부모는 물론이요, 너의 부친인 나의 형마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더구나. 내가 조총련에서 활동하여 고향의 부모형제들이 얼마나 고통이 많았겠느냐. 나는 부모형제께는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지었다. 형의 혈육을 찾으니 그나마 죽고 너 혼자 남았더구나. 오늘에서야 너를 찾는 못난 삼촌을 원망해다오.”


노인은 조카의 손을 잡고 목을 놓아 울었다.

박씨 부부는 말로만 전해들은 삼촌에게 큰절을 올리고, 손자손녀도 예를 갖춰 작은 할아버지께 절을 올리게 했다. 삼촌은 조카 부부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겠나? ”

박씨 부부는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고개숙여 이렇게 말했다.
"배운 것은 없지만, 그저 무슨 일이던 열심히 하겠습니다. ”
처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한 달 후, 박씨 부부는 가족과 함께 서울 여의도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박씨는 용산에 있는 제법 큰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필자도 박사장의 초청을 받아 회사를 방문한 바 있다.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대운이 도래하니 사람이 변화하는가, 사장석에 버티고 앉은 박사장은 예전의 해인사 밑 호객꾼의 티는 말끔히 가시고 보이지 않았다. 박사장의 아내인 진씨도 여의도 아파트에 사는 품위있는 부인이 되어 있었다. 필자는 박사장의 후의로 배가 터지게 얻어먹고 여비도 두둑히 얻은 바 있다.

당시 진씨의 삼촌은 과거 박정희 시절에 조총련 재무부장을 역임한 재일 교포의 재력가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고국 땅이 미치도록 그리웁고 부모형제가 그리워지는데 거의 밤마다 소년시절 헤어진 부모와 형이 울고 있는 어린 조카를 부탁하더라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박정희 정권에 거액을 상납하고, 전향하여 대한민국에 들어와 꿈속에 울고 있는 어린 조카를 찾아 나선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관세음보살이 갑자기 나타나 황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박씨 부부의 경우는 관세음보살이 육친의 친화력을 작용하여 일본의 삼촌이 도와주도록 작용한 것이다. 이 또한 어찌 관새음보살의 부사의(不思議)한 기도의 응답과 가호가 아니겠는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뜻은 세웠지만, 전생의 나쁜 정업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속에 신음하는 고해대중이여, 영험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기도하며 인생을 살지어다

 

 

觀音經 2.

 



 

若復有人이 臨當被害하야 稱觀世音菩薩名者면 彼 所執刀杖이 尋 段段壞하야 而得解脫하며 若三千大千國土에 滿中夜叉羅刹이 慾來惱人이라도 聞其稱― 觀世音菩薩名者면 是諸惡鬼― 尙不能以惡眼으로 視之한대 況復加害하겠는가. 設復有人이 若有罪커나 若無罪히 杻械枷鎖하야 檢繫其身이라도 稱觀世音菩薩名者면 皆悉斷壞하고 卽得解脫하나니라.

 

【국역】
만약 어떤 사람이 악한에게 피해를 당하게 되었더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른다면 저들이 가졌던 칼과 몽둥이가 곧 조각조각 끊어져서 해탈함을 얻을 것이며, 만약 삼천대천 국토에 가득한 ‘야차’‘나찰’들이 쫓아와서 사람을 괴롭게 할지라도 그 ‘관세음보살’ 명호를 일컫는 소리를 듣는다면 이 모든 악한 귀신들이 오히려 악한 눈으로써 보지도 못할 것이어든 하물며 다시 해를 입를 입히게 할 것인가. 


 설사 어떤 사람이 혹은 죄가 있거나 혹은 죄가 없거나 수갑을 채우고 고랑과 차꼬와 나무칼로 그 몸을 얽어매는 일이 있더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이는 곧 해탈함을 얻을 것이니라.

 

【이야기】
일본인의 관음신앙은 지구상 어느 불교국보다 유별나고, 일본의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전국사찰에서 관음신앙은 지극지성이다. 그 가운데 관음신앙에 있어서 성지로는 동경의 아사쿠사(淺草)에 있는 관음당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관음당에는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바, 매일 참배객이 1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관음당에 참배객이 많은 것은 한마디로 관세음보살의 영험이 큰 것은 물론이요, 관음당의 본존불로 모시는 관음상의 출현이 신비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추고천황(推古天皇) 36년(628) 3월 18알 이른 아침에 ‘회전병성·죽성(檜前浜成·竹成)’이라는 형제 어부가 궁호천(宮戶川)에서 그믈로 고기를 잡던 중 뜻밖에 그믈속에 금빛 불상 하나가 건져 올려졌다. 
그 불상은 신비로운 오색광명을 발하고 있었다.

어부 형제는 놀라운 마음으로 향족(鄕族)인 토사중지(土師中知)에게 보였다.
불심이 있는 중지는 그믈에 건져진 불상이 관세음보살인 것을 알고 깊이 귀의했다.
중지는 관음상이 세상에 출현한 인연을 깊이 느끼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기로 작심했다. 중지는 자택을 고쳐서 절을 만들고 관음당에 그 관음상을 봉안하여 예배 공양하고 관음의 자비를 실천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그후, 무장야(武藏野)의 한구석 이름 없는 아사쿠사 관음당은 참배의 신도가 날로 불어났다. 관세음보살의 신기한 영험이 그치지 않았다.
 일본의 역사상 유명한 무장(武將), 문인(文人), 들이 신앙을 모아서 아사쿠사의 관음당은 날로 번창하였으며, 강호시대에는 막부(幕府)의 기원소(祈願所)로 정해져 사찰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어 일본문화의 중심지요, 관음신앙의 총본산이 되었다. 

필자가 아사쿠사 관음당을 찾았을 때는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꽃이 아름답게 만발할 무렵이었다. 우리나라의 사천왕문과 같은 뇌문(雷門)을 지나 관음당으로 가는 길의 양쪽에는 수많은 상가들이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상가 앞마다 사쿠라꽃이 환상처럼 피워 있었다. 환상처럼 아름다워서 사진 촬영을 하고 가까히 보니 모두 정교한 조화였다. 


관음당 앞에는, 수많은 남녀들이 그 옛날 어부 형제가 건져 올린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는 곳을 향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며 줄을 서서 차례가 오면 관음당 앞의 대형향로에다 분향하고 불전통에 동전을 넣고서는 일본인 특유의 의식으로 두 손바닥을 딱딱 소리내어 마주치고는 눈을 감고 고개숙여 관음보살님께 기원을 드리고 있었다.

필자는 기도를 마치고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 아사쿠사의 관음님께 기도하면 소원이 성취됩니까? ”
 사람들은 이구동성의 확신어린 음성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관음님의 영험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그들은 관세음보살이 개인의 소원을, 가정을,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가호하여 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사쿠사의 관음당의 관음보살님께 기원을 마치고 필자는 오색불빛이 화려한 ‘긴자’거리를 감탄스러운 마음으로 걷는데 건물을 등에지고 길바닥에 앉아서 반쯤 졸고 있는 것 같은 중년의 거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지나는 필자에게 재빨리 손바닥을 내밀었다. 필자는 그의 때묻은 손바닥에 지폐를 놓으면서 이렇게 기르쳐 주었다.


“ 아사쿠사의 관음님께 소원을 이뤄달라 기도하세요.”
그러나 거지는 감사의 뜻으로 고개만 한 번 숙여 보일 뿐, 헤벌죽이 웃으면서 다시 건물을 등에 지고 앉아 조는 듯이 앉았을 뿐이었다. 거지는 신앙심 마저 없었다. 어찌 축복받을 수 있을까. *


 

觀音經 3.

 



若三千大千國土에 滿中怨賊커든 有一商主 將諸商人하야 齎持重寶하고 經過 할세 其中一人이 作是唱言호대 諸善男子야 勿得恐怖하고 汝等은 應當一心으로 稱 觀世音菩薩名號하면 是菩薩이 能以無畏로 施於衆生하리니 汝等이 若 稱名者면 於此怨賊에 應當解脫하리라 하니, 衆商人이 聞하고 俱發聲言호대 南無觀世音菩薩하여 稱其名故로 卽得解脫하나니라. 無盡意여, 觀世音菩薩摩訶薩의 威神之力이 巍巍如是니라.

 

【국역】
만약 삼천대천국토에 도적떼가 가득 차 있는데 한 장사 주인이 여러상인을 거느리고 값진 보배를 가지고 험한 길을 지나 갈 때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 모든 착한 남자들이여, 두렵고 무서운 마음을 겁을 내지 말고, 여러분들은 마땅히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능히 두려움이 없게 하며 도젇들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고 해탈케 할 것이오.”라고 하니, 모든 상인들이 이 말을 듣고 함께 소리를 내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니 그 명호를 부르는 공덕으로 모두 도적들로부터 해탈을 얻었느니라. 무진의여, ‘관세음보살 마하살’의 위신력이 이와 같이 높고 높은 것이니라.

 

【이야기】
부처님은, 어머니의 죽음이 구도의 길에 나서는 인연이 되었다
부처님이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부귀영화가 보장된 가비라국의 왕자로써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또 사랑하는 ‘야수다라’태자비와 사랑하는 어린 아들조차 이별하면서 생노병사를 초월하기 위한 구도의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윤회전생을 확신하는 불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님은 다생겁래 부터 수행정진 하여 오시다가 마침내 가비라국의 왕실에 태어나시어 출가하여 고행 끝에 해탈하여 부처를 이루시는 모범적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셨지만, 윤회전생이 아닌 현세만을 놓고 볼 때 부처님은 너무 일찌기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생사의 고통에 대해 뼈저리게 느낀 애처로운 분이다.

부처님의 아기시절 어머니 마야부인은 부처님을 낳고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왕자의 가슴에는 어머니의 죽음은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왜 생사가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왜 죽어야 했을까?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불변의 법칙은 어린 왕자의 가슴에 자신도 장차 언제가 될런지는 몰라도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영원한 생명은 없는 것일까? 왕자는 마침내 생사에 대해 아무도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왕궁을 아무도 모르게 떠나 구도의 길에 나섰다. 그러나 구도의 노상에서 이름께나 알려진 수행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지만, 왕자의 가슴속은 만족할 만한 해답은 없었다. 마침내 왕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6년 고행끝에 피골이 상접한 건강 상태속에서 니련선하의 강가 보리수 밑에 정좌하여서 새벽에 떠오르는 별을 바라보고 대각, 즉 부처를 이루었다.

 

부처님은, 전지전능한 신에게 무릎꿇고, 울며 간구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다른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유일신의 외아들이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다. 부처를 이루고 최초로 하신 말씀은 일체중생이 다 부처가 될 성품이 있다고 선언했다. 열심히 수행정진하면 일체중생은 모두 자신과 다를바 없는 부처를 이룰 수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 는 것은 천지개벽이래 가장 크고 고귀한 대선언이며,, 대희망의 말씀이아닐 수 없다.

부처님이 대각을 이루신 후, 중생을 위해 중생의 근기에 따라 수기설법(隨機說法)으로 설법하신것이 집대성되어 팔만대장경을 이루고 있지만, 부처님이 가장 핵심적으로 말씀하신 진리 가운데 하나가 ‘업사상(業思想’이다. 온 우주,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모두 업으로 인해 생멸하고 흥망성쇄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꿔말해 우주의 대법칙은 ‘인과응보’의 업이라고 갈파하신 것이다.

 

‘업사상’을 알면 불교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업에는 두가지가 있다. 선업과 악업이다.
선업의 대표적인 것은 부처님처럼 다생겁래로 수행정진하시어 중생을 제도하시겠다는 대서원의 인(因)즉 선업(善業)이 있고, 윤회전생속에 지옥고를 받는 악업이 있다.
이 모든 업은 누가 짓는가?


우리 자신의 마음이 짓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즉 심전(心田)을 요즘표현으로 잠재의식이라고 하자. 우리가 전생에서부터 마음이 지은 모든 업이 자신의 잠재의식에 입력되어 조만간 현실화 되는 것이다. 잠재의식의 기억용량은 요즘의 컴푸터의 어느 기억용량체 보다 비견할 수 없고 상상할 수조차 할 수 없으리만큼 대용량으로써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행위의 업, 상상의 업이 그대로 입력되어 작용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부귀영화와 수명의 요수장단(夭壽長短)과 길흉화복(吉凶禍福) 유병무병(有病無病) 등 일체가 중생 개개인의 마음의 조화로써 자작자수(自作自受업)의 업을 지어 일희일비(一喜一悲)속에 수고(受苦)한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이다.


죄송한 예이지만, 기독교의 예수님이 33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형을 당해 주검을 당하는 것도 예수님의 아버지요,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전지전능의 힘으로써 천지창조를 했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神)인‘여호와’가 시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전생의 업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전생은 무엇인가?


일분전, 일초전도 전생사이다. 
예수님은 처형되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밤 새워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맞잡고 울며울며 ‘여호와’께 시시각각 닥쳐오는 ‘주검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지만, 여호와는 소위 독생자의 기도를 들어 주었든가?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으로 선혈이 흐르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날카로운 창이 엽구리에 박혀 죽어가서야 비로서 여호와를 향한 눈물의 간구를 중단하고, 아버지 여호와를 원망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검이 여호아의 뜻이라면 달게 받겠다고 마침내 고개를 떨구어 죽어갔지 않은가.

우리 불교인이라면 울며불며 간구하지 않고, 자신의 업을 성찰하여 닥치는 주검의 잔에 지혜롭게 대처하였을 것이다. 불교인들이 기독교의 전도공세에도 불구하고 쉬 동화되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가 업사상을 믿기 때문이다.

년전에 어떤 여신도가 나를 찾아와 부처님을 원망했다. 부처님 전에 적잖게 공양물을 올리고 기도를 드렸는데 별무효과라며 부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듣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여신도의 남편이 도박을 좋아하는데 남편이 도박장에서 횡재수, 요즘말로 ‘대박’을 터뜨려달라고 부처님께 기도를 정성껏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기호가 없어서인가, 별무효과로써 오히려 거액의 돈만 날렸다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못된 업을 지으면서 부처님께 대박운을 달라고 하니 이 무슨 해괴한 불심인가?
중생의 이해타산은 무섭다. 말세에 이르니 전국에 걸쳐 작은 공양물을 불전에 시주하고 몇 천만배의 이익을 얻고자 기도하는 기복불교가 성행하고 있다.

 

기복불교는 승려들이 먼저 현세의 불전이익을 챙기고자 비유컨대 계획적으로 북·정고를 쳐대며 기복불교를 권장하고, 이해타산적 기복불교 신앙으로 일부 신도들은 북·장고 소리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다. 성인의 가르침으로 영혼이 맑아지는속에 스스로 업장소멸의 기도는 등한히 하고 있는 것이다. 기복불교, 부처님을 이용하여 사복을 채우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단순히 기복불교에만 전념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참된 제자가 아니다. 또 하나의 악업을 짓고 있을 뿐이다. 선업을 지으면 저절로 순풍에 돛단 듯이 인생의 배는 순항할 텐데….

업장소멸의 기도는 무엇인가?
자신이 전생에 지어온 죄업에 대한 참회기도이다.
그대, 전생에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을 불전에 참회기도를 할 때에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내리는 통회의 기도를 하시라.

고해 대중이여, 업장소멸의 기도를 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 불운에 수고하는 고해대중이여,
이제부터라도 이해타산이 앞서는 무조건의 기복불교 보다는 부처님께 무엇보다 우선하여 먼저 자신의 업장소멸의 기도를 올리시라.
전생에 지은 업장이 그대의 출세길을 막고, 병고에 신음하게 하며, 가난의 고통에서 신음하게 하며 요절(夭折)의 슬픔을 만나게 되며, 아름다운 인연의 배필을 만나지 못하는 등 고통에 신음하게 하는 원인자라는 것을 깨달으시라.
그리고 업장소멸의 기도와 함께 선업을 닦으시라.

산사에 가서 고승에게 법어를 구할라치면 언제나 결론은 ‘마음공부’를 잘하라고 권장하고 경책한다. 그 공부의 첫걸음은 업장소멸의 기도이다. 그대, 흑운의 업장만 소멸 된다면, 그대는 소원성취의 대광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나는 보증하는 바이다.

내가 관음경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진실한 속내는 무엇인지 아시는가? 부처님의 성품을 가지신 고해대중 여러분을, 무엇보다 관음경을 통해 업장소멸의 기회로 인도하기 위한 간절한 ‘노파심’이라는 것을, 섬광과 같이 깨달으시라.*


觀音經 4.

 





若有衆生이 多於淫欲이라도 常念恭敬觀世音菩薩하면 便得離慾하며 若多瞋 하여도 想念恭敬觀世音菩薩하면 便得離瞋하며 若多愚癡하여도 想念恭敬觀世音菩薩하면 便得離癡하리니 無盡意여 觀世音菩薩이 有如是等大威神力하사 多所饒益일새 是故로 衆生이 常應心念하나니라.

 

【국역】
만약 어떤 중생이 음욕심이 많을지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공경히 생각하고 부르면 문득 음욕을 여의게 될 것이며, 만약 성내는 마음이 많을지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공경히 생각하고 부르면 문득 성내는 마음을 여의게 될 것이며, 만약 어리석은 마음이 많을지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공경히 생각하고 부르면 문득 어리석은 마음을 여의게 될것이니라.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이 이와같은 큰 위신력이 있어서 이익되는 바가 많은 것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중생들은 항상 지성으로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에 생각해야 하느니라.

 

【이야기】
  불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님은 항상 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無量壽佛)의 좌보처(左補處)보살로 항상 적정삼매(寂靜三昧)에 계시면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으시고(不離一步), 시방세계에 두루 모습을 나투시어(刹刹現身) 중생의 고난을 구해주시는 대성인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남성과 여성의 성(性)을 초월한 분으로서 중생을 고난에서 구하지만 전해오는 바를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백의를 입고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왼손으로는 중생을 구원하는 감로수가 들어 있다는 정병(淨甁)을 든 천산천하에 유일한 복덕과 지혜를 갖춘 아름다운 여인상으로 많이 나투고 있으니, 이는 관세음보살님은 온 우주의 일체중생의 대자대비한 어머니의 상징인 것이기도 하다.

또 관세음보살님은 인적이 끊긴 외로운 섬(海岸孤絶處)에 있다는 성산(聖山)인 보타낙가산(寶陀洛迦山)의 죽림원(竹林院)에서 상주 하면서, 고난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설흔두가지의 몸을 나투고(三十二應身), 열 네가지 두려움이 없는 위력(十四無畏力)과 네 가지 불가사의한 덕(四不思議德)을 걸림이 없이 받아 쓰기도(受用無碍)하면서, 팔만사천의 빛나는 머리(八萬四千 迦羅首)와 팔만사천의 팔과 손(八萬四千母陀羅臂)에 항마(降魔)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신기(神器)를 들고
,

 

팔만사천의 청정하고 보배로운 눈(八萬四千淸淨寶目)으로 우주를 통찰하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대자비로 항마를 위해서는 위신력(或慈或威) 을 보이며 우주에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이(分形散體) 몸을 나투워 고해중생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감응도교(感應道交)를 이루면 기도중생의 마음속의 구하는 바에 따라서 반드시 낙을 얻게(拔苦與樂) 해주는 대성인이시다.

고해대중이여, 이제부터라도 현세의 짧은 무상한 허욕에서 심기일전하여 마음을 비우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을 가슴으로 영접할지어다. 그대 가슴에 마음을 비우고 오직 관세음보살님을 영접하면 그대의 가슴에도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심이 충만하게 되고, 그대의 초능력인 잠재의식이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하여 자가 발전을 일으켜 마침내 관세음보살님과 일체를 이루어, 그대가 지은 업의 윤회의 고통에서 반드시 해탈하여 살아서 마음의 평안과 소원의 성취는 물론이요, 세연이 다해 그대 홀로 저 세상의 먼 길을 외롭게 떠날 때, 반드시 관세음보살의 인도를 받을 것이다.

 

대자대비하신 구세주 관세음보살님시여
우주의 오직 한 분, 청정법신불의 화신이로다
관세음보살님시여, 업보의 윤회에서 고통받는 고해의 중생을 인도하여 주소서 

이교(異敎)에 올바른 정신을 빼앗기고, 탐욕으로 올바른 정신을 빼앗긴 자들의 속안(俗眼)에 관세음보살이 어디 있느냐, 보이지 않는다, 하면서, 불신하는도다 
믿음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불신의 업보로서 하루 낮 하룻 밤에 만번 살고 만번 죽어야 하는 (一日一夜 萬生萬死)의 생사윤회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는 분, 관세음보살을 믿는 중생들은, 어둠속에 대광명을 만나듯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살아서나 죽어서나 관세음보살님의 가호로 윤회의 업보가 소멸되어 마침내는 극락세계로 인도받아 영원한 영화속에 살 것이로다.

정업에 고통속에 신음하는 고해대중이시여,
아침에도 관세음보살님께 경배 드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며(朝念觀世音菩薩), 저녘에도 관세음보살님께 경배 드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는(暮念觀世音菩薩)
바른 신앙을 하시라.



觀音經5.

 





若有女人이 設欲求男하야 禮拜供養觀世音菩薩하면 便生福德智慧之男하고 設欲求女하면 便生端正有相之女하야 宿植德本이라 衆人愛敬하리니 無盡意여 觀世音菩薩이 有如是力하나니라.
若有衆生이 恭敬禮拜 觀世音菩薩하면 福不唐損하나니 是故로 衆生이 皆應受持 觀世音菩薩名號니라.
無盡意여 若有人이 受持六十二億 恒河沙 菩薩名字하고 復盡形토록 供養 飮食衣服과 臥具醫藥하면 於 汝意云何오 是善男子 善女人의 功德이 多不아
無盡意 言하사대 甚多하나이다. 世尊이시여
 佛言 若有人이 受持觀世音菩薩名號하야 乃至一時라도 禮拜供養하면 是二人福德이 正等無異하야 於 百千劫에 不可窮盡이니라. 無盡意여 受持觀世音菩薩名號하면 得 如是無量無邊 福德之利하나니라.

 

 

【국역】
 “만약 어떠한 여자가 있어서 자식을 구하고자 하여 ‘관세음보살’께 예배하고, 공양하면 큰 복덕이 있고 지혜가 있는 아들을 낳을 것이요, 또한 딸을 구하고자 하여 관세음보살께 예배공양하면 이물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딸을 낳을 것이니 자녀 모두가 전생에 복덕을 심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니라.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이 이와 같은 힘이 있느니라.

만약 어떠한 중생이라도 관세음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면 그 복은 헛되지 않으니 이런 까닭으로 중생은 마땅히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고 생각하며 불러야 하느니라. 무진의여 만약 어떠한 사람이 있어서 六十二억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그 목숨이 다 할 때 까지 음식과 의복과 와구(요와 이불 등) 와 의약으로 공양한다면,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 선녀인의 공덕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


무진의가 말씀 올렸다.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있어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고 생각하며 내지 일시라도 예배공양하면 이 이 두 사람의 복이 꼭 같고 다름이 없어서 저 백천만억겁에 그 복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가지면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이 없는 복덕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느니라. ”

 

 

【이야기】 신라 말 천성(天成)년간에 정보 최은성(正甫 崔殷誠)이라는 불교신자가 있었다. 그는 늦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여 몹씨 한스러워 하다가 어느날 길에서 한 스님을 만나 자식을 구하려하면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라는 법문을 듣고 관음신앙에 첫눈을 떴다.최은성은 아내와 함께 신라의 서울 서라벌(경주)에 있는 중생사(衆生寺)에 가서 그곳에 모셔져 있는 관세음보살상 앞에 나아가 대를 이를 아들을 점지해 주십사 지성을 다하여 백일기도를 올렸다.

최은성 부부의 간절한 기도는 관세음보살님께 감응도교(感應道交)를 일으켜 기도의 응답이 왔다. 
백일기도를 마치는 회향 전날 밤, 최은성 부부는 똑같이 신비한 꿈을 꾸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옷을 입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백의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귀여운 옥동자를 안겨 주는 것이었다. 최은성 부부는 감격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옥동자를 받아 안으며 백의관세음보살님께 감사의 절을 올렸다. 신비한 꿈을 꾼 그날부터 최은성의 아내는 태기가 있었고, 드디어 소원하든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은성에게 딱한 일이 발생하였으니 아이를 낳은 지 석달이 채 못되어 백제의 견훤(甄萱) 이 대군을 이끌고 서라벌에 쳐 들어왔다. 성안은 난리를 당하여 모든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백제군의 무자비한 창칼을 피하기에 급급하여 제정신이 아니었다. 최은성은 아이를 안고 피난길에 나섰는데, 피난 길에서 아이의 엄마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혼자 아이를 안고 적군을 피해 달아나던 최은성은 중생사에 뛰어 들어 어린애를 안고 관세음보살상 앞에 울며 절하면서 이렇게 간원의 말을 하였다. 


“대자대비하옵신 관세음보살님, 지금 서라벌은 온통 적군의 무서운 창칼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피난을 떠나야 하는데 어린 것을 적병의 창칼에 살릴 수 있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 아이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점지하여 주신 자식이므로 관세음보살님이 살려주실 것 같아 데려 왔사오니 대자대비로 후일 저희 부자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가호하여 주시옵소서…”

최은성은 울면서 절을 올리고 아이를 강보에 싼채로 관세음보살살상 앞의 불탁(佛卓)속에 넣고는 애통한 심정으로 적군을 피해 피난길에 나섰다.
그 후, 반달이 지난 뒤에 적군은 물러났다. 최은성은 구사일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다행히 살아서 돌아오는데 오직 아이의 생사 여부의 생각 때문에 비통한 심정으로 중생사로 달려왔다. 아아, 아이가 죽었을까, 살았을까. 자꾸 아이가 죽었을 것 같은 생각에 비통한 심정이 되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관세음보살상이 앉아 있는 불탁 위에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들이 바둥거리며 건강히 놀고 있지 않는가. 아이는 포동포동 살이 찌고 입에서는 상기도 젖냄새가 물씬 풍겨오기조차 했다.
아아, 관세음보살님….
최은성은 아이를 안고 꿈만 같은 현실에 너무도 감격하여 울음을 터뜨리며 관세음보살상 앞에 무수히 절을 올리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최은성이 자식을 안고 감격에 흐느낄 때, 홀연히 법당 입구 쪽에 기품 있어 보이는 고운 젊은 부인이 나타나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히 미소지었다.
그녀는 최은성의 아이와 비슷한 아이를 기르는 사대부 집의 부인으로 피난길에 가족이 불뿔히 흩어져 생사를 알 길이 없게 되고 홀로 아이를 안고 중생사 앞을 지나다가 자력에 이끌리듯 관세음보살상 앞에 서게 되었다.

 

 부인은 자신의 아이를 법당 바닥에 놓고 관세음보살상앞에 절을 하면서 기도 하는데 불탁속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부인은 홀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안아들고 관세음보살상을 우러렀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상은 대자대비의 미소속에서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불자여, 내가 적군의 화를 피하게 해 줄터이니 중생사에 머무르면서 아이에게 젖을 주고 돌보아 주어라."

그날의 최은성의 아들의 이름은 최승로(崔承魯)이고, 훗날 벼슬이 정광(正匡)에 까지 올라 나라의 동량이 되었다. 최승로는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한 영험한 기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면서 일평생 관음신앙과 함께 고해대중에게 대자대비를 실천하였다고 전한다.


 오, 고해중생의 스승이요,
어머니인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저 신라의 최은성의 기도에 응답하여 휼륭한 아들을 주시었고,
아이가 생사의 고난에 처할 때는 아이를 가진 기품있는 부인을 통하여 전능한 대자대비를 보여 주시었나이다. 이 아름다운 기적의 이야기를 천추에 전하나이다.

 


 

觀音經 6.

 





 

無盡意菩薩이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觀世音菩薩이 云何遊此裟婆世界하며 云何而爲衆生하여 說法하며 方便之力은 其事云何입니까.
佛告無盡意하사대,
善男子야 若有國土衆生이 應以佛身으로 得度者는 觀世音菩薩이 卽現佛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 벽支佛身으로 得度者는 卽現 벽支佛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聲聞身으로 得度者는 卽現聲聞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梵王身으로 得度者는 卽現梵王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帝釋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帝釋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自在天身으로 得度者는 卽現自在天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大自在天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大自在天身으로 而爲說法화며 應以天大將軍身하야 得度者는 卽現天大將軍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毘沙門身으로 得度者는 卽現毘沙門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小王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小王身으로 而爲說法하며 應以長者身으로 得度者는 卽現長者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居士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居士身하야 而爲說法하며

 

【국역】
무진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 부처님이시여, 관세음보살이 어떠한 모습으로 사바세계에 나타나 노니시며 어떠한 내용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며, 그 방편의 힘은 어떠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하시었다.
  “ 선남자야, 만약 국토의 어떠한 중생을―, ‘부처’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 시킬 자이면 관세음보살이 곧 부처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벽지불’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 시킬 자이면 곧 벽지불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성문’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 시킬 자이면 곧 성문으로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범왕’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범왕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제석’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를 시킬 자이면 곧 제석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자재천’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를 시킬 자이면 곧 자재천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대자재천’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를 시킬 자이면 곧 대자재천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천대장군’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를 시킬 자이면 곡 천대장군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비사문’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 시킬 자이면 곧 비사문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소왕’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를 시킬 자이면 곧 소왕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장자’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를 시킬 자이면 장자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거사’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를 시킬 자이면 거사의 몸으로 나타내어서 설법하여 주며,

 

【이야기】
무진의보살이 부처님께 관세음보살이 어떠한 권능으로 사바세계(고해)의 중생을 제도하시느냐고 물으니 부처님은 관세음보살의 전지전능한 힘은 고해중생이 원하는 모습으로 모습을 나타내어 설법을 하여 제도하여 마음의 평안과 업장소멸과 함께 이고득락(離苦得樂)케 한다고 증언하신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위한 응신(應身)으로 마귀를 항복받고 불법을 보호하면서 불법을 믿는 중생을 수호하는 우주의 수호천사요, 무서운 신장인 집금강신(執金剛身)으로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한 고사가 있다.

중국 양(梁)나라 때, 수도승 도융(道融)이 강릉(江陵) 땅을 돌아다니면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정법을 포교하면서 사신(邪神)을 위하는 음사(陰祠)를 헐고 사신의 우상을 불질러 태우며 미신을 타파하기에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토굴에서 좌선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수많은 잡귀들이 성난 표정과 성난 목소리를 지르면서 떼지어 몰려왔다.그 중 잡귀의 우두머리인 무시무시한 귀신이 시퍼런 칼을 뽑아들고 단칼에 도융의 목을 칠듯히 덤비면서 도융을 향해 격노하여 꾸짖었다.


“너 이놈, 너는 어찌하여 귀신이 영험이 없다고 주둥이를 놀리고, 우리가 거처하며 대접받는 집들을 없애는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괘씸한 네놈을 죽여 우리의 한을 풀겠다!”
칼을 들고 길길히 날뛰는 귀신 우두머리와 귀신 떼거리들을 보고 일순 도융은 더럭 겁이 났으나,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서 좌선자세를 흐뜨리지 않고 가슴에 합장한 채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귀신의 우두머리가 시퍼런 칼을 높이 들어 도융의 목을 힘껏 내려 치려는 순간, 이때,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같은 질타가 들려오며 금빛 갑옷을 입은 신장이 금색광명을 내뿜으며 손에는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나타나 잡귀들을 순식간에 때려잡고 도망치는 잡귀들을 향해 주문(呪文)을 외우니 모두 포박되어 잡았다.

금빛 갑옷의 신장은 도융에게 합장하여 예를 표하면서 부처님의 정법을 세상에 널리 반포할 것을 부촉하면서 잡귀들을 잡아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후로 도융에게는 두 번 다시 잡귀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다.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은 이와 같아서 고해중생들이 일심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여 제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



觀音經 7.

 





應以宰官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宰官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婆羅門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婆羅門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比丘比丘尼와 優婆塞 優婆夷身으로 得度者는 卽現比丘比丘尼와 優婆塞 優婆夷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長者 居士 宰官 婆羅門婦女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婦女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童男童女身으로 得度者는 卽現童男童女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 天 龍 夜叉 乾달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侯羅伽― 人非人等身으로 得度者는 卽皆現之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執金剛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執金剛身하야 而爲說法하나니라.
  無盡意여, 是觀世音菩薩이 成就如施功德하야 以種種形으로 遊諸國土하사 度脫衆生하나니, 是故로 汝等이 應當一心으로 供養觀世音菩薩하면 是觀世音菩薩이 於怖畏急難之中에 能施無畏라 是故로 此娑婆世界― 皆 號之하여 爲施無畏者라 하나니라.
  無盡意菩薩이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我今에 當― 供養觀世音菩薩호리다. 卽解頸衆寶珠瓔珞이 價値百千兩金이라 而以與之하고 作是言호대 仁者여 受此法施 珍寶瓔珞 하소서.

 

【국역】
‘재관’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 시킬자이면 곧 재관의 몸으로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바라문’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자이면 곧 바라문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비구·비구니’와 ‘우바새·우바이’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비구,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장자,·거사·재관·바라문의 부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그 모든 부인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간·인간 아닌·등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모두 그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집금강신’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집금강신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나니라.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이 이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여서 여러가지의 형상으로써 모든 국토에 나타나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케 하나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너희는 마땅히 일심으로 관세음보살께 공양하라. 이 관세음보살 마하살은 두렵고 위급한 때에 두려운 마음이 나지 않게 베플어 주시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이 시바세계에서는 모두 관세음보살을 두고, 중생에게 두려움이 없게 하여주는 성인이라고 하나니라.”

무진의보살이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깨닫고 감동하여 부처님께 말씀 올렸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님께 제가 공양을 올리겠나이다.”하고 목에 걸고 있던 값진 보배구슬인 영락을 풀어 내리니 그 값이 백천량의 비싼 것이었다. 무진의보살은 관음보살님께 예를 갖춰 절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올렸다. 
“인자시여, 법으로 보시하오니 저의 영락을 받으시옵소서.”

 

【이야기】
서라벌의 어두운 하늘에서는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 눈길을 사십대 초반의 부부가 머리와 어깨에 수북히 눈을 맞으면서 관음사 일주문을 벗어나 집으로 가고 있었다.부부는 저녘예불에 참석하여 백일을 기한하고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자식을 점지해주십사 지성으로 기도해왔다. 이 날도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남편은 박신(朴信), 부인의 성은 설씨(薛氏)였다. 백일기도도 끝나가는데 아직 관음님은 웬지 감응이 없었다.


“우리의 믿음이 아직 부족해서 딸자식 하나도 점지해 주시지 않는 것일까? ” 
박신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내리는 하늘을 우러렀다. 남편의 속사정을 아는 설씨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전생에 지은 죄업이 무거워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자책하면서 소리죽여 흐느꼈다.


그들은 서러벌 왕성 밖에서 조그마한 상점인 연꽃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교의 독실한 신도로써 다른 장사를 해서 돈을 벌기 보다는 신도들이 사가지고 불전에 바쳐지는 연꽃을 정성껏 만들어 팔아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눈길을 걸어 집이 가까운 마을 입구 쪽에 이르러 부인이 앞쪽을 가르키면서 말했다.
  “ 여보, 저기 눈 속에 묻힌 것이 사람 아녜요? ”
  “ 오―, 맞아 사람이 눈속에 빠졌군. 어서 구해드립시다. ”
  과연 눈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칠순이 넘어 뵈는 노파가 눈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채 기력이 다해 의식이 몽롱해지는 속에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행색으로 보아 노파는 걸인신세였고, 더구나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다.

박신 부부는 자비심으로 주저하지 않고 노파를 구하여 등에 업고 집으로 뛰었다. 박신 부부의 극진한 간호로 노파는 의식을 회복했다. 노파는 앞을 못보지만 뜨거운 눈물로 노안을 적시면서 고마워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토로했다.


  “ 나는 올해로 나이가 일흔 다섯인데, 자식도 없고 친척도 없답니다. 사십에 과부가 되고 오십에 두 눈 마저 안 보이고…. 이렇게 떠돌이로 이 마을로 저 마을로 구걸한답니다.”
노파는 섧게 울음을 터뜨리고는 단정히 앉아 슬픈 음색으로 ‘관음경’을 외웠다.

설씨부인은 슬프면서도 놀라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자식이 없답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군요. 그런데 어쩜 그리도 괸음경을 잘 외우세요? ” 
“ 늙으막에 외롭고 슬프면 관음경을 외우는 낙으로 산 답니다. 지금은 관음경을 거꾸로도 외울 수 있는 걸요. 큰 절의 고명한 큰스님도 관음경을 거꾸로는 외우시는 분은 드물걸요.”
   박신 부부는 의지할 데 없는 노파를 양어머니로 모시고 살자고 합의하고 노파에게 간청했다.


  “ 저희 부부가 할머니를 양어머니로 모셨으면 합니다. 돌아가시면 저희들이 장례도 잘치뤄 드릴께요. 저희와 함께 사시면서 저희에게 관음경을 가르쳐 주세요. ”
  그 말을 들은 노파는 또 보이지 않는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했다. 그날부터 노파는 하루 세 끼의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고 따뜻한 방에서 기거할 수 있었다. 밤이면 셋이서 관음경을 외우며 뜻을 새겼다.

삼년이 흘렀다. 어느 봄 날, 노파는 설씨부인을 조용히 방안으로 부르더니 이런 말을 했다.
  “ 오랫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이제 나는 이 집을 떠나갈 까 합니다. ”
  설씨부인은 깜짝 놀랐다. 정성이 부족해서 떠나시려는 것이냐고 하면서 더욱 정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면서 떠나시지 말라고 극구 만류했다.
  “ 꼭 가야 한다우.”


  “혹 어디 가실데가 있나요? ”
  “허허허. 있고 말고요.”
  “어딘가요, 저희집보다 나은 곳이라면 말리지 않겠습니다만….”
  “주인댁 뱃속에 태어나고 싶어요.”
  “네? 어머나, 별 농담을 다 하시네요.”


  설씨는 남편에게 양어머니의 말을 전했지만, 이상한 농담으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노파는 자기 방에서 관음경을 앞에 놓고 요위에 단정히 좌선자세로 앉아 숨을 거두어 버렸다. 박신 부부는 생전의 약속대로 후히 장례를 치르고 천도까지 해드렸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노파가 죽고나서 부터 설씨의 몸에 태기가 왔다. 부부는 노파와 연관하여 생각하지 않고 오직 관음님의 감응으로 믿어 감사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열달만에 천금과 같은 딸을 얻었고, 이름을 향련(香蓮)이라고 지었다.

향련은 커갈수록 보통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상선녀와 같은 미모와 총기를 보였다. 관음경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요, 열살 때 부터는 대장경을 혼자서 읽고 이해했다. 글방의 선생이 놀랐고, 특히 선문답에 있어서는 서라벌에 유명한 대각선사도 쩔쩔 맬 정도였다. 또한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깊어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어느 날, 길에서 향련이 대각선사를 만났다.
  “ 큰스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저한테 일전어(一轉語)가 있어서….”
“말해보아라.”
  “법화경에 ‘용녀성도(龍女成道)’이야기에 의하면, 용녀는 8세 때, 부처님께 보주(寶珠)를 바치고 득도하였다는데 저는 지금 열살 나이로서 보주가 없습니다. 그래도 성불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


  대각선사는 내심 진땀을 흘리면서 퉁명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것을 물으려면 선방으로 오너라.”
  “승속(僧俗), 산천이 불법의 도량이 아닌 곳이 없사오니 제 질문에 어서 대답해주세요.”
대답을 못하고 어물어물하는 대각선사를 본 향련은 날카롭게 할(喝)을 하고 대각선사가 수하고 있는 가사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향련이 나이 열 여섯 때 사월 초팔일이었다.
절에 올라가니 승려 하나가 오직 등을 팔 욕심으로 오는 신도들에게 친절하게 하지 않고 시주만 청하고 있었다. 향련은 등을 팔려는 승려에게 다가가 진지하게 질문했다.
“ 스님, 이 절에 장식한 무수한 등에서 어떤 등이 제일 밝나요? ”
“ 불전에 걸어 논 비싸고 큰 등이 제일 밝지.”


“불등(佛燈)은 많은데 심등(心燈)은 어디 있나요? ”
“ 글쎄…?”
"그것도 모르면서 등만 팔려구 해요?"
향련은 빙긋 웃으며 그 승려의 머리를 마치 장군죽비로 경책하듯 주먹으로 두 대 내려 갈겼다.
“아얏! 이 아가씨가 왜 이래? ”
  승려는 뜻밖의 봉변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씩씩 거리는데 이를 지켜본 대각선사는 파안대소할 뿐이었다.

향련의 나이 열일곱이 되든 해 양친은 속세의 인연이 다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세상을 떠나갔다. 향련은 깊은 슬픔속에 정성들여 장례를 치루고, 양친의 극락왕생을 위해 부처님전에 지성으로 천도의 기도를 드렸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향련에게 지체높은 집에서 혼담이 무수히 들어왔다.
향련은 웬지 결혼에 뜻이 없어 보였다.
어느 화창한 봄 날, 향련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방안에서 괸음경을 앞에 놓고 단정히 좌선자세로 숨을 거두어 버렸다. 향련의 치마폭에는 사행(四行)의 사세(辭世)의 시문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본래 속세 떠난 임천(林泉)의 벗이었는데,
인연 따라 홍진(紅塵)을 밟았네.
이제 속세에 더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하여,
십일면 관음보살님께 돌아가려네.



향련의 시신은 대각선사가 애도하며 정중히 거두워 화장에 붙였다. 불이 활활 타오르자 한 줄기 서광(瑞光)이 하늘을 찌를듯 하더니 그 서광은 관음사 쪽으로 사라졌다. 향련의 몸에서는 오색의 사리가 무수히 쏟아졌다. *

 



觀音經 8.

 





時에 觀世音菩薩이 不肯受之어늘 無盡意― 復白觀世音菩薩言하사대 仁者는 愍我等故로 受此瓔珞하소서 爾時에 佛告觀世音菩薩言하사대 當然此無盡意菩薩과 及四衆 天, 龍, 夜叉, 乾達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 羅伽 人非人等故로 受是瓔珞하라. 卽時에 觀世音菩薩이 愍諸四衆과 及於 天 龍 人非人等하여 受其瓔珞하야 分作二分하여 一分은 奉釋迦牟尼佛하고 一分은 奉多寶佛塔하니라. 無盡意여 觀世音菩薩이 有如是自在神力하여 遊於娑婆世界하나니라. 爾時에 無盡意菩薩이 以偈로 問曰하대

世尊妙相具하시니 我今重問彼하옵나니,
佛子何因緣으로 名爲觀世音菩薩이옵니까.
具足妙相尊이 偈答無盡意 하사대
汝聽觀音行의 善應諸方所할지어다
弘誓深如海하여 歷劫不思議하며
侍多千億佛하여 發大淸淨願하니
我爲汝略說하노니 問名커나 及見身하여 心念不空過하면 能滅諸有苦하리라.


【국역】
그 때에 관세음보살이 기꺼히 받지 아니하니 무진의보살이 다시 관세음보살에게 말하되,
“ 인자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이 영락을 받으소서. ”
그 때에 부처님께서도 관세음보살에게
“ 마땅히 무진의보살과 사부대중,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마후라가, 인·비인 등을 불쌍히 여겨 이 영락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니, 관세음보살이 모든 사중과 천, 용, 인, 인비인 등을 불쌍히 여기사 그 영락을 받아서 두 갈래로 나누어 일부는 석가모니불 부처님께 올리고, 일부는 다보여래탑에 올렸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이 이와같이 자재신력이 있어 사파세계에 노닐어 행하나니라.”
그 때에 무진의보살이 게송으로써 부처님께 물어왔다.
“ 묘상이 구족하신 세존이시여, 이제 다시 관세음보살에 대해 묻사옵니다. 불자가 어떤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보살이라고 하시나이까? ”

묘상이 구족하신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게송으로 답 하시었다.
“ 관세음보살의 거룩한 덕행이 곳곳에 나타남을 네가 들으라. 큰 서원 바다같이 깊고 부사의겁 오래 살아오며 천만억 부처님을 믿고 섬기어 크고 맑은 원력 세웠도다. 너희가 알기 쉽게 설하리니 관세음보살 명호라도 듣거나 친견하거나 마음에 섬기어 지성을 다하면, 능히 너희의 모든 고통을 멸해 줄 것이로다. ”


【이야기】
전북 익산에 ‘소금장수 명당’이라는 곳이 있다.
무덤 뒤에는 작은 산이 있어 북풍을 막아주고 30미터도 채 안되는 앞에는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시냇가 같은 농수로가 있다. 지금은 제법 큰 무덤과 조경사업을 잘해서 눈에 잘 띄지만, 처음에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임자없는 흙무더기나 진배 없었다.

처음, 초라한 그 무덤을 두고 암자의 어느 스님은 말하기를,
"이 무덤은 지금은 초라하지만, 장차 죽은 이의 자식대에 자손창성과 재물이 불같이 일어나는 발복의 터인 명당이다." 라고 찬탄하였다. 발없는 말 천리간다는 속담처럼 이 소문은 순식간에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오가는 행인들은 초라한 무덤속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가족조차 없는 듯 찾아오는 자손이 없고, 또 10여년이 흘러도 변화없이 여전히 초라한 무덤을 보고 승려가 거짓말을 했다며 코웃음을 쳤다.

해방 전, 익산의 춘포면 쪽의 마을들에 지게에다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얹어 질머지고 가가호호 찾아 다니며 “ 소금사시요, 소금! ”하고 외치며 소금을 파는 60대 초반의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천성이 마음이 착했지만 워낙 가난하여 식구들의 호구지책이 어려워 생계수단으로 지게에 소금가마니를 질머지고 먼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 소금장사의 길에 나서곤 하였다.

 

 노인은 전생에 복을 지은 것이 없어서인가, 가난속에서 고통스러웠지만 장사를 마치고 움막집인 자신의 집으로 귀가하면 언제나 밝게 웃으며 고대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얼싸 안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사위가 적요한 밤이 되면 노인과 아내는 작은 상에 청수물을 떠 놓고 나직한 음성으로 합창하여 ‘ 관세음보살’명호를 반복해서 부르는 정근을 하는 기도시간을 가지며 이렇게 발원했다.


"대자대비하옵신 관세음보살님, 저희는 이제 늙어서 소원이 없습니다. 그저 자식들 대에서는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요."
노인은 관음경에 적혀 있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노인이 마지막으로 소금장사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그날은 전날밤 부터 눈이 많이 내려서 쌓인 눈은 발목까지 푹푹 빠질 지경이었다. 워낙 가난했기에 노인은 만류하는 아내와 자식을 뒤로하고 허기진 배로 무거운 소금지게를 지고 집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인은 허기진 배를 안고 눈길에 이 마을 저 마을 애타게 소금사려! 를 외쳤지만 사람들은 추위에 내다보지도 않았다. 허기진 배, 혹한의 날씨, 걸음조차 자유롭게 옮길 수 없이 빠져드는 눈 길…. 노인은 기진맥진의 상태가 찾아왔다.노인은 탈진하여 시야가 흐려져왔고 도저히 더이상 걸음을 옮길 수가 없을 정도로 비틀거렸다.

 

노인은 어딘가에 소금지게를 받치고 쉬고 싶었다. 노인은 외진 산길을 힘겹게 걸으며 쉴곳을 찾아 두리번 거리던 노인의 시야에 유독 눈이 녹은 잔디밭이 보였다. 노인은 눈녹은 잔디밭에 지게를 받치고 지게 밑에 쪼구리고 앉아 양 무릎 사이로 두 손을 넣고 얼굴을 파묻다시피 하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노인은 비몽사몽간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의 크고 따뜻한 방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맛있는 요리상을 마주하여 즐겁게 식사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은 아내와 함께 합창하여 관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이 노인앞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노인의 의식이 흐려져 가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눈이 그치지 않고 내렸다.

눈속에 묻힌 노인의 시체는 눈이 녹아서야 행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행인들은 노인의 시체를 두고 어디서 온 노인인지, 누구인지, 주소 성명을 알 수 없기에 사람들은 딱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때마침 근처의 암자에서 사는 스님 한분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꿈꾸둣 표정으로 얼어있는 소금장사를 위해 스님은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독경을 하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소금장사의 시신을 죽어있는 그곳에 묻어 주도록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동설한에 눈이 녹아있는 그 자리는 명당입니다.장차 10년 안밖에 성공한 자식들이 아버지를 찾아올 것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말했다.“명당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답니다. 돈과 권력으로도 안되지요. 살아생전에 음덕을 많이 쌓아야 죽어 명당에서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소금장수 노인은 평소 음덕을 많이 쌓은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과연 그 스님의 예언대로 10여년 후 아들들은 모두 성공하여 어머니와 함께 실종되어 버린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마을마다 소금지게를 지고 장사하던 그 노인의 모습을 이야기 하며 수소문의 길을 나선 것이다. 마침내 소금장수 노인의 가족은 무덤을 찾을 수가 있었다. 노인의 아내와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골을 고향으로 이장하려고 하였으나 스님의 말을 듣고 이장하지 않고 초라한 무덤을 크고 보기좋게 조성했다. 그 후, 소금장수의 후손들은 발복하여 명망있는 부자가 되었다.

그 후, 명망있는 풍수지리학자들은 물론이요, 일반사람 까지 유명한 소금장수 명당을 보기 위해 줄을 이었다. 노인의 기도는 자신의 대에 전생의 나쁜 정업인 빈천보(貧賤報)를 소멸하고, 자식대에 발복하는 행운을 성취한 것이다. *

 

 

觀音經 9.

 





假使興害意야 推落大火坑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火坑變成池하며
或漂流巨海하야 龍魚諸鬼難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波浪不能沒하며
或在須彌峰하여 爲人所推墮라도 念彼觀音力하면 如日虛空住하며
或被惡人逐하야 墮落金剛山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不能損一毛하며
或値怨賊饒하야 各執刀加害라도 念彼觀音力하면 咸卽起慈心하며
或遭王難苦하야 臨刑欲壽終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刀尋段段壞하며
或囚禁枷쇄하야 手足被杻械라도 念彼觀音力하면 釋然得解脫하리라
呪詛諸毒藥으로 所欲害身者라도 念彼觀音力하면 還着於本人하며
或遇惡羅刹과 毒龍諸鬼等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時悉不敢害하며
若惡獸繞하여 利牙爪可怖라도 念彼觀音力하면 疾走無邊方하며
완蛇及복갈이 氣毒煙火燃하여도 念彼觀音力하면 尋聲自廻去하며
雲雷鼓 電하고 降雹澍大雨라도 念彼觀音力하면 應時得消散하며
衆生被困厄하여 無量苦逼身이라도 觀音妙智力이 能救世間苦하며
具足神通力하고 廣修智方便하야 時方諸國土에 無刹不現身하며
種種諸惡趣와 地獄鬼畜生의 生老病死苦를 以漸悉令滅하나니라.

 



【국역】혹은 어떤 사람이 해치고자 하여 큰 불구덩이에 떠밀어 떨어진다 하여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불구덩이가 문득 연못으로 변할 것이며, 혹은 바다에서 표류할 때 용이며 고기떼와 모든 귀신의 난이 있을 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간절히 일심으로 물결도 잔잔할사 되살아 날 것이며, 


 혹은 천만길 높은 산봉우리에 있을 때 웬 사람이 별안간 벼랑으로 떠밀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햇빛 같이 허공으로 살풋이 날아 내릴 것이며,
 혹은 악인에게 쫓긴 바 되어 놀란결에 험한 골짜기에 떨어질 때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털끗 하나 절대로 다치지 않을 것이며,


 혹은 원수나 도적떼들이 제각기 칼을 잡고 해치고자 하여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상대가 도리어 자비심을 일으킬 것이며,
 혹은 억울하게 왕에게 죄를 받아 형장에 끌려가 칼을 받아 목숨이 끝나는 때라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칼이 조각조각 나버리며,
 혹은 나무 칼에 갇히고, 수족에 ‘차꼬’(수갑과 족쇄)를 채워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혹은 주술과 독약으로써 해치고자 하는 자가 있어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도리어 그 해독이 해치고자 하는 자에게 돌아가며,
 혹은 악한 나찰과 독룡과 귀신떼를 만날 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때를 알고 감히 해치지 못할 것이며,
 만약 사나운 맹수들이 에워싸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공포를 주어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저 변방으로 달아나 없어질 것이며,
 살모사와 독사며 쏘는 독충들이 불꽃같은 독기를 뿜고 덤벼들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스스로 돌이켜 사라질 것이며,


 뇌성벽력 우르릉 번개가 치고 우박이며 큰 비가 쏟아질 때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이내 하늘은 맑게 개일 것이며, 중생이 곤액을 당해 한량없는 고통이 뼈에 사무친다 하여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일심으로 생각하면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지혜의 힘이 능히 이 세상 모든 고통에서 구해줄 것이며,


 신통력 구족할사 관세음보살, 지혜와 갖은 방편 널리 닦아 시방의 모든 국토에 아니 나투는 곳이 없으며, 여러가지 육취 중생들 지옥이며 아귀와 축생들까지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윤회의 고통을 차츰차츰 없애주리라.

 



【이야기】중국의 고승 자은법사전(慈恩法師傳)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자은법사가 홀로 옥문관(玉門關)을 거쳐 사막을 지나는 길에 우연히 호인(胡人) 석반타(石盤陀)라는 장년의 사내와 만나 동행하는데 날이 저물고 말았다.


두 사람은 인가 없는 사막에 별도리 없이 잠을 자게 되어 잠자리를 마련하고 잠을 청하였다. 자은법사가 마악 잠이 들려는데 돌연 옆에서 자는 척 하던 석반타가 서릿발같은 비수를 뽑아들고 강도로 돌변하여 죽일듯이 자은법사에게 덤벼들었다.

석반타는 비수를 자은법사의 목에 겨누고 큰소리로 협박하였다.
“꼼짝마라! 네 놈을 저 세상에 보내주고 네 물건을 수입 잡으련다!”
자은스님은 깜짝 놀랐고 믿을 수가 없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이 그토록 사람좋아 보이는 사내가 돌연 악귀로 돌변한 것이다.

자은법사는 경황중에 애원했다.
"내 지니고 있는 물건은 모두 가지시요. 그러나, 목숨만은 빼앗지 말아주시오."
"수도승이 죽는 것이 겁이 나느냐?"
"아니요. 아직 도를 깨닫지 못해서 억울해서입니다."
"안돼! 나는 내얼굴을 본 놈은 지금까지 한 놈도 살려 준적이 없어!"
"그러면, 내가 기도하는 도중에 목을 쳐 죽여 주시오. 이 부탁도 못들어 주겠오?"
"그거야 어렵지 않지. 어서 기도해라."


자은법사는 어렵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더더욱 어렵게 출가승려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부처님의 진리를 확철대오 하지 못하고 도적의 칼에 죽는 것이 진심으로 슬펐지만, 마음을 다잡고 옷깃읋 정제하여 엄숙히 좌정하여 가슴에 합장하고는 고성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석반타는 칼을 뽑아들고 악귀처럼 기다렸다.

 

 

자은법사는 도를 깨닫지 못히고 비명에 죽는다는 것이 억울하여 뜨거운 눈물로 양볼을 적시면서 소리쳐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석반타는 칼을 들고 목을 치려고 일어서 자은법사의 등 뒤에 섰다.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 때 석반타의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도적이 되어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죽여온 석반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양심의 소리가 가슴에서 소용돌이쳐 올라온 것이다. 석반타는 갑자기 칼을 든 손은 물론이요, 사지 전체에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힘이 쑤욱 빠지는 것을 느꼈다. 석반타의 몸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석반타는 생전처음 신비한 힘에 대한 공포를 절감하고서는 무섭게 자은법사를 노려보더니 내뱉듯이,
“직업을 바꿔야 하겠어.”
라고 말하고는 어두운 사막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자은법사는 석반타가 사라진 어두운 사막을 바라보면서 곧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이 응답하였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자은법사는 그날로 부터 더욱 깊은 관음신앙속에 수행정진하여 마침내 부처님의 진리를 확철대오 하였다. 자은법사는 그 후로도 고난에 처할 때마다 관세음보살의 영험한 가호를 체험할 수 있었고, 자신이 열반에 들 때 까지 세상사람들에게 관음신앙을 권하였다고 한다.

 



 

觀音經10.

 





眞觀淸淨觀하며 廣大智慧觀하며 悲觀及慈觀하나니 常願常瞻仰해야 하나니
無垢淸淨光이며 慧日破諸暗이라 能伏災風火하고 普明照世間이니라
悲體戒雷震과 慈意妙大雲으로 澍甘露法雨하야 滅除煩惱염하며
爭訟經官處와 怖畏軍陳中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衆怨退散하며
妙音觀世音과 梵音海潮音이 勝彼觀音이니 是故須常念하라
念念勿生疑하라 觀世音淨聖이 於苦惱死厄에 能爲作依호니라
具一切功德하사 慈眼視衆生하며 福聚海無量일새 是故應頂禮니라

爾時에 持地菩薩이 卽從座起하야 前白佛言하사대 世尊하 若有衆生이 聞是觀世音菩薩普門品自在之業과 普門示現神通力者는 當知是人은 功德이 不少니다. 佛說是普門品時에 衆中八萬四千衆生이 皆發無等等阿 多羅三 三普提心하나니라.

 



(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 終.

 



【국역】참다운 관찰자이며 맑은 관찰, 크고도 넓은 지혜의 관찰, 가없는 관찰자이며 자비의 관찰을 하나니 항상 우러러 염원해야 하나니라.
 티끌없이 맑은 광명, 지혜의 햋빛으로 어둠을 깨부수고, 불과 바람의 재앙도 항복 받아서 널리 세간을 밝게 비추나니라.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 우뢰와 같고, 자비를 베푸는 마음 구름과 같이 일어나 시원한 감로수법과 같은 비를 뿌려 불꽃같은 번뇌를 식혀 주리라.
 송사와 다툼으로 관청갈 때나 목숨을 걸고 나선 전쟁터라도 관세음보살 위신력을 간절히 생각함으로써 허다한 원수들도 물러나 사라지리라.


 중생구제를 위한 설법으로 관세음보살의 자재한 묘음인 범음과 해조음은 세간 어느 음성보다 뛰어나나니 항상 거룩히 생각하여라. 고해중생이여, 생각생각 의심하지 말지어다. 거룩한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번뇌속에 죽을 액운에 능히 의지되어 구원해 줄 것이니, 일체공덕 구족하고 대자비로 중생을 살피사 바다같은 복덕이 한량이 없나니 이러한 고로 마땅히 고해중생은 예를 갖춰 관세음보살을 향하여 귀의하고 믿어야 하나니라.

 그 때에 ‘지지보살’이 환희심으로 대중을 대표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께 말씀 올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떠한 중생이 이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통해서 관세음보살이 자재한 위신력으로 시방세계에 보문으로 시현하시어 고해중생을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 사람의 공덕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보문품을 설하실 때에 인간을 위시하여 사람 아닌 중생까지 포함하여 팔만사천의 중생이 모두 무등등의 ‘야녹다라삼막삼보리심’을 발하였다.

 


【이야기】-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향가 가운데 도천수대비가를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千手), 천안(天眼)의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향가를 통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중생이 슬픔속에 관음보살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만산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우는 화창한 봄 날. 산새소리 가득한 강진 무위사에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필자는 그때 무위사 큰법당인 극락보전 앞에 있는 고목나무 밑에 놓여 있는 깨어진 멧돌 위에 정좌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남자는 필자에게 정중히 합장 인사를 하고는 어눌한 음성으로 무위사에 관세음보살님의 국보 벽화가 봉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원천리 찾아왔으며 관음기도를 지성껏 모셔보고 싶노라고 허락을 구해왔다. 그는 슬픈 얼굴로서 후리후리한 키에 회색 양복을 입었고 한 손에는 낡은 트렁크를 힘겹게 들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나 필자는 이내 그의 설명을 듣고 속사정을 알았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는 경북 포항 사람으로 그동안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며 일개미처럼 열심이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 왔다. 갑자기 두 눈이 어두워 오더니 마침내 눈 뜬 장님이 되다시피 되고 말았다.
“아, 내가 앞을 못 보게 되다니….”


그는 나날이 잃어가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발악하듯 몸부림을 치며 유명하다는 병원은 성지순례하듯 찾았다. 병원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절망에 빠져 울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 마지막으로 신불(神佛)께 기도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 그는 무위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오정수(吳定洙). 필자는 오정수씨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무위사에서 기도할 것을 흔쾌히 허락하였다. 오정수는 각오의 뜻으로 삭도로 머리칼을 밀어 버렸다. 그리고 극락보전안에 있는 후불벽화인 수월백의관음벽화 앞에서 촛불과 향화를 받들면서 백일을 기한하고 천념 염주를 헤아리며 지성으로 관음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정수의 간절한 기도소리는 무위사의 적막한 도량을 넘쳐 흘렀다.
죽기를 한하고 지성으로 기도하던 오정수는 백일기도가 끝나가는 즈음에 놀랍게도 두 눈이 밝아졌다고 부르짖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확신합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오정수는 다시 트렁크를 들고 필자 앞에 섰다. 눈이 웬만하니 걱정하며 고대하는 처자에게 달려가고 싶고,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 가장의 책무를 다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작별하는 즈음에 오정수는 호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 그동안 산사에서 체류하게 해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부족한 돈이지만 시주금으로 받아달라고 간청하며 필자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 필자는 다시 그 돈을 돌려주며
“우리 인연 있어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라고 했을 뿐이었다.

필자는 멀어져가는 버스 차창을 통해 오정수씨의 흔드는 손을 답례하여 마주 손을 흔들면서 내내 앞서의 신라의 향가를 떠올렸다.

― 무릎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천안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무위사 수월백의관음보살님이 김정수씨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전생의 정업으로 고통속에 신음하는 고해대중이여, 우주의 오직 한 분 법신불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을 권장하니, 즐거우나 슬프나 괴로우나 믿고 의지하며 간절한 기도로써 희망과 용기를 얻으시라. 우리 모두 세연이 다하면 외로운 영혼이 되어 먼 윤회의 길을 떠나게 되니 오직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하시라.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외로운 영혼을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확철대오하고, 확신하시라.

 


고해대중이여,
다생겁래의 악업의 정업을 소멸하려면, 관음경을 낭송하면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시라!!
*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 종(終)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관 (관무량수경에서)

부처님은 아난과 위제희에게 말씀하셨다.

"무량수 부처님을 분명하게 본 다음에는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라.

이 보살의 키는 팔십만억 나유타 유순이고 , 몸은 붉은 금빛이며,

두상(頭上)은 솟았고, 목에는 원광이 있는데 지름이 백천 유순이다.

그 원광 속에는 오백 화신불이 계시는데 나와 같고, 화신불마다

오백 화신보살들이 수없는 천인(天人)들을 시자로 거느리고 있다.

온몸에서 발하는 광채 속에는 지옥·마귀·축생·인간·천인 등

오도(五道) 중생의 온갖 모양이 나타나 있다. 머리 위에는 여의주로 된 천관이 있고,

그천관 속에는 한 분의 화신불이 서 계시는데, 높이는 이십 오 유순이다.

관세음보살의 얼굴은 잠부강에서 나는 황금빛 같고, 미간의 백호에는

칠보 빛이 있어 팔만 사천 가지 광명을 발한다.

광명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 화신불이 있는데,

그 화신불들은 무수한 보살들을 시자로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자재로 변화하여 시방세계에 가득한 것이 마처 붉은 연꽃과 같다.

팔십억 광명으로 영락(瓔珞)이 되고, 그 영락 속에는 온갖 불가사의한 일이 나타나 있다.

손바닥은 오백억 연꽃 빛을 띠고, 손가락 끝마다 팔만 사천 금이 이빨 같으며,

낱낱 금에는 팔만 사천 빛깔이 있고, 빛깔마다 팔만 사천 광채가 있는데

그 광채는 부드러워 온갖 것을 비추고 있다.

이와 같이 보배로운 손으로 중생들을 이끌어 준다.

발을 들 때에는 발바닥에 있는 천폭륜상(千輻輪相)이 저절로 오백억 광명대로 화현하고,

발을 디디면 그것은 금강마니화로 변해 여러 곳에 흩어져 가득하게 찬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잘생긴 상과 좋은 모양이 갖추어져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

다만 두상의 솟은 것과 그 위에 볼 수 없는 정상(頂相)만이 부처님에게 미치지 못 한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진실한 색신상(色身相)을 생각하는 열째 관이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관세음보살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와 같은 관을 해야 한다.

이 관을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재앙을 만나지 않고, 온갖 업장을 깨끗이 소멸하여

우량 겁의 생사 중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만 보살의 이름만 들어도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인데,

하물며 그 모습을 똑똑히 관하는 데에 있어서랴. 관세음보살을 관하고자 하는 이는

먼저 머리 위의 솟은 데[肉醬]를 관한 다음 천관(天冠)을 관하고,

이 밖에 여러 가지 상호도 차례차례 관하되

그 영상을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분명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관하는 것을 바른 관이라 하고, 이 밖에 달리 관하는 것은 잘못된 관이다.

 

해설 / 법철스님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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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經持驗錄 - 금강경지험록 1


                          수 티안 청(許添誠) 모음
                              석 영곡 한글 역

 


    제1편 정토에 왕생하다


  1, 보살의 계위를 증명하다

 

당나라 때에 징쩐(淨眞)이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분은 장안의 적선사積善寺라고 하는 절에 머물고 계셨는데 평소에 늘 걸식에 의지하여 세월을 보내시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일생동안 성을 내지 않으셨지요. 그것은 인욕바라밀을 깊이 체득하셨기 때문입니다. 징쩐스님께서는 금강경을 십만 편을 외우셨고 또한 오로지 염불정진을 하시어 마음은 이미 극락세계의 안양정토에 계셨습니다.


당나라 고종 5년 7월 어느 날에 스님께서는 약간의 질병에 걸리시자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내가 근자에 5달 동안에 10여 차례에 걸쳐 아미타부처님을 뵈었다. 또한 극락세계에 이르러 보배 연꽃 위에서 동자가 노니는 것을 두 번이나 보았다. 또 성인의 계위에 오르신 성스러운 스님 5분이 나를 향하여 이렇게 수기하셨다. <그대는 다가오는 세상에서 붓다가 되리라>”
비구니 스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서방극락세계의 상품에 왕생함을 얻었다.”
그리고는 이내 결가부좌를 하시고 생명을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하룻밤을 세고 나자 놀랍게도 징쩐스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이미 보살의 계위를 얻고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두루 다니면서 공양하였다.”
그분은 말씀을 마치자 곧 입적하셨는데 찬란한 광명이 절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금강경』에 이러한 구절이 있지요.
“ 일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을 좇아 나오느니라.”
『육조단경』에도 적합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존귀하고, 가장 위이며, 최고 제일이다. 오고 감도 없고 머물음도 없으며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그 속에서 나오느니라.”
이러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금강경이 수승한 지 알 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2, 금강경 10만 번 독송하다

 

  당나라 영휘(永徽) 원년(元年)에 밍쭌(明濬)이라고 불리는 한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곧바로 누덕누덕 기운 파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갔는데 바로 염라대왕 앞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그 분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일생동안 어떻게 수행을 하였습니까?”


밍쭌스님이 답을 하였지요.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외쳤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만일에 10만 편을 독송하셨다면 내년에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왕생하실 것입니다. 그 때는 제가 스님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회복하여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이러함을 겪고 나자 밍쭌스님은 마음에 용맹심이 솟구쳐 가행정진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듬해 3월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어느 날에 앉으신 채로 입적하시었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코를 진하게 찌르는 신이한 향기의 상서로움에 젖어들었습니다.

 

  3, 서방에서 와서 영접하다

 

  웨이꽁(惟恭)은 당나라 때 찡쩌우(荊州)의 법신사法信寺의 스님이셨습니다. 그 분은 30년 동안 매일 50편씩 금강경을 독송하셨습니다. 어느 날 같은 절에 사시는 링뀌(靈歸)스님께서 일이 있어 외출하셨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몸이 날렵하게 생긴 5~6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입은 옷이 평범하지 않고 매우 맑고 깨끗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악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링뀌스님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웨이꽁어르신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링뀌스님께서는 그들에게 도리어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느 지방에서 오는 것입니까?”
그들이 말했습니다.
“서방에서 웨이꽁어르신을 영접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품속에서 오므린 모양의 한 송이 연꽃을 꺼내었습니다. 그 연꽃의 이파리마다 각각 신비로운 광명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멀리 절이 보이자 한 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날 웨이꽁스님께서는 곧바로 입멸하셨는데 절에 있는 대중들이 모두 관현악기에서 울려나오는 오묘한 음악을 들었다고 합니다.


    4, 칼을 내려놓고 보리의 길을 가다

 

송나라 때의 일입니다. 후쩌우청(胡州城)의 남 쪽에 리우웡(陸翁)이라고 하는 도살업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23세 되던 해에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다니는 운수행각 스님 한 분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문 앞에서 외쳤죠.
“인연있는 자를 교화하리라!”


리우웡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운수행각 스님은 리우웡을 때마침 보고는 곧바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대가 도살한 돼지와 소와 양의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구나. 어찌하여 그대의 업을 바꾸려고 하질 않는 것인가?”
리우웡은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조상대대로 이어받아 익힌 습이라 한꺼번에 버릴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자 운수행각 스님은 이렇게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대가 살생업을 버리지 못한다면 내세엔 결정코 짐승의 몸을 받게 될 터이다. 그리하여 그대가 죽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몸을 난도질 당하고 갈기갈기 찢겨져 죽임을 당하리라. 그러면 그대도 원한을 품게 되고 결국 원한과 원한이 서로 보복을 불러오게 되어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기약이 없다. 내가 그대를 잘 들여다보니 과거 언젠가 선근을 쌓은 적이 있도다. 그러하니 금강경과 묘법연화경을 부지런히 지니고 외우라. 그러면 업장이 녹아 없어지고 복과 지혜가 늘어나게 되리라.”


말씀이 끝나자 그 운수행각 스님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리우웡은 그 자리서 즉각 깨달았습니다. 이로부터 살생업을 짓지 않고 몸을 마칠 때까지 채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화공에게 청하여 서방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 등의 세 분 성인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 분 성인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지극정성으로 예배하고 공양하였습니다. 또한 매일매일 부처님 전에 금강경과 법화경을 독송하며 지성으로 간절하게 지난 악업을 참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죽인 중생들이 모두 제도되고 해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채 5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리우웡은 금강경을 다 외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정진하길 오래하다가 81세가 되기 보름 전 쯤에 친한 친우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었습니다.
“오는 11월 9일에 맛있는 음식을 잘 장만하고 그대들과 장차 고별인사를 나눌까 하니 두루 참석하여 주길 바라네.”
그날이 오자 친한 벗들이 모두 리우웡의 집에 모였습니다. 리우웡은 그들과 낱낱이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나서 목욕을 마치고 노래 한 수를 읊었습니다.

 

“오십년 전에 익혀왔던 도살업 그만두고
  손에 익은 칼과 저울 던지고 그윽히 닦아서
  오늘 아침 보리의 길에 척 나서노니
  물속에 피던 연꽃 불속에 만발하였구나”
  五十餘年離殺業,手提刀秤暗修行,
  今朝得赴菩提路,水裏蓮花火裏生

노래를 마치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나니 거기 모였던 사람들 누구나 우러러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5, 138분의 수보리존자

 

씨쫑춘(襲仲淳)은 중국 명나라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인 쭈쓰(祝氏)는 위앤홍따오(袁宏道)의 남동생에게 있으면서 정토법문을 듣곤 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신심이 깊어서 마음 속에 부처님 명호를 지니고 외우고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전념하였습니다.


어느 날엔가 쭈쓰 부인이 그녀의 아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3일 후에 나를 맞이하러 오겠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단다.”
이틀이 지나니 쭈쓰부인은 목욕을 정갈하게 하고나서 마루청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권속들이 빙둘러 모시고 앉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자 쭈쓰부인이 말했습니다.
“스스로를 수보리라고 하시는 부처님 한분이 오셨는데 부처님의 위대한 모습은 장엄하기 그지없어 무엇과도 비할 수 없구나.”


그리고나서 또 말하였습니다.
“맞이하여 이끌어주시는 한 부처님이 오셨는데 미간의 백호白毫에서 한 줄기 은빛광명을 놓아 내신다. 그 빛은 마치 춤을 추듯 이리저리 구르면서 드날리는데 길이가 자그마치 몇 미터나 되는 듯하구나.”
말씀을 끝내고 쭈쓰부인이 손을 펴서 백호를 잡자마자 부처님이 곧바로 그녀를 손바닥 속으로 거두어 들이셨습니다.


찰나에 그녀는 수보리존자가 일백부처님으로 화현함을 보았는데 장엄함이 비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어떤 사람이 옆에서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금강경에 나오는 138수보리존자일 것입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권속들이 모두 향을 사루고 함께 부처님 명호를 외우니 쭈쓰 부인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적멸에 들었습니다.


그 때, 아홉 살 쯤 되는 한 계집종이 홀연히 땅위로 나뒹굴었습니다. 그러나 곧 일어나서 선채로 말하기를,
“내가 몇 명의 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거인들이 당번幢幡을 잡고 부인을 위하여 앞길을 이끄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당번의 자루에 내 얼굴이 부딪쳐서 땅에 거꾸로 쳐박히고 말았어요. 깨어나 보니 이렇게 많이 아파요.”하였습니다. 집주인이 계집종의 얼굴을 살펴보니 과연 확실히 상처가 있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상처는 점점 치유가 되었습니다. 쭈쓰부인의 몸을 염을 하여 관에 넣으니 관속에서 기이한 향기가 퍼져 나왔습니다.

 

    6, 명부의 관리를 사임하다

 

  유창(于昶)은 당나라 때 사람이었습니다. 일찍이 칭쪼우(慶州)에서 쓰마(司馬)로 부임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측천무후가 집권할 때에는 삥쪼우(幷州)로 부임하여 문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는 매일 밤 11시 이후에야 잠이 들었는데 가슴 속이 답답하여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 지고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아오면 곧 정상으로 회복되곤 하였습니다. 비록 매우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몸이 특별히 허약해서 그러한 듯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면 매일 거의 얼굴에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고 기색이 초췌하여 모두가 기괴한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물으면 유창은 아무 대답없이 그저 묵묵할 뿐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유창의 부인인 류쓰(柳氏)는 그냥 보기엔 비록 남편이 장부의 몸을 갖추고 있지만 이처럼 허약하니 좋은 의사를 청하여 병을 치료해 보는 것이 어떠할 지 남편에게 떠 보았습니다. 하지만 유창이 단번에 거절해버리자 류쓰가 남편더러 남에게 말못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캐물어보니 남편이 부득이 못이겨 겨우 털어놓았습니다.
“기실은 내가 무슨 병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낮에는 공무를 처리하지만 밤이 되면 명부(저승)에 들어가서 관리가 되어 일을 하다 보니 이로 인해 체력이 조금 지탱해주지 못해서 그럴 뿐이오.”


류쓰 부인은 매우 놀랍기도하고 기이하기도 하여서 명부의 일을 계속해서 캐어 물었습니다. 유창은 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말만 할 뿐 다른 말은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류쓰 부인은 재삼 붙들고 물어보았지만 더 이상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유창은 재해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 수 있었기에 은근히 대처할 준비를 하게 하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류쓰 부인이 혹 남편의 친형제들로 하여금 묻게 하여도 그는 요지부동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럭저럭 5,6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여전히 매일 낮에는 공무에 힘쓰고 밤에는 명부에 들어가서 일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비록 힘들게 일하지만 스스로가 주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뒤에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부지런히 회향공덕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길러주신 은혜에 조금이라도 갚아보려 한 것입니다. 그 이후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다시는 명부에 들어가 관리의 일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유창은 금강경의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갓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금강경이야말로 모든 경전 가운데 최대의 복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에게도 금강경을 지송하게 하였고 널리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였습니다.


그의 나이가 50세에 이르자 관리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조정에 있던 유창의 사돈인 좌상左相 쑤량쓰(蘇良嗣)와、우상右相 웨이따이쨔(韋待價)와,대장군大將軍 리총쓔안(李沖玄)의 세 사람이 그에게 관직을 사임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창은 완곡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조정에서는 간사하고 잔인한 신하들이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들을 모함하였습니다. 그 때 유창은 비록 이미 관직에서 물러나 전원에 살고 있었지만 저러한 몹쓸 무리들의 모함을 받게 되어 결국은 감옥으로 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유창이 비록 감옥에 갇혔으나 내심으로는 터럭만큼도 슬퍼하거나 개탄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금강경을 지송하였습니다. 오래지않아 과연 찬란하고 밝은 서설이 쏟아지매 친한 벗들이 모두 불법의 가없음을 찬탄하였습니다.


유창이 평생에 비록 곤액을 여러 번 만났으나 금강경의 공덕을 인하여 위험을 도리어 평온함으로 돌리게 된 것입니다. 그가 84세 되던 해에 중병에 걸렸으나 여전히 병을 안고서도 금강경을 독송하였으며 거의 죽음에 이르러도 그의 정신은 여전히 매우 맑았습니다. 한 때, 홀연히 신이한 향기가 실내에 꽉차고 아름다운 향연기가 자욱하였습니다. 유창이 말하였습니다.


“화신 부처님이 오셔서 나를 서방극락세계로 데려 가려 하신다.”
이윽고 친한 벗들에게 잘 있어라 말을 하고 생을 마쳤습니다.


7, 피로써 사경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갚다

 

  명나라 신종神宗 만력황제萬曆皇帝 때의 일입니다. 오동나무가 무성한 한 마을(桐鄕)에 우쭌핑(吳君平)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매우 효성이 지극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너무나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쭌핑은 과거시험에 도전하여 보았으나 여러 번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공부를 핑계삼아 영은사靈隱寺의 밀폐된 방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습니다. 

 

<자식은 봉양코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으시네>하고 벽에 써 붙여놓고 늘 부모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였음을 생각하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올릴 것이 아무 것도 없음에 애탄해 하며 슬피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통곡하기를 멈추지 못하고 순수한 한 조각 효심의 성품을 온 우주에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쭌핑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바로 그 때에 어떤 한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아들 되는 자가 만일 부모님의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불경을 베끼는 공덕이 최고라네.”
우쭌핑은 그 말씀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 곧 49일간을 채식을 하며 피를 내어 금강경 1권을 사경할 것을 발심하였습니다.

 

그가 피로써 사경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이 밖으로 퍼져나간 후, 멀고 가까운 곳의 승속이 모두 지켜보기 위해 모여 들었습니다. 우쭌핑은 양팔과 앞가슴에 한꺼번에 11군데를 찔러서 몸 위에 고인 맑은 피로써 사경을 하였습니다. 사경이 끝나고 나자 이 광경을 본 모든 이들이 찬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한 스님이 말했습니다.


“선생의 이와 같은 정성스런 마음의 고행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반드시 감동시킬 것이며
이와 같은 수승한 공덕은
양친의 은혜에 능히 보답한 것이 될 것이며
공명功名을 세상에 드날려 조상과 문중을 영광스럽게 함보다
천만 배나 훨씬 더 수승하리라.”


  한편 어떤 사람이 보궐진언 (옴 호로호로 사야목계 사바하)을 가리키며 아직 다 베끼질 못했다 하니 우쭌핑은 또 가슴팍을 찔러 피를 내어 보궐진언을 완성하게 하였습니다.
그날 밤에 우쭌핑의 꿈에 부모님이 구름 끝자락에 선채로 나타나시어 말하였습니다.


“네가 피를 내어 사경을 한 그 효심이 하늘과 부처님이 감동케 하고야 말았구나. 우리가 금강경의 위대한 법력에 의지하여 덕분에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다. 너의 운명에 본래 아들이 없게끔 결정되었었지만 부처님께서 이미 훌륭한 아이를 보내시어 너의 씨앗을 계속 잇게 하셨느니라.”

 

그 해에 우쭌핑의 아내는 과연 남자아이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기를 때에 과일과 함께 비릿내 나는 음식도 함께 먹이려 하니 굳이 입을 닫고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쭌핑이 그것을 보고 깨우친 바가 있어 그 자리에서 서원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채식을 하며 아울러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8, 금강경과 지장경을 지극정성 외우다.

 

  후앙뚜안빠이(黃端伯)은 명나라 짼창(建昌) 사람입니다. 일찍이 나찡(南京)에서 의제儀制를 주로 하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리쓰는 금강경과 지장경을 특히 지극정성으로 지송하였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자기가 산꼭대기에서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광명이 몸 위로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남편인 뚜안빠이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서방극락세계를 가 보았더니 날씨가 매우 상쾌했어요.”
그리고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는 몸이 점점 불편해짐을 느끼더니 염불하면서 임종하였습니다.


9, 염라왕이 보궐진언을 주다

 

송나라 소흥紹興 9년에 밍쪼우(明州)에 왕쓰부인이 살았습니다. 그녀는 평상시에 늘 금강경을 지송하였습니다. 왕쓰부인은 남편을 뒤따라 왔다가 치쪼우(岐州) 임지에는 먼저 가게 되었습니다. 왕쓰가 임신을 한 이후 28개월이 지나도록 아이가 여전히 태어나질 않았습니다. 또한 분만할 때엔 난산이 걱정되었습니다. 전 가족이 이로 인해 근심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왕쓰가 집대문의 문설주에 기대어 서 있었는데 때마침 만행을 하시는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을 하시는 중이었습니다. 스님이 왕쓰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하면 공덕이 한량없습니다.”
왕쓰는 출가인을 매우 존경해 왔으므로 이에 공경히 보시하고 공양을 올렸습니다.


스님은 공양을 손으로 받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숙세에 선근을 심어 놓았었는데 지금 큰 곤란을 만나서 어찌하여 금강경을 인쇄하여 보시하지 않습니까? 만일 기꺼이 발심하여 금강경 일천 권을 인쇄하여 보시한다면 이 곤란을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울러 복과 수명을 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손들이 모두가 늘 단란하고 화목하게 지낼 것이며, 이별의 고통을 만나지 않게 되며, 일체의 구하는 바가 그대로 보상을 받을 것이고, 7대 조상과 권속이 함께 선도善道에 뛰어 오를 것입니다.”

 

왕쓰가 숙세의 근기가 깊고 두터워 말씀을 듣고 열심히 반성하여 즉시에 스님의 신신당부를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을 일천 권을 인쇄하여 보시하고 스님들 일천 분을 모셔서 재를 베풀어 드리고 아울러 스님들께 금강경 일천독을 청하였습니다. 왕쓰는 또 직접 천녕사天寧寺에 가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예배드리면서 숙세의 나쁜 악업을 참회하였습니다. 그리고 분만할 때에 삼보의 보호하시고 도와주심으로 모자가 함께 평안하기를 기원드렸습니다.

 

그날 밤에 그녀는 꿈속에서 금강신을 뵈었는데 손에 금강저를 지니고서 그녀의 복부를 짚었습니다. 그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을 느껴 깜짝 놀라 깨어났으나 다행히 편안하게 쌍둥이 남자아이를 분만하였습니다. 두 아이의 용모는 매우 아름답고 흠이 없어서 사람들이 보는 이마다 저절로 기쁨을 일으켰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모자母子가 평안하고 걱정거리가 없었으니 전 가족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쓰는 이로부터 다시 재계하고 채식을 하며 일심으로 금강경독송을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61세가 되던 해에 왕쓰는 아무런 병도 없이 죽게 되었는데 두 사자가 명부로 데려 갔습니다. 거기서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생전에 일찍이 어떠한 선업을 지었소?”
왕쓰가 답하여 말하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금강경을 지송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염라대왕이 한 번 듣고는 매우 공경하여 금으로 된 탁자를 하사하여 왕쓰로 하여금 앉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명부전 한 쪽에서 금강경 일편을 낭송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녀의 경전 독송하는 낭랑한 소리는 지옥에 매여 고통 받는 중생들 모두에게 은혜와 이익을 입게 하였으며 일체의 쓰라린 고통을 잠시 멈추어 쉬게 하였습니다.

왕쓰가 독송을 마치니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진언을 외우지 않습니까?”
그녀가 답하였습니다.
“세간에서는 진언본이 없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진언본을 취하여 그녀에게 줄 것을 명하였습니다. 아울러 간곡한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대가 인간세상으로 돌아간 후에 이 진언본을 온 세상에 유통시킬 것이며 결코 유실치 말게 하여주십시오.”


그리고 또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수명이 다하게 되면 서방극락세계로 곧바로 왕생할 것입니다. 그러니 두 번 다시 이 속에서 만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보궐진언 <옴 호로호로 사예목계 사하>

1,회향: 진여실제에 마음과 마음이 계합함
2,회향: 위없는 부처님보리에 생각생각 원만함
3,회향: 법계의 일체 중생이 함께 정토에 왕생함


    10, 청량수

 

  첸삥(錢炳)은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 일찍이 푸양썐(富陽縣)에서 관리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사직을 하고 매일 금강경을 지니고 외우는 수행에 매진하였습니다. 임종할 때에 주변 식구들에게 청량수를 가져다가 마시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식구들이 물었습니다.
“청량수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말하였습니다.
“방생한 연못의 물을 가져오면 된다.”
식구들이 이 말을 듣고 연못의 물을 떠다 주니 맛있게 들이키고 나서 합장하고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부처님의 힘으로 직접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다.”  이 말을 마치고 나서 흔연히 기뻐하는 모습 그대로 앉은 채 생을 마쳤습니다.


    11, 염라왕이 돌려보내어 경을 지송케 하다

 

쨩아이(張愛)는 명나라 만력萬曆 때에 환관의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년에 그가 꾸준히 매진하던 일은 바로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병을 얻어 죽기 전에 가솔들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경을 독송하고 잘 알아차리는 일을 반드시 잊게 해서는 안된다.”


쨩아이가 비록 그렇게 믿음이 깊고 마음에 두어 잘 새기고 했으나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쨩아이가 두 명의 파란 옷을 입은 저승사자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였습니다.
“그대를 데려가서 산동에 이르게 되면 여자의 자궁에다 반드시 던져버릴 것이오.”


그들이 한 길로 나는 듯이 그를 데리고 달려갔습니다. 쨩아이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서 도착하니 몸을 받을 부모가 있었습니다. 쨩아이가 일심으로 금강경을 지송하면서 동악의 궁전에 이르러 묶여 있는데 위에서 근엄하게 앉아 있던 왕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응당 이곳에 이르러 태에 들어가리라.”
쨩아이가 말했습니다.


“제가 금강경을 지송하면서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였지 태에 들어가길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대의 금강경 지송한 공덕의 힘이 적었기 때문이다.”
쨩아이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일찍이 듣기로는 십념을 성취하면 즉시에 왕생할 수 있다하였는데 하물며 제가 이미 수년간을 금강경을 지송한 공덕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잠시 그대를 놓아주어 다시 금강경을 지송할 기회를 주겠다.”


그리고는 곧 사자들에게 명을 내려 쨩아이를 세상으로 돌려보내었습니다.

쨩아이가 다시 살아 난 이후 집을 떠나 서쪽 산에 있는 벽운사碧雲寺에 머물면서 마음을 오로지 금강경을 지송하는데 매진하였습니다.


다시 11년이 지난 어느 날 모두들 모아 놓고 외쳤습니다.
“내가 금강경을 지송한 공덕의 힘으로 지금 바로 서방극락세계로 간다.”
말을 마치고 나서 단정히 앉아 생을 마쳤습니다.


    12, 벽에서 부처님형상이 출현하다

 

쎤춘쨔오(沈春郊)는 명나라 때 후쪼우(湖州)의 썅린쩐(雙林鎭)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벼슬길에 오른 후에야 페이쓰(費氏)에게 장가를 갔습니다. 그녀는 애석하게도 어렸을 적에 과부가 되어 직물 짜는데 의지하여 자급자족하며 살았습니다. 40여년을 재계하며 살면서 한 폭의 부처님형상과 단향목檀香木으로 새긴 관세음보살님의 성상에 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반드시 금강경 1권을 독송하였고 부처님명호를 일천 번 외웠는데 춥거나 덥거나 결코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숭정崇禎 무인년戊寅年에 이 땅에 급성 전염병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위 쨩쓰마오(張世茂)의 집으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녀는 누각 위에다 관음보살님의 성상을 겨우 모셔놓고 공양하고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불상은 여전히 옛 살던 집에 모셔져 있었으므로 그녀는 매일 불상을 향하여 향을 사르고 경전을 독송하였는데 이 향기가 부처님 계신 곳에 직접 이르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순식간에 3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 신사년辛巳年 봄이 되었습니다. 홀연히 허공에서 기이한 향기가 퍼져 내려와서 누각을 며칠 동안 에워싸고 돌았습니다. 그리고 하얀 벽 위에 부처님형상이 솟아 나타났는데 장엄하기 그지없고 정미롭고도 미묘하였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멀고 가까운 곳으로 퍼져나가자 우러러 친견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천으로 금방 닦은 것처럼 색채가 더욱 밝고 빛났습니다.

이윽고 4년이 지난 을유년乙酉年 봄 2월에 페이쓰는 딸과 사위에게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옛집에 돌아가서 곧 서방정토극락에 왕생하려 한다.”하였습니다. 그녀는 옛집에 도착하여 청소를 하고 불상에 향을 사르고 예배하며 경전을 지송하였습니다. 그러다가 3일후 아침 일찍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염불하였는데 오시午時가 되니 홀연히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이미 극락가는 연꽃배에 올라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다.”
그리고는 곧 식구들과 이별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73세였습니다.

 

  13, 기이한 향기가 실내에 가득차다

 

쩌우팅쨩(周廷璋)은 호를 추펑(楚峰)이라고 하였는데 명나라 정덕正德과 가정嘉靖 때에 윈난(雲南)에서 살았습니다. 사람됨이 순박하고 솔직하며 충직하고 인정이 두터웠습니다. 평소에 부처님과 진리에 대한 믿음이 매우 정성스러웠습니다. 그는 매일 맑은 새벽에 일어나서 금강경과 아미타경과 관음경 그리고 여려 경전을 반드시 지송하였습니다.

 

그가 평소에 보시하기를 매우 좋아하여 항상 궁핍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어떨 땐 비록 남들이 항상 그를 놀리더라도 그는 터럭만큼도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여전히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의 뜻에 잘 계합함을 스스로 만족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가 87세 되던 그 해에 아내와 자식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장차 죽게 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실 것이다. 또한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도 모두 함께 오실 것이다.”
잠시 후에 또 말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5일 동안은 비릿내 나는 음식을 멀리하면 서방극락세계에 곧 왕생하리라고 하셨다.”

그날로부터 그는 매일 죽 한 그릇에 나물 한 그릇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면서 재계를 깨끗이 지니었습니다. 드디어 5일이 지나자, 그는 목욕을 하고 단정히 앉아서 자제들에게 칠보여래七寶如來의 명호를 외우게 하며 스스로는 경전을 외우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곧 몸에서 기이한 향기가 뿜어져 날리었으며 용모는 마치 살아있는 듯하였으니 주위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극락왕생성취를 칭찬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14, 연꽃이 피다

 

쭈쓰(朱氏)는 송나라 때 쨔추안(霅川)에 살았습니다. 그녀는 30년 동안 부처님명호를 외우고 금강경을 지송하였습니다. 경전을 펼 때면 매번 많은 성인들께서 왕림하시어 살펴보시는 듯 하였기에 감히 높이 앉지를 못하였습니다. 어떤 날은 홀연히 하루 종일 음식을 끊다가 그 이후론 매일 물 몇 잔만 마시면서 40일이 지났습니다. 꿈을 꾸는데 손에 연꽃을 든 스님이 세 분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대를 위하여 연꽃을 심었었는데 오늘에야 활짝 피었도다. 그래서 그대를 맞이하러 가겠노라.”
잠에서 깨어난 추쓰는 염불하기를 더욱 열심히 하여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단정히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5, 관불삼매를 이루다

 

탕쓰(唐時)는 명나라 때 후쩌우(湖州) 사람입니다. 럔츠따쓰(蓮池大師)의 가르침을 따라 염불과 법문을 받아 지녔습니다. 그의 권속들도 또한 모두 다 능히 금강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줄줄 외울 정도였습니다. 낮부터 각자 염불하고 경을 외우다가 밤이 되면 전 가족이 모두 모여 부처님 전에서 예불하고 경을 외웠습니다. 탕쓰는 거기에다 더 관불삼매觀佛三昧를 닦았는데 부처님께서 상서로운 모습을 나투심을 자주 친견하였습니다. 임종할 때엔 바르게 삼매에 든 채로 생을 마쳤습니다.

