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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카페 (cafe.daum.net/amtb) 지장보살 영험담 모음


1.연이파리님 글

1)

지장경을 1독씩 읽고 있어요

거의 1년이 되어 가네요

첨엔 돌아가신 아버지 좋은곳 가시라고 100일 기도후 그담엔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일체인연

맺은 영가 기도까지 100일 했습니다

그때는 잠을 자다가도 영가들이 꿈에 나타나서 길을 저한테 묻기도 하고 제가 기도하는곳에서 염주를 목에 걸고 환희심에

차서 제주위를 돌기도하고 기도시간이 되면 잠을 깨주기도 하더군요

조금 무서운꿈도 꾸다가 이번엔 일체인연 영가는 빼고 시댁조상영가 2분과 저의 조상영가3분만 발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2)

지장경 독송을 집에서 하는 중이였어요

그날은 몸살감기약을 먹고 약기운에 무지 졸려서

독송중 꿈을 꿨나봐요

저는 분명 평소 하던대로 경전 독송중이었고 제어깨너머로 희뿌연 연기기둥처럼

어떤형상이 저와 함께 경전을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번은 독송중 졸다가 어떤 쇳소리가 나는 남자 목소리가

제 이름을 크게 불러줘서 그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고

무사히 지장경독송을 마쳤습니다

그후엔 좀더 정성들여 경전독송 중입니다

그 체험이후 저는 영가가 확실히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독송 중 잠을 깨게 해준 목소리가 저희 아버지영가 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 가신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

그 당시엔 제가 기독교신자였었고 , 자주 아버지가 꿈에서 보이긴 했었지만

대수롭게 생각않고 넘어갔었던 제가 너무 무심했었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죄 스런 마음에 경전독송은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3)

 

지장기도를 하면서 저도 잠들기전 환청이 들리기도 했었지만 ...개의치말고 지장경독경 하시다보면 그런현상도 사라집니다^^ 지장기도하다보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기도하고 낯 모르는사람들이 꿈에 나타나 가야할 길을 알려달라고도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지장경 읽을려고 합니다 ()()()

옮긴이의 말: 이러한 경우에는 지장기도를 계속하면서 더욱 광명진언을 소리내어서 많이 외우시면 여러가지 현상이 정리되어집니다.



2. 미타사랑님 글

얼마 전, 시댁에 갔다가 문득 오래 전에 읽은 “지장경”생각이 나서 어머님께 여쭈어보니 읽지 않고 놓아 두셨다길래 제가 가져 왔습니다. 바깥사람 일로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서 틈틈이 읽어 보려고요.

집에 와서 무심히 읽다가 정말로 깜짝 놀랄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씁니다.

바깥사람의 병세가 좋아진 얼마 후에 꿈을 꾸게 되었더랬습니다.

- 제가 어디론가 꼭 가야하는데 그 가야할 길이 매우 좁은 골목길이었고 그 골목에는 늑대인지 악어모양 괴물인지 모를 이상한 동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 이빨로 뼈와 살을 찢어내 죽여 피가 사방에 흥건한 처참한 모양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섭기는 하였지만 목적지로 가는 길이 그 길 밖에 없어서 어쨌든 각오를 하고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막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뒤에서 어떤 스님이 저를 부르시고는 팔을 잡더니 뒤로 돌아서 다른 넓고 큰 길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길이 매우 밝고 따뜻하며 쾌적한 길이어서 곧 마음이 평온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다음부터는 이 길로 다니시오. 얼마나 좋은 길입니까?”하시며 고개를 올라가 멀리 사라지셨습니다. -


잠에서 깨어 무언가 감사함을 입었다는 것은 알았으나 스님이나 절과는 인연이 먼지라 곧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장경 제8품”에 꼭 그 꿈과 같은 구절이 있지 않겠습니까.


=======================================================================================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미혹하여 본집을 잃고 험한 길로 잘못 들어섰는데, 그 길에는 숱한 야차와 호랑이· 사자· 독사· 따위가 있어서, 그 사람이 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저 여러 악독한 짐승들과 곧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한 선지식이 있어서, 큰 술법을 가지고서 모든 악독한 것들을 잘 막아 낼 수 있는 분이었는데, 갑자기 미혹한 사람이 그 험한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을 보고 이 선지식이 말하였다.
「이 딱한 사람아! 어쩌자고 이런 길로 들어섰는가? 무슨 기이한 술법이라도 있어서 저 모든 사나운 것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사람이 문득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험로임을 깨닫고 곧 물러서며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때 그 선지식이 손을 잡고 이끌어 독물을 막으며 좋은 길로 인도하여 안전하게 해주고는 또 말하였다.
「딱한 사람아, 이 다음부터는 저 길을 다시는 밟지 말게. 저 길로 들어가면 좀체로 벗어날 수 없고, 더구나 목숨을 잃게 된다네.」
길 잃었던 사람은 깊이 감동하였다. 서로 작별할 때에 선지식이 또 말하기를
「만약 모든 길가는 사람을 보거든 친지거나, 아니거나, 남자든 여자든 간에 저 길에는 여러 가지 사납고 독한 것들이 많아서 목숨을 잃게 된다고 말해주어,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취하지 않도록 하게.」
라고 하는 것과 같느니라. 이렇게 지장보살이 대자대비를 갖추어 죄고 중생을 구출하여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게 하고 묘락을 누리게 하여 주면, 그들이 업도의 괴로움을 알고서 거기를 벗어나 다시 겪어가지 않는 것은, 저 길 잃은 사람이 험로에 잘못 들어갔다가 선지식을 만나 이끌려 나오게 되어 영원히 다시는 들어가지 않는 거와 같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들어가지 말도록 권하면, 자연히 이 미혹한 것으로부터 해탈케 되고 다시는 악도에 들어가지 않는 거와 같느니라...... <제 8 품 염라왕들을 찬탄하시다.>
=======================================================================================
어쩌면 그 스님이 지장보살님이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깥사람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때에도 도움을 주시더니 저도 모르게 저를 도와주시고 계셨다니 감사한 마음과 환희심이 들었습니다.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는 저를 이렇게나 돌보아주시다니요.
저는 마음속으로 감사드리는 것 밖에 모릅니다. 하지만 이 감사함을 님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_()()()_



3. 송 ㅎㅈ님 글

마음이 답답하고 외롭고 허전할 때 , 나와 그 형님은 각각 홀로 이름

난 절에 바람처럼 다녔었다. 절은 교회와 달리, 왔다고 잘왔노라 반기

는이 없고, 간다고 잘가라고 배웅하는 이 없었다. 물론 그런 점이 우리

를 더욱부처님 앞으로 끌려가게 한 힘 이었는지, 혹은 인연이 그런것이

었는지...


절하는 법도 몰랐고, 염불도 모른채 , 답답한 마음에 보문사, 전등사,

수덕사, 구룡사, 낙산사,,,기타 도착해서는 고작 남들 절하는 모습

뻘쭘히 넘겨다 보다가 경내 한바퀴 휘돌아 보고 돌아 오는게 고작이었

다. 그래도 다녀오지 않은것 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러길 수년이 흐른 어느날 어느 보살님의 권유로 작은 절에 이름을 올

리고 지장경 한권과 108염주를 스님께 서 주신걸 받아 가방에 챙겨넣고

인연을 맺은지 불과 6개월 남짓 되었을까?

형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100일 지장경 완독 하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일이 바빠 새벽에 귀가하는 날 에도 2시간 넘게 걸리는 기도를 빠지지
않고 지성으로 하셨는데, (나는 7일 만 하였는데도 엄청 힘들어 서 7일
기도로 끝내고 나의 능력에 맞게 천수경 1독씩 으로 매일 바꾸어 하고있다.)

100일 기도 완료 이틀전 형님을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들게 하던 부동산 매매가
이뤄질 거 같다는 부동산사장님의 전갈이 왔다. 누가 봐도 그 물건은 임자가
나설 것같지 않아 모두가 포기 하라고 했던 물건 이 었는데 매월 수백만원의 고
리만 지불하면서 골머리를 썩혀 왔었으며, 명의가 4명이나 더 되어 있어
문서에 도장 찍을 일 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로선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도저히 성사가
불가능 해 보였다. 한옥 보존지역 이라 신축은 도저히 불가능하며, 본채에
새로 증축을 하여 지붕이 기와 와 스렛트가 맞물려 외관도 우스워 보였으니...

그러나 기도도 무사히 끝내고, 잔금까지 무사히 받았다. 우리는 그 것을

지장기도의 영험이 아니면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한다.


형님과 나는 그 이후 3000배 7번 완성을 하리라 하며, 참회기도를 하고

있다. 반드시 어떤 원을 세워놓고 하는것은 아니고,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것 같아 너무나 즐겁다.




4.

 

中安님 글

경오 스님은 저녁 공양을 마치고

큰방으로 잠깐 오라고 하시며

합장을 하시고 일어나셨다.



왜일까?

내가 뭘 잘못 한게 있는가?

작설차를 한잔 준비하시곤

내얼굴을 보며 살며시 웃으셨다.



짧은 순간이지만 무슨일일까?...



"젊은이 에게 물을게 하나있네..."

"항상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이있던데 ...

무슨기도를 하시는가?"

" 예.나무아미타불 을 외우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라...?"

"어떤 연유로 외우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줄수있겠는가?"



........처음 불교에 입문을 하곤 사실

무얼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런지

막막 할때 어느 책을 보니

시간날때 마다 나무아미타불 을 쉼없이

외우다 보면 해탈을 경험 할수있다는

내용을 보고 외우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스님은

간략하게 이렇게 말씀하신것 같다..

" 젊은이! 내가 하나 권해 드리고 싶은데

이제부턴 지장보살을 불러 보시게....

지장 보살님은 보살님 들 중 으뜸으로

부처님 께서 직접 사바세계 중생제도를

부촉 하신 보살님 이시라네..

항상 지장보살님 을 부르시면

어떤곳에서나 두려움이 없어지는

편안 함을 얻을것이며

지금은 자네와 나

누구도 그내용을알수없는 가피를

경험할걸세.....

이책 속에도 나와있지만

명호를 부르면 조상님 들의 모습도

손을 꼭잡고 다니시면서 보여주신다네..."



"하시면서 겉에 "지장경"이라는 글씨가 써진

책을 한권주셨다..

젊은이가 이책을 한번읽고 두번읽을때 마다

더불어 이스님 의 속가 선망 부모님 과 조상님 들이

제도 되시는데 큰힘이 되니

앞으로 지극 정성으로 기도 해보시면

지금은 나도 모르고 젊은이도 모르는

그무엇이 꼭 나타날껄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이말뜻이 생각날꺼야..."



그로부터 20여년이 훨씬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스님은

불성이 어떠하니.탐진치가 어떠하고

집착이 어떻고..등등

무슨 말씀을 하신들

내가 담을 수있는 그릇 이 아니었음 을 아셨을 것이다.



단순하게 수없이 지장 보살 명호를 부르면

그명호를 부르는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묻고 헤아리게 된다.

이렇듯 나자신이 스스로 알아차릴때 까지

물레방아를 돌리신것이다..



차라리 혜능스님 처럼 따귀를 한대 때려도

내가 알아들을 수있었을까?

그때 스님 께서 하신 말씀의 뜻 만분의 일이라 도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해가 바뀌는 이즈음 어두운 밤.

그분의 손에 쥐어져있는

횃불의 따스함을 느껴보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中 安 올림



* 경오스님 은 창녕 부곡 효자사 주지스님 이셨습니다






5. 김 ㅇㅇ님 글

작년 여름에 사랑하는 남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9재도 지냈지만 시댁과의 예기치 않은 불화로 아이와 함께 나와서 살고있는 동안 49재 첫재만 지내고 그이후엔 찾질 못하였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목도하는 죽음앞에서 늘 인생무상을 느끼겠지만 예기치 않았던 이런 일에 내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지 연애결혼을 한 우리 내외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는지 답답함속에서 저는 불교관련 서적을 닥치는대로 읽어가다가 지장경 독송을 통해 남편이 바른곳으로 가길 원하는 마음에 집에서 독송을 하였습니다.

몇번인가 남편이 꿈에서 나타났지만 좋은 모습으로 있는것도 보았으나 그렇게 있길 원하는 저의 망상이 꿈에서 나타난 거려니 하고 지장경을 여건이 허락하는 한 독송을 하였습니다. 남편 사진도 옆에 놔두면서요....

경전을 독송하는동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임종전에 아미타불 부처님만 따라서 가라고 외쳤고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면서 염불도 했지만 터져나오는 울음에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시댁과의 불화를 지켜봤을 남편이 꿈에서 눈물 훔치는 꿈도 꾼지라 정말 열심히 독송하였습니다.

어쩌면 그건 제가 제 스스로 위안삼아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더 들더라구요 답답하니까. 얼마전 꿈엔 아이의 모습을 한 남편을 보고 제가 이제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서 자긴 이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인간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극락세계에 최하품으로 나더라도 윤회를 없애 성불하는게 최고지만 생전에 우리다시 태어나서 만나진다면 다시 만나 오래 살자고 했던 약속때문일까요? 그렇게 답하더군요

인간으로 태어는 것도 힘들고 부처님 가르침 받는 것도 힘들다지요? 그래도 그 꿈꾸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웃기게도 이기적이지만 넌 다시 태어나는구나 난 살아내야 하는데 라는 씁쓸한 웃음이 지어지지만요... 참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라 하대요..... 남편관련꿈을 꾸고 나면 늘 새벽4시 10분에서 20분 사이었거든요 망상이 지어낸 나의 꿈.... 때문인지 요즘은 삶에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하고 삽니다. 차에 출퇴근 할때도 염불테잎틀고 따라하고요 부처님의 가피력이겠지요? 지장보살님의 서원때문이겠지요?


나무아미타불카페 김 ㅇㅇ님 글 옮김




6. 파랑새78님 글

(i)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부모님이 불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말 그대로 왔다 갔다만 했을 정도입니다.

그저 향냄새가 너무 좋아서 법당에 몇 시간씩 앉아있기도 하고 맘이 동하면 법당에 있는 경전도 한 번 읽어보기도 했었죠.

대학원 진학을 앞둔 27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1여년 전부터 잠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무섭고 뭔가가 계속 괴롭히고 하는 일이 점점 그 시기가 짧아지더니 맨 정신에도 귀신이 보이고 어느 날은 TV에서나 보았던 저승사자 3명이 삼각 구도로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저승사자는 덩치가 무척 크고 3명 모두 다리는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또렷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여러번이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 밑이 검다며 저승사자 같다는 말도 자주 들었고 이유없이 아프고 힘이 없고 모든 의욕이 떨어지고 밤마다 무엇가에 시달리고 고함지르기를 몇 달간 계속되었습니다.

단지 몸이 약해져서 그럴거라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그 당시에도 딱히 종교가 없던 터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었고 뭔가에 빌어야 한다는게 용납이 안되더군요.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잖아요.



지장보살님이 누군지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얼마나 해야하는지.... 정말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석가모니부처님만 알았지 무슨 보살님의 이름이 이렇게 다양한지... 그 중에 나름 택한 것이 지장보살님이었습니다.

지장기도는 정말 힘든 기도다..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기도라는 등... 이상한 말들이 자꾸 들리더라구요.

전, 맘속으로 "그런게 어딨어??!! 정성껏 진심으로 하면 되는거지... 설마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저 했습니다. 오로지 지장보살님만 생각하면서 염불을 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하루에 만 번씩 그렇게 간절히 부르기를 100일을 했습니다.

밤 8시 부터 시작하기로 한 시간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뛰어서 집에 오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기도 하고 씻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린채로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두고 바로 지장보살님 사진 앞에 앉아서 또 염불하고...

'지장보살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정말 신내림 싫거든요. 만약 제가 신내림을 받아야만 한다면 절 그냥 데려가주세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요...'

정말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죽을 각오'로 지장보살님만 부르고 부르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잖아요.

그렇게 울고 있으니까 정말 지장보살께서 와주시더군요.



100일 회향하던 , 회향 의식을 마치고 너무 고되서 동생 침대에 대자로 벌러덩 눕는 그 순간,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한참동안 전율이 나면서 몸이 공중으로 뜨더라구요. 정말 본 사람이 있어서 이것이 거짓이 아닌란걸 아실거에요. 말도 안나오고 무섭더라구요. '지장보살님~~ 절 데려가시려나보네요... '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못 나와~~~!!!!?" 하는 호통치는 젊은 여자의 청아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요.

그 순간 온 몸에서 큰 덩어리 같은 것이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빠져나가면서 몸이 침대로 떨어졌어요.

정말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날 밤 꿈을 꾸게 되었는데, 목욕탕에서 때로 벗기고 있는데 어떤 어린 꼬마 두명이 들어오길래 여긴 여탕이니 나가라고 하니까 성년의 남자가 들어오면서 "걱정말고 깨끗이 씻어라. 내가 다 데리고 갈테니... 이제 괜찮을거다."

하는 말과 함께 두 명의 어린 남자를 데리고 나가셨어요.

너무 생생해서 신기했어요.

그 뒤로 이유없이 아픈 몸도 아무렇지도 않았고 꾸는 꿈마다 조상이 천도된 꿈이라는 말과 업장이 소멸되는 꿈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달 동안 절에 들어가서 기도 한 경험도 있는데 기도 시작 전날에 가슴안에서 시커먼 물체가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했고 15일 후쯤에 스님이 오라고 해서 가니까 얼굴만한 연꽃 화분 앞에 앉으라고 하시더라구요. 스님이 꽃잎을 떼서 먹여주고 있는데 하늘에서 셀수도 없이 많은 꽃비가 내리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회향 전 날밤에 자려고 눕자마자 비로자나 부처님의 커다란 손이 얼굴쪽으로 오더니 얼굴을 쓰다듬는거에요. 이건 꿈도 아니고 너무 신기하고 포근했어요. 어떠한 반응도 없이 그러고나서 그냥 편하게 잠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로 개인적으로 100일 기도를 3번정도 연달아서 더 했는데 꿈을 너무너무 많이 꾸는거에요.

특징적인 거는.... 입에서 벌레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그리고 스님들이 안 나올때가 없었습니다. 법당에서 춤도 추시고 같이 놀자며 사람들 사이로 데리고 오셔서 함께 춤추는 등...

그리고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굶주린 듯한 애기에게 뭘 먹여주고 있는데 큰 절벽같은 돌 위에서 화려한 장삼을 걸친 스님께서 미소짓는 얼굴로 서 계시기도 하는 등의 꿈들이요.

모두 다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였습니다.

너무 간단하게 쓰려니까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네요....^^;;

요즘은 자연스럽게 기도하는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은 토요일마다 삼천배, 능엄주와 광명진언 독송 등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전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인 불보살님이 늘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니까 자다가고 뿌듯한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늘 밝은 곳에 복 많이 짓는 하루하루가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II)


저와 비슷한 경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네요...

사실 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떼쓰기 작전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전, 오랜 수행을 한 수행자도 아니구요, 교리를 많이 공부한 사람도 아닙니다. 어까지나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올리는 글이니까 태클은 사양합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라고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부디 정답이 아닌 참고 사항으로만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님들의 맘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이런 말은 누구나 흔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보다 더 정확한 정답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경험한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님들께서 제가 완치되었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제 견해로는 이건 병이 아니고 '의지문제라' 봐요.

세상은 내가 중심이에요. 못할 일이 없어요. 내가 하기 싫음 안하면 되요. 칠성줄은 타고 나서 신내림을 안받으면 안된다는니 지장기도는 너무 센 기도라서 함부로 하면 안된다느니.. 누가 그래요?? 스님이든 법사님이든 그런 말은 무시하세요. 삿된 말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부처님만 믿으세요.

흔히 이런 힘든 경우에 점을 보러간다든지, 용하다는 스님들께 뭘 좀 보러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일로 스님들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스님들은 점 봐주는 분들이 절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절대 점 치지 말라고 경전에 수없이 말씀하셨느데, 스님들 죄짓게 하지 마시고 정법을 만나시길 바래요.



어떤 기도든 님들이 된다 생각하면 무조건 됩니다.

일단 된다!!! 라는 결론을 마음에 문신으로 세겨두고 기도를 시작하세요. 결과는 그냥 부처님께 맡겨두세요. 미혹한 중생의 탈을 쓴 우리가 무슨 재주로 점을 치고 미래를 예측하겠습니까.

점 쳐주는 그 사람은 얼마나 바르게 잘 사는 사람인지.. 불보살님들 이름 팔아서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지부터 물어보세요.

그냥, 밝은 결과를 마음에 새기고 부처님께 맡기는 수밖에요.

아음이라는 거 신기하고 무서운 겁니다.

그리는 그대로 이루어지니까요. 밝은 결과만 그리시길 바래요.



저도, 지장기도는 함부로 하면 안되는 기도라느니, 너무 센 기도라서 마장이 심하다느니...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당연히 기도가 잘 되고 있으니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기는건 당연한거 아닐까요??

원래 잘 나가는 사람들 주위엔 질투한는 못된 인간들이 많은 거니까... 그거 무서워서 포기하실거면 안하는게 낫죠.

지장보살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석가여래께서 일체 모든 중생들을 너에게 내가 맡기겠다... 하신 분이 지장보살님이세요.

미혹한 중생들을 위해 성불까지 포기하신 엄청한 원력을 가지신 분이신건 아시죠??

일체 모든 마를 항복받으신 석가여래께서 위촉하신 지장보살님을 감히 누가 !!!! ^^

어쨌든 일단 아무 걱정 마시라는 말부터 해드릴께요.

제일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저랑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친구보고는 관세음보살 닮았다 그러구요, 저보고는 지장보살님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스님들조차 그러시더라구요.

친구 역시 5년 전쯤에 저와 비슷한 일들로 인해서 굿도 하고 산 기도도 다니는 등... 몇 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말 안해도 아시겠죠??

돈은 엄청나게 깨지고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어요.

기도라는 건 누구에게 비는 행위가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지난세월부터 오늘에까지 자신이 지은 데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나는 것 일뿐입니다.

'참회'를 통해서 풀어야죠.

그것 뿐입니다.

말을 하자면 무당들도 잡신이 들어와서 자신도 어쩌지를 모르는데 누가 누구를 구제하고 어쩐단 말인가요??

더 큰 힘에 의지하세요.

진리에 의지하고 그 진리를 등불로 삼아서 자신을 참회하는 것이 제일 우선입니다.

추천하건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모르시겠거든 절을 하세요..

친구도 절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지금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데요...

힘이 드시면 108배 만이라도 100일을 잡으시고 지난 시간 지은 죄를 무조건 참회하고 이 법을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부처님께 바치세요.

성철스님 말씀이 절을 하는게 업장소멸에 가장 큰 약이라고 했어요.

업이 녹아내리는 것을 스크린으로 보여줄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직장을 관두고도 절만 할려할거라시면서요.



카페회원님들의 비슷한 질문이 많아서 참고로 제 기도체험을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정답이 아니며 참고로 하세요. 어디까지나 제 체험담에서 나온 제 견해니까요.




전 대학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한 기도가 지장기도라서... 그것도 목숨걸어두고 한 기도가 되다보니까 몸에 익숙해졌나봐요.
그리고 그 당시 전, 일반적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는 '염불'을 택한겁니다.

집에서만 했습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루에 천 원 혹은 삼천 원... 혹은 만 원... 여유가 없을 때는 몇 백원씩 저금통으로 만든 불전함에 불전을 넣고 얼마간 모이면 저희 동네에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익명으로 쌀 한가마니 보시하면서 기도에 임했습니다.

장소에 연연해 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북쪽이 좋은 사람, 동쪽, 서쪽... 등등... 말이 많은데,

내가 앉아서 불보살을 생각하는 그 자리가 법당이고 그 곳이 적멸보궁이지 따로 어느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어떤 기도가 좋다는 개념은 '없다'라는게 제 견해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토속신앙이나 타력신앙에 뿌리가 깊어서 기도는 오로지 빌어야 한다는 개념이 짙고 상황에 따라서 영가기도엔 지장기도, 극락왕생땐 아미타불, 현세를 위해선 관음기도, 취직이나 일의 성취는 신중기도 등으로 분리를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은 왜 염불만 했나..하는 건데요, 제 나름대로는 단 하나에 집중하고 싶어서였어요.

그 당시 제 상황은 신내림을 받아야하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숨 넘어가는 어린 애기처럼 살려달라고 지장보살님만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던거죠...

보통 신내림은 거부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아닙니다!!!

무속인은 자기도 귀신이 몸에 들어와서 어쩌지를 못하는데 누가 누구를 구한다 말인가요??

더 큰 힘과 원력에 의지해서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을까요?

잡신은 잡신일 뿐이고 선신이라면 인간에게 해꼬지 같은 건 하지 않을거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생각)


그 기도가 끝나고 곧 바로 들어간 100일기도 역시 '지장기도'였어요.

그 때는 제가 다니던 회사에 사표까지 내면서까지 강원도 월정사에서 30일간 삭발염의하고 단기출가를 해서 행자교육을 받고 온 바로 그 시점입니다. 님들께서 알아보시면 아시겠지만 한 달간 세속 생활을 STOP 상황으로 만들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행자교육이라는 거 헉!! 힘듭니다.

말 그대로 스님이 되기전에 행자 생활을 하고 오는건데, 인간도 아니고 스님도 아닌 존재라고 보시면 되요.

이 과정에서 '하심'을 크게 배웠죠.

태어날때 부터 미숙아로 태어나서 몸도 워낙 약한대다가 울기도 엄청 울어서 오대산에 소문이 자자했어요...스님들이 많이 괴로웠죠^^ 더 크게 발심해서 진짜 출가하시는 분들 아주 많습니다.

일체모든 만물은 부처다... 어찌 눈에 보이는 모든게 공경의 대상이지 않고 감사하지 않았겠어요.



교육중에 금강경 사경을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기도수행법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더 가까이 깊이 음미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삿된 일과 정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나름의 가치를 세운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모든 상황은 내가 만든것이고 나의 죄는 스스로의 참회를 통해서 풀어야 겠다... 그리고 인과의 무서움과 밝고 큰 원력으로 세상을 다시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지장보살본원경' 상권,하권 일자일배 기도를 했어요. 100일을 잡았죠.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비라기도 이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일단, 100일이라는 시간동안 5신채와 술, 고기를 먹지 않았구요, 오로지 기도생각뿐이었습니다.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죠. 모든 일이 그렇듯이 미쳐야 이뤄집니다. 기도 목적은 '업장소멸'이었습니다.

그 기간중에 전 엄청나게 많은 꿈을 꾸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꿈에 너무 연연해 하시면 위험해요~~ 무(無) 꿈이 대(大)꿈이다. 성철큰스님 말씀이에요.

제가 근기가 워낙 약하니까 꿈으로라도 일러주는 거겠죠.

100일을 한 번도 안빠지고 퇴근 후, 절에 가서 예를 올린 뒤 바로 사경기도를 했어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걸리더라구요.

일상을 마치고 저녁에 기도를 하다보니 사경중에 법당에서 자다가 스님께서 깨운 경험도 몇 번있고 절 문이 잠겨버러셔 스님깨워서 문 열고 집 간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절에선 문제아였어요...^^

아시겠지만, 기도 중에 오는 경계가 무지 많습니다.

고기 먹을 일, 회 먹을 일, 회식자리...물론 술도 포함이구요, 연락 잘 안오던 친구들도 만나자고 연락오구요.

어떤 분은 집안에서 마찰도 많고 건강한 애기가 아프기도 하더라네요.

전, 모두 다 마장이라고 생각하고 뿌리쳤어요. 부처님 만나러 가는 시간이 저에겐 더 즐겁고 중요하고 소중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죠. 하지만, 굉장히 망설이게 되고 힘들었던건 사실이에요^^;

그 날 분량만큼 일자일배 사경이 끝나면 그 날 했던 양을 한 번 읽고 스님들께서 강의한 관련 책으로 내용 공부도 하면서 뜻을 맘에 새기는 것으로 그 날 기도는 마무리됩니다.

무조건 독경한다고 끝나는게 아니고 부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일러주시려나 하는 맘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 순간은 2500여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부처님께서 지금 나에게 직접 법문을 해주고 계시는 시간이에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죄를 참회하게 되고 업장이 소멸되는 거라 봅니다. 이건 분명한 말이에요. 이 얼마나 다행하고 수승한 일이겠어요~ 사람 몸 받기 힘들고 불법 만나기는 더욱 힘들다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전, 기도 마지막 부분에 항상 했던 말이..

"사랑하는 부처님, 일체중생이 모두 행복하게
하소서..."로 마무리 했습니다.

원을 크게 세우시길 바래요. 과녁을 크고 크게 만들어야 화살 쏘기가 쉽겠죠?

부처님이나 지장보살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겠어요.

나만 잘 되고자 '밥 주세요' '돈 주세요' '취직시켜 주세요' ... 얼마나 밉겠어요^^

사실 처음부터는 아니고 기도 해 나가면서 마음이 커지더라구요.. 저도 처음에는 달라고만 했지만 해 나가면서 느껴지는게 분명히 있습니다.

비록 졸다가 나오더라도 내가 오늘 너무 피곤하니까 부처님께서 잠시 자게 하셨나보나.. 생각하고 또 감사함에 울컥하기도 하면서 하루 기도를 마치고 절밖으로 나오면 그 엄청난 환희... 님들께서도 꼭 느껴보시길 바래요~~~

직장다닌다, 학교다닌다, 일이 많아서... 집안 일이 있어서... 결혼을 한 주부라서 애들이 있어서...모두 다 핑곕니다.

미혼이라고 시간이 많고 기혼이라고 시간 없는 게 절대 아닙니다.

70~80평생 중 고작 100일 정도 투자 할 의지조차 없으시다면,

그런 나약한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기도 할 생각 하지마시고 그냥 그렇게 사세요!!!

생전 코피 한 번 안 나본 저는 기도 중에 코피도 여러 번 쏟았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구요, 인과의 법칙은 에누리 없다는 걸 우선 뼈속깊이 아셔야 합니다.

모두 다 자신의 지은 바 결과일 뿐입니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님들의 죄를 면해줄 수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이 말 하니까 갑자기 화가 나는데....^^;;

스님들도 왜 이런 말을 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

자기 기도는 자신이 해야 합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죠??

어느 절에 무슨 기도를 붙였는데, 스님께서 실수로 어떤 분의 축원을 빼먹은 거에요.

그 신도가 노발대발 화도 나고 섭섭하기 하고... 그래서 스님에게 따지기기도 하고 섭섭함에 울기도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러다 다른 절로 옮겨버리고..

스님보고 절에 다니나요?? 허.. 참...

자기 자신이 그 도량에 있고 거기서 기도하는데 스님 축원 한 마디가 뭐 대숩니까??

자기는 온갖 나쁜 말을 입에 담고 섭섭한 생각으로 성내는 마음을 내고 어리석게 행동해서 기도 잘 한 그 복까지 까먹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스님께서 축원해주시는 그 공덕보다 본인 스스로 3배라도 하며 영가를 위해서든, 본인을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 축원 하는게 더 올바르고 수승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기도를 하시는 도중에 어떠한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큰 공부가 되실겁니다.

불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하잖아요. 정말인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절에 다니시는 분이나 절 신도분은 매일 3000배씩 12년째, 8년째, 짧게는 100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학교 선생님도 여럿 계신데 이분들은 시간이 많아서 하시겠어요??

집에서 학교에서 틈틈이 하시고 그 만큼 원력이 밝고 크기 때문에 극복하고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참, 그리고 기도할 때 아침, 밤 상관은 없어요. 책에서 보니까 지장기도는 밤 9시~11시 사이가 좋다고 하는데, 저는 퇴근 후 7시 부터 9시 30분까지 했어요.

저의 어머니 경우도 늘 일과로 지장기도만 하시는데, 새벽 4시부터 108배와 지장보살 염불, 반야심경 11독, 밤 8시부터 광명진언 540독, 반야심경 11독하고 마치시더라구요.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얼만큼 지극정성으로 꾸준히..가 중요하죠.



그리고 지장보살님 사진을 두지 말라는 말은 근거없습니다.

조선시대때 억불 정책으로 인해서 집안에 불보살 사진이나 불상을 모시지 못하게 한 유교사상이 아직 뿌리내려져 있어서 하는 말이에요.

혹 궁금하시면 큰스님들께 여쭤보시면 압니다. 그야말로 근거없는 미신입니다.

저의 집에는 지장보살님 불화를 모셨습니다. 절에서 점안식을 하고 와서요. 불당처럼 된 건 아니구요. 작은 향 하나 켜두고 기도해요. 이런 것도 부담되면 원상을 걸어 두셔도 좋다네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가 맘 속으로 불보살을 생각하고 앉은 그 자리가 법당입니다. 아무것도 모시지 안아도 됩니다.

시방삼세 모든 우주법계에 두루 불보살님께서 계시고 다 아시고 다 보고 계십니다.

기도 순서가 좀 틀렸다고 넌, 복 조금만 가져가... 하실 분들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상에 집착하다보면 삿된 소견에 빠지기 쉬우니까 늘 주의하시고 기도하셨으면 해요~^^



그리고 지장기도 중에 능엄주와 광명진언은 왜 하나 하는 질문이 여러 분 계시던데요.

능엄주는 성철스님 문중에서 주로하는 부처님 비밀주문 중 하난데요, 기도 중에 오는 경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능엄주 독송만을 기도법으로 택해서 기도 하시는 분도 많은데, 부처님 정수리 광명이라고도 하더라구요.

모든 일체 마를 타파하는 주문으로 알고 있는데, 이 주문만큼 출처가 분명한 주문은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직접 이 주문으로 모든 마를 극복하고 도를 이루었다고 능엄경에도 나와있어요. 기회되면 읽어보시길 바래요.

어떤 스님은 능엄주는 너무 큰 주문이라서 일반재가자들이 하는 게 아니라고 큰일 난다고도 하시던데 그건 올바른 말이 못된다고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능엄경에 부처님께서 능엄주의 공덕부분에 하신 말씀이 분명히 나와있으니까 헛소리 하는 사람들의 근거없는 말들에 현혹되지 마세요.

모든 진언이 그렇듯이 능엄주는 대단한 큰 힘이 있는 건 아주 분명하고 착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방해를 면할 수있답니다.

저도 여러번의 100일 기도 하는 동안 하루에 5독 이상은 했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 중에 왜 광명진언을 하냐는 질문에 관해선데요.

광명진언은 지장보살예찬문에도 나옵니다.

광명진언은 법신인 비로자나부처님의 진언이고 모든 불보살님의 총주이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대광명으로 살아있는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다하네요. 원효대사도 이 진언의 공덕을 크게 말씀 하셨다고 하니 영가 기도 때 아주 좋으리라 봅니다.



어떤 기도가 더 수승하고 좋다는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같은 내용이라도 각각의 근기에 따라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셨다고 하잖아요.

너무 몰라서 살려달라고 오로지 구걸하듯 염불을 시작했지만, 염불 역시 마음을 밝히는 최상승의 기도법이라고 합니다.

저도 아직 제게 맞는 기도법을 찾는 중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해보는 중입니다.

3000배, 능엄주 108독, 광명진언 1080독, 독경, 사경, 염불...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그리고 지장기도가 장애가 있다는 말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상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그 한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전, 지장보살님이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두건까지 하셨네, 지장보살님은 센스쟁이~~', '너무 이쁘다'... 그러면서 기도했어요. 기도 시작할 땐 늘 '사랑하는 지장보살님, 제자 OO는...'

이렇게 시작했죠.

내가 사랑한다는데 대자대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싫다고 무서운 얼굴로 내치시겠요??

지장보살님뿐만 아닙니다.

관세음 보살님도, 용수보살님도, 대세지 보살님도... 누구라고 마찬가지라고 봐요.

지장기도 중에 관세음보살님이 꿈에 나오셔서 답변해주는 경우도 무수히 많고, 관음기도 중에 보현보살님이 답변해주는 경우도 흔한 일입니다.

각각 근기가 다른게에요.

영가 천도라고 해서 지장보살님이 최고다라는 것도 아닙니다.

불법을 옹호하는 모든 일체 신들과 불보살님은 다 아십니다.

아미타불~~ 하셔도 되고 지장보살~~석가보니불~~ 관세음보살~~~ 모두 다 산자와 죽은 자를 이익되게 하시겠다고 큰 원력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부디 어떤 삿된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한 분의 불보살을 님의 주불로 정하셔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길 바래요.



그리고 염불기도를 했다고 하니까 그 방법에 대해서 물으신 분들도 있는데요,

염불할때 전 천주를 이용했어요. 기도 할려하니까 엄마가 사주시대요~~

소리는 자신의 귀에 들릴 정도로 했구요, 처음엔 똑똑한 발음으로 시작해서 틈을 주지 말고 빠르게 했어요. 그게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발음에 상관 안했구요, 염불할 때 지장보살님이 나에게 광명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맘 속으로 그리면서 하세요.

어떤 날엔 넘 하기싫을 때가 있는데 경계니까 필히 주의하시고 그럴땐 큰 소리로 하니까 도움이 되더라구요.

잘 되는 날엔 기도가 잘 되고 있다 생각하고 더 많이 했구요. 하지만 마장이 온다는 것도 기도가 잘 되니까 방해하는 요소가 생기는 거니까 실망마시고,

"아~ 내가 잘하고 있는거구나!!"하세요. 포기만 안하시면 됩니다.

저도 절에 작은 할아버지 위패를 모셨는데 요즘엔 집에서 합니다.

영가는 식이 맑아서 님께서 맘 속으로 부르면 금방 알아차리고 온다네요...

어디든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영가위패 모셔진 절에 가셔서 기도 하심이 좋을 듯해요.

전, 절에서 기도할 때 늘 동방이라고 하는 고름달린 옷을 챙겨입고 합니다.

옷이 뭐 중요하냐 하겠지만, 중요합니다.

트레이닝 복 입고 기도하는 것이랑 법복을 정식으로 바르게 차려입고 하는 건 마음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꼭 동방이 아니라도 기도 때 입는 옷은 늘 깨끗이 하셔서 입으시길 바래요.



그리고 사람들은 기도 중에 꿈을 꿔야 하는데... 왜 난, 꿈을 안꾸지?? 기도를 잘 못하고 있나?? 하시면서 너무 꿈에 의지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정말.... 그게 뭐라고..기도하면서 너무 신비스러움 쪽으로 의미를 두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말들에는 현혹되지 마시길 바래요.

부처님께선 해몽도 하지 말라 하셨어요. 다 마음 작용인거죠. 해몽도 하기 나름이잖아요.

가피라는 게 별거에요??

힘든 기도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인해서 긍정적인 사고가 형성되면서 업장이 소멸되고 가피를 받는거에요.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 마시고 그 날 그 날의 기도에 최선만 다하면 되지 언제 가피를 받나...하는 쓸데없는 생각하는 시간에 염불 한 번 더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제 경우는 6월 26일 까지 금강경 사경을 마칠 계획이에요. 그리고 자나깨나 오고갈때 늘 광명진언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꿈속에서도 가능해지기위해....^^

그리고 6월 27일 부터 우란분절(백중)날까지 제가 사랑하는ㅋㅋ 지장보살님께 일체영가의 왕생극락을 위해 그리고 늘 부처님 곁에 태어나게 되기를 발원하며 기도 드릴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영가기도는 계속하시지만 개인적으로 작은 할아버지(아버지 삼촌)를 위한 기도를 이번엔 집중적으로 하려고 해요.

제겐 특별하신 분이라서요.

결국, 기도라는건 내가 편하자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돌고 돌다보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아시리라 봅니다.



영가 장애가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시는 분들은 부디 불보살님께 '...해 주세요'등의 기도보다는

'잘못했습니다'의 참회기도와 '...일체 중생의 행복을 발원합니다' 혹은 '... 부처님전에 부디 복 많이 짓게 하소서..;등의 크고 밝은 원을 세워서 기도 하셨으면 합니다.

부처님은 해달라고 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두 자기 지은 바 대로 인과의 법칙만이 있을뿐입니다.

그것을 일러주신분이 부처님이고 강을 건너는 뗏목으로 알라고 하셨어요.

뗏목도 이미 강을 건넌 사람에겐 필요없듯이 상에 집착하지 마시고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생각하서서 늘 불보살님의 가피로 소원성취하시길 바라고 밝은 곳에 복 많이 지으셔서 오늘 여러분이 기도 한 공덕이 씨앗이 되어 반드시 탐스러운 열매가 맺어지는 날이 오기를 발원합니다.



부디 님들께서도 기도성취하시고 일체생명에게 회향 잘 하셔서 맑고 밝은 분이 되시길 바래요~~

님들과 인연있는 모든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바라며 이만 줄일게요.


7. 강보리심님 글

저도 한때는 무섬증으로 잠을 못이뤘어요 그러다 지장기도를 한후에 점점 없어지더군요,
그리고 신기하게 우리 강아지가 자주 경기를 했었는데 지장기도후에 그 증상도 없어져서 홀가분해요


8. 보소미님 글

전에 지장기도를 한적이 있었는데 4년쯤전에 그땐 꿈에서 거의 선명하게 풀려나가는게 보이고 지장보살님도 친견하고
했었는데요.( 산꼭대기로 따라올라갔어요) 제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참.. 지팡이든 할아버지셨어요.

9. 맑고 깨끗한 마음님 글

지장기도를 생활 수행 삼아 한지 100일이 넘었는데요

저의 가족의 업장소멸을 계속 기도 중이며 더러 꿈을 꾸기도 하는데

며칠전 꿈에

동남아의 한 나라에 제가 잠시 체류중인 듯한데

너댓살 먹은 아이가 나랑 같이 있다가 이제 가야 되겠다고 하면서 나를

떠나려 하는데 제가 안쓰러움과 아쉬운 마음을 느끼면서

제가 갖고 있던 가방을 메어주고 옷을 벗어서 입혀주고나서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그 아이에게 주면서

다독거려주고 잘가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꿈을 꾸고 나서 마음이 참 평안했습니다

(10) ㅇㅇㅇ님 글

이렇게 글을 올리다니 꿈만 같네요.

지장기도를 하다보니 불보살님의 가피도 입고
조금이나마 도움이되고자 글을 올립니다.

전 올해 26살로 카드빚만 수천만 원가량지고 있었고
그 빚은 제가 아는 사람 때문에 도와주려다 같이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그 빚으로 인해 차압이다 뭐다 죽고 싶을 만큼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은 나머지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지장보살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 방황할 때 어느 비구니 스님의 권유로 지장경 한 권과 지장보살예찬문을 받아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지금 만큼이나 힘든 시기였는데 기도 덕분이었는지 무사히 잘 헤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기도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사람이란 것이 힘들어지면 다시 찾듯 그렇게 지장 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하루 지장경 4독씩 8시간을 경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108배 참회를 하고 나중엔 지치다 못해 쓰러질 만큼....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제 음식 공양을 받고 흡족한 모습으로 다들 떠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카드빚은 거짓말같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오빠가 교통사고가 나는 시간에 전 잠이 들었는데
꿈에 오빠가 운전을 하고 사고가 나려고 하는 순간 어느 스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 오빠를 감싸 안는 꿈을 꾸고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깨어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전화가 오고
대형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오빠는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하게 전치 1주 진단을
받았습니다.

전 늘 기도를 하면서 제가 이렇게 어려웠는데
지장보살님이 절 도와주신다면 전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겠다고 다짐하곤 했기에
이제 남은 생은 정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생각합니다..

지장보살님 가피에 _()_


(11)

海印님 글

지장경 독송 가피


두서없이 짧게 적어 보겠습니다만...길지도 모르지요.

어느날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빙의가 왔습니다.

그날이후

몸은 천근만근 정신은 오락가락이 되어 버리더군요.

팔다리는 아령이 하나 달린 몸이 되어 100m 걸어면 지쳐버렸습니다.

간다가 쉬어간적이 한두번이 아니지요.

정신을 흔들어 버리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되더군요.

모든 눈에 보이는 대상물이 무섭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더군요.



숟가락 신발 테레비 책장 벽 ...기타 모든것이 눈에 꼽힐때 바로 무섭고 두려워 지더라구요.

나중에는 우울증까지 오더군요..

아뭏듯 정신상태가 자살을 유도할 정도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혼자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불쌍해서 동반자살 할까 고민할 정도로..

빙의에 의한 몸의 괴로움과 두려움, 무서움 그기에 우울증까지 동반...



아무튼 날이 갈수록 더 심해 지더군요...

대체 원인이 뭘까...고민하다가

우연히 제가 다니는 절의 지장재일법문을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빙의와 업병에 대해 법문이 나오더군요...

이거구나...이거구나...

그나마 지장보살님의 가피로 인해 지장법문을 보게 되었구나...

참으로 고맙더라구요...



지장기도를 해야겠다 싶어..이리저리 서점에 가서 지장경과 영가천도에 관계되는 책을 10권 정도

구입해서 우선 다 읽었습니다...물론 지장기도 하더라도 지장보살님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하자는 취지였죠.


수많은 기도법이 나오는 가운데...딱 하나만 하기도 했습니다.

지장경 1독만 하자..

딱 하나만 죽도록 패자...


지장경 1독을 시작했습니다.

참 길더군요 1시간 30분...그것도 소리내어서 하니 힘이 딸리더군요.

깡....으로 버텼습니다...



일주일후....그 무겁던 다리가 풀리더군요..

100m 걸으면 치쳐버리는 아령이 하나 달린 그 무거운 다리가 풀리더군요...



또 일주일후..그 무겁던 아령달린 팔이 풀리더군요...

그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의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니 좀 살것 같더군요...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오락가락...



또 한달 보름후

어느날 지장경을 독송하는데

갑자기 정신이 맑아 지더군요...

두려움과 무서움이 다 날아 가버리고 평상시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더군요...



얼마나 기뻤던지...지장보살님의 가피가 빠르다는것을 알았지만..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입으로 자동으로 대원의 본존이신 지장보살님이시여...감사합니다.

수없이 되새겼습니다..

지장경의 내용대로 독송의 위력이 이정도 구나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뭏듯 그날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지금껏 하고 있습니다...



빙의 탈출외 또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보너스로 더 받으니..

어찌 감사해야 할지... 몇자 더 적어 보겠습니다..



제가 매일 지장경 독송할때 매일 천원씩 보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매일 천원씩 모은돈이 한달이 지나니 조금 쌓이니..

(사실 금액은 한달에 3만원 꼴입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 하던중...어느 스님 법문이 귀에 지나가더군요.

스님이 이런이야기 하는것 사실 부끄럽지만 부처님전에 보시하는것이 가장 수승하다...말씀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니는 절 지장전에 보시해야겠다 싶었지요..

제가 절에 모든 재일에는 거의 갑니다...

처음 한달반을 모은 보시금을 들고 초하루때 지장전에 보시하고 왔지요...



일주일후...2천만원의 공돈을 들어 오더군요...

오....오...



그로후 한달뒤 또 그동안 모은 보시금을 들고 지장전에 보시하고 왔지요..

일주일후...5백만원의 공돈이 들어 오더군요...

오...오...



그로후 또 한달뒤 그동안 모은 보시금을 들고 지장전에 보시하고 왔지요..

사실.. 이때는 또 주시겠지..하는 기대를 하게 되는 어리석은 심정이 되더라구요..

일주일후...백만원의 공돈이 들어 오더군요...



그때 무릎을 쳤습니다...보시에는 어떤 조건이 걸리면 안되고 무조건 청청해야 한다고...

그뒤 기도후 천원을 보시할때마다

딱 한가지만 이야기합니다.



대원의 본존이신 지장보살님이시여.

제가 보시하는 이 공덕을 우주법계에 회향합니다.

모든 중생들 다 잘되게 하여 주십시요.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



아뭏듯 지장경 독송의 가피의 위대함을 알았습니다...

빙의 탈출과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빙의 탈출이후 다시 기도를 시작하여

지금은 지장경독송 3년 목표로 64일째 기도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경봉 큰스님의 말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 믿음 그것만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



기도하시는 모든 불자님들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강력한 빽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고 행하기만 하면 모든 가피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



(12) 익명님 글

삼칠일 지장기도를 마치고 절에 다녀온 그 날 꿈을 꾸었는데, 한복 차림의 수많은 이들이 아주 하얗고
아름다운 장식이 화려한 가마를 들고 빛이 환하게 빛나는... 경사가 완만한 언덕으로 올라가더군요.

거의 잔치 분위기 였고, 모든 이들이 어딘가에다 대고 감사하다고 연거푸 절을 하며... 합장한 채로...
기뻐하며 가더군요



(13) 성국누나님 글

저는 사실 몇 년 전에 장소 안 가리고 지장보살님 염불하던중 지장보살님을 뵈었는데,
지장보살님은 너무나 따뜻하고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시면서 제 손을 잡아주셨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원만한 상호이셨습니다.

원불을 바꿔 모시지 마시고, 꾸준히 지장보살님 모시고 지장기도 열심히 하셨으면 합니다.

분명히 크게 가피를 입으실 겁니다.

나무 지장보살마하살_()_


(14) 아기 지장님 글

저는 23살 대학생입니다.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불자도 아니었고


지장보살님은 어렸을 적(초등학교도 다니기 전에)


능인선원 불교학교를 다니며 들어본 기억이 있던 그냥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지금도 아주 가끔 기도를 할 정도로 게으른 불자랄까요..


제가 지장보살님을 처음 뵌 것은 본의아닌 꿈속에서였습니다.


21살때였나요- 처음으로 가위란 것을 눌려보았지요.


긴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한 귀신이 3명...허..지금도 그들의 얼굴이 기억날 정도입니다.


가슴에 무거운 뭔가가 확 올라간 느낌이더군요. 커헉.


그런데 갑자기 제 옆에 저희 어머니가 나오시더니


"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


이라고 외치시는겁니다. 허헛..



딱 3번 부르시는 동안, 첫번째는 무거운 느낌이 없어졌으며, 두번째 부름에는 손발이 움직였고



세번째 부름에는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긴장까지 풀어졌습니다.


그러고 깼더랍니다.



못 믿으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그 뒤로 꿈에서 깨어나 지장보살님에대해 물었습니다.



허헛..천도까지 맡고계시던 보살님이시라니..중생이 모두 부처가 될 때까지 보살로 계시겠다니..


그 뒤로 두번째,



22살 가을-



대학 동아리실에서 누워있던 저는


아프지도 않은데 일어나질 못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겠고, 몸은 안움직이고.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하하.



처음으로 그 날 구급차에 실려가봤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심신이 건강한 소녀(?)랍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데, 거짓말처럼 말짱해지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옆침대로 통곡을 하는 아주머니가 한 아저씨에게 업혀 실려왔습니다.



" 날 왜죽였어~! 날 왜죽였어~! "



" 아이고 아파라~아이고 아파라~"



나는 처음에 차에라도 치여서 몸이 너무아파 통곡하시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오시면서


부엌에서 일하시던 아주머니께


'집에있던 개를 잡았으니 요리해달라' 라고 말하는 순간 쓰러지면서 그렇게 되었다고하시더군요.





아주머님의 상태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혓바닥으로 입술을 훔치며



끄응끄응~하는 개소리까지 냈죠.





그때당시 저희 아버지께서 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오셨는데


(아버지는 병원계통에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아주머니께 진정제와 수면제를 다량 투입하는걸로 보였는데도 진정이 되질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얼마나 다급했는지 아저씨가 저에게 물으시더군요. 어떻게 하냐고.





저는 그 때당시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단번에 " 빙의되셨네요 "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하, 제가 생각해도 그때의 저는 제가 아닌거 같아요.



아저씨께 그 개를 잡수셨냐고 여쭤보니
죽여만 놓고 아주머니가 이리 되시는 통에 드시진 않았답니다.





저는 아저씨께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개를 양지바른곳에 묻어주고 오라고 말씀드렸지요.





아저씨는 핸드폰까지 제게 던져주시며 뭔일있으면 이걸 눌러 통화하라고 하시곤



부리나케 그 길로 개를 뭍어주러 집으로 달려가셨습니다.





내가 강아지를 부르는 소리를 내니까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나는 억울해..끄응..끄응.."





"아파, 아파..너무아파"





이런 소리를 내며 아주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저는 아주머니의 가슴을 토닥여드리면서





" 너는 잘못한게 없어, 알지? "





라고 말하니까 고개를 끄떡끄떡 하더군요.




" 응.. 착하지, 아주머니 괴롭히면 안 돼, 지장보살님 부를테니 손잡고 좋은데로 가? "



하는말에 강아지는 주인이 기분 좋을때 자기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 (그랫쪄? 우리강아지? 그랬져~으응~)
를 내며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내더라구요.





제가 할 줄 아는건 "지장보살" 4글자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불경을 외울줄 몰라요.





잠시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골 병원이라 10평도 안되었던 작은 병실에 향을 피우는듯한 향냄새가 가득 퍼지더군요.





허헛, 이게 웬일입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저의 말,





" 부처님 오셨으니 이제 가야지 "





허, 제가 말해놓고도 지금으로서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저게 누구래요?





그러자 아주머니.



" 그래그래 가야지~ 가야지~ 나 간다~? 하하하하하하하!!! "


하면서 깔깔 웃으며 아주머니의 가슴이 한번 들썩이더니 아주머니는 이윽고 곤한 잠에 빠지셨습니다.





그리고 타이밍 절묘하게 바로 아저씨께 전화가 오더군요.





양지바른곳에 잘 묻어줬다고..





아저씨가 돌아오자 아주머니께선 잠에서 깨어 화장실도 스스로 걸어가시고 목소리도 높은 목소리에서





정상적인 목소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제게 "고맙다" 한마디 하시더군요.





허허..제가 뭘 한게 있다고..;;





아저씨는 제게 이후에 어떻게 하냐고 여쭤보셨죠.





그래서 살생은 절대로 하면 안된다고 누누히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이제, 다시는!! 절대로!! 안할거다!!" 라면서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리고 지장보살님이 도우셨으니 가까운 절에가서 제사한번 지내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음 급한 아저씨, 어느절? 이라고 물어보기까지 하시더군요. 허허..마음이 닿는곳이라면 어느곳이나 ...





아저씨는 장호원 근처에서 낚시터를 운영하시는 분이라 하셨습니다.





낚시터에 놀러오면 배도 태워주신다고 꼭한번 놀러오라 하셧는데..





그 뒤로 꿈에서 뭐만 나왔다하면 "지장보살" 이라고 외칩니다.





신기하게 그때마다 지장보살님은 그 꿈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저는 부처님의 존재를 믿지 않은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많은 일들로 일말의 의심조차 없어졌다고 봐요.





저의 닉네임을 아가지장이라고 지은것도





현존하신 부처님의 손에 많은 도움을 받은 중생이라 그리 지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여러분도 틀에 짜여진 어떤 염불이라기 보다는





진심으로, 염원으로 부처를 원하면



무엇이든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5. 새벽별아님 글

 

 

(i)

 

제 작은 경험을 올려 저처럼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올려봅니다.

 

저는 직장에서 몇년전부터 승진의 소망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기회가 닿을듯 닿을듯하다가 비켜가

버리고, 또는 다른 남자동료에게 제 자리를 뺏겨 버리기를 수차례 반복하여 마음속의 고통과 아픔이

너무나 컸습니다.

 

 

승진해도 사실 급여의 차이는 얼마되지 않지만,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직장내서

인정받고 못받고의 대외적 판단 기준이 되고, 또한 자존심의 싸움이기에 경험하신 분들은 그 고통을

잘 아실 것입니다.

 

 

여자이고, 소위 학벌, 가문등의 내세울것 없는 초라한 형색이다보니 힘쎈 남자직원에게 밀리긴 참

쉬운 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카폐에 오시는 가장 훌륭한 분의 말씀을 듣고 지장경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밤에 잠들기전에 정수한그릇 떠 놓고 감사기도하고 지장염불하고, 염불하면서 횟수에 얽매이지 않으려 애써면서 삼매에

빠져들려 무지 노력했습니다.(근데, 삼매, 이게 잘 안되더군요^^)

 

 

새벽엔 4시20분에 알람 맞춰놓고 일어났습니다.

이게 젤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잠하면 감히 저를 따를자가 없을거 같은디 이런 제가 그 시간이 일어나는건

거의 기적이었거덩요^^

 

 

기도 시작하기전에 미리준비한 천원짜리 신권지폐를 매일 한장씩 봉투에 보시하였습니다

( 기도가 다 끝나면 그돈으로 절에 쌀을 공양하거나 보시하엿습니다)

그리곤 지장경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읽고 지장염불하였습니다

대충 2시간정도 걸리는거 같습니다.

특징은, 아직까지 지장경 70번 가까이 읽은거 같은데 남들이 말하는 꿈은 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마침내 직장에서 승진하였습니다.

 

어제만큼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했엇고,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를 맘속으로 힘차게 외쳤습니다.

지장경을 읽어보면 절실하게 지장보살을 찾으면 '가는곳마다 막힘이 없으며' , '구하는것을 모두 얻으며'

란 구절이 있습니다. 욕심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소망으로 간절히 찾고 도움을 구하면 반드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든, 무슨일을 하든 마음부터 너무나 편안해집니다.

 

저처럼 힘든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하여 올려봅니다, 성취성불하십시오

 

 

 

 

(ii)

 

이 글은 어느 절 홈피에 올렷던 제 경험입니다.

저는 몇일전 '가피를 받았습니다'란 제목으로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그때 올린 내용을 추가하여 올립니다.

 

저는 불교를 알지도 못하는 초보입니다.

다만, 간절함에 어떤 것을 이뤄보고자 부처님을 찾앗고, 그래서 기도법도

모르면서, 아침 출근길에 직장 가까운 절에가서 108배를 하고 출근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할수 있는 기도가 뭘까 혼자 고민하다가 내린 기도법이었으나

그러던 중 이 카페를 알게 되었고, 또한 제마음속의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3월엔 직장에서 승진을 하였고, 그 이전에 제가 받은 가피를 올리려 합니다.

제게는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아들은 지금 고2인데, 몇년전부터 아침마다, 수업시간중에, 매 시간마다 툭하면 코피를 흘려서

정말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한약방이나, 병원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열심히 치료하였으나 주사를 맞고 약을 먹을땐 멈추다가

약이 끊히면 다시 재발하여 정말 어떻게 할바를 몰라 헤매던중, 지장기도를 하다가 그 마음속에

아들의 코피가 완치되길 정말 간절한 마음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지장기도 단 일주일만에 아들의 코피가 완전히 멈추엇고 아직까지 한번도 흐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초등6학년인 제 딸아이는 아주 어릴때부터 편두통이 너무 심하여 혹시 종양이 있는게 아닌가

하여 두뇌정밀 검사까지 받았고, 단순한 편두통이라 하였지만, 시도때도없이 발생하여 그럴때면

토하거나, 머리를 싸안고 고통스럽게 우는날이 정말 많았습니다.

편두통은 특별한 치료방법도 없고, 병원에 다녀와서 달래서 재우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악성 편두통이 한번 발병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울기만 하니,정말 힘들었지요,

그러나, 지장기도 한달쯤 지났을때 거짓말처럼 이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카페를 알게되었고, 훌륭한 선지식을 만났고, 많은 좋은 분들의 말씀을

읽으며 불법을 배울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기도는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소원은 간절하나 기도하는 중에는 소원에 집착해선

아니되며, 확고한 믿음하에 그저 기도 그 자체에만 심취하여야 하는거 같습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업무시간외는 될수잇는한 고요한 무심의 상태로 지내며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에 끄달리지

않으려 노력합니다(이건 사실 아직 잘 안되요~^^)

그리고, 언제나 절에가면 소원을 절대 말하지 않고, 그저 감사기도만 하고 옵니다.(말안해도 다 아십니다^^)

그리고, 절에 갔다오고 기도하고 그런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리려 노력합니다.

 

앞으로 한발한발 더 열심히 불법을 공부하며, 보살행도 흉내내면서 초보의 경지를 탈피하여 보고자 합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우여러분께 항상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6. 여의보주~님 글

 

안녕하세요 불교에 귀의한지 얼마 안되는 초보불자 20대 여성입니다.

 

기도 도중에 가피가 많아서 글 쓰고 싶어서 쓸까 말까 고민 많이 했었어요

 

 

아직 기도가 끝나지 않았는데 쓰면 왠 방정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이 좋은걸 모든 사람들이 알면 신심다지는데 좋을까 싶어 용기내어 올립니다.

 

 

 

 

저희집에 우환이 생겨서 광명진언기도 2달후 지장기도 시작한지 10일 지났습니다.

 

지장기도 시작한지 첫날부터 몽중가피가 대단했었는데 그건 지장기도 100일 끝난뒤에 소상히 올릴려고 합니다.

 

제가 지장기도를 할때 지장경을 읽고 끝에 츰부다라니 3번이나 7번 읽고 지장보살 정근으로 끝을 냅니다.

 

 

특히 츰부다라니를 읽으면 지장기도할때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서 참 좋더라구요(덕분에 겁도없이 지장기도를 계속하고있어요)

 

 

그리고 츰부다라니 공덕이 여러가지 많지만 나쁘고 탁한기운을 맑게해준다,,,라는 구절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래서 최근 10일동안 딸인 저만 읽다가 어젯 밤에 저희 어머님께서 주무실려고 누우셨을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 뒤 어머니가 누우신채로 저는 츰부다라니를 딱 1번만 읽어드렸습니다.