 

    16, 염불 속에서 앉은 채로 입적하다

 

후이안(慧安) 비구니스님께서는 송나라 때 밍쩌우(明州)에 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작은 냇가에 세워진 양쓰楊氏의 암자에서 수행을 하였는데 오로지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할 인연을 닦으면서 금강경을 지송하였습니다. 춥거나 덥거나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정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자주 촛불 속에서 부처님형상이 출현함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몸이 좀 불편하여 정신을 집중하여 단정히 앉고는 모두들에게 시끄럽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잠시 후에, “부처님께서 오셨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크게 염불하니 오래지 않아 후이안스님은 앉은 채로 입적하셨으니 세속나이로 96세 였습니다.


    17, 결가부좌한 채로 세상을 떠나다

 

쎤삥(沈炳)의 자字는 찡푸(敬孚)이고 청나라 때 챵쩌우(長州) 사람입니다. 그가 20세 때에 천식병을 얻어 30세엔 병의 증세가 더 심해지고 50세가 되자 더욱 더 심해졌습니다. 이에 심병은 염불을 시작하고 아울러 재계를 지키면서 생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친한 벗인 양꾸앙먼(楊廣文)이 그에게 금강경을 독송할 것을 권하니 이에 매일 3편씩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자 병의 증세가 점점 호전되는 것이었습니다.

 

건융乾隆 46년 한 해가 저물어 갈 때에 몸이 점점 불편해짐에 따라 그믐이 다가오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목욕한 후에 서쪽 극락정토를 향하여 결가부좌하고 염불하였습니다. 당시에 부인과 자식들이 그의 곁에 있었는데 손을 내저으면서 밖으로 나가라고 외쳤습니다. 조금 있다가 곧 적연히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부처님께서 큰 몸을 나투시다

 

왕양취앤(王仰泉)은 청나라 때 항쩌우(杭州) 사람입니다.
그의 직업은 양을 도살하는 일입니다. 어느 날 그가 병들어 누워 있는데 꿈에서 수많은 양들이 그를 향해 다가와서 목숨을 애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꿈을 깨고나서 그는 도살업을 던져 버리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아울러서 오래오래 재계를 지키면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이렇게 금강경  천 편을 독송하고 나서 법화경에 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81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명부의 사자가 와서 그를 데려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에 저항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이 오셔야만 갈 수 있다!” 하였습니다. 과연 5일이 지나자 부처님께서 크신 몸을 나투셨습니다. 그리고는 왕양취앤을 인도하려 하시니 그는 흔연히 따라 갔습니다.


    19, 도심에서 물러나지 않다

 

명나라 때의 일입니다. 쨩위앤(張元)은 바닷가에서 소금을 만들고 고기를 잡는 가문 사람으로서 그의 아우인 쨩쩐(張貞)과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배를 저어 돌아오다가 긴장을 풀고 푸른 소나무가 서 있는 둑에 배를 대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 수면위로 기이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그는 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한 개의 돌상자를 건져 올렸습니다. 뚜껑을 열어 보니 금으로 새긴 금강경 한 본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쨩위앤의 꿈에 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신장이 나타나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전생에 챵수이(長水)법사였다. 불법 강의에 힘을 쏟았으나 도심(道心)이 견고하지 못하여서 이곳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도 옛 경전을 강의한 인연이 남아 있었기에 특별히 그대에게 큰 법을 내려줄 것이니 응당 부지런히 정진하고 지송할지어다.”


쨩위앤이 말하기를, “전 글자를 읽지 못합니다.”하니 금갑신장이 그에게 입을 벌리라고 하고는 환약 1알을 그의 입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쨩위앤이 잠에서 깨어나 금강경을 펴들었는데 읽기가 매우 쉬운 것이 마치 오래오래 읽어서 잘 익힌 것만 같았습니다.

 

 쨩위앤은 한달음에 근처 소경사로 달려가서 추안루(傳如)스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추안루스님은 이를 들으시고 나서 그에게 서방정토에 회향할 수 있도록 힘쓰라고 쨩위앤을 독려했습니다. 3년이 지난 후, 쨩위앤은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습니다.
“연화대가 이미 나타났다.”
그리고는 단정히 앉아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만력萬曆 정축년 7월의 일입니다.

 

      20, 복력을 타고서야 왕생할 수 있다

 

팡쭈(房翥)는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을 불법을 숭상하고 믿으며 살았는데 매일 염불하며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팡쭈가 돌연 갑자기 죽었습니다.  저승에 도착하니 염라왕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금강경을 지송하고 아울러 또한 일찍이 한 노인에게 염불하기를 권하여 극락정토에 왕생케 하였으니 그대는 이러한 복력을 타고서 당연히 극락왕생할 수 있음이로다.”


팡쭈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일찍이 금강경 1만독을 발원하였었는데 아직까지 다 읽지 못하였습니다.”
염라왕이 말하였습니다.


“경전을 독송하려는 발원을 완성하려는 의지가 가상하구나. 지금 정토에 왕생하기는 좀 이른 감도 있으니 잠시 미루어도 좋겠지.”
염라왕이 팡쭈를 위해 특별히 결정을 내리어 명부의 관리를 파견하여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내었습니다.


      21, 경전독송으로 삼보정재를 함부로 쓴 죄를 녹이다

 

  파창(法藏)은 당나라 때 푸쩌우(鄜州)에 위치하고 있는 보실사(寶室寺)의 스님입니다. 계행을 잘 지니고 성품이 고상하며 심원했으며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널리 자비를 베푸는 실천을 하셨습니다. 그가 일찍이 수나라  개황開皇 13년에 루어쨔오썐(洛交縣)의 웨이추안(葦川)강변의 성조사城造寺에 줄곧 머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법당과 강당을 여러 채 지었고 스님들이 머무는 승방도 20여칸이나 지었습니다. 그가 조성하여 법당에 모신 불상은 높이가 무려 1장6척이나 되었고 다른 불상에 비한다면 몇 배나 훌륭하게 장엄되었으며 관세음보살님의 성상도 특별히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파창스님은 여기서 불경을 800여권이나 사경하였습니다.

 

당나라 무덕武德 2년에 파창스님은 그만 중병에 걸려서 정신이 혼미해져 업무를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손에 부처님경전을 든 금강신이 나타나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일생동안 절을 짓고 경전을 사경한 공덕이 비록 크다하나 삼보의 재물을 넘나들며 써버린 죄가 한량없다. 그래서 내가 지금 그대에게 금강경 1권을 줄 터이니 만일 능히 실컷 사경하고 독송하며 널리 유통시킨다면 그대의 죄가 소멸될 것이며 몸의 질병도 낫게 될 것이다.”

 

파창스님은 이에 발원하여 금강경을 사경하여 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병이 위중함을 알게 되자 제자들에게 교대하게하고 그의 옷과 발우를 팔아서 돈으로 바꾸어 금강경 일백 권을 찍어내어 널리 일체의 세상 사람들이 독송할 수 있게 유통시키라고 말하고나서 곧 입적하였습니다. 

명부에 도착하니 염라대왕이 그에게 질문하였습니다.


“그대는 일생동안 무슨 공덕을 지었습니까?”
파창스님이 회답하였습니다.
“일찌기 탑과 절과 불상을 조성하였으며 금강경 100권을 서사하여 세상에 유통시켜 독송케하였으며 아울러 다른 경전도 800여권을 사경하였습니다.”

 

염라왕이 그 말을 듣고 합장하고 칭찬하여 말하였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의 공덕이 지극히 크며 불가사의합니다.”
염라왕은 곧 좌우의 신하들에게 공덕장부를 가져오게 명한 후, 친히 상세히 살펴보더니 과연 파창스님이 말한 것과 딱 들어 맞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의 공덕이 완벽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세상으로 도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당신께서 대중들에게 금강경독송을 많이많이 권하여 널리 일체공덕을 닦게 하소서.”

파창스님이 99세 되던 해 정월 15일에 대중들을 청해다가 묘법연화경과 금강경을 각 7편을 함께 독송하고 법상에 올라서 단정히 앉아 게송을 읊었습니다.

 

“금년에 99라(今年九十九)
  보고 또 보아도 가진 것 없도다(看看無所有)
  어떠한가라고 다신 묻지 말아라(更莫問如何)
  허공에 의지하여 곤두박질친다네(憑空打筋斗)”

 

게송을 읊고 나서 대중들에게 잘들 있어라 하고는 홀연히 입적하였습니다. 이 때 절 안에 있던 승속의 모든 이들이 아미타부처님께서 파창스님을 서방극락세계로 영접하여 인도하심을 함께 보았습니다.


    22, 가부좌하고 고요히 참구하다

 

명나라 때에 루싼(廬山)에 한 스님이 계셨는데 법명을 푸찡(普靜)이라고 불렸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뜻하는 바가 범상치 않았는데 10살에 벌써 출가하려는 지극한 생각을 내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금강신이 나타나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이후에 장차 선지식을 이루어서 바른 과보를 이루리라.”

스님께서 꿈을 꾸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스승을 찾아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습니다. 내전內典(부처님 경전)을 점점 배우고 익히며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지극정성으로 독송하기를 10년을 하루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스님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경전을 독송하는 방법이 결코 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신인은 스님을 향하여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모양있는 모양은 참이 아니요(有相相非眞)
  법없는 법도 또한 떨어지고야만다(無法法亦墜)
  옛 보금자릴랑 냅다 던져버리면(撇卻舊窠臼)
  즉각 큰 뜻을 요달하리라(卽已了大意)”

 

푸찡스님은 게송을 듣자마자 활연히 깨달았습니다. 이로부터 매일 금강경을 1편씩만 낭랑하게 독송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가부좌를 틀고 고요히 참구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40년이나 방석에서 내려오지를 아니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에 신인이 다시 꿈 속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이미 닦음을 벗어나 중도를 얻음에 이르렀다.”
90세에 이르러 스님께서는 원적圓寂에 들어가시려고 할 즈음 밤새도록 아름다운 향기가 흩어지지 아니했으며 절 안의 승속 대중이 모두 당번幢幡이 스님을 인도해 가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푸찡스님의 몸에는 보랏빛 가사가 저절로 입혀졌고 손에는 목환자(木槵子)를 쥐고 하늘 높이 올라 서쪽으로 가셨습니다.

 

    23, 붉은 노을이 지붕 위를 덮다

 

후앙포(黃婆)는 송나라 차오싼(潮山)사람으로서 늘 부처님 명호를 외우며 법화경과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설사병을 얻었는데 스스로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문득 음식을 끊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단지 물 몇 잔만 마실 뿐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 상린암上鄰庵에 계시는 싼씨우(善修)스님의 꿈에 후앙포가 와서 하는 말이 장차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나서 이틀 후에 과연 후앙포는 서방을 향하여 염불하면서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붉은 노을이 찬란하게 빛나면서 지붕 위를 덮는 것을 이웃사람들이 모두 보았습니다.

 

    24, 왕쓰의 딸이 천지를 감동시키다

 

왕쓰(王氏)는 송나라 때 찌안(吉安)사람입니다. 그녀의 딸은 매일 아미타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과 금강경 등을 독송하였습니다.
왕쓰가 죽기 며칠 전부터 몸 전체에서 피가 흘러나오자 이를 마음 아파하던 딸이 발원하였습니다.
“만일 저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진실이라면 원컨대 어머니의 신체에 더럽고 냄새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딸은 발원을 마치고나서 피를 낭자하게 흘리며 서있었습니다.


하루는 왕쓰가 병든 채 침대에 있는 누워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상서로왔습니다. 이윽고 손에 관세음보살님의 보배 깃발을 쥐고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을 한 연후에 뼈를 수습 하였는데 식솔들이 재를 체로 칠 적에 연꽃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5, 길상스럽게 누운 채 가다

 

천쓰(陳氏)는 송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는 계를 잘 지키면서 평소에 매일 참선하고 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습니다. 30년을 부처님 명호를 염불하였으며 아울러 법화경을 5000편 독송하고 금강경과 아미타경을 각각 5048편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을 끊었습니다. 식구들이 놀라서, “왜 음식을 드시지 않습니까?”하니, 그가 말하였습니다.
“부처님을 뵐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마치고 나서 길상스러운 모습으로 누워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26, 염불하여 왕생하다

 

리우따오롱(劉道隆)은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 리쓰(李氏)는 40살에 발심하여 계를 지키고 부처님을 받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글자를 읽지 못하였으므로 경을 독송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방을 한 칸 마련하여 거기에다 관세음보살님과 금강경을 모셔놓고 공양올리며 받들어 모셨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향을 사르고 예배를 올렸는데 1000번씩 염불하는 것으로 과업을 삼았습니다.

 

 그녀의 정성은 겨울에 매서운 한파가 닥치거나 한여름에 폭염이 내려쬐어도 그칠 줄 몰랐습니다.

동짓달 매서운 혹한이 찾아오면 식구들이 그녀가 동상이라도 걸릴까 염려되어 탄불을 탁자아래 놓아두고 가면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물리라고 하였습니다.


리쓰가 비록 그렇게 글자를 몰라서 능히 경전을 독송하지는 못하였으나 거액을 내어 금강경을 새기고 인쇄하여 부처님께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주 수지독송할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녀의 생일이 다가와서 아들과 딸들이 그녀를 위하여 생일잔치를 벌리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딸과 며느리들에게 술자리를 벌여서 손님에게 대접하지 말라고 경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전 가족이 채식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더욱 하루 혹은 사흘 동안을 예참禮懺하곤 하였는데 이러한 생활양식이 25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녀가 임종하기 1년전 쯤 보관하고 있던 돈을 내어서 대중스님들을 청하여 모시어 금강경을 염송케 하여 공덕을 널리 닦았습니다. 그녀의 꿈속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한 꾸러미의 염주를 그녀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이 염주의 숫자를 셈하여 보아라. 이것이 그대가 서방정토에 왕생할 날을 기약하리라.”
그녀가 꿈속에서 한 번 세어보니 153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 경자년 5월 3일이 되자, 그녀는 갑자기 가솔들을 불러놓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한다. 너희들은 큰소리로 염불하여서 나의 극락행을 도와다오.”
말을 마치고 단정히 걸상위에 앉으니 아들과 딸과 며느리 등이 모두 그녀의 주위에 모여 앉아 열심히 염불하였습니다. 그녀는 이 염불소리를 듣는 가운데 행복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7, 기이한 향기가 실내에 가득하다

 

쑤쌰오크(徐孝克)는 수나라 대에 국자감國子監의 박사博士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불법佛法을 돈독하게 믿었는데 경론經論을 풀어 해석하여 널리 펴는데 진력하였으며 다른 일에는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남북조시대 진나라 천가天嘉 때에 이안(剡)의 관리직을 받았습니다. 태건太建 4년에 조정에서 그에게 비서직을 맡기려고 불렀으나 그는 그 직에 부임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후경侯景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 쌰오크는 아내를 팔아 모친을 봉양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재계를 지키고 채식을 하였으며 아울러 보살계도 받아 지녔습니다. 이때 모든 관청에 자주 도깨비가 출현하였습니다. 쌰오크는 이미 살다 떠난 후라 요괴들을 전혀 보지 못하였습니다.

 

진나라가 망한 후에 쌰오크는 창안(長安)으로 갔습니다. 수나라 황제인 문제文帝는 그의 덕높은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들었던 터라 특별히 칙령을 내려 그를 청해다가 상서성尙書省에서 금강경을 강설하게 하였습니다. 개황開皇 12년에 쑤쌰오크가 이미 73세가 되니 죽음을 맞이하는 염불을 하였는데 실내에 기이한 향기가 났습니다. 이에 이웃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이롭게 여기면서 아울러 불법의 위대함을 찬탄하였습니다.

 

  28, 비구스님이 경을 독송케하다

 

  쑨따깐(孫大玕)은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습니다. 12세에 아버지 찡우(鏡吾)거사를 따라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을 받들었습니다. 운서사雲棲寺에 가서 오계를 받아 지니고 집으로 돌아온 후 모든 비릿내 나는 생선과 누린내 나는 육고기를 끊고 사람들과 서로 교유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이로부터 말을 적게하거나 침묵하면서 일심으로 염불하였습니다. 신명을 아끼지 않고 정근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극락세계에 들어가 상품에 왕생하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오래 되지 않아 2명의 비구스님이 손에 연꽃을 들고 나타나더니 그에게 금강경을 하루낮 하룻밤을 독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쑨따깐이 그대로 열심히 하였더니 과연 얼마 후 홀연히 일어나 말하였습니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서 함께 나를 영접하러 오신다.” 
쑨따깐은 손으로 금강권인金剛拳印을 맺고 큰 소리로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여러 번 외친 후 단정히 앉아 원적圓寂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만력 신해년(서기1611년) 11월 11일의 일입니다. 쑨따깐은 「정토십이시가淨土十二時歌」라는 노래를 남겼습니다. 상세한 것은 우타이쓰(吳太史)의 「서생전西生傳」을 보시면 됩니다.

 

    29, 금강경을 독송하고 서방에 회향하다

 

  우(吳)모某는 청나라 쯔쨩(浙江)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남아 있질 않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상생庠生이 되었습니다. 순치順治 원년에 수많은 군대가 성을 포위하게 되자 그는 부모와 이별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곧 붙잡혀서 짱(張) 장군의 휘하에서 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가 겨우 13살이었을 때입니다.


그는 스스로 슬프게 탄식하기를, “내가 본래 이 선비 집안의 아들인데 어쩌다가 이러한 지경에 떨어졌을까? 필시 이것을 과거 숙세의 죄업이 불러온 것일 것이다.”하고는 부처님 앞에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곧 재계를 지키고 염불을 하면서 매일 금강경 1편을 독송하면서 서방극락정토에 회향함을 발원하였습니다.

 

이윽고 삼년이 지나 우모는 양식과 은銀을 내어 향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아울러 장궤합장하고 아미타부처님의 성스러운 명호를 외우는 정진을 끝없이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10년이 지나 정유년 10월 2일에 우모는 갑자기 짱 장군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서방극락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짱 장군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요사스런 말로 미혹하고 어지럽히려 하느냐고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다음 날, 우모는 상관에게 찾아가서 휴가를 청했는데 상관은 크게 화를 내고 짱 장군에게 보내었더니 장군이 매를 15대 때리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우모는 터럭만큼도 원망하지 않고 군영으로 돌아와서 모든 장교와 사병들에게 앞으로 11월 1일에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할 것이다라고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그날이 다가오자 우모는 오전에 일찍 일어나 목욕을 한 후, 향을 사르고 부처님전에 예배를 한 후, 평소처럼 여전한 몸가짐으로 배위로 올라가서 짱 장군에게 절을 올리고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짱 장군은 크게 노하여 우모가 막 몸을 태우려는 곳으로 부하들을 시켜 그를 잡아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며 우모는 서방극락세계를 향하여 3번 절하고 단정히 앉아서 게송을 읊었습니다.

 

“몸은 철갑을 입었고
  발밑은 금연꽃
  모든 장교와 사병들이여,
  각자 채찍 하나씩 들어라.”
  身披鐵甲,足步金蓮,
  願諸將士,各着一鞭

 

게송을 마치고나자 모두들 보는 가운데 우모의 입에서 삼매의 불이 솟구쳐 나와 스스로의 몸을 활활 태웠습니다. 군영에 있던 모든 장교와 병사들이 이러한 광경을 보고는 둘러싸고서 예배를 올렸습니다. 이로부터 짱 장군의 전 가족들도 재계하면서 부처님을 받들었다고 합니다.

 

 

        제2편 임종 때의 상서로운 모습들

 

    1, 외눈금강비구니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일입니다. 꾸이떠푸(歸德府)의 성 외곽에 수정암水晶菴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암자에는 연로하신 비구니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항상 금강경으로써 일상생활을 하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적부터 한 쪽 눈을 잃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 분을 외눈금강비구니(獨目金剛尼)스님으로 불렀습니다.

 

그 분은 천성이 담백하시고 거친 잡곡으로 대충 지은 음식으로 하루끼니를 때우셨습니다. 혹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갖다 드리면 스님은 그것을 가져다 어려운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한 번은 스님이 경전을 강의하면서 설법하시는데 선남자들과 여신자들이 둘레에 모여서 듣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한 선비가 물었습니다.


“금강경은 어째서 32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까?”
스님이 답하셨습니다.
“하나로써 꿰뚫는 것입니다.(一以貫之) 유가儒家와 불가佛家를 따지지 않고 모두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 속에서 어찌 많은 단락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스님은 이어서 게송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 금강경 설하시매 미묘하게도 여럿 출현했다네
  한 마디에 여러 성문끊고 깨달아 들어갔으니
  만일 어떤 이가 금강경의뜻 알아버린다면
  어찌 32로 나뉜 것 쫓아다닐까!”
  佛說金剛妙出群,一言了悟絶聲聞,
  有人解得金剛意,四八何須逐段分

 

또 어떤 스님이 여쭈었습니다.
“어찌하여 금강이라고 하였습니까?”
비구니스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금강은 사람 사람마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찾아 묻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또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금강이여. 참으로 이 금강을 믿으라
  백 번 다듬고 천 번 두드려도 항상 그대로이네
  허공을 부순다한들 그냥 그 자리
  다만 지금 여기서 부처님 광명을 보네”
  金剛果信是金剛,百鍊千錘永不傷,
  粉碎虛空些子在,祇今惟見佛毫光

 

또 어떤 사람이 여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 뜻을 깨달으셨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남자 몸으로 바꾸지 않으십니까?”
스님이 답하셨습니다.
“형체는 비록 남자와 여자의 분별이 있으나 불성은 이것저것 분별이 없습니다. 분별하여 보는 마음을 짓지 마세요.”
스님이 또 게송을 설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여. 어찌 거짓과 진실을 가리랴.
  관음보살이 정말로 어떤 사람으로 나투실까?
  가죽껍데기 벗어 다하면 전혀 쓸모없다.
  시험삼아 묻노라. 이 남자 몸인가, 여자 몸인가?”
  男女何須辨假眞,觀音出現果何人?
  皮囊脫盡渾無用,試問男身是女身?

 

묻는대로 척척 답하시는 스님의 변재는 걸림이 없으셨으며 영민하시고 특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멀고 가까운 곳에서 스님에게 귀의하는 사람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스님께서 세수가 70을 훌쩍 넘기자 왕생하시기 전에 미리 가시는 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날에 스님의 코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스님은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다비하여 한 번 가면 영원히 공空으로 돌아가네
  거기서 공을 찾으면 문득 공이 아니라네
  내가 가고 내가 오지만 여전히 이 ‘나’라네
  번갯불과 물거품, 그림자와 한가지로구나”
  荼毗一去永歸空,着處尋空便不空,
  我去我來仍是我,電光泡影一般同

 

게송을 마치시고 곧 단정히 앉아 눈을 감으신 채로 원적에 드셨습니다.
이것은 허난(河南)의 썅꾸앙(祥光)스님께서 직접 눈으로 보시고 저에게 그대로 전해 주신 것입니다.


    2, 개의 몸을 면하다

 

송나라 때의 일입니다. 쑤쩌우(蘇州)에 살던 쭈(朱)진사進士는 평생을 단지 유가儒家의 서적만을 읽었지 부처님 법은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우연히 어느 날 호구산虎丘山에 놀러 갔다가  포인싼쓰(佛印禪師)께서 금강경 가운데 “일체의 유위법은 꿈,환영,물거품,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같고 번개같다.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어다.”라는 사구게 등을 강의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쭈진사의 마음에 이렇도록 특별히 경이롭고 기쁨을 주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전체 경전의 뜻을 참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에 잠을 자는데 꿈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5사람을 잡아 가는 것을 보았는데 쭈진사가 가만히 뒤따라 가 보았습니다. 약 2리 길을 따라가니 큰 길이 하나 나왔는데 거기서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골목 안에서 파란색 커튼을 친 한 집으로 들어갔는데 주방 안에 한 개의 나무통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통 안에는 끓인 물이 있었는데 그 5사람은 모두 마셨습니다. 쭈진사도 마시려고 하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큰소리로 막으면서 말했습니다.


“불법을 들은 사람은 마실 수 없소.”
쭈진사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쭈진사가 꿈을 믿는 바가 생겨서 가만히 큰 길로 나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꿈에서 본 것과 형태가 완전히 일치하는 인가를 한 채 발견하였습니다. 쭈진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주인에게 주방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었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방금 마침 주방에서 강아지 6마리가 태어났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죽어버렸지요.”
쭈진사는 이 말을 듣고 놀랍고 두려워 식은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만일 불법을 듣지 못하였다면 나는 벌써 개의 몸을 받았을 겁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마음을 오로지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전념하였습니다. 89세 되던 해, 8월 15일에 벗들을 초청하여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한 연후에 후원에 있는 나무에 올라 가지에 걸터앉아 게송을 읊었습니다.

 

“팔십구 년의 주공朱公이여,
  양손으로 허공을 비틀어 부숨이며
  뜬구름 발로 밟아 부숨이로다
  선채로 보리수 동쪽으로 가리라.”
  八十九年朱公,兩手擘破虛空,
  脚踏浮雲粉碎,立化菩提樹東

 

게송을 마치고 땅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다시 말위에 올라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긴 말이 있습니다.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 겁이 지나도 다시 얻기 어렵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는가?”


쭈진사가 <일체의 유위법은 꿈,환영,물거품,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같고 번개같다.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어다.>는 사구게를 듣고 마음속에 일찍이 없었던 환희심을 느낀 것은 마치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과 같은 것입니다.


“이 장구章句에 능히 신심을 내어 이로써 참다움을 삼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셋 넷 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처소에 모든 선근을 심은 것이 되며 이 장구를 듣고 한 생각의 맑은 믿음을 낸 자에 이르기까지 수보리여, 여래는 이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은 무량공덕을 얻은 것을 다 알며 다 보느니라.”

 

경을 지니고 외우는 것은 다만 죄가 멸해질 뿐만 아니라 또한 반야의 씨앗을 심은 것이 되며, 이를 의지하여 점점 수행하면 인과가 원만해짐에 도달하여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질 않고 한 번 이 사람 몸을 잃어버린다면 고통 받는 것이 한이 없을 것이며 큰 업의 덩어리가 꽉 차버림을 당할 때 또한 생을 굴려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을 지니고 외우는 공덕은 죄의 과보를 돌려 부처님의 과위를 얻게 하니 금강경에는 실로 수승하고 비할 수 없는 불가사의가 있는 것입니다. 


    3, 하늘에서 꽃덮개를 내리다

 

짱위앤쑤(張元素)는 당나라 때 루오양(洛陽)사람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금강경을 지니고 독송하였습니다. 천수天授 초년에 후앙매이(黃梅)에서 읍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짱위앤쑤의 집안에 액난이 들면 반드시 가라앉기를 염원하였습니다. 나이가 70세에 이르자 몸이 점점 불편해졌는데 문득 공중에서 꽃덮개가 내려 왔습니다. 그러자 짱위앤쑤는 몸을 깨끗이 씻고 가족들과 이별을 고한 후, 홀연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4, 혀의 사리가 금석과 같다

 

명나라 때의 일입니다. 썅청(相城)지방에 위안쨩(嚴江)이라고 하는 가죽공예가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중년에 이르자 절에 들어가 오후 불식하면서 오로지 금강경을 독송하고 아미타부처님을 염불하는데 전념하였습니다. 그의 독송하고 염불하는  소리가 끊임이 없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60대에 들어서자 홀연히 음식을 끊었는데 단지 물만 몇 잔 마실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아무 날 아무 시에 갈 것입니다.”


과연 그 때가 이르자 그는 목욕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결가부좌 한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식구들이 화장을 하고 사리를 수습하였는데 여러 과顆가 나왔습니다. 한데 수습하는 중에 혀가 불에 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혀가 단단해져 마치 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두드려보니 아주 낭랑한 소리가 들려나왔습니다.
이것은 정덕正德 3년의 일입니다.


      5, 공경대부의 부귀와 비교할 수 없다

 

명나라 때 천계(天啓) 초년에 뻬이찡(북경)의 남쪽 정문인 쩡양먼(正陽門)에 한 연로하신 군인이 한 분 있었습니다. 한 칸의 배가게(船舖)를 지키며 자식도 없이 홀로 살았습니다. 매년 양식을 10말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중 4말은 일상에 먹을 양식으로 남겨 두고 나머지 6말은 돈으로 바꿔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땔나무와 채소 등을 사곤 하였습니다. 한가하게 살면서  매일 향을 사르고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당시 조정의 재상은 한꾸앙(韓爌)이었는데 몸에 비단옷을 입고 큰 가마에 올라타고 수행원들이 앞길을 열어 주면 호호탕탕하게 지나갈 때에, 문득 노군인의 경전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재상이 개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은 경전을 독송하면서도 매우 편하게 사는데 나는 사는 게 이 모양이냐. 나의 지위로도 저 한 사람만큼의 행복에 미칠 수가 없구나.”

 

노군인이 후에 73세에 이르자 아픈 데도 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비록 햇볕이 작렬하는 6월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시체에서 터럭만큼도 썩은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다시 파리 같은 벌레 들도 날아들어 모이지 않았습니다. 뻬이징에 사는 귀족들이 모두 보고는 놀라고 기이하게 여겨 찬탄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집안사람들이 그를 위해 기꺼이 돈을 내어서 땅을 택하여 안장을 했습니다.


한꽁쑤(韓公素)는 현명하고 유능한 분이었는데 그의 말은 진실되고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하였습니다.
“태평성세에 처하여 듣고서 통달함을 구하지 않고 또 일없이 한 몸을 가볍게 여겨 자유의 몸을 얻었으며, 얻은 것으로 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신선과 같은 복을 누림이 아니겠는가. 거기에다 더하여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최상승의 법을 닦아 세속을 벗어날 바른 인연을 만들었으니, 이 어찌 한 세상의 공경대부들의 부귀와 서로 능히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6, 당번이 내려와서 영접하다

 

쉬에이안(薛嚴)은 당나라 사람입니다. 쫑쩌우(忠州)에서 사마司馬로 부임하였습니다. 평소에 채식을 하며 재계를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매일 금강경 30편을 독송하였습니다.


72세가 되어 임종이 다가왔을 때, 당번과 꽃양산 내려와서 영접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인 추이쓰(崔氏)는 어사御史인 안이안(安儼)의 고모입니다. 그녀는 남편인 쉬에이안이 당번과 꽃양산에 둘러싸여 천천히 하늘하늘 날아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남편을 큰 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떠나간 그곳으로 전 가족이 모였는데 거기서 신비한 향기가 가득함을 보고서 모두가 상서로움에 전율하였습니다. 그리고 금강경 독송의 공덕에 깊은 신심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7, 금강반야의 공덕

 

이안꾸앙이우(顔光裕)는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 대대로 유교를 집안에서 숭상하여 내려왔습니다.
하루는 그 마을의 세도가 어르신이 금강경 법회를 열었는데 꾸앙이우가 경을 듣고는 매우 경탄하고 공경스러움이 일어나 금강경의 뜻을 지극히 참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시험에 응시할 여유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뒤에 타이허쏀(太和縣)에 부임하였을 때, 하루는 병을 얻어 꿈을 꾸게 되었는데 파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명부로 끌고 갔습니다. 주변 환경이 깊이 어둡고 경계는 삼엄하고 분위기는 처참하였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염라대왕에게 고하여 말하였습니다.
“꾸앙이우의 세상 수명이 이미 다하였사온데 생전에 살생을 좋아하고 소고기와 개고기 등을 즐겨 먹었사오니 그 죄업이 매우 무거운 축에 속하옵니다.”

 

이 때, 무수한 생령生靈들이 앞에 와서 자기들의 운명이 들춰질 것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꾸앙이우의 형벌로 기름이 펄펄 끓는 솥에 넣어 튀기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머리형상의 귀졸들이 갈고리칼을 써서 꾸앙이우를 콱집어서 기름이 팔팔 끓고 있는 솥 안으로 넣어버린 순간! 꾸앙이우의 온몸이 연꽃으로 돌돌 감싸지고 부글부글 끓던 기름도 순식간에 얼어 굳어버렸습니다.

 

염라대왕이 깜짝 놀라서 합장을 하고는 명부의 관리에게 선악의 장부를 가져오게 하여 자세히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꾸앙우이에게 공손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대가 금강반야경을 독송한 공덕으로 이러한 금강불괴의 몸을 얻으셨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대의 수명이 더욱 늘어나게 되셨습니다. 바라건대 돌아가시거든 세상 사람들에게 경전을 많이 독송하게끔 많이 권해주십시오.”

꾸앙우이가 죽은 지 7일 만에 세상으로 돌아온 후 매일 금강경독송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강경 6000권을 인쇄하여 널리 배포하였습니다. 관직에 오른 후 어느덧 늙어 나이 70세에 이르니 임종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거리에 사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신비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꾸앙우이가 사람들에게 거듭거듭 당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최상승의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게끔 반드시 널리널리 유전시키는데 힘쓰시고 대대로 자손들에게도 부탁하셔야합니다.”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꾸앙우이의 66대손인 빠이리안(伯廉)박사博士가 직접 전해준 것입니다.


    8, 물고기가 과보에 응하다

 

리위앤쫑(李元宗)은 송나라 때 찡쩌우(荊州)의 쨩링쌴(江陵縣) 사람입니다. 그의 딸이 13세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한 분의 인도스님이 그녀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선근이 매우 많은데 어찌하여 금강경을 독송하지 않는 거냐? 세간의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매일 만약 마음을 깨끗이 하고 금강경1권을 독송한다면 현세에 복덕과 수명이 증가하여 100세까지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마치면 곧바로 천상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 만일 능히 반야를 끝까지 궁구하면 곧바로 열반의 저 언덕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만일 경의 뜻을 통달하지 못한다면 죽은 후에 명부에 가더라도 갇히질 않고 다시 부귀한 집에서 태어나서 인간의 복을 잘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위앤쫑의 딸이 이 말을 깊이 믿고서 이로부터 매일 금강경을 3회씩 독송하였습니다. 

그녀는 꽃다운 나이 24살이 되어도 여전히 시집을 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장티푸스에 걸려서 3일 만에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후 명부에 잡혀갔는데 염라대왕이 그녀를 심문하여보니 그녀가 일찍이 죄를 지은 적이 없고 오히려 머리 정수리에서 부처님의 상호가 나타나 상서로운 광명을 뿜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속히 그녀를 놓아주어 세상으로 돌려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보내기 전에 염라대왕이 그녀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에게는 반야般若의 공덕이 있다. 그러므로 그대를 세상에 도로 보내는 것이다. 그대의 아버지가 지은 살생업이 막중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그대의 수명이 24년이나 짧아진 것이다. 오래지 않아서 대조하여 보아라. 그대의 아버지가 자주 살아 있는 물고기로 회를 쳤으니 지금 이미 7000여 마리가 원망을 호소하며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그대가 돌아가거든 아버지에게 밤에 꿈을 꿀 때 스스로가 그물 속에 갇혀 있다가 날이 밝아 잠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아픈지 아닌지 한 번 물어보아라. 머리가 아프다면 이것은 바로 물고기가 갚음을 구하는 것 때문이다.”

그녀가 살아난 이후 곧 아버지에게 이러한 일을 보고하였습니다. 위앤쫑은 크게 놀라 말하였습니다.


“확실히 그러한 일이 있다. 마음 속이 특별히 두렵구나.”
곧 부녀는 함께 천녕사天寧寺로 가서 참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재齋를 베풀어 100여명의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었습니다. 아울러 또한 비릿내 나는 음식과 술을 금하고 직접 손으로 금강경 49권을 공경히 사경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위앤쫑의 꿈에 수천 명의 파란 옷을 입은 동자들이 나타나 그를 향하여 절을 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대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 명부에서 원한을 호소하며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가 현재 그대가 금강경을 사경한 그 공덕으로 인하여 이 선업의 힘을 빌려서 이미 고통의 갈래 길에서 멀리 벗어나게 되고 막 좋은 길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대와의 구원仇冤을 이미 다 풀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대가 금강경을 사경한 그 공덕 때문입니다. 당신은 가히 오래 사실 것입니다.”
이 이후로 위앤쫑은 더욱 정성스럽게 금강경을 독송하고 사경하였습니다. 수명은 120세까지 살다가 아무런 병 없이 목욕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9, 죽을 날을 미리 알다

 

명나라 쭈원커(朱文恪)공은 국왕이었습니다. 만력萬曆 때에 책을 편찬하는 직에 부임하였습니다. 천계天啓 때에는 대학사大學士에 임명되었습니다. 스스로 무심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면서 매일 반드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가 일찍이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을 영화롭고 쇠퇴함에 대해 비교하여 따져 본 적이 없다. 인생에 순조로움과 역경이 둘이 아니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은 금강경의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다>는 두 구절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주 이웃 사람들에게 금강경의 큰 뜻을 해설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천계天啓 갑자년甲子年 10월 5일에 마칠 것을 미리 알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고 나서 그의 콧속에서 옥으로 된 힘줄이 쌍쌍이 아래로 드리워져 몇 시간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10, 몸이 썩지 않다

 

탕우쓰(唐吳氏)는 청나라 때 찌닝(濟寧)사람입니다. 그는 쏭쨩(松江)에서 객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성정이 본래 매우 포악하고 조급하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43세 되던 해에 오래 재계를 지키고 매일 작은 누각에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6년이 지나, 49세가 되던 해에 갑자기 다른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아무 날에 가려고 합니다. 경전에 금강불괴신金剛不壞身이라 하셨는데 제가 죽은 후 몸이 3년 동안 머물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전의 말씀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능히 증명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년이 지나 관을 열어보니 과연 몸이 그대로 있었으며 조금도 부패하거나 손상됨이 없었고 머리카락은 15센티미터나 자라 있었습니다. 이를 살펴본 량꽁(梁公)이 그를 위하여 암자를 짓고 공양하며 받들었습니다.


      11, 명부의 관리에게 단속을 받지 않다

 

명나라 숭정崇禎 때에 쨔씽푸(嘉興府)의 쨔오리쨰(角里街)에 쓰이양(施嶧陽)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동탑사東塔寺의 요우헝(有恒)스님과 개인적으로 교분이 두터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양의 나이가 65세에 이르자 신체가 허약해지고 병이 많아 졌지만 매일 장궤하고서 금강경 여러 편을 독송하였습니다.

 

병자년丙子年 1월 8일에 경을 읽다가 채 다 읽지도 못한 채로 갑자기 쓰러져 죽었습니다. 3일 후에 곧 관을 닫으려고 할 때에 홀연히 혼이 돌아와서 말하였습니다.

“내가 금강경을 독송한 공덕으로 명부 관리들에게 단속을 받지 않고 지장보살님의 처소에서 머물렀는데 지장보살님께서 금강경독송을 아직까지 마치지 못하고 여기 왔으니 특별히 나를 놓아 주어 돌려보내 독송을 보완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숨쉬기가 매우 어려워 스스로 읽지 못하니 반드시 요우헝스님을 모셔다가 대신 독송케 요청할 것이요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게 하면 절대 안됩니다.”


그러나 때마침 요우헝스님은 일이 있어 외출하였는데 반나절이 지나서야 돌아오셨습니다. 이양은 자신을 대신한 요우헝스님의 독송이 완전히 마칠 때까지 무릎 꿇고 듣고 있었습니다. 독송이 끝나자 스님을 향하여 합장으로 감사를 드린 연후에 한 번 크게 웃고 떠났습니다.


    12, 옷을 짜면서 경을 외우다

 

첀이엉밍(錢永明)은 명나라 때 씨우쑤이(繡水) 사람입니다. 부인인 짱쓰(張氏)는 늘 정성스럽게 부처님을 믿었습니다. 매일 물레를 잣고 옷을 짜면서도 금강경을 10편씩 외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짱쓰(張氏)가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셋, 넷, 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께 모든 선근을 심었다.>는 구절을 외우고 있을 때, 홀연히 하던 일을 멈춘 채로 합장하고서 꿈쩍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며느리들이 이 특별한 광경을 기이하다고 여겼습니다.

 

 식구들이 그녀를 불러보고 흔들어 보고 하였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한 번 둘러 본 후 눈을 감고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만력萬曆 경신년庚申年 7월 4일의 일입니다.

 

    13, 소원과 같이 수명을 늘리다

 

허쩐(何軫)은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는 26살의 아름다운 여인 리우쓰(劉氏)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서로 사랑이 깊어 금슬이 아주 좋았습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었습니다. 아들이 3살, 딸이 2살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밤에 리우쓰가 꿈을 꾸는데 자기가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그녀를 판결하기를 내년 봄 3월까지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 손가락을 꼽아 셈을 하여보니 살날이 겨우 6개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슬프고 두려움을 어찌 할 수 없어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남편과 집안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별일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곡을 하면서까지 우느냐?”


그녀가 눈물을 훔치더니 말하였습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명부에 갔습니다. 거기서 명부의 관리가 나를 판결하기를 수명이 겨우 반년 밖에 없다는 거예요. 도대체 나에게 무슨 유감이라도 있는지 나에게 마음을 찢어놓는 이러한 애통함을 크게 주는지 모르겠어요. 만일 그렇게 되어 내가 죽게 되면 저 어린 우리 아들과 딸은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어요?  이러니 내가 어찌 마음을 놓고 한가하게 있겠느냔 말이에요.”


남편과 가족들은 그녀가 이렇게 설명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미심쩍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단지 애정만으로는 도울 수 없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리우쓰는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비릿내와 누린내 나는 음식을 금하고 화가를 청해다가 불보살님의 성상聖像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 성상聖像에다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예배하고 공양하였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열심히 부처님 전에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매번 독송을 마치고 나서 이렇게 회향축원迴向祝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부처님과 보살님의 자비를 구하노니 저에게 부디 수명을 늘려 주옵소서. 만일 저의 수명을 45살까지 늘려 주시어 아들과 딸아이를 잘 키우겠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결혼만 시킨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다음 해 3월이 이르자 리우쓰는 마음이 편안하고 근심이 없어졌습니다. 이에 더욱 가행정근加行精勤하며 독송하며 예배공양하였습니다. 그녀가 38살에 이르자 아들이 결혼하였고 43살이 되자 딸이 출가하게 됨으로써 그녀의 마음 속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태화(太和)4년 겨울에 45세가 되자 리우쓰는 여러 해 동안 쌓아 모은 재산을 전부 절에다 시주하였습니다. 선공덕善功德을 마치고 나서 친한 벗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기약했던 죽음이 임박했다.”


이 어찌 도깨비에게 걸려서 슬퍼했다고만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러한 것은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해 섣달 그믐 날에 리우쓰는 직접 큰스님들을 집에 모셔다가 삼보三寶 앞에서 팔관재계八關齋戒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목요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홀로 한 방에 들어가 가부좌하고 앉았습니다. 곧 크고 낭랑한 소리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독송이 끝나자 고요히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딸과 거기 있던 친족들이 들어가서 살펴보니 이미 앉은 채로 세상을 뜬 후였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마치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 하였고 머리 정수리는 손을 데일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이러한 광경을 보려고 모여든 스님들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모두 그녀를 숭고하게 여기며 공경치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한결같이 희유하며 얻기 어려운 일이다라고 찬탄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삼보께 귀의하였습니다. 장례는 스님께서 이끌어 주시는대로 치루고 잘 안장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탑은 형주성荊州城의 바깥으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4, 『금강반야바라밀』만 외우고도 악도를 면하다

 

왕떠용(王德用)은 명나라 샤오씽(紹興)의 티앤러(天樂)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아내 따오쓰(陶氏)는 평소에 불법佛法을 믿지 않았습니다.

융경隆慶 기사년己巳年에 어느 날 따오쓰가 병이 들어 위중해진 상황에서 저승의 귀졸鬼卒이 그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그대의 이승에서의 수명이 이미 다했다. 평생 동안 착한 일을 별로 짓지 않았으니 응당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다.”
귀졸의 말이 막 끝나자마자 따오쓰의 앞에 지옥의 여러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극심한 형을 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며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각종 참상에 그녀는 모골이 송연하여 마음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러다 겨우 남편에게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지옥이 바로 내 앞에 있어요. 당신은 저를 위해 구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제발 빨리 좀 찾아 주세요.”

그러면서 순간, 따오쓰는 인근 절에 계시는 장로스님께서 매일 경전을 독송하던 것을 기억해내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읽으시던 경전의 말씀 가운데 희미하게나마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일곱 글자가 겨우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맹렬하게 이 일곱 자를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외우기를 수천 번하자 부지불식간에 지옥의 여러 광경이 싹 사라져버리고 두 번 다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집안사람들이 모두 찬란한 오색광명이 따오쓰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엄하고도 상서로운 광경을 모두 목격하고 환희심에 가득 차 어쩔 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따오쓰는 이윽고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때 허공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따오쓰는 지옥의 고통을 면하였다. 그리고 이미 고통없는 좋은 길에 태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나서, “『금강반야바라밀』이란 경전의 제목만 외워도 나쁜 길을 벗어날 수 있다.”하고 소문이 크게 나서 급속도로 멀리 퍼져 나갔는데 듣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누구나 다투어 외웠다고 합니다.

 

    15, 경전 독송을 게을리 하다가 노예가 되다

 

명나라 때의 일입니다. 가흥부嘉興府에 왕짜이썽(王載生) 거사居士가 살았습니다. 거사가 어렸을 적에 일찍이 보충報忠이란 관청(坊)에 성이 판(范)씨인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깨에 채소를 잔뜩 메고 시장으로 가곤 하였는데 걸어가면서 늘 입속으로 무언가를 중얼중얼 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반드시 먼저 부처님 앞에서 향을 사르고 금강경을 몇편 무릎꿇고 독송한 다음 바깥으로 나가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저녁에는 반드시 금명사의 법당으로 가서 예불하고 하루 일을 회향하여 마쳤습니다.

 

판씨 성을 가진 하인은 생활이 근검하였으며 자비심이 가득하여 길을 가다 혹 물고기나 새 등의 동물을 팔려고 나온 것을 보면 호주머니를 털어서 모두 살려주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걸식하는 이나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만나게 되면 힘을 다해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결혼을 하라고 돈을 주려고 하면 번번이 거절을 하였습니다. 주인이 그가 머리를 깎고 출가하게 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에 결국은 허락하고야 말았습니다. 그가 절에 머물면서 매우 고생하면서 일을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선방을 짓는 괴로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힘을 다해 일을 하였으며 조금도 힘들다고 불평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문득 몸이 불편해짐을 느끼게 되자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과거생에 금강경을 읽었는데 너무 게을러 읽는 둥 마는 둥 하였더니 금생에 그 벌로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야 그 과보가 다 끝나서 좋은 곳으로 몸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라라라.”
말을 마치고 나자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16, 흰오리가 경을 듣다


명나라 만력萬曆 초년의 일입니다. 시중侍中 쫑푸씨우(鍾復秀)와 쑤쭌쏘우(徐遵壽), 두사람은 찡청(京城)의 루오쨔(羅家)의 거리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한 쪽에 별원을 지어놓고 깨끗한 방 여러 칸을 만들어서 거기서 함께 앉아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쫑푸씨우(鍾復秀)의 집에서 두 마리의 흰오리를 길렀는데 그들이 경을 독송하고 염불할 때마다 흰오리 두 마리가 두 사람 뒤에서 소리를 내었습니다. 내쫓아도 가지 않고  둘 다 머리를 쳐 들었습니다. 독경소리를 듣는 듯 하였는데 목탁소리에 맞추어 머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였습니다.


몇 년 이후에 두 마리의 흰오리가 경전을 독송하는 책상위에 선채로 함께 죽었습니다. 쫑푸씨우鍾復秀와쑤쭌쏘우徐遵壽 두 사람이  흰오리 두 마리의 장례를 치러주고 정업사淨業寺의 뒤 쪽에다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의 이름을 <경을 들은 오리 무덤聽經鵝塚>이라고 불렀습니다.

 

    17, 번뇌가 본래 없거늘 누가 아상이 있단 말인가.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일입니다. 왕팡루(王方麓)는 찐탄(金壇)사람으로서 관직이 우도어사右都御史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때 병이 심해져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니 정신이 매우 괴롭고 조급증이 났습니다. 그의 아들 컨탕(肯堂)이 이러한 상황을 보고는 아버지 팡루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 평소에 본심本心을 보존하고 본성本性을 기르는 양생의 공부를 하셨으면 바로 이럴 때 힘을 얻으셨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독송하는 금강경을 들으시면서 마음을 맑혀보십시오.”
팡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마고 했습니다. 컨탕이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여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고>하는 구절에 이르자, 팡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습니다.


“번뇌가 본래 없거늘, 누가 아상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합장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덕古德이 말하였습니다.


“지극한 사람(至人)은 생각생각 정혜定慧에 들었거니와, 범인凡人은 생각생각 산란하다.”
팡루선생은 오래 수행했지만 본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본성을 기르는 양생의 노력이 부족하여서 병이 깊어 임종에 다다라서는 오히려 번뇌의 고통을 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단번에 제거하여 문득 돌이키기는 하였으나 평소에 치밀하게 노력하여 심성을 닦아야 함을 이로 말미암아 가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의 일은 하루아침에 단박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때가 이를 때까지 노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응당 간절히 기억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늙음을 기다려 비로소 도를 배우려 하지 말라. 저 외로운 무덤은 대부분 어린 사람들의 것이니라.莫到老來方學道,孤墳多是少年人”


컨탕이 부친의 임종 때에 조급증이 나서 손발을 어디 둘 지 몰라 허둥댈 때에 침착하게 부친에게 경전 독송하는 것을 듣게 압박하여 권하지 않았다면, 즉 이와 같은 수승한 인연이 없었다면 어찌 이 <저승이 문득 나타나면, 언뜻 보고 저를 따라 감>이 아니었겠습니까?

 

세속에서 부모가 임종할 때에 자주 대성통곡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다만 돌아가신 분께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손해를 끼치며 탄식을 일으킬 뿐입니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부처님 법을 깊이 밝히지 못한데 기인한 까닭인 것입니다. 컨탕이 부처님 법의 이치를 꿰뚫어 밝혀 실로 사람의 아들 되는 이들이 본받을 바가 된 것입니다.

또 송나라 때의 오우양씨우(歐陽修) 우언쫑꽁(文忠公)이 임종할 때 모든 제자들을 앞에다 불러놓고 그들에게 경계하여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잘 알다시피 내가 어렸을 적부터 문장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불교를 극력히 배척하였었다. 근래에 불법을 연구하여 보니 자못 능히 깊이 오묘함에 들어간 바가 있었다. 바른 법을 부지런히 연구할 때 뜻밖에 ‘나’가 ‘나’가 아니었다. 돌연히 복잡함이 다 사라졌다. 하마터면 아쉬움을 품고 몸을 마칠 뻔하였다.


너희들은 반드시 서로서로 힘쓰고 격려해서 절대 나의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라. 후회막급이리라.”
그리고는 제자들과 함께 부근의 절에 가서 화엄경을 빌려가지고 우언쫑꽁이 직접 8권을 독송하였습니다. 마치고나서 편안하게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 기러기가 노파의 장례를 치루어주다

 

랴오떵꾸안(廖等觀)이 싼후아쯔씨앤(善化知縣)에 부임하였습니다. 씨앤 안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부인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녀는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였는데 낮에는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향하여 걸식을 하고 해가 저물면 산자락으로 가서 머물렀습니다.

 

한 번은 꽤 며칠 동안 그녀의 행걸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러기 큰 무리가 끼룩끼룩하면서 그녀가 머물던 곳으로 모여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급히 달려가서 보니 그 노부인은 경전을 가슴에 꼭 껴안고 이미 세상을 뜬 후였습니다.

 

매우 많은 기러기들이 입에다 흙을 물고 와서 그녀의 몸 위에다 덮어주고 있었습니다. 기러기들이 노부인의 장례를 치러주는 것을 보고 칭찬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습니다.
이 일화는 「호광통지湖廣通志」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9, 단정히 앉은 채로 천화遷化하다

 

당나라 때의 일입니다. 보광사普光寺의 치쑤앤(栖玄) 법사法師스님께서는 어렸을 적부터 부지런히 고행을 닦으셨는데 자주 금강경을 강의하시고 또 독송하셨습니다. 용삭龍朔 2년 겨울에 그분은 절 안에서 단정히 앉아 입적하셨는데 안색이 근엄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황궁에 계시는 천자님에게까지 전하여졌습니다.

 

천자님은 특별히 그의 성취를 칭찬하시고 칙령을 내려 그의 공적을 천하에 드날리게 하였습니다.
“보광사의 치쑤앤 법사는 덕행이 고결하시어 도속道俗이 모두 다 함께 흠모하였다. 이제 이미 입적하셨으니 마땅히 3품 관원의 장례 예법으로써 후하게 장례를 치르고 아울러 그 일부를 고취하여 주노라.”
  온 나라의 선남 선녀가 모두 모여와서 이것을 보려고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20, 가부좌하고 세상을 뜨다

 

  명나라 숭정崇禎 때에 일입니다. 탄꽁뿌(譚工部)인 쩐모(貞黙)의 어머니 이안타이(嚴太) 부인夫人은 법도 있게 가정을 지켰는데 모든 자식들을 잘 살피고 독려했으며 이치를 밝히고 뜻을 숭상하였습니다. 그녀가 비록 부귀한 집안의 귀부인이었으나 무명옷을 입고 채식을 하였으며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법을 돈독하게 신봉하였으니, 아침저녁으로 금강경과 묘법연화경을 예배하고 독송하였습니다.

 

그녀의 말년에는 화엄경을 매일 한권씩 읽었으며 아울러 아들과 딸들을 위해 화엄경의 큰 뜻(大意)을 풀이하며 강의하였습니다. 그녀는 평생 동안 병에 걸린 적이 거의 없었다가 어느 날은 우연히 작은 질병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스스로 갈 때가 되었음을 감지하고 곧바로 임신년壬申年 더운 여름날에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고나서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울러 축원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일생을 부처님을 공경하였사온데 과연 부처님과의 인연 덕분으로 응당 몸의 냄새가 깨끗하옵니다.”
하고는 드디어 가부좌하고 앉은 채로 합장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은 지가 7일이 되었는데도 얼굴에는 아직도 오히려 살아있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시신을 둔 곳에서는 한 마리의 파리도 날아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향기가 펄펄 날려서 거기 모인 조문객들 가운데 그녀의 소원을 성취함과 불법의 신령하고도 기이함을 찬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탄꽁뿌는 그녀의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하여 손수 한편의 전기傳記를 찬술하고 베껴 두었습니다.

천하에서 가장 진귀하고 기이한 보물은 몸이 아닌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길이가 몇 자 안되는 이 신체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꾸며보려는 의지를 제한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물로 깨끗이 씻고 향수를 뿌리고, 고운 꽃으로 장식하고, 금장신구를 머리에 꽂고, 비단옷을 걸치고 이 색신을 극진히 번지르르하게 꾸미면서도 전혀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조금도 싫증을 못 느낍니다. 만일 이 몸뚱아리가 세상에 오래 머문다면 거의 초심을 짐지지 못할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문득 무상無常이 닥치게 되면 순식간에 더러운 냄새를 감당치 못하게 될 것이니 어찌 가히 슬퍼하고 애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탄꽁푸의 모친이 임종할 때에 남긴 몇 마디의 말은 몸을 사랑하는 본보기이지만 여기서 말씀드린 것은 유독 규방의 여인네들만 응당 봉행해야 할 것이 아니라 곧 이는 남자 대장부들도 마땅히 받들어 예배할 법의 본보기입니다.

 

    21, 대인의 모습을 나투다

 

마찌창(馬其昶)의 자字는 통빠이(通白)인데 안후이(安徽)의 사람입니다. 그는 민초들을 다루는 문학의 대가로서 한평생 많은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유학儒學을 연구하는데 치중하면서 불법佛法을 모르다가 근 10여년이 지나서야 부처님법의 정미로우면서도 깊고 넓고 큰 이치와, 불법 속의 숱한 불가사의한 일들과 자취를 갓 알게 되면서 이로 인하여 불법에 귀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불경을 연구하고 익히면서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고 아울러 부처님 명호를 외우고 서방극락세계에의 왕생을 발원하였습니다. 그의 셋째 딸인 쭌깐(君幹)은 매우 총명하였으며 글의 이치를 잘 통달하여 자못 옛 재녀才女의 풍모가 있어서 그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쌍하이(上海)에서 여인네들의 글방을 만드는 데에 힘을 썼고 여학女學을 이끌고 장려하는데 여력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북양대신北洋大臣 위앤꽁(袁公)의 초빙을 받아 턘찐(天津)에 있으면서 여자사범학교를 창설하였습니다. 뒤에 견문을 더 넓히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법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의 신앙도 없었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팡쓰쨴(方時簡)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곧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병을 얻었는데 전신의 통증이 극심하여 참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버지 통빠이는 딸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가슴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마찌창이 그녀 앞에서 금강경을 염송하였더니 그녀가 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한 번 듣자마자 곧 몸과 마음이 바로 그 자리에서 편안하여졌으나 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멈추면 그녀의 고통도 다시 전신에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서 철야로 염송하니 고통이 모두 가라앉았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쭌깐은 돌연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경전 독송을 정지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녀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미 병이 완치되고 건강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금강경에서 설한 도리를 대하여서 이미 능히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가 대인의 모습(大人相)을 나투어서 널리 무생법無生法을 설하고자하오니 바라옵건대 일체의 보고 듣는 사람들 모두가 능히 저와 같은 선근을 심기를 희망합니다.”

 

그녀는 또 말하기를 집안이 지나치게 좁아서 병원에 가서 요양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통빠이와 그 사위는 수도 찡쓰(京師)에서 전세를 내어 살고 있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은 그다지 넓진 않았지만 그윽하고 우아하였습니다. 통빠이는 그녀가 환경을 바꿀 생각인줄로 잘못 이해를 하였습니다. 곧 사위인 팡쓰쨴에게 쭌깐을 덕국德國병원으로 보내어 그녀를 위하여 그윽하고 우아하며 편안하고 조용한 병실 하나를 구하라고 일렀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일체 수속을 밟은 연후에 쭌칸은 곧 남편과 병원측 간호사에게 입원실에서 나가게 하고서 합장한 채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쭌칸의 좌탈坐脫하는 방법을 보았는데 과연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이토록 소탈하고 자연스러우며 여여한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일은 마치 저 방거사의 따님이신
링짜오(靈照)가 일식이 있다고 속여 아버지를 밖으로 나가게 한 연후에 그녀가 아버지의 자리에 들어가 합장한 채 입적한 것과 더불어 임종하는 모양이 서로 어떠한 구별이 있을까요?

 

통빠이의 문하생 가운데 리무꽁(李木公)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에 부처님을 믿지 않고 있다가 통빠이가 딸의 좌탈입망하는 소식을 설명하여 주자 듣고 나서 곧 온 가족이 삼보에 귀의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저『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오는 다음의 말씀과 같을 것입니다.


“어떠한 몸으로 제도해야하는가에 따라 응당 그러한 모습으로 설법하신다.”
이러한 법문을 통해 우리도 자세히 사유하여보면 저 마쭌칸이 일찍이 우리를 위해 관세음보살님처럼 이러한 모습을 나투어 설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22, 가부좌한 채로 입적하다

 

  루이쒸에이아(瑞雪崖)는 명나라 때 후앙이안(黃嚴)사람입니다. 어린 나이에 치우쨩짠꽁(秋江湛公)에게 가서 삭발하고 출가하셨습니다. 씬청싼(新城山) 리우칭위앤(留慶院)에서 수행하셨으며 계율을 엄격하게 잘 지니셨습니다.

 

스님은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셨으며 요가를 잘 하셨습니다. 만일 일반스님들과 신도들이 스님께 예참법禮懺法을 청하면 스님께서는 반드시 공경하게 정성껏 해주시었으며 시주로 들어온 공양을 낫다 못하다 재어서 생각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공양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도 마음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물러나라고 스님께 요청하면 스님께서는 여전히 즐겁게 가셨으며 털끝만치도 불쾌한 표정을 짓질 않으셨습니다.

 

홍무洪武 신해년辛亥年 5월에 더운 여름이 다가오자 스님께서는 우연히 미질을 앓게 되셨는데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으신 후에 게송을 써놓으시고 가부좌하고 앉으신 채로 입적하셨습니다. 스님의 세수 83세 때의 일입니다. 스님의 다비를 할 때에 불꽃 속에서 연기도 하나 없는 가운데 미묘한 광명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뼈에서 다수의 사리를 수습하였습니다.

 

 

제3편 장수를 얻음

 

1, 오로지 금강경수지를 권하신 큰스님

 

명나라 정덕正德 때에 난위에(南嶽)에 추쓰(楚石)이라고 하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경經율律론論의 삼장三藏에 박통하셨으며 평소에 늘 금강경을 독송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와서 법을 구하면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가리지 않고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을 수지하도록 노력하시오!”
추쓰스님은 171세에 앉으신 채로 원적에 드셨습니다. 큰스님과 동시대의 스님으로 빠이떵(白藤)스님과 우찌(無極)스님 등도 금강경 수지독송을 전문적으로 권하신 분들입니다. 빠이떵스님은 130세, 우찌스님은 124세까지 사셨습니다.


    2, 등촉불이 땅에서 3자 떠오른 채 날아가다.

 

  천꾸어빠오(陳國寶)는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그의 부인은 루이꽁쿠안(芮公寬)의 누이였습니다. 부인은 늘 부처님과 부처님의 진리에 정성으로 믿고 받들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항상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한 번은 그녀가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의 다 읽고 한두 페이지만 남았는데 갑자기 두통이 일어나서 독송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통증이 더욱 심해지니 그녀의 생각에 이러다가 죽어버리면 금강경 독송을 마치지 못할 것 아닌가 하고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하녀에게 일러서 등촉불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불을 구하러 갔던 하녀는 불씨가 다 사그라진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인이 상황을 지켜보며 탄식을 금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전 가족이 보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주방에서 등촉불이 누가 이끌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바닥에서 3자정도 뜬 채로 저절로 움직여서 홀을 지나 곧바로 부인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인의 방이 일순간 대낮처럼 밝아졌습니다. 부인은 무척 놀라우면서도 기뻐서 재빨리 금강경을 들고 마저 독송해 마쳤습니다. 잠시 후, 집안사람이 성냥을 가져와 불을 밝히자 밝았던 등촉불이 곧 사그라졌습니다. 동시에 부인의 병도 치유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부인은 매일 정성껏 금강경을 5회 독송하였습니다. 루이꽁이 임종할 때 누이인 부인이 보러 갔더니 루이꽁이 말하였습니다.


“누님은 경전 독송 덕분으로 당연히 오래 사실 것이고 좋은 곳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과연 뒤에 부인은 80여세를 살았으며 아무런 병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3, 저승사자가 묘책을 알려주다

 

  당나라 린덕麟德 원년元年에 또우떠위앤꾸안(竇德元官)은 종정경(宗正卿)에 임명되어 양쩌우(揚州)의 안찰사按察使로 파견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쭌허(淮河)를 건너가는데 배가 항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우떠위앤(竇德元)은 해안에 한 사람이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미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진 후였고 해변에는 이미 배들이 다 항구로 들어간 후였습니다. 떠위앤이 살펴보니 그 사람의 안색이 매우 창백하고 초췌하여 연민스러운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공에게 일러서 뱃머리를 해변으로 돌려 그를 태워가게 하였습니다.

 

항해하는 도중에 떠위앤은 밥을 먹다가 그에게도 일부분을 나눠주었습니다. 해변가에 도착한 후 떠위앤이 말을 타고 가는데 그 사람이 몇 리 길 정도를 뒤따라 왔습니다. 떠위앤이 그를 보니 떨어지고 싶지 않은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의 갈 길을 왜 가지 않는것인가?”    그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저승사자인데 명을 받들어 양쩌우에 도착하면 또우떠위앤을 데려가려고 합니다.”
떠위앤이 그 소리를 듣고는 크게 놀라 곧바로 말에서 내려 땅에다 무릎을 꿇고는 저승사자를 향해 머리를 숙이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바로 또우떠위앤입니다. 나를 위하여 삶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힘써 주십시오.”
떠위앤은 한편으로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 울면서 거듭거듭 요청하였습니다.

저승사자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을 하였습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나를 배에 실어 건너게 하여 준 은혜를 입었고 먹을거리를 나눠 준 은혜 또한 입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정이 나를 감동시키고 말았으니 그대에게 한 가지 방법을 일러주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금강경을 1천회 읽는다면 가히 이러한 액난을 면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독송해서 1천회를 완성하면 내가 다시 와서 통지하겠습니다.”

 

떠위앤이 양쩌우에 도착하자 생사의 관문이 걸려 있는 문제라 감히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고 곧바로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였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였습니다. 한 달 하고도 며칠 정도 지나자 떠위앤은 결국 금강경 1천회독송을 마쳤습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 다시 와서 떠위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금강경 독송 1천회를 마쳤으니 이제는 두 번 다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내 이제 바로 그대를 데리고 염라대왕께 가겠습니다.”

 

떠위앤이 저승사자를 따라 명부에 들어서니 보랏빛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 계단 아래로 달려 내려와서 떠위앤을 향하여 합장하여 예를 짓고는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금강경 1천권을 독송하여 위대한 공덕을 지었으니 지금 여기에 있을 시기가 아닙니다.”
이윽고 떠위앤은 세상으로 돌려졌습니다.

 

떠위앤이 살아난 후에 자기가 만하룻동안 죽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저승사자가 다시 와서 떠위앤에게 음식물과 종잇돈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떠위앤이 곧 사람에게 명하여 밥과 반찬을 가져오게하여 그를 대접하고 아울러 종잇돈을 태웠습니다.

 

떠위앤이 저승사자를 향하여 앞으로 자신의 관직이 어찌 되는 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이후로 관직이 바뀌는데 먼저 전중감殿中監이 되고 다음으로 대사헌大司憲이 되고 그 다음엔 태자단윤太子端尹이 되며 그 다음에 사원태상司元太常으로 부임하고 마지막으로 좌상左相이 됩니다. 그리고 세수는 64세까지 누릴 것입니다.”


뒤에 과연 그 말과 같았습니다. 떠위앤이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고종황제에게 알렸더니 황제가 칙령을 내려 군신들이 모두 금강경을 독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떠위앤의 증손자인 쯔쩌우(梓州)에 있던 멍씨안쫑(孟獻忠)이 직접 손수 서술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4, 한 생각의 측은지심이 수명을 연장할 방법을 만들다

 

  당나라 천보天寶 때에 짱(張)씨 성을 가진 이우쓰(御史)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쭌난(淮南)으로 파견되면서 쭌허(淮河)를 건너가려고 계획하고 배를 타고 강변을 막 벗어나려고 하는데 뒤에서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급한 일이 있어 그러니 배에 타게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뱃사공은 승낙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밀쳤습니다.

 

짱이우쓰가 이 상황을 보자 즉시 제지하고 뱃사공에게 말하였습니다.
“늙고 힘없는 불쌍한 백성 한 사람인데 배에 태워서 건너게 해드린다고 무슨 방해가 되는가?”
이렇게 해서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배에 올라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음식물까지도 대접하였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얼굴에 미안한 기색을 띠며 짱이우스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쭌허를 건너가서 강 건너에 도착한 연후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짱이우쓰를 향해 이별을 고한 후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얼마 후, 짱이우쓰가 말을 갈아타는 역에 도착했는데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이미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약간의 미운 생각이 마음 속에 일어나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막 그대를 배에 태워서 쉽게 건너게 하여 주었는데 또 무슨 용무라도 있습니까?”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짱이우쓰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당신과 상의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일은 다른 누가 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짱이우쓰가 주변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저는 명부의 사자입니다. 명부의 명을 받들고 당신을 붙들어 가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강을 건널 때에 배를 뒤집어서 당신을 강물 속에 익사케하여 데려가려 하였으나 당신의 두터운 호의를 대하고 보니 감히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어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그냥 강을 건너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아무리 봐주어도 당신의 생명을 하루 더 연장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짱이우쓰가 이 말을 듣고 나서 놀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 자리서 무릎을 꿇고 노란 옷을 입은 사람에게 자신을 구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정 그렇다면 만 하루 만에 속명경續命經 일천 권을 독송한다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문입구에서 돌아보며 짱이우쓰를 향하여 한마디 더 던졌습니다.
“속명경續命經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간세상에서는 금강경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짱이우쓰가 물었습니다.
“하루 밖에 안 되는데 내가 어찌 금강경 천 번을 독송하겠습니까?”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다만 사람이 하고자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짱이우쓰가 곧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향하여 거듭거듭 감사를 드렸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가고 나자 짱이우쓰는 곧장 자신의 아랫사람들과 임지 부근의 백성들을 최대한 모았는데 수십 명이 모였습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서 금강경을 전심전력으로 독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 날 저녁이 되자 마침내 금강경 일천 독讀이 완성되었습니다.

 

 독송하기를 마치고나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다시 돌아와서 짱이우쓰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이미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를 따라 명부에 가셔서 염라대왕을 알현해야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짱이우쓰가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 갔습니다.

 

짱이우쓰가 들어가서 명왕을 뵙고 보고하여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속명경 일천 권을 독송하였습니다. 이로써 수명연장이 가능한 것입니까?”
이에 명왕이 기록을 관리하는 관리에게 검증을 하게하고 사실에 부합된다는 말을 듣자 곧 합장하고 찬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공덕이 불가사의합니다. 수명이 10년이나 연장되셨습니다.”  짱이우쓰가 드디어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5, 저승사자를 물리치고 수명을 연장하다

 

  왕투오(王陀)는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응양부(膺揚府)의 과의(果毅)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부처님법을 잘 익히고 신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중병에 걸리게 되자 이것은 필시 전생의 죄업 때문이라 생각하고 육식을 끊어버리고 발심하여 금강경을 매일 5편씩 독송하였습니다. 뒤에 풍토병까지 걸리게 되자 저승사자가 그를 붙잡아 가려고 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왕투오가 재빨리 금강경을 독송하자 저승사자는 그의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고 물러가버렸습니다. 투오가 계속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으려니 저승사자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염라대왕께서 그대를 모셔오라고 명을 내려서 내가 온 것이니 경전 독송을 잠시만 그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듣고 왕투오가 독송을 잠시 그치자 이내 혼미해져서 가슴이 답답하고 곧 숨이 멈출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또 한명의 저승사자가 나타나서 외쳤습니다.
“잠깐만! 이 사람을 놓아주시오. 염라왕께서 그를 6개월만 더 놓아주라고 하셨소.”


이렇게 해서 왕투오가 다시 살아난 이후 조금도 게을리 않고 몇 배나 더 정진하였습니다. 금강경독송을 밤낮으로 열심히 하기를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저승사자가 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 무렵에 하늘에서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왕투오여! 그대는 경전을 독송한 공덕으로 수명을 90세까지 누릴 것입니다.”

한 편 왕투오의 형님이 병을 얻어 임종이 다가왔는데 며칠 후에 형님의 문상을 가서 뵈었더니 형님이 말하였습니다.
“아우야. 금강경을 독송하도록 노력해서 나의 지옥고를 구해다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자가 그의 형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왕투오가 매우 놀라 집으로 달려가는데 여섯 마리의 양이 가는 길을 막아서서 못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가 없어 왕투오가 그 자리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자 양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 금강경독송을 마칠 때 쯤해서는 모두 다 사라지고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즉시 형의 지옥고통을 면하게 하려는 발원으로 금강경을 5천편을 독송하였습니다. 왕투오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금강경을 독송하라고 널리 권하였습니다. 물론 스스로도 금강경 독송을 끊이지 않게 하였는데 뒤에 과연 90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6, 속명경

 

명나라 가정嘉靖 때에 꾸이안(歸安)의 마오루먼(茅鹿門)에게 고용된 하인이 있었는데 이름이 삥친(馮勤)이었습니다. 삥친이 어느 날 한 관상가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관상가가 예언을 하기를 삥친이 일찍 요절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삥친은  깊은 근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스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노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면 ‘불에 탄 글자 씌여진 종이’를 줍고 아울러 속명경續命經을 염송하여라. 이렇게 해야만 요절함을 면할 수 있다.”
삥친이 여쭈었습니다.
“속명경이 무엇입니까?”
노스님이 그에게 일러주었습니다.


“금강경을 속명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삥친은 그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노스님을 향해 큰절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도로변에서 글자종이를 줍기 위해 대나무 집게와 대나무 상자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는 대낮에 큰길과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길 위에 떨어진 더러워진 글자종이를 주워서 상자 속에다 넣었습니다.

 

그것을 가져다 세척하고 말려서 깨끗이 한 후 불에 태웠습니다. 태우고 남은 종이의 재를 싸서 맑게 흐르는 물에다가 잘 띄웠습니다. 그는 매우 세밀하여서 설사 글자 하나 종이 한 조각이라도 감히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면 무릎을 꿇고 금강경 1편을 독송함으로써 하루 일을 회향하였습니다.

 

삥친이 매일매일 이와 같이 하여 습관이 되다보니 점점 글을 알게 되면서 글의 뜻을 대략 통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마오루먼이 그를 대할 때에 존경하고 예를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삥친의 집안 살림살이도 점점 풍요로워지고 슬하에 아들 둘과 손자 넷을 두어서 잘 키웠습니다. 향년 95세까지 누리다가 아무런 질병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7, 선신이 옹호하다

 

  웨이쑨(魏恂)은 당나라 때 쭈루(鉅鹿)에 살던 사람입니다. 일찍이 뻐쩌우(博州)의 사마司馬로 부임하였습니다. 신룡神龍 때에는 벼슬이 3품이 더 올라 관직이 우감문右監門 대장군大將軍에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꾸준히 하는 일과 중 하나는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수도인 찡청(京城)에  점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죽고 나서 며칠 있다가 다시 살아나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명부의 관리에게 심문을 받을 때에 한 저승사자가 명부의 관리에게 보고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붙잡아 오라는 사람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명부의 관리가 사자를 때리려 하자 사자가 말하길, ‘장군 웨이쑨(魏恂)은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어 많은 선신들이 옹호하면서 거듭거듭 둘러싸서 경호를 하기 때문에 그를 데려오지 못한 것이지 일부러 놓아준 것이 아닙니다.’하였습니다.

 

그러자 명부의 관리는 이번에는 다른 사자로 바꾸어 웨이쑨(魏恂)을 붙잡아오라고 보내었는데 한참 후 돌아와서 보고하는 말이 여전히 앞의 사자 말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명부에서 웨이쑨(魏恂)을 붙잡아 오는 일이 취소되었으며 명부의 관리들과 여러 저승사자들이 함께 웨이쑨(魏恂)을 찬탄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알려지고 난 이후에 이로부터 웨이쑨(魏恂)은 더욱 가행정진하면서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8, 계단아래의 형벌을 정지시키다

 

당나라 때 짱링(江陵)의 개원사開元寺의 반야원般若院에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법명이 파쩡(法正)스님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매일 금강경을 21편을 독송하셨습니다.

장경長慶 초년初年에 스님의 연세가 이미 육순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이 들어 숨을 거두시고 명부에 들어가셨습니다. 염라대왕이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평생에 어떠한 공덕을 지으셨습니까?”
파쩡스님이 답하셨습니다.
“자주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말을 듣자마자 염라대왕이 숙연히 일어나 공경하는 마음으로 스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예를 지어 스님을 꽃자리에 모시고 금강경 7편을 독송해주십사 청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독송하는 동안 명부의 시위侍衛들이 모두 합장한 채로 가만히 들었으며 계단 아래에서 집행되던 형벌들이 모두 정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특별히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말하였습니다.


“큰스님의 수명이 30년 연장되었습니다. 스님께서 금강경 독송을 끊어지지 않게 하신다면 입적하실 때에 반드시 생사生死를 벗어나실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명부의 관리 하나를 시켜 스님을 세상으로 안내하도록 하였습니다. 수십 리를 달려가자 앞에 그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큰 구덩이가 나타났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스님을 뒤따라오다가 스님을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에 깨어난 스님이 날짜를 살펴보니 죽은 지 7일 만에 깨어난 것이었습니다. 얼굴을 만져보니 아직도 얼굴의 온기가 식지 않고 따뜻하였습니다.
찡쩌우(荊州)의 창칭(常淸)스님이 파쩡스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직접 뵌 것인데 80세를 훨씬 넘겨 사셨다고 합니다.


    9, 조그만 공덕을 명부의 사자에게 회향하다

 

  똥찐짜오(董進朝)는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그는 항상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늘 이렇게 축원을 하였습니다.
“원컨대 이 조그만 공덕으로 명부의 사자에게 보호가 있기를 회향하옵나이다.”

 

  어느 날 밤은 깊어가고 달빛은 사방으로 흩어져 교교한데 그가 옛 성 위에 가만히 서서 밤의 정취를 완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 밑에서 도란도란 얘기 소리가 들려 슬며시 내려다 보니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 4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나 엿들어 보니 자기의 이름-똥찐짜오-이 제일 먼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얘기의 분위기가 자기를 붙잡아 가려는 의도가 분명하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똥찐짜오는 평상시에 금강경을 독송하였고 아울러 조그만 공덕으로 명부사자에게 보호가 있기를 축원하였다. 이렇게 한 지가 오래 되었다. 우리들이 그에게서 이러한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차마 어찌 냉정하게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 집 건너 편에 성이 같고 나이도 같은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어차피 수명도 다해서 곧 데려가야 한다. 그 사람으로 대체해서 이 일을 처리하자.”
그들이 논의를 끝내고는 눈 깜짝할 사이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었습니다. 맞은 편 집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찐짜오가 왜 우는지 연유를 물어보니  죽은 사람의 부모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아들이 어젯 밤에 갑자기 죽었다네!”


찐짜오는 그 집의 아들 시신을 바깥에서 장사 지내주는데 도와주고 나서  그의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잘 봉양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깎고 산속으로 출가하였는데 법명이 후이통(慧通)스님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씽위앤(興元)의 당안사唐安寺에 오래 사셨습니다.

 

    10, 나이를 2배로 늘리다

 

  쯔짱(智藏)스님은 양나라 무제武帝 때 우쭌(吳郡)의 사람입니다. 쫑싼(鍾山)의 개선사開善寺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관상쟁이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스님께선 비록 세상을 압도할 정도로 총명하셨으나 애석하게도 수명이 오래지 못하십니다. 겨우 31세를 넘기지 못하실 듯합니다.”

 

이 때 쯔짱스님의 연세가 29세였습니다. 이에 경전 강의를 그만 두시고 오로지 금강경을 독송하며 예불하고 참회하는데 밤낮없이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그리하여 31세가 되자 어느 날 홀연히 허공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본래 그대의 수명이 다하였으나 반야般若의 공덕력功德力으로 인하여 세수가 2배 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앞전의 그 관상쟁이가 다시 들렀는데 쯔짱스님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하였습니다.
“아니, 이럴수가! 요절할 상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쯔짱스님께 이렇게 된 이유를 여쭈었습니다. 쯔짱스님께서 반야경을 독송한 인연을 설명하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경전의 힘이 불가사의함을 크게 찬탄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과연 쯔짱스님께서는 60세를 훌쩍 넘기고 입적하셨습니다.

 

    11, 선신의 옹호로 부인을 못 붙들어가다

 

  창우쓰(張無是)는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는 뿌쩡팡(布政坊)에 살았습니다. 천보天寶 12년 겨울이었습니다. 그가 멀리 볼일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데 밤이 깊어 성문이 이미 닫혀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리 밑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말을 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다리 곁에 멈추어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말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 중 한 사람을 뿌쩡팡에 보내어 창우쓰의 부인과, 같은 마을의 부자노인인 왕모를 붙잡아 오고 그 밖에 또 한 사람은 모처에 가서 모모 등 몇 사람을 붙잡아 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창우쓰는 크게 놀랐습니다.

일순간에 붙잡으러 갔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 왔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붙잡아 와야 할 사람들을 대부분 잡아 왔지만 오직 창우쓰의 부인만은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어서 선신들이 곁에서 옹호하니 그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계속해서 그들은 붙잡아 온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창우쓰는 왕모를 부르는 소리와 왕모가 ‘예’하고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창우쓰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부인이 단정히 앉아서 경전을 독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 온 것을 보고 반가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당신을 기다렸기 때문에 당신이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때맞춰 돌아오실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날이 밝은 후, 이웃 근처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퍼졌습니다. 알고 보니 부잣집 왕모가 지난 밤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창우쓰가 다리 밑에서 들었던 일을 부인에게 다 얘기하여 주자 부인은 크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재齋를 길이 지키기로 맹세를 하고 매일 금강경을 49편이나 독송하였습니다. 창우쓰의 부인이 죽음을 한 번 면하고 나서 부부가 함께 금강경을 열심히 독송한 그 공덕으로 오래오래 장수하였다고 합니다.

 

    12, 뜨거운 불이 재가 되어버리다

 

당나라 때에 이쩌우(易州)에 참군參軍 턘(田)모 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시에 사냥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흉맹하기 그지없는 사냥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번 사냥을 나갈 때마다 이 사냥개를 이용하여 사냥물을 쫒게 하였습니다.

 

천보天寶 첫 해 어느 날에 턘모는 사냥개를 또 데리고 사냥을 하러 외출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들판에서 개가 한 권의 책을 물고 왔습니다. 턘모가 받아서 보니 금강경이었습니다. 그는 그날은 사냥을 그만두고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부터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을 이렇게 하여 2천편 이상을 독송하였으나 아직도 여전히 사냥을 즐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턘모가 갑자기 죽어서 명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새들과 짐승들이 그의 주변을 에워싸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데, ‘내 목숨 내놔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턘모 말고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으며 염라대왕이 낱낱이 하나하나 이들을 직접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을 보니 심문이 끝나자 명부의 관리가 그에게 강제로 입을 벌리고 둥근 덩어리 한 개를 입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것이 뜨거운 불덩이로 변하여 그 사람을 순식간에 태워버리니 곧바로 재와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그 사람의 몸이 원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6~7명을 심문하고 나니 턘모가 심문 받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둥근 환 3개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벌써 환은 불에 타서 사그라져버렸습니다.

 

염라대왕이 이러한 기이한 상황에 느끼는 바가 있어서 턘모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 어떤 복업을 지었소?”
턘모가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일찍부터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금강경 1권을 얻었기에 그것을 2천편 이상 독송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합장하고서 칭찬하면서 말하였습니다.
“훌륭합니다! 금강경을 독송하게 되면 한량없는 죄업을 소멸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명부의 관리에게 턘모의 복덕 장부를 검사해서 살피게 하였습니다. 과연 턘모가 말한 것과 일치하다는 보고를 받고 염라대왕은 턘모에게 그 자리서 금강경을 외워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턘모가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하자마자 염라궁전의 뜰 앞에 모여 있던 수많은 새들과 짐승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염라대왕이 턘모에게 말하였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의 공덕이 불가사의합니다. 그대의 수명이 지금부터 15년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관리에게 명하여 턘모를 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13, 우리 부처님의 장생법

 

명나라 정덕正德 때에 촨씨(川西)의 학명관鶴鳴觀에 한 도사道士가 살았는데 이름을 천루쏸(陳入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가 일상으로 하는 일은 오래 사는 법을 신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스스로 금강신이라고 하는 분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오래 사는 법을 구한다고 하니 민싼(岷山)으로 가서 쯔롱(智融)스님께 예배하라. 그분이 그대에게 법을 전해 줄 것이다.”

루쏸은 금강신이 지시한대로 민싼으로 가서 쯔롱스님께 간절히 장생법長生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쯔롱스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의 게송에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일체의 유위법은/ 마치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거품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다./ 응당 이와 같은 관觀을 지어라.」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오래 사는 법입니다.”
루쏸이 여쭈었습니다.
“이미 환상이나 꿈과 같다면 무엇이 오래 사는 것입니까?”


쯔롱스님께서 즉각 “억!!”하고 할喝을 내지르시고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은 단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자리서 크게 깨달은 루쏸은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 갔습니다. 그로부터 와우싼(瓦屋山)의 호거암虎踞巖에 은거하면서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루쏸은 98세까지 살았는데 하루는 도반들을 불러 놓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뜻을 세워 신선도神仙道의 장생법을 구하였는데 전혀 얻지 못하다가 뒤에 다행히도 부처님의 장생법을 얻어 영원히 사는 법을 완전히 터득하였다. 그대 나의 벗들이여. 오직 원컨대 그대들도 내가 얻은 것을 능히 얻을 수 있으니 열심히 노력하라.”
말을 끝내고는 이내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14, 경을 지송하고 장수를 얻다

 

  양나라 천감天監 때에 이안(琰)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11세에 출가하여 사미스님이 되시고 나서 짱안(長安)의 초제사招提寺에 주로 머물고 계셨습니다.

 

당시에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얼굴모양과 기색만 보고서도 길흉사를 잘 판단할 줄 알았습니다. 그에게서 관상을 본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기특하게도 맞아 떨어짐을 자주 겪어 모두 다 그의 실력을 잘 인정해 주는 터였습니다. 한 번은 이안 스님께서 그를 청해다가 관상을 보게 하였는데 관상쟁이가 정신을 집중하여 잘 들여다 본 후에 이안스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스님의 관상을 보니 특별히 총명하시고 지혜가 범상치 않습니다. 하지만 다만 애석한 것은 요절할 상이라 18세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안스님께서 이 말을 듣고 매우 근심이 깊어서 사방으로 다니면서 ‘결국엔 어떠한 공덕을 닦아야 수명을 늘릴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조언하기를 부처님법의 도리에 의지해야 되는데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것이 최대의 공덕이 되며 반드시 장수를 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안 스님께서 그들이 가르쳐준대로 모든 인연을 제켜두고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밤중에 이안스님은 방안에서 오색광명이 찬란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명 속에서 아주 키가 큰 인도스님 한분이 나타나서는 이안스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본래 스님의 세속 수명이 겨우 18세에 끝나게 되었었지만 지금 일심으로 정성껏 금강경을 수지독송한 수승한 공덕을 빌려서 장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이 끝나자 곧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안스님은 다시 더욱 정진하여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이안 스님은 이전에 그 관상쟁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현재의 모양으로 결국 어떻게 될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관상쟁이가 스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크게 놀라며 말하였습니다.


“이전에 스님의 관상을 볼 때에 분명히 18세에 요절할 것이 틀림없었는데 오늘 스님의 얼굴을 뵈니 지난 번엔 참으로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선 도대체 어떠한 음덕을 쌓으셨기에 이토록 요절할 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장수할 상만 드러난 것입니까?”

이안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만 마음을 오로지 하여 금강경만 수지독송하였을 따름입니다.”
그리고는 아울러 오래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며 겪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하여주었습니다. 관상쟁이가 듣고 나서 매우 찬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티끌에 매여있는 세속에서 관상을 보면서 삶을 도모하였습니다. 비록 덕을 쌓아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은 부처님법의 공덕이 이와같이 수승하고 엄청나게 불가사의한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이안스님께서는 92세까지 수명을 누리시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셨는데 그 때에 신비한 향기가 실내에 가득하였으며 사람마다 우러러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15, 경을 지니고 장수하다

 

수나라 때의 일입니다. 개선사開善寺에 비구니스님이 계셨습니다. 모두들 그분을 짱쓰(藏師)스님으로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스님께선 경전의 강의를 매우 잘 하셨고 설법 또한 일품이셨기 때문에 ‘대장경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스승’이라 해서 아마 그렇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경전에 해박하시다 보니 멀고 가까운 곳에서 스님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흐인(何胤)이라고 하는 관상쟁이가 있었는데 특히 얼굴의 관상을 잘 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 관상쟁이가 짱쓰스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스님께선 이토록 훌륭하신 법사이시지만 애석하게도 오래 사시진 못할 듯 합니다.”


짱쓰스님이 이 말을 듣고 나니 황망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곧 경전강의와 설법하는 것을 그만두고 부처님경전을 독송하는데 전념하기로 발원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손이 가는대로 경전 가운데 하나를 잡으셨는데 빼내어 보니 바로 금강경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셨으며 아예 건물 바깥출입을 삼가시고 다른 잡무도 힘쓰지 않으셨습니다.

 

3년이 지난 후 스님께서 관상쟁이를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스님을 보자마자 흐인이 매우 놀라 말하였습니다.
“지난 번에 저의 관상술이 영험스럽지 못하여 제가 잘 못 보았던 것 같습니다. 스님의 관상이 완전히 변하여 장수하실 상으로 변하여져 있습니다.”

 

짱쓰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의 관상술은 틀림없이 고명하십니다. 다만 이렇게 된 것은 부처님법의 영험이 불가사의한 것인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습니다. 흐인이 듣고 나서 스님을 크게 찬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수행이 한 개인의 수명을 확실히 고쳐놓는구나!”


뒤에 과연 흐인이 말한 바와 같이 짱쓰스님은 90세의 고령으로 입적하셨습니다.

속담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각기 다르고 그 얼굴도 또한 각기 다르다.”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중생들은 과거세에 지은 각종의 선업과 악업으로 말미암아 각각 그 모양에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운명가와 관상가들이 근거로 들이대는 관상학적 모양의 짜임새와 격식에 있어 부귀빈천이나 수명의 장단, 인생의 궁하고 통함, 이러한 것들을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가히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온전히 미신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운명학과 관상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생김새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는 이것입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생김새는 선악의 행위에 따라서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에 선량함을 두어서 널리 음덕을 쌓는다면 설사 나쁜 생김새의 격식이라 할지라도 좋은 생김새의 격식으로 돌려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因果報應>의 법칙에 딱 맞는 것입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다 운명에만 구속되어 하늘에서 내려 준 명운만 따르려하고 스스로가 주인이 되려고는 하질 않습니다. 오직 대선인大善人과 대악인大惡人만이 제한을 받지 않을 뿐입니다. 위앤러판(袁了凡)이 윤꾸(雲谷)선사를 만나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공덕과 허물의 짜임새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마침내 운명은 바뀌어질 수 있다는 확신으로 전회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운명은 자기 스스로의 창조에 달려있는 것이니만큼 응당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운명은 단지 자기의 마음이 어떠한가라는 물음에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른바 “좋은 일을 하였으면 앞길을 묻지말라.”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정확한 처세의 길인 것입니다.

 


            제 4 편 회생을 얻다

 

    1, 지계하고 수명을 늘리고 파계하고 벌을 받다

 

왕리꾸(王立轂)는 명나라 때 턘타이(天台)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의 자(字)는 빠이우(伯無)였습니다. 만력萬曆 병오년丙午年에 향천鄉荐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 그가 꿈을 꾸는데 돌아가신 아버지 왕쓰씽(王士性)이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네가 앞으로 10년 안에 5차례에 걸쳐 위험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과연 아버지가 일러 준대로 10년 동안에 낱낱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꿈을 시詩로 지어서 그 신비롭고 기이함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일찍이 찌아허씨안(嘉禾縣)에 있을 때 삼보三寶의 앞에서 오래오래 재계를 지키기로 발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살생하지 않을 것, 도둑질하지 않을 것, 삿된 음행하지 않을 것, 거짓말하지 않을 것>의 4계를 받아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쨩쓰씽(江西省)의 씬깐씨안(新淦縣)에 부임한 이래로는 받아 지니던 계율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았습니다.

 

무오년戊午年에 그가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날 밤에 또 꿈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서 그가 파계한 일을 거듭거듭 꾸짖으며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경계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리꾸는 마음이 매우 우울하였습니다.


서울로 가는 도중에 그가 탄 배가 띠깡(荻港)에 도착할 무렵이 깊은 밤인 2경(二更)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두 명의 파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손에 명령을 받은 패를 가지고와서 리꾸를 데리고 한 궁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 궁전을 보니 매우 웅장하고 장관이었습니다. 그 장엄함은 마치 천자가 계시는 황궁과도 같았습니다. 리꾸와 같은 시기에 함께 잡혀 온 사람들도 수십 인이 궁전 뜰 앞에 있었습니다.

 

리꾸는 궁전의 뒤쪽 문을 통해서 끌려갔는데 염라대왕이 한 가운데 높다란 곳의 책상이 놓여진 곳에 앉아 있고, 좌우로는 두 명의 재관宰官이 양옆으로 자리를 나누어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근에 기립하여 왕을 모시는 시자들도 매우 흉악한 모습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서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돌아본 리꾸는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는 매우 힘차게 꾸짖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대의 세상에서의 수명이 본래 병진년丙辰年에 응당 마땅히 끝나야 하였지만 그대가 재계를 수지하였으므로 수명이 늘어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대가 참지 못하고 파계하여 지니지 않으므로 그대를 붙잡아 여기로 오게 한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시자에게 명령하여 생사의 장부를 리꾸에게 주어서 스스로 직접 보게 하였습니다. 리꾸는 자기의 이름 밑에 이미 년월年月이 기재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병진년 8월 그 이하로는 완전히 공백으로 되어있었습니다.

 

리꾸는 그의 수명이 겨우 병진년 8월 까지였으며 계를 지킨 인연의 공덕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수명이 연장되었음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가 후회하기를 그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며 말하였습니다.
“제가 직책이 바뀌어 전근을 가면서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이와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발 너그러이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물론 그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대의 수명은 이미 다하였다.”
그리고 리꾸를 지옥으로 데려가서 형벌을 받게 하라고 영을 내렸습니다. 좌우의 흉맹한 모습의 귀졸들이 지시를 듣자마자 재빨리 준비하여 리꾸를 데리고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이 때, 좌우의 재관들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리꾸가 파계한 후의 지은 바와 행한 바를 주의하여 보아 주십시오.”

잠시 후, 시자가 두 개의 커다란 대나무 상자를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많은 분량의 서류가 들어있었습니다. 이것은 리꾸가 평일에 한 자, 한 구절 그리고 잘 정리해 놓은 문장들을 쓰고 베껴놓은 것들이었습니다.

 

혹은 마음이 동할 때마다 모두 다 상세하게 일기를 쓰듯이 기재해 놓은 것입니다. 각 세트마다 명부의 관리들이 위쪽에다 색깔을 칠해 체크를 해 놓았는데 검은 색과 파란 색과 붉은 색과 그리고 흰색 등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시자에게 명령하여 같은 색깔끼리 찾아서 한 곳에다 모아 두게 하였습니다.

 

먼저 검은 색과 파란 색을 찾아내서 한 곳에 놓아두게 하고 다음으로 붉은 색과 흰색의 것을 모아서 한 곳에다 두게 하였습니다. 잠시 후, 파란 색의 서류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검은 색의 것도 점점 축소되어 젓가락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오직 붉은 것만이 특별히 밝게 빛이 나서 현란하게 눈이 부셨습니다.

 

리꾸는 곁에 있다가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지 못하고 시선을 비스듬히 땅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새긴 금강경이 책으로 잘 만들어져 서류와 함께 상자 속에 곱게 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 조그마한 곳에서 선명한 붉은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염라대왕이 전부 다 보고 나더니 얼굴색이 비교적 온화해 졌습니다. 그리고 좌우로 서있는 재관宰官을 향하여 의견을 물어 보았습니다.
“저 사람이 덕을 심고 복을 늘려 놓는 길을 알았으니 잠시 저 사람의 생명을 살려주되 다만 그의 오관五官만 조금 훼손시키려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양쪽 재관들이 아무런 이의가 없자 염라대왕이 흉악하게 생긴 귀졸들에게 리꾸의 눈알을 후벼내어서 염라대왕 앞 단상에 놓아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리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만일 나의 눈알을 빼내어 버린다면 사물을 어찌 분간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순간, 리꾸가 눈앞에 한조각 어두움과 부딪침을 느끼자마자 궁전 안의 관리들과 귀졸들이 모두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그의 등을 치며 “빨리 가라! 빨리 가!” 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잠시 후, 리꾸가 발이 한 번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때가 바로 닭이 홰를 치며 꼬꼬댁 울고 먼동이 막 터오르려는 새벽녘이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집안사람들이 빙 둘러앉아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부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 이경二更이 지난 후에 한 번 가위에 눌리신 듯하셨다가 깨어나시지 못하고 지금까지 손과 발이 냉랭하고 입과 치아가 굳게 닫혔습니다. 의사가 오셔서 한궐寒厥에 걸렸다고 진단하고서 이미 7차례에 걸쳐 약을 드시게 하였습니다.”


말을 듣고 나서 리꾸가 눈을 크게 뜨려고 생각하였으나 다만 등불이 특별히 눈을 찌르듯 부시는 것만 느껴지며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의사가 또 와서 그에게 눈을 밝힐 수 있는 약을 복용케 하였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리꾸의 꿈에 어떤 사람이 못을 가지고와서 그의 눈알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 그는 어제처럼 통증을 느끼면서 이것은 업보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부터 리꾸는 매일 금강경과 법화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애욕을 버리고 선업을 부지런히 닦았습니다. 경신년庚申年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리꾸의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셔서 아름답고 섬세한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드시고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달콤한 감로수를 뿌려서 그의 눈을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 부처님께 예불을 올릴 때 문득 활연히 사물이 보이면서 새롭게 찬란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리꾸가 뒤에 이운치(雲棲)의 뽀싼(博山)의 문하에서 지낼 때는 벌써 다시 살아난 지 20여년이 넘었습니다. 모두들 그를 삐루따쓰(璧如大師)라고 불렀습니다.

마오쫑치(冒宗起)가 평하여 말하였습니다.
“이 일은 모두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훌륭한 전례로서 3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파계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선근을 심는 사람은 틀림없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요, 셋째는 관직에 있는 사람이 써놓은 글자 하나하나와 한 마디의 말,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명부의 관리들이 붉고 흰색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전생의 사경 덕분에 금생에 다시 살아나다.

 

  원빠이런(文伯仁)은 명나라 때 쑤쩌우(蘇州)의 사람입니다. 그의 호는 우펑(五峰)이라 하였는데 시를 아주 잘 읊었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그는 원쩡밍(文徵明)의 조카였습니다. 한 번은 그가 달아난 하인을 고소하기 위해 살고 있는 현縣의 관아로 가다가 어느 민가에 방을 빌려 하룻밤을 청하였습니다.

 

그날 밤 그의 꿈속에서 두 명의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와서 그를 붙잡자 그는 관아에서 파견된 병사들인 줄 알고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들과 한참을 가니 웅대한 궁전이 한 채 나타났습니다. 그가 보기에 마치 인간세계의 건물이 아닌 듯 하였습니다. 이 때 빠이런은 내심으로 해를 당할까 두려움이 점점 밀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그대에 대한 고발이 매우 많은데 그대가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빠이런 대답하여 말하였습니다.


“저는 다만 한낱 책이나 읽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러한 저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염라대왕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미소를 짓고 말하였습니다.
“아니! 그래, 그대가 전생에 지은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말을 마치고 저승판관에게 명령하여 파르스름한 구리거울 한 개를 가져다가 빠이런의 정수리를 문지르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빠이런은 한 줄기 차가운 기운이 심장과 폐부를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동시에 홀연히 전생이 기억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정통正統 때에 왕릉을 지키는 관리들의 책임자였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 연못을 팔 때에 겨울잠을 자기 위해 땅 밑에 엎드려 있던 뱀을 한꺼번에 백여 마리를 죽였습니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는 순간, 수많은 뱀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서 빠이런을 물려고 덤볐습니다.

염라대왕이 다른 한 판관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한 목숨이 어찌 저리도 많은 생명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자세히 살피고 조사해 보라. 저 사람이 많은 윤회를 하면서 선한 일 한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라.”
판관이 매우 많은 서책을 찾아서 특별히 자세하게 살펴보더니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말하였습니다.


“있습니다. 그가 영락永樂 때에 일찍이 계명산雞鳴山의 기다란 절벽에다가 두 분의 나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한 금강경을 한 권 사경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충분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되었도다.”


그리고는 빠이런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대의 수명이 아직 조금 남아 있소. 어서 빨리 돌아가서 금강경을 사경하여 그대가 죽인 저 불쌍한 생명들을 건져주도록 해주시오.”

 

빠이런이 곧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는 본시 부처님을 믿지 아니하였는데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사경하고 염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덕으로 인하여 과거 숙세에 자신이 살해하였던 많은 생명들을 제도해서 고통을 벗어나게 하려고 발원하였습니다. 또한 지극정성으로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거나 가리지 않고 게을리 않고 숙세의 업장을 참회하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꾸런니안(顧仁念)이 평하여 말하였습니다.
“우펑(五峰)이 지난 과거 생에 겨우 금강경 1권을 사경하였던 것이 여러 생이 지난 후에 다시 살아나게 되는 공덕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아도 과연 부처님의 경전에 공덕을 쌓으면 그 과보가 불가사의하며 참으로 헛된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무롱원처(慕容文策)가 지옥을 노닐다

 

  무롱 원츠(慕容文策)는 수나라 때 타이쩌우(泰州)의 쌍뀌(上邽)사람입니다. 대업大業 7년에 그의 나이 17세 때의 일입니다. 그는 평소에 재계를 지키면서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 4월 15일에 원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저승의 사자들에게 이끌려 명부로 들어갔습니다.

 

성안으로 들어가서 으리으리한 한 채의 궁전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남녀노소와 승려들과 도사 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궁전의 관리가 명단을 들고 나와서 낱낱이 이름을 불렀는데 생전에 쌓아놓은 복업이 있는 자는 서쪽에 서게 하고 복업이 없는 사람은 조사하여 동쪽에 서게 하였습니다. 원츠는 마지막으로 불려져서 염라대왕 앞으로 갔더니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일생동안 어떤 복업을 지었소?”
원츠가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금강경과 법화경을 밤낮으로 반복하며 독송하였습니다. 또한 재계를 열심히 지켰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공경히 합장하고 찬탄하며 말하였습니다.  “공덕이 엄청납니다. 엄청납니다!”
곧 주관하는 관리를 바꿔서 장부를 다시 자세하게 검사하게 하니 관리가 조사를 마치고 돌아보며 말하였습니다.
“원츠가 말한 바와 일치합니다.”


염라대왕이 원츠를 세상으로 돌려보내라고 판결하면서 그를 서쪽편의 맨 앞에서 때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이때, 대략 15,6세 쯤 되는 사미스님이 손에 횃불을 들고 원츠의 앞을 지나가시고 뒤쪽에서 또 한 명의 나이가 비슷한 사미스님이 손에 횃불을 들고 원츠의 앞을 지나치셨습니다.


원츠가 두 분의 출가하신 사미스님을 뵈니 마음이 기쁨에 벅찼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두 분의 가사를 붙들고 구원을 청하였습니다.
“스님들께서 이 제자를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명부의 사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제가 여기로 잡혀왔으나 염라대왕님의 은혜를 입어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을 알지 못하오니 스님들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방법을 찾아 제발 저를 구하여 주십시오.”

 

그 가운데 한 사미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주께서는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금강경을 독송하셨고 재계를 잘 지키셨으니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당신을 구해드릴 것입니다.”
다른 사미스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횃불을 들고 앞길을 열 것이니 당신은 저의 뒤를 바짝 따라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손에 횃불을 들고 한 분은 앞에, 한 분은 뒤에, 그리고 원츠는 가운데에서 달렸습니다. 그들이 함께 성문을 달려 나가서 달려가다가 한 분의 사미스님이 원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옥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원츠가 모른다고 답하자 다른 사미스님께서 손가락으로 성城의 서북방을 가리키면서 원츠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4리 길을 가면 한 개의 큰 성이 있는데 이것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모시고 가서 보여드리지요.”

 

큰 성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 도착하여 보니 성곽이 매우 높고 험하였고 성문에는 쇠로 만든 그물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네 명의 흉악하게 생긴 나찰들이 손에 쇠갈퀴를 쥐고 성문의 양쪽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미스님께서 원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지옥의 문입니다. 일체의 모든 죄인들은 이 문을 통하여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원츠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서 2백여 보를 걸어 들어가니 한 줄기 회색빛의 큰 강물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있는 형을 받는 사람들은 몸 전체를 강물 속에 담그고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수면위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치열하고 맹렬한 불길이 조금도 멈추지 않고 그들을 덮쳐서 태워버렸습니다. 이러한 죄인들이 고통을 못이겨 애절히 통곡하며, 처절하고 비참하게 울부짖고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4방면에도 쇠로 된 상과 칼숲과......등등이 첩첩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도 4명의 옥졸들이 손에 예리한 쇠갈고리를 들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키고 있었는데 저러한 종류의 참상들도 사람으로 하여금 보기만하여도 몸서리쳐지게 하였습니다. 옆에 서 있던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8지옥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원츠는 너무나 놀랍고 공포스러워 염불을 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빨리 그곳을 벗어났으면 하고 원하자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상태를 파악하고 곧바로 그를 데리고 성 밖으로 빠져나가서 원래의 가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한 10여리를 달려가자 길이 끊어지고 하나의 커다란 대문이 나타났습니다. 사미스님들께서 손에 쥐고 있던 석장으로 문을 두드려 여시고는 원츠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여 나가시면 그대는 집으로 곧장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가시더라도 그대는 계속해서 금강경을 부지런히 독송하시어 공덕을 널리 닦으시어서 반드시 오래 장수하시길 바랍니다.”
원츠가 스님들께 절을 드리고 이별한 후 문 안으로 들어갔더니 곧바로 살아서 깨어났습니다.


    4, 런이팡이 지옥의 그림을 그리다.

 

  당나라 쿠오쩌우(括州)의 자사刺史인 런이팡(任義方)은 러안(樂安)사람입니다. 무덕武德 때에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었어도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여전하였으므로 집안 식구들이 스님들을 모셔다가 그를 위하여 금강경독송을 청하였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그가 다시 살아나서 명부에 다녀 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런이팡이 저승사자들에게 붙잡혀서 염라대왕에게 인도되어 갔습니다. 염라대왕이 관리들에게 시켜서 그를 데리고 지옥을 참관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실제로 지옥을 직접 보니 과연 부처님께서 경전에 설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옥의 세계는 밤낮이 따로 없고 항상 어두컴컴하고 침침하였는데 이것은 마치 안개가 꽉 낀 것과 비슷하였습니다.

 

런이팡이 지옥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은은한 경전 독송소리가 지옥 전체에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되어 흘렀습니다. 염라대왕이 독경소리를 듣자 곧바로 런이팡에 관한 장부를 가져 오게 하여 직접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의 수명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 어째서 네가 착오로 여기 데려왔느냐?”
그리고 명을 내려 그를 인간세상으로 되돌려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명을 받고 런이팡에게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독경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가기만 하면 그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윽고 회생하여 다시 살아난 런이팡은 집안 식구들과 스님들이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직접 본 지옥의 세계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울러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수입인 봉록을 대부분 불상을 조성하는데 시주하였으며 스님들을 청해다가 금강경을 1000여부를 사경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법보시를 하였습니다.

 

    5, 갑자기 죽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다

 

왕총꾸이(王從貴)는 당나라 때에 꽁안(公安)의 찬링춘(潺陵村) 사람입니다. 정원貞元 때에 그의 여동생이 평소에 금강경을 독송하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3일 후에 가족묘지에 매장을 하고 가족들이 분묘를 빠져 나가려는 때에 묘지 속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나왔습니다. 사람들이 황급히 묘지문을 열고 관뚜껑을 부숴보니 그녀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에 그녀를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가 기운을 차린 후 가족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내가 경전을 독송한 공덕을 아시고 나를 다시 세상으로 놓아 보내 주신 것입니다.”


    6, 경전을 사경함을 인해 살아나다

 

당나라에 라오쩌우(饒州)의 사마司馬벼슬을 하던 리위앤이(李元一)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원화元和 5년에 별채에 살던 그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시신의 얼굴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차마 입관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녀의 남편인 이안느(嚴訥)는 싼쓰(陝西)로부터 창후(蒼湖)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보니 자기 아내가 물위로 걸어서 자기 앞으로 왔습니다. 이안느가 매우 놀라며 그녀에게 무슨 일인가하고 물었습니다. 아내가 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죽었어요.”


이 말을 듣자 이안느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크게 일었습니다.

그녀가 또 말하였습니다.
“여기를 떠나 머지않은 곳에 찌앤푸춘(薦浦村)이 있어요. 그 마을에 이안(嚴)선생님이라고 계시는데 그가 신기한 비술을 가지고 있다하니 당신이 거기 가셔서 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간절히 청해 주세요.”

 

이안느가 찌앤푸춘을 찾아 갔더니 과연 거기에 이안선생이 있었습니다. 이안느가 아내의 이야기를 하면서 구해달라고 청을 하자 처음에는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안느가 간곡하고도 애절하게 매달리자 견디지 못하고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그대의 아내를 죽게 한 사람은 필시 왕장군王將軍일 것이오. 그는 자기를 모셔놓은 사당의 서북 쪽 기둥 밑에 있소. 그대는 금강경을 사경하고 또 스님들을 모셔다가 사당 안에서 독송을 청하시오.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그대의 아내를 보내 줄 것이오.”

 

이안느가 자신의 아내를 살려낼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준 엄선생에게 거듭거듭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재빨리 라오쩌우(饒州)에 가서 장인을 만나 뵙고 여태껏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였습니다. 장인인 리위앤이는 직접 금강경 1권을 사경하고 이안느를 불러서 함께 왕장군의 사당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함께 금강경을 7편을 독송하였습니다. 독송이 끝나고 집으로 가보니 그의 아내의 눈이 열리면서 눈동자에서 생기가 돌았습니다. 한참을 지나자 그녀가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당의 기둥 아래에 왕장군의 뼈가 묻혀져 있는데 그 옆에 한 자루의 단검이 있답니다. 왕장군이 당신에게 부탁을 하나 하였어요. 자기를 위해 개장改葬을 하여달라고요. 그리고 단검은 당신에게 증정한답니다. 당신이 금강경을 독송해 주신 공덕에 감사한다고 전해달랍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사당으로 가서 서북쪽 기둥 밑을 파보았더니 과연 사람의 뼈와 단검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안느는 단검을 소중히 잘 간직하고 왕장군의 유해는 별도로 좋은 자리를 택하여 잘 안장해 드렸습니다.
리위앤이는 그 후에도 금강경 수백 권을 사경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법보시하였다고 합니다.

 

    7, 가장 수승하고 제일의 공덕

 

  리치우이(李丘一)은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그가 평소에는 사냥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만세萬歲 통천通天의 첫해에 양쩌우(揚州)의 까요우(高郵)의 승사丞史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곧장 저승사자에게 이끌려서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염라대왕이 매우 화를 내면서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그대, 사냥하고 살생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다니... 그런 짓을 하면서 즐거움을 삼으면서 조금도 참회할 줄 모르다니!”

또한 명부에 모여있던 수많은 새와 짐승들이 사람의 말을 사용하면서 그의 죄상을 염라대왕에게 낱낱이 고발하였습니다.


“저 자는 우리를 잔인하게 죽인 원수입니다. 지금 마침 잡아 오셨으니 제발 우리가 시원하게 처분하게 해 주십시오.”

바로 그 때, 치우이를 붙잡아 온 쨔오츠(焦策)이라고 불리는 명부의 관리가 염라대왕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리치우이는 아직 죽을 차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에게 살해된 수많은 원혼들이 하도 애절하게 살고싶다고 부탁하여서 대질하여 증명하기 위해 임시로 붙잡아 온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치우이에게 물었습니다.


“흐음. 그러한가. 그러면 그대가 평생 동안에 혹시 조금이라도 선업善業을 지은 것이 없느냐?”

이 말씀을 듣고 치우이가 기억을 아무리 열심히 더듬어 보아도 생전에 지은 공덕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사냥개를 데리고 열심히 사냥한 것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생각해 내려고 세심히 찾아보다가 문득 생전에 금강경1권을 사경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생각난다고 보고를 하니 염라대왕이 듣고 나서 안색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칭찬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이 명부에서는 금강경을 가장 수승하고 제일의 공덕이 있는 경전으로 삼는다. 그대가 능히 사경했다고 하니 비록 한  번뿐이라 하여도 그 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염라대왕은 곧바로 쨔오츠(焦策)에게 명을 내려 그의 행적 가운데 경전을 사경한 것이 남아 있는지 실사를 해서 증거를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쨔오츠가 치우이를 데리고 웅장한 궁전의 대청 한쪽에 있는 아름다운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방안에는 부처님의 경전이 엄청나게 많이 모셔져 있었는데 모두 다 칠보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었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에게 직접 경전 하나를 뽑아보게 하였습니다. 치우이가 그저 손을 내밀어 경전 하나를 뽑아들자 바로 그것이 그가 생전에 사경하였던 그 금강경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는 그냥 종이에다 베껴 썼지만 명부에서는 아름다운 보석에 새겨져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챠오츠가 그와 함께 원래 궁전으로 돌아와서 염라대왕에게 치우이가 사경한 금강경이 있다고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치우이에게 죽음을 당한 각종의 새와 짐승들을 불러 치우이에게 감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철천지 원수이지만 엄청난 공덕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라 그 공덕을 찬탄함으로써 원결으로부터 해탈케 하려는 염라대왕의 배려인 것입니다. 새와 짐승들이 치우이에게 감사를 드리자 치우이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금강경 일백 권을 사경하여 그대들에게 회향할 것을 발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새와 짐승들이 매우 기뻐하며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염라대왕이 챠오츠에게 명을 내려 치우이를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를 데리고 성문 밖으로 달려 나가서 한참을 가다가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대를 위해 이만큼 노력을 했는데 그대는 무엇으로 갚을 생각이오?”
치우이가 말하였습니다.
“당신에게 300 관의 돈으로 갚으면 되겠습니까? 나의 능력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은 겨우 이것 밖에 안됩니다.”
챠오츠가 말하였습니다.


“설사 그대가 나에게 일만 관의 돈을 준다해도 나에겐 실익이 없소. 내가 그대에게 참으로 원하는 건 그대가 나를 위해 금강경 20부를 사경해 주는 것이오. 우리들은 몸이 명부에 사는 관리인지라 고통이 매우 극심하오. 만약 복력의 도움이 없다면 다른 생을 받는 것이 참으로 곤란하오. 그러기에 나를 위해 경전을 사경해 달라고 그대에게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오.”
치우이가 흔쾌하게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답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던 길을 계속하자 앞에 갑자기 깊은 낭떠러지가 나타났습니다. 그 낭떠러지는 매우 어둡고 깊어서 그 밑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와 난간에 서 있다가 갑자기 치우이의 등을 밀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이윽고 치우이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보니 자신의 몸이 관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관 밖에서는 통곡하는 소리가 가만가만 실낱같이 들려왔습니다. 치우이가 크게 외쳤습니다.    “곡하지 마라. 내가 살아 왔다!”

무덤 곁에 있던 집안 사람들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처음에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재빨리 손발을 다 동원하여 분묘를 헤집고 관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치우이가 팔팔 살아 있는 모습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집으로 데려오니 치우이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그동안 명부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가족들은 놀랍고 감탄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지고 있던 옷가지와 패물 등을 다 팔아서 스님들을 모셔다가 금강경을 사경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백 권은 치우이가 살해한 생명들을 위해 회향하였으며 이십 권은 저승의 관리인 챠오츠를 향해 회향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날 밤에 챠오츠가 또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나를 위해 사경을 해준 덕분에 좋은 곳에 가서 몸을 받게 되었소. 그래서 감사드리려고 이렇게 온 것이오.”
말을 마치고 이별을 고하고 사라졌습니다.

 

양쩌우의 장이長吏인 쒸에후아이위앤(學懷遠)이 치우이가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그를 불러다가 명부에서의 일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뒤에 리치우이는 황제로부터 진관5품晉官五品의 벼슬을 하사 받았습니다.

 

아울러 쨔쩌우(嘉州)의 초토사招討使로 파견되어 부임하였습니다. 그가 부임하러 가는 길에 찌쩌우(梓州)를 지나갈 때에 시원한 바람을 쐬러 야오따이(姚待)의 정자에 올랐다가 직접 야오따이에게 이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8, 염라왕으로부터 스승님이라고 불려진 루씨

 

당나라 개원開元 때에 루(盧)모씨가 후아쩌우(滑州)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두 명의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 가다 보니 명부로 들어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루씨를 데리고 염라대왕을 뵈러 가는 길에 한 채의 퇴락한 고택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루씨가 명부의 관리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집입니까?”
명부의 관리가 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집이오.”
명부의 관리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루씨가 또 물었습니다.


“그 대부의 성명이 어찌 됩니까?”
명부의 관리가 답하였습니다.
“리(李)모라 하오.”
루씨가 그 이름을 듣자 매우 놀랍고 기뻐서 명부의 관리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대부는 분명 저의 외종사촌형입니다. 좀 번거로우시겠지만 큰 소리로 불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명부의 관리가 안으로 들어가 불러보니 어사대부가 곧 밖으로 나왔습니다. 루씨와 대부가 서로 보자마자 매우 기뻐서 함께 얼싸안았습니다. 대부는 곧바로 루씨를 집안으로 데려다가 서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서로 평생 동안의 일을 대략 이야기하다가 루씨가 금강경을 독송한 얘기를 하는 대목에서 대부가 매우 칭찬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아우가 금강경을 독송한 공덕은 매우 매우 크고도 넓다네. 금강경은 여래의 성스러운 가르침 가운데서도 골수이기 때문에 여기에 깊고도 깊은 불가사의의 공덕이 있는 것이라네.”

 

그날 밤 9시 쯤 되자 루씨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의관을 갖추고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 사람들 뒤로 약간의 사람들이 그물 속에 갇혀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옷을 입지 않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겨우 머리만 내어놓고 있었습니다. 루씨가 외종사촌형에게 물었습니다.


“저들은 누구인가요?”
대부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만일 선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의관을 갖추고 있을 것이며 그물 속에 갇혀 있다면 죄업이 매우 깊은 사람일 것이네. 아우가 만일 저들을 위해 기꺼이 법을 베풀어 준다면 저들 모두가 하늘로 승천할 수 있을 것이네.”


루씨가 쾌히 응락하자, 대부는 아랫사람들에게 명을 내려 높은 자리를 마련토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루씨를 자리에 올라 앉게 하고 법을 베풀도록 청하였습니다. 루씨는 곧바로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하였는데 그가 막 금강경의 이름인 『금강반야바라밀경』하고 외우는 순간! 그물 속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한 찰나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금강경을 계속 외워 반쯤 독송하였을 때 어떤 이들은 비단옷을 입고 어떤 이들은 수레모양의 구름위에 올라 앉았습니다. 이윽고 금강경 외우기를 완전히 마치자 모두가 하늘 세계로 승천하였습니다.

대부가 이러한 상황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찬탄하였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의 공덕이 깊고도 깊도다. 아우의 공덕이 불가사의로구나!”
두 사람은 거듭 거듭 기뻐하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윽고 대부가 루씨를 데리고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니 염라대왕이 루씨를 ‘법의 스승님’이라고 존칭을 쓰면서  그에게 예배하고 공경히 우대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스승님의 공덕은 불가사의합니다. 그리고 수명은 아직 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거듭 금강경을 염송한 공덕을 칭찬하였습니다. 이윽고 명부의 관리를 한 명 파견하여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집에 거의 다다르자 명부의 관리가 루씨를 한 번 밀치니 그는 문득 다시 살아났습니다.

 

    9, 수명을 10년 늘리다

 

  당나라 정원貞元 때 찡쩌우(荊州)의 천숭사天崇寺에 찌뜽(智燈)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늘 금강경을 독송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그만 입적하시고 말았습니다. 제자가 스님의 손을 만져보니 살아계신 듯 따뜻하여서 차마 입관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7일 후에 찌뜽스님께서 다시 살아나시더니 명부에 들어갔던 일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습니다. 찌뜽스님께서 명부에 막 들어가자 염라대왕이 계단을 황급히 내려와 스님께 합장하고 공경히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염라대왕이 스님을 찬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 금강경을 독송하신 그 공덕이 불가사의합니다. 큰스님의 세수가 10년 더 남으셨습니다. 만약 능히 부지런히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신다면 반드시 생사를 벗어나 해탈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하였습니다.


“인간세상의 스님들이 정오가 지나서 율무와 약식藥食 등을 드신다는데 그것은 계율에 맞지 않은 일입니다.”
찌뜽스님이 답을 하셨습니다.
“「등보燈報」에 이르기를 계율 가운데 허가가 된 법조문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지 본래 부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금도 찡쩌우의 스님들은 정오가 지나면 약석藥石을 드시지 않습니다.

 

    10, 말린 연꽃이파리 3말

 

당나라 소종昭宗 때에 닝쓰(寧師)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어느 날 홀연히 돌아가셨습니다. 3일 후, 다시 살아나시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명부에 들어가서 재판을 받았는데 판관이 말하기를 내가 수명이 좀 남아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복록이 별로 없고 다만 마른 연꽃이파리 3말이 있다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평소에 내가 연꽃차를 늘 마시었는데 그게 3말쯤 되었던 것 같다. 그가 나에게 세상으로 돌아가면 마땅히 금강경을 많이 독송할 것을 권하였다. 왜냐하면 이 금강경은 명부나 인간세상에서나 고통에서 해탈하고 윤회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공덕이 무량무변한 경전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닝쓰스님께서 살아나신 이후 매일 연꽃 차를 늘 달여 드셨습니다.


    11, 경전의 힘을 의지하여 세상으로 돌아오다

 

당나라 때의 일입니다. 관직이 급사중給事中인 리꽁쓰(李公石)가 태화太和 7년의 겨울에 태원부太原府에 있는 행군行軍의 사마司馬로 임명되어 갈 때쯤이었습니다. 관직이 공목孔目으로 있던 까오쓰(高涉)에게 한밤중에 한 사람이 다가와 그의 등을 떠밀고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명부의 어느 한 지방에 도착하여보니 수백 명의 사람들과 돼지들과 양들이 아무데나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그를 데리고 어느 한 사람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그의 매부妹夫인 뚜쯔(杜則)였습니다. 뚜쯔가 말하였습니다.
“처남은 이전에 일찍이 나에게 양을 사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못하십니까? 내가 지금 이 때문에 고통을 몇 배나 받고 있습니다.”


까오쓰가 말하였습니다.
“그건 자네가 오해한 것이야. 당시엔 내가 자네에게 시장에 가서 다만 양고기를 사라고 한 것이지 양을 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네.”
뚜쯔가 더 할 말이 없어 그냥 있었습니다. 이 때, 양 한 마리가 나타나 어금니를 드러내어 뚜쯔를 물려고 하자 뚜쯔의 얼굴에 놀랍고 두려운 기색이 역력하였습니다. 이때 명부의 관리가 그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잠시 후, 까오쓰가 또 한 곳에 도착하였는데 대들보 위에 커다란 쇠고리가 박혀 있었습니다. 그 주변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형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옥졸이 죄인들의 머리를 포승줄로 묶어 그 쇠고리에다 매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가지고 살을 후벼내고 뼈를 발라내었습니다. 이것을 본 까오쓰는 황망하고 두려워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다가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까오쓰는 온통 두려움에 휩싸이자 눈을 딱감고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그가 일찍부터 잘 알고 지내며 의형제를 맺은 사이인 뚜안이씨안(段怡先)이 나타났습니다. 뚜안이씨안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자네가 금강경을 외우니 이것은 결코 잊혀져 없어질 일이 아니라네. 자네가 방금 전에  보았던 극심한 고통을 받는 곳이 깨끗이 없어져 버렸다네.

 

양에게 시달리던 자네 매부와 살이 도려내지던 사람들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되었단 말일세. 이것은 자네가 금강경을 외워 널리 선업을 쌓기를 힘쓴 때문이지. 이제 자네는 곧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일세. 이것은 자네가 금강경을 외운 엄청난 공덕 때문이라네.”

 

뚜안이씨안이 까오쓰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잘 배웅해주었습니다. 까오쓰가 다시 살아나서 날짜를 보니 겨우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문득 등 뒤가 아파서 만져보니 앞전에 명부에 들어갈 때 떠밀렸던 바로 그 부위였는데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멍은 며칠이 지나자 저절로 나아버렸습니다.

 

    12, 개의 몸을 면하다

 

짱우(張玉)는 싼쓰(山西)사람입니다. 그의 딸은 이름을 포얼(佛兒)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었는데 읽을 때마다 기쁨으로 꽉 차서 노래하듯이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채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살아나서 사후의 체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두 명의 저승사자에게 붙잡혀 끌려가다가 차링(叉嶺)고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갑자기 검은 이불로 두 사람을 싸서 천(陳)씨네 집으로 보내고, 화려한 꽃이불로는 그녀를 덮어씌웠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저 천씨에게 빚이 1500전 있다. 지금 저 사람에게 갚아야 할 때다.”

이 때, 홀연히 한 명의 푸른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와서 말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평소에 금강경을 독송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소.

 

 우선 그녀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오.”  저승사자가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라고 놓아주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어두운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 땅밑으로 떨어졌는데 깨어보니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의 아버지 짱우가 차링고개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과연 거기에 천(陳)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 가서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더니 며칠 전에 개가 새끼를 3마리 낳았는데 두 마리는 검은 색 털을 가지고 태어났고 한 마리는 화려한 색깔의 털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화려한 털을 가진 강아지는 이내 죽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13, 금강경을 듣고 소의 몸을 면하다

 

쪼우위에(鄒軏)는 명나라 때 쿤싼(昆山)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는 배우질 못해서 글자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사람 됨됨이가 의젓하고 솔직하며 정성스러웠고 후덕하였습니다. 그는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베푸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병이 들어도 치료할 수 없는 사람이나 먹지 못해 굶주린 사람들을 보기만하면 그는 모두 돈을 주거나 음식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금생에는 자기가 조금 넉넉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돕는다는 생각으로 그러한 선행을 하는 것이지 아깝다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길을 가다가 화주하러 다니는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께서는 길을 따라 거닐면서 금강경을 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쪼우위에가 짐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집중하여 잘 들어보았습니다. 그 외우는 경전의 구절 가운데 자주 나오면서도 귀에 솔깃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다.”는 4구절을 그의 마음속에 잘 기억하여 잊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로 쪼우위에가 중병에 걸리자 스님들을 모셔다가 금강경독송을 청하였습니다. 그의 아우인 쪼우쩐은 매우 총명하고 영민하여 문장으로 자못 그 이름을 날렸습니다. 다만 평소의 행위가 좀 제멋대로이며 인정이 각박한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신 따위는 믿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형을 대신하여 예배하고 참회를 하는 동안에 억지로 무릎을 꿇고 독경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의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을 읽어 내려갈 때에 그 내용을 듣고는 그의 내면으로 마음이 홀연히 깨우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합장하고 찬탄하였습니다.


“이 경전의 불가사의여. 우리들 유가儒家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이로다.”
이로부터 이후로는 쪼우쩐이 부처님의 법을 대하여 점점 신심이 늘어나서 삼보를 깊이 받들었습니다.

만력 11년 10월 10일에 쪼우쩐이 역병에 걸리어 혼미해지며 인사불성이 되었으나 유독 가슴만은 따뜻하였습니다. 10여일이 지나자 그의 병이 신속하게 깨끗이 나아 자리로부터 벌떡 일어났습니다.

 

말끔히 쾌차한 그는 식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아팠던 것은 나의 세상살이가 다하였기 때문이었다. 염라대왕이 나를 소의 자궁에 던져 넣어 13년을 살게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래서 억지로 호송되어 궁전 외곽지역으로 끌려 나갔다. 가다가 리쭈오팡(李作坊)의 집으로 가서 그 집의 늙은 암소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송아지로 태어났다. 그런데 송아지의 몸색깔이 온통 흰색이었다.


그 때 금강신이 나타나서 말하는 것이었지. ‘쪼우쩐이 최상승법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크게 신심을 내었었다. 한데 어찌하여 이러한 축생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는가?’ 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금강저金剛杵로 흰송아지의 머리를 두드렸다. 동시에 나의 머리를 누군가에게 세게 얻어맞는 듯 느꼈다. 지금 깨어나 보니 내 머리 꼭대기가 매우 아프구나.”

 

쪼우쩐과 그의 형 쪼우위에가 함께 천자가 사는 궁궐 밖으로 나가서 리쭈오팡(李作坊)의 집을 찾아보았습니다. 과연 리쭈오팡이 사는 집이 있었고 쪼우쩐이 말한 것과 같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흰색송아지 한 마리가 외양간에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쪼우쩐은 이것을 보고 매우 놀라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만일 저 번에 금강경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미 나는 소의 몸을 받은 그대로 죽을 때까지 쟁기를 끌고 무거운 것을 죽어라고 싣고 다녔을 것이다’하였습니다. 이로부터 부처님과 진리에 대한 신심이 더욱 공고해졌으며 친형인 쪼우위에와 함께 재계를 잘 지키며 금강경을 열심히 독송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 쪼우쩐은 미질도 하나 보이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어느 날에 쪼우위에가 집안식구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내일 정오 쯤에 성인들께서 나를 서방정토극락세계로 영접하러 오신다.”
과연 다음날 정오가 되니 신비한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함을 온가족이 환희에 차서 느끼는 가운데 쪼우위에가 목욕 후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14, 빛이 여러 자(尺) 돌다

 

유완잉俞萬盈은 당나라 때 찡쫑(京中) 사람입니다. 그는 성정이 매우 거칠고 맹목적이었습니다. 원화元和 7년의 일입니다. 하루는 집안에 한 마리의 큰 독사뱀이 나타나서 가족들이 해를 당하지는 않을까하고 모두가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자 완잉이 크게 분노하여 손에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독사를 때려 죽여버렸습니다. 게다가 그 죽은 뱀을 삶아서 잘라 먹었습니다.

 

독사뱀을 죽여서 삶아 먹은 후로 완잉은 곧 깊은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오래되지 않아서 전신에 통증을 앓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죽었어도 가슴 쪽이 따뜻하였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었더니 7일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완잉이 깨어나 몸을 추스르고 나서 사람들에게 사후의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가 처음에 명부의 사자에게 붙잡혀 갔는데 칠흙같은 어둠 속을 10여리를 달려가다가 혼자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의 뒤쪽은 둥근 빛이 둘러싸여 있었고 빛의 넓이가 4척이나 되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달려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입을 중얼중얼 하면서 경전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완잉을 불러서 자기의 빛의 범위 안에서 근접하게 달리게 하면서 자기소개를 하였습니다.


“저는 성이 짜오(趙)라고 합니다. 저는 자주 금강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의 몸 곁을 벗어나지 않으셔야합니다. 그래야만 저승사자가 당신 곁을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시키는대로 하고 둘러보니 어느새 저승사자가 사라지고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함께 열심히 한참을 달려갔더니 완잉의 집이 보였습니다. 완잉은 그를 향하여 절을 하고 감사의 말을 드렸습니다.
“만일 당신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결코 돌아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짜오가 그 자리에서 완잉에게 금강경을 따라 외우게 하였습니다. 완잉이 거의 짜오만큼 익숙하게 금강경을 외우게 되자 그는 이내 떠나갔습니다.완잉이 다시 살아난 후, 금강경 1권을 구해다가 거듭거듭 염송하였습니다. 걸렸던 병도 시원하게 확연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살생도 다시는 하지 않았으며 매일 금강경 50편을 독송하였습니다.


    15, 다행히 증명해주는 스님을 만나다

 

당나라 무덕武德 때에 창안(長安)에 쑤원쫑(蘇文忠)이라고 하는 한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부자이긴 하였지만 어질고 자비롭지를 못하여서 위세를 부리고 사람들을 업신여기기 일쑤였습니다. 살생을 밥 먹듯이 쉽게 하였고 털끝만치도 선행을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넘어져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인 런친(仁欽)의 행실도 그의 아버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제멋대로 돼지와 염소 등을 함부로 죽이곤 하였습니다. 그에 의하여 살해되어 명부로 가게 된 수많은 동물들이 그의 죄상을 낱낱이 염라대왕에게 고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명부에서 그의 혼백을 꽁꽁 묶어 결박하여 지옥으로 데려다 달라고 염라대왕에게 청을 올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런친이 무거운 병이 걸려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병이 쾌차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가 30세가 채 되지 않았는데 그에 의해 죽은 많은 짐승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내 목숨 내놔라’하는 환상에 사로잡히다가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죽어서 명부에 도달하여 보니 염라대왕이 그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대는 보라. 그대가 이미 전생에 선행을 닦고 복을 쌓아서 그 인연으로 금생에 재물도 많고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런데 상상외로 그대는 복덕을 아낄 줄 모르고 일시에 입과 배를 채워보려는 탐욕을 크게 부려 마음대로 살생을 자행하였다.

 

 그대가 죽인 생명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데 그들이 나에게 와서 그대의 죄상을 낱낱이 고하고 그대를 처벌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래서 곧바로 그대의 수명을 줄이고 전생에 지었던 복록도 다 지워서 여기로 붙잡아 오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그대는 재판받을 것도 없이 곧바로 칼숲칼산(劍樹刀山) 지옥으로 보내져서 그대가 스스로 지은 악업의 빚을 낱낱이 갚아야 할 것이다.”

 

런친이 듣고나서 마음속으로 놀라고 심장이 떨려서 털썩 주저앉아 자신을 구해 줄 것을 애절하게 청하였습니다.
“제가 생전에 비록 선행을 한 번 한 적 없고 덕을 쌓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하여보니 예전에 한 번 금강경 1권을 사서 안국사 절에 계시던 썬찡(神敬)스님께 보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스님께선 이미 돌아가셨겠지만 혹여 이것이 저의 죄를 조금 감면해 줄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명부의 궁전위에서 신비한 향기가 코를 찌르도록 퍼지더니 양손에 책 한 권을 받쳐 들고 한 스님께서 나타나시더니 계단 아래로 걸어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썬찡입니다. 내가 받들고 나온 이 책은 바로 런친이 일전에 보내 준 바로 그 금강경입니다.

 

내가 이 경전을 가지고 열심히 독경한 덕분에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런친을 위해 증명을 해주려고 이렇게 온 것입니다. 대왕께 청컨대 자비를 베푸시어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틀림없이 허물을 고치고 선행을 많이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난 염라대왕이 공경하게 합장하고 칭찬하였습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반야의 공덕이 불가사의 합니다! 그의 죄업이 소멸되었을 뿐만아니라 수명이 한층 50년이나 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명을 내려 런친을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런친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여러 마을에 널리 퍼졌습니다. 멀고 가까운 동리에서 그를 보려고 몰려와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는 경탄해 마지않았습니다. 특히 런친이 살생을 하여 생명을 해쳤다가 중병이 온 몸에 걸려버렸다는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그 자리서 앞으로는 살생하지 않고 방생하면서 선업을 짓고 덕을 쌓겠다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금강경 단 1권을 보시하였을 뿐인데도 죄업을 몽땅 소멸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 늘려주었다는 얘기에 또다시 모두들 경탄하면서 불가사의하다고 크게 찬탄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금강경을 독송하기로 발심한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런친이 반야의 힘을 의지하여 다시 살아나고 나서부터 지극정성으로 허물을 뉘우치고 선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크게 발심을 하여 금강경 1000권과 법화경 100권을 인쇄하여 널리 보시하였으며 스님들 100명을 청하여 공양을 드렸으며 아울러 수륙재를 베푸는 등 여러 공덕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 런친의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여러 가지 악업을 지었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네가 지은 공덕 덕분에 내가 너의 7대 조상들과 함께 천상계로 승천하게 되었다. 그리고 네가 만일 다시 밭100묘를 절에다가 시주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스님들께 재를 베풀어 준다면 너의 자손에게까지 그 혜택을 입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 아비의 한 가지 바램이다.”


런친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받들어 마음속으로 더욱 발심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선행하기를 즐기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복덕을 널리 쌓았습니다.

 

    16, 금강경을 자수로 놓다.

 

  탕쓰(唐時)는 명나라 때 후쩌우(湖州)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조카 딸은 하이닝(海寧)의 양윤호우(楊雲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나버려서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계(天啓) 갑자년甲子年에 그녀는 펑양(鳳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자수를 즐겨하면서 여가를 보내었는데 특히 꽃과 새를 수놓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재계를 지키면서 금강경을 수로 놓으려고 발원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이행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 1월에 그녀가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몸 전체에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땅위에 그냥 눕혀 놓았습니다. 그런데 홀연히 큰 소리가 들려오기에 그녀가 눈을 들어보니 손에 석장을 들고 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큰 신장神將이 앞에 나타나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금강경을 수놓겠다고 서원을 세웠던 일을 기억하겠느냐?”
그녀가 답하였습니다.
“기억납니다.”


금갑옷 신장이 손에 든 석장을 한 번 흔들고 나서 물었습니다.
“수를 놓겠느냐, 그만 두겠느냐?”
그녀가 말했습니다.
“수를 놓겠습니다.”


그러자 생각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나서 그녀는 두 번 다시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으며 곧장 금강경을 수놓은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를 놓는 그녀의 몸이 본래 매우 약했었지만 맹렬한 의지 때문인지 병이 도리어 침범하지 못하였습니다.


숭정崇禎 임신년壬申年에, 마침내 금강경의 전문을 수놓는 작업이 완성됨으로써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수로 놓은 금강경을 보니 마치 명필가가 붓으로 잘 쓴 것과도 같아서 그녀의 솜씨는 정교하면서도 세밀하여 쓴 것인지 수를 놓은 것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17, 웨이민이 수명 90세를 누리다.

 

  웨이민(魏旻)은 당나라 때 수이쩌우(遂州) 사람입니다. 정관貞觀 원년元年에 그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는데 며칠이 지난 후에 다시 살아나서 그의 가족들에게 명부에서의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자마자 저승의 사자가 와서 그를 명부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와 함께 명부에 잡혀 온 사람들이 수십 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명부전의 뜰 앞에 많은 사람들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염라대왕이 제일 먼저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은 일생동안 무슨 공덕을 닦으셨소?”
  스님이 회답하셨습니다.
  “제가 평생동안 한 것이라고는 금강경 읽은 것밖에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이 말을 듣자마자 합장하고 매우 공경하면서 찬탄하였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스님께서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신 일이 매우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당연히 하늘 나라에 계셔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이곳으로 오신 것입니까?”
  바로 그 찰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하늘의 천신들이 명부 가득히 꽃을 뿌리고 향을 흩으면서 나타나 스님을 하늘로 모셔 갔습니다.

 

  한편 차례차례로 판결을 받아 드디어 웨이민 차례가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생사의 장부를 검사하다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저승사자를 매우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오늘은 왜 이리도 실수가 많은 것인가? 이 웨이민도 잘못 데려왔구나.”


  하고는 명을 내려 저승사자에게 곤장 50대를 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웨이민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평생에 어떠한 공덕을 닦으셨소?”
  웨이민이 답하였습니다.
  “제가 평생에 경전을 읽지는 못하였으나 오직 유신(庾信)의 저술을 많이 읽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유신을 알아 볼 수 있겠소? 그는 대죄인이오.”

  염라대왕이 명부관리로 하여금 웨이민을 데리고 유신이 과보를 받고 있는 곳으로 안내하게 했습니다. 웨이민이 따라가 보니 한 마리의 검은 거북이가 있었는데 몸은 하나이지만 머리가 여러 개 달려있었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웨이민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거북이가 바로 유신입니다.”
  그곳을 떠나서 그들이 10여보를 달려가니 자신이 바로 유신이라고 밝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평생에 경전을 인용하고 근거를 가져다가 글을 지으면서 불법을 폄훼하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렇게 죄의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갖가지의 형벌을 받으니 그 고통이 차마 감당키 어렵습니다! 방금 전에 그대가 본 검은 거북이가 바로 나의 몸입니다.”하였습니다.

 

  저승의 사자가 웨이민을 데리고 다시 명부의 궁전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웨이민이 염라대왕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유신을 보고 왔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유신이 생전에 부처님과 진리를 폄훼하고 비방하였다가 갖가지의 형벌을 받으면서 지금 거북이의 몸을 받았소. 이것을 그대의 눈으로 직접 보았겠지요. 지금부터 그대를 세상으로 돌려 보내드릴 터이니 절대로 대승경전을 폄훼하거나 비방하지 마시오. 반드시 복과 지혜를 힘써 닦아야만 겨우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는 명부의 관리에게 명하여 웨이민을 세상으로 보내주게 하였습니다.

  웨이민이 다시 소생한 후에 염라대왕이 부탁했던 일이 뚜렷이 기억이 났습니다. 또한 스님께서 금강경을 독송한 과보로 천상계에 태어나는 것을 직접 본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이에 각 절을 다니면서 금강경을 구하다가 어느 절에 이르러서 어떤 스님 한분께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 대승경전을 가지고 있소.”

  웨이민이 그 말씀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즉시에 공경하면서 무릎을 꿇고 스님께 머리 조아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 경전을 얻었으면 하고 바라옵니다.”


  스님께서 그의 지극한 마음을 애민히 여기시고 그에게 금강경 1권을 주셨습니다.

  웨이민은 지극한 보배같이 여기면서 금강경을 수지하고 돌아온 후에 밤낮으로 염송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곧 경전을 능란하게 다 외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수지독송하기를 열심히하여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웨이민은 일찍이 명부에 들어가서 직접 한 스님께서 금강경을 읽고 천상에 태어나신 것을 목격한 일과 또 유신이 불법을 비방하여 지옥의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일을 수이쩌우 사람들에게 잘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수이쩌우의 사람들은 예전에는 야만적이고 의식이 뒤떨어졌는지라 사냥하고 살생하는 죄업을 짓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웨이민이 겪은 명부의 일을 들은 인연으로 모두들 크게 보리심을 발하여 누구도 감히 사냥하거나 살생하지 않았으며 아울러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4월 15일이 되자 문득 어떤 한 사람이 흰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웨이민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이 그대를 데려가야 하는 날이오. 그대가 명부에서 겨우 2년의 수명을 더 연장했었소. 하지만 그대가 세상으로 돌아온 후부터 금강경을 1만 편이나 수지독송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악을 끊고 선을 쌓게 권하여 널리 큰 공덕을 심었으니 이러한 한량없는 공덕 덕분에 수명이 또 연장되어 90세까지 사시다가 목숨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날 것이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히 생사의 고통을 요달하여 육도윤회를 벗어나게 함이니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는 자들이 적으니 그 이유가 어찌된 것일까요? 세간에서는 도덕을 높이 숭상하고 학문에 조예가 깊으나 불법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견해만 고집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견해를 고명한 것으로 삼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몸소 설하신 진리를 대하여서는 오히려 비평하고 검토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세속의 지혜요 변재요 총명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생의 팔난 가운데 하나가 됨이니 실로 가장 불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경전 1권을 얻으려해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쇄술이 잘 발달하여 경전뿐만 아니라 각종 서적들이 정미롭고도 완전하게 잘 만들어져 읽거나 열람하기가 아주 용이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오히려 그럭저럭 세월만보내고 게을러지게 하기가 쉬워져서 그러다가 순식간에 숨 한 번 그쳐 세상과 이별해버리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왕찌이王志一거사님의 시에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고향을 잊고서 타향을 연모하지 말지니라.
  쾌락이래야 잠깐 흡족을 줄 뿐
  만일 염라왕의 서신을 기다린다면
  거듭 생각하여 황망치 않도록 수행할지니.”

  원컨대 대중들은 이 시를 잘 참고하여 수행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18, 지옥의 형이 멈추어지다.

 

  링유법사는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서울에 살다가 대흥사로 출가하였습니다.

  장경 2년에 링유법사는 아무런 이유없이 갑자기 입적하셨는데 몸의 온기는 마치 살아있는 듯 따뜻하였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염을 하지 않고 있다가 7일이 지나자 과연 다시 예전처럼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스님께서 죽었던 체험을 말씀하셨습니다. 숨을 거두자마자 스님께서는 2명의 명부의 관리들을 따라가서 명부의 성에 도달하였습니다. 거기서 스님은 염라왕을 만나게 되는데 염라왕이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세상에서 어떠한 행업을 익히셨소?”


  링유법사께서 답하셨습니다.
  “빈승은 일생동안 늘 금강경을 익혔소이다.”
  염라왕이 듣자마자 얼굴에 기쁜 빛을 가득 들어내고 매우 공경하며 합장하고 찬탄하였습니다. 아울러 당신의 자리를 내어 드리면서 금강경 1편을 독송하여주기를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링유법사께서 금강경 독송을 시작하자 돌연히 각 지옥에서 형을 받아 지져지고 묶여 고초를 받던 일들이 일시에 멈추어버렸습니다. 금강경 독송을 마치자 염라대왕이 찬탄하여 말하였습니다.    “스님의 공덕이 한량없습니다. 그대의 수명이 이미 다하였으나 부지런히 금강경 독송하신 인연으로 특별히 10년이 연장되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가시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금강경 독송하기를 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링유법사께서 이야기를 마치시자, 곁에서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모두 합장하고 금강경의 수승한 공덕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라왕이 고구정녕히 간곡하게  금강경독송을 권하였음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19, 죄업도 소멸하고 수명도 연장하다

 

  당나라 인덕麟德 때의 일입니다. 쏭이룬宋義倫은 괵왕부虢王府의 전첨典籤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하였는데 3일이 경과하여 문득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는 명부에서의 일을 가족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이룬은 명부의 사자들에게 붙잡혀서 명부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염라대왕이 이룬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개와 토끼, 비둘기 등의 짐승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기에 수명이 단축되어 여기에 오게 되었다. 하지만 잘 살펴보니 그대가 평소에 금강경을 독송하였다는 것을 그대의 스승이 증명하여 준 바 있다. 그러므로 금강경을 독송한 인연으로 인하여 그대의 죄업이 소멸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명도 다시 연장되었다. 내가 그대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 줄 터이니 다시는 짐승을 잡아 술안주로 먹지 말고 금강경 독송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알겠는가?”

 

  이룬이 염라대왕을 향하여 감사의 절을 올리고 말씀드렸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룬의 눈에 몸에 가사를 두른 한 분의 스님이 보였습니다. 스님의 연세는 약 5,60세 쯤 되어 보였으며 명부의 궁전 안에 놓여 있는 좌탑위에 단정히 앉아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대의 스승이다. 특별히 생각하여 그대를 구해주었으니 그대는 염라왕의 말을 잘 되새기어 힘쓰도록 하라.”
  이룬이 매우 공경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결정코 잘 명심하겠습니다.”

 

  염라대왕은 특별히 이룬을 위하여 명부관리에게 명하여 지옥을 둘러보게 배려를 하였습니다. 그들이 먼저 확탕지옥을 들렀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쇠가마솥이 한 줄로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가마솥의 아궁이마다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면서 솥을 데우고 있었습니다. 한편 형을 받은 사람들이 그 가마솥에 넣어져 삶아지고 있었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며 외치는 절규는 차마 듣기 어려운 소리라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니 널따란 쇠로된 평상위에 수형인들이 눕혀져 있었는데 온 몸이 불에 굽혀져 시커멓게 타 들어가면서 외마디 소리를 슬프게 질러댔습니다. 이 때 이룬이 서쪽 편을 돌아보니 얼굴이 깡마르고 까무퇴퇴한 사람들 3명이 곁에 서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여인네의 차림새였습니다. 그녀들은 이룬을 향하여 자기들 머리를 때리면서 이렇게 하소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수백년동안 아무것도 먹질 못하였습니다!”
  이룬이 답하였습니다.
  “나에겐 그대들에게 나누어 드릴 음식이 아무것도 없구려.”
  이룬이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으론 그녀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찾아보려 하였지만 사실상 불가능하였습니다.

 

  또 계속해서 지옥을 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렀을 때, 이룬이 생각하기를 ‘시간이 많이 지나서 혹시나 가족들이 자신의 시신을 처리해 버리지 않았을까’하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자에게 이젠 집으로 가봐야겠다고 말하고서 서남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뒤에서 사자가 급히 부르며 다가왔습니다.
  “증서를 가져가는 걸 깜박하셨소. 그것이 없으면 지옥문을 통과하지 못하오.”


  그렇게 말하고는 그 자리서 종이에 글을 석 줄을 써서 이룬에게 주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룬은 그 글을 보아도 무슨 뜻인지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덧 지옥문에 다다라 문지기가 통과증을 요구하길래 주었더니 읽어보고는 곧바로 허가를 해주었습니다. 이룬은 지옥을 나오자마자 힘껏 달리다가 다시 깨어났던 것입니다.

 

 

 


 

 

출처/천불동 http://buddhasite.net/dharmadhatu/bang.php?table=pdspre&query=view&l=9467&p=1&go=8#view_first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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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불

최근 군부대에서 있었던 사건인데

우리 서원사에서 옛날 심원사(深源寺)자리에 가서 군 법당을 지었다.

그것이 있기까지는 그곳에 귀신이 출몰한다고 하여서 모든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군 법당을 지은 뒤 그러한 현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대대장이 바뀌고 대대장이 타종교인이다 보니 대대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그러자 우리도 관심이 소홀해졌 을 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그곳 군종병에게서 전화가 와서 귀신이 또 출몰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귀신은 타종교인에게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가서 법문을 하면서 염불을 하는 이는 제불보살과 신장의 보호를 받게 되니 염불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그때 타종교를 가진 사병이 와서 그 법문을 듣고 있었다.

며칠 후 그 사병이 화장실에 앉아 있었는데 뭔가 가 자신의 허벅다리를 잡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지고 들어갔던 촛불이 쓰러지면서 벽에 불이 붙더라는 것이었다.

희귀한 현상에 놀란 사병은 이것은 생시의 일이 아니라 꿈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꿈에서 깨어나고자 노력하며 앉아 있었는데 연기가 자신을 괴롭히더라는 것이었다.

 

순간 법문을 들었던 생각이 나서 큰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치자

자신의 허벅다리를 잡고 있던 그 힘이 없어지고 깨고 보니 꿈이 아니라 생시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뛰어나오자 병사들이 화장실의 불을 끄느라고 소동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이 사병은 염불자가 되었다.
이러한 실화들은 염불을 하면 제불여래와 신장들의 보호를 받는 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일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진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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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천도

전라북도 완주에 사는 30대의 가장이 1997년에 직접 체험한
일입니다 그는 결혼한 다음에도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는데

명(命)이 다한 어머니는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아들에 대한 애착이
다하지 않았음인지 저 세상으로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혼을
아들의 부인인 며느리의 몸에 의탁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귀신이 된 것입니다
귀신이 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며느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온 몸이 아픈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입을 빌어 아들과 손자의 일,
그리고 살아 생전의 한맺힌 이야기들을 쏟아놓았습니다

"너는 왜 나에게는 잘할 생각을
하지 않고 며느리편만 드느냐?
이 불효막심한 놈!"

차츰 집안이 엉망이 되어가자 견디다 못한 아들은 부적을 구하여
집안 곳곳에 붙이기도 하고 무속인을 불러 굿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떠나가지를 않았고 오히려 더 심술을 부렸습니다

"이놈아, 그런다고 내가 떠날 줄 아느냐?
네 처의 몸이 내 집이다.
이제부터 네 처가 아니라
나랑 같이 살자"

견디다 못한 아들은 완주군의 영험 깊은 사찰인 송광사를 찾았고
그 절의 주지스님은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열심히 불교를 믿지 않았던 아들은 염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다시 아내의 몸을 빌어
심한 욕설을 하는 것을 바라보던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한차레 외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야! 네 몸에서 빛이 난다야."
"예?"
"야. 너 지금 뭐했야?"

그때서야 아들은 자신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 아무아미타불을 외웠는데
영가에게는 광명으로 보였구나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렇게 아미타불의 위신력을 체험한 그는 어머니 영가의 시달림에서
잠시 벗어나 본 정신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울
것을 권하는 한편, 자신도 염불을 하면서 축원했습니다

"부처님, 업장이 두터워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고
아내의 몸에 의탁해 있는 불쌍한 어머니를 부처님의
무량한 광명으로 인도하시어 극락왕생케 하소서"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7일만에 어머니는 아내의
몸을 떠났고 지난 수개월 동안 온 몸이 아프다며 하소연하던

아내는 건강을 회복했으며 아들은 정성껏 "나무아미타불"염불을
외워 어머니를 좋은 세상으로 보내드릴 수 있었으며

아울러 집안이 평온을 되찾음과 동시에 그들 부부는 신심깊은
불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 여섯글자에
깃든 힘은 참으로 큽니다

아들은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는데 영가인 어머니는
광명을 본 것입니다 이에 확신을 얻은 아들은 정성껏 염불하여
어머니를 천도하였습니다

염불의 공덕이 이와같이 크거늘 염불을 마다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고 온 정성으로 염불하면
틀림없이 가피를 입을 수 있습니다.


출처: 미타신앙. 미타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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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광출판사에서 2008년에 출판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부록에서 발췌

 

중국의 원영 굉오스님의 권수염불문(勸修念佛文)을

불광출판사에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이란 제목으로

정원규님이 번역하여 내 놓았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 가피

 

 

1. 염불로 목숨을 구하고 광명이 비치다.

 

아래 이야기는 심장마비로 죽음의 순간에 주위 사람들의 염불과 자신의 염불로 다시 살아난 실화이며 이야기를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는 말씀은 나에게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나는 3년 동안 두 번이나 심장발작을 겪었다. 고비를 넘긴후 자세히 회상해 보니 그때 내가 받은 고통은 바로 내가 집에서 도살한 돼지가 겪은 고통과 같았다.

 

1993년 당시 진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던 장금문 선생이 나를 찾아와서 차를 좀 밀어줄 것을 청하였다. 나는 감기가 든 상태여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힘껏 차를 밀고나서 갑자기 심장에 격렬한 통증이 오면서 쓰러졌다.

장선생이 그때의 이야기를 나중에 해 주었다.

 

당시에 이미 나는 쇼크 상태여서 만약 즉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죽을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죽었지만 심식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심장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몸의 사대가 분리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장선생이 쓰러진 나를 차에 차에 실어 자신의 집으로 옮겨 놓고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장선생이 집안 사람들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와 서로 나누는 대화를 명료하게 듣고 있었다.

일찍이 내가 그 가족들에게 염불을 권해서 장 선생의 부인과 그 모친이 모두 와서 나를 위해 염불을 해 주었다.

 

그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들이 염하는 부처님 명호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허공에서 빛을 발하면서 나타났다. 즉시 내 몸도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사람마다 염불하면서 발하는 광명의 밝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장선생의 부인이 평소에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온 까닭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불현듯 나도 염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염불을 했다.그때 나는 자신이 직접하는 염불의 광명이 특히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염불할 때는 우리는 그 공덕의 7분의 1만 받는다고 한 『지장경』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 발작으로 심신이 압박받고 있을 때 나는 다행히 장선생 가족이 도와주는 조념염불의 광명과 인도로 정념으로 염불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고통을 덜고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너무 나빠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병원의 의사도 나를 보고는 이미 저승으로 갔으니 의학적인 처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직계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시술할 수 있다 하였다. 장선생은 그 말에 화가 나서 의사와

다투었다. 그는 직계가족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텐데 그러면 환자를 살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화를 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전심으로 염불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장선생 한 사람 뿐이어서 염불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즉시 나는 내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구름 비행기를 탄 것같이 빠르게 줄곧 떨어지는데 마치 한빙지옥에 이른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더 어둡고 추웠다. 온 몸을 칼로 베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내가 느낀 감각을 표현하자면 경전에 이른 것과 같이 바람칼로 온 몸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다행이도 평소에 염불을 열심히 해온 공덕이 있어서 위기 일발의 시점에 선근이 작용하였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 염불일념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슬프게 한구절의 ‘아미타불’을 토해냈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 내가한 염불소리가 커서 병원 사람들이 모두 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그 즉시 눈앞에 조그마한 광명이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나무아미타불’ 을 염하자 그 광명은 앞에서 더 크게 커졌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졌고 눈을 뜨고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면서 나는 저승의 귀신문에서 나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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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의 광명이 몸을 보호하다.

 

위서금씨는 29세 때 토성 승천사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남자다.비록 스님께서 염불하라고 가르쳤지만 그 자신은 좌선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바쁜 중에서도 좌선을 할뿐, 근본적으로 염불할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 후 대략 반 년 정도 지난 8월 26일 아침에 가스가 폭발하여 심한 화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전신의 55퍼센트 이상 화상을 입었는데, 대부분 상반신의 중요부위였다. 다음은 그분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다.

 

내가 정신을 잃고 혼미해지자 의식이 흐리멍텅 해지면서 주변이갈수록 음랭하고 사방이 검고 어두워 졌다. 마음속으로 점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나를 강제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너무나 공포스러웠고, 죽음이 두려워 살아나려고 발버둥쳤다.

 

화상을 입은 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인명무상이라는 말을 이때 체득 할 수 있었다. 몸을 제되로 가누지 못하는데 갑자기 부처님께 귀의할 때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염불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였다. 부처님께 목숨을 구해주실 것을 간절히 빌면서 필사적으로 염불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참 염불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광명이 온몸을 덮더니 한 순간에 모든 흑암과 한랭, 공포가 없어 졌다. 광명이 내 몸을 비추자 추운 겨울에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따뜻해지고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몸에서도 고통이 사라졌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나를 구하신 것이라고 느꼈다. 그 광명은 매우 강하고 밝았다. 마치 풍차가 돌 듯 “쏴, 쏴”하면서 천천히 회전하였다. 그리고 아기가 어머니를 의지하는 느낌처럼 친밀하고 포근하며,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온 세상이 광활하며 매우 가볍고 편안하며 자재하였다.

 

마치 부처님의 광명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염불했다.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고 염하는 가운데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남자와 여자들이 “그가 깨어났다. 그가 깨어났어!”라며 고함치는 소리였다. 그때 광명이 사라지면서 내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사실 가스폭발 며칠 전 나는 좌선을 하던 중에 이상한 일을 겪었다. 그나 좌선하면서 마음이 매우 고효해졌을 때 갑자기 두세 사람이 매우 흉악스럽게 나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들렸다.

“찾았다. 찾았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아주 부드러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원한을 품고 서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들이 천도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 좋지? 이 사람은 선근이 많으니 너희들은 그의 목숨을 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놓아주지 않을 태도이었다.

 

“안 돼! 안 돼! 우리들은 반드시 그를 찾아 빚을 받아야 마음이 편해져.”

그 여자가 다시 그들에게 그러지 말 것을 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들은 기어코 나를 해치려 하였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는 모골이 송연하여 계속 좌선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내용이 내 모릿속에 여전히 맴돌면서 매우 불안했다. 그리고 나서 2, 3일 후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길흉화복은 모두 것이 다 스스로 지은 업이며,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것이다. 절대로 원인을 만들지 않았는데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한 것은 틀림없이 전생에 그들에게 나뿐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본래 나는 죽었어야 할 과보인데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염불 공덕으로 무거운 업의 과보를 가볍게 받은 것이다.

 

<금강경>에도 나온 것과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독송하여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면 그것은 악도에 떨어질 중한 업이 가벼운 업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매우 다행한 일로 여겼다. 만약 그때 염불하지 못했으면 죽어서 틀림없이 삼악도에 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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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죽음의 액난에서 벗어나다

 

나는 금년으로 70세가 되었다. 40여년 전 항주의 유명한 항주성가인 보천구와 요상림에게 사주팔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두 사람 다 나의 수명이 51세라고 하였다.

 

나는 그말을 듣기 전에도 본래 인생이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온갖 풍파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서 속수무책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덕극이 쓴 <기도지귀>를 읽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방법은 바로 보리심을 발하여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 후 날마다 ‘십념염불’을 지속하였다. 당시 나는 내 수명이 51세라는 예언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1950년 나는 큰 국영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날마다 업무와 갖가지 학습, 운동 때문에 비교적 긴장된 생활을 하였지만 남몰래 염불을 지속하면서 ‘번개가 쳐도 움직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 ’견고한 염불심을 갖는 경지에 이르렀다.

 

1971년, 내 나이 51세가 되는 해였다. 그해에 나는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몸이 좋지 않았다. 1분당 심장 박동수가 100까지 자주 올라갔고 또 치질로 대량의 출혈이있었다. 그럼에도 운동과 갖종 학습 일정이 빡빡해서 치료받을 갈 시간초자 없었다.

 

그해 4월 3일 저녁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잠을 잘 무렵 평소 습관대로 침대에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열 번을 묵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는 것이었다. 마치 심장이 몸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면서 가슴이 심하게 답답해졌다. 원래 내가 머물던 기숙사의 전등은 밝았는데 갑자 기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내 앞에서 10미터 정도 되는 곳에 귀신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그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계속해서 염불에 몰두하였다. 약 2분 정도 후에 금색 찬란한 모습이 나타났는데 당시의 장엄한 모습은 정말 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러자 시커먼 귀신의 그림자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 오른 쪽 위에서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 부처님의 오른손을 내린 장엄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배를 올리지 않고 여전히 합장한 채로 염불을 계속했다. 염불소리에 따라 심장 박동이 점점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비몽사몽 속에서 기숙사의 전등은 여진히 밝게 빛나고 있고, 나는 합장한 채 입으로 염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보다 더 불가사의 한일이 일어났다. 치질 때문에 대량으로 출혈이 생겼던 곳에 아무약도 쓰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출혈이 멈추고, 심박수도 분당 80회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부처님의 가피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심 염불은 단지 극락왕생만을 위한 것인 줄로만 알았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부처님의 대자대지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몰랐다. 일심으로 염불하는 삶이 큰 재난이나 병고를 만나게 되면 아미타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감응하여 가피를 내려 액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평상시에도 이러하니 임종에 이르러 일심으로 염불하면 당연히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염불법문은 만 명의 사람이 닦으며 만 명의 사람이다 왕생하며, 만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인광 대사의 법문을 나는 지금 더 깊이 믿으며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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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귀를 물리치다.

 

석현진 스님은 사천성 출신으로 자는 서귀이다. 출가하기 전에 현의 현장을 역임하는 동안 많은 토적들을 살육하였다. 출가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영파 자계의 오뢰사에 머물때의 일이다. 매일 밤 많은 토적들이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흉폭하게 분노하면서 창을 들고 자기에게 목숨을 요구하는 꿈을 꾸었다.

 

그때 그는 매우 두려웠지만 용맹심을 발하여 오로지 아미타불 염불에 전념하였다. 밤낮으로 쉬지않고 정진하여서 마침내 꿈속에서도 염불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꿈에 토적을 보면 염불로써 그들을 교화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츰 꿈에 나타나는 토적들이 순화되더니 수개월 후에는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진 스님과 가장 오랫 동안 함께 지냇는데, 그는 자주 자신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염불공덕의 불가사의함을 찬탄하였다.

 

 

홍일대사가 직접 듣다 <정종문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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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낫다.

 

사람의 질병은 대부분 업보 때문에 생긴다. 업보가 다 하지 않았더라도 병이 빨리낫기를 원하면 부처님의가피를 구해야 한다. 세상에는 실력 있는 명의들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불보살님께 기도하여 치유된 사례가 많이 있다. 최근에 소료 군과 같은 경우가 염불을 통해야 구제된 사례이다.

 

소료악 군은 항주출신으로 19세때 상해에서 중병을 앓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의사가 진단을 해보더니 이병을 치료할 희망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소군이 병원에 입원한 지 7일 후 저녁에 갑자기 소 머리에 말의 얼굴을 한 귀신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의 침대 곁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병실 안은 전등 빛이 매우 밝았고, 그의 정신도 명료 하였다. 그는 이 귀신들이 자기를 잡으러온 것이며, 자신이 곧 죽게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일어나 생각했다. 만약 귀신이 있으면 받드시 불보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무아미타불”하고 큰소리로 염불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염불을 시작하자 갑자기 귀신들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감히 그의 몸 근처에는 접근하지 못하였다.

 

소료 군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의 염불이 정말로 부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귀신의 습격도 능히 물리치는 것을 보고는 일심으로 계속 염불하였다. 귀신들이 그를 붙잡지 못하자 나중에는 염라대왕이 직접 나왔다. 염라대왕은 녹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천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미타불 염불소리에 수레가 멈추어 염라대왕도 소 군의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위급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군은 염불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의사들이 할 수 없이 그를 다른 병실로 옮겼다. 그 뒤에도 그는 계속 염불을 했는데, 약 5일이 되자 갑자기 금칠 차란한 광명이 나타났다. 마치 하늘의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래로 내려 오면서 차츰 커지 더니 온 세상을 비추었다.

 

그 광명 속에 한분의 금빛 부처님이 공중에 우뚝 서 계셨는데, 부처님의 발 아래에는 금색 구름이 있고 부처님의 몸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부처님은 왼손에 염주를 들고 합장하신 채 소군을 마주보시며 미소 짓고 계셨다. 더 없이 자비로운 얼굴에 매우 친근한 모습이었다. 아미타 부처님이셨다.

 

귀신들의 무리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잠시 후 부처님의 모습도 사라졌다. 소군은 아미타부처님의 강림을 친견하고 흥분했지만, 병으로 인한 고통은 이미 사라졌다. 그 다음날 퇴원하였는데, 마치 정상적인 상태로 다 회복된 것처럼 몸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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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양이의 원한을 풀다.

 

1998년 안휘성 구화산 천지암에 주석하는 비구니 태 스님이 나를 찾아아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였다. 스님은 최근 매일 밤 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자신의 목숨을 요구한다고 했다. 너무나 두려워서 꿈에서 깨고 나면 그 밤에는 더 이상 잠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신이 어릴 때 개구쟁이라서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 죽인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호북성에서 출가하여 이곳 구화산으로 왔고 그 일은 이미 수십 전 전의 일인데 고양이가 잠을 잘 때마다 자신을 찾아온다 하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돈을 들여 큰 절에 가서 큰스님을 청하여 구병시식이나 천도재를 올리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었다.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이 존경심과 청정심으로 하면 천도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무성의하게 대충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스님이 직접 그 고양이에게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를 이야기하고 염불해주어서 극락왕생하게 하는 것이 더 났습니다. 스님에게 원한을 품은 고양아가 극락왕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 원한이 풀리겠습니까?

 

그 고양이는 수십 년 동안 당신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먼 곳으로 와서 출가하고 절에 머물지라도 그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젊어서 기가 왕성할 때는 고양이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늙어서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쇠해져서 꿈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염불왕생을 구하지 않으면 스님이 임종을 맞았을 때 더 공포 스런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들이 세세생생 맺어온 원한의 상대가 어찌 이 고양이 한 마리뿐이겠습니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을 것인데 우리가 언제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사대비하신 아미타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이런 죄의 근기를 미리아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발원하셨습니다. 수많은 겁 동안 수행을 쌓은 공덕이 “나무아미타불”여섯 글자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명호를 염하는 중생은 모두 극락왕생하여 성불하게 되는 공덕입니다. 단지 우리들은 일심으로 믿고 아미타 부처님께 의지하면 됩니다. 여섯 글자의 명호를 염하기만 하면 반드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그 고향이도 구제하여 극락세계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마음은 평등하며 사람과 축생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떤 이가만약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극락정토를 수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더욱 강할 것입니다. 무엇 대문에 수십 년 동안 괴롭게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목숨을 요구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스님이 스스로 믿으며 염불하고 또 고양이에게도 그렇게 설법하여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십시오. 그러면 둘 다 모두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니 원한은 일부러 풀지 않아도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천도불사가 아닙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직접 천도하시어 서방정토에서 성불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략 이렇게 말하였다. 또한 “시방의 중생이 만약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는 아미타 부처님의 대비의 서원과 “십념이라고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하는”도리를 반복하여 말하였다.

태 스님은 매우 기뻐하면서 물었다. “내가 돌아가서 염불할 때 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놓고 이렇게 설법해야 합니까?”

 

“그렇게 해도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고양이는 그림자처럼 수십 년 동안 당신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전에 스님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세우지 않아도 스님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 적이 없습니다. 인과 는 허망하지 않아서 마차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방금 우리가 나눈 대화를 고양이는 모두 남김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고양이를 위해염불하고 아미타 부처님께서 자비로 제도하시는 도리를 가르치면 고양이가 반드시 듣고 극락왕생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3일이 지난 후 태 스님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기쁨이 충만하였다. 나를 만나고 사찰로 돌아갔던 그날 저녁부터 고양이가 오지 않았고, 그래서 며칠 동안 잠을 잘 잤다고 하였다. 태 스님은 겨우 고양이 한 마리를 물에 빠트려 죽게 하였는데 줄곧 붙어서 이 먼 구화산까지 따라왔고 수십년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중생의 업력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로움 가득한 서원을 듣고 나서 바로 고양이가 마음에 맺힌 원한을 풀었으니, 부처님의 서원과 광명이 가득한 여섯 글자의 명호는 더욱 불가사의하다.

 

성안 법사 진술, 성소법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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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옥의 괴수를 물리치다.

 

인간세계에 살면서 지옥에 가서 업무을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대략 십수 년 전 소주에 홍 거사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열 몇 살 때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집안 사람들이 급히 의사를 청해 진료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몸에서는 여전이 열이 높음과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인사불성일 뿐 죽은 것은 아니라서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다. 3일 정도 지나자 그는 저절로 깨어났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그는 저승에 다녀왔다고 한다. 두명의 저승사자가 찾아와서 부탁하여 지옥에 가서 공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인간세계로 돌아와 깨어난 뒤에 이 일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이후 한 해에 최소한 십여 차례는 지옥에 다녀왔고 그때마다 2, 3일 정도 걸렸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자, 그의 가족들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홍 거사가 저승세계의 관리라는 것도 알게되었지만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지옥의 중생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친분 있는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조금 내비치면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경건한 염불 수행자로 살았는데, 한 번은 가족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구절의 “아미타불” 염불이 인간세계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만 지옥에서는 그 효력이 매우 크다고 하였다. 그가 겪은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지옥에서 공무를 보는데, 한 번은 갑자기 하얀 수염을 기른 스님 한 분이 나타났다. 그 스님은 모습이 매우 장엄했는데, 손에는 불자를 들고 염라대왕전으로 왔다. 그 스님을 본 염라대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 스님은 지옥에서 막힘없이 어디나 다니셨는데, 지옥 중생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시면 수시로 염불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단지 스님이 입에서 “나무아미타불” 한 구절만 나오면 지옥 중생에게 고통을 주는 형구가 모두 일시에 정지되는 것이었다.한번은 한 무리의 험상궂은 야수가 어떤 사람을 쫓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평소 홍 거사가 알던 사람이었는데, 공포에 질려서 필사적을 달아나고 있었다.

 

 야수에게 쫓기던 그 사람이 홍 거사 쪽으로 달여왔다. 바쁘게 엄무를 보고 있던 홍 거사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했다. 흰 수염을 기른 스님이 하시던 염불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염불이 효력이 있었다. 쫓아오던 야수의 무리가 즉시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이 일로 홍 거사는 염불의 수승함을 잘 알게 되었고, 후에 매우 경건한 염불 수행자가 되었다.

 

백성장로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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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임종시 원귀를 물리치고 왕생하다.

 

대만 용해시 각미진 왕강촌에 사는 농민 곽아장의 극락왕생 이야기이다. 곽아장 거사는 금년(1995년) 음력 8월 26일에 60세의나이로 염불을 하면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에 힘쓰면서 살아왔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부터는 농사를 그만두고 양어장만 경영하였다.

 

그는 위장이 나빠서 자주 고생했는데 금년 들어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위암 말기로 판명되었다. 8월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통증 때문에 고통이 심해서 2시간마다 진통제를 맞았다. 병고에 시달리다 보니 성미도 호랑이같이 사납게 변했다. 그런데 그는 자꾸 바다 괴물이 보인다고 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의 아내조차도 문 앞에 원귀들이 머리를 기웃기웃 들이미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러던 중 다행이 염불수행을 열심히 하는 스님을 뵙게 되었다. 스님은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아미타불 염불을 권했다. 하늘이준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면 조속히 회복할 것이고, 만야 명이 다했다면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으며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들은 곽 거사는 매우 기뻐하며, 염주를 돌리며 전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염하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모두 그를 도와서 조념염불을 했다.

 

염불을 시작한 뒤 암으로 인한 통증이 많이 줄어들어서 진통제 주사도 하루에 2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물고기 형상을한 남자 괴물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닷세 정도 지나고 나서는 침대에서 가볍게 내려와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방 한 쪽 벽에는 세 분의 불보살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상이었다. 그런데 그 세불보살상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인간세계를 떠날 때가 다가온 것을 알았다. 그는 침대에서 꿇어 앉아 합장 자세를 취했는데, 일생 동안 한 번도 이런 자세를 한 적이 없었다. 합장한 채 염불을 하는 그이 얼굴에는 점차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평안하게 극락정토에 왕생한 것이다.

 

숨을 거둔지 8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몸의 온기가 식었지만 머리 위 백회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던 배도 쑥 들어갔다. 염을 하기 위해서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힐 때 온몸의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얼굴은 마치 살았는 듯 하였다.

 

이런 상서를 보이는 것은 곽 거사가 극락정토에 왕생했다는 증거이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온 가족들의 꿈 속에 그가 나타났다. 평안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가족을 만나러 온 그의 뒤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세분 불보살님이 계셨다.

 

임우천 씀 . 199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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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숙세의 원혼을 제도하다.

 

보길 스님은 대만출신의 비구니스님이다. 이 스님은 출가하기 전 속가에 있을 때 나쁜 말로 남 욕하기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과 악연을 맺었다. 나중에 신죽 청초호의 영은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두 눈을 모두 실명하여 장님이 되었다. 70여 세가 되었을 때 다시 병이 둘었는데, 온 몸이 퉁퉁부어 올랐다. 그래서 무상 선사가 폐관수행하고 있던 금강동으로 찾아가 울며 하소연하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습니다. 저를 고해에서 구제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무상 선사가 부탁을 듣고 보길 스님의 거처에 와보니 소변을 누고 치우지도 못하여 매우 더럽고 악취가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보길 스님이 울면서 말했다. 10여 명의 원귀가 밤낮으로 자기를 때리는데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심지어 그 원귀들의 이름까지 말하며 구제해주기를 간청했다. 보길 스님에게 속가 남동생의 부인이 병문안을와 있었다. 무상 선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의 시누이 되는 저 스님이 부르는원귀들의 이름을 아십니까.”

“모두 스님이 출가전에 해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 사람들이 원혼이 되어 나타나 스님을 때려서 온몸이 부어오르고 살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무상 선사는 보길 스님을 위해 방을 청소하고 침대 한 가운데구멍을 내고 그 아래에 통을 놓아 대소변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보길 스님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울고 짖으며 몸부림치다가 그 구멍속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무상스님이 간곡함 음성으로 말했다.

“스님이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염하며 서방극락정토왕생을 구하여야 비로소 이고득락 할 수 있습니다.”

“눈 앞이 캄캄해서 염불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개 하는 염불을 따라서 하십시오.”

그렇게 염불을 시작했는데 한 시간 가량 지나자 보길 스님이 갑자기 기쁨에 찬 얼굴로 말했다.

“지금 제 앞에 밝은 광명이 보입니다. 나를 때리며 괴롭히던 그 10여 명의 원귀들이 저쪽에서서 웃고 있습니다.”

 

그때 그 원혼들이 보길 스님의 몸을 빌어서 말했다.

“무상 스님의 자비에 감사 드립니다. 지은 죄업이 막대한 저 앞 못 보는 노인네가 뜻밖에 저희들을 고통에서 구제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무상 스님이 말했다.

 

“원한은 풀어야 되지 맺으면 안 됩니다. 당신들도 함께 따라서 아미타불을 염하십시오. 그러면 죄업이 있더라도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비로소 생사의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길스님에게도 경건한 마음으로 따라서 함께 염불하게 하였다. 다시 한 시간 남짓 염불을 계속 하였다.

 

“지금 온 천지에 광명이 가득합니다. 저 구름 위에 흰옷을 입은 성스러운 분들이 우리들을 영접해서 서방극락세계로 갑니다.”

보길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합장한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평안하게 왕생하였다. 부풀어 올랐던 스님의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 오고 조금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상서가 보였다.

 

-염불감응견문기-

 

죽음에 이르러 고통에 핍박받고 원혼이 나타나니 

어떤 법으로 구제할 수 있는가?

 

오직 부처님꼐 의지하여 염불할 뿐이네.

부처님께서 광명을 비춰 보호하시니

 

몸과 마음이 온안하고 나와 남이 모두 제도되는구나.

염불을 몰랐다면 지옥에 떨어졌으리

.

삼악도를 전전하며 어느 떄나 구제될 수 있을 것인다?

염불공덕 불가사의하니,모두 아미타불의 대비 원력이네.

                             

 - 염불감응견문기- 를 지은 혜정스님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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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전생에 도살한 소의 혼령을 제도하다.

 

사천성 남부에 사는 유정밀거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섭씨아주머니의 이야기이다. 섭 씨는 자신이 과거 생에 도살한 96마리 소의 귀신 때문에 자주 고통스런 발작에 시달리고 있었다.

 

1932년 2월 유거사 집에서 일을 돕고 있던 중 갑자기 심한 발작이 일아났다. 섭 씨의 온몸에 붉은 부스럼이 돋아났는데 통증과 가려움이 몹시 심했다.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은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가 강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주의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막아서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하고 소동을 부리면서, 자신이 전생에 소를 도살한 것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유정밀 거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이유를 섭 씨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주인님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십니다. 저는 섭 씨가 아닙니다. 저는 먼 과거생에 섭씨에게 죽임을 당한 소입니다. 그래서 지금 섭 씨에게 목숨 빚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 거사가 그들을 타일렀다.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째서 섭 씨 한데 죽은 것만 생각하느냐? 사실은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그 과보로 소로 태어났고 또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무슨 이유로 너희 목숨을 빼앗았겠느냐?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인 것은 잊고, 단지 그녀가 너희를 죽인것만 기억하는구나. 이렇게 원수를 찾아 돌고 도는 것을 고통스런 윤회라고 한다. 영원히 서로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그 말씀이 옳다면, 저희들이 잘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목에는 아직 피가 흐르고 칼에 잘린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고통 때문에 섭 씨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걱정마라. 내가 그 고통을 멈춰주겠다.”

우 거사는 찻잔에 차를 반쯤따라서 감로주를 세 번 외운 뒤 섭 씨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그러나 섭 씨는 찻잔을 들지 못했다.

 

“소의 발굽이 누르고 있어 찻잔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찻잔을 들어 먹여주었다. 섭씨는 얼른 차를 받아 마시드니 기뻐서 말했다. “정말로 신묘한물입니다.”

 

그녀는 목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미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만지면서 말하기를 “소 발굽도 이미 벗어버렸습니다. ”다시 머리를 만지면서 “뿔도이미 없어졌습니다.”

유거사는 이어서 윤회의 고통을 설명하고 또 극락세계의 안온한 즐거움과 영원히 생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나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느냐?”

“거사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어찌 원치않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의 죄업이 깊고 무거운데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발원하여 일심으로 염불하며 저극락세계를 흠모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아미타부처님을 청하여 너희들을 영접하게하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오랜 동안 먹이를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프니 먼저 먹을 것을 주세요.”

 

우 거사는 그렇게 하기를 허락하였다.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과 밥을 담아 변식진언을 일곱 번 염하고 나서 대나무 밭에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의 혼령들이 말했다.“

우 거사는 곧 빈 공터에서 향과 초를 사르며 아미타 부처님을 공손히 청했다. 그리고 왕생주, 반야심경, 대비주와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였다.

 

함께 지켜 보던 유거사의 처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보아라. 아미타부처님께서 장육금신으로 오셔서 높이 서계신다. 모두 빨리 무처님을 따라 가거라!”

“너희들은 극락정토가 보이느냐?”

“보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하냐?”

 

96마리 소의 혼령들이 극락정토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정토경전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말했다.

“저희들은 여러해 동안 섭씨를 괴롭혀서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거사님의 가르침과 인도로 저희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원한이 하루아침에 녹았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섭 씨도 아미타불염불을 일심으로 하여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랍니다. 거사님과 거사님의 가족들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저희들도 반드시 부처님을 따라서 맞이하겠습니다. 오늘 저희를 위해 염불해주신 것은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후 조용해졌다. 얼마 후 섭씨 아주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말하였다.

“내가 마치 꿈속에서 성에 갔다가 서쪽 거리로 가는데 한 무리의 흉포한 소때를 만났습니다.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갑자기 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 경치가 변했는데, 아름다운 숲 가운데 평평한 풀밭이 있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갑자기 밥 냄새가 강하게 나더니, 소떼가 숲에서 밥을 먹으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 후 다시는 소의 혼령이 섭씨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리고 섭 씨도 채식 하면서 열심히 염불수행을 하였다. 유정밀 거사는 1934년 봄 서강에서 출가하였다. 법명이 혜정이다. 위의 이야기는 출가하기 전에 겪은 일은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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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어떤 비구스님의 전생 기억

 

 적공(寂空)스님의 전생과 극락왕생발원 

 

여러 수행자들이여, 이글은 내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가르침 청하여 시방삼세의 모든  본존이신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것으로 진실하여 하나의 거짓도 없음을 밝혀둔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여러분이 나의 일을 거울 삼아 교훈을 얻어서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이다. 여러분이 하루라도 빨리 불도를 수행하려는 바른 마음을 일으키고 큰 보리심을 발해서 용맹정진하고 계를 지키며 일념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여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육도윤회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란다.

 

또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곧바로 보리를 증득하고 무상정등정각을 이룬 뒤 각자의 원(願)에 따라 다시 돌아와 여섯 가지 윤회의 세계에 몸을 나투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기 바란다.

 

 

나의 속가 성은 이(李)씨이다. 1989년 3월 해공(海空)법사를 은사로 불문에 귀의하였고,적공(寂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불가에 입문한 뒤, 하루하루 예불과 좌선을 열심히 하였다. 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늘 경전을 가까이하면서 불법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1992년 8월 25일 저녁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 정좌하고 있었다. 저녁 10시 경 갑자기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서 나 자신의 과거 생의 모습을 휜히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너무나 슬퍼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열심히 불법을 공부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94년 8월29일 저녁 법당에서 염불을 할 때는 더 나아가 속가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의 과거 생의 모습까지 휜히 알게 되었다. 그 후 숙명(宿命) 즉, 과거생의 모습과 윤회에 대에 여러 차례 불보살의 증명을 얻게 되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과거생의 기억은 여러 차례 증명을 통해서 입증된 것을 비로소 감히 밝히는 것이다.

 

600년 전 나는 출가한 비구였다.

나는 20세에 출가하여 삼당대계(三堂大戒)를 받고 50여 년을 수행하였다 .선한 업도 많이 지었지만, 속세의 일에 탐욕을 일으키고 연연하여 인간계와 천상계의 복된 과보를 바라고, 정토왕생은 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육도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삼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으며 빚을 갚아야 했다.

 

스님으로서의 삶을 마친 뒤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향락을 탐하게 되었는데, 온 종일 술과 여자를 탐하며 지내는 생황을 하였다 .내 주변에는 여덟 명의 시녀가 있었는데, 비록 여색을 탐하지는 않았지만 명예를 좇고 재물에 욕심내고 이익을 탐한 과보가 커서 악업을 지었다.

 

하지만 전생에 출가수행한 공덕이 크기 때문인지, 목숨을 마친 뒤에 벼슬아치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뒤 많은 병사를 거느리는 장군이 되었는데, 그 풍모가 당당하고 늠름하였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었다. 부귀영화가 넘쳐서 다 누리지 못 했고, 산해진미도 또한 넘쳐서 다 먹지 못했다.

 

온 종일 주지육림 속에서 보내곤 했는데, 당시 24명의 시녀를 옆에 두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면서 다시금 온갖 나쁜 업을 짓게 되었다. 특히 병사들에게 명령 내려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람의 머리를 벤 뒤 그 시체를 강이나 개천에 버렸고 수풀에 숨은 적군도 모두 찾아내어 죽이는 등 많은 죄업을 지었다.