(참고로 저희 어머님도 매일 지장경을 13품중에 4~5품을 꼬박꼬박 속으로 읽으십니다.)

 

 

독송을 마친뒤 "이 다라니를 읽은 공덕을 저의 어머님께 바칩니다. 지장보살님 저의 어머님을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세요"

 

라는 짧은 축원을 한 뒤 바로 주무셨습니다.

 

 

 

 

그 밤에 어머니께서 꿈을 꾸셨는데...산속에서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어떤 집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는 하얀옷을 입은 여러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라 어머니는 바로 집을 나가셨다고합니다.

 

그 길로 집을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뛰어 나오더니 "이런거 달고 다니시면 안됩니다 " 라고 하시며

 

엄마 등 뒤에 검은 큰 물체를 떼 주시더랍니다.

 

그러고는 꿈을 깨셨는데 너무 기분이 좋고 저에게 자랑을 하십니다 ^^

 

말씀대로 지장보살님께서 저의 어머님의 검은 기운을 거둬가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 큰 가피이지요

 

 

 

 

제가 이 얘기를 드린 이유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공덕과 영험을 참으로 많던데 츰부다라니는 상대적으로 적더라구요

 

제가 기도하기전에 츰부다라니에 대해서 자료를 찾느라 웹써핑을 했는데 실제 체험담이 적어서 그냥 읽어나보자 라는

 

심정으로 드립다 독송만 했었지요.

 

 

 

 

제가 이렇게 가피를 입고 보니까 이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모든 사람들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었으면 해서

 

누추한 글 솜씨지만 글 몇자 적어봅니다. 사실 저는 초보불자이고 하루종일 기도에 매달리시며 용맹정진 하시는

 

불자님들이 많은데 애송이에 불과한 제가 이 글을 쓰는게 누가 될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한편으로는 젊은 불자님들이 이 글을보고 신심을 내어 기도를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것도 있습니다.

 

제가 지장기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젊은 불자님의 기도영험담을 읽고 큰 용기내서 시작한거거든요.

 

 

혹시나 저의 글이 문제가 되거나 잘못된건 없는지 걱정되네요 잘못된 점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나무 지장보살 나무 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 ()

 

 

 

17. 지장보살님 가피님 글

 

 

몇년 전에 심장마비가 왔었던 남편이 오래살게 해달라고 지장경 사경을 시작한지

1년이 넘었네요. 그간 회사도 다니고 애도 봐야하고 바뻤지만 틈틈히 써서 지금 30번째 쓰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지장경을 30번을 쓰면 소원한가지는 이루어 주신다고 하여 다른건 필요없고 그저

제 남편 하나 오래살게 해달라고 빌면서 쓰고 있습니다 광명진언 기도도 1년넘게 열심히 해온결과

가정은 점점 행복해지고 돈도 쓸만큼 들어오고 무엇보다 남편이 많이 건강해 졌음을 느낍니다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어디서든 그물건이 선물로 들어오며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해서 기도할때에 눈물이 납니다. 이제 몇일있으면 다 쓰게 될터인데

처음엔 다 쓰고 나면 가끔가는 절에가서 스님께 회향해 달라고 ,.태워달라고 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번달에 둘째를 출산 앞두고 있어서 제가 가던 절이 높기도 하고 해서..어떤 책에 쓰여있기를

그냥 집에다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하기도 하고 태워야 한다고도 하고 말이지요..

 

 

이왕이면 남편이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절에가서 스님께 태워달라고 하고 싶은데 어찌하는것이 좋을지

 

어찌하는것이 바른것인지 좀 알려 주세요..드디어 다썼다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좋습니다

 

 

모두 성불 하시구요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18. ㅊㅎ님 글

 

 

큰 가피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제가 지장보살님께 기도드려서 입 마른게 사라진 것입니다...정신과약을 먹으면 어떤 사람이건 입이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저도 그랬는데 전 심해서 너무 괴로왔습니다..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고 있다가 지장보살본원경을 독경하기 시작했는데 3품쯤 되니 갑자기 입에서 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신기했습니다...그래서 그 뒤로 입마른게 사라졌습니다.

 

 

 

19. 조아님 글

 

 

다음, 이젠 아이를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 할 차례인데 그간 불심이 미약했던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우리 나무아무타불 카페의 영험록도 프린트해서 보여주고, [요범사훈]책도 읽게하고, 조금씩 아내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되더군요. 물론 이전에 아내는 임신을 위해 한약도 많이 먹고, 산부인과에 다니며 인공수정도 6번이나 시도했는데 다 실패하고 자주 눈물로 지새는 날이 많았습니다.

 

마지막 시도로 대구에 마리아 산부인과에 시험관 아기시술을 위해 방문했는데 카톨릭 재단인걸로 알고 있는데 원장님이 백팔배를 권하더라구요. 종교적인 점을 빼더라도 완벽하게좋은 운동이라구요,아내는 열심히 기도하며 백팔배를 오전 오후 저녁 세번씩 하구, 저는 내심 지장기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엔 좀 망설였습니다.

 

 

[지장기도는 잘못하면 큰 피해를 본다]는 속설때문에,,, 그래서 많은 지장기도 체험담을 검색해보고는 지장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일단 21일 기도를 목표로, 인근에 있는 [도리사]에 들려 천배로 시작했고, 다음 칠일후 천배, 그다음 칠일후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았구요. 시술후에도 저는 천일을 목표로 계속해서 집에서 청수로 공양올리고, 발원, 지장경 읽고, 108배,1080번 지장보살염송 순서로 기도를 계속했고 임신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날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지장보살을 불렀는지...

 

영험담?? 글쎄요. 아내는 시술전 꿈에서 부동산 사무실에 집알아 보러 다니는데 2명의 여자와 함께 총 3명이서 우리 집을 보여준다며 가는데 한 아이가 아내 손을 꼭 쥐는 꿈을 꾸었다네요, 하지만 뭐 그냥 흔하게 꾸는 별 신경도 안썼죠. 그런데 시험관 시술하는날 3명이 함께 시술했고, 아내는 계속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면서 고통을 이기고, 결국 제 아내만 아이가 생겼다네요.

 

 

그럼 지장기도하는 저는??? 아내를 운동시킨다고 근처 감은산이라는곳을 등산을 매일 다녔는데, 물론 이때도 계속해서 [신묘장구대다라니] 또는 [광명진언]을 아내와 대화하면서도 속으론 염을 하고다녔습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고 내리는데 저는 그윽한 향냄새를 맡아서 아내에게 "근처에 절이있나보다, 향냄새가 나, 아주 좋은 향이네" 라고 하면 아내는 저보다 냄새에 훨씬 민감한 개코인데도 아무냄새도 않난다고 하더군요. 저는 비염이 있어 거의 냄새를 잘 못 맡는 편인데도 향냄새가 바람따라 오더군요. 꽃향기는 분명아니고 우리가 절에서 맡을 수 있는 아주 품질 좋은 향냄새...

내심 '기도 성취가 되는가?? '갸우뚱 하면서도 확신은 못했죠.

 

 

임신을 통보받고 얼마나 부처님께 감사한지..'부처님 제가 아이낳고 그간의 사정을 카페에 알려 많은 불자님들에게 부처님의 가피를 알릴게요'라고 약속했는데 드디어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영광을 안내요.

 

 

지금도 1000일 기도중인데(지금은 많이 게을러져서 부끄럽군요) 기도후 제게 온 가장 큰 변화는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대가를 치루지 않은 이익을 취하지 않으려고 하는 저와 아내를 보구요 좀더 너그러워지고자 노력하며 항상 인과의 법칙을 생각하는 점인거 같아요.

 

 

참 돌잔치는 않합니다. 그돈으로 보시를 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실천하려구요. 아내는 그런얘기 하고 다니지 말라는데 우리 부모되시는 분들이 진정 내 아이를 아끼면 돌 잔치 비용으로 기부하고 보시하는게 불교인이라는 생각이라 아무데나 떠들고 다닙니다. 내 잘난 척이 아니라... UNICEF 광고가 생각나는군요 몇 만원이면 누구의 1년치 학비라고....(이 얘기 쓸까말까 1시간 망설이다 씁니다^^)

 

 

여러 불자님들 오로지 불보살에 의지에 기도성취 이루시길 바랍니다.

 

[나무 지장보살마하살]

 

 

20. 수이님 글

 

지장기도후 가피

 

어느 코너에 올릴까하다가

여러불자님들이 많이 보실것 같아

이곳에 힘 얻으시라고 글 올립니다.

한가지 기도를 작년 3월 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전, 어느것에 대해

너무나 애절하고 정성껏 기도를 하였는데 이루어지지 않아 한동안

방황하며 불자이길 포기하려했었던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철원 도피안사와 심원사로 여행을 갔었고

그곳에서 뵈었던 심원사 지장보살님전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작년3월부터 21일 기도 100일기도 등

주말엔 시간날때마다 찾아 오후 시간내내

기도동참하고 매일 지장경을 읽었습니다.

사연도 많았죠. 계약이 파기되고 적당한 곳도 없고

울며 기도하고 우울증에도 빠져보고

세상이 모두 어두워보이고

꿈도 많이 꾸고,,,,,,,너무 힘겨웠습니다.

지난 일기를 보면 정말 슬프더군요.

 

그래도 지장보살님께 매달렸습니다.

28일~~~~~~~~~~~~~~~~~~결과를 얻었습니다.

정말 지장보살님의 뜻을 알게되었습니다.

왜 계약이 파기되었는지 왜 그곳이 아닌지

그리고 어제 지장경을 읽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엉엉 울었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의 고난을 씻어내는 듯한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울었습니다.

 

기도하시는 분들,,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열심히 기도 하셔서 좋은 일 행복한 일 많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21. 관룡님 글

 

 

 

지장기도의 체험사례를 글로 올려 봅니다.

 

지장보살 본원경을 아는 분으로부터 3년전에 선물 받았는데 3년동안 책꽂이에 꽂아놓고 펼쳐보지도 않은채 3년이 흐른 어느날 우연히 지장경에 손이 갔다.

 

한번 읽고나서 너무나 가슴에 와 닿고 이렇게 좋은 경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을 감사드리면서 지장기도를 시작했다.

 

효림출판사에서 나오는 지장보살본원경 기도는 3-4시간 걸리는데 시간날때는 끝까지 하고 158배도 했고, 시간이 안나면 경만 끝까지 했고 108배도 겸해서 죽기 살기로 했다.

 

꼭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발원을 하고 시작하다보니 자연스레 선망조상과 유주무주 영가의 천도를 위해서 하게 되었다.

 

1년에 한번씩 10년째 절에서 천도제는 지내고 있지만 ,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조상님들을 위해서 내가 하는 지장기도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열심히 했다.

 

100일 기도를 선운사에 있는 도솔암에서 회향하기로 하고 내원궁으로 갔다.

내원궁이 지장도량인 까닭으로 그곳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5년전에 처음 도솔암을 찾아갔을 때

신기한 경험을 한 게 생각나서 도솔암으로 갔다.

 

3일동안 거의 밥먹고 자는 시간외에는 기도에만 집중했다.

3일째되는 날 마침 토요일이어서 철야기도를 한다고 했다.

4월달이어서 산속은 밤이 되면 너무 춥다. 12시가 지나니까 30명정도 기도하던 분들이 거의가 지치고 춥고 졸려서 따뜻한 요사채로 들어가고 5명만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1시쯤되니 졸려서 더이상 버티기도 힘들고 방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까지 오기도 힘든데 하루쯤 못자면 어떠랴? 잠자러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지.힘들이지 않고 무슨 기도가 되겠는가'

이런 마음을 먹으니 잠이 싹 달아나고 더 기도가 잘 되는 것이었다.

 

새벽4시까지 철야를 마치고 1시간정도 잔 다음 5시에 아침공양을 할 참으로 방에 누워서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어떤 분이 우리 어머니 산소에 물이 찼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분에게 따졌다.

"8년전에 악터에 있던 분을 좋은터로 모셔서 콩가루였던 집안도 잘 되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 무덤을 파보자."

그러고 무덤을 팠는데 무덤속에 창자가 그득히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 창자들을 손으로 끄집어내는데,손에 닿자마자 모두 녹아 없어지고 머리뼈 하나를 건졌다. 이것만이라도 다른 곳으로 모시자 하고 한지로 쌌는데 이것도 사라지고 나중에 아무것도 모실 게 없어지는 꿈이었다.

 

꿈을 깨고 나서 갑자기 지장경에 나오는 광목이라는 여인이 어머니를 지옥에서 건져내고 해탈까지 시킨다는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었다.그러면 어머니가 해탈되었다는 것인가...

 

바로 스님께 전화를 했다. 스님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부처님의 대단한 가피를 입었다고

그런 가피를 입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니 대견하다고 말씀하셨다.

 

 

누구나 지장기도로 광목이라는 여인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부모님을 해탈시킬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다리가 부러져도 좋고 그 자리에서 죽어도 원도 한도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기도정진합시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22.

 

이 글을 쓰신 분은 30대 중반의 여성불자입니다.

이 분도 김현준저 지장신앙 지장기도법에 소개되어있는 지장기도법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전 ㅇㅇ님 글

1)

얼마전에 선명하진 않지만 꿈속에서 어떤 스님이 내 머리에 우유를 부어주시는

꿈을 꾸었다.


2)

나는 지장보살본원경을 먼저 읽은 후 항상 천알염주(千珠)를 돌리면서 지장보살을 일념으로 생각하며 친아버지와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런데 어느날 꿈에서 할머니와 아빠가 똑같은 색종이로 접은 것 같은 파란색

배 2척에 한분씩 타서 강물을 건너가시면서 아주 환한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며 사라지셨다.



천도가 되신건가? 그런데 왜 여러명이 아니고 한 배에 한분씩일걸까?

하여간 얼굴표정은 너무 환했고 미소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아마..천도가 되신거겠지?



그리고 요즘들어 자꾸 스님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한 옛날 초가집의 누추한 방에 앉아있는데 스님이 들어오셨는데

내게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곤 잠깐 앉아있다 나갔는데 스님이 계셨던 자리에는 책 몇권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스님꿈은 내가 스님한테 꾸지람을 듣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어떤 스님이 나에게 광명진언을 외워보라 하셨는데

난 자면서 생각을 했다. 분명히 이거 내가 달달 외고 있었던 주문인데

왠일인지 꿈속에서는 전혀 한글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깨어나보니 너무나 잘 외워지던데...꿈속의 그 스님앞에선 어버버가 되버리는 것이었다.



글구 다시 참회진언도 외워보라고 했는데 이것도 분명히 외워 갖고 있던 주문인데

그 스님이 계시니 한자도 못외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스님이 공부좀 하라고 역정을 내면서 가셨다.



하여간 희한한 꿈들이다.



3)



어제밤 나는 천알염주를 돌리면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다.

효림출판사의 지장기도 지장기도법에 나와있는대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세생생 알게모르게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구니가 찾아왔는지 자꾸 졸음이 왔다.


그렇게 나는 졸다가 다시 염주를 돌리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느순간부터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상태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친구가 보이는 것이었다.

내친구가 나와! 라고 크게 소리치자 내 몸에서

귀신 하나가 빠져나왔다.

귀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진 않았다. 시커멓고 흐물흐물한 모습에
어느정도 사람의 모양새는 띠고 있었다.그냥 느낌으로 귀신이라는
느낌이 전달 되어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은 엄청난 충격과 진동을 겪어야만 했다.

마치 우주선이 성층권을 빠져나오듯이 말이다.



나는 아마도 그 동안 빙의 되어있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4)

꿈 속에서 지장보살님을 뵈었다.


내가 뵌 지장보살님은 흰색 옷을 입고 계셨으며 온 몸에서 광채가 났다.

난 지장보살님께 나의 아빠에 대해서 물었다.



지장보살님은 날 쓰다듬으시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23. 경담님 글

 

중환이 있는 분을 위해 지장기도를 하세요. 세상에 인연이 있으시면 회복 되실거고 세상의 연이 다하시면 떠나실겁니다. 지장기도 방법은 카페에 여러 게시판에 나오니까 참조하시구요. 제가 얻은 기도 영험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무아미타불

 

 

24. 이 ㅁㅇ님 글

 

제 친구도 신주단지때문에 걱정하였는데 얼마전 정법도량 큰절 스님께 문의 하고는 깨끗이 없애고 그 친구는 49재식으로 집에서 매일지장기도를하면서 지장보살염불을 만번씩이나 하더라구요.


그리고 지금한달쯤지났는데 너무 편안하다고하네요.


전 그냥 제가 다니는 절에 델구간 것뿐이고 스님께 친견을 약속해준것 뿐이지만 참 잘한일이라고 말하고싶네요.
벌전 그런것 없습니다. 부모님들께서 그런것 많이 모신 집이 좀있죠. 괜찮으니 넘염려마시고.

 

스님말씀처럼 절에가셔서 문제해결하세요.
혹시 제게 물어보시고싶으시면 쪽지주세요. (그신주단지때문에 얽힌사연이 넘기구하답니다)

 

25. 금빛여울님 글

 

1)

 

저도 한때 건강이 너무나 안좋았었지만
지장경을 읽으면서
지금은
건강이 매우 좋아졌답니다.
1인 4,5역을하고 산답니다

 

2)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지장경을 처음 읽기 시작한 3년전쯤

저는

지장경!

하고 생각만해도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고요...

( 이 말을 하는 순간 지금도 그때의 생각이나서 조금 졸린기분이 드는군요^ ^

계속 계속 하품이 나오고요)

그래도 읽어내야지하고

한페이지 읽어나가다보면 어느새 스스로 눈이 감기고 있어서 글씨가 안보입니다

그런데요

그래도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만 쓰러져 잠을 자고 있습니다.

 

지장경과 한시간 씨름을하면?^ ^

두,세시간 잠을자게 됩니다.

 

그래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건강이 좋지 않은때여서

계단도 오르내리기가 힘들었습니다.

남들이 저 사람 살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할 만큼이었습니다.

 

 

저는 죽어라고 큰 소리로 지장경을 읽으며

이겨냈습니다.

 

지장경을 읽은후에

그 잠오는것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이

제 몸을 쉬시게 하는것이라고 알게 된것은

그 잠자는 시간엔 정말 죽은듯이

온힘을 다하여?^ ^

잠을자게되는것이었습니다.

 

3년이 지난

저는 엄청 건강해졌습니다.

 

 

지금은

남보다 몇배의 일을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저를 본 사람들은

이제

저를보면

건강미가 넘친다면

깜짝 놀랍니다.

 

 

지장경 독송은

한품 읽는데

1시간걸렸다면

온 마음을

집중하면

이제 1시간정도면 한권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제가 읽은

지장경을 주문해놓곤

필요한분들에게

나누어드리고 있습니다.

 

 

 

 

26. 연잎님 글

 

제가 겪은 체험 가피라고 해야 하는지?

저도 잘 이해 하지 못하여

자유방에 올려 봅니다.

 

 

저는 틈틈히 관음경 금강경 천수경 모두 한권씩 독송 합니다.

아파트 바깥까지 제 목소리가 들린다고 가족들이 말을 하여도

전 늘 매일같이 하루는 관음경 또 하루는 천수경 또는 금강경을 염불 하다가

여기에서 지장 보살님 가피를 읽은 후

가끔씩 지장 보살경도 염불 합니다.

 

 

그런데 지장 보살님을 염불 하다보면 모두 다 할 수가 없어서

매번 하다가 멈추고 계속 멈추는 일이 생겼습니다.

 

멈추다 보니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고

하는 일이 바쁘다 보니 잊어버리게 되고,

요즈음 들어와서 자주 하였습니다.

 

 

이제는 한 권씩 모두 염불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해야 하나?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식당이 요즈음 날씨가 덥다보니

매출이 자꾸 떨어집니다.

 

 

하루에 한테이블 받을때도 있고 다섯테이블 받을때도 있고

날씨탓도 있겠지요.

 

출근하기전에 지장 보살님 경을 한 권 다 하고 출근 하는 날엔

매출이 급상승 합니다.

두 어번 경험 있었어요

 

또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불할때에도 마찬가지로 매출이 상승 합니다.

 

염불을 외우면 그런 운이 따라 줄 수 도 있을까요?

 

솔직히 제가 다니는 가게 사장님은 불자이긴 하나 그냥 그럭 저럭 믿습니다.

제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흥얼 거리면 사이비 같다고 하는데

제가 다니는 사업장에도 운과 복을 주시는 걸까요?

 

 

전 솔직히 가게 운영하시는 분이 마음에 안들어서

속상할때 많았답니다.

 

그래서 추석전 까지는 다닐려고 참고 있는 중인데

제가 하는 가게가 아닌데도 손님 없는 가게에 복을 주시는 거 같아

웬지 속세의 마음 처럼 오히려 속상합니다.

 

 

우리 가정에 복을 주시지요 하고 말이에요

전에는 교회 다니는 가게에 가면 매출이 떨어집니다.

 

주변에서 매출 떨어지기는 처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들 합니다.

구래서 교회 다니는 가겐 웬만하면 가질 않지요

 

 

불자가게에만 가게 해 달라고 관세음님께 발원 하였어요

제가 가는 가게에도 복 많이 주십시오 라고 발원 하였어요

 

그런데 정말 속상한 것은 그 속내를 가게 사장은 모르기 때문이에요

또 제가 이런말 하면 믿지 않음이 분명 하구요...

 

여하튼 전 약간 마음이 뾰루퉁 속상해서 자유방에 글 올려봅니다.

 

이건 그냥 적는 글이기에 스크랩은 하지 마소서^^

 

지장보살님 책을 염불 하면 복이 넝쿨째 들어오는 거 같아요 ㅎㅎ

 

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저를 언제나 보살펴 주시는거 같습니다.

 

 

불교에 귀의한지 아직 초보인지라 부족한 단어가 보이더라도 양해를 바랍니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27. 천상의 나팔꽃님 글

 

1) 지장보살님의 가피로 생명을 구하다

 

지금으로 부터 한 20년정도 지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장암이라는 작은 암자에서 있었을 때입니다.

어느날, 신도분의 아들이 군대에 그것도 철책선안에서 비무장지역을 순찰하는 수색대에

가게되었다고 인사를 왔습니다.

스님! 제가 내일 수색대에 가게 되어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태영아, 거기는 좀 위험한 곳이니 이 지장경을 매일 읽도록 해라 그러면 부처님께서

너를 지켜 주실태니 가져가서 꼭 읽도록 해라 알았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 태영이가 1년도 안돼서 점심때를 조금 넘김 시간에 그리 밝지 않은 얼굴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스님, 하고는 들어오길래, 네가 아직 제대할 때는 안되었테고 무슨 일이 있니? 하고 묻자 스님! 하고는 풀이 죽은 얼굴로 말하기를

제가 오늘 동작동 국립묘지에 전우들을 묻고 이리로 바로 오는 길입니다.

 

그래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을 좀 해봐라.

얘기는 이러했습니다.

 

사고가 있던 때는 겨울이라 여느때 처럼 하얗게 얼굴을 칠하고 하얀장갑을 끼고 총을 들고 밤에

철책안으로 1분대가 수색을 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자기 이름을 태영아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뒤를 돌아다 봤지만 캄캄하기만 하지 아무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뭐지 하고는 다시 몇 발자국을 가는데 또 태영아 하고 불러요. 그래서 다시 보아도

역시 아무도 없고. 그런데 계속 불러서 자꾸 뒤를 보면서 멈칫 멈칫 하니까 소대장님이

너 왜그래, 누가 자꾸 저를 불러서.. 이밤에 여길 누가 오겠니.. 야 아무튼 너는 뒤로 빠져 있다가 뒤 조가 오면 거기에 합류해라. 알았지. 네.

하고 뒤로 쳐져서 저 만큼 멀어지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막 나는 겁니다. 그래서 뒤에 조와 합류해서 따라가보니 이북놈들이 우리쪽을 먼저 보고 총질을 해대는데 보니, 우리 동료들이 총을 맞고도 가슴에서 수류탄을 뽑아서 적들에게 던지는 모습을 보고는 저와 합류한 부대원들이 적들을 향해 마구 쏘아댔지요.. 적막이 흐르고, 다시 부대로 돌아온뒤 날아 밝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조가 전멸했고, 적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우리대원들이 그밤에 총을 맞고도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총을 맞았는대도 정신은 남아서 적에게 쏘고, 던지던 그 모습...

 

눈물을 닦고는 다시 말하기를, 스님! 처음에는 저 하나만 살아 남은게 전우들에게 너무 미얀하기도 하고 해서 어찌 할바를 몰랐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해보니,

정말 지장보살님께서 저를 건져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뒤 늦게 깨닫게 되었어요.

스님께서 주신 지장경을 매일 읽었습니다.

 

늘 목숨을 내 놓고 다니는 수색대일이라서 마음속으로 도 항상 지장보살님을 염불하고

했던 인연으로 아마도 저를 죽음에서 건져 주신것이다 라고 생각했죠.

그날 밤에 저를 자꾸 불러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저도 그날 황천길로 갔었겠죠.

이제 깨닫는 것은 부처님은 정말 계시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 아냐 나에게 할것이 아니고 지장보살님께 해야지.. 아까 절하면서 고맙다고 말씀드리면서 절했습니다. 그래 잘했구나. 이후로도 열심히 믿고 의지해야 한다. 네. 더 열심히 믿겠습니다. 그리고 전우들의 명복도 지장보살님께 절하면서 빌었습니다. 잘했구나..

지금은 특박 나온거니? 네.. 부대에서 일주일 특박을 주었어요.

부모님께는 인사를 드렸니? 가서 해야죠.. 그래, 전우들의 아까운 목숨을 위해서라도 네가 더 열심히 살아주길 바란다. 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나중에 또 들려라.. 네..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믿기지 않은 일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불자들에게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을 보아왔습니다.

각자 쓰는 마음 만큼 세상을 살아가게됩니다.

 

부처님 마음 만큼 쓰면, 부처님처럼 살고, 보살님 마음 만큼 쓰면 보살님처럼 살고, 평범한 마음을 쓰면 평범하게, 각자 자신의 마음을 쓰는 만큼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간혹

묻는 분들이 부처님이 있냐고, 혹자는 자기가 부처라고, 부처님은 돌아가셔다고, 왠 부처님이 그리도 많으시냐고,, 그냥 웃을 수 밖에..ㅎㅎㅎ

 

산이 아름다운게 아니라, 그 산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주인공이 있기에 그리 보일뿐.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는 많은 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승현스님-

 

 

2) 마음돌리기

 

 

어느해 겨울,

문을 똑똑 두드려서 열고보니, 웬 여인이 눈 내린 차가운 땅에 맨발로 옷도 허술하게 입고는 서 있었습니다.

들어오세요 라는 내 말에 들어온 여인은 눈에 초점도 없고, 앉은 자세도 영 아니고 하여, 물었다.

 

보살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말이 없다. 다시 묻자, 모른단다. 그럼 성함은? 모른단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모른단다. 몇살이세요? 모른단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한참을 바라만 보았다. 침묵이 흐르고,

통성명이라도 해야 겠다 싶어서 침을 몇군데 놓았다. 2분이 체 안지났는데 이분이 말을 한다.

 

제가 여기에 왜 왔나요? 뜬금없는 말.. 보살님 집이 어디세요. 하니 월피동 00아파트 00동 000호에 산단다.

재차 묻기를 여기는 어떤일로 오셨어요 하자,

사연인 즉, 너무 슬픈이야기다.

 

몇개월 전으로 돌아가서, 동생이 시골에서 취직을 하려고 자기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취직이 그리 쉽게 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날 직장에 가다가 서류를 빠트린 것이 있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문을 열고 들어 섰는데 남편이 동생하고 같이 있더라는 것, 직장에 있어야 할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이 이상해서 왜 회사에 안갔냐고 물었더니, 출장가다가 가져갈 물건이 있어서 잠깐 들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인이 보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몇일후에 직장을 가다가 다시 집에 들어와 보니, 이번에는 동생하고 방에서 둘이 못된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남편을 잡고 나와서 욕을 하고 난리를 한바탕 치른후에 조용하게 앉아서

말하기를 이일을 어떻게 할것이냐고 하자, 남편이 청천 벽력같은 말을 하더란다.

 

자기는 처제하고 살태니 이혼해 달라고, 너무 기가차고 화가나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쓰려졌는데.. 잠시후 정신이 든 뒤에 동생방에 가서 동생에게 말하기를, 너 집에서 엄마 아버지가 알면 어떻하니 그러니 내가 부모님한테는 아무말 안할 태니 그냥 시골로 다시 내려가라고 하였더니, 동생의 말 또한 기가 찬 말을 하더란다.

 

언니 언니하고 아이들한태는 정말 미얀한대 나 형부하고 떨어져서 못 살것 같아 그러니 언니가 양보하면 안돼 하더란다.

순간 하가나서 동생을 죽이고 싶더란다. 가슴에 꽉조이고. 숨이 막히고, 머리가 핑 돌아서 몸을 어찌해야 할지 감당이 안되더라는 것. 그래서 그 길로 그냥 나와서 마구 달려간 곳이 교회더라는 것( 이분은 원래 기독교 신자였다)

그때부터 밤이고 낮이고 악마야 물가라고 기도하면서 주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고 통곡을 하면서

제발 이 어린 양을 버리지 마시고 구원해주세요. 라며 매달렸다는 것.. 그런 기도에도 동생과 남편은 더 깊이 빠져들고

아이들 마져 자기가 집안을 등안히 하니, 남편하고 동생에게 이끌리더라는 것이다,. 하기야 내가 몇달동안 집에 전혀 신경도 안쓰고 미치다 싶이 새벽부터 밤새도록 기도에만 매달렸으니 또 그 전에도 그리 가정적이지는 않았다는 것,

그래도 그렇지 이럴수가 있나 세상 천지에 요망한 것들 하고 저주도 하고 별짓을 다했단다.

 

아무소용없는 일에 매달릴 수록 둘과 아이들은 오히려 엄마인 자기를 외면하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미쳤다고 여겼을 거라는 것이다 라는 것.

당일날도 머리가 터질것 같아서 아파트 벽에 콘크리트 못을 뒷머리로 두개나 박고 와쑈다는 것. (믿어야 할지 의야해 하는 나에게) 그녀는 계속 말을 잇는다.

 

집을 나와서 차에 치여 죽어야 겠다 하고는 사거리 행길에 뛰어들었던 여기저기서 부레이크 밟으면서, 운전수들이 막 욕을 하더란다. 몇번을 그래도 치이지는 않고 욕만 먹고 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죽게 해주세요. 하나님. 하였더니 하늘에서 이리로 오너라 라고 하여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하여 오게 된것이 지장암이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해주기를, 보살님은 기독교인 이시니 제 말을 종교를 떠나서 들으세요, 아시겠어요 하자..

나즈막한 소리로, 네. 그런데 어찌하면 저들이 저주 받을수 있을까요?

 

보살님,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만들어졌고 또 인연이 있어야 변화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우선 보살님의 마음부터 고쳐야 할듯 합니다. 어떻게요?

지금처럼 저들이 죽기를 바라거나 잘못되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인들 저들을 죽이겠습니다. 그분도 밝은 신일 진대

그런 소원을 들어주기는 어려울듯 싶네요.

 

우선 저들을 용서할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네. 저보고 용서하라구요.. 말도 안됩니다. 그럼 그대로 계속 원망하시면서

저주하느 마음을 가져 보세요.. 오늘도 또 내일도 , 그리고 쭉 어떨것 같으세요.. 본인의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질 것 같으세요.. 찬찬히 한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세요.. ....... 휴.......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스님?

내가 말한대로 정말 보살님의 마음에서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싹 가실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을 추스리도록 먼저

저들을 용서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가족에게 그동안 못했던 모든 것은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언니가 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오늘 이전의 모든 일은 무조건 용서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게 다시 남편과 아이들이 안돌아 오더라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살펴보심에도 바쁘신 주님!

더 이상에 주님의 짐이 되는 어린 양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곳이 있으면 그들을 보살피고 도우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이렇게 매일 매일 기도하시고 그들과 부딪히더라도 절대로 말이나 행동에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욕을 하면 안되고 표정 또한 붉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수 있다면 반드시 당신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요.. 변화가 생길때까지 당신 마음이 정말 서럽고 억울하고 괴롭고 답답하고 외로운 마음이 없고, 분노의 마음이 사라져 편안해질때 까지 입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4달안에는 결정이 날듯 싶네요.. 해 보시겠습니까? ....네.. 어차피 더이상 더 갈곳도 없으니...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려가신 그분을 다시 본 것은 5개월이 훨씬 지나서이다.

 

어느날 점심 때가 다돼서 그분이 밝은 모습으로 오셨다. 스님! 그간 평안 하셨어요.. 네 덕분에..

표정을 보니 잘 해결되신듯 싶네요...^^ 네... ㅎㅎ ..다 스님 더분인걸요.. 좋게 되었다니 참 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려가면서 다짐을 깊게 하고 죽기아니면 살기다 하고는 시작하였는데 , 기도하면서 마음을 돌리려 하니 더하더란다. 자기 보는 앞에서도 키스하고,, 나중에는 보는 앞에 와서 둘이 그 짓을 하면서 자고.. 마음이 뒤 짚히기도 하여지만 그냥 비우자 비우자 다 내 인연이다. 지나가면 다 그뿐이다. 하면서 기도하고 마음 놓고 하면서 3달이 지나자 그들이 자기 앞에 와서 그 짓을 하면 꼭 다치더라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비우자 다 내 업니다. 지나면 그뿐이다. 하고 넘기자 4달이 2틀 남기고는 동생이 자취를 감추더라는 것, 그런대도 남편이 동생을 찾아나서지를 않더라는 것. 이상하다 싶었지만 다 비우자 내 업니다. 지나가면 다 그뿐이다. 일더준 대로 생각하고는 기도하며 지내자 4달이 지난 어느날 남편하고 아이들이 자기 앞에 와서 빌더라는 것이다. 용서해달라고..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주체할 수도 없이 흘러 내리고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나오고 ...그때 하늘이 그냥 벙뚤려 있더라는 것.. 셋이 끌어않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절감햇어요. 나를 비워버리고나니까, 무서울 것도 서러울 것도, 외롭거나 슬플것도 죽고 사는 것도 생각지 않았거든요. 우수운 생각도 저절로 들었는데, 다신 주신 기회이니 이제는 열심히 살자 하고 마음먹었답니다. 오늘 그동안 너무 고마워서 스님을 찾아왔어요..

 

참 다행이에요.. 소중한 보살이 이세상에 또 하나 나왔으니..ㅎㅎ 내가 감사를 드려야지요.. 법문할 이야기가 하나 더 생겼네요..ㅎㅎ

 

이제는 아시겠지만, 모든 것은 자기 마음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 풀던지 막던지 하는 것은 다 자기로부터라는 것,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은 이름 뿐이라는 것, 다 내가 만족을 느낄때 그것이 기쁨이요. 행복이라는 것을, 좋다고 너무 방일 하지 말고 늘 오늘에 마음을 저버리지 말고 살기를 바래요.. 네.. 스님.. 감사합니다.

차와 과일을 나누면서 또 이렇게 한 보살님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의 행복을 염원하며, 너무 크고 보기 좋은 것 보다는 소박함속에서 행복이 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승현스님-

 

 

 

3)

지장보살님의 나툼

 

본시 글재주가 미흡하고, 일천한 지식일뿐더러. 또 스님으로서 남에게 이런 소소한 애기를 던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몇번 적어보았는데 여러 신심있는 분들의, 댓글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스님들이 기도와 정진하시다 보면 경험하는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미욱하나마 찾아 주시는

불자님들을 위해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나누는 기쁨, 듣는 행복을 위하여...

 

어느 가을 저녁 7시가 좀 넘은 듯합니다.

대략 50세 전후는 되어 보이는 여인이 스님을 급한 목소리로 찾고 있었습니다.

대충 하던 일을 멈추고, 문을 열고는 들어온 여인에게 차한잔을 드리고, 이 늦은 시각에 이 암자에는 어떤 일로 오셨나요?

스님 저는 막일을 하는 사람인대요. 저좀 살려 주세요. 다짜고짜 살려달라는 말에 잠시 여인을 바라보았더니,

얼굴에 수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해 보세요..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예 지금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도중 목탁 소리가 나서 아 저기에 가봐야 겠다 생각하고는 무작정 오게 된거구요,

사실 저랑 남편이 같은 막노동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평소에는 괞찬은데 술만 먹으면 개 처럼 변한답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는 다짜고짜 야구방망이를 들고는 무조건 저를 개 패듯이 팹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이요.

 

오늘도 일을 끝내고 같이 가려는데 다른 사람들하고 술을 먹으로 갔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술이 떡이 되어 11시는 훌쩍 넘어 들어 와서는 또 저를 개 패듯 할 텐대 무서워 죽겠습니다.

 

허, 그래요.. 말하는 내내 안절부절 못하시는 여인을 바라보노라니 이 어찌 할까 생각을 하다가,

그럼 절에는 다녀 보셨나요? 아니요, 여기가 처음인데요. 그럼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겠네요.

네.. 스님. 왜 안되는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그것은 아니고,

이 여인을, 그 남편을 어찌 제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럼 제가 일러 줄태니 한번 가서 해보시겠습니까?

말씀만 해주세요. 제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무엇을 마다할 처지가 아닌지라 단걸음에 올라왔었거든요.

 

제발 뭐라도 가르쳐 주세요.. 무조건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제가 이 백팔염주를 드릴테니 집에 가셔서 무조건 지장보살을 소리내서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여느때처럼 몸둥이로 때려도 계속 지장보살을 불러야 합니다. 죽일만큼 패도 무조건 염주를 놓지 않고 해야 합니다. 하실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늘 늘 이렇게 사는 것 이젠 참고 살수도 없는 지경인데 까짓껏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스님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그냥 지장보살님만 부르면 되나요? 네.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에게 무엇을 더 하라 하겠습니까, 그저 죽어라 하고 염불만 외우세요.. 여하한 순간이라도, 아시겠죠..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되었습니다. 돌아가셔서 지금부터 열심히 지장보살님을 부르세요..

 

문을 열고 뒤로하여 내려가는 안스러운 불쌍한 중생을 보며, 나무 지장보살 부처님이 제도할 중생이니 잘좀 살펴 주세요.

한생명이 아님 둘의 인연이오니 악연을 끊을 수 있도록 가셔서 증명해주시고 이글어 주세요..

나는 법당에 들어가서 다시한번 부처님께 부탁을 드렸다.. 업장이 많은 중생이나 이 또한 부처님께서 건져야 할 업보 중새이오니 모쪼록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 주세요.. 지장보살.. 삼배하고,

날이 밝고 오전 10시 가량 되었을 때 어제의 그 여인이 저 밑에서 헉헉 거리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ㅎㅎ벌써 제도가 되었다는 말인가? 부처님 감사합니다.

잠시후 올라온 여인에게 물한잔을 건네서 숨을 돌리게 한 후, 그래 표정을 보니 변화가 있었네요.. 네.. 스님

스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지요. 제 은혜가 아니라 지장보살님은 은혜지요.. 자 법당에 가서 지장보살님께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절을 하고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차 한잔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이윽고 들어온 여인이 차 한잔을 권하자 천천히 마시면서 말을 하였다.

 

스님! 어제 스님에게 결례가 안되었나 모르겠어요.. 사실 다른 것을 살필 시간도 없었거든요.. 정말 다급한 나머지...

어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집에가서 소리내서 열심히 지장보살님을 부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초인종이 울렸는데

12시가 넘어서 였어요.. 이년아 문열어, 고래고래 소릴를 지르면서 들어오는 그를 보는 순간 아 나는 죽었구나 했어요.

사람의 눈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얼른 내방으로 들어가서 죽어라 하고 지장보살을 목이 터저라 불렀어요.. 잠시후 문을 열고 들어선 남편은 이 년이 미쳤나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하며 야구방이로 문을 내리치고 죽일 것 처럼 내게로 다가오기에 목청을 있는대로 지장보살님 살려주세요. 지장보살님 살려주세요. 하면서 계속 불렀더니, 이년이 뭘는 거야 지장보살이 뭐야 너 더좀 맞아야 되겠구나 하면서 방망이로 내려치는데 갑자기 제가 남편을 바라보았더니, 남편이 그자리에서 고꾸라지는거예요. 그래서 옆을 보았더니 글세 지장보살님께서 남편을 바라보시는 모습이 보였어요.. 눈을 다시 비비고 봐도 역시 지장보살님께서 쓰러져 있는 남편을 어루만지고 계셨어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내리는데, 내 평생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 본적이 없을 만큼 계속 흘려 내렸어요.. 그리고 입에서는 지장보살님 고맙습니다. 하면서 절을 하고 있었어요.. 정말 저로 서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 가 없었습니다. 연신 흐러내리는 눈물,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얼마동안를 절을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흐른후 계시던 부처님께서 사라지셨어요.. 남편은 계속 자고 있고..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침에 밥을 먹는데 깨어난 남편의 입에서 하는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여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술먹고 당신을 때리지 않을깨 용서해줘..하면서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그런 일을 또하면 너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라는 지장보살님의 말을 듣고는 무섭기도 했지만, 다시는 이제 당신에게 행패를 영원히 안부릴께 나를 용서해줘요.. 정말 스님, 그 소리가 지금도 믿끼지가 않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그리고 부처님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저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신 지장보살님을 영원히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하 하..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부처님께서 말세 중생을 제도하시는 서원이 지중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셨죠.. 이 경전이 지장본원경입니다. 소중하게 지니시고 열심히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스님, 이후로 열심히 부처님믿고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인연이 되시면 남편과 함께 와 주세요..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뒤에 그 보살님이 남편과 같이 올라왔다.

차 한잔을 같이들 나누며 저간의 일을 하였더니, 스님, 부끄럽습니다.그때는 제가 왜 그랬는지........

아무튼 그런 인연으로 불교를 그리고 지장보살님을 알게 된것이 다행이라 생각하시지요........

이세상 중생이 죄 안짓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게요.. 저는 이제 안사람이 절에 다니고 저도 틈나는 대로 다니겠습니다. 그래요.. 이리 반가울때가..하 하 하..

사람은 누구나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인연으로 고뇌가 따를 때가 있다.

그때만 보지 말고 살았으면 한다.. 산에 오르는 대도 평탄하고 좁고 힘들고 가파른 길을 만나듯이, 인생을 살다보면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고 어쩔수 없이 업을 쌓고 사는 것이 중생사의 인연이듯, 그러매 그런 것들이 업연이 성숙할 때 우리 앞에 도래하면 천하의 성인이 아닌 이상 평정심으로 쉽게 헤쳐나가기는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그럴때에 믿음은 그런 험난한 인생에 커다란 밝은 빛으로 다가서서, 온전히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주게 된다.

 

저의 이 이야기 또한 그런 일면으로 적어보는 것이다.

 

항상 할 수 없는 인생이기에 여러분이 믿고 있는 신앙을 통해 만가지의 장애를 이겨내고 행복한 가정, 행복한 인생이기를 합장하며 오늘도 두서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승현-합장-

 

4) 지장보살님의 가피로 죽음에서 벗어나다

 

수십년 불자들을 지도하다 보면, 때론 삶에 지쳐 상담하러오는 불자님과, 업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 당면한 문제에 대한 소원성취등 우리들 인생에는 많은 시련과 고통으로 인해 그 삶이 더 돋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사례 또한 삶의 기로에서 다시금 주어진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인연이 될듯 하여 담아 봅니다.

 

20여년전일 듯 싶습니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연세가 60은 넘으신 풍체가 좋으신 남자 거사님이 스님! 스님! 하고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공양을 먹고 나서 책을 잠시 보다가 뉘신데 이른 아침에 저를 찾으시는지 하고 보니,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표정에서 뭔가 다급한 일인듯 싶구나 생각을 하고는 거사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차 한잔 드릴까요? 아닙니다. 냉수나 한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여 물을 한잔 막 건내고 나니, 거사님 왈, 스님 저는 이 절에 다니는 000게 남편 됩니다. 아 그 00보살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다급한 일이 있으신듯 합니다.

 

네. 사실은 저에게 큰 딸이 있는데, 사위가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그런대요?

그 사위가 약을 먹고 자살을 했습니다. 아, 네.. 그럼 사십구재를 모시려고 하나요?

아닙니다.

 

사실, 사위 집안에 사는 것은 괞찮게 살고 있는대, 결혼하여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어서

시어른들이 이만 저만 말이 많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위도 직장에서 직위가 좋고 해서 남들에게 전혀 꿀릴 것이 없었는데 아이가 아무런 이상도 없는데 생기질 않았어요. 이제 나이가 사십이나 되었으니 부모님이나 만나는 사람들이 말을 건넬적 마다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아왔던지 며칠 전에 음독자살시도를 했습니다.

그래요.. 참 안되셨네요.. 그런데 병원에 인공호흡기를 끼고 억지로 연명하고 있는데 어제 병원에서 가망이 없으니 그냥 호흡기를 빼고 보내주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스님! 제게는 큰 딸이 오른팔과 같습니다. 하면서 노거사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스님, 송구스러운 부탁인듯 싶지만 스님께서 기도를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기도라, 어떤 기도를 말하시는지... 어떻게 해서든 이 생명을 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 이거늘 어떻게 기도해서 되겠습니까?

스님, 제발, 제발 하번만 기도해 주세요.. 아 하..이거참..

거구의 몸에 연신 흐르는 눈물을 흘리며 메달리는 분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거사님!

제가 기도는 잠시 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기도하는 동안 뒤에서 절을 하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법당으로 들어가서 나는 지장보살을 염했습니다. 내 마음에서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 아 살겠구나... 염불을 마치고, 거사님, 이리 앉아보세요..

사위님을 살릴 수 있을듯 합니다. 대신 제 말씀대로 꼭 하셔야 합니다.

뭐든 말씀만 하세요.. 스님,

 

지금 당장 중환자실로 가서 병실 밖에서 부인과 딸과 함께 땅바닦에 지장보살을 부르시면서 누가 오고가던 생각지 마시고 이 절쪽을 향하여 무릎에 피가 날때 까지만 절을 하십시요. 그러면 반드시 사위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다른 누가 할 수 없고, 반드시 거사님과 부인, 그리고 딸이어여만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스님 지금 당장 가서 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얼른 가세요.

 

육중한 몸을 이끌고 내려 가시는 거사를 뒤로하고 나는 지장보살님께 부탁을 드렸다.

아마도 저 불자가 지성으로 부처님을 찾을 듯 하니, 부처님께서 한번 다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무 지장보살..

 

하루가 지난 다음날, 10시쯤이나 되었을까, 거사님한태 전화가 왔다.

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00대학병원에서 원장이하 모든 전문이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런 사례가 없었다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 하 그래요.. 지장보살님께서 우리 거사님과 가족들의 정성에 감응을 하신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호전이 되고 있다니,, 그런데 완전히 나을까요? 하 하 하 중생의 업이 사라지고, 부처님이 강음하시는 대는, 내 경험으로 봐서는 완전히 장애 없이 일어날것이니 아무 염려 마시고 이제부터는 아침 저녁으로 지장보살을 계속해서 염불로 3천번을 염하세요..

네. 스님 , 스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지장보살님께 들어가서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지장보살님! 사바세계의 한이 없는 중생 중에 또하나의 생명을 제도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은그래도 세상에 쓸만한 중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서원대로 인연없는 중생들이라도 다 건제주시길 바랍니다. 나무 지장보살..

이틀만에 밥을 먹고 사흘째 되는 날에 퇴원을 하였다.

 

병원에 전례가 없는 일이라 하여 조사하여 보고 하고 학계에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나흘째 되는날 거사가 다시 왔다. 스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스님의 도움으로 우리 사위가, 아니 우리집안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연신 감사의 뜻을 전하시는 거사님에게 저의 힘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장보살님의 자비원력이지 어찌 저 같은 사람의 능력이라 하십니까,

법당에 가셔서 부처님께 감사를 드리세요..

 

아..네.. 스님.. 거사는 법당에 가서 한 동안 기도를 하였다.

한참후에 나온 거사님은 말하기를 스님, 저는 부동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이절에 집사람하고 열심히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이 적은 보시지만 받아주세요 하 하 그것은 부처님전에 올리고 가세요. 앞으로 열심히 지장보살님을 믿고 의지하겠습니다. 남은 인생을 다해서, 열심히 지장보살님을 섬기겠습니다.

 

하 하 좋으신 말씀 고맙습니다. 이리 좋은 결과로 좋은 인연을 만나니 저 또한 너무 기쁨니다. 하. 하. 하.

 

이 거사님은 그 당시 지장암의 거사대표 회장으로, 서울로 이사를 가시기 전가지 회장직을 열심히 수행했다. 아마도 지끔쯤은 돌아 가셨을 것이다.

 

인생은 순간이다.

겁게 살면 1년, 10년이 잠깐이지만, 업장이 두터워 괴로움의 연속인 사람에게는 하루가 십년처럼 느껴진다.

 

모두에게 같은 시간이거늘, 부디 선업을 많이 쌓고 악업을 짓지 않는 삶을 살아주기를 기대 하면서....

-승현스님-

 

5) 억울한 죽음이 한 가족을 아프게하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다 하여 영혼이 없다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제가 여기 한 영혼을 통해 드러나는 사레를 통해 영혼에 대한 마음 가짐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담습니다.

 

이른 아침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스님! 00보살인데요.. 남편이 암으로 죽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 스님께서 집에 오셔서 영가를 위해 염불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보살님이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와 달라는 불쌍한 목소리에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는 주섬주섬 장삼과 가사를 입고 목탁과 요령을 들고 차를 타고 상가집을 갔다.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기저기 고기 냄새, 술냄새, 왁짜지껄 시끄러운 소리.. 보살님! 나는 가야겠습니다. 아니 스님 오셨으면 염불이라도 해주셔야지 그냥 가시면 어떻게해요? 나는 이런 비린내와 술냄새가 범벅인 곳에서는 염불 못합니다. 가야 겠어요.. 하고는 못내 서운해 하는 보살님을 뒤로 하고는 나와 버렸다.

 

절에 와서 잊고 있었는데, 8일이 지나서 그 보살님에게 전화가 다시 왔다.

스님! 저좀 살려 주세요..아니 왜요?

 

글쎄 죽은 남편이 매일나타나서 너는 혼좀 나야 한다고 야단을 치고 해서 무서워서 잠을 못잔다는 것이며, 다른 형제들도 다리가 다치고, 배가 터지고, 머리를 다치고, 7명 정도의 형제들이 그날 이후로 다 사고나거나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등 형제들이 다 우환으로 편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살님에게 말하기를, 내가 가면 다른 형제들이 종교가 달라도 절에 방식대로 칠칠재를 지내는대 아무런 행패를 부리지 않겠느냐는 다짐을 했더니 지금 이 지경이 되고들나니, 다들 형수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럼 알았습니다.

내가 가서 영가를 모셔오지요. 하고는 바로 준비를 해서 보살님의 영정이 모셔진 방에 가서 말하기를, 000영가야 이들이 뭘 알겟니, 그리고 니가 더 여기서 있어봐야 업이나 더 짓고 그 고뇌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니? 네가 너를 건져줄 것이니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는 보살님! 다음 14일째 되는날 2재가 있으니 그때는 다른 형제들 친족들이 모두 오셔야 합니다. 하였더니, 병원에 계신 형제들은 좀 하기에...

 

걱정하지 마세요.. 다 나을테니 염려마시고 이제 자기들도 느끼고 깨닫는게 있을 것이니 내 말이나 전해 주세요.. 알았습니다. 스님, 스님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염려 마세요.. 그럼 그날뵙시다.

 

그런데 영가모시고 온 다음날, 보살님에게 전화가 왔다.

스님 어제 모처럼 잠을 깊이 편하게 잤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시동생들도 형꿈을 꾸고 나서 병원에서 오늘 퇴원했습니다.

다들 스님 말씀을 드렸더니 다음 주 제사에 가겠답니다. 스님! 그날 뵙겠습니다. 그래요.. 그날 봐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14일째(이재) 가 되어 형제 친족과 부인 아들 딸등이 모두 와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는데 형제들 중에 와서는 절을 하는 것을 꺼리기에, 내가 말했다.

이제를 누구를 위해서 지내는가를 잘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대들이 경험햇던 것을 상기하세요.

 

하나님이 장말 계시다면 그분은 공평정대한 분이실진대 생전의 형제를 마귀처럼 보고 대하라고는 안하셨을 듯 싶네요..

그랬더니, 스님 절을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럼 저희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절을 먼저 가르쳐 주고는 온가족 형제 자매, 친족들이 엄숙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제사를 모셨다.

 

나는 마지막으로 화대에 이르러 지장보살님의 품에 안겨 떠나가는 영가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또하나의 영혼을 이끌어 주시는 지장보살님을 바라보며.....

 

제사가 끝나고 모두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다들 좋은 덕담에 웃고 담소하는

마음을 보면서... 내심...참 사람은 다 같은 부처로구나 하는 생각을 짧게 나마 가져보았다.

 

이후 칠칠재 내내 화기애애한 가운데 사십구재까지 끝냈다. 나는 그들에게 재가 끝나면 항상 이런 저런 불교의 말씀과 더불어 세상의 이치를 알려 주었다.

다들 불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지는 오래 이었다.

다들 알게 해주니 다 되는 것을....

 

부인은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시동생들이 처음에는 교회식, 성당식, 친족어른들은 유교식등등 이야기가 분분해서 힘들었던 것이 제사를 모시면서 스님이 잘 알아 듣게 해준 것이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보살님! 잊 저 아이들을 보살님이 흔들림 없이 잘 키우셔야 겠습니다.. 그러려면 열심히 믿음을 가지시고 정진하셔야 겠어요?

 

네. 이제 지장보살님과 스님을 따라서 열심히 믿고 또 열심히 살겠습니다.

잘 이끌어 주세요.. 네.. 미흡하지만 잘 인도하도록 하겟습니다.

 

그 이후 그들 형제들도 초파일날 등도 달러 오고 하는 모습이 아직도 인상에 남는다.

 

물론 천도나 재를 꼭 절에서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믿음과 종교의 성향대로 따라 해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불자는 되도록 가까운 절이나 포교당에 가서 스님과 상의해서 모시는 것이 더 확실한 천도재를 지낼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자못 살아서도 자손이나 아랫사람이 하는 말이나 가족이 하는 소리를 잘 듣지 않는다. 좀더 수행이 되신 스님이나 법력이 있는 분이 지내야 영가를 제도할 수 있음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굳이 큰절, 큰 스님이 아니라도 법이 밝거나 부처님 법을 배우신 스님들이라면 거의 제도가 되니 어리석게 이리저리 찾지 않아도 된다.

의사라면 누구나 왠만한 치료는 다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승현스님-

 

6) 불치병을 고쳐주시다

 

*아침에는 창창했던 날씨가 오후들어 꾸물구물 비가 한번 지날갈듯한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네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잠시 짬을 내서 저간(지난)의 일을 전하려 합니다.

 

제가 이 아이와의 만남은 20년 전쯤입니다.

그때 두 부부가 6살정도 되는 아이를 데리고 지장암을 찾아 왔습니다.

 

스님! 우리 애가 아픈데 병원에 가서 MRI, CT를 찍고 가지가지 검사를 해도 병명의 원인도 찾을 수가 없는데 아이는 벌써 6년 동안이나, 한달에 평균 15일에서 20일은 ,열이나고 혈압이 220까지 올라가서 병원에 가서 피검사부터 별것을 다해도 원인을 찾을수가 없이, 병원신세를 지며 고통을 나날을 살아왔으니 이제는 이게 사는 건지, 삶에 아무런 의미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너무 답답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수심에찬 부모에 비해 아이는 이것 저것 보고 만지면서 던지고 자르고, 산만한것이 보통 아이와는 다르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하기를, 두분은 종교는 가져 보셨나요? 아니요, 아무 믿음도 없습니다.

 

그럼 절에도 여기가 처음이시겠네요. 네. 처음입니다.

그럼 내가 지금 딱히 뭐라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을 듯 하니,

제가 간단히 하실수 있는 일을 시킬태니 해 보시겠습니까? 뭐를 하라시는지?

간단합니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시죠? 네.. 그럼 일요일은 쉬시겠네요? 네, 스님

그럼, 일요일마다 이 아이를 데리고 절에와서 지장보살님께 절을 3번 시키고, 스님에게 절을 3번 시키고만 가시되 반드시 6개월이상은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낳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 저에게 물으세요.. 이 아이가 왜 그런 장애를 받고 병을 앓았는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 어떻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것만 하면 되나요? 다른건 뭐 안해도 되구요...

아무것도 모르는 분에게 뭘 시키겠습니까? 그냥 그것만 하셔도 아이는 낳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그 정도야 해야죠. 6년을 늘 잠도 잘 못자고 고생을 했는대.... 알았습니다.

 

이번주 부터 하겠습니다.

두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일요일 마다 다니면서 내가 시킨대로 절만 하고 갔다.

그러기를 1년쯤 돼서 하루는 나에게 물었다..

 

스님! 저희들이 진가민가하고 다녔는데 아이가 언제부터인지 안아파서 병원을 안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혹시나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감쪽 같이 낳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스님께서 1년전에 왜 그런 병이 생기게 되었는지, 왜 낳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신다고 하셔서 듣고자 왔습니다.

하 하..그래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아이는 전생에 많은 생명(짐승)을 죽여서 그 죽은 목숨들이 이 아이의 몸에 붙어서 그 업보로 병고를 격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산만하여 집에서도 벌레만 보면 죽이지 않던가요?. 네, 맞습니다. 이 녀석이 그냥 보이기만 하면 잡아죽이네요.. 하지말라해도 소용없었구요.. 그리고 뭐든지 잡으면 부수고 던지고 하지요? 네. 스님 말씀대로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뭐든지 집어던지고 부수고 깨고 하였어요.. 이 아이는 전에 하던 습(업)을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살려 하기에 그 억울 죽음들이 이 아이 곁에서 자꾸 고통(앙갚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시킨대로 이 아이가 절에 와서 지장보살님과 스님에게 절을 하고 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지장보살님이 이 아이를 지켜보게 되었지요.. 아울러 이 아이가 산만해 지는 것도 차츰 줄었을거구요.. 네. 맞습니다 스님! .. 사람이 업을 받아 고생을 할때는 반드시 과거의 지은 업도 있스려니와 현제에 나쁜업을 같이 맺어야, 탁기나 악한 귀신들과 억울한 원혼(축생도 포함)들이 그 원한을 갚으려고 달려들게 되어 갖은 병고와, 장애 , 실패, 이별, 자살, 우울,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법인데 이 아이가 지장보살과의 인연을 깃들이면서 부터 그들의 장애는 힘을 잃고 아이는 그 장애에서 벗어 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왔을 때에 밑도 끝도 없이, 이 아이가 전생에 산 목숨을 많이 죽여서 그랬다고 하면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제 그 시기가 도래해서 지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아..네.. 대충은 알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완전하질 못해서 지금 저 아이를 지장보살님이나 절을 받은 내가 지켜보니 상관은 없으나 다시 악업을 맺으면 언제라도 또 그 원혼들이 달려들 수 있으니, 그 원혼들을 천도해 주심이 좋을 듯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이 아이가 그런 장애를 받지 않을듯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스님께서 잘 제도 해주세요.

(천도란 그런 억울한 목숨들을 더이상 그 고뇌에서 버물지 않고 길을 열어주는 것을 말한다)

 

천도를 한후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질병으로 병원에 간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건강하게 잘 커서 이 아이가 지금 26세의 건장한 청년이 돼서 군대갔다오고 동국대에 4학년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답니다.

 

생사간의 인연이 수없이 많지만, 그동안 많은 중생들을 살펴본바 그중 살생죄가 심히 커서 장애나 고통히 특별히 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행하는 작은 목숨의 인연을 소홀히 하여 받게 된다는 것을, 아마도 여러분은 잘 모르셨을 것입니다.

당장 내가 작은 강아지를 때린다고 그 강아지가 어떻게 갚겠습니까? 그러나 큰 개를 때려 보세요.