 

그리하여 그 몸을 벗은 뒤에는 삼악도에 떨어져 열 번을 윤회전생하면서 악업의 과보를 갚아야 했다.

 

먼저 세 번은 두꺼비의 몸을 받았다.

왜냐하면 장군으로 살때 많은 사람의 머리를 베어 죽이고 그 시체를 개천에 버렸기 때문이다. 그 과보로 머리 없는 두꺼비로 태어나 수시로 막대기에 맞고 낚시에 걸리고 복부가 뒤집혀서 물에서 죽어서 그 시체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났다. 심지어 근육이 뽑히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를 갚았다.

 

이렇게 세 번 두꺼비의 몸을 받은 뒤, 다시 뀡의 몸을 네 번 받았다.

그 이유는 장군으로 살 때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두려움에 떨면서 수풀에 숨어있는 적군을 찾아내서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입의 쾌락을 탐하여 온종일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살았다. 그 과보로  뀡의 몸을 받아서 창에 찔리고, 칼에 베여서 지지고 삶기고 볶이는 고통을 당하면서 빚을 갚아야했다.

 

네 번이나 뀡의 몸을 받고도 악업을 다 갚지 못하여, 다시  돼지 몸을 세 번 더 받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먹기만 좋아하고 일하기는 싫어했기 때문이다. 시녀들이 밥을 가져오면 입을 벌려 먹고, 옷을 가져오면 손을 벌려 입히게 하고, 늘 고기 먹을 생각만 하면서 나쁜 업을 지었다.

 

그 때문에 돼지의 몸을 받아서 먹다 남아 버리는 음식과 상한 음식을 먹게 되었고, 채찍이나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이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천 번 만 번 칼에 잘리고 뜨거운 솥에 들어가서 갖가지 고통을 당하였다. 두 번 사람 몸을 받아서 입의 쾌락을 탐한 악업의 과보를 이렇게 갚게 되었다.

 

일체의 고통과 모든 즐거움은 모두 나 스스로 지어서 직접 받는 것 (자작자수自作自受) 이며, 인과응보는 참으로 조금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여러 수행자들이여, 내가 삼악도를 윤회전생하면서 받은 갖가지 고통에 대해 알았을 때 너무도 상심하여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지극히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600년 전 수행으로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했으면서도 인간과 하늘의 복을 탐하고 왜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는가? 이 헛된 탐욕때문에 임종의 자리에서 한 생각 잘못하여 열 번이나 삼악도에 떨어졌구나.

 

 붉은 흙먼지 가득한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600년을 헛되이 윤회하였구나. 어찌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니겠는가. 600년!!!  이토록 긴 세월을 그리 비천하게 보내다니 또 어찌 부끄러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떤 귀신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인과의 가르침을 믿고 생명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진실로 자기 자신이 윤회해온 과정을 알고 나서 어찌 본사 석가모니불, 본존 관세음보살과 시방삼세 일체재불, 모든 대보살의 자비로운 가피에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제자가 자기의 본사, 본존의 면전에 꿇어 앉아 자기의 숙명을 이해하고 불법을 배우면서 또 한 단계 진일보하였을때, 또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 해야 불보살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열심히 불법을 배우고 일념으로 염불하면서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걱하였다. 사람의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 배우기 어려움을 생각하자, 현생에 어렵게 얻은 사람의 몸으로 열심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불보살님께 죄송하고 부모님께 죄송한 일이다.

 

옛 성현께서 말씀하지 않았는가 "사람 몸얻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얻었고, 불법 듣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들었네, 이번 생에 불국정토에 가지 않으면 다시 어느 때에 갈 수 있으리오?"

 

사람 몸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번 생에 반드시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수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귀신이 왔을 때 뒷 일을 기약할 수 없다. 사람이 임종에 이르렀을 때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 즉,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연꽃 가운데 화생하여 부처님을 뵙고 열심히 수행하여 성불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해냈는가?  아니다. 나는 잠잘때 꿈에 빠지며 또한 망념도 많다. 만약 꿈을 꿀 때조차 정념(正念)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임종의 자리에서 반드시 서방극락정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서원하였다. 

오늘 이후로 수시로 계(戒)의 조문을 굳게 기억하여, 지계(持戒)의 금강 같은 날카로운 검으로 오욕육진(五慾六塵)을 베고 삼독(三毒)을 소멸하겠다. 자주자주 무상(無常)을 생각하고 항상 사성제를 사유하며 자비심을 닦아 일체 중생을 숙세의 부모로 여기고, 늘 삼보와 스승의 은덕을 기억하겠다. 생각 생각마다 무상보리를 잊지 않고 용맹정진하겠다. 계를 지키며 염불하여 성불할 때까지 영원히 물러나지 않겠다.  나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여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을 것을 서원한다.

 

나는 비구로 살면서 열심히 수행하였으나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두 생에 걸쳐 인간의 복보(福報)를 얻었다. 그러나 선을 쌓고 덕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갖가지 악을 지어 삼악도에 열 번이나 떨어졌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으로 그 과보를 갚고 나서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600년 세월을 헛되이 보내며 인과응보를 절감하였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어찌하여 아귀도와 지옥도에는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내가 출가하여 불법을 배운 공덕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부유한 집에 태어나 갖가지 악업을 지었지만 단지 축생도에만 떨어져 윤회하며 과보를 갚은 것이다.

 

악업의 인연이 다하고 나서, 불법에 대한 종자가 다시 한번 좋은 인연을 만나서 싹을 튀웠고 그리하여 현생에 다시 출가하여 불법배우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불법의 종자를 심은 다음에 이 종자가 썩지 않는다면 적당한 토양과 온도를 만났을 때 곧 싹을 튀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는 대광명장(大光明蔣)이며 한 번 이근(耳根)을 스치면 영원히 도(道)의 종자가 된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고 쫑카파 대사가 『보리도차제론』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출가생활 오십년에  생사해탈 구하잖고

스스로를 얽어매어  다음생의 복된과보

생각하며 닦았다가  육백년을 윤회했네 

 부귀공명 비유하면  칼날끝의 꿀과같아

삼악도에 떨어져서  모든빚을 갚게되네 

고기반근 탐닉하여  여덟냥을 갚게되고

금수축생 떨어져서  여러차례 윤회했네  

참선하여 숙세일을  명백하게 알고보니 

스승님은 성인이요  내자신은 범부로세 

금생과보 확실하게  전생인연 때문이니 

스승에게 절하오며  금강선을 닦아가네 

굳센정진 영원토록  물러나지 아니하고 

곧장바로 보리좌의  구품연대 오르리라. 

 

 

 사천성 중강(中江)에서 1995.10.17 일

 -적공(寂空) 스님-

  

이상으로 위의 모든 이야기는 불광출판사에서 나온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이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실화들을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들은 자신이 아프거나  가족 등 주변 분이 아플 때나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주시길 간곡히 권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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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 부처님의 가피력 (사례 모음 / 대만)|

*이 글은 1983년 대만에서 발간한 [念佛感應見聞記]에서 발췌했습니다.

 

 

[01] 한번의 염불로 죽음에서 회생하다.


대만 중부지방의 한 시골에 임치라는 분이 있는데 그 해 64세 되는 해였다.
그녀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근처의 불교도서관에 가서 법문을 들었으며
아침저녁으로는 오직 염불만 할 줄 알았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으며, 딸에게는 3세의 아들이 있었다.
즉 임치의 손자이다. 손자의 이름은 아달 이라고 했으며,
하루는 아달이 문밖에서 놀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암돼지에 받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의사들은 뇌막염이라고 진단하였으며, 그때부터 깨어나지 못하다가
20일이 되는 날 오후 8시경에 그만 죽어버렸다.
가족들은 그를 포대기로 덮어서 객청의 바닥에 놓아두었으며
이미 사망진단서와 내일 매장할 준비를 다 했다.

임치는 손자의 사망을 눈으로 보고 그 애통함이 비할 때 없었으며
그 날도 저녁 예불을 하는데 염불을 하는지 곡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울면서 부처님께 탄식을 하면서 말하였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시여! 당신은 왜 저를 도와주지 안는가요?
이 부근의 시골에서는 오직 저 혼자 부처님을 믿고 염불을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저를 보면서 그렇게 가난하면서 무슨 부처님을 믿고 염불을 하는가?
하고 놀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욱 저를 놀리게 될 텐데
불 보살이시여! 왜 저를 보호해 주지 않으시나요?"

임치는 또 크게 한바탕 울다가 그만 혼절하였다가 한참만에 겨우 의식을 차리고 침대에 갔다.
그러나 손자의 죽음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 4시쯤 갑자기 한줄기 금색광명이 허공에서부터 곧바로 객청으로 통해 들어오니
그 광명의 찬란함은 불가사의 한 것이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20일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하던 아달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달은 자기의 손으로
포대를 걷으면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임치와 그 딸이 놀램과 기쁨이 교차되는 가운데 다투어 아달을 끌어안았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아달을 보이자 의사는
죽은 아이가 살아온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02] 보살이 나타나서 염불을 권하다


작년 5월 초순에 아란이라는 여인이 유산으로 인하여 몸이 무척 쇠약해져 있었다.
하루는 하혈이 지나쳐서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간병하러 온 어머니는 그가 잠에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몇 시간이나 흐른 뒤에 아란이 깨어나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방금 정신이 아득했었는데 문득 어느 한 음산한 곳에 도달했어요.
무척 먼 곳이라고 느꼈어요. 앞으로 곧장 가려는데 도중에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특별히 단정하고 근엄했어요.
그녀는 갑자기 한 손으로 나를 세우더니 다른 한 손을 뻗어서 나를 미는 것이었어요.

나는 넘어져서 한번 구르다가 일어나면서 그녀에게 욕했어요.
「너 이 여자야 왜 가만히 있는 나를 미는가. 그리고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그 여인은 나에게 말하기를...

 

 「이 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거라. 네가 집에 도착하면 곧바로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한 뒤에 공경스러운 모습으로 합장하고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 --」하고 염불을 했어요. 그리고 나는 이렇게 깨어났어요.』

어머니는 딸에게 말하길

『그 여인은 아마 관세음보살이 너를 구하기 위하여 변화하여 나타난 것 같구나.
대자대비하시고 구고구난하시는 관세음보살이 맞을 거야.』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몸의 건강이 회복되고

그 어머니가 스님에게 아란이 경과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스님에게 묻기를 「관세음보살도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염하는지?
그리고 관세음보살 당신이 극락세계의 삼성(三聖)가운데 한 분이 아닌가?」스님이 대답하였다.

「관세음보살이 합장하고 염불을 한 것은 아란을 구하려는 생각에서 한 것이지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바로 몸소 시범을 보여서 당신의 딸을 교화한 것이다.
염불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바세계의 고해를 벗어나며
윤회에서 벗어나겠는가? 이로부터 아란도 염불을 하기 시작하였다.




[03] 아미타불의 광명으로 가피를 입다



이 일은 1963년 11월 9일에 일어난 일이다.

대만 중부의 작은 시골마을에 뢰요라는 이름의 부인이 있었는데 나이는 54세며, 다섯 살 난 손자를 데리고 건너 집의 김방련불자의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김방련불자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할 때였는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듣고 놀라는 경험을 하게된 것이다.말하자면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가피를 입는 영험은 바로 사람들에게 염불의 방편을 가르쳐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 날은 9일 정오였다. 뢰요는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무거우면서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었다.5세의 손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김방련불자의 집으로 달려가서 부르는 것이었다.급히 뢰요의 곁에 달려와 보니 두 눈은 힌뜩하고 쓰러져서 이미 인사불성의 상태가 된 것이다. 70여세의 김방련과 5세의 손자가 뢰요의 양옆에 앉아 소식을 듣고 오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사람들과 함께 아미타불의 염불을 하기 시작하였다.

염불을 시작한지 20분쯤 지나자 뢰요가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탄식을 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디 있어요, 내가 그와 함께 가도록 해 주세요!」김방련이 물었다.「그가 누구인가?」뢰요가 말하길..「저의 남편 임금길입니다.」김방련불자는 한편으로는 더 높은 소리로 염불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영혼에게 말하길...「임선생! 당신은 뢰요를 데려가지 마세요. 오히려 그녀가 건강하고 편안하게 있도록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그녀는 당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동시에 당신의 아들을 키우고 있지 않소.

모친은 너무 늙고, 자식은 너무 어리니, 절대로 그녀를 데려가면 안되오.」뢰요의 시어머니도 말하길..「금길아! 네가 세상을 떠난 후 며느리와 내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데, 네가 데려가면 우리는 어찌하겠는가? 그것은 큰 불효가 될 것이다.」김방련불자가 염불을 하다가 다시 말하였다.

「임선생! 당신은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극락에 갈 것을 발원해야 합니다.그래야만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오.내가 지금 염불하고 있으니, 당신도 따라서 일심으로 염불을 하시오」그리고는 일심으로 염불을 하였다.

그러길 반시간 정도 지나자, 뢰요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세분의 찬란한 빛이여! 세분의 찬란한 빛이여, 금길도 떠났습니다.」김방련이 물었다.「당신은 무엇을 보았으며, 세분의 찬란한 빛은 무엇을 말하는가?」뢰요가 말하길...「방금 세분의 찬란한 광명을 보았는데, 당신이 말하길 아미타불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 몇 일이 지나자 뢰요의 건강이 회복되고, 사건이 있으면 원인도 있는 법이다.

얼마가 지난 뒤에 뢰요의 시어머니가 김방련에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내 아들 임금길과 며느리 뢰요는 결혼한 후에 한번도 다투는 것을 볼 수 없을 만큼 은애로 가득한 부부였다. 3년 전 임금길이 세상을 떠난 뒤에 뢰요는 날마다 남편을 생각했고, 특히 사건이 생기기 열흘 전에 며느리가 혼자 성묘하러 묘지에 가서 통곡을 했는데, 그 날부터 남편이 꿈에 나타났으며, 며느리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손자의 꿈에도 나타나는 것이었다.」

김방련은 혼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자 스님에게 물어보았는데 스님의 답은 이러하다.
「첫째. 임금길이 생전에 자기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게 강해서 죽은 뒤에도 업을 따라 가지 못하고, 자기의 시신을 지키는 귀신이 되었거나.둘째. 뢰요가 성묘하러 가서 남편을 생각하다가 곡을 하자, 묘지의 주위에 있던 귀신들이 임금길의 모습으로 변해서 그녀를 따라 집에 와서 작난을 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장경에 이러한 내용이 있는데..『염부제에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 명을 마치게 될 때에, 백 천 가지의 악도의 귀신들이 혹은 부모와 친척 그리고 친구 등으로 변해서 나뿐 길로 빠지게 하는데, 하물며 본래부터 악을 행하는 사람이겠는가?.』이상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는데 어디에 속할지 모르겠다. 총명한 분이 있다면 나를 위하여 해답을 바란다.」




[04] 노모의 염불에 자녀가 재앙을 면하다


대중의 염불회 금강반의 반장으로 있는 이수금불자는 보살의 마음을 낸 성실한 불자다.
그는 자기의 가정은 물론이거니와 친정의 식구들까지 불교를 믿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였다.
그의 모친은 명수촌이라는 시골마을에 살았다.

8년 전 9월 초8일 염불회를 창설하기 위한 홍보 때문에 몇 사람을
그곳으로 파견하여 정법을 가르치고 염불을 권하게 되었다.
그의 집에도 여느 가정처럼 극락세계의 삼존불(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셨으며,
그 곳을 신의당(信義堂)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마침 매년 9월 초8일을 기념일로 정하였는데 부근의 주민들도
이 날에는 초와 향을 준비하여 예불하고 법문을 듣기도 하였다.
그 곳에 염불회의 임원도 초청을 받아서 신의당에 갔는데,
그 날 한 할머니가 남자의 손에 부축을 받고 큰 거울을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띄웠으며, 부처님 앞에 공손히 오체투지(큰절)를 세 번 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당신들은 왜 이처럼 정성을 다 해서 예불을 합니까?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할머니가 바로 대답해 주었다.「나는 불 보살님의 가피를 입었기 때문에 답례하러 왔습니다.」

그 두 분을 자리를 장만해 주자 천천히 부처님과의 인연을 이야기 해 주었다.
할머니가 말하길...「지난달 중순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하나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나는 나의 치아가 모두 떨어져 나간 꿈을 꾸었어요.

다음날 날이 밝자 나는 그 꿈이 결코 좋지 않은 예감으로 생각했으며,
그 꿈을 바로 제부인 이수금에게 말했는데,
그녀는 나에게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경건하게 기도도 해 주었어요.

"한 가정의 평안을 보살펴 주시고, 흉한 일은 만나면 길하게 하시고,
큰 일은 작게 하시고, 작은 일은 없어지게 하소서."」

할머니는 단숨에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쉬고 또 계속해서 말하였다.

「나에게는 아들하나 있는데 이름을 아성이라 하고,
깊은 산에 들어가 숯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날 아침 숯가마에 불을 붙였는데,
갑자기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답니다.『아성이 돌아왔어요!......』

아성은 좌우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고, 또 밖으로 나가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숯가마의 입구에 가면 『아성이 돌아왔어요!......』
하는 고함소리가 미미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는 바로 집에 있는 70여세의 노모를 연상하고,
집에 의외의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곧바로 주인에게 휴가를 청하고, 급히 물건을 챙기고 외투를 걸치고
숯가마에 연결된 방에서 나와 대략 백여 거름을 걸어가는데
갑자기「펑」하는 거대한 폭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아성이 있던 건물이 숯가마와 함께 무너져 내려 앉아버렸어요.
아성은 큰 한 숨을 쉬면서 그 위험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어요.
그는 현장을 정리하고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길을 떠났어요.

산길을 내려오는 도중에 몇 개의 산을 넘고, 큰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는 없고 그냥 한 줄의 끈이 매여 있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대광주리가 매달려 있어서
그 안에 사람이 타면 끈으로 당겨주고 끌어주어 겨우 통행을 하는 것이었어요.

아성도 이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으며,
자기 차례가 와서 짐을 가지고 광주리 안에 들어가 줄을 당기며 건너편으로 가는데
중간쯤 가자 그만 줄이 끊어지고 사람과 짐이 계곡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계곡은 깊고 물은 급하여 양쪽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냥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성은 다행히 깊은 물에 떨어지고, 얼마쯤 급한 물에 쓸려 흘러가다가
우연히 수초가 손에 잡혀서 몸을 지탱하고 계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방이나 짐은 다 떠내려갔으나 몸은 무사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불가사의 한 일은, 노모가 일심으로 염불한 공덕으로 인하여
자녀가 재앙이나 위기에서 두 번이나 벗어나게 된 것이다.




[05] 누님의 기도에 동생이 복을 받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은 중생의 스승이며 복전이다.
이수금불자도 보리종자를 파종하는 어질고 좋은 친구다.
그는 매번 대중에 있는 법당에 법회가 있을 때마다 먼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주위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찾아다니며 법회에 참여하여 공덕을 지으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법회에 나와서 염불도 하고 법문을 듣기도 하였다.
종자를 뿌리면 반드시 싹이 틀 것이오, 염불을 하면 반드시 감응을 보게 된다.

대략 5년 전의 어느 날, 이수금불자가 나에게 말하길...
『저의 친정마을에 10세정도의 여자아이가 있는데, 무척 똑똑하고 선근이 있습니다.
그녀는 매번 당신의 법회가 있을 때마다 법회에 참여하였고,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날마다 아미타불을 염하는 발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집에는 불상이 없으므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처님을 모신 이웃에 가서 예불을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부처님을 모신 집의 남자아이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자존심도 없고, 염치도 없니, 네가 우리 집의 부처님에게 예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러자 이 총명한 여자아이는 감히 두 번 다시 그 집에 가서 예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지속되는 염불과 예불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여, 마음은 부처님과 떨어지지 않았고, 부처님도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밤에 잠을 자다가 꿈결에 홀연히 일어나더니 꿇어앉아서 합장하고「나무아미타불」을 그치지 않고 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모친이 깨어나서 말하길...「아가야! 이 한밤에 일어나서 뭐하니?」 여자아이가 말하길...「엄마! 내가 금빛의 몸을 한 아미타불을 보았는데, 얼굴에는 웃음을 머금고, 공중으로부터 나의 얼굴 앞에 오시기에 내가 급히 일어나서 공손히 염불한 것이야. 엄마! 나 부처님 한 분 모시고 공양을 드리고 싶어, 엄마에게 간청하는데 우리 집에도 부처님 한 분 모시자. 응?」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하고 어머니에게 간절하게 말했다.「엄마! 생각났는데, 나 대나무저금통 있잖아? 내일 그것을 열어서 얼마나 들었는지 보고, 그걸로 아빠에게 사달라고 하면 어떨까? 그럼 난 매일 부처님에게 예불할 수 있어서 좋잖아.」그의 어머니는 바로 그러자 고 대답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금통을 열어보니 약간의 돈이 있었으며, 그것을 아버지에게 주어 부처님 한 분을 모셔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돈을 더 보태서 관세음보살 한 분을 모시고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녀의 어머니는 부처님을 모시기 위하여 음식과 장식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그 때 갑자기 네 살 난 남동생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대경실색해서 사방으로 찾아다녔으며, 수 백 명의 마을사람들도 거들었지만 보이지 않았고, 양어장과 논밭을 다 뒤졌는데 황혼이 되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길「당신들 부부는 다 커 가지고 어떻게 아이의 말을 들으며, 무슨 부?냄“?예배하는가? 당신들이 불상을 모신다고 바쁠 때 이렇게 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불상하게도 이 어린 아이는 이 사람 저 사람 던지는 말에 놀라서 몰래 관세음보살의 앞에 꿇어앉아서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였습니다

「불 보살이시여, 당신은 저의 네 살 박이 동생을 보호하여 편안히 집에 돌아오도록 해 주세요! 만일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면, 저는 더 이상 부처님과 보살님께 염불과 기도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웃들도 감히 부처님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그의 아버지가 홀연히 어떤 생각을 했습니다. 일찍이 점을 친 적이 있었는데, 점보는 선생이 사주팔자를 보아 종이에 써 준 것을 장롱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것을 꺼내어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아이가 몇 월 몇 일에 큰 재앙을 당할 것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원래 이 네 살 박이 아이가 아침에 혼자 집을 나갔는데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날 오후 5시경에 왕전(王田)이라는 기차역 부근에서 기찻길을 걷는 아이를 청년학생 한 사람이 보았습니다. 청년은 아이를 불렀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마냥 앞으로만 가는 아이에게 뛰어가서 아이를 붙들었는데 아이는 이상한 눈빛을 하고 입으로 청년의 손을 물었습니다. 청년은 아픔을 참고 아이를 안아서 역으로 가서는 역장에게 아이를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는 집이 어딘지 알지 못했고, 아침에 용정(龍井)역에서 네 살짜리 어린이를 찾는다는 전화를 받은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왕전역장은 바로 용정역에 전화하여 가족들에게 아이를 찾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역장의 부인이 있다가 아이의 모습이 땀과 먼지로 더럽혀지고 배고픈 것 같아서 아이를 안고 자기 집에 가서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먹을 것을 주니 금방 두 그릇의 밥을 비우고는 바로 쓸어져 잠이 들었습니다.

용정역장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곧바로 왕전에 가서 아이를 데려왔는데 이미 밤 11시나 되었습니다. 비록 한 밤이었지만 마을 사람들도 모두 찾아와서 편안하게 돌아온 아이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동생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바로 작은 누나가 부처님에게 기도한 공덕일 것이다. 부처님을 믿고 염불한 영험이 아니라면, 어떻게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하루종일 기찻길을 걸었는데도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또 마음좋은 청년과 역장부인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정말이지 부처님과 보살의
가호가 아니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6] 부처님은 의왕이기에 중병을 치료하신다.

위에 말한 것은 10세 소녀가 일심으로 염불하였기에 그의 생각이 아미타불의 가호를 입어 4세 동생을 재난에서 구한 일이었다. 어떤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소녀의 업장이 비교적 가벼워서 아직 사람들과 원한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염불의 감응을 입었을 것이다.

만약 나이 든 사람이 염불한다면 그런 감응을 쉽게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그러나 불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 나이든 분이 염불하여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 사실을 다시 하나 예를 들어 보이겠다. 이수금불자의 어머니는 1950년 보살계를 받았으며, 지금은 모두 노보살이라고 부른다.

4년 전 그가 80이 되던 해에 갑자기 그녀의 오른쪽 가슴아래 대접만한 혹이 생겨났다. 의사에게 진료를 한 결과 간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으며, 이미 의약이나 수술할 시기가 지나버렸다고 한다. 다만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냥 다 사주라는 것이었다. 한의사도 양의와 같이 약도 처방해주지 않고, 침도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거의 6개월 동안 병상에서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하였다.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간호해 주었고, 딸 이수금불자도 집에 돌아와 노보살의 사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노보살은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매일 꼭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하였다. 병상에 누워있어도 입으로는 아미타불을 쉬지 않고 부르는 것이었다.
대략 8월 초순에 노보살의 병환은 위급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었고, 입으로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위험에 빠져있던 어느 날 밤 아들부부와 이수금불자가 병상의 곁에 있는데 갑자기 노보살이 낯은 소리로 혼자 말하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당신이 그렇게 많은 글을 썼는데 저는 한자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냥 저에게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노보살이 또 말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이시여! 당신의 자비가 너무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내일 밤 10시에 오셔서 저의 오른쪽 가슴아래의 그 덩어리를 잘라 버리시겠다고 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당신은 정말 자비로우십니다.」
이 이야기는 세 사람이 모두 똑똑히 들었다. 당시 노보살은 임종에 가까웠으므로, 정신이 혼미하고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다음날 날이 밝자 노보살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향과 초 그리고 과일 등을 준비하여 불, 보살이 치료하러 올 것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은 오후 10시가 되자 칼과 가위 등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휴!」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른쪽 가슴아래 솟았던 혹이 벌어지고, 숯처럼 검은 피와 혹의 덩어리가 엄지손가락 크기로 잘린 체 한 조각 한 조각 한참동안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날 밤부터 그녀의 몸은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그 벌어졌던 상처는 며느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녹차우린 물로 씻어주었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약도 바르지 않고 치유가 되었다. 현재 그 노보살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미타불을 염하라고 권하고 있으며, 손에 든 한 줄의 염주를 손에서 놓은 일이 없다. 금년 비록 84세의 고령임에도 신체는 오히려 보통사람들보다 건강하고, 운신도 자유로울 뿐 아니라 정신도 무척 맑다.

부처님에게 기도하면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다만 일심으로 염불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독자들이 믿지 못하겠다면 노보살이 아직도 건강하니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아도 좋다. 그분은 이미 명예나 이익을 차리기 위해서 사람들을 속일 필요가 없는 노인이다.





[08] 빚 독촉을 염불로 해결하다. (상)


10년 전 2월 초순으로 기억된다. 대아의 용선사 주지스님과 대중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그분은 2월 29일 자기의 절에서 법문을 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나는 즉시에 갈 것을 약속하였다.

법회일에 나는 "무상지보"(無上至寶) 즉 극락세계의 삼존불의 그림과 염불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책과 정토법문에 관한 소책자들을 법문이 끝나고 골고루 나누어 주어
법회에 참여한 신도들과 좋은 인연을 지었다.

다음 해 2월 대중에 있는 영산사에서 7일 기도를 할 때였다.
그 날은 혜번스님이 담당하는 날이었다. 오후 3시 무렵 내가 염불당에서 염불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혜번스님이 내게 다가와 장삼을 슬쩍 당기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더니 거기에는 50세 가량의 시골 부인이 한 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부인을 전혀 알지 못하겠기에,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슨 일로 저를 찾습니까?」


그가 말하길...「저의 남편이 저에게 스님을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이 도시에 와서 사방으로 스님을 물어보았는데
어떤 분이 여기 계시다고 하여 이렇게 왔습니다.
한가지 일을 스님에게 알려드려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을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두 마디의 말로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또 영산사는 7일기도 중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도량에서 대화를 하기에는 불편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 부인이 말하길...

 

「저는 대아의 부근 시골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스님이 작년 2월 대아의 용선사에서 법문을 할 때 저의 아들 뢰흥복도 그 자리에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상지보"라는 소책자를 가지고 돌아오더니 그 날부터 불교를 믿고,
매일 예불과 염불을 "무상지보"의 방법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아침과 저녁 뿐 아니라 거의 하루종일 낮과 밤 동안 부처님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음도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 신기하게 생각했다.사바세계에 어떻게 이런 복 많은 사람이 있어서
한번 불법을 듣고, 곧바로 실천수행을 할 수 있었는지?
내가 다시 물었다.

 

「당신 아들의 나이는 몇이며,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발심을 했는가?」

부인이 말하길...「저의 아들은 작년에 25세 였습니다. 그는 대학을 23세에 졸업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폐결핵에 걸려서 매일 악을 먹고 침을 맞는 등 3년 동안 적지 않은
재산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염불을 시작한 뒤부터 몸은 비교적 건강해 졌고,
정신적인 것도 낙관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가끔 시내에 가서 불교서적을 구해보기도 했습니다.」

내가 또 물었다...「당신 집안에는 몇 식구가 살아요?」

부인이 말했다...「남편과 저 그리고 소실(첩)과 아들 이렇게 넷입니다.
아들이 병에 들자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정성을 다해서 간호하였고,
속히 완치 돼서 우리 세 사람의 의지처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12월 초순에 흥복이 갑자기 우리 세 사람을 함께 부르더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과 두 분의 어머님, 저는 오늘 낮에 서방극락세계로 가게될 것입니다.
당신들 세분은 절대로 상심하지 마시고, 아들 없는 것에 근심하지도 마세요.
우리 형님이 일본에 건너간지 수 십 년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지만,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가정과 사업을 세우고,
결혼하여 아들이 있습니다. 형님은 2월 초순에 소식이 올 것이며,
일본과 왕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더 이상 적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 말하길...『너의 몸이 이전에 비해서 아주 건강해 졌는데 왜 떠나려 하는가.

아미타불에게 너를 보호해줄 것을 기도할 것이니, 절대로 가려고 하지 말아라. 』

이때 흥복이 말하길...『나는 본래 빚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당신들 세 사람은 과거에 저와 깊은 원한 관계를 맺었고, 저에게 많은 책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금생에 당신들의 아들이 돼서, 대학까지 나온 상태에서 바로 나쁜 병에 에 들었습니다.
3년 동안의 투병생활에 아직 책무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래는 이 집과 소유한 땅도 다 팔아치우고 당신 세 사람이 완전히 걸인이 돼서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한 상태에 이르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숨을 걸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여러 생 동안 지었던 죄업을 소멸시키고,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네 사람은 원한도 없고 빚도 없습니다.
당신들 세분도 지성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세계로 가십시오.
그런 다음 우리가 다시 만나면 영원히 함께 살면서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해 주세요. 시간이 다 됐어요. "무상지보"를 이리 주세요.

당신들 세분도 저를 도와서 염불해 주세요.
그리고 울어서는 안되며, 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지도 마세요.
등을 저에게 보이고 절대로 돌아보지 마세요. 저도 염불을 하겠습니다.』

흥복이 "무상지보"를 두 손바닥에 사이에 두고 합장하였고, 처음에는 큰 소리로 염불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따라서 염불했는데, 그가 돌아보지 말라고는 했지만 저는 가끔 슬쩍 슬쩍 돌아보았습니다.
대략 20분이 지나자, 흥복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숨이 끊어질 무렵에 합장이 풀리고,
"무상지보"는 그의 가슴 앞에 떨어지고,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08] 빚 독촉을 염불로 해결하다. (하)

부인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저희 집은 방이 많아서 모두 여러 사람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본래 흥복이 폐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모두 전염될까보아 겁을 내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흥복이 임종할때의 모습을 지켜본 다음에 모두가 마음 한곳에 느끼는 바가 있었으며,
이구동성으로 불교의 영험이 불가사의 하다고 하며 이사가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다만 그가 임종할 때 말한 큰형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까지 우리들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일본에서 친척을 찾는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참으로 흥복의 예언이 완전히 들어맞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이 말하길...

『만약 스님이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하는 법문을 하지 않았다면,
흥복이 임종전에 어떻게 이 많은 인과의 일을 알 수 있었을 것이며,
원한을 해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큰형이 일본에서 예언한 날에 맞추어 편지가 온 것을 보아
흥복이 유언한 일은 모두 믿을만 한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 또 말하길...

『이후에 우리가 행복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스님의 공덕을 입은 것이니,
이 은혜와 이 정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우선 스님을 찾아서 이 기이한 영험의 사실을 말씀드려서 기적을 알게 하고,
당신에게 기쁨을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은정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내가 그 부인과 남편의 이름을 물었는데 그가 주소와 이름을 말했는데,
그동안 함께 듣던 혜번스님이 부인의 남편과는 가까운 친척이라고 말해서 한번 더 놀랐다.
우리 세 사람은 영산사의 담 밖에서 두시간 가량 시간을 보냈다.
이미 5시가 넘었다.


이상에 말한 두 가지의 이야기에서 확실히 아미타불이 계시며,
극락세계도 존재한다는 확신할 수 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원수 맺은 업도 해결할 수 있으며,
다겁동안 지은 죄업도 소멸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미타경에 보면...『그 국토(극락세계)의 중생들은 항상 새벽마다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꽃을 모아서 다른 세계의 10만억 부처님을 공양올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라고 하였으니,

극락세계의 중생들은 왕생한 다음에 신족통(몸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신비한 힘)을 얻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 자유롭게 올 수 있을 것이다.
더 자세한 일은 현명한 독자들이 나를 위하여 해석해 주길 바란다.

 

 

 




 

[09]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고 염불로 구원받다.

 




대만에는 속담이 있는데 "귀신이 없으면 죽은 사람도 없다" 정말 틀리지 않은 말이다.

최근 여러 곳에서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거기에는 운전자의 부주의 등 문제가 있었겠으나, 갈 곳 없는 귀신들의 작난도 많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러나 한 구절 아미타불의 성스러운 이름을 부르면, 귀신들이 물러나고,

편안하고 무사해 질 수 있다.

독자들이 믿지 못하겠다면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이 바로 증명을 해 줄 것이다.

현재 대중의 남문 밖에 구련주불자가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아옥이라고 불렀다.



10년 전 그는 시장 부근에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옥은 우체국 앞 사거리에서 갑자기 어떤 차에 치여 도로 위에 넘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차는 도망가버렸다.

아옥은 얼굴 가득 피가 흥건하였고, 숨도 멈추어진 체 기절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둘러서서 바라만 보고 있던 그 때 젊은 군인 한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즉시 등에 엎고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가족들이 이를 보고 대경실색하였으며,

각각 어른과 아이 그리고 젊은 군인이 함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오래지 않아 아옥은 혼미한 가운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너이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데려 가겠다고, 난 가지 않아!

너이들이 차를 몰아서 나를 강제로 태우려 해도 그래도 나는 가지 않는다.

안 간다면 안가는 줄 알아!

나는 삼보의 제자야! 매일 아미타불을 외우기 때문에 극락세계로 가게될 텐데,

내가 왜 함부로 너이들을 따라 가겠니?

만약 아미타부처님이 나를 맞이하러 오신다면 그때 갈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잠시 뒤에 다시 이어서 말하길...

「나를 데려가려 하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염불소리를 듣고는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차도 떠나버렸다.」

이렇게 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옥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사진관에 도착해 보니

이미 아옥의 머리에는 상처를 10여 바늘 꿰매고 수술한 뒤 붕대로 감아져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가 본 것들 말하자면,

수많은 귀신들이 다투어 그를 에워싸고, 차에다 끌고 태워 가려는 일을 알려 주었다.

내가 그에게 염불공부를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만약 부처님을 믿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정신이 한번 혼미해 질 때, 그런 탈 것이 있다면 무의식중에 기뻐하면서 타고 떠났을 것이다.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교통사고 후에 그를 엎고 온 군인은 포교당의 청년회반의 법우 였고,

벌써 수년동안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모두 서로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아옥을 만나지 않았거나,

스스로 똑똑히 염불을 하지 않았다면,

아옥의 정신과 건강이 회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10] 염불이 유효한 이야기

 



황관주불자는 불교대학 구련반(九蓮 : 구품 연화대를 상징한 것이다.)의 부반장이다.

그는 정말 대자대비한 법우였고, 또 48원(아미타불의 48대원)을 세운 분이다.

집은 대중시에 있으며 전형적인 불교가정의 하나다.



보리심을 발하여, 늘 사람들에게 염불할 것을 권하였고,

여러 가지 방편을 써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
특히 부근의 어린 아기들이 놀래거나 해서 잠을 못 자면,



모두 그에게 데리고 와서 재워 달라고 하면

그가 아기를 안고 대비주(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면,

아무리 시끄럽고 산만한 아기라도 쉽게 잠에 들곤 했다.



대략 8년 전 하루는 내가 그녀의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침 한 젊은 여인이 울고 있는 아기를 데리고 와서

관주불자에게 재워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곧 대비주를 외워서 아기를 재우더니,

이어서 아기 엄마에게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에 그냥 있지 말고 항상 염불을 하면,

아기가 더욱 튼튼하고 총명하게 클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청소할 때와 빨래할 때,

그리고 길을 거닐 때도 한발자국에 한번의 염불을 한다면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기엄마에게 남편의 직업을 물으니, 화물차 운전수라고 하였다.



그러자 관주불자는 또 간절한 억양으로 말했다.


당신이 돌아가면 반드시 남편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라고 가르치며,

만약 어떤 재난이나 위험에 당하면, "나무아미타불"을 크게 외우면,

그 어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전하시오.

그 아기엄마는 좋은 인연이 있었는지 나중에 그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남편에게 말해 주었다.


 


한달 쯤 지난 어느 날, 내가 관주불자의 집에 48원 법회의 소식을 전해주러 갔었는데

마침 지난번 만났던 그 여인을 또 만났는데

이번에는 아기가 그 여인의 품에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울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남편을 대동하여 왔는데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남편의 손에는 초 향 그리고 꽃과 과일을 가득 들고서,

아미타불에게 예배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주불자는 그 이유를 몰랐다.

원래 그 여인의 남편은 부인의 권고를 듣고,

운전할 때에 염불 하다가 영험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길...「보살님의 큰 자비에 감사합니다.

저의 부인에게 염불을 가르치고, 또 저에게 염불을 권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제 화물차에 야채를 가득 싣고 대북에 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중리와 도원의 사이에 사거리가 있는데 거기서 갑자기 차가 서버렸습니다.

어떻게 해도 차가 움직이지 않았고, 더 이상 한 것은 몸이 무척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당신이 나의 아내에게 가르쳐준 염불이 생각났습니다.

당시에 저는 운전석에 앉아서 두 손을 운전대를 잡고 있었는데,

눈은 감기고 잠이 오는 상태였습니다.



저의 아내에게 밥할 때나, 청소할 때,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을 때와

빨래를 할 때도 아미타불을 부르고,

특히 위험이나 재난을 만났을 때 더 큰 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친 것을 생각하고 염불을 하자 바로 그 순간

화물차가 자연적으로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깨는 바람에 졸음이 확 달아났고,

정신을 차려 운전할 수 있어서 해뜨기 전에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운전수가 말하길...「보살님! 저의 집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관주불자는 기쁜 얼굴로 잘 생각했다고 말하며,

바로 홍콩에서 인쇄한 서방삼성상(西方三聖像 :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그림)을

주고 아침저녁으로 간단하게 예배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운전수 부부는 거듭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이 불가사의한 영험을 내가 직접 들은 것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권합니다.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습니다.

입이 있다면 모두 아미타불을 염해야 합니다.

하나의 단어이지만 만가지 덕을 갖춘 최고의 주문을, 금생에 그냥 보내지 말길 바랍니다! 


 

 


 



[11] 큰 소리로 염불하여 원혼을 쫓아내다




정성을 다해서 여섯자의 위대한 이름을 부르면, 자신 뿐 아니라 남의 원한조차 해결시켜 준다.

이 일은 1957년 4월에 일어난 일이다.

대중시(臺中市) 중구(中에區) 있는 동평극장의 문 앞에서 갑자기

커다란 화물차가 자전거를 피하다가 잘못하여 동평극장으로 들이친 것이다

.

이 사건으로 극장의 큰 기둥 두 개가 부러지고, 여섯명의 사상자가 나온 교통사고다.

그 가운데 60여세의 할머니가 한 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전날 대북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대북에는 아들집에 있었는데 가벼운 입다툼으로 인하여 대중의 딸집에 내려온 것이다.

딸은 모친에게 지극한 효녀였고, 사위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살자고 하였다.



그 날 오후 5시경에 할머니는 가장 어린 손녀와 목욕을 하고, 손녀를 업고 거리에 나간 것이다.

하필이면 그녀가 동평극장을 지나가는 순간에 화물차가 닥친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즉사하였고, 다행히 손녀는 무사하였다.

이틀 후에 화장을 하고 도사(道士) 몇 명을 초청하여 고별식(영결식)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아들은 대북에서 내려와 상복을 입고 향로와 번을 들고서

도사들이 시키는 대로 상주로서의 예식을 하고 있었다.

도사들은 바라와 북 그리고 여러 가지 악기와 법구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주가 방에서 나오려고 한발을 문 밖에 내 딛는 순간,

말하자면 아직 한 발은 방에 있는 그 상태에서 상부의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눈은 허연 동자를 들어내고 얼굴은 하늘을 향하였으며, 숨은 겨우 내쉬고 있다.

그리고 얼굴색은 검게 변하여 마치 흑인과 같아지는 것이었다.


당시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우리 하송영 진월아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 날 진월아불자가 마침 의자에 앉아서 염주를 들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옆집에서 들려오는 도사들의 의식하는 소리가 끊기고 비명소리와 더불어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진월아불자는 호기심이 생겨서

옆집으로 가 보았는데 손에는 염주가 그대로 들려진 채였고, 입으로는 염불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상주복을 입은 남자가 그렇게 서 있는 것이었다.

진월아 불자는 그만 놀란 나머지 큰 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하였고

대략 2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상주의 얼굴과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진월아불자가 당시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

당시 자기는 죽음을 무릅쓰고 큰 소리로 염불을 했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큰 소리로 염불한 것이지 그 상대를 구하기 위해서

염불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불가사의 한 것은 염불소리를 듣고

상주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상주는 모친의 유해를 모시고 대북으로 가서 매장하기로 하였는데,

떠나기 전에 진월아불자에게 찾아와서 말하였다...

「어제 저를 위하여 적시에 아미타불 염불을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염불이 그렇게 좋은지 몰랐습니다.」진월아불자는 말하길...



「당신이 대북으로 돌아가면 날마다 염불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 모친과 맺은 악연도 풀고, 당신에게 재앙이 오지 않을 것이며,

좋은 일만 생기게 될 것입니다.」상주는 염불을 할 것을 약속하고, 거듭 감사의 말을 하면서 떠났다.

다음 날 진월아불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또 말하길...



「어제 저녁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집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혼자 문 옆의 의자에 앉아 11시까지 염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유행 감기처럼 의사를 불러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되는 것이지,



어떻게 2분 동안의 염불로 치유될 수 있었겠습니까?」진월아불자의 추측 가운데

가능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상주의 모친이 참사를 당하면서 원한이 생기고,

원한의 동기가 바로 아들과의 입 싸움에서 비롯되어 대중으로 내려왔다가 참화를 당한 것이니,

다시 대북으로 혼을 모시려는 아들에게 원한을 갚으려고 목을 조이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일심으로 부르는 염불의 소리가 원혼에게도 들리고,

그 목숨을 바쳐서 부르는 염불을 듣고 원한이 소멸되었을 것이다.

여러분 우리함께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에게 불교를 믿고 염불을 하라고 하면 대부분 말하길...

「보시할 돈이 없어서 불교를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박복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월아불자는 다만 돈 한푼들이지 않고 염불 몇 마디로 큰 보시공덕을 이루었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7층탑을 세우는 것보다 수승하다고 합니다.

진월아 불자는 대중시에서 모범어머니에 뽑힌 적이 있으며 품행도 단정하고,

가정의 행복을 키워 나가는 현모양처입니다.



 

 

 



 

 



[12] 염불은 흉악한 신들을 물리친다.




21세기는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논리적인 사고와 실증적인 물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런 일들이 우리의 주위에 일어나지 안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준(李準)불자는 불교대학 방광반(方廣班)의 부 반장이다.

역시 대중시 동구에 살고 있는데 집이 커서 남는 방을 화물차 운전수에게 세를 놓았다.

운전수의 부인은 아주라고 하며, 금년 31세다.

12월 20일 아침에 거리의 한 양장점에서 새 옷 한 벌 사 가지고 나오려는데,

거리에서 풍악이 시끄럽게 울리는 것을 듣고 호기심이 나서 그 행렬을 바라보았다.



뜻밖에 거기에는 8명이 나무관을 메고 가는데 그 모습을 한번보고 그만 소름을 느끼는 동시에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가슴은 돌로 짓누르는 것처럼 압박을 느끼면서 그만 혼절해 버렸다.

양장점의 주인은 직원을 시켜서 곧바로 병원으로 보냈으며,

병원에서는 주사를 놓고 약을 먹였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이준 불자가 혼미하여 인사불성인 아주를 바라보니 얼굴과 손톱이 모두 검게 변해 있었다.

이준 불자는 놀라서 소리쳤다...「아미타불이시여 목숨을 살려 주소서!」

당시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던 화물 운송원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모두 달려 왔다.



아주의 두 눈은 이미 허였게 돌아가 있고, 전신이 검게 변하고, 기절한 상태라서

모두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잠시 후 어떤 이는 그의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어떤 이는 그의 친정에 전화를 하는 등 바삐 움직였으나,

오직 이준 불자는 정신을 진정하고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아주의 가슴에 놓고,

입으로는 계속해서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불, 보살의 자비에 기도했다. 아주를 구해 달라고.....



대략 20분쯤 지나자 아주의 두 눈의 피부가 점점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었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온 아주가 말했다.「보살님! 당신은 정말 저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입니다.

제가 가슴이 눌려서 거의 숨이 끊어질 즈음에 고통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 마침 당신의 염주를

저의 가슴에 놓아주었고, 또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게 해 주시자 금방 몸이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같은 지역에서 지난 해 두 번이나 더 있었다.

한번은 지난 7월 17세의 소녀가 상여 지나가는 보고 일어난 일이다.

소녀는 아주와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병원에서 3일만에 죽었고,

또 그 소녀의 출상 때 근처에 사는 여인이 문 앞에서 장례행렬을 보고 같은 증세가

나타나서 죽은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이준 불자의 염불에 의해 생명이 구해 졌으니

주위사람들이 감탄하고 아주에게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일은 다음 해에 나에게 와서 직접 해준 이야기였다.




 

 


 




[13]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원을 받다




대중 염불원에는 48개의 반이 있다. 58년 4월 그 날은 "근수염불법문"(勤修念佛法門)을

강의하는 중간에 이준 불자가 아주를 구한 영험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 소합(蘇合)이라는 불자가 있었는데, 그는 이준 불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가 일어나서 대중에게 말했다...

 

「저는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저의 동생(阿雪)도 두 달 전에 그와 비슷한 상황을 당해서 죽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 아침 풍악을 울리며 상여가 지나가는데,

이웃 할머니 한 분이 아설에게 빨리 나와서 신을 맞이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설이 방에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그냥 목관을 보자마자 모골이 송연하여, 곧바로 몸을 돌리고 창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즉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였고, 오한과 발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의 매부가 바로 의사를 불러서 진찰하고 주사와 약을 먹였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설이 매부에게 자기를 저의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여,

매부가 오토바이에 태워서 왔습니다. 제가 동생 아설을 바라보니 심장이 뛰고,

숨이 제대로 쉬질 못하고 신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향 세 개를 피우고 불 보살의 가피를 빌었으며,

동시에 정성을 다해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대략 30분 가량 염불을 하고 대비주(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운 물을 그녀에게 먹였습니다.

잠시 후에 아설의 두통은 사라지고, 몸이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다만 인생은 재난도 많고 번뇌도 많더군요.

10 여 일이 지난 다음 매부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저에게 와서

자기 집으로 빨리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여섯 살 난 딸의 몸에 종기가 생기더니,

갑자기 기절하여 혼수에 빠져들었으며, 지금은 가느다란 숨만 남아있습니다.

제가 동생의 집에 가보니, 평소에 명랑하던 동생의 딸이 바닥에 누워서


거의 숨이 끊길 지경에 놓여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저번처럼 큰 소리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불렀으며,

대비주의 물을 수저에 떠서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불법의 힘은 한이 없었으며,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잠시 후에 아이의 눈동자가 움직이기 시작 하였고,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웃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살아났다고 감탄하였습니다.



이후로 아이는 약을 먹고 회복을 하였습니다.」

소합 불자가 여기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길...

「당신은 이미 성스러운 명호의 좋은 공덕을 알아서 스스로 염불하지만,

왜 당신의 동생에게 염불을 가르치지 않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침저녁으로 염불하게 하면 음식을 먹을 때

각각 먹은 사람이 배가 부르듯이 자기의 죄는 자기가 소멸시키고,

스스로 염불을 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소합이 답하길...

「동생에게 이미 염불하는 법을 가르쳤으며,

서방삼성(西方三聖: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셔주었습니다.



그러나 네 명의 자식들이 자라고 있어서 법문을 듣기 위하여 법회에 나올 여유가 없었습니다.」

소합 불자가 평소에 부지런히 염불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의 동생과 질녀가 처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원의 기도를 드려줄 수 있었겠는가



 

 

 



 



[14] 흉한 터를 좋은 곳으로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는데...

「一子持薺千佛喜 한 아들이 깨끗한 믿음을 가지면 천불이 기뻐하시고,

九玄七祖能超生」 9대 7대 조상들이 모두 극락에 왕생하게 된다.


이 말은 옳은 말이다.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가 재앙을 소멸하고 원한을 해결할 수 있으며,

흉한 터를 좋은 곳으로 변화시켜 주기도 한다.

여러분들이 만약 믿지 못하겠다 고 한다면 하나의 사실을 들어서 증명해 주겠다.


이 일은 신죽(新竹)에 있는 문아포교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곳은 55년에 개원했으며, 격주에 한번씩 대중에서 포교사가 가서 법회를 하고 있다.

거기에는 거사 불자 한 분이 있는데 모두들 그를 겸형(鉗哥)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겸형이 포교사들에게 말했다...


「염불법문은 정말 신기하며, 진실로 중생을 이롭게 하고, 확실히 영험이 있습니다.」

포교사들이 물었다...「당신은 염불을 하여 무슨 영험을 얻었습니까?」

겸형이 말하길...


우리 조상의 묘 가운데 하나는 아주 기괴합니다.

오래 전부터 성묘를 하러 가지 못했으며, 갈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성묘를 하고 돌아오면, 바로 병이 들거나 심하면 죽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목동이 가축들을 끌고 가서

묘지의 풀을 먹이거나 분묘를 밟게 되면,

목동과 가축들도 수일 내에 죽지 않으면 반드시 큰 병에 시달리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지방의 사람들은 누구도 그 분묘를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항복하고 대만이 광복한 그 해에 겸형의 당형이 말하길...

「우리의 그 괴이한 분묘가 거의 망가지고 있는데

만약 가서 성묘를 하고 수리한다면 우리의 자손이 반드시 발복하게 될 것이다.」



겸형이 말하길...「저는 감히 생각도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묘의 덕으로 횡재를 구하지도 않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당형은 혼자라도 가겠다고 하고

청명절에 제물을 모두 준비하여 묘 앞에서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묘를 잘 정리하고는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일개월 정도 지나자 당형의 아들 셋이 차례로 다 죽어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이 얼마나 겁나는 일이겠습니까?

저는 누구에게도 이렇게 가공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60년 8월 7일 태풍과 홍수의 수재가 있은

뒤에 또 다른 당형이 와서 그에게 말하길...


「내가 어제 그 괴이한 분묘를 지나오는데

그 묘가 물이 들어서 구멍이 파여져 있었어요,


만약 수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수리하고 싶어도 감히 손을 댔다가 재난을 당하면 어쩌겠습니까?」



그러자 겸형이 그 자리에서 말하길...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가서 수리합시다.」



그 당형은 좋아하며 말하길...「당신이 정말 수리하러 간다면,

수리에 드는 일체 비용을 내가 다 낼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시작 함 겁니까?」겸형이 말하길...「다시 한 달 더 기다리세요.」


겸형은 정토법문을 듣기 시작한 후로

몇 년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빼지 않고 드렸습니다.

괴이한 묘를 수리하겠다고 말하고 난 날부터

예불을 마치고는 바로 그 괴이한 분묘의 조상에게 회향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불 보살에게 애원하였습니다...


「불 보살이시여! 저를 보우하여 주십시오!

제가 불교를 믿기 시작하고부터 친척과 친구들 모두 제가 미신을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부처님의 법력을 요청하니 그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괴이한 분묘를 수리한 다음부터는

두 번 다시 사람이나 가축의 피해가 그 분묘 때문에 일어나지 않게 하여주십시오!」


이렇게 그는 매일 아침저녁 두 번씩 기도를 드렸습니다.

수리할 날짜가 되었습니다.

전날 그는 더욱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는데,

한 밤에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꿈에 한 분묘에 도달했는데 남향이었습니다.


 


앞에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개울물은 깨끗했습니다.

앞을 항해서 흐르고 있었으며, 묘의 양옆에는 두 그루의 벌거벗은 나무가 있습니다.

묘지의 비석은 쓸어져 있고, 봉분은 파헤쳐져서 구멍이 나 있습니다.

아주 황폐한 분묘입니다.

갑자기 묘지 안에서 흉악하게 생긴 여자가 나오는데 옛날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당시 겸형은 무척 놀랍고 두려워서 즉시에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흘렀을까... ...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노인이 겸형에게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전부터 가장 흉악한 귀신이었는데

후세의 자손이 염불하는 공덕으로 지금은 착한 귀신으로 변했어요.」

겸형은 분명히 보았고 확실하게 들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니 그것은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꿈의 경계는

분명히 불 보살님이 대자대비의 위신력으로 나에게 먼저 보여준 것일 것이다.

내일 나는 마음을 놓고 분묘를 수리하리라.


다음날 아침 당형이 와서 말하길...

「겸아! 내가 공사에 필요한 도구와 물품을 다 가져 왔으니 빨리 가져가라.」

겸형이 말하길...「제가 먼저 묻겠는데 (꿈에 본 것을 자세히 말하고) 그 묘는 여인의 것이 맞습니까?」

그러자 당형은 놀라며...「너 먼저 가 보았나? 아니면 어떻게 정확하게 알 수 있지?」

겸형이 말하길...「어제 밤 꿈에 가 보았습니다.」



겸형은 향, 초, 과일을 준비하고,

아울러 예불독송 책을 가져가서는 분묘에 가 보았는데,

꿈에 본 것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겸형은 제물을 다 차리고 향을 피우면서 예배를 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당신의 분묘를 수리하기 위하여 특별히 왔습니다.



먼저 아미타경을 읽고, 왕생주(往生呪)와 "아미타불" 성스러운 이름을 줄 것이니,

당신도 따라서 외운다면,

고통을 벗어나고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오.

이제 다시는 사람들을 해롭게 하지 말 것이며,

후손들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하고 분묘의 앞에서 염불과 경전독송을 다 마치고

분묘정리에 들어갔습니다.

비석의 흙과 이끼를 제거하고 보니 그 묘의 주인은 겸형의 할아버지의 할머니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년이 흘렀지만

겸형과 당시 함께 분묘를 수리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무사하게 지내고 있다.

여기까지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다.



귀신의 수명이 어떻게 그렇게 길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 경에 이르기를...

「귀신의 세계에 떨어지면 가장 짧게 살아도 500세를 살게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1개월이 귀신에게는 하루입니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귀신의 수명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그리고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의심하기를,

왜 조상이면서 자신의 후손을 해롭게 하는가?

역시 불경에 이르길...



「중생에게는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이 있어서

나고 죽는 육도(六道)에 윤회하면서 서로 뺏고 빼앗기며,

죽고 죽이며 서로 인과를 맺고 있다.

은혜를 맺으면 은혜를 갚고, 원한을 맺으면 원한을 갚으면서 끊이질 않는다.」



겸형의 선조와 그 괴이한 분묘의 주인은 반드시 풀지 못할 원한을 맺었을 것이다.

만약 겸형의 올바른 믿음과 염불로 부처님의 대자대비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면,

이 원한은 결코 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더욱 더욱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세요.




 

 

 


 




[15] 아가타약은 모든 병을 치료한다.



매년 봄 우리 대중법당에서는 신춘강연대회를 열고 있다.

한번은 청중가운데 5일 동안 계속 참석한 분이 있었는데,

그는 멀리 대동시에서 온 분이다.



그는 영풍백화점의 사장 황화조거사의 부인이 초대하여 법회에 참석 한 것이다.

이름은 임잔(林盞)이며, 당시에 임잔여사의 건강은 아주 나빴다.

얼굴은 누렇고, 피부는 바짝 말았으며, 목에는 붕대로 감았고, 수시로 기침을 하였다.


 


그는 황거사의 부인에게 고명한 의사를 소개해 달라고 하여 함께 병원에 갔는데,

이미 대동시에서 X-레이를 촬영해 본 결과 왼쪽 폐에 세 개의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여

그동안 한 근의 산삼을 복용하고, 주사도 백여 차례를 맞았으나 효험을 보질 못했다.


당시 오후 5시경이었다.

황씨 집안은 불교가정이므로 아침저녁의 예불을 빠진 적이 없었다.

예불시간이 되자, 황부인이 임잔에게 예불을 같이 드리자고 하고,

백팔염주를 주어서 염불하는 방법과 아울러 "아가타약"을 복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예불이 끝나자 한잔의 "대비주수"를 마시도록 하였다.


저녁 식사 후에 황부인이 임잔에게 말했다...

「임잔님! 당신의 복은 참으로 옅지 않아요.

오늘 저녁부터 우리 포교원에서는 5일 동안 불교강연이 있어요.」

그리고는 그 날 임잔을 데리고 법문을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날 밤에 임잔은 한번도 기침을 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임잔은 불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낮에는 황씨의 집에서 하루종일 지심으로 염불을 하고,

저녁에는 포교원에 가서 법문을 듣기를 5일 동안 계속 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약간의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정신은 의지할 곳이 생겼으며, 신체는 몇 일 전보다 몇 배로 상쾌해 졌다.



그리고 탄식하기를...「이 곳 사람들은 복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 도시에는 정법을 이렇게 쉽게 가르치는 곳이 없어요.」

황부인이 말하길...「당신은 이미 불교를 믿고 염불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더 큰마음을 낼 수 있을 거예요.



우리 포교원의 홍법위원들을 그 곳으로 초청하여 그 곳에서 불법을 펴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게 될 것이고, 당신의 공덕도 한이 없을 거예요.」

임잔은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며 말하길...



「좋습니다. 그 초청의 건에 대해서는 당신에게 위탁하겠습니다.

오가는 차표 또는 비행기표는 모두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다만 당신도 꼭 함께 와주시기를 바랍니다.」


30년 전의 교통은 오늘날처럼 편리하지 않았다.

가는 데만 이틀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반드시 고웅(高雄:까오쓩)에서 일박을 하게 된다.

임잔과, 황부인 그리고 법원스님이 동행을 했는데

고웅의 한 여관에서 머물 때 불, 보살의 가호를 받는 경험이 발생하였다.


원래 법원스님의 오른 발에 종기가 났었는데, 한 달이 넘게 치료를 했었다.

종기를 터트렸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했었다.

당시 무척 바쁘게 활동하였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웅의 여관에 도착하자

종기에서 통증이 참지 못할 만큼 심하게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관주인이 보더니 주위에 아주 유명한 의사가 있어서

푸른 풀로 고약을 만드는데 마침 그런 종기에 특효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곧바로 찾아가서 약을 사서 한번 붙였는데 바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살을 돋우고, 피부를 생성시킨다는 완전한 약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이미 반은 좋아진 것 같았고, 삼일째 되는 날에는 완치되었다.


이것은 모두 불, 보살님의 특별한 가피의 영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참으로 약이 이르자 병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법의 길을 떠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16] 대비주의 물로 생명을 살리다.

 



법원스님이 대동(臺東)의 해산사(海山寺)에서 5일 동안의 강의를 마쳤다.

회향하는 날 강의하던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헤어지기 싫어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60세 정도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한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당신이 말한 것은 모두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하거나,

악을 고치고, 착하게 살며, 마음을 바꾸는 도리가 아닙니까?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을 고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비롭게 지시해 주시길 당신에게 청합니다.」



법원스님이 당시에 이 할머니를 보니, 목에는 커다란 혹이 나 있었고,

옷깃으로 감추지를 못할 정도였다.

법원은 생각하기를...이 사람은 그 혹을 제거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만약 불교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목의 혹을 제거해 주어야 하겠는데,

만약 구해주지 못한다면,

5일 동안 불교가 위대하다고 말한 법문이 과장된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느낌이 닫는다.

그리고 주위에는 그동안 법문을 듣던 사람들이 모두 둘러서서 답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스님은 즉시에 한가지 방편으로 답했다...



「만약 자기 혹은 다른 사람이 재앙을 면하려고 하거나,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병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아미타경과 왕생주 그리고 아미타불의 성호를 수백 수천

나아가서는 수만 번을 외워야 하는데,

아미타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아미타불을 염불해도 됩니다.



다만 반드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며,

그런 다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던지 지극정성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의 성호를 외우며,

동시에 대비주수를 마신다면,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목숨이 다 했다면, 이 예불과 염불을 한 공덕으로 서방정토에 왕생하여,

영원히 나고 죽는 고통에서 해탈하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법문입니다.」

세월은 화살과 같아서 금방 일년이 흘러 가버렸습니다.


 


하루는 대동의 임잔이 우리 포교원에 왔는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지난 해 두 사람에게 내린 법문을 통해서 임잔의 병은 이미 온데 간데 없이 소멸되었고,

체중도 10 Kg. 정도 불어서 예전에 입던 옷을 하나도 입지 못하고 모두 새로 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원스님에게 말하길...

「대동의 사람들은 모두 당신이 다시 와서 설법해 주시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저만 염불로 영험을 얻은 것이 아니라,

당시 목에 혹이 있던 할머니도, 염불독송 방법과 대비주수를 마시는 법을 배워서,

날마다 그대로 하여, 할머니의 혹은 이미 소멸하여 옷깃을 세워서 감추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는 모두 신기하다고 합니다.」


임잔은 계속해서 말하길... ...

할머니의 혹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크나큰 영험이 있습니다.

정말 사람들에게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며느리가 있는데,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아기를 잉태하여 열 달이 다 되었으며,

스스로 분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과 밖의 청소는 물론이고 돼지우리까지 청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태아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의 어른들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돼지우리를 잘 목 건드려서 일어난 사고라고 마을 어른들은 말하였습니다.

3일이 지나도 여전히 태아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임산부는 아침 일찍 시어머니를 만나러 갔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진찰을 하더니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배속의 아이는 이미 죽어서 3일이나 지났어요,

스스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수술해서 끄집어내야겠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임산부는 자세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술을 해야 한다면 적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상의하여 허락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산골 마을로 올라갔습니다.

다시 4일이 지났는데 태아는 여전히 움직이질 않고 있습니다.



임산부는 다시 시어머니를 만나러 대중에 갔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태아가 7일 동안 움직이지 않은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데리고 다른 산부인과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병원의 의사도 같은 진단을 내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 앞에 촛불과 향을 피우고,

며느리에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게 하고는

자기는 예불을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대비주를 외운 물을 한잔 며느리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지심으로 불, 보살의 가호로

며느리의 뱃속에 있는 죽은 태아가 수술의 번거로움과 고통을 거치지 않고,

자연으로 유산되기를 기원 드렸습니다.



그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고, 며느리에게 산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한밤에 며느리가 갑자기 시어머니를 깨우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뱃속에 태아가 움직여요!」



시어머니가 담담하게 말하길...

「그것은 반드시 불, 보살의 가피를 입어서 죽은 태아가 스스로 나올 모양이구나.」

다음날 임산부의 태아는 이미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임산부의 몸도 가벼워졌습니다.



다시 산골마을로 돌아간 임산부는

일주일 뒤에 사내아이를 순산하였는데,

모자가 모두 편안하고 건강하였습니다.


임잔이 포교원에 와서 이 신기한 부처님의 영험을 받은 이야기를 전하자,

모두 칭찬하며 자기의 일처럼 기뻐하였습니다.

 



 

출처 / 세이클럽의 '佛書보시 장경각'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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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지역의 한 사찰에서 희귀한 흰색 자라 한 마리가 보호되고 있는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일 양산시 웅상읍 주진리에 소재한 불광사(주지 청봉스님)에 따르면 지난달말 청봉스님이

충북 청원군 강외면에서 1년3개월된 흰색 자라를 가져와 현재 불광사에서 보호하고 있다.

암컷인 이 자라는 길이 20㎝, 무게 400g 정도로 몸 전체가 흰색을 띠고 있으며

일반 자라에 비해 온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봉스님이 '돈오(頓悟.갑자기 깨닫다) 보살'이라 이름지은 이 자라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자

불광사에는 자라를 보기 위한 시민과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청봉스님은 "흰색 자라가 나타나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꿈을 꾼뒤 흰색 자라가 있다는

충북지역에 찾아가 소유자인 김우기씨로부터 이 자라를 인수했다"며 "신도들의 의견을 수렴해 세계에서도

희귀한 이 자라를 계속 보호할 지 방생할 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기사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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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2010년 음력 2월 15일 부처님 열반일에 있었던 일

 

2010년 음력 2월 15일에 북경 왕징에서 최초로 부처님 열반일에 방생행사를 하였다.

그 때 조선족 동포 20여명과 중국인 10여명이 함께 참석하였는데, 그날 마침 하루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려 내 생각에, 부처님 열반일을 중국의 수도 북경 왕징에서 거의 몇백년동안
하지않던 행사를 하니, 하늘이 부슬비를 내리는구나 생각하였다. 왕징은 참고로 북경에서
조선족 타운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은 거의 모든 성마다 조선족 타운이 있다.

 

당일날 아침 10시경에 북경 법화경도량에 모여 법화경의식을 1시간 가량하고서, 각자 자가용을
타고 방생현장에 도착해 구입한 물고기를 놓아주는 의식을 하고 그 근처식당에서 모두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틀 뒤에, 조선족 보살중에 현모라는 이가 전화를 했는데, 열반일 행사를 하고서 그날 꿈에
물고기가 사람으로 변해 아기모습을 하였는데, 너무나도 예쁘게 생겨 깜짝 놀랐다며, 꿈속에서도
매우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내가 그 보살에게 "보살님, 원래 방생은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빨리 죽어 사람이나
천상의 몸을 받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고기가 물고기의 몸을 오래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보살이 꿈에서 본 것은 보살이 방생해 준 물고기들이 꿈에 사람의 몸으로 나타난
것은 자신들이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때부터 이 보살이 진심으로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데 정말로 성실하게 하였다.

원래 조선족 동포들은 종교에 심취하는 경우가 드문데 그 신심을 움직이게한

법화경의 위력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출처: http://blog.daum.net/sajutarot/15280745  연화사 인검 블로그

법일법사(정홍경)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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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방생의 공덕

 

김ㅇㅇ 법우의 소식을 올립니다.

 

9월 장어 방생 신청하라고 김ㅇㅇ 법우가 일하는곳에

갔습니다.

 

누나 내가 저번에 논산가서 자라 방생하고 너무 신기해서

종무소에 전화해서 계좌번호 받아서 입금했다고 하대요.

 

잘 했다고 하며 물으니 이법우는 갑상선 암수술을 해서 항상 피곤하고 짜증도 의지와 상관없이

내곤했는데 방생 이후에는 일을 해도 피곤함이 덜하고 우울한 것도 없어지고

짜증도 안내니 같이 일하는 직원이 묻더래요

 

방생 했냐 묻길래 저랑 같이 논산 가서 자라 방생 하고 왔다고 자랑을 했대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고 방생이 그렇게 좋은 것이냐고 묻더라는 얘기를 듣고

가게 직원들 모두 안심정사 오겠다며 웃었습니다.

 

방생 공덕 큰거야 스님 항상 일러 주시니 수요일 9월 방생 많이 참석하세요

출처: 다음 안심정사카페(cafe.daum.net/ansim24) 전법선님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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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월부터 방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한 지 삼년이 되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딸을 위해 방생을 시작했습니다.
한달이 지나자 아기가 생겼습니다.


생길 때가 되어서 생긴건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기도를 하며 방생을 해서 생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한동안 방생을 안했습니다. 지금은 손주가 태어나 백일이 지나고 딸도 손주도

건강히 잘 살고 있기에 방생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스무번째 미꾸라지 방생을 했습니다.

 

출처: cafe.daum.net/bangseng 방생카페 부처님 세상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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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나무아미타불카페 마석새댁님 글

 

 

법화경 사경과 방생으로 작년 인연만나서 올해 결혼했어요.
인력으로 안되는 일은 불보살님께 정성껏 기도드리면 들어주십니다.
법화경 사경과 방생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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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갖고싶다면 자라방생을
즐겨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매일 108독을
독송하라고 해주세요.


출처: cafe.naver.com/clean-village 상룡김ㅇㅇ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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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연지해회 카페 주세규님 글

 

홍일대사 법문

 

수명을 늘리고 싶은가

 

병이 낫기를 바라는가

 

고난을 면하길 바라는가

 

자식을 낳고 싶은가

 

극락에 왕생하고 싶은가

 

이들을 원한다면 이제 가장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리리다

 

그것은 바로 방생이오

 

欲延壽否 欲愈病否 欲免難否 欲得子否 欲往生否

 

倘願者 今一最簡之法奉告 卽是放生也

 

 

*홍일대사(1880-1942) : 근세 중국 불교계의 고승으로 알려진 홍일 대사는 학율(學律)이나 지율(持律)에 있어서도 명망이 높으신 분이다. 대사가 스스로를 점검해 ‘비구의 자격에도 충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미(沙彌)의 자격에도 충분하지 못하고, 심지어 오계를 제대로 잘 지키는 우바새의 자격도 충분치 못하다’고 자책하셨다고 한다. 다재다능하여 음악, 미술, 서법, 희곡, 금석학, 서각(書刻), 시사(詩詞) 등 다방면에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염불법문을 중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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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경기도에 사는 어느 보살님은 같은 지역의 한 도반과 함께 반드시 사찰에서 하는

방생법회가 아니라도 한번씩 방생을 같이 다니는 사이다.

 

그 보살님에게 하루는 친정 오빠의 아내 그러니까 올케가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인즉, 오빠 부부가 하루는 석모도로 여행하기위해서 배를 타고 가고 있는데

뱃전으로 무엇인가 기어올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인가하여 바라보니 바다거북이였다.

어떤 사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쉴 곳을 찾아 뱃전으로 기어올라오고있던 모양이었다.

 

마침 그 거북이를 본 부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 보신용으로 좋겠다싶어 집으로 그 거북이를

가져가서 잡아서 먹을 요량으로 집안에 있던 빈 어항에 임시로 넣어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항에 넣어두고 몇 시간 흐른 후 그 올케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잠을 잤는데 올케가 그 날밤 꿈을 꾸었다.

 

꿈에 그 거북이가 나타나서 이야기하기를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사람의 말을 하며 몇 번이나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잠을 깨고 난후 올케는 머리도 아프고 꿈도 이상하고 이 거북이를 어떻게하면 좋을까 문의하기위해서

절에 다니고 방생에 대해서 잘 아는 시누이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 경기도 보살님은 " 원래 그 거북이를 잡았던 바다 근처에 놓아주세요. 그러면 아마

그 증세는 없어질겁니다."라고 하였다.

 

그 조언을 듣고 부부는 다시 배를 타고 그 거북이가 뱃전을 기어오르던 바다 근처에서 놓아주고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신기하게도 올케를 괴롭히던 심한 두통증세는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 부부는 서로 이야기하기를 만약에 그 거북이를 잡아먹었다면 아마 큰일났을 것이라 염려하며 불자의 조언을 들어서

방생을 한 것이 참으로 잘 한 일이라 여기며 흐뭇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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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 이야기는 M방송사에서 1996년에서 1997년까지 방영된 바 있는 다큐멘터리 'ㅇㅇㅇ속으로'에
나왔던 실화이다.

 

 

1)

경기도에 사는 농부인 모씨는 여름 어느 날 논일을 하러가다가 논주위의 좁고 수량(水量)이 적은 개천에 무언가 아주 큰 것이 뭍으로 반쯤 걸쳐진 채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물고기인데 그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 누구도 그 당시에 그렇게 큰 민물고기는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다고 하였다.


길이가 못되어도 1미터 50센티미터는 족히 넘을 듯하였으며 무슨 고기인지도 의문이었으나 동네 사람들을 통해 두루 알아본 바 가물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마 그 가물치는 인근 저수지에서 흘러들어와서 어찌어찌해서 그 곳까지 온 모양이었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횡재라고 생각한 그는 동네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서 집으로 큰 가물치를 옮겼다. 욕실 욕조에 임시로 두고 어찌할까 생각했는데, 그 가물치가 얼마나 컸던지 욕조를 다 채우고도 그 꼬리가 욕조밖으로 나와있을 정도였다. 가물치를 요리해서 동네잔치를 할까 생각하던 그는 중탕을 끓여서 가족이 먹고 또 나눠먹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이야기를 동네사람으로부터 듣고 그렇게 하기로하고 평소 잘 알고 이용하던 건강원 사장을 집으로 불렀다.

그 이튿날 집으로 왔던 사장과 함께 가물치가 있던 욕실의 욕조를 본 순간 모두들 놀랐다. 얼마 전까지만 그 곳에 얌전하게 가만히 있던 가물치가 없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그 가물치가 뛰쳐나갔다면 뛰쳐나간 흔적이 있어야할 터인데 욕조주위는 아무 흔적없이 깨끗하였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몇 시간동안 집주위를 샅샅이 찾아보아도 가물치는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아깝지만 어쩔 수 없나보다 생각하고 다시 욕실로 돌아온 집주인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아까까지만해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그 가물치가 다시 그 욕조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상한 일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경험한 부부는 의논해서 이 가물치는 영물이라서 이런 모양이다, 잡아먹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인근 넓은 저수지에 방생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을 사람과 함께 트럭에 실어서 그 가물치를 넓은 저수지에 놓아주었는데 그 가물치는 놓아주자마자 깊은 물속에 막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몸을 수직으로 세워서 고맙다는 마음을 표시하는 듯 놓아준 사람들을 몇 분동안 바라보더니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2)

강원도 횡성군에 사는 김ㅇㅇ씨는 동네 선배와 낚시를 갔다가 낚시의 찌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발견하고 30분 이상 실랑이를 벌인 후에 끌어올렸는데 그것은 크기가 아주 큰 야생자라였다. 미꾸라지를 낚시 미끼로 했더니 자라가 덥석 물었던 모양이었다.

선배의 말에 자라의 생피를 먹으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피부터 먹고 자라를 요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안의 큰 고무통에 담아두었던 자라를 소문듣고 보러온 여러 동네사람들 앞에서 잡으려고하는데 그가 도마 위에서 막상 자라를 잡으려고 했더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않았다. 달리 그 자라를 잡아줄 사람도 없다고 판단한 그는 당시 동네에서 돼지를 잡거나 닭을 잡거나 기타 동네잔치 등에 쓰일 생물을 잘 잡던 양ㅇㅇ씨에게 부탁하니 기꺼이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막상 도마 위에서 자라목을 치려고했던 양씨조차도 칼을 들었으나 자라목을 치지못하였는데 수백킬로그램 되는 돼지도 해머 한 방으로 잡곤하던 그도 이상하게 꺼림칙한 마음이 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잡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없이 며칠 째 자라를 고무통에 보관하고 있었다. 하루는 잠을 자고 있는데 김 ㅇㅇ씨 부부 방밖에서 누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밤에 누구인가해서 열어보니 그 자라가 희한하게도 큰 고무통을 넘어서 마당을 지나서 높은 턱을 올라서서 방문을 앞의 두발로 치던 것이었는데 그것이 문두드리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에도 다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자라가 또 그렇게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부부가 자라를 잡아서는 안되겠다싶어 그 자라를 넓은 저수지에 방생하기를 결심하고 다시는 사람에게 잡히지말고 잘살라는 이야기와 함께 자라를 놓아주고 돌아온 후 며칠 뒤에 김씨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방생했던 그 자라가 꿈에 나타나서 사람의 말을 하는데, "아저씨, 앞 집을 사서 식당을 해보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워낙 생생한 꿈이라서 앞 집을 가보니 식당할 자리는 아닌 듯한데 이상하다싶어서 실망하고 머뭇거리며 아내에게도 그 꿈이야기는 하지않고있는데 그 며칠후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때마침 그 집 주인이 그 집을 싸게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려고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김ㅇㅇ씨가 꿈을 꾼 며칠 후 이번에는 그의 아내가 다시 그 자라꿈을 꾸었다.
자라는 또다시 사람의 말로 "아주머니, 앞 집을 사서 식당을 해보세요. 아저씨를 잘 설득하세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정말 심상치않은 꿈을 두 사람이 다 꾸었다는 사실을 안 부부는 결국 그 집을 사서 식당을 열었는데 막상 식당을 열고
한동안은 가게가 목이 좋지않은 곳에 위치해서인지 손님도 거의 없고 거의 파리만 날릴 정도로 장사가 안되었다. 그래서, 헛된 짓을 했나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달 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행정계획이 발표되어서 주위 다른 집은 거의 모두 헐리고 그 식당을 중심으로해서 그 주위에 동사무소, 학교, 우체국, 기타 주민편의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그 식당은 처음 개업할 때에는 전혀 예기치못하게 중심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행정계획 발표이후 그 식당은 잘되기 시작해서 김ㅇㅇ씨는 그 옆집까지 매수하여 식당을 확장하였고 부부가 같이 운영하고 종업원 세 명을 두고 있으며 지금도 아주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더불어 김ㅇㅇ씨 부부는 아이가 없었고 아들을 갖기를 원했는데 그 자라를 놓아준 얼마 후에 아내가 임신을 해서 건강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것도 자라덕택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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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카페 답설무흔님 2008. 8.6일자 작성 글

 

 

눈인사만 드리다가 오랫만에 글하나 올려봅니다.

 

올 5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기는 창원입니다. 일요일에 아이들 보러 집에 갔었습니다.

오랫만에 서먹서먹 했었지만 아이들 데리고 진해 바닷가 놀러갔었습니다. 저녁무렵 아이들 엄마폰으로

연락이 오더군요. 애들 엄마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 부부지간에 낚시 왔는데 숭어를 많이 잡았다고

싱싱하니까 살아 있을때 가서 먹어라고 급하게 연락 왔네요.

 

전 별로 내키지 않았고 살생은 너무 마음이 아파 안갈려고 했지만 애들엄마 눈치보며 그쪽으로 갔었습니다.

이래저래 주섬주섬 담아주시는데 아홉(9) 마리더군요!

대충 봉지에 넣어 돌아오는길에 애들엄마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있잖아! 뒤에 살아있는 고기 있으면 살려주면 안될까?"

 

잠시 생각하더니 살아있으면 그리하라더군요.

급하게 차를 돌려 다시 바닷가로 갔습니다. 트렁크 문열고 봉지를 푸니까

제일위쪽 세마리중 두마리는 죽었고 한마리가 눈을 껌뻑 껌뻑 하고 있었습니다.

봉지 뒤지기가 싫고 비린내를 싫어해서 그냥 그넘을 데리고 바닷가로 뛰어갔네요.

아직 살아있는게 너무 신기했었습니다.

 

큰애가 같이 뛰어 나오더군요. 같이 방파제 지나서 숭어를 놓아 주니 가만히 있기에 죽은줄 알았습니다.

이내 두눈을 껌벅이더니마 큰숨 두번 쉬더니 한바퀴 돌고는 멀리 가더군요!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살면서 올바른일 하나 제대로 못했는데 ....

한편에는 아홉마리 중 한마리만 살려주게 되어서 안타깝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 보내주고 집에 오는길에 전화가 왔네요.. 회를 칠려고 보니깐 봉지 제일 아랫쪽에 3마리가 더 살아 있었나봅니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의 작은 부주의가 그생명들을 다 살리지 못했음을 원망하였습니다.

미안함에 그녀석들을 위해 광명진언만 읊어주었습니다.

 

며칠 후, 애들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꿈에 바닷가에서 물고기 한마리가 헤엄쳐오더니만

눈앞에서 용으로 변신해서 눈부신 비늘을 뿌려주면서 승천하더랍니다.

그 일 있은지 일주일후 제가 밤에 과음한후 차에서 자다가 새벽에 주섬주섬 운전해서 집으로 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제 생각에도 음주운전이었습니다. 숙취가 남아있어서..

 

몸이 덜덜 떨리는것을 이기고 사실대로 피해자 분께 말씀드렸습니다. 들은게 많아서 겁이 많이 났습니다. 돈을 요구할지

아니면 경찰을 불러서 구속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직업상 운전면허 최소되면 바로 퇴직해야합니다. )

 

이분께서 연락처 한장 달라고 하면서 집에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보험회사 연락해서 사고 처리하고 전화드려도 전화 안받으시네요..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었고

사고 일주일후 결혼해서 신혼여행가셔서 연락 안되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습니다.

열심히 기도정진 해야하지만 간사한게 힘든일 지나고 나면 이래저래 타협해서

절에도 자주 안가고 지장기도도 하는둥 마는둥 합니다.

아래글중에 방생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다시금 뉘우치는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일 많이 만드시고 행하셔서 수승한 공덕 널리 회향하시길...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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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군산 건강원님 글

 

이런이야기 하긴 뭐하지만;; 자라는 옛날부터, 행운을 불러온다고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도 그러셨거든요.^^

여담으로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 1950년에 저희 할아버지께서
저희 집안 사람들만아는 산 속에있는 아주 큰 호수로 자라를 잡으러 가셨대요.

거기서 크기가 엄청 큰 자라를 잡으셨대요. 그런데, 그 자라 등에
人(사람인)이라는 한자가 또렷이 써있었대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이건 잡을 것이 아니다 싶어서
자라를 놓아줬는데 자라가 얼마 후 할아버지꿈에 나타나서 중요한 사람들을 데리고,
빨리 여기로 오라고 했대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꼭 그래야만 할것같아서
할머니와 지금의 저의 아버지를 데리고, 그 호숫가로 오셨대요...

 

그런데, 그 날 6.25전쟁이 일어났대요..``; 사실 뭐 저도 믿지는 않지만...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하시면 눈물을 보이셔서 사실인가 합니다.

 

그 후로 저희 집안은 등에 人 자가 새겨진 자라를 등에 문신으로 새겨놓았습니다...

항상 행운이 붙으라는 그런 의미로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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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보살님이 오셨길래 자랑삼아 우리 기도 일정을 이야기 해 드렸습니다..

 

다양한 일정 중에 다라니 법회와 서도회에 큰 관심을 보이십니다..

 

또 정월보름에 하는 방생법회 이야기를 할땐 상기된 모습으로

 

"전 방생을 자주 갑니다. 그 전엔 방생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제가 다리가 안좋아 오래도록

고생했었는데 방생을 한번 갔다오고는 씻은 듯이 나았어요.. 신기한 일이죠? 방생의 영험을 체험한 이후론

방생을 즐겨 합니다. 저도 이번에 동참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처: 황룡사 카페(cafe.daum.net/hwangsanjigong) 황산스님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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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미상

 

주변 지인들에게 방생을 많이 권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위해 혼자 방생을 했다. 방생이후 하던 사업 매출이 세 배가 올랐다.


주변에서 같이 사업을 하는 지인들도
내가 권해서 방생한 이후 사업이 더욱 잘된다고 한다.


나는 요즘도 한 번씩 방생을 한다.

 

여기 인연되신 분들도 방생을 권합니다.

내가족 내부모를 위해서라도 방생을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방생을 많이 하면 관상이 바뀌고 운명이 바뀝니다.
마음가짐도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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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카페 나무불님 글

 

올해(2012년) 방생(가물치, 자라, 미꾸라지)을 하고 나서, 1년 넘게 힘들었던 허리가...말끔하게 괜찮아졌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앉아서 오래 일하는 직업이어서 작년 초에 허리가 불편하여 한의원에 가서 허리 침을 두어달 맞았는데,

치료 당시에 괜찮았던 허리가 치료 종료 후 한달만에 다시 원상복귀되어서 힘들었었지요...

방생 이후에는 치료 없이도 지금은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있으신 분들께 방생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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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홀로 사는 것 같지만 수많은 인연이 도움으로써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이란 자연히 오는 것 같아도 인연의 도움이 없다면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집안에 오랫동안 용(龍)을 받든 인연이 있어 그러한 영계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많이 받은지라, 보답의 차원에서 용왕공양을 자주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오랜 전 몸이 안 좋을 때에..용왕공양을 하고..일을 하다 혼절을
한 적이 있는데 혼절을 하는 그 와중에 꿈을 한 편 꾸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 제가 가라앉아 있었는데..수백마리의 잉어들이
저의 뱃속에 들어오는데 꿈속에서도 그렇게 힘이 날 수가 없고
혼절에서 깨어났는데 전과는 달리 몸이 너무나도 가볍고 힘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천지간의 이치는 주는 것이 있으면 보답은 자연히 오기 마련입니다.
용왕공양을 자주하시면 용궁에서 가피가 무수히 옵니다.

 

본디 용신은 천룡팔부란 호법중의 하나로서 그 가피가 빠릅니다.

 

건강이 안좋으신 분들, 재물이 급하신 분들은..용왕공양이나 방생을
자주 하신다면 반드시 음호와 가피가 있을 것입니다.

 


재물운을 부르는 양밥 - 용왕공양

 

이것은 제가 자주 행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위를 하여서 그 행위에서
오는 음호력을 몸소 체험을 한 적이 많습니다. 사실 재물운을 부르는 방법은
간단한 이치만 깨우치면 무궁무진하도록 창작이 가능합니다.

 

일단 아래 재물운을 부르는 간단한 양밥을 소개하자면..

연못, 강에 물고기들이 사는 곳으로 갑니다.


익힌 조밥이나, 백미(밥)을 뭉쳐서 강가나 연못에 던져 물고기들의 밥을 줍니다.
물고기들에게 공양밥을 던져주며 주문을 외웁니다.

 

"하늘이 사람을 기르시었으니 저역시 중생을 기릅니다. 이 인연으로 소원성취케
하옵소서."


이 행법은 조선 민간에서부터 지금까지 알려진 재물운을 부르기위한 간단한
최재법(催財法)으로서 용왕공양이라고 많이들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행위는 강이나 연못에 머물러있는 용신을 달래고 그 음호를 기리는 방법으로서..

저 역시 무수한 가피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행위같지만..그 음호력은 상당히 큽니다.


자주 행하시다보면 곳간이 넉넉해지는 것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용왕맞이 잘하셔서 복받으시길 바랍니다.

 

 

 

 

작년 올해는 방생을 참 많이 한 해 였습니다.


제 자신이 지어놓은 복덕자량이 부족하여 그것을 채우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었기에

지금의 제 모습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몸이 안좋아서 기맥의 흐름이 영 안좋아

걱정했었는데 며칠 째 꿈에 의사가 나타나서 약도 주고 주사도 놔줍니다.

공덕무량....

과거 집안에 빚으로 인해 큰 어려움이 있을 때 였습니다.

한달에도 방생을 무수히 하였고 삼십마리, 사십마리씩 사서

강가에 풀어주며 작법을 행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날..광명진언을 기도하는 중에...비몽사몽간에 선잠이 들었습니다.

어느 바닷가를 걷고 있었는데 검은색 이무기에게 쫓기다 용의 도움으로

그 이무기를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용이 나타나서 그러더군요.

참으로 애처롭구나...네가 고생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으니

이제부터 도와주겠다라는 말을 딱 하는데 일어나서 직감했습니다.

이 어려운 일들이...이제 머지않아 풀리겠구나..하고

그 이후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 어려움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근 일주일사이에 수천만원을 갚았으니 이것은 신불(神佛)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요.

푼돈 받아먹고 사는 점쟁이가 그러한 돈이 갑자기 떨어질 일이 없을 것일텐데...

방생은 참으로 좋은 공덕입니다.

내년 정월이후 추위가 풀리면 무수한 방생공덕을 쌓아보시기 바랍니다.

 

 

 


 방생의 공덕은 참으로 신묘(神妙)합니다.

수없이 많은 고난과 액운이 닥쳐올지라도 방생공덕이 있으면
그 액을 면합니다. 혹자는 짐승을 풀어주는 것이 무엇이 대단하냐고
하지만 고래로부터 성인들이 남기신 가르침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설법을 펼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에게 올리는 제사나 재의 특수한 힘을 청하는 여러 기도법과 뒤지지
않는 그 응험이 큰 이적을 나투는 방생은 어느 누구든 할 수가 있습니다.

 

인광대사께선 방생에 열가지 가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전쟁의 위험이 없다(一者無刀兵劫)

둘째는 기쁘고 길상스러운 일들이 모두 모인다(二者集諸吉祥)

셋째는 건강하고 오래 산다(三者長壽健康)

넷째는 자손이 번창한다(四者多子宜男)

다섯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신다(五者諸佛歡喜)

여섯째는 은혜에 감응한다(六者物類感恩)

일곱째는 모든 재난이 없다(七者無諸災難)

여덟째는 천상에 태어난다(八者得生天上)

아홉째는 모든 악이 소멸된다(九者諸惡消滅)


열째는 복덕과 수명이 영원하다(十者永遠福壽).


오늘은 입춘(立春)입니다. 다들 방생공덕 잘 지으셨습니까?

공덕무량, 도균배상

 

 

 

인천 소래포구..서해의 바닷가는 아름답다.

 

어시장을 지나다 문득 방생을 하고싶어 지갑에 있는 돈을
다 털어서 바닷물고기를 한움쿰 사서 방생하였다.

 

하루 자고올까 생각하다가..날 믿고 일을 맡겨주신 분들을
기원하기위해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고..한참을 앉아 주력(呪力)을
하는데.. 제3의 눈으로 보인다.

 

어느 젊은 여인이 길바닥에 쓰러져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젊은 여인이 쓰러져있는데
죽은 모습에 미소를 띠고있고, 두 손을 다소곳이 포개었는데
그 위에 송이가 큰 국화꽃이 올려져있다.

 

서글프다! 무엇이 그리 한이 져서 삼대가 지나도록
집안을 그리 흔들어대더니! 이제서야 저 세상으로 가는구려 영가여!
부디 잘 가시구려..선대의 인연들이 어리석어 그리 된 것이니..

오늘 수십년을 가내를 어지럽히던 악연이 이렇게 또 떠나간다...

 

공부를 마치고 커피 한 잔 담배물듯 마시며..곰곰히 생각해보니..
수년을 주문을 외웠어도 안 떠나가던 인연이 왜 갔을까..

 

아! 낮에 방생을 한 이 인연이었구나!

 

인광대사께서 방생은 숙세의 원한을 푼다하시었는데
그것이 참인가 봅니다.

 

방생이란 참으로 신묘합니다.

 

 

 

 

 

방생의 가피를 빨리 받으려면?

 

 

우리들은 가피를 받기위해 방생을 많이 합니다.


본디 방생이란 생명을 억압에서 풀어준다는 의미이지만
구복을 위해 접근을 하는 것이 좀 찜찜하긴 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은 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것입니다.

 

구복을 위해 방생을 하든, 진리를 위해 방생을 하든,
정확한 방식으로 방생을 하여 축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방생을
한다면 그 이익은 무량하며 가장 빨리 다가오게 됩니다.

 

저는 가끔씩 방생을 하면서 생각하곤 합니다.
이렇게 불가사의한 위신력과 힘이 담긴 방생이란 방편을
왜 사람들은 써먹지 못하는걸까하고요. 그렇듯 방생이
가진 신묘한 힘을 오랫동안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생을 하여 공덕을 받기에는 몇 가지 조건들이
필요한데 그것은 첫째로 방생의 대상이 적합한 환경과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곳에 풀어주셔야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두번째는 방생의 대상의 몸이 커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몸집이 클수록 희로애락을 더 강하게 느끼기 마련인데
방생을 하는 대상인 유정의 몸이 클수록 그 행복과 쾌락이 증대되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방생을 하는 시주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세번 째, 달[月]의 움직임이 강하게 움직일 때 방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매월 음력 10일, 15일이 방생을 하기 가장 좋은 날입니다.