아마도 바로 달려들어 물을 것입니다. 죄업이란 작은 것은 그것이 모여서 갚을 만큼의 인연이 될때에 받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그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비유하면 눈방울이 한두방울 내 몸에 떨어진다고, 나에게 당장 아무런 상처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눈이 계속 내린다면 아마도 산 사태가 나서 내 몸하나 정도가 아니라 한 마을도 쑥대밭으로 만들수 있는 것 처럼,, 업이란 선업이든 악업이든 다 그것이 받을 만큼의 인연이 주어져야 내가 그것을 내 몸을 통해서 느낄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과란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도 절대로 바뀔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불자들에게 제일먼저 첫머리에 살생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이전이든 그후이든, 사람이 질병없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임을 당한 생명은 바로 그 사람 몸에 붙어서 작은 것은 모이고 모여서 반듯이 갚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가 때가 도래하면 반드시 갚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업을 쌓고도 그가 계속 바른 삶을 살거나 바른 업을 짓고 있으면 함부로 갚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갚으려 할때는반드시 그가 바르지 못한 업을 맺을 때를 기회로 삼아 탁한 기운과 귀신들, 축생들의 영혼들이 그 업을 갚을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제가 많은 이들을 지도하면서 보면, 모든것이 다 자기가 지은 업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뿐이라는 알았습니다. 안타깝죠..... 고통스럽다. 못살겠다..한이된다. 세상이 싫다.. 답답하다,, 이런 생각과 말 이전에 자기의 지난 잘못을 먼저 들여다 보고 참회하는 삶이 될때 그 고통과 장애로부터 벗어나 원하는 소원과 행복을 이룬다는 것을 말씀드리오니, 부디 이 글을 대하시는 불자님들께서는 자신과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선도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모든 이들의 행복을 염원합니다.

-승현스님-

 

7) 기도는 일념으로 해야한다.

 

기도하는 대는 일념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동안에는 일체의 잡된 생각이나, 전화받는 일, 볼일 보는 일도 다 삼가해야 합니다,

 

기도 중에는 누가 물어도 대답하면 안됩니다. 오직 일념으로 하되, 그 마음이 흩어질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일념을 벗어난 일이 되어 기도의 성취를 얻기가 힘들어 집니다.

 

제가 불자들을 지도하며, 100일 기도를 봉행한 적이 있어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한여름부터 백일기도를 드리겠다고 법문을 통해 말을 하자 그자리에서 30여명이 하겠다고 말을 하더니, 정작 100일기도를 다 마치신 분은 24분이었습니다.

 

집에서 부터 술과 고기를 백일 동안 먹지 말것과, 100일동안 살생하지(회나. 게. 해산물, 생선등..)말고 말타툼이나 구업짓는 일과 행동을 삼가하며 정진할 것을 특히 강조하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메일 삼귀의, 찬불가, 백팔배, 지장정근1000번, 기도발원문, 반야심경, 축원, 사홍서원순으로 진행하였고. 기도가 끝나고 나서는 그당시 산 중턱의 작은 임법당의 암자인 터라 부족한 물자가 많아서 늘 세멘트, 모래, 돌을 나르고 쌓고, 마당 늘리기등 그 더운 여름을 기도와 운력을 병행하며, 정말 무던히도 힘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도가 60여일이 지나서 내가 그만 위궤양이 되어 밥을 못먹고 여러날을 버티다가 속이 너무 아프고 견딜수가 없어서 기도하는 신도들에게 오늘은 도저히 기도 진행을 다 마치기 어려울 거 같으니 여러분이 잘 마무리를 하세요..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끙끙앓고 있었는데 기도를 끝낸 신도들이 들어와서는 스님 병원에를 가시지 몸이 이지경이 되시도록 어찌하시려고....스님 저희와 얼른 병원에 가세요.. 내가 맗기를 됐어요.. 여러분 마음은 고마운데 내 걱정 하지 마시고 여러분 기도나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부처님이 정말 계시면 아마 내일이면 이병이 다 낳을 것이니.. 그만들 가세요..

머뭇머뭇 하던 보살들이 완강한 내 말에 모두 절을 내려가고 저녁이 지나 밤이 되었다. 속은 뒤틀리고 입에는 피가 올라오고, 참다 참다.. 안되겠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가만히 자세를 바로하고 앉아서 참선을 시작했다.

 

12시쯤 돼서 부처님! 신도들 앞에서는 내일이면 이병이 낳을 수 있다고 말을 해버렸는데, 아.. 걱정입니다.

 

아직 채 기도가 60여일 밖에 안 지났는데 내가 이래가지고야 다 마칠 있을런지 걱정입니다. 모쪽록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중생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이병이 사라지도록 살펴주소서.. 기도를 하고는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꿈속으로 밀려들어갔다.

 

꿈중에 건장한 두 남자들이 찾아와서는 말하기를 스님! 저희들을 따라오세요 하면서 나를 바다가로 데리고 가서는

이제 이 바닷속으로 같이 들어가세요. 하는터라 내가 말하기를 나는 사람인데 어떻게 물속을 들어가서 숨을 쉴수가 있겠는가 하고 말을 하니, 저희 손을 잡으시면 됩니다. 하고는 손살같이 바닷속에 들어갔는데, 바다 밑에서 무같이 생긴것을 두개를 뽑아주면서 스님 이것을 드세요. 이것을 드시면 병이 다 낳습니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 씹어먹고 돌아왔지요. 그리고는 꿈에서 깨어나서 보니 배가 안 아픈것입니다.

 

그래서 참 신기하다. 어찌 이럴수가 있는가. 그러나 잠시뒤에 생각하기를 ,, 아 어제 기도를 드리면서 염원하였던 바를 아마도 신중들이 알고는 나를 고쳐주려고 그 (무같은)약을 먹게 하여 고쳐 주었구나.

 

그 다음날 찾아온 신도들에게 어제 밤의 꿈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하자 다들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라고 들 하면서 열심히 정진해야 겟다는 신심의 의지가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모두들 기도가 끝나고 나서 저와 함께 3천배를 하엿습니다.

 

백일 기도가 끝나는 동안 3천배를 가장 적게 한분이 3번하였고, 가장 많이 한분이 10번을 하였습니다.

 

당연히 이런 기도를 통해서 아기를 목 낳앗던 두분이 ㄷ 아들과 딸을 낳았고, 사업하시던은 사업성취가 학업을 원했던 분과 내지 각각의 소원들을 다 이루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자기에게 달려 있습니다.

 

기도 하는 중간에 어느 남자분이 위장병으로 10년을 앓아서 백약이 무효라고 하는 거사가 왔기에 내가 때마침 마당을 늘리기 위해 돌을 쌓고 있던 중이었는데, 거사님이 이 돌들을 날라다 쌓아 준다면 아마도 그 위장병은 고쳐질테니 한번 믿고 해보시겠습니까 하였더니, 그게 말이 됩니까 스님,, 되던 안되던 해보세요.. 그러자 옆에 잇던 다른 사람이 그래 한번 해봐 안된다 해도 좋은 일을 하니 공덕은 쌓는 일이잖아.. 하자 알았습니다. 안 낳아도 좋지만 스님이 힘들게 하시니 제가 하고 가겠습니다. 하면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그돌을 다 쌓고는 내려갔다.

 

그런데 이 거사님이 그 다음날 올라와서는 스님! 정말 귀신이 곡할 것 처럼 하루 앛ㅁ에 다 낳았어요. 고질병으로 10년을 고생해서 온갖 약이라는 것은 좋다는 말만 들으면 다 사먹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는데 정말 신기하게 낳았습니다.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제 밤에 꿈을 꾸는데 왠 스님 한 분이 오시면서 내가 여기가 아프지 하시면서 배를 꾹 눌러주시기에 아파요..아파요..하였더니,, 이제 됐다.. 하시는 겁니다. 꿈에도 배가 안아파서 기분이 좋았는데 글세 깨어나보니

정말 배를 이곳 저곳을 만져봐도 안 아프지 않겠습니까. 잠시후에 깨달았죠.. 아 어제 돌을 쌓으면 낳는다더니 정말 그말 처럼 되엇구나.. 그래서 지금 스님에게 이렇게 찾아온것입니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려구요..

하.하 .하 지장보살님의 덕이겠지요..

 

제가 제 마누라를 이 절에 다니라고 하겠습니다. 거사님도 오세요.. 네. 그리 하겠습니다..

기도는 의심없이, 나의 생각을 지우고, 오로지 일념(한 마음)으로 해야 성취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이시간에도 수없는 불자들이 각자의 인연에 따라 기도하는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곡식을 거두기까지 농부의 정성과 물과 바람, 비, 해충, 동물의 피해, 그리고 하늘의 도움이 반드시 따라야 하듯,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결과를 이루기까지는 반드시 장애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애가 바로 그 성취를 이루게 해주는 결실의 밑거름이라는 것을 알고 결코 물러서지 말고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애벌레가 몇시간을 두고 껍질에서 벗어나오는 것이 안타까워서 어떤이가 애벌레의 껍질을 벗겨 주었더니 그 애벌레가 그만 나와서 바로 죽더랍니다.

힘들지만 그것을 스스로 이겨내면서 그 애벌레는 삶에 대한 강한 집착, 힘을 얻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일심의 마음으로 정진해서 소원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말하면 군더더기라 이만 마치겠습니다.

 

-승현스님-

 

옮긴이의 말: 승현스님(천상의 나팔꽃님)의 좋은 글은 아주 많아서 여기에 다 옮기기에는 너무나 길어지기에 다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카페 개별 글을 읽어보시거나 blog.naver.com/lawandme에 따로 모아 두었으니 보실 분은 보시면 좋겠습니다.

 

28. dydidi님 글

 

저도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나서 지장경독경과 더불어 영가님의 이름으로 몇 곳에 보시를 했는데 꿈꾸는 사람마다 옷차림이 좋다고 하여 그 공덕이 있나보다고 생각합니다.

 

잘 모르시면 법공양을 전문으로하는 곳의 전화번호이니 참고하세요~ 02-582-6613, 02-587-6613 불교신행연구원(도서출판 효림)입니다.

 

29. 하늘소리님 글

 

기도는 한가지를 계속해야됩니다.

 

수행이나 경전공부중에 혼란스런것은 해탈치 못한조상 때문이라고 이라고나옵니다.

 

자손에의해 해탈하려고 꿈을 어지럽게꾸게하고 잠에서 놀라게하고 등등 경전에 나오지요 지장기도 3년을하면 7대선망 부모들이 해탈을 한답니다.

 

그러고나면 좋은일이 생깁니다. 기도를하는데 마가 끼는것은 해탈치못한 조상의 영혼이나 전생의 업연으로 인해 방해가 일어 납니다 이것을 기도로 극복못하면 따른 아무것을 해도 성공하기 힘듭니다. 지장기도 꾸준히 계속하세요.

 

다 경험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기도많이해놓으니까 처음엔 잘모르겠더니 시간이 지나니 참 영험한 일들이 나를기쁘게 해주더군요.

 

꿈에 선몽하여 지장보살님이 도와주신다 하더니 이꿈을꾸고 일어 나니 몸에 힘이생기고 자신이 생기더니 어렵고 어려운일들이 싹 풀리는데 너무 너무 좋았어요. 나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감사하신 지장보살님..

 

30. 천견고수님 글

 

어느땐가 저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을 늘 하고 다녔는데,, 걱정을 덜어 주시려고 그랬던지,,저희 친정아버님께서 좋은세계에 계신 모습을 선몽을 통해 두세번 보여주셨어요.

 

그동안 아버지를 위한 극락왕생 발원 기도 늘 집에서도 하고 있고,,절에서 행사 있을때마다 동참기도도 가능한 빼먹지 않고 했던것 같아요.

 

지장경이 좋다고 들었는데,,님께서 금강경사경도 하셨고 하니 금강경 독경도 원통보전님 말씀과 같이 해드리면 좋을것 같습니다,,지극한 정성으로 님의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31. 연잎님 글

 

저는 지금 대구 경대 병원에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추석 때에 감기 몸살이 있으셨는데 저희들에게 말씀 하시지 않고, 혼자 참으셨다 하십니다.

추석 쉬고 열 감기로 시작하여 일 주일 동안 일반 병원 다니면서 링게르 맞고

열 내리면 집에 오고 열 올라오면 다시 병원 가기를 반복 하다가

처음엔 수성구 시지 천주성삼 병원으로 가니,

쓸개를 들어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노인이라 회복기간이 길어질 수 있고,

어머님께서 흡연 하신지 오래되어 기관지, 폐, 간 모두 좋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10/10일 수술 하시고 5일 동안 어머님께서 정신이 혼미 해지시고,

열은 계속 올랐다가 내렸다가 반복하면서 차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하는 날엔 차도가 보였다가

형제와 같이 교대 할때엔 또 똑같이 반복 되었습니다.

수술 하는 날 저는 수술실 앞에서 지장경 기도를 염불 하였습니다.

그 때 이후로 어머님 잠 드시면 늘 천주 염불로 지장보살님께 천주씩 염송 하였습니다.

천수성삼 병원에서 어머님께서 정신줄 놓으실때에 아 이제 치매까지 오시는 구나

다행히 자식들은 모두 알아보시지만 말씀은 횡설수설 하시고.

산소호흡기 답답 하여 빼 버리시고 아프시니 힘은 어디서 나시는지 힘만 엄청 세시니

전 감당 할 수 없었습니다.

아프다고 몸부림 치시는 모습 보니 측은한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불쌍한 중생 회복 시켜 주십사 또는 열이라도 내려 주십사 하고 지장보살님께 기도 올렸습니다.

어머님 정신 놓으시니 자식들에게 간호사들에게 욕을 해대시고

저도 고생을 하였지만 어머니께서 엄청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어머님께 뱀이 보였습니다.

혀를 낼름 거리는 모습이 무서웠습니다. 기도에만 계속 집중 하였는데

침대 옆에 웬 남자형체가 어머님 배에 뱀을 꺼내었습니다.

 

그 다음날 지장사 주지스님께 상담을 하니

어머니의 업이라 하셨습니다.

업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전 그 저 놀랍기만 하였습니다.

 

5일동안 고생만 하시다가 의사께서 큰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말을 하여

구급차를 타고 경대로 갔습니다.

심폐소생실에서 어머님 어찌나 몸부림 치시든지 간호사께서 팔을 묶어 버렸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팔 다리 모두 묶이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본 정신이 아니시니 어쩔수 없었습니다.

 

소생실 앞에서 잠시 쪽잠을 청했는데 따악 10분 깜박 했는데

그 사이 꿈을 꾸었습니다.

 

이상한 강물이 보였습니다.

이 세상의 풍경은 아닌 듯 하였습니다.

 

흰 옷 입은 할아버지 세 분이 멀찍이서 저를 바라봅니다.

 

또 지장사 주지스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제도 받고 싶어하시는 조상님들이라 하셨습니다.

제가 지장보살님 명호를 5천주까지 하고 나니,

경대병원에서 새로운 병명이 나왔습니다.

 

 

처음엔 천주성삼에서 쓸개가 원인이라고 하여 수술을 하였는데

오진이었습니다.

 

다음엔 경대병원에서 처음에 폐렴 패혈증 초기증세라 하였습니다.

사망 위험률이 높은 병명이었습니다.

 

열심히 매달리었습니다.

지장보살님과 약사여래불님께 매달리었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기고 나서 쯔쯔가무시란 병명도 나왔습니다.

어머님께서 추석전에 쯔쯔란 벌레에게 물리셨는데 세균 감염이 되어

감기 증세처럼 찾아 오셨습니다.

 

 

병명을 확실히 안 후,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약을 억지로 드시게 하고 열 내리게 하고 전 낮과 밤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대구에 사는 동서가 있기에 잠시 교대로 돌봐 드렸습니다.

 

그리고

많이 회복되시자 감사의 기도 3천주 올려라고 스님께서 말씀 하셔서

그 날 3천주 지장보살님께 염송 바쳐 드리고 감사하다는 인사 계속 드렸습니다.

 

 

제 생애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란 것을 해 보았습니다.

진정 누군가를 구해야겠다는 마음과 측은한 마음과 불쌍한 마음이 어우러져

관상 집중 기도를 하였습니다.

 

손님이 오거나 할때엔 기도 멈추었습니다.

 

저녁에 항상 하였습니다.

 

 

아침엔 천수경과 지장경 스마트 폰 다운 받아서 틀어 드렸습니다.

어머님께서 저에게 "미안하다고.."형제들있을때에 말을 하시더군요.

 

전 어머님 저하고 동서하고 그냥 딸이라고 생각하심 되지요 미안하다고는

말 하지 말랬더니 또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어머님 병간호 하면서 모시면서 호전 될 때엔 마아냥 참 좋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을때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이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인가 봅니다.

 

전 친정 어머니 모시듯이 극진히 훗날 후회하지 말자 싶은 마음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퇴원 할 수 있는데 아직 기력이 없으셔서 월요일날 퇴원합니다.

시골로 가시고 싶다 하시어

전 오늘 저녁 남편과 먼저 시골에 가서 청소랑 음식을 해 놓으려고 갑니다.

 

그래도 여기엔 인터넷이라도 있기에 저의 지장 체험 올려 봅니다.

 

이웃 분들이 저에게 어떻게 회복 시켜 드렸냐고 여쭙니다.

전 그저 정성과 기도였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 저의 어머니께 깊은 연민으로 손길을 내어 주시니

회복하셨으리라 전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매달려 보세요

뒤 돌아보지 말고 어려울때에 매달려 보시면 됩니다.

 

기도할때엔 고기 먹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병문안 오셔서 저에게 맛나거 사준다 하여 따라가보면 모두 고기와

해물이었습니다.

 

기도중이라 못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정성이고 그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취를 이루는 구나 하고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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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올린 글에 답글 달아주신 여러분께 인사 못 올려 드려

죄송합니다.

 

오늘 큰 마음 먹고 컴 앞에 잠시 앉아 보았습니다.

깊으신 관심과 배려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마하살님 ()()()

 

지장사 주지스님께도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성불 하십시오 ()()()

 

연잎이 전화로 귀찮게 해 드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32. 내 마음의 뜰앞님 글

 

광명진언 지장경 기도를 참으로 열심히 했어요

1년 6개월 정도 기도중에 살짝 꿈같은 것을 꾸었어요

 

촘촘히 짜여진 그물망 같은 속에 사람이 빽빽히 구겨져서 있는데

지장보살님께서 하늘에서 저희 조상님을 찾으시더니

그물망 작은 구멍으로 손을 넣으셔서 한사람을 끌어 올리시니

세사람이 딸려서 올라 가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33.

나무아미타불 카페 nina님 지장기도 체험담

 

 

 

 

 

아직 날을 다 채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글을 올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잘하는 행동일까 고민하면서


한 번 썼던 글을 도로 지우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써보렵니다.

 

 

 

집에서 지장참회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 시작하기 전의 제 상태는

 

 

 

1. 불면증, 우울증, 알콜 의존, 가족 주변 사람들에 대한 원망,

세상도 원망, 냉소적이고 남의 흠을 잘 꼬집어내는 성격

 


2. 하는 일마다 장애, 노력을 해도 성취를 보기가 힘듦

 

 

 

3. 그러면서도 항상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는 죄책감.
즉, 나 자신이 불쌍하다고 한없는 연민을 느끼다가도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하여 심한 증오와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4. 끝이 없는 욕심

 

 

서른 중반에 거울 속에 비치는 제 얼굴보면서...
자연스럽게 주름지고 늙어가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각종 성형외과적 시술을 받아야만 한다고,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을 마치 병인 것처럼 인식했던 것

 

 

 

5. 수면제 8개월째 복용...8개월 전에는 술에 의존해서 잠이 들었음
항상...잠이 오지않고, 각종 악몽에 시달림

 


그러면, 기도 시작한 후의 제가 느낀 변화.

 

 

 

1. 나는 잘 났고, 나는 잘 했는데...사람들이 나를 괴롭혔다는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남.

 

 

지금은...오히려 내가 남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괴롭게 했는지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있음.

 

 

가족들과...주변 사람들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불쌍해보임

 

 

괴롭다는 말을 듣거나, 사건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됐고 나도 같이 마음이 아픔

 


2. 기도 며칠만에, 갑자기 골치아프던 부동산 문제 해결됨.
(그러나, 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했던 적은 없었음)

 


3. 술먹고 고기먹고 싶은 욕구 자체도 없고, 수면제 없이 너무 머리가 시원하게 잠들고 아침에 깨는 것

 

 

 

4. 동안되려고 ㅡㅡ. 몇가지 시술받으려고 견적받아놓은 것 완전히 포기

이제는 거울을 볼 때 팔자 주름 드러나는 내 얼굴이 더 이상 문제로 인식되지 않음.

 


5. 꿈에서 전생을 보았음.

 

 

 

6. 꿈에서 지장보살님.^^ 지장보살본원경 표지사진과 같은 얼굴의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셨음.

 


7. 백팔배하면서 엎드려 참회하다가 갑자기 똑하는 목탁소리와 같은 것을 들었음.

절대...꿈을 꾼 것이 아니고, 내 귀 가까이에 작지않은 소리로 들었음.


8.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는데, 지장보살 본원경을 올려놓은 머리맡에서 퍽하는 큰소리와 번쩍하는 섬광을 보았음. 아들도 같이 보고 들었음.

 

 

 

이 부분은 도저히 제가 도저히 뭔질 몰라..무슨 밧데리가 터졌나, 방을 다 뒤져도 아무 것도 없었고 스스로도 무슨 일인지 몰라 고민하던 중,

 

카페 어느 분께서 쪽지주셔서 말씀해주신 내용중에,

그 동안 먹은 동물들..영가가 빠져 나가는 현상이라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9. 매일 꿈에 그 동안 살면서, 저는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았던...사건들, 일들이 하루에 하나씩 보입니다.

 

 

 

어떤 날은, 하루 꿈에서 보고도, 제가 잘못이라고 참회하지 않자...
다음 날도 연속해서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아직 백일을 마치려면, 멀었으나,

지금까지도 저에게는 너무나 많은 변화와 놀라운 일 투성이라..
남들에게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님들도 꼭 지장보살님께 참회기도를 하시고 행복해지시길 바랍니다.

 

 

 

 

나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 지장보살마하살

 

 

 

 

 

 

 

부처님께서 견뢰지신에게 이르셨다.

 

 

만약 미래세의 선남자 선여인이 지장보살본원경에 의지하여 한가지 일이라도
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대는 마땅히 근본 신통력으로 그를 보호하여 온갖 재해와 뜻대로 되지않는 일들이 귀에 들리지도 않게 할 터인데, 하물며 그로하여금 피해를 보게하겠느냐?

 

 

또한 그대 혼자만이 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제석천과 범천의 권속들이 다 이 사람을 옹호하느니라.

 

어찌하여 이와 같은 성현들이 그 사람을 옹호하는가?

 

이는 다 지장보살의 존상에 예경하고 지장보살본원경을 독송한 까닭이니라.

 

이 사람은 마침내 고해에서 벗어나 반드시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되느니라.

 

 

지장보살본원경 제11품 지신호법품중에서

 

 

제가 스님들이 쓰신 지장신앙과 지장기도법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된 지장기도법은 이렇습니다.

 


1. 절이나 집에, 지장보살님의 형상이나 그림을 모시고, 그 앞에서
예배, 공양한다. 108배를 하면서 지장보살님께 참회한다.

 

 

2. 지장보살본원경을 그 앞에서 독송한다. 혹은 사경한다.

 

 

3. 지장보살을 천번씩 염해서 만번까지 한다.

 

 

4. 지장보살 예찬문을 외우면서 158배한다.

 

 

5. 지장보살님의 형상을 만드는 일이나 형상을 그림으로 그린다.

 

 

제가 아는 지장보살님은 이런 분입니다.

 

 

지장보살님의 자비심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지장보살님의 전생담중, 악한 행실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전재산을 팔아 부처님께 공양올리러 가는 길에, 중간에 만난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시지 못하고 가진 것을 모두 나누어 주신 후, 결국은 18세 소녀의 몸으로 입었던 옷까지 벗어서 내어주시고, 더 이상 부처님께 나아갈 수가 없어서,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들어가 벗은 몸을 감추고, 마지막 남은 향하나를 사르면서, 부처님께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장보살이라는 명호를 얻으셨다합니다.

 

 

내 부모를 위해서 전재산을 팔았으나 불쌍한 중생들을 지나치지 못하시고,
모든 것을 다 주신 분이시지요.

 

 

 

지장보살님이 부처님께 서원한 것은,
지옥의 중생들을 다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원을 세운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도..해탈하는 것보다도..


불쌍한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이타심의 극치의 원이라..모든 서원중에서도
본원의 원이라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원본존 지장보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님들도 살아가는데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이 많고 괴로운 일이 많습니까?
그 모든 심정을 다 알아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실 분이 바로 지장보살님이십니다.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고 부처가 되는 것보다도...

 

불쌍한 저나 님들과 같은 중생들을 구제하시느라 성불조차도 미루신 분
지옥에 가셔서 직접 죄많은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분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안으로 관찰하여도 지장보살이 오랜 세월동안 이미 제도하였거나
지금 제도를 하고 있거나 미래에 제도를 할 이 들의 수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미래세의 선남자 선여인 중에 이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듣는 이,
형상에 합장을 하는 이, 찬탄을 하는 이, 예배를 하는 이, 생각하고
사모하는 이 등은 삼십겁 동안 지은 죄를 뛰어넘게 되리가 하셨습니다.

 

 

제가 기도법을 적으면서...제가 아는 지장보살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장보살님이 어떤 분이신지 님들이 읽어보시고 그 분의 자비를 느끼시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중생들은 전생과 이생에 지은 업장이 너무나 두터워서, 소원성취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스님 말씀처럼 걸어다니는 변소, 똥구정물 같은 중생들이 변하는
방법은 지극한 참회로 그 속의 더러운 물을 쏟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기도법도 경전을 읽고 사경을 하고 절을 하고 그러한 것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지장기도법만의 다른 점이라 함은

진실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참회하는 것입니다.

나와 내가정 잘먹고 잘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닌..
또..

 


단순히 수동적으로 업장소멸 업장소멸 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장보살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모두 내가 과거의 지은 업들로
인해서 받는 인과응보입니다.

 

 

 

업장때문에 겪는 일이니,
대자대비하신 지장보살님께, 그 잘못을 참회함으로써...

업장때문에 생긴 어려운 일들이 풀리고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업을 해결하지 않고서, 각종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구요.

또 지장보살님은 이미 죽어서 지옥에서 죄값을 받고있는 중생들까지
구제해주시는 분이므로,

 

 

내 부모나 조상중에 선업을 닦지못해서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지장보살님 전에 예배하고
경을 읽고하게되면 그 공으로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극락에
태어나시게 된다고 합니다.

 

 

 

영가천도 기도역시
영가들땜에 내 인생이 힘드니, 퇴마사들 하듯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알지못해서 악업을 짓고 그 죄를 받고 있는 내 부모나
조상영가들을 지극히 불쌍히 여기고,
또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의 심정으로 극락왕생을 지장보살님께 비는 것입니다.

 

 

 

절에서 하는 천도재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스님께만 맡겨버리고..본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해서는 천도가 되지않는다고 합니다.

 

 

 

지장보살님이 중생들을 지극히 불쌍히 여기는 지극한 이타심의 본원을 세우신 것처럼 지장보살님께 기도하는 우리들도 그런 마음을 털끝만큼이라도 닮으려할 때 그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법력이 뛰어난 스님이 천도재를 주관하시더라고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나이고
나의 간절한 마음이 정성이 빠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도법은 근기에 맞게 사람마다 다르게한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오직 지장보살님을 지극하게 부르는 염불만으로도 기도성취하시고

어떤 분은 하루에 오백배를 하기도 한답니다.

 

 

 

그 어떤 방법을 택하시든지
꼭 진실된 마음 간절한 마음 정성...이런 것은 기본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장보살본원경을 독송하는 공덕이 적지않음을
느낍니다.

 

 

 

특히 한글로 된 경을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가 남다르기도
하구요.

 

 

 

경전 독송 전과 후에 이 경을 읽는 공덕을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바칩니다라고 세 번씩 말씀하시구요.

 

 

 

내 개인적인 소원보다도 남을 위해 빌면 그 공덕의 대부분은 나에게로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에서 제가 조금 다르게 하는 것이 있다면,
매일 기도때 향과 초와 꽃을 올립니다.

 

 

 

화원에 가서 꽃 정성스런 맘으로 사다가 올립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토요일 일요일 이틀 지장보살님 그림을 직접 그립니다.

 

 

이 부분은 제가 원래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데요.
얇은 종이 대고 베끼는 것이 아니고
스케치하고 총천연색으로 색칠까지 했습니다.

 

 

 

제가 전생을 본 꿈
지장보살님이 꿈에 나타나신 것도 모두
그림그리고 난 날 있었던 일이랍니다.

 

 

 

댓글과 쪽지로 기도법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많아 부족하지만 제 생각을
적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지장보살님께 기도하고 행복해지시기를 빕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나무지장보살마하살
나무지장보살마하살

 

 

34. 환희사랑님 글

 

저는 지장경 기도를 하였습니다...두렵고 불안하고 지신감 없었던 제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독경하고 지장보살 염불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때마다 정화되고 자신감 생기고 삶의 두려움이 사라져 갔습니다. 올한해를 지장경 기도하기로 맘먹고 하는데 중간중간 쉬면서 합니다...현재는 잠시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감이 사라진다거나 불안하거나 하는 마음이 물러서지 않아서 가끔 지장보살님 그림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주 잠시요..마음 다잡고 다시 기도를 해야겠지요..문문님께서도 본인이 하고싶은 기도 열심히 하시면 변화가 꼭 있으리라 봅니다...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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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온전한 감사님 글

 

제가 독송해보니 매번 그런것은 아니지만 지장경을 독송하거나 지장보살 정근을 하면 수많은 군중들..? 때론 겸허한 자세로 때론 환희에찬 모습..

 


독송하기 즐겁고 정근하기 즐겁습니다 ^^ 아마 다른 경을 독송해도 같지 않을까요.. 그리고 부정적인 인식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이런 저런 모습으로.. 그 환희에 찬 그분들을 볼수 있다면 .. 걱정하지 마시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잘 이겨 내세요. 님 마음에 중심을 잡고 하시면 옆에서 덜 하실거에요

잘 이겨 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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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소나무위 단정학님 글

 

지장경은 우리같은 초심자가 읽기에 참 좋은 경전이고 여기 영험록이나 기도신행수기를 봐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잘 나와 있습니다...저도 지장경을 21일간 읽었는데 그때 저의 업연을 알았습니다....

 

꿈에서 저의 인과를 보여주시더군요.....그러니 지장보살본원경을 열심히 읽고 마장이 오면 더욱 더 분발하여 더 열심히 읽으면 마장이 극복됩니다...

 

마장은 여러가지 마가 있지만 전생의 죄업이 기도에 의해 드러나는 겁니다...외부마는 거의 안 오고 주로 마음속에 있던 업식이 들어 납니다...그러니 죄업을 참회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읽으시면 더욱 좋을 겁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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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다라니()님 글

 

마땅히 대비심을 내어 지장보살 거룩한 형상에 예배하라

 

지장보살본원경 제12품 견문이익품 게송입니다.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생겼을 적에...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에...

 

지장경을 독송하거나, 지장보살 염불하거나, 지장보살 그림을 그리고 나서...

해결 되지 않은 문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장보살님의 원력과 중생을 보호하는 힘은 끝이 없고 깊이도 알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지장보살님 존상과 게송을 눈으로 자주 보고 입으로 자주 읽고 하시어

어떤 형태의 괴로움과 슬픈일과 방해받는 일이라도

단박에 해결하시고

갈수록 좋은 공덕을 차츰 많이 쌓으시어

형통하시기를 빕니다.

 

 

나무 남방화주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

 

38. 스레니아 and 라비 님

 

저는 평소 지장기도를 하는데 얼마전에 급하게 집을 매매하고 이사를 해야 해서 좀더 열심히 지장보살님께 매달린적이 있었습니다..

 

몇날몇일을 그렇게 간절하게 매달리다 꿈에 검은옷 입은 남자 4분이 저희 집 에 들어 올려는 것을 제가 나중에 오세요 하고 보냈는데 그 다음날 꿈속에서 본 똑같은 검의 정장의 4분이 오셔서(부동산 업자) 그날 오후 번개불에 콩볶듯이 후다닥 집을 매매했네요..

 

그것도 남들은 집매매가 안되 시세보다 낮춘다고 했는데 저흰
조금더 받고 매매 했어요...

 

지장보살님께 매달려 보심이..^^

 

39. 아침햇살이요님 글

 

업장소멸 꿈

 

어제는 사무실이 한가해서 마음을 내서 지장경2품씩 독경하고 지장염불 천번하고 발원(40분소요)하고, 또 다시하고 또 다시하고... 7번정도는 한 거 같다.

 

퇴근시간에 나를 보니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고 밤새워서 기도해도 할 거 같았다.

 

집에 가서는 집안일과 아이들과 얘기하고 TV보다가 놀다가 염불하며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야되는데 이 잠은 언제나 끊어질런지...

 

 

아침에 꿈을 꾸었다.

초등학교때 단짝이었던 친구,이은실.. 너무 보고싶은 친구다.

은실이가 옆에 있었다. 배가 아파서 토할 것 같다고 했더니 옆에서 도와주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옆에서 도와주러 오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입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는데 한 뭉큼씩 국수 뽑듯이 쭉~쭉~나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많냐고 했더니 은실이가 어려서부터 있었던게 다 나오는거라 했다.

한참을 계속 뽑아내고 나중에는 투명한 끈으로 나오다가 한 가닥 남은 부분을 계속 뽑아내다가

친구가 가위로 잘라주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이 몸안으로 입으로 들어간 어려서부터 들어간 이물질들을 다 토해낸것일까?

어제 6시간 기도공덕의 메세지일까?

 

약간 기도했을뿐인데 지난시간의 나의 업장이 소멸되었다니...참 희유한일이다.

그렇다면 더욱 더 기쁘게 열심히 정진할 일이다.

 

 

지장보살님...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사랑합니다.

지장보살님...존경합니다.

 

 

 

 

( 2013. 1. 10. )

 

요즘은지장경과 지장십륜경 법문을 들으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게 행복하다.

그동안의 내 공부가 절대로 헛되지 않다는 걸 자각한다.

지장경은 내게 바르게 살라고 가르쳐주고 지장보살님의 자비심이(원력) 내게도 있음을 알게해주었다.

지장십륜경은 내게 참다운 수행자가 될 것을 거듭 가르쳐주셨고 바른 정견을 심어주셨다.

 

사무실에서 법문을 듣다가 너무 졸려서 10분정도 쇼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글쎄... 잠깐이었는데 꿈에 우리 사무실에 사람들이 의자에 가득히 앉아있고 여자아이도 두 명이나

와서 내가 의자도 마련해주면서 어서오라고 여기앉으라 반가이 맞이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꿈을 깨고보니... 내가 이렇게 지장경과 지장십륜경 법문을 듣는것이 혼자듣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내가 공부가 되어가는만큼 나와 인연있는 모든 조상님과 영가님들이 공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모든 인연은 인드라망처럼 짜여져 있다던가?

 

 

이제는... 지금 내가 행복하고 나로인해... 내 눈길마다 편안하고 내 손길마다 행복하기를 바랄뿐이다.

천지만물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처님,지장보살님,일체중생들의 은혜에 감사하고,

나와 내가족과 일체모든(태,란,습,화) 분들께 감사할 뿐이다.

내가 행복할 때 그 모든 분들이 행복의 에너지(파동)을 느끼며 춤출것이다.

가까이에는 내 몸이 춤출것이고 내옷들이 내남편이 내아이들이... 덩실덩실 마음이 웃고있고

편안해할것이다. 나는 보이지않는 세계의 이 마음을 편케할 것이다.

나로인해 모두가 편안하시기를 행복하시기를 바랄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행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다.

나는 완전한 생명체이다.

나는 항상 밝은 광명체이다.

나는 기쁨이고 밝음이고 선함이다.

나는 지장행자가 될 것이다.

 

 

( 2013. 1. 11. )

 

며칠전 꿈이다.

너무 꿈이 선명해서 잊어버릴 수가 없다.

내가 집안에 있는데 앞마을은 수미산이고 수미산에 수미산보다 더 큰 처음보는 동물이 보인다.

날개도 몸도 다리도 모두가 나무잎으로 된 거대한 처음보는 초록나무동물이었다.

잠시후 그 동물이 내 집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찌나 크던지 공룡처럼 커서 재빨리 방안으로 들어와서 문고리를 잠궈놓았다.

그런데 어느새 마당에 와서 서 있던 그 동물이 어찌나 편안한 느낌이 들던지 그 느낌으로 잠을 깨었다.

 

잠을 깬 후... 그 동물은 나의 호법신장님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후,남편으로부터 아주 좋은 소식을 들었고 그 일이 아주 잘 되리라 믿는다.

또한 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수업요청이 들어오고,

하고 있는 일이 하나씩 잘 되어가고 있다.)

 

내게도 호법신장님이 계시다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감사할 뿐이다...

 

(현재,남편은 대학교 강의 나가고 있는 중이고, 좋은 소식은 성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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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님의 세가지 가피

 

 

현증가피(顯證加被)

몽중가피(夢中加被)

명훈가피(冥勳加被)

 

 

 

기도는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소원이 있으므로 기도를 하는 것이고,

기도를 하는 이상 반드시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소원을 성취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불보살은 어떻게 가피를 보여주는 것일까?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여

가피를 입은 사례들을 유형별로 나누면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현실에서 바로 가피를 입어 소원이 성취되는 현증가피(顯證加被)

꿈을 통하여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예시하는 몽중가피(夢中加被)

언제나 보호를 받는 명훈가피(冥勳加被)가 그것이다.

 

이들 삼종가피(三種加被) 중,

다급한 일을 당한 사람이 기도를 할 때는 현증가피 또는 몽중가피를 입는 경우가 많고,

평소에 안락과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명훈가피를 입어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피에 대해 실제로 있었던 예를 들면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현증가피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다급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다급한 일이 발생했지만

내 마음대로도 할 수 없고 남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면, 그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다급한 생각에 음식 맛은커녕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러한 때에 지극히 기도를 하면

느닷없이 좋은 일이 찾아 들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증가피,

 

불보살께서 현실에서 바로 자비를 나타내어

가피력을 증명해 보이는 현증가피인 것이다.

 

나에게 자주 찾아오는 신도 중 일명 '부장판사 보살'이라는 분이 있다.
지금은 나이 70세가 다 되었지만, 약 20년 전

남편이 부장판사를 지낼 무렵에 처음 인연을 맺었으므로 아직까지 '부장판사 보살'이라 부르고 있다.
그녀에게는 경기 여고 동창생인 반야행(般若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반야행은 매우 불심이 깊었으며,

동창생인 그녀에게 불교를 믿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나에게 데리고 온 것이다.

 

평생 어려움을 모르며 살았고

남편이 부장판사에 올라 있는 그녀였으므로 처음부터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스님, 불교를 믿을까요? 다른 종교를 믿을까요?"
"마음대로 하시오."
이렇게 까불까불하면서 몇 차례 찾아오더니,

하루는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 다급한 일을 하소연을하는 것이었다.

"저에게는 육군 소령으로 제대한 남동생이 있습니다. 우리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지요.
그 동생이 제대후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밑천이 모자란다며 돈을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의 기둥인데 어떻게 됐든지 성공해야지'하는 마음에서 있는 돈을 탈탈 긁어 빌려주었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요구를 하여 남의 돈을 빌려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이란 게 애초부터 사기꾼의 꾐에 빠진 것이어서, 돈을 몽땅 날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빌려서 준 돈이 얼마나 됩니까?"
"제가 모아 놓은 돈은 고사하고 남에게 돌려쓴 돈과 이자만 하여도 5백만 원이나 됩니다."
그 당시로는 5백만 원이라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으므로 남편과 상의하여 해결할 것을 권하였다.

 

판사 부인은 펄쩍 뛰었다.
"아이구, 스님. 우리 남편은 다른 일에는 관대하지만 돈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엄합니다.
우리 남편이 알면 저는 쫓겨납니다.

얼마나 답답하던지 성당에 찾아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하나님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씀만 일러 주셨습니다.

 

스님,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내 마음대로도 안되고 남의 도움도 구할 수 없을 때는

부처님이나 하나님한테 '이 빚을 갚아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스님,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살님이 사는 대구 삼덕동에는 관음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주지스님을 찾아가서

법당에서 3일 동안 절을 하겠습니다'는 말씀을 드리고,

법당 한쪽에서 부처님께 절을 하십시오. 적어도 3천배를 해야 합니다.


3천배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대겁(三大劫) 동안

이 세상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한 번씩 절을 하는 것입니다.

시방 삼세 3천 부처님께 한 번씩 지성껏 절하면서 소원을 빌어 보십시오.

지극 정성을 다해 절하십시오.

그렇게 하기를 3일만 하면

부처님 중 적어도 한 분은 가피를 내려 틀림없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오."

부처님께 매달리기로 결심한 그녀는 이튿날 아침 관음사로 가서 절을 시작했다.
3천배가 힘들다는 말은 들었지만 한참 더운 여름이었으므로 더욱 힘이 들었다.

3백배도 하지 않았는데 웃옷이 몸에 붙었고, 천번 정도 하니 아랫도리까지 흠뻑 젖어 버렸다.
2천배 정도 하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3천배가 가까워지자 엎드리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판사 부인은 이를 악물고 할 수 있는 한 정성껏 3천배를 올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서 자고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어디가 아픈가?"
대답은 않고 끙끙 앓기만 하는 아내가 애처로워 남편은 의사의 왕진을 청하였다.


"사모님이 요즘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병은 없는데요."
의사가 가고 난 후에도 그녀가 끙끙 앓자

남편은 밤새도록 얼음찜질도 해주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이튿날 남편이 출근하자 그녀는 또 관음사를 찾아가서 3천배를 하였고,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하였다.

남편 몰래 사흘 동안의 도둑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다음 막 자리에 누우려는데 법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부장판사님께서 방금 졸도를 하여 대학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그녀는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과로로 인한 졸도입니다. 입원하여 사흘 정도만 푹 쉬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밤에는 끙끙 앓는 아내를 돌보랴,

낮에는 또 법원에서 격무에 시달렸으니 과로하여 쓰러질 만도 하였던 것이다.

 

그 며칠 동안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병문안을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 같으면

꽃을 들고 오거나 과일, 통조림 등을 가지고 올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원 비에 보태어 쓰라'며 부조금을 주고 가는 것이었다.

 

남편이 퇴원한 다음 그녀가 그 돈들을 세어 보았더니,

묘하게도 한 푼이 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5백만 원이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남편은 의외로 순순히 허락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피를 내리신 것이 틀림없구먼, 그 돈으로 빚을 갚도록 하구려."
그녀는 동생 때문에 진 모든 빚을 갚았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침마다 108배를 하는 것을 일과로 삼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행하는 철저한 불자가 되었다.

이 부장판사 부인이 입은 가피가 바로 현증가피로서,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만약 다급한 일이 있다면 어찌 용맹스런 기도 없이 해결을 보려고 할 것인가?

마땅히 다급한 일이 닥치면 힘있는 기도,

간절한 기도, 믿음이 깃든 기도로써 불보살의 품안으로 뛰어들어야 하리라.

 



2) 몽중가피

꿈은 우리 생활의 그림자요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낮에 먹은 마음이 그대로 연장되어 밤의 꿈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이 몽중가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망이 꼭 이룩되게 해주십사' 하고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 사람의 소망에 부응하는

편지 한 장을 주거나, 약을 주거나, 차를 한 잔 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와 같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망은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라고 한다.

곧 꿈속에서 받는 통지서는 합격 통지서요,

차를 한 잔 받아 마시거나 청심환 한 알을 얻어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징조이다.

꿈 가운데 열쇠를 하나 받으면 이튿날 생각지도 않던 돈이 들어오게 된다.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기도 영험담 중에는 삼종가피 중 이 몽중가피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약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 미아리에 40대의 보살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닦은 복이 많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돈도 잘 벌고 가정도 잘 돌보는 남편을 만났으며,

아이들도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여 근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안이 허는 병이 생겼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온 입안이 헐어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한의원을 찾아가니 '입안이 허는

 

병은 위장에서 온다'고 하며

위장약을 지어 주었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 더니, 마침내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여위어만 갔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 아이들의 재롱도 귀찮게 느껴질 뿐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가까이에 있는 절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엎드리면 이빨이 다 쏟아지는 것 같아 절도 할 수 없었다.

입안이 퉁퉁 붓고 헐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 입병 좀 낫게 해주십시오."
온 종일 부처님만 쳐다보면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열심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을 내려 오셨다.

그리고는 다기(茶器)에 담겨 있는 물을 찻잔에 가득 따라 주셨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려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셨다.

"그냥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넘겨라."
그녀는 시키는 대로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거짓 말처럼 입병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매운 음식, 음식, 그 어떠한 것을 먹어도 입안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감격하여 불교 신문에 이 사실을 투고하였다.

글솜씨는 서툴지만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을 알리고자 투고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꼭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 念'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생각하면 그것이 참된 염불이요,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3) 명훈가피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외우는 예불문 끝 부분에는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唯願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勳加被力).....

 

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 뜻은

"오직 원하옵건대 다함없는 삼보께서는 대자대비로써

저의 정성스런 절을 받아들여 은근히 가피력을 내려 주옵소서" 하는 것이다.

옛 말씀에 '노는 입에 염불하랬다'고,

가거나 오거나 빨래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관세음보살을 불러서

염염관세음(念念觀世音), 생각 생각에 관세음보살이 함께 하게 되면

가는 곳마다 머무르는 곳마다 편안한 세상, 곧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으로 바뀌어 버린다.


바로 이것이 명훈가피이다.

언제나 불보살의 보호를 받고 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난이 저절로 피해 가고 항상 기쁘고 편안하고 즐거움이 가득하게 되며,

입가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태양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명훈가피에 대해서는 나의 큰 제자인 혜인(慧印)스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혜인스님이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5.16 직후라서 군대가 요즘처럼 편안하지 못하고 아주 고될 때였다.

기합도 심하여 걸핏하면 '군기가 빠졌다'고 하면서

방망이나 곡괭이로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엉덩이를 맞았다.

사소한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고 인정 사정없이 두들겨 팼던 것이다.

혜인 스님은 군복무를 하면서 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훈련을 받을 때에도 '하나-둘-셋-넷'

할 때에 '관-세음-보-살' 하면서 구령을 붙였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한 번씩 외웠다.
어느 날 혜인스님은 그 당시의 군대에서 볼 때 크게 군기가 빠진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연탄불을 갈기 위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연탄을 내무반밖에 둔 채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그만 잊어버리고 갖다 넣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을 중대장이 발견한 것이다.

"어떤 놈이 불붙은 연탄을 이곳에 두었어?"
'나 때문에 우리 소대원 전체가 기합을 받겠구나.'
혜인스님이 조바심에 떨며 자백을 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대대장이 그 중대장을 찾았다.

정말 뜻하지 않게 기합을 모면한 것이다.

또 한 번은 난폭하기로 이름난 하사에게 소대 전체가 기합을 받게 되었다.
그 하사는 '손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잘 되었다'고 하더니,

야구 방망이를 들고 한 명씩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백정같이 생긴 하사가 힘을 다해 때리니 맞은 사람들은 모두 쓰러지고 뒹굴고 난리가 났다.

 

쭉 차례대로 맞아 오다가 혜인스님의 차례가 되었다.

혜인스님의 눈에는 그가 염라대왕의 사자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내무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장교가 나타났다.

"너 이 자식! 또 아이들 패는구나." 하더니만 그 하사를 혼내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쓰러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면서

안 맞았다'고 우물우물 넘어가는 바람에 기합이 중단되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혜인스님 앞까지 와서 기합이 중단되는 일이 생기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관세음보살과 화엄성중을 부르다가 잠이 든 혜인스님은 꿈을 꾸었다.

자기가 수백 명의 병사와 함께 연병장에 서 있었고, 주위에서는 총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 장교 한 사람이 나타나 자기를 불러내더니 어디론가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부대 전체가 연병장에 모여 서 있는데,

어디서 지프차가 하나 오더니 혜인스님을 불러내는 것이었다.
어쩐 일인가'하여 가 보았더니, 육군본부에 가서 상장 쓰는 일을 맡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오십 장씩, 백 장씩 글씨 쓰는 연습을 하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붓글씨를 잘 쓰지 못했는데,

그때 붓글씨 연습을 실컷 하여 한글 글씨가 크게 향상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혜인스님은 그 힘든 시절에 붓글씨를 쓰면서 편안하게 군복무를 마쳤으니,

항상 기도하면 불보살의 은근한 가피가 언제나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명훈가피를 입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종일 기도하지 않아도 좋다.

하루에 108배 또는 10분 동안의 관세음보살 염불 기도라도 꾸준히 해보라.

틀림없이 명훈가피를 입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평화로움이 깃들게 된다.

하물며 언제나 불보살을 생각하고 기도한다면, 어찌 마음이 태양처럼 밝아지지 않으리.

거듭 강조하건대 기도성취의 비결은

간절 (切)'에 있고, 간절 切'은 삼매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여 잠깐이라도 삼매를 이루게 되면

불보살의 가피는 저절로 찾아 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불자들이여, 형편 따라 능력 따라 내 마음을 내가 모으는 기도를 하자.

흩어진 정신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서 불보살과 한 몸을 이루는 기도를 하자.

이렇게만 하면 불보살께서 은근히, 그리고 현실 속에서

우리를 보호함은 물론,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영원 생명, 무한 능력이 개발되고,

내'가 서 있는 이곳 또한 사바세계가 아닌 불국토로 바뀌게 된다.

 

디 올바른 기도법에 의해

참된 기도를 하는 불자가 되기를 당부 드린다.

일타스님 - 삼종 가피 속에서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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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아픈 곳이 많습니다.

갑상선 수술을 한 지가 13년정도 지난 후

수술을 네 번이나 했습니다.

 

 

호로몬 부족이지요

양쪽을 모두 들어내니

음식을 먹어도 영양이 골구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식품약을 먹으면서

아침 저녁으로 mp3파일 경전 폴더를 크게 켜 놓고

듣습니다.

 

 

하루는 아미타경을 듣는데

제 폰을 오른 손에 쥐고 소파에서 누워 있었는데

오른쪽 어깨 뒤 쪽에

무언가 물컹하고 차가운 것이

풀리더니 내 팔쪽으로 쭈루룩 내려옵니다.

 

아 그 느낌은 뱀처럼 차가운 감각이었습니다.

그것이 손목아래로 내려오더니

사라졌습니다.

 

아미타경을 처음 들었을 때 현상이었습니다.

 

그런 후

어깨 아래쪽 그 자리는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모두 치료 된 것은 아니지만

그저 신기했습니다.

파일 다운 받아서 들었을 뿐이었는데

치유 가피 받았습니다.

 

그 때 이후로

아무 현상도 아직 없습니다

 

제가 너무 욕심에 찬 기대를 한 것인지 모르지만....

 

 

천수경도 웬만한 잡신이나 잡것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처음 체험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능엄신주도 듣다보면

정말 희한한 체험도 해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릅니다.

전 지금 양쪽 어깨 석회성 건영에다가

왼쪽 무릎도 좋지 않아요

 

 

그냥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자주 듣곤 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어떤 분에게 그렇게 해 보라고 권했더니

 

그 분의 체험

밤마다 금강경을 듣고 자는데

그 분에게 있던 빙의령이 머리맡에 서서 이어폰을 뺀다더거나

머리 위에 앉아서 방해를 한답니다.

지금 그 분은 모두 정리하고 어떤 절에 가셨다 합니다.

그리고 빙의령을 몸에서 분리 시킬 수 있는 그런것도 있구나 처음 알았습니다.

이건 어떤 분의 체험입니다.

 

 

 

요즈음 스마트 폰 다들 가지고 계시지요?

플래이 스토어에 들어가셔서

경전검색을 하면

모든 모음 경전폴더가 나옵니다.

그것을 다운 받으셔서

운전중이나 몸이 많이 아프실때에

경전을 들어 보세요

여러분도 놀라운 체험을 하실거에요

스님께서 직접 녹음하신 경전이라 더욱 더 체험 하실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금강경을 들으면 수면제 입니다.

남편이 운전할때에

시험삼아 금강경을 틀었어요

아이들과 저 10분도 안되어 모두 잠에 취에 빠졌습니다.

 

불면증 있으신 분도 금강경 들어보세요

어쩌면 여러분 모두 마다 다르시겠지만요^^

 

제 체험이 가피가 급하신분들에게 소중한 도움이 되시길 바래어 봅니다.

우리가 아픈 이유는

정말 빙의령이거나 동물령이거나 업보에 의하여 아픈 확률이 거의 90%일거 같습니다.

 

제가 잠시 겪어본 작은 체험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체험 있으면 리뷰글 함께 공감해요

기도하시는 분들에게 더 큰 힘이 되었으면 해봅니다.()

 

 

출처/http://cafe.daum.net/amtb/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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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말기에 관세음보살만을 불러 견성하신 무융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조선조 말기에 큰 도인으로 추앙을 받은 분으로

 

화두정진을 하는 사람이든 주력정진을 하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제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화두정진하여 근대의 한국 선을 중훙시킨 분으로 추앙받고 있는

 

경허 스님과는 동시대의 인물인데도 중생들에게 법을 쓰는 방법이나

 

방편을 쓰는 방법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무융스님은 순천 송광사에서 공양주 노릇을 하며 받은 봉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3년만에 공양주를 사표 내고 그 돈으로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그 길로 산중으로 들어가 굴에서 나오지 않고

 

3년 동안 관음주력을 하여 견성을 한 다음 굴에서 나와 납자들을 지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용성스님도 한때 스님의 지도 아래 정진을 했던 분입니다.

 

무융스님은 납자들을 지도하다가 간혹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공부만 하느라고 속도 허전할테고 운동량도 부족할테지

 

오늘 어느 동네에 가면 누구 집 결혼식이 있어.

 

가서 음식도 실컷 먹고 마른 것은 싸가지고 와서 먹도록 해라"

 

납자들이 가서 보면 말씀과 조금도 틀림이 없었습니다.

 

스님이 천안 광덕사의 후불탱화 점안식에 경허스님과 함께

 

명법사로 초청을 받으셨을 때의 일입니다.

 

두 분 스님은 계율 쪽을 그렇게 중요시하는 어른이 아니셨기 때문에,

 

사를 잘 마쳐 보시금이 나왔을 때 주막집에 가서 마음껏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융스님이 말했습니다.

 

"이제 구하러 가야 안 되겠나.송광사로.."

 

"암,가야지" 경허스님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두 분이 거나한 상태로 순천 송광사에 들어가자

 

젊은 대중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위협했습니다.

 

"어디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땡초중이 곡차를 하고 승보 사찰인 송광사에 들어오느냐?"

 

젊은 장정들 서넛은 한방에 날릴 만큼 신체가 장대 하였던 두 스님은 웃옷을 벗고 앉았습니다.

 

"그래,몸이 지긋지긋했는데 어디 좀 맞아보자 두들겨 패봐라!"

 

젊은 대중들은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기가 질려 밀려 나며 말했습니다.

 

"저쪽으로 개울을 건너가면 물방앗간이 있으니,

 

거기 가서 지내시고 절 안으로는 들어오지 마십시오"

 

두 스님은 절 한쪽 편의 물방앗간으로 가서 곡차를 마시며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경허스님이 말했습니다.

 

"자 출발하자"

 

"좀 있어봐.내 할일이 하나 남았어"

 

무융스님은 걸망을 짊어지고 조실방 앞으로 가서 크게 외쳤습니다.

 

"동고당! 동고당! 동고당!" 큰 소리로 이름을 세 번 부른 스님은 또 외쳤습니다.

 

"한평생 중노릇을 한 이가 까치 새끼가 되겠다며 까치 집으로 들어가려 하다니!"

 

스님은 굵은 주장자로 마룻장을 '꽝꽝'울리고는 경허스님과 함께 송광사를 떠났습니다.

 

당시 송광사의 조실인 동고스님은 나이가 많아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습니다.

 

죽음에 임박한 동고스님은 비몽사몽간에 늘 산책을 다니던 송광사 문을 지나

 

그 앞의 개울가로 갔습니다.

 

그런데 난데없는 누각이 보였고,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풍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놀고 있는 듯했습니다.

 

마침 천연색의 옷을 입은 사람이 누각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스님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기에 풍악소리가 들리고 노래소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까?"

 

"진신아미타불께서 헌신하여 설법을 하고 계십니다."

 

평생 정토왕생을 원하여 미타주력을 했던 동고스님은 귀가 확 뚫렸습니다.

 

'진신아미타불이 오셔서 헌신설법을 하시다니! 나도 들어가서 법문을 들어야지'

 

스님이 누각의 계단을 막 올라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험상궂게 생간 한 승려가 나타나

 

호통을 쳤습니다.

 

"한평생 중노릇을 한 이가 까치 새끼가 되겠다며 까치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 그리고는

 

주장자로 등어리가 으스러지도록 내리치는 바람에 깨어났습니다.

 

그 이튿날부터 동고스님의 병은 차도가 있었고,

 

칠이 지나 병이 다 나은 다음에 스님은 누각의 꿈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곳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누각이 보이기는 커녕,

 

까치집이 있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치집 속에는 얼마 전에 부화된 새끼 몇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무융스님이 아니었으면 까치집으로 들어가 까치 세끼가 되었을 동고스님!

 

스님은 무융스님의 법력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보면 화두정진을 했던 경허스님보다

 

관음염불로 힘을 얻은 무융스님이 훨씬 더 큰 효력을 발휘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꼭 화두라야 견성할 수 있다고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관음주력으로 득력하여 도를 깨치신 무융스님은

 

일상생활을 통해 납자뿐 아니라 일반 사람에게까지 값어지 있는 덕을 베푸셨고,

 

허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꼭 화두라야 된다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또 무융스님은 광덕사에서

 

동고스님의 일을 내다보시고 구하러 가야 되지 않겠느냐 는 말씀을 확실히 하셨는데

 

암 가야지 하며 맞장구를 쳤던 경허스님이 무융스님이 쳐다본 것을 보고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천 송광사에서 하룻밤을 쉬고 난 다음날에도 경허스님은 그대로 떠나려 하였고,

 

무융스님은 할일이 남았다며 동고스님께 가서 까치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렸습니다.

 

그때에도 무융스님은 동고스님의 일을 분명히 보았는데 경허스님은 보았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

 

 

결론적으로 말해 평생을 화두정진을 하신 경허스님보다도

 

관음주력을 부지런히 하여깨쳤다고 하는 무융스님의 혜안이 더 밝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어떤 것이 더 낫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지만

 

관음주력을 해서 법안을 얻은 무융스님이

 

우리 중생들에게 더 가깝고 더 깊게 덕을 베풀어주신 것을 보면

 

꼭 화두선 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백용성 스님의 예를 들겠습니다.

 

용성스님은 의성 고운사에서 계셨던 수월 스님을 찾아뵙고 여쭈었습니다.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까?"

 

"말세 중생은 업장이 두터워 마음의 공부를 지어도 경전 연구를 해도 장애가 많은 법이지

 

천수다라니를 열심히 외워 업장소멸을 한 다음에 공부를 하면 ,

 

화두 정진이든 경전이든 장애 없이 쉽게 이룰 수 있다네"

 

수월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용성스님은 열심히 천수다라니를 외웠습니다.

 

밤낮없이 부지런히 외워 9개월이 되었을 때 꿈을 꾸었습니다.

 

해인사 장경각 안에서 몸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훌딱 벗고 큰 대자로 드러누워 있는 꿈을 꾼 것입니다.

 

이 꿈에 대해 수월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업장 소멸이 다 되었다는 신호 같구나"

 

이는 용성스님이 화두정진을 하든 경전공부를 하든 장애 없이 쉽게 될 것 같다는 예언이었습니다.

 

그 뒤 용성스님은 꾸준히 화두정진을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춘성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용성스님은 화두해서 도를 깨치신 분이 아니라 천수다라니를 하여 도 깨치신 분이시다"

 

근래에 와서 용성스님이 화두를 하여 도를 깨치신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므로

 

모두가 용성스님이 화두로 도를 깨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옆에서 모셨던 춘성스님의 말씀처럼

 

용성스님은 화두보다는 천수다라니를 외워 힘을 얻었다고 하는 쪽이 가깝습니다.

 

요즈음 중국에서는 아미타불을 불러 극락세계에까지 직접 갔다오셨다는 스님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스님은 인간이 세상에서 7년 동안이나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불과 며칠 동안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으며,

 

돌아가신 자기 스승도 뵙고 되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인쇄가 되어 우리 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는데

 

그 스님의 경우도 화두정진이 아니라 미타염불이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통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꼭 화두선 이라야 된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노력대로 꾸준히 한 가지 공부를 끝까지 밀어부치면,

 

결과는 모두 같은 자리로 귀착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도 뚜렷한 입각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면서 무책임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옛날 어른들의 기록 근래 어른들의 정진하는 모습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보더라도 귀착점은 같은 자리가 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어떤 정진 방법도 다 최후의 귀착점인 성불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공부를 부지런히 닦아가면 업이 극복이 되고 혜안이 열리고,

 

더 나아가 최고 차원에 도달하여 최고의 법을 쓸 수 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화두 아니면 견성을 하지 못한다 는 이상한 말에 흔들리지 말고

 

기의 공부를 꾸준히 지어나가기를 당부드립니다. - 우룡 큰 스님

 

 

 

 

 

 

 

 

정녕 원을 세운 우리 불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원과 함께 정한 한 가지 공부를 끝까지 밀어부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공부를 선택해서 죽어라고 밀어부쳐 끝까지만 가버리면

 

같은 차원에 도착해서 법을 같이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점을 늘 불자들에게 강조합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공부 방법을 함부로 바꾸면 안됩니다.