 

꼭 부적이나 제사 어떠한 힘을 불러들이는 방편이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방생의 행위를 어느 누구나 할 수있는 작은 제사라고 호칭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영적인 힘과 가피를 직접적으로 불러일으키는 큰 힘을
가진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방생을 하면 수명이 늘어나고 누릴 복이 무량하게 증대됩니다.


그리고, 숙세의 업장이 다스려지며 큰 위난이 무난히 빗겨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큰 힘과 이익을 주는 방생을 권해드립니다.

 

모든 생명은 모두 귀하겠지만 살생하면 받게되는
과보중에 크고 작음의 유무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생의 몸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몸이 클수록 쾌락과 고통을 더 잘 느끼는데 그 감관의 폭이
넓기때문이며 몸이 작을수록 그 요소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방생을 할 때에도 좋은 과보를 얻으시려면 큰 물고기를
사서 풀어주시면 좋습니다^^

 

임신중에 주력수행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태아의 시기에는 여러 인연들이 화합하는 시기로서 잉태중
주문을 외우면 그 힘이 온전히 태아에게 전해져 앞길이
전일해지게 됩니다. 또한 임신중에 하는 방생은 자손에게 아주
큰 복으로 다가오며 일생을 무병장수하게 됩니다.

 

다만 검증된 주문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도나 좌도 계열에서 내려오는 주문은 추천드리지 않으며
육자대명왕주, 광명진언, 불모다라니 등과 같은 불가의 진언을
수지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출처: blog.naver.com/kss7928 광명사 블로그 광명거사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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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불정능엄신주(=능엄주)를 공부하면서 각 단계별 장애가 참 많이 있었는데 그 때를 미리 예지한

덕분에 고비고비를 넘기는 방편으로 삼았는데 그것이 바로 보시, 방생, 불사,

공부하시는 스님 보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능엄주를 공부하다보면 장애가 나타날 징조는
반드시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꿈으로 자주 예시하였는데 그 때
마다 방생을 하면서 풀어나갔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일체함령(영가)의 집입니다.
나의 육신이라하더라도 그 육신에는 자기자신의 혼만이
깃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억겁의 세월동안 각처의 모습
으로 지내오면서 인연된 업식들이 함께 공존하는 여인숙이요,
여관이며, 모텔, 호텔입니다. 또한 조상님들의 안식처가 바로
우리들이 몸입니다.

 

방생(放生)은 체(體)에서 이탈되어가는 함령들의 공덕이요, 방생에 소요되는 경비는
함령이 천도되는 순간의 노자돈이며, 체의 공덕이기도하며, 이로 인해 하고자
하는 공부가 한단계 업(up)되며, 발생할 사고를 미리 방지해주며, 망하거나
죽을 자리에서도 살아나게하며 온갖 마장을 물리치고 복을 이끌어오며, 나의
체(體)와 인연된 이들이 고루 그 복덕과 혜택을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사찰에 가면 스님들이 방생에 대한 교육은 별도로 하지 않습니다.
방생만 잘해도 모든 액난을 소멸시킬 수 있고, 몰락해가는 가업이나
사업이 부활하게되며, 부부간의 애정이나 자녀와의 화합, 형제들간의
화목이 연이은 방생으로 인해 점점 강화되며, 모든 일이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이리되면 속세의 인간사가 고민이 사라지므로 사찰의 스님이나 굿당, 교회의
목사가 필요없어집니다.

 

방생은 영가의 장난까지도 해결하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습니다.
절이나 굿당에 가서 고가의 천도재를 하는 것보다 빠른게 방생입니다.

 

방생을 하실 적에는 가급적 생명력이 강한 십장생에서 하면 매우 좋으며
방생물을 구입하려할 적에 액수에 관계없이 제일 첫번 째의 느낌이 오는
방생물을 피하지말고 구해주면 공부의 성취시일이 크게 단축됩니다.


그리고, 업식들이 이탈하는 것도 힘이 미약한 것들로부터 점차 강한
존재의 순서로 정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방생은 자신의 그릇과 범주내에서 실행됩니다.

 

 

(2)

제가 느낀 방생의 의미입니다.

방생은 내가 지은 전생과 현생의 업을 정리해주는 조건물입니다.
가령 내가 법문공부를 하는데 이상하게 힘들 때가 방생을 하여야
하는 때인데 그 때를 암시해주는 느낌이 수일 전부터 주변에서
나타납니다. 이를 무시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꿈이나 환상 일상생활에서 암시가 오는데 그것을 캐치하셔야합니다.
그것은 내몸에 인연되어진 업식이 분리되거나 이탈해가는 순간입니다.
바로 그 때 방생을 하게되면 업식이 내 몸에서 분리되고 나는 한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정화되는 것입니다.

 

업식은 내 아무리 공부나 기도, 좋은 복덕을 지어도 그냥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조건물을 통해서 분리됩니다.

 

방생은 내 자신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복덕과 업식을 정리하는
정화, 내 사업을 부흥시키는 조건, 나와 내 가족을 건강하게하는
생명보험, 내 조상에게도 그 공덕이 공유되는 것입니다.

 

방생물을 구하는 현금은 내 자신의 피와 살과 뼈입니다.

즉 내 생명을 나눠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이치로 세상 무엇보다도
의미가 크고 복덕이 큽니다. 업식이 내 몸을 떠나서 또 다른 숙주를
찾기까지는 노자돈이 필요합니다. 방생시 소요되는 현금은 내 업식의
노자돈이 됩니다.

 

방생시 방생물의 가격을 절대로 흥정하시면 안됩니다.
그리하면 도리어 화가 내 몸에 미칩니다.
상인이 달라는대로 주어야합니다.

간혹 방생하러 오는 것을 아는 상인은 금액을 깎아주는데
이 사람은 부분적인 혜택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1). (2) 다음 힐링드림카페(cafe.daum.net/clean-village)  상룡 김ㅇㅇ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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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카페 無住相님 글

 

저희집 처사님은 남의 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어느 날은 우렁을 사다 큰 그릇에다 담아 놓고 나가더라구요. 나는 일을 벌이기 시작하지요.

까만 비닐 봉지에쏟아 담고 걸어서 1시간여 되는 거리를 걸어 냇가에가 미련없이 놓아 주고

오는길에 어물전에 들러 까서 파는 우렁을 2천원 어치 사다 정성스럽게 해드립니다.

물론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었다고 하고 조금씩 사다 해주면 되니까요 .

미꾸라지 다슬기 등등 그냥 다 가저다 물에 놓아 줬지요. 물론 우리집 처사님 제가 그러는줄 알면

이불 쓰고 6박 7일 누워 있을 판이지요.

이야기의 서두는 이렇고 제아들 이야기입니다

지금 34살먹은 아들이 대학 4학년때의 일이였습니다

하루는 서울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나 이상한 꿈 꿨어요"

무슨꿈인데? 어떤 까만옷을 입은 사람이 이제 갈 때가 되었으니 가자 하더랍니다.

아들이 말했대요 아직 아닌데요! 그러자 슬그머니 나가더랍니다

듣고보니 기분나쁜 꿈인것 같아 급하게 절에 스님께 여쭙고 상황을 말씀드렸어요

깜짝 놀래시며 집에 있을거지요? 조금있다 전화할께요! 잠시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큰일났네요. 얘가 지금 많이 안좋은데요, 어떻하면 좋을까요?

기도를 해야할까요? 빨리 할수록 좋지요

그후로 기도날짜를 받고 저녁에 꿈을 꿨어요.

우리집처사님 큰아이가 몸이 아파 약을 먹고 있을땐데

꿈에 둘이서 큰 병원을 들러 약국까지 들러 나오더라구요. 물론 몸도 좋아졌구요

받은 날짜에 3일 기도를 했습니다.  마지막 회향 하는날은 아이도 동참을 했구요

그날 저녁에 또 꿈을 꾸었지요

어느곳에 까만 가마가 하나놓여있고 가마앞에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었습니다

너희들 뭐하니?하며 제가 가마 문을 위로 올려열어습니다. 가마문을 위로 여는것도

그 때 처음 알았구요. 그런데 아들녀석이 가만안에 꽉차게 반듯하게 누워있는거였습니다

제가 아들이름을 부르자 감고있던 눈을 번쩍뜨며 가마 안이 찬란한 화금빛으로 광명을 발하는것이였습니다

그리고 다른꿈으로 이어졌는데요 아이한테 말했어요 외할아버지 산소 갔다올까?

하고 산소에 다녀오다 논가운데 엄청난 둠벙이 있는데 옆의 작은 물길에 미꾸라지가 가득 하더라고요.

나는 발로 미꾸라지를 쓰윽 밀어 둠벙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둠벙에 있던 미꾸라지가 수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뛰어오르더라구요.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저쪽 큰길에서 연등을 달고 있더라구요

우리도 저기 가서 연등 달까?하고 그냥 꿈에서 깨어났지요.

그후 스님께 이모든 꿈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요. 엄마가 아들 살렸습니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니라고는 배웠지만 아직은 현실이 더중요한줄 알고 사는 우리기에

누구에게 아님 부처님께 의존하지 않으면 않되는게 현실인가 합니다

불자가 지켜야할 10가지 "계행중에죽이지 않겠습니다" 머리로 배웠으니

가슴으로 우리는 行해야 하겠지요.

상구보리 하화중생 우리 큰스님께서 언제어디서나 설하시는 법문을 가슴에 꼭꼭 새깁니다.

우리에 법우님들 부처님의 가피는 항상하십니다 큰욕심에서 가리워졌을 뿐이지요.

 

법우님들 동 성불하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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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번 달에 어쩔 수 없이 모기를 일곱마리 정도 죽인 것 같습니다.

마음에 걸립니다. 참회합니다.

그 만큼 좋은 일로 갚겠습니다.

저는 채식을 한 지 올해 13년 째 입니다.

고기와 생선을 먹지않고 오신채도 되도록 먹지 않습니다.

달걀과 우유는 가끔 먹는데 조금씩 섭취하고 있습니다.

불자되기 전의 일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동물만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무작정 죄책감이 느껴지고

동물들이 너무나 불쌍한 것입니다.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의도적으로 모기를 빼고는 곤충 한마리도 죽이지 않았던 저인데 왜 동물을 보면 슬프고 마음이 아픈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연민을 느꼈지요.

그 후 불교를 만나고 법문을 많이 듣고 채식의 기간도 길어지면서 점점 그 번뇌가 약해졌고 요즘은 동물을 보아도 무심하고 죄책감은 없어졌습니다.

 

동물들에게도 불성이 있고 스스로 해쳐나갈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모든 동물들에게도 희망을 보게 됩니다.

그저 만나는 동물마다 '발보리심!,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세 번씩 말해줍니다.

2년 전의 일입니다.

갑자기 제가 몸의 반 쪽이 저리기 시작하고 기분이 안 좋을 만큼 상태가 점점 심해져가는 것입니다.

병원에를 거의 가지 않는 제가 종합병원 예약을 해두고 검진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동네 할머니 한 분이 개미를 쥐포로 유인해 몇 백마리 모이면 하수로에 모조리 집어넣어 버리기를 반복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지마시고 마당이 있으니 그냥 마당에 버리시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늘 계속 그 행동을 하더군요.

그 날도 제가 그 할머니 댁에 가니 마루에 쥐포가 놓여있었고 수백 마리의 개미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안계신 틈을 타서 그 종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 수풀 속에 몰래 넣어주고 도망을 와버렸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참 좋아지더군요.

병원 검진도 가지 않았는데 그날 오후 부터 반신이 저린 것이 덜하고 머리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몇 일 후 검진하고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의사가 의외의 말을 하더군요.

'운동을 열심히 하시나봅니다 몸 상태가 전반적으로 아주 정상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그럼 몸이 왜 저리냐고 했더니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검사상으로는 정상으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요즘 모기를 몇 마리 죽이게 되어 다시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살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방생을 하려는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어떤 스님께서 미워하는 마음이 살생이라 하셨으니 마음 속에 미움도 깨끗이 지우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고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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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작은 애가 고등학교때부터 이상스럽게도 안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당치도 않은 행동을 하고 답답함을 더해주는 언행을 일삼아 아무리해도 교정이 안되어

이 카페에서 자신의 힘으로 안되는 일이 있으면 방생을 해보라는 글을 읽고 몇 번 했더랬습니다.

 

지금은 이상한 일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 다니게되고 얼굴과 행동도 어릴 적의

천진난만함을 찾아 기쁨을 줍니다.

 

좋은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모두 모두 행복하시기를...


다음 나무아미타불카페 ㅇㅇ사랑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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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기도를 20년 넘게 하여 오면서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인데요.


현실적으로 방생공덕은 단명하거나 많은 병고에 시달리는 분들이 수명을 늘리거나 병고로부터 벗어나는 데 가장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론적인 것이 아니고 현실적이고 경험적인 것이었습니다. 불치병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뭔가 할 게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냥 뻔히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방생수복은 정말 좋은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방생 자체는 절대로 나쁠 수 없지요.


하지만 진정한 불교인들이라면 환경보호 문제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실천하는 데에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출처: 다음 안심정사 카페(cafe.daum.net/ansim24) 법안스님 법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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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daum.net/clean-village 미성 문이덕님 글

 

카페지기님 말씀대로 외삼촌을 위해 방생을 하고나니 꿈이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큰마당에 잔치를하시며 대궐같은 재력가의집에 아기로 환생하는 꿈을 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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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일체 유루(有漏)의 공덕 중에 생명을 살리는 공덕보다 큰 것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만큼 방생의 공덕이 크며 살생의 인과는 그 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방생과 살생의 과보는 명확한 것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방생에 대한 많은 영험담과 방생의 공덕과 그 의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은 분은 불교의 영험록의 방생의 영험담모음/방생의 공덕과 의의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어떠한 기도를 하든지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기타 수시로 그 생물이 잘 살수 있는 좋은 환경에 생태계와 조화가되는 방생을 하면서 기도를 꾸준히 해나가면 본인과 가족, 친인척이 무병, 장수하는 인과를 얻고, 맺힌 원결이 풀리며, 나날이 복력이 증가하여 여러가지 길상한 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병고가 많거나 삶의 장애가 많은 분은 기도와 함께 더욱 더 방생을 힘써 행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같이 존귀한 생명이고 무주상(無住相)으로 아무 대가를 바라지않고 방생을 하는 것이 바른 마음자세이지만 큰 자라나 바다거북이, 큰 잉어, 큰 가물치 등은 아주 영물(靈物)이어서 목숨을 살려준 그 은혜를 알고 이 생에서 갚을 수도 있는 존재임을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에 나오는 묘법 노스님 말씀과 여러 실화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력(智力)이 다소 못해서 살려준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일지라도 그 스스로의 생명이 귀중한 것임은 잘알며, 살려준 대상이 살려준 은혜를 알든 모르든 그에 상관없이 법계의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방생한 사람 자신이 건강해지고 수명이 늘어나고 길상한 기운을 불러들이는 공덕이 있게되는 것입니다.

 

생물 방생과 더불어 법보시를 두루 행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법시, 재시, 무외시를 베푸는 것이 모두 광의의 방생이며

그것은 곧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에 나오는 보현보살님의 10대원중 하나이며 성철큰스님께서도 강조하셨던 광수공양원(廣修供養願, 널리 공양을 닦고자하는 원)을 실천하는 것이기도하니 생물 방생에서 나아가 주위 사람들을 두루 돕고 인생의 바른 길로 가게 해드리는 일도 힘써 행해야할 것입니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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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전생의 업(業)

        황전스님 글


내가 잘 아는 비구스님 한 분은 작은 암자에서 수십 년을 한결  같이 지장기도를 하며 수행정진을 한 덕분에 스님은 자신의 원력이 깃들인 큰 절을 하나 지었다.  큰 절이 생기자 스님은 지장기도를 더욱 열심히 한 덕분에 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틀이 멀다하고 천도를 하였다.


그런 그 스님이 며칠 전에 나를 찾아와서 물었다.

“스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한 보살님이 계시는데 남편의 사업은 그런대로 잘 되는데 집안은 영적(靈的)으로 엉망인 것 같았습니다. 


그 보살님도 이유도 없이 온 몸이 오랫동안 아프고,  아들과 딸도 가끔은 제정신이 아닐 때가 많답니다.  그래서 내가 절을 짓는데 보시를 하면 아마 가정이 좋아 질것이라고 했더니, 그 보살님과 그의 가족들이 부처님도 조성하고 산신각도 조성하고 그밖에도 불사하는데 많은 보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사가 다 끝났는데도 그 가정이 풀리지 않아서 천도를 7번 정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 덕분인지 하는 사업은 그런대로 잘되는데, 보살님의 몸이나 가족들은 천도를 하기 전보다 더 아프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동안 많은 천도를 해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 보살도 끈기가 대단합니다.  자신의 집안이 좋아질 때까지 천도를 계속할 생각이랍니다. 


스님, 그런데 이제는 내가 두려워집니다.  내가 그 보살님에게 전생에 지은 업장이 많아서 그런다고 위로의 말은 했지만, 그 보살이 스스로 전생에 지은 업장을 알 수가 없으니 그런 말도 한 두 번이지 이제는 더 하기도 어렵습니다.  아아,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참 스님께서 그 보살님의 천도를 한 번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하하하, 스님도 참....

우리는 참으로 인연 깊은 사람이나 참으로 간절한 사람이 아니면 천도를 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다가 암자라고는 하나 누가 이런 작은 암자에서 천도를 하고 싶겠습니까?  스님 같은 큰 절에서라면 몰라도.  그리고 스님의 신도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스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나는 기도가 부족해서 천도하는 능력도 없지만 천도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스님,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스님이 우리 절에 와서 천도를 주관하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그 보살님의 가정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내 힘이 부족하면 다른 스님의 힘이라도 빌려서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믿고 의지할 만한 스님은 스님밖에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스님이 며칠을 두고 찾아와서 어찌나 사정을 하는지 할 수 없이 나는 나의 스승님을 모시고 그 절에 가서 천도를 주관하게 되었다.  천도를 하는 도중에 그 보살은 배를 움켜지고 구역질을 수 없이 하는가 하면 쓰러지면서 수 없이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몇 시간의 긴 천도가 다 끝나자 그 보살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님, 내가 내 아들과 딸의 전생을 보았습니다.  스님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오랜 시간 염불을 할 때에 갑자기 눈앞에 전쟁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임진왜란이었는데 이순신 장군님 뒤로 몇 몇 장수들이 적을 칼로 수 없이 죽이는데 갑자기 장수 두 사람이 나의 아들과 딸의 얼굴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생에 우리 아들과 딸이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였나 봅니다.  그래서 지금 그 전생에 지은 업을 지금 받고 있나 봅니다.”


“잘 보셨습니다.  보살님 가족들이 이생은 평범하게 태어나서 착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전생에 지은 그 원결, 다시 말하면 아무리 나라를 위해서 적군을 죽였지만 그 원결은 일대 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원결들이 보살님의 가족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보살님이 조상님들을 위해서 천도를 7번이나 하셨기 때문에 전생의 업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조상천도는 별것이 아닙니다.  천도를 하면 할수록 힘들고 무서운 것은 바로 전생의 업들이 드러날 때입니다.  이 전생의 업도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끝도 없습니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더 힘이 막강한 업들이 드러납니다.  스님들이 천도를 하는 도중이나 천도를 하고 난 후에 쓰러지거나 몸이 아픈 것은 이러한 업들이 드러나 그 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님들 수행 중에 천도하는 수행이 가장 어렵고 무섭습니다.  조상님들은 오히려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는데 전생의 원결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인도 아닌 주제에 어디 와서 까불고 있어! 내가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하면서 목을 조일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천도를 사람들은 천도를 한 번 하고 나면 다 끝났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은데, 천도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 인간으로 태어나 수 억겁을 윤회하는 과정에서 해보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장군, 임금, 백정, 남자, 여자, 수행자 등등 그때마다 나라를 위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든 죽였던 그 사람들의 한(恨)이 어찌 참회를 한다고 사라지겠습니까?  자신이 지은 죄 정도는 참회를 통해서 어느 정도 소멸이 됩니다.  그러나 생명을 죽인 원결,  그것도 인간이 인간을 죽인 원결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 원결은 결국은 자신이 뿌린 씨앗이니 본인이 다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생에 같은 업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 가족을 이루게 되면 가족 전체가 그 업의 파장에 혼란이 온 것입니다.  지금 보살님 가족은 시절인연이 되어 어느 전생의 업을 받고 있습니다.  이생에 어느 정도 업을 받고 나면 다음 생으로 그 업이 또 넘어 갑니다. 


보살님은 복이 많이 지어서 이러한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업장을 소멸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전생의 업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우선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있어서 그 복 때문에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복진 타락>이라고, 그 복이 다 하면 보살님같이 누구나 전생에 지어놓은 원결의 업을 받게 됩니다.”


“스님, 그러면 전생의 원결을 푸는 천도를 계속하면 그 원결들이 다 풀어집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보살님이 전생의 업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을 말로하자면 겨우 20프로 정도 해결이 되고 ,이렇게 인연이 닿아서 천도를 하는 것도 겨우 20프로 정도의 업이 소멸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60프로는 보살님이 직접 수행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한 평생 중이 되어서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것은 깨닫거나 부처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세세생생 지은 업장을 소멸하기 위함입니다.”


“스님, 스님들처럼 목숨을 걸고 업을 닦지 못한 우리들은 앞으로도 업장이 소멸될 때까지 이러한 고통을 계속 받아야 합니까?”


“그래도 보살님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작이 무엇입니까?  지금 밥께나 먹고 산다고 자신에게 전생의 업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불교를 제대로 알려면 우선  이러한 이치부터 제대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알아야 자신의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것들이 해결 되지 않고서는 결코 깨달음이란 없습니다.  나도 84겁을 윤회를 했지만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생의 그러한 업들을 다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보살님 입에서 저절로 염불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천도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보살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물었다.

 

"스님, 여기서 그렇게 천도를 많이 했어도 전생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였는데 스님들이 오시니까 전생을 보게되었습니다.  이게 어찌 된 것입니까?"

 

"보살님, 그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보살님께서 어떻게 하든지 전생의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 불보살님께서 그 가피를 내리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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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 삼종 가피 속에서



삼종 가피 속에서

기도는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소원이 있으므로 기도를 하는 것이고, 기도를 하는 이상 반드시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소원을 성취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불보살은 어떻게 가피를 보여주는 것일까?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여 가피를 입은 사례들을 유형별로 나누면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현실에서 바로 가피를 입어 소원이 성취되는 현증가피(顯證加被), 꿈을 통하여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예시하는 몽중가피(夢中加被), 언제나 은근하게 보호를 받는 명훈가피(冥勳加被)가 그것이다.

이들 삼종가피(三種加被) 중, 다급한 일을 당한 사람이 기도를 할 때는 현증가피 또는 몽중가피를 입는 경우가 많고, 평소에 안락과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명훈가피를 입어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피에 대해 실제로 있었던 예를 들면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현증가피 (顯證加被),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다급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다급한 일이 발생했지만 내 마음대로도 할 수 없고 남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면 그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다급한 생각에 음식 맛은커녕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러한 때에 지극히 기도를 하면 느닷없이 좋은 일이 찾아 들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증가피, 불보살께서 현실에서 바로 자비를 나타내어 가피력을 증명해 보이는 현증가피인 것이다.

나에게 자주 찾아오는 신도 중 일명 '부장판사 보살'이라는 분이 있다. 지금은 나이 70세가 다 되었지만, 약 20년 전 남편이 부장판사를 지낼 무렵에 처음 인연을 맺었으므로 아직까지 '부장판사 보살'이라 부르고 있다.

그녀에게는 경기 여고 동창생인 반야행(般若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반야행은 매우 불심이 깊었으며, 동창생인 그녀에게 불교를 믿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나에게 데리고 온 것이다. 평생 어려움을 모르며 살았고 남편이 부장판사에 올라 있는 그녀였으므로 처음부터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스님, 불교를 믿을까요? 다른 종교를 믿을까요?"
"마음대로 하시오."

이렇게 까불까불하면서 몇 차례 찾아오더니, 하루는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 다급한 일을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저에게는 육군 소령으로 제대한 남동생이 있습니다. 우리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지요. 그 동생이 제대후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밑천이 모자란다며 돈을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의 기둥인데 어떻게 됐든지 성공해야지'하는 마음에서 있는 돈을 탈탈 긁어 빌려주었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요구를 하여 남의 돈을 빌려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이란 게 애초부터 사기꾼의 꾐에 빠진 것이어서, 돈을 몽땅 날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빌려서 준 돈이 얼마나 됩니까?"

"제가 모아 놓은 돈은 고사하고 남에게 돌려쓴 돈과 이자만 하여도 5백만 원이나 됩니다."
그 당시로는 5백만 원이라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으므로 남편과 상의하여 해결할 것을 권하였다. 판사 부인은 펄쩍 뛰었다.

"아이구, 스님. 우리 남편은 다른 일에는 관대하지만 돈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엄합니다. 우리 남편이 알면 저는 쫓겨납니다. 얼마나 답답하던지 성당에 찾아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하나님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씀만 일러 주셨습니다. 스님,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내 마음대로도 안되고 남의 도움도 구할 수 없을 때는 부처님이나 하나님한테 '이 빚을 갚아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스님,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살님이 사는 대구 삼덕동에는 관음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주지스님을 찾아가서 '법당에서 3일 동안 절을 하겠습니다'는 말씀을 드리고, 법당 한쪽에서 부처님께 절을 하십시오. 적어도 3천배를 해야 합니다.

3천배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대겁(三大劫) 동안 이 세상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한 번씩 절을 하는 것입니다. 시방 삼세 3천 부처님께 한 번씩 지성껏 절하면서 소원을 빌어 보십시오. 지극 정성을 다해 절하십시오. 그렇게 하기를 3일만 하면 부처님 중 적어도 한 분은 가피를 내려 틀림없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오."

부처님께 매달리기로 결심한 그녀는 이튿날 아침 관음사로 가서 절을 시작했다. 3천배가 힘들다는 말은 들었지만 한참 더운 여름이었으므로 더욱 힘이 들었다. 3백배도 하지 않았는데 웃옷이 몸에 붙었고, 천번 정도 하니 아랫도리까지 흠뻑 젖어 버렸다. 2천배 정도 하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3천배가 가까워지자 엎드리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판사 부인은 이를 악물고 할 수 있는 한 정성껏 3천배를 올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서 자고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어디가 아픈가?"
대답은 않고 끙끙 앓기만 하는 아내가 애처로워 남편은 의사의 왕진을 청하였다.
"사모님이 요즘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병은 없는데요."
의사가 가고 난 후에도 그녀가 끙끙 앓자 남편은 밤새도록 얼음찜질도 해주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이튿날 남편이 출근하자 그녀는 또 관음사를 찾아가서 3천배를 하였고,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하였다.

남편 몰래 사흘 동안의 도둑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다음 막 자리에 누우려는데 법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부장판사 님께서 방금 졸도를 하여 대학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그녀는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과로로 인한 졸도입니다. 입원하여 사흘 정도만 푹 쉬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밤에는 끙끙 앓는 아내를 돌보랴, 낮에는 또 법원에서 격무에 시달렸으니 과로하여 쓰러질 만도 하였던 것이다.
그 며칠 동안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병문안을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 같으면 꽃을 들고 오거나 과일, 통조림 등을 가지고 올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원 비에 보태어 쓰라'며 부조금을 주고 가는 것이었다. 남편이 퇴원한 다음 그녀가 그 돈들을 세어 보았더니, 묘하게도 한 푼이 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5백만 원이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남편은 의외로 순순히 허락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피를 내리신 것이 틀림없구먼, 그 돈으로 빚을 갚도록 하구려."
그녀는 동생 때문에 진 모든 빚을 갚았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침마다 108배를 하는 것을 일과로 삼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행하는 철저한 불자가 되었다.

이 부장판사 부인이 입은 가피가 바로 현증가피로서,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만약 다급한 일이 있다면 어찌 용맹스런 기도 없이 해결을 보려고 할 것인가? 마땅히 다급한 일이 닥치면 힘있는 기도, 간절한 기도, 믿음이 깃든 기도로써 불보살의 품안으로 뛰어들어야 하리라.


2) 몽중가피 (夢中加被),

꿈은 우리 생활의 그림자요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낮에 먹은 마음이 그대로 연장되어 밤의 꿈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이 몽중가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망이 꼭 이룩되게 해주십사' 하고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 사람의 소망에 부응하는 편지 한 장을 주거나, 약을 주거나, 차를 한 잔 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와 같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망은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라고 한다.

곧 꿈속에서 받는 통지서는 합격 통지서요, 차를 한 잔 받아 마시거나 청심환 한 알을 얻어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징조이다. 꿈 가운데 열쇠를 하나 받으면 이튿날 생각지도 않던 돈이 들어오게 된다.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기도 영험담 중에는 삼종가피 중 이 몽중가피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약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 미아리에 40대의 보살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닦은 복이 많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돈도 잘 벌고 가정도 잘 돌보는 남편을 만났으며, 아이들도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여 근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안이 허는 병이 생겼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온 입안이 헐어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한의원을 찾아가니 '입안이 허는 병은 위장에서 온다'고 하며 위장약을 지어 주었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 더니, 마침내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여위어만 갔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 아이들의 재롱도 귀찮게 느껴질 뿐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가까이에 있는 절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엎드리면 이빨이 다 쏟아지는 것 같아 절도 할 수 없었다. 입안이 퉁퉁 붓고 헐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 입병 좀 낫게 해주십시오."
온 종일 부처님만 쳐다보면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열심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을 내려 오셨다. 그리고는 다기(茶器)에 담겨 있는 물을 찻잔에 가득 따라 주셨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려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셨다.

"그냥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넘겨라."
그녀는 시키는 대로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거짓 말처럼 입병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매운 음식, 짠 음식, 그 어떠한 것을 먹어도 입안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감격하여 불교 신문에 이 사실을 투고하였다. 글솜씨는 서툴지만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을 알리고자 투고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꼭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 念'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생각하면 그것이 참된 염불이요,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3) 명훈가피 (冥勳加被)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외우는 예불문 끝 부분에는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唯願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勳加被力)....."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 뜻은 "오직 원하옵건대 다함없는 삼보께서는 대자대비로써 저의 정성스런 절을 받아들여 은근히 가피력을 내려 주옵소서" 하는 것이다.

옛 말씀에 '노는 입에 염불하랬다'고, 가거나 오거나 빨래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관세음보살을 불러서 염염관세음(念念觀世音), 생각 생각에 관세음보살이 함께 하게 되면 가는 곳마다 머무르는 곳마다 편안한 세상, 곧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으로 바뀌어 버린다.
바로 이것이 명훈가피이다. 언제나 불보살의 보호를 받고 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난이 저절로 피해 가고 항상 기쁘고 편안하고 즐거움이 가득하게 되며, 입가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태양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명훈가피에 대해서는 나의 큰 제자인 혜인(慧印)스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혜인스님이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5.16 직후라서 군대가 요즘처럼 편안하지 못하고 아주 고될 때였다. 기합도 심하여 걸핏하면 '군기가 빠졌다'고 하면서 방망이나 곡괭이로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엉덩이를 맞았다. 사소한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고 인정 사정없이 두들겨 팼던 것이다.

혜인 스님은 군복무를 하면서 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훈련을 받을 때에도 '하나-둘-셋-넷' 할 때에 '관-세음-보-살' 하면서 구령을 붙였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한 번씩 외웠다. 어느 날 혜인스님은 그 당시의 군대에서 볼 때 크게 군기가 빠진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연탄불을 갈기 위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연탄을 내무반밖에 둔 채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그만 잊어버리고 갖다 넣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을 중대장이 발견한 것이다.

"어떤 놈이 불붙은 연탄을 이곳에 두었어?"
'나 때문에 우리 소대원 전체가 기합을 받겠구나.'
혜인스님이 조바심에 떨며 자백을 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대대장이 그 중대장을 찾았다. 정말 뜻하지 않게 기합을 모면한 것이다.

또 한 번은 난폭하기로 이름난 하사에게 소대 전체가 기합을 받게 되었다. 그 하사는 '손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잘 되었다'고 하더니, 야구 방망이를 들고 한 명씩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백정같이 생긴 하사가 힘을 다해 때리니 맞은 사람들은 모두 쓰러지고 뒹굴고 난리가 났다. 쭉 차례대로 맞아 오다가 혜인스님의 차례가 되었다. 혜인스님의 눈에는 그가 염라대왕의 사자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내무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장교가 나타났다.

"너 이 자식! 또 아이들 패는구나." 하더니만 그 하사를 혼내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쓰러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면서 '안 맞았다'고 우물우물 넘어가는 바람에 기합이 중단되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혜인스님 앞까지 와서 기합이 중단되는 일이 생기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관세음보살과 화엄성중을 부르다가 잠이 든 혜인스님은 꿈을 꾸었다. 자기가 수백 명의 병사와 함께 연병장에 서 있었고, 주위에서는 총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 장교 한 사람이 나타나 자기를 불러내더니 어디론가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부대 전체가 연병장에 모여 서 있는데, 어디서 지프차가 하나 오더니 혜인스님을 불러내는 것이었다.

'어쩐 일인가'하여 가 보았더니, 육군본부에 가서 상장 쓰는 일을 맡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오십 장씩, 백 장씩 글씨 쓰는 연습을 하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붓글씨를 잘 쓰지 못했는데, 그때 붓글씨 연습을 실컷 하여 한글 글씨가 크게 향상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혜인스님은 그 힘든 시절에 붓글씨를 쓰면서 편안하게 군복무를 마쳤으니, 항상 기도하면 불보살의 은근한 가피가 언제나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명훈가피를 입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종일 기도하지 않아도 좋다. 하루에 108배 또는 10분 동안의 관세음보살 염불 기도라도 꾸준히 해보라. 틀림없이 명훈가피를 입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평화로움이 깃들게 된다. 하물며 언제나 불보살을 생각하고 기도한다면, 어찌 마음이 태양처럼 밝아지지 않으리.

거듭 강조하건대 기도성취의 비결은 '간절 (切)'에 있고, '간절 切'은 삼매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여 잠깐이라도 삼매를 이루게 되면 불보살의 가피는 저절로 찾아 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불자들이여, 형편 따라 능력 따라 내 마음을 내가 모으는 기도를 하자. 흩어진 정신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서 불보살과 한 몸을 이루는 기도를 하자.

이렇게만 하면 불보살께서 은근히, 그리고 현실 속에서 우리를 보호함은 물론,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영원 생명, 무한 능력이 개발되고, '내'가 서 있는 이곳 또한 사바세계가 아닌 불국토로 바뀌게 된다. 부디 올바른 기도법에 의해 참된 기도를 하는 불자가 되기를 당부 드린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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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광출판사에서 2008년에 출판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부록에서 발췌

 

중국의 원영 굉오스님의 권수염불문(勸修念佛文)을

불광출판사에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이란 제목으로

정원규님이 번역하여 내 놓았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 가피

 

 

1. 염불로 목숨을 구하고 광명이 비치다.

 

아래 이야기는 심장마비로 죽음의 순간에 주위 사람들의 염불과 자신의 염불로 다시 살아난 실화이며 이야기를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는 말씀은 나에게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나는 3년 동안 두 번이나 심장발작을 겪었다. 고비를 넘긴후 자세히 회상해 보니 그때 내가 받은 고통은 바로 내가 집에서 도살한 돼지가 겪은 고통과 같았다.

 

1993년 당시 진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던 장금문 선생이 나를 찾아와서 차를 좀 밀어줄 것을 청하였다. 나는 감기가 든 상태여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힘껏 차를 밀고나서 갑자기 심장에 격렬한 통증이 오면서 쓰러졌다.

장선생이 그때의 이야기를 나중에 해 주었다.

 

당시에 이미 나는 쇼크 상태여서 만약 즉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죽을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죽었지만 심식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심장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몸의 사대가 분리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장선생이 쓰러진 나를 차에 차에 실어 자신의 집으로 옮겨 놓고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장선생이 집안 사람들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와 서로 나누는 대화를 명료하게 듣고 있었다.

일찍이 내가 그 가족들에게 염불을 권해서 장 선생의 부인과 그 모친이 모두 와서 나를 위해 염불을 해 주었다.

 

그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들이 염하는 부처님 명호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허공에서 빛을 발하면서 나타났다. 즉시 내 몸도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사람마다 염불하면서 발하는 광명의 밝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장선생의 부인이 평소에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온 까닭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불현듯 나도 염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염불을 했다.그때 나는 자신이 직접하는 염불의 광명이 특히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염불할 때는 우리는 그 공덕의 7분의 1만 받는다고 한 『지장경』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 발작으로 심신이 압박받고 있을 때 나는 다행히 장선생 가족이 도와주는 조념염불의 광명과 인도로 정념으로 염불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고통을 덜고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너무 나빠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병원의 의사도 나를 보고는 이미 저승으로 갔으니 의학적인 처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직계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시술할 수 있다 하였다. 장선생은 그 말에 화가 나서 의사와

다투었다. 그는 직계가족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텐데 그러면 환자를 살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화를 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전심으로 염불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장선생 한 사람 뿐이어서 염불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즉시 나는 내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구름 비행기를 탄 것같이 빠르게 줄곧 떨어지는데 마치 한빙지옥에 이른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더 어둡고 추웠다. 온 몸을 칼로 베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내가 느낀 감각을 표현하자면 경전에 이른 것과 같이 바람칼로 온 몸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다행이도 평소에 염불을 열심히 해온 공덕이 있어서 위기 일발의 시점에 선근이 작용하였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 염불일념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슬프게 한구절의 ‘아미타불’을 토해냈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 내가한 염불소리가 커서 병원 사람들이 모두 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그 즉시 눈앞에 조그마한 광명이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나무아미타불’ 을 염하자 그 광명은 앞에서 더 크게 커졌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졌고 눈을 뜨고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면서 나는 저승의 귀신문에서 나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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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의 광명이 몸을 보호하다.

 

위서금씨는 29세 때 토성 승천사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남자다.비록 스님께서 염불하라고 가르쳤지만 그 자신은 좌선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바쁜 중에서도 좌선을 할뿐, 근본적으로 염불할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 후 대략 반 년 정도 지난 8월 26일 아침에 가스가 폭발하여 심한 화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전신의 55퍼센트 이상 화상을 입었는데, 대부분 상반신의 중요부위였다. 다음은 그분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다.

 

내가 정신을 잃고 혼미해지자 의식이 흐리멍텅 해지면서 주변이갈수록 음랭하고 사방이 검고 어두워 졌다. 마음속으로 점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나를 강제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너무나 공포스러웠고, 죽음이 두려워 살아나려고 발버둥쳤다.

 

화상을 입은 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인명무상이라는 말을 이때 체득 할 수 있었다. 몸을 제되로 가누지 못하는데 갑자기 부처님께 귀의할 때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염불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였다. 부처님께 목숨을 구해주실 것을 간절히 빌면서 필사적으로 염불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참 염불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광명이 온몸을 덮더니 한 순간에 모든 흑암과 한랭, 공포가 없어 졌다. 광명이 내 몸을 비추자 추운 겨울에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따뜻해지고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몸에서도 고통이 사라졌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나를 구하신 것이라고 느꼈다. 그 광명은 매우 강하고 밝았다. 마치 풍차가 돌 듯 “쏴, 쏴”하면서 천천히 회전하였다. 그리고 아기가 어머니를 의지하는 느낌처럼 친밀하고 포근하며,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온 세상이 광활하며 매우 가볍고 편안하며 자재하였다.

 

마치 부처님의 광명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염불했다.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고 염하는 가운데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남자와 여자들이 “그가 깨어났다. 그가 깨어났어!”라며 고함치는 소리였다. 그때 광명이 사라지면서 내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사실 가스폭발 며칠 전 나는 좌선을 하던 중에 이상한 일을 겪었다. 그나 좌선하면서 마음이 매우 고효해졌을 때 갑자기 두세 사람이 매우 흉악스럽게 나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들렸다.

“찾았다. 찾았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아주 부드러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원한을 품고 서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들이 천도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 좋지? 이 사람은 선근이 많으니 너희들은 그의 목숨을 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놓아주지 않을 태도이었다.

 

“안 돼! 안 돼! 우리들은 반드시 그를 찾아 빚을 받아야 마음이 편해져.”

그 여자가 다시 그들에게 그러지 말 것을 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들은 기어코 나를 해치려 하였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는 모골이 송연하여 계속 좌선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내용이 내 모릿속에 여전히 맴돌면서 매우 불안했다. 그리고 나서 2, 3일 후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길흉화복은 모두 것이 다 스스로 지은 업이며,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것이다. 절대로 원인을 만들지 않았는데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한 것은 틀림없이 전생에 그들에게 나뿐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본래 나는 죽었어야 할 과보인데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염불 공덕으로 무거운 업의 과보를 가볍게 받은 것이다.

 

<금강경>에도 나온 것과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독송하여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면 그것은 악도에 떨어질 중한 업이 가벼운 업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매우 다행한 일로 여겼다. 만약 그때 염불하지 못했으면 죽어서 틀림없이 삼악도에 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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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죽음의 액난에서 벗어나다

 

나는 금년으로 70세가 되었다. 40여년 전 항주의 유명한 항주성가인 보천구와 요상림에게 사주팔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두 사람 다 나의 수명이 51세라고 하였다.

 

나는 그말을 듣기 전에도 본래 인생이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온갖 풍파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서 속수무책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덕극이 쓴 <기도지귀>를 읽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방법은 바로 보리심을 발하여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 후 날마다 ‘십념염불’을 지속하였다. 당시 나는 내 수명이 51세라는 예언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1950년 나는 큰 국영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날마다 업무와 갖가지 학습, 운동 때문에 비교적 긴장된 생활을 하였지만 남몰래 염불을 지속하면서 ‘번개가 쳐도 움직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 ’견고한 염불심을 갖는 경지에 이르렀다.

 

1971년, 내 나이 51세가 되는 해였다. 그해에 나는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몸이 좋지 않았다. 1분당 심장 박동수가 100까지 자주 올라갔고 또 치질로 대량의 출혈이있었다. 그럼에도 운동과 갖종 학습 일정이 빡빡해서 치료받을 갈 시간초자 없었다.

 

그해 4월 3일 저녁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잠을 잘 무렵 평소 습관대로 침대에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열 번을 묵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는 것이었다. 마치 심장이 몸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면서 가슴이 심하게 답답해졌다. 원래 내가 머물던 기숙사의 전등은 밝았는데 갑자 기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내 앞에서 10미터 정도 되는 곳에 귀신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그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계속해서 염불에 몰두하였다. 약 2분 정도 후에 금색 찬란한 모습이 나타났는데 당시의 장엄한 모습은 정말 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러자 시커먼 귀신의 그림자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 오른 쪽 위에서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 부처님의 오른손을 내린 장엄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배를 올리지 않고 여전히 합장한 채로 염불을 계속했다. 염불소리에 따라 심장 박동이 점점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비몽사몽 속에서 기숙사의 전등은 여진히 밝게 빛나고 있고, 나는 합장한 채 입으로 염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보다 더 불가사의 한일이 일어났다. 치질 때문에 대량으로 출혈이 생겼던 곳에 아무약도 쓰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출혈이 멈추고, 심박수도 분당 80회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부처님의 가피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심 염불은 단지 극락왕생만을 위한 것인 줄로만 알았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부처님의 대자대지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몰랐다. 일심으로 염불하는 삶이 큰 재난이나 병고를 만나게 되면 아미타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감응하여 가피를 내려 액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평상시에도 이러하니 임종에 이르러 일심으로 염불하면 당연히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염불법문은 만 명의 사람이 닦으며 만 명의 사람이다 왕생하며, 만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인광 대사의 법문을 나는 지금 더 깊이 믿으며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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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귀를 물리치다.

 

석현진 스님은 사천성 출신으로 자는 서귀이다. 출가하기 전에 현의 현장을 역임하는 동안 많은 토적들을 살육하였다. 출가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영파 자계의 오뢰사에 머물때의 일이다. 매일 밤 많은 토적들이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흉폭하게 분노하면서 창을 들고 자기에게 목숨을 요구하는 꿈을 꾸었다.

 

그때 그는 매우 두려웠지만 용맹심을 발하여 오로지 아미타불 염불에 전념하였다. 밤낮으로 쉬지않고 정진하여서 마침내 꿈속에서도 염불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꿈에 토적을 보면 염불로써 그들을 교화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츰 꿈에 나타나는 토적들이 순화되더니 수개월 후에는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진 스님과 가장 오랫 동안 함께 지냇는데, 그는 자주 자신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염불공덕의 불가사의함을 찬탄하였다.

 

 

홍일대사가 직접 듣다 <정종문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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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낫다.

 

사람의 질병은 대부분 업보 때문에 생긴다. 업보가 다 하지 않았더라도 병이 빨리낫기를 원하면 부처님의가피를 구해야 한다. 세상에는 실력 있는 명의들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불보살님께 기도하여 치유된 사례가 많이 있다. 최근에 소료 군과 같은 경우가 염불을 통해야 구제된 사례이다.

 

소료악 군은 항주출신으로 19세때 상해에서 중병을 앓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의사가 진단을 해보더니 이병을 치료할 희망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소군이 병원에 입원한 지 7일 후 저녁에 갑자기 소 머리에 말의 얼굴을 한 귀신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의 침대 곁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병실 안은 전등 빛이 매우 밝았고, 그의 정신도 명료 하였다. 그는 이 귀신들이 자기를 잡으러온 것이며, 자신이 곧 죽게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일어나 생각했다. 만약 귀신이 있으면 받드시 불보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무아미타불”하고 큰소리로 염불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염불을 시작하자 갑자기 귀신들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감히 그의 몸 근처에는 접근하지 못하였다.

 

소료 군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의 염불이 정말로 부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귀신의 습격도 능히 물리치는 것을 보고는 일심으로 계속 염불하였다. 귀신들이 그를 붙잡지 못하자 나중에는 염라대왕이 직접 나왔다. 염라대왕은 녹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천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미타불 염불소리에 수레가 멈추어 염라대왕도 소 군의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위급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군은 염불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의사들이 할 수 없이 그를 다른 병실로 옮겼다. 그 뒤에도 그는 계속 염불을 했는데, 약 5일이 되자 갑자기 금칠 차란한 광명이 나타났다. 마치 하늘의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래로 내려 오면서 차츰 커지 더니 온 세상을 비추었다.

 

그 광명 속에 한분의 금빛 부처님이 공중에 우뚝 서 계셨는데, 부처님의 발 아래에는 금색 구름이 있고 부처님의 몸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부처님은 왼손에 염주를 들고 합장하신 채 소군을 마주보시며 미소 짓고 계셨다. 더 없이 자비로운 얼굴에 매우 친근한 모습이었다. 아미타 부처님이셨다.

 

귀신들의 무리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잠시 후 부처님의 모습도 사라졌다. 소군은 아미타부처님의 강림을 친견하고 흥분했지만, 병으로 인한 고통은 이미 사라졌다. 그 다음날 퇴원하였는데, 마치 정상적인 상태로 다 회복된 것처럼 몸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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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양이의 원한을 풀다.

 

1998년 안휘성 구화산 천지암에 주석하는 비구니 태 스님이 나를 찾아아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였다. 스님은 최근 매일 밤 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자신의 목숨을 요구한다고 했다. 너무나 두려워서 꿈에서 깨고 나면 그 밤에는 더 이상 잠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신이 어릴 때 개구쟁이라서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 죽인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호북성에서 출가하여 이곳 구화산으로 왔고 그 일은 이미 수십 전 전의 일인데 고양이가 잠을 잘 때마다 자신을 찾아온다 하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돈을 들여 큰 절에 가서 큰스님을 청하여 구병시식이나 천도재를 올리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었다.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이 존경심과 청정심으로 하면 천도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무성의하게 대충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스님이 직접 그 고양이에게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를 이야기하고 염불해주어서 극락왕생하게 하는 것이 더 났습니다. 스님에게 원한을 품은 고양아가 극락왕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 원한이 풀리겠습니까?

 

그 고양이는 수십 년 동안 당신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먼 곳으로 와서 출가하고 절에 머물지라도 그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젊어서 기가 왕성할 때는 고양이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늙어서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쇠해져서 꿈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염불왕생을 구하지 않으면 스님이 임종을 맞았을 때 더 공포 스런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들이 세세생생 맺어온 원한의 상대가 어찌 이 고양이 한 마리뿐이겠습니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을 것인데 우리가 언제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사대비하신 아미타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이런 죄의 근기를 미리아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발원하셨습니다. 수많은 겁 동안 수행을 쌓은 공덕이 “나무아미타불”여섯 글자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명호를 염하는 중생은 모두 극락왕생하여 성불하게 되는 공덕입니다. 단지 우리들은 일심으로 믿고 아미타 부처님께 의지하면 됩니다. 여섯 글자의 명호를 염하기만 하면 반드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그 고향이도 구제하여 극락세계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마음은 평등하며 사람과 축생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떤 이가만약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극락정토를 수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더욱 강할 것입니다. 무엇 대문에 수십 년 동안 괴롭게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목숨을 요구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스님이 스스로 믿으며 염불하고 또 고양이에게도 그렇게 설법하여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십시오. 그러면 둘 다 모두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니 원한은 일부러 풀지 않아도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천도불사가 아닙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직접 천도하시어 서방정토에서 성불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략 이렇게 말하였다. 또한 “시방의 중생이 만약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는 아미타 부처님의 대비의 서원과 “십념이라고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하는”도리를 반복하여 말하였다.

태 스님은 매우 기뻐하면서 물었다. “내가 돌아가서 염불할 때 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놓고 이렇게 설법해야 합니까?”

 

“그렇게 해도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고양이는 그림자처럼 수십 년 동안 당신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전에 스님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세우지 않아도 스님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 적이 없습니다. 인과 는 허망하지 않아서 마차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방금 우리가 나눈 대화를 고양이는 모두 남김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고양이를 위해염불하고 아미타 부처님께서 자비로 제도하시는 도리를 가르치면 고양이가 반드시 듣고 극락왕생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3일이 지난 후 태 스님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기쁨이 충만하였다. 나를 만나고 사찰로 돌아갔던 그날 저녁부터 고양이가 오지 않았고, 그래서 며칠 동안 잠을 잘 잤다고 하였다. 태 스님은 겨우 고양이 한 마리를 물에 빠트려 죽게 하였는데 줄곧 붙어서 이 먼 구화산까지 따라왔고 수십년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중생의 업력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로움 가득한 서원을 듣고 나서 바로 고양이가 마음에 맺힌 원한을 풀었으니, 부처님의 서원과 광명이 가득한 여섯 글자의 명호는 더욱 불가사의하다.

 

성안 법사 진술, 성소법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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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옥의 괴수를 물리치다.

 

인간세계에 살면서 지옥에 가서 업무을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대략 십수 년 전 소주에 홍 거사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열 몇 살 때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집안 사람들이 급히 의사를 청해 진료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몸에서는 여전이 열이 높음과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인사불성일 뿐 죽은 것은 아니라서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다. 3일 정도 지나자 그는 저절로 깨어났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그는 저승에 다녀왔다고 한다. 두명의 저승사자가 찾아와서 부탁하여 지옥에 가서 공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인간세계로 돌아와 깨어난 뒤에 이 일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이후 한 해에 최소한 십여 차례는 지옥에 다녀왔고 그때마다 2, 3일 정도 걸렸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자, 그의 가족들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홍 거사가 저승세계의 관리라는 것도 알게되었지만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지옥의 중생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친분 있는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조금 내비치면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경건한 염불 수행자로 살았는데, 한 번은 가족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구절의 “아미타불” 염불이 인간세계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만 지옥에서는 그 효력이 매우 크다고 하였다. 그가 겪은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지옥에서 공무를 보는데, 한 번은 갑자기 하얀 수염을 기른 스님 한 분이 나타났다. 그 스님은 모습이 매우 장엄했는데, 손에는 불자를 들고 염라대왕전으로 왔다. 그 스님을 본 염라대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 스님은 지옥에서 막힘없이 어디나 다니셨는데, 지옥 중생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시면 수시로 염불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단지 스님이 입에서 “나무아미타불” 한 구절만 나오면 지옥 중생에게 고통을 주는 형구가 모두 일시에 정지되는 것이었다.한번은 한 무리의 험상궂은 야수가 어떤 사람을 쫓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평소 홍 거사가 알던 사람이었는데, 공포에 질려서 필사적을 달아나고 있었다.

 

 야수에게 쫓기던 그 사람이 홍 거사 쪽으로 달여왔다. 바쁘게 엄무를 보고 있던 홍 거사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했다. 흰 수염을 기른 스님이 하시던 염불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염불이 효력이 있었다. 쫓아오던 야수의 무리가 즉시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이 일로 홍 거사는 염불의 수승함을 잘 알게 되었고, 후에 매우 경건한 염불 수행자가 되었다.

 

백성장로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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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임종시 원귀를 물리치고 왕생하다.

 

대만 용해시 각미진 왕강촌에 사는 농민 곽아장의 극락왕생 이야기이다. 곽아장 거사는 금년(1995년) 음력 8월 26일에 60세의나이로 염불을 하면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에 힘쓰면서 살아왔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부터는 농사를 그만두고 양어장만 경영하였다.

 

그는 위장이 나빠서 자주 고생했는데 금년 들어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위암 말기로 판명되었다. 8월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통증 때문에 고통이 심해서 2시간마다 진통제를 맞았다. 병고에 시달리다 보니 성미도 호랑이같이 사납게 변했다. 그런데 그는 자꾸 바다 괴물이 보인다고 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의 아내조차도 문 앞에 원귀들이 머리를 기웃기웃 들이미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러던 중 다행이 염불수행을 열심히 하는 스님을 뵙게 되었다. 스님은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아미타불 염불을 권했다. 하늘이준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면 조속히 회복할 것이고, 만야 명이 다했다면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으며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들은 곽 거사는 매우 기뻐하며, 염주를 돌리며 전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염하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모두 그를 도와서 조념염불을 했다.

 

염불을 시작한 뒤 암으로 인한 통증이 많이 줄어들어서 진통제 주사도 하루에 2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물고기 형상을한 남자 괴물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닷세 정도 지나고 나서는 침대에서 가볍게 내려와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방 한 쪽 벽에는 세 분의 불보살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상이었다. 그런데 그 세불보살상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인간세계를 떠날 때가 다가온 것을 알았다. 그는 침대에서 꿇어 앉아 합장 자세를 취했는데, 일생 동안 한 번도 이런 자세를 한 적이 없었다. 합장한 채 염불을 하는 그이 얼굴에는 점차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평안하게 극락정토에 왕생한 것이다.

 

숨을 거둔지 8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몸의 온기가 식었지만 머리 위 백회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던 배도 쑥 들어갔다. 염을 하기 위해서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힐 때 온몸의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얼굴은 마치 살았는 듯 하였다.

 

이런 상서를 보이는 것은 곽 거사가 극락정토에 왕생했다는 증거이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온 가족들의 꿈 속에 그가 나타났다. 평안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가족을 만나러 온 그의 뒤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세분 불보살님이 계셨다.

 

임우천 씀 . 199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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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숙세의 원혼을 제도하다

 

보길 스님은 대만출신의 비구니스님이다. 이 스님은 출가하기 전 속가에 있을 때 나쁜 말로 남 욕하기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과 악연을 맺었다. 나중에 신죽 청초호의 영은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두 눈을 모두 실명하여 장님이 되었다. 70여 세가 되었을 때 다시 병이 둘었는데, 온 몸이 퉁퉁부어 올랐다. 그래서 무상 선사가 폐관수행하고 있던 금강동으로 찾아가 울며 하소연하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습니다. 저를 고해에서 구제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무상 선사가 부탁을 듣고 보길 스님의 거처에 와보니 소변을 누고 치우지도 못하여 매우 더럽고 악취가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보길 스님이 울면서 말했다. 10여 명의 원귀가 밤낮으로 자기를 때리는데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심지어 그 원귀들의 이름까지 말하며 구제해주기를 간청했다. 보길 스님에게 속가 남동생의 부인이 병문안을와 있었다. 무상 선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의 시누이 되는 저 스님이 부르는원귀들의 이름을 아십니까.”

“모두 스님이 출가전에 해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 사람들이 원혼이 되어 나타나 스님을 때려서 온몸이 부어오르고 살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무상 선사는 보길 스님을 위해 방을 청소하고 침대 한 가운데구멍을 내고 그 아래에 통을 놓아 대소변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보길 스님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울고 짖으며 몸부림치다가 그 구멍속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무상스님이 간곡함 음성으로 말했다.

“스님이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염하며 서방극락정토왕생을 구하여야 비로소 이고득락 할 수 있습니다.”

“눈 앞이 캄캄해서 염불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개 하는 염불을 따라서 하십시오.”

그렇게 염불을 시작했는데 한 시간 가량 지나자 보길 스님이 갑자기 기쁨에 찬 얼굴로 말했다.

“지금 제 앞에 밝은 광명이 보입니다. 나를 때리며 괴롭히던 그 10여 명의 원귀들이 저쪽에서서 웃고 있습니다.”

 

그때 그 원혼들이 보길 스님의 몸을 빌어서 말했다.

“무상 스님의 자비에 감사 드립니다. 지은 죄업이 막대한 저 앞 못 보는 노인네가 뜻밖에 저희들을 고통에서 구제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무상 스님이 말했다.

 

“원한은 풀어야 되지 맺으면 안 됩니다. 당신들도 함께 따라서 아미타불을 염하십시오. 그러면 죄업이 있더라도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비로소 생사의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길스님에게도 경건한 마음으로 따라서 함께 염불하게 하였다. 다시 한 시간 남짓 염불을 계속 하였다.

 

“지금 온 천지에 광명이 가득합니다. 저 구름 위에 흰옷을 입은 성스러운 분들이 우리들을 영접해서 서방극락세계로 갑니다.”

보길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합장한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평안하게 왕생하였다. 부풀어 올랐던 스님의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 오고 조금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상서가 보였다.

 

-염불감응견문기-

 

죽음에 이르러 고통에 핍박받고 원혼이 나타나니 

어떤 법으로 구제할 수 있는가?

 

오직 부처님꼐 의지하여 염불할 뿐이네.

부처님께서 광명을 비춰 보호하시니

 

몸과 마음이 온안하고 나와 남이 모두 제도되는구나.

염불을 몰랐다면 지옥에 떨어졌으리

.

삼악도를 전전하며 어느 떄나 구제될 수 있을 것인다?

염불공덕 불가사의하니,모두 아미타불의 대비 원력이네.

                             

 - 염불감응견문기- 를 지은 혜정스님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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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전생에 도살한 소의 혼령을 제도하다.

 

사천성 남부에 사는 유정밀거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섭씨아주머니의 이야기이다. 섭 씨는 자신이 과거 생에 도살한 96마리 소의 귀신 때문에 자주 고통스런 발작에 시달리고 있었다.

 

1932년 2월 유거사 집에서 일을 돕고 있던 중 갑자기 심한 발작이 일아났다. 섭 씨의 온몸에 붉은 부스럼이 돋아났는데 통증과 가려움이 몹시 심했다.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은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가 강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주의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막아서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하고 소동을 부리면서, 자신이 전생에 소를 도살한 것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유정밀 거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이유를 섭 씨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주인님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십니다. 저는 섭 씨가 아닙니다. 저는 먼 과거생에 섭씨에게 죽임을 당한 소입니다. 그래서 지금 섭 씨에게 목숨 빚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 거사가 그들을 타일렀다.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째서 섭 씨 한데 죽은 것만 생각하느냐? 사실은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그 과보로 소로 태어났고 또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무슨 이유로 너희 목숨을 빼앗았겠느냐?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인 것은 잊고, 단지 그녀가 너희를 죽인것만 기억하는구나. 이렇게 원수를 찾아 돌고 도는 것을 고통스런 윤회라고 한다. 영원히 서로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그 말씀이 옳다면, 저희들이 잘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목에는 아직 피가 흐르고 칼에 잘린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고통 때문에 섭 씨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걱정마라. 내가 그 고통을 멈춰주겠다.”

우 거사는 찻잔에 차를 반쯤따라서 감로주를 세 번 외운 뒤 섭 씨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그러나 섭 씨는 찻잔을 들지 못했다.

 

“소의 발굽이 누르고 있어 찻잔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찻잔을 들어 먹여주었다. 섭씨는 얼른 차를 받아 마시드니 기뻐서 말했다. “정말로 신묘한물입니다.”

 

그녀는 목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미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만지면서 말하기를 “소 발굽도 이미 벗어버렸습니다. ”다시 머리를 만지면서 “뿔도이미 없어졌습니다.”

유거사는 이어서 윤회의 고통을 설명하고 또 극락세계의 안온한 즐거움과 영원히 생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나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느냐?”

“거사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어찌 원치않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의 죄업이 깊고 무거운데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발원하여 일심으로 염불하며 저극락세계를 흠모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아미타부처님을 청하여 너희들을 영접하게하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오랜 동안 먹이를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프니 먼저 먹을 것을 주세요.”

 

우 거사는 그렇게 하기를 허락하였다.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과 밥을 담아 변식진언을 일곱 번 염하고 나서 대나무 밭에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의 혼령들이 말했다.“

우 거사는 곧 빈 공터에서 향과 초를 사르며 아미타 부처님을 공손히 청했다. 그리고 왕생주, 반야심경, 대비주와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였다.

 

함께 지켜 보던 유거사의 처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보아라. 아미타부처님께서 장육금신으로 오셔서 높이 서계신다. 모두 빨리 무처님을 따라 가거라!”

“너희들은 극락정토가 보이느냐?”

“보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하냐?”

 

96마리 소의 혼령들이 극락정토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정토경전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말했다.

“저희들은 여러해 동안 섭씨를 괴롭혀서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거사님의 가르침과 인도로 저희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원한이 하루아침에 녹았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섭 씨도 아미타불염불을 일심으로 하여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랍니다. 거사님과 거사님의 가족들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저희들도 반드시 부처님을 따라서 맞이하겠습니다. 오늘 저희를 위해 염불해주신 것은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후 조용해졌다. 얼마 후 섭씨 아주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말하였다.

“내가 마치 꿈속에서 성에 갔다가 서쪽 거리로 가는데 한 무리의 흉포한 소때를 만났습니다.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갑자기 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 경치가 변했는데, 아름다운 숲 가운데 평평한 풀밭이 있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갑자기 밥 냄새가 강하게 나더니, 소떼가 숲에서 밥을 먹으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 후 다시는 소의 혼령이 섭씨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리고 섭 씨도 채식 하면서 열심히 염불수행을 하였다. 유정밀 거사는 1934년 봄 서강에서 출가하였다. 법명이 혜정이다. 위의 이야기는 출가하기 전에 겪은 일은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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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어떤 비구스님의 전생 기억

 

 적공(寂空)스님의 전생과 극락왕생발원 

 

여러 수행자들이여, 이글은 내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가르침 청하여 시방삼세의 모든  본존이신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것으로 진실하여 하나의 거짓도 없음을 밝혀둔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여러분이 나의 일을 거울 삼아 교훈을 얻어서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이다. 여러분이 하루라도 빨리 불도를 수행하려는 바른 마음을 일으키고 큰 보리심을 발해서 용맹정진하고 계를 지키며 일념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여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육도윤회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란다.

 

또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곧바로 보리를 증득하고 무상정등정각을 이룬 뒤 각자의 원(願)에 따라 다시 돌아와 여섯 가지 윤회의 세계에 몸을 나투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기 바란다.

 

 

나의 속가 성은 이(李)씨이다. 1989년 3월 해공(海空)법사를 은사로 불문에 귀의하였고,적공(寂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불가에 입문한 뒤, 하루하루 예불과 좌선을 열심히 하였다. 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늘 경전을 가까이하면서 불법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1992년 8월 25일 저녁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 정좌하고 있었다. 저녁 10시 경 갑자기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서 나 자신의 과거 생의 모습을 휜히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너무나 슬퍼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열심히 불법을 공부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94년 8월29일 저녁 법당에서 염불을 할 때는 더 나아가 속가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의 과거 생의 모습까지 휜히 알게 되었다. 그 후 숙명(宿命) 즉, 과거생의 모습과 윤회에 대에 여러 차례 불보살의 증명을 얻게 되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과거생의 기억은 여러 차례 증명을 통해서 입증된 것을 비로소 감히 밝히는 것이다.

 

600년 전 나는 출가한 비구였다.

나는 20세에 출가하여 삼당대계(三堂大戒)를 받고 50여 년을 수행하였다 .선한 업도 많이 지었지만, 속세의 일에 탐욕을 일으키고 연연하여 인간계와 천상계의 복된 과보를 바라고, 정토왕생은 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육도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삼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으며 빚을 갚아야 했다.

 

스님으로서의 삶을 마친 뒤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향락을 탐하게 되었는데, 온 종일 술과 여자를 탐하며 지내는 생황을 하였다 .내 주변에는 여덟 명의 시녀가 있었는데, 비록 여색을 탐하지는 않았지만 명예를 좇고 재물에 욕심내고 이익을 탐한 과보가 커서 악업을 지었다.

 

하지만 전생에 출가수행한 공덕이 크기 때문인지, 목숨을 마친 뒤에 벼슬아치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뒤 많은 병사를 거느리는 장군이 되었는데, 그 풍모가 당당하고 늠름하였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었다. 부귀영화가 넘쳐서 다 누리지 못 했고, 산해진미도 또한 넘쳐서 다 먹지 못했다.

 

온 종일 주지육림 속에서 보내곤 했는데, 당시 24명의 시녀를 옆에 두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면서 다시금 온갖 나쁜 업을 짓게 되었다. 특히 병사들에게 명령 내려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람의 머리를 벤 뒤 그 시체를 강이나 개천에 버렸고 수풀에 숨은 적군도 모두 찾아내어 죽이는 등 많은 죄업을 지었다.

 

그리하여 그 몸을 벗은 뒤에는 삼악도에 떨어져 열 번을 윤회전생하면서 악업의 과보를 갚아야 했다.

 

먼저 세 번은 두꺼비의 몸을 받았다.

왜냐하면 장군으로 살때 많은 사람의 머리를 베어 죽이고 그 시체를 개천에 버렸기 때문이다. 그 과보로 머리 없는 두꺼비로 태어나 수시로 막대기에 맞고 낚시에 걸리고 복부가 뒤집혀서 물에서 죽어서 그 시체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났다. 심지어 근육이 뽑히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를 갚았다.

 

이렇게 세 번 두꺼비의 몸을 받은 뒤, 다시 뀡의 몸을 네 번 받았다.

그 이유는 장군으로 살 때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두려움에 떨면서 수풀에 숨어있는 적군을 찾아내서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입의 쾌락을 탐하여 온종일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살았다. 그 과보로  뀡의 몸을 받아서 창에 찔리고, 칼에 베여서 지지고 삶기고 볶이는 고통을 당하면서 빚을 갚아야했다.

 

네 번이나 뀡의 몸을 받고도 악업을 다 갚지 못하여, 다시  돼지 몸을 세 번 더 받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먹기만 좋아하고 일하기는 싫어했기 때문이다. 시녀들이 밥을 가져오면 입을 벌려 먹고, 옷을 가져오면 손을 벌려 입히게 하고, 늘 고기 먹을 생각만 하면서 나쁜 업을 지었다.

 

그 때문에 돼지의 몸을 받아서 먹다 남아 버리는 음식과 상한 음식을 먹게 되었고, 채찍이나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이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천 번 만 번 칼에 잘리고 뜨거운 솥에 들어가서 갖가지 고통을 당하였다. 두 번 사람 몸을 받아서 입의 쾌락을 탐한 악업의 과보를 이렇게 갚게 되었다.

 

일체의 고통과 모든 즐거움은 모두 나 스스로 지어서 직접 받는 것 (자작자수自作自受) 이며, 인과응보는 참으로 조금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여러 수행자들이여, 내가 삼악도를 윤회전생하면서 받은 갖가지 고통에 대해 알았을 때 너무도 상심하여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지극히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600년 전 수행으로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했으면서도 인간과 하늘의 복을 탐하고 왜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는가? 이 헛된 탐욕때문에 임종의 자리에서 한 생각 잘못하여 열 번이나 삼악도에 떨어졌구나.

 

 붉은 흙먼지 가득한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600년을 헛되이 윤회하였구나. 어찌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니겠는가. 600년!!!  이토록 긴 세월을 그리 비천하게 보내다니 또 어찌 부끄러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떤 귀신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인과의 가르침을 믿고 생명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진실로 자기 자신이 윤회해온 과정을 알고 나서 어찌 본사 석가모니불, 본존 관세음보살과 시방삼세 일체재불, 모든 대보살의 자비로운 가피에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제자가 자기의 본사, 본존의 면전에 꿇어 앉아 자기의 숙명을 이해하고 불법을 배우면서 또 한 단계 진일보하였을때, 또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 해야 불보살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열심히 불법을 배우고 일념으로 염불하면서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걱하였다. 사람의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 배우기 어려움을 생각하자, 현생에 어렵게 얻은 사람의 몸으로 열심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불보살님께 죄송하고 부모님께 죄송한 일이다.

 

옛 성현께서 말씀하지 않았는가 "사람 몸얻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얻었고, 불법 듣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들었네, 이번 생에 불국정토에 가지 않으면 다시 어느 때에 갈 수 있으리오?"

 

사람 몸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번 생에 반드시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수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귀신이 왔을 때 뒷 일을 기약할 수 없다. 사람이 임종에 이르렀을 때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 즉,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연꽃 가운데 화생하여 부처님을 뵙고 열심히 수행하여 성불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해냈는가?  아니다. 나는 잠잘때 꿈에 빠지며 또한 망념도 많다. 만약 꿈을 꿀 때조차 정념(正念)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임종의 자리에서 반드시 서방극락정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서원하였다. 

오늘 이후로 수시로 계(戒)의 조문을 굳게 기억하여, 지계(持戒)의 금강 같은 날카로운 검으로 오욕육진(五慾六塵)을 베고 삼독(三毒)을 소멸하겠다. 자주자주 무상(無常)을 생각하고 항상 사성제를 사유하며 자비심을 닦아 일체 중생을 숙세의 부모로 여기고, 늘 삼보와 스승의 은덕을 기억하겠다. 생각 생각마다 무상보리를 잊지 않고 용맹정진하겠다. 계를 지키며 염불하여 성불할 때까지 영원히 물러나지 않겠다.  나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여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을 것을 서원한다.

 

나는 비구로 살면서 열심히 수행하였으나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두 생에 걸쳐 인간의 복보(福報)를 얻었다. 그러나 선을 쌓고 덕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갖가지 악을 지어 삼악도에 열 번이나 떨어졌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으로 그 과보를 갚고 나서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600년 세월을 헛되이 보내며 인과응보를 절감하였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어찌하여 아귀도와 지옥도에는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내가 출가하여 불법을 배운 공덕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부유한 집에 태어나 갖가지 악업을 지었지만 단지 축생도에만 떨어져 윤회하며 과보를 갚은 것이다.

 

악업의 인연이 다하고 나서, 불법에 대한 종자가 다시 한번 좋은 인연을 만나서 싹을 튀웠고 그리하여 현생에 다시 출가하여 불법배우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불법의 종자를 심은 다음에 이 종자가 썩지 않는다면 적당한 토양과 온도를 만났을 때 곧 싹을 튀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는 대광명장(大光明蔣)이며 한 번 이근(耳根)을 스치면 영원히 도(道)의 종자가 된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고 쫑카파 대사가 『보리도차제론』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출가생활 오십년에  생사해탈 구하잖고

스스로를 얽어매어  다음생의 복된과보

생각하며 닦았다가  육백년을 윤회했네 

 부귀공명 비유하면  칼날끝의 꿀과같아

삼악도에 떨어져서  모든빚을 갚게되네 

고기반근 탐닉하여  여덟냥을 갚게되고

금수축생 떨어져서  여러차례 윤회했네  

참선하여 숙세일을  명백하게 알고보니 

스승님은 성인이요  내자신은 범부로세 

금생과보 확실하게  전생인연 때문이니 

스승에게 절하오며  금강선을 닦아가네 

굳센정진 영원토록  물러나지 아니하고 

곧장바로 보리좌의  구품연대 오르리라. 

 

 

 사천성 중강(中江)에서 1995.10.17 일

 -적공(寂空) 스님-

  

이상으로 위의 모든 이야기는 불광출판사에서 나온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이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실화들을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들은 자신이 아프거나  가족 등 주변 분이 아플 때나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주시길 간곡히 권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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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 부처님의 가피력 (사례 모음 / 대만)|

*이 글은 1983년 대만에서 발간한 [念佛感應見聞記]에서 발췌했습니다.

 

 

[01] 한번의 염불로 죽음에서 회생하다.


대만 중부지방의 한 시골에 임치라는 분이 있는데 그 해 64세 되는 해였다.
그녀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근처의 불교도서관에 가서 법문을 들었으며
아침저녁으로는 오직 염불만 할 줄 알았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으며, 딸에게는 3세의 아들이 있었다.
즉 임치의 손자이다. 손자의 이름은 아달 이라고 했으며,
하루는 아달이 문밖에서 놀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암돼지에 받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의사들은 뇌막염이라고 진단하였으며, 그때부터 깨어나지 못하다가
20일이 되는 날 오후 8시경에 그만 죽어버렸다.
가족들은 그를 포대기로 덮어서 객청의 바닥에 놓아두었으며
이미 사망진단서와 내일 매장할 준비를 다 했다.

임치는 손자의 사망을 눈으로 보고 그 애통함이 비할 때 없었으며
그 날도 저녁 예불을 하는데 염불을 하는지 곡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울면서 부처님께 탄식을 하면서 말하였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시여! 당신은 왜 저를 도와주지 안는가요?
이 부근의 시골에서는 오직 저 혼자 부처님을 믿고 염불을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저를 보면서 그렇게 가난하면서 무슨 부처님을 믿고 염불을 하는가?
하고 놀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욱 저를 놀리게 될 텐데
불 보살이시여! 왜 저를 보호해 주지 않으시나요?"

임치는 또 크게 한바탕 울다가 그만 혼절하였다가 한참만에 겨우 의식을 차리고 침대에 갔다.
그러나 손자의 죽음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 4시쯤 갑자기 한줄기 금색광명이 허공에서부터 곧바로 객청으로 통해 들어오니
그 광명의 찬란함은 불가사의 한 것이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20일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하던 아달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달은 자기의 손으로
포대를 걷으면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임치와 그 딸이 놀램과 기쁨이 교차되는 가운데 다투어 아달을 끌어안았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아달을 보이자 의사는
죽은 아이가 살아온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02] 보살이 나타나서 염불을 권하다


작년 5월 초순에 아란이라는 여인이 유산으로 인하여 몸이 무척 쇠약해져 있었다.
하루는 하혈이 지나쳐서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간병하러 온 어머니는 그가 잠에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몇 시간이나 흐른 뒤에 아란이 깨어나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방금 정신이 아득했었는데 문득 어느 한 음산한 곳에 도달했어요.
무척 먼 곳이라고 느꼈어요. 앞으로 곧장 가려는데 도중에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특별히 단정하고 근엄했어요.
그녀는 갑자기 한 손으로 나를 세우더니 다른 한 손을 뻗어서 나를 미는 것이었어요.

나는 넘어져서 한번 구르다가 일어나면서 그녀에게 욕했어요.
「너 이 여자야 왜 가만히 있는 나를 미는가. 그리고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그 여인은 나에게 말하기를...

 

 「이 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거라. 네가 집에 도착하면 곧바로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한 뒤에 공경스러운 모습으로 합장하고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 --」하고 염불을 했어요. 그리고 나는 이렇게 깨어났어요.』

어머니는 딸에게 말하길

『그 여인은 아마 관세음보살이 너를 구하기 위하여 변화하여 나타난 것 같구나.
대자대비하시고 구고구난하시는 관세음보살이 맞을 거야.』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몸의 건강이 회복되고

그 어머니가 스님에게 아란이 경과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스님에게 묻기를 「관세음보살도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염하는지?
그리고 관세음보살 당신이 극락세계의 삼성(三聖)가운데 한 분이 아닌가?」스님이 대답하였다.

「관세음보살이 합장하고 염불을 한 것은 아란을 구하려는 생각에서 한 것이지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바로 몸소 시범을 보여서 당신의 딸을 교화한 것이다.
염불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바세계의 고해를 벗어나며
윤회에서 벗어나겠는가? 이로부터 아란도 염불을 하기 시작하였다.




[03] 아미타불의 광명으로 가피를 입다



이 일은 1963년 11월 9일에 일어난 일이다.

대만 중부의 작은 시골마을에 뢰요라는 이름의 부인이 있었는데 나이는 54세며, 다섯 살 난 손자를 데리고 건너 집의 김방련불자의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김방련불자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할 때였는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듣고 놀라는 경험을 하게된 것이다.말하자면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가피를 입는 영험은 바로 사람들에게 염불의 방편을 가르쳐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 날은 9일 정오였다. 뢰요는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무거우면서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었다.5세의 손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김방련불자의 집으로 달려가서 부르는 것이었다.급히 뢰요의 곁에 달려와 보니 두 눈은 힌뜩하고 쓰러져서 이미 인사불성의 상태가 된 것이다. 70여세의 김방련과 5세의 손자가 뢰요의 양옆에 앉아 소식을 듣고 오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사람들과 함께 아미타불의 염불을 하기 시작하였다.

염불을 시작한지 20분쯤 지나자 뢰요가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탄식을 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디 있어요, 내가 그와 함께 가도록 해 주세요!」김방련이 물었다.「그가 누구인가?」뢰요가 말하길..「저의 남편 임금길입니다.」김방련불자는 한편으로는 더 높은 소리로 염불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영혼에게 말하길...「임선생! 당신은 뢰요를 데려가지 마세요. 오히려 그녀가 건강하고 편안하게 있도록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그녀는 당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동시에 당신의 아들을 키우고 있지 않소.

모친은 너무 늙고, 자식은 너무 어리니, 절대로 그녀를 데려가면 안되오.」뢰요의 시어머니도 말하길..「금길아! 네가 세상을 떠난 후 며느리와 내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데, 네가 데려가면 우리는 어찌하겠는가? 그것은 큰 불효가 될 것이다.」김방련불자가 염불을 하다가 다시 말하였다.

「임선생! 당신은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극락에 갈 것을 발원해야 합니다.그래야만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오.내가 지금 염불하고 있으니, 당신도 따라서 일심으로 염불을 하시오」그리고는 일심으로 염불을 하였다.

그러길 반시간 정도 지나자, 뢰요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세분의 찬란한 빛이여! 세분의 찬란한 빛이여, 금길도 떠났습니다.」김방련이 물었다.「당신은 무엇을 보았으며, 세분의 찬란한 빛은 무엇을 말하는가?」뢰요가 말하길...「방금 세분의 찬란한 광명을 보았는데, 당신이 말하길 아미타불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 몇 일이 지나자 뢰요의 건강이 회복되고, 사건이 있으면 원인도 있는 법이다.

얼마가 지난 뒤에 뢰요의 시어머니가 김방련에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내 아들 임금길과 며느리 뢰요는 결혼한 후에 한번도 다투는 것을 볼 수 없을 만큼 은애로 가득한 부부였다. 3년 전 임금길이 세상을 떠난 뒤에 뢰요는 날마다 남편을 생각했고, 특히 사건이 생기기 열흘 전에 며느리가 혼자 성묘하러 묘지에 가서 통곡을 했는데, 그 날부터 남편이 꿈에 나타났으며, 며느리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손자의 꿈에도 나타나는 것이었다.」

김방련은 혼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자 스님에게 물어보았는데 스님의 답은 이러하다.
「첫째. 임금길이 생전에 자기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게 강해서 죽은 뒤에도 업을 따라 가지 못하고, 자기의 시신을 지키는 귀신이 되었거나.둘째. 뢰요가 성묘하러 가서 남편을 생각하다가 곡을 하자, 묘지의 주위에 있던 귀신들이 임금길의 모습으로 변해서 그녀를 따라 집에 와서 작난을 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장경에 이러한 내용이 있는데..『염부제에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 명을 마치게 될 때에, 백 천 가지의 악도의 귀신들이 혹은 부모와 친척 그리고 친구 등으로 변해서 나뿐 길로 빠지게 하는데, 하물며 본래부터 악을 행하는 사람이겠는가?.』이상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는데 어디에 속할지 모르겠다. 총명한 분이 있다면 나를 위하여 해답을 바란다.」




[04] 노모의 염불에 자녀가 재앙을 면하다


대중의 염불회 금강반의 반장으로 있는 이수금불자는 보살의 마음을 낸 성실한 불자다.
그는 자기의 가정은 물론이거니와 친정의 식구들까지 불교를 믿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였다.
그의 모친은 명수촌이라는 시골마을에 살았다.

8년 전 9월 초8일 염불회를 창설하기 위한 홍보 때문에 몇 사람을
그곳으로 파견하여 정법을 가르치고 염불을 권하게 되었다.
그의 집에도 여느 가정처럼 극락세계의 삼존불(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셨으며,
그 곳을 신의당(信義堂)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마침 매년 9월 초8일을 기념일로 정하였는데 부근의 주민들도
이 날에는 초와 향을 준비하여 예불하고 법문을 듣기도 하였다.
그 곳에 염불회의 임원도 초청을 받아서 신의당에 갔는데,
그 날 한 할머니가 남자의 손에 부축을 받고 큰 거울을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띄웠으며, 부처님 앞에 공손히 오체투지(큰절)를 세 번 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당신들은 왜 이처럼 정성을 다 해서 예불을 합니까?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할머니가 바로 대답해 주었다.「나는 불 보살님의 가피를 입었기 때문에 답례하러 왔습니다.」

그 두 분을 자리를 장만해 주자 천천히 부처님과의 인연을 이야기 해 주었다.
할머니가 말하길...「지난달 중순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하나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나는 나의 치아가 모두 떨어져 나간 꿈을 꾸었어요.

다음날 날이 밝자 나는 그 꿈이 결코 좋지 않은 예감으로 생각했으며,
그 꿈을 바로 제부인 이수금에게 말했는데,
그녀는 나에게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경건하게 기도도 해 주었어요.

"한 가정의 평안을 보살펴 주시고, 흉한 일은 만나면 길하게 하시고,
큰 일은 작게 하시고, 작은 일은 없어지게 하소서."」

할머니는 단숨에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쉬고 또 계속해서 말하였다.

「나에게는 아들하나 있는데 이름을 아성이라 하고,
깊은 산에 들어가 숯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날 아침 숯가마에 불을 붙였는데,
갑자기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답니다.『아성이 돌아왔어요!......』

아성은 좌우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고, 또 밖으로 나가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숯가마의 입구에 가면 『아성이 돌아왔어요!......』
하는 고함소리가 미미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는 바로 집에 있는 70여세의 노모를 연상하고,
집에 의외의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곧바로 주인에게 휴가를 청하고, 급히 물건을 챙기고 외투를 걸치고
숯가마에 연결된 방에서 나와 대략 백여 거름을 걸어가는데
갑자기「펑」하는 거대한 폭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아성이 있던 건물이 숯가마와 함께 무너져 내려 앉아버렸어요.
아성은 큰 한 숨을 쉬면서 그 위험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어요.
그는 현장을 정리하고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길을 떠났어요.

산길을 내려오는 도중에 몇 개의 산을 넘고, 큰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는 없고 그냥 한 줄의 끈이 매여 있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대광주리가 매달려 있어서
그 안에 사람이 타면 끈으로 당겨주고 끌어주어 겨우 통행을 하는 것이었어요.

아성도 이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으며,
자기 차례가 와서 짐을 가지고 광주리 안에 들어가 줄을 당기며 건너편으로 가는데
중간쯤 가자 그만 줄이 끊어지고 사람과 짐이 계곡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계곡은 깊고 물은 급하여 양쪽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냥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성은 다행히 깊은 물에 떨어지고, 얼마쯤 급한 물에 쓸려 흘러가다가
우연히 수초가 손에 잡혀서 몸을 지탱하고 계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방이나 짐은 다 떠내려갔으나 몸은 무사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불가사의 한 일은, 노모가 일심으로 염불한 공덕으로 인하여
자녀가 재앙이나 위기에서 두 번이나 벗어나게 된 것이다.




[05] 누님의 기도에 동생이 복을 받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은 중생의 스승이며 복전이다.
이수금불자도 보리종자를 파종하는 어질고 좋은 친구다.
그는 매번 대중에 있는 법당에 법회가 있을 때마다 먼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주위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찾아다니며 법회에 참여하여 공덕을 지으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법회에 나와서 염불도 하고 법문을 듣기도 하였다.
종자를 뿌리면 반드시 싹이 틀 것이오, 염불을 하면 반드시 감응을 보게 된다.

대략 5년 전의 어느 날, 이수금불자가 나에게 말하길...
『저의 친정마을에 10세정도의 여자아이가 있는데, 무척 똑똑하고 선근이 있습니다.
그녀는 매번 당신의 법회가 있을 때마다 법회에 참여하였고,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날마다 아미타불을 염하는 발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집에는 불상이 없으므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처님을 모신 이웃에 가서 예불을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부처님을 모신 집의 남자아이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자존심도 없고, 염치도 없니, 네가 우리 집의 부처님에게 예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러자 이 총명한 여자아이는 감히 두 번 다시 그 집에 가서 예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지속되는 염불과 예불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여, 마음은 부처님과 떨어지지 않았고, 부처님도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밤에 잠을 자다가 꿈결에 홀연히 일어나더니 꿇어앉아서 합장하고「나무아미타불」을 그치지 않고 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모친이 깨어나서 말하길...「아가야! 이 한밤에 일어나서 뭐하니?」 여자아이가 말하길...「엄마! 내가 금빛의 몸을 한 아미타불을 보았는데, 얼굴에는 웃음을 머금고, 공중으로부터 나의 얼굴 앞에 오시기에 내가 급히 일어나서 공손히 염불한 것이야. 엄마! 나 부처님 한 분 모시고 공양을 드리고 싶어, 엄마에게 간청하는데 우리 집에도 부처님 한 분 모시자. 응?」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하고 어머니에게 간절하게 말했다.「엄마! 생각났는데, 나 대나무저금통 있잖아? 내일 그것을 열어서 얼마나 들었는지 보고, 그걸로 아빠에게 사달라고 하면 어떨까? 그럼 난 매일 부처님에게 예불할 수 있어서 좋잖아.」그의 어머니는 바로 그러자 고 대답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금통을 열어보니 약간의 돈이 있었으며, 그것을 아버지에게 주어 부처님 한 분을 모셔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돈을 더 보태서 관세음보살 한 분을 모시고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녀의 어머니는 부처님을 모시기 위하여 음식과 장식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그 때 갑자기 네 살 난 남동생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대경실색해서 사방으로 찾아다녔으며, 수 백 명의 마을사람들도 거들었지만 보이지 않았고, 양어장과 논밭을 다 뒤졌는데 황혼이 되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길「당신들 부부는 다 커 가지고 어떻게 아이의 말을 들으며, 무슨 부?냄“?예배하는가? 당신들이 불상을 모신다고 바쁠 때 이렇게 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불상하게도 이 어린 아이는 이 사람 저 사람 던지는 말에 놀라서 몰래 관세음보살의 앞에 꿇어앉아서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였습니다

「불 보살이시여, 당신은 저의 네 살 박이 동생을 보호하여 편안히 집에 돌아오도록 해 주세요! 만일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면, 저는 더 이상 부처님과 보살님께 염불과 기도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웃들도 감히 부처님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그의 아버지가 홀연히 어떤 생각을 했습니다. 일찍이 점을 친 적이 있었는데, 점보는 선생이 사주팔자를 보아 종이에 써 준 것을 장롱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것을 꺼내어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아이가 몇 월 몇 일에 큰 재앙을 당할 것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원래 이 네 살 박이 아이가 아침에 혼자 집을 나갔는데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날 오후 5시경에 왕전(王田)이라는 기차역 부근에서 기찻길을 걷는 아이를 청년학생 한 사람이 보았습니다. 청년은 아이를 불렀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마냥 앞으로만 가는 아이에게 뛰어가서 아이를 붙들었는데 아이는 이상한 눈빛을 하고 입으로 청년의 손을 물었습니다. 청년은 아픔을 참고 아이를 안아서 역으로 가서는 역장에게 아이를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는 집이 어딘지 알지 못했고, 아침에 용정(龍井)역에서 네 살짜리 어린이를 찾는다는 전화를 받은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왕전역장은 바로 용정역에 전화하여 가족들에게 아이를 찾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역장의 부인이 있다가 아이의 모습이 땀과 먼지로 더럽혀지고 배고픈 것 같아서 아이를 안고 자기 집에 가서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먹을 것을 주니 금방 두 그릇의 밥을 비우고는 바로 쓸어져 잠이 들었습니다.

용정역장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곧바로 왕전에 가서 아이를 데려왔는데 이미 밤 11시나 되었습니다. 비록 한 밤이었지만 마을 사람들도 모두 찾아와서 편안하게 돌아온 아이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동생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바로 작은 누나가 부처님에게 기도한 공덕일 것이다. 부처님을 믿고 염불한 영험이 아니라면, 어떻게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하루종일 기찻길을 걸었는데도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또 마음좋은 청년과 역장부인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정말이지 부처님과 보살의
가호가 아니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6] 부처님은 의왕이기에 중병을 치료하신다.

위에 말한 것은 10세 소녀가 일심으로 염불하였기에 그의 생각이 아미타불의 가호를 입어 4세 동생을 재난에서 구한 일이었다. 어떤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소녀의 업장이 비교적 가벼워서 아직 사람들과 원한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염불의 감응을 입었을 것이다.

만약 나이 든 사람이 염불한다면 그런 감응을 쉽게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그러나 불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 나이든 분이 염불하여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 사실을 다시 하나 예를 들어 보이겠다. 이수금불자의 어머니는 1950년 보살계를 받았으며, 지금은 모두 노보살이라고 부른다.

4년 전 그가 80이 되던 해에 갑자기 그녀의 오른쪽 가슴아래 대접만한 혹이 생겨났다. 의사에게 진료를 한 결과 간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으며, 이미 의약이나 수술할 시기가 지나버렸다고 한다. 다만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냥 다 사주라는 것이었다. 한의사도 양의와 같이 약도 처방해주지 않고, 침도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거의 6개월 동안 병상에서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하였다.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간호해 주었고, 딸 이수금불자도 집에 돌아와 노보살의 사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노보살은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매일 꼭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하였다. 병상에 누워있어도 입으로는 아미타불을 쉬지 않고 부르는 것이었다.
대략 8월 초순에 노보살의 병환은 위급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었고, 입으로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위험에 빠져있던 어느 날 밤 아들부부와 이수금불자가 병상의 곁에 있는데 갑자기 노보살이 낯은 소리로 혼자 말하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당신이 그렇게 많은 글을 썼는데 저는 한자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냥 저에게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노보살이 또 말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이시여! 당신의 자비가 너무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내일 밤 10시에 오셔서 저의 오른쪽 가슴아래의 그 덩어리를 잘라 버리시겠다고 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당신은 정말 자비로우십니다.」
이 이야기는 세 사람이 모두 똑똑히 들었다. 당시 노보살은 임종에 가까웠으므로, 정신이 혼미하고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다음날 날이 밝자 노보살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향과 초 그리고 과일 등을 준비하여 불, 보살이 치료하러 올 것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은 오후 10시가 되자 칼과 가위 등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휴!」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른쪽 가슴아래 솟았던 혹이 벌어지고, 숯처럼 검은 피와 혹의 덩어리가 엄지손가락 크기로 잘린 체 한 조각 한 조각 한참동안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날 밤부터 그녀의 몸은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그 벌어졌던 상처는 며느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녹차우린 물로 씻어주었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약도 바르지 않고 치유가 되었다. 현재 그 노보살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미타불을 염하라고 권하고 있으며, 손에 든 한 줄의 염주를 손에서 놓은 일이 없다. 금년 비록 84세의 고령임에도 신체는 오히려 보통사람들보다 건강하고, 운신도 자유로울 뿐 아니라 정신도 무척 맑다.