 

새로운 공부와 연이 닿아 어떤 큰스님께 화두를 간택을 받았는데

 

여태까지 몇십 년 연구하던 공부가 쑥 들어가버리고

 

그 화두가 확실히 자리를 잡아 다시는 흔들리지 않게 된 경우라면 화두정진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런 인연을 만나기 전까지는 여태까지 해온 공부를 그대로 밀고나가야 합니다.

 

이 공부도 욕심이 나고 저 공부도 욕심이 나서

 

이 공부를 조금 하다가 저 공부를 좀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의 공부 방법을 택하여 꾸준히 밀고나가면 결국은 도착지가 같아지는 것입니다.

 

물론 뚜렷한 계기가 있으면 공부 방법을 바꾸어도 좋습니다.

 

어떤 이는 염불을 하다가 곁에서 누가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홀연히 어떤 화두에 대해 의심이 샘솟아 화두공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경전을 보거나 큰스님을 친견하여 법문을 듣다가 뜻밖의 한말씀에 고리가 걸려 버리면,

 

여태까지 하던 공부를 그만 두고 바로 그 의심 쪽으로 파고들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항상이 참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기가 없는 일반의 경우에는 하던 공부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대로만 향상해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불자들은 화두정진이라야 견성을 하지

 

화두 아니면 견성을 못한다는 이상한 말 때문에

 

오히려 자기 공부에 대한 주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공부를 할 때 염불이면 염불 주력이면 주력 간경이면 간경을 꾸준히 해나가면 됩니다.

 

실로 어떤 계기로

 

"지금의 네 공부는 잘못되었고 다른 공부가 좋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것이 잠재의식 속에 박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어떤 것이 걸리든지 상관하지 말고 처음 공부를 버리지 말고

 

그대로 밀고나가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중간에 엉뚱한 쪽으로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무융스님께서는 한평생 관음주력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한평생을 관음주력만 가지고 몰아부쳤는데도 크나큰 공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공부를 하다가 절대로 자기 꾀를 부리지 마십시오.

 

얄팍한 자기 꾀는 방해만 될 분 전혀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디 가서 '누구는 그 공부를 하여 성취를 했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게되면

 

공부에 쉽게 미련이 붙습니다.

 

그리고 암암리에 그쪽으로 자꾸 욕심이 생겨 마음에 남고,

 

심지어는 그것이 여태까지 잘 해오던 '나'의 공부를 못하게 방해를 하고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결국 '나'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가 생기는 것이므로

 

내가 처음 설정한 그 길을 죽어라고 그대로 밀어부쳐야 됩니다.

 

기도나 염불을 함에 있어서도 어떤 때는 나무아미타불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고

 

떤 때는 관세음보살 어떤 때는 지장보살을 해야 한다는 식의 구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한 사람이 관세음보살을 택하여 늘 공부를 해왔었는데

 

"가까운 이가 죽었으니 이제 지장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을 해아 된다"고 하면

 

자꾸 흔들리게 됩니다.

 

이것도 결국 내가 약하니까 흔들리는 것입니다.

 

불보살님은 대우주 그 자체이신데,

 

관세음보살이 따로 있고 지장보살이 따로 있고 나무아미타불이 따로 있겠습니까?

 

다만 옛 어른들이 중생들의 그때 그때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한말씀씩 하신 것을 결정적인 말씀처럼 착각하여 그와 같은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일부 스님네들은 꼭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관세음보살

 

죽은 사람에게는 지장보살

 

자신의 앞길을 위해서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고정된 진실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신도들에게도 그대로 이야기를 해줍니다.

 

얼마 전에 한 노보살님이 찾아와 부탁을 했습니다.

 

"스님 저는 한평생 동안 불교의 어떤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공부를 하다가 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스님 마지막까지 지녀야 될 공부 방법을 일러 주십시오"

 

그 보살님은 글도 모른다 하고 일 년에 몇 차례 절에 다닐 뿐 이라 하고

 

나이도 육십이 넘은 것 같아 나무아미타불을 하라고 권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당장 돌아오는 반응이 묘했습니다.

 

"스님 나무아미타불은 내 앞길을 위해서 하는 염불이 아닙니까?

 

아들이나 딸을 위해서는 관세음보살을 불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왜 저의 앞길만을 위하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하십니까?"

 

누구나 이 보살님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대우주의 어느 부처님은 살아 있는 사람만 돌봐 주시고

 

어느 부처님은 돌아가신 분만 돌봐 주신다는 확정된 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옛 어른들이 그때 그때 쓴 방편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크게 울고 있으면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서는 이렇게 이렇게 해라"는 식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드린 방편설입니다.

 

꼭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관세음보살 염불이라야 되고

 

죽은 이에게는 지장보살 염불이라야 되고

 

내 앞길을 위해서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이라야 된다는 것처럼 느끼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그 힘 하나 가지고도 그 공부힘 하나만 가지고도

 

살아 있는 아들딸들 돌아가신 조상님네들 나의 앞길을 다 밝힐 수 있고

 

지장보살이라는 이름 하나만 가지고도 다 이루고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부처님은 살아 있는 자식들만 봐주고

 

어떤 부처님은 돌아가신 영가들만 봐준다는 차별적인 생각을 갖지 말고

 

흔들림 없이 자기가 하던 공부를 그대로 지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든 남에게 모진 인연을 만들지 말고 꾸준히 처음 선택한 것을 공부해 나가면

 

결국 이루게 됩니다.

 

한 가지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 부디 이를 마음에 잘 새겨,

 

설악산 대청봉에 오늘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공부를 잘 지어가시기를 당부드리고 또 당부드립니다. - 우룡 큰 스님

 

 

 

 

 

 

 

 

 

 

 

 

앞의 장에서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여러 정진 방법 가운데

 

나와 인연 있는 한 가지 공부를 선택하여 수행을 하면,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듯이 결국은 최고의 차원에 도달하여

 

법을 간이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제 그 공부 방법 중 먼저 주력에 대해 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력의 주(呪)는 밀교의 진언이나 다라니를 뜻하며

 

우리 나라에도 옛날에는 주력의 방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형식으로 해야 한다는 기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때에 와서는 주력을 전공으로 연구하신 어른이 안 계셨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염불과 주력이 별다른 구분 없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에 힘력자를 붙여 주력이라 하는 까닭은

 

노력하여 주문을 외우면 힘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곧 노력하면 힘이 생긴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한 것 같지만 자꾸 노력을 하다가 보면

 

하루에 오천배도 할 수 있게 되고 육천배도 할 수 있게 되며,나아가 만 배까지도 가능해집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노력을 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주를 통하여 힘을 얻는다 고 해서 주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관음염불 이니 관음주력이니 하는 말을 통용하여 많이 쓰지만

 

열반하신 철우노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염불을 정의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입으로만 부르는 것은 송불이다.

 

염불이라고 하면 부처를 생각해야 되는데 참 염불을 하고자 하면 관을 해야 한다.

 

지금은 송불을 염불이라고 착각을 하는데,송불과 염불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에 와서는 덮어놓고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지장보살을 부르면

 

무조건 염불한다고 하지만

 

철우노스님처럼 옛 어른들은 염과 송이 다르다는 말씀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를 하면 관음주력 이라 해버리고

 

지장보살을 부르며 기도하면 지장주력 이라고 합니다.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며 기도하는 것을 주력이라고도 하고 염불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염불과 주력의 방법이 서로 다르지만

 

염불을 한다고 하면서 자꾸 송불을 하니까 그만 주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염불을 하려면 관을 해야 한다고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는데,

 

관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쪽으로 습관을 들이든지

 

아니면 주력법을 끊지 않고 오래 노력할때 이루어집니다.

 

앞에서 용성스님께서 천수다라니 하신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용성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면서 얼마나 익어졌든지

 

호흡,곧 숨 한 번 내쉬면서

 

'나모라 다나다라'부터 '사바하'까지 천수다라니 1편을 외웠고,

 

숨 판 번 들이키면서

 

'나모라 다라다라'부터 '사바하'까지 1편을 다 외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송이 완전히 떨어져 버린 상태이고

 

염 자체도 이미 떨어져 버린 관의 차원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가 주력이다 염불이다.기도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마지막 궁극점으로 가는 그 중간 과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름을 각각 다르게 붙인 것입니다.

 

예컨대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할 때 어른들로부터 각각 달리 이야기를 듣다보면

 

도대체 뭐가 뭔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았더니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내 귀로 들어오는 것을 놓치지 말고 늘 생각을 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밑에서 기도를 하는 스님들에게 늘 같은 부탁을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든 지장보살을 부르든

 

내 소리 내 귀에 들어오는 것을 놓치지 않도록 그것만 잘 붙잡아라.

 

그렇게만 하면 절대 옆길로 가지 않고 공부가 흔들리지 않게 된다"

 

실제로 이 방법에 따라 염불을 하는 이들은 거의 옆길로 가지 않는데

 

이 방법을 무시하는 이들은 중간에 엉뚱한 쪽으로 가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결국 자기 생각이 잘못되면 공부가 옆길로 흘러갑니다.

 

자기 생각이 다른 것을 기대할 때 기도 중간에 장애가 붙을 때 그 장애를 잘못 생각하면

 

방해에 속아 엉뚱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우룡 큰 스님

 

 

 

 

 

 

 

 

8.15해방 후 내가 해인사로 출가했을 무렵에는

 

어른들이 공부 방법에 대해 특별히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공부하셨다 저렇게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을 뿐,

 

화두 공부가 어떤건지 주력 공부가 어떤건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강원에서 처음 글을 배울 때는 30명가량이 함께 출발하여 초심반과 치문반으로 나뉘어졌는데,

 

당시 강사를 맡았던 나의 은사 고봉 스님께서는 마을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는 식으로

 

그날 배운 글을 그날 암송시켰습니다.

 

예불의식도 책을 갖고 가면 어른들이 한 번 읽어 주시고 '따라 읽어라' 하면 따라 읽고

 

'여기까지 외워라'하면 그 다음날까지 암송하는 식으로 공부를 배웠습니다

 

그 당시 해인사에는 우리 용성 문중의 사숙님 되시는 월주 스님이 계셨습니다.

 

예식에 밝고 경에도 밝으셨고 정진을 아주 잘하신 분이셨는데

 

강원의 학인들이 글을 못 외워 쩔쩔매고

 

하루종일 책상머리에서 끙끙거려도 암송을 못 하는 학인들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 태어나서 업장이 두텁고 박복한 중생들이 업장 참회할 생각은 않고 까불거리고 있으니까

 

공부에 무슨 진척이 있겠느냐? 옛날 어른들은 천수다라니를 해서 업장소멸 하셨다"

 

그리고는 수월 스님께서 천수주하여 깨달음을 이룬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수월스님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셨는데 아버지,어머니가 모두 세 살 안에 돌아가셔서

 

외삼촌 집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조선 말기에 내 가족들도 못 먹여 살리는 형편이었으므로

 

외삼촌은 남의 눈도 있고 하여 생질을 데려다 놓았지만

 

부담도 되고 힘도 들어 머슴처럼 부렸습니다.

 

20세가 넘어가면서 스님은 동네 사람들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결혼을 하여

 

아이를 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산골로 들어가 중노릇을 하며 살리라'

 

결심을 한 그는 서산 천장사로 출가하여 성원스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배우지 못한데다 머리까지 둔하여 불경을 배워도 쉽게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성원스님이 예불문을 일러주면서 '따라 읽어라'고 하면 따라 읽었지만

 

'혼자서 읽어보라'고 하면 한구절도 못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해보다가 은사 성원스님은 글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땔나무를 해오는 부목,밥을 짓는 공양주등의 소임을 3년 동안 맡겼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월스님이 불공할 때 올릴 마지를 지어 법당으로 갔을 때

 

마침 부전스님(불공을 주관하는 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송하고 있었습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스님은 이를 한 번 듣고 모두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머리가 좋지 않다고 구박을 받았는데

 

422 글자의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저절로 외워진 것입니다.

 

이후 스님은 나무를 하러 가거나 밥을 짓거나 마냥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흥얼거리며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사 성원스님이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다가 마지 오기를 기다리는데

 

당연히 제시간에 와야 할 마지는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고

 

밥 타는 냄새만 절 안에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부엌으로 찾아간 성원스님은 전혀 예상 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수월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면서 계속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밥이 까맣게 탄 것이 문제가 아니라,솥이 벌겋게 달아 곧 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속에서 대다라니를 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본 성원스님은 수월스님에게 방을 하나 내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너에게 이 방을 줄 터이니 마음껏 대다라니를 외워 보아라

 

배가 고프면 나와서 밥을 먹고 잠이 오면 마음대로 자거라

 

나무하고 밥 짓는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수월스님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가마니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짝에 달았습니다.빛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방 밖으로는 밤낮없이 대다라니를 외우는 소리가 울려 나왔을 뿐,

 

물 한 모금 마시러 나오는 일도 없고 화장실 가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8일째 새벽 성원스님이 예불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그 소리가 딱 그쳤습니다.

 

그때 수월스님이 방을 뛰쳐나오더니 소리쳤습니다.

 

"스님 스님! 이겼어요"

 

"뭐라고 했느냐"?"

 

"스님 제가 이겼어요 잠 귀신이 '너한테 붙어 있다가는 본전 못 찾겠다'고 하면서

 

멀리 가버렸어요 잠 귀신도 도망갔어요 스님 제가 이겼어요"

 

은사스님은 수월스님이 기도를 하다가 미친 것이라 생각하고 호된 꾸중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월스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 합장을 하고 서 있는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걸 모른다"

 

"어딜 가야 답을 들을 수 있습니까?"

 

"동학사에 가면 경허 사숙님이 계신다.그 스님께 여쭈어 보아라"

 

"가도 됩니까?"

 

"도시락은 내가 싸줄 테니 짚신은 네가 삼아라"

 

수월스님은 서산의 천장암에서 동학사까지 걸어가 경허스님의 방문을 열고는 여쭈었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 합장을 하고 서 있는 뜻이 무엇입니까?"

 

경허스님이 답을 해주시는데 뜻이 서로 상통하였고,

 

거기에서 수월스님은 천수삼매를 증득하여 무명을 깨트리고 깨달음을 얻었을 뿐 아니라

 

불망념지를 증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글을 몰라서 경전을 읽지도 못하고 신도들의 축원도 쓰지 못하였지만

 

불망념지를 이룬 후부터는 어떤 경전을 놓고 뜻을 물어도 막힘이 없게 되었으며

 

수백 명의 축원자 이름도 귀로 한번 들으면 불공을 드릴 때 하나도 빠짐없이 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수삼매를 얻은 뒤에도 참선정진을 꾸준히 계속하였는데 잠을 쫒았다는 그 말씀대로

 

일평생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백두산 간도 지방 등에서 오고가는 길손들에게 짚신과 음식을 제공하며

 

보살행을 실천했던 수월스님!

 

오늘까지 자비보살이요 숨은 도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수월스님의 도력은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 우룡 큰 스님

 

 

 

 

 

 

 

 

 

나는 수월스님의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은 다음

 

주력을 하여 업장소멸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혼자 생각에 천수다라니는 너무 긴 것 같아 옴마니만메훔 육자주를 선택했습니다.

 

곁의 어른들께 상의도 하지 않고 나 혼자 옴마니반메훔을 선택한 다음

 

사람들이 없으면 소리내어 외웠고 사람들이 있으면 속으로만 했습니다.

 

절 마당을 거닐든 밭에 가든 예불하러 가든 밥을 먹든

 

경전공부를 하는 틈틈이 나는 언제나 육자주를 놓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얼마를 계속하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겨울에 접어들 무렵이었습니다.

 

해인사 강원인 궁현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속으로 육자주를 외우며 각 법당 예불을 하기 위해

 

대웅전 축대 위에 올라서서 극락전 쪽을 바라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사라진 듯하였고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도 사라졌습니다.

 

앞에 있던 산도 없고 옆의 대적광전,밑의 마당,뒤쪽의 건물 모두가 없어지고

 

수천만리의 평평한 평지가 펼쳐졌습니다.

 

약간 옅은 황금색을 띤 누르스름한 대지가 수천만리 펼쳐져 있는데,

 

그 대지의 끄트머리에 옴마니반메훔 여섯 글자가 범자로 해돋이처럼 빨갛게 땅에서 솟아나

 

공중에 똑바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서 있다는 생각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해처럼 빨갛게 솟아 있는 여섯 글자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굉장히 긴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때 밑에서 올라온 도반스님이 내 등을 두드렸습니다.

 

"여기서 뭐하고 서 있니? 빨리 예불하러 가야지" 순간 나는 번쩍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깜깜해지더니 산과 건물과 마당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나한테는 한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불과 5분도 못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일상생활에 이상한 일들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도반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 혼자 엉뚱한 짓을 더러 하였습니다.

 

그 무렵에는 절에서 향로에 불을 담아 사용했습니다.

 

향나무 열매를 따서 말려두거나 뿔나무를 썰어 말려두었다가 그것을 향으로 사용했습니다.

 

하루 세 차례 곧 아침예불 때와 사시마지 때와 저녁 예불에 불을 담아 써야 하기 때문에

 

부전 스님이 저녁에 방에 있는 화로에 불을 담아 놓으면

 

그 불이 하루종일 가거나 적어도 다음날 새벽까지는 갔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향로에 불을 담으러 부엌에 갔다가 장난이 벌어졌습니다.

 

공양주 스님이 큰 목탁을 탁탁치며 밥물이 넘었다 불을 끄집어내어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나는 밤새도록 쓸 벌건 숯불을 화로에 담고 난 다음 느닷없이 그 숯불을 손으로 만져봤습니다.

 

벌건 숯불을 만지고 그 숯불을 손에 드니 곁에 있던 공양주와 어른 들이 놀라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불이 조금도 뜨겁지 않았습니다.손도 전혀 데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놀라고 꾸지람을 하셨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진 다음

 

나는 나에게 다른 어떤 기운의 충동 때문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죄스럽지만 생각만 나면 해인사 대적광전 지붕을 수시로 올라갔습니다.

 

6.25사변 직적인 그 때는

 

경제 사정이 어려워 평소에는 고무신도 운동화도 신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멀리 출타를 할 때는 고무신을 신었지만

 

집 안에 있을 때는 타이어 찌꺼기로 만들어 발가락만 끼우는 게다짝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 게다를 신고 시도 때도 없이 스르르 방을 빠져나가 발로 땅을 한번 툭 치면

 

나의 몸은 이미 대적광전지붕 위에 올라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게다를 신은 채로 지붕 위와 용마루 위를 평지처럼 밟고 뛰어 다녔습니다.

 

보통사람은 맨발로 다녀도 경사가 급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붕 위를.

 

게다를 신고 평지처럼 왔다갔다하고 막 뛰어다녔습니다.

 

나와 같이 있던 도반들은 이러한 나를 보고 밑에서 소리쳤습니다.

 

"야,저것 봐라 미쳤다.저것 봐라 미쳤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가야산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가야산 중허리의 마애불까지 순식간에 다녀왔고

 

가야산 꼭대기와 매화산과 미륵봉 등을 한 바퀴 도는데

 

불과 10분 내지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축지법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훌쩍 뛰어올라 첫 봉우리만 나의 발에 닿으면 전체 산봉우리가 다 나의 발 밑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산봉우리 밟고 한번 뛰어 저 산봉우리 밟으며 가야면 일대를.

 

가야산 전체를 다 둘러보며 다녔습니다.

 

또 한번은 마애불 근처로 가서 집채만한 바위를 밀어보았더니 바위가 그냥 밀려갔고

 

주먹을 불끈 쥐고 바위를 쳤더니 마치 물 속으로 들어가듯

 

팔이 바위 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한편으로 나는 나 자신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원만하게 지냈는데

 

나 자신이 날카로워지면서 거슬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자꾸만 톡톡 쏘아붙였습니다.

 

나 자신이 어른들께 그 당시의 이상한 기운에 대해 소상하게 말씀을 드리지 않았고

 

어른들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유심히 살피지 않고 지내다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고비를 그렇게 넘기고 있었습니다.

 

까딱하면 마구니나 외도의 차원에 도착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나 자신이 신경이 자꾸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꼈고 어른들한테도 마구 대하였으며,

 

곁에서 저아이 좀 이상해졌다 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여 육자주를 그만두었습니다.

 

6.25사변 직전까지 그런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가 해인사 강원에 있을 때였습니다. - 우룡 큰 스님

 

 

 

 

 

 

 

 

 

우리가 강원에서 공부를 배울 때는 그 날 배운 것을 다음날 공부 시간에 암송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잠들기 전까지 미처 암송이 안 된 글은 다음날 자꾸 더듬거리게 되고

 

특히 강사스님께서 한 번씩 소리를 지르시면 기가 죽어 막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그래서 밤 9시에 잠자리에 누우면 일단 배운 것을 한번 암송해보고 자는데

 

그 때까지 외우지 못하였으면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육자주를 외우던 무렵,

 

밤바다 꿈을 꾸면 천정이나 벽이나 방바닥이 온통 글로 가득하고,

 

그 글 속에서 내가 뱅뱅 돌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미처 암송되지 않은 글이 몇장 몇째줄 몇째글자라는 것이

 

꿈에 또렷하게 기억이 되면서 그 글자가 그대로 외워지는 현상이 자꾸 나타났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그럴 때에 재주가 는다.지혜가 는다'고 하셨는데

 

시마과에서 사집과 초기까지 그와 같은 일을 꿈 속에서 많이 겪었습니다.

 

또한 이 경험과 함께 주력을 계속하면서 정신적으로 무언가 날카로워졌지만

 

외우는 것이 분명 쉬워졌던 것을 보면 글공부와 주력공부가 따로 떨어져서 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도중에 앞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차원이 나타나는 것을 식이 발동한다고 하여

 

식광이라고 합니다.

 

그와 같은 식광은 공부를 지어나가는 과정에서 흔히 겪는 일입니다.

 

어른들께서는 그런 고비를 식광의 고비라고 표현하셨고

 

그런 체험을 말씀드리면 식광은 겪었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식광에 대해서는 나중에 관련된 부분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식광의 고비는 의식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상태라고 해야할까?

 

의식을 가지고 체험이 되지 않는 제3의 시간과 공간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불자들에게 늘 부탁을 합니다.

 

"의식의 세계로는 안 되는 제3의 세계를 체험해보라"

 

염불이든 주력이든 화두든 한 가지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체험하고 나면

 

공부가 깊어진 만큼 불교에 대한 확신이 서고 자신감이 생겨나게 됩니다.

 

일본 점령기 말기에 용성노스님은 안위에 화과원 이라는 농장을 만들어 농사도 짓고

 

과수원도 경영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독립군들에게 군자금을 조달하셨습니다.

 

그 시절에 나의 은사이신 고봉스님께서는 강원에서 대교까지 다 마치고 화과원에 가서

 

용성노스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공양 후에 바람좀 쏘이러 가자는 노스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용성노스님은 복숭아꽃이 활짝 핀 것을 보시며 말했습니다.

 

"네가 직접 한마디 일러보아라"

 

"화과원리도화발"

 

이에 노스님은 시치미 뚝떼고 정색을 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이 공부하는 중인 줄 알았더니 천하의 마구니새끼구나 그러고도 네가 절밥을 먹고 있느냐!"

 

이에 고봉 스님은 기가 죽어 대꾸를 못하고 되물었습니다.

 

"스님께서 한말씀 일러 주십시오"

 

"화과원리도화발이니라"

 

은사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내가 자신이 있었으면 용성노스님께서 욕을 하든 꾸지람을 하든

 

한마디 더 걸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없으니까 당한 것이야"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서야 합니다.

 

내가 자신이 서지 않으면 어른들 수단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님의 경우 화과원에서 "화과원리도화발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으면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용성노스님의 호통에 자신을 잃어 한마디 더 걸치지 못하고 물러나 버린 것입니다.

 

도를 닦는 집안에서는 이런 상태로는 안 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확신이 있어야 하고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자신이 뭔가를 체험하여 확신이 서야함을

 

불교집안에서는 그만큼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경,주력,참선,염불 등 어떤 공부로 정진을 하든

 

체험을 하고 확신을 이룰 때까지 밀고나가야 합니다.

 

분명히 체험이 있고 나면 자신감이 생겨 공부가 크게 향상이 됩니다.

 

어떤 공부를 하든 체험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스승과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며 부지런히 진정하십시오 혼자서는 안 됩니다.

 

지도를 받아야 옆길로 가지 않습니다.그래야만 도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도 한 과정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집착하지 말고 놓아버려야 합니다

 

놓아버리고 또 새롭게 나아가면 깨달음이 더욱 깊어지고 해탈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우룡 큰 스님

 

 

 

 

 

 

해인사 강원에 있을 무렵 '옴 마니 반메 훔'육자주를 외워 식광의 고비를 체험하면서

 

강원에서 배우는 글 공부는 깊어졌지만

 

나가 아닌듯한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육자주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6.25사변을 맞았습니다.

 

빨치산의 점렴으로 해인사에도 큰 사건이 생겼고

 

은사이신 고봉 스님도 모함을 받아 수난을 당하는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여러 고비를 넘기며 마무리를 다한 다음 나는 오대산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전란 때문에 오대산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청화 보경사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나는 보경사 서운암에서 능엄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스님들이 아침 시간에 지금 많은 불자들이 하고 있는 능엄경의 대능엄주를 하지 않고

 

대능엄주의 마지막 부분의 70여자로 된 아주 짧은 것을 외웠습니다.

 

이 능엄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무 대불정여래 밀인 수증요의 제보살만행 수능엄

 

다냐타 옴 아나례 비사제 비라 바아라 다리 반다 반다니 바아라 바니반 호움 다로옹박 사바하

 

나도 백일 목표로 이 능엄주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식사는 일체의 부식 없이 소금간만으로 밥을 먹었는데

 

한 2주쯤 지나자 밥 생각만 하여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백일기도였으므로 신체적으로 너무 무리를 주는 것은 좋지않겠다고 판단하여

 

법당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보행을 하면서 능엄주를 마음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60일을 넘기고 70일쯤 되었을 때부터 심한 장난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녘이 되어 눈을 뜨면 '오늘 몇시에 어디에 사는 누가 온다'라는 생각이 드는 데

 

정말 그때가 되면 그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가만히 방에 앉아 이십리 삼십리 밖의 신도들 집이 다 보이는 것입니다.

 

공부가 완전히 마무리된 단계에서 생긴 일이 아니라.

 

공부를 지어나가는 과정에 이 장난이 붙은 것입니다.뿐만이 아닙니다.

 

생각만 일으키며 내 눈 앞의 텔레비젼을 보듯이 동네의 모든 집이 보이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도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밥상위의 반찬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가 낱낱이 보였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느날 아침,어머니가 아이와 다투는 것이 다 보이고 다 들렸습니다.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오늘까지 월사금을 가져가지 않으면 선생님이 혼을 낸댔어,빨리 줘"

 

"오늘 구해 놓을테니 내일 가져가거라"

 

"오늘 가져가지 않으면 혼나,학교가지 않을거야"

 

"그러지 말고 가거라"

 

"싫어"

 

"이 놈의 자식이!"

 

이렇게 모든 내용이 생생하게 보이고 표정까지 또렷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어떤 사람이 내 앞에 서면 그 사람의 몸이 마치 투명체처럼 다 들여다 보이고 ,

 

뼈 마디마디 까지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아무 것도 못 느끼고 있건만,

 

병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까지 진행 되었으며

 

얼마 후면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아픈 상태가 벌어진다는 것이 내 눈에는 다 읽혀졌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픈 사람에게 내 생각대로 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주면서

 

'이것을 씹어서 잡수시'라든지 이파리를 따서 '이걸 달여 먹으면 낫는다'고 하면

 

약도 아닌데 분명히 그 사람이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는 그와 같은 장난이 붙는 시간이 이어지자 호기심이 자꾸만 일어났고,

 

마지막 20여일은 기도를 하였으나 제대로 집중을 하지 않고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뒤 그 해 겨울을 보경사에서 나고,이듬해인 덕숭산 정혜사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도를 깨달은 금봉 노스님이 계셨고,

 

그때 나는 도인이라 하고 도를 통한다고 하는 것을 내가 체험한 것인가?'하는 헛생각이 들어

 

그 일들을 노스님께 자랑처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금봉스님은 대뜸 호통부터 치셨습니다.

 

"이 죽을놈 ! 마구니의 자식새끼! 중노릇을 한게 아니고 마구니 노릇을 했구나

 

너 같은 놈은 당장 죽여버려야 된다.너 같은 놈 살려놓으면 여러 사람을 망쳐놓는다.

 

당장 주문을 버리든지 이 자리에서 죽든지 택해라"

 

그날부터 스님께서는 일체 바깥 출입을 못하게 하셨고,

 

곁에 두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 또한 의식적으로 능엄주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무의식 중에 능엄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노스님께서 "지금 뭐하노?" 하시면,깜짝 놀라며 "아무 것도 안합니다" 고 답하였지만

 

나도 모르게 능엄주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금봉 노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참말로 아무 것도 안하나? 그거 뗄려면 죽기보다 더 힘이 들거다" 정말 그랬습니다.

 

막상 눈 앞에서 전개되는 신통한 일에 호기심이 붙고 재미가 붙은 상태에서는 뗄려고 해도

 

참으로 떼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노스님의 '죽기 보다 더 힘들거다'하시는 말씀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 우룡 큰 스님

 

 

 

그러므로 일단 공부길에 들어서면 눈밝은 어른들께 자주 물어야지.

 

멋대로 공부를 지어나가서는 안됩니다.

 

나 자신을 뒤돌아보면 ,지나간 시간에 정법과 깊은 연이 있었든지,

 

전혀 엉뚱한 쪽으로 가지 않고 바른 수행의 길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천행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어른들께 물을 줄 몰랐던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생각도 들고

 

곁에 계시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주의깊게 살펴주셨다면 그와 같은 탈이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실로 나는 이때의 여러가지 체험을 통하여 공부 초기에는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처럼 눈밝은 어들들께 자꾸 물어야 한다는 것과

 

어른들 또한 젊은 사람을 관찰하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차원까지 갔는가를

 

잘 살펴 다독거려 주셔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나는 근래에 와서 신도님이나 초심자들에게 자주 부탁을 드립니다.

 

"공부 자리가 완전히 잡힐 때까지 될 수 있으면 어른들에게 자주 물어라

 

자주 물어야 길을 그르치지 않는다.잘못하면 그르치게 된다"

 

나 또한 내가 체험한 몇가지를 어른들께 말씀드렸더니

 

"식광까지는 체험했구나 분명히 식광은 쳐다봤다"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식광이라는 그 자체가 아직까지 공부 중간입니다.

 

미처 공부의 한 70% 정도도 못간 고비에서 겪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식광의 체험! 흔히 제6식이라고 하는 의식이 분명하고 또렷이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그와 같은 세계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을 하다가 의식이 떨어져버리는 상태에 이르면 식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곧 안이비설신의 5근과 관련된 전5식의 파도를 넘고 제6식과 제7식의 파도도 넘고

 

제8식의 파도를 넘어가면서 식광의 고비가 터지는 것입니다.

 

나의 체험으로 보면 수행자가 전 5식의 파도 곧 눈 앞의 모든 것이 흔들리는 고비가 넘어가고 나면

 

좀 조용해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제6식의 파도가 나타나고 그 파도를 극복하고 나면

 

제7식의 세계가 나타나며,그때 전생이 보이게 됩니다.

 

제 6식의 파도를 넘어 제 7식의 파도에 가면 전생이야기가 눈에 비치고

 

전생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7식의 파도를 다 넘어서서 제8식의 파도를 넘다가 보면

 

식광이 세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광의 세계 가지고는 참된 공부가 이루어졌다고 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행과 마음가짐이 점점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24시간 언제나 화두나 주력이나 염불 속에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공부를 짓다가 잘못 되어 완전히 정신병자처럼 된 스님도 있고

 

약간 정신이 이상해진 언행을 하는 사람도 더러 만납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다 끝까지 도착했다고 큰 소리를 치는 분들 중에서도 아직 멀었습니다.

 

스님 그것 가지고 끝까지 갔다고 자부하면 완전히 옆길로 가버립니다.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나는 칼날이 넘을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칼날을 넘지 않고 중단했다는 것으로도

 

천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나는 식광의 고비까지 도착하면서

 

옛 어들들이 신통 이라고 하는 그런 차원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만

 

수행과정중에 나타나는 이러한 신통은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물론 부처님 말씀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히 익어진 차원에서 나타나는 신통은

 

마음대로 부려도 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도착을 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겪는 고비는 짐짓 나를 망치고

 

남을 망치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경우를 보면,

 

그런 고비를 체험하고 그것을 중단은 하였지만 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파가 오랜 시간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나중에 여러 어른들께 내가 체험한 것을 말씀드렸더니

 

동산 노스님께서는 꽁꽁 맺힌 놈 이라 하셨고

 

나의 은사이신 고봉 스님은 다른 이야기 없이 "아직 멀었다"고만 하셨습니다.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노스님은

 

"그래 애는 썼는데 거기에서 막히면 안된다 그 고비를 넘기고 가야 된다" 고 일러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어른들은 공부에 대해 대부분 자상하게 일러주시지 않습니다.

 

"아직 멀었다"라는 말로만 표현을 해버리지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지 않습니다.

 

'철투철미하게 네가 체험해서 가야 된다'는 식입니다.

 

이러한 교계의 풍토가 정말 아쉽습니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금봉 노스님 같은 어른을 만났을 때 계속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공부는 그 길을 그대로 유지하며 계속 밀고 나가야 합니다.

 

계속 밀고 나가야 무엇을 얻든지 어떤 자리까지 도착을 할 수 있지 중간에 단절을 하면

 

공부의 향상이 더 이상 없게 됩니다.

 

공부하는 이들은 이점을 잘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 우룡 큰 스님

 

 

 

 

 

 

 

그 뒤 나는 강화 보문사에 가서 7일동안 나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우리 스님을 모시고 글을 배우는 시절이었으므로

 

나의 원도 경전공부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제가 부처님의 경전을 공부하는 동안 지혜가 남에게 뒤지지 않게 하옵소서.

 

중노릇 할 동안 장애없이 공부 잘하게 하옵소서"

 

그때는 강화 보문사에 요즘처럼 많은 사람이 오지 않았습니다.

 

기도객도 많을 때는 대여섯분, 어떤 때는 혼자서 기도를 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주지를 맡은 노스님이 기도객 각각에게 다기와 목탁을 나누어주시면

 

자기의 다기물을 자기가 받아서 올리고,목탁도 각자가 쳤습니다.

 

다만 제일 먼저 와서 터 잡은 사람의 목탁소리에 자기의 목탁소리를 맞추어야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에게 지기 싫어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많은 경을 외우고 여러가지 예식을 할 수 있는 것도

 

곁의 도반들이나 선배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에는 특별한 가르침을 줄만한 어른이 있으면 악착같이 찾아가 배우고 익혔습니다.

 

나한기도를 할 때도 마찬기지였습니다.

 

남에게 지기가 싫어 남보다 먼저 일어나 법당에 가고,

 

남보다 늦게까지 남아 목탁을 두드리며 독하게 제대성중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7일기도의 마지막날 밤이었습니다.

 

그날도 늦게까지 기도를 하고 내려와 잠깐 누웠는데,잠결에 목탁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차 늦었다'는 생각에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간단히 세수를 한 다음 다기물을 떠서

 

법당에 올라가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밤중인지 새벽이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법당에 올라왔으므로 천수경을 외우고 정근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기도객들이 들어왔고,그 사람들에게 밀려 불단 바로 앞에서 목탁을 치며

 

제대성중 제대성중을 불렀던 것까지는 분명히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아차하는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내 몸이 함께 정근하고 있던 사람들의 머리 위를 날아 법당문 밖에 떨어졌습니다.

 

가사 장삼을 입은 채로 마당으로 날아와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무지 생각도 나지 않고 상상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목탁은 놓아버렸는지 들고 나왔는지 어떻게 날아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잘못하여 나한님이 꾸지람을 하고 벌을 주는 것인가?'

 

대중방에 내려와 미닫이문에 등을 대고 무릎을 고여 앉아있으니

 

주지 스님이 오셔서 달래주셨습니다.

 

"기도 잘 했는데 왜 그러고 있느냐? 기도 성취했다"

 

"성취가 어디 있습니까? 벌 받았는데요" 순간 나는 설움이 복받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벌 받은게 아니다"

 

그러나 주지스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앉은 채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잠 속에서 어떤 노스님이 오셔서

 

손으로 턱을 톡톡치며 말했습니다.

 

"얼굴 좀 들어봐라 이놈아 네가 미워서 그런게 아니다.

 

하도 코 밑까지 다가와서 제대성중을 외쳐대니 귀가 얼마나 따가웠겠느냐?

 

그래서 너를 살짝 밀었더니 그만 그렇게 되었구나 네가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기도 잘 했다"

 

나는 그와 같은 가피를 입었을 뿐아니라

 

보문사 주지 스님이 회향할 준비를 다 해주셔서 무사히 기도를 마쳤습니다.

 

강화에서 기도할 때 겪은 이 일은 일종의 수기를 받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법계는 그대로 부처님이므로

 

법계의 가피력,곧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여러가지 묘한 영험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중생심으로는 추측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대우주의 신비이고 대우주의 모습입니다.

 

평소에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지만 지극한 기도를 하면

 

부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맞는 적절한 모습을 나타내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리고 법계에 가득한 성현들께서도 순간적으로 큰 가피력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 예로 폐엽사에 계시던 하은 스님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 우룡 큰 스님

 

 

 

 

 

 

하은스님은 13세에 구월산 패엽사로 출가하여 20년 동안 경전을 연구하였고

 

다시 20년 동안 참선정진을 하여 도를 깨쳤습니다.

 

대중들이 스님을 패엽사 조실로 추대하였지만 스님은 조용히 정진을 하고 싶어

 

대중들 몰래 도망을 쳤습니다.

 

하루종일을 걸어 스님은 그날 밤 패엽사에서 삼사십리 바깥에 있는 주막에 투숙했습니다.

 

그런데 밤늦게 하은스님이 묵고 있는 방에 땡초 중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손님은 많고 방은 없으니 스님끼리 같이 주무시라는 생각에서

 

주막집 주인이 들여보낸 것이었지만 하은스님이 볼때는 이 땡초 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하은스님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고기며 술을 시켜 거침없이 먹었습니다.그러더니 곰방대에다 담배를 넣어 뻑뻑 피워대는데

 

그 조그만 방안에 담배연기가 꽉 차서 코가 따갑고 눈이 따가워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담배를 다 피우고 나더니 주인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하여 방안에 앉아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한다음 똑바로 앉아 큰 소리로 화엄경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고 긴 80권 화엄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청산유수라는 말 그대로 줄줄줄 막힘없이

 

외워나갔습니다.

 

화엄학의 대강백으로 추앙받았던 하은스님이었지만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나중에는 입에서 광명이 나오는 듯했습니다.

 

간혹가다가 그 스님이 하은스님 쪽을 쳐다보는데,

 

하은스님은 두려움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을 다 외웠을 때는 이미 새벽녘이 되어 있었고, 그때 땡초스님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하은 하은 이라고 하기에 제법인 줄 알았더니 대수롭지도 않은 인물이구먼

 

다른데 가봐야 별 수 있을까봐 돌아가서 패엽사나 지키지,가긴 어딜 가!"

 

그리고는 방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은스님은 발걸음을 되돌려 패엽사로 돌아와 대중들에게 말했습니다.

 

"보현보살께서 오셔서 나에게 수기를 주고 가신 것이야

 

패엽사 대중이 그렇게 갈망하는데도 대중을 배신하고 나간 것을 꾸지람하러 오신거야"

 

그 뒤 하은스님은 평생을 패엽사에 계시면서 후학들을 지도하셨습니다.

 

하은스님의 경우나 나의 보문사 기도처럼 법계에 가득하신 불보살님은 필요에 따라

 

적절한 모습을 나타내어 수시를 주시고 가피를 내려주십니다.

 

오직 우리가 다해야 할 바는 정성 입니다.정성껏 기도하고 정성껏 수행하면

 

꼭 가피를 입어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우룡 큰 스님

 

 

 

 

 

 

서울에서는 비구 대처가 한창 다툴 무렵이었고,

 

나 개인적으로는 강화도 보문사에 가서 기도를 마치고 난 뒤 입니다.

 

나는 부산 연등사에서 여름 석달 동안 지장 기도를 하였는데,

 

기도하는 중간에 또 식광의 고비가 나타났습니다.

 

어느날 오전 시간에 지장보살을 부르는 지장정근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눈 앞에 계시던 부처님도 없고 벽도 없고 집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펼쳐졌습니다.

 

분명히 눈을 뜨고 쳐다보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변광야처럼 환하게 텅 비어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 전까지는 목탁을 치고 지장보살을 불렀는데

 

그 순간에는 내가 목탁을 계속 치고 있었는지 지장보살을 계속 부르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끝낸 다음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분명히 목탁도 계속 쳤고 지장보살도 계속 불렀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맑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계속 정근을 했다는데

 

내 자신은 그것까지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공간과 그런 상태에서 나 자신도 의식을 못한채 두시간 내지 세시간을

 

그대로 보낸 것입니다. - 우룡 큰 스님

 

 

 

 

 

 

 

연등사에서 지장기도를 마친 나는 사천 다솔사로 갔습니다.

 

그때는 강원의 학인들이 비구 대처 싸움 때문에

 

강원에서 경전조차 제대로 펴지를 못할 때였으므로..

 

다솔사에 가서 한철 살면서 백일 관음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새벽 2시 40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다기물을 떠서 법당에 들어가려고

 

법당문을 열었는데 순간적으로 온몸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내 몸의 털 하나 하나에 한 사람씩 붙어 잡아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털부터 시작하여 몸 위쪽으로는 수많은 사람이 털 한 개씩을 위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고

 

아래로도 수많은 사람이 털 한 개씩을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 같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법당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기도 싫은 상태였지만

 

그대로 억지로 들어가서 예불을 드리고 관세음보살 정근을 마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법당을 쳐다보기도 싫은 상태가 며칠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이는 두려움의 마구니인 포마의 시련을 겪은 경우인데

 

이러한 고비를 경험하고 나서는 지금까지 그러한 경우를 다시는 당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느날 저녁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은사 스님께서는 내가 법당에 있는 동안은 잘 찾지 않으시는데,

 

그 날은 분명히 법당 밖에서 나를 부르셨습니다.

 

기도를 하다말고 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계속 기도를 하였습니다.

 

은사 스님은 세 번을 부르다가 화가 나셨는지 법당문을 발로 쾅 차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은사 스님의 목소리요 행동이었습니다.

 

정근을 마친 다음 나는 은사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스님 제가 기도하고 있을 때 법당 밖에 오셔서 저를 부르셨는지요?"

 

"안 불렀다 네가 기도하는 도중에 언제 너를 부른일이 있었느나?

 

법당 쪽으로는 근처도 가지도 않았다"

 

이처럼 기도정진을 하다보면 결코 거부하기 어려운 분이 나타나 방해를 함으로써

 

기도를 중단시켜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중단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중단을 하게 되면 업장을 녹이지 못하여 원성취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 우룡 큰 스님

 

 

 

 

 

 

 

 

다솔사에서 관음기도를 하면서 먼저 포마를 겪은 다음에는 희마 경계가 찾아왔습니다.

 

희마가 찾아오면 하염없이 기쁘고 좋아,자꾸 웃음이 터져나오는 상태가 됩니다.

 

나는 아무런 좋은 일이 없는데도 웃음이 났습니다.

 

혼자 있어도 웃음이 터져나오고 무엇을 쳐다보기만 하여도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우는 사람을 보면서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근하는 도중에도 웃음이 터져나오고,천수를 치다가도 혼자서 웃기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스님께 불러가서

 

"무엇이 그렇게 좋아 실성한 놈처럼 싱글벙글거리고 다니느냐?"며 꾸중을 듣는 그 자리에서도

 

계속 싱글벙글거렸습니다.

 

하지만 이 희마의 상태는 일주일가량 이어지다가 저절로 사라졌습니다. - 우룡 큰 스님

 

 

 

 

 

 

 

희마가 사라지자 그 다음에는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비마를 경험한 것입니다.

 

처음,비마의 경계가 찾아온 것은 오후 2시간을 정진할 때였습니다.

 

법당에 들어가서 천수를 마치고 다기를 연 다음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대자대비간세음보살

 

하면서 정근 목탁을 치기 시작한 것까지는 분명히 기억을 하는데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정근을 마칠 시간쯤 되어서 보면,

 

목탁은 이쪽으로 떨어져 나가 있고 목탁채는 저쪽으로 떨어져 나가 있었으며

 

나는 나대로 좌복에 엎드려 얼마를 울었는지 좌복이 눈물이 흥건히 젖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왜 이럴까? 내가 언제부터 이랬을까?' 그러나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정근 시간에도 별다른 주의없이 기도를 시작했는데

 

낮에 겪은 비마를 그대로 체험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똑같은 경우가 벌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역시 기도를 하다가 또 그대로 당했습니다.

 

"내가 왜 이럴까? 정신을 차려야지" 낮시간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기물을 올리고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대자대비관세음보살' 부를 때까지만

 

의식이 있고 그 다음의 동작은 전혀 기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일주일쯤 계속 되더니

 

언제 어떻게 그치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그런 상태가 없어졌습니다.

 

희마에 휩싸일 때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지만,

 

비마의 차원은 지금까지도 전혀 가늠할 수가 없을 만큼 슬픔에 깊이 빠졌습니다.

 

이렇게 비마의 상태가 지나가고 난 다음 소름이 끼치는 상태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경험한 포마의 경우처럼 심한 두려움의 상태가 아니라

 

수시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었습니다.

 

두렵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소름이 몇번씩이나 찾아오는 그런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별다른 장애없이 정진을 잘하여 백일 관음기도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결국 나는 다솔사에서의 백일 관음기도를 통하여

 

두려움의 마구니,기쁨의 마구니, 슬픔이 마구니가 왔다 가는 체험을 고루고루 다 겪었습니다.

 

옛어른들의 말씀대로라면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원결이 풀어지는 고비를 경험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경계는 개개인의 다 다르기 나타납니다.

 

근기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겪어가는 과정에서 비슷비슷한 마장들이 나타나므로 이러한 경계를 체험하고 나면

 

후학들에게 그런 고비가 있을 때 흔들리지 말고 극복을 해나가는 이야기를

 

자신있게 해 줄수 있습니다.

 

결국 한 단계를 극복하고 나면 극복한 만큼 향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보통의 경우에는 희마.비마,포마의 경계를 넘어서고 난 다음에 식광의 고비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나처럼 식광이 먼저 나타나고 희마.비마,포마가 그 다음에 나타나는 예는

 

별로 없습니다.

 

어른들의 체험담을 들어보고 종합해보면

 

희마.미바 등의 고비를 넘어가고 난 다음에 식광의 차원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우룡 큰 스님

 

 

 

 

 

 

 

실로 수행 도중에 장애가 붙을 때,

 

그 장애를 잘못 생각하면 속아서 엉뚱한 결과가 오게 됩니다.

 

약 삼십년 전 남해 보리암에서 준제진언을 외우며 기도를 하다가

 

영영 불구자가 된 스님 얘기를 나는 가끔씩 합니다.

 

그 스님은 눈 앞에 나타난 보살의 환영을 보고 환희심에 도취되었습니다.

 

'아,내가 이렇게 애를 쓰니까 보살님께서 직접 시현을 하셨구나.

 

그리고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내 신심을 시험하시는구나' 이렇게 환희심에 도취되어

 

마구니의 수단에 빠져들었고,스스로 성기까지 절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가 두려워 수행을 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흔들림없이 정진하기만 하면 마장이 수행을 도와줍니다.

 

마장이 극복되면 그만큼 깨달음도 커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우리 불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마장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

 

능엄경에는 50종변마사라하여 공부할 때 나타나는 50가지의 마구니의 길을

 

상세하게 설하고 있지만

 

이는 비마,포마,곧 슬픔.기쁨,두려움의 세 가지 종류에 다 포함됩니다.

 

참선.염불,주력 등의 공부를 하다가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나타난 경계를 긍정하지 말고 부정을 해버리는 쪽으로 밀어 부쳐야 합니다.

 

만약 나타난 경계를 긍정하기 시작하면 마구니의 수단에 휘말려 버리고 맙니다.

 

물론 나타난 경계를 긍정하지 않더라도

 

무의식 중에 그 수단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다솔사에서 관음기도 중에 겪은 비마의 경험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상태는 보통 7일 내지 길어도 보름이면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 경계에 흔들려 기도를 그만두게 되면 그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한평생을 비감 속에,슬픔 속에 빠져 공부도 더 이상 계속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한평생을 이상한 사람처럼 웃음 속에서 넘기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마.비마,포마의 장애가 생겨났을 때 일념으로 노력하여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망상 속에서 살던 그 전의 상태를 넘어서서 언제나 편안하고 아름답고 기쁜 상태가 됩니다.

 

또한 일상생활이나 수행 정진을 통하여 체험하는 경계가

 

훨씬 더 너그러워지고 넓어지고 커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마장과 관련하여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희마.비마.포마의 경계나 식광의 경계 모두 공부를 지어 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고비일뿐,

 

이것이 전체도 공부가 끝난 자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법 공부에는 적당히가 통하지 않습니다.

 

공부가 다 익어진 다음이라야 그 살림살이가 나의 살림살이가 됩니다.

 

수행 도중에 아무리 신통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마에 불과합니다.

 

실로 공부의 중간 과정에서 나타는 신통한 경계에 대해서는 믿음을 주어서도 믿어서도 안 됩니다.

 

그 차원은 완전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대우주 그대로를 집으로 삼고 대우주 그대로를 내 몸으로 삼아 사는 차원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부디 부처님의 차원에 도착할 그때까지

 

임시로 나타나는 식광이나 시험의 상태에서 벌어지는 것들에 대해 집착하지 마십시오

 

만약 그 경계를 경험하면서 이제 내 공부가 다 되었다 고 받아들이면

 

돌이킬 수 없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부가 완전히 익어 내 살림살이가 될 때 까지

 

내가 하던 공부를 흔들림없이 꾸준히 지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잘 명심하시어 자타일시 성불도를 성취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 우룡 큰 스님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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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에 눌린 사람들에게 권하는 염불

 

 

(법철스님 법문)

나는 78년 초여름부터 초겨울까지, 강원도 춘천 소양 댐 안에 자리한 청평사(淸平寺) 뒷 편에 있는 토굴에 홀로 기거하고 있었다. 토굴의 지붕은 오래된 함석지붕이었고, 황토 벽돌로 지은 작은 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난생처음 산도깨비를 만났다.

나의 토굴에서의 일상의 생활은 공양시간이면 숲길을 내려가 큰절인 청평사에서 공양을 하고, 다시 혼자 숲길을 걸어 토굴에 돌아왔다. 나는 낮에는 경서를 보기도 하고, 밤에는 호롱불을 밝히우고 화두를 들고 면벽 참선을 했다. 의복을 세탁할 때는 토굴 옆 계곡에서 세탁을 하여 넓직한 바위에 널어놓고 역시 넓직한 바위에 돌 벼개를 하고 누워서 하늘을 우러러 보기도 하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그 해 추석날, 큰절에서 점심공양을 마치고 토굴 옆 계곡의 바위 위에 돌벼개를 하고 누워 푸른 하늘을 우러르니 갑자기 고향의 어머님 생각이 나고, 이어서 비감한 마음이 되면서 뜨거운 눈물이 양볼을 적시었다. 순간, 나는 비마(悲魔)가 나를 사로잡는다고 자책하여 마지 않았다. 수행자들이 특히 병든 수행자들이 비마가 들면 자살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수행자에게 비마는 무서운 것이다.

나는 얼른 생각을 달리 가졌다. (아아, 나는 얼마나 자유스럽고, 복된 사람이냐. 집착할 것이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에서 홀로 토굴생활을 하면서 자유스럽게 마음공부를 하지 않느냐. 호주머니에 동전 한 잎이 없어도 평안한 마음으로 오늘은 바위에 누워 푸른 하늘을 우러러 즐거워한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해도 욕망과 근심걱정이 많아서 몇몇이나 나와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어디서 왔는지 다람쥐 두 마리가 나타나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와서 친근히 바라본다. 두 눈을 감으니 온 천지에 계곡물 소리뿐이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제행무상 법문을 하는 것 같아 황급히 토굴에 돌아와 면벽 참선을 했다. 나는 승려가 된 후, 남다른 습관을 만들었다. 밤에 잠을 잘 때, 언제나 방문을 안으로 잠그지 않는 것이다.

방문을 안으로 잠근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생명에 대한 집착이요, 겁을 먹는 자세라고 생각하여 문을 잠그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고 귀신이고 그 무엇이든 나를 찾고 싶으면 찾으라는 뜻에서다. 토굴에서도 예외 없이 밤에는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 나는 그때 토굴에서 자리를 깔고 정식으로 잠을 청해 본적이 없었다. 면벽 참선을 하다가 졸음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시 잠이 들뿐이었다.

토굴에서 홀로 수행하는 나에게 어느 날, 마장(魔障)이 찾아왔다. 그 날도 호롱불을 켜놓고 면벽참선을 하다가 졸음이 몰려와 쓰러지는 비몽사몽간에 개 대가리에 온몸이 누런 털로 덮힌 사람 몸에 개처럼 꼬리가 달린 자가 방문을 열고 불쑥 들어왔다. 그자의 키는 4∼5세의 아이 크기였다. 그 자의 두 눈은 사납게 번쩍였다. 그자는 누워있는 나를 번쩍이는 두 눈으로 내려보고는 톱날 같은 이빨을 악물고 내 몸 위로 올라타고서는 말없이 털로 덮힌 두 손으로 나의 목을 바싹 죄기 시작했다. 숨이 칵칵 막혀왔다.

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뜨고서 벽력같이 그자를 질타했다. (네 이놈! 감히 누구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썩 물러나지 못할까!) 나의 완강한 저항에 그자는 놀라 목을 죄든 손을 풀고서 내 몸에서 내려와 방안에 서서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후다닥 방문을 열고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달아났다. 그 자는 이틀사이로 나를 찾아와 비몽사몽간의 똑같은 방법으로 나의 목을 죄었다.

그때마다 나는 땀을 뻘뻘흘리면서 그자를 꾸짖고, 그 자는 달아나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스스로 문제를 풀수가 없어서 청평사를 떠나 존경하는 대선배 고승을 찾아갔다. 나는 고승에게 전후사정을 말씀드리고 대책을 여쭈었다. 고승은 파안대소 하면서 대답했다.

“수행자들에게는 마장이 있기 마련이네. 수행자로써 마장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진짜 수행자가 아니지. 더구나 산 속에 혼자 수행하고 있으면 더더욱 마장이 생기다네. 자네의 목을 죄는 그 자는 산소, 즉 산도깨비일세. 여우나, 이리, 오소리 등의 정령이라고 말할 수 있지. 산도깨비는 자네를 그곳에서 내쫓으려고 하는 것이지.

그 증세는 보통사람들의 가위눌리는 것이나 오십보 백보이지. 산도깨비는 수행자가 자기를 무서워하면 더욱 기승을 부리고 마침내는 목숨까지 빼앗으려 든 다네. 산도깨비는 수행자의 마음의 허(虛)와 기(氣)의 허(虛)를 기막히게 탐지하여 나타나 조화를 부린다네. 처방이 있다면, 첫째, 주력(呪力)을 통해 마음의 원기를 튼튼히 하고, 둘째, 잠자는 습관을 바꿔야 하네. 예컨대 동쪽에다 머리를 두고 자다가 산도깨비가 나타났다면, 남쪽으로 머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지.

천수주(千手呪)를 하면 좋지만은 너무 길 것이니 잠들기 전에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을 반복하여 소리내어 부르고, 간절히 그 소리를 듣는 기도를 하면 그까짓 산도깨비는 물론이려니와 일체 가위 눌리는 증세는 금새 사라진다네. 나무관세음보살의 주력에는 우주의 신장(神將), 신병(神兵)들이 수호하는 불가사의한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네.”

나는 토굴에 돌아와 밤에는 백팔염주를 한 알씩 헤아리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즉 주력의 수행을 시작했다. 나는 잠 속에서도 주력을 하고 있었다. 과연 어느 날 밤, 산도깨비는 방문을 열어 들어오지는 않고 고개만 디밀고 잠시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더니 방안에 들어오지 않고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산도깨비는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잠이 들기 전 주력을 한다.

밤이면 비몽사몽간에 가위에 눌리고, 요괴정령이 목을 죄어 생사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여, 이 글을 접하는 즉시 의심하지 말고, 믿는 마음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옷깃을 정제하여 향로에 향을 피우고 정좌하여 백팔염주를 헤아리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명호정근의 주력을 하시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 구름이 걷히면 푸른 하늘이 나타나듯 한다는 것을 보장하는 바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좌보처(左補處)보살이신 관세음보살님


불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님은 항상 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無量壽佛)의 좌보처(左補處)보살로
항상 적정삼매(寂靜三昧)에 계시면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으시고(不離一步),
시방세계에 두루 모습을 나투시어(刹刹現身)
중생의 고난을 구해주시는 대성인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남성과 여성의 성(性)을 초월한 분으로서
중생을 고난에서 구하지만 전해오는 바를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백의를 입고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왼손으로는 중생을 구원하는 감로수가 들어 있다는
정병(淨甁)을 든 천상천하에 유일한 복덕과 지혜를 갖춘
아름다운 여인상으로 많이 나투고 있으니, 이는
관세음보살님이 우주의 일체중생의
대자대비한 어머니의 상징인 것이기도 하다.

또 관세음보살님은 인적이 끊긴 외로운 섬(海岸孤絶處)에
있다는 성산(聖山)인 보타낙가산(寶陀洛迦山)의
죽림원(竹林院)에서 상주 하면서, 고난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설흔두가지의 몸을 나투고(三十二應身),

열 네가지 두려움이 없는 위력(十四無畏力)과 네 가지
불가사의한 덕(四不思議德)을 걸림이 없이 받아
쓰기도(受用無碍)하면서, 팔만사천의
빛나는 머리(八萬四千 迦羅首)와 팔만사천의 팔과 손
(八萬四千母陀羅臂)에 항마(降魔)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신기(神器)를 들고,

팔만사천의 청정하고 보배로운 눈(八萬四千淸淨寶目)으로
우주를 통찰하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대자비로
항마를 위해서는 위신력(或慈或威) 을 보이며

우주에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이(分形散體) 몸을 나투워
고해중생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감응도교(感應道交)를
이루면 기도중생의 마음속의 구하는 바에 따라서 반드시
낙을 얻게(拔苦與樂) 해주는 대성인이시다.

고해대중이여, 이제부터라도 현세의 짧은 무상한
허욕에서 심기일전 하여 마음을 비우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을 가슴으로 영접할지어다.

그대 가슴에 마음을 비우고 오직 관세음보살님을 영접하면
그대의 가슴에도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심이 충만하게되고,
그대의 초능력인 잠재의식이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하여 자가
발전을 일으켜 마침내 관세음보살님과 일체를 이루어,

그대가 지은 업의 윤회의 고통에서 반드시 해탈하여 살아서
마음의 평안과 소원의 성취는 물론이요,
세연이 다해 그대 홀로 저세상의 먼길을 외롭게 떠날때
관세음보살의 인도를 받을것이다.

믿음으로 고해를 향해 소리쳐 송(頌)하노니,
대자대비하신 구세주 관세음보살님시여 우주의 오직 한 분,
청정법신불의 화신이로다 관세음보살님시여,
업보의 윤회에서 고통받는 고해의 중생을 인도하여 주소서

이교(異敎)에 올바른 정신을 빼앗기고, 탐욕으로 올바른
정신을 빼앗긴 자들의 속안(俗眼)에 관세음보살이 어디있느냐,
보이지 않는다, 하면서, 불신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도다.

믿음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불신의 업보로서 하루낮
하룻밤에 만번 살고 만번 죽어야 하는(一日一夜 萬生萬死)의
생사윤회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는 분, 관세음보살을 믿는 중생들은,
어둠속에 대광명을 만나듯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살아서나
죽어서나 관세음보살님의 가호로 윤회의 업보가 소멸되어
마침내는 극락세계로 인도받아 영원한 영화속에 살 것이로다.

아침에도 관세음보살님께 경배 드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고
(朝念觀世音菩薩), 저녘에도 관세음보살님께 경배 드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는(暮念觀世音菩薩)
바른 신행을 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반드시
제불보살(諸佛菩薩)과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축복을 받을것이로다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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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초기에는 인간에게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성철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것을 시험해보고자 백졸스님과 나도 석남사에서
만배를 한 적이 있다.

 

처음 108배를 할 때는 힘들지만 1080배를 하고나면 108배는 아무 것도
아니다. 3천배하는 것이 힘들지만 만배를 하고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듯 모든 것은 마음의 힘으로 된다.

 

나는 만배를 마치면서 인간에게는 퍼내도 퍼내도 다 쓸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내 경험도 경험이지만 성철 큰스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절을 시켜서 불치의
병을 낫게하는 등 기적을 이루는 것을 보아왔기때문에 그 친구가 생각났을 것이다.

 

절을 권하는 내게 친구는 한 번 해보겠다고하면서 고마와했다.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도솔암은 절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100일 동안 하루 천 배씩 기도해봐요. 좋은 일이 있을겁니다."

 

당시 도솔암은 작은 암자여서 법당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인법당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정진했고, 그녀는 공양주를 살면서
지대방에서 하루 천배씩 절을 했다.

 

백일기도 회향을 21일 남겨두고 그녀를 불렀다.

 

"이제 21일 남았지요? 회향할 때까지 21일 동안은 하루 3천배를 해봐요."

강도를 높여본 것이다. 그녀는 순순히 따라와주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친구는 공양주일을 하는 바쁜 가운데서도 하루 열시간정도 지극정성으로 절을 했다.
나도 정진하느라 여념이 없어서 친구가 절을 하는 것을 오며가며 보아오다가
백일기도를 마치던 날, 친구를 불러 물어보았다.

 

"무슨 좋은 일 없어요?"

 

친구는 기도 중에 있었던 일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밤새도록 절을 하다가 잠깐 엎드려 조는데 비몽사몽간에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손에 물병을 들고와서 제게 주면서 먹으라고해요.

 

그런데, 남자가 주는 것을 어떻게 먹어요?

 

그래서 주저하고 있는데 법당에서 하얀 옷을 입은 보살님이 나타나서 빨리
받아먹으라고 했는데, 나중에 먹겠다고 했어요."

 

친구는 물을 먹지않은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나는 불교에 대해 문외한인 그녀에게

"물병을 내밀었던 분은 약사여래이고 흰 옷을 입고 나타난 분은 백의관음입니다.

두 분 다 중생의 병을 치료해주는 분들이지요."하고 일러주었다.

 

친구는 신심이 나는지 기도를 더 해보겠다고했다.


나는 안거가 끝나서 그 곳을 떠나 다른 절로 공부하러가야했기때문에
친구를 도솔암에서 가까운 응석사로 보냈다.

 

그곳에서 친구는 100일동안 하루 3천배 기도를 했다.
나중에 들으니 기도중에 온 몸에서 흰 벌레가 거미줄처럼 죽죽 빠져나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응석사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그녀의 불치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불교가 무엇인지 불보살이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못했지만,
오직 병을 낫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다.

 

간절한 마음이 곧 부처다. 간절한 마음만 내면 되는데 그것을 못하는게 우리
중생이다. 그런데, 왜 마음을 내지 못하는 것일까?

오랜 세월 쌓아온 업으로 인한 장애때문이다.

이 사실을 직관해서 장애를 없애는 것이 수행이며, 그중에서 가장 수승한 기도가
절수행이다.

 

자꾸 엎드리다보면 하심이되고 참회가 되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큰스님께서는 생전에 천근을 들려면 천근의 힘이, 만근을 들려면 만근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수행을 통해 힘을 키우라고 하셨다.

 

살아보면 인생이라는 무게가 어디 천근, 만근만 하겠는가?


큰스님께서 승속을 막론하고 3천배를 시킨 이유를 절을 해본 사람은 안다.

 

큰스님은 신도들에게 참회기도를 하도록 철저히 가르쳤고, 큰스님 자신도
평생동안 108배의 참회기도를 하셨다.

 

몇 년후 석남사에 있을 때 친구가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와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깊이 깨달았습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그 후 친구는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가서 잘 살고 있다.

 


원출처: 불필스님저 영원에서 영원으로(불필스님 회고록, 김영사)

 


cafe.naver.com/abira에서 혜명인님글 다시 옮김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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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전생의 업(業)

황전스님 글

 

내가 잘 아는 비구스님 한 분은 작은 암자에서 수십 년을 한결 같이 지장기도를 하며 수행정진을 한 덕분에 스님은 자신의 원력이 깃들인 큰 절을 하나 지었다. 큰 절이 생기자 스님은 지장기도를 더욱 열심히 한 덕분에 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틀이 멀다하고 천도를 하였다.

 

그런 그 스님이 며칠 전에 나를 찾아와서 물었다.

“스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한 보살님이 계시는데 남편의 사업은 그런대로 잘 되는데 집안은 영적(靈的)으로 엉망인 것 같았습니다.

 

그 보살님도 이유도 없이 온 몸이 오랫동안 아프고, 아들과 딸도 가끔은 제정신이 아닐 때가 많답니다. 그래서 내가 절을 짓는데 보시를 하면 아마 가정이 좋아 질것이라고 했더니, 그 보살님과 그의 가족들이 부처님도 조성하고 산신각도 조성하고 그밖에도 불사하는데 많은 보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사가 다 끝났는데도 그 가정이 풀리지 않아서 천도를 7번 정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 덕분인지 하는 사업은 그런대로 잘되는데, 보살님의 몸이나 가족들은 천도를 하기 전보다 더 아프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동안 많은 천도를 해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 보살도 끈기가 대단합니다. 자신의 집안이 좋아질 때까지 천도를 계속할 생각이랍니다.

 

스님, 그런데 이제는 내가 두려워집니다. 내가 그 보살님에게 전생에 지은 업장이 많아서 그런다고 위로의 말은 했지만, 그 보살이 스스로 전생에 지은 업장을 알 수가 없으니 그런 말도 한 두 번이지 이제는 더 하기도 어렵습니다. 아아,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참 스님께서 그 보살님의 천도를 한 번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하하하, 스님도 참....

우리는 참으로 인연 깊은 사람이나 참으로 간절한 사람이 아니면 천도를 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다가 암자라고는 하나 누가 이런 작은 암자에서 천도를 하고 싶겠습니까? 스님 같은 큰 절에서라면 몰라도. 그리고 스님의 신도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스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나는 기도가 부족해서 천도하는 능력도 없지만 천도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스님,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스님이 우리 절에 와서 천도를 주관하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그 보살님의 가정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내 힘이 부족하면 다른 스님의 힘이라도 빌려서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믿고 의지할 만한 스님은 스님밖에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스님이 며칠을 두고 찾아와서 어찌나 사정을 하는지 할 수 없이 나는 나의 스승님을 모시고 그 절에 가서 천도를 주관하게 되었다. 천도를 하는 도중에 그 보살은 배를 움켜지고 구역질을 수 없이 하는가 하면 쓰러지면서 수 없이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몇 시간의 긴 천도가 다 끝나자 그 보살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님, 내가 내 아들과 딸의 전생을 보았습니다. 스님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오랜 시간 염불을 할 때에 갑자기 눈앞에 전쟁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임진왜란이었는데 이순신 장군님 뒤로 몇 몇 장수들이 적을 칼로 수 없이 죽이는데 갑자기 장수 두 사람이 나의 아들과 딸의 얼굴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생에 우리 아들과 딸이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였나 봅니다. 그래서 지금 그 전생에 지은 업을 지금 받고 있나 봅니다.”

 

“잘 보셨습니다. 보살님 가족들이 이생은 평범하게 태어나서 착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전생에 지은 그 원결, 다시 말하면 아무리 나라를 위해서 적군을 죽였지만 그 원결은 일대 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원결들이 보살님의 가족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보살님이 조상님들을 위해서 천도를 7번이나 하셨기 때문에 전생의 업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조상천도는 별것이 아닙니다. 천도를 하면 할수록 힘들고 무서운 것은 바로 전생의 업들이 드러날 때입니다. 이 전생의 업도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끝도 없습니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더 힘이 막강한 업들이 드러납니다. 스님들이 천도를 하는 도중이나 천도를 하고 난 후에 쓰러지거나 몸이 아픈 것은 이러한 업들이 드러나 그 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님들 수행 중에 천도하는 수행이 가장 어렵고 무섭습니다. 조상님들은 오히려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는데 전생의 원결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인도 아닌 주제에 어디 와서 까불고 있어! 내가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하면서 목을 조일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천도를 사람들은 천도를 한 번 하고 나면 다 끝났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은데, 천도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 인간으로 태어나 수 억겁을 윤회하는 과정에서 해보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장군, 임금, 백정, 남자, 여자, 수행자 등등 그때마다 나라를 위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든 죽였던 그 사람들의 한(恨)이 어찌 참회를 한다고 사라지겠습니까? 자신이 지은 죄 정도는 참회를 통해서 어느 정도 소멸이 됩니다. 그러나 생명을 죽인 원결, 그것도 인간이 인간을 죽인 원결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 원결은 결국은 자신이 뿌린 씨앗이니 본인이 다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생에 같은 업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 가족을 이루게 되면 가족 전체가 그 업의 파장에 혼란이 온 것입니다. 지금 보살님 가족은 시절인연이 되어 어느 전생의 업을 받고 있습니다. 이생에 어느 정도 업을 받고 나면 다음 생으로 그 업이 또 넘어 갑니다.

 

보살님은 복이 많이 지어서 이러한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업장을 소멸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전생의 업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우선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있어서 그 복 때문에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복진 타락>이라고, 그 복이 다 하면 보살님같이 누구나 전생에 지어놓은 원결의 업을 받게 됩니다.”

 

“스님, 그러면 전생의 원결을 푸는 천도를 계속하면 그 원결들이 다 풀어집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보살님이 전생의 업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을 말로하자면 겨우 20프로 정도 해결이 되고 ,이렇게 인연이 닿아서 천도를 하는 것도 겨우 20프로 정도의 업이 소멸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60프로는 보살님이 직접 수행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한 평생 중이 되어서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것은 깨닫거나 부처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세세생생 지은 업장을 소멸하기 위함입니다.”

 

“스님, 스님들처럼 목숨을 걸고 업을 닦지 못한 우리들은 앞으로도 업장이 소멸될 때까지 이러한 고통을 계속 받아야 합니까?”

 

“그래도 보살님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작이 무엇입니까? 지금 밥께나 먹고 산다고 자신에게 전생의 업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불교를 제대로 알려면 우선 이러한 이치부터 제대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알아야 자신의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것들이 해결 되지 않고서는 결코 깨달음이란 없습니다. 나도 84겁을 윤회를 했지만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생의 그러한 업들을 다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보살님 입에서 저절로 염불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천도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보살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물었다.

 

"스님, 여기서 그렇게 천도를 많이 했어도 전생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였는데 스님들이 오시니까 전생을 보게되었습니다. 이게 어찌 된 것입니까?"

 

"보살님, 그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보살님께서 어떻게 하든지 전생의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 불보살님께서 그 가피를 내리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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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사경하면서 겪은 가피를 공유하고자 글을 써봅니다.

 

저는 몇년 전부터 아는 스님의 추천으로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틈틈이 사경을 하고 있습니다. 꼭 금강경만 사경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많이들 독송하시는 능엄주나 화엄경 약찬게, 천수경 등등도 합니다.

 

저희 가족은 항상 주택에 살아서 남는 방에는 세를 놓는데 무슨 인연인지 정상인 사람이 세입자로 들어온 적이 없었습니다. 방을 보러 올때는 멀쩡한 것처럼 연기를 하더니 막상 이사 들어와서 보면 알콜중독자거나, 여러 명의 남자와 불륜중인 것을 이사온 첫날부터 거침없이 자랑하는 아주머니 -이 아주머니의 아들은 밤에 집에 올 때면 정상적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담을 넘고 들어와 저희 가족의 간담을 몇번이나 서늘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저희집에 들어와 사는 동안 동거중인 아줌마에게 서슴없이 신체적으로 폭행을 가하는 아저씨, 한 사람당 4000, 많아봤자 6000원 정도 나오는 수도세도 미뤘다 겨우 주면서 틈만 나면 저희 집에 돈 좀 빌려달라던, 거실에 명품을 잔뜩 쌓아놓고 살던 젊은 부부 등등 적자면 끝도 없습니다.

 

문제는 동네 전체에서 저희집에만 이런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저런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니까 다른 집은 조용한데 저희집에서만 매일 싸우고 부수는 소리가 들릴 뿐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경찰이 중재하러 들락날락거리니 집 밖에 다니기도 동네사람들 보기에 껄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거기다 세를 놓으면 이상한 사람들만 들어오던지, 아니면 세를 놓고 싶어도 동네 다른 집에는 저희 집보다 방세를 더 비싸게 부르는데도 계약이 잘 되는데 저희집만 세입자가 전혀 안 들어오는 등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고민하다가 제가 하나 아이디어를 낸 것이, 그동안은 공책이나 사경지에 사경을 하면 모아서 다니는 절에 회향을 바로 했는데 그러지 않고 사경한 불경들을 종이봉투에 넣어서 세 놓는 방마다 한 장씩 두는 것이었습니다. 불경의 기운이 세 놓는 방에 그동안 쌓여있던 악연이나 업장들을 녹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사경한 불경들을 방마다 놔두면서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나 사경의 가피는 놀라웠습니다. 사경지를 방마다 놔두고 나니까 갑자기 방 보러 오는 사람들 수도 많아지고 부동산에서도 연락이 자주 오면서 결정적으로는 처음으로 지금까지 들어왔던 세입자들과는 정반대인, 정말 정상적인 가족이 아무 탈없이 계약하고 들어와 아주 조용히 있는듯 없는듯 아무 피해도 주지않고 살다가 깔끔하게 이사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어있는 방에 사경지를 놔뒀더니 또 바로 세입자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저희집이 사경으로 인한 가피를 받았다고, 이것은 사경의 공덕이라고 확신합니다. 처음에 불경을 놔둘 때 방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꺼려하시던 부모님도 이제는 방이 비면 불경 놔두라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다보니 방 또는 건물에 세를 놨는데 잘 안 나가거나 또는 비정상적인 세입자들로 고통받으시는 불자님들 계시면 제가 했던 것처럼 사경을 해서 방마다 놔두는 방법을 강하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가피를 경험하고 난 뒤에 저희 가족의 업장도 소멸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 놓는 방 뿐만 아니라 가족이 쓰는 방, 거실, 부엌에도 제가 쓴 사경을 놔두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관련 문제로 고민 중인 불자님들께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서툰 글솜씨로 한번 적어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불자님들께서 부처님 가피 입으시고 성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http://cafe.daum.net/amtb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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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목신과 가피

- 13세의 사미 시절에 다음과 같은 일을 경험한 효성스님은 노년에
나(우룡 큰스님)를 비롯한 여러 승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

 


조선시대 말기에 효성(曉性)스님은 13세에 쌍계사로 출가하여
대웅전 노전 스님의 상좌가 되었습니다.

전등을 밝히는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는 저녁 예불이 끝난
다음부터 새벽 예불 때까지 법당 안에 등불을 밝혔습니다.

둥근 그릇 모양의 등잔에 참기름을 가득 붓고 종이 심지를 달아
밤마다 불을 밝히면 3일은 쓸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가을, 법당 청소를 하다가 등잔을 살펴본 노전스님은
참기름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분명히 어제 기름을 넣었는데 왜 한 방울도 없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노전스님은 기름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살펴보니 또 기름이 없었습니다. 등잔을
살펴보았으나 깨어진 흔적은 커녕 구멍하나 없었습니다.

괴이하게 여기며 스님은 또다시 등잔에 참기름을 채웠고, 그
이튿날도 꼭같은 일이 일어나자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밤마다 등잔에 손을 대는 것이 틀림없구나.'

그날 밤 노전스님은 13세의 효성사미를 데리고 법당의 신중단
탁자 밑으로 들어가 밤을 새웠습니다.

탁자는 천으로 가리워져있어 밖에서는 그 밑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탁자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효성사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은사스님의 고함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놈, 게 섰거라!"

깜짝 놀란 효성사미가 눈을 떠보니, 법당 가운데의 문 앞에 키가
9척이나 되고 검은 옷을 입었는지 검은 털이 났는지 분간이
되지않는 괴물이 서 있었습니다.

머리와 팔다리와 몸뚱이가 모두 있고 우뚝 서 있었지만, 사람은
아닌 듯했습니다.

고함을 치며 神衆壇 탁자 밑을 나간 노전스님은 그에게 앉도록 한
다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이냐? 짐승이냐?"
"사람도 짐승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목신(木神)입니다."

"목신이면서 어찌 감히 부처님 전에 올리는 등잔의 기름을 훔치는
것이냐? 그 과보가 얼마나 큰 지를 모르느냐?"

"어찌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하오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냐?"
"저는 이 절 밑의 화개마을 이판서댁 뒤 뜰에 서 있는 은행나무
입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 발들이 땅 밖으로 나와 있는데, 무식한 머슴들이
제 발등에 나무를 올려놓고 도끼질을 해서 장작을 팹니다.

판서댁에서 겨울 내내 쓸 장작을 여러 머슴들이 계속 준비하다보니,
제 발들의 이곳 저곳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맙니다.

이 상처와 아픔을 달랠 약은 다른 곳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부처님께 올리는 이 등잔의 기름을 발라야만 하룻밤 사이에
아픔이 사라지고 딱지가 앉습니다.

그런데, 머슴놈들이 매일 장작을 패기 때문에 며칠동안 계속
부처님의 기름을 바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네가 진짜 목신이라면 인간보다는 힘이 셀 것이 아니냐? 얼마든지
보복을 할 수 있을텐데?"

"보복을 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집의 運이 다하지 않았는지 이판서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나면 정좌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 번 읽습니다.

그 힘 때문에 지기(地氣)를 비롯한 어떤 기운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든이 넘은 이판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이판서가 죽고나면 보복을 할 생각입니다."

"내가 가서 앞으로는 머슴들이 너의 발등 위에서 장작을 패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니, 보복을 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인간들이 해를 가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가 먼저 해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그렇게만 해주시면 그 이상 고마울 일이 있겠습니까?"

목신은 절을 한 다음 사라졌고, 노전스님은 날이 밝기가 바쁘게
이판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이판서는 머슴들을 불러모아 땅위로 노출된 은행나무의
뿌리를 부드러운 흙으로 덮도록 하고, 허리 높이 정도의 울타리를
만들어 누구도 나무에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상을 차려 은행나무에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뒤 쌍계사 대웅전의 등잔 기름은 훼손 당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13세의 사미 시절에 이와같은 일을 경험한 효성스님은 노년에
나를 비롯한 여러 승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수백년된 목신은 힘이 없어 보복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늙은 이판서가 날마다 외우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가피력 때문에
어떻게 보복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어, 어떠한 사기(邪氣)도 이판서의 집안을
범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명훈가피요, '누구라도 감히 해칠 수 없다'는 관음경의
시실불감해(時悉不敢害)입니다.


- 우룡 큰스님저 생활속의 관음경 -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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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상태서 염불하자 부처님의 광명이 몸을 보호하다

 

위서금衛瑞錦은 남자이고, 29세 때 토성土城의 승천사承天寺에서 삼보에 귀의하였다. 비록 스님께서 그에게 염불하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본인의 취미는 좌선에 있어서 제멋대로 좌선을 하면서 염불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대략 반 년 쯤 지난 8월 26일 아침에 가스 폭발로 인해 전신의 55퍼센트 이상 화상을 입었다. 게다가 대부분 상반신의 중요부위였으며, 그는 곧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 본인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때 나의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갈수록 음랭해지고 사방은 검고 어두웠으며, 마음속으로 점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나를 잡아가려는 것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고, 죽음이 두려워서 발부둥치며 일어서려 하였지만, 화상을 입은 정도가 너무 심하여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경전에서 설한 ‘사람의 목숨이 무상하다’는 말씀을 이때 가장 잘 체득할 수 있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문득 귀의할 때 스님께서 나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치던 광경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크게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하고 불렀다. 이때는 일심으로 아미타부처님께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었기 때문에 정말로 죽을 힘을 다해 지극정성으로 불렀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한참 염불하고 있는데, 갑자기 빛 덩어리 하나가 나의 전신을 감쌌다. 순식간에 모든 어둠과 음랭함과 두려움이 전부 사라졌다.

 

광명이 내 몸을 비추자 추운 겨울에 햇볕을 쬐는 것보다 더 따뜻하고 편안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아주 편안해지면서 몸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아미타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나를 구해주셨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 광명은 매우 강하고 밝았으며, 마치 풍차가 돌 듯 “쏴, 쏴!”하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회전하였다. 그리고 아기가 온 마음으로 어머니를 의지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처럼 친근하고 익숙하였으며,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마음이 탁 트이면서 매우 홀가분하고 자재하였다.

 

위서금은 말을 하면서 마치 부처님의 광명 속에 싸여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부처님 명호를 불렀다. 염불을 하고 있는데 귓가에 사람들이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는 남자의 목소리도 있고 여자의 목소리도 있었는데, 기뻐하며 ‘그가 깨어났다! 그가 깨어났다!’라고 외쳤다. 그때 광명은 사라지고 나는 내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응급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살아난 것을 보고는 모두 한숨 돌렸다.

 

위서금은 계속 말했다.

 

사실 가스 폭발이 있기 며칠 전에 나는 좌선 하던 중 이상한 일을 겪었다. 그날 좌선하면서 마음이 매우 고요해졌을 때 갑자기 두 세 사람이 매우 흉악스런 말투로 나를 가리키며 “찾았다. 찾았어! 바로 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또 어떤 여자가 매우 부드러운 목소리로 “더 이상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아야 한다. 내가 너희들을 천도시켜 주면 안 되겠니? 이 사람은 선근이 아주 많은 것 같은데, 너희가 이 사람의 혜명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그만둘 수 없다면서 ‘안 돼, 안 돼! 우리는 반드시 그에게 복수하고 말겠어!’라고 말했다. 그 여자가 다시 그들을 타이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들은 기어코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고집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 급히 자리에서 일어셨지만 그들의 대화내용은 여전히 머릿속에 맴돌면서 몹시 불안하였다. 결국 23일이 지나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길흉화복은 모두 우리 자신이 지은 업이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듯이, 절대 원인을 심지 않았는데 과보를 받는 일이 없다. 내가 이 일을 당한 것은 틀림없이 전생에 그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기꺼이 나의 과보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본래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지금 큰 재난에도 죽지 않은 것은 무거운 업을 가벼운 과보로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금강경』에서 설하신 것처럼, 만약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금생에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한다면, 그것은 악도에 떨어질 무거운 업이 가벼운 과보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때 만약 염불할 줄 몰랐다면 죽어서 삼악도에 떨어졌을 것이다.

 

(『정토문선』 제3집에서 절록함 節錄自《淨土文選》第三輯)

 

생각건대:

전생에 선업이 있어서 인연을 만나 귀의하였고,

숙세에 원한이 있는 까닭에 폭발사고로 다쳤다.

만약 귀의한 뒤에 가르침대로 염불하였다면,

미리 숙세의 원한을 풀고 이 사고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염불하면 현세와 미래의 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

현세에 편안하고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다.

화복은 문이 없어 스스로 초래할 뿐이고,

선악의 과보는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다.

 

處 / 다음카페 '순정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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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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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로 업장을 소멸하다

 

염불로 돼지를 죽인 업을 소멸하다

 

내 이름은 정덕화이고 올해 62세이다. 불문에 귀의하기 전, 나는 부친의 직업을 이어받아 돼지를 잡는 것을 생업수단으로 삼았으며,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쳤는지 모른다! 드디어 업보가 나타나서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하였는데, 의사들조차도 무슨 병인지를 찾아내질 못했다.

 

때로는 내 배가 칼로 에이는 듯 아파서 크게 소리 질러도 의사는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였고, 때로는 야밤에 갑자기 온몸이 덜덜 떨리면서 더웠다가 추웠다가 하였으며, 때로는 오른 쪽 다리가 참을 수 없이 아팠으며…… 동시에 또 세 가지 병(만성방광염·만성위장염·만성후두염)이 항상 나를 괴롭혀 편안한 날이 없었다.

 

몸 건강을 위해 나는 기공을 배우기 시작하였지만, 병마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기공 선생이 말했다. “병을 고치고 몸이 건강해지고 싶으면 불문에 들어가 부처님께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정수리에 일침을 가한 것처럼 나를 홀연히 깨닫게 해주었다. 1992년부터 나는 불서들을 찾아보고 고승대덕들에게 가르침을 청하여 간단한 이치들을 알게 되었다.

 

1993년, 나는 더 이상 돼지를 잡지 않고 야채장사를 시작하였는데, 수입이 많이 적어졌다(매일 수십 원밖에 안 되었는데, 돼지를 잡을 때는 매일 백 원 이상의 수입이 있었다). 가족들은 내가 미쳤다고 말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처음 불교를 배울 때, 선종·계율·밀교 등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1995년 선도대사의 논저를 읽고 나서 마침내 정토법문에 대해 전면적으로 알게 되었고, 매일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만 번씩 부르면서 남들에게도 염불을 권장하였다.

 

현재 나는 아무런 병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해 동안 감기 한번 걸린 적이 없었으며,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여름에 더위도 타지 않았다.

 

나는 본래 아는 글자가 몇 개 없어서 처음 독경을 할 때 매우 어려웠었다. 그러나 염불을 하면서부터 아미타부처님께서 나의 지혜를 열어주셔서 지금은 경론을 읽기가 훨씬 수월해졌으며, 필기를 여섯 권이나 썼고, 염불경구念佛警句를 세 권이나 추려서 적었는데, 거의 삼천 구절에 달하며, 게다가 염불하며 깨달은 바를 적은 일부 단시들도 있다.

 

석가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명호의 불가사의한 공덕에 대한 설법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칭명하며 깊은 마음으로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몸으로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염불을 하고 나서 병마가 도망가고 몸도 좋아졌으며, 지혜가 열리고 법희가 충만하였다.(강소 홍택현 정덕화 2004년 9월)

處 / 다음카페 '순정시대'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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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간 이야기

 

지나간 과거사를 생각해보면 정업(定業)이 참으로 많은 듯 싶습니다.

 

아주 오래전 몸이 안좋을 적엔 저 세상에서 저를 데려가려는지
수없이 호출이 왔었습니다.

 

몸밖으로 혼백이 나가서 중음계를 유람을 하며 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 친구들이 너는 산 귀신이라면서
놀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네요.

 

몸이 안좋을 적에 그런 일들만 있으려고 한건지 과거에 시해선(尸解仙)이라는
공부를 배운 적이 있어 혼백을 몸밖으로 내보내는 수련을 2년정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때는 어느 정도의 단계에 올라가서 그것이 참
잘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안한지 오래라 이론만 알뿐 생각처럼
잘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공부를 하다보니 주변에 어느 영적존재가 느껴져도 저절로 몸밖으로
튕겨져 나오는데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기척이 이상했는데 어느새 혼백이
분리되어 일어나보니 저승사자가 찾아와서 갈 때가 되었다고 제 몸을 오랏줄에
꽁꽁묶어 개잡듯 끌고갑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지나 어두운 구름이 가득찬 저승에 입경을하니..
죄인들이 재판을 받기위해..오라에 묶여 기다리는데..열 명의 젊은 판관들이
심사석에 앉아서 죄의 경중을 따지고 그 뒤에 큰 의자에 염라대왕이 앉아
있습니다.

 

저의 차례가 되어 포박을 당한 채로 심문을 당하는데 제가 전생에 지은 과보가
큰 것인지 수없이 많은 물음과 심문을 당하는데...제가 수지해오던 나무아미타불
육자신행을 그 때 써먹었습니다.

 

심문에 단 한마디 답변도 안하며..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육자만을

지극히 찾으니 몸에서 붉은색 광명이 지극히 나더니 그 빛을 본 판관들이 모두 일어나

합장을 하며 저의 몸에서 일어나는 신광(身光)에 무수배례를 올리는 것입니다.

 

불서(佛書)를 읽던 중 제가 저 세상에서 겪었던 일들이 여주선생문답에도 그러한 내용이
있어 참으로 신기하게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염불(念佛)과 주력(呪力)에는 그만한 공덕이 작용을 하나봅니다.

 

그이후 저승사자에게 두 번을 더 끌려갔는데 부처님의 가호로 무사방면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그 뒤로 몸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병원에서는 기적이라 말을 하더라구요.
참으로 희유하고도 희유합니다.

 


도균배상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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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광출판사에서 2008년에 출판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부록에서 발췌

 

중국의 원영 굉오스님의 권수염불문(勸修念佛文)을

불광출판사에서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이란 제목으로

정원규님이 번역하여 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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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염불 가피

 

 

1. 염불로 목숨을 구하고 광명이 비치다.

 

아래 이야기는 심장마비로 죽음의 순간에 주위 사람들의 염불과 자신의 염불로 다시 살아난 실화이며 이 이야기를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는 말씀은 나에게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나는 3년 동안 두 번이나 심장발작을 겪었다. 고비를 넘긴후 자세히 회상해 보니 그때 내가 받은 고통은 바로 내가 집에서 도살한 돼지가 겪은 고통과 같았다.

 

1993년 당시 진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던 장금문 선생이 나를 찾아와서 차를 좀 밀어줄 것을 청하였다. 나는 감기가 든 상태여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힘껏 차를 밀고나서 갑자기 심장에 격렬한 통증이 오면서 쓰러졌다.

장선생이 그때의 이야기를 나중에 해 주었다.

 

당시에 이미 나는 쇼크 상태여서 만약 즉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죽을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죽었지만 심식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심장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몸의 사대가 분리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장선생이 쓰러진 나를 차에 차에 실어 자신의 집으로 옮겨 놓고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장선생이 집안 사람들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와 서로 나누는 대화를 명료하게 듣고 있었다.

일찍이 내가 그 가족들에게 염불을 권해서 장 선생의 부인과 그 모친이 모두 와서 나를 위해 염불을 해 주었다.

 

그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들이 염하는 부처님 명호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허공에서 빛을 발하면서 나타났다. 즉시 내 몸도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사람마다 염불하면서 발하는 광명의 밝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장선생의 부인이 평소에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온 까닭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불현듯 나도 염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염불을 했다.그때 나는 자신이 직접하는 염불의 광명이 특히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염불할 때는 우리는 그 공덕의 7분의 1만 받는다고 한 『지장경』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 발작으로 심신이 압박받고 있을 때 나는 다행히 장선생 가족이 도와주는 조념염불의 광명과 인도로 정념으로 염불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고통을 덜고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너무 나빠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병원의 의사도 나를 보고는 이미 저승으로 갔으니 의학적인 처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직계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시술할 수 있다 하였다. 장선생은 그 말에 화가 나서 의사와

다투었다. 그는 직계가족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텐데 그러면 환자를 살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화를 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전심으로 염불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장선생 한 사람 뿐이어서 염불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즉시 나는 내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구름 비행기를 탄 것같이 빠르게 줄곧 떨어지는데 마치 한빙지옥에 이른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더 어둡고 추웠다. 온 몸을 칼로 베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내가 느낀 감각을 표현하자면 경전에 이른 것과 같이 바람칼로 온 몸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다행이도 평소에 염불을 열심히 해온 공덕이 있어서 위기 일발의 시점에 선근이 작용하였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 염불일념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슬프게 한구절의 ‘아미타불’을 토해냈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 내가한 염불소리가 커서 병원 사람들이 모두 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그 즉시 눈앞에 조그마한 광명이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나무아미타불’ 을 염하자 그 광명은 앞에서 더 크게 커졌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졌고 눈을 뜨고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면서 나는 저승의 귀신문에서 나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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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의 광명이 몸을 보호하다.

 

위서금씨는 29세 때 토성 승천사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남자다.비록 스님께서 염불하라고 가르쳤지만 그 자신은 좌선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바쁜 중에서도 좌선을 할뿐, 근본적으로 염불할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 후 대략 반 년 정도 지난 8월 26일 아침에 가스가 폭발하여 심한 화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전신의 55퍼센트 이상 화상을 입었는데, 대부분 상반신의 중요부위였다. 다음은 그분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다.

 

내가 정신을 잃고 혼미해지자 의식이 흐리멍텅 해지면서 주변이갈수록 음랭하고 사방이 검고 어두워 졌다. 마음속으로 점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나를 강제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너무나 공포스러웠고, 죽음이 두려워 살아나려고 발버둥쳤다.

 

화상을 입은 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인명무상이라는 말을 이때 체득 할 수 있었다. 몸을 제되로 가누지 못하는데 갑자기 부처님께 귀의할 때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염불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였다. 부처님께 목숨을 구해주실 것을 간절히 빌면서 필사적으로 염불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참 염불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광명이 온몸을 덮더니 한 순간에 모든 흑암과 한랭, 공포가 없어 졌다. 광명이 내 몸을 비추자 추운 겨울에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따뜻해지고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몸에서도 고통이 사라졌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나를 구하신 것이라고 느꼈다. 그 광명은 매우 강하고 밝았다. 마치 풍차가 돌 듯 “쏴, 쏴”하면서 천천히 회전하였다. 그리고 아기가 어머니를 의지하는 느낌처럼 친밀하고 포근하며,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온 세상이 광활하며 매우 가볍고 편안하며 자재하였다.

 

마치 부처님의 광명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염불했다.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고 염하는 가운데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남자와 여자들이 “그가 깨어났다. 그가 깨어났어!”라며 고함치는 소리였다. 그때 광명이 사라지면서 내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사실 가스폭발 며칠 전 나는 좌선을 하던 중에 이상한 일을 겪었다. 그나 좌선하면서 마음이 매우 고효해졌을 때 갑자기 두세 사람이 매우 흉악스럽게 나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들렸다.

“찾았다. 찾았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아주 부드러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원한을 품고 서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들이 천도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 좋지? 이 사람은 선근이 많으니 너희들은 그의 목숨을 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놓아주지 않을 태도이었다.

 

“안 돼! 안 돼! 우리들은 반드시 그를 찾아 빚을 받아야 마음이 편해져.”

그 여자가 다시 그들에게 그러지 말 것을 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들은 기어코 나를 해치려 하였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는 모골이 송연하여 계속 좌선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내용이 내 모릿속에 여전히 맴돌면서 매우 불안했다. 그리고 나서 2, 3일 후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길흉화복은 모두 것이 다 스스로 지은 업이며,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것이다. 절대로 원인을 만들지 않았는데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한 것은 틀림없이 전생에 그들에게 나뿐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본래 나는 죽었어야 할 과보인데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염불 공덕으로 무거운 업의 과보를 가볍게 받은 것이다.

 

<금강경>에도 나온 것과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독송하여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면 그것은 악도에 떨어질 중한 업이 가벼운 업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매우 다행한 일로 여겼다. 만약 그때 염불하지 못했으면 죽어서 틀림없이 삼악도에 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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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죽음의 액난에서 벗어나다

 

나는 금년으로 70세가 되었다. 40여년 전 항주의 유명한 항주성가인 보천구와 요상림에게 사주팔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두 사람 다 나의 수명이 51세라고 하였다.

 

나는 그말을 듣기 전에도 본래 인생이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온갖 풍파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서 속수무책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덕극이 쓴 <기도지귀>를 읽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방법은 바로 보리심을 발하여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 후 날마다 ‘십념염불’을 지속하였다. 당시 나는 내 수명이 51세라는 예언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1950년 나는 큰 국영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날마다 업무와 갖가지 학습, 운동 때문에 비교적 긴장된 생활을 하였지만 남몰래 염불을 지속하면서 ‘번개가 쳐도 움직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 ’견고한 염불심을 갖는 경지에 이르렀다.

 

1971년, 내 나이 51세가 되는 해였다. 그해에 나는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몸이 좋지 않았다. 1분당 심장 박동수가 100까지 자주 올라갔고 또 치질로 대량의 출혈이있었다. 그럼에도 운동과 갖종 학습 일정이 빡빡해서 치료받을 갈 시간초자 없었다.

 

그해 4월 3일 저녁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잠을 잘 무렵 평소 습관대로 침대에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열 번을 묵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는 것이었다. 마치 심장이 몸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면서 가슴이 심하게 답답해졌다. 원래 내가 머물던 기숙사의 전등은 밝았는데 갑자 기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내 앞에서 10미터 정도 되는 곳에 귀신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그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계속해서 염불에 몰두하였다. 약 2분 정도 후에 금색 찬란한 모습이 나타났는데 당시의 장엄한 모습은 정말 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러자 시커먼 귀신의 그림자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 오른 쪽 위에서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 부처님의 오른손을 내린 장엄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배를 올리지 않고 여전히 합장한 채로 염불을 계속했다. 염불소리에 따라 심장 박동이 점점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비몽사몽 속에서 기숙사의 전등은 여진히 밝게 빛나고 있고, 나는 합장한 채 입으로 염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보다 더 불가사의 한일이 일어났다. 치질 때문에 대량으로 출혈이 생겼던 곳에 아무약도 쓰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출혈이 멈추고, 심박수도 분당 80회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부처님의 가피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심 염불은 단지 극락왕생만을 위한 것인 줄로만 알았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부처님의 대자대지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몰랐다. 일심으로 염불하는 삶이 큰 재난이나 병고를 만나게 되면 아미타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감응하여 가피를 내려 액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평상시에도 이러하니 임종에 이르러 일심으로 염불하면 당연히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염불법문은 만 명의 사람이 닦으며 만 명의 사람이다 왕생하며, 만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인광 대사의 법문을 나는 지금 더 깊이 믿으며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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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귀를 물리치다.

 

석현진 스님은 사천성 출신으로 자는 서귀이다. 출가하기 전에 현의 현장을 역임하는 동안 많은 토적들을 살육하였다. 출가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영파 자계의 오뢰사에 머물때의 일이다. 매일 밤 많은 토적들이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흉폭하게 분노하면서 창을 들고 자기에게 목숨을 요구하는 꿈을 꾸었다.

 

그때 그는 매우 두려웠지만 용맹심을 발하여 오로지 아미타불 염불에 전념하였다. 밤낮으로 쉬지않고 정진하여서 마침내 꿈속에서도 염불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꿈에 토적을 보면 염불로써 그들을 교화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츰 꿈에 나타나는 토적들이 순화되더니 수개월 후에는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진 스님과 가장 오랫 동안 함께 지냇는데, 그는 자주 자신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염불공덕의 불가사의함을 찬탄하였다.

 

 

홍일대사가 직접 듣다 <정종문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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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낫다.

 

사람의 질병은 대부분 업보 때문에 생긴다. 업보가 다 하지 않았더라도 병이 빨리낫기를 원하면 부처님의가피를 구해야 한다. 세상에는 실력 있는 명의들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불보살님께 기도하여 치유된 사례가 많이 있다. 최근에 소료 군과 같은 경우가 염불을 통해야 구제된 사례이다.

 

소료악 군은 항주출신으로 19세때 상해에서 중병을 앓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의사가 진단을 해보더니 이병을 치료할 희망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소군이 병원에 입원한 지 7일 후 저녁에 갑자기 소 머리에 말의 얼굴을 한 귀신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의 침대 곁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병실 안은 전등 빛이 매우 밝았고, 그의 정신도 명료 하였다. 그는 이 귀신들이 자기를 잡으러온 것이며, 자신이 곧 죽게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일어나 생각했다. 만약 귀신이 있으면 받드시 불보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무아미타불”하고 큰소리로 염불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염불을 시작하자 갑자기 귀신들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감히 그의 몸 근처에는 접근하지 못하였다.

 

소료 군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의 염불이 정말로 부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귀신의 습격도 능히 물리치는 것을 보고는 일심으로 계속 염불하였다. 귀신들이 그를 붙잡지 못하자 나중에는 염라대왕이 직접 나왔다. 염라대왕은 녹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천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미타불 염불소리에 수레가 멈추어 염라대왕도 소 군의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위급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군은 염불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의사들이 할 수 없이 그를 다른 병실로 옮겼다. 그 뒤에도 그는 계속 염불을 했는데, 약 5일이 되자 갑자기 금칠 차란한 광명이 나타났다. 마치 하늘의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래로 내려 오면서 차츰 커지 더니 온 세상을 비추었다.

 

그 광명 속에 한분의 금빛 부처님이 공중에 우뚝 서 계셨는데, 부처님의 발 아래에는 금색 구름이 있고 부처님의 몸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부처님은 왼손에 염주를 들고 합장하신 채 소군을 마주보시며 미소 짓고 계셨다. 더 없이 자비로운 얼굴에 매우 친근한 모습이었다. 아미타 부처님이셨다.

 

귀신들의 무리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잠시 후 부처님의 모습도 사라졌다. 소군은 아미타부처님의 강림을 친견하고 흥분했지만, 병으로 인한 고통은 이미 사라졌다. 그 다음날 퇴원하였는데, 마치 정상적인 상태로 다 회복된 것처럼 몸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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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양이의 원한을 풀다.

 

1998년 안휘성 구화산 천지암에 주석하는 비구니 태 스님이 나를 찾아아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였다. 스님은 최근 매일 밤 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자신의 목숨을 요구한다고 했다. 너무나 두려워서 꿈에서 깨고 나면 그 밤에는 더 이상 잠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신이 어릴 때 개구쟁이라서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 죽인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호북성에서 출가하여 이곳 구화산으로 왔고 그 일은 이미 수십 전 전의 일인데 고양이가 잠을 잘 때마다 자신을 찾아온다 하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돈을 들여 큰 절에 가서 큰스님을 청하여 구병시식이나 천도재를 올리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었다.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이 존경심과 청정심으로 하면 천도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무성의하게 대충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스님이 직접 그 고양이에게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를 이야기하고 염불해주어서 극락왕생하게 하는 것이 더 났습니다. 스님에게 원한을 품은 고양아가 극락왕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 원한이 풀리겠습니까?

 

그 고양이는 수십 년 동안 당신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먼 곳으로 와서 출가하고 절에 머물지라도 그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젊어서 기가 왕성할 때는 고양이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늙어서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쇠해져서 꿈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염불왕생을 구하지 않으면 스님이 임종을 맞았을 때 더 공포 스런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들이 세세생생 맺어온 원한의 상대가 어찌 이 고양이 한 마리뿐이겠습니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을 것인데 우리가 언제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사대비하신 아미타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이런 죄의 근기를 미리아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발원하셨습니다. 수많은 겁 동안 수행을 쌓은 공덕이 “나무아미타불”여섯 글자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명호를 염하는 중생은 모두 극락왕생하여 성불하게 되는 공덕입니다. 단지 우리들은 일심으로 믿고 아미타 부처님께 의지하면 됩니다. 여섯 글자의 명호를 염하기만 하면 반드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그 고향이도 구제하여 극락세계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마음은 평등하며 사람과 축생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떤 이가만약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극락정토를 수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더욱 강할 것입니다. 무엇 대문에 수십 년 동안 괴롭게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목숨을 요구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스님이 스스로 믿으며 염불하고 또 고양이에게도 그렇게 설법하여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십시오. 그러면 둘 다 모두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니 원한은 일부러 풀지 않아도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천도불사가 아닙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직접 천도하시어 서방정토에서 성불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략 이렇게 말하였다. 또한 “시방의 중생이 만약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는 아미타 부처님의 대비의 서원과 “십념이라고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하는”도리를 반복하여 말하였다.

태 스님은 매우 기뻐하면서 물었다. “내가 돌아가서 염불할 때 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놓고 이렇게 설법해야 합니까?”

 

“그렇게 해도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고양이는 그림자처럼 수십 년 동안 당신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전에 스님이 고양이를 위해 위패를 세우지 않아도 스님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 적이 없습니다. 인과 는 허망하지 않아서 마차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방금 우리가 나눈 대화를 고양이는 모두 남김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고양이를 위해염불하고 아미타 부처님께서 자비로 제도하시는 도리를 가르치면 고양이가 반드시 듣고 극락왕생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3일이 지난 후 태 스님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기쁨이 충만하였다. 나를 만나고 사찰로 돌아갔던 그날 저녁부터 고양이가 오지 않았고, 그래서 며칠 동안 잠을 잘 잤다고 하였다. 태 스님은 겨우 고양이 한 마리를 물에 빠트려 죽게 하였는데 줄곧 붙어서 이 먼 구화산까지 따라왔고 수십년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중생의 업력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로움 가득한 서원을 듣고 나서 바로 고양이가 마음에 맺힌 원한을 풀었으니, 부처님의 서원과 광명이 가득한 여섯 글자의 명호는 더욱 불가사의하다.

 

성안 법사 진술, 성소법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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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옥의 괴수를 물리치다.

 

인간세계에 살면서 지옥에 가서 업무을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대략 십수 년 전 소주에 홍 거사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열 몇 살 때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집안 사람들이 급히 의사를 청해 진료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몸에서는 여전이 열이 높음과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인사불성일 뿐 죽은 것은 아니라서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다. 3일 정도 지나자 그는 저절로 깨어났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그는 저승에 다녀왔다고 한다. 두명의 저승사자가 찾아와서 부탁하여 지옥에 가서 공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인간세계로 돌아와 깨어난 뒤에 이 일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이후 한 해에 최소한 십여 차례는 지옥에 다녀왔고 그때마다 2, 3일 정도 걸렸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자, 그의 가족들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홍 거사가 저승세계의 관리라는 것도 알게되었지만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지옥의 중생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친분 있는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조금 내비치면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경건한 염불 수행자로 살았는데, 한 번은 가족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구절의 “아미타불” 염불이 인간세계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만 지옥에서는 그 효력이 매우 크다고 하였다. 그가 겪은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지옥에서 공무를 보는데, 한 번은 갑자기 하얀 수염을 기른 스님 한 분이 나타났다. 그 스님은 모습이 매우 장엄했는데, 손에는 불자를 들고 염라대왕전으로 왔다. 그 스님을 본 염라대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 스님은 지옥에서 막힘없이 어디나 다니셨는데, 지옥 중생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시면 수시로 염불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단지 스님이 입에서 “나무아미타불” 한 구절만 나오면 지옥 중생에게 고통을 주는 형구가 모두 일시에 정지되는 것이었다.한번은 한 무리의 험상궂은 야수가 어떤 사람을 쫓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평소 홍 거사가 알던 사람이었는데, 공포에 질려서 필사적을 달아나고 있었다.

 

야수에게 쫓기던 그 사람이 홍 거사 쪽으로 달여왔다. 바쁘게 엄무를 보고 있던 홍 거사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했다. 흰 수염을 기른 스님이 하시던 염불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염불이 효력이 있었다. 쫓아오던 야수의 무리가 즉시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이 일로 홍 거사는 염불의 수승함을 잘 알게 되었고, 후에 매우 경건한 염불 수행자가 되었다.

 

백성장로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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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임종시 원귀를 물리치고 왕생하다.

 

대만 용해시 각미진 왕강촌에 사는 농민 곽아장의 극락왕생 이야기이다. 곽아장 거사는 금년(1995년) 음력 8월 26일에 60세의나이로 염불을 하면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에 힘쓰면서 살아왔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부터는 농사를 그만두고 양어장만 경영하였다.

 

그는 위장이 나빠서 자주 고생했는데 금년 들어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위암 말기로 판명되었다. 8월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통증 때문에 고통이 심해서 2시간마다 진통제를 맞았다. 병고에 시달리다 보니 성미도 호랑이같이 사납게 변했다. 그런데 그는 자꾸 바다 괴물이 보인다고 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의 아내조차도 문 앞에 원귀들이 머리를 기웃기웃 들이미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러던 중 다행이 염불수행을 열심히 하는 스님을 뵙게 되었다. 스님은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아미타불 염불을 권했다. 하늘이준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면 조속히 회복할 것이고, 만야 명이 다했다면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으며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들은 곽 거사는 매우 기뻐하며, 염주를 돌리며 전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염하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모두 그를 도와서 조념염불을 했다.

 

염불을 시작한 뒤 암으로 인한 통증이 많이 줄어들어서 진통제 주사도 하루에 2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물고기 형상을한 남자 괴물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닷세 정도 지나고 나서는 침대에서 가볍게 내려와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방 한 쪽 벽에는 세 분의 불보살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상이었다. 그런데 그 세불보살상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인간세계를 떠날 때가 다가온 것을 알았다. 그는 침대에서 꿇어 앉아 합장 자세를 취했는데, 일생 동안 한 번도 이런 자세를 한 적이 없었다. 합장한 채 염불을 하는 그이 얼굴에는 점차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평안하게 극락정토에 왕생한 것이다.

 

숨을 거둔지 8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몸의 온기가 식었지만 머리 위 백회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던 배도 쑥 들어갔다. 염을 하기 위해서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힐 때 온몸의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얼굴은 마치 살았는 듯 하였다.

 

이런 상서를 보이는 것은 곽 거사가 극락정토에 왕생했다는 증거이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온 가족들의 꿈 속에 그가 나타났다. 평안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가족을 만나러 온 그의 뒤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위호하시는 세분 불보살님이 계셨다.

 

임우천 씀 . 199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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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숙세의 원혼을 제도하다

 

보길 스님은 대만출신의 비구니스님이다. 이 스님은 출가하기 전 속가에 있을 때 나쁜 말로 남 욕하기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과 악연을 맺었다. 나중에 신죽 청초호의 영은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두 눈을 모두 실명하여 장님이 되었다. 70여 세가 되었을 때 다시 병이 둘었는데, 온 몸이 퉁퉁부어 올랐다. 그래서 무상 선사가 폐관수행하고 있던 금강동으로 찾아가 울며 하소연하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습니다. 저를 고해에서 구제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무상 선사가 부탁을 듣고 보길 스님의 거처에 와보니 소변을 누고 치우지도 못하여 매우 더럽고 악취가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보길 스님이 울면서 말했다. 10여 명의 원귀가 밤낮으로 자기를 때리는데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심지어 그 원귀들의 이름까지 말하며 구제해주기를 간청했다. 보길 스님에게 속가 남동생의 부인이 병문안을와 있었다. 무상 선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의 시누이 되는 저 스님이 부르는원귀들의 이름을 아십니까.”

“모두 스님이 출가전에 해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 사람들이 원혼이 되어 나타나 스님을 때려서 온몸이 부어오르고 살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무상 선사는 보길 스님을 위해 방을 청소하고 침대 한 가운데구멍을 내고 그 아래에 통을 놓아 대소변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보길 스님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울고 짖으며 몸부림치다가 그 구멍속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무상스님이 간곡함 음성으로 말했다.

“스님이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염하며 서방극락정토왕생을 구하여야 비로소 이고득락 할 수 있습니다.”

“눈 앞이 캄캄해서 염불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개 하는 염불을 따라서 하십시오.”

그렇게 염불을 시작했는데 한 시간 가량 지나자 보길 스님이 갑자기 기쁨에 찬 얼굴로 말했다.

“지금 제 앞에 밝은 광명이 보입니다. 나를 때리며 괴롭히던 그 10여 명의 원귀들이 저쪽에서서 웃고 있습니다.”

 

그때 그 원혼들이 보길 스님의 몸을 빌어서 말했다.

“무상 스님의 자비에 감사 드립니다. 지은 죄업이 막대한 저 앞 못 보는 노인네가 뜻밖에 저희들을 고통에서 구제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무상 스님이 말했다.

 

“원한은 풀어야 되지 맺으면 안 됩니다. 당신들도 함께 따라서 아미타불을 염하십시오. 그러면 죄업이 있더라도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비로소 생사의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길스님에게도 경건한 마음으로 따라서 함께 염불하게 하였다. 다시 한 시간 남짓 염불을 계속 하였다.

 

“지금 온 천지에 광명이 가득합니다. 저 구름 위에 흰옷을 입은 성스러운 분들이 우리들을 영접해서 서방극락세계로 갑니다.”

보길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합장한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평안하게 왕생하였다. 부풀어 올랐던 스님의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 오고 조금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상서가 보였다.

 

-염불감응견문기-

 

죽음에 이르러 고통에 핍박받고 원혼이 나타나니

어떤 법으로 구제할 수 있는가?

 

오직 부처님꼐 의지하여 염불할 뿐이네.

부처님께서 광명을 비춰 보호하시니

 

몸과 마음이 온안하고 나와 남이 모두 제도되는구나.

염불을 몰랐다면 지옥에 떨어졌으리

.

삼악도를 전전하며 어느 떄나 구제될 수 있을 것인다?

염불공덕 불가사의하니,모두 아미타불의 대비 원력이네.

 

- 염불감응견문기- 를 지은 혜정스님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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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전생에 도살한 소의 혼령을 제도하다.

 

사천성 남부에 사는 유정밀거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섭씨아주머니의 이야기이다. 섭 씨는 자신이 과거 생에 도살한 96마리 소의 귀신 때문에 자주 고통스런 발작에 시달리고 있었다.

 

1932년 2월 유거사 집에서 일을 돕고 있던 중 갑자기 심한 발작이 일아났다. 섭 씨의 온몸에 붉은 부스럼이 돋아났는데 통증과 가려움이 몹시 심했다.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은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가 강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주의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막아서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하고 소동을 부리면서, 자신이 전생에 소를 도살한 것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유정밀 거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이유를 섭 씨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주인님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십니다. 저는 섭 씨가 아닙니다. 저는 먼 과거생에 섭씨에게 죽임을 당한 소입니다. 그래서 지금 섭 씨에게 목숨 빚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 거사가 그들을 타일렀다.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째서 섭 씨 한데 죽은 것만 생각하느냐? 사실은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그 과보로 소로 태어났고 또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무슨 이유로 너희 목숨을 빼앗았겠느냐? 너희가 먼저 그녀를 죽인 것은 잊고, 단지 그녀가 너희를 죽인것만 기억하는구나. 이렇게 원수를 찾아 돌고 도는 것을 고통스런 윤회라고 한다. 영원히 서로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그 말씀이 옳다면, 저희들이 잘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목에는 아직 피가 흐르고 칼에 잘린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고통 때문에 섭 씨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걱정마라. 내가 그 고통을 멈춰주겠다.”

우 거사는 찻잔에 차를 반쯤따라서 감로주를 세 번 외운 뒤 섭 씨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그러나 섭 씨는 찻잔을 들지 못했다.

 

“소의 발굽이 누르고 있어 찻잔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찻잔을 들어 먹여주었다. 섭씨는 얼른 차를 받아 마시드니 기뻐서 말했다. “정말로 신묘한물입니다.”

 

그녀는 목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미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만지면서 말하기를 “소 발굽도 이미 벗어버렸습니다. ”다시 머리를 만지면서 “뿔도이미 없어졌습니다.”

유거사는 이어서 윤회의 고통을 설명하고 또 극락세계의 안온한 즐거움과 영원히 생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나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느냐?”

“거사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어찌 원치않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의 죄업이 깊고 무거운데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발원하여 일심으로 염불하며 저극락세계를 흠모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아미타부처님을 청하여 너희들을 영접하게하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오랜 동안 먹이를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프니 먼저 먹을 것을 주세요.”

 

우 거사는 그렇게 하기를 허락하였다.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과 밥을 담아 변식진언을 일곱 번 염하고 나서 대나무 밭에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의 혼령들이 말했다.“

우 거사는 곧 빈 공터에서 향과 초를 사르며 아미타 부처님을 공손히 청했다. 그리고 왕생주, 반야심경, 대비주와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였다.

 

함께 지켜 보던 유거사의 처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보아라. 아미타부처님께서 장육금신으로 오셔서 높이 서계신다. 모두 빨리 무처님을 따라 가거라!”

“너희들은 극락정토가 보이느냐?”

“보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하냐?”

 

96마리 소의 혼령들이 극락정토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정토경전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말했다.

“저희들은 여러해 동안 섭씨를 괴롭혀서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거사님의 가르침과 인도로 저희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원한이 하루아침에 녹았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섭 씨도 아미타불염불을 일심으로 하여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랍니다. 거사님과 거사님의 가족들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저희들도 반드시 부처님을 따라서 맞이하겠습니다. 오늘 저희를 위해 염불해주신 것은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후 조용해졌다. 얼마 후 섭씨 아주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말하였다.

“내가 마치 꿈속에서 성에 갔다가 서쪽 거리로 가는데 한 무리의 흉포한 소때를 만났습니다.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갑자기 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 경치가 변했는데, 아름다운 숲 가운데 평평한 풀밭이 있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갑자기 밥 냄새가 강하게 나더니, 소떼가 숲에서 밥을 먹으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 후 다시는 소의 혼령이 섭씨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리고 섭 씨도 채식 하면서 열심히 염불수행을 하였다. 유정밀 거사는 1934년 봄 서강에서 출가하였다. 법명이 혜정이다. 위의 이야기는 출가하기 전에 겪은 일은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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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어떤 비구스님의 전생 기억

 

적공(寂空)스님의 전생과 극락왕생발원

 

여러 수행자들이여, 이글은 내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가르침 청하여 시방삼세의 모든 본존이신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것으로 진실하여 하나의 거짓도 없음을 밝혀둔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여러분이 나의 일을 거울 삼아 교훈을 얻어서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이다. 여러분이 하루라도 빨리 불도를 수행하려는 바른 마음을 일으키고 큰 보리심을 발해서 용맹정진하고 계를 지키며 일념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여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육도윤회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란다.

 

또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곧바로 보리를 증득하고 무상정등정각을 이룬 뒤 각자의 원(願)에 따라 다시 돌아와 여섯 가지 윤회의 세계에 몸을 나투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기 바란다.

 

 

나의 속가 성은 이(李)씨이다. 1989년 3월 해공(海空)법사를 은사로 불문에 귀의하였고,적공(寂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불가에 입문한 뒤, 하루하루 예불과 좌선을 열심히 하였다. 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늘 경전을 가까이하면서 불법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1992년 8월 25일 저녁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 정좌하고 있었다. 저녁 10시 경 갑자기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서 나 자신의 과거 생의 모습을 휜히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너무나 슬퍼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열심히 불법을 공부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94년 8월29일 저녁 법당에서 염불을 할 때는 더 나아가 속가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의 과거 생의 모습까지 휜히 알게 되었다. 그 후 숙명(宿命) 즉, 과거생의 모습과 윤회에 대에 여러 차례 불보살의 증명을 얻게 되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과거생의 기억은 여러 차례 증명을 통해서 입증된 것을 비로소 감히 밝히는 것이다.

 

600년 전 나는 출가한 비구였다.

나는 20세에 출가하여 삼당대계(三堂大戒)를 받고 50여 년을 수행하였다 .선한 업도 많이 지었지만, 속세의 일에 탐욕을 일으키고 연연하여 인간계와 천상계의 복된 과보를 바라고, 정토왕생은 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육도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삼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으며 빚을 갚아야 했다.

 

스님으로서의 삶을 마친 뒤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향락을 탐하게 되었는데, 온 종일 술과 여자를 탐하며 지내는 생황을 하였다 .내 주변에는 여덟 명의 시녀가 있었는데, 비록 여색을 탐하지는 않았지만 명예를 좇고 재물에 욕심내고 이익을 탐한 과보가 커서 악업을 지었다.

 

하지만 전생에 출가수행한 공덕이 크기 때문인지, 목숨을 마친 뒤에 벼슬아치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뒤 많은 병사를 거느리는 장군이 되었는데, 그 풍모가 당당하고 늠름하였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었다. 부귀영화가 넘쳐서 다 누리지 못 했고, 산해진미도 또한 넘쳐서 다 먹지 못했다.

 

온 종일 주지육림 속에서 보내곤 했는데, 당시 24명의 시녀를 옆에 두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면서 다시금 온갖 나쁜 업을 짓게 되었다. 특히 병사들에게 명령 내려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람의 머리를 벤 뒤 그 시체를 강이나 개천에 버렸고 수풀에 숨은 적군도 모두 찾아내어 죽이는 등 많은 죄업을 지었다.

 

그리하여 그 몸을 벗은 뒤에는 삼악도에 떨어져 열 번을 윤회전생하면서 악업의 과보를 갚아야 했다.

 

먼저 세 번은 두꺼비의 몸을 받았다.

왜냐하면 장군으로 살때 많은 사람의 머리를 베어 죽이고 그 시체를 개천에 버렸기 때문이다. 그 과보로 머리 없는 두꺼비로 태어나 수시로 막대기에 맞고 낚시에 걸리고 복부가 뒤집혀서 물에서 죽어서 그 시체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났다. 심지어 근육이 뽑히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를 갚았다.

 

이렇게 세 번 두꺼비의 몸을 받은 뒤, 다시 뀡의 몸을 네 번 받았다.

그 이유는 장군으로 살 때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두려움에 떨면서 수풀에 숨어있는 적군을 찾아내서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입의 쾌락을 탐하여 온종일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살았다. 그 과보로 뀡의 몸을 받아서 창에 찔리고, 칼에 베여서 지지고 삶기고 볶이는 고통을 당하면서 빚을 갚아야했다.

 

네 번이나 뀡의 몸을 받고도 악업을 다 갚지 못하여, 다시 돼지 몸을 세 번 더 받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부자와 장군으로 살 때 먹기만 좋아하고 일하기는 싫어했기 때문이다. 시녀들이 밥을 가져오면 입을 벌려 먹고, 옷을 가져오면 손을 벌려 입히게 하고, 늘 고기 먹을 생각만 하면서 나쁜 업을 지었다.

 

그 때문에 돼지의 몸을 받아서 먹다 남아 버리는 음식과 상한 음식을 먹게 되었고, 채찍이나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이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천 번 만 번 칼에 잘리고 뜨거운 솥에 들어가서 갖가지 고통을 당하였다. 두 번 사람 몸을 받아서 입의 쾌락을 탐한 악업의 과보를 이렇게 갚게 되었다.