부처님에게 기도하면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다만 일심으로 염불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독자들이 믿지 못하겠다면 노보살이 아직도 건강하니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아도 좋다. 그분은 이미 명예나 이익을 차리기 위해서 사람들을 속일 필요가 없는 노인이다.





[08] 빚 독촉을 염불로 해결하다. (상)


10년 전 2월 초순으로 기억된다. 대아의 용선사 주지스님과 대중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그분은 2월 29일 자기의 절에서 법문을 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나는 즉시에 갈 것을 약속하였다.

법회일에 나는 "무상지보"(無上至寶) 즉 극락세계의 삼존불의 그림과 염불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책과 정토법문에 관한 소책자들을 법문이 끝나고 골고루 나누어 주어
법회에 참여한 신도들과 좋은 인연을 지었다.

다음 해 2월 대중에 있는 영산사에서 7일 기도를 할 때였다.
그 날은 혜번스님이 담당하는 날이었다. 오후 3시 무렵 내가 염불당에서 염불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혜번스님이 내게 다가와 장삼을 슬쩍 당기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더니 거기에는 50세 가량의 시골 부인이 한 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부인을 전혀 알지 못하겠기에,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슨 일로 저를 찾습니까?」


그가 말하길...「저의 남편이 저에게 스님을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이 도시에 와서 사방으로 스님을 물어보았는데
어떤 분이 여기 계시다고 하여 이렇게 왔습니다.
한가지 일을 스님에게 알려드려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을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두 마디의 말로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또 영산사는 7일기도 중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도량에서 대화를 하기에는 불편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 부인이 말하길...

 

「저는 대아의 부근 시골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스님이 작년 2월 대아의 용선사에서 법문을 할 때 저의 아들 뢰흥복도 그 자리에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상지보"라는 소책자를 가지고 돌아오더니 그 날부터 불교를 믿고,
매일 예불과 염불을 "무상지보"의 방법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아침과 저녁 뿐 아니라 거의 하루종일 낮과 밤 동안 부처님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음도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 신기하게 생각했다.사바세계에 어떻게 이런 복 많은 사람이 있어서
한번 불법을 듣고, 곧바로 실천수행을 할 수 있었는지?
내가 다시 물었다.

 

「당신 아들의 나이는 몇이며,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발심을 했는가?」

부인이 말하길...「저의 아들은 작년에 25세 였습니다. 그는 대학을 23세에 졸업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폐결핵에 걸려서 매일 악을 먹고 침을 맞는 등 3년 동안 적지 않은
재산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염불을 시작한 뒤부터 몸은 비교적 건강해 졌고,
정신적인 것도 낙관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가끔 시내에 가서 불교서적을 구해보기도 했습니다.」

내가 또 물었다...「당신 집안에는 몇 식구가 살아요?」

부인이 말했다...「남편과 저 그리고 소실(첩)과 아들 이렇게 넷입니다.
아들이 병에 들자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정성을 다해서 간호하였고,
속히 완치 돼서 우리 세 사람의 의지처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12월 초순에 흥복이 갑자기 우리 세 사람을 함께 부르더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과 두 분의 어머님, 저는 오늘 낮에 서방극락세계로 가게될 것입니다.
당신들 세분은 절대로 상심하지 마시고, 아들 없는 것에 근심하지도 마세요.
우리 형님이 일본에 건너간지 수 십 년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지만,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가정과 사업을 세우고,
결혼하여 아들이 있습니다. 형님은 2월 초순에 소식이 올 것이며,
일본과 왕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더 이상 적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 말하길...『너의 몸이 이전에 비해서 아주 건강해 졌는데 왜 떠나려 하는가.

아미타불에게 너를 보호해줄 것을 기도할 것이니, 절대로 가려고 하지 말아라. 』

이때 흥복이 말하길...『나는 본래 빚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당신들 세 사람은 과거에 저와 깊은 원한 관계를 맺었고, 저에게 많은 책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금생에 당신들의 아들이 돼서, 대학까지 나온 상태에서 바로 나쁜 병에 에 들었습니다.
3년 동안의 투병생활에 아직 책무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래는 이 집과 소유한 땅도 다 팔아치우고 당신 세 사람이 완전히 걸인이 돼서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한 상태에 이르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숨을 걸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여러 생 동안 지었던 죄업을 소멸시키고,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네 사람은 원한도 없고 빚도 없습니다.
당신들 세분도 지성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세계로 가십시오.
그런 다음 우리가 다시 만나면 영원히 함께 살면서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해 주세요. 시간이 다 됐어요. "무상지보"를 이리 주세요.

당신들 세분도 저를 도와서 염불해 주세요.
그리고 울어서는 안되며, 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지도 마세요.
등을 저에게 보이고 절대로 돌아보지 마세요. 저도 염불을 하겠습니다.』

흥복이 "무상지보"를 두 손바닥에 사이에 두고 합장하였고, 처음에는 큰 소리로 염불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따라서 염불했는데, 그가 돌아보지 말라고는 했지만 저는 가끔 슬쩍 슬쩍 돌아보았습니다.
대략 20분이 지나자, 흥복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숨이 끊어질 무렵에 합장이 풀리고,
"무상지보"는 그의 가슴 앞에 떨어지고,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08] 빚 독촉을 염불로 해결하다. (하)

부인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저희 집은 방이 많아서 모두 여러 사람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본래 흥복이 폐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모두 전염될까보아 겁을 내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흥복이 임종할때의 모습을 지켜본 다음에 모두가 마음 한곳에 느끼는 바가 있었으며,
이구동성으로 불교의 영험이 불가사의 하다고 하며 이사가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다만 그가 임종할 때 말한 큰형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까지 우리들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일본에서 친척을 찾는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참으로 흥복의 예언이 완전히 들어맞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이 말하길...

『만약 스님이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하는 법문을 하지 않았다면,
흥복이 임종전에 어떻게 이 많은 인과의 일을 알 수 있었을 것이며,
원한을 해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큰형이 일본에서 예언한 날에 맞추어 편지가 온 것을 보아
흥복이 유언한 일은 모두 믿을만 한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 또 말하길...

『이후에 우리가 행복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스님의 공덕을 입은 것이니,
이 은혜와 이 정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우선 스님을 찾아서 이 기이한 영험의 사실을 말씀드려서 기적을 알게 하고,
당신에게 기쁨을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은정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내가 그 부인과 남편의 이름을 물었는데 그가 주소와 이름을 말했는데,
그동안 함께 듣던 혜번스님이 부인의 남편과는 가까운 친척이라고 말해서 한번 더 놀랐다.
우리 세 사람은 영산사의 담 밖에서 두시간 가량 시간을 보냈다.
이미 5시가 넘었다.


이상에 말한 두 가지의 이야기에서 확실히 아미타불이 계시며,
극락세계도 존재한다는 확신할 수 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원수 맺은 업도 해결할 수 있으며,
다겁동안 지은 죄업도 소멸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미타경에 보면...『그 국토(극락세계)의 중생들은 항상 새벽마다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꽃을 모아서 다른 세계의 10만억 부처님을 공양올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라고 하였으니,

극락세계의 중생들은 왕생한 다음에 신족통(몸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신비한 힘)을 얻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 자유롭게 올 수 있을 것이다.
더 자세한 일은 현명한 독자들이 나를 위하여 해석해 주길 바란다.

 

 

 




 

[09]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고 염불로 구원받다.

 




대만에는 속담이 있는데 "귀신이 없으면 죽은 사람도 없다" 정말 틀리지 않은 말이다.

최근 여러 곳에서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거기에는 운전자의 부주의 등 문제가 있었겠으나, 갈 곳 없는 귀신들의 작난도 많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러나 한 구절 아미타불의 성스러운 이름을 부르면, 귀신들이 물러나고,

편안하고 무사해 질 수 있다.

독자들이 믿지 못하겠다면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이 바로 증명을 해 줄 것이다.

현재 대중의 남문 밖에 구련주불자가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아옥이라고 불렀다.



10년 전 그는 시장 부근에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옥은 우체국 앞 사거리에서 갑자기 어떤 차에 치여 도로 위에 넘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차는 도망가버렸다.

아옥은 얼굴 가득 피가 흥건하였고, 숨도 멈추어진 체 기절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둘러서서 바라만 보고 있던 그 때 젊은 군인 한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즉시 등에 엎고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가족들이 이를 보고 대경실색하였으며,

각각 어른과 아이 그리고 젊은 군인이 함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오래지 않아 아옥은 혼미한 가운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너이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데려 가겠다고, 난 가지 않아!

너이들이 차를 몰아서 나를 강제로 태우려 해도 그래도 나는 가지 않는다.

안 간다면 안가는 줄 알아!

나는 삼보의 제자야! 매일 아미타불을 외우기 때문에 극락세계로 가게될 텐데,

내가 왜 함부로 너이들을 따라 가겠니?

만약 아미타부처님이 나를 맞이하러 오신다면 그때 갈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잠시 뒤에 다시 이어서 말하길...

「나를 데려가려 하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염불소리를 듣고는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차도 떠나버렸다.」

이렇게 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옥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사진관에 도착해 보니

이미 아옥의 머리에는 상처를 10여 바늘 꿰매고 수술한 뒤 붕대로 감아져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가 본 것들 말하자면,

수많은 귀신들이 다투어 그를 에워싸고, 차에다 끌고 태워 가려는 일을 알려 주었다.

내가 그에게 염불공부를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만약 부처님을 믿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정신이 한번 혼미해 질 때, 그런 탈 것이 있다면 무의식중에 기뻐하면서 타고 떠났을 것이다.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교통사고 후에 그를 엎고 온 군인은 포교당의 청년회반의 법우 였고,

벌써 수년동안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모두 서로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아옥을 만나지 않았거나,

스스로 똑똑히 염불을 하지 않았다면,

아옥의 정신과 건강이 회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10] 염불이 유효한 이야기

 



황관주불자는 불교대학 구련반(九蓮 : 구품 연화대를 상징한 것이다.)의 부반장이다.

그는 정말 대자대비한 법우였고, 또 48원(아미타불의 48대원)을 세운 분이다.

집은 대중시에 있으며 전형적인 불교가정의 하나다.



보리심을 발하여, 늘 사람들에게 염불할 것을 권하였고,

여러 가지 방편을 써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
특히 부근의 어린 아기들이 놀래거나 해서 잠을 못 자면,



모두 그에게 데리고 와서 재워 달라고 하면

그가 아기를 안고 대비주(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면,

아무리 시끄럽고 산만한 아기라도 쉽게 잠에 들곤 했다.



대략 8년 전 하루는 내가 그녀의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침 한 젊은 여인이 울고 있는 아기를 데리고 와서

관주불자에게 재워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곧 대비주를 외워서 아기를 재우더니,

이어서 아기 엄마에게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에 그냥 있지 말고 항상 염불을 하면,

아기가 더욱 튼튼하고 총명하게 클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청소할 때와 빨래할 때,

그리고 길을 거닐 때도 한발자국에 한번의 염불을 한다면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기엄마에게 남편의 직업을 물으니, 화물차 운전수라고 하였다.



그러자 관주불자는 또 간절한 억양으로 말했다.


당신이 돌아가면 반드시 남편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라고 가르치며,

만약 어떤 재난이나 위험에 당하면, "나무아미타불"을 크게 외우면,

그 어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전하시오.

그 아기엄마는 좋은 인연이 있었는지 나중에 그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남편에게 말해 주었다.


 


한달 쯤 지난 어느 날, 내가 관주불자의 집에 48원 법회의 소식을 전해주러 갔었는데

마침 지난번 만났던 그 여인을 또 만났는데

이번에는 아기가 그 여인의 품에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울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남편을 대동하여 왔는데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남편의 손에는 초 향 그리고 꽃과 과일을 가득 들고서,

아미타불에게 예배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주불자는 그 이유를 몰랐다.

원래 그 여인의 남편은 부인의 권고를 듣고,

운전할 때에 염불 하다가 영험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길...「보살님의 큰 자비에 감사합니다.

저의 부인에게 염불을 가르치고, 또 저에게 염불을 권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제 화물차에 야채를 가득 싣고 대북에 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중리와 도원의 사이에 사거리가 있는데 거기서 갑자기 차가 서버렸습니다.

어떻게 해도 차가 움직이지 않았고, 더 이상 한 것은 몸이 무척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당신이 나의 아내에게 가르쳐준 염불이 생각났습니다.

당시에 저는 운전석에 앉아서 두 손을 운전대를 잡고 있었는데,

눈은 감기고 잠이 오는 상태였습니다.



저의 아내에게 밥할 때나, 청소할 때,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을 때와

빨래를 할 때도 아미타불을 부르고,

특히 위험이나 재난을 만났을 때 더 큰 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친 것을 생각하고 염불을 하자 바로 그 순간

화물차가 자연적으로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깨는 바람에 졸음이 확 달아났고,

정신을 차려 운전할 수 있어서 해뜨기 전에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운전수가 말하길...「보살님! 저의 집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관주불자는 기쁜 얼굴로 잘 생각했다고 말하며,

바로 홍콩에서 인쇄한 서방삼성상(西方三聖像 :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그림)을

주고 아침저녁으로 간단하게 예배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운전수 부부는 거듭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이 불가사의한 영험을 내가 직접 들은 것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권합니다.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습니다.

입이 있다면 모두 아미타불을 염해야 합니다.

하나의 단어이지만 만가지 덕을 갖춘 최고의 주문을, 금생에 그냥 보내지 말길 바랍니다! 


 

 


 



[11] 큰 소리로 염불하여 원혼을 쫓아내다




정성을 다해서 여섯자의 위대한 이름을 부르면, 자신 뿐 아니라 남의 원한조차 해결시켜 준다.

이 일은 1957년 4월에 일어난 일이다.

대중시(臺中市) 중구(中에區) 있는 동평극장의 문 앞에서 갑자기

커다란 화물차가 자전거를 피하다가 잘못하여 동평극장으로 들이친 것이다

.

이 사건으로 극장의 큰 기둥 두 개가 부러지고, 여섯명의 사상자가 나온 교통사고다.

그 가운데 60여세의 할머니가 한 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전날 대북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대북에는 아들집에 있었는데 가벼운 입다툼으로 인하여 대중의 딸집에 내려온 것이다.

딸은 모친에게 지극한 효녀였고, 사위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살자고 하였다.



그 날 오후 5시경에 할머니는 가장 어린 손녀와 목욕을 하고, 손녀를 업고 거리에 나간 것이다.

하필이면 그녀가 동평극장을 지나가는 순간에 화물차가 닥친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즉사하였고, 다행히 손녀는 무사하였다.

이틀 후에 화장을 하고 도사(道士) 몇 명을 초청하여 고별식(영결식)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아들은 대북에서 내려와 상복을 입고 향로와 번을 들고서

도사들이 시키는 대로 상주로서의 예식을 하고 있었다.

도사들은 바라와 북 그리고 여러 가지 악기와 법구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주가 방에서 나오려고 한발을 문 밖에 내 딛는 순간,

말하자면 아직 한 발은 방에 있는 그 상태에서 상부의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눈은 허연 동자를 들어내고 얼굴은 하늘을 향하였으며, 숨은 겨우 내쉬고 있다.

그리고 얼굴색은 검게 변하여 마치 흑인과 같아지는 것이었다.


당시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우리 하송영 진월아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 날 진월아불자가 마침 의자에 앉아서 염주를 들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옆집에서 들려오는 도사들의 의식하는 소리가 끊기고 비명소리와 더불어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진월아불자는 호기심이 생겨서

옆집으로 가 보았는데 손에는 염주가 그대로 들려진 채였고, 입으로는 염불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상주복을 입은 남자가 그렇게 서 있는 것이었다.

진월아 불자는 그만 놀란 나머지 큰 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하였고

대략 2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상주의 얼굴과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진월아불자가 당시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

당시 자기는 죽음을 무릅쓰고 큰 소리로 염불을 했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큰 소리로 염불한 것이지 그 상대를 구하기 위해서

염불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불가사의 한 것은 염불소리를 듣고

상주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상주는 모친의 유해를 모시고 대북으로 가서 매장하기로 하였는데,

떠나기 전에 진월아불자에게 찾아와서 말하였다...

「어제 저를 위하여 적시에 아미타불 염불을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염불이 그렇게 좋은지 몰랐습니다.」진월아불자는 말하길...



「당신이 대북으로 돌아가면 날마다 염불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 모친과 맺은 악연도 풀고, 당신에게 재앙이 오지 않을 것이며,

좋은 일만 생기게 될 것입니다.」상주는 염불을 할 것을 약속하고, 거듭 감사의 말을 하면서 떠났다.

다음 날 진월아불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또 말하길...



「어제 저녁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집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혼자 문 옆의 의자에 앉아 11시까지 염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유행 감기처럼 의사를 불러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되는 것이지,



어떻게 2분 동안의 염불로 치유될 수 있었겠습니까?」진월아불자의 추측 가운데

가능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상주의 모친이 참사를 당하면서 원한이 생기고,

원한의 동기가 바로 아들과의 입 싸움에서 비롯되어 대중으로 내려왔다가 참화를 당한 것이니,

다시 대북으로 혼을 모시려는 아들에게 원한을 갚으려고 목을 조이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일심으로 부르는 염불의 소리가 원혼에게도 들리고,

그 목숨을 바쳐서 부르는 염불을 듣고 원한이 소멸되었을 것이다.

여러분 우리함께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에게 불교를 믿고 염불을 하라고 하면 대부분 말하길...

「보시할 돈이 없어서 불교를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박복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월아불자는 다만 돈 한푼들이지 않고 염불 몇 마디로 큰 보시공덕을 이루었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7층탑을 세우는 것보다 수승하다고 합니다.

진월아 불자는 대중시에서 모범어머니에 뽑힌 적이 있으며 품행도 단정하고,

가정의 행복을 키워 나가는 현모양처입니다.



 

 

 



 

 



[12] 염불은 흉악한 신들을 물리친다.




21세기는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논리적인 사고와 실증적인 물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런 일들이 우리의 주위에 일어나지 안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준(李準)불자는 불교대학 방광반(方廣班)의 부 반장이다.

역시 대중시 동구에 살고 있는데 집이 커서 남는 방을 화물차 운전수에게 세를 놓았다.

운전수의 부인은 아주라고 하며, 금년 31세다.

12월 20일 아침에 거리의 한 양장점에서 새 옷 한 벌 사 가지고 나오려는데,

거리에서 풍악이 시끄럽게 울리는 것을 듣고 호기심이 나서 그 행렬을 바라보았다.



뜻밖에 거기에는 8명이 나무관을 메고 가는데 그 모습을 한번보고 그만 소름을 느끼는 동시에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가슴은 돌로 짓누르는 것처럼 압박을 느끼면서 그만 혼절해 버렸다.

양장점의 주인은 직원을 시켜서 곧바로 병원으로 보냈으며,

병원에서는 주사를 놓고 약을 먹였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이준 불자가 혼미하여 인사불성인 아주를 바라보니 얼굴과 손톱이 모두 검게 변해 있었다.

이준 불자는 놀라서 소리쳤다...「아미타불이시여 목숨을 살려 주소서!」

당시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던 화물 운송원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모두 달려 왔다.



아주의 두 눈은 이미 허였게 돌아가 있고, 전신이 검게 변하고, 기절한 상태라서

모두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잠시 후 어떤 이는 그의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어떤 이는 그의 친정에 전화를 하는 등 바삐 움직였으나,

오직 이준 불자는 정신을 진정하고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아주의 가슴에 놓고,

입으로는 계속해서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불, 보살의 자비에 기도했다. 아주를 구해 달라고.....



대략 20분쯤 지나자 아주의 두 눈의 피부가 점점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었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온 아주가 말했다.「보살님! 당신은 정말 저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입니다.

제가 가슴이 눌려서 거의 숨이 끊어질 즈음에 고통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 마침 당신의 염주를

저의 가슴에 놓아주었고, 또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게 해 주시자 금방 몸이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같은 지역에서 지난 해 두 번이나 더 있었다.

한번은 지난 7월 17세의 소녀가 상여 지나가는 보고 일어난 일이다.

소녀는 아주와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병원에서 3일만에 죽었고,

또 그 소녀의 출상 때 근처에 사는 여인이 문 앞에서 장례행렬을 보고 같은 증세가

나타나서 죽은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이준 불자의 염불에 의해 생명이 구해 졌으니

주위사람들이 감탄하고 아주에게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일은 다음 해에 나에게 와서 직접 해준 이야기였다.




 

 


 




[13]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원을 받다




대중 염불원에는 48개의 반이 있다. 58년 4월 그 날은 "근수염불법문"(勤修念佛法門)을

강의하는 중간에 이준 불자가 아주를 구한 영험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 소합(蘇合)이라는 불자가 있었는데, 그는 이준 불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가 일어나서 대중에게 말했다...

 

「저는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저의 동생(阿雪)도 두 달 전에 그와 비슷한 상황을 당해서 죽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 아침 풍악을 울리며 상여가 지나가는데,

이웃 할머니 한 분이 아설에게 빨리 나와서 신을 맞이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설이 방에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그냥 목관을 보자마자 모골이 송연하여, 곧바로 몸을 돌리고 창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즉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였고, 오한과 발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의 매부가 바로 의사를 불러서 진찰하고 주사와 약을 먹였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설이 매부에게 자기를 저의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여,

매부가 오토바이에 태워서 왔습니다. 제가 동생 아설을 바라보니 심장이 뛰고,

숨이 제대로 쉬질 못하고 신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향 세 개를 피우고 불 보살의 가피를 빌었으며,

동시에 정성을 다해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대략 30분 가량 염불을 하고 대비주(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운 물을 그녀에게 먹였습니다.

잠시 후에 아설의 두통은 사라지고, 몸이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다만 인생은 재난도 많고 번뇌도 많더군요.

10 여 일이 지난 다음 매부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저에게 와서

자기 집으로 빨리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여섯 살 난 딸의 몸에 종기가 생기더니,

갑자기 기절하여 혼수에 빠져들었으며, 지금은 가느다란 숨만 남아있습니다.

제가 동생의 집에 가보니, 평소에 명랑하던 동생의 딸이 바닥에 누워서


거의 숨이 끊길 지경에 놓여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저번처럼 큰 소리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불렀으며,

대비주의 물을 수저에 떠서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불법의 힘은 한이 없었으며,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잠시 후에 아이의 눈동자가 움직이기 시작 하였고,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웃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살아났다고 감탄하였습니다.



이후로 아이는 약을 먹고 회복을 하였습니다.」

소합 불자가 여기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길...

「당신은 이미 성스러운 명호의 좋은 공덕을 알아서 스스로 염불하지만,

왜 당신의 동생에게 염불을 가르치지 않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침저녁으로 염불하게 하면 음식을 먹을 때

각각 먹은 사람이 배가 부르듯이 자기의 죄는 자기가 소멸시키고,

스스로 염불을 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소합이 답하길...

「동생에게 이미 염불하는 법을 가르쳤으며,

서방삼성(西方三聖: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셔주었습니다.



그러나 네 명의 자식들이 자라고 있어서 법문을 듣기 위하여 법회에 나올 여유가 없었습니다.」

소합 불자가 평소에 부지런히 염불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의 동생과 질녀가 처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원의 기도를 드려줄 수 있었겠는가



 

 

 



 



[14] 흉한 터를 좋은 곳으로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는데...

「一子持薺千佛喜 한 아들이 깨끗한 믿음을 가지면 천불이 기뻐하시고,

九玄七祖能超生」 9대 7대 조상들이 모두 극락에 왕생하게 된다.


이 말은 옳은 말이다.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가 재앙을 소멸하고 원한을 해결할 수 있으며,

흉한 터를 좋은 곳으로 변화시켜 주기도 한다.

여러분들이 만약 믿지 못하겠다 고 한다면 하나의 사실을 들어서 증명해 주겠다.


이 일은 신죽(新竹)에 있는 문아포교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곳은 55년에 개원했으며, 격주에 한번씩 대중에서 포교사가 가서 법회를 하고 있다.

거기에는 거사 불자 한 분이 있는데 모두들 그를 겸형(鉗哥)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겸형이 포교사들에게 말했다...


「염불법문은 정말 신기하며, 진실로 중생을 이롭게 하고, 확실히 영험이 있습니다.」

포교사들이 물었다...「당신은 염불을 하여 무슨 영험을 얻었습니까?」

겸형이 말하길...


우리 조상의 묘 가운데 하나는 아주 기괴합니다.

오래 전부터 성묘를 하러 가지 못했으며, 갈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성묘를 하고 돌아오면, 바로 병이 들거나 심하면 죽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목동이 가축들을 끌고 가서

묘지의 풀을 먹이거나 분묘를 밟게 되면,

목동과 가축들도 수일 내에 죽지 않으면 반드시 큰 병에 시달리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지방의 사람들은 누구도 그 분묘를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항복하고 대만이 광복한 그 해에 겸형의 당형이 말하길...

「우리의 그 괴이한 분묘가 거의 망가지고 있는데

만약 가서 성묘를 하고 수리한다면 우리의 자손이 반드시 발복하게 될 것이다.」



겸형이 말하길...「저는 감히 생각도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묘의 덕으로 횡재를 구하지도 않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당형은 혼자라도 가겠다고 하고

청명절에 제물을 모두 준비하여 묘 앞에서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묘를 잘 정리하고는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일개월 정도 지나자 당형의 아들 셋이 차례로 다 죽어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이 얼마나 겁나는 일이겠습니까?

저는 누구에게도 이렇게 가공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60년 8월 7일 태풍과 홍수의 수재가 있은

뒤에 또 다른 당형이 와서 그에게 말하길...


「내가 어제 그 괴이한 분묘를 지나오는데

그 묘가 물이 들어서 구멍이 파여져 있었어요,


만약 수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수리하고 싶어도 감히 손을 댔다가 재난을 당하면 어쩌겠습니까?」



그러자 겸형이 그 자리에서 말하길...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가서 수리합시다.」



그 당형은 좋아하며 말하길...「당신이 정말 수리하러 간다면,

수리에 드는 일체 비용을 내가 다 낼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시작 함 겁니까?」겸형이 말하길...「다시 한 달 더 기다리세요.」


겸형은 정토법문을 듣기 시작한 후로

몇 년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빼지 않고 드렸습니다.

괴이한 묘를 수리하겠다고 말하고 난 날부터

예불을 마치고는 바로 그 괴이한 분묘의 조상에게 회향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불 보살에게 애원하였습니다...


「불 보살이시여! 저를 보우하여 주십시오!

제가 불교를 믿기 시작하고부터 친척과 친구들 모두 제가 미신을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부처님의 법력을 요청하니 그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괴이한 분묘를 수리한 다음부터는

두 번 다시 사람이나 가축의 피해가 그 분묘 때문에 일어나지 않게 하여주십시오!」


이렇게 그는 매일 아침저녁 두 번씩 기도를 드렸습니다.

수리할 날짜가 되었습니다.

전날 그는 더욱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는데,

한 밤에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꿈에 한 분묘에 도달했는데 남향이었습니다.


 


앞에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개울물은 깨끗했습니다.

앞을 항해서 흐르고 있었으며, 묘의 양옆에는 두 그루의 벌거벗은 나무가 있습니다.

묘지의 비석은 쓸어져 있고, 봉분은 파헤쳐져서 구멍이 나 있습니다.

아주 황폐한 분묘입니다.

갑자기 묘지 안에서 흉악하게 생긴 여자가 나오는데 옛날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당시 겸형은 무척 놀랍고 두려워서 즉시에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흘렀을까... ...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노인이 겸형에게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전부터 가장 흉악한 귀신이었는데

후세의 자손이 염불하는 공덕으로 지금은 착한 귀신으로 변했어요.」

겸형은 분명히 보았고 확실하게 들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니 그것은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꿈의 경계는

분명히 불 보살님이 대자대비의 위신력으로 나에게 먼저 보여준 것일 것이다.

내일 나는 마음을 놓고 분묘를 수리하리라.


다음날 아침 당형이 와서 말하길...

「겸아! 내가 공사에 필요한 도구와 물품을 다 가져 왔으니 빨리 가져가라.」

겸형이 말하길...「제가 먼저 묻겠는데 (꿈에 본 것을 자세히 말하고) 그 묘는 여인의 것이 맞습니까?」

그러자 당형은 놀라며...「너 먼저 가 보았나? 아니면 어떻게 정확하게 알 수 있지?」

겸형이 말하길...「어제 밤 꿈에 가 보았습니다.」



겸형은 향, 초, 과일을 준비하고,

아울러 예불독송 책을 가져가서는 분묘에 가 보았는데,

꿈에 본 것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겸형은 제물을 다 차리고 향을 피우면서 예배를 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당신의 분묘를 수리하기 위하여 특별히 왔습니다.



먼저 아미타경을 읽고, 왕생주(往生呪)와 "아미타불" 성스러운 이름을 줄 것이니,

당신도 따라서 외운다면,

고통을 벗어나고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오.

이제 다시는 사람들을 해롭게 하지 말 것이며,

후손들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하고 분묘의 앞에서 염불과 경전독송을 다 마치고

분묘정리에 들어갔습니다.

비석의 흙과 이끼를 제거하고 보니 그 묘의 주인은 겸형의 할아버지의 할머니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년이 흘렀지만

겸형과 당시 함께 분묘를 수리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무사하게 지내고 있다.

여기까지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다.



귀신의 수명이 어떻게 그렇게 길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 경에 이르기를...

「귀신의 세계에 떨어지면 가장 짧게 살아도 500세를 살게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1개월이 귀신에게는 하루입니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귀신의 수명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그리고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의심하기를,

왜 조상이면서 자신의 후손을 해롭게 하는가?

역시 불경에 이르길...



「중생에게는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이 있어서

나고 죽는 육도(六道)에 윤회하면서 서로 뺏고 빼앗기며,

죽고 죽이며 서로 인과를 맺고 있다.

은혜를 맺으면 은혜를 갚고, 원한을 맺으면 원한을 갚으면서 끊이질 않는다.」



겸형의 선조와 그 괴이한 분묘의 주인은 반드시 풀지 못할 원한을 맺었을 것이다.

만약 겸형의 올바른 믿음과 염불로 부처님의 대자대비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면,

이 원한은 결코 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더욱 더욱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세요.




 

 

 


 




[15] 아가타약은 모든 병을 치료한다.



매년 봄 우리 대중법당에서는 신춘강연대회를 열고 있다.

한번은 청중가운데 5일 동안 계속 참석한 분이 있었는데,

그는 멀리 대동시에서 온 분이다.



그는 영풍백화점의 사장 황화조거사의 부인이 초대하여 법회에 참석 한 것이다.

이름은 임잔(林盞)이며, 당시에 임잔여사의 건강은 아주 나빴다.

얼굴은 누렇고, 피부는 바짝 말았으며, 목에는 붕대로 감았고, 수시로 기침을 하였다.


 


그는 황거사의 부인에게 고명한 의사를 소개해 달라고 하여 함께 병원에 갔는데,

이미 대동시에서 X-레이를 촬영해 본 결과 왼쪽 폐에 세 개의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여

그동안 한 근의 산삼을 복용하고, 주사도 백여 차례를 맞았으나 효험을 보질 못했다.


당시 오후 5시경이었다.

황씨 집안은 불교가정이므로 아침저녁의 예불을 빠진 적이 없었다.

예불시간이 되자, 황부인이 임잔에게 예불을 같이 드리자고 하고,

백팔염주를 주어서 염불하는 방법과 아울러 "아가타약"을 복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예불이 끝나자 한잔의 "대비주수"를 마시도록 하였다.


저녁 식사 후에 황부인이 임잔에게 말했다...

「임잔님! 당신의 복은 참으로 옅지 않아요.

오늘 저녁부터 우리 포교원에서는 5일 동안 불교강연이 있어요.」

그리고는 그 날 임잔을 데리고 법문을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날 밤에 임잔은 한번도 기침을 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임잔은 불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낮에는 황씨의 집에서 하루종일 지심으로 염불을 하고,

저녁에는 포교원에 가서 법문을 듣기를 5일 동안 계속 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약간의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정신은 의지할 곳이 생겼으며, 신체는 몇 일 전보다 몇 배로 상쾌해 졌다.



그리고 탄식하기를...「이 곳 사람들은 복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 도시에는 정법을 이렇게 쉽게 가르치는 곳이 없어요.」

황부인이 말하길...「당신은 이미 불교를 믿고 염불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더 큰마음을 낼 수 있을 거예요.



우리 포교원의 홍법위원들을 그 곳으로 초청하여 그 곳에서 불법을 펴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게 될 것이고, 당신의 공덕도 한이 없을 거예요.」

임잔은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며 말하길...



「좋습니다. 그 초청의 건에 대해서는 당신에게 위탁하겠습니다.

오가는 차표 또는 비행기표는 모두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다만 당신도 꼭 함께 와주시기를 바랍니다.」


30년 전의 교통은 오늘날처럼 편리하지 않았다.

가는 데만 이틀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반드시 고웅(高雄:까오쓩)에서 일박을 하게 된다.

임잔과, 황부인 그리고 법원스님이 동행을 했는데

고웅의 한 여관에서 머물 때 불, 보살의 가호를 받는 경험이 발생하였다.


원래 법원스님의 오른 발에 종기가 났었는데, 한 달이 넘게 치료를 했었다.

종기를 터트렸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했었다.

당시 무척 바쁘게 활동하였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웅의 여관에 도착하자

종기에서 통증이 참지 못할 만큼 심하게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관주인이 보더니 주위에 아주 유명한 의사가 있어서

푸른 풀로 고약을 만드는데 마침 그런 종기에 특효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곧바로 찾아가서 약을 사서 한번 붙였는데 바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살을 돋우고, 피부를 생성시킨다는 완전한 약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이미 반은 좋아진 것 같았고, 삼일째 되는 날에는 완치되었다.


이것은 모두 불, 보살님의 특별한 가피의 영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참으로 약이 이르자 병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법의 길을 떠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16] 대비주의 물로 생명을 살리다.

 



법원스님이 대동(臺東)의 해산사(海山寺)에서 5일 동안의 강의를 마쳤다.

회향하는 날 강의하던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헤어지기 싫어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60세 정도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한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당신이 말한 것은 모두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하거나,

악을 고치고, 착하게 살며, 마음을 바꾸는 도리가 아닙니까?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을 고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비롭게 지시해 주시길 당신에게 청합니다.」



법원스님이 당시에 이 할머니를 보니, 목에는 커다란 혹이 나 있었고,

옷깃으로 감추지를 못할 정도였다.

법원은 생각하기를...이 사람은 그 혹을 제거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만약 불교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목의 혹을 제거해 주어야 하겠는데,

만약 구해주지 못한다면,

5일 동안 불교가 위대하다고 말한 법문이 과장된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느낌이 닫는다.

그리고 주위에는 그동안 법문을 듣던 사람들이 모두 둘러서서 답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스님은 즉시에 한가지 방편으로 답했다...



「만약 자기 혹은 다른 사람이 재앙을 면하려고 하거나,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병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아미타경과 왕생주 그리고 아미타불의 성호를 수백 수천

나아가서는 수만 번을 외워야 하는데,

아미타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아미타불을 염불해도 됩니다.



다만 반드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며,

그런 다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던지 지극정성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의 성호를 외우며,

동시에 대비주수를 마신다면,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목숨이 다 했다면, 이 예불과 염불을 한 공덕으로 서방정토에 왕생하여,

영원히 나고 죽는 고통에서 해탈하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법문입니다.」

세월은 화살과 같아서 금방 일년이 흘러 가버렸습니다.


 


하루는 대동의 임잔이 우리 포교원에 왔는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지난 해 두 사람에게 내린 법문을 통해서 임잔의 병은 이미 온데 간데 없이 소멸되었고,

체중도 10 Kg. 정도 불어서 예전에 입던 옷을 하나도 입지 못하고 모두 새로 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원스님에게 말하길...

「대동의 사람들은 모두 당신이 다시 와서 설법해 주시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저만 염불로 영험을 얻은 것이 아니라,

당시 목에 혹이 있던 할머니도, 염불독송 방법과 대비주수를 마시는 법을 배워서,

날마다 그대로 하여, 할머니의 혹은 이미 소멸하여 옷깃을 세워서 감추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는 모두 신기하다고 합니다.」


임잔은 계속해서 말하길... ...

할머니의 혹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크나큰 영험이 있습니다.

정말 사람들에게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며느리가 있는데,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아기를 잉태하여 열 달이 다 되었으며,

스스로 분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과 밖의 청소는 물론이고 돼지우리까지 청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태아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의 어른들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돼지우리를 잘 목 건드려서 일어난 사고라고 마을 어른들은 말하였습니다.

3일이 지나도 여전히 태아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임산부는 아침 일찍 시어머니를 만나러 갔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진찰을 하더니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배속의 아이는 이미 죽어서 3일이나 지났어요,

스스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수술해서 끄집어내야겠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임산부는 자세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술을 해야 한다면 적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상의하여 허락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산골 마을로 올라갔습니다.

다시 4일이 지났는데 태아는 여전히 움직이질 않고 있습니다.



임산부는 다시 시어머니를 만나러 대중에 갔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태아가 7일 동안 움직이지 않은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데리고 다른 산부인과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병원의 의사도 같은 진단을 내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 앞에 촛불과 향을 피우고,

며느리에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게 하고는

자기는 예불을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대비주를 외운 물을 한잔 며느리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지심으로 불, 보살의 가호로

며느리의 뱃속에 있는 죽은 태아가 수술의 번거로움과 고통을 거치지 않고,

자연으로 유산되기를 기원 드렸습니다.



그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고, 며느리에게 산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한밤에 며느리가 갑자기 시어머니를 깨우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뱃속에 태아가 움직여요!」



시어머니가 담담하게 말하길...

「그것은 반드시 불, 보살의 가피를 입어서 죽은 태아가 스스로 나올 모양이구나.」

다음날 임산부의 태아는 이미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임산부의 몸도 가벼워졌습니다.



다시 산골마을로 돌아간 임산부는

일주일 뒤에 사내아이를 순산하였는데,

모자가 모두 편안하고 건강하였습니다.


임잔이 포교원에 와서 이 신기한 부처님의 영험을 받은 이야기를 전하자,

모두 칭찬하며 자기의 일처럼 기뻐하였습니다.

 



 

출처 / 세이클럽의 '佛書보시 장경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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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천도

전라북도 완주에 사는 30대의 가장이 1997년에 직접 체험한
일입니다 그는 결혼한 다음에도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는데

명(命)이 다한 어머니는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아들에 대한 애착이
다하지 않았음인지 저 세상으로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혼을
아들의 부인인 며느리의 몸에 의탁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귀신이 된 것입니다
귀신이 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며느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온 몸이 아픈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입을 빌어 아들과 손자의 일,
그리고 살아 생전의 한맺힌 이야기들을 쏟아놓았습니다

"너는 왜 나에게는 잘할 생각을
하지 않고 며느리편만 드느냐?
이 불효막심한 놈!"

차츰 집안이 엉망이 되어가자 견디다 못한 아들은 부적을 구하여
집안 곳곳에 붙이기도 하고 무속인을 불러 굿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떠나가지를 않았고 오히려 더 심술을 부렸습니다

"이놈아, 그런다고 내가 떠날 줄 아느냐?
네 처의 몸이 내 집이다.
이제부터 네 처가 아니라
나랑 같이 살자"

견디다 못한 아들은 완주군의 영험 깊은 사찰인 송광사를 찾았고
그 절의 주지스님은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열심히 불교를 믿지 않았던 아들은 염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다시 아내의 몸을 빌어
심한 욕설을 하는 것을 바라보던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한차레 외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야! 네 몸에서 빛이 난다야."
"예?"
"야. 너 지금 뭐했야?"

그때서야 아들은 자신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 아무아미타불을 외웠는데
영가에게는 광명으로 보였구나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렇게 아미타불의 위신력을 체험한 그는 어머니 영가의 시달림에서
잠시 벗어나 본 정신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울
것을 권하는 한편, 자신도 염불을 하면서 축원했습니다

"부처님, 업장이 두터워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고
아내의 몸에 의탁해 있는 불쌍한 어머니를 부처님의
무량한 광명으로 인도하시어 극락왕생케 하소서"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7일만에 어머니는 아내의
몸을 떠났고 지난 수개월 동안 온 몸이 아프다며 하소연하던

아내는 건강을 회복했으며 아들은 정성껏 "나무아미타불"염불을
외워 어머니를 좋은 세상으로 보내드릴 수 있었으며

아울러 집안이 평온을 되찾음과 동시에 그들 부부는 신심깊은
불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 여섯글자에
깃든 힘은 참으로 큽니다

아들은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는데 영가인 어머니는
광명을 본 것입니다 이에 확신을 얻은 아들은 정성껏 염불하여
어머니를 천도하였습니다

염불의 공덕이 이와같이 크거늘 염불을 마다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고 온 정성으로 염불하면
틀림없이 가피를 입을 수 있습니다.


출처: 미타신앙. 미타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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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불

최근 군부대에서 있었던 사건인데

우리 서원사에서 옛날 심원사(深源寺)자리에 가서 군 법당을 지었다.

그것이 있기까지는 그곳에 귀신이 출몰한다고 하여서 모든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군 법당을 지은 뒤 그러한 현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대대장이 바뀌고 대대장이 타종교인이다 보니 대대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그러자 우리도 관심이 소홀해졌 을 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그곳 군종병에게서 전화가 와서 귀신이 또 출몰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귀신은 타종교인에게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가서 법문을 하면서 염불을 하는 이는 제불보살과 신장의 보호를 받게 되니 염불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그때 타종교를 가진 사병이 와서 그 법문을 듣고 있었다.

며칠 후 그 사병이 화장실에 앉아 있었는데 뭔가 가 자신의 허벅다리를 잡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지고 들어갔던 촛불이 쓰러지면서 벽에 불이 붙더라는 것이었다.

희귀한 현상에 놀란 사병은 이것은 생시의 일이 아니라 꿈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꿈에서 깨어나고자 노력하며 앉아 있었는데 연기가 자신을 괴롭히더라는 것이었다.

 

순간 법문을 들었던 생각이 나서 큰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치자

자신의 허벅다리를 잡고 있던 그 힘이 없어지고 깨고 보니 꿈이 아니라 생시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뛰어나오자 병사들이 화장실의 불을 끄느라고 소동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이 사병은 염불자가 되었다.
이러한 실화들은 염불을 하면 제불여래와 신장들의 보호를 받는 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일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진스님 법어중에서)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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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


*이글을 쓰신 반야화님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은평구 역촌동 삼보사 합창단단장으로써
법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저의 하루는 지장보살님을 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과 함께 시작한 하루하루는 늘 상쾌합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할때는 물론
절에 와서 노래하고 차를 탈때 도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된 것은
지장보살님의 큰 가피를 입고 자연스럽게 생긴 신행생활입니다.
불교를 믿고 부처님과 지장보살님께 귀의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직접 가피를 입고나서야 오늘과 같이 철석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약간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병고의 시련 속에서 "지옥중생을 다 건지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나도 이제부터는 "지장보살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리라.."는
새로운 서원과 희망을 갖게 되니,
그또한 지장보살님의 크신 위신력이라 믿습니다.

몇 년 전 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픈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수술을 한다해도 건강을 다시 찾을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사실 주사나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한 특이체질이고...
마이신 등 항생제에 대한 알러지가 있어 평소 감기에 걸려도
약도 못먹어 한약과 민간요법으로 이겨내곤 했는데,
대수술이라니...

그때 불현듯 수술하고 죽을바에야 죽을 힘 다해
기도정진이나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 ,
스님께서하라는 대로 지장백일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수술 일주일 전,그날도 전 삼보사 법당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불자님들과 함께 소리 높여 염불하는 고성염불의
지극한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불단에 모셔진 지장보살님께서
다기 그릇을 들고 제 앞으로 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선 다기물을 제게 주시면서 다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렵 목이 아파서 음식물을 넘기기 힘든 상태라 목은 말랐지만,
먹기싫다고 하니,

지장보살님께선 마치 어머니가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밥을 떠먹여 주듯, 먹기싫어 뿌리치는 아기에게
다 먹이려고 애쓰는 어머니처럼 제게 다기물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
제가 다 먹을 때까지 자비로운 눈빛으로 지켜보시던
지장보살님께서는 제가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곤
다시 불단 위에 앉으시는 것이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자
불자님들은 여전히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물을 먿어먹은 다음 날부터
제 몸은 날아갈 만큼 가벼워졌습니다.
기도할 때도 몸이 아파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했었는데,
마치 새 몸을 갖다 붙인 것 같았고,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병마가 싹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수술 예정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서 재진찰을 해봤는데
기적이라며 놀라워하시는 의사선생님을 뵈면서
저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전 "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하신 지장보살님께서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으로 저를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지장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답니다." 라는
답변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현대의학으론 수술을 해도 목숨을 장담못한다고 했는데
수술도 하지않고 지장보살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서 저는 늘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불자로써 부끄럼없는 삶,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기전에는 성불을 하지 않겠노라는
지장보살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절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때도 모든 중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생활속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 너와 내가 모두
중생의 탈을 벗어 이땅을 극락세계로 만드는
큰 일꾼이 되길 기원하면서 하루하루 지장보살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영원히 이 땅이 불국토되기를 기원하면서
지장보살님을 염하고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며
이웃에게 법음을 전하리라는 원력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전에 서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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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 지장보살마하살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나는 언제부터인지 산을 좋아했습니다. 피아노를 다루는 사업을 하는
만치 음악에도 깊이 끌렸지만 말없는 자연이 더 마음을 당겼습니다.
산에 가면 대개는 절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산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산의 핵심이 절 인듯 느껴졌습니다.
절이 없는 산에는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게도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절에 가서 염불 수행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부처님앞에
가서 합장하고 절을 하고 나서 뜰 앞에 앉아서 멍청히 풍경소리를

듣거나 벽화나 단청한 귀퉁이에 눈길을 던지고 있는 그런 취미일
뿐이었습니다. 서울 근처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적으로 절도
어지간히 더듬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절과 친근해지고 스님들과
가까워지고 불법에도 슬그머니 들어와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한걸음 한걸음 산에 오르고 큰 나무 밑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멀리 꾸불꾸불 산길 끝에 펼쳐진 절의 모습 그것은
산의 경치라기보다 제 마음의 고요하고 신선한 구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는동안에 경전을 대하고 염불을 하고 차차 산에 다니는 재미가
깊어 갔습니다. 그래서 몇번 법회에 나가 교리를 배우고 염불 수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10년쯤 전의 일이었던가 싶습니다.

그후 불광법회를 만나 부처님의 크신 은덕속에 내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의 생활을 믿음의 생활로 차차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독경과 염불, 예불로 시작하여 회사에 가서도
반야심경 1편으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출근하려고 차에 올라서도
먼저 반야심경을 암송하였습니다.불광법회에서 공부하면서 과분하게도
법회의 임원이 되어 여러 불자님들과 함께 믿음을 전법을 위한 정진을

하게 되니 하루하루 기쁨을 나날이 새로울 뿐입니다.
몇번인가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부처님께 감사하면서 그 모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제는 더욱 기도 정진하여 믿음의 힘을 키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나날입니다. 그런 중에 근래 기도를 통해서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실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지장보살이 주신 아기

불광법회를 만나고서 비로소 부처님의 크신 위덕과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상님께서 극락왕생하시고

저의 누이동생도 보살펴 주시고 형제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고 감사하였습니다.저는 9남매 중에 맏이인데 집안과 형제들에
대한 책임도 컸지만 그무렵 출가한 동생이 소생이 없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개울에서 목욕하고 가까이 있는진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 앞에 공양올리고
지장보살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관사 부처님은 그전부터 자주 참배한 부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는 날 법당 문앞에 서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습니다. 몸은 굳어지고 어떤 전율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저는 손에 염주를 들고 단단히 마음먹고 법당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법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때의 지장보살님과
시왕님의 무서운 상호를 지금껏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노하신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법당 밖으로 밀어내는 것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첫날이니까 물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에는
시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무서운 때는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꽉 감고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경드렸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장보살경 1품 또는 2품을 읽고 지장예찬
문을 읽으며 백 오십 팔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0분간을 일심 염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쫒기는 듯 법당에서 나오곤 하였는데 이러한
힘든 경계가 1주일 후에야 바뀌었습니다.

차차 그런 경계가 사라져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지장보살님이 반겨
주시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어찌 장부가
그런 요망한 말을 하느냐고 꾸지람 하시겠지만 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표정이 나날이 반겨하시고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법당 근처에 오기만 하여도 반겨주시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하였고 그 사이에는
오직 환희심과 감사로 나날이 지나갔습니다. 집안 이야기르 드리자면
제 여동생이 충청도 제천에 사는데 결혼하여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후사를 바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채 세월이
흐르니 어른들의 불만이 겹쳐서 불화가 빚어지고 마침내는 몇번이나
친가로 쫒겨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차례 겪고 나니
친정의 큰 오라비라고 하는 책임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세달 가까이 되니 임신 소식이 들려욌습니다.
그동안 하도 걱정했던 일이라 믿기지 않더니 드디어 달이 차 금년
봄에 아들을 순산했습니다.병원에서 의사는 난산을 예고했습니다만
저는 부처님만 믿고 아들 순산을 선언하고 집에 왔더니 과연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백일 기도를 마친 저는 계속하여 또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은 또 꿈이야기냐 하시겠지만
이 꿈은 정말 꿈같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새벽녘인데 꿈 속에 어떤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작은편이고 남루한 한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덕을 입어서 내가 좋은
데 간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느니라.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라고 한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서울 장위동에 사시는 저의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그리고서는 "이 사람이 내 손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역사물 TV에서 보던 포졸형식을 한 두사람이 나타나서
그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노인은 새옷으로 갈아 입었고 그것은 옛 장군복 같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와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포졸 형색을 한 사람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실감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 저는 이상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진관사에 가서 기도하고 그 길로 사무실로 나가
당숙모댁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숙모는 올해 83세이신데 16세에 시집오신 저희 집안의 산
역사이십니다. 전화로 "장호원 할아버지가 계셨습니까."하고 물으니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본 대로 형상을 말씀드리니, "내가
그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너는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상님을 위한 기도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숙모는 "참 잘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조상님을 위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잘했구나"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경전 말씀에 일체중생이
미혹하여 어둠을 방황하고 불보살님이 능히 이를 구원하신다 하였고
일심으로 염불 기도하면 모든것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은 우리가 알수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의
한 단면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확실히
이름모를 분까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꿈에 본 무주고혼

그런데 저에게는 저의 생친이 계시고 또 큰아버님이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말을 바꾸면 큰아버님 앞으로 몫이 지어진것입니다.
두 어른 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신 지 오래입니다.

저는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까닭인지 아버님에 대한 사모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을 믿으면서부터 제사는 정성드려
올렸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듯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개울에 가서 냉수욕을 하고 진관사에 참배하고 지장보살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며 예배하고
예배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정근 일과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에는 아버님을 위한 기도와 아울러 저의 기도인연
으로 무주고혼들까지도 모두 부처님 은혜를 입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 일과를 정확히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하면서 홀로 정근하고 부처님앞에 약간의
공양을 올렸을 뿐 무주고혼들을 위하여 시식은 8월18일 회향날로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진관사 개울에는
빠알간 꽃물이 다 흘러가고 어느덧 여름이 한창인 때였습니다.

그때가 7월말 경이었는가 합니다. 새벽 늦게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낯익은 진관사 일주문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건데 별안간 수십,
수백명의 낯설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관사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를 둘러 싸며 "배가 고프오, 못살겠소. 어서
먹을 것을 주오."하고 일제히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오는 8월 18일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는 소참이나마 준비해서
대접하겠오."하였으나 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배가 고파 못견디겠오. 어서 밥을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난처해졌는데 순간 저의 곁에 위풍이 당당하고
키가 9척이나 됨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이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니오. 우리 병력을
풀어야 하겠오. 객귀들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더니 금방 일단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모와 군복이 배당되어 곧 입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어 스크럼을 짜고 빈틈없이 줄을 서서
전진하였습니다.그런데 여전히 저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도 20일만 기다리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저 대대장이라는 사람을 말하기를

"저들에게 무엇인가 먹여야지 그냥 두면 안된다."하더니 어디서 날라
왔는지 큰 밥통에 밥과 나물이 운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어 군대용 반합에 담아서 우리 군인들이
숟가락으로 퍼서 저들을 먹였습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한줄로 서서 그 앞에 밥을 먹겠다고 모여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쉴사이 없이
퍼먹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러는 사이에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객귀들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서의 대대장이라는 9척이나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좀체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 이런 고생을
한다. 마음을 밝히자면 부처님을 믿어라.

그리고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라. 그리고 부처님 믿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가라. 이번에 너희들이 배부르게 먹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법연거사의 은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이말을 들은 군중들은 일제히 저를 향하여 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하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혹 기독교신지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하니 역시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법연거사의 은덕으로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극락세계로
가게 된다."

하며 앞서 말을 기독교적 표현으로 바꾸어 되풀이하고 나서
"법연거사에게 감사하라"하였습니다. 역시 그들도 앞으로 나와 저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보는듯
생생한 것은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것은 흡사 법회를 마치고 나오는 저희들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객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듣는 말이라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주고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이번 기도의
목표인 선망부모와 무주고혼을 위한 기도가 성취됐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나 현실생활이 다가 아니며 사후 영혼의 생활만도
다가 아닌 불멸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도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제가불자의
독경,염불의 공덕이 경전말씀 그대로 불가사의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지장보살은 절에서만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중생세계에는 무주고혼과 같이
시장(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고 구재하여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겠습니까?
불법만이 제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 우리 부처님만이
모든 생명을 밝히고 구원해 주는 영원한 광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효성을 일으키고 자비심을 일으켜 조상님과 무주고혼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출처: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43인의 불교신행수기), 불광출판사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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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을 짚고 단을 내려와 제게로 걸어오시던 지장보살님” 저는 오늘도 그 모습을 뵙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빛과 색이 있습니다. 들에 핀 이름 없는 한 포기 들풀도, 작은 조약돌 하나도 그만의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과 색을 지장보살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소리가 잠든 세계, 승화된 빛으로 다가서시던 그 모습은 천상의 재현처럼 성스러운 한줄기 찬란한 빛이셨습니다. 석장을 짚고 불단을 내려와 춤을 추듯 제게로 걸어오시며 손을 흔드시던 지장보살님을 친견하며 저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지장보살을 염송했습니다.

탐욕으로 지친 병든 육신을 이끌고 능인 법당을 찾아와 두 무릎을 꿇고 오열로 참회했던 그날은 묵묵히 미소로 저를 지켜만 보시던 지장보살님이셨습니다. 아버님 위패를 법당에 모시고 작은 일부터 찾아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신문 접기, 교도소 봉사, 법당 청소 등을 하며 열심히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고향에 온 것처럼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 집에 돌아 갈 생각조차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도 중에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보니 더욱 몸을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패들을 모셔 놓은 영가단에 초하루, 지장재일은 꽃을 사다 꽂기 시작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을 꽂는 전날 밤 꿈에는 꼭 지장보살님이 매번 다른 색깔의 꽃을 들고 나타나십니다. 저는 지장보살님이 들고 계셨던 꽃을 사다 꽂습니다. 노란꽃, 빨강꽃, 국화, 백합 등등......

요즘은 상조회 시다림 봉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장스님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망자를 위로하여 저승 먼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도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불자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삼성병원 시다림 봉사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어느 영가가 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시다림을 나간 상조회 법우20명이 열심히 영가천도를 해주고 마지막 목탁을 치고 나서보니 어제 본 그 영가가 영정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가 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실이었습니다.

요즘도 우리 능인 상조회에서는 조를 나누어 쉴 틈이 없이 시다림 봉사를 다닙니다. 법당에서도 천도재, 49재, 막재등을 지냅니다. 쉼 없이 기도하고 수행 정진해야 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가들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참회가 필요합니다. 육신을 벗은 영가들에게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영가천도를 해주고 난 날은 가끔은 극락에 가는 꿈을 꿉니다. 온 천지가 보석으로 장식된 그곳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신비로웠습니다. 살갗을 스치는 감촉이 너무도 부드러워 꿈을 깨고 나면 화가 났습니다. 훗날 내가 육신의 몸을 벗으면 갈 곳이기에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곳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은 지광스님 말씀 잘 듣고 부처님 법 따라 수행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살면 됩니다.

법당에 들어서면 하심하는 마음으로 청소하고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히 다루며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도 닦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칭 법당의 왕언니입니다. 누구라도 초발심으로 우리 능인선원을 찾아오는 법우들이 있으면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항상 지광 스님 화이팅을 외치며 작은 힘이지만 부처님을 위해 쓰고싶습니다.

내일도 삼성병원에 시다림봉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생명이 영가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精進行/28기 출처:능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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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다나까 소재 지장사 ▣


1700년대 초반,21세의 요시꼬 (吉子)는 일본 다까다에사는 스즈끼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신방을 치르고 나서야 남편 집안의 젊은 며느리들이 나이 서른에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더욱이 그와 같은 일이 무려 2백년 동안 이나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 서른이면 무조건 죽게 되다니...'크게 상심한 그녀는 친정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이야기 하였다. 그러자 친정어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단호하게 말하였다 "네가 서른살에 죽고 싶거든 10년 조금 못되는 기간이나마 마음껏 즐기면서 편안하게 살고,서른살을 넘기고 싶거든 오늘부터 지장 보살님께 매달려라 .

어떻게 하겠느냐?" "지장보살님을 부를께요" "집안 식구들이 방해를 하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불러라.죽는 것은 너다" 그날부터 요시꼬는 쉬임없이 지장보살을 불렀다. 부엌에서 일할때도 빨래를 할때도 잠자리속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지장보살을 불렀다. 이염불 소리에 처음으로 역정을 내기 시작한 것은 시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그나마 시아버지는 이해를 해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자 둘째부인과 하나가 되어 방해 하기 시작 했고 시부모가 함께 반대를 하자 마침내는 남편까지 염불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어느날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장보살 부르는 소리도 듣기 싫고 꼴도 보기 싫으니 친정으로 가벼려!" 요시꼬가 울면서 친정집으로 가자, 이번에는 친정어머니가 꾸짖었다.

"답답한 것도 너다.죽는 것도 너다 .남편이 대신 죽어 준다더냐,시부모가 대신 죽어 준다더냐?
서른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싶거든 네가 지장 보살을 불러야 한다. 어떤 방해에도 꺾여서는 안된다" 시집으로 다시 돌아 온 요시꼬는 가족들의 갖은 구박속에서도 지장보살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서른 살이 되던 해봄 ,요시꼬의 꿈에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되지 않는 여인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나는 2백년전,이집안의 남자들에게 깊은 원한 을 품고 있으면서 ,이집안 며느리들이 서른살이 되면 모두 죽여 버릴것을 다짐했다. 그결과는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가 지장보살을 열심히 부르니 ,그 염불소리에 내 원한이 녹아 차마 죽이지를 못하겠구나. 나도 이제 이 원한의 몸을 벗고 싶다.

그러나 나의 죄업이 너무 깊어 이귀신의 몸을 나의 힘으로 벗을수가 없구나 너에게 부탁하노니 ,지장보살의 츰부다라니를 나무판에 새겨 10만장을 찍어라. 그리고 백중날(우란 분재:음력7월15일)음식을 만들어 배에 싣고 스미다가와 강을오르 내리며 음식과 츰부다라니를 강물에 넣어주도록 해라.

그렇게 하면 그공덕으로 나는 모든업을 면하여 좋은나라에 태어 날수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이 집안의 며느리들은 계속 서른이 되면 죽게 되는것이다. 이 집안의 잘되고 못되고는 너에 달렸으니 꼭 명심하기바란다" 백중까지 남은 날도 백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요시꼬는 밤잠을 줄여가며 츰부다라니10만장을 찍었으며 ,가족들의 도움으로 많은 음식을 장만하게 되었다.

백중날 그들부부는 꿈속에 나타난 영가의 부탁대로 강을 오르내리며 츰부다라니와 음식을 던져 주었고 그날밤 부부는 똑같은 꿈을 꾸었다. 스미다가와 강위에 공중에 광명을 발하는 구척장신의 노스님이 우뚝서서 손에 든줄을 강물위로 흔들자,물속의 귀신들이 그 줄을 잡고 따라 올라가는 것 이었다.

목이 잘린 귀신, 팔다리가 떨어진 귀신,아기를 안은 귀신,처녀귀신,총각 귀신등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은뒤 그 집안의 며느리들이 죽는 일이 없어졌고, 요시꼬는 아흔 살까지 장수하였다.

또 슬하에 십 여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들 부부는 보은의 뜻으로 집을 절로 바꾸어 지장사(地藏寺)라 하였다. 지금도 지장사에는 그때의 츰부다라니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매일같이 많은 신도들이 영험 있는 이 절을 찾고 있다.

두손 모아 간절히 ...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왕보살 마하살


( 출전: 영가천도, 우룡 스님, 효림, 1999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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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하루는 지장보살님을 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과 함께 시작한
하루하루는 늘 상쾌합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할때는 물론 절에 와서 노래하고, 차를 탈
때 도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된 것은 지장보살님의 큰 가피를 입고 자연스럽게 생
긴 신행생활입니다. 불교를 믿고, 부처님 과 지장보살님께 귀의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직접
가피를 입고나서야 오늘과 같이 철석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약간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병고의 시련 속에서 "지옥중생을 다 건지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나도 이제부터는 "지장보살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리라.."는 새로운 서원과 희망을 갖게 되니, 그또한 지장보살님의 크신 위신력이라 믿습니다.

몇 년 전 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픈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는게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수술을 한다해도 건강을 다시 찾을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사실 주사나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한 특이체질이고... 마이신 등, 항생제에 대한 알러지가 있어 평소 감기에 걸려도 약도 못먹어 한약과 민간요법으로 이겨내곤 했는데, 대수술이라니... 그때 불현듯 수술하고 죽을바에야 죽을 힘 다해 기도정진이나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 , 스님께서하라는 대로 지장백일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수술 일 주일 전,그날도 전 삼보사 법당에서기도를 하였습니다. 불자님들과 함께 소리 높여 염불하는 고성염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불단에 모셔진 지장보살님께서 다기그릇 을 들고 제 앞으로 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선 다기물을 제게 주시면서 다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렵 목
이 아파서 음식물을 넘기기 힘든 상태라 목은 말랐지만, 먹기싫다고 하니, 지장보살님께선 마치 어머니가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밥을 떠먹여 주듯, 먹기싫어 뿌리치는 아기에게 다 먹이려고 애쓰는 어머니처럼 제게 다기물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

제가 다 먹을 때까지 자비로운 눈빛으로 지켜보시던 지장보살님께서는 제가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곤 다시 불단 위에 앉으시는 것이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자 불자님들은 여전히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물을 먿어먹은 다음 날부터 제 몸은 날아갈 만큼 가벼워졌습
니다. 기도할 때도 몸이 아파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했었는데, 마치 새 몸을 갖다 붙인 것같
았고,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병마가 싹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수술 예정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서 재진찰을 해봤는데 기적이라며 놀라워하시는 의사
선생님을 뵈면서 저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전 "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하신 지장
보살님께서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으로 저를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지장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답니다." 라는 답변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현대의학으론 수술을 해도 목숨을 장담못한다고 했는
데 수술도 하지않고 지장보살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서 저는 늘 새 생명을
주신 지장보살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불자로써 부끄럼없는 삶,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기전에는 성불을 하지 않겠노라는 지장보살님
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 이 절절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때도 모든 중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가르침을 배우고, 생활속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 너와 내가 모두 중생의 탈을 벗어 이땅을 극락세계로 만드는 큰 일꾼이 되길 기원하면서 하루하루 지장보살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영원히 이 땅이 불국토되기를 기원하면서 지장보살님을 염하고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며 이웃
에게 법음을 전하리라는 원력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전에 서원드립니
다.

* 이글을 쓰신 반야화님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은평구 역촌동
삼보사 합창단단장으로써 법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원전: 지장보살 영험록 김 종매외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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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지장보살 영험담


"보살님, 오늘은 3천배를 해보시지요."

부천에 사는 자비심(가명)보살은 가끔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내원궁에서 같이 기도하던 스님이 밑도 끝도 없이 3천배를 권하자 의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에 10시간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면서 3천 배를 마쳤다.

그 다음 날 부천으로 돌아간 보살은 주차장에 남편의 자가용이 없는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외출했나싶어 열쇠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집의 문은 열려있었다. 혹시 도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보살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가 반갑게 아내를 맞는 것이었다.

"여보,여보. 나 정말 큰일 날 뻔했어.죽지않은게 정말 믿기지 않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던 보살은 남편의 말을 듣자 등골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자가용을 몰고 나갔는데 아마 속도를 좀 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전봇대와 충돌해서 차가 전복되어 폐차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남편은 털끝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사건현장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자비심보살은 그 모든 게 도솔암 내원궁에서 3천배를 드린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 그 때 힘들고 귀찮은 생각에 스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부처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지장보살님, 살펴주신 덕분에 남편이 철갑옷을 입은 마냥 조금도 다친 곳이 없으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보살은 그 일이 있은 후 형편이 허락하는 한 자주 도솔암을 찾는다고 한다. 하기야 남편의 목숨을 구해주신 지장보살님이 계신 곳인데 아무리 길이 멀다해도 어찌자주 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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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의 지장보살님은 특히 병고로 고생하는 불자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언젠가 대
구에 사는말기 유방암 환자였던 한 보살이 찾아와 지극 정성으로 기도한 지 23일 째 지장보살님이 방광하심과 동시에 그 보살은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 방광의 정도가 얼마나 휘황찬란했던지 새벽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에 불이 난 불 알고 허겁지겁 뛰어올라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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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 사는 보광화 보살은 육순이 넘으면서부터 꺼림칙한 꿈에 시달려야했다. 꿈 속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친구가 나타나 보살에게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네, 갈 길이 먼데 뭘 그리 꾸물대는가? 빨리 나를 따라가세."

보광화 보살은 꿈 속에서 너무 피곤하니 5분만 더 잔 후 출발하자고 애걸했다. 그러나 친구는 흉흉한 기세로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그치기 일쑤였는데 그 옆에는 돌아서있는 탓인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여자가 보따리를 들고 서 있더란다. 딱 5분만 , 딱 5분만, 보살은 그렇게 친구와 실랑이를 하다가 잠에서 깨어나곤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을 꾸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 꿈을 꾼 후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고, 또 한번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보살은 잠자리에 드는 일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보살은 도솔암 지장보살님이 영험하시다는 말을 듣고 만사 제쳐좋고 달려가 기도를 하다가 쉬는 틈을 이용해 한 스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스님은 지장경을 매일 독송하며 지극히 지장보살염불을 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라고 가르침을 주셨다고 한다.

과연 도솔암에 다녀와 매일 지장경을 독송한 이후 보살은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았을 뿐더러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도 전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영험도량에서 기도성취한 이야기 진 현종저 대원미디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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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영험담


1) 우물을 자리를 가르쳐 주신 지장보살님

도림사는 사찰의 위치상 상수도 시설을 하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물은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기존의 지하수로는 늘 물이 부족해서 물의 양이 많은 샘을 새로 파려고 했다.

90년 봄, 기술자를 데려다 여기 저기 적당한 곳 몇 군데를 파 보았는데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스님은 기술자에게 의지하지 말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지장보살님께 일념으로 [샘 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밤,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서, 스님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아무말 없이 산으로 올라가신다.

스님은 지장보살님께 합장을 한체채조용히 쳐다보다가, 따라 오라는 뜻이라는 것을 곳 알아차리고 뒤라 갔다.

산 7부 능선에 다다른 지장보살님은 손을 펴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땅위에 내려놓으니, 거북은 이리저리 한참 기어다니다가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꿈에 본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너무나 꿈이 생생해서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잡초를 헤치고 이리 저리 찾고 있는데, 풀숲에 놀랍게도 지난밤에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것과 비슷한 작은 구멍이 있지 않는가!

스님은 확신을 갖고 그 곳을 팠다. 그랬더니 거기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좋은 물이 많이 나와서, 지금은 그 물로 식수, 생활 용수 ...... 등 모두를 충당하고, 물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우물이 완성되고 몇 달이 지나자,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금붕어 3마리를 절 입구 잔디 위에 내려 놓고 가신다. 스님은 그 자리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서, 지금 금붕어를 기르고 있다. 물이 너무 좋아서 금붕어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생기 있게 잘 살고 있다. )

2) 귀에 소리 나는 병을 고친 재일교포

재일 교포 차□식씨는 오래도록 일본에 살다가 90년도 봄 한국으로 돌아 와서, 지금은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에 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업에도 성공해서 돈도 좀 벌었고, 한 때는 민단의 간부직도 지낸 유능한 사람이다. 7년전 본부인이 죽자, 한국에 나와 살고 있는데, 일본에 있을 때 노후에는 한국에 와서 살려고 부인을 시켜 일본의 재산을 미리 한국으로 갖고와서 적당한 곳에 투자를 해 놓았다. 그런데 부인이 갑자기 변을 당해 죽자, 부인이 일본에서 갖고 온 재산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차□식씨는 심증이 가는 곳을 모두 탐문 해보았으나 결국 재산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이상한 병만 얻었다. 혼자서 살기가 불편해서 5년 전에 재혼을 했는데, 재혼한지 3달 뒤, 본부인이 꿈에 나타나서 차□식씨에게 욕을 하고 머리를 때리는 꿈을 꾸었는데, 그때부터 머리 위에서 이상한 잡음이 나며 두통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온갖 약을 다 써 보고, 여러 병원을 다 찾아 다녔으나 증상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후에도 꿈에 본부인이 보이기만하면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두통과 잡음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절망에 빠진 차□식씨는 어느 날 도림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스님의 권유에 따라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파 마늘등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과 고기를 삼가하고,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정성을 다 해서 스님과 함께 새벽예불를 올렸다. 어느 날 아침, 법당에서 혼자서 절을 하는데 그날은 기분이 좀 좋아서 절을 많이 하기로 결심하고 30번쯤 절을 하고 그만 두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108배를 해라! 108번 절을 해라!] 하였다. 뒤돌아보니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놀라움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108배를 올렸다.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스님은 그저 가만히 미소짓기만 하였다. 7일 기도를 마친 날 새벽, 차□식씨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의 본부인이 커다란 붉은 연꽃을 손에 들고 골프장 보다 더 널찍한 잔디밭을 천천히 걸어서 산 위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꾼 다음부터 두통도 없어졌고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도 없어졌다.

차□식씨는 모두가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매월 지장재일에는 도림사에 나가 지장보살님께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작성자: 권 영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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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멧돼지로 현신한 지장보살


우리나라 제일의 생지장도량으로는 보통 철원의 심원사를 꼽는다.

생지장이란 '살아계신 지장보살'이란 뜻이다.
심원사 법당에 들어서면 크기가 한 자 남짓한 지장보 살상을 뵈올 수 있다.
이 지장보살을 뵙고 있노라면 옛날 교복 자율화가 되기 이전의 단발머리 여고생이 연상된다.
꼭 단발머리를 빗어내린 듯한 모습의 지장보살은 수더분하기가 시골의 소녀를 빼다박은 듯해서,
거기에서 그 어떤 숭고미나 경건미는 찾기가 어렵다.
그만큼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분이 바로 생지장보살이다.

심원사는 신라 진덕여왕 I년(647)에 그 유명한 영원조사가 창건한 절인데,
한때는 수행하는 대중들이 천 명을 넘을 때도 있어서 중세에는 매우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개산 줄기 남쪽으로는 심원사가 있고 북쪽으로는 석대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다.
현재는 민통선 안쪽이기에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인데,
석대암 뒤쪽으로 난 봉우리를 환희봉이라 부르고 있다.
이 환희봉을 대소라치라 하기도 하는데 그 대소라치 너머에는 수백 호의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

이곳은 워낙 산세가 험준한데다 땅이 척박하여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려 가기가 어려웠다. 기껏해야 조, 옥수수, 콩, 기장 따위가 고작이었고
그나마 일조량이 모자랄 경우에는 냉해로 흉년이 들곤 했다.
그렇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냥을 곁들이게 되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를 지었고 겨울 한 철은 사냥을 주업으로 삼았다.
특히 눈이 내리는 날이면 노루나 멧돼지 몰이 가 적격이었고
토끼나 족제비도 그런대로 수입이 짭짤했다.
사냥꾼들은 나름대로 수렵대라고 하는 조직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렵대 대장은 이순석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다섯 자 밖에 안 되는 작달막한 키였지만
담이 세기로 소문이 났다. 물론 힘도 장사였고 또 날렵했다.

하루는 이순석이 친구 한 명을 대동하고 사냥을 나갔다. 창을 들고 활통을 어깨에 메었다.
둘은 대소라치 깊은 골짜기에 이르렀다.
숲은 우거져 한낮인데도 침침했고 겨울이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이 골짝 저 골짝을 찾아 헤맸지만 다람쥐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즈음 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구경할 수 없는 날은 아직까지 없었다.

"여보게, 대장. 오늘은 아무래도 허탕인 것 같네. 참 이상하군.
이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적은 없었는데."

"친구, 둘이 있을 때는 대장이라 부르지 말고 그냥 이름을 불러 주게. 쑥스럽구먼.
그리고 사냥이란 게 꼭 잡히기를 바랄 순 없지.
어쩌다 운이 좋으면 큰 것이 걸려들지 누가 아는가?"

"그야 자네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네. 하지만 요즈음 우린 먹을 양식마저 떨어졌다네."

"아니, 가을에 수확을 했을 게 아닌가.
이제 초겨울인데 벌써 양식이 떨어지면 보릿고개를 어찌할 셈인가"

"쉿!"

친구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짧은 파열음을 냈다. 순석이 얼굴을 돌렸다.

"저기, 저기 좀 보게. 저게 뭘까? 호랑이 같기도 하구 아니야 곰?
아니 아니, 저것은 돼지가 분명해."

친구가 소리를 낮추며 말하는 사이 순석의 손에는
이미 화살을 메긴 활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순석은 손에 땀을 쥐며 시위를 놓았다.

"표-!"

화살은 돼지의 왼쪽 어깻죽지에 정확하게 꽂혔다.
비틀거리며 달아나는 돼지는 노오란 털을 지니고 있었다. 아름다운 황금빛 멧돼지였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내리꽃히는 햇살을 받을 때는 더욱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핏자국을 따라 능선과 골짜기를 벌써 몇 개나 넘었다.
계곡에 이르렀을 때 돼지의 흔적은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은 목이 말랐다.
마침 그들이 앉아 있던 옆에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었다.
타는 갈증을 적시기 위해 그들은 엎드려 한 참 동안 정신없이 마셔 댔다.
순석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어!"

친구가 순석을 바라보았다.

"여기 물 속에 뭐가 있어. 물이 출렁이지 않게 잠시만 기다려 봐."

잠시 후 동그라미를 그리며 번져 가던 파장이 멈추고 물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거기에 순석이 방금 전에 쏘았던 화살이 꽂혀 있었다. 순석은 화살을 잡아당겼다.
화살 끝에 돌 하나가 묻어 나왔다. 단발머리를 빗어 내린 것 같은 조그만 석상이었다.
손에는 조그마한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순석은 그 석상이 지장보살임을 간파했다.
언젠가 어떤 스님으로부터 들은 지장보살을 생각해 냈다.

손바닥 위의 밝은 구슬은 너무나 영롱하여 얼음인 듯 비치는 대상에 따라 색깔을 바꿈이 자유롭네.
몇 번이나 분부했던가 오욕의 어둠을 뚫고 나오라고 하지만
그 속에 갇힌 중생 밝은 구슬을 보려 하지 않네.

"여보게, 이분은 지장보살님일세. 저 왼손에 들고 계시는 작은 구슬을 보게나.
지장보살은 명주를 들고 계시거든."

"그래? 우리 건져 올려 보세."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지장보살 석상을 들어 올렸으나 수면까지는 쉽게 떠오르는데
더 이상은 무게 때문에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석상은 크기로 보아
그 석상의 두세 배라도 장정 혼자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순석은 화살이 꽂힌 석상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합장을 했다.

"지장보살님! 저희가 어리석어 성상을 몰라뵙고 활을 쏘았습니다.
얼마나 어깨가 아프시겠습니까? 하오나 저희들의 어려운 생활 형편도 참작해 주옵소서.
저희들은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어서 사냥을 하게 되었고
고귀한 생명을 수없이 빼앗았나이다. 보살님께서는 저회들의 잘못을 용서하옵소서.
만일 저희들을 용서하신다면 내일 다시 찾아 뵙겠으니 그 증거로 샘가에 나와 앉아 계시옵소서.
그렇게 되면 저희들도 당장에 출가하여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지성을 다해 수도를 하겠나이다."

그들은 그처럼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순석은 수렵대 3백여 명을 이끌고 지장보살이 잠겨 있는 샘으로 올라갔다.
과연 지장보살 석상은 웅덩이 가에 나와 앉아 계셨다.
이를 본 순석과 그의 친구는 그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 간 배코칼로 삭발을 했다.
그리고 수렵대 3백여 명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 자리에는 절이 세워졌다. 절 이름을 석대암이라 했다.

석대암에 모셔진 지장보살 석상은 2백여 년 동안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민통선이 이어져 신도들이 참배할 수 없게 되자
석대암에 모셔져 있던 지장보살 석상은 보개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심원사로 이사를 하신 것이다.

지금도 심원사 지장보살상에는 그때 이순석의 화살을 맞은 자국이 왼쪽 어깨에 선명히 나 있다.

이는 지장보살이 살생을 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대소라치 사람들에게서
산짐승을 보호하려는 자비심에서 현신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수렵이나 어업, 또는 정육점, 도살업을 주로 하는 신도들이 심원사를 찾아
지장보살께 참회기도를 올리고 나면 사업이 더욱 번성한다고 하여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한 번은 지장보살을 모신 석대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법당을 맡은 부전스님이 옥등잔에 불을 켜다가 잘못하여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옥등잔은 절반으로 쫙 갈라지고 못 쓰게 되었다. 부전스님은 송구하기 그지 없었다. 값을 떠나서 성보를 깨뜨렸다는 자책감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는 다시 다른 등잔을 구하러 요사채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등뒤 법당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여보게, 부전. 내가 옥등잔을 붙여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와서 불을 붙여라."

부전은 얼른 되돌아 법당으로 달려갔다.
불을 켜보니 옥등잔은 깨어진 금이 남아 있을 뿐 좀전처럼 불을 밝힐 수 있었다. 기름도 새지 않았다.
부전은 지장보살 석상 앞에서 무수히 절을 했다. 이 지장보살 석상은 청록색이다.
나중에 여러 번 개금불사를 했지만 며칠 안 가서 저절로 벗겨지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금은 아예 개금을 하지 않은 순수한 돌 색깔 그대로 모셔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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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주운 지장보살의 영험

당나라 간주(簡州) 금수현(金水縣)에 살던 등시랑(鄧侍郞)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사람
은 본래부터 부처님을 믿어왔다. 그는 어느날 길가에서 지팡이 머리 같은 것을 주웠는데 거기에는 스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등시랑은 그것을 주어서 집에 가지고 와 벽에 꼿아 두고, 二, 三년이 지나서 등시랑은 병
이 들어 죽었다. 염라청에 끌려간 그에게 염라대왕은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는
데 그때에 한 스님이 홀연히 나타나니, 형용이 매우 누추했으나, 대왕은 벌떡 일어나 자리에서 내려와 공경스러이 합장하며 그 앞에 꿇어앉아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더라.
스님이 답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신도이니, 꼭 죄를 사하여 주기를 바라오." 하시는 것이었다.
대왕은 대답하기를

"이 사람은 죄업이 이미 결정되었고, 또한 수명과 식록까지 모두 다하였으므로 죄를 사해 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했다.

스님이 다시 말하시기를

" 내가 옛적에 삼십삼천 선법당(善法堂)에 있을 때, 부처님께서 나에게 부촉하시기를 <죄업이 정해진 모든 유정 중생들도 구제하라>고 하셨으며, 내가 죄업 중생들을 제도코자 하는 것은 오늘 처음 시작하는 일도 아니니 이 사람은 그다지 중한 죄를 범한 것도 없는데 어찌 구제 하지 못한단 말이오?" 하셨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나더니, 공손스러운 말로 여쭙기를

" 대사님 원력이 크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시니 마치 금강산과 같습니다. 대사님의 뜻이 그러하시니 이 사람을 곧 인간으로 내보내겠습니다." 하더라.

이 말을 들은 스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나의 손목을 잡고 오던 길로 다시 인도해 주셨다. 우리 마을 가까이 와서 헤어질 때 스님께 법호를 여쭈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장보살이니라. 네가 인간에 있을 때에 길가에서 나의 형상을 보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소중하게 주어다 너의 집 벽에 꽂아둔 일이 있지 않느냐? 그것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지팡이 머리에 내 얼굴만 새겨두고 그 밖의 나머지는 새기지 못한 것이니라.그래서 나의 형상이 이렇게 추하니라. 네가 나를 소중히 한 마음씨가 갸륵하다."

이 말을 마치다 문득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살아날 수 있
게 되었다. 시랑이 깨어난 뒤에 생각이 나서 자기 집 벽에 꼿아둔 지팡이를 다시 보니, 과연 그 말씀과 같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팡이 가운데가 갈라졌으므로 전단향목을 구하여 다시 五촌 가량 크기를 보충하여 조성하였다.

시랑이 죽을 곳에서 살려준 지장보살의 은공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여 조성하였던 것
이다. 그 뒤로부터는 지장보살 형상이 때때로 광명을 놓아 집안을 밝게 비쳤다. 시랑은 크게 환희심이 나서 이번에는 아주 새로이 지장보살을 크게 조성해 모시고 자기집을 절로 만들었으며, 절 이름을 지장대(地藏臺)라 하고 작은 지팡이 등상까지 함께 모시고 예배 공양하며 염불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 소문은 원근에 곧 퍼져서 예배 공양하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장대는 마침내
큰 절이 되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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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살의 홍서주 불자님의 이야기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홍서주 보살이 약 20년 전에 체험한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합판상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리점으로부터 거래대금 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자 대리점 사장은 묘한 제안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건만 해결하고 나면 아주 괜찮아집니다. 1,500만원만 융통해 주십시오. 300만원도 바로 드리고, 1,500만원은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500만원씩 세 달 동안 갚겠습니다."

아들은 300만원을 받을 욕심으로 누나의 남편인 매형에게 1,500만원을 빌려 대리점 사장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주보살은 은행에 대리점의 신용을 알아보았더니 언제 부도가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1,50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잘못되면 딸의 가정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판이었다.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지장보살예찬문>을 독송하며 158배씩의 절을 올리고, 지장보살염불을 하였다. 자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이 어려움을 막아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마침내 500만원 1장의 기한이 돌아왔고, 그 전날밤 보살은 꿈을 꾸었다. 많은 조상들이 배를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배가 진흙벌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복차림의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타나 배를 밀었고, 배는 물에 떠 순조롭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오후 5시 10분전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살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꼭 도와주실 것을 믿고 속으로 소리쳤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시가 되자 은행원이 "현찰로 줄까, 수표로 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보살의 기쁨과놀라움과 감사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계속하였고 두번째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또 꿈을 꾸었다.

아들이 큰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그넷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네를 멈추려 하였지만, 어찌나 힘차게 흔들리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그넷줄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지난 번 꿈에 배를 밀어주었던 분이 나타나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말을 하였다.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던져라."
어느새 보살의 손에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던졌더니 곧바로 받아 끊어지려는 그넷
줄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보살은 꿈 속에서도 조이던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좋아하고,
두 번째 약속어음 500만원도 마감시간이 다 되어 해결되었다.

세 번째도 서주보살에게는 현몽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자 법당과 비슷한 넓은 방이 나타났으
므로 거기로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모습이 매우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문밖에서 안을 살피더니 보살을 보고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길을 잃어 집으로 갈 수가 없지? 이 길을 따라가라."
보살과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오자 아래쪽에 사는 동네와 빈집이 보이는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 약속어음도 잘 해결되어 1,500만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대리점은 그 후 곧 부도가 나서 망하였다고 한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출처/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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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에 걸린 불자님의 이야기


1996년 여름, 대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주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만 몰두하다
가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병원을 찾아 진료를받았을 때에는 유방암이 이미 말기에 이르러 수술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불자였던 그녀는 갑자기 찾아든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가 문득 결심을 하였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나의 죄업 때문이 아니더냐.마지막으로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업장을 소멸하고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자."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그녀는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365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므로, 하루 한두 끼
만 먹으며 도솔암의 내원궁에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힘닿는 데까지 절을 하였다.

"지장보살님, 이 중생의 죄업을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23일째 되는 날 밤, 땀과 눈물로 온 몸이 흠뻑 젖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
다. 그때 어디에선가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정신 차려라.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잠만 자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그리고는
불단 위의 지장보살님께서 내려와 가슴 뒤쪽의 등을 어루만지더니 대침(大鍼)으로 세 번을
찌르는 것이었다. 지장보살님께서 세 번째 침을 빼는 순간, 그녀는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났
고, 갑자기 가슴주위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같은 시각,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으로부터 붉고 푸른색의 빛이 하늘로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환희의 예배를 올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예정했던 백일
기도를 마치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암에 걸렸던 자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들 이야기에서 우리가 꼭 새겨야 할 것은 참회와 감사이다. 지장신앙의 근본경전인 ≪지장경≫은 지장보살을 중심에 놓고, 중생의 죄업과 고통과 참회와 해탈의 상관관계를 설하여 놓은 경전이다.

곧 중생의 그릇되고 고통스런 현실은 과거의 죄업에서 비롯되고, 참회를 통하여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으면 죄업이 녹아내리면서 원래의 편안함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장기도를 하는 이의 초점은 참회에 맞추어져야 한다.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염불
을 하면서 참회를 다하다 보면, 그리고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며 지장보살과의 인연에 감사를 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진한 눈물이 솟구치면서 업장의 밑바닥이 뚫어지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지장보살이 꿈속에 나타나 가피를 내린다.
그런데도 기도를 하는 많은 이들은 참회와 감사보다는 매달리기에 급급하다. 물론 간절히 매
달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받고 있는 고난의 원인이 죄업인 만큼, 참회하고 반성하고 감사하면서, 스스로가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참회하고 감사하고 새로운 원을 담아야, 새로운 삶이 싹트는 것이다.

정녕 기도하는 이라면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쉽게 나와야 한다. 그 다음에"∼하여 주소서" "∼살겠습니다"라는 기원과 맹세가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기도 앞에는 어떠한 고난도 녹아 내리고, 어떠한 어려움도 자취 없이 사라진다. 정녕 "참회와 감사"가 기도성취의 비결이거늘, 지장기도를 하는 이들이 어찌 이를 마다할 것인가!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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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할 뿐"

선법경 임순빈


15년 전 직장선배가 “이번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아침 8시까지 동대 앞 태극당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따라 나선 것이 부처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선배를 따라 간 곳은 한달에 한번 가는 ‘불교문화기행’이었는데 충북 보은의 법주사였다.

유교집안의 나와 형제들은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성경이며 찬송가가 더 익숙한 편이었다. 불교교리는 물론, 부처님이 뭔지, 절3배 하는 것도 모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법당에 들어가 좌복을 깔고 법사의 선창에 따라 ‘한글 108대참회문’으로 108배를 하는데 나는 한쪽 구석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껏 절을 하고, 그 내용은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잘못된 일과,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교는 할머니들이 불상 앞에 쌀이나 초 등을 올려놓고 복이나 비는 기복종교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모든 죄업이 몸과 말과 뜻으로 지었다는 것과 다른 종교에는 없는 회향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진작 불교가 이런 종교인 줄 알았으면 ‘아까 나도 할 걸’하는 아쉬움과 매달 가는 불교문화기행이 기다려졌다. 나도 108대참회 하러.

더구나 사찰에 있는 모든 조형물들이 불교정신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명을 듣고는 불교문화를 배우는데 신이 났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교공부도 하고 그런 신행생활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불교공부는 잘 할 수 없었지만 직장에서 가까운 조계사에서 108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제쯤 제대로 불교공부를 하고 신행생활을 온전히 해보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후 퇴직을 하고 능인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교리공부를 하고 경전을 배우는 사찰을 찾아 경전공부를 하면서 집에서는 108배를 했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불교가 무슨 종교인지 알게 해 준 분(불교문화기행 지도법사)이 “사람에게서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타고난 업보와 뜻하지 않은 장애들이 수시로 찾아들어 그렇다.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공부를 잘하여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한차례 깊은 참회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신년들어 지장기도를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에 그러겠다고 하고 이런 형식으로 100일간 해보라고 하셨다.

매일 108배를 하고 별 어려움없이 지내던 나는 “그래. 업장만 다 녹이면 내 앞날은 탄탄대로” 일거라는 생각이 들자 기도만 잘 회향하면 반드시 신천지가 열릴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 기도를 많이 하신 보살님께 여쭈었다.

지장기도를 잘 하면 기도성취가 빠르지만 대신 마장도 많다는 얘기와 마장의 사례들을 들었다.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하여 집에서 기도하기로 하고 절에 안오면 궁금해 하실 친한 도반 두분께만 말씀드렸다.

지장기도 요령은

1. 먼저 3배 올리고

2. 지장보살본원경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독송

3. ‘나무지장보살’ 천번 염송

4. 지장보살예찬문 외우며 158배

5. 지장보살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천번 염송

그리고 기도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다짐하기를

1. 기도시간에 전화기 코드 빼고

2.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전화 및 외출 절대 안함

3. 100일간 오로지 身口意 三業을 조심하고 지장보살님의 가피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지장경을 읽을 때에도 영가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하고 읽다가 잡념이 들면 읽은 기억이 나는 대목부터 다시 읽었다.

‘나무지장보살’과 지장보살예찬문을 외우면서 158배, ‘지장보살’ 천번 염송을 하는 동안에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기도시작 1주일 후 꿈을 꾸었다.

기도당시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내 옷을 입고서 우리집에 오셨다.

바쁘신 듯 현관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좋은데 놀러 가는데 너한테만은 얘기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다.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빨리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총총히 가시는데 어찌나 섭섭한지 APT 1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햇빛에 빛나는 잔잔한 바다와 배 한척, 아무도 없는 깨끗한 백사장과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고 APT 주차장 앞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어머님은 그들과 같이 그 배를 타고 같이 가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님과 다른 영가님들이 천도되었음을 알고는 ‘열심히 기도해서 어떻게든 기도성취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고 더욱더 신심이 났다.

기도를 시작한 53일 뒤 또 꿈을 꾸었다. 지장기도를 하면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한옥집에서 의사같은 하얀 까운을 입은 거사가 사람들을 진료하고 있었는데 줄이 한참 길었다. 그집 안에서 큰언니가 나를 불렀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옷을 다 벗고 엎드려 누우라고 하면서 목부터 허리까지 침을 꽂고는 허리를 문지르는데 허리가 지릿지릿 아픈 것이었다.

나는 아픈 데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병이 있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 됐으니 내려 오란다. 옆방으로 가서 내 몸을 보니 온통 생선가시같은 침이 꽂혀 있었다. 침을 빼고는 그 방을 나왔다.

그렇게 꿈을 깨고는 다음날 기도시간부터 단 5분을 앉아 있을 수 없이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장인가? 이 마장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낸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허리가 아프면서 지장경을 읽는데 경전 위로 개미들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무 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몇 년 전 집에 이유없이 개미들이 들끓었던 생각이 났다.

그때 개미에게 진심瞋心을 내고 억지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생도 했었다. 아아! 그때 개미에게 화를 내고 개미를 죽임에 과보를 받는구나!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더니. 화를 내고 살생한 과보를 받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계속 개미영가에게 참회하고 허리가 아픈지 2주쯤 된 어느 날 기도시간에 지장경을 읽고 있는데 스르르 예전처럼 허리가 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번 기도로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해주십사 더욱 간절히 참회하였다.