 

일체의 고통과 모든 즐거움은 모두 나 스스로 지어서 직접 받는 것 (자작자수自作自受) 이며, 인과응보는 참으로 조금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여러 수행자들이여, 내가 삼악도를 윤회전생하면서 받은 갖가지 고통에 대해 알았을 때 너무도 상심하여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지극히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600년 전 수행으로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했으면서도 인간과 하늘의 복을 탐하고 왜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는가? 이 헛된 탐욕때문에 임종의 자리에서 한 생각 잘못하여 열 번이나 삼악도에 떨어졌구나.

 

붉은 흙먼지 가득한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600년을 헛되이 윤회하였구나. 어찌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니겠는가. 600년!!! 이토록 긴 세월을 그리 비천하게 보내다니 또 어찌 부끄러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떤 귀신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인과의 가르침을 믿고 생명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진실로 자기 자신이 윤회해온 과정을 알고 나서 어찌 본사 석가모니불, 본존 관세음보살과 시방삼세 일체재불, 모든 대보살의 자비로운 가피에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제자가 자기의 본사, 본존의 면전에 꿇어 앉아 자기의 숙명을 이해하고 불법을 배우면서 또 한 단계 진일보하였을때, 또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 해야 불보살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열심히 불법을 배우고 일념으로 염불하면서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걱하였다. 사람의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 배우기 어려움을 생각하자, 현생에 어렵게 얻은 사람의 몸으로 열심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불보살님께 죄송하고 부모님께 죄송한 일이다.

 

옛 성현께서 말씀하지 않았는가 "사람 몸얻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얻었고, 불법 듣기 어렵지만 금생에 이미 들었네, 이번 생에 불국정토에 가지 않으면 다시 어느 때에 갈 수 있으리오?"

 

사람 몸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번 생에 반드시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수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귀신이 왔을 때 뒷 일을 기약할 수 없다. 사람이 임종에 이르렀을 때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 즉,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연꽃 가운데 화생하여 부처님을 뵙고 열심히 수행하여 성불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해냈는가? 아니다. 나는 잠잘때 꿈에 빠지며 또한 망념도 많다. 만약 꿈을 꿀 때조차 정념(正念)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임종의 자리에서 반드시 서방극락정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서원하였다.

오늘 이후로 수시로 계(戒)의 조문을 굳게 기억하여, 지계(持戒)의 금강 같은 날카로운 검으로 오욕육진(五慾六塵)을 베고 삼독(三毒)을 소멸하겠다. 자주자주 무상(無常)을 생각하고 항상 사성제를 사유하며 자비심을 닦아 일체 중생을 숙세의 부모로 여기고, 늘 삼보와 스승의 은덕을 기억하겠다. 생각 생각마다 무상보리를 잊지 않고 용맹정진하겠다. 계를 지키며 염불하여 성불할 때까지 영원히 물러나지 않겠다. 나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여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을 것을 서원한다.

 

나는 비구로 살면서 열심히 수행하였으나 정토왕생을 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두 생에 걸쳐 인간의 복보(福報)를 얻었다. 그러나 선을 쌓고 덕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갖가지 악을 지어 삼악도에 열 번이나 떨어졌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으로 그 과보를 갚고 나서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600년 세월을 헛되이 보내며 인과응보를 절감하였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어찌하여 아귀도와 지옥도에는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내가 출가하여 불법을 배운 공덕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부유한 집에 태어나 갖가지 악업을 지었지만 단지 축생도에만 떨어져 윤회하며 과보를 갚은 것이다.

 

악업의 인연이 다하고 나서, 불법에 대한 종자가 다시 한번 좋은 인연을 만나서 싹을 튀웠고 그리하여 현생에 다시 출가하여 불법배우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불법의 종자를 심은 다음에 이 종자가 썩지 않는다면 적당한 토양과 온도를 만났을 때 곧 싹을 튀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한 구절의 부처님 명호는 대광명장(大光明蔣)이며 한 번 이근(耳根)을 스치면 영원히 도(道)의 종자가 된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고 쫑카파 대사가 『보리도차제론』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출가생활 오십년에 생사해탈 구하잖고

스스로를 얽어매어 다음생의 복된과보

생각하며 닦았다가 육백년을 윤회했네

부귀공명 비유하면 칼날끝의 꿀과같아

삼악도에 떨어져서 모든빚을 갚게되네

고기반근 탐닉하여 여덟냥을 갚게되고

금수축생 떨어져서 여러차례 윤회했네

참선하여 숙세일을 명백하게 알고보니

스승님은 성인이요 내자신은 범부로세

금생과보 확실하게 전생인연 때문이니

스승에게 절하오며 금강선을 닦아가네

굳센정진 영원토록 물러나지 아니하고

곧장바로 보리좌의 구품연대 오르리라.

 

 

사천성 중강(中江)에서 1995.10.17 일

-적공(寂空)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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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위의 모든 이야기는 불광출판사에서 나온 "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이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실화들을 통해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이 병고가 있거나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들은 자신이 아프거나 가족 등 주변 분이 아플 때나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주시길 간곡히 권합니다.

 

나무아미타불

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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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의 가피로 목숨을 건진 한용운 스님

(일타스님 글)

승려요 독립운동가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스님은 1905년 설악산 백담사로 출가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관음기도처로 이름 높은 오세암(五歲庵)에서 보냈습니다.

스님은 이 오세암에서 불경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틈틈이, 관세음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1910년, 일본이 이 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국권을 찬탈하자, 망국의 울분을 참을 길 없었던 스님은 1911년 가을, 행장을 수습하여 표연히 만주로 떠났습니다.

스님은 만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 곳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만나 막막한 나라의 앞길을 의논하고 서로를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간도지방에 도착한 스님은 동포들을 만나 이역(異域)의 생활을 묻기도 하고 고국의 사정을 전하기도 하였으며, 그 곳의 독립지사로 협력하여 동포를 보호할 방법과 독립운동의 방향등을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족투사를 양성하는 의병학교를 순방하여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깨우쳐 주고 또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통화현(通化縣)에 갔을 때입니다. 그곳은 이상한 불안이 감격과 희망속에 뒤범벅된 묘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조밥으로 연명하면서도 밤이면 관솔불을 켜 놓고 천하 대사를 논의하는 한편, 화승총을 가지고 조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온 사람에 대해 처음에는 불안으로 감시했고, 그 다음에는 의심으로, 마침내는 목숨을 빼앗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어찌된 영문인지 한용운 스님도 그 곳에서 정탐꾼의 혐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만주 통화현에서도 한참을 들어간 두메산골에서 자고 나오는데, 스님을 바래다 준다며 20세 전후의 한국 청년 3인이 따라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길은 차츰 산골로 접어들었고, 일행은 굴라재라는 고개를 넘게 되었습니다.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우거져 대낮에도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고, 길이라고는 풀섶에 나무꾼들이 다니는 미로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스님의 뒤를 따라오던 청년 한 명이 총을 쏘았습니다. 순간 귓전이 선뜩함을 느꼈고, 연이어 두번째 총소리가 나자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방의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때 스님은 그들을 돌아보며 잘못을 호령하고자 목청껏 소리를 질렀으나, 성대가 끊어졌는지 혀가 굳어졌는지 전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는 할 말을 다했는데 말소리를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피가 댓줄기처럼 뻗쳤고 격렬한 아픔이 전신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다가 심한 통증이 사라지면서 지극히 편안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지금이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구나. 이제 죽는구나.'
이윽고 편안한 감각까지 사라지면서 스님은 완전히 혼절하여 죽음의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했던 신앙이 환체(幻體)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바로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 아름답구나. 기쁘구나.'

앞이 눈부시게 환해지면서 절세의 미인,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어여쁜 여인이 섬섬옥수에 꽃을 쥐고 누워 있는 스님을 향해 미소를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총을 맞고 누워 있는 사람에게 미소를 던지다니!'
순간 스님은 달콤하면서도 분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관세음보살께서 꽃을 던지며 말했습니다.

"네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느냐?"

그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스님은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날은 어두웠고 피는 도랑이 되어 흘렀으며, 총을 쏜 청년 가운데 한 명은 짐을 조사하고 다른 한 명은 확인 살인을 위해 큰 돌을 들고 스님을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스님은 황급히 일어나 그 자리를 겨우 피하고, 피를 철철 흘리며 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핏자국을 보고 뒤쫓을 그들이 자신들의 마을 쪽으로 가면 안심하고 천천히 쫓아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떻게 넘었는지도 모르게 산을 넘어 청(淸)나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갔습니다.

그 곳의 마을사람들은 마침 촌장(村長)집에서 계(契)를 하고 있는데, 피를 흘리며 들어오는 스님을 보고 지혈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 때 총을 쏜 청년들이 쫓아왔고, 스님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총을 쏠테면 쏘아라."
그들은 어쩐 일인지 총을 쏘지 않고 달아났으며, 스님은 귀 뒤와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헹습니다. 의사는 "매우 아플테니 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스님은 굳이 마다하였습니다. 생뼈를 깎아내는 소리가 빠각빠각 나는 수술인데도 스님은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끝까지 견뎠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활불(活佛)이로다."
치료를 다 마친 의사는 감탄하여 치료비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용운 스님은 평소 관세음보살을 깊이 섬겼기 때문에 절대 절명의 순간에 이르러 큰 가피를 입었던 것입니다.

이후 스님은 불교개혁운동과 독립운동을 하면서 초인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신력의 힘이 아니라, 총을 맞은 그때 관세음보살의 가피 아래에서 생사를 초월한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한용운스님의 경우처럼 평소의 섬김이 위기를 구하고 업을 녹이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 올바른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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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큰스님이 직접 겪으신 관음 가피력


이 이야기는 혜암 큰스님께서 직접 하신 이야기입니다.
여기 혜암 큰스님은 얼마전 열반에 드신 종정스님이 아니십니다.

근대 선종사에 큰 획을 긋고 오래전에 열반에 드신 큰 스님이십니다.
간단히 혜암스님에 대해 말씀드리고 글을 쓰고자 합니다.

혜암스님은 1886년에 황해도에서 3대독자로 출생하셔서 1900년
15세때 보암스님을 은사로, 금운스님을 계사로 득도하셨다 합니다.
만공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으셨으며, 1984년 100세의 고령으로

미국 서부에 있는 능인선원의 봉불식에 참석, 대한항공 역사상
가장 고령 탑승객으로 기록되기도 하셨습니다.
1984년말에 설립된 덕숭총림의 초대방장으로 초대 되셨으며
1985년 101세(법랍89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신유년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혜암스님) 금강산 마하연에
있을때의 일이다. 대중이 몹시 웅성거려 나가보니, 얼굴이 잘생긴
어떤 청년이 목에 연두창이 터져 피고름과 함께 마치 송장이
썩는 것처럼 냄새가 지독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보고
"병원에 입원이나 하지 그 몸으로 뭐하러 다닙니까?" 하니

"예 제 직업이 바로 의사입니다. 영국에서 <곱살바>라는 부인이
공부를 시켜 그분을 모시고 병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이 생긴뒤로 나는 물론 그 부인도 병을 고칠 수없어
이제는 완전히 체념하고 폐인으로 떠돌아 다닌 실정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기독교에 이런 말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환자가 기독교인이였는 듯함)
부처님 말씀에는 <한정된 목숨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병에 걸린 것은 신심이 철저하고 독실하면 고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 보겠습니까?" 하니,
그는 "이미 버린 목숨이니 하다가 죽어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스님으로 만드니 대중스님네는 냄새 때문에
같이 못있겠으니 데리고 나가라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그런 비방과 구설을 다 참고 내 방을 비워주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대로 살기 틀렸으니,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을 지성껏
불러라. 병을 고치고 못 고치는 것은 오직 그대 정성과 결심에 달렸다."
고 일렀다.

한동안 나는 그의 동정을 살펴 보았다. 그는 밤을 새워 가며
눕지도 아니하고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 보살>만 부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은 반드시 병을 고칠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

한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소복으로 단장한 젊은 부인이 어린애을 안고 있는데
그 애는 자꾸만 <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었다.
꿈 속에서도 하도 신기하여

"어쩌면 저렇게 어린애가 염불을 잘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 부인이 "왜 귀찮게 구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부인에게 다가가서 그 병을 고쳐 주십사 하고간청을 하였다.
그때 그 부인은 손가락으로 그의 목을 꼭 눌렀다. 그러자 마자
달걀 같은 것 두개가 목에 축 늘어져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부인은 가위로 그것을 자르려 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 하기를 "그 가위를 잘 소독하고 잘라 주십시오"하니
부인은 "너는 지금까지 의사 하던 버릇으로 그런 소리를
하지마는, 이 가위는 원래 독이 없는 것이다." 하고,
그 혹 같은 것을 잘라 주었다.

그는 다시
"이 겨드랑의 것도 잘라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그것은 아직 그대로 두어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꿈을 깨었다.

그뒤로 그 종기는 피고름이 차차 멎고 병이 아주 나았다.

이렇게 병을 고친 그는 내 첫 상좌로 법명은 동일(東日)로
지금은 이북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영험담은 밀알 출판사에서 나온
"벼랑끝에 서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라는
큰스님의 법문책에 나와있는 글입니다.


혜암 큰스님의 오동송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 어묵동정>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내게 말도 침묵도,
움직임도 움직이지 않음도 여의고
한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서로 맞추지 못한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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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의 중매


근세 조선 순조 7년(1819)때의 일이다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에 몹시 가난한 집이 있었다

이 집에는 나이가 30 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윤덕삼(尹德三) 이라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70 을 넘은
부모를 모시고 나무장사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첫 닭이 울면 나무짐을 짊어지고 나서는데
나무장사를 할지라도 촌 사람을 상대로 할 수가
없는 까닭으로 서울장안에 들어가 도시사람을 상대로
하여야만 팔기가 쉬웠다

서울을 왕래하자면 구파발을 거쳐 서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편리하나 서대문 거리는 경쟁이 서로 심하여
발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의 서대문 밖 무학재 너머에 있는
홍제동에서 왼편으로 개천을 끼고 세검정을 향하여
넘어가기가 어려운 자하문을 넘어 들어가야만 쉽게
팔고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이길을 택하여 다녔다
농사 한마지기도 없이 춘하추동에 나무장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하다가는 만년 총각으로 장가를 들지 못하고 늙을 일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슬퍼졌다 더우기 그는 3대 독자
외아들이였다

만일 정말로 장가를 못가게 된다면 자손이 끊기게 되므로
부모님께 참으로 죄송한 일이었다
윤덕삼은 이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별도리가 없었다

어느날 그는 나무짐을 지고 세검정을 향하여 가는데
귀에 서투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리도 아프고하여
나무지게를 내려놓고 바라보니

옥천암이라는 절에서 들려오는 것있었다 그런데 그 절 아래
개천옆에는 높이 수십척이 되는 바위가 문도 없는 편각속에
있는데 거기에는 크게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처님 앞에서 수십명의 여자신도들이 스님들과 함께
향불을 피우고 제사지내듯 메를 올리고 절을 한고 있었다

그 전에도 이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으레 스님들이 하는
것이거니 하며 무심히 지났으나 이날은 이상하게도 의심이 생겼다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저런 것을 할까?
저렇게 하면 돌부처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 주는 것인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똑똑한 사람도 마음데로 못하는 일을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바윗돌이 무슨 재주가 있어 사람들을
도와준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과 회의에 잠겨있는 동안에 할머니들이 불공을
마치고 건너온다 덕삼은 한 노인일 향해 물었다

"저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님은 누구며 할머니들은 무엇 때문에
거기에 대고 절을 하고 빕니까?"

"이 총각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무식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구먼
저 바위에 새긴 것은 해수관음이라는 관세음보살이신데
이 어른은 동해,서해,남해할 것 없이 모든 바다 언덕 위에

계시다는 보살님일세 이곳은 바다는 아니지만 개천가인 까닭으로
멀리 바다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인연을 맺으라고
해수관음불상을 새겨 놓았지

그런데 영험이 대단하여 저 보살님께 정성을 들이면 틀림없이
소망을 다 이룬다네".

덕삼은 이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돌부처가 무슨 신통이 있어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습니까?

"그것은 모르는 말.돌부처라도 그냥 바위가 아니고,부처를
새겨 모신 바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름을 부르고, 지성으로
마음을 모아 빌면,부처의 신령이 천리 만리라도 걸림없이

오셔서 정성을 받고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일세.
그러기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정성이
부족하고 믿는 마음이 부족하면 그런 사람에겐 그저

돌 바위만 보이지만, 마음이 참되고 정성이 지극하면
모든 것이 모두 부처이고,드는 것이 모두 불경소리인지라.

무정한 돌도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변신해 나타나는 것일세.
그러므로 소원을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돌부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의 정성과 신심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일세"

"참으로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 이절에 다니는 신자가 수백명인데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거야
새상에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갖은 고생을 해가며 이 험한
산골짜기에 올라와 정성을 드리겠는가 생각을 해 보게.

그러기에 여자들은 마음이 간절해서 철저히 믿기 때문에
소원을 이루기가 쉽지만 자네같은 총각은 남자라 마음이
엇갈리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빌어도 건성으로 빌 것이니 어려울 것일세. 그럼 난이만
가네"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어데론가 가버렸다
온갖 고생을 거듭하고 쪼들릴대로 쪼들린 윤총각은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이 곳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길가에
나무짐을 버티어 놓고 건너가서 해수관음에게 수십 번씩
절을 하고 마음속으로 축원하였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어서 제가 장가를 들어 자손을 보고, 부자가 되어서
나무장사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예배만으론 시원치가 않아 점심밥으로 먹을 도시락을
나무짐에서 꺼내어 가져다가 올리고 다시 절을 하였다.
도시락이라 하여도 보리밥 아니면 조밥이요 게다가
된장 덩어리가 끼어 있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가난뱅이가 이러는 것은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윤덕삼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무짐을 지고 오갈때마다
그와 같이 하였다.

이렇게 백일을 하고 나니, 비록 돌부처라고는 하지만
어머니 마냥 친해져,보기만해도 다정함을 느꼈다
이제는 부끄럼없이 처다보고 농도 하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을것 같았고,그만하면 자기 소원도 들어
줄 만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생활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모두가 허사인듯 야속한 마음도 가끔 들었으나

자기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언젠가는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리라 믿었다.그럭 저럭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되었다.

그 날도 나무를 성안에 팔고 돌아오는 길에 윤덕삼은
해수관음에게 들렸다.그런데 마침 비가 쏟아져 나갈
수가 없었다

덕삼은 문도 없는 관음각에 홀로 앉아 있다가 심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여 '우물꼬누'를 커다랗게 그려놓고
관세음보살님께 꼬누를 두는 내기를 하자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이제 저와 같이 내기 꼬누를 둡시다.
저는 이길 자신이 있으니,만일 제가 이기면 관세음보살님이
그 댓가로 저의 소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덕삼은 꼬누를 두기 시작했다. 우물꼬누란 첫 수에 이기고
지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덕삼은 조약돌 두 개를 주어다가
하나는 제 것이라 하고,하나는 관세음보살님 것이라 몫을 정해
놓고,혼자 천진스럽게 두었다.

"그럼 제가 먼저 두겠습니다"

첫 수에 관세음보살님을 이겨 버렸다.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우러러 보면서 기원드렸다.

"관세음보살님! 분명히 보셨지요? 꼬누는 분명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니 내일이라도 속히 저의 소원을 꼭 성취시켜 주셔야 합니다"

덕삼은 이렇게 말을 하고 비가 그치자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꿈에 거룩하게 생긴 늙은
부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해수관음을 모시고 있는 옥천암에서 온 보살이다.
너의 정성이 하도 갸륵하여 너에게 도움이 될 말을 일러 주러
왔다.

너는 내일 첫 새벽 닭이 울 때에 나무짐을 지고 떠나서
밤이 새기 전에 자하문 밖에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리하여 문이 열리면,첫번째로 나오는 여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거라.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말하기는 미안하지만,어디로 가시는
누구이신지는 모르지만 가시는 곳을 가르쳐 주시면,제가
안내하여 줄테니 저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이야기 하고
그를 너의 집으로 인도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꿈속일망정 덕삼은 하도 좋아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다짐을 나누며

깨어 보니 분명한 꿈이었다. 윤덕삼은 곧 이어 뒷집에서
첫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자 바뿌게 옷매무새를 고치고
밖으로 나왔다

나무 짐을 지고 집을 나오려 하자 어머니가 물었다
"애야,오늘은 먼동도 트지 않았는데 벌써 나가느냐?"

"네,오늘은 누구를 일찍 만나야 하기 때문에 일찍 나갑니다"

빈 속에 나무 한 짐을 지고 바뿐 걸음으로 삼십리를 걸어
자하문 밖까지 올라가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희망에 들뜬 몸이므로 배고픈 것도 무거운 것도
다 잊고 단숨에 자하문 밖에 이르러 나무짐을 괴어 놓고 보니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행으로 여기고 먼동이 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 틈으로 하얀 버선을 신은 발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관세음보살님이 거짓말은 하지 않으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있는데 마침
문이 열렸다.제일 먼저 보자기로 싼 것을 머리에 인 여자가
쏜살같이 세검정으로 내려갔다.

덕삼은 나무짐과 지게를 버리고 종종걸음으로 쫓아 내려가
소매를 붙들고 꿈 속에서 일러주신 대로 하였다

"놀라지 마십시요.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붙잡고 말하기는
실례인 줄 아오나 어디로 가는 낭자이신지 제가 길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새침하게 톡 쏘고 말대답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어여쁜
낭자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저는 윤도령이란 총각을 만나려 갑니다"

윤덕삼은 너무나도 뜻밖이라 눈이 휘동그래져서 물었다.

"제가 윤총각인데요?

"네? 그러세요. 저는 심낭자입니다.그런데 어떻게 알고
나오셨나요?"

"이리 오실 줄 알고 마중 나왔습니다.간 밤의 꿈에 어떤
점잖은 부인이 나타나 말씀하시길,'너는 장안에 있는
낭자를 만나게 될터이니 잘 보살펴주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첫 닭이 우는 새벽 마중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제게도 그런 부인이 간밤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길
"네가 자하문을 나가면 첫번째로 어떤 사나이를 만날 터인데
그는 윤도령이라는 총각이다.그는 심덕이 좋아 따라가도
해롭지 않을 것이니 따라 가거라"
하시길래 그 말씀을 기억하여 여기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꿈이 같을 까요?"

"그게 다 천생연분인 까닭입니다"

"아이 망칙해라"

"망칙하기는 무엇이 망칙합니까? 세상 만물에는 다
임자가 있고,짝이 있는 법인데..."

두 사람은 초면같지 않게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란히 내려왔다. 어느덧 절 가까이 왔다.

"여기서 잠깐 쉬어 갑시다"

덕삼은 심낭자를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인도했다

"자,우리 오늘의 일을 감사하기 위해 부처님께 절을 먼저 합시다"

절을 하려고 관세음보살님 앞에 선 심낭자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이분은 간밤의 꿈에 뵙던 분과 얼굴이 꼭 같습니다"

"그래서 절을 하자고 한 겁니다.우리의 인연은 관세음보살께서
맺어주신 것입니다"

덕삼은 몇 번이고 절을 하며,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다.

"감사하니다.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님!"

그런데 심낭자는 어찌된 사람인가? 그녀는 명문대가의 규수로
열여덟 살에 어떤 양반의 집으로 출가하였다.그러나 연분이
아니 였는지 신랑이 혼례 즉시 보기 싫다고 퇴박을 하였다.

그리하여 3년을 기다리다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돌아와
7년,10년을 동안을 수절하며 남편의 개심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식도, 희망도 없었다.

그러니 말만 시집갔지 처녀나 다름이 없었고 그렀다고 평생토록
수절하며 혼자 지낼 수도 없었다.또 버젓이 개가할 수도 없는
처지라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어디론가 아무도 모른는 곳으로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딸이 불쌍하기만 했던 그의 어머니는
귀중한 금,은, 보석,산호,비취 등을 한 보따리 싸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인연에 따라 마음대로 집을 떠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심낭자는 스물 여덟 살 되던 해에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날밤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말씀하시길

"너는 다른 문으로 나가지 말고 자하문으로 나가되,
문이 열린 후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윤총각이라는
남자를 따라가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를 들은 윤덕삼은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실감하고
더없는 고마움과 행복을 느꼈다.윤총각은 날을 받아 일가친척을
모아 놓고 간단하게 혼례를 치루었다.

그리고 심낭자가 가지고 온 패물을 팔아 집과 논밭을 마련하고
또 산도 사서 아들 딸 낳고 평생부자로 큰 살림을 벌리니
신도면 일대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도 역시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근래에도 그의 5대손이
이러한 인연으로 불공기도 다니며 선조의 이야기를 전하였다.

출처/청신남 청신녀 (우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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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염불로서 불구의 다리을 고친 화엄스님

<일타스님의 글>

동해 동림사(東林寺)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화엄(華嚴) 스님이
계십니다. 이 화엄스님은 동산(東山)큰스님의 제자로서, 특별한
출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925년생인 화엄스님은 일찍이 일본 경도(京都)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있다가, 학도병에 뽑혀 남양군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미군들과 전투를 치르던 어느 날, 갑자기 공중에서 포탄이
떨어져 수십 개의 파편이 다리 속으로 박히는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고, 파편 제거수술을 완벽하게 받아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이상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항상 저리고 아파서 올바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절뚝절뚝 절게 되었습니다.

이 부상 때문에 제대를 하여 고향으로 오기는 했지만, 영영 불구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또 엎친 데 덮친다고, 때마침 그와 사귀던 여인마저
기숙사에 불이 나서 타죽고 말았습니다.

몸도 좋지 않은데다 마음의 상처까지 받은 그는 수양을 하기 위해
범어사 대성암(大聖庵)으로 들어갔고, 그 곳 스님들은 그에게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외울 것을 권하였습니다.

처음 심심풀이 삼아 보문품을 읽던 그는 차츰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고, 나중에는 틈만 나면 목청을 가다듬어
'관세음보살'을 염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을 대성암에서 지낸 어느날 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범어사 뒤의 금정산을 오르고 있는데,산 위로부터 갓을
삐딱하게 쓴 영감님 한 분이 내려오더니 대뜸 욕부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잇. 지지리도 쓸모없는 놈! 의사란 놈이 다리를 절뚝절뚝
절고 다녀? 침을 한 대 맞아야 되겠구먼."
영감님은 품속에서 넓적하게 생긴 대패침 하나를 꺼내서 콧김을
쐰 다음 상투에 쓱쓱 문질렀습니다.

"이리 와."
그리고 강압적으로 팔을 잡아당기더니 대패침으로 파편이 박혔던
허벅지를 꽉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아야!"
그는 고함을 지르며 깨어났고, 깨고 보니 꿈인데 허벅지에서
고름이 한 사발이나 쏟아져 나와 있었습니다.

고름을 닦아 낸 그는 방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고, 묘하게도 그토록
아프고 저렸던 다리가 멀쩡하게 나아 있었습니다.
'내 다리가 낫다니! 의학을 전공한 나의 상식으로는 믿어지지가
않는 일이다.

인간의 의술이란 대의왕(大醫王)이신 불보살의 능력에 비한다면
태양 앞의 반딧불과 같은 것! 반딧불 같은 기술을 지닌 의사가 되어
무엇하랴. 정녕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됨이 옳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는 동산스님의 제자가 되어 '화엄'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그가 처음 사미계를 받을 때 내가 인계승(引戒僧)노릇을
한 인연으로 그와는 꾸준히 친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교에는 대의왕이신 불보살들이 가득합니다.
그분들은 어떠한 병이라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감응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열쇠를 쥐고 있는가?
바로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부디 마음을 모아 기도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불보살의 밝은 자비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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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기사회생과 관음기도

(일타스님 글)

일제시대 평양에 살았던 유제규(劉濟奎)거사는
평양교당(平壤敎堂)에 다니다가 젊은 법사인
정지월(鄭指月)스님으로부터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문득 신심이 샘솟는 것을 느낀 유제규는 보문품을 배껴 부부가
날마다 보문품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보문품을 외우기를 몇 달,
1928년 12월 18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9시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매일의 일과대로 보문품을 세번 독송하고,
'관세음보살' 3천념(三千念)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약 30분정도 숙면을 취하였을까? 비몽사몽간에 흰옷 입은
노부인(老夫人)이 나타나서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잠만 자고 있느냐!"

그는 정신을 차리려 하였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노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흰옷 입은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 누워 자고 있던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눈이 까뒤집힌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일그러진
표정만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버럭 소리를 쳐서
집안 식구들로 하여금 의사를 부르도록 하였고,
자신은 아내의 몸을 주무르고 코밑을 비벼 주고
인공호홉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숨소리는 점점 더 가늘어졌고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온 의사도 진찰을 해보더니,
이미 숨을 거두어 어쩔 수 없다면서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의사에게 주사라도 한번 놓아줄 것을 간청하였지만,
심장마비라고 하면서 돌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비통하게 울다가,
문득 보문품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衆生被因厄 중생들이 곤란과 액난을 당해
無量苦逼身 한량없는 고통이 다다를지라도
觀音妙智力 관세음보살의 묘한 지혜와 힘은
能救世間苦 능히 세간의 모든 고통을 구해 주시도다
具足神通力 신통력 모두 갖추시고
廣修智方便 지혜와 방편 널리 닦으사
十方諸國土 시방의 모든 국토에
無刹不現身 몸을 나투지 않은 곳 없으시도다

그는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아내의
기사회생(起死回生)을 기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관세음보살께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약 30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죽어 있었던 아내가
가늘게 호흡을 시작하더니, 정신이 드는듯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 앉았습니다.

절망과 근심에 빠져 있다가 환호하는 가족들에게 유제규 거사의
부인은 말했습니다.
"사경을 헤매다가 숨이 끊어지자 혼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더구나.
너희들은 모두 슬피 울고 있고, 네 아버지는 나를 살려 달라며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더구나.

나도 엉겁결에 관세음보살을 따라 불렀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부인이 나에게 약물을 한 종지 주셨단다.
그 약물을 받아 마시자 내 혼이 다시 몸 속으로 들어가면서
숨이 통하지 않겠느냐."

유제규 처사 부부는 이토록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체엄을 한다음
불교를 더욱 열심히 믿었으며, 이런 사실이 평양 바닥에만
알려지는 것이 애석하여 1929년 2월의 <불교> 잡지
제 56호에 투고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불보살의 가피력! 그러나 지극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불보살의 가피가 끊임없이 미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극하게만 해보십시오.
'나'도 충분히 가피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계(法界)에는 불보살의 자비와 묘지력(妙智力)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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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속의 관음상



중국의 당나라 문종(文宗)황제 때 일이니까 지금부터 1천 3백여년 전
일이라 할수있다. 문종황제는 불도에 귀의한 신심이 남달리 돈독한
불교 신자였다. 그는 바쁜 정사 가운데도 전국의 명찰을 순례하며
참배도 하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또 내전에 불당을 차려놓고
거기에 관음상을 모시고 있었다.

당시 종남산(終南山)에는 유정(惟政)선사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황제는 그를 몹시 존경하고 좋아했다. 특히 그를 왕사처럼 모시고
자주 초대하거나 또는 찾아가서 그의 지도를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황제는 국가에 대사가 있을 때에는 예외 없이 먼저
궁전에 모신 관세음보살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했다.

또 그럴 때마다 그는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현몽을 얻게 되었다.
황제는 그 현몽대로 일을 처리했다. 그러면 무슨 일이나 어려움없이
순조롭게 풀리고 또 성취가 되었다.
문종황제는 불교에 귀의한 뒤로부터는 일체 고기를 먹지 않았다.
육물이건 해물이건 입에 대지를 아니 하고 멀리 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조개만은 끊지를 못 했다.

그것만은 먹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개만은 그냥 수랏상에 올라오도록 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그 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관세음보살 전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돌아와 수랏상을 받았다. 역시 수랏상에는
거의가 채소반찬이었으나 유독 해물로는 조개 한 접시가
올라와 있었다. 황제는 역시 조개에 먼저 손이 갔다.

벌어진 조개를 하나하나 까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까먹어 가다보니
그 가운데 껍데기가 벌려있지 않은 놈이 하나 있었다.
황제는 젓가락으로 조개를 벌리려 했으나 잘 벌려지지를 아니 했다.
그래서 할수없이 손으로 조개를 집어들고 힘을 주어 쪼갰다.
그랬더니 이게 웬 일인가. 벌어진 조개안의 조갯살이 금방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황제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관음상이었다.관음상은 서서히 광명까지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는 처음 보는 일이라 놀랍기고 하고 또 알수없는 일이라서
종남산에 있는 유정선사를 불렀다. 달려온 유정선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황제는 그 조개의 속을 그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선사님, 이 조개 속을 좀 보십시오. 짐이 아침 수라를 들다가
조개를 먹는데 그 중에 입을 벌리지 아니 하고 오무리고 있는
놈이 있기에 벌려 보았더니 이 속에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있지 않겠습니까. 조개속에 진주가 들어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처럼 보살님이 들어있는 것은 처음 보는 일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요”
유정선사도 기이한 듯 그 관음상을 드려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것은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조개로
응화하신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인 것 같사옵니다.”
황제가 이에 대답을 했다.

“저도 경전에서 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화현을 하신다 하더라도 불신 아니면 보살신 또는
벽지불이라든가 장군신, 비구신, 비구니신, 부녀신, 동남동녀신,
팔부금강신 같은 몸으로 화현하는 경우는 있어도 조개로 화현한
조개신에 대해서는 경전 어디에서도 읽은 기억이 없고
또 일찍이 들은 바도 없습니다.”유정선사가 다시 말을 했다.

“부처님 말씀에 불보살은 백억화신을 나투신다고 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백억화신 가운데 어찌 조개로 나타나는 조개화신인들
없겠사옵니까. 있을수 있는 일이옵나이다”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이 조개신은 누구를 제도하러
이렇게 내 수라상에 올라와 있을까.
그래서 황제가 선사에게 다시 물었다.

“선사님, 그렇다면 이 조개신, 즉 이 관음보살은 누구를 제도하기
위하여 오늘 이처럼 짐의 수랏상에 올라온 것입니까.
그것이 매우 궁금합니다.”선사가 말했다.
“폐하, 그것이 그리도 궁금하시옵니까. 관음보살은 자비로써
모든 중생을 제도하시옵나이다. 어느 특별한 생명 하나만을
제도하시고자 화현하시는 것은 아니옵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제도의 대상이 다를수도
있사옵나이다.”

황제가 선사의 말을 끊고 이렇게 물었다.
“그 말씀은 또 무슨 뜻입니까.”
선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소승이 이 관세음보살을 보고 접하게 되면 보살님께서
소승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렇게 화현을 나투시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수가 있사옵나이다. 그렇게 되면 소승이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과거의 모든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운 신심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옵나이다.

또 이 관세음보살님을 폐하께서 보실 때 폐하께서 바로 짐을
제도하기 위해서 관세음보살님이 짐이 드시는 조개속에
화현하셨구나 생각하신다면...”
황제는 다시 선사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리고 자기가 말을 했다.
“알았습니다. 지금 관세음보살님께서 여기 이렇게 화현하신 것은
짐으로 하여금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좀더 선행을 하고
자비심을 베풀고 백성을 위해 더욱 봉사하라는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뜻을 잘 받들어 더욱 정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사가 감탄하여 말했다.
“폐하께서는 과연 훌륭한 부처님의 제자이시옵니다.
폐하께서는 관세음보살님의 설법을 아주 잘 듣고 계시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폐하께 바로 그러한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오늘 이렇게 수랏상의 조개속에 그 몸을 나투셨는지도
알수가 없사옵나이다.

부디 불보살과 같은 지혜를 발휘하시고 또한 불보살과 같은 자비를
온 백성과 중생에게 골고루 베푸셔서 창생이 환희하고
나라가 번성하는 태평성대를 누리시옵소서. 모든 백성이
폐하의 덕을 기리고 찬탄하며 존경하는 성제가 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황제는 그 뒤부터는 조개까지도 먹지를 아니 했다.
따라서 수랏상에도 조개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조개 속에서 나온 관세음보살상을 산관음이라 하여
원불로 모셨다. 또한 항상 몸에 모시고 다니는 호신불을 삼기도 했다.
이와 같이 누구나 불보살을 진심으로 깊이 믿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불보살이 그에게 화신으로 나타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영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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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독송의 가피력/진각스님



만약 불자님들의 가정에 한 가족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어느 병원에서도 소생할수 없다는 의사의 판명이 나온다면
당장 불자님이 무엇을 할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 때는 의지가 최대한 약해 지는 시기 인지라
모두가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크리스챤은 성모마리아님에게
불자님들은 각 사찰의 불보살님에게
그리고 설령 종교가 없던 사람 마저도 어느 한 종교에 매달릴 겁니다.

【 살려 주십사 】 하고 말이죠.
그 어떤 대상을 선택하여 기적의 의지를 갈구 하려는 것이 우리 중생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어떻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우리는 흔히들불보살님들에게 무아의 기도를 통하여
기적같은 가피를 입어 그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불안하고, 평상심을 잃을 때
혹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
그때 사람들은 기도를 할 겁니다.

다시말해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때는
기도 하려는 마음들이 없다가
본인이나 가족이 급한 경우에는 매달리려 한다는 것 입니다.

기도 정진은 불교에서는 가장 신성한 종교의례 입니다.
기도의 가피는 불보살님의 법력을 얻자는 것인데
그런 급한 경우가 아닌 매일 매일 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써 내려 가려는 이야기도
평상시에 반야심경과 108 배를 게을리 하지않던 어느 법우의 이야기 입니다.

【 묘법연화경 】 【 보문품 】에
" 선남자야, 만약에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가지의 고뇌를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백천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이제 그 가피력을 입은 법우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1991 년 6 월 3 일 오후 2 시에 서울 잠수교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김 준환이라는 학생이 (당시 고대 3 학년) 구입한지 5 개월이 되는
현대 스쿠프 승용차를 운전하여 강북쪽으로 가던 중
잠수교 타널 안에서 옆의 차를 피하려다가
앞에 가던 유조차 뒷 부분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가
옆의 옹벽에 부딪치며 전복되어 차가 엎어진채로
20 여 M 데굴데굴 굴러 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는 순간
큰 사고가 났음을 알고 정지 하였으며,
사고차는 유조차 앞으로 미끌어져 나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가 내리려는 순간, 그는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다름이 아닌 전복된 사고차가 안보일 정도로
하얀 모습의 커다란 부처님 형상이 차를 덮고 있는게 아닙니까?

순간, 그 유조차 운전자는 섬뜩함을 느꼈으며,
잠시후 그 부처님 형상이 없어지자 그는 차에서 내려
사고가 난 차에 가보니 차는 폐차 직전으로 찌그러져 버렸고
이상하게도 사고차의 운전자가 보이질 않는 것 이었습니다.

당시 51 세의 유조차 운전자는 운전 경력이 많은 사람이었고,
믿는 종교는 크리스챤이라고 했었습니다.

분명 이런 정도의 사고라면 운전자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운전자는 보이질 않고 옹벽 옆에서 한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조차 운전기사가 그 학생에게 다가가
" 학생 ! 혹시 저 차 운전하던 운전자 못 보았는가? "

그러자 그 사고차를 운전하던 김 준환 학생이
" 제가 저 차를 운전했는데요 "

유조차 운전기사는 믿기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물어 보았었습니다.

정말 운전자라면 이렇게 살아 있을수가 없으며,
더구나 온 몸에 상처도 없이 서 있을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조차 기사는 그 학생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사고처리를 해 주고는 그 학생의 아버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김 준환 학생의 사고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학생의 아버님에게 유조차 기사가 혹시 종교가 있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의 아버지는 종교는 불교 집안 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제서야 유조차 운전자는 자기가 본 형상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학생의 아버지에게 그 때 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난 뒤 유조차 기사가 김 준환 학생에게 다가가
그 사고 당시의 일이 궁금하여 물어 보니

" 사고 순간 차가 부딪히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자기를 감싸 안는 느낌을 받고 보니 차가 거꾸로 있는데
옆 유리창이 보이므로 안전벨트를 풀고책가방을 지자
누군가가 안아서 차에서 내려주었습니다 " ....그랬습니다.

자 !, 한번 생각 해 봅시다.
자동차 유리창 부분은 작습니다.
그 부분을 빠져 나오려면 멀쩡한 상태에서도 쉽게 빠져 나올수 없는 것 입니다.

당시 김 준환 법우도 회상을 할 때
" 저 창문으로 내가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모릅니다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마 이러한 일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시죠?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가피력입니다.

그 차는 결국 대파되어 폐차를 시키고 키가 181 Cm 였던
김 준환 법우는 그런 대형사고를 당하고도
큰 상처하나 없이 무사히 그 구멍으로 온 것 그것이 바로 불보살님의 가피력 입니다.

그의 가정을 잠시 소개해 보면,
그 법우는 2 대 독자로 그의 어머니 김월맹심 보살은
20 년 전 부터 시부모님의 영정을 처음 백련사로 모실때
그 인연으로 불교와 인연이 되어 불교에 귀의를 했고
백련사에서 정진하며 전국 어느 사찰이든
【 우란분절 백중 기도 천도제 】가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동참하며
하루도 정진을 게을리 않고 매주 토요일이면 철야정진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1995 년 쯤으로 기억) 백련사 재무로 일했으며
사고가 나기 2 년 전부터 아들 (김 준환 학생)에게
매일 아침마다 【 반야심경 】을 독송하라고 하면서
절을 최하 50 번 조금 더 하면 108 배를 시켰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 법당도 아니고 부처님도 안 계신데 어디에 절을 하냐 " 고 하자
김월맹심보살님은
" 지금 네가 앉은 자리가 법당이니 그냥 열심히 해 봐라 " 고 대답 했었답니다.

아들이 성품이 착하여 어머니 말씀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기도를 하고 난 뒤에 학교를 다녔다는 것입니다.

사고후 월맹심보살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집안은 늘 부유하고 걱정은 없었으며
백련사에서 기도 할 때는 특별히 원을 세운 것은 없으나
기도 중에는 '원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그저 좋은 인연이 맺어지기'를 바랐으며
사고 후 기도의 공덕을 부처님의 가피지묘력을 확신하고
기도드린 정성보다 너무 큰 가피를 입었다고 하면서 더 정진을 했었습니다.

불자 여러분.!
이와같이 기도는 어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이 기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이 불자의 집안처럼
앞으로 닥쳐오는 불행을 불보살님의 가피지묘력으로 미리 피할수 있다는 것 입니다.

모든 열매는 열매가 맺기 까지의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도 없이 나무한 그루 탁 심어 놓고
느닷없이 열매 맺기를 바라는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마시고
그 나무를 정성스레 가꾸며 결실을 기다리는 현명한 사람처럼
늘 쉬지않고 기도정신 수행을 하시면 불보살님이 감응하시와 가피를 주실 겁니다.

즉,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은 어느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운데 계신 불보살님에게 가피를 청하는 기도를 타력이라고 하겠습니까?
기도로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비워 버리면,
바로 그 마음 속으로 부처님이 자리를 하시는 겁니다.

본래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나
그 마음이 탐진치 삼독의 때가 끼어 볼수가 없는 것이죠.

용맹정진하는 수행 속에서
몸과 마음의 때를 벗기어 내는 청소를 하는 수단으로 통하여
각자의 마음이 청정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가피를 입을수 있는 것 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를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이 없이는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대 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보통 어떤 기도를 하면 한 번 기도를 시작하고 보면
늘 수많은 장애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장애가 생길 때 반드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재가불자 여러분 그리고 법우 여러분 !
사람에게는 누구나 소망과 희망 이라는 것이 잇습니다.

소박하고 작은 것에서 부터
크고 위대한 온갖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발심하시어
우리들의 원을 실현키 위한 기도를 오늘 다시 정하여
쉼없는 용맹정진을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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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기도로 불치의 병이 사라짐

(진각스님 글)


언젠가 광명사 신도회 총무 장상원 거사님은
당시 주소가 충북 청원시 석교동 육거리에 있는 뉴~코리아나 관광여행사이다.

몇 년 전부터 청원군 미원면 운교리에서 정미소를 하고 인삼 재배도 하며,
동네 이장도 보면서 시골에서 살고 있었으나, 얼마전 까지만 해도 청주에 나와 살았었다.

지금으로 부터 10 여년 전
장 상원씨가 간경화로 지라까지 붓고 아파서 수술도 못할 상태였다.

좋다는 약만 구해서 먹다가 병이 악화되어
다들 위험하다고 했는데 그의 형 두분이 서울에 잇으면서,
특별히 의사에게 부탁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부터는 절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큰 아들 정 현태군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와서 집안 일을 도왔다.
겨울방학이 되자 경운기로 볏짚도 실어나르고 벼짝을 메어 나르며 장정 부럽잖게 일을 하였는데
봄이 되자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허리 척추뼈가 3 개가 튀어나와 학교에 못 다니게 되었다.

청주의료원에서 디스크 병으로 진찰이 나와
고치려고 두 달이 넘도록 치료를 하였으나 병은 낫지를 않았다.

대전 대학병원으로 서류를 넘겻으나 그만두고,
스님의 권유로 휴학계를 내고 약도 썼다.

여름방학이 되어 구인사로 가서 한달 기도를 하였어도 병은 낫지를 않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닥쳐왔다.

스님은 또 권유를 하여 태현군을 구인사로 한 달 기도하도록 보내고
부친은 가까운 절에서 한 달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장 상원씨는 동네 이장도 보고 인삼포며 방앗간 때문에
낮에는 기도를 못하고 밤에 열두시가 넘어서야 기도를 할수가 있었다.

오랜 질병에 지쳤는지 하루는 스님 보고
"나는 내년 4 월을 못 넘길 것 같다" 는 마음 약한 소리를 하더라는 것이다.

스님은 몸이 달아서 장 상원 처사님을 데리고 구인사로 가서 태현군을 만나
"너는 병을 못 고치면, 병신의 몸으로 가정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너의 부친은 본인의 아픈 것에 대한 기도는 하지 않고 네 병이 낳기만 바라며
밤 12 시가 넘어서도 밤마다 절에와 너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
어젯 밤에는 내게 하는 말이 내년 4 월 까지를 못 넘길 것 같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게 급하니 네가 한달이 넘도록 기도를 하여야만이
병이 나아 너의 아버지가 너를 보고 신심이 생겨나 기도를 할 것이고 그래야 병이 나을 것이다."
라고 강조를 하였다.

장 상원씨는 아들을 보고
"병이 낫지 않으면 병신 자식 보기 싫으니 영춘강에 빠져 죽든지
집에는 오지도 말라" 고 하고서 왔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이 낳았다.
태현군은 반가움과 두려움에 스님에게 달려 왔다.
태현군이 병은 나았지만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밤이 되어 부모와 함께 절에 온 태현군이 스님께 인사를 하니
스님은 게속 기도를 해야 한다며 다시 기도를 시켰다.

그런데 태현군이 관세음보살을 몇 번 부르더니
':쯔쯔 쫘쫘 쯔쯔 떠떠.........'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부모는 같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다 말고
"스님 얘가 집에서도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스님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그런 소리를 할수도 있다' 라고 말씀 하셨다.
교회에서는 이런 경우를 방언이라고 하고
절에서는 이런 경우를 변음이라고 하는데
자꾸 기도를 하다보면 과거의 업장이 들어나 없어지면서
그런말이 나오게 된다' 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스님이 태현군이 언제 부터 그랬냐고 물으니까
태현군이 말하기를........
"스님이 다녀 가신 뒤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낮에도 부르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힘껏 뺨을 때리잖아요.
그래서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아무도 안 때렸다는 거예요.

볼을 만져보니 분명 손가락 자욱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말이예요.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방에서 나와 대조사스님 묘소에 올라 갔더니
보살님들이 많기에 나는 한 쪽에 조용한데 가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데
또 누가 뺨을 너무 아프게 때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두 이상해서 묘소 지키는 스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스님은 웃으시면서 '너 기도 열심히 하라'고 신장님이 때리시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후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는데 누가
'학생 공양하러 가지' 하는 소리는 들리는데,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소리가 잘 되다가 ':쯔쯔 쫘쫘 쯔쯔 떠떠.........' 그러면서
아무리 관세음보살을 부르려해도 자꾸만 이상하게 변음이 나왔어요.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기도를 하였는데 언제 부터인가 다리가 안 아팠어요.


이말을 들은 부친도
"나도 이제 부터 기도를 열심히 해야겟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신심이 생겨나 남마다 잠들기 전에 꼭 관세음보살을 정진하고
낮에는 길에 다니면서도 불럿는데
하루는 꿈에 혜만스님이 :차차 괞찮아 질거요"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차도가 점 점 좋아져 농사일을 그만두고
그 뉴~코리아 관광여행사를 하고 잇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믿지 못할 이야기 같지만
관세음보살 부르다가 우는 사람, 귀신하고 싸우는 사람, 변음이 나오는 사람,들도 왕 왕 있다.

정성이 지극하면 그만큼 사람마다 다르게 신기한 일들을 경험 할수 있다.

여기서 나의 얼마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추가해 보고자 한다.
나는 이 곳 보성의 움막에 처음 올때만 해도
컴퓨터를 전혀 몰랐다. 크고 켜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인데
얼떨곁에 컴퓨터 한 대를 보시 받고 나서
10 년 동안 비어있던 이 폐가로 들어와 홀로 책을 구입하여 보면서 컴퓨터를 공부했다.

그러다 5 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우연히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인터넷으로 인하여 사이버사찰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나의 신기한 가피는 이때 부터 일어났다.

오늘 처음 글을 남기는데 아마 가피를 입어 보질 못한 사람들은
지금 부터 내가 적는 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고 설마...설마...할 것이다.

하지만 원력을 입었거나 가피를 입은 재가불자들은 당연 하리라 생각을 한다.

내가 컴을 혼자 배운지 5 개월이 넘으면서 부터
홈 페이지 제작에 들어 갔다.

가피는 그 때 부터 일어나기 시작 했다.

홈 페이지를 주무르다가 분명 컴퓨터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분명 이렇게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왜 안 되지.....? 하면서
그날 밤 끙 끙 앓으며 헤메다가 잠이 들면
꿈 속에서 얼굴도 볼수없는 하얀 가사장삼을 수한 사람이 나타나
정확하게 홈 페이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소스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럼 그 꿈을 꾸자마자 당장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그 생생한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보면
과히 아니 놀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가피를 무려 1 년이 넘는 동안 매일 꿈 속에서
그렇게 배워 오면서 사실 지금의 인터넷 사찰의 기본 틀이 짜여 졌다고 보면 된다.


기도란..........
죽음의 직전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 마냥
약에 의존하지 않고 돈에 의존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나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고
오직 마지막으로 부처님에게만 의지하지 않으면 않되겠다고 생각 할 때
그 때야 말로 참다운 기도정진이 된 다는 것이 보통 스님들의 한결 같은 말씀들이다.

다른 잡된 생각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한 생각 관세음보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보살님을 불렀을 때
관세음보살은 그 사람을 도와 주는 가피를 내리는 것이다.

그런 기도정진을 함으로써
불자들은 어려운 난관을 미리막고,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수가 있는 준비가 되는 것이다.

모두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야 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닌
진실로 나는 하나의 원을 세우고 그 원에 대한 끊임없는 수행정진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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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선사의 기도 성취

현대의 대선사 금오(金烏, 1896-1968) 스님이 젊었을 때인
1920년대 초기,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인 수월(水月)스님을 뵙고
지도를 받기 위해 만주 봉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선 땅과 만주 땅과 러시아 땅이 합해지는 회령 지방을
조금 지나 막 러시아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적 떼들이 어느 부잣집을 털다가 반항하는 주인을 죽인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부잣집 안 주인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러시아 경찰들은 불심검문을 하다가
장비처럼 생긴 금오스님을 체포하여 그 부인에게 보였다.

"이 사람이 그 마적 떼요?"
"그런 것 같아요, 마적 떼 대장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정신이 반쯤 나간 그 부인의 말 한마디에 금오스님은 완전히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고문을 당하면서 자백을 강요받았다.
"나는 수도하는 승려이지 마적 떼가 아닙니다."
그러나 러시아 경찰은 믿지 않고 밤낮없이 고문을 계속하였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나자 고문을 중단하고 감옥에만
가두어 놓는 것이었다.
'웬일일까? 고문도 그만두고 감옥에만 가두어 두다니..'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한국인 한 명이 그 감방에 들어왔다.
학교 선생인 그는 산골짜기에 아편을 심었다가 발각되어
잡혀 온 것이라고 하면서 물었다.
"스님이 살인 강도의 누명을 쓰고 들어온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스님, 범인은 이미 잡혔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석방시켜 주지 않는 거요?"
"아마, 이 감옥에서 나가기가 어려울 걸요?"
"왜요?"
"우선 조선 사람은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힘을 써 주지 않습니다.
설사 러시아 쪽에서 풀어 준다고 하더라도,
조선 사람이 러시아 감방에서 죄없이 갇혀 있었다는 것을 구실로
일본은 러시아에 보상을 요구합니다.
러시아로서는 공연한 말썽거리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차라리 감옥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보복을 두려워한 그 부잣집 안주인이 돈을 써서
스님을 풀어 주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큰일났구나. 이 감옥에서 살다가 죽어야 하다니!
이토록 난감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필경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탈출을 하는 수밖에는 딴 도리가 없겠구나.'
금오스님은 감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참선도 화두도 그만두고 오로지 관세음보살의 구원만을 갈구하며
부지런히 염불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밤, 어떤 사람이 철창 바깥에 나타나 감방 안을
들여다보며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쇠창살 두 개를 잡고
쑥 뽑아 올리자, 쇠창살이 그대로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뽑힌 쇠창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스님을 향해
'씩 -' 웃고는, 다시 쇠창살을 꼿아 놓고 사라졌다.
비몽사몽간에 이 일을 접한 금오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 쇠창살 두 개를 뽑아 보았다.
이상하게도 쇠창살이 쏙 뽑히는 것이었다.
스님은 감방을 빠져나와 형무소 문 쪽으로 다가갔고,
때마침 문지기들이 졸고 있어 몰래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형무소를 탈출하여 달려가다가 다리가 아파
수수밭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탄 간수들이 나타나 탈옥수를 찾는 수색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다시 안전한 곳을 찾아 피해 가는데,
한 간수가 말을 몰아 쫓아오더니 잡으려고는 하지 않고
묻기만 하는 것이었다.
"탈옥수 한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소?"
"보지 못했는데요."
"이상하다. 어디로 사라졌지?"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가피로구나.'
스님은 불보살님의 은혜에 크게 감격하면서,
만주 봉천의 깊은 산림 속 토굴에 계신 수월스님을 찾아가,
1년 동안 모시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금오스님은 후일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그때의 일을 자주
들려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참선하는 수좌도 가끔은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이 금오스님의 말씀처럼 참선 수행자도 장애가 있으면
한바탕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도를 하면서 원(願)을 새롭게 가꾸고,
가피를 입을 일이 있으면 가피를 받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도심(道心)에 걸림이 없을 때까지 거듭거듭 행하여야 한다.
누구든지 갈등이 있으면 기도하라.
장애가 많고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기도를 통하여
거듭거듭 발심하라. 불보살님께서는 틀림없이 큰 힘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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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관세음보살과 의상대사

의상대사(625~702)는 원효대사와 함께 신라때 가장 존경을
받았던 유명한 고승이다
그는 문무왕(文武王) 원년(661)에 불법을 배우고자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많은것을 깨닫고 670년에 귀국한 분이다

그는 귀국 후 관세음보살님이 머물고 계신다는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落山寺)앞 바닷가로 가서 목욕 재계하고
절벽에 있는 굴 입구를 향하여 7일 동안 정성스럽게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하기 위한 기도를 올렸다
7일째 되는날 새벽
이제 관세음보살님께서 광림 하실 때가 되었음을 느낀 의상대사는
기도할 때 깔고 앉았던 방석을 물 위에 뛰우자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들이 나타나 의상대사를 굴 속으로 인도 하였다

텅 빈 굴 안에서 의상대사는 공중을 향해 합장을 하고 절 하였다
어쩐 일인지 관세음 보살님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수정염주 한 벌만 하사 하였다
의상대사가 수정염주를 받아 가지고 굴 밖으로 나오려는데
동해의 용이 나타나 여의보주 한개를 바치는 것이었다
의상대사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 나의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구나.

의상대사는 다시 7일을 더 기도한 뒤 또 굴 안으로 들어가
3일 동안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자 기도했다
그러자 드디어 관세음보살님께서 모습을 드러내고 서
의상대사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그대가 서 있는 곳 바로 위 산 꼭대기에 대나무가 두그루
솟아 있을 것이다.그곳에다가 절을 짓도록 하라
의상대사는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합장을 하고 굴 밖으로 나와
산위로 올라 가보니 과연 대나무 두 그루가 솟아 나 있었다
그는 이곳이 참으로 관음진신께서 머무르시는 곳임을 확인하고는
그 곳에 터를 닦고 절을 지었다.
이 절이 바로 관음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지금의
강원도 양양 낙산사(落山寺)이다

의상대사는 낙산사를 창건한 후 관세음보살님의 소상(塑像)을
조성하여 법당에 모셨는데
그 원만하고 아름다운 상호가 꼭 살아 움직이는 듯하였다.
그러자 대나무는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 뒤, 원효(元曉)대사가 관음진신을 친견하기 위하여
이 곳 낙산사를 찿아왔다

처음 원효대사가 남쪽 동구 밖에 이르렀을 때였다
흰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농담삼아 그 여인에게 벼를 좀 달라고 하자
그 여인도 흉년이 들어서 쭉정이 밖에는 없다고
농담 삼아 말 하였다.원효대사는 좀 언짢았다
다시 원효대사는 그 곳을 지나
낙산사 쪽으로 가다가 다리가 놓인 시냇가에 이르렀다
다리 밑에서 한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그여인 곁으로 다가가서 물 한 모금을 청하였다
그런데 그여인은 깨끗한 물을 떠 주는 것이 아니라
빨래를 헹군 더러운 물을 떠 주는 것이었다

원효대사는 몹시 불쾌하여 망설일 것도 없이 얼른 그물을
버리고 위에서 다시 맑은 물을 떠서 마셨다
바로 그 때였다. 들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에서
푸른 새 한 마리가 지저귀면서 말했다.

제호(醍호,훌륭한 음료수)를 버리다니,
화상은 관음보살 친견은 단념하시오,"
그 소리를 들은 원효대사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니
새는 간 곳이 없고 여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새가 울던 그 소나무 아래에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원효대사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적지인
낙산사에 도착하여 법당으로 들어가 관세음보살님께 합장하고
절을 하려는데, 관음보살상의 좌대 아래에 또 한짝의
신발이 떨어져 있는게 아닌가?
이에 원효대사는 비로소 앞서 만났던 두여인이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새가 울었던 그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 하였다

원효대사는 또 전에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던
굴 속으로 들어가 다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 하고자 했으나,
풍랑이 너무 심하여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원효대사는 끝내 다시는 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삼국유사)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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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보문사 관세음보살의 영험


강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관음기도 도량이다
이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다가 거센 풍랑을 만났으나
관음기도 공덕으로 간신히 살아난 이야기가 있다

일제 때의 일이다,근대 우리나라 불교계의 석학 중에 유명한
권상로(權相老)박사가 있다.
이분은 원래 스님으로서 훗날 동국대학교 총장까지 지냈던 분인데
이분의 친척으로서 경북 선산군 해평에서 면장까지 지낸
우용택(禹龍擇)이라는 분이 이었다

이 분이 어느 해 가을,
친구 몇 사람과 더불어 강화도 구경을 가게 되었다
그들은 강화도의 명소인 마이산과 전등사 등을 구경한뒤
마지막으로 관음기도 도량으로서 유명한 강화 보문사를
구경하지 않을수 가 없었다
그들은 삼산 나루터에서 목선을 타고 보문사에 도착하여
"굴법당 마애관음" 등을 구경한뒤 다시 배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였다.그런데 인천으로 가던 중에 멀쩡하던 하늘에 갑짜기
시커먼 먹구름이 뭉치더니 빗줄기가 쏟아지면서
돌풍이 일기 시작하였다. 배는 거센 풍량에 흔들리면서
기우뚱 기우뚱했다.
갑작스러운 상항에 배를 탄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 어쩔줄 몰랐다
게다가 산더미 같은 파도가 계속 배를 때리자 배는 곧
부서질듯 '우지직 우지직,하였으며 갑판위로 바닷물이 쉴새없이
넘쳐 들어 왔다. 우용택의 일행을 비롯하여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잃었다.그 중에는 살아 보려고 배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사람,마냥 정신없이 '엉엉'우는 사람 등 갖가지였다

그런데 이처럼 급박한 상항이 전개되고 있는데,어디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간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승객 중 한 사람이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 상태로
오로지 "관세음보살"만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 풍량에서 살아 남기를 바란다면 모두들
한마음으로 '나무 관세음보살,을 부르십시오

그리고는 또다시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이 곳 강화에는 낙가산 보문사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영험 있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니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모두 함께 관세음보살님을 부른다면 반드시 그 묘지력에 의하여
살아 돌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끝나자 불교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모두 동시에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 하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것 저것 가릴 사항이 아니었다
배 안은 갑자기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합장 소리로 가득 하였다
사실, 우용택과 그 일행은 유생 이었다. 한번도 불러본적이 없는
"관세음보살"을 부르자니 선뜻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머뭇거리고 있는데, 관세음보살을 부르라고 하던
그사람이 우용택을 향하여 말 하였다
"노형,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부르 십시오.그러면
필히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있을 것이니 어서 속히 부르십시오"
워낙 위기일발의 상황인지라 우용택 역시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 하였다.그래도 여전히 풍량은 심하게 몰아쳤다.
배는 곧 가라앉을 듯 더욱더 기우뚱기우뚱 하였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악,하고 절규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도 정신이 들면 모두들 그승객을 따라 더욱더 소리높여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이 때 기적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높은 곳에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선창하고 있던 그 승객이
벌떡 일어 나더니 우용택을 향해 하늘을 가리켰다
'저것 보시오."
우용택이 그의 손짓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니 오색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비치면서 그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선명하게 현신한 것이었다.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은'이젠 살았구나'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순간에
또다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를 때려 돛대를 부러 뜨렸다.
모두들 또 한번 '악'하고 절규의 소리를 질렀다

'아'이젠 정말 죽었구나.
관세음보살의 신통력도 별수 없구나.'
우용택도 이렇게 생각 하면서 너도 나도 살 궁리를 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돛대가 부러진 뒤로는 그렇게 거세던 풍량도
점점 약해지고 빗줄기도 가늘어지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해가 나고 바다는 거의 평소처럼 정상이 되었다
배는 폭풍을 만나 몇군데 부서진 곳이 있었으나 운행에는 큰
지장이 없었고 여러 사람들이 물을 퍼내고 힘을 합하여
무사히 인천항에 도착 하였다.그야말로 몇시간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을 왕래 하다가 간신히 죽음에서 살아 난 것이었다
그 후 관세음보살님의 영험에 감탄한 우용택은 고향으로 돌아가
선산 도리사의 신도가 되었으며,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모두
관세음보살님을 열심히 믿게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당시 보문사에 와서 자주 관음기도를 올렸으며,
우용택과 친척간이었던 권상로 박사가 김대은 스님께
이야기하여 (관음신앙)에 수록하였던 것을 다시 정리 한 것 이다

"만약 큰 물결에 떠내려 간다고 할지라도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곧 얕은 곳으로 이르게 되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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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

-일타스님의 생활속의 기도법-

꿈은 우리 생활의 그림자요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낮에 먹은 마음이 그대로 연장되어 밤의 꿈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이 몽중가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망이 꼭 이룩되게 해주십사' 하고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 사람의 소망에 부응하는 편지 한 장을 주거나,
약을 주거나, 차를 한 잔 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와 같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망은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라고 한다.

곧 꿈속에서 받는 통지서는 합격 통지서요,
차를 한 잔 받아 마시거나 청심환 한 알을
얻어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징조이다.
꿈 가운데 열쇠를 하나 받으면 이튿날
생각지도 않던 돈이 들어오게 된다.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기도 영험담 중에는
삼종가피 중 이 몽중가피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약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 미아리에 40대의 보살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닦은 복이 많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돈도 잘 벌고 가정도 잘 돌보는 남편을 만났으며,
아이들도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여 근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안이 허는 병이 생겼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온 입안이 헐어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한의원을 찾아가니
'입안이 허는 병은 위장에서 온다'고 하며
위장약을 지어 주었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 더니,
마침내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여위어만 갔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
아이들의 재롱도 귀찮게 느껴질 뿐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가까이 있는 절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엎드리면 이빨이 다 쏟아지는 것 같아 절도 할 수 없었다.
입안이 퉁퉁 붓고 헐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 입병 좀 낫게 해주십시오."

온 종일 부처님만 쳐다보면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열심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을 내려 오셨다.
그리고는 다기(茶器)에 담겨 있는 물을 찻잔에 가득 따라 주셨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려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셨다.

"그냥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넘겨라."

그녀는 시키는 대로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거짓 말처럼 입병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매운 음식, 짠 음식,
그 어떠한 것을 먹어도 입안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감격하여 불교 신문에 이 사실을 투고하였다.
글 솜씨는 서툴지만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을 알리고자 투고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꼭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 念'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생각하면 그것이 참된 염불이요,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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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이마의 도끼

-철원:심원사-


옛날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심원사에
묘선이라는 젊은 스님이 있었습니다.
강원 공부를 마친 지 얼마 안되는 스님은 매사에 의욕적이었지요.
어느 날, 노스님을 모시고 산책을 하던 묘선스님은
노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했답니다.

『스님,
아무래도 절이 너무 낡아 보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살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엄두를 내겠느냐.』
『스님, 오늘부터 제가 백일기도를 드려 불사를 하겠습니다.』
묘선 스님은 그날로 백일기도에 들어갔지요.

젊은 스님의 기도는 간곡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 밤.

『묘선아, 네 기도가 그토록 간절하고 불심이 장하니
반드시 시주가 나타나 절 중창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화주를 구하러 나가도록 해라.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심원사 중창불사의 시주가 될 것이니라.』
꿈에 나타나신 부처님은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
잠에서 깬 묘선은 거뜬한 마음으로 길 떠날 채비를 차리곤
노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소승 화주길에 오르겠습니다.』
『오냐, 잘 다녀오너라.』
묘선 스님이 막 산문 밖을 나서는데 왠 나무꾼 하나가
아침 일찍부터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다 꿈 생각을 한 묘선 스님은 나무꾼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아랫마을에 사는 머슴 박씨였습니다.
『머슴 박씨가 우리 절 중창 불사 시주가 될 수는 없을 텐데…
그냥 지나칠까.』
묘선 스님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아냐,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인데….』

묘선 스님은 박씨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아이구, 심원사 스님이시군요. 어디 먼길 떠나십니까?』
묘선스님은 일손을 멈추고 공손히 인사하는 박씨에게
간밤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주가 되겠느냐고 물었셨지요.
박씨는 한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었습니다.
「50평생 못 간 장가, 이제 가서 뭘하나.
차라리 그 동안 머슴살이로 모은 재산 절 짓는데 보시하여
부처님께 공덕이나 지어야지.」마음을 결정한
박씨는 기꺼운 마음으로 스님께 대답했다.
『스님께서 제게 시주가 되라는 데는 큰 뜻이 있을 것입니다.
스님 말씀에 따라 40년간 모은 저의 전 재산을 불사기금으로
시주하겠습니다.』

『참으로 고맙소. 이 인연공덕으로 다음 생(生)에 좋은 인연을
받을 것입니다.』
박씨의 시주로 심원사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머슴 박씨가 시주를 한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만 자리에 몸저눕고 말았다.
그러나 돈을 모두 절에 시주한 박씨는 약도 쓸 수가 없었다.
주인집에서는 머슴이 일을 못하고 눕게 되자
공밥을 먹일 수 없다고 박씨를 절로 보냈다.
절에서는 박씨를 위해 극진히 간병하면서 정성껏 기도를 올렸으니
차도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병은 악화됐고, 끝내 박씨는 죽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묘선 스님이 순진한 머슴 박씨를 속여
결국은 죽게 했다고 이웃동네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묘선 스님은 더이상 심원사에 머물 수가 없었다.
절을 떠나기로 결심한 스님은
새벽예불을 올리러 법당으로 들어갔지요.
희미한 촛불 속에 부처님을 바라보는 묘선 스님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가피는 커녕 시주자를 죽게 한 부처님」이란
생각을 갖게 된 묘선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헛간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스님의 손에는 어느새 도끼가 들려 있었다.
스님은 법당으로 다시 들어가 부처님 이마를 도끼로 내리치고는
황망히 절을 빠져 나갔다.그 뒤 전국을
만행하는 묘선 스님의 발걸음은 늘 무겁기만 했다.
심원사 부처님 이마에 박힌 도끼가 빠지지 않는다는 소문은
전국에 퍼져 있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어느 날.
묘선 스님은 심원사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자신이 그 도끼를
뽑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심원사로 갔다.

절은 30년 전 불사가 중단된 모습 그대로였고 부처님 이마엔
도끼가 박혀 있었다.
묘선 스님은 참회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마침 그 무렵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는 돈독한 불자로서
심원사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손수 뽑겠다고 절에 와 있었다.
법당에 들어선 사또는 삼배를 올린 후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뽑았다.
도끼는 쉽게 빠졌다.
그 도끼를 들여다본 사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화주 시주 상봉」도끼에는 이렇게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모습을 법당 문밖에서 바라보고 있던 묘선 스님은
그때 비로소 부처님이 머슴 박씨를 죽게 한 뜻을 깨달았다.
스님은 사또 앞으로 나아갔다.
『소승이 바로 30년 전 이 도끼로 부처님 이마를 찍은 사람입니다.
사또님의 전생은 이 절에 시주하신 머슴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시주를 구한 화주승은 바로 저이지요.

화주승과 시주가 인연 있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시주 화주 상봉」이란 바로 오늘의 인연을 부처님께서
미리 계시하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선 스님의 설명을 들은 사또는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간 일어나 스님에게 삼배를 올렸다.
『스님, 이제 멀리 떠나지 마십시오.
부처님 뜻으로 인연 맺어 스님과 제가 다시 만났으니
심원사 불사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요한 돈은 제가 시주하겠습니다.』

심원사 중창불사는 30년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묘선 스님은 심원사를 중창한 후 그 절에 오래 머물면서
큰스님이 되어 많은 신도를 교화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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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속죄(時雲續罪)

묘향산 염선봉 절벽 위의 조그마한 암자 상원암(上元庵)에는
시운선사(時雲禪師)와 혜성(慧成)이라는 어린 동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시운선사와 절친한 친구의 아들인 혜성의 본명은 최치록(崔致祿)으로,
갓난 아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스님을 따라와서
이 암자에 살게 된 것입니다.

시운선사는 "내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달라."는 친구의
유언대로 혜성이에게 정성껏 글과 무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혜성이의 나이 스물에 이르자 혜성이의 장원급제를 위한
천일 기도를 남몰래 시작하였고,
천일 기도가 끝나는 날 혜성이를 불렀습니다.

"혜성아. 이제 속세로 내려가서 과거를 보도록 하여라."

"아니되옵니다. 스님. 저는 아직 공부가 미흡할 뿐 아니라
스님을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습니다.
스님. 조금만 더 있게 해주십시오."

"장원급제하여 백성들을 잘 보살피는 것도
부처님과 나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
이제 때가 되었느니라.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말고 내려가도록 하여라."

스님의 단호한 태도에 혜성은 더 이상 보채지 못하고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스님. 부디 만수무강하옵소서."

큰 절을 올리고 떠나가는 혜성의 뒷모습을 보며
시운스님은 끝없이 축원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디 혜성이가 입신양명하도록 은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어느덧 해가 바뀌어 화창한 봄날이 돌아오자,
시운스님은 묘향산 밑의 안주(安州)로 내려가 탁발을 했습니다.

이 집 저 집을 돌면서 적지 않은 공양미를 시주받은 스님은
암자를 향해 발길을 돌리다가 몇 가지 물건을 사기 위해
장터로 갔습니다.스님이 막 장터로 들어섰을 때,
젊은 거지 하나가 장삼자락을 잡고 애처롭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한푼만 보태 주십시오. 며칠을 굶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시운스님은 엽전 몇 닢을 꺼내어 가엾은 거지의 손에 쥐어 주다가,
문득 거지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너는 혜성이 아니냐?"
"앗. 시운스님!"
"그렇게도 오랫동안 부처님께 빌었건만,
장원급제는 고사하고 거지 신세라 말이냐?"

시운스님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기구한 운명과 처참한 현실에 대한
저주와 분노가 부처님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스님은 몸을 돌려 상원암으로 향했습니다.
백여 리나 되는 험한 산길을 한달음에 뛰어올라온 스님은
칼을 집어 법당으로 달려들어 갔습니다.

"이 허수아비 부처야! 그렇게도 사람을 속일 수 있단 말이냐?
에잇!"
스님의 손에 들린 칼은 쇠로 만든 부처님의 복부로 향했습니다.
"찡-."

칼은 부처님의 배에 깊이 꽂혔고,
실성한 듯 시운스님은 절을 뛰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방방곡곡을 돌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저주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언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시운스님의 발걸음은 묘향산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상원암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아, 부처님의 배에 꽂은 칼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스님의 발길은 저절로 상원암으로 향했습니다.
마침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암자에 도착하여 법당 문을 열자,
배에 칼을 꽂은 부처님이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깊이 죄의식을 느낀 시운스님은 먼저 부처님의 배에 꽂힌
칼을 뽑아 드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들어 갈 때는 그토록 쉽게 들어갔던 칼이
아무리 힘을 써도 뽑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꽂힌 칼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포기하고 법당 앞뜰에 앉아 옛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산 아래에서 요란한 풍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귀를 의심하여 아래로 내려다 보았더니,
여러 관속과 하인들을 거느린 행렬이 암자를 향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 마당이 요란해지더니
젊은 관속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안주 목사 행차시오."
할 수 없이 시운스님은 목사의 행차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가마에서 내린 안주 목사가 스님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안주 목사 최치록이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오. 혜성아! 네가 틀림없는 혜성이렷다?"

스님과 안주 목사가 된 혜성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곧이어 혜성은 그때 암자를 떠난 직후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을 하던 중
시장에서 스님을 만났다는 것과,
그뒤 병이 나아 과거에 급제하고 안주 목사에 제수되어
가장 먼저 스님을 찾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잠시 후 혜성은 시운스님을 모시고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합장 배례한 후,
부처님께로 다가가서 배에 꽂힌 칼을 한 손으로 쉽게
뽑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당돌한 소행을 용서하옵소서.
실은 어젯밤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이 칼을 빼도록 일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뽑은 칼을 시운스님께 건네 주는데,
그 칼에는 뚜렷이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운속죄(時雲續罪)."

시운스님은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1백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행하는 참회좌선(懺悔坐禪)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앞에 청수(淸水) 한 그릇과 부처님을 찔렀던 칼을 놓고
깊이 깊이 참회하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21일이 지나자 칼에 새겨졌던
'시운속죄'라는 글씨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시운스님은 참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자기의 죄가 소멸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윽코 단식참회 30일이 되었을 때 탈진한 시운스님은
부처님 앞에 쓰러져 입적하였습니다.

그때가 1459년(세조 5) 8월이었고,
소식을 들은 안주 목사 혜성은 후히 장례를 치르고,
절기에 따라 극진히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가피가 빨리 찾아올 때도 있고
늦게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같은 태양이 천하를 비추지만,
봉우리에는 빛이 먼저 찾아 들고 골짜기에는 빛이 나중에
찾아 드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의 가피가 조금 늦게 찾아 든다고 하여 조급증을 낼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큰 애착과 큰 기대는 큰 착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마치 이 시운스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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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살려준 염불신행
(보광스님)

14살때 어머니위해 철야 관음기도
대학생때 15일간 지장기도 죽을 각오로 기도발원, 지금까지도 큰힘


나의 경험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기도에 대한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기도에 몰입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니 14살 때인 것 같다.

우연히 득병하신 어머님에게는 백약이 무효였다.
그래서 마을 뒤 단석산에 있는 백석암(白石庵)이라고 하는
암자에 가서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으며,
법당에는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질 정도로 외풍이 세었다.
주지스님의 지도에 따라서 음력으로 12월 초하루부터 시작하여
납월 팔일에 회향하는 관세음보살 기도였다.
스님께서는 어린 나를 두고 “너희 어머니가 회복하려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러라. 밤잠도 자지말고 다른 생각도 말며,
오직 관세음보살만 찾아라”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관세음보살님이 어머님을 살려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법당에서 하룻밤, 이틀 밤을 세우면서
일심으로 불렸을 뿐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7일이 지나 회향일이 되었으며,
그 날이 바로 성도절이었다.
7일 동안을 법당에서 철야을 하였으나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른다.
추웠다는 생각보다는 한 밤중에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질 것 같아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밤 새워 치는 목탁소리에 주지스님도
방에서 잠을 자지 않고 염불하셨던 것 같다.

당시의 기억 가운데 가장 신기하였던 것은 회향을 하고 하산하는데
마을의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소 우는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등 모든 소리가 관세음보살의 염불소리로 들렸던 적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이틀정도 계속되었던 것 같다.
물론 어머님의 병세도 호전되어 완쾌하셨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출가한 뒤에야,
“모든 삼라만상이 부처님 아님이 없으며,
모든 소리가 법음(法音)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또 한 번의 경험은 출가 한 뒤 대학 2학 때였던 것 같다.
그 해 여름 방학에 은사 스님이 계시는 경주 ‘중생사(衆生寺)’에서
지장기도를 15일간 철야로 한 일이 있었다.
처음 시작 할 때는 법당에서 기도하다가 죽을 각오로 기도발원을 하였다.
앉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기대지도 않고,
서서 목탁을 치면서 24시간을 계속하여 염불을 하였다.

밥 먹고, 세수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법당에서
염불을 계속하였다. 처음 하루는 시작하는 마음으로 보냈으며,
이틀 삼일 사일이 지날수록 더욱 힘들었으며, 칠일이 고비였다.
한 밤 중에 기도를 하고 있으면, 약간 떨어진 요사채에서 잠자는 소리,
코고는 소리, 잠꼬대하는 소리까지 들리곤 하였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고 팔일이 되고,구일이 지나 십일이 넘어서니
모든 잡념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몸은 피골이 상접하였지만,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으며, 상쾌하였다.
마치 날아갈 것 같이 정신은 맑았다.
보름 동안의 철야기도를 회향하고 나니,
몸무게는 10키로가 줄었다.
그러나 너무나 또렷하고 맑은 마음은 마치 유리그릇과 같이
투명하다고 생각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경험은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아마도 내가 정토염불신행을 하게 된 동기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어릴때의 관음기도와 청년기의 지장기도가 이제는
아미타불염불로 계속되고 있는 자신을 돌이켜 볼 때,
나의 근기에는 염불신행이 가장 적합한 수행방법인 것 같다.

보광스님/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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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로 고친 허리병

(일타스님)

경북 영천에 과수원을 경영하는 50대 초반의 처사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지금부터 수년 전, 그 처사는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끼며
굴신 조차 할 수 없는 허리 병에 걸리고 말았다.

처사는 들것에 실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고,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다니며 침도 맞고 한약도 달여 먹었지만
전혀 효험이 없었다.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비구니 스님이 된 처사의 여동생이 찾아왔고,
여동생은 관세음보살 기도를 할 것을 권하였다.

"오라버니, 관세음보살을 지성껏 부르면 죽을병도 능히 고칩니다.
그까짓 허리 병 하나 못 고치겠습니까? 누워서 특별히 할 일도 없을 것이니,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부지런히 관세음보살을 외우십시오"

얼마 동안 처사는 동생이 시키는 대로 관세음보살을 외웠다.
그러나 깊은 믿음이 없었던 그는 열심히 외우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영영 불구자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과 함께 염불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져 버렸다.

'관세음보살을 외운다고 어찌 허리 병이 나을까 보냐? 나도 참 바보지.
일은커녕 걷지도 못하고 방구석에만 누워 있어야 하는 이내 신세....
아, 차라리 콱 죽어버리자.'
그는 가족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도 못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
먹고 죽어버리게 농약 가져오너라. 빨리 가져 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가족들을 향해 '농약 먹고 죽어버리겠다.'고 소리치자,
견디다 못한 가족들은 다시 동생 비구니 스님을 청하였다.

"오라버니,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간절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러 보세요
틀림없이 허리가 나아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관세음보살이 어떻게 고쳐? 여러 소리 말고 농약이나 가져 와! 콱 죽어버리게."

"그렇게 농약 먹고 발광하다 죽고 싶소?
"그래, 이제 사는 것도 지겹다. 빨리 농약이나 가져 오너 라."
헛간으로 뛰어간 동생 비구니는 농약 한 바가지를 푹 퍼 가지고 와서
오라버니의 입 앞에 갖다대며 소리쳤다.

"자, 입을 벌려요 내가 부어 넣어 줄 테니까."
"뭘 망설여요? '아'하라는데,처사는 여동생의 당돌한 행동에 깜짝 놀라
입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농약을 먹지 않으려거든 지금부터 관세음보살을 부지런히 외우세요
부지런히 외워 꿈속에서도 관세음보살을 외우게 되면,
묘한 약이 생기기도 하고 용한 의사를 만나 병이 금방 낫게 될 것입니다."

여동생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처사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소리내어 관세음보살을 찾기가 쑥스러워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7일째 되던 날 저녁, 처사는 문득 꿈을 꾸었다.

처사가 사는 동네에 의사 한 명과 세 명의 간호사가 갑자기 찾아와서,
"악성 전염병이 돌고 있으니 모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동네 사람 모두를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처사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의사 앞으로 가자,
의사는 다른 사람은 거들떠볼 생각도 않고 처사를 끌어당겨
청진기로 진찰을 하는 것이었다.

"보통 주사로는 당신 병을 고칠 수가 없소 저 침대 위에 누우시오"
처사가 침대 위에 눕기 바쁘게 의사는 맥주병 만한 큰 주사기를 가져 와서
인정사정을 두지 않고 허리에 꽉 찌르는 것이었다.

"아야 ! " 처사는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고.
꿈에서 깨어나서 보니 자신이 벌떡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서서히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불편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구제불능의
허리 병이 완전히 나아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처사가 조급증과 무기력 속에 잠겼을 때 영영 기도를 그만두었다면
어찌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을 수 있었겠는가?

여동생 스님의 적절한 방편으로 처사는 관세음보살을 찾는 기도를
마음속으로라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허리 병이 완쾌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수많은 생각들을 잘 단속하여야 한다.
오히려 잡생각이 일어날수록 마음을 굳게 다져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나를 속일 불보살은 없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더욱 부지런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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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된 동래 온천장의 막내보살

(일타스님)

부산 동래 온천장에는 내가 아는 보살들이 몇 있습니다.
그중에서 나이가 제일 어리다고 하여
'막내보살'로 불리는 이 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막내보살은 오래 전부터 진로소주 도매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보살계를 받고 부터는
자꾸만 자신의 직업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술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보살의 십중대계 중
제5계로 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씩 절에 갈 때마다
부처님 전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처님!술 도매업 대신 다른 직업을 갖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절을 찾을 때마다 빌기를 3년,
하루는 아는 사람이 와서 자꾸만 땅을 사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하였는데,
거듭거듭 재촉 하는 바람에 갖고 있던
여유 돈으로 땅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빈땅을 그냥 놀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 땅에 울타리를 치고 조그마한 움막 한 채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땅을 돌볼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살게 되다 보니
자연 식수가 필요해져서 우물을 파게 되었습니다.
인부를 사서 땅을 꽤 깊이까지 파들어 갔을 즈음,
아주 큼지막한 바위 하나가 걸려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이 다른 곳을 뚫자니 그동안의 공이 아까웠습 니다.

"어렵더라도 바위를 부숩시다."

이렇게 하여 바위를 쪼개었더니,
놀랍게도 그 사이로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땅 값이 수십 배나 뛰어올라 막내보살은 큰 부자가 되었고,
그 땅에다 몇 채의 호텔을 지어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마음에 걸렸던 술 도매업은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활 속의 기도.
심중의 소원을 불보살님께 고하면서 기도 하다 보면,
변화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찾아들게 됩니다.
반대로 좋은 소원, 좋은 마음가짐을 가졌다가도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해 버리면
결코 벗어나지도 새롭게 변화할 수도 없게 됩니다.

포기하거나 버리지 말고 수시로 기도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힘이 생겨나게 되고,
힘이 모이면 성취가 저절로 뒤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타스님기도영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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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붕괴 현장의 기적 같은 생환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순식간에 일어난 서울 서초동 삼풍 백화점의
붕괴사고는 온 나라를 경악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5백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인재 서울의 한 최고급 백화점의 붕괴가 가져다 준
충격! 사람들은 한동안 삶의 방향을 잃은 듯 애만 태워야 했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준 기적이 있었습니다.

사지(死地)에서 230여 시간 만에 구출되어 첫 번째 기적을 연출한
20세의 최명석군, 285시간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18세의 유지환양,
19세 소녀의 힘으로 죽음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16여일 만인 377시간만에 제3의 기적을 일궈낸 박승현양.
그런데 이들의 기적적인 생환 뒤에 하나같이 기도와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특히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15일 17시간을 버틴 박승현 양의 생존은
우리 불자들에게 큰 교훈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간밤에 놀러온 고등학교 동창 정원이와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 새벽에야
잠이 든 탓인지 승현이가 6월 29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몸이
찌뿌등한 상태였습니다. 그날은 원래 비번이었지만,
집안 일이 있다는 선희 언니와 근무 날짜를 교대하였던 것입니다.
‘바꾸지 말 것을 그랬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친구 정원이와
삼풍백화점으로 함께 출발했습니다.
오후 5시 50분. 정원이와 항께 지하 3층 식당에서 간식을 먹은 승현이는
지하 1층의 아동복 코너로 갔고,
정원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매장 으로 향했습니다.
승현이가 매장안의 카운터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바닥이 쿵 소리를 내며 크게 흔들리더니 천정에 붙어 있는
벽돌들이 눈앞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승현아! 피해!"
누군가가 소리를 쳤지만 바닥이 흔들리고 먼지가 앞을 가려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물탱크가 뒷머리를 때려 승현이는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사방은 깜깜했고 뒷머리에서는 피가 흘러 뜨뜻했습니다.
옷을 찢어 머리에 댄 승현이가 조심스레 손발을 뻗어 보았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몸을 옆으로 굴려 보니
두세 바퀴 구를 정도의 여유는 있었습니다.
사방에서는 절규와 신음소리가 들렸고, 오른쪽에서는 같은 매장에서
근무하는 언니의 비명소리도 들렸습니다.
머리 뒤에서도 옆 매장에서 근무하는 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서로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바닥을 만져 보니 물이 고여 있었지만
심한 냄새가 나는 녹물이어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원한 포도주스가 내내 승현이의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같은 매장에 근무하는 언니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언니 ?
그러나 옆 매장의 언니만 힘없는 신음소리를 낼 뿐 같은
매장 언니의 대답은 영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승현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옆 매장 언니의 꺼져가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도 곧 죽을 것 같애----
"언니, 언니 !"
그러나 정적뿐이었습니다
그때 포크레인이 머리 위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누가 구하러 왔는가 보다
입이 바짝 탔습니다. 그러나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오히려 양쪽 옆의 콘크리트 더미가 밀려들면서
팔을 제대로 뻗을 수도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른쪽 무릎에도 콘크리트 더미가 밀려들어 무릎을 펴기도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습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돼. 나는 꼭 살아야해.
몇 달 전 장사가 안 된다고 식당을 그만둔 엄마 아빠를 위해서도,,,...

동시에 승현이는 평소 다녔던 금용사 주지 월공스님의 법문이 떠올랐습니다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염송 하세요.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원을 천수천안(千手千眼),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승현이는 그때부터 관세음보살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찾았습니다.

한편, 승현이의 어머니 고순영 보살도 낮에는 서울교육대학교에 설치된
실종자 가족본부 임시 법당에서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불렀고,
밤에는 금용사를 찾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공을 드렸습니다.
안팎에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시간의 흐름마저
잊어버린 승현이가 갈증과 허기로 입술이 새까맣게 타들어 올 때쯤이었습니다.
깜빡 잠이 든 승현이에게 연초록빛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는
숲이 보였습니다. 동시에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습니다.
타는 목을 축일 수 있는 감로수도 거북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승현이는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눈에 익은 그곳은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자주 찾았던 월계동 금용사였습니다.
승현이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법당을 향해 합장을 했습니다.
그때 법당으로부터 노스님 한 분이 천천히 걸어나와,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무언가를 승현이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빨간 사과였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눈을 뜨자 사과는 손에 없었고, 잠깐의 자유는 꿈이었습니다.
갑자기 위에서 "탕탕탕" 소리가 들렸습니다.
때마침 지하 1,2층 잔해 제거를 하던 안양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잔해더미 속에서 높이 10cm, 너비 30cm가량의 구멍을 발견하고,
구멍을 넓히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순간 승현이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살려 주세요.
이때가 7월 15일 오전 10시 58분.생존자 확인 무전이 지휘본부에 전달되었고
현장과 온 나라는 환호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발견된 지 불과 17분만에 구조되어 승현이는 병원 으로 향했습니다.
15일 17시간 만에 구출되어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진 승현이를 진찰한 의사들은,
"맥박이 조금 빠를 뿐, 호흡과 혈압은 거의 정상적인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의료진들은 승현이가 매몰된 후 구조될 때까지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물을 전혀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보통 5--7일. 길게 잡아야 7--10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위 있는 의사들은 한결 같이 말했습니다.

"오래 물을 먹지 않아 탈수현상이 일어나면 콩팥 기능에 이상이
먼저 발생하는데, 박승현 양은 콩팥 기능에 별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물을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바,
만일 사실이라면 놀라운 기적으로,의학적으로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박승현 양의 상상을 초월한 기적 같은 생환! 과연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관세음보살의 가피요 불보살의 불가사의한 신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첫 번째 기적을 보인 최명석 군의 어머니도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심정으로
간절히 관세음보살을 불렀고, 유지환 양의 어머니 정광임 보살도 낮에는
자원봉사자, 밤에는 중풍으로 입원한 남편을 간호하면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였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염송을 통하여 이룩된 이 세 기적은 불심(佛心),모심의 승리요,
온 국민의 승리로서 영원히 기록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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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인과응보를 깨닫다/일타스님

현대의 고승 중 제선스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은사인 윤포광 스님이 제주도에서 왔다고 하여
'제선'이라는 법명을 주었습니다
스님은 출가하기 전,
일본에 유학하여 대학을 다니면서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졸업 후 제주도로 돌아와서 하는 일 없이 지내자,
일본 경찰들이 요시찰인물로 지목하여 감시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집안 어른들이 적당한 색시가 있다며 결혼을 시켰고,
얼마 후 잘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놈이야.
얘를 대통령감 으로 키워서 이 나라를 독립시켜야지?
아들에게 특별한 정을 느꼈던 그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옷도 최고급,먹는 것도 제일 좋은 것들로만 사 주면서 애지중지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잘 놀던 아이가“아야?”하더니
탁 쓰러져서 영영 깨어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이의 시체를 안고 몇 날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울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의 우울증은 커졌고 집안은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돈 백원을 주면서 여행을 다녀올 것을 권했습니다.

"금강산 구경이나 다녀오너라."
그러나 금강산을 가기는커녕 서울에서 내기 바둑을 두다가
돈 백원을 모두 날려 버렸습니다.
어차피 특별한 의욕이 없었던 그는 노동판에서 일도 하고 구걸도 하며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럭저럭 그의 발길은 묘향산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넓은 감자밭을 일구며 토굴살이 하는 스님을 만났습니다.
토굴에서 며칠을 붙어 살다가 스님과 조금 가까워지자,
그는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죽어 버린 것일까요?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는 제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

"그것 알아보는 것이야 간단하지.
7일만 잠 안자고 기도하면 금방 알 수 있어."

"정 말입니까?"

"만일 그렇게 해서 기도성취 못하면 내 목을 베어라.
아니,부처님 목도 떼어 버려라."

"좋습니다 "

그날부터 기도는 시작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런데 평소 때는 그토록 잠이 없던 사람이 기도를 시작하자
잠이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그 졸음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졸면 언제 나타났는지 주장자로
머리를 탁 때리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때려치워라 벌써 졸았으니 소용없어
기도성취 보려거든 다시 시작해."

며칠 동안 졸고 혼나고 졸고 혼나기를 거듭한 그는
'먼저 잠안자는 연습부터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깡통을 두드리며 감자밭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렇지만 졸음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밭두렁에서 떨어져 거꾸로 처박혔는데,
거꾸로 처박힌 채 잠에 골아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깨어나서 보면 목이 퉁퉁 부어 있고.....
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며 잠과 싸운지 42일째 되는날,
물건들이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하는 등
시야는 흐렸지만 잠은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기도를 시작해라."

스님의 지시대로 그는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불렀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죽은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속았구나 부처도 관세음보살도 원래 없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불상의 목을 떼겠다며 불단 앞으로 가다가
탁자에 소매가 걸려 앞으로 넘어졌습니다.
바로 그 찰나,아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워 안으려 하자,
아들은 '히죽' 웃으며 저만치 물러서는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겨우 다가가면
또 도망가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마침내 그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습니다.
'저런 놈은 아예 죽여 버려야 한다.
저놈을 어떻게 잡아죽일까?
돌멩이로 머리를 박살낸 다음 밟아 죽일까?'
이렇게 못된 생각까지 하다가 아이의 엉덩이를 발로 차자,
아이는“아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더니 개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의 뇌리로 일본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머물렀던 친척 아저씨 집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개는 그를 열심히 따랐을 뿐 아니라 말귀도 매우 밝았습니다.
산책을 갈 때도 극장구경을 갈 때도 개는 열심히 쫓아왔습니다.
"너는 극장에 못 들어간다.집에 가 있다가 나중에 오너라.
그러면 개는 집으로 갔다가 그가 극장에서 나올 시간에 맞추어
다시 와서 좋다고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영리하던 개가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통 먹지를 않았습니다.
얼마 더 지나자 뼈만 앙상하게 남아 곧 죽을 것 처럼 되었습니다.
보기가 애처로워진 친척 아저씨는 개를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개가 죽으면 재수가 없다
상자에 실어서 교외로 가지고 나가 버려라."

할 수 없이 개를 담은 상자를 자전거에 싣고 교외로 나간 그는,
숲 속에 상자를 내려놓고 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버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구나
네가 죽을 병이 들어 밥도 먹지 않으니.......
여기 있다가 편안하게 죽어라"
순간,개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아팠 지만 일어서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개가 '왕'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습니다.
비실비실 쫓아오다가 쓰러지고, 쫓아오다가 쓰러지고.......
어느덧 날도 저물어 교외의 어떤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였는데 거기까지 쫓아온 개는
그의 곁에 바짝 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버리고는 못간다'는 듯이.
마침 바짝 마른 개를 측은하게 여긴 그 집 주인은
된장국에 밥을 말아 주었고,
이제까지 먹지 않던 개는 기운을 차려야 겠다는 결심이나 한 듯
그릇까지 싹싹 핥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도 된장국 한 그릇을 말끔히 먹고는
병이 나은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자 개는 죽을 힘을 다하여 쫓아왔습니다.
천천히 달리면 천천히, 빨리 달리면 빨리 쫓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개가 미루나무에 기대 오줌을 누는 틈을 타서
자전거를 힘껏 몰았습니다.최대 속력을 낸 결과,
그는 개를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 달이 지난 후,그 개가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학교가 파하고 돌아와 보니 개가 와 있었는데,
개는 섬뜩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고,
만지는 것도 옆에 오는 것도 허락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주일 정도 집에 있다가 개는 다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하, 그 개가 나의 아들로 태어나서
제 찢어진 마음의 앙갚음을 나에게 하였구나?

그는 인과의 법칙을 깨닫고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 하여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뒤 제선스님은 참선수행하여 높은 경지를 이루었고,
나이 육십이 조금 못 되었을 때 천축산 무문관으로 들어가
방 밖으로 한 발자욱도 나오지 않고 6년 동안 정진하였습니다.
그런데 6년을 며칠 앞두고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한 거사가 스님의 수행을 자랑한답시고
TV인터뷰를 강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도 자취를 감추고 계신 제선스님은
사람의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고고한 학처럼 살아가고 계실 것입니다.

부디 바라건대 부지런히 기도해 보십시오,
일이 내 뜻과 같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꼭 풀어야 할 일인데도 풀리지 않을때,
불보살님의 큰 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해 보십시오.
특히 잠을 자지 않고 하는 기도라면 기간은 7일로 족합니다.
반드시 풀어야 하고 해결해야만 할 간절한 문제가 있다면
잠을 자지 않고 7일 동안만 기도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모든 매듭이 풀어지고 뜻과 같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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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께 백일기도하고 눈 뜬 중년신사 (법철스님글 전재)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향가 가운데 도천수대비가를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千手), 천안(天眼)의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향가를 통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중생이 슬픔속에 관음보살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만산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우는 화창한 봄 날. 산새소리 가득한 강진 무위사에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필자는 그때 무위사 큰법당인 극락보전 앞에 있는 고목나무 밑에 놓여 있는 깨어진 멧돌 위에 정좌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남자는 필자에게 정중히 합장 인사를 하고는 어눌한 음성으로 무위사에 관세음보살님의 국보 벽화가 봉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원천리 찾아왔으며 관음기도를 지성껏 모셔보고 싶노라고 허락을 구해왔다.

그는 슬픈 얼굴로서 후리후리한 키에 회색 양복을 입었고 한 손에는 낡은 트렁크를 힘겹게 들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나 필자는 이내 그의 설명을 듣고 속사정을 알았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는 경북 포항 사람으로 그동안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며 일개미처럼 열심이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 왔다. 갑자기 두 눈이 어두워 오더니 마침내 눈 뜬 장님이 되다시피 되고 말았다.
“아, 내가 앞을 못 보게 되다니….”
그는 나날이 잃어가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발악하듯 몸부림을 치며 유명하다는 병원의사는 성지순례하듯 찾았다.

병원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절망에 빠져 울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 마지막으로 신불(神佛)께 기도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 그는 무위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오정수(吳定洙). 필자는 오정수씨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무위사에서 기도할 것을 흔쾌히 허락하였다.

오정수는 각오의 뜻으로 삭도로 머리칼을 밀어 버렸다. 그리고 극락보전안에 있는 후불벽화인 수월백의관음벽화 앞에서 촛불과 향화를 받들면서 백일을 기한하고 천념 염주를 헤아리며 지성으로 관음기도를 올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정수의 간절한 기도소리는 무위사의 적막한 도량을 넘쳐 흘렀다.

죽기를 한하고 지성으로 기도하던 오정수는 백일기도가 끝나가는 즈음에 놀랍게도 두 눈이 밝아졌다고 부르짖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확신합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오정수는 다시 트렁크를 들고 필자 앞에 섰다. 눈이 웬만하니 걱정하며 고대하는 처자에게 달려가고 싶고,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 가장의 책무를 다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작별하는 즈음에 오정수는 호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 그동안 산사에서 체류하게 해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부족한 돈이지만 시주금으로 받아달라고 간청하며 필자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 필자는 빙긋 웃고 다시 그 돈을 돌려주며 기도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치하만 했을 뿐이었다.

“우리 인연 있어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필자는 멀어져가는 버스 차창을 통해 오정수씨의 흔드는 손을 답례하여 마주 손을 흔들면서 내내 앞서의 신라의 향가를 생각하였다.

― 무릎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천안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무위사 수월백의관음보살님이 고해중생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고해대중이여, 우주에 의지할 성인 가운데 관세음보살님을 권장하오니, 우리 모두 때가 되면 이승의 인연들을 작별하면서 한과 눈물속에 홀로 머나먼 저승으로 떠나갈 때 까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인생을 살아갑시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세연이 다해 육신의 탈을 벗고 어둠속에 홀로 울며 머나먼 윤회의 길을 떠나려 할 때 반드시 광명으로 나투며 현신하여 우리의 영혼을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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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받아 마시고


대구시 동구 덕곡동 대덕화보살님의 수기


저는 오래전부터 대장염을 앓아왔습니다.
빈혈이 심해 병원에 갔다가
궤양성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도 몇 년간 꾸준히 다녔지만
증세는 좋아졌다간 다시 나빠지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간 치료하면 낫는다고 하는데
저는 완치가 되지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식이요법은 물론 좋다는 약은 다 먹어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빈혈로 밖을 다니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모든 약을 중단하고 음식물로써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데
몸이 그 음식을 받아주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유산을 권했습니다.
산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

그러다가 남편이 결혼 전에 가끔씩 나가던 영남불교대학에서
'좋은인연 신문'을 가지고 왔더군요.
집에서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워 뭐든지
읽을거리를 가져다 주곤 했습니다.
그 신문을 보다가 신행수기를 써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로써 가피를 입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도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졸라 절을 찾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습니다.
또 지금 낳지 않으면 언제 또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몸이 더 건강해지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이상하게도 ㅇㅇ불교대학·관음사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노천법당에 서 계시는 관세음보살남을 뵙는 순간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습니다.그
러나 남편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법당을 둘러보면서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인지 곧 어지럼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제 안색을 살핀 남편이 저를 얼른 노천법당에 앉혔습니다.

그러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몸에서 힘이 좍 빠져나가고
저는 그만 남편에게 기댄 채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남편이 제 몸을 주무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봐도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언뜻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제 옆에 서계신 관세음보살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관세음보살님!
아기를 낳고 싶어요.살려주세요'

관세음보살님이 곁으로 다가오시더니 제 이마를 짚어보시고는
손에 든 감로수병을 천천히 기울였습니다.
갑자기 온몸에 향기로운 감로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저는 감로수에 머리까지 다 잠겨버렸습니다.
감로수는 햇살을 받아 사방으로 무지개 빛을 뿌렸습니다.
잠시 후 관세음보살님이 다가오시더니
다시 이마에 손을 짚으셨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 많은 감로수를 저 혼자 다 써버려서 어떡합니까!"

관세음보살님은 환하게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감로수는 곧 저의 마음이니 한량없습니다.
이 온 우주,온 법계를 적시고도 수억겁 동안 흐릅니다."

저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그 감로수의 물결 속에서
삼배를 올렸습니다.절을 하면서도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마치 날아갈듯 했습니다.

"여보!"

남편의 절박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회주스님께서 제 이마에 손을 얹고 계셨습니다.

"보살님,괜찮으십니까? 구급차를 불러두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저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무릎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괜찮습니다.스님."

"여보?"

남편이 울먹이며 저를 불렀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마시고 완전히 몸을 담그기까지 했어요!"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괜찮은지 의심스러워 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보았습니다.
정말 멀쩡했습니다.어지럽거나 구토 증세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나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뛰어도 보았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서야 남편은 제가 하는 말을 믿었습니다.

대장염은 물론이고 빈혈과 그 외
합병증도 증세가 완화되어 있었습니다.
생활하는데 조금의 불편도 없었고 약을 먹지 않고도
빈혈이 차츰차츰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2주 쯤 뒤에는 현기증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이까지도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후,저는 가끔 회주이신 우학스님의 꿈을 꿉니다.
한번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출연료를 받아야겠구만'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우학스님의 은덕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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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심 보살 아들의 병을 완치시켜주신 관세음보살


안성에 사는 대원심 보살은 아들이 위암말기로 진단되어 죽음을 선고받자 괴로움을 가눌 길이 없어 청룡사의 관세음보살을 찾아갔다. 이미 80세가 넘은 노보살인지라 절을 올리기 힘든 처지였다. 대원심 보살은 다만 가만히 벽에 기대어 앉아 관세음보살을 우러러보며 念하였다.

"관세음보살님,부모가 죽은 다음 자식이 죽는 것이 이 세상의 순리이온데, 저의 업이 얼마나 중하길래 이렇게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하나이까? 자비로우신 관세음보살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3일 밤낮을 아들의 병이 기적처럼 쾌유되기를 기원하며 관세음보살을 찾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 때 스님 한 분이 활짝 핀 연꽃 한송이를 대원심보살에게 주었다. 꿈을 꾼 것이었다.

보살은 상서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치유불능이라는 진단을 했던 서울대학교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재검사결과 위암의 흔적은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담당의사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라며 매우 신기해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아들의 병을 완치시킨 것이었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관음신앙. 관음기도법 김 현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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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길에서 다시 인간으로' (관음기도 영험담)


1924년 7월의 '불교'지 창간호에는 '冥路(명로)에서 다시 인간'이라는 제목의 신행영험담이 수록되어있다.

이 영험담의 주인공인 원각화보살은 서울 대각사의 신도로서,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 순득을 키우며 살았다. 원각화보살은 7일에 한번씩 백용성 스님께서 설법하는 대각사 법회에 참석하였고, 평소에도 관세음보살 염불을 잊지 않았다.

이러한 원각화보살에게 뜻하지않은 시련이 닥쳐왔다. 금쪽같은 딸 순득이가 16세가 된 해 12월에 병을 얻은 것이다. 처음 감기처럼 시작한 병은 폐렴으로 악화되더니, 심한 기침과 고열이 계속되면서 점점 사경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종합병원에 입원을 시켰으나, 순득의 병은 낫지않았고, 명의를 찾아다니며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효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방법으로 수술을 해보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수술을 받는다고해도 환자의 몸이 쇠약할대로 쇠약해져 있어 살아나면 천행이라는 것이었다.

수술을 해야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원각화 보살은 기로에 놓이게 되었고,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위험하기가 마찬가지라면 수술을 하지않고 최선을 다해보자. 이제 내가 의지할 분이라고는 관세음보살님밖에 없다.'

원각화보살은 딸을 대각사로 업고 가서 법당 바닥에 눕혀놓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순득이가 죽더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들으며서 죽게 하겠다는 각오로 관세음보살을 애타게 부르고 또 불렀다. 그야말로 일념의 기도를 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이 잠들어 있던 딸이 부르짖었다.

"싫어요, 가기 싫어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래요."

원각화보살은 딸을 급히 깨웠고, 순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꿈 이야기를 하였다.
오색찬란한 가마가 누워있는 순득이앞으로 다가오더니, 가마에서 관세음보살님이 내려 말씀하셨다.

"순득아, 나와 함께 이 가마를 타고 가자꾸나."

"관세음보살님, 저는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해요."

순득이가 거듭거듭 고집을 부리자 관세음보살은 측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씀하셨다.

"순득아, 너의 정해진 수명은 17세란다. 하지만 너의 효성이 지극하고 어머니의 신심이 돈독하니 명을 연장시켜주지 않을 수 없구나."

순득의 꿈 이야기를 들은 원각화보살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더욱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찾았고, 며칠 후 관세음보살은 원각화보살에게 현몽하엿다.

"순득의 병을 완전히 고치려면 감로수를 마셔야 한다. 감로수는 삼청동 성채의 절 뒷쪽에 있는 석벽과 석벽 사이에서 솟아나오느니라."

이튿날 원각화보살은 삼청동으로 가서 하루종일 감로수를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피로에 지친 그녀는 잠시 바위위에 주저앉았고 , 바위 앞쪽으로 배어나오는 물기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급히 그곳을 파서 웅덩이를 만든 다음 고여드는 물을 떠다가 딸에게 먹였지만 효험이 없었다.

원각화 보살은 감로수를 찾기위해 매일 삼청동 뒷산으로 올라갔다. 입으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외며 감로수를 찾아 헤맨지 일주일. 마침내 원각화보살은 북악산 정상 가까이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석벽을 찾아냈다. 맑고 정갈한 물이 분명 돌틈에서 솟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원각화보살은 관세음보살께 감사드리며 그 물을 담아다가 딸에게 먹였다. 그리고, 물에 몸을 씻기기도 하였다. 10여일이 지나자 딸의 엉덩이에서 흐르던 고름이 멎었고, 얼굴에는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10여일 후 순득의 병은 완치되었다. 의사가 병을 고쳐준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께서 고쳐준 것이다 어머니의 일념에 감응한 관세음보살께서...

출처: 관음신앙.관음기도법(김 현준저) 도서출판 효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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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절망에서 벗어나게 한 관세음보살의 가피력


일제 말기, 논산군 논산읍 등화동에는 강태희라는 이가 살고 있었다. 선대에는 한 해에 수천석을 추수하던 집안이었으나 차츰 몰락하여 산비탈의 오두막을 빌려 살 지경에 이르렀다. 집안의 몰락과 함께 모든 의욕을 상실한 강태희씨는 깊은 병이 들어 자리에 눕고 말았고, 부인이 떡장수를 하여 겨우 연명하였다.

하루는 강태희씨의 집에 보명사의 자명스님이 찾아왔다. 강태희씨의 문중 산에 보명사를 짓도록 해준 것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집안사정과 병들고 지친 모습을 접한 자명스님은 간곡히 권하였다.

"불교에 귀의하십시오. 내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는 부처님께 의지하고 매달려 조르는 것이 제일입니다. 정성껏 기도해 보십시오."

"지금 형편으로는 기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처사님, 기도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스러운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맑은 물 한 그릇을 올리고 불보살님의 이름만 외워도 됩니다. 속는 셈치고 노는 입에 염불을 해보십시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혼자서 기도하기 힘들면 우리 절에 찾아오십시오. 소승과 함께 염불을 하십시다."

자명스님이 간곡히 기도를 권한지 10여일이 지난 어느 날, 강태희씨는 보명사를 찾아왔고, 스님은 반갑게 맞이하여 방을 하나 내어주었다.

"우선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십시오."

그는 스님의 지도에 따라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고, 백일 정도 지났을 무렵 관세음보살의 현몽이 있었다. 노인으로 모습을 바꾼 관세음보살이 불그스름한 물을 건네준 것이다.

"마셔라."

姜泰熙씨는 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몸은 날아갈듯이 가벼워져 있었다. 그 뒤 그의 가족은 열렬한 불자가 되었고, 집안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소리가 아침저녁으로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강태희씨의 부인은 떡장수를 그만두고 물감장수 행상을 하였고, 물감을 팔러다니다가 알게된 주단 포목 도매를 하는 사람으로부터 "옷감을 외상으로 줄테니 옷감장수를 해보라."는 제의를 받았다. 마침내 그녀는 옷감을 떼어 시골로 다니며 파는 보따리 장수를 시작하였고,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3년이 지나지않아 가게를 얻을 수 있을만큼의 돈을 모았으며, 운이 활짝 열려 가게를 연지 몇 년만에는 논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갑부가 되었다.

어두운 불행의 기운을 밝음으로 바꾸어 놓는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있었던 것이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간 김 현준저 관음신앙,관음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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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부른 첫번의 영험

-글쓴이/모이-

나무대자대비 원력홍심 구고구난 관세음보살마하살

처음은 불교를 입문하기전
불교를 다니고싶다는 마음만 가득할때 아마 그때는
부산에 살면서 범어사라든가 통도사에 걍 절에가기만 했지
법당에 들어가 참배 하는법도 몰라 멀건히
법당 문앞에 서서 부처님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지나가는 스님께서 들어가서 절을해도 된다는 말씀에
아무도 안볼때 얼른 들어가서 절을 한번하고 나오는데도
누가 날볼까봐 후닥닥 뛰쳐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
그시절에 집을 이사하게되어서 이사하고 이틀째되는 날 .......

잠을 자다가 눈을 떴다 나 혼자 자는 방에
저만치 구석에 왠 여자의모습이
위에옷은 흰색부라우스에 검정치마를입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잠결이지만 그럴리가 없으니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재확인을하고 잠을 자야할것 같아서
마음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종전 모습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었다
재차 확인했을때는 확~ 무서움이 덮쳐서
몸을 꼼짝달싹 할 수없었다 귀신을 본것이다 확실하게...
확인까지하면서 눈을 딱 감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려 하는데 말이 안나온다

목이 막혀 얼굴에 온힘을 다주는데도
"관"자도 말이 혀가 굳어서 안나오는데

각...가...관...세...음...보...살 있는 힘을다해
토해내듯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신을 바짝차리고 일념으로 한참 부르고 나니
얼마나 불렀는지 한참만에 마음이 진정되고
편안해진 다음에 살그머니 눈을떠 보았다

날 바라보던 귀신이 없어졌다 방 한가운데 누어있던 나는
일어나서 불을 키고 시계를 바라보니 한밤중 정각2시였다
불을켠채 다시 잠들어 아침에 일어났다

지금부터 25년전 기억이다
근데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어떻게 알고 불렀는지 모른다
정식으로 절에 다니기 전이라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해본적이 없는데...

그집은 일제시대 일본사람이 살던 적산가옥이라
집이 음기가 돌고 집터가 센 그런 집이어서 난
셋방으로 이사갔지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그집 주인은 이사와서 3일만에 부인이 말도 못하고 죽었다했다

귀신한테 붙잡혀 죽을 뻔한건데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른공덕으로
아직 난 살아있어서 이글을 올림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세번의 영험중 초발심전의 첫번째 영험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관세음보살염불 공덕으로 두동자를 보내주시다◈

순수한 믿음이 마음밭에 심어지면
불심의 싹이 돋아나게 되는가
부산에 3년 살고 서울로 와서 명동에 의상실을 하게되고
어느날부터 절에나가 차츰차츰 불교공부에 맛을 알게될 무렵
혜력화보살님이 음악 발표회의 무대에 입고나갈
부라우스에 반짝이는 스팡크를 달아 달라해서
새벽4시까지 날을새며 정성것 스팡크를 달아서 드렸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혜력화보살님이 어느날 보답으로
경기도 벽제에 술마시러 가자고...
안간다해도 가야한다고 실랑이끝에 따라 나섰다
대여섯명이 함께 혜력화보살님 도반이 하는
대학주점 동동주집을하는 벽제의어느 동동주집에서
동동주를 첨으로 마셔보았는데 틉틉하면서 달달하고
소주처럼 독한느낌이 없고 맛이있어 모두 한잔씩 돌리고
조금 남은것을 마져 내가 마셔버렸다

사실은 몸에서 술이 체질적으로 받지를 못해
좀 마시면 토하기 일수인데 생각없이 마신후에 취해서
온통 세상이 거꾸로 돌아버리고 주정을 부리다
결국은 화장실에서 위경련으로 토해도 토해도 멈추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기만하면 위에 경련이 일어나 죽을지경에
가까스로 제자리로 돌아와 주점의 긴의자에 누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눈을 떴을때
모두서서 내가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추스려 일어나 동행들과 서울가는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은 겨우갔는데 다음정거장에서
버스가 멈추어 위경련이 다시 시작되어
구토증세로 몸이 견딜 수가 없어서 막움직이려는 버스를
일행은 두고 혼자서 뛰어내려 캄캄한 밤에 혼자서
거기가 어디쯤인지도 모른체 쭈구리고 앉아
이젠 헛구역질만 계속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조그만 약국이 불빛이 보였다

무슨 안정제 드링크를 마셨지만 위는 가라않지안고
몸을 움직일 수도없고 그드링크 마신것 마져 거부를해
한참을 약국입구 옆쪽에 웅크리고 있으려니
약사가 걷거나 움직여서 취기를 없애야한다고 걸으라한다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 모르지만 사방은
시골길이라 칠흙같이 어두울 뿐이다
혼자서 걷자니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서
관세음보살 염불이 저절로 나왔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그런데 처음 걷는 길이 양쪽은 논두렁인데
얼마전 꿈속에서 본것같고 낮설지 않는 느낌을 주었는데
아마 염불을 하고부터 마음이 안정이 되고
그렇게 느낀것 인가싶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남자가 힐끔힐끔 돌아보면서
주위를 배회하다 사라지고 한참더 걸어가고
이제는 산을 양쪽을 깍아세워 길이 난곳에서 갑자기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뭉치는가 싶은데
앞에서 약5 미터 전방에 무엇인가 나타났는데

느낌으로 7살에서 10살 정도의 두동자가 사쁜사쁜 뛰어간다
이상하다 양쪽은 분명 산을 반듯하게 깍아서
낭떨어진데 어디서 나타났지?
사람이 맞는건가?
계속 의심이들어 확인할려면 캄캄한 길이라
차가 지나갈때 해트라이트로 비추면 알수있을텐데
그때까지 앞에가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걷는다
옳지! 먼데서 뻐스가 나타나더니 지나갔다

불빛에 분명히 아이들인데 그림에 나오는 두 동자의 모습이었다
한 동자는는 더벅머리고
또한 동자는 양쪽으로 토끼귀처럼 짧게 위로 묶었다
24년전이지만 남자아이 머리를 그렇게 묶지 않는다
한참을 걸었고 아스라이 마을이 나오자 동자들은
마을쪽을 향해 사라져서 내가 마을어귀에 도착했을때는
동자들이 없어졌을꺼란 추측을 뒤엎고 그들은 골목에서
여전히 사뿐사뿐 뛰어가고 있었지만 난 서을을 향헤 계속 걸어갔다

이제는 정신이 나서 위경련도 멈추었고
밤새도록 걷더라도 서울은 멀다 서을가는 차를 세워야하는데
손을 흔들어도 몇대의 차들이 그냥 스친다
걱정이 시작되어 조바심이 날무렵 한대의 버스가
불빛이 없고 해드라잇만 켜진 상태로 나타나서
무조건 손을 흔들었는데 멈추드니 태워 주었다
그 버스는 효도 관광 갔다 모두 내려드리고 돌아가는 빈 버스였다
기사님 말씀이 수색까지만 가니까
그곳에서 다른차로 갈아타라 하셨다

물론 그곳에서는 택시를 타고 그때 다니던 절이
서대문에 있어서 집은 더멀리 있었으니까
절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2시 쯤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벽제는 화장터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염불한 공덕으로 두동자를 보내주시어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고 무탈하게 지켜 주셨던것같다
나중에 또한가지 알게 된것은 논두렁을 지날때의 길은
경기도 고양군 나의 아버님과 조상이 대대로 묻힌
큰선산이 있는곳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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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손길로 늘 지켜주시는 부처님

신정희(수원 용광사신도)

저는 수원 용광사에 나가고 있는 신정희라고 하는 천태종도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병을 앓아온 저는 주위에서
온갖 노력을 다해보았지만 별 진전을 보이지 못하자
모두들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상태에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주위 분들의 권유로 구인사를 알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3년 전인 1983년 여름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다 해보았던 저는 막상 구인사를 찾았으면서도
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지탱할 수 없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구인사에서 기도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요사이 생각해도 참으로 부처님의 가피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뒤 시간이 날 때마다 구인사를 찾아 기도하던 중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경기도 화성군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시아주버니의 회사 사람들 문제로 이사를 하면서도
날짜가 촉박하여 큰스님 전에 친견도 못하고
짐을 꾸려 간 곳이 작은 면소재지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아이 아버지와 두 딸,
그리고 저, 이렇게 4식구입니다.
이사와보니 막내 딸이 친구가 없는데다가 몇몇 있는 아이들은
교회에 나가 저는 별 생각 없이 교회에 다니라고 했습니다.

이사를 하고난 뒤 저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가운데
작은 일들이 자꾸 생겨 한동안 구인사에 가지 못했습니다.
몇달이 지난 뒤 구인사를 다녀오려고 아이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고
짐을 꾸려놓고 자려고 하는데,
작은 아이가 누워 기도를 하는 게 아닙니까.
그것도 교회에서만 하는 사도신경을 외우는 모습을 보고
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온몸이 불덩이같이 열이 났습니다.
아이 아픈 것을 보고는 아이 아버지는 구인사 가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라고 했습니다.
아이도 다음에 가라고 졸라 속이 상했지만 짐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팠던 아이가 금방 괜찮아지는 것을 보고는
순간 제 마음에 시련이 오겠구나 생각하고는
아이를 교회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두달 뒤 겨울방학이 되면
구인사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저희 집에는 모두 3가구가 살고 있는데,
저희만 불제자고 나머지 두 집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어느날 저는 아침 밥상을 들고 나오다 땅에 밥상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깨진 그릇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설거지를 끝내고 있는데,
옆집 새댁이 와서는 저희 집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그릇을 물에 담가두었을 뿐인데 깨져서 가져왔다고 하길래
그때부터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래도 구인사에 다니는데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기도 했지만
께름찍한 것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점심 때가 가까워오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시장에 가자고 했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작은 아이가 저를 보더니 함께 책 사러 가자고 졸랐습니다.

마땅히 장볼거리가 없었던 저는 책을 사러 함께 가기로 했는데
아이가 잠깐 사이 큰 길 건너 가게에서 껌을 사가지고 나오다
달려오는 오토바이에 치었습니다.
10m 정도 끌려가다 멈춰 있는데 제가 달려가보니 깨어나질 못했습니다.
순간 저는 눈 앞이 깜깜해지고 아찔하면서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금 후에 아이는 깨어났지만 아이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릴까봐 마음으로만
‘관세음 보살,을 부르면서 병원으로 급하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부터 한동안 저는 충격 때문인지 손에 마비가 오고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다친 뒤로는 제 몸도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마음은 약할 대로 약해져 하루하루를 근근히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교회 종소리였습니다.
교회 종소리만 나면 무섭고 두려워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밖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시간단위로 종소리를 울려댔습니다.
몸이 약해져 있던 저는 이런 종소리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절에 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집을 나와 수원까지 택시를 타고 나왔습니다.
손으로는 구인사에서 산 염주를 돌리고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빨리 절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처음 길이라 용광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전화를 걸어
행선지를 알아낸 뒤 물어물어 간신히 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법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저는 눈물을 추스릴 겨를도 없었습니다.
부처님과 조사스님이 저를 따뜻하게 반겨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상스럽게 절에 도착하니 마음이 놓이고 안정이 되었습니다.