그 후 80일이 조금 지나 다시 꿈을 꾸었다.

세면대에서 가슴이 답답해서 토하는 꿈을 꾸었다. 입에서 한참동안 피고름이 나오는데 새끼손톱만한 노란 근(종기의 근)이 튀어 나왔다. 종기처럼 근이 나오면 다시 진물이 날 때까지 짜야한다는 생각에 다시 토하는데 또 피고름이 나오더니 또 같은 크기의 노란 근이 나오면서 피고름이 멈추는 것이었다. 세면대에서 입을 씻고 나오니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나를 반가워한다.

기도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의 기도생활에 대한 점검을 해 보았다.

70%정도만 만족할 뿐 100일 회향하고 그 다음날로부터 다시 7일을 하고 마지막 회향을 했다.

기도회향 후 도반보살님이 궁금하고 보고싶다고 전화를 주셨다.

전화 속에서도 느끼시나 보다. 목소리가 아주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고 하셨다.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서 빛이 나고 맑아지고 편안해 보인다고 무엇을 했길래 그렇게 좋아졌느냐고 묻는다.

나의 업을 녹이고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여 시작했던 기도가 어머님과 영가님들의 천도와 身業과 口業을 소멸하는 가피를 입게 되었다.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어 연緣이 닿으면 과보를 받는다고 했다. 자기의 업을 녹이고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가고자 하시는 분은 한번 꼭 해보시기를 권해 본다.

가까이 사는 신심 깊은 후배가 가끔 집으로 놀러 온다.

서로 공부이야기도 하고 집안의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후배는 늘 나에게 “언니는 복이 많은 줄 알라”는 말을 한다.

하루는 후배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중에 금전으로도, 누구의 의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도대체 무슨 업과 인연으로 그러한가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은 그런 인연을 만나지 않았을 뿐 앞으로도 다음생에도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산다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인간 몸 받지말고 성불해야지.(인간 몸 받아야 또 불법인연 만나겠지만)

왜 이제까지 성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願을 크게 세워야 한다면서 기실 작은 소원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성불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참선을 해야지.”

후배는 오래전부터 참선을 해왔고 나에게도 참선을 권해 왔었다. 때마침 참선공부 하느라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도반을 만나 힘을 얻은 것을 보자 더욱 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수련회에서 배웠던 참선을 하기 시작하고 부처님께 ‘꼬옥 선지식 만나기를, 좋은 도반 만나기를’ 발원했다.

다행히 기도공덕으로 공부를 지도해 주실 큰 선지식을 만나 禪法門과 화두드는 법, 공부인의 자세등 자상한 가르침을 주셨다.

큰스님께서는 “무릇 생명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 한다. 우리가 죽는 순간 어떠한 마음상태로 가느냐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은 임종 그 순간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화두잡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화두 놓지 말 것”을 당부 하셨다.

앞으로 나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깨친다는 조바심 버리고 “오로지 할 뿐”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이겨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초발심인 나를 따끔한 조언으로 일깨워 주시는 묘법륜보살님과 따뜻한 격려로 발심케 하는 법공심보살님께 감사드린다.

그동안 탐진치 삼독에 빠져 나라는 상을 버리지 못하여 헐떡이며 어리석게 살아 온 것 깊이 깊이 참회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바른 행을 실천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본래 부처인 도리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을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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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고 천상에 나게하다

당나라 무주땅에 살던 조씨 소녀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지장보살 앞에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였다.

소녀는 무주 자사의 며느리가 되면서 지장보살을 향한 공경심은 더욱 더 간절하였으나, 그의 시부모들은 전혀 신심이 없었다. 조씨는 부모님 등을 위하여 자기가 가진 패물이며, 피륙을 팔아서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높이는 석 자이고, 금빛이 찬란한 금옷으로 모셔놓고 조석으로 지성을 바쳐 예배 공양하고 또한 염불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 그의 아버지는 일이 있어 외출하였는데 그의 집에 밤중에 도적이 들어와 집안을 엿보았다. 도적이 내실 문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니, 금빛이 찬란한 지장보살이 앉아 계셨다. 도적은 이를 보자 감히 도적질할 생각을 내지 못하고 담을 넘어 돌아갔다.

그 이튿날 도적은 의관을 점잖게 차리고 그 집에 다시 가보았으나, 안주인 혼자 있을 뿐 밤에 본 지장보살의 성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적은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필 이 댁은 성인이 가호하시는 댁이라는 것을 느끼고 이제까지의 자기 과거를 다 털어놓으며 진정으로 참회하고 공경스런 인사를 드러며 물러갔다.

그 일이 있은 뒤에 조씨 아버지가 먼 길을 가던 도중에서 우연히 과거의 원적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원한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 다짜고짜 칼을 빼어 들고 "잘 만났다."하면서 덤볐다.

조씨의 아버지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앞에 금빛 옷을 입은 스님 한 분이 나타나 원수가 내려치는 칼을 막았다. 원수는 몇 번이고 칼을 휘두르면서 그 스님을 치더니 스님이 머리에 칼을 맞아 땅에 쓰러지자 원한이 풀린 듯 가 버렸다. 원수의 눈에는 스님이 아버지로 보이는 듯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 도적이 떠난 다음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려 살펴보았지만, 쓰러져 죽은 스님도 보이지 않았고 피 한 방울 찾아볼 수 없었다. 하도 놀랍고 기이하여 그의 아버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곧바로 염불 잘하는 자기 딸의 집으로 찾아가서 그날 당한 일의 자초지종을 딸에게 말하였다.

부녀가 지장보살 앞에 나아가 존상을 가만히 살펴보니, 지장보살 머리에는 세 군데나 칼맞은 것 같은 흔적이 보였고, 금빛도 변해 보였다.

부녀는 지장보살앞에 엎드려 지장보살님이 급할 때 나타나시어 대신 목숨을 구해주고, 묵은 원수의 원한을 풀어준 것을 깊이 감사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의 부모님은 신심이 생기어 열심히 염불하는 지장보살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조씨 아버지는 79세에 세상을 떠났다. 죽은 지 35일이 지나서 딸의 꿈에 아버지의 몸에서는 금빛 광명이 나며, 허공을 평지와 같이 자유자재하게 날으듯이 다니는 것이 었다. 하도 반갑고 신기하여 조씨는 아버지를 향하여 소리쳤다.

"아버지, 어디로 가십니까?"

그의 아버지가 가까이 오면서 딸에게 자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제4천의 동사보처(同事補處)로 가는 길이다. 나뿐만 아니라 천상에 나는 사람들은 모두 지장보살님의 인도를 받아 가느니라. 너도 지장보살님을 더욱 잘 공경하라. 너의 어머니는 13년 뒤에 오며, 너는 25년 뒤에 오고, 너의 남편은 28년 뒤에 올 것이다. 다들 잘 있거라."이 말을 마치자 아버지의 자취는 알 수 없었다.

과연 그 뒤에 조씨의 어머니나 조씨 자신, 그리고, 조씨 남편은 아버지 말과 같이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부터 무주 고을 안에 지장보살의 등상이나 화상을 조성하여 예배 공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감응을 받은 사람도 또한 많았다.

출전: 고석훈번역 우리출판사 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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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을 조성하고 어머니를 지옥고에서 구하여 천상에 나게하다.


당나라 진도독의 딸은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울고만 있었다.
그대로 놓아두면 조만간 꼭 죽을 것만 같아 그의 아버지는 딸을 붙들고 백가지로 위로하며,

"네가 참된 효녀라면 너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이제 집에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모실터이니 네가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여라."고 하였다. 성상이 완성되지 그의 딸이 어버지 앞으로 나와 청하였다.

"아버지, 이번에 모신 지장보살님은 어머님께서 계셨던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지장보살님을 우러러보고 지장보살님 염불도 하고자 합니다."

진도독은 딸이 마음을 돌린 것이 기뻐서 딸의 말대로 어머니 침실에 존상을 모시게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딸은 지장보살님에게 밤낮으로 예배 공양하며 염불을 쉬지 않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딸의 마음도 안정되고 텅 비어 쓸쓸한 바람이 부는 듯했던 집안에도 차차 훈기가 도는 어느날 밤, 진도독의 효녀는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갸륵하다, 효녀여. 너의 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있느니라.

나도 옛날 너와 같은 딸이 되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나의 아버지는 이름이 시라선견이었고, 어머니의 이름은 열제리였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태어난 곳을 몰라 애태우다가 마침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인도를 힘입어 어머니가 지옥에 빠져 한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발원하여 기도하며 어머니로하여금 천상에 나게 하였더니라.

그 때부터 내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기로 맹세하였다. 이제 너의 효심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효성이 장하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 방광설법을 하여 너의 어머니를 죄고에서 건져내어 천상에 나게 하여주리라."

이 말씀을 마치자 스님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밝은 얼굴에 자비스런 웃음을 띠고 진도독의 딸 가까이에 오셨다. 도독의 딸이 얼핏 보니 스님의 옷자락이 불에 타 있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옥에 들어갔을 때 불꽃에 탄 것이다."라고 하자 스님의 모습은 다시 사라지고 꿈이 깨었다.

진도독의 딸은 꿈을 깨고 나서 어머니가 천상에 태어난 것이 기뻤다. 그리고 애달픈 마음, 그리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괴로운 마음, 가슴 터질 듯한 슬픈 마음 그 모두가 사라지고 가슴속이 환히 열리는 듯 하였으며 가슴에는 기쁜 마음이 잠잠히 피어올랐다.

출전: 지장경(고석훈 번역, 우리출판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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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 스님의 孝心


이천 - ·영월암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 고려의 유명한 스님 나옹화상(법명 ??, 1320∼1376)은 춘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길을 시자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지금의 양주땅 회암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이천 영월암이 있는 설봉산 기슭을 오르는 스님의 발길은 찌뿌듯한 날씨처럼 무겁기만 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가까이서 울리는 요령소리가 스님의 귓전을 울렸다.

『허, 또 누가 이생을 하직한 게로군.』

자신의 출가 당시 화두였던 사람이 오고가는 생사의 도리를 되뇌이면서 막 산모퉁이를 돌아
서려던 나옹 스님은 초라한 장의 행렬과 마주쳤다. 상여는 물론 상주도 없이 눌수그레한 영감이 요령을 흔들며 상엿소리를 구슬피 메기고, 그 뒤엔 장정 하나가 지게에 관을 메고, 무거운 듯 힘겹게 걷고 있었다. 바로 뒤엔 두 명의 장정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따랐다. 행렬은 스님을 보자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허리를 굽혔다.

『누가 갔는데 이처럼 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예, 아랫마을 돌이어멈이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거참 안됐구먼. 얼마 전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마지막 가는 돌이어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염불을 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
다. 평소 마을을 지나다 몇 번인가 본 돌이어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난 뒤충격을 받아 남의 집 물건을 예사로 훔치고 자주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등 포악해졌다.

처음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가두어야 한
다고 하여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만 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마음마저 착잡한 스님은 문득 출가 전 자신이 고뇌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스님이 스무살 때였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고 약속한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비통에 잠긴 나옹은 「사람은 죽으면 어딛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어른들께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벗과의 사별을 인생의 근본문제로 받아들인 나옹은 그 길로 공덕산 요연 스님을 찾아갔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으나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이 말에 요연 스님은 나옹의 공부가 보통 경지가 아님을 알았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나옹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스님은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1347년 중국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났다. 연경 법원사에 도착하여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화상을 만나 계오(契悟)했다.
2년간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 처림에게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친견하던 스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아올랐으나 스님은 출가사문의 본분을 내세워 멀리서 왕생극락을 기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머니 생각을 모두 떨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스님은 선정에 들어 어머니의 행적을 좇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옹 스님의 어머니 정씨는 뜻밖에도 환생하지 못하고 무주 고혼이 되어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자신을 원망했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던 자신의 불효가 한스러웠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터우시길래 구천
을 맴돌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 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인 아닐까?」

스님은 지옥고에 허덕이는 어머니를 제도한 목련존자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천도하기로 결심
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 지장 보살님 앞에서 어머니 천도 기도를 시작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옥의 한 중생까지도 제도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나옹 스님의 독경은 간정했다. 그렇게 기도하기 49일째 되던 날, 나옹 스님은 철야정진에 들어갔다.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전, 나옹 스님은 지장보살님의 전신에서 발하는 환한 금빛 광채를 보았다. 그것은 눈부신 자비의 방광이었다.

스님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지장보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지장 보살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했다. 고통받은 지옥 중생 때문에 지옥 문전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
장보살님이 어머니를 천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아, 지장보살님께서 내 기도에 감응하시어 눈물로써 현현하고 계시는구나.」 나옹 스님은
기도가 성취되어 기뻤다.

『어머니, 이제 아들에 대한 섭섭하신 마음을 거두시고 편히 극락에 드십시오.』 기도를 마친나옹 스님은 선실에 입정하여 이미 천도왕생하신 어머니를 보았다.

그 이후부터 영월암 지장보살님 앞에는 선망 부모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
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에서 14안거를 성만하면서 후학을 제접하고 신도들을 교화했다. 이 마애지장 보살상은 지난 1984년 12월 보물 제822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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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송광사 명부전 지장보살 국가위기마다 땀흘려

전북 송광사 대웅전의 3불상에서도 눈물이 흐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밀양의 표충비가 임진왜란과 관계돼 있다면 송광사는 병자호란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조선조 중기 1620년에 인조대왕이 불력(佛力)을 빌려 외침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귀환을 빌기 위해 중창불사를 한 전형적인 호국사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절의 본당인 대웅전 삼존불상(석가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과 명부전의 지장보살 불상이 국가 위기시마다 어김없이 땀을 흘린다는 것이다.

이 절의 주지인 지원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93년 송광사 주지로 부임한 이래 내 눈으로 부처님이 땀을 흘리는 것을 4번이나 목격했다. 대웅전의 아미타불은 96년 11월경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아군과 공비가 사살되는 어지러운 시점에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95년 말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무렵에는 명부전의 지장보살상이 엄청나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고 93년 10월 서해페리호가 변산 앞바다에서 침몰했을 때는 대웅전의 약사여래불이 눈물을 흘렸다.

희한한 것은 대웅전에는 똑같은 조건의 부처님 3분이 모셔져 있는데 눈물을 같이 흘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따로따로 흘리니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대웅전의 아미타불과 석가불, 약사여래불에서 물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다. 그리고 대웅전 옆 한 귀퉁이에는 지금까지 땀을 흘린 불상 사진과 날짜를 기입해 전시해 놓고 있었다.

표충비와의 기록을 보면 어느 정도 일치성을 보여주는 것은 송광사 기록을 기준으로 5번(송광사에서 땀 흘린 기록은 8차례)이나 되었다.이와 같이 홍제사 표충비와 송광사 3불상에 물기가 흘렀던 시기가 같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볼 수만은 없는 무언가 있다는 설명이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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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영험록


필자가(김현준씨-불교신행연구원 원장) 잘 알고 있는 이 스님께서
"현재 공부중이라, 이름만은 밝히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여기에서는 '운호'라는 가명을 쓰고자 한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스레 약하였던 운호스님은 주위로부터
나이 삼십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자주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근근히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적령기에 '영원 생명'을 찾는
공부를 하고 싶어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다시 강원공부를 마쳤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한 '나'의 것이 되기보다는 겉을
맴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운호스님은 다시 대만으로 갔다.
그러나 약하기 그지없었던 몸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정녕 출가사문일진대,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가 환희심을 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렇게 병약하고 무능한 나를 보고 누가 신심을 낼 것인가?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슬픈 생각에 잠겨 있던 스님은 때마침 대만에서 유행하고 있던
점찰법(占察法:십악과 십선을 적은 윷 같은 모양의 木輪을 던져
전생의 업을 알아보는 법)을 행하였다.

스님은 ≪점찰선악업보경≫에서 설한대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 다음, 목륜(木輪)을 던졌다.
그러자 '살생업'이 많다는 괘가 나왔다.

'아, 살생을 많이 한 자는 몸이 약한 과보를 받는다고 했거늘,
나의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픈 것이 전생의 업보라는 것을 왜

깨닫지를 못하였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죄업을 참회하여 업장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출가한 후 10년 동안 제대로 기도 한 번 못하였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님은 지장기도를 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지장경≫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1번 독송을 하고,
'나무지장 보살'을 천 번 부른 다음,
<지장예찬문>을 외우며 158배를 한다.

그리고 <지장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 천 번을 불렀으며, 기간을 21일로 정하였다.

스님의 기도 목적은 업장 참회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를 시작하자 원래의 기도 목적과는 달리
집안의 조상들이 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스님은 7일 마다,
한 번씩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여 불보살님과 조상님,
그리고 유주무주고혼(有主無主孤魂)들께 시식
(施食)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첫 7일째,
조상들이 흰 옷을 입고 공양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이에 두 번째 7일과 세 번째 7일에는 '변식진언(變食眞言)'을 외우며
영가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관상(觀想)하였다.

음식을 적게 마련하였을지라도 진언을 외우며 관상을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그 음식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상을 하여서인지 스님은 공양이 차츰
뷔페식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

조상님들은 상을 차려 놓은 특별실에서 공양을 들고,
유주무주고혼들은 아주 큰 홀에서 뷔페식으로
공양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7일날에는 모두가 음식을 먹고 천도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스님은 영가천도라는 부수적인 가피를 입은 것이다.

가피를 입어 환희심이 가득하였던 스님은 기도기간을
백일로 늘여 잡고 더욱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다.

30일째 되는 날 스님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
스님은 지장보살께서 머물러 계신다는 어느 절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마구니, 요상하게 생긴 마구니,

심지어는 외국 비구니의 모습을 띤 마구니까지 입구에 일렬로
늘어서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장삼을 크게 휘둘렀고,
그 순간 모든 마구니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며 항복을 하였다.

스님이 당당한 걸음으로 절문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수각(水閣)에서 손을 씻어라."
말씀을 따라 수각에 들어가 손을 씻자,

오른손을 씻은 물은 새까맣게 변하였고
왼손을 씻은 물은 반쯤 까만 회색빛이 되었다.
'아! 몸으로 지은 신업(身業)이 소멸되었구나.'

살생 등의 나쁜 짓을 주로 저지른 것이 오른손이었기에
그 씻은 물이 새까만 색,
왼손은 오른손을 도와 나쁜 업을 짓는 보조역할을
하였기에 그 씻은 물이 회색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손을 씻고 신업의 소멸을 느끼고 나자
스님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고,
꿈속에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나 35일째 되는 날,
운호스님은 한국의 여러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고,
65일째 되는 날에는 비구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다.

이것이 자서수계(自誓授戒)이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스스로가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꿈속에서 불보살님으로부터 직접 수계를 받는
자서수계법을 설하고 있는데, 운호스님은 이 법에 의해
수계를 받아 마친 것이다.

그리고 백일 기도를 회향하는 날,
스님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다며 노천온천이 있는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님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줄이 너무나 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며 서 있었다.

그때 마침 대만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비구니가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비구니는 스님을 손짓하여 부르더니
자기 앞에 서도록 하였다.

마침내 노천온천으로 들어 순서가 되었을 때 대만 비구니는
온천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운호스님은 왠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주위를 살피다가 조금 떨어진 반석 위에
까만 옷을 입고 앉아 계시는 아는 처사님을 발견하였다.

처사님은 8년 동안 지장기도를 한 분이었다.
스님은 그분 앞으로 가서 아래의 옷을 모두 벗은 다음 쭈그리고 앉았다.
처사님은 스님의 입 바로 밑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여기에 악귀가 붙어 있노라."

그리고 여드름을 짜듯 두 손가락으로 입 밑을 누르자,
고름이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 되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되느니라."

운호스님은 그 말씀 끝에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었음을 느꼈다.

또한 '삿된 생각만 조심하라'는 것은
의업(意業)을 조심하면 된다는 깨우침이었다.

환희로움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은 벗어 놓은
옷을 입은 다음, 허공을 날아 2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스님보다 키가 두 배나 큰 분이 넷이나 있었다.
그때 건물 아래로부터 스님을 찾는 대만 비구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운호스님, 운호스님…."
"저 여기 있어요. 잘 가요."
서로가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순간 운호스님은 꿈에서 깨어났고,
백일기도 또한 마쳤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도 전까지는 경전을 보고 있으면 내용이 분명히 다가오지 않았으나,
기도 후부터는 내용이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기도 후 스님은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을 믿기 시작하였는데,
≪아미타경≫ 등을 읽으면 삽화가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보듯이
극락 세계의 여러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경전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총명득력(聰明得力)! 총명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던 몸도 그 누구보다 건강하여졌다.

이후 스님은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 인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도력이 매우 높은 티벳의 고승들을 만나
그 분들의 지도 아래 현재 용맹정진을 하고 계신다.

스님의 원래 목적은 업장소멸에 있었고,
처음에는 21일 동안만 기도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조상들이 나타났고,
이에 스님은 영가천도를 해주고자 하였다.

영가들이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관상 (觀想)하면서 시식을 행한 결과,
많은 영가들이 가피를 입어 삼칠일(21일)만에 모두 천도가 되었다.

신심이 크게 일어난 스님은 21일 기도를 백일기도로 연장하여
더욱 열심히 매진한 결과, 꿈에서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는
자서수계를 성취하였으며, 몸으로 지은 죄업인 신업(身業)이 소멸되는
꿈과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는 가피를 입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신업과 구업이 소멸되자 스님에게는 건강과 총명이 가득하여 졌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길도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곧, 백일지장기도를 통하여 영가천도, 업장소멸, 자서수계, 총명득력,
건강 및 새로운 스승을 만나 향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가피까지도 모두 얻은 것이다.

출처:생활속의 지장기도/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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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청에서 만난 지장보살


당나라 옹주(雍州) 운현 땅의 李씨 부인은 신심이 두터워 부처님의 법을 받드는데 정성을 다하는 분이었다. 항상 재일(齋日)을 지키고 수행이 남달리 뛰어나 집에 나무로 조성한 "一지 六치"가량 되는 지장보살을 모시고부터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씨 부인에게 50십 살 되는 한 여종이 있었다. 그는 소견이 삿되고 불법을 믿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씨가 외출한 틈을 타서 지장보살 존상을 앞산 아래 풀숨에 버리고 돌아왔다.

이씨가 집에 돌아와 보니, 보살상이 보이지 않으므로 걱정을 하던 차에 누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있어 문밖에 나와 보니, 앞산 밑 풀숲에서 이상한 광명이 비치고 있었다.

느낀 바 있어 광명이 나는 풀숲으로 단숨에 달려 갔다. 생명 같이 모시던 지장보살 존상은 풀숲에 누워 있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빙긋이 웃어 보였다.

이씨 부인은 눈물과 웃음과 울음이 섞인 감동으로 지장보살을 다시 모셔다가 정성껏 봉안하고 예배하고 염불하면서도 그것이 여종의 소행인줄 몰랐다.

그때, 여종이 갑자기 쓰러져서 인사불성이 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에 온갖 방법으로 구환하니 잠시 후 깨어나 통곡하며 말하였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가 조금 전에 누군가에 잡혀 정신없이 끌려갔는데 당도한 곳이 명부 였습니다. 거기에서는 말탄 관리들이 서첩을 읽는데
'너는 성상을 모욕하여 대죄를 범하였으니 결박지어 대왕 앞에 심판을 받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때 한 스님이 그 곳에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우리 신도 집에서 일하는 종이니, 비록 나의 형상을 보기 싫다고 내다버리기는 하였으나, 나는 그 사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왕은 이 사람을 불쌍히 보아 도로 살려주기 바랍니다'
하셨습니다.

염라대왕은 곧 저를 방면하여 주시니 저는 그 말을 듣고 곹 저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제가 부처님을 좋아하지 아니했고, 지장보살을 내다버린 것을 뼈아프게 참회하면서 그 자리에 꿇어 앉아 <나무지장보살>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뉘우쳤습니다.

그랬더니, 그곳 명부에 있던 죄인들에게 채워있던 고랑쇠가 지장보살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까지는 전부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저의 손을 이끌어 염라청에서 막 나오면서 어리론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종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이씨 부인 앞에 엎드려서 일어날 줄 몰랐다. 이씨 부인은 그를 달래어 지장보살 앞에 예경을 드리며 참회하게 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그 고을 사람들은 불법의 신비한 영험에 놀랐고, 크게 신심을 일으켜 부처님 법을 받들며 지장보살 신앙이 높아졌다.
이씨 부인과 여종도 신앙이 몇배나 더 깊어졌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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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과야단법석(野壇法席 : 불교에서,야외에서 베푸는강좌)


얼마전 대학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강의를 하시던 한 교수님이 '우리가 정신건강을 말할 때 일반적인 입장과 불교적 입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 다'고 지적했다.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어서 정신병원에 가면 치료의 한계를 느끼는 경 우도 절에서 기도를 하면 종종 낫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필자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온 분들을 기도를 통하여 해결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
다. 몇 년 전이었다. 하루는 외부전화를 받았다.

"법사님,큰일이 생겼습니다.글쎄 △△엄마가 정신이 잘못되어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아무도 말릴 수 가 없습니다. 모두 법사님만 찾고 있으니 빨리 오셔서 해결을
좀 해주십시오."

수화기를 내려놓고 너무나 황당하여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일을 가지고 왜 나를 찾는단 말인가? 그러나 순간 어제 법회에서 『지장경』을 강설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장보살님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건지기 위하여 성불까지 늦추시고 누구라도 지장보살님을 찾으면 고통에서 건져 주신다"고 하지 않으 셨던가.환자는 지금 고통속에 잠겨있다.지장보살님이 아니고 누가 이 환자의 고통을 건져줄수 있겠는가? 법당으로 나아가 간절하게 지장 기도를 올렸다.

"지장보살님,지금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어 저를 찾고 있습니다. 제가 지장보살님의 분신이되어 환자를 고통에서 건지게 하소서. 저에게 닥쳐온 이 일을 반드시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지장보살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마치고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처럼 전의를 가다듬어 환자
의 집을 방문하였다. 마당에 들어서자 근심에 쌓여 있던 동네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방안에서는 고함소리,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마음을 다시한번 가다듬 고 방문을 열었다.환자
는 남편과 시아버님이 양쪽에서 한쪽 팔을 잡고 있었다.

환자나 보호자나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영가가 접신된 환자의 힘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조용히 다가가서 환자의 얼굴 을 바라보니 환자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손으로 환자의 이마를 짚었다.이마에는 열이 불덩어리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고통 스럽습니까?"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오 히려 원망하는 사람들만 있지요.가엾어라.이제 걱정하지 마세요.당신 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당신의 원을 들어드릴테니 우선 마음를 가라앉 히십시오."

환자가 광기 어린 눈이 점점 순해지더니 손을 잡고 울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법사님, 배가고파요.법사님 ,어머니도 함께 오셨어요."환자의 목소 리는 평소의 아주머니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젊은 아가씨목 소리였다.환자에 접신된 영가의 이야기를 통하여 많은 것을알게 되었다.

영가(靈駕)는 환자의 시누이였다. 젊음나이에 세상을 버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고 했다.배가 고파도 밥 한 그릇 얻어 먹을 곳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다른 친척집에 가면 방에 부처님(부처님사진)이 계시고, 염주가 있어서 감히 들어가지를 못했는데 이 집은 절에 다니지도 않아 편안한마음(?) 으로 수십 번 왔으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너무나 원통하다 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 집은 교회를 20여 년간 다니고 있었다. 모두하나님에 대한 신심이 가득한 집안이었다. 그래서 환자 가족들과 협의를 했다. 접신된 영가가 원한이 깊어서 마음을 돌리려면 일주일정도 시간이 소 요되고 ,앞으로 환자가병이 낫는다면 부처님의 가피이니 불자가 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가족들은 환자의 병만 낫는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냐고 말했다.

일주일간의 기도계획을 세워서 오늘은 먼저 영가에게 공양을 베풀기로 하였다.음식을 한 상
차려 영가에게 권하고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마다 에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마련하고 함께
기도를 봉행 하였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영가는 다름이 아닌 환자의 시누이와 그의 어머 니이니 정성스럽게 음
식을 권하십시오. 우리 인간은 한평생 자기 뜻대로 되지않으면 화를 내거나 욕심속에서 살다
가,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어리석어서 가야 할곳도 모릅니다.더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다 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떠나 가야 합니니까?

영가는 이 세상을 떠난 지 수십년이 되었는데 마음이 미혹해서 가야할길을 가지 못하고 아직 까지 이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잇는 것 입니다. 우리 모두 이 가엷은 영가을 위하여 볍회를 열고 며칠만이라도 열심히 기도하여, 영가가 참 마음을 깨달아 알고 착하고, 거룩한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좋은곳으로 갈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법문을 마치자 참석한 동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환자는 일어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해서 환자는 점점 호전 되어 갔다. 이튿날 새벽예불에 참석했고 아침공양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또한 3일째 되는 날은 전국의 모든 일가친척이 함께모여 지장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환자가 일어나 기도하는 가족들의 등을 한번 씩 내리치며 울부짖자 가족들 모두 진실로 잘못을뉘우치고 참회하여 영 가의 마음이 풀어지기도 하였다.

4일째부터는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되어 지장보살을 함께부르며 기도에 임했다. 그러나 어려
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영가는 아버지가 장롱속에 간 직한 성경책을 가리키며 결국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하였고,또 오빠 (환자의 남편)은 마음과 행동이 일치 하지 않아 위선자라고
몰아세웠 다. 조용히 남편을 불러 물어보았다.

그 이는 20여년간 교회를 다녔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꾸려고 하니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하소연
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법회가 끝날때까지 참회의 절을하게 했다. 그 이는 열심히 참회의 절을 하였다. 마지막 날 법문을 마치자 환자가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닌가. "법사님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동안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이 밝아졌습니다.이제 약속대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법사님
과 춤을 추고 싶습니다." 영가의 청을 받아 들여 생전 처음영가와 춤을 추었다. 동참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영가가 접신된 환자는 일주일만에 말끔 히 치료가 되었다. 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이 야단법석에 모여 매일 저녁마다 영가를 위하여 지장보살님께 기도한 가피력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환자를 단순히 정신병자라고 병원에 보내 버린다면 영가의 원혼은
영원히 풀어줄 길이 없을 것 이다. 그리고 이번일은 20여년간 타종교를 믿던 사람을 불자로 교화하고 ,수 많은 마을사람들을 부처님께 귀의하게 했으니 포교와 성과 또한 컸다. 다시 한번 지장보살님의 서원을 되새겨 보게 된다.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이동성,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2000년,정우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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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기도와 몽중가피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자란 왕순희 보살의 이야기이다. 그는 어린 시절고향에 있을 때부터 신심(信心) 깊은 불자였으며 ,피난 나와 신씨네 집안의 맏며느리로 출가한 후에도 변함없이 절에 다니며 기도 하는 자세로 살았다.

그런 까닭인지 왕보살의 7남매는 모두 대학을 나왔고 아무 탈없이 잘 자라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런 행복 가운데도 불행은 있는 법인지 둘째아들이 병이나 병원에 나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니, 골수백혈병이라는 진단이나왔다.

왕보살은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의사가 치료를 잘 받으면 전혀 가망성이없는 것도 아니니 열심히 치료에 힘써 보자고 하였다. 왕보살은 "아이고 ,부처님! 지장 보살님, 감사합니다. 이런 희망이라도 안게되어 감사합니다. 열심히 기도할 터이니 제아들을 버리지 마시고 살려주 십시오!"하며 기도에 전념하기로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다.

치료 도중 부작용으로 합병증이 생기면 생명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치료 도중에 죽게 될지라도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 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며 세월을 보낼 수는 없으므로 기도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왕보살은 우선 50일 지장기도에 들어갔다.

(지장경)을 읽으면서 지장보살을 500번 염하고 매일 절을 50배씩 했다. 그런데 정성이 부족했던지 환자에게 이상이 생겨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것이 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왕보살은 마지막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았다.

"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

왕보살의 입에서는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지장 보살의 염하는 소리가끓이질 않았다. 병실에 들어가 보니 아들이 달려들어 왕보살을 껴안으며 자기는 곧 죽을 것이 라며 울부짖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으니 가족들과 집에 있다가 죽겠다는 것이 아들의 호소였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가족들은 아무런 말도못하고 울부짖는 환자만 바라 보았다.

그러나 왕보살은 더욱더 마음을 가다듬고 '지장보살'을 염불하며 아들을 달랬다. 밤새도록 그렇게 몸부림치고 울부짖으며 야단을 치던 아들은 새벽되어서야 기운을 잃고 누웠다.

눈은 뜨고 있으나 말도 못하고 몸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이틀동안 물한 모금 못 마시고 가느다른 숨만 쉬는 아들 곁에서 왕보살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지장 보살께 매달렸다.

48시간이 지나고 다시 새벽이 되었을 때였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좀!"물보살이 물을 먹여주니 다시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들은그 다음날 아침6시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아들은 며칠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더니 염라대왕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 의사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어 정신과에 진단 의뢰를 하였고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병마와 처참하게 싸우던 한 청년이 실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보살의 생각은 달랐다. 죽음의 문턱까지 갖다가 돌아왔다면 반드시 살아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 정신과 진찰결과 정상으로 돌아 왔고 ,몸도 신기하리 만큼 건강해져 퇴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 치료를 위한 2차 치료를 받기 위해 다시 입원을 했다. 주사를 맞자 열이 39도나 올라가고 백혈구가 300으로 떨어져 의사는 위험하 다며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다.

하루에 적혈 혈소판 백혈 주사를 10대까지 맞아도, 백혈구 수치는 오르지 않았고 ,상태는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주사를 맞을때마다 괴롭다고 비명을 지르고 ,열내리는 주사를 맞아 도 펄펄 뛰며 못 견뎌했다.

그러나 그래도 왕보살은 눈물로 지장보살께 호소하며 매달렸다. 괴로워하는 아들을 위해 왕보살이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죄업을 모두참회하며 매순간을 염불로 지장보살 마하살의 가피를 기원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 아들의 혈관이 터져서 새빨간 피가 막 쏟아지는 것이었다. 꿈에 가족들은 쏟아지는 피를 보고 모두 펄펄 뛰고있는데 느닷없이 왕보살 눈에 밭이 보이고 그 밭에서 노란 콩이 통통하게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

백혈구는 노란 색이다. 꿈에 노란 콩이 솟아났다는 것은 곧 백혈구가 생겨회복될 수 있다는 암시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왕보살은 백혈구가 2배씩 올라 2차 치료를 위해 입원한 지 한달보름만에 퇴원 할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 가보면 왕보살의 아들처럼 고통을 이기지 못해 괴성을 지르고 울부짖는 환자를 더러 만나게 된다. 왕보살도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는 아들을보면서 뼈와 살이 녹는 지옥 같은 괴로움을 함께 느껴야 했지만,그런 와중에도지난 죄업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절실하게 지장보살 마하살께 기도를 하였다.

기도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멈춰서는 안되며,흔들림 없는 정진속에서 지장보살 마하살의 가피를 입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나무 대자대비 대원본존 지장왕보살 마하살!!!!


『박삼중 스님,열매출판사,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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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극복한 지장기도


며칠 전 불성계발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때였다. 이날의 주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의 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노출을 하는 것이었다. 법운(法雲)거사가 초대받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 1년 6개월은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 고통이 끝나는 날은 생애 최고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법운 거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포교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 자비행 보살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지요. 아내는 열심히 절에 나가고 신심도 깊었지만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에 너무 힘이 들었던지 나에게 의논을 했어요. 글쎄, 그 고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어요. 매일 저녁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날짜까지 정확히 알려주면서 1년 6개월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내가 다니는 사찰 스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기도만 열심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기도는 되지 않고 고민만 점점 깊어 갔던 모양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심이 너무나 약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그래서 법사님께 상담을 드렸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시기에 순간 무슨 해결방법이 있구나 하고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법운 거사의 모습은 너무나 근심스러워 보였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잘못 될 수도 잇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법운 거사님, 지금부터 아내를 끔직히 사랑해 주세요. 신혼부부 시절의 사랑으로 돌아 가세요. 아내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공덕을 지으면 지금의 이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공(功)을 드려 덕(德)이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지장경』「제6품 여래찬탄품」에보면 '만약 십재일에 불 ·보살과 모든성현의 존상 앞에서 『지장경』을 읽으면 모든 재앙과 고난이 없으며 ,그가 사는 집안에 어른이나 어린이가 현재 또는 미래 백천 세계에 영원히 악도를 여의게 될 것이다'하였지요 그러니 지금부터 십재일뿐만 아니고 매일 지장 보살의 말씀을 믿고 함께 기도해 나갑시다.

법운 거사님은 이 제의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다음날, 법운 거사의 자택에 방을 비워 작은 원불을 모시고 몇 사람이 모여 점안법회를 실시하였다. 법문을 통하여 지장보살의 원력에 대하여 설법을 하였다.

"지장보살님은 구원의 보살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힘들어 하실 때 지장보살님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믿는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불심은 믿는 이의 마음속으로 배어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마음으로 섞이고 ,그러함이 느껴져서 서로 통할 때 부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기도할 때 신앙의 힘은 솟아나고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화·복은 자재롭게 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염부제 중생을 살펴보니,몸 움직이고 생각 일으킴에 죄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열반경』에서'온갖 제유(諸有)를 벗어남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제유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차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밝은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대자연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유독 인간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서 지옥을 떠도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 입니다. 지장보살은 인간의 고통의 세계를 절대로 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주시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믿고 나면 어떠한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 있을 것입니다. 이날부터 법운거사 부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모시고 『지장경』을 읽었다.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관하게 생활했다. 법운거사를 아끼는 법우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한번씩 모여 『지장경』을 독경하며 ,강설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하였다.

저승사자가 나타난다는 마지막 날 저녁에 많은 법우들이 가정법회를 열고 법우들이 돌아간 후 우리부부는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지장보살 님이 구름을 타고 나셨어요. 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서서히 아내 앞으로 다가 오셨어요.

우리는 너무나 감격했어요. 지장보살 님을 친견(親見)하다니,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지장보살 님의 입안에서 향내음이 넘쳐 나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온몸을 감싸니 1년 6개월 동안 긴장된 몸과 마음이 일시에 가벼워짐을 느꼈어요. 너무나 편안 했어요!

세상에 태어나 가장 환희로운 순간을 맞이했던 겁니다. 이곳이 극락이구나 생각하면서.'아!지장 보살님 감사합니다'하고는 눈을 뜨니 새벽이었어요. 온몸이 촉촉이 젖어 있었어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살아 있구나 하는 확인이었지요. 나는 아내의 땀을 딲아 주었어요.

부부는 3천겁의 인연이라 했던가, 부부는 이생에서 인연맺어 살아 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고, 괴로움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가정에 부처님을 모시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던 법운 거사님이 오늘은 왠지 존경스럽다.

1년6개월의 긴시간 동안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진하던 법운거사 부부의 사랑은 불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들 법운거사 부부처럼 깊은 종교적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랴?

나무 지장 왕보살 마하살!
나무 지장 왕보살 마하살!
나무 지장 왕보살 마하살!

『출처: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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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을 고친 지장기도


조선 순조 때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석대 지장암(현재의 생 지장 도량 강원도 철원소재 의 심원사)에 문둥이가 구걸하러 떼거리로 몰려왔다.

암자의 주지 스님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다가 10여 세 가량 보이는 어린아이가 문둥병에 걸려 다니는 것이 측은하여 문둥이 떼거리 중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이에게 말했다.

"이보게, 저 아이는 여기 두고 가시게. 이 겨울에 저 아이가 헐벗은 채 구걸을 다니는 것은 무리인 듯 싶으니 여기 두고 갔다가 봄에 다시 데리고 가시게."

"그렇게 맡아 주신다면 저야 고맙지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데리고 다니다
보니 우리도 귀찮을 때가 많았습니다."

문둥이 떼거리는 어린아이를 두고 떠났다. 이 아이의 이름은 영기(永奇)인데 부모가 일찍 돌아간 뒤 문둥병에 걸려 돌아 다녔던 것이다. 이 아이를 제대로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 스님은 아이에게 말했다.

"이대로 다녀서는 사람노릇을 못하겠구나. 너의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는데 한번 해보겠느냐?"

"이런 몸으로 살다 죽느니 스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주지스님은 아이의 결심이 굳음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법당에 계신 지장 보살 님께 청수를 떠놓고 절을 하면서 하루에 천 번씩 지장 보살 님을 부르고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기원하거라."

영기는 추위도 피할 수 있고 먹을 것도 주리지 않게 주면서 기도하게 해주시는 스님이 너무 고마워 주야를 가리지 않고 법당에서 절을 하며 염불을 하였다.

이렇게 50일 가량 되었을 때였다. 그 날도 밤에 기도를 하는데 꿈에 어떤 노장스님이 나타나시더니 손자를 어루만지듯 만지시는 것이었다.

"불쌍한 아이구나. 아무 죄도 없는 것이 부모 탓으로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이구나. 그래도 네가 과거에 불연(佛緣)이 있어 여기를 찾아 온 것이다. 잘 했다."

노장 스님은 머리끝에서 눈·코·입이 있는 얼굴 부위를 만지시고 ,등과 팔
어깨·다리 등 수족 전체를 어루만져 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영기는 몸이 아주 날아갈 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노장 스님은 영기를 고루 고루 어루만져 주시고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네가 병이 낫거든 중이 되거라. 훌륭한 도승이 되어야 한다."

영기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을 꾼 후 영기는 하루 하루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다. 결국 문둥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다.

전신에 퍼져 곪아있던 부스럼도 간 곳이 없고 ,맨송맨송하게 빠졌던 눈썹도 새까맣게 나고, 까마 잡 하던 살결도 아주 맑게 변했다.

자신의 모습이 전과 다르게 바뀌고 나자 영기는 자진하여 주지스님께 중이
되겠다고 지원하고는 머리를 깎았다. 이분이 바로 동방의 율사로 이름이 높은 남호(南湖)대사이다

스님이 어려서 이러한 가피를 받은 까닭에 남보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경학 도 잘 배우고 글씨도 잘 익혔다. 그리하여 명필과 문장을 겸한 율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옴 프라 마니 다니 스바하

나모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출처: 가피,박삼중,열매출판사,』
『출처: 기도,일타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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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생으로의 환생을 막아주고 목숨을 연장해 주신 지장보살님

경북 점촌에 사는 임정□ 여인은
윗대부터 문경 김룡사에 다녔으며,
특히 지장 기도를 열심히 해 왔다.
지금 환갑이 지난 임여인은 약 10년 전 우연히 얻은
기관지 질환으로 무척 고생을 해 왔고,
지난겨울에는 증상이 너무 심해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었다.

병원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밤 꿈에 저승사자 3명이
검은 옷을 입고 임정□여인을 찾아와서 무조건 따라가자고 한다.
꿈속에서도, 저승사자를 따라가면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이고 죽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마디 대항도 할 수 없고 또한 피할 수도 없는
절대 절명의 위엄에 눌려 가자는대로 따라갔다.

그런데 문밖에 나가 정신을 차려보니 거기에는
낯선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
두 사람이 말없이 서 있었다.
임정□ 여인은 그 사람들과 함께 저승사자를 따라
어디론가 걸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천천히 걸어가도
몸이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잘 걸어갈 수가 있었다.

저승사자가 그들을 데려간 곳은 김천에 있는,
임정□ 여인의 동생 집이었다.
그리고 동생 집에 있는 개집 앞에 다다르자,
개집 속으로 들어가라 한다.
함께 간 두 남녀는 아무말 없이 시키는 대로 개집으로 들어가는데,
임정□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나서,
"지장보살님 저는 싫어요. 지장보살심 저는 싫어요."면서
개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저승사자들은 임정□여인을 한참 노려보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깨어보니 꿈이었는데
온 몸에 땀이 나서 이불이 흠뻑 젖어있었다.

며칠 뒤 꿈이 너무 이상해서 오랜만에 동생집에 가보기로 했다.
병고에 시달리느라 동생을 못 만난지도 1년이 넘는 듯 했다.
그래서 ,한마디 안부를 묻고나서
"혹시 너의 집에 개를 기르니?"하고 말하니
'암캐를 한 마리 기르는데, 며칠 전에 새끼를 세 마리 낳았어.
한 마리는 죽은 것을 낳고,
두 마리는 암컷 수컷인데 아주 귀여워.
언니 한 번 볼래?"하며 개집으로 언니를 데려간다.

그런데,이상하게도 그 개집이 꿈에서 본 개집과 꼭 같았고,
개가 새끼를 낳은 것도,
저승사자가 그들에게 개집에 들어가라고 말한 날짜와 꼭 같았다.

임정□ 여인은 겁이 났다.
그리고 만일 자기가 개집으로 들어갔더라면
지금 이 집 개로 환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 강아지 두 마리는
꿈에서 본 두 남녀의 환생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임정□은 동생에게 그 강아지는 특별한 강아지니,
함부로 팔지 말고 언니에게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를 구해 주신 김룡사 지장보살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생에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더욱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영험이 많으신 김룡사 지장보살에 더 기도하고 살기로 맹세하였다.

-원작성자: 권 영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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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을 한 정처사 지팡이

(일타스님 글)

수십년 전 경북 예천에 장처사(張處士)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처사는 지팡이를 하나 짚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지 지극하게 '지장보살'을 염했습니다 어찌나 지극하게 불렀던지, 잠을 자면서도 지장보살을 염하였다고 합니다.

장처사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이 제상(祭床)을 차려 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는데, 그 제상에 올려 놓은 지팡이가 밤만 되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팡이에서 뿜어 나온 빛이 온 방을 밝혀 불을 켜지 않아도 방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 뒤 화장을 하면서 그 지팡이도 같이 불에 태웠는데,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까지 사리가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세속에 살면서도 꾸준히 염불·기도·참선을 하면, 이 장처사의 경우처럼 마음이 크게 순화되어 특별한 이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옛날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요즈음 집에서 108배를 하거나 참선하고 염불하고 불경을 항상 읽는 사람이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불교가 융성해질 새로운 조짐으로,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든 불자들은 각자 어떠한 모습을 취하고 있더라도 기도 등의 수행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출가해서는 비구·비구니의 모습으로, 제가에서는 우바새·우바이로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끊임없이 수행하고 선행을 닦아야 합니다.

출가한다고 해서 도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세상에 있다고 하여 도가 달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세속에 있을지라도 기도 등을 통하여 마음을 닦아가면, 몸만 출가하고 마음은 출가하지 못한 승려보다 훨씬 나은 것입니다. 부디 마음 닦는 일에 게을리 말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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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서 만난 어머니



韋州(위주)땅에 등(鄧)씨라는 여인이 있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백부밑에서 자랐는데 장성 하면서 날이 갈수록 간절해 지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돌아가신 분을 만나뵐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인데도 보고 싶은 생각을 누를 수가 없었다. 이것이 큰일이었다. 그는 일찌기 어머님을 여의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마져 기억할 수 없었으나 자기에게도 분명히 있었던 그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나깨나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다가 한번은 가까운 절에 찾아가서 스님에게 여쭈었다.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하니 스님께서 알려 주셨다.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지장보살님을 공경하는 것인데 지장보살님은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하신 마음이 워낙 크시므로 당신이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염불하면 지장보살님의 자비하신 힘을 입어 소원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등씨여인은 어둔 밤에 불을 만난것과 같았다.
그때부터 밤낮으로 일심으로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지장보살 염불을 계속하였다.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날 밤 등씨여인은 꿈에 염불을 가르쳐주신 스님을 만났다.
꿈속에서 그녀는 염불을 하고 있었는데 스님이 찾아와 하시는 말씀이 '당신 어머니를 뵈우러 갑시다.' 하는 것이었다.

여인은 하도 기뻐서 염불을 하면서 스님을 따라 집문을 나섰다.
그런데 어느듯 스님은 허공을 날고 있었고 여인은 스님 등에 엎혀 있었다. 스님은 순식간에 천상에 이르러 굉장한 큰 궁궐안에 이르자 스님은 앞에서 걷고 있었고 여인은 어느덧 그뒤를 따르고 있었다.

등천 하늘까지 솟아 올라보이는 높은 궁전이 있었는데, 거기는 형용할 수 없는 보배구슬로 장식되어 있었고 높이는 49층이나 되었다.

그 궁전은 마니보전이라 하였는데 그 안의 찬란한 장엄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많은 천상사람이 한가롭게 즐기고 있었는데 거기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등씨여인은 너무도 반가워서 어머니 앞으로 달려가 절하다가 그만 엎드려지면서 통곡이 터져 나왔다.

한참만에야 눈물을 거두고 그의 어머니 얼굴을 자세히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손을 만지면서 뼈속에 사무쳤던 그리움을 풀었다. 딸이 어머니에게 여쭈기를 '어머니께서 언제부터 이 천상에 와 계십니까?' 하니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 네가 나를 위하여 지장보살님을 생각한 공덕으로 내가 여기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그렇게도 보고 싶던 네 얼굴을 지금 만나게 되는 것도 역시 네가 지장보살님께 기도한 공덕이다.

등씨 여인은 꿈을 깨니 천국도 어머니도 간 데 없고 평상시의 자기 집 처소였으나 그의 가슴속에는 분명히 깊은 소원을 성취한 만족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간밤의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장보살님이 한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하니 염불을 가르쳐 주신 스님 또한 하늘 같이 고마왔다. 날이 밝자 그녀는 집안 돈을 풀어 필육전에 찾아갔다. 그리하여 옷 한벌을 정성껏 만들어 스님께 갖다 올리며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 스님 덕분에 어머니 뵙는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 은혜를 무어라 말 할 수 없읍니다. ' 하고 머리를 조아려 감사했다.
등씨여인은 전날 밤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씀드리니 그제야 의혹이 풀렸다는 듯 큰 목소리로 도량이 떠나갈 듯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셨다.

' 암 옷을 받아야지, 지장보살마하살'
두 사람 머리위에는 금방 구름에서 벗어난 햇살이 둥글게 감싸면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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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송으로 지옥을 깨트리다


송나라 王씨는 경사(서울)사람인데 스님이 되어 이름을 僧俊이라 하였다
출가는 하였다지만 공부다운 공부한 것 아무 것도 없었고 계율이란 전혀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살도를 닦거나 불사에 힘쓴 것도 없었다

말하자면 말이 출가지 세속 사람과 조금도 다름 없이 걸림 없이 살아갔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병이 들어 죽었다 . 삼일만에 다시 살아닸는데 깨어나자
크게 통곡하며 부처님 앞에 나와 무수배를 하면서 참회하였다
그가 말하는 사연인즉 이러하였다

제가 이번에 죽게 되었을 때 명부의 관리로 보이는 두 사람에게
붙잡혀 집에서 끌려나갔습니다 한참만에 큰 성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문득
한 스님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네가 나를 알아

보겠느냐 하는 지장보살이다, 네가 서울 있을 때 내 형상을 하나 조성하여
가지고 있다가 예배 공양은 하지 않고 큰절 뒤에 던져버리고 만 적이 있지
않느냐, 네가 나를 조성한 공덕이 있으므로 이제 그 은혜를 갚으로 온 것이니
내가 일러주는 게송을 잘 듣고 부지런히 외우도록 하라" 하시면서 게송 하나를
일러 주시고 사라졌습니다 그 게송인즉 다음과 같다

若人欲了知 만약에 어떤사람 시방삼세의
三世一切佛 일체의 부처님을 알고자하면
應當如是觀 마땅히 이와같이 관할지니라
心造諸如來 마음이 모든여래 짓는것임을

명부사자에게 끌려 성문을 들어가 몇 번인가 대문을 지나서 이른 곳이
염라대왕앞이었습니다 제가 그 앞에 이르니 대왕이 묻기를 "당신은 출가해서
한 것이 무엇이오? 무슨 공덕을 닦았소 ?" 화며 힐책하는 어조로 물어
왔습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하기를 "한가지 게송을 수지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외워보시오 " 저는 게송을 외었습니다
"만약에 어떤사람 시방삼세의, 일체의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 하는 게송을 소리
높이 외었더니 염라대왕은 " 그만 두십시오 "하고 관인에게 나를 도로 돌려 보낼
것을 지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이하였던 것은 내가 그 때 게송을 외울 때에
명부관원에게 물어서 안 일입니다 제가 외운 게송을 들은 공덕으로 모두

해탈을 얻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 승준 스님은 이와 같이 말하고 지난 일을 크게 참회
하면서 깨끗한 수행을 힘썼다 , 그리고 가는 곳 마다 지장보살 공덕을 찬탄하고
게송을 설하며 부처님 믿는 것을 권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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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을 모시고 어머니가 천상에 나다.



당나라 진도독(陳都督)의 딸은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울고만 있었다. 그대로 놓아두면 조만간 꼭 죽을 것만
같아 그의 아버지는 딸을 붙들고 백 가지로 위로 하며,

" 네가 참된 효녀라면 너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이제 집에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모실 터이니,
네가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라" 했다.

성상이 완성되자 그의 딸이 아버지 앞에 나와 청하였다.
" 아버지, 이번에 모신 지장보살님은 어머님께서 계셨던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지장보살님을
우러러보고 지장보살님 염불도 하고자 합니다."

진도독은 딸이 마음을 돌린 것이 기뻐서 딸의 말대로 어머님 침실에
존상을 모시게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딸은 지장보살님에게 밤낮으로
예배 공양하며 염불을 쉬지 않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딸의 마음도 안정되고 텅 비어 쓸쓸한 바람이 부는
듯했던 집안에도 차차 훈기가 도는 어느날 밤, 진도독의 효녀는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 갸륵하다 효녀여, 너의 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죄가많아 지옥에
있느니라. 나도 옛날 너와 같은 딸이 되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의 아버지는 이름이 시라선견이었고, 어머니의 이름은
열재리라고 하였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태어난 곳을 몰라 애태우다가 마침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인도를 힘입어 어머니가 지옥에 빠져 한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발원하여 기도하며
어머니로 하여금 천상에 나게 하였더니라.

그때부터 내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기로
맹세하였다. 이제 너의 효심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효성이 장하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 방광설법(放光說法)을
하여 너의 어머니를 죄고에서 건져내어 천상에 나게 하여 주리라."

이 말씀을 마치자 스님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나셨다. 밝으신 얼굴에 자비하신 웃음을 띠우시고
진도독의 딸 가까이에 오셨다. 도독의 딸이 얼핏보니 스님의
옷자락이 불에 타 있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 내가 지옥에 들어갔을 때 불꽃에 탄 것이다"
하시자 스님의 모습은 다시 사라지면서 꿈이 깨었다.
진도독의 딸은 꿈을 깨고 나서 어머니가 천상에 태어 난 것이 기뻤다.

그리고 애달픈 마음, 그리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괴로운 마음,
가슴 터질 듯한 슬픈 마음, 그 모두가 사라지고, 가슴속이 환희
열리는 것 같았다. 그의 가슴에는 기쁜 마음이 잠잠히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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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을 받들고 다시 살아나다.


당나라 종산(種山) 개선사(開善寺)의 지장보살 존상에 얽힌 실화이다
이 지장보살은 높이는 三척인데 그 둘레에서는 항상 큰 광명이 났으며
배광(背光)이 四척 五촌이나 뻗었다고 한다.

그런데 개선사가 있던 양주(揚州)의 도독 등종(鄧宗)이 나이 61세
되던 해, 가벼운 병으로 눕더니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의 가족들은
너무 급히 당한 일이고, 또한 가슴이 따뜻하므로 염하지 않고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하루를 지낸 다음날 밤중에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말없이 슬피 통곡하더니 이윽고 자손들에게
입을 열었다.
" 나를 개선사에 데려다 다오"
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개선사에 도착한 등도독은 말없이 지장보살 앞에 나아가더니, 한번
쳐다보고는 그만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울고
나서 또한 여러번을 우러러보면, 예경하더니, 이윽고 주위
사람에게 말문을 열었다.

" 내가 죽을 때 四품 벼슬로 보이는 관인이 와서 나를 끌고 가더니,
마침내 당도한 곳이 염라대왕 앞이었습니다. 대왕은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직 죽을 때가 멀었으니 다시 인간에 돌아가거라
그리고 부처님 법을 받드는 것으로 너의 집 사업을 삼도록 하여라.

이곳 지옥이라는 데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세상
사람들로는 전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네가 지옥을 한 번 구경하고
가겠느냐? 네가 돌아가서 지옥이라는 곳이 과연 무섭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관인을 따라 동북방 쪽으로 三--六리 가량이나 가니, 거기에는 쇠로
만들어진 큰 성이 있는데 쇠문이 꽉 닫혀 있었고, 성 안에 들어서니
맹렬한 불길이 솟아오를고 쇠 녹은 물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를 자세히 살펴보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고초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을 본즉, 맹렬한 불길을 헤치며
고초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교화하고 계시는 스님이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스님이 가시는 곳은 금방 불꽃이 멎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지옥 구경을 하였는데 한 성에 이르니,
그 가운데는 또 무서운 지옥이 있어서 十八이나 되는 큰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양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또 앞서의 스님이 보였는데 불길을 멎게 하고, 죄인을
교화하는 것은 앞서와 같았습니다. 내가 차마 볼 수 없는 지옥의
가지가지 광경을 낱낱이 구경하고 돌아올 때에 그 스님도
지옥에서 나오시며 나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네가 나를 알겠느냐?>
저는 사실대로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였더니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개선사에 있는 지장보살이니라. 옛날 智滿법사가 三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나의 형상을 만들어 모셨으므로
내가 지만 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매일 한 번씩 지옥에 까지 다니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에서 보면 지옥 속에서도 혹 선근이 남아 있어 착한 마음이
강한 자는 내말 한 번에 곧 발심하여 지옥고를 벗어나며, 사견만
많은 자는 고통을 벗어나기 어려우니라.

그 중 선근이 미약한 자는 오히려 교화하기 쉬우나, 한 번 지옥에
들어가기만 하면 좀체로 구제하기 매우 힘드느니라.

그런데도 세간에서 악한 업력만 기른 사람은 자기 허물을 깨달을 줄
모르고, 오직 고통받는 일과 빠져나올 것만 기다리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세상에 살면서 선근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는 마음을
낼 것이니, 너는 부처님의 법력을 받아 세상 사람들이 지옥고를
받지 않도록 일러주고 힘쓰도록 하라.
어서 인간에 나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 뜻을 전하여라.>

이 말씀을 듣고 고개를 들어 스님을 처다보니, 이제까지의 스님의
몸은 어느덧 적어져 키는 三척 정도로 보이고 이마에서 환하게
광명이 났으며 눈이 유난히 빛났습니다.

내가 공손히 예배를 드리고 돌아서려 하니, 스님께서는 이런 글귀를
일러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도 도 닦을 수 있나니

모든 선근 끊인 자도 발심하면 다 되네.

악도에 떨어져서 죄업이 익어지면

깨달을 맘 못내니 구원하기 어려워라.


노쇠한 사람들이 길을 가고자 할 때

팔다리를 부축하면 나아갈 수 있어도

누워서 부동하면 어찌 할 수 없나니

중생들이 지은 바 정업도 그같니라.


스님께서는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그 스님이 일러주신 말씀을 잊을까봐 그것만을
생각하느라고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지금까지 와서 이제 여기 지장보살의 존상을 우러러 뵈오니,
지옥에서 보던 바와 똑같고 또한 그때에 말씀하신 것이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이 말을 들은 개선사 스님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던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고, 또한 기이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몇 번이고 지장보살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서 신심이 두텁고 솜씨좋은 화공을 청하여 앞서부터 모셔왔던
지장보살 탱화를 본떠서 다시 그리게 하고 앞서의 탱화와 함께
그대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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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차의 불을 꺼주다


형주땅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글보다는 오히려 사냥을 업으로하는
사냥선비로. 그의 별명이 안웅 (기러기 영웅)인 것으로 보아 족히
짐작이 간다.

사냥을 즐겨 했지만 특히 기러기를 잡는데 명수였다 사냥을 즐기면서
이럭저럭 50살이 되어서 열병을 앓다가 죽었다.
그의 아내는 풍습에 따라 울면서 시체를 산에 내다버렸다.

그런데 삼일 만에 그는 살아나 자기 걸음으로 비실비실 집에
돌아온 것이다. 죽어서 산에 버렸던 사림이 걸어 들어오니
얼마나 놀라왔겠는가.

집안권속들은 깜짝 놀라(귀신이 돌아왔다)하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오들오들 떠는데 문제의 안웅이의 거동은 귀신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초최한 얼굴에 그 중에 화색이 돌고 거동이 정상적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겁에 질렸다가 놀라움으로 바뀌고 순식간에 기쁨으로
바뀌어 야단법석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안웅이 하는 말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앓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어서 가자고 소리치면서 집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 형상이 우악스럽기가 형용할 수 없었다.
내 곁에 오더니 다짜고짜 어서 가자고 방망이로 울러댄다.

하는 수 없이 그에게 끌려 문밖을 나섰다. 문밖에는 수레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그런데
방망이를 든 사나이는 나를 불수레에 타라고 호령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발 버둥쳐도 역부족하여 수레에 막 실릴 참인데 그때
어디서인지 한 스님이 나타나서 물을 불수레에 퍼붓는 것이 아닌가.
불길은 단번에 잡혔고 타서 죽는 것을 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스님은 곧 보이지 않았다. 방망이를 든 사자는 나를 데리고
몇 개의 대문이 달린 집을 지나 염라대왕 앞에 꿇어 앉혔다.
거기에는 멧돼지, 노루.염소.토끼.꿩 그밖의 여러 가지 새들이
수 천마리 모여 있었다. 또한 수 많은 기러기도 있었다

그런데 저들 짐승들은 일제히 목을 빼고 눈알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
보았다 그리고서 일제히 염라대왕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저 짐승들이 하는 말이 모두 사람의 말처럼 역력하게 알수 있었다

"대왕님, 저놈이 우리를 죽이고 우리 자식을 죽인 안웅이입니다.
저놈을 엄하게 다스려 주십시요"하고 있었다.

대왕이 그 말을 듣더니 하는 말이

"너희들 말이 맞다. 안웅이는 틀림없이 나쁜사람이다. 그러나 한가지
그의 조부가 지장보살님에게 귀의했느니라. 그러므로 나로서는
저 안웅이가 그 사람의 손자인 것을 아는 이상 고초를
면해줄 수 밖에 없다"하였다

나는 귀가 번쩍 뛰었다. 꼼짝없이 이제는 지옥으로 가나보다 하였더니
지장 보살님 공덕으로 살게 된 것이다. 나는 감격해서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소리높이 불렀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뜰 가운데 있던 모든 짐승들이 금시에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나를 놓아주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하는 말을 듣고 금방 돌아온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안웅의 생활은 일변하였다. 자칭 "나는 부처님의
종이다" 하면서 사방에 돌아다니며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그리고 여러사람에게 죽었다 살아난 경위를 말하면서 지장보살을
일심으로 생각할 것을 권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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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속에 모신 지장보살의 광명


당나라에 별가(別駕) 벼슬을 한 건갈(健渴)에 대한 이야기다.
건갈은 신심이 돈독하였고 그의 일상수행은 매우 청정하였다.

항상 지장보살을 받들어 모시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단향나무를 구하여 높이가 세 치되는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하여 상투머리 속에 정중히 감추어 모셨다.

그러니 다닐 때나 머무를 때나 눕거나 앉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나 생각에서 잊지 않았다. 가히 생각생각에 지장보살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장흥년(長興 서기930년)에 건갈은 새로운 관명을 띠고
부임하는 중이었다. 어느 후미진 냇가에 다다르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건갈은 더욱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건너
산 밑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그를 부르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일찍이 그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건갈은 <이제 올 것이 왔구나>생각을 하였더니, 그 사나이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민망하리만치 정중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 당신이 이 길로 부임하는 것을 알고서 미리 다리 밑에
숨어 있었소. 멀리서 당신 혼자서 말타고 오는 것을 보았는데 다리
가까이 와서는 갑짜기 스님 한 분이 지나가실 뿐, 당신도 말도
보이지가 않았소.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고 한참 지켜보았지만, 역시 당신은 보이지 않고
스님 한 분만이 다리를 건너가셨는데 다시 한참 있다 보니, 당신이
여전히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겠소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하잖은 일 가지고 당신과 원한을 맺고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니, 이것은 잘못되었다 생각하오. 당신은 분명히
부처님이 도우시는 사람같소. 이제 내가 과거 일을 다 풀어버리니
당신도 마음을 놓으시오."

하는 것이었다. 건갈이 죽은 것은 청태(淸泰) 2년(서기935년), 그의
나이 78세 때인데 임종하면서 그는 단정히 앉아 합장하여 염불하고
있었다.

그의 상투에서는 유난히 밝은 광명이 퍼져 나와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그는 고요 속에 잠겨 들어갔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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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권은 무겁고 죄의 문서는 가벼워



유씨는 옹주 만년현 평강방 사람으로 당나라 고종 2 년에 이틀 동안 앓고 죽었는데,

죽은 지 육일이 지나도록 그의 가슴이 따뜻하였다.

그래서 가족들은 장례 치를 준비를 마치고 날짜까지 받아 놓았으나 감히 염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칠일째 되던 날 새벽에 그가 갑자기 다시 살아나서 말하기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큰 성으로 들어가니 궁전과 누각이 웅장하고 주변

자연환경이 아름다웠다.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가니 바로 이때 염라대왕이

큰 목소리로 네가 세상에서 지은 공덕을 말하라 하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법화경 두 권을 읽었을 뿐이고 그 밖에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대답했더니,

염라대왕이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조목조목 기록해 놓은 문서를 찾아내서 법화경

두권과 달아보고 법화경 두 권이 죄를 기록해 놓은 문서보다 무겁다 하며 죄의

문서를 버리고, 이 사람은 구십살까지 살아야 한다 하고 죄의 문서를 맡아보는

이에게 나를 석방하여 세상으로 돌려 보내라고 명령하여 이제 내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 하였다.

유씨는 마침내 수계를 받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순금으로 법화경을

정성드려 한자 한자 옮겨써서 오래오래 공양하였다.




묘자를 쓸 적에 이미 인간에 환생하다

 

 



수나라 개황 연중에 혜초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언제나

착실히 수행을 하셨다.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한번은 데리고 있던 제자 한 명이 나이 이십이 되어

병들어 죽기에 이를 무척 애석하게 여기셨다.

그러던 어느날 혜초스님이 비몽사몽 간에 태산부군묘에

이르게 되어 태산부군에게 여쭈되, 일전에 제자 한 명이

일찍 죽었사온데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하니, 태산부군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사람은 죄와 복이 모두 없는 까닭에

아직 미결로 이곳에 있노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혜초 스님이 만나 보기를 청하니 곧 응락하여

사자 한 명을 안내로 동쪽으로 수십보를 걸어가다가 이윽고

그 제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혜초스님이 반가워 하며 고와 낙이

어떠하냐 묻기에 제자가 대답하되, 다만 얽매어 있어 자유로운

행동을 못할뿐이고 고와 낙이라는 것은 아무 감상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 태어나고자 하나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으니 스님께서

제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스승이 어떤 공덕을 지어야 하겠는가 하니 제자가,

법화경 한 벌을 조성하시고 회향재로 일백명 스님들께

만발 공양 시켜 주소서 하고 간곡히 청하니, 혜초가 승낙하였는데

문득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에 혜초스님은 꿈에서 약속한 대로 법화경 한 벌을 쓰고

수행하는 스님 일백 명에게 공양하여 마치기를 다한 후

다시 꿈을 얻어 태산부군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경을 쓰고 재를 올린 사연을 말씀드리니 태산부군이 하는

말씀이, 「잘 하였소. 그대의 제자는 스님이 경을 쓸 적에

묘법연화경의 묘자를 막 쓰고 나자마자 좋은 곳에 태어났습니다.

제군이라는 땅에 사는 왕무라는 사람의 집에 남자로 태어났으니

세 살 먹거든 한번 찾아 보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얻은 후 삼년이 지난 뒤에 혜초 스님은 왕씨 집을

찾아가 지난 사연을 설명하고 어린 것을 보여 달라 한즉

그 부모 이상히 생각하여 어린 것을 안고 나와 보이는데,

갑자기 어린 것이 혜초대사의 품으로 달려들며 슬피 울거늘

모두가 기이하다 여겼다. 혜초가 그 부모에게 잘 양육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돌아왔는데 그 아이 장성하여서는 스스로

출가하기를 원하여 다시 혜초대사를 섬겼다 한다.

 




지옥에서 경을 외우니 후대하고 보내주다

 




감문교위 이산룡은 무덕연중에 모진 병으로 죽었으나 이상하게도

가슴이 따뜻하여 가족들이 차마 염습을 못하고 있었는데 칠일 만에

깨어나 다음과 같이 명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죽어 명부에 들어가 어느 관청에 이르렀는데 그 집 정원은

굉장히 넓고 죄수 수천명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칼도 차고 고랑도

채워진채 모두 복면을 하고 서 있었는데, 뜰의 대청 위에는 염라대왕이

높은 걸상에 앉고 좌우로는 많은 관원이 시위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염라대왕이 묻기를, 너는 평생에 무슨 복업을 닦았는가 하기에,

나는 우리 고을 사람들이 부처님께 재를 올릴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시주에 동참하여 왔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염라대왕이 다시 묻기를, 너 혼자 선업을 닦은 일은 없는가 하기에,

법화경 두 권을 늘 지송하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왕이 놀라며 나를

뜰로 오르라 하여 올라서니, 그곳에 동북간으로 높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왕은 그곳에서 내가 경을 외워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나는 좌에 올라 실상 묘법연화경 서품제일이라 경을 외우니 왕이

일어서 공손히 합장 예배하며 말하길, 법사께서는 그만 그치소서 라고

하기에 내가 좌에서 내려 다시 뜰 아래를 돌아보니 아까 가득 차 있던

죄인들이 한 명도 없는지라. 놀라 서 있는데 왕이 가로되, 그대의 경을

지송하는 복이 단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 뜰 아래 있던

여러 죄수들까지도 모두 경의 제목 외움만을 듣고도 모두 그 죄를 면하게

된 것이니 어찌 그대를 착하다 하지 않으리오. 이제 그대를 풀어주어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오리라 하여 그곳에서 수십보쯤 걸어 나오는데 왕이

다시 부르며 시위 관리들을 보고 하는 말이, 이 사람을 데리고 가 지옥을

보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관리들이 왕의 명을 받들어 나를 데리고 동쪽으로 백여보를 걸으니

문득 높다란 성벽이 보이는데,무쇠로 쌓여 있는 그 성벽 가장자리로

많은 구멍이 뚫려 있어 모든 남녀가 땅에서부터 그 구멍으로 날려 들며

다시는 나오지 못하거늘 관리가 설명하되 이는 무간 지옥입니다. 각각

사람마다 지은 업에 따라 옥에 들어가 죄를 받는 모양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한편 슬프고 한편 겁이 나 나무불 삼자로 염불하고 또 한 곳에

이르니 커다란 가마가 있어 불이 활활 타며 물이 펄펄 끓는데 그곳의 모든

사람이 앉아서 졸고 있기에 그대들은 웬 사람인가 하고 물은즉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들은 죄가 많아서 이 끓는 가마속으로 들어갈 터인제 그대가 나무불

삼자를 지송하여 주신 공덕으로 옥중 죄인과 같이 하루 쉬라는 명을 얻어 듣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와 같이 앉아 졸고 있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에 더 구경할 마음이 없어 걸음을 급히 하여 인간으로 나왔는데 문득

세 사람이 앞을 가로막고 나서며 나에게 하는 말이, 대왕께서 그대를 풀어주나

우리들의 수고는 잊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 미처 내가 뭐라 하기 전에 관리가

설명하는 말이, 저 사람들은 일전에 그대을 명부로 잡아온 자들입니다.

한 사람은 포승를 맡은 자니 붉은 줄로 그대를 묶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방망이를 맡은 자니 방망이로 그대를 때린 사람이며, 마지막 한 사람은

자루임자로 자루를 가지고 그대의 혼을 잡아 넣은 사람입니다.

오늘 그대가 인간으로 환생함을 보고 무슨 보수를 청하는 모양입니다

라고 하니, 내가 겁이 덜컥나서, 미처 누군지 알아 보지 못하였습니다.

청컨데 집으로 돌아가서 물품을 준비 하겠으니 어는 곳에서 보내 드리리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길 물가나 마무 밑 모두 좋습니다 하기에

허락하고 하직하여 들아오니 집안은 곡성이 낭자하고 장례 준비로 정신이

없던 터였습니다 라고 말을 마쳤다.

이산룡이 이같은 경로로 환생한 며칠 후에 종이로 돈을 만들고 비단과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물가에 나가서 위채를 불사르는데, 갑자기

세사람이 나타나 하는 말이 그대가 실신을 하지 않고 이제 좋은 물품을

가져다 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날짐승이 법문을 익혀 듣고 문득 업장의 몸을 벗어 버리다




동진때 법지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여항산에 들어가 토굴을 짓고 법화경을

읽어 외우는 것을 일과로 삼아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그때 그 토굴 옆에 꿩 한 마리가 집을 틀고 있으면서 법지스님의 경전 읽는

소리가 있으면 곁으로 날아와 법문을 들어온 것이 그럭 저럭 칠 년이라는

긴 세월을 채우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꿩이 법문 소리를 듣고 날아왔는데 법지 스님이 살펴보니

전과 달리 그 모양이 배우 수척하여져 있었다. 법지 대사가 가엾게 여기고

날개를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 네가 비록 날짐승이나 법화경 법문을 잘

들었으니 만일 축생의 몸을 벗어 버린다면 반드시 인간 세상에 환생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법화경을 읽어 마쳤으나 웬일인지 꿩은

돌아가지 않고 뜰 아래로 왔다갔다하며 돌아 다니고 있었다. 이에 법지 스님은

더욱 측은한 마음이 들어 거것이 혹 먹을 것을 찾는 것은 아닌가하여

콩낱 같은 것을 던져 주었으나 잘 먹지 않더니 그 이튿날 새벽에 그만 죽어 버렸다.

대사가 그 몸을 염습하여 깨끗한 곳에 묻어 주었는데 그날 저녁 꿈에 웬

청의 동자가 나타나 공손히 절하며 가로되, 저는 오늘 아침에 죽은 꿩입니다.

스님의 법문소리를 많이 들은 공덕으로 이 산하동 왕씨의 집에 남자로

태어날 터이온데 바른쪽 겨드랑이에 조그마한 꿩 털이 붙어 있을 터이니

그걸 보시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대사가 생각턴데 내가 꿩이 죽기전에 예언한 바도 있었고

또 꿈이 이상하기도 하니 한 번 징험하여 보리라 하고 왕씨 집 형편을

비밀히 알아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열 달 후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하기에,

대사가 생각하기를 이 아이가 걸음을 걷고 말을 배울 시기가 되거든 한 번

찾아 보리라 다짐하였다.

그후 세월이 흘러 삼년이 되는 어느 날 마침 왕씨 집에서 재를 베풀고는

대사에게 공양할 것을 청하는지라 대사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 생각하고

흔연히 내려가 그 부모를 만나보고 막 인사를 하는 판인데 그 어린 것이

달려들며 우리 스님이 왔다 하고 무한히 반기는 것이었다. 대사 또한

그 아이를 사랑하여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로되 이 아이는

분명 꿩 아이라 하며 아이의 옷깃을 풀어 바른편 겨드랑이 밑을 살펴보니

과연 조그마한 꿩 털 세 개가 박혀 있었다.

삼년 전 대사의 꿈과 일치함에 크게 감탄하는데 왕씨 내외가 이상히 여겨

묻기에 대사가 지나온 일을 낱낱이 설명하여 주고 다시 하는 말이 이 아이는

불문에 인연이 깊은 아이니 일곱 살이 되거든 나의 상좌가 되게 하시오 하니

그 부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흔연히 승낙하였다.

칠세가 되는 어느 날 출가한 아이는 머리를 깎고 오계를 받을 때

겨드랑이에 꿩털이 있다 해서 이름을 담익이라 하였는데, 그에게

법화경을 보여주니 한 자도 서슴지 않고 무른 땅 벗기듯 술술 읽어 나갔다.

그는 대승경전을 섭렵하여 대법사가 된 연후에 동쪽 회계 땅에 놀다가

진망산에 들어 결초위암하고 법화경을 전문적으로 외워 열두 해를 채웠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날도 저물었는데 천하 절색의 여자 한 명이 담익의 토굴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몸에는 채의를 걸치고 손에는 대보금이를 들었는데

그 보금이 속에는 흰빛 돼지 새끼 한 마리와 큰 마늘 두 뿌리가 들어 있었다.

그 여자는 스님 앞에서 울며, 자기는 이 산 밑 아무개 집의 딸로서 산중에

들어와 고사리를 뜯다가 그만 모진 범을 만나 도망쳐 왔는데, 날은 벌써

저물어 산길은 희미하고 수목은 컴컴하며 무서운 짐승은 오락가락 할 것이니

집을 찾아간다 해도 살아날 방도가 없으므로 미안한 말씀이오나 하룻밤 자고

갈 수 있게 하여 달라 하는 것이었다.

담익 대사가 생각컨대 깊은 산중 무인지경에 젊은 남녀가 한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매우 혐의스럽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더니 여자는 슬피 울며

허락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담익대사는 풀자리를 따로

한 곳에 정하여 주고 다시 법복을 정제한 후 법화경을 읽어나갔다.

밤이 이슥하여졌는데 여자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하며 스님이 보아 주기를 청했다.

대사가 약을 던져 주었으나 여자는 먹지 않고 아프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만일 스님이 나의 가슴을 만져 주신다면 곧 편안해질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금방 죽을 것 같습니다 하며 가로되 일찍이 불법은 자비 방편으로

근본을 삼는다 하였사오니 스님은 어찌 앉아 보시기만 하면서 한 번 손을

다하여 구제치 않습니까 하였다. 이에 대사가 가로되 나는 계행을 지니는

스님으로서 여자의 몸을 만지는 것은 크게 당치 않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들은 척도 않고 그저 만져만 달라고 하는 까닭에 대사는

어쩔 수 없이 수건을 주장자끝에 매어 멀리 앉아 여자의 배를 문질려 주니

조금 있다가 여자가 하는 말이 병은 벌써 가라앉았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아 여자가 일어나 뜰 아래로 내려서는데, 채복은 변하여

상서로운 구름이 되고 돼지는 변해서 흰 코끼리가 되었으며 마늘은

변해서 한쌍 연화가 되었다. 그 여자가 발로 연화를 디디며 코끼리위에 올라

구름을 타고 날아가며 하는 말이, 나는 보현보살이더니 네가 오래지 않아

보살도를 얻게 됨에 특별히 와서 한 번 시험하였노라. 네 마음은 물 가운데

달과 같아서 더럽혀 줄 도리가 없구나 하였다. 말을 마치고 표연히 날아가니

그때 공중에서 꽃비가 내리고 땅이 다 진동하는지라.

그날 회계 태수 맹공개가 새벽에 일어나 대청을 거닐 때 문득 남쪽 하늘에서

오색 구름이 일어나며 그 속으로 서기 광명이 비쳐 관청 뜰까지 환하여지고

그 상서로운 구름 밑으로는 금석사 죽지성이 은은히 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너무도 이상하게 여겨져 그 즉시 사방으로 탐문하고 나서는 담익대사가

보현보살을 만나 본 결과임을 알고, 대사의 행장을 갖춰 그 연유로 조정에

알려 임금의 명을 받아 그곳에 절을 지었으며, 임금께서 법화사라 이름을

지어 주시니, 그때는 동진 안제 의희 십삼년 봄이었다.

 

 



몸을 연꽃에 의탁



옥엄은 낭야 임기 사람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대궐 안에서 문서를 맡아보는

사람이었고, 옥엄의 벼슬은 황문랑에 이르러 신안태수가 되었는데 항상 정성이

지극하여 불교 수행을 열심히 하였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고

법화경을 여러 해 계속 독송했다.

그의 동생인 옥고도 역시 채식을 하며 법화경을 매일 독송했다. 그러다가 옥엄이

죽었는데 동생인 옥고의 꿈에 형이 나타나서, 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 무량수불의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철엽 연꽃안에 태생하여 오백년 뒤에나 태에서 나와

부처님을 뵙게 될 것이다. 애써 법화경을 외웠기 때문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었지마는 어리석고 의혹이 많았기 때문에 태속에 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네게

알려주는 것이니 너는 부지런히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옮겨써라 하고 작별하고 갔다.





수명을 더 주고 어깨에 기록



법랑스님은 중국 황하강의 북쪽 산동성에 있는 무성 사람으로 강소성에 있는

팽성 정도사에 가서 사미스님이 되어 있을 때부터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쓰기

시작하여 늙도록 멈추지 않았다.

개황 13년에 쉰세 살의 나이로 죽었는데 칠일만에 염라대왕을 만났다.

대왕 앞에 여섯 도인이 있있는데 왕이 첫 번째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덕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예, 유마거사가 세존의

제자들과 대승불교에 관해 문답한 경인 유마경을 독송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왕은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하고, 다시 둘째번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행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다.

「저는 세존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가섭. 고귀덕왕. 사자후. 교진여 네 보살의

물음에 대해 일승불성의 미묘한 뜻을 설하신 경인 열반경 열 권을 독송했습니다.」

라고 하니, 왕이 역시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 하고, 세 번째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덕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다. 세 번째 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는 참회멸죄,

왕법론 및 제천옹호의 사상을 설하신 금광명경을 독송했습니다.」라고 하니

왕은 역시 남쪽에 가 서 있으라 했다.

왕이 다시 넷째번 스님에게 물으니 그 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는 열반경을

강설했습니다.」하니 왕은 「서쪽으로 가 서 있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 스님에게 물으니 스님은 「저는 인도의 천진보살이

화엄경의 십지품을 해석한 십지론을 강설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왕은 눈살을 찡그리고 「북쪽에 가 서 있으라」하고 여섯째번 스님에게도

물어보고 남쪽에 가 서 있으라 하였다.

왕이 이번에는 법랑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행업이 있는고?」

「법화경을 독송했습니다.」하고 스님이 대답하니 왕이 「동쪽에 가 서

있으라.」하였다.

그리고 왕은 사람을 시켜 북쪽에 있는 사람은 지옥도로 데려가게 하고

서쪽에 있는 사람은 축생도로 데려가게 하고 남쪽에 있는 네스님은 인간세상으로

데려가게 한 다음, 법랑스님은 천상세계로 데려가서 그 태어날 곳을 보게 하고

나이를 여든다섯살로 늘려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스님은 천궁에서 돌아와 홀연 깨어났는데 어깨위에 여든다섯 살이라는 붉은

글자가 은은히 나타나 보였다.






기와가 연꽃으로 변해



혜초스님은 단양 건원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법화경

독송을 업처럼 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라에서 영을 내려 승려 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하고 단속했다.

이에 스님은 기와굴 속에 숨어서 여러 해를 지내게 되었는데, 뒤에 금령이

없어져 자유롭게 되자 숨어 지내던 기와굴의 주인을 찾아가서, 빈도(貧道)가

이 안에서 법화경을 천여 번이나 독송했으니 깨끗이 소제하여 공양하시고 다시

기와 굽는데 쓰지 마십시오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스님의 말을 믿지 아니하고

수리하여 전처럼 기와를 구웠는데 꺼내보니 모두 연꽃모양으로 변하여 사방의

벽에 덮여 있었다.

이에 먼데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와 보고 모두 감탄하기를 마지 않았다.

또 혜초스님이 일찍이 절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을 때 사나운 짐승이 와서

들었는데 스님이 수계를 시키니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온순했으며 스님이,

신도는 이제 돌아가오 하니 맹수는 순순히 가버렸다.

이렇듯 스님이 하신 일들은 이승과 저승을 다 수없이 감동시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뒤에 병이 들어서 위독해지자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니

혜초스님은, 오래 산다고 기뻐할 것도 없고, 일찍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하고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서 조용히 숨을 거두시니 나이 일흔일곱 무덕 5년

(서기 622) 12월 6일이었다.

문인 중에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어 역시 법화경을 일만여 번이나

독송했는데, 임종하는 날 번개와 하늘꽃이 하늘에서 분분히 떨어지고 하늘의

음악이 요란히 들려와 절에 있던 스님들이 모두 보고 들었다. 또 스님은

연화대가 맞으러 오는 것을 보고 단정히 서서 합장하고 입적하였으니

사방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 들었다.





경전에서 사리가 흘러나와

 



수. 당때의 고승으로 성은 진씨요 화엄종의 제 2조인 지엄스님은 중국 섬서성에

있는 동주 사람이다.

나이 열세 살 때 범승을 만나서 출가하여 계법사에서 법화경. 유마경. 반야경

등을 배워서 그 깊은 뜻을 구명하여 마침내 통달하고 말과 행동이 다 뛰어난

고결한 법사가 되었다.

현경(서기 656~660) 3년에 하북성에 있는 태주 선장현의 여러 스님과

속인들이 지엄스님을 영선사로 청하여 법화경을 강설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스님은 이 절의 환향스님의 방에 거처하게 되어 첫날 밤에 법화경을

책상 위에 펴 놓고 한 대문을 찾아서 독송하려고 하였다.

환향스님과 시자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는데 지엄스님이 향을 피우자마자

홀연 법화경의 부처불자에서 세 개의 사리가 나와 오색 광명이 경 위에 찬란히

퍼지고 사리가 이리저리 흫러다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함을 보았다.

환향스님이 곧 절의 다른 여러 스님들에게 알려 모두 와서 예배하고 함께 사리를

거두어 모시려고 하니 사리는 도로 부처佛자로 흘러 들어갔다.

이에 스님들이 슬피 울며 예배한 다음 향을 피우고 다시 진용 뵙기를 발원하니,

사리가 다시 부처불자 가운데서 나와 흘러 다니다가 잠시 후에 다른 부처불자로

들어가 차례로 없어졌다.

이렇듯 지엄스님은 법화경을 수십번을 강설하여 영험을 느끼고 상서로움을

얻은 일이 이루 다 말할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부터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스님과 아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보고 작벌인사를 하고는 홀연 어느날 아침에 정원을 깨끗이

조제한 다음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어가서 그대로 입적하였다.

기이한 향기와 기운이 온 집에 가득 차서 칠일이 지나도록 남아 있었고 그 혀는

입적하고서도 몇 해 후까지 썩지 않고 머리털이 두 치나 자랐으며, 얼굴 빛이

생전과 같아 식견 있는 사람들은 다 그는 득도했다고 하였다.




부처님이 손으로 어루만지심

 



송나라 나여의 아내 비씨는 중국 감숙성에 있는 영주 사람이었는데 삼보를 믿고

공경하였으며, 여러 해 동안 법화경 독송을 부지런히 힘써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에 걸려 가슴이 몹시 아프게 되어 그 고통이 점점 더 심해져서

극도에 이르러, 온 집안이 크게 두려워하고 근심하였다. 비씨는 속으로, 내가

법화경을 부지런히 독송하였으므로 반드시 좋은 도움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끝내 그 보람이 없이 이제 죽어가는 것인가 하고 애타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창밖에서 손을 뻗으셔서 그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시니 이때 집 안

팎이 온통 금빛으로 빛나고 방에는 기이한 향내가 가득했다.

비씨는 꿈을 깨고 나서 그 마음이 몹시 상쾌하였는데 그 뒤로 병이 차차 나아

이내 완쾌되니 이것을 본 사람들은 신심을 일으키지 않는 이가 없었다.

 



문둥병이 나아

 


중국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강주 고산의 함천사에 법철선사라는 분이 있었다.

하루는 조용히 산을 돌아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생각하는 수행을

하는데 한 문둥병 환자가 토굴 속에 있다가 스님을 보자 먹을 것을 빌었다.

이에 스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절로 데리고 와 토굴을 파서 거처하게 하고 옷과

음식을 주면서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사람은 본래 글을 모르는데다가

아둔하고 어리석어서 가르치기가 몹시 힘들었지만은, 스님은 한 구절 한 구절

싫증내지 않고 꾸준히 가르쳐 주었다.

절반쯤 독송하게 되었을 때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그를 깨우쳐 준 후부터는

차차 총명해져서 깨달음이 빨랐으며, 이리하여 제 5 권에 이르자 몸의 헌데가

차차 아물더니 법화경을 전부 통달하다 몸이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말씀은 병에 대해 좋은 약이라는 말의 뚜렷한 징험이었다.

 



글자가 금으로 변해

 



장만복이라는 사람이 정관 연중(서기 627~649)에 낙주자사가 되었는데 그

성품이거칠고 포악하여 두무지 성실하지 못했다.

그는 부임해 가자, 관내에 덕행이 높은 스님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이에

좌우에서 시중드는 이들이 예, 묘지라는 한 여승이 있는데 수행에 매우 정진하고

또 법화경한 질을 만들어 법과 같이 받아가지고 공양하고 있어서

그 명성이 이 지방에 자자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만복은 시험삼아 사람을 보내어 그 법화경을 가져다 보려고 했지만은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주지 않았는데 이는 자사가 법을 보호하지 않고 또 재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복이 크게 노하여 다시 사람을 보내 억지로 요구하자 스님은 더 거절할 수가

없어서 법화경을 내어 주었는데 만복은 법화경을 얻기는 했으나 끝내 손도 씻지

않고 경을 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누런 종이이고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만복이 크게 노하여, 그 요망한 할망구가 이럴수가 있느냐하고 곧 좌우에 명하여

스님을 잡아 오라고 하니 사자가 스님에게 가서 말하기를, 스님의 경전에 글자가

한 자도 없어서 자사께서 크게 노하여 스님을 잡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니 스님은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자를 따라 자사의 관가에 이르러 문안으로 들어서니 두 금강신이 금강저를

두 손으로 받들어 스님에게 드리는 형상을 하고 있어 스님은 적이 마음을

놓았는데 바로 안으로들어가 자사의 앞으로 나아가자 법화경이 허공으로

올라가 글자가 모두 금으로 되어 나타났다.

자사는 스님이 이르자마자 금강신과 금으로 글자가 나타난 법화경이 허공으로

올라가 떠 있음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서 급히 대청 아래로 달려 내려가 스님

앞으로 가서 슬피 울며 예배하고 사죄 참회하였다.

만복이 스님에게 그 법화경을 만든 내력을 물으니 스님은, 경을 만들 생각을

하고는 먼저 산중에 닥나무를 심고 늘 향수물을 주어 잘 자라게 했습니다. 그

리고는 닥나무가 크게 자란 다음 진흙에 향수를 섞어서 종이 뜨는 집을 짓고

닥나무 껍질을 벗겨서 법식대로 향수로 깨끗하게 해가지고 직공을 고용하여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능히 법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모집했더니 스물너댓 살쯤

된 강남 사람이 모집에 응해 와서 법화경을 베껴 쓰게 했는데, 우선 진흙에 향수를

섞어서 청정하게 집을 새로 짓고, 서생은 사경을 시작하기 전에 사십구일 동안

재계를 한 다음 새로 지은 깨끗한 옷을 입고서야 비로소 쓰기 시작하였고, 외출했을

때는 돌아와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썼습니다. 쓸 때에는

소승이 손에 향로를 들고 꿇어 앉아 서생을 공양하였습니다. 법화경은 이처럼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정성을 다하여 완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승니, 남녀 네 종류의 옷을 각 각 열 벌씩 만들어 두고 경전을 빌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이레 동안 목욕재계하게 하고 새옷을 주어 입게 한 다음에야

경전 주었습니다. 이렇게 공경하면 영원히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스님의 법화경에 대한 지극한 정성을 들은 자사 장만복은 마침내 마음을 돌려

신심을 일으키고 법화경 일천 질을 만들 것을 발원하여 널리 사방에 공양하고

자기도 법화경을 받아가져 게으름이 없었다. 임기가 차서 자사가 돌아간 뒤에도

사람들은 법화경 신봉에 정성을 다했다.