절에 얼마를 있다보니 구인사에 가고 싶어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야단이었습니다.
회사 사람들의 밥은 어떻게 하며,
또 아픈 아이는 어떻게 할거냐며 절에 미쳤다고 막 야단을 쳤습니다.
전화를 통해 저는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무섭고 두려워서 혼자서는 구인사까지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이런 저를 이해했는지 아침에 데리러 가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안심이 된 저는 초저녁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하는 도중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목덜미를 탁 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려 기도를 하는데 어느 분이 숟가락으로
약을 떠주길래 세번이나 받아 먹었습니다.

아침에 절에 온 아이 아버지와 함께 구인사에 도착했습니다.
일이 바쁜 아이 아버지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저만 남아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기도 도중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구인사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제 자신이 허망해 보였고,
집에 기브스를 하고 누워 있는 딸아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는듯 답답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이 고통에서 구원해주십사’ 하고.
그밖에 큰스님을 친견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기도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2일을 보내고 하루 더 있다가 가리라 마음먹고
다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뛰더니 저의 입에서
영어가 술술 나오며 예수님이 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이어서 제 입에서는 법음이 나오고 부처님이 예수님을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에 오신 두 분의 뜻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자기 제자로 삼으려고 하시고 부처님은 제가 불자이니
괴롭히지 말라는 뜻을 전한 것 같습니다).
한참 동안 제 안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가는 중
저는 마음으로 맹세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필요 없고 영원한 불제자가 될 것이다’라고.
그 뒤부터 기도가 바로 되고 부처님의 말씀이 나오면서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화주 보살님께 조사전 마루불사를 위한 시주금으로
20만원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데, 또 다시 눈물이 나왔습니다.
기도 도중에 여러 스님이 저희 집으로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저는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도 저는 구인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집에서 기도를 한지 3일 후에 안면도 없는 기독교인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찬송가를 부르고 아이 아버지와
시비조로 싸우려고 했습니다.
순간 저는 구인사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 아이 아버지를 달랬습니다.
그날 세 차례나 찾아온 교인들로 인해 저희 가족들은 무척 힘이 들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수행에 보탬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흙탕물에 저의 신발 한 짝과 십자가가 떠내려가는데,
저는 저의 신발만 건지고 십자가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꿈을 꾸었는데,
조사스님이 하늘 한중간에 밝은 빛을 발하시며 스님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조사스님을 보고 제가‘언제 가시겠습니까’ 하니
조사스님께서‘내일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그로부터 3일 후 저는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듯 몸이 가벼워졌고
정신도 또렷해졌습니다. 아픈 것도 없어졌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우리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있어도 반드시 구원하시는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종도 여러분들은 열심히 기도정진하고 노력을 하십시요.
부처님께서는 여러가지 방편을 쓰시면서 결국에는
우리를 고통에서 구원하여주십니다.
모두 성불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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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로 일웅스님의 병 이 치료되다.


대구 법흥사 주지로 일웅스님이 계십니다.
지금도 주지스님으로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스님께서 직접 겪으신 체험담입니다.

"기복으로 기도를 한 경우에도 기도에 몰입하여 마음이 비워지고
순수해졌을 때 영험이 나타나는 것이지,
마음속에 뭔가를 바라는 욕심이나 조급함이 가득차 있을 때는
영험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 주변에서는 기도의 영험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스스로 병을 치유한 나(일웅스님)의 체험담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60세가 가까워지자 기력이 예전같지가 않았습니다.
40대시절 포교에 매진하면서 한편으로는 태고·조계종간의 분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기력을 소진했던 탓인지
피로가 누적되고 쉽게 회복되지가 않았습니다.
몸은 곧 마음을 반영합니다.
몸이라는 글자의 한획만 바꾸면 맘이 되는데 이는 곧 마음의 준말입니다.
예로부터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고 했어요.

자기몸이라도 함부로 굴리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지요.
종단사태 이후 십수년을 쉴 사이없이 신경을 과도하게 쓰다보니
병이 올 수 밖에요.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 먹어도 차도가 없자
큰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간경화말기증세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승려로 살다가 죽으니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지막으로 부처님전에 기도나 열심히 하다가 임종을 맞이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관세음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는데
여러달이 지나면서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밤, 도저히 오늘밤을 넘길수 없겠다 싶어요.
“과거 수억겁을 지나오면서 아프지 않은 때가 있었겠는가,
아프고 아프지 않은 것은 오직 마음의 상(相)일 뿐이다’고 한 생각을 돌이켜
몸을 간신히 추스리고는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일체가 다 내자신이 지은 업장때문임을
참회하고 성불의 인연짓기를 발원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기도중에 하얀 소복을 입은 부인이 찾아왔는데
안면은 있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요사채로 인도하니
“요즈음 스님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어떻습니까?”고 안부를 물어요.”
“아직 많이 아픕니다”고 하니

부인이
“제가 아픈 곳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해 아픈 곳을 보여주었더니

부인은 손으로 환부를 만지며 약봉지를 꺼내고는 먹기를 권해요.
꼭꼭 씹어서 먹었더니 부인은 “스님,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찬바람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아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이 아니라
법당에 앉아서 추운줄도 모른채 잠시 삼매에 빠져있었더라구요.
아프던 몸이 어느새 말끔하고 머리가 맑아요.
돌아서서 법당안을 둘러보니 부처님뒤 후불탱화에 그려진 백의관음께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랐지요.
비몽사몽간에 본 그 부인의 모습이 바로 백의관음이었던 것입니다.

이일이 있은 뒤로 차츰 병이 나아져서 예전의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내 체험을 얘기했지만 기도의 힘은 상상이상으로 큽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거나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수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에는 ‘나’라는 아상이 개입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상을 제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나무 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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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여 큰스님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체험담

현재 조계종 기초 선원장이시며 축서사 조실이신
무여 큰스님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체험담을 소개해 드립니다.

『삼십여 년 전에 지리산 실상사에 객으로 하룻밤을 유숙한 적이 있었습니다.
객실 옆방에 자기 나이도 모르는 한 12, 3세 가량이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나이를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거의 못 하고
겨우 밥이나 먹고 그저 변소나 다니는 참 어리석고 둔한 불쌍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무엇을 시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주지스님이 "너는 관세음보살님만 써라."고 해서
하루종일 관세음보살을 쓰고 있었습니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라 관세음보살을 쓰는데, 쓴다기보다 그린다고 할까요?
그 글씨는 자세히 보아야 알아볼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그렇게도 흉내를 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둔재 중의 둔재라 사람이라기보다 때로는 짐승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둔한 사람이지만 전혀 때묻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뭘 시키면 기억하는 한 시키는 대로
아주 끈질기게 하는 그런 장점이 있었어요. 시키는 그것밖에 모르는 아이예요.
그러나 성의는 아주 대단해서 하루종일 관세음보살을 쓰고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은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만 할뿐이었어요.
그런 바보지만, 그렇게도 못 쓰는 관세음보살이지만 계속쓰면서,
염하고 쓰면서 염하고 끈질기게 하니까 일념이 되었는 거예요.

드디어 3년만에 머리가 터져버렸어요.

아주 명석한 두뇌가 되어서 기억력도 좋고
창의력도 보통사람보다 훨씬 우수한 머리가 되었어요.
훗날 수계(受戒)를 합니다. 즉, 스님이 되었어요.
스님이 되고는 강원(講院)이라고 스님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어요.
그러고는 전라도 어떤 절의 주지노릇을 잘 하다가 스님답지 않게 여자복이 있는지,
두 보살하고 인연을 맺어서 두 여자몸에서 아들딸을 5남매나 낳고 복많은 중님,
팔자좋은 중님으로 살다가 지금은 미국인가 어디로 이민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그 실상사의 행자처럼 지극하게, 성심성의껏 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는 오직 그것뿐이듯이, 최선을 다하듯이 해야 돼요.
좋은 일도 생각하지 말고 나쁜 일도 생각하지 말며
아주 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거든
일체를 다 놓고 쉬어서 마음을 텅텅 비워서 오직 기도만 지극하게 하십시오.

기도는 가급적이면 쉬지 말고 하시고 끊임없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거나
말이 없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히 있거나
항상 관세음보살님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자칫 사회에서 버림받으며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뻔했던 한 소년이
관세음보살을 염하므로써, 그 운명이 바뀌어 버린 실화입니다.

(축서사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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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朗月)스님의 관음기도 영험담

(낭월스님 글)

가끔은 방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운(運)도 불리하고 여건도 좋지 않으면
종종 등장하는 것이 기도를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를 하면 과연 "효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반문을 받는 것도
당연한 코스(?)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 대한 낭월의 경험담을 들려 드림으로써
나름대로의 소견을 밝히도록 할 참이다.

물론 실화일 뿐이며 단 한 글자도 조작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1. 발단
낭월의 나이 20세였다.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 해였다고만 말씀을 드린다.
그 해의 간지는 丁巳년이었고, 1977년이었기도 하다.
그러니까 실제 나이로는 21살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어느 봄날 아침에 자고 났는데, 천지가 온통 붉은 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물은 가까이는 보이고 멀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3~4일이 지나면서 점차로 그 붉은 기운은 짙어지더니
마침내는 아무 것도 식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는 고사하고 자신의 밥그릇을 찾아 먹기도 곤란한 지경이 되었다.

대구에 있는 동산병원이라고 하는 종합병원을 찾았다.
하루 종일 검사를 한 다음에 내린 결론은 '失明'이었다.
시력을 쓸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리고는 끝이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으니 공부는 끝났고 자신의 생계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하였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자신이 건강할 적에는 부모형제가 필요 없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 잘도 돌아다니지만, 막상 병이 들면 아무 곳에서도 오라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계시는 집으로 가서 민간약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몇 달을 보냈다.
병명은 '초자체혼탁'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대의 의술로는 치료를 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
답이 명확하게 나왔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마음에 대해서 벗님은 생각이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입장에서는 절망이라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2.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기도 동기

막판에 몰리면 지푸라기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낭월에게 주어진 것은 기도를 하는 것밖에 달리 답이 없었다.
그대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기도라도 해야 뭔가 숨통이 트일 것으로 생각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듬거리면서 찾아간 곳은 동해의 양양 낙산사였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기도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막판에서나마 마지막 기도를 한번 해보고 세상을 하직하고 몸을 바꿔서
다시 공부를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많이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비록 경치는 보이지 않았지만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낙산사에 도착을 했다. 시간은 저녁 11시경이었다.
원주 스님을 찾았더니 밤중에 중이 돌아다닌다고 푸념을 하셨다.
이해는 되지만 낭월의 상황은 그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죄송하기만 했다.

3. 첫 번째의 힌트 '감이 좋았다'
새벽에 꿈을 꿨다. 꿈에도 낭월이 낙산사로 기도를 하러 왔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절 안에서 늙은 여스님이 동자를 데리고
바삐 어디론가 출장을 가시느라고 나오고 있었다. 합장을 했다.
그래도 꿈에는 사물이 바로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 비구니 스님이 흘낏 보시더니 걸음을 멈추고 하시는 말씀.

"기도하러 왔구만? 하고 있어! 난 좀 급히 다녀올 데가 있네~!"
"예, 다녀오십시오."

그 뿐이다. 비구니 스님이 사라진 곳을 멀거니 바라다보다가 꿈을 깼다.
그리고 그 감은 매우 좋았다.
몇 달 동안의 암흑에서 빛을 발견할 가망성을 얻었다고 해야 하겠다.
아마도 그 비구니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이었을 것이라고 저 좋을 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는 주지스님을 찾아서 기도를 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게 될 줄은
이미 꿈을 깨고 나서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100일간의 기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3. 하루 16시간의 정진
막판에서 할 일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느끼고 또 깨달았다.
잠자는 시간 6시간과 공양시간 3시간을 빼고는 모두 기도에 매달렸다.
그야말로 자나깨나 '관세음보살'이었다. 그렇게 집중이 잘 될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겠다.
잡념이 없어진다는 것은 큰 일을 당하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잡념이 많다는 말은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망상은 한가로움의 푸념인 것이다.
참으로 절박한 막다른 길에서는 오로지 일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고 해도
아마 실감이 드실 것이다. 그 해는 낙산사의 해수관음보살을 점안한 해인 것으로도
기억이 된다. 낭월의 기도는 낙엽도 다 지고 난 늦가을에 시작되었다.

4. 스님들의 조언 "무리하지 말아라"
당시에 함께 살았던 대중 스님들이 6명인가 되었는데 하나같이 낭월의 기도를
염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도를 시작한지가 며칠이나 되었을까 싶은 날에
책임자 되시는 분이 조용히 불러서 말씀하셨다.

"스님. 고생이 많소. 근데 지금 스님의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대중 스님들이 불안해하고 있구랴. 왜냐면 기도하다가 쓰러지겠다는 염려로 인해서요.
그러니 매일 8시간만 법당에서 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조용하게 한다면 대중도 편안하고
본인은 자신의 기도가 법당에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닌 줄은 알 것이므로
그 방법을 택해 보도록 하시오."

그 말을 듣고 보니 또한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불안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따르기로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목탁을 두드리면서 하는 기도 시간만
줄었다는 것이지 여전히 목숨을 달고 관세음보살에 매달렸다.
물론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그래도 새벽에 눈을 뜨면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로 불빛을 바라다 봤고,
여전히 같은 상태에서 실망감을 갖게 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5. 잊지 못할 기억을 갖는 꿈
약 두 달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기도는 순일하게 진행이 되었다. 기도를 마치고는 생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으로 인해서
담담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다음 생의 준비를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 나가던 상황이었다. 그 어느 날 밤에 꿈을 한 자리 얻었다. 지금도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낭월이 동해안 유람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 지역의 사령관 댁을 발견하고는
방문을 하였다. 들렸으니 인사를 하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인해서이다.
그 집은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한참 올라가서 있었다. 계곡이 가팔랐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초가집이 있었고, 문안을 드리고 절을 세 번했다.
물론 속인에게 절을 세 번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지만, 당시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그 분이 하는 말씀.

"자, 저쪽 밝은 데로 가시지." 해서 창가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해맑고 따스한 햇살이 쏘여들었다.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말했다.
"그래 혹 나에게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지."
"예 실은 전입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 어디 보세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민 것은 예전에 동산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였다.
그는 진단서는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질문만 했다.
"거기에 이러이러한 항목이 있나?"
"아뇨, 없습니다."
"그럼 저러저러한 항목은 있나?"
"그러한 항목도 없는데요."
"그럼 염려할 것 없네. 내가 해결해 줌세."
"예, 고맙습니다."』
이것이 꿈의 전부였다. 그리고 잠에서 깨여나니 새벽 1시 반이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아무리 벗님이 둔하다고 해도 이게 무슨 메시지인지는 감이 잡히실 것으로 짐작을 한다.
이제 눈을 고쳐주겠다는 암시가 아니고 뭐겠느냔 말이다.
그대로 가사장삼을 걸치고 법당으로 가서는 목이 터져라 하고 관세음보살을 불러댔다.
그리고 아침 공양을 하는데 대중들이 낭월의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가 술렁술렁함을 느꼈다. 어느 스님이 말했다.

"기도를 하시다가 오늘 새벽에는 다른 것을 하시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이 말은 혹시 기도하다가 돌아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서 의사를 타진해 보는 것으로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말씀 드렸다.

"아, 대중 스님들께 미안합니다. 기도가 잘 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은 함께 기뻐해 줬다.

6. 한 겹씩 벗겨지는 혈의 장막
그렇게도 세상을 붉은 천지로 만들었던 짙은 색이 그 후로 조금씩조금씩 옅어져갔다.
그 환희심을 벗님도 이해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나자
저 멀리 안개 속으로 느꼈던 사물들이 어느 정도 식별을 할 수가 있는 정도가 되었다.
비로소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뜨면 매일 쳐다보던
전등의 유리 윤곽선이 시야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그 무렵의 마음은 그야말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7. 묵언(默言) 기도
100일 기도의 회향을 3주일 남겨놓고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묵언을 하기로 했다.
묵언은 수행의 한 방법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대중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중은 당연히 허락을 했고, 그래서 이제는 아무와도 말을 나눌 필요가 없이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을 했다. 약 90일 정도가 경과하자 이번에는 신문지의 글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도는 더욱 흥겹게 진행이 되었다. 밖에서 산책을 하는데 관광객들이 자꾸 질문을 하는 것이 귀찮아서 '묵언'이라고 쓴 패를 가슴 앞에 달았다.
그러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 아래에다가 '말못함'이라는 추가문구를 넣었다. 비로소 효과가 있었다.
"에구... 쯧쯧... 벙어리 스님이네...."
"나이도 젊은데 우짜다가....."
"얼굴도 참하구만..... 안되었다..... 쯧쯧...."

8. 회향
드디어 백일 기도를 마쳤다. 전날 내린 눈이 대지를 하얗게 바꿨고,
그 빛은 반사가 되어서 법당을 환하게 비췄다.
그러나 낭월이 보기에는 법당의 관세음보살님이 방광을 하시는 것으로만 보였다.
참으로 원만한 성취가 된 셈이다.

9. 후기
그로부터 3년인가 지나서 다시 낙산사를 찾았다.
그 절의 스님이 관광객을 상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3년 전에 눈먼 스님도 여기에서 기도를 해서 눈이 밝아졌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혼자서만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그 스님은 모를 것이다.

10. 기도 권유
이러한 기도의 경험을 갖고 있는 낭월이다.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경험으로 확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통일이 되어서 소원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반드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되겠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절대자들도 절대로 없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없는 것도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이고, 寅木대운의 丁巳년의 흉함도 戊午년의 고통도
기도를 통해서 말끔히 정돈을 했다는 것도 노력은 기적을 만든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낭월이 방문자에게 기도를 하시라는 권유는 그냥 단순히 말이 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 글을 읽으시는 벗님은 아실 것이다.
물론 운이 흉할 적에 권유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11. 그 때의 간절함은 어디로 가고.....
기도를 할 적에는 눈만 보이면 쓸데없는 것은 절대로 보지 않고
오로지 경전만 보도록 할 것이며,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중생들에게
빛이 되도록 하겠다는 서약을 백천번도 더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를 관세음보살 님이 보신다면 아무래도
한숨을 쉬시지나 않을까 싶다.
그래도 단 한가지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저 어디엔가 '그 분'은 반드시 계시고,
언제라도 온몸으로 부른다면 답을 들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더불어 고민을 나누면서도 그러한 절박함을 경험했기에
어쩌면 더욱 절실하게 이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역경이 반드시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고,
인생의 성장 과정에서 어쩌면 한번 정도는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여하튼 일생 눈으로 인해서 겪는 고통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전생에 살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

※ 낭월 스님은 현재 계룡산(鷄龍山)의 남쪽 감로사에 주석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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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감사드립니다.●

-출처/나무아미타불-

안녕하세요.
저는 양양 낙산사에 다니는 불자입니다.
제가 이번에 기도하여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과거 숙생의 죄업이
산과 같이 많은 것을 느끼고 저로 인해 고통 받은
영가들을 위해 3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집에서 천수경을 한 번 읽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번씩 읽을 때마다
관세음보살님께 영가들을 극락왕생하여 주십사 3번씩 기원하였습니다.

3일째 날 회향하고 잠을 잤는데 제가 어느 절터에 있었습니다.
한 비구 스님이 아이 3명을 데리고 계셨는데
석불상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거처하는 집은 시골의 허름한 집같이 초라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일 작은 한 아이가 석불상을 들어서 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같이 불상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리면서 사탕을 줄터이니
불상을 깨트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잠이 깼습니다.
그 주에 저는 관세음보살님께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게 해달라고 사탕을 한 봉지 사가지고 갔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 사탕을 올리면서 간절히
영가들을 돌보아 달라고 기원하였습니다.
눈물을 너무나 많이 흘렸습니다.
천수경을 독경하면서도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저는 영가들이 아직도 천도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7일 기도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밤에 자기 전 한 시간씩 대비주를 외우며 다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항상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피를 기원하였습니다.
어제 기도회향을 하고 잠을 잤습니다.
그 날 피곤한 일이 있어서 잠을 설쳤습니다.

새벽에 잠이 어렴풋이 들었는데 바닷가였습니다.
백의관세음님이 아주 장대한 몸으로 동자 3명을 데리고 계셨습니다.
동자들을 모두 금신으로 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윽고 관세음보살님이 금색초롱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동자들도 그 뒤를 따라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며 환희스런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이 번 주에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감사하는 뜻으로 꽃을 회향하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함에 감사드리며
무릅끊고 지심귀명례합니다.
불자님들도 항상 대우주의 자비이신
관세음보살님을 칭명하시고 염불정진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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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우룡 큰스님저 생활속의 관음경 (도서출판 효림)


1.

경상남도 고성군 옥천사(玉泉寺)에 담력도 크고 가끔씩 괴이한 행동을 하는 오관수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6.25사변말기에 포탄이 떨어지는 일선 쪽으로 가서 군인들을 돕는 노무자들과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 속에서 동사섭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스님은 같은 노무자가 되어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모두 함께 장단을 맞추어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일합시다.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동안에는 틀림없이 무사할 수 있습니다. "

총알과 지뢰와 포탄 속에서 벌벌 떨고 있던 노무자들은 범상치않은 오관수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삽질을 하면서도 '관세음보살' 포탄을 나르면서도 '관세음보살'을 외쳤습니다.

이렇게 소리를 맞추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하다보니, 얼마 지나지않아 불안감이 사라졌고 두려움없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의 능률이 올랐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포탄이나 지뢰의 피해를 한 차례도 입지않았다고 합니다.

6.25사변후 오관수 스님을 진주 의곡사에서 뵙게 되었을 때, 스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체험을 했지. 그 많은 노무자들에게 어떠한 탈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일세. 참으로 함께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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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시대 말기에 효성(曉性)스님은 13세에 쌍계사로 출가하여 대웅전 노전 스님의 상좌가 되었습니다.

전등을 밝히는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는 저녁 예불이 끝난 다음부터 새벽 예불 때까지 법당 안에 등불을 밝혔습니다. 둥근 그릇 모양의 등잔에 참기름을 가득 붓고 종이 심지를 달아 밤마다 불을 밝히면 3일은 쓸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가을, 법당 청소를 하다가 등잔을 살펴본 노전스님은 참기름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분명히 어제 기름을 넣었는데 왜 한 방울도 없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노전스님은 기름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살펴보니 또 기름이 없었습니다. 등잔을 살펴보았으나 깨어진 흔적은 커녕 구멍하나 없었습니다. 괴이하게 여기며 스님은 또다시 등잔에 참기름을 채웠고, 그 이튿날도 꼭같은 일이 일어나자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밤마다 등잔에 손을 대는 것이 틀림없구나.'

그날 밤 노전스님은 13세의 효성사미를 데리고 법당의 신중단 탁자 밑으로 들어가 밤을 새웠습니다. 탁자는 천으로 가리워져있어 밖에서는 그 밑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탁자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효성사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은사스님의 고함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놈, 게 섰거라!"

깜짝 놀란 효성사미가 눈을 떠보니, 법당 가운데의 문 앞에 키가 9척이나 되고 검은 옷을 입었는지 검은 털이 났는지 분간이 되지않는 괴물이 서 있었습니다. 머리와 팔다리와 몸뚱이가 모두 있고 우뚝 서 있었지만, 사람은 아닌 듯했습니다.

고함을 치며 神衆壇 탁자 밑을 나간 노전스님은 그에게 앉도록 한 다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이냐? 짐승이냐?"

"사람도 짐승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목신(木神)입니다."

"목신이면서 어찌 감히 부처님 전에 올리는 등잔의 기름을 훔치는 것이냐? 그 과보가 얼마나 큰 지를 모르느냐?"

"어찌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하오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냐?"

"저는 이 절 밑의 화개마을 이판서댁 뒤 뜰에 서 있는 은행나무입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 발들이 땅 밖으로 나와 있는데, 무식한 머슴들이 제 발등에 나무를 올려놓고 도끼질을 해서 장작을 팹니다.

판서댁에서 겨울 내내 쓸 장작을 여러 머슴들이 계속 준비하다보니, 제 발들의 이곳 저곳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맙니다. 이 상처와 아픔을 달랠 약은 다른 곳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부처님께 올리는 이 등잔의 기름을 발라야만 하룻밤 사이에 아픔이 사라지고 딱지가 앉습니다. 그런데, 머슴놈들이 매일 장작을 패기 때문에 며칠동안 계속 부처님의 기름을 바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네가 진짜 목신이라면 인간보다는 힘이 셀 것이 아니냐? 얼마든지 보복을 할 수 있을텐데?"

"보복을 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집의 運이 다하지 않았는지 이판서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나면 정좌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 번 읽습니다. 그 힘 때문에 지기(地氣)를 비롯한 어떤 기운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든이 넘은 이판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이판서가 죽고나면 보복을 할 생각입니다."

"내가 가서 앞으로는 머슴들이 너의 발등 위에서 장작을 패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니, 보복을 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인간들이 해를 가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가 먼저 해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그렇게만 해주시면 그 이상 고마울 일이 있겠습니까?"

목신은 절을 한 다음 사라졌고, 노전스님은 날이 밝기가 바쁘게 이판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이판서는 머슴들을 불러모아 땅위로 노출된 은행나무의 뿌리를 부드러운 흙으로 덮도록 하고, 허리 높이 정도의 울타리를 만들어 누구도 나무에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상을 차려 은행나무에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뒤 쌍계사 대웅전의 등잔 기름은 훼손 당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13세의 사미 시절에 이와같은 일을 경험한 효성스님은 노년에 나를 비롯한 여러 승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수백년된 목신은 힘이 없어 보복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늙은 이판서가 날마다 외우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가피력 때문에 어떻게 보복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어, 어떠한 사기(邪氣)도 이판서의 집안을 범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명훈가피요, '누구라도 감히 해칠 수 없다'는 관음경의 시실불감해(時悉不敢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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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매하(梅下) 최 영년(崔 永年)은 문장이 뛰어난 석학이요, 시인으로 이름난 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늦도록 자식이 없자, 서울 자하문 밖의 옥천암 해수관음상 앞에서 삼칠일(21일)동안 생남기도를 올렸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아들을 점지하여 주시되, 재주가 비상한 문장가를 점지하여 주옵소서."

아버지는 기도 회향일 새벽에 잠깐 꿈을 꾸었는데, 점잖은 중년 부인이 양쪽 팔에 옥동자와 석동자를 안고와서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옥동자와 석동자 중에서 어느 동자를 갖기를 원하느냐?"

"이왕이면 옥동자를 주십시오."

"이 옥동자는 네 복에 지나치다. 석동자를 가지고 가거라. 이 석동자만하여도 그대가 원하는 재주가 비상한 문장가는 되느니라."

"그러시다면 석동자를 주십시오."

마음에 섭섭하기는 하였지만 석동자를 받고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과연 그 뒤에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최 영년이며, 얼굴모습도 꿈에 받은 석동자와 꼭 닮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석동자를 받았으므로 돌처럼 병도 없고 수명 장수하리라 여겼는데, 과연 최영년은 무병장수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성하여 정 만조(鄭 萬朝), 여 하정(呂 荷亭) 등과 어깨를 겨룰만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만약 최 영년의 아버지가 삼칠일이 아닌 백일기도를 하였다면 옥동자를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에도 인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곧 정성을 많이 기울였으면 더 좋은 결과가 돌아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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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세음보살님만이 아니라 다른 불보살님께 올리는 기도에도 반드시 기도시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기도를 하여 아들.딸이나 사위.며느리, 상좌 등을 얻게 되었을 경우, 처음부터 마음에 딱 맞는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아이구, 저런 게..'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옵니다. 이것이 불보살님의 기도시험입니다.



1)

일제강점기에 해인사에 계셨던 우련스님은 상좌가 없어서 관세음보살님께 백일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기도 회향일에 새까맣고 꼴불견인 아이가 찾아와 하는 수 없이 상좌로 맞아들였습니다. 우련스님은 그와 같은 상좌에 대해 불만이 없지않아 평소에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쯧쯧, 백일기도 회향일에 들어왔기에 할 수 없이 상좌로 삼았어. 어찌 관세음보살님께서 저런 걸 보냈을꼬?"

하지만 그 상좌가 자라 뒷날 백용성 스님의 율맥(律脈)을 이은 경하(景霞)스님이 되었으니, 우련스님의 기도가 어찌 그릇된 결과를 낳았다고 하겠습니까?

2)

해인사 희랑대의 현응스님도 나반존자께 '좋은 상좌 하나 점지해주소서.'하면서 백일기도를 하여 얻게 된 상좌가 몽견선생(夢見先生)입니다. 눈만 초롱할 뿐 잘생기지 못한 이 상좌에 대해 현응스님은 만족을 하지 못하였지만, 몽견선생은 오오사카 의전을 나와 만주에 불교병원을 세워 사람들을 치료하였으며, 병원에 부처님을 모시고 많은 이들에게 염불을 권하고 불교를 가르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기도 끝에 시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당장 눈에 딱 드는 사람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 덕으로 얻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품고서 키우고 같이 있다보면, 남보다 더 뛰어난 면이 있는 사람, 사회의 어느 한쪽을 능히 지탱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기도시험에 속지말 것을 당부 드립니다. 스스로가 행한 기도를 믿고, 또 불보살님을 믿고 기도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아들딸을 키우고 며느리와 사위를 데리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속을 뿐, 불보살님은 절대로 중생을 속이는 법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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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몇 년전 90세 가까운 나이로 돌아가신 덕운성 보살은 50대 중반에 자궁암에 걸렸습니다. 부잣집 외동 아들인 남편이 평생을 돈 쓰는 재미로 살면서 남편이 물려받은 재산은 물론 처갓집 재산까지 모두 탕진하고 죽었으므로, 덕운성 보살은 날품팔이를 하며 혼자 1남 2녀를 키웠습니다.

"말기 자궁암입니다. 앞으로 3개월정도는 살 수 있으니 주변을 정리하시지요."

대구 동산병원의 의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것은 그녀의 두 딸은 결혼을 하고 아들은 중앙대학교 전자공학과 2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자궁암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30여년 전에는 말기 자궁암이 반드시 죽는 병에 속하였기에, 덕운성 보살에게는 의사의 말이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서울로 시집을 간 큰 딸에게 울면서 사실을 알리자, 큰 딸은 포기할 수 없다며 세브란스 병원으로 모셔가 다시 진찰을 하게 했습니다.

"3달은 너무 성급한 진단입니다. 그러나 6개월 이상은 보장하기 힘듭니다.""

그녀는 의사를 붙들고 울면서 사정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를 2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제 아들이 대학 2학년이니,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단칸 셋방이 있는 김천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매달릴 데가 없었습니다. 오직 한 분, 관세음보살님 뿐이었습니다.

기도비가 없었던 그녀는 집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은 물론이요 틈만 나면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백일기도 마지막 날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는 김천 청암사 극락암에 모셔진 42수관세음보살상(지금은 도난 당하였음)앞에서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백발의 노스님 한 분이 불단 앞에 나타나 약 세 봉지를 주셨습니다. 엉겁결에 무릎으로 기어가 약봉지를 받았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먹어라."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노스님은 부처님 앞에 놓인 다기물을 손바닥에 부어주셨고, 그 물로 한 봉지를 먹고 나자 또 물을 부어주며 말했습니다.

"또 먹어라."

"마저 먹어라."

세 봉지째 약을 먹었을 때 어떻게나 거슬리든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을 깨고나서도 그 약 냄새는 그녀의 몸과 집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은 그녀는 말기 자궁암이 완전히 나아 아들의 대학 졸업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30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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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雨龍 큰스님저 생활속의 관음경(도서출판 효림)

이상으로 法華經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 곧 관음경에 대한 강의는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나의 관음신앙 체험담을 들려드리면서 마무리 짓고자합니다.

1.
8.15 해방 후,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해인사로 출가한 나는 고봉(高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강원(講院)에 들어가 경전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해인사의 어른스님들은 불교의 여러가지 공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화두공부는 어떻게 하는건지, 주력공부는 어떤건지, 염불정진은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 것인지를 제시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옛날 스님들은 이렇게 공부하셨다, 저렇게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을 뿐입니다.

나는 스스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願)을 세웠습니다.

'중노릇 잘 하게 해주십시오. 지혜 총명을 주시어 장애없이 경전공부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때 나는 치문을 배우고 있었는데, 책 읽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관세음보살 염불에 몰두하였습니다. 밥 먹을 때도 '관세음보살', 화장실에서도 '관세음보살', 걸어다닐 때도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당시의 강원에서 공부를 배우는 학인은 여러가지 사중(寺中)업무를 한가지씩 맡아 돕는 급사노릇도 하였는데, 나는 해인사 산중 암자들을 돌며 공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공문서를 가지고 한 암자의 원주스님께 전하면 읽은 다음 사인을 해주었으며, 다시 다른 암자로 가서 원주스님의 사인을 맡았습니다.

2~3일에 한번씩 공문서를 들고 산내암자를 다닐 때에도 나는 오로지 관세음보살을 외웠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관세음보살을 찾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관세음보살이 끊어지지 않는 차원에 이르렀습니다. 대화는 대화대로 잘되고, 내 가슴 속에 분명히 관세음보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염불을 시작한 지 1년 가량 지났을 무렵, 한밤중에 해인사 밑쪽에서 산불이 일어나 모든 대중이 진화작업에 나섰습니다. 특별한 소방장비가 없었으므로, 제1진이 불난 곳 가까이의 아직 불 붙지않은 풀을 낫으로 베면 제 2진이 벤 풀을 갈퀴로 끌어내고, 제3진이 괭이로 땅을 파면 제4진이 맞불을 지펴 불이 스스로 꺼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산불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나는 진화작업에 참여하였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쪽에서만 불이 못 올라오도록 맞불을 놓을 것이 아니라 불이 올라오는 뒤쪽으로 가서 진화작업을 하게되면 훨씬 빨리 끌 수 있겠다.'

그 생각과 함께 나는 큰 바위를 타고 불길 저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바위 밑쪽에서 불이 치솟아 올랐고,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엉겁결에 바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린 나는 불 속을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썩은 나무에 불이 붙은 그곳은 완전히 벌겋게 탄 숯구덩이였습니다.

산불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나마저 불 속에 굴러 떨어졌으니.... 대중들은 크게 술렁거렸습니다. 어른 스님들의 다급한 음성도 들려 왔습니다.

"저 아이가 죽다니! 불보다도 아이의 시신부터 건져야 한다."

하지만 불구덩이 속을 구르다가 일어선 나는 소리쳤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불 끄세요. 저는 여기서 불을 끌게요.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대중스님들은 그 불 속에 굴러 떨어졌으니 죽었거나 큰 화상을 입었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사실 나는 다친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팔의 살결이 가벼운 화상을 입었을 뿐이었습니다. 대중들은 하나같이 말했습니다.

"기적이다. 불보살님의 가피야."

그 때 나는 확신을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어떤 액난도 고난도 사라지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할 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더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2.

그리고 6.25사변이 일어나기 전, 해인사에 빨치산이 들어왔습니다. 빨치산 사령관 유 성균이 4백여명의 대원을 이끌고와서 꼭 한달동안 해인사를 점령했습니다. 당시 해인사에는 학인스님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빨치산들은 해인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신상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자네는 집에 간다지? 오늘밤 우리 짐을 옮기는데 도와줘야겠어."

그들은 젊은 사람들을 무조건 붙들어 갔습니다. 그 때 나는 지금의 관음전 큰 방에 동료들 7~8명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빨치산이 그들을 다 붙잡아 갔지만 나에게는 가자는 말도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 잡혀간 큰 방에 홀로 우두커니 있을 때에도 빨치산들이 여러차례 문을 열고 기웃기웃하였지만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

당시에 잡혀간 사람들은 빨치산들과 함께 생활하며 모진 고생을 하였으며, 그 중 반이상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빨치산의 눈에 보이지조차 않아 잡혀가지 않았을 뿐더러, 꾸준히 공부를 잘 할 수 있었으니.....

어찌 이것이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 곧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아니겠습니까?


내 나이 20세 이전에 체험한 이 두가지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누구든지 관세음보살을 念하면 모든 두려움.재난.불행에서 벗어나 願과 같이 살 수있게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이 觀音經을 읽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불자님들께 진정으로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디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겠다고 작정하였으면 한 경지에 오를 때까지 꾸준히 해 나가십시오.

그 한 경지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나의 가슴 속에서 관세음보살 염불이 계속 이어지는 단계입니다. 대화는 대화대로 잘 되고 관세음보살 염불이 쉬임없이 또렷하게 이어지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재난이 스스로 피해가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뜻하는 바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지독히하면 백일, 길어도 3년을 작정하면 이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으니 부디 부지런히 염불해 보십시오. 대지비의 관세음보살님과 함께 하는 우리또한 대자비의 무궁한 힘을 지닐 수 있게되며, 주위를 평화롭고 아름답게 바꿀 수 있게됩니다.

그 날까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고 생각하고 함께하여 크나큰 행복을 이루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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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관음의 가피를 입다- 김 태환스님(태고종 보광사 주지스님)


불교는 소원성취의 길 - 태환스님(보광사 주지)

(1) 큰 병에 걸리다

한 평생 살도록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어 병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다. 학생 때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활발히 했었고, 출가한 후에는 참선 수행을 꾸준히 했으므로 도대체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체험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 12월25일, 의례 하듯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아령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어 달려갔다.

용변을 마치고 나오려 하는데, 오른쪽 가슴에서 무슨 숨기운이 곧바로 치솟더니 오른쪽머리에 숨구멍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스런 기분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원래 건강하여 이 나이까지 버스를 타더라도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었고, 걸음도 빨라 젊은 사람도 따라오기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길이 한번에 몸에 뻗친 다음부터는 걸음이 불편해지고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1월3일 '간염예방접종주사'를 맞으러 우리 사찰 신도네 병원인 시흥의 김택준내과를 가게되었다. 그런데 의사가 "스님, 전에는 참 건강해 보이셨는데, 오늘 뵈니 어째 숨소리도 이상하네요." 하기에 "내가 뭐 이상하오? 난 건강합니다." 하였다.

그래도 의사는 "스님, 아무래도 이상하니 진찰 좀 해봅시다."하곤 X레이 검사를 해보더니 '기흉(氣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폐에 구멍이 두 군데 나고 제 위치를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즉시 입원을 권했지만 "내가 무슨 입원이냐?"라고 일축하곤 귀사 하였다. 그러나 사찰의 보살한테 의사가 몇 번이고 전화를 하여 입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몇 번 식구들과 실갱이를 벌리다 결국 병원에 이끌려 갔다. 그래서 1월5일 한강성심병원 819호실에 입원하였는데, 진찰을 해보더니 오후에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른쪽 가슴을 마취시켜 구멍을 내더니 한 7cm가량의 관(?)같은 것을 넣으니 아주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폐와 근육 사이의 불필요한 바람을 뺐으니 이제 원만하게 붙어 이상이 없으리라 하였다. 그후 며칠간 경과를 진찰하더니, 8일에는 뭔가 굳어지며 이상이 있다하더니 11일에는 물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었다. 물을 빼는 치료를 며칠 하더니, 이 치료 갖곤 안되니 권위자인 홍박사를 찾아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였다. 17일엔 옆구리에 물주머니를 달고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에 임하게 되었다. 19일엔 정밀검사를 한 다음 일주일 후인 24일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2)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다

물론 평상시에 늘 염하던 '관세음보살'을 불러왔지만, 수술실로 가면서부터는 더욱 일심으로 불렀다. 부르다 거꾸러져 죽어버리면 몰라도, 숨이 붙어 있는 한은 쉼이 없이 염불하리라 작정하였다.

항시 관음보살 님의 대자대비에 젖어서 살아온 탓인지, 마음이 동요되거나 불안한 것을 몰랐다. "나에게 세상 인연이 다했으면 관음보살님 께서 숨을 걷어 가실 것이고, 만일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뭔가 영험을 보이시겠지. 알아서 하십쇼." 라며 오로지 관음보살 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9시에 수술을 시작하려는데, 비몽사몽간에 백의관음이 보이는 것이었다. 하얀 장삼도포에 머리와 얼굴도 온통 새하얀 보살님 주변에 여섯의 동자들이 있는데, 평소에 내가 지극히 좋아하던 연꽃이 쑥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활짝핀 연꽃 아래로 동자들이 모여들자 연의 뿌리가 또한 땅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백의관음님이 "산삼, 산삼, 산삼!"하고 '산삼'소리를 세 번 하는 것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 소리까지였다. 그 이후 난 마취 상태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장장 8시간의 대수술이 진행되었다. 이런 경우 수술 후에 몇시간이고 감각 없이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한 이틀간 정신을 못 차린다 하는데, 수술이 딱 끝나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수술 안 하십니까?" 물으니, 깜짝 놀란 의사는 "수술 끝났습니다."고 얼떨결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의사들 모두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놀라 마지않았다. 갈증이 나서 물을 찾으니 물을 주기에 시원스레 마셨다. 마신 것이 있으니 얼마 후엔 하기 마련.

소변을 보겠다고 하니 변기를 받쳐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들어 누워서는 용변을 못 보니,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였다. 간호사가 한사코 변기를 받치며 재촉하고 의사들이 권하였지만,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는 소변보기 싫다고 우겼다.

그때가 25일 아침이었는데, 내 고집에 고개를 흔들어 대던 의사 한사람이 "정 일어나려면 일어나쇼!"라고 퉁명스레 내뱉었다. 괜히 고집세우는 것이지 어찌 상체의 반을 절개한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겠냐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소피를 시원스레 보았다.

침대에 돌아오니 의사와 간호사가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뭔가 다릅니다."고 한 의사는 입을 열었다. 나중에 다른 환자들의 상태를 듣고는, 이미 수술 전에 백의관음께서 현신 하시어 수술 내내 가피력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 관세음의 영험에 감격하여 무수히 감사의 염불을 하였다. 아마도 나에겐 이 세상에서 보살 행을 더하라고, 자비하신 모습을 보이신 것임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나 퇴원할 수 있느냐고 홍박사에게 물으니, 대개 1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니 내년 2월쯤에나 퇴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입원4주만인 2월22일에 퇴원할 수 있었다.

(3) 소원성취의 조건

육체는 숨넘어가면 썩어 없어지는, 아침 이슬과 같은 것이어서, 이것이 영험을 나타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험을 일으키고 무엇이 생명의 주인공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래면목인 불성(佛性)인 것이다.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모두가 실로 부처님 생명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주인공을 파악하는 일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밭(心田)을 가는 수행을 해야한다. 그리 하여 자신의 참된 생명가치를 깨달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경지를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서 비로소 모든 소원은 남김없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꼭 출가하여 사찰에서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항상 자기의 본래 생명인 관세음보살 님을 성취되는 것이다. 출세간 적인 일의 성취는 물론, 우리의 평범한 소원도 성취시키는 것이 불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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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받다/글:김갑숙


제가 불광과 인연이 된 지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불교에 입문하기 훨씬 전부터 「불광」을 구독해왔으니
「불광」이 저를 부처님 품안으로 이끈
스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연히 군법당에서 불광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니 우연이라기보다 마음이 스산하여
문득 법당에 새벽기도를 갔다가 불광을 보고 열심히 구독해왔습니다.

저는 불광을 읽으면서 점차 불자가 되어갔고
본격적으로 불교에 입문한 지는 3년쯤 되었습니다.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라 불교에 귀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절에만 가야 부처님을 만난다는 생각을 버리고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만나려고 노력하며
집에서 열심히 경전을 읽고, 염불하며 기도정진하고자
100일, 21일 기간을 정해놓고 계율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야심경, 천수경 등…
몇 가지의 경전을 달달 외우게 되었습니다.
뜻은 잘 모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예불부터 시작하여
아침을 지으면서도 외우고 무엇을 하든지 머리 속에는
나는 불자다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입으로는 경전을 달달 외웠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금강경 사경하고 하루종일 기도가 끝나면
불교에 관한 책을 읽으며 불교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몇 년 부처님의 가피가 계셨음인지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이 절에 나가라고 허락하였습니다.
남편은 지금은 저보다 더 적극적인 불자가 되었으니 그
또한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얼마 전 원인 모르게 몹시도 아팠습니다.
머리가 쏟아지는 통증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
리고 위장병까지 나서 음식만 먹었다 하면 소화를 못 시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였지만
신경성이라고만 하지 뚜렷한 병명이 없었습니다.

약으로만 의지하던 저는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려 보기로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어떠한 어려움도 다 해결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각으론
관세음보살님을 관하고 입으로는 쉬임없이 불렀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라구요.”
그랗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에 관세음보살님께서 저의 옆구리에서
뱀 한 마리를 떼어내려하는데 그 뱀이 극구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님께서 힘껏 잡아당겨 떨어지는 뱀을
어느 바위에 던지니 그 바위에 그 뱀이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고 난 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며칠 동안이나 저를 괴롭게 만들던 통증이
언제 아팠느냐는 듯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전 관세음보살님의 몽중가피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픔이 있을 때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꿈에 관세음보살님만 나타나시면 어려움이나 아픔이 사라졌습니다.
지면 관계상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전 지금도 관음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와 관세음보살님의 가호하심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제가 불자로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요?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항상 제 잘못은 없고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는 듯 생각하고 상대방에 대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는데
불법을 만나고부터는 상대방의 잘못보다 나의 업을 생각하게 되었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도 왜 이럴까 하는 마음보다
제 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어머님께서도 교회에 나가시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제가 불자로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몇 년 전에 제 손을 잡으시면서
우리 집안을 맏며느리인 저에게 다 맡겨도 되겠다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로 큰 힘이 되어주십니다.

일상생활 처처마다 만나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보답코자 불자로서 하루하루 보람있게
항상 불보살님을 잊지 않고 생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기도정진하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무 마하반야 바라밀.

출처: 월간 불광 199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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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이 다시 주신 생명


생사의 절망 끝에도 관음은 계셨습니다/신화규(가정주부)

내소사에 들어서는 순간,
천여 년을 거슬러 올라온 것처럼 세상살이의 시끄러움은 없다.
일주문을 지남과 동시에 날려 보내지 않았나 싶다.
이 곳의 모든 것들은 기본이 몇 백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낯설지 않고 정다운 느낌,
오래 전에 와 봤던 곳에 다시 온 느낌이다.
혹시 전생에 이 곳에서 수행하는 복을 누리지는 않았었는지….

유명한 대웅전의 문살무늬,
천년된 나무의 웅장함,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냥 편안하고 좋은 느낌,
이 자리가 바로 내 자리가 아닐까 싶다.
도량석 도시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잠을 깨어
상쾌한 공기와 천년가람의 숨결을 느끼며 들어선
빛바랜 대웅전의 새벽예불.
수술 후 처음으로 혼자 나선 여행길이다.

1.극심한 두통…알고보니 뇌종양

포교사가 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제대로 되지 않은 공부에
사람들 앞에서 포교사라고 말하기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끝이 없기만 한 부처님 공부,
하지만 운명적인 이 길이기에 나는 기꺼이
이 일을 천직으로 알고 공부하고 싶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다시 주신 나머지 인생은 회향하는 의미로
한 알의 의미 있는 씨앗의 역할을 하고 싶다.

6년 전 전철역 계단에서 갑자기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려
굴러 떨어진 후로 매일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너무 심해서 한 움큼의 진통제로 생활하다가 그것도 안 되자
새벽이면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술을 마시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엄마 역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병명을 몰라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MRI를 찍고서야 뇌종양이라는 병으로 판명이 되었다.
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혹이 너무 커서 죽는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그냥 담담하게 말했다.

“선생님 수술 한 번 하나요? 아니면 두 번 하나요?”

뇌수술은 성공해도 기본이 두 번이고 두 번 하고도 결국은
죽은 가까운 친구의 남편을 지켜보았었기 때문에
두 번의 수술이라면 하지 않고 그냥 전국에 있는
기도처에서 원 없이 기도나 하다 죽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 당시의 상황은 혹이 너무 커서 신경을 누르기 때문에
모든 기능이 정지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먹을 수도 없고 대소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됐었다.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걸을 수도, 집안일도 할 수 없었다.

옷을 뒤집어 입거나 거꾸로 입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판단이 안 될 정도로 심한 상태였다.
그 때의 심정으로는 그냥 정확한 병명을 알았으니 됐고,
그냥 그대로 죽어도 이 고통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이곳에서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노느니 염불한다고 108염주를 손에 들고 돌리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님 살려 주세요’라는 말도
‘아이들을 부탁해요’라는 원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무심의 마음으로 ‘저는 인연 따라 따르겠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뜻대로 하세요.’하는 마음으로 염주를 계속 돌렸다.

그 순간 가슴 속으로 치닫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가슴가득 차지한 그 무엇! 그 후로는 두려움도 고통도 없어졌다.
막연한 두려움에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가족들이 계속 설득하고 있던 중이었다.

제일 두려운 것은 수술 후 얼마일지 모르는 막연한 시간 동안
여러모로 나로 인해 고통 받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그냥 이대로 조용히 눈감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면'하는 생각이었다.

염주를 돌리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관세음보살님께서 금빛 찬란하게 나타나셔서
땀을 흘리며 더워서 쩔쩔매는 나에게 시원한 냉기를 주시며,
“덥지? 내가 시원하게 해줄게 걱정하지 마라.”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 후론 아무 두려움이 없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

“관음보살님, 뜻대로 하세요”

아이들 선생님께도 전화해서 숙제나 준비물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엄마가 없어서 그러니 이해 해달라는 부탁까지 해놓고
이것저것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빈 자리를
최대한 줄이려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수술을 위해 머리를 깎았지만 주위사람들에게
“두상이 이쁘냐, 미우냐?”고 농담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다니던 절의 스님과 신도들이 오셔서 어떤 위로의 말을 할지 몰라
쩔쩔매실 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반드시 살 거고
다시 살아나면 부처님 일을 할 거예요.”하고 말씀드렸더니,
“보살님은 앞으로 공부 많이 하실 거예요.”하신다.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그 때는 몰랐었다.

“신화규씨 정신이 드세요.
제 말을 알아 들으시겠으면 눈을 떠 보세요.”
그 말을 듣고 눈을 떴다.
여러 줄로 묶여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나를 둘러싸고 서있는 많은 사람들,
담당의사들과 간호사, 가족들이었다.
눈을 뜬 나에게 의사선생님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가’하는 판단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보았다.
‘이름이 뭐라든가,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자든가,
왼발을 들어 보라든가’라는 물음에 평상시와 같이 웃으면서
자신 있게 대답하고 하라는 대로 정확하게 하자
모두들 살았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그 때까지는 그냥 원래 예상 했던 대로 6시간의 수술 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 곳은 신경외과 중환자실이었고 나는 20시간의 생사를 가르는
대수술 끝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감동은 남다른 것이었던 것이다.

남편의 말로는 예상된 6시간이 지나고 12시간이 지나도
수술이 끝났다는 불은 안 꺼지고 아침 8시에
첫 번째로 들어간 사람이 저녁때가 되도 소식이 없더니
새벽이 되자 담당의사가 가족들을 소집해놓고
지혈이 안 되니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달리 방법이 없어 자기는 부처님도 믿지 않고
하나님도 안 믿고 기도 할 데도 없어서 나에게,
“당신은 할 수 있다. 당신은 할 수 있으니
당신의 의지로 꼭 일어나”라고 기도했단다.


2.수술대 위의 기적

수혈이 40봉 이상은 위험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계속 70봉 정도의 수혈을 하고 있을 때 지혈이 되었고,
의사선생님은 자기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서 기다렸을 뿐
말로만 듣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놀라워하셨다.

내가 부처님을 믿는 것을 모르니까 남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게 정말 있나 보다고 해서, 나는 조용히 자신 있게
“이건 신의 기적이 아니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천주교를 믿는 시어머님께도 기독교를 믿는 친구에게도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고….


3.관세음보살님 차라리 저를 데려가세요

나는 대수술을 받았음에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뇌수술 후의 중환자실은 마치 아비지옥을 연상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의가 혼수상태의 환자들로 소리소리 지르고 심지어는 욕을 하고
몸부림 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의가 진통제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는데
나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다.
수술실에서 옮겨진 뒤로 진통제 한 대 맞지 않고
삼매에 든 것 같은 편안한 마음과 표정으로 있었다.


4.아비규환의 중환자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의 생활은 시작됐고 그 곳에서
산소호흡기와 여러 개의 줄로 이어진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새벽예불과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일뿐이었다.
하루에 적어도 두 명씩은 죽어나가고,
새로 수술하고 와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
몇 달째 정신이 안 들어 울면서 하소연하는 보호자들,
나는 지옥을 미리 와본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금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 법만 미리 알았다면 이토록 고통도 느끼지 않고
편안하고 환희심 속에서 병원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신경외과의 중환자실은 24시간 긴장상태이기 때문에
불을 끄지 않는다. 달리 잠자는 시간이 없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아 새벽 4시쯤 되면
물을 놓고 기억나는 대로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을 하고
관음정근을 하고 그 물을 마셨다.
간호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혼자 모든 걸 해내려고 애썼다.

수술결과는 아무 것도 보장 받을 수 없었다.
팔다리의 마비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될지 수술 후에도
중풍환자처럼 팔다리 마비상태로 그냥 지내야 될지
어떤 후유증이 올지 다시 재수술을 해야 할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하지만 나는 매일 매일이 즐겁고 감사했다.
며칠 만에 멀겋게 나오는 미음에도 감사하고
친절한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면회 와서 걱정해주는 가족 친구들 남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신 관세음보살님 모두가 감사했다.

아직은 어린 둘째딸이 어린 나이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자
울다, 울다 그냥 갔다고 친정엄마가 전했다.
갑자기 엄마가 걷지도 못하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엄마 옆에서 심부름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너무나 급하다고 해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얼굴도 못 보고 당부도 못 하고 갑자기 와버렸다.
아이들 때문에 나는 내 힘과 의지로 일주일 만에 나가리라 작정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기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했다.
그 결과 너무도 빨리 회복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는 여러 개의 침대가 굉장히 넓게 분포돼 있는데,
나의 가장 가까운 쪽의 침대에 있는 50대 초반 정도의
아주머니 환자는 8개월째 혼수상태로 있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찾으며 부른다.
아마 무의식 중에도 엄마만 있으면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리라는 생각에서인가 보다.
밥도 안 먹고 약도 안 먹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산소호흡기와 뇌로 연결된 여러 줄 중 하나라도 빠지면
위험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온몸을 꽁꽁 묶어 놨다.
그러니 면회시간에 온 열 몇 살짜리 아들과 스물이 갓 넘은 듯한 딸은
엄마를 붙들고 “엄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라며 울다, 울다 간다.
그 어린것들이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 못해
의사선생님께 그냥 퇴원 시켜달라고 하소연한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울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했다.
‘관세음보살님 차라리 저분 대신에 저를 데려가세요.
저는 부처님 법 속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고 또 죽는다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부처님 법 속에서 살 테니까
저분 대신에 저를 데려가 주세요.’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그 아주머니에게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워서 꼼짝할 수는 없으니 천장을 본 채로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 제 말 잘 들으세요.
제 말 잘 들으면 엄마한테 가실 수 있어요.
지금처럼 밥도 안 드시고 약도 안 드시고
간호사선생님 말씀 안 들으시면 절대로 낫지 않아서
엄마한테 갈 수 없으니 꼭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50대 무의식 환자의 “엄마, 엄마”

그 아주머니께서 듣든지 못 듣든지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아주머니께서 그 때부터
식사도 하고 약도 고분고분 드신다는 것이었다.
그 후 갑자기 일반 병실로 옮겨도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중환자실에서 6일 만에 일반병실로 옮겼다.
그 후 그 아주머니의 상태를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잘 치료가 됐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반병실에 와서 재수술 들어가며 불안해하는 여대생에게
팔에 있던 합장주를 껴주며 기도해 주었고,
치매로 불안해하는 할머니께는 10년간 지닌 108염주를 쥐어주며
돌리는 법을 알려드렸을 때 편안해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런 인연들을 맺게 해주신 것에 대해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하지만 나의 너무나 부족한 공부를 절감하였고
여기서 퇴원하면 부처님 공부를 제대로 해보리라 결심했다.

그 이후로 2년간의 불교대학공부,
그 후에 다시 승가대학부설 김포불교대학에 재입학하여 포교사가 되었다.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며 지금은 제대로 된
포교사가 되어보려고 연수와 기도, 군법회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그 때 만난 관세음보살님은 지금도 매월 초하룻날이면
홍련암의 파도소리에 어우러지는 비구니스님의 간절한
염불소리와 함께 만난다.
병실에서 혼자 물 한 잔을 놓고 올리던 새벽예불을 이제
홍련암을 비롯해 직지사, 법주사 등 전국에 있는 모든 절에서
삼라만상을 깨우는 범종소리, 목탁소리와 함께 올리고 있다.


5.불교대학 입학…보살행 서원

언제까지 이 행복한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남겨진 시간동안 여러 방편으로 부처님법을 펴고 싶어
방송대 국문과에도 입학해서 하루를 48시간으로 쓰고 있다.
나를 걱정해주시는 분들은 건강을 염려하지만,
아직은 재발의 위험도 없이,
물론 약간의 후유증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그 또한
기도정진을 게을리 말라는 뜻으로 알고 함께하련다.

어디 어느 곳을 가나 부처님 법음이 가득한 이 도리를
보다 많은 이들이 깨달아‘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실천하는 진정한 불자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발원해본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은 절절히 느껴
형식적인 위로가 아닌 부처님 마음의 끝자락이라도
흉내 내며 가슴 아파할 수 있게 됐다.

이제 10월 첫째 주에는 매월 나가는 군법회의 창립법회행사,
둘째 주의 해인사 보살계 행사,
셋째 주의 적멸보궁 철야기도,
넷째 주의 선운사 문학기행 등 바쁜 일정이지만
만나는 사람 모두가 한 분 한 분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단풍이 지고 있는 초겨울에 나는 다시 또
새로운 부처님을 만나러 떠날 것이다.

-월간불광 창간 30주년 기념 신행수기 공모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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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가현(昭歌縣)에서


일본의 소가현(昭歌縣)이란 시골의 빈촌 농가에 정자라는 딸을 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느 사람의 소개로 동경에 있는 부호집에
정자를 하인같은 가정부로 보내게 되었는데

집안이 극빈하여 떠나는 딸자식에게 아무것도 기념으로 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불심이 깊은 사람이라 '나무관세음보살'의
글자를 얇은 종이에 써서 조그만 주머니 속에 넣어서

그것을 옷깃 깊숙이 넣고 바늘로 꿔매주며 그 딸에게 이르기를

'정자야,너의 옷깃 속에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니 그리 알고
불철주야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불러라. 그리하면 너의
신상이 편안하고 장차 귀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다.

정자는 착하고 고지식하여 동경으로 가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어머니가 가르친 대로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그 부자집에는 10 여명의 일하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신참인
정자에게 온갖 궂은 일만을 골라서 떠 맡겼다.그래도 정자는
관세음보살만을 생각하며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맡은 일을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를 반년이 지나서 정자가 생각하기를
관세음보살을 몸에 지닌 채 화장실에 드나드는 것이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사이에 옷깃 속에서 주머니를
꺼내어 복도 마루기둥 갈라진 틈새에 살짝 끼워 놓았다.

그후 정자는 밤마다 다른 아이들이 잠자는 틈을 타서 살짝
일어나서 기둥을 향하여 수십번씩 절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그러다가 어느날,이것을 안 한 아이가 정자를 놀릴 속셈으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짜고 정자를 밖으로 심부름 보내놓고
그 주머니를 꺼내고 그 자리에 멸치대가리를 대신 넣어 놓았다.

그리고 몇일이 지난 뒤에 여러 아이들이 밤늦도록 자지않고
있었는데 그날도 여전히 정자가 나아가서 그 기둥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을 본 아이들이,

"야! 이 못난 것아,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절을 하느냐.
아직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쓴 쪽지가 있는 줄 알고
절을 하느냐.

우리들이 벌써 주머니를 꺼내고 거기에 지금은 멸치대가리 밖에
없는데 그것을 모르고 절만 하는구나.이 어리석은 것아,
그만두고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

하였다. 그러나 정자는

'너희들이 그런 못된 장난을 하였구나.너희들이 멸치대가리로
바꾸어 넣었거나 말거나 나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 것으로
믿고 예배 공양을 할 따름이니 너희들이나 참견말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절만 한다.그런데 여러 아이들이
살펴보니 멸치대가리를 끼워 놓은 기둥 구멍에서 방광(放光)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관세음보살님이 오색구름을 타고 나타나시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여러 하녀들은 무의식적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무수히 예배하였다.

이 사실이 주인에게 알려지게 되자,신심이 강한 주인 내외분은
이 아이를 며느리로 삼게 되었으니 여러 하인들이 이제까지
촌뜨기 바보라고 업신 여겨왓던 정자를 이제는 아씨 상전으로
모시고 섬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 일본에서는 "멸치대가리도 신앙심이 진실하기만
하면 관세음보살로 화현(化現)한다" 라는 말이 유행 되었다.


도서(초발심불자를 위하여)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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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慧蓮(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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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와 기도 가피 이야기 (불교방송 btn 광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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