 



선업은 따라 다녀

 



명나라 세종때 보은사 주지 스님은 말 한 필을 길러 마을에 볼 일이 있으면 그 말을

타고 오고가며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그 마을의 한 여인이 아이를 배었는데 하루는 꿈에 큰 말이 방으로 들어오면서,

저는 보은사 주지스님이 기르시는 말인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불도를 구하고자

합니다 하였다. 얼마 후 여인은 아들을 낳았는데 전일의 꿈이 하도 이상하여

사람을 보은사로 보내 알아보았더니, 과연 아이를 낳던 그날 그 시간에 주지스님이

타고 다니던 말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탈없이 잘 자란 후 여인은 주지스님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아들을

출가시켜, 스님은 그를 상좌로 삼게 되었다.

그런데 몇 해를 두고 가르쳐도 상좌는 머리가 둔해서 도무지 공부가

늘지를 않았다. 그래서 스님이, 네가 전생에 축생의 업보를 받아 익힌 것이 없어서

그렇구나. 그럼 전생에 많이 들은 법화경이나 익히도록 해보자 하고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더니 상좌는 단 한 번을 듣고 법화경 일곱 권을 모두 환히 외워버렸다.

스님은 다음과 같은 법구경을 설하었다.

방금 짜낸 소젖은 싱싱하듯

재에 묻힌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은 업은 당장은 안 나타나지만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그 뒤 스님이 어떤 곳에 갔더니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서 어떤 스님이 법화경을

읽고 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그 경 읽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끓어앉아

머리를 숙이고 선정에 들어가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당나라의 수아법사는 말하기를, 이는 부처님의 뜻이요 조사의 골수이며

내 마음의 경이다. 눈을 감고 명심하여 자세히 들으라. 제호의 맛이 좋아도

뱃속에 들어가면 곧 벌레다. 어찌 제호의 맛에 취하여 공부하지 않고 잠을 자까보냐.

이치에 통달하라 하였다.

 




죄의 갚음은 반드시 받아

 



중국 당나라 섬서성에 있는 부평현의 수리를 맡아 보는 도수감에 딸린 하급관리인

도수소리 반과는 친구들과 함께 들로 놀러 갔다가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양을 쫓아가

잡으려고 했다.

이에 놀란 양이 큰 소리로 슬피 울므로 반과는 주인이 알까봐 양의 혀를 빼어

죽여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안되어 반과는 혀에 부스럼이 났는데,

녹두알 같은 것이 가득 나서 음식도 먹을 수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별의별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어서 마침내 벼슬도 그만두고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의 후임자 정여경이 보고, 「이것은 틀림없이

저지른 죄의 갚음으로 받는 업병이니 법화경 한 질을 베껴써서 양의 명복을

빌어 보시오.」하였다. 반과는 문득 양의 혀를 빼어 죽인 일을 크게 뉘우치고

법화경 한 질을 베껴써서 양의 명복을 빌고 부처님께 나아가 진심으로 참회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얼마 안가서 병이 차차 나아 다시 벼슬을 하고 그 후로는 더욱

부지런히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눈 먼 상 좌

 



천병산 골짜기에 보문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었다. 규모는 작을망정 천병산

줄기가 내리 뻗어 갑자기 두 갈래로 갈라진 사이 절벽 아래 자리잡고 있어서

아늑하고 경치가 아름다윘다.

계곡을 따라 십여리를 내려가면 무학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비룡천이란 개울이

마을을 휘돌아 흐르고 개울을 따라 기다랗게 기름진 땅이 열리어 생긴 곳이었다.

보문암에는 육십고개를 넘은 철감대사와 왕노인 단 두 사람이 살고 있었고,

무학 마을에는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옮겨와 서원을 짓고 정주하고 있는,

철감대사와 같이 불교를 신봉하는 유일한 친구요 지기가 된 고진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비몽사몽간에 한 부인이 나타나서 철감대사에게 발우 한 벌을 바쳤다.

스님은 제자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아침 공양을 마치자 암자를 나섰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스님은 발길을 돌이켜 암자로 향했다. 일과인 법화경을

독송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평일보다 좀 늦어졌구나 생각한 스님은 발길을

재촉했다. 바로 그때 시냇물 소리에 섞여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울음소리를 따라갔다. 반석 위에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가 울고 있었다.

스님은 장삼소매에 받쳐 안고 보문암으로 돌아왓다. 등불을 밝히고 어린아이를

살펴 본 스님과 왕노인은 놀랐다. 어린아이가 장님이었다. 스님은 한참 어린아이를

들여다보고는 업보는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지 하고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노인은 심력을 다해 어린아이를 길렀다. 아이의 이름은 혜안이라고 지었다.

팔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날 새벽에 스님을 따라 법당에 올라가 예불을

마치고 나온 혜안은 비통한 표정으로, 저는 스님의 은혜만 입고 아무 보람없이

살아가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죽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스님은, 네 이름은

혜안이다. 혜안은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다. 네가 내 말대로만

한다면 십년 뒤에는 중생을 살릴 수 있는, 모든 의원 중에서 으뜸이 되는 부처님의

대의왕이 될 것이다 하고 타일렀다.

그날 저녁때 스님은 비룡천 개울가에서 삼베 자루에 모래를 가득 담아 가지고

암자로 돌아왔다. 혜안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법당에 올라가 예불한후에

혜안을 모래자루 옆에 앉히고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십년동안 이 모래자루를 주무르면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불러라. 그러면 이 모래 한 알 한 알이 다 신선이 만들어 먹는 효험이

신기하고 오래 사는 약인 선단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조금이라고

의심하면 헛일이 될 것이다. 능히 할 수 있겠느냐?」

「예, 이르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혜안의 얼굴에는 기쁨과 희망이 넘쳐 흘렀다. 혜안은 기어코 선단을 만들고야

말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그날부터 모래자루를 만지면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스님은 전보다 더 간곡하게 불법을

가르쳐 주고 불보살의 뛰어난 행적을 일러주어 성불을 도왔다.

혜안이 정진을 시작한지 벌써 구년이 되었다. 그 동안 모래자루를 스물일곱 번이나

새것으로 바꾸었고 모래알은 모가 닳고 닳아서 금강석같이 빛이 나는데 아직 선단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혜안은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더욱 정진에 정진을 더해갔다.

철감대사는 여든세 살의 고령으로 이제는 기력이 많이 쇠약해졌다. 어느날

대사는 평일처럼 이른 새벽에 혜안의 부축을 받아 법당에 올라가서 예불을

마치고 거처하는 방으로 내려와서 왕노인을 불러 고진사를 청해 오라고 했다.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기별을 받고 고진사가 급히 암자로 왔다. 왕노인과 혜안이도 옆에 모시고 앉았다.

대사는 새옷으로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진사어른을 오시라고 한 것은 부탁할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실은

오늘로 나의 이 세상 인연이 다하는 것 같습니다. 혜안이 너는 내가 간 뒤에도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을 성심으로 모시고 공부를 계속하여 내 뒤를 이어라.」

모두 대사가 입적한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대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왕노인은 오늘부터 절의 살림을 맡는 총지거사가 되어 주시오. 그러나

이 암자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려면 고진사께서 적극 도와 주셔야 하겠습니다. 두 분께

뒷일을 부탁합니다.」

말을 마친 대사는 합장하고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을 염한 다음 조용히 자리에

누워 영원히 눈을 감았다. 철감대사가 입적한 이듬해 시월 십사일은 혜안스님이

정진을 시작한 지 만 십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모래는 아직 선단이 되지

않았다. 혜안스님은 실망하지 않고 앞으로 다시 십년이 더 걸리더라도 기어코

철감대사의 뜻을 이루리라 결심했다.

이튼날 혜안스님이 법당으로 올라가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한 신도가

황급히 달려와서, 스님, 스님, 큰일 났습니다. 고진사 어른이 그만...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스님은 그를 따라 급히 고진사가 있는 데로 갔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고진사는 중풍을 일으킨 것이었다. 스님은

사람들을 물리치고 고진사의 맥을 짚어 보았다. 맥박이 몹시 잦고 몸이 불덩이

같이 뜨겁고 숨소리가 몹시 가빴다. 스님은 고진사의 옷을 벗기게 하고 모래를

자리에 흩고 고진사를 그 위에 눕히게 한 다음, 온 몸을 주무르면서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한참만에 고진사는 차차 정신이 들어 눈을 떠 사방을 둘러보았다. 얼마 안되어

고진사는 언제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깨끗이 나았다. 모두들 이 엄청난

기적에 오히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혜안스님의 기적같은 의술의 소문은 자꾸만 번져나가 병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몇 달이 안되어 하루에 사십 명 오십 명씩 불어 나갔다.

그리고 아무리 중한 병에 걸린 사람도 스님의 치료를 받기만 하면 새사람이

되어 돌아갔다.

이 무렵 대궐에서는 공주가 중풍에 걸려 삼년 동안 온갖 약을 다 써 보았지마는

조금도 차도가 없어서 온 대궐 안이 근심으로 나날을 보냈는데, 혜안스님의 의술이

용하다는 소문이 서울에까지 알려져서 대궐에서도 알게 되었다.

사신이 급히 말을 달려 보문암으로 내려왔다. 스님을 만나 왕명을 전하고 급히

상경하기를 청했다.

스님은 이 보문암으로 찾아오는 병자들을 응급조치할 수 있도록 마련한 후

모래주머니를 가지고 사신을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혜안스님은 대궐로 들어가 공주의 병실로 인도되었다.

잠시 공주의 맥을 짚어 본 다음 병실에는 왕후와

여관 한 사람, 그리고 시의 한 사람만 남아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 물러가게 했다.

스님은 자리에 모래를 깔고 공주를 속옷만 입혀 모래 위에 눕히게 했다. 그리고

합장하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공주의 맥을 따라 주물렀다.

스님이 치료를 마치고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공주가 크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앉았다.

삼년 동안이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던 중환자가 금시에 정신을 회복하고

자리에 일어나 앉았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랴. 참으로 기적이 일어난것이었다.

임금과 왕후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이 공주의 회복을 기뻐했다. 임금은

몇 번이고 고맙다고 치하하고, 스님의 소원을 말씀하시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고 이루어 드리리다 하였으나, 스님은 아무런 소원이 없다고 하고

곧 돌아가기를 원했다. 임금은 대신을 불러 해마다 쌀 오백섬을 보문암에

내리게 하고, 스님에게 왕이 내린 증표로 내어 보이면 어떤 관원이고 그의 청을

거역하지 못하는 여의패를 내렸다.

혜안스님이 천병산 보문암까지 이틀길이 남은 두 고을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

행렬 앞에서 여인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 못보는 불쌍한 여인입니다. 밝으신 사또께서 제 딸을 찾아 주십시오.

제 딸을 찾아 주십시오.」

호위하는 군사가 여인을 꾸짖어 물리치려고 했으나 여인은 그냥 몸부림치며

호소했다. 스님이, 잠깐 나를 내려주고 저 여인을 데려와 주시오 하여,여인이

스님의 앞에 인도되었다. 여인은 장님이었다. 스님이 인자한 말소리로, 무슨

사연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고 물었다.

「저는 죄 많은 여인입니다. 남편을 잃고 눈이 멀어 어린 딸을 지팡이 삼아서

유리걸식하다가 오늘 이 근처에서 어떤 자에게 딸을 빼앗겼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갑니까.」 하고 여인이 애원했다. 그리고 빼앗아 간 사람은 이 고을

관속들이라 하더라고 했다. 스님은 우선 그 여인을 고을 숙소로 데리고 가게 하였다.

마중나온 원이 이 사실을 듣고 이것 큰일 났구나 생각하고 스님과 여인을 객

사로 인도해 들인 다음 급히 아전들을 불러, 어느 놈이 그 여인의 딸을 겁탈했느냐?

영접나갔던 관속들을 모조리 형틀에 올려매어라 하고 불호령을 내렸다. 관속들은

사시나무 떨듯했다.

그리고, 일을 저지른 놈은 빨리 나오너라 하고 아우성을 쳤다. 한 군노가

벌벌 떨면서,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했다.

원은 곧 군노를 옥에 가두고 처녀를 데려다가 그 어머니에게 인도하고

스님의 앞에 끓어앉아 자기의 불찰을 사죄했다. 그리고 범인은 곧 처형하겠다고했다.

인자한 스님은,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사람은 찾았고 범인은 자백하였다니

잘 타일러서 석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원은, 인자하신 뜻을 받들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범인을 데려오라 하여, 너를 당장 처형할 것이지만

인자하신 대사님의 분부로 석방해 주는 것이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렸다 하고

결박을 풀어 주었다. 군노는 눈물을 흘리면서 수없이 절을 하고 물러갔다.

딸을 찾은 여인은 감격하여 합장하고 울면서 그 은덕을 고마워했다. 더욱이

스님도 자기처럼 장님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지난 날 일이 회상되어 하염없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스님은 여인을 다정하게 위로하고, 은혜와 원한은 백지 한 장 차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은혜와 원망은 모두 마음의 집착에서 오는 망녕된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망녕된 생각을 없애려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하면 됩니다.

라고 하였으나 여인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스님은 다시, 선과 악 그리고 그 인과응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죄지은

사람이라도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죄가 없어집니다 하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설했다. 여인은 어쩐지 스님의 내력이 마음에 걸렸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십니까? 성씨는 누구신지요? 부모님은......? 하고 물었다.

「예, 나는 천병산 보문암에 있습니다. 나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계십니다.

철감대사께서 강보에 싸여 개천가 반석위에 버려진 나를 데려다 기르셨으니

성도 모릅니다.」하고 스님은 기탄없이 대답했다. 여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럼, 지금 스님의 연세는 얼마이십니까?」

「열 아홉입니다.」

혹시나 하던 여인은 이제 더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스님에게 왈칵 달려들어

얼싸안고 흐느껴 울었다. 스님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스님은, 지난 일을

슬펴하실 것은 없습니다. 떳떳하게 자식이라고 부러 주십시오. 모두가 인연입니다.

피할 수 없는 업보 소관입니다 하고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날 밤 스님은 어머니의 눈을 뜨게 하였다. 어머니는 버릴 때의 아들을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딸을 불러 세 사람은

다시 한 번 얼싸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자정이 지나 문득 스님의 눈도 검은 안개가

깨끗이 걷혔다. 세 사람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부처님의 뜻에 감사하여

스님은 법화경을 독송하고 모녀는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여인이 참회의 눈물을 걷잡지 못하면서 이야기한 내력은 다음과 같았다.

스물세 살에 여인과 결혼한 스님의 아버지 남씨는 부농의 아들인데, 몸이

허약한데다가 과거 공부에 너무 애를 써서 결혼한 지 사년만에 스님을 유복자로

남겨놓고 죽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홀로 일생을 마치기로 결심했으나

남편을 잡아먹었다고 트집을 잡아 못살게 구는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몇 번을 죽을 생각까지 했었다. 그 무렵 이웃에 사는 문씨라는 청년이 넌지시

동정하여 마침내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무작정 집을 떠났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아디로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그렇게 유랑하다가

어느 집 헛간에서 몸을 풀었다. 갓난아이는 장님이었다. 두 사람은 생활고에

몸부림쳤다. 갈수록 앞 길이 막연했다. 문씨의 짜증이 날로 늘어났다. 그들은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기로 하고 천병산 골짜기로 들어섰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종일 길을 걸은 그들은 지칠대로 지쳐서 이제 한 발자욱도 옮길 기력이

없었다. 시냇가의 반석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은 저물어 갔다. 어떻게 시장기를

면할 것인가, 어디서 또 하룻밤을 지낼 것인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죽어버리자고 도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마침내 문씨는 눈 먼 아이를 버리고 가자고 했다. 옥신각신 싸우다 못해

어머니가 졌다. 두 사람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어린아이를 뉘어두고 힘없이

발길을 옮겨 놓았다. 얼마를 걸어갔다. 그러나 버리고 온 어린아이가 눈앞에

아른거려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죄책감이 마음을 쥐어뜯었다. 견디다 못해

두 사람은 발길을 돌이켰다. 쉬던 자리에 이르러보니 어린아이가 간 곳이 없었다.

필시 산짐승이 물어간 것이라 생각하자 미칠 것만 같았다.

그 근처를 얼마를 헤맸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천병산에서

사는 것이 두려웠다. 며칠을 북으로 북으로 도망치듯 발길을 옮겼다.

그러다가 한 곳에 이르러 어느 부농의 고용인이 되었다. 문씨는 머슴살이,

어머니는 식모가 되었다.

이때 딸 정화가 태어났다. 두 사람은 오륙년을 부지런히 일하여 조그만 집도

장만하고 논도 몇 마지기 손에 넣었다. 이제 그런대로 아무 걱정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또 불행이 닥쳐왔다. 어느 해 그 지방에 전염병이 돌아

문씨가 병에 걸려서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했으나

딸 하나를 정성을 다해 키우리라 결심했다. 굳세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문씨가 죽은지 일년 남짓하여 까닭없이 어머니의 눈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아주 멀고 말았다. 일을 할 수 없었다. 얼마 동안은 논을 팔고

집을 팔아 살아갔으나 이제 아무것도 없게 되어, 어머니는 딸을 앞세워서 지팡이를

삼아 이 마을 저 동네로 구걸하여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 딸을

군노에게 빼앗겼던 것이다.

「천벌을 받아 진작 죽었어야 할 어미였다.」

지난 일을 울음 반 말 반으로 다 이야기하고 난 여인은 설움이 다시금 북받쳐

올라 흐느꼈다. 정화도 울고 스님도 울었다.

이튿날 아침 원 이하 모든 사람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하룻밤 사이에

장님이었던 스님이 눈을 떳고 장님이었던 여인이 눈을 떴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인이 스님의 어머니라는 말을 듣고는 또 한 번 놀랐다.

법화경을 독송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한 공덕이 이렇게도 클 수 있느냐고

모두들 불법의 거룩함에 새삼스러이 탄복했다.

혜안스님은 어머님와 누이동생을 데리고 보문암으로 돌아왔다. 수백 명의

환자가 스님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스님은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기에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어머니는 삭발하고 출가하여 보살행을 힘썼고, 감격하여 따라온 군노는

전혀 딴사람이 되어 절의 온갖 일을 도맡아 했다.

나라의 도움도 있고 하여 절은 크게 번창해갔다.

전각이 잇달아 세워지고 신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보문암을 보문사라 부르게

되었고 세상 사람은 혜안스님을 혜감 대사라 불렀다.

천병산 골짜기에서 법화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영기가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그 소리와 영기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나갔다.

<佛敎生活>

 

 



장님으로 눈이 없어도 능히 보아

 




청신사 왕범행은 중국 산동성의 낭야현 임기 사람으로 어려서 양쪽 눈이 다

멀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입으로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나이 열여덟에 법화경을 통달하여 밤낮없이 열심히 일만 칠천 번을 외웠으니,

비록 눈이 멀어 보지는 못했지마는 길을 걸어도 남이 인도해 줄 필요가 없었고

또 길 가운데 구덩이가 있음을 스스로 알았으며 능히 자리를 짜고 옷을 꿰메고

편지쓰기를 오히려 눈성한 사맘보다 더 잘했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기었다.

그가 일흔한 살의 나이로 개황 육년에 명을 마쳤는데 그의 시체를 들판에

내다놓으니 새와 짐승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였고, 살이 다 없어진 뒤에도

백골이 남아 있어 혀가 입 밖으로 한 자쯤 나와서 빛이 연꽃과 같이 아름다웠다.

그의 아우인 혜의가 벽돌로 함을 쌓아서 넣어 두었는데 오래도록

그 혀는 썩지 않았다고 한다.

 

 




자리에서 향내가 나

 



만상스님은 옹주 만년현 사람으로 법화경을 낭송하고 그 뜻과 이치를

십여 번이나 해설하였다.

스님이 일찍이 처마 밑에서 법화경을 외우고 있노라니 흰 꿩이 홀연히

날아와서 좌우에 엎드리는지라. 스님이 손으로 잡아도 놀라서 나부대지

않고 무시로 왔다갔다 하였다. 또 화로에 숯불이 저절로 피어나기도 하고

혹은 좌상 뒤 자리 밑에서 자주 기이한 향내가 나며 또 방 뒤의 나무위에

탑 같은데 모셔 놓는 조그마한 불상이 어느 사이에 와 있기도 하였는데,

푸른 참새 한 쌍이 양쪽에 스님을 모시는 듯 서 있다가 스님이 그 불상을

모셔 들여오니 새는 훌쩍 날아가버렸다.

또 스님이 한밤중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홀연 비몽사몽간에 서북쪽 하늘에

굉장히 높고 아름답게 장식한 보탑이 나타나고, 동북쪽에서는 일곱 개의

별 속에서 일곱 부처님이 나오시니 금빛 찬란한 모습이 한없이 단아하고

명랑하신지라, 서로 기뻐하시고 예배 찬탄하시더니 잠시 후에 유연히 없어졌다.

만상스님은 법화경을 사천여 번이나 외웠는데 입적할 대 제자더러 보현보살의

이름을 부르라 하더니 갑자기, 보현보살이 오셔서 내 오른쪽에 계시다고

하고는 숨을 거두니 나이는 일흔 살이었다.

 

 




호주의 천하상좌




중국 오나라 오흥에 본명이 포옥인 한 스님이 있었는데

어머니 매씨가 스님을 잉태할 때 신령스러운 상서가 있어

냄새나는 풀을 싫어하였다.

나이 일곱 여덟 살이 되자 여승이 관장하는 이총지의

법화사에서 출가하여 법화경 외우기를 소원하니 석달만에

환히 외우고 날마다 칠권을 다 독송하였으며, 스무 살 때

서울로 가서 수계를 받아 계율과 불도 수행을 맹세하였다.

이에 앞서 숙종황제가 밤에 꿈을 꿨는데 오나라 슬여가

법화경을 독송하니 그의 입에서 오색 빛이 나오고 그 목소리는

맑고도 고왔다.

이튿날 아침 황제는 영을 내려 서울 안에 있는 승려로서

법화경을 외울 수 있는 이 이백 명을 대궐 안으로 불러들여

보았으나 모두 꿈의 그 스님이 아니었다.

이때, 포옥이 마침 관중으로 들어오는데 관문을 지키는

우두머리가 멀리서 온 까닭을 물었다. 이에 포옥은 나는

법화경을 잘 독송합니다. 그래서 수계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니, 관문 지키는 관령이 황제에게 아뢰었고 또 황제는

곧 그를 불러들여 보고는, 내가 꿈에 본 그 사람과 목소리와

용모가 흡사하다 하고 전각에 오르게 하여 자리를 주고

법화경을 독송하라 하였다.

스님의 독송이 수희공덕품에 이르자 입에서 오색빛이

내뻗어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내가 꿈에 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독송이 끝나자 황제는 우유와

호도와 백합으로 죽처럼 만든 칠보탕을 하사하고 새로이

향단을 쌓아서 수계하게 하고 대광이란 법명을 내리고

천하상좌에 봉하여 천복사에 있게하였는데, 스님의

독송하는 소리가 널리 퍼져서 늘 황제에게도 들렸다.

스님은 또 중국 섬서성의 남전 장사사에 있었는데, 이 절

스님의 꿈에 천상계의 동자가 내려와서 대광스님의 경 읽으시는

소리가 유정천에까지 들려옵니다. 그 분은 예사 분이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이 무렵 모두들 대광스님을 양나라 때 이총지의 후신이라고 했다.

뒤에 스님은 황제에게 청하여 오흥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이때, 이신이란 사람이 오흥의 자사로 있었다. 하루는

술이 취하여 지경도량에 쓰러져 자가다 밤에 깨어 보니

흰 빛이 대광스님의 방안에 가득한지라, 이상하게 생각한

이신은 문 틈으로 스님의 방 안을 들여다보니 스님이

선정에 들어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조용하게 하고 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스님의 입에서 흰 빛이 나오는 것이었다.

독송하는 소리가 멎자 빛도 따라서 거두어졌다.

이를 본 이신은 본래 불교를 그다지 깊이 믿지 않았지만은

대광스님을 깊이 공경하여 친히 비문을 지어 제목을

묵조지경대덕신이비문이라 하였다. 전에 스님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오흥으로 둘아가기를 청했을 때 황제가

친필조서인 묵조를 한 통 내렸던 것이다.

 

 




신인이 허공에 머물러

 




현진스님은 중국 안휘성의 수춘 사람으로 영복사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 없었다.

어느 해 가을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스님은 달을 바라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제 칠권의 절반쯤 이르렀을 때

옆방에 있는 한 사문이 갑자기 일어나서 변소에 가려고 방에서 나와

뜰에 내려서 보니 밝은 달빛에 엄청나게 큰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마당에 비치고 있었다. 무슨 그림자인가 하고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공중에 한 신인(神人) 이 의연히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사문은 걸음을 멈추고 똑바로 서서 우러러 보았는데 현진스님의

법화경 독송이 끝나자 신인도 홀연히 없어졌다.

사문은 이때부터 법화경을 배워 독송하여 종신토록 게으름이 없었다고 한다.

 

 




폭풍이 배를 뒤엎어도



신라 때 보개라은 한 여인이 서울(경주) 우금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장춘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장삿배를 따라 바다로 나가서

돌아올 때가 되었으나 소식이 묘연하여 어머니는 아침 저녁으로 근심

걱정하다 몸까지 몹시 쇠약해졌다.

그러다가 다행히, 관세음보살의 신통한 힘에 의하여 설혹 폭풍이 불어

그 배가 표류하여 사람 잡아 먹는 흉악 무도한 나찰귀의 나라에 떨어질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환난에서 벗어날것이라는 관세음보살의

시현하심을 듣고 곧 깊은 신심이 생겨, 민장사의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이레를 기약하고 정성껏 부지런히 기도를 드렸다.

이레째 되는 날 홀연히 장춘이 나타나 어머니의 손을 잡으니 어머니는

놀랍고 기뻐서 아들을 얼싸안고 울었다.

절의 스님이 괴이하게 여기고 그 까닭을 물어보니 장춘이 말하기를,

제가 집을 떠나 바다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폭풍을 만나 함께 배에 탔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기밥이 되고 저만 홀로 널빤지를 타고 오나라에

표착했는데 그 나라 사람이 나를 데려다가 종으로 부렸습니다.

하루는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있는데 문득 한 기이한 스님이 와서 말하기를 ,

고국이 생각나지 않느냐고 하기에 나는 그의 앞에 꿇어 앉아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어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더니, 만약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거든 나를 따라오라하고 동쪽으로 가기에, 나는 곧 그 뒤를

따라 갔습니다. 한 곳에 이르니 수좌스님이 내 손을 잡아 이끄는데 정신이

몽롱해져서 마침 꿈 속과 같더니 홀연 우리나라 말이 들리고 내가 이 민장사의

관음상 앞에 와 있었습니다. 이내 우리 어머니인 줄을 알았지만은 오히려

꿈 속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천보사년 을유 사월 팔일 신시에 오나라를

떠나 술시에 이 절에 이른 것이었다.

경덕왕이 이 소문을 듣고 깊이 공경하여 전답과 곡식을 후히 내려 영구히

공양에 이바지하게 하고, 다달이 팔일이면 절에 행차하여 부처님께 예배하여

그 공덕을 찬탄하는 것을 정례로 삼았다. 어머니 보개와 아들 장춘은 인근의

청신사와 청신녀들과 합력하여 특별히 금자 법화경 한 질을 만들었으며,

해마다 봄 삼월에 도량을 베풀고 법화경의 미묘하고도 깊은 이치를 강설하여

수행에 정진하고, 관세음보살을 공경 예배하여 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敏藏寺記. 鶴林古記略. 傳弘錄>

 

 




항쇄 족쇄가 저절로 벗겨져

 



진나라의 장창이 초왕이 되었는데 그는 장사왕과 함께 어떤 일로하여

죄를 다스리는 관아에 체포되었다.

장창은 일찍부터 정법을 믿고 있었는데 체포되자 곧 발심하여

법화경 보문품을 일천 번 독송하여 죄를 면하기를 바랬다. 마음에

생각하여 입으로 하는 말이 지극해서 항쇄 족쇄가 저절로 끊어지고

부서져서 두 사람 모두 처벌을 면했다고 한다.

개호는 중국 강소성의 산양 사람으로 옥에 갇혀 죽게 되었는데

사흘 낮 사흘 밤을 잠시도 쉬지 않고 꼬박 관세음보살을 부르니

관세음보살이 눈에 보였다. 보살이 빛을 놓아 그를 비추니 형구가

벗겨지고 문이 열리었거늘, 개호가 그 빛을 따라 이십여리쯤 가자 빛은 없어졌다.

<謝數觀音傳. 現應錄>

 

 




불탄 경전이 변하지 않아

 



중국 사천성 융주에 사는 호원궤는 불법을 독실하게 믿었다.

법화경과 금강경과 열반경 등을 베껴썼는데 잘못 쓸까봐 두려워서

마침내 땅굴 속에 들어가 쓰고는 한 선서에게 교정을 청했다.

경이 완성되자 그는 곧 경을 섬서성 기주에 있는 시골 농촌에 있는

집으로 가지고 갔는데, 하루는 볼 일이 있어서 어디를 갔다가 와보니

그 집이 이웃불에 연소되어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땅을 치며 한탄했지만은 별 도리가 없었다.

그가 사람을 시켜 잿더미를 헤쳐 보니 책을 매어 장식했던 금동의 축이

드러나고 여러 경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며 종이 빛깔은 오히려

변하지 않았는데 다만 금강경. 반야경의 첫머리 제목만이 검게 타 있었다.

이를 보고 그가 혼자말로 중얼거리기를, 처음 베껴 쓸 때 한 관원이

글씨를 잘 썼는데 갈길이 바빠서 미처 몸을 청결하게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목을 쓰더니 그래서 제목만 타버렸구나 하였다.

<弘贊傳第十 . 現應錄>

 

 




경전에 글자 한자 없어

 




당나라 무덕 때 법신이라는 한 여승이 있어 법화경에 통달하였는데

법화경을 한 질 깨끗이 베껴 쓸 생각을 하였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을 수모문하여 보수를 갑절로 주고 딴 채에 거처하며

베껴 쓰게 하였는데, 언제나 일어나면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서야 책상을 향해 앉게 하였고, 또 벽에 구멍을 뚫어 밖으로 통하게 하고

대나무 토막을 꽂아서 서생이 숨을 쉴 때에는 이 대나무 토막을 입에 물고

숨을 밖으로 내쉬게 하여 외부와 연락을 끊고 일심으로 법화경을 쓰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법화경 한 질을 베끼는데 팔 년이 걸렸다. 경이 완성되자

재를 베풀어 완성을 경축하고 찬양하며 깨끗이 도량을 세워서 꽃과 향으로

공양하였다.

정관 십삼 년에 용문사 스님 법단은 늘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이 법신 스님의 경이 정성이 지극한 것이라 하여 사람을 보내 청하였다.

법신스님이 굳이 거절하였지마는 법단 스님은 그대로 가져갔다.

그리하여 법을 강설할 양으로 경전을 펴 보니, 그것은 누런 종이일 뿐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법단 스님은 부끄러워서 곧 돌려보냈는데 법신스님은 무슨 잘못이

있었음을 알고 곧 향탕으로 씻고 상자를 머리에 이고서 불상의

둘레를 돌아 도를 행하기를 무릇 이레 낮 이레 밤을 한 다음에

뚜껑을 열어 보니 경전이 전과 같이 되어 있었다.

<法苑珠傳. 弘贊傳第十>

 

 




피를 뽑아 법화경을 써

 

 



송나라 사조스님은 법화경이 몹시 영험함을 알고 자기의

피를 뽑아 법화경 한 질을 써서 책갑에 소암 이라 쓰고

오로지 일심으로 부처님을 염하는 염불삼매를 수행하였다.

스님이 법화경과 정토칠경을 쓸 때, 절 한번 하고 한자 쓰고

절 한번 하고 한 자를 써서 모든 힘과 정성을 다 기울였다.

그동안 삼십여 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선화원년 어느날 저녁에

금색신의 한 부처님이 나타나시는 것을 보고 스님은

가부좌를 맺고 앉아 조용히 입적하셨다.

 

 




살생은 지옥가는 길

 



송나라 수주 사람 강학사가 스무 살 때 아무 병없이 갑자기 죽었다.

강학사가 명부에 가니 염라대왕이 말하기를, 너는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하여 금생에는 여든두 살의 명을 타고 났는데 진사가 되어

소를 잡아먹은 죄로 네 명과 복을 줄인다. 너는 해주에서 뇌성 폭우에

벼락맞아 죽은 사람들을 보지 아니하였느냐?

그 사람들의 죄는 모두 여서 가지 가축인 소. 말. 돼지. 양. 개. 닭을

죽인 죄이니라. 너는 횡사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느냐? 그들은

다 소를 잡아먹은 죄이니라 하고 꾸짖었다. 강학사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때, 한 관리가 너는 개과천선하면 곧 인간에 돌아가게 할 것인데

지옥에 들어가면 나올 기한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잠자코 처분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한 관리가 다시 말하기를 명부에서는 글 잘 하는

사람을 공경하므로 법화경이나 금강경을 독송하면 감응하여 죄를

용서해 줄 것이다. 네가 만약 발심하여 일심으로 경전을 독송하겠다면

죄를 용서해 줄 것이로되 그렇지 아니하면 지옥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강학사가 돌려보내 주신다면 진심으로 저의 허물을 참회하고

일심으로 경전을 베껴 쓰겠습니다. 하였더니, 염라대왕이 돌려보내 주었다.

다시 살아난 강학사는 명부에서의 일을 명심하여 불법을 힘쓰고

법화경을 베껴쓰고 또 남에게도 베껴쓰게 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족끼리 화목하여 집안이 편안하고 살림이 윤택해졌다.

그는 또 학문을 열심히 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순조롭게 승진하여

높은 벼슬을 얻었다.

 

 




신선이 보탑품 외우기를 청해

 




옛날 한 법사가 항상 법화경을 외우고 있었다.

한번은 정처없이 각지를 유람하다가 어느날 산길을 지나가는데

한 하인이 산중의 조그만 집으로 가기를 청하여 문앞에 이르러 보니,

모습이 범상하지 않은 노인이 나와서 법사를 맞아 들였다.

노인이 높은 자리를 마련해 놓고 말하기를 자리에 오르셔서

보탑품을 외워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하여, 법사가 자리에 올라 유창하게

보탑품 한 편을 외웠다. 그러자 노인이 수고하셨습니다 하고는

복숭아 하나와 금 한 덩이를 주었다. 그리고는 하인더러 모셔다

드리라고 하였다.

법사가 골짜기 어귀까지 나와서는 그 노인이 누구시냐고 하인에게 물으니,

말은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법사의 손바닥에다 성은

손이고 이름은 사막이라 써 보이고는 그만 사라져 버렸다.

손사막은 당나라 화원 사람으로 백가의 학설에 통달하고 음양주보 및

의술에도 통하여 찬금요방. 복록론. 섭생신록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나라에서 국자박사와 간의 대부등의 벼슬을 주었으나 이를 사양했던 사람이었다.

법사는 받은 금을 팔아서 갑자기 큰 부자가 되었으며 또 그 복숭아를 먹고는

오래 살았다.

<現應錄>

 

 




소가 된 어머니를 천도하여

 




명나라 성천 스님의 호는 낭연이었다. 오성 사람으로 일찍이 보타사에 들어가

출가하여 불법을 배워 익혔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하고

축생의 보를 받았을 것 같아 태창 경신년에 남해로 가서 훌륭한 법사를

청해다가 법화경을 독송하니 우연히 부근에 있던 힘이 센 소가 갑자기 죽었다.

그날 밥 스님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옛날 업이 무거워

아무개네 집 소가 되어 있었는데 오늘 네가 법화경을 독송해 준 공덕으로

소의 몸을 면했다고 하고 스님에게 절을 하면서 참회하였다.

성천스님이 몹시 측은하여 다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어머니의 인간계 환생을

기도드리니 그날 밤 꿈에 어머니가 또 나타나서, 나는 네가 경 읽고 예참한

힘을 입어 동쪽 마을 아무개네 집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그리 알라고 하였다.

스님이 이 말을 명심했다가 이듬해 그 집을 찾아가보니 과연 정씨 집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서로 보고 놀라는 표정을 할 뿐이었다.

스님은 절로 돌아가자 곧 도량을 깨씃이 치우고 몸에서 피를 내어

법화경 일곱 권을 다 써 마치고 진흙으로 연잎을 만들어 벽에 붙이니

모든 상이 관세음보살께 절을 하는 모습을 했다. 이를 보는 사람마다

환희심을 일으켜 발심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동지 섣달에 연꽃이 피어

 



법융스님은 속성이 위씨인데, 단양 연릉현 신정사람이다.

어려서 속세을 떠나 법복을 입고 회영산 숲속에서 법화경을 배우다가

책을 짊어지고 천리길을 멀다하지 않고 높은 스승을 찾아 다녔다.

뒤에 그는 단양 우두산의 유서사로 돌아와서 따로 조그마한 집을 짓고

다시 법화경 수행에 몰두하니, 사방에서 학자와 스님들이 모여들어

흔연히 그에게 귀의하였다.

그래서 법융스님은 골짜기 어귀에서 크게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이때가 마침 몹시 추운 겨울이라, 나뭇가지에는 서리가 하옇게 엉켜 붙였는데

강설하는 곳에는 두 줄기의 연이 나서 금빛 연꽃이 활짝 피었다. 모두들

크게 놀라고 기이하여 감탄하기를 마지 않았다.

그리고 법화경을 강설할 때면 또 한 마리 커다란 사슴이 반드시 와서

강설을 들었으므로 문인들은 크게 발심하여 법화경 수행을 정업으로

삼고 힘써 행하였다.

법융스님은 뒤에 어디서 입적하였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弘贊傳第三>

 

 




보살이 육아의 코끼리를 타고 와

 

 



고제때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영암사에 머물러 있으면서 동쪽 숲에서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항상 정성을 다했으며, 몸과 옷을 깨끗이 하고 향을 피우고 부처님을

공경예배하며 징험이 있기를 빌었다.

처음에는 큰 뱀과 꿩 노루 등이 와서 법화경 독송을 듣다가 독송이끝나면

흩어져 갔고, 한낮이 되면 산신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스님을 공양하였다.

후에 홀연 찬란한 광명이 동산에서 내려오는데 큰 보살이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보살을 호위하여 바로

스님의 앞으로 다가왔다. 스님은 광명을 바라보고 엎드려 절을 했다.

한없이 기쁘고 즐겁더니 경전의 의심나는 구절과 탈락된 글자가 다

저절로 환히 깨달아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만 기이한 향내가 코를

찌름을 깨달을 뿐이었다. 향내는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弘贊傳第7>

 



 

 

 



소리를 높이 하여 경을 독송함에 수호 병정이 뜰에 가득하다

 



승영이라는 스님은 젊어서 출가하여 강양 영제사에 머물러 있었는데 나이가

늙도록 법화경을 독송하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웃 방에 다른 법사 한 분이 있어 항상 승영이 소리 높여 법화경을

읽는 것이 자기 간경에 방해가 된다 하여 승건이라는 스님에게 승영의

고성독경을 못하도록 부탁하였다.

승건이 허락하고 그날부터 권고하기로 하였는데, 마침 승영이 달이 창에

밝음을 이용하여 언제나처럼 경을 외우거늘 승건이 막 승영에게로 가려고

할 때 멀리 바라보니, 승영의 방앞에 수천의 사람이 있어 몸에 의갑주를

굳게 하고 창과 활을 지니고 합장하고 끓어 앉아 정성스럽게 그 송경소리를

듣거늘 승건이 크게 놀라 가만히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이웃방의 법사를 찾아가 어젯밤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승영에게

그들의 허물을 크게 참회하였다.

승영이 혹 출입을 하면 팔부신장의 호위하는 형적이 항상 나타났는데

개황연중에 영제사에서 열반하였다 한다

 

 




동자가 보기에 가득한 뱃사람이 모두 수족이 묶여 있다

 



명나라 때 소주 사람 장수는 항상 법화경을 지송하고 수행하는

스님께 만발 공양하기를 좋아하더니 만력 신해년 봄에

이르러는 보타낙가산으로 가서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드려 볼까 하고 여덟 살 먹은 손자를 데리고 떠났다.

가는 길에 향주에 이르러서는 하루라도 속히 가려는 생각에

육로인 서릉 땅을 경유치 않고 해로로 배를 타고 건너려 하였다.

그때 해안에는 배들이 널려 있었는데 장수가 어떤 한 배에

오르고자 하니 마침 그 어린 손자가 배를 넘겨다 본즉 배에

가득찬 사람들이 모두 포승으로 손발이 묶여 있는 것이었다.

이에 손자가 급히 장수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며

못 오르게 하고 말하기를, 그 배는 이상스럽게도

여차 여차하오니 여간 위험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장수는 크게 놀라서 어린 것의 말이라도 아니 들을 수 없다

하여 다음 배에 오르고자 하니 그 손자가 또 만류하기를

제가 본즉 그 배도 앞의 배처럼 불상지조가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장수가 다시 그 말을 소중히 듣고 그러면 그 다음

배를 살펴보라하니 손자가 가로되 그 배는 아무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장수가 위방불입이요 난방불거라 하였으니

좋은 배에 올라 보자 하며 그 배를 향하려는데 뜻밖에

사공같은 사나이가 뱃머리로 쑥 나서며 이 배가 안전하니

노인장은 어서 오르시오 하고 누군가 등 뒤에서 배 위로

밀어주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장수는 여러 가지 이상한 징조에 감격하여 급히 손자를 끼고

그 배로 뛰어올라 살펴보니 이 배로 올라오라고 부르던

사람과 등 뒤에서 밀어주던 사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배들이 해안에서 출발하여 중류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날이 저물고 사방이 캄캄해지면서 그만 폭풍이 일어나는데

물결은 눈빛처럼 뱃전에 와 크게 부딪치며 모진 바람이 일어

먼저 두척 배는 그만 그 자리에서 엎어졌는데 그 배에 탔던

사람은 한명도 살아나지 못하였고 오직 장수가 탄 배만 순풍을

만나 편안히 육지에 도착하였다.

이튿날 인화 현령이 하인들을 데리고 달려 나와서 수십명의

송장을 건져 내어 검시하여 본 결과 그들이 모두 아명 장사로

남의 신세을 망치거나 하는 사람이며 혹은 어린 처녀들을

적은 돈으로 사들여 도시의 창녀촌에 많은 돈을 받고 팔아 먹는

사람 백정이며 혹은 도박꾼으로 남의 재산을 여지없이

탕진하게 하는 악당이었다. 현령이 탄식하되 저런 불량한 자들이

배에 탔으니 천지신명이 미워하지 않겠느냐. 다만 그중 선량한

사람들도 몇 있어 함께 횡사한 것이 여간 애석하지 않다 하였다.

장수가 법화경에 인연을 맺고 있어 횡액을 면한 것은

두말할 것이 없지만, 배안의 불상지조를 동자에게만 보여주고

노인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은 본인이 보았다 하면 듣는 이가

반신반의할지라도 다른 이가 보았다 하면 그를 의심할 수 없기에

그러한 것이다.

 





부진 때 서의는 수족이 풀리어 몸을 숨기다

 



부진 때 고륙 땅 사법 서의는 그 나라의 상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젊은 때부터 법화경을 지극히 모셨다.

어느해 난리가 나서 서상서는 적국의 군인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적군은 그의 두 발을 땅에 파묻고 두 손을 포승으로 묶었으며 머리는 풀어

나뭇가지에 잡아매고 전후좌우로 수직군을 두어 그 이튿날로 쏴 죽이려 하였다.

이에 서의가 생각하기를 살아날 길은 전혀 없으니 후생 인연이나 깊이 맺자

하고 밤이 다 새도록 법화경을 소리없이 외우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비몽사몽간에 한 사람이 나타나 하는 말이 지금 일이

몹시 급한데 어느 시간에 잠을 자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서의가 깜짝 놀라

일어나며 수직군을 달빛으로 살펴보니 모두 피곤한지 잠이 들어 있고

시험삼아 몸을 움직여 보니 두 손과 상투 잡아맨 것이 스르르 풀리며

두 발도 흙에서 쉽게 빼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 이게 웬일이냐.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치는데 한 백여보쯤 갔을 때 수직군 한 명이

그만 잠에서 깨어나 큰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러 놈들이 횃불을 잡고 쫓아 오는데 서의는 쫓기며 생각하기를 바른 길로

갔다가는 반드시 잡힐 것이다 하여 숲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 납작하게

엎드리고 있었더니 수직군들이 그 옆으로 오락가락 하면서도 찾아내지 못하고

날이 밝자 모두 흩어져 가 버렸다. 그때야 서의는 숲에서 기어나와 그 근처

절로 찾아가 화를 면하였다.

 

 

 




범이 소리를 질러 도적을 물리치고 점차로 좋은 사람을 만나다

 

 



법애라는 스님은 장사땅 사람이라 항상 법화경을 외우더니 어느해 무슨

사고가 있어 교지국이란 곳에 가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난리를

만나 산속으로 피신하려던 와중에 다섯 명의 도적을 만나게 되었다.

도적들은 법애를 붙들어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어느 집 빈방에 가두어

놓았다. 그리고 문밖에서 수군거리며 하는 말이 점심을 먹고 난 뒤 저놈을

죽여 몸에 지닌 것을 뺏어 가지자 라고 하였다. 법애가 놀라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방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마침 목창 하나가 방 구석에 세워져

있는지라, 얼른 그 창을 가지고 벽을 뚫어 뛰어나와 북쪽을 향하여 도망을 쳤다.

이때 도적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나서 문을 열고보니 법애는 간 곳이 없고

북쪽 벽이 뜷려 있는지라. 다섯 놈이 아우성을 치며 뒤를 쫓아 오기에

법애는 창황망조해서 길 옆 가시덤불 속으로 뛰어들어 잠깐 몸을 숨기려 하는데

뜻밖에도 커다란 범 두 마리가 그곳에 엎드려 있다가 법애가 들어옴을 보고

대가리를 들어 주뼛주뼛하는지라.

법애가 더욱 겁이 나서 무심결에 말하기를 두 분 산군이시여, 빈도가 지금

도적에게 쫓기어 산군 있는 데로 달려 왔으니 구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두 마리 범이 귀를 기울이고 법애의 말을 듣는 듯하더니 즉시 밖으로

뛰쳐나가 산이 무너져라 하고 크게 소리를 질러대니 도적들이 달려

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겁이 나서 각각 도망을 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여기서 법애는 한참을 쉬다가 또 북쪽을 바라보며 달아났는데 범이 뒤를

따르며 보호하였다. 한 강변에 이르니 웬 사람이 좋은 음식으로 요기를

하다가 법애를 보더니 그곳으로 인도하여 앉게 하고 밥을 나누어 주기에

법애가 받아 먹으니 감미가 참으로 이상하였다. 법애가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곧 물을 건너 언덕에 오름을 보고 두 마리 범은

고개를 흔들며 하직하여 사라져 갔다.

그 길로 얼마를 더 가다가 무인지경 외딴집을 만나 그곳에서 잠을 청하려

하는데 뜻밖에도 두 사람이 많은 음식을 장만하여 들어와 법애에게

많이 먹기를 권하고 같이 자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떠나는 길에 그들이 법애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북쪽으로만

달려가라. 그러면 자연히 구호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법애는 감사하다는 인사로 작별하고 삼십여리를 가다가 천만 뜻밖에도

각별한 친구를 만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아, 법화경 공덕이 이 얼마나 거룩한가. 도적에게 쫓길 적에는 범이

뒤를 따라 보호하고 강변에 이르러 배가 고플 때에는 웬 사람이 점심을

대접하며 무인공가에서 숙박하려 할 때에는 또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았으며 다시 친한 벗을 만나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호법신장님이 이리저리 도와 준 것이라. 불자들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그 큰 은혜를 마음깊이 새길지이다

 

 

 



칼등으로 스물여섯 번 쳐서 전생 원수를 풀다

 




청나라 사람 정백인은 오래도록 양주 땅에 살면서 법화경을 지송하고

또한 관세음보살을 정성껏 섬겼다.

그런데 을유년 여름 나라에 난리가 나서 적국 군사가 양주 땅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정씨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며 피난할 방책을 구하였더니

어느 날 밤 꿈에 보살이 일러 가로되 너의 가족 십칠 명중에 십육명은환난을

면할 수 있지만 오직 너 하나만은 어려움을 면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씨가 꿈에서 깨어 지극정성으로 관세음보살님께 다시 기도하니 그날밤 꿈에

보살이 또 일러 가로되 너는 전생에 왕마자라는 사람을 칼로 스물여섯번이나

쳐서 죽였으니 지금 그 목숨을 갚게 되는지라. 가족 십육 명을 다른 곳에 안전히

옮긴 후에 네가 혼자 기다리다 당할지언정 가족에게는 누를 끼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정씨가 마음깊이 참회하고 시키는 대로 행하였더니 닷새 후 적군이 집안으로

달려들거늘 정씨 나서며 그중 자신을 죽이려 칼을 빼고 달려든 적군에게 물어

가로되 그대의 성명이 왕마자인가, 내가 그대에게 스물여섯 번의 칼로 빚진 것이

있으니 나를 속히 죽일지어다. 그것 말고 나와 그대가 다른 원수진 일은

없도다 라고 하였다. 이에 적병이 놀라 묻기를 네가 어찌 나의 성명을

알았느냐 하기에 정씨는 관세음보살이 꿈 속에서 이르신 말씀을 전하였다.

정씨의 이야기를 듣고 난 적병이 탄식하며 하는 말이 네가 전생에

나를 죽인 까닭에 그런 것인지 지금 너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나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게 되면 오는 세상에 다시

네가 나에게 보갚음을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보살이 현몽까지 하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게 되면 이는

성현을 저버림이라.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하고 즉시 칼등으로 정씨를

스물여섯 번 치는 시늉을 하고 원한을 풀고 떠나갔다.

 

 



앉은뱅이 병을 고쳐 행보가 자유롭다

 



명나라 숭정 신사년 산동 땅에 앉은뱅이가 있어 손으로 발을 대신하고

시장 주변으로 돌아 다니면서 걸식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미워하니,

그가 비록 폐인이나 속은 살아서 항상 불평을 품었다.

마침 그때 당교암에 수곡이라는 스님이 있어 수행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하루는 찾아가서 걸식하는 괴로움을 하소연하니 스님이 가엾게 여기고

가로되 그대가 발심하여 스님이 되어서 부처님 자비의 힘을 빌어 의지하면

혹 시주가 있을까 하노라 하였다. 앉은뱅이는 그 말을 듣고 감사히 생각하여

즉시 머리를 깎고 십계를 받으며 비록 걸식을 할지라고 파, 마늘, 술, 고기,

담배를 먹지 않으며 또한 남들이 욕설을 하더라도 인과를 생각하여

좋은 마음으로 참았다. 수곡 스님이 또 법화경 보문품을 배우라 하며

관세음보살의 명호 지송함을 가르치거늘 일년 동안 일심 전력으로 수지하였다.

그러던 무자년 가을 어느 날 밤 꿈을 꾸는데 한 늙은 부녀가 소복에

화관을 쓰고 미묘한 얼굴로 나타나서 일러 가로되 너는 곧 일어나라 하고

두세 번 재촉하였다. 이에 앉은뱅이는 저는 앉은뱅이라 어찌 일어날 수가

있사오리까 하고 대답하였다. 이때 부녀가 손으로 앉은뱅이 두 발을 잡아

당기니 다리가 쭉 뻗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 일어나니 꿈에서처럼 두 다리가 쭉 뻗어 완전히 정상이

되었는지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몸이 다하도록 법화경 지송과

관음주력을 지성껏 봉행하였다.

 

 




소의 장난없이 자식얻어 영화보다

 




송나라 서울 사람 적집은 나이 오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서

법화경을 지송하고 또한 관음화상을 그려 붙여 정성으로 기도하더니

마침내 그 처가 자식을 잉태하였다. 그런데 꿈에 흰 옷 입은 부인이

상자 속에다 아이를 담아 주는데 얼굴이 매우 묘하였다. 아이를 막 받아

안으려는 순간 천만 뜻밖에도 소 한 마리가 달려들면서 그 사이를 막아

끝내 그 아이를 받지 못하는 그런 꿈을 꾸었다. 그후 열달이 차 아이를

낳기는 낳았으나 몇 달이 못되어 그만 죽고 말았다.

아픔을 딛고 다시 지극 정성으로 관음기도를 드릴 때 한 친구가

그전 꿈 이야기를 듣고 일러 가로되 그대가 평소 쇠고기 먹기를 너무

좋아하니 혹 그것이 원인이 되지 않았겠는가 하였다. 적집이 그말을

듣고 그만 겁이 나서 그후로는 온 집안 식구가 다시는 쇠고기를

먹지 않기로 맹세를 하였다.

그후 또 꿈을 꾸는데 전에 왔던 부인이 다시 아이를 데려다 주는데

그때는 소의 장난도 없었고 열 달이 차서 생남하여 그 자식으로 해서

큰 영화를 보았다.

 

 



항상 법화경을 읽었음에 혀를 빼어도 나오지 않는다

 



용삭연간에 경성 사람 고문은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하루는 말을 타고 순의문을 지나는데 뜻밖에 말 탄 사람 두 명이 쫓아와

잡으려 하기에 고문이 누구냐 한즉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염라대왕의

차사로서 너를 잡으러 왔노라 하였다.

고문이 겁이 나서 이리저리 피하려 하는데 사자가 앞뒤로 달려들어 결국

붙잡혔다. 그들이 고문을 말에서 끌어 내려 머리카락을 움켜쥐니 마치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하여 그 자리에 까무러치고 말았다.

가족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와서 데려다가 방에 눕혔는데 밤이 이슥해서

깨어나며 이르되 내가 귀신에게 붙들리어 명부에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나에게 묻기를 너는 무슨 까닭으로 절에 가서 스님의 과실을 훔쳐 먹었으며

또 어찌하여 부처님의 허물을 말하였는가 하니 모두 내가 지은 죄라,

대답할 말이 없어 그대로 엎드렸더니 대왕이 판결하되 과일을 훔친 죄는

합당히 불융골의 철환 사백오십 개를 사일 동안 받아 먹어야 하겠고 부처님

허물을 말한 죄는 합당히 그 혀를 빼서 밭을 일구는 소비로 갈아야 하겠다

하며 잠시 놓아주기에 지금 깨어 났노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다시 쓰러져 입을 다물고는 마치 무슨 음식을

우물우물 씹는 모양을 하는데 온몸이 빨갛게 불에 타 아프고 견디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더니 며칠을 지나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하는 말이 내가 지옥에서 나흘 동안 철환을 삼키어

사백오십 개를 다 먹었는데 그 고초는 형언할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혀를 빼서 소비로 갈려고 하는데 아무리 빼어도 혀가 나오지 않는지라.

그때 죄복을 감정하는 소장이 말하기를 고문은 항상 법화경을 읽었기

때문에 혀를 빼려해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염라대왕이

하는 말이 그와같은 공덕이 있을진대 남과 같이 죄를 다스리지는 못할지라.

다시 인간으로 내어 보내라 하여 내가 지금 깨어 나왔노라 하였다. 그후

그는 화도사에 가서 경을 듣고 참회하였다.

 

 




오로지 성호를 생각함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다

 




나는 유제규 평화교당에 다니면서 불전에 예경하고 법사스님의 설교를

듣는 한 신자입니다. 인연이 닿아 정지월이라 하는 젊은 법사 스님에게서

관음보살 보문품이라는 법문을 들은 후로는 그 불경을 따로

지송하기로 하고 우리 내자와 더불어 보문품독송 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관음보살에 대한 신앙을 날로 더하고 달로 깊어가게

하였는데 그러던 중 얻은 신앙담을 이제 하고자 합니다.

바로 지난 십이월 십팔일 밤의 일입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매우

나빠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홉 시나 되어서 각각 취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밤마다 보문품 한 번 독송과 관음보살 삼천념을 하는 성벽이 있는지라.

그날도 열두 시까지 일과를 마치고 잠이 들어 약 삼십 분 가량이나 되었을까

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어떤 백의 노부인이 와서 잡아 일으키며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려고 했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전혀 기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 부인은 이상하게도 선명히 눈앞에 보이며 일이 급하니

어서 일어나라 하며 몸을 잡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정신을 처려보니 그 백의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서 누워자는

내자가 손발을 달싹이지도 못하고 눈을 흡뜨고 말 한 마디 내지르지

못하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나는 황겹공포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 왔다갔다

하며 집안 사람들을 일으키는 한편 내자의 신체를 주무르며 코밑을

부벼주고 인공호흡을 시킨 후 정신을 차리라고 목이 터지도록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숨소리가 점점 사라지며 죽음길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불쌍하다며 울음소리를 내고 의사도 와서 보고

단념하라고 선언할 뿐입니다. 나도 울음을 그칠 수 없음에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었으나 문득 한 생각에 관음보살을 생각하고 일심염불공과

능명제유고라는 법구를 떠올리게 되었고 일심으로 오직 관음보살을

부르면서 내자의 기사회생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자가 이와 같은

급병이 난 것은 식물의 중독이라 생각하여 의사에게 주사 넣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의사는 심장마비라 하며 돌아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모든 걸 단념하고 오직 관음보살만을 염송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내자가 호흡을 시작하며 정신이 도는 듯 살며시 눈을

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 되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집안 사람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고 나 또한 하도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라 관음성력에 감격할 뿐이었습니다.

내자가 그렀듯 회생한 것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백의부인의

현몽은 나뿐만 아니었습니다. 내자도 그 부인을 보았다 하며 그 부인에게서

무슨 약수를 얻어 마시고 겨우 숨을 트게 되었다 합니다. 중생이 피곤액하여

무량고핍신이라도 관음묘지력으로 능구세간고라는 법구를 보문품의

법문으로만 믿다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관음묘지력을 실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원문은 소화 사년 이월 불교지에 기재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한 번 닥친 술냄새에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명나라 부경 형부가에 있는 축봉사는 에전에 전단불상에 공양을 올리던 절이었다.

신종제 말년 제주라는 스님이 주지로 있었는데 성품이 진실하고 부처님을

엄숙하게 받들기는 하나 다만 술 한 가지를 끊지 못하는게 큰 흠이었다.

어느 날 꿈에 험상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지옥의

사자입니다. 생전에 아무개 노파가 착한 일을 한 가지도 한 일이 없었기에

지금 지옥에 갇혀 있어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월 삭망 때마다

이 절에 와서 예배하고 과일을 가져다 스님께 공양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스님은 그러한 인연을 생각해서 그 노인을 위해 법화경 한 부질을

읽어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인홀불견

되는지라 스님이 꿈에서 깨어나 그 노파의 생전일을 생각하니 지옥 사자의

말이 틀림이 없었다.

이에 칠월 보름날 백종재를 기다려 그 노파의 위패를 접어놓고 부처님

앞에 끓어앉아 법화경을 읽어 나갈 때 다섯권째에 이르러 읽기는 뜨겁고

목은 몹시 말랐다. 그만 일어나서 차를 찾아 보았으나 얻지 못하여 부엌

탁자 위의 술병 하나를 발견하고 흔들어 보니 아직 남은 것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병을 기울여 찬 술 한 모금을 그대로 마시고 다시 불전에 끓어앉아

일곱권 법화경을 다 읽어 마쳤다.

그 이튿날 밤 꿈 전에 왔던 지옥 사자가 다시 와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

법화경 네 권까지 읽었을 때 마침내 지옥 일대는 금색 광명이 내려 쪼여서

그 노파가 막 지옥을 여의고 곧 선처에 수생하려 할 찰나인데 별안간

한 무더기 술 냄새가 들이침에 광명은 어느 결에 없어지고 법화경

다섯권째에서 일곱권째까지 읽는 동안 술냄새는 마찬가지이므로 그 노파는

힘을 얻지 못하여서 그대로 갇혀 있습니다 하였다.

주지스님은 그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하여져서 그 즉시로 일어나

다시 목욕하고 정의정복을 갈아입고는 불전에 나아가 지성참회한 후

법화경 다섯권째에서 일곱권째까지 정성을 다하여 읽어 마쳐주고

그후로부터 한 평생을 마치도록 술을 엄금하였다 한다.

 

 





뒷간 귀신과 산의 호랑이가 도덕을 흠앙하다




홍명이라는 스님은 회계산음 땅 사람이라, 일찍이 출가하여 산음

운문사에 있으면서 항상 법화경을 외우며 정근하고 예참하기를 가히

주야불철이더니 아침마다 일어나 앞으로 나가보면 비어 있던 물병에

깨끗한 물이 가득차 있곤 했으니 이것은 천동천녀가 비밀히 내려와

시봉을 하여준 것이다.

또 어느날은 홍명이 경을 읽고 있는데 커다란 범이 들어와 법상

아래 엎드려 경을 잠심하여 듣다가 물러나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어떤 날은 조그마한 아이가 와서 홍명법사의 송경함을 듣는지라,

홍명이 묻되 너는 어떤 아이냐 하니 그 아이 대답하되 저는 옛적 이 절에

어린 중으로 있으면서 대중의 공양할 밥을 먼저 훔쳐 먹은죄로

뒷간 지키는 귀신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도력이 높음을 알게 되어

가끔 와서 경을 듣게 됩니다.

원컨대 법사의 높고 높은 송경공덕으로 이 죄업을 면케 하여 주옵소서

하는지라. 홍명법사가 듣고 측은히 생각해서 재를 베풀어 천도식을

행하며 법화경 산림을 하여 주었더니 칙귀가 그 공덕으로 선도에

태어남을 현몽하였다.

홍명법사는 제나라 영명 사년에 백림사라는 절에서 열반하니

춘추가 여든넷이라 하였다.

 




급병이 낫게 되고 대풍창에도 이롭다

 



조천수는 성품이 바르고 견고하나 불행하게도 급질에 걸려 갖가지 의약으로

치료하였으나 낫지를 않았다. 그래서 지성으로 법화경을 외우니 그 병이 모두

낫게 되어 천수는 그로부터 항상 경을 외워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망명이라는 스님 역시 불행하게도 나병에 걸려서 만방으로 치료하여

보았으나 조금도 효험이 없었다. 누가 말하기를 법화경은 이 염부제

사람의 병에는 영약이라 하기에 망명이 정성을 다바쳐 법화경을 독송하니

문둥병이 곧 나았다.

남대녹사 유씨가 또한 그 병에 걸려서 갖가지로 치료하였으나

효험이 없더니 어느날 길을 가던 망명법사와 우연히 만나서 법사가

유씨에게 말하되 나도 그전에 이 병을 얻었으나 법화경을 독송하고

쾌효를 얻었노라 하기에 유씨가 그 말을 듣고 결정한 신심을 일으켜서

즉시 법화경을 준비하고 밤낮으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더니 어느날 밤

꿈에 이상한 스님이 들어오며 손으로 전신을 뜨는지라. 유씨 놀라

깨어나니 온몸에 흰 땀이 비오듯 하며 몸과 마음이 활연해서 운권청천으로

즉시 병이 낫게 되었다.

 



조개 속에 불형을 나타내니 문종이 화상을 모시게 하다

 



당나라 태화 연중 문종제가 조개 먹는 것을 좋아하여 해변 관리들은 조개

진상하기에 골몰함으로써 민간에 끼치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

하루는 어찬 가운데 커다란 조개 하나가 있어 다깨어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종이 이것을 기이하다 생각하고 즉시 향을 사르며 기도를 드리니 그곳에서

별안간 관음형상이 솟아 오름에 상호가 구족하였다.

곧 금함에다 모시고 흥선사라는 절에 사승하여 여러 스님들로 하여금 예배

공양케 하고난 후 여러 신하들에게 물으시되,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 하였다.

이에 어느 대신이 여쭈기를 대일산에 유정선사가 불법이 깊어 모르는 것이

없다 합니다 하였다. 문종께서 즉시 선사를 불러 그일을 물으니, 선사 대답하기를

신이 듣사오니 어떤 물건이라도 헛되이 응하는 법이 없는지라. 이는 폐하의

신심을 열어줌이외다. 그런 고로 법화경에 말씀하기를 제왕신으로 제도할 자에

응해서는 곧 제왕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법을 설한다 하셨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가로되 보살의 몸은 벌써 내가 보았으나 아직 법문을 듣지 못하였노라 하였다.

선사가 다시 여쭈어 가로되 폐하께서는 그 일을 예사롭다 느끼십니까 아니면

이상하다 느끼십니까. 또 그일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되

희귀한 일이라 내가 깊이 신앙하노라 하였다. 선사가 가로되 그러시다면

폐하께서는 벌써 법문을 들어 마쳤습니다 하였다.

이때 임금이 깨닫고 크게 즐거워하며 다시는 조개를 먹지 않겠다 맹세하고

천하 사찰에 조서하여 모두 관음상을 모시게 하였다.

 

 




머리털을 세 번 깎되 그때마다 즉시 자라나다

 




홍조라는 사람은 나이 스무 살에 스님이 되어 법화경을 배워 읽기로

업을 삼는데 원체 총명하여 칠축경전을 두어달만에 외워 마쳤다.

종남산에 토굴을 묻고 법화경 일천번 외우기를 맹세하고 불철주야로

독송함에 밤마다 천신이 내려와서 은근히 호위하였다.

한번은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부녀 유씨가

홍조대사의 덕행을 듣고 자기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법화경을 설해 달라고

지성으로 청하기에 대사가 불쌍히 여겨 그 집에 얼마동안 있게 되었다.

한 주일을 지나자 집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한 홉 곡식도 없게 되었다.

대사도 그것을 짐작하고 그만 떠나기를 작정하니 유씨가 정성을 다하여

만류를 하기는 하였으나 대접할 도리가 없는지라. 즉시 자기의

머리를 깍아 팔아 시장에 가서 양식을 구해다가 대접하였다.

다시 일주일을 지남에 대사가 또 가고자 하는지라, 유씨가 또 눈물을

흘려가며 못가게 하였으나 머리털을 팔아서 사온 양식은 벌써 없어졌고

달리 양식을 구할 방도가 없기에 밤새도록 걱정하며 뒤척였는데

새벽녘에 우연히 이마를 만져보니 밤 사이에 머리털이 전처럼

자라나 있는지라. 놀라고 기쁜 마음을 걷잡지 못하여 즉시 깎아 팔아

양식을 사 오는데 그와 같이 세 번 깎았으나 머리털도 역시 세 번 자라났다.

대사는 그럭저럭 한 달이나 있다가 떠나게 되었는데 유씨가 하는 말이

스님의 양식은 스님이 준비한 모양입니다 하며 그동안 지내온 일을 낱낱이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의 도력이 아니면 어찌 머리가 세 번이나

자라났겠습니까 하니 대사가 듣고 그 정경을 불쌍히 여겨 내가

왜 유씨 부인에게 그와 같은 고생을 시켰던가 하며 눈물을 머금고 떠났다.

 

 

 




경을 한 번 통달함에 다시는 잊지 않았다

 

 




청신사 사지장은 옹주 남전 땅 사람이었다. 비록 농가에 처하였으나

항상 오계를 지키며 살았는데 어떤 인연으로 남전현에 있는 어느 절을

찾았다가 마침 그 절 법사 한 분이 법화경 설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중 안이비설신의 육근공덕 대문에 이르러서 흔연히 발심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법화경 제일권부터 읽어 외우는데 급한 일을

당한 때 이외에는 조금도 쉬지를 않았다.

다시 둘째권을 배우려 하였으나 선생을 만나지 못해 이 삼년을

안타깝게 흘려 보냈는데 어느날 지나가던 스님이 들어와 지장을

보고 하는 말이 집에 밥이 있거든 한 그릇 빌려달라 하거늘 지장이

흔연히 대답하고 소찬을 정성껏 차려 드리니 스님이 공양을 마치고

하는 말이 그대가 법화경을 배우려 하는가. 그러면 경책을 가져오라

하는 것이었다. 지장이 크게 기뻐 그것이 자신의 소원임을 말하고

책을 가져다 드리니 스님이 그 책을 가르치는데 신통력으로

총명을 주어서 한번 일러주면 다시 잊지 않게 되는지라. 스님이 마치기를

다하자 문득 사라지거늘 그후부터 기이한 향기가 수일동안 끊어지지 않았다.

이에 이것은 반드시 보현보살이 본원력을 의지해서 보통 승려로 화현해서

잘 가르쳐 주고 간 것이라 한다.

 




법화경을 지송하기 피곤함에 약의 정기가 품에 들다

 

 



정견이라는 스님이 어릴 때 출가하여 오래도록 용문산에 머물면서 법화경

지송하기를 일만삼천번을 하고 나니 몸이 피곤하여 얼굴이 수척하여지는지라.

그럼에도 정진하기를 그치지 않고 줄곧 이십여년을 끌어 나갔더니 하루는

북쪽에서 어린아이 수십명이 몰려 들며 왁자지껄 떠드는데 그 시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우나 그 아이들이 어느 곳으로 쫒아옴을 알 수 없기에

주저주저하는데 뜻밖에 한 백두노옹이 나타나며 하는 말이 스님의 기력이

어떠하십니까 한다. 이에 정견이 대답하기를 점점 피곤이 더해감을

깨닫는데 어느 곳에서 쫓아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조무래기 아이들이

날마다 분란을 피워 차마 그대로 더 볼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정견의 말을 듣고 노옹이 가로되 스님은 이제 그 아이들이 노는 곳에 가서

모두 옷을 벗고 목욕함을 기다렸다가 한 놈이 벗어 놓은 옷을 집어 가지고

돌아 오십시요. 그러면 옷을 빼앗긴 아이가 분명히 따라와서 옷을 내어달라

간청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내어주지 않으면 필경에 욕지거리까지

할 것입니다. 스님은 그때 꾹 참고 아무런 응답도 하지 말고 계시면 제가 와서

말씀하여 드리리다 하였다.

정견이 노옹의 말대로 여러 아이들이 옷을 벗고 못에 들어가 목욕하는

곳에서 한 작은 아이의 옷을 집어 가지고 방으로 돌아오니 그 아이가

얼른 보고 뒤를 따라 오며 옷을 달라 하거늘 정견은 노옹의 부탁을 생각하고

영 돌려주지 않고 그 아이가 악담으로 욕설을 퍼부어도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노옹이 달려와서 그 아이에게

일러 말하되 너는 스님의 품으로 들어가라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머뭇머뭇하며 듣지 않다가 노옹이 몰아 내쫓기를 두세 번 한 뒤에 어쩔 수 없이

정견의 품으로 달려들어 뱃속으로 빠져 없어지거늘 노옹이 그때 정견에게

묻기를 스님의 기분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정견이 대답하되 기력이

그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하니 노옹은 감사합니다 하며 그 즉시

작별하고 떠나갔다.

정견은 그로부터 정신이 백 배나 나아져서 경전 독송에 아무런 힘도 들지 않

았는데 식자는 말하기를 그것은 보현보살이 산신을 시켜 산삼의 정기를 모아

한 작은 아이로 변형을 시켜 정견의 품에 들어 병을 없게 해 준 까닭이라 하였다.

 

 




하늘의 제석과 바다의 용왕이 동시에 강경을 청하다

 

 




연광이라는 스님은 신라 때 사람이라, 권세있고 이름 높은 집안사람으로

일찍이 출가하여 수나라 인수년에 중국에 들어가 천태지자 대사를 만났다.

대사가 법화경을 가르쳐줌에 연광은 아침 저녁으로 항시 익히고 외워서

수년동안 부지런히 하더니 홀연 통달하였다.

천태별원에 머물면서 늘 법화삼매를 수행하는데 하루는 이상한 사람

두어명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우리는 하늘 제석천왕의 명을 받아

스님께 강청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연광은 묵연히 승낙하고 그 즉시로

앉은 자리에서 목숨이 끊어졌는데 안색은 하나도 변치 않았으며

십여일 후에 깨어나 전과 같이 경읽기를 계속하였다.

연광은 고국인 신라로 돌아오려 할 때 지자대사에게 하직한 후 십여 명의

사람과 함께 떠나 커다란 배를 타고 바다 한복판에 이르렀는데 배가 문득

멈추더니 웬 사람이 말을 타고 물결을 저어 오다가 뱃머리에 이르러 하는

말이 저는 바다신의 명을 받아 이곳에 이르렀는데 스님께서 잠깐 용궁에

왕림하사 대승경을 설해 주실 것을 간곡히 청하나이다 하였다. 연광이

대답하되 빈도는 중생의 이로움을 위해 살 것을 서원하였는데 이제

용궁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이 배와 남은 사람들은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그러니 그 사람이 모든 이들을 함께 동행케 하시고 배 또한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기에 연광이 대중에게 일장경계한 후 함께 용궁으로 들어가는데

바라보니 큰 길이 평탄하게 뚫렸고 향화가 길에 가득하며 바다신이 백천시종을

거느리고 궁중으로 환영하니 금벽이 휘황찬란하여 모두 놀라울 뿐이었다.

바다 가운데의 훌륭한 음식과 다과로 대접을 받고 난 후 법화경을 강송하여

마치니 용왕이 크게 기뻐 해중칠보를 기념품으로 전하며 시종에게 명하여

배가 있는 곳까지 전송하거늘 연광 등이 그 배를 다시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에 돌아와서는 날마다 한 번씩 경을 독송하다가 나이 팔십이 되어 열반에

들게 됨에 따라 화장을 하게 되는데 온몸이 다 재가 되었으되 오직 혀만

타지 않고 남아 있으므로 보고 듣는 자가 모두 희유함을 찬탄하였다.

연광법사에게는 누이 두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불교를 깊이 믿어 모셨다.

그 혀를 거두어 나무상자에 담아 깨끗한 곳에 모셔 놓고 예배 공양하는데

항상 그 혀에서 법화경을 낭송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누이들이 법화경을

읽어 나가다가 모르는 글자가 있어 그 뜻을 혀를 향해 묻게 되면 일일이

잘 가르쳐 주었다 한다.

 





옛집을 지나는데 전생이 완연하다

 




수나라 개황년에 위주자사 최언무가 각 지방을 순회할 때 한 곳에 이르더니

깜짝 놀라고 기뻐하며 가로되 내가 전생에 이 마을에 살았는데

어떤 이의 부인이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살았던 집까지

기억하겠다라고 하면서 말을 돌이켜 한 곳에 이르니 조그마한 집이 있는지라.

문 앞에서 사람을 찾으니 주인되는 노인이 나와 영접하거늘 자사가 그 집에

들어가 앉아 사연을 말하기를 나의 전생 몸은 주인장의 아내입니다 하였다.

노인이 가로되 무엇으로 그를 증명할 수 있으리오 하니 자사 가로되 내가

증거품을 찾아 낼테니 생각하여 보시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마루로 올라가더니 동쪽 벽 땅에서 예닐곱 자쯤 되는 곳을 가리키며

주인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예전에 공부하던 법화경과 금비녀 다섯 개를

이곳에 감추어 두었노라 그리고 법화경 일곱권째 끝에 불똥이 떨어져서

글자 몇 개가 타 버렸는데 오늘날까지 내가 이 경을 모두 외우나 일곱권째

끝장을 항상 잊어버리고 생각할 수가 없노라 하며 하인을 시켜 벽을

뚫게 하니 과연 법화경과 금비녀가 있고 또 법화경 일곱권째 끝장은

불에 타 있어서 자사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주인이 울며 가로되 죽은 처가 살아 있을 적에 항상 이 경을 독송하였고

이 금비녀 또한 죽은 아내의 물건입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어서

이 물건들이 있는 곳을 몰랐는데 천만 뜻밖에 귀인이 오셔서 있는 곳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니 자사가 다시 이르되 내가 아이를 낳고자

할 때에 머리카락을 뜰 앞의 괴화나무 구멍속에 넣어 두었노라 하였다.

이에 이것도 사람을 시켜 찾아보니 과연 있는지라.

노인이 그를 보고 한편 기뻐하고 한편 슬퍼하거늘 자사 역시 측은한

마음을 어쩔 수 없어 많은 재물을 하사하고 떠났다.




강에 빠졌으나 경을 읽고 살아나다




무덕년에 소장이라는 사람이 파주자사가 되어 부임하는 도중에

가릉강에 당도하여 배를 타고 노를 저어가던 중 중류쯤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폭풍이 일어 배를 여지없이 흔들어 부수어 같이 탔던 육십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빠져 죽음을 면치 못하였는데 오직 자사의 첩 한 사람만이 살아났다.

그녀는 그전부터 법화경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가만가만히 독송해 왔는데

그날 배가 뒤집힐 때 파도가 배 안으로 넘쳐 들어옴을 보고 생각하기를

내가 평생 모셔 온 법화경을 죽어도 버리지 않으리라 하고 경함을 머리에

인 채로 물 속에 잠겨 가게 되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목판같은 것이 두 발을 받쳐주니 그것에 몸을 실어

이러저리 표류하다가 언덕에 닿아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 그때 그 여자가

법화경이 들어있는 경함을 살펴보니 물이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이에 부처님의 신력을 무수히 공경하여 우러러 사모하였고 그후

다른 집에 개가하여 살면서도 몸이 다하도록 법화경을 수지독송하여

부처님 은혜의 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게 되기를 발원하였다.

 



법화경을 외우니 수갑 채운 것이 자연히 벗어지다

 

 




하동 땅 동웅은 어릴 때부터 불교을 크게 믿어 술과 고기를 끊고 소찬으로

수십년을 지내왔다. 정관년중에 대리승 벼슬에 있었는데 십사년 봄 역적의

죄를 뒤집어 쓰고 어사옥에 갇히고 되었다. 그때 임금은 동웅을

역적과 공모자다라고 하여 어사위종을 시켜 혹독하게 다스렸는데,

당시 법관 이경현과 숙직하던 왕흔이까지 관련되어 함께 옥에 갇혀

칼을 쓰고 고랑을 차게 되었다.

동웅이 옥중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법화경 보문품을 지송하되 며칠만에

삼천번을 읽고 밤중에 홀로 다시 경을 외우는데 수갑 채운 것이 갑자기

저절로 풀려 땅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동웅이 놀라서 옆에 있던 이경현에게

말을 하니 모두 살펴본 즉 그 고랑과 열쇠가 부서지지도 않고 두어자 길이쯤

나가 떨어져 있었다. 이에 모두 이상히 생각하거늘 동웅은 무슨 책망이나

들을까 겁이 나서 간수를 불러 다시 채워 달라 하니, 그날 감찰어사 장병일이

숙직을 하다가 이 일을 당하여 간수에게 명하여 수갑을 다시 채워주는데

촛불을 비춰 고랑과 열쇠를 자세히 살펴보니 열린 것이 아니라 자연히

벗겨진 것을 알수 있었다.

무척 괴이하게 생각하여 수갑을 다시 채우면서는 종이로 봉하고 그 위에다

인을 찍었다. 동웅이 다시 경을 지송하는데 오경쯤이 되어 다시 열쇠가

떨어지며 마치 사람이 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동웅이 더욱 겁을 먹어 옆의 두 사람에게 급히 깨워 말하니 이미 새벽이

되었으니 관리를 부를 것이 없다 하고 날이 샌 후 자세히 살펴보니 고랑과

열쇠가 떨어져 있는데 조금도 열리지 않았고 또 봉인한 것도 그대로 있었다.

이경현은 어릴 때부터 불법을 믿지 않았고 또 그 처가 경을 읽으면 왜

오랑캐 귀신에게 아첨을 부리느냐며 무수히 책망하여 왔는데 동웅의

일을 보고야 크게 감탄하여 가로되 이제야 부처님 신통력이

한량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 신세가 부처님 경을 배울 여가가 없게 되었으니 팔보살의

명호나 가르쳐 달라 하고 왕흔이와 함께 팔보살 명호 삼만번을 지송함에

대낮에도 수갑이 손에서 벗겨지는 것이 동웅의 경우와 다름이 없었다.

세 사람의 일을 본 관리들은 그들의 죄가 모두 애매하다 하여

무죄로 풀어주었다.

옥에서 풀려나온 그들은 법화경을 쓰고 팔보살탱화를 조성하며 한 평생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였다.

 

 



오래전에 죽은 마른 뼈에 청련화가 혀 밑으로 솟아나다

 

 



지업이라는 스님의 속성은 양씨니 양주 장락사에 있으면서 항상

법화경을 외웠다. 그런데 수나라 대업 말년에 우문화급이 양주에

있다가 역적이 되어 수양제를 궁중에서 죽이니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다.

쌀 한 말에 백냥씩 받는 등 나라가 어지러워 굶어 죽는 백성이

부지기수였는데 그때 별원 조그만 집에서 법화경만 정성껏 외우던

지업도 난리 중 죽었으나 시체를 거둘 사람이 없었다.

그대로 방치되다가 그 집이 전복되면서

시체는 그 밑에 깔리게 되었다.

의령 초년에 난리가 평정되어 어느 정도 인심이 예전처럼 돌아올 즈음

지업이 수행하다 죽은 곳에서 한 줄기 청련화가 솟아 올랐는데 광색이

이상하여 모두가 의아해 했다.

그때 한 노승이 원인을 알고 모두에게 깨우쳐 가로되, 이 땅에 일찍이

수행하던 스님이 있어 진심으로 법화경을 외웠는데 마침 난리를 만나

봉변을 당하였으나 시체를 매장할 사람이 없었다. 지금쯤 해골이

그대로 남아 있을 터이니 이 꽃은 반드시 그 스님의 상서라 하여

사람들이 이에 꽃뿌리를 캐어 들어가니 해골 가운데 혀 밑에서

청련화가 솟아 나왔고

더군다나 혀는 생존시와 같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음을 보았다.

모였던 사람들이 그 혀와 꽃을 가져다가 절 법당에 이르러 대중을

더 모으기 위해 법화경을 설하니 그 혀가 경 소리를 듣고 오히려

널름널름 하는지라.

보고 듣는 자가 감탄하여 대승경전에 신심을 크게 내었다 한다.

 



법화경을 사경하고 병이 낫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혼탁한 세상을 깨끗한 불국토로 만들어 보다

살기좋은 사회를 건설하고 미혹 가운데 고난 받는 모든 사람들을 성불의 길로

인도하여 참다운 지혜로 세상을 행복하게 살게 하심이다.

도림스님도 제주도에 내려와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정법의

씨를 뿌리고 가꾸었으나 그렇게 수월하지는 못했다. 간경화로 네 차례나

쓰러졌고 또 간농으로 쓰러져 서울대학병원에서 9일만에 깨어났다.

한 스님의 일생에 너무나도 병마와 역경이 심했다. 그러나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절대로 탓하지 않고 매일 일기를 쓰듯이 법화경 사경을

조금씩 조금씩 쉬지 않고 계속했다.

「1990년 7월 17일 제헌절 새벽 3시에 제주도 한국병원에 입원했다.

이때 제주도 대각사 법무스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이 스님이 아니였다면

나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오시어서 절 일도 바쁘신데 가지 않고 밤새도록

간호와 정성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떤 영감에 의해서인지 죽어가는

나를 업고 새벽에 병원에 갔지만 병원에서 받아 주지를 않아 언성을 높여가며

설득시키자 결국 응급치료를 받고 입원하였다. 이때는 법화경 한글 번역과

사경을 정성들여 하고 있을 때였다.

7월 18일 아침 8시에 병원에 앉아 있는데 50여명의 얼굴이 나타나,

영화의 스크린처럼 지나가는데 맨 끝에 지금 내가 들어갈 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도림스님의 전생의 얼굴들이라고 했다.

나는 결심했다. 죽음의 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길이라고,

내과과장이 간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갈 길을 알고

있기에 거절했다.

18일날 오후에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지장보살염불을 했더니

일념 즉시 무량겁이라고 자장보살 한번 생각하는데 수백만번이 불러졌다.

그러던중 7월 24일 새벽 꿈에 노란옷을 입고 삼지창을 오른쪽 어깨에 걸친

9척 장신의 남자 세 분이 앞에 와서, 저희가 들어가서 청소를 할 테니

스님께서는 만년사 절에 올라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오라고 했다.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스님 끝났으니 들어오십시오 했다. 한순간이었다. 오른쪽 옆구리가

따끔하면서 시원해졌다. 눈을 뜨니 새벽 3시 10분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정신을 찾았다. 이때 병실에는 하늘 향기가 충만했다. 향기가 코를 통해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모든 혈관과 360 골절까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의사와 간호사, 주변 사람들이 와서 보고 놀라며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3분 가량 향기가 진동하다 딱! 소리가 나며 끊어지고 나는 새정신이 들었다.

이때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 한 순간에

새생명으로 바뀌어 버렸다.

나는 병상에서 늘 발원했다. 부처님 살려만 주시면 남은 여생

부처님의 심부름꾼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부처님은

분명하게 응답하셨다. 그날 오후 초음파실에 들어갔더니 의사 세분이

노란 가운을 입었는데 꿈에 본 얼굴과 똑같았다. 세 시간에 걸쳐 간에서

농을 뽑아냈다. 그 이후 놀라울 정도로 경과가 좋아 8월 3일날 퇴원했다.

두 발로 걸어 나오니 참으로 감사했다. 보이는 돌에 대고 감사합니다.

나무에 대고 감사합니다. 빌딩에 대고 감사합니다. 모두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지장보살님께 살려주심을 감사하며 강원도 철원 심원사를 찾았다.

밤 12 시 10분이었다. 정영도 주지스님께서 너무나 친절하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법당에 들어가 예매를 드리는데 기운이 탈진되어 3배를 올리지 못하고

벽을 기대고 앉아서 지장보살님 한 번 부르고 백만 번,

두 번 부르고 이백만 번이라고 했다. 얼마나 다급하면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 금할길이 없다. 기도하다

조금 피곤하면 잠을 자는데 새벽 3시만 되면 누군가 깨워서 눈을 떠 보면

아무도 없다. 과로하면 안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따라 또 잠을

청하지만 두 번 세 번 자꾸 깨운다. 지금 법당에 아무도 없으니 어서 오란다.

무거운 마음과 육신을 끌고 가 보면 아무도 없다. 지장보살님 전에 배를

쭉 깔고 엎드려서 기원을 한다.

「지장보살님 살려만 주십시오. 청정계행 굳게 지켜 일체욕심 다 버리고

오직 불법을 세상에 펴고 전하는데 생명을 다하겠습니다.」

수천번 수만번을 발원하고 또 했다. 이때 기록해 놓은 글이 있어서 소개한다.

「병원을 퇴원한 뒤 쉴 곳이 없구나. 기력은 점점 약해 생각마저 복잡하다.

허응보우 환성지안 순교비를 어찌할꼬. 생각다 못해 걸망메고

심원사를 찾았구나. 고요한 삼경에 세간은 조용한데 안개 속에

미소짓는 지장보살 그 모습이 인자하신 어머님의 따뜻한 품속 같네.

원하오니 지장보살님 살려만 주십시오. 남은 여생 오직 부처님의

시자로서 청정계행 굳게 지켜 끊임없는 기도로써 고통받는 세상중생

인도하는 사람되고 부처님의 바른 정법 활짝 피게 하오리다.

간절한 마음으로 7월 7일 칠석날에 환성지안대사 순교일을 기념하며

심원사 객실에서 화성유품 번역과 사경을 시작하여 백중날에

대각사 용성도량에서 마칩니다.」

그 이후 제주도 고관사에 내려와 기도와 전법으로 열심히 수행정진하고

계십니다.

 

 



법화경을 일자 일배하니 사리가 자연 증가하다

 

 




부처님 치아사리가 출현하신 이후에도 도림스님은 기도와 전법을 쉬지 않고

계속 하였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와서 가정법회를 마을마다 정착시켜

한 달에 30회 이상을 어촌에서 산간벽촌까지, 화사사원아파트에서

공장까지 부처님의 대승경전인 법화경을 걸망에 메고 다니면서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였다. 이곳저곳에서

불교신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모두 다 기쁨과 감격에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때부터 신도님들한테 법화경 독송과 사경을 지도했다.

이 세상에 수많은 경전이 있지만 이 법화경은 인간이 만든 모든 책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경전이며, 모든 업장을 소멸시키고 일체의 소원을 성취시키는

부처님의 위신력이 충만한 경전이고,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나 이 경을

독송하고 사경할 것 같으면 부처님은 즉시 감응하시어 미혹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불치의 병고에 신음하는 자를 건강케 하심을 강조하였다.

도림스님도 병원에서 퇴원한 뒤 사리탑에 올라가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새롭게 번역하여 수십만권을 법보시 하고 있다.

칠년동안 철야기도 하면서 번역에 착수한 법화경을 마치지 못하고 갈 것만 같아

사리탑에서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목욕재계하고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님 정법 만나 이 대승경을, 나의 기도와 정성이

흠뻑담긴 이 법화경을 반드시 만들고 이 세상을 떠나자 하고 일자 일배하면서

번역했다. 온 방안에 향기가 충만하고 맑은 정신속에 영감이 떠오르면서

법화경이 마음과 허공 가운데 번역되기 시작하는데 팔과 손이 글자를

받아 쓰지 못할 정도로 지혜의 칼날이 번쩍였다.

3 개월 동안 정성을 다하여 번역을 마치고는 탈진이 되다시피하여

또 쓰러졌다. 서울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번역이 끝난 법화경을 걸망에 메고 출판해

줄 인연을 찾아 무작정 상경했다. 아무래도 법화경 출판을 보지 못하고

갈 것만 같아서였다.

충청도 천원군 만일사를 찾아 관세음보살님께 법화경을 올리고 발원했다.

이 경전이 세상에 널리 유포되어 어두운 중생을 밝혀주고 병든 사람을

모두 살려 주시는 약이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그리고 이 산중에 산삼이 계시면

한 뿌리만이라도 주시어 이 업보 많은 제자로 하여금 건강을 회복하고

전법하게 해달라고 칠일 철야를 기도 발원했다.

그 이튼날 캐나다에 계시는 광옥스님께서 노모의 문병을 오셨다가

도림스님이 죽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를 주셨다.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큰 산삼 한 뿌리를 주시면서 이걸 먹고 스님 죽지 말고 살아서

평소에 그리도 원하던 불교전법운동을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시며

힘을 주셨다. 광옥스님께서 주신 약을 먹고 건강이 회복되어

도림스님은 열심히 법화경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 신명을 바쳐 깨끗한 정성을 드리면 천리 만리 밖에서

서원하더라도 부처님께서는 즉시 감응하신다는 것을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병마와 싸우고 큰 일을 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면 법화경을

열 번 정도 사경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산승은 요즈음도

계속 사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불자님들이 사경하여 보내온 경전이 수천권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공덕으로 화주 한번 다니지 않아도 불사리탑이

힘차게 올라가고 있으며 저의 뜻대로 성역이 이룩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버마에서 불사리 2과가 오셨고 스리랑카에서 10과가 오셨고,

또 티베트 달라이라마께서 1과를 보내 주셨는데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십차례에 걸쳐 방광하고,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1과가 50과로 증가되고, 가루사리가 수도없이 증가되는 일이

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시절 인연을 찾아 부처님이 이 땅에 감응하시어

불국정토를 이룩하고자 하심이며 혼탁한 세상과 욕심에 덮인

사람들을 구원하시어 참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부처님의

힘을 보이신 곳입니다.

법화경을 한자 쓰고 큰절 한번 하면서 정성을 드리면 이 세상에

어떠한 고난과 불치의 병마도 험난한 역경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분명하게 소멸되고 행복한 삶을 부여받는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큰일이나 불교중흥을위한 큰불사는 돈과 권력이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은 절대로 한계가 있으며 만약 이루어 진다고 해도 크나큰

마장이 끼고 멀지않아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자신을 비워버린 큰 원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무한합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분명히 원력대로

성취되고 이룩됩니다. 이 세상에 비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함이 내생명

내생활속에 항상 넘칩니다.

이것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함께 하심이며, 항상 보살펴 주심이며,

우리 생명 생활속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희 제주도 佛사리탑에서는

앞으로 수천만권의 법화경을 출판하여 한사람 한권 모시기 운동을

전개하겠습니다.

모든 불자들이 아침저녁으로 법화경 독송하고 사경하는 일이 생활화되면

이땅은 그대로 불국토요 불자들은 그대로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불자형제 여러분 부처님은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부르심에 자신있게 대답하고 부촉하심에 자신있게

실천하는 불자가 됩시다.

 

 

한글 법화경 전체보기 (클릭 →) http://cafe.daum.net/amtb/62Bc/454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